1부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
3화 신神들의 나라 수밀이국(須密爾國, Sumer)
* Sumer 역사연대표 (제카리아 시친의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연대(BC) |
역사개요 |
44만5000 년 |
․ 엔키가 이끄는 네필림이 12번째 행성에서 지구로 내려와 메소 포타미아 남부의 에리두(Eridu)에 '지구 기지 1호'를 건설한다. |
43만년 |
․ 빙하기가 물러가고 근동이 따듯해진다. |
41만5000 년 |
․ 엔키는 내륙으로 더 들어가 라르사(Larsa)를 건설한다. |
40만년 |
․ 간빙기가 시작된다. 엔릴이 지구에 도착해 니푸르(Nippur)에 우주 관제소를 건설한다. 엔키는 남아프리카로 가는 해로를 개척하고, 그 곳에 가서 금을 캔다. |
36만년 |
․ 네필림이 제련과 정련을 위한 야금 중심지인 바드티 비라(Bad-Tibira)를 건설한다. 우주공항인 시파르(Sippar)와 다른 신들의 도시가 건설된다. |
30만년 |
․ 아눈나키가 폭동을 일으킨다. 원시적 노동자인 인간이 엔키와 닌후르쌍에 의해 창조된다. |
25만년 |
․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가 늘어나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간다. |
20만년 |
․ 새로운 빙하기로 인해 지구상의 생명이 퇴보한다. |
10만년 |
․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고, 신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다. |
7만7000 년 |
․ 신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인 우바르투투(라멕)가 닌후르쌍의 도시인 슈루팍을 통치한다. |
7만5000 년 |
․ 새로운 빙하기, '지구의 저주'가 시작된다. 퇴보된 종류의 인간이 지구를 떠돌아다닌다. |
4만9000 년 |
․ 엔키의 '충실한 종'인 지우수드라(노아)의 지배가 시작된다. |
3만8000 년 |
․ '일곱 번의 통과' 로 인한 가혹한 기후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유럽에서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고, 근동에 자리잡은 크로마뇽 인들만이 살아남는다. 인간에게 실망한 엔릴이 인간을 멸망시키 려고 한다 |
1만3000 년 |
․ 다가오는 12번째 행성에 의해 시작될 해일에 대해 미리 안 네필림 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을 결심한다. 대홍수가 지구를 휩쓸고 빙하기가 끝난다. |
고조선 강역도 수메르지역도
* 제카리아 시친의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과 Daum Blog 인용
# 중국 남경 고대유물관의 도깨비기자, 운곡선생의 말대로 선기옥형이 진열되어 있다. 제원사 탐방을 마친 도깨비기자는 잠시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남경의 고대유물관을 찾았다. 설명서대로라면 이 선기옥형들은 중국 명나라 때 제작한 것이다. 문외한이랄 수 있는 도깨비기자의 눈에도 조악하다. 서투른 장인이 얼기설기 엮어놓은 시제품 같았다. 대한의 고려대박물관의 선기옥형에 미치지 못한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실제로 천문 탐구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상징성을 가진 모형에 불과했다.
* 선기옥형 자료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문화, 정재승)
선기옥형의 문헌기록은 중국의 서경書經 제 1편 우서虞書 제 2장 순전舜傳에 처음 나온다. 순 임금이 요 임금으로부터 종묘에서 첫째 달 첫째 날 제위를 선양받고 맨처음 한 일이 선기옥형을 살펴 7정政(해와 달 그리고 금목수화토성星)을 바로 잡았다. 그런 다음 하느님(상제上帝)께 제사를 올리고 하늘과 땅과 4시時에 제사지냈으며 산천과 여러 신들에게도 제사를 지냈다. BC.4000년 전 요순시대에 선기옥형이 존재했다면 그 기원은 약 BC.1만 년 전 한배검께서 주재주로써 천부경의 진리를 밝혀준 개천의 시대로 본다. 그 후 선군시대로 전승되어온 선기옥형이 요순을 통하여 중국민족에게 전파된 것이다.
# 문헌의 기록에 나와있는 선기옥형이 중국 어디엔가 전승되어온다면 이는 한웅천왕이 하늘에서 부여받은 선기옥형, 원형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도깨비기자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유물관 현관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사내가 다가왔다. 몇 마디 말 끝에 그는 주중국대사관 무관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무관 : 불편하시지요? 본의는 아닙니다만 … 실망이 크신 것 같은데.
도깨비기자 : 실망이랄 것까진 없고 … 우리, 구면인 것 같은데요.
무관 : (계면쩍게 웃으며) 알아보시는군요. 그렇습니다. 북경공항과 3조당에서 뵈었지요. 아 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는 보호 차원이었습니다. 기자 선생의 신변보호말입니다. 그러나 유연한 보호입니다. 중국 쪽의 움직임이 심상찮았었기 때문이지요. 듣기에 한국 에서 중국과 불편한 어떤, 국가적인 일이 있었나본데 그것 때문에 중국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와졌나봅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 저와 동행하여주시겠습니까?
도깨비기자 : 연행입니까?
무관 : 아까 말씀대로 보호입니다. 선생이 중단하라면 돌아가지요. 그러나 중국 쪽 사람들이 선생을 보는 눈이 곱지않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중국은 아직도 안전의 사각지대입니 다. 외교적 관례도 통하지 않습니다.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아 마도 그들이 일부러 기자선생의 자료를 흘린 것 같은데 … 그 이유는, 아마 선생의 활 동을 제재하려는 뜻이겠지요? 일차적으로는 그렇게 봅니다. 선생의 신변을 우리에게 맡 긴다는 뜻입니다. 만약의 경우 귀찮은 일을 우리에게 떠맡기겠다는 속셈이지요.
도깨비기자 : 일차적? 다음에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설마 납치하거나 죽이기야 하겠습니 까? 좀 따라다니다 말겠지요.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중국에서 찾아보려던 것들은, 비록 성과는 탐탁치않지만 이미 다 살폈습니다.
무관 : 떠나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기자선생을 주목하는 건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중 국의 국가안전부 11국인 정보자료중심국을 비롯하여 러시아의 SVR(대외정보국) 제 1 국, 미국의 CIA, 프랑스의 DGSE(대외보안총국), 일본의 정보조사실까지 선생을 따라 붙었습니다. 일본의 정보조사실은 관방장관 직속 정보기관입니다. 이들이 모두 한결같 이 선생을 따라 붙은 목적이 뭣입니까?
도깨비기자 : 날 보호하겠다는 분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낼 오전 비행기 로 중국을 떠납니다. 비행기표도 이미 예약했습니다.
무관 : 실례가 안된다면 … 행선지가 어디인지 여쭈어도 ….
도깨비기자 : (말을 중도에서 끊어) 이라크입니다.
무관 : 위험을 자초하시는군요. 이라크 또한 정정이 매우 불안합니다.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 어서 우리로써는 더욱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취재라 하더라도 입국이 제한되어 있 습니다.
도깨비기자 : (단호하게) 기자가 못다닐 곳은 없습니다. (비아냥거리는 투로) 그 동안의 그 유연한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Sumer Sumer 신神 Sumer 왕
설형문자 점토판 Ishtar Gilgamesh
*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인용
# 다음 날 이라크 행 비행기 안, 컴퓨터 인터넷자료를 살피는 도깨비기자
* 샤니다르Shanidar동굴 -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동북쪽 산악지대에 있는 동굴, 10만년 전부터 1만3000년까지의 인류의 기록이 남아 있음, 수메르 쐐기(설형楔形)문자로 기록된 점토판粘土板 2만5000여 매가 발견되어 해독함으로써 창조적 관점에서 구약성서에 의존하였던 인류사가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고 인류 창조와 기원 그리고 신神에 대한 인류 최고의 역사기록으로 평가함
* 수메르Sumer역사 발굴은 1843년 프랑스학자들이 시작하여 같은 해 영국인 A. H. Layard가 니네베 유적지遺蹟地에서 2만5000매의 점토판을 발굴하였고, 1974년 3월 R. L. Crocker, A. D. Kilmer, R. R. Brown이 니푸르 유적지에서 점토판 3만매를 발굴하여 해석하고 있음
* 겹십자가 - 2중, 3중으로 그린 십자가 모양, 고대 수메르인들이 태양계 12번째의 행성 마르둑에서 내려온 신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인더스문명에서도 신성시되었던 문양이다. 수메르 점토판粘土板의 기록에 의하면 태양계 12번째의 행성 마르둑은 3600년 주기週期로 태양을 공전하는데 지구 접근 때 신들이 지구에 내려와 지구의 원시인을 개화시키고 인간을 복제하여 함께 살다가 노아의 홍수를 예견하고 마르둑으로 돌아갔다. 인류문명은 BC. 1만1000년, 7400년, 3800년에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퇴보했다가 새로 시작되었다. 이를 근거로 마르둑의 공전주기인 3600년 마다 인류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었고 그렇다면 BC. 200년께 마르둑의 지구 접근으로 인한 해일과 빙하기,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인류의 멸망(노아의 홍수)이 있었으며, 현생 인류는 BC. 200년의 인류고 이어 올해가 2006년이므로 올해로부터 1400년 뒤 태양계의 12번째 행성 마르둑이 지구에 접근한다는 가설이 성립된다. 구약성경이 수메르역사의 기록이고 수메르의 점토판 기록물이 우리가 알지 못한 현실적인 신과 현실적인 고대인류사의 기록이라면 성경의 부활(공중 들림)이나 불교의 미륵부처들 인간 구원은 1400년 뒤 태양계 12번째 행성 마르둑의 지구 접근 현상이 아닐지?
한국, 배달, (고)조선 Sumer Shem(비행체) Sumer 비행체 Sumer 인간 복제와
4대 문명 발상지 현대 Rocket (위 중간 백색) 현대 DNA 구조도
* Daum Blog와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인용
* ‘대변경大辯經’ 에서 치우천왕蚩尤天王이 범족의 무리를 하삭河朔으로 추방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하삭은 이라크, 이란지역. 서아시아에서 터어키(투르크, 돌궐)는 유일한 교착어膠着語를 사용하는 민족이고 생활습관이나 형식이 한국인과 유사하다. 오스만 투르크제국은 터키의 전성시대로써 유럽을 제패하였다. 인류학적으로 터어키가 한국과 형제국이라는 사실은 일반화되어 있다. 불가리아(부여)는 부여족의 일파로써 유럽인으로써는 유일하게 몽고반점을 지니고 태어난다. 불가리아나 ‘발칸반도’도 모두 ‘부여’에서 전이된 말이다. 헝거리(흉노)는 훈족이 세운 나라로써 로마시대 말기의 아틸라는 전성기의 로마 보다 더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
* 수메르역사 발굴은 1843년 프랑스학자들이 시작하여 같은 해 영국인 A. H. Layard가 니네베 유적지遺蹟地에서 2만5000매의 점토판을 발굴하였고, 1974년 3월 R. L. Crocker, A. D. Kilmer, R. R. Brown이 니푸르 유적지에서 점토판 3만매를 발굴하여 해석하고 있음
◎ 한단고기(임승국)에서 수밀이국Sumer의 기록
* 선군왕검시대 15세 단군 대음(후을달) 재위 51년, 신사 2년 한기 3666년(BC. 1660년), 홍수가 크게 일어나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겨울 10월에 양운국과 ‘수밀이국’ 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 선군왕검시대 27세 단군 두밀 재위 28년, 갑신 원년 한기 3003년(BC. 997년) 천해(바이칼호수)의 물이 넘쳐 아란산이 무너졌다. 이 해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 한국본기 제 2권에서 ‘삼성밀기’ 는 말한다. 파나류산(한인의 한국시대의 도읍지, 하르빈 남쪽의 완달산) 밑에 한인씨의 나라가 있나니 천해(天海, 바이칼호수) 동쪽의 땅을 역시 파나류국(한인시대의 한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 남북 5만리(약 2만5000Km), 동서 2만리(약 1만Km)이니라.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곧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캄차카), 일군국, 우루국(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퉁구스, 시위국, 통고사국), ‘수밀이국’ 이니 12국이다.
Sumer 신의 상징 Sumer 천체도 지구 12번째 행성 Marduk의 궤도와
겹십자가 마르둑 위성들의 Tiamat(행성) 공격
* Daum Blog와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인용
* 인류학계와 세계의 사학계가 주목하는 수메르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가 바로 ‘수밀이국’ 이다. 수메르민족이란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수메르말이라고 불리는 언어를 사용한 민족으로 세계 최고의 도시문명을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운 민족이다. 여기에서 최고라는 말은 마지막의 결론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서양학이 주도한 결론일 뿐이다. 서양역사학은, 서양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학자들도 한인의 한국시대 12연방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 이는 문화의 창조 동서양 선후 다툼이 아니라 동서문화 주도권의 쟁점이다. 서양역사학자들은 구약성경을 기원으로 하는 인간의 창조론에 입각한 인류사를 정립하였는데 느닷없이 수메르문명이 발굴되고 해독되어 구약성경 이전의 원전이라고 할 기록이 밝혀지자 황당해 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서양을 기점으로 하는 수메르인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갑자기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나타나’ 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서양역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메르인이 수메르지역 원주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연히 언제, 누가, 어디서, 이 땅에 이주하였는가? 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지금까지는 언어학적, 인류학적으로 아시아닉크계 민족설이 유력하다. ‘검은 머리칼의 교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한단고기의 한국 12연방 막내 나라 수밀이가 확실하다. 중국사서의 ‘진서 숙신열전’에 한인시대의 한국 12연방을 가리키는 말이 숙신으로 표현되는데 ‘숙신(쥬신)은 바로 조선이며 바이칼호수 접경 남북 5만리와 동서 2만리의 나라가 한국 12연방이었으며 그 막내 나라가 수밀이국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우수주, 소머리, 쇠머리, 소말, 우두머리, 우가와 수밀이국 그리고 숙신(쥬신)의 수메르의 관련을 주목한다.
* 교착어膠着語 - 언어의 형태론적 분류에 의한 부류部類, 주로 접사接詞를 어근語根이나 변하지 않는 어간語幹에 덧붙이는 방법으로 문법적 관계를 나타냄.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 ‘터어키어’ 따위. 부착어附着語, 첨가어添加語
성경 Sharon의 장미, 고조선의 천지화, 한화 평남 진파리 1호분 금동관
무궁화 * Daum Blog 인용 (가운데 원 안의 3족오 무늬)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에서 제카리아 시친은 이렇게 말 한다
* 모든 역사가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인류 최초의 문명이 수메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그것이 최초의 것이라는 데 있지 않다. 수메르문명은 인류 최초의 것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이미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문명이기도 했다. 그들은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지구와 인간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신과 인간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신들이 어디에서 언제 지구로 왔고, 왜 인간을 창조했으며, 어떻게 지구를 왕래하며 인간을 지배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내용들이 수메르의 점토판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남아있으며,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이나 각국의 신화들은 수메르의 이 고대 기록들을 나중에 각색하고 번안한 것들에 불과하다. 과연 그들이 알고 있던 창조의 비밀과 과학 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 태양계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행성 하나가 더 있다. 3600년을 주기로 공전하는 이 12번째의 행성, 마르둑Marduk이 바로 지구에 문명을 창조한 <신들의 고향>이다. 그들은 행성 간 우주여행을 할 수 있었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에 왔으며, 노동력 조달을 위해 ‘인간을 창조’ 했다. 인간과 닮은, 인간처럼 울고 웃고 싸우기도 하는, 이 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또한 그들은 왜 지구를 떠났으며, 언제 다시 오는가? 그리고 그들이 하늘과 땅 사이의 유대를 위해 남겨둔 지상의 낙원, 에덴Eden은 과연 어디인가?
◎ 한단고기(임승국)는 수밀이국Sumer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한국본기 제 2권에서 삼성밀기는 말한다. 파나류산(한인의 한국시대의 도읍지, 하르빈 남쪽의 완달산) 밑에 한인씨의 나라가 있나니 천해(天海, 바이칼호수) 동쪽의 땅을 역시 파나류국(한인시대의 한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 5만리(2만5000Km), 동서 2만리(1만Km)이니라.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곧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캄차카), 일군국, 우루국(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퉁구스, 시위국, 통고사국), ‘수밀이국’ 이니 12국이다.
* 선군왕검시대, 15세 선군대음(후을달) 재위 51년, 신사 2년, 한기 5537년(BC. 1660년), 홍수가 크게 일어나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겨울 10월에 양운국과 <수밀이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 선군왕검시대 27세 선군두밀 재위 28년, 갑신 원년, 한기 6200년(BC. 997년) 천해(바이칼호수)의 물이 넘쳐 아란산이 무너졌다. 이 해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나폴레옹 마틴 루터 킹 목사 징키스 칸 마하트마 간디 이맘 호메이니
인류 5부인部人(종족) * Daum Blog 인용
* 인류학계와 세계의 사학계가 주목하는 수메르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가 바로 ‘수밀이국’ 이다. 수메르민족이란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수메르말이라고 불리는 언어를 사용한 민족으로 세계 최고의 도시문명을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운 민족이다. 여기에서 최고라는 말은 마지막의 결론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서양학이 주도한 결론일 뿐이다. 서양역사학은, 서양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학자들도 한인천왕의 한국시대 12연방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 이는 문화의 창조 동서양 선후 다툼이 아니라 동서문화 주도권의 쟁점이다. 서양역사학자들은 구약성서를 기원으로 하는 인간의 창조론에 입각한 인류사를 정립하였는데 느닷없이 수메르문명이 발굴되고 해독되어 구약성서 이전의 기록이 밝혀지자 황당해 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서양을 기점으로 하는 수메르인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갑자기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나타나’ 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서양역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메르인이 수메르지역 원주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연히 누가, 언제, 어디서 이 땅에 이주하였는가? 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수메르인에 대한 정설은 ‘검은 머리칼의 교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이다. 이들은 누구일까?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지금까지는 언어학적, 인류학적으로 ‘아시아닉크계 민족설’ 이 유력하다. 역사적으로 인류사를 규명하려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데 인종과 언어다. 슈메르인은 검은 머리칼의 인종이었다. 수메르인의 언어는 교착어인데 서양학자들은 언어적 연관성 때문에 이를 우랄(유럽의 서쪽 끝 지역)-알타이어(아시아의 몽골지역)라고 규정하여 서양의 서쪽 끝과 아시아의 동쪽 끝을 묶어놓았다. 유럽에는 교착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 ‘터어키어’ 가 교착어다. 서양학자들에게는 수메르인들이 어디서 이동하여 왔는지 규명이 불가능하지만 자연 조건 때문에 문화의 동서 이동은 빠르고 남북 이동은 느리다는 고인돌유적(고인돌의 70%가 한국에
있음)에서 고대한국인의 유럽 동쪽 이동을 밝혀낼 수가 있다. 인류학과 언어학적으로 터어키인, 항가리인에 주목한다.
* 교착어膠着語 - 언어의 형태론적 분류에 의한 부류部類, 주로 접사接詞를 어근語根이나 변하지 않는 어간語幹에 덧붙이는 방법으로 문법적 관계를 나타냄.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 터어키어 따위. 부착어附着語, 첨가어添加語
* 중국사서의 ‘진서 숙신열전’ 에 한인시대의 한국 12연방을 가리키는 말이 숙신(쥬신의 한자 차음)으로 표현되는데 숙신은 바로 조선이고 바이칼호수 접경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나라가 한국 12연방이었으며 그 막내 나라가 수밀이국(Sumer)이라고 기록하였다.
Huns(훈족)의 정복자 아틸라왕 몽골 징키스칸 알렉산더와 티모클레시아
고조선시대 한족의 한 갈래 흉노 일파 전쟁도 * Daum Blog 인용
* 구약성경에 나오는 ‘샤론의 장미’ 는 예수의 별칭이기도 한데 이는 식물학명으로 한국의 국화 ‘무궁화’ 다. 한국고대사에서 소도(수두, 신성한 신의 영역)를 설치하고 천지화를 많이 심었으며 국자랑들이 머리에 쓴 관에 천지화를 장식하였으므로 천지화랑이라고 불렀다. 서양인들이 신화적으로 숭앙하는 새 피닉스(불사의 새)는 밝새 또는 불새인데 한민족이 숭상한, 태양에서 사는 태양새(태양의 흑점 상징, 3족오, 세 발 달린 새, 세 발 까마귀)의 모습과 같다. 대진국 시조 해모수왕은 까마귀 깃털 모자를 썼고 고구려 벼슬아치들도 머리에 까마귀 깃털을 장식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3족오가 그려져 있고, 선군시대 8세 선군 우서한(오사함) 갑인 7년 한기 5210년(BC. 1987년)에 3족오가 대궐 뜰에 내려왔는데 날개 길이가 석 자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 발 까마귀’ 는 3족오의 ‘오’ 를 ‘까마귀 오’ 로 해석하여 3족오를 ‘세 발 달린 까마귀’ 로 해석하는데 ‘오’ 를 ‘까마귀 오’ 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새김인 ‘검을 오’ 로 해석하여 3족오는 ‘태양의 흑점’ 을 상징하는 ‘불새’ 므로 ‘검은 태양새’ 다. 이를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데 태양새와 비슷한 ‘검은 까마귀’ 가 등장했다고 본다.
터어키 앙카라 2002 서울월드컵경기 고조선의 기원 바이칼호수
옛 성곽 형제국 한국과 터어키선수 * Daum Blog 인용
◎ 고대한국, 고조선의 역사
* 한인천왕의 한국桓國시대, 하느님의 시대
우리 한(桓, 韓, 汗칸은 표기 때문에 한자를 빌어옴. 한없이, 한마음의 크다, 높다, 같다, 많다의 순수한 우리 말임)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시베리아 Siveria)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 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남동녀 800이 흑수 백산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님은 또한 감군으로써 ‘천계에 계시면서’ 나라를 다스렸다. 이를 한국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이라고도 했다. 수메르의 신들도 하늘에서 땅으로 오르내리며 인간을 다스렸다.
여와는 태호복희씨의 누나다. 그녀는 흙을 빚어 7일 만에 사람을 만들고 혼을 불어넣었다고 하였다. ‘여와’ 라는 이름마저 한국어 번역판성경의 ‘여호와’와 일치하고 수메르기록의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기록과도 일치한다. 수메르 기록에도 최고 여신인 인안나Inanna(Lipit-Ishtar)가 있다.
◎ 한웅천왕의 신시神市시대, 신인神人의 시대
* 한국의 말기에 한님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할 곳이로다 하시고 누구를 시킬 것인가 물으시니 5가가 모두 대답하기를 서자 한웅이 있어 용맹함과 어진 지혜를 함께 갖추었으며 일찌기 홍익인간의 이념으로써 세상을 바꿀 뜻이 있었사오니 그를 태백산에 보내시어 이를 다스리게 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천부인 3가지를 내려주시고 이에 말씀을 내려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 라고 하였다. 이에 한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오시니 이 곳을 신시라 하고 이 분을 한웅천왕이라고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생명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며, 병을 주관하고, 선악을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으니 널리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
* 대저 9한(한국시대 한인천왕이 다스리던 강역의 나라 또는 백성)의 족속은 나뉘어 5종이 되고 피부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구별을 짓게 되었다. 황부인은 피부가 노랗고 코는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머리털은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흑색이요, 백부인은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부인은 피부가 녹슨 구리색이요 코는 낮아 뭉특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부인은 풍족이라고도 하며 또 야자나무 인종의 색깔이라고도 한다. 그 피부는 암갈색으로 모양은 오히려 황부인과 같다. (흑부인의 기록이 없음)
◎ 선군왕검, 인간의 시대
* 신인 왕검께서 불함산의 배달(밝달)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짐을 겸하여 갖추었고 이에 능히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은 높고 넓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9한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선군왕검으로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쥬신)이라고 불렀다. 선군은 하염없이 맨 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팽우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에게는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회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하고, 우에게는 군대를 관장하도록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 13세 선군 홀달 무술 20년 한기 5434년(BC. 1763년),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무궁화)를 심었다. 국자랑들은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으므로 천지화랑이라고도 불렀다.
* 선제(대진국 해모수)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꽤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이라 할 만 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니 이는 47세 선군 고열가 57년으로 임술 4월 8일이라. 웅심산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에 쌓았다. 태양새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의 칼을 차시며 5룡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시더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 ‘대변경’ 에서 치우천왕은 ‘범족 무리들을 따로 떼어서 하삭에 살도록 하고’ 라고 했는데 하삭은 이란, 이라크지역이며, 서아시아의 터어키가 한국계 민족임을 주시한다. 서아시아에서도 유독 터어키만이 교착어를 사용하고 생활습관과 생활양식이 한국인과 닮았으며 터어키가 한국과 형제국이라는 것은 인류학계 일반론이다. 2002 세계 월드컵대회 4강에서 한국과 터어키의 경기가 끝났을 때 터어키 선수들이 우리 선수들을 얼싸안고 ‘우리는 형제’ 라고 했다. 우리 언론은 이를 6 ․ 25 남북전쟁 때 UN군으로 참전하여 도운 ‘혈맹’ 이야기라고 했으나 혈맹이 아니라 형제다. 터어키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흩어진 한민족의 형제국이다. 터어키는 ‘투르크, 돌궐’ 이고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건설하여 유럽을 지배하였다. 터어키는 제도교육의 민족사에서 고대한국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임을 역사로 가르치기 때문에 터어키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알고 있다. 또한 게르만족을 정복하여 로마를 멸망시킨 ‘아틸라’ 의 훈Huns(훈족)은 로마 보다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한 제국이었다. 아틸라는 알렉산더, 징키스칸과 함께 세계 3대 정복자다. 훈족은 한민족의 갈래인 ‘흉노족의 일파’ 며 항가리민족이다. 이 사실을 몇 년 전 도이치의 GDF - TV가 역사스페셜로 방영한 일이 있다. 이 외에 한민족의 갈래는 남동부러시아(부리야트자치공화국, 러시아 남동시베리아 바이칼호 남쪽, 몽골과 접경, 레오니트 포타포프 대통령이 찾아간 기자에게 밝힌 바에 의하면 200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학자들의 연구 결과 우리는 형제라고 말했음, 미국 에모리대학 연구소 DNA 분석 결과 유전자가 일치함, 중앙일보 2006년 7월 5일 자, 한민족의 고향 바이칼호에 우리 형제가 살고 있었네, 울란우데에서 김기현 특파원), 불가리아는 부여족이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발칸반도의 발칸은 ‘밝한’ 이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는 ‘사비(성)’ 의 차음이다. 러시아령 바이칼호수 안의 알혼섬에 있는 부르한바위는 신성시 되는 제단인데 부르한도 ‘밝한’ 이다. 바이칼호수의 ‘바이칼’ 도 ‘밝한’ ‘발칸’ 과 유사하다. 바이칼호수는 본래 한민족의 기원이었던 곳인데 몽골땅이었다. 근대 모택동이 국공합작 때 러시아의 참전에 대한 보답으로 러시아에 할양했다. 동부 아프리카, 중국의 묘족과 일본 이누이트 그리고 북미의 에스키모, 남미의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에 이르기까지 고대한민족의 역사가 지구촌 대륙의 중심지에 널려있다.
Sumer 도시 Ur의 Ziggurat Sumer의 도시 Iraq유적
* Daum YJins56 인용 Assur의 신전 * Daum Wooseok 인용
◎ 수메르Sumer의 역사 (제카리아 시친의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 하나님이 대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 인간의 딸들을 아내로 삼은 신의 아들들이 있었다. 히브리어 원전에서는 그들을 네필림이라고 했고 이는 ‘던져진 자들’, ‘지구로 내려온 자들’ 이다.
* 구약성경에는 야훼(여호아)의 옥좌가 하늘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지구)을 보고 있다. 신약성경의 주기도문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말한다.
* 모든 고대인들은,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왔고 또 자기들 마음대로 하늘로 다시 올라갈 수도 있었던 신들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었다. 수메르를 비롯한 근동의 고대 유적지에서 엄청난 양의 천문학적 지식이 담긴 Sumer점토판들이 대량(5만5000매) 출토되었는데 이 문서들은 그런 신들의 존재와 그들의 고향인 특정한 행성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지구태양계의 12번째 행성, 혹은 마르둑Marduk이라고 불렀다.
*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경쟁하던 두 거대한 제국, 남쪽의 바빌로니아와 북쪽의 아시리아는 아카드Acade어를 공통으로 사용하였다. 아카드어는 히브리어, 아람어, 페니키아어, 가나안어와 비슷하지만 그 보다 훨씬 앞선 어떤 원전의 복사였다. 그렇다면 누가 설형(쐐기)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의 정확한 문법과 풍성한 단어를 발전시킨 것일까? 도대체 앞 선 원전을 쓴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바빌로니아인들과 아시리아인들은 왜 그 언어를 아카드어라고 불렀을까? 구약성경(창세기 10장)에서는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수메르) 지방 안에 있는 바빌론과 에렉(우르크)과 악갓(아카드)과 갈레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카드라는 왕조가 있었을까? 1869년 프랑스 고전고고학회에서 J. Oppert는 아카드 이전의 언어와 민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고 학자들은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이 ‘아카드어 - 수메르어사전’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써 수메르어를 판독하게 되자 놀랄만한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 수메르어로 엔시는 ‘정의로운 지배자’ 인데 라가시에서 발굴된 기록들은 라가시왕조가 BC. 2900년경에 시작되어 650년을 이어갔으며 43명의 엔시들이 다스렸고 수메르의 지도자들은 ‘신의 허락을 받아야만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고 명백하게 기록하였다.
* 1956년 S. N. Kramer의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에서 바퀴, 고층건물, 음악과 악기, 야금술, 의학(서), 조각, 보석, 도시, 왕조, 법률, 사원, 기사도, 수학, 천문학, 달력, 학교, 양원제, 역사학자, 농업(서), 우주론, 격언, 문학 논쟁, 도서관 목록, 인간 영웅, 사회 개혁, 세계평화 노력, 욥, 노아, 인쇄술, 활자 사용, 원통형 인장윤전기, 60진법, 역청과 석유연료, 백내장 수술, 알코올, 죽은 신의 소생술, 투구(외투, 토가), 빵, 맥주, 포도주, 요쿠르트, 버터, 치즈 등 인류 최초의 발명 100가지 이상이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 수메르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어떤 고대문명 보다 더 발전적이고 포괄적인 문명이었다. 그리고 이 문명이야말로 현재의 우리 문명이 기원을 두고 있는 원전이다. 약 200만 년 전에 석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BC. 3800년 경에 수메르에서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수메르인이 도대체 누구였으며,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왜 수메르문명이 생겨났는가? 라는 물음이다. 고대인류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아주 갑작스럽고, 전혀 앞선 문명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 H. Frankfort는 ‘놀랍다’, P. Ammiet는 ‘비범하다’, A. Parrot는 ‘아주 갑자기 나타난 불꽃’, L. Oppenheim은 ‘엄청나게 짧은 기간에’, J. Campbell은 ‘수메르의 좁은 진흙땅에서 정말로 갑자기 세계의 모든 고등문명을 구성하는 단초들이 일시에 시작되었다’ 라고 말한다.
* 제카리아 시친은 인류학의 발전과정을 살펴 왜, 수 백 년 동안 고통스럽도록 느리게 진행되던 인간의 진화가 BC. 1만1000년경 농업의 획기적인 발전, 7400년경 신석기문명, 3800년경 갑작스런 문명의 발전이라는 세 차례의 계기를 통해 가속도를 얻어 원시적인 사냥꾼, 채취자를 농사꾼, 토기제작자로 바꾸어놓고, 다시 도시건축가, 수학자, 천문학자, 상인, 음악가, 판사, 의사, 작가로 바꾸어놓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 구약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에서는 대홍수 이후 지구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수메르)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구약성경 창세기 11 : 2)’ 를 잡았다. 정착한 수메르사람들은 도시를 세우고, 탑(발사대, 지구라트)을 쌓았는데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사람들의 이름(쉠, 비행 물체)을 날리려고 하자 하느님은 인간들의 이 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통일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인간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인간들의 단합을 봉쇄하자고 자신의 동료들에게 제안한다. 언어의 혼란이 시작되자 바벨탑 건립은 무산되었다.
* 아라비아해에 착륙한(44만5000년 전) 엔키가 이끄는 네필림은 태양계 12번째의 행성 마르둑에서 지구로 내려와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여 최초의 정착지 에리두(먼 곳에 지어진 집)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신들이 지구의 통치권을 나눠 가진 뒤 하급 신인 아눈나키들에게 노동을 시켜 자원을 확보했다. 하늘에는 300명을 두어 안(신들의 왕, 아눈나키들의 아버지)을 지키게 했고, 안의 명령을 따르게 했다. 또한 하늘에서 지구로 오는 길을 정하게 했다. 그리고 지구에는 600명을 살게 했다. 하늘과 땅의 아눈나키에게 지시를 내린 후 노역의 임무를 부여했다.
* 노역에 시달린 아눈나키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신들의 대법관 엔닐은 무기로 폭동을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누스코의 충고를 받아들여 폭동의 원인을 조사한다. 그리고 아눈나키들의 노역이 너무 가혹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신들은 원시적 노동자, 인간을 창조해서 아눈나키의 노역을 대신하게 한다. 따라서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우리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신의 창조물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에 네필림이 원인(호모 에렉투스)들에게 자신들의 형상과 모습을 덧붙여서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다파(아담)는 신이 만든 인간의 모델이다. 아다파를 모델로 노동력을 대신할 복제품 인간을 만들어냈다.
*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에 의하면 ‘10기간 동안 그들은 일에 시달렸다. … 40기간 동안 그들은 일에 시달렸다’ 는 반복된 기록이 있다. 네필림의 1년(1샤르)은 3600년(12번째 행성 마르둑의 공전주기)이다. 그래서 40샤르는 14만4000년이다. 아눈나키들은 엔키가 지구에 착륙한 뒤 14만4000년 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린 것이다.
Sumer 실험실 수메르 복제인간 Egypt 고대벽화 고대 Egypt Abidos신전
복제 아기 탄생 노동력 동원 Rocket(흰색) 벽화, 헬리콥터와 잠수함
* Daum Blog와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인용
* 대홍수가 지나간 뒤 네필림은 지구의 신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회의를 한다. 회의의 결과 그들은 네 개의 지역을 만들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유역), 나일강 유역, 인더스강 유역과 나머지 하나 마지막 지역은 신성한 곳이었는데 순수한 땅으로 불리운 그 곳은 Tilmun(미사일의 땅, 우주 공항)이었다. 틸문은 어디인가? Nefilim(히브리원전 성서, 하급 신, 인간의 딸을 아내로 삼은 신의 아들들, 던져진 자들, 지구로 내려온 자들)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3600년 뒤, 오늘(AD. 2006년)로부터 1400년 뒤 돌아와서 살려고 남겨놓은 에덴동산은 어디인가? 구약성경에서는 상징적으로 에덴을 설정하여 지정학적으로는 이스라엘 동쪽을 지칭했다. 그러나 수메르문헌에서는 이라크 동북지역을 확연하게 지정한다. 네필림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지정한 에덴이 서양학자들이 말하는 메소포타지역의 동북부 이라크 동북지역인가? 아니면 고대 한국의 발상지인 바이칼호수일까?
* ‘1000년 주기로 태양 공전 태양계 9번째 행성 존재, 2008. 2/29 동아일보’ 일본 고베대학교 연구진 주장, 해왕성 바깥 쪽에 미지의 9번째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베대의 무카이 다다시(向井正) 교수팀은 상세한 이론과 컴퓨터 시물레이션을 통해 이 행성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행성이 직경 1만 - 1만6000 Km로 지구(직경 1만2천800Km)와 거의 같은 크기며 총질량은 지구의 30 - 70%고 태양 주위를 타원궤도로 도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9번째 행성이 약 1000년 주기로 태양 주변을 공전하고 있으며 앞으로 관측체제가 정비되면 10년 이내에 실제 관측을 통해 이 행성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고 밝혔다.
# 이라크 이스탄불 국제공항, 도깨비기자 공항의 출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어설프게 웃는다. ‘대한 도깨비기자 환영’ 이라고 한글로 서툴게 쓴 피켓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들어내놓고 입국을 선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기사 그들이야 도깨비기자가 추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혼자만의 지레 걱정일 뿐. 전형적인 이라크인이었다. 머리에는 흰색 터번을 두르고 수염이 무성하다.
# 30분 뒤 이스탄불 교외, 택시가 서면서 경적을 울리자 집에서 역시 전형적인 이라크인이 마중한다. ‘Sumer의 역사’ 저자 디오도로스 다비드(Dyodoros David, 약칭 DD)다.
디디 :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도깨비기자 : 아닙니다.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Sumer Sumer 신神 Sumer 왕
설형문자 점토판 Ishtar Gilgamesh
*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인용
* 디오도로스 다비드의 방담 취재 기록
디오도로스 다비드는 전통적인 유대교인의 집안에서 자랐다. 철저한 유대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디디는 맹목적인 그리고 전통적인 유대교리에 비판적인 지식인이었다. 그는 그 갈등의 와중에서 인도 여행을 떠난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몇 가지 사실들을 답사하려는 의도였다. 랍비들은 이러한 여행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으나 그는 파문을 각오하고 종단의 간섭을 뿌리쳤다. 디디가 인도에 와서 3개월째가 되는 가을, 무료하게 시내 구경을 나섰다가 거리의 마술사를 만났다. 흥미롭게 구경을 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사내가 말을 걸었다. 저런 마술쯤은 기초라고 했다. 더 놀라운 마술을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디디는 그 사내를 따라나섰다. 걸으면서 사내는 디디가 무슨 목적으로 인도에 왔으며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디디가 다소 놀라서 그것도 마술이냐고 했더니 사내는 자기를 Master라고 소개했다. 굳이 풀어 쓰자면 대사大師란 뜻이었다. 그들은 한 시간 가까이 걸었고 그 때는 황량한 벌판에 있었다. 대사가 하늘을 쳐다보며 날아가는 새를 가리켰다. 전령이라고 했다. 자기 동료들이 자기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반신반의 하는 양을 보더니 대사가 오른 손을 하늘을 향해 뻗쳤다. 새가 그의 손등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후 디디는 대사와 사흘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바위 산 정상에 지은 동굴사원이었다. 수 세기 동안‘빛의 사원’이라고 불리워왔다. 모세와 예수가 머물었던 사원이라고 했다. 모세와 예수의 기록도 있다고 했다. 그 곳에서 디디는 수많은 점토판을 보았다. 수메르역사를 기록한 점토판은 니네베 유적지에서 2만5000매, 니푸르 유적지에서 3만매가 발견되었다. 점토판이 보관된 방 옆 방에서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점토판 해석작업을 하고 있었다. 디디는 3년 동안 사원에 머물며 점토판 번역작업을 도왔다. 그리고 세상에 나와‘수메르의 역사’를 펴냈다. 대사는 세상에 나가더라도 여기의 일을 함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디디는 그 지시를 지킬 수 없었다. 책은 매우 센세이셔날한 반응을 보였다.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와 인류학계 그리고 역사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디디는 점토판의 해석뿐만이 아니라 대사와 지난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한편으로는 그 황당한 내용들이 비난을 받았다. 물 위를 걷고, 불속을 걸어나가고, 유체이탈과 시공간의 초월, 컵속의 물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얼리는 기적을 사람들은 황당무계한 거짓말로 치부했다. 그래서 엄연히 존재하는 기록인 점토판까지도 반신반의하는 추세였다.
도깨비기자는 대담을 마치면서 가슴속에 품은 한 마디를 망서렸다. 그러나 끝내 선기옥형에 대한 말은 꺼내지 못했다. 빛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서운함을 달랬다. 디디는 사원의 빛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지 못했다. 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따로 불을 밝힌 것도 아닌데 사원 내부는 은은하고 밝은 빛에 싸여 있어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었다. 이제 돌이켜보니 빛뿐만 아니라 빛과 열을 함께 발산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빛에 의한 그림자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림자가 없는 빛. 그렇다면 그 빛은 발광체에서 나온 빛이었을 것이다. 그 발광체가 선기옥형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디디는 발광체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깨비기자는 입술 끝에 선기옥향이라는 말이 달랑거렸으나 참았다. 디디가 낌새를 눈치 채고 먼저 말을 꺼냈다.
디디 : 선생은 기자지요? 선생이 알고자 하는 것이 점토판이나 점토판의 해석이 아니 라 선기옥형이라는 기물器物이라지요?
도깨비기자 : 선생님의 책을 읽었습니다. ‘Sumer역사’ 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한고 대사에 고조선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었는데 그 고조선의 12제후국에 수밀이국이라는 나 라가 있습니다. 정통적인 역사학계의 정설은 아니지만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이 이를 연 구하고 있습니다. 수밀이국이 Sumer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나 서양학자들이 Sumer인들의 출현을 ‘어디선가 느닷없이 출현했다’고 표현한 그 ‘편두의 검은 머리’를 대한학자는 Sumer인이라고 확신합니다. 더불어 수메르어가 한국어와 비슷한 문법구조 를 지녔습니다.
디디 : 근거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확신은 없습니다. 인종과 언어는 역사 규명의 가장 핵심 적인 요소입니다. 점토판의 해석이 진행되어가면서 기자선생이 말하는 근거들이 나타날 지도 모릅니다. 규명해야할 과제입니다. 찬란한 문명을 이룬 고대국가를 ‘어디선가 느닷 없이 출현한’ ‘편두의 검은 머리 사람들’이라고 얼버무린 일은 역사학계의 수치입니다. 규명되어야 하고 규명될 것입니다. 일부에서 비판하는 동양인설의 문제는 편견입니다. 역사연구에서 인류의 기원이 동양이냐 서양이냐는 넌센스지요. 서양 위주의 역사관을 펴왔던 서양학자들에게는 학문적 문제가 될 소지는 있습니다.
도깨비기자 : 역사학 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선생이 동굴사원에서 보았다는 빛에 대한 의문 이 있습니다.
디디 :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이 찾고자 하는 선기옥형을 저는 모릅니다. 또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위적인 빛은 아니라고 생각됩 니다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먼 길에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만족할만한 성과를 드 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 디디와 대담을 통해 동굴사원의 빛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으나 디디를 통해서도 대사를 만날 방법은 없었다. 디디는 동굴사원을 다시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대사의 안내가 아니면 사원에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오스만투르크 유적을 살핀 다음 헝거리의 부다페스트로 그리고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거쳐 바이칼호수로 가겠다는 보고를 본사에 알렸다. 본사에서는 도깨비기자가 필드성향(현장 취재)에 대해서 제동을 걸지는 않았지만 도깨비기자의 취재에 대한 대책회의가 있었다. 취재의 성격 상 대사관이나 정부쪽에 공식적으로 협조를 요청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보조원을 증원하기도 곤란했다. 유럽의 주재원들도 도깨비기자와 동행을 꺼렸다. 또 도깨비기자가 보조원을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었으며 행방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일에 대한 욕심이나 열정도 그렇지만 도깨비기자는 어울려서 일 하는 걸 싫어했다.
# 대한방송DBS 기획실. 기획실장, 편집국장, 해외부장, 최기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중이다.
기획실장 : 독고빈 그 사람, 어떻게 된 게 몇 주째 소식 두절이야!
최기자 : 유럽 특파원을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해외부장 : 특파원을 풀어서 해결될 일이 아냐.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는 게 낫지 그 넓은 땅에서 어디 박혀있는지 아나?
편집국장 : 취재는 취재고 또박또박 주재지라도 알려줘야지, 3청동에서도 난리잖아. 어딧는 가를 알아내면 즉시 귀환 명령을 내리라는 거야.
최기자 : 들어오란다고 유럽까지 간 사람이 돌아오겠습니까?
해외부장 : 3청동은 자칫 국제분쟁에 휘말려드는 거 아닌가고 안달이지.
최기자 :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몰라도 유럽에서 국제적으로 문제삼지는 않을 겁니다.
기획실장 : 최기자,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3청동이 언질을 했다면 문제가 심각해. 송고 된 기사로도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파악할 수가 있어야지, 기사랍시고 보고 서를 보냈는데 도대체 오리무중이란말야. 원 나 참. 기사래야 기사화할 수도 없는 원고 나부랭이야.
편집국장 :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호출명령을 내리는 게 옳아.
기획실장 : 말은 그런데 … 도대체 어디가 있는지 알아야 호출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 냐. 손이 닿아야 손을 쓰지.
최기자 : 머잖아 연락이 올겁니다. 계속 연락 두절이면 저라도 나서보지요. 연락두절이 계속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습니다.
기획실장 : 심각하다면 무슨 뜻이지? 하여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문제가 더 심각해질성싶 으니 우선 어디 있는지나 파악해보세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 대전 엑스포 기획실. 엑스포 관계자들과 정부부처 정보담당관들이 모여 있다.
대전 엑스포 기획실장 :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을 소개하며) 부장님 말씀을 먼저 듣겠 습니다.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 : 엑스포 해킹사건은 이미 알려진 일이니 부연할 건 없고, 해킹 사건 뒤 이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중국의 국가안 전부 11국인 정보자료중심국을 비롯하여 러시아의 SVR(대외정보국) 제 1국, 미국의 CIA, 프랑스의 DGSE(대외보안총국), 일본의 정보조사실까지 이 사건에 뛰어들고 있습 니다. 우리 국정원에서는 이 일이 국제적으로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추적해야 하는 정 보적 가치의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그 결론을 얻고싶어 여러분을 초치했습니다. 이 말은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기처 정보담당관 : 국제적인 에니메이션대회 취소와 같은 일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이 번 대전엑스포 에니메이션 경연대 회에서 해킹 당한 캐릭터는 우리로써는 매우 심각한 사태입니다.
청와대 과학정보담당 수석 :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지요. 여기 모인 분들은 모두 책임질 위치에 있는 분들입니다.
과기처 정보담당관 : (난처한 표정으로) 책임 유뮤를 떠나서 제 직책상 더 이상 말씀을 드릴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우주센터 정보담당기획관 : 과기처의 처지를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 면 이미 공개되어야 할 캐릭터가 설사 사전에 해킹이되었다 하더라도 그 게 무슨 문제 가 있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우주센터 쪽에서도 더 이상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청와대 과학정보담당 수석 : 그렇다면 구지 더 설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정원부장님이 마음을 쓰시는 문제는 비켜가는 아닌가요?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 : 아닙니다. 본질을 파악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에니메이션대회 무산과 관련해서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진 일은 대게 짐작하실 일이고, 더 우려하는 상황은 기자 한 사람이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자칫하면 국제 분쟁의 소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본질 보다는 기자에게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기자가 무엇 을 하든 어디를 다니든 그런 일에는 관심 없습니다.
기상센터 기획팀장 : 기자의 안전의 문제입니까?
청와대 과학정보담당 수석 : 안전이야 … 개인적인 문제지요. 회사의 문제고요.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대한의 기자가 추적한답시고, 현재까지 중국, 터키, 불가리아로 해서 러 시아령 바이칼호수까지 들쑤시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추적하는 기물, 뭐 확실하게 말씀드리자면 선기옥형이란 기물을 몇 개의 나라가 모두 관심사란 말입니다. 에니메이션 해킹사건으로부터 선기옥형은 국제적 미스터리로 부각되었습니다.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 : 정보 차원에서라면 국정원의 프로젝트인데 정부에서는 손을 놓 고 있는데 민간이 뛰어들어 국제 분쟁을 야기하는 셈입니다. 국정원은 이런 사태를 원 치 않습니다. 방관만 할 수도 없습니다.
청와대 과학정보담당 수석 : 대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 : 그렇습니다. 유럽 쪽에서 접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 자를 추적하다가 안 사실인데 아까 말씀드린 몇몇 나라가 매우 은밀하게 국가적 차원에 서 선기옥형을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우리 기자가 추적하는 선기옥형이 국가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해당 기 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판단으로는 기자 개인적으로도 상 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있다고 봅니다.
기상센터 기획팀장 : 기자를 … 은밀하게 지원하거나 보호하는 일은 가능합니까?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 :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직접 뛰어들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기상센터 기획팀장 : 기상청 입장에서 보면 매우 미묘한 프로젝틉니다. 지원하고 보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국정원 정보담당 제 1부장 : 그렇게 알고 내부적으로 협의하겠습니다.
# 다음 날 오후 늦게 바이칼호수에 인접한 브리야트Buryaty 소련자치공화국 수도 울란우데공항에 도착한 도깨비기자. 택시를 타고 곧장 바이칼Baikal호수 부근의 인구 200여 명의 작은 민속촌 리스트비양카로 갔다. 바이칼호수 안의 알혼Olkhon섬을 관광선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알혼섬은 브리야트인과 예벤키족의 성지聖地다. 징키스칸의 어머니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지구촌 무속신앙의 진원지다. 브리야트가 ‘부여’, 발칸이 ‘밝한 즉 부여의 땅’ 이라는 언어의 변형이나 차음遮音이라면 바이칼호수의 바이칼 또한 ‘밝한’ 의 차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도깨비기자는 민속촌의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나서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알혼섬 관광선을 예약했다.
# 늦잠을 잤나, 민박집 주인이 문을 두드려서야 눈을 떠보니 해가 중천이다. 관광선은 유리알 보다 맑은 바이칼호수를 날으 듯 달려 알혼섬에 도착했다. 안내인이 추장을 소개했다. 추장은 전형적인 몽골인이었다. 깊게 패인 주름살과 몽골계 특유의 모습에 도깨비기자는 마치 먼 친척을 방문한 느낌이었다. 추장을 앞세워 서낭당을 찾았다. 신목神木이 있었다. 얼핏 봐도 수령이 몇 백년 쯤 되어보였다. 5색 헝겊을 걸어놓은 금줄과 돌탑도 한국과 똑 같았다. 신목 옆에는 솟대가 서있었다. 오고이복장,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에 사람, 말, 새 모양의 장식을 줄렁줄렁 달고 샤먼이 나타났다. 종과 원형 장식물은 금속 패넌트고 복장 역시 한국의 무당과 흡사했다. 추장이 도깨비기자를 소개했다. 도가이고오 후이Dogaiguo Hui는 올혼섬의 세습무당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도가이고오 후이였다. 무당 세습 전통을 묻자 도가이고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주아주 오래라고 대답했다. 세습무당이고 이름까지 세습된다는 정도. 추장과 안내인도 아주아주 오래의 의미를 모른다고 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이어내려온 가문일지 모른다. 신목의 세월만큼이나 세습무당의 이마에도 주름살이 깊게 패였다. 도가이고오가 도깨비기자를 제단으로 안내했다. 제단에는 향로가 한 개 놓이고 쑥을 태우는지 강한 쑥 냄새가 났다. 제단 밑에 북과 청동거울이 있었다. 도가이고오가 제단 뒤로 돌아가더니 검게 옻칠한 듯한 궤를 들고나와 향로 곁에 놓았다. 궤에 앉은 먼지를 입으로 후후 불어내고는 조심스럽게 궤문을 열었다. 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궤 안이 황금색 비단으로 꾸며져서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도가이고오가 향로 앞에 꿇어앉았다. 주문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얼마지 않아 향로를 감싼 쑥향 연기 사이에서 뭔가 어른거렸다. 연기가 소용돌이처럼 엉키고 있었다. 보고있는 사이에 연기는 몇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는 형체를 만들었다. 아니! 저 건…? 도깨비기자가 놀라서 저도 모르게 신음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3족오였다. 3족오의 형체는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형체를 이루고는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도깨비기자는 얼이 다 나간 듯 변화하는 형체를 보고있었다. 도가이고오가 묵상을 멈추고 일어서자 형체는 다시 곧은 한 줄기 연기로 되돌아왔다.
도깨비기자 : (제단을 나서며 도가이고오에게) 연기가 그린 형체가 무엇인지 아는가?
도가이고오 :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모른다.
도깨비기자 : 저런 현상이 언제부터 있었나?
도가이고오 :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라고 들었다.
도깨비기자 : 형체의 실물은 무엇인가?
도가이고오 : 모른다
# 추장이 뒤 따라 오면서 추장은 바뀌지만 세습무당은 바뀌지 않는다면서 매우 오래된 일이어서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입으로만 전해오는 전설이라고 했다. 도깨비기자가 추장에게 3족오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또한 하늘에 제사지내며 점을 치는 기물이었을 거라고 했다. 이르쿠츠크Irkutsk에 박물관이 있으니 거기 가서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바이칼호수를 거점으로 이르쿠츠크는 서쪽에 그리고 동쪽에는 브리야트 몽골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가 있다. 그 날 오후에 찾아간 이르쿠츠크 향토박물관은 브리야트인의 생활사박물관이었다. 3족오와 선기옥형의 모습이나 흔적은 없었다. 도깨비기자는 리스트비양카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알혼섬의 도가이고오를 찾았다. 관광선 도크에 앉아 부서지는 물결을 무심하게 보고있던 도깨비기자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도가이고오? 도가이고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머리 속의 안개가 걷힌 듯 머리 한 쪽이 말갛게 트여졌다. 그렇다 도가이고오 후이는 독고 성씨의 차음인지 모른다. 독고휘? 독고후? 예상이 맞다면 도가이고오의 조상은 독고씨고 치우천왕의 신장神將이었던 독고휘 장군일지도 모른다. 급히 서낭당을 찾은 도깨비기자가 도가이고오를 찾아 조상의 내력을 물었다. 할아버지의 기억 밖에 없었다. 유목민들답게 족보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도가이고오를 확인하려던 도깨비기자는 맥이 좌악 풀리는 걸 느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때문인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차로 리스트비양카를 떴다. 불가리아로 들어가 소피아를 보고 곧장 헝거리에서 아틸라의 유적을 찾아본 뒤 터키로 다시 날아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유물을 확인하고 싶었다.
* 불가리아는 고조선의 유민인 부여족이 세운 나라다. 불가리아는‘부여의 땅’의 차음이며 발칸반도의 발칸은‘밝한’이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도‘사비(성), 백제의 사비성, 현재 충남 부여시’의 차음이다.
* 헝거리는 훈스족의 나라인데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민족의 일파인 흉노족이 서남진하여 세운 나라다. 헝거리나 훈스 또한 ‘흉노’ 의 차음이다. 헝거리역사에는 아틸라라는 왕이 있다. 아틸라는 AD. 434년에 로마를 제압하고 정복자가 되었다. 세계 3대 정복자는 징기스칸, 아틸라, 알렉산더다.
* 터키에는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역사가 있다. 터키는 고조선의 유민 ‘돌궐족’이 세운 나라인데 AD. 1326년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이루어 유럽을 지배했다.
◎ 두 개의 3한韓
* 고조선은 마지막 47세 선군 고열가의 유지諭旨로 화백제도和白制度인 5가의 공화정을 6년 간 펴다가 해모수에 의해 북부여로 계승되었으나 고조선의 강역에서는 100 여 개의 나라들이 일어나 성읍국가城邑國家를 형성한다. 씨족 부족국가, 지역국가로 형성된 나라들이다. 북부여를 위시하여 동부여, 졸본, 읍루, 옥저, 동옥저, 북옥저, 최씨낙랑국, 동예, 맥, 3한(마한, 변한, 진한), 가야들이 대표적이다. 한기 7100년경부터 7600년경까지(BC. 1세기 - AD. 5세기) 이 성읍국가들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면서 국가연맹체로 결성되어 국가의 기틀을 구축한다. 한국역사에는 두 개의 3한이 있는데 그 하나는 고조선의 선군왕검시대 ‘3한관경제’ 의 3한(진한, 번한, 막한)이고, 두 번째는 고조선이 멸망하고 유민들이 남으로 이주하여 세운 3한이다. 본고에서 정립하는 3한은 한국의 3한이지만 두 3한이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의 소지가 있고, 두 3한의 관련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정립되지 않아 일반화되지 못하였기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의 연구업적을 바탕으로 정리함
* 한(순수한 우리 말, 汗, 韓은 빌어쓴 글자)은 나라 이름이 아니다. 만주나 몽고말로도 임금(칸)이란 뜻이다. 고조선에는 진(신)한, 번(발, 불)한, 막한(말한, 일본서기의 모한이라고 함은 왜倭왕 무茂의 실수) 세 임금이 있는데 진한이 상황上皇이었다. ‘만주원류고’ 에서는 ‘한’ 을 나라 이름으로 저술한 ‘후한서’ 의 저자 범엽을 다음과 같이 질책한다. ‘당시 3국에는 3한이 있어 한 나라씩을 통치하였다. 사가史家들이 <한>에 군장君長의 뜻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음音이 같다는 것에 집착하여 오역한 일은 고증이 무능하였다는 결론이다’. 단재 신채호는 고조선의 3한을 신한, 번한, 막한이라고 가렸다. ‘한’ 은 본래는 왕의 칭호였으나 나라 이름으로도 두루 쓰였음
* 고조선의 3한은 국가통치방식이었던 3한관경제管境制의 진한辰韓, 번한番韓, 막한莫韓이며, 진한은 진조선眞朝鮮으로 선군왕검이 직접 통치하였고 수도는 송화강 유역 아사달이다. 강역은 압록강 이북에서 요하 동부로부터 만주까지였다. 번한은 번조선番朝鮮으로써 수도는 하북성이며 요하의 서쪽 하북, 하동, 산동, 산서, 강소에 이르는 중국대륙이었다. 막한은 막조선莫朝鮮으로 평양이 수도며 압록강 이남의 한국과 제주도, 대마도임
* 한국의 3한은 고조선이 멸망하고 3조선의 유민들 일부가 남하하여 한국 강역 안에 옛 고조선의 정신을 되살려 3한을 재건하였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을 참고하여 다시 이를 정리한 중국의 3국지三國誌 위지魏誌 동이전에 기록된 한국 안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말한다. 마한은 한강 유역과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자리잡은 54개국 연맹국가로써 총 10만호였으며, 큰 나라는 1만호 작은 나라 수천 호였다. 목지국目支國 또는 진국辰國의 진왕辰王이 맹주盟主로 군림하였고 초기에는 진한과 변한에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중국의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과 한서漢書 조선전에도 BC. 2세기 한국 중남부지역은 진국辰國 또는 중국衆國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국 3한이 진국에서 발전된 것으로 되어 있다. 진한辰韓은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에 자리잡은 12개국 연맹국가로써 4 - 5만호였으며, 큰 나라는 4 - 5000호 작은 나라 6 - 700호였다. 변한弁韓은 낙동강 유역의 경상도에 자리잡은 12개국 연맹국가임
* 3한 중국설은 근래 진보적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 한국의 3한(마한, 변한, 진한)이 한국강역과 중국의 동북지방이라는 학설이다. 3한을 계승한 3국(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설과 같은 맥락인데 한단고기(임승국)에서는 고조선 선군왕검시대가 멸망하고 상장군 탁이 유민을 이끌고 해로를 통하여 한국의 한강 이남으로 내려와 고조선의 3한을 계승하는 3한을 건국하였고 상장군 탁을 추대하여 진왕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단재 신채호도 같은 논리를 폈다. 그러나 근래 진보적인 학자들이 연구와 고증을 통하여 또 하나의 학설을 전개하였는 바 그림의 3한을 설정하고 있다.
◎ 가야의 북방민족 이주설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가야문화의 특질, 신경철)
학계에서는 가야의 성립을 토착설과 북방민족 이주설 두 갈래로 논란이 되었는데 근래 가야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두고 북방민족 이주설이 설득력 있는 정설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북방민족 이주설에 대한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면 아래와 같음
* 도질토기陶質土器의 사용 : 도질토기는 북방 토기로써 AD. 3세기 말 금관가야 중심부였던 낙동강 하류 김해와 부산지역 고분에서 출현하여 영남 각지에 산재한다.
* 순장殉葬 : 한국 토착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고 부여 등 유목민 습속인바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확인되었다.
* 오르도스Ordos형 동복銅腹 : 북방 유목민의 청동솥인데 북부여 제작으로 추정함.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되었다.
* 무기武器의 훼손毁損 풍습 : AD. 3세기 말 무렵 추정, 김해 대성동 45호 고분에서 발굴된 대도大刀는 일부러 구부려 부장副葬함. 북방 유목민족 풍습이다.
* 갑주甲冑(갑옷)와 마구馬具 : 철제 갑옷과 투구, 기마용 마구는 북방 피혁 갑주문화인바 중국 동북방 선비족과 부여가 원류다.
* 묘제墓制 : AD. 3세기 영남에서 발굴된 묘제는 목곽묘로써 관묘제도와 다름. AD. 2세기 후반 추정, 양동리 162호묘에서 발굴되었다.
* 선행先行 분묘墳墓의 파괴 : 의도적으로 선행 묘를 파괴하는 행위는 앞 체제를 부정하는 유목민족의 풍습이다.
불가리아 Tsarevets Fortress 헝거리 부다페스트 Pyramid와 Sphinx
국가 문장紋章 차레베츠 요새 Danube강 * Daum Blog 인용
# 불가리아는 유럽 패권의 역사에서 약탈당하고 소실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불가리아에서 고대 유물과 유적을 찾는데 실패하고 도깨비기자가 헝거리의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다음 날 현지 신문에 ‘훈족 아틸라 칸의 궁전 오늘 낙성식’ 의 기사를 보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3년 전 도이치 TV ZDF,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핑크스, 역사의 비밀 중 잃어버린 고리 찾기 편編’ 은 AD. 375년 게르만민족의 대 이동을 촉발해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아시아 유목민족 훈족을 집중적으로 추적한 바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훈족의 원류가 아시아 동쪽 끝, 즉 대한인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고학적으로도 신라, 가야와 훈족의 유물 유적을 비교해보면 편두扁頭, 금관의 머리장식 등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결론지었다. 이를 계기로 역사적 현장을 재현하여 문화사업을 펼치려는 헝거리 기업가가 거액을 투자해서 아틸라 궁전을 재현하는 사업을 하였는데 착수한지 3년만에, 오늘 오전 11시에 각계 요인들이 참석하여 낙성식이 열린다는 내용’ 이었다. 도깨비기자는 흥분된 기대감을 가지고 아틸라 칸 궁전을 찾았다. 궁전은 예상 보다 넓고 컸다. 사방 1Km의 대지에 고대 양식의 건축물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에 매료되어 돌아다니다가 뜻밖에 도가이고오 후이를 만났다. 도가이고오는 지구라트(Ziggurat는 정상부분이 평평한 제단이고 피라미트Pramit는 정상부분이 뽀쪽한 무덤)에서 제사 준비를 지휘하고 있었다. 예의 그 알록달록한 무당복장을 하고 훌쩍 높은 지구라트에서 제사를 지휘하다가 그 역시 도깨비기자를 발견하고 계단을 내려와 반갑게 맞았다. 오늘 낙성식 제례를 맡았다고 했다. 도깨비기자가 의외라는 표정이자 도가이고오는 나라와 민족을 도외시하고, 핏줄이 같은 민족의 유럽 서남부지역의 큰 제사는 도가이고오 집안에서 맡는다고 했다. 그것은 오랜 전통으로써 부근의 민족들이 나라라는 개념을 넘어 종족의 모임으로 모두 모인다고 했다. 오늘도 불가리아, 헝거리, 터키, 브리야트, 코리족들이 모두 모였다고 했다. 고봉학술원에서 운곡선생은 동방과 서역의 무역로였던 ‘비단길’이 애초에는 민족 방문길이었다고 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부족들이 흩어져 여러 갈래로 나뉘었는데 유럽 서남부로 이동한 종족이 만든 나라들과 동쪽으로 이주한 종족들이 시베리아 남부로부터 만주, 몽골, 중국, 일본 그리고 대한(한국)이라고 했다. 비단길은 몇 년에 한 번씩 동족을 방문했던 고조선 부족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이들의 방문길에 편승한 장사꾼들이 빈번히 왕래하게 되어 장삿길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래 재야사학자들이 고조선의 역사를 이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도 이런 역사적 고증 때문이었다. 바이칼호수 올혼섬 세습무당의 위상을 새삼스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도깨비기자는 도가이고오의 제사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제사의식에서도 선기옥형의 형체는 찾지 못했다. 제사의식을 보고 나오던 참에 또 뜻밖에 디오도로스 다비드를 만났다.
도깨비기자 : (놀라면서) 선생님께서도 여기를 ….
디디 : (어깨를 나란히 걸으며) 와봐야지요, 초청이 없었더라도. 지구라트 축조의 자문을 맡 았습니다. 서양인들은 피라미트나 지구라트에 문외한이지요. 서양에는 피라미트나 지구 라트가 없습니다. 지구라트는 수메르인들이 인류 최초로 쌓았습니다. 성경의 바벨탑도 지구라틉니다.
도깨비기자 : 선생님의 연구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디디 : 제 연구는 점토판의 번역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태양계 12번째의 위 성에서 내려온 신들’과 성경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대한과 같은 몇몇 나라들의 건국설화, ‘하늘에서 하강’입니다. 한결같이 ‘하늘에서 내려온’이라는 명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거기가 근본이고 다음은 ‘동방에서 불쑥 나타난 검은 머리’의 수메르인과 연 관성입니다. 기자님의 추적은 어떻습니까, 성과가 있나요?
도깨비기자 : 없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동굴사원의 빛과 중국의 3조당에서 확인한 전쟁 복원도의 그림 그리고 바이칼호수의 세습무당이 보여준 형상이 모둡니다. 참, 바이칼호 수의 세습무당, 아까 제사를 주관한 무당인데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을 보여주었습니다. 묵상 속에서 제가 찾는 선기옥형의 형체와 연관성이 있는 3족오라는 새의 모형을 재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물은 없었고 내력조차도 오리무중입니다. 세습무당이라면, 그는 대대로 무당을 세습한 가문입니다. 그렇다면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졌습니다. 무당 가문의 3대 이전에는 구전역사 조차도 없었습니다. 기록이 없는 탓 입니다. 아틸라는 동방의 그러니까 고조선의 흉노족으로 유럽에서는 훈족이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3대 정복자의 하납니다. 징기스 칸, 알렉산더와 함께 세계 역사상 가장 넓 은 영토와 왕권을 행사한 왕이지요. 영토로 보자면 로마의 2배 정도였습니다. 로마 말 기라지만 로마마저 아틸라에게 해마다 정기적으로 공물을 바쳤으니까요. 아틸라에게 선 기옥형이 전수되었다고 추론합니다.
디디 : 선생의 추리도 놀랍군요. 제가 추적하는 ‘하늘’의 실체와 같이 선기옥형의 실체도 나 타나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선기옥형이 기상이변이나 오염 그리고 공해 등 지구가 처한 현재적 상황을 타개하고 지구촌을 구제할 수 있다는 논리에는 제가 좀 취약합니 다.
도깨비기자 : 천기天氣의 흐름을 역사적으로는 세 단계로 봅니다. 하늘의 이치에 순응했던 관천망기觀天望氣시대 - 하늘을 보고 변화를 예측한 시대, 기기를 사용한 측기測氣시 대, 세 번째는 현대인데 관측자료를 수집하여 기상상태를 예측하는 일기도日氣圖시대지 요. 선기옥형은 두 번째 측기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의 기록을 보면 실 제 관측과 어우러지는 정신적측면이 있습니다. 그 게 선기옥형의 역할이었습니다. 세상 은 눈에 보이는 것 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이 많고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더 중요한 것인데… (아무래도 디디가 납득하지 못한 것 같아 부연한 다.) 예를 들면 요즘에는 동양의 침술이 서양의학에서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만 국에서 실제로 침술치료를 받고 놀랐지요. 서양에서는 수술을 하려면 마취제를 주사해 서 몸을 마비시킵니다. 동양의 침술은 몸의 경락에 침을 놓아 마취를 합니다. 경락은 인체에 360개가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찍이 물리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체의 생명력 을 알아냈습니다. 이른바 ‘기氣’라는 것인데 생명력이 있는 것은 모두 이 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철학에서 ‘이理와 기氣’는 세상을 이루는 기본 형상입니다. 한국인은 기 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생활에서도 ‘하늘의 기운인 천기天氣, 날씨를 일기日氣, 기운氣 運 또는 의학적으로는 감기感氣, 기운이 없다, 기가 막힌다’는 말 등 이와 기는 두루 널 리 쓰입니다. 침술에 적용하는 것도 기입니다. 침술로 수술한 환자는 수술이 끝나자말 자 곧 자신의 힘으로 걸어나갈 수 있습니다만 서양의 마취수술은 몇 날 며칠을 병상에 누워 꼼짝딸싹도 하지 못하다가 수술자국이 아물어야 일어납니다. 예가 적절한지 모르 겠지만 선기옥형의 정신적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눈으로 보는 일은 한계가 있지요. 또 관측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그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 선기옥형을 통한 천기예 측이고 한국인의 예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마음수련이라고 합니다. 고도의 정신수 련으로 얻어지는 지혜입니다.
디디 : 놀라운 이야기군요. 제가 이라크에서 만난 대사(大師, Master)의 이적異蹟과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합니다. 동굴사원의 이야기도 서양사람들은 당혹해하지요. 뭐, 일종의 신비주의로 인식하는 수준입니다. 엄연히 경험한 사실을 믿지 못하는 거지요. 서양의 과학적 논리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아틸라는, 통치시기가 짧았지만 대단한 인물이지 요. 알렉산더 보다는 앞서고 징키스 칸 다음가는 정복잡니다. 자, 같이 갑시다. 궁전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더 듣고싶습니다. (아틸라의 대관식 장면에 멈춰서서) 이 기록은 정확합니다. 로마의 역사학자 프리스코스와 요르다네스 기록의 기록이지요.
Huns(훈족)의 정복자 아틸라왕 전쟁도 오스만 투르크 근위보병부대
* Daum Blog 인용 Yenichri
# AD. 434년(한기 7731년) 서로마 황제 호노리오스의 수도 라벤나궁전, 검도 연습 중인 아틸라에게 훈족의 전령이 전갈을 전한다.
전령 : (손을 가슴에 대고 절한 뒤 엎드려) 왕자님 급히 귀환하시라는 전갈입니다. 루가 황 제께서 급사하셨습니다.
아틸라 : (얼굴빛이 바뀌어 칼을 거두며) 뭐! 삼촌이? (손짓으로 전령을 따르게 하고 급하게 복도를 걸어가며) 병사인가?
전령 : 모릅니다.
아틸라 : 병사가 아니라면 암살이란 말이냐? 형은 뭘 하고 있느냐?
전령 : 저희들은 모릅니다. 명령만 전달할 뿐입니다.
# 황제 호노리오스의 수도 라벤나궁전 황제의 방
아틸라 : (황제 앞에 아틸라 부복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걸 허락해주십시오.
황제 : (손에 들고있는 왕홀로 아틸라를 가리키며) 왕자는 볼모가 아니다. 형제의 나라로써 로마에 유학했다. 서정이 급박하니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다. 돌아가거라! 왕이 되어서 도 로마와 나, 호노리오스의 우정을 잊지 말라!
# 호노리오스 궁전 아틸라의 방
아틸라 : (시종들에게) 칼과 무기만 챙겨 떠난다! (호노리오스의 공주 호노리아 달려들어온 다.)
호노리아공주 : 당장 떠나야해?
아틸라 : 급해! 삼촌이 갑자기 돌아가셨어. 루가 삼촌은 아버지의 섭정이야. 왕위계승자는 나와 형인데 형이 왕위를 물려받을지 내가 물려받을지 중대한 결정이 기다라고 있어.
호노리아공주 : 조심해! 황제가 아에티우스장군을 궁전으로 불러들였어. 호위병사들을 대기 했으니 대려가.
돌아오는 도중에 호노리아공주의 예상대로 복병이 있었다. 복병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호노리아가 준 병사만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혈전을 각오하고 포진을 하려는 때 다행히 마중나온 형 불레다의 병사들이 들이닥치자 아에티우스의 병사들은 엉거주춤 물러서더니 돌아갔다.
# 아틸라의 아버지 문주크왕의 궁전. 돌아온 아틸라와 형 블레다가 공동으로 통치하는 대관식. 훈족의 세력을 과시하듯 서남부 유럽 45개 종족의 추장과 부족장들이 도열하고 있다.
# 아틸라는 형 블레다와 함께 공동으로 왕위(AD. 434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형 블레다(AD. 443년)가 죽고 황제로 왕권을 잡은 아틸라는 동로마가 공물을 제 때에 바치지 않는다는 구실로 동로마로 진격 이에 놀란 동로마는 공물 2배 증액 약속을 받는다. 이 때 서로마와 서코트의 경찰권도 넘겨받아 아틸라는 명실공히 유럽의 패자로 군림한다. 남으로는 발칸반도, 북 발트해안, 동 우랄산맥, 서로는 현재의 프랑스까지 다스린 종족만도 45개 종족이었다. AD. 450년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여동생 호노리아가 황제 자리를 탈취하려고 음모를 꾸며 발각되자 동로마의 한 수도원으로 추방되었다. 호노리아는 아틸라에게 결혼을 의미하는 자신의 반지를 증거물로 서로마로 진격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틸라는 ‘이미 내게 10명의 아내가 있으니 열한 번째 아내는 더 필요없다’고 호노리아공주의 제의를 거절하고 한편으로는 서로마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 영토의 절반을 결혼지참금으로 할애할 것을 요구했으나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호노리아를 다른 사람과 결혼시킨다. 서로마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아틸라는 AD. 451년 갈리아지역을 공격한다. 서로마는 아틸라의 친구인 ‘최후의 로마인’ 아에티우스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대적한다. AD. 451년 6월 20일 프랑스의 트루아시에서 세계 15대전투의 하나로 꼽히는 ‘살롱대전투’가 벌어졌다. 각각 20만에 이르는 대전투로 15만이 전사했다. 승부가 나지 않았다. 잠시 전쟁을 멈추고 퇴각한 아틸라는 11번째 왕비, 게르만 제후의 딸 일디코와 결혼식날(AD. 453년) 밤 급사했다. 게르만족의 유명한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서는 일디코가 전쟁에서 살해당한 가족의 복수로 아틸라를 살해했다고 했으나 학자들은 과음 질식사 아니면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암살로 추정한다.
# 아틸라의 장례식, 관이 안치된 궁전 앞 광장에 수십만의 군중이 운집했다. 아틸라가 정복한 45개 부족장과 종족장들과 아틸라의 장군들이 아틸라의 관 주위에 둘러서 있다. 지구라트를 지키는 100명의 신녀들이 촛불과 야생화를 아틸라의 관 가장자리에 바친다. 관이 꽃으로 가득하고 수 천개의 촛불이 관 주위에서 출렁거린다. 아틸라의 친위대장 오레스테스가 칼을 뽑아 수염을 자르고 팔뚝을 그어 관 위에 피를 뿌린다. 관의 주위를 둘러싼 장군들이 칼을 뽑아 피를 뿌린다. 장례는 밤낮 10일 동안 열렸다. 그리고 열하루 째 날 밤 자정, 군중을 해산하고 아틸라의 관을 가장 은밀하게 장례지로 옮겼다.
* 만가輓歌 - 아틸라 장례葬禮의 노래
훈족의 위대한 왕이시며
문드주크스의 아드님이시며
가장 용맹스런 부족들의 통치자이시며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위대한 힘을 지니셨던 아틸라 왕께서는
스키타이와 게르만왕국들을 소유하였고
동․ 서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며
그 도시들을 정복한 뒤
매년 공물을 받기로 하였다.
이런 모든 일들에 다 성공한 후
적의 공격이나 친구의 배반에 의해서가 아니라
평화로운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하고 즐겁게 어떠한 고통도 없이 돌아가셨다.
가장 값진 보물들과 가장 진귀한 보물도 함께
누구도 복수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 아틸라의 관은 가장 강력했던 왕을 기념하여 장식했다. 관은 세 겹이었는데 강철의 관은 정복자를, 금과 은의 관은 동․서로마 정복을 의미했다. ‘가장 값진 보물들’ 과 ‘가장 진귀한 보물’ 도 함께 매장했다. 그리고 매장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디디 : 아틸라는 안타깝게도 급사했습니다. 혼례 첫날밤에 갑자기 죽은 것입니다. 로마의 장 군이자 아틸라의 친구였던 아에티우스장군의 간계로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는 조 작일 가능성이 높고, 학자들은 잘 마시지 못하는 술에 취해 열한 번째 부인 일디코와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에 급사했거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암투로 암살당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도깨비기자 : 무덤을 찾지 못했다지요?
디디 : 동로마황제는 절치부심하여 아틸라의 무덤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군사를 보냈으나 허 사였습니다. 사후를 준비한 것입니다. 정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틸라의 묘는 다뉴브강물 아래 있다고 합니다. 강의 물줄기를 임시로 돌리고 강의 밑바닥에 무덤을 쓴 뒤에 강물을 다시 터버렸습니다. 선기옥형을 생각하는 것입니까?
도깨비기자 : 아틸라의 시신과 함께 묻혀버렸을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위대한 왕의 곁에 두기 위해 신하들이 매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니벨룽겐의 노래’에서 암시하는 것, ‘가장 진귀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가장 값진 보물’과 중복되어 있습니다. 강조한 것입니 다. 아틸라 사후 그 거대한 제국은 자식들과 신하들에 의해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100년이 채 되기도 전(AD. 469년)에 흔적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게 또 마음에 걸립니다.
디디 : 니벨룽겐의 노래는 게르만족의 노랩니다. 헝거리인들은 노래 자체에 믿음을 주지 않 습니다. 불신하지요. 그렇다면, 제가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탄불로 함께 갑시다.
도깨비기자 : (놀라며) 터키를 말입니까?
디디 : (가볍게 웃으며) 기자 선생의 추적을 도와야지요? (농담처럼) 위험은 따르겠지만.
도깨비기자 : 알고계셨습니까, 뒤를 쫓는 눈들이 있다는 걸?
# 터키 이스탄불대학교. 도깨비기자, 디디 그리고 방의 주인 터키 고고학계의 태두라고 할만한 세림 교수.
세림 : 대한은 형제의 나라지요, 알고계신가요?
도깨비기자 : 알고있습니다.
세림 : 좋군요. 터키인들은 잘 알고있는데 대한인들은 무관심하다고 들었습니다.
도깨비기자 :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터키는 역사학과에서 의도적으로 가르 치고요. 학문 외적으로, 지난 88올림픽을 계기로 터키가 형제국이라는 사실이 일반적으 로 좀 알려졌습니다. 그 전에는 대한전쟁의 혈맹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디디 : 터키인들의 자존심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강합니다.
세림 : 기자선생이 알고싶어하는 고대국가,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이지요. 유 럽과 아시아 서남부 그리고 아프리카를 지배하였던 영광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디디 :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형성하는 요인 중 하나는 ‘예니체리’입니다.
세림 : 강력한 통치자와 그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군대가 오스만 트루크제국의 영광을 구현 했지요. 예니체리는 투르크 말로 ‘새로운 군대’ 또는 ‘신식군대’를 뜻합니다. 무라드 1세 의 군사적 역량이지요. 점령한 나라의 청소년이나 귀족의 자제들을 모아 투르크인으로 순치하고 엄격한 규율과 높은 도덕률을 책임지웠습니다. 초기 200년 동안에는 결혼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적 상징인 수염조차도 기르지 못했습니다. 활과 반월도로 무 장한 그들은 전장에 나서면 거의 싸움에 미친 짐승들처럼 싸웠다고 합니다. 그들이 지 나간 자리는 참혹했습니다. 적군은 살려서 포로로 잡지 않았습니다. 마을은 모두 불태 우고 사람은 물론 가축조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초토화작전이 예니체리의 기본전략이 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지레 겁을 먹고 항복했습니다. 항복을 해도 약탈과 방 화는 자행되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서는 군대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전성기 때는 14 만 명 정도의 규모로써 후기에는 술탄도 제어할 수 없는 권력집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결국 AD. 1826년 마흐무드 2세에 의한 유럽식 체제의 군대 편입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대부분이 처형되었습니다. 비참하게도 예니체리역사의 종지부는 ‘공인된 도 적떼’ 로 낙인찍혀 450여년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영광 뒤에 는 그들의 무절제한 만용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디디 : 대한 손님의 관심사는 예니체리가 아닐텐데….
도깨비기자 : 투르크의 예니체리는 놀랍게도 고조선의 천지화랑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고 조선의 군대와 투르크의 군대가 쌍둥이처럼 유사합니다. 훈련방식이나 규범 그리고 조 직 편제까지, 더 놀라운 것은 머리를 깎은 것까지 닮았군요.
고구려 무사 백제 무사 신라 화랑 일본 사무라이
* Daum Blog 인용
* 백제, 싸울아비의 ‘8선도仙道정신’
① 칼은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 쓴다.
② 전쟁에 나가면 최후의 순간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③ 의로운 일에만 칼을 사용하며 함부로 죽이는 일은 안 한다.
④ 도전을 받았을 때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칼을 써야 하며
일단 칼을 들었으면 후회 없는 승패를 가려야 한다.
⑤ 적을 뒤에서 치지 않는다.
⑥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다.
⑦ 칼을 내 몸과 같이 아낀다.
⑧ 전투에 패하여 포로가 되었을 때는 스스로 할복하여 그 명예를 지킨다.
* 신라, 화랑花郞의 ‘세속世俗 5계戒’
① 임금은 충성으로 섬기고(사군이충事君以忠)
② 어버이에게는 효도를 다 하고(사친이효事親以孝)
③ 벗은 믿음으로 사귀고(교우유신交友有信)
④ 전쟁에서는 물러서지 말며(임전무퇴臨戰無退)
⑤ 죽임은 가려서 해야 한다(살생유택殺生有擇)
◎ 조의선인 을밀과 대한 무예 그리고 선기옥형의 해석
* 우리나라의 무예는 고조선의 천지화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은 손자병법과 18기 또는 24기예가 있고, 일본은 사무라이 무사도가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국기로써 활을 드는데 동이족이란 말의 ‘이’ 는 큰 활을 뜻하며 주몽이라는 말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주몽은 일곱 살 때 스스로 활을 만들어 백발백중이었다. 머리에 이고 가는 물동이를 백 보 뒤에서 활로 쏘아 구멍을 뚫고 곧 이어 솜을 두른 화살로 그 구멍을 다시 맞혀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으며, 이고 가는 사람도 물동이가 깨진 것을 몰랐다는 전설이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무기는 창이고 일본은 칼이다.
* 조의선인은 고조선 한인천왕의 한국시대 천지화랑의 후예다. 기와 덕과 예를 겸비한 소년들을 가려 천지화랑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이 외출할 때 머리에 천지화(무궁화)를 꽂았으므로 천지화랑이라고 불렀다. 천지화는 수두(소도) 즉 신성한 구역에 심은 나라꽃이다. 천지화랑은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의 조의선인으로 맥을 이었고 백제에서는 싸울아비(무절武絶, 일본의 사무라이)가 되었으며 신라에서는 화랑이라고 하였다. 고조선 한웅천왕시대의 대재상 발귀리, 자부선인, 단군시대의 몇몇 단군들과 부여의 대조영 그리고 고구려의 을파소, 명림답부, 연개소문과 그의 아들 남생이 조의선인이었는데 남생은 총명하여 9살에 조의선인이 되었다. 고대에서 근세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대부분이 조의 출신인 바 우리 전통문화에서 말하는 선비란 바로 이들이 지니고 있는 덕성과 실천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온달장군, 을지문덕, 양만춘도 조의의 후예다. 백제의 계백과 신라의 김유신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이성계를 비롯하여 무학대사, 정도전, 홍윤성, 조광조와 율곡, 퇴계, 저 유명한 토정비결의 저자 이지함, 관상감에서 선기옥형을 제작한 송이영, 이순신, 권율, 김시민, 곽재우, 김덕령 의병장들이 그 후예다. 근세에는 이등박문을 사살한 안중근이 조의로써 승마와 사격에 뛰어났으며 김좌진 장군 또한 조의인 바 동서양 병법에 통달하였다. 청산리 전투에서는 격전 중에 살며시 물러나 양쪽에서 공격해오던 일본군이 저희들 끼리 싸워 많은 전사자를 냈다. 권율장군도 조의로써 과거에 급제하였기 때문에 흔히 문관으로 알고 있으나 검술에 뛰어나고 병법에 밝았으며, 한기 8789년(1592년) 임진왜란 행주대첩 때 남원에서 1000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무주로 넘어가는 배고개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의 왜군 정예부대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진을 지휘하던 동복현감 황진이 격전 중에 전사하여 1진이 무너지자 2진에 있던 권율장군이 벽력같이 호령을 하며 의기소침한 군사를 독려하여 왜군을 크게 격파했다. 이 때 장군은 물러서는 병사들의 벙거지에 칼끝으로 표시를 해두었다가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 쉬는 짬이나면 가차없이 처단했다.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지도력을 지닌 사람들은 대개 조의의 문하였다.
* 애초에는 조의선인을 ‘선배 또는 선비’ 라고 불렀는데 선배라는 말은 고구려의 10월 제천 행사에 모인 군중 앞에서 무예를 선보인다(선뵈)는 데서 유래하였고 선인은 선배의 이두식 표기다. 사냥, 가무, 무예 등 여러 가지 경연에서 탁월한 사람을 선배로 불렀고 발탁된 이들은 나라에서 급료를 받고 무예와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전시에는 자치부대를 조직하여 정예군으로 싸웠다. 선배는 머리를 깎고 검은 옷을 입었다. 그래서 고구려와 전쟁을 하였던 수, 당나라는 승군으로 착각하였다.
* 신라의 화랑은 원화라는 여성에서 비롯했다. 원화는 외모가 출중하고 가무와 학문에 뛰어난 여성을 가려 귀감으로 삼았는데, 뒤에 좋은 가문의 청년들 중에서 외모가 반듯하고 덕행이 있는 사람을 가려 뽑았으므로 선배는 남성적이었다.
* 조의선인의 활약상이 두드러진 것은 당나라 대군이 침략한 안시성전투였다. 당 태종은 요동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함락하고 군세를 총집결하여 안시성을 맹렬히 공략하였다. 60일 동안 50만을 동원하여도 실패하자 성을 내려다보며 공격하려고 안시성의 동남쪽에 높은 토산을 쌓던 중 토산이 무너져 안시성 성벽이 허물어졌다. 위기에 직면한 고구려군 진영에서 결사대가 돌격하여 당군을 물리치고 오히려 토산을 점령하여버렸다. ‘검은 옷을 입은 100 명의 용사가 달려나와 천장의 거미줄을 걷어내듯 당나라 2만 기병을 산 아래로 내어 쫓고 토산을 차지해버렸다’ 라고 기록했는데 이 용사들이 조의선인이다. 당시 고구려의 조의선인은 3만여 명이었고 그 우두머리는 연개소문이었다. 조의선인은 선비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문무겸전의 인재였다. 유년의 나이에 선발되어 신체와 정신적 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교육을 통하여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육성하였다. 조의선인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이 형성하는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판단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조련하였다.
* 고구려 제 22대 안장왕 때 조의선인으로 선발된 을밀(고구려 2대 유리왕 때 재상 을소의 후손, 고구려 10대 산상왕 때 재상 을파소는 을소의 손자, 평양의 을밀대는 을밀선인이 세움)의 문하에는 조의선도 3000여 명이 ‘참전의 계’ 를 익히고 ‘다물방지가’ 를 부르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다물은 되물린다는 뜻이며,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고주몽)의 연호인데 ‘선군조선시대의 태평성국으로 복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신채호선생은 고구려의 강성은 선배제도의 창설로 비롯된 것인데 조의라는 말이 6대 태조왕 본기에 처음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진국사(발해사)에서 선인을 사정병이라고 하고 삼국사기에서는 선비는 싸움에 당하여 물러서지 아니한다고 했다.
* 선배는 본래 신수두(소도, 천제 천신을 모신 대신단이 있는 가장 신성한 숲인데 하늘에 제사 지내는 마니산 참성단이 이에 해당한다. 소도는 신수두의 대신단을 본받아 각 지방에 만든 신단으로써 마을의 당집과 당산나무 - 신목 즉 웅상은 그 유물이다.) 교도의 보통명칭이었는데 6대 태조왕 때 3월과 10월 대제에 사람을 모아 칼춤을 추고 활쏘기, 깨금질, 택견(일명 수박, 송도에서 창안되었는데 중국에서는 권법으로 전수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유도로 발전했다)과 얼음물에서 물싸움 등 격기와 가무를 연출하여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우열을 판정했다. 여기에 대수렵을 벌여 그 사냥물을 더하여 종합 승리자를 <선배>라 하고 국가에서 녹을 주어 양성했다. 온달장군이 그 한 사례다. 선배가 되면 편대로 나뉘어 숙식을 함께하며 고전을 공부하고 학예를 익히고 산수를 유람하고 성곽을 쌓고 도로를 닦으며 군중에게 강습을 하기도 하는데 오로지 일신을 국가와 사회에 바쳐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선배들 가운데서 학문과 기예가 가장 뛰어난 자를 뽑아 스승으로 섬기며 조백으로 옷을 지어 입고, 일반 선배는 머리를 깍고 조백(검은 베 띠)을 허리에 둘렀다. 스승 가운데 가장 우두머리를 신크마리(두대형, 태대형)라 일컫고 그 다음을 마리(대형), 맨 아래는 소형이라고 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신크마리가 모든 선배들을 모아 부대를 만들어 참전하되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고구려의 직위는 골품제로써 미천한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오를 수가 없었으나 오직 선배는 귀천이 없고, 학문과 기예의 높고 낮음으로 지위를 얻었으므로 인재를 많이 배출하였다.
디디 : 교수님, 투르크의 유적에 선기옥형이라는 천문기기가 있습니까?
세림 : MeteoroskOpion 말씀이군요.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들고와서 펼쳐보이며) 여기 있습니다.
* 서양의 선기옥형 자료
최초의 혼천의(선기옥형)는 알렉산드린 그리스의 MeteoroskOpion(AD. 140년경)이지만 그 이전에도 고리 형태의 기기를 이용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Almagest에서 3개의 혼천의를 말하고 있는데 히파르코스(BC. 146년 - 127년)가 4개의 고리를 가진 기기를 사용했다고 했다. Astrolabon이라고 하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기기器機는 눈금이 매겨진 환環 위에 지름 방향으로 배치된 튜브들이 있으며 수직선에 의해 수직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 기기는 천구를 각의 단위로 측정하기 위해 등분된 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AD. 17 - 18세기에는 이 기구를 천장에 매달거나 받침대 위에 고정시키거나 손잡이에 붙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했다. 아랍인들도 비슷한 기기를 사용했으며 AD. 12세기 유럽에서 사용했던 원형은 스페인의 무어인들이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터키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 경계 헝거리 부다페스트
불루모스크 보스포러스해협 * Daum Blog 인용
도깨비기자 : (사진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터키에 이 천문기기 유적이 남아 있습니까?
세림 : 오스만 투르크제국(Osman Turk Empire, AD. 1297년 - 1922년)의 천문기기가 이 스탄불 고대유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 도깨비기자는 오스만 투르크의 선기옥형이 아틸라로부터 전수된 것이 아닐까 하는 흥분으로 밤 새 뒤척거리느라고 잠을 설쳤다. 세림교수가 보여준 책자만으로는 판별이 어려웠으나 기대감으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튿날, 식사조차 하는 둥 마는 둥 유물관으로 달렸다. 유물관은 아직 개관 전이어서 관람객도 직원도 없었다. 도깨비기자는 계단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유물관 앞 마당에 비둘기 몇 마리가 아침거리를 찾는 듯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깨비기자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문은 열리지 않았다. 비둘기들의 움직임과 문을 번갈아 쳐다보며 기다렸지만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광장 맞은 편에 노상 커피가게가 있었다. 커피를 한 잔 사면서 개관시간을 물었다. 오전 11시라고 했다. 눈이 뜨이자말자 달려왔던 일에 설픗 웃음이 나왔다. 흥분과 기대감으로 앞뒤를 생각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며 여유를 찾으려고 광장 주변을 산책했다. 11시 정각이 되자 유물관의 문이 열렸다. 애써 자제했던 마음이 다시 고조되었다. 곧장 안내소로 가서 그림을 보여주며 선기옥형의 소재를 물었다. 선기옥형은 고대유물관이 아니라 근대유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도깨비기자는 선기옥형의 형태를 보고 아틸라의 유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조선시대에 제작한 선기옥형 보다 조악했다. 더구나 제작년대가 AD. 1326년 이후라면 고려시대 말기와 동시대였기에 그렇게 판단했다. 예니체리Yenicheri의 사적史蹟을 찾았다. 사적에서 혹시 선기옥형의 기록이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예니체리관의 유물은 초라했다. 몇 가지의 무기와 정복왕들의 전승기록 뿐이었다. 후세의 예니체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예니체리관을 초라하게 만든 것 같았다. 예니체리를 강제로 해체해야 했던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상황이 겹쳐서 착잡했다. 예니체리는 막강한 군대세력으로 동유럽의 재패하여 오스만 투르크제국 번영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14만여 세력을 바탕으로 부와 권력을 탐익하여 ‘공인된 도적떼’ 라는 오명을 얻었다. 술탄도 그들의 횡포를 막지 못했다. 집단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술탄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으며 술탄의 임면과 지위에 도전했다. 개혁 군주 마흐무드 2세는 예니체리가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인식하여 해체하려고 했다. 예니체리는 유럽식 군대의 편입을 거부하고 1826년 5월 반란을 일으켰으나 포병의 공격으로 대부분 죽고 체포된 병사도 모두 처형되었다. 450년 역사가 부식된 병기 몇 점으로 남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고조선의 천지화랑도 고조선이 멸망하자 흩어져버렸다. 나라가 멸망하여 흩어진 천지화랑은 고구려,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천지화랑은 무예의 연마와 함께 정신 수양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버린 뒤에도 1만년을 지탱한 전통이 무예와 정신수련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막강한 권력과 부를 누렸던 예니체리는 역사에서 사라져버렸고 은둔과 칩거로 명맥을 유지한 천지화랑은 1만년을 이어왔다. 무엇이 ‘살아 5천 년 죽어 5000년’을 이어오게 하는 힘이었을까? 착잡한 심정으로 예니체리관을 나서는데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도가이고오 후이였다. 무당 복장을 벗고 평복을 하고 있어서 언뜻 알아보지 못했다.
도깨비기자 : 몰라 봬서 미안합니다. 워낙 낯이 설어서 ….
도가이고오 : (주저하듯) 드릴 말씀이 좀 …. 어딜 가면 뵐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혹 여기 오시지 않을까 하고 …. 주무시는 곳도 알 수 없었고 연락할만한 데도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깨비기자 : 무작정 기다렸단 말씀이신가요? 많이 기다렸겠군요.
도가이고오 : (주위를 돌아다보며 목소리를 낮춰서) 선생님, 걸으면서 말씀하세요. 선생님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깨비기자 : (소파에 앉으며) 미행?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관심두지마세요. (자연스럽 게 주위를 돌아본다.)
도가이고오 : 전에도 가끔 그런 일은 있었습니다만 어제 선생님을 만나고부터는 누군가 등 뒤에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니, 이틀 전 선생님께서 알혼섬으로 저를 찾았을 때부 터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깨비기자 : 제가 찾았던 선기옥형과 관계가 있습니다.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좀, 제가 머무는 동안 따라다니다 말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가이고오 : 우리는, 반 러시아적 성향이랄까 아니면 강제 복속의 영향으로 반감이 있고 또 당국에서는 반감이 있다고 보고 감시를 하는데 특히 무당을 주시합니다. 토속신앙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땅은, 바이칼호수를 비롯한 주변의 땅을 모택동의 공산당 이 소련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소련에게 할양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족들은 이를 인정 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도 브리야트Buryaty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코리Cory족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합니다. 숭조崇祖정신도 물려받은 거지요. 브 리야트는 소련에 편입되고서 그들이 정략적으로 붙인 명칭입니다. 소련과는 민족이 다 르고 역사가 다릅니다. 결코 소련에 병합될 수 없는 전제지요. 지난 90년 대 대한의 김 대중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을 때 코리족 민족의 뿌리 문제가 제기되었지요.
* 고리국에 대한 기록 (임승국, 한단고기)
선군시대 47세 선군 고열가 임술 57년, 선군 고열가 선위 1년 전, 한기 6958년(BC. 239년),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 사람이었다. 해모수는 몰래 수유(수유후 기비)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천왕랑이라 칭했다. 수유후 기비를 권하여 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만주 흥안령, 옛 고리드지역, 북부여 해모수의 고향, 일설 주몽의 고향.
바이칼호수 알혼섬에 고리드족이 있음 * Daum Blog 인용
도깨비기자 : 고조선의 문헌에 고리국이 나옵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100여 개의 부족국가 들이 할거한 열국시대가 전개되었는데 그 중에서 국가다운 면모를 갖춘 북부여의 해모 수가 고리국 사람이었습니다. 한단고기에는 해모수가 선군조선의 47세 고열가천왕을 위 협하여 천왕이 스스로 제위를 물러나 입산수도하는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모수는 정통적으로 천왕의 제위를 물려받지 못했고 고조선은 100여 개의 부족국가로 낱낱이 흩어져버렸습니다. 고조선의 정통을 이어받지 못한 해모수는 북부여를 창건하였습니다. 해모수의 탄생 국가 고리국이 고구려로 고구려가 고려로 이어진 역사에 코리인들이 있 습니다. 지구촌에서는 한국을 코리아Corea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만주 동북부에는 수렵 생활을 하는 종족들이 있는데 스스로 고리드인이라고 하는 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 리드인들이 기르는 고리드개는 수렵견으로 만주개, 러시아의 허스키, 아이누개, 한국의 진도개의 조상이지요. 코리족의 조상신화에 탱그리Tangri신화가 있지요? 한국학자들은 이를 선군신화로 보고 있습니다. 탱그리신화는 선군신화와 명칭뿐만이 아니라 내용도 같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는 말에도 물, 불, 어머니 등 한국어가 있고 지게나 맷돌이 남 아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게는 지구촌에서 한국인들만이 사용하는 유일한 농사도구입니 다. 코리족이 겪는 고충은 약소민족이 겪는 민족적 시련입니다. 겉으로는 평온해보이는 데 민족적 갈등이 크군요. 제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고조선역사나 민족의 정통성이나 그런 게 아닙니다.
도가이고오 : 우리 조상은 몽골인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의 한 부족이었습니다. 기 자선생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찾고 있는 선기옥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 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하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제게는 어떤 막연한,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갈증과 실체에 대한 확신이 없는 환상의 세계일뿐입니다. 저는 신단의 묵상에서 나타나는 형상, 그 그림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단지 신물神物의 형상이라는 것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으니까요. 선생을 만나고서야 제 환상이 구체적으로 다가오 고 범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세습무당으로 우리 선조들이 왜 그렇게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 -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고 히말라야를 넘는 모험을 강행하면 서 고조선을 참배했는지 하는 물음과 선생의 선기옥형이라는 신물이 연관이 있지 않겠 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선생을 찾았습니다.
도깨비기자 : 선기옥형은 고조선의 한웅천왕이 하늘의 뜻을 받아 인간세계를 다스리는데 사 용한 천부인 3개 중의 하나입니다. 전시된 선기옥형의 모형은 보셨지요?
도가이고오 : 저도 알고싶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아브 역사박물관에 고 대 벽화 한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65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아브 궁전에서 발굴 되었습니다. 이 벽화는 7세기 후반 이 곳의 지배자였던 와르후만 왕을 알현하는 외국사 절의 모습을 그린 대형 채색벽화입니다. 이 채색벽화에 고구려 사신 두 명의 모습이 담 겨져 있습니다. 복장과 조우관鳥羽冠 그리고 환두대도環頭大刀로 그들이 고구려인임이 분명합니다. 벽화에 남아있는 소그드어(8세기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언어 - 우즈베키스 탄과 타자키스탄 지방) 명문銘文을 통해 AD. 650년 - AD. 655년의 벽화란 것이 밝혀 졌습니다. 1400여 년 전에 고구려인들이 7000Km나 떨어진 이 나라를 방문한 놀라운 기록입니다. 선생이 찾고자 하는 선기옥형의 행방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실 크로드Silk Road가 기원 전 3세기에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고조선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일입니다. 서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고조선 부족들이 해마다 시월 상달 제천행사 때에 맞 춰 고조선을 찾았다고 합니다. 고조선에서도 정기적으로 서유럽의 동족들을 방문했습니 다. 벽화는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할아버지께 들은 말입니다. 우리 가문에서 는 제천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갔고 부족장들은 정치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선군을 추 대하는 의식에 초대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차차 상인들이 동참하여 이들의 보호를 받으 며 왕래가 빈번해지고 장사길로 번창한 것입니다. 특히 고조선의 왕을 추대하는 해에는 서유럽으로부터 타크라마칸 사막지대에 걸쳐 살았던 중앙아시아의 모든 부족의 족장들 이 고조선의 왕위 추대 화백和白회의에 참여하였다고 들었습니다. Silk Road는 교역의 장사길 이전에 고조선의 부족들이 동족과 교류하는 길로 개척하였고 첨차 상인들의 무 역길로 발전된 것입니다.
2000년 실크로드 탐사의 주요국가 : 1만6000Km 대 장정, 이탈리아(로마 - 리브르노 - 피사 - 피렌체 - 베네치아 - 우디에) - 오스트리아(클라겐프르트 - 비엔나) - 헝가리(기와르 - 부다페스트) - 루마니아(츨루이 - 피테스티 - 브크레스티) - 불가리아(루사 - 스다라자고라) - 터키(이스탄불 - 알카라 - 카라카이) - 이란(타브리즈 - 테헤란 - 고르간 - 소피아) - 파키스탄(쿠에타 - 물탄 - 이슬라마바드 - 칠라스) - 중국(키시가르 - 돈황 - 안서 - 장예 - 난주 - 서안 - 정주 - 청도) - 대한(인천)
Silk Road * Daum Blog 인용
◎ 한단고기(임승국) 수밀이Sumer 기록
* 한국본기 제 2권에서 삼성밀기는 말한다. 파나류산(한인의 한국시대의 도읍지, 하르빈 남쪽의 완달산) 밑에 한인씨의 나라가 있나니 천해(바이칼호수) 동쪽의 땅을 역시 파나류국(한인시대의 한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 5만리(2만5000Km), 동서 2만리(1만Km)이니라.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곧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캄차카), 일군국, 우루국(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퉁구스, 시위국,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12국이다.
* 15세 선군 대음(후흘달) 신사 2년 한기 5537년(BC. 1660년), 겨울 10월 양운국과 수밀이국Sumer의 사신이 특산물을 바쳤다.
* 27세 선군 두밀 원년 갑신년 한기 6200년(BC. 997년),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S. N. Kramer’ 와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Zecharia Sitchin’ 의 저서 발췌
* 1956년 S. N. Kramer의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에서 바퀴, 고층건물, 음악과 악기, 야금술, 의학(서), 조각, 보석, 도시, 왕조, 법률, 사원, 기사도, 수학, 천문학, 달력, 학교, 양원제, 역사학자, 농업(서), 우주론, 격언, 문학 논쟁, 도서관 목록, 인간 영웅, 사회 개혁, 세계평화 노력, 욥, 노아, 인쇄술, 활자 사용, 원통형 윤전기 인장, 60진법, 역청과 석유연료, 백내장 수술, 알코올, 죽은 신의 소생술, 투구(외투, 토가), 빵, 맥주, 포도주, 요쿠르트, 버터, 치즈 등 인류 최초의 발명 100가지 이상이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 모든 역사가 Sumer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인류 최초의 문명이 수메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그것이 최초의 것이라는 데 있지 않다. 수메르문명은 인류 최초의 것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이미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문명이기도 했다. 그들은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지구와 인간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신과 인간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신들이 어디에서 언제 지구로 왔고, 왜 인간을 창조했으며, 어떻게 지구를 왕래하며 인간을 지배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내용들이 수메르의 점토판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남아있으며,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이나 각국의 신화들은 수메르의 이 고대 기록들을 나중에 각색하고 번안한 것들에 불과하다. 과연 그들이 알고 있던 창조의 비밀과 과학 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 수메르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어떤 고대문명 보다 더 발전적이고 포괄적인 문명이었다. 그리고 이 문명이야말로 현재의 우리 문명이 기원을 두고 있는 원전이다. 약 200만 년 전에 석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BC. 3800년 경에 수메르에서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수메르인이 도대체 누구였으며,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왜 수메르문명이 생겨났는가? 라는 물음이다. 고대인류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아주 갑작스럽고, 전혀 앞선 문명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 H. Frankfort는 ‘놀랍다’, P. Ammiet는 ‘비범하다’, A. Parrot는 ‘아주 갑자기 나타난 불꽃’, L. Oppenheim은 ‘엄청나게 짧은 기간에’, J. Campbell은 ‘수메르의 좁은 진흙땅에서 정말로 갑자기 세계의 모든 고등문명을 구성하는 단초들이 일시에 시작되었다’ 라고 말한다.
◎ 주석註釋
* 인류학계와 세계의 사학계가 주목하는 수메르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가 바로 ‘수밀이국’ 이다. 수메르민족이란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수메르말이라고 불리는 언어를 사용한 민족으로 세계 최고의 도시문명을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운 민족이다. 여기에서 최고라는 말은 마지막의 결론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서양학이 주도한 결론일 뿐이다. 서양역사학은, 서양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학자들도 한인천왕의 한국시대 12연방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 이는 문화의 창조 동서양 선후 다툼이 아니라 동서문화 주도권의 쟁점이다. 서양역사학자들은 구약성서를 기원으로 하는 인간의 창조론에 입각한 인류사를 정립하였는데 느닷없이 수메르문명이 발굴되고 해독되어 구약성서 이전의 기록이 밝혀지자 황당해 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서양을 기점으로 하는 수메르인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갑자기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나타나’ 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서양역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메르인이 수메르지역 원주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연히 누가, 언제, 어디서 이 땅에 이주하였는가? 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수메르인에 대한 정설은 ‘검은 머리칼의 교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이다. 이들은 누구일까?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지금까지는 언어학적, 인류학적으로 ‘아시아닉크계 민족설’ 이 유력하다. 역사적으로 인류사를 규명하려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데 인종과 언어다. 슈메르인은 검은 머리칼의 인종이었다. 수메르인의 언어는 교착어인데 서양학자들은 언어적 연관성 때문에 이를 우랄(유럽의 서쪽 끝 지역)-알타이어(아시아의 몽골지역)라고 규정하여 서양의 서쪽 끝과 아시아의 동쪽 끝을 묶어놓았다. 유럽에는 교착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 ‘터어키어’가 교착어다. 서양학자들에게는 수메르인들이 어디서 이동하여 왔는지 규명이 불가능하지만 자연 조건 때문에 문화의 동서 이동은 빠르고 남북 이동은 느리다는 고인돌유적(고인돌의 70%가 한국에 있음)에서 고대한국인의 유럽 동쪽 이동을 밝혀낼 수가 있다. 인류학과 언어학적으로 불가리아인, 터어키인, 항가리인, 핀란드인에 주목한다.
도깨비기자 : 고조선의 선군세기라는 기록에 수메르Sumer의 사신들이 오간 기록이 있습니 다.
도가이고오 : 우리 부족은 기록이 없습니다. 우리 부족은 기록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역사 는 구전口傳입니다. 구전이지만 우리 조상들이 정기적으로 선군조선의 수도 아사달을 오간 일은 전해져 내려옵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대에서까지는 정기적으로 왕래한 걸 로 알고 있습니다. 아사달의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정치적으로 왕래하였 던 부족장들과는 다른 어딘가 - 지구라트Zigurat나 소도蘇塗 같은 제사를 모시는 신성 한 장소를 참배하는 관습이 이어져 내려왔다고 들었습니다. Silk Road가 부족들에게는 정치적인 귀향길이었지만 우리 가문은 신과 접촉을 통해서 세습무당의 영험함을 유지하 는 의식적인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애초의 Silk Road는 우리 가문이 고조선을 참배하 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단순히 정치적이거나 장사하는 것으로는 히말라야를 넘고 타클라칸사막을 횡단하는 그 험난한 여정을 개척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단이나 제 사의식 그리고 제사장을 참배한 것 같지는 않고 무엇인가를 참배하였다고 보는데 이것 이 제 묵상黙想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자 형상과 선생이 찾는 선기옥형의 직접적인 연관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등평화 사회체제개혁 자서전 > 대한역사 SF픽션 <선기옥형을 찾아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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