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
2화 배달의 나라
한인(안파견)천왕 거발한 한웅천왕 성모聖母 웅녀상
* 김산호 화백. Daum Blog 인용
* 한인천왕
우리 한桓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氣를 타고 노닐고 그 묘妙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 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行하였다.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童女童男 800이 흑수黑水(만주 흑룡강) 백산白山(백두산)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님(桓因, 하느님)은 또한 감군監群(중생을 보살피고 감독함)으로써 천계天界(하늘나라)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치셨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한 안파견安巴堅(아버지의 옛 말, 크리스트교의 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함)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代를 전傳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
* 한웅천왕
뒤에 한웅씨桓雄氏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天神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을 천평天坪(백두산 정상 기슭의 땅)에 마련하고 그 곳을 청구靑邱(중국 산동반도의 동래지방)로 정했다. ‘천부天符의 징표徵表’ (한단고기에서 임승국은 천부인 세 개에 대하여 3한관경본기韓管境本記 - 풍백風伯은 천天符부를 거울에 새겨 앞서가고, 우사雨師는 북을 치면서 돌아가며 춤을 추고, 운사雲師는 백검伯劍으로 호위하였으니 …, 한단고기 임승국 3한관경본기 제 4를 인용하여 풍백의 거울, 우사의 북, 운사의 칼로 해석하였음)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5사事, 곡식, 운명, 치병, 형벌, 윤리)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밝은 땅)이라 불렀다. 3 ․ 7(21)일을 택하여 천신天神께 제사지내고 밖의 물건을 꺼리고 근신하며, 문을 걸어잠그사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몸을 닦아 공功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약을 드시고 신선이 되시니, 8괘卦를 그으사 올 것을 알며 상象을 잡으사 신神을 움직였다. 또 여러 영험스러운 이들과 뭇 철인哲人들이 보필하도록 하시더니, 웅씨熊氏(곰 - 검은 땅, 땅의 신神)의 여인을 거두어 아내를 삼으시고 혼인의 예법을 정하매 짐승가죽으로써 패물佩物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도록 하니 온 세상이 조공朝貢을 바치며 새와 짐승도 덩달아 춤추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지상 최고의 신이라 받들어 세세토록 제사가 끊임이 없었다.
* 선군왕검
뒤에 신인왕검神人王儉께서 불함산不咸山(만주 하르빈 남쪽 완달산)의 박달나무터에 내려오셨다. 그는 신神의 덕德과 성인聖人의 어짐을 겸하여 갖추었으니 이에 능히 조칙詔勅을 받들어 하늘의 뜻을 이었으니 나라를 세운 뜻과 법(인륜도덕의 모범)은 높고 강하고 열렬하였다. 이에 9한桓의 백성들이 마음 깊이 복종하여 그를 받들어 천제의 화신이라 하며 그를 제왕으로 모셨다. 그가 곧 단군왕검으로써 신시로부터 전해지던 오랜 법을 되찾고 서울을 아사달阿斯達(백두산 또는 하르빈 완달산)에 설치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 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平正하고 깊고 묘妙한 도道를 익혀 여러 생령生靈들을 두루 교화敎化하였다. 팽우彭虞에게 명命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成造에게는 궁실宮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高矢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臣智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奇省에게는 의약醫藥을 베풀게 하고, 나을那乙에게는 호적戶籍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羲에게는 점占치는 일을 관장하게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케 하였다. 비서갑菲西岬(만주 하르빈)의 하백녀河伯女(수신水神)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巡方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太平治世를 이루었다.
* 해모수
임술壬戌 원년元年 한기桓紀 6958년(BC. 239년) 단제檀帝(해모수)께서는 자태姿態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神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天王郞(하늘이 내린 임금)이라 할만 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니 이는 단군 47세 고열가 57년으로 임술 4월 8일이라. 웅심산熊心山(몽고 내륙지방)에 의지하여 궁궐을 난변蘭邊(몽고 내륙지방)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龍光(임금의 칼)의 칼을 차시며 5룡龍(임금의 수레)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從者(신하臣下) 500인人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政事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시더니 이에 이르러 즉위卽位하셨다.
* 거발한한웅 - 신시神市시대 1세 한웅, 한웅은 왕이나 천왕天王의 보통명사인데 일반적으로 1세 거발한한웅을 한웅으로 일컫음
* 거불단한웅 - 신시시대 마지막 18세 한웅, 곰족의 여왕과 혼인하여 선군禪君(단군檀君)을 낳아 천신天神의 시대에서 인신人神의 시대를 열었다. 단웅이라고도 함
고구려 무용총 남해각서(고조선 만주 고구려장군총 천부경 일반화
사냥도 상형문자 추정) (Ziggurat 제단祭壇 추정) 윷놀이말판
* Daum Blog 인용
* 선군왕검의 해석 -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박달나무 ‘단檀’을 옥편에서 찾아보면 ‘단’과 ‘선’의 두 가지 발음이 있다. 흉노왕 호칭은 ‘단우單于’ 라 적고 ‘선우’ 라고 읽으며 대종교의 예배의식도 ‘단의식襢儀式’으로 적고 ‘선의식’ 으로 읽는다. 단군왕검이라는 해석은 차음借音인 박달나무 ‘단檀’자에 얽매어 ‘단檀’ 을 박달나무로 오역한데서 연유하였다. ‘단군’ 이 이미 보편화되었는데 구지 ‘선군’ 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고유 신앙인 3신신앙三神信仰이 한(하늘, 천신天神), 감(땅, 지신地神), 선(사람, 인신人神)으로써 ‘인신’ 을 제일 귀한 신으로 친다.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사상도 같은 뜻이다. ‘단군’ 은 인신으로써 ‘선군’ 이다.
* 선군왕검禪君王儉 - 단군檀君의 ‘단檀’ 은 ‘선’ 으로 읽어야 한다. 선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흉노匈奴의 왕은 ‘단우單于’ 라 적고 ‘선우’ 라고 읽는다. 단군을 국조로 모시는 대종교의 예배의식을 ‘단의식檀儀式’ 이라고 쓰고 ‘선의식’ 이라고 읽고, 선군은 한인, 한웅의 천신天神의 시대에서 인신人神시대로 바뀌는 인신이며 ‘인신人神’ 을 우리 고유의 말로 ‘선’ 이라고 했으니 ‘단군’ 은 ‘선군’ 으로 읽는 것이 옳다. 박달나무의 ‘박달’ 은 ‘배달’ 또는 ‘밝음’의 뜻이고 그래서 박달나무 ‘단檀’ 자는 우리말을 문자로 빌어쓴 한자(차자借字)인데 이를 뜻으로 오해하여 박달나무 아래 도읍을 정하였다는 등 소리 말과 기록문자로 인한 오역이므로 바로 잡았다. 선군은 제사장이고 왕검은 통치자다. 한웅의 ‘한’ 이나 징기스칸의 ‘칸’ 도 순수한 우리말로써 한桓, 한韓, 한汗(칸)은 빌어쓴 한자임
* 선군왕검 - 신묘년 한기 4827년(BC. 2370년) 5월, 신시시대 마지막 천왕 18세 거불단한웅(선웅)과 곰부족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남, 선군시대 1세世 천왕, 신인神人의 덕德이 있어 웅씨熊氏의 왕이 그 비범함을 듣고 비왕裨王(우두머리를 보좌補佐하는 제 2인자)으로 삼았는데 무진년 한기 4864년(BC. 2333년) 아사달에서 천제天帝의 아들로 받들어 모심, 선군은 제사장祭司長이요 왕검은 감군監軍, 관경觀境(선군의 관경은 진眞조선- 천왕天王이 다스림, 막莫조선 - 여원흥을 마한馬汗으로 삼아 다스림, 번番조선 - 서우여로 번한을 삼아 다스림)인 바 진국辰國이며 선군조선이다. 한인(천제), 한웅(천제와 인신의 연계), 선군은 3신神으로써 선군은 인신人神의 시작이다. 이 때는 공화정共和政으로써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왕을 추대하였는 바 기록에 ‘태어나면서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서 9한九桓(고리, 시라, 고례, 남북의 옥저, 동북의 부여, 예와 맥)의 3한三韓 관경觀境을 모두 통합하였다 하였고, 신시神市(한웅천왕)시대의 옛 규칙을 회복하여 다스리니 온 세상이 그를 천신天神과 같다’ 고 하였으며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매 9한이 모두 뭉쳐서 하나가 되었다. 아사달에 도읍하였고 처음으로 조선 3한(진한, 번한, 막한)의 나라 명칭을 사용함
* 참전參佺의 계戒 - 고구려 재상 을파소가 백운산에 들어가 천서天書를 얻었다. 인간 360사事와 강령綱領 8조條가 있다. 한웅천왕의 신시시대 선인仙人 발귀리가 창제하고 운사雲師 육약비가 정비한 생활규범
* 가림다加臨多(가림토土) - 선군 37세 가륵 2년 한기 5016년(BC. 2181년) 기록에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고대의 상형문자)이 있다고 해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다’ 라고 하였다. 한국 고대문자, 한글 자모와 똑 같아 한글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고대 일본 유물(구리거울)에서도 발견되었는데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판명됨
* 남해각서刻書 - 남해도南海道 낭하리郎河里 계곡, 경박호鏡珀湖의 선춘령先春嶺과 오소리烏蘇里 사이의 바깥쪽 암석에 조각이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범자梵字도 전자篆字도 아니어서 사람들이 알 수가 없었다. 신지 혁덕이 만든 옛 문자로 추정됨
* 천지화랑 - 국자랑國子郞, 머리의 관冠(모자)에 천지화天指花(무궁화)를 장식함,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 백제의 싸울아비(무절武絶), 신라의 화랑花郞, 조선시대의 선비(고조선시대의 선뵈, 선배)로 이어졌다.
* 고시례高矢禮 - 곡식의 신,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교목喬木이 서로 부딛쳐 불꽃이 일어나는 걸 보고 마른 나무를 문질러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발명하였고, 호랑이를 쫓으려고 돌을 던졌는데 돌과 돌이 부딛쳐 불꽃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부싯돌을 발명하였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야외에서 음식을 먹기에 앞서 ‘고시례’라고 외치면서 음식을 주변에 뿌리는 풍습이 남아있음
* 신지 혁덕 - 신지는 직책명이고 혁덕이 이름이다. 태고문자 발명, 사슴과 기러기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구안하였다. 슈메르인이 사용한 설형문자의 원형으로 추정한다. 남해도南海道의 낭하리郎河里 계곡, 선춘령先春嶺과 오소리烏蘇里 사이의 암석에서 각서刻書를 발견하였는데 범자梵字도 아니고 전자篆字도 아니었다. 신지의 상형문자로 추정함. 중국의 갑골문자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음. 고려 농은(집) 민안부의 천부경이 갑골문자 이전의 문자로 씌어져 있는데 갑골문자와 유사한 문자도 있음.
* 선인 발귀리 - 자부선인의 선조, 자부선인(중국 황제헌원의 스승)은 5행行 수리數理로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저작하였다. 칠성력七星曆(달력)의 시초임
* 풍백風伯 석제라 - 집을 설계하여 주거를 편케함
* 우사雨師 왕금영 - 사냥이 어려워지자 목축을 시작함
* 운사雲師 육약비 - 신시시대 1세 거발한한웅의 운사, 인간 360사 생활규범인 참전계경參佺戒經과 8조條의 금법禁法 제정, 고구려 재상 을파소가 백운산에 들어가 기도하고 천서天書를 얻으니 곧 참전계경임
* 운사 모수리 - 신시시대 18세 거불단한웅의 운사
* 범족과 곰족의 여왕 - 범족과 곰족 족장의 딸
*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중국 은殷나라가 망하자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한단고기 3한관경본기 제 4 마한세가 하편, 수유의 사람 기후가 병력을 이끌고 번한에 들어가 웅거하고 자립하여 번조선 왕이라고 칭하였다) 번한의 땅 일부를 하사받아 제후諸侯로 봉해졌다. 기후는 번한 68세 수한왕 이후 번한왕이 되었는데 3한시대 번한세계世系에 기록된 기자왕은 69세 기후부터 74세 기준까지 6대고 기후 윗대는 번한의 왕이 아니라 왕검조선의 번한지역 수유족의 우두머리였다. 단재 신채호의 연구에 의하면 기자조선이란 역사연대는 기자의 후예後裔가 번조선의 제후가 되었다가 번조선 말기에 왕이 되었으므로 일본제국주의 사학자들이 ‘번한을 기자조선’ 이라는 가공의 왕조로 과장하였고 이를 일제식민사관을 추종한 한국학자들이 비판(연구)없이 수용한 오류임
* 위만조선衛滿朝鮮은 북부여 시조 해모수 병오 45년 한기 7002년(BC. 195년), 중국 연燕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자 그의 부장이었던 위만이 망명을 요구했으나 선제 해모수께서는 허락지 않았다. ‘번한세가 하편’ 에서 기비가 죽으니 아들 기준이 즉위했는데, 정미년 한기 7051년(BC. 146년)에 번조선 왕 기준이 받아들여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을 봉토로 주고 제후로 봉하였다. 위만은 주변 제후국을 포섭하고 세력을 넓히더니 한나라가 쳐들어오니 보호해주겠다는 거짓말로 군사를 동원하여 기준을 속이고 반역하였는데 기준은 위만과 싸움에서 패하여 바다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조작한 ‘위만조선’의 실체임
* 한漢 4군郡은 중국 사마천의 사기史記 115권 조선열전列傳에 한漢의 무제武帝(유철劉徹)가 번한의 변경(평나平那)을 노략질하여 위만의 우거를 멸망시키고 ‘4군을 설치코자’ 사방으로 병력을 침투시켰다고 기록되었으나 무제의 군사가 우거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고 위만의 폭정에 반발한 번한의 유민 고두막 의병장(훗날 북부여 5세 왕)이 의병을 일으켜 조선족 장수 최가 우거를 죽이고 다시 반항하던 성기를 죽였다. 그래서 위만의 땅은 혁명의 주도자 참의 홰청, 협의 평주, 음의 추저, 최의 날양으로 분립했다.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의 4군은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의 원문에도 없는 도깨비 4군이다. 한 무제는 출병한 육군사령관 순채, 해군사령관 양복, 전쟁 독려를 위해 파견한 사신 위산과 공손수 네 사람에게 패전의 책임을 물어 가장 가혹한 기시형棄市刑(사지를 따로따로 잘라 죽이는 형벌, 능지처참陵遲處斬)을 하였는데 패전한 나라가 어찌 고조선 번한의 고토故土에 4군을 설치할 수 있었겠는가?
*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공자孔子가 ‘춘추’ 를 집필하면서 노나라 왕이나 주나라 천자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비유로 쓴 것이 후세에 은유의 문장기법이 되었다. 춘추필법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 중국은 높이고 외국은 깍아내리고
․ 중국사는 상세히 외국사는 간단히 기술하며
․ 중국을 위해 수치를 숨기는 것이다.
‘사기’ 의 저자 사마천이 궁형(거세去勢, 고환 제거형)을 당한 것도 한 나라가 고조선과 전쟁에서 패한 사실을 기록했다가 한 무제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역사서를 불태우고 수천 명의 학자들을 생매장한 사건) 또한 고조선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고 추정한다. 아울러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으로 중화中華라고 스스로 부르며 중국의 동쪽은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라고 불렀으니 이는 모두 중화사상에 견주어 오랑케라는 뜻이 담겨져 있음
* 중국의 ‘문화혁명’ 은 1966년 마오쩌둥이 300만 명이라는 아사자를 낸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딛고 권력을 정비하려고 일으킨 정치투쟁이었는데 ‘문화’ 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당시 대약진운동을 비판한 국방장관은 해임되었고 경제건설을 주장했던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실각했다. ‘문혁’의 숨겨진 빌미는, 국방장관 해임을 애석해 하는 한 작가가 명나라 때 황제를 비판하다가 파직당한 하이루이라는 인물을 비유로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을 읽은 마오는 격노하고 위원회를 만들어 조사했으나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문학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문혁’ 이라는 정치혁명이 시작되었다. 중국은 1981년 발표한 ‘역사결의’에서 ‘문혁은 마오의 잘못된 정세판단과 린뱌오 일파와 4인방의 내란’으로 규정했다. 올 초 ‘빙점’ 이라는 주간지에 게재된 중산대학 위안웨이스 교수의 ‘중국의 역사교과서 기술이 중화문명을 일방적으로 예찬하면서 애국주의로 흘렀고, 중국의 배타주의 경향이나 외래문화의 영향 등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았다’ 고 비판하였기 때문에 빙점은 정간되었다. 위안 교수는 ‘중국 당국이 역사에 관한 한 마오식의 강압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고 성토함 (중앙일보, 2006년 6월 15일 자 투데이 칼럼, 고쿠분 료세이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 고구려 시조 고주몽을 동명성왕으로 높여 부르고 줄여 동명왕이라고 하는데 여기의 동명왕은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왕이며 고구려 고주몽의 동명성왕은 서거한 뒤 후대 왕이 시호諡號로 추증追贈하였다. 동명이라는 말은 훌륭한 지도자라는 보통명사로 쓰였다. 고대국가에서 부여국의 이름은 해모수의 북부여로부터 백제의 남부여까지 8개가 나옴
* 고조선이 멸망하고 3한관경제의 고조선의 속국들은 뿔뿔이 흩어져 독자 세력을 형성하거나 유민으로 유랑하였다. 돌궐족은 서방으로 진출하여 오스만 투르크 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현재의 터어키가 그 후예다. 흉노족도 서방으로 진출하여 훈족으로 변화하여 한 때 아틸라Atilla Huns 라는 걸출한 인물이 로마제국을 위압하는 대 제국을 형성하기도 했으며 현재 헝거리가 그들의 후예다. 한편 부여족의 일파는 북부여와 동부여로 고조선을 계승하였으며 또 다른 일파가 서진하여 천산산맥을 넘어 불가족으로 변화하였고 그들의 후예가 불가리아다. 불가리아의 소피아(소피)는 사비(백제의 사비성)의 차음이고 발칸(밝달, 밝산, 白頭)의 이름 또한 불가 즉 부여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인종에서 유일하게 몽고반점을 지니고 태어나는 민족이 불가리아다. 불가리아는 언어, 생활풍습의 민속에서 한국과 흡사한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바이칼 호수를 싸고 있는 브리야트도 언어체계가 같고 민속에서 유사한 것들이 많다. 이들이 모두 고조선의 유민들이 건설한 국가들이다. 단재 신채호는 대한사의 고조선사를 연구하면서 고조선의 부여족의 일파가 만리장성을 넘어 천산산맥 근처에까지 이른 것을 추적하였으나 그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고 밝힌 바 있다. 불가리아와 유럽학자들은 원 불가족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단념하고 5세기 흑해지방 마그나 불가리아를 기원으로 삼아 역사를 쓴다. (동아일보 신용하 교수의 ‘다시 쓰는 역사’ 인용)
Mexico Pyramid Bosnia Pyramid 중국 서안 Pyramid Egypt Pyramid
* Daum Blog 인용
# 스님은 젊은 시절에 만행(萬行, 스님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절이나 암자를 찾아 깨움을 얻으려는 여행)을 떠났다. 입산하여 화두(話頭 또는 공안公案, 스님들이 깨우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짧은 경구警句, 예 : 이뭣고, 병 속의 새를 살려서 꺼내라 등)를 얻고 정진을 한지 20여년, 진전이 없었다. 만행 2년째 겨울 장백산, 대한인들은 백두산이라 하지요? 장백폭포 근처에 있는 석굴을 찾아들었을 때 스님은 도승(도를 닦는 스님)을 만났다. 허기지고 지쳐서 석굴을 찾아들었는데 도승이 허기지고 탈진한 그를 구했다. 밥을 얻어먹고 정신을 추스르자 스님의 눈에 이상한 물건이 들어왔다. 절이라면 불단佛壇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거고 사당이라면 신령을 모시는 일인데 석굴의 불단에는 기물器物이 놓여 있었다. 기물은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이 났다. 마치 부처상의 후광後光(광배光背, 부처님상 머리 뒤 둥근 빛) 같았다. 스님의 의아스러운 눈치를 알아차린 도승이 설명을 했다. 신령이나 부처 대신 안치된 기물은 선기옥형이라는 기물인데 고조선시대의 천부인天符印이라고 했다. 한인천제께서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온 기물인데 소도 안의 신성한 제단에 모시놓고 풍백, 우사, 운사 외에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한다. 빛이 이는 건 내부적인 영험성도 요인이겠지만 선기옥형의 동체가 옥이고 세 환(고리)이 6합의, 3진의, 4유의로써 금과 은 그리고 구리였다. 도승은 고조선 천지화랑(국자랑)의 후예로 자기가 241대며 7200년(AD. 2007년 기준) 동안 전승되었다고 했다.
*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문화 (정재승)
선기옥형의 기원은 한배검께서 주재주主宰主로 천부경天符經의 진리를 밝혀주신 개천開天의 시대로 본다. 그 뒤 천부의 이치가 원방각圓方角으로 표현되던 천부인天符印시대 즉 복희伏羲임금시대를 거쳐 지금과 같은 선기옥형의 모양이 정착되었다. 그 뒤 단군시대로 전승되었고 요순堯舜(동이족東夷族)을 통하여 중국에 전파되었다. 선기옥형은 우리 조상들이 우주에 대한 고도의 통찰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며 현실생활에 실용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창조한 위대한 민족문화유산이다.
# ‘그 때 보았던 선기옥형을 그렸습니다’ 라고 하며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옛날 이야기하듯 신비한 경험담을 말했다. 스님은 도사의 석굴 바로 옆 석굴에서 지냈는데 매일 몇 번씩은 선기옥형을 보았다. 도사는 한 번 만난 이후로는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석굴을 떠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매 끼니마다 스님의 밥상을 차려주었고 잠자리도 보살폈다. 사흘 째 되던 날, 도사가 머물고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 옆 굴을 찾았다가 날마다 보았던 선기옥형이 도사와 함께 사라진 걸 알았다. 인기척은 고사하고 사람이 거처했던 흔적도 없었다. 허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허상이 아니라 그림자였다. 선기옥형의 그림자가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면벽 9년의 달마조사 모습이 천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소림사 석굴에 조영되어 있는 것처럼 선기옥형이 벽면에 새겨져있는 거예요.’ ‘그 후로 선기옥형은 순례자처럼 맴돌았는데 머문 자리에는 한결같이 그림자가 새겨졌다고 들었습니다.’ ‘퍽 신기한 경험이지요?’ 라며 스님은 감은 눈을 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도깨비기자를 응시하였다. 마치 도깨비기자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비밀을 꿰뚫어 보려는 것 같았다.
‘그림자였다?’스님의 마지막 말에 도깨비기자의 생각이 멈췄다. 바위벽에 음각된 선기옥형의 형체.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실체를 찾아나선 사람에게 선기옥형의 그림자는 혼란이었다. 그렇다고 불가사의한 영적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현대에서는 사라져버렸지만 영적세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찾는 것은 실체인가 환상인가 하는 혼란이 도깨비기자를 곤혹스럽게 했다.
* 영성靈性에 대한 자료
․ 초인생활超人生活 Life and teaching of the masters of the far east (Baird T. Spalding, 정창영 역)
․어느 일요일 오후 에밀과 나는 들판을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있는 비둘기 한 마리를 가리키며 그 비둘기가 자기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렇게 말하고나서 에밀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멈추어섰다. 그러자 잠시 후 그 비둘기가 에밀대사의 내뻗은 팔 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그 비둘기가 북쪽에 사는 자기 동생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함께 구도求道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동생은 아직 의사를 먼데까지 직접 전달하는 수행단계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새를 통하여 자기 의사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대사Master들이 전기나 무선전신 보다도 훨씬 더 미묘한 힘으로 생각을 직접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저는 방금 전까지도 여러분이 닷새 전에 떠난 그 마을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마을에서 보셨던 제 몸은 아직 그 곳에 있습니다. 증인격으로 그 마을에 남아있는 여러분의 동료가 오늘 네 시 직전까지도 제가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과, 제가 이 시간이면 여러분이 이 곳에 도착할 것이니 여러분을 맞이하기 위해서 떠나야겠다고 말한 사실을 증언해 줄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서나 육체를 떠나 여러분과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여러분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 나는 에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새들을 자기에게로 불러오고, 날아가는 새의 날아가는 방향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꽃과 나무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들짐승들이 아무런 두려움없이 다가오도록 할 수 잇음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일들은 필멸의 자아自我Mortal가 아니라 내면의 깊은 참자아가 행하는 것이지요. 즉 당신들이 하나님이라고 알고있는,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일 하시는 전능한 하나님께서 이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필멸의 자아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현상적인 자아를 완전히 초극超克하여 참자아로 하여금 말하고 일하게 하고 참자아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흘러나오게 해야만 당신이 본 이러한 일들을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을 통하여 만물에게 쏟아부어지도록 당신 자신을 준비한다면 아무 것도 당신을 두렵게 하거나 해칠 수 없을 것입니다.”
․ “방금 샘에서 떠온 이 컵에 담긴 물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보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컵에 담긴 물 한가운데에서 얼음이 한 조각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이 보이시지요. 중앙에서 형성된 얼음조각에 주위의 물이 엉켜붙으면서 얼음조각이 점점 더 커지는 것도 보이시지요. 자, 이제는 컵에 담긴 물 전체가 얼어버렸습니다. 잘 보셨지요? 이게 과연 어찌 된 일입니까? 저는 물의 중앙에 있는 원자들이 형체를 취할 때까지, 보편세계普遍世界The Universal에서 물의 중앙에 있는 원자들이 얼어붙는 상념想念을 품고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상념의 힘으로 중앙에 있는 원자原子들의 진동振動을 떨어뜨려 얼게 한 뒤, 컵에 담겨있는 물 전체가 얼어붙을 때까지 점점 그 주위의 입자粒子들의 진동을 떨어뜨린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한 컵의 물 뿐만이 아니라 큰 통이나 연못이나 호수나 바다 그리고 온 세상의 물 전체를 얼어붙게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완전한 법칙A Perfect Law의 사용에 의해서 그러한 일이 가능합니다.”
․ 우리는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개간지를 지나 밀림지대로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들어가지 않았을 때 죽은 것처럼 보이는, 우리가 받은 첫 인상이 그랬다 - 사람이 땅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는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누워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와 함께 온 자스트였기 때문이다. 자스트가 다가가자 누워있던 몸이 일어났다. 누워 있다가 일어난 존재와 자스트는 일순간 마주쳤다. 상대도 어김없는 자스트였다. 우리 대원 모두의 눈에 그는 분명 자스트로 보였다. 그 둘이 마주치자마자 우리와 함께 온 자스트는 사라지고 한 명의 자스트만이 우리 앞에 남았다. (중략) 그 곳 사람들은 마을 입구 정글지대에 사람의 몸을 뉘어놓음으로써 약탈자나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상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자스트의 몸이 상당히 오랫동안 그 곳에 누워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의 머리칼은 길게 자라서 덤불같이 되었으며, 작은 새들이 그의 헝클어진 머리칼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미루어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었다. 그의 머리칼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새들은 거기에서 알을 깠고 알을 깨고 나온 새들이 살았던 흔적이 뚜렸했다.
․․ 자스트가 그들에게로 돌아가자 그들 열두 명은 강가로 다가가더니 옷을 입은 채로 아주 침착하게 강물 위로 발을 내디뎠다. 나는 그들이 급하게 흐르는 강물 속이 아니라 강물 위에 발을 내딛던 순간에 받은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중략) 우리는 그들 열두 명이 강 한가운데를 지나기까지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신발 밑바닥 이외에는 잠기지 않고 태연히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 그 마을에 도착하던 날은 비가 몹시 내려 온 몸이 비에 흠뻑 졌었다. 우리는 잘 정돈된 큰 방을 배정받았다. 그 방은 매우 안락했으며 우리는 그 방을 식당 겸 거실로 쓰기로 했다. 그런데 그 방은 기분좋을만큼 따뜻했다. 대원 중 한 명이 어디서 열이 발산되느냐고 물었다.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난로도 없었고 열이 생길만한 설비도 없었는데 따뜻한 기운은 분명히 발산되고 있었다.
․ 저녁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모여 앉아 있을 때, 에밀대사와 함께 네 사람이 방에 나타났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방의 한 쪽 문이나 창이 없는 벽쪽에서 동시에 나타났던 것이다.
․․ 식사를 마친 후 둘러앉은 자리에서 우리 대원 한 명이 어디에서 따뜻한 열이 나오는지 물었다. 그러자 에밀대사가 대답했다.“여러분이 이 방에서 느끼고 있는 따뜻함은 우리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어떤 힘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힘은 여러분이 사용하는 그 어떤 기계적인 힘 보다 고차원적이고 강하지만 분명히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 힘을 사용하여 빛이나 열이나 힘을 발산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는 기계를 움직이게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힘을‘우주력’ 또는‘보편세계의 힘Universal Forse’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힘이 존재하는 차원에 도달해서 이 힘을 사용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이 힘을 영구운동永久運動Perfectual Motion이라고 부르실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우리는 이 힘을 보편세계의 힘 또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 힘은 아버지께서 그 자녀들이 쓸 수 있도록 제공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힘을 사용하여 아무런 연료도 사용하지 않고 기계나 도구나 자동차와 같은 운송 수단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빛이나 열도 발산시킬 수 있습니다. 이 힘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어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
․ 여기저기 벼락이 떨어져 마른 풀에 불이 붙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들불 사이에 포위되고말았다.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이 세 방면에서 기차처럼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하늘은 짙은 연기로 뒤덮였으며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에밀대사와 자스트는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이 불길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깊은 계곡 사이로 흐르는 개울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것입니다. 그 개울은 여기서 약 5마일 거리에 있는데 만약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불이 마른 풀을 다 태우고 저절로 꺼질 때까지 안전하게 몸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다른 하나는 당신들이 우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와 함께 저 불을 통과하여 지나가는 것입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우리는 불이 가장 맹렬하게 타오르는 듯이 보이는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 때 나는 에밀대사와 자스트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걸었다. 불길을 향해 다가가자 커다란 아치형의 길이 열렸고 우리는 그 길을 통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연기 때문에 숨이 막힌다거나 열 때문에 뜨겁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발밑에 널려있는 불똥에 발을 데지도 않았다. 우리가 통과한 불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은 최소한 6마일은 되었다. 거기를 통과하면서 나는 마치 평탄한 길을 차분하게 걷는다는 느낌이 받았다.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불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작은 시내를 건너 화염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아무 문제없이 불길 속을 통과해나왔다. (중략) “우리는 지금 우리 몸의 진동을 불의 진동 보다 더 높인 상태이기 때문에 불의 피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면 그는 우리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중략) 육체적인 감각에만 의지하는 사람은 우리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육체적인 감각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인지할 수 없는 의식 차원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 차원으로 상승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중략) 우리는 이 법칙을 사용하여 우리의 몸을 순식간에 원하는 곳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문득 나타나고 또 문득 사라지는 것을 당신들은 공간초월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이 법칙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의 진동 보다 우리의 의식의 진동을 더 높임으로써 극복해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의식의 진동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하여 인간이 감각적인 의식으로 스스로에게 부과한 모든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 식당에서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갔다. 나는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식탁 맞은편에 네 명이 앉아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은 이 지상에서 1000년 이상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영계靈界든 물질계는 어디든 원하는 곳에 자신의 몸을 가지고 나타날 수가 있다. 그는 서른다섯 살 청년의 기력과 젊음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2000년 동안이나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그 옆에는 그의 5대손代孫 되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도 이 세상에 태어난지 700년이 넘은 사람인데 기껏해야 마흔 살이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대화하듯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거기에는 에밀대사도 있었다. 그도 이 세상에서 500년 이상을 산 사람인데 마흔 살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또 마흔 살 정도로 보이는 자스트도 있었다. 자스트는 마흔 살이었다.
․ ‘완전한 존재자存在者’는 신적인 원리가 마음 속에 품고있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신적인 원리는 인간을 신적이고 우주적인 인간Divaine and only Man으로 창조했습니다. 영적인 면으로 보면 인간은 주 하나님 또는 우주적인 존재로 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후대에 그리스도라고 일컫어진 이 신적인 인간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자기의 형상대로 다른 존재들을 창조했습니다. 신적인 인간이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한 존재들을‘주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렀고 그들을 창조한 신적인 인간은‘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적인 원리 자체는‘하나님’으로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잠시 여기서 말을 멈추더니 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진흙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물체가 그의 손 위에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키가 6인치(20Cm) 정도 되는 인간의 형상을 빚어냈다. 그는 매우 능숙한 솜씨로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났다. 그는 다 만들어진 형상을 한동안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가 그것을 들어올리고, 그 위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 인간 모양의 형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가 그 형상을 잠시 더 손으로 감싸쥐고 있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그 형상이 테이블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것은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이 움직였다.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하여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서聖書를 인용하면서 에밀대사가 말했다.“성서는‘주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숨을 불어넣으시니 생명체가 되어 살아 움직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적인 존재인 인간도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 성경
․ 죽은 나사로 살림(요한복음 11장 1절부터 - 4절/ 신약성경)
마르다는 예수가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았으나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다가 “예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중략) 예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였다.” (중략) 예수께서 무덤의 돌을 옮겨라 하자, 마르다가 “죽은지 이미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중략)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부르시니 죽은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체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였다.
․ 물로 포도주 만듬(요한복음 2장 1절부터 - 11절/ 신약성경)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하니 예수께서“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습니다.”하였다. 예수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예수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따라라.”했다. (중략) 예수께서“항아리에 물을 채우라.”하여 아구까지 채우니,“이제 떠서 연회장에 갖다주라.”하여 손님께 내었더니 손님들이“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다음에 낮은 것을 내거늘 좋은 포도주가 나중에 나왔다.”하더라.
․ 소경 눈 뜸(요한복음 9장 1절부터 - 12절/ 신약성경)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씼으라 하니 가서 씼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 바람을 잠재움(마가복음 5장 35절 - 41절/ 신약성경)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 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딛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배게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뢰되“선생님 우리가 죽게되었는데 돌보아주시지 않으시렵니까?”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잠잠하라! 고요하라!”이르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중략)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 마귀 들린 사람한테서 마귀를 돼지떼에게 보냄(마가복음 5장 1절부터 - 20절/ 신약성경, 마태복음 8장 28절부터 - 34절/ 신약성경)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셨다. (중략)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중략)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2000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
․ 떡 다섯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임(마태복음 14장 13절부터 - 21절/ 신약성경)
제자들이 가로되“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예수께서 가라사되“그것을 내개 가져오라.”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눠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더라.
* 초인생활의 인간 창조와 기적은 Sumer 점토판과 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
흑피옥 공개 * Daum Blog 인용
*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우리 민족의 선조와도 곧바로 연결되는 사람들이다. 즉, 흑피옥 문화가 요하문명지역으로 시간차를 두고 계승됐다면 흑피옥문화 → 요하문명 ․ 홍산문화 → 대한’으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 흑피옥(黑皮玉) 조각彫刻! 옥 조각에 검은 칠을 했다. 중국 내이멍구(내몽고內蒙古)자치구 우란차푸시 외곽 화산지대에서 발굴된 검은 칠이 입혀진 옥조각상. 흑피옥은 내륙 깊은 곳에 1만 년이 넘게 감춰져 있다가 그 은밀한 모습을 드러낸‘인류 역사상 최고의 신비’다. 이제 인류는 그 기원부터 발달, 문명의 연원과 파급 과정까지, 역사 전체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고고학계의 한 전문가는 이 흑피옥 조각상들을 확인하고‘이 유물들이 사실이라면 생물학ㆍ사회학적 판단을 넘어, 자웅동체(雌雄同體)와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없는 시대, 즉 인류의 시원(始原)까지 유추할 수 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유물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발견자 그리고 그것이 제 역할을 하도록 학술ㆍ실무적 역할을 해낸 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 흑피옥黑皮玉은 1만4천년 전 유물遺物 (광주일보 2008. 1. 10일 자字)
흑피옥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정건재 전남과학대 동북아문화연구소장은‘중국 내몽고지역에서 출토된 흑피옥 조각상의 도료塗料를 채취해 서울대 기초과학 공동기기원에 탄소연대측정炭素年代測定을 의뢰한 결과 구석기 후기인 1만4천3백년 전(+_ 60년)의 유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공동기기원은 지난 해 11월 23일 정 소장이 양羊 모양의 흑피옥 조각상의 표면에서 검은색 도료를 긁어내 보내온 9.4mg의 물질을 방사선 탄소연대측정법에 따라 분석,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며 지난 7일 분석결과서를 보내왔다.
*‘흑피옥 1만 4000년 전 미직립 인류문명의 신비’를 주제로 흑피옥 조각상의 실체와 이 조각상들을 제작한 고대인류를 추적한 책을 발간한 전남과학대학 정건재 동북아문화연구소장은 자신이 소장한 흑피옥 가운데 홍산문명 옥도玉刀에서 고조선 천부경의 일부 문자와 모양이 유사한 종終 자를 발견, 이를 고조선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점으로 미뤄 흑피옥을 만든 고대인들이 국가형태를 기초로 고도의 문명을 일궈낸 인류거나 역사적으로 조명된 적이 없는 선先인류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여기에 중국 고대문명을 대표하는 홍산문화의 옥기 유물이 대진국 연안지역 대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점을 고려할 경우 동이족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8. 10. 10. 광주일보)
# 스님은 말이 길어졌다. 묵묵히 듣고 있는 도깨비기자의 머리 속에서는 스님의 말이 귓가로 돌았다. 자리를 뜨고싶었으나 엉거주춤한 사이 스님의 사소한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스님의 말은 건둥건둥 비껴나갔고 도깨비기자의 머리 속에서는 고봉학술원의 운곡선생의 말이 쟁쟁하게 울리고 있었다. 중국이 주변 국가를 변방으로 편입하려는 역사공정을 벌이고 있는데 역사란 날조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조선의 역사는 한국과 중국이 공유할 수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고조선의 역사가 신화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조선의 역사는 인류 기원의 역사기 때문이다. 중국은 애초에 황제헌원을 역사적 시조로 삼고 3황 5제로 중국역사를 설정하였는데 3조당을 세우면서 태호복희씨를 빼고 염제신농씨와 황제헌원 그리고 치우천왕을 안치했다. 의도적으로 속셈을 가지고 한 일이다. 그런 다음 만주와 티베트를 무력으로 복속시켰다. 그리고는 변방고대국가들을 역사공정이라는 명분으로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소위 ‘공정’을 시작했다. 동․서․남․북공정을 벌인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나 정사를 기록한 사마천에게 궁형을 해서, 불알을 까서 남자 구실을 못하게 … 치욕적이지요, 남자에게는. 역사 왜곡을 사주한 바 역사 왜곡을 넘어서는 역사 찬탈이다. 1960년대에 우연히 서북만주를 비행하던 미국 수송기 비행사가 만주의 피라미트들을 항공 촬영하여 화제가 되었으나 중국정부는 이를 강력하게 통제하였다.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그 뒤 중국정부는 학자를 동원하여 은밀한 발굴을 시도했다가 초기 발굴이 완료될 즈음 갑자기 발굴을 중단하고 모두 덮어버렸다. 피라미트가 고대중국 유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유적이었다. ‘그 때 시중에 파다하게 수많은 유적들과 함께 선기옥형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지요. 아주 최근의 일인데 …’ (잠시 말을 끊고 침묵하다가) 근래 한국의 한 고적상이 중국의 만주지방에서 출토되었다고 말하는 흑피옥상黑皮玉像 500여 점을 공개하였다. 중국은, 애초에는 날조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가 소장자가 중국정부에 기증한다고 하자 갑자기 태도를 바꿔 공식적인 조사에 들어갔어요.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인류사를 새로 써야할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합니다. 중국역사는 황하문명을 토대로 인류사가 전개되었는데 근래 황하문명 이전의 흥산문명과 대구문명이 대두되고 다시 흥산문명 이전의 고대문명, 그것도 찬란한 문화문명이 나타나자 학자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선입경적 일부의 주장이지만 흑피옥문명은 그 찬란한 그리고 완벽한 예술적 가치로 고대문명의 원시성을 일축시켜버렸습니다. 고조선의 문명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라크에서 발견된 수메르Sumer문명과 횡적 연관이 기대됩니다. 수메르는 아시다싶이 수밀이須密爾로써 고조선 12제후국의 하나였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3한관경제가 무너지면서 고조선이 100여 개 국가로 분열되는 열국시대에 수메르(이라크, 이란), 불가리아(부여족), 헝거리(훈족, 흉노족), 터키(투르크, 돌궐족), 바이칼호수의 코리족과 브리야트족. 중국의 묘족 등으로 흩어진 것입니다. 특히 수메르를 주목해보시지요 라고 고봉학술원의 운곡선생은 말했다. 도깨비기자는 스님의 이야기가 끝을 보이지 않자 대기시킨 택시 생각에 말을 끊고 일어섰다. 스님은 미진하다는 듯 찜찜한 표정으로 문간까지 따라 나와 자신이 동이족東夷族(중국 한나라 때 중국을 중화中華 즉 세계의 한가운데라고 자존하며 주변 국가를 동쪽은 동이, 서쪽은 서융西戎, 남쪽은 남만南蠻, 북쪽은 북적北狄으로 이름 짓고 야만인으로 깔보며 지칭한 이름, 동이의 원래 뜻은 큰 활을 잘 다루는 대인大人의 나라) 그러니까 공자님의 방계 후손이라고 했다. 유사遺事나 야사野史가 대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지만 3국유사와 한단고기들 사서를 정립해야 한다고도 했다. 걸음이 빨라지는 도깨비기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운곡선생은 고조선이 바이칼호수에서 기원하였으니 거기에서 바이칼호의 원주민 브리야트인과 서부러시아의 코리족을 만나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고 했다. 그들이 아직도 한국민족의 전통생활양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있다면 불가리아와 헝거리, 터키도 보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들 역시 고조선에서 갈려져나온 종족이다. 불가리아는 부여족이라는 뜻이고 유럽인종에서 유일하게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발칸'이라는 낱말이 '부여의 땅'이라는 말이다. 수도 ‘소피아’는 ‘사비’의 차음이다. 백제의 수도 사비성과 같은 말이다. 헝거리는 훈족이 세운 나라인데 고조선의 흉노족이 이주하여 세운 나라다. 로마시대 말기에 로마 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한 아틸라라는 영웅이 있었고, 터키는 투르크라고 하였는데 돌궐족이 세운 나라다. 오스만 투르크는 예니체리라는 무사를 양성하여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제국을 이룩하였는데 이는 고조선의 천지화랑이나 고구려가 조의를 양성한 군사제도와 똑같다. 터키는 역사에서 한국과 형제의 나라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문 밖에 나서자 조급한 듯이 도깨비기자의 걸음을 제지하고 말했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님의 말에 도깨비기자는 새삼스럽게 놀랐다. 중국의 묘족苗族이 한국어와 같은 낱말을 사용하고 베트남의 한 지방에도 한국의 전통생활 양식이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유럽이나 중동지방이나 서남부 유럽 이야기는 생소했다. 도깨비기자가 듣고만 있다가 말했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한국역사 폄하로, 일본은 한국역사 왜곡으로 대한사를 찬탈하려고 한다. 소멸되었다고 알고 있는 대한 고대사서들 기록이 중국의 북경고대사박물관이나 일본의 궁내성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도깨비기자가 운곡선생의 말을 따라 덧붙였다. 1989년에 남당 박창화가 신라시대의 화랑세기 필사본을 공개하였다고 듣고는 있습니다만. 문간까지 따라나온 스님이 아직도 할 말이 미진하다는 듯 하였으나 도깨비기자는 갈 길이 바쁘다는 표정을 하고는 스님의 눈길을 피하며 택시에 올랐다. 택시에 오르면서 도깨비기자는 선기옥형 호위무사를 지휘한 신장의 모습을 그렸는데 의식하고 그렸는가 라고, 독고휘장군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느냐고 묻고싶었으나 그만두었다. 듣고싶은 답변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삼켜버렸으나 미련은 남았다. 도깨비기자가 추적하는 주제는 선기옥형이었다. 스님이 들려준 선기옥형의 실체와 탁록전쟁도의 그림 소재는 마치 전설 같았으나 스님은 선기옥형을 그림의 대상 - 피사체로만 알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빛을 내 뿜는 선기옥형을 실제로 보았다고 했다가 선기옥형이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였었다는 대목에서 도깨비기자는 스님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Tokyo 칸타마쯔리 Lithuania 민속축제 Brazil Samba축제 Europe 사육제
북America Indian 축제 중국 용춤 일본 물 축제 중국 설날 불꽃놀이
지구촌 여러 나라들은 고유의 민속축제가 있다. 고대한국에서는 연등회, 팔관회를 비롯하여 동맹, 영고, 무천 그리고 달마다 열렸던 세시풍속 등 다양한 민족축제가 이어져오다가 조선시대에서는 명맥만을 유지했는데 일제식민지시대에 송두리째 말살되었다.
* 고조선의 한웅천왕의 신시시대 제천행사
# 한웅천왕의 신시시대 14세 자오지한웅(치우천왕) 재위 2년 한기 4492년(BC. 2705년) 10월 상달, 치우천왕의 궁전, 문무백관이 궁전 뜰에 도열하고 있다. 치우천왕, 일산을 떨치고 문무백관이 도열한 궁전 뜰로 나선다. 오늘은 천신께 제사하는 제천행사의 첫째 날이므로 궁전 뜰에 옥좌가 마련되었다. 치우천왕, 옥좌에 좌정한다. 여러 신하들 3․6대례로 천왕께 하례드린다.
신지 발귀리 : (국궁하며) 폐하, 제전 준비가 완료되었나이다.
# 치우천왕 사당으로 간다. 천제를 모신 사당이다. 제신들 뒤 따른다. 사당의 중앙에 옥대가 있고 그 위에 선기옥형이 받들어 놓여 있다. 주위에 28숙을 상징하는 5방색기가 선기옥형을 빙 둘러쌓는데 깃발에는 3족오가 새겨져 있다. 치우천왕 먼저 선기옥형 앞으로 간다. 신지 아유타가 국궁하여 맞는다.
치우천왕 : 선기옥형의 괘는 어떻습니까?
운사 유소 : 우주의 운행질서가 원만하고 28숙의 정렬이 가지런하여 풍우순조롭사옵니다.
치우천왕 : 천기는 어떻습니까?
운사 유소 : 태극성과 자미성이 마주하여 큰 빛을 발하나이다. 대왕의 공덕은 4해에 떨치 고 백성은 평안하며 변경 또한 12제후를 동원하여 도적의 무리를 평정한 이래 태평성 대이옵니다.
치우천왕 : 유소는 천제께 제사지낼 준비를 하시오.
운사 유소 : 번제물을 대령하라!
# 치우천왕 번제물에 다가가서 손수 불에 달군 칠지도로 번제물을 마름질한다. 신지 발귀리가 시종을 거느리고 천왕의 번제물을 제단으로 옮긴다. 제단에 불이 붙는다. 악공들이 헌사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무녀들이 제단을 에워싸고 강신무를 춘다. 음률이 장중하다. 제단 위에서는 치우천왕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고 재상 아유타가 축문을 낭송한다. 제단 아래 층계 밑에서는 제신과 장수들이 엎드려 축수한다. 번제물을 태우는 불꽃이 연기와 같이 하늘로 치솟는다. 장엄하다.
# 치우천왕의 궁전, 제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12제후국왕들과 신하들을 모아놓고 유시한다.
치우천왕 : 4해를 평정하고 천제의 제사가 잘 치러진 일에 여러 제후들의 공이 컸다. 신 지 발귀리는 공로에 따라 작위를 높이고 봉작을 넓혀 공적에 보답하라. 아유타는 공적 을 기려 역사에 기록하라! 모든 충신들과 용맹한 장수 그리고 사졸에 이르기까지 공과 를 분명히 하여 균등하게 포상하여 영화를 4해에 떨치라!
신지 발귀리 : 명을 받들어 균정하게 포상하겠나이다.
운사 유소 : 일월성신은 가지런하고 하늘의 운행이 질서 정연함으로 내우외환이 모두 사라 졌나이다. 군사를 내어 12제후를 복속하고 변방의 도적무리를 척결한 이래 안으로는 백 성들이 평안하고 밖으로는 환란이 없었나이다. 폐하의 성덕이 4해에 떨쳐 덕치왕화가 뚜렸하므로 내우외환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졌나이다.
치우천왕 : 태평성대로구나. 모두 천제의 보살핌이요 제신들의 도움이니라. 천하의 운세는 어떠한고?
운사 유소 : 짧게 보면, 북두성 주변이 선명하지 못합니다. 관상감에서 논의컨대 꼬리별(혜 성)의 징조로 봅니다. 이는 내년부터 향후 3년 간 일기가 풍우 순조롭지 못하리라는 예 보이옵니다. 작은 내우외환을 미리 알아 대처한다면 크게 심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국 운은 태평성대가 계속되고 국태민안 할 것이오니 심려마시옵소서.
치우천왕 : 혜성의 피해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가?
풍백 유위자 : 혜성이 비침은 내년 봄의 가뭄을 예고하며 수리치수를 미리 대비코자 합니 다. 봄에 뿌릴 씨앗을 가뭄에 강한 종자로 바꾸고 수확의 시기를 앞당겨야 합니다. 여 름에는 안개가 짙은 날이 많아 5곡이 충실치 못하여 소출이 염려됩니다. 이것이 이후 3년 동안 지속될 것이니 올해부터 절약하여 먹고 남은 곡식을 비축하여야 할 줄 아옵 니다. 또한 곡식을 추수하는 가을에는 예년 보다 많은 비가 내릴 조짐이 있습니다. 예 년 보다 한 달 가량 서둘러 추수를 독려하여 저장하여야 합니다. 저장된 곡물은 각 제 후국마다 저가의 족장들이 관할하되 3년가량 혜성의 주기가 끝나 풍요를 누릴 수 있을 때까지 배급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합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치우천왕 : 제천행사와 세시풍속은 완성했는가?
신지 발귀리 : 한웅천제께옵서 지으신 칠회제신의 책력으로 7성력을 완성하고 시월을 상 달이라 하여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시월 상달에 첫날부터 이레까지 제사를 모 시는데 첫째 날에는 하늘의 신, 둘째 날에는 땅의 신, 셋째 날은 물의 신, 넷째 날 불의
신, 다섯째 나무의 신, 여섯째 쇠의 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흙의 신에게 제사하나이 다.
치우천왕 : 지혜롭도다, 상을 내리리라. 천체의 운행에 대하여 설명하라!
풍백 유위자 : (좌우에게 명하여) 관상감박사를 들라 이르라!
관상감박사 허드레 : (선기옥형을 받들고 나와 설명한다.) 이 행사는 한인천왕께옵서 이 땅에 배달의 나라를 세우신 이래 4000년, 선기옥형을 제작하시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교화하시고자 베푸시는 행사이오나 이는 천기를 말씀드리는 자리오니 여러 제후께서는 자리를 엄정히 가다듬고 옷깃을 여미어 천기를 받드시기 바랍니다. (선기옥형을 받들어 농사와 날씨의 관계, 대비책 그리고 세시풍속을 해설한다.) 하늘은 100년만에 돌아오는 혜성이 3년 뒤에 돌아오므로 농사를 대비하되 가뭄과 풍우가 순조롭지 않을 것이니 유 념하여 대비하소서. 지역으로는 하삭과 강역 동북쪽의 비리국, 일군국, 객현한국, 구모 액국이 내년 6월부터 시작되는 가뭄과 비바람이 특히 자심할 것이므로 어려움이 크리 니 선처하소서. 세시로는 역시 내년 6월부터 자연재해의 환란이 시작됨으로 7월과 8월 그리고 9월까지 제후 여러분들의 대비가 요구됩니다. 올 11월에는 … (관상감박사 허드 레, 국가 대소사와 천문을 연계하여 한나절 동안 해설한다.)
만주 집안 장군총 Sumer의 Ziggurat Egypt의 Pyramid 일본 Okinawa
(Ziggurat 추정) (제단祭壇) 수중 Pyramid
Mexico Maya 1945년 미국 수송기비행사 Mexico 태양의
Chichen - Itza 항공 촬영 만주 Pyramid들 신전神殿
중국 서북부 만주지방에 100개가 넘는 Pyramid 떼가 있는데 중국정부는 이 피라미트 군을 발굴하다가 한족漢族의 유적이 아니라는 내부적인 이유로 중단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집트 쿠프왕의 피라미트(145m) 보다 두 배 높은 300여m의 거대한 피라미트들 은 고조선의 Ziggurat(제단祭壇, 꼭대기가 평편함)거나 피라미트(무덤, 꼭대기가 뾰쪽함)로 추정한다. 이러한 유적이 만주를 비롯하여 이집트, 멕시코, 남미, 서북시베리아, 티베트, 동남유럽 등 지구촌 특히 각 대륙의 중심지에 산재함 * Daum Blog 인용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신시시대 한웅 1세 거발한한웅의 제천행사
# 한기 3309년(BC. 3888년) 10월 상달, 한웅천왕의 신시시대 1세 거발한한웅 재위 10년 신시(신불, 흑수 백산)의 궁전, 거발한한웅 옥좌에 좌정하고 제신들이 옹립하여 국궁하고 있다. 오늘은 10월 상달 제천행사의 첫째 날이다.
운사 육약비 : 폐하, 제천행사의 개막을 선포하소서.
거발한한웅 : 10월 상달, 이 땅에 배달의 나라를 창건하옵신 한인천왕의 유시를 받들어 국 태민안을 기원하며 천제한님을 외경하는 제천행사를 선포하노라!
운사 육약비 : 소라와 나팔을 불어 천왕폐하의 유시를 알려라!
# 거발한한웅의 도읍 신시(흑수 백산) 동쪽 100리(50Km) 쯤 넓은 벌판에 세워진 높은 제단은 높이가 1만자尺(300m)며 가로 세로의 길이는 3만자(1Km)다. 동서남북 4문이 있고 4개의 단으로 축조되었다. 4개의 단 마다 91개의 계단이 있으며 360번째 맨 위의 단에 한인천왕의 위패를 가운데로 좌우 양쪽에 한국시대 한님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한 단 아래 선기옥형이 모셔져있다. 선기옥형 주위에는 28숙宿을 상징하는 5방색 깃발이 선기옥형을 에워싸고 있는데 깃발에는 3족오가 새겨져 있다. 거발한한웅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12제후국 왕들과 중신들이 아홉 계단 아래 뒤를 따르며 옹위한다. 제단 아래는 양편으로 각 12제후국왕, 제신들과 장수 수 백 명, 그리고 각 제후국에서 온 벼슬이 높은 신하들이 화려하게 수놓은 옷차림으로 늘어서 있다. 벼슬아치들 아래는 수 천 명 병사들이 도열하고 그 다음에 수 만 명 백성들이 운집하였다. 풍백은 천부를 새긴 거울을 들고 앞서 나아가고, 우사는 북을 쳐서 울리며 주변을 돌면서 춤추었고, 운사는 1000명의 근위무사를 데리고 대장의 칼로 호위한다. 거발한한웅 계단을 다 올라 신주 앞에 서서 백성들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든다. 3태극을 조각한 옥홀이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난다. 운사 모수리가 향로에 불을 붙이자 붉고 푸른 불꽃과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붉은 불꽃 속에서 황금색 3족오가 나타나 하늘로 오른다. 도열한 제신들과 백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3족오를 향해 축수한다. 거발한한웅 축문을 읽은 다음 축문을 태워 하늘에 올리고 옥좌에 앉는다.
풍백 석제라 : (한인천제의 유시문 두루마리를 들고나와 선인 아유타에게 건넨다.) 한인천제 의 유시문을 낭독하니 제신들은 경배하라! (선인 아유타, 한인천제의 유시문을 펼쳐 받 들고 소리 높여 읽는다.)
<유시諭示>
우리 한국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이었는데 한 신이 있어 사백력(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한 신이 되시니 밝은 빛은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는 만물을 낳았다. 오래오래 살면서 늘 쾌락을 즐겼으니 지극한 기를 타고 노닐고 그 묘함은 저절로 기꺼웠다. 모습 없이 볼 수 있고, 함이 없으면서 모두 이루고, 말 없으면서 다 행하였다. 이를 한국이라 하고 그를 가리켜 천제한님이라고 불렀다. 천제한님이 밑으로 삼위와 태백을 내려다보시며 모두 가히 홍익인간 할 곳이로다 하시며, 한웅천왕 폐하께 천부인 세 가지를 내려주시고 사람과 물건의 할 바가 이미 다 이루어졌도다 하셨으며, 그대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무리 3000을 이끌고 가 하늘의 뜻을 열고 가르침을 세워 세상에 있으면서 잘 다스려서 만세의 자손들에게 큰 모범이 될지어다 이르셨느니라.
# (거발한한웅 허리를 굽혀 3․6대례 - 천제天帝나 제사 또는 임금님께 드리는, 머리 세 번 허리 여섯 번 굽히는 절- 머리를 한 번 굽힐 때마다 허리를 두 번씩 굽히는 대한 고유의 인사법, 유시문을 받들어든다.)
거발한한웅 : 백성들에게 축제의 시작을 알리라! (이레 동안 열리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 나팔소리가 온 성 안에 울려퍼진다.)
선인(깨달음을 이룬 사람) 발귀리가 거발한한웅께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
대 1(큰 하나) 그 극(끝)은 이를 이름하여 양기(어진 기운)라 하니
없음과 있음이 섞여서, 빈듯하면서도 갖추어 묘함이 있도다.
3․ 1은 그 체(근본)는 1(하나)이요 그 용(쓰임)은 3(셋)이라
혼묘(혼돈)가 한 둘레에 있으니 체와 용은 따로 갈라질 수 없도다.
대허(허공)에 빛 있음이여, 이것은 신의 형상이고
대기(큰 기운)의 오래토록 존재함이여, 이는 신(하느님)의 화(변화)로써
참 목숨이 근원으로 만물이 여기서 나는도다.
해와 달의 아들은 천신의 충(가득 참)에 있음으로써 비추이고
이로써 원각(깨달음)을 긋고 능히 크게 세상에 내려오니
뭇 중생이 그 무리를 이룬다.
원(둥근 것)은 1(하나)이 되어 무극(끝 없음)이 되고
방(모난 것)은 2(둘)가 되어 반극(끝의 반대)이며
각은 3(셋)이 되어 태극(3태극)이라.
무릇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홍익인간)이란 천제 한웅에게 주어진 바니
일신(신)은 내려와 충만하사 성(이성)은 광명에 통하고
제세이화 홍익인간 함은 이를 신시가 선군조선에 전하신 바이라.
# 축제 둘째 날, 씨름과 수박手搏겨루기. 성 안과 12제후국이 1000명씩 편을 나누어 오전에는 씨름판을 벌이고 오후에는 수박겨루기를 한다. 거리에서는 곳곳에서는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은 백성들의 윷놀이, 고누놀이, 널뛰기, 그네뛰기들이 벌어지고 음식과 술이 풍족하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고구려 사냥도 * Daum Blog 인용
# 축제 셋째 날, 활쏘기와 말달리기대회. 이른 아침 활쏘기대회장. 성 안 군사훈련장터에 1000개의 과녁이 서고 그 거리는 50보다. 화살 3개를 쏘아 과녁에 명중하면 1차 선발에 통과하고 2차, 3차로 갈수록 과녁이 어려워진다. 마지막 두 사람이 겨루는데 우승자는 주몽으로 칭송받고 준마 한 필과 가죽 안장 그리고 1000호 벼슬을 내린다. 성 안 백성들과 군사들은 물론이고 12제후국과 심지어는 곰족, 호랑이족들까지 남녀노소 신분에 차별 없이 참가할 수 있다. 천왕이 몸소 참석하여 격려한다.
# 활쏘기 진행을 맡은 양가의 비장들, 군사훈련장에 높이 세운 사대 위에서 깃발로 신호한다. 동시에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북소리 광장에 울려 퍼진다. 구경꾼들이 훈련장을 구름처럼 에워싸고 응원의 함성이 하늘을 찌른다. 참가자가 2만명을 넘어선지도 벌써 5년째. 1000개의 사대 앞에 첫 번째 선수들이 줄지어 서서 시위를 당긴다. 시위가 보름달처럼 휘어지고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나른다. 과녁에서는 명중 표시로 붉은 깃발을 흔든다. 명중 깃발이 오를 때 마다 경기자를 응원하는 함성이 광장을 뒤흔든다. 한 식경이 지나자 경기자들이 100명으로 압축되고 과녁이 바뀐다. 거리는 50보에서 100보로 바뀌고, 과녁은 10척 장대에 걸린 짐승 대가리, 과녁이 마치 손바닥만하게 보인다. 또 한 식경이 지나자 경기자 10명이 남는다. 해마다 강세를 보였던 성 안 참가자가 3명이고 12제후국에서 5명 그리고 호랑이족 참가자와 곰족 참가자 2명이다. 특히 호랑이족 참가자 한 명은 특출하다. 또 한 식경이 지나자 마지막 3명이 남았다. 역시 성 안에서 1명, 수밀이국 1명 그리고 호랑이족 사냥꾼 1명이 마지막 겨루기에 남았다.
거발한한웅 : 저들을 대령하라, 하사주를 내리리라! (마지막 경기자 세 사람, 천왕 앞에 국 궁한다.) 가히 모두 주몽이라 할만하다. 소속과 성명을 일러라!
양가부족 탈탈 : 양가족의 비장 탈탈이옵니다.
수밀이국 협도라 : 수밀이국의 수문장 협도라입니다.
호랑이부족 사냥꾼 : (봉두난발에 짐승 가죽을 걸쳤을 뿐 모습이 짐승과 다름없다.) 호랑이 족 사냥꾼이오나 이름이 없나이다.
거발한한웅 : 호오, 이름이 없다? 무명의 사냥꾼이라고?
# 사대에 선 세 사람, 거리는 200보 과녁은 버드나무를 둥글게 말아 장대에 매달아놓은 손바닥만한 고리. 먼저 탈탈이 쏜다. 첫 번째 화살은 장대에 미치지 못한다. 두 번째 화살은 고리 근처에는 닿았으나 역시 실패, 세 번째 화살이 겨우 고리에 맞았으나 힘없이 떨어지고 만다.
탈탈 :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저런 과녁은 생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어.
사냥꾼 : (협도라를 돌아보며) 과녁을 높입시다.
협도라 : 뭐라? 과녁을 높이자고?
사냥꾼 : 그렇소. 과녁을 높여 단 판에 결판을 냅시다. (진행자를 불러 과녁의 크기를 절반 으로 줄이고 거리를 300보로 할 것을 건의한다.)
# 협도라의 첫 번째 화살은 과녁 앞에서 땅에 떨어졌다. 두 번째 화살은 간신히 과녁에 닿았으나 맞히지 못했다. 세 번째 화살도 과녁 근처에 꽂히고 말았다.
협도라 : 저런 과녁은 귀신도 맞추지 못해! (사냥꾼을 돌아보며 빈정거린다.) 어디 한 번 쏘 아보시지.
# 호랑이족 사냥꾼, 사대에 서더니 흙을 집어 날려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윽고 활시위가 점점 휘어지더니 보름달처럼 둥글어지고 이윽고 터질듯 한 시위 소리가 핑! 울리는가 했더니 화살 과녁에 명중한다. 둘러선 관중들 숨소리조차 없더니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자 함성, 천지를 진동한다.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더욱 기가 막힌 광경을 연출한다. 첫 번째 화살처럼 신중하게 겨누지도 않고 대강 활을 들어 올려 시위를 당기자말자 놓아버리는, 그리고 세 번째 화살은 겨냥을 하지도 않은 듯 두 번째 화살에 이어 눈 깜짝할 사이에 쏘았는데 화살은 연달아 날아가 첫 번째 화살을 중심으로 과녁 한 가운데 명중한 것이다. 화살이 명중된 순간 한 동안 숨소리도 들리지 않더니 이윽고 함성이 천지를 진동한다.
거발한한웅 : (감탄하며) 가히 신궁이로고. 호랑이족 사냥꾼에 신궁이 있었다는 말을 일찍이 듣지 못했는데 어디서 저렇게 출중한 궁사가 태어났단 말인가? 가까이 데려오라! 무예 가 발군의 실력이므로 우승상을 내리되 (발귀리를 지명하여 하명한다.) 선인께서는 저 자를 맡아 책임지고 교화시켜 인재로 육성한 뒤에 벼슬을 내리도록 하시오!
# 축제 넷째 날은 진뺏기놀이, 축제 다섯째 날은 창과 칼 무예 겨루기, 축제 여섯째 날에는 격구경기를 하였다.
# 축제 일곱째 날, 거발한한웅과 12제후 중신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다시 제단에 모여 한인천왕께 제사를 드려 태평성대를 고하고 7일 간의 축제 막을 내린다.
# 그 해 겨울, 거발한한웅이 고시례에게 ‘백성들이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는 방안’ 을 강구하라 명하였다. 거발한한웅은 ‘아침에 하늘에서 내려와 백성을 안돈하고 오후에는 다시 승천’ 하였다.
* 고시례가 익힌 고기를 가르치기 전에 이미 백성들은 사냥을 나갔다가 자연 발생 화재로 숲이 탄 곳에 미쳐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불에 탄 짐승의 고기를 거두어 맛 보고는 불에 익은 고기 맛을 알게 되었는데, 고시례는 어느 날 바람이 몰아치는 숲을 거닐다가 강한 바람에 관목들이 서로 엉켜 불이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마른 나무가지를 비벼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아냈으며, 이어 숲을 거닐다가 호랑이가 덤벼들어 큰 돌을 들어 호랑이를 쳤으나 맞지 않고 돌이 바위에 맞아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부싯돌을 만들어 불씨를 간수하는 일 없이 일상적으로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먹는 법을 가르쳤다.
* 거발한한웅께서 신지 혁덕에게‘나라에 글이 있으나 서로 유통하지 못하므로 백성들이 쉽게 익혀 사용할 수 있는 글자를 만들라’ 는 유시를 명하였으나 신통한 방법을 얻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신지 혁덕이 강변을 거닐다가 한 사냥꾼을 만났다. 사냥꾼은 혁덕에게 사슴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혁덕은 무심코 사슴이 남기고간 발자국을 가리켰다. 그 때 문득 혁덕은 모든 사물이 흔적을 남긴다는 일을 생각해내고 강가 모래밭에서 여러 짐승들의 발자국을 찾았다. 많은 발자국 가운데서 특히 사슴 발자국과 기러기 발자국을 살펴 글자를 창안했다. 이를 참글(상형문자로 추정, 천부경 원전 글씨, 남해각서)이라고 한다.
풍백 석제라는 백성들이 잠자고 쉬는 거처가 일정치 않아 맹수의 피해를 입어 다치고 상하며 벌레와 독충의 피해까지 겪고 있으며, 동굴과 흙구덩이에 의존하여 살고 있으므로 습기와 바람을 피할 길이 없어 질병이 많은 것을 염려하였다. 흙과 돌과 나무를 이용하여 집 짓는 방법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 우사 왕금영, 인구가 불어나 식량을 충족하기 어려워지자 짐승을 잡기 위하여 서로 경쟁을 하고 다투며 싸움까지 일어나는지라 분쟁이 그치지 않고, 남획으로 인하여 사람을 피하지 않던 짐승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여 달아남으로 더욱 더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왕금영은 목장을 만들어 짐승을 번창케 하는 방안을 백성들에게 전파하였다. 소, 말, 개, 돼지, 독수리, 호랑이 등 짐승을 길렀다.
운사 육약비는 혼인의 법, 장례의 법과 강령 8조를 제정하였는데 강령 8조는 대략 성실함, 믿음, 사랑, 베품, 잘못됨, 복받음, 받음, 순리라 하였다.
* 신시시대 마지막 천왕 18세 거불단한웅(단웅)으로 역사무대가 바뀌어
# 한기 4816년(BC. 2381년) 여름, 신시시대 18세 거불단한웅의 재위 45년, 거불단한웅이 풍백, 우사, 운사와 제신들을 거느리고 궁전의 뜰을 거닐고 있다.
운사 모수리 : 범족과 곰족의 여왕들이 폐하 뵙기를 청하나이다. (범족과 곰족의 여왕들이 천왕 앞에 엎드린다.)
곰족 여왕 : 우리 무리는 본래 왕화를 입지 못하여 성정이 거칠고 삶이 투박하여 인간답 지 못하나이다. 이에 저희들이 왕화를 입어 온 무리가 모두 인간답게 살고자 바라나이 다.
거불단한웅 : (여왕들에게) 어여쁘다. 100일을 기약하고 인간의 덕을 닦겠느냐?
곰족 여왕 : 분부대로 힘써 노력하겠나이다.
# 이리 하여 범족과 곰족의 두 여왕들이 한웅천왕의 궁궐에서 살면서 현명한 선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3국유사에서는 이를 신령한 쑥과 마늘을 먹었다고 하였다.) 곰족의 여왕은 100일 동안 참고 견디어 기약을 지켰으나 범족의 여왕은 성격이 거칠고 활달하여 기한한 100일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니 다시 동족이 사는 하삭(서남 아시아와 동유럽지역)으로 추방되었다. 한웅천왕, 곰족의 여왕을 치하한다.
거불단한웅 : 약속한 날을 채웠으니 신통하다.
곰족 여왕 :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의 궁중에 머물기를 바라나이다.
거불단한웅 : 너는 부족에게로 돌아가서 부족을 교화하여 너와 같이 사람답게 사는 일을 주 관하는 게 옳거늘 어찌 짐의 궁전에 머물겠다고 하는고?
곰족 여왕 : 저희 부족은 미련하와 아직도 짐승처럼 살고 있아옵니다. 부끄럽사오나 저는 이미 과년하여 배필을 구하려해도 마땅한 배필이 없어 무엄하옵게도 페하와 혼인하여 천자의 나라를 융성하게 하려 하나이다.
거불단한웅 : 갸륵한지고. 곰족의 여왕이 교화가 두텁고 그 뜻이 갸륵하니 혼인을 하락하노 라. 여왕을 궁전에 머물게 하라!
* 선군왕검 조선시대로 넘어가서
선군왕검 : 오늘부터 석 달 동안 경내 모든 군사를 동원하고 제단을 정비할 백성들의 동원 령을 내린다. 국조의 제사를 마칠 때까지 국가의 정사는 물론이고 백성들의 대소사도 중지한다. 재상 을보라는 제사장으로써 모든 책임을 맡아 시행하시오.
# 도성 아사달에서 70리(35Km) 떨어진 완만한 구릉에 제단 터를 잡아 9한의 제후국 군사와 성 안 백성들을 동원하였는데 날마다 3만여 명씩 동원하여 연 인원은 1백만 명이요 능묘 축성 기일은 석 달이 걸렸다. 거대한 돌을 다듬어 쌓은 제단의 기단은 정방형으로 각 방의 길이가 3000자(1Km)요 위로는 높이 또한 1000자(300m)로 일곱 단을 쌓아 올렸는데 흐린 날이면 그 꼭대기에 운무가 걸렸다. 첫째 단은 기단으로써 300자, 둘째 단 240자, 셋째 단 210자, 넷째 단 120자, 다섯째 단 90자, 여섯째 단 30자고 마지막 일곱째 단은 높이가 10자며 끝이 평편하고 안에 붉은 황토를 깔았다. 네 방면에 문이 있어 왕래하였다. 그리고 북쪽을 향하여 제단을 놓았는데 능히 수 백인이 모여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
# 제단 축조를 마친 그 해 가을, 선군왕검은 재상 사려사마에게 선기옥형을 지구라트에 안치하고 옛 신시시대의 규범을 새로이 정비할 것을 명하여 포고하여 일렀으되
‘하늘의 법칙은 하나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니니라. 너희들은 오로지 순수하게 참 마음을 다 할 것이니 이로써 너희의 마음이 곧 한님을 보게 되리라. 하늘의 뜻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고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하나라. 이런 까닭에 스스로 살펴보아 자기 마음을 알면 이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필 수 있으리라. 너희가 태어남은 오로지 부모에게 연유하였고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다만 너희 부모를 옳게 받들어 모시는 것이 바로 하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고 또 나라에까지도 그 힘이 미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충성되고 효도함이라. 너희들은 들으라! 열 손가락 깨물어 보면 크고 작건 가림 없이 모두 아프지 않던가? 서로 사랑할지언정 헐뜯지 말고 서로 도울지언정 다투는 일이 없다 보면 집안도 나라 도 다 크게 일어나리라. 너희가 서로 양보하고 함께 일한다면 나라가 다 융성하리라.’
선군왕검 : (포고문을 온 나라 만 백성들에게 유시한 다음 이어 명한다.) 팽우는 땅을 개척 하시오, 성조는 궁실을 짓고, 고시는 농사를 맡으며, 신지는 글자를 정비하고, 기성은 의약을 베풀고, 나을은 호적을 관리하며, 희는 점을 치고, 우는 군대를 관장하시오.
* 정사 50년 한기 4913년(BC. 2284년), 홍수가 크게 나므로 단군왕검께서 풍백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고 높은 산과 큰 강을 평정케 하였다. 우수주에 공적비가 있다.
* 갑술 67년 한기 4930년(BC. 2267년), 회대지방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제후를 두어 세습 통치함)를 두고 이를 다스렸는데 우순虞舜(제순유우帝舜有虞, 중국 3황 5제인 순 임금과 우 임금)에게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 2세 선군 부루 신축 원년 한기 4957년(BC. 2240년), 신시 이래로 제사를 지낼 때 마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크게 모여 함께 ‘어아가於阿歌, 교훈적인 내용의 고대 가사歌詞 이름’ 를 불러 화목을 다지고 조상을 숭배하였으니 곧 ‘참전參佺의 계戒 - 고구려 재상 을파소가 백운산에 들어가 천서天書를 얻었다. 인간 360사事와 강령綱領 8조條가 있다. 한웅천왕의 신시시대 선인仙人 발귀리가 창제하고 운사雲師 육약비가 정비한 생활규범, 참전계경으로 현존함’ 가 되었다.
<어아가>
어아 어아, 우리들 조상님네 크신 은혜 높은 공덕
배달나라 우리들 누구라도 잊지 말세
어아 어아, 착한 마음 큰 활이고 나쁜 마음 과녁이라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니 활줄처럼 똑같으며
착한 마음 곧은 화살 한 맘으로 똑 같아라
어아 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 되어 과녁마다 뚫고 지고
끓는 마음 착한 마음 눈과 같은 약한 마음
어아 어아, 우리들 누구라도 사람마다 큰 활이라
굳게 뭉친 같은 마음 배달나라 영광일세
천년만년 크신 은덕 한배검이시여, 한배검이시여
* 계묘 3년 한기 4959년(BC. 2238년), 조서를 내려 백성들이 머리카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4월에는 밭을 나누고 밭문서를 만들어서 백성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다투지 않도록 하였다. 임자 12년에는 신지인 귀기가 칠회력(책력, 달력)과 구정도(논밭의 구획)를 만들어 바쳤다. 뒤에 백성들이 집안에 정갈한 곳을 골라 단을 설치하고 곡식을 가득 담아 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를 ‘부루의 단지’ 라고 부르고 ‘업신’ 으로 삼았으며, 완전한 사람이 받는 계명이라고 하여 ‘전계’ 라고 불렀고 ‘업주가리(현재 농촌에 유풍이 남아 있음)’ 라 하였다. 사람과 업이 함께 완전하다는 뜻이다.
* 3세 선군 가륵 기해 원년 한기 5015년(BC. 2182년) 5월, 3랑 을보륵을 불러 ‘신왕종전의 도’를 물으셨다. 보륵은 엄지손가락을 교차시켜 바른 손을 올려놓은 ‘3 ․ 6대례(허리를 한 번 굽혀 절하고 머리를 3번 땅에 조아리는 큰 절, 한기 8936년, 조선 인조 17년(AD. 1639년) 병자호란 때 청 태조의 요구에 의해 인조가 한 굴욕의 절 예법)’ 를 행하며 '대저 길은 아비 되려 하는 자는 곧 아비답게 하고, 임금 노릇을 하고자 하는 이는 곧 임금답게 하며, 스승이 되고자 하는 이는 곧 스승답게 하고, 아들이 되고 신하가 되고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도 이를 지키면 되나이다' 라고 여쭈었다. 이로부터 조정에는 '종훈' 이 있고 백성들에게는 '전계' 가 있었다.
한단고기의 가림다 중국 산동성 한태시桓太市 출토 가림다 조각품,
* Daum Blog 한류 인용 탄소 측정 BC. 1850년 경 추정
* 경자 2년 한기 5016년(BC. 2181년),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다르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고대의 상형문자)’ 이 있다고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다 또는 가림토’ 라고 하였다.
* 신축 3년 한기 5017년(BC. 2180년), 신지인 고글에게 명하여 ‘배달유기’ 를 편수하게 하였다. 갑진 6년에 열양의 욕살 색정에게 명하여 약수로 옮기게 하고 종신토록 연금하였으나 후에 풀어 그 땅에 봉하니 그가 흉노의 조상이다. 병오 8년에 강거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지백특에서 정벌하였다. 무신 10년에는 두지주의 예읍이 반란을 일으키니 여수기에게 명하여 그 추장 소시모리를 베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 땅을 일러서 소시모리라고 하다가 지금은 음이 바뀌어 우수국이 되었다. 그 후손에 협야노라는 자가 있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3도(일본)에 웅거하며 스스로 천왕이라고 했다.
선군왕검상 중국 산동성 무씨사당武氏祠堂벽화 소도蘇塗에 심은
* Daum Blog 인용 (선군왕검의 행렬도 추정) 천지화天指花(무궁화)
* 4세 선군 갑신 원년 한기 5060년(BC. 2137년), 선군 오사구가 동생 오사달을 몽골리한(왕)으로 봉하다. 지금의 몽고족이 후손이다.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시하다가 태백산에 이르러 삼신님께 제사하고 신비한 약초 산삼을 얻다.
* 5세 선군 구을 을축 4년, 60갑자를 사용하여 책력(달력)을 만들었다. 4년 후에 인도인이 동쪽 바닷가에 표류하였다.
* 8세 선군 우서한(오사함) 갑인 7년 한기 5210년(BC. 1987년), 세 발 달린 태양새(3족오, 밝새, 불새, 불사조, 태양의 흑점 상징)가 대궐의 뜰에 날아왔는데 그 날개 길이가 석 자였다.
* 10세 선군 노을 원년 한기 5247년(BC. 1950년), 우리를 만들어 가축을 사육했다. 5년에는 신원목(조선시대 신문고의 원형)을 설치하여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다. 16년에 천하(바이칼호수)에서 거북이가 그림을 지고 나왔는데 윷판과 같았다.
* 13세 선군 흘달(대음달) 갑오 16년 한기 5430년(BC. 1767년), 주와 현을 나누어 정했다. 이 해 겨울에 은나라가 하 나라를 정벌하니 하 나라 걸 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읍차 말량으로 9한의 군대를 이끌고 돕게 한지라 은나라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그러나 뒤에 걸왕이 약속을 깼으므로 신지 우량을 파견하여 정복하였다. 무술 20년에는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한화, 무궁화, 구약성경에서는 샤론의 장미)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들을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익히게 하여 <국자랑>이라고 불렀다. 국자랑은 천지화를 머리에 꽂았으므로 <천지화랑>이라고도 불렀다.
* 14세 선군 고불 을해 56년 한기 5531년(BC. 1666년), 호구 조사를 하니 인구가 1억 8천만이었다.
* 15세 선군 대음(후흘달) 신사 2년 한기 5537년(BC. 1660년), 겨울 10월 양운국과 수밀이국(Sumer)의 사신이 특산물을 바쳤다.
* 16세 선군 위나 무술 28년 한기 5614년(BC. 1583년), 9한의 여러 한(왕)들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3신(한인, 한웅, 치우)께 제사를 모셨다. 닷새 동안 크게 연회를 베풀고 백성과 더불어 불을 밝혀 밤을 지새며 경을 외우고 마당밟기(지신地神밟기)를 하였다. 한 쪽은 횃불을 나란히 하고 또 한 쪽은 둥글게 모여 서서 춤을 추며 '애한哀恨의 노래' 를 함께 불렀다.
산에는 꽃이 있네, 산에는 꽃이 피네
지난 해 만 그루 심고 올해 또 만 그루 심었지
불함산에 봄이 오면 온 산에 붉은 빛
천신을 섬기고 태평을 즐긴다네
* 23세 선군 아홀 원년 갑신년 한기 5960년(BC. 1237년), 숙부인 고불가에게 낙랑골을 통치하도록 하고 웅걸손을 보내 은나라 땅에 6읍을 설치하고 가을 7월에 신독을 주살하였다.
* 27세 선군 두밀 원년 갑신년 한기 6200년(BC. 997년),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이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 34세 선군 오루문 원년 병오년 한기 6402년(BC. 795년), 5곡이 풍성하여 백성들이 기뻐하며 '도리가' 를 지어 부르니
하늘에는 아침 해 맑은 빛내려 비추고
나라에는 어진 이 큰 가르침 널리 내려와
큰 나라 배달나라 사람마다 마음 편하고
밝고 밝은 노래 속에 끝없이 태평하라
* 35세 선군 사벌 무오 50년 한기 6474년(BC. 723년), 장군 언파불합을 보내 바다의 웅습(일본 규우슈지방)을 평정하였다. 갑술 66년에는 조을을 파견하여 연나라 서울을 돌파하고 제나라 군사와 임치의 남쪽 교외에서 싸워 승리하였다.
* 36세 선군 매륵 갑인 38년 한기 6530년(BC. 667년), 협야후 배반명을 보내 바다의 도적을 토벌케 하였다. 12월에 3도島(일본)가 모두 평정되었다.
* 45세 선군 여루 신축 17년 한기 6817년(BC. 380년), 연나라가 변두리를 침범하여 장수 묘장춘이 이를 쳐부수었다. 병진 32년에 연 나라 배도가 쳐들어와서 번조선 대장군 우문언에게 명하여 이를 막게 하고 진조선과 막조선도 군대를 보내 구원하니 연나라와 제나라 연합군을 오도하에서 쳐부수어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신미 47년에는 북막의 추장 액니거길이 말 200필을 바치며 함께 연나라를 칠 것을 청했다. 번조선 젊은 장수 신불사를 보내 공격하였다.
* 46세 선군 보을 원년 경진년 한기 6856년(BC. 341년) 12월, 번조선 왕 해인이 연나라가 보낸 자객에게 시해 당하니 5가가 다투어 일어났다.
* 47세 선군 고열가 기묘 14년 한기 6915년(BC. 282년), 선군왕검의 묘를 백악산에 세우고 유사에게 명하여 사철 제사하며 선제께서도 1년에 한 번 친히 제사를 모셨다.
* 임술 57년 4월에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인이었다. 계해 58년 3월 하늘에 제사하던 날 5가들과 의논하여 어진이를 추대토록하고 왕위를 버리고 입산수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이에 5가(고조선의 벼슬 또는 큰 부족 이름, 우牛 마馬 구狗 저猪 양가羊加)가 나라 일을 함께 6년 동안 다스렸다.
# 선군왕검의 조선시대 마지막 47세 선군 고열가 계해 58년 3월 한기 6959년(BC. 238년) 궁전, 제천행사를 마치고 재상들과 5가의 족장들이 옹립한 가운데 선군 침통한 표정으로 유고를 한다.
선군 고열가 : 짐이 부덕하고 어질지 못하여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은 일이 많고 장수 들은 저들의 용맹을 믿고 함부로 날뛰며 백성을 압제하니 나라 살림은 피폐롭고 백성들 의 생활은 날로 어려워지는도다. 옛 우리 선조 열성들께서는 나라를 여시고 대통을 이 어가심에 그 덕이 넓고 멀리까지 미쳤으며 오랜 세월 동안 국태민안하였거늘 이제 왕도 는 쇠미하고 여러 왕들이 힘을 다투고 있어 나라의 장래가 백척간두에 섰다. 짐은 덕 없고 겁 많아 능히 다스리지 못하니 어진이를 불러서 무마시킬 방책도 없고 백성들도 흩어지니 생각컨대 그대들 5가는 어질고 좋은 사람을 찾아 추대하도록 하라!
우가 족장 : (재상과 5가의 족장들 일제히 엎드려 부복하여 아뢴다.) 폐하! 양위하신다는 말씀을 거두시옵소서. 나라가 피폐로와졌다 하오나 이는 소신들이 폐하를 보필하지 못 한 죄 막중하옵고 백성을 평안치 못하게 함 또한 소신들의 잘못이오니 폐하의 덕화가 그릇됨이 아니옵니다. 양위의 말씀을 거두시고 오히려 저희들을 치죄하소서.
구가 족장 : 변경이 혼란하여 잠시 나라가 어지러웠사오나 이는 곧 회복될 일이 옵니다. 선위하신다는 말씀은 거두시고 열성조의 통치를 새롭게 하소서.
재상 아려사마 : 폐하의 어짐과 덕화는 만방에 떨쳤으나 우매한 백성들이 알지 못하는 바 잠시 혼미하였더라도 곧 하늘의 보살핌이 돌아오리니 덕화를 이루어 영화를 누리소서.
선군 고열가 : (눈물을 훔치며) 제신들의 충언은 한결같이 짐을 감동케 하는 바요. 허나 이 제 국기를 보전하기 위해서 짐이 내린 결단이니 더 거론치 말고 시행토록 하시오. (재 상 아려사마를 돌아보며) 크게 옥문을 열되 사형수 이하 모든 죄수를 방면하시오. (선 군 고열가, 말씀을 마치고 퇴장한다. 재상 아려사마 선군의 옷깃을 부여잡고 통곡한다. 궐 안에 통곡소리 가득하다.)
# 이튿날 마침내 선군 고열가,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 하여 신선이 되니 이에 5가의 족장들이 공화제로 나라 일을 다스리기를 6년이나 하였다.
# 선군왕검 조선시대 47세 선군 고열가 임술 57년, 선군 고열가 선위 1년 전, 한기 6958년(BC. 239년), 수유후 기비의 성. 해모수가 100여명의 장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수유후 기비를 방문한다. 해모수는 5룡의 수레를 타고 태양새 깃털 모자를 썼으며 얼굴빛이 찬란하여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해모수를 맞이하는 수유후 기비, 눈 둘 곳을 모른다.
수유후 기비 : (성문 앞에서 엎드려 해모수를 맞아들이며) 천왕랑께서 몸소 누추한 성을 찾 아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해모수 : (말에서 황급히 내려 수유후 기비의 양 손을 잡아 일으키며) 일어나시오. 과찬의 말씀이요, 이 몸이 웅심산에서 일어섰다고는 해도 여섯 자 몸조차 누일 곳 없는 사람이 요.
수유후 기비 : 겸양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천왕랑께서는 이미 따르는 백성과 병사들이 수 십만이라고 알고 있사옵니다. (안내하며) 궁성으로 드시지요.
해모수 : (상좌에 앉아 수유후와 제신들을 내려다 보며) 변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 이 휘하에 몰려들었을 뿐 통치라 말하기 부끄럽습니다. 오늘 수유후를 뵙기를 청한 바 는 천하가 어지러우므로 백성이 도탄에 빠져있고 선군께서는 선위를 한 지 벌써 6년, 5 가의 족장들이 나라를 다스린다고는 해도 온 나라 곳곳까지 힘이 미치지 못하여 나라는 우환이 거듭되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있습니다.
수유후 기비 : 미약한 이 사람도 크게 걱정하고 염려하였으나 역시 힘이 미치지 못하여 하 늘을 우러러 한탄하는 바입니다.
해모수 : 수유후가 도와주시면 옛 열성조의 권위를 되찾아 새로이 나라를 일으키려 합니다.
수유후 기비 : 성인의 말씀을 어찌 쫓지 않으리요. 미약하나 지성으로 돕겠나이다.
해모수 : 고맙소이다. 수유후를 번조선의 왕으로 책봉하겠소. 상하 운장을 맡아주시오. 상하 운장은 나라의 요충이니 방비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을 안돈해주기 바라오.
* 선군왕검의 조선시대 47세 선군 고열가 임술 57년, 선군 고열가 선위 1년 전, 한기 6958년(BC. 239년), 해모수가 웅심산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 사람이었다. 해모수는 몰래 수유(수유후 기비)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령하고는 천왕랑이라 칭했다. 수유후 기비를 권하여 번조선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의 운장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하는 바라. 선제 해모수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이라 할 만 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오시니 이는 47세 선군 고열가 57년으로 임술 4월 8일이라. 웅심산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에 쌓았다. 태양새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의 칼을 차시며 5룡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에는 하늘로 오르시더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 북부여 시조 선제 해모수 기사 8년, 선군시대 마지막 47세 선군 고열가 양위 6년 후, 한기 6965년(BC. 232년), 해모수께서 무리를 이끌고 가서 옛 도읍의 5가 족장들을 회유하니 마침내 공화의 정치를 철폐하고 만백성의 추대로 선제가 되었다.
* 경진 19년 한기 6976년(BC. 221년), 기비가 죽으니 아비의 뒤를 이어 아들 기준을 번조선 왕으로 봉하였다.
* 병오 45년 한기 7002년(BC. 195년),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인 위만이 망명을 요구했으나 선제께서는 이를 허락지 않으셨다. 번조선 왕 기준이 어리석게도 위만의 계략을 눈치 채지 못하고 위만에게 박사 칭호를 허락하여 상하 운장을 떼어서 위만에게 봉했다. 위만은 세력을 넓히더니 기준을 축출하고 번조선을 차지했다.
* 북부여 3세 선제 고해사 임신 원년 정월 한기 7028년(BC. 169년), 낙랑왕 최숭이 곡식 300섬을 해성에서 바쳤다. 이 보다 앞서 최숭은 낙랑으로부터 진귀한 보물을 산처럼 가득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의 서울 왕검성에 이르니 이때가 시조 해모수 병오년(한기 7002년, BC. 195년)의 겨울이었다.
* 북부여 4세 선제 고우루(해우루) 신유 원년 한기 7077년(BC. 120년), 고진(고주몽의 증조부, 고모수의 조부)을 발탁하여 서압록을 수비하도록 하니 병력을 늘리고 성책을 설치하여 우거를 대비하는데 공이 있었으므로 승진시켜 고구려후(고구려가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전 제후국)로 삼았다.
# 북부여 4세 선제 고우루 계유 13년 한기 7089년(BC. 108년), 위만의 번조선 우거의 성.
대신 합려하 : 전하, 한의 무제(유철)가 번조선을 치기 위하여 대대적인 군사 동원령을 하달 하였다는 보고가 변방에서 속속 들어오고 있나이다.
장수 성기 : 전하, 심려치마소서. 막강한 군사력이 철통 같이 대비하고 있습니다.
장수 최 : 무제의 군사가 많다고는 하나 멀리서 출정하여 한 달을 걸어야 우리 변경에 닿을 것이므로 그 때 피로하고 지친 적을 교란하고 기습하여 혼란에 빠뜨리는 계교를 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므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거왕 : 옳은 말이요. 먼 길에 지치고 시달린 적군을 치는 건 칼로 풀베기요. 복병을 배치 하여 요로마다 군사를 놓아 적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선발대를 막고 때로는 후진을 공격하여 혼란을 부추기시오. 단, 중군은 건드리지 마시오. 적은 군사로 대군을 맞대적 하는 건 병가 불문율이니. 더불어, 필시 보급로가 멀 것이므로 보급로를 차단하는 교란 도 동시에 벌이시오.
# 그 날 밤 장수 최의 막사. 조선족 유민 고두막(뒤에 북부여 5대왕이 됨) 대장이 상좌에 앉고 조선족 장수 최를 필두로 장수 참, 장수 협, 장수 음들이 은밀하게 모였다.
장수 최 : 우거왕은 선대에 나라를 침탈하고 국권을 도둑질하여 백성을 고혈을 착취하였으 므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마침 한 무제가 침략해오므로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한나라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우거를 쳐 없애고 다음 에 한나라와 일전을 벌인다면 옛 조선의 국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까지 절치부심 기회를 기다렸는데 이제 하늘이 내리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장들의 의견은 어떠시오.
장수 참 : 우리 네 사람이 거느린 군사만으로 우거를 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 입니다. 동원할 군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장수 협 : 한나라는 우거가 목표고 결국 그들은 우거를 멸하면 물러갈 것입니다. 고토를 회 복하는 일은 그 때 가서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장수 음 : 아니지요. 본인의 판단으로는 한나라가 우거를 멸하면 반드시 저들의 통치를 공 고하게 구축하고 퇴각할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한나라와 일전을 벌여야 하는데 우리는 작고 한나라는 크니 어렵습니다. 한나라와 싸우기 보다는 우거와 싸우는 것이 쉬운 길 입니다. 여기 참석한 고두막 의병장께서 의병들이 봉기하도록 독려할 것입니다. 군세는 약하지만 번조선 유민을 모아 의병을 일으켜 여러분 휘하의 군사들과 합세한다면 능히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수 최 : 그렇더라도 우거와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은 군세로 보아 우리가 불리합니다. 계 교를 쓰는 수밖에. 우거가 제거되면 우거의 군사는 일시 혼란을 일으키고 흩어질 것이 므로 그 때 4개 성문에서 일제히 봉화를 올려서 봉기하되 한나라가 쳐들어왔다고 선동 하시오. 세 분 장수는 혼란을 틈타 우리 거사에 반항하는 장수들을 먼저 베고 군사를 수습해주기 바라오. 혁명의 성공을 빕시다. (장수들 팔뚝을 칼로 베어 술잔에 피를 흘 려 잔을 들어 마시고 맹세한다.)
한 무제 병거(싸움수레, 전차) * Daum Blog 인용
# 한나라 무제의 궁전
한 무제 : (불같이 노해서) 우거는 자체 내 반란으로 죽었고 평나(우거의 성)는 무주공산이 다. 내분으로 우거의 성은 오합지졸인데 육군사령관 순채와 해군사령관 양복은 벌써 출 정한지 한 달 여, 뭘 꾸물대고 있다는 말인가?
대신 위산 : 폐하, 진노를 거두시옵소서. 이미 우거가 죽었으니 진격만하면 성문이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우거가 붕괴되었기에 서두르지 않을 뿐이며, 수륙 30만 대군을 이끌 고 진격함으로 다소 지체된 듯하옵니다.
한 무제 : 위산은 육군사령관 순채를 맡고 공손수는 해군사령관 양복에게 짐의 명을 전하 라! 더 지체하면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책임을 물으리라!
* 북부여 4세 선제 고우루 계유 13년 한기 7089년(BC. 108년), 한의 무제(유철)가 우거를 멸하고 4군을 설치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위만의 변경 평나를 노략질하였다. 이에 고두막( 뒤에 북부여 5세 왕)이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의 침략군을 연파하였다. 이 때 그 지방의 백성들 모두가 사방에서 일어나 호응함으로써 싸우는 군사를 도와 크게 떨쳐 보답하였다. 한 무제는 전쟁에 패한 죄를 물어 육군사령관 순채와 해군사령관 양복, 무제의 사신 위산, 공손수 네 사람을 능지처참에 해당하는 기시형(능지처참형)에 처했다.
* 북부여 4세 선제 고우루 갑오 34년 한기 7111년(BC. 86년) 10월, 동명왕이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장차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자 하니 왕은 이 땅에서 옮겨가시오’ 라고 했다. 왕이 매우 곤란해졌다. 마침내 선제는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였다. 동생인 해부루가 즉위하였는데 동명왕은 여전히 군사를 앞세워 위협하기를 끊이지 않으매 군신이 이를 매우 어렵게 여겼다. 국상 아란불이 ‘통하 물가 가섭의 벌판에 땅이 있는데 땅은 기름지고 5곡은 썩 잘 됩니다. 도읍을 둘만한 곳입니다’ 라고 하여 왕께서 도성을 옮겼다. 이를 ‘가섭원부여 또는 동부여’ 라고 한다. (이후 북부여에서 해부루의 동부여가 갈려나가고 북부여는 5세 선제 고두막, 6세 선제 고무서까지 2대가 더 지속됨, 7세가 고주몽임)
* 동부여(가섭원부여) 시조 선제 해부루 임인 8년, 한기 7118년(BC. 79년), 하백녀 유화부인이 나들이를 갔는데 부여의 황손 고모수(본명이 불리지며 고구려후 고진의 손자)가 유혹하더니 강제로 압록강변의 어떤 집에서 자기 멋대로 하여버리고는 고모수는 승천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유화의 부모는 유화가 무모하게 고모수를 따라갔음을 책망하여 구석방에 딸을 가두어버렸다. 왕께서는 이를 이상히 여겨 궁전의 깊은 방에 가두었다. 그 해 5월 5일 유화부인은 큰 알을 낳으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름을 주몽이라고 불렀는데 생김새가 뛰어났으며 나이 7세에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 이라고 불렀다.)
* 동부여 2세 선제 금와는 아들 7명을 두었는데 고주몽이 금와왕의 신임을 받고 있으므로 태자 대소는 왕위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유화부인이 이를 눈치 채고 일러주었으므로 덕으로 사귄 친구 오이, 협보, 마리와 함께 동남쪽으로 도망하여 엄리대수(분릉수)에 닿았는데 건널 수 없자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인데 추격병이 쫓으니 어찌하란 말인가?’ 하였더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건넌 뒤 곧 흩어지니 추격병은 되돌아갔다.
* 북부여 6세 선제 고무서 계해 2년 한기 7139년(BC. 58년) 왕께서는 아들이 없었는데 고주몽을 보고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공주로써 사위를 삼았는데 즉위하니 나이 23세였다. 고구려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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