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평화 사회체제개혁 자서전/청소년종합교양 <아라한우학>

아라한우학于學 : 2. 운문韻文 : 시詩, 시조時調, 50여 편篇 |

북새 2009. 10. 25. 03:21

아라한우학于學

2. 운문韻文 

 

, 시조時調   (총 50여 편)

 

 

 

<운문韻文>

 

 

- 차례 -

 

 

1. 하피첩

2. 청산은

3.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4. 꽃

5. 해에서 소년에게

6. 삶

7. 청산리 벽계수야

8. 강벽조유백

9. 진달래꽃

10. 서시

11. 귀천

12. 소년이로학난성

13. 일일부독서

14. 추구

15. 북정가

 

 

 

* 이천만 편 (16 -- 28)

 

16. 봄꽃씨

17. 봄

18. 서시

19. 부인소고

20. 잔

21. 안산의 봄

22. 엽서

23. 바느질

24. 박꽃

25. 슬픈 사연 - 밤의 노래

26. 슬픈 사연 - 가면

27. 진주

28. 허수아비 명상

28. 불안佛眼

 

 

 

29. 가을날

30. 기도

31. 낙엽

32. 수선화

33. 미리보 다리

34. 5월의 노래

35. 귀

36. 하늘의 융단

37. 비파행

38. 산해경

39. 단가행

40. 귀거래사

41. 산중문답

42. 장진주

43. 설강

44. 망천문산

45. 망여산폭포

45-1 기러기

46. 칠보시

47. 등고

48. 모란이 피기까지

49. 무지개

50. 황무지

51. 향수

52. 金樽美酒千人血금존미주천인혈

54. 승무僧舞

 

 

 

 

 

1. 다산茶山 정약용의 가계家誡, 하피첩霞帔帖

 

 

* 하피는 조선시대 왕비나 빈들이 입던 옷. 다산은 1810년 전남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한양의 아내 홍씨가 시집 올 때 입었던 붉은 노을 색 옷, 이제 낡아 헐어져서 색깔이 바랜 치마를 보내오자 이를 잘게 잘라 두 아들에게 가계를 써 보내고 나머지 천에는 매화, 참새 그림으로 족자를 만들어 시집간 딸에게 보냈다.

 

 

․하피첩霞帔帖에 붙여

 

病妻寄敞裙병처기창군

千里託心素천리탁심소

歲久紅己褪세구홍기퇴

悵然念衰暮창연염쇠모

裁成小書帖재성소서첩

聊寫戒子句요사계자구

庶幾念二親서기염이친

終身鑴肺腑종신휴폐부

 

 

병든 아내가 헤진 치마를 보내왔네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흘러간 세월에 붉은 빛 다 바래서

만년에 서글픔을 가눌 수 없구나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2.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潘 창공혜요아이무반

聊無愛而無憎兮 야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 여수여풍이종아

(고려 말 나옹선사懶翁禪師 법명法名 혜근慧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날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비워놓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 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3. 대 그림자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한 톨 일지 않고

달 물밑을 비춰도

물 위 흔적 없네

  (법정스님)

 

4.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5. 해에게서 소년에게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 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조그만 산 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 나팔륜(나포레옹), 모(모퉁이), 고(그), 조(저), 똑(꼭)

(최남선, 대한 최초 현대시)

 

 

6. 삶

 

 

생활이 그대를 속이드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마라

설음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잖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건 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

 

(푸쉬킨)

 

 

7.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途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리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평양 기생 명월이 벽계수 임백호에게)

 

 

* 청산리(청산 속), 벽계수(시냇물), 수이(빨리), 감(흐름), 일도창해(한 번 바다에 도달하면), 명월(황진이의 아호雅號, 밝은 달), 만공산(하늘과 산에 달빛이 가득하니)

 

 

8. 江碧鳥逾白 강벽조유백
 山靑花欲然 산청화욕연
 今春看又過 금춘간우과
 何日是歸年 하일시귀년
 (두보杜甫 무제無題)

 

 강물이 푸르니 새는 더욱 희고
 산빛이 푸르러 꽃은 불붙는 듯 하도다
 올 봄도 그냥 지나가니
 어느 날이 돌아갈 해일런가

 

 9. 진달래꽃

 

나보기가 엮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10.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잎새(잎사귀)

(윤동주)

 

 

11.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12.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노학난성하니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이라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하여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이라

(明心寶鑑명심보감)

 

 

소년은 쉬이 늙어도 학문하기는 퍽 어렵다

빛처럼 빨리 지나가는 세월을 가벼이 여기지마라

어느 새 봄풀이 돋았으나

곧 뜰 앞의 오동나무 잎새 떨어지는 가을 오리라

 

 

13. 一日不讀書 일일부독서

口中生荊棘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독서 게을리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의사義士)

 

 

14. 추구追句

 

 

* 江山萬古主 강산만고주

人物百年賓 인물백년빈

강과 산은 만고萬古의 주인이요

사람은 백년동안 잠시 왔다가는 손님이로다

 

 

* 春北秋南雁 춘북추남안

朝西暮東虹 조서모동홍

봄에는 북쪽, 가을에는 남쪽으로 기러기는 왕래하고

무지개는 아침에 서쪽, 저녁엔 동쪽에 빛나도다

 

 

*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

夏雲多奇峯 하운다기봉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봄 물 연못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여러 모양 봉우리

가을 달 밝게 하늘에 빛나고

겨울 산 한 그루 소나무 빼어난 그림처럼

(도연명陶淵明의 4시四時)

 

 

* 日月籠中鳥 일월롱중조

乾坤水上萍 건곤수상평

해와 달은 새장 속에 있는 새와 같고

하늘과 땅은  움직임이 부평초와 같도다

 

 

* 日暮鷄登時 일모계등시

天寒鳥入瞻 천한조입첨

날이 저물면 닭은 닭장에 오르고 

 하늘이 차면 새들은 처마에 든는도다 (처마첨)

 

* 細雨池中看 세우지중간

微風木末知 미풍목말지 

이슬비는 못 가운데서 형상을 볼 수 있고

바람 부는 것은 나무가지 끝에서 알 수 있도다

 

 

15. 北征歌북정가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頭滿江波飮馬無 두만강파음마무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백두산 돌은 칼 갈아 닳고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앤다

남아 20에 나라 편케 못하면

후세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

(남이장군)

 

 

* 이천만 편

 

 

16. 봄꽃씨

 

 

꽃씨알 속에

하늘

 

한 꺼풀 밑에

초록 봄

 

꽃씨 안에

나비의 입김

 

한 꺼풀 벗기고나면

뜨고있는 눈

 

꽃씨 안에

여울

 

꽃씨 안, 그 안에

도란거리는 소리

(이천만)

 

 

17. 봄

 

 

‘새싹’을 읽어봐

- 봄

 

‘나비’를 소리내서 읽어봐

- 봄

 

‘꽃’을 큰 소리로 읽어보라니까

- 봄

(이천만)

 

 

18. 서시序詩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하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슬픔은

슬픔 속에서 자라고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이겨가야합니다

(이천만)

 

 

19. 부인소고婦人小考

 

 

긴 머리로 어둠을 감싸고

은밀隱密한 목소리로 대화對話를 하며

 

때론 나비가 되어

내 딱딱한 머리 위로

유모러스하게 날아다니는 …

 

파란 봄 보리 빛 이마를

가까이

언제나 조용히 기대어오는 사람

 

소박한 잇새에

가득찬

흰빛 분말粉末의 잠과

 

검은 동공洞空에 침실寢室을 쌓고

작은 문으로 드나드는

오랜 전통傳統의 요람搖籃

(이천만)

 

 

20. 잔

 

 

생애生涯의 한 곳을 응시凝視하며

잔에 따룬 한 잔의 소주를 응시하며

눈 내리는 겨울밤을

술을 먹는다

목구멍에 차오르는 의식을 느끼며

앙금처럼 번져가는 슬픔을 보며

웃고싶다

 

아무도 웃지 않는 밤에

소주燒酒 한 잔 마실 사람도 없는 밤에

혼자 잔에 술을 따루며

한 술에 떨려오는 내장內臟을 길들이려고

나그네길을 나서고싶다

 

아무라도 붙잡고 볼을 비비고

가슴을 비벼대고

살을 섞고

단 한 마디 말이라도 나누고싶다

(이천만)

 

 

21. 안산의 봄

 

 

가슴을 열고

창가에 앉으면

 

먼데서

우뚝

앞에 와 선다

 

가슴엔

진달래

붉은 꽃다발

그리고

무엇인가 더 하고싶은 말

(이천만, 안산 - 고향 앞 산, 진산鎭山)

 

 

22. 엽서葉書

 

풍란風蘭

가을 볕

어깨춤 한 마당

 

하늘에서도

한 잎

바람 휘돌아치고

 

잎사귀

그래서

붉게 타지 않았을까

 

그리움 있어

(이천만)

 

 

23. 바느질

 

 

뜸을 들여

꿰매는 한밤

어머니는 가슴을 열었습니다

 

올올이 마음 풀어

감쳐가다가

귀 기울여

헤진 마음도 깁고

 

꽃다이

앞 섭에 박음질도 합니다

 

은빛 띠를 두른 바람은

청대 끝에 머물고

 

활을 긋는 손 끝에서

피어나는 불꽃

 

어머니는

또 하나

다른 생명입니다

(이천만)

 

 

24. 박꽃

 

 

지금은

잃어버린 기억記憶

 

언제나

열매되어

동그랗게 채울까

 

그 기억의 실마리를

흥부처럼 심으면

다시 박꽃은 필 수 있을까

(이천만)

 

 

25. 슬픈 사연事緣

 

- 밤의 노래

 

밤이 좋아라

어둠이 내리면

어둠의 너울을 쓰고

얼굴도 감추고

울음도

의식意識도 감추고

나는 슬픔을 감출 수 있어

 

밤은

가면假面 쓰지 않아도 되고

 

밤은

한 자락씩 너울거리고

 

밤은

어둠을 내리며 가슴 틔우고

 

밤은

밀착密着되어

사람도

도 없는

 

밤이 좋아라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그런 밤이 좋아라

(이천만)

 

 

26. 슬픈 사연

 

- 가면假面

 

숨겨져 있는

얼굴이었다

 

숨어야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천만)

 

 

27. 진주眞珠

 

- 진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파랗게

숨결을 토하다가

 

안으로 안으로

접어들어

거품이 되었다

 

끓는 가슴을

들어내지 못하고

고운 눈매로

마음을 채워

 

바다를 가슴으로

뜨는

별이 되었다

(이천만)

 

28. 허수아비 명상瞑想

    - 전교조 창립을 기념하여

 

 

빈 들을 지키는 나에게

새삼스러이

지난 날을 회고回顧해보라면

내 생명生命

참새들의 조잘거림의 언어言語 그것이었다

 

미명未明의 들에서

한 무리의 참새들은

내 머리 내부를

가로지르며

혹은 세로로 날으며

때로는 교차交叉되는 새 언어를 마구 생성生成했었는데

 

빛나는 하루 속에서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참새 부리 끝에서 햇살처럼 퍼져나가는

빛나는 언어였다

그 빛나는 하루 속에서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그 참새 부리 끝에 이슬방울처럼 맺힌

영롱한 언어 그것이었다

 

언어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게는

모두 말씀이었는데

세월歲月이 가면 갈수록

황폐荒廢해져가는 내 모습과는 달리

언어만은 생명을 얻어 살져가고 있었다

 

그 말씀은 내게 명령命令이었다

그 말씀이 내게 웃어라 하였다

그 말씀이 내게 일어서라 하였다

나는 말씀에 순치馴致된 한 마리의 참새였었다

 

본래 빈 들은 허공虛空이었으므로

참새떼들이 그 거친 들에

말씀의 종자種子를 뿌린 뒤에는

말씀의 종자가 깨어나서

온 들이 파랗게 일어서고 있었다

 

말씀을 거두어간 내 들은 지금 황량荒凉하다

그러나 나는

푸른 물결 출렁이었던

지난 여름을 기억記憶하면서

5월 그 때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

(이천만)

 

 

28-1. 불안佛眼

 

 

손가락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입을 열어 말없이 웃음으로써

세상 진리를 모두 다 품었으니

무상無常으로부터 불안佛眼이 눈을 뜨다.

와 무와 공을 알면

삶이 명백해지는데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천만, 화순 운주사를 다녀와서)

 

 

29.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던져 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남은 열매가 무르익도록 명령해 주시고

남국의 햇빛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시어

이들을 무르익으라 재촉하시고,

 마지막 남은 단맛이

포도주로 담뿍 고이게 하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제 고독한 사람은 오래도록 고독을 누릴 것입니다.

밤을 밝혀 책을 읽고 긴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불안에 떨며 가로수 길을 마냥 헤매일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30. 기도祈禱

 

나를 위험으로부터 피하게 해주십사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두려움 없이 위험을 직면하게 해주십사 기도하렵니다.

내 고통을 잠재워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구할 겁니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열망하기보다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인내를 바랄 겁니다.

내가 자신의 성공에서만 당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나의 실패에서도 당신의 손길을 알게 해주십시오.

(라빈 드라나드 타골)

 

 

31. 낙엽落葉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 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구르몽)

 

 

32. 수선화水仙花

 

 

골짜기와 언덕 위를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가

문득 나는 보았네, 수없이 많은

황금빛 수선화가 크나큰 무리지어

호숫가 나무 밑에서 미풍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은하수를 타고 빛나고

반짝이는 별들처럼 잇따라

수선화는 호반의 가장자리에

끝없이 줄지어 뻗쳐 있었네.

나는 한눈에 보았네, 흥겨운 춤추며

고개를 살랑대는 무수한 수선화를. 

 

호숫물도 옆에서 춤추었으나

반짝이는 물결보다 더욱 흥겹던 수선화,

토록 즐거운 벗과 어울릴 때

즐겁지 않을 시인이 있을건가,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그 광경이

얼마나 값진 재물을 내게 주었는지 나는 미처 몰랐었다. 

 

이따금 하염없이, 혹은 수심에 잠겨

자리에 누워 있으면

수선화는 내 마음 속 눈 앞에서 반짝이는

고독의 축복,

내 가슴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춤을 춘다.

(워즈워드)

 

 

33.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라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 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아폴리네르)

 

 

34. 5월의 노래 

 

 

오오! 찬란하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무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와

댄스로 나를 몰고 간다.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괴테)

 

 

35. 귀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장 콕도)

 

 

36. 하늘의 융단絨緞

 

 

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의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내 가난하여 오직 꿈만 지녔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내 꿈 밟고 가시는 이여

(예이츠)

 

 

37. 琵琶行비파행

 

심양강 나루에서 손님을 밤에 보내려니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바람 쓸쓸하다

주인은 말 내리고 손은 배에 타고

술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이 없네

취해도 즐거움 없는 이별을 하려하니

망망한 이별의 강에 달빛만 젖어 있네

그 때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려오니

주인도 손도 자리를 뜨지 못하네

 

소리 찾아 조용히 누구인지 물으니

비파소리 그치고 대답은 늦어

배를 옮겨 가까이가 자리를 청하며

술 따르고 등 밝혀 술자리를 다시 폈네

부르고 또 청해 겨우 나타났는데

비파 안고 얼굴을 반 쯤 가리웠네

축 돌려 현을 골라 두세 번 소리내니

곡조도 이루기 전 정이 먼저 흐르네

줄을 누르고 눌러 가락마다 마음 실어

평생에 못다한 마음속 한 호소하듯

눈섶을 내리깔고 손에 맡겨 비파 타니

마음속 숱한 사연 모두 털어 놓는듯

가벼이 누르고 비벼 뜯고 다시 퉁기니

처음은 예상곡 뒤에는 육요구나

큰 줄은 소란스런 소나기같이

작은 줄은 가냘픈 속삭임같이

소란함과 가냘픔 섞어서 타니

큰 구슬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듯

때로는 꾀꼬리 소리 꽃가지 사이 흐르듯

샘물이 얼음 밑을 흐느끼며 흐르는듯

찬물이 얼어붙듯 줄을 잠시 멈추니

멈추는 그대로 소리 또한 멎었네

그러자 깊은 근심 남모르는 원한 일어

소리 없음이 있음보다 애절하네

갑자기 은병 깨져 술이 쏟아져나오듯

철기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딪쳐 울듯

곡이 끝나 비파 안고 한 번 그으니

네 줄이 한꺼번에 비단을 찢는 소리

강 위의 모든 배들 고요히 말을 잊고

오직 강 가운데 가을 달만 휘엉청

시름에 잠겨있다 비파를 거두고

의상을 정돈하고 앉음새를 고친 후에

스스로 말하기를 본시 서울 여자로

집은 하마릉 아래 있었다 하네

열셋에 비파타기 모두 배우고

이름이 교방 제일부에 속해 있었는데

곡을 끝내면 늘 스승이 감복하였고

화장하면 미인들이 질투를 하였다 하네

오릉의 젊은이들 다투어 선물을 주어

한 곡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었고

자개박은 은빗을 박자 맞추다 깨뜨리고

붉은 비단치마 술로 얼룩졌었다 하네

웃고 즐기며 한 해 한 해 보내느라

세월 가는줄을 모르고 지냈는데

동생은 군대가고 양어머니마저 죽고

어느덧 나이 들어 얼굴빛이 변하니

문 앞은 쓸쓸하고 찾는 손님도 드물어

늙어서 어쩔 수 없이 상인의 아내되니

상인은 이익보다 이별을 가벼이 여겨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갔다 하네

강어귀에 왔다 갔다 빈 배만 지키자니

배 비추는 밝은 달에 강물만 차가와

밤이 깊어 문득 어린시절 꿈을 꾸면

꿈도 울어 화장 눈물 얼굴을 적신다 하네

비파 소리 듣고 이미 탄식 했는데

여인의 말 듣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나네

우리는 같은 천애의 불행한 신세

상봉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나는 지난해에 서울을 떠나

심양성에 귀양와 병들어 누웠다네

심양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한 해가 다가도록 악기소리 못 듣고

분강 가까이 살아 땅이 낮고 또 습해

갈대와 대숲만 집을 둘러 무성타네

그 간 아침 저녁 들은 소리라고는

피맺힌 두견새와 원숭이의 슬픈 소리

봄 강의 아침 꽃과 가을밤 달빛 아래

가끔 술을 얻어 홀로 잔을 기울이고

어찌 산 노래와 초동의 피리 없으랴만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어주기 어렵다네

오늘 밤 그대의 비파소리 들으니

신선 음악 들은 듯 귀 잠시 맑았네

사양말고 다시 앉아 한 곡 들려주오

내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니

나의 말에 느꼈는지 한동안 서 있더니

물러앉아 줄을 울리니 곡조는 점점 급해져

슬프기 그지없어 앞의 곡과 다르니

듣는 모든 사람 소리죽여 흐느끼네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는가

강주사마의 푸른 적삼 흠뻑 젖어있구나

(백거이)

 

 

38. 산해경山海經을 읽으며

 

 

초여름에 초목이 자라

집 둘레에 잎가지 무성하니

뭇 새들은 의탁할 숲이 있음을 기뻐하고

나도 또한 초가집을 사랑하노라.

이미 밭 갈고 또한 씨 뿌려

가끔씩 나의 책을 읽는다.

외딴 마을이라 수레바퀴자국 먼데

자주 옛 친구의 수레까지도 돌아가게 했다.

흔연히 봄날 술을 마시면서

술안주로 텃밭을 채소를 뜯었다

보슬비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훈훈한 바람이 비와 함께 부누나

두루 주왕전을 읽고

빠짐없이 산해도를 본다

두루두루 우주를 다보니

즐거워하지 않고 어이하리.

(도연명)

 

39. 短歌行단가행

 

 

술잔을 대할 때 노래 불러라

인생살이 그 얼마이냐

아침이슬과 같은 것

지난날의 괴로움은 가버렸네

 

감개 더욱 무량하여

시름을 잊기 어렵도다

무엇으로 근심을 풀것인가

오직 술이 있을뿐이로다

 

그대의 푸른 깃을

아득히 사모하며

오직 그대 있음으로써

생각에 잠겨 지금에 이르렀다

(조조)

 

40. 歸去來辭귀거래사

 

 

돌아가련다

논밭이 곧 황폐해질 터인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여태 스스로 마음을 몸의 노예로 삼고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했을까.

지난 일은 뉘우쳐도 소용없고

닥칠 일은 바르게 할 수 있음을 알겠다.

사실 길을 잃고 헤맨 것이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지금이 옳고 어제는 틀렸음을 깨달았다.

배는 기우뚱 기우뚱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펄럭펄럭 옷자락을 날린다.

나그네에게 앞길을 묻고 새벽빛의 희미함을 한스러워 했다.

곧 대문과 지붕이 보여 기뻐하며 달려간다.

하인들이 반가이 맞아주고 아이들이 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당의 세 갈래 오솔길은 황폐해지려 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 있다.

아이의 손을 끌고 방에 들어가니 술이 단지에 가득하다.

병과 잔을 끌어다 스스로 부어 마시고

힐끗힐끗 뜨락의 나뭇가지를 보며 기쁜 낯을 짓는다.

남쪽 창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있으니

무릎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곳에서도 편안할 수 있음을 안다.

매일 정원을 거닐어도 정취가 있고

문은 세웠지만 항상 닫혀있다.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여 돌아다니며 쉬다가

간혹 고개 들어 사방을 바라보면

구름은 무심히  멧부리를 빠져나오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돌아갈 때임을 안다.

햇빛은 뉘엿뉘엿 물러나려다

외로운 소나무를 쓰다듬으며 서성거린다.

돌아가련다, 세속적인 사귐은 끊기를 청하니

 세상과 나는 서로를 버렸거늘

이제 다시 가마를 타서 무엇하겠가.

친척들의 정다운 얘기에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없애련다.

농사꾼이 내게 봄이 왔다 알리니

서쪽 밭에 할 일이 생기겠다.

때로는 포장수레를 몰게 하고

때로는 배를 저어서 구불구불 골짜기를 찾아가고

험한 길로 고개를 지난다.

나무는 싱싱해서 울창해지고

샘은 졸졸 흐르기 시작한다.

만물이 제 때를 만났음을 부러워하고

나의 삶이 끝나감을 느낀다. 끝나 버렸구나.

세상에 육체를 맡길 날이 또 얼마나 되겠는가.

어찌 마음대로 가고 머무르지 않겠는가.

어찌 서둘러 어디로 가겠는가.

부귀도 바라지 않고 신선의 땅도 기약할 수 없다.

좋은 시절 떠올리며 홀로 거닐거나

지팡이 꽂아두고 김 매고 흙 북돋운다.

동쪽 언덕 올라 천천히 휘파람 불고

맑은 물가에서 시를 짓는다.

다만 자연의 조화에 맡겨 최후를 맞으려는데

천명을 즐길 뿐 또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도연명)

 

 

41. 山中問答산중문답

 

 

왜 벽산僻山에 사느냐고요?

말없이 웃어도 마음은 편하네요.

물 위에 뜬 복숭아 꽃잎 아득히 흘러가네요

여기가 바로 꿈결같은 세상이지요.

(이()백, 벽산 - 깊은 산)

 

 

42. 將進酒장진주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 

又不見 

高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如雪 

人生得意須盡환 

莫使金樽空對月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岑夫子,丹丘生 

將進酒,君莫停 

與君歌一曲 

請君爲我側耳聽 

鍾鼎玉帛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 

 

古來賢達皆寂莫 

惟有飮者留其名 

陳王昔日宴平樂 

斗酒十千恣歡謔 

主人何爲言少錢 

且須沽酒對君酌 

五花馬,?千金구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삐 흘러 바다로 가 다시 못 옴을

또한, 보지 못하였는가

고당명경에 비친 백발의 슬픔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었다네

기쁨이 있으면 마음껏 즐겨야지

금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나

하늘이 준 재능은 쓰여질 날 있을 테고

재물은 다 써져도 다시 돌아올 것을

양은 삶고 소는 저며 즐겁게 놀아보세

술을 마시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잠부자, 그리고 단구생이여

술을 마시게, 잔을 쉬지 마시게

그대들 위해 노래 한 곡하리니

모쪼록 내 노래를 들어주시게

보배니 부귀가 무어 귀한가

그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

옛부터 현자 달인이 모두 적막하였거니

다만, 마시는 자 이름을 남기리라.

진왕은 평락전에 연회를 베풀고,

한 말 술 만금에 사 호탕하게 즐겼노라

주인인 내가 어찌 돈이 적다 말하겠나

당장 술을 사와 그대들께 권하리라

귀한 오색 말과 천금의 모피 옷을

아이 시켜 좋은 술과 바꾸어오게 하여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 시름 녹이리라.

(이()백)

 

 

43. 江雪설강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아니하고

들에는 사람 자취 전혀 없네.

도롱이에 삿갓차림 늙은이,한 척 배 띄워놓고

눈 내리는 겨울 강에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

(유종원)

 

 

44. 望天門山망천문산

 

 

천문산 허리질러 초강이 흐르니

푸른 물 동으로 흘러 여기서 구비치네

초강 양쪽 푸른 산 마주 우뚝 솟았는데

돛을 편 배 한 척 하늘가에서 내려오네

(이()백)

 

 

45.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

 

 

향로봉에 햇살 들어 붉그레 안개 피어나는데

멀리 폭포 바라보니 어허 냇물이 걸려 있네.

날아 흘러 곧바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구만 리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졌나?

(이()백)

 

 

* 구양수의 기러기

 

紗窓未曉黃鶯語  蕙爐燒殘炷

錦羅幕度春寒  昨夜裏三更雨

繡簾閑倚吹輕絮 斂眉山無緖

把花拭淚向歸鴻 問來處逢郞否

 

사창 아직 날도 밝지 않았거늘 꾀꼬리 소리 들려오고

혜초향로 남은 심지는 다 타버렸구나.

비단 장막 봄추위 막았는데 어젯밤 삼경에 비가 내렸는가.

수놓인 발에 한가히 기대었거늘 가벼운 버들솜 바람에 나부낀다.

눈살 찌푸르고 마음 갈피 못잡아

꽃가지 꺽어들고 눈물 씻고는 돌아오는 큰 기러기 향해 물어보았네.

너 오는 곳에서 내 낭군 보았는가라고.

 

 

46. 七步詩칠보시

 

 

煮豆燃豆箕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콩을 삶는데 콩대를 때니  

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은 3국지에서 보 듯, 조조의 넷째 아들이었는데 문재가 뛰어나 조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조비는 조조의 장자로써 장차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는데 아우 조식이 늘 마음에 걸렸다. 모사들이 조식을 죽이라고 권유하자 조비가 아우 조식을 불러 시를 짓게 하였다. 일곱 걸음에 시를 짓지 못하면 죽인다고 하여 조식이 일곱 걸음을 걸으며 울며 지은 시다.)

 

 

47. 登高등고

 

바람 차고 하늘은 높은데 잔나비 울음 슬프고

물은 맑고 모래 하얀데 새는 날아 내려 앉네.

수많은 나무에서는 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다함이 없는 긴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오네.

만리 타향 슬픈 가을에 나는 여전히 나그네라

병든 몸을 이끌고서 홀로 대에 올랐는데,

고생했던 지난날들 하얀 머리가 한스러워

늙은 몸이 이제 잠시 탁주잔을 멈췄다네.

(두보가 벼슬을 잃고 낙향하며 지은 시)

 

 

48.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49. 무지개

 

하늘에 걸린 무지개 볼 적마다

어렸을 적 그랬듯이

내 가슴이 뛴다.

어른 된 지금도 내 가슴 뛰거든

내 늙어도 그러리라

그렇지 않고 어이하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인저.

바라노니 다가오는 나의 하루하루를

모두다 자연에의 경건으로 일어가게 하라.

(워즈 워드)

 

 

50. 황무지荒蕪地 - 죽은 자의 매장埋葬 중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니고,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 커녕 짐작도 못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바람은 상쾌하게 고향으로 불어요

아일랜드의 님아 어디서 날 기다려 주나?>

‘1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아신스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유명한 천리안 소소스크리스 부인은

독감에 걸렸다, 하지만

영특한 카드 한 벌을 가지고

유럽에서 가장 슬기로운 여자로 알려져 있다.

이것 보세요, 그네가 말했다.

여기 당신 패가 있어요. 익사한 페니키아 수부군요.

(보세요,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어요.)

이 건 벨라돈나, 암석의 여인 수상한 여인이에요.

이 건 지팡이 셋 짚은 사나이, 이 건 바퀴

이 건 눈 하나밖에 없는 상인

그리고 아무것도 안 그린 이 패는 그가 짊어지고 가는 무엇인데

내가 보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살당한 사내의 패가 안 보이는군요.

물에 빠져 죽는 걸 조심하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군요.

또 오세요, 에퀴톤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를 직접 갖고 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요새는 조심해야죠.

현실감 없는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밑으로

한 떼의 사람들이 런던교 위로 흘러갔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죽음이 망쳤다고

나는 생각도 못했다.

이따금 짧은 한숨들을 내쉬며

각자 발치만 내려보면서

언덕을 넘어 킹 윌리엄가를 내려가

성 메어리 울노스성당이 죽은 소리로

드디어 아홉시를 알리는 곳으로.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스테슨!

자네 밀라에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작년 뜰에 심은 시체에 싹이 트기 시작했나?

올해엔 꽃이 필까?

혹시 때 아닌 서리가 묘상을 망쳤나?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T. S. 엘리어트)

 

 

51.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52. 金樽美酒千人血 금존미주천인혈

玉盤嘉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금잔의 맛좋은 술은 천 명의 피요
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다
촛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드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성 또한 높다
(춘향전春香傳 이李 도령道令이 사또 생일잔치에서)


              

 

54. 승무僧舞

 

얇은 사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