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야기 13권> 157화 (계속)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기記, 김왕석 역譯
이천만李天滿 윤색潤索
<목차>
157. 바람화살(19)/ 158. 사바나Sabanna의 파수꾼(20)/ 159. 비수匕首(17)
157. 바람화살
스페인계系 브라질인人 가르토는 1932년 남미 페루정부의 의뢰를 받고 아마존강 원류源流의 하나인 야구아강江으로 갔다. 네 명의 다이아몬드광부鑛夫들이 그곳에서 원인 모르게 변사變死했는데 그 사인死因조사 의뢰를 받았다. 야구아강은 페루영토 이키토스항港에서 동남쪽으로 20Km 쯤 되는 원시림 안을 흐르는 아마존지류支流인데 사냥꾼들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독사들이 우굴거리고 재규어와 퓨마 등 맹수들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아직도 원시생활을 하는 부족들이 살고있는데 그들 중에는 목베기족이나 식인종들이 있다. 가르토는 세계 각지 특히 아마존에 서식하는 동물을 잡아 세계 각지의 동물원에 보냈으며 아마존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는 모험을 좋아하며 브라질에서 으뜸가는 사격수다. 가르토는 야구아강유역에서 함께 재규어를 생포한 원주민 파카영감과 원주민사냥꾼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가르토일행은 통나무배를 타고 원시림에 들어가 이틀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다이아몬드광부들이 야영을 한 흔적이 있고 그들의 시신屍身도 있었다. 죽은지 일주일이나 되었으므로 이미 해골이다. 그들은 그곳 어디엔가 있을 다이아몬드를 찾아다니다가 죽었다. 한 명은 백인이고 너머지 세 명은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시신 주변에 광석을 캐는 도구들이 널려있고 지남철과 지도도 있다. 총이 두 자루 있고, 도마, 칼, 냄비가 있었다. 술을 좋아했는지 많은 술병들이 뒹굴었다.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해골은 말이 없다. 뻥 뚫린 눈구멍이 그저 인생의 허무함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 용의선상容疑線上에 오른 것은 재규어와 들개다. 뼈에 짐승을 이빨자국이 남아있고, 짐승들의 발자국이 있었다. 오래된 발자국이라 확실치는 않으나 재규어와 들개발자국 같았다. 사실 그곳은 재규어의 영지다. 가르토는 파카영감과 함께 몇 년 전에 그 인근에서 재규어를 사로잡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사자가 아프리카초원을 지배하고, 뱀이 인디아의 산림을 지배하듯 아마존의 원시림은 재규어가 지배한다. 재규어는 광대한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포효하고 있었다. 그렇게 영토선언을 하고 영토에 들어오는 침입자를 찢어죽인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가르토일행에 끼어있는 원주민들은 범인이 재규어라고 단정했다. 그들은 재규어가 사람을 잡아먹은 사례를 들면서 재규어는 식인의 상습범이라고 지적했다. 그럴 것 같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르토는 사자, 범, 재규어 등 대형大形 고양이 종류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영지를 가지고 영지 안에 들어온 사람을 죽이고 잡아먹는다. 그러나 그들은 각기 다르다. 사자는 영지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우선 위협을 한다. 으르렁거리며 빨리 물러나라고 경고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습격을 한다. 사자가 계획적으로 사람사냥을 하는 일은 드물다. 21세기 초 아프리카에 철도부설공사가 진행되었을 때 일부 사자들이 인디아인부人夫를 습격하여 잡아먹은 일이 있었으나 그건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철도부설이 사자들의 영지를 통과하였으므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돌아다녔으며, 다이너마이트나 화약의 폭발 등으로 사자가 신경질이 되어 벌인 일이다. 거기에 비해 인디아의 범은 수시로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인디아의 범은 사람도 먹이의 하나로 간주하여 숲속에 숨어있다가 사람사냥을 한다. 인디아의 범은 영지 밖에서도 사람사냥을 했다. 그러나 아마존강유역에 사는 재규어는 좀 다르다. 그들은 광대한 원시림 깊은 곳에 영지가 있다. 사자는 시야가 툭 트인 초원에 영지를 갖고, 범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을주변까지 영지를 넓혀 돌아다니는데 재규어의 영지는 사람들의 거주지와는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들과 접촉하는 기회가 드물다. 재규어는 사자나 범에 비하면 조심스러웠고 겁이 많게도 보인다. 재규어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피한다. 사람을 보면 원시림으로 도망을 친다. 그래서 재규어는 사로잡기가 무척 힘들다. 그런 재규어가 모닥불을 피워놓고있는 사람들을 습격했다고 믿기 어렵다. 사람이 네 사람이고 총을 가지고있었다. 재규어가 관연 그런 모험을 했을까?
아마존의 원시림은 광대하며 재규어가 잡아먹을 먹이도 많다. 특히 그 지역에는 맷돼지의 일종인 페커리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어서 쉽게 잡을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왜 재규어가 사람을 습격하는 모험을 했을까? 현장에는 죽은 사람들이 재규어와 싸운 흔적이 없다. 모닥불을 크게 피우지도 않았고 총도 쏘지 않았다. 그들은 술을 마시다가 죽은 것 같았다. 재규어가 밤중에 습격을 했다고 해도 네 사람을 그렇게 조용히 죽일 것 같지 않다. 뼈에 남은 이빨자국은 재규어의 이빨자국이 아니라 들개인 것 같다.
재규어나 들개가 아니라면 독사毒蛇가 의심된다. 맘바다. 독사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있으나 함부로 그 무기를 쓰지 않는다. 독사가 먹이가 될 수 없는 큰 동물을 공격할 때는 자기를 방어하는 경우다. 자기가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 독사는 사람을 공격한다. 그것도 꼬리를 높이 쳐들어 소리를 내거나 대가리를 쳐들어 경고를 한 다음 그 경고가 통하지 않았을 때 공격을 한다. 방울뱀은 꼬리에서 방울소리를 낸다. 킹코브라는 머리를 2m나 세워올린다. 그러나 맘바는 다르다. 맘바는 그런 사전경고 없이 덤벼든다. 그 뱀은 자기가 위험하지 않아도 사람을 공격한다. 더구나 맘바는 한꺼번에 세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잠을 자던 나무꾼 세 명을 죽였다. 따라서 맘바가 광부들을 죽인 범인으로 의심받게 되었다. 가르토는 현장을 상세하게 조사했다. 죽은 광부들의 옷에 구멍이 있었다. 맘바의 독이빨이 찌른 구멍 같기도 하나 그것만으로 맘바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신들은 한군데 나란히 누워있다. 만약 맘바가 범인이라면 그렇게 얌전하게 누워 죽을 리 없다. 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코브라처럼 신경독을 가진 뱀과 살무사처럼 혈액독을 가진 뱀이다. 신경독에 물린 사람은 고통없이 조용히 마취상태로 죽는다. 이집트여왕 크레오파트라의 죽음이다. 그러나 혈액독에 죽는 사람은 세상의 오만五萬가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죽는다. 맘바를 비롯하여 그곳에 사는 독사는 모두 혈액독을 가진 뱀이므로 독사에 물렸다면 그렇게 얌전하게 죽을 수 없다. 가르토는 독사를 용의자명단에서 지웠다. 그렇다면 범인은? 가르토는 현장에 천막을 치고 사흘 동안 조사를 했다. 현장뿐만 아니라 그 주변일대를 샅샅히 조사했다. 나흘만에 중요한 단서端緖가 발견되었다. 현장에서 1Km 쯤 떨어진 풀밭에서 이상한 물건이 발견되었다. 길이 40Cm 쯤의 끝이 뾰쪽한 가느다란 막대기다. 바람화살이다. 남미의 일부 부족들이 사용하는 화살이다. 파카영감이 바람화살의 끝으로 자기 손가락을 찔렀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검붉게 변색變色되었다. 독毒이다. 그 바람화살은 떨어진지 오래되었는데도 끝에 묻혀있는 독의 효력이 아직 남아있었다. 강력한 독이다. 파카영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구아족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독을 만들 수 있는 부족은 야구아 외에는 없습니다.’
가르토도 야구아강유역에 살고있는 야구아족들이 바람화살을 잘 쏜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독이 다른 부족과의 거래품이라는 것도 안다. 야구아족이 만든 독은 작은 단지에 담겨서 아주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남미부족들은 대부분 바람화살로 새를 잡는다. 나무에 앉아있는 새들에게 몰래 다가가서 바람화살을 날렸는데 적중률은 높지 않았다. 다섯 번 에 한 번 정도다. 그래서 바람화살은 사냥도구였으나, 큰 짐승은 활로 잡고, 그 보다 더 큰 짐승은 창으로 잡는다. 그런데 야구아족은 다른 사냥도구는 쓰지 않고 오직 바람화살만 사용한다. 야구아족의 바람화살은 정확하다. 20m 이내의 거리면 백발백중百發百中이다. 그들은 바람화살로 원숭이를 잡는다. 원숭이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높은 나뭇가지로 도망가기 때문에 다른 부족은 바람화살로 원숭이를 잡지 못 했으나 야구아족은 30m 또는 40m 거리에서도 바람화살을 날려 원숭이를 잡는다. 그뿐만 아니라 영양이나 페커리(아프리카 야생 맷돼지)도 잡고, 재규어도 잡았다. 강력한 독이기 때문이다. 독화살에 맞으면 페커리나 재규어가 백 보步 이상 가지 못 한다. 실제로 야구아족이 잡은 페카리는 허벅지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있을 뿐 멀쩡했다. 신경독이다. 신경독은 고통없이 죽는다. 야구아족에 대한 혐의는 짙어졌으나 체포할 수는 없다. 야구아족은 비밀에 싸여있는 부족이다.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야구아족은 식인족도 아니고 목베기족도 아니다. 다른 부족을 해치는 침략족도 아니다. 그러나 다른 부족들은 야구아족을 두려워한다. 야구아족을 해친 부족은 무서운 보복을 당했다. 그래서 다른 부족들은 야구아족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 무역을 하는 일부 부족들이 야구아족에게 소금, 도끼, 칼, 냄비 등을 주고 야구아족의 독을 받아왔다.
아마존 원시림에서 사는 부족들은 아직도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석기시대를 살고있으며 석기를 사용한다. 그들은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과 관습을 지킨다. 수는 많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약식을 가지고 있다. 가르토는 그 자신에게도 아마존 원주민의 피가 섞여있기 때문에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살인혐의를 받고있는 야구아족들에게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생각이다. 야구아족을 자극시키면 안 된다. 가르토는 야구아족과 교역을 하는 수지족에게 주목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지족은 배를 타고 아마존의 밀림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부족들과 교역을 한다. 밀림에는 길이 없으므로 배를 타는 것이 편리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아마존밀림에는 세류細流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으며 큰 비가 내리면 세류가 불어나 밀림 어디든 갈 수 있다. 수지족은 유능한 장사꾼이며 계량計量에 밝다. 밀림의 부족들은 열 손가락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백이 넘으면 계산을 못 했으나 수지족은 만 단위까지 셈을 한다. 밀림에 사는 부족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갖고있어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데 수지족은 그 언어를 안다. 교역에 필요한 언어는 알고있었다. 수지족은 마을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어느 마을에는 어떤 물건이 필요하고 어느 마을에는 어떤 물건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수요와 공급을 맞춘다.
기르토가 야구아강의 지류에서 수지족을 만났다. 수지족은 작은 통나무배에 물건을 잔뜩 싣고 밀림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야구아족마을에 안내해달라고? 그건 안 됩니다. 야구아족은 외부사람을 싫어합니다.’
수지족은 자신들도 야구아족마을에 들어간 일이 없다고 한다. 마을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가르토가 많은 돈을 주었다. 돈의 가치를 아는 수지족장사꾼은 야구아족마을에 안내를 할 수는 없으나 자기들이 야구아족과 교역을 하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가르토일행은 군용軍用보트를 타고 수지족 통나무배를 따라갔다. 꼬불꼬불한 세류를 요리저리 돌아 다음날 늦게 교역지에 도착했다.
교역장소는 강변의 모래밭이다. 수지족장사꾼들이 모래밭에 붉은색 깃발을 꽂았다. 교역 제의다. 수지족은 그렇게 해놓고 강건너 숲속에서 기다렸다. 야구아족이 그 깃발을 보고 교역할 물건을 가지고온다는 말이다. 야구아족이 언제 올지 모르나 사흘 동안 기다리다가 안 오면 떠난다. 야구아족은 이틀 후에 나타났다. 추장이 열 명의 장정을 데리고 왔다. 교역할 물건을 망태에 걸머지고 왔다. 수지족장사꾼이 야구아족을 맞았고 가르토는 멀리서 망원경으로 교역을 살펴보았다. 야구아족은 다른 부족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몸매가 날씬하다. 자세히 보니 다른 부족과 다른 점이 보였다. 문명사회에서도 다른 사람들 보다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은근히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태도가 있는 법인데 야구아족에게도 그게 있었다. 자기만족과 긍지에 찬 태도다. 교역은 짧은 시간에 끝났다. 수지족은 소금, 설탕, 도끼, 칼, 냄비, 담배, 성냥, 석유를 가지고갔는데 야구아족은 그 물건들이 마음에 들었으며 교역은 흥정없이 끝났다. 가르토가 수지족의 물건을 조사했다. 모두 아름답고 탐스러웠다. 재규어와 오세르트(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부드러운 최상급 모피)의 모피가 다섯 장, 다이아몬드 원석原石이 네 개, 바람화살통과 화살 한 다발, 그밖에 자그마한 단지 한 개다. 야구아족은 손재주가 있는 부족이다. 모피가 무두질이 잘 되어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모피에 구멍이 있었다. 바람화살이 뚫은 구멍이다. 다이아몬드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었으나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가르토가 주목한 물건은 바람화살통과 화살이다. 화살통은 손목굵기의 대나무인데 길이는 여러 가지다. 1m - 3m까지인데 내부가 잘 깎여 마디흔적도 없이 안쪽이 총신처럼 매끄럽다. 야구아족의 바람화살은 과녁에 따라 달리 쓰인다. 새나 원숭이를 잡는 화살통은 길고 가늘고, 페카리나 재규어를 잡는 통은 짧고 길었고 화살도 용도에 따라 달랐다. 그런데 수지족이 가장 비싸게 산 물건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단지였다. 독이 든 단지다. 검푸른색의 찐득거리는 액체인데 그대로 발라도 피부에 강한 자극이 있다. 신경독인데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르토는 야구아족을 미행尾行하기로 했다. 페루정부에 연락하여 경찰이나 군대를 동원하여 마을에 들어가 강제조사를 하는 것 보다 은밀하게 뒷조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파카영감은 발자국추적의 명수다. 짐승발자국뿐만 아니라 사람발자국도 잘 추적한다.
‘캡틴, 이들은 예사 친구들이 아닙니다.’
추적을 시작한 파카영감이 중얼거렸다. 야구아족은 추적을 피하려고 물로 들어가고 발자국이 남지 않은 풀밭으로 들어갔다. 파카영감은 그래도 발자국을 놓치지 않았다. 어둠속에서도 추적을 계속했다. 눈 대신 코와 귀를 사용한 추적이다. 그는 바람을 타고오는 사람의 냄새를 맡았다. 밤새나 짐승들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있는지 짐작한다. 가끔은 나무 위로 올라간다. 높은 곳에서 주변을 살피기 위해서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에 불빛을 발견했다. 마을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가르토는 그 자리에서 추적을 중단하고 야영을 했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 추웠으나 불을 피우지 않았다. 불은 독화살을 불러들일 위험이 있다. 소리없이 날아오는 독화살은 죽음의 화살이다. 새벽에 야구아족마을을 확인한 다음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 멀리 돌아 마을로 접근했다. 야구아족마을 동쪽에 바위산이 있었다. 가르토일행은 그 산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마을이 보였다.
‘됐어!’
야구아족마을은 원시림 안쪽 숲속에 있었다. 기복起伏이 심한 지형을 그대로 두고 나무나 풀도 자르지 않았다. 100채 가까운 집들이 넓은 숲속에 산재散在했다. 굵은 원목原木으로 지은 튼튼한 집들이었으며 마른 풀로 지붕을 덮었다. 식인종이나 목베기족처럼 참호塹壕를 파거나 방책防柵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을 주변에 움막이 있고 감시병들이 있었다. 오래토록 마을을 관찰한 결과 주목해야 할 집을 발견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큰 집은 추장의 집이고 그 옆의 더 큰 집은 마을의 공회당公會堂이다.
마을 뒤에는 공동작업장이 있었다.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대나무로 벽을 친 큰 집이며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일을 하고있었다. 바람화살통이나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그 옆에 자그마한 움막집이 하나 있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아마도 독약을 만드는 공장인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 이상한 건물이 하나 있다. 감옥인 것 같았는데 주위에 열서너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 중 대여섯 명은 감옥을 지키는 병사 같은데 그들은 감옥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쫓아냈다. 왜 그런 마을에 감옥이 있을까? 감옥 안에서 들것에 실린 사람이 나왔다. 젊은 여인의 시신인 것 같았는데 감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울었다. 시신을 산림에 묻었는데 묘가 여럿이다. 아무래도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가르토는 감옥을 조사하기로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가르토와 파카영감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낮에 보아둔 감시소를 피해 감옥으로 기어갔다. 냄새가 났다. 고약한 냄새였으며 썩는 냄새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감옥 안에서 많은 여자들이 울고있었다. 비명소리와 남자들의 고함도 들렸다. 묘지로 갔다. 낮에 매장된 여자의 시체를 파내 조사했다. 하반신에 피고름이 묻어있고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심한 임질에 걸렸다. 다른 무덤을 팠다. 젊은 남자의 시신인데 역시 임질에 걸렸다. 모두 임질에 걸린 시체다. 그런데 그들은 임질에 걸려 죽은 게 아니다. 마을사람들이 임질에 걸린 사람들을 독살한 것이다. 임질의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임질은 원주민마을에서 급격하게 전파되었고 그들은 그 병을 고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다. 모두 죽이는 방법뿐이다. 임질은 문명의 병인데 어떻게 그 병이 원시림에 들어온 것일까? 가르토의 머리에 불현 듯 떠오른 것이 있었다. 원인 모르게 죽은 광부들이다.
가르토가 조사한 광부의 시신은 뼈만 남아있었으나 그들이 입은 옷이 있었다. 갈기갈기 찢겨졌으나 핏자국이 남아있다. 혼혈광부가 입은 옷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던 걸 상기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으나 그건 고름에 오염된 자국인지도 모른다. 변색된 부분이 바지 가랑이부분이었으므로 그 고름은 임질에서 나온 고름인지도 모른다. 가르토는 비로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리推理를 할 수 있었다. 야구아족의 교역품에는 다이아몬드가 있다. 그 일대는 다이아몬드의 산출지이고 야구아족이 캐냈다. 그래서 죽은 광부들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야구아마을에 들어갔다. 임질에 걸린 광부가 야구아마을에 들어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일대의 원주민들에게는 기묘한 성풍습이 있다. 소위 프리섹스다. 결혼한 남녀는 배필配匹이 아닌 상대와 성행위를 할 수 없으나 미혼자는 마음대로 성행위가 용인容認되었다. 묵인黙認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려한다. 사생아私生兒는 마을에서 양육한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다. 처녀 때 아이를 낳은 여인은 시집가서 환영을 받았다. 혼전경험이 훌륭한 아이를 낳는다는 보장이기 때문이다. 미혼자는 동족뿐만 아니라 다른 부족이나 외지인도 가리지 않는다. 근친결혼의 폐단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 처녀들이 마구 덤벼들었다.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일어났다. 야구아족에게도 그런 성풍습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만약 그렇다면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임질에 걸린 광부는 많은 처녀들에게 임질을 옮겼을 것이다. 임질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고 성행위 3, 4일만에 증세가 나타난다. 고름이 나오고 성기와 그 주변이 썩어들어간다. 광부는 임질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마을을 떠났으나 야구아족이 가만두고 있었겠는가?
야구아족이 네 명의 광부를 죽였다는 혐의가 굳어졌다. 일련의 추리로 동기動機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야구아족마을에 들어가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야구아족이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고 범인을 인도引渡할 리가 없다. 광부를 죽인 것만으로 야구아족의 분노가 풀렸을 것도 같지 않다. 온 마을에 임질을 옮겨 많은 사람을 죽게 한 백인들에 대한 원한과 경계심은 팽배할 것이다. 백인들은 원주민이 백인을 살해한 경우 가혹한 복수를 했다. 경찰이나 군대가 마을에 쳐들어가 관련된 원주민을 다 죽였다.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게 아니라 즉결처분한다. 그걸 알고있는 야구아족이 마을에 들어온 백인을 살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복수가 복수를 불러일으켜 원시림이 피마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르토는 심사숙고深思熟考 끝에 결단했다. 가르토는 다음날밤에 다시 마을에 들어갔다. 새벽 3시다. 원주민들이 모두 잠들어있을 때다. 가르토와 파카영감은 짐승처럼 소리없이 추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추장의 집에는 방이 서너 개 있었는데 추장은 혼자 밖에서 자고있었다. 추장은 환갑이 넘은 노인이었으므로 침입자가 들어온 걸 몰랐다. 가르토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는 동물을 생포하는 전문가다. 수건으로 추장의 입을 막은 다음 몸을 묶었다. 가르토는 빠져나올 때도 신속했다. 미리 조사를 했으므로 경비원초소를 피해 마을에서 빠져나왔다. 가르토는 추장을 원시림 안으로 데리고 갔다.
다음날 아침, 가르토는 추장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자존심이 강한 추장을 자극시키지 않으려고 공손하게 대접했다. 추장을 상좌上座에 모셔놓고 식사도 주고 담배도 권했다. 그리고 추장이 다소 안장이 되자 설득했다. 먼저 임질은 전염을 막을 수 있고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임질은 남녀의 성교性交를 통해 전염되므로 성교만 하지 않으면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 백인은 그 병을 잘 고칩니다. 당신들이 감금한 사람들은 적당한 치료만 하면 고칩니다. 죽이면 안 됩니다.’
저항을 하면서 욕설을 퍼붓던 추장의 태도가 점점 부드러워졌다. 그는 가르토가 주는 담배를 태웠다.
가르토가 계속 추장을 설득했다. 자기가 알고있는 야구아족 말을 모두 동원하고 몸짓으로도 표현하면서 설득하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표정이다. 가르토의 표정은 진지하고 추장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가르토와 추장은 함께 밤을 보내고 식사, 담배, 술도 마셨다. 다음날 아침에 제안을 했다. 페루정부와 상의하여 야구아족마을에 의사와 약품을 보내 임질에 걸린 주민들을 치료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소?’
백인들은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런 거짓말로 원주민을 속여 원주민의 땅을 빼앗았다. 평화를 지키겠다고 하고는 총질로 원주민을 마구 죽였다. 아마존 원주민들에게 백인은 뿌리 깊은 불신을 심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마을로 보내주겠소. 나는 당신 마을의 인질人質이 되겠소. 페루정부가 보낸 의사가 마을의 임질환자들의 병을 고칠 때까지 마을에 머물겠소. 약속을 어기면 나를 죽이시오.’
가르토가 추장과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총 따위는 가지고 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마을에 들어가자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고함을 지르면서 칼로 가르토를 죽이려고 했다. 추장이 단호하게 제지했다.
‘이 분은 마을의 손님이야. 추장인 내가 초청한 손님이니 그렇게 알고 정중하게 모셔라!’
추장은 약속을 지켰다. 자기집에서 숙식宿食을 같이 했다. 인간의 신의며 우정이다. 페루정부가 보내는 의료진이 마을에 도착하려면 빨라도 나흘이 걸리는데 가르토는 마을에 머물렀다. 추장이 가르토를 믿었고 주민들도 친절해졌다. 특히 추장의 첫째 부인이 그랬다. 부인은 자기 아들이 임질에 걸려 감옥에 갇혀있다고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단 하나뿐인 아들이다. 이틀이 지나자 추장은 가르토가 마을 안을 돌아다니는 걸 허락했다. 좋은 기회다. 비밀이었던 야구아족의 실상을 밝힐 수 있는 기회다. 우선 임질환자들이 갇혀았는 감옥을 방문했다. 처참하다. 열여섯 명의 남녀가 피고름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가르토가 감옥에 들어서서 고함을 질렀다.
‘나는 백인나라에서 온 의사다. 나는 여러분의 병을 고칠 수 있다. 여러분의 병을 고쳐줄 의사와 약이 곧 도착할 것이니 조금만 참아라. 한 달 안에 여러분은 완치된다.’
추장도 고함을 질렀다.
‘이 백인의 말은 사실이다. 마을은 절대로 당신들을 죽이지 않는다. 아무도 죽이지 않을테니 안심하라.’
환성이 터졌다. 환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바깥에서 울고 있었던 가족들도 합세하여 춤을 추었다. 울음소리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감옥에는 열여섯 명의 남녀들이 수용되어 있었고, 임질의 감염을 막기 위해 이미 네 명의 환자들이 독살을 당했다. 나쁜 백인들이 만든 참사慘事다. 가르토는 마을을 둘러봤다. 공동작업장에서는 화살통과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모두 정교精巧하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긴 화살통은 매우 더욱 정교하다. 길이 3. 5m의 화살통은 주로 새, 원숭이를 잡는데 쓰는데 가르토의 요청에 따라 사냥꾼들이 숲에서 실기를 보여주었다.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가르토가 힘껏 불어도 화살이 5m 이상 날아가지 않는데 야구아족 사냥꾼이 가볍게 부는 화살은 30m 이상 날아갔다. 어려서부터 훈련된 강한 폐활량肺活量 덕분이다. 사냥꾼들은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서 이용했다. 화살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데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화살이 날아가는 각도角度가 다르다. 화살은 포물선抛物線을 그리며 공중에 높이 솟아올라 갑자기 꺾여 일직선으로 강하降下하면서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새를 명중命中한다. 사냥꾼들은 새, 원숭이, 토끼를 잡을 때는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 독이 묻으면 먹을 수 없다. 재규어, 페커리, 맥, 파카(대형 설치류齧齒類) 등 큰 짐승을 잡을 때만 독을 사용한다. 짧고 굵은 화살통에 굵은 화살을 사용하는데 화살 끝에 독을 바른다. 독을 묻힌 화살은 숙련된 사냥꾼만 사용한다. 독화살은 멀리 가지는 않았으나 짐승들의 가죽을 뚫어 독을 주입했다.
야구아족은 화살을 만드는 공방工房은 보여주었으나 독을 만든 공방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 하게 했다. 가르토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엄격히 통제했다. 야구아족 중에서 단 세 명만 독을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다. 독약공방은 마을 뒤편에 있는데 움막집이다. 안에서 머리가 찡해지는 냄새가 풍겨나왔고 주변에는 서너 명의 경비원이 배치되었다. 독약의 재료는 용도에 따라 다르며 독이 있는 나무뿌리, 나뭇잎, 독초 등이다. 마을 인근에 곤충이나 곤충을 잡아먹는 동물의 시체가 쌓여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자란 독이 있는 나무나 풀들이 주변에서 자랐다. 독약에는 식물성뿐만 아니라 독사, 독개구리, 독거미 등도 쓰였고, 전갈, 지내 등도 혼합된다. 재료 중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은 독개구리라는 말도 있다. 아마존의 산림에는 붉거나 검은 원색原色의 개구리가 많은데 그 개구리는 피부에서 강한 독액이 스며나왔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통증과 어지러움증을 느낄 정도다. 야구아족은 그런 독성물질을 몇 날 며칠 동안 끓여 검푸른색의 찐득찐뜩한 액체를 만들었는데 그게 독이다. 다른 부족들도 독개구리로 독약을 만들었으나 독성이 약하고 사흘만 지나면 약효가 사라져버렸다. 가르토가 마을에 머문지 사흘만에 페루정부가 보낸 의사와 관리들이 약품을 가지고 마을에 도착했다. 의사들은 할 달이면 임질을 완치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관리들이 네 사람의 광부를 죽인 범인을 그대로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나쁜짓을 한 것이 광부들이라고 하더라도 범인은 잡아야 하고 정상참작을 하겠다고 했다. 가르토는 그 주장을 거부했다. 원주민들이 광부를 죽인 것은 복수심만이 아니다. 자위수단이다. 광부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원시림의 마을이 모두 위험하다. 광부들을 죽인 것은 임질을 더 전염되지 않게 한 공로功勞가 된다. 표창을 하지는 못 하지만 광부들을 죽인 범인을 색출할 수는 없다.
그때까지의 조사결과로 원주민들이 광부를 죽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누가 죽였는지는 알 수 없다. 범인이 스스로 자수를 하지 않으면 범인색출이 어렵다. 야구아족이 그 일에 협조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야구아족을 전부 처벌할 수도 없다. 페루정부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범인을 색출하든지 아니면 야구아족 전체를 처벌하겠다고 했으나 가르토는 반대했다. 페루정부도 강행을 하면 국제적 비난을 받는다. 페루정부가 원주민을 탄압한다는 비난을 받고있었는데 강행을 하면 국제적인 문제가 된다. 가르토는 스페인계 브라질인이었으나 페루정부의 요청을 받고 그 조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페루정부도 가르토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페루정부에 파병을 요청하려던 계획을 유보留保했다. 가르토의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다행히 임질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치료를 시작한지 나흘만에 환자들의 병세가 호전되었다. 병의 진행이 멈췄다. 특히 가르토의 요청으로 집중치료를 받은 추장아들의 병세는 현저하게 좋아져 수용소에서 퇴원을 했다. 추장의 아들은 숙련된 사냥꾼이고 마을사냥꾼의 두목인데 가르토와 같이 페커리사냥을 하기로 했다. 마을에는 가르토일행과 열 명이나 된 의료진, 관리들이 머물고 있는데 그들의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 합동사냥대는 그날 정오에 산림에서 페커리 발자국을 발견했다. 수십 마리가 떼지어다녔다. 페커리사냥은 위험하다. 아마존유역에서 사냥을 하다가 죽은 백인사냥꾼 대부분이 페커리에게 희생되었다. 모든 맷돼지가 다 그렇지만 특히 아마존의 페커리는 성미가 거칠고 호전적이다. 그들은 자기의 영지에 들어온 외적들에게 무조건 돌진했으며 아마존 영주 재규어도 희생이 된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덮쳐드는 페커리는 아무도 막지 못 한다. 추장아들이 페커리사냥은 자기들이 할테니 총을 쏘지 말라고 했다.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화약냄새가 나면 페커리들이 멀리 도망을 가버려서 사냥터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가르토는 참관만 하기로 했다. 열 명의 야구아족 사냥꾼들은 모두 바람화살을 가지고 있었다.
새나 원숭이를 잡는 화살로 페커리는 잡지 못 한다. 페커리를 두꺼운 껍질과 지방층이 있어 웬만한 화살로는 그 껍질을 뚫지 못 한다. 또 보통사냥꾼은 페커리를 잡지 못 한다. 숙련된 몇몇 사냥꾼만이 짧고 굵은 바람화살통에서 강하게 화살을 날려 그걸 뚫을 수 있다. 페커리사냥에는 특별히 강하게 만든 독을 사용한다. 독이 약하면 화살을 맞은 페커리는 멀리 달아나버린다. 추장아들은 그런 화살을 다를 수 있는 숙련된 사냥꾼이다. 그는 페커리를 발견하자 페커리가 도망하는 길목에 잠복潛伏했다. 세 사람의 사냥꾼이 잠복하고 나머지는 페커리를 몰았다. 페커리는 한 줄로 질주疾走했는데 잠복한 사냥꾼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위험천만한 짓이었으나 사냥꾼들은 페커리들이 10m 앞에 돌진해올 때까지 기다렸다. 위험하다. 그걸 보고 가르토가 총을 들어올렸으나 추장이 제지했다. 페커리가 5, 6m 앞에까지 왔을 때 사냥꾼들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손으로 당기는 화살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화살을 날리자말자 사냥꾼들은 옆으로 뛰었고 페커리는 아슬아슬하게 사냥꾼 곁을 스치듯 지나갔다. 사냥꾼들이 일어나 페커리를 추격했다. 페커리는 5Km 쯤 단숨에 도망을 갔으나 그게 한계였다. 도망치던 페카리 세 마리가 비틀거렸다. 다른 페커리가 부딪혀 쓰러져 뒹굴었다. 사냥꾼들이 환성을 질렀다. 쓰러진 페커리는 일어나지 못 했다. 무서운 독화살이다. 가르토는 세계 각지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독을 거의 다 알았으나 그렇게 강한 독은 처음 봤다. 페커리가 쓰러지자 사냥꾼들이 신속하게 화살이 맞은 부위를 칼로 도려내고 피와 내장을 뽑았다. 그런 조치를 해도 페커리는 물로 잘 씻어야 요리를 할 수 있다. 그날밤, 잔치가 벌어졌다. 페커리와 영양고기를 구웠다. 여인들이 채집한 버섯과 과일들이 나왔다. 담배와 술도 있었다.
잔치에는 페루에서 온 관리와 의사도 초청되었는데 의사들은 야구아족이 만든 독에 관심이 있었다. 원주민들이 만든 독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잘 연구하면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 독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성분이 있으며 그 성분으로 새로운 약을 제조할 수 있다. 가르토가 페커리의 몸에서 뽑은 화살을 의사들에게 주고 가능하면 야구아족이 독을 만드는 법을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다이아몬드 광부를 죽인 원주민을 처벌하겠다던 관리들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야구아족과 접촉한 그들도 야구아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야구아족이 흉악무도凶惡無道한 야만인野蠻人이라고 여겼으나 실제로 접촉해보니 친절하고 순진했다. 그래서 관리들은 그 일을 가르토에게 맡겼다. 처벌 여부를 가르토가 결정하라는 말이다. 잔치 다음날 가르토는 추장과 은밀하게 의논을 했다. 범인을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사건의 경위는 알아야 했다. 그래야만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예방을 할 수 있다. 추장이 그 경위를 알려주었다. 가르토가 에상한대로 광부들이 마을을 찾아왔다. 그들은 많은 선물을 가지고왔다. 소금, 설탕, 성냥, 냄비, 도끼, 칼 등 생필품을 가지고왔다. 광부들은 난폭한 짓을 하지 않았고,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이 어디서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는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추장이 원석을 채취한 강을 알려주었다. 광부들과 원주민은 모두 만족했다. 원주민은 광부들에게 친절했고 광부들은 마을에서 며칠간 머무르겠다고 했다. 광부들이 약 1주일 간 머물렀는데 잔치가 몇 번 벌어졌다. 광부들과 마을 여인들이 어울렸다. 야구아족은 프리섹스의 마을이었으며 처녀들은 마음대로 남자들과 섹스를 할 수 있다. 광부들과 마을여인들이 난잡하게 섹스가 이루어졌다. 마을여인들은 밤마다 광부들의 숙소에 들어갔다. 며칠만 머무르겠다던 광부들이 1주일을 머물다가 떠났다.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임질은 3, 4일 간의 잠복기가 있다. 광부들이 떠나고 사흘 뒤에부터 여인들의 몸에 이상이 나타났다.
가르토는 더 상세하게 조사를 했다. 임질에 걸린 광부가 최소한 두 명인데 다른 광부들이 그걸 알고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광부들의 책임자인 백인기사技士가 마을을 떠나기 전날밤 임질에 걸린 광부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까지 했다는 원주민의 증언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마을을 떠나기 전에 그 사실을 알려주고 치료를 해주었어야만 한다. 그때 추장에게 알려주기만 했어도 임질은 퍼지지 않았을 것이며 마을 남자들이 임질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방을 위해 마을사람들을 죽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임질에 걸린 혼혈광부는 물론이고 기사에게도 책임이 있다. 임질이 퍼져나가자 마을사람을 죽인 추장이 사람사냥에 나섰다. 여섯 명의 사냥꾼들이 사람사냥에 나섰다. 야구아마을을 떠난 광부들이 다른 마을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물을 주고 며칠 동안 머무르게 해달라고 했으나 그 마을 추장이 거절했다. 야구아마을에서 정보가 들어왔다. 야구아추장은 임질의 다른 마을 전염을 막기 위해 인근의 다른 모든 마을에 사람을 보냈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무책임한 백인이나 혼혈인들과 다르다. 원주민마을에서 거절을 당한 광부들이 이키토스로 돌아가지 않고 밀림을 돌아다녔다. 백인기사는 다이아몬드를 찾으려고 혈안血眼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원시림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밀림 안을 흐르는 셋강으로 배를 타고 들어왔으나 그 강이 없어져버렸다. 그들은 총으로 페커리나 영양을 잡아 야영을 했는데 그 총소리가 그들의 죽음을 불렀다. 야구아추장이 거느린 인간사냥꾼들이 집요하게 광부들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그 총소리가 광부들의 소재를 알려주었다. 인간사냥꾼들은 소리없이 추적을 했기 때문에 광부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했다. 인간사냥꾼들이 광부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페커리고기를 구워 술을 마시면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추장이 공격을 하려는 사냥꾼들을 제지했다. 함부로 공격을 하다가 총을 가진 광부들에게 반격을 당할 수 있다.
야구아족 사냥꾼들은 인근 산림에 숨어 기다렸다. 광부들은 마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화해를 한답시고 또 마셨다. 초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하여 한밤중까지 마시고는 모두 쓰러졌다. 그때 야구아족이 사람사냥을 했다. 그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긴 바람화살통을 썼는데 화살에 독을 묻혔다. 재규어를 잡을 때 쓰는 독인데 재규어도 그 독을 맞으면 한 시간을 버티지 못 한다. 약 20m 거리를 두고 바람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높이 날아가다가 거의 수직으로 떨어져내렸다. 화살이 모두 명중되었으나 광부들은 그걸 모르고 계속 잠을 잤다. 화살에 묻힌 독은 신경독이었으므로 광부들은 고통없이 잠을 자다가 잠든 체 깨어나지 못 하고 죽었다. 사냥꾼들은 광부들이 죽은 걸 확인하고 범죄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화살을 회수하고 발자국도 지웠다. 그들이 돌아오면서 화살 한 개를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완전범죄가 되었을 것이다.
가르토는 조사를 끝냈으나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현지에 파견된 페루정부의 대표와 상의한 다음에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야구아족 임질환자들은 치료한지 한 달만에 모두 완치되었다. 영국에서 샤로 개발된 임질치료약의 효과다. 의사들은 마을의 다른 병자들도 치료했다. 시력을 회복시켜주고, 난산으로 신음하던 임산부를 도와 산모와 아기를 모두 살렸다. 마을사람들이 의사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멀리 강에 나가 백인들이 좋아하는 자라를 잡아왔다. 매일 신선한 과일과 야채도 채집했다. 야구아족은 의사와 관리들이 떠나기 전날밤 이별의 잔치를 열었다. 일부 주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잔치가 끝나자 가르토와 페루정부대표가 만났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보고서를 작성하여 광부들을 죽인 범인을 처벌하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보고서는 이미 내가 만들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네 명의 광부들이 독버섯을 먹고 죽은 것으로 되어있었다.
158. 사바나Sabanna의 파수꾼
마담 루베와 미스 엔리는 원수지간怨讐之間이다. 둘은 만나면 웃으며 인사를 했으나 그 눈에는 경멸과 증오가 어려있고 때로는 살기殺氣가 들어났다. 마담 루베는 프랑스 태생의 매력적인 중년여성이며 케냐 나이로비에서 서남쪽 탄자니아로 뻗어있는 고속도로 연변沿邊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다. 백 명 쯤 관광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인데‘아프리칸 하우스’라는 이름처럼 열대의 정서情緖가 물씬 풍긴다. 그 집은 고속도로에서 차보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어귀에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쓰아보지역 산림보호청의 레인저 캡틴 코네리가 들렸을 때는 텅 비어있었다. 장사가 안 된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왜 손님이 없냐고요?’
마담 루베가 코네리에게 술을 따라주면서 웃었다.
‘뭘, 다 알고있으면서 …, 그 영국년때문이지요.’
그년이란 관광안내원 미스 엔리를 말한다. 케냐에서 가장 큰 관광회사의 특급안내원이며 월급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성과급成果給을 받는 다는 소문이다. 젊고 아름답고 사교술社交術에 능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많은 고객顧客을 확보하고 있다.
‘그년은 관광안내를 하는 게 아니라 술을 팔고 여인도 팔아요. 그년이 국립공원을 온통 더럽히고 있는데 켑틴은 뭘 하고 있지요? 뇌물賂物을 받았나요, 아니면 혹시 ….’
미스 엔리가 탄 버스가 산림보호청 앞을 지나면서‘하이, 캡틴!’하며 인사를 하고 가끔 양주洋酒 한 병 쯤 놓고 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건 뇌물이 아니고 관례적인 인사다. 미스 엔리가 타고온 관광버스 뒤에는 언제나 대형 트럭이 두 대 따랐다. 관광버스가 경치와 통풍이 좋은 초원에 정차하면 트럭에서 열 명 쯤 되는 관광회사 일꾼들이 트럭에 싣고온 대형천막을 조립한다. 그들은 숙련된 솜씨로 단 몇 분만에 천막을 치고 탁자와 의자를 배치한다. 그 사이에 다른 트럭에 탄 요리사들이 불을 피우고 솥과 냄비를 걸고 요리를 한다. 어린 영양고기 바비큐와 자라, 버섯요리가 나온다. 영국산 위스키와 프랑스제 포도주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악단樂團도 데리고 오고 노래와 춤을 추는 아가씨들도 데리고왔다.
그건 캠프장이 아니라 이동하는 레스토랑이고 카바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마법魔法처럼 세운 환락歡樂의 집이다. 공원어귀에 있는 마담 루베의 레스토랑은 그 환락의 천막촌과 경쟁을 할 수 없다. 차보를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버스는 정차하지 않고‘아프리칸 하우스’를 통과했다. 마담 루베가 화를 낼만 하다. 미스 엔리가 하는 일은 엄밀히 말하자면 위법이다. 관광업자는 술을 팔거나 악단을 동원하여 관광객을 접대할 수 없다. 캡틴 코네리는 최근 관광회사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하고있는 사업을 우려한다. 그들은 버스나 트럭을 타고 초원이나 사바나 깊숙이 침입하여 아프리카 자연을 오염시킨다. 캡틴 코네리가 미스 엔리에게 경고를 했으나 미스 엔리는 생긋생긋 웃으면서 시정是正하겠다는 말만 했다. 미스 엔리는 마담 루베가 자기를 모함한다고 주장한다. 마담 루베는 자기가 캡틴 코네리와 특별한 관계인 것처럼 암시한다고 말했다. 마담 루베는 미스 엔리를 중상모략重傷謀略하는 진정서陳情書를 나이로비에 있는 행정청에 보낸다고 주장한다. 캡틴 코네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담 루베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으나 특별한 관계는 없다. 마담 루베가 행정청에 미스 엔리를 처벌해달라고 진정서를 낸 건 사실이었으나 그건 효과가 없었다. 행정청의 고등판무관高等辦務官은 캡틴 코네리에게 관광회사에 대하여 너무 엄격한 규제를 하지말라고 지시했다. 관광회사에서 들어오는 세금은 행정청의 큰 수입원이며 행정청은 앞으로 관광사업을 진흥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코네리는 그동안 행정청의 지시를 따랐으나 그렇게만 할 수 없는 일이 최근에 벌어졌다. 그 정보도 마담 루베에게서 나왔다. 관광회사가 관광객들에게 매춘賣春을 알선斡旋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스 엔리가 관광객들을 원주민마을로 안내했는데 원주민들은 관광객을 환영하는 잔치를 벌였다. 원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으나 관공회사의 계획이다.
‘그런 계획 쯤은 별것이 아니지만 관광회사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나쁜짓을 하고있어요.’
원주민 잔치판에는 마을처녀들이 나뭇잎으로 국부局部만 가리는 몸으로 나타나 춤을 추는데 그런 앞가리개는 있으나마나다. 관광회사는 그런 춤으로 관광객을 흥분시켜놓고 은밀하게 매음을 알선한다.
차보지역의 산림보호관은 야생동물만 보호하는 게 아니다. 산림관은 그 지역 전체의 자연생태계를 유지하고 지역 안에 살고있는 원주민들도 보호해야 한다. 야생동물과 원주민들이 평화롭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 만약 마담 루베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원주민들이 더러운 문명에 오염된다. 원주민여인들이 관광객에게 몸을 팔면 원주민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 파괴된다. 매독, 임질 등 성병性病이 마을에 전파되어 원주민은 죽게된다.
캡틴 코네리는 그날밤 미스 엔리가 안내하는 한 무리 관광객들의 뒤를 미행尾行했다. 원주민마을에서 잔치판이 벌어져 노래소리가 요란하고 원주민여인들이 나체裸體춤을 추고 있었다. 술 취한 백인들이 어울렸다. 원주민사회에서는 없었던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백인남자들과 원주민여인들이 마을 뒤 원주민의 집으로 들어갔다. 관광회사 직원과 안내원들이 그들 사이에서 비밀스러운 귓속말을 했다. 마담 루베의 폭로는 사실이다.
‘캡틴, 여기는 웬일이요?’
관광회사직원이 마을 뒤로 들어가려는 캡틴 코네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담배를 권하는 체 하면서 몸으로 코네리를 막았으나 코네리가 그 친구를 밀어넘어뜨렸다. 그러자 인근의 다른 직원들이 코네리에게 덤벼들었다. 관광회사는 그들이 경비원이라고 했으나 나이로비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자들이다.
‘이 새끼들이!’
화가난 코네리기 총대로 그들을 후려쳤다. 코네리가 총을 들어올리자 고함을 치며 도망을 쳤는데 그게 신호信號다. 이집 저집에서 관광객들이 후다닥 뛰어나와 도망가고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코네리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미스 엔리가 뛰따라 들어왔다. 엔리는 술에 취한 일부 관광객들이 원주민의 생활을 구경하겠다고 원주민의 집에 들어간 건 사실이나 그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고 관광회사와는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코네리도 그녀가 직접 관광객의 매춘을 알선한다고 생각하고싶지는 않았으나 그 일을 그대로 넘길 수는 없다. 그는 그곳의 파수꾼이다. 코네리가 그 사실을 나이로비 행정청에 보고하여 관광회사를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관광회사는 영업취소 또는 상당기간 영업정지처분이 내려질 것이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어요.’
미스 엔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언제나 부드러운 웃음을 띠는 그녀와는 전혀 딴판이다.
‘캡틴, 나는 누가 캡틴의 뒤에서 이런 일을 시키고있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마담 루베는 나쁜 여자입니다.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지요.’
마담 루베가 코뿔소의 코뿔을 밀거래한다는 말이었다. 원주민들에게 밀렵을 시켜 그걸 사고판다는 말이다. 루베가 나이로비에 있는 중국인 밀거래업자들에게 코뿔을 팔아 막대한 돈을 벌고있다는 주장이다. 코네리가 긴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차보지역에 서식하는 코뿔소들이 빈번하게 밀렵되고 있었다. 수천 마리의 코뿔소가 이젠 몇 백 마리로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빠졌다. 코네리가 밀렵자들을 잡으려고 뛰어다녔으나 헛수고였다. 여러군데서 은밀하게 밀렵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엔리의 폭로는 근거가 있다. 코네리도 차보를 잘 아는 누군가가 원주민들의 배후에서 밀렵을 시키고있다는 정보를 듣고 있다.
‘자연보호지역 보안관 본래의 임무는 그런 밀렵자를 잡는 것 아닙니까?’
정말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시시하게 관광회사의 뒷조사나 하고 있느냐는 뜻이다. 코네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관광회사의 뒷조사가 시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코뿔소를 멸종으로 몰아가는 밀렵조직을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네리가 엔리를 달래주 듯 술을 권했다. 정보를 더 얻어내야 한다. 엔리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한다. 나이로비의 백인관리로부터 사업가, 차보지역 원주민들까지 오지랍이 넓다. 특히 원수인 루베가 하는 일은 의도적으로 조사를 했다. 코네리는 여인들의 관계까지도 이용하여 코뿔소밀렵을 조사하려고 했다. 루베가 경영하는 레스토랑 아프리카 하우스는 코뿔소의 밀거래장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그 집은 나이로비로 통하는 고속도로 연변에 있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가져오는 코뿔을 보관할 필요 없이 바로 나이로비로 운반할 수 있다. 밤중에 원주민들이 레스토랑에 드나든다는 소문이 있고 중국인들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건 증거가 될 수 없다. 밀렵은 현장에서 적발해야 한다.
당시의 법률은 보호동물을 밀렵한 사냥꾼들에게는 징역 2년 이상의 체형體刑을 처벌하고 꽤 많은 벌금을 부과했으나 상아, 코뿔 등 밀렵을 거래하는 자들에게는 가벼운 벌금형이었고 그것도 재판과정에서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배후에서 밀렵자들을 조종하는 큰 손의 거물들은 건재한다. 밀렵을 단속하려는 의지가 없는 법률가들이 책상에 앉아 만든 법률이다. 코네리는 한탄했으나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밀렵자들을 현장에서 잡는 수밖에 없다.
‘누가 코뿔소를 밀렵하느냐고?’
엔리가 빈정거렸다. 엔리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원주민추장으로부터 와캄바족 사냥꾼들이 코뿔소를 밀렵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코뿔소가 서식하는 가시덤불 숲 근처에 있는 몇몇 마을 사냥꾼들이 코뿔소밀렵을 하고 있으며 밀거래장소는 루베의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와캄바의 밤사냥꾼들이 맞다. 와캄바는 본래 농경민이었으나 무서운 전투부대를 갖고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용맹한 침략족인 마사이족들과 싸우기 위해 전투부대를 양성했는데 그들은 활을 잘 쏘고 야간전투에 능했다. 마사이족도 와캄바를 함부로 침공하지 못 한다. 그 와캄바전투부대가 밀렵을 하고 있다. 와캄바사냥꾼은 밤눈이 밝다. 시력훈련을 한다. 밤에도 숲에서 바늘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어둠속을 소리없이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기 때문에 코네리의 밀렵단속반은 그들을 잡을 수 없다. 오히려 단속반이 희생된다. 코네리가 의심이 가는 와캄바족마을을 조사했으나 밀렵의 흔적조차 없다. 코뿔소의 시체가 없고 핏자국도 없다. 밤사냥꾼으로 보이는 원주민도 없다. 그러나 마을에서 사육하는 양들의 수가 갑자기 불어나고 생활형편이 좋아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났다. 밤사냥꾼이 코뿔소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코뿔만 도려내 루베의 레스토랑으로 가지고가고 루베는 바로 차에 실어 나이로비로 가지고 간다. 코뿔은 엄청난 값으로 중국인들에게 팔리기 때문에 그 일부가 와캄바족마을에 들어간다. 마을에 밀렵 흔적이 없으면서도 양들이 불어난 이유다. 코네리가 옛날 사냥꾼조수 칸제르를 불러들였다. 마사이사냥대장을 한 사냥꾼인데 소 50여 마리와 마누라 네 명을 거느리고 노후를 즐기고 있었다.
칸제르는 옛날 보스와 의리를 잊지 않았다.
‘와캄바 사냥꾼들이라고요?’
칸제르는 와캄바를 싫어한다. 코네리와 칸제르는 코뿔소 서식지 가시덤불 숲속에 들어갔다. 밤눈이라면 칸제르도 와캄바 못지 않다. 칸제르의 코는 와캄바밤사냥꾼들 보다 훨씬 더 예민하다. 칸제르가 만도로 가시덤불을 쳐내면서 길을 만들고 그것이 어려우면 가시덤불 밑으로 기어갔다. 한밤중인데 칸제르는 코뿔소의 시큼한 냄새를 맡았고 가시덤불을 밟는 소리도 들었다. 와캄바사냥꾼들이다. 서너 명 쯤 되었으며 코뿔소를 추적하고 있다.
‘쉿!’
천하의 칸제르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 한다. 그는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에 들고있었던 창을 왼손으로 옮겨잡고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칸제르는 와캄바 밤사냥꾼의 활솜씨를 잘 안다. 어둠속에서도 정확하게 과녁을 맞추는 화살이고 화살 끝에는 독이 묻혀있다. 독사의 독보다도 더 강한 독이며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을 입는다. 픽! 소리가 났다. 화살이 두꺼운 코뿔소의 피부를 뚫는소리다. 코뿔소가 잠시 움직이더니 곧 쓰러졌다. 사람들의 속삭임이 들리고 피냄새가 풍겼다. 코뿔을 도려내고 있다. 칸제르가 창을 들어올렸으나 코네리가 막았다. 서너 명의 와캄바 밤사냥꾼과 싸우는 건 너무 위험하다. 정확하게 날아오는 화살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거기서 밀렵꾼을 잡아도 소용이 없다. 그들을 체포해도 입을 열지 않으면 배후를 캐낼 수 없다. 배후가 없다고 우기면 자백을 받아낼 수 없다. 코네리와 칸제르는 더 기다렸다. 밤사냥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뿔소의 뿔은 모두 네 개다. 큰 것은 길이가 70Cm이고 연결된 뼈까지 도려냈기 때문에 무게가 5Kg이나 된다. 밤사냥꾼들이 그걸 들것에 싣고 돌아갔다. 코네리와 칸제르는 미행을 했다. 사냥꾼들은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고속도로로 나간다. 새벽무렵에 불빛이 보였다. 루베의 레스토랑에는 새벽인데도 불이 켜져있었다. 트럭이 한 대 대기하고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서너 명이 술을 마시고 있다.
레스토랑에 있었던 사나이들은 밤새껏 술을 마신 듯 모두 비틀거렸는데 인상이 험악하다. 마담 루베도 술에 취한 것 같다. 밤사냥꾼들이 들것에 싣고온 코뿔을 트럭에 싣고있을 때 코네리와 칸제르가 그들을 덮쳤다. 사냥꾼들이 반항했으나 칸제르가 후려쳐서 눕혔다. 칸제르는 키가 2m나 되는 거인이며 힘도 장사다. 동료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지는 것을 본 사냥꾼들이 전의를 잃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레스토랑에서 사나이들이 뛰어나와 덤벼들었는데 그들은 권총을 들고있었다. 트럭운전사가 코네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권총을 발사했다. 코네리가 응사했다. 코네리는 총신이 긴 라이플을 왼손만으로 들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그 속사速射는 정확하다. 10여 년 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밀렵단속을 한 코네리다. 사내가 쏜 총탄은 빗나갔으나 라이플은 그자의 허벅지를 뚫었다. 일부러 가슴을 피해 쏜 것이다. 그라자 또 레스토랑에서 한 사내가 엽총을 들고나왔는데 루베가 그자의 허리를 껴안고 매달렸다.
‘비켜! 이거 놓지 못 해!’
그 사나이가 루베를 뿌리쳤는데 그 사이에 코네리가 총신으로 사내를 후려쳤다. 사내는 입에서 피거품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 왜 저 놈을 살려주려고 해!’
루베가 차갑게 대답했다.
‘살려준 것은 바로 네 놈이야.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네 놈의 대가리에 총탄이 박혔을거야.’
루베의 말이 옳다. 코네리와 칸제르가 밀렵꾼들과 술 취한 백인을 모두 체포했다. 루베가 코네리에게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설마, 나를 밀렵자들의 배후로 보진 않겠지?’
‘배후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도 체포해서 나이로비에 데리고 가겠군.’
‘프랑스 귀부인을 그렇게 대접할 수 없지. 오래 사귄 친구이기도 하고 …. 그러나 법정에 자진출두해야 할거야.’
‘고맙구먼. 오랜 친구를 알아줘서 ….’
마담 루베가 술잔을 유리창에 던졌다. 마담 루베는 일주일 후 나이로비법정에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왔다. 코뿔소밀렵의 배후라는 검찰의 공소사실은 전적으로 부인했다. 밀렵자들이 우연히 레스토랑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산림보안관 코네리가 증언을 하고 코뿔소의 코뿔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코뿔을 운반하려고 한 트럭운전사도 체포되었고 트럭의 소유자까지 밝혀졌기 때문에 그 사건은 유죄로 선고되었다. 그러나 징역형을 받은 자는 원주민밀렵자들뿐이고 배후자는 가벼운 벌금형을 받았다. 루베도 벌금형을 받았고 핵심적인 배후인 홍콩출신 거물 중국인 무역상은 무죄였다. 그가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 코네리가 분통이 터져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마담 루베가 찾아왔다.
‘밀렵을 그만두라고요? 그럼 나는 뭘 먹고살지? 미스 엔리라는 그년은 여전히 매춘사업을 하고있는데 ….’
그건 사실이다. 미스 엔리가 속한 그 관광회사는 일주일 간 영업정지처분을 받았을뿐이고 미스 엔리는 다시 관광안내인을 했다. 케냐 행정청은 관광사업 진흥정책을 썼으며 코네리에게도 심한 단속을 제지했다. 코네리는 코뿔소밀렵싸움에서 지고 관광회사의 불법영업단소에서도 참패했다. 마담 루베는 연속 술을 마시고 있었으나 표정은 어둡고 진지했다. 루베가 코네리에게 보안관을 그만두라고 했다. 계속 그 일을 하면 신변이 위험할거라고 했다.
‘협박하는거야?’
‘내가 협박을 하는지 당신을 염려하는지 당신이 더 잘 알고있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마담 루베에게는 끈근한 정이 있다. 10여 년 사귄 그 사나이에게 미련이 있다.
나이로비에 있는 국제밀렵조직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밑에는 나이로비의 폭력조직이 있고, 그들이 암약暗躍하고 있다는 징조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코네리를 암살하려는 암약이다.
‘밀렵조직보다 더 무서운 조직도 있어. 관광회사에서도 당신을 제거하려는 공작을 하고있어.’
관광회사는 막대한 자금과 강력한 힘이 있다. 그까짓 보안관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 코네리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코네리는 보안관을 그만두지 않았고 차보로 돌아갔다. 그는 아프리카를 사랑한다.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사랑했다. 그는 순진한 원주민의 벗이기도 하다.
차보의 산림보호청에는 칸제르가 머물고 있다. 코뿔소밀렵단을 검거한 뒤에는 칸제르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했는데 그는 계속 머무르고 있었다. 칸제르는 마사이의 영웅이며 50마리나 되는 소와 네 명의 마누라가 있다. 편안한 노후다. 그러나 그는 코네리를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위험하고 고단한 단속을 계속 하겠다고 한다. 의리가 강한 그는 옛 보스인 코네리가 고독하게 차보의 사바나를 지키고 있는 걸 보고 그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부와나(나리), 나는 아직 일을 할 수 있어요. 부와나 곁에서 도와드리고 싶어요. 보수 따위는 소용없어요.’
차보의 산림을 지키려는 파수꾼이 한 명 더 늘었다. 코네리가 그 거인의 손을 움켜잡았다.
‘하이, 캡틴!’
다음날 아침 커다란 관광버스가 사무실 앞에 정차하더니 미스 엔리가 내렸다. 미스 엔리는 코네리가 좋아하는 영국산 위스키 한 병을 책상 위에 놓고 말했다.
‘아직도 관광안내를 하느냐고요? 그럼요.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는 일은 내 천직天職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관광객들에게 원주민아가씨를 소개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그런 짓을 하면 성병이나 풍토병에 걸린다고 경고했더니 모두 자숙自肅하고 있어요.’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날 하오에 차보 동쪽에서 살고있는 키쿠유마을의 추장이 달려왔다. 마을에 군인들이 들어와 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있다고 한다. 코네리가 즉시 트럭에 밀렵단속반을 싣고 현지로 달려갔다. 추장의 말대로 마을이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케냐에 파견된 영국군 상사上士가 거느린 수십 명의 군인들이 마을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체포하여 고문을 하고있었고 대여섯 명의 주민들이 거적에 덮여있었다.
‘산림보안관이라고요? 마친 잘 왔소. 우리는 지금 여기서 마우마우단을 소탕하고 있는데 협력해주시오.’
상사가 거만하게 명령했다. 마우마우단은 독립운동을 하는 키쿠유족 과격단체인데 총을 들고 백인과 싸운다. 상사는 나이로비에서 백인을 죽인 마우마우단이 차보지역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소탕을 하고있다고 했다. 그들은 주민을 묶어놓고 고문을 했다. 고문당한 주민들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상사가 코네리에게 고함을 질렀다.
‘마우마우단이 마을에 들어와 있는데 산림관은 뭘 하고 있었나?’
‘뭣이 어째, 이 새끼. 네 놈은 누구에게 반말지꺼리냐?’
상사는 그제야 코네리의 바지가 군복이라는 걸 보았다. 장교복이다. 영국의 군제는 현역이 아니더라도 예비군장교는 군복을 입을 수 있다. 상사가 당황하여 자세를 고쳤으나 코네리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소속 관등과 이름을 대라!’
상사가 부대이름을 말하자 코네리가 계속 질타했다.
‘82대대라면 골든중령이 부대장이 아닌가?’
‘녜, 그렇습니다.’
‘골든중령이라면 정규사관학교 출신인데 그런 부대장이 이따위로 부하들을 훈련시켰느냐?’
코네리는 정규사관학교 출신이며 현역시절에 골든중령과 함께 근무했다.
‘상사,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여기는 산림청 관할지역이며 나는 그 책임자다. 군대라고 해도 내 관할지역에 들어오려면 사전허가를 받아야 돼!’
상사가 직립부동자세로 경례를 하면서 말했다. 원주민과 부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상사는 그냥 당하기만 하지 않겠다는 투로 말했다.
‘마우마우단을 추격하는 긴급상황이었기에 그런 허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코네리가 원주민 말로 추장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상사가 거느린 군인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총을 난사하며 마을에 쳐들어왔다고 했다. 놀란 주민들이 도망치는 걸 보고 난사를 했다. 저항도 하지 않은 장정들을 체포하여 고문을 했다. 무도한 짓이었으나 마우마우단과 싸우고 있는 영국군은 예사로 그런 짓을 했다. 마우마우단이 키쿠유족이었으니 키쿠유족은 불온한 종족이라고 간주하고 그들의 인권 따위는 안중에 없다. 추장은 마을에 마우마우단은 한 명도 없다고 하면서 사살된 장정들은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마을에 들어왔기 때문에 겁에 질려 도망가려고 했을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림보안관이 원주민 편을 들어 군대와 싸울 수는 없다. 마우마우단의 반격으로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낸 영국군은 마우마우단을 도와주거나 보호하는 사람은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처벌했다.
코네리는 자기가 직접 마우마우단이 마을에 들어와있는지 조사하겠다고 하고 군인을 돌려보냈다. 상사는 돌아가기는 했으나 군사령부의 허락을 받아 다시 돌아오겠다고 고함을 쳤다. 코네리는 원주민마을에 마우마우단이 없다고 행정청에 보고했는데 행정청은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케냐 주둔 영국군사령관이 행정청장에게 코네리를 해임시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코네리가 맡고있는 차보지역은 마우마우단의 암약근거지가 되어있는데도 코네리가 군대에 비협조적이라는 주장이다. 행정청장은 사령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차보지역에 군대가 들어가 마우마우단을 소탕하겠다는 군대의 요구는 수용했다. 그래서 차보지역 사바나에는 연대 규모의 군인들이 들어왔다. 그 군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사바나에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할 것 같았다. 군대가 들어오면서 관광버스가 뜸해졌다. 전쟁터가 된 지역에 관광객이 올 리 없으며 관광객을 안내하는 미스 엔리는 할 일이 없어졌다. 반대로 마담 루베가 경영하는 아프리카 하우스에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군인들과 군대의 용역을 맡은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코끼리나 코뿔소를 밀렵하는 사냥꾼들도 드나들었다. 사바나의 질서가 어지러워진 틈을 타 밀렵을 하려고 했다. 군인들이 사바나에 들어온지 사나흘 되던 날 밤, 코네리가 레스토랑에 들렸다. 레스토랑은 붐비고있었다. 부대장 골든중령이 대여섯 명의 부하를 데리고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코네리에게 당했던 상사도 끼어있었다.
‘이거 누구야! 코네리 아냐.’
골든중령이 코네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으나 코네리는 시무룩하다.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다.
‘코네리, 그렇잖아도 자네를 만나려고 했어.’
군인들이 사바나지형을 모르기 때문에 산림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마우마우단을 토벌하는데 길 안내를 해달라는 부탁이다. 코네리는 군인들이 하는 일이 있고, 산림관이 하는 일이 따로 있다고 하면서 거절을 했는데 그때 술을 마시고있었던 백인사냥꾼들이 말했다.
‘중령님,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도와드리지요. 우리는 10여 년 동안 여기서 사냥을 했으므로 지형을 잘 알고있습니다. 사바나 구석구석까지 알고있습니다.’
골든중령이 그 백인사냥꾼들을 불렀다. 코네리에게 보란 듯이 술을 권하며 그들 세 명을 군속軍屬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백인사냥꾼들은 의기양양意氣揚揚했다. 골든중령의 휘하麾下부대는 다음날부터 차보지역 안에 있는 키쿠유족마을을 포위하고 마우마우단과 관련한 조사를 했다. 키쿠유족은 케냐의 원주민들 중에서 가장 수가 많은 부족이며 주로 나이로비 주변과 차보의 북부지역에 살고있는데 비교적 개화된 종족이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마우마우단을 결성해서 독립운동을 하고 일부는 무기를 들고 백인들과 싸웠다. 관공서를 습격했다.
골든중령의 부대는 차보지역에 있는 키쿠유족마을의 장정들 중에서 나이로비에 드나드는 장정을 색출해서 고문을 했다. 키쿠유족 장정들은 사바나로 도망을 쳤다. 사바나는 키가 낮은 관목灌木과 가시덤불로 덮였으며 모기와 파리가 들끓었다. 코뿔소의 서식지이며 사람은 드나들지 않는다. 영국군도 거기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독풀이나 가시에 찔리고 말라리아에 걸려 쓰러지는 군인도 있었다. 골등중령이 군속으로 채용한 백인사냥꾼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코끼리나 코뿔소를 밀렵한 자들이며 마우마우단을 토벌하는 부대를 안내한다는 핑계로 코뿔소를 밀렵했다. 마우마우단 토벌성과가 없어 밀렵자 출신 백인군속이 골든중령에게 건의했다. 키쿠유족과 싸우기 위해서는 마사이족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원주민 간 싸움을 유발시킬 계획이다. 마사이와 키쿠유는 오래전부터 앙숙怏宿이다. 마사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사나운 침략족이고 타부족 침략으로 먹고 살았는데 마사이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종족은 키쿠유뿐이다. 마사이는 창을 잘 쓰고 키쿠유는 활을 잘 다룬다. 키쿠유는 창을 들고 침략하는 마사이를 활로 막았다. 영국군은 백인군속들의 의견에 따라 마사이를 동원하여 키쿠유를 소탕하려고 했다. 골든중령과 백인군속들이 마사이마을을 찾아갔다. 마사이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선물을 산더미처럼 가지고가 추장과 장로들에게 마사이의 용맹을 찬양하면서 선물을 주었다. 차보지역을 지배할 수 있는 종족은 마사이라고 추겨세웠다.
골든중령이 마사이추장에게 자기들에게 협조하면 마사이의 유보지留保地(자치지역)을 확대해주겠다고 암시를 했다. 그러나 추장은 시무룩했다. 마사이도 옛날의 마사이가 아니다. 그들도 백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있었다. 추장은 코네리의 오랜 친구다. 코네리는 차보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원주민과 싸우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침략은 나쁜짓이며 키쿠유와 싸우지 말라고 했다. 마사이추장은 영국군이 차보에 들어와 키쿠유를 마구 죽이고 고문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키쿠유는 원수였으나 그들도 원주민이다. 그들도 마사이처럼 백인들에게 영토를 빼앗긴 원주민이다. 추장은 골든중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키쿠유와 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우마우에 대한 소탕도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다. 골든중령이 곤경에 빠졌다. 차보지역의 마우마우 소탕전은 실패했고 도리어 나이로비에서 활동한 마우마우단이 차보로 유입되고 있었다. 숨어있으면서 전력을 보강하여 도시지역으로 나갔다. 상부로부터 엄한 질책을 받은 골든중령은 500명이나 되는 병력으로 차보지역에 쳐들어갔다. 그들은 차보에 야영지를 설치했는데 군대의 기지基地수준이다. 군인들이 잡초지를 불태우면서 사바나 깊숙이 진입하여 출몰하는 마우마우단을 전멸시키기로 했다. 기관총으로 의심스러운 숲에 난사를 했다. 그러나 마우마우단은 옛날 원주민의 전사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총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밀거래단으로부터 구입한 총도 있고, 영국군에게 빼앗은 총도 있다. 마우마우단의 기습을 받은 영국군 수십 명이 죽었다. 사바나지형을 잘 아는 그들의 기습은 신출귀몰神出鬼沒하였으며, 난데없는 곳에서 독화살이 날아왔다. 마우마우단은 소탕되기는커녕 세력이 날로 커졌다. 차보지역이 전쟁터가 되자 나이로비 암시장에는 대량의 상아象牙와 코뿔이 들어왔다. 혼란의 틈을 타 밀렵단이 밀렵을 했다. 행정청이 장려한 관광사업도 되지 않았다.
군대가 차보지역에서 마우마우단 소탕을 시작한지 보름만에 서른 마리의 코뿔소가 죽었다. 덤불 여기저기에 코뿔소시체가 뒹굴었다. 독수리가 몰려들고 하이에나들이 설쳤다. 코네리가 칸제르와 네 명의 대원을 데리고 순찰에 나섰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나 덤불속으로 들어갔다. 밀렵단이 밤에 움직이므로 밤에 잡아야 한다. 위험한 순찰이다. 밀렵단은 어둠속에서 순찰대원에게 주저없이 총질을 할 것이다. 어둠속에서는 정체가 들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깜깜해졌을 때 총소리가 났다. 군인들은 덤불에는 들어가 않으므로 밀렵단이다. 순찰대가 소리를 죽이고 접근했다. 하이에 두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피냄새를 맡은 것이다. 밀렵단이 하이에나의 뒤를 따라갔다. 손전등불빛이 보였다. 서너 명의 밀렵단이 코뿔소의 대가리를 잘라내고 있다.
‘산림관이다, 손 들어!’
말을 듣지 않으면 사살하겠다는 경고를 할 틈도 없다. 밀렵단이 발포하자 코네리가 응사했다. 미국제 윈체스터 5연발이 기관총처럼 불을 뿜었다.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고함이 들렸다. 네 명의 밀렵단 중 두 명이 쓰러졌다. 백인과 원주민 두 명이 쓰러졌다.
‘살려줘!’
백인이 중얼거렸으나 살아날 것 같지 않다. 탄환이 가슴을 뚫고 나갔으므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원주민 밀렵자도 죽었다. 백인은 밀렵전과자고 마담 루베의 레스토랑에서 군속으로 채용된자이다. 원주민도 밀렵상습자다.
그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차보에 출동한 연대장이 나이로비 행정청에 항의를 했다. 차보지역 산림관이 작전중인 군부대의 군속을 사살했으니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연대장은 군속이 사살된 지점이 군대의 작전지역이며 그 지역 안에는 민간인들이 들어오지 못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산림관이 밤중에 침입하여 순찰중인 군속과 그 부하들을 죽였으니 책임을 지라는 요구다. 코네리가 반격을 했다. 그곳은 코뿔소 보호지역이고 산림관은 코뿔소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있다고 반격했다. 사살된 군속은 코뿔소를 밀렵하다가 죽었다고 지적했다. 군속은 밀렵전과가 있고, 산림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먼저 발포했다가 사살되었다고 밝혔다. 그곳이 군대의 작전지역이라면 코뿔소를 밀렵하는 게 군대의 작전인가라고 반박했다. 행정청은 군대가 차보에 들어간 뒤 보름만에 서른 마리의 코뿔소와 더 많은 코끼리가 밀렵되었으며 케냐의 암시장에 그 코뿔과 상아들이 밀거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청은 또한 케냐 관광협회에서 들어온 진정서를 군당국에 제시했다. 군인들이 관광루트까지 들어와 관광버스를 정지시키고 난폭한 단속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군인들이 외국관광객의 몸수색까지 한다는 내용이다. 그 진정서는 미스 엔리가 속한 관광회사가 주동이 되어 작성되었고 미스 엔리의 상세한 진술이 바탕이 되었다. 행정청은 군대가 관광지역에서 철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사건으로 행정청과 군대의 반목이 표면으로 들어났다. 행정청은 코네리를 처벌하라는 군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군당국도 동물보호지역이나 관광루트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코네리는 계속 밀렵단속을 하고 또 다시 세 명의 백인밀렵꾼과 열 명의 원주민밀렵꾼이 검거되었다. 그 과정에서 백인 밀렵꾼 두 명과 한 명의 원주민밀렵꾼이 죽고, 밀렵단속대원 한 명이 희생되었다. 코네리는 그래도 계속적으로 단속을 하고 마담 루베의 레스토랑도 감시를 했다. 레스토랑에 밀렵꾼들이 드나든다는 정보가 있었다. 레스토랑은 한밤중인데도 북적거렸다. 단골손님인 밀렵꾼들은 코네리가 들어오는 걸 보고 일어나 나가버렸으나 골든중령과 그 부하들은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골든중령은 매일 밤 드나들었다. 마담 루베에게 조용한 곳에서 둘이서만 마시자고 치근거리고 있었으나 마담 루베는 코네리를 보더니 일어섰다.
마담 루베는 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에 대형관광버스가 레스토랑을 그냥 지나가버렸다. 관례대로라면 사바나에 들어가기 전에 레스토랑에 들어와 가벼운 아침식사와 음료수를 마시게 되어 있었으나 안내를 한 미스 엔리는 운전수에게 그대로 가라고 지시했다. 관광객들에게 줄 식사와 음료수를 실은 트럭이 뒤를 따라왔다. 군대가 들어오자 관광이 중단되었는데 이날부터 재개되었다. 미스 엔리가 행정청에 로비를 했고 코네리가 뒤를 봐주었다는 소문이다. 한밤중에 코네리가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밀렵꾼손님들이 빠져나가버린 것도, 골든중령이 치근거리는 것도 마담 루베의 신경을 건드렸다.
‘나이로비호텔에서 엔린가 뭔가 하는 젊은년하고나 놀아나지 왜 여기는 왔어? 손님들은 왜 다 쫓아내는거야?’
‘그들은 밀렵꾼이고 범법자들이야. 그들을 받아들이면 안 돼!’
코네리의 대꾸에 마담 루베가 발끈했다.
‘나는 술을 파는 여자요. 술을 파는 여자는 손님을 가리지 않아. 밀렵꾼이든 군인이든 모두 손님들이야. 산림관께서 그게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영업정지처분이라도 내리시지.’
‘그렇다면 나도 손님이니 쫓아내지는 않겠구먼.’
코네리는 선반의 술병을 들고 레스토랑 구석에 있는 칸막이방에 들어갔다. 골든중령이 마담과 은밀하게 술을 마시려고 요구한 조용한 곳이다. 마담 루베가 술잔 두 개를 들고 따라왔다.
‘캡틴, 밤중에 사바나 안을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을거야. 코뿔소 밀렵꾼들이 이번에는 사람사냥을 할지도 몰라. 마우마우단에게 쏘는 군인들의 유탄流彈이 날아올지도 모르고.’
그저 흘러가는 말이 아니다. 마담의 눈이 번쩍이고 있었다.
‘당신은 죽으면 안 돼! 외상술값이 남아있으니까.’
코네리는 마담의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마담은 밀렵자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근거없는 말을 함부로 하는 여자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코네리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에 나이로비시장에서는 코뿔값이 갑자기 올라 천정부지天井不知다. 부르는 게 값이다. 홍콩의 중국인들이 나이로비에 들어와 자기들 끼리 경쟁을 했다. 코뿔소밀렵자들이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고 있었다.
코뿔밀렵자들은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조직을 강화했다. 그들 중 일부는 사바나를 점령한 군인들에게 접근했다. 군인들이 밀렵을 묵인해주면 코뿔소사냥은 어렵지 않다. 코뿔소는 영지가 넓지 않고 동작이 느려 쉽게 사냥할 수 있다. 군인들만 눈을 감아주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차보지역 산림관 코네리가 문제다. 코네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밀렵을 단속하고 밀렵꾼을 사살했다. 그를 제거해야 코뿔소를 사냥할 수 있다. 암살도 방법 중의 하나다. 코네리도 그런 밀렵단의 움직임을 감지했으나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목숨이 위험한 밤순찰도 계속했다. 마담 루베의 경고를 받은지 사흘째 되던 날 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내리고 있었는데 밀렵단은 그런 날을 이용했다. 비가 내리면 발자국이 없어지고 소리도 나지 않고 냄새도 사라져버린다. 코네리는 그날밤 야간순찰에는 밀렵단속반의 수를 열두 명으로 늘렸다. 코네리가 지휘하는 여섯 명이 앞서고 30m 쯤 떨어져 칸제르가 지휘하는 여섯 명이 뒤를 따랐다. 밀렵단속반은 거의 다 마사이출신이며 그동안 훈련을 잘 받았다. 마사이는 표범처럼 민첩하고 밤눈이 밝다. 가시덤불 안에서 코뿔소의 고함이 들렸다. 발정한 코뿔소가 암컷을 찾아다닌다. 코네리는 소리가 나는 곳에 바로 접근하지 않았다. 일부러 지그재그로 접근했다.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적의 기습을 피하기 위해서다. 또 코뿔소의 고함이 들렸다. 두 마리다. 암컷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숫컷들의 소리다. 그러자 곧 불빛이 반짝이고 총소리가 울렸다. 코뿔소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코네리는 신중했다. 그 밀렵자들은 코뿔소만 잡으려는 자들이 아니다. 불빛이 또 반짝거렸다. 코뿔을 잘라내려는 불빛이다. 대가리를 자르는 밀렵꾼은 서너 명인데 또 다른 놈들이 인근에 숨어있는 것 같다. 사람사냥을 하기 위한 잠복대다. 코네리는 더 기다렸다. 함부로 뛰어들면 안 된다. 숨어있는 잠복대의 표적이 된다. 밤새가 울었다. 비가 오는데 밤새가 돌아다닐 리 없다.
밤눈이 밝은 칸제르는 숲속에 숨어있는 사람사냥꾼들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 정확한 위치를 코네리에게 알려주었다. 20m 쯤 떨어진 가시덤불 안이다. 코네리는 영국육군 중령 출신이며 실전경험도 있다. 그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코뿔소의 대가리를 잘라낸 밀렵꾼들이 잠복하고 있는 사람사냥꾼과 합류하려고 가고 있다. 그들이 합류했다. 그들이 분산되어 협공을 받으면 싸움이 어려워진다. 코네리는 그때를 기다렸다. 이젠 그들을 체포하든가 사살해야 한다. 법에 의하면 용의자에게 발포하기 전에 사전에 경고를 해야 한다. 항복하지 않으면 발포한다는 통고다. 그러나 그럴 상황이 아니다. 사람사냥꾼들은 경고를 듣기도 전에 발포를 할 것이고 밀렵단속반이 희생된다. 코네리가 잠복장소로 돌을 던졌다.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돌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자 사람사냥꾼들이 당황했다. 덮어놓고 먼저 발포했다. 덮어놓고 쏜 총이라 탄환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코네리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법에 의하면 범죄용의자가 먼저 발포하면 경고를 할 필요가 없다. 밀렵단속반이 일제히 발포했다. 총이 발사되었던 곳을 겨냥하여 코네리의 반자동 5연발이 기관총처럼 불을 뿜었다. 다른 대원들도 집중사격을 했다. 그리고 몸을 굴려 얼른 이동했다. 적의 반격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반격은커녕 비명소리와 항복하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속임수일 수도 있다. 코네리는 1, 2분 동안 기다렸으나 반격이 없었다.
‘쏘지 말아요! 살려주시오!’
손전등을 켰다. 불빛 속에 밀렵꾼과 사냥꾼들의 처참한 모습이 들어났다. 모두 열서너 명인데 반 이상이 피투성이고 나머지도 기어다녔다. 숨어있는 곳이 가시덤불이라 도망치지도 못 하고 항복했다. 대부분 백인이었으나 군복을 입은 인디아인도 있다. 군대의 병사다. 항복한 자 중에 백인상사가 있다. 골든중령의 심복心腹이다. 키쿠유원주민을 사살하고 고문한 자다. 항복한 자들을 체포하여 사무실로 데리고갔다.
사살 네 명, 중상 두 명, 체포가 일곱 명이다. 다음날 나이로비에 있는 경찰본부에 군사령부의 부사령관과 골든중령이 달려왔다.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코네리를 체포하겠다고 날뛰었으나 경찰국장의 대응도 단호하다. 경찰국장은 차보의 사바나에 파견된 군대가 밀렵자들과 공모하여 보안관을 살해하려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군대의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했다. 골든중령이 그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자기가 지휘하고있는 소대가 마우마우단을 수색하고 있었는데 보안관이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야간순찰을 하고있던 소대가 코뿔소의 습격을 받아 사살했을 뿐인데 밀렵단속반이 기습을 했다고 했다. 예삿일이 아니다. 케냐에 파견한 영국군과 그곳 행정청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런던의 영국중앙정부의 긴급지시에 의해 군관합동조사반이 구성되어 조사가 시작되었다. 진상이 밝혀지고 있었다. 우선 증거품으로 코뿔소의 대가리가 제출되었다. 그건 군대의 수색대가 우연히 코뿔소의 공격을 받아 사살했다는 군대의 주장을 뒤집었다. 우연히 사살한 코뿔소의 대가리가 왜 절단되었고 군수색대가 왜 가지고 있었느냐가 문제다. 증인으로 나선 마담 루베는 사살되었거나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밀렵상습범들이 있다고 증언했다. 마담 루베는 또한 그 밀렵꾼들은 자기가 경영하는 레스토랑에 드나들면서 밀렵을 모의했다고 증언했다. 마담 루베의 주장대로 그 밀렵꾼들이 밀렵상습자라는 것도 밝혀졌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골든중령은 한 발 물러나 그렇다고 해도 군수색대는 밀렵꾼들과는 관계가 없으며 마우마우단 수색 도중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다가 코네리의 기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군대와 밀렵단과 관계를 부인했는데 마담 루베는 또 다른 증언을 했다. 밀렵단들이 드나들었던 레스토랑에는 골든중령을 비롯한 군인들도 드나들었고 그들은 서로 만나 술을 마셨다고 했다. 체포된 밀렵꾼들도 그걸 시인했다. 그들중에는 군속도 있고 그들이 군수색을 안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골든중령은 궁지에 몰렸다. 그는 또 한 발 물러나 설사 일부 군인들과 군속들이 밀렵에 관련되었다고 해도 그 사건은 코네리의 과잉단속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코네리가 사전경고도 없이 무자비하게 집중사격을 했다는 말이다. 그는 그 증거로 밀렵단속반이 단 한 번의 집중사격으로 여섯 명의 밀렵꾼과 군인들이 무참하게 죽거나 중상을 입었는데도 밀렵단속반측에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다고 주장했다.
군사령관은 그 사건에 일부 군인들이 밀렵꾼을 도와주다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나 내심으로는 크게 불쾌했다. 아무래도 산림보안관이 밀렵꾼들과 협력한 군인들을 계획적으로 사살한 것 같았다.
‘아무리 자연과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 더구나 그가 죽인 사람은 전투를 하고있던 군인이다. 야생동물의 목숨이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 야생동물보호정책이 군대의 작전 보다 더 중대한 것인가? 영국인들을 죽이고 있는 테러분자를 소탕하는 군인을 관리가 죽이다니 ….’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군사령관의 힘은 대단하다. 케냐 주재 행정관을 누를 수 있는 힘이다. 군사령관은 우선 쓰아보지역에서 작전을 펴고있었던 현지 연대장을 해임시켰다. 그리고 골든중령을 군법회의에 부치기로 하고 그밖의 관련된 군인들도 처벌했다. 군사령관이 그런 조치를 한 다음 이번에는 행정청측에서도 관련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싸움을 한 양측 당사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령관은 현지 산림관 코네리를 해임시키고 과잉단속을 하며 군인들을 죽인 죄로 재판에 회부하라고 요구했다. 런던의 중앙정부도 테러단체인 마우마우단을 소탕하려는 군대에게 비협조적인 인물을 제거하라고 케냐 주재 행정청장에게 지시했다. 행정청장은 그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 그는 우선 코네리의 직무를 정지하고 어떻게 처벌할지 결정하기로 했다. 행정장관은 적어도 코네리를 해임시키기로 하고 좀 더 조사를 한 다음 그를 해임하거나 기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케냐 주재 관광협회와 쓰아보지역의 민간단체협회로부터 진정서가 들어왔다. 관광협회의 사실상 대표는 미스 엔리이고, 민간단체협회의 대표는 마담 루베다. 그들은 모두 산림보안관 코네리는 쓰아보 사바나 파수꾼이며 그를 해임하면 사바나의 환경이 온통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보안관 코네리가 군대와 싸운 게 아니고 밀렵을 방지하려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런던에 있는 유력한 민간단체 야생동물보호협회도 코네리를 해임시키면 안 된다는 의견서를 중앙정부와 행정청에 제출했다. 그를 해임시키면 그냥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경고다. 행정청장은 그제야 사바나 파수꾼의 힘을 알았다. 코네리는 광범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있으며 행정장관의 힘으로 그를 해임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정장관은 코네리를 해임시키지 않고 사바나로 돌려보냈다.
159. 비수匕首
의금부義禁府 외반外班소속 포리捕吏 정상익은 긴급신고를 받고 새벽에 유대감집에 도착했다. 유대감은 관직官職에서 물러났으나 여전히 정쟁政爭의 중심인물이다. 흥선대원군(조선 말 고종의 부친)의 집정執政시대다. 유대감의 집 앞에서 늙은 집사執事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도가勢道家 대감의 집사인 그에게는 웬만한 양반도 굽실거렸다. 그러나 그는 정상익에게 공손하다.
‘간밤에 자객刺客이 침입했습니다. 집을 지키는 가신家臣이 그놈을 발견하고 칼로 찔러 죽였지만 내당內堂마님을 비롯한 부녀자들은 아직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심한 충격을 주지 않으려고 제가 비밀로 해두었습니다.’
그러니 검시檢屍도 내밀內密하게 해달라는 말이다. 시신屍身은 거적에 덮여 마당에 있었다. 정상익이 거적을 벗겼다. 시신은 검은옷을 입고있었는데 40대의 건장한 사내다. 정상익은 그자를 안다. 흑표라는 별명을 가진 살인청부업자다. 3년 전부터 살인혐의로 수배를 받고있었으나 수배중에 또 다른 살인을 했다. 흑표는 돈만 주면 서슴치않고 살인을 하는 자인데 그가 죽이기로 한 사람들은 거의 다 죽는다. 그는 밤고양이처럼 담장이나 지붕을 타고다니면서 소리없이 살인을 한다. 그는 지난해 열세 명의 경호대가 지키고있는 집에 들어가 집주인을 죽였는데 그런 살인전문가를 어떻게 죽였을까? 자객을 죽였다는 가신은 집안을 순찰하던 중 자객을 발견하고 수하誰何를 했으나 자객은 대답없이 단검短劍을 들고 덤벼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단검으로 찔러죽였다는 말이다. 그 가신은 그렇게 짧게 대답했을 뿐 공치사功致辭도 하지 않았다. 정상익은 내밀하게 해달라는 집사의 부탁대로 우선 시신을 들것에 싣고 의금부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객을 보낸 자를 수사하는 일은 어려울 것 같았다. 유대감은 많은 정적政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 중 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한 것 같았으나 그게 누구냐고 유대감에게 짐작가는 사람을 물을 수도 없다. 아무튼 죽은 자가 살인청부업자임이 틀림없으니 그를 죽인 유대감댁 가신을 문책問責할 수도 없다. 정상익은 죽은 자가 자주 드나드는 장터에 나가봤다. 죽은 자객이 드나들었던 술집주인이 말했다. 자객이 얼마전부터 돈을 물 쓰듯 썼다고 했다. 술을 억어먹었던 깡패들이 이번에 단단히 한 몫 했느냐고 물어보니 자객이 성사가 되면 그렇게 되겠지만 잘못하다가는 내 모가지가 먼저 잘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 이 세상에서 형님 목을 누가 자르겠습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지.’
죽은 자객의 주변조사는 별 성과가 없었으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다. 죽은 자객이 그런 말 했다면 그를 죽인 자는 나는 놈이다. 죽은 자객은 자기를 죽인 자를 미리 알고있었던 것이다. 정상익은 죽은 자객의 시체에 남아있었던 칼자국을 상기想起했다. 자객을 죽인 자는 정말로 나는 놈 같았다. 단검으로 정확하게 심장을 찌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살인전문가와 1 : 1로 싸우면서 그렇게 정확하게 칼질을 한 자는 분명 나는 자다. 유대감댁집사는 순찰을 하던 가인이 그를 죽였다고 했고, 그 자신도 그렇다고 했으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보통 경비원들이 순찰을 할 경우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순찰을 하고 그들은 창이나 칼을 가지고 있다. 그 가신은 혼자 순찰을 했고 단검으로 침입자를 찔렀다. 혼자 순찰을 했다는 말도 의심스럽고 단검으로 침입자를 찔러죽였다는 말도 의심스럽다. 그 가신이 그렇게 용감하고 칼솜씨가 그렇게 좋은 사람 같지는 않았다. 손가락마디가 굵고 몸도 날렵해보이지 않았다. 집안에서 막일을 하는 머슴 같았다. 하지만 자객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죽였든지 죽일 놈을 죽였으며 그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정상익은 더 이상 그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흘 쯤 뒤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정상익은 이번에도 새벽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어느 큰 기방妓房 안방에 시신이 있었는데 정상익은 그 얼굴을 보고 크게 놀랐다. 세도가 민대감이다. 민대감은 기방에서 술을 마시다가 밤중에 집으로 가려고 나서다가 기방마당에서 살해되었다. 민대감을 경호하는 가신 두 사람이 마당에 있었는데도 범인이 어떤 자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범인은 단 일격으로 민대감을 죽이고 도망쳤다. 단검으로 심장을 찔린 민대감은 비명도 지르지 못 하고 즉사했다. 아무래도 살인전문가의 소행이다. 죽은 사람이 세도가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었고 정상익이 수사를 주도했다. 수사진搜査陣은 그 사건을 원한에 의한 것으로 보고 민대감에게 원한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민대감은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세도가였으므로 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많다.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람이 열 명이 넘었는데 그중에는 유대감이 끼어있다. 열흘 전에 자객이 죽이려고 했던 인물이다. 민대감과 유대감은 사이가 나빴고 최근에는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상익은 조심스러웠다. 민대감을 죽인 암살범과 그 배후를 밝혀내야만 했으나 함부로 조사할 수 없었다.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거의가 고관이거나 세도가였으며 그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조사를 할 수 없다. 용의자 중 한 사람인 유대감도 그렇다. 그는 왕실의 피가 섞인 세도가이고 그의 사람들이 의금부 안에도 있다. 정상익은 극비리에 내사內査를 했다. 그는 자기 수하에 있는 몇몇 염탐꾼들을 시켜 유대감댁의 내정內庭을 살펴보고 그 댁에 드나드는 인물들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들 염탐꾼들 중에는 소금, 야채, 생필품들을 파는 행상인도 있고, 기방의 기생도 있으며, 장돌뱅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정보망이 별 성과가 없었다. 유대감댁은 30여 년이나 집안일을 다스리고 있는 늙은 집사에 의해 잘 통제되어 있어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다. 식객들도 별로 없다. 본디 세도가에는 식객들이 많았으며 식객이 서른이 넘는 집도 있었으나 유대감댁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집사가 은밀하게 통제를 해서 식객들이 오래 붙어있지 못 하게 만든다는 소문이다. 푸대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진하게 대접을 하여 식객들을 송구스럽게 만들었다. 그 집에는 하인도 많지 않았다. 집사 밑에 유모乳母, 침모針母, 식모食母 등이 각각 서너 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을 뿐이고 집안 경호나 잡일을 하는 하인 몇 명과 노비 대여섯 명이 행랑行廊에서 거주하고 있다. 유대감댁 내정을 여전히 알 수 없다. 주목할만한 정보를 가지고온 염탐꾼은 그림자영감뿐이다. 그림자영감은 정상익의 심복心腹이며 그림자처럼 미행을 하는 염탐꾼이다. 그림자영감이 사흘 동안 유대감댁 인근에 잠복하여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는데 사흘 째 되던 날 밤에 뒷문으로 사람이 나오는 걸 봤다. 그림자영감은 그 인물을 보고 뭔가를 직감했다. 예사 인물이 아니다. 작은 체구이기는 하나 민첩하게 보였고, 고양이처럼 발자국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다녔다. 자기와 같은 어둠속에 사는 사람이다. 그림자영감이 그 자를 미행했다. 그 인물이 어둠의 사람이란 건 틀림없었다. 그자는 큰길을 놓아두고 골목길로 다니고, 가끔 멈춰서 주위를 살피기도 했으며,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자는 절대로 밝은 곳에는 나가지 않았다. 물론 몇 십 년 동안 그 일을 해온 그림자영감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정상익이 흥미를 느꼈다.
‘그래, 그 자는 어디로 갔나?’
‘죽엽산입니다.’
죽엽산은 한성(서울) 북쪽 경기도에 있는 야산이다. 꽤 높은 산인데 주변에 마을이나 인가人家가 없다. 그림자영감이 산기슭에서 그 자를 놓쳤다. 그 자는 산의 지세를 잘 알고있는 것 같아 더 이상 미행을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죽엽산일대에는 유대감의 영지가 있고 일가의 묘지도 있다. 정상익은 직접 죽엽산으로 가서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림자영감이 경고했다.
‘나리,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 자는 심상치 않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정상익도 이름난 검객劍客이다. 부하 두 명을 데리고 죽엽산으로 갔다. 사냥꾼으로 가장假裝했다. 산 부근의 마을에서 산으로 안내해줄 사냥꾼을 구했다.
‘죽엽산에서 맷돼지나 노루를 잡겠다고요? 그건 어렵습니다.’
죽엽산이 유대감의 영지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노루라면 죽엽산이 아니리도 그 옆에 있는 산에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상익은 죽엽산 주변의 산을 돌아다녔다. 영지라고는 해도 담을 쌓아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슬그머니 죽엽산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맷돼지는 잡지 못 했으나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숲속에서 꿩의 시체를 발견했다. 죽은지 오래되었으나 세밀하게 조사했다. 그 꿩은 화살에 맞았다. 꼬리부분에 상처가 있었는데 좀 이상하다. 화살이라면 상처가 동그랗게 구멍이 났을텐데 그 상처는 동그랗지 않고 옆으로 길다. 마치 칼에 찔린 것 같았다. 꿩이 칼에 찔릴 리 없다. 그렇다면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것인가? 비수다. 손으로 던지는 비수다. 누가 비수로 꿩을 잡았을까?
‘죽엽산에 포수가 있는가?’
‘없습니다. 누가 그런 산중에 살겠습니까.’
안내인은 그렇게 말해놓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하긴, 산중복에 오두막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정상익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두막에 사람이 살고있는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봄에 나물을 캐러갔던 아낙네가 오두막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았다고 했지만 ….’
정상익은 오두막에서 나오는 사람을 봤다는 나물을 캐러갔던 아낙네를 만났다. 먼 곳에서 봤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오두막에서 젊은 여인이 나오는 것을 봤으나 이내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고 말했다. 짙은 밤색옷을 입었으며 몸매가 날렵하게 보였으며 미인이었다고 했다. 정상익은 그림자영감에게 오두막을 살펴보라고 지시했는데 그림자영감이 뭔가 망설이면서 불안스러운 표정이다. 영감은 30여 년 동안 염탐을 해온 염탐전문가인데 그런 그가 왜 망설일까? 그림자영감은 정상익의 지시에 따라 죽엽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정상익도 뭔가 불안했다. 유대감댁에서 나와 죽엽산으로 들어간 수상쩍은 자는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다. 죽엽산에서 본 비수에 찔려죽은 꿩을 생각했다. 누가 비수를 날려 꿩을 죽였을까? 유대감댁에서 나와 죽엽산으로 들어간 자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림자영감이 위험하다. 비수로 꿩사냥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정상익은 또 유대감댁마당에서 죽은 흑표를 생각했다. 흑표는 별명대로 표범처럼 밤눈이 밝고 민첩한 살인자이고 절대로 자기 모습을 들어내지 않은 은신술의 명수다. 그런 흑표를 누가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죽였을까? 유대감댁집사는 가신이 죽였다고 했으나 정상익이 보기에 그 가신은 집안의 잡일을 하는 하인이었고 그런 살인능력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집사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흑표는 범죄인들에게는 다 알려진 청부살인자인데 그런 자를 단 일격으로 죽인 자는 누굴까? 정상익은 민대감을 죽인 암살자를 생각했다. 그 암살자는 경호인을 데리고있는 민대감을 죽였다. 단 일격으로 심장을 찌른 수법은 흑표 때와 같다. 민대감과 흑표를 죽인 자가 같은 인물인지 모른다. 꿩을 잡은 사람도 같은 인물인지 모른다. 비수를 날리는 솜씨가 비상하다. 그림자영감이 위험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그림자영감이 …. 30여 년이나 그런 일을 해왔지만 상대의 무술이 워낙 비범하다. 그림자영감의 소식이 끊겼다.
정상익이 직접 그림자영감의 행방을 조사하기로 했다. 죽엽산에 있는 오두막에 누가 살고있는지 확인하고, 그걸 조사하려했던 그림자영감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알아보기로 했다. 죽엽산은 유대감의 영지였으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정상익에게 함흥으로 출장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함흥의 양반집 장자長子가 살인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고있으니 의금부에서 직접 조사하라는 명령이다. 뭔가 이상하다. 의금부에는 자기가 아니더라도 포리捕吏가 두 명이 더 있고 그들은 손이 비어있는데 왜 하필 중대한사건을 조사하는 자기에게 출장명령이 떨어졌을까? 상사上司 박모영감은 단호했다. 명령은 이미 내려졌고 함흥에 갈 역마驛馬도 수배되어있으니 지체없이 떠나라는 엄명이다.
(벌써 역마까지?)
살인누명 조사가 그렇게 신속히 처리해야 할 일일까? 정상익은 조선사회의 권력암투와 부패한 관리들의 실태를 새삼스럽게 통탄했다. 그런 조치를 한 박모영감은 유대감댁과 사돈査頓이다. 유대감이 의금부에 박아놓은 관리다. 유대감이 손을 쓴 것이다. 유대감댁 늙은 집사가 의심스럽다. 하여튼 명령이니 함흥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또 일이 벌어졌다. 암살된 민대감댁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민대감과 가까웠던 좌의정이 직접 의금부에 지시를 내려 정상익의 함흥출장을 취소시켰다. 좌의정의 지시는 단호했으며 의금부도 어찌할 수 없었다.
‘어허, 자네 뒤에 그런 힘이 있을지 몰랐는데 ….’
박모영감이 비꼬았으며 불쾌하고 험악한 표정이었다. 의금부 안에서 암투의 조짐이 보였으나 정상익은 조사를 강행했다. 그는 의금부 안에서 가장 유능하고 청렴한 관리다. 오두막을 수색했다. 집안은 겉보기와 달리 깨끗하다. 다락이 딸린 넓은 방이 있고 다락에는 비단으로 만든 침구寢具가 있었다. 부엌에는 굴비, 북어, 마른육포肉脯 등 호사스러운 반찬이 있었다. 오두막은 비어있었으나 늘 비어있는 것 같지 않았다. 살고있는 집이다. 오두막주변을 샅샅히 조사했다. 그림자영감의 시신이나 수상쩍은 핏자국은 없다.
뒷마당의 흙을 파내니까 꿩, 토끼의 뼈들이 꽤 많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노루, 오소리, 늑대의 뼈도 있다. 짐승들의 뼈에는 날카로운 비수에 찔린 흔적이 남아있었다. 오두막의 주인은 비수를 날려 노루와 늑대까지도 잡는 사람이다. 무서운 사냥꾼이다. 그 사냥꾼이 사람사냥을 했다는 혐의가 있으며 절대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자다. 정상익이 유대감댁을 찾았다.
‘그 오두막 말이요?’
늙은 집사가 말했다. 그는 중인中人신분인데 정상익을 중인으로 보았다. 중인신분의 포리 따위가 감히 사대부士大夫 대감의 집안에 까지 들어왔느냐는 투의 빈정거림이다.
‘그 산에는 집안의 묘墓들이 있습니다. 정실正室소생이 아닌 서자庶子출신분들이지만 그래도 소중하게 모시고 있지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그 오두막을 지어놓고 노비들이 거기 나가 묘를 찾아오는 분들을 모십니다. 최근에 나가있는 노비는 젊은 계집인데 아비의 상喪을 치르기 위해 외지外地에 나가있습니다. 여기에는 없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는 며칠 안에 알아봐주겠다고 한다. 집사는 말을 마치자 담뱃대를 물었다. 더 할 말 없으니 꺼지라는 투다. 거기까지가 정상익이 할 수 있는 한계다. 늙은 구렁이집사에게 졌다. 사대부 집안 집사를 더 추궁할 수는 없다. 사대부집안에서는 관아로부터 그런 내사를 받는 걸 싫어한다. 집안의 권위와 체면을 손상시키는 관리를 그냥두지 않는다. 정상익은 유대감댁에서 물러났으나 수사를 포기한 건 아니다. 그는 양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은 중인이었으나 양반대우를 받았다. 유능한 포리였고 양반사회의 비리를 다루는 관리였으므로 그를 양반으로 대우했다. 그러나 정상익 본인은 조선의 신분사회의 벽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며 절대로 양반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중인이란 특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능에 철저했다. 수사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집념이다.
그날밤, 마포 뒷골목의 술집에 갔다. 부하 염탐꾼으로부터 거기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었다. 마포는 쌀, 소금, 새우젓 등 생필품을 싣고 많은 배들이 드나드는 항구였으며 그 뒷골목 술집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와글거렸다. 뱃놈, 막노동꾼, 장삿꾼, 사냥꾼, 밀매인, 도박꾼, 망한 양반이나 관리가 모여들었고, 술이나 몸을 파는 여인들도 끼어들었다. 찾아간 술집은 괘 큰 술집인데 사람들이 와글거리고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술집 한가운데 전라도 칼잡이두목 밤사냥꾼이 진을 치고 주위에 열서너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부하 염탐꾼이 건달로 가장假裝하여 끼어있다. 밤사냥꾼은 죽은 흑표의 사촌형이며 전라도일대에서 암약하는 칼잡이들의 두목이다. 흑표를 죽인 칼잡이를 찾아내 원수를 갚기 위해 한성(서울)에 왔다고 하면서 벌써 일주일째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흑표를 죽인자의 정보를 주는 자에게는 현상금을 걸고 돈을 뿌렸다. 밤사냥꾼은 돈이 많았는데 어느 양반이 돈을 대준다고 소문이 났다. 그게 민대감이라는 말도 있었다.
‘아, 형님. 이리 오시오. 우선 우리 전라도 큰형님께 인사드리시오.’
정상익은 사대부댁에 드나드는 큰 거래를 하는 상인으로 소개되었다. 돈푼께나 있는 상인으로써 깡패나 칼잡이들에게 술도 사고 용돈도 준다는 소개였다. 밤사냥꾼이 차가운 눈으로 정상익을 훑어보았다. 사대부댁에 드나든다는 말에 흥미가 있는 것 같았다.
‘사대부댁에 드나든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유대감댁에도 드나들겠네?’
미끼에 걸려들었다.
‘그럼요.’
‘그렇다면 나하고 내밀하게 좀 만납시다.’
정상익과 밤사냥꾼이 다른 자리로 옮겼다.
‘내 동생 흑표가 민대감집에서 칼에 맞아죽었다는 건 알고있겠지?’
‘그럼요. 누가 죽였는지도 알고있어요.’
밤사냥꾼이 큰 사발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걸 내게 알려주면 은화로 쉰량을 주겠어.’
정상익이 놀란 표정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속삭였다.
‘백가라는 백정출신 머슴이요. 그집 행랑에서 사는 놈입니다.’
밤사냥꾼이 버럭! 화를 냈다.
‘틀렸어. 그놈은 아니야. 늙은 집사놈이 한 거짓말이야. 내가 알아봤더니 그놈은 소, 돼지나 잡았지 사람은 잡지 못 하는 놈이야.’
‘그렇다면 누굽니까? 그 집 행랑방에는 칼께나 쓰는 놈들이 있다던데 ….’
‘놈들도 아니야. 내가 알아봤는데 모두 시시한 놈들이었어. 행랑방에는 칼잡이는 없어.’
밤사냥꾼은 꽤 상세하게 알아본 것 같았으며 유대감댁 사람이나 드나드는 사람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다. 정보가 정상익 보다 훨씬 상세하다. 동생을 죽인자에게 복수하겠다는 그자의 집념은 무서웠다.
‘그럼, 흑표를 죽인자는 누굽니까?’
‘아직 몰라. 그러나 곧 알게될거야.’
밤사냥꾼은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틀전에 어느 색주가色酒家 계집주인이 그를 찾아와 유대감댁에 있다가 도망나온 젊은 계집노비를 알려주었다. 그런 노비라면 유대감댁 내정을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노비를 만났습니까?’
‘만나지 못 했어. 그 계집은 죽었어.’
누군가 그 계집노비를 칼로 찔러죽여 강물에 던져버렸다. 정상익이 다음날 관아의 뒷마당에 거적에 덮여있는 노비를 검안檢眼했다. 서른 쯤 되는 여인인데 사내께나 울릴만한 미모다. 여인의 가슴팍과 심장에 칼자국이 있었다. 강변을 순찰하던 포교들이 발견했는데 굵은 줄로 묶여있었다. 정상익은 색주가주인을 만나러갔다. 집주인은 겁에 질려있었다. 죽은 노비에게 귀신이 붙어있다고 했다.
‘그년은 사흘 전에 제발로 우리집에 뛰어들어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유대감댁 노비라고 하던가?’
‘녜, 노비인데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서 도망쳐나왔다고 했습니다.’
색주가주인은 얼마간의 돈을 받고 술꾼의 시중을 들게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사흘 후 노비와 잠을 잔 술꾼을 만났다. 술꾼은 벌벌 떨었다.
정상익은 방가라는 그 술꾼과 술을 마시며 얘기했다. 술꾼이 술을 마다할 리 없으니 그들은 알배기굴비를 술안주로 술을 마셨다. 방가는 색주가의 첫서방이란 별명을 가지고있는데 색주가는 손님을 받기 전에 처녀를 그에게 먼저 맡겼다. 많은 오입을 한 그는 여인을 잘 다룬다. 첫 경험의 숫처녀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감댁에서 도망친 여인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여자는 서방님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고만 했어요. 자기는 바람을 피운 적이 없는데 서방님이 자기를 의심한다는 말이고 자기의 서방은 많은 사람들을 죽인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의 남편을 살인마이고 바로 흑표를 죽이고 민대감을 죽인자란 말인가? 범인이 들어난 것 같다. 공포에 질린 여인은 헛소리만 할 뿐 자기 남편의 이름이나 그가 어떤 자라는 건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술꾼 방가가 이상한 말을 했다. 그 여인이 처녀였다는 거다. 남편과 몇 년을 살아온 여인이 처녀라니?
‘맷돌에 갈린 계집이었어요. 맷돌에 갈려 아랫도리가 일그러져 펑퍼졌습니다.’
맷돌에 가는 것은 변태성욕자들이 하는 짓이다.
‘그럼 그녀의 남편이 변태성욕자라는 건가?’
‘맷돌을 가는 자는 사내가 아니라 계집입니다. 동성애를 하는 계집이지요.’
그 여인의 남편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말이다.
정상익의 머릿속에 불현 듯 유대감의 영지인 죽염산 오두막에 여자가 산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 죽염산에서 비수를 날려 꿩이나 노루를 잡는 사냥꾼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흑표를 죽이고 민대감을 암살한 자도 바로 그 여인이며 동성애를 하던 애인도 죽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살인마를 잡고 배후를 밝혀내야만 한다.
정상익은 다음날 장례원掌隷院에 갔다. 노비의 호적戶籍을 등기시켜놓고 다스리는 관아인데 살인마가 노비여인과 함께 살고있었다면 그 자신도 노비였을 것이다. 노비는 평생 노비와 어울려 산다. 유대감댁에는 남자노비가 열네 명, 여지노비가 열여섯 명이 등기되어있다. 유대감은 역적의 가족을 하사下賜받아 노비로 부렸다. 노비를 부리는 양반집안은 노비가 죽거나 도망을 가면 장례원에 신고를 하게 되어있었으나 유대감댁에서 최근에 신고된 자는 없다.
‘아비의 초상을 치르러간 그 노비말이요?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오. 아마 도망친 것 같소.’
집사는 별걸 다 묻는다는 태도다. 정상익이 정색을 했다.
‘노비가 도망가면 관아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걸 모른다는 말이요? 이 댁에서는 며칠 전에 또 노비 한 명이 도망쳤는데 ….’
늙은 집사가 당황했다. 그 포리가 그렇게 철저하게 조사한줄 몰랐다. 도망간 노비의 시체가 발견된 이상 더는 모른다고 할 수 없다. 집사가 며칠 전에 도망친 노비는 찬비饌婢였는데 노비들끼리 다투다가 도망쳤다고 했다. 보름 전에 도망친 노비도 찬비라고 했다. 찬비는 부엌에서 반찬을 만드는 노비다. 장례원에서 알아보니 그 노비는 나이가 서른이고 이름이 우녀였는데 인조 때 역적으로 몰렸던 집안이었다. 귀족의 피를 지닌 여인이라서 상전들에게도 우대를 받았다. 집사는 천한 노비의 일을 집사가 어떻게 알겠는가 라며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불안한 표정이다. 집사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정상익은 그길로 한성 교외에 있는 백정마을에 갔는데 일부러 골목길을 택해 미행을 예방했다. 정상익은 백정마을에서 주문한 물건을 찾았다. 소가죽으로 만든 방탄복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서 저고리 안에 겹쳐입을 수 있다. 날아오는 비수를 막을 수 있다. 정상익은 불안감을 느꼈다. 살인마의 환상이다. 흑표, 민대감을 즉인 살인마의 다음 표적은 자기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철저하고 치밀한 조사로 살인마의 비밀을 거의 벗겼다. 정체가 들어난 살인마는 궁지에 몰렸으므로 벗어날 길은 하나뿐이다. 정상익을 죽이는 것이다. 정상익은 의금부 안에서 기거寄居했다. 죄인을 가두는 옥사獄舍에서 기거했다. 신변안전을 위해서다.
의금부의 옥사는 높은 담에 들러쌓였고 포리들이 엄중하게 경비를 했으나 정상익은 그래도 몸조심을 했다. 그 노비여인은 귀신이 씌운 듯 한 암살자다. 유대감댁을 내사한 염탐꾼들의 첩보가 들어왔다. 정보는, 유대감댁 찬비 두 사람이 사라졌고, 그 대신 사돈집에서 찬비 두 사람을 데려왔다. 유대감댁의 경비가 갑자기 엄중해졌다. 특히 야간경비가 철저해졌으며 밤에는 지붕 위나 나무 위에까지 감시자가 올라가 밤샘경비를 한다. 주목할 보고는 또 유대감댁 정실큰마님이 일주일에 한 번 쯤 인근에 있는 절에 가는데 그 행차의 경비가 삼엄하다는 말이다. 두 명의 시녀가 가마 곁에 붙고 창과 칼을 든 여섯 명의 경호원이 가마의 주변에 배치되었다. 본디 큰 양반의 집에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으나 유대감댁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예감했다. 흉사凶事가 일어났고 어쩌면 암살사건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유대감은 찬비로 일했던 암살자를 내쫓은 것 같다. 의금부포리의 내사를 받고있는 그녀를 집안에 감추어두거나 출입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암살자는 어디로 갔을까? 정상익은 다음날 열 명의 포졸을 데리고 죽염산에 갔다. 그건 직감이다. 죽염산에 뭔가 있다. 그 노비는 겉으로는 찬비였으나 사실은 외비外婢다. 외비는 바같으로 내보내 바깥일을 하였는데 그녀는 유대감의 묘지가 있는 죽염산에 들어가 묘를 참배하는 양반의 시중을 들었다. 산에서 살면서 사냥을 했다. 비수를 날려 토끼나 꿩을 잡았고 무예수련을 했다. 그 재주를 알아본 집사가 그녀를 사람사냥꾼으로 만들었다. 죽염산에 들어간 정상익은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산을 수색했다. 예감이 적중되었다. 골짜기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흙과 들에 덮여있었으나 까마귀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다. 그림자영감이다. 심장과 가슴팍에 칼자국이 있었다.
정상익이 눈물을 흘렸다.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맹세를 했다. 또 다른 단서도 나왔다. 꿩의 날개깃이 떨어져 있었고 핏자국이 있었다. 변색이 되지 않았으며 죽은지 이틀도 되지 않은 핏자국이다. 발자국이 남아있다. 작은 발자국이다. 발자국은 오두막으로 가지 않고 산위로 갔다. 산 너머에 동굴이 있고 살인자는 거기서 밤을 세웠다. 밥을 짓고 꿩과 토끼를 구워먹었다. 마른 풀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는데 잠자리에서 강한 암내가 났다. 암살자는 전날 늦게 동굴을 떠났는데 추적을 눈치챈 것 같다. 정상익은 계속 발자국을 추적했으나 안내인 한 사람과 칼을 잘 쓰는 포졸 한 사람만 남기고 모두 돌려보냈다. 암살자는 산짐승처럼 민첩하고 빠르다.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발자국을 따라 산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계곡 위에서 시뻘건 물체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피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피다. 정상익이 경악驚愕했다. 계곡 위에서 떨어진 것은 매월 한 번씩 여인들이 몸에서 나오는 피가 묻어있는 월경대다. 변태성욕자의 기괴한 소행이다.
‘이런 죽일 년!’
정상익이 분노했다. 계속 발자국을 추적했으나 날이 어두어질 무렵 중단했다. 암살자가 산에서 내려와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달구지길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추적은 실패했고 정상익은 난감해졌다. 도움이 필요하다. 술꾼 방가를 찾아갔다. 그는 색주가의 첫서방이라는 별명대로 여인을 알고 여인의 생리와 구조를 잘 알았다. 방가는 암살자가 추적자의 머리 위로 생리대를 던졌다는 말을 듣고 긴장했다.
‘그년은 사내가 아닌 계집과 노는 변태계집입니다. 그런 변태계집은 질투심이 강합니다. 미친짓을 하지요.’
‘그 계집은 세상을 비관하고 사람들을 증오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입니다.’
그런 것 같다. 노비로 태어나 노비로 살았던 그 여인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박해를 받았으며 그게 한이 되어 복수를 하고 있다. 여인이 은밀한 곳에 찼던 생리대를 추격대의 머리로 던진 것은 사내에 대한 경멸과 증오다. 동성애 여인을 죽인 것은 배신자에 대한 분노와 질투심이다. 암살자가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정상익이 방가에게 물었다. 방가는 변태여인의 비뚤어진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그년은 자기를 배신한 동성애 여인을 죽였지만 그 여인을 자기로부터 빼앗아간 자에게는 복수를 하지 못 했습니다.’
그렇다. 암살자가 죽일 사람은 또 있다.
‘동성애자의 애인을 빼앗은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그 동성애 상대는 처녀였지요. 나는 그 노비계집과 하룻밤 동침을 했으니까 알 수 있습니다.’
정상익의 머리에 불현 듯 어떤 추리가 떠올랐다. 유대감의 정실부인에 대한 경호가 강화되었다는 염탐꾼의 정보다. 두 명의 시녀와 여섯 명의 경호원이 가마 곁에 붙어있다. 그건 이례적인 경호다. 왜? 유대감의 정실부인은 양가 출신이며 20여 년 전에 유대감에게 시집을 왔는데 유대감은 다른 세도가들처럼 두 명의 측실側室이 있고 또 다른 젊은 첩妾들이 있다. 그래서 젊은 정실부인은 공방空房을 지키기 일쑤였을 것이다. 흔히 정실부인의 안방에는 비밀이 있다. 정실부인은 공방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계집종을 안방으로 끌여들였다. 유대감의 정실부인이 변태 암살자의 동성애 애인을 빼앗은 것이다. 철저한 탐색을 지시한 한 나흘 후 유대감댁 정실부인이 죽었다. 평소에 풍기風氣가 있었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급사했다는 말이었다. 수상쩍다. 부인이 죽은 것은 나흘 전이 아니라 사흘 전이었고 관아에서는 검시도 안 했다. 권세가의 경우 검시를 생략할 수도 있으나 마지막 진료도 하지 않았다. 부인이 불교신자였으므로 절에서 화장火葬을 해버렸다.
정상익은 직접 유대감을 방문했다. 늙은 집사는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있었으며 뭔가 불안한 표정이다. 모습도 초췌憔悴하다. 정상익의 집요한 수사에도 질린 것 같다.
‘나는 할 말이 없소. 많은 문상객問喪客을 모셔야 하니까. 나는 지금 매우 바쁜 몸이외다.’
정상익은 그 집에서 나왔으나 돌아가지는 않았다. 천천히 집 주변을 돌아봤다. 염탐꾼들의 말대로 경비가 삼엄하다. 나무와 지붕 위에도 감사소가 있다. 그리고 다섯 명으로 편성된 경비원들이 정기적으로 집안을 순찰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유대감댁 사람들은 침울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다. 무장을 한 경비원들조차 불안해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은 그림자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암살자의 그림자다. 죽엽산에는 암살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암살자는 혼자 사는 여인이다. 친척도 친구도 없다. 보통사회에서 사는 법을 모른다. 정상익은 혼자 주변마을을 돌아다녔다. 골목길까지 살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마을을 순찰하던 포졸을 만났다.
‘나리, 저쪽 마을구석에 빈 집이 한 채 있습니다. 오래토록 비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상익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봤다.
‘그 집은 빈 집인가?’
‘녜, 그렇습니다. 흉가입니다.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 모두 죽었으므로 그 집은 흉가로 알려져 아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 집에 가봤다. 꽤 큰 초가草家였으나 마을사람들의 말대로 오래 비워져 불기가 없다. 포졸들에게 집 주변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집에 들어갔다. 대문을 피해 담을 넘었다. 마루에는 먼지가 쌓이고 방문들은 떨어져나갔다. 집안에는 인기척은 없었으나 귀기鬼氣가 있다. 뒷마당에 곳간이 있었다. 연장鍊匠을 넣어두는 곳이다. 정상익은 칼을 뽑아들고 곳간에 들어갔다. 지붕 밑에 창이 하나있어 아주 깜깜하지는 않다. 한구석에 마른 짚이 쌓여있다. 그 짚더미에서 냄새가 난다. 죽엽산동굴에서 난 냄새다.
두껍게 깔린 짚더미에서 노릿한 냄새가 나고 비린내도 났다. 계집의 암내다. 암살자는 죽엽산에서 내려와 그 집에 숨어있었다. 안성맞춤의 잠자리다. 암살자는 거기에 머물면서 유대감댁 정실부인을 죽였다. 동성애 애인을 빼앗아간 연적戀敵을 죽였다. 정상익은 곳간구석에 칼을 놓고 앉아 기다렸다. 쥐들이 돌아다녔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날이 아주 깜깜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암살자는 본디 고양이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익은 살짝 열려있는 문틈으로 스며드는 냄새를 맡았다. 암살자의 몸에 벤 노린내다. 정상익이 노린내를 감지하자마자 칼을 빼들었는데 암살자가 그 소리를 들었다. 박쥐처럼 어둠에 밝은 암살자가 정상익을 발견했다. 갑자기 가슴에 충격이 왔다. 비명이 나올 정도의 강한 충격이다. 암살자의 비수가 정확하게 정상익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그러나 정상익은 백정마을에서 만든 가죽방패防牌를 껴입고 있다. 충격을 받아 엉덩방아를 찧었으나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암살자는 비수를 날려 치명상을 입힌 다음 희생자에게 다가와 비수가 들어간 상처를 다시 단검으로 깊이 찌르는 버릇이 있다. 비수로 찌른 상처에 단검을 다시 사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상처가 단검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암살자는 정상익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다가왔다.
‘죽었군.’
암살자가 중얼거리며 코앞에까지 다가왔을 때 정상익이 벌떡 일어섰다.
‘네, 이 년!’
정상익이 칼로 암살자를 찔렀다. 정상익은 관가에서는 이름난 검객이며 실수는 없다. 정상익은 칼날이 살속으로 파고드는 소리를 들었고 뼈에 부딪히며 핏줄과 힘줄을 절단하는 울림도 느꼈다. 앗! 하는 암살자의 비명이 들리고 얼굴에 뿌려지는 핏줄도 느꼈다.
‘이 년! 칼을 버리고 포박捕縛을 받아라!’
정상익이 고함을 질렀으나 암살자는 없다. 어느새 곳간문을 차고 도망쳤다. 단칼로 목을 잘라버리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암살자에게 상처만 입히고 생포生捕하려고 한 것이 잘못이다. 암살자는 야수野獸처럼 질긴 목숨을 가진 자다. 그러나 꽤 깊은 상처를 입었으므로 멀리 가지는 못 할 것이다. 왼쪽 어깨의 상처가 뼈에 닿아있다. 피가 뚝뚝 떨어져있다. 정상익은 불을 켜지 않고도 피냄새로 추적을 했다. 불을 켜면 그 무서운 비수가 날아올 것이다. 암살자는 중상을 입었는데도 쓰러지지 않았다. 큰 길을 피해 골목길로 도망가고있었다. 죽엽산쪽이다. 죽을 장소를 죽엽산으로 선택한 것인가? 그런데 암살자가 방향을 바꿨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죽엽산쪽으로 향한 것처럼 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암살자가 큰길로 나왔다. 정상익은 경악했다. 유대감댁으로 가는 길이다. 설마 그런 중상을 입고 경비가 삼엄한 유대감댁으로 가서 뭘 하려는 것일까? 거기서부터 피가 멈춰버렸고 피냄새와 핏자국으로는 추적을 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유대감댁까지 추적을 했는데 날이 밝아올 무렵 유대감댁에 도착하니 담장 밑에 누군가가 쓰러져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암살자다. 담장에 핏자국이 있다. 암살자자는 중상을 입은 몸으로 담장을 타넘어 유대감댁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다. 정상익은 아직 숨이 남아있는 암살자를 안아 일으켰다.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고 그 날카로운 눈이 아니라면 천하의 미색美色이다.
‘나리, 나는 그 늙은 집사놈을 죽였습니다. 구렁이 같은 놈을 죽였으니 이젠 한이 없어요.’
암살자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집사를 죽여 양반사회에 복수를 했다.
‘그래요. 민대감도 집사의 사주使嗾에 의해 내가 죽였습니다. 정실부인도 내가 죽였지요.’
유대감댁이 갑자기 소란해지더니 많은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그제서야 집사가 죽은 걸 안 것 같다.
‘저기 있다. 저 자를 잡아라!’
유대감댁 경비원들이 창과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이 놈들 물렀거라! 나는 의금부포리 정상익이다.‘
정상익은 숨이 끊어진 암살자를 놓고 일어나 고함을 쳤다. 정상익은 그렇게 그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사냥꾼이야기 - 1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