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10권> 145화 - 149화 (계속)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기記, 김왕석 역譯
이천만 윤색潤索
<목차>
145. 태백산맥의 식인호食人虎/ 146. 사살작전射殺作戰
147. 마푸드의 죽음/ 148. 아마존의 변화
149. 경찰견 카크와 마약사범
145. 태백산맥의 식인호食人虎 (14편)
조선시대 정조가 즉위한지 4, 5년 쯤 되던 해 늦가을이었다. 왕실王室 어용엽사御用獵師 박동희포수는 특별한 왕명王命을 받았다. 어용엽사는 왕실에 직속된 포수인데 전국 각지의 사냥꾼 중에서 선발된 포수다. 모두 열 명 쯤인데 그들 중 일부는 궁중에 상주했다. 본래 조선의 계급사회에서는 포수는 천민賤民이었으나 어용포수는 양반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중인中人대접을 받았다. 어용엽사는 녹용鹿茸, 웅담熊膽 등 약재藥材를 조달했고 호피虎皮 등 각종동물의 모피毛皮도 공급했다. 그들은 사냥을 하려고 조선에 온 외국 귀빈貴賓들의 사냥안내도 하고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민원民願에 따라 범, 곰, 늑대 등 인축人畜을 해치는 해수害獸를 잡았다.
박포수에게 내려진 왕명은 강원도 양구에 가서 식인호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박포수는 즉시 출발하여 사흘 후 강원도와 함경도의 접경지대에 있는 광주산맥 남쪽기슭의 포수마을에 도착했다. 집이 서른 채나 되는 포수마을이고 대대로 포수가업을 잇는 포수들이다. 그 마을의 포수는 화승포를 잘 다루는데 마을에는 화승포를 만드는 대장간도 있고 비밀이지만 화약도 제조했다. 화약제조는 민간에는 금지되었으나 관아官衙가 눈감아주었다. 박포수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첫눈이 내렸다. 포수에게 첫눈은 산신이 내려준 선물이다.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찍히기 때문에 사냥이 쉽다. 그래서 첫눈이 내리는 날 포수마을은 잔칫날처럼 들뜨는데 어쩐지 그 마을은 침울하다. 마을에서 장정들을 볼 수 없고 대장간의 문도 닫혀있다.
‘정포수는 없소이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요.’
조막손촌장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포수들은 조막손이 많다. 화약을 다루다가 손가락이 날아간다. 촌장의 아들도 옆방에 누워있다. 표범에게 물려 한쪽 다리가 잘려나갔다. 박포수가 찾는 정포수는 몇 년 전에 함께 사냥을 한 유능한 포수다. 정포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의 뜻을 짐작했다. 함흥 차사差使와 범사냥에 나간 강원도포수의 숙명宿命이다. 정포수는 오랜 홀아비생활에서 벗어나 지난 봄에 젊고 예쁜 마누라를 얻어 아주 사이좋게 살았는데 그 해 가을 사냥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사냥을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린 마누라도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다. 부부가 모두 행방불명이 된 정포수의 집은 텅 비었는데 빈집은 그 집뿐만 아니다. 모두 여섯 채의 집이 비어있었다. 여섯 명의 포수 중에서 세 명은 그나마 뼈라도 찾았지만 나머지는 행방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범에게 물려 병신이 되어 돌아왔다.
‘위험한 범사냥을 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니요.’
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고싶어서 하는줄 아시오?’
함흥차사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닌 것처럼 강원도포수는 마을수령이나 관아의 관리들에게 등을 떠밀려 범사냥을 했다. 범이나 표범이 사람을 잡아먹을 때마다 관아의 아전衙前이 포졸捕卒들을 데리고 마을에 나와 고함을 질렀다.
‘범사냥에 나가기 싫다고? 이런 쌍것들을 봤나! 네놈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병역兵役도 치르지 않는 놈들이야. 그런 놈들이 어르신의 명命을 듣지 않겠다고?’
아전이 눈을 부라리고 포졸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아예 마을을 없애버린다고 협박을 했다. 하기는 그곳을 다스리는 수령首領도 편치 않다. 감사監司나 조정朝廷의 관리로부터 왜 사람을 잡아먹은 범을 잡지 못 하느냐고 질책을 받았고 때로는 지위를 박탈당했다.
‘아, 범이 한두 마리여야 잡든지 죽이든지 하지.’
장소가 좋지 않다. 그곳은 북쪽에서 뻗어오는 태백산맥이 서쪽 광주산맥으로 줄기를 뻗는 지역이다. 범들이 마천령산맥이나 함경산맥을 타고 태백산맥으로 들어왔고 그 일부는 광주산맥을 타고 내려갔다. 그곳은 조선범들의 통로다. 통로를 타고 모여드는 범들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관아에는 호벌대虎伐隊라는 사냥꾼조직이 있어 열서너 명 쯤 되는 창꾼들이 있다. 범을 포위하여 긴 창으로 찔러잡는 사냥꾼인데 보기에는 위세당당했으나 그들이 범을 잡은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들에게 포위되어 창에 찔려죽을 정도로 강원도 범들이 멍청하지 않다. 그래서 관리들은 강원도포수를 범사냥에 몰아부쳤다. 포상을 하겠다고 유인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잡아가두겠다고 협박도 했다. 마을촌장이나 장로를 잡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어용엽사 박포수는 그런 짓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도와주는 포수에게 후한 보수報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범이 잡히든 못 잡든 일당日當을 지불하기로 했다. 촌장은 먼 곳에 사냥을 나간 포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어용엽사 박포수가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한 무리의 관리들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수령의 심복이라는 아전이 대여섯 명의 포졸을 데리고 왔다. 범이 광주산맥 남쪽자락에 있는 김대감댁 산소山所를 덮쳐 능참봉陵參奉을 물고 갔다고 한다. 김대감은 당대의 세도가였으므로 그곳 관아가 발칵 뒤집어졌다. 관아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범이 산소를 덮쳐 능참봉을 물고갔느냐고 호령을 했다. 수령의 목이 위태로와졌다.
‘빨리 포수를 보내 식인호를 잡아! 며칠 안 에 잡지 못 하면 촌장 네 놈을 관아로 끌고가겠어!’
아전이 화약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촌장 앞에 내던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조정에서 특별히 하사下賜한 화약이다. 화포를 쏘는 포수에게 화약은 귀중한 물건이었으나 촌장은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화약이 없어 범을 잡지 못 한 게 아니다. 포수마을에 범을 잡을만한 포수가 없다.
‘뭐! 포수가 없어? 포수마을에 포수가 없어?’
‘어떻게 하오리까? 늙은 이 놈이 나가서 범사냥을 할까요? 옆방에 누워있는 병신 아들을 내보낼까요?’
아전의 명령으로 포졸들이 숨어있는 포수를 찾으려고 마을을 뒤집었다. 포졸이 박포수를 발견했다.
‘네놈은 포수가 아니냐?: 이리 나와!’
아전이 달려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포수였으나 예사 포수가 아니다. 박포수는 아전을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런 버릇없는 놈 같으니 ….’
버릇없는 놈은 오히려 아전이다. 그는 박포수가 내놓은 증명서를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조정에서 발부한 증명서인데 모든 관리들은 어용엽사를 도와라는 명령서다. 아전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고 박포수가 아전과 포졸을 쫓아버렸다. 또 다시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면 상감님께 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음날, 맷돼지사냥에 나갔던 포수 넷이 맷돼지를 잡아 돌아왔다. 맷돼지를 잡지 않으면 마을사람들이 굶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했다. 사냥꾼들은 사냥에 미숙한 젊은이들이었으나 단 한 사람 임영감이 있다. 임영감은 바른손 손가락이 네 개 없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유능한 발짝꾼으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박포수는 예전에 영감과 함께 사냥을 한 적이 있다. 임영감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의 조카라는 젊은이도 따라나섰다.
임영감과 그 젊은이가 범사냥에 나서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포수마을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다. 대대손손代代孫孫 이어온 포수마을이 아니던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능참봉을 물어간 범이 양구의 식인호라고 의심했다. 만약 그놈이 양구의 식인호라면 복수를 해야 한다. 강원도포수는 자기들의 동료를 죽인 짐승은 반드시 복수를 한다. 죽은 포수의 아들이나 친척들이 없으면 이웃들이 나섰다. 강원도포수들의 오랜 전통이다. 강원도의 어느 포수집안에서는 아들 대신에 딸이 남장男裝을 하고 아버지를 죽인 범을 추적하여 잡은 일도 있다. 양구의 범에게는 벌써 네 사람의 포수가 희생되었고 그중에는 명포수로 알려진 정포수가 포함되어있다. 정포수는 양구의 식인범을 사냥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임영감과 함께 나선 젊은이는 바로 그 정포수의 조카다. 박포수는 임영감과 젊은 정포수를 데리고 김대감댁 산소에 mrkTek. 호벌대의 창꾼과 군졸들이 몰려있었다. 대여섯 명의 호벌대는 모두 건정한 장년들이었으나 그들은 아직 범에게 물려간 능참봉의 시신도 찾지 못 했다. 범을 잡기 위해 조직되고 훈련한 사람들이었으나 겁을 먹었다. 호벌대 창꾼과 군졸이 핏자국을 추적했으나 날이 어두어지자 돌아왔다. 야영을 했어야 하는데 겁을 먹었다. 창꾼들이 범을 잡겠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했으나 말뿐이다. 이틀전에 사람을 물고간 범이 아직도 그 산에 있을 리 없다. 창꾼들이 박포수를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거절했다. 사냥터에서 비겁한 동료는 적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사냥을 방해할뿐 아니라 겁에 질려 함부로 총을 쏘고 활이나 창을 날려 사고를 친다. 박포수는 포수마을 사냥꾼들만 데리고 현장을 조사했다. 피 묻은 범의 발자국이 있다. 발자국을 본 임영감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양구의 식인호입니다.’
일찌기 보지 못 한 거대한 발자국이다. 조선범은 그런 거물이 없다. 만주범이다. 놈의 몸무게는 80관(320Kg)이 넘는다. 보통 조선범은 50관 정도였으므로 조선범이 그놈과 영토다툼을 할 수 없다. 그 놈이 만주에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자 조선범들이 쫓겨났다. 그래서 그놈은 태백산맥과 광주산맥 일대에 걸친 수백 리나 되는 영토를 갖게 되었다.
임영감은 식인호를 잘 알고 있다. 식인호는 최근 5년 동안 열여섯 명의 산간마을사람을 잡아먹었다. 관아가 많은 포수를 동원했으나 포수들까지 희생되었다. 두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행방불명되었다. 그래서 조정이 어용엽사를 동원했다. 식인호를 쫓던 사람들이 다음날 능참봉의 시신을 발견했다. 능참봉을 덮친 지점에서 2Km 쯤 떨어진 잡목림이다. 구겨진 갓과 담뱃대가 남아있었다. 굵은 뼈만 있고 육신은 없다. 다 먹어치운 것이다. 거대한 범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상황으로 보아 능참봉은 갓을 쓰고 끝까지 양반체통을 지켰다. 능참봉은 담뱃대를 휘두르며 범에게 썩! 물러서라고 호통을 친 것 같았다. 예부터 범이 담배를 싫어한다고 전해졌다. 아마 독한 냄새를 삻어했을 법 하다. 식인호를 추적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얇게 깔려있어 도장을 찍은 듯한 발자국이 찍혀있다. 박포수가 추적을 하다가 무엇인가 발견했다. 이미 여덟 마리의 범을 잡은 박포수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범의 다리 중 하나가 불편한 것 같았다. 왼쪽 뒷다리 발자국이 다른 다리보다 희미하게 찍혔다. 몸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맞습니다. 놈은 뒷다리에 총탄을 맞은 일이 있었습니다.’
화승포의 불확실한 조준에 의해 총탄이 빗나가며 입힌 상처다. 범이 도망쳤으나 포수는 범이 총탄에 맞았다고 했다. 그 포수는 맷돼지사냥을 하다가 죽었지만 근거없는 말을 할 포수는 아니다. 맹수사냥은 정확하게 급소를 겨눠야 하지만 화승포는 그게 잘 안 된다. 선불 맞은 맹수는 끝까지 추적하여 죽여야 하는 것이 포수의 철칙이다. 부상한 짐승은 마구 날뛰고 엉뚱한 사람이 희생된다. 양구의 식인호도 그런 경우다. 뒷다리의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후유증이 남아있다. 뒷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해 사슴, 노루 등 발 빠른 짐승을 잡지 못 하게 되었다. 맷돼지도 못 잡는다. 범이 쉽게 사냥할 수 잇는 건 사람이다. 다리가 두 개뿐인 사람은 뒷다리가 불편해도 잡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서 식인호는 전문적으로 사람만 공격했다.
포수들은 그날밤 야영을 했다. 박포수는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범에게는 어둠을 꽤뚫어보는 눈이 있으나 사람에게는 그게 없다. 사람은 어둠에서는 장님이며 장님이 범과 싸울 수 없다. 그래서 포수들이 야영을 하다가 범에게 당한다. 박포수는 높은 언덕을 등에 지고 모닥불을 피웠다. 좌우로 두 개를 피우고 간운데다가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언제 덮쳐들지 모르는 범이 덮치더라도 무닥불을 타고넘어야 한다. 열다섯자 쯤 되는 거리인데 뒷다리를 잘 쓰지 못한 범은 그럴 능력이 없다. 범이 사람을 공격하려면 모닥불빛에 들어난다. 그게 포수가 총을 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박포수는 언덕에 기댄 자세로 비스듬하게 누었다. 왼손에는 총을 쥐고 있다. 영국의 귀빈이 사냥안내의 기념으로 선물한 최신형 총이다. 단발총이기는 해도 당시에 조선에는 몇 자루 없는 총이다. 그날밤 범은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으나 박포수는 그놈이 모닥불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느꼈다. 포수의 본능으로 노리끼리한 육식동물 특유의 냄새를 느끼고 발자국소리도 들었다. 살육자가 소리를 죽이려고 애를 써도 80관의 몸무게가 실려있는 발자국소리를 고양이처럼 지울 수는 없다. 아침에 조사를 해보니 역시 느낌이 옳았다. 범이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을 빙빙 돌았으나 공격을 못 했다. 사냥꾼들이 태연히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범이 좀 질렸다. 추적이 계속되었다. 추적은 신속해야 한다. 바짝 쫓아야 멀리 가지 못 한다. 거리가 벌어지면 사냥을 해서 힘이 생긴다. 사냥을 못 하면 굶주릴 뿐만 아니라 신경질이 된다. 추적 사흘 후 범이 산간 화전민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사냥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화전민마을에는 모닥불이 타고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호벌대 두 사람과 군졸도 있다. 전날 박포수가 아전에게 마을에 호벌대와 군졸을 파견하여 마을을 보호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양구의 식인호는 마을을 덮치지 못 했다.
‘됐어.’
박포수는 마을을 지키는 호벌대와 군졸들에게 격려하고 다른 마을 경비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사냥을 막아놓고 추적을 할 심산이다. 범은 사냥을 하면 한꺼번에 많이 먹는다. 그리고 1주일이고 열흘이고 먹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계속 굶게 되면 견디지 못 한다. 성미가 급해서 신경질을 내고 무리한 행동을 한다. 그때가 기회다. 추적 나흘째 범이 맷돼지사냥을 하다가 실패한 흔적을 보았다. 양구의 식인호가 산날을 타고 가다가 맷돼지를 발견하고 몰래 기습을 하려다가 발각되었다. 건강한 범 같으면 추적하여 잡았을 것이지만 식인호는 뒷다리를 쓰지 못 하기 때문에 달아나는 맷돼지를 1Km 쯤 추격하다가 포기했다. 놈은 주력이 느린 사람 밖에 사냥감이 없다. 범이 풀밭에 누어 쉬다가 추적을 알고 도망갔다. 추적 닷새째 식인호는 여전히 동쪽으로 가고 있다. 태백산맥 방향이다.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휘파람소리를 내고 있다. 나무들도 휘청거린다.
‘이거, 좋지 않은데 ….’
잿빛 하늘을 쳐다보는 임영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무렵 포수들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바람에 눈이 섞였다. 눈가루가 시야를 가려앞이 보이지 않았다. 추적했던 범의 발자국도 지워졌다. 추적이 중단됐다. 눈보라 속에서는 포수들의 안전이 위험하다. 다행히 임영감이 작은 동굴을 알고 있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포수들이 땔감을 마련해놓고 보리쌀도 있다. 포수들은 동굴에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눈은 연이틀 계속 내리다가 그쳤다. 바람도 수그러졌다. 사냥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포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얗게 눈이 쌓인 태백산맥을 천천히 걸어갔다. 놈은 멀리 가지 못 했을 것이다. 강한 눈바람에는 범도 맥을 못 춘다. 범은 의외로 추위에 약하다. 놈도 포수들처럼 어딘가에서 눈보라를 피했을 것이다.
포수들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날 오후 태백산맥 산날에 얼룩무늬가 보였다. 범은 먹이를 찾느라고 아래를 살피며 걸어간다. 지친 것 같았으니 불사조不死鳥 같은 놈이다. 포수둘도 지쳤으나 추적을 계속했다. 사냥이란 어차피 인내의 싸움이다. 눈바람이 그친 태백산은 조용하다. 무서운 포식자捕食者가 돌아다니므로 맷돼지, 사슴, 노루들이 숨을 죽이고 숨어있고 날짐승도 날지 않는다. 날이 어두워지자 범이 산날에서 서쪽능선을 타고 내려왔다. 태백은 짐승들의 나라였으나 서쪽 산자락에는 드물지만 마을이 있다. 평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마을이 위험하다. 포수에게 추적을 당해 오랫동안 굶은 범이 무슨 짓을 하지 모른다. 산자락의 화전민마을에서는 연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대여섯 채의 흙벽돌집에 인기척이 없다. 산림에 불을 놓아 옥수수를 경작하고 겨울이라 돌아가버린 것 같다. 범이 그 집들을 뒤지다가 부엌에서 썩은 감자를 먹은 흔적이 있다. 육식동물인 범이 감자를 먹다니 …. 포수들은 그날밤 빈집에서 밤을 보냈다. 폐가였으나 불을 지피니 견딜만 했다. 불침번을 세웠으나 범은 기척이 없다. 오랫동안 집요하게 추적하는 사람들에게 좀 지친 것 같다. 그런데 한밤중에 총소리가 들렸다. 첩첩산중에 웬 총소리? 이런 시기에 이 곳에 들어올 사람은 없다. 다음날 총소리가 났던 산에 가보았다. 그리 높지 않았으나 나무들이 울창한 산이다. 온통 바위산인 태백에서 특이한 산이다. 식인호가 바로 그 산으로 올라갔다. 급히 뛰어가고 있다. 먹이감을 찾은 것이다. 포수들도 뛰었다. 범이 먹이감을 덮치기 전에 먼저 잡아야 한다. 숲속에 동굴집이 있었다. 집앞에 땔감이 쌓여있다. 그런데 눈 위에 핏자국이 있었다. 총탄이 꼬리에 맞은 듯 뼈조각과 털이 떨어져있다. 범은 덜렁거리는 꼬리를 끌고 도망갔다. 누가 쏘았을까? 흉악범들이 포졸을 피해 산중에 숨는 경우가 있다.
박포수는 만사에 조심스럽다. 다른 포수를 제지하고 동굴집 주변을 살폈다. 사람발자국이 있다. 크고 작은 발자국이다. 인기척은 느껴지나 조용하다. 박포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안에 있는 분 들으시오. 우리는 강원도에서 온 포수들이니 통성명通姓名을 하시지요.’
기침소리가 났다. 통나무로 짠 문이 열렸다. 만감이 억눌린 쉰목소리다.
‘임영감, 오랜만이요. 박포수님도.’
중년남자가 나왔다. 온통 짐승껍질을 입었다. 임영감이 펄쩍! 뛰었다.
‘이게 누구요? 정초수 아니요?’
지난해 식인호를 잡으려고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정포수다. 강원도에서 이름난 포수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동굴집으로 들어간 포수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젊은 여이니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포수의 젊은 아내다. 그 여인은 남편이 실종되어 돌아오지 않자 눈물로 세월을 버내다가 어느날 사라졌다. 바람이 났다는 소뭉이떠돌았다.
‘내가 불러들였습니다. 몰래 데리고왔습니다.’
정포수는 초췌憔悴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조카를 보고도 웃지 않았다. 박포수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많은 범을 잡은 명포수였으나 식인호를 잡지 못 했다. 아예 범사냥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때가 가을이었으며 온산에 단풍이 들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면 범사냥은 금기禁忌다. 단풍색과 같은 범이 단풍숲에 숨으면 사람의 눈과 코로는 발견하지 못 한다. 발견할 수 없는 맹수와 어떻게 싸우겠는가? 양구의 식인호를 잡아라는 지시가 내렸을 때 눈이 내리는 겨울까지 연기해달라고 하소연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질타를 당했다.
그해 봄에 만난 신부가 범사냥에 나가지 말라고 울면서 옷자락을 잡았으나 정포수는 범서냥에 나섰다. 관아의 독촉도 어려웠지만 범이 두려워 사냥에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세산의 뒷소문이 더 두려웠다. 자기 명예뿐만 아니라 마을의 명예까지 손상시키는 일이다. 사냥은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 데리고간 창꾼이 독사에 물렸다. 본래 화승포를 사용하는 포수에게는 두 사람의 창꾼이 따른다. 그런데 그 때 정포수는 한 사람만 데리고 갔다. 나서는 창꾼이 없었다. 정포수가 신속하게 처리를 해서 목숨을 살렸으나 창꾼은 돌려보내야 했다. 정포수는 혼자서 범사냥을 했다. 예사 범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으나 그 범은 사람을 10여 명이나 잡아먹은 식인호다. 예상대로 식인호는 단풍숲을 조용히 기어다녔다. 유령처럼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한 사람뿐이라는 걸 알고는 사람사냥을 하려고 했다. 포수의 뒤를 돌아 미행尾行했다. 정포수는 등뒤에서 육식동물의 노리끼한 냄새를 맡았으나 모습을 볼 수 없다. 용감무쌍한 그가 패배감과 절망을 느꼈다. 그해 갓 결혼한 아내가 생각났다. 젊고 사랑스런 아내를 두고 죽을 수 없다.
정포수가 식인호와 대결을 피했다. 그곳에서 벗어났으나 마을에는 돌아갈 수 없다. 강원도포수는 범을 잡가 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 태백산맥을 타고 북쪽으로 갔다. 범을 피해 이틀 동안 걸었다. 잡목림에서 동굴을 발견했다, 곰의 동면굴冬眠屈이다. 주위에 나무가 울창해서 밖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식물을 채취하고 덫을 놓아 토끼, 오소리를 잡고, 개울에서 가재, 물고기를 잡았다.
정포수는 동굴에서 젊은 아내와 편안하게 살았다. 첩첩산중에서 사는 일은 육체적으로는 고달팠지만 마음은 편했다.관아관리들의 질타도 없고, 주위사람들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업다. 범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구런데 전남밤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동굴주변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으르럴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범이다. 공포를 느꼈다. 오들오들 떠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태연한 척 했으나 그 자신도 떨고있었다. 강원도에서 으뜸가는 명포수가 왜 그럴까?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는 한 번 싸워서 진 상대에게는 다시 도전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무리 안의 서열序列경쟁에서 진 짐승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이긴 상대를 보면 겁에 질려 다시 도전하지 않는다. 사냥개들은 맷돼지를 추격해서 잘 잡았으나 어쩌다 맷돼지의 반격을 받아 다치거나 도망친 일이 있으면 다시는 맷돼지사냥에 이용할 수 할 수 없다. 사냥개로써는 폐견이다. 오소리사냥에서 다친 사냥개는 오소리를 보면 오줌을 싼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끼리 서열싸움에서 진 아이는 다시는 도전하지 않는다. 정포수는 동굴 주변을 돌아다닌 범이 양구의 식인호라는 걸 안다. 소리와 냄새로 안다.
‘어험, 염려하지 마!’
정포수가 아내를 달래놓고 화승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양구의 식인호는 모닥불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굴 안에서 그놈에게 당하는 것 보다는 바깥에서 싸워야 한다. 어둠속에서 범과 겨루면 승산이 없다. 어둠속에서는 화승포의 총탄이 범에게 맞을 확률은 거의 없다. 정포수는 그걸 잘 알고 있으나 강원도에서 으뜸가는 명포수다. 3년 전에 어둠속에서 범을 잡은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어용엽사 박포수와 임영감도 있었다. 사냥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불침번을 섰는데, 정포수는 어둠이지만 무엇인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노리끼한 냄새도 났다. 움직이지 않으면 공기가 음직이지 않아 기척도 못 느끼고 냄새도 흘러나오지 않지만 움직이면 공기가 흔들려 냄새가 퍼진다. 그래서 숨어있는 동물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숨소리마져 죽인다. 분명히 냄새를 맡았다. 맹수포수의 육감六感이다. 그럴 경우 다른 포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정포수는 자신만만한 범사냥꾼이라 다른 포수를 깨우지 않고 혼자 냄새를 향해 기어갔다.
박포수와 정포수가 범사냥을 했던 옛날, 모닥불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사냥꾼들이 잡은 노루가 있었다. 뒷다리를 잘라 야식夜食으로 먹고 남은 노루고기가 모닥불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두었다. 그런데 그 노루가 움직였다. 정포수가 화승포에 불을 붙여놓고 상황을 살폈다. 어둠속에서 반짝 푸른빛이 명멸했다. 범의 눈빛이다. 범이 노루를 끌고가고 있었다. 정포수가 주저없이 푸른빛을 향해 발포했다. 난데없는 총소리에 잠을 자던 박포수가 황급히 일어났다. 박포수가 총을 들어올렸으나 방아쇠를 당길 필요가 없었다. 범은 이미 치명상을 입고 발버둥조차 치지 못 한다. 정포수가 쏜 총탄이 정확하게 범의 대가리를 뚫었다. 그래서 정포수는 강원도에서 으뜸가는 포수다.
그러나 그건 옛날얘기다. 지금 정포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가 어둠속에서 범과 대결하겠다고 나선 건 아내를 위해서다. 범이 으르렁거렸다. 먹이에 덮쳐들 때 내는 소리다. 정포수가 발포했다. 겁에 질려 쏘는 총탄이 맞을 리 없다. 다행히 총탄은 범의 꼬리에 맞았고 범은 충격과 고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양구의 식인호는 늙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범은 자기를 쏜 포수에게 달려들어 포수를 갈기갈기 찢었을 것이다. 식인호는 사람사냥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정포수는 범이 도망갔는데도 불안했다. 밖에도 나가지 못 했다. 그러던 차에 밖에서 사람소리가 들리고 문틈으로 보니 박포수와 임영감이 있었다. 옛날 함께 범사냥을 했던 포수들이다. 어용엽사인 박포수는 천하의 명포수다. 정포수 눈에는 그들이 부처님으로 보였다. 박포수는 꼬리가 잘린 식인호를 추적했으나 정포수는 데리고가지 않았다. 정포수는 옛날의 정포수가 아니다. 용기를 잃은 사냥꾼은 겁을 먹어 오줌을 흘리는 사냥개와 같다. 그러나 옛 명포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정포수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이런 곳에 여자를 혼자 둘 수 없소. 부인을 지키시오.’
‘나리, 오늘은 저 놈을 지옥으로 보내야겠습니다.’
박포수가 그렇게 말하는 임영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 열흘째 식인호가 생명력이 다 해 가는 것 같았다. 하얀 눈 위에 피가 뚝뚝! 떨어져있고 발자국이 비틀거렸다. 오후에 산날을 타고가는 식인호를 보았다. 본디 범은 산날을 타고다니며 산을 감시한다. 두려운 것이 없는 산림의 왕자는 정체를 숨기지 않는다. 식인호의 총탄에 맞은 꼬리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다. 강원도사냥꾼들은 건재하다. 열여섯 명을 잡아먹은 식인호를 잡겠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임영감의 추적이 빨라졌다.
‘이 새끼, 곧 네놈의 껍질을 벗겨주마.’
포수들은 날이 어둡기 전에 범을 잡기로 했다. 더 이상 발자국을 추적할 필요가 없다. 범이 몸을 숨기지 않고 산날을 타고 북쪽으로 가고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면 태백산맥은 개마고원과 마천령산맥에 이어지고 백두산을 넘어 만주땅 장백산맥으로 나간다. 양구의 식인호가 태어난 고향이다. 범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어원語源이다. 그날 오후 늦게 포수들은 개마고원 소백산산정에 추적을 멈췄다.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범은 기다렸다. 범이 오다가 50m 쯤에서 멈춰섰다. 사람냄새가 나는 곳을 응시했다. 범은 그곳에 적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사람을 피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너무 지치고 신경쇠약 상태다. 맹수사냥은 끈기 싸움이다. 정포수는 끈기싸움에서 졌지만 박포수와 임영감은 이겼다. 식인호는 도망가는 것도 포기했다. 식인호가 포효咆哮했다. 선전포고宣戰布告다. 몇 날 며칠 자기를 괴롭힌 적에 대한 증오다. 20여 년 동안 태백산을 누비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까지 밥으로 삼았던 놈이 이제 사람들과 마지막 한 판 결전을 벌어야 한다. 박포수도 바위 뒤에서 나왔다. 우뚝 선체로 범과 마주섰다.
‘오냐, 이놈 덤벼라!’
식인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굶주리고 춥고 지쳤으나 맹수의 본능이 남아있다. 범의 눈에 시퍼런 불이 일고 벌어진 아가리에서 긴 송곳니가 뿌리채 들어났다. 반쯤 잘려진 꼬리가 뻣뻣하게 일어섰다. 범이 땅을 차고 올랐다. 눈가루가 날렸다.
‘이놈, 불받아라!’
강원도포수들이 맹수와 싸울 때 지르는 고함이다. 전통의 범잡이 전법戰法이다. 화승포나 창으로 맹수와 싸우는 포수는 맹수의 기를 꺾고 순간적으로 싸울 태세를 갖추기 위해 고함을 질렀다. 맹수가 고함소리에 움칠 놀라 순간 멈춰선다. 그 순간이 총을 겨냥하거나 창으로 급소를 찌르는 기회다. 양구의 식인호가 공중에 몸을 날린 상태에서 일순 멈칫! 했다. 박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화승포가 아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총탄이 나가는 최신형 총이다. 총구에서 시퍼런 불빛이 나오고 굉음이 울려퍼졌다. 범이 무자비한 살육자라면 포수는 냉철한 살상자다. 심장에 직격탄을 받은 범이 윽! 신음소리를 내고 풀썩 주저앉았다.
‘무슨 일일까?’
범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이놈, 그래도 덤빌테냐?’
범이 일어서려고 했으나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범은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간파한다. 범의 눈에서 불아 꺼졌다. 증오에 이글거리던 눈에 체념과 슬픔이 감돌았다. 박포수는 범이 마지막 경련을 일으키자 총구銃口를 내렸다. 임영감은 곰방대를 물었다. 식인호의 몸에는 화살촉 두 개가 박혀있고 총탄도 두 개 박혀있었다. 그것들은 범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증오심과 복수심을 키웠다. 그렇게 병신이 된 식인호는 짐승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발이 느린 사람을 노렸다. 사냥의식에 따라 박포수가 범의 생간을 잘라 정포수에게 먹였다. 정포수는 식인호의 간을 먹고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평생 산을 내려오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산에서 살았다.
146. 사살작전射殺作戰 (18편)
동아프리카의 탕가니카호 동쪽 연변 습원濕原은 흰코뿔소의 서식지다. 그곳에는 몇 백 년 전부터 수백 마리의 흰코뿔소들이 살았는데 1940년부터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영국의 국제동물보호협회는 흰코뿔소가 멸종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하여 구호대를 현지에 보냈다. 예사 구호대가 아니며 군대나 사냥대와 같았다. 단장은 아프리카에서 20년 동안 산림관을 한 코네리고 육군 정보장교 베른대위와 잘 훈련된 밀렵단속원 열여섯 명이 예속隸屬되어있다. 그리고 세계동물구호협회 간부 시몬스여사가 참가했다. 시몬스여사는 수의사獸醫師인데 열렬한 동물구조대원이다. 일행이 현지 산림보호소에 도착했을 때 현지 보안관이나 조수는 없고 서너 명의 원주민 밀렵단속반이 멍! 하니 앉아있었다. 산림관과 조수가 1주일 전에 피살당했다.
‘나리, 오랜만입니다.’
밀렵단속단장 모르키영감이 코네리에게 인사를 했다. 만난지 12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영감은 백발白髮이고 코네리도 반백半白이다.
보안관과 조수가 피살된 숲에는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었다. 사람키보다 높은 잡초가 무성했으며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밀렵단이 쏜 총탄의 탄피가 서너 개 떨어져있다.
‘미국산 연발 윈체스터입니다. 군용과 암살용으로 쓰입니다.’
베른대위가 설명했다.
‘최신형이며 아직 민간에는 보급되지 않은 총입니다.’
그렇다면 예사 밀렵꾼이 아니다. 그밖의 단서는 없다. 자동차나 달구지가 지나간 자국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모습을 들어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 살인자들이라고 모르키영감이 말했다. 모르키영감은 최근 50마리 이상의 흰코뿔소가 밀렵되었다는 시몬즈여사의 조사보고를 시인했다. 그게 검은코뿔소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아프리카 일대에는 아직 1만 마리 이상 검은코뿔소가 있다. 아프리카에 몰려든 밀렵자들이 검은코뿔소를 죽여 코뿔을 잘라갔으나 그래도 검은코뿔소는 멸종될 위험은 없다. 그러나 코뿔소 중에서 흰코뿔소, 자바코뿔소, 수마트라코뿔소는 멸종위기다. 흰코뿔소와 수마트라코뿔소는 불과 몇 백 마리가 남아있다. 그런 흰코뿔소가 50여 마리나 밀렵되었다면 그대로 보고있을 수는 없다, 더구나 밀렵단속반까지 죽였다.
‘이들은 내가 겪은 밀려바들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자들입니다. 이놈들은 꼭 잡아야합니다. 사살해야 합니다.’
학자고 의사인 시몬스여사가 그런 말을 했다. 코네리도 동감이다. 그 회의석상에서 코네리는 모르키영감의 도움을 요청했다. 영감은 10여 년 동안 세 명의 산림관을 도와 밀렵단속을 했다. 누구보다도 이곳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본디 원주민들은 백인들하고 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백인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는 함구緘口했다. 말을 잘못 했다가는 일에 엉켜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백인사회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하다. 원주민들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모르키영감은 코네리를 존경한다. 그는 영국신사의 기품氣品을 지녔고 원주민을 차별하지 않았다.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잤다. 모르키영감이 그날밤 코네리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모르키영감이 보기에 첫 번째 보안관은 문제가 없었다. 그가 부임한 후 흰코뿔소 한 마리가 죽었으나 원주민인 식량으로 하기 위해 죽인 것이다. 보안관이 원주민을 처벌했고 경고했다. 그 후 흰코뿔소 밀렵은 없었다. 그 보안관이 전근을 하고 후임 보안관이 문제였다. 그는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일한 영국관리 중에서 대표적인 나쁜 사람이다. 적도하의 무더위에 시달린 그는 게으르고 낮잠만 자며 마구 술을 마셨다. 그리고 타락했다. 그는 부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무실을 비우고 환락歡樂의 도시都市 나이로비에서 술과 도박, 여자들과 살았다. 그가 사무실을 비우면 조수가 대행을 했으나 군대의 상사上士인 그도 술을 마시고 잠만 잤다. 그 사이 흰코뿔소들이 마구 밀렵되었다. 하루 한두 마리씩 죽었고 때로는 암수와 새끼들까지 죽었다. 그래도 조수는 밀렵자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한 달 한 번 쯤 사무실에 나오는 보안관은 조수와 단속반에게 규정된 봉급의 서너 배 돈을 주고 영국산 고급 위스키와 담배를 선물로 주었다. 흰코뿔소 밀렵은 더욱 빈번해지고 숲에는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몰려들었다. 밀렵자들이 흰코뿔소의 대가리만 잘라갔기 때문에 사체의 나머지는 그들의 밥이었다.
모르키영감은 두번째 보안관이 밀렵자들에게 매수당했다고 말했지만 밀렵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 밀렵단은 예사 밀렵단이 아니다. 보통 코뿔소 밀렵자는 직접 사냥을 하지 않고 원주민을 시켰다. 코뿔소는 코끼리처럼 집단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았고 암컷만 새끼를 데리고다녔다. 그래서 밀렵자는 한꺼번에 많은 코뿔소를 잡을 수 없어 원주민에게 총을 주고 잡은 코뿔만 가져간다. 나머지 고기는 원주민 몫이다. 물론 원주민에게 약간의 사례금을 준다. 그런데 이번의 코뿔소 밀렵단은 직접 잡았다. 원주민들에게 정보만 얻고 자기들 끼리 몰래 사냥을 했다.
‘그들은 연달아 다섯 발이 나가는 총을 가졌습니다. 코뿔소를 잡으면 대가라를 통째로 잘라갑니다.’
보통 코뿔소 밀렵단은 코뿔만 도려내는데 그들은 대가리채 가져간다. 왜 그럴까? 검은코뿔소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려고 한다. 흰코뿔소는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다. 그래서 검은 코뿔소와 구별이 어렵다. 다른 점은 피부가 아니라 주둥이다. 검은코뿔소는 주둥이가 길고 좁았으나 흰코뿔소는 넓적하다. 흰코뿔소 밀렵단은 군용총으로 밀렵을 하고 지프를 타고 달아났다.
‘가끔 이상한 차도 나타났습니다. 관광회사의 고급 야외용 승용차입니다. 그 차는 보안관도 타고다녔습니다. 검은안경을 낀 백인이 운전하고 여자도 있습니다. 금발金髮의 백인여자입니다.’
그 차가 나타나면 지프들이 호위를 했기 때문에 금발여인이 두목인 것 같았다. 관광차에 백인여자를 싣고다닌 보안관은 6개월 전에 해임되었다. 근무태만이다. 세 번째 보안관은 30대 젊은이였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그리고 용감하다. 그는 사무소의 기강紀綱을 바로잡고 밀렵 단속을 해서 밀렵이 줄어들었다.
세 번재 보안관이 부임한지 한 달만에 금발여인이 타고다니던 야외용 관광차가 보안관 사무실에 도착했다. 금발여인이 양주를 상자째 선물로 갖고왔다. 아마 두툼한 돈봉투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보안관이 단호하게 선물을 거절했다. 웃으면서 사무실레 들어섰던 여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섬뜩한 눈빛이다. 그때부터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밀렵순찰에 나선 단속반의 등뒤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사무실에 총탄이 날아와 유리창이 박살났다. 보안관은 그래도 굴복하지 않았다. 총탄이 점점 빈번하게 날아왔고 단속반이 어깨에 총탄을 맞기도 했으나 보안관은 밀렵단속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이 보안관조수를 죽인 게 분명합니다.’
보안관조수가 순찰을 하려고 지프에 타려고 했을 때 총탄이 날아왔다. 암살자들이 50m 쯤 떨어진 숲에서 총을 쏘았는데 정확하게 머리와 가슴을 꽤뚫었다.
흰코뿔소 밀렵단의 사살射殺작전이 짜여졌다. 코네리는 케냐 나이로비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다. 나이로비는 코뿔소 밀렵단과 그 배후세력이 암약하는 본거지다. 그러나 코네리의 조사는 처음부터 벽에 막혔다. 코네리가 가장 유력한 정보제공자로 지목한 두 번째 보안관이 행방불명이었다. 그는 흰코뿔소 밀렵단과 오래토록 거래를 한 사람이며 그를 조사하면 밀렵단의 정체가 들어날 것인데 그가 사라져버렸다. 코네리가 그의 행방을 조사했다.
그가 몇 달 전에 몸바사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몸바사는 나이로비 동쪽의 항구도시인데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밀렵단의 거점據點이다.
‘그는 술에 취해 해변을 걸어가다가 물에 빠져죽었습니다.’
현지 경찰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코네리는 믿지 않았다. 검시관檢屍官을 만났다. 익사자溺死者가 술에 취한 증거가 없다. 물에 빠져죽었는지 죽은 사람을 물에 던졌는지도 불분명하다. 시체해부를 하지 않고 묻어버렸다. 코네리는 살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보안관 살해혐의가 있는 밀렵단 여두목의 행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 본 사람이 없다. 나이로비와 몸바사의 어느 호텔이나 유흥업소에서도 그런 여인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타고다닌 지프나 야외용 관광차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보안관 암살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흰코뿔소 서식지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전날 흰코뿔소 암수 두 마리가 밀렵당했다. 특별단속반이 철저하게 감시를 하고있는데도 밀렵을 감행했다.
‘이러다가 몇 달 안에 흰코뿔소가 멸종되겠습니다.’
시몬즈여사가 한숨을 쉬었다. 현장에는 대가리가 잘린 시체만 남아있었다.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와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멱이쟁탈전을 벌였다. 현장상황으로 봐서 밀렵단은 서너 명이고 백인이다. 그들의 밀렵은 치밀했다. 코뿔소는 시력이 나빠 눈앞의 물체도 식별하지 못 했으나 대신 코와 귀가 예민히다. 100m 밖에서도 움직임을 감지하고 도망을 한다. 그런데 그곳의 코뿔소는 사람들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해도 도망가지 않는다. 사람들의 보호로 자기방어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밀렵단이 쉽게 잡을 수 있다. 미국제 라이플은 코뿔소의 두꺼운 가죽을 쉽게 뚫었고 뼈까지도 부수는 강력한 총이다. 현장에 지프바퀴자국이 남아있다. 모르키영감이 바퀴자국을 조사했으나 지프는 몸바사로 가는 도로를 타고 달아나버렸다. 다음날 또 코뿔소가 죽었다. 아직 성장하지 않은 수컷인데 악랄한 밀렵자다.
다음날 보안관 사무실에서 다시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가 야생동물보호역사에서 괄목刮目할만한 회의가 되었다. 그 동안 벌였던 흰코뿔소 보호작전은 실패했다. 경비를 철저하게 해도 밀렴은 계속되었고, 단 한 명의 밀렵자도 잡지 못 했다. 그 사건과 관련된 보안관 암살사건수사도 실패했다. 범인도 단서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그래서 영국의 자연동물보호협회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려고 했다. 흰코뿔소를 잡아 뿔을 제거한다는 결론이다. 뿔이 없으면 밀렵도 없다. 또 다른 계획은 흰코뿔소 집단수용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막가파식 대책이다. 뿔이 잘린 코뿔소는 존재가치가 없다. 집단수용소도 자연의 배반이다. 그래서 베른대위가 그때까지 사용한 동물보호방법을 바꾸자고 제의했다. 경비원들의 순찰로는 밀렵을 막을 수 없다. 베른대위가 잠복潛伏작전계획을 세웠다. 움막을 파놓고 기다리다가 역습逆襲을 한다. 게릴라작전인데 전과戰果를 올릴 수도 있다. 보호대원들이 흰코뿔소를 한군데로 몰아놓고 주변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서너 명의 대원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밤샘경비를 했다. 밀렵자들이 나타나면 경고없이 사살해도 된다는 명령이다. 사흘 후 잠복작전에 밀렵단들이 걸려들었다. 그날은 달이 반쯤 찬 밤이었으며 달빛이 희미하게 잡풀밭을 비추고 있었다. 베른대위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잡풀이 술렁거렸다. 거리가 30m 쯤 되었을 때 베른대위가 경고를 했다.
‘총을 버려! 그리고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코뿔소 밀렵토벌대장 코네리는 밀렵자들에게 사전경고 없이 발포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으나 베른대위는 그래도 상대가 인간인만큼 법에 규정된 사전경고를 햇다. 그게 착각이다.
‘총을 버려라!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그 순간 밀렵자들이 반사적으로 일제히 총을 난사했다. 최신형 자동연발총이 기관총처럼 불을 뿜었다. 빠르기도 했지만 조준도 정확했다. 움막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던 단속반원 두 사람이 총탄에 맞았다. 한 대원은 즉사하고 또 한 대원은 중상이다. 응사를 했다. 20m 쯤 떨어진 움막에 있는 코네리와 세 명의 대원이 응사에 가세했다. 두 방향에서 집중사격을 받은 밀렵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격중지!’
코네리가 쓰러진 밀렵자들에게 달려갔다. 생포를 하여 정보를 얻어낼 요량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밀렵꾼은 모두 네 명인데 옅은 카키색 사냥복을 입었고 엷은 가죽장갑을 끼고 있다. 코네리는 밀렵꾼, 전과자, 상습범을 많이 알고있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다. 30대였고 단련된 체구다. 신분증이나 신분을 밝힐만한 아무것도 없다. 철저하게 준비된 밀렵자들이다. 인근에 있던 지프는 몸바사도로로 달아났다. 흰코뿔소 단속은 또 실패했다. 코네리가 나이로비에 갔다. 밀렵수사는 밀렵현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밀렵으로 잡은 짐승을 거래하는 암시장에서도 밀렵자들을 수사하고 체포할 수 있다. 20년 동안 밀렵단속을 한 코네리는 암시장을 잘 알고 있다. 나이로비의 단골호텔에 도착해서 피묻은 옷을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이로비의 밤거리로 나갔다. 나이로비의 밤은 찬란하다. 선진국의 도시 보다 더 밝고 붐빈다. 세계 각국의 밀렵자나 밀무역업자들이 모여든다. 코네리는 코뿔소 밀거래업자들이 모여드는 코뿔소 전문시장을 염탐했다. 정상적인 모피거래 간판을 달고 뒷마당에서는 밀거래를 하거나 호텔의 로비에서 또는 술집에서도 거래를 한다. 코네리가 심상치 않은 정보가 입수했다.
암시장에서는 많은 코뿔이 거래되고 있었다. 수백 개의 코뿔이 거래되고 있다. 코뿔소의 코뿔은 상아 다음으로 큰 거래품목이다. 그런데 거래되는 코뿔은 모두 검은코뿔 뿐이고 흰코뿔이 없다. 코네리가 앞잡이를 내세워 큰돈으로 흰코뿔을 구했으나 없다. 검은코뿔의 30배를 준다고 했으나 팔려는 상인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너 배만 주면 구할 수 있었는데 점점 희귀품이 되어 최근에는 20배가 되더니 아예 없다. 밀렵을 안 했다는 말인가? 아니다. 최근에도 밀렵꾼들이 흰코뿔소 밀렵을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매점을 하고 있다. 그게 누구일까? 큰돈으로 나이로비의 코뿔을 매점할 수 있는 암거래상인은? 코네리가 나이로비의 차이나타운에 갔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인 거상巨商들이 군림君臨한다. 중국본토뿐만 아니라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의 자본과 연계된 그들은 조용하고 점잖케 큰 장사를 한다. 그들은 차이나타운뿐만 아니라 나이로비 전체의 상권에 영향을 미친다. 코네리는 그런 거상을 알고 있다. 서대인大人은 70이 넘은 노령老齡이었으나 아직도 기력이 좋아 젊은 부인을 세 사람이나 거느린다. 코네리는 예의를 지켜 사전에 예약을 했다. 다음날 차이나타운의 찬팅(고급요리점) 밀실에서 서대인과 만났다. 코뿔의 밀거래는 홍콩계 중국인들이 주도한다. 중국, 인디아 등 동양에서는 예부터 코뿔을 정력제로 구입했고 특히 정력이 약한 노인들은 좋은 코뿔이면 부르는 값으로 사들였다. 서대인도 코뿔에 관여하고 있다. 그의 간여없이 코뿔의 큰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서대인은 직접 코뿔을 사고팔지는 않는다. 그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관여한다. 서대인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자가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코네리도 웃으면서 한 발 물러섰다.
서대인은 코네리를 정중하게 대접했다. 코네리가 그 중국귀족을 존경하듯 그도 영국신사를 좋아했다. 술은 중국에서 가져온 명주 마오타이지우였고 안주는 코네리가 좋아하는 전복해삼요리다.
‘흰코뿔소의 뿔이 암시장에 없다고?’
서대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실을 시인한 것인데 설명하지 않았다. 서대인은 코네리에게 술을 권하고 자기도 마셨다. 벌써 다섯 잔씩을 마셨다. 그가 마시는 술잔의 수는 상대와 주고받는 상담의 중대성과 비례한다. 중요하지 않으면 한두 잔으로 상담을 끝낸다. 코네리가 흰코뿔소 밀렵단 얘기를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다고 실토를 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서대인이 또 한 잔 술을 들더니 화제를 돌렸다. 자기가 잘 아는 친구가 코뿔소의 뿔을 대량으로 구입하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케냐정부는 밀렵품은 공개적으로 불살라버렸는데 때로는 비공식적으로 파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財政이 곤란할 때는 비공식적으로 팔아서 재정에 충당했다.
‘그 코뿔이 얼마나 되지요?’
‘500개입니다.’
큰 거래다. 코네리가 다시 술 두 잔을 더 마셨다. 큰거래지만 불법은 아니다. 서대인이 그런 제안을 한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는 분명히 무엇인가를 거래하려고 한다. 그가 내놓을 카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이쪽에서 주는 큰 이득에 상응할 것이다. 코네리가 바라는 것일 것이다. 거절할 수 없다. 밀렵자를 찾아야 한다. 동고동락同苦同樂한 대원을 죽인 놈들이다.
‘서대인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서대인이 다시 술잔을 들었다. 눈이 반짝인다.
‘흰코뿔소뿔은 현재 여기뿐만 아니라 홍콩에도 없습니다. 홍콩의 어느 약재상이 독점을 하여 가루로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그 값은 검은코뿔의 50배입니다. 그래도 흰코뿔은 없어서 못 팝니다.’
서대인은 만사에 신중하고 말을 아꼈다. 그날밤에는 술울 좀 과하게 마셨는데 그 취기가 입을 열게 만들었다.
‘흰코뿔가루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걸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신 노인들의 정력이 되살아났지요. 시들어졌던 남근男根이 뻣뻣해지고 상대한 여인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임신을 한 여인도 있었습니다.’
한약漢藥은 약효나 부작용을 입증할 근거나 통계를 제시하지 못 하는 법인데 흰코뿔가루는 의심할 수 없는 사례들이 나왔다.
‘그래서 흰코뿔가루를 독점판매한 약방에 노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인디아나 중국의 귀족들이고 멀리 아랍에서도 몰려왔습니다. 돈을 아끼지 않는 노인들입니다.’
‘독점을 하는 약방의 주인이 누굽니까?’
서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흘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코네리는 그 사이에 서대인과의 약속을 지켰다. 케냐의 산림국은 서대인이 지정한 중국무역상에게 압류押留한 검은코뿔을 불하했다. 코네리가 사흘 후 서대인을 만났다. 서대인이 말없이 흰가루가 든 병을 코네리에게 건네주었다. 홍콩의 흰코뿔가루를 독점판매하는 약방에서 구한 가루다.
‘그 약방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서대인이 일어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 약방 뒤에 흰손이 있다는 암시暗示다. 흰손은 백인이다. 본디 흰손은 동양에서 못된 짓을 했으며 그들은 악의 근원이다. 중국인에게 아편阿片을 강매한 사람들이다.
‘조심해요. 당신 뒤에도 흰손들이 따라다니고 있소.’
코네리는 약병을 영국 보건당국에 보내 성분감정을 의뢰했다. 약병에는 흰코뿔가루가 들어있었는데 소량의 비타민제가 첨가되어 있었다. 최근에 개발된 고단위 비타민제인데 임상실험 결과 노인들의 정력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조사대상 300명 중 200명에게서 탁월한 효능이 입증되었다. 단점은 약효가 일시적인 것이다. 부작용도 있었다. 다른 장기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영국당국은 그 비타민제를 제조한 제약회사에 제조중지와 판매금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제약회시가 그 명령을 이행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흰코뿔소 밀매단의 정체가 희미하게나마 들어나고 있었다. 흰손이 홍콩의 한약시장에 끼어들어 무서운 독을 뿌리고 있다. 고객顧客들이 보는 앞에서 흰코뿔을 갈아 몰래 비타민제를 섞었다. 고객들이 흰코뿔로 효험을 본 것은 강력한 비타민의 효력때문이었는데 어리석은 고객들은 흰코뿌가루의 효력으로 믿었다. 그 약으로 일시적인 효험을 본 고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비타민제에는 무서운 부작용이 있었으나 흰손들은 그런 부작용쯤은 무시했다. 부작용이 있든 말든 돈만 벌면 된다.
코네리와 시몬즈여사가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들이 문제의 비타민제를 제조한 제약회사를 찾아갔으나 사장은 시치미를 땠다. 비타민제는 당국의 명령으로 제조중지되었고 판매한 증거도 없다. 시몬즈여사는 영국에 남아 뒷조사를 하기로 하고 코네리는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범인을 찾아야 한다. 돌아온 날 코네리에게 부고장訃告狀이 날아왔다. 서대인의 장례식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다. 서대인의 장례식은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중국인단체가 치른다. 수백 명의 중국인들이 모인 성대한 장례식이었는데 서대인이 노환老患으로 돌아가셨다고들 했다. 그러나 코네리는 믿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걸려있는 서대인의 영정影幀이 자기는 타살당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코네리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코네리가 서대인의 시신을 해부解剖하려고 했으나 친척들이 거부했다. 고인故人을 두 번 죽이는 거라는 주장이다. 나이로비의 영국인병원 의사는 시신을 해부할 수는 없었으나 수상한 징후가 있다고 했다. 독살毒殺 가능성을 귀띰했다. 코네리가 계속 조사를 했다. 서대인은 나이로비의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난 뒤 쓰러졌다.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고통없이 죽었다. 식당종업원들을 조사하고 있는데 시몬즈여사가 돌아왔다.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왔다.
고성능 비타민제를 제조판매하다가 영국당국으로부터 제지를 당한 스텐드제약회사는 경영상황이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기업활동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데 최근에 전용비행기를 구입하여 임원들이 그 비행기를 타고 홍콩 등지에 날아다녔다. 중형비행기에는 여섯 명이 탈 수 있고 물건도 실었다.
‘그 임원들 중에 앤드류스라는 여자가 있어요. 회사의 대표는 다른 사람이었는데 그 여자가 사실상의 대표입니다.’
시몬즈여사가 코네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30대의 백인여자인데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상당한 미모였으나 푸른 눈동자가 차가웠다. 코네리가 긴장했다. 직업상 많은 범죄자들을 알고있는데 범죄자들은 일반사람들과 다른 용모를 가지고 있다. 사기범들은 예민한 용모가 많다. 코네리는 금발과 푸른 눈동자의 범죄자들을 아는데 냉혹하고 잔인한 자들이다. 아이를 납치하여 돈을 요구하고, 남편을 독살한 여자도 있다. 코네리가 앤드류스라는 여인에게 주목했다. 코네리는 그날밤 나이로비의 호텔에서 비밀스러운 인물을 만났다. 나이로비의 유력자고 살인청부를 하는 사나이다.
‘이게 웬일입니까? 코네리 보안관님! 네게 무슨 볼일이라도? 아시다싶이 나는 최근에는 나쁜짓에서는 손을 씻고 얌전히 살고있습니다만.’
‘그래요? 일주인 전에 이탈리아 마피아두목이 암살된 사건에 관련이 있는줄 아는데 ….’
‘천만의 말씀을 …. 난 모르는 일이요. 증가라도 있습니까?’
‘증거가 필요하다면 찾아낼 수 있지. 그러나 그 전에 부탁할 게 있소. 그걸 들어주면 증거 따위를 찾는 귀찮은 일은 없을거요.’
마담 앤드류스의 사진을 본 사나이가 긴장했다. 낯이 창백해졌다. 무엇인가 알고 있다. 그럴 때는 술이 필요하다. 코네리는 사나이와 말없이 술을 마셨다. 밀수혐의로 구속된 부하 한 명을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었다. 일종의 거래다. 코뿔소밀렵단을 잡기 위해서는 어떤 거래도 한다. 흰코뿔소뿐만 아니라 대원과 서대인까지도 살해한 밀렵단은 무슨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잡아야 한다.
‘코네리, 이 여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귓속말로 전해지는 소문만 있습니다.’
소문은 두 군데서 나왔다. 그 여인이 자가용비행기로 나이로비의 비행장에 나타난다는 것. 또 다른 소문은 케냐에 파견된 영국인 경찰청장 관사에 몰래 드나든다는 것이다. 여인이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뛰어난 미모와 금발머리 그리고 푸른 눈동자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검은색 안경을 썼는데 공항의 입국심사관리가 여인이 안경을 벗는 걸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안경을 벗으라는 공항직원의 말에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안경을 벗었는데 눈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또 다른 소문은 경찰청장 관사를 찾았던 어느 무역업자의 입에서 나왔다. 응접실에 금발의 여인이 앉아있다가 방문객이 들어가자 나가버렸다는 말이다. 잠시 보았을뿐인데 그 특이한 용모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여인은 날이 어두어지면 고급자동차로 나이로비의 중국인거리에 나타난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럴 때는 건장한 경호원들이 뒤를 따랐다.
‘코네리, 조심하시오. 그 여인이 나타나는 시기와 장소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는 소문이요.’
코네리는 그 때 그 말을 그냥 넘겼으나 나이로비의 단골 찬팅(고급 중국식당)에 갔을 때 그 말을 상기했다. 찬팅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나 코네리가 허리에 찬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코네리는 시몬즈여사와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 안에는 대여섯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취기가 오르자 좀 시끄러워졌다. 그 때 요리를 나르는 종업원이 코네리의 식탁 가까이 오고있었는데 그 뒤에 백인 한 명이 따라오고 다른 두 명이 또 그 뒤를 따랐다. 종업원 뒤를 따라오던 백인이 순식간에 종업원을 밀치고 권총을 발사했고 거의 동시에 코네리가 시몬즈여사를 밀치고 앞으로 나가며 권총을 발사했다. 코네리가 빨랐다. 그리고 정확했다. 암살자의 총탄이 코네리의 왼손에 맞았으나 코네리가 쏜 총탄은 암살자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암살자의 뒤를 따라오던 두 명이 권총을 뽑았으나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었던 중국인 세 명이 일제히 총을 발사했다. 백인 암살자들을 겨냥하여 발사했다.
중국인들의 사격으로 암살자들이 쓰러졌다. 코네리의 총탄에 맞은 자는 즉사했고, 두 명은 가슴과 배에 총탄을 맞았다.
‘보안관님, 괜찮으세요?’
중국인들이 달려왔다. 죽은 서대인의 심복이고 경호대장인 양씨와 그 부하들이다. 서대인은 경호대장에게 코네리를 몰래 경호하라고 지시했다. 만사에 사려깊은 서대인은 흰코뿔소 밀렵단이 코네리를 암살하려고 하리라고 예상하고 그런 지시를 내렸는데 그 자신이 독살될줄은 몰랐다. 쓰러진 백인 암살단 중 한 명은 치명상을 입었으나 배에 총탄을 맞은 자는 의식이 있었으며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알던 무자비한 살육자도 자기 자신은 죽기 싫다고 애원을 했다.
‘이 새끼, 너희 두목 어디 있어? 그 금발머리 계집년 어디 있느냐 말야!’
코네리가 권총을 그 자의 이마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난 몰라, 난 그런 건 몰라.’
‘좋아, 그럼 죽어!’
코네리가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을 때 밖에서 요란한 싸이렌을 울리면서 경찰차와 구급차가 도착했고, 스무 명이나 되는 경찰이 우르르! 뛰어들었다.
‘이봐, 난 산림보안관이다. 너희들은 이 사건에 끼어들지 마라!’
코네리가 소리쳤으나 경찰들이 덮어놓고 사상자들을 끌고나갔다. 그들은 중국인 경호원까지 수갑을 채워서 끌고나갔다. 경찰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경찰차에 태워서 연행했다. 경찰이 코네리도 사람을 죽였으니 연행하려고 했다.
‘이 팔 놓지 못 해!’
코네리가 발로 경찰은 차며 항의했으나 경찰은 막무가네다. 코네리와 경찰이 다투고있을 때 경찰간부가 들어왔다.
‘산림보안관이라고? 신분증을 보여주시오. 정당방위라고? 그건 조사해보면 밝혀지겠지.’
경찰간부가 산림청에 전화를 하더니 코네리의 수갑을 플어주었다. 코네리가 화가나서 고함을 쳤다.
‘암살자들은 어디 있어? 심문을 해야 해!’
‘병원으로 갔소. 범법용의기 있어도 우선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니요. 심문은 서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오.’
경찰서장의 허가가 난 게 한 시간 후였다. 코네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암살자들은 모두 침대에 누워있었고 하얀 시트로 덮여있었다. 모두 죽었다고 의사가 말했다.
코네리가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있소. 가슴팍에 총탄을 맞은 자는 죽었겠지만 아랫배에 총탄을 맞은 자는 죽지 않았을 것이요.’
의사가 시트를 들어올렸다. 아랫배에 총탄을 맞은 자도 숨이 끊어져있었다. 그 자의 심장에도 총탄이 박혔다는 말이었다. 그 자의 가슴에 총탄자국이 있다. 코네리는 경찰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경찰은 죽지 않은 자의 가슴팍에 총탄을 쏴 죽여버렸다. 코네리를 띠어놓고 그런 짓을 했다. 그 자의 입을 막기 위해서다. 경찰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누가 경찰에게 시켰을까? 코네리의 머리에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금발머리 여인이다. 푸른 눈이 얼음처럼 차가운 여인. 흰코뿔소 밀렵단 여두목은 나이로비 경찰까지 마음대로 조종했다. 그래서 밀렵단의 정체를 알고있었던 전 보안관이 암살되었다. 경찰은 그 사건을 단순한 익사사고로 처리했다. 보안관이 술에 취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서대인인도 단순히 노환으로 죽었다고 처리했다. 독살된 증거는 없애버렸다.
다음날 코네리의 상사上司 산림국장이 케냐 파견 행정장관실에 갔다. 경찰청장이 와있었다.
‘자, 여러분, 우리 얘기 좀 해봅시다. 마치 행정청 내부에 내분內紛이 일어난 것처럼 되면 모양새가 좋지 않소.’
행정장관이 말했다. 산림국장이 경찰이 고의적으로 흰코뿔소 밀렵단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청장은 냉소했다.
‘그런 증거가 있소? 차이나타운에서 일어난 사건은 폭력단들의 집안싸움이었습니다. 그 코네리라는 산림관은 중국인 폭력단을 데리고다니면서 공연한 일을 벌려놓았습니다.’
사실 증거가 없다. 증언할만한 사람은 모두 죽어버렸고, 증거가 될만한 것들은 모두 없애버렸으니까. 행정장관은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는 양측 모두를 달랬다. 코네리가 암살자를 사살한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암살자를 쏘아죽인 중국인들도 자기방어로 인정하여 석방하기로 하였다. 코네리의 참패다. 밀렵단수사가 중단되었다. 범인의 정체가 들어났으나 체포할 수가 없다. 그러나 흰코뿔소 수사가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흰코뿔소의 멸종을 막으려는 집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국의 야생동물보호협회가 일어났다. 회원인 시몬즈여사의 보고를 들은 그들이 우르르! 내각의 수상실로 몰려갔다.
수상을 대리한 고등판무관이 시몬즈여사를 만났다. 그는 상황을 들었다. 증거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시몬즈여사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 했으나 판무관은 식민지 케냐에 파견된 관리들의 나태와 부패상을 짐작하고 있었다. 특히 경찰청장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알았습니다. 제가 적절히 처리하겠습니다. 야생동믈보호에 수고가 많습니다.’
사흘 후 케냐 행정장관은 다시 경찰서장과 행정국장을 불렀다. 장관은 그 자리에서 경찰서장의 직무를 해제했다. 당분간 쉬고있으라는 명령이다.
‘아니, 장관님 무슨 증거가 있어 저를 해임시키는 것입니까?’
‘증거? 야생동물보호협화 같은 민간봉사단체에서 그런 것은 제시하지 않아요. 그런 것은 관공서에서나 통하지. 그리고 그런 증거는 앞으로 산림국장이 제시하겠지. 그렇지 않소, 산림국장.’
증거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나이로비 경찰서 소속 토마스경사가 치이나타운에 있는 찬팅의 종업원 한 명을 검거했다. 서대인이 마지막 식사를 했던 찬팅이다. 토마스경사는 새로 임명된 경찰청장으로부터 코네리와 함께 일 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그는 코네리와 같이 군대에서 근무했던 퇴역장교다. 검거된 중국인 종업원은 자기가 서대인 테이블에 요리를 나르면서 독약을 탔다고 자백했다. 폭력단으로부터 돈과 함께 받은 독약이다. 또 증거가 들어났다. 사림보안관의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관 조수 젊은 의사가 익사했다는 보안관의 몸 안에 바닷물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죽은 뒤에 바다에 던져진 것이다. 조수가 그 때 검시관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으나 검시관이 그 보고를 무시했다고 증언했다. 검시관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직무태만으로 해직되었다. 그날 나이로비공항에 머물고있었던 어느 비행기의 운항금지령이 내려졌다. 런던으로 떠나려던 비행기가 뜨지 못 했다. 토마스경사가 내린 조치다. 케냐에서 빠져나가는 비행기, 선박, 차량 등에 대한 검색이 실시되었다. 금발머리 푸른 눈동자 여인을 검거하라는 지시다. 금발머리는 염색으로 감출 수 있으나 푸른 눈동자는 색안경으로도 감출 수 없다. 흰코뿔소 밀렵단은 케냐를 빠져나가지 못 했다. 궁지에 몰린 그들, 몸바사에서 타란기레산림으로 가는 도로로 수상한 차량이 지나갔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타란기레는 흰코뿔소의 서식지다. 차량은 지프고 대여섯 명 쯤 사람들이 타고있었다는 정보다.
코네리가 즉시 추격대를 편성했다. 영국육군특전대의 베른대위, 밀렵단속반장 모르키영감과 원주민 출신 단속대원 12명이 다음날 새벽에 출동했다. 그들에게는 밀렵단을 사살해도 좋다는 코네리의 명령이 내려졌다. 사살작전이다. 밀렵단은 흰코뿔소뿐만 아니라 대원들을 죽였다. 아프리카 흰코뿔소 멸종을 막으려는 특별조사단은 한 달 동안이나 그들을 추적했고, 밀렵단은 아프리카 사바나지역으로 도망을 쳤다. 발자국 추적의 명수 모르키영감이 사바나로 들어간 지프자국을 발견했다.
‘멀리 가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은 흰코뿔소 서식지입니다. 지프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 합니다.’
모르키영감의 말대로 지프는 멀리 가지 못 했다. 사바나에는 난장이나무들의 뿌리와 가지들이 엉켜있다. 그래도 길은 있다. 코뿔소가 지나간 길이다. 갑옷처럼 두꺼운 껍질로 무장한 코뿔소가 뚫어놓은 터널 같은 길이다. 지프가 그 길로 들어거려고 했다가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바나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코뿔소 암수 두 마리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돌진했다. 코뿔소는 수많은 동료를 죽인 밀렵단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밀렵단은 당황했으나 총을 쏘지 못 했다. 추적대에게 자기들의 소재를 알려주게 된다. 밀렵단이 지프를 후진시켰으나 코뿔소들이 더 빨랐다.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몸무게가 3t이나 되는 코뿔소의 힘에 지프가 뒤집어졌다. 뒷좌석의 물탱크가 파괴되어 물이 쏟아졌다. 사람들도 부상을 당했다. 밀렵단이 지프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들은 나무뿌리에 감기고 넝쿨줄기에 엉키면서 허둥지둥 도망쳤다. 무덤이 있었는데 부상당한 밀렵단은 가슴에 칼자국이 있었다. 밀렵단은 부상당한 단원을 죽여버렸다. 푸른 눈의 두목이 한 짓이다. 밀렵단이 계속 도망갔으나 대낮의 사바나는 지옥 같았다. 마리 위에서 태양이 번쩍이고 땅, 나무, 풀이 모두 타버렸다. 추적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밀렵자들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날 오후에 통조림통, 술병, 담배들이 발견되었다. 물통은 비어있었다. 작전을 지휘하던 베른대위가 본대에서 떨어져나갔다. 별동대는 도망자들을 앞질러 도주로를 막기로 했다.
베른대위는 영구군특전대의 장교다. 특전대는 전쟁터의 상황에 따라 포위작전이나 게릴라작전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심리작전을 펴기도 한다. 심리전으러 적의 심기를 어지렵혀 총을 사용하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낸다. 베른대위가 심리전을 폈다.
‘그래 그쪽으로 가고잇어. 빨리 따락 모조리 쏴죽여!’
덮어놓고 지르는 소리엿으나 쫓기는 도망자에게는 적이 소재를 알고 하는 말 같았다. 겁에 질려있으면 그런 술책에 말려든다. 그래서 미렵단은 덮어놓고 도망갔다,. 쓸데옶이 총질을 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추격대는 적의 소재를 파악하고 발사했다. 비명이 들렸다. 밀렵단이 흩어졌다. 그들은 흰코뿔소 서식지에서 빠져나가지 못 했다. 어둠속에서 흰코뿔소들이 날뛰었다. 총소리에 신경질이 된 코뿔소가 사람냄새가 나는 거ᅟᅩᆺ으로 돌진했다. 코뿔소는 눈이 근시였으나 예민한 코와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밀렵단은 비명을 지르면서 돔아을 쳤다. 싸움은 사실상 그날밤에 끝났다. 베른대위의 심리전에 걸린 밀렵단은 전투력을 상실했다. 추격대가 다음날 아침에 수색을 했다. 하 saud이 죽었는데 동료의 오발사고다. 다른 한 명은 코뿔소에 받혀 치명상을 입었다. 하복부가 찢겨 살아날 가망이 없다. 한 명은 풀밭에 누워있었는데 피로와 공포로 움직이지 못 했다. 그런데 여두목이 없다. 수색대가 흩어져 여두목을 찾았는데 그때 코네리릐 등뒤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켑틴 코네리. 나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다. 금발머리와ㅣ 푸른 눈의 여인이다. 여인은 권총을 들고 있엇으나 곧 내렸다. 여인이 가죽주머니를 코네리에게 던졌다. 콩알 보다 큰 다이어몬드가 가득 들어있다.
‘캡틴 코네리, 당신이 영국신사라면 항복한 여자를 죽이거나 짓밟진 않겠지? 나를 놓아주시오.’
코네리가 주머니를 여인에게 던졌다.
147. 마푸드의 죽음(18편)
인디아 국립의과대학 수의학부獸醫學部 조교수 이리안양이 아침부터 코끼리를 관찰하고 있다. 우리 밖에 의자를 놓고 서너 시간 계속 관찰하고 있다. 1920년대의 인디아에서는 여자가 사회활동을 하는 일이 드물었으나 이리안은 몇 안 되는 여자 수의사 중 한 명이다. 그 코끼리는 30세 쯤 되는 장년 코끼리인데 뒷발이 솨사슬로 묶여있다. 코끼리가 고함을 치면서 날뛰기 때문이다. 심한 매를 맞아 피고름이 나고있었으나 코끼리는 쇠사슬을 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
‘저 코끼리가 병에 걸렸습니까?’
명함名銜에 총독부 경무부 특별수사관 이든이라고 되어있다.
‘몇 마디 물어도 될까요?’
유창한 영어고 부드러운 말씨다.
‘저 코끼리는 어떤 병에 걸렸습니까?’
‘마스트입니다.’
마스트는 수코끼리가 12세가 되면 걸리는 병이다. 그 병에 걸리면 신경질적이 되고 난폭해지며 살육을 했다. 소나 양 등 가까이에 있는 동물을 코로 때리고 짓밟아 죽인다.
‘사람도 죽이는가요?’
‘그렇습니다.’
‘마푸트들도 희생된다든데 ….’
‘그렇습니다.’
마푸트는 코끼리를 부리는 시람이다. 사육을 하고 훈련을 시킨다.
‘미스 이리안은 마푸트 다빌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내 일을 도와주는 조수입니다. 그런데 왜 그를 조사하지요?’
‘아닙니다. 그가 범법행위를 한 건 아닙니다.’
수사관 이든이 설명을 했다. 이든은 전 날 인디아의 옛 수도 델리의 남쪽 강에서 시체 한 구를 건져올렸다. 40대 인디아인 남자인데 등에 칼자국이 있었다. 이든이 피살자의 신원을 조사했다. 어렵게 피살자가 마푸트 다빌이고 같은 이름의 동생이 국립동물병원에 근무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리안은 개방적인 인디아 여성이다. 그녀는 인디아의 전통의상 사리를 입지 않고 쿠르타라는 셔츠와 바지를 입었으며 얼굴도 가리지 않았다. 인디아의 상류가정 여성은 거의가 전통적인 미모를 가졌는데 이리안은 어딘지 서양적인 풍모가 섞여있는 미인이다. 이리안이 이든을 사무실로 안내했는데 사무실에는 조수 다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빌은 이든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표정이 창백해졌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푸투 다빌이 말했다.
‘녜, 맞습니다. 이 사람은 내 형입니다.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인데 그들이 죽였습니다.’
‘그들이라니 …. ’
‘녜, 그들이지요. 그 음흉스런 놈들이지요.’
그러나 다발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문을 닫았다. 화난 얼굴에 불안과 공포가 나타났다. 이든이 여러번 질문을 했으나 끝내 입을 열자 않았다. 이든은 그 길로 델리 남쪽의 벌목장으로 갔다. 죽은 다빌이 일을 했던 곳이다. 아주 큰 벌목장이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과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일을 하고 있었고 여러 대의 트럭이 드나들었다. 넓은 산림이 반 쯤 벌채되고 산기슭에는 잘린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산에서 나무를 자르는 일은 사람들이 하고 그 통나무를 신기슭으로 나르는 일은 코끼리들이 했다. 산기슭에 길이 있고 트럭과 소달구지가 통나무를 운반한다. 산기슭에 코끼리가 쉬고 자는 우리가 있고, 코끼리를 부리는 마푸트숙소도 있다. 주막도 있어 많이 붐볐다. 이든은 몇 사람 마푸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든은 마푸트를 좋아했다. 인디아에는 수 만 마리 사역코끼리가 있고, 10만 명이 넘는 마푸트가 있는데 마푸트는 인디아에만 있는 특수직업이다. 인디아는 카스트제도의 나라고 계급의 나라였는데 마푸트는 천민賤民에 속했다. 노예보다는 좀 나은 편이었으나 하위계급이다. 그러나 마푸트는 인기가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코끼리를 부리는 모습이 멋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푸트를 좋아했다. 술집에서는 술을 사주는 사람도 있고 아가씨들도 따랐다. 정부도 마푸트에게는 칼을 차고다니는 권리를 주고 천민 중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마푸트는 자존심이 강하고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때도 그랬다. 얼큰해진 그들이 코끼리자랑을 했다.
‘벌목장에 코끼리가 없으면 일이 되지 않아요. 트럭이나 달구지는 산에 오를 수 없어요. 우리가 마음을 먹으면 벌목장은 문을 닫습니다.’
사람들이 동의했다.
사실 코끼리는 큰일을 했다. 소의 15배나 되는 일을 하고 벌어들이는 돈도 15배다. 인디아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있으면 열 명의 식구 한 가족이살 숭 lT고, 코끼리르르 세 마리 갖고있으면 부자에 속했다. 그러나 그런 코끼리리를 부리는 마푸트는 코끼리가 벌어들이는 돈의 1/ 10도 받지 못 했다. 마프트는 코끼리를 소유할 수도 없다. 신분적인 제한이 있고 또 제한이 없더라도 마푸트는 코끼리를 살 수 있는 몫돈이 없다.주막에서 마프트들이 zmnsthfl를 치고 잇으ㅜ나 거의가 주막집주인에게 외상빚을 지고 있다. 인디아에서 코끼리는 재산이고 코끼리 수에 따라재산이 평가된다. 인디아의 재벌이나 귀족은 몇 십 마리의 코끼리를 가지고 있다. 이든이 마푸트에게 술을 사주며 정보를 억으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다빌 말입니까?’
마푸트는 다빙 말이 나오면 갑자기 말을 끊었다. 두려워했다. 주막주인이 다빌이 거기서 일을 했다고 알려주었다.
‘다빌은 매우 훌륭한 마푸트ㅜ엿지요. 그의 아바지도 유명한 마푸트였고 동생도 마푸트입니다.’
이든이 비싼 안주를 주문하고 고급술을 시켰다. 주막주인에게 술을 권했다.
‘다빌의 아버지ㅏ는 코끼리를 아주잘 다루는 마푸투였는데 일주일 전에p 죽었습니다. 코끼ㅏ리에게 밟혀죽었습니다.’
‘그렇게 유능한 카푸트가 왜 코끼리에게 밟혔습니까?’
‘그야 코끼리 나름입니다. 훌륭한 마푸트도 미친 코끼리에게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미쳐 날뛰는데 어찌 할 방법이 없지요.’
이든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다빌이 왜 죽었느냐고?’
주막주인은 그제서야 자기가 너무 많이 지껄였다고 깨달은 것 같았다. 그도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든은 거기서는 더 이상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단념했다. 코끼리가 갇혀있는 우리로 갔다. 우리에는 아직 어린 코끼리와 부상한 코끼리가 몇 마리, 조금 떨어진 우리에 쇠사슬에 묶인 수코끼리가 있었다. 아주 커다란 늙은 코끼리인데 마스트병에 걸려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에 핏줄이 서고 이마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다음날 이든이 미스 이리안을 만났다. 이리안은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스트병을 박사논문 과제로 연구를 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마스트가 수코끼리에게는 치명적인 병인데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결론은 성적性的인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보여지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마스트에 걸린 수코끼리는 암코끼리가 다가가면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수코끼리의 성기性器는 보통 때는 접혀서 배 안에 들어가 있는데 마스트에 걸린 수컷은 암컷이 가까이 가면 성기가 꿈틀거렸고 때로는 밖으로 돌출되기도 했다. 인디아에서 사육되는 코끼리는 암수가 다 성적인 불만에 걸렸다. 사육사들은 교미를 시키지 않는다. 코끼리는 15년이 되어야 성숙된다. 일을 시키려면 15년이나 사육해야 한다. 그래서 인디아의 코끼리 사육사들은 야생코끼리를 잡아 사육했다. 인디아의 산림에는 야생코끼리가 많이 있기 때문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 보다는 야생코끼리를 잡아 훈련을 시키는 게 빠르다. 그래서 교미를 시키지 않아 사육코끼리는 성적 불만이 쌓인다. 이리안은 그런 생태환경이 마스트병을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생코끼리도 마스트에 걸렸다. 아프리카 코끼리도 마스트에 걸린다. 인디아에서 떠돌이 코끼리는 가장 위험한 맹수다. 성정한 수컷은 1년에 한 번 마스트를 앓는데 짧게는 1주일 길게는 석 달이 걸린다. 늙은 코끼리는 증상이 오래가고 1년 내내 앓는 놈도 있다.
‘현재로써는 치료약도 없고 예방약도 없습니다. 강력한 진정제를 주사하거나 먹이는데 위험합니다. 치료를 하다 죽은 코끼리가 있어 주인들은 치료를 거부합니다.’
‘그렇다면 주인들은 마스트병에 걸린 코끼리를 어떻게 처립합니까?’
다빌이 대답했다.
‘내버려둡니다. 병이 나으면 또 일을 시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다빌의 눈이 반짝거렸다. 무엇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코끼리의 병이 나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하지? 코끼리 주인은 돈을 벌기 위해 병이 나았다고 하겠지만 만약 병이 낫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지?’
미스 이리안도 그 점을 염려했다.
‘코끼리의 병이 나았는지 아닌지는 전문사인 나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병에 걸린 코끼리는 이마에서 검은 분비물을 흘리는데 그 증세가 없거나 사라졌다고 해서 병이 나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가 얌전하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럴 때 무서운 사고가 나지요.’
이든이 머리를 끄덕였다. 무엇인가 단서가 잡힌 것 같다. 수수께끼 같았던 마푸트 피살사건의 진상이 풀려가고 있다. 그러나 다빌이 또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음날 만나자고 하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수사관님능 총을 갖고있지요? 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다니시지요. 몸조심하세요.’
이든은 누군가 자기를 미행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떤 그림자가 뒤를 따라다녔다. 다빌의 조언대로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이든이 그 길로 총독부청사로 갔다.
‘녜, 그렇습니다. 마스튼는 위험한 병이기 때문에 우리는 병에 걸린 코끼리를 단속합니다. 병이 나을 때까지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치유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코끼리는 죽입니다. 관리들이 나가 확인합니다. 관리의 말을 듣지 않는 마푸트나 주인은 엄중한 처벌을 받습니다.’
인디아의 관리는 부패한 사람이 많다. 다음날은 동물병원에 갔다. 동물병원이 바빴다. 이리안이 엄청나게 큰 코끼리에 타고있고 다빌이 옆에 붙어있다.
미스 이리안이 타고있는 코끼리는 몸색깔이 푸른 암컷이다. 야생의 코끼리는 암컷과 어린 것들만 무리를 지어다니는데 두목은 늙은 암컷이다. 수컷은 자라면 무리에서 떨어져나가 단독생활을 하거니 수컷들 끼리 서너 마리씩 모여 다닌다. 떠돌이수컷이다. 그러다가 발정기發情期가 되면 무리에 들어와 짝짓기를 하는데 암컷두목의 지시에 따른다. 암컷두목은 질서를 지키지 않은 수컷을 응징했으나 수컷은 두목에게 덤벼들지 않는다. 가끔 마스트에 걸린 놈이 반항을 했으나 그럴 때는 주위에 있는 암컷들이 합세하여 수컷을 응징한다. 그런 야생코끼리의 습성이 가축화된 코끼리들에게도 남아있어 동물병원 당국자는 푸른암코끼리를 이리안에게 배속시켜 신변보호를 했다. 푸른코끼리와 그를 부리는 마푸트 다빌은 그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사고가 났다. 그날 옆 우리에 늙은 코끼리가 들어왔는데 얌전했다. 이마에 검은 분비물도 흐르지 않고 눈에도 핏줄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 코끼리를 끌고온 마푸트가 실수를 했다. 마푸트가 쇠사슬로 코끼리 다리를 묶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코끼리가 날뛰기 시작했다. 코끼리는 마푸트를 밀어붙이고 우리에서 뛰어나왔다. 코끼리는 한쪽다리에 감긴 쇠사슬을 끌고 마당에서 일을 하고있는 사람들을 덮쳤다. 급보를 받은 다빌이 달려왔다. 다빌과 이리안은 푸른코끼리를 타고있었는데 푸른 코끼리가 코로 나팔을 불면서 날뛰는 수코끼리에게 경고를 했다. 대부분의 코끼리는 푸른코끼리의 경고를 들으면 도망가거나 복종을 했는데 그 코끼리는 오히려 푸른코끼리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눈에 핏발이 서고 이마에서 검은 분비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푸른코끼리가 코를 휘두르며 앞길을 막아섰으나 수코끼리가 몸으로 푸른코끼리를 들이받았다. 푸른코끼리가 비틀거렸고 이리안이 땅에 떨어졌다. 위험하다. 이든이 권총을 발사했다. 아무리 껍질과 지방층이 두꺼운 코끼리라고 해도 급소 대가리에 세 발의 총탄을 맞고는 견디지 못 한다. 수코끼리는 무릎을 꿇었고 뒤따라온 경비원들이 또 집중사격을 했다.
‘괜찮소? 미스 이리안.’
이리안은 낯이 창백했으나 침착했다. 미스 이리안이 죽은 코끼리를 끌고가는 경비원을 말렸다. 시체를 조사하겠다고 했다.
미스 이리안이 죽은 코끼리를 상세하게 조사하더니 그 코끼리를 데리고온 마푸트를 불렀다.
‘이 코끼리를 왜 데리고왔어요?’
‘나리께서 코끼리를 데리고 가서 병이 다 나았다는 증명을 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리가 누구지요?’
‘파르케트 나리입니다.’
파르케트는 세력이 큰 귀족이다. 코끼리를 서른 마리나 가지고 있다.
‘이 코끼리가 한 달 전에 사람을 죽인 일이 있지요?’
미스 이리안은 그 코끼리가 벌목장에서 일을 하던 소달구지 주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리안의 추궁을 받은 마푸트가 대답을 못 했다.
‘사람을 죽인 코끼리는 죽여야 하는데 왜 죽이지 않았지요?’
마푸트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코끼리의 경력서를 보여주세요.’
경력서는 총독부 코끼리 담당부서에서 발행하는 공문서다. 경력서를 본 이리안이 긴장했다.
‘이 코끼리는 이름이 바뀌었어요. 사람을 죽인 코끼리가 아닌 다른 이름이예요.’
그 코끼리 경력서에는 야생코끼리를 잡아 훈련시킨 것으로 되어있었다. 마 스트에 갈렸거나 사람을 죽인 사실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위조경력서 다. 다음 조사는 이든이 해야 할 일이다. 이든의 조사에 의하면 사람을 죽 인 코끼리는 사살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코끼리주인이 사살을 했고 총독부 관리가 확인을 했다. 이든은 신중했다. 귀족 파르케트는 강력한 권력을 가 졌다. 그는 인디아를 지배하는 총독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에 총독 부 관리들이 극진하게 대우했다. 함부로 수사하다가는 이든의 지위가 위태 롭다. 혐의는 있으나 확증은 없다. 파르케트는 다른 코끼리경력도 위조했는지 모른다. 그가 소유한 서른 마리의 코끼리 중에 살인 코끼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든이 조사하는 마프트 살인사건도 관련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이든은 다음날 이리안으로부터 점심초대를 받았다. 코끼리의 습격을 받았을 때 구조를 받았던 인사를 하겠다고 했다. 델리 교외郊外의 조용한 식당이었는데 말을 타고왔다. 경쾌한 승마복을 입은 이리안은 매우 아름다웠다. 인디아 상류가정의 규수閨秀가 혼자 외국남자를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었으나 미스 이리안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왜죠?'
‘어쩌다 그만 그렇게 됐습니다. 미스 이리안은 현재 약혼중이시지요?’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인디아에서는 부모님들이 당사자의 의견과 관계없이 딸의 혼인을 결정하니까요.’
미스 이리안이 남의 일처럼 말했다, 웃으면서. 영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리안은 보통 여자가 아니다. 이리안이 식사가 끝날 무렵 서류 한 장을 보여주었다. 최근 1년에 마스트병에 걸려 당국의 지시로 사살된 코끼리의 na명단이다. 모두 열여덟 마리다.
‘이 코끼리는 사고를 일으킨 코끼리입니다.’
‘미스 이리안을 습격한 코끼리도 이 명단에 들어있습니까?’
‘이름은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단에 이름이 있어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코끼리들이 더 있겠군요.’
이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안이 또 다른 서류를 보여주었다. 최근 1년 동안에 코끼리들이 일으킨 크고 작은 사고내용인데 모두 30여 건이고 살인만 16건이다. 살인 코끼리는 마스트병에 걸린 놈들이다.
‘수사관님, 이중에는 마푸트 다빌의 부친을 죽인 코끼리의 이름도 끼어있습니다. 살인 후 즉시 사살되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아주 덩치가 큰 코끼리인데 한쪽 눈이 찌그러졌고 꼬리가 잘린 코끼리입니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사리스카지역에 있는 어느 벌목장에서 비슷한 코끼리기 일을 하고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한쪽 눈이 찌그러지고 꼬리가 자린 코끼리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이든이 다음날 델리 남쪽에 있는 그 벌목장에 갔다. 정말 그런 코끼리가 있었다. 쇠사슬에 묶인 체 일을 하고 있었다. 음흉한 눈빛이었다.
‘왜 그런 걸 물어?’
그 코끼리를 부리고있는 마푸트가 이든의 질문을 받고 고함을 쳤고 다른 마푸트 한 명이 이든에게 다가왔다. 둘 다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곳은 산림 안이고 다른 사람은 없다. 마푸트는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는데 칼날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그들이 이든을 죽이고 땅에 묻어버리면 아무도 모른다. 이든이 권총을 뽑았다. 그때 또 다른 마푸트가 뛰어들었다. 다빌이다. 이든이 위기를 모면했다. 다빌은 이리안의 지시를 받고 이든의 신변보호를 하기 위해 그것에 왔는데 때가 적절했다. 이리안은 사려깊은 여인이다.
‘저 코끼리가 당신의 부친을 죽인 코끼리리지요?’
다빌이 머리를 끄덕였다. 귀족 파르케트의 소유다. 사살되어야 할 코끼리가 이름을 바꾸어 돈벌이를 하고 있다. 전날 이리안이 보여준 코끼리명단에는 파르케트의 코끼라가 여섯 마리나 끼어있었다. 서류상 사살된 코끼리명단에도 파르케트의 코끼리가 열 마리나 끼어있었다. 수수께끼 같은 마푸트 피살사건의 진상이 서서히 들어나고 있었다. 이든이 바로 범인 색출에 나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이든은 경찰국장의 호출을 받았다. 경찰국장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 스리랑카에 가야겠어. 경찰과장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맡아주게.’
스리랑카는 인디아 남쪽의 자치령이었으나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거부해도 소용없어. 상부의 지시야.’
경찰국징은 곤혹스런 표정이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나 소신이 없는 관리다.
‘자네도 알고있겠지만 총독부에는 자문회기 있어.’
인디아인 귀족과 재벌로 구성된 자문회는 총독부에 협력하고 있었으나 자기들의 이해에 관계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총독에게 의견을 제기했고 총독도 그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경찰국장은 그 자문회에서 수사관 이든을 해임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수사관 이든이 사건을 수사한다는 핑계로 인디아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인디아 귀족의 규수를 유혹했다는 내용이다. 이든이 전근명령을 거부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경찰국장은 사표를 받지 않고 일주일 쯤 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휴가기간에 잘 생각하여 결정하라는 뜻이다. 휴가기간 중에는 공무원의 신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마푸트 피살사건 조사를 계속할 요량이다. 이든이 코끼리의 등록을 받고 경력을 조사하는 부서에 가서 담당계장을 만났다. 저번에 만난 혼혈인 관리다.
‘파르케트씨가 갖고있는 코끼리명단을 보겠다고요?’
그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도 않고 비웃듯이 말했다.
‘파르케트는 총독부에 협조를 잘 하는 귀족입니다. 그런 분에 대한 조사는 협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든 수사관 당신은 직무정치처분이 되어있습니다. 당신은 휴가중이 아닙니까?’
휴가중이라는 걸 어떻게 이 사람이 알고있을까?
‘그래요. 나는 지금 파르케트만을 조사하는 게 아니요. 나는 당신도 조사하고 있어. 누가 코끼리들의 병력病歷을 위조하고 잇는지를 조사중이지.’
계장이 겁에 질렸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투부터 달라졌다.
‘수사관님 나는 그런 것은 모릅니다. 나는 그저 코끼리주인이 제출한 서류를 맡고만 있을뿐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조사해봐야 알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를 구속할 수 있다는 걸 모르냐?’
부패한 총독부관리들은 털기만 하면 먼지가 풀풀났다. 계장이 파르케트가 소유한 코끼리명단을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넘겨주었다. 마흔 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파르케트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모두 건강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코끼리들은 돈벌이가 잘 되는 벌목장에 배치되어 일을 했다. 귀족 파르케트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그 돈으로 부패한 관리를 조종했다. 이든이 이리안을 만나러 동물병원으로 갔는데 동물병원 과장이라는 자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가지 못 하게 막았다. 상부의 명령이라는 말이었다. 돌아가려고 뒤돌아섰는데 견습 마푸트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인근의 집으로 이든을 안내했다. 다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리안의 지시로 이든을 경호하고 있다.
‘나리, 조심하십시오. 살인청부업자들이 나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귀족 파르케트는 관리만 조종하는 게 아니라 한 무리의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하여 관리하고 있다. 돈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자들이다.
그날 그곳에 모였던 마푸트는 그동안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의심스럽게 죽은 마푸트들의 명단을 가지고왔다.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다빌의 형도 포함되었다. 마푸트는 그들이 살인청부업자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증거도 없이 경찰에 조사를 의뢰하거나 고소고발을 하면 그 자신들이 위험하다. 또 다른 의문의 죽음이 생길뿐이다.
‘이리안, 나는 다빌의 형을 누가 죽였는지 알고있습니다.’
모임에 참가한 마푸트가 말했다. 최근 직장에서 해고된 젊은이다.
‘다빌의 형은 죽기 전에 벌목장의 작업반장에게 새로 등록되어 일을 하게된 늙은코끼리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코끼리라면서 그 코끼리를 죽여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작업반장이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자기가 직접 그 코끼리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흘 후에 익사체溺死體로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서너 명의 살인청부업자들이 미행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뺨에 칼자국이 있는 자가 있습니다. 눈썹 밑에서부터 턱에까지 나있는 칼자국이라 사람들 눈에 띠었습니다.’
다빌의 형이 행방불명 된 날 밤에도 그 칼자국의 사나이가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술집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다가 술에 취해 술집에서 나온 다빌의 형을 뒤따라갔습니다. 술집주인이 보았습니다. 이든이 다음날 경찰에 폭력전과자명단에 뺨에 칼자국이 있는 자가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영국인 경찰서장이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밤 이든의 집에 인디아인 한 사람이 찾아왔다. 비단옷을 입은 노인인데 그는 자기가 자문회 집사라고 했다. 자문회는 인디아인 귀족재벌들의 모임인데 총독부에 협조하고 진정도 한다.
‘아시다싶이 우리 자문회는 총독부에 협조를 하고있고 영국인관리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있습니다. 간혹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타협도 하지요.’
그는 책상 위에 두툼한 봉투를 내놓았다. 영국인 관리와 친해지려는 자문회의 의사표시라는 말이다.
‘나에게 무엇을 원하지요?’
‘귀족님들이 소유한 코끼리에 대한 조사를 중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끼리 관리에 소홀한 점이 있다면 우리가 스스로 시정하겠습니다.’
이든이 봉투를 돌려주고 나가는 문은 저쪽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든을 매수하려던 자문회의 계획은 실패했으나 그들의 공작工作은 집요執拗했다. 이든은 다음날 총독부 고등판무관의 소환召喚을 받았다. 판무관은 총독 다음가는 관리이며 총독을 대리한다.
‘이든군, 자네는 인디아가 힌두교의 나라라는 걸 모르나? 힌두교는 남녀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한다는 걸 모르나?’
인디아는 자기들끼리도 부부가 아닌 남녀는 서로 가까이 하지 않고 대화도 제한되었다. 상대가 외국인일 경우는 상대의 얼굴도 마주보지 않는다.
‘이든군, 인디아총독부도 이런 인디아의 종교나 풍습을 존중하고있어. 그런데 자네는 인디아귀족의 따님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유혹했어. 자문회귀족들이 크게 분격하여 자네를 인디아에서 추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대여섯 명의 자문회회원들이 있고 파르케트도 자문회원이다. 마흔 마리나 되는 코끼리를 가지고있는 귀족인데 사실상 파르케트가 자문회를 조종하고 있다. 판무관을 찾아온 자문회원들은 격분했다. 그들은 그저 우발적으로 찾아온 게 아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증거를 제시했다. 이든이 여섯 번이나 동물병원으로 찾아와 근무하는 귀족의 딸 미스 이리안에게 치근덕거렸다는 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제시되었고 동물원당국의 확인서도 있다.
‘수사상 필요했기 때문에 이리안양을 만났다고? 그것은 변명이 안 돼. 자네는 이리안양을 호텔의 요리점에서도 만났어. 요리점주인의 증언도 있어.’
그 자리에는 이리안양의 약혼자라는 젊은 친구도 와있었으며 그는 인디아여성을 농락한 영국관리와 결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든이 궁지에 몰렸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사표를 내고 인디아를 떠나라는 판무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때 여비서가 들어와 판무관에게 손님이 왔다고 알렸다. 손님이 들어왔다. 이리안양과 그 부친이다. 이리안양의 부친은 자문회원은 아니었으나 귀족이다. 그 사무실에 모여있었던 자문위원들은 유력한 동조자가 나타났기에 의기양양意氣揚揚했다. 무례한 영국관리에게 추방령을 내렸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리안양의 부친의 표정이 차가왔다.
‘여러분 나는 미스터 이든을 규탄糾彈하려고 온 게 아니요. 나는 미스터 이든이 영국의 신사紳士라고 믿고있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미스 이리안의 부친이 자문회원들과 언쟁言爭을 벌였다.
‘도대체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하고있소? 이건 우리 집안의 일인데 왜 당신들이 나서서 떠들고 있소? 저 친구가 이리안의 약혼자라지만 나는 이미 그 약혼을 취소했소. 그러니 그도 이 일에 나설 자격이 없소.’
부친은 이든이 딸을 유혹한 적이 없다고 했다. 부친은 이든이 인디아인귀족들이 소유한 코끼리에 대한 조사를 하려고 딸을 만났다고 했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파르케트를 비롯한 자문위원들은 서로 귓속말을 하더니 슬그머니 사무실에서 나가버렸다. 미스 이리안의 부친과 더 이상 언쟁을 벌이면 자기들의 비행非行이 탄로날 것이라고 염려한 것 같았다.
미스 이리안의 부친은 영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학자이며 힌두교의 규율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고 그의 딸 미스 이리안도 그렇다. 이든은 그날밤 경찰서로부터 뺨에 칼자국이 있는 폭력전과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푸트 피살사건의 용의자容疑者가 비로소 수사선상에 떠올랐다. 용의자는 나라스라는 자이며 범죄조직의 일원이고 폭력전과가 네 번이나 있었다. 경찰이 나라스를 잡으려고 했으나 나라스는 행방이 묘연杳然했다. 며칠 전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든이 나라스의 뒤를 쫓았고 형사들도 쫓았다. 마푸트들도 복수를 하려고 나라스를 쫓았는데 또 다른 추적자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라스의 입을 막기 위해 그를 죽이려는 암살자들이다. 이든과 경찰은 나라스와 친했던 깡패를 만났는데 그들은 깡패답지 않게 벌벌 떨고있었다. 그들은 이든이나 경찰이 아니라 나라스를 잡으려고 추적하는 마푸트나 암살자를 두려워했다. 나라스는 꽤 많은 돈을 가지고 고향 알모라로 도망을 갔다. 델리 동쪽 네팔과 국경지대에 있는 마을인데 나라스는 여인숙과 술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네팔로 탈출할 생각인 것 같았으나 그에게는 깊은 칼자국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추적을 시작한지 사흘만에 나라스는 술집에서 암살자에게 저격을 당했다. 뒷문으로 도망쳤으나 왼팔에 총탄을 맞았다. 나라스는 부상을 숨기고 계속 도망을 다녔으나 상처가 곪아 고름이 흘렀다. 이든과 형사들이 나라스를 발견했을 때 그는 여인숙에서 높은 열로 신음하고 있으면서도 암살자를 두려워했다.
‘나리들, 제발 나를 살려주시오. 그놈들아 나를 죽일 것입니다. 그놈들은 지금도 여기에 숨어있습니다. 옆방에 있을지도 모르고 저 창밖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스가 공포에 질려 헛소리를 하고있는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이든도 살기를 느꼈다. 이든이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일어났을 때 바깥에서 총소리가 울려퍼졌고 뒤이어 처참한 비명이 들렸다.
‘살려줘. 나를 죽이지 마!’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든이 뛰어나갔다.
‘나리, 괜찮습니까?’
다빌과 그의 동료 두 명이 있었다. 다빌은 칼을 들고있었고 칼에 피가 묻었다. 암살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다빌과 그의 동료들이 나라스가 여인숙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달려가보니 암살자가 여인숙입구에 숨어있었다. 나라스를 죽이려고 한 암살자인데 그가 다빌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마푸트들이 허리에 차고있는 칼은 장식품이 아니다. 다빌이 권총이 발사되기 전에 칼로 암살자의 어깨를 후려쳤고 그 충격으로 총탄이 빗나갔다. 암살자는 중상을 입었으나 죽지 않았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형사들이 쓰러진 암살자에게 수갑을 채웠다. 마푸트 살인사건의 중인이 잡혔다. 높은 열에 신음하고있던 나라스가 방으로 들어온 다빌을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다빌, 네가 살아있었구나! 나를 살려줘. 난 그저 높으신 분들이 시키는대로 했을뿐이야.’
나라스는 다빌을 자기가 죽인 다빌의 형으로 착각하였다. 형제가 똑닮았기 때문이다. 형사들이 나라스와 암살자를 연행했고 나라스가 자백을 했다. 술에 취한 다빌의 형을 등뒤에서 쏘아 죽인 다음 강에 던졌다고 증언했다. 시신에 돌을 달았는데 끈이 풀어져 시신이 강에서 떠올랐다. 마푸트 피살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범인이 잡혔으나 이든의 수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라스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배후에 있는 강력한 인물과 세력에 조종되었을 뿐이다. 배후인물을 밝혀내 잡아야 한다. 그 인물은 인디아의 힌두사회 상층부에 있다. 상층부는 절대적으로 신분이 보장되어있다. 카스트 장로회의 권위와 힘은 인디아를 지배하고 있는 총독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든도 알고있었으나 수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이든은 이미 마푸트살인사건의 배후인물을 짐작하고 수사의 초점을 그 인물에 맟추었다. 귀족 파라케트다. 파라케트는 인디아에서 최고신분인 바라문(승려僧侶)과 크샤트리아(귀족貴族)의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재벌財閥이다. 자문회의 회원이다. 증거가 없다. 심증心證은 확실한데 증거가 없다. 이든이 체포한 암살자 나라스와 다른 암살자 포티도 파라케트로부터 직접 암살지시를 받은 게 아니다. 파라케트는 2중 3중으로 쳐진 장막 뒤에서 범죄를 조종하고 있으며 암살자를 지휘하는 자는 따로 있다. 인디아의 계급제도에는 승려와 귀족 등 최상위계급 밑에 바이샤(평민平民)계급이 있고, 그 밑에 수드라(노예)가 있는데 평민계급도 여러 개로 나뉘어졌다. 나눠져있는 계급은 일정한 직업을 분담하며 직업은 엄격히 규제된다. 그런 계급 중에 가야스스타라는 계급이 있는데 그들은 서기직書記職이었으며 귀족계급의 앞잡이노릇을 했다. 그들은 승려와 귀족집안의 집사執事나 서기일을 맡고 관공서에서도 일선 실무를 담당했다. 그들은 끼리끼리 단결했고 귀족이나 고급관리를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평생토록 신분과 직장이 보장된다. 암살자를 지휘한 것도 코끼리병력을 조사한 것도 모두 그들이었는데 이든의 수사가 진행되자 그들이 행방불명되었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암살자를 지휘한 자는 보카치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서기인데 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받는 봉급의 열 배를 파르케트로부터 받았다. 그가 이든의 수배를 받기 직전에 행방불명 되었다. 암살되었는지도 모른다. 코끼리의 등록을 받고 병력을 조사하는 부서의 계장도 행방불명이다. 이든과 몇 번 만난 영국인과 인디아인의 혼혈아다. 그의 밑에서 일한 관리들을 심문했으나 모두 모른다고 했다. 모든 일을 계장이 혼자서 했다는 증언도 다 똑같았다. 관련서류도 없다.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고등판무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든군, 자네가 지금 수사하고있는 건 살인사건이 아니야. 자네는 지금 인디아의 카스트제도 전체를 조사하고 있어. 일개 수사관이 할 일이 아니야. 자네는 월권행위를 저지르고있어.’
판무관도 인디아의 상류계급이 부패하고 부패한 귀족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걸 알고있으나 자기의 힘으로도 그것을 파헤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이든이 암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다빌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빌이 이든을 마프트들이 모여있는 술집으로 데리고갔다. 열대여섯 명의 마푸트들이 잔치판을 벌였는데 이든이 들어서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마푸트는 인디아에서 하위계급이었으므로 몇 백 년 동안 귀족이나 재벌들에게 짓밟히며 살아왔으나 다빌 부자父子가 죽는 걸 보고 분격하여 단결했다. 인내만을 미덕으로 묵묵히 살아왔던 그들도 이젠 싸우기로 했다.
‘나리, 고맙습니다. 우리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는 나리를 돕겠습니다.’
큰 힘이 될 수 있다. 하급관리나 귀족의 집사로 일하고 있는 카야스타계급은 코끼리비리를 수사하려는 이든에게 협조하지 않았으나 마푸트들이 나서면 수사진행이 빨라질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코끼리를 잘 아는 사람은 마푸트다. 코끼리는 지상地上에서 가장 크고 힘도 강하다. 어떤 동물도 코끼리에게 덤빌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코끼리를 지배하고 부려먹었다. 특히 인디아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코끼리를 부렸고 코끼리는 사람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코끼리가 마스트병에 걸린다고 마푸트가 주장했다. 쌓이고 쌓인 울분이 병이 되어 폭발하여 정신병이 된다는 주장이다. 마스트는 자연치유가 되었으나 중증이 되면 치유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인디아정부는 미친 코끼리를 죽였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 다른 코끼리의 안전을 위해서 마스트병에 걸리면 죽여야 한다. 그런데 코끼리를 이용하여 큰돈을 버는 일부 승려나 귀족은 미친 코끼리도 죽이지 않았다. 죽인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실제로는 벌목장에 보내 일을 시키고 돈을 벌여들였다. 코끼리는 노예 열다섯 명의 돈을 벌어준다. 그런 미친 코끼리 때문에 마푸트가 죽었으나 마프트를 죽인 코끼리는 계속 일을 했고 마푸트는 계속 죽어나갔다.
‘나쁜 것은 병에 걸린 코끼리가 아니라 미친 코끼리를 계속 부려먹는 코끼리 소유자들입니다.’
그런 귀족의 편을 들어 살인 코끼리를 죽인 것처럼 꾸며 서류를 위조해주는 인디아의 관리들 또한 문제다. 마푸트들은 그날밤 단결을 과시하며 술잔을 들었고 이든도 합세했다.
마푸트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마스트병력을 가진 코끼리를 조사했다. 사람을 죽였으나 죽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일을 하고있는 코끼리들이다. 코끼리등록서류에는 사진이 없으나 마푸트는 자기가 다룬 코끼리는 쉽게 알아내고 사고를 일으킨 코끼리도 쉽게 구별했다. 일반인의 눈에는 코끼리가 다 같아 보이지만 마푸트들은 열이면 열 다 코끼리의 용모를 파악하고 있다. 마푸트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각 지역별로 동지회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자신들의 권익을 보장하려는 조합이다. 동지회가 코끼리 소유주들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임금을 5인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인상하라고 했다. 인디아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변란變亂이다. 그렇게 되자 승려와 귀족들 특히 코끼리를 많이 소유한 부자귀족들이 대책회의를 열었다. 종전처럼 반항하는 마푸트를 잡아 매질을 하는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귀족들은 오랜 기간 매질과 탄압으로 마프트를 지배했는데 총독부가 금지시켰다. 그들은 서기직을 맡고있는 카야스타를 시켜 간접적인 탄압을 시도했다. 카야스타는 귀족가문의 집사, 관공서의 서기직, 벌목회사와 관광회사의 서기직에 종사했으므로 마푸트와 직접 대면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소한 잘못을 트집잡아 마푸트를 해고했는데 그 방법은 잘 통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해고시키면 다른 마푸트들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아 코끼리를 놀려야 했다. 다른 방법은 마푸트의 대우나 임금을 차별화시켜 마푸트를 분열시키는 방법인데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곧 마푸트들이 그 잔꾀를 알아채고 말려들지 않았다. 마푸트들에게는 괴로움과 슬픔을 함께한 오랜 우정이 있다. 마지막방법은 힘이다. 깡패를 동원했다. 도시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전과자나 불명예제대자들이다. 막대한 돈을 뿌려 반항하는 마푸트를 협박하고 폭행했는데 경찰은 외면하고 있었다. 경찰은 깡패를 단속하지 않고 마푸트가 칼을 사용하여 싸움을 했다고 보고했다. 이든의 힘으로도 부패한 경찰을 처벌할 수 없었다. 경찰 중에는 영국인이 있었고 이든의 상관도 있다.
이든이 인디아귀족의 초청을 받았다. 미스 이리안의 부친 파로스경卿이다. 대학의 학장을 하는 파로스경의 저택은 호화로웠다. 넓은 정원에 연못도 있다. 만찬회에는 네 명의 인디아귀족들도 초청되었다. 파로스경의 친한 친구들이다. 커다란 식탁에 나이프와 포크가 마련되었는데 그 집 주인이 손으로 음식을 먹었던 인디아의 오랜 전통을 거부했다는 증거다.
‘미스터 이든 우리는 오늘밤 당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이미 일부 코끼리 소유쥬들이 살인이나 큰 사고를 일으킨 병든 코끼리를 죽이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등록시킨 다음 계속 일을 시킨다는 사실과 그 코끼리들이 계속 사고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들을 알고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고자 합니다. 그들과 싸워 그들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인디아도 그때 쯤 변화하고 있었다. 힌두교의 교리敎理를 방패防牌로 썩어있는 인디아 상층부가 스스로 부패를 막으려고 했으며 그 중심에 파로스경이 있었다. 이든이 부패의 중심인물인 파르케트와 그에 동조하는 네 명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이 한 짓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파르케트가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하여 마푸트를 죽인 사건도 다 말했다. 마푸트들이 단결하여 파르케트들과 싸우고 있고 부패한 귀족들이 깡패를 둥원하여 마푸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소상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그들 부패귀족들이 부패경찰을 매수하여 반항하는 마푸트를 모두 검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일도 알고있습니다.’
파로스경이 말했다. 다음날 파로스경과 그 동지들이 총독부의 고등판무관실을 찾아갔다. 총독의 행정을 돕고있는 자문회에 부패귀족이 끼어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부패의 중심인물인 파르케트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고등판무관의 책상에는 이든이 작성한 보고서가 놓여있다. 고등판무관은 귀족들의 진정서와 이든의 보고서를 들고 총독집무실에 갔다가 약 한 시간 후에 돌아왔다.
‘여러분, 자문회를 해산하기로 했습니다. 파르케트와 그 일당을 모두 체포할 것입니다.’
경찰국장과 부퍄관리들이 모두 해임되었고 특별수사관 이든이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파로스경은 만찬회를 열고 이든과 미스 이리안의 약혼을 발표했다.
148. 아마존의 변화(15편)
1980년 8월, 아마존 상류 이키토스항港에 한 무리의 관광객이 도착했다. 아마존 오지奧地를 탐험하겠다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모두 서른 명 쯤 되었는데 총과 낚싯대를 가지고있었다. 페루 영내에 있는 이키토스항은 하구河口에서 4,000Km나 상류에 있었는데도 강폭이 3Km나 되고 다갈색의 탁류가 무겁게 흐르고있었다. 관광객들이 맨처음 보고싶은 것은 피라니아다. 피라니아는 아마존을 상징하는 물고기이며 그놈들은 움직이는 물체만 보면 덤벼들어 말이나 소도 단 몇 분만에 뼈다귀로 만들었다. 관광객들도 그런 상식은 알고 있다. 피에 굶주린 그놈들은 사람도 잡아먹고 낚시를 잘못하자다가는 손가락이 잘려나간다는 경고도 들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수족관에서 피라니아들이 고기를 뜯어먹는 광경을 본 사람도 있다. 관광객들은 엔진이 달린 8m 쯤의 목선木船을 타고 본류에서 지류로 들어갔다.
‘조심하세요. 여기서는 낚시질을 하면 안 됩니다. 물속에 괴물메기가 있습니다. 몸길이 5m가 넘는 세계 최대어이며 낚시를 하는 사람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관광객들이 겁에 질려 낚싯대를 거두었다. 목선이 지류 깊숙이 들어가자 강폭이 좁아지고 좌우 양측은 울창한 밀림이었고 나뭇가지들이 강으로 뻗었다. 원주민 안내인이 물속을 살피고 또 다른 사람은 총을 들고 양측 밀림과 강으로 뻗어나온 나뭇가지를 조용히 살피고 있다. 강가에 악어나 아나콘다가 숨어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강으로 뻗어나온 나뭇가지에는 독사들이 붙어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독사들이 관광객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물리면 한 시간 안에 죽는다는 아마존의 독사가 아닌가. 관광객들은 불안해졌고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그러자 안내인이 동료를 손가락질하면서 저 친구는 아마존에서 태어나 아마존에서 50년을 살아온 사냥꾼이며 어부라고 소개하고 저 친구가 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담했다. 관광선은 그날 오후 어느 호숫가에 정박했다. 그곳은 물의 흐름이 전혀 없고 다갈색의 물빛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다. 피라니아가 나올만한 곳이다.
‘자, 여러분. 낚시를 시작하세요. 여기에는 괴물메기는 없습니다.’
관광객들이 낚시를 던졌다. 대여섯 사람이 낚시줄을 던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낚시대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송사리 한 마리도 낚이지 않았다.
관광객들의 피라니아낚시가 안 되는 것을 보고 안내인이 소리쳤다.
‘여보게, 여기에는 피라니아가 없어.’
‘그래? 그렇다면 불러들어야지.’
안내인이 돼지피를 강물에 뿌렸다. 그리고 기다란 막대기로 수면을 마구 두들겼다. 그러자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피라니아가 몰려들었다. 안내인이 낚시대를 던져 피라니아를 낚아올렸다. 피라니아는 도미처럼 생겼는데 면도날 같은 무시무시한 이빨이 있다. 원주민은 그 이빨로 면도를 한다. 안내인이 피라니아의 아가리에 손가락만한 나뭇가지를 넣자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이런 놈을 조심하십시오. 그러나 맛이 있는 물고기입니다.’
피라니아는 낚시대를 넣자마자 물었다. 피라니아고기를 잇감으로도 낚아올렸다. 한 시간도 못 되어 수십 마리를 잡았다. 안내인들은 관광객들이 잡은 피라니아를 양념을 발라 꼬치에 구워 관광객들에게 시식시켰다. 정말 맛이 있다. 아마존의 식인어를 우리가 먹었다고 즐거워했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손도 대지 않던 부인들도 맛을 보고는 자꾸 먹었다. 그러나 돌아올 무렵 사고가 생겼다. 배의 엔진이 고장났다.
‘여보게, 이를 어쩌나?’
‘큰일났어. 마을이 멀어서 구조요청도 할 수 없고.’
‘그렇다면 여기서 밤을 샐 수밖에.’
‘안 돼. 밤이 되면 악어들이 몰려올거야.’
‘그럼, 저 숲에서 야영을 할까?’
‘그것도 안 돼. 재규어가 돌아다녀.’
물에서는 악어, 숲에는 재규어가 돌아다닌다는 말에 관광객들은 불안해졌다. 관광객이 짐을 풀어 총을 끄집어냈으나 어둠속에서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그러자 안내인 한 사람이 옷을 벗었다. 물속에 들어가 엔진을 고쳐보겠다고 했다.
‘자네, 미쳤나? 피라니아가 우굴거리는 물속에 어떻게 들어간다는 거야?’
‘그래도 어쩌나. 손님들을 안전하게 모셔야지.’
안내인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 수초를 한 줌 쥐고 올라왔다.
‘됐어. 수초가 엔진에 걸려있었어. 시동을 걸어봐!’
시동이 힘차게 걸렸다. 관광객들이 손뼉을 쳤다. 용감한 안내인에게 특별 팁을 모아주었다. 그러나 팁을 주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부부인 것 같은 초로初老의 남녀였는데 그들은 그저 웃고있었다. 안내인이 팁을 주지 않은 그들에게 갔다. 팁을 내도록 만들 생각이었는데 가까이에서 남자를 보더니 펄쩍! 뛰어올랐다.
‘아, 당신은 가르토 나리가 아니십니까?’
그 노신사는 야생동물 수집가 가르토고 여인은 그의 애인 마드리드양이다. 가르토는 브라질 태생의 영국인인데 20여 년 동안 아마존을 돌아다니며 야생동물을 잡아 세계 각국의 동물원에 공급했다. 안내인이 당황했다. 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벌인 사기극詐欺劇이 발각될 것이다. 그들이 신선한 돼지피라고 뿌린 건 염색색소다. 그런 가짜를 뿌리지 않아도 막대기로 수면을 치면 피라니아는 몰려온다. 강에 거대한 메기가 있다는 말도, 강가에 악어가 숨어있고, 숲속에 재규어가 돌아다닌다는 말도, 엔진이 고장났다는 것도 다 관광객들의 흥미를 돋우고 팁을 받아내기 위해 꾸민 쇼다. 그러나 가르토는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런던의 도시생활에 지쳐 아마존으로 돌아왔다. 아마존의 추억을 더듬어보고 아마존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광객들의 틈에 끼어들었다.
아마존은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만고의 신비 속에 잠들어있었던 아마존이 변하고 있다. 목숨을 걸고 아마존의 신비를 탐험하는 탐험대는 사라지고 대신 수없이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관광객을 상대하는 관광회사와 회사에 고용된 안내인들이 돈벌이를 하고 있다.
원주민도 달라져간다. 옛날에는 발가벗고 살았는데 옷을 입었으며,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었다.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틴도 많았다. 도시나 항구에는 혼혈인들이 인디오보다 더 많았다. 강변의 원주민마을에도 혼혈인들이 많았다. 며칠 동안 관광객들과 돌아다녔던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이키토스항港 인근에서 가지를 친 아마존지류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옛 친구 오하마를 만났다. 오하마는 머리칼이 백발이 되었고 허리도 굽었다. 가르토를 보자 반가워서 눈물을 흘렸다.
‘녜, 달라졌습니다. 많이 변했지요.’
마을 앞 산림도 사라져버렸다. 백인들이 나무를 모두 잘라버렸다. 옛날에는 그 산림에 재규어가 살고 퓨마도 돌아다녔다. 가르토는 그 숲에서 오하마하고 재규어사냥을 했었다. 오하마는 근근히 사냥을 하며 다섯 식구가 살고있었다.
가르토는 아무 연락없이 오하마를 찾아갔었으나 그 소식이 전해져 인근마을에서까지 사냥꾼들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옛날 가르토와 함께 사냥을 했었던, 이제는 늙어버린 사냥꾼들이다. 그래서 그날밤 환영잔치가 벌어졌는데 잔치가 한창이었던 밤중에 개 짖는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개들과 같이 잔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잔치에 쓰려고 페카리(아마존 야생 맷돼지)를 한 마리 잡아왔는데 오하마영감이 친구인 이웃마을 추장에게 핀찬을 놓았다.
‘이까짓 페카리 한 마리 잡는다고 반나절이나 걸렸나?’
그러나 그건 사냥꾼들의 사냥솜씨가 서툴러서가 아니라 옛날에는 우굴거렸던 페카리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수백 마리의 페카리군단이 먼지를 일으키며 밀림을 질주했는데 최근에는 아예 페카리군단이 사라져버렸다. 옛날에는 페카리군단이 날려올리는 먼지를 보거나 요란한 발굽소리를 듣고 사냥을 했는데 요즘에는 겨우 많아야 열 마리 정도 무리 밖에 없어서 개를 풀어 페카리를 쫓았다. 본래 아마존 사냥꾼들은 개를 사육하지 않았다. 무더운 아프리카에서 개는 적응하지 못 한다. 개는 더위에 약하고 밀림에서는 활약을 하지 못 한다. 가르토는 사냥꾼들과 함께 온 개들을 보고 기가막혔다. 개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잡견이며 제멋대로 생긴 개들이었는데 성한 놈은 한 마리도 없다. 모두 피부병을 앓고 있으며 전신의 털이 빠지고, 피나 고름이 흘러나왔다. 눈이 찌그러진 놈, 귀나 꼬리가 잘린 놈도 있다. 개들이 몸을 흔들면 이와 벼룩이 뚝뚝! 떨어졌다. 수의사인 마드리드가 뼈와 가죽만 남은 개들이 모두 피부병을 앓고 있고,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냥을 지휘한 이웃마을 추장이 그날 사냥에서 개가 두 마리 죽었다고 했다. 원주민 사냥꾼은 개의 투쟁심만 독려하므로 페카리에게 달려들다가 그 어금니에 찢겨죽었다. 죽은 개들을 다른 개들이 먹어치운다.
가르토는 아마존 원주민들이 마을에서 수십 마리의 더러운 개들이 돌아다니는 면서 시끄럽게 짖고있는 걸 보았는데 좋지 못 한 변화다. 아마존은 개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사냥꾼이 잡아온 페카리고기는 맛있었다. 가르토가 좋아하는 페조와다요리다. 페카리의 귀, 꼬리, 발목을 검은 콩, 야생감자와 함께 삶은 요리인데 그 구수한 맛은 옛날과 다름없었다.
가르토는 다음날 오하마영감과 같이 이웃마을에 갔다. 돈벌이를 하러 외지에 나갔던 영감의 아들이 돌아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착장 인근에 있는 벌판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옛날 원주민의 잔치가 아니다.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했는데 그곳에 도착한 가르토는 크게 놀랐다.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고 구두를 신고 색안경을 낀 가포구로(원주님과 백인 또는 흑인의 혼혈아)들과 원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있다. 순수한 흑인도 있고 황색인도 끼어있다.
브라질은 원래 혼혈의 나라로 알려졌으며 유럽에서 온 백인들과 원주민들 그리고 노예로 온 아프리카 흑인들이 함께 살고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가포구로들이 많다. 그래서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흑인아이가 태어나기도 한다.
그 잔치판에는 그런 인종들이 모여있었다. 아마존의 오지奧地에도 혼혈의 물결이 밀려들어온 것인가. 그들은 행상行商이다. 마나우스나 이키토스에서 기다란 목조선에 갖가지 생필품을 싣고온 가포구로들이 요란스런 장터를 벌여놓았으며 인근에 사는 원주민들도 생필품과 교환할 물건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아마존의 신풍경이다. 오하마영감의 아들도 거기에 끼어있었는데 그도 티셔츠를 입고 색안경을 끼고 있었으나 어딘지 좀 어색하고 쓸쓸해보였다. 밀림을 쫓아다니던 아마존 원주민은 가포구로와 잘 어울리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원주민여인들이 화려한 옷과 번쩍이는 장신구를 탐내고 있었으나 모두 가짜나 조악粗惡한 것들이다. 마나우스의 뒷골목에서 얼렁뚱땅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나 그래도 잘 팔린다. 원주민들이 가지고나온 물건도 옛날과 다르다. 옛날에는 짐승의 모피, 말린고기, 담배, 고무원료 등이었으나 이제는 살아있는 새, 원숭이들이 많다. 아름다운 잉꼬종류의 새와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원숭이들이 마나우스에 온 관광객들에게 팔린다. 원주민들도 집집마다 새나 원숭이를 애완용으로 길렀으며 아이들이 잉꼬나 원숭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놀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과자나 장난감과 교환한다. 효자인 오하마영감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담배와 술을 선물했는데 그 선물은 한 달 동안 막일을 해야 살 수 있다.
마드리드양이 원숭이를 모두 사들였다. 몸무게가 겨우 300g 밖에 안 되는 쥐만한 원숭이들인데 까만 눈동자가 반짜이는 귀여운 놈들이다. 아마존밀림의 보석이며, 마드리드양은 그 보석들을 밀림에 돌려주었다.
가르토가 다음날 인근 마을을 돌아봤는데 마을사람들이 어쩐지 불안스러운 표정이다. 강의 선착장에 페루 경비정이 정박해 있고 서너 명의 백인들이 열 명 쯤 되는 경찰관과 같이 돌아다녔다. 경찰은 무장을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느 놈이야? 어느 놈이 어업회사의 그물을 찢었어! 자수하지 않으면 찾아내서 엄벌할거다.’
경찰이 마을의 추장과 장로를 모아놓고 고함을 쳤다. 사흘 전 페루정부의 허가를 받고 있는 어업회사 어선이 그물을 쳐놓았는데 밤중에 누군가가 그물을 찢어놓았다. 아마존의 지류支流에 근대적인 장비를 갖춘 큰 어선이 조업을 하고있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원주민어부가 그물을 찢었다는 건 큰 문제다.
‘우리는 누가 그랬는지 모른다.’
‘조사를 할테면 해봐라. 그러나 그전에 아마존지류에 큰 어선을 타고와 고기를 마구 잡아가는 어선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 한다.’
추장과 장로들이 그렇게 항변했으나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본디 아마존 원주민들은 외부세력과 다투기 싫어하는 부족이다. 수백 년 동안 백인들의 압박과 박해를 받아온 사람들이다. 원주민들은 특히 제복을 입고 총을 들고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경찰관들은 가르토와 마드리드양이 원주민들의 뒤에 있는 걸 보고 멈칫했다. 그 백인은 원주민과 친한 사이인 것 같았으며 원주민말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선의 선장으로 보이는 백인이 경찰과 의논을 하더니 추장에게 내일 다시 올테니 그때까지 범인을 잡아놓으라고 협박을 한 뒤 돌아갔다. 아무래도 가르토일행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그날밤 추장과 장로들이 다시 모여 상의를 했다. 그때 늙은 어부 오하마영감과 그의 친구인 옛 어부들이 나섰다. 오하마영감이 고함을 쳤다.
‘누가 아마존을 파괴하려고 하는가. 아마존은 우리의 강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강이다.’
또 다른 고함소리가 울렸다.
‘그놈들은 고기만 잡아가는 게 아니라 한 달 전에 해우를 다섯 마리나 잡아갔고 돌고래들에게도 총질을 했다.’
아마존의 어부들은 고깃덩이가 되어 어선에 실려가는 해우를 봤고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 돌고래들도 봤다. 그 동물은 아마존 원주민들의 오랜 친구들이다.
페루당국의 허가를 받은 어선이 쳤다는 그물은 길이가 200m,폭이 100m나 되는 저인망그물이다. 아마존지류의 강폭이 200m였으므로 어망을 치면 고기들은 한 마리도 달아날 수 없다. 강바닥에 사는 가오리와 메기들도 빠져나가지 못 한다. 분격한 원주민들이 다음날 아침 페루 경비정이 정박한 선착장으로 몰려갔다. 원주민들이 100명을 넘었다. 시위대는 강에도 있었다. 통나무배를 탄 수십 명의 어부들이 고함을 질렀다.
‘어선회사는 물러가라! 경찰도 물러가라!’
경찰들이 강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선원들까지 모두 서른 명이 넘었다. 경찰이 확성기로 서너 번 경고를 하더니 발포했다. 위협발사였으나 탄환이 시위대의 앞머리에 서있는 가르토에게 날아왔다. 맞아도 별 수 없다는 식의 사격이다. 그 총탄이 머리를 스쳐가자 가르토가 분격했다. 짐꾸러미에서 총을 끄집어냈다. 가르토가 발포했다. 가르토는 브라질과 영국에서 잘 알려진 명사수다. 총을 쏘고있던 경찰 셋이 팔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총을 쏘는 사수가 일부러 총을 든 팔을 겨냥한 증거다. 사수가 마음만 먹으면 총탄은 머리나 심장을 꽤뚫을 것이다.
‘사격 중지!’
경찰이 사격을 중지했을 때 쾌속정을 타고 페루정부의 고위관리가 뛰어들었다. 페루정부의 관리는 원주민들의 편을 들고있는 사람이 유명한 야생동물수집가라는 것과 함께 있는 여인이 영국의 야생동물보호단체의 회원이라는 것도 알았다. 둘 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다. 급히 달려온 어업국장이 타협을 시도했다. 이번만은 그물을 찢은 자를 불문에 붙일테니 마을추장이 서약을 하라고 했다. 제안을 받은 추장이 가르토와 의논을 하더니 그런 서약은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서약을 해야 할 사람은 어선의 선장이며 앞으로 다시는 어선으로 아마존강에 들어와 고기를 잡거나 해우를 죽이지 않겠다고 서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어선이 한 짓은 페루정부도 금지하고 있었다. 아마존강의 어족자원의 보존을 위해 저인망은 사용하지 못 하게 되어 있는데 부패한 관리들이 단속을 하지 않았다. 어업국장도 부패한 관리인지 모른다. 그는 당황했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아마존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주민, 어부, 사냥꾼, 신문기자, 학자들도 만났는데 아마존의 신비가 벗겨지고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거짓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아마존의 괴어怪魚 피라루크에 관한 이야기가 달라졌다. 피라루크는 세계 최대의 담수어淡水魚이며 몸길이가 6m가 넘는다고 알려져있다. 피라루크가 통나무배를 타고있는 원주민어부외 배를 통째로 삼켰다든가 목욕을 하는 소를 삼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에 조사한 바로는 6m나 되는 피라루크는 없으며 최대가 4m 30Cm이다. 소를 삼켰다는 말은 송아지를 삼켰다고 정정해야 한다.
피라루크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말도 신빙성이 없으며 피라루크의 배에서 나온 사람의 시체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피라루크가 먹은 것이라고 판다했다. 피라루크가 세계 최대의 담수어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몇 년 전에 잡힌 메기는 5m나 되었다. 따라서 피라루크는 유린(비늘)담수어 중에서 가장 크다고 정정해야 한다. 아마존의 메기에 대한 이야기도 변했다. 몸길이 10m의 메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메기가 4m 돌고래를 한 입에 삼켰다는 것도 과장이다. 아마존의 돌고래는 매우 빠른 동물이며 메기한테 잡혀먹힐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메기가 빠른 돌고래에게 부딪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도망갔다는 게 사실이다. 아마존의 메기가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어라는 보장도 없다. 러시아와 만주의 국경지대를 흐르는 흑룡강에도 거대한 메기가 살고있다는 정보가 있고, 유럽의 어느 강에는 5m가 넘는 메기가 살고있다는 정보도 있다. 일본 북해도의 강에는 이도우라는 잉어과 물고가 사는데 낚시나 그물로는 잡을 수 없고 총을 쏘아 잡는다.
아마존동물의 상징인 아나콘다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아나콘다는 수신水神이 내린‘아마존의 지킴이’이며 아마존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마물魔物로 알려지고 있다. 아나콘다가 지나가면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 배가 전복된다고 알려졌다. 그런 신화神話가 아니어도 아나콘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뱀이며 몸길이가 12m나 되는 괴물이고 소를 통째로 삼키고 몸길이 6m나 되는 악어도 삼켜버린다. 아나콘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먹이로 알고 국수처럼 후루룩 삼켜버린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가르토가 조사한 바 몸길이 12m의 아나콘다는 없다. 껍질은 발견되었으나 껍질은 상황에 따라 늘어난다. 지금까지 발견된 최대의 아나콘다는 아마존지류 지프라강에서 시체로 발견된 9m 짜리다. 동남아에서는 그물무늬 비단뱀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아나콘다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뱀이라 해야 옳다. 아나콘다가 몸무게 150Kg 쯤 되는 영양을 삼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나콘다는 영양의 뿔이 배 밖으로 삐져나와 죽었다. 아나콘다가 악어를 잡아먹는 건 사실이나 아나콘다가 먹는 악어는 몸길이 3m가 넘지 않는 케이만이다. 가르토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아나콘다는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 감히 사람에게 덤비지 못 한다. 아마존 원주민은 과장하는 버릇이 있다. 허풍虛風이다. 피라루크나 메기, 아나콘다의 전설이 다 그렇다.
가르토가 아마존상류 지류를 돌아보고 본류인 이키토스에 돌아왔을 때 브라질정부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존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브라질정부는 그 무렵 거대한 아마존 근대화계획을 세우고 아마존 횡당도로 등 큰 도로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관리가 현장으로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아마존은 오직 강과 밀리만 있는 신비의 땅이었는데 그 밀림을 뚫고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마존본류 산타램 인근에서 갈라진 지류 판카파조강유역인데 현지에 가보니 완성되었다던 도로가 텅 비어있다. 오고가는 차도 없고 사람들도 없다. 관리가 당황했다. 아마존의 강과 밀림은 신설도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로를 새로 만들어도 범람한 강물이 쏟아져들어오면 도로는 다시 밀림이 된다. 나무들과 잡초로 덮힌다. 나무와 풀을 쳐내도 아마존은 왕성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신설도로에 저항하는 것은 강과 밀림뿐만 아니다. 아마존의 주민 또한 완강하게 저항했으며 피가 뿌려졌다.
가르토일행을 태운 군용지프가 침수된 도로에서 멈추고 있을 때 밀림에서 한 무리 원주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활과 창, 그리고 총을 가진 사람도 있다. 모두 열 서너 명 쯤인데 살기가 있다. 브라질관리와 부하 세 명이 총을 들어올렸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다. 다가오던 원주민들이 고함을 질렀다.
‘가르토, 가르토나리가 아닙니까?’
옛 사냥친구들이다. 가르토와 함께 재규어 등 아마존동물을 사로잡았던 늙은 사냥꾼들이었다. 가르토가 그들과 포옹을 했다. 브라질관리들은 돌려보냈다. 아마존을 안내할 사람은 관리가 아니라 사냥꾼들이다.
‘포르카는 어디 있지?’
‘그는 죽었어요.’
‘키코는 어디 있어? 삼판은 어디 있나?’
‘그들도 죽었어요.’
‘왜 죽었나?’
‘여기서 죽었어요. 도로를 만드는 군대와 싸우다 죽었어요.’
백인들과 그들의 피가 섞여있는 잡다한 혼혈정부로 구성된 브라질정부는 너무 성급했다. 그들은 아마존이 어딴 곳인지도 모르면서 거창한 계발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아마존을 잘 아는 원주민을 무시하고 군대와 건설대를 아마존에 파견했다.
아마존에 파견된 군대와 건설대는 현지주민들에게 보상도 없이 총부리를 들이대고 쫓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임금도 주지 않고 원주민들을 동원해 일을 시켰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모두 밀림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러자 건설대는 그들의 힘만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500명 쯤 되었던 건설대가 거의 전멸했다. 적과 싸워서 죽은 게 아니다. 그들은 아마존정글이 어떤 곳이지 모르고 산도山刀를 휘두르면 정글 안으로 들어갔는데 정글에는 무서운 적敵들이 있었다. 모기, 등애, 진드기, 쇠파리들이 밤낮없이 덮쳐들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었다.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산림거머리들이 툭툭! 떨어져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피를 빨아먹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모기인데 구름같이 몰려든 모기떼가 폭격기 같은 폭음을 내면서 건설대를 무차별공격했으며 모기에게 당한 사람은 불과 몇 시간만에 얼굴이 부어올라 누구인지 구별하지도 못 한다. 산림진드기도 무서운 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진드기들이 부드러운 속살에 붙어 피를 빨아먹었는데 진드기에 당한 건설대는 중증 문둥병환자처럼 전신에서 피고름이 흘렀다. 개미, 거미, 전갈들도 우굴거렸는데 모두 독을 가지고 있다. 정글에 들어간 건설대는 대부분 쓰러져 일어나지 못 했고 간신히 살아나온 사람도 병신이 되었다. 그러나 브라질정부는 아마존 근대화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1,000을 증파했다. 건설대는 숲을 불태우고 나무를 잘라내며 정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활을 쏘았다. 화살이 공중으로 높이 치솟은 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빗발치는 화살에 많은 건설대가 죽는데도 건설대는 원주민을 보지도 못 했다. 판타파조강유역에서만도 1,000여 명이 희생되었다. 브라질정부는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정규군대를 파견했다. 1개 사단 2,000명이 넘는 병력이다. 아마존의 산림은 피로 물들었다. 시신을 노리고 독수리와 야수野獸들이 몰려들었다.
아마존의 도로는 건설되었으나 아마존 근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나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마존지역은 웬만한 나라보다 더 광대하고 도로는 조잡하다. 수리를 해도해도 망가졌다. 다리는 비가 한 번 내리면 쓸려나가버렸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비가 오면 수로가 바뀐다. 작은 강들은 물길이 바뀌어버린다. 예전의 강이 사라지고 새로운 강이 생긴다. 그래서 도로가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버린다.
‘아마존의 횡단도로에 들어간 차들은 폐차나 고물이 된다.’
원주민들이 비웃었다. 아마존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걔발하겠다고 도로를 건설한 브라질정부의 근대화계획은 실패했다. 그래서 브라질정부는 아마존을 교통수단으로 삼기로 했다. 아마존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그 강에 수십 개의 지류가 흐른다. 지류는 수 만 개의 세류를 만들어 아마존 전체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다. 강을 개발하기로 했으나 이 또한 어려운 일이다. 아마존에는 다리가 없고 제방堤防도 없다. 다리와 제방을 만들어도 폭우가 내리면 무서운 탁류가 삼켜버린다. 아마존은 아마존으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수심水神만 다스릴 수 있는 강이다. 브라질정부는 벨렘, 산타렘, 마나우스, 키토스 등 도시주변에만 콘크리트제방을 쌓았다. 높이는 이집트의 피라미트와 같고 제방은 중국의 만리장성 같았다. 제방은 바닥의 폭이 5m나 되고 높이는 피라미트형 방파제인데 높이가 10m다.
가르토와 마드리드양은 그 방파제에서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 수 백 명의 남녀노소가 맨손으로 고기를 잡았다. 폭우가 내려 강물이 방파제를 넘어들어와서 고기들이 땅 위에서 펄떡거렸으며 제방 옆의 어시장에까지 고기들이 저절로 들어왔다. 고기가 넘어들어온 방파제는 보수를 해서 더 높이 올렸다. 세계 담수의 1/ 3이나 되는 수량을 가진 아마존을 브라질정부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웠다. 방파제는 콘크리트로 높였으나 통나무로 만든 선착장은 폭우가 쏟아지면 수위가 올라가기 때문에 하류로 떠내려가버렸다.
아마존 중류에 있는 산타렘의 산착장은 통나무로 만들었으나 꽤 넓고 주변에 어시장魚市場과 건물들이 있다. 관공서, 상점, 식당, 호텔과 아마존 주변에서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주택들이 있었다. 중국인과 일본인주택들도 있다. 선착장에서는 수백 명이나 되는 인부들이 일을 하는데 대부분 백인과 흑인들과 원주민의 피가 섞인 혼혈인이고 원주민도 100여 명이 일을 한다. 원주민은 백이나 혼혈인 밑에서 물건을 운반하거나 청소 등 막일을 한다. 선착장은 붐비고 와글거렸다. 혼혈인들이 웃고 떠드는데 원주민들은 표정이 어둡다. 고된 노동에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아마존유역에 농촌이나 어촌을 개발했으나 백인과 혼혈인들이 힘으로 쫓아내거나 헐값으로 사버렸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밀림으로 들어가 마을을 개발했으나 그 개발지도 백인이나 혼혈인들이 또 헐값으로 매수했다. 원주민은 점점 더 오지奧地로 밀려들어갔다. 그래도 살 수 없어서 마나우스, 산타렘, 이키토스 등 도시로 들어가 막일을 했다. 생활비도 되지 않는 노임을 받고 숙소가 없어 선착장구석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가난했으나 자유롭게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해서 먹고살았던 원주민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가르토가 선착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으로 몰려갔고 환성이 일어났다. 대여섯 척의 어선이 들어왔는데 그 중에 기다란 통나무배 한 척이 있고 늙은 원주민어부가 손을 흔들었다. 통나무배에는 거대한 피라루크가 실려있다. 배가 갈아앉을 정도로 컸으며 3m가 넘을 것 같았다. 피라루크를 잡은 늙은어부는 팔이 하나뿐이다. 어떻게 한 팔로 그 거대한 피라루크를 잡았을까? 그게 아마존의 어부다. 피라루크는 가끔 물 위에 떠올라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데 어부들이 작살을 던져잡는다. 급소를 맞히지 못 하면 고기가 저항을 한다. 강한 꼬리짓에 맞으면 통나무배 따위는 뒤집어지고 사람은 즉사한다.
왼팔어부 우르카는 아마존에서 40여 년이나 고기를 잡았다. 10여 년 전에 악어사냥을 하다가 악어에게 물려 오른팔을 잃었으나 계속 고기를 잡았다. 몸길이가 5m나 되는 메기도 잡았는데 아마존의 어부들은 그를‘아마존 지킴이’라고 불렀다. 오늘도 우르카는 그 피라루크와 두 시간 넘게 싸웠다. 피라루크가 물 위에 떠올랐다가 물속에 들어가면 약 10분 후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때를 기다리는데 문제는 피라르크가 어디로 떠오르느냐다. 우르카는 그걸 잘 간파한다. 피라루크는 크기 때문에 떠오르기 전에 수면에 파문波紋이 생긴다. 눈이 밝은 우르카는 그걸 잘 간파한다. 피라루크가 떠오르는 지점을 간파하고 기다렸다가 작살을 던져잡는다. 급소에 작살을 맞은 피라루크가 도망쳤다. 통나무배를 끌고 하류로 3Km나 도망갔다. 통나무배가 몇 번이나 전복될 위기를 맞았으나 우르카는 끝까지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가르토는 몸짓을 섞어가며 피라루크를 잡은 경위를 이야기하고있는 그 늙은 어부의 굳건한 모습에서 옛 아마존의 모습을 보았다.
‘만세, 만세. 우르카 만세!’
원주민들이 영웅를 환호했다. 오랫만에 원주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피라루크가 선착장으로 올려지자 양복을 입고 색안경을 낀 혼혈인 중매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제각기 고기값을 불렀다. 경매다. 그런데 고기값이 일정한 액수에서 멈췄다. 수상하다. 가르토는 중매인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걸 보았다. 늙은어부는 불안한 표정이었으나 어쩔 수 없다. 찌는듯한 더위에 고기가 금방 상하기 때문에 헐값으로라도 팔아야 한다. 가르토가 나섰다. 늙은어부외 원주민말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고기값을 불렀다. 늙은어부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가르토는 경매로 산 피라루크를 원주민을 시켜 인근 호텔로 옮겼다.
스페인계의 호텔주인은 가르토가 구입한 값에 웃돈을 붙여 피라루크를 구입했다. 피라루크는 귀하고 맛있는 고급고기다. 예전에는 흔했으나 요즘에는 보기 어렵다. 살이 연하고 담백해서 백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가르토가 거래를 끝냈을 때 혼혈인들이 몰려왔다. 선착장에서 물고기 중개업을 하는 장사꾼들이다. 가르토가 피라루크를 가로챘다고 분격했다. 영업방해라고 주장했다. 손을 내젓고 침을 튀기며 시위를 했으나 호텔주인이 가르토의 신분을 밝히자 태도가 돌변했다. 호텔주인이 가르토가 브라질계 스페인인이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진귀한 동물을 사로잡아 동물원에 공급하는 사냥꾼이라고 소개했는데 그게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브라질의 유명한 사냥꾼이라고? 그렇다면 그대로 돌아갈 수 없지.’
누군가 제의하자 모두 찬성했다.
‘그렇지. 함께 한 잔 해야지. 파티를 열자!’
그게 브라질 혼혈인들의 기지다. 즉흥적이고 낙천적이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가르토와 마드리드양은 혼혈인들과 술을 마셨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가르토는 큰소리로 떠들면서 웃고있는 혼혈인의 모습에서 새로운 아마존을 보았다.
옛날 아마존에는 백인과 원주민만 있었다. 백인 60%, 원주민과 아프리카 흑인 30%, 나머지가 혼혈인들이었는데 이제는 혼혈인들이 불어나 50% 가까이 된다. 거기에 중국인, 일본인들 황색인종까지 피가 섞이고 있다. 아마존은 혼혈의 나라다. 그날밤 가르토와 마드리드는 친구가 된 혼혈인들이 돌아가자 호텔의 테라스에서 아마존의 탁류를 바라보았다. 도도히 흐르는 아마존은 변하지 않았으나 주변은 변했다. 예전에는 호텔이라는 게 없고 파리나 모기가 날아다니는 더러운 숙소뿐이었으므로 가르토는 천막을 치고 잤는데 이제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욕탕과 깨끗한 화장실이있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바에는 젊고 날씬하고 아름다운 흑인여인들이 몸을 흔들고 있다. 원주민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도 혼혈이 되어가고 있고 새로운 아마존의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호텔의 저쪽 밀림에는 울창한 밀림이 보였고 그 밀림에 소수의 원주민이 살고있으나 그들이 언제까지 아마존의 전통을 지킬 수 있을까?
149. 경찰견 카크와 마약사범(16편)
보험회사 조사원 레이너는 미국 서북부 포크랜드 북쪽에 있는 레이니어산 산림에서 토끼사냥을 하고있었다. 많은 종류의 사냥감이 있는 산림이었으나 아마추어 사냥꾼 레이너는 산탄총 한 자루만 달랑들고 가벼운 사냥을 할 생각이다. 최근에 직장을 잃었고, 여자친구로부터 버림을 받는 등 주변에 좋지 않은 일들이 생겨 우울했기 때문에 산림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늦가을이었으므로 천막을 칠 필요가 없고 별을 보면서 벌레노래를 듣기로 했다. 그런데 날이 어두어지고 있을 무렵 서너 마리의 코요테를 발견했다. 눈빛이 심상치 않았고 나즈막하게 으르렁거렸다. 코요테는 여우보다 덩치가 조금 큰 소형 개과였으나 결코 만만하게 볼 살육자가 아니다. 1960년 당시 코요테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힘도 센 이리들은 수가 급격히 줄어 멸종 위기에 있었으나 코요테는 건재했다. 코요테는 무리를 지어 사냥했고, 식성도 좋아 들쥐 등 설치류나 도마뱀 등 파충류를 잡아먹고, 전갈 등 곤충이나 가재, 물고기도 먹는다. 배가 고프면 선인장열매나 나무뿌리도 먹을 수 있다. 코요테는 퓨마, 회색곰, 이리들과 함께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으며, 붉은사슴 무스(주걱뿔사슴)도 사냥한다. 한 배에 평균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아 번식력도 좋기 때문에 다른 짐승들의 위협이 된다. 그때 코요테가 사냥을 하고있었는데 그게 좀 이상하다. 대여섯 마리의 코요테가 개 한 마리를 포위하고 있다. 이런 산중에 웬 개가 있을까? 더구나 그 개는 사냥개가 아닌 도베르만인데 그 모습이 예사럽지 않다. 그 개는 대가리가 터져 큰 혹이 생겼고, 피고름이 붙어있으며, 어깨에도 상처가 있다. 그래서 코요테가 피냄새를 맡고 몰려와 개를 잡아먹으려고 했다. 코요테들이 개의 주변을 빙빙 돌면서 기회를 잡아 덤벼들려고 했으나 쉬운 사냥이 아니다. 비록 상처를 입고 있으나 도베르만은 사납기로 이름난 대형 경비견警備犬이다. 어깨높이가 70Cm나 되고 근육형의 날렵한 몸매다. 도베르만은 침입자에게는 주저없이 덤벼들어 물어뜯는 개이며 죽이기도 한다. 도둑놈들뿐만 아니라 우체부도 도베르만이 있는 집은 꺼렸다. 그 개는 귀와 꼬리가 짧게 잘랐고 목에 명찰名札을 두 개 달고 있다. 하나는 주州정부가 발행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명문名門 애견단체 켄넬클럽에서 밸행한 것이다.
그 명찰은 그 개가 순종이며 잘 훈련된 개라는 말인데 왜 그런 개가 상처를 입었으며 오랫동안 굶은 듯 아랫배가 홀쭉하고 쇠약한 것인가? 개 주위를 빙빙 돌던 코요테 한 마리가 덤벼들었다. 코요테가 개의 앞발을 물고늘어지려고 했으나 도베르만이 더 빨랐다. 상처를 입고 굶주렸지만 역시 도베르만이다. 도베르만이 정확하게 코요테의 목덜미를 물었다. 도베르만은 기다란 아가리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코요테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목덜미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자 피를 본 코요테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개에게 덤벼들었다. 그대로 보고있을 수만은 없다. 가축인 개와 야생 코요테가 싸우면 사람은 개를 편들게 되어있다. 레이너가 싸움판에 끼어들어 팔로 코요테를 후려치고 총대로 내리쳤다. 코요테는 사람에게는 덤벼들지 못 했다. 멀리 도망가버렸다. 그런데 코요테뿐만 아니라 도베르만도 도망가버렸다. 개는 20m 즘 도망가더니 뒤돌아서서 보고 있다. 경계를 하고 적의敵意도 있다. 영리한 개가 사람이 자기편을 들어 코요테를 쫓아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왜 경계를 풀지 않는 것일까? 상처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상처는 분명히 사람으로 인한 상처다. 누군가 몽둥이로 후려친 것이다. 그래서 개는 사람을 경계하고 적의를 풀지 않았다. 레이너는 개를 잘 안다. 보험회사 조사원이라서 경비견을 다룬 일도 있었다. 레이너가 개를 내버려두고 모닥불을 피웠다. 잡은 토끼를 꼬치에 끼워 구웠다. 토끼가 다갈색으로 구워지자 한쪽 다리를 먹었다. 그리고 다른쪽 다리를 보지도 않고 개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한참 후 무심한 척 곁눈질로 개를 보았다. 토끼고기는 사라졌으나 개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레이너가 웃었다.
‘토끼다리 하나로는 배가 차지 않겠지.’
레이너는 또 한 마리의 토끼 뒷다리는 자기가 먹고 나머지는 개에게 던졌다. 이번에는 더 가깝게 던지고 개를 살폈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토끼고기를 먹었다. 몹시 배가 고픈 것 같았으며 씹지도 않고 삼켰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생각이 없었으므로 가지고있었던 빵을 개에게 던져주고 관심 없다는 듯 모닥불 옆에 누웠다.
레이너는 많은 종류의 개를 사육했고 개를 사랑했다. 개는 2만 년 전부터 사람과 함께 살았으며 이 세상 동물들 중에서 가장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다. 개는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기 때문에 사람과 의사소통이 된다. 몸짓으로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한다. 레이너는 그 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 개는 사람에게 학대를 받았다. 몽둥이로 때려중상을 입히고 버렸다. 그래서 그 개는 사람을 증오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개는 지능지수가 높다. 인간을 구별한다. 자기에게 해로운 사람과 이로운 사람이 있다는 걸 구분한다. 레이너는 고요테를 쫓음으로써 개편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리하게 접근하지 않고 무관심한 척 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와 증오가 되살아나는 걸 예방해야 한다. 적이 되든 한편이 되든 개 너의 선택이라고 믿게 한다. 그래서 개는 경계심을 풀고 사람의 행동을 살피고 있다. 다음에 레이너는 개에게 먹이를 주었다. 먹이는 개와 사람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개물媒介物이다. 개를 길들일 때도 먹이를 이용한다. 그래놓고도 무관심을 가장假裝했다. 여전히 선택권은 개에게 주었다. 레이너는 개의 심리도 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좀 춥기는 했으나 모닥불 옆이라 견딜만 했고 모기도 파리도 없다.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잡이 깼다. 개는 어디 있을까? 감동적이다. 도베르만은 레이너 옆에 앞발을 세우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주인을 보호하는 태도다. 만난지 반나절도 안 되었는데 도베르만은 레이너를 주인으로 대접하고 있다. 개가 가만히 잠에서 깬 레이너를 보고 있었으나 레이너는 주인행세를 하지 않았다. 개는 심리가 사람 같지 않고 미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개 접근해야 한다.
‘어때, 괜찮아?’
레이너가 그렇게 말하면서 빵에 버터를 발라 한 조각은 자기가 먹고 다른 조각은 개에게 주었다. 도베르만은 직접 레이너의 손에서 빵을 받아먹었다. 도베르만은 쌍판은 험하나 그때는 부드러웠다. 불신감이 풀렸다. 레이너는 자기뿐만 아니라 인건에 대한 불신감이 풀리기를 기대했으나 도베르만을 학대한 인간은 용서할 수 없었다. 레이너는 그 인간을 찾아 처벌하기로 했다.
‘자, 가자!’
레이너가 앞장서고 개가 따라왔다. 목줄을 걸 필요도 없다. 레이너는 그날 오후 포틀랜드 교외의 집에 도착했는데 개가 긴장했다. 낯선 집이라 불안한 것 같았다. 개가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긴장을 풀었다. 집안에는 새 주인인 레이너의 냄새가 났기 때문에 안심했다. 창고에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개집을 꺼냈다. 전에 사육했던 포인터의 집인데 안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깨끗하게 물청소를 하고 레이너가 먼저 개집에 들어가 앉았다. 개도 선뜻 들어왔다. 다음은 목욕이다. 사람과 개가 함께 목욕을 했다. 상처에는 약을 발라주었다. 전 주인이 철봉 같은 쇠막대기로 개를 때렸는데 죽일 생각이었다. 목줄을 묶어놓고 때렸는데 벗어나려는 개의 목에 찰과상이 있었다. 달아나려고 몸부림친 흔적이다. 레이너는 개를 무참하게 학대한 인간을 찾아내 고발하려고 했다. 미국이나 영국의 동물학대죄는 엄중하며 벌금과 체형도 받는다. 다음날 레이너는 그 개에게 명찰을 달아준 켄넬클럽을 찾아갔다. 켄넬클럽은 전 세계적이 조직이며 등록된 개들의 족보族譜가 6대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순종개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품평회와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입상경력도 기록한다.
‘카크말입니까?’
클럽총무는 등록번호만으로 개의 이름을 알고있었다. 카크는 우수견으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카크의 할아비는 지역품평회에서 우승을 했고, 아비는 경찰견이었으며, 어미도 준우승을 했다.
‘카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레이너가 카크를 보호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 총무가 분격했다. 카크는 그 클럽에서 태어나고 3년 동안 사육했는데 3년 전 전 주인에게 비싼 값으로 팔렸다. 고급자동차를 타고왔고 고등학교 교원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런 카크가 그 후 소식이 없어졌다. 개를 구입한 주인은 시경찰당국에 신고하고, 소정의 검사와 예방주사를 맞힌 다음 새로운 명찰을 받게 되어있었는데 카크의 주인은 그 절차를 밟지 않았다. 절차를 밟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데 카크의 주인은 벌금도 부과되지 않았다. 주소지가 없었다. 레이너는 포틀랜드시의 동물과로 갔다. 개의 등록을 관리하는 부서다. 전염병 예방주사도 놓아주고, 병도 치료해주고, 주인없는 개들을 잡아서 주인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개의 사고도 처리한다. 개를 학대하는 사람을 찾아 검찰당국에 고발을 한다. 동물과직원은 준사법관의 권한을 갖는다. 법원의 영장을 받아 가택수색도 하고 범법자를 검거한다. 필요하면 무기도 사용한다. 미국이나 영국의 동물학대단속은 엄중했으며
'내 개를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간섭이냐?'
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감옥에 간다. 동물과의 주임은 에리라는 미혼未婚 여성인데 잔인한 주인을 검거하겠다고 했다.
‘그 개는 등록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조사하겠습니다.’
미스 에리가 서류를 모두 뒤졌다.
미스 에리는 실종신고된 개나 사고를 일으킨 개들의 명단을 조사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대가 있다. 레이너와 미스 에리에게도 그런 감정이 있었다. 에리는 야근夜勤을 하면서 조사를 하고 레이너가 도왔다. 도베르만 카크의 실종신고나 사고신고는 없었다. 개가 실종되었는데 주인은 신고하지 않았다. 도베르만 카크는 우수견으로 켄넬클럽에 등록된 개고 그 값은 고급자동차 한 대 값이다. 소유주가 개가 필요 없으면 그 값으로 팔 수 있는데, 포틀랜드에는 매월 한 번 개의 경매시장이 열리고 경매에 내놓으면 된다. 그런데 카크의 주인은 왜 카크를 죽이려고 했을까?
‘미스 에리. 위스키를 한 잔 마셔도 되겠습니까?’
‘저도 한 잔 마셔도 된다는 조건이라면 그렇게 하지요.’
미스 에리는 똑똑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유머가 있었다. 술이란 좋은 것이다. 그게 들어가면 번개같은 추리력이 생긴다.
‘혹시 … ?’
동시에 미스 에리에게도 어떤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무엇인기 있다. 단순한 동물학대사건이 아니다. 범죄의 냄새가 났다. 미스 에리가 카크의 주인을 조사했다. 켄넬클럽의 총무는 그 사람이 40대 초반이고, 키가 크고, 마른 체격이라고 했다. 개를 받아가면서 쓴 인수증은 모두 거짓이었다. 색안경을 끼었기 때문에 얼굴 모습은 보지 못 했지만 근무하는 학교에 그런 교원은 없고, 주소도 존재하지 않았다. 조사가 벽에 부딪혔으나 에리와 레이너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체국에 갔다. 우체국과 경비견은 관계가 있다. 우체부들은 경비견을 싫어한다. 특히 도베르만은 우체부들에게 기피견忌避犬이다. 간단한 우편물은 현관의 우체통에 넣지만 물건이나 중요한 서류는 직접 전달해야 하는데 개들의 영접을 받는다. 집주인이‘맹견猛犬주의’라는 표시를 해놓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우체부들이 수난을 당한다.
우체부가 방문한 집 개가 경비견이 아니면 별 문제가 없다. 애완견, 사역견使役犬, 사냥개는 우체부에게 덤벼들지 않는다. 몇 번 큰소리로 짖어 주인에게 손님이 왔다는 걸로 임무를 끝낸다. 그러나 경비견은 우체부를 침입자로 간주하고 덤벼들거나 위협한다. 경비견은 주인의 도움없이 스스로 집을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가 세퍼드나 레드리버, 코리 같은 순수 경비견이 아니면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금방 덤벼들 듯이 요란스럽게 짖지만 막상 덤벼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베르만, 불독 같은 순수 경비견은 경고도 별로 하지 않고 덤벼든다. 으르렁거리다가 바로 실력행사를 한다. 불독은 짖지도 않고 덤벼들어 물고늘어지고, 도베르만도 대뜸 공격한다. 불독같이 동작이 다소 굼뜬 개라면 우체부가 도망칠 수 있지만 도베르만이라면 도망도 치지 못 한다. 도베르만은 매우 민첩하다. 그래서 도둑과 우체부는 도베르만을 싫어한다. 우체부는 도베르만이 있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을 수 없어 전달하려다가 물린 사람이 많다. 그래서 우체부는 자기 관내의 경비견 특히 도베르만을 모두 알고 있다.
포틀랜드시 동물과 조사원 에리가 거기에 주목했다. 우체부들에게 탐문하면 도베르만 카크가 살았던 집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매우 복잡한 일이다. 포틀랜드시에는 백 명이 넘는 우체부들이 있다. 나흘이나 탐문을 했으나 헛수고였다. 도베르만을 사육하는 집은 많았으나 행방불명된 집은 없었다. 에리가 그 일을 잠시 중단했다. 시경찰국장으로부터 특별근무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찰국장은 에리에게 마약범을 검거하는데 협조하라는 지시를 했다. 에리가 관할하는 마약견을 모두 동원해서 비행장, 버스터미널, 검문소에서 마약을 지닌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당시 포틀랜드에는 마약이 대량으로 살포되고 있었다. 거리의 불량배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이 마약에 탐닉했다. 중고등학생도 마약에 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범들이 포틀랜드에서 암약暗躍하고 있었다.
미스 에리는 다음날 시에틀에서 포틀랜드로 들어오는 도로검문소에서 레이너와 만나기로 했다. 에리는 경찰관 세 명과 함께 차들을 검문하고 있었는데 늙은 도베르만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다. 그 개는 전에 경찰견이었으나 지금은 은퇴했다. 그러나 마약범 검거에 총력을 기우리는 경찰의 요청에의해 에리가 켄넬클럽에서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늙은개를 데리고왔다.
‘개가 한 마리뿐입니까?’
한 미리가 더 있습니다.‘
레이너가 카크를 데리고왔다. 먼저 도착한 도베르만은 카크의 아비다. 카크는 경찰견은 아니지만 경찰견훈련을 받았다. 아비 밑에서, 마약을 적발하는 일, 마약범을 추적하는 일을 배웠다. 카크의 상처는 다 나았고 원기왕성했다. 카크부자父子는 첫눈에 상대를 알아봤다. 카크가 꼬리를 흔들며 아비에게 인사를 했고 아비도 혀로 새끼를 핥아주었다. 카크부자는 검문소에서 일주일 쯤 근무하기로 하고 레이너도 카크를 돌봐주기로 했다. 에리는 동물과로 돌아갔으나 카크를 학대한 주인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우체부들과 접촉하고 있었다. 우체부들 중 다른 우체국으로 전근을 간 사람과도 연락을 했다. 그런데 전근을 간 우체부가 귀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포틀랜드시 교외의 넓은 집에 도베르만이 있었는데 그 개가 사라졌다는 정보다. 에리가 그 집을 찾아갔으나 비어있었다. 얼마전에 이사를 갔다고 했다. 주인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집주인은 전입신고도 전출신고도 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웠다. 경찰에 소재를 알아달라고 의뢰했다. 그런데 검문소에서 헤어진지 사흘만에 레이너로부터 빨리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카크의 아비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당해 중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에리는 동물용 구급치를 타고 달려갔다. 경찰관이 말했다.
‘그 차에는 두 명의 사내들이 타고있었는데 마약범이 틀림없어요.’
문제의 차는 반트럭이었는데 검문소에 도착하자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개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너가 경찰에게 신호를 했고 경찰들이 그 차에 다가섰다. 그러자 차가 별안간 도망쳤다. 개들이 추적을 했는데 차에 탄 사내들이 총을 쏘았다. 카크 아비가 총에 맞았다. 경찰차도 바퀴가 터졌다. 범인을 놓쳤다. 카크 아비는 일주일 쯤 입원을 해야 한다. 에리와 레이너는 수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위스키를 마시며 상의를 했다. 위스키가 몇 잔 들어가자 레이너의 머리에 영감靈感이 떠올랐다.
‘혹시 … ?’
미스 에리도 같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다음날 그들은 카크를 데리고 포틀랜드 교외의 넓은 집으로 갔다. 대지가 1천 평이나 되고 다른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체부가 도베르만이 있었던 집이라고 알려준 집이다. 집은 비어있고 주인은 행방불명이라는 경찰의 보고다. 미스 에리는 그 집에 들어가기 전 권총을 빼들었다. 카크가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며 들어가지 않으려고 뒤걸음질쳤다. 레이너가 삻어하는 카크를 달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카크는 계속 으르렁거렸다. 창고가 있었는데 카크가 창고 앞에서 맹렬하게 짖었다. 카크가 눈에 불을 켰다. 창고문이 잠겨있어서 에리가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도착하여 창고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깜깜한 창고 안에 개집이 있었고 말뚝이 박혀있다. 굵은 쇠사슬이 감겨있다. 카크가 그걸 보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아무 이상 없잖아요?’
경찰관들이 손전등으로 창고 안을 살피고 그대로 나가려는 걸 에리가 제지했다.
‘잠깐만, 무슨 냄새가 나지 않아요?’
‘냄새?:’
창고구석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극도로 흥분한 카크가 냄새나는 곳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앞발로 땅르 파며너 뒷발로 흙을 긁어냈다.
‘저것 봐요!’
미스 에리가 고함을 질렀다. 땅속에서 괴상한 물체가 들어났다. 사람의 손가락이다. 경찰관들이 괭이로 땅을 깊게 파자 시신이 나왔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이마에 총탄자국이 있고 가슴에도 있었다. 검시를 할 필요도 없다.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지 않아서 신원이 파악되었다. 켄넬클럽에서 카크를 구입한 사람이다. 경찰의 수사팀이 달려와 그 집을 샅샅이 수색했다. 쓰레기통에서 열서너 개의 술병이 나오고 담배꽁초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을 드나든 것 같았다. 그 집 주인은 뭘 하는 사람이며 드나드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무슨 일을 했을까? 수사반원이 그 집의 구석방에서 지하공장을 발견했다. 모르핀을 가공 제조하는 공장인데 최신설비로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공장이다. 경찰이 긴장했다. 그때까지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여 쫓고있었던 마약밀매단을 잡을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국장이 특별수사반을 편성해서 진두지휘陣頭指揮했다. 경찰국장이 미스 에리와 레이너에게 계속 협조해달라고 했다. 그 마약밀매단을 검거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포상금이 걸려있는데 경찰국장은 그 포상금을 레이너에게 주겠다고 했다. 경찰국장실에서 나오며 미스 에리가 레이너에게 제의했다.
‘나는 개를 데리고 와도 좋다는 호텔을 하나 알고있습니다. 그 호텔에는 좋은 위스키가 있습니다.’
‘그 바Bar에 카크를 데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날밤 미스 에리와 레이너는 바에서 30년 산 위스키의 병마개를 땄다. 카크가 두 사람 옆에 앉아있었다. 술잔이 오가면서 에리와 레이너는 어떤 추리推理를 만들어냈다. 문제의 집은 마약밀매단의 본거지고 집주인이 두목이다. 두목은 본거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경비견 도베르만을 구입했다. 도베르만은 무단침입자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사람이란 본래 둘이 모이면 의견이 달라지고 셋이 되면 다툼이 벌어진다. 더구나 도덕심이 없는 범죄자들이 모이면 싸움이 벌어진다. 마약밀매 본거지에 모인 ㅂ범죄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고 그 결과 집주인이 두목을 살해했다고 추리했다. 살인자들은 두목을 살해하여 창고에 묻으려고 했는데 창고에 묶여있었던 카크가 짖어댔다. 경비견은 피를 보면 흥분한다. 살인자들이 철봉으로 카크를 후려쳤고 카크가 필사적으로 반항하여 목줄을 끊고 도망갔다. 살인자들은 대형 경비견을 과소평가過小評價했다. 카크는 사람공포증에 걸려 도망가다가 산림으로 들어갔다. 반죽음의 카크는 코요테를 만나 죽을 뻔 했으나 운좋게 토끼사냥을 하던 레이너에게 구조되었다. 카크는 그렇게 살아났으나 경비견인 카크가 해야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크는 그 아비와 함께 검문소에서 마약단속을 했고, 마약사범들의 본거지를 찾아냈다. 경찰국장이 레이너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포상금은 카크가 받아야 한다. 호텔바에서 고급위스키를 마시고있는 미스 에리와 레이너가 옆을 지키고있는 카크에게 특별히 주문한 두툼한 비프스테이크를 주었다. 미스 에리와 레이너, 카크는 그날밤 호텔침실에서 함께 잤다. 레이너는 자기를 버리고간 여인을 깨끗이 잊어버렸다. 미스 에리가 그 여인보다 아름다웠고, 똑똑하고, 정다웠다. 미스 에리는 다음날 아침 경찰국장이 직접 지휘하는 마약사범 검거 특별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여러 가지 보고서가 나왔고 대책이 제출되었으나 경찰국장은 시무룩했다. 포틀랜드 시에서 최근 한 달 동안에 1천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모르핀주사를 맞다가 적발되었는데 대학생이 300여 명, 고등학생 100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대학당국이나 교육자들이 경찰의 책임을 추궁했다. 사실 경찰의 마약단속은 허술했다. 잡아들인 범범자들은 마약조직의 조무래기들뿐이다. 배후는 들어나지 않았다.
‘본거지에서 발견된 죽은자의 신원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이요? 그를 죽인 범인들이 어떤 자인지도 모르고?’
비행장, 역, 버스터미널, 고소도로 검문소 등에서 실시하는 검문도 별 실적이 없었다. 용의자들은 훔친 차를 타고, 가짜 번호판을 달았다.
마약조직검거가 벽에 부딪혔다.
‘미스 에리,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경찰국장의 말에 미스 에리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전날밤 레이너와 의논해서 작성한 보고서다. 마약단속 훈련을 받은 경찰견을 동원해서 부정기적으로 유흥가나 대학구내를 순시해보자는 의견이다. 그때까지는 비행장, 역, 터미널, 고소도로 검문소에서 정기적으로 검문을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마약사범들이 검문을 미리 알고있었다. 경찰국장이 미스 에리를 단장으로 임명할테니까 책임지고 실시해보라고 했다. 다음날 미스 에리와 레이너가 카크를 데리고 어느 대학을 방문했다. 학교당국의 양해를 얻어 운동장, 도서관, 식당 등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돌아봤다. 학생들은 호기심으로 웃으며 협조했다. 학교 안에 마약을 지니고있는 학생들이 있을 리 없고 있다고 해도 개가 적발해낼 것 같지 않아서 웃었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카크가 운동장 잔디밭에 누워있는 두 명의 학생에게 다가가더니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렸다. 마약이 있다는 신호다. 학생이 도망가려고 했으나 경찰관이 잡아 몸수색을 했다. 안주머니에서 모르핀이 나왔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세 시간 쯤 학교 여기저기를 탐색했던 검색반은 모두 열네 명이나 되는 학생을 검거해서 경찰서로 데리고갔는데 학생들이 교내에서 모르핀을 구입했다고 털어놓았다. 학생들 끼리 주고받고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구입했다. 마치 일용품처럼 쉽게 팔고샀다. 미스 에리의 단속반은 다음날에는 다른 대학을 찾아갔다. 모르핀 중독자가 가장 많은 학교인데 수위실에서 막았다. 경찰은 학교 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미스 에리가 학교장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도 막무가네로 막았다. 그러자 카크가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이 놈의 개 어디서 함부로 짖는거야?’
수위가 화를 내며 곤봉을 휘둘렀으나 카크는 점점 더 요란하게 짖었다. 이상하다. 카크의 눈빛이 다르다. 미스 에리의 명령으로 수의를 체포해서 몸수색을 했다. 수위는 다량의 모르핀을 숨기고 있었다. 모르핀은 수위실창고에서도 발견되었다. 수위실이 모르핀판매소였다.
학생들을 상대로 마약거래를 했던 중심인물은 바로 수위장이었으며 그가 200여 명의 학생들에게 모르핀을 팔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위들의 자백으로 모두 여덟 명으로 구성된 밀매조직이 포틀렌드시 주변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며칠에 한 번씩은 유흥가에서 모인다.
‘나는 그들의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가끔 전화연락을 받고 지정된 술집으로 나가면 모르핀을 줍니다. 철저한 현금주의이며 거래는 거기서 끝납니다. 다음 전화연락이 있을 때까지 그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경찰은 수위들을 풀어주고 밀매조직으로부터 전화를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경찰의 움직임이 새나간 것 같았다. 경찰은 몰래 수위들을 앞세워 유흥가를 돌아다녔다. 수위들이 밀매조직을 얼굴을 알기 때문이다. 미스 에리의 활동도 계속되었다. 미스 에리가 이끄는 사복경찰관들은 카크와 함께 뒷골목에 있는 불량배모임이나 술집을 부정기적으로 순찰했는데 1주일 동안에 서른 명의 모르핀중독자를 적발했고 모르핀을 공급한 판매원들을 검거했다. 경찰은 검거한 판매원을 풀어주고 이용했다. 핵심적이 밀매조직을 검거하는데 협조하면 죄를 불문에 붙인다는 조건이다.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다. 핵심조직원들이 어느날 어디서 모인다는 정보다. 경찰 안에서도 작전을 비밀에 붙이고 장소를 전날부터 감시했다. 술집의 출입문이 보이는 곳에서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을 감시하고 미행했다. 밀매원들이 장소의 안전을 확인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감시하다가 주목할만한 인물을 발견했다. 포틀랜드시 역전에서 큰 약방을 경영하는 약사藥師고 포틀랜드 시의원市議員인 인물이다. 경찰이 동태를 감시했는데 다음날밤 여덟시 쯤 문제의 술집에 나타났다. 밀매원조직이 모이기로 한 날 그 시간이다. 가방을 들었고 술집의 별실로 들어갔다. 무대가 보이는 방이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그 방이 보이지 않았다. 사복경찰관들은 그 방 옆에 붙어있는 또 다른 별실에 열 명 쯤 되는 조직원들이 모여있는 걸 알아냈다.
검거작전이 시작되었다. 경찰국장이 직접 지휘를 하고 100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동원되었다. 경찰국장은 술집이 내려다보이는 2층 지배인실에 있었고 그 옆에 미스 에리, 레이너와 카크가 있었다. 경찰국장이 손을 들었다. 작전개시신호다.
‘우리는 포틀랜드시 경찰이다. 모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반항하면 사살한다!’
민주국가에서는 사전경고를 하는데 밀매단은 경고도 듣지 않고 총을 발사했다. 일순간 술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소리, 고함소리가 울려퍼지고 피가 뿌려지고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뛰었다. 경찰도 응사를 했다. 철모를 쓰고 방탄복을 입은 경찰이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육탄전肉彈戰을 했다.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방안에 있었던 조직원 열 명 중 네 명이 총탄에 쓰러지고 그 중 두 명은 즉사했다. 나머지는 항복했다. 경찰도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그 혼란중에 빠져나가려는 자가 있었다. 또 다른 별실에 있었던 자다. 경찰이 수상쩍다고 한 시의원이다.
‘그 놈을 잡아!’
경찰국징이 빠져나가는 시의원을 발견하고 고함을 지르자 경찰들이 그 자의 앞을 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나는 포틀랜드 시의원이다!’
시의원이 분노했다. 바로 그때였다. 경비견 카크가 목줄을 뿌리치고 쏜살같이 달려나가 시의원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아가리를 벌리고 눈이 번들거렸다. 카크에게 살기가 있었다.
‘저 놈의 개를 말리지 못 해!’
시의원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경찰관이 카크를 껴안았고 레이너가 목줄을 잡았다.
‘몸 수색을 해봐!’
몸수색을 했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무기도 없고 마약도 없다. 가방에서는 여행용 옷가지가 나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 시의원을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
시의원이 경찰국장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항의했다.
시의원의 거친 항의를 받은 경찰국장이 당황했다. 본디 마약사범이란 현장에서 증거를 확보한 다음 체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소가 어렵고 시의원과 같은 권력자들에게는 역공을 당할 염려가 있다. 미스 에리와 레이너가 앞으로 나섰다.
‘여보세요, 시의원님. 우리는 당신을 마약사범으로 검문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을 살인혐의로 검문하고 있습니다.’
‘뭐, 살인혐의라고? 당신들 시의원을 뭘로 보고 그런 주장을 하는거야?’
레이너와 미스 에리에게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경비견이 마약사범을 발견하면 가볍게 으르렁거리며 몇 번 짖기만 한다. 경찰관에게 상대가 마약사범이란 걸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카크 같이 잘 훈련된 경비견이 그렇게 살기등등하게 계속 짖고있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대가 마약사범이 아니라 위험한 폭력범의 경우다. 살인강도나 폭력범인 경우 경비견은 상대가 폭력을 쓸 경우를 대비하여 그런 방법으로 경찰관에게 경고를 한다. 더구나 그때의 카크는 심상치 않았다. 레이너가 잡은 목줄을 놓기만 하면 시의원에게 덤벼들 태세다. 레이너는 카크의 눈을 봤다. 그 눈에는 증오와 적의가 있다. 마치 원수를 만나 복수를 하려는 것 같았다. 레이너와 미스 에리는 카크가 짖는 소리의 뜻을 짐작했다.
‘주인님, 이놈이예요. 이놈을 잡으세요.’
시의원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미친 개를 빨리 치우지 못 해!’
미스 에리는 항의를 무시했다.
‘시의원님, 당신은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가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포하겠습니다.’
‘뭐라고? 나를 체포한다고 …. 무슨 증거가 있어?’
시의원이 펄펄 뛰었는데 부상을 입어 들것에 실려나가는 마약사범이 냉소하듯 지꺼렸다.
‘이봐, 파울. 모든 걸 털어놓지. 아무래도 발각된 것 같아.’
마약범죄자들 사이에 알력이 있는 것 같았다.
‘여보시오, 경찰관아가씨. 그놈을 잡아가시오. 그놈은 마약만 거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였소.’
시의원이 미스 에리를 밀치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목줄을 뿌리친 카크가 발목을 물고늘어졌다. 레이너가 덤벼들어 팔을 비틀었다. 시의원 파울은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는 아무 죄가 없다고 버텼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함께 붙잡혀온 마약범들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시의원 파울은 마약조직의 부두목이었는데 그는 허가된 약품들과 함께 모르핀을 반입하여 조직원들한테 공급했다. 그러나 그는 두목 콜렌과 이익배분다툼으로 사이가 틀어졌다. 그날밤, 마약밀거래의 본거지인 두목의 집에서 심한 싸움이 일어나 파울은 콜렌을 사살했다. 시신을 창고에 묻으려고 했는데 창고에 묶여있었던 카크가 그걸 보고 짖었다. 악인惡人이었지만 콜렌은 카크의 주인이었기에 카크는 피투성이간 되어 죽은 주인의 시신을 보고 파울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그래서 파울이 창고에 있는 쇠파이프로 카크를 후려쳤고 카크는 창고를 탈출했다. 그러나 카크는 자기의 주인을 죽이고 자기를 죽이려했던 원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본디 개의 기억력은 정확하고 오래간다. 개는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이나 자기를 미워하거나 해친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개는 헤어진지 10년이나 되는 옛 주인도 알아보며 해친 사람을 오래토록 잊지 않았다. 개에게는 복수심이 있다. 자기를 해친 사람에게는 반드시 복수한다. 카크는 자기를 때려죽이려 했던 사람을 잊지 않았으며 결국 원수를 갚았다. 그래서 미스 에리와 레이너의 살인범추적은 성공했다. 포틀랜드 경찰국장은 카크를 그 해 최고의 경찰견으로 표창했다. 표창받은 개는 평생 사육연금飼育年金을 받고 지정 동물병원에서 무료치료를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준다. 포틀랜드 켄넬클럽에서도 카크를 최고의 명견名犬으로 인정하여 경력에 올렸다. 경찰국장은 미스 에리를 마약조직검거에 가장 공이 큰 경찰관으로 표창하며 경사에서 경위로 특진시켰다. 레이너에게는 약속대로 10만달러의 현상금을 지불했다. 그날밤, 미스 에리와 레이너는 개를 우대하는 단골호텔에서 만났다. 카크도 함께 있었다.
‘미스 에리, 나는 포틀랜드 교외郊外에 집을 한 채 샀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마당이 넓은 집입니다.’
미스 에리가 위스키잔을 넘겨주며 대꾸했다.
‘얼마나 큰 집이기에 그렇게 자랑해요?’
‘미스 에리와 나의 결혼식을 정원에서 치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잘 꾸며진 잔디정원에 100명 쯤 좌석을 마련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카크도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겠군요.’
그들은 웃으며 건배를 했다. 특별주문한 커다란 비프스테이크를 차지한 카크도 웃는 것 같았다. (사냥꾼이야기 10권 끝, 11권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