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9권> 144화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기記, 김왕석 역譯
이천만 윤색潤索
<목차>
144. 산서산맥의 큰 산양山羊
중국 서북단과 몽골 동북단에 산서산맥이 걸쳐있다. 높이 3,000m가 넘는 산들이 첩첩이 이어진 산맥인데 거기에는 큰 산양들이 살고 있다. 아르가리라고 불리는 그 산양은 산양 종류 중에서 가장 크고 당당하다. 어깨높이가 1 - 2m, 몸무게가 200Kg이 되는 거물이었으며, 2m나 되는 뿔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면서 대가리를 장식하고 있다. 놈은 산사산맥의 왕이며 범이나 표범도 발굽에 차여 횡사橫死한다. 그러나 아르가리는 높은 고산지대에 서식하기 때문에 세계의 박물관에는 없다. 그래서 1928년 영국위 탐험거들이 아르가리를 잡으려고 중국과 몽골의 국경지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맹수들이 우굴거릴뿐만 아니라 산적山賊들의 소굴巢窟이었으므로 중국당국은 목숨을 보장 못 한다면서 여행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탐험대는 목숨을 걸고 들어갔다. 탐험대는 동물학자 로날드박사와 그의 조수助手 리차드교수, 지질地質학자 바이켈박사와 그의 처妻 식물학자 낸시여사女史 그리고 그들을 경호하는 수렵가狩獵家 소로프포수, 그의 조수 중국인 양인달포수다. 중국당국은 탐험대가 거기에 들어가는 것까지도 금지하여 호텔에 억류抑留시켰으나 소로프포수와 양인달포수가 그들을 경호한다는 조건을 붙여 억류조치를 해제했다. 두 포수는 범과 표범을 열 마리나 잡은 유명한 포수다. 탐험가일행은 늦가을 국경지대의 주막酒幕에 도착했다. 500평이나 되는 앞마당이 있고 열서너 대의 소달구지와 당나귀달구지가 들어서 있는 굉장한 주막이다. 소와 당나귀들이 지르는 소리로 주막은 소란스러웠고 그들의 배설물냄새가 고약했다. 초저녁이었으므로 부엌에서 나오는 하얀 김과 새카만 연기가 흘러나와 주막마당을 덮었다. 안마당을 빙 둘러 수십 개의 방이 있고, 백여 명의 유숙객이 떠들고 있었으며 장터처럼 붐비고 시끄러웠다. 방에서는 유숙개들이 화로를 둘러싸고 이 사냥을 했다. 옷을 벗어 화로火爐불에 쬐면 이들이 톡톡! 떨어져 죽었다. 방에는 벼룩도 있어 손바닥으로 벽을 치는 소리도 요란하다. 탐험대들이 들어간 방벽에도 빈대 핏자국이 있었다. 아무래도 편하게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재미도 있다. 주막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치 중국의 축소판縮小版이다.
유숙객들 중에는 지방토호土豪들이 있다. 비단옷을 입은 뚱뚱한 지주地主가 전족纏足을 해서 잘 걷지도 못 하고 뒤뚱거리는 세 명의 부인과 머물고 있고, 서너 명의 하인들이 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넓고 깨끗한 방을 차지하고 전속專屬 요리사가 부엌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주막에사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다. 객실까지 붙어있는 호화로운 방에는 관리들이 묵었다. 그 일대를 관장管掌하는 군대軍隊와 행정관청에서 나온 감독관들이다. 아직 초저녁이었는데 술상을 벌였다. 그게 그 당시 중국의 실상이다. 상인들도 있다. 중국은 본디 상인들이 많다. 유숙객 중에는 소달구지에 냄비, 칼, 농기구 등 상품을 산더미처럼 싣고다니는 대상大商도 있고, 여자들이 사용하는 거울, 빚 등을 몇 개씩 갖고다니는 행상行商도 있으며, 약초나 호골虎骨 등 강장제强壯劑를 파는 약장수도 있다. 자칭 천하가 다 알아준다는 전설적인 명의名醫 화타華陀와 편작扁鵲에 버금가는 의사도 있고, 점을 잘 치는 스님도 있다. 단 10분만에 머리를 깎아주는 이발사, 헌 옷을 수리하는 여인들도 있다. 떠돌이 연예인도 있어 뱀껍질로 만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보다 더 화려한 치장治粧을 한 여인들이 방을 돌아다니며 웃음을 팔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한 중년 사나이가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술을 사주었는데 눈빛이 날카로웠다. 양포수가 그를 주목했다. 눈빛과 잘 단련된 몸집으로 봐서 예사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산적山賊의 첩자諜者입니다.’
첩자는 정보를 수집한다. 외지外地사람들의 동태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그곳에 왔고, 그 중에 돈이 많은 사람이 누구인지 살폈다. 첩보원들은 군대나 관공서에 들어가서도 정보를 수집했는데 한 번도 발각된 예는 없다.
‘그렇다면 저 사람을 잡아야겠군.’
단장인 로날드박사가 말하자 양포수가 웃었다.
‘그러는 것보다 그를 역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탐험대에서 약탈당할 물건은 서너 자루의 총뿐이라는 걸 첩자가 알게해주고, 탐험대에는 유명한 포수가 끼어있고, 중국 중앙정부에서 보낸 경호원이 붙어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산적들이 그 사실을 알면 감히 탐험대를 습격하지 못 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갈 산에는 산적들이 얼마나 있지요?’
‘수백 또는 천 명이 넘을지도 모릅니다.’
북경에 있는 중앙정부가 여권을 내주지 않은 이유를 알만하다. 위험하다. 그러나 탐험을 중지할 수는 없다.
‘왜 중국군대나 정부는 산적을 소탕掃蕩하지 않소? 내가 보기에는 꽤 많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
양포수가 또 웃었다. 첫째 이유는 그 산적들은 비교적 신사적紳士的이다. 그들은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만나면 우선 협상을 한다.
‘무사히 통과시켜줄테니까 얼마를 내놓을 것이냐?’통행세가 너무 작으면 더 내놓으라고 하고, 협상이 결렬決裂되면 실력행사를 하는데 그래도 가급적 죽이지는 않는다. 돈이나 물건만 약탈하고 피는 흘리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산적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 군대가 출동하기 때문이다. 군대와 구지 싸울 필요가 없다. 평화란 좋은 것이고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구대로 봐서도 군대가 아무리 강해도 첩첩산중에서 산적들과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산적들이 지형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쉽게 군대에게 당하지 않는다. 그래도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싸움이 벌어지면 수백 명의 군대가 요란한 전진나팔을 불면서 쳐들어간다. 군대가 총을 마구 쏘기 때문에 산적들이 전멸할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산적들은 응사應射를 하지 않는다. 총탄이 아깝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물러난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척 한다. 산적들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죽을 리 없다. 군대가 공포空砲를 쏘기 때문이다. 군대는 되도록 많은 총탄을 소비消費해야 한다. 그래야 상부로부터 많은 총탄을 공급받는다. 군대의 사령관은 싸움이 끝난 뒤에 이렇게 상부에 보고한다.
‘00년 00일, 본 부대는 산적들과 교전하여 산적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혓고, 산적들은 멀리 도주했음. 전투는 치열했고 본 부대는 수만 발의 총탄을 소비했음. 총탄의 보급을 요청함,’
그래서 상부에서 총탄이 보급되면 군 사령관은 산적들과 교섭을 했다. 산적들이 그 동안 행인들로부터 약탈한 돈을 받고 새로 공급받은 총탄을 넘겨준다. 교섭은 성공하고 군 사령관과 산적들은 축하연祝賀宴을 벌인다.
탐험대일행은 산적의 첩자가 숙소 주위를 돌아다니는데도 모른 척 했다. 주막에 상주하는 중국관리들도 역시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그들이 산적 첩보원을 모른 체 하는 이유는 첩자를 체포하면 산적의 영업방해가 된다. 첩저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어야 산적은 돈 많은 여행객을 털 수 잇고, 그래야만 그곳에 주둔하는 군대도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탐험대일행도 그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는데 그 정보를 종합한 결과 산서산맥의 산적들도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산적들은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큰 산양 등 귀중한 동물들을 보호했다. 산적들이 있기 때문에 밀렵꾼들이 사냥을 못 했다. 탐험대일행은 주막에서 사흘을 지낸 뒤 출발했다. 빈대와 벼룩 때문에 잠을 자지 못 해 눈이 부었고 이가 들끓어 피부병이 생겼다. 바깥에도 황토바람이 불었다. 중국 서북부일대는 온통 황토의 나라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10m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내리면 또 온통 진흙탕이 되어 트럭이 주저앉았다. 일행은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다음날 오후에야 산기슭에 도착했다. 황토먼지는 사라졌으나 앞길은 수천 미터나 되는 바위산이 가로막았다. 군데군데 산림이 있었으나 황량荒凉하다.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했는데 좀 춥기는 했으나 오랜만에 잠을 잤다. 밤중에 늑대들이 나타나 주변을 돌아다녔으나 감히 덤벼들지는 못 했다. 다음날 아침에 산적들이 나타났다. 모닥불을 피웠으니 모를 리 없다. 서른 명 쯤 되었는데, 중국식 솜옷을 입은 놈, 양복 차림, 군복을 입은 놈까지 있었다. 총도 군용 라이플, 산탄총, 화승포까지 다양하다. 모두 털투성이고 우락부락하다. 그래도 상하질서는 확연하다. 두목이 앞으로 나오며 인사 대신 큰 기침을 했다.
‘가지고있는 돈과 물건을 다 내놔! 목숨이 아까우면 시키는대로 해.’
일행을 경호하던 중국관리 두 사람이 나섰다. 눈짓으로 두목을 옆으로 불러내더니 밀담을 나눴다. 잠시 후 두목이 돌아와 다시 큰 기침을 했다. 관리들이 넘겨준 약간의 돈을 받고 타협이 되었다.
산적들은 주막에 잇던 첩보원의 정보를 받고 타협을 했다. 괜히 관리의 보호를 받는 외국인을 괴롭혀서 정부와 충돌하는 것 보다는 타협이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그 타협으로 산적의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 때 만난 산적은 중국관리와 한통속인 소위 신사적인 산적이었으며 정말 무서운 산적은 따로 있었다.
탐험대가 바위산을 하나 넘어갔을 때 높은 바위산에서 총소리가 났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열서너 명의 사내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주며을 자세리 살펴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숨어있었다. 50 명 쯤 되었는데 대부분이 군복을 입었다. 총도 군용총이다.
‘군인들이로군.’
단장 로날드박사는 안심했으나 경호관리 두 사람은 표정이 창백했다.
‘저들은 군인이 아닙니다. 군대에서 탈주한 탈영병입니다.’
군대와 경찰에 감금되어있었던 죄수들이 탈옥하여 약탈, 살인을 하고있었다. 로날드박사가 관리들에게 상세한 내용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박사님, 이 일대는 몽고와 접경입니다. 저 능선이 몽고의 영토입니다.’
임무가 끝났다는 말이다. 관리들은 변변한 작별인사도 없이 황급히 돌아가버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로날드박사는 탐험을 중단하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았다. 등뒤에 있는 산에도 여 명이 넘는 탈영병들이 있다. 탐험대를 포위했다. 경호하는 소로프포수와 양포수가 심각한 표정이다. 본디 탈영병집단은 가장 흉포하고 잔인한 살육자다. 그들은 사람을 발견하면 무조건 죽여놓고 약탈을 한다. 그들은 탈주하려고 상관이나 경찰관들을 살해한 자들이다. 잡히면 무조건 처형處刑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들이라 두려운 것이 없다. 대상자를 살려주면 자기들의 정보가 새어나가기 때문에 살려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과는 타협이 되지 않겠군.’
소로프포수와 양포수가 단호했다.
싸우자고 했지만 저들은 60여 명이고 탐험대는 여섯 명이다. 총도 네 자루인데 저들은 60자루다. 그것도 강력한 군용총이다.
‘중국에는 산적들이 많습니다. 특히 북만주의 산에는 산적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요새要塞를 만들어 상주합니다. 그래서 북만주에서 사냥을 하는 사냥꾼들은 짐승과 사람을 동시에 사냥합니다.
‘당신도 산적과 싸운 경험이 있습니까?’
소로프포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양포수와 범사냥을 하다가 열 명 쯤 되는 산적들과 싸웠다. 산적들은 범과 총을 빼앗으려고 기습을 했다. 그래서 산적 네 명을 죽였고 나머지는 도망쳐버렸다. 만주와 조선의 국경지역 원시림에서도 싸웠다. 네 명의 산적들이 미행을 하다가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는 걸 보고 녹용과 총을 빼앗으려고 습격했다. 산적 두 명이 사살되자 나머지는 항복했다.
‘사냥꾼과 산적이 싸우면 사냥꾼이 유리합니다. 사냥터이기에 사냥꾼은 산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총솜씨도 사냥꾼이 낫습니다.’
소로프포수의 말에 탐험대는 용기를 냈다. 바이켈박사의 부인 낸시여사도 호신용護身用권총을 꺼냈다. 산정에 있던 산적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항복을 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말이겠지만 믿을 수 없다. 소로프포수가 탐험대를 일단 산기슭으로 후퇴시켰다. 작전이다. 후퇴를 하는 척 하여 산적들을 속이고 바위틈을 이용하여 산정으로 올라갔다. 조금전까지 산적들이 있었던 곳이다. 산중턱까지 내려온 산적들은 탐험대가 산정으로 도망친 걸 보고 산정을 포위했다. 도망갈 길을 차단했다. 탐험대는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산적들이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
산적들이 총을 난사했다. 난사한 총탄이 맞을 리 없을 뿐만 아니라 총구에서 나오는 불빛이 과녁이 되었다. 소로프포수가 연사를 하고 양포수도 발사했다. 세 명의 산적이 쓰러졌다. 소로프포수와 양포수는 어둠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유격전을 폈다. 어둠을 이용하여 탐험대를 덮치려던 산적드의 계획은 실패하고 오히려 탐험대에게 이용을 당했다.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몰라 산적들은 움직이지도 못 했다. 산적들이 새벽에 공격을 했다. 우유빛 안개가 온 산을 뒤덮였다. 산적들이 안개 속에서 몰래 산정으로 올라왔다. 산정에서부터 안개가 서서히 걷혔다. 탐험대가 숨어있었던 산정이 햇빛에 들어났다.
‘됐다! 공격!’
두목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산적들은 총을 쏘면서 산정으로 올라갔다. 산정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적들의 작전을 눈치챈 소로프포수가 미리 탐험대를 이동시켜버렸다. 탐험대는 몽고와 중국의 국경이 되어있는 산을 넘어 몽고의 영토인 다른 산으로 들어가버렸다. 몽고령으로 들어갔으나 인간사냥을 포기할 산적이 아니다. 산적들이 다시 탐험대를 포위했다. 피를 본 그들이 끝내 복수를 하려고 했다. 탐험대를 버리고 간 중국관리들이 몽고령까지 지원병을 데리고 와 구해줄 리도 없다. 절망상태다. 산적들과 싸우느라 총탄도 거의 바닥이 났다. 산적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한가닥 희망이 있다. 탐험대가 산서산맥의 큰양을 연구할 계획을 세웠을 때 중국정부분먼 아니라 몽고의 자치정부에도 협조를 그했는데 몽고정부가 두 명의 사냥꾼을 선발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탐험대가 몽고령으로 들어오면 몽고사냥꾼들이 사냥안내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로날드단장이 몽고의 사냥꾼들에게 희망을 걸었으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겠다는 심정이다. 몽고의 사냥꾼들과 언제 어디서 만나겠다는 약속도 아니고 설사 그들을 만나더라도 두명의 사냥꾼들이 이 곤경을 벗어나게 할 수 있겠는가? 50여 명에게 포위돤 탐험대가 탈출할 희망은 없다. 그날 정오께,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군가 산정에서 총을 쏘았다.
산적이 아니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엇다. 무대의 배우처럼 화려한 옷차람이다.
‘몽고인입니다.’
그 옷은 몽고의 정장正裝이다. 빨간모자도 그렇다.
‘아니? 저 사람들이 ….’
망원경으로 몽고인을 관찰하던 로날드단장이 크게 놀랐다. 몽고인은 두 사람인데 말을 타고있었다. 높이가 2,000m가 넘는 험한 바위산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다니? 어처구니없는 짓이였으나 몽고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몽고인들은 말을 타고 세계를 정복했다. 징기스칸은 세계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다. 그 세계정복의 원천은 말이다. 몽고인들은 태어나면서 말을 탄다. 걷기 전에 말부터 탄다. 말 위에서 밥을 먹고, 말등에서 잠을 자고, 배변도 한다. 바람처럼 쳐들어오는 몽골의 기마전사騎馬戰士를 어떤 민족도 어떤 나라도 당해낼 수 없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몽고의 말발굽 아래 무릎을 꿇었다. 거칠게 키워 세계에서 가장 강인한 말과 양고기건포乾脯 한 자루와 양가죽주머니의 물 그리고 칼 한 자루로 보급부대도 필요없이 세계를 정복했다. 로날드단장이 총을 쏘아 몽고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몽고인들이 손을 흔들었다. 다음 순간 그들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말을 탄 몽고인들이 다시 산날에 나타났다. 산날을 타고 달렸다. 바람처럼 빨랐다.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산정에 나타났다. 몽고인들이 산정에서 탐험대를 포위한 산적들에게 총을 쏘았다. 말을 달리면서 총을 쏘았다. 산적들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사냥꾼은 나뉘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산적을 공격했다. 총을 쏠 때마다 비명이 들렸다. 산적은 말을 달리며 기습을 하는 몽고사냥꾼을 대항할 수 없었다. 사냥꾼들은 바위를 굴렸다. 사냥꾼이 싸우고있을 때 지원사냥꾼들이 도착했다. 산적들은 더 이상 대적을 못 했다. 산적들이 도망갔다. 사냥꾼들이 산적을 중국의 국경너머로 쫓아버렸다.
‘안녕, 서양손님!’
몽고사냥꾼들이 웃으며 인사했다.
‘큰뿔산양을 잡겠다고?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도와드리지요.’
사냥꾼두목 칸타이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동생과 함께 산적을 쫓아버린 사냉꾼이다. 아직 30대의 다부진 몸매를 가진 사냥꾼인데 몽고의 사냥꾼들은 모두 다 그를 알고 있다. 몽고의 영웅이다.
‘아주 큰 산양을 잡겠다는 것입니까?’
큰 산양뿐만이 아니다. 탐험대는 영국박물관의 요청에 의해 산양의 암수와 어미배에서 갓태어난 새끼에서부터 아주 늙은 산양까지 모두 잡아야 한다. 큰뿔산양의 완전한 포본標本이다. 할수만 있다면 살아있는 산양도 잡아야 한다.
‘좋소. 한 달 쯤이면 됩니다. 한 마리 정도는 사로잡을 수도 있고.’
본래 몽고인들은 대언장담大言壯談 허풍虛風을 떠는 버릇이 있다는데 중국인 양포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중국인과 몽고인은 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몽고인이 한 때 중국을 정복했었던 기마騎馬민족이기 때문에 몽고인은 중국인을 깔보는 성향이 있고, 중국인은 몽고인을 야만족野蠻族이라고 평가했다. 칸타이포수는 대언장담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산서산맥 서쪽 몽고령에 서식하는 큰뿔산양을 잘 알고 있다. 모두 3,000마리 쯤 살고있는데 그들은 높이 2,000m의 바위산을 맘대로 뛰어다니고 있어 중국인들에게는 큰뿔산양은 감히 접근조차 어려웠다. 몇 년 전, 영국의 사냥꾼들이 큰뿔산양을 잡으려다가 높은 언덕에서 떨어져죽었다. 여섯 명의 사냥꾼 중에서 한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중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대규모 사냥이라 탐험대는 산기슭에 간이천막을 치고 나무, 돌, 흙으로 사냥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칸타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렸다. 산기슭에 초원이 있고 몽고인들이 사는 집들이 있어 그 집을 한 채 산에 옮겨놓으면 된다고 했다. 탐험대는 어이가 없었다. 집을 어떻게 옮긴다는 말인가? 하지만 몽고인들은 집을 옮겼다. 다음날 정오께 몽고인의 집이 옮겨졌다. 겔이라고 불리는 천막집인데 탐험대가 다 들어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만큼 넓다. 몽고인들은 겔을 분해하여 말에 싣고 운반했다. 그리고 다시 조림하여 지붕을 덮었는데 소요시간은 단 하루다. 대언장담이 아니고 모ᅟᅥᆼ고인들은 탐험대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다음날 아침부터 큰뿔산양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산정에 산양두목이 우뚝 서있다. 말만큼 크고 당당한 놈이다. 총소리가 울리고 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돌아다녔는데도 산양은 도망가지 않았다. 산서산맥의 왕자인 큰뿔산양들은 그까짓 것에는 겁을 먹지 않는다. 두목 주변에 젊은 산양들이 진을 치고 새끼를 거느린 암컷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자란 이끼 종류의 풀인데 식물학자인 낸시여사는 그 풀이 단백질과 미네랄이 농축濃縮된 고단위高段位 영양소營養素라고 했다. 산양은 시력이 좋아 탐험대가 가지고있는 망원경 보다 더 멀리까지 불 수 있다. 사냥꾼이 접근해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두목은 동상銅像처럼 움직이지 않고 사냥꾼의 동태動態를 살폈다. 그렇다면 쉽게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냥꾼들이 구릉丘陵을 하나 넘어간 사이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몽고사냥꾼이 저쪽 산정山頂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육안肉眼으로는 보이지 않았으나 망원경으로 보니 두목이 있다. 전에 있던 산정과 지금 산정의 거리가 1,000m가 넘는데 어느 사이에 거기까지 달려갔을까? 산서산맥의 산양은 천리안千里眼과 무쇠다리를 갖고 있다. 튼튼한 다리와 단단한 각질角質의 발굽, 발굽 안 바닥에는 고무처럼 부드럽고 탄력彈力있는 근육이 있다. 그 고무바닥을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부풀렸다 오무렸다 하면서 바위에 밀착密着시킨다. 발바닥에서는 진득거리는 액체가 분비分泌되어 발굽이 바위에 부딪힐 때 생기는 열을 식혀준다. 조물주造物主는 치밀緻密했다. 산양의 발굽 주변에는 거친 털들이 밀생되어 있는데 그 털이 바위에 부딪힐 때 충격을 완화緩和시킨다. 그 털들 때문에 산양이 바위를 달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말발굽과 다르다. 사냥꾼들이 접근하자 산양들은 또 산날을 타고 도망쳤다. 바람처럼 빠르다. 탐험대는 비로소 산양들이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세계의 동물원이나 박물관에 산양을 전시하는 곳이 매우 드물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잡아야 한다. 그놈들을 잡기 위해 수 만 리 떨어진 영국에서 왔다. 몽고의 사냥꾼들이 작전을 바꿨다. 말을 버렸다. 산적을 잡는데 말은 유요하나 산서산맥의 왕자들과 겨루는데는 방해가 되었다.
밤새 토론을 했으나 산양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밤중에 국경지대에서 콩 볶듯 총소리가 났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인가? 총소리에 놀라 산양들이 중국쪽으로 도망갈 것이다. 요란한 총소리는 무엇일까? 다음날 아침에 서너 명의 사나이들이 탐험단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털과 수염이 더부룩한 사나이들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
‘옳아!’
관군과 내통하는, 탐험대와 협상을 한 자칭 신사적인 산적이다. 그 신사적산적이 며칠 전 탈영병산적과 싸웠다. 산적들에게도 소위 영지領地라는 게 있는데 탈영병산적이 영지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연 이틀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신사적산적이 승리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신사적산적은 관군과 연합하여 탈영병산적을 공격했으므로 탈영병산적은 전멸했다. 처음에는 탈영병산적이 수적으로 우세했으나, 탈영병산적은 탐험대와 싸워 20여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고, 출동한 관군이 200여 명이나 되었으므로 참패했다. 큰 공을 세운 관군은 탈영병의 시신을 모두 수거해서 끌고갔다. 탐험대가 사살한 시신도 함께 가지고가서 전과戰果를 부풀렸다. 부대장이 진급하고 많은 포상금을 받았다. 신사적산적 두목이 우선 영국제 담배 한 갑과 위스키를 달라고 했다. 자기들 끼리 천천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더니 말했다.
‘큰뿔산양을 잡으려는 걸 알고있소. 도와줄테니 미국돈 3,000달러를 주시오.’
‘어떻게 산양 잡는 걸 도와줄 수 있소?’
‘국경지대의 산양을 몽땅 당신들에게 몰아오겠소.’
그깟 3,000달러 쯤 문제될 것 없다. 산양 한 마리 값도 안 된다.
로날드박사가 약속했다. 그런데 정말일까? 산적들은 즉시 몰이를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산양이 중국에서 몽고로 넘어왔다. 기가막히는 솜씨의 몰이꾼이다. 로날드박사가 망원경을 살펴보니 산양을 모는 것은 산적만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중국군도 함께 몰이를 한다. 산적은 고작 30여 명이었으나 100여 명의 중국군이 가세加勢했다. 기가막히는 현상이다. 거기에 몽고사냥꾼 20여 명이 합세했다. 중국군인, 중국산적, 몽고사냥꾼, 영국사냥꾼과 영국학자까지 200여 명이 큰뿔산양을 몰았다. 큰뿔산양이 아무리 산악지대의 왕자라고 해도 그 수많은 몰이꾼들에게는 어쩔 수 없다. 그날 오후께 약 50여 마리의 큰뿔산양이 계곡에 몰렸다. 계곡 양쪽을 사냥꾼들이 막고있었으므로 산양은 병풍같은 절벽을 타고올라가야 탈출할 수 있다. 탐험대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산양을 한 마리씩 사살했다. 잔인한 짓이다. 학자들은 가슴이 아팠다. 산양은 문자 그대로 희생양犧牲羊이 되었다. 산양의 사체死體는 학자들에 의해 해부解剖되어 연구자료가 되고 박물관에 전시된다. 그러나 결론은 산양의 멸종을 막는다. 연구자료에 의해 산서산맥의 큰뿔산양의 보호와 멸종대책이 마련될 것이다. 성별 연령별로 나뉘어 여섯 마리의 산양을 잡았고 새끼 두 마리는 사로잡았다. 탐험대는 산양두목은 잡지 않았다. 말만큼이나 큰 놈이고 당당한 놈이었으나 그 놈은 잡으면 안 된다. 그 놈이 살아있어야 산양을 통솔하고 보호할 수 있다. 높은 바위에서 주변을 감시하던 두목은 부하 산양이 사냥꾼들에게 죽어가자 사냥꾼들에게 돌진했다. 무서운 기세로 덤벼들었으며 사냥꾼들이 위협사격을 해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자폭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냥꾼들이 도망을 갔다. 두목은 날뛰다가 힘이 빠질 때까지 설쳤다.
큰뿔사냥은 성공했다. 관군과 산적들이 도와준 비非스포츠적인 사냥이었으나 탐험대의 목적은 표본수집이었으므로 목적은 달성되었다. 사냥이 끝나자 산적두목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군복을 입은 친구도 한 사람이 같이 왔다. 로날드박사는 약속대로 3,000달러를 주고 덤으로 담배 열 갑과 위스키 다섯 병을 줬다. 그러자 뒷전에 있던 군복사내가 산적두목과 귓속말을 나누었다. 군복사내가 로날드박사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나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중국의 고급장교는 체면을 존중하는 법이다. 산적두목이 큰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로날드박사에게 말했다. 그는 뭔가 어려운 말을 하려는 것 같았으며 말을 빙빙 돌려 얘기를 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통역을 맡은 양포수가 애를 썼으나 역시 잘 되지 읺았다. 양포수는 영어는 잘 했으나 중국말이 서툴렀다. 중국인은 같은 중국인이라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중국이 워낙 넓었고 표준말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이 다르면 외국과 같다. 답답했든지 군복사내가 직접 나섰다. 그는 관군의 부대장이라고 소개를 하고 서투른 영어와 몸짓으로 얘기를 했다. 부대장은 사단장 앞으로 로날드박사가 감사장을 한 장 써주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했다.
‘존경하는 사단장님 귀하. 우리 영국탐험대는 산서산맥의 큰뿔산양의 표본수집을 성공리에 목적을 달성했는데, 목적달성에 용맹스럽고 친절한 중국군의 도움을 가능했습니다. 중국군은 사냥의 방해가 된 사악邪惡한 산적들을 소탕掃蕩하고 우리가 산양사냥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큰 공헌貢獻을 하였으므로 영국정부의 이름으로 감사장을 드립니다.’
그 감사장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알만 하다. 중국정부에 감사장을 보내면 주앙정부는 용맹한 사단장에게 포상을 할 것이고, 중장이었던 사단장은 대장으로 진급할 것이다. 따라서 연대장과 부대장도 진급한다. 부대장은 몇 번이나 감사장의 문구를 고친 끝에 만족했다. 그는 수고를 한 산적두목과도 악수를 했다. 뭔가 또 반대급부反對給付가 있을 것이다. 큰뿔산양의 수집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은 박물관에서 로날드박사에게 몇 가지 더 지시를 했다. 몽고까지 간김에 몽고영양의 생태를 조사하고 표본을 수집하라는 지시다. 몽고영양은 초원이나 사막에 서식하는 소과동물인데 달리기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로 알려졌다.
몽고영양은 고비사막 등 사막지대에서 수십 마리 때로는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사는데 수컷에게만 긴 뿔이 있다. 상반신은 적갈색 하반신은 흰색이다. 어깨높이가 1m고 날씬하면서도 튼튼한 다리를 갖고있다. 몽고영양은 사막의 달리기선수인데 단거리나 장거리 모두 잘 뛴다. 아프리카에는 수십 종의 영양들이 있으나 시속 80Km 이상을 달리는 선수는 없다. 지구력도 약해서 장거리에 약하다. 몽고영양은 시속 90Km를 달린다. 아프리카의 치타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시속 110Km를 달리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비공식조사다. 탐험대는 이번에 몽고영양의 생태를 조사하며 주력도 조사하기로 n했다. 영국의 대학이 몽고영양을 주력을 조사하는데 필요한 최신형지프를 보냈다. 탐험대는 몽고영양의 생태를 조사하시 위해 몽고사냥꾼 칸타이의 안내로 산서산맥에서 내려와 고비사막 북쪽으로 들어갔다. 반사막이므로 드문드문 풀이 있다. 다음날 몽고영양을 발견했다. 모래언덕에 50여 마리가 있었다. 곧 늑대가 나타나 영양사냥을 했다. 영양과 늑대가 달리기경주를 했다. 아프리카초원이었다면 포식자가 풀밭에 숨어있다가 먹이감을 덮쳤겠지만 사막에서는 그런 사냥을 할 수 없다. 달리기경주로 승패가 결정된다. 보고있으니 영양들이 늑대를 갖고놀았다. 일부러 천천히 달려 늑대가 바짝 다가오도록 해놓고 속력을 낸다. 경주상대가 되지 않아 금방 거리가 벌어진다. 영양은 거리가 벌어지면 늑대들이 따러오도록 기다리다가 늑대가 가까워자면 다시 달아났다. 본래 늑대는 지구력이 강한 짐승이었으나 몽고영양도 쉬지 않고 몇 십Km를 예사로 달린다. 영양과 늑대들이 몇 시간 동안 광막한 사막에서 술래잡기를 했는데 그래도 늑대는 영양을 포기하지 않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늑대들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한다. 몇 시간 동안 영양들의 장난감이 되어 영양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줄곧 달리던 영양무리 중에 탈락자가 생겼다. 늙은영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낙오되었다. 늙은영양과 늑대의 거리가 좁혀졌다. 늙은영양은 필사적으로 달렸으나 거리가 좁혀졌다. 늙은영양이 도움을 요청하듯 슬피울었다. 무리는 매정하게 늙은영양을 두고 달아나버렸다. 늑대들이 늙은 영양을 덮쳤다. 영양 한 마리는 늑대 대여섯 마리의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게 영양무리에게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자연도태自然淘汰다. 늙고 병든 영양은 도태되어야 한다. 먹이 배분도 많아지고 전염병에 걸릴 염려도 없다.
그날밤 몽고 겔마을에서 잔치가 열렸다. 몽고인들은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냈으나 손님에게는 친절하다. 어떤 외부인도 귀빈貴賓으로 환영을 받는다. 광대한 사막에서 사는 몽고인들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몽고인들은 본래 중국인을 싫어했으나 그때는 중국인 양포수외 요리사 진노인도 환영했다. 몽고인사냥꾼 두목 칸타이는 자기 겔을 탐험대에게 통째로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척이 사는 겔까지 옆에 붙여주었다. 친척의 겔은 옆마을에 있었으나 해체하고 운반하여 몇 시간만에 조립했다. 칸타이가 양을 두 마리 잡아 잔치를 벌였는데 양고기가 푹 익었을 때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났다. 마치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 같았다. 말발굽소리는 겔 밖에서 딱 멈췄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열 마리의 말들이 일제히 급정지했다. 몽고기수騎手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승마기술이다.
‘샤이(안녕)!’
열 명의 사나이들이 겔 안으로 난입亂入했다. 모두 울긋불긋 정장正裝을 하였으며 손에 술이나 치즈 등 선물을 들고왔다.
대체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자치상을 차리는 칸타이마누라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사내도 있다. 그들중에는 칸타이의 동생들도 끼어있는데 동생들이 마누라의 엉덩이를 쳐도 칸타이는 웃고 마누라도 좋아한다. 그럴만 하다. 두 명의 동생들은 모두 칸타이마누라의 남편들이다. 유목遊牧을 하는 몽고인들은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다. 동생들은 형이 먼 곳으로 양떼를 몰고나가면 형수와 잠을 잔다. 형제가 한 집에서 교대로 공동의 마누라방에 들어간다. 마누라가 아이를 낳으면 형제들 중 누구의 아이인지 몰라도 따지지도 않고 공동으로 양육한다. 어차피 형제의 피는 같다.
난입자들은 아직 차려지지 않은 음식을 마구 먹고 손님들이 가지고온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다. 몽고의 풍습이다. 내것 네것이 없다. 가나한 사람이 부자의 물건을 나눠쓰는 건 당연하다.
‘몽고영양을 사냥한다지요? 몽고영양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사냥하기가 어렵지만 걱정마시오. 우리가 도와줄테니까.’
그들의 도움없이 몽고영양을 잡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시속 80Km를 달리는 영양을 무슨 수로 잡을 수 있겠는가? 다음날 영양사냥이 시작되었다. 사냥꾼들이 영양무리를 발견하고 포위했다. 모두 20여 명이다. 그 일대에서 선발된 모두 내노라하는 베테랑들이다. 열 명이 주력主力그룹 선발대고 대기그룹이 양측면에서 덮친다. 영양은 100여 마리다. 그 사냥에는 최신형 지프가 참가했다. 시속 150Km의 속력을 낼 수 있다. 지프는 로날드박사의 조수 리차드교수가 운전한다. 영국육군 예비역장교이며 운전에 능숙하다. 소로프포수와 양포수도 지프에 동승한다. 탐험대의 다른 대원과 몽고사냥꾼들이 구릉에서 망원경으로 사냥을 관찰한다. 말과 지프가 합동작전을 펴는 호쾌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몽고사냥꾼 두목 칸타이가 공포를 쏘았다. 출발신호다. 모두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몽고영양, 몽고사냥꾼, 지프가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시야가 탁 트인 사막이었으므로 서로 상대를 보면서 경주를 했는데 그 경주에는 목숨이 걸렸다. 본래 다리가 빠른 주자走者는 자존심과 경쟁심이 강하다. 육상에서 가장 빠른 치타나 바다에서 가장 빠른 돌고래는 경쟁자를 발견하면 덮어놓고 도전한다. 몽고영양도 그랬다. 몽고영양은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했다. 소문대로 빠르다. 강한 다리로 땅을 차면서 지상 1m 쯤 되는 저공低空에서 뛰었다. 뛰는 게 아니라 날았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이 보이지 않았다. 동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수로 자처하는 몽고기수도 경쟁 상대가 없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터라 쾌속질주했다. 바람보다 빨랐다. 모래먼지가 말 한참 뒤를 따랐다. 리차드교수도 운전광狂이라 자처한만큼 동승한 포수들에게 손잡이를 잡으라고 경고하고 엑셀레이터를 최대한 밟았다. 역시 몽고영양은 빨랐다. 초반에 승부를 내겠다고 거리를 벌렸다. 500m 쯤 달렸을 무렵 몽고영양과 몽고말의 거리는 50m로 벌어졌다. 그러나 경주는 그때부터였다. 대기하고 있었던 몽고사냥꾼 별동대가 경주에 뛰어들었다. 다섯 마리의 말들이 영양들 앞에 나타나자 영양들이 방향을 바꿔 크게 오른쪽으로 돌아 달아났다. 영양들이 바짝 옆으로 따라오는 말들을 따돌렸으나 이번에는 오른쪽에 대기하고 있었던 별동대가 앞을 막았다. 영양들은 다시 크게 좌회전하면서 따돌리려고 했으나 좌측의 별동대가 옆에 붙었다.
‘좋아!’
지프를 몰던 리차드교수가 소리쳤다. 지프는 다소 여유를 두고 추격을 했으나 잔속력을 냈다. 영국육군이 만든 지프는 역시 성능이 우수하다. 그러나 스피드를 100Km로 올렸으나 영양들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때까지 2,000m 쯤 달렸는데도 영양들은 지치지 않았다. 지프가 바짝 따라온 걸 본 영양이 다시 주력을 높였다. 영양은 릴레이식으로 주자를 바꾸며 따라오는 몽고말과 거리를 다시 벌렸고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지프에게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경주가 중거리에서 장거리로 들어갈 무렵에는 영양이 선두가 되고 바로 뒤를 지프가 따라갔으며 몽고말이 뒤로 쳐졌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장거리경주가 시작된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몽고말의 주력부대가 뛰어들었다. 주력부대는 지름길로 영양이 달려가는 옆으로 나가 달렸다. 지프는 영양과 평행으로 달렸다. 영양을 앞질러 지프를 세우고 사격을 할 작정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 할 문제가 생겼다. 반사막지대에는 군데군데 잡풀이 있기는 했으나 지프가 달리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프는 마구 달렸는데 반사막지대는 자동차경주장과는 달랐다. 개미들이 문제다. 검은개미가 여기저기 함정을 파놓았다. 구멍의 직경이 20Cm가 넘으면 바퀴가 빠진다. 더 위험한 것은 흰개미다. 검은개미는 땅속에 집을 만들었으나 흰개미는 땅위에 고층건물을 지었는데 그 높이가 30Cm 이상이면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흰개미집은 콘크리트 보다 더 단단하다. 리차드교수는 이미 그걸 알고 조심스럽게 지프를 몰았으나 먼지가 날아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스피드광은 본래 위험성을 경시輕視한다. 영양들과 병행하여 달리던 리차드교수가 힘껏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영양과 지프가 모두 100Km 넘은 속력을 냈는데 갑자기 쾅! 소리가 났다. 흰개미집에 부딛친 지프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지프가 2m 이상 공중을 날았으나 다행히 뒤집어지지 않았다. 낙하산처럼 내려앉았다. 사람들도 손잡이를 쥐고있었으므로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흰개미집과 정면으로 맞부딛친 지프는 전면이 온톨 찌그러졌다. 리차드교수가 운전석에서 빠져나오지 못 했다.
‘염려마시오. 난 죽지는 않소. 다리가 부러진 것 같군.’
다른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영양, 말과 지프의 경주는 지프의 참패다. 우승은 몽고말이다. 몽고사냥꾼도 그날 사냥은 포기했다. 리차드교수는 낸시여사의 응급치료를 받고 울란바토르병원으로 갔으나 지프는 수리불능 상태였다. 그렇다고 몽고영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로날드단장이 대원들을 푹 쉬게 한 다음 다시 사냥을 하기로 했다. 몽고사냥꾼들도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비사막 북쪽 끝에 사는 몽고영양은 강한 생존력을 가진 동물이다. 무쇠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다리로 몽고말과 영국 최신형지프를 물리쳤다. 그러나 탐험대들이 조사한 결과 몽고영양은 멸종위기에 있다. 탐험대가 다음 사냥을 준비하는 동안 영양을 관찰했다. 땅을 1m 쯤 파고 움집을 만들어 마른 풀로 지붕을 덮어 그 안에서 자고 먹으며 조사를 했다. 그 일대는 물이 없고 거친 마른풀이 있는데 가축은 그 풀을 먹지 않는다. 소화도 안 되고 영양도 없다. 그런데 몽고영양은 그 풀을 먹는다. 겨울이면 그 풀이 얼어붙는데 영양은 뿔로 땅을 파서 그 뿌리를 캐먹었다. 그나마 양이 적어 늘 굶주렸다. 초겨울이었는데 영양무리가 집결하고 있었다. 가족무리로 살다가 겨울이 되면 가족무리가 집결하여 그 힘으로 산다. 수백 마리의 ㅡ집단은 노련한 두목과 지도자의 지휘 아래 혹독한 겨울을 넘겼으나 무리의 1/ 5은 죽는다.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모래가 섞임 바람이 사막을 뿌옇게 덮고 기온이 떨어졌다. 영야은 밤이면 한군데에 모여 서로 몸을 붙여 체온을 유지한다. 서있는 자세로 눈을 감고 죽은 듯이 잠을 잔다. 탐험대는 영양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집념으로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낸다. 나흘만에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영양을 잡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실태를 알아야 보호할 수 있고 멸종은 막을 수 있다.
탐험대가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 사막지대에서 영양을 쫓아 잡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가젤이나 누우를 지프로 추격하여 잡는 것은 쉬웠으나 몽고영양을 추격하여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프추격으로 영양이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는 것은 확인했다. 그런 영양을 몽고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몽고말은 시속 60Km다. 몽고사냥꾼 두목 칸타이가 저번의 실패에 화를 냈다. 수를 50 명으로 늘렸다. 먼 곳에 사는 친구들까지 불러모았다. 흩어져 사는 몽고인들이 50여 명이 모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로날드단장은 보수를 염려했으나 보수는 필요없다. 보수란 말에 도리어 화를 냈다. 먼곳에서 온 친구를 돕는 것이 몽고인들에게는 즐거움이다.
몽고인들이 이번에는 경주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여러 그룹으로 영양을 포위하여 사격대가 움집을 파고 잠복한 곳으로 몰아넣기로 했다. 영양은 그걸 몰랐다. 영양은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으나 그날은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50여 마리의 말과 100여 마리의 영양들이 달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먼지에 싸여 10m 앞도 보이지 않았다. 영양은 포위망을 뚫지 못 했다. 몽고사냥꾼이 사방에서 공포를 쏘아대고 있었기 때문에 겁에 질려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는데 그곳이 사냥꾼이 숨어있는 움집이었다. 탐험대는 시중했다. 그들은 모두 여섯 마리를 잡을 계획이다. 성별, 연령별로 선발한 영양이다. 그 외 희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영양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격을 해서 모두 여섯 마리를 잡았다. 뜻하지 않은 덤이 붙었다. 어미를 따라온 새끼영양 한 마리를 생포했다. 쓰러진 어미 옆에서 울다가 사로잡혔다. 생후 3개월 쯤 되는 귀여운 새끼는 이전에 사로잡힌 큰뿔산양과 함께 무사히 런던까지 수송했다. 붙잡힌 큰뿔산양과 영양은 해부되어 표본이 되어 전시되고 사로잡힌 큰뿔산양과 몽고영양은 런던 교외郊外 리치동물원에서 사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