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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벽시계 (Grandfather’s Clock, Foster by Esteban Jeon)

북새 2020. 8. 13. 18:48

손자 한이가 서너 살 무렵 인터넷동요에서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엄마 구두’‘펌프킨’‘똥빠이(중국동요, 메달)’을 좋아해서 매일 컴퓨터를 켜고 노래를 부르며 손뼉을 치고 놀았다. 특히 똥빠이를 부르면서는 제풀에 깔깔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 할아버지의 벽시계를 들었다.

 

커다란 벽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 90년 전에 할아버지 태어나던 날 선물/ 쉬지않고 흔들거리던 할아버지의 옛날시계/ 똑딱거리지 않네 멈춰버렸네/ 90년 동안 쉬지않고 똑딱 똑딱/ 할아버지와 함께 똑딱 똑딱/ 이제는 멈춰버렸네 가지를 않네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멍먹했다. 어린 한이야 할아버지의 감정을 이해 못 했겠지만 , 이후에는 가끔 혼자 듣기도 했다.

(아라)한이는 강보에 쌓여 할아버지에게 왔다. 엄마 아빠가 직장에 나가고 할머니도 직장인이어서 엄마의 산후휴가가 끝나자 아침 일찍 제 어미가 한이를 데려오면 현관으로 마중나가 보듬어안고 하루종일 돌보았다. 강보에 싸여 뒤채기도 못 할 때부터 우유를 먹이고, 꼬무락거리던 녀석이 어느 날 뒤비기를 해서 놀랐고, 아장아장 걷는 재미에 세월 가는줄 몰랐다. 할아버지가 먹는 것은 다 먹겠다고 덤볐다가 매운 거나 짠 음식에 쌍을 찡그리는 걸 보고는 우리집 반찬이 싱거워졌다. 바닷가 태생인 할아버지가 짭짤하고 입안이 근질근질한 참꼬막을 좋아해서 그만 어린 한이도 참꼬막에 입맛을 붙였다. 시장에 가서도 한이가 좋아할만한 것만 찾았다.

걷기 시작하면서는 방안이 답답한지 자꾸 할아버지 손을 밖으로 끌어 무등산자락 골짜기를 따라 암자에도 가고, 개울에서 가재를 잡고 산천어도 쫓았다. 우무가사리 같이 투명한 개구리알의 까만 눈에서 올챙이가 깨어나는 것도 보았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는 빨간 노랑 고추잠자리를 쫓았다. 한이는 사거리수퍼 단골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아이가 너무 귀엽다고 해서 은근히 어깨가 으쓱했다. 초코우유를 하루 너댓 개 씩 먹어 보건소에 적당량을 자문하기도 했다. 한 순간도 카만 있지 않은 한이에게 하루 종일 시달리고도 오후 늦게 제 애비가 데리러와하찌, 안녕!’하면서 고사리손을 흔들면 돌아서는 등이 허전했다. 좋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서너 군데 수소문하고,‘어린이왕으로 선발되자 유치원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200개를 선물을 했다. 종합병원에 며칠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간호사들이 잘 생겼다, 귀엽다고 하는 바람에 병실 보다는 간호사실에서 놀았다. 초등학교는 학구내 학교가 너무 소규모라서 이웃 학구로 보내고 날마다 자동차로 등하교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해, 쉬는시간이면 6학년 여학생들이 교실복도에 몰려와 한이를 보려고 야단법석을 해서 난처하다고 담임선생님이 애교 섞인 투정을 했다. 여학생들은 한이를 동생 삼겠다고 저희들 끼리 싸워 한이 때문에 난장판이 벌어진다고는 하지만 담임선생님도 그다지 싫지 않은 모양이다. 미상불, 학교 밖에서 여학생들이 한이와 마주치면와아! 한이다!’하고 몰려들었다. 공부는 일제고사에서 학교 전체 1등을 하기도 했다. 6학년 전교어린이회장도 한이를 챙겼다. 6학년 2학기 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핑계삼아 광주의 강남학구 남구로 주소를 옮겼다. 중학교 때까지도 줄곧 자동차로 등하교를 했다. 하교시간 몇 분 전에 가서 기다리는 시간에는 학교 꽃밭을 주변을 거닐면서 꽃들을 살피고, 상사화, 접시꽃씨를 빈터에 심었는데 꽃밭을 마음대로 손댄다고 직원과 교사에게 핀찬을 들었다. 태풍에 넘어진 꽃대를 세우고, 잡초를 뽑아주고, 꽃대를 솎아주었는데함부로 손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었다. 화가 났지만나도 교장이었다, 이놈들아! 학부모도 교육주체란 걸 모르느냐?’라고만 혼자 되뇌었을 뿐이다.

교장 초임학교에서 8t트럭 3대의 쓰레기를 쓸어내고, 녹이 슬고 썩은 기자재로 가득 찬 컨테이너 두 개를 들어냈다. 그네 서너 발 뒤편의 시멘트계단이 위험해서 잔디언덕으로 만들고 꽃을 심었다. 지리산 야생화단지에 주문해서 한국야생화 100여 종 - 금방울꽃 은방울꽃, 범부채, 비비추, 원추리를 어머니들을 동원해서 심었다. 교문의 수십 년 된 은행나무와 사택舍宅의 감나무 그리고 학교 뒤편의 커다란 팽나무와 느티나무는 그대로 두고, 벽돌, 시멘트, 철조망, 탱자나무 울타리를 걷어내고 단풍나무, 이팝나무, 자귀나무, 금목서, 은목서를 심었다. 예산에 남은 교육청지원금으로 교실 앞 시멘트정원을 잔디정원으로 바꿨다. 수십 년 자란 등나무는 구례역에서 폐침목을 구해다가 올리고, 울타리에는 개나리와 조팝나무를 심었다. 언덕에 작은 연못 - 둠벙을 두 개 파서 돌다리로 연결하고 마을 개울에서 송사리, 피라미, 미꾸리, 갈겨니들을 넣었다. 수원水源이 좋았다면 물을 끌어다 운동장에 빙 둘러 여울을 만들고 싶었으나 물길을 끌어올만한 수원이 없었다. 둠벙이 생기자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아넣었다. 둠벙에는 징검다리도 놓았다. 부들과 창포는 냇가에서, 원추리와 불미나리는 들녁에서 옮겼다. 둠벙은 시골 논의 둠벙처럼 포크레인을 빌려 듬썩듬썩 웅덩이를 파놓으면 풀꽃씨가 날아와 번식을 했고, 잠자리가 날아오고 개구리도 왔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소금쟁이와 물방개도 와서 살았다.

어린시절 우리집은 꽃집으로 불렸다. 하얀 백합 - 특히 하얀 백합은 언덕만 파면 구근이 나올 정도로 많았다. 여름철 백합꽃이 필 때 집에 다니러 광주 유학에서 돌아와 신작로에서 버스를 내리면 2Km 떨어진 우리집 백합향기가 코 끝에 스쳤다. 장독대언덕의 넝쿨장미, 봉숭아, 맨드라미, 꽈리 등등 없는 꽃이 없었고, 대문으로부터 호두나무, 살구나무, 가죽나무, 자두나무, 석류, 참팽나무, 쥐똥나무 등등 없는 과일나무가 없을만큼 집안이 온통 꽃과 과일나무 천지였다. 탱자만한 사과가 열리는 사과나무도 있었다. 분홍빛 복숭아꽃은 요염해서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랜다. 아침 이슬방울을 머금은 배꽃을 보았는가? 검은 속눈썹에 맺힌 여인의 눈물방울. 사진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은이른 봄 새싹잎이 역광을 받았을 때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향기는 금목서향이다. 올해도 우리집 베란다에서 좁쌀만한 노란 꽃송이를 피웠다. 금목서향은 바람끝에서 느껴야 한다. 무아無我의 향기다. 어린시절 집 뒤 켠 울타리너머에 모란과 작약밭이 있었다. 진홍색 모란꽃잎에 맺힌 아침이슬과 노란 수술의 조화를 보지 못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얘기할 자격이 없다. 한참 신을 찾아 방황하던 때 새벽기도를 마치고 천방산마루에서 맞은 남해일출은 천지창조를 재현했다. 한이에게도 한 번은 보여주리라 하면서도 아직 틈을 내지 못 했다. 집 앞 선산에는 감나무와 배나무 과수원이 있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전적典籍과 아버지의 일본어책들이 뒷방선반에 수백 권 쌓여있었는데 배봉지로 사용해버린 걸 나중에 훨씬 커서야 알아챘으나 후회막급後悔莫及. 교직에서는아름다운 학교가꾸기표창을 세 번 받았다.‘꽃과 음악과 사랑이 가득한 학교선생님이 즐거워야 아이들이 행복하다가 교육계획서 맨 첫장에 쓰인 교육모토였다.‘물은 몸을 깨끗이 하고, 꽃과 음악은 마음을 정화시킨다가 인성교육의 구호였다.

한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자동차 등하교를 거부했다.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 걷겠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걸어다니는데, 친구 집에 가서 놀고싶은데 할아버지 때문에 못 한다고 불평을 했다. 학구가 아니라 등하교길이 멀어서 중학교 때까지만 참아라고 했는데 다행히(?) 중학교는 집에서 너무 먼 학교를 제비 뽑았다. 걸어다니래도 못 다닐 거리라 도보통학 투정이 잠잠해졌다. 도보통학이 할아버지에게는 서운하지만, 할아버지 품에서 벗어나려는 게 아니라 자립을 하고싶었을 것이다. 손자를 키우는 일은 아들 때와는 달랐다. 내리사랑이라는 말로 설명이 충분치 않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말도 울림이 작다.

올해, 한이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도보하교를 허용해서 얼굴 보기도 어려워졌고, 이제 한이를 위하는 일은 고작 남광주시장에 가서 낙지, 소라, 새우와 돼지대창을 사다가 볶는 일이다. 불고기로 요리해서 한이네 집에 갖다놓는다. 한이는 야자까지 하고오니까 밤 10시에나 귀가한다. 가끔, 보고싶으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야외로 데리고 나가 바람도 쐬고 외식을 한다. 제 할미는 산중사람이라 육식위주고 해산물은 요리는커녕 냄새도 싫어한다. 그래서 한이 입맛을 길들이려고 시장나들이를 한다. 어린시절의 입맛이 평생가고 어린시절의 생활환경이 평생을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