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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대화 - 부적符籍

북새 2020. 7. 28. 08:37

40여 년을 방안에 놓아둔 목조木造장농에서 어느 날부터 투닥거리는 소리가 났다. 벽을 두드리는 소리 또는 가벼운 망치질소리 같은 소리가 매일 한두 번씩 지속되었다. 목재가구라 습기나 날씨에 민감해서 나는 소리라고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해서 습기조절을 하기 위해 장롱문짝을 열어두었는데도 투닥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퇴마사 흉내를 내서 시험삼아 장롱 안에 부적符籍을 붙였더니 소리가 딱 끊겼다. 충격적이다.

취미삼아 고전古錢을 수집했다. 그때만해도 집에 엽전葉錢이 굴러다니고, 아이들은 질경이잎에 엽전을 꿰매 제기를 만들어 놀던 시절이라 공책과 맞바꾼 엽전이 솔찬히 모였다. 더러는 점괘占卦를 보는 엽전꾸러미를 수집했다가 돌려주는 일도 벌어졌고, 금화金貨 - 엽전 주조 시 제작한 궁중여인들의 장식품인 별전別錢을 옆 반 교사가 가로채는 일도 있었다. 몇 년 뒤에는 박물관이 엿장수들을 동원해서 엽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엽전을 수집한다는 소문이 돌아 실 잣는 물레, 베 짜는 북과 도트레, 나막신이 들어왔는데 이 수집품을 보고 처 외할머니가 기겁을 하더니 부적을 붙였다. 외할머니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6. 25 때 국군으로 징집되어서 불귀不歸의 객이 되자 실성失性하여 무당巫堂이나 점쟁이처럼 살았다.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식처럼 보살핀 분이라 외손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자 가끔 집에 와서 외손주를 건사했는데 수집한 옛 물건들을 보자마자 부적을 붙였다. 그 즈음에는 십수 년에 걸친 신과 귀신에 대한 성찰을 마치고, 신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린 터라 외할머니의 부적은 코웃음거리였으나 떼어내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거덜이 났다. 감농監農할 사람이 없어 동네 알부자富者가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오르고 집안은 풍비박산風痱博山. 부친은 여순반란麗順反亂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경찰의 혹독한 고문拷問을 받아 정신착란의 폐인廢人이라 감농은 애초에 엄두도 못 내고, 올망졸망한 열 명의 동생들의 학비와 호구지책糊口之策이 어려워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 연명하던 가세家勢, 하필 2년의 연속된 가뭄으로 장리長利빚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다섯 개의 산과 30여 마지기 논밭을 헐값에 팔아넘겼다. 그래도 장리빚은 줄어들지 않고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늘어났다. 장리는 쌀 10가마니를 빌리면 이듬해 이자가 절반이 붙어 15가마니를 갚는 무서운 빚이다. 고리채高利債라고 했다. 2, 3년만에 원리금이 쌀 100여 가마니로 불어나자 감당할 수가 없었고, 전 재산을 팔아도 감당을 못 할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손아래 동생이 시름시름 앓다가 요절夭折했다. 광주의 이름난 병원에서 진찰을 했으나 병인을 알 수 없어 거의 손도 써보지 못 했다. 햇보리가 파랗게 피어오르는 때였다. 가세의 몰락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모태母胎신앙에 회의懷疑를 품게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새벽에 교회에 나가 얼음판 같이 차가운 교회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몸이 얼어붙는 기구祈求에도 하나님은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다. 위로나 격려의 한 마디 말이 절실했는데 하나님은 외면했다. 기도祈禱가 끝나면 귀신 울음소리 같은 세찬 바람을 뚫고 천방산에 올라 남해일출 때까지 명상瞑想을 했다. 남해일출은 천지창조天地創造의 광경을 연출했다. 오히려 경외심과 신앙심을 능가했다. 그러기를 한 달 여, 신을 잃고 탕자蕩子가 되었다. 고대인들은 곰, 호랑이, , , 바위, 당산나무(신목神木), 해와 달과 별, 천둥번개들을 신으로 섬겼다. 그러나 완벽한 탕자는 못 되고 반거치기로 80 평생을 살았다.

한겨울밤, 산에 벌겋게 진달래꽃이 핀 꿈을 꾸고 출근했는데 간밤에 비행기가 학교 앞 산에 추락하여 시신屍身조각들이 꽃처럼 나무에 걸려있어서 군경軍警이 수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단청丹靑 꿈을 꾸고는 예상치 못 한 향교鄕校를 방문했다. 상복喪服을 입은 여인 셋이 머리에 제물祭物 광주리를 이고 버스에서 내리는 꿈을 꾸었는데 출근길에 똑같은 모습이 재현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해질녁에 마루에 앉아 있는데 대루처럼 생긴 퍼런 꼬리가 달린 불이 앞산 중턱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가 혼불이라고 했다. 꼬리가 달린 건 남자 혼불이니 앓고 있는 웃보터 할아버지가 돌아가실줄도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서해 섬에서 근무할 때는 시커먼 털이 숭숭한 괴물이 배에 올라타고 목을 조르는 꿈에서 깨었더니 장판이 열기에 눌어 방안에 연기가 차고 있었다. 그 관사 앞마당에는 새로 쓴 묘가 있었다. 방바닥이 식어서 군불을 때려고 부엌에 나가면 바람도 없는데 휙! 소리와 함께 촛불이 꺼져버려서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냉방에서 덜덜 떨며 자기도 했다. 감나무 과수원에서 살 때도 연탄아궁이를 사용했는데 연탄불을 갈러 나가면 휙! 소리와 함께 음험한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져 소름이 돋았다. 등골이 오싹해서 연탄불을 가는둥 마는둥 방으로 들어와 문고리를 잠궜다. 과수원집 골방에서 가위에 눌려 새벽에 잠이 깨면 봉창문 옆 돌담이 우르럭! 우르럭! 무너지는 소리에 소름이 끼쳤는데 날이 환히 밝은 아침에 나가보면 돌담은 돌 한 개도 무너지지 않고 멀쩡했다. 과수원 아저씨는 집터가 옛날 도축장이어서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여름밤에 공동묘지에서 움찔거리는 도깨비불도 목격했다. 곰재 숙직실에서 동료들과 화투판을 벌이는데 한 밤중에 2층교실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동료들이 화투판을 접고 북소리가 나는 2층교실에 다가가니 북소리는 1Km 쯤 되는 마을에서 났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숙직실로 돌아오면 다시 2층교실에서 북소리가 계속되었다. 초등학교시절 우리는 마을 뒷산을 세 개 넘어 등교를 했는데, 안개 낀 날에는 천방산마루에서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 동무들은 모두 겁에 질려 떨었으나 개구쟁이들이 방아 찧는 소리를 찾아 안개발을 헤치며 쌍묘雙墓를 찾아가면 방아소리가 뚝! 끊기고 다시 돌아서서 몇 발자국 물러서면 또 다시 방아소리가 계속되었다. 성경에는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돼지귀신을 쫓는 얘기가 나온다. 무당과 점쟁이들은 귀신과 대화를 하고, 퇴마사는 귀신을 눈으로 보고 쫓아내기도 한다. 불가사의不可思議. 유리겔러는 잠재력으로 수 천리 밖 쇠숟가락을 휘었다. 러시아 소년은 두꺼운 벽을 통해 투시透視를 한다.‘독수리는 날고의 마야문명의 마추픽추, 나스카평원의 거대한 그림들. 김수환 추기경은 돌아가시기 직전신은 어디 있느냐?'라는 신도信徒의 질문에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도대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는 건가? 우리 태양계에는 태양, 금성, 화성들 2,000억 개의 별들이 있고, 은하계는 4,000억 개의 태양계가 있고, 우주의 은하계는 17,000억 개라고 추정한다. 우주의 크기는 137억 광년. 이 수치들도 과학자들이 그린 소용돌이 우주의 그림처럼 추정치다. 이 넓은 무한대의 우주 어디가 천당(극락)이며 그 어디에 하나님은 계시는가? 티베트인은 내세來世를 믿기에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생활을 하면서 지구촌에서 가장 행복하다. 우리집 장롱속의 부적, 그 조화造化 무엇일까. 한창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 지속되더니 요즘에는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이 잦다. 꿈에 여자를 보면 불길하다. 가까웠던 여자가 웃으면 그날은 외출을 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