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야기-4 노루 괴담怪談 외 4편

사냥꾼이야기-4

북새 2019. 8. 29. 08:42

 

각 권의 분량을 맞추기 위해 4권을 3권에 합본하였고 4권은 윤색하는대로 계속 연재함

 

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4> 131화 - 139화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 김왕석 역

                     이천만 윤색

<목차>

 

131. 유령幽靈의 산/ 132. 밀렵자密獵者 사냥꾼/133. 물바다가 된 삼림森林134. 아프리카의 두 연인戀人/ 135. 툰드라의 살육殺戮/ 136. 지옥地獄 코끼리/ 137. 스님과 대왕범/ 138. 노루괴담怪談/ 139. 맹수猛獸들의 영지領地

 

131. 유령幽靈의 산

 

그 일대에 사는 사람들도 그 산의 이름을 몰랐다모두 다 모르는 것으로 봐서 그 산에는 공식적인 이름이 없는지도 모른다그 주변의 산사람들은 그 산을 <유령의 산또는 <도깨비산> <귀신의 산>이라고 부르면서 그 산에 는 들어가지 않았다음흉한 산이며 요기妖氣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사실 그 산에 들어간 사람이나 사냥개들 중에는 돌아오지 못 한 사람들도 있었다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매년 여나무 명이 실종되었다그 산은 함경도의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이 맞닿는 곳에 있었다그 산은 고두산괘상봉만탑산과 황기봉 등 높이 2000여 미터의 산들이 높이를 다투고 있었는데 유령산은 고두봉과 괘상봉 사이에 있다유령의 산도 높이가 1000m가 넘었으나 워낙 높은 산들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에 모습을 볼 수 없었다높은 산들의 긴 그늘에 가려졌다높은 산들을 넘어서면 방향에 따라 유령산이 보일 때도 있다특히 아침 안개가 걷힐 때 유령산은 그 모습을 홀연히 들어냈다유령산은 그 일대의 산처럼 화강암花崗巖산이었고 산정에는 나무가 없다그러나 산 아래쪽에는 침엽수와 광엽수가 섞인 잡목림이 있다주위에서 흘러든 계곡이 있는데 두만강의 지류支流인 서두수의 수원지다.

1850년 철종이 즉위한 다음 해 초겨울유령산기슭의 포수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포수마을은 통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들이 대여섯 채 뿐인데 그날은 50여 명의 포수들이 모였다마천령산맥함경산맥 그리고 무산의 원시림에 사는 포수대표들이다그 모임은 정례적이었으며 그 해에는 유령산 포수마을 차례였다포수마을에서는 술을 담그고 떡을 치고 맷돼지를 통째로 구웠다.

그래그 사냥꾼들은 어떻게 실종됐소?’

그 일대 산간마을을 모두 다스리는 두령 박영감이 되물었다유령의 산에서 사람이 실종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으나 그 때는 좀 달랐다마을의 장골壯骨사냥꾼 두 사람이 한꺼번에 사라졌다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나무꾼이 없어졌다.

 

산신제山神祭를 잘못 지낸 게 아니요아무래도 산신이 노한 것 같아.’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으나 포수마을 촌장이 펄쩍뛰었다.

무슨 소리우리는 사흘 전부터 온 마을 사람들이 목욕제계沐浴祭戒하고 성심껏 제를 올렸소.’

말다툼이 벌어지자 두령이 포수마을 사람들 편을 들었다어리석게 산신제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포수 두 사람과 나무꾼이 죽은 사실을 방관할 수 없다고 했다포수와 나무꾼은 산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며 산의 어느 곳에 무엇이 있다는 것 쯤 알고있지 않은가그런 사람들이 죽었다면 앞으로 유령산에서 무슨 이이 일어날지 모른다그 산에는 귀신이 붙엇으니 들어가지 말라고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유령산은 함경산맥과 마천령산맥이 교차되어 있어 뭇짐승들이 드나들었다그곳에는 한국과 만주 또는 시베리아에 서식하는 짐승들이 모여들었다그런 산에 포수들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온 마을이 합동으로 산신제를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령산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사냥꾼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실종사건 조사에 반대했으나 두령과 대다수가 물리쳤다누가 실종사건을 조사하느냐에 대한 의견도 암묵적으로 결정되었다조포수다조포수는 함경산맥의 북쪽기슭의 대장간마을에 산다인구가 100명이 넘는 큰 마을인데 쇠를 다루는 불꽃이 일년내내 퉁겨나왔다대장간에서 만든 창칼과 농기구는 산간마을 뿐만 아니라 멀리 함흥이나 청진에서도 사갔다화승포도 만들었다임진왜란 때 왜적이 사용한 조총을 본따 만들었는데 성능이 우수했다대장간마을은 그 일대 산간마을의 중심이었으며 두령도 그 마을에 산다두령은 직접 화승포를 다루면서 조포수와 같은 우수한 포수를 양성했다조포수는 나이가 마흔을 넘지 않았으나 천리안千里眼과 무쇠다리를 가졌으며 축지법縮地法을 쓴다고 했다.

 

조포수가 정말로 축지법을 쓰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초인적인 일을 한 것을 사실이다조포수는 3년 전에 식인범을 잡았다그 범은 함경도의 산간마을을 돌아다니며 여섯 명의 사람을 잡아먹었는데 조포수가 두 명의 몰이꾼을 데리고 추적하여 한 달만에 강원도 연대봉에서 식인범을 잡았다태백산맥을 자아장 700리나 타고내려갔던 것이다조포수에게 쫓긴 범이 도망에 지쳐 계곡에서 쉬고있다가 화승포를 맞았다조포수를 따라갔던 몰이꾼 두 사람은 조포수를 따라가지 못 해 범사냥에 참가하지 못 했다그때부터 조포수는 무쇠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다음해에는 겨울곰을 잡았다동면을 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곰인데 동면에 들어가지 못 해 성질이 포악해지고 눈에 뜨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찢어죽이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다조포수는 혼자서 겨울곰과 대결했다화승포를 사용하는 포수는 포수의 좌우를 지켜줄 두 사람의 창꾼을 데리고 다녔는데 아무도 겨울곰과 싸우는 포수를 따라가겠다는 창꾼이 나서지 않았다지난해에는 살인강도를 잡았다마천령산맥의 산중에 살고있는 사냥꾼을 죽이고 곰쓸개와 껍질을 빼앗은 강도다밤에 마을에 들어가 강도를 했는데 마을사람들은 누가 했는지도 몰랐다그러나 조포수는 발자국을 추적하여 200리 떨어진 성진까지 쫓아가 한약상에게 웅담을 팔려는 강도를 잡았다관아에 넘긴 범인은 한 달 뒤에 참형斬刑되었다유령산사람들도 조포수의 소문을 들었다조포수를 환영하며 협력하기로 했다조포수는 사촌동생을 데리고 왔는데 지형을 잘 아는 유령산마을의 강포수가 돕기로 했다강포수도 범을 두 마리나 잡은 포수다.

한 달 전 쯤에 나무꾼 한 사람과 포수 두 명이 실종되었는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유령산에 들어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조포수는 꼼꼼한 사람이다실종된 사람들의 가족을 만났다.

 

희생된 사냥꾼은 곰사냥전문포수다나무꾼은 곰의 동면동굴을 찾아 포수에게 알려주고 돈을 받는 부업을 했다둘 다 곰과 관계있는 사람이다.

그럴른지도 모르지.’

조포수와 강포수의 의견이 같았다곰은 보기와 달리 지능이 높다동면시기에는 신경도 날카로와진다동면굴을 찾아다녔던 세 사람이 곰의 기습을 받아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동면시기의 곰은 눈에 뜨이는 것은 무조건 잡아먹었다그렇다면 세 사람의 유품이 남아있어야 한다곰은 입이 뾰쪽하기 때문에 굵은뼈는 먹지 못 한다세 사람은 유령산으로 갔다시신이나 유품도 동면굴도 없다조포수는 신중했다유령산은 뭔가 불길했다산 전체가 주변의 높은 산에 가려 그늘졌으며 낮에도 어두웠다아무 소리가 없는 것도 기분 나빴다늑대소리도 범의 포효도 없다그때 쯤 사슴의 생식기라 숫사슴들이 암사슴을 차지하려고 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시기였는데 뿔이 부딪치는 소리도 없었다짐승 뿐만 아니라 날아다니는 꿩도 벙어리처럼 울지 않았다조포수가 하오 늦게 늑대발자국을 발견했다늑대 대여섯 마리가 한군데를 빙빙돌고있었다늑대가 냄새를 맡고 땅을 판 흔적도 있었다조포수가 조사를 하다가 화살을 발견했다화살촉에는 피가 묻었다누군가 거기에서 사냥을 했고 늑대들이 피냄새를 맡은 것이다.

 

조포수는 일단 마을로 내려갔다마을사람들은 아무도 사냥을 하지 않았고 다른 사냥꾼도 보지 못 했다고 증언했다현장에서 찾아낸 화살은 자기들 게 아니라고 했다화살을 가지고 대장간으로 갔다.

이건 관아에서 만들고 관아에서만 쓰는 화살이요민간대장간에서는 이렇게 정교精巧한 화살을 못 만들어요.’

조포수는 다시 유령산으로 들어갔다유령산마을의 포수들은 조포수가 하는 일에 불만이다.

사람 잡는 곰이나 잡을 일이지 쓸데없는 조사만 하고있어.’

강포수가 마을사람들을 달랬다강포수는 조포수를 따라다니며 그가 보통포수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무꾼과 포수들이 곰에게 당했다는 증거도 없고 .’

그럼 어느놈의 짓이란 말이요유령의 짓이요?’

강포수는 대답하지 않았고 다른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모두들 침묵했고 불안에 떨었다.

조포수일행은 계속 산을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없다그러나 구릉에서 덫이 발견되었다맷돼지노루와 토끼들이 다니는 길에 정교하게 만든 덫이 설치되어 있었다주변의 눈을 치우고 살펴보니 최근에 노루가 잡힌 흔적이 발견되었다유령산의 포수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유령산에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한 짓은 아니다유령산 부근에는 다른 마을은 없다.

(화살과 덫.)

(누구일까?)

조포수는 동굴을 조사할 때는 화승포에 불을 붙였다창꾼을 앞뒤에 세웠다조포수가 유령산에 들어온지 사흘만에 계곡의 수초에 갈려있는 긴 헝겊을 발견했다여인이 한 달에 한 번 쓰는 헝겊이다조포수가 크게 놀랐다유령산에 여인들이 살고있다니 아예 유령산에 임시거처를 마련했다동굴에 문을 달고 거적을 깔았다어느 동굴 안에서 나무꾼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곰털이 있었는데 곰이 동면장소로 이용했다가 여의치 않아 버렸는데 나무꾼이 조사를 했다조사가 진행되자 마을에서는 유령의 정체가 곰의 정령精靈이라는 말이 떠돌았다만주 북쪽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곰이 사람의 조상이며 곰에게는 정령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그래서 소수민족은 매년 곰에게 고사告祀를 지냈다.

우리는 곰사냥을 하면서 곰에게 고사를 지내지 않았어산신령과 범에게만 지냈지 곰의 정령을 무시했어곰의 정령이 노한거야.’

북방민족의 전설에는 곰이 사람의 여인을 데리고 산다고 했다유령산 계곡에서 발견된 헝겊은 곰여인의 것이라는 주장이었다조포수는 곰의 정령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령산에 들어간지 1주일만에 조사를 중단했다강포수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는 조사를 중단하라고 말하고는 마을을 떠났다며칠 안으로 돌아온다고는 했으나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다.

 

조포수는 함흥에서 호벌대대장虎伐隊大將 이춘호를 만났다호벌대는 지방수령의 명에 따라 인축에 해를 끼치는 범곰 등 맹수를 사냥하는 조직이었으며 모두 10여 명 쯤 되는 사냥대다그들은 창으로 범과 곰을 잡았는데 매년 대여섯 명의 희생자가 났다그래서 대장 이춘호는 다장간마을에서 화승포를 구입하여 그 사용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호벌대는 유령산에 간 일이 없고 관아에서도 없어요.’

이춘호가 화살을 보더니 그건 장안長安의 병조창兵曹倉에서 만든 것이고 지방관리들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화살을 쓰지요?’

병조 산하傘下 관아官衙의 군관軍官이나 병조와 관련이 있는 사대부士大夫집안이지사대부집안에는 약간의 사병私兵이 있고 관아에서도 용인容認하고 있어요.’

3 - 4년 전에 의금부에서 보낸 포리捕吏가 함경도에 내려와 마천령산맥과 함경도산맥 등의 산간마을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역적의 가족과 수하手下들이 관아의 눈을 피해 산중으로 도망간 혐의가 있었다.

그런데 의금부에서 온 포리 중에 병조판서 한희준대감이 보낸 사람이 끼어있었어.’

안대감은 원수집안이었던 당시 호조판서 윤대감을 역적으로 몰아 참형斬刑했다친척들까지 모두 잡아들였으나 윤대감의 정실부인과 아들 내외 그리고 일부 친척을 잡지 못 했다.

안대감이 보낸 포리들이 그들을 찾고있었어요그들이 산중으로 도망쳤다는 말에 조사를 했으나 헛소문이라고 판명되어 돌아갔어요.’

헛소문이라는 게 어떤 것이었지요?’

윤대감에게는 수십 명의 노비奴婢들이 있었는데 그 노비들의 일부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 자유롭게 일을 하도록 방면放免했다그리고 그들이 번 돈의 일부만 받았는데 그들 노비들 중에는 함경도의 산중에 들어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그래서 포리는 노비출신 사냥꾼이 윤대감의 가족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했다.

 

장안에서 내려온 포리들은 윤대감의 가족을 숨긴 것으로 알고있는 사냥꾼노비가 3년 전에 범사냥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갔다그러나 조포수는 느낌이 이상했다유령산 일대는 한국의 오지奧地이며 짐승의 나라다사람들이 살지 못 하는 짐승의 나라인데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은 양반은 살 수 없는 곳이다조포수는 아직 잡히지 않은 윤대감의 가족의 신상을 조사했다윤대감의 아들은 서른이 좀 넘은 장년이고 군관이다무술이 뛰어나 교관을 맡았다몇 년 마다 열리는 궁중사냥을 주관했으며 고간高官을 사냥터로 안내했다그는 수하에 우수한 사냥꾼을 데리고 있다조포수는 조사결과를 혼자서만 알고 관아에 보고하지 않았다조포수는 관아나 관리를 싫어했고 양반을 존경하지도 않았다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상대를 무고誣告하고 모함하는 걸 증오했다조포수가 대장간마을 두목 박두령을 찾아갔다.

노비출신 사냥꾼이라고사냥꾼이 노비출신인지 양반출신인지는 알 수 없지노비출신이라면 자기 신분을 숨기기 때문이야범사냥을 하다가 죽었다지만 그것도 알 수 없어범사냥을 하다가 죽은 사냥꾼이 한두 명이 아니야.’

박두령이 담배를 태우다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4 - 5년 전에 범을 쫓다가 행방불명된 사냥꾼이 있었지무산일대를 떠돌아다니는 범사냥꾼이었는데 한께 사냥을 했던 사냥꾼들과 모두 같이 행방불명이 되었어.’

한 겨울에 범을 쫓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시신도 찾지 못 했다박두령은 조포수를 염려했다만약 역적으로 몰린 윤대감의 가족이 유령산에 살고있다면 아무리 조포수가 비범한 사냥꾼이라고 해도 조포수가 위험하다그들이 유령산에서 행방불명된 십여 명의 사람들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박두령은 유능한 창꾼 두 사람을 데리고 조포수가 머물고있는 유령산 산막으로 갔다사냥꾼들이 폭설이나 폭풍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였는데 조포수가 개조하여 산막으로 만들었다박두령과 조포수는 산막 주변에 세 개의 움막을 더 만들었다기습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사흘 동안 유령산은 조용했다그러나 유령산의 산정에 올라가 주변을 살피던 박두령이 말했다.

산이 너무 조용해이 산에는 꽤 많은 맷돼지와 노루들이 살았는데 그들이 꼼짝을 하지 않고있어범이나 불범의 발자국도 없는데 짐승들이 겁을 먹고 숨을 죽이고 있어.’

범이나 표범 외 다른 맹수가 산에 있다는 말이된다그게 사람일 수도 있다박두령이 강포수와 사냥꾼을 불렀다박두령이 사흘 동안 돌아다니며 만든 지도를 폈다.

보시다싶이 이 산은 바위산이야큰 바위들이 많고 암벽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있어.’

그 바위틈과 동굴에 짐승들이 살고 있다늑대너구리와 여우들이 몸을 숨겼다약육강식弱肉强食의 터다역적으로 몰려 관아의 포리에게 쫓긴다면 그런 바위틈과 동굴은 좋은 은신처가 된다맹수들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 했으므로 최상의 은신처다.

덮어놓고 바위틈이나 동굴을 뒤지는 것은 너무 위험해!’

박두령이 동굴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수상쩍은 동굴이 있었다큰 불곰이 동면했던 동굴늑대가 살고있는 동굴이 있었고 사냥꾼들이 알지 못 하는 동굴도 있었다사냥꾼은 그런 동굴을 독사굴이라고 했다령산 사람들도 독사굴은 잘 알지 못 했다.

 

박두령과 조포수가 독사굴을 조사하기로 했다화승포의 불심지에 불을 붙여놓고 독사굴에 접근했다입구가 눈과 마른 풀에 덮여있었다사람이 드나든 흔적도 없다.

여기는 아니야이런 굴에 사람이 살 리 없어!'

일행이 산막으로 돌아왔으나 그날밤 박두령은 잠을 자지 못 했다뭔가 이상했다사람의 흔적은 없는데 살기가 느껴졌다몇 십 년 동안 사냥을 한 포수에게는 보통사람에게는 없는 육감六感이 있다이튿날 독사굴 주변을 샅샅히 조사했다독사굴은 커다란 바위밑에 뚫려있었는데 바위 반대편은 높이가 수십 미터나 되는 절벽이다절벽밑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계곡으로 내려가 물줄기를 따라갔다.

두령저기를 보십시오.’

얼음이 깨졌는데 누군가 빨래를 하려고 인위적으로 깬 흔적이 보였다조포수가 상세하게 조사해보니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다발자국을 추적햇다발자국은 계곡의 상류에사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

조포수가 깜짝 놀랐다얼른 바위 뒤로 숨었다발자국이 절벽 위로 올라갔다절벽에 길이 있었다급경사를 피해 돌아오르는 산양길이다산양들이 오르내리는 매우 가파른 길이다그 절벽의 산양길 위에 동굴의 또 다른 입구가 있다.

독사굴의 다른 입구야.’

꽤 큰 동굴이다길이가 20m는 될 것 같았다.

 

독사굴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다독사굴 맞은 편에 잠복소를 만들었다한두 사람이 들어앉을 움막을 지어 독사굴을 감시했다독사글은 조용했다드나드는 움직임도 없었다밤중에 짐승 서너 마리가 주변을 돌아다녔다.

늑대들이지.’

밤눈이 밝은 조포수가 대답했다.

틀림 없습니다.’

늑대들은 동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내 도망쳤다.

늑대들이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의 기척을 알아챈거야.’

가시는 계속되었으나 아무 움직임이 없다다음날 새벽에 잠들어있는 두령을 조포수가 깨웠다밤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는데 독사굴 입구에 활 창 칼로 무장한 사람 셋이 나와 주위를 살폈다계곡으로 내려가는데 짐승처럼 민첩했다조포수가 화승포를 들어올렸으나 두령이 말렸다오굴에서 살고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인자로 몰 수는 없다독사굴에서 너온 사람은 세 시간만에 돌아왔다노루 한 마리를 어깨에 매고 돌아왔다그들이 독사굴로 들어가자 조포수와 두령이 그들의 자취를 찾아 내려갔다자국이 없다비로 쓴 흔적이 보였다노루피도 잇었다자국을 추적하여 유령산 건너편으로 갔는데 아주 정교精巧한 덫이 설치되어 있었다독사굴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그런 방법으로 식량을 해결했다.

아직은 움직일 때가 아니야.’

두령이 조포수를 제지했다독사굴은 여전히 조용하다.

 

다음날에는 폭풍이 불고 폭설이 내렸다조포수는 산막으로 철수했다튼튼한 통나무로 지은 산막이 흔들렸다사냥꾼들은 방안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는데 한밤중에 조포수가 일어났다조포수가 화승포를 들고 밖을 살폈다박두령도 화승포를 들었다.

발저국소리였습니다사람의 발자국소리였어요.’

조포수가 속삭였으나 발자국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다음날 아침에 폭풍과 폭설이 멈췄다조포수가 밖으로 나가보니 발자국이 있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으니 어쩔셈이냐?)

발자국은 당당하게 정체를 들어내고 있다섬찟하다폭풍과 폭설이 몰아친 밤중에 산막까지 올라와 주변을 돌아다닌 건 산짐승 보다 더 강한 산사람이다발자국을 추적했다역시 독사굴이 있는 계곡으로 가고 있다오후 늦게 독사굴에 도착하여 박두령이 화승포를 쏘았다연달아 서너 발을 쏘았는데 위협을 하기 위한 공포空砲.

굴 안에 있는 사람 들으시오무기를 버리고 밖으로 나오시오말을 듣지 않으면 죽게됩니다.’

응답이 없다인기척도 없다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아무도 없다은신처가 발각되자 도피해버렸다동굴은 길고 넓었다남녀의 구분을 한 방에 칸막이가 설치되었고 곰털이 깔렸다매우 쾌적하다숯으로 난방을 해서 냄새도 연기도 없다.

 

박두령과 조포수는 동굴울 상세히 조사하고 놀랐다여섯 사람이 살았고 윤대감의 아들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또 다른 두 사람이 경호를 했다엄격한 양반집 가풍이 동굴 안에서도 지켜졌다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수발受發을 들고 세 명의 남자들도 위계질서位階秩序를 유지했다은신처가 발각되지 큰마님을 들것에 싣고 정중하게 모셨다박두령은 그 효심孝心에 감동했으나 그렇다고 추적을 포기할 수는 없다. 10여 명이 행방불명되었고 그들이 피의자다독사굴에 있었던 사람들은 잡히면 모두 극형처벌을 받을 것이다역적에 몰린 집안은 멸족滅族이 된다심하면 3()가 멸족이 되고 더 심하면 9(본가本家외가外家처가妻家의 조부손 3)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다그래서 독사굴의 사람들은 자기들을 본 사람을 모두 죽였다역적의 은신처를 알고도 방치하면 불고지죄不告之罪로 처벌받는다추적을 했는데 밤이 되자 다시 바람과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화승포를 쓸 수 없다바람과 눈 때문에 불심지에 불을 붙일 수 없다추적을 멈췄다노부인을 들것에 싣고있었으므로 도피에 한계가 있다더구나 눈과 폭풍속에서 도피는 어려울 것이다산막으로 돌아왔다날이 밝앗는데도 폭풍이 그치지 않았다통나무기둥이 흔들렸다.

 

조포수가 눈바람이 좀 사그러질 때까지 추적을 멈추자고 했다그런 날씨에는 추적도 도망도 할 수 없다앞이 보이지 않았고 숨을 쉬기도 어렵다추격이나 도망 모두 다 위험하다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서 결의된 걸로 알았는데 박두령이 담뱃대를 털면서 일어났다화승포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그는 두령이었으며 아무도 반대할 수 없다독사굴에 있던 사람들을 반드시 잡겠다는 집념이다그들은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산간마을에서는 불문율을 적용했는데 살인자는 처형이다박두령이 추격자를 이런 폭설과 폭풍을 무릅쓰고 추적하려는 데는 도망자들의 목숨이었다이런 폭설 폭풍에서는 도망자들이 살 수 없다살인자들이지만 인간이 그렇게 얼어죽으면 안 된다얼어죽게 놔둘 수 없다굵은 줄을 허리에 감고 강한 바람의 벽을 밀고 전진했다앞머리에 선 조포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도망자들이 유령산 뒤 북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북쪽은 만주땅은 강풍이 불어오는 곳이다.

 

박두령이 산의 북쪽을 돌았으나 도망자들은 없었다강한 바람과 눈발로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화살이 날아왔다화살은 밑에서 위로 날아왔는데 강한 북풍을 타고 날아온 화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화살이 창꾼의 허벅지에 깊이 꽂혔다뽑아낼 수 없다활을 쏜 자들은 숙련된 사수射手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가늠하여 화살을 날린다속수무책이다화승포는 눈바람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참패다함경도 일대에서 명성을 날렸던 사냥꾼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산막으로 돌아왔다눈바람은 다음날 그쳤다산은 하얀 솜이불에 덮힌 것처럼 조용했다윤대감일가도 보이지 않았다발자국도 없다.

그런 폭풍속에서 살아있을 리 없어요모두 죽었습니다.’

창군이 말했으나 죽었다는 증거도 없다시신이나 유품도 없다이틀을 조사했으나 흔적이 없었다그런데 죽은 산간마을 유족들이 관아에 박두령이 윤댇=감댁 도망자를 알고도 고변告變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뭐라고윤대감일가가 독사굴에 숨어있었다는 말이 사실이냐?’

틀림없습니다.’

그 증거가 있느냐?’

관아의 포졸들의 태도가 어쩐지 심상찮았다고발이 들어가면 즉시 출동할 줄 알았는데 멈칫거렸다난처한 표정들이었다그럴만한 이유가 있다조선의 당파싸움은 내일을 모른다윤대감은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했으나윤대감을 지지하는 파벌이 세력을 되찾았다.

 

청진관아는 난처했다윤대감은 처형되었으나 그의 파벌은 다시 세력을 되찾았고 반대세력을 규탄했다윤대감을 역적으로 처형했던 의금부의 관리들이 파직罷職되고 있었다도피한 윤대감의 가족에게 사면령이 내려지지는 않았으나 파면의 염려가 있는데 누가 그들을 체포하겠는가그렇다고 윤대감일가의 은신처가 밝혀졌는데도 그들을 체포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공식적으로 내려오지 않는 한 그들은 아직도 죄인이다청진관아의 관리들은 어쩔 수 없이 포리를 보내기로 했으나 날씨를 핑계삼아 출발을 늦추고 있었다사실 한겨울에 산중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포리 열두 명은 신고를 받은지 사흘만에 출발했다독사굴에서 탈출한 윤대감일가는 아직 잡히지 않았으나 박두령은 수색을 멈추지 않았다박두령이 윤대감일가를 잡으려는 것은 관아의 지시에 따른 게 아니다산중에서는 관아는 힘이 없다첩첩산증 짐승의 나라에는 박두령이 다스렸다윤대감일가는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산에서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이다박두령의 부하 창꾼에게도 중상을 입혔다수색을 시작한지 열흘만에 박두령과 조포수는 유령산 뒤쪽 바위산에서 한 무리의 늑대들이 돌아다니는 걸 발견했다늑대들의 예민한 코가 무엇인가를 알아냈다늑대는 바위틈에 쌓인 눈을 파내고있었다수색대가 바위틈을 파냈더니 노파老婆의 시신屍身이 나왔다윤대감의 정부인貞夫人이고 윤대감댁 큰 마님이다단정한 옷차림이다예리한 칼로 목이 찔렸다시신 옆에 단검短劍이 놓여있었다조선의 양반부인들이 지니고다니는 은장도銀粧刀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윤대감일가가 독사굴에서 탈출하던 날 마님은 자결自決했다폭설과 폭풍 속에서 들것에 실려가다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도피가 늦어진다는 걸 알고 결단을 내렸다사대부댁士大夫宅 마님은 마지막까지 위신威信을 지켰다박두령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큰마님은 자신의 시신을 그대로 두고 빨리 도망가라고 유언遺言을 남겼을 것이다박두령이 마님의 시신을 정중하게 마을로 모셨다.

다음날유령산 남쪽의 산림에서 윤대감일가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맷돼지사냥을 한 발자국이다맷돼지는 화살을 맞아 죽은 게 아니다두개골이 깨져죽었다맷돼지는 엄청나게 큰놈이다맷돼지의 상처를 조사하던 박두령이 신음하듯 말했다.

이건 도끼꾼 털보의 소행이야.’

도끼꾼 털보는 손도끼를 날려 짐승을 잡았는데 스무 발 이내의 거리에서는 어김없이 잡았다맷돼지곰과 범도 잡았다털보는 몇 년 전 범사냥을 하러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다범에게 물려간줄로 알았다윤대감은 일부 노비를 출어 바깥세상으로 내보냈는데 털보도 그 중 한 사람이다이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도망가는 윤대감일가에 털보가 있으며 털보가 그들을 경호했다털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윤대감일가를 도피시킬 수 있다.

어떻게 하지요?’

조포수도 털보를 알고 있으며 꽤 친한 사이다.

수색을 계속해!’

털보라고 해서 무고한 사람을 죽인 죄를 묵인할 수는 없다산중의 법은 엄격하다촌장이 말했다.

털보라면 그들이 숨어있는 곳을 알만 합니다.’

도끼꾼 털보에게는 삼촌이 있었다유령산의 남쪽 산림에서 숯을 굽는 영감이다그 영감의 산막山幕이 수상하다는 말이다박두령은 영감의 산막으로 갔다산정에서 보니 산막에는 불이 타지 않았다한겨울에도 숯을 굽는데 굴뚝에 불기나 연기가 없다날씨가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살이 날아왔다화살은 정확했으며 박두령의 뺨을 스쳤다죽이려고 쏜 게 아니다.

산 아래쪽으로 도망합니다!’

윤대감댁 며느리는 영감과 함께 도망하고 윤대감아들은 털보와 남아 추격해오는 박두령을 저지하려는 의도다.

그렇다면 급하게 추격할 필요 없어!’

화승포는 눈이 내리거나 밤이 되면 무용지물이다그걸 아는 윤대감의 아들은 눈이 내리거나 어두워졌을 때만 싸움을 걸었다화승포는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눈이 내리면 화승포의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없다밤에 화승포는 겨냥을 할 수 없고 화승포를 쏘면 위치가 들어나서 집중공격을 받는다박두령은 산정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새벽에는 시야가 트이고 계곡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됐어!’

박두령과 조포수가 화승포를 들고 추격했다화승포는 활 보다 유효사거리가 훨씬 길다거리가 백 보가 넘으면 화살은 두렵지 않다날아오는 화살을 눈으로 볼 수도 있다일행 보다 앞섰던 조포수가 발포했다도끼꾼 털보가 쓰러졌다털보가 도끼를 던질 수 있는 거리는 서른 발 정도인데 조포수는 그런 거리를 주지 않았다털보가 고함을 쳤다.

나리내가 막을테니 도망가시오빨리 작은마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윤대감의 아들은 도망가지 않았다계속 활을 쏘았다그대로 두면 추격대가 희생된다화승포가 게속 발사되었다.

 

윤대감의 아들이 큰 바위 뒤에서 저항을 했으나 조포수가 바위 뒤로 돌아갔다화살이 날아왔으나 화살이 닿기 전에 화승포의 총탄이 먼저 날아갔다윤대감의 아들은 아랫배에 총탄을 맞았다쓰러졌다가 일어나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네 이놈네놈이 감히 누구에게 덤벼드느냐?’

박두령그를 살려주시오그는 훌륭한 분입니다!’

도끼꾼 털보가 박두령에게 호소했다그 자신도 허벅지에 총탄을 맞았으나 피를 토하면서 호소했다박두령이 싸움을 중지시켰다그러나 윤대감의 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아랫배를 관통한 총탄이 내장을 온통 파괴했다.

여보시오두령이라는 분내 유언을 들어주시오당신들이 쫓고있는 내 아내는 지금 뱃속에 아이를 갖고있소제발안사람과 뱃속의 아이는 살려주시오윤가의 멸종을 막아주시오.’

박두령이 윤대감의 아들을 안아올렸으나 살아날 가망이 없다내장이 밖으로 삐져나왔다박두령이 아들에게 머리를 끄덕였다약속을 지켰다박두령은 윤대감댁 작은마님을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영감과 작은마님은 산에서 탈출했다신고를 받은 관아의 포리들이 추격했으나 시늉만 냈다윤대감이 역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었다윤대감이 역적이 아니라면 그 일가가 무슨 죄가 있는가그 일가는 체포되어 다 죽었고 도망친 사람들도 다 죽었다부인도 아들도 죽었다며느리까지 죽여야 되겠는가포리를 지휘한 군관이 결단을 내려 윤대감의 마지막 가족은 도피시켰다포리들은 유령산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돌아가버렸다그 첩첩산중에서 일어난 사건은 관아의 군관이 아니라 사냥꾼 총두령이다박두령은 도끼꾼 털보를 처벌하지 않았다독사굴에 있다가 피신한 사람들도 처벌하지 않았다유령산에서 열 명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자세히 조사하니 여섯 명이었다윤대감일행은 가문의 씨를 남기기 위해서 그들을 희생시켰으나 결국 그들 자신도 희생되었다유령산의 참극慘劇은 조선의 파벌派閥정치가 만들어낸 비극悲劇이다.

 

132. 밀렵자密獵者 사냥꾼

 

1931년 6영국 런던의 동물보호협회 상임이사회는 긴장되어있었다여덟 명의 이사들이 모두 화를 냈다그들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제의한 안건을 부결시키려고 했다.

안건은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코끼리의 대량학살을 막으려던 회원들의 활동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밀렵자들에게 고용된 살인청부업자들이 회원의 일부가 중상重傷을 입는 등 위험에 빠졌다는 내용이고그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회원들의 신원身元을 보호해주고 밀렵자들의 암약暗躍을 막아줄 전문인 한 사람을 채용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사들은 우선 우선 동물애호가들이 기부한 귀중한 자금을 특정인의 보수報酬로 줄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했다동물보호운동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봉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안 된다고 했다이스들은 또 케냐에서 채용하겠다는 전문인의 이력履歷에 큰 반감反感을 가졌다영국 케냐 행정청 고등판무관이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 전문인은 20년 전 영국 육군중위로 제대한 후 줄곧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사자 36마리표범 25마리코끼리 35마리와 물소 14마리를 잡았다그 전문가는 동아프리카 철도회사의 야생동물대책반장 또는 동물보호지구의 레인져(보안관)로 일을 하였으나 혼자서 사냥도 했다케냐 산림청에서 현상금을 걸어놓은 식인사자나 표범을 잡았다그런 야생동물학살자를 어떻게 동물보호협회 전문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말인가하물며 돈을 지급하는 직원으로 채용할 수 있겠는가이사들의 의견이 일치되었으므로 회장이 부결시키려고 했다그러나 안건이 부결되기 직전에 회의장으로 뛰어든 케냐 파견 회원대표 맨슨박사의 긴급발언이 있었다맨슨박사는 영국왕실박물관 소속 야생동물전문학자다맨슨박사는 의욕적인 야생동물보호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멘슨박사가 케냐 파견 회원 간사幹事 헨리양의 업무보고서를 갖고왔다헨리양은 런던의 대학강사인데 맨슨박사의 조수다헨리양은 매우 꼼꼼한 사람으로 그 동안 일어난 일을 일기형식으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걸 읽어봐야 합니다그래야만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 해결책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사들은 그 일기를 읽어보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헨리양의 보고서에 의하면 그 당시 케냐의 사바나삼림에서는 매년 수만 마리의 코끼리들이 학살되고 있었다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코끼리 상아사자의 털코뿔소의 뿔과 표범의 껍질의 밀거래의 중심이고 특히 상아의 밀거래가 심했다영국위 케내 행정청은 법으로 밀거래 밀렵을 금지시켰으나 효과가 없고 그대로 가면 아프리카 야생동물들이 멸종될 것 같았다그래서 보호협회는 밀거래와 밀렵을 막으려는 운동을 벌였고 맨슨박사일행 18명이 케냐에 도착했다.

회원들은 도착한 이튿날 트럭과 지프를 타고 밀렵현장에 갔다나이로비 동남쪽의 차보지역이었으며차보는 흙먼지가 날리는 사바나였는데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가 살았다붉은 흙을 뒤집어 쓰고있어 붉은코끼리라고 불리웠다회원들이 사바나에 들어서자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고기 썩는 냄새다기괴한 모습의 대머리독수리 수백 마리가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날고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들이 눈이 뒤집혀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어금니가 잘린 코끼리 50여 마리가 썩고있었다원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이틀전에 백인 30여 명이 트럭을 타고와서 물을 마시려고 이동하는 코끼리를 무자비하게 몰살했다고 했다밀렵자들은 이꾼들을 시켜 어금니만 자르고 트럭을 타고 도망가버렸다현장의 원주민들이 온 마을 사람들을 총동원하여 코끼리고기를 운반했으나 체 20 마리도 운반하지 못 했다나머지 시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썩고있어서 독수리와 하이에나가 몰려들었다차보지역도 형식적으로는 동물보호지역이었으나 현장에 파견된 레인져와 부하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학살을 목겨한 원주민을 조사했으나 비협조적이다막대한 코끼리고기가 생겼기 때문이다회원들도 그저 멍하니 보고있었을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밀렵자들의 잔혹한 밀렵은 사바나에서만 저질러지는 게 아니다회원들이 다음날 나이로비거리에서 원주민 시신 두 구를 보았다밀렵자들이 사살한 시신이었는데 밀렵자들에게 고용된 일꾼이다곧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할 참이었다.

누가 원주민을 죽였느냐고요?’

검사가 두 손을 벌렸다.

뻔하지요그러나 잡아들일 수 없어요증거가 없습니다.’

검사는 밀렵자들을 살인혐의로 기소할 수 없었다밀렵혐의로도 기소하지 못 했다증인들이 모두 죽었다최근 1년 동안 차보지역에서 1000마리가 넘는 코끼리가 밀렵되었으나 기소된 자는 열여섯 명이고 그것도 대부분 밀렵자의 앞잡이 원주민이다검사는 회원들이 코끼리 밀렵행위를 없애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하자 당황했다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검사나 경찰이 회원들의 신변을 보호할 수 없다고 했다다음날 회원들이 밀렵자들의 습격을 받아 네 명이 부상당했으며 한 명은 중태다회원이 해변의 창고에 수천 개의 상아가 숨겨져있다는 정보를 받고 창고에 들어갔다경찰의 보호를 받으려고 알리면 오히려 경찰에서 정보가 새나간다는 말에 회원들 열여섯 명이 창고에 갔는데 갑자기 전기불이 꺼지고 밀렵자들이 회원을 무차별 폭행했다여회원의 코뼈가 부러지고 다른 회원은 허벅지뼈가 부러졌다분격한 회원들이 나이로비의 영국행정청 고등판무관을 방문하여 항의했으나 판무관은 방법이 없다고만 했다그저 강력한 밀렵단속 전문가를 고용하라는 말이 고작이다강력한 밀렵단속 전문가를 고용하라는 말은 여러군데서 들었는데 그들이 추천한 사람은 언제나 누구나 한결같이 한 사람이다존 코네리라는 영국인이다현지의 회원들이 상황을 상임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요청했다.

 

동물보호협회 상임이사회는 헨리양의 보고서를 거기까지 읽고 헨리양을 심문했다

미스 헨리당신은 이 코네리라는 사냥꾼이 수십 마리의 사자코끼리물소와 표범을 죽인 살육자라는 걸 알고있소?’

알고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동물학살자를 동물보호협회직원으로 채용하라는 거요?’

의장님캡틴 코네리가 죽인 동물은 모두 인축人畜을 해친 짐승입니다식인사자와 표범살인물소와 코뿔소코끼리들입니다케냐의 행정당국은 그러누 식인 또는 살인 짐승들을 박멸撲滅하기 위해 그 짐승들을 지명수배指名手配했고 현상금을 걸었지요캡틴 코네리가 죽인 짐승들은 모두 그렇게 지명수배된 흉악범들입니다만약 캡틴 코네리가 그 짐승들을 잡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인축이 더 피해를 당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동물보호단체라고 해도 식인 살인 짐승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사람의 목숨은 짐승의 목숨 보다는 귀중했다의장이 더 할 말이 없어 침묵하자 헨리양이 말을 이었다.

캡틴 코네리는 그렇게 수배된 짐승만 잡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또 무엇을 잡소?’

사람입니다코끼리르루 비롯하여 아프리카 야생짐승을 수백 수천 마리나 죽이고 밀렵의 증인들까지 암살한 밀렵꾼들을 잡았습니다.’

헨리양이 제시한 케냐 행정당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캡틴 코네리는 최근 5년 동안 모두 서른 명의 밀렵자들과 그들에게 매수된 원주민 50여 명을 잡아 기소했고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백인밀렵자 몇 명은 코네리에게 사살되었다밀렵을 단속하는 코네리를 죽이려다가 죽었다밀렵자들은 코네리를 두려워했다코네리가 나타나면 멀리 도망을 쳤다안건을 투표에 부쳤다반대하는 이사는 없다따라서 케냐에서 보호활동을 하는 회원들에게 특별보조금이 지급되었다아프리카에 온 회원들은 다음날 나이로비로 돌아갔는데 나이로비의 호텔에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투숙하고 있었던 호텔측에서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호텔측의 말로는 회원이 코네리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걸 알고 투숙객들이 모두 나가버렸다고 했다.

 

호텔에서 나간 투숙객들은 모두 밀렵과 관계된 사람들이었다밀렵자홍콩에서 온 코뿔소 거래인도 있었고 프랑스에서 온 상아밀수입자도 있었다다른 호텔에서도 회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나이로비는 그런 도시다어쩔 수 없이 차보 산림지청지소에 가까운 곳에 천막을 쳤다거기는 추방당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다음 날 인근 원주민들이 몰려왔다와캄바족인데 수렵족이고 그들은 사실상 밀렵으로 생활했다그들은 배깅 코끼리 밀렵단과 관계를 맺었다코끼리밀렵을 도와주고 코끼리고기를 얻었다회원들은 당장 철수하라는 와캄바추장의 요구르루 거부했다추장을 상대로 밀렵이 얼마나 나쁜짓인가를 설득하려는 건 쇠귀에 경읽기였다추장이 돌아가고 얼마 후 50여 명의 와캄바가 천막을 포위하고 화살이 날아왔다와캄바는 수렵족이고 활을 잘 쏘았다그들의 화살촉에는 맹독이 묻어있다코브라독 보다도 더 강한 독이다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위험하다독화살을 맞은 코끼리도 24시간 안에 죽는다급보를 듣고 인근의 산림지청 레인져가 부하들을 이끌고 달려왔으나 속수무책이다와캄바는 레인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와캄바가 북을 치면서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사나바나 저쪽에서 불빛이 보였다불빛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캡틴이 온다코네리가 오고있어!’

망을 보던 와캄바가 보고를 하자 와캄바가 당황했다금하게 철수를 하기 시작했는데 추장과 장로들은 달아날 틈이 없었다지프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천막 앞에서 급정거했다캡틴 코네리가 지프에서 뛰어내렸다키가 2m가 넘는 카카인이라는 마사이족 출신 조수 한 사람만 데리고 왔다.

 

카카인은 마사이족 특수부대 모란의 대장이다아프리카의 원주민부족은 마사이를 두려워한다모란은 침략족 마사이의 전사戰士와캄바족은 모란을 두려워한다마사이와 와캄바는 오랜 앙숙怏宿이다캡틴 코네리는 중키고 근육질의 마른 몸매이며 날카로운 눈을 제외하면 온화한 얼굴이다그는 카키색 사냥복을 단정하게 입고 긴 라이플 연발총을 가지고 있다코네릴 아첨阿諂하듯 인사를 하는 레인져를 무시하고 와캄바추장과 인사를 했다와캄바의 관례慣例에 따라 서로 무기를 내려놓고 왼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쳤다그리고 양팔을 깍지끼고 퍼질러앉아 담판談判을 시작했다와캄바들은 천막을 친 곳에서 4Km 쯤 떨어진 와캄바의 유보지留保地(자치지역)에 백인들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철수했다그리고 백인들이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와캄바 유보자 바로 옆에 천막을 친 일에 사과를 하고 다음날 와캄바를 예방禮訪하기로 했다하긴 이웃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이사를 하는 것은 백인사회에서도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다회원들은 또 예의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그들이 천막을 친 곳은 한 무리 사자가족의 영지領地며 심기가 불편해진 사자들이 포효했다우으엉우으엉하고 길게 뻗친 소리는 무단침입자를 찢어죽이겠다는 경고다.

코네리는 카카인과 신림지청에서 나온 원주민 경비원들과 천막 앞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경비를 했다사자들에게 경고하는 셈이다여기는 사람들의 영지니 딴 생각 하지말라는 경고다코네리는 트럭에 회원을 태우고 사바나 인근 원주민마을을 돌아다녔다형식적으로는 인사를 다녔으나 코끼리밀렵자들의 동태를 살폈다가끔 차에서 내려 코끼리 발자국도 조사했다코끼리무리가 이동하고 있었다코끼리는 몇 십 마리 때로는 몇 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늙은 암컷이 앞장으로 서서 남쪽으로 이동했다코끼리는 한군데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하루에 100Kg의 풀을 먹는 코끼리가 한군데서 오래 머물면 그곳은 황폐화된다.

 

그래서 코끼리들은 자기들의 먹이를 보전하기 위해 늘 돌아다녔다싱싱한 풀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애초의 장소로 돌아왔다코끼리 밀렵자들은 코끼리의 그런 습성을 이용했다원주민 사냥꾼들에게 돈을 주고 코끼리의 동태를 살피게 한 후 코끼리들이 가고있는 앞길에 잠복했다가 기습을 했다코네리와 회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자 원주민 사냥꾼들이 당황했다마을에 머물고있었던 백인밀렵자들은 도망쳤고 그들에게 협조한 원주민들은 숨어버렸다백인 밀렵자들 중에는 자기들이 직접 사냥을 하지 않고 원주민들에게 사냥을 시켜 상아만 사가는 조무래기 밀렵자도 있었는데 그 피해도 만만찮았다그들은 순진한 원주민을 밀렵자로 만들었다코네리는 그런 원주민을 용케 식별했다아직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못 한 그들은 코네리를 보면 당황하여 파하려고 했다순진함이 남아있었다코네리는 그런 친구들을 잡아 몇 마디 물었다쉽게 자백을 받아 숨겨놓은 상아를 찾아냈다그렇게 해서 회원들은 첫날 단속에서 서른쌍이 넘는 상아를 압류했다암류한 상아는 모두 불태웠다원주민들은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백인들의 보배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놀랐다왜 어떤 백인은 상아를 비싼값으로 사고 또 다른 백인은 불태워버리는가회원들이 원주민들에게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코끼리밀렵의 폐단을 설득했다자연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동물이며 씨를 말리면 결국 초원이 황폐화된다고 설득했다회원들이 그곳에 온지 5 - 6일 쯤 되었을 무렵 코네리에게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다나이로비에서 차보로 오는 신작로에 정체불명의 트럭들이 출몰한다는 정보다대여섯 대의 트럭들이 다른 차가 드믄 밤에만 움직였다트럭은 포장이 덮히고 백인들이 타고있었다산림청소속 순찰자들이 정보를 받고 출동했으나 트럭은 삼림으로 숨어버렸다원주민들이 돕고있었다순찰차가 코끼리서식지 차보의 교차로에서 기다리고있던 코네리와 만났다나이로비에서 온 순찰차에는 밀렵꾼에게 폭행을 당했던 여자대원과 그녀를 돌보아주고있는 슈나이더여사가 타고있었다슈나이더여사는 아프리카에 파견된 자원봉사대의 간사幹事고 대원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다병원에서 퇴원한 여자대원은 얼굴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나 봉사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 밀렵꾼 코린즈일당이 코끼리밀렵에 나선다는 정보를 갖고있소그 트럭에는 아마도 그들이 타고있는 것 같은데 그들을 잡기는 어려울 것 같소그 보다는 코끼리떼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 쉬울거요.’

코네리가 밀렵단속을 도와주겠다고 했다밀렵단이 코끼리떼를 추적할 것이기 때문이다대원들이 따라나서려고 했으나 대원들에게 잡힐 밀렵단이 아니다그리고 대원들은 코끼리밀렵을 호소하고 설득하는 게 임무다그들은 그 어려운 사바나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코네리가 감동했다여자 네 명을 포함하여 모두 열두 명인데 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부지런히 원주민마을을 돌아다녔다그들은 코끼리 보호운동 뿐만 아니라 구호품을 나눠주고 예방주사를 놓아주고 병을 치료했다우물도 팠다.

 

코네리는 대원들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여자대원들은 사생활침해라고 느꼈으나대원들이 천막촌을 만든지 열흘 쯤 밤 사고가 일어났다대원들은 화장실이 없었는데 한 발 천막 밖으로 나가면 허리만큼 자란 잡초밭이었으므로 화장실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사고가 난 날 밤슈나이더여사가 함께 기거하는 헨리양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경비원들이 천막 밖에 모닥불을 피우며 떠들고있었으므로 안심하고 용변을 했다그런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아주 가까운데서 발사되었다여인들은 기겁을 하고 옷을 입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는데 코네리가 뛰어들어왔다여인들이 옷을 내리고 용변을 보는 자리에 남자가 뛰어들다니 .

그대로 가만 계십시오!’

코네리가 고함을 치며 손전등을 휘둘렀다알록달록한 게 보였다여인들을 노린 표범이다표범은 심장에 총탄을 맞았으나 입을 악귀처럼 벌렸다총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뛰어왔는데 코네리가 앞을 막았다아직도 옷 입지 못 한 여인들에 대한 배려다코네리 뿐만 아니라 와캄바족 카카인도 대원들 보호에 신경을 썼다표범소동이 있은지 사흘째 되던 날 대원들이 사바나에서 코끼리를 발견했다코끼리는 떼를 지어다는데 그 코끼리는 혼자다사람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래서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았다대원들은 경호원없이 돌아다니지 말라는 코네리의 지시를 어겼다총을 가진 남자대원들이 있었으므로 꼭 코네리의 지시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코끼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코끼리가 그렇게 민첩하고 빠른 걸 몰랐다코끼리는 질풍疾風처럼 돌진했다카카인이 대원들 앞으로 뛰어나왔다코끼리와 4 - 5m 거리를 두고 대결했다코끼리의 코가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코끼리가 코를 휘둘렀다카카인도 고함을 치며 창을 휘들렀다.

 

코끼리는 코를 뻗치면 카카인을 잡을 수 있는데도 카카인을 잡지 않았다더구나 떠돌이수컷이었으며 성질이 사나왔으나 먼저 사람에게 결정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아무리 사나워도 코끼리는 초식동물이며 피를 흘리지 않으려고 했다카카인도 그걸 알고있었다뒷걸음질 치면서 사람들에게 도망가라고 고함을 쳤다그대로 그런 상태로 물러났으면 위험은 없었을 것이다코끼리도 사람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대원들 가운데 총을 가진 젊은이가 있었다평소에 총을 가진 걸 자랑하며 대원들의 보호자로 자처했는데 그가 그만 방정맞게 총을 발사했다코끼리와 거리가 불과 스무 발 밖에 되지 않았고 커다란 과녁이었으므로 자신이 있었다그는 코끼리의 대가리를 보고 총을 쏘았는데 그 때 코끼리가 대가리를 흔들었으므로 총탄이 대가리의 왼쪽 두개골을 뚫었으나 뇌를 관통하지 못 했다코끼리가 크게 분노했다코끼리는 영리한 동물이다코끼리는 누가 자기에게 총을 쏘았는지를 알았다코끼리가 바로 앞에 있는 코네리를 밀어붙이고 젊은에게 돌진했다젊은이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나머지 여지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을 쳤고 코끼리는 그를 추격했다젊은이뿐만 아니라 여자대원들이 위험했다코네리가 뛰어들면서 발포했다코끼리를 겨냥할 틈도 없었다코끼리는 덩치가 커서 급소를 겨냥해야 한다왼쪽 눈과 눈 사이의 동전만한 부위에 명중해야 연골을 뚫고 뇌를 파괴할 수 있다다른 곳에 맞으면 단단한 뼈와 두꺼운 지방 때문에 효과가 없다코네리가 본능적으로 발사한 탄환이 급소에 명중했다코끼리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잡았다코끼리를 잡았어!’

방정맞은 젊은이가 자기가 코끼리를 잡은 양 고함을 쳤으나 달려온 카카인이 주먹으로 그를 후려쳤다.

 

코네리도 화가났다방정맞은 짓으로 자기는 물론이고 대원들이 죽을 뻔 했다봉사대장이 그 젊은이를 축출했다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행동이 그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코네리의 지시에 순종했다.

다음날 아침코네리는 와캄바족마을에 갔다그 마을에는 코네리의 오랜 친구가 있다마을장로 기로긴영감이다오랫동안 사냥대대장이었고 코네리를 잘 알았다코네리와 기로긴영감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영감은 코네리가 건네준 쿠바산 시가를 태웠다그는 담배를 좋아했고 특히 쿠바산시가를 좋아했으므로 코네리는 그를 만나러갈 때는 값비싼 쿠바산시가를 특별히 주문했다코네리는 영양의 간을 꼬치에 구운 걸 먹었다그는 어린 영양의 간과 갈비살을 좋아했는데 영감은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미리 준비했다.

코네리와 영감은 사냥을 단속하는 레인져와 사냥꾼으로 만났다그러나 그들은 적이 되지 않고 친구가 되었다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았다영감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만큼만 잡았고 식량 외 살생은 하지 않았다그래서 코네리는 영감의 사냥을 단속하지 않았다.

캡틴당신은 꼬리 없는 코끼리새끼를 기억하는가?’

코네리가 웃었다. 15년 쯤 전에 그 코끼리세끼는 목욕을 하다가 악어들의 습격을 받았다그 때 마침 인근에 있었던 코네리와 영감이 비명이 들이는 곳으로 뛰어들었다코네리가 발포했다본디 레인져는 동물들의 싸움에는 간여하지 않았으나 예외다그 놈은 예전부터 아는 놈이었고 겨우 어미젖에서 떨어진 놈이고좀 당돌하기는 해도 장난이 심했으며 엉덩이를 흔들고 뛰어다닌 꼴이 매우 귀여웠다푸른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악어는 도망을 쳤고 새끼가 땅으로 올라왔다그 꼴을 보고 웃었다꼬리가 몽땅 잘려나갔다아마도 악어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10년 후 어미를 보좌할 만큼 자랐다어미는 서른 마리가 넘는 무리의 여두목이었는데 놈은 사실상 부두목이다영감이 그 새끼가 곧 영지領地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차보 동쪽의 초원은 코끼리의 먹이터다그러나 코끼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초원의 풀이 골프장처럼 짧아지면 다른 먹이터를 찾아 옮겼다반 년 쯤 뒤에 풀이 자라면 다시 돌아왔다.

지금 녹색의 영지에는 풀이 잘 자랐어요.’

영감이 사나흘 이내에 코끼리들이 돌아온다면 그 말을 틀림없다코네리가 그 사실을 밀렵단속반에게 알렸다단속반은 대원 20여 명을 녹색의 영지에 배치했다나머지 10여 명은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며 밀렵자들이 숨어있는가를 조사를 했다사실 마피아 출신 밀렵꾼 코린즈는 선발대를 원주민마을로 보내 도와줄 일꾼을 모집하려고 했다밀렵을 돕던 마을사람들이 좀 불안했다선물도 받지 않았다코네리가 왔다는 걸 알았다회원들도 밀렵을 하지도 돕지도 말라고 설득을 했다.

무엇이 어째회원들이 거기까지 들어왔다고?’

두목 코린즈가 고함을 질렀다.

 

까불면 다 없애버려코네리일당도 회원들도 다 죽여!’

마피아출신 코린즈는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였다코린즈의 선발대가 주민을 위협하여 한 무리의 코끼리떼가 녹색의 초원으로 가고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코린즈일당이 길목에 잠복했다총을 가진 백인이 여섯 명이고 협조하는 원주민을 합하면 스무 명이 넘었다사람의 허리까지 자란 풀숲에 잠복했다밀렵단속대원들은 그걸 모르고 대기하고있었다.

두목코끼리들이 오고있습니다서른 마리가 넘는 큰 무리입니다.’

하오 늦게 보초가 두목에게 보고했다그러나 보초는 코끼리무리 뒤를 따라오는 대원을 발견하지 못 했다코네리가 여섯 명의 대원을 데리고 소리없이 오고있었다.

꼬리없는 새끼가 끼어있어요.’

기로긴영감이 속삭였다두목 옆에서 따라오는 새끼는 이제 당당한 수컷이다몸무게가 6t이나 될 것 같았다코네리가 웃었다.

나리저쪽 잡초밭이 수상합니다.’

카카인의 말대로 너무 조용하다뛰어다니는 짐승이 없고 날아다니는 새는 잡초지에서는 고도를 높였다코끼리도 위험을 감지한 것 같았다두목과 참모들이 속도를 늦추면서 행렬을 정리했다위험을 감지하고 무리를 단결하여 적과 싸우려는 의도다그러나 그건 밀렵자들에게 좋은 표적이 되어 집중사격을 받았다밀렵자들이 코끼리를 포위했다도주로를 막아 전멸을 시킬 셈이다상아가 없는 새끼들도 예외가 아니다앞장을 선 숫컷들이 코를 올려 나팔을 불어 경고를 했다그러나 도망칠 밀렵꾼이 아니다앞장을 선 코끼리가 밀렵꾼들에게로 돌진했다밀렵꾼들이 발포했다.

 

그럴 경우 대원은 조급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증거가 필요하다총을 쏘았다고 감옥에 넣을 수는 없다일부 코끼리들이 희생되지만 밀렵꾼을 감옥에 보내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대원은 밀렵꾼이 코끼리를 죽일 때까지 기다렸다하지만 밀렵자들에게 돌진하는 코끼리 중에 꼬리없는 코끼리가 있었다코네리가 다급하게 고함을 쳤다.

우리는 밀렵단속반이다총을 버리고 항복하라거부하면 모두 사살한다!’

밀렵꾼이 발포했다코끼리를 겨냥한 총뿌리가 대원들을 향했다코네리도 주저하지 않았다그의 총은 미국제 윈체스터 반자동연발 라이플이다수렵용이 아니라 군용총이다연발총이 기관총처럼 불을 뿜었다비명이 들렸다.

코린즈항복하라나는 코네리다네 놈이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밀렵꾼들은 코네리라는 말을 듣고 목이 움추려들었다전의戰意를 잃고 신작로로 달아났다.

도망가면 안 돼!’

코린즈가 고함을 쳤으나 소용없다그러나 도망가는 사람을 쏠 수는 없다밀렵꾼 네 사람이 쓰러졌는데 한 사람은 총탄이 복부를 관통해서 즉사했다.

 

중상을 입은 밀렵꾼 카푸카가 애원을 했다그는 몇 년 전에 코네리에게 잡혀 감옥에 들어갔으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사람이다이탈리아인이며 코린즈의 오른 팔이다.

캡틴 코네리제발 날 살려주시오당신 수사에 협조하겠소코린즈의 조직과 배후세력을 알려주고 상아창고도 알려주겠소.’

중대한 제안이다코린즈일당을 뿌리 뽑을 수 있다죽어가는 자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캡틴날 치료해주시오치료를 받다가 죽어도 좋소.’

코네리는 카푸카를 대원의 천막촌으로 급히 수송했다.

최선을 다해보지요용태가 심각하지만 .’

의사 슈나이더여사가 코네리의 설명을 듣고 말했다복부를 관통한 총탄이 내장을 파괴했으나 응급조치를 해서 죽지만 않으면 나이로비의 병원으로 이송할 것이다다음날 아침에도 환자는 살아있었다.

선생님꼭 나이로비에 가야합니까여기서 치료받을 수 없나요치료를 받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슈나이더여사가 여기서 치료하기로 결정했다밤잠을 설치면서 치료했다사흘 째 되던 날 카푸카가 코네리를 불러달라고 하여 약속했던대로 코린즈일당의 조직과 배후를 모두 자백했다상아보관창고도 알려주었다법정에 증인으로 나서겠다고도 약속했다.

 

코네리가 나이로비의 행정청 판무관을 만나 보고했다판무관은 조급하게 처리를 하지 않았다잘못하면 수사정보가 밀렵단에게 새어나갈 염려가 있다행정청과 관계기관에도 밀렵단의 조직원과 협력자들이 있다판무관은 그들이 눈치채지 못 하게 놓아두고 감시를 했다.

코네리도 신중했다밀렵단이 숨어있는 곳과 드나드는 곳을 알고 있는데도 검거를 하지 않고 기회를 노렸다일망타진一網打盡할 생각이다코린즈는 카푸카가 잡힌 걸 모르고 있다병원을 수소문했으나 카푸카는 없었다카푸카가 죽었다고 거짓정보를 흘렸다코린즈는 행정청의 산림국장 비서로부터 카푸카가 죽었다는 정보를 들었다여비서는 코린즈의 정부情婦였는데 코네리는 그걸 알고 일부러 여비서에게 카프카가 죽었다는 정보가 흘러들어가게 만들었다.

코린즈는 나이로비 행정청의 바로 옆에 있는 영국인 변호사 사무실을 근거지로 삼고있었다거물급 변호사는 코린즈의 법률고문이다사무실에는 영국임 무역상과 홍콩에서온 중국상인들이 드나들었다영국인은 상아를 밀거래하고 중국인은 코뿔소 뿔을 밀거래했다.

나흘 후코네리 수사대가 나이로비 동쪽의 항구 몸바사에서 출항하려는 화물선을 급습했다선장과 영국인 무역상이 강하게 항의했으나 코네리는 그들의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을 가지고있었다코네리는 그들을 체포하고 상아를 압수하여 나이로비로 돌아갔다경찰이 코린즈가 숨어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포위하고 코네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이미 사무실의 구조를 알아두고 있었으므로 쳐들어갔다코린즈는 비밀통로로 도망치려다 체포되었다코린즈뿐만 아니라 핵심참모 두 명과 마침 그곳에 와있었던 산림국장의 여비서도 잡혔다같은 시간에 경찰은 중국인 코뿔 밀거래상이 숨어있는 호텔을 급습하여 중국상인과 코뿔을 압수했다그러나 그것으로 밀렵꾼과 조직이 모두 소탕된 건 아니다.

 

예상했던대로 코린즈가 숨어있었던 변호사사무실 페리변호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그는 거물급 변호사며 영국변호사협회 간부다변호사협회는 영국에서 강력한 압력단체며 그 단체에 찍혀 무사한 판사나 관리는 없다페리변호사는 다섯 명의 변호사를 고용하여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그들이 코네리를 살인죄로 고소했다밀렵단속 과정에서 밀렵자들에게 마구 발포하여 4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주장했다변호사들은 코네리가 발포하기 전에 항복하라는 경고를 한 것도발포를 밀렵자들이 먼저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변호사들은 이 기회에 코네리를 매장해버릴 계획이다페리변호사는 자기 사무실에서 코린즈를 검거할 때 폭력을 사용하여 피의자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자신도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또한 코네리가 사무실의 집기什器를 마구 파괴했기 때문에 피의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변호사의 권리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코네리가 코린즈의 오른팔뼈를 부러뜨린 것은 사실이다코린즈가 비밀문으로 도망가면서 권총을 빼들었기 때문에 총으로 그의 팔을 후려쳤다페리변호사의 폭행은 사실이 아니고 도망하는 코린즈를 쫓는 코네리의 앞을 막았기 때문에 그를 밀어부쳤을 뿐이다사무실 안의 밀렵과 밀수서류를 뒤진 것은 사실이나 파손이나 파괴는 억지다그러나 페리변호사의 진정陳情을 받은 영국변호사협회는 나이로비에 있는 법원판사들에게 강력한 압력을 행사했다피의자의 인권과 변호사의 권리를 손상시킨 수사관을 파면하고 폭력수사관이 기소한 밀수와 밀렵사건은 무죄를 선고하라는 지시다거기에다가 체포된 코린즈일당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밀수한 단체들이 막대한 자금을 뿌렸다밀렵단체밀수단체호텔업체와 여행사들이 모두 단결하였다이 기회에 밀렵 밀수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모두 추방해버릴 심산이다.

 

사실 그 사건은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밀렵의 향방을 결정지을 사건이다코끼리밀렵을 계속하려는 사람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람들의 결전이며 그 때문에 법원 주변에는 살기가 떠돌았다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코린즈일당을 기소했으나 어쩐지 자신 없는 표정이다공판 첫날부터 페리를 위시한 변호사들이 공판정을 점령했고 페리변호사가 고함을 질렀다담당검사는 기가 죽었다재판은 하나마나다변호인단은 우선 코린즈일당을 보석保釋시킬 작전이다변호인단에는 담당판사와 대학동창이 있었고 그가 나서면 보석이 허가될 것이다그런 다음 밀렵공판을 질질 끌고 연기시키며 자기들이 고발한 코네리에 대한 살인폭행과 직권남용 등 공판을 빨리 진행시켜 코네리를 구속하려고 했다변호인단의 작전대로 담당판사는 코린즈의 보석신청부터 심의했다.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갑자기 법정 밖에서 여러사람들의 고함이 들렸다코끼리밀렵자를 엄벌하고 그들을 돕는 악덕변호사는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야생동물보호협회회원들이다동조하는 시민과 원주민을 합하여 200여 명이 몰려와서 구호를 외쳤다페리변호사가 이 건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판사에게 항의했으나 군중들의 고함에 묻혀 항의가 들리지도 않았다판사는 재판을 중지하고 사흘 후에 재개하기로 했다여론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보석금을 납부하고 코린즈를 빼내려는 계획은 실패했다페리변호사는 실망하지 않았다경찰이 시위를 단속하고 영국의 변호사협회가 다시 강력한 지시를 내려 판사를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페리변호사나 밀렵자들은 야생동불보호협회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변호사협회가 강력한 압력단체고 그 힘이 무섭다는 것만 알고 야생동물보호협회가 무서운 단체인지 몰랐다영국은 본디 동물을 애호하는 나라다각종 가축은 대부분 영국에서 품종개량이 되고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도 영국이 중심이다세계의 동물보호운동도 영국이 중심이다.

 

런던에 있는 영국변호사협회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다남녀 서른 명 쯤이 요란한 구호를 외치며 들이닥쳤다그들은 야생동물밀렵자들과 한 패가 된 악질 변호사를 처벌하라고 고함을 쳤다아프리카에 파견된 회원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보호협회 본부대원들은 즉각 투쟁에 들어갔다또한 영국변호사회 본부도 아프리카 변호사회로부터 보고를 받고 나이로비에 있는 판검사들에게 압력을 하려다가 동물보호협회 대원들과 맞부딛쳤다무엇이가 좀 달랐다아프리카의 페리변호사의 주장과 보호협회 시위대의 말이 전혀 달랐다구속된 밀렵자들의 은신처가 페리변호사의 사무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변호사회 간부는 난처했다변호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다협회가 변호사의 권익을 보호하려고 해도 그런짓까지 정당화 할 수는 없다변호사회가 이 사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했다나이로비의 법원은 페리변호사가 낸 코린즈의 보석신청을 기각했고 역시 페리변호사가 제기한 코네리의 고소사건 심리를 연기했다밀렵과 밀수사건의 선고가 내려진 뒤에 하겠다는 말이다.

됐소이젠 코린즈일당을 모두 처단할 수 있겠소.’

그때까지 자신이 없었던 검사가 큰소리를 쳤다슈나이더여사가 치료한 밀렵단 부두목 카푸카가 증인으로 법정에 서면 코린즈일당은 무거운 형벌을 받게된다코린즈는 밀수혐의 외에도 살인협박 등의 혐의도 받고있기 때문에 최소한 징역 30년 선고는 받을 것이다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코네리는 회원들이 머물고있는 차보의 천막촌으로 갔다슈나이더여사와 카푸카가 거기 있는데 그들이 위험하다법정에 증인으로 나갈 카푸카가 위험하다밀렵단이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하여 자기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증인들을 죽였으며 또 그런 짓을 할 것 같았다차보의 천막촌은 광대한 초원 안에 있다주위에는 인가가 없다그렇다고 카푸카를 나이로비로 데려오는 것도 위험하다비밀장소에 두고 경비경찰을 배치해도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밀렵단이 행정청이나 경찰에도 첩자를 박아두고 있다코네리는 카푸카를 천막촌에 머물게 했다직접 경비를 하기로 했다천막촌이 있는 초원은 검은갈기라는 거대한 사자가 거느리는 사자일가 스무 마리가 살고있는데 그들은 외부인사를 싫어했다.

 

검은갈기일가一家는 그동안 천막촌의 대원들과는 친해졌다사자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역 안에 있으나 자기들을 해칠 적이 아니라는 걸 알고있었다사자들은 사람을 보고 인사를 하지는 않았으나 천막촌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른 척 외면했고 때로는 인사 대신 하품을 했다그러나 천막촌 외 사람들에게는 적대적敵對的이었다특히 총을 가진 백인들에게 그랬다따라서 살인청부업자들이 그곳에 함부러 들어오려다가는 사자의 밥이 될 염려가 있다코네리는 차보에 있는 산림청 산하傘下 산림지소도 믿지 않았다그곳 지소의 레인져는 3일 전에 파면되었다밀렵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탄로났다코네리는 카카인을 데리고 천막촌 서남쪽의 마사이마을을 찾아갔다카카인은 전에 마사이모란의 대장이었다마사이추장은 시무룩했다잘 아는 사이였으나 반갑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마사이는 아첨阿諂을 싫어했다백인을 침략자로 보고 아첨은 하지 않았다그러나 추장은 코네리와 몇 시간 동안 함께 담배를 태우면서 얘기를 하고 합의를 했다마사이는 백인 천막촌을 보호하겠다고 했다그 대신 약간의 보수를 받기로 했는데 그 보수 때문에 합의를 한 게 아니다마사이는 동물을 해치지 않았다마사이는 유목족이다와캄바와 같은 수렵족이 아니다야생짐승고기를 먹지 않는다방목을 하는 소의 젖이나 피를 상식하고 별식으로 짐승고기를 먹었다그래서 마사이는 야생동물 보호대원에게 적의敵意가 없다.

알았다캡틴의 요구대로 모란 30여 명을 보내겠다보수는 하루 소 네 마리다.’

모란은 카카인이 지휘했다카카인은 전에 모란의 대장이었고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 경비는 염려가 없다천막의 대원들은 마사이를 보고 기겁을 했다벌거벗은 몸에 울긋불긋 칠을 하고 창과 방패를 갖고 있었는데 눈빛이 날카로왔다.

 

코네리는 근 100년 동안이나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린 밀렵이 쉽게 뿌리를 뽑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들은 반격해올 것이다막대한 자금을 가진 국제밀거래단이 앞잡이 코린즈일당을 소탕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들은 마피아와 살인청부업자를 지휘하고 원주민들과도 손을 잡고 있다원주민 중에는 밀렵단의 간부가 된 자도 있다.

와캄바 타르키는 백인들처럼 양복과 구두를 신고 선그라스를 끼고다녔다총도 있다그는 자기마을에 돈을 뿌렸다친척과 친구 여섯 명을 모아 사냥대를 만들었다사자를 잡겠다고 했으나 사람사냥대다밀렵단 부두목 카푸카와 대원들이 목표다그들은 사자사냥을 하는 체 하며 천막촌 주위를 돌아다녔다기회를 엿보고있었다타르키는 어느날 새벽에 천막촌 인근 숲에서 천막촌을 경비하는 대여섯 명의 마사이를 만났다.

(이거재미없는데 .)

마사이와 와캄바는 옛날부터 앙숙이다두 부족은 상대를 노려봤다와캄바는 마사이와 싸움을 피했으나 그때는 좀 달랐다와캄바가 총을 가지고있었다마법魔法의 무기武器와캄바가 마사이의 앞길을 막아섰다보라는 듯 총을 들어올렸다겁을 먹고 물러설줄 알았는데 그런 시위示威로 물러날 마사이가 아니다마사이가 코웃음쳤다아니꼬운 친구들이다백인 흉내를 내어 선그라스 따위를 끼고 건들거리며 돌아다니는 꼴이 비위가 거슬렸다마사이는 물러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밀고들어왔다와캄바가 당황했다타르키가 총을 들어올렸으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마사이가 창대로 총을 후려갈겼다번개처럼 달려들어 주먹으로 타르키를 갈겼다난투亂鬪가 벌어졌으나 1분만에 끝났다마사이가 와캄바를 모두 때려눕혔다타르키는 팔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부어올랐다보물처럼 아끼던 총도 빼앗겼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타르키 등 와캄바건달을 사주使嗾한 자는 이탈리아계 밀렵꾼 쿠르트다쿠르트는 코린즈의 직계부하였는데 자신은 밀렵을 하지 않고 뒤처리를 맡았다배신자를 죽이고 증인을 없애버리는 일을 했다쿠르트는 소음기消音器가 달린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30m 거리에서 수박이나 야자를 정확하게 명중시켰다쿠르트가 타르키의 실패소식을 듣고 직접 나섰다어떻게 해서라도 배신을 한 부두목 카푸카가 법정에 나오지 못 하도록 하고 대원들에게 겁을 주어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 하게 만들려고 했다쿠르트는 나이로비의 뒷골목 두목 케슬을 데리고 갔다케슬은 장거리사격을 잘 하는 암살자다몇 백 미터 거리에서 사람을 쏘아죽였다쿠르트와 케슬은 다른 부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자동차도 타지 않고 걸어서 초원으로 들어갔다날이 어두워질 무렵인데 광대한 초원에는 아무도 없었다망원경으로 천막촌을 살폈다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올라오고있었다.

저기야저기 숨어서 보자.’

천막촌에서 300m 쯤 떨어진 곳에 흰개미집이 있었다높이 2m 정도의 피라미트탑이다조심스럽게 기어서 흰개미집에 숨어 다음날 아침에 기습할 계획이다새벽은 경계심이 소홀헤지는 시간이다.

조용해!’

케슬이 모기와 개미 때문에 몸부림을 쳤다담배도 술병도 쿠르트에게 뺏겼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어디서 소리가 났다나직하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리다사자들이다가까운데 있다그 소리를 순찰중인 마사이도 들었다카카인은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경고다자기 영토를 침입한 자에 대한 무서운 경고다침입자도 그 경고를 알아들었다케슬의 총을 잡고있는 손이 떨렸다.

 

쿠르트는 케슬을 데리고온 걸 후회했다그는 도시의 암살자고 사냥꾼이지만 사바나의 사냥꾼은 아니다.

형님술 한 모금만 주시오.’

그의 정신상태로 봐서 술이 필요했다쿠르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병을 넘겨주었다.

날이 어두워졌다천막촌의 불빛이 보였다불빛으로 사람을 식별할 수 있고 카푸카는 아직 병실에 있을 것이므로 찾을 수 있다그런데 또 다른 불빛이 명멸明滅했다암살자들이 숨어있는 흰개미집 주위에 파란불빛이 어른거렸다사자의 눈빛이다사자들이 천천히 접근해왔다사자들은 흰개미집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으나 냄새는 맡았다사람냄새와 화약냄새다.

내버려둬놈들은 덤비지 못 해!’

쿠르트가 속삭였다아프리카 사자들은 사람에게 함부로 덤비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었다사자가 사람을 보면 슬그머니 피하거나 도망친다는 말이다맞는 말이다사자가 사람을 보고 덤벼든다는 말은 좀 과장되었다그러나 그곳은 사자들의 영토다사람들이 사자의 영토를 침범했다더구나 그때는 밤이었다사자는 야행성동물이다먹이사냥도 밤에 한다사자는 감정적인 동물이었으며 울분을 풀기 위해 살육을 했다대여섯 마리의 사자들이 15m까지 다가왔다더구나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불빛이 앞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뒤에서도 대여섯 마리가 다가오고있었다암살자들의 공포와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케슬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딸칵하는 소리가 사자를 자극했다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금속성이다정면에서 다가오는 사자들이 고함을 질렀다전지빛에 아가리를 벌린 사자의 대가리가 보였다케슬이 발포했다. 200m 거리에서 어김없이 급소를 맞추는 사수였으나 10m 거리에서 빗나갔다.

 

전지빛에 반사된 사자의 눈빛 때문이었다순간적으로 반짝인 눈빛은 이 세상 짐승의 눈빛이 아니었다그 눈빛이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켰다캐슬이 쏜 총탄은 사자의 대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사자가 케슬에게 덮쳤다마치 대포알 같았으며 쿠르트가 총을 쏠 틈이 없었다캐슬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사자는 덤벼들어 가볍게 앞발치기로 캐슬의 머리를 쳤는데 치명상이다머리를 언저어놓은 사람의 목은 너무 가늘고 약하다캐슬은 목뼈가 부러졌다그 사이에 쿠르트가 발포했으나 총탄이 급소를 맞추지 못 하고 사자의 아랫배를 뚫었다사자는 제 2탄을 발사하려는 쿠르트를 덮쳤다먼저 총을 후려쳤다쿠르트의 총이 멀리 날아갔다.

사람 살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그때 앞에서 전지불이 켜지고 코네리가 달려왔다사자들의 울부짖음과 사람의 비명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짐작한 코네리가 단숨에 달려왔다.

엎드려!’

코네리의 윈체스터가 불을 뿜었다사자는 일어나지 못 했다총탄이 두개골을 파괴했다쿠르트는 엎드린 체 벌벌 떨었다케슬은 이미 절명했다뼈가 부러진 목이 축 늘어지고 피거품을 내뿜고 있다.

이틀 후 나이로비가 떠들썩했다코끼리밀렵단 두목 코린즈와 밀거래단이 줄줄이 법정에 끌려나왔다모두 스무 명이 넘었는데 그들의 변호인단은 활동을 할 수 없엇다밀렵단의 부두목 카푸카가 증인석에 앉아있었고 그 곁에 밀렵단의 간부 쿠르트도 앉아있었다변호인단이 재판 연기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소가 있는 중심가에서는 또 다른 소란이 벌어졌다. 100여 명이나 되는 보호협회 대원들이 밀렵단과 밀거래자들을 엄벌하라고 데모를 했다밀거레단이 숨겨놓은 상아를 불태웠다. 100개가 넘는 상아가 화염에 싸였다보호대원과 밀렵단들과 싸움은 보호대원의 승리로 끝난 것 같았다.

 

밀렵단의 두목 코린즈는 궁지에 몰려있었으나 거물 변호사 페리는 아직도 그를 구출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보호단대원들이 날뛰고 있어도 모든 것은 판사가 결정하고 케냐에서 가장 유력한 변호사인 자신이 판사를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밀렵자 전문 코네리가 20여 명을 구속하여 법정에 세웠지만 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사람은 판사다페리가 코린즈에게 말했다.

이봐그렇게 증인들을 노리면 안 돼부드럽게 인사해웃으면서 옛 우정을 상기시켜.’

코린즈는 자기를 배신한 부하들을 찢어죽이고싶은 감정을 누르고 부드럽게 웃었다.

카프카오랜만이군자네가 살아있다니 정말 반갑구만쿠르트도 살아있고 재판이 끝나면 우리 한 잔 하자구옛날처럼 한탕 벌이는거야.’

카프카는 냉정했다두목 코린즈는 아랫배에 총탄을 맞고 죽어가는 자기를 버리고 도망갔다자기를 살려낸 것은 캡틴 코네리와 슈나이더여사다증언대에 선 카프카는 낱낱이 증언했다무서운 얘기였다코끼리밀렵꾼들이 얼마나 잔인한 범죄조직인가를 밝히는 증언이었다아프리카의 밀렵 현장을 밝히는 중대한 증언이다

코린즈는 서른 마리나 되는 코끼리들을 모두 죽일 계획이었습니다코끼리뿐만 아니었습니다그는 캡틴 코네리와 단속반도 죽여버리라고 지시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캡틴 코네리를 죽이려고 먼저 발포했습니다우리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그에게 무조건 발포를 했습니다.’

쿠르트와 다른 밀렵꾼들이 그 증언을 뒷받침했다페리변호사가 반대심문을 하면서 카프카가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주장하자 카프카는 자기들이 코끼리밀렵을 계획하고 의논한 장소가 바로 페리변호사의 사무실이었다고 증언했다그리고 페리변호사는 밀렵단으로부터 막대한 월정액의 보수를 받고있다면서 사실상 밀렵단의 배후라고 폭로했다페리변호사가 당황했다그 증언으로 코린즈의 범죄행위가 확인되었을 분만 아니라 자기 지신도 위험했다그는 그 사건의 수사관 코네리를 살인혐의로 고소했는데 그 증언으로 코네리의 무죄가 판명되었다사흘 후에 판결했다아프리카의 코끼리밀렵단 두목 코린즈와 일당에게 징역 10년에서 30년이 선고되었다관련된 밀수업자들에게도 중형이 내려졌다페리변호사는 아프리카에서 추방되었다.

 

133. 물바다가 된 삼림森林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은 어느 강이냐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아마존강나일강 또는 미시시피강이라고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사실 미시시피강이 좀 길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일강이나 미시시피강의 수량水量을 합쳐도 아마존강의 1/ 4이 못 된다아마존의 평균 유수량流水量은 초당秒當 17만 5000m²이며 미시시피강의 10배다.

아마존강에서 반출搬出되는 다갈색茶褐色 탁류濁流는 대서양에 들어가서도 320Km까지 그대로 바다를 지배한다홍수가 졌을 때 아마존강물은 네델란드에 풀어놓으면 저지대인 그 나라는 하룻만에 바다가 된다아마존강은 평균 5Km의 강폭을 유지하며 남미대륙의 2/ 3를 지배한다남미대륙의 북쪽은 거의 다 아마존유역이다아마존강에는 둑도 없고 다리도 없고 일정한 수로도 없다그 강은 멋대로 흐르며 아침에 지나갔던 수로로 돌아오지 못 하는 경우도 흔하다이런 강에 장마가 지면 어떻게 될까폭포같은 장대비가 몇 날 며칠 쏟아지면 강폭 몇 백 미터의 강줄기가 사라져버리고 그보다 훨씬 더 큰 강줄기가 열대다우림 안으로 쏟아져들어간다그리고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호수와 습지가 생긴다물론 삼림은 사라진다그렇다면 그 삼림에 살고있었던 동식물은 어떻게 될까그리고 새로 생긴 강호수와 습지에는 어떤 동식물이 들어올까?

1932년 6아마존강 중류에서 가지를 친 지류 주루아강 상류에 있는 인디오마을에 열 명 쯤 되는 영국학자들이 머물고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그 문제를 조사했다아마존강에 의해 침수된 열대다우림의 생태변화가 그들의 연구과제다그때의 장마는 그리 많지 않았고 침수지역도 넓지 않았다열대다우림으로 쏟아들어온 물줄기는 다시 본류로 빠져나가고 60km²쯤 되는 호수와 습지가 생겼다깊이는 20m 쯤이고 얕은 곳은 사람의 키 만 했다비가 그친지 3일만에 마을사람들과 함께 높은 곳으로 피난했던 연구대원들이 새로 생긴 호수에 갔다호수는 잔잔하고 맑았다신기한 일이다남미 어디를 가도 다갈색인데 그 호수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여자대원들이 손뼉을 쳤다.

 

신을 벗고 호수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고함소리가 들렸다.

안 돼물에 들어가면 안 돼!’

연구대원을 안내하는 리카르 가르토가 손을 흘들며 달려왔다가르토는 스페인계 브라질인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면 동물을 사로잡아 세계 여러 동물원에 파는 사냥꾼이다그는 주로 아마존의 동물을 잡아 팔았다가르토는 누구 보다 아마존을 잘 알았으며 인디오사냥꾼들도 알아주는 사냥꾼이다가르토가 여자대원들에게 말린 이유는 그날 하오에 밝혀졌다여자대원 대신 원주민여인이 희생되었다악명높은 아마존의 식인 미꾸리 칸지루다칸지루는 몸길이가 2Cm 정도인 메기종류인데 몸이 가늘고 투명해서 눈으로 발견하기 어렵다칸지루는 아마존의 물에 들어온 사람이나 동물의 요도尿道나 항문 또는 질구膣口로 들어가 피를 빨아먹는다칸지루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면 그 사람은 죽는다그때도 이웃마을 처녀가 칸지루에게 당했다는 급보를 듣고 여의사 그로린저아가 달려갔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질구를 통해 몸안으로 들어간 칸지루를 제거하려면 개복開腹수술을 해야 했는데 인디오여인은 결국 죽었다삼림에 물이 들어와 생긴 호수에 맨 먼저 들어온 침입자는 바로 칸지루였는데 칸지루와 함께 3대 괴물怪物로 꼽히는 식인고기 피라냐도 들어왔다피라냐는 붕어처럼 생긴 물고기인데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톱니같은 이빨이 있다수백 마리가 몰려다니며 맷돼지 같은 동물은 10여 분만에 뼈도 없이 사라져버린다그런데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것은 수초에 조용히 숨어있기 때문이다.

저녁반찬을 마련하려고 인디오여인들은 낚시를 했다못을 구부려 만든 낚시에 짐승고기를 꿰어 던졌는데 물이 부글부글 끓었다수백 마리의 피라냐가 몰려들었다여인들은 불과 10여 분만에 수십 마리를 낚았다피라냐는 맛이 좋으며 인디오에게는 부식꺼리다.

세 번째 괴물은 전기뱀장어다보통 뱀장어 보다는 길고 굵은데 눈이 허옇게 뒤집혀서 보기에도 징그럽다자기가 방류하는 전기에 감전되어 눈이 허옇게 멀었다.

 

전기뱀장어는 수심 1m의 물가에 나왔다회갈색의 몸을 낙엽 밑에 숨어있다그래서 눈에 띄지 않아 아마존을 잘 안다는 가르토가 실수를 했다가르토는 원주민과 함께 유목流木을 모아 뗏목을 만들려고 했는데 허리깊이의 물속으로 들어간 원주민이 갑자기 넘어지며 눈동자가 뒤집혔다그 순간 가르토 자신도 찡하는 충격을 받았다거리가 6m가 되는데도 감전이 되었다다행히 쇼크가 크지 않아 회복이 되었으나 원주민은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굳어져 물 위에 떠있었다놀란 대원들이 물에 뛰어들려고 하자 가르토가 고함을 쳐 제지했다전기뱀장어는 한 번만 방전하는 게 아니라 연달아 방전을 할 수 있다감전된 원주민은 죽은줄 알았으나 한 시간 쯤 뒤에 소생해서 제발로 걸어나왔다젊고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있어서 소생했으나 체력이 약했다면 죽었을 것이다전기뱀장어는 음흉하다학자들은 뱀장어가 자기방어를 위해 방전을 한다고 했으나 먹이사냥에도 사용했다먹이에 슬그머니 다가가 갑자기 방전을 하여 잡아먹었다.

캡틴 가르토가 다음날 뗏목을 완성했다통나무를 나무줄기로 연결하여 넓이 두 평 쯤 되는 뗏목을 완성했다서너 명이 쉴 수 있고 모기장을 쳐서 잠을 잘 수도 있다그러나 튼튼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가르토가 대원들에게 밤에는 호수에서 나오라고 했다그런데 그날밤 어두워질 무렵에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아마존의 절대자 재규어기 참살을 당했다물바다가 된 삼림에 재규어 세 마리가 살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수놈이 호수를 지배했다.

 

재규어는 물바다가 된 영토에 미련이 있었다호수 주변에는 먹이가 몰려들었다큼직한 먹이 맥과 세계에서 가장 큰 쥐 종류인 카피파카가 물을 마시려고 왔다그래서 재규어는 호수가에서 돌아다녔다고양이과 동물이라 본래 물을 싫어했으나 아마존의 재규어는 헤엄도 잘 치고 물고기도 잡아먹었다재규어는 그때 물속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몰랐다호수가에는 유목들이 떠있고 그 유목 사이에 악어가 숨어있었다아마존에는 카이만이라는 소형 악어가 있었는데 그 호수에는 원주민들이 자라카레라고 부르는 몸길이 7m, 몸무게 800Kg의 악어가 숨어있었다가르토는 악어가 호수에 들어온 걸 몰랐다.

뗏목을 타고 호수에 나갔던 대원들이 재규어와 악어의 싸움을 목격했다재규어는 물 깊이가 60Cm 정도의 물속에 있었는데 2 - 3m 앞의 유목 사이에서 움직이는 동물을 발견했다뭄길이 3m 정도의 카이만악어는 재규어가 먹이로 삼았는데 유목 사이에서 나타난 악어는 괴물이었다놀란 재규어가 물을 차고 뛰어올랐다바닥이 미끄러웠으나 2m 쯤 도약跳躍했는데 놀랄 일이 벌어졌다재규어가 뛰어오른 순간 악어도 뛰어올랐다악어는 공중에서 재규어의 뒷다리를 물고 물속으로 끌고들어갔다재규어도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았다평소에 카이만을 먹이로 잡아먹었으므로 악어의 약점을 알고있었다재규어기 악어의 목을 노렸다목을 물어 땅 위로 끌어올릴 작전이다그러니 그 거대한 악어에게 그 작전은 통하지 않았다재규어의 힘으로 800Kg이나 되는 악어를 끌어올릴 수 없다도리어 재규어의 뒷다리를 문 악어는 재규어를 더 깊은 물속으로 끌어당겼다날카로운 발톱으로 악어의 배를 할퀴면서 목줄을 노렸으나 악어가 몸을 회전했다재규어의 뒷다리를 물고 프로펠라처럼 몸을 회전시켰다몰보라가 날리고 소용돌이가 일었다물색깔이 붉게 변했다배가 찢긴 재규어의 내장이 길게 삐져나오고 고기덩어리가 둥둥 떴다삼림의 왕 재규어가 처첨하게 참살을 당했다그날의 싸우믕로 호수는 악어의 영토가 되었으나 며칠 후 대원들은 호수의 가장자리에서 수천 마리의 피라냐들이 날뛰는 걸 보았다거대한 아나콘다가 먹이였다호수변에는 나무들이 가지를 뻗고있었는데 아나콘다가 나뭇가지에 몸을 감고 수면을 노렸다아나콘다가 피라냐에게 당할 수는 없었는데 아나콘다는 피라냐에게 당한 게 아니라 악어와 영토다툼을 하다가 악어에게 졌다아나콘다에게 악어는 너무 컸다아나콘다가 악어의 몸을 감기 전에 악어가 아나콘다의 몸을 두 동강이를 내버렸다악어가 이겼으나 어부지리漁父之利는 피라냐다.

 

물바다가 된 삼림은 악어의 영토다주루이강의 악어들이 모두 몰려들었다호수 주변의 땅까지 악어의 영토가 되었다원주민은 사냥터를 잃고 굶주렸다더구나 악어는 호수가에서 노는 아이들까지 잡아먹었다원주민은 대책을 세우지 않고 팔자소관으로 치부했다악어사냥도 하지 않았다위험하고 소득도 없다껍질이 거칠어 팔리지 않고 고기는 질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 한다몇몇 원주민들이 통나무배를 타고 악어를 추격햇으나 악어는 갈대숲에 숨어버렸고 더 이상 추격을 못 했다숲에 숨은 악어가 통나무배를 꼬리로 가격하면 통나무배는 쉽게 뒤집어져버린다몸무게가 1t이나 되는 악어의 꼬리치기는 가공할만한 힘이다마을은 침통했다아마존의 전설은 인내와 기다림은 슬픔을 지워주고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말이 있었는데 사흘 후에 희망이 생겼다너무 많은 악어들이 몰려들자 악어들 사이에 주도권쟁탈이 벌어졌다발이 잘리고 어떤 놈들은 죽었다.

 

악어는 무리를 지어 살고있었으나 악어의 무리생활은 다른 동물과는 좀 달랐다악어는 개성이 강한 동물이며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어울리지 않았다악어는 서열의식이 강했으며 사사건건 서로 싸웠다대체로 나이가 많고 덩치가 큰 놈이 싸움에서 이겼으나 그 지위가 안정되지 않았다악어드이 싸우고있을 때 강에 나갔던 어부들이 돌아왔다어부들이 환성을 질렀다길보吉報였다.

틀림없어페시포드를 봤어열 마리나 되는 페시포드가 우리에게 인사를 했어.’

아마존에는 신비스러운 동물들이 살고있었고 페시포드도 그 중 하나였다원주민드은 페시포드를 사랑의 마어魔魚라고 했으나 페시포드는 고기가 아니다가르토는 페시포드가 돌고래의 일종이라고 했다원주민들이 돌고개를 사랑의 마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돌고래가 사람들하고 아주 친하게 면서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고 믿었다아무튼 호수 바로 앞으로 흐르는 강에서 페시포드를 봤다는 어부들의 말을 듣고 그날밤 마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잔치에는 이웃마을 사람들도 초청되었고 대원들까지도 갔다돼지를 몇 마리나 통째로 구웠고 자라요리와 자라알요리도 나왔다도대체 페시포드는 어떤 동물일까잔치판에는 페시포드가 등장했다페시포드로 가장한 춤꾼들이다페시포드는 주둥이가 뾰쪽하고 젖가슴이 불룩하게 사람처럼 불거져나왔다연분홍과 회색이었는데 아랫배는 모두 흰색이다아름답고 먹이 있었다.

페시포드가 어떤 동물이며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환영하는 것입니까?’

페시포드는 우리들의 친구지친구니까 적을 죽이지.’

추장이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다음날 새벽원주민들이 통나무배를 타고 페시포드를 환영하러 나갔다가르토와 대원들도 따라나갔다삼림을 삼킨 호수는 주루이강과 좁은 수로로 연결되어있었다강폭 20m, 깊이 5 - 6m의 수로였는데 그 수로를 통해 물고기들이 드나들었다그 수로로 통나무배가 빠져나갔다주루이강은 흙탕물이었다.

저것봐저기 있잖아.’

열 마리 쯤 되는 페시포드가 뛰어놀고 있었다경쾌하게 물살을 가르며 3 - 4m나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공중제비를 넘었다.

안녕페시포드!’

사람들이 손을 흔들자 페시포드가 좋아라고 돌진해왔다굉장한 속력이었으며 시속 20 - 30Km 정도다페시포드는 킥킥소리를 지르며 통나무배 주위를 맴돌았다물고기를 던져주니 먹지 않고 가지고 놀았다통나무배가 페시포드를 수로로 유도誘導했다넓고 깊은 강에서 사는 그들이 따라올까 염려했으나 페시포드는 주저없이 통나무배를 따라왔다네 마리가 따라왔다통나무배와 페시포드가 호수 안으로 들어왔다호수 주변에서 원주민들이 손을 흔들었다무대에 등장한 주연배우에게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이었다그러나 대원들은 긴장했다호수에는 수십 마리의 악어들이 있다악어들이 물 위에 대가리를 내밀고 페시포드를 노려보고 있다페시포드는 몸길이가 2m 쯤이고 몸무게도 200Kg이 넘지않았는데 악어는 그 몇 배다철갑鐵甲옷을 입은 거대한 괴물에게 페시포드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악어는 물에서 움직이는 동물에게는 무조건 덤비는 살육자다그런 악어가 자기들의 영토에 들어온 침입자를 보고만 있을 리가 없다악어들이 천천히 다가왔다두목이 앞장을 섰다대결을 피할 수는 없다결과는 뻔하다한쪽은 지구를 지배했던 파충류爬蟲類의 왕이고 다른쪽은 지상地上생활을 했다가 다시 물로 되돌아간 고래종류다몸길이는 악어가 6m, 돌고래는 2m, 몸무게는 악어 800Kg, 돌고래는 100Kg이다돌고래는 뾰쪽한 주둥이에 가지런히 난 이빨이 앙징스러우나  악어는 길게 찢어진 아가리에 톱니같은 이빨이 수십 개 있다악어는 그 길게 찢어진 아가리로 돌고래쯤은 한 입에 두 동강을 낸다굵고 긴 꼬리도 악어의 무서운 무기武器악어의 꼬리치기에 걸리면 웬만한 통나무배는 뒤집어진다꼬리에고 칼처럼 날카로운 비늘이 박혀있어 돌고래쯤은 꼬리치기 한 방으로 박살이 난다악어는 철갑옷을 입었는데 돌고래는 털도 없고 비늘도 없는 매끄러운 피부다.

도망가빨리 도망쳐!’

구경하던 원주민들이 고함을 쳤으나 페시포드는 도망가지 않았다장난을 치고있었다그런데 뜻밖에 악어두목이 덤벼들지 않고 속력을 늦췄다조심스럽게 접근하려는 태도다더 놀라운 일은 페시포드의 선제공격先制攻擊이었다페시포드는 주저하지 않고 악어에게 돌진했다굉장한 속력이다페시포드가 맨 앞장 선 두목악어를 들이받았다철갑옷을 입고있는 괴물과 육탄전肉彈戰을 벌이자는 것인가돌진한 페시포드가 충돌을 피해 스치듯 악어 옆을 지나갔다악어가 당황하여 몸을 비틀었다악어의 몸을 스쳐간 페시포드는 깊이가 1m도 되지 않은 물가 가까이에서 몸을 틀어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마치 자기 기술을 뽐내는 곡예사曲藝師 같았다몸을 돌린 페시포드가 다시 두목악어에게 돌진했다악어는 다시 돌진해오는 악어를 보고 당황했다악어가 몸을 비틀면서 꼬리를 휘둘렀다소용돌이가 일어나고 물보라가 튀었다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직전에 페시포드는 악어의 꼬리치기를 피해 공중으로 도약하여 악어의 머리 위를 가볍게 타고넘었다악어의 머리를 타넘은 페시포드가 10m 쯤 질주하다가 다시 몸을 돌려 악어에게 덤벼들었다악어는 페시포드가 가진 민첩성이 없다균형을 잃고 허둥대다가 균형을 잡자마자 페시포드가 3차공격을 했다이번에는 물밑에서 악어의 하얀 배부분을 공격했다페시포드는 새의 부리처럼 뾰쪽하고 단단한 주둥이로 악어의 배를 찔렀다빠르게 질주하며 가속도가 붙었으므로 악어는 큰 충격을 받았다악어의 몸이 뒤틀리고 하얀 배가 뒤집어졌다몸이 뒤집힌 악어는 전의戰意를 잃고 도망을 쳤다두목의 체면 따위는 아랑곳없이 땅으로 기어올라갔다그러자 다른 세 마리의 페시포드가 물가에 몰려있는 악어들에게 돌진했다대여섯 마리의 악어들이 네 마리의 페시포드에게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받아 모두 땅위로 도망을 쳤다두목이 무참하게 도망을 친 걸 보고는 무조건 항복했다페시포드가 땅위에까지 추격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페시포드와 악어의 싸움을 보고있던 원주민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며 환성을 질렀다페시포드를 평화를 상징하는 온순한 동물로 알고있었는데 무서운 투지를 지닌 용감한 전사戰士가르토가 웃으면서 설명했다문제는 지능知能이다악어는 파충류였으나 페시포드는 몇 단계 높은 포유동물이다원숭이와 비슷한 수준이다거기다가 페시포드는 고도로 발달된 감각을 지녔다사람 보다 예민했다페시포드는 몇 Km나 떨어진 소리와 냄새를 감지한다.

 

아마존의 페시포드는 악어가 덩치만 컸지 머리가 나쁘고 동작이 느리다는 약점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다악어를 만나면 일부러 다가가서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놀렸다땅위로 도망친 악어는 페시포드가 강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으나 페시포드는 밤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았다그래서 악어는 밤이 되었으나 물속에 들어가지 못 했다파충류는 자기 몸에서 열을 내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이 없다아마존은 낮에는 40도였으나 밤에는 기온이 10도로 뚝떨어졌다그래서 악어는 밤에는 물속에 들어가 추위를 견뎌냈는데 페시포드가 악어들의 거동을 감시했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지 못 했다사람들은 그제야 페시포드의 의도를 알았다페시포드가 우발적으로 악어를 공격한 게 아니라 악어를 아예 호수 밖으로 쫓아내고 호수를 점령할 의도였다악어는 결국 철수했다엉금엉금 기어서 수로로 나가 강으로 쫓겨갔다악어가 쫓겨간 날 원주민들은 이제 악어가 없어졌으므로 고기를 잡으려고 호수에 갔다사람들이 물가에 나타나자 페시포드가 흥분했다페시포드가 한 줄로 늘어서 사람들이 있는 물가로 돌진했다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물처럼 한 줄로 줄을 지어 물고기를 몰고왔다빠져나가지 못 한 물고기들이 땅으로 튀어올랐다손바닥만한 식인어 피라냐도 있고 팔뚝만한 메기도 있었다메기는 호수의 밑바닥에 살았는데 페시포드는 일부러 호수밑바닥을 훑었다원주민어부들은 페시포드가 자기들을 위해 고기를 몰아왔다고 웃었다평소에도 페시포드는 어부가 쳐놓은 그물로 고기를 몰아주었다뿐만 아니라 페시포드는 큰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어부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페시포드는 우리들의 친구지친구이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려고 해.’

몇 달 전 장마가 졌을 때 루르아강변에서 놀던 페시포드가 실수를 했다너무 높이 뛰어올라 강가 모래밭에 떨어졌다강물에서 5 - 6m나 떨어졌으므로 강으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을 쳐도 움직이지 못 했다서너 마리의 페시포드가 동료를 살리려고 강가로 모여들었으나 속수무책이다어부들이 페시포드를 강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200Kg이나 되는 페시포드를 쉽게 강에까지 운반할 수 없었다이웃마을에서도 사람들이 달려왔다피부가 마르지 않게 물을 뿌리며 밀고 끌었다구출된 페시포드는 강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몸놀림으로 인사를 했다어부들은 페시포드의 몸놀림을 알아들었다호수에 들어온 페시포드는 1주일 쯤 뒤 강으로 돌아갔으나 며칠 후 다시 돌아왔다이번에는 여섯 마리다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장난을 쳤는데 좀 이상했다긴장하고있었다수컷이 세 마리 암컷 두 마리였는데 암컷은 새끼를 데리고있었다장난치고는 좀 거칠었다수컷 세 마리가 쫓고 쫓기면서 몸을 부딪쳤다.

발정發情입니다이 맘 때는 암수가 모여 집단 선보기를 해요.’

원주민추장의 말이 맞다수컷이 암컷을 두고 경쟁을 했다난폭한 공격은 하지 않았으나 암컷 사이를 가르면서 물속을 미끄럼치듯 헤엄치다가 하얀 배를 뒤집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누가 멋있고 빠르냐는 경쟁이다멋있고 아름다운 곡예다수컷들의 경쟁은 다음날 아침에 결말이 났다수컷 두 마리와 새끼를 거느린 암컷이 사라졌다밤중에 호수에서 빠져나갔다호수에는 암수 두 마리만 남았다총각 처녀다경쟁자가 없었으므로 여유가 있었다조용히 헤엄을 치다가 수컷이 살그머니 암컷에게 몸을 붙였다주둥이로 암컷의 아랫배를 찔렀다애무다암컷이 몸을 돌려 배를 수컷에게 붙였다그런데 전날까지는 회색이었던 몸이 모두 연분홍색으로 바뀌었다연어 등 일부 물고기와 원숭이들은 혼인색婚姻色이 있어 발정기를 알 수 있었는데 페시포드도 혼인색을 띠었다분홍색은 선정적인 색이다짐승들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유혹했다.

연분홍색이 된 페시포드가 사람놀이를 하면 마을에서도 좋지 않은 일이 생깁니다.’

 

페시포드가 사랑놀이를 하는 걸 마을사람들이 구경한다특히 젊은 남녀가 좋아한다오랫동안 사랑놀이를 하다가 교미를 하면 구경을 하던 젊은이들이 흥분한다추장은 페시포드의 사랑놀이 시기에는 마을에 출산율이 높다고 했다출산율이 높은 건 좋지만 풍기가 문란해지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가 성교를 하고 홀아비나 과부도 절제를 잃는다그래서 아마존에서는 페시포드를 사랑의 마물이라고 했다페시포드를 좋아했지만 연분홍색을 띠면 환영하지 않았다추장이 마을 밖 출입을 금지했으나 추장의 경고는 젊은이들에게 사랑놀이를 알려주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많은 사람들이 호수로 모여들었다바위 뒤에 숨어있는 여자들나무 위에 올라간 젊은이들도 있었다.

가르토와 대원들이 뗏목배를 타고 페시포드를 구경했다도대체 페시포드가 무슨 짓을 하기에 사랑의 마물이라고 하는가대원들은 페시포드의 연분홍색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정욕情慾을 일으키는 색깔이다수컷의 아랫배에 빨간 돌기물突起物 튀어나와있었다평소에는 몸속에 들어가있는데 그때는 바깥으로 돌출되었다사람의 성기와 굵기와 길이가 비슷했으나 더 뻣뻣하다수컷이 몸을 암컷에게 붙일 때마다 돌기가 암컷의 배를 찔렀고 암컷은 몸부림을 쳤다암컷이 숫컷을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감았다암컷의 성기도 사람과 같았고 계속 벌름거렸는데 성기의 안이 들어나 불빛처럼 붉은색이 명멸明滅했다페시포드의 사랑놀이는 끈질기게 이어지고있었다몸의 구조構造로 보아 쉽게 삽입揷入이 될 수 있었는데도 삽입을 하지 않고 애무의 과정을 즐기고있었다페시포드의 사랑놀이는 너무 사람과 닮았고 요염妖艶하다가르토는 페시포드가 사람의 성욕과 성감을 자극한다는 원주민들의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했으나 웃어넘길 수 없었다페시포드는 포유동물이며 지능이 높았다하등동물은 생식기능으로만 성생활을 했으나 고등동물일수록 성행위를 즐긴다쾌락의 수단이다페시포드의 사랑놀이는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고 며칠간 계속되었고 대원들은 원주민들처럼 아예 뗏목을 띠워놓고 관찰을 했다모기장을 치고 밤에도 떠나지 않았다아마존의 돌고래는 밀착관찰을 해볼만한 동물이다특히 대원들 중 대학원생 로자린양은 해양동물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였으므로 열심히 관찰을 했다그녀는 빼어난 미모美貌그런데 그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대학생 버큐리가 그녀를 짝사랑하고있었다버큐리가 로자린을 따라다니며 사랑을 호소했으나 로자린양은 사랑에는 흥미가 없는 듯 냉담했다그러나 최근에 로자린이 페시포드의 사랑놀이를 관찰한 후 뭔가 변화가 있다는 걸 가르토는 눈치챘다그날가르토는 통나무배를 타고 뗏목 주위를 순찰했다달밤이었는데 페시포드가 사랑놀이를 하고 있었다버큐리가 슬그머니 물속으로 들어가고 이어 로자린이 물속으로 들어갔다가르토는 그들 남녀에게 주목했다물속이나 땅에도 위험이 상존했다물속으로 들어간 남녀가 보이지 않았다아무도 몰래 땅위로 올라간 것 같았는데 밤에는 재규어 등 맹수가 돌아다녔다가르토가 땅으로 올라가 남녀를 찾아다녔는데 숲속에서 남녀의 속삭임이 들리고 이어 로자린의 신음소리가 들렸다페시포드는 물에서 사랑놀이를 하고 사람은 풀밭에서 사랑놀이를 하고있었다냉담했던 로자린이 페시포드의 사랑놀이에 흥분한 것 같았다페시포드가 사랑의 마물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원주민마을에서도 사랑의 마물에 홀린 남녀가 속출했다열여섯 밖에 안 된 소년이 열두 살 소녀를 강간하고정숙했던 과부가 홀아비와 행방불명되었다멀리 삼림으로 도피해서 사흘 동안이나 사랑놀음을 했다예삿일이 아니다추장은 외출금지령을 내렸다가르토도 외출금지령을 내리려고 했다버큐리와 로자린만이 아니라 남녀대원들의 성질서가 문란해졌다남자대원들이 원주민 여자들과 만났다그러나 곧 변화가 왔다가뭄이 들어 호수의 물이 급속히 줄었다아마존의 수의는 장마와 가뭄에는 10여 미터나 오르내렸다가뭄이 오면 물고기들이 먼저 감지를 하고 호수를 빠져나간다페시포드도 퇴장을 한다페시포드가 뗏목 주위를 돌며 작별인사를 했다작별선물로 팔뚝만한 맛이좋은 피치를 뗏목 위로 몰아올렸다.

 

134. 아프리카의 두 연인戀人

 

케냐 나이로비 동남쪽차보지역 사바나에 사파리용 차가 한 대 멈췄다. 차보지역 수렵 레인져 코네리가 순찰 도중 그 차를 발견하고 주목했다. 4륜구동차輪驅動車인데 가볍게 보이면서도 튼튼한 구조다. 사진기와 취사도구를 실었다. 19368월이었으므로 여러 종류의 차들이 아프리카의 사바나초원에 들어왔다. 차가 멈춘 곳은 사자들의 서식지다. 위험하다. 차보는 코끼리, 사자와 표범들이 많은 곳이다. 동아프리카 철도 건설 시에는 인부들이 많이 맹수들에게 잡혀먹혀 공정工程2 - 3년이나 늦어졌다.

위험한 곳이니 다른 속으로 옮기시지요.’

코네리가 차에 탄 두 여인들에게 경고했다. 서른이 되지 않았을 여인은 금발에 푸른 눈, 키가 큰 여인은 남자사냥복을 입었다. 미국인인데 원주민일꾼도 없이 사자의 영지에 들어왔다. 금발의 여인은 망원경을 들고 사냥복의 여인은 산탄총을 들었다. 코네리가 신분을 밝혔는데도 여인들은 냉담했다. 특히 사냥복의 여인은 날카로운 눈매다. 여인이 말없이 신분증을 내보였다. <존 아샤, 미국 뉴욕 출신, 미국사진사협회 회원>. 코네리는 여인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직업사진사다. 단 한 장의 사진을 영국의 잡지사에 팔아 그 돈으로 값비싼 사파리차를 샀다는 소문이다. 사진도 본 일이 있었는데 사진에 문외한門外漢인 그도 그 사진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캐리칼이 왕관학王冠鶴을 덮치는 광경이다. 캐리칼은 표범보다는 작고 살쾡이 보다는 큰 중형 고양이인데 커다란 귀와 날렵한 자태다. 치타 보다 민첩하고 도약에서는 치타 보다 더 높이 뛰어올랐다. 그 사진에는 캐미칼이 3m 가까이 공중으로 도약하며 방금 날개를 편 왕관학의 뒷다리를 꽉! 물었다. 왕관학은 우간다의 국조國鳥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우아優雅한 새다. 머리에 왕관처럼 생긴 깃털이 있고 노란 바탕에 날개에는 검은색과 붉은색 무늬가 있다.

 

어떻게 그런 순간을 포착했을까? 아마도 왕관학이 숲에 내려와 풀씨를 쪼고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캐리칼이 소리없이 기어가고있었을 것이고, 왕관학은 풀씨를 쪼면서도 기다란 목을 빼서 가끔 주위를 살폈을 것이나 그는 예민한 시력과 2m나 되는 날개를 너무 믿었을 것이다. 왕관학은 2 - 3m만 활주滑走하면 바로 날아오를 수 있다. 그러나 살육자는 무서운 순발력, 주력走力과 도약력을 갖고있었다. 캐리칼이 화살처럼 뛰어나와 달려온 여세로 2m를 뛰어올랐다. 뒷발을 물린 왕관학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며 처절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온몸을 쭉 뻗어 왕관학의 뒷발을 문 캐리칼의 자태에도 사냥의 긴박함과 함께 아름다움이 있었다. 죽고 죽이는 아프리카 생태계가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다. 값비싼 사파리차를 구입할 수 있는 거금을 받을만한 사진이다. 코네리는 그런 사진을 찍은 여인에게 경의를 표했으나 여인의 차가웠다. 적의敵意까지 느껴졌다.

우리가 무슨 불법행위라도 했나요?’

아니요. 그저 조심하라는 경고입니다.’

코네리는 무안해서 그곳을 떠났으나 마음에 걸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황달색과 녹색으로 미색칠迷色漆을 한 차 말이지요? 그 차에 탄 여인들은 나이로비의 장터에서 봤어요.’

코네리의 부인 마가리트여사가 말했다. 나이로비의 병원에서 약사로 근무하면서 1주일에 한 번식은 수렵지소에 나와 남편의 일을 도와주었다. 코네리는 원주민들과 사귀기 위해 원주민환자를 치료했다. 마가리트여사는 그 여자들의 이야기에 얼굴을 찌푸렸다. 예의바른 영국부인이었기에 나쁜 말은 하지 않았으나 혐오감이 떠올랐다.

두 여자 중 한 여자는 남장男裝을 했어요. 매우 쌀쌀하고요.’

마가리트여사는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으나 남편에게 무엇인가 암시暗示를 했다. 그 여자들이 정상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 포함되었다. 정상적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레즈비언(동성애同性愛)이다. 코네리는 그 여인들이 대강 며칠 있다가 돌아가리라고 판단했다. 아프리카 사바나는 문명세계에서 온 여인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다. 낮에는 40도 이상이고 밤에는 5도 이하다. 그런 날씨에 여인들이 얼마나 견디겠는가? 더구나 주위에서 사자들이 포효하고있었다. 코끼리와 코!ᅟᅮᆯ소도 위험하다. 수십 마리 또는 수백 마리가 무리지어다니는 코끼리는 앞길이 막히면 화를 내고 차를 짓밟을 수도 있다. 심술궂은 코뿔소는 강한 돌진력으로 차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여인들이 온지 사흘째 날 코네리는 순찰을 하다가 그 여인들을 다시 보았다. 원주민 감시원들과 걸어서 순찰을 했는데 여인들이 초원에서 고함을 지르며 차를 몰았다. 질주하는 치타를 쫓고있었는데 정상이 아니다. 치타는 시속 100Km를 달리는 동물인데 차는 그 이상의 속도를 냈다. 차의 지붕이 열려있고 금발아가씨가 상반신을 차 지붕으로 내밀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아샤양은 운전대를 잡고 계속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광대한 초원에는 길이 없다. 요철凹凸이 심하고 들쥐구멍과 흰개미집이 있다. 흰개미집은 높이 1m나 되는 것도 있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 들쥐구멍도 차바퀴가 빠질만큼 넓은 것도 있다. 그런데도 차는 장애물을 피하며 달렸다. 미국인들이 차를 잘 운전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아샤의 운전솜씨에 감탄했다. 코네리가 여인들에게 경고하는 뜻으로 공포를 쏘았으나 여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쯧쯧!’

코네리가 단념했다. 차가 뒤집어져서 죽든말든 알 바 아니다. 코네리는 수렵관리지소롤 돌아갔는데 차가 뒤집어져서 여인들이 죽었다는 보고는 듣지 못 했다.

사고는 다음날 일어났다. 여인들이 멀리 서남쪽의 마사이족 유보지에 들어갔다. 그들은 길게 늘어서서 이동하는 소떼들을 돌파했다. 소들은 돌진해오는 괴물을 보고 놀라 흩어졌고 소몰이꾼들이 고함을 지르며 차의 앞길을 막았으나 여인들은 막무가네로 소몰이꾼들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마사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소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나다가 다리가 부러졌다. 코네리는 그말밤 마사이의 북소리를 들었다.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모란(전사戰士)을 소집하는 북소리다. 마사이는 매우 호전적인 부족이며 백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영토를 침입한 백인을 그냥 둘 리 없다. 코네리가 원주민 감시원 열네 명을 데리고 출동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마사이의 영지 안에서 불빛을 발견했다. 숲속에 멈춰있는 차 안에서 여인들의 신음소리가 났다. 낮에 신나게 차를 몰았던 여인들이 야릇한 짓을 했다. 점점 격렬해지는 신음소리는 남녀들이 내는 소리 보다 몇 배나 더 거칠고 강렬했다. 여인들은 미국에서 온 레즈비언이다. 미국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경멸과 냉대를 받았고 눈을 피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아프리카에 왔다. 자연속에서 성을 즐기려고 했다. 문명사회에서는 금지된 성애性愛를 마음껏 분출噴出시키려고 했다. 코네리는 쓴웃음을 지었으나 그대로 듣고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사이들이 오고 있다. 야수野獸처럼 발자국소리를 죽이고 다가오는 살기를 코네리는 느끼고 있다. 마사이는 새울음소리로 서로 신호를 했다.

거기 누구야?’

별안간 차속에서 여인의 고함이 터졌다. 대답할 틈도 없이 시동이 걸리고 헤트라이트가 비췄다. 차가 급발진했다. 숲으로 돌진했다. 마사이가 숨어있는 숲이다. 마사이가 고함을 쳤다. 창을 들고 있는 마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마사이가 옆으로 피하면서 창을 날렸다.

 

차가 흰개미집에 부딪혀 뒤집어졌다. 마사이가 달려가는 게 보였다. 코네리와 감시원들이 일제히 공포를 발사했다. 코네리가 손전등을 휘두르며 마사이말로 고함을 질렀다.

나는 레인져 코네리다. 마사이용사들아 이제 싸움은 끝났다. 상대는 여자다. 마사이용사가 여자와 싸우느냐? 싸움을 멈춰라!’

마사이는 여자와는 싸우지 않았다. 그건 창피스로운 일이다. 마사이가 공격을 중지했다. 그들은 코네리를 알고 있다. 백인치고는 용감한 사람이며 추장의 친구다. 차는 뒤집어졌으나 여인들은 죽지 않았다. 여인들이 차 안에서 기어나왔다. 아샤는 다치지 않았으나 금발아가씨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아샤가 금발아가씨를 보호하듯 총을 들고 앞을 가렸다. 그때 총소리가 나더니 수렵관리청 소속의 트럭이 달려왔다. 총소리를 듣고 마가리트여사가 감시원을 태우고 달려왔다.

잘 왔소. 부상자를 병원으로 후송해야겠소.’

코네리가 금발아가씨를 부축하려고 하자 아샤가 달려들어 자기가 부축했다.

큰 상처는 아닙니다. 나는 의료원이요.’

마가리트여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아가씨를 트럭에 태웠다. 마가리트여사는 수렵관리지청 의무실에서 상처를 소독해주었는데 치료를 받는 사람도 치료해주는 사람도 모두 말이 없었다.

코네리는 뒤집어진 차를 관리지청에 끌고왔다. 2m나 공중에 튀어오른 차는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차 안에 현상된 사진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치타와 창을 휘두르는 마사이 소몰이꾼 사진이 있었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 한 여인들이 돌아갈줄 알았는데 여인들은 수리된 차를 타고 나갔으나 차보를 떠나지 않았다. 코네리는 여인들이 잡초지에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첸 차리가 차보 동쪽 사바나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홍콩 거주 중국인이었으나 영국 국적을 가지고있으며 그 신분을 악용했다. 차리는 나이로비의 밀거래업자로부터 코뿔소의 코뿔을 구입하고 원주민마을을 돌아다니며 직접 구입하기도 했다. 직접 코뿔소사냥도 했다. 캡틴 코네리는 그걸 우려했다. 코뿔소밀렵을 조장했다. 코뿔 한 쌍이면 소 100마리값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안 원주민사냥꾼들이 혈안이 되어 코뿔소사냥을 했다. 차보의 코뿔소가 멸종되어갔다. 차리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주저없이 살인을 하는 자였다. 그는 잘 훈련된 와캄바 두 명을 데리고 다녔다. 둘 다 총솜씨가 상당했고 총을 가지고 있으며 코뿔소뿐만 아니라 사람사냥도 했다. 코네리는 한 달 쯤 전에 행방불명된 원주민부부의 살인자로 차리를 의심했다. 수렵지청에 우유, 계란과 야채를 공급했는데 수렵지소에서 마을로 돌아간다고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그 당시 차리는 인근의 원주민마을을 돌아다녔으며 백인 레인져에게 협력하면 죽이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정보로는 차리를 조사할 수 없었는데 이제 그 기회가 온 것 같다. 차리는 수렵청에서 사파리허가를 받았다. 몇 가지 종류의 영양을 잡아도 좋다는 허가였는데 그가 무엇을 잡을지는 뻔했다. 코뿔소뿐만 아니라 방해하는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 케냐의 수렵관리관이나 사냥꾼은 차리와 그 부하들을 <검은 공포>라고 하며 두려워했다. 셋 모두 검은 안경을 끼고있어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차리의 얼굴을 제대로 본 관리가 없다. 여권의 사진은 희미해서 그가 중국인인지 백인인지도 알 수 없었다. 180Cm, 72Kg의 보통 백인의 체격이다. 코네리는 차리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순찰을 강화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했다.

 

무엇인가 좀 이상했다. 차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고 마을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코네리의 친구인 와캄바추장이 몇몇 원주민사냥꾼들이 차리와 몰래 만난다고 귀띰했다. 코뿔소밀렵 전문사냥꾼들이다. 그 중에는 코네리에게 잡혀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살인혐의로 수배된 사람도 있다. 그날 코네리는 코뿔소서식지에 갔다. 고약한 잡초지로 가시가 돋은 관목들이 엉켜있어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다. 사람들에게 쫓긴 코뿔소들이 잡초지에 숨었는데 배설물에서 냄새가 나고 모기와 파리가 들끓었다. 그 잡초지에 차리일당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다. 백인밀렵꾼 같으면 들어가지 않는 적선赤線지대였으나 차리는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나 하는 중국인이었다. 중국이니란 본디 집념과 인내심이 강한 민족이다. 코네리가 사람발자국을 발견했는데 앞서 가던 감시단조장組長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조장은 밀렵꾼이었는데 코네리가 감옥에 보내는 대신 조장으로 고용했다. 차보에서 으뜸가는 사냥꾼인 그를 감방에서 썩이기보다는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본디 아프리카사냥꾼은 단순해서 일단 사람을 믿으면 배신을 하지 않았다. 조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보마(잠복소)가 있었다. 땅굴을 파고 잡초를 덮어 은폐하였으므로 식별하기 어려웠다. 조장이 소리없이 기어갔다. 보마입구에서 기다렸다. 성급하게 공격하면 비밀통로로 도망갈 염려가 있다. 두 시간을 기다렸는데 코뿔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코뿔소는 근시近視라 조장을 발견하지 못 했다.

 

코뿔소가 나타나자 원주민밀렵자가 보마에서 나왔다. 두 명 모두 총을 가지고있었다. 조장이 경고했다.

총을 버려라! 우리는 밀렵단속반이다!’

<총을 버리지 않으면 사살한다>는 뒷말을 하기도 전에 총탄이 날아왔다. 밀렵자는 최근에 총을 받아 약간의 훈련을 했는데 총을 쏘지 못 해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다. 원주민은 총을 덮어놓고 쏘는 버릇이 있다. 기계의 메카니즘을 알 수 없는 그들은 총탄이 나가면 무조건 맞는다고 생각하고 덮어놓고 발사를 했다. 눈으로 겨냥을 하지 않고 그냥 팔을 들어 쏘았으므로 총탄이 조장의 뺨을 스쳤다. 조장이 겨냥을 하고 쏘았다. 밀렵자가 킥! 하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총탄이 가슴에 명중되었다. 동료가 총에 맞아 죽는 걸 본 밀렵자가 총을 버리고 도망을 쳤다. 맹목적으로 도망을 치다가 코네리 옆으로 달려오자 코네리가 발을 걸어 쓰러뜨려 수갑을 채웠다. 밀렵자로부터 차리가 인근의 보마에 있다는 자백을 받았다. 차리가 총소리를 듣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코네리는 이미 그 일대를 포위해놓았다. 밀렵자들이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으므로 주저없이 집중사격을 했다. 사격은 10여 분 동안 계속되었다. 밀렵자 두 명이 사살되었다. 차리가 고용한 살인청부업자들은 총솜씨를 과신하고 날뛰다가 죽었다.

 

밀렵단과 감시단의 싸움은, 사바나의 지형을 잘 아는 단속반이 돈가(물이 마른 하천)에 엎드려 총탄을 피하면서 사격을 한 반면 밀렵단은 가시덤불 안으로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 했다. 그러나 두목 차리는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다. 최신 미국제 반자동총을 기관총처럼 발사하며 포위망에서 탈출했다.

놈을 놓치면 안 돼! 잡아!’

부하들을 독촉했다. 피냄새를 맡고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하이에나가 몰려들었다.

캡틴, 차리가 코뿔소서식지로 들어갔습니다.’

코네리가 보고를 듣고 긴장했다. 미국여인들이 들어가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그곳에서 코뿔소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코뿔소가 화를 내고 돌진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일부러 자극을 시켰고, 교미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접근을 하려고 했다. 그건 미친짓이다. 코뿔소의 서식지는 가시투성이 관목과 독초들이 엉켜있는 관목지대인데 두꺼운 갑옷을 입은 코뿔소 외에는 어떤 동물도 들어갈 수 없다. 사냥꾼들도 접근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코뿔소는 밤에 활동하는 짐승이며 밤이면 더욱 사나와진다. 더 위험한 것은 차리다. 단속반에게 쫓긴 차리는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 차리가 미국여인을 발견하면 ? 코네리가 차를 발견했는데 여인들은 없었다. 차에서 내려 가시덤불속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 한 것 같았다. 아니면 이미 코뿔소에게 밟혀죽었거나. 코네리가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면서 계속 공포를 쏘았다. 총성은 차리나 코뿔소에게는 경고를 하고 두 여인들애게는 용기를 줄 것이다. 코네리가 발사한 총의 불빛은 여인들에게는 방향을 알려줄 것이나 차리에게는 코네리의 위치를 파악하게 하여 위험했으나 어쩔 수 없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총탄이 날아왔다. 단속반이 다리에 총탄을 맞았다.

이런 빌어먹을 .’

코네리가 철조망 같은 관목숲을 뚫고나가며 여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동성애를 하려면 편안한 침대에서 할 일이지 왜 아프리카 잡초밭에 와서 말썽을 부리는가? 그렇다고 버려둘 수는 없다. 오만傲慢한 미국대사관이 미국여인들이 아프리카 숲속에서 죽었다는 보고를 받으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레인져가 뭘 했느냐고 욱박지를 게 뻔하다. 코네리는 전지로 숲속을 비치며 수색을 했다. 손가방이 발견되고 찢어진 옷자락과 핏자국이 발견되었다. 여인들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며 기어가고 있었다. 관목의 철조망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오히려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코네리는 핏자국을 추적했는데 여인들은 빠른 속도로 가시덤불로 들어갔다. 고함을 쳤으나 아무 대꾸가 없다. 숲이 너무 넓다. 총탄이 날아왔으나 차리도 숲속에서 방향을 잃고 해매고 있다. 전지를 껐다. 광대한 숲에서 전지불빛은 너무 약하고 오히려 차리에게 과녁이 될뿐이다.

부와나, 나를 따라오시오.’

조장이 속삭였다. 와캄바사냥대 대장인 그는 밤사냥전문이고 밤에도 눈이 보였다. 그 무렵 여인들은 기진맥진했다. 머릿속이 몽롱해져갔다. 독가시의 독이 퍼졌다. 원주민이 죽음의 풀이라고 하는 독초의 독이 신경을 마비시켰다.

, 정신 차려!’

아샤가 애인을 격려했다. 남자 못지 않은 씩씩한 모습과 늘름한 용기를 보여주려고 했다.

알아, 알고있어!’

젠이 두 팔로 아샤의 목을 끌어안았다. 열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여인들은 관목과 잡초지의 가시덤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가시덤불은 거미줄처럼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몸을 감았다. 주위에 불빛이 있었다. 끙끙소리도 들렸다. 하이에나다. 20여 마리의 하이에나가 여인들을 포위하여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샤는 산탄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총탄이 서너 발 밖에 없다. 아샤는 그제서야 그 개같이 생긴 더러운 짐승을 과소평가한 걸 깨달았다. 하이에나는 사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찌꺼기나 얻어먹는, 감히 사람에게는 덤벼들지 못 한다는 말이었으나 그건 잘못이다.

오냐, 이놈들, 덤벼라!’

아샤는 애인 젠에게 자신의 용기를 보여주고 젠을 격려하려고 했으나 젠은 헛소리를 했다.

아빠, 날 살려줘!’

<왜 엄마가 아니고 아빠>냐고 못마땅했으나 젠을 꾸짖을 상황이 아니었다. 아샤도 정신이 희미해져갔다. 하이에나는 동물의 상태에 민감하였으므로 이미 두 여인의 상태를 알고 있다. 하이에나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 다가와서 옷을 물어찢었다. 아샤가 총을 발사했다. ! 하며 한 마리가 나가떨어졌으나 사냥을 포기하지 않고 일제히 덤벼들었다. 아샤가 발사한 총은 하이에나를 물리치지 못 했으나 다른 효과가 있었다. 코네리가 총소리를 들었다.

(저기다!)

코네리가 전등을 켰다. 아샤에게 덤벼드는 하이에나가 전등불빛에 들어났다. 20여 마리나 되는 큰 무리다. 코네리가 발포했다. 반자동연발이 불을 뿜었다. 하이에나가 비명을 질렀다.

 

아샤양, 힘을 네시오! 내가 왔소.’

하이에나들이 뒷걸음질을 했다. 한꺼번에 대여섯 마리가 죽었으므로 겁에 질렸다.

아샤양, 괜찮소?’

아샤는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성미는 여전했다. 아샤는 자기 몸을 안아올리려는 코네리의 손을 뿌리쳤다. 더러운 손이다. 아샤는 그 순간 자기를 윤간輪姦한 사내들을 상기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공원에서 대여섯 명의 사내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사내들은 그녀를 꼼짝 못 하게 눕혀놓고 속옷을 찢었다. 사내들이 번갈아가면서 유린蹂躪했다. 마음도 찢었다. 아샤는 그때부터 사내들을 짐승으로 보았다. 하이에나를 죽이고 자기를 구해준 사내도 같은 사내가 아닌가? 아샤가 총부리를 코네리의 가슴에 겨냥했다. 코네리가 손바닥으로 총을 쳐내버렸다. 쓰러져있는 젠이 의식을 잃고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위험하다. 독초에 찔리면 12시간 안에 죽는다. 독사의 독과 맞먹는 독이다.

빨리 길을 뚫어!’

조장이 만도蠻刀로 관목과 잡초를 쳐내면서 길을 뚫었고 코네리는 젠을 안고 기었갔다. 우선 젠부터 살려야 한다. 아샤야 따라오든말든 젠부터 데리고 나갔다. 악전고투惡戰苦鬪. 코네리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다행히 조장이 방향을 정확하게 잡아 두 시간만에 차를 발견했다. 그대 쯤 아샤도 의식을 잃고 차안에 들어오자말자 쓰러졌다.

 

차가 출발하려고 할 때 헤트라이트불빛에 사람이 뛰어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차리다. 차리는 헤엄을 치듯 비틀거리면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서너 마리의 하이에나들이 그를 물어뜯고 있었다. 강한 턱과 강철이빨을 가진 하이에나는 먹이를 산 채로 뜯어먹었다. 차리도 이미 살점이 뜯겨나가 하반신이 뼈가 들어났다. 코네리가 차를 세우고 하이에나를 쫓았으나 이미 늦었다. 하반신이 뜯겨 무너져내린 차리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있었다. 50여 개가 넘는 코뿔을 구입하여 보관한 차리는 더 많은 코뿔을 구하려고 하다가 처참하게 죽었다. 아샤도 그랬다. 걸작을 찍으려는 집념은 무모했다. 그러나 차안에서 발견된 이틀 동안 가시덤불 속에서 찍은 코뿔소의 사진은 놀라웠다. 암수 코뿔소가 교미를 하고있는 사진이었는데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교미기에 코뿔소는 신경이 예민하여 사냥꾼들도 피하는데 6 - 7m를 접근하여, 더구나 그 사진은 밑에서 위를 보고 찍었는데 가시덤불에 납작 엎드려 코뿔소의 하복부에 초점을 맞췄다. 광기어린 코뿔소의 성욕이 고스란히 들어났다. 의 본능이 무섭도록 잘 표현되었다. 코뿔소는 무게가 3t이나 된다. 철갑옷을 입은 그 무거운 몸을 짧은 네 다리가 간신이 떠받치고 있다. 뒤룩뒤룩 걸어다니는 코뿔소는 자칫 균형을 잘못잡으면 쓰러진다. 그런 코뿔소의 수컷이 앞발을 들어올리고 뒷발만으로 서 있기는 어렵다. 하물며 그런 자세로 몸을 요동하며 교미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사진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코뿔소는 안정된 자세다. 수컷의 거대한 성기性器가 암컷의 몸에 말뚝처럼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역학적구도가 잘 잡혀있다. 암수 두 마리의 코뿔소는 암컷의 몸에 깊숙이 박힌 수컷의 성기에 의해 역학적으로 연계되었다. 일반적으로 코끼리, 기린과 하마 등 덩치가 큰 동물들의 교미는 시간이 짧았다. 1분 이내다. 그런데 코뿔소는 예외다. 장장 수십 분이나 지속되고 때로는 한 시간 가까이 계속했다. 그래서 코뿔소는 정력이 왕성한 동물로 간주되었고 코뿔이 정력제로 비싼값으로 팔렸다. 코뿔소의 교미장면을 직접 찍겠다는 여인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동성애를 하는 여인들의 성에 대한 집념은 정상적이 아니었으며 그런 관심이 집념이 되었다. 여인들은 그 사진을 찍은 댓가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코네리가 아니었으면 가시덤불 안에서 죽었을 것이다. 코네리부부의 간호로 여인들은 다음날 아침에 회복되었는데 아샤가 정신이들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코네리가 젠을 진찰대에서 침대로 옮기고 있었는데 그걸 본 아샤의 표정이 험악했다. 아샤는 젠에게 그꼴이 뭐냐고 힐난詰難했다. 아샤는 아직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 하는 젠을 차에 태우고 나이로비로 가버렸다. 마가리트여사가 말렸으나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나가벼렸다. 코네리는 말썽꾸러기 여인들이 가버리자 마음을 놓았다. 자신도 독초에 찔려 몸에 열이있었으므로 푹 쉬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말 하오에 나이로비의 검찰청에서 소환장이 날아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몸이 좋지 않은데 .’

항의를 받은 검사는 차가웠다.

이유는 두 가지요. 첫째는 미국여인의 강간미수, 둘째는 코든변호사가 당신을 살인죄로 고소했소.’

어이가 없다. 다죽어가는 여인들을 살려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강간미수라니 . 변호사 코든은 중국인 차리의 고문顧問인데 사실은 코뿔밀거래의 동업자다. 그래서 그는 코네리가 차리의 부하 두 명을 살해하고 차리가 하이에나에게 물려죽도록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캡틴 코네리. 나는 당신을 좋아하오. 당신이 산림보안관 일을 충실히 하고있다고 믿고있소. 그러나 나는 이번 일을 검사로써 엄정하게 처리할 생각이요. 당신에게 불리한 여러 가지 증거와 증인들이 있소. 그래서 코든변호사의 주장에 따라 일단 당신을 구금해야겠소.’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코네리가 강강미수와 살인혐의로 구금되었다. 코네리는 강력하게 검사에게 항의했다. 잘못되었으니 먼저 자기에게 강간당할뻔 했다고 주장하는 두 여인의 진술부터 다시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검사가 다음날 두 여인을 다시 심문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 여인은 코네리가 자기들을 강강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두 여인의 진술은 일치했다.

우리는 그때 가시덤불 안에서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고있었습니다. 하이에나가 우리에게 덤벼들었으나 그리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미국사격협회 회원이고 총을 잘 쏩니다. 그까짓 하이에나에게는 당하지 않습니다.’

아샤가 가슴을 펴면서 큰 소리로 중언하고 젠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캡틴 코네리가 달려와서 하이에나 서너 마리를 죽였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쁜짓을 했지요. 짐승과 같은 짓을 햇습니다.’

아샤는 힘이 다 빠져버린 젠을 강제로 끌어안았다고 했다.

그는 젠을 끌어안고 끌고갔어요. 젠의 옷을 찢어버리고 추악한 짓을 했습니다. 젠을 꼼짝 못 하게 눕혀놓고 온몸을 떡주무르듯 만졌습니다.’

검사가 젠에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었으나 아샤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강한 힘에 눌려 꼼짝을 할 수 없엇고 옷이 찢어져있었습니다.’

속옷까지 찢겨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속옷도 찢겨져있었습니다.’

그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가시덤불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나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였고 아샤가 그걸 뒷받침했다. 검사는 그 진술을 코네리에게 보여주고 기소해야겠다고 했다. 코네리가 궁지에 몰렸다. 그는 검사에게 마지막 요구를 했다. 대질심문요구다.

 

검사는 대질심문을 하기 전에 나이로비의 병원에서 약사 겸 고등간호사로 근무하는 코네리의 부인 마가리트여사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미국에서 온 두 여인을 간호한 일이 있습니까?’

그들을 진찰했을 때 옷이 찢어져 있었습니까?’

속옷까지 찢겨져 있었습니까?’

피해자 젠이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까?’

, 그녀는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상처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관목의 가지나 가시풀에 긁힌 것입니다.’

피해자는 독초에 찔렸습니까?’

그렇습니다.’

피해자는 의식이 있었습니까?’

거의 실신상태였으나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마가리트여사는 남편에게 불리할 증언을 했으나 검사가 달리 할 말이 없느냐고 하자 비밀증언을 하겠다고 말했다. 의사나 약사는 직업상으로 알게된 환자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검사에게만 말하겠다고 했다.

마가리트여사의 증언을 듣고 검사가 놀랐다.

그렇다면 두 여인이 동성애자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샤는 남자역할을 하고 젠이 여자역할을 합니다.’

남자역할을 하는 측은 정말로 남자행세를 하는 것인가요?’

, 그렇습니다. 행동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남자역할을 하는 자는 질투도 합니까? 자기 짝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질투를 하느냐는 말입니다.’

, 그렇습니다. 심한 질투를 합니다. 진짜 남자 보다 더 심한 질투를 하지요. 비정상적인 성생활에서 오는 삐뚤어진 감정에서 질투가 훨씬 심합니다.’

마가리트여사의 증언이 검사에게 충격을 주었다. 검사는 정신과의사를 불렀는데 마가리트여사의 말과 같았다. 검사는 코네리와 피해자 젠을 동석시켜 대질심문을 했는데 아샤도 함께 동석했다. 아샤가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젠은 이미 코네리가 한 일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몸을 안아 일으켜주었다. 굉장한 힘이었으며 황홀했다.

 

검사실에 들어온 두 여인은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아샤가 신경질이 되어 젠을 노려보았다. 젠은 아샤의 눈길을 피하려고 하였으며 겁을 먹고있었다. 코네리가 들어오지 아샤가 고함을 쳤다.

이 나쁜놈, 그런 나쁜짓을 하고도 사과도 하지 않아?’

코네리는 침착했다. 아샤와는 인사를 하지 않았으나 젠은 눈인사를 했다.

젠양, 전번에 나에게 한 말은 전부 사실입니까?’

검사가 질문을 하자 젠은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하지 않지요? 코네리가 당신에게 몹쓸 짓을 했습니까? 강제로 끌어안고 옷을 찢어버렸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저는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독가시에 찔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전번에는 코네리가 속옷까지 찢어버렸다고 진술했는데 .’

모르겠습니다. 옷은 관목가지에 걸려 찢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캡틴 코네리가 강제로 끌어안고 손으로 전신全身을 마구 주물렀다고 진술했는데 .’

캡틴은 쓰러진 저를 안아일으켜 가시덤불숲 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손으로 전신을 주물렀다는데 .’

모르겠습니다. 나는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샤가 펄쩍 뛰었다.

, 왜 거짓말을 해? 저 남자가 너를 마구 주무르는 걸 내가 봤는데.’

젠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아샤가 윽박질렀다. 아샤는 젠에게 나쁜년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이 바람쟁이 배신자. 너는 날 배신했어!’

검사가 아샤를 밖으로 내쫓았다.

젠양, 바른말을 하시오!’

그렇다. 바른말을 해야 한다. 젠이 머리를 들었다. 그녀가 똑바로 검사를 보고 코네리도 보았다.

, 캡틴 코네리는 나에게 몹쓸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강제로 끌어안지도 않고 옷을 찢거나 몸을 주무르지도 않았습니다.’

 

젠은 그때 남자를 느꼈다. 일부러 그런 척 하는 가짜남자가 아니라 진짜남자다. 강한 남자냄새는 불쾌한 냄새가 아니다. 감미로웠다. 젠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몸을 안았다. 아샤가 그걸 보고 고함을 질럿으나 젠은 강한 힘으로 남자의 몸을 껴안았다. 젠은 차 안에서도 남자에게 매달려 팔을 풀지 않았다. 그게 진실이다. 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젠 아샤가 자기에게 한 일이 싫어졌다. 강한 남잔인 양 남자의 소리를 내면서 자기 몸을 주무르는 그 짓이 싫었다.

젠양, 당신의 진술은 아샤양의 진술과 어긋나는데 .’

아샤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샤가 한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캡틴 코네리가 중국인 차리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말도 거짓입니다. 하이에나가 차리를 물어뜯었는데 차리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코네리가 총을 쏘아 하이에나를 쫓았습니다. 캡틴은 차리를 살리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검사가 밖으로 내보낸 아샤를 다시 불렀다.

아샤양, 당신을 구속하겠소! 더 이상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계속하면 기소하겠소!’

아사가 젠에게 오만 욕을 하면서 덤벼들었기 때문에 검사가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러자 아샤가 울기 시작했다.

, 그러지 마. 난 아직도 너를 사랑해. 너 없인 난 죽어!’

그러나 젠은 차가웠다. 말없이 검사실을 나가버렸다. 검사는 캡틴 코네리의 구속을 풀고 강간미수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했다. 그때 아샤는 코네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나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 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쏘지 않았다. 젠뿐만 아니라 아샤도 그 사나이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아프리카 숲에서 그는 영웅이다. 타잔 보다 더 강하고 용감한 사나이다. 아샤는 검사에게 자기가 한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번복했고 그 결과 검사는 그녀를 기소하지 않았다.

 

검사는 살인혐의도 불기소처분 했다. 중국인 차리가 고용한 코든변호사가 강하게 항의했으나 검사는 그걸 물리쳤다.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긴 차리를 구조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두 여인이 증언을 번복해기 때문이다. 밀렵단속반이 차리가 고용한 살인청부업자와 원주민밀렵자를 죽인 혐의도 정당방위로 간주하고 불기소처분했다. 코든변호사가 검사에게 사인청부업자들이 죽어있는 사진을 제시하고 자기들은 코뿔소를 사냥했으나 캡틴 코네리가 무참하게 사람들을 사냥했다고 주장했다. 코든변호사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코뿔소의 목숨이 사람 목숨 보다 중요하냐고 항변했으나 검사는 밀렵단속반이 밀렵자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경고했다는 점을 들어 경고를 무시한 밀렵자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사의 불기소결정이 내린 날, 영국의 일간지에 교미하는 코뿔소의 사진이 게재되었다. 엄청난 돈을 주고 사진을 샀다. 캡틴 코네리가 차보의 레인져사무실로 돌아갔다. 랫만에 마가리트여사와 점심을 먹으며 말했다.

그 여인들이 미국으로 돌아가겠데. 이젠 조용해지겠지?’

그런데 밖에서 자동차소리가 나고 두 여인들이 들어왔다.

사과하려고 왔습니다.’

여인들은 얌전하게 말했으나 마가리트여사는 냉담했다. 식탁에 앉으라는 말도 없었다. 마가리트여사는 두 여인들과 정답게 말을 하는 코네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가리트여사는 정숙했으나 화를 내면 무서웠다. 마가리트여사가 두 여인에게 물었다.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

작별인사를 하러 오셨구만요?’

.’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두 연인이 돌아서나갔다. 캡틴 코네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은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알았는데 .’

난 여자가 아닙니까?’

마가리트여사가 말했다.

 

135. 툰드라의 살육殺戮

 

러시아 시베리아 야쿠트 동북지역 정부양곡관리지소 소장인 부린은 술이 좀 과하고 고집이 심했으나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 관리다그래서 그는 1896년 2월 광대한 타이가 (한랭침엽수림寒冷針葉樹林)와 툰드라(동토凍土지역)을 뚫고 야쿠츠크에 갈 계획이다모두들 그 계획을 말렸다한 달만 연기하면 북극의 어둠과 추위가 좀 풀릴 것이니 그때 가라고 충고했다그러나 부린은 듣지 않았다야쿠츠크는 야쿠트자치령自治領의 수도首都였으며 백성들로부터 보리로 조세租稅를 수납하는 한편 양식이 떨어진 백성들에게 양곡을 빌려주는 일을 총괄했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백성들이 직접 야쿠츠크에 있는 양곡창고에 꾸어먹은 보리를 갚기도 하고 얻어오기도 했는데 몇 년 전에는 야쿠트지역 동북부에 정부의 창고가 만들어진 다음부터는 보리를 주고받는 일을 대행代行했다그런데 그 창고가 텅비어버렸다그해에는 흉년이었기 때문에 보리수납이 되지 않은데다가 식량이 떨어진 백성들이 속출했다그래서 부린은 급히 야쿠츠크에 가서 긴급구로양곡을 얻어올 생각이다굶고있는 백성들이 늘어나고있었다하지만 그건 위험하다야쿠트에서 야쿠츠크까지는 장장 500Km나 되었고 따가 한겨울이다기온이 영하 30도였고 강한 눈폭풍이 휘몰아쳤다부린은 부하 두 명을 데리고 다섯 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침엽수림 사이의 황무지荒蕪地를 단숨에 뚫을 계획이다아침에 출발하면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는 얼어붙은 레나강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거기에는 정부출장소가 있다.

그렇게 쉽지 않을거요.’

소수민족의 대부代父고 부린을 도와주는 퉁그스족 카이자영감이 말했다.

이틀 전에삼림어귀에 사는 퉁그스족농가의 순록 세 마리가 이리들에게 끌려갔어요수십 마리의 이리들이 3m나 되는 울타리를 타넘고 순록을 습격했습니다.’

카이자영감이 이리들이 끌고간 순록이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라는 걸 강조했다순록은 4 - 5백 킬로그램이 나가는 짐승이기에 보통 이리가 가져가는 순록은 대개 한 마리였는데 얼마나 많은 이리들이 굶주리고 있기에 그런 짓을 했겠느냐는 말이다.

순록 한 마리는 울타리 안에서 뜯어먹고 나머지는 대가리와 사지四肢를 잘라버리고 물고갔습니다.’

그래서 카이자영감은 100Km 밖에 떨어져사는 파론포수를 불러오기로 했다파론은 그 일대에서 수렵을 하는 소수민족 사냥꾼들 중에서 으뜸가는 명포수다.

 

카이자영감은 파론포수가 며칠 안에 도착할테니까 그때까지 출발을 연기하라고 충고했다.

걱정하지 마시오난 한 달 전에 총신이 두 개인 영국제 총을 구입했소거의 동시에 두 발을 쏠 수 있는 총이지요나와 같이 가는 첸도 총을 가지고 있고.’

첸은 야쿠트족 통역인데 평소에 사냥솜씨를 자랑했다카이자영감은 부린이 충고를 듣지 않자 그래도 마지막 충고를 했다순록이 끄는 썰매 대신 개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가라고 했다혹 이리들이 나오면 개들은 이리와 싸울 수 있으나 순록은 싸울 수 없다부린이 웃었다.

그렇지 않아썰매는 순록이 끌어야 해순록은 개 보다 힘이 강하고 추위에도 강해순록은 개들 보다 힘차게 달리지어둡기 전에 레나강에 도착할 수 있어.’

카이자영감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겁이 많은 순록은 초식동물이라 이리들이 달려들면 도망친다고 알려주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부린은 다음날 새벽에 출발했다그의 썰매는 아주 튼튼했고 뿔이 1m나 되는 순록은 많은 순록들 중에서 선발했기 때문에 덩치가 크고 믿음직스러웠다썰매는 힘차게 광야廣野를 달렸다강한 바람이 불어 땅에 쌓였던 눈이 날아가 지면이 매끄럽지 않았으나 순록은 발굽으로 눈덩이얼음을 으깨면서 달렸다태양이 행방불명된다는 북극의 겨울이었으나 칸데라를 켜지 않아도 앞길이 보였다지면이 매끄럽지 않았으나 강한 바람을 뒤에서 받고있었기 때문에 썰매는 꽤 빠른 속도를 냈다.

이리들이 나온다던데 한 마리도 없군,’

정오께 부린이 말했다그는 추의를 견디기 위해 술을 마셨는데 그래서 주의력이 산만해졌다그의 말대로 달리는 썰매의 앞과 옆에는 이리가 없었으나 이리들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서너 마리의 이리들이 20m 쯤 되는 거리를 두고 조용하게 따라오고 있었다부린이 그제야 눈치를 채고 화를 냈다.

저 새끼들이 .’

그는 새로 구입한 총을 들어올렸다카이자영감이 이리들이 나타나도 함부로 총을 쏘지 말라고 충고했었으나 새로 총을 산 사람들이 다 그렇듯 부린도 방아쇠를 당기고싶어 근질근질했다총을 발사했다맨앞에서 따라오던 놈이 쓰러졌다다른 이리들이 추격을 멈추고 쓰러진 동료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쓰러진 동료를 도우려는 게 아니다이리들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동료를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서로 많이 먹겠다고 다투면서 순식간에 먹어치웠다툰드라에 사는 이리는 냉혹한 짐승이다부린은 이리가 총에 맞으면 도망갈줄 알았으나 이리들은 동료를 먹고 다시 따라왔다총소리와 피냄새가 이리들의 살육의 본능에 불을 질렀다이리들은 세로로 한 줄이 되어 따라왔는데 부린이 다시 총을 쏘아 맨앞에 오는 놈을 쏘았다이리가 쓰러지자 또 동료들에게 덤벼들었으나 이번에는 몇몇 놈만 동료를 먹고 다른 놈들은 계속 따라왔다첸이 총을 다시 발사하려는 부린을 말렸다.

나리저기 보세요,’

다른 이리무리가 나타났다스무 마리 쯤 되는 이리무리는 서쪽 타이가에서 나타났는데 두 무리가 합동작전을 폈다이리는 20 - 30여 마리가 한 무리로 살았는데 평소에는 자기 영지를 정해놓고 치열하고 잔인하게 영토전쟁을 했으나 외적外敵이나 먹이를 잡을 때는 합동작전을 폈다먼저 나타난 이리들은 썰매의 뒤를 따라오고 나중에 나타난 이리들은 가로로 한 줄로 서서 썰매의 앞길을 막았다부린은 순록이 개들 보다 빠르다고 말했으나 그렇지 않았다이르는 최대 70Km의 속력을 냈다시속 50Km의 속력으로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뚫고나가그대로 돌진해!’

부린이 고함을 질렀으나 순록의 목줄을 잡은 아키리가 머리를 흔들었다오래토록 썰매를 몰아본 경험이 많은 아키리는 툰드라의 이리들이 어떤 놈들인지 잘 알고있었다굶주린 이리와 싸움은 죽이느냐 죽느냐 두 가지 밖에 없다아키리가 썰매를 멈추더니 목줄이 쉽게 풀리도록 조정했다급해지면 목줄을 풀어 순록을 이리들의 먹이로 삼을 작정이다추격해오는 이리들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볼 심산이다굶주린 이리들은 순록이 보이면 일단 잡아먹었는데 그 틈에 도망갈 생각이다.

 

아키리의 판단은 옳다굶주린 이리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순록들이 겁을 먹었다아카리가 목줄을 쥐고 돌파하려고 해도 순록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그래서 부린이 발포를 했으나 맞지 않았다당황한 순록이 자갈밭으로 달렸기 때문에 썰매가 흔들려 겨냥이 되지 않았다이리들은 반원형으로 썰매를 포위한 체 추격했다간격은 이제 10m 내외인데 더 좁아져갔다하오 2시에는 이리들이 순록의 바로 옆에서 달렸다날도 어두워져갔다부린이 총을 쏘아 이리가 죽으면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썰매에 달라붙었다총탄도 아껴애 해서 함부로 쏘지 못 했다방법은 하나뿐이다아키리가 순록을 한 마리 풀었다순록은 몸무게가 200Kg이 넘는다그래서 이리들이 먹으려면 30분이 걸릴거라고 예상했는데 불과 10여 분만에 먹어치우고 따라붙었다일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순록을 물어뜯어 씹지도 않고 삼켰다내장을 물고 질질 끌며 따라오는 놈도 있다하오 3시가 되자 또 다른 이리무리가 합세했다그 수가 서른 마리나 되었다.

달려그대로 달려!’

부린이 소리쳤으나 썰매는 속력이 점점 떨어졌다썰매 위로 뛰어오르는 놈도 있다두 번쩨 순록을 풀었다순록은 세 마리가 남았다.

달려달려곧 레나강에 도착할 거야.’

레나강까지만 가면 정부의 지소가 있다.

 

불빛이 보였다. 10Km 쯤 전방이었는데 거기까지 무사할지 의심스럽다썰매의 속력이 느려져서 거기까지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세 번째 순록이 풀렸다마지막 희생물이다썰매를 끌려면 최소한 두 마리는 있어야 한다굶주린 이리들의 식욕은 채워지지 않았다이리들은 썰매를 포위하고 달리는 순록을 물어뜯었다이리들이 사람들에게도 덮쳤다달리는 썰매를 스쳐지나가며 물어뜯었다.

이 새끼들이!’

부린이 총신이 뜨거워질 정도로 연사를 했다아키리는 채찍으로 후려쳤다채찍을 맞은 이리는 나가떨어져 뒹굴었다그런데 첸은 자기방어도 못 했다평소에 사냥솜씨를 자랑했던 첸은 겁을 먹고 총을 쏘지 못 했다총신으로 이리를 막다가 팔을 물렸다.

아이고!’

첸이 굴러떨어졌다팔을 문 이리를 뿌리치지 못 해서 썰매에서 나가떨어졌다그러나 썰매를 세울 수 없다첸은 비명소리와 함께 사라졌다이리들이 첸을 처리하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마지막이 온 것 같았다부린도 팔에 통증을 느꼈는데 살점이 떨어져나갔다총을 떨어뜨렸다그때 아키리가 소리를 쳤다.

나리힘 내세요구조대가 옵니다!’

불빛이 보였다횃불이 날렸다총소리도 들렸다.

 

구조대는 레나강의 정부지소 직원들이었다그들은 총소리를 듣고 구조대를 편성하여 달려왔다이리들이 마지막 먹이를 먹으려다가 구조대와 불빛을 보고 도망쳤다한 사람과 순록 세 마리를 먹었다구조된 사람들은 야쿠츠크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부린은 목숨을 건졌으나 왼쪽 팔을 절단했다아키리도 목숨은 건졌다그 소문이 퍼져나가자 러시아가 발칵 뒤집어졌다사람을 잡아먹은 이리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당장 소탕해야 한다고 사냥대를 편성했다시베리아 남쪽 이르쿠츠크의 귀족 마즈스킨이 맨 먼저 나섰다마즈스킨은 우명한 러시아 사냥개 볼조이를 사육했다볼조이는 어깨높이가 거의 1m나 되는 대형사냥개인데 이리전문 사냥개다말을 탄 러시아귀족은 볼조이를 앞세워 이리를 추격했으므로 볼조이의 추격을 받은 이리는 살아날 수 없다마즈스킨은 두 명의 친구와 여섯 마리의 볼조이를 데리고 시베리아에 들어갔다마즈스킨이 시베리아의 이리들의 씨를 말려놓겠다고 큰소리쳤다그런데 막상 시베리아에 들어와 보니 문제가 생겼다사냥꾼들은 모두 두꺼운 사냥복을 입었으나 추위에 떨었다시베리아는 영하 35도가 되었으며 숨구멍조차 허옇게 얼어붙었다사냥꾼들은 정부청사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더 큰 문재가 있었다볼조이가 떨었다볼조이는 귀족개다긴 털이 비단같이 부드럽고 아름다워 웬만한 추위는 견디었으나 시베리아는 예외다마즈스킨은 그래도 호기를 부려 사냥에 나섰다썰매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갔다볼조이가 앞장을 섰다이리사냥꾼들은 그날 정오께 현장에 도착했다핏자국과 찢겨진 옷 그리고 순록의 털이 있었으나 시체나 뼈는 없었다뼈까지 다 먹어치웠다볼조이는 찢겨진 옷이 흩어져있고 핏자국과 이리발자국을 보더니 긴장했다사람의 피냄새를 맡고 불안했다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돼지피를 뿌려 이리를 유인했다망원경으로 보니 저쪽 타이가에 이리 몇 마리가 서성거렸다이리도 긴장했다돼지피와 사람냄새도 같이 맡은 것 같았다이리들이 목을 빼고 울었다상대의 전력戰力이 강하다는 걸 알고 동족을 불렀다이리울음소리를 듣자 볼조이가 뒷걸음질을 쳤다.

가서 놈들을 잡아!’

마즈스킨이 볼조이를 질타叱咤했다볼조이는 이리들과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잃었다사람들도 마찬가지다강한 폭풍에 천막이 날아갈 것 같았다순록들도 겁에 질려 가느다랗게 울었다지평선에 검은 점들이 나타나 점점 수효가 불어났다수십 마리의 이리들이 집결하고 있었다이리들이 서서히 다가왔다광야에 무서운 살기가 떠돌았다사냥꾼들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시베리아 툰드라는 사람과 이리들의 싸움터가 아니다이리들의 영지이며 사냥터다사냥꾼과 사냥개가 이리를 사냥하려고 왔으나 이리가 사람과 사냥개를 사냥하려고 했다.

 

마즈스킨이 망원경으로 이리를 관찰했다맨 앞선 이리가 두목인데 갈기가 있고 미친개처럼 살육자의 눈빛이다마즈스킨은 이리를 열서너 마리나 잡았다그러나 툰드라의 이리는 이르쿠츠크 교외 산림의 이리와 달랐다이르쿠츠크 이리는 사람들이 먹다버린 찌꺼기를 얻어먹고 살았다볼조이를 데리고 사냥을 하면 이리들은 도망쳤다툰드라의 이리는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에서 사는 독종毒種이다폭풍과 폭설에서도 살아남은 살육자다이리사냥을 중단하고 돌아가기로 했다주둔하고 있는 군대의 힘을 빌릴 생각이다그러나 위험했다. 50여 마리나 되는 이리들이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을 일렬횡대一列橫隊로 가로막았다사냥대를 잡아먹으려는 작전이다.

덤벼저놈들을 모두 죽여!’

마즈스킨이 고함을 쳤으나 볼조이는 썰매 곁을 떠나지 않았다사냥대가 발사했다연사로 길을 막고있던 이리 선발대 열 마리가 쓰러졌다이리는 쓰러진 동료의 시체를 먹지 않았다이번 싸움은 먹이다툼이 아니라 영토전쟁이다이리의 수효가 점점 더 불어났다.

이리 사이를 뚫고 전속력으로 달려!’

마즈스킨이 지시했다다행히 순록썰매를 모는 야쿠트족 졸첸은 노련한 썰매잡이다두목순록을 맨앞머리에 두고 집중적으로 몰았다썰매는 이리들의 포위 한 가운데를 뚫고 나갔다볼조이도 썰매 곁에 붙어 달렸다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이리들은 순록을 공격하지 않고 볼조이를 공격했다볼조이의 비명이 들렸으나 어쩔 수 없었다볼조이들은 이리와 싸우는 게 아니라 사냥을 당했다볼조이는 값 비싼 귀족개다마즈스킨이 신음을 토했다야쿠츠크에 도착했을 때 마즈스킨은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군대를 동원해야 해사령관 관사로 가자!’

시베리아 주둔군 사령관은 마즈스킨의 말을 듣고 냉담했다.

러시아 국방을 담당하는 러시아육군이 시베리아 광야를 떠돌아다니는 이리들과 싸울 수는 없다군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사령관은 단호하게 마즈스킨의 호소를 거절했다마즈스킨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귀족이었으나 군사령관을 설득할 수 없어 이를 갈았다이리들의 습격을 받아 한쪽 팔이 절단된 정부양곡관리소장 부린도 이를 갈았다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고통이 큰 부린은 반 미친 상태다마침 그때 시베리아 동북부지역 퉁그스족 대부代父카이자영감이 야쿠트에 부린의 병문안을 왔다카이자영감은 양곡이 떨어진 부족을 위해 부린과 상의하여 야크트의 정부양곡창에서 보리를 빌리려고 했다툰드라의 소수민족이 굶어죽게 할 수는 없다카이자영감도 부린이 온 툰드라의 광야를 뚫고왔으나 이리들은 그를 덮치지 못 했다툰드라의 생태를 잘 아는 영감은 부린처럼 무모하지 않았다부린은 여섯 마리 순록썰매를 탔으나 영감은 열네 마리 개설매를 탔다시베리아 주민들은 대부분 순록썰매를 탔는데 추위에 강하고 힘이 세다그러나 결점도 있다시베리안 허스키는 키 60Cm, 몸무게 30Kg 정도의 중형개였으나 영감이 기르는 잡종개는 덩치가 더 크고 털도 길다영리하고 용감하다순록은 사역자의 지시에 따라 맹목적으로 달려 때로는 얼음구멍에 빠지는 일이 있었으나 개는 위험한 곳을 스스로 피했다개는 썰매를 끌뿐만 아니라 경호도 했다맷돼지사슴과 여우사냥도 하고 곰사냥도 한다카이자영감의 잡종개는 이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영감의 썰매가 야쿠트에 도착했을 때 광막한 시베리아 광야를 달려온 썰매개를 구경하려고 많은 구경꾼이 몰려들었는데 그 속에 마즈스킨도 있었다영감의 잡종개들은 이리를 연상시키는 거친 털과 푸른 눈을 보았다마즈스킨은 볼조이가 이리에게 당한 이유를 알았다볼조이는 사람의 보호를 받았으나 잡종개는 야성이 살아있었다또 하나 구경꾼들의 주목을 끈 것은 카이자영감이 데리고온 소수민족 사냥꾼인데 온통 족제비털모자와 이리껍질 슈바(외투外套), 영양껍질 바지였다사냥군은 퉁그스족 파론포수고 또 한사람은 고리드족이다파론은 그 일대에서 소문난 타이가 맹수잡이 포수다극동 원시림에까지 가서 범이나 표범도 잡았다파론포수는 여덟 마리의 개를 데리고 왔는데 귀가 반듯하게 서고 꼬리는 말려올라갔다동체는 짧았으나 근육질이고 눈동자가 날카로웠다.

라이카야저건 라이카다!’

미즈스킨이 중얼거렸다라이카는 러시아 사냥개며 극동지역에서 사육했다개주인 파론포수는 그 개가 라이카가 아니고 고리드개라고 했다고리드는 북만주와 극동러시아 삼림에 사는 떠돌이 수렵족인데 그들이 기르는 개다고리드개는 사냥개이며 곰을 전문으로 잡았으나 범이나 표범과도 싸웠다고리드개 두 마리면 곰을 잡고세 마리면 표범을다섯 마리면 범을 잡는다고 했다예로부터 고리드개가 있는 마을에는 이리들이 얼씬도 하지 못 했다파론포수가 고리드개와 라이카가 혈연관계에 있다고 했다그러나 고리드인들은 고리드개를 가족처럼 여겼으며 팔지 않았다어떻게 가족을 팔 수 있느냐고 했다그러나 워낙 고리드개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고리드개는 널리 퍼졌다러시아의 라이카일본의 아이누개조선의 풍산개에게 고리드개의 피가 섞여있다공통적으로 귀가 서고 꼬리가 말린다주인에게 충실하고 용감하다는 점도 같다그날밤 마즈스킨이 카이자영감과 파론포수를 초청했다일소탕작전을 제의했다야쿠트의 양곡관리소장도 참석했고 입원 중인 부린도 왔다양곡관리소는 야쿠트의 관리소와 동북부지소에 양곡이 오가야 했다.

 

툰드라광야에서 날뛰는 이리소탕작전 사냥대가 구성되었다마즈스킨과 동료 두 사람양곡관리소에서 초빙한 사냥꾼 두 사람퉁구스족 카이자영감과 개썰매꾼 두 사람그리고 퉁구스족 카이자영감과 개썰매꾼 두 사람퉁구스족 파론포수와 고리드족 사냥꾼썰매를 잘 다루는 야쿠트족 졸첸과 순록썰매꾼 두 사람 등 모두 열세 사람이다사냥대는 썰매를 끌 시베리안 허스키 잡종개 열네 마리와 파론포수의 고리드 사냥개 여덟 마리가 참가하고 천막과 식량 등 물건을 싣고갈 썰매를 끌 순록 열네 마리가 참가했다다음날 아침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사냥대가 출발했다썰매개들이 요란하게 짖으며 앞머리에 섰다.

쯧쯧!’

파론포수가 혀를 찼다.

썰매개가 사냥을 방해하고 있어요저렇게 마구 짖어대면 이리들이 삼림에서 나오지 않을거요.’

이리는 매우 영리하다타이거의 이리는 움직이는 걸 보면 마구 달려든다고 알려져 있으나 결코 어리석지 않다그들은 먹이감을 선택했다서너 마리의 숫컷들이 밀림을 돌아다니며 토끼영양노루와 사슴 등 가벼운 먹이는 그들이 잡았고 맷돼지나 곰 그리고 인간인 경우에는 가족무리를 불러 공동사냥을 한다가족무리는 열 마리 쯤인데 가족무리로 사냥이 어려울 때는 다른 가족을 불러들인다더러는 서너 개의 가족무리가 합동사냥을 하기도 한다평소에는 영토를 두고 서로 물어뜯고 싸웠으나 공동의 목적에서는 단합했다자기들 보다 수가 많고 전력이 강하다고 판단하면 싸움을 포기한다파론포수는 그걸 염려했다.

 

정오께 현장에 도착했는데 이리들은 덤벼들지 않았다산림어귀에서 서너 마라가 서성거렸으나 가까이 오지 않았다사냥대는 턴막을 치고 불을 피웠다파론포수가 그리드개만 데리고 주변을 조사했다고리드개는 썰매개들처럼 함부로 짖지 않았다이리발자국을 추적했다산림어귀에 있던 이리들은 고리드개를 보자 슬그머니 사라졌다파론포수는 이리를 추적하지 않았다그깟 몇 마리의 이리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이리들의 소굴을 알아내서 몰살시키려고 했다날이 어두워질 무렵 돌아온 파론포수와 고리드개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천막안이 너무 덥다고 했다천막밖 모닥불 옆에서 저녁을 먹고 쉬었다돌처럼 딱딱한 검은보리빵을 손도끼로 잘라먹고 사슴고기육포와 마늘파 그리고 고추를 먹었다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중국산 차를 끓여 미숫가루를 타서 마셨다그리드개들은 주인이 던져준 사슴뼈를 부셔 먹었다사슴의 허벅지 굵은 뼈까지 쪼개먹었다.

이곳에서 사람을 덮친 이리무리는 세 가족무리입니다.동북쪽 산림 안에서 사는 무리가운데 산림에 영토를 가진 무리와 레나강변 산림에 사는 무리입니다.’

가운데 산림의 무리가 가장 강하고 서른 마리가 넘었다총 여든 마리가 넘을 것이라고 했다날이 어두워지자 여기저기서 불빛이 나타났다이리들의 눈빛이다이리들이 야영장 주변을 돌아다니자 썰매개시베리안 허스키와 순록이 겁을 먹었으나 고리드개는 태연했다파론포수가 고리드개 두목을 묶었기 때문에 부하들도 움직이지 않았다카이자영감도 썰매개를 묶었다.

이리는 개와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카이자영감이 말했다.

이리는 개가 추적을 하면 우선 도망을 칩니다.’

이리는 장거리선수이므로 개가 추격하도록 해놓고 갑자기 돌아서서 반격을 했다개는 지쳐서 대열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탈락한 개들도 있는데 갑자기 돌아선 이리는 선두를 덮쳤다썰매개들은 이리의 이런 작전에 당했는데 고리드개는 그런 술책에 말려들지 않았다구리드개는 도묵의 지휘 아래 한결감이 행동하고 낙오하는 개나 뒤처지는 개는 없다그래서 고리드개는 이리들이 주변을 돌아다녀도 아무 반응이 없다엎드려 잠을 잤다이리들은 밤새 적의 동정을 살폈으며 자기들 보다 우세하다고 판단하여 싸우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열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는 싸울 수 없다더구나 이리가 가장 싫어하는 화약냄새가 났다스무 마리가 넘는 개들을 데리고 있고그 개들 중에는 자기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들이 있다이리는 날이 밝아오자 슬금슬금 물러나 삼림으로 들어가버렸다이제 사람들이 이리를 사냥할 차례다파론포수는 삼림 중앙부의 무리를 잡기로 했다서른 마리가 넘는 가장 큰 무리다.

 

시베리아 동북부에 있는 타이가(침엽수림)나 동토의 광야에 살고잇는 이리들은 자기들끼리의 제국帝國을 만들어놓았다여러 가족무리들이 서로 연락하여 공동의 적과 싸웠다목을 길게 빼며 우는 소리가 신호다잘 훈련된 군대다서로 작전을 짜고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했다전투가 시작되면 메뚜기처럼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싸움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삼국지의 관우나 장비는 혼자서 싸워 이기지만 현실의 싸움은 공상소설과 다르다한꺼번에 달려드는 이리를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이리들은 민첩했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빨은 살점을 손바닥만큼 뜯어냈다이리의 능력에는 더 무서운 것이 있다지구력持久力이다이리는 튼튼한 폐를 가진 장거리선수다이리는 시속 50Km의 속력으로 열 시간을 달렸다. 500Km를 쉬지 않고 같은 속력을 유지하며 달릴 수 있다는 말이다그렇게 장거리를 뛰는 짐승은 이리 외에는 없다사람의 마라톤은 40Km를 2시간에 주파하는 정도다마라톤선수는 한 시간에 20Km가 한계다이리는 한 시간 50Km의 속도로 열 시간 500Km를 쉬지 않고 달린다이리의 추격에서 살아남는 먹이는 없다범이나 표범도 이리의 영토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곰들이 타이가에 살았으나 이리와는 다투지 않는다잡은 먹이를 내준다이리의 제국에 도전하는 짐승은 없다그러나 이리에게도 단점이 있다이리는 이동을 할 때 똑바로 일직선으로 달리는 버릇이 있다광대한 툰드라에서는 그렇게 해야 목적지까지 빨리 갈 수 있다.

이리 가면 됩니다.’

파론포수가 지남철을 끄집어내 추적방향을 가리켰다지남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가면 된다그 선상線上 어딘가에 이리들의 은신처隱身處가 있다스무 마리 쯤의 이리들이 똑바로 북쪽으로 가고있었다침엽수삼림으로 들어간 뒤에도 일직선으로 북쪽을 향했다시끄럽게 짖어대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입을 묶었다고리드개는 짖지 않았다하오 늦게 추적이 중단되었다그때까지 일직선으로만 가던 이리들의 발자국이 지그재그로 변했다.

은신처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리뿐만 아니라 짐승들은 둥지나 은신처를 감추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파론포수가 주변을 수색했다삼림 깊숙이 숨겨져있는 이리들의 은신처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파론포수는 타이가사람이며 이리들만큼 타이가를 잘 알았다그래도 조심해야 한다타이가삼림에는 영하 30 - 40도에서 사는 불곰이나 울부린이 있다울부린은 족제비과동물인데 몸무게가 30Kg이나 되고 호전적이고 잔인하다. 400Kg이 넘는 불곰도 자기가 잡은 먹이를 내준다그때도 울부린이 마른 풀숲에서 소리도 없이 튀어나와 파론포수에게 덮쳐들었다그러나 파론포수가 총을 들어올렸으나 쏘지 않았다총을 쏘면 인근에 있는 이리들이 총소리를 듣는다곁에 있었던 고리드사냥꾼이 손도끼를 날렸다그는 10m 거리에서는 토끼를 명중시킨다날아간 손도끼가 울부린의 등 한가운데 박혔다하오 늦게 이리들의 은신처를 찾았다큰 바위밑에 굴을 파놓고 살았다안에 꽤 많은 이리들이 있는지 온기가 배어나왔다망원경으로 살피고 있었는데 사냥을 하러나갔던 이리 대여섯 마리가 돌아왔는데 동굴에서 새끼들이 나왔다모두 열서너 마리다어미이리들이 토해낸 먹이를 서로 먹으려고 다투었다대가족이다새끼가 열서너 마리라면 어미는 서른 마리 이상이다이리들은 스스로 가족계획을 하는데 가족들이 먹여살릴만한 수만 새끼를 낳는다이리들이 목숨을 걸고 사람을 습격한 이유가 많은 새끼들에게 있다파론포수는 본부가 있는 야영장으로 돌아갔다눈바람이 거세졌으므로 모닥불은 피우지 못 하고 천막 안에만 석유곤로를 피웠으므로 모두 추워서 덜덜 떨었다다음날 새벽 이리사냥이 시작되었다이리의 은신처를 이중으로 포위했다마즈스킨과 동료 두 사람정부관리소의 지방사냥꾼 두 사람이 파론포수의 지휘로 토굴입구를 포위하고다른 사냥꾼들과 개들이 토굴 주변에 배치되었다파론포수와 동료가 동굴 앞까지 기어갔다파론포수는 동굴 앞에서 기묘한 짓을 했다파론포수가 오줌을 누었고 동료는 엉덩이를 들어내고 똥을 누었다.

(저게 뭐 하는 짓이야?)

마즈스킨이 아연실색啞然失色 했으나 이리들을 밖으로 유인하려는 전략이다이리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밖에서 사람냄새를 풍겼다이리는 예민한 후각嗅覺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후각을 이용했다서너 마리의 이리가 동굴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주변은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데 사람냄새만 났다두목이리가 코를 땅에 대고 토굴 주변을 돌아다녔다사냥꾼들이 약 20m 거리에서 토굴을 포위하였는데 두목이리가 다가왔다다른 이리들도 두목의 경계신호를 들은 그들은 밖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려고 나왔다스무 마리 쯤이다파론포수가 발포신호를 내렸다일제히 발사한 총탄에 두목을 비롯하여 열 마리 쯤 이리들이 쓰러졌다나머지는 도망을 쳤다동굴 안에 있던 여나문 마리도 도망을 쳤다다시 총을 발사하여 여섯 마리를 죽였으나 나머지는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다이중으로 포위한 외곽外廓팀이 사냥개를 플었다그때까지 조용하게 있었던 사냥개가 무섭게 짖으면서 이리들에게 달려들었다개는 이리들의 세 배가 되었으므로 이리를 압도壓倒했다특히 고리드개는 이리들에게 몸을 부딪혀 쓰러뜨렸다개에게 몰린 이리들이 아가리를 벌리며 필사적으로 대항했다이리는 개 보다 덩치가 크고 뒷발이 길어 도약력跳躍力이 강하다이리에게 물린 개들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그러나 숫적으로 우세한 개들이 물러나지 않고 이리의 뒷다리를 물고 공격을 했다서너 마리의 개들이 목줄이 찢어져 치명상을 입었으나 이리는 여덟 마리가 죽었다나머지 일곱 마리는 도망을 쳤다주력走力은 개 보다 빠르다그래서 도망친 이리들은 살아날 수 있었는데 이상한 일을 했다도망치던 이리들이 굴로 되돌아왔다토굴에서는 사냥꾼들이 새끼를 사살하고 있었는데 되돌아온 이리들이 나타나자 모두 사살했다왜 도망가면 살 수 있었는데 돌아왔을까?

 

추격을 뿌리치고 도망했던 녀석들은 이리들 중에서 가장 강한 이리입니다마음만 먹었다면 도망갈 수 있었지요그러나 그들은 되돌아와 모두 죽었습니다동굴에 있는 새끼와 늙은 이리를 구출救出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되돌아가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되돌아왔다시베리아 타이가에 사는 이리들은 세상의 어느 짐승보다도 가족의 유대紐帶가 강하다엄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죽는 경우가 있는데 일부는 죽고 일부가 사는 일은 없다죽으면 다같이 죽고 살아도 다같이 살았다파론포수가 여기저기 널린 이리들의 주검을 보고있었는데 그 표정에 증오나 혐오는 없었다다른 사냥꾼들도 숙연肅然해졌다시베리아 동북쪽 삼림에는 사냥꾼들이 몰살시킨 이리가족 외에 두 무리의 이리가족이 더 있다다음날 사냥꾼들이 회의를 한 결과 툰드라의 이리사냥은 끝내기로 했다추위와 고로로 지쳤고 개들의 희생이 컸다그게 가장 큰 이유였으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툰드라 남쪽과 북쪽에는 보리밭이 있는데 농부들이 이리사냥을 반대했다이리가 없으면 곰사슴과 노루가 보리밭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툰드라 타이가에 사는 이리들이 짐승을 잡아먹었으므로 농부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농민들의 주장은 강했으므로 볼조이를 잃은 마즈스킨도 부하 첸을 잃고 자기 팔을 잃은 부린도 반대하지 못 했다.

 

 

136. 지옥地獄 코끼리

 

19285,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호텔에 머물고 있었던 영국인 트로피헌터(기록물사냥꾼) 리차드에게 비밀스러운 손님이 찾아왔다. 영국육군위 사격교관이었던 리차드는 제대 후에 동남아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기록이 될만한 특별한 짐승들을 사냥했는데 그는 이미 3년 전에 인디아에서 현상금이 걸려있는 식인호랑이를 잡았다. 그 호랑이는 사람 열여덟 명을 잡아먹었는데 사자처럼 갈기에 털이 있어 갈기범이라고 불리웠다. 리차드는 지난해에도 말레이반도에서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들소로 알려진 사라당을 잡았다. 사라당은 맹수사냥꾼들에게는 가장 명예로운 트로피다. 리차드는 버마의 밀림에 아직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신종 들소가 돌아다닌다는 정보를 듣고 양곤에 왔다. 그 당시 미얀마는 영국이 지배했으며 영국은 미얀마를 인디아총독부 산하傘下의 성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양곤에 성청省聽을 설치한 영국관리는 미얀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그저 불교가 성행하여 도처에 사원寺院이 있는 나라이며 여러 민족이 살아 분규가 그치지 않는다는 정도다. 따라서 영국관리는 미얀마를 신비롭고 위험한 나라로 분류하여 외국인여행을 규제하고 지역에 따라서는 아예 여행금지를 시켰다. 리차드도 그 금지에 걸렸다. 그는 미얀마의 동북쪽 타이와 라오스의 국경지대에 가려고 했는데 영국관리는 한 마디로 거부했다. 미얀마 동쪽 샨주고원高遠지대에 들어가면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수갑手匣을 차고 돌아오는 것이 관에 들어가 돌아오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리차드는 단념하지 않았다. 특정 짐승을 잡겠다는 트로피헌터의 집념은 무섭다. 그런 상황에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샨족의 어느 소보아(촌장村長)였다. 샨주는 서른 개가 넘는 지역으로 나뉘어져 각 지역의 수령 소보아가 수령首領이 지배했는데 그 소보아는 타이와 국경지대에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울창한 원시림에의 고원지대다. 소보아는 주위를 살피면서 귓속말로 말했다. 코끼리 한 마리를 잡아주면 미국돈 3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런던 중심가에서 빌딩 한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놀라운 제의다.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이며 살생이 금지된다. 더구나 코끼리를 잡겠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코끼리는 불교에서 신성한 동물로 보호받았다. 그러나 소보아는 미얀마 최고승려僧侶로부터 코끼리를 잡아도 좋다는 허가서를 보여주었다.

소보아는 한 달 전 영지에 갔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다. 그 일대는 울창한 원시림이며 범, 표범, 들소와 야생코끼리가 돌아다녔기 때문에 소보아는 안전한 여행방법을 택했다. 잘 훈련된 두 마리 코끼리를 타고 총까지 가지고 갔다. 범 같은 맹수도 코끼리에게는 덤비지 못 한다. 가축코끼리들이 다니는 길에는 야생코끼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야생코끼리도 평화로운 동물이라서 코끼리끼리는 싸우지 않았다. 영지다툼도 없고 암수다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보아는 안심했다. 함께 간 사위와 딸이 뒤를 따랐다. 소보아가 탄 코끼리는 잘 훈련된 장년이었으며 들소가 길을 내주고 표범이 도망을 쳤다. 코끼리가 소보아의 영지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멈췄다. 앞머리에 선 코끼리가 뒷걸음을 쳤다.

뭐야? 왜 그래!'

사육사가 고함을 질렀으나 코끼리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바위 뒤에서 커다란 코끼리가 나타났다. 몸무게가 5t이나 될 것 같았는데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귀가 걸레처럼 찢겨져 너불거렸다. 그 코끼리 눈가에서 검은 피가 흘려내렸다. 피가 아니라 진득거리는 검은 액체다.

어이쿠! 저 건 지옥에서 온 코끼리야!’

사육사가 비명을 질렀다. 소보아도 지옥에서 온 코끼리의 소문을 들었다.

 

지옥에서 온 코끼리는 피냄새를 맡으면 악귀惡鬼로 변했다. 악귀가 된 코끼리는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으면 기어코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코끼리의 코는 예민하여 사방 10리 안에서 나는 피냄새는 어김없이 감지했으므로 소보아의 영지에서는 잇달아 희생자가 생겨 공포에 휩싸였다. 지옥에서 온 코끼리는 반 년 전 쯤에 물을 길으려고 계곡에 간 여인들을 덮쳤다. 여인들은 모두 열 명이었으며 앞뒤에서 젊은이들이 경호를 섰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코끼리는 계곡 상류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코를 치켜들고 나팔을 불면서 회오리바람처럼 덮쳐들었다. 앞머리에서 경호를 하던 사냥꾼이 창을 들고 맞섰으나 코끼리가 휘두르는 코에 맞아 공중으로 날아가 즉사했다. 코끼리의 목표는 경호원이 아니고 비명을 지르며 하류로 달아나는 여인을 쫓았다. 도망가다가 넘어진 여인이 있었으나 그 여인은 버려두고 젊은 아가씨를 추격했다. 코끼리는 그 아가씨를 밟아 죽이고 다른 아가씨를 추격했다. 몇 백 미터를 추격하여 코로 때려죽였다. 죽은 아가씨의 몸을 코로 감아 휘두르다가 던져버렸다. 죽은 아가씨를 밟아 핏덩어리로 만들고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다. 조사를 해보니 죽은 아가씨들은 달거리를 했다. 지옥에서 온 코끼리는 1주일 후에는 마을을 덮쳤다. 마을에서는 초상初喪을 치루고 있었는데 피를 흘리며 급사急死한 노파老婆의 시신屍身을 관에 넣고있었는데 코끼리가 노리는 대상은 죽은 노파였다. 노파가 흘린 피냄새가 코끼리를 불러들였다. 가족 세 사람도 죽었다. 소보아는 자기 영지에서 일어난 소문을 들었으나 대책을 세우지 못 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신성시하는 코끼리를 죽일 수 없어 최고승려에게 허가를 받아 코끼리사냥을 하려고 했다.

 

소보아는 영지에 돌아오는대로 코끼리사냥을 하려고 했으나 코끼리가 먼저 소보아를 찾아왔다. 앞머리에 선 가축코끼리가 앞길을 막고있는 야생코끼리를 달래려고 했다. 소보아가 타고있는 가축코끼리는 야생코끼리에게 다가서면서 부드럽게 인사를 하고 코로 상대의 몸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야생코끼리는 코를 홱! 뿌리치고 뒤따라오는 가축코끼리에게 돌진했다. 소보아의 사위와 딸이 타고있는 코끼리를 덮쳤다. 야생코끼리가 덮쳐들자 가축코끼리는 뒷걸음질을 쳤는데 야생코끼리가 추격했다. 코를 치켜들고 망가진 나팔소리를 하며 달려들었다. 소위 지옥의 나팔소리다. 가축코끼리에 타고있었던 딸이 비명을 질렀는데 그 비명이 코끼리를 자극했다. 야생코끼리가 가축코끼리에게 부딪혔다. 야생코끼리가 훨씬 몸이 크기 때문에 가축코끼리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러자 야생코끼리가 소보아의 딸을 코로 감아올려 휘두르다가 던져놓고 발로 밟았다. 사위와 사육사도 때려죽였다. 그 사이에 소보아가 총을 들어올렸으나 쏘지 못 했다.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그놈은 이 세상의 짐승이 아니라 지옥에서 온 마귀魔鬼. 소보아가 총을 쏘지 않은 건 잘 한 일이다. 총을 쏘았다면 소보아 자신도 살아남지 못 했을 것이다. 야생코끼리는 소보아가 들고있던 총을 던져버리는 걸 보고덤벼들지 않았다. 세 사람을 죽이고 사림 안으로 사라졌다. 소보아의 딸을 죽인 이유는 월경月經의 피냄새다. 소보아의 딸은 달거리중이었다. 소보아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코끼리를 쫓았지만 코끼리는 잡지 못 하고 두 사람이 희생되었다. 코끼리를 포위했는데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서 뒤돌아와 포수와 조수를 때려죽였다. 포수가 세 발을 쏘았는데 한 발도 맞지 않았다.

 

10m 거리에서 쏜 총탄이 한 발도 맞지 않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으나 리차드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정글은 동남아밀림을 가리킨다. 크고 작은 각종 나무들과 나무를 감은 등줄기와 사람키만큼 큰 잡초덤불이 뒤엉켜있어 철조망 같은 벽을 이루고 있다. 거기다가 정글 안에는 적도하의 태양볕에 증발되는 습기가 안개처럼 흐르고 있다. 정글 속에서는 코끼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보였다고 해도 회색벽이 울렁거리는 모습이다. 총을 쏜 사람도 불안과 공포에 빠져서 제대로 사물을 분간할 능력을 잃고 있었다. 상대는 보통 코끼리가 아니라 지옥에서 온 마물이다.

리차드가 소보아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미얀마와 태국, 라오스의 국경지대는 트로피헌터에게 더없는 사냥터였으며 그런 기회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리차드는 몽골로이드족 조수 추바이만 데리고 갔다. 추바이는 허리에 만도蠻刀를 차고다녔는데 큰 나무를 자르는 도끼로 쓰이고 수염을 깎는 면도역할도 했다. 언젠가 인디아 오지奧地의 숲에서 킹코브라가 리차드를 덮쳤는데 그때 추바이의 만도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킹코브라의 대가리를 쳐내버렸다. 절단된 대가리는 2 - 3m를 날아가 나뭇가지를 물었다.

리차드가 소보아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나 영지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다. 광대한 정글지역에는 인간의 길이 없다. 일행은 수로水路를 선택했다. 상류로 거슬러 올라 했기 때문에 여덟 명의 일꾼들이 카누의 노를 젓거나 줄로 묶어 끌어야 했다. 수로로 가면 정글에서 야생코끼리나 들소들과 만날 위험은 없다. 숲에 있는 범, 표범이나 맹수들에게 기습당할 염려도 없다.

카야주 탄루윈강에서 출발한지 이틀만에 탄루강지류로 들어갔다. 물줄기가 사나워서 카누를 끌고갔다.

 

일행이 사흘 동안 물길을 거슬러올라간 뒤 소보아영지로 들어갔다. 물깊이가 얕아 걸어갔다. 정글의 코끼리길로 갔으나 위험하다. 코끼리의 전용專用터널이므로 언제 코끼리가 나타날지 모른다. 터널 안에서 코끼리를 만난다는 건 바로 죽음이다. 일행은 다음날 오전에 코끼리떼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할 수 있었다. 코끼리가 사람을 습격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현장에는 세 사람의 시신과 당나귀시체가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태국을 넘나들면서 밀무역을 하는 장사꾼들이다. 당시 미얀마정부는 쇄국주의鎖國主義정책을 시행하여 태국과 무역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밀무역을 했다. 무역이래야 겨우 당나귀 몇 마리에 범, 표범의 껍질과 상아나 코뿔소뿔을 싣고가 총, 화약, , 도끼나 냄비를 바꿔오는 규모였는데 그래도 가난한 원주민에게는 큰 돈벌이다. 리차드가 코끼리가 한 짓을 보고 분노했다. 누가 동남아 코끼리가 아프리카 코끼리 보다 얌전하다고 했는가? 동남아의 야생 코끼리는 아프리카 코끼리 보다 잔인하고 사납다.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다른 짐승을 잡아먹지는 않았으나 무서운 살육본능을 가지고 있다. 지옥코끼리는 한 마리가 아니고 그곳의 코끼리가 모두 같았다. 소보아가 현장을 보고 돌아가자고 했으나 리차드가 계속 추적하자고 했다. 그날 하오 소보아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사람의 피가 온몸에 얼룩져있는 한 무리의 코끼리떼가 나타났다.

 

리차드는 아프리카에서도 코끼리사냥을 했는데 동남아정글의 코끼리는 별종이다. 덩치가 작고, 등이 둥글게 구부려졌으며, 어금니도 빈약하다. 그 놈들에게는 드넓은 아프리카초원의 웅장한 모습이나 너그러움이 없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정글코끼리는 신경질적이다. 욕구불만이 가득한 짐승이다. 코끼리떼는 열 마리 쯤 되었는데 새끼가 없는 것으로 봐서 떠돌이수컷들이다. 코끼리가 대뜸 덤벼들었다. 아프리카코끼리 같으면 일단 경고를 하고 그래도 물러나지 않으면 공격을 하는데 정글코끼리는 그런 절차없이 덮쳤다. 밀어붙여 죽여버릴 생각이다.

이 새끼들이!’

리차드가 고함을 질렀다. 터널 안에서 코끼리와 사람이 부딪치면 둘 중 하나는 죽는다. 리차드는 영국제 좌우 2연신 라이플을 가지고 있는데 구경 450의 대포처럼 긴 총이며 대포와 같은 파괴력이 있다. 조수 추바이도 같은 총을 가졌다. 예비용인데 리차드가 총을 다 쏘면 예비총을 얼핏 넘겨주고 빈 총에 장탄을 한다. 연결동작은 10초도 걸리지 않았으므로 리차드는 기관총처럼 발사할 수 있다. 코끼리가 경고없이 덮쳤지만 리차드도 경고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세 사람을 밟아죽인 살인코끼리에게는 경고가 필요없다. 구경 450의 대포같은 총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발사되었다. 과녁은 코끼리의 눈과 귀 사이 동전銅錢만한 반점이다. 그곳에 연골軟骨이 있고 그 연골을 뚫고 들어가면 바로 뇌를 파괴한다. 맨 앞머리에서 돌진하던 두목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고 옆으로 쓰러졌다. 한 발이면 족했다. 다음에는 두목의 시체를 타고넘던 젊은 코끼리가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그래도 세 번째 코끼리가 덤벼들었다.

 

세 번째 코끼리는 쓰러져있는 두 마리를 타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30초 정도의 그 시간에 추바이가 예비총을 넘겨주었다. 세 번째 코끼리는 리차드 바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네 번째 코끼리는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했으나 뒤에서 밀고들어오는 동료들 때문에 몸이 비틀거렸다. 그 놈도 대가리에 총탄을 받고 쓰러졌고 다음 놈도 쓰러졌다. 다음놈들은 몸을 돌려 도망쳤다. 리차드는 도망가는 놈들을 쏘지 않았다. 사냥꾼은 엉덩이를 쏘지 않는다. 소보아일행은 그저 멍! 하니 코끼리사냥을 보고만 있었다. 다섯 마리의 코끼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살되다니 . 리차드의 명성名聲은 이미 듣고있었던 바이지만 그렇게까지 빠를줄은 몰랐다. 리차드가 죽은 코끼리를 조사하더니 혀를 찼다. 트로피가 될만한 것이 없다. 싼값으로 팔 가치도 없다. 누렇게 찌그러진 빈약한 상아다.

소보아일행은 다음날 소보아저택에 도착했다. 방이 열 개나 되는 호화주택이며 일하는 하인들이 열 명이나 된다. 리차드는 피로했으나 쉴 틈이 없었다. 또 지옥코끼리가 사람을 해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이를 낳고있었던 젊은 산모産母와 갓난 아기였다. 그곳의 풍습은 출산 때 산모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서 산파産婆 한 사람의 도움으로 출산을 하는데 지옥의 코끼리가 인근을 돌아다닌다는 걸 몰랐다. 출산 때 흘리는 피냄새를 맡고 코끼리가 외딴집을 덮쳤다. 막 출산이 되는 판에 지진이 난 듯 땅이 울렁거리며 집이 무너지자 산모가 아이를 안고 마을로 도망을 쳤는데 코끼리는 산파는 놔두고 산모를 쫓았다.

 

마을사람들이 산모의 비명을 듣고 마을어귀로 달려나왔으나 뒤를 쫓는 코끼리를 보고 고함을 쳤다.

저건 지옥 코끼리야!’

마을어귀에서 산모를 잡은 코끼리는 코로 산모의 목을 감아 쓰러뜨리고 발로 짓밟았다. 산모는 죽어가면서 아이를 마을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런데 코끼리는 산모를 밟아죽인 다음에 마을로 뛰어들어 아이까지 죽였다. 마을사람들에게는 활과 창이 있었으나 벌벌 떨면서 코끼리를 대적하지 못 했다.

그놈은 예사 코끼리가 아니라 지옥코끼리입니다. 악마지요.’

장정과 사냥꾼들의 말했는데 소보아도 그들을 꾸짖지 못 했다. 그 자신도 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쏘지 못 했으니까. 그 코끼리가 정말로 지옥에서 온 것일까? 불교의 가르침에는 그런 말은 없다. 리차드도 그런 말을 믿지 않았다. 수의사獸醫師 친구의 말로는 동남아코끼리가 이상한 병에 걸린다고 했다. 연구를 했으나 병의 원인이나 치료방법을 밝혀내지 못 했다. 마스트라는 병이다. 마스트는 성장한 수컷만 걸리고 1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발병하는데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는 성질이 난폭해진다. 주위에 보이는 동물은 다 죽인다. 자기를 사육하는 마푸트(사육사)도 죽이고 동료도 죽인다. 일종의 정신병인데 성적性的인 원인이 있을 거라는 짐작만 했다. 한 달 쯤 되면 자연치료가 된다. 그 중에는 평생 낫지 않은 놈이 있는데 바로 지옥코끼리다.

 

인디아 등 동남아에서는 매년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에게 100명 넘게 살해된다. 코끼리가 사람을 죽일 때는 사람 보다 더 영리해진다. 마푸트는 코끼리를 사육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코끼리를 잘 알았으나 코끼리에게 당한다. 사람의 약점을 이용한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나 코끼리는 죽지 않았다. 인디아에서 코끼리는 큰 재산이다. 코끼리를 소유한 귀족이나 지주地主는 코끼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벌목장伐木場에서 큰 돈벌이를 했다. 열 사람을 죽인 코끼리는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살육을 저지른 코끼리는 쇠사슬에 묶이자 무릎을 꿇고 얌전해졌다. 얌전해진 척 했다. 비가 억수처럼 내렸는데도 코끼리는 눈을 감고 비를 맞고 있었다.

이봐! 이렇게 얌전한 코끼리를 왜 묶었어? 빨리 풀어 벌목장으로 데려가!’

귀족이 사육사를 꾸짖었다. 그래서 사육사가 코끼리를 벌목장에 데려갔는데 이튿날 사육사는 코끼리에게 밟혀죽었다. 코끼리가 자기를 쇠사슬로 묶은 복수를 했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에 돌아다니는 코끼리가 지옥코끼리든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든 살려둘 수 없다. 아무도 코끼리 추적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으나 리차드가 조수 추바이를 데리고 추적에 나섰다. 미친 코끼리를 잡겠다고 정글에 들어가는 것 또한 미친짓이었으나 리차드는 집념을 꺾지 않았다. 지옥코끼리는 사냥꾼이 자기를 추적하는 걸 알고 밀림 깊숙이 도망을 치고 있었다.

 

코끼리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코끼리가 지나간 길에 터널이 생겼으므로 터널을 따라가면 된다. 코끼리는 하루에 100Kg이나 되는 먹이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중 반나절을 먹는데 쓴다. 그래서 그놈은 천천히 먹으면서 가고 똥오줌을 쌌다. 그날 정오께 거리가 좁혀져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고 풀을 훑어먹는 소리다. 먹이를 먹을 때는 신경이 좀 둔해진다. 리차드가 총을 들어올리고 기습을 할 생각으로 소리를 죽이며 접근했는데 소리가 딱! 끊어졌다. 예민힌 코가 사람냄새를 맡았다. 기다렸다. 모기와 파리떼에 아예 몸을 맡겨놓고 한 시간 동안 기다렸으나 반응이 없다. 도망가지도 않고 덤벼들지도 않는다? 그렇다. 놈은 살인을 전문으로 하는 놈이다. 리차드가 뒤를 돌아봤다. 들닭이 날아올랐다. 들닭은 날개가 시원찮아 잘 날지 않고 걸어다니는데 그런 새가 갑자기 날아오르는 걸 보면 위험을 느낀 것이다. 들닭이 날아오른 곳에 살기가 느껴졌다. 살인코끼리에게 살육본능이 있다면 사냥꾼에게는 육감六感이 있다. 그 숲에서 공격을 당하면 살아날 길이 없다. 코끼리에게는 안성맞춤의 사냥터고 사람에게는 최악의 싸움터다. 탱크같은 코끼리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가시덤불도 짖밟을 수 있으나 사람은 그런 장애물이 있는 곳에서는 총을 쏠 수가 없다. 급소인 종전만한 과녁을 어떻게 겨냥할 수 있겠는가? 리차드는 얼핏 코끼리터널에서 빠져나와 가시밭으로 뛰어들었다. 가시밭을 뚫고 나가 낭떠러지로 굴렀다.

 

낭떠러지는 2m 정도 깊이였는데 굵고 큰 기둥같은 다리를 가진 코끼리는 그런 낭떠러지를 싫어한다. 리차드가 낭떠러지 밑으로 굴렀을 때 지진이 일어나고 머리 위를 지나가는 굉음轟音을 들었다. 코끼리가 라차드의 머리를 타고 넘어버렸다. 가시덤불에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목숨은 살았다. 리차드는 소보아저택으로 돌아갔는데 높은 열이나서 드러누웠다. 가시덤불에는 독초가 있어 그 가시에 찔리면 목숨이 위험하다. 나흘 후에 겨우 일어났다. 목숨은 건졌으나 참패慘敗. 며칠 전에는 다섯 마리를 잡았는데 이번에는 겨우 한 마리에게 수모受侮를 당했다. 병상病床에서 일어났으나 사냥을 하지 못 했다. 6월은 우기雨期이며 비가 시도때도 없이 내렸다. 마을사람들은 비옥코끼리를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비가 온다고 했다. 코끼리사냥을 그만 두라고도 했다. 죽은 사람들은 죽을 팔자八字라고 했다. 리차드가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 원주민노인이 찾아왔다. 백발이었고 환갑이 넘었다. 눈빛이 예사노인이 아니다. 노인은 자기에게 코끼리가 있는데 그 코끼리가 리차드의 사냥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영감님 코끼리는 어떤 코끼리입니까?’

암컷입니다.’

실망했다. 암컷이 어떻게 숫컷과 싸우겠는가? 농니의 다음 말은 리차드를 더욱 실망시켰다. 코끼리의 나이가 영감과 같다고 했다. 콨끼리의 수명은 60년이었으므로 죽을 때가 다 된 코끼리다. 싱싱이라고 이름을 밝힌 노인은 자기 코끼리를 데리고 있지 않으며 밀림에서 살고있다고 했다. 자기 밑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므로 여생을 자유롭게 보내도록 밀림으로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소보아가 듣고있다가 어이없다고 하며 노인을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리차드는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늙은 코끼리는 무슨 일을 했지요?’

일을 하지 않고, 두목이었으므로 많은 코끼리를 다스렸습니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에게는 두목이 있다.

두목코끼리는 지금은 밀림에서 사는데 어떻게 그놈을 데려오지요?’

내가 부르면 나타납니다.’

리차드는 수의사친구로부터 늙은 암컷이 두목인 예가 많으며 아무리 사나운 코끼리도 두목의 명령에는 꼼짝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다. 싱싱여감은 자기가 도와주는 보수로 적은 돈을 요구했다. 영감에게는 애비없는 손자가 있는데 손자를 장가보내는데 얼마간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며칠 후 영감과 리차드는 코끼리를 타고 밀림에 들어갔다. 싱싱영감은 코끼리를 불러낸다고 했으나 밀림을 그저 돌아다녔다.

괜찮아요. 내가 판초를 찾지 않아도 판초가 나를 찾아옵니다.’

다음날 리차드와 영감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쉬고있을 때 판초가 나타났다. 판초는 예수 주인의 몸냄새를 맡았다. 리차드가 판초를 보고 웃었다. 싱싱영감처럼 판초는 주름투성이다. 한쪽 눈은 주름에 덥혔다. 판초는 옛 주인을 보자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절을 했다. 판초는 혼자 왔으나 무리가 있었는데 무리를 떼어놓고 예수 주인의 시중을 들었다. 다음날부터 살인코끼리사냥을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서 살인코끼리정보가 들어왔다. 비가 내리던 날 살인코끼리가 마을에 들어와 처녀를 죽였다. 그 처녀도 월경 중이었다. 싱싱영감은 판초에게 지옥코끼리의 발자국을 보여준 다음 그 발자국을 따라갔다. 판초가 살인코끼리를 추적하라는 뜻을 알아차렸다. 코끼리는 태국구경의 밀림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이 밀생하여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정글인데 살인코끼리는 일부러 그런 곳으로 들어갔다. 살인코끼리가 꽤 빠른 속도로 달아났으나 판초는 서둘지 않았다. 코끼리는 밀림에 길을 뚫으면서 갔기 때문에 뚫린 길로 따라가는 판초와 거리가 좁혀졌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코끼리의 울부짖음이 들렸다. 광기와 살기가 어렸는데 계속 따라오면 죽이겠다는 경고다. 판초는 그 고함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코끼리끼리는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았는데 듣기만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판초는 방향을 바꿔 바위산으로 갔다. 판초가 바위산을 선택한 이유가 곧 밝혀졌다. 비가 왔다. 바위산절벽에서 비를 피했다. 판초는 코끼리무리의 도목이었다. 산세와 지세를 이용할줄 알았다. 영감이 모닥불을 피웠는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도 그곳에는 내리지 않았다.

나리, 오늘밤은 편히 주무십시오. 사냥은 내일 합시다.’

영감은 바위에 기대 잠을 잤다. 판초도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계속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데 코끼리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비를 맞고있는 살인코끼리의 비참한 고함이다. 추위와 고통에서 통곡을 했다. 정오 쯤 비가 그치자 다시 추적이 시작되었다.

 

판초의 예리한 코는 미친코끼리를 놓치지 않았다. 계속 동쪽으로 가고있었는데 그쪽에는 태국구경의 철조망이 있다. 높이가 2m나 되었고 이중이다. 코끼리는 그 철조망을 뚫을 수 없다. 판초가 그걸 알고 코끼리를 그쪽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하오 서너시 쯤에 미친코끼리가 보였다. 나뭇가지와 가시에 찔려 피를 흘렸다. 커다란 귀가 나풀거리고 코가 창처럼 뻗었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눈과 귀 사이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판초를 발견한 미친코끼리가 고함을 질렀다. 살기가 어린 협박이다. 판초는 침착했다. 부드럽게 달랬듯 응답했다.

(왜 이래, 나는 널 해치지 않아, 도아주려고 해!)

미친코끼리가 계속 고함을 지르다가 돌진했다. 그놈이 휘두르는 코가 판초의 몸에 닿을 거리인데도 판초는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부드럽게 달래고 있었다. 미친코끼리가 판초의 코앞에서 멈췄다. 갑자기 얌전해졌다. 조용해지고 눈에서 광기가 사라졌다. 미친코끼리가 자기를 키워준 여두목을 알아봤다. 어머니처럼 인자한 여두목이다. 생모生母가 아니어도 코끼리무리는 여두목이 키운다. 미친코끼리도 여두목에게는 복종을 했다. 영감이 리차드에게 눈짓을 했다. 판초가 옆으로 피했다. 리차드가 총을 들어올려 눈과 귀 사이를 겨냥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코끼리의 눈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귀가 축 쳐지고 코가 덜렁거렸다. 사람만보면 반사적으로 덤벼들었던 놈이 조용하게 사람을 응시했다. 그러나 살인코끼리를 놔둘 수 없다. 리차드가 발포했다. 눈과 귀 사이를 겨냥했고 명중했다. 무릎을 꿇고 옆으로 쓰러졌다. 판초가 슬픈 눈으로 보고있었다.

(이봐, 너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어!)

판초가 코끼리를 어루만졌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았다. 코끼리의 몸에 많은 탄환이 박혀있었다. 구식총탄이다. 무릎에 박힌 총탄이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를 살인코끼리로 만든 것 같았다. 싱싱영감은 리차드에게 받은 돈으로 손자를 결혼시켰다. 판초는 얼마간 데리고 있다가 다시 야생의 밀림으로 돌려보냈다.

 

137. 스님과 대왕범

 

함경도 무산군 서쪽에 두만강의 지류 서두수가 흐른다. 첩첩산중疊疊山中 계곡을 뱀처럼 꾸불꾸불 흘러들어간다. 그 서두수의 물줄기가 넓어지고 깊어져 급류가 되어 바위에 부딪치는 곳에 이름없는 야산이 있다. 높이가 2000m나 되는 주위의 험산과는 달리 그 야산은 높지않았고 산자락들이 넓게 퍼져 있다. 산자락은 울창한 삼림이고 침엽수와 광엽수가 섞여있는 잡목림이다.

사냥꾼과 나무꾼들이 그 일대를 짐승의 나라라고 불렀다. 노루, 사슴, 맷돼지들이 우굴거렸고 범, 표범, , 늑대 등 맹수도 돌아다녔다. 한국에 사는 짐승 대부분이 살고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에 서식하는 짐승들이 드나들었다.

조선말 나라가 어지러워졌을 무렵, 그곳 야산 중복에 산사가 하나가 있었는데 절이라고 하지만 대웅전이나 부처님도 없고 통나무로 지은 본당에 풀지붕이다. 멍석이 깔린 본당에는 사람크기만한 자연석부처님이 있는데 합장모습이어서 모셔놓았다. 산사에는 노스님과 젊은 승려 두 명이 있었는데 주지스님은 짐승스님이라고 소문났다. 그 일대 삼림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았다. 범의 포효가 들리고 늑대울음이 들려오는 곳이라 나무꾼, 약초꾼뿐만 아니라 사냥꾼도 들어가지 않았다. 무산 원시림 주변에 사는 산골마을이나 화전민마을에서는 스님들의 목숨이 아직 붙어있는지가 화제다.

바위산 불곰이 잠자리를 찾았느냐?’

아니요.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작년 굴을 다른 곰이 차지해버려서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곰은 큰 나무 밑둥이나 토굴에서 겨울잠을 잤다. 젊은 스님이 절을 나서려는 주지스님을 말렸다. 잠자리를 찾지 못한 불곰이 돌아다녔을 뿐만 아니라 불범(표범)의 발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표범은 좋지 않다. 줄범은 성미가 대범하기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나 표범은 성미가 고약해서 짐승은 물론이고 사람을 덮쳤다.

 

산골마을사람들은 그 표범을 요괴妖怪라고 부르며 미워했다. 요괴답게 발자국은 있으나 모습이 없다. 지난해 요괴는 서두수 상류마을의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나무꾼 세 사람이 함께 산에서 내려왔는데 맨 뒤에 오던 사람이 없어졌다. 불과 열서너 발 뒤에 따라오던 동료가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요괴는 단풍이 든 숲에 숨어있다가 소리없이 맨 뒤의 나무꾼을 덮쳐 목덜미를 물고 끌고갔다. 끌려간 나무꾼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 했다. 산골마을 장정들이 추적을 했으나 시신도 찾지 못 했다. 표범은 범 때문에 산중 깊이 들어가지 못 하고 마을 주변에서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그곳에는 줄범이라고 부르는 만주범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줄범은 높은 산줄기를 타고 영지를 순찰했는데 10리 정도에서는 토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다. 범은 맷돼지나 사슴 등 좋은 먹이를 발견했을 때도 표범을 보면 표범을 쫓았다.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고 영토침입 때문이다. 범의 먹이와 표범의 먹이가 같았다. 범에게 쫓긴 표범은 마을을 침입했다. 범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들어오기를 꺼린다는 것을 안다. 간사한 표범이 밤중에 마을의 가축을 약탈했다. 사람이 밤눈이 어둡다는 걸 안다.

 

사람들은 표범의 약탈을 막으려고 개를 길렀으나 소용없었다. 표범은 개고기를 좋아했으며 도리어 밥으로 삼았다. 산간마을사람들은 표범 때문에 가축을 기르지 못 했다. , 맷돼지, 사슴과 노루들 때문에 논이나 밭을 경작하지 못 한 산골마을이다. 표범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독이 든 먹이를 뿌렸으나 그런 것에 걸릴 표범이 아니다. 무산포수를 불렀으나 신출귀몰神出鬼沒 한 표범사냥은 몇날며칠 헛수고만 했다. 산사의 스님들도 표범에게 당했다. 짐승을 사랑하는 주지스님이 경내에 짐승들이 들어와도 쫓지 않았고 한겨울에는 사슴과 노루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래서 사슴과 노루가 평화롭게 경내를 돌아다녔고 새끼도 데리고 온 사슴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해 초봄표범이 경내에 들어와 사슴과 노루를 덮쳤다. 스님들이 잠든 한밤중에 들어와 사슴과 노루를 물고갔다. 신성한 경내에 뿌려진 피를 보고 주지스님이 격노했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은 점잖은 스님이 그때는 고함을 질렀다. 표범의 살육이 지속되자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주위의 산을 순찰했다. 주지스님을 모신 두 젊은 스님은 봉술에 뛰어난 무술武術스님이다. 무술스님들이 사흘 동안 표범을 찾았으나 헛수고만 했다. 또 한 마리 사슴이 잡혀갔다. 무게가 200Kg이 넘는 숫사슴을 물고갔다. 사슴을 끌고간 길에 핏자국이 있었다.

 

표범이 사슴을 숲속으로 끌고가 배를 가르고 내장을 먹었다. 다리와 머리는 잘라버렸다. 20Kg을 먹었는데 표범 몸무게의 1/ 3을 넘는 먹성이다.식사를 마친 표범은 먹이를 끌고 산을 두 개나 넘었다. 무술스님들은 하오께 표범발자국을 놓쳤다.

(이런, 젠장!)

무술스님들이 당황했는데 산 아래 계곡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표범은 사슴의 시체를 20m 쯤 되는 절벽으로 끌고가 떨어뜨렸다. 힘이 들지 않는 운반법이다. 표범은 그렇게 하여 스님의 눈을 속였으나 속일 수 없는 추적자가 또 있었다. 까치다. 까치가 찌꺼기를 얻어먹으려고 따라왔고, 까치는 또 다른 추적자를 불러들였다. 세 마리의 늑대가 멀리서 표범을 포위하고 있었다. 표범이 고함을 질러 위협했으나 까치도 늑대도 물러서지 않았다. 또 네 마리의 늑대가 합류했다. 늑대가 일곱 마리가 되면 표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좀전까지는 곁눈질로 표범을 보고 표범이 다가서면 물러섰던 늑대들이 이젠 똑바로 표범을 노려보면서 입술을 까뒤집어 이빨을 들어냈다. 먹이를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표범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늑대들에게 덤벼들었으나 위장공격을 통하지 않았다. 앞에선 늑대가 한두 발 뒤로 물러서자 뒤쪽의 늑대가 표범의 꼬리를 물었다. 표범이 펄쩍뛰면서 늑대를 피했으나 이번에는 앞에 있는 늑대가 덤벼들었다. 늑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협공이다. 짐승들의 싸움에서는 고군분투孤軍奮鬪가 통하지 않는다. 늑대들과 표범의 싸움에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늑대는 무리싸움에 능숙하다.

 

표범은 늑대에 비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감한 공격을 하면 한두 마리의 늑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으나 그 자신도 타격을 받는다. 늑대에게도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서 물리면 살점이 떨어져나간다. 대가리나 다리에 부상을 입으면 사냥을 하지 못 한다. 정교精巧한 기계처럼 몸의 각 부분이 조화를 이른 표범은 그 어느 부분에 상처를 입더라도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상처를 입어도 마구 대항하는 늑대들에게 대항할 수가 없다. 먹이를 빼앗긴 표범은 분을 참고 물러나야했다. 늑대의 승리다.

스님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추격을 멈췄다. 표범사냥을 중단했다. 쫓아버리는 걸로 임무를 다 했다. 주지스님은 표범과 늑대의 싸움이야기를 듣고 표범이 늑대에게 당했다는 얘기가 고소했다.

늑대들이 그렇게 센 줄 몰랐는데 .’

그러나 늑대들의 승리를 축하해줄 일이 아니다. 늑대들도 표범 못지않은 말썽꾸러기고 무서운 살육자다. 그곳의 늑대는 남쪽의 늑대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힘이 세다. 더 사납고 잔인하다. 산사 주변 바위산에는 가족무리 서너 개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표범뿐만 아니라 곰의 먹이도 약탈한다. 가족무리는 대개 열서너 마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토싸움을 할때는 서로 물고 죽이지만 사냥을 할 때는 협동을 한다. 가족무리가 합치면 40여 마리가 되므로 표범이나 곰은 물론이고 그곳을 지배하는 범도 늑대들의 서식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늑대는 가축을 끌고가고 더러는 아이들을 물고갔으므로 산골마을 사람들은 늑대도 미워한다. 그러나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극히 드물다. 스님들은 늑대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서로 만나도 모른 체 한다. 쓰레기터에 늑대들이 돌아다녔으나 내버려둔다.

 

늑대는 산사의 경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경내에 사슴과 노루가 있어도 멀리서 주변을 돌아다닐 뿐 산사는 사람의 영토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산사 주변에서는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그 해 초겨울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북풍이 세차게 불고 초저녁에는 눈가루가 날렸으므로 젊은 스님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법당문을 열었는데 무엇인가가 총알처럼 법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슴새끼다. 생후 대여섯 달 쯤 되는 사슴새끼가 법당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문을 닫아! 무엇인가 큰 짐승에게 쫓기고 있어!’

주지스님의 말이 옳았다. 곧 누군가 법당문을 쿵쿵! 두드렸다. 튼튼한 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 소리가 났다. 곰이다.

네 이 놈!’

주지스님이 목탁으로 놋대야를 치자 조용해졌다. 그러나 곰은 도망치지 않고 법당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때 곰은 겨울잠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데 동면冬眠굴을 차지 못한 곰이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에 당황한 것 같았다. 산골사람은 잠자리를 찾지 못 한 곰을 겨울곰이라고 하며 두려워한다. 추우에 떠는 겨울곰은 성질이 사나와져 눈에 보이는 동물은 무조건 죽인다. 때로는 산골마을을 짓밟았으므로 마을 전체가 피난을 가기도 한다. 겨울곰은 그런 행패를 부리다가 대개는 얼어죽었는데 그 기간이 문제다. 산사에 들어온 곰도 겨울곰이 될 염려가 있다. 곰은 밤새 경내를 돌아다녔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장작더미를 무너뜨리고 간장독을 깨뜨렸다. 새벽에는 추위에 비명을 질렀다. 자연을 거스른 벌을 받았다. 다음날은 더 추웠다. 곰은 어떻게 되었을까? 스님들이 주심스럽게 밖으로 나가서 살펴보았다.

 

주지스님, 큰일 났습니다!’

경내를 살피러 나갔던 스님이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왔다. 곰이 뒤뜰에서 땅을 파고있다고 했다. 뒤뜰에는 무나 배추를 저장하려고 파놓은 구덩이가 있는데 깊이가 약 2m나 되었다. 동면동굴로 안성맞춤이다. 바닥에 짚을 두껍게 깔아놓았으므로 겨울잠자리로는 그만이다. 남향이었고 북쪽의 담벼락이 북풍도 막아준다. 젊은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나섰으나 주지스님이 막았다. 젊은스님들이 아무리 무술을 연마하고 민첩해도 위험하다. 몽둥이에 맞아죽을 곰이 아니다. 살생도 스님의 본분은 아니다. 거기다가 곰은 스스로 산사로 찾아왔다. 초청을 하지 않았지만 손님이다. 절을 찾아온 손님을 어떻게 강제로 쫓아내겠는가? 곰은 간밤의 추위에 비명을 질렀는데 주지스님은 가엽다고 생각했다. 또 그대로 두면 겨울을 넘기지 못 하고 죽는다.

곰을 그대로 두시렵니까? 언제 우리를 잡아먹겠다고 덤벼들지 모르는데 .’

아무리 짐승이라고 그런짓을 하겠는가?’

주지스님이 웃었다. 며칠 동안 곰이 하는 짓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놈이 설치면 그때가서 때려죽이기로 했다. 부처님도 못된 짓을 하면 놈을 죽이는 걸 허락해주실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일이 없었다. 곰은 구덩이를 좀 손질하더니 안에 들어가 입구를 흙으로 덮었다. 구덩이가 조용했다. 사슴새끼도 나가지 않았다. 법당 한구석에서 스님들이 준 푸성귀를 맛있게 먹었다. 법당문을 열어놓아도 나가지 않았다. 아예 법당에서 겨울을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곰이 구덩이에 들어간 나흘 뒤 주지스님이 구덩이에 가봤다. 바스락소리가 났으나 이내 조용해졌다. 동면하는 곰은 가사假死상태다. 완전히 잠들지는 않는다. 자면서도 경계를 한다.

 

젊은 스님은 불안했다. 언제 뛰어나와 덤빌지 모르는 곰을 옆에 두고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 사슴새끼와 동거를 하는 것도 불안하다. 곰의 먹이가 되는 사슴새끼가 배고픈 곰을 자극할 염려가 있다. 그래서 곳간으로 피신을 시켰는데 밤새 울었다. 추위와 고독에 못이겨 가냘픈 소리로 밤새울고 있었다. 그래서 풀어주었다. 자유롭게 산을 돌아다니라고 풀어주었는데 날이 어두워질 무렵 법당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사슴새끼가 오들오들 떨다가 법당으로 들어왔다. 마치 어미를 보는 눈망울로 주지스님을 보았다.

다음날, 산골마을 사람들이 산사에 몰려들었다. 그 마을은 100여 명이 사는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사냥도 한다. 마을사람들은 창이나 칼을 가지고 있고 화승포를 가진 포수도 왔다. 살기를 띠었다.

스님, 그 고약한 불곰이 아직도 경내에 있습니까?’

산사의 스님을 염려했다. 불곰을 죽이든가 내쫓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뒤뜰구멍에서 잠자고 있는데 아주 얌전합니다. 우리를 해치지 않아요. 나는 손님을 내쫓을 생각이 없어요.’

내쫓긴 것은 산골마을 사람들이다. 경내에서 총질을 하겠다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런데 산골마을 사람들이 출동한 이유는 불곰 때문만이 아니다. 괴물이 염소를 물어갔다. 가축을 해친 범, 표범, 곰이나 늑대가 아니다. 포수가 현장을 조사하고는 모르겠다고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다. 괴물이 우리에 들어온 것부터 특이하다. 범이나 표범은 방책防柵을 타고넘어 들어오고 곰은 방책을 쳐서 부서뜨리고 침입하는데 괴물은 방책 밑에 터널을 뚫고 침입했다. 그 터널로 들어와 염소를 끌고갔다. 어떤 짐승이기에 그런 토목공사를 했을까? 오소리는 땅파기 명수다. 발자국도 오소리와 비슷했다. 족제비과 짐승이 그렇듯 오소리도 사나운 짐승이었으나 터널을 파고 칩입할 정도로 대담하지 못하다. 몸통의 길이가 고작 70Cm인 오소리가 어떻게 염소를 물고갈 수 있겠는가? 염소는 뿔이 있고 사나웠으며 오소리에게 쉽게 당할 염소가 아니다. 또 하나 오소리가 아니라는 증거는 죽은 염소의 시체가 내장과 뒷다리 그리고 갈비뼈 일부가 없었다. 15Kg이나 된다. 몸무게 10Kg의 오소리가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소리가 아니지.’

산사에서 20여 년이나 살고있는 주지스님은 누구보다도 산짐승을 잘 알았다.

(괴물의 정체라?)

염소의 아랫배가 찢겨졌단 말이지? 이빨로 뜯겨진 게 아니라 발톱으로 찢었단 말이군.’

괴물의 발자국이 오소리와 비슷하다고 했는가?’

아니요.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지 크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소리보다 열 배는 컸습니다.’

주지스님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말했다.

그건 담보야. 족제비 괴물 담보야.’

 

사냥군들은 담보라는 짐승을 몰랐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몇 년 전 계곡에서 담보를 봤다. 계곡에서는 커다란 불곰이 노루를 잡아 먹고있었다. 노루는 다른 짐승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언덕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불곰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을 하여 노루의 배를 갈라놓고 식사를 했다. 육식을 하는 짐승이 먹이의 배를 가르면 흥분을 한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받은 기분이다. 그런데 식사를 하려는 차에 어디선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무서운 살기를 띤 소리였다. 누가 감히 불곰의 먹이를 빼앗겠는가? 담보다. 족제비과 괴물이다. 족제비처럼 생겼으나 족제비 보다는 몇 배 크다. 갈고리 같은 발톱과 길다란 이빨을 가졌으며 긴 꼬리가 있으나 커봐야 고작 큰 개 정도고 몸무게는 50Kg 정도다. 그래도 불곰과 비교는 되지 않는다. 몸무게 300Kg의 불곰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떡매같은 앞발치기에 황소도 일격에 목뼈가 부러진다. 삼림일대를 지배하는 범도 불곰을 피한다. 그런데 그 족제비과 괴물은 불곰에게 덤벼들었다. 불곰의 먹이를 내놓으라고 했다. 불곰이 모처럼 얻은 먹이를 내놓을 리 없다. 불곰이 먹이를 왼발로 누르고 오른발로 건방진 도전자를 후려쳤다. 담보는 빨랐다. 불곰의 앞발치기를 한 발 뒤로 물러서며 피했다. 언덕 위에서 싸움을 구경하고있는 주지스님은 담보의 민첩성과 용맹성에 놀랐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단 뒤로 물러선 담보가 불곰이 헛친 앞발을 바로잡을 틈을 주지 않고 번개처럼 달려들어 앞발을 물었다. 불곰이 펄쩍! 뛰어올랐는데 피가 났다. 불곰이 분노했다. 노루를 놔두고 담보를 덮쳤다. 불곰이 앞발을 휘둘렀으나 담보는 물러서지 않았다. 불곰이 또 펄쩍! 뛰어올랐다. 불곰의 콧등에서 피가 흘렀다. 담보가 불곰의 콧등을 물었다. 콧등은 불곰의 급소다. 신경이 집중되어있다. 불곰이 고함을 질렀는데 오히려 비명에 가까웠다. 불곰이 후퇴했다. 먹이를 내주고 계곡 위쪽으로 도망쳤다.

 

사냥꾼들이 주지스님의 얘기를 듣고 놀랐다. 곰의 먹이를 뺏는다는 무시무시한 놈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잡아! 끝까지 발자국을 추적하여 잡아.’

사냥꾼을 지휘하는 윤포수가 지시했다. 윤포수는 방아쇠총을 가지고 있다. 화승포를 개량한 총인데 총신 밑의 방아쇠를 당기면 총탄이 날아갔다. 화승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총과 달랐고 정확하며 강렬했다. 윤포수는 괴물이 아니라 귀신이라도 잡을 자신이 있다. 사냥꾼들이 그날 정오께 흑염소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뿔과 털만 남았다. 괴물은 염소 한 마리를 다 먹었다. 범과 곰도 그렇게는 먹지 않았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았는지 괴물은 오소리사냥을 했다. 오소리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바위밑에 굴을 파고 숨었으나 괴물은 기어코 찾아내 먹었다. 괴물이 오소리를 먹고있을 때 늑대 서너 마리가 덤벼들었다. 늑대들은 수를 믿고 덤볐으나 괴물은 물러서지도 오소리를 내주지도 않았다. 발자국으로 봐서 늑대가 괴물을 포위했으나 헛수고다. 포위는 상대가 도망치지 못 하게 하는 작전인데 괴물은 도망갈 생각이 없다. 먹이를 빼앗으려면 늑대들에게도 희생이 날 것 같아 늑대는 먹이를 포기했다. 괴물은 오소리 한 마리를 다 먹어치우고 무산의 원시림으로 도망쳤다. 수해樹海. 만주인들이 슈하이라고 부르는 광대한 나무바다다. 사냥꾼은 수해에서 발자국을 놓쳤다. 눈 위에 뚜렷하게 찍힌 발자국이 사라져버렸다. 땅굴을 파고 숨어버렸을까? 수색을 했으나 땅굴은 없다. 그때 윤포수는 잡목림에서 큰 새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저 건 뭐지?’

족제비괴물이다. 놈은 땅을 파는 재주뿐만 아니라 나무를 타는 재주도 있었다. 땅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나무 위로 도망쳤다. 괴물은 이 나무 저 나무를 타면서 날아가는 것처럼 도망쳤다. 윤포수가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탄이 닿기 전에 다른 나무로 옮겨가버렸다. 다시 장탄을 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방아쇠총으로도 괴물을 잡을 수 없었다. 두만강까지 따라가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괴물사냥을 중단했다.

그런데 그 괴물의 정체는 뭘까? 학자들은 대륙목도리담비라고 했다. 담비는 몸길이가 60Cm였으나 매우 사납고 오소리, 너구리와 노루, 산양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직접 괴물을 본 주지스님이나 사냥꾼들은 대륙목도리담비가 아니라고 했다. 몸통길이가 1m에 가깝고 훨씬 크다. 몸색깔은 비슷했으나 생김새도 달랐다. 대륙목도리담비는 몸통이 길었으나 괴물은 불곰 비슷하다. 또한 대륙목도리담비는 서너 마리가 함께 살았으나 괴물은 언제나 혼자다. 일부 학자는 주지스님의 말이 옳다고 하며 괴물의 정체는 시베리아나 북만주의 타이가에 사는 울버린이라고 주장했다. 울버린도 족제비과 동물인데 족제비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사나웠다. 울버린이 곰의 먹이를 빼앗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북만주나 시베리아에 사는 울버린이 어떻게 조선에 왔을까? 울버린은 행동반경이 매우 넓고 하루에 수백킬로미터를 이동했으나 조선땅까지 이동은 무리다. 괴물은 그 후 산사 주변에서 사라졌으나 불곰은 계속 잠을 잤다.

 

곰은 신비한 동물이다. 어떻게 몇 당 동안 먹지 않고 땅굴에서 잠만 잘 수 있을까? 주지스님은 가끔 땅굴을 들여다보았는데 곰은 살아있었다. 곰의 체온이 느껴지고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이 많이 와서 치워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곰과 자연의 관계이므로 자연의 섭리攝理에 맡겨두어야 한다. 그게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곰은 대한大寒이 지나도 건재했다. 봄이 왔다. 땅굴 위에 쌓인 눈부터 녹았다. 봄이 되니 사슴새끼가 좋아라고 경내를 뛰어다녔다. 날씨가 추울 때는 곳간에서 지내고 폭풍과 폭설이 내리면 법당 안에서 주지스님과 함께 지냈는데 봄이 오자 산사 주변을 뛰어다니다가 사라져버렸다. 작별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가봐야 자연의 품안이다.

문제는 불곰이다. 땅굴에사 나오면 위험하다. 몇 달 동안 굶주린 곰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 젊은스님이 곰이 나올 때까지 별당에서 기거하자고 햇으나 주지스님이 거부했다. 본당에서 땅굴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무덤처럼 둥그런 지붕에 눈이 녹자 땅굴이 갈라지고 하연 온기가 올라왔다. 주지스님이 멀찍하게 서서 지켜보고 젊은스님들이 막대기를 들고 주지스님을 경호했다. 땅굴의 지붕이 갈라지고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몇 달 동안 땅속에 갇혀 살았던 불곰의 포효다. 구멍 안에서 불곰의 상반신이 나왔다. 눈이 부신 듯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점점 눈이 맑아졌다. 주변을 살피던 곰이 주지스님을 보았다. 곰은 본디 근시였으나 10m 거리 같으면 시각과 후각을 작동시켜 대상을 파악했다. 곰은 시각 보다 후각이 예민하다.

 

곰은 주지스님을 알아봤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살기가 사라졌다. 곰은 구멍 안에서도 냄새를 느낄 수 있었으며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몇 달 동안 자기 주위에 있었던 사람이란 걸 알아봤다. 곰은 상반신을 내민 체 구멍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왜 저러고 있을까?)

상반신을 내밀고 있던 곰이 다시 땅굴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강아지만한 걸 가슴에 안고있었다. 곰은 소중하게 가슴에 안은 걸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곰새끼다. 구멍 안에서 새끼를 낳아 데리고 나왔다. 또 한 마리는 제발로 기어나왔다.

저런 저런!’

주지스님이 손뼉을 쳤다. 그러나 곰은 비틀거렸다. 그러나 새끼들은 눈이 보이는지 호기심이 찬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하필 주지스님이 있는 곳으로 왔다. 새끼들이 주지스님의 곁을 지나갔으나 어미는 보고만 있었다. 어미도 주지스님의 곁을 지나갔으나 적의나 경계심은 없었다. 곰은 주지스님을 지나 산사를 떠났다. 계곡의 얼음이 녹아 졸졸 흐르고 나뭇잎들이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평화로운 것만이 아니며 첩첩산중에 봄이 오자 또 일이 벌어졌다.

 

산사에서 불곰이 새끼를 데리고 나간지 사나흘 쯤 되었을 무렵, 밤중에 우어우엉! 하는 범의 포효가 들렸다. 괘 가까운 거리였으나 주지스님은 목탁木鐸을 두드리며 염불만 계속했다.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그맘때쯤에는 의례 범이 돌아왔다. 범은 몇 백Km²나 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겨울에는 자기 영토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했고 산사 주변에는 오지 않았다. 초봄에는 맷돼지나 노루들이 산사 주변에 나타났으므로 돌아왔다. 산날을 돌아보며 포효를 했다.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다음날 정오께 약초꾼 두 사람이 산사에 뛰어들었다. 벌벌! 떨었다.

스님, 맷돼지가 죽었습니다. 한쪽 귀가 잘린 그 늙은 맷돼지의 배가 갈라져죽었습니다.’

주지스님도 그 맷돼지를 알고 있다. 황소만한 맷돼지였는데 산골마을 사람들은 산지기로 치부致賻했다. 귀가 찢겨진 건 몇 년 전에 표범과 싸우다 입은 상처다. 산지기와 싸운 표범은 아랫배가 찢어져 죽었다.

산지기는 콧등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누가 산지기를 죽였는지 알만 하다. 황소만한 맷돼지의 코를 물고 배를 가를 짐승은 범 외에는 없다. 그 일대를 다스리는 대왕범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 약초꾼들은 탐스러운 맷돼지고기 몇 점도 떼어내지 못 하고 도망쳤다. 대왕범은 떠나지 않았다. 매일밤 포효했다. 뭔가 신경질적이다. 영토에 다른 범이 들어왔거나 사냥꾼이 돌아다니는지고 모른다. 주지스님은 사흘 후 약초꾼을 데리고 산사를 나섰다. 무술승과 나무꾼 두 명이 따라나섰다.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눈녹은 땅위에 엄청나게 큰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혔다.

좀 서둘러야겠어.’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밤나무숲 숯꾼영감의 산막까지 도달해야 한다. 짐승들은 낮에는 사람에게 덤벼들지 않지만 밤에는 다르다.

스님, 저기 보세요.’

무술승이 산마루를 가리켰다. 얼룩무늬가 석양빛을 등에 업고 우뚝! 서잇다. 웅장하다.

그대로 가! 범을 보지말고 천천히 걸어.’

범을 보자 반사적으로 도망치려던 나무꾼들도 멈췄다. 범이 뒤에서 덮칠 것 같아 공에 떨었으나 주지스님이 뒤에서 천천히 따라왔다. 사실 주지스님과 범 사이에는 불가침조약이 맺어져 있었다. 10년 가까이 그 삼림에서 살아온 주지스님과 범은 그 동안 서너 차례 조우遭遇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주지스님이 막 산마루를 넘어서자 바로 앞 바위에 범이 앉아있었다. 범도 놀라고 주지스님도 놀랐다. 범이 반사적으로 뒷발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고 했다. 긴 꼬리가 뻣뻣하게 섰다. 먹이를 덮칠 때 버릇이다. 거리는 불과 열서너 발, 범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덮칠 수 있는 거리다.

어험!’

주지스님이 헛기침을 하고 범과 마주친 시선을 돌렸다. 주지스님은 먼 산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범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게 범과 주지스님의 인사법이다. 범이 긴장을 풀었다. 범이 꼬리를 내리고 옆으로 누웠다. 나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주지스님은 젊은 스님과 나무꾼을 데리고 범의 존재를 무시하고 산을 내려갔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숯꾼영감의 산막에 도착했다.

어서오십시오, 스님.’

영감이 발자국소리를 듣고 마중나왔다. 첩첩산중에서 홀로 사는 영감의 귀는 토끼귀처럼 예민하고 코도 늑대처럼 민감했다.

 

주지스님은 산막에서 자고 다음날 두만강지루 서두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나무꾼을 산간마을에 데려다주고 무술승만 같이 왔는데 시주施主자루가 가벼웠다. 돌아오면서 양식이 떨어진 산간마을 사람들에게 얻은 시주를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스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영감이 밤을 세웠다고 한다. 멀지 않은 바위산에서 밤새 짐승이 다투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싸우는 소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범이 다른 짐승을 덮친 것 같습니다.’

범이 싸웠다면 큰 짐승일텐데 .’

곰의 소리였습니다.’

곰이라고?’

주지스님이 긴장했다. 산사에서 동면을 한 어미와 새끼가 아닐까? 다음날 새벽에 주지스님이 영감과 무술승을 데리고 바위산에 갔다. 까치가 수십 마리 모여들었고 늑대들도 있었다. 곰의 시체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살펴본 무술승이 말했다.

스님, 아닙니다. 어미곰이 아닙니다. 새끼들의 시체도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고맙습니다.’

주지스님이 합장合掌을 했다.죽은 곰은 거대한 숫놈이다. 영감이 죽을만 하다고 혀를 찼다. 그 갈색곰은 닥치는대로 살육을 했다. 동족을 덮쳐 어미와 새끼를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다. 몇 년 전에는 나뭇꾼이 잡혀먹혔다. 갈색곰의 죽음은 애고된 일이다. 범의 영토에 들어와 설치는 곰을 범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영토에 들어와 설친 곰을 죽인 범은 며칠 후 돌아갔다. 그러나 짐승들의 싸움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표범이 나올 차례다. 그 표범은 가축을 물고갔고 나무꾼도 잡아먹었다. 숙적인 범이 사라지자 표범의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 표범이 맷돼지에게 당했다. 그리 크지 않은 젊은 맷돼지라 표범은 맷돼지를 얕보고 콧등을 물었다. 콧등은 맷돼지의 급소다. 그렇게 맷돼지를 잡앗으나 몸과 몸이 qneltcut을 때 맷돼지의 어금니가 표범의 어깨를 스쳤다. 그저 스쳤을 뿐이었으나 맷돼지의 어금니는 면도칼처럼 예리했다. 표범이 늙어서 실수를 한 것인데 상처가 치명적이다. 표범은 상처를 입고도 자기 몸무게 보다 더 무거운 100Kg이 넘는 먹이를 나무 위로 4 - 5m 나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걸 보고 늑대들이 나무를 포위했다. 열 마리가 넘는 무리였으므로 표범은 나무에서 내려가지 못 했다. 까짓 늑대 열 마리 쯤이야 대수롭지 않았으나 어깨에 상처를 입어 늑대와 싸울 수 없다. 봄이였으므로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곪았다. 늑대들은 집요執拗하다. 한 번 노린 먹이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늑대들은 점점 수효가 늘어나 서른 마리가 교대로 나무를 지켰다. 표범이 견디다 못 해 맷돼지의 시체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먹이를 내준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늑대의 수가 워낙 많았다. 수십 마리의 늑대는 맷돼지를 다 뜯어먹고도 나무에서 떠나지 않았다. 표범마져 먹어야겠다는 집념이다. 결국 표범은 처참하게 죽었다. 상처가 곪아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사흘만에 나무에서 떨어져 늑대밥이 되었다. 주지스님이 합장을 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138. 노루괴담怪談

 

조선말엽, 한양에서 북쪽 의정부쪽으로 얼마간 가면 수락산 등 그리 높지 않은 야산들이 있다. 높이 500m쯤의 야산으로 산자락에는 마을도 있고 밭도 있었다. 산들은 잡목림이었으므로 맷돼지 노루 등 야생짐승들이 서식棲息했다. 가끔 표범이 나타나가도 했다. 그런데 그 야산들 중에 귀신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었다. 주위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데 예부터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있어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나무꾼이나 포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귀신산 중복에 초가가 한 채 있었다. 나무와 밥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꽤 큰 집이다.

5월 단오가 지난 어느날 밤 그 집에 열 명이 넘는 남녀가 도착했다. 비단옷을 입은 중년여인이 가마를 타고 나머지는 여인을 모시는 사람들이다. 집주인이 주위를 살피며 손님들을 안방으로 모셨다.

자네가 피리영감인가?’

,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황달인을 아는가?’

그러지 피리영감이 경계심을 풀었다.

, 그렇습니까. 말씀을 들었습니다.’

관아官衙의 아전衙前으로 보이는 그 사나이도 경계심을 풀었다.

마님, 안으로 드시지요.’

아직 서른이 넘지 않았을 여인은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산중에까지 가마를 타고온 것으로 보아 예사 여인은 아니다.

귀하신 분이니 잘 모시도록 하시오.’

며칠 동안이나 유하실 것입니까?’

그야 모르지.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노루피를 마셔야 하니까, 노루피는 언제 쯤 마실 수 있나?’

사나흘에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세 마리는 마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름쯤이면 되겠군.’

피리영감이 잠시 생각했다. 보름 안에 노루 세 마리를 잡아야 한다.

노루란 워낙 조심스럽고 빠른 짐승이라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아전이 머리를 끄덕이고 묵직한 돈주머니를 건넸다.

 

귀신산에 있는 노루사냥집에서 좀 떨어진 숲속에는 반쯤 땅속에 묻혀있는 움막이 있는데 열 평이나 되었으나 외부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웠으나 다섯 명의 사냥꾼들이 기거했다. 세 명은 활잡이, 한 명은 창꾼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짐승의 피를 뽑고 껍질을 벗기는 백정이다.

어험, 모두 일어나시오.’

피리영감이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그들을 깨웠다.

보름 안에 노루 세 마리를 잡아야 한다구요? 가회동 마님에게 드릴 두 마리까지 다섯 마리로구만.’

활잡이 한서방이 말하자 백정 정서방이 대꾸했다.

 

아니지, 수원의 윤대감댁 작은 마님에게 드릴 두 마리를 합치면 일곱 마리지.’

그쯤은 잡을 수 있겠지?’

피리영감의 말 끝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했다.

그야, 영감님에게 달렸지요. 영감님의 피리에 유혹되어 오기만 하면 잡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알았어, 우선 오늘 한 마리 잡아야겠어. 궁중宮中에서 오신 높은 부인에게 드려야 해. 그런데 담배 좀 작작 피워. 독한 담배냄새에 오던 노루가 달아나버려. 지금부터는 술도 안 되고 잡담도 하지 마!’

사냥꾼들이 사냥터로 나갔다. 멀지 않았다. 움막에서 십 리도 떨어지지 않은 산기슭이다. 모두들 목을 잡았다. 활잡이는 모두 내노라라 하는 명사수다. 노루쯤이야 서른 발 안에서는 놓치지 않았다. 강궁이었으므로 단 한 발에 쓰러졌다. 창꾼은 활잡이를 보호하는 일을 맡았다. 거친 맷돼지와 표범들 맹수로부터 경비를 했다. 화승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화약냄새가 나고 총소리를 들으면 사냥깜이 멀리 달아나버린다. 해가 올랐으나 귀신산은 조용하고 안개가 흐르고 있다. 사냥꾼들은 죽은 듯이 풀밭에 엎드려 있다. 어디서 끼억끼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처러운 음조音調. 어미를 부르는 노루새끼의 소리다.

 

그 무렵의 노루새끼는 초여름에 태어났으며 보통 한 배에서 한두 마리가 태어나는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산림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제 힘으로 살아야 한다. 노루는 사슴과 짐승이며 어깨높이 70Cm, 몸무게는 20Kg도 안 된다. 노루는 외적과 싸울 무기도 힘도 없었고 오직 빠른 주력走力으로 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만이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래서 노루는 새끼를 숲속에 감추어두고 나들이를 했는데 새끼가 배가 고프면 끼억끼억! 운다. 가냘픈 소리였으나 어미는 10리 밖에서도 듣는다. 그런데 그 끼억소리는 새기의 소리가 아니라 피리영감이 부는 피리소리다.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로 만든 피리소리는 어미조차도 새끼소리와 구분하지 못했다. 영감의 피리가 얼마나 정교精巧했던지 피리소리를 듣고 어미가 코앞까지 접근하면 활잡이가 노루의 뒷다리나 엉덩이에 화살을 명중시켰다. 노루의 심장이나 머리를 겨냥하지 않는 건 노루를 살려서 가지고 가 살아있는 신선한 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노루피는 부녀자에게 효험이 있다. 노루가 陰地의 짐승이기 때문이다. 허약한 여자가 건강해지고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 피뿐만 아니라 수컷의 뿔도 녹용 같은 효용이 있고 뼈도 골다공증 등에 이롭다. 그래서 부녀자들이 노루피를 마시고 노루곰탕을 먹으려고 피리영감네에게 왔다. 궁중여인, 양반집 규수閨秀, 부잣집 마나님들이 은밀하게 드나들었다. 전날 아전이 안내한 젊은 여인은 왕실의 소실이다.

 

나흘 전에 고양군의 아전 박수문은 은밀한 지시를 받았다. 극비리에 왕실의 부인을 노루사냥집으로 안내하라는 지시다. 그런 일은 극비리에 해야 한다. 본당마님이 알면 집안이 뒤집어진다. 다른 소실小室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노루피를 마신 여인이 위험해진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박수문이 안내한 여인에게는 자객刺客이 붙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전 박수문은 피리영감을 잘 아는 황달인에게 부탁했다. 황달인은 웅담, 녹용을 사고파는 장사꾼이며 피리영감과는 비밀거래를 한다.

첫날 노루사냥은 실패했다. 피리영감이 사냥터에 노루가 있는 걸 파악하고 피리를 불었으나 노루가 오지 않았다. 피리영감이 주변 숲을 살폈다. 핏자국이 있었다. 노루새끼 피다. 늑대의 소행이다.

이런 젠장!’

피리영감이 혀를 찼다.

앞으로 늑대를 보면 무조건 쏘아! 그놈들이 설치면 노루사냥을 못 해!’

다음날 사냥터를 옮겨가 노루 한 마리를 잡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삼엄한 경계 아래 사냥꾼들이 노루를 운반했다. 노루는 뒷다리에 화살 두 대를 맞았으나 살아있었다. 백정이 목을 따 바가지에 피를 받아 여인에게 바쳤다. 시뻘건 피에서는 하얀 증기가 오르고 비린내가 났으나 여인은 피를 마시고 사내아이를 낳아야 한다. 본당마님을 몰아내고 시끄럽게 구는 첩실들을 꼼짝 못 하게 눌러야 한다.

마져 마시세요.’

시녀의 충고대로 여인은 바가지에 남은 피마져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나머지 노루피는 별당의 가회동마님이 마셨다. 서른 대여섯 쯤 되어보이는 여인은 겉으로는 노루피를 마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윤기가 흐르고 식욕도 왕성하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노루피를 마시려고 했으나 아이가 없는 이유는 여인탓이 아니라 20리 쯤 떨어진 곳의 맷돼지사냥터에 머물고있는 남편에게 있다. 남편은 맷돼지피를 마셨다. 의 짐승 노루는 여인에게 효험效驗이 있고 양의 짐승 맷돼지피는 남자가 마셨다. 사냥터에서는 맷돼지를 쫓았다. 맷돼지와 노루는 조선에서 가장 흔한 짐승이다. 서식지棲息地도 같았다. 맷돼지사냥꾼과 노루사냥꾼들이 만났다. 맷돼지사냥꾼들이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빨리 돌아가!’

맷돼지사냥꾼들이 먼저 맷돼지를 쫓고있었으므로 사냥터의 불문율에 따라 사냥을 방해하면 안 된다. 우락부락한 맷돼지사냥꾼을 노루사냥꾼 두목이 달랬다. 돈을 줄테니 양보를 해달라고 했다.

안 돼, 이 맷돼지는 160Kg이나 되는 놈이야. 우리는 어제부터 놈을 쫓았어.’

섭섭찮게 드릴테니 양보해주시오.’

, 돈 하는데 얼마를 주겠다는거요?’

얼마나 받을 생각이요?’

맷돼지사냥꾼 두목이 잠시 의논을 하더니 말했다.

서른 냥을 주시오.’

터무니없는 요구다. 서른 냥이면 맷돼지 두 마리를 살 수 있다. 상대가 깎을줄 알고 미리 높여 부른 것인데 노루사냥꾼 두목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말로 은화銀貨 서른 냥을 내놓았다. 노루사냥꾼이 선뜻 흥정에 응한 것도, 사냥을 하면서 그런 대금大金을 가지고 다니는 곳도 이상했으나 아무튼 흥정은 이루어지고 맷돼지사냥꾼들이 물러섰다.

됐어, 이젠 이 발자국을 추적해. 놓치면 안 돼. 아주 조심해야돼.’

 

그대 사냥꾼들이 추적하는 건 예사노루가 아니다. 그렇다면 보노루인가? 고라니라고 불리우는 보노루는 노루 보다 발자국이 작다. 수컷에게도 뿔이 없고 송곳니가 주둥이 밖으로 삐어져나와 있다. 흑갈색이어서 황갈색인 노루와 구분된다. 고라니의 피도 노루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사냥꾼들이 쫓는 발자국은 고라니 발자국보다도 훨씬 작았다. 사향麝香노루 발자국이다. 사냥꾼두목은 사향노루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보노루라면 사흘 동안이나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는다. 보노루는 노루 보다 값아 더 싸다. 사향노루는 값이 노루의 몇 십 배다. 매우 귀한 노루다. 사향노루도 고라니처럼 송곳니가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왔으나 몸통은 짙은 갈색에 작고 흰 반점이 있다. 사향노루피는 노루피처럼 효험이 없다. 고약한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다. 고기도 질기고 맛이 없어 먹지 않는다. 그런데 사향노루의 가치는 바로 그 고약한 냄새다. 아랫배에서 고린내가 나는데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어지럽다. 사냥꾼들은 사향노루 배꼽 주변에 사향주머니가 있다고 하는데 실은 생식기 주변에 냄새가 나는 액체가 말라붙어 있어 사향노루 아랫배 전체가 약으로 쓰였다. 신비한 약이다. 실신한 사람을 아주 적은 약으로 빈사상태의 환자를 소생蘇生시킨다. 사향은 그렇게 응급약으로 쓰였으나 다른 용도에도 사용했다. 흥분제興奮劑 최음제催淫劑. 양기陽氣가 부족한 남자들에게 사용한다. 뭇 여인을 거느린 궁중의 남자들에게 사용된다.

 

그래서 궁중의 여인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사향을 구했다. 사향을 자기 몸의 은밀隱密한 곳에 바르거나 이부자리에 발라 양기가 부족한 남자들을 유혹했다. 사향노루의 신비한 효험이 궁중여인들 사이에 전해지고 그 효험으로 궁중위 역사가 바뀌는 일도 있다. 노루피로 몸을 풍만하게 만들고 사향으로 납자를 유혹하면 아들을 낳았다.

사향노루를 쫓고있었던 사냥꾼들은 특명特命을 받았다. 궁중에서 나온 여인이 노루피를 마시면서 사향노루를 구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사향노루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피리영감의 지시로 사흘 동안이나 사향노루를 쫓고 있었으나 발자국을 찾지 못 했다. 사향노루는 일반 노루와 달리 높은 산에 산다. 인적이나 외적이 없는 높은 산에서 산다.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고 부부가 새끼들과 함께 산다. 사향노루는 매우 조심스럽게 도망을 가고 있었으나 냄새만은 없앨 수 없다. 추적 사흘째 사냥꾼두목이 흥분했다. 암컷발자국이다. 암컷 발자국에는 젖이 떨어져 있다. 새끼를 키우고 있다. 일행과 떨어져있는 피리영감에게 사람을 보냈다. 사향노루는 활로 잡기 어렵기 때문에 피리로 유인하여 잡을 생각이다. 새끼가 있으면 피리로 유인할 수 있다.

 

피리영감이 네 명의 사냥꾼들을 목에 배치했다. 좀 불안한 표정이다. 영감은 사향노루를 피리로 유인하는데는 자신이 있었으나 이틀 전 사냥을 나갈 때 아전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심하게나, 우리를 미행尾行하는 자가 있는 것 같아.’

궁중마님을 경호하는 무사武士가 자기들을 뒤 따라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전문경호인 무사는 마님을 그림자처럼 경호하는데 수상한 자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걸 발견했다. 그 자는 자기가 발각되었다는 걸 알고 슬그머니 사라졌는데 경호무사가 발자국을 확인해보니 고무바닥신을 신이었다. 그렇다면 자객刺客이다. 자객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값비싼 고무바닥신을 신었다. 본디 궁중은 음모의 소굴巢窟이며 정적政敵을 죽이려는 자객들이 암약暗躍했고 그 걸 막기 위해 경호원들이 있었다. 그 마님에게도 정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정실부인, 정실부인 곁에 붙어 측실側室마님을 감시하는 다른 여인도 있다. 23중으로 얽혀있다. 측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왕족가문家門의 승계자承繼者가 된다. 측실이 경계가 엄중한 궁중을 떠나 산중에 들어왔으므로 자객에게는 좋은 기회다. 피리영감은 불안했으나 사향노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향노루는 몇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귀중한 사냥감이다.

이봐, 수상한 사람을 만나면 주저하지 말고 쏘아죽여! 책임은 내가 질테니까.’

사향노루사냥이 사람사냥이 될지도 모르나 영감은 풀숲에 잠복했다. 사향노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한다. 그놈만 잡으면 한양에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사들여 젊은 첩과 함께 살 수 있다. 위험한 노루사냥 따위는 안 해도 된다. 밤이 깊어갔다. 곧 새벽이 된다. 노루는 새끼를 풀숲에 숨겨두고 새벽에 돌아온다. 밤새 충분히 먹이를 먹고 새끼들에게 돌아온다. 짙은 어둠이 물러가고 있을 때 피리영감이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끊어질 듯 말 듯 한 소리였으나 노루는 10리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미를 찾는 새끼의 소리다. 피리소리는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가까이에서는 들렸다. 만약 자객이 가까이 있다면 피리소리가 자객을 불러들일 것이다.

피리사냥이 노루만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노루의 천적天敵을 부르기도 한다. , 표범과 늑대들이다. 표범은 노루가 새끼를 풀밭에 숨겨두고 멀리 나갔다가 새끼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걸 알고 풀밭에 숨어있다가 새끼를 찾아오는 어미를 덮친다. 피리영감은 5년 전에 그런 표범에게 당했다. 마침 가까이에 있던 사냥꾼이 단검으로 표범을 찌르자 표범이 도망을 쳐서 목숨을 건졌다. 그때 표범이 눈을 공격해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영감 이후 권총을 구입했다. 왕족으로부터 비싼값으로 사들였다.

피리영감이 권총을 쥐고 있었다. 자객이든 표범이든 보이기만 하면 죽일 생각이다. 새벽에 소리가 들렸다. 열 발 가까이까지 노루를 유인하기 위해 계속 피리를 불었다. 열 발짝, 활을 쏠 거리가 되었는데도 영감이 신호를 하지 않았다. 영감은 실망했다. 냄새가 없다. 발자국소리는 분명했으나 사향노루 특유의 고린내가 없다. 사향노루가 숫컷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며 계속 피리를 불었으나 날이 밝을 때까지도 숫컷은 나타나지 않았다. 암컷은 보호해야 한다. 영감은 자리를 떴으나 다음날 다시 와서 조사를 했다. 암컷이 젖을 먹인 흔적이 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 숫컷의 발자국이 있었다. 숫컷이 새끼들에게 다가오지 않은 이유가 밝혀졌다. 주변에 늑대발자국이 있었다. 사향노루 숫컷은 냄새가 나는 자기가 새끼들에게 가면 암컷과 새끼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멀리 떨어져서 늑대와 외적을 살피면서 가족을 지켰다. 영감은 사냥의 방해가 되는 늑대를 죽이든가 멀리 쫓아버리라고 지시를 하고 자기는 다른 사냥터로 갔다. 노루사냥집에 많은 여인들이 노루피를 기다리고 있다. 영감이 다음날 새벽에 노루를 잡았다. 피는 궁중여인이 맨먼저 마셨다. 여인은 산에 온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으나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몸이 풍만해지고 피부가 윤택해졌다. 여인의 몸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여인이 아전을 불러 지시를 했다.

사향노루는 어떻게 되었소?’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요?‘

사나흘 쯤입니다.’

사향노루는 효험이 있소?’

그럼요. 환갑이 넘은 노인도 그 냄새를 맡으면 생기가 돌아옵니다. 잠자리를 한 여인이 견디지 못 합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여인이 가느다랗게 웃었다. 요기妖氣가 느껴지는 웃음이다. 그런데 그날밤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한밤중에, 여인을 경호하단 칼잡이가 옆방의 아전을 깨웠다. 노루사냥터에서 얼마 안 덜어진 산마루에 피가 묻은 거적에 덮힌 시신이 있었다. 가슴팍을 칼에 찔렸다.

자객입니다. 마님을 노렸습니다.’

자객은 산마루를 넘어오다가 풀밭에 잠복한 칼잡이에게 당했다. 시퍼런 비수匕首를 품고있는 걸로 봐서 자객임은 틀림없으나 신분증은 물론이고 아무 증거도 없다.

 

자객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들은 남의 목숨을 노렸으나 그 자신도 늘 죽음 옆에 있다. 그래서 일체의 신분 노출을 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의 지시를 받아 누구를 죽였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아야 한다. 경호하는 칼잡이도 자객을 찾아내서 죽이는 일을 맡았고 역시 비밀 속에서 움직였다. 음지陰地의 사람들이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활동했다. 영감이 다시 사향노루 사냥터로 돌아왔다. 피리영감을 돕는 사냥꾼들이 늑대 세 마리를 잡았다. 늑대들은 어미가 풀숲에 숨겨놓은 맷돼지와 노루새끼를 노렸다. 늑대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활이 무엇인지를 알고 늘 사정거리를 유지한다. 대여섯 마리의 늑대들이 사냥터를 돌아다녔다. 사냥꾼들을 곁눈질하며 사정거리 밖에서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사냥꾼들은 예사 사냥꾼이 아니다. 50m나 되는 거리에서 수박을 맞추는 활꾼이다. 사냥꾼들도 주변을 맴도는 늑대를 곁눈질하며 모여 앉아서 잡담을 했다. 잡담을 하는 척 하고있었다. 최대한 늑대를 끌어들여놓고 일제히 사격을 했다. 세 마리가 쓰러지고 나머지는 도망을 쳤는데 추적을 해서 바위산의 늑대소굴을 덮쳐 새끼 네 마리를 비롯하여 전멸시켰다. 영감이 다시 사향노루사냥을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 먹이를 찾으러나갔던 박쥐들이 굴로 돌아올 때 영감이 새끼노루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굶주림에 지친 애절한 호소다. 피리를 불 필요가 없다. 이슬에 젖은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났다. 숫컷이 풍기는 고린내다. 어둠이 걷히고 아침 안개가 흐르고있을 때 어미가 앞장서고 애비가 따라가는 두 마리의 노루가 발견되었다.

 

피리영감이 하얀 횟가루 칠을 한 오른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잠복한 사냥꾼들에게 쏘라는 지시다. 새끼 울음소리에 정신이 팔려 주변정탐을 게을리했던 노루가 이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화살이 일제히 날아갔다. 숫컷이 목과 대가리에 살을 맞고 쓰러졌다. 놀란 암컷이 폴짝! 뛰어올랐다. 암컷은 살려두어야 한다. 몇 년 후 새끼를 낳으면 기다려 숫컷을 잡는다. 영감이 기름종이로 숫컷을 몇 겹으로 싼 다음 보자기로 쌌다. 냄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귀중하게 다뤘다. 사향노루는 처리하기 어렵다. 숙련된 사냥꾼이나 한약상만 처리할 수 있다. 또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상해버렸다. 영감은 즉시 사냥집으로 달려갔다.

빨리 궁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리와 사용방법을 알려주었다. 여인의 비밀스런 곳, 겨드랑이에 바르고 이부자리에도 바른다. 방문을 닫고 상대 남자 외에는 출입도 금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여인의 시중을 드는 고자孤雌가 냄새에 홀려 모시는 여인에게 덤벼드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불상사不祥事가 있었다. 사향을 궁중으로 반입하는 일도 어렵고 위험하다. 사향을 소지하거나 반입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위반하면 엄한 처벌을 받거나 처형된다.

피리영감이 마님에게 빨리 떠나라고 했으나 마님이 노루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몸에 열이 난다고 다음날 아침에 떠나겠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님은 그날밤 경호인 칼잡이가 안내하는 비밀스러운 곳에 갔다. 사냥꾼의 움집이다. 한 사람이 들어누우면 꽉 차는 움집이다.

 

밤짐승들이 어둠속을 돌아다니는 밤, 마님이 움집에 혼자 누워있을 때 칼잡이가 총각을 데리고왔다.

들어가!’

칼잡이는 총각을 움집으로 들여민 다음 숲으로 사라졌다. 움집에서는 강력한 냄새가 났다.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몸냄새다. 다섯 마리의 노루피를 마셔서 터질 듯 물이 오른 여인의 냄새다. 여인이 남자의 손을 끌어당겼다. 총각은 가느다랗게 떨고있었다. 총각는 왜 무엇을 하러 여기에 온줄을 몰랐다. 그는 화전민마을에 사는 총각이다. 부모가 없으며 마을에서 좀 떨어진 오두막에서 혼자살았는데 며칠 전 관아에서 나온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은화銀貨 몇 개를 주면서 자기 말을 들으면 그런 은화를 더 주겠다고 했다. 그만한 돈이면 큰 집도 사고 장가도 갈 수 있다. 그래서 총각은 남자가 시키는대로 움막집으로 끌려왔다. 여인의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으나 총각은 아무것도 할줄 몰랐다. 여인이 팔로 총각의 상체를 안고 다리로 하체를 감았다. 총각은 그제야 여인이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이라는 알았다. 여인이 총각의 손을 끌어당겨 자기의 젖무덤에 올려놓았다. 여인의 젖무덤이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총각의 손을 쥔 여인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제야 총각은 자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챘다. 한참 나이의 총각의 몸은 쇠붙이처럼 탄탄했다. ! 하는 순간 총각의 몸이 여인에게 닿자마자 사정을 해버렸다. 여인이 실망했다. 여인의 남자는 50이 못 되었으나 뭇 여인을 상대하였으므로 남자구실을 하지 못 했다. 시달리기만 했다. 그런데 움막에 들어온 총각은 새처럼 빨랐다.

안 돼!’

여인이 몸 위에서 내려가려는 총각의 허리를 잡았다.

 

여인이 실망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뱀처럼 총각의 몸을 감고있었던 여인은 총각의 몸이 되살아나는 걸 알았다. 뜨거운 몸이 식기도 전에 사정을 해버렸던 총각은 사정이 끝나자말자 다시 일어섰다. 총각은 여인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인이 신음呻吟했다. 간헐적間歇的으로 신음을 하던 여인이 고함을 질렀다. 여인은 그래도 총각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 밤이 새지 않았다. 확실하게 수태受胎를 해야 한다. 왕족의 피가 흐르든 말든 아이를 낳으면 된다. 사향으로 늙은 영감을 유혹하여 하는 시늉만 하고 아이를 낳으면 왕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영감이 먼저 자기 아이를 주장할 것이다. 사람들은 발가락이 닮았다고 할 것이다. 날이 밝아왔다. 여인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다. 여인은 날이 새기 전에 총각을 돌려보내고 칼잡이를 따라 사냥집으로 돌아왔다. 사냥집은 깊은 잠에 빠져 사람들은 마님의 외박을 모른다. 마님은 아침에 사냥집을 떠났다. 그러나 사냥집의 음모와 살육은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후에 사냥집에서 10리 쯤 덜어진 화전민마을에 늑대들이 나타나 젊은 총각을 잡아먹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움막에 사는 부모도 없는 총각이 나무를 하러나갔다가 늑대들에게 당했다. 흔히 있는 일이다. 총각의 시신은 늑대굴 가까운 바위틈에서 발견되었다. 피리영감도 그렇게 알았다. 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으나 그렇게 믿었다. 마님이 약속한 금화金貨를 받았다. 마님은 번쩍번쩍한 금화가 묵직한 비단주머니를 주었다.

 

피리영감은 흥분했다. 주머니에는 생존 만져볼 수 없는 누런빛 금화가 열여덟 개나 들어있다. 그 돈이면 이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젊고 예쁜 계집도 집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별당別堂을 한 채 지어 살게하면 늙은 마누라도 잔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영감은 3, 4일 후에 산을 내려가 한양으로 갈 생각이다. 그러나 그 동안이 불안하다. 금화가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 산중에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은 짐승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영감이 활잡이 정서방 형제를 자기 옆방에서 기거하게 했다. 형제에게만 자기에게 돈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경호를 시켰다. 영감은 금화주머니를 이불 안에서 품고잤다. 권총을 품속에 넣고잤다. 옆방에서 술을 마시던 정씨형제는 잠이 든 것 같았다. 자정에 잠이 들었으나 곧 깨어났다. 소리가 들렸다. 영감의 귀는 짐승들처럼 예민했다. 영감의 귀는 피리소리에 이끌려오는 노루발자국소리도 들었다. 발자국소리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옆방에서 자고있는 정서방형제를 깨우려다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그만두었다.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졌다. 바로 문 밖이다. 권총을 들어올렸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총을 쏠 것이다. 방문고리를 걸었으므로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상대는 암살자다. 암살자가 문밖에소 오줌을 누었다. 오줌으로 방문 창호지를 적셔 문고리를 열었다. 오줌에 젖은 방문이 소리없아 열렸다. 찬바람으로 문이 열리는 걸 알아챈 영감이 권총을 들었으나 총을 발사할 틈도 없이 암살자의 칼이 영감의 심장에 박혔다. 치명상이었으나 고함을 지르자 옆방의 정서방형제가 뛰어나왔다. 그러나 이미 암살자는 금화주머니를 들고 튀어버렸다.

잡아, 저놈들을 꼭 잡아! 그리고 금화를 찾아.’

마지막으로 중얼거리고는 이내 숨이 끊어졌다. 정서방형제가 영감을 끌어안았으나 영감은 문밖을 손가락질하며 숨이 넘어갔다. 피리영감을 사냥집에 맡기고 형제는 암살자를 추적했다. 암살자의 거동은 짐승처럼 빨랐다. 높지 않은 산이었으므로 쉽게 한양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방향을 잡고 어둠을 뚫고 나갔다, 그는 궁중마님을 경호하였으므로 산세山勢를 대충 짐작했다. 그는 마님의 지시로 마님과 하룻밤을 지낸 총각을 죽여 늑대굴 앞에 던져놓았다. 미행하는 자는 뒤에서 덮쳐 칼로 죽였다. 거기까지는 마님의 지시다. 총각을 죽이고 은화를 뺏은 그는 피리영감의 금화를 욕심냈다. 그 돈이면 어디서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 은화에 이어 금화까지 빼앗은 칼잡이는 자기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칼은 잘 썼으나 산을 모른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에서 내려갈 수가 없다. 정서방형제의 신속한 연락에 의해 열서너 명의 활잡이들이 산을 포위했다.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몰이방법으로 요소요소를 지켰다. 칼잡이는 그 포위망을 뚫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산에서 내려오지 못 하고 오히려 산위로 도망을 쳤다. 날이 밝자 활꾼이 칼잡이를 발견했다. 밤새 뛰어다닌 칼잡이는 기진맥진氣盡脈盡해서 기어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갔다. 칼잡이는 금화주머니를 꽉! 쥔 채 죽었다.

 

마님이 사냥집에 머무르는 동안 네 사람이 죽었다. 마님을 뒤따르던 암살자가 마님을 경호하는 칼잡이에게 죽었다. 칼잡이는 마님과 동침한 화전민마을의 총각을 죽였다. 입을 막았다. 은화를 탈취했다. 여기까지는 마님의 지시다. 칼잡이는 피리영감을 죽이고 금화를 빼앗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죽었다. 네 번째는 자기자신이다. 활꾼들에게 포위되어 처참하게 죽었다. 활꾼들이 피리영감이 피살되었다는 일을 관아에 고발했다. 양주관아에서 포리捕吏들이 나와 조사를 했다. 칼잡이의 신원身元이 밝혀지고 그가 저지른 일도 밝혀졌다. 궁중에서 나온 마님은 궁중에 돌아가지 못 했다. 마님은 친정에 머물었다. 의금부에서 관리가 나왔다. 마님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리한 여인이며 궁중이 어떤 곳인지 알고있었다. 마님의 음모는 완벽했다. 칼잡이가 피리영감을 죽이지만 않았더라면 마님의 음모는 감쪽같이 성사되었을 일이다. 왕실의 피를 타고난 대감은 사향노루의 향기로 정력을 되찾았을 것이고, 정력을 되찾지는 못 해도 마님과 교접하는 시늉은 했을 것이다. 그러면 마님이 낳은 아이는 대감의 아이로 인정을 받고 어쩌면 대권大權 즉 왕권을 이어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마님은 궁중을 휘어잡는다. 의금부에서 나온 관리는 마님을 구하지 못 했다. 여인이 독을 마시고 자결自決했다. 왕족의 명예가 더렵혀질 염려가 있었으므로 수사는 거기 쯤에서 끝났다. 여인은 친정에 갔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139. 맹수猛獸들의 영지領地

 

19287, 아프리카 서남부 앙골라에 있는 모코산 남쪽 기슭에 높이가 10m 쯤 되는 관망대가 설치되었다. 관망대는 영국 왕실박물관 소속 학자들이 설치했는데 그 밑에는 포르트칼의 관리들이 주둔하고 있는 야생동물 관리소가 있었다. 본디 그 일대는 바위산들과 반사막들이 퍼져있었으며 원주민들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불모지不毛地. 그러나 남쪽 구앙고강이 흐르는 일부 사바나지역은 달랐다. 몇십만평 쯤 되는 사바나에는 땅에 습기가 있어 풀들이 무성했으며 드문드문 나무도 자랐다. 그곳에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영양과 얼룩말 등 대형 초식동물들이 떼를 지어 살고 그들을 노린 사자, 표범, 하이에나 등 육식동물들이 돌아다녔다. 잡식성인 비비 무리들도 나무에서 내려와 그 사바나의 일각을 차지했다. 그래서 영국의 여류학자 세실여사는 그곳에 높은 전망대를 만들어 그들 동물을 관찰했다. 침펜치 등 유인원 전문 연구가 세실, 그의 조수 대학원생 인겔드양과 사진작가 파튼은 거의 하루 종일 전망대에 올라가있었다.

저 사람들은 밥도 먹지 않을 작정인가?’

저녁식탁에서 기다리던 관리소장 루이스가 밥을 먹자고 소리를 쳤다.

사자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비비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금발의 인겔드양이 긴장했다. 아무래도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곳에는 수컷 네 마리, 암컷 여덟 마리, 새끼 열 마리로 구성된 사자무리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평소에는 비비를 공격하지 않았다. 비비들이 사바나 북쪽에 있는 산림뿐만 아니라 사자들이 살고있는 동쪽 초원에까지 들어와 살고있어도 사자는 비비를 덮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상황이 좀 달랐다. 날씨가 흐리고 무더웠다. 사자는 그런 날씨를 싫어했다. 더구나 그날은 원주민 소몰이꾼들이 소떼를 몰고 사자의 영지를 지나갔다. 그럴때는 사자들의 신경이 날카로와져 으르렁거렸다. 그까짓 소들이야 당장 찢어죽일 수 있어도 긴 창을 쥐고 경호를 하는 원주민 사냥꾼들이 마음에 걸렸다. 원주민들과 싸울 수는 없다. 그들의 동족들이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으며 싸움이 벌어지면 동족들이 벌떼처럼 덤벼들 것이다. 그래서 사자들은 다른 데서 화를 풀 염려가 있었다.

비비들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리소장 루이스는 비비들을 잘 알았다.

사자와 비비의 싸움은 그 결과가 뻔할 것 같았다. 덩치, , 속력 어느 것을 봐도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사자와 싸워 이길 짐승은 없다. 강가 습지에 사는 물소나 사바나 북쪽 덤불숲에 사는 코뿔소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사자의 먹이에 불과하고, 가끔 나타나는 코끼리도 덩치값을 하느라고 사자를 위협하기는 했으나 싸우고 안 싸우는 건 사자들에게 달렸다. 사자는 가끔 코끼리새끼를 잠아먹었다. 흔히 하이에나가 사자의 경쟁자라고 알려져 어쩌다 하이에나가 겁 없이 사자들의 식사판에 끼어들어 사자의 신경을 건드리기는 해도 그것도 사자들이 얼마나 참느냐에 달려있다. 인겔드양과 파튼은 참다못한 사자두목 검은갈기가 하이에나두목을 쫓는 걸 목격했다.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들이 사자들의 잔치판 바로 앞에 다가와 구걸이 아니라 위협을 하는 걸 참지 못한 검은갈기가 하이에나를 덮쳤다. 하이에나는 검은갈기가 추격하다가 지치면 돌아갈줄 알았으나 검은갈기는 하이에나두목을 끝까지 추격했다. 하에나는 고가가 질겨서 잡아봤지 먹지도 못 하기에 멀리 쫓아버리면 그만인데, 또 여러 마리에게 협공을 당하면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쫓아내는 걸로 그만인데, 그러나 그날은 소떼를 모는 원주민과 신경전을 벌여 심기가 좋지 않았다. 검은갈기는 하이에나두목을 끝까지 추격하여 200Kg이나 되는 무게로 눌러깔아뭉갰다. 그리고 목덜미를 물어 흔들었다. 하이에나두목은 목줄기가 찢겨 죽었으나 검은갈기는 하이에나를 걸레로 만들었다. 화풀이다. 그래서 인겔드양은 비비들이 당할줄 알았다. 사실 하이에나가 사자를 괴롭히는 것 이상으로 비비들도 사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비비는 사자의 영지에 바짝 다가와 영토를 넓혔다. 비비는 풀밭에서 부드러운 풀을 골라먹고 그 열매나 씨를 찾고 곤충을 먹었다. 그러나 비비는 잡식성이므로 동물도 먹었다. 야생동물 관리인 루이스는 비비들이 영양새끼를 즐겨 잡아먹는다고 했다.

 

루이스는 그날 총을 들고 학자들의 뒤를 따라갔다. 학자들은 사자외 비비의 싸움을 관찰하려고 했는데 그건 위험하다. 동물들이 신경과민상태이기 때문에 싸움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자들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검은갈기가 앞장서고 젊은 두 마리가 뒤를 따랐는데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우두머리가 앞장을 섰다는 게 싸움을 예고했다. 사자의 사회에서 우두머리가 하는 일은 외적을 물리치는 일이다. 먹이사냥 등 일상적인 일은 모두 암컷들이 한다.

사자들이 천천히 비비들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는 것은 비비들에게 물러날 여유를 주려는 것이었는데 비비들이 물러나지 않았다. 비비무리의 우두머리인 폭군이 흰개미집에 올라가 사방을 살피고 있었고, 그 옆에 친위부대인 젊은 수컷 서너 마리가 붙어있었다. 비비두목 폭군이 사자들을 발견했다. 사자두목 검은 갈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폭군은 물러나지 않고 검은갈기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거리가 20 - 30m로 단축되어도 폭군은 사자들을 무시했다. 어쩌자는 것일까? 그만한 거리면 사자는 단숨에 비비들을 덮칠 수 있다. 출발부터 폭발적인 속력을 내는 사자는 1, 2초 이내에 비비들을 덮칠 수 있다. 그런데도 폭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비비는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활동하는 원숭이이므로 꽤 빨리 달릴 수 있었으나 사자에게 비할 속력은 못 된다. 폭군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폭군은 몸무게가 60Kg이나 나가는 큰 원숭이였고, 어깨에 근육이 불거지고 긴 갈기가 있다. 폭군은 다부지고 당당했다. 사자들을 보는 폭군의 태도는 상대를 위협하는 싸움꾼의 태도다. 덤빌테면 덤벼라는 시위다. 어이없다. 여류학자들은 무서운 참사를 예감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비비들이 저러는 것일까? 사자와 비비를 잘 아는 루이스는 여류학자들에게 비비들이 쉽게 사자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사자들을 보는 폭군의 눈빛에는 오만과 경멸이 섞여있었다.라는 경멸 어린 눈빛이었다.‘까짓 무식한 놈들이 뭣을 하겠다는 것인가?’어께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태도에는 호기豪氣가 있었다.

내가 누군데

라는 호기가 폭군의 태도에 나타나 있었다.

 

검은갈기가 으르렁거렸다. 더 이상 참지 못 하겠다는 듯 귀가 납작하게 붙었고, 꼬리가 뻣뻣하게 일어섰다. 드디어 뒷발로 땅을 찼다. 공격개시다. 그 때 폭군이 아가리를 벌리고 고함을 질렀다. 폭군이 아가리를 벌리면 어금니가 들어난다. 길이가 6Cm나 되는 무시무시한 이빨이며 그 이빨에 찔리면 어느 동물이라도 치명상이다. 폭군의 그런 반항을 보고 검은갈기가 주춤했으나 그렇다고 공격을 중지할 검은갈기가 아니다. 검은갈기가 다시 도약을 했다. 폭군도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폭군과 그 친위대가 뒷걸음질쳤다. 비비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후퇴했다. 폭군은 사자들과 사람들이 있는 곳의 중간거리를 가늠하며 반격을 하는 시늉을 했고, 그 광경에 사자들은 주춤거렸다. 빕들은 사자들이 주춤거리는 틈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미리 계산된 작전이다. 영리한 비비 두목 폭군은 같은 영장류인 사람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그 놈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있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원주민은 비비들과 적대관계였으나 피부가 흰 사람들은 그 동안의 관찰결과 자기들에게 적대심이 없다는 걸 알고있었다. 사자들이 공격을 중단했다. 도망가는 비비들을 따라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뛰어들 수는 없다. 검은갈기는 몸을 돌렸다. 검은갈기는 체면을 살리려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기들의 영지로 돌아갔다. 빕들도 날이 어두워지자 산림 안으로 돌아갔다. 본디 비비들은 그곳에서 10리 쯤 떨어진 바위산에 영지가 있었으나 바위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위산과 사바나 사이에 있는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잡목림에는 키가 5, 6m 쯤 되는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었는데 비비들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바위산까지 갈 것 없이 나무 위에서 밤을 지새고 날이 밝으면 다시 사바나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빕들은 산림과 사바나 일부까지 자기들의 영지로 간주했다. 빕들은 모험을 했다. 원숭이 종류인 비비가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에서 살겠다는 자체가 모험이었다. 그 건 같은 조상을 갖고있는 인간들이 오래전에 시도했던 진화의 과정이었는데 비비가 과연 인간 다음으로 그 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바위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바나와 산림의 중간지점에서 밤을 세우겠다는 작전도 위험했다. 비비는 안간처럼 밤눈이 어두웠으나 사바나에는 밤에만 사냥을 하는 밤짐승들이 있다.

 

표범들이 돌아다녔다. 표범은 사자처럼 무리지어 사는 고양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사자를 피해 돌아다녔으나 비비들에게는 그게 더 위험하다. 본디 표범과 비비는 원수지간이다. 표범은 비비를 먹이로 알고 곧잘 습격했다. 예민한 눈과 코를 갖고있는 표범은 비비들을 기습했고, 방심한 비비들이 잡혀먹혔다. 그러나 표범들이 함부로 덤비다가는 역습을 당하기도 했다. 여류학자들은 며칠 전에 표범과 비비들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목격했다. 아침이었는데 몇몇 비비들이 사바나에 나왔다. 무리의 선발대인데 우두머리 폭군이 주위를 감시했다. 비비무리는 20m 쯤 떨어진 풀밭에서 풀을 뜯고있었다. 폭군과 젊은수컷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있었으나 사바나의 나무는 키가 크지 않아 지상에서 불과 4m 쯤 되는 높이다. 그곳은 감시를 하는 전망대는 되었으나 외적을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되지 못 했다. 그 때 표범 한 마리가 다가왔다. 밤사냥에 실패한 표범이 먹이감을 찾고있었다. 표범은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으나 그 의도는 분명했다. 표범은 나무를 잘 탄다. 비비들이 올라간 나무쯤이야 쉽게 올라간다. 폭군이 이빨을 들어내고 표범에게 경고했다. 물러나지 않으면 찢어죽이겠다는 경고였는데 표범을 그걸 무시했다. 그것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비비의 새끼들이 놀고있었다. 표범이 비비들이 올라가있는 나무밑을 지나갔다. 나무밑에 가면 비비들이 더 높은 나뭇가지로 올라가 피할 줄 알았으나 그것은 비비를 너무 경시한 처사였다. 비비들 가운데 두목 폭군이 있다는 걸 망각했다. 표범이 나무밑에 다다르자 포군은 주저하지 않고 나무에서 뛰어내려 표범의 등에 올라탔다. 표범이 당황했다. 설마 원숭이가 선제공격을 할 줄 몰랐다. 원숭이라고 하지만 폭군은 몸무게가 60Kg이나 되었으며 폭군은 나무에서 뛰어내린 중력을 최고로 이용하여 표범을 덮쳤다. 표범이 고양이족들의 순발력으로 일어났으나 어느 새 폭군이 그 목줄을 물고늘어졌다. 표범은 폭군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벌써 목에서 피가 솟았다. 단검과 같은 폭군의 이빨이 표범의 동맥을 절단했다.

 

표범은 힘으로 폭군을 끌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나무 위에 있던 비비 두 마리가 동시에 뛰어내려 표범을 짓눌렀다. 젊은 비비들은 표범의 아랫배와 엉덩이를 물었다. 보드라운 표범의 살과 가죽이 찢겨 내장이 쏟아져나왔다. 불과 2, 3분만에 표범이 치명상을 입었는데 비비들은 죽어가는 표범을 갈기갈기 찢었다. 학자들은 증오에 찬 비비들의 눈빛을 보고 몸서리를쳤다.

비비들은 무서운 맹수다. 그러나 표범과 비비들의 싸움이 밤이 되면 달라졌다. 표범은 밤눈이 밝은 밤의 야수다. 여류학자들은 가끔 비비들이 자고있는 나무 위에서 빛나는 파란 불빛을 보았다. 밤사냥을 하는 표범의 눈빛이다. 표범은 그런 밤사냥으로 자기방어능력이 없는 비비세끼들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비비들은 이미 점령한 산림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바위산이나 사바나에서 초원으로 진출한 그곳의 비비들은 다른 지역의 비비들과 달랐다. 학자들은 아프리카 서쪽지역에 사는 비비들을 차그마 바분이라고 불렀다. 차그마 비비는 체중이 50Kg이나 되었고, 70Kg이 되는 거물도 있었다.사바나에 진출한 그들은 나무열매, 뿌리를 주식으로 먹었으나 다람쥐, 토끼 등 작은 동물과 곤충도 먹었다. 영양새끼나 다른 원숭이도 사냥했다. 뱀이나 도마뱀도 사냥했다. 나무에서 내려와 살면서 뱀에게 물려죽었으므로 본능적으로 사람이나 유인원은 뱀을 두려워했으나 차그마 비비는 가장 효과적으로 뱀을 사냥했다. 뱀은 독이 있다는 걸 알고 대가리와 이빨은 피했다.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가 바위나 나무뿌리에 때려 죽였다. 차그마 비비는 무리가 수백 마리이고 호전적이고 단결력이 강하다. 발달된 사회생활을 했다.

 

비비들은 사람처럼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사회구조를 갖고있었다. 기본적으로 어미와 새끼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는데 주변에 다른 가족들이 있고 서로 어울려 큰 무리를 만들었다. 서른 마리 정도의 무리에는 한 마리의 수컷이 지배한다. 중간보스들은 서너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지배자의 친위대가 된다. 그래서 사자, 표범들도 비비무리를 해치지 못 했다. 사자나 표범은 단독생활을 하므로 비비무리들을 해치지 못 했고 비비무리는 단결된 힘으로 영지를 늘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무리생활을 하는 육식동물이 있었다. 하닝에나다. 먹이를 찾아 수십 마리씩 떼지어 다니는 하이에나는 표범이 잡은 먹이를 빼앗는 약탈자다. 비비와 하이에나는 어떤 관계일까? 하에에나는 표범뿐만 아니라 사자의 먹이도 빼앗았다. 목숨이 아까운줄 모르고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1 : 1로는 싸움이 되지 않았으나 하이에나 무리가 덤벼들면 할 수 없이 애써 잡은 먹이를 빼앗겼다.

 

그 사바나에서 비비무리와 하이에나무리가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싸움을 피했다. 쌍방 피해가 난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하이에나가 좋아하는 먹이감인 영양들이 하이에나를 피해서 비비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했다. 더구나 영양들은 비비가 자기들과 같은 초식동물인줄 알지만 비비들은 가끔 어미영양 몰래 영양새끼들을 잡아먹었다. 빕들이 영양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웠다. 먼저 서너 마리가 어미영양의 시선을 막아선다. 그리고는 전광석화처럼 새끼영양의 목을 물어죽인다. 소리를 지르지 못 하게 죽여 납치하여 산림 안으로 도망친다. 어리석은 영양어미는 나중에야 새끼가 없어진 걸 알고 주변의 하이에나를 의심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하이에나는 비비들과 싸움을 하지 않는다. 집단싸움을 하면 쌍방피해가 나기 때문에 삼간다. 여류학자 세실과 조수 인겔드 양은 그런 비비와 하이에나의 관계에 관심이 컸다. 동물학연구에 의미가 있다.

 

발정이 된 암컷두목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교미를 했다. 먼저 수컷두목과 교미를 한 다음 다른 수컷과도 교미를 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또 다른 수컷과 교미를 했다. 또 두 시간 후에는 다른 수컷과 교미를 했는데 아직 어린놈이라 서툴렀다. 그래서 암컷두목은 신경질이나서 엉덩이로 수컷의 몸을 마구 밀어부쳐 빨리 하라고 독촉을 했다. 그래서 젊은 수컷과는 간신히 교미를 했으나 이제 상대가 없다. 무리 안에는 성숙한 수컷이 없다. 그래서 두목수컷에게 다시 교미해달라고 했으나 두목수컷은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젊은 암컷이 여두목의 눈을 피해 다른 수컷을 유혹했다. 그 수컷도 여두목과 교미를 했는데도 암컷의 유혹에 빠져 슬그머니 바위 뒤로 들어갔다. 여두목이 그걸 발견했다. 여두목이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질투에 미친 여두목이 암컷의 목덜미를 물었다. 암컷이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으나 여두목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암컷이 반죽음을 당해 죽어가는데 여두목은 그 수컷에게 다가가 교미를 요구했다. 그러나 수컷은 여두목의 유혹에 흥미가 없다. 그러자 여두목이 수컷의 성기를 입으로 빨았다. 인간을 비롯한 암컷은 수컷을 강간하지 못 하는 걸로 알았으나 하이에나의 경우에는 엄컷이 수컷을 강간했다. 여두목의 강요를 받고 겁에 질린 수컷은 혼신의 힘으로 교미를 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참 보기 민망스러웠다. 대학원생인 인겔드 양은 더 이상 여두목이 하는 짓을 보기 민망해서 그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세실빅사가 말했다.

여두목이 하는 짓은 일종의 가족계획이야. 암컷들이 모두 교미를 하면 너무 만은 새끼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여두목만 교미를 하는 거야.’

하이에나무리는 새끼가 너무 많이 태어나면 먹여살리기 어렵다. 하이에는 한 배에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으므로 가족계획을 하지 않으면 무리가 다 망한다.

 

여류학자들은 하이에나의 사회에서 암컷우위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비비들의 사회에서는 수컷들이 우위를 차지하여 온갖 횡포를 부리고 있었는데 하이에나의 사회에서는 왜 그런 반대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비비의 사회에서는 수컷의 덩치가 암컷에 비해 월등히 크나 하이에나는 별 차이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하이에나사회에서 여두목은 서너 마리의 젊은 것들을 데리고 있고 그 젊은 것들이 여두목 편을 들었다. 여두목의 새끼들이다. 새끼들은 여두목이 수컷과 싸우거나 암컷과 싸우면 집단적으로 여두목편이 되어 싸웠다. 특히 암컷새끼는 공주대접을 받고 여두목이 죽으면 여왕의 자리를 세습했다. 그러나 수컷에게는 그런 친위대가 없다. 수컷두목은 1년에 한 번 쯤 출산하는 새끼들 중에서 자기 피를 구분할 수 없다. 여두목은 여러 마리의 수컷들과 교미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컷두목은 여두목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두목 소생의 젊은 것들에게 밀려 별볼일 없는 위치에 있었다. 비비의 경우는 그 반대다. 비비는 무리 안의 모든 암컷을 독점하고 다른 수컷과는 교미를 하지 못 했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찢겨죽는다. 따라서 무리 안의 새끼는 모두 수컷두목의 새끼다. 그래서 수컷두목은 힘이 강한 새끼를 옆에 두고 세력을 유지했다.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외곽지역에 원주민마을이 있어 몇 백 명 쯤 되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여류학자들은 원주민생활을 관찰했다. 원주민마을의 젊은 여인이 이틀에 한 번 야생동물보호소에 신선한 우유와 계란을 가져왔는데 인겔드 양이 그 여인과 친해졌다. 인겔드 양이 아이를 업고 계란을 머리에 이고 오는 여인이 안쓰러워서 마을에 남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남자들은 소나 닭을 사육하고 우유나 계란을 파는 일은 여자가 한다.

 

집안을 돌보고 아이 키우는 일은 여자가 할 일이고 마을 주변에 있는 밭을 가꾸는 일도 여자의 일이다. 산림에 들어가 나무열매나 버섯을 채취하고 땔감을 해오는 일도 여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의 일은 무엇인가? 마을을 침공하는 외적과 싸우는 일, 소나 양을 방목하는 일,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일이 남자들의 일이다. 그러나 인겔드 양은 마을의 남자들이 게으르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늘 나무그늘에 모여 담배를 태우면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힘이 드는 일은 모두 여자들이 했다. 마을의 남자들은 보통 서너 명의 마누라를 갖고 있었고 그 마누라들은 하루 종일 일을 했다. 마누라는 일종의 재산이었으며 그 수를 보면 그 집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사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가?’

인겔드 양이 동물보호소에 계란을 가지고오는 여자에게 물었다.

항의를 할 수 없다. 마을의 전통이다.‘

인겔드 양은 마을의 전통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의 여자들은 남편에게 매를 맞았다. 매를 맞아도 싸울 수가 없다. 마을 남자들은 덩치거 여자들의 두 배가 된다. 비비들 보다는 덜했으나 거의 두 배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얻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새로 들어온 마누라가 일을 하기 때문에 내 일이 그만큼 줄어든다.’

주민과 비비는 생활양식이 비슷한 무리생활이다. 극소수의 보스가 무리를 지배한다. 일부다처제의 남존여비 관습이다. 그런데 주민들과 비비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비비들이 야금야금 영지를 넓히고 있었고, 주민들이 가꾸어놓은 옥수수밭을 망쳐놓았다. 비비들은 마을에 들어와 염소나 닭을 약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른 명 쯤 되는 원주민 사냥꾼들이 사바나에 있는 비비들을 습격했다. 비비들은 마을 가까이에 있는 바위산에 살았으나 바위산은 난공불락의 요새라 비비들을 잡을 수 없었다.

 

원주민 사냥꾼은 사바나에서 채식을 하고있는 비비들을 사냥하기로 했다. 사냥꾼들은 비비들이 도망치지 못 하게 바위산의 퇴로를 막아놓고 풀밭으로 기어갔다. 몰래 기습을 하려고 했는데 구릉 위에서 보초를 선 비비의 눈을 속이지 못 했다. 비비의 시력은 사람 보다 훨씬 좋다. 비비두목은 신속하게 지휘를 했는데 비비들을 동물보호소 근처로 피신시켰다. 비비두목은 같은 사람이라도 동물보호소의 사람과 원주민 사냥꾼을 구별했다. 자기편과 적을 구별할 줄 알았다. 관리소장 루이스는 사무실 앞까지 몰려와있는 비비들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비비두목 폭군은 루이스와 다가오는 원주민 사냥꾼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주어야 했다. 그곳은 야생동물보호지역이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자체를 보호했다. 사냥꾼들이 지역에서 사냥을 하는 것은 위법이다.

추장! 여기가 보호지역이라는 걸 아느냐?’

루이스가 고한을 쳤다. 마을 젊은이들이 관리소직원 등 뒤의 비비들에게 활을 겨누고 있었으나 쏘지는 못 했다. 관리소직원들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냥꾼들은 관리소직원들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돌아갔으나 빕 사냥을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전날밤 마을에 들어온 비비들이 갓난 송아지를 물고갔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마을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심싱치 않은 것을 보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세실교수와 인겔드 양도 루이스를 따라갔다. 원주민마을의 젊은이들이 총동원되었다. 이웃마을까지 가세하여 50여 명이다. 그들은 비비들의 본거지 바위산으로 쳐들어갈 계획이다. 인간과 비비들이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루이스는 그 전쟁을 말릴 수 없다. 바위산은 동물보호구역 밖이다. 원주민들이 바위산에서 사냥을 해도 관할지역이 아니다. 비비도 보호동물이 아니다. 비비들도 죽겠지만 원주민도 죽을 것이다. 비비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동물보호소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근의 원주민도 보호해야 한다. 루이스는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인 비비들을 보호하려고 했는데 사람은 더 중요한 보호대상이다. 원주민 사냥꾼들이 바위산에 들어가면 안 된다. 5년 전에 바위산에 들어간 원주민 두 명이 비비들의 반격을 받고 죽었다. 비비들은 사람들이 쏘는 화살이나 던지는 창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원주민들과 싸운다. 안전지대 안이라도 바위동굴이나 틈에 숨어있다가 원주민을 기습한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비비들은 5Cm나 되는 어금니로 원주민들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동굴이나 바위틈에 숨은 비비들에게 활이나 창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비비들은 흙이나 돌을 던져 원주민들의 시야를 가렸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3년 전에 바위산에 들어간 백인들도 봉변을 당했다. 총도 소용이 없었다. 루이스는 바위산에 가겠다는 세실교수와 인겔드 양을 말렸으나 위험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따라가기로 했다. 원주민 사냥꾼들이 바위산을 포위하고 6, 7명으로 편성된 특공대들이 바위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상하다. 바위산이 조용하고 비비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활을 쏘거나 창을 날릴 과녁이 없다. 시기도 좋지 않다. 늦은 하오라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그래도 사냥을 중단하지 않았다. 비비는 낮에 활동하는 짐승이라 밤눈이 어두웠다. 사냥꾼들은 날이 어두워지더라도 공격을 할 생각이다. 횃불을 준비했다. 횃불을 던질 요량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가까이 사는 비비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위산계곡에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서서히 바위산 위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횃불이 켜지고 밤하늘을 수놓았다.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나운 개가 짖는 소리인데 바위산 꼭대기에 폭군의 그림자가 보였다. 폭군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무시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손을 흔들었다. 반격명령이다. 루이스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사냥꾼들이 휘두르는 횃불은 비비들이 숨어있는 동굴이나 바위 뒤까지 밝히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횃불을 들고있는 사람의 위치를 비비들에게 알려주었다. 비명소리가 일어났다. 횃불의 불빛 속에 도약하는 비비들의 모습이 보였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사냥꾼들의 모습도 보였다. 난전亂戰이 벌어졌다. 비비는 무서운 맹수猛獸. 삼림의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으로 진출하려던 비비는 그들의 임시거점인 바위산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횃불들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사냥꾼들이 비비에게 횃불을 던졌으며 털에 불이 붙은 비비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기대했던 횃불은 기대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 하고 꺼졌다. 횃불이 꺼진 어둠속에서 비비들이 사냥꾼들을 공격했다. 비비들이 수적으로 우세했다. 그리고 비비들은 어둠속에서도 지형을 잘 알고있었다. 그들은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빠지면서 사냥꾼들의 등 뒤에서 덮쳤다.

루이스와 여류학자들은 바위산 기슭에 있었으나 그들도 안전하지 않았다. 세실여사가 비명을 질렀다. 어느세 뒤로 돌아온 비비가 세실여사에게 덤벼들었다. 루이스가 공포空砲를 쏘았다. 그 싸움을 그대로 보고있을 수만은 없었다. 루이스가 가지고있던 미국제 6연발 라이플을 연달아 발사했다. 그 굉음轟音이 바위산에 메아리가 되어 을려퍼졌다. 비비들이 그 굉음에 질렸다. 전투중지를 지시하는 폭군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비비들이 일제히 후퇴했다. 사냥꾼들도 물러섰다. 세실여사를 덮친 비비가 도망쳤다. 세실여사가 피를 흘렸다. 웃옷이 찢겨지고 유방에 상처를 입었다. 루이스가 세실여사의 상처를 소독했다. 비비의 발톱에는 온갖 세균이 묻혀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소독을 해야 한다. 세실여사도 그걸 알고있어서 반나체가 된 몸을 루이스에게 맡겼다.

 

처참한 싸움이었다. 젊은 사냥꾼 한 사람이 죽고 추장의 아들을 비롯한 세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비비들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사냥꾼에게 덤벼들어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추장의 아들은 팔목이 덜렁거렸고 두 사람의 사냥꾼도 팔의 뼈가 들어났다. 무서운 비비들의 어금니 상처였으며 그대로 싸움을 계속했더라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 것이다.

루이스는 백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추장을 설득하여 부상자들을 동물보호소로 데리고갔다. 보호소에는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구와 수술용약품이 있다. 그 싸움에서 네 마리의 비비들이 죽고 세 마리가 부상을 입었다. 비비두목 폭군도 허벅지에 창이 꽂혔다. 루이스는 부상을 입은 비비들에게 마취주사를 놓아 보호소로 데리고왔다. 다행히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다. 추장의 아들은 신경을 다치지 않아 팔목을 절단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른 부상자들도 경상이다. 비비들도 가벼운 상처다. 폭군의 상처도 봉합해서 사흘만에 제 발로 일어섰다. 폭군은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으나 나중에는 얌전해졌다.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살리려고 한다는 걸 알아챘다. 나흘 후 폭군은 바위산에 석방되었는데 마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뒤를 돌아다보며 천천히 돌아갔다. 전쟁은 끝났다. 동물들 간에 벌어진 영지전쟁은 기존질서를 파괴했으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인간과 비비들의 싸움은 어느 쪽이 이겼는지 알 수 없으나 그 후 비비들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그 주변의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일대는 사람들의 영지이고 그 영지를 침범하면 사람들이 가만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또 원주민들과 비비들은 그 싸움에서 얻은 게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동안 야생동물보호지역 외곽에서 불법적으로 개간했던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을 기정사실화 했다. 보호소가 공식적으로 허가한 건 아니었으나 묵시적으로 인정했다. 법이 어떻더라도 그곳은 원주민의 영지다. 인구가 늘어나는 원주민들은 농업으로 생존권을 확보해야 한다.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했다.

 

비비들도 싸움에서 얻은 게 있었다. 비비들의 생태를 조사하던 여류학자들은 비비들의 근거지인 바위산과 많은 초식동물들이 살고있는 초원 사이에 있는 삼림에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걸 느꼈다. 비비들이 어느 새 그 삼림까지 점령했다. 삼림을 초원으로 드나드는 교두보橋頭堡로 삼았다. 삼림에서 나무열매를 따먹고 초원에 나가 연한 풀과 씨앗을 채취採取했다. 밤이 되면 바위산으로 돌아갔다. 밤에는 야행성짐승 표범이나 하이에나가 돌아다니며 특히 표범은 비비를 먹이로 삼았다. 그래서 비비들은 달빛이 밝은 밤이 아니면 삼림을 야행성 육식동물들에게 양보했는데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에 들어가지 못 하는 상황이라 밤에도 삼림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먹이가 없는 바위산을 버리고 삼림에서 상주했다.

세실여사와 동물학자들이 모험을 했다. 루이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삼림 안에 잠복관찰소를 설치했다. 깊이 3m, 넓이 4m 정도의 움막집을 만들고 밤에도 관찰을 하기로 했다. 거기에는 표범이나 하이에나들이 돌아다녔으며 그들에게 발견되면 목숨이 위태롭다. 밤의 육식동물은 낮과 다르다. 어둠속을 소리없이 돌아다니는 밤짐승들은 먹이를 가리지 않았다. 밤눈이 어두운 사람은 아주 손쉬운 먹이감이다. 움막집은 그렇게 위험한 곳에 있었으나 여류학자들은 밤에도 조사를 했다. 어둠속에서 짐승들의 모습은 볼 수 없으나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초저녁 박쥐무리가 날아간 다음에 하이에나의 고함이 들렸다. 하이에나는 미친여자의 울음소리 같은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표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렸고 개가 짖는듯한 비비들의 고함도 들렸다. 움막집에서 보면 여기저기 나무에 불빛들이 보였다. 요기妖氣를 띠고있는 푸른불빛은 표범이고, 자그마한 노란불빛은 비비들이다. 나무 밑에도 수백 개의 불빛이 돌아다녔다. 표범과 비비들의 싸움에서 먹이를 얻으려는 하이에나들이다. 움막집에 들어간 사흘만에 비단을 찢는듯한 날카로운 표범의 비명이 들렸다. 표범이 비비들에게 당한 것 같았다. 밝은 날 여류학자들은 비명소리가 났던 나무 밑에서 표범의 시체를 발견했다.

 

표범의 시체는 핏덩어리였다. 증오에 찬 비비들이 표범을 걸레처럼 찢어버렸다. 비비의 젊은 수컷 한 마리가 목줄이 끊어져 죽었고 폭군도 어께에 피를 흘렸다. 그 표범은 전 날 실수를 했다. 그 날 밤은 날이 흐렸으나 그래도 하늘에 달이 걸려있었다. 그래서 비비들은 표범을 죽이기로 계획했다. 비비들은 새끼와 암컷을 높은 나뭇가지에 올려놓고 그 주위에 젊은 수컷을 배치했다. 폭군은 낮은 가지에서 전투지휘를 했다. 비비들이 용의주도하게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표범은 그걸 몰랐다. 표범이 기습을 하려고 소리없이 나무에 기어올라갔으나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비비들은 밤눈이 어두웠으나 그래도 표범이 올라오는 나뭇가지의 진동을 느꼈다. 폭군은 그 진동과 희미한 달빛으로 표범을 발견했다. 기습을 하려던 표범이 도리어 기습을 당했다. 폭군이 표범에게 덤벼들었고 폭군과 표범은 서로 껴안고 나무에서 떨어졌다. 폭군 밑에 깔린 표범은 일어날 틈이 없었다. 나무에서 뛰어내린 젊은비비들이 표범을 찢어죽였다. 세실여사는 평소에는 폭군을 미워했다. 놈이 거느리고 있는 대여섯 마리의 암컷을 학대하는 걸 보고 폭군에게 악마라고 별명을 붙였다. 잔인무도한 놈이었으며 암컷들은 늘 피를 흘리면서 공포에 떨고있었다. 그러나 세실여사는 악마가 암컷과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표범과 싸우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가족을 지키려는 의무감과 희생정신이 감동적이었다. 악마는 꽤 깊은 상처를 입고 나무 꼭대기에 앉아있었다. 주위를 살피면서 경계를 했는데 그날따라 외롭게 보였다. 대여섯 마리 암컷들 중에 악마를 보살펴주는 암컷은 없었다. 아무도 부상당한 악마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멀리서 악마를 노려보는 놈이 있었다. 떠돌이수컷이며 이전에 악마에게 도전했다가 혼이난 놈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악마는 어깨에 부상을 입어 팔을 쓰지 못 했다. 그 날 늦은 하오에 떠돌이가 악마에게 다시 도전을 했다. 떠돌이는 조심스럽게 악마에게 접근을 했으나 악마는 무시했다.

 

 

도전하는 떠돌이 수컷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를 따라다니는 수컷 두 마리가 있는데 그들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폭군에게도 친위대인 젊은 수컷 대여섯 마리가 있는데 그들도 폭군과 도전자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밖에 수십 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이 그 싸움을 부안한 표정으로 관전했다. 두목자리를 건 싸움은 1 : 1의 싸움이다. 다른 비비들이 그 싸움에 끼어들면 안 된다. 그들은 결과에 승복하면 된다. 도전자가 폭군에게 덤벼들었다. 폭군이 고함을 쳤다. 고함소리에 뒤로 물러선 도전자는 폭군이 한 쪽 팔을 쓰지 못 한다는 걸 알고 다시 덤벼들었다. 폭군이 반격을 하고 도전자는 정면대결을 피해 나무 위로 달아났다. 폭군이 뒤쫓아갔으나 속력이 느렸다. 부상당한 팔을 쓸 수 없었다. 도전자가 높은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리며 폭군을 덮쳤다. 뒤엉킨 채로 나무에서 떨어졌다. 도전자가 폭군 위에 올라타고 깔아뭉갰다. 도전자가 폭군의 뒷다리를 물었다. 보통 동물들의 지위다툼은 서로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는데 비비들은 달랐다. 비비들은 잔인했다. 도전자는 저항력을 잃은 폭군을 계속 공격했고 폭군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폭군은 다시 일어나지 못 했다. 도전자가 개가凱歌를 올렸다. 도전자는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가 두 손을 흔들면서 고함을 쳤다.

이젠 내가 두목이다!’

폭군의 친위대가 슬그머니 흩어졌다. 도전자의 뒤를 따라다니던 수컷 두 마리가 새 두목에게 축하를 하는 듯 가까이 갔으나 새 두목은 냉담했다. 새 두목이 되기까지는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새 두목이 되고는 너희들에게 볼 일이 없다는 태도다. 늙은 암컷 한 마리가 쓰러져있는 폭군에게 다가갔으나 새 두목이 고함을 치자 물러섰다. 늙은 암컷은 슬픈 표정을 지었으나 죽어가는 옛 두목을 도아주지 못 했다. 암컷들 중에서는 벌써 새 두목의 털을 다듬어주는 녀석도 있었다. 인간사회에서도 그런 일은 흔하다.

 

새 두목은 3, 4일 후에는 두목의 지위를 굳혔다. 새 두목은 꼬리를 빳빳히 세우고 무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흰개미집에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모두 새 두목을 따랐다. 새 두목을 따라다니던 수컷들이 새 두목에게 무언지 얻을 것이 없나 기웃거렸으니 두목이 냉담하자 그들은 다시 떠돌이수컷으로 전락했다. 폭군에게 충성했던 젊은 수컷들은 대부분 떠돌이가 되었고 일부는 새 두목에게 아첨했다. 암컷들은 모두 새 두목을 따랐다. 새 두목의 요구에 몸은 바쳤고, 스스로 몸을 바치는 녀석도 있었다. 새끼들을 가지고있는 암컷들은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세실여사는 새 두목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었는데 새 두목이 처음 한 일은 초원에서 철수하는 일이었다. 뜻밖이다. 내치에 중점을 둔 것 같았다. 폭군이 확장해놓은 영지를 다른 동물들에게 넘겨주었다.

비비들이 물러난 초원에는 사자무리가 들어왔다. 사자무리는 수컷 두 마리, 암컷 여섯 마리와 새끼 네 마리였는데 새로 새끼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그래서 각종 영양과 초식동물이 많은 초원에 진출했다. 사자들이 진출하자 하이에나들도 따라왔다. 사자들의 찌꺼기를 얻어먹으려는 심산이다. 사자들이 진출하자 초원이 시끄러워졌다. 소떼를 모는 원주민과 충돌했다. 사자가 소떼를 습격하여 두 마리를 죽였다. 원주민 사냥꾼들이 출동했다. 동물보호소에서는 원주민들에게 영지다툼이나 사냥을 하지 말고 농엄이나 목축을 하라고 권장했는데 그 결과 인구가 늘어났다. 동물관리소는 원주민들에게 보호지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원주민들은 경고를 무시했다. 사자가 소를 잡아먹자 흥분했다. 피를 보고 흥분하는 건 야생동물뿐만 아니다.

 

관리소장 루이스가 부하 네 명을 데리고 급히 현장에 출동했다. 모두 무장을 하고 원주민 사냥꾼들이 반항을 할 경우에는 발포를 하라고 지시했다. 현장에서는 원주민들이 사자사냥을 하고있었다. 스무 명 쯤의 사냥꾼들이 사자무리를 포위하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여섯 마리 사자들 중에 수컷이 두 마리였다. 사자의 수컷들은 보통 먹이사냥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외부의 적들에게만 싸움을 했다. 따라서 수컷들이 참여한 그 때는 중대한 상황이었으며 원주민들과 결사적인 전쟁이 될 것 같았다. 사냥꾼들이 사자를 돈가(물이 말라버린 하천)에 몰아넣었으나 위험하다. 원주민들은 창으로 사자를 사냥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당할 사자들이 아니다. 사자들이 뛰어다녔다. 사냥꾼이 던진 창에 사자두목의 등에 꽂혔으나 두목은 쓰러지지 않았다. 피를 본 사자들이 사냥꾼을 사냥했다. 사자의 앞발치기에 맞은 사냥꾼이 팽이처럼 굴러떨어졌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사자에게 사람이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루이스가 발포했다. 루이스는 군대에서 사격교관을 했다. 사격은 정확했다. 쓰러져있는 사냥꾼에게 덤벼들었던 암컷 한 마리가 대가리에 총탄을 맞고 뒹굴었다. 사자들이 주춤했다. 직원들이 가세하여 총을 쏘자 사자들이 도망쳤다. 루이스는 사자들을 쫓아내고 사냥꾼들에게 돌아가라고 고함을 쳤으나 사냥꾼들이 물러나지 않았다. 루이스에게 창을 던졌다. 창이 루이스의 뺨을 스쳤다. 루이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사움도 영지싸움이다. 원주민들은 지배당한 백인들에게서 영지를 되찾으려는 싸움이다. 동물관리소는 동물의 멸종을 막고 보호하려고 동물보호지역을 설치했으나 원주민 입장에서는 침략이다. 그 지역은 몇 백 년 전부터 원주민들의 영지다. 루이스는 알단 물러났다. 원주민추장과 교섭을 하기로 했다. 원주민들이 루이스의 제의를 받아들여 부상자를 들것에 싣고 돌아갔다.

 

루이스가 추장과 담판을 했다. 비비들이 침범했던 마을 주변의 옥수수밭을 원주민들이 경작하게 해주고, 그 대신 원주민들이 소떼를 초원에 방목하는 걸 금지했다. 옥수수밭이 보호지역 안에 있어 월권이었으나 그렇게 해서라도 전쟁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초원이 시끄러웠다. 사바나가 시끄러워졌다. 돈가일대는 사자들이 돌아다녔고 사자들은 관리소 앞까지 와서 포효했다. 뿐만 아니라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가 몰려와 초식동물을 덮쳤다. 살기와 피비린내가 떠돌았다. 루이스가 크게 염려했다. 관리소직원으로 무질서를 다스리기에는 힘이 부쳤다. 그런데 뜻밖에 사자들이 물러났다. 원주민의 공격을 받은 사자두목이 죽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싸움판에 표범이 끼어들었다. 대여섯 마리의 표범이 사자새끼를 죽였다. 사자의 주력부대가 원주민과 싸우는 틈에 표범이 사자새끼를 다섯 마리나 죽였다. 표범은 사자새끼를 먹이로 죽인 게 아니다. 본디 표범과 사자는 앙숙이다. 먹이사슬의 정점이 있는 그들은 서로 보기만 하면 싸웠다. 표범은 사자가 추격하면 높은 나무 위로 피했는데 사자는 나무 아래서 증오 찬 눈으로 버티면서 표범이 나무에서 내려오는 걸 기다렸다. 표범은 일정한 근거없이 떠돌아다녔는데 사자나 하이에나는 표범의 새끼가 눈에 띠면 어김없이 죽였다. 경쟁자의 씨를 말리려는 의도다. 표범도 사자새끼를 죽였다. 그 때 사자들은 새끼가 다섯 마리나 죽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두목이 죽은 후 젊은 수컷이 두목의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새 두목은 초원에서 철수했다. 새끼를 잃은 암컷들이 초원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임신한 암컷들도 새끼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래서 사자들이 철수한 초원을 하이에나들이 점령했다.

 

하이에나들이 초원에 들어오자 그곳에 살던 영양과 얼룩말이 불안해서 신경질이 되었다. 사자나 표범 등 큰고양이과 동물은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데 하이에나는 늘 굶주리고 있었으므로 미친 여자처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얼룩말이나 영양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 새끼를 노렸다. 하이에나들이 그렇게 돌아다니면 초식동물은 마음놓고 쉴 수가 없다.

그러나 하이에나들이 초원을 오래 지배하지 못 했다. 하이에나들이 초원에 들어온지 일주일 쯤 후 철수했던 비비들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새 두목이 앞장을 섰다. 비비들은 인간의 공격으로 작전상 일단 후퇴했으나 초원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게 그들의 진화과정인지도 모른다. 영양들이 비비를 환영했다. 영양은 비비들의 정체를 모른다. 비비는 초식동물이 아니라 잡식동물이다. 영양어미들의 눈을 피해 양양새끼를 잡아먹는다. 영양들은 그걸 모른다. 영양은 비비들이 자기들의 친구고 보호해주는 걸로 착각한다. 영양이 비비와 함께 있으면 하이에나들은 공격을 하지 못 한다. 비비는 잘 훈련된 전투부대고 길고 날카로운 어금니를 가지고 있다. 그 때도 비비들이 몰려들자 하이에나가 물러났다. 수적으로 열세인 비비들과 다투는 것 보다는 표범이 맷돼지사냥을 하는 서북쪽 사바나나 사자들이 물소와 싸우는 동쪽 강변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초원의 생태계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균형을 이루고 평형을 유지했다. 사자들이 힘으로 초원을 차지했으나 표범이 새끼를 죽이므로 물러났고, 하이에나가 사자들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왔지만 다시 초원에 진출한 비비들에게 밀려났다. 세실여사와 학자들도 돌아온 비비를 환영했다. 망원대를 설치하고 비비를 관찰했으나 비비들이 바위산으로 철수를 해서 연구가 중단되었는데 다시 돌아오자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돌아온 비비들이 학자들에게 아는 척 했다. 알고 지냈던 암컷들이 새끼를 데라고 망원대 앞까지 와서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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