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야기-1 사자獅子와 소녀 외 49편

사냥꾼이야기

북새 2019. 7. 28. 16:26


사냥꾼이야기

세기世紀의 사냥꾼

 

<서문序文>

 

* 전남일보(광주일보, 1978년부터 김왕석 연재)에 연재되었던 전설적인 사냥꾼 J. A. Hunter(1887)H. Bycov의 사냥이야기로 동물생태학적, 자연현상적 그리고 인간적 심리가 생태 그대로 표현된 픽션 같은 넌픽션이다. 재미있어서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은 책인데 나이 70이 넘어서 다시 꺼내들었다가 사장死藏되는 게 안타까와 윤색潤色하여 연재한다. 덧붙이자면, 표현을 현대화하여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하고, 2단을 개선하고 포켓북활자를 크게 하고, 가로편집으로 바꿨다.

광주일보에 블로그연재에 대한 의사타진을 했으나 연락이 없어 자의恣意로 연재하며, 역자譯者가 다른 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찾아 보완하여 등재謄載한다.

 

사냥꾼이야기의 주인공 헌터와 바이콥은 극단적으로 대조적이다. 헌터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사자, 물소, 표범을 사냥했고, 바이콥은 페텔부르크의 귀족 명문학교를 마치고 고급장교로 복무하다가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북부중국, 만주, 시베리아에서 호랑이, 곰을 사냥했다. 만주의 밀림에서 <코안경나리>로 불리웠던 바이콥은 사냥을 했지만 귀족의 품위를 잃지 않았고, 하르빈박물관의 관장을 맡기도 했으며, 한 손에는 총을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위대한 왕> <왕대> <설렁이는 밀림>등 수많은 저술을 했다. 이 글은 <만주의 밀림(1936년 출판)>의 번역이다. 헌터와 바이콥은 평민과 귀족이라는 신분이 대조적이지만 뜨거운 밀림의 아프리카와 혹한의 시베리아로 생태가 대조적이다. 헌터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헬멧과 노타이, 반바지로 아프리카 밀림을 누볐다면, 바이콥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독한 추위에서 털옷을 입고 시베리아 혹한의 밀림을 뛰어다녔다. 헌터의 옷은 줄줄 흐르는 땀으로 범벅되었고, 바이콥의 외투는 눈서리로 하얗게 덮였다. 헌터는 새카만 마사이족이나 와간바족을 벗 삼아 사자, 코끼리, 코뿔소들과 싸웠으나 바이콥은 누런 피부의 중국인과 어울려 위대한 왕()과 밀림의 깡패()과 사투를 벌였다. 헌터는 강변과 나무그늘을 찾아 몸을 쉬었고, 바이콥은 활활 타오르는 난로나 모닥불 옆에서 고향 스코틀랜드의 어린시절 꿈을 꾸었다.

사냥꾼이야기는 세기적인 명포수 바이콥, 헌터, 코베트와 아이즈 다니산(회진곡삼會津谷三)과 한국의 홍학봉포수, 박춘호포수의 사냥일화逸話를 김왕석이 번역 연재한 기록을 윤색潤索하여 연재한다.

 

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1> 1- 49

J. A. Hunter, Bycov , 김왕석 역

Josef Catsle, Jim Cobet

J. A. Hunter, Bycov , 김왕석 역

이천만 윤색

<목차>

 

1. 산령山靈의 희생/ 2. 멋있는 사수射手/ 3. 죽음의 환영幻影/

4. 범의 밤/ 5. 식인호食人虎/ 6. 마적馬賊/ 7. 사냥개들/ 8. 밀림의 법/ 9. 방황하는 사람들/ 10. 곰사냥/ 11. 노 마적老馬賊의 복수/ 12. 첫탄/ 13. 밀림의 비극/ 14. 뱀 할아범/ 15. 가장 위험한 동물/

16. 식인食人 사자獅子/ 17. 미친 코끼리/ 18. 용감한 마사이족/

19. 야생野生 물소/ 20. 난장이부족部族 피그미/ 21. 사나운 코뿔소/

22. 아가씨 수렵가狩獵家/ 23. 재미나는 수렵가狩獵家/

24. 수렵狩獵관리인/ 25. 사자獅子와 소녀/ 26. 첫 대면/ 27. 황소 브리트/ 29. 사자獅子 / 30. 목격目擊/ 31. 마사이족/ 32. 질투嫉妬/

33. 오륜가/ 34. 네팔의 살인귀殺人鬼/ 35. 생리기生理期의 범/

36. 표범과 사투死鬪/ 37. 주가의 범/ 38. 아편밀매자의 도망/

39. 최후의 대결/ 40. 괴물악어怪物鰐魚/ 41. 차보의 사자獅子/

42. 마지막 대결對決/ 43. 아마존의 표범/ 44. 페시보드/ 45. 여난女難/ 46. 모가지/ 47. 식인종食人種/ 48. 합동사냥/ 49. 스야족

 

1. 산령山靈의 희생

 

<귀를 기우려보시오. 들립니까? 들리지요? 저 눈보라소리가. 저 울부짖는소리가 그리고 들끓는 당신 자신의 맥박소리가 .>

바이콥의 시.

 

돈링할아범의 산막山幕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했다. 멀리서 우리들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돈링할아범이 뛰어나왔다.

안녕하시오? 보보신, 코안경나리.’

보보신과 가끔 코안경을 끼는 나는 단칸방인 할아범의 집으로 들어갔다. 진흙을 두껍게 쌓아올려 만든 그의 방에 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불 위에 걸어놓은 냄비에서 익어가는 고기만두냄새가 구수하게 퍼져나왔다. 돈링할아범이 사슴고기를 넣어 만든 주먹만한 만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가 부르니 체면없는 손님들은 난로 앞에서 곯아떨어져버렸다.

 

정말 잘 잤다. 몇 주일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두운 새벽에 잠을 깼다. 무엇인가 심상찮은 기운이 방안에 감돌고 있었으며 보보신도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았다. 희미한 불빛에 돈링할아범의 웅크린 동그란 등이 보였다. 돈링할아범이 문에 귀를 대고 바깥을 살폈다.

할아범, 뭐야?’

할아범은 손짓으로 입술을 가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큼직한 대장大將이 순시巡視를 하고 있어요. 산신령山神靈 두 분이 우리 집 부근을 순시하고 있어요. 소리를 내지 마시오. 산신령은 성미가 급해 이내 노하니까요.’

정말이었다. 무거운 발자국에 눈이 눌려 뿌지직! 뿌지직! 하는 소리가 들렸고 가끔 뱃속에서 짜내는 듯 한 산신령의 숨소리가 들렸다. 산신령이 집 울타리까지 접근했다. 그들이 곧 방안까지 들어올 것 같아서 옆으로 스르르 누우면서 총을 당겼다. 할아범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경고했다.

나리, 안 돼! 산신령을 화나게 하면 안 돼!’

물론 나도 그런 어둠속에서 범과 대결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만일의 경우에 대처했을 뿐이었다. 날이 밝아오자 범들의 발자국소리가 멀어졌다. 범이 사라지자 돈링할아범이 침착성을 되찾았다. 범들이 나타난 것은 마을사람들에게 희생물을 제공하라고 독촉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예로부터 이 마을사람들은 범에게 1년에 한 번씩 사람 한 명을 제공했다고 한다. 사람이 스스로 희생물을 제공 안 하면 범은 열 명 이상을 잡아갔다고 한다. 이래서 마을사람들은 마을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을 선정해두었다가 희생물로 제공했으며 범은 그 희생물에 맛을 들여 사람고기 생각만나면 마을 부근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여명黎明의 빛이 밀림에 숨어들고 바위산이 햇볕을 받아 흑금색黑金色으로 반짝이기 시작할 때 보보신과 함께 범의 뒤를 쫓았다. 범의 발자국을 따라 4Km 쯤 갔을 때 우리들은 곤경에 빠졌다. 우리 앞에 러에린산맥의 화강암절벽이 거의 수직으로 앞길을 막았다. 북만주, 지금의 동부중국의 길림에는 광대한 원시림이 있다. 몽골영토만한 원시림은 태고의 신비가 있었다. 그 삼림은 100Km나 뻗어 있었으며 산과 계곡과 고원들이 어두운 녹색으로 뒤덮였고 그 녹색은 언제나 거친 바람으로 파도쳤으며 그 안에서 뭇 짐승들의 포효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그 삼림을 사람들은 슈하이(수해樹海)라고 불렀다.

북만주철도는 그 삼림을 서북에서 남동으로 횡단하였는데 철도도 그 광대한 슈하이의 원시생태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 했다. 가끔 사냥에 미친 포수들이 들어가는 것 외에는, 그러나 들어간 포수는 많아도 나온 포수가 드믈었다. 그 원시림에는 태고太古의 삼림의 신이 살고 있었으며 그 신의 절대절명絶大絶命의 의지가 모든 생물을 지배했다. 동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신의 의사意思가 뚜렷하게 작용했다. 몸이나 마음 어느 쪽 하나가 약하면 이 곳에서는 살 수 없다. 신은 그런 사람은 가차없이 도태淘汰시켜버린다. 굶어죽거나, 얼어죽거나 아니면 짐승의 밥이 된다. 또한 게으름이나 부도덕不道德도 안 된다. 그것도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밀림에는 죽음과 삶이 교차되고 있었으며 밀림의 사람들은 그 교차되는 가운데 살고 있었다. 밀림의 생활은 인류가 아직 사회라는 것을 모르는 시대에 있었던 독특한 풍습이 지배한다. 그것은 불문률不文律이기 하나 준엄俊嚴하고 자비慈悲스러웠다. 야릇한 법률이다. 밀림에서 가장 무거운 죄는 살인이 아니고 절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삼림에서는 살인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으나 절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절도에 대한 형벌은 사형死刑이다. 밀림의 재판은 신속하게 내려지고 집행된다. 피해자는 입회인이고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이웃사람이 재판관이 되어 판결이 내려지고 판결이 내려지면 곧 집행된다. 집행방법은 생매장生埋葬이다. 산채로 땅에 묻는다. 영하 40도가 되는 겨울에는 땅이 지하 2m까지 얼어붙어 땅을 팔 수가 없다. 이럴 때는 할 수 없이 다른 집행방법을 따른다. 밀림의 수호신守護神 범이다. 절도피의자는 범의 다니는 길목의 나무에 산채로 묶인다. 주민들은 나무 밑에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린 후 사라진다. 산신령님이 어김없이 나타나 한 끼의 식사를 맘껏 즐긴다.

 

나는 오래토록 만주의 삼림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런 나무들을 많이 보았고 주민들의 생활풍속을 잘 알고 있었으나 언젠가 - 아마도 19341월이라고 기억되는 날에 겪었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들 - 나와 오랜 사냥친구며 조수助手인 아긴진과 보보신은 산돼지사냥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2주일 동안 이린혜강 상류에 있는 울창한 밀림을 돌아다니다가 점점 서쪽으로 갔는데 우리 눈앞에 피라밑형산봉우리가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친구 보보신은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에는 관심이 없는 듯 독한 냄새가 날리는 파이프를 물고 2m가 넘는 육척장신六尺長身이 길게 그림자를 끌며 가파른 산길을 묵묵히 걸었다. 돈링할아범의 산막까지는 아직 4Km가량 남아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앞서 가던 보보신이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나에게 턱과 파이프로 땅을 가리켰다. 눈 위에 쟁반만한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 거대한 도장은 산신령님의 경고장이었다.

(여기는 내가 지나갔으니 뭇 생명들은 가까이 오지 마라!)

보보신은 간담肝膽이 크기로 이름난 사냥꾼이었으나 그는 표정이 침울해졌으며 걸음이 빨라졌다. 날이 더 어둡기 전에 돈링할아범의 산막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산신령님과 해후邂逅는 죽음이니까. 산마루를 하나 넘자 아직 잔광殘光이 남아있는 참나무밀림에 200마리가 넘는 산돼지들이 떼지어 놀고 있었다. 젊은 놈들은 장난을 치고 늙은 놈들은 낙엽에 묻혀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총을 쏘기 싫었다. 그런데 보보신이 쏘았다. 한 발 또 한 발, 두 마리가 쓰러지자 산돼지들이 몰려왔다. 내가 쏠 차례였으나 나는 총을 내리고 큰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 쏘지 않았어?’

보보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었으나 내 대답을 들으려고 묻는 말이 아니었다. 보보신이 죽은 산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內臟을 꺼냈다. 내장을 꺼내지 않으면 꽁꽁 얼어 운반하기 힘들었다.

바이콥 형, 그 놈의 범이 이 부근에 있는 것 같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산돼지를 따라 움직인 발자국이 있었다.

보보신, 시시한 산돼지사냥을 그만두고 범을 잡자!’

보보신이 빙그레 웃었다. 산돼지는 버려두고 범을 따라갔다. 범은 울퉁불퉁한 돌길을 타고 산등으로 가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감시하려고 한 것이다. 8시간을 추적했으나 범을 따르지 못 했다. 피로했다. 그래서 보보신이 예부터 알고 있는 단골여관에 들었다. 돈도 받지 않는 무임숙소無賃宿所 동굴洞窟이었다. 동굴은 입구가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었으나 내부는 3평 남짓한 크기였다. 동굴입구에 담요를 쳐서 바람을 막고 불을 피우니 훌륭한 숙소였다. 검은 빵과 산돼지고기구이로 저녁을 마친 뒤 우리는 폭신폭신한 낙엽 위에 누웠다. 서너 시간 푹 잤다. 오랜 습성으로 잠이 깨어 밀림의 심야深夜음악을 듣고싶었다. 심야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바람소리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이름 모를 소리에 섞여 범의 포효咆哮가 들렸다. 그러자 우리 숙소에서 약 1Km 이내에서 다른 굵은 포효가 터졌다. 멀리서 들리는 포효는 레놀처럼 아름다웠으나 가까이서 들려오는 포효에는 등골이 싸늘해졌다.

저 놈이야, 바로 저 놈.’

어느 새 보보신이 일어나 파이프에 불을 붙이면서 중얼거렸다. 범들의 포효는 밤새 계속되었다. 수놈은 암컷을 찾고 암컷은 수놈에게 자기 위치를 알려는 것이다. 새벽녘, 우리는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장미색으로 물든 산봉우리를 따라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산봉우리를 넘는데 보보신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낯이 창백했다. 사람이 죽어 있었다. 벌겋게 피로 물든 주변에는 범의 발자국이 흩어져 있고, 두터운 솜옷은 걸레조각처럼 찢겨졌는데 그 알맹이는 없었다. 털모자가 뒹굴고 검고 긴 머리카락만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의 주인공은 허리뼈와 두개골로 남아 5m 쯤 떨어진 눈 위에 뒹굴고. 그 중국인은 밀림의 희생자였다. 밀림의 법을 어겨 사형이 선고되어 범의 밥이 되었다. 나무에 꽁꽁 묶였던 그 사내는 영하 30도의 추위에 몸을 떨었고, 죽음을 앞둔 불안과 공포에 떨었으며, 법이 나타났을 때도 고통을 당했다. 피에 굶주린 범은 우선 사내의 옷을 벗기려고 몸을 물어뜯었다. 우리는 밀림의 법칙에 따라 사형당한 사내의 유품遺品 곁에서 오래토록 뜨지 못 했다. 신경이 굵은 보보신이 견디지 못 하고 세상의 욕이란 욕을 모두 동원하여 저주咀呪를 퍼부었다.

그 무지한 년놈들이 할 일이 없으면 X이나 할 것이지 이런 짓을 해? 사람을 그것도 살아있는 만물의 영장靈長을 범에게 먹이다니 . 오냐, 그 년놈들이 미워서라도 그들의 왕대王大를 잡아죽일테다.’

왕대는 범의 존칭尊稱인데 범의 이마에 <임금 왕 자>가 그려져 있는 데서 유래由來했으며 주민들은 왕대를 신으로 섬겼다. 나의 성미 급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떠나 한참을 걸어가면서도 욕설을 그치지 않았다. 동부중국의 태양은 유난히 밝았으며 무심한 푸른 하늘은 투명했다. 우리들이 떠난 곳 하늘에서는 까마귀가 날고 .

보보신은 파이프에서 마치 기관차처럼 연기를 뿜어내며 걸었다. 입을 꽉 다물고 눈에는 증오憎惡가 가득찼다. 산정山頂에 오르자 범의 발자국이 나뉘어졌다. 우리는 숫놈을 추적했다. 범은 우리의 추적을 눈치채고 우리를 따돌리려고 빨리 뛰어가거나 험한 산정으로 올라갔으나 우리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범과 사람의 의지력의 싸움이었다. 범이 초조해졌다. 우리들 때문에 굶주리게 된 왕대는 철도선로에 있는 삼림마을로 달아났다. 그곳은 중국인 쿠리(노무자)들이 재목운반을 하고 있었는데 범 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우리들이 거리에 들어섰지만 낮인데도 모두 문을 닫아걸고 거리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범이 말 두 마리를 죽이고 주인도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왕대가 희생을 요구한 걸로 보고 마을 밖에 신전神殿을 차려 촛불을 켜고 기원祈願을 하고는 모두 집안에 숨어버렸다. 마을사람들은 우리가 거리를 걸어도 나오지 않았다. 총을 맨 사나이들과 어울리다가는 산신령님의 노여움을 사 죽는다고 믿고 있었다. 마을 끝에 왔을 때 한 사내가 따라왔다.

코안경나리, 안녕하십니까?’

전에 내가 곰을 잡았을 때 운반을 맡았던 사내였다.

내 말도 한 마리 죽였어요. 내 말은 씩씩한 종마種馬였는데, 왕대님이 암컷을 죽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앞다리를 들어올렸지요.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맹세하지만 왕대님에게 항거를 하려는 뜻은 아니었는데 왕대님이 노하셨지요. 왕대님은 별안간 천둥같은 노호怒號를 지르면서 불쌍한 내 말을 덮쳤습니다. 난 벌벌 떨면서 문틈으로 봤는데 왕대님은 대뜸 뛰어올라 말의 머리를 치더니 말과 함께 넘어지면서 말의 목줄을 물어뜯었습니다.’

사내의 눈에 눈물이 베었으나 보보신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래, 그 때 자네들은 뭣을 하고 있었지? 또 도둑놈이나 잡아서 그 놈에게, 그 범에게 제공할 계획을 하고 있었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대님에게 그 놈 범이라니요.’

왕대인지 신령神靈인지 모르겠지만 그 놈의 살인 호랑이놈은 내가 죽일거야. 내가 그 놈의 목줄을 물어뜯어 죽일테니 그 때 위령제慰靈祭나 지내시오.’

사내는 와들와들 떨면서 달아났다.

우리는 그 마을 밖에서 왕대를 따를 수 있었다. 왕대는 추적에 신경질이 되어 천천히 한군데를 돌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보신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보보신은 웃고 있었으나 낯은 창백했다. 턱을 꽉! 다물었다. 태양이 중천에 높이 떠 삼림이 찬란하게 빛났다. 우리는 사방을 살피면서 천천히 추격했다. 10m 정도 떨어진 언덕너머에서 까치가 울었다. 신경질적인 울음이었으며 거기 범이 숨어있다는 경고였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안 돼! 흥분하면 안 돼!)

마음을 달래면서 걸음을 늦추었다. 언덕을 넘어서니 까치들이 보였다. 잘려진 큰 나무 위에서 까치들이 날고 있었다. 보보신과 내 눈이 마주쳤다. 왕대는 잘린 나무둥치 뒤에 몸을 바짝붙여 숨었다. 그 큰 덩치가 나무에 밀착되어 거의 완벽한 은신술隱身術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러가지 불리한 것이 있었다. 까치가 머리 위에서 울고 있었고, 태양빛이 너무 밝았으며, 땅에 하얀 눈이 내렸다. 그래서 그 얼룩덜룩한 무늬가 하얀 눈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기다란 얼룩꼬리가 길게 뻗쳐 신경질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는 약 20m, 범은 우리가 더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서너 발 더 전진하고 멈췄다. 우리도 거기에서 왕대의 공격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결정적인 시간은 3, 4초 정도다. 범은 그 이상 참지 못 한다. 그는 양 귀를 뒤로 딱 붙이고 몸을 길게 뻗어 도약跳躍을 했다. 그의 탄력있는 근육이 강철처럼 뻣뻣해졌다. 첫발부터 도약이었다. 범의 몸이 공중에 떠오른 순간 보보신이 발사했다. 구식舊式이긴 하나 구경口徑이 넓은 총탄은 범의 앞이빨을 부러뜨리고 목을 뚫고나갔다. 왕대는 그 강렬한 총탄의 충격을 무릅쓰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으나 산이 울리는 포효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다. 왕대는 즉시 몸을 일으켜 다시 도약을 했다. 나는 그의 몸이 공중에 떠올라 유선형流線型으로 쭉 뻗는 순간을 기다려 심장을 겨누어 발사했다. 범은 충격과 고통에 미친 듯이 포효하더니 쭉 뻗은 자세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어때, 왕대님!’

보보신이 파이프에 담배를 쑤셔넣으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할 말 없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피를 빨아먹더니 이 번에는 자네 차례가 되었어. 자넨 그 겁쟁이 주민들을 협박하여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지만 이젠 자네가 우리에게 그 껍질을 줘야 되겠어.’

왕대의 황록색의 눈동자에 맑게 개인 하늘이 투사透寫되어 있었다.

 

2. 멋있는 사수射手

어두운 밀림속의 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으나 그 빛은 밀림에는 스며들지 못 하고 나뭇잎 위로만 흘러갔다. 그래서 밀림의 밤은 검었다. 란트호강물도 검었으며 잔잔하게 흘렀다. 우리들이 탄 통나무배가 거대한 참나무 가지 밑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뱃머리에 달아놓은 횃불빛이 돌맹이 투성이 강바닥을 비췄다. 나는 배 뒷전에 앉았고 장숍이 하나밖에 없는 왼손으로 긴 창을 들고 강물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변의 밀림이 마치 검은 절벽처럼 늘어서고 숲에서는 개똥벌레들이 날고 있었으며 늪에서 우는 부엉이 맑은 울음소리와 새들의 소리도 들려왔다. 배는 조심스럽게 강가의 바위를 피하거나 수초를 헤치면서 전진했다.

없는데, 여긴 없어요. 상류로 갑시다.’

장숍이 배를 돌렸다. 그 때 물속에서 철썩! 고기가 튀었다. 배가 멈췄다. 장숍이 물속을 가리켰다.

가물칩니다.’

장숍이 창을 던졌다. ! 소리와 함께 창이 물속으로 들어갔고 장숍이 창대를 부여잡고 있었는데 배가 요동을쳤다.

이 새끼, 곱게 잡히지 않고!.’

장숍이 혀를 차면서 창을 끌어올렸다. 120Cm가 넘는 가물치였는데 그 놈은 배에 끌어올려와서도 요동을 쳐서 배가 기우뚱거렸다. 첫 수확 후 우리는 큼지막한 놈으로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가물치의 무게로 배가 갈아앉을 위험이 있어 강사냥을 마쳤다. 강뚝에서 불을 피웠다.

코안경나리, 좀 주무시지요.’

그는 내가 담배 한 대를 태우는 동안 가물치를 구웠다. 대꼬챙이에 끼워 모닥불 옆에 세워놓고 소금을 뿌리면서 빙빙 돌리니 구수한 냄새를 피우며 맛있게 익었다. 강에서는 고기들이 튀어오르는 물장구소리가 요란했으나 밀림은 조용했다. 풀향기에 꽃향기가 섞인 향기로운 밤공기가 몸을 감쌌다. 하늘에서는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산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립니까? 전에는 산양을 잡았지만 요즘에는 잡지 않아요. 돈이 되지 않아서.’

장숍이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던져넣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사슴을 잡지요. 특히, 5월이 되면 그놈들이 뿔갈이를 했을 때 잡으면 꽤 큰 돈벌이가 됩니다.’

녹용이었다. 녹용은 강장제로 중국부호들이 좋아했다.

장숍은 환갑이 가까운 노인이었으나 어깨가 떡 벌어지고 피부에도 윤기가 있었다. 그는 밀림의 파수꾼이었다. 밀림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며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북동중국의 백계 러시아인인데 결혼하여 딸을 낳았으나 사냥에 미쳐 맨날 삼림에서 사는 동안 다른 사내와 눈이 맞아 달아버렸고, 딸도 죽었다. 장숍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술로 세월을 보냈다. 술에 취해 기차에서 떨어져 오른손 손목이 절단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했다. 집도 처자妻子도 돈도 없었다.

그래서 난 자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혼자 삼림에 들어가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았는데 삼림에 혼자 사는 중국인 할아버지가 실신한 장숍을 살려 자기집에 데리고 왔다. 자식처럼 살폈다. 사냥기술을 전수받았다. 노인으로부터 짐승, , 고기들의 습성을 배운 장숍이 차츰 포수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왼팔의 키다리가별명이었다. 밀림에서 사는 법을 터득했다. 랑가링의 울창한 삼림에서 노인과 장숍은 정답게 살았다. 동거한지 8년만에 노인이 죽자 살림을 물려받았다.

 

장숍이 교미기交尾期에 든 범 두 마리를 추적한 일이 있었다. 3일 간 추적하여 범을 절벽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우연히 나도 그 범들을 추적하고 있었는데 범이 멀리 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먼저 온 장숍이 총을 쏘았다. 장숍은 오른손으로 총을 올리는 동시에 손목이 없는 왼손으로 총신을 받쳐 겨냥을 했다. 두 마리의 범 중 수놈은 장숍의 일격으로 쓰러졌는데 암논은 탄환을 심장 부근에 맞고도 장숍에게 덮쳤다. 장숍은 총신으로 범을 후려쳤으나 범이 그런 공격으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총신으로 범을 후려친 후유증으로 장숍이 비틀거리며 몸의 중심을 잃었는데 그 때 범이 앞발로 장숍을 때려눕힌 다음 발톱으로 배를 할키고 장숍의 목줄을 더듬었다. 그러나 장숍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칼로 범의 배를 찔렀다. 범은 고통으로 무서운 신음소리를 내며 일단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장숍에게 도약을 하려고 했을 때 내가 발포했다. 50m나 떨어진 상황에서 한 발사였지만 충분히 겨냥을 했으므로 탄환이 범의 이마를 뚫었다. 장숍은 난데없는 총소리와 범이 꼬꾸러지는 것을 보더니 어리둥절하고 사방을 살폈다.

당신이 쐈소?’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누어서 나에게 말했다.

결과로 봐서 고맙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남의 사냥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나는 그의 어처구니없는 항의를 무시하고 그를 등에 업고 집에 데려다주었다. 상처를 조사해보니 그의 오른쪽 팔꿈치와 어깨뼈가 부러졌다. 나는 그의 대담무쌍大膽無雙한 사냥태도가 맘에 들어 2주일 간 머물면서 상처를 치료했다. 장숍은 중상을 입고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산돼지나 사슴고기로 맛있는 국을 끓였고 틀에 걸린 작은 짐승들의 껍질을 손질했다. 잘 손질된 짐승껍질은 서너달만에 찾아오는 상인들에게 총탄, 화약, 밀가루, 설탕, 성냥들과 바꿨다. 장숍과 2주일은 그의 사냥 경험담을 듣는 재미로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장숍은 새나 고기요리를 잘 했다. 국을 끓여도 구워도 맛있었다. 삼림에서 혼자 살고 있었지만 그의 생활은 다채롭고 유쾌했다. 나는 그 후에도 틈만나면 장숍의 집에 들렸다.

코안경나리, 이제 좀 주무시오. 아무리 봄이지만 아직 바람이 차니까 .’

밤새 그의 얘기를 듣고 있었던 나는 새벽 무렵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주아주 편하게 잤다. 장숍은 불을 지키면서 밤새 내 곁에 있었다. 내가 그의 손길을 의식해서 잠이 깨었을 때는 태양이 산 위로 올라와 있었다. 찬란한 햇살이 산마루에 퍼져나갔다.

코안경나리, 아침 먹읍시다.’

어젯밤 우리가 고기를 잡았던 강에서는 중국인들이 진주를 찾고 있었다. 수십 명의 남녀들이 강바닥에서 조개를 캐냈으므로 강변에는 조개무지가 산더미 같았다. 우리가 구경하는 사이 늙은 여자가 별안간 고함을 치면서 춤을 추었다. 그 녀는 한 개에 20(현재 가치 50만 원)이나 되는 콩알만한 진주를 발견했다. 보고있는 사이에 햇살이 내리고 바람은 없었다. 벌써 여름인가? 매미가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너 시간 자고난 뒤 총을 들고 다시 나섰다. 사슴을 잡을 작정이었다. 장숍은 일본군대 총을 사용했다. 3연발식 총인데 개조하여 사용했다. 개머리판에는 장숍이 잡은 범의 이빨이 박혀있었다. 모두 8개였는데 올해만 벌써 두 개가 늘어났다. 춥고 얼어죽을 위험이 있었지만 나는 겨울사냥을 좋아했고 여름사냥이 싫었다. 무더위의 추적이 싫었다. 이 때의 사슴사냥도 그랬다. 장숍과 나는 한 무리 - 아마도 여섯 마리 혹은 일곱 마리의 사슴들이 지나간 발자국을 발견하고 추적을 시작했는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사슴의 모습을 보지 못 했다. 우리는 다시 야영을 했다. 장숍이 또 얘기를 시작했다.

 

작년 늦가을 10월 말이었으니까 초겨울이었는데 장숍은 숲에서 세 사내를 만났다. 모두들 두껍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털보들이었다. 그들은 산속에서 깽과리를 치고 고함을 지르면서 달음박질을 했다. 장숍은 그들이 산족山族 혹은 마족馬族인줄 알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으나 그들에게 총이 없는 걸 알고 경계를 풀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토막중국말로 자기들은 한국인포수라고 했다. 세상에 총 없는 포수도 있다는 말인가? 한국인들이 웃었다. 그들에게도 총이 있지만 필요가 없어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은 총이 아니라 사슴을 사로잡으려고 쫓고 있으며 추적을 시작한지 벌써 9일이라고 했다.

아니? 총도 없이 추적을 하면 뭘 해! 손으로 잡으려는 작정인가?’

한국인들은 손으로 사슴을 잡겠다고 말했으며 이제 몇 시간 후에는 틀림없이 사슴 두 마리가 잡힐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말을 듣고야 조금 전에 몹시 비틀거리며 산정으로 달려가던 사슴 두 마리가 생각났다. 부상을 입은 것일까? 외상外傷은 없었다. 사슴들은 외상은 없었으나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져 있었다. 한국인들이 9일 동안이나 깽과리를 치면서 쫓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사슴은 신경쇠약 상태로 허덕이고 있었다. 사슴은 외적이 나타나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마구 달아나는데 나쁜 버릇이 있어 외적과 일정한 거리가 멀어지면 정지를 하고 뒤를 돌아다본다. 사슴은 그 때 포수들의 사격을 받는데 이 사슴들은 돌아설 때 마다 요란스러운 깽과리소리를 듣고 혼비백산魂飛魄散 다시 달아났다. 그리고 또 십 리 쯤 달아나다가 멈추고 쉬고 있으면 깽과리소리가 따라오고 . 이래서 9일 동안 사슴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 해 비틀거렸던 것이다. 장숍은 그 한국인포수들 뒤를 따라갔다. 사슴들은 절벽 밑에 우두커니 멈춰있었다. 이제 달아날 생각도 기력도 없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깽과리를 요란스럽게 두드리면서 접근하더니 7, 8m 즘에서 깽과리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집강아지를 다루 듯 다정한 표정으로 사슴에게 다가갔다. 사슴들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2, 3m 거리에 까지 접근하더니 미국서부의 카우보이들처럼 줄을 던졌다. 줄이 목에 걸리자 사슴들이 발악을 하였으나 목과 다리에 줄이 감겨서 쓰러졌으며 한국인들이 달려가 꽁꽁 묶어버렸다. 한국사냥꾼들이 잡은 사슴은 두 마리 모두 숫사슴이었으며 1m 가까운 뿔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사냥꾼들이 검은 천으로 사슴의 눈을 가렸다. 공포를 덜어주려는 배려였다.

대단하오.’

늙은 사내 - 아마 두목頭目인 한국인이 말했다.

저 놈들을 사로잡은 일 보다 살려서 끌고 가는 게 더 어렵지. 이제 제법 추워지는데 .’

장숍이 <, 사슴을 꼭 사로잡아야 하며 살려서 끌고 가야 되느냐?>고 물었다. 동물원에 팔 계획인가? 그게 아니었다. 사슴뿔은 녹용이라고 하며 곰쓸개(웅담熊膽)처럼 영약靈藥이었다. 따라서 그 값도 엄청나게 비싸 그 몸값 보다도 더 값이 나갔다. 그러나 모든 사슴뿔이 값나가는 건 아니고 초여름 - 5, 6월에 잡은 사슴뿔만 녹용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고작 응접실의 트로피가 될 뿐이다. 사슴은 1년에 한 번 뿔을 간다. 묵은 뿔은 저절로 떨어지고 떨어져버린 자국에서 물렁물렁한 새 뿔이 자란다. 발그스레한 연분홍색의, 뿔이라기보다는 얇은 가죽에 담긴 피주머니다. 피주머니가 커져서 뿌리가 굳을 무렵이면 녹용이다. 한국인들에게 10월에 죽여서 잡는 사슴은 어리석다. 녹용 없는 사슴은 고작 돼지고기값이다. 사슴을 사로잡아 사육하면 이듬해 녹용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녹용을 얻을 수 있고, 잘 하면 번식을 할 수도 있다. 장숍은 한국인들의 원대한 계획과 집념에 감탄했다.

도대체, 여러분은 이제까지 사슴을 몇 마리나 사로잡았소?’

늙은 사내가 손가락을 꼽았다.

저 놈까지 합해서 열네 마리, 그러나 살려서 끌고 간 것은 여덟 마리 뿐이지.’

장숍은 그들이 좋아졌다. 그래서 둘씩 사슴을 엮어매고 자기집으로 안내했다. 9일 동안 쌀가루와 물 밖에 먹은 것이 없다는 한국인들은 숯불에 잘 구은 산돼지의 뒷다리를 보더니 환성을 질렀다. 그들은 기갈병(당뇨병)에 걸린 것처럼 고기를 뜯었다.

이 산돼지는 누가 잡았소?’

누군 누구요. 내가 잡았지.’

아니! 한 손 밖에 없는데 어떻게 총질을 .’

장숍이 웃었다. 그리고 옆방문을 열었다. 며칠 전에 잡았던 범의 껍질이 벽에 걸려있었다.

저것도 당신이 잡았소?’

한국인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장숍과 범껍질을 번갈아 보았다.

아하, 당신이 그 유명한 외팔이포수구만!’

그들은 장숍으로부터 그 범을 잡은 경위를 듣고는 감탄했다.

멋있는 사수射手구만.’

외팔로 범을 잡은 것 보다 사슴을 사로잡은 것이 더 멋있는 사수라고 장숍이 대꾸했다. 그날 밤 장숍은 한국인포수들로부터 한국범얘기를 들었다. 한국의 범들도 동북부 중국에 사는 범들과 같은 계통이었다. 인디아나 자바, 보르네오에 사는 종족 보다 훨씬 더 크고 용맹스러운 시베리아 한대지대의 범들이었다. 한국에 까지 퍼져나갔던 범들은 한 때 한국의 산야를 누비면서 횡포를 부렸으므로 한국포수들과 대결했다. 몇 백년 동안 서로 죽이고 죽는 혈투를 벌였는데 좁은 한국땅에서는 범들이 불리했다. 한국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범들에게 땅이 너무 좁았다. 그래서 한국범은 멸종에 이르렀다. 표범처럼 숨어서 기습을 했으면 살아남았을 것이나 범은 그런 비겁한 짓은 하지 못 한다고 장숍이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3. 죽음의 환영幻影

 

1910년 겨울, 동북중국에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했는데 피해가 엄청났다. 병균의 전파는 중앙아시아의 들판, 시베리아 남부 그리고 몽골에 서식하는 몰모트였다. 몰모트가죽은 부드럽고 윤택이 뛰어나고 보온성이 좋아서 비싼값으로 팔렸기 때문에 몰모트산업이 성행했다. 늦은 가을 몰모트가 포근한 겨울털을 입으면 수천 명의 포수들이 집결했다. 보통 동물에서 발병한 병균은 동물에서 동물로만 전염되는데 이번에 몰모트에서 발병한 그 병균은 몰모트에서 발병하여, 사람의 임파선, 기관지에 침범하여 인간에게 전염되었고 5 - 7일만에 질식하여 사망률이 100%였다. 더구나 그 병균은 영하 40도의 추위에서도 끄떡도 하지 않았으며 한겨울에도 맹렬하게 퍼져나갔다. 이 병으로 얼머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몰모트병이 창궐한 1910- 1911년 사이에 약 50만 명 이상 희생되었으리라 추정한다. 전염병은 동북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북쪽, 몽골까지 휩쓸었다. 각국정부가 전염을 막으려고 조치를 하였으나 실패했고 19115월에 자연소멸했다.

19101, 나는 전염병이 가장 심했을 때 포수 고지마셀콥하고 가오린지역에서 북동쪽 엘러헤져강의 상류에서 맹수사냥을 했다. 평소에 잘 아는 밀림을 우리는 이틀 동안 70Km나 걸어 중국인포수들이 기거하는 움막에 도착했다. 중국인들은 네 명이 기거했는데 우리는 매우 친했고, 중국인들은 우리들이 잡은 짐승을 운반해주고 설탕을 받았기 때문에 그 때도 설탕을 가지고 갔다. 그 날 우리는 대환영을 받았고 맛있는 잡탕수프를 대접받았다. 잡탕수프는 새, 짐승고기, 물고기를 섞어 끓였는데 거기에 이름 모를 산채를 넣어 맛있고 향기로웠다. 곁들어 내놓은 양념을 발라 구운 들새고기도 일품이었다. 겨울의 짧은 해가 지고 우리들은 짐을 정리하고 있다가 문득 중국인 두 명이 없는 걸 알고 물었는데 중국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사냥을 나갔다고 했다. 멀리 갔기 때문에 사나흘 걸릴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중국인들이 마련해준 두꺼운 솜이불과 좀 더러웠으나 포근한 담요를 덮고 잤다. 그 이튿날 이른 새벽에 셀콥이 나를 깨웠다.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큰일 났어, 큰일!’

잠에서 덜 깬 나는 셀콥의 표정에서 불안을 읽었다. 셀콥은 모험을 즐기는 밀림의 용사였고 웬만한 일은 눈썹도 까딱 않을 사나이였다. 그런 그가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그 눈에 공포가 가득했으며 입술마져 떨리고 있었다.

일어나요, 전염병이야!’

셀콥이 방바닥의 짐을 정리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양손은 전혀 머리와 따로 놀았다. 전염병이란 한 마디 말에 나도 벌떡 일어났다.

전염병! 어떻게 된 거야?’

움막에는 네 명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우리는 그들이 죽은 자리에서 죽은 중국인들의 피를 빨아먹은 이와 벼룩, 빈대가 드글거리는 이불을 덮고 잤던 것이다.

셀콥이 아침 일찍 움막 부근을 산책하다가 사람의 발 네 개가 눈밭에 묻혀있는 것을 보았다. 눈을 치웠더니 멀리 사냥을 나갔다는 중국인들의 시체가 눈으로 덮혀 있었다. 그래서 남아있었던 중국인들을 추궁하여 동료가 전염병에 걸려 죽은 것을 알아냈으며, 동료가 전염병으로 죽은 것이 알려지면 움막이 불태워질 것을 염려하여 거짓말을 했다는 걸 자백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 병에 전염되면 100% 죽는 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확인하기 위해 두 중국인의 시체가 묻혀있는 곳에 가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고 눈동자에는 공포가 어려있었다. 양 손도 경련으로 뒤틀려졌다. 입에서는 피를 토했다. 시체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참혹한 시체는 처음이었다. 나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피를 빨아먹었을 이나 빈대가 우굴거리는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이불을 덮고 잤으며, 그들이 먹었던 그릇에 수프와 고기를 먹었으니 우리가 전염병에 걸렸다는 것은 확실했다. 전염병은 몰모트를 잡은 포수, 가공한 기술자 그리고 사고판 상인들이 모두 걸렸다.

여보게, 이들이 죽은지 3, 4일이 되었는데 같이 생활한 다른 중국인은 건재하지 않은가? 우리가 죽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소란이야.’

셀콥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우리는 급하게 짐을 챙겨서 그 죽음의 집을 떠났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거의 달리다싶이. 우리는 단숨에 산을 두 개나 넘고 하이린해강을 따라 하이린역으로 갔다. 그날 오후 더우라허자강 주변에서 모닥불을 크게 피우고 벌거숭이가 되어 옷과 소유물을 불에 쬐어 살균했다. 옷에서 이가 기어나왔는데 그 걸 본 셀콥은 또 절망하여 울쌍이 되었다. 그 날 밤 새 셀콥은 저주와 헛소리를 해서 나는 그가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래서 화주를 마셨다. 독한 화주를 한 병 다 마시고나니 세상이 달라져보였다.

좋다, 나는 도박을 한다. 승패는 모르겠으나 질 때 지더라 이긴다는 희망을 갔겠어.’

그래야지 친구여, 우리 힘을 내자!’

셀콥은 술김에 용기를 얻었다.

전염병이 뭐야? 그까짓 것 겁나지 않아!’

고함도 쳤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표범을 쫓았다. 표범은 철도마을을 습격하여 젓먹이를 물고갔다. 표범에 대한 증오도 죽음의 공포를 털어내지 못 했다. 전염병의 잠복기간은 10일이기 때문에 10일이 지나가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었다. 표범을 따라다니다가 저녁에 모닥불 옆에 누웠을 때도 우리는 전염병이야기는 삼갔으나 서로 불안한 눈이 마주칠 때가 있었다. 이럴 때는 나도 고함을 치고싶었으나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 고통을 참았다. 5일이 지났으나 우리 몸에는 이상증상은 없었다. 이튿날 새벽에 생생한 표범의 발자국이 참나무숲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표범은 교활했다. 몇 분 전에 난 발자국이었다. 표범은 이제 더 쫓기면서 추적당하지 않고 맞붙을 조짐이었다. 표범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언제까지나 쫓겨다닐 맹수가 아니다. 나는 셀콥 보다 2m 정도 앞서 걸으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여 주위를 살폈다.

없어, 없는 것 같은데 . 놈이 우리가 따라붙는 걸 눈치채고 멀리 튄 모양이야.’

셀콥의 말이 끊어지자 전방 10여 미터 나무그늘에서 기다란 그림자가 스쳐가는 것을 봤다. 땅에 납작붙은 그림자였고 그림자가 지나간 끝에 노란색이 어른거렸다.

(표범이다!)

그렇게 판단했을 때 총소리가 났다. 나 보다 늦게 표범을 발견한 셀콥이 발사한 것이다.

맞았다!’

셀콥이 소리쳤다. 그리고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나도 원호하기 위해 뒤를 따랐다. 표범은 없고 핏자국만 있었다. 핏자국을 조사했는데 앞발에 맞았다. 발자국이 세 개만 찍혀있고, 앞발자국 부근에는 핏자국만 있었다. 셀콥은 나무 뒤에서 다른 나무 뒤로 이동하는 표범을 보고 무의식 중에 발포했다고 해명했다. 날이 어두어졌기 때문에 동굴을 찾아 야영했다. 셀콥은 밥을 먹지 않고 피곤하다며 누워버렸다. 혼자 밥을 먹다가 셀콥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셀콥은 목이 탄다고 중얼거리면서 물을 찾았다. 눈이 마주치자 둘이 같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놀랐다. 전염병의 초기증세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었다.

아니야, 셀콥 그 건 아니야!’

당황하여 소리쳤는데 셀콥은 이미 유령처럼 창백한 낯으로 일어섰다.

그거야 그거, 바로 그거야! 이봐, 손등에 붉은 점이 나왔어.’

셀콥의 손등에는 붉은 점이 나타나있었다.

헛허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만! 코안경 친구, 자네는 어떤가?’

나도 절망감에 싸였다.

(셀콥이 전염병에 걸렸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 없지 않은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지 전염병에 걸렸다는 징조도 없지 않은가?)

나는 셀콥을 안심시키려고 벼라별 말을 다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나도 몰랐다. 내 말을 듣던 셀콥이 깔깔 웃다가 침묵했다. 공포에 일그러진 얼굴이 의심으로 변했다. 그 때 아주 가까운 곳에서 표범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목 쉰 고양이 울음소리를 마이크에 걸어놓은 것 같은 앙칼진 울음소리였다. 심야, 깊은 산중,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야영하는 포수, 그것도 전염병에 걸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그 소리는 결정적인 자극이었다.

(너희들은 이제 곧 죽겠지만 난 살아있어.)

야유하는 것 같았다.

저 새끼가!’

말릴 틈도 없었다. 셀콥이 총을 움켜쥐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셀콥, 셀콥, 돌아와!’

그러나 셀콥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표범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캄캄한 밤중에 표범에게 덤벼든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아니, 셀콥은 자살하려고 한 것이다.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나도 전등을 찾아 쥐고 밖으로 나갔다. 전등빛은 불과 5, 6m 뻗치고는 어둠에 녹아버렸다.

셀콥, 셀콥!’

발자국을 더듬으며 외쳤으나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표범의 독기어린 포효와 총소리가 연거푸 났다. 한 발, 두 발. 계속해서 네 발 모두 여섯 발이었다. 셀콥의 벨기에 6연발은 이제 다 발사되었다. 여섯 발의 총성이 사하지고 무서운 침묵이 흘렀다. 총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셀콥, 셀콥. 살아있으면 대답해!’

미친 듯이 전등을 휘둘렀다. 셀콥이 있었다. 표범도 있었다. 사람과 짐승은 껴안고 누워있었다. 가까이 가서보니 둘 다 피투성이였고 셀콥은 아직도 표범의 목을 조르고 있었으며 표범은 고통스러운 듯 아가리를 벌리고 죽어있었다.

셀콥!’

어께를 흔들었는데 탄력이 느껴졌다. 얼굴과 아랫배를 표범에게 할켜 중상을 입었으나 숨을 쉬고 의식도 있었다. 그를 업고 가장 가까운 마을로 달렸다. 몇 번이나 돌에 차여 넘어지고 숨이 차서 쓰러졌으나 이를 악물고 기다싶이 달렸다. 어둠이 가시기 전에 오두막을 발견했다. 중국사람들의 움막에는 두 사람이 죽어 있었다. 손발이 뒤틀린 것으로 보아 전염병이었고 얼굴을 쥐가 갉아먹어 해골만 남았다. 결국 셀콥을 업고 의사가 있는 마을까지 갔으며 의사가 셀콥을 면밀하게 진찰하더니 3, 4일만 치료하면 곧 낫는다고 했다.

전염병? 이 사람에게는 전염병의 징후가 없소. 몸살기가 좀 있기는 하지만 .’

셀콥은 그 후 20년이나 더 살았다.

 

4. 범의 밤

 

범의 밤, 도시사람들에게는 상상도 못 할 무서운 밤이다. 아브로나역에서 북쪽으로 20Km 쯤 떨어진 밀림에서 사냥을 했다. 해가 지고 있었으므로 포수의 산막을 찾아갔다. 친절한 주인은 향기로운 차를 대접하며 환대했다. 12월이었으므로 나무들이 하얗게 얼어붙었고 하늘도 얼어서 별들이 얼음에 박힌 것 같았다. 산막은 쾌적했다. 따끈따끈한 온돌방 아랫목에서 사슴털이불을 덮고 누었으니 3, 4일 동안 범을 쫓아다녔던 피로가 풀렸다. 온돌방은 옛 고조선의 옥저인들이 발명했다고 하는데 취사와 난방을 겸한 한대지방의 난방으로써는 인간이 불을 발견한 이후 최고의 발명품이다. 산막주인은 화로의 숯불을 뒤적거리거나 긴 담뱃대를 태우면서 바깥을 살폈다. 산막에서는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다.

너무 조용한데 . 늑대소리조차 없어.’

조용히! 늑대란 놈 오늘 같은 날에 방정맞게 울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 합니다.’

……?’

들어보세요. 이제 들려옵니다.’

산막주인이 귀를 가리며 말했다. 과연 들려왔다. 밤의 울부짖음소리였다. 꽤 먼 곳에서 우는 가물가물 들렸지만 여운과 산울림소리가 여운으로 남았다.

이봐, 지금 곧 여기를 떠나야겠어!;

아니, 이 쾌적한 산막을 버리고 어디로 가잔말야.

사냥을 집어치우고 되돌아가는 거지.’

나는 이순과 산막주인에게 범의 밤 얘기를 했다. 생물학적 의견을 곁들어서 설명했다. 때는 범의 교미기였다. 사방 100Km 내외의 영역을 가진 암숫범들이 모여들어 쟁탈전을 벌이는 무서운 시기다. 이 때 암컷은 숫범을 미치게 하는 암내를 풍기고 숫컷을 유혹하는 포효를 한다. 왕대는 숫컷들에서 가장 강한 놈이기에 경쟁 상대가 없다. 왕대가 산이 찌렁찌렁하게 포효하면 젊은 숫범들도 감히 도전하지 못 한다. 왕대는 마음에 드는 암컷을 독점한다. 싸움은 나머지 졸개들이 벌인다.

, 오페라가수군. 오늘 저녁을 여기서 지내겠다는 거야?’

이순이 한참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정직하게 말하면 난 무서워. 그러나 호기심도 있어. 생애에 단 한 번 범의 밤에 초대되었는데 거절할 수 없지 않나? 그리고 무엇 보다 난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 눈길 산길을 20Km나 걸어와서 발이 퉁퉁 부었고 전신이 흐느적거린단말야. 범이 당장 잡아먹는다고 해도 움직일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었다. 그 친구의 고집을 나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친구와 함께 죽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들 네 명은 집 주변에 울타리처럼 마른 나무를 산더미처럼 쌓았다. 범이 두려워하는 유일한 것이 불이다. 산막도 손질했다. 벽은 굵은 통나무로 받치고 문에는 통나무를 덧댔다. 작업을 끝내고 뻬치카에 불을 활활 피워놓고 산돼지를 구워 화주火酒(알콜도수 60도 이상의 중국산 독주)를 마셨다. 화주 몇 잔을 마신 이순은 곯아떨어졌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친구는 20Km의 눈길 산길에 기진맥진했던 것이다. 밤이 깊어지고 밀림에 요기妖氣가 떠돌자 우리는 잡담을 멈췄다. 돌연 가까운 아주 가까운 데서 벼락같은 범의 포효가 터졌다. 화가난 소리였다. 곧 이어 다시 한 번 노호가 터졌다.

코안경나리, 저 건 왕대요. 저 놈은 우리의 불을 보고 화가 난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잔치판을 방해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곧 습격할지도 모릅니다.’

산막주인의 말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범의 밤 첫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이튿날 이순의 제지를 뿌리치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어놓고 부근 숲을 돌아다녔다. 숲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눈 위에 찍힌 솥뚜껑만한 발자국 외에는 살아 숨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발자국은 세 마리였다. 발자국이 산막 앞산으로 모였다. 전율을 느꼈다.

(오늘 밤은 범의 잔치판 한가운데서 지내게 되었군.)

 

산막에 돌아오니 절친한 친구 이왕이 와있었다. 그는 도시의 방랑자였으며 술과 노름의 명수였다. 전도가 유망한 오페라가수였는데 술과 노름 때문에 출세를 하지 못 했다. 한더헤자역에서 만나 꼭 사냥에 데리고가달라고 졸라서 산막을 가르쳐주었더니 포수 마이를 고용하여 찾아온 것이다. 때가 좋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왕대가 울부짖었다. 멀리서 왕대에게 호응하는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는 꼬리가 길었고 애조를 띄었다. 왕대가 다시 포효했다. 그러나 포효는 부드러웠고 자기를 찾아오는 암컷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멀리서 호응하는 소리에도 뭔가 갈망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왕은 초조했다. 담배를 물고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다.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려는 노래였으나 점점 노래소리가 커졌다. 마침내 범들의 포효와 경쟁이라도 하 듯 목소리가 커졌다. 오페라에서 불렀던 노래들이 이것저것 두서없이 흘러나왔다. 중국인들이 놀라 제지하려고 했으나 내가 눈짓으로 말렸다. 이윽고 이왕은 벌떡 일어나더니 부드러운 바리톤으로 오페라의 아리아를 두 게 세 개 연거푸 불렀다. 특히 죄수들이 부르는 <밀림>이라는 노래와 <>은 훌륭했다. 원래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가수의 노래는 깊은 감동으로 밀림으로 힘차게 퍼져나갔다. 밀림에서 범들에게 포위당한 체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밀림 구석구석에 메아리쳤고 범들도 울음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나는 총을 들고 노래를 듣고 있었고 중국인들은 기가막힌다는 듯 입을 벌리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왕이 노래를 멈췄다. 3, 4분의 고요를 깨고 범들이 다시 우엉! 우엉! 울었다. 범은 공격하지 않았다. 다음 날 범들의 싸움판에 가보니 털이 빠지고 피가 흘렀다.

이왕, 수수께끼가 풀렸네. 여기서 수놈들 끼리 싸움판은 결판이 났어. 패자는 쓰러졌고 승자는 암컷을 데리고 떠났어.’

이왕은 대단히 흥미를 느낀 듯 범을 더 추적해보자고 졸랐다. 두 개 반으로 편성을 해서 우리는 승자를 쫓고 중국인들은 패자를 쫓았다. 추위를 무릅쓰고 1시간 가량 추적을 했을 때 그들은 참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탁 트인 곳이 신방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숲을 선택했다. 신방은 참나무의 낙엽이 두껍게 깔린 곳이었으나 범의 첫날밤은 격렬했다. 마치 전쟁터 같았다. 여덟 개의 다리가 어지럽게 흩어지고 흥분한 발톱이 얼어붙은 눈과 얼음을 파해쳤다.

신부가 난폭하게 굴었군.’

신랑이 미쳐서 날뛴거지.’

면밀하게 조사해보니 사랑의 싸움은 격렬했지만 한편으로는 행복했다.

이왕군, 여기를 보게.’

나는 눈이 덮인 땅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범의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혀있었다.

네 다리의 간격이 비정상적으로 넓게 벌어져 있는 게 보이지?’

암컷은 숫컷을 받아들이려는 수동태세를 취했으며 암컷이 넓게 벌린 뒷다리 간격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또한 숫컷의 앞다리는 암컷의 등위로 올라갔고 그래서 숫컷의 발자국은 뒷다리 두 개만 찍혀 있었다. 털이 빠져있었고 흥분한 암컷과 숫컷의 입에서 토해낸 거품이 얼어있었다.

브라보!’

이왕이 웃었다. 우리는 추적을 여기서 끝냈다.

어딜 갔다왔어요. 큰일이 벌어졌는데 .’

부상한 범이 저쪽 산에 숨어있어요.’

동굴이 수상해요.’

패자를 추적했던 중국인들은 범이 비틀거리고 피를 많이 흘리는 것을 봤다. 20여 미터 앞에 동굴이 있었고 동굴에서 살기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낡은 총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해결하기에는 무리였다. 우리는 부상한 범을 따라갔다. 중국인들의 말대로였다. 범은 출혈이 너무 많아 죽었든지 아니라고 해도 우리에게 덤벼들지 못 할 거라고 판단했다. 피의 색깔로 동맥 - 아마도 목줄에서 나온 피였고 100m나 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범의 핏자국은 동굴로 가고있었으며 동굴 안에는 요기가 떠돌았다.

나리, 어떻게 하지요?’

여기서 불이나 피우게. 범도 범이지만 저 광대나리가 얼어죽겠어.’

오페라가수는 덜덜 떨고있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혼자서 범을 잡아올테니. 범고기 불고기를 먹세.’

중국인포수가 어이없다는 듯 경고했으나 나는 혼자 동굴 앞으로 갔다. 핏자국은 동굴까지 있었다. 동굴속으로 돌맹이를 서너 개 던졌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총을 겨냥하고 입구로 전진했다. 동굴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죽었군.)

범이 죽었다고 확신했다. 3 - 4분 동안 눈을 감고있다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캄캄했다. 조용했다. 피비린내가 났다. 끈기있게 2 - 3분을 더 기다렸다. 범뿐만 아니라 맹수는 상대편의 움직임에 따라 공격을 하며 정지상태에서는 공격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돌처럼 굳은 자세로 2 - 3분을 서 있다가 다시 2 - 3m를 전진했다. 극도로 긴장을 하여 내 심장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까딱하는 소리만 있어도 발포할 자세로 전진했다. 나는 다시 전지했다. 눈을 크게 뜨고 어둠속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깜짝 놀랐다. 하마트면 발포를 할 뻔 했다. 칠흑같이 검은 어둠속에 빛이 있었다. 두 개의 노란빛이었다. 범의 눈이었다. 숨막히는 긴장감속에서 나는 범과 눈싸움을 했다. 1, 2, 3. 내 가슴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으나 노란불은 움직이지 않았다. 1, 2.

(이상한데 .)

나는 총구를 내리고 다시 3 - 4분을 기다렸다. 불빛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그 불빛이 새파란 불이 아니고 노란 불이며 죽은 범에게서 나오는 불빛이란 걸 알아차렸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등을 켰다. 범은 온몸에 상처가 났으며 치명상은 목줄이었다. 그놈은 강한 연적에게 끝내 항복을 거부하다가 사랑에 목줄이 뜯겨 죽었다. 6세 정도 되는 젊은 숫컷이었다.

코안경나리! 나리!’

음악가선생의 목소리에는 울음에 베어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범을 끌고나왔는데 음악가는 신파배우新派俳優처럼 나를 껴안고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천진난만天眞爛漫한 가수였다. 그러나 그는 그 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전쟁의 최전선最前線에서 전사戰死했다. 그는 범의 밤에서 받은 감동을 작품으로 남기겠다고 말했으나 그는 작품과 함께 묘지 속에서 영면永眠했다.

 

5. 식인호食人虎

 

11, 첫눈이 내려 라오닌의 산은 엷은 흰 보자기를 덮은 것처럼 보였다. 사냥꾼들이 기다리던 날이었다. 손질이 되어 반질반질한 총을 들고 사냥꾼들이 사냥터로 모여들었다. 그들 포수들 중에 나의 오랜 친구인 알세냅과 바이콥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이 사냥을 했고 라오닌산 밑의 선로 옆 움막을 근거지로 삼았다. 한 무리의 산양들이 산중턱의 바위에서 보일 듯 말 듯 도망쳤다. 집에서 기르는 양과 달라 산양은 바위에서 살았고 바위를 평지 다니 듯 뛰어다녔다. 산양의 발밑바닥에는 고무스펀지 같은 특별한 덧살이 있었고 덧살 주변은 털이 나있어 급경사의 바위를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거나 딱 붙는 재주가 있었다. 산양이 바위를 내려오는 걸 보면 산양은 직벽에서 주르르 미끄럼을 타는데도 떨어지기는커녕 발바닥도 아무렇지도 않다. 기름덩어리로 되어있는 발바닥의 고무스펀지가 마찰을 줄이고 열을 방지한다. 산중턱에서 산양이 두 갈래로 나뉘어 도망가는 걸 보고 바시콥은 산정으로 쫓고 알세냅은 계곡으로 내려갔다. 바시콥이 산정으로 산양을 몰아올려 계곡으로 내려가는 산양을 위에서 내려 쏘아 세 마리를 잡은 후 그 장을 빼내고 눈속에 묻었다. 그리고 헤어진 알세냅과 만나기로 한 산중턱으로 갔다. 태양은 이미 바위산 위로 떨어져 어둠이 스물스물 기어내리고 바시콥이 폭풍에 쓰러진 나무뿌리에 기대앉았을 때는 밀림의 그늘은 점점 짙어졌다. 바시콥이 다섯 대째 담배를 태울 때까지도 알세냅이 돌아오지 않았다. 완전히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하늘에 별이 총총이 빛날 때까지도 알세냅이 돌아오지 않아 바시콥은 알세냅이 너무 멀리 갔다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라 짐작하고 묻어놓은 산양을 질질 끌며 움막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는 집에도 없었다. 이튿날 바시콥은 같은 장소에 가서 사냥할 생각도 버리고 하루 종일 친구를 기다렸으나 역시 친구가 돌아오지 않았다. 불안해진 그는 마침 철도마을에서 쉬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별 것 아닌 얘기 같지만 난 좀 불안하네. 아마 길을 잃은 모양 같은데 .’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이 봐, 알세냅이 길을 잃을 바보 같아? 그는 사냥경험 15년의 숙련포수熟練捕手!’

바시콥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

사고가 난 거야, 사고! 거기는 범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야!’

바시콥이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힘없이 말했다.

바시콥 형, 나와 같이 수색해주지 않겠나?’

사실 나는 그 산에서 범의 발자국을 봤어. 아주 생생한 발자국이야.’

불길한 얘기는 그만 두고 나 하고 수색을 하세.’

좋아, 그러나 개를 한 마리 데리고 가세.’

그날 밤 잠을 잘 수 없었다. 우리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알세냅이 위험했다.

(알세냅이 죽을 리 없어.)

15년 동안 같이 사냥을 했으며 알세냅은 범도 서너 마리 잡았다. 그런 그가 범에게 당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알세, 죽은 게 아니지?)

이튿날 동이 트기 전에 나와 바시콥은 벌써 라오닌산에 도착했다. 우리는 사냥개 윌조크를 데리고 갔는데 윌조크는 알세냅의 발자국을 따라 냄새를 맡으면서 앞섰다. 며칠 전에 내린 첫눈은 바람에 날려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윌조크는 몇 발자국 걷다가 잠시 생각하는 듯 멈췄다가 걷기를 반복했다. 정오께 윌조크가 한 곳에 정지하여 우리를 기다렸다. 그 곳에는 사람 발자국과 범의 발자국이 교차된 지점이었다. 사람발자국을 범이 옆질러 간 것이다.

(.)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나는 일부러 불안을 숨기고 윌조크를 독촉했다. 윌조크는 맹수사냥 경험이 풍부한 개였으나 이번에는 흥분상태였고 좀 불안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우리 곁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발자국은 2, 3일 전에 난 것이었고, 상세히 살펴본 결과 알세냅이 범을 따라갔다. 알세냅이 범을 추적했다. 그러나 잠시 후 무서운 사실을 발견했다. 범이 추적을 눈치채고 멀리 돌아 알세냅을 앞세워놓고 오히려 알세냅을 추적하고 있었다.

재미없는데 .’

바시콥이 중얼거렸다.

바이콥 형! 이 놈의 범은 보통 범이 아니라 아주 영리한 범이야.’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범은 고원지대에서는 무서운 것이 없다. 그래서 산마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움직인다. 숲속의 작은 생물도 범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알세냅에게 추적을 당한 범도 산마루를 타고 가다가 자기를 추적하는 알세냅을 발견하고 자기를 추적하는 알세냅의 뒤로 돌아 오히려 알세냅을 역추적 한 것이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산마루로 올라갔다. 알세냅은 가끔 정지를 하여 주위를 살핀 흔적도 발견했다. 노련한 사냥꾼이었기에 철저히 경계를 하면서 추적을 했다. 그의 치밀한 행동에 다소 마음이 놓였다. 산마루로 향하던 발자국이 산정상으로 향했다. 푸른 하늘 밑에 산정상이 보였다. 나무들이 띄엄띄엄 서 있었으나 바위산이었다. 산정상이 가까워졌을 때 윌조크가 갑자기 뒷발을 접고 주저앉아버렸다. 개는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으으 하며 몸을 떨더니 차차 호소하듯 짖었다. 우리도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왜 그래, 윌조크!’

개는 야속하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며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 녀석, 좋지 않은 냄새를 맡았어.’

나는 산정에 서있는 큰 고목에 주의했다. 나무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는 윗부분만 보였는데 아무래도 그 나무 밑이 수상했다. 바시콥에게 따라오라고 눈짓을 하고 천천히 전진했다. 벨기에 3연총은 언제라도 발사할 태세였다. 거대한 나무는 참나무였다. 올라감에 따라 차차 나무의 밑둥이 보였다. 허리를 굽히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었으나 나는 계속 전진했다. 나무의 뿌리가 보였다. 나무뿌리 부근에 모자가 떨어져 있었다.

알세냅의 모자야, 저 건.’

따라오던 바시콥이 신음하듯 말했다. 뒤통수를 강타당한 것처럼 아찔했다.

그 놈의 범이!’

바시콥이 고목나무로 돌진했다. 나도 달렸다. 우리는 고목나무 밑에 멈췄다. 장승처럼 서있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사람과 범의 발자국이 뒤엉켜 벌겋게 피로 물든 눈바닥이 마구 짓밟혔다. 총은 한 발도 발사되지 않은 체 눈밭에 뒹굴고 있었다. 알세냅을 앞질러간 범은 고목나무 뒤에 고목나무에 몸을 밀착시켜 딱 붙었다. 고양이과 동물들의 은신기술이다. 추적을 하고있던 알세냅은 단 한 그루 고목나무를 의심하지 않았다. 설마, 범이 숨어있을만한 곳이 아니었기에 무심코 다가가갔던 것이다. 충분한 거리까지 알세냅을 당겨놓은 범이 기습을 했다. 알세냅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이 새끼가!’

범은 알세냅을 물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윌조크의 눈에 공포가 서렸다. 범이 알세냅을 끌고 내려간 계곡은 가파른 낭떠러지였다. 계곡 옆 큰 바위에 알세냅의 유품이 있었다. 두개골과 가죽장갑을 낀 손목 그리고 골반뼈 일부와 담배갑 뿐. 바시콥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 알세냅이 이 꼴이 되다니. 범을 쫓아다니던 용사가 범의 밥이 되다니!)

나는 슬픔 보다 증오가 타올랐다. 범은 마음껏 포식을 하고 그 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누운자국으로 봐서 320Kg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나는 그 놈을 잡아죽이고 싶어 맹목盲目이 되었다.

가자, 따라가자!’

바시콥이 머리를 흔들었다.

안 돼! 이 발자국으로는 추적이 되지 않아.’

그 발자국은 이미 3일 전에 찍힌 것이고, 따뜻한 곳에서는 녹아버렸을 거고 바람에 날려 흔적을 찾지 못 할 것이다. 그레도 나는 고집을 부려 수백미터를 추적하다가 포기해야 했다. 바시콥도 울지 않았으나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그 범을 잡기 위해 정보를 수집했다. 나흘 동안에 범이 이동할 수 있는 행동반경을 계산하여 그 반경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모든 포수들에게 범을 보거나 발자국을 보면 알려달라고 전보를 치고 사람을 보내 통지했다. 홀로 떠돌아다니는 범의 행동권은 방대했으나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라오닌에서 떠날 것 같지 않았다. 나의 예측은 옳았다. 그 이튿날 - 그러니까 사고 닷새 후에 범이 인근 마스러마을 인근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전날 밤에 산양 세 마리가 미친 듯이 마을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범에 몰려 평소에 무서워하는 마을로 뛰어든 것이다. 산양의 발자국을 거꾸로 추적했다. 산양의 대가리가 하나 전날 내린 눈 위에 뒹굴고 있었다. 인근에 범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상세히 조사한 결과 바로 우리가 쫓는 그 놈이라는 확신이었다. 범은 식사를 하고나면 잠을 잤다. 만복이 되어 뒤룩뒤룩한 배를 끌고 걸어다니는 걸 싫어했다. 그 놈도 그랬다. 잠을 자고난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다. 발자국이 생생했다.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 산봉우리에 올라갔다. 별안간 바시콥이 총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 총구가 노리는 곳 - 계곡을 사이에 둔 북쪽 산마루에 범이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범은 전속력으로 산을 넘고 있었다. 하얀 눈 위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언뜻 스치는가 했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거리가 너무 멀고 범의 행동이 너무 빨라 바시콥은 방아쇠를 당길 기회를 놓쳤다.

그 놈이 우리를 눈치챘어.’

범이 추적을 눈치채고 도망간다면 추적이 어려워진다. 범이 전속력으로 달리면 한 시간에 20Km 즘 달린다. 우리는 그날 밤 동굴에서 잤다. 꿈에 범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멀리서 봄의 포효가 들렸다. 이튿날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추적을 시작했으나 좀체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 날 태양이 떨어질 무렵 또 한 마리 희생된 산양을 보았다. 갈비뼈 일부만 없어지고 통째로 남아있었다.

옳지, 이 놈도 초조해졌어. 모처럼 잡은 먹이를 다 먹지도 못 하고 도망을 칠만큼.’

어느 쪽이 더 견디느냐에 승패가 달려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밤에는 눈이 내렸다.

에잇, 빌어먹을.’

새로 내린 눈으로 발자국이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노련한 사냥꾼에게는 감이있었다. 범이 지금까지 가고있는 방향에 선을 그으면 범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다. 범은 정확히 동남향으로 가고있었다. 그리고 범의 길도 알고있었다. 범은 돌맹이길을 좋아했고 산마루길을 즐겨다녔다. 바시콥은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따라왔으나 내 예측은 옳았다. 그날 오전 10시께 범의 발자국을 되찾았다. 뚜렸한 범의 발자국을 발견하자 오랜만에 바시콥이 웃었다.

이젠 되었어. 이 놈은 도가니에 든 쥐야.’

우리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고원지대를 빠르게 걸었다. 범은 배가 고파서 몇 번이나 다른 짐승을 노린 흔적이 있었으나 쫓기는 몸이라 실패했다. 그 날 오후 2시께 또 범의 모습을 보았다. 300m 쯤 떨어진 산마루에 동상처럼 우뚝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얀 눈에 비쳐 범의 새파란 눈동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시콥이 발포를 했다. 총소리가 울렸으나 범은 살짝 산을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총소리에 대항하듯 노호가 들려왔다. <따라오지 마라!>는 경고였다.

저 놈은 산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자네는 천천히 저 산을 넘게, 발포준비를 하고. 나는 돌아서 저 산 뒤로 돌아갈테니. 등뒤에서 쏠거야.’

바람이 바시콥에서 범에게로 불고 있었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범의 등뒤로 돌아갔다. 목표한 산밑에 닿아 산정을 보니 바시콥이 천천히 산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산정과 바시콥 사이에는 참나무숲이 있었는데 그 숲이 수상쩍었다. 나는 기다싶이 산정으로 올라갔다. 바시콥도 사방을 살피면서 총을 어께에 매고 산정을 내려오고 있었다. 참나무숲은 정적이었다. 새도 울지 않았다.

(새가 울지 않는다는 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참나무숲에 노란빛이 움직이는 걸 봤다. 큰 참나무 뿌리 부근이었고 노란 물체는 뱀처럼 길었다. 범의 꼬리였다. 나는 울렁거리는 심장을 꼭 누르고 한 치 한 치 위치를 바꾸며 기었다. 바시콥이 범의 위치를 짐작 못 하고 태연히 걸어내려오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바시콥, 천천히 좀 천천히 내려와!)

마음속에서 절규하며 이동했다. 참나무를 비켜 바위를 지나자 범의 모습이 보였다. 범은 나무뿌리에 납작 엎드려 땅에 발톱을 박고 허리를 움추려 한 번의 도약跳躍으로 바시콥을 공격할 수 있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시콥은 범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겨냥을 했다. 그러나 발사하지 않았다.

(참아, 참아라!)

이윽고 범이 상체를 일으켰다. 뒷발로 눈을 차면서 불과 7. 8m까지 다가선 바시콥에게 도약했다. ! 어깨의 강한 반동과 함께 납덩어리가 날아갔다. 단 한 발, 범은 공중에 날아오르는 자세로 사지를 쭉 뻗고 눈 위에 털석 쓰러졌다.

브라보!’

총소리에 어리둥절한 바시콥이 달려와 나를 껴안고 춤을 추었다.

 

6. 마적馬賊

 

6월이었다. 6월은 사슴사냥에 가장 좋은 시기다. 장마는 아직 오지 않았고 더위도 심하지 않다. 나는 숫사슴을 유인하기 위해 한다도헷자역에서 북동쪽으로 20Km 정도 되는 곳에 잠복소를 두세 개 만들었다. 뿔이 굳지 않은 숫사슴을 기다려 녹용을 채취하면 중국인들에게 선약仙藥으로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다. 지대가 험악하고 바위산에는 참나무가 밀생했다. 참나무숲 맑은 개울이 흐르는 잠복소에서 사슴을 기다렸다. 사슴이 안 온다고하더라도 밑질 게 없었다. 맑은 물, 상쾌한 공기, 향기로운 풀냄새, 새들의 명랑한 지저귐 그리고 덫을 놓아 잡아 구은 토끼고기가 맛있었다. 황혼이 짙어졌다. 태양은 라오닌산맥 저 편으로 숨어버렸고 밤의 그림자가 산등성이를 타고내려와 벌판으로 퍼졌다. 밤이 되자 더위는 사라지고 냉기가 흘렀다. 잠복소 옆에 모닥불을 피웠다. 밤하늘 서편에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잠잘 준비를 끝내고 일어서려고 했을 때 사람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며 엄한 밀림의 규율에 따라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땅에 엎드려 살살 기어 나무뿌리에 숨었다. 오래지 않아 모닥불 옆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불 옆에 장승처럼 서있는 사나이는 엄청나게 키가 컸다. 모닥불과 잠복소를 둘러보던 사내가 어깨에 맨 배낭을 벗어던지며 고함을 쳤다.

, 누구냐? 여기 있었던 친구는 누구야? 이리 나와. 나오지 않으면 찾아 죽여버릴테다!’

굵고 벼락같은 목소리였으나 나에게는 매우 반가운 음성이었다. 나는 밭은 기침을 하며 서서히 걸어나갔다. 거인巨人이 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더니 눈이 둥그레졌다.

코안경나리, 당신이었소?’

그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와락 달려들어 나를 껴안았다. 그는 나의 친구 보보신이었다.

여전하군, 보보신! 사슴사냥이냐?’

그렇죠.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보보신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더니 휘파람을 불자 이내 10여 명의 사내들이 어둠속에서 나타났다. 모두 총을 들었고 중국인들이었다. 마적들은 모두 15명이었다. 근육질 몸매에 총을 들고 어깨에 탄띠를 둘렀다.

, 돈산!’

보보신이 두목으로 보이는 40대 사내 - 안광眼光이 매서운 사내는 보보신으로부터 중국말로 나의 소개를 듣더니 웃었다.

<코안경나리의 얘기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듣고 있었다.> 라고 보보신이 통역했다. 그들은 내가 피워놓은 모닥불에 나무를 더 던져넣어 불이 활활 타게 만들어놓고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사슴의 허벅다리를 굽고 쌀로 밥을 지었다. 큰 주전자에는 차를 끓였다. 그들이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에 나는 차를 대접받았다. 향기로운 차였다. 마적두목 돈산은 차를 천천히 마신 뒤 모닥불 옆에 누워 파이프를 태웠다. 구리빛으로 탄 얼굴은 준엄했으며 무표정하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보보신은 돈산이 동지철도東支鐵道(동 만주 철도)의 연도沿道를 거의 모두 지배하고 있는 두목 중의 두목이라고 소개했다. 그 일대에는 수십 개의 마적단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돈산에게 공물供物르 바치고 명령을 받았다. 보보신과 돈산은 이상한 인연으로 만났다.

 

6년 전 어느 겨울, 보보신은 사슴을 쫓다가 너무 깊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되돌아오기에는 날이 너무 어두웠고 길이 험해 봅신은 부근의 동굴을 찾았다. 동굴 앞에 선 보보신은 동굴 안에 온기가 있는 걸 느꼈다. 담대한 보보신은 사냥꾼인줄 알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고 그 옆에 중국인이 한 사람 앉아있었다. 그 사내는 뜻밖의 침입자에게 무서운 시선을 던지더니 허리에서 비수를 끄집어냈다. 칼날이 30Cm 쯤 되는 날카로운 비수였다. 보보신이 순간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서며 총구를 들어올렸우나 이내 총구를 내리고 중국말로 말했다.

이봐, 자네는 일어날 수도 없는 형편 아냐. 일어나 덤벼들어봐야 이길 것 같지도 않고 .’

사내도 2m가 넘는 육척거구六尺巨軀였으나 보보신은 육척에 여섯 치가 더 붙어있는 초거인이었으며 몸이 바위 같았다.

죽기 싫으면 빨리 없어져. 개새끼 같은 놈아!’

사내의 입에서 거친 쉰 소리가 터져나왔으며 생전 듣지 못 한 욕설을 내뱉았다. 그러나 보보신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중국인 사내의 거친 행동은 이미 겁을 먹었거나 항복을 했다고 판단했다. 사실 사내는 오른쪽 허벅다리에 총을 맞아 많은 피를 흘렸다. 사내는 부하들과 일본군대의 수송차량을 습격했다가 기습을 당한 것이다. 사내는 일본군대의 수송대가 경비 두 명과 물건을 가득 싣고 운반 중이라는 정보를 알고 수송차량을 습격했는데 이는 일본군의 함정이었다. 부하 여섯 명을 데리고 잠복했는데 트럭에는 일본군 30여 명이 숨어있었다. 길에 통나무를 가로질러 길을 차단해놓고 트럭이 급정차를 하자 잠복에서 튀어나왔으나 일본군이 트럭에서 뛰어내리며 무차별사격을 했다. 부하들은 몰살당하고 사내는 무릎에 관통상을 입어 절벽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절벽 밑에 낙엽이 두껍게 쌓여 목숨을 건졌으나 동굴까지 기어와서 이틀 동안 숨어있었던 것이다. 사내는 불의의 침입자를 보고 놀랐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욕설만 했던 것이다. 보보신은 포수의 본능으로 사내의 약점을 간파하고 유유히 행동했다. 사내의 손이 닿을락말락한 거리를 유지하며 앉았다. 파이프를 태웠다. 사내는 몇 번이나 덤벼들 기회를 엿보았으나 단념했다. 이길 것 같지 않았다. 싸움꾼의 직감이었다.

이봐, 난 사냥꾼이야. 범이나 사슴은 잡지만 사람은 잡지 않아. 더구나 자네처럼 부상한 사람은 말이야.’

보보신이 다소 난폭하다싶을 정도로 담배쌈지외 파이프를 사내에게 던졌다. 등에 맨 배낭에서 사슴고기를 꺼내 요리했다. 소금을 슬슬 뿌리면서 불에 구워 한 점 잘라 사내에게 던져주었다. 이틀 동안 굶주린 사내가 칼을 집어넣고 고기를 받아먹었다. 보보신은 사내와 같이 잤다. 이튿날 보보신은 떠나면서 사내에게 사흘 치 식량을 나눠주었다. 보보신은 아무 말 없이 식량을 주었고 사내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보보신과 사내는 그 후 반년만에 다시 만났다. 입장이 거꾸로 바뀌어서 다시 만났다. 혼자 러시아와 중국 사이 고원지대와 밀림을 떠돌아다니던 보보신은 산적을 만났다. 보보신이 하루 종일 추적한 사슴을 잡아 막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슴의 뿔을 도려내는 일이었는데 사슴의 체온이 식기 전에 조심스럽게 도려내야 했다. 날카로운 칼로 사슴의 머리뼈를 가르고 있을 때 보보신은 인기척을 느꼈다. 아람드리 나무들이 밀생하였으며 햇빛조차도 어슴프레 변색되었는데 보보신은 등 뒤 20m쯤 떨어진 나무그늘에 얼핏 뭣인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봤다.

(사슴일까, 곰일까?)

사슴이기에는 두 다리로 걷는 것 같았고 곰이라고 보기에는 몸체가 가냘펐다. 밀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담대한 보보신도 등에 찬바람이 났다. 밀림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동물이 되어버린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국경 일대에는 포수를 노리는 산적이 있었다. 포수는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가는데 산적은 포수의 뒤를 밟았다. 포수가 짐승을 잡으면 산적은 짐승을 가로챘다. 포수를 죽이고 총까지 가로챘다. 보보신은 긴장하고 얼핏 사슴 뒤로 몸을 숨겼다. 미행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감시하면서 작업을 계속했다. 그림자가 있엇던 곳에서는 사슴이 방해되어 저격을 못 할 위치였다. 10여 분이 지낫다. 보보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착각했어.)

바로 그 때 보보신의 무릎 옆 1Cm 지점의 흙이 튀었다. 이어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보보신은 순간적으로 몸을 굴리면서 나무 뒤로 숨었다. 총소리가 드려왔던 곳에 한 발 쏘았다. 덮어놓고 쏜 게 dskl라 나무 뒤에 어른거린 물체를 보고 쏘았다. 보보신은 명포수가 되기 전에 제정러시아의 군인이었으며 군인 사격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실제 전투경험도 풍부했다. 보보신은 총탄이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소리를 감지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가 없었다. 잠시 후 남쪽으로 5m 쯤 떨어진 바위 부근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나무둥치에 맞았다. 적은 한 놈이 dskl고 두 놈 혹은 여러 놈일 수도 있었다. 보보신은 바위로 총탄을 두 방 날리고 다른 나무 뒤로 옮겼다. 나무 세 그루가 삼각형으로 서 있어 세 방향에서 오는 사격을 막을 수 있었다. 조용했다. 30, 1시간, 2시간. 보보신은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사냥본능이다. 움직이면 표적이 된다. 범도 그 밝은 눈으로도 움직이지 않은 짐승은 발견하지 못 한다. 어둠이 서서히 다가왔다. 보보신은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속에서는 탈출이 쉽다. 캄캄해지자 발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참나무숲을 벗어났다. 그러나 너무 조심한 탓인지 몇 발 못 가서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동시에 세 발의 총탄이 날아왔다. 그 중 한 발이 왼손에 맞았다. 깨끗한 관통상이라 위험하지는 않았으나 피가 계속 흘렀다. 참나무 세 그루가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부상당한 왼손의 출혈을 수건으로 묶었다.

(이 새끼들이!)

분노가 끓어올랐으나 불안감도 깊었다. 적은 적어도 여섯 또는 일곱 쯤 되어 승산이 없었다. 보보신은 죽음을 각오했다. 날이 밝으면 등이 벌집처럼 난사당할게 분명하고 날이 새기 전에 당할 수도 있었다. 보보신은 기왕 죽을 바에야 적도 몇 놈 죽이겠다고 각오하고 어둠속을 관찰했다. 말소리가 들렸다. 마적들은 적을 완전히 포위했다고 판단하고 자기들 끼리 작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중국말이었으나 일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동지를 한 사람 부상시킨 놈이니 잡아서 껍질을 벗기자, 불쌍하니 눈깔을 두 개 빼고는 살려주자.’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말이었는데 상대방에게 일부러 듣게하여 사기를 꺾으려는 수작이었다. 마적들은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지껄이더니 갑자기 대화가 뚝 끊어졌다. 굵은 목쉰소리가 터져나왔다.

열 놈이나 모여 단 한 놈을 처치 못 해!’

두목의 고함소리였는데 그 소리를 듣자 보보신이 귀를 기울였다. 듣던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었을까? 그렇다. 반 년 전 동굴에서 만난 사내였다. 보보신이 고함을 쳤다.

, 이 개새끼들아! 일대일로 싸우자. 비겁하게 여러 명이 그것도 이 밤중에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반응이 없었다.

상대할 놈이 없으면 두목이 나와라. 동굴에서의 부상이 나았다면 나와 대결하자! 정정당당히 일대일로.’

또 침묵이 흘렀다. 대꾸가 없었다. 잠시 후 어둠속에 불이 켜졌다. 환한 불빛이 한 사내의 얼굴을 비췄다. 어금니를 꽉 다문 준엄한 표정, 벼락이 떨어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냉정한 모습이었다. 바로 그 사내 - 돈산. 보보신은 가랑잎을 모아 불을 붙였다. 그 불빛에 자기 얼굴을 들어냈다. 돈산이 부하들에게 짤막하게 명령했다. 적이 아니고 친구라는 말이었다. 돈산이 손에 불을 들고 왔다. 부하들을 시켜 불을 더 활활 타게 했다. 아무 말도 없었고 웃지도 않았다. 인사도 하지 않았다. 부하들이 보보신의 부상당한 팔을 치료하고 곰껍질을 깔아주었다. 돈산과 술잔이 오갔다. 독한 화주로 몸이 뜨거워졌다. 돈산이 물었다.

어떻게 된 거요? 대인!’

간단하게 사유를 얘기했다. 사슴을 쓰러뜨려 처리하고 있는 중에 사격을 당해 반격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돈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죽여!’

부하 두 사람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권총을 빼들었고 마적 둘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총소리가 났다. 돈산에게 술잔을 돌리려던 보보신이 술잔을 떨어뜨렸으나 돈산은 태연하게 술잔을 받았다.

대인, 나는 부하들에게 사냥꾼을 습격하라고 지시를 내린 일은 없소. 내 지시를 어긴 자는 죽음뿐이요.’

 

보보신은 돈산이 단순한 마적두목이 아니라 밀림의 지배자라는 걸 알았다. 그는 밀림에서 법을 세우고 집행하는 최고의 절대자였다. 보보신은 그 후 3일 동안 마적들의 치료를 받고 길 안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보보신은 산적이나 마적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산속에서 가끔 정체 모를 사내들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마적들은 두목으로부터 키가 육척六尺(2m)인 백인포수를 보면 도와주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코안경나리, 이래서 우리는 친구가 됐지. 당신은 나의 친구니까 그들의 친구고. 안심해!’

보보신으로부터 얘기를 듣고나니 안심이 되었다. 보보신은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나이였다. 그는 얼핏 보아서는 마른 체형이었으나 통뼈였다. 그는 독수리코와 작고 날카로운 눈 그리고 저음의 위엄있는 음성. 언제나 가죽상의를 애용하고 호주머니에는 제크나이프와 수염을 깎는 면도날을 넣고 다녔다. 언뜻 40세 정도로 보였으나 실은 45세였다. 그는 자바이칼주의 농민 출신이며 아마튜어포수였다. 그는 군대에서 사격을 배웠고 실전에도 참가했다. 사병士兵이었지만 이름난 용사였다. 군대에서 제대하고는 동지철도의 감시인을 했다. 3, 4년 동안의 감시인생활에 싫증이나서 자유로운 포수가 되었다. 사격의 명수이며 담대하고 때로는 광인처럼 사나왔으나 본성은 따뜻한 사나이였다. 넓은 밀림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많은 맹수를 잡아 돈을 벌었다. 그러나 성질이 거칠어 앞뒤 분간을 못 해 버는 돈 보다 쓰는 돈이 많았다. 그는 비싼 짐승을 헐값에 팔아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돈이 떨어지면 총까지 마셔버렸다. 또 싸움을 했다. 혼자서 서너 명을 상대로 싸웠고 때로는 부상도 입었다. 돈이 떨어지고 친구들도 떠나고 부상을 입으면 그는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경찰서 신세를 졌다. 그에게 내가 필요한 때는 바로 그 때였다. 그가 경찰에서 벌금이나 구류선고를 받으면 나를 찾았다. 나는 그를 위해 경찰서장에게 머리를 숙이고 벌금을 마련하여 유치장에서 그를 빼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집에 오면 그는 언제나 죄를 뉘우치고 맹세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참회는 열 번 가까이 되는데 그 참회가 반 년을 넘는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사랑했다. 언제든 총과 총탄을 마련해주었으며 그는 바로 밀림으로 들어갔다. 밀림에서 그는 왕자다. 보통 2, 3개월 동안 밀림을 돌아다녔으나 그에게 덤비는 짐승이나 사람은 없었다. 중국인포수들은 보보신이 민족적 우월감이 없는 좋은 백인이며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는 호인으로 알았다. 보보신이 중국인포수의 존경을 받게 된 유명한 일화逸話가 있다.

 

보보신은 중국인들과 함께 부상당한 범을 추적한 일이 있었다. 범은 화가나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포수들에게 덮쳐들었다. 중국인 포수를 앞발치기로 때려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목줄을 노렸다. 포수가 목줄을 물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저항을 하였는데 동료들은 총을 쏠 수가 없었다. 범과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었기 때문에 겨냥조차 못 했다. 그 때 보보신이 총을 던져버리고 칼을 쥐고 범에게 덤볐다. 보보신이 칼로 범의 어깨를 찔렀는데 화가난 범이 밑에 쓰러진 포수는 내버려두고 보보신의 어깨를 앞발로 쳤다. 범의 앞발치기 위력은 황소의 목을 일격으로 부러뜨리는 힘이 있었다. 그 일격에 넘어졌으나 범의 앞발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보보신은 어깨의 중상애서도 이번에는 칼로 범의 배를 찔렀다. 칼자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칼을 쑤셔박았는데도 범은 죽지 않았다. 범은 크게 몸부림을쳐 보보신을 떨어뜨려놓고 마지막 치명타를 하려고 일어섰는데 그 틈에 중국인포수가 발사를 했다. 총탄이 범의 머리에 관통, 비로소 죽었다. 먼저 넘어진 포수는 어깨뼈가 부러졌고 보보신도 어깨와 가슴에 열상裂傷(할킨 상처)을 입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호랑이와 격투를 벌인 보보신의 무용담이 널리 퍼져 보보신은 영웅이 되었다.

나는 보보신과 자주 사냥을 했는데 보보신은 성미가 급해 가끔 터무니없는 모험을 하였으므로 나의 질책을 들었다. 사냥꾼에게 필수적인 침착성과 정확성 그리고 끈질긴 근성이 부족했다. 밀림을 사랑하고 자연을 존경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어느날 우리는 라오닌의 주산맥에서 야수의 발자국을 추적하고 있었다. 우리는 승가리천과 무란간천의 상류에 있는 산정山頂에서 추적을 멈췄다. 짐승을 몰아 잡으려는 순간에 추적을 포기한 것이다.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남쪽에는 다 진자의 동그란 산정이 하얀 구름 위에 솟아있었고 서쪽과 동쪽에는 초록색 밀림이 바다처럼 퍼져 지평선이 되었다. 우리는 담배를 나누어 피우면서 황홀한 경치에 홀려 무아지경無我之景에 빠졌다.

코안경나리, 멋있는데 !’

알겠소, 내 말을. 난 이곳의 주인이란 말이요. 내가 이곳의 대장이다 이 말이요.’

난 여기서는 술주정뱅이가 아니지. 거지도 아니고 싸움꾼도 아니야.’

난 부자야. 산돼지, 사슴, 산양들 모두가 내 것이요. 수 만 마리나 되는 저 짐승들이 모두 내가 기르는 가축이야.’

알겠소? 여기는 모두가 내 것이요.’

보보신의 그 이상한 대사는 점점 커져 나중에는 나팔소리처럼 멀리 메아리쳤다.

(미개未開한 밀림密林의 거인巨人.)

 

조용한 밀림의 밤이 깊어갔다. 모닥불은 활활 타고 그 옆에 보보신이 노루가죽장화를 신은 두 발을 나무에 기대고 비스듬히 누웠다. 그 옆에 돈산이 동상처럼 부동의 자세로 앉아있었다. 마적들은 밤새 향기로운 차를 끓여 계속 찻잔을 채웠다. 새벽이 되자 주위를 흔적없이 깨끗이 정리하고 사라져버렸다.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아침 여덟 시 께 나는 눈을 떴다.

코안경나리, 뭘 좀 먹어야지.’

밀림의 성찬이 준비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돼지 뒷다리가 노란 기름을 흘리면서 다갈색으로 구워져가고 산나물과 나무뿌리로 요리한 국물이 구수하고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끓었다.

이 국물요리는 마적들에게 배웠어요. 한 그릇 더 하시오. 여기 아니면 맛볼 수 없으니까.’

식사가 끝나자 그는 짐을 챙겼다.

(어디로?)

한다미자에 가 사슴뿔을 팔아야지요.’

, 술 마시면 안 돼!’

이제 난 술은 끊었어요. 맹세코 술은 마시지 않아요!’

그 맹세가 의심스러웠으나 더 설교하지 않았다. 그 거구가 밀림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있었다.

(잘 가, 키다리, 나의 친구여!)

 

7. 사냥개들

 

포수 이반프레드뇹이 맹수사냥을 하자고 우수리에서 한다오햇자의 우리집에 왔다. 그는 호랑이를 열 마리나 잡은 명포수다. 그가 우리집에 오자 온 동네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프레드뇹이 사냥개 열 마리를 데리고 왔다. 프레드뇹이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턱으로 사냥개들을 가리켰다. 나는 사냥개를 관찰했다. 세 마리는 순종 골드견이었으나 나머지는 모두 잡종이었다. 그러나 모두 대형 개들로 사나웠다.

몇 마리는 쓸만한데 .’

요즘도 사냥만 하나?’

프레드뇹은 전형적인 동부시베리아포수다. 중키에 다부진 체구, 관자노리가 튀어나오고 면도를 하지 않은 길고 굵은 수염 속 얼굴에서는 눈이 반짝였다. 검은 반점이 많은 얼굴과 하얗고 검은 머리카락은 인삼색이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으나 프레드뇹은 덥다면서 방에서 자는 걸 거절하고 창고를 선택했으며 창고에 스토브를 피우는 것도 사양했다. 주인은 그렇고 개들은 더 고약했다. 개들은 더워서 창고에 들어오는 걸 거부하고 영하 30도의 바깥에서 뛰어놀았다. 프레드뇹과 개들은 시베리아 산속에서 살았으며 눈 위에서 잠을 잤다.

나는 추운 것은 몰라요. 덥지 않은 것은 알지만.’

그는 한겨울 산속에서도 장갑을 끼지 않았으며 외투를 입지 않았다. 사향고양이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방수바지와 점퍼만 입었다. 그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담배나 술을 하면 몸에 냄새가 베어 짐승들이 싫어합니다.’

프레드뇹의 몸에서는 소나무 냄새와 풀 향기가 났다. 그는 소금과 설탕도 먹지 않았고 차까지 멀리 했다. 인공적인 것을 싫어했다. 프레드뇹의 과거는 비밀이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으나 묻지 않았다. 프레드뇹의 개들 의 두목도 주인처럼 입이 무거웠다. 두목은마녀魔女라 불렀고 에스키모견의 암컷이었다. 송아지만큼 컸으며 개들의 절대자였다. 프레드뇹은 마녀를 매우 사랑했으며 모든 명령이나 지시는 마녀를 통해 다른 개들에게 전달되었다. 마녀에게 잡은 짐승의 1/ 5을 제공한다는 청부계약을 맺었다. 마녀가 짐승을 잡으면 칼로 잘라 던져줬다.

, 이 건 네 몫이야.’

 

나는 마녀의 싸움을 본 적이 있다. 중국인들은 집집마다 송아지만한 개들을 키웠다. 치안이 불안하여 자기 집을 지키는 개들에게는 고기덩어리를 먹였다. 때로는 사람의 시체도 주었다. 특히 땅이 얼어 시체를 매장할 수 없는 겨울에는 시체를 개들이 처리했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개는 잔인하고 사나웠다. 마녀가 세 마리의 부하들과 같이 중국인마을에 들어섰다가 열 마리가 넘는 중국개들에게 포위되었다. 중국개들이 대뜸 덤볐다. 마릴 사이도 없이 중국번견番犬과 사냥개들의 지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싸움은 수나 덩치로 봐서 번견들이 우세했다. 텃세도 유리했다. 첫 번째 전투에서 번견들이 승리했다. 사냥개 세 마리가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개를 말리려고 했으나 프레드뇹은 중재를 거절했다.

내버려두시오. 싸움은 끝장을 봐야 해!’

마녀, 덤벼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녀가 번견番犬들을 덮쳤다. 단신單身으로 열 마리의 개들에게 달려들었는데 눈에 야릇한 광채가 일고 있었다. 축견畜犬에게는 볼 수 없는 야수野獸의 눈빛이었다. 번견들이 당황했다. 뿔뿔이 흩어지면서 마녀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다. 마녀는 개들의 리더격인 잿빛개를 추격했다. 목표가 자기라는 걸 안 축견은 뒷발에 힘을 주고 버티면서 앞발로 일격을 하였으나 마녀는 몸체로 부딪쳤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힘이었기 때문에 번견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는데 그 틈에 마녀는 번견의 코를 물었다. 번견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갔으나 마녀가 추격했다. 마녀는 번견을 담벽에 몰아넣고 목줄을 물었다. 마녀가 목을 좌우로 흔들면 목줄이 끊어져 번견은 죽었을 것이다. 프레드뇹이 마녀에게 소리쳤다.

마녀, 그만둬!’

 

마녀는 밀림에서도 용감했다. 무수한 상처가 있었다. 귀가 반 쯤 잘려진 것은 산돼지에게 물린 것이다.

다음 날 우리는 밀림에 들어갔다. 나는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동물학자로부터 동물사진을 찍어달라고 의뢰를 받았다. 11월에 우리는 다도진자산맥을 동쪽으로 따라갔다. 라오닌고지대다. 고지대 밑은 돌투성이 계곡이고 개들에게 쫓긴 산돼지들이 우왕좌왕했다. 마녀는 산중턱이 있다가 산돼지들이 방향을 바꾸면 퇴로를 막았다. 50Kg이 넘는 산돼지들을 민첩하게 통제했다. 우리들은 고지대 산정에서 잡담을 하며 마녀가 훌쳐오는 산돼지를 쏘기만 하면 된다. 산돼지들이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산중턱의 숲으로 올라왔다. 순간 개짖는 소리가 딱 멈췄다. 그리고 마녀가 한 번 크게 짖었다. 그 소리를 들은 프레드뇹이 달렸다.

저 건 산돼지를 쫓는 소리가 아니야!’

무슨 소리지?’

나 보고 빨리 와달라는 소리야. 원조를 청하는 소리야!’

큰 놈이 나왔다는 소리지.’

(큰 놈?)

범이다. 범이 숲속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산마루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는데 숲 가까이 가자 개들이 다시 짖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착하는 걸 알고 용기를 얻은 것이다. 프레드뇹이 술 앞에 정지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범이 어디에 숨었는지도 모르고 숲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개들이 범을 훌쳐낼 것이다. 프레드뇹은 조그마한 바위 뒤에서 사격준비를 했고 나는 서너 발 뒤 나무에 숨어 카메라를 맞추고 있었다. 안전장치를 풀어놓은 총을 옆에 놓고. 개들이 점점 가까와졌다. 신경질적으로 짖는 개들과 굵은 소리로 짖는 마녀의 짖는 소리도 들렸다.

조심해, 범이야!’

프레드뇹이 고함을 쳤다. 개들이 짖는 소리에 섞여 범의 위협소리가 들렸다. 우우욱! 우우욱! 하는 저음이었지만 살기를 느끼는 무서운 소리였다. 개들이 10m 앞에까지 왔으나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범이 사람의 냄새를 맡고 숲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개들의 짖는 소리가 높아졌다. 범이 방향을 바꿨기 때문에 앞을 막아선 것이다. 범의 소리가 딱! 멈췄다. 동시에 킹! 하는 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범이 앞을 막은 사냥개를 덮친 것이다. 그러나 개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마녀의 짖는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범의 모습이 보였다. 황갈색 옆줄이 나무를 스치고 지나갔다. 범은 우리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을 피하여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개들의 방해를 받아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개들은 미친 듯이 짖었으나 범은 침착했다. 나무와 바위들 사이로 은폐를 하면서 도망가며 가끔 뒤따라오며 짖는 개들을 위협하여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나무와 바위들을 통해 범과 개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으나 카메라의 셔터는 누르지 않았다. 범은 개들의 등쌀에 신경질을 낸 듯 정지하여 몸을 돌려 계곡에서 범을 위로 훌치던 개를 덮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는데 그 때 위에서 밑으로 범을 추격하던 마녀가 덮쳐 범의 뒷발을 물었다. 범이 대노했다. ! 소리를 지르며 마녀를 덮쳤다. 마녀가 재빨리 우리쪽으로 물러서 위기를 모면했으나 범은 다시 마녀를 덮칠 태세였다. 범은 그 힘찬 머리를 수그리면서 몸을 움추렸다. 스프링처럼 탄력이 넘치는 동작이었다. 귀는 찰싹 몸에 달라붙었고 눈에는 푸른 광채가 일어났다. 꼬리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렸다. 기회였다. 마녀가 도살될 염려가 있었고 두 번 다시 없는 발사의 기회였다. 동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유일한 기회였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동시에 총소리가 넓은 산에 메아리쳤다. 범은 뒷발로 땅을 차고 앞발은 이미 공중에 떠있는 자세였는데 머리를 뚫고 들어가는 총탄의 충격으로 공중을 날던 몸이 수평이 되어 겨우 1m 쯤 날더니 땅에 떨어졌다. 몸이 눈속에 박혀 다리와 꼬리만 보였다.

내가 나설 무대가 없어졌어.’

프레드뇹이 웃었다.

대가리 속에 납덩이가 들어갔어요. 혼자 죽게 내버려둡시다. 죽음이란 언제나 고독한 법이니까.’

개들이 아직도 요란하게 짖었으나 리더인 마녀는 사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범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조용히 범의 꼬리 옆에 앉았다. 그걸 본 개들이 범에게 달려들려고 했는데 마녀가 화를 내자 조용해졌다. 범은 한국산이었다. 160Kg의 대호大虎였고 적갈색 털에 폭이 넓은 검은 띠 무늬가 아름다웠다.

코안경나리. 사진은 어때요?’

카메라솜씨에는 자신이 없지만 잘 찍혔을거야. 개들의 희생은 몇 마리지?’

두 마리, 한 마리는 늙은 놈이고 또 한 마리는 너무 젊은 놈이야.’

오랜 추적에 지친 개들이 모두 늘어졌다. 피를 흘리는 놈들도 있었지만 서로 핥아주고 있었다. 용감한 개들이었다. 그들은 산돼지를 추격하다가 역시 산돼지를 추격하는 범을 발견하자 산돼지를 버려두고 범에게 덤벼들었다. 그 용기가 가상했으나 프레드뇹이 던져주는 범고기는 먹지 않았다. 황혼이 다가왔으므로 우리는 산속에서 밤을 세웠다. 이튿날 프레드뇹이 범을 운반해줄 사람을 동원하려고 산을 내려가고 나는 개들과 산에 남았으므로 친해졌다. 특히 마녀는 나를 경계하는 듯 했으나 사냥이 끝나고는 나를 잘 따랐다. 기다리는 중에 사냥을 했다. 개들이 짐승을 모라오고 나는 바위 뒤에 숨어 짐승을 기다렸는데 사슴이 걸려들었다. 개들이 홀쳤다기 보다는 몰고 왔다. 개들의 포위망에 걸린 사슴은 덮어놓고 개들이 없는 방향으로 뛰었는데 내가 앉아있는 바위방향이었다. 개들의 묘기에 감탄했다. 내가 총을 들자 개들은 조용해졌다. 두목 마녀는 자기 주인이 아니라 총솜씨가 좀 의심쩍다는 표정이었으나 사슴을 쏜 후에는 존경의 표정이 되었다. 나와 개들이 사슴고기로 향연饗宴을 벌이고 있을 떼 프레드뇹이 돌아왔다. 프레드뇹은 범을 500루불(현 시가 1000만 원)에 팔았다. 나도 그 때 찍은 사진으로 80루불의 수익을 올렸다. 내가 찍은 사진은 잘 된 건 아니었다. 솜씨도 서툴렀지만 배경이 하얀 눈이었던 것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하르빈의 사진점에서 그 필름을 아주 크게 확대하여 수정하여 팔았는데 미개의 원시림에서 산 범을 찍은 것이라고 하여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우리는 다시 사냥을 하며 밀림을 돌아다녔는데 이런 사냥에서 곤란한 일은 잠은 짐승의 처리가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프레드뇹과 코안경나리가 짝이 되어 사냥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우리가 잡은 짐승을 사려는 상인들이 경쟁이 붙었으며 두 사람의 유능한 상인이 현지까지 찾아와 짐승을 가져갔다. 쿠리(중국인 노무자)를 고용한 상인들이 두 바퀴 수레를 끌고 사냥터를 따라다녔다. 좀 헐값이었으나 편리한 거래였다. 한 달 동안 범 한 마리, 산돼지 열다섯 마리, 사슴 아홉 마리를 잡았다. 밀림을 수백Km나 돌아다니다가 동지나철도 연선 사라햇자역에서 사냥을 마무리했다. 사냥개는 두목 마녀와 에스키모견 두 마리만 살아남았다. 마녀는 풍부한 경험으로 에스키모견은 강인함으로 살아남았다. 헤어지기 전 날 밤 개들이 범의 공격을 받아 한 마리를 물고갔다. 다음 날 다시 공격을 해서 개 한 마리의 앞다리를 물고갔다. 우리는 화가났다. 프레드뇹이 식사도 하지 않고 범을 추격하려고 했다.

지금 추격하면 우리가 질 거야. 승산이 있나?’

프레드뇹이 대답을 못 했다. 한 달이 넘는 사냥으로 사람과 개들이 지쳤다.

코안경나리, 범사냥을 포기하잔 말이요?’

이보게, 자네, 중국의 삼국지를 읽었나? 제갈공명은 현명한 군사軍師인데 그는 적을 유인하여 섬멸殲滅했어. 군세가 약했기 때문에 쳐들어오는 적을 기다렸다가 자연이나 지형을 이용하여 격멸시켰어. 나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존경하는데 그의 전법은 맹수사냥에도 적용되기 때문이야.’

.’

그 범은 이틀 동안 연달아 우리를 습격했어. 그러니 사흘째는 오지 않는다는 법도 없어. 더구나 어제는 개를 죽였으나 가져가지 못 했으므로 오늘 밤에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많지. 그 놈은 밤중에 오겠지만 다행히 오늘밤은 보름달이야. 눈이 하얗게 쌓여있는데다가 만월이면 범을 볼 수 있겠지?’

프레드뇹의 얼굴이 웃음이 떠올랐다. 우리는 범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우리들이 유숙하고 있는 집과 뒷산 사이에는 50평방미터 정도 되는 벌판이 있었다. 그 벌판은 하얀 눈이 쌓여있을 뿐 아무 은폐물이 없었다. 우리는 벌판에 참호를 파고 굵은 나무로 지붕을 덮었다. 프레드뇹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으나 나는 매우 추웠다. 그러나 하얀 눈이 덮인 밀림은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범은 나타나지 않고 프레드뇹은 그 추위 속에서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께 개들이 짖었다. 경계하는 소리였다.

코안경나리, 제갈공명은 현명한 전략가戰略家. 녀석이 부근에 왔소.’

뒤산 숲속에 요기妖氣가 떠돌고 있었다. 우리는 맞바람쪽에 있었으므로 냄새는 없다. 그러나 범은 나타나지 않는다. 무척 영리한 놈이었다. 새벽 3, 곧 날이 밝을 것이다. 그러나 범도 우리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드디어 범이 모습을 들어냈다. 가벼운 걸음이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주위를 경계하면서 접근했다. 30m, 20m . 아무리 밝다고 해도 야간사격은 부정확했다. 총솜씨가 문제가 아니라 시력의 문제다. 경험으로는 달빛의 사격은 조준보다 높이 올라간다. 우리는 범을 더 가까이 당기기로 했다. 18m, 17m . 이제는 범의 눈빛이 보인다. 자동차의 헤트라이트처럼 밝고 환한 빛 때문에 몸체가 잘 안 보인다. 15m, 14m . 범이 정지했다. 부동의 자세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하나, , !)

두 발의 총소리가 마치 한 발처럼 울렸다. 범이 픽! 쓰러졌다. 다음 순간 2m나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총탄이 범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전등을 비췄다. 아가리를 크게 벌린 범은 악귀 같았다. 프레드뇹이 한 발 더 발사했다. 그걸로 끝. 제갈공명선생은 위대한 전략가였다.

 

8. 밀림의 법

 

사슴사냥에는 항상 저격을 받을 위험이 따랐다. 산적山賊이 아니라도 사냥꾼을 저격하는 무법자들이 산속을 돌아다녔다. 산속에는 법률도 없고 경찰도 없다. 무법자는 피해자가 스스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

 

6월이었다. 밀림은 벌써 여름옷을 입었다. 색색가지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 푸른 밀림에 찬란한 수를 놓았다. 새벽, 방금 떠오른 태양이 황금색 빛이 나무와 풀을 비추니 새벽이슬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나는 잠복소에서 나와 부근을 돌아다녔다.

(역시.)

빙그레 웃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왔다. 바위산에 둘러싸인 이 삼림지대는 내가 좋아하는 여름철 사냥터다. 이유는 비밀이지만, 이 지대가 저습지여서 땅이 촉촉했다. 작은 동물들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한 늪이 있다. 이런 지세는 동물들이 모여드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더 특별한 이유는 이곳의 땅에 맛을 보면 짭짤한 소금기가 있다. 여름철의 동물들에게는 물 못지 않게 염분이 필요했으며 뭇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몇 년 전에 범을 추격하다가 우연히 이 곳을 발견한 후 매년 6월이 되면 혼자 이곳을 찾아왔다. 물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조지였으며 마치 숫총각이 숫처녀를 비밀리에 만나는 기분이랄까? 하필 6월에 찾는 이유는 6월이 사슴뿔을 얻는 황금시기였기 때문이다. 사슴은 5월에 뿔을 갈고 6월에는 말랑말랑한 새 뿔이 솟는데 이것이 녹용이다. 그래서 여기에 왔는데 이미 밤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작년에 지어놓은 움막에서 푹 쉬고 새벽에 너온 것이다. 뭇 짐승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거기에서 큰 숫사슴 발자국을 발견했다. 민감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추적을 했다. 사슴이 부근에 있는 것은 확연했다. 염분을 찾아 여기 오는 짐승들은 보통 3 - 4일 간 머물렀다. 참나무숲의 비탈길을 올랐다. 사슴이 즐겨 찾는 코스였다. 바람 부는 방향에 주의하면서 천천히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사슴이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사슴을 잡을 작전을 세우다가 부지중에 바위에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굴까?)

불길했다. 바위에 찍힌 발자국은 중국신을 신고 있었고 중국인 치고는 발자국이 컸다. 불안했으나 큰 숫사슴이 너무 욕심나서 추적을 계속했다. 이제는 사슴에게만 쏟았던 신경을 등 뒤에도 나누었다.

(설마 제까짓것이 .)

발자국이 단 하나라는 것도 좀 안심이었다. 밀림 추적에서는 눈 보다 귀가 더 중요하고 코도 사용했다. 나무 뒤에 사슴의 뿔이 보였다. 네 개의 가지가 난 뿔은 훌륭했다. 사슴은 뿔을 흔들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거리는 약 70m. 사격을 할 수 있었으나 더 전진했다. 몸을 땅에 딱 붙이고 살금살금 기었다. 50m. 흔들면서 파리를 쫓던 뿔이 정지했다. 사슴의 귀가 섰다. 위험을 느낀 것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사슴의 심장을 겨냥하여 발사했다.

(잡았다!)

몸을 펴고 일어서다가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렀다. 몇 년 전 산적에게 습격을 당했던 기억이 본능을 일깨웠다. 등 뒤에 인기척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저격하려다 목표물을 놓쳐 당황한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더 몸을 굴려 산포도줄기 속으로 숨었다. 3연발총에 재장전을 했다. 3연발총은 고가高價였기에 누구나 갖지 못 했다. 한 시간을 기다렸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총을 든 체 일어섰다. 사슴쪽으로 걸어갔다. 총소리가 났다. 머리 위 5Cm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얼핏 나무 뒤로 숨었다. 배낭에서 8배짜리 망원경을 꺼내 총탄이 날아온 곳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나 나무 뒤에 나온 총신을 발견했고 총을 쥔 손도 보였다. 죽느냐 죽이느냐! 그는 성능이 나쁜 단발총이고 나는 3연발이다. 그는 나를 볼 수 없으나 나는 망원경으로 그를 보고 있다. 총 쏘는 기술이 다르다. 침착하게 적을 관찰했다. 그리고 괴상한 판단을 내렸다. 그가 숨어있는 나무는 소나무였는데 그리 굵지 않았다. 내 영국제 총으로는 나무를 관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총탄을 강철탄으로 바꾸었다. 총을 들어올려 총신이 튀어나온 것을 기준으로 적의 심장의 위치를 짐작하여 겨냥했다. 방아쇠를 당겼다. 범을 쏠 때의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망원경을 들었는데 총신이 보이지 않고 아무 기척도 없었다.

(도망갔나?)

관찰점을 바꾸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앗다. 초조해서 포복으로 기어가서 쓰러져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30세 정도의 중국인이었는데 험상궂은 표정이었다. 묵묵히 시체를 보았으나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죽인 것이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었으므로 시체를 묻어주었다.

 

그 후 아퍼나센코하고 사냥을 했을 때 또 살인자와 대결했다. 아퍼나센코가 몇 년 전에 자기가 밀림 속에 만들어놓은 사냥막에 가서 사슴사냥을 하자고 해서 같이 갔는데 그 부근은 위험지대였다. 동물들 뿐만 아니라 과일과 물이 풍부해서 범죄자들이 은거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아퍼나센코의 움막은 별장 같았다. 우리는 과일과 술 그리고 스프로 식사를 마치고 밤사냥을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잠복소에서 모기에 뜯기다가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거리가 좀 멀고 어두웠기 때문에 사슴은 쓰러졌으나 곧 일어나 도망쳐버렸다. 핏자국을 확인했는데 배에서 나온 피였다.

이 놈은 멀리 못 가. 고작 3 - 400m일 것이니 내일 찾자.’

우리는 다음 날 새벽에 핏자국을 수색하였다. 내가 예상한대로 사슴은 부근 계곡에 쓰러져있었다.

저런 곳에 쓰러졌군. 가보자.’

(잠깐!)

아퍼나센코가 사슴에게 다가가는 것을 말렸다. 이상한 예감이었다.

조심! 누가 우리를 보고있어!’

그런 것 같은데 . 어젯밤에 우리집 부근에서 인기척을 느꼈어, 우리가 오기 전에 집에 누군가가 머문 것 같았고.’

나는 긴 막대기에 모자를 씌워 나무 뒤에서 슬그머니 올렸다.

(피웅!)

날카로운 총소리와 함께 모자에 구멍이 났다. 온몸이 오싹했다. 첫탄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던지 집중사격이 시작되었다. 탄환이 아퍼나센코의 구두를 스쳤다.

두 놈이야. 한 놈은 바위 뒤에 또 한 놈은 그 위 바위틈에 숨어있어.’

자넨 여기에 있어. 내가 저 놈들에게 밀림의 법을 가르칠테니.’

말릴 새도 없이 아퍼나센코가 달려나갔다. 교묘하게 총탄을 피하면서 적들이 숨어있는 산 뒤로 돌아가버렸다. 말릴 사이도 없었지만 말릴 생각도 없었다. 아퍼나센코는 20년 경력의 명포수였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탐험가였다. 5, 10,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도 불안은 느끼지 않았다. 총소리가 들렸다. 연달아 두 발이었는데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났다. 뒤에 발사된 것이 아퍼나센코의 총탄이었다. 총소리를 듣자마자 달렸다. 은폐물을 이용하여 지그재그로 달렸다. 두 발의 총탄 중 뒤의 총탄이 아퍼나센코의 것이라면 적은 한 명이 죽었고 아퍼나센코는 안전하며 다른 한 명의 적과 대치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적의 등 뒤로 접근하여 적을 죽일 작정이었다. 20m 정도 접근했을 때 한 사내가 정상에서 뒷걸음을 치며 내려오고 있었다. 중국인이었다. 밀림의 법으로 나는 사내의 등 뒤에서 발사했어야 했다. 밀림은 미국의 서부가 아니며 사람을 죽이는데 도덕이나 관습을 따지지 않았다. 먼저 보고 쏘는 사람이 승자다. 그러나 나는 쏘지 않았다. 등 뒤에서 사람을 쏠 수 없었다. 나무 뒤에 숨어 사내가 더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 사내는 뒷걸음질치면서 발사했다. 겁에 질려 무작정 발사한 것이다. 사내가 재빨리 재장탄을 하려고 하는 찰라 내가 튀어나갔다.

동작 그만! 총을 버려!’

엉터리 중국어였으나 사내가 알아듣고 총을 떨어뜨렸다. 사내는 당황했으며 사로잡힌 늑대 같았다. 음흉한 표정이었고 필사적으로 도망이나 달려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 그 놈을 사로잡았구만.’

사내는 적이 둘이나 되었으므로 체념했다. 우리는 그 사내를 꽁꽁 묶었다. 양 다리까지 묶어 눕혀놓았다.

난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했지. 지근거리까지 기어가 <손 들어!>하고 고함을 쳤는데 그 놈이 대뜸 발사를 했어. 그래서 그만 .’

총탄이 정확하게 심장을 뚫었기 때문에 즉사했고 풀속에 묻혀있었다. 마흔 남짓의 중국인이었다.

녀석, 얌전하게 굴었다면 이 꼴이 되지 않았을텐데 . 지근거리에서 <손 들어>라고 고함을 쳤는데 녀석이 대뜸 발사하지 않아.’

그만 둬! 이 녀석이 죽지 않았으면 네가 죽었겠지.’

시체에 흙을 뿌려 덮어주었다. 또 한 사내를 묶어놓은 곳에서 소리가 났다. 팔과 다리를 묶인 사내가 깡총깡총 뛰면서 도망을 가려고 했다.

죽여! 죽여! 빨리 죽여!’

사내를 다시 묶어두고 사슴을 해체했다. 해체를 끝내고 담배를 물었다. 사내에게도 담배를 물려주었다. 사내가 눈이 동그래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밀림의 살인자를 풀어주고 사슴고기를 넣은 포대를 맡겼다. 살인자의 눈에서 독기가 사라지고 생명에 대한 연민이 일어났다. 중국인에게 빵과 고기를 주고 차도 주었다. 그는 주먹만한 빵을 네 개나 먹고 사슴 뒷다리 하나를 통째로 뜯었다. 사나흘 굶주린 것 같았다.

나리, 고맙습니다.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고백을 했다. 중국인 쿠리는 하루 벌어 하룰 먹다가 노름을 했다. 노름으로 파산했다. 재산이 없어 파산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으나 일거리가 없어져버렸다. 노름꾼은 고용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전전하다가 사냥꾼의 몰이꾼이 되었다. 사냥의 기초지식이 없어 산돼지나 사슴을 잡을 수 없어 밀림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사냥꾼을 기습하여 총과 사슴을 강탈했다. 이를 시초로 아홉 사람의 사냥꾼을 기습했고 두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나리들을 기습하려고 했지요. 보통 사냥꾼이 아니라는 생각에 두려웠지만. 그런데 나리는 눈이 머리 위에 달린 것 같았지요. 기습을 하려다가 그만 기습을 당했구만요.’

우린 자네를 죽이지 않고 경찰에 넘기지도 않을 거야. 다시는 살인을 하지 못 하게 총은 압수한다.’

그는 경악했다. 그렇다 그를 석방하는 것은 밀림의 법에 어긋난다.

잔소리 말고 빨리 가! 빵과 사슴고기를 갖고 꺼져!’

중국인은 뭔가 알아듣지 못 할 말을 중얼거리더니 꾸벅! 절을 하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유쾌한 기분이었다. 살인마의 얼굴에도 인간미가 있었다는 것이 즐거웠다. 몇 달 후 사냥에서 돌아와 소도시에 도착했을 때 또 한 번 즐거워졌다. 많은 노동자들이 재목을 운반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를 발견하고 등에 매고 있던 재목을 내려놓고 꾸벅! 절을 했다.

 

9. 방황하는 사람들

 

방향을 결정하는 능력은 사냥꾼이나 등산가들뿐만 아니라 교통망이 없는 지역연구가들에게도 아주 중요하다. 만주의 밀림 특히 그 동방東方의 삼림지대는 남아프리카의 밀림 보다 넓다. 이런 지대에서 방향을 결정하지 못 하거나 잘못 결정한 사람은 밀림의 미로迷路를 해매다가 결국 죽는다. 동부 삼림을 해매다가 길을 잃어 죽은 사냥꾼을 수없이 봤다. 특히 겨울 눈 속에 쓰러져 죽은 사냥꾼들이 많았다. 사냥꾼이 행방불명되었다는 급보를 받고 수색을 한 일도 있었으나 겨울의 수색은 시체 찾는 일에 불과했다. 동부만주 밀림에서 죽은 네 명의 사냥꾼은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산양을 잡으려던 아마튜어 포수였는데 안내인도 없이 밀림에 들어갔다. 그들 중 두 사람이 사냥경험이 있다고 해서 안내인을 고용하지 않았다. 중국인엽사 리엔의 산막에서 막 잠이 들려든 때 러시아 시냥꾼들에게 실종소식을 들었다. 따끈따끈한 온돌에 등을 붙이고 있었는데 잠을 털어버리고 일어났다.

코안경나리, 그 사람들은 벌써 1주일 째 소식이 없는데 이 추위에 살아있을 것 같소?’

머리칼이 반백이 될 때까지 사냥을 했던 리엔이 참견을 했는데 동감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네 명이나 실종되었는데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이튿날 새벽 나와 리엔은 수색에 나섰다. 리엔이 이 지방에서 7 - 8년이나 살고 있었으므로 밀림의 지리는 환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손수 만든 지도를 펴들고 밀림의 구석에서 구석까지 면밀하게 수색했다. 우리는 도중에 다섯 명으로 구성된 중국인 수색대와 합류하여 수색을 했는데 이틀째에 그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정말 어이없었다. 그 발자국은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하면서 밀림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귀로를 찾아 가다가 바꾸고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가 포기했다. 갈팡질팡이었다. 야숙을 한 곳도 발견했다. 부랴부랴 얼기설기 만들었기에 얼어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발자국을 따라다니는 우리도 지쳤다. 리더인 리엔은 얄밉도록 느렸다. 생목숨이 걸린 일이라면서 아무리 다급하게 독촉을 해도 그는 성급하고 경솔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코안경나리, 우리는 지금 시체를 찾는 중이며 시체를 찾으려다가 산 사람이 죽을 순 없소.’

그의 말대로였다. 첫 희생자를 발견했다. 젊은 대학생이었는데 낙오한 것 같았다. 큰 나무뿌리에 난 구멍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동사凍死했다. 그런 구멍에서 영하 40도의 추위를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어리석음이 애처로왔다. 거기서 얼마 안 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떨어져나갔다. 세 사람의 방향은 철도를 향하고 바로 가려고 했는데 한 사람이 반대하고는 반대쪽으로 갔다. 얼마 안 가서 반대쪽으로 간 사람의 시체가 있었다. 눈바닥에 쓰러져 숨졌는데 눈에는 절망이 어려있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시체를 들것에 매고 나머지 두 사람의 발자국을 쫓았다. 두 사람의 발자국은 정확하게 코스를 잡아 철도역을 향하고 있었다.

(, 기적이 .)

애석했다. 언덕 하나만 넘으면 철도와 인가가 보이는 지점에 숨져있었다. 영하 40도의 추위는 그들의 체온을 나흘 이상 유지시켜주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워이샤헤역 부근에서 실종사건이 발생했다. 9월 초 20세 남짓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 전에 하르빈 부근에서 꿩과 오리사냥을 했다면서 안내를 부탁했다. 친구의 소개장을 믿고 워이샤헤 지선支線에서 5Km 가량 떨어진 호산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산을 돌아 경사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에는 도끼를 모르는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울창했고 맹수들이 서식했다. 정오께 청년을 만나기로 약속한 경사지에 도착해서 청년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났는데 청년이 오지 않았다. 총탄으로 신호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밤이 되자 모닥불을 피우고 밤을 세우며 기다렸다.

(, 나를 찾아 기다리다 지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나?)오후 4시께 야부로니야역에서 기차를 타고 워이샤헤로 돌아왔다. 그는 집에도 없었다. 불길했다. 나는 즉시 러시아인과 중국인 포수를 고용하여 두 마리의 말을 끌고 호산으로 되돌아갔다. 호산에도 청년은 없었다. 그리고 두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중국인포수는 그 발자국을 보더니 벌벌 떨면서 말을 데리고 돌아가버렸다. 러시아인 포수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공포를 발사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청년의 부모에게 알리고 수색대를 증원하여 수색을 시작했다. 5일이 지나서 수색대가 급한 보고를 했다. 반죽음상태의 사람을 발견했다는 보고였다. 큰 나무뿌리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의 소지품을 뒤져보고 나는 그가 찾던 청년임을 알았다. 청년은 1주일 만에 몰라보게 변모했으며 반 실신상태였다. 그는 나도 몰라보고

어디고 동쪽이냐?’

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를 모스코바의 정신병원으로 보냈는데 청년은 1년만에 회복되었다.

 

<나는 선생님과 헤어져 .>

청년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호산을 돌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갔습니다. 선생님과 약속에 늦을 까봐 빠른 걸음으로 갔는데 얼마 안 가서 밀림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잃었습니다. 나는 남쪽이라고 짐작되는 방향으로 걸었는데 밤이 되자 야영을 했습니다. 불을 피우면 안심이 될 줄 알았는데 불을 피우니 더 불안해졌습니다. 총을 쏘았습니다만 허허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날이 새자 나는 다시 방향을 정하고 달리다싶이 걸었습니다. 오후에 쓰러진 나무와 도끼자국을 보았습니다. 가끔 짐승을 만났습니다. 짐승에게는 관심이 없었는데 얕은 계곡을 건너다가 무을 퉁기는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물을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았습니다. 나는 와락 겁에 질려 총을 들고 나무에 기어올랐습니다. 범이 어슬렁어슬렁 내가 올라간 나무 밑으로 왔습니다. 범은 이상하다는 듯 오랫동안 올려다보더니 나무 밑에 누웠습니다. 나는 오들오들 떨었습니다. 범은 두 시간이 넘게 자고있었습니다. 다행히 산양 몇 마리가 물을 마시러오자 범은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산양들이 물을 마시기 시작하자 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갔습니다. 그 큰 몸이 소리하나 내지 않고 기어갔습니다. 7 - 8m까지 접근하자 땅을 차고올라 산양을 덮쳤습니다. 산양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범은 가장 큰 산양에게 덮쳐 앞발로 산양을 쳐서 쓰러뜨리고 순식간에 목줄을 물어 뜯어버렸습니다. 범은 산양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와 또 걷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을 걸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총도 성냥도 잃어버리고 옷은 찢어지고 구두도 잃어버렸습니다. 정신이 들면 <사람 살려라!> 라고 고함을 쳤는데 메아리만 들렸습니다.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꿈꾸듯 사람의 얼굴을 봤으나 몹시 피곤해서 잠만 잤습니다. 모스코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제 정신을 찾았습니다. 바이콥 선생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방향을 결정하는 기초지식이 없이 밀림에 들어온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려주는 사례다. 사냥 초심자의 필수지식인데 사냥경력 10년이 넘는 나도 밀림에서 방황, 구사일생九死一生을 한 적이 있다.

 

한 겨울, 러시아와 만주 국경에 있는 습지濕地밀림이었다. 나는 표범 한 마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눈표범이라고 불리우는 희귀한 표범이었다. 완전히 흰색은 아니고 검은 반점이 희미하여 희게 보였으며 부드럽고 긴 털이 훌륭했다. 표범을 발견하자 욕심이 나서 덮어놓고 발자국을 따라갔다. 연 이틀을 따라갔으나 표범과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대개 맹수는 추적을 눈치채면 되돌아서 공격을 하는 법인데 그 표범은 도망만 쳤다. 추적 3일째가 되자 나는 손을 들고말았다. 그러나 때가 늦었다. 무턱대고 추적을 하다가 밀림 한가운데 들어서버렸던 것이다.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발자국조차 없어져버렸다. 나는 동서남북 방향은 알았으나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가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살을 에는 듯한 시베리아 강풍에 눈이 비스듬하게 퍼붓고 시야도 보이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당황하면 안 돼. 침착해야 해. 바이콥, 네가 밀림에서 죽으면 사냥계의 웃음거리가 될 게 아니냐?)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우선 커다란 고목의 구멍에 들어가 눈을 피한 후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서너 대 태우면서 그저 방향을 정해놓고 일직선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했다. 입을 꼭 다물고 뼈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견디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날이 어두워졌다. 미리 물색한 큰 바위 밑에서 야영을 했다. 눈으로 벽돌을 만들어 바람과 눈을 막고 속에서 불을 피워 식사를 하고 충분히 휴식을 했다. 다음 날 다시 행군을 시작했는데 가도가도 밀림뿐이었다. 그러나 그 날 오후에 도끼자국이 난 나무를 발견했다. 빙그레 웃었다. 부근의 나무들을 면밀히 조사했다.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밀림의 기호가 있었다. 밀림에 드나드는 나뭇꾼들은 길을 잃지 않으려고 나무에 기호를 새겨놓는데 나무에 도끼로 가볍게 친 자국들이 있었다. 나는 진로를 바꾸어 기호를 따라갔다. 그날 밤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국인마을이었다.

 

10. 곰사냥

 

넓은 삼림지대로 특정지울 수 있는 만주 - 동부중국지대에도 산악지대가 있다. 한국의 백두산 부근도 그런 산악지대의 하나다. 나는 그곳에서 박물관으로부터 의뢰받은 생물수집을 했다. 3월이라 계곡의 얼음이 녹기 시작했으며 눈은 다 녹아버렸다. 눈이 녹아버리면 짐승들의 발자국이 사라져 추적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산막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중국인 노인 한 사람이 찾아와 거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노인은 심마니였는데 부업이 있었다. 곰의 동면굴을 찾아 포수들에게 정보를 팔았다.

굉장히 큰 붉은 곰입니다. 작년 가을 나무꾼이 두 명 죽었는데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뻔한 일입니다.’

여기는 포수들이 많은데 왜 하필 나를 찾아왔소.’

코안경나리 밖에 그 곰을 죽일 포수가 없습니다. 워낙 사나운 놈이어서 다른 포수들은 겁을 먹고 있지요.’

나는 그의 제안을 수용했다. 노인은 한쪽 눈을 깜박이며 곰을 잡으면 자기에게는 곰의 내장 일부만 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노인의 잔꾀를 다 알면서 속는 척 했다. 곰의 내장 일부는 쓸개를 일컫는 것이고 곰의 쓸개 - 웅담熊膽은 곰 전체보다도 더 값이 나갔다. 노인의 제안을 두말없이 승낙하자 노인은 속으로는 쾌재快哉를 불렀으나 그 걸 숨기려고 애쓰고 있었다. 노인은 약속대로 그 이튿날 새벽에 나타났다. 허리에 볶은 쌀자루를 매고 굵은 참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그게 노인의 곰사냥 여장旅裝이었다. 웃었다. 그리고 나도 총 한 자루와 위스키 한 병 그리고 상비품 몇 가지를 챙겨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노인은 마치 공원을 산책하는 것처럼 천천히 걸었다. 지팡이로 녹은 땅을 치면서 가끔 주위를 살피기도 했다. 늦게야 그 노인이 부업副業을 하면서도 본업本業을 같이 하는 걸 눈치챘다. 산삼을 찾기 위해 일부러 길을 돌아갔으나 나는 빙그레 웃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봄이 찾아온 만주 산악지대의 풍경이 즐거웠던 것이다. 눈이 녹아 얼음이 풀린 땅에서 구수한 흙냄새가 풍기고, 누런 풀들도 초록잎으로 변했다. 바람은 차가왔으나 양지는 따스해서 견딜만 했다. 우리는 가끔 양지에서 휴식을 했다. 노인은 산삼山蔘얘기를 했다. 산삼은 동양의 명약이라고 했다. 산삼은 극동의 우수리지방, 만주의 길림성 그리고 한국에서 야생으로 자란다. 길이 약 75Cm의 다년초며, 잎이 3 - 4개다. 산삼은 암수가 있는데 암수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면서 웃었다. 노인과 걷는 것이 즐거워서 독촉을 하지 않았다.

노인, 어두워지는데 어디서든 자야 될 게 아니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만 더 가면 좋은 여인숙旅人宿이 있다고 했다. 서너 평 되는 동굴이었는데 입구에 문이 있었고 보드라운 풀이 양탄자처럼 깔렸다. 연기 잘 빠지도록 만들어진 난로도 설치되어 있었다.

내 집이요. 작은 마누라가 없는 게 좀 아쉽지만 .’

노인이 난로에 불을 피우면서 웃었다. 봄냄새와 향기로운 차로 인해 노곤해졌다. 나는 반 쯤 눈을 감고 곰얘기를 들었다. 붉은 곰과 검은 곰이 있는데 거기 사는 곰들은 초식 보다 육식을 좋아했으며 성질이 사나웠다. 영토권다툼을 할 때는 400Kg이 넘는 놈들이 싸우기 때문에 고함소리로 온 산이 찌렁찌렁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 상대가 사람이나 호랑이라고 해도 예외가 없다. 3년 전 쯤, 노인은 산삼을 캐러다니다가 호랑이의 노호를 들었다. 두려워서 노안은 얼핏 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랑이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는데 그 사이에 웍! ! 하는 곰의 노호소리도 가까워졌다.

(옳지, 왕대와 붉은 악마가 붙었구만.)

잠시 후 왕대와 붉은악마가 모습을 나타냈다. 붉은악마는 씨름꾼처럼 앞발을 내밀면서 뒷발로 서 있었는데 콧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곰은 슬슬 뒤로 물러서고 있었는데 그것은 호랑이가 무서워서 아니라 호랑이가 곰의 주위를 빙빙 돌고있었기 때문에 등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등을 공격당하면 치명타를 입는다. 호랑이는 주위를 돌고 있다가 곰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곰이 틈을 보이지 않았다.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곰의 억센 두 팔에 잡혀 찢어진다. 답답해진 호랑이가 포효했다. 곰은 꿈쩍도 하지 않더니 오히려 호랑이의 포효를 듣고 돌진했다. 호랑이가 몸을 돌려 피했고 곰은 등을 보였다. 호랑이가 날쌔게 곰의 등에 뛰어오르면서 앞발로 곰의 뒤통수를 치고 목덜미를 물었다. 호랑이의 일격에 곰이 비틀거렸으나 곰은 두 팔을 벌려 호랑이의 허리를 안았다. 호랑이는 곰에게 허리를 잡힌 것이 싫어 물었던 목덜미를 놓고 펄을 물었다. 그러나 곰은 허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호랑이의 머리를 깨물었다. 고통스러운 듯 호랑이가 크게 포효를 하며 네 발로 곰의 가슴을 차면서 곰에게서 풀려 나왔다. 곰이 계속 호랑이에게 덤볐으나 호랑이는 슬슬 뒷걸음질치며 피했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숲으로 사라졌다.

이튿날부터는 산이 높아지고 길이 험악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되죠?’

, 별로 멀지 않아요. 2 - 3일이면 충분해요.’

(2 - 3?)

노인이 또 나를 속였다. 곰의 쓸개(웅담熊膽)를 내장 일부라고 속였고, 산삼을 캐려고 길을 속였고, 얼마 안 되는 거리라고 했던 것이 꼬빡 3일이 걸렸다. 그 날 하오에 노인은 또 밉지 않은 짓을 했다. 고기를 좀 잡아먹자고 하더니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에는 무릎 정도 깊이의 물이 바위들 틈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노인이 물속에서 바위틈을 더듬어 고기를 잡았다. 30Cm 남짓의 기괴한 모습을 한 고기를 한 시간에 열다섯 마리 잡았다. 나무꼬챙이를 만들어 고기를 꿰어 모닥불 주위에 꽂아놓고 꼬챙이를 빙빙 돌리면서 소금과 후추를 뿌리면서 구웠다. 고기는 기름냄새를 풍기면서 누르스름하게 익었다. 생긴 것과 달리 뼈가 많고 살이 적었으나 아주 맛있었다.

이 건 곰이 좋아하는 물고기입니다. 곰이 잡는 것을 보고 배웠어요. 그래도 고기잡는 솜씨는 곰을 따라가지 못 해요.’

(곰이 어떻게 고기를 잡느냐고?)

 

노인은 몇 년 전에 여 왔다가 기겁을 했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나서 처음에는 지진이 났는가 의심했으나 검은 곰 한 마리가 고기를 잡고있었다. 곰은 커다란 바위를 들어올려 물속에 있는 바위를 내려쳤다. 그 충격으로 바위 밑에 잠자고있던 고기들이 기절을 하여 떠올랐다. 기다리고 있던 새끼곰들이 주워 땅 위로 던졌다. 한두 시간 동안에 물고기를 산더미처럼 잡았으며 세 마리 곰들은 포식을 했다. 나는 깔깔 웃었고 그 날은 곰사냥을 잊어버리고 밤을 세웠다. 그날 저녁네는 노인이 가재를 잡아왔다. 빨갛게 익은 가재는 구수했으며 고기 대가리와 뼈로 끓인 스프도 맛있었다. 노인은 거짓말쟁이였으나 멋이 있고 낭만이 있었다. 밤에 노인의 과거를 들었다. 노인은 가난한 나무꾼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밀림과 산악지대를 돌아다녔다. 젊었을 때는 아버지를 따라 나무꾼이 되었으나 너무 힘이 들어 그만두었다. 40세 때부터 산삼과 약초를 캤다. 그가 18년 동안 캔 산삼만 50여 뿌리가 넘었으며 낭비를 안 했으면 큰 부자가 되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도시약종상都市藥從商의 부탁을 받고 산삼과 약초를 캐서 큰 돈을 벌었다.

‘6년 전 일입니다. 약초를 캐면서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산삼지대였으나 여지껏 발견한 곳과는 좀 달랐습니다.’

어떻게 다르냐고요? 냄새가 났습니다. 산삼냄새.’

노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흥분했다. 한참 냄새를 추적하다가 주위를 살폈다. 새들이 조용히 울고 있을 뿐 적막했다. 눈을 감고 냄새를 따라갔다. 노인의 코에 강렬한 냄새가 스몄다.

(여기다!)

노인이 엎드려 풀을 헤쳤다. 있었다. 하얀 산삼꽃이 있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몰아쉬고 낫으로 주변의 잡초를 잘랐다. 잡초를 잘라내다가 또 놀랐다. 잘려진 잡초에 산삼꽃이 있었다. 1m 간격으로 산삼 두 뿌리가 발견되었다.

(됐다. 이젠 그놈의 약종상영감의 빚도 갚고 몇 달 쯤 계집을 끼고 술을 먹을 수 있겠다.)

노인은 흥분끼가 사라지지 않은 기분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몇 미터 쯤 가던 그가 돌아섰다. 어디서 냄새가 났다.

(설마, 그럴 리가?)

노인은 호미로 구덩이를 파서 산삼망태기를 묻었다. 그래도 냄새가 머물고 있었다. 일대를 구석구석 조사했다. 있었다. 무려 네 뿌리가 더 발견되었다. 도합 여섯 뿌리다. 도시에서 대궐집을 사고도 남을 수확이었다.

그래서 대궐집을 샀소?’

내 물음에 노인은 슬픈 표정이 되었다.

샀습니다. 분명 대궐집을 샀는데 두 달 후에 팔았지요. 대궐집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집 판 돈으로 한 반 년 동안 술과 계집 그리고 노름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그리고 무일푼이 되자 다시 삼으로 들어왔습니다. 보시요!‘

노인이 별안간 벌떡 일어서더니 아랫도리를 벗었다. 그의 사타구니에는 생식기가 없었다.

하르빈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눈을 또 깜박거렸다. 그는 이튿날 오후 뒤를 따르던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코안경나리, 이제 정말 다 왔어요. 저기야요, 저기 .’

그가 가리키는 곳은 구름 위였다. 험악하고 높은 산줄기에서 거장 높고 험한 곳이었다. 거기까지 가자면 아무래도 또 하루가 걸릴 것 같았다.

나리, 이제부터는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곰이 들으니까.’

그 날 밤 우리는 또 동굴에서 야영野營을 했다. 모닥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나뭇가지로 입구를 가렸고 노인도 말없이 잠에 들었다. 새벽 4시께 밖은 어두웠는데 노인이 나를 깨웠다. 노인은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곰은 100m 쯤 떨어진 산중턱에 있었다. 산중턱에는 한두 평 쯤 되는 평지가 있었고 그 구석에 동굴이 있었다. 살금살금 기어가던 노인이 동굴을 가리켰다. 나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굴 입구에는 나뭇가지와 낙엽들로 위장되었으며 아무 소리도 없었으나 요기妖氣가 떠돌고 있었다. 노인이 돌을 몇 개 주워서 굴속에 던졌다. 첫 번째 돌에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두 번째 돌을 던지니까 이상한 소리가 났다. 노여움을 참는 신음소리 같았다. 세 번째 돌을 던지자 으으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우억! 우억! 위협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막무가네로 연달아 돌을 던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힌 곰이 무서운 노호를 지르면서 굴 밖으로 튀어나왔다. 큼직한 불곰이었다. 곰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 큰 공처럼 나를 덮쳤다. 고개를 숙여 공이 구르듯 달려오기 때문에 조준점이 보이지 않았다. 2연총이라 단 두 발로 치명상을 입히지 못 하면 내가 죽는다. 그래서 나는 곰을 7m까지 바짝 당겨놓고 첫탄을 발사했다. 어깨를 뚫어 심장에 보낼 셈이었으나 곰의 몸이 동그랗게 되어 있었으므로 심장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어깨의 강한 충격으로 곰이 옆으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러나 이내 일어나 돌진했다. 5m 앞에서 벌떡 일어서서 양 팔을 벌리고 덮쳐들었다. 어깨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눈은 악귀처럼 충혈되었다. 그 때를 기다리던 나는 두 번째 탄환을 곰의 눈 위 이마에 보냈다. ! 하고 탄환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곰이 주춤했으나 넘어지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서너 번 흔들더니 터벅터벅 다가왔다. 뒤에 있던 노인이 아앗! 소리를 쳤다.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서너 발 뒤로 물러섰을 뿐 도망치지 않았다. 곰은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곰의 충혈된 눈은 먼 허공을 보고있었고 걸음걸이는 몽유병자처럼 비틀거렸다. 곤은 내 앞 1m도 안 되는 코앞에서 쓰러졌다. 네 다리가 여덟팔자로 벌어졌다.

노인, 끝났어. 다 끝났어!’

호화, 호화!’

노인이 웃었다.

코안경나리 곰 쏘세지를 먹어봤소?’

곰 쏘세지?’

천하일미天下逸味. 내가 만들테니 불 좀 피우시오.’

노인이 시퍼런 호주머니칼로 곰의 뼈를 가르고 곰의 내장을 1m 가량 잘라냈다. 동면冬眠 중이었으므로 내장이 깨끗했다. 노란 기름끼만 흘렀다. 장의 한쪽 끝을 묶고 내장속에 곰의 피와 쌀을 넣었다. 나뭇가지에 돌돌말아 불에 구웠다. 곰 쏘세지는 열기에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면서 노르스름하게 구워졌다. 기름이 뚝뚝 떨어져 불길이 푸지직거렸다. 우리는 따사한 봄볕 아래 풀밭에 앉아 화주를 마시면서 곰의 쏘시지를 먹었다. 과연 찬하일미였다. 고소하고 향기로웠다.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때만은 독한 화주를 서너 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노인이 재빠른 솜씨로 곰의 내장 일부 - 쓸개를 도려내는 것을 웃으면서 보았다.

노인, 그 게 웅담이요? 산삼 보다 더 비싸다는 .’

노인은 장난하다 들킨 아이처럼 놀라더니 이내 한 쪽 눈을 찡긋 감으면서 웃었다.

 

11. 노 마적老馬賊의 복수

 

푸른 하늘이 거울처럼 뚜렷하게 미잔헤호수湖水에 비쳤다. 흰구름이 한가롭게 떠있고 초원은 녹색 페르시아주단을 펼친 듯 아름다웠다. 아침공기는 차갑고 투명했다. 9월의 미잔헤호수 길을 말을 탄 두 사내가 질주했다. 주인은 환갑이 가까운 나이의 중국인이었으며 훌륭한 안장을 갖추었다. 그의 손등과 하인의 손등에는 매가 한 마리씩 앉아있었다. 매는 날개짓을 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머리 위에는 철새들의 긴 행렬이 지나갔다. 앞선 주인은 백마를 타고 푸른 비단옷에 표범가죽으로 만든 털모자를 썼다. 넓은 얼굴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무표정하고 위로 쭉 째진 검은 눈은 날카롭게 빛이 났다. 옛 중국그림의 도사 같은 얼굴이었으며 악이든 선이든 극에 달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 고장에서 베이찬나리라고 불리우는 유복한 지주地主였다. 그는 다양한 곡물穀物을 러시아나 일본에 반출하고 공장에서 기름을 짜고 수수로 화주도 제조했다. 최근에 크게 한 몫 번 듯 거액을 은행에 예금하고 매사냥을 즐겼다.

나리, 백조가 울고 있습니다.’

, 그런 것 같다.’

기사들은 기복起伏이 심한 습지濕地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몽고말은 이런 곳에서 잘 적응하여 쏜살같이 속력을 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서 세 마리 네 마리씩 헤엄을 치고 있던 백조가 위험을 감지한 듯 두목백조가 나래를 치며 긴 목을 세워 울었다. 기사들은 호수 가까이에서 말을 내렸다. 매의 사슬을 풀어주고 손등을 치켜올렸다. 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백조를 발견했다. 매는 힘차게 나래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당황한 백조가 물을 차며 날아올랐다. 백조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수직으로 공중으로 치솟았다. 매가 백조의 작전을 알아챈 듯 백조무리의 중간지점을 뚫고 들어갔다. 매의 목표가 된 백조가 비명을 지르면서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건 매의 작전이었다. 두 마리의 매가 백조를 아래 위에서 협공했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백조에게 덮쳤으며 한 마리는 백조의 날개를 또 한 마리는 백조의 목을 찍었다. 백조는 있는 힘을 다 하여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했으나 매 두 마리의 중량에 눌려 슬픈 소리로 울면서 떨어져내렸다. 기사들은 그 처참한 공중의 싸움을 보고 있다가 백조가 떨어진 곳으로 말을 달렸다. 그들은 말을 달리면서 <- - - !>라고 고함을 질렀는데 매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격려였다. 승부는 이미 끝났다. 두 마리의 매가 숨이 끊어진 백조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누르고 있다가 주인들이 들이닥치자 목을 굴리며 승리의 개가를 올렸다. 베이찬은 백조의 심장을 꺼내 두 개로 나누어 매에게 먹였다. 베이찬은 3년 전에 알에서 막 부화孵化한 매를 둥지에서 잡아와 손수 길러 훈련을 시켰다. 베이찬과 매들은 한 방에서 기거했고 식사도 함께 했다. 베이찬은 매들을 자식처럼 길렀다. 베이찬은 백조를 말안장에 묶고 달리다가 또 말을 멈추었다.

저 숲속에 꿩이 있어. 두서너 마리가 있어. 고이지 넌 저리로 가서 꿩을 몰아.’

하인이 사라지자 베이찬은 말에서 내려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 꿩 한 마리가 숲속에서 날아올랐다. 꿩은 움직임이 느렸다. 꿩의 움직임을 보면서 매를 놓아주었다. 꿩은 날아갈 방향을 잡기도 전에 매의 습격을 받았다. 아름다운 깃털이 흩어지면서 꿩이 비명을 질렀다. 꿩은 매의 상대가 되지 못 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부리로 서너 번 공격하자 숨이 떨어졌다.

, 저 놈 봐. 제법 솜씨가 빨라졌어.’

베이찬은 꿩의 심장을 매에게 주었다. 베이찬은 총사냥은 싫어했다. 훌륭한 사수였으나 총 쏘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멀리서 총소리가 났다.

나리, 너무 덥습니다.’

충복忠僕 고이지노인이 은근히 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저 건 뭐냐?’

러시아 사냥꾼입니다.’

베이찬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저쪽 들판에 사냥꾼이 보였다. 40대였으며 양 어깨에 잡은 꿩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사냥꾼이 개를 데리고 있었는데 사냥개가 베이찬들을 보고 달려들며 짖었다.

돌아와, 쥬크!’

사냥꾼이 불렀으나 개는 주인의 명령에 아랑곳없이 베이찬에게 달려들었다. 베이찬이 개가 달려오는 쪽으로 말을 몰았다. 버릇없는 개를 징벌懲罰하려고 했다. 그 때 말과 개 사이 숲에서 꿩이 날아올랐다. 당황한 꿩이 베이찬의 머리를 스치듯 날아갔다. 베이찬의 손등에 앉아있던 매가 그 걸 놓칠 리 없었다. 매가 번개처럼 날아 꿩의 배를 발톱으로 찍었다. 그런데 그 때 총소리가 울렸다. 꿩이 날아오르는 것을 포수가 반사적으로 겨냥을 하여 꿩과 매를 한꺼번에 쏘았다.

어때, 내 솜씨가. 한꺼번에 두 마리를 잡았어.’

러시아포수가 자랑스럽게 말하며 재장탄을 했다. 베이찬은 멍! 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개가 떨어진 매한테 달려가는 것을 보자 미친 듯 고함을 치며 말을 달려갔다. 개가 한 발 빨랐으나 아직 숨지지 않은 매의 무서운 눈을 보고 달려들지 못 했다. 매의 노란 눈은 마치 불이 타는 듯 했다. 베이찬은 미친 듯 양 손으로 매를 안고 상처를 조사했다. 날개 밑에 총탄자국이 났다. 매가 점점 힘을 잃었고 다리와 날개가 경련을 일으키더니 끝내 눈을 감았다. 베이찬은 죽은 매를 옷소매에 넣고 일어섰다. 표정이 없었다.

당신 매였구만. 그 따위 매가 뭣이라고 너무 슬퍼마시오. 당신은 또 매를 잡아 훈련시킬 수 있잖소. 많이 있으니까 한 마리 더 잡으시오. 우리나라에서는 매를 잡으면 상금을 받소.’

베이찬은 한 마디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중궁인 대인은 자기 감정을 밖으로 들어내는 것을 금기시禁忌視 하였다. 러시아인은 중국인의 풍속이나 관습을 몰라 베이찬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서 넉살좋게 말했다.

노인, 나는 하르빈에서 왔는데 오늘밤 잘 곳이 없소. 노인 집이 부근에 있다면 하룻밤 유숙留宿할 수 있겠소? 물론 적당한 숙박비를 지불하겠소.’

<적당한 숙박비>란 말도 좋지 않았다. 베이찬이 러시아인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누추陋醜한 집이지만 .’

러시아포수는 기뻤다. 꿩을 너무 많이 잡아 무거웠고 배도 고팠다. 그는 고이지를 따라 마을에 들어갔다. 고이지가 방으로 안내했다. 러시아인과 그의 개들은 지쳐 쓰러졌다. 중국인들은 손님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러시아인은 중국의 예를 몰랐다. 여덟팔자로 누워있다가 베이찬을 맞았다. 베이찬이 향기로운 차를 대접했다. 무표정이었다. 러시아포수가 몇 번이나 매를 쏜 게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명하려고 했으나 베이찬은 부지도(모른다)라고만 되풀이했다. 향기로운 차에 독한 화주가 섞여있었기 때문에 러시아포수는 베이찬이 돌아가자말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베이찬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판을 산책하며 기다렸다. 사슴 우는 소리와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베이찬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오직 하인 고이지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주인의 동정을 살폈다. 고이지는 주인을 30여 년 간 모셨다.

 

베이찬이 지금은 무역업貿易業을 하지만 10여 년 전에는 유명한 마적두목이었다. 7의 마적 - 400여 명의 마적을 지휘하는 총두목이었고 고이지는 심복心腹이었다. 베이찬은 마음이 넓고 너그러웠으나 한 번 화를 내면 끝장을 보는 무서운 성격이었다. 어느 날 부하들이 마을을 습격했을 때 부두목이 마을 처녀를 능욕凌辱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부두목은 그와 20여 년을 같이 한 사이였으며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가락을 자르면서 용서를 빌었으나 베이찬은 용서하지 않았다.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자기 권총을 부두목에게 던져주었다. 총살하지 않고 자살할 기회를 준 것이 베이찬이 부두목에게 베푼 온정이었다. 고이지는 아까 매가 죽었을 때 베이찬의 표정을 보았다. 자살한 부두목을 떠올렸다. 베이찬이 마당 한구석에 앉아있었다. 작은 무덤을 만들었고 죽은 매가 있었다. 베이찬은 죽은 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깊은 사념思念에 잠겨있었다. 베이찬은 푸른 하늘에서 나래짓을 하는 매를 사랑했다. 매는 나이를 먹었으나 그 사냥기술은 더 원숙해졌다.

(좀 더 살았으면 노후를 편안히 해줄 작정이었는데 .)

베이찬이 담뱃대를 털고 일어나 매를 무덤에 넣고 흙을 덮었다. 그의 눈에 새파란 불이 일었다. 베이찬은 러시아포수가 자고 있는 건물로 산책이나 하는 것처럼 다가갔다. 아무렇게나 걷는 것 같아도 발소리가 전혀 없었다. 마적의 동작이었다. 베이찬은 러시아포수가 처마에 매달아놓은 꿩을 풀어 방안에 던졌다. 러시아포수는 여전히 골아떨어졌다. 베이찬이 한참 동안 잠든 러시아포수를 내려다보았다.

(하기는, 억울하겠지. 매 한 마리 때문에 죽는다는 건 억울할거야. 그러나 너는 매 뿐만 아니라 나도 죽였어.)

베이찬이 창고로 가서 석유통을 들고왔다. 고이지가 말했다.

나리, 바깥바람이 찹니다.’

잠깐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머리를 가볍게 흔들면서 석유통을 들고 갔다. 고이지는 화석처럼 몸이 굳었다. 석유를 뿌리고 샤벨로 석탄을 퍼날랐다. 푸른 불길이 치솟았다. 베이찬은 문을 밖에서 걸어잠그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붉은 불꽃이 연기와 함께 솟구쳤다. 검은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베이찬은 방문을 열고 불꽃을 보고 있었다. 입언저리에 악마 같은 웃은이 베었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집 한 채가 타면서 온통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는데도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집안사람들이 불길에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은 고이지의 소행이었고 만족했다. 20여 분만에 불이 사그라졌을 때 건물은 재만 남았다. 한참 뒤에 베이찬이 화재 현장을 조사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뼈 한 조각도 없었다. 뼈까지도 없는 것은 또 고이지의 소행이었다. 고이지가 포대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러시아포수는 잠에 취해 숨지고 뼈도 들판에 버려졌다. 불 때문에 한쪽이 열렸던 어둠이 다시 내려앉고 베이찬도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나 좀 슬픈 기색이 있는 것 같았다. 복수를 했으나 매는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매와 인연도 사라졌고 노후의 즐거움까지도 사라져버렸다.

(사냥도 이제 그만두어야지. 내 나이 벌써 환갑이 넘었는데 .)

베이찬은 싸움터에서 잃은 그의 유일한 아들 생각에 마음속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12. 첫탄

 

밝은 겨울의 대낮이었다. 기운차게 곧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눈부신 2월의 햇빛이 반짝였다. 햇볕이 하얀 눈에 반사되어 연분홍색으로 변해 햇솜이불 같은 눈 위에서 춤췄다. 입으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 계곡을 가로질러 산을 하나 넘고 도라헤자강으로 내려갔다. 강가에 산돼지들이 모여들었다는 정보였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험한 경사傾斜를 타고넘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무성한 좁은 계곡을 지나 강으로 나갔다. 무수한 산돼지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혔고 수십 핵타르나 되는 벌판이 산돼지들에 의해 파헤쳐졌다. 개를 데리고 오지 않았으므로 최근에 난 선명한 발자국을 탐색했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밀림의 까마귀소리는 시체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강 상류에 도착해서 큼직한 범 발자국을 발견했다. 아주 선명했으며 아마도 한 시간 이내에 찍힌 것이다. 범은 돌맹이가 많은 계곡을 지나 산 위로 올라갔다. 부드러운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힌 것으로 미루어 범은 뭣인가 운반을 하고 있었다. 범의 발자국 옆에 분홍색 피가 흘러있었으므로 산돼지를 물고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사태가 이렇게 판명되자 잠시 망서렸다. 나는 수십 번이나 범과 대결했으나 단독으로 대결한 것은 불과 여나무번뿐이다. 또 범을 잡으려고 만나는 것과 우연히 만나는 것은 아주 딴판이 된다. 대비도 문제려니와 마음가짐도 다르다. 그러나 두려움 보다는 정열이 드셌다. 총을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 대비하고 산돼지를 버리고 범을 추적을 했다. 갈수록 밀림이 어두웠고 까마귀는 머리 위를 날았다. 걸음을 멈추었다. 냄새를 맡았다. 동물원에 가면 맡는 그 시금털털한 냄새다. 엎드려서 기었다. 덤불을 손으로 치우면서 한 치 한 치 기었다. 범이 부근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먼저 범을 발견하느냐 범이 나를 먼저 발견하는가에 승부가 달려있다. 범이 부근에 있다는 정보만이라도 알고 있는 내가 유리하지만 범에게는 예민한 코와 눈이 있으니 안심은 못 한다. 밀림의 왕자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러나 공포에 비견比肩되는 또 하나의 감정이 있다. 억지로 비유하자면 노름으로 벼락부자가 되느냐 이 한 판으로 망해 거지가 되느냐는 올인의 심정이다. 다른 점은 노름은 돈이지만 범과의 대결은 목숨이 담보라는 것이다. 앞에 있는 돌이나 덤불을 하나하나 치우면서 천천히 전진했다. 저주받은 까마귀들이 범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는 듯 나의 머리 위에서 깍깍거렸다. 증오에 찬 눈으로 까마귀를 보면서 초조했다. 그 큰 범이 어디에 숨어있을까? 전방 약 100m에 나무가 없는 공터가 있었다. 공터 가장자리에 거대한 백양나무가 있었고 밑에는 쓰러진 나무가 가로로 누워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오랜 사냥경험으로 누워있는 나무가 수상했다. 공터를 옆으로 돌아서 쓰러진 나무에 접근했다. 이제 백양나무와 거리는 약 60m. 그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한 쌍의 까마귀가 내 위치를 범에게 알려주려고 머리 위에서 시끄럽게 짖으며 날았다. 까마귀에게 한 발 발사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누르며 백양나무를 주시했다. 소리가 났다. 오도독 오도독. 뼈를 씹어 부수는 소리였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움직임이 보였다. 시커먼 물체와 노란 빛이 보였다. 노란색깔 - 줄이 움직이고 있었다. 범의 거대한 대가리가 보였다. 앞발로 산돼지를 누르고 아가리로 갈비를 뜯었다. 갈비를 물고 머리를 흔들어 찢었다. 그리고 갈비를 통째로 먹어 삼켰다. 다행히 먹기에 열중한 범은 코의 감각이 흐려졌기 때문에 눈치를 채지 못 했다. 바람도 범이 있는 곳에서 불었다. 나는 다소 안심했다. 거기서 발사도 가능했지만 그 위치에서는 범의 상체만 보여 실수를 할 수도 있었다. 나는 첫탄으로 범을 눕혀야 했다. 첫탄을 실패하면 범이 덮쳐들거나 도망가버린다.

(첫탄으로 승부를 내자!)

범의 눈을 응시하면서 공터로 나왔다. 범의 눈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을 때는 눈 위에 납작 엎드렸고 범의 눈에 의심이 사라지면 또 기었다. 위함한 모험이었다. 5m, 10m. 범은 포식에 만족 눈을 지그시 감고 동그랗게 뜨고 하늘을 보기도 했다. 그 때 방정맞은 까마귀가 범이 식사하는 자리에 내려앉았다. 부근에 흩어져있는 산돼지의 살점을 먹으려고 했다.

(이 버릇없는 것이 .)

범은 피투성이 입으로 하얀 숨을 내뿜으며 으으윽! 하고 위협했다. 그리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기겁을 한 까마귀가 후다닥 날아올랐다. 찌꺼기를 나눠주지 않는 범의 탐욕을 항의하 듯 꺄악! 꺄악!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누워있는 곳이 저지대라 총을 발사하려면 일어서야 했다. 일어서면 범이 보게된다. 범과 눈을 마주치면서 대결하는 것이 싫었다. 두 번째는 총을 위에서 아래로 겨냥하면 명중률이 떨어진다. 총구를 수평으로 쏘고싶었다. 그래서 좀 더 기어가려고 했는데 범과 눈으로 대결하는 스릴을 좀 더 맞보고싶은 생각도 있었다. 10m를 더 접근했다. 범과의 거리는 이제 30m 정도. 사냥상식을 무시한 상황이다. 신경질적으로 떨고있는 범의 수염도 보였다. 사소한 소리도 내지 않고 필요없는 동작도 하지 않으면서 한 쪽 다리를 끌어당겨 무릎을 세웠다. 반쯤 일어난 자세로 잠시 눈을 감았다가 총을 들어올렸다. 심장은 파도치고 손이 떨렸다. 깊은 숨을 몰아쉬면서 겨냥을 했다. 조준은 귀와 눈 사이 자그마한 동전 크기의 반점斑點이었다. 고양이과 동물의 뇌수腦髓였다. 조준이 딱 맞춰졌을 때 범이 머리를 들었다. 별안간 범의 잿빛 눈에 노란 광채光彩가 떴다. 나를 발견한 것이다. 범은 공터 아무 은폐물도 없는 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한참 노려보았다. 한참이라고 했어도 불과 1초 정도, 불청객을 노려보고 있었다. 범의 눈에 의심이 사라지고 분노가 떠올랐다. 범이 일어서려고 했다. 조준이 맞춰진 귀와 눈 사이에 있는 반점을 겨냥하여 발사했다. 반동이 심했으나 다시 자세를 가다듬어 제 2탄의 발사준비를 했다. 총소리는 굉장했다. 조용하던 밀림이 요동쳤고 까마귀가 불에 데인 듯 공중우로 날아올랐다. 범은 치명서kd을 입고 산돼지 위에 쓰러져 바둥거렸다. 꼬리가 땅을 치고 앞발이 허공을 치며 치명상을 입은 머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바둥거렸다. 10여 초 후에 범이 축! 늘어졌다.

(내가 이겼다!)

통쾌한 승리감이 온몸에 흘렀으나 다리가 마비된 듯 일어설 수가 없었다. 총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 범에게 갔다. 적갈색의 아름다운 털을 지닌 숫놈이었다. 400Kg이 넘는 거구巨軀가 하얀 눈 위에 쓰러져있었다.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범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신경이 갈아앉자 산돼지를 점검했다. 500kg이 넘는 놈이었다. 범이 도망치는 산돼지를 추격하여 공중에 날아오르면서 앞발로 산돼지의 목을 가격했다. 그 일격으로 산돼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며 이내 범은 목줄을 물어 죽였다. 400Kg이 넘는 범이 긴 다리를 쭉 뻗으면서 풀스피드로 달리면 100m 쯤은 열서너 발로 뛴다. 범이 달린다기 보다는 날아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범이 그런 무서운 스피드로 달리면서 그 여세로 3m 쯤 공중에 뜨는 것은 약과다. 그래서 산돼지는 범과 만나면 끝이다. 나는 첫탄으로 범과 산돼지를 잡아 만족했다. 불을 피웠다. 어느 새 해가 떨어져 추위가 엄습했고 또 불을 피워 중국인들에게 내 소재를 알려야 했다. 어둠이 내렸으나 밀림의 왕자를 깔고 앉은 나는 두려움이 없었다. 범이 먹다 남은 산돼지의 갈비 서너 대를 도려내 불에 구웠다. 산돼지 갈비구이로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불을 더 활활 태웠다.

코안경나리, 산돼지를 잡았습니까? 사슴을 잡았습니까?’

네 명의 중국인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거대한 산돼지를 보고 환성을 올렸으나 이내 코안경나리가 걸터앉은 물체를 보고 기겁을 하여 도망쳤다.

왕대야 왕대, 산신령님이야!’

그들은 내가 범은 죽었다고 몇 번이나 고함을 질렀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나무 뒤에 숨어 벌벌 떨었다. 나는 그들에게 맛있는 산돼지고기를 구워주고 술을 주었다. 그들은 산돼지 갈비 모두와 뒷다리 하나를 먹었으나 범의 운반은 고집스럽게 거부했다. 설득에 지친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400Kg이 넘는 범을 나 혼자 끌고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인들이 제안을 했다. 범의 머리에 박혀있는 총탄을 꺼내서 주면 범을 무료로 운반하겠다고 했다. 위대한 산신령님을 죽인 탄환은 액운厄運과 악령惡靈을 쫓는 부적符籍으로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비싼값으로 거래된다.

 

13. 밀림의 비극

 

어느 해 겨울, 나는 친구 아퍼나센코와 함께 소만蘇滿(러시아와 만주) 국경에 있는 빠이린밀림 속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밀림의 주인 없는 움막에서 쉬고 있었다. 움막은 땅속을 60Cm 가량 파서 지었고 온돌이 되어 있었다. 온돌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모포를 머리에까지 덮고 추위를 견뎌야 했다. 온돌은 더디 더워졌으나 한 번 열기를 머금으면 밤 새 따뜻했는데 추위에 지친 우리는 금새 잠이 들었다. 막 잠이 들었을 때 문 옆에 누워있던 사냥개 세빌릿이 털을 세우고 맹렬하게 짖었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 오고 있었다. 우리는 전투준비를 했다.

누구야? 거기 서!’

아파나센코가 소리쳤다. 2 - 3초의 침묵이 계속되다가

우린 사냥꾼이요. 하룻밤 지내려고 왔소.’

러시아인이요?’

, 우리는 애호역에서 왔소, 둘입니다.’

그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러시아인들은 30세 전후였고 몸매가 단단했다. 동국인同國人이라 경계를 늦췄고 차를 대접했으나 그들의 눈매가 좋지 않았다. 표정이 없는 회색 눈이었는데 그런 자들은 범죄자가 많았다. 아파나센코과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들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첫째 총이 좋지 않았다. 네델란드제7연발총이다. 사냥에 7연발 총이 필요할까? 연발총은 구조가 복잡해서 고장이 잘 나고 한 번 고장이 나면 고치기도 어려운 법인데 젊은이들은 그런 총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뭣일까? 두 번째, 그들이 여행베낭을 풀었는데 검은족제비가죽 수십 매가 들어있었다. 7연발 총은 한 번 발사에 총알이 한 개 나가는 라이풀인데 그런 총으로 족제비를 잡았을까? 족제비 같은 작은 동물은 한 번 발사에 총탄이 여러 개 나가는 산탄총으로 잡는다.

좋은 가죽인데 . 총으로 잡은 게 아닌데 함정이나 덫으로 잡았나?’

총으로 잡았소.’

총으로, 어떻게?’

그들이 웃었다.

보자하니, 여러분도 동업자 같은데 그런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맙시다.’

(동업? 무슨 동업?)

나는 비로소 그들이 어떻게 족제비가죽을 얻은 것이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덫으로 잡은 족제비를 강탈했다. 그들은 밀림을 돌아다니며 족제비를 잡은 사냥꾼을 강탈했다. 러시아 강도들이 출몰하여 중국인포수 한 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범인이 바로 이 놈들이구만.)

며칠 전에 중국인포수 한 명을 죽인 일이 있소?’

그들이 웃었다. 그들은 우리가 저희들과 같은 강도로 알고 중국인 강탈을 털어놓았다.

중국놈들은 엉큼해요. 족제비가죽을 감추고 불지 않아요. 그래서 정보를 캐낼려고 몽둥이질을 했어요.’

다른 놈이 받았다.

아무리 고문을 해도 불지 않은 놈이 있어. 화가 나서 총대로 갈겼더니 그만 피를 토하고 죽었어.’

젊은이들은 언제부터 그 장사를 시작했지?’

올 봄부터 시작했지. 그 전에는 맹수사냥을 했으나 돈벌이가 되지 않았어. 그래서 이 사업을 했는데 보시다싶이 돈벌이가 되지. 이것만도 범 열 마리 값은 돼요.’

그건 그렇고. 당신들에게 족제비가죽을 빼앗긴 사냥꾼들이 억울하지 않겠소?’

아파나센코가 끼어들었다.

뭐가 억울해, 밀림에서는 강자생존强者生存의 규율뿐인데 .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가진 족제비가죽을 모두 몰수한 것도 아니요. 질이 나쁜 건 빼앗지 않소. 중국인들은 또 잡으면 될 거 아니요.’

내심 화가 났다. 생각 같으면 당장 이들을 중국인들에게 넘기거나 바깥으로 쫓아내고 싶었으나 다른 생각이 떠올라 참았다.

자네들 참 대단하군. 과거에도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모두 죽었어. 경찰은 없지만 중국인포수들이 조직한 자치대는 무서운 살인집단이야.’

러시아인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정말이요?’

이봐, 나는 여기서 10년이 넘게 살았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알아. 10년 동안 이 밀림에서 처형된 사람들이 20여 명이야.’

그럼 우리는 내일이라도 이 밀림을 빠져나가야 되겠는 걸.’

이미 늦었소. 중국인포수들이 자치대를 조직했다는 말을 벌써 2 - 3일 전에 들었으니까.’

 

다음 날 러시아인들은 잠을 자지 못 해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떠났다. 바깥에는 바람이 일고 있었다. 눈이 올 것 같았다. 우리는 의논 끝에 오늘 사냥은 쉬기로 했다. 오후에 여덟 명의 중국인들이 우리 집에 왔다. 모두 총을 가지고 있었고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섰다. 그들중의 한 사람이 나를 보더니 인사를 했다.

코안경나리 아니십니까?’

그들은 사과를 하고 차를 마신 뒤 두 사람의 러시아인을 찾는다고 했다. 그들 가운데는 포수들도 있었으나 포수가 아닌 자도 있었다. 말도 없엇고 차가운 표정이었다. 총도 사냥용이 아니었다. 그들은 중국인포수들이 고용한 살인청부업자들이었다. 분위기가 너무 심각했으므로 일부러 웃으며 말했다.

보자하니 여러분은 두 사람의 러시아인에게 흥미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소. 그리고 정당하다고 생각하오. 그들은 나와 동국인이지만 나는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거요.’

그리고 어제의 방문자들을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코안경나리, 나리는 이 곳 밀림의 보안관입니다. 우리는 나리가 동국인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차를 마시고는 빠르게 우리가 가르쳐준대로 떠나갔다.

코안경나리, 저들은 러시아인을 잡을 수 있을까?’

시간문제야. 러시아인들은 살지 못 해. 러시아인들은 아무리 도망쳐도 이 밀림을 빠져나가지 못 해.’

그래, 그건 그렇고 눈이 오겠는데 .’

3일 동안 무서운 폭풍과 함께 폭설이 내렸다. 밤새 움막이 눈에 파묻힐 염려가 있어 집 주위에 나무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온돌방 아궁이에도 계속 나무를 넣었는데 그만 사고가 일어났다.

불이야, !’

아퍼나센코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나도 일어났는데 아퍼나센코가 방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미쳤어, 이 친구가!)

나는 곧 아퍼나센코의 웃옷에 불이 붙어 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불에도 불이 붙었다. 눈을 녹여두었던 물통을 아퍼나센코의 머리에 들어부었다.

, 이젠 방의 불을 끄자. 눈을 퍼부어. 빨리!’

방문을 열어놓고 삽으로 눈을 퍼 방안에 던졌다. 15분 후 불이 잡혔다. 그러나 참담한 꼴이었다. 온돌방은 진흙으로 만들었으므로 눈을 퍼붓자 진흙탕이 되었다.

, 이젠 얼어죽겠네.’

아파나센코가 벌벌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얼어죽기 전에 흙집을 보수해야 해!’

다행히 나는 온돌방의 구조를 잘 알고 있어서 복구작업이 가능했다. 온돌방은 원래 고조선시대 옥저인들이 창안하여 전승되었으므로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구조를 알았다. 나는 하르빈에서 한국인에게 배웠다. 집 주변에 불이 활활 타고 있었으므로 그 불빛 속에서 작업을 했다. 새벽 6시께 보수작업이 끝났다. 아궁이에 다시 불을 지폈으므로 온돌방은 빨리 말랐다. 날이 밝아오자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고 웃었다. 굴뚝청소부처럼 눈만 남겨놓고 진흙투성이였다. 우리는 우선 마른 산돼지고기로 식사를 마친 다음 밀림을 떠났다. 매림역까지 40Km3일 동안 걸었다. 도중에 우리는 몇 번이나 니기척을 느꼈다. 주변에 사람들이 숨어 우리를 감시했으나 우리는 모르는 척 지나갔다.

밀림 강도를 감시하고 있어. 모른 체 하고 지나가자.’

무서운 분위기였으나 무사히 매림역에 도착했다. 한 달을 지내면서 러시아인 강도들의 소식을 물었으나 행방불명行方不明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모피를 거래했던 중국인 모피상毛皮商도 행방불명이 되었다. 어느 날 거래를 하자고 찾아온 중국포수 세 명과 나간 후 행방이 묘연杳然했다.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2 - 3일 수소문하고 끝났다. 그래서 지방의 유명한 포수를 찾아갔다. 지방포수는 우리를 환대했는데 방으로 안내한 뒤 극진히 술대접을 했다. 술이 몇 잔 돌고 주객主客이 취할 때 쯤 내가 넌지시 물었다.

행방불명된 모피상은 어떻게 됐지?’

부지도(모른다.).’

그는 입언저리에 얇은 웃음을 띠었다. 알고 있는 것이다.

모피상은 거래만 했으니 죽일 필요까지는 없잖느냐?’

부지도. 밀림의 법은 죽음이 아니면 무죄니까 그에게 죄가 있다면 죽음이었겠지.’

 

1개월 후 우리는 다시 밀림으로 들어갔다. 2월 말이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태양이 힘을 얻고,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으며, 양지陽地에는 눈이 녹았다. 구수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새들이 지저귀고 다람쥐들도 부산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고 사냥개는 맹수의 냄새를 맡으려고 귀를 세웠다. 갑자기 개가 걸음을 멈추더니 맹렬히 짖었다. 큰 나무 밑에 하얗게 색이 바랜 뼈가 흩어져 있었다. 신발과 안경도 있었다.

중국인 모피상毛皮商이야.’

 

중국인은 무서운 민족이었다. 한 번 죽이겠다고 결심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모피상은 장물매매죄였는데 러시아인과 공모하여 동족인 중국인을 괴롭힌 죄였다. 시체가 겨울인데도 뼈만 남은 것은 호랑이짓이었다. 모피상은 산체 나무에 묶여 호랑이 밥이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퍼나센코가 말했다.

죽었겠지.’

거기서 얼마 안 가 작은 판자집이 있었는데 판자집이 불타버렸다. 불탄자리에 러시아인들의 타다 남은 시체가 있었다. 그들은 바보였다. 밀림에는 굥찰이 없다고 판단하여 장난처럼 포스를 죽이고 모피를 강탈했는데 그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우리는 그들을 묻어주었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었고 죽어 마땅했지만 그래도 인간이고 동족이었기에 묻어주었다. 그날 밤 중국인포수를 만났다.

안녕, 코안경나리.’

안녕, 자치대대장自治隊隊長.’

중국인이 웃으면서 밀림이 평화를 되찾았으므로 자치대는 해산했다고 했다. 담배를 권하고 러시아인들을 어떻게 잡았냐고 물었다. 중국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러시아인 강도를 잡기 위해 조직된 자치대는 모구 20명이었다. 20명 중 12명은 두 명씩 짝을 지어 6개 조로 나뉘어 밀림을 포위했고, 8명이 수색했다. 예측대로 그 중 3명은 하르빈에서 고용한 살인청부업자였다. 러시아인들은 무서운 폭설과 자치대를 피하기 위해 10일 간이나 밀림을 방황했다. 눈이 내리면 동굴이 숨었으나 날이 개이면 발자국을 추적당했다. 아무리 빨리 도망을 해도 추적대는 따라붙었고 밀림을 빠져나가려고 하면 잠복조들이 난사亂射를 했다. 그래서 그들도 마지막 결전을 하기 위해 판자집에서 농성籠城을 했다. 그러나 추적대는 성급하게 습격하지 않았다. 판자집을 포위만 해놓고 기다렸다. 그 포위 속에서 러시아인들은 죽음 보다 더한 공포를 느꼈고 굶주림에 발광을 했다. 러시아인들이 미쳐 판자집을 뛰쳐나오자 침착한 하르빈의 암살자들이 단 두 발로 저격했다. 밀림의 사형을 감추기 위해 판자집에 불을 질렀다.

죽이지 않고 잡아서 경찰에 넘길 수 없었나?’

중국인포수가 엷게 웃었다.

그런 방법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나리도 알고 있잖아.’

 

14. 뱀 할아범

 

라오에린정맥의 산마루를 타고 산정山頂에 섰다. 이럴 때는 사냥꾼도 둥산가의 기분이 된다. 정복감과 승리감이다. 내 눈 앞에는 산맥에 따른 계곡溪谷들이 있고 미잔헤강의 줄기가 있었다. 고함을 치고싶었다. 사냥꾼인 나는 등산가들이 느끼지 못 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계곡은 꿩의 낙원樂園이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꿩들의 산란지産卵地였다. 보고있는 사이에도 꿩들이 날아다녔다.

(좋아! 좋아!)

그러나 무심한 나의 동반자同伴者는 하품만 했다. 검은 반점斑點이 있는 골든계통系統의 사냥개(이름 라륩). 그는 주인인 내가 파노라마의 장관을 완상玩賞하고 있을 때 바위 위에 앉아 하품만 했다.

(, 이제 시작하자.)

나와 라륩은 천천히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에서는 라륩이 선두先頭. 그리고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꼬리를 친다.

(이제부터는 내게 맡기시지요.)

라륩의 재주는 훌륭했다. 눈은 땅만 보고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으며 전진한다. 그러나 꿈틀거리는 귀는 쫑긋 세우고 사방을 살핀다. 그놈은 눈 보다 코와 귀에 의존한다. 라륩이 정지했다. 한쪽 발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뭐가 있다. 발사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나는 총신을 들어올렸다. 라륩이 전진한다. 네 다리로 트롯트처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두 다리를 모아 껑충껑충 뛴다. 숨어있는 꿩에게 위협을 주자는 의도다. 잡초 밑에 숨어있던 꿩이 당황했다. 숨바꼭질에서 진 것이다. 꿩은 도망쳤다. 꿩은 두 다리로 달려도 상당한 속도를 낸다. 그러나 네 다리의 개에게는 당하지 못 한다. 라륩이 쏜살같이 달려 꿩의 진로를 막아버린다. 꿩은 숨바꼭질에서 지고 달리기에서도 졌다.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날개에 의존한다. 꿩이 푸드득 푸드득 요란하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의 시야에 꿩이 들어왔다. 꿩의 비상飛翔은 닭 보다는 좀 나았지만 형편없다. 거기에 알록달록 화사華奢한 몸체가 또 탈이다. 푸른 하늘에 꿩이 떠오르면 아름다운 색깔이 선명하게 부각浮刻된다. 꿩이 하늘에 떠올랐지만 나는 지켜보고만 있다. 꿩의 나래짓을 업신여기는 것이고 자신의 총솜씨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날릴대로 날려보자.)

2m, 3m, 4m. 비스듬히 하늘로 오르던 꿩이 수평으로 몸을 바꿨다. 위기에서 벗어나 전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찬스다. 날아가는 꿩의 대가리 몇 센티미터 앞 지점을 겨냥하고 발사한다. 탄환이 꿩을 따라가서 맞추는 게 아니라 꿩이 탄환에 와서 맞는다. 순간 꿩이 주춤거린다 싶자 꿩털이 몇 개 흩어지고 꿩은 일직선으로 낙하한다. 라륩이 달려가서 꿩을 물어왔다. 또 얼마 안 가서 푸드득 나의 발밑에서 날아올랐다. 전혀 예상치 못 해서 총을 들지도 못 하고 놓쳐버렸다. 라륩도 날아가는 꿩을 쳐다보고만 있다.

(할 수 없어. 누구든 실수는 하는 법이니까. 꿩은 얼마든지 있어, 라륩군!)

라륩이 전진했다. 이번에는 앞발을 들어 발견신호를 하고 충분히 사격준비시간을 준 다음에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두 마리가 한꺼번에 뛰어올랐다. 나는 올렸던 총을 내렸다. 둘 다 까투리다. 라륩이 화가났다. 그는 내가 발포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발포를 하지 않자 실망했다. ! ! 짖었다.

임마, 꿩사냥터에서 짖는 멍충이가 어디 있어. 내가 까투리를 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게 아냐?’

그러나 그는 납득을 하지 않는다. 개의 논리와 사람의 논리는 맞지 않는 법이다.

이럴 때는 반 위협을 해서 굴복을 시켜야 한다.

, 앞으로 가!’

화난 표정으로 명령했다. 라륩은 불평을 억눌렀다. 전진헸다. 계곡을 빠져나와 늪으로 왔다. 자그마한 늪이고 초지草地였기에 거기서 노는 꿩들이 보였다. 수를 세지 않았지만 100 마리가 넘었다. 100 마리의 꿩들은 초록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화사華奢했다. 라륩은 곧장 뛰어들고싶어 안달했으나 내가 정지를 하고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체념한 듯 내 옆에 누워버렸다. 꿩들이 우리를 발견했다. 내가 천천히 전진하니까 꿩은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쭉 뻗으면서 한 마리 두 마리 날아올랐다. 라륩이 신경질적으로 뛰어나가려다 주인의 표정을 보고 주저앉았다. 라륩은 꿩 말고 또 수난을 당했다. 초지를 빠져나와 다시 계곡에 들어갔는데 라륩은 한 마리 꿩에게 조롱을 당했다. 꿩 한 마리가 참나무가지에 앉아 개를 놀렸다. 약이 오른 라륩이 뛰어갔으나 라륩이 뛰어오르기에는 가지가 너무 높았다. 화가 난 라륩이 미친 듯이 짖었다. 그 꼴이 우스워서 보고만 있었으나 라륩이 가여워서 발사를 했다. 라륩은 떨어진 꿩의 대가리를 물고늘어졌다. 꿩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우리는 개울을 건너 야생동물 서식지로 들어갔다. 꿩 두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2연총을 발사했다. 내가 선호하는 동시사격이다. 실수했다. 한 마리는 떨어졌다가 다시 날아올랐다. 라륩이 숲에 떨어진 꿩을 찾으러 숲속으로 뛰어들었는데 승리의 환호성이 아니라 비명소리가 났다. 달려갔더니 라륩이 2m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몸의 중심이 앞다리가 아니라 뒷다리였다. 여차하면 도망칠 자세였다. 총신을 들어올렸다.

(호랑이? 표범?)

그런데 라륩을 그토록 놀라게 한 것을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뱀이었다. 습지대라 뱀이 많았다. 3m나 되는 큰 뱀이었다. 뱀이 꿩을 물고 있었다. 통째로 삼키는 중이었다. 나는 흥미롭게 뱀의 식사를 관찰했다. 뱀은 꿩의 날개에 침을 묻혀가며 삼키고 있었으나 부피가 커서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꿩이 뱀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꿩을 삼킨 뱀은 만족스러운 듯 탈골된 턱뼈를 맞추고 냅킨 대신 나뭇잎으로 입을 닦았다. 식사와 화장을 마친 뱀은 주위를 살피더니 숲속으로 기어가버렸다.

(오냐, 너 할 일은 끝났지만 내 할 일이 남았어.)

개머리판으로 뱀의 목덜미를 치자 뱀이 머리를 쳐들었다. 얼핏 목을 움켜잡았다. 뱀이 내 팔목을 칭칭 감았다.

(사람의 팔목을 감아봐야 별 볼 일 없다는 걸 모르는군.)

뱀이 약이 올라 힘을 주자 팔목이 찌르르하고 압박감이 왔다.

(제법 까불어?)

뱀의 대가리를 졸랐다. 뱀이 아가리를 벌리며 힘을 푼다.

(오냐, 이제 알았지? 까불면 교살絞殺당한다는 걸.)

이 광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라륩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알을 굴린다. 그러나 주인과 뱀의 싸움은 주인이 승리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꼬리를 힘차게 흔든다. 이로써 이 날 사냥은 끝났다. 길이 3m의 뱀을 들고 무슨 사냥을 더 하겠는가? 나는 뱀을 들고 뒤자지할아버지의 움막으로 갔다. 뱀할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중국인이지만 러시아말을 하고 일생을 밀림에서 살았다. 별명과 같이 뱀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물을 들고 찾은 것이다. 뱀할아범의 움막은 진흙을 두껍게 발라 지었으며 밀림에서는 움막이 아니라 호텔이었다. 큰 방이 두 개, 응접실, 부엌과 창고가 있었다. 집만 호화로운 게 아니고 생활이 호화로왔다. 창고와 방 안에 갖가지 곡물이 쌓여있고 마른고기도 풍부하게 저장되어 있다. 뱀할아범은 큰 집과 곡물을 지키기 위해 뱀을 사육했다. 큰 뱀이 서너 마리 집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녔는데 뱀은 집 안팍을 경비하며 곡식도둑 쥐를 잡아먹었다. 주인이 집을 비우면 도둑들도 지켰다. 할아버지는 꿩을 삼킨 뱀을 들고온 나를 대환영했다. 뱀할아범은 얼핏 보면 60이 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60을 훨씬 넘겼다. 단정한 얼굴에 유대인코, 몽고인턱이였다. 키가 크고 인디언처럼 낯빛이 검었는데 태양 탓이었다.

 

뱀할아범이 어렸을 때는 부친을 따라 뱃사람이었다. 부친이 바다에서 익사하자 부친의 유언을 지켜 바다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왔다. 열아홉 살에 들어와 평생을 보냈다. 따라서 이 부근의 지형을 꽤뚫었고 중국관리나 마적들도 영치권領置權을 인정했다. 주위 약 10Km를 지배하고 있는 할아범은 동물을 사랑했다. 사냥꾼들이 사냥을 하는 것은 인정했으나 남획濫獲은 싫어했다. 할아버지는 사냥꾼을 환대했으나 1주일 이상 체류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숙박宿泊을 거부했다. 까투리, 암사슴, 산돼지도 암톳을 잡으면 사냥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사냥꾼은 사냥꾼이 아니라 살륙자殺戮者.’

어느 겨울 산돼지를 마구 잡았던 일본인 사냥꾼 두 사람은 할아범으로부터 숙박을 거부당해 하마터면 동사凍死할 뻔 했다. 할아범은 올무나 함정陷穽사냥을 싫어해서 사흘에 한 번 순회를 하면서 발견되는 대로 철거했다.

 

할아범의 세 번 째 기행奇行은 뱀사랑이다. 할아범이 기거하는 곳이 저지대라 땅이 습했으며 뱀이 많았다. 할아범의 말대로라면 뱀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가끔 독사에게 물리는 일이 있으나 그 건 사람이 부주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뱀은 놀라거나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사람을 물었으나 결코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반면, 뱀은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한다. 곡식을 훔치고 전염병을 전파하는 들쥐를 잡아먹어 피해를 막아준다. 동감同感이다. 방안에도 뱀이 돌아다녔다. 마루 밑이나 온돌 밑, 천정에도 뱀이 돌아다녔는데 그래서 이 집에는 쥐가 들어오지 못 했다. 뱀은 쥐에게서 주인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부터 주인을 지켰다. 할아범이 외출했던 겨울 밤, 늑대 세 마리가 침입을 했다. 늑대들은 창고의 마른고기를 노렸으나 창고에 들어서자 창고천정에서 기어다니던 길이 5m의 뱀이 늑대에게 떨어져내려 늑대의 몸을 감았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늑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으나 뱀이 몸을 칭칭 감아 놓아주지 않았다. 나머지 두 마리의 늑대도 창고구석에서 기어나오는 뱀을 보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쳤다. 이튿날 할아범이 귀가했는데 뱀이 늑대를 반 쯤 삼키고 있었다.

뱀은 나의 친구지요. 그들도 주인의 애정을 알고 있어요. 뱀은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고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아요,’

이른 새벽에 할아범과 산에 올랐다 도중에 발견한 함정은 파괴했다. 산중턱에 이르지 할아범이 멈췄다.

이상한데?’

할아범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의를 살피더니 속삭였다.

코안경나리, 날 좀 도와주시오. 저쪽 계곡일대가 수상해서 조사를 해야겠소.’

할아범이 엎드려 살살 기었다. 계곡이 가까워지자 내 코에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편阿片이었다. 계곡 주위 약 1정보나 되는 면적에 아편이 자라고 있었다. 할아범은 주위를 살피고 인적人跡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주변의 마른나무를 모아 아편밭에 불을 질러 태웠다.

나쁜 놈들입니다. 이 꽃은 사람의 머리를 마비시켜요.’

 

산정에 도착했다. 산정에 할아범이 불당佛堂을 지었다. 불당이라고는 해도 부처님, 공자님,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관운장의 초상肖像도 있다. 할아범은 불단에 무릎을 꿇고 기도祈禱를 했다. 오래토록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때 불단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 ! 하는 소리였다. 독사의 위협소리였다. 나는 독사들의 포위 안에 있었다. 뛰어나가고 싶었으나 자칫 잘못하면 독사의 공격을 유발할 위험이 있어 꼼짝도 하지 못 했다. 다행히 할아범의 기도가 끝났다. 할아범이 불단 뒤에 숨어있는 뱀에게 손을 내밀었다. 뱀은 주저없이 할아범에게 기어와 할아범의 손을 타고 팔, 어깨, 머리로 올라갔다. 그러자 그 방에 있던 다섯 마리의 뱀들이 할아범에게 기어갔다. 마치 시샘을 하는 것 같았다. 다섯 마리의 뱀들에게 몸을 내맡긴 할아범은 만족스러워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

코안경나리, 이 놈들은 언제나 이런 짓을 해요. 나는 이놈들에게 해주는 것이 없는데. 이 놈들은 날 좋아하지요,’

 

15. 가장 위험한 동물

내 총솜씨가 엉터리었든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겨냥을 피해서 맞추지 않았냐를 알겠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부와나(주인님). 부와나가 여덟 발을 쏘았다면 여덟 마리의 시체가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무른베의 말이 옳다. 헌터는 성성이(침팬치)를 쏠 수 없었다. 너무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정조준을 할 수 없었다.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짐승을 쏠 수 없었다. 그리고 두목을 쏘았기 때문에 성성이 사냥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성성이사회는 두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두목은 절대자며 모든 단체활동이 두목의 지휘 아래 계획, 집행된다. 밀림 주변의 농작물을 습격한 것도 두목의 지시에 의한 것이고 그 책임은 두목에게 있다. 그래서 책임을 물어 두목을 사살했고 그것으로 성성이살육은 중지하여야 한다. 이제 성성이집단에서는 타위적인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절대자가 죽었으니 다른 두목을 선출할 것이고 새로 선출된 두목은 사람의 밭을 습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헌터는 무른베에게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무른베도 헌터의 표정을 보고 헌터가 고의적으로 성성이를 죽이지 않은 것을 눈치챘지만 그 이상 더 묻지 않았다. 밭 임자들이 여섯 마리의 성성이로도 대만족이었기 때문이다. 토인들은 그 날 밤 큰 잔치판을 벌였다. 물론 잡은 성성이요리였다. 껍질이 벗겨진 성성이요리를 봤을 때 헌터는 아주 우울한 표정이었다.

어느 쪽이 더 잔인한 동물일까?’

죽은 성성이 중에는 암컷이 두 마리 있었는데 토인들은 그 시체에 장난을 했다. 성성이 수놈이 토인여자들에게 덤벼들었다고 믿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성성이의 암컷도 사람과 같은 생리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알고 젊은이들이 몹쓸 장난을 했고, 그 뒤에서 여자들도 웃고 있었다. 여자들 중에서는 자기 남편이 너무 심한 장난을 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남편을 잡아당기는 여자도 있었고, 성성이 수놈에게 흥미를 갖고 빤히 보고 있는 처녀들도 있었다. 추장이 헌터에게 술을 권하면서 말했다.

부와나, 오늘 저녁에는 우리 부락인구가 많이 불어날 것 같아요.’

헌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술을 마신 토인들이 쌍쌍으로 손을 잡고 움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웃음지었다.

추장, 당신의 네 번 째 부인도 저기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 같소. 어서 가 보시오.’

 

미스터 헌터,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는 무엇입니까?’

헌터가 포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누구도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다. 때와 장소 그리고 사냥꾼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숲속에서는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도 널따란 평원에서는 쉽게 죽일 수 있고, 평원에서는 위험한 동물도 숲속에서는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숲속에 숨어 있다가 바로 눈앞에서 덮쳐드는 큰 뱀이 얼마나 위험한 동물인지를 다 알고 있지만 그 놈이 평원이 있을 때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포수들이 위험시 하는 동물도 다 다르다. 라이플로 스냅샷(속사)을 하는 포수는 사자의 맹습을 겁내지 않으나 스냅샷에 능숙하지 못 한 포수는 사자의 밥이 되기 쉽다. 짐승의 위험도는 포수의 경험에도 달려있다. 포수가 습성을 잘 알고있는 짐승 같으면 포수는 크게 경계하지 않지만 습성을 잘 모르는 짐승은 노련한 포수에게도 위험하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짐승에 대한 물음에 명확한 답이 없다.

헌터가 마흔이 좀 넘었을 때, 유명한 코끼리포수들을 만난 일이 있었다. 둘이씩 짝을 지어 코끼리사냥을 하가로 한 그들은 헌터에게 자문을 구했다. 셋이서 사냥을 하고 포획한 짐승을 삼등분하자는 제안이었다. 헌터는 거절했다.

위험해서 나는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위험해서?’

그들의 눈이 휘둥글해졌다. 헌터와 같은 전문포수가 위험하다고 사냥을 기피하는 경우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위험할 것 없지 않소. 당신은 여태 코끼리를 수 십 마리나 잡았을텐데 .’

그러나 헌터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코끼리란 평야에서 잡기는 쉬운 법이요. 그러나 숲속에서는 위험하고, 당신들이 지금 가는 사냥터는 코끼리가 많지만 평야가 없소. 코끼리가 우굴거리는 숲속으로 나는 가기 싫소.’

코끼리 전문포수들은 헌터의 대답에 코웃음쳤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노골적으로 헌터에게 모욕을 주었다.

그래요? 우리 끼리 가자. 저 사람은 겁을 먹고 있으니 우리 끼리 가면 되잖아.’

그래, 그래. 헌터가 코끼리를 겁낼줄은 몰랐는데. 겁이 많은 사람은 사자나 표범을 잡으라고 두고 우리 끼리 코끼리사냥을 하자.’

헌터는 모욕을 당하고도 담배만 피웠다. 그리고 그들은 코끼리사냥을 떠났다. 그리고 두 달 후에 나이로비에 돌아왔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한 사람은 숫코끼리를 추격하다가 숲속에서 별안간 나타난 암코끼리의 코에 말려 횡사를 했다.

코끼리의 그 큰 몸집이 안 보였다고 하면 거짓말 같지만 사실 우리는 코끼리 코가 사냥꾼의 몸을 감아올릴 때까지 바로 2미터 앞 숲속에 코끼리가 숨어 있는 것을 보지 못 했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다. 코끼리가 그 큰 몸집을 숲속에 감추는 비결은 동물적인 본능이다.

이 사건이 제법 센세이녈한 사건이었으므로 나이로비에 소문나자 나이로비의 명사들이 헌터를 만찬회에 초대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또 받았다. 나이로비 시장이 말했다.

헌터군, 토미는 자네 말을 믿지 않고 코끼리사냥을 하다가 죽었는데 자네는 코끼리를 가장 위험한 짐승으로 보는구만.’

아니지요.’

헌터가 천천히 말했다.

아프리카밀림의 짐승들은 다 위험합니다. 뾰쪽한 뿔을 가진 영양, 뒷발질을 잘 하는 얼룩말도 위험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나는 코끼리, 코뿔소, 물소, 사자, 표범을 가장 위함한 동물로 꼽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동물들입니다.’

어느 부인이 물었다.

미스터 헌터, 나는 숲속에 숨어있는 뱀이 가장 무서운줄 알았는데요.’

위험한 짐승이지요. 또 그 녀석들 때문에 사람들이 꽤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동물들 보다는 희생이 적습니다. 또 뱀은 무엇 보다도 느립니다. 기습을 당하지 않는 이상 뱀에게 희생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놈은 기어다니기 때문에 벼락같이 덤벼들지도 못 합니다. 그래서 뱀은 위험한 동물 후보에 들지 못 합니다.’

그렇다면 역시 코끼리기 가장 위험한 동물입니까?’

코끼리는 아시다싶이 가장 크고 힘이 셉니다. 그리고 영리합니다. 그러나 영리하기 때문에 떠돌이 부랑코끼리가 아니면 코끼리는 사냥꾼에게는 함부로 덤벼들지 않습니다. 총을 든 시냥꾼에게는 못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끼리는 덤벼들기 보다는 피합니다. 그러나 추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도망치기 보다는 덤벼듭니다. 그러나 코끼리는 몸집이 커서 발견되기 쉽고 느립니다. 코끼리용 사냥총이 있으면, 그리고 단 발로 코끼리의 머리나 심장을 명중할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덤벼드는 코끼리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코뿔소는 어떻습니까?

코뿔소는 우선 미련합니다. 그 녀석은 코끼리와 달리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아도 사람을 보면 달려듭니다. 그러나 총격을 받으면, 과반수는 도망을 칩니다. 라이노도 무서운 맹수지만 느려서 포수에게 사격 기회를 줍니다. 라이노의 위험도는 4위입니다. 많은 사냥꾼들이 물소를 아파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짐승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무턱대고 사란만 보면 돌진하고 속도도 빠릅니다. 또 웬만한 총탄에는 갑옷처럼 두꺼운 껍질 때문에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약점은 느리고 연사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느리다는 말은 시속 30 마일의 사자나 표범 보다는 느리다는 말이지 사람의 속도와 견주는 것은 아닙니다. 물소가 위험한 동물 3위입니다. 남은 동물은 고양이과 동물 사자와 표범입니다. 백수의 왕, 위대한 사자는 몇 포기의 풀속에도 그 거대한 몸을 감출 수 있는 둔갑술遁甲術을 가지고 있고, 그는 공격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설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는 지혜도 갖추고 있습니다. 첫 번째 도약부터 전속력을 낼 수 있고,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도약력과 공중공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작고 빠르고 민첩해서 조준도 어렵습니다. 사자의 용기는 아프리카 동물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위대한 백수의 왕입니다. 코끼리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는 질문에 헌터는 그 건 싸움이 안 되는 싸움이며 일방적으로 사자가 이긴다고 했다. 초식동물인 코끼리는 아예 사자에게는 덤벼들지 않지만 설사 싸움이 벌어진다고 해도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언젠가 사자가 3톤짜리 로리(사냥용트럭)을 공격하는 걸 목격했는데, 사자는 3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도약을 했다. 사자는 공중에서 몸을 쭉 뻗어 아름다운 유선형이 되어 날아올랐습니다. 멋진 도약이었습니다. 사자는 도약한 공중에서 내려오면서 로리의 뒤편을 발로 쳤는데 철판이 쪼그라들었고 로리가 크게 비틀거렸습니다. 헌터가 총을 겨냥했으나 사자는 벌써 멀리 달아나 자기가 공격을 해도 끄떡도 하지 않은 괴물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그럼,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사자입니까?’

아닙니다. 사자가 위험동물이지만 2위입니다. 백수의 왕답게 정면승부를 해서 위험도가 좀 떨어집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표범입니다. 밀림의 암살자, 밀림을 소리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을 발견하면 등 뒤에서 기습을 합니다. 아니면 나무 위에 은신하여 뛰어내리면서 살육을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목장을 하는 사람들은 표범을 악마 취급합니다. 표범은 목장을 습격하기 전에 목동을 먼저 습격을 해놓고 가축을 도살합니다. 또 표범은 먹기 위해서 살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육을 위해서 살육을 합니다. 체격으로 표범은 90키로 정도, 사람 보다 조금 무겁고 힘도 약합니다. 표범과 싸워 이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예외고, 표범은 은신을 하고 있다가 기습을 하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표범은 높이 7, 8미터에서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기습을 한다. 평지에서는 4미터 내외 단 한 번이다. 사자는 200킬로 힘찬 앞발로 쳐서 사람을 기절시키지만 표범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그래서 표범은 앞발로 상대편의 얼굴 - 눈을 할킨다. 뒷발로 몸을 감고 입을 목 밑으로 들여밀어넣고 발로 몸을 차면서 반동으로 목줄을 뜯는다.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목줄이 뜯기는 동작은 거의 한 순간 동시에 일어난다. 당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목줄이 뜯겨 죽는다. 헌터가 친구 사냥꾼과 같이 마사이족의 표범사냥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표범이 수풀에서 쫓겨나와 바위산으로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어서 친구가 총을 쏘았는데 몸에 맞았다. 부상당한 표범은 절대 도망가지 않고 반드시 복수를 한다. 그래서 헌터와 친구는 조심스럽게 바위산을 수색했는데, 바위틈에 숨어있던 표범은 기습할 기회를 노렸으나 노련한 사냥꾼들이 기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표범은 보이지 않았다. 표범은 숨어다니면서도 사냥꾼들의 정체를 는으로 보 듯 눈, , 귀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사람은 오직 눈에 의지 했으나 깜깜이였다. 그래도 바위 사이로 몸을 숨기던 표범이 산마루까지 몰렸고, 기습할 기회를 놓친 표범이 불과 4미터 거리에서 표범이 사냥꾼을 기습했다. 미쳐 총을 쏠 겨냥할 기회가 없어 친구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추렸고, 옆을 따르던 헌터는 끽! 하는 소리와 노란 줄이 쪽 퍼지는 그림자를 보면서 헌터가 관성적으로 발포했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다행히 정말 요행히 헌터의 단 발 라이플총탄이 표범의 어깨에 맞아 표범은 친구의 발밑에 떨어졌다. 표범과 친구의 거리는 불과 3미터였다.

표범은 사람들의 추적을 눈치채면 나무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나 나뭇잎으로 완벽하게 숨는다. 표범은 간사해서 총을 가진 포수를 만나면 도망을 간다. 그러나 부상을 입으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 표범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때 추적자가 그를 발견하지 못 하면 그대로 흘려보낸다. 그러나 추적자가 표범을 발견했을 때는 주저없이 공격을 한다. 표범은 나무에 숨어 있을 때도 눈은 추적자를 보고 있다. 그래서 추적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일순의 주저함이 없이 도약을 한다. 사람과 표범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 둘 중 하나의 목숨은 사라진다. 헌터는 두 번의 그런 경우를 경험했다. 한 번은 사람이 표범을 속였고, 두번째는 표범이 헌터를 속였다. 첫 번째는 우연한 일이었다. 헌터는 코끼리를 쫓고있었는데 나무 위에서 살기를 느껴 힐끔 시선을 던졌다. 나뭇가지 밑으로 표범의 긴 꼬리가 늘어져있었다. 표범의 꼬리가 분명했으나 순간 헌터는 못 본 체 시선을 거두고 나무 밑을 지나갔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 여유가 없었다. 표범은 방심했다. 포수가 자기를 보지 못 했다고 안심했다. 헌터는 나무에서 5미터 쯤 가다가 별안간 휙! 돌아서면서 안전장치를 푸는 것과 동시에 발포했다. 방심했던 표범이 나무에서 털썩 떨어졌다. 만약 헌터가 표범을 죽이지 못했으면 뒤따라오던 토인조수의 목숨이 위험했다. 헌터와 표범의 두 번째 대결은 헌터쪽이 유리했다. 헌터와 나무 위에 있던 표범이 거의 동시에 상대를 발견했다. 헌터는 일순의 주저함 없이 총을 발사했다. 표범도 동시에 움직였다. 그런데 헌터의 예상과 달리 표범은 헌터를 공격할 수 없는 대상으로 판단하고 2미터나 떨어져있는 다른 나뭇가지로 뛰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헌터의 총탄은 표범에게 적중하지 못하고 엉덩이에 맞았다. 엉덩이에 총탄을 맞은 표범은 분노의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헌터에게 달려들었다. 헌터는 야구에서 슬라딩을 하는 것처럼 몸을 피한 후 누운자세로 2탄을 발사했다. 이마에 명중, 표범이 보자기처럼 떨어져내렸다.

간사한 놈이지요. 사람을 속일줄도 아는 놈이니까요.’

표범이 얼마나 간사한 놈인가는 개와 싸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표범은 유난히 개고기를 좋아한다. 표범이 목장을 습격해서 잡아가는 것은 양이나 돼지가 아니고 언제나 개다. 그런데도 표범은 개에게 몰리면 일단 멀리 도망을 친다. 사냥개들이 두 마리 이상이면 아예 싸울 의지가 없는 것처럼 도망친다. 표범은 사냥개들이 자기를 사냥하려고 날뛰고 있고 사냥개들 뒤에는 총을 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냥개가 두 마리 이상이면 도망을 간다. 그러나 사냥개들은 표범을 잡지는 못 한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힘을 믿고 표범을 몰아붙여 나무 위에 올려놓고는 몇 시간이고 사람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냥개가 한 마리거나 보통개라면 절대로 그냥두지 않는다. 일대일의 싸움에서는 절대적으로 승산이 있고, 훈련되지 않은 똥개들은 몇 마리든지 무시하고 덤벼들어 물고간다. 앞발로 머리를 강타한 다음 번개처럼 목줄을 물어뜯어 죽인다. 표범은 연극도 한다. 개가 표범을 보면 맹렬하게 짖지만 마을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표범은 마을 부근 공터에 다가와 짖는 개는 본척만척 공터에 드러눕는다. 고양이처럼 목을 굴리고 꼬리를 흔든다. 개가 그 꼴을 보고 어이가 없어 짖는 것을 멈춘다. 그러면 표범은 머리를 땅에 대고 우리 같이 놀자라며 애교를 떤다. 그 수작을 보며 개는 경계심을 풀고 표범에게 접근한다. 표범은 여전히 꼬리를 흔들면서 까불고 있지만 사실은 뒷발을 배 밑으로 모아 그 발톱을 땅에 박고 있다. 언제라도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멍청한 똥개는 표범에게 속아 같이 어울릴 속셈으로 점점 더 접근한다. 표범은 모르는 체 먼 산을 보면서 똥개의 접근을 기다린다. 표범의 사냥 가시거리까지 접근을 끈질기게 기다린다. 똥개는 자기들의 계산으로 5미터 이내면 안전지대로 간주한다. 그러나 표범의 사냥 가시거리는 8미터다. 8미터 이내의 사냥감은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똥개가 가시거리에 들어오면 표범은 마치 강력한 스프링처럼 도약한다. 한 번의 도약으로 표범과 개의 거리는 3미터 이내로 단축된다. 개가 크게 당황해서 뒤돌아 도망치려고 하지만 표범과 개의 거리는 불과 2미터로 죽음의 경주가 시작된다. 표범은 마지막 도약으로 개의 등에 올라타 몸의 중량으로 비틀거리는 개를 쓰러뜨리고 곧장 목줄을 물어뜯는다. 개는 외마디 소리조차 지를 겨를도 없이 죽는다. 사람이 밤길에서 표범에게 당하면 무엇에 물려 죽는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죽는다.

헌터는 표범이 물소를 공격하는 것을 봤는데 자기 몸무게의 다섯 배나 되는 물소에게 겁도 없이 도전을 했다. 표범은 대개 기습작전으로 물소의 등에 올라타지만 다른 경우에는 정면공격을 하기도 한다. 물소도 뿔을 휘두르며 방어를 하지만 표범은 물소의 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소의 뿔이 미치는 거리가 고작 2미터 내외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소의 등에 올라탄 표범은 날카로운 발톱을 물소의 가죽에 깊숙이 박아 몸을 밀착시키므로 물소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물소는 많은 피를 흘리고 지쳐 쓰러진다.

표범은 드문 일이지만 사자에게도 덤벼든다. 승산이 거의 없는데도 배가 고프거나 어린 사자거나 병든 사자에게는 싸움을 건다. 사자의 앞발치기에 걸리면 코끼리도 쓰러지는데 표범 따위야 안중에 없으나 가끔은 예외가 있다고 헌터는 경험담을 얘기했다.

표범은 일부일처주의다. 애정도 깊다. 암컷이 죽자 암컷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하루 종일 곁을 지키는 경우도 보았다. 새끼들에 대한 애정도 지극하다. 언젠가 마사이족 장로들이 헌터를 찾아와서 표범을 잡아달라고 했다. 표범을 두려워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용감한 사냥꾼 마사이족이 표범 한 마리 때문에 헌터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으나 현장을 보고 헌터는 사정을 이해했다. 표범은 무려 14마리의 송아지와 돼지를 죽였으며, 7명의 사람을 부상시켰다. 헌터가 도착한 날 밤에도 송아지 4마리를 죽였는데 물고간 것은 한 마리 뿐, 나머지는 살육본능으로 장난삼아 죽인 것이다. 이튿날 아침 헌터는 3사람의 모란(마사이족 전사)을 데리고 표범 추적에 나섰다. 송아지를 물고 갔으므로 핏자국이 추적이 용이했으나 차차 핏자국이 끊겼고 표범은 돌산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표범은 돌들 사이에 숨어서 추적해오는 헌터 일행을 빤히 보고 있을 것이었다. 헌터는 지형을 관찰하면서 이런 곳에서 표범과 대결은 자살행위라고 판단했다. 모란들은 여기서 표범과 싸우다가 부상만 당했다고 했다. 마을로 돌아온 헌터는 죽은 송아지를 그대로 두고 부근 나무 위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그 날 밤 10시께 헌터의 귀에 그림자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전문 사냥꾼만이 가진 감각이었다. 그림자는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송아지 옆에 멈췄다. 어둠 때문에 모습이 보이지 않아 표범이 송아지를 끌고 밝은 곳으로 이동하는 걸 기다렸다. 표범은 예민한 감각으로 이상을 감지한 듯 송아지고기를 뜯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20분 동안 서로 숨을 죽이고 대치했다. 이윽고 표범의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어슴프레하게 보였다. 표범의 몸은 보이지 않았으나 사격 찬스는 그 순간 뿐, 헌터는 겨냥을 하고 약간 밑을 쏘았다. 어둠속에서는 대체로 높이 쏘는 경향이 있었다. 밑을 쏘면 머리에 명중하지 않더라도 심장에 맞을 확률이 컸다. 표범이 총탄을 맞는 킥! 하는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헌터는 날이 밝을 때까지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못 했다. 날이 밝자 나무에서 내려와 핏자국을 조사했다. 피는 배에서 흘리고 있었으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헌터는 4인의 모란을 앞세우고 추적을 했다. 창과 방패 그리고 한 사람은 돌맹이가 든 자루 또 한 사람은 긴 장대를 들었다. 돌맹이는 바위틈에 던지고 장대로는 바위구멍을 찔렀다. 모란들은 자기들이 표범을 잡을테니까 헌터는 보고만 있으라고 했다. 나쁜 버릇이었으나 동의했다. 얼마쯤 산을 오르니 큰 바위 밑에 굴이 나타났다. 헌터가 입에 손가락을 대면서 신호를 했다.

경고!’

모란들이 창과 장대를 찔러넣자 안에서 독기찬 표호가 터져나왔다. 창과 장대로 무장한 모란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오산이었다. 간교한 표범은 굴 뒤편으로 나와 바위 뒤에서 덤벼들었다. 굴에서 나오면서 바위 뒤편으로 돌아가 덮쳐드는 세 동작이 눈 깜짝할 일순간에 이루어졌으므로 모란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표범은 장대를 들고 있는 모란을 몸으로 들이받아 넘기고 창끝 위로 몸을 날려 세 명의 모란을 동시에 덮쳤다. 동작이 빠른 한 모란이 창으로 표범을 찔렀으나 표범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서 앞발로 창을 쳐내면서 그 모란에게 덤볐다. 모란이 방패로 막았으나 표범은 방패 위로 올라타면서 앞발로 모란의 얼굴을 할키고 어깨를 물었다. 모란과 표범이 엉켜서 뒹굴었다. 또 한 모란이 창으로 뒹굴고 있는 표범을 찔렀다. 창끝이 반대편으로 뚫고 나왔으나 표범은 죽지 않았다. 표범이 몸을 회전시켜 두 번째 모란에게 덮쳤다. 팔을 물고 늘어지면서 뒷발의 발톱으로 모란의 온몸을 할켰다. 헌터가 뛰어들어 총구를 표범의 머리에 대고 발사했다. 과정을 설명하느라고 표현이 길었지만, 표범이 뛰어나오고 모란을 물고 할키고 헌터가 발포하는 이 과정은 눈 깜박할 한 순간에 일어났다. 치명상은 피했지만 장대 모란은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방패 모란은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큰 상처를 입었다. 이런 사유로 표범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로 간주되어 무차별 살상을 당했다. 그러나 표범이 줄어들자 이번에는 성성이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자연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상 말씀드린 것을 요약하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는 표범, 사자, 물소, 코뿔소 그리고 코끼리의 순서입니다. 이 외에 위험한 동물로는 식인악어가 있습니다.’

식인악어는 토인들이 죽은 사람을 수장해서 악어들이 사람고기맛을 알고 산 사람을 습격했다. 헌터가 본 영국영토 탕가니카의 악어는 몸의 길이가 3m나 되는 놈이었는데, 강에서 20m나 기어올라와 나무 밑에서 잠자고있던 노인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곁에 있던 토인들이 몽둥이로 때려죽였는데 뱃속에서 물소의 뿔, 맷돼지의 털, 뱀의 뼈, 토인여자들의 팔찌, 목걸이 안경유리들이 나왔다. 그리고 두 개의 상아가 나왔는데 어쩌다 코끼리가 악어의 밥이 되었는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헌터는 자기 앞에서 토인이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토인은 더위를 식히려고 목욕을 하다가 희생되었는데 사람의 비명소리를 듣고 강가로 달려갔으나 토인은 이미 악어에게 허리를 물려 강 가운데로 끌려가고 있었다. 헌터가 다급하게 장탄을 했으나 총구를 들었을 때는 강물에 번지는 핏빛물 뿐이었다. 어느새 악어친구들이 몰려들어 토인의 몸은 세 토막이 되어 악어 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토인들 뿐만이 아니라 헌터도 악어에게 습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헌터가 통나무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는데 별안간 쾅! 하는 소리가 나고 배가 크게 흔들렸다. 다행히 노련한 사공들이 균형을 잡아 배가 전복되는 걸 면했으나, 건너편 육지에서 토인들이 큰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는데 손가락 끝 지점을 보니 거대한 악어가 통나무배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통나무배에 거대한 꼬리로 일격을 가했으나 뒤집어지지 않자 재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헌터가 총을 들어 발사했다. 두꺼운 껍질로 뒤덮힌 악어는 총알도 뚫지 못 하므로 눈알을 겨냥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알이 조준에 들어오자 발사했고 악어는 허연 배를 하늘로 내놓고 뒤집어졌다. 3m가 넘는 대형악어였다. 만약 악어의 꼬리질에 배가 뒤집어지면 배에 탄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악어의 밥이 된다. 이렇게 악어에게 많은 소들이 희생되었다. 소는 육지에서 풀을 뜯지만 물가에 자란 보드라운 수초를 좋아한다. 수초맛에 주위 경계가 풀어진 소를 악어가 소리없이 다가와 다리를 물어 끌고간다. 악어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지만 소의 다리를 잘라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물의 깊이가 1m 내외라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은 소가 이긴다. 네 발로 버티는 힘이 소를 살린다. 그러나 물이 깊으면 소는 악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물속으로 끌려들어가 악어의 밥이 된다. 악어친구들이 떼로 몰려들어 잔치판을 벌인다. 덩치 큰 소가 통째로 찢어져 십여분만에 사라진다.

헌터가 물속의 악어가 위험한 맹수라고 했지만 하늘에서는 독수리를 지적했다. 날개길이가 4m나 되는 독수리는 하늘의 절대자다. 토인마을에서는 닭, , 토끼들을 약탈당했다. 때로는 어린아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밀림에 먹이가 사라지자 한 마을에서 여섯 명이 독수리에게 희생된 사실도 있었다. 독수리 중에서도 대머리독수리가 가장 고약하다. 추악한 모습의 대머리독수리는 죽은고기를 처치한다. 그래서 밀림의 장의사라는 별명도 있다. 부상당한 짐승이나 사람도 먹이다. 부상당한 사람을 발견하면 하늘을 빙빙 돌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명을 재촉한다. 처음에는 한 마리지만 점점 수가 늘어나 수십 수백 마리가 모인다. 그러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기다리지 않는다. 항거할 힘이 없다고 판단하면 땅에 내려와 눈알부터 파먹는다. 표범이 사람의 눈을 할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수리의 일격으로 눈은 구멍만 남는다.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죽은 사람을 덮치는 광경은 악몽과 같다고 헌터는 치를 떨었다. 독수리를 모두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뱀독수리書記官鳥는 헌터가 좋아하는 새다. 다리가 학처럼 길지만 기중기처럼 강하다. 머리에 왕관을 쓰고, 눈은 나폴레옹처럼 날카롭고, 코는 시저(카이사르)처럼 우뚝하다. 용감하다. 아프리카 코브라 등 독사와 싸우는 유일한 동물이다. 독사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위축되어 도망치기 바쁘다. 코끼리나 사자도 죽이는 독사들이지만 독수리에게는 설설 긴다. 독수리가 뱀을 발견하면 주변을 빙빙 돈다. 그러다가 덮쳐들면서 날개로 뱀의 대가리를 후려친다. 독수리의 날개 안쪽에는 망치와 같은 혹이 달려 있다. 그 혹에 일격을 당하면 뱀은 기를 쓰지 못 한다. 투지를 잃은 뱀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오르면 뱀은 죽은 목숨이다. 다리를 감고 몸을 물어보지만 독수리는 뱀독에 면역이 되어 있다. 독수리도 아프리카의 맹수에 이름을 올린다. 여기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또 하나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무소운 짐승은 외톨배기다. 무리에서 축출되어 혼자 돌아다니는 떠돌이다. 깡패로 불리운다. 집단생활을 하는 무리에서 우두머리로 무리를 지배하다가 늙어서 젊은 것들에게 쫓겨난 그들은 움직이는 것만 보면 불문가지로 달려든다. 무리에서 축출된 외로움이 그들을 밀림의 깡패로 만들었다고 헌터는 짐작하고 있다.

 

16. 식인食人 사자獅子

 

고양이족들은 좀 이상하다. 사자는 몹시 화를 잘 내는 변덕장이인데 그의 감정은 그때 그때의 분위기와 기분에 좌우된다. 날씨도 그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건조한 공기는 그를 게으름뱅이로 만들어 따가운 햇볕 아래서는 온종일 누워 하품만 한다. 그러나 우중충한 우천은 그를 신경질적으로 만들고 정력가로 변모시킨다. 1860년 아프리카 케냐지구 나이로비 동남방 타워 부근에서 사자들이 가축과 사람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 그 곳에 유난히 궂은 날씨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철도 부설공사를 하고 있던 인부들이 사자에게 물려 많이 죽었으며, 철도회사는 공사를 중단해버렸다. 사자들은 처음에는 철도부설공사 중 죽은 시체를 처리했다. 회사는 공사 중 죽은 인부들을 땅에 매장하지도 않고 그냥 숲속에 던져버리면 사자들이 처리했다. 사람고기 맛을 본 사자들이 인부들을 덮쳤다. 칠흑 같은 밤에도 눈이 보이는 사자들은 밤에 활동했다. 그것도 달밤을 피하고 깜깜한 밤에만 활동했으므로 사자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은 사자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사자들은 청각이나 촉각에 의지하지 않고 정확한 시각에 의해 행동했다. 사자들은 채석장이나 재목벌채장에서 밤일을 하는 인부들과 마을 어귀에서 부녀자들에게 덮쳤다. 10m 또는 5m 앞까지 접근해서 소리도 없이 두세 번의 도약으로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200Kg이 넘는 사자들의 공격을 받으면, 더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밤에 귀신처럼 달려드는 사자의 공격에 사람들은 무력했다. 사람들은 그저 휙! 하고 바람이 일어나고는 사자에게 목덜미를 물려 끽! 소리 한 번 내보지도 못 하고 팔다리가 대롱거리는 것이 고작 저항이었다. 그래서 나이로비의 공동묘지에는 뼈나 머리카락만 남은 묘지가 늘어났다. 철도회사는 나이로비의 직업포수 약 40 여 명에게 특별현상금을 약속하고 사자사냥을 의뢰했다. 포수들은 사자껍질과 현상금을 한꺼번에 얻을 욕심으로 타워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이미 사자사냥 경험이 이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밤에 사자들이 설치도록 놔두었다가 낮에만 사냥을 했다. 토인들에게 정보를 얻어 새벽에 현장에 나가 사자발자국을 쫓았다. 모래가 섞인 초원이기 때문에 사자발자국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밤새 사람고기를 포식한 사자들은 멀리 가지도 않고 인근 숲속에서 쉬고 있었다. 그곳에서 포수와 사자들은 일대일로 맞섰다. 초원이라 장애물도 없었다. 포수의 추격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자들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숲에서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사람고기를 배불리 먹었으므로 포수의 고기는 사양하겠다는 투였다. 그러나 포수가 도망가기는커녕 점점 거리를 좁혀오자 사자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숲속에 살기가 퍼졌는데 그 순간 사자가 튀어나왔다. 시속 40마일의 초스피드이며 사자는 그 스피드로 처음부터 도약한다. 삼각형으로 딱 벌어진 갈색의 상체가 급행열차처럼 돌진하면 노련한 포수도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순간에 포수들은 운명을 걸어야 한다. 단 한 발의 총알을 장전한 라이플로 공중에서 날아오는 표적을 맞춰 떨어뜨려야 한다. 탄환이 수십 발 들어있는 산탄총으로 날아가는 꿩을 잡기는 쉽지만 라이플로 날아오는 사자의 이마나 심장을 명중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 한 번의 기회를 실패하면 포수의 몸은 걸레처럼 찢긴다. 사격이 정확하면 사자의 몸은 포수의 4, 5m 앞에 털썩 떨어질 것이고, 실패하면 사자의 엄청난 앞발치기에 포수는 머리통이 부서져 즉사한다.

 

식인사자들과 대결하기 위해 나이로비에서 온 직업 맹수포수들 중에 존 헌터라는 27세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청년이 있었다. 후리후리한 키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호남형이었으나 이 청년이 훗날에 세계에서 으뜸가는 명포수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 했다. 헌터는 손때로 까맣게 반질거리는 구형 모젤 한 자루만으로 사자에 도전하여 역전의 용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완벽한 사격수였으며 사격솜씨도 정확했다. 고향 스코틀랜드의 호수에서 날아오르는 물새를 산탄총으로 쏘면서 수련을 했던 헌터는 사자도 물새를 쏘듯이 사격을 했다. 그가 잡은 사자껍질에는 언제나 총구멍은 단 하나, 심장이나 이마에 나 있을 뿐이고 그 가죽에는 화약냄새가 스며 있었다. 도약하는 사자 앞에 우뚝 서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동료포수들은 죽음의 신도 탄복하는 사나이라고 말했다.

헌터가 나이로비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풋내기였고, 여기서 사자사냥으로 꽤 이름을 날린 제크노인과 짝을 지어 사자사냥 요령을 배웠다. 그러나 제크는 트릭을 썼기 때문에 헌터는 못마땅했다. 나뭇가지에 총신을 거꾸로 매달고 줄을 늘여 먹이를 대롱거리게 공중에 매달아서 사자가 먹이를 물면 총이 자연적으로 발사되도록 하는 트릭이었다. 직업포수가 트릭을 사용하는 것은 사냥꾼답지 못 한 비신사적 처신이었다. 제크가 설치한 트릭을 본 적이 있었다. 총이 발사되었으나 사자는 없었다. 사자가 부상을 입고 도망쳤다. 제크는 어깨를 한 번 들썩거리고는 돌아가자고 했다. 상처를 입은 사자는 무서운 맹수로 변한다. 자기에게 상처를 입힌 인간을 증오하고 복수하려고 한다. 매우 위험하다. 제크는 상처 입은 사자를 추적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고 투덜거렸으나 그도 상처 입은 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있어서 마지못해 헌터의 등 뒤에서 따라왔다.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얼마 안 가서 숲이 나왔고 핏자국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비린내가 났다. 제크는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으나

우리 나무 위에 올라가자.’

라고 겁에 질린 말을 내뱉고는 헌터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가버렸다. 헌터는 혼자 숲속으로 들어갔다. 10 여 미터 전진하자 사자가 아픔에 못 이겨 뒹굴었던 흔적이 나타났다. 풀에 선지피가 묻어 있었다. 몇 미터 더 나아가자 사자 숫놈 한 마리가 그 잔인한 살기를 띤 노란 눈으로 뜻밖의 난입자를 뚫어져라고 응시하고 있었다. 헌터도 사자의 노란 불이 이글거리는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천천히 조준을 했다. 완벽한 사격상황이었기 때문에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부상당한 사자는 눈앞에 포수를 보면서도 도약할 힘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절박한 상황에서 헌터가 방아쇠를 막 당기려고 하는데 총소리가 나고 무서운 표호소리와 함께 사자가 튀어올라 몸을 뒤틀면서 헌터에게 덮쳐들었다. 사자가 몸을 비틀었기 때문에 조준이 빗나가버린 헌터는 총신을 옆으로 흔들면서 발사했다. 그래도 총탄은 사자의 이마를 꽤뚫었다. 사자는 헌터의 바로 발밑에 털썩 떨어졌다. 헌터는 그 반동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때 나무에서 얼빠진 소리가 들려왔다.

, 괜찮아!’

나무 위를 보고 한 방 쏘아버리고 싶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죽은 사자의 몸을 살펴보니 경망한 포수가 쏜 총탄은 사자의 꼬리에 맞아 꼬리를 잘라버렸다. 그 아픔에 기력을 잃고 있었던 사자가 마지막 힘을 모아 도약을 했던 것이다. 꼬리가 잘려나가 사자가죽도 망쳐버렸다. 그 날로 헌터는 제크와 헤어졌다. 경망한 포수를 등 뒤에 두고 사자사냥을 하는 것은 사자의 습격 보다도 더 위험하다. 사자의 습성을 알만했지만 경솔한 포수의 행동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 후 헌터는 토인을 조수로 삼았다. 토인조수는 그 젊은 주인이 지근거리에서 사자와 대결하는 것은 보고는 기겁을 하고 조수를 포기했다. 그러나 몇 번 헌터가 사자사냥 하는 것을 보더니 자기 주인에게는 죽음의 신이 붙지 않는다고 확신해버렸다. 헌터는 그 조수를 데리고 사자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들으면 즉시 현지로 달려갔다. 그는 다른 포수처럼 비가 온다거나 날이 어둡다면서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잡으려는 사자는 기어히 잡았다. 그러나 식인사자는 없어지지 않았다. 장마철이 되자 사자들은 마을까지 원정을 했다. 원정 사자들 때문에 토인들은 마을에 굵은 가시울타리를 쳤으나 사자들은 비상한 재주를 부렸다. 사자들은 가시울타리 마을로 뛰어들거나 외양간에 덮쳐들지 않았다. 밤이 되면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풍겼다. 사자의 냄새를 맡으면 가축들이 미쳐버렸다. 우리 안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면 사자들은 좀 더 우리 가까이 다가와 오줌을 누었다, 사자 오줌냄새에 미친 가축들에게 사자는 으르렁! 하고 마지막 경고를 보낸다. 그 경고에 가축들은 광란을 벌이면서 스스로 우리를 박차고 나왔다. 간악한 사자들은 가축을 마을 밖 넓은 들판으로 몰고나가 마음대로 살육잔치를 벌였다.

헌터는 사자들이 침입한 마을에서 사자가 소를 도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밤이었다.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는 밤이었지만 그 빛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소들과 악마처럼 소를 도살하는 사자들을 보았다. 사자는 암수 두 마리였으며, 소 두 마리를 물고갔다. 토인들에게 마녀라고 불리우는 그 암컷은 이 마을을 습격하여 여자 한 사람과 가축 14마리를 죽였다고 한다. 헌터는 이튿날 조수를 데리고 마녀 추적에 나섰다. 사자들이 물어간 소는 마을에서 4Km 떨어진 숲속에 있었다. 한 마리는 다리와 뼈만 남아 있었으나 다른 한 마리는 거의 입도 대지 않았다. 사자는 없었다.

부와나, 틀렸어요. 돌아갑시다.’

사실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 날 내린 비 때문에 발자국 추적을 할 수 없었다.

아니야, 웅뎅이를 파라! 잠복 움집을 짓자.’

아니, 움집에서 사자를 잡겠다고요?’

사자들은 오늘 밤 돌아와서 남은 소고기를 먹을 것이다.’

움집에서 잠복은 괴로웠다. 모기떼가 극성을 부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모기떼를 쫓으며 잠이 들락말락 하는 사이에 손등을 꼬집혔다. 정신이 들자 무엇인가 소리가 들렸다. 사냥꾼의 예민한 본능에만 들리는, 고무처럼 부드러운 소리였으나 상당한 무게로 눌리는 육중한 발걸음소리였다. 초저녁에 나타나 낑! ! 거리며 소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몰려들었던 하이에나들의 낑낑소리가 딱 멈췄다. 잠시 후 하이에나들이 당황하여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왔다, 드디어 왔다. 한밤의 사자는 아무 것도 겁내지 않았다. 그는 백수의 왕이요 밤의 지배자다. 먼저 도착한 숫컷이 밀림이 떠나갈 것처럼 표호를 뿜어냈다. 암컷이 우렁우렁거리며 뒤따라 오고 있었다. 사자의 노호소리에 곁에 있던 토인이 몸을 떨었다. 사자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우두둑 우두둑 이빨과 뼈가 부딪히는 소리와 푹푹 고기 뜯기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헌터는 전등을 토인조수에게 넘겨주고 차디찬 총신을 움집 밖으로 내밀었다.

하나, , !’

전등빛이 칠흑의 밀림을 꿰뚫었다. 그 불빛 속에 사자들이 있었다. 소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물고있는 숫놈 낯바닥이 앞자리에 있었고, 피투성이 입으로 고기를 삼키는 암컷은 뒤에 있었다.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또 한 방.

쯧쯧, 이 바보야!’

헌터의 고함소리. 몸서리치는 사자의 표호와 피투성이 몰골에 놀란 토인조수가 그만 전등을 떨어뜨려버렸다. 앞에 있던 숫놈은 불빛 속에서 겨냥을 했으나 뒤의 암컷은 불빛이 꺼져버렸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남아있는 잔영으로만 쏘았다. 숫놈은 죽은 것 같았으나 암컷은 부상만 입어 아픔과 노여움에 길길이 뛰어오르면서 미친 듯이 표호를 하고 있었다. 부근에서 찌꺼기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던 하이에나들도 총소리와 표호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다. 헌터는 두 발을 다 쏘았으므로 재빨리 장탄을 했다. 장탄을 막 끝냈는데 움집지붕이 털썩 내려앉으면서 절구통 같은 것이 불쑥 내려왔다. 헌터는 암사자가 움집을 덮친 것이라고 판단, 총신을 위로 올리면서 연거푸 두 발을 쏘았다. 움집이 들썩들썩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부와나, 비가 오나봐요.’

비가 아니었다. 뜨뜻미지근했다. 전등을 비춰보니 헌터와 토인조수 사이에 사자의 커다란 뒷다리가 축 늘어져 있고, 그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헌터는 그 후 사자사냥방법을 바꿨다. 사자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사냥을 하면 이미 피해를 입은 후였고, 수확도 1주일에 두 마리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사자들의 집단거주지를 찾아가기로 했다. 반 년 동안의 경험으로 사자무리가 즐겨 살고있는 거주지를 알아냈던 것이다. 사자들은 돈가를 거주지로 삼고 있었다. 돈가는 강가인데 물이 줄어 말라붙었거나 얕은 개울이 남은 하상이었다. 양쪽 대안에는 갈대가 무성하여 그늘을 만들어주어, 사자들은 낮에는 더위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갈대 속에 숨어 있었다. 사자는 자기네들끼리는 대단히 사교적인 동물이며 세 마리에서 여나문 마리씩 무리를 지어 프라우드를 만든다. 프라우드Proud는 자랑스럽다는 말이지만 사자의 가족집단을 가리킨다. 사자는 일부다처주의고 가장 힘 센 숫컷이 두목이 되는데 숫컷은 사냥을 하지 않는다. 암컷들이나 젊은 놈들이 사냥해온 먹이를 먹고 하루 종일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며 생식에만 열중한다. 헌터는 그 숫컷 두목을 노렸다. 몸집도 크고 목털갈기가 훌륭해서 껍질값도 많이 나갔다. 헌터는 무거운 장비를 다 버리고 총과 탄약 그리고 물통만 지니고 돈가를 찾아다녔다. 토인조수가 갈대밭에 돌을 던진다. 사자가 숨어 있으면 으르렁거린다. 그래도 계속 돌을 던지면 숲속의 백수의 왕은 모욕과 분노로 튀어나온다. 화가 치밀어 튀어오르는 사자는 어김없이 이마에나 심장에 단 한 발의 납덩이를 선사받았다. 그렇게 사냥을 즐기다가 하마터면 큰일날뻔한 일도 있었다. 사자가 한 마리가 아니라 암수 두 마리가 한꺼번에 튀오나온 것이다. 어떻게 할 틈도 방법도 없었다. 헌터는 먼저 튀어오른 수놈의 이마에 첫발을 쏘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숫놈이 공중에서 치명타를 받고 떨어지자 뒤에서 튀어오르던 암컷은 순간적으로 고도를 올려 숫놈을 타고 넘어버렸는데 그 통에 그 암컷은 헌터 머리 위로 날아버렸던 것이다. 뒷발로 헌터의 머리를 쳐서 모자를 떨어뜨리기는 했지만. 헌터는 사색이 되어 달려온 토인조수를 보며 웃었지만 그 미소는 일그러져 있었다.

부와나, 이런 사냥은 이제 그만 합시다.’

고집쟁이 부와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17. 미친 코끼리

 

해질 무렵이었다. 마을로 돌아오던 토인 두 사람이 마을 어귀에 있는 고목枯木 그늘에서 무엇인가 커다란 그림자가 서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뭐야?’

두 사나이는 무심코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림자가 고목 뒤에서 뛰어나와 무서운 속도로 덮쳐들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산더미 같은 코끼리였다. 두 사나이는 비명을 지르면서 마을에 들어서자 각각 다른 길로 달아났다. 둘 중 하나가 붉은 모포를 두르고 있었는데 코끼리는 붉은 모포의 사나이를 쫓았다. 투우의 황소처럼 코끼리도 붉은색을 싫어했다. 사나이는 집과 집 사이로 마을을 빙빙 돌면서 사람 살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서 가족들을 꼭 껴안고 덜덜 떨며 집 밖으로 나오지 못 했다. 사나이는 골목을 돌면서 쫓겨다녔지만 코끼리에게 갈대와 나뭇잎으로 엮은 집은 토인마을의 집들은 걸림돌이 되지 못 했다. 코끼리는 닥치는대로 집을 부수고 뭉개버리며 사나이를 쫓았다. 쫓기다 막힌 사나이가 근처 수수밭으로 달아났지만 사나이는 수수밭에서 코끼리의 코에 말려 공중에 높이 치켜올려 내동댕이쳤다. 서너 번 내동댕이 치다가 코끼리는 사나이의 주검을 짓밟아 뭉개버렸다. 코끼리가 밀림으로 돌아간 뒤 사람들이 확인해보니 사나이는 만신창이로 두 눈알이 빠지고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이 짓뭉개져 있었다. 이튿날에야 신고가 들어왔는데, 당시 영국영토였던 동아프리카 아바디어지구에 머물고 있던 헌터는 곧 와간바족의 토인 사세다를 데리고 출발, 그 날 오후 늦게 마을에 도착했다. 잘 아는 사이인 부락추장은 헌터를 와락 껴안으면서 흐느꼈다.

놈은 부랑코끼리야, 미친 놈이지.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옥수수밭을 짓밟고, 사람을 해치므로 빨리 죽이지 않으면 마을이 멸망한다.’

헌터는 우선 죽은 토인의 시체를 찾으러 나갔다. 부근 옥수수밭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두 눈알이 빠지고 내장이 터졌으며 뼈라는 뼈는 모조리 부러져 있었다. 헌터의 푸른 눈에 분노의 빛이 번쩍였다. 그는 곧 추적하려고 했으나 조수 사세다가 말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헌터 일행은 마을에서 잠을 잤는데 날이 밝기도 전에 이웃마을에서 전령이 헐레벌떡 도착했다. 코끼리가 옥수수밭을 뭉개버렸다고 했다. 헌터 일행은 부랴부랴 이웃마을로 달려갔다. 쑥대밭이 된 옥수수밭에서부터 코끼리 발자국을 추적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오르막길을 5시간이나 걸어가던 헌터는 이번의 코끼리사냥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짐작했다. 코끼리가 아바디어밀림 속으로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바디어밀림은 아름들이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대삼림이며, 나무뿌리와 가시덤불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고 갈대와 잡초가 사람 키보다도 더 무성하게 자랐다. 헌터와 사세다는 서로 마주 보았다. 이 지방 출신인 사세다가 어깨를 으쓱거리면 양 손을 벌렸다.

부와나, 곤란해요.’

그래도 할 수 없어. 지금 우리는 사냥꾼이 아니야. 살인과 파괴를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쫓는 경찰관이란 말이야.’

밀림 속은 햇볕도 스며들지 않아 바다처럼 푸르고 조용했다. 햇볕을 가로막는 나뭇잎들이 온통 밀림세상을 제압하고 있어 죽음의 나라처럼 침묵이 흘렀다. 헌터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전진했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 예민한 코끼리의 귀는 여하한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땅바닥에 깔린 마른 대나무들이 보스락소리를 냈고 그럴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마음을 졸였다. 코끼리는 한없이 달아나고 있었다. 그 놈은 자기를 따라오는 미행자를 눈치 챈 것 같았으며 급한 걸음걸이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래도 좀전까지는 어린 대나무순이나 댓잎을 훑어먹으며 여유로왔으나 이제는 대나무를 마구 짓밟으며 사뭇 일직선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길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줄달음질치고 있었는데 헌터는 새로 길을 낼 필요가 없이 그 길을 따라 달려갔는데 얼마 안 가서 난관에 부딛쳤다. 그 심술궂은 놈이 야생딸기와 독가시덤불 속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 추적자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일부러 한 짓 같았다. 그러나 헌터는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시덩굴이 얽히고 설킨 숲속을 뚫고 들어갔다. 덤풀을 타넘기도 하고 손으로 제키기도 하면서 때로는 덤풀 속을 기어가기도 했다. 네 다리로 기어가고 있을 때 코끼리기 되돌아서 덮쳐들면 어떻게 할까? 헌터는 쓴웃음을 지었다. 옷이 몇 군데 찢어지기는 했으나 무사히 가시덤풀을 빠져나와 대나무숲으로 들어섰다. 그 때 전방에서 보스락소리가 들렸다. 헌터와 사세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딸각딸각, 대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사세다가 왼쪽 대나무숲을 가리켰다. 그러나 대나무가 빽빽하게 밀생해서 코끼리는 보이지 않았다. 헌터는 바람 부는 방향을 살폈다.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에 사람이 있으면 코끼리에게 들킨다. 바람을 등져야 하는데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았다. 할 수 없다. 헌터는 조용하게 제프리 엑스프레스 쌍발총을 들어올렸다. 좀 무거웠으나 애용하는 청이였으며 절대로 주인의 신뢰에 어긋난 일이 없었던 총이다. 헌터는 총을 들어올린 체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돌연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삭바삭 대나무 밟는소리가 났다. 아주 가깝다. 몇 미터 이내다. 긴 총구를 소리나는 쪽으로 겨냥했다. 소리가 멈췄다. 보스락소리도 없어졌다. 헌터는 자기 심장의 고동소리 조차도 정지시키고 싶었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옆에서도 들릴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코끼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소리가 나더니 대숲 한켠이 훤하게 밝아졌다. 코끼리가 전속력으로 도망을 쳤다. 그 빌어먹을 바람 때문에 코끼리가 사람의 냄새를 맡아버린 것이다. 헌터와 사세다가 서로 마주보았다. 사세다가 원주민의 말로 코끼리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헌터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으나 가슴 속에서는 허탈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오후 6시 경이었다. 새벽 6시부터 12시간 동안 추적한 사냥이 허사였다. 코끼리는 이미 몇 백미터나 달아났을 것이다. 이 쯤 되면 코끼리사냥을 단념하고 캠프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었으나 헌터에게는 고집이 있었다, 그리고 자존심도 . 추적을 계속했다. 밀림 속은 햇빛의 잔광으로 희미한 빛이 남아 있었지만 추적은 가능했다. 놀란 코끼리가 대나무를 마치 풀처럼 짓밟으며 도망쳤기 때문이었다. 약 한 시간가량 추적을 했을 때 사세다가 나즈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새가 우는 소리 같았는데 주의하라는 신호였다. 헌터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사세다가 속삭였다.

부와나, 코끼리란 놈이 대나무숲을 왼쪽으로 돌아서 바람 밑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코끼리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코끼리가 사람을 추적하는 꼴이 된다. 헌터는 추적방향을 바꿨다. 왼쪽으로 돌고 있는 코끼리의 정면을 향해 전진했다. 이 작전은 옳았다. 10 여 분 후에 코끼리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밀림에는 이미 어둠이 스며들어 푸른 대나무들이 푸른 색깔로 변했으며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서 사세다가 또 새우는 소리를 냈다. 위험신호였다. 어둠이 사람에게는 불안하지만 코끼리에게는 용기를 준다. 어둠이 더 깊어지면 총 쏘기가 어려워진다.

(돌아갈까?)

헌터가 잠깐 망설였을 때 대나무숲 저쪽에 무엇인가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부근의 어둠이 한층 더 짙어지고 하얗고 기다란 것이 스치는 것 같았다.

(코끼리다!)

하얀 것은 상아고. 헌터가 총을 들었다. 그러나 코끼리는 어둠 속에서 녹아버린 듯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 코끼리가 거기 있는데 머리가 어딘지 꼬리가 어디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두운 밀림에는 살인 코끼리가 발산하는 살기가 떠돌았다. 헌터는 등 뒤에서 사세다가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들었다.

(부와나, 쏘시오 쏘아!)

사세다가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주인이 총을 쏘기만 하면 짐승이 쓰러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총소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터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으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급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총을 쏜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어림으로 쏘아도 요행히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는 있다. 그러나 만일 코끼리에게 상처만 입혀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피를 본 코끼리는 고통과 분노 때문에 총소리가 난 곳으로 돌진해 올 것이다. 그까짓 대나무 따위야 돌진해오는 탱크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앞을 보지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까? 다행히 부상당한 코끼리가 도망을 간다고 해도 그 코끼리는 영원히 잡지 못 하게 된다. 수백마일이나 도망쳐버릴테니까. 헌터는 쓰러뜨릴 자신이 없는 총은 쏘지 않는 사냥꾼이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과 코끼리는 침묵하며 5, 6분이나 대치했다. 코끼리도 10여 미터 앞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움직이지 않았다. 덤벼들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침묵하며 서 있었다. 영리한 코끼리가 어둠이 더 짙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일까? 어둠이 점점 더 짙어졌다. 헌터의 가슴이 짓눌리는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쓰디쓴 패배감에 짓눌리고 있었다. 헌터는 사세다의 후퇴신호에 따라 총을 겨냥한 체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코끼리는 따라오지 않았다. 헌터와 사세다가 피곤한 몰골을 하고 마을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몇몇 노인들이 위로주를 가지고 헌터를 찾아왔으나 헌터는 파이프를 태우면서 하늘의 별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밤 살인코끼리는 꿈에서도 나타나 헌터를 괴롭혔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자 헌터늬 가슴에 또 한 번 타격을 입혔다. 바로 그 코끼리가 어젯밤 늦게 이웃 산바(옥수수밭)를 습격하여 온통 망쳐놓았다는 전갈이 온 것이다.

(오냐, 이 놈 두고보자!)

헌터와 사세다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짙은 안개가 내린 밀림으로 다시 들어갔다. 코끼리 발자국은 곧 발견되었다. 그 놈은 어저께 밀림에서 뒤돌아가는 헌터의 뒤를 밟고 따라와 옥수수밭을 습격하고 해가 뜨기 전에 밀림으로 도망쳤다. 이 번 추적에는 세 사람의 토인 지원자가 길 안내를 했다. 토인들은 큰 칼로 덤불과 나뭇가지를 쳐내고 길을 텄다. 정오 무렵에 헌터 일행은 냄새가 뭉실거리는 코끼리 똥을 발견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코끼리가 누워 쉰 자국도 발견했다. 헌터와 사세다는 오랫만에 웃었다. 살인 코끼리가 방심한 증거였다. 헌터는 길 안내를 한 토인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주의를 주고 앞장을 섰다. 또 대나무숲이 나왔다. 헌터는 대나무숲에서 코끼리와 대결하기 싫었다. 코끼리가 돌진해오면 대나무들은 마치 파도처럼 앞으로 쓰러져 그 대나무에 깔려 죽을 위험이 있었다. 대나무숲에는 어린 순이 많았고 코끼리는 보드라운 댓잎을 좋아했다. 혹시? 예감이 적중했다. 10여 미터 안에서 대나무가 꺾여지는 소리가 나고 코끼리의 기척도 있었다. 사세다가 짐승뼈를 갈아서 만든 가루를 공중에 뿌렸다. 바람은 코끼리쪽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헌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운명의 신이 이번에는 코끼리 편이 아니었다. 이제 소리만 조심하면 된다. 코끼리는 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소리만 내지 않으면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다. 코끼리가 보였다. 8, 9미터 앞에서 요란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긴 코로 대나무줄기를 말아 뚝뚝 부려뜨려놓고 보드라운 떡잎을 주를 훑어 입속에 넣고 있었다. 코끼리는 대나무 부러뜨리는 소리 때문에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지 못 했고 달콤한 떡잎 맛에 주의력이 산만해졌다. 헌터는 5, 6미터 거리까지 다가가서 총을 들었다. 그러나 총의 조준점은 몇 십 개의 대나무들에 가려져 코끼리의 급소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코끼리가 계속 부러뜨리고 있는 대나무들이 움직여서 조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쏘느냐, 장소를 옮기느냐 잠깐 망설이는 사이에 코끼리가 사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런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느다랗게 떠서 재확인을 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헌터에게 덮쳐들었다. 그 커다란 귀를 머리 뒤에 납작 붙이고 코는 돌격하는 병사들의 총검처럼 가슴 앞에 꼿꼿하게 세우고 돌진했다. 우우엉! 우우엉!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땅이 우를 울리고 대나무들이 파도처럼 쓰러저 누웠다. 헌터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준의 장애가 될 대나무들이 쓰러지고 그 위에 코끼리의 대가리가 떠올랐을 때 조준을 코끼리의 눈과 눈 사이 약간 높은 이마에 겨누어 발사했다. 폭발소리와 동시에 돌진해오던 그 거구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고 느껴지고 다음 순간 공중에서 헤엄치듯 허우적거리더니 옆으로 털썩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앞발을 세워 일어날 듯 했으나 그 때 제 2탄이 픽! 하고 두꺼운 가죽과 지방을 뚫고 그의 심장에 박혔다. 우우엉! 하는 처참한 노호가 끊어지고 킥킥거리는 마찰음으로 변하면서 코끼리는 입에서 이마에서 가슴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사세다가 강적을 다운시킨 후 링 위에서 춤추는 복서처럼 환호했고 달려온 토인들도기성을 지르며 춤을 추었다. 헌터는 천천히 파이프에 불을 붙여 물고 코끼리의 몸을 조사했다. 코끼리는 굉장히 큰 수놈이었으나 상아는 빈약했다. 초원 코끼리의 상아는 무게만 50Kg이 나가는데 그 놈은 고작 18Kg 정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상아뿌리 밑에 탄환이 박혀 있었다. 나이프로 도려내보니 마스케트총(화약을 총구에 집어넣고 쏘는 구식총)의 탄환이다. 탄환은 상아의 신경중추에 박혀있어 코끼리가 코를 움직일 때 마다 엄청난 통증을 유발했을 것이다. 코끼리는 그 통증으로 머리가 돌아버려 부랑코끼리 살인코끼리가 된 것 같았다. 이 코끼리에게 마스케트총을 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총알 때문에 코끼리가 미쳤고 많은 사람들이 살상된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18. 용감한 마사이족

 

1928년 봄, 케냐 수렵보호청장관 A. T. 리치는 그의 사무실에 헌터를 초청했다. 리치는 유명한 포수에게 아주 중요한 명령서를 전달했다. 케냐 주에 있는 마사이랜드에 사자들이 준동하여 마사이족들의 가축을 마구 잡아먹고 있으니 마사이족들을 보호하라는 명령이었다. 마사이랜드에 파견되어 있었던 R. 벨숍은 사자사냥을 하다가 중상을 입고 입원 중에 있으니 빨리 현지에 가서 마사이족들을 보호하라고 했다. 벨숍은 아마튜아 사격가로써는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 자기 근무지에서 사자들이 날뛰는 것을 방관할 수 없어 최신 자동총을 가지고 사냥에 나섰다. 벨숍의 자동총은 미국제 6연발이었으나 사자사냥에는 적합치 않았다. 6연발 자동총은 평원에서 맹수사냥에는 탁월했으나 나무들이 빽빽한 밀림에서 근거리사냥에는 도리어 위험했다. 자동총은 첫발이 발사되고 다음 탄약이 장탄될 때까지 1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눈 깜짝하는 시간이 근거리사냥에서는 치명적인 불행을 빚어낸다. 사자는 1초에 20m 이상을 달리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총은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고장이 잘 나는데 맹수사냥에서 총에 고장이 나면 어떻게 될까? 이 때문에 숙련포수들은 거의 총신이 두 개 있는 이연발총을 쓴다. 이연발총은 첫탄과 2탄 사이에 시간 간격이 거의 없고 고장이 없다. 벨숍은 밀림에서 사자사냥 경험이 없어 연발총을 사용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초원의 경험만 알고 밀림의 생태를 몰랐다. 그는 초원의 경험을 믿고 토인경관 한 사람을 앞세우고 밀림속에서 암사자 한 마리를 쫓았다. 암사자는 곧 사람들의 추격을 눈치채고 잡초속에 숨어 있었다. 몸집이 큰 사자지만 은신술에 탁월하다. 고양이과의 속성으로 제 몸 보다 훨씬 작은 바위나 풀더미 또는 잡초속에 납작 엎드려 은신하면 사람의 눈으로는 발견하기 어렵다. 벨숍은 잡초에 숨어있는 사자를 불과 7 - 8m 거리에서 발견했다. 벨숍은 갑자기 드러난 사자를 보고 당황하여 부지불식간에 첫탄을 발사했는데 그 탄환은 사자의 귀를 찢어버렸고 제 2탄은 쏘지도 못 했다. 첫탄이 빗나가자 제 2탄을 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선불맞은 사자가 튀어오르면서 앞발로 벨숍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사자의 앞발치기는 코끼리나 황소도 일격에 쓰러뜨린다. 사자의 앞발치기를 맞은 벨숍은 서너 번 굴러가다가 쓰러졌다. 그러자 사자는 벨숍의 배 위에 올라타고 가슴을 할켰다. 다행히 같이 갔던 토인이 발포하여 사자가 벨숍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직전에 사살되었다. 벨숍은 사흘 동안 의식을 잃었고 가슴의 상처가 깊어 영국으로 호송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케냐 밀렵보호청은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마사이랜드에 행정관 보다는 숙련된 포수를 파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헌터 외 다른 포수는 거명조차 되지 못 했다.

헌터군, 이일은 자네 외에는 할 사람이 없는 일일세. 우리는 자네에게 특별보수를 지급할 것이고, 사자껍질도 자네 몫이네. 상여금일세.’

헌터는 흔쾌히 수락하고 네 사람의 토인과 여섯 마리의 소와 천막, 식량, 탄약을 싣고 나이로비를 출발했다. 나이로비에서 8Km 가량 남쪽으로 가다가 기구유족이 사는 서쪽으로 길을 바꿨다. 기구유족은 농사를 짓는 온순한 종족이었으며 헌터를 따뜻이 접대했다. 기구유족은 백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오랫토록 호전적인 마사이족들의 행패에 시달렸으나 백인들이 온 뒤부터는 마사이족들이 마음대로 행패를 부리지 못 했다. 백인들이 마사이족을 통제했으나 그래도 기구유족은 마사이족을 두려워했다. 그날밤에 기구유족의 노인들이 헌터의 막사를 찾아와 마사이족의 행패를 하소연했다. 마사이족은 밀림속에서 사냥을 생업으로 살았는데 가뭄이나 기근이 들어 짐승사냥이 여의치 않으면 이웃부족을 침략하여 약탈했다. 식량뿐만 아니라 젊은 남녀를 포로로 잡아 노예로 부려먹었다. 기구유족은 어떻게든 마사이의 침략을 막아보려고 방위대를 조직하여 궁술을 연마시켰으나 마사이의 창을 당해내지 못 했다. 마사이의 창은 기구유의 활만큼 날았고 몸을 관통했다. 백인은 마사이의 호전성을 잠재우기 위해 소, , 돼지 등 가축을 기르게 했는데 요즘 그 가축이 사자에게 전멸되어 마사이는 또 이웃마을을 침략할 조짐이 보였다. 헌터 일행이 마사이의 농경지를 지났는데 농작물이 없었다. 넓은 초원지대를 지나자 밀림이 나타났다. 수세기 동안 마사이가 지배한 원시 아프리카였다. 헌터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갔으며 밤이 되념 아무데서나 야영을 했다. 며칠 후 또 커다란 밀림에 들어갔는데 사자의 표호가 들렸다. 사자들은 오만불손하게도 야영장 부근을 돌아다니면서 표호했다. 그 날 새벽 헌터는 처음으로 마사이의 모란戰士을 만났다. 그들은 무표정으로 헌터의 천막에 와서 긴 창에 몸을 기대고 헌터를 주시했다. 키가 크고, 몸이 균형잡혔고, 콧날이 우뚝했다. 이집트인의 후손이라고 했다. 젊은 전사는 황토를 얼굴에 바르고 짐승뼈가루로 치장을 했으며 모포를 몸에 걸쳤다. 헌터가 그들에게

사자사냥을 하려고 하니 협조해달라.’

고 했다. 그들은 피식 웃었다.

우리는 사자를 네 마리나 잡았는데 총만 가지고는 사자사냥이 어렵다.’고 했다. 그들은 사자는 창으로만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사이족들은 몇 십 년 전에 구형 마스키총을 든 백인 노예상인들과 싸움에 창으로 이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총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한 발 쏘고 장전하는 마스키총은 마사이의 정확하고 날렵한 창을 이길 수 없었다. 헌터는 그들에게 총도 창처럼 훌륭한 무기이며 두 무기가 힘을 합치면 사자를 쉽게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시이 젊은이는 그 말이 마음에 든 듯 안내를 했다. 정오 쯤 헌터 일행은 엔바라샤 산맥 계열의 산에 도착했다. 산이 가파랐으나 마사이는 노루처럼 날렵하게 뛰어올랐다. 해질 무렵에 겨우 산을 넘어 자그마한 평원에 도착했는데 마사이들이 괴성을 질렀다. 괴성이 끝나자 탁한 개울 넘어에서 화답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우리 마을이야.’

마사이마을은 기구유마을과 달랐다. 기구유 초가는 크고 높았으나 마사이는 움막이었다. 굵은 대나무로 뼈대를 둥그렇게 짓고 위에 소똥을 두껍게 발랐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두운데 시원하고 짐승털이 깔려 부드러웠다. 헌터는 잠시 쉬었다가 사자가 죽인 소의 시체를 보러갔다. 소 두 마리의 시체와 소몰이꾼 시체 두 구가 방치되어 있었다. 마사이는 장례풍습이 없어 죽은 시체는 버려두면 야생 짐승이 뜯어 먹어치운다. 소 한 마리는 거의 먹지 않았으므로 사자가 다시 와서 먹을 것이라고 헌터는 예상했다. 추장이 좋은 작전이라고 찬성했다. 옛날 마사이는 난디족과의 전쟁에서 광장에 식량을 쌓아놓고 잠이 등 척 유인해서 난디족을 몰살시킨 적이 있었다. 사자는 초저녁에 나타났다. 달밤이라 10m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숫컷 두 마리 암컷 한 마리였다. 사자는 부근 숲에 숨어 있다가 마사이가 방목한 소를 몰고 마을로 돌아갈 때를 기다려 나타난 것이었다. 사자가 능글맞았지만 헌터도 침착했다. 사자들은 죽은 소의 시체에 다가가서 냄새를 맡아 보고 주위를 돌았다. 주변 경계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자 사자들은 쇠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그래도 헌터는 기다렸다. 배가 부르게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때 달빛에 번쩍거리는 빛이 날아가더니 갑자기 사자 한 마리가 쓰러지고 나머지 사자들이 노호를 지르며 길길이 뛰었다. 창이 두 개 날아와 한 개는 앞 사자의 가슴에 박혔고 또 하나는 암사자의 엉덩이를 찔렀다. 헌터를 안내한 마사이들이 헌터의 사냥을 도와주기 위해 반대편 숲속에 숨어 있다가 선제공격을 했다. 그들은 헌터가 발포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발포가 늦어지자 백인 사냥꾼이 겁을 먹어 떨고 있다고 지레짐작을 하고 사자를 공격한 것이다. 앞가슴에 창을 맞은 숫사자는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나머지 두 마리가 반격을 했다. 창이 날아왔던 쪽으로 돌진했다. 맹수의 반사본능이었다. 그런데 마사이들은 어이없는 짓을 했다. 그들은 사자들의 맹습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숲속에서 뛰어나와 사자들에게 돌진했다. 긴 창은 이미 날려버렸으므로 호신용 짧은 창을 들고 결투를 할 심산이었다. 짧은 창은 한 발 남짓이므로 사자의 앞발치기를 막을 수 없었다.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헌터가 나서며 날아가는 사자의 갈기를 겨냥하여 발포했다. 2탄은 엉덩이에 창이 꽂힌 체 도약하여 마사이의 창을 든 팔을 후려치고 두 번째 공격을 하려는 암사자의 가슴팍을 뚫었다. 총소리를 듣고 토인마을 사람들 수십 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사자 세 마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고 용감한 전사 두 사람이 멍하니 서서 백인포수의 총을 보고 있는 광경을 목겨했다. 백인포수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두 마사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총의 위력에 놀라 멍한 표정이었다. 곧 두 마사이가 방금 보았던 총의 위력을 예기했다. 손짓 몸짓을 섞어 얘기 하다가 스스로 신이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창을 손에 쥔 체 앞으로 몸을 굽히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면서 벌쩍벌쩍 공중으로 뛰어오르다가 돌연 전신을 똑바로 뻗어 가슴을 내밀면서 춤을 추었다. 황홀감이 고조되자 템포가 빨라지고 나중에는 피스톤운동처럼 급피치가 되어갔다. 그것은 마사이족 특유의 흥분발작이며 세이크진동이라고 알려진 춤이었다. 차차 춤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어른 아이 남녀노소 온 마을이 춤판이 되었다. 창 하나만 가지고 맹수를 공격하는 그들이 왜 여자의 히스테리 같은 발작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헌터는 개선장군 대접을 받았다. 추장은 헌터를 위해 양 한 마리를 잡았다. 양 갈비를 모닥불에 구워 헌터에게 주었다. 여자들이 토기에 포프맥주를 연거푸 따라주었다. 남자들은 술잔을 두 개씩 들고 한 개는 자기가 마시고 다른 한 개는 친구들에게 권했다. 술이 취하니 또 춤판이 벌어졌다. 달이 기울 때 쯤 헌터는 마을에서 제일 큰 집에 안내되었다. 푹신한 풀 이브자리에 보드라운 사자털이 깔려 있었다. 방에는 허리에 가느다란 줄 한 가닥만 두른 가슴이 풍만한 미인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추장의 마누라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젊은 여자였다. 또 한 여자가 큰 그릇에 담은 우유를 가지고 왔다. 우유는 회춘제였다. 그녀들은 밤새 헌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마사이 풍습은 남자가 건드리지 않으면 여자가 먼저 행동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헌터는 고단하여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잠들어버렸다. 이튿날부터 헌터는 바빠졌다. 이웃마을에서 사자를 잡아달라는 전갈이 쏟아져 들어왔다. 가축피해까지 돌아볼 수 없어 인명피해를 우선했다. 가축 네 마리를 죽이고 노인에게 중상을 입힌 마을에 갔다. 사자를 추적하는데 모란들이 창을 들고 따라왔다. 총 한 자루만 가지고는 사자를 잡지 못 한다면서 자기들이 돕겠다는 주장이었다. 사자는 소 등에 올라타 앞발로 소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뼈가 부러진 목에 고인 피를 빨아먹었다. 모란은 발자국을 보고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발자국을 보고 방향을 짐작하여 추적했으므로 매우 효율적이었다. 4시간을 추적하여 잡초가 무성한 숲 앞에서 추적을 멈추고 숲을 포위했다. 헌터는 마사이의 그런 작전이 싫었다. 사자를 포위하고 원진을 점점 좁혀가며 사자가 나타나면 집중적으로 창을 날리는 수법이었으나 인명피해가 날 것이 뻔했다. 포위망 속에서 날 잡아 잡슈 하고 웅크리고 있을 사자가 아니다. 창 몇 개로 치명상을 입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냥터에서 마사이족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총과 창이 협조하면 사냥이 쉬울 것이나 어디까지나 창이 우선이고 총은 보조라고 우기고 있었다. 헌터는 말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는 위험을 감수하고 원진 속으로 들어갔다. 헌터는 사자가 맨 앞의 자기에게 달려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자세를 하고 숲속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헌터가 중대한 착각을 했다. 사자를 한 마리로 오판한 것이다. 숲속에는 암수 두 마리의 사자가 숨어있었다. 원진이 5 - 6m로 좁혀지자 숨을 죽이고 있던 숫사자가 소리없이 도약했다. 동시에 암컷도 도약을 했다. 아뿔사! 피할 수가 없었다. 숫사자에게 첫탄을 쏘고 옆으로 쓰러졌다. 사자는 공중에서도 몸을 비틀어 공격목표를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급한대로 몸을 피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과연 암사자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헌터에게 덮쳐들었다. 그 절대절명의 순간 헌터는 창 하나가 유성처럼 날아와 암사자의 목에 꽂히는 것을 보았다. 암사자는 헌터의 얼굴 앞에 떨어져 무서운 생명력으로 몸을 흔들면서 목에 꽂힌 창을 뽑으려고 몸부림쳤다. 1초도 못 되는 순간의 그 동작이 헌터를 살렸다. 헌터가 누운 체 2탄을 발사했다. 암사자는 입으로 창을 문 체 쓰러졌다. 마사이들의 환성이 터져나왔다. 또 그 히스테리한 춤이 시작될 것이 확실했다. 헌터가 바지를 털며 일어나 아까 창을 던진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춤판에서 비켜서 있던 마사이가 웃었다. 40세가 넘어 모란으로써 자격을 잃은 전사였으나 근육 덩어리 몸을 지니고 있었다. 모란은 코뿔소가죽으로 만든 방패에 계급과 전공이 그려져 있는데 그의 방패에는 수없는 전공이 기록되어 있었다. 키라칸카노라고 했다. 그는 모란의 대장보다도 연공이 높았으나 술버릇이 나쁘고 너무 사나와서 대장이 되지 못 했다. 헌터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창을 던져 자기 목숨을 구해준 늙은 전사가 마음에 들었다.

키라칸카노, 내 조수로 일해볼텐가?’

키라칸카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기에게는 마누라가 있고, 아들도 있어 돈벌이를 못 하면 굶어죽는다고 했다. 헌터는 웃었다.

내 봉급의 1/ 10을 주마.’

키라칸카노는 헌터의 봉급이 얼마냐고 물었다.

‘1주일에 염소 한 마리.’

1주일에 염소 한 마리면 추장보다도 많은 수입이었다. 추장이 갖고 있는 36마리 염소는 한 달에 한 마리씩도 불어나지 않는데 1주일에 한 마리라니 ! 키라칸카노는 춤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어깨를 들썩들썩 춤을 추었다. 키라칸카노는 훌륭한 조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당황하는 일이 없었다. 한 쪽 어깨에 헌터의 비상용총을 매고 한 손에는 창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잡초와 나뭇가지를 쳐내면서 헌터를 안내했다. 키라칸카노는 헌터가 총을 쏠 때는 헌터 옆에 있었는데 비상총이 필요할 때는 장탄된 총을 바로 건넸다. 그리고 사자가 쓰러지면 얼른 라이터를 꺼내 헌터의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부와나 오늘 사격은 좀 부정확했어요. 사자 이마가 아니라 눈에 맞았거든요.’

, 그래서 담배맛이 좀 쓰단말야. 자네도 한 대 줄까?’

아뇨, 저 놈의 껍질부터 벗겨놓고요.’

키라칸카노는 헌터를 마사이랜드 구석구석까지 안내하면서 한 달이 넘어도 집에 가지 않았다.

키라칸카노, 휴가를 줄테니 집에 다녀와.’

부와노, 집에 가면 뭘 합니까? 나는 부와노와 일하는 게 좋아요.’

집에 너무 안 가면 마누라가 바람날텐데 .’

어느 날 키라칸카노가 창사냥을 구경가자고 했다. 마가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의 마을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그 전날 날 밤, 한 마리의 사자가 마을 주위를 둘러친 2m의 담을 넘고 마을을 습격하여 마을의 씨숫소를 물고가버렸기 때문에 모란들이 사자사냥을 나섰다. 350Kg이 넘는 황소를 물고 2m나 되는 담을 뛰어넘은 사자는 두목사자가 분명했다. 모란들은 마을의 명예를 걸었다. 180Kg의 사자가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넘는 황소를 물고 2m의 담장을 넘는 것은 거짓말 같았으나 사실이었다. 사자는 황소 밑에 자기 몸을 넣고 황소의 무게를 자기 등으로 이동시켜서 황소를 담장까지 물고간 다음 앞발을 담장 위에 걸치고 앞발을 당기는 힘과 뒷발로 땅을 차는 힘을 결합하여 자기 몸과 황소의 몸을 들어올린다고 했다. 마을에서는 사냥대로 선발된 모란들이 출발했다. 그들은 도와주려는 헌터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원정대가 모란 중에서 선발된 정예부대라고 했다. 그래서 헌터는 사냥을 구경만 하겠다는 조건으로 사자사냥에 동참했다. 원정대는 모두 젊고 민첩한 체구로 키가 2m가 넘었다. 늘 어깨에 걸치고 다니던 모포를 팔을 보호하기 위해 왼팔에 둘둘 감고, 원색으로 알룩달룩하게 칠한 방패를 들었다. 타조의 날개를 머리에 꽂고 바른 손에 창을 들었다. 추적을 하면서 연신 숲과 나무에 돌팔매질을 했다. 기습을 방지하고 사자를 화나게 하려는 의도였다. 과연 사자가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돌세례를 받자 튀어 달아났다. 사자는 넓은 평원을 전속력으로 달아났으나 어제 소 한 마리를 다 뜯어 먹었으므로 배가 불러 디룩디룩했다. 마사이들이 히혀! 히혀! 고함소리를 지르며 사자를 뒤따라갔다. 사자는 큰 바위 뒤에 숨어 있다가 돌세례를 받자 달아났으나 뒤룩디룩한 아랫배가 문제였다. 사자는 결코 멀리 도망가는 동물이 아니다. 형편이 불리해서 일시 피신은 하였으나 끈질기게 따라오는 적을 간과하지 않는다. 사자는 평원 한복판에서 돌아섰다. 마사이 모란들이 사자를 포위했다. 헌터도 총을 들어올렸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평원에 우뚝 서 있는 사자는 좋은 표적이었다. 그러나 키라칸카노가 엄중하게 제지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마사이랜드에서 쫓겨난다고 경고했다. 마사이는 명예를 목숨 보다 더 중요시 한다. 헌터는 총을 내리고 숨이 막히고 피가 거꾸로 솟는 흥분상태에서 마사이의 창 사냥을 구경했다. 포위당한 사자는 사냥꾼들이 10m 이내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다가오지 말라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 한 표호로 경고를 했는데 사람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오자 표호를 멈추었다. 앞발을 쭉 뻗고 머리를 치켜들었으며 허리를 동그랗게 움추렸다. 도약할 때 최대의 탄력을 얻기 위해 네 발의 발톱을 땅속에 박았다. 헌터는 오랜 사냥경험으로 사자의 꼬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전투태세는 꼬리가 안으로 동그랗게 말리고, 도약하기 전에는 반드시 꼬리를 세 번 흔든다. 사람들이 멀리뛰기를 할 때 하나, , 셋 하고 셈하는 것과 같다. 마사이용사들은 사자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서 창을 위로 제키고 사자의 도약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긴장이 극에 달해 번들거리는 근육이 경련하고 있었으며 날카로운 창끝이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사자의 꼬리가 한 번, 두 번, 세 번, 사자가 공중을 날았다. 도약과 동시에 마사이들의 머리 위에서 덮쳤다. 서너 개의 창들이 날았다. 그 중 하나가 사자의 어깨를 뚫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치명상은 아니었다. 사자의 진로에 있었던 모란을 덮쳤다. 젊은 모란은 왼손의 방패를 앞으로 내밀면서 몸을 뒤로 제껴 바른손에 쥐어져 있었던 창에 온 힘을 실었다. 사자는 방패를 쳤다. 방패는 종이처럼 찢겨져 날았다. 사자가 앞발로 마사이를 치려고 뒷발로 일어섰다. 마사이는 바른손의 창을 힘껏 내밀며 사자의 가슴을 찔렀다. 창이 가슴으로 60Cm나 파고들었는데도 사자는 죽지 않았다. 맹수의 집념으로 사자는 마사이와 같이 지옥에 가겠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앞발로 마사이를 끌어당겨 어깨를 물었다. 마사이는 사자의 무게에 눌려 쓰러졌다. 다른 마사이들이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너무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창질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양쪽 날이 선 길이 60Cm의 칼로 사자를 난도질했다. 삽시간에 사자의 머리가 새빨간 핏덩어리로 변했는데도 난도질을 멈추지 않았다. 헌터는 사자에게 깔려있는 마사이거 칼에 맞을까봐 고함을 지르면서 뛰어나갔다.

사자는 죽었어, 이제 그만! 그만!’

헌터가 고함소리와 함께 사자와 마사이 사이에 뛰어들어갔다. 마사이 용사들이 그제서야 난도질을 멈췄다. 사자는 형태가 없어지고 뻘건 고깃덩어리만 남았다. 사자에게 물린 마사이는 중상이었다. 헌터는 단호하게 부상당한 마사이는 자기가 맡겠다고 선언하고 지니고 다니던 약상자를 열어 바늘로 상처를 꿰맸다. 마사이는 상처에 알콜을 부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으며 신기한 듯 헌터의 바느질을 보고 있었다. 마사이추장은 응급처치가 끝난 마사이에게 생고기를 먹이고 싱싱한 소피를 먹였다. 백인 같았으면 의식을 잃을 정도의 중상이었는데 마사이는 태연하게 생고기를 먹고 피를 마셨다. 헌터가 이번 사냥의 용감상을 칭찬했는데 추장은 머리를 흔들며 이번 사냥에서는 사자의 꼬리를 잡은 용사가 없었다고 시큰둥했다. 사자꼬리잡기를 한 마사이는 영웅대접을 받으며 네 번을 잡으면 메론브기라는 영웅칭호를 받는다. 사자꼬리잡기란 사자사냥 때 사자의 꼬리를 잡아눌러 사자가 움직이지 못 하게 해놓고 동료들이 사자를 난도질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꼬리를 잡힌 사자가 날 죽여주슈 하고 얌전하게 기다릴까? 헌터가 품은 의문은 머지않은 훗날 풀렸다. 마사이족은 합동사냥을 했다. 사방에서 사자들을 에워싸고 북을 치면서 물이 말라붙은 하상 - 돈가로 몰았다. 마사이 합동사냥은 사자를 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부락 간 용감성 경쟁이었다. 막판에 몰린 사자들은 역습으로 크게 도약하면서 모란들에게 달려들었다. 모란들이 일제히 창을 던졌다. 서로 공적을 세우려고 너무 멀리서 창을 던졌으므로 대부분의 창이 빗나갔고 단 한 개가 암사자의 허벅지에 꽂혔다. 암사자는 뒷발로 벌떡 일어서면서 상체를 뒤틀어 창을 물고 흔들었다. 창이 부러졌다. 7, 8 명의 모란들이 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중 한 모란이 사자의 꼬리를 잡았다. 양팔로 꼬리를 잡고 몸을 땅에 밀착시켜 납작 엎드렸다. 꼬리를 잡힌 사자가 행동의 자유를 잃었다. 그래서 뒷발로 일어서서 앞발치기로 달려드는 모란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앞발치기에 맞은 모란은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암사자도 날카로운 칼에 맞아 앞발 하나가 잘려버렸다. 암사자는 마지막 힘을 다 해 위기를 벗어나려고 뒷발로 일어서 도망치려고 했으나 꼬리를 잡고 있는 모란을 2 - 3m 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난도질을 당해 숨이 끊어졌다. 암사자꼬리를 잡은 모란은 성공했다. 그러나 숫사자는 상처를 입지 않았으므로 덤벼드는 모란들과 정면 승부를 피하여 옆으로 돌았다. 그래서 꼬리를 잡았던 모란은 공중에 크게 반원을 그리며 끌려갔으나 꼬리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 사자는 성가시다는 듯 고개를 돌려 모란의 어깨를 물었다. 그 때 달려온 모란이 칼로 사자의 콧등을 쳤다. 사자는 아픔에 노호를 지르고 길길이 뛰어올랐다. 모란들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뒷다리가 잘려나갔다. 사자의 동작이 느려지자 모란의 광란이 시작되었다. 10 여 초 뒤에는 그 사자도 흔적을 알 수 없는 피투성이로 남았다. 꼬리를 잡은 두 모란은 영웅이 되었다. 마사이들의 사자사냥을 보고 또 그 몸서리치는 꼬리잡기를 본 헌터가 마사이 원로들에게 간절한 충고를 했다.

당신들의 사자사냥은 무모하고, 꼬리잡기는 바보짓이다.’

마사이추장은 담뱃대를 땅! ! 두드렸다. 용감한 마사이의 전통이 없어지면 마사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19. 야생野生 물소

 

마사이랜드에서 식인사자사냥이 끝났다. 헌터가 마사이족들에게 이별인사를 했는데 마사이추장이 제안을 했다. 500마리를 보수로 줄테니까 가지 말라고 했다. 마사이족은 양 세 마리면 예쁘고 젊은 아내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헌터는 수락할 수가 없었다. 케냐에 있는 행정관청에서 또 다른 임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소사냥이었다. 나이로비에서 약 100Km 떨어진 마을에 물소떼가 설쳐서 주민들 피해가 막심한데 토인이 네 사람이 죽었다. 물소는 초식동물이다. 그러나 물소가 맹수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냥꾼들은 물소를 사자, 범들과 같이 가장 위험한 맹수로 알고 있으며 물소를 사냥하다가 희생된 포수도 많았다. 물소는 가축소와는 다르다. 우선 뿌리부분의 뿔은 사람의 허벅지만큼 굵고 활 모양으로 휘어진 끝은 창 보다도 더 날카롭다. 엄청난 몸무게와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다. 보통 500Kg이 넘는 몸무게에 빠른 속도에 창처럼 날카로운 뿔을 휘두르면 감히 대적할 적이 없다. 사자도 그 뿔에 받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물소를 피한다. 더구나 물소는 코끼리나 코뿔소처럼 두꺼운 가죽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어 보통 총탄 따위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며 섣불리 총탄으로 부상이라도 입혀놓으면 반드시 습격을 하여 상대를 죽이고 만다. 헌터는 물소사냥의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전을 계획했다. 우선 특별한 총을 마련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총 제작회사 제페리회사에서 5백구경 이연발총을 구입했다. 총신이 길고 총구멍이 크고 가장 무거운 사냥용 총이었다. 무거운 총을 메고 밀림을 돌아다니는 것은 고역이었으나 배에 구멍이 뚫려 죽는 것 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헌터는 개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나이로비 야견수용소에서 잡견 7마리를 구입했다. 형편없는 똥개들이었고 훈련시킬 수도 없었지만 도움이 된다. 사자사냥에서 리더역할을 했던 그레이하운트종 바트와 섞어놓았더니 영리한 바트는 곧 리더가 되었다. 잡견 중에는 바트 보다 몸집이 두 배나 되는 놈이 있어 두목자리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으나 승패는 예상 보다 간단히 끝났다. 사자, 표범들과 싸운 바트는 보통 개들이 싸우는 것과 달랐다. 큰 개가 귀를 무는 것을 내버려두고 바로 급소인 목줄기를 물어뜯었다. 헌터가 말리지 않았으면 그 똥개는 죽었을 것이다. 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바트는 두목이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개들을 훈련시켰다. 바트는 주인의 눈치를 알아차리고 부하들에게 전달했으며 명령을 듣지 않거나 멍청한 개들은 바트의 무서운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바트에게는 나쁜 버릇도 있었다. 목적지 톰슨즈 힐에 도착했을 때 바트는 야생본능이 발발하여 헌터의 지시없이 토인이 관리하는 양떼를 습격하여 양떼 중에서 가장 큰 놈에게 달려들어 눈 깜박할 사이에 목줄을 끊어버렸다. 토인이 기겁을 하고 바트가 개가 아니고 늑대라고 주장했으나 헌터는 사과하고 보상을 해주고 바트는 가죽혁대로 맞았으나 그 버릇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 마을은 인데로족의 마을이었으며 사냥과 농업을 하는 부족이었다. 바트가 인데로족의 여자를 습격하여 벌거숭이로 만들어도 손뼉을 치고 웃는 유머러스한 부족이었으나 물소얘기를 꺼내자 얼굴이 굳어졌다. 절름발이 사내가 말했다. 사내는 나무를 하러갔다 돌아오다가 등 뒤에서 거친 짐승의 숨소리를 들었다. 물소였다. 기겁을 하고 마을로 도망갔다. 무거운 발굽소리가 쫓아왔다. 사내는 죽을힘을 다하여 도망쳤으나 물소가 더 빨랐다. 급해서 나뭇가지에 뛰어올라 매달렸다. 씩씩거리는 물소는 그 밑으로 지나쳤다.

(살았구나!)

사내가 나무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물소가 되돌아왔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내의 한쪽 다리 발끝을 물었다. 헌터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기가막혔다. 초식동물인 물소가 왜 사람을 습격했을까? 그리고 주무기인 뿔을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물었을까? 물소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상대를 잡아먹으려고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화가 나서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말도 화가 나면 입으로 무는데 입이 강한 물소가 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내는 절름발이가 되었으나 다음 사내의 이야기는 더 황당했다. 사내는 성기가 잘려나가고 없었다. 물소의 공격을 받아 잘려버린 것이다. 마치 면도날로 잘린 것처럼 매끈했다. 그는 양봉을 하고 있었는데 벌집을 돌보다가 숲속에서 자고 있던 물소의 단잠을 깨우는 실수를 했다. 일어난 물소는 대뜸 사내에게 덤벼들어 뿔로 사내를 받았다. 1m 이상 공중에 떠올라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떨어진 곳이 물소 등이었다. 사내는 두 다리를 벌리고 물소 등에 탔다. 더 화가난 물소가 사내를 등에 태운 체 가시덤불 안으로 돌진했다.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물소 등에서 떨어졌는데 물소는 그 때 사내의 양 다리 사이를 공격했다. 사내는 실신을 하여 다음 날 아침에야 정신을 차리고 집에까지 기어왔다.

부와나(나리, 주인님), 복수를 해야겠어요. 그 놈의 물소를 잡아 이 번에는 그 놈의 그것을 도려내 먹어야겠습니다. 제발 이번 사냥에 나를 좀 데리고 가 주십시오.’

헌터는 물소사냥에 그 사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물소들은 마네트밀림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나무들이 밀생하고 숲이 우거져 사냥에는 최악의 사냥터였다. 물소는 통제 불가능한 평야의 악마였다. 헌터가 믿는 것이라고는 바트를 위시한 사냥개들뿐이었다. 밀림에 들어서지 말자 물소발자국이 발견되었고 개들이 물소냄새를 맡고 추적을 시작했다. 얼마지 않아 나무 뒤에 물소가 지나갔다. 개들이 짖으며 용감하게 물소를 따라갔다. 물소와 개들의 경주는 개들의 승리였다. 곧 물소는 개들에게 포위되었다. 코리종 개가 물소를 얕보고 정면에서 덤벼들었다가 물소의 일격으로 고무공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개는 즉사했다. 면도날에 잘린 것처럼 배가 갈라져있었다. 그러나 개들은 공격을 계속했다. 리더 바프가 물소에게 덤벼들었다. 한두 번 가볍게 공격을 해서 물소의 반응을 살폈다. 물소가 사자나 표범처럼 행동이 기민하지 못 하다는 걸 눈치챘다. 한 편 물소는 공격하는 바프를 공중으로 쳐올리려다가 번번히 실패하자 동작을 멈추고 바프를 살폈다. 물소가 공격을 멈추자 바프가 돌격하여 물소의 코를 물었다. 코가 물소의 약점이고 급소였다. 코뚜레가 걸리면 소 종류는 온순해진다. 바프에게 코를 물린 물소는 동작이 거북해졌으며 자꾸 밀어붙이려고만 했다. 바프는 물소의 코를 놓아주지 않고 뒤로 밀리다가도 나무나 바위에 걸리면 살짝 비켜서버렸다. 바프와 물소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헌터의 길고 무거운 총에서 발사된 커다란 탄환이 물소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바프는 헌터의 총 솜씨에 만족한 듯 했으나 물소의 코는 놓아주지 않았다. 개에게 습격당하면 물소는 머리를 숙이고 그 무서운 뿔로 개를 받으려고 했다. 이런 물소의 습성을 바프는 역이용했다. 바프는 한두 번 위장공격을 하여 물소를 당황하게 한 뒤에 순식간에 덤벼들어 코를 물었다. 그리고 물소의 미는 힘을 네 다리를 쫙 펴고 버틴다. 이런 경우 물소는 머리가 땅에 눌려있기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었고, 적을 앞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했다. 미련한 힘자랑이었다. 이 때가 헌터의 발사 기회였다. 바프의 도움으로 물소사냥은 아주 편했다. 물소는 강가의 숲에 살고 있었는데 하양 새들이 날아오르는 것으로 물소를 찾아냈다. 하얀 새들은 물소의 등에 앉아 벌레를 잡았다. 새카만 물소와 하얀 새들은 다정한 사이였으며 등에 새가 앉아 벌레를 찍어먹느라면 물소는 실눈을 뜨고 가만히 서있었다. 하얀 새들 때문에 물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나 헌터는 늪 부근에까지는 접근하지 않았다. 늪은 걷기에 불편했고 물소의 정면공격을 피할 수도 없었다. 이럴 때 바프가 물소를 몰아냈다. 물소는 일직선으로 다릴 때는 매우 빨랐으나 회전을 하거나 방향을 바꿀 때는 느렸다. 바프는 이 물소의 약점을 알고 물소를 놀리 듯 가깝게 다가가기도 하고 멀리 떨어지기도 하며 물소를 헌터쪽으로 유인했다. 너무 총명하고 영리해서 자신감 넘치는 용맹성이 불안할 정도였다. 어느 날 굉장히 큰 물소를 몰았다. 개들은 강가로 늘어서서 물소가 강으로 달아나지 못 하게 막아 헌터쪽으로 몰고 있었다. 그러나 늙은 물소는 능글맞게 침착했다. 개들의 의도를 간파한 것이다. 물소는 개들과 충돌을 피하여 강과 나란히 달렸다. 강을 막아선 개들도 피하고 반대편에 대기하고 있는 헌터도 피하려는 작전이었다. 늙은 물소가 의외의 방향으로 달리자 개들이 당황했다. 전속력으로 물소를 쫓았다. 물소도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약이 오른 개들이 그만 물소를 앞질러 물소의 진로를 막아버렸다. 물소가 방향을 바꿔 강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강쪽의 돌파구를 막고 선 것은 영리한 바프 한 마리뿐이었다. 물소가 바프에게 덤벼들었다. 무시무시한 뿔을 휘두르며 물소가 돌진해오자 부득히 바프가 몸을 피했으며 물소는 강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으로 들어서지 물소는 여유를 보였다. 어깨까지 물속에 잠겨서 점잖게 개들을 보고 있었다. 닭 쫓던 개가 된 꼴인 개들은 강물 속의 물소를 어찌할 수 없어 시끄럽게 짖어대기만 했다. 물소와 개들의 싸움은 끝난 것 같았다. 물소가 그대로 반대편으로 강을 건너가버리면 될 일이었다. 물소는 방심했다. 설마 개들이 강물에까지 따라오리라고는 미쳐 생각하지 못 했다. 그래서 머리만 내놓고 시원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바프는 헌터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걸 보고 강물로 뛰어들어가 물소의 코를 물었다. 순간 물소는 그 자그마한 동물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놀라 멈칫하더니 곧 분노에 몸을 떨며 코를 물린 체 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수중싸움을 하자는 의도였다. 물소와 개가 수중싸움을 하면 결과는 뻔했다. 그 때 헌터가 발포했다. 수면에 보일 듯 말 듯한 물소의 등을 어림잡아 연달아 두 발 그리고 스페어총으로 또 두 발을 발사했다. 헌터가 목표 동물에 확고한 치명상을 줄 자신 없이 총을 연사한 것은 드문 일이었으나 총탄이 명중된 듯 강물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윽고 바프의 몸이 물속에서 솟아올라 헤엄쳐나왔다. 바프는 땅에 오르자 물을 토해냈는데 앞이 두 개가 빠져버렸다. 물속에서도 물소의 코를 물고 있다가 연골에 박혀버린 것 같았다. 이 수중결투가 바프의 열 일곱 번 째 결투였는데 그 다음 결투는 더 처참했다. 바프의 다음 싸움은 개들과 물소들의 집단싸움이었다. 여섯 마리의 개들이 다섯 마리의 물소를 쫓다가 그 중 세 마리를 포위했다. 물소들도 개들의 포위망 속에 원진을 치고 있었으며 여섯 개의 뿔이 번쩍거렸는데 그 무서운 뿔들 때문에 개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 했다. 이윽고 바프가 뛰어들었다. 두목물소의 코를 물었다. 물소의 입과 코에서 선지피가 쏟아지고 신음소리가 처량했다. 그 때 다른 물소가 바프에게 달려들었다. 젓비린내가 날 것 같은 어린놈이었는데 아마도 코를 물린 물소의 새끼 같았다. 새끼물소가 바프의 배를 겨냥하고 달려들었다. 코를 물고 있었던 바프가 코를 놓지 않고 몸을 틀었으나 허벅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바프가 위험했다. 키라칸카노가 창을 던졌다. 동시에 헌터도 어미물소에게 발사했다. 창은 새끼 물소의 가슴팍 깊이 박혔고 탄환은 어미물소의 심장을 꿰뚫었다. 바프는 위기일발에서 구했으나 다리의 상처는 중상이었다. 바프의 상처가 완치될 때까지 물소사냥은 중지되었다. 주인을 믿는 바프는 헌터가 바늘로 상처를 꿰매도 날뛰지 않고 참았다. 원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키라칸카노가 바프를 날마다 이웃마을로 데려가서 신선한 우유를 먹였는데 어느 날 사고가 생겼다. 이웃마을로 가던 중 사냥을 못 해서 몸이 근질거리던 바프에게 산돼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산돼지를 발견한 바프는 키라칸카노의 제지를 뿌리치고 산돼지에게 돌진했다. 달아나던 산돼지가 동굴 속으로 도망갔다. 물소에 비하면 산돼지는 체구도 작고 동작도 우둔해서 위험한 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돼지에게도 무서운 무기가 있엇다. 뾰쪽하개 입 밖으로 나와있는 송곳이빨이다. 때에 따라서 그 이빨은 물소의 뿔처럼 위험한 무기였는데 바프는 산돼지를 너무 얕봤다. 산돼지는 동굴에서 방향을 바꿔 뒷걸음질 치면서 엉덩이를 뒤로 하고 송곳이빨을 내밀고 완전한 전투태세를 하고 있었다. 바프는 그 걸 무시하고 돌진하여 산돼지의 코를 물려고 했다. 동시에 산돼지도 바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바프가 일순 빨랐다. 그러나 바프는 물소를 잡았을 때 앞니 두 개가 빠져 코를 꽉 물지 못 했다. 그래서 다시 고쳐물려고 했을 때 산돼지가 바프의 코를 찔렀다. 물소와 달리 산돼지의 무기가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입에 있다는 걸 몰랐다. 바프가 후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돼지가 바프의 가슴을 찔렀다. 바프는 즉사했다. 뒤따라온 키라칸카노가 창으로 산돼지를 찔러 죽였으나 바프를 살릴 수는 없었다. 바프의 시체 앞에서 헌터가 눈물을 흘렸다. 바프는 죽었지만 물소사냥은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바프가 없는 물소사냥은 어려웠고 위험했으며 계속 비극이 일어났다. 헌터에게 물소사냥은 생애 최악의 사냥이었다. 우선 바프를 잃은 잡견들은 아무 쓸 데 없는 똥개들로 바뀌어버렸다. 그들은 덮어놓거 짖기만 했고 물소를 몰아오거나 한 군데로 잡아두지도 못 했다. 개들에게 쫓긴 물소가 큰 나무나 커다란 바위 뒤를 돌아 맹렬한 반격을 했는데 그 때마다 그 때마다 개들이 한두 마리씩 죽었다. 바프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텐데 . 헌터는 신경질이 났다. 물소사냥에 바보 같은 개들을 더 이상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키라칸카노의 소개로 즈로가나족 바베야를 채용했다. 즈로가나족은 날카로운 칼을 팔에 동그랗게 팔찌처럼 감고다녔다. 팔찌는 강력한 무기였는데 팔찌로 사람 목을 따는 건 약과였다. 헌터가 바베야를 만났을 때 바베야는 실오라기 한 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으며 머리칼에는 쇠똥을 발라 마치 투구를 쓴 것 같았다. 관청에 조회해봤더니 바베야는 밀렵전문가였으며 전과 4범이었다. 그러나 바베야는 날카로운 눈, 꽉 다문 입, 턱도 야무졌고 몸에 난 무수한 상처가 그의 사냥경력을 알려주었다.

밀렵을 했다지?’

, 부와나. 사자와 표범을 많이 죽였는데 백인들은 상으로 나를 감옥에 가두었지요.’

밀렵은 뭣으로 했나?’

총이지요. 한 방 쏘고 두 방을 쏠 수 없는 총이지만 화살 보다는 낫지요.’

사격연습을 시켜봤더니 제법이었다. 헌터는 바베야를 몰이꾼두목으로 채용했는데 바베야는 오랜 밀렵의 경험을 살려 능란하게 헌터를 안내했다. 단점이라면 너무 무모했고 그것은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다. 헌터는 바베야의 간청에 못이겨 총 한 자루와 몰이꾼 두 명을 딸려 단독사냥을 시켜봤다.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떠났는데 이틀 후에 몰이꾼 두 명만 돌아왔다.

부와나, 바베야는 우리 같은 멍충이 몰이꾼하고는 사냥을 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면서 우리를 버리고 갔어요.’

바베야가 헌터의 명령을 거역한 것인데 웬지 불안했다. 물소 같은 맹수사냥에는 사격수 옆에서 경계를 해주고 도와줄 조수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혼자어떻게 하겠다는 말일까?‘

헌터는 크게 화를 내고 바베야가 돌이오면 엄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바베야는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베야는 집에도 없었고 마누라는 울고 있었다.

부와나, 그 이는 성미가 급해서 며칠이나 걸리는 사냥은 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뭣인가 사고가 났습니다.’

헌터도 사고를 직감했다. 수색대를 조직하여 광대한 마넷트삼림을 수색했다. 수색 이틀만에 바베야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마넷트삼림의 동쪽 경사면에 나무가 드문 공지가 있었는데 그 공지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하이에나와 독수리들에게 먹혀 뼈만 남아 있었으나 이빨을 확인해서 바베야를 알았다. 바베야의 시체는 늑골 두 개가 부러져 있었고 곤봉으로 맞은 것 같은 흔적도 있었다. 창 같은 것으로 찔린 흔적이 있었고 총과 탄약이 사라졌다. 의사 제이시와 헌터는 범죄의 증거를 잡기 위해 부근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곧 커다란 물소를 발견했다. 물소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으나 사페리개미들이 달라붙어 접근할 수 없었다. 개미들은 뼈를 갉아먹고 있었으며 산 사람도 위험했다. 헌터가 작대기로 물소뼈를 뒤집었는데 늑골에 총구멍이 나 있었다. 바베야가 쏜 것이다. 늑골을 맞은 물소는 숲속으로 도망을 가다가 돌아서서 뒤 따라오는 바베야를 덮쳤다. 총도 발견되었다. 한 발이 남아있었다. 바프와 바베야의 참사, 헌터는 우울했다. 헌터가 숙소에 돌아오니 마을에서는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잔치판이라니? 헌터가 대노했는데 영국에서 아주 높은 분이 자동차를 타고왔기 때문에 열리는 환영잔치라고 추장이 말했다. 영국의 높은 분은 왕족으로써 공작이었는데 점잖은 사람이었다. 공작은 영국왕립수렵협회 회원증을 제시하고 나이로비 수렵관의 정중한 소개장도 내놓았다. 공작은 맹수사냥의 명수이며 헌터를 도와 물소사냥을 지원하겠다고 자원했으니 알아서 잘 모시라는 내용이었다. (나를 도와?) 헌터는 쓴웃음이 나왔으나 상대의 신분을 존중하여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공작은 귀족답게 부드럽고 만사에 관대했으나 사냥솜씨는 의심스러웠다. 우선 총이 물소사냥에 맞지 않았다. 장식용 금은이 번쩍이는 416구경口徑의 고급총이었으나 사자사냥을 몰라도 물소사냥에는 적합지 않았다. 그 총으로는 탄환이 물소의 급소에 맞지 않은 이상 포수가 위험했다. 그래서 헌터는 500구경 제페리총과 바꾸어 갖자고 정중하게 제의했다. 공작은 제페리 500구경을 한 번 들어보더니 엄청난 무게에 놀라 얼굴을 찌푸리고 도리질을 했다. 공작이 데리고온 토인조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인조수는 스스로 맹수사냥의 전문가이며 총에도 자신이 있는 것처럼 허풍을 떨고 있었으나 공작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헌터는 속이지 못 했다. 사냥얘기란 전문가가 몇 마디만 물어보면 거짓말이 탄로나는 법이었다. 헌터가 토인조수에게 절대로 앞서지 말 것, 호락 없이 총 쏘지 말 것을 엄명했다. 토인조수는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마지못해 수용했다. 이튿날 새벽 도이 트기도 전에 공작은 헌터를 재촉했다. 정오께 밀림에서 물소떼를 발견했다. 키라칸카노가 창을 들고 앞장서서 작전을 지휘했다. 물소떼는 앞을 가리는 나무들과 바람의 방향 때문에 20m 가까이 접근한 사냥대를 모르고 있었다. 헌터와 공작은 각각 목표물을 결정하고 동시에 발포했다. 헌터가 쏜 물소는 한 발 물러서더니 픽! 쓰러졌으나 공작의 물소는 비틀거리더니 뒤로 돌아 달아났다. 가장 크고 훌륭한 뿔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헌터가 공작에게 양보한 것이었으나 아마도 총탄이 위장에 맞은 것 같았다. 부상한 물소는 숲속으로 잠적했다.

(재미 없는데.)

헌터가 혀를 찼다.

저 놈은 저하고 키라칸카노가 잡아올테니 각하는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각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나는 저 훌륭한 물소뿔을 트로피로 만들어 런던에 갖고 갈텐데 내가 저 놈을 직접 잡지 않으면 의미가 없소. 더구나 저 놈은 부상을 당했으니 잡기도 쉬울 것 아니요.’

말은 점잖케 했으나 귀족의 버릇으로 상대방의 반박을 놀리는듯 한 단호한 어감이었다.

그러하오나 각하! 부상을 입은 물소는 그냥 물소 보다 더 위험합니다.’

다소의 위험이야말로 수렵의 스릴이잖소.’

40m 정도 추적을 했을 때 헌터와 키라칸카노는 부상당한 물소가 키만큼 큰 나무들이 밀생한 숲속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공작에게 손짓을 했으나 공작은 나뭇가지와 물소뿔을 분간 못한 듯 망원경을 들었으나 공작이 물소를 발견하기 전에 물소가 먼저 공작을 발견했다. 그리고 재빨리 도망을 쳐버렸다. 추격이 어려워졌다. 선두에 선 키라칸카노는 핏자국과 발자국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는 코로 냄새까지 맡으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했으며 그 뒤를 헌터가 따랐다. 밀림이 깊어지자 자그마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시야가 막혔다. 피가 멈췄는지 핏자국도 없어지고 발밑이 초지라 발자국도 없었다. 그래서 코로 추적을 했다. 목장이나 외양간에서 풍기는 비릿한 소똥냄새다. 헌터와 키라칸카노는 물소의 기척을 몇 번이나 느꼈으나 그 때마다 물소는 야릇한 기성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공격을 할 듯 하다가 도망치고 또 도망을 치는 일이 서너 번 되풀이 되었다. 긴장감으로 공작이 먼저 말했다.

헌터군, 이 거 안 되겠는 걸, 숨바꼭질에 지쳤어. 불길한 예감도 들고.’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날 여기서 탈출시켜줘.’

(진작 그랬어야지, 이제사?)

이런 곳에서 어떻게 탈출시키겠는가? 고민하다가 공작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60m 쯤 떨어진 곳에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사방 20m 정도의 시야가 트였으므로 맹수가 습격해온다고 해도 공작은 첫발과 두 번째 사격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작은 공터에 혼자 남아있는 것이 불안한 듯 헌터에게 총을 바꿔달라고 했다. 공작을 공터에 모셔놓고 키라칸카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을 찾고 있는데 총소리가 들렸다.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단 한 방이었으며 조용해졌다. 3, 4초 후 헌터는 스스로 놀랐다. 총탄이 적중하는 뒷소리 - 맹수의 몸을 뚫고 들어가는 퍽! 하는 소리가 나지 않았고 제 2탄도 발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첫탄이 맞지 않고 2탄이 발사되지 못 했다면 ? 예감은 적중했다. 곧 물소의 노호소리를 들었다. 목 쉰 사람이 목에서 쥐어짜는 듯한 목청껏 외치는 소리 같았으며 그것은 물소가 희생자를 처치하는 소리였다. 헌터가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잡초줄기가 다리를 감았다. 헌터는 쓰러졌다. 그 때 또 물소의 거친 소리가 들렸다. 뿔이 부딪치고 부드러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헌터가 반사적으로 고함을 쳤다.

가만 있거라, 물소 이 놈!’

잠깐이라도 물소의 공격을 멈추게 하려는 궁여지책이었다. 그리고 다리에 감긴 잡초를 뿌리채 뽑으며 돌진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하복부가 벌겋게 물든 물소가 앞다리로 키라칸카노의 배를 누르고 뿔을 마치 칼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물소는 살육에 정신이 팔려 눈앞에 뛰어든 헌터도 보지 못 했으나 기척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거리는 불과 2m, 사람과 물소의 시선이 마주쳤다. 물소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증오심이 가득했다. 헌터는 주저없이 눈과 눈 사이에 탄환을 보냈다. 탄환은 정확하게 물소의 머릿속을 꿰뚫었으나 제 2 탄환을 심장에 맞고나서야 쓰러졌다. 구경이 큰 총 같았으면 한 방으로 되었겠지만 공작의 작은 총이라 첫발을 쏘고 한 발 물러서면서 2탄을 쏘았다. 물소가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키라칸카노의 배 위에 쓸어졌다.

이 새끼, 어디에!’

헌터가 물소를 키라칸카노의 배 위에서 떼어내려고 뿔을 잡아끌었으나 500Kg이 넘는 물소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무에 등을 대고 누워 양 다리를 힘껏 뻗치면서 밀어내려고 해도 끔쩍도 하지 않았다. 큰 몽둥이를 물소 몸 밑에 받치고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역시 허사 그래서 큰 소리로 공작을 불렀다.

빨리 오라!’

무슨 일이냐?

잔말 말고 빨리 오라!’

헌터가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키라칸카노는 숨이 붙어 있었으나 중상이었다. 헌터와 공작이 힘을 합쳐 겨우 물소를 키라칸카노의 몸 위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헌터는 급한대로 마취제를 주사했다. 고통이 사라지자 키라칸카노가 말했다.

공작의 조수 그 녀석 어디 있어요? 그 놈 죽지 낳았다면 내 손으로 죽여 .’

조수가 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헌터가 공작을 안내하고 간 사이에 헌터의 지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조수란 녀석이 물소를 추격하겠다고 종알거리면서 나섰다. 키라칸카노가 강력하게 제지했으나

창을 가진 놈이 총을 가진 사람에게 명령을 하느냐!’

빈정대면서 추적을 했다. 물소는 약 50m 떨어진 곳에 숨어 있었다. 물소는 사람들의 동정을 살피면서 숨어 있다가 경망스런 조수가 달려오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덮쳤다. 조수가 기겁을 하고 발포했다. 그런 총탄이 맞을 리 없었다. 조수는 총을 던져버리고 도망을 쳤다. 하필 키라칸카노가 오고 있는 쪽으로 달렸다. 키라칸카노는 조수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물소에게 창을 던질 수가 없었다.

비켜! 비켜!’

키라칸카노가 고함을 쳤으나 조수란 놈은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키라칸카노의 정면으로 달려왔다. 할 수 없이 키라칸카노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창을 견주려고 했으나 미련한 조수는 자기도 옆으로 비켜서 달려왔다. 그래서 물소가 먼저 조수를 받았다. 조수는 킥! 소리를 내며 공중에 솟아 올라 떨어지면서 공교롭게도 양손으로 키라칸카노의 목을 껴안았다. 창을 던지려는 자세였던 키라칸카노는 그만 엉덩벙아를 찧었다. 그리고 물소의 일격을 받아 공중우로 날아갔다. 키라칸카노가 땅에 떨어지자 물소가 재차 공격을 했고 다시 땅에 떨어지자 또 공격을 했다. 키라칸카노의 시체는 처참했다. 배가 터져 창자가 삐져나오고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누더기처럼 보였다. 키라칸카노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한 얘기를 들은 공작이 조수를 찾았다. 몇 미터 떨어진 숲속에 조수가 누워 있었다. 혀를 길게 빼물고 허공을 보고있는 눈에는 공포가 서려있었다. 물소의 일격으로 목뼈가 부러졌다.

마지, 마지 .’

조수는 물을 찾았다. 공작이 수통의 물을 주니 몇 모금 마시고 숨이 끊어졌다. 헌터가 키라칸카노에게 조수가 죽었다고 알렸다. 키라칸카노의 입술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부와나, 앞으로는 비겁한 놈들과는 사냥을 하지 마시오.’

그 말에 공작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이 떨렸다. 헌터는 키라칸카노를 등에 업고 공작은 죽은 조수의 시체를 끌고 캠프로 돌아왔다. 공작이 키라칸카노를 차에 싣고 손수 운전을 하여 병원으로 데려갔다. 길이 울퉁불퉁하여 진동이 심했으나 헌터는 진동을 막기 위해 키라칸카노를 줄곧 안고 갔다. 도중에 소나기가 내려 차가 진흙탕에 빠지자 공작이 흙투성이가 되어 진흙밭에서 차를 끌어냈다. 영국 귀족이 토인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키라칸카노의 죽음에 대한 자책인 것 같았다. 차를 타고가는 동안에 키라칸카노는 숨이 붙어 있었다. 지나가는 산돼지를 보고 꽤 큰 놈이라고 손짓을 했다. 키라칸카노는 뱃속에서부터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끝까지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며 헌터에게 자식들과 마누라를 부탁했다.

부와나, 마누라에게 자식들은 제발 사냥꾼으로 만들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헌터는 곧 치료를 하면 다시 같이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키라칸카노는 쓸쓸하게 웃었다. 키라칸카노는 병원에 도착하자 숨을 거두었다. 헌터는 키라칸카노를 마사이 전통예식으로 장례를 치뤘다. 마사이전사들이 용감한 선배에게 영웅칭호를 주었다.

 

20. 난장이부족部族 피그미

 

1930년대 이트리삼림은 백인 탐험가나 수렵가들이 발을 디디지 못 하는 신비의 세계였다. 벨기에영토로써 콩고의 북동부에 위치한 이트리는 광대한 천고의 원시림이었다. 수령 몇 백 년 거목의 가지들이 서로 엉키고 설켜서 전혀 햇빛이 들지 않아 영원한 어둠의 나라였다. 유령의 나라로 알려진 거기에는 식인종토인들과 난장이토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동물들도 비정상이었다. 아프리카의 밀림을 모두 다녔던 헌터도 이트리에는 들어가보지 못 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1936년 여름에 기회가 왔다. 영국의 겟싱턴 박물관에서 파견한 조사대가 이트리탐험을 하는데 헌터가 안내자로 선발되었다. R. Agloide박사가 대장인 영국탐험대는 이트리삼림의 동식물수집이 목적이었다. 흔쾌히 수락했으나 전혀 이트리삼림에 무지했기 때문에 두려움도 있었다. 실은 안내인이 아니라 안내를 받아야 할 처지였던 것인데 탐험대는 왜 안내인으로 선정했을까? 헌터는 콩고국경 동쪽에 있는 우간다의 간파라에서 탐험대와 합류했다. 헌터가 아그로이드박사에게 이트리삼림에 가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박사는 가볍게 웃었다.

헌터군, 우리가 필요한 것은 자네의 총솜씨일세. 둘째는 밀림생활의 지식이고, 다음이 안내지. 적당한 용어가 없어 안내인이지 사실은 경호대장이야.’

그리고 안내에 대해서 우리는 별도로 전문적인 안내인을 채용했어. 이트리에서 야생 오가피를 발견하여 사진을 학계에 발표한 인물이야.’

베제튼하우트라고 자기소개를 한 사나이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베제튼하우트는 네델란드 출신의 깡마른 체구에 강철 같은 강인성이 보였고 아름다운 금발과 날카로운 푸른 눈의 소유자였다.

, 당신이 그 유명한 헌터요? 염려마시오. 저 사람들을 끌고가는 일은 내가 맡을테니 총질이나 잘 해주시오.’

거칠고 상스러운 말투였는데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어두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자책하고 비웃는 말투였다.

(보통내기가 아닌데 .)

탐험대는 7명의 유명한 학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안내인과 포수를 합하여 총 9명이었다. 일행은 우간다를 떠나 세미리기강이 보이는 무베레무례에 도착했다. 앞에는 콩고국경이고 벨기에경찰이 주둔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온 일해의 페스포트를 검열한 대장은 헌터와 안면이 있어 농담을 했다.

요즘 정력이 떨어져 마누라가 투덜대고 있어. 돌아올 때 코뿔소의 뿔을 좀 갖다주게나.’

농담을 주고받다가 대장이 베제튼하우트의 페스포트를 보더니 안색이 달라졌다.

이 건 가짜야! 페스포트 주인 나오시오.’

베제튼하우트가 없었다. 앞서 통과된 사람들 틈에 끼어 이미 관문을 통과한 후 화장실 가는 체 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경비대장이 펄쩍 뛰었다.

안 돼! 그 놈은 코끼리 밀렵자야. 작년에도 본관의 부하에게 뇌물을 주고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토인사병 두 명을 유혹해서 탈주를 시킨 놈이야.’

(탈주?)

코끼리 밀렵의 조수로 쓴 거요. 그 놈들은 밀렵한 상아를 들고나와 또 다시 여기를 빠져나가 달아났단 말이요.’

또 귀관의 부하를 매수했나요?’

아니요, 그 때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저 강을 헤엄쳐서 빠져나갔소.’

뭐요! 저 강을 헤엄쳐? 악어가 우글거리는데 .’

그렇지, 좌우간 그 놈은 안 돼! 그 놈을 잡아오기 전에는 당신들도 통과 못 해!’

경찰대장의 수염이 부르르 떨었다. 헌터가 슬쩍 말을 돌렸다.

검은 코뿔소뿔은 좋지요. 정력제로서는 그만이야. 그 것을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마누라들이 놀라지.’

이 번 이트리에서 나올 때 서너 개 갖고나올 계획이지. 물론 귀관에게도 선사할거고 .’

경찰대장의 노여움이 좀 풀렸다. 그래서 헌터가 이 탐험대의 입국을 거절하면 영국과 벨기에 사이에 곤란한 국제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득을 했다. 그리고 박사도 베제튼하우트는 자기가 책임지고 잡아서 출국할 때 인계하겠다고 약속했다. 관문에서 몇 백 미터쯤에 베제튼하우트가 시치미를 떼고 길 가 나무뿌리에 앉아 있었다. 대뜸 헌터가 악어가 우글거리는 강을 어떻게 건넜느냐고 물었다. 베제튼하우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무거운 상아를 들고 있었지. 경찰들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강 상류와 하류에 돼지 한 마리씩을 던졌어. 악어들은 돼지를 먹으려고 상류와 하류로 몰려갔지. 그 사이에 우리는 강을 헤엄쳐건넜을 뿐이요.’

박사가 깔깔 웃었다.

자네가 밀렵전문가고 전과 2범이며, 여자버릇과 술버릇도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러나 나는 도덕학자가 아니라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나는 자네가 이트리삼림에 우리를 안전하게 안내해주는 걸 바래.’

탐험대는 무보가에서 준비를 했다. 50명의 포터(짐꾼)를 모집했는데 그들은 담배 한 갑 살 돈만 주면 80Kg이나 되는 짐을 머리에 이고 운반한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행진을 했다. 선두에 선 베제튼하우트는 장난감 같은 총을 어깨에 덜렁거리면서 마치 소풍을 나온 사람처럼 천천히 걸었다. 그레이트 이트리강을 건넜다. 사원하게 트인 초원을 하루 종일 걸었다. 그 날 오후 일행은 울창한 삼림의 입구에 캠프를 쳤다. 헌터는 커다란 물소 한 마리를 쏘아 저녁밥 반찬으로 제공했다. 물소는 50m 전방을 달리고 있었으나 헌터는 선 자세로 겨냥, 단 한 발로 쓰러뜨렸다. 이 사냥을 본 토인들이 탄성을 질렀다. 베제튼하우트도 놀랍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양 손을 펴보였다. 이튿날 정오에 이트리삼림에 들어섰는데 시원하고 걷기에 편했다. 거목들이 가지를 펴서 햇빛을 차단하였기에 잡초나 가시덤불이 자라지 못 했다. 삼림에는 가느다란 물줄기도 흘렀는데 맑았다. 아프리카의 강들은 예외없이 탁류였는데 이트리의 물은 수정처럼 맑았다.

이트리의 밀림은 아름답군!’

박사가 웃음을 띠면서 말했는데 베제튼하우트가 대꾸했다.

박사님, 진짜 이트리삼림은 아직도 1주일 더 가야 구경합니다.’

첫인상이 시원스럽고 편했던 이트리삼림은 안으로 들어감에 따라 모습이 바뀌었다. 우선 시야가 너무 어두웠다. 전등을 켜야 했다. 또 습기가 많았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땅이 축축했고 군데군데 늪이 있어 행진에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습지에 서식하는 모기, 독거미들이 우굴거렸다. 모기는 대낮에도 달려들어 말라리아환자가 속출했으며, 커다란 독거미는 대낮에도 천막을 제집인 양 기어다녔다. 독거미는 물리면 3 - 4일 간 들어누워야 하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코브라였다. 이곳의 스피칭코브라는 피리소리에 춤추는 인디아의 코브라 하고는 달랐다. 화가나면 목덜미가 부풀어오르고 대가리를 뻣뻣하게 세웠다. 스피칭코브라는 사람을 물어죽이는 게 아니라 독액을 뿌려 죽인다. 몸을 빳빳하게 세우고 대가리를 뒤로 젖히면서 입에서 두 줄기의 독액을 분수처럼 뿌린다. 분출된 노란 독액은 보통 3m까지 도달한다. 코브라는 헌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적의 눈을 겨냥하여 독액을 쏜다. 백발백중이다. 독액이 눈에 들어가면 고통이 심하고 대개 실명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헌터 앞장을 섰던 잡역부가 갑자기 손으로 눈을 가리고 무서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넘어졌다. 그의 발밑에서 짙은 녹색의 코브라가 나무그늘로 사라졌다. 토인이 실수로 그 놈의 꼬리를 밟았으며 코브라는 토인의 두 눈에 두 줄기의 독액을 정확하게 쏘았다. 토인이 고함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늙은 토인이 토인들을 소리쳐 불러 사나이를 꼼짝 못 하게 누르고 앞가림을 젖히더니 토인의 두 눈에 오줌줄기를 퍼부었다. 다른 토인들도 빙 둘러서서 오줌줄기를 소방호스처럼 분사했다. 치료가 끝나자 나뭇잎으로 눈을 가렸다. 오줌치료를 서너 시간 뒤에 한 번 더 했다. 두 번째 치료가 끝났을 때 사내는 눈이 좀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곧 시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박사는 오줌에 들어있는 암모니아와 요산이 독액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박사는 식량을 현지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식량이 될 사슴, 산돼지, 물소 등 짐승이 보이지 않았다. 산돼지가 나타났다는 기별을 듣고 추적했으나 허사였다.

(또 기름끼 없는 밥을 먹게 되었군.)

헌터가 숙소로 돌아가던 중 여나문 명의 토인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는데 냄비에 고깃국이 끓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으며 국을 마시는 토인들의 얼굴에서도 만족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하, 이 친구들이 특별요리를 만들어서 자기네들 끼리만 먹고 있군.)

헌터는 그 자리에 끼어 앉았다.

쿡크장, 나도 한 그릇 주게나.’

쿡크장이 아무 말 없이 국그릇을 내밀었다. 맛있었다. 좀 짠 것 같았으나 산돼지고기맛이었다. 한 그릇 더 달라고 그릇을 내밀었는데 토인 늙은이가 말했다.

부와나, 이 고기는 백인들에게는 금지된 고기입니다.’

! 무슨 고기야? 설마 뱀고기는 아니겠지, 아니면 원숭이고기인가?’

토인들이 킬킬거렸다.

마고노.’

쿡크장이 말했다. 마고노는 팔이라는 토어土語.

? 무슨 팔?’

그제서야 헌터는 자기가 먹은 고기가 무슨 고기인줄 알아차리고 벌떡 일어섰다. 마고노는 사람 팔이라는 의미였다. 헌터가 식량조달사냥을 나간 뒤 토인들도 사냥을 나갔다. 토인들의 사냥은 허사였으나 수확이 있었다. 그들은 밀림에서 식인종 원주민들과 만나 물물교환을 했다. 소금을 주고 식인종들이 이웃마을에서 구한 사람팔 두 개를 얻었다. 원주민들에게 소금은 귀한 물품이었고, 캠프토인들에게 사람팔은 별미였다. 이 사건으로 쿡크장은 해임되어 잡역부로 전락했다. 그는 시치미를 떼고 헌터에게 사람고기를 먹이고는 염소고기라고 할 작정이었으나 방정맞은 포터 때문에 탄로가 나버린 것이다. 쿡크장은 무보가에서 급료를 5배나 주고 고용했던 토인이었는데 그가 사람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쿡크였을 줄이야 . 콩고지방에는 식인종이 많았다. 육식을 좋아하는 그들은 식량난 때문에 식인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식인습관은 백이들이 엄금했고, 그들도 나쁘다고 판단하여 사라져가고 있었으나 그래도 일부지방에서는 사람고기를 은밀하게 거래하고 있었다. 어떤 마을에서는 다른 마을과 전쟁에서 잡은 포로나 범법자를 마을 시장터에 묶어 진열해놓고 주부들이 쇠고기 등심 고르 듯 옆구리를 쿡쿡 찔러보거나 엉덩이살을 철썩철썩 쳐보기도 했다. 상품은 멀뚱멀뚱 눈을 뜨고있는 산 사람이다. 사람고기값이 돼지고기값 보다도 싸다고 한다. 고기값으로 팔리는 사람은 한 구매자가 몽땅 사가기도 했으나 대개 많은 고객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나눠가졌다. 고객들은 자기가 필요한 부분에 백분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모든 부분의 매매거래가 끝난 뒤 사람이 도살되면 자기가 그려놓은 부분을 가져갔다. 불행한 노예는 모든 부분이 매진될 때까지 몇 주일 동안 진열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박사가 특별채용한 쿡크장은 옛날에 사람고기가 공공연히 거래되었을 때 사람고기의 부분품값을 정해주는 감정사였고 후에 식인이 금지되자 비밀리에 사람고기를 요리하여 식도락가들에게 팔았다.

탐험대는 이트리삼림에 들어선지 6일만에야 피그미족을 만났다. 난장이나라 주인이다. 그들은 벌써 며칠 전부터 탐험대의 도착을 알고 비밀리에 탐험대를 감시했다. 헌터도 큰 나무 뒤에 원숭이 보다 좀 큰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걸 목격했고 어쩌다 길을 되돌아갔을 때 탐험대의 발자국 위에 자그마한 발자국이 덮혀 찍혀있는 것을 확인했다. 피그미가 탐험대를 미행했다. 탐험대는 좀 불안했다. 일행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헌터도 긴장했다. 아무리 미개인이라지만 짐승이 아닌 사람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헌터는 장총에 총탄을 장전하였고 허리에도 권총을 찼다. 다른 대원들에게도 권총을 차도록 권유했으며 기습을 예견하고 행진대열도 바꾸었다. 그러나 안내인 베젠튼하우트는 헌터의 작전을 비웃었다.

포수양반, 사람사냥을 할 셈이요?’

헌터가 발끈했다.

난 일행을 보호할 의무가 있소, 일행에게 위험한 사람은 누구든 쏘아야지.’

헌터가 일부러 장총의 안전장치를 철컥! 풀었다. 베제든하우트가 좀 질렸다.

염려마시오. 피그미족은 백인을 해치지 않소. 그들은 싸움을 싫어하는 부족입니다.’

베제튼하우트의 설명에 의하면 피그미족이 탐험대를 감시하는 것은 세무반이 아닌가 의심해서라고 한다. 벨기에정부는 식민지인 이곳에서 세금을 징수하고 있는데 피그미족은 세무반이 오면 모두 숨어버렸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출장나오는 세무관리는 피그미족과 숨바꼭질을 하게 되는데 세무관이 징수한 것은 고작 염소 몇 마리 정도다. 베제튼하우트의 설명은 일행을 안심시켰다.

피그미들과 만나서 얘기할 수 없을까?’

피그미들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나 뿐입니다.’

내일 쯤 내가 그들을 데리고오지요.’

이튿날 오후 베제튼하우트는 단신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피그미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 피그미는 갈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사람 보다는 컸다. 백인의 배꼽 정도 키였고 몸과 얼굴은 털복숭이였다. 그들은 그들의 체구에 맞도록 작은 활을 어깨에 매고 작은 창을 들고 있었다. 베제튼하우트는 캠프를 보여주면서 피그미말로 이야기 했다. 자기가 추창과 부락장의 친구라고 했다. 피그미는 활짝 웃으며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토끼처럼 민첩하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곧 숲에서 떠드는 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피그미들이 모여들어 캠푸로 몰려왔다. 그들은 순진난만하게 탐험대와 악수를 하고 춤을 추었다. 환영인사였다. 부락장들이 달려와 베제든하우트와 목을 껴안고 반가운 인사를 했다. 베제튼하우트는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요란한 환영식이 끝나자 그들은 백인들이 가지고온 이상한 물건들의 용도를 물었다. 그리고 괴상한 질문을 했다.

백인도 꿈을 꾼다고? 꿈을 꾸는 사람은 우리들 뿐인데 .’

그들은 크게 놀랐으나 부락장이 말했다.

꿈을 꾸는 사람은 꿈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는 우수한 부족인데 당신들도 우수한 부족임에 틀림없다.’

피그미들은 포수를 좋아했다. 포수는 그들의 사냥무기인 활이나 창 보다도 우수한 총을 가지고 짐승들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피그미들 가운데 너무 늙어 사냥을 못 하는 늙은이들이 헌터에게 원숭이를 잡아달라고 했다. 원숭이고기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였다. 헌터가 원숭이사냥을 승낙했으나 사냥은 어려웠다. 밀림은 수십 미터나 되는 나뭇가지가 엉켜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얼키고설킨 나뭇가지들 때문에 원숭이들의 소리만 들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헌터가 노인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갔을 때 베제튼하우트가 먼저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여나문 발을 쏘고도 한 마리도 잡지 못 해 실망한 표정이었다. 헌터가 연달아 두 발을 쏘았다. 두 마리의 원숭이가 떨어졌으나 중간에서 나뭇가지에 걸려버렸다. 그러나 염려할 일은 없었다. 피그미 젊은이들이 마치 원숭이처럼 나무에 올라가 원숭이를 잡아왔다. 수천 수만 개의 나뭇가지들이 수십미터 엉켜있는 나뭇가지에 걸린 원숭이를 정확하게 예측해서 가지고 내려왔다. 피그미는 농경을 하지 않는다. , , 함정, 덫으로 야생짐승을 잡아 주식으로 했다. 그들의 활은 타부족의 활에 비해 작고 그만큼 힘이 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화살촉에 독을 발라 사용했다. 독은 죽은 벌레, 독초를 섞어서 만들었는데 누런 겨자 비슷했다. 학술반이 시험한 결과 염소는 다리에 가벼운 상처를 냈는데 하룻만에 죽었다. 그러나 피그미의 특기는 함정과 덫이다. 짐승길의 땅을 깊이 파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엮어 덮고 흙과 나뭇잎을 뿌려놓으면 감쪽 같았다. 부근 나뭇가지에 걸린 표식이 없다면 사람도 분별하기 어려웠다. 함정 밑바닥에는 끝이 뾰쪽한 대나무를 촘촘히 박았고 그 끝에 독을 발라놓았으므로 어떤 짐승이라도 함정에 빠지기만 하면 죽는다. 코끼리, 물소는 물론 조심스럽기로 이름난 사슴이나 오가피도 걸렸다. 피그미가 장치한 덫도 정교했다. 짐승의 통로 위에 뻗은 나뭇가지에 창을 거꾸로 매달았다. 창대에 무거운 돌을 매달아놓았기 때문에 짐승이 지나가다가 창을 고정한 줄을 건드리면 창이 낙하하면서 짐승을 찔러 죽인다. 사소한 상처를 입더라도 창끝에 발라놓은 독 때문에 창에 찔린 짐승은 곧 죽게 된다. 피그미는 이런 함정과 덫을 수없이 많이 설치해놓고 매일 새벽이면 순회를 한다. 어느 날 헌터가 피그미의 순회에 따라갔다. 피그미는 이트리삼림을 자기들의 농장으로 보고 마치 농작물을 수확하는 것처럼 짐승을 수확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함정은 없었다. 일곱 번째 함정에 자그마한 사슴이 한 마리 빠져있었고 열네 번째 함정에는 큰 뱀과 산돼지가 함께 빠져있었다. 뱀이 함정에 빠지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아마 뱀과 산돼지가 싸움을 하다가 같이 빠진 것으로 추측했다. 덫은 빈탕이었기 때문에 오늘의 식량은 산돼지고기 등으로 200여 명이 먹었다. 좀 부족했으나 이틀 전에 잡은 코끼리고기가 남아있었으므로 배를 곯지는 않을 것이라는 부락장의 말이었다. 특별손님인 헌터에게는 통째로 구은 원숭이가 제공되었으나 헌터는 원숭이고기를 보며 며칠 전에 먹은 마고노가 생각되어 구은 원숭이고기를 사양했다. 피그미는 이트리삼림 여기저기에 산재했는데 물이 흐르는 개울가에 나뭇가지를 엮어 나뭇잎을 두껍게 덮은 움막이었다. 얼핏 보면 짐승의 굴 같았으나 내부는 상쾌하고 깨끗했다. 짐승을 따라 이동했으므로 정성들여 집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또 피그미는 밤에 잘 때만 움막을 이용했고 낮에는 밖에서 활동했으므로 움막은 공들여 지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공동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분배하는데 관리직, 점장이, 의료업, 대장간, 목수는 사냥에 참가하지 않아도 분배했다. 여자들은 그물, , 짐승껍질 다듬기 등 특기를 가진 사람은 기능정도에 따라 한몫 또는 반몫을 받았다. 피그미는 일부다처제도였으나 부인을 3명 이상 가진 특권층은 별로 없었다. 농경을 하지 않아 큰 부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피그미는 대부분 일부일처였으며 여자는 정조관념이 강했다. 어느 날 마을 뒤 숲속에서 여자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젊고 예쁜 그 여자는 오랫도록 굶주린 것 같았다. 피그미는 사람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는데 유독 그 여자는 방치되었다. 헌터가 마을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간음을 했다. 몇 년 전 남편이 코끼리에게 밟혀 죽은 뒤부터 혼자 지내다가 최근에 이웃 홀아비와 눈이 맞아 밀회를 했다. 두 남녀는 밤에 밀림에서 만나 정사를 했는데 여자가 매일 밤 외출을 하는 걸 수상하게 여긴 시어머니가 미행을 해서 남녀가 밀회를 한 현장을 잡았다. 그래서 젊은 과부는 마을사람들의 처벌과 냉대가 두려우스스로 가출을 하여 밀림을 배회하다가 굶어죽었다. 탐험대가 그 말을 듣고 여자를 묻어주고 꽃다발로 슬픔을 표시했다. 그러나 베제튼하우트는 탐험대의 그런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피그미들에게는 피그미들의 도덕과 질서가 있는데 백인사회의 도덕을 피그미에게 적용하지 말라고 했다. 피그미 여자들은 세계적으로 정조관념이 가장 강한 부족이며 그것은 미덕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여자 꾀는 솜씨가 있지. 흑인여자는 작은 선물을 주거나 서비스를 하면 쉽게 들어눕고, 선물을 주기 싫으면 추장이나 부락장에게 부탁해도 쉽게 얻을 수 있어.’

헌터도 추장이나 부락장이 보내주는 여자들을 거절하느라 고통스러웠다.

네 꾐에 넘어가지 않은 유일한 여자가 피그미여자들이지. 피그미추장이나 부락장들도 자기 목숨을 주었으며 주지 여자는 주지 않아.’

베제튼하우트는 미남이고 여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여자 후리는 솜씨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피그미여자들의 정조를 칭찬하는 걸 보면 피그미여자의 정조관념은 대단하였다.

탐험대가 이트리에 체류하는 동안 이웃마을에서 괴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트리에는 코끼리가 많아 백인밀렵자들이 침입했다. 그들 중에는 백인사회의 쓰레기 같은 부랑자들도 많았는데, 금발의 키가 2m가 넘는 거인이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밀림속을 돌아다니다가 피그미여자를 만나 덤벼들었다. 피그미여자는 동을 쳤다. 그러나 욕정에 미친 백인이 피그미여자의 뒤를 쫓았다. 2m 거구의 남자가 욕정으로 1m 남짓한 여자를 쫓고 쫓기는 광경은 추악했다. 좀처럼 잡히지 않던 여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마을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으로 달아났다. 몸집이 가벼운 여자는 함정 위로 달아났으나 100Kg이 넘는 거구의 백인은 함정에 빠져 대나무에 목이 찔려 죽었다. 헌터일행이 사고현장에 갔을 때 피그미여자는 백인의 시체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어쨌든 백인을 죽였으니 처벌을 두려워했다. 베제튼하우트가 짐승처럼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백인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힘으로 여자를 폭행하려던 놈은 죽어 마땅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 건 정당방위야. 경위서에 그렇게 내 의견을 싸주게.’

박사가 동의했다. 그 후 피그미와 탐험대는 매우 친숙해졌다. 피그미가 박사의 동식물연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자원했다. 피그미는 백인들이 돈과 시간을 허비하면서 왜 하잘 것 없는 곤충이나 뱀, 새 따위를 잡으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날 밤 박사는 피그미대표 20여 명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수천 마리의 동물사진이 게재된 책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들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피그미는 그 부탁을 들어주려고 초조한 나머지 터무니없는 일까지도 맡겠다고 나섰다. 이것도 바아주고 저것도 잡아주겠다고 약속하다가 부극이나 남극에서만 사는 바다코끼리, 물개들도 잡아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들은 바다코끼리 사진을 보더니 눈을 번쩍거리면서 이 놈을 서너 마리 잡아오겠다고 약속했다.

, 이 놈이야 이 놈. 나는 이 동물을 봤어. 숲속 깊이 숨어있다가 한 밤중에만 나오는 놈들인데 무서운 놈들이지. 이 긴 이빨로 받으면 호랑이도 죽는단 말이지. 그렇지만 당신들이 원한다면 난 함정을 파서 이 놈들을 잡아오지. 몇 마리 필요하오?’

아프리카 초원에서 바다코끼리를 잡아오겠다는 허풍은 탐험대원들을 폭소케했다. 대체로 피그미의 말은 과장되었고 부정확했다. 그러나 피그미의 말에는 진실도 있었다. 백인이 믿지 않았던 오가피와 난장이코끼리를 잡아왔다. 난장이하마도 존재를 증명했다. 아프리카밀림에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진귀한 동물들이 많았다. 다음 날부터 피그미의 협력활동이 시작되었는데 헌터는 피그미에게 대형 짐승을 공급해야 했다. 피그미는 헌터에게 밀림에 소금이 나오는 장소가 있으며 짐승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헌터는 그곳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그곳은 바위가 많았는데 서금성분의 바위를 짐승들이 핥아 번들번들했다. 모기떼가 극성이었으므로 첫날 사냥은 실패했다. 박사가 모기장을 친 움막을 다시 지어주었다. 그리고 조명장치를 했다. 그날 밤 고릴라와 표범의 싸움을 구경했다. 고릴라가 나타났을 때 헌터는 사람으로 착각하여 하마터면 누구냐?고 고함을 칠 뻔 했다. 나무그늘에서 나타난 일곱 마리의 고릴라는 꼭 피그미만 했다. 고릴라들은 신중했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 듯 웅얼거리면서 바위로 갔다. 그 때 희미한 불빛에 시커먼 그림자가 소리없이 뛰어들어 앞장선 고릴라의 목을 물었다. 검은 표범이었다. 대담한 표범은 단신으로 고릴라의 무리에 뛰어들어 한 마리와 뒹굴었다. 기습을 당한 고릴라는 그 무서운 완력을 쓸 여유가 없었다. 고릴라가 표범을 꽉 껴안고 일어서려고 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표범이 고릴라의 목줄을 뜯어버렸다. 그런데 헌터가 안타깝게 생각한 것은 다른 고릴라들의 태도였다. 두목이 표범하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도 괜히 소리만 꽥! ! 지를 뿐 어느 한 마리도 표범에게 덤벼드는 놈이 없었다. 헌터가 발포했다. 표범이 공중으로 1m나 튀어올라 죽은 고릴라 위에 떨어졌다. 뒤이어 헌터가 비겁한 고릴라무리에 발포하여 한 마리를 죽였다. 마을의 장로들은 고릴라가 죽은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

고릴라가 나무 위에서 싸움을 하면 표범에게 이길 수 있다.’

헌터가 잠시 생각하더니 수긍했다.

피그미는 매우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동물을 잡기 위해 새로운 함정을 파고 덫을 만들고 활로 새를 잡았다. 그래도 바다코끼리나 물개는 끝내 잡지 못 했지만 벼라별 동물들이 잡혔다. 수십 미터를 날아다니는 날다람쥐도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무늬의 족제비가 사로잡혔다. 열대난과식물의 원색에 맞춰 이 곳의 동물들은 색상이 화려했다. 앵무새, 채양새들이 아름다웠다. 30Cm가 넘는 나비는 아름다움을 넘어 독성으로 보였다. 코프라, 만비도 있었는데 만비는 뱀 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뱀이다. 길이가 3m나 되면서도 몸통은 사람의 손가락만하다. 나무에서는 초록색, 잡초에서는 다갈색으로 위장한다. 박사는 동굴의 동물을 잡기 위해 연막탄을 사용했는데 튀어나온 동물을 헌터가 총으로 쏘아 잡았다. 어느 날에는 동굴에서 표범이 튀어나왔다. 박사를 호위하고 있던 헌터가 공중에 나는 표범을 맞히지 못 했다면 박사는 표범에게 목줄을 물렸을 것이다. 그런데 박사보다도 더 놀란 것은 헌터였다. 헌터가 발사한 총은 산탄총이었는데 여나문 개의 총탄이 박사에게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탐험대의 연구반은 잡혀온 동물들을 해부하고, 알콜에 넣고, 박제를 만들었다. 박사가 떠나는 날 인사를 했다.

이번 임무가 성공적으로 수행된 건 피그미 여러분들의 절대적인 협조 때문이었습니다. 그 보답으로 남은 소금과 설탕을 선물로 드립니다.’

피그미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헌터와 베제튼하우트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총명하고 비정한 사나이이긴 했으나 베제튼하우트는 밀림과 피그미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문명사회에서는 밀렵전과자였고 방탕아였으나 밀림에서는 신사였고 피그미의 우상偶像이었다. 헌터는 돌아오는 길에 코뿔소를 네 마리 쏘아 훌륭한 뿔을 경비대장에게 선물했다. 경비대장은 너무 기뻐 위조 페스포트를 가진 베제튼하우트가 슬그머니 관문을 통과하는 것을 못 본 체 했다. 이틀 후 헌터와 베제튼하우트는 술집에서 밤새 술을 마신 뒤 이별하고 그 후 소식을 듣지 못 했는데, 어느 백작부부를 안내해서 이트리에 들어가 사냥을 하다가 백작부인과 눈이 맞았는데 백작부인이 같이 도망가자고 유혹했으나

사랑하는 마담, 난 이트리가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영국영토였던 아프리카 마차고스지방에 웬만한 벌만큼 크고 독침을 가진 체체파리가 극성을 부렸다. 다행히 사람들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없었으나 가축들에게는 무서운 병균을 전염시켰다. 특히 소들은 체체파리가 전파시키는 윌스병에 감염되어 하루에도 몇 십 마리씩 죽었다. 두 번째 문제는 코뿔소가 토인들의 집이나 논밭을 마구 짓밟고 인명피해도 났다. 코뿔소는 체체파리의 윌스병에 면역력이 있어 공생하면서 무섭게 증식했다. 그래서 코뿔소 외의 동물들도 얼씬거리지 않았고 영국정부는 밀림을 아예 패쇄해버렸는데 문제는 그 밀림에 와간바족이 살고 있었다.

 

21. 사나운 코뿔소

 

와간바는 체체파리 때문에 가축들이 몰살당했고, 코뿔소들에게 경작지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고 여러번 진정을 했다. 와간비족은 사냥족이기 때문에 코뿔소와도 싸움을 했으나 그 결과로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와간비족은 활을 사용하는 부족들이었기 때문에 활로 코뿔소사냥을 했으나 코뿔소가 숨어있는 숲은 작은 나무들이 밀생했으며 잡초가 우거져있어 활은 좋은 무기가 되지 못 했다. 화살이 코뿔소에 맞아도 두꺼운 껍질을 뚫지 못 해 가벼운 상처를 입힐 뿐이었는데 상처를 입은 코뿔소는 더욱 사납게 날뛰기 마련이었다. 그렇잖아도 심술궂은 놈들인데 상처라도 입으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코뿔소는 상처를 입힌 토인을 쫓아 마을까지 달려들어 집을 부수고 뿔에 받치고 발에 짓밟혀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영국행정관들이 회의를 했으나 모두 실천 불가능하거나 효과를 기대하기 곤란한 내용들이었다. 사태를 수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밀림의 나무들을 잘라버리고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밀림을 없애고 개간을 하면 와간바족들에게 경작지를 제공할 수 있으므로 일석삼조였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고 불태우려면 코뿔소가 우글거리는 숲속에 사람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고양이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영국관리는 결국 그 일을 헌터에게 의뢰했다. 헌터가 먼저 밀림에 들어가 코뿔소를 소탕하면 벌채꾼들이 뒤따라 들어가 벌채를 하기로 했다.

헌터군, 어려운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만 이 일은 자네 밖에 할 사람이 없어. 실은 군대를 동원하려고 했는데, 영국군대가 코뿔소하고 전투하는 군대냐고 사령관한테 핀찬만 들었네.’

헌터의 책임은 밀림에서 코뿔소를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살하거나 쫓아내는 임무였다. 만약 코뿔소가 한 마리라도 남아 작업대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전적으로 헌터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헌터는 그 일을 맡았고 맨 먼저 한 일은 조수를 선발하는 일이었다. 이런 위험한 일에 나설 사람이 없기 때문에 행정청의 협조를 얻어 밀렵전과자들을 수소문 했다. 밀렵은 행정청의 눈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숙련된 자들이 있었고 용감했다. 수소문 끝에 세 사람의 용사들을 선발했는데 이들은 평생 밀렵과 감옥에서 살아온 밀렵전문가였다. 세 사람 중 한 명은 마흔이 좀 넘어보였는데 헌터는 한 눈에 이 사람이 발자국 추적 전문가라는 걸 간파했다. 그 사람의 몸 전체에 가시덤불에 할킨 자국이 무수히 남아있었고 그의 발바닥은 짐승처럼 두꺼웠다. 두 번째 사나이는 30대였는데 나무타기 명수로 알려져있었다. 그의 몸은 고무처럼 탄력이 있고 부드러웠다. 그가 헌터에게 실기를 보여주었는데 그의 몸은 나무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10m 높이의 나무를 단 3분만에 소리없이 올라갔다.

부와나, 나는 고릴라나 원숭이보다도 더 나무를 잘 탑니다. 급하면 부와나를 업고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어요,’

헌터는 그이 등에 업혀 나무에 올라갈 생각은 없었으나 그가 나무 높이 올라가 먼 곳의 지리나 정탐이 필요했다. 세 번째 사나이는 아직 앳된 20대였다. 그는 헌터의 총을 갖고 수행하는 조수역할을 맡았다. 헌터가 이번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웃고 있었다.

부와나, 당신과 같이 다니면 밀렵자로 몰려 산림경찰에게 잡혀갈 일은 없겠지요?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들은 상당히 많은 보수를 받게 되었으나 그들에게 보수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큰소리치면서 당당하게 사냥을 할 수 있었고 총을 만질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모두 창과 활의 명수였으나 상대가 코뿔소였으므로 창과 활은 무용지물이었으므로 헌터는 그들에게 총을 주고 사격연습을 시켰다. 총을 만져보고는 처음에는 크게 흥분했는데 헌터는 좀 불안해졌다. 백인 같으면 아무리 사냥에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며칠만 연습을 하면 총을 다룰 수 있다. 총의 메카니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흑인은 활만 다루었기 때문에 활과 총의 차이점을 모른다. 토인은 총이 짐승을 쏘아죽이는 것은 탄환이 튀어나가 짐승에 맞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 무서운 화약 폭발소리라고 믿었다. 그들이 활을 쏠 때에는 마치 연주자들이 바이올린을 키듯이 그들의 감각으로 활을 조종한다. 그들의 감각과 활이 일체가 되어 화살이 발사되는데 총은 그런 도구가 아니며 전혀 별개의 심리에서 다루어지는 단순한 기계인 것이다. 헌터는 3일 동안이나 토인들에게 총의 원리를 습득시키려고 무한히 애를 썼으나 효과 여부는 미지수였다.

나이로비에서 마구엔까지는 로라(사냥용 반 트럭)를 타고갔다. 토인들은 검문소에서 산림감독관들이 헌터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동시 그들에게도 너그러운 미소를 띠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했다.

부와나, 당신과 영국총리 중 어느 쪽이 더 높지요?’

헌터는 쓴웃음을 지었으나 옆에 있던 산림감독관이 단호하게 답변했다.

밀림이나 숲속에서는 부와나가 총독각하보다 높은 분이시다.’

영국통치의 아프리카 일대에는 괴상한 숲들이 있었다. 이들 숲은 대개 1천 평에서 3천평 정도로써 광대한 밀림 여기저기에 산재하였는데 키가 큰 나무는 없고 3m 이내의 나무와 그 정도 높이의 잡초와 가시덤불 따위가 밀생했다. 나무와 덤불과 풀이 엉켜있기 때문에 사람은 그 속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고 코뿔소만 살고 있었다. 헌터일행이 도착하자 와간바족들이 대환영을 했다. 이웃에는 마사이족이 살고 있었다. 마사이족은 유럽의 백인들보다도 키가 컸으나 와간바족은 백인 보다는 작았으나 동양인 보다는 컸다. 와간바족은 보통 흑인들과 달라 눈, 코 등이 단정했고 지능수준도 높았다. 와간바족은 이웃 마사이족과는 오랫동안 사이가 나빠 싸움을 했으며 타부족과는 달리 호전적인 마사이도 와간바를 만만하게 보지 못 했다. 마사이가 전투족이라면 와간바는 수렵족이었다.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가 농사를 지으면서 최근 십 여 년 동안은 평화롭게 살았지만 코뿔소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헌터가 와간바의 활을 조사했는데 와간바의 활은 훌륭했다. 재료가 무트바라는 흑색 나무인데 단단하면서도 대나무처럼 탄력이 있었다. 활의 장력은 약 33Kg 정도였는데 그것은 화살이 50m까지 나갈 수 있으며 50m 이내에서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말이었다. 화살도 훌륭했다. 특히 화살의 끝부분이 아주 정교했다. 여자가 수를 놓는 바늘크기로 날카로왔는데 끝부분에는 무서운 독이 발라져 있었는데 그 독은 아무리 큰 짐승이라도 몇 시간 이내에 죽는다. 마사이와 전투에서도 화살은 창 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날아갔으므로 마사이를 전멸시켰다고 주장했다. 헌터는 아프리카 토인들 중에서 마사이가 가장 용맹한 부족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와간바의 주장에 동의했다.

부와나, 우리의 활은 천하무적인데 그 코뿔소에게만은 .’

와간바추장의 호소였다.

헌터는 와간바족의 본부가 있는 마을에서 1주링 간 머물면서 와간바와 친해졌는데 와간바는 모두 부지런했으나 특히 여자들은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노경은 물론 모든 가사를 도맡았다. 어린 아이들도 땔감을 했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편이 염소를 처가에 바쳤다. 그리고 시빚에서도 부지런히 가사를 돌봐 돈을 모아 남편의 첩을 사들였다. 첩이 많을수록 본처의 가사노동이 쉽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헌터가 마을에 머물었을 때 좋은 친구를 얻었다. 무른베는 마을의 부락장이었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또한 사교적이어서 부하들을 잘 다루었다. 헌터의 좋은 친구였던 마사이의 용사 키라칸카노를 잃은 다음 헌터는 자기를 대신하여 사냥조수나 포터를 지휘할 지배인이 필요했다. 헌터가 사냥계획을 수립하고 조수와 몰이꾼둘에게 사냥지시를 하고 있을 때 개들이 요란하게 짖었다. 라이노(코뿔소)가 나타났다고 했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토인들이 와서 옥수수밭이 쑥대밭이 되었다고 울쌍을 지었다. 곧 추적이 시작되었다. 라이노는 한 마리였으며 밀림속으로 들어갔다. 건조기라 발자국 추적이 어려웠다. 나이로비에서 대려온 트렉커(추적꾼)가 아니었으면 추적을 포기할 뻔 했다. 트렉커는 와간바족 추적꾼과 합동으로 추적을 했는데 얼만 안 가서 와간바의 추적꾼이 트렉커를 형님을 모시는 것 같았다. 와간바의 추적꾼이 발자국을 놓치면 트렉커가 곧장 앞장을 섰는데 트렉커는 발자국을 보는 게 아니라 나뭇가지나 잡초를 보고 추적을 했다. 정오께 커다란 숲에 들어섰다. 숲에 들어갈 수 없었으나 라이노가 지나간 숲에 터널처럼 길이 생겼다. 라이노길을 따라가면서 헌터는 추적대의 편성을 바꾸었다. 트렉커가 앞장을 서고 헌터가 뒤를 따랐다. 만약 라이노가 역습을 하면 트렉커가 땅에 엎드려 헌터가 발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무모한 추적이었다. 원래 맹수추적은 맹수쪽에서 바람이 불어야 가능했다. 맹수는 냄새에 민감해서 바람 반대방향에서 추적을 해야 한다. 평지추적이라면 바람 부는 곳을 따라 포수들이 이동을 하면서 추적을 했는데 터널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고 만약 라이노가 뒤돌아서 공격을 한다면 피할 길이 없어 몰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라이노는 눈이 근시인 반면 코가 아주 예민했기에 위험은 더 했다. 한 시간 쯤 추적을 했을 때 트렉커가 신호를 했다. 라이노가 무엇인가 단단한 것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헌터는 미국제 고무바닥 구두를 신고 있었고 토인들은 맨발이었기 때문에 발소리를 죽일 수 잇었다. 라이노는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한 발 한 발 라이노가 보일 때까지 전진했다. 다시 트렉커가 신호를 했다. 발견했다는 신호다. 사냥대가 일제히 움직인을 멈추고 헌터만 다가갔다. 라이노가 보였다. 기척을 눈치챘는지 머리를 들고 귀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라이노는 좌우 귀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서 소리를 집으려고 했다. 헌터는 라이노가 스스로 움직여서 사격위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라이노의하반신과 급소가 나무에 가려서 쏠 수가 없었다. 토인들이 초조해졌다. 라이노가 보이는데도 헌터가 발포를 하지 않자 초조해졌다. 토인들은 급소는 모르고 총만 발사되면, 총소리에 라이노가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 이런 토인들의 마음이 라이노에게 전달된 것 같았다. 라이노의 등에 앉있던 새들이 날아올랐다. 라이노의 피부에 기생하는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이었는데 라이노의 감시병역할을 하고 있었다. 라이노가 전투태세가 되었다. 그는 주위를 뱅뱅 돌아보더니 사람을 발견하고 헌터의 정면으로 걸어왔다. 라이노가 모습을 들어내자 토인들이 흥분했다. 그런 동작이 라이노를 자극했다. 라이노가 머리를 숙이고 돌진했다. 쿵쾅쿵쾅 땅이 울리는 진동이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다. 헌터는 당황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첫탄이 발사되었다. 라이노가 앞으로 꼬꾸라졌으나 곧 일어났다. 탄환이 분명코 이마에 맞았을텐데 다시 돌진했다. 2탄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심장이었으므로 라이노는 폭탄을 맞은 탱크처럼 크게 몸을 흔들더니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 자세로 숨졌다. 총소리가 나자 헌터 뒤에서 대기하고 잇던 토인들이 환성을 질렀다. 토인들은 미친 듯이 환성을 지르면서 라이노 시체로 달려갔다. 사냥대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사냥상황을 살피려고 왔다가 달려왔다. 그들은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었다. 그들은 라이노가 옥수수밭을이나 감자밭을 짓밟혀 굶주리고 있었으며 라이노고기를 얻으려고 달려왔다. 라이노의 껍질이 벗겨지자 수십 개의 칼들이 난도질을 했다. 자칫 다찰까 염려되었다. 이 소동에 독수리들이 한몫 끼었다. 독수리는 광란의 토인들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다가 토인들이 잘라낸 고기덩이를 잽싸게 채서 날아갔다. 어떻게나 그 동작이 빠른지 고기를 빼앗긴 토인은 자기 고기가 어디로 간자를 몰라 여우에게 홀린 사람처럼 멍 하니 서 있었다. 라이노의 가죽은 고급책상덮개로 사용하였으며 뿔은 상아 보다도 더 비쌌다. 이디아와 아라비아인들에게 정력제로 사용되었다. 할렘에서 수십 명의 여자를 거느린 아라비아의 왕족들에게는 요긴한 물건이었다. 헌터가 시험삼아 라이노뿔을 가루로 만들어 복용해봤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헌터의 첫 번째 라이노사냥은 고통스러웠으나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더 위험했다. 바람과 지형이 좋지 않았다. 화산지대였는데 사람이 걸어가면 통통소리가 났다. 기공이 많아 바람의 방향도 일정하지 않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사람낸새를 맡은 라이노가 도망쳐버렸다. 그래서 나무를 잘 타는 마이어에게 총을 주고 라이노를 발견하면 쏘라고 지시했다. 마이어는 사격연습도 했으므로 무서운 것이 없었고 아주 신이 났다. 그래서 너무 전진을 했다. 바람을 안고 있었으므로 안신했다. 그러나 밀림 한가운데서 옆바람이 불어와 라이노가 마이어의 냄새를 맡았다. 쫓기던 라이노가 갑자기 돌아서 돌격을 했다. 추격에만 정신을 쏟았던 마이어는 땅이 우르르 울리는 소리에고개를 들었는데 그 때는 이미 라이노가 3m 앞에서 달려들었다. 총을 겨눌 여유도 없어서 마이어는 머리 위로 뻗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나무에 매달린 마이어의 왼쪽다리를 라이노가 뿔로 받았다. 마이어는 나무에서 떨어졌으며 그 충격으로 총이 오발되었다. 뒤따르던 헌터가 총소리를 듣고 뛰어와 라이노를 발견했다. 라이노는 마이어에게 덤벼들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헌터를 보고는 뒤돌아섰다. 전속력으로 달려왔기 때문에 조준할 여유가 없어 총을 앞으로 내밀면서 발포했다. 2m 정도의 거리였는데 총탄이 두꺼운 라이노의 갑옷을 뚫고 심장에 박히는 소리를 들었다. 라이노늬 빨갛게 충혈된 눈에 분노가 서렸다. 돌격하려고 했으나 이미 다리가 마비되어버려 간신히 머리를 한 번 흔들고는 뿔로 받는 동작을 하더니 쓰러졌다. 마이어는 헌터가 몸을 잡아 일으키자 일어나면서 말했다.

부와나, 쏠 틈이 없었어요. 저 놈은 기차보다도 빨리 덤벼들었어요. 나뭇가지를 붙잡지 못 했더라면 지금 쯤은 .’

헌터가 두 번째 라이노를 끌고 돌아오니 마을 뒤에서 라이노와 코끼리가 싸움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초식동물 끼리의 싸움은 드문 일이었으나 목격자 토인이 뒷산에 나무를 하러갔다가 주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나무 위로 올라갔다. 라이노가 숲에 있었다. 뭔가 심기가 편찮아 보였다. 이윽고 숲에서 코끼리가 나타났다. 코끼리는 천천히 걸어오다가 라이노를 발견했다. 동시에 라이노도 코끼리를 발견했다. 심술궂은 라이노와 난폭한 코끼리가 서로 상대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둘 다 근시이기 때문에 더 잘 보려고 대가리를 내밀면서 상대편을 관찰하고 있었다. 토인은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소동이 벌어질 것 같았다. 소동이 벌어지면 나무 위에 있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화가 난 코끼리나 라이노에게 받치면 나무가 통째로 넘어질 수도 있었다. 코끼리와 라이노가 대결하고 있는 숲에는 길이 하나뿐이었다. 둘 중 하나가 길을 양보해야 하는데 라이노는 길을 비켜주지 않을 뿐더러 상체를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코끼리도 화가났다. 그는 코를 치껴세우고 서너 발 전진했다. 통행 방해자에 대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라이노는 여전히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었다.

(네깐 놈이 뭔데, 어디 맘대로 해봐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라이노쪽에서 보면 그 숲은 자기 영토고 코끼리는 침입자였다. 그래서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코끼리도 그 고집불통에게는 기가막혔던 모양이다. 코끼리는 홧김에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라이노 옆으로 빠져나갔다. 슬금슬금 라이노의 눈치를 살피면서 얌전하게 지나갔는데 라이노는 여전히 심술궂은 낯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코끼리가 사라지자 라이노도 숲을 떠났다. 라이노는 애초부터 숲에 머물 생각이 없었는데 코끼리에게 심술을 부렸고 라이노가 신경질을 부린 것은 소화불량 때문이라고 토인들이 설명했다. 라이노의 배설물을 보고 한 말이었다.

저 놈은 소화불량으로 심술이 났으니 무슨 짓을 할른지 몰라요,’

토인들이 걱정을 했는데 그 예감은 적중했다. 며칠 후 이웃마을 여자가 라이노에게 살해되었다. 여자는 나무를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가슴이 움푹패이고 늑골이 여러 개 부려졌다. 헌터가 추격을 했는데 라이노는 숲으로 들어갔고, 도중에 어미와 새끼가 합류했다. 라이노가 신경질이 된 것은 배앓이가 아니라 새끼 때문인 것 같았다. 헌터가 망서렸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맹수사냥은 위험하고, 금기였다. 그러나 사람을 해쳤으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알마가지 않아 낮은 산이 나왔고 계곡이 있어 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숲이 있었다. 추적을 중단하고 산 위로 올라가 라이노의 동태를 살폈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라이노들이 숲을 빠져나와 다른 숲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거리는 약 1km 정도고 바람은 사람에게 유리했다. 산에는 한 사람이 남아 라이노의 동정을 살피고 나머지는 추적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추적을 눈치 채지 못 했을텐데 새끼를 데리고 있어 민감했으므로 추적을 간파했다. 어미와 새끼를 피신시킨 숫컷이 숨어있다가 돌진했다. 진지를 짓밟아버리는 탱크 같았다. 헌터는 숫놈을 최대한 가까이 잡아당겨놓고 첫탄으로 승부를 가렸다. 그 놈의 뿔에는 토인여자의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 때 산 위에서 감시를 하던 토인이 달려와 어미와 새끼가 숲을 빠져나와 산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헌터는 지름길로 달려 산 중턱에서 암컷 라이노를 기다렸다. 수놈이 죽을줄 모르는 암컷은 수놈을 기다리는 듯 가끔 뒤를 돌아다보며 천천히 바위산을 올라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가 젓을 달라고 보채고 있었으나 암컷은 귀찮다는 듯 새끼를 밀어냈다. 그러나 집요하게 달라붙는 새끼에게 젓을 물렸다. 그러는 사이에 토인들이 시끄럽게 지껄이면서 라이노고기를 얻으려고 산 위로 올라왔다. 어미가 사람소리를 듣고 긴장했다. 젓을 빨던 새끼를 밀어내고 전투태세를 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헌터가 바위 뒤에서 나와 천천히 어미를 향해 걸어갔다. 어미는 그 자그마한 눈으로 헌터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히 자기에게 덤벼드는 생물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한참동안 멍 하니 보고만 있더니 그만 화를 냈다. 그리고 덤벼들었다. 헌터는 젓먹이짐승을 쏘는 게 싫었으나 이 때는 주저할 여유가 없었다. 연달아 두 발을 쏘았다. 고통을 덜어주려는 배려였다. 새끼가 어리둥절하더니 어미 곁으로 가서 쓰러진 어미를 일으켜세우려고 코로 어미의 배를 떠받치고 있었다.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총소리를 듣고 토인들이 시끄럽게 조잘대며 달려왔다. 사람들 소리를 들은 새끼가 긴장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오는 토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용감하게 군중들에게 덤벼들었다. 어미를 보호하려는 효성이었다. 돼지만한 크기에 뿔도 자라지 않은 젓빨이였지만 어마어마한 기세로 군중들에게 덤벼들었다. 앞장섰던 토인들은 달아나고 뒤따르던 청년들이 창과 칼을 들고 새끼에게 덤벼들었다. 새끼는 위입술을 부르르 떨며 창과 칼 사이를 뚫고 돌진했다. 헌터는 그런 새끼의 태도에 크게 감탄해서 공포를 한 방 쏘고 새끼를 사로잡으라고 고함쳤다. 토인들이 창과 칼을 버리고 청년 네 명이 새끼와 뒹굴었으나 새끼는 의외로 강했다. 새끼의 박치기에 장정들이 비명을 질렀다. 10분 동안이나 싸웠으나 끝내 기진맥진해서 사로잡혔다. 헌터는 코뿔소새끼를 캠프에 가두어두고 염소젓을 먹였다. 새끼가 이틀 동안 버티다가 염소젓을 빨았다. 그리고 차차 헌터에게 따랐다. 헌터는 한 달 뒤 새끼를 동물원에 기증했는데 새끼는 헌터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헌터가 라이노사냥을 한 지 한 달만에 20여 마리를 죽였으나 밀림개척단은 아직 일을 하지 못 하고 헌터를 재촉했다. 헌터도 초조하고 신경질이 났다. 라이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라이노를 찾아 죽이기로 하고 조수 세 명만 데리고 밀림을 돌아다녔다. 이런 방법으로 하루 한 마리씩 라이노를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헌터일행은 숲속에서 라이노가 부르릉 부르릉 하는 소리를 들었다. 라이노는 좀체 소리를 내지 않은 동물이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라이노는 암수 두 마리였는데 서로 꽁무니에 코를 비비며 빙빙 돌고 있었다. 연애 중이었다. 그런데 암컷은 숫놈의 구애가 못마땅한 것 같았다. 숫놈의 동작이 느리고 적극성이 부족했는데 암컷은 그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암컷이 자기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숫컷에게 덤벼들어 난폭하게 배를 찔렀다. 장난이 아니라 사납게 찔렀기 때문에 수놈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그러나 곧 아첨하듯 다시 꽁무니를 따라왔다. 두서너 번 구박을 당하고나서야 숫컷이 암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적극공세를 벌였다. 앞다리를 들어 암컷의 등에 올라타려고 했다. 그 때 토인이 헌터의 등을 치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또 한 마리의 숫놈이 나타났다. 그 놈은 암내를 맡고 왔는데 선참자가 암컷과 전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한 태도였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전희를 벌이고 있는 암수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빈 공간을 향해 맹렬한 공격시늉을 하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자기가 얼마나 강한 놈인가를 과시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런 제 2의 숫컷을 암놈이 흘끔거리면 보는 걸 눈치챈 제 2의 숫컷이 암놈에게 따라오라는 듯 숲으로 들어갔으나 암컷은 첫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암놈이 따라오지 않자 제 2의 숫컷은 숲속에서 나와 혼자 열심히 돌격연습을 했다. 암컷이 귀찮다는 듯이 첫사랑을 유인하여 숲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실연을 당한 제 2의 숫컷은 원망스럽게 암수가 사라진 숲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긴장했다. 조수가 기어가다가 소리를 낸 것이다. 2의 숫컷이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 놈은 화풀이상대가 생겨 돌진했다.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이겠다는 공격이었다. 숨어서 밀회를 엿보던 헌터는 총을 쏘고싶지 않았으나 하는 수 없었다. 신방을 차렸던 신혼부부도 뛰어나왔다. 교미를 방해당해서 부르릉 부르릉 화를 내 주위를 들러보다가 사람들을 발견했다. 교미 중이었다는 표식인 거품이 암컷의 어깨에 묻어있고 암수의 입에도 거품이 잔뜩 묻어 있었다. 헌터는 이미 재장전을 끝낸 총을 난폭한 신부의 심장을 겨눠 발포했다. 이 광경을 보고 무정한 신랑은 숲속으로 도망가버렸다. 라이노의 교미기는 9월부터였는데 라이노들이 사나와진 것은 교미기였기 때문이었다. 교미기가 되면 암컷들이 암내를 풍기는데 그 고리타분한 냄새는 사방 몇 천미터 내외의 숫컷들을 흥분시킨다. 호랑이는 생식기에 암내를 풍기는 암컷 주위에 반경 천 킬로미터 안의 숫놈들이 모여들어 생사를 가름하는 싸움을 벌이지만 라이노는 다른 동물처럼 싸우지 않고 암컷들에게 상대를 선택하게 한다. 암놈이 마음에 드는 숫놈을 신랑으로 선택하면 다른 숫놈은 그 결정에 따른다. 그리고 새끼를 임신해도 동거하며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가족으로 지낸다. 어쩌다 잘 못 헤어지게 되면 암컷은 남편을 찾으려고 허파에서 쥐어짜는 듯 한 소리를 내는데 사냥꾼들은 그 소리를 흉내내어 숫컷을 유인하여 사냥을 한다. 그러나 헌터는 부부애를 이용하여 사냥을 하는 그런 방법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던 헌터가 교미 중인 러이노를 사살한 적이 있었다. 헌터는 아카시나무와 딸기덩쿨이 밀식한 숲속에 누어있었다. 추적을 하다가 조수들과 헤어져 혼자만 그 꼬락서니가 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이면 가시에 찔릴 뿐만 아니라 부근에 라이노들이 설치고 있어 목숨이 위험했다. 헌터는 추적을 포기하고 조수들이 찾아주기를 기다렸는데 약 20여 미터 전방에서 러이노의 힉힉거리는 숨소리와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상하운동을 했는데 숨소리와 운동의 박자가 맞았다. 라이노가 교미 중이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라이노 숫컷이 교미 중인 라이노에게 접근했다. 교미 중인 암수가 앙칼진 항의를 받고 주춤거리던 라이노가 헌터의 조수 오라소년을 발견했다. 오라소년은 기습을 하는 라이노를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오라, 조심해라! 라이노가 덤벼든다.’

헌터는 위험한 자기 처지를 잊고 고함을 쳤다. 교미 중이던 라이노가 헌터를 발견했다. 돌격할 것이 분명하고 헌터는 누운채로 짓밟혀 죽을 것이 분명했다. 헌터가 누운자세로 발포했다. 수놈의 이마를 겨냥했다. 수놈은 암컷의 등에 올라탄 자세로 총탄을 받았으며 그 충격으로 암수가 다 무릎을 꿇었다. 암수가 같이 꼬꾸라졌지만 암놈은 일어섰다. 분노해서 새빨갛게 충혈된 눈알이 보였다. 암컷이 헌터에게 돌진했다. 오라소년에게로 가려던 다른 숫놈도 헌터에게로 돌진했다. (아뿔사!) 몸은 반신불수 상태고 총탄은 한 알뿐인데 두 마리의 라이노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덮쳐들고 있으니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헌터에게는 사냥꾼으로써 본능이 있었다. 어쨌든 쏘아야 한다는 본능이다. 헌터는 정면에서 돌격해오는 암컷의 귀밑을 겨냥해서 쏘았다. 총탄이 뇌신경을 마비시켜 일순간 동작을 정지시킬 심산이었는데 아슬아슬하게 그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암컷은 헌터의 1m 앞에서 꼬꾸라졌다. 만약 탄환이 다른 곳에 맞았더라면 암컷은 달려오는 그 탄력만으로 헌터를 짓밟았을 것이었다. 바로 그 때 헌터는 목덜미에 거치른 라이노의 콧김을 느꼈다. 또 한 마리의 라이노가 불과 2m 거리에서 돌진하고 있었다. 재장탄을 할 시간이 없었다.

오라, 총을 쏴 총을!’

헌터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오라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맨손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축구에서 태클을 하 듯 달려들어 라이노의 두 뿔을 잡고 늘어졌다. 라이노는 격노했다. 상투를 잡힌 양반처럼 노호소리를 지르면서 공격대상을 바꿨다. 라이노는 헌터의 코앞에서 정지하여 오라소년을 떨쳐내려고 머리를 힘차게 흔들었으나 오라소년은 그 무서운 힘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뿔을 쥔 양손을 놓지 않았다. 라이노는 맹렬한 속도로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고 오라소년의 몸은 마치 풍차처럼 돌고 있었다. 헌터가 그 광경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재빨리 재장탄을 하고 라이노가 대가리를 땅에 쳐박고 오라소년을 짓밟으려고 하는 찰라 발사했다. 헌터쪽에서는 라이노의 대가리만 보였으므로 대가리를 겨냥했는데 쏜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라이노와 오라소년이 동시에 넘어진 것이다.

(아차, 양쪽 다 맞았구나!)

헌터는 아카시줄기와 딸기덩쿨을 박차고 일어섰다. 오라소년에게 달려갔다. 오라소년은 뻣뻣한 자세로 누워 꼼짝도 하지 못 했다. 헌터는 멍 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런데 몇 초가 지나자 오라소년이 움직였다. 헌터가 와락 달려들어 오라소년을 일으켜세워 몸을 조사했다. 탄환자국은 없었다. 오라소년은 라이노가 넘어지면서 다리로 쳐서 실신했을 뿐이었다. 헌터는 오라소년을 꼭 껴안았다., 두 사람 다 구사일생이었다.

부와나, 나도 이제 사냥을 잘 하지요?’

훌륭해, 아주 훌륭했어!’

이 일이 있은 후 오라소년은 영웅이 되었다. 그 후 오라소년이 총을 달라고 간청을 해서 헌터는 아직 쓸만한 벨기에 연발총을 주었다. 그리고 마이어와 함께 사냥을 하겠다고 했다. 헌터는 기분좋게 허락하고 말했다.

나도 함께 가겠어. 그러나 사냥은 너희들이 하고 나는 구경꾼이다.’

그 이튿날 오후 나무타기 명수 마이어와 오라소년은 몇 분 전에 찍힌 라이노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마이어가 아카시나무 위에 올라가 정탐을 했다. 라이노 네 마리가 앞에 있었다. 마이어는 제페리 2연총을 갖고 오라소년은 벨기에 이연총을 들었다. 헌터는 약속대로 구경만 하기로 했으나 만약의 경우 위험한 상황이 되면 자기가 원호사격을 하겠다고 명령했다. 숲은 예상 보다 깊지 않았고 곧 라이노의 풀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방정맞은 원숭이들이 나무 위에서 킥킥거리며 러이노에게 추적을 알려주었다. 오라소년이 버럭 화를 내고 원숭이를 노려봤으나 이미 늦었다. 라이노의 탁한 노호소리와 같이 커다란 숫놈 한 마리가 돌진했다. 다행히 라이노와 사이에 직경 2m 정도의 공터가 있어 라이노가 그 공터를 달려올 때 사격할 기회가 있었다. 라이노가 공터에 나타나자 전신이 훤히 들어났는데 마이어가 조준만 해놓고 사격을 하지 않았다. 라이노가 공터를 통과하여 나무들 사이로 들어왔을 때에야 발사를 했다. 마이어는 라이노를 가까이 당겨놓고 쏠 심산이었으나 나뭇가지들에 라이노가 가려져 머뭇거리다가 발사기회를 놓치자 언겹결에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맞을 리 없었다. 그 사이에 라이노가 한 마리 더 나타났다. 한꺼번에 두 마리가 덮쳐들자 마이어는 당황했다. 또 한 방을 쏘았는데 역시 빗나갔다. 두 마리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한 마리의 배를 겨냥해서 뒤에 있는 놈까지 관통을 예상하고 쏘았으나 빗나가버렸다. 오라소년이 연발총을 겨냥했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다시 방아쇠를 당겼으나 역시 반응이 없었다. 라이노가 불과 몇 발짝 앞에 왔을 때 오라소년이 헌터를 바라보며 총을 흔들었다. 총이 고장났다는 걸 알렸다.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엎드려! 내가 쏜다.’

다행히 그 두 사람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헌터의 지시를 들었다. 헌터의 시야에 두 마리의 라이노가 클로즈업 되었다. 헌터가 두 발을 연달아 쏘았다. 회심의 총솜씨였다.

부와나, 우리들에게는 역시 활과 창이 총 보다 좋네요,’

11월이 되자 라이노사냥이 끝났다. 10여 마리를 죽였기에 나머지는 멀리 종적을 감추어버렸다.

임무 완료. 복귀하겠음

헌터는 나이로비 행정청에 전보를 쳤다. 오랜 가뭄 끝에 때마침 비가 왔다. 텐트속에서 헌터는 파이프 연기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마이어는 라이노의 뿔과 껍질에 기름칠을 하였으며, 오라소년은 총을 손질하였다. 그리고 토인조수는 저녁 준비를 했다.

오늘 저녁밥 수프는 뭔가?’

라이노의 등심입니다.’

밥 반찬은?’

라이노의 허벅다리고기 구이지요.’

내일 메뉴는?’

라이노의 심장이 남아있어요.’

헌터가 웃었다.

라이노고기는 이제 질렸어. 그 놈들과 싸운 생각을 하니 이젠 소화액이 나오지 않아.’

부와나, 그렇다면 뱀고기를 요리할까요? 어젯밤에 천막 밖에서 괘 큰 놈을 한 마리 잡았는데요.’

천만에, 뱁고기요리는 사양하겠네, 그 놈의 말만 들어도 소화가 되지 않은 라이노고기가 입으로 올라올 지경이야.’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로 누렇게 말라있던 초원이 파랗게 살아나고 있었다.

 

1920년 초, 헌터가 나이로비호텔에 있을 때 젊은 미국인 두 사람이 방문을 받았다. 택사스출신의 사업가이며 수렵가로써도 꽤 이름이 알려졌다고 했다. 키가 2m 가까운 그들은 커다란 손으로 헌터의 손을 쥐고 흔들며

미스터 헌터,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사냥터에 가고싶소. 처녀사냥터 말이요,’

위험한 곳도 좋소. 우리는 모험을 좋아하니까.’

양키답게 유쾌한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쎄랭게티의 온고론고에 갈 예정이었으므로 유능한 안내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온고론고는 남쪽 케냐의 쎄랭게티 대초원의 하반구였으며 아프리카에서 짐승들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지대였다. 그러나 사냥꾼들은 사방 수백Km나 되는 반사막지대인 쎄랭게티 대초원을 횡단할 수 없어 그곳에 들어가지 못 했다. 헌터는 그 계획이 무모하며 자칫 사막귀신이 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보다싶이 요즘은 건조기입니다. 두서너 달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은 건조기인데 어떻게 사막을 횡단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런 충고가 모험을 자극했다.

우린 돈이 있소. 포터를 많이 고용해서 물을 충분히 갖고가면 되지 않소. 헌터가 안내한다면 충분한 돈을 드리리다.’

돈 보다도 그들의 모험심이 마음에 들었고 실상은 헌터도 한 번 가보고싶은 곳이었다. 쎄랭게티의 온고론고는 짐승들의 낙원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었다. 헌터는 숙고한 끝에 승락하고, 우선 후리라는 네델란드 출신의 백인포수를 조수로 채용했다. 후리는 50이 넘은 포수였으나 쎄랭게티 대초원의 지리에 밝았다. 일행은 나이로비 남쪽 2Km 알샤에서 준비를 했다. 첫째는 포터였다. 거기서 고용할 수 있는 포터는 와알샤족 뿐이었는데 와알샤는 농사꾼이었으나 게으르고 싸움을 일삼는 부족이었다. 농경부족이었으나 농사는 마누라에게 맡기고 종일 술이나 마시고 황토와 짐승 뼈가루로 만든 염료로 몸치장을 하여 마치 도깨비 같았다. 다행히 거기서 유명한 박제사를 수소문하여 그를 조장으로 고용하고 포터를 몾비했다. 사페리(유렵)의 성공 여부는 포터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포터는 머리에 30Kg 정도의 짐을 이고 하루 20Km를 걸어가는 임무인데 물 없는 사막, 험준한 산길, 위험한 밀림들을 지나갈 때는 말썽을 일으켰다. 이 지대는 사람이 못 들어가는 악마의 땅이라고 우기든가, 새들이 태영을 등지고 북쪽으로 날아가니 불길하다고 고집을 부려 도망을 치는 일도 있고, 마누라 생각이 나서 뺑소니치는 토인도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도망을 치면 그 짐을 버려야 되는데 고용포터의 1/ 3이 탈주하면 사냥대는 되돌아와야 한다. 이를 예상하고 헌터는 무려 150명의 포터를 고용했다. 포터는 물, 식량, 모기장, 취사도구, 총기와 화약을 가지고 갔고, 돌아올 때는 사냥수확물을 운반했다. 포터모집이 끝나자 포터의 사기진작을 위해 대환영연을 열었다.

 

22. 아가씨 수렵가狩獵家

 

네 발의 총탄은 동전 하나만한 동그라미에 적중했다.

캡틴 나는 아빠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사탕과자를 얻어먹으려는 게 아니예요. 혼자 맹수를 잡고싶어요. 내 총솜씨에 불만이라도 .’

옆에서 지배인이 거들었다. 미스 페이는 부유한 실업가의 딸이고, 대학을 졸업한 학사고, 총 뿐만 아니라 낚시에도 일가견이 있으며, 승마도 수준급이라고 부연했다. 헌터는 그래도 시무룩했다. 헌터는 나이로비에서 가장 유명한 포수로써 명망있는 유렵가遊獵家가 아니면 안내를 하지 않았는데 하필 이런 새파란 여자를 상대로 안내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었다.

지배인이 또 끼어들었다.

미스터 헌터, 당신이 아로이나백작 일행과 한 계약을 이 아가씨가 파기시켜버렸어요. 계약금 보상을 하고.’

헌터는 출발할 때 서너 마리의 당나귀를 구입, 짐을 실었는데 그 중 두 마리가 심술을 부려 짐을 싣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그러나 짐을 다 실어놨는데도 당나귀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내 다리가 다 땅에 붙은 듯 당근을 주어 달래도 소용이 없었고, 엉덩이를 밀어도 눈을 내리깔고 꼼짝을 안 했다. 헌터가 신경질을 내고 애먼 포터들에게만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포터와 당나귀의 씨름을 가만히 보고있던 미스 페이가 나섰다. 그녀는 자기 짐꾸러미 속에서 캉가루가죽으로 만든 가죽채찍을 끄집어냈다. 굵은 자루가 달린 그 채찍은 길이가 3m나 되었으며 여자가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미스 페이는 그 긴 채찍을 손목만으로 휘둘렀다. 손에서 날아간 채찍은 휘리릭! 소리와 함께 날아가 당나귀의 엉덩이를 쳤다. 그 때까지 업수이여긴 눈빛으로 미스 페이를 흘끔거렸던 당나귀가 기겁을 하고 뛰어올랐다. 그러자 미스 페이는 회오리소리가 나는 채찍으로 당나귀의 등을 쳤고, 당나귀들은 죽는 시늉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미스 페이는 당나귀들이 뛰든 말든 계속 채찍질을 하더니 다음에는 당나귀의 고삐를 쥐고 구둣발로 당나귀의 배를 사정없이 찼다. 뾰쪽구두였으므로 당나귀들은 채찍 보다 더 아픈 듯 길길이 뛰었으나 미스 페이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발길질을 멈춘 미스페이가 고삐를 끌자 당나귀는 대가리를 푹 숙이고 미스 페이가 끄는대로 따라왔다.

캡틴, 당나귀도 말의 사촌이니까 말 다루는식으로 하니 얌전해졌지요?’

당나귀는 얌전해졌지만 헌터는 대노했다. 당나귀가 날뛰는 바람에 몇 시간이나 결려 꾸려놓은 짐들이 당나귀 등에서 떨어져 당나귀 발굽에 밟혀 산산히 흩어지고 일부는 아주 망가져버렸다. 미스 페이는 헌터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헌터는 당나귀를 파면시켜버리고 짐을 우마차에 실었다. 소는 점잖았다. 짐을 산더미처럼 싣고도 불평없이 끌고 갔으나 그 걸음걸이가 거북이처럼 느렸다. 원래 소는 그런 동물이었으므로 헌터는 만족했으나 이번에는 미스 페이가 발끈했다. 성미가 급한 미스 페이는 소를 싫어했다.

캡틴, 저놈의 소는 걸어가는거요 기어가는거요?’

또 채찍질을 해보시지.’

소는 말고 전혀 다른 동물이기 때문에 채찍질은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미스 페이는 자기 자동차를 불렀다. 스체트베카라는 자동차는 지프처럼 생긴 차였는데 미스페이는 차에 중요한 물건과 캠프도구만 싣고 헌터에게 타라고 했다.

이 차로 먼저 목적지에 가고 우마차는 천천히 오라고 해요.’

헌터가 반대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런던의 하이웨이가 아닌 바위와 숲이 험한 길이고 개울도 있어요. 그런 데를 자동차가 어떻게 가겠소?’

염려마세요. 이 차는 내가 운전하면 산도 물도 넘을 수 있어요.’

차는 출발할 때부터 무서운 스피드를 내기 시작했으며 바위나 숲을 마구 뛰어넘었다. 자그마한 개울 따위는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 뛰어넘었다. 점프를 했는데 사고가 안 난 것을 보면 운전실력은 믿을만 했다. 그러나 덮개가 없는 무개차에서 짐꾸러미에 불안하게 앉아있는 헌터는 위험했다. 몇 번이나 떨어질 뻔 한 위기에서 간신히 짐꾸러미를 붙들고 있었는데 끝내 사고가 났다. 차가 개울을 하나 뛰어넘고 아주 넓은 초원에 들어서자 미스 페이가 전속력을 냈다. 마치 자동차경주에서 달리 듯 달려나갔으며 미스 페이의 머리칼은 풍압으로 휘날려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러다 차가 개미집에 부딪혔다. 별것 아닌 장애물이었으나 워낙 빨리 달리고 있었으므로 짐꾸러미가 퉁겨저올랐고 짐꾸러미를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헌터도 짐꾸러미와 함께 공중에 떠올랐다. 그러나 차는 짐꾸러미가 떨어졌던 사람이 떨어지던 아랑곳없이 계속 달려갔으며 자동타가 지나간 풀은 바다에서 배가 지나간 물길처럼 바퀴자국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었다. 공중에 떠오른 헌터는 다행히 먼저 떨어진 짐 위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헌터는 한숨을 쉬고 파이프를 태웠다. 한편 난폭한 아가씨 운전자는 약 2Km나 달려가다가 다른 짐이 퉁겨나가는 걸 알고 뒤를 돌아다보고야 비로소 헌터가 없어진 걸 알았다. 뒤로 돌아간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헌터의 코앞에서 멈췄다.

캡틴, 이 게 무슨 장난이지요? 파이프는 뽀빠이에게나 태우라고 하세요.’

헌터가 조용하게 말했다.

아가씨, 운전을 하다가 몇 사람이나 죽였소? 그 리스트에 나는 들어가기 싫은데.’

단 한 사람도 죽인 일 없어요.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하고 팔이 부러진 사람은 서너 명 있었지만 .’

아가씨 자신의 뼈는 부러뜨리지 않는 것이 아가씨의 운전솜씨로구만.’

미스 페이는 그 말을 유머로 받아들이고 또 깔깔거렸다. 헌터는 쓰디쓴 얼굴로 파이프를 털고 일어났다. 이런 개구쟁이 아가씨와 같이 사냥을 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우울하기만 했다. 미친 듯이 달린 미스 페이의 자동차는 3일이나 걸릴 것으로 예정했던 목적지에 그날 밤에 도착했다. 헌터와 아가씨는 자동차에 싣고 온 천막을 치고 같이 사용했다.

 

미스 페이는 훌륭한 사냥꾼이었다. 사냥꾼에게 가장 중요한 대담성이 있었다. 이 아가씨는 맹수 무서운 줄 몰랐다. 그녀는 위험에 몸을 던져놓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재미로 여기는 태도가 보였다. 보통 사냥꾼의 태도가 아니었다. 욕구불만일까? 인생에서 뭔가 갈구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아 자포자기한 태도였다. 미스 페이는 런던의 윌리엄 에반스제품의 360구경 이연총을 애용하는데 그 게 사자사냥에는 적합했으나 구경이 너무 좁아 코끼리나 라이노사냥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총으로 코끼리를 쏘아 쓰러뜨렸다. 총솜씨가 워낙 정확했다. 오래 겨냥하는 법이 없었다. 총을 떨어뜨리고 있다가 들어올리는 순간 아무렇게나 발사를 해버렸다. 마치 겨냥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태도로 갈겨버렸는데 결과는 정확했다. 헌터는 그런 사격법을 결코 환영하지는 않았으나 충고도 하지 않았다. 미스 페이에게 사격지도를 하기에는 너무 총을 잘 쏘았고 충고해봐야 듣지도 않을 것이었다. 첫 번째 코끼리사냥에서 헌터가 숲속에 숨어있는 코끼리를 몰아 미스 페이가 대기하고 있는 자그마한 공터로 훌쳐냈다. 숲속에서 사격을 하기에는 미스 페이의 총이 너무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그 총으로는 귓구멍을 정확히 뚫어야만 치명상을 줄 수 있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는 코끼리의 귓구멍이 잘 보이지 않을 염려가 있었다. 코끼리가 초원으로 가는 것을 보고 헌터는 미스 페이에게 신호를 했다. 쏘라는 신호였는데 총소리가 나지 않았다. 헌터는 불안했다. 아무리 총을 잘 쏜다고는 하지만 여자 혼자 코끼리와 대결하게 한 것이 후회되었다. 미스 페이는 지정된 곳에 있었다. 미스 페이는 10여 미터까지 육박한 코끼리를 그저 멍! 하니 보고 있었다. 팔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보고만 있었다. 헌터가 전속력으로 코끼리 옆 모습을 보면서 달렸다. 옆에서 코끼리를 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코끼리를 자극했다. 코끼리는 옆으로 달려오는 헌터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고, 발소리가 옆으로 이동하는 것을 퇴로가 차단된 걸로 알고 코끼리는 단숨에 미스 페이를 짓밟아버리고 그쪽으로 달아날 심산으로 미스 페이에게 덮쳤다. 헌터가 달리면서 총을 들어올렸다. 사격위치가 워낙 나빴으나 그래도 코끼리에게 부상이라도 입혀놓을 생각이었는데 그 때 미스 페이가 움직였다. 다리가 사격자세로 벌어지고 눈에 이상한 광채가 비쳤다. 코끼리를 보고있는 눈에 증오가 서렸다. 그 얼굴은 요정妖精처럼 차갑고 싸늘했다. 헌터는 원호사격을 중지했다.

(저 여자에게 덤벼드는 코끼리는 죽는다!)

미스 페이는 코끼리가 7, 8m까지 와도 총을 든 손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가 코끼리의 코끝이 눈앞에 접근해오자 총을 올렸다. 발사했다. 코끼리가 으왕!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꼬꾸라졌다. 절명했다. 총탄이 코끼리의 귓구멍에 명중한 것이었다. 미스 페이가 천천히 걸어오면서 헌터에게 말했다.

캡틴, 다음부터는 원호사격 같은 거 아예 할 생각 마세요!’

그 이튿날 벌어진 사자사냥은 더 기가막혔다. 헌터와 미스 페이는 자그마한 숲속에서 세 마리의 사자들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놈과 암컷 그리고 새끼였다. 그들은 만복이 되어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중이었다. 백수의 왕은 경계를 하지 않고 수놈은 하품을 하고 새끼는 눈을 감고 있었다. 거리는 약 20여 미터. 그대로 발사를 해도 될 거리였으나 미스 페이는 헌터에게 원호사격을 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은 후 단신 사자들에게 접근했다. 마치 런던의 공원을 산책하는 듯 축 늘어뜨린 손에 총을 쥐고 사자들에게로 걸어갔다. 사자들은 미스 페이를 흘끗 봤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 그대로 누워 하품을 했다. 미스 페이는 사자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면서 계속 걸어갔다. 사자들 하고 악수라도 하려는 듯 한 태도였다. 미스 페이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까이 접근해오는 것을 보고 사자들이 비로소 엉거주춤 일어서려고 했으나 미스 페이의 마술사 같은 눈길에 현혹되어 덤벼들지도 도망가지도 못 했다. 그 때 미스 페이가 총을 들어 연거푸 두 방을 쏘았다. 치명타였다. 암컷과 새끼가 쓰러졌다. 한꺼번에 처와 아들을 잃은 숫놈이 쓰러진 암컷을 물어뜯어보고 죽은 것을 확인한 후 그만 미스 페이에게 덮쳐들었다. 그 때 미스 페이는 재장탄을 하고 있었다. 사자가 세 마리인데 총은 이연총이었으므로 처음부터 위험을 각오하고 한 짓이었다. 더구나 미스 페이는 일부러 암컷과 새끼를 먼저 쏘아죽이고 가장 위험한 숫컷을 남겨둔 것 같았다. 사자가 세 번째 도약을 했을 때 헌터가 총의 방아쇠를 당길 뻔 했으나 그 직전에 미스 페이가 쏘았다. 사자는 공중에서 몸을 동그랗게 움츠리고 떨어졌다. 미스 페이 1m 앞이었다. 헌터기 화가나서 미스 페이를 힐난詰難했다.

숫놈이 암컷을 확인 안 하고 바로 덤볐으면 어쩔 뻔 했소?’

미스 페이의 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런던의 신문들이 <미스 페이 사자에게 희생되다> 라고 대서특필했겠지요. 그리고 런던의 사교계에서는 <그 여자는 품행은 좀 나빴으나 그래도 용기만은 있는 여자였다>라고

헌터가 입을 다물었다. 미스 페이에게는 런던의 사교계생활과 아프리카 밀림생활에 공통되는 생활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 약간 병적病的이었지만 .

그 날 밤 헌터와 미스 페이는 한 천막에서 자게 되었다. 굼벵이 우마차에 실려오는 짐이 4일이나 되어도 도착하지 않았다. 미스 페이는 축음기를 틀고 술을 마셨다. 그녀에게는 무진장의 에너지가 있었다. 헌터는 밤새 노는 것만은 사양했다. 미스 페이는 활력이 넘쳐 잠을 자지 않았다. 혼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캡틴, 우리 얘기 좀 합시다,’

헌터가 자는 체 했다. 미스 페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자는 체 하지 마요. 일어나지 않겠다면 일어나게 해주지.’

다음 순간 미스 페이가 탄환꾸러미를 헌터에게 집어던졌다. 헌터가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미스 페이, 난 노래도 못 하고, 춤도 추지 못 해요. 그러나 술은 좀 마시지요. 같이 술이나 마십시다.’

헌터는 그 젊은 아가씨의 넘치는 에너지를 진압시키는 것은 오직 술뿐이라고 판단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독한 스카치를 물도 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아무 말 없이 한 병을 비웠다. 미스 페이가 한 병을 더 가져오면서 중얼거렸다.

캡틴 당신은 사냥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술도 잘 마시네요, 난 취했는가 봐요,’

두 번째 병을 따다가 그녀는 침대에 엎드렸다.

캡틴, 나는 아프리카에 피난왔어요. 쫓겨난 것이지. 품행이 나쁘고 하는 짓이 고약하다고 친척들이 날 쫓아낸거지.’

난 원래가 바람기가 많은 여자였지요. 남자사냥을 많이 했지. 남자란 짐승은 사냥하기 쉽지. 그런데 .’

캠브리지대학을 나온 점잖은 청년을 유혹했는데 목석木石이었다. 아무리 술을 먹여도 도무지 걸려들지 않아 하루는 그의 친구들을 호텔로 불러내어 술을 잔뜩 먹이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친구 중 한 사람과 섹스판을 벌였다. 목석도 흥분하여 달려들었다.

그만 그만 미스 페이. 그런 얘기 듣자고 술 마신 게 아니야. 술이나 더 마시지고.’

미스 페이가 다시 일어났다. 술을 마시고 웃고 또 웃었다. 너무 웃어서 나중에는 웃음 속에 울음이 섞여나왔다. 미스 페이의 자지러진 웃음소리가 밀림에 퍼져나갔다.

캡틴, 당신도 목석이야. 짐승이나 잡을 줄 아는 목석. 그런데 매력이 있어. 뭇 야수들이 울부짖고 있는 이 밀림에서는 당신이 왕이야. 그리고 멋있어.’

미스 페이가 헌터의 가슴에 몸을 던졌다. 헌터가 당황했다. 그러나 스카치 한 병은 그를 짐승으로 만들지 못 했다. 그래서 미스 페이의 몸을 때어내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미스 페이가 이미 잠이 들었다.

(불쌍한 여인.)

헌터는 문명의 도끼에 맞아 생의 의욕을 잃은 그 여인을 가볍게 안고 그녀의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 밤을 세우고 말았다. 그 이튿날 미스 페이가 신경질을 부렸다. 그녀는 쌀쌀한 눈초리로 헌터를 노려보더니 나이로비에 다녀오겠다고 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녀에게 헌터는 밤을 세우는 상대로써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스 페이는 그 이튿날 저녁에 나이로비에서 알게 되었다는 미남청년을 데리고왔다. 낮에는 헌터와 사냥을 하고 밤에는 미남청년과 밤을 세웠다. 무진장 에너지를 가진 그녀는 양쪽 일을 모두 정열적으로 했다. 그런데 곤란한 일이 생겼다. 사냥터에 청년을 데리고 가자는 것이다. 청년도 사냥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헌터는 마지 못 해 허락을 하고 사자사냥을 나섰다. 청년은 275구경 총을 가지고 있었고 미스 페이는 360구경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의 총은 사자사냥을 하기에는 너무 작았으나 그런대로 급소만 맞히면 가능할 것 같았다. 헌터는 475구경 총을 갖고 나갔다. 신중한 그는 코끼리나 라이노를 만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셋은 사람 키만큼 풀이 무성한 숲으로 들어갔다. 큼지막한 동물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고 경고했다. 곧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짐승의 배설물을 발견했다. 물소똥이다.

뭣이요?’

미스 페이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물소 같소, 아니 물소요.’

물소? 그거 재미있군.’

미남청년이 아는 체 중얼거렸다.

잘 됐어요. 난 아직 물소를 잡아보지 못 했으니까.’

미스 페이가 동의했다.

안 돼! 그건 안 돼! 당신들이 갖고 있는 총으로는 물소를 잡지 못 해! 돌아갑시다.’

헌터는 물소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 아마튜어포수를 만류하고는 돌아서 걸었다.

캡틴 난 물소를 잡겠어요. 굼뱅이 같은 물소가 싫어. 물소는 원시동물이야. 나 혼자서라도 물소를 잡겠어.’

미스 페이가 앙칼진 어조로 선언하자 미남청년이 기사도정신을 발휘하여 동조했다. 헌터는 울화가 치밀었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물소는 우리가 집에서 기르는 소와는 전혀 다른 맹수요. 그놈은 사람만 보면 덮어놓고 달려들며, 그놈이 덤벼들 때는 대가리를 푹 숙이고 달려들어. 그러니까 포수가 쏠 곳이라고는 물소의 대가리뿐인데 물소의 대가리는 큼직한 뿔로 덮혀있어 그 따위 총으로는 뚫을 수가 없소. 알겠소?’

미스 페이가 발끈했다.

대가리에 총탄이 들어가지 않으면 심장을 쏘면 돼잖아.’

철없는 소리. 물소의 심장은 푹 숙인 대가리에 감춰져 보이지 않소. 그리고 물소는 1초에 20m나 뛸 수 있는 짐승이요.’

미스 페이에게 그런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미스 페이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고 숲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런던에서 모험담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포자기의 모험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미스 페이와 청년은 10m도 가기 전에 물소를 만났다. 동시에 물소도 사람을 발견했다. 헌터의 말이 맞았다. 물소가 곁눈질로 사람을 힐끗 보더니 대뜸 돌진했다. 대가리를 푹 숙이고 돌진했는데 정면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대한 뿔 뿐이었다. 뿔은 잘 다듬어진 창끝 같이 번쩍이고 땅을 차는 양다리는 말 보다 더 힘찼다.

미스터 제임스, 쏘아요 쏘아!’

미스 페이는 연인에게 첫탄을 양보할 여유가 있었으나 그 연인은 벌써 제 정신이 아니었다. 돌진해오는 뿔귀신을 본 그는 공포에 표정이 일그러지고 손발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 떨리는 손으로 쏜 총탄이 맞을 리 없었다. 첫탄은 어림없이 빗나갔고 두 번째는 물소의 뿔끝에 맞아 퉁겨나갔다. 물소가 7, 8m 거리에까지 육박했다. 그 위기에서도 미스 페이는 냉정했다. 그녀는 재장탄할 생각조차 못 하고 멍! 하니 서 있는 연인을 보호하듯 그 앞을 가로막고 물소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 언저리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물소는 입에서 거품을 물고 덤벼들었다. 거리는 불과 5, 6m. 비로소 미스 페이의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첫탄이 발사되고 뒤이어 재탄입 발사됐다. 서부의 총잡이 같은 멋있는 속사였다. 미스 페이는 첫탄을 물소의 이마에 두 번째는 심장을 겨누어 물소의 대가리 바로 밑을 쏘았다. 첫탄은 정확하게 맞았다. 그러나 킥! 하는 마찰음만 나오고 물소는 계속 돌진했다. 탄환이 뿔뿌리에 맞아 관통을 못 했다. 미스 페이의 다음 총탄도 정확히 목표에 맞았다. 그러나 그곳은 심장이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목 아래 껍질이 늘어져있는 곳으로 물소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 했다. 두 발의 총탄을 발사한 뒤 당연히 물소의 거구가 거꾸러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미스 페이는 다음 순간 죽음을 각오한 듯 총을 던져버리고 뒤돌아서 연인을 꽉 껴안았다. 물소의 거치른 콧김이 느껴졌다. 그 때 미스 페이는 헌터의 노호를 들었다. 마치 타잔의 외침 같은 밀림을 위압하는 늠름한 고함소리였다.

이 바보야, 엎드려, 엎드려!’

미스 페이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힘껏 연인을 떠밀어 같이 쓰려졌다. 그 순간 총소리가 울렸다. 길고 무거운 475구경에서 발사되는 대포소리와 같은 굉음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물소가 대가리의 뿔뿌리 사이를 뚫고 들어간 총탄의 충격으로 크게 한 번 몸을 흔들더니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300Kg의 고기덩어리거 쓰러지는 진동이 굉장했다. 물소가 왼쪽으로 쓰러졌으니 망정이지 만약 반대쪽으로 떨어졌다면 미스 페이와 연인은 거대한 물소에 깔려 압사당할 뻔 했다. 물소는 즉사했고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미스 페이가 일어났다. 숨을 거둔 거대한 짐승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성난 헌터를 보았다. 헌터의 푸른 눈은 살기를 띠고 있었다.

캡틴, 내가 또 졌군요. 또 한 번 창피를 당했어.’

미스 페이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누워있는 연인을 보며 깔깔거렸다.

일어나요, 제임스. 물소는 죽었어. 캡틴이 쏘아죽였어. 당신이 죽이지 못 해 안타깝지만 염려말아요. 오늘 밤 저 놈으로 비프스테이크를 해먹고 기운을 내서 다시 한 번 싸워봅시다.’

땡큐! 미스 페이, 여기서 나이로비는 얼마나 되죠? 차가 없이도 돌아갈 수 있겠지요?’

미스 페이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알아채고 깔깔거렸다. 공허한 웃음이었다. 미스 페이의 수확물은 어떤 포수 보다도 훌륭했으나 미스 페이는 수확물에 흥미가 없었다.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불만이었을까?

캡틴, 다시 한 번 사냥을 하고 싶은데 어때요?’

헌터가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캡틴, 난 이 세상에서 나 이상 가는 사냥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에게는 당하지 못 하겠어요. 당신은 정말 프로헌터였어!’

헌터는 그 후 나이로비에서 미스 페이의 소문을 들었다. 날마다 술집이나 노름판을 돌아다니고, 남자친구를 수없이 갈아치우고, 영국의 귀족에다 미모의 여인이었으므로 미스 페이의 일거수일투족은 가십거리가 되었고, 또 좀 과장되었다. 사냥도 계속했다. 그녀는 잡은 물소, 코끼리, 표범, 코뿔소, 사자를 나이로비의 영국귀족 사냥꾼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수확물을 처분한 돈으로는 유흥비가 모자랐다. 그 소문을 들은 헌터는 걱정스러웠다. 미스 페이는 뛰어난 사냥꾼이었으나 프로로써는 결점이 있었다. 양손을 축 늘어뜨린 체 맹수가 1 - 2m 앞에 들이닥칠 때까지 기다리는 그 대담한 사냥자세, 총을 들어올리자마자 갈겨버리는 속사법은 언젠가 불행을 자초할 수 있었다. 헌터의 예상대로 비극은 머지않아 일어났다. 미스 페이는 표범사냥을 하다가 표범에게 바른쪽 팔을 물려 팔을 못 쓰게 되었고, 아름다운 얼굴에도 두 줄기 표범의 발톱자국이 남았다. 팔을 완전히 못 쓰지는 않았으나 사냥만은 할 수 없었다.

그 건 자살행위였습니다.’

미스 페이와 표범사냥을 했던 조수가 말했다. 부상당한 표범을 추적한 미스페이는 표범이 나무 위에 숨어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면서도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표범이 나무 위에 숨어있을 경우 포수와 표범의 승산은 반반이다. 어느 쪽이 상대를 먼저 발견하느냐? 그리고 표범을 발견했을 때의 속사가 승부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표범이 나누 위에 숨어있을 때는 라이플 보다는 쇼트건(산탄총)이 유리하다. 라이플은 사정거리가 길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총탄이 단 한 발이기 때문에 정확한 조준을 해야 한다. 그러나 쇼트건은 사정거리는 짧아도 수십 발의 총탄이 한꺼번에 발사되므로 몸집이 작고 피부가 약한 표범에게는 알맞은 총이다. 그런데 미스 페이는 대담하게 라이플로 나무 위에 숨어있는 표범과 대결했다. 표범이 숨어있는 나무들은 거목들이었고 가지가 무성해서 어디에 표범이 숨어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미스 페이는 총구를 밑으로 떨어뜨리고 나무에 접근했다. 표범은 맨앞의 나무에 숨어있다가 미스 페이가 접근하자 소리없이 덮쳤다. 표범을 먼저 발견한 것은 미스 페이가 아니라 토인조수였다. 표범을 발견한 토인조수가 고함을 질렀으며 그 고함소리에 미스 페이가 총을 들어 발사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표범이 앞발로 미스 페이의 얼굴을 할킨 직후였다. 표범과 미스 페이는 같이 뒹굴었다. 미스 페이가 쏜 총탄이 표범의 어깨에 맞았으나 치명상이 아니었으며 표범은 미스 페이의 다리를 물었고 이어 목줄을 더듬었다. 같이 갔던 토인조수가 칼로 표범의 머리를 치지 않았다면 미스 페이는 절명했을 것이다.

(불쌍한 여인.)

헌터가 마지막 들은 소식은 더 처참했다. 아편중독자가 되었다. 사냥에서 맛본 스릴을 잃은 그녀는 나이로비의 고급술집을 전전하며 술을 마시고 도박에 심취했는데 남자의 유혹에 빠져 아편을 했고 중독되었다.

미스페이는 화장도 하지 않고, 얼굴의 상처도 가리지 않았으며,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얼굴은 창백하였습니다. 나는 그녀가 약국에서 아편을 달라고 애걸하고 있는 것을 봤지요. 아편장이였으나 아직 예뻤습니다.’

딸의 소식을 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런던에서 나이로비에 왔다. 런던에서도 이름난 부자였던 아버지는 막대한 비용과 현상금을 걸고 딸의 행방을 찾았으나 미스 페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이로비 사람들은 아버지가 도착한 그 전날 밤에도 미스 페이를 목격했으나 그 이튿날부터 행방불명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자살했다, 도피했다, 아버지가 찾아서 데리고 갔다는 풍문만 무성했다.

(불쌍한 여인.)

배덕자였고 퇴폐적이었으나 총솜씨는 빼어났다. 정확하기도 하고 멋이 있었다. 총을 들어올리자마자 겨냥을 하고 발사했는데 그 순간적인 동작은 아무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운전솜씨도 탁월했다. 무서운 속도로 달리다가 개울을 뛰어넘는 실력은 가히 스턴트맨을 능가했다. 말을 다루는 기술도 기사급이었다.

(정력과 재치와 담력 그리고 미모가 출중한 여인.)

그 후 미스 페이의 소식은 없었다.

 

23. 재미나는 수렵가狩獵家

 

헌터가 소속된 사페리랜드회사 지배인과 헌터는 가끔 말다툼을 벌였다. 헌터가 싫어하는 귀족을 안내하는 일을 강요했다. 귀족안내를 헌터가 싫어하는 걸 지배인도 알고 있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시 유럽의 귀족사회에서는 아프리카 맹수사냥이 유행이었고, 살롱(객실)에 맹수 트로피가 없으면 경멸했다. 그래서 나이로비에는 세계각국의 귀족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나이로비에서 가장 큰 사페리회사인 사페리랜드의 좋은 고객이었다. 귀족들은 덮어놓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하고 유능한 포수를 안내인으로 고용하는 것 또한 유행이었으므로 지배인은 다른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헌터를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사냥터에서 짐승을 잡는 게 아니라 다른 일에 더 몰두하였으므로 직업포수인 헌터는 귀족들의 안내를 기피했다. 헌터가 처음 안내한 프랑스귀족은 트럭 30대를 동원하였는데 발전기, 냉장고, 목욕조까지 있었다. 천막을 치면 웬만한 마을이 되었고, 귀족이 거처하는 거대한 천막은 호텔 수준이었다. 귀족은 본국에서 데려온 요리사를 동원하여 7개코스 정찬을 마련했고 댄스파티를 벌였다. 그들은 사냥에는 관심도 없었다. 헌터가 안내한 백작부부는 탄약보다도 위스키와 포도주를 더 많이 싣고 왔다.

캡틴, 우리집사람의 관심은 사냥이 아니라 술입니다. <가령, 오늘 잡은 사자는 굉장한 놈이니 축배를 듭시다> 라고 말하는 거죠.’

백작부인의 충고였다. 그래서 헌터는 우선 사자를 한 마리 찾아냈다. 정말 훌륭한 갈기를 지닌 숫컷이었다. 그러나 사자를 본 백작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버렸고 백작은 부인에게 술을 주라고 고함을 치면서 헌터의 등 뒤에 숨어버렸다.

백작, 쏘아보시오. 거리가 좀 멀지만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백작은 헌터의 권유에 마지못해 총을 들었다. 술기가 아직 떨어지지 낳았는데 손이 와들와들 떨었다. 백작은 한참 동안 겨냥을 하더니 헌터에게 말했다.

캡틴, 내가 만약 실수를 해서 저 놈을 맞히지 못 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야, 사자가 덤벼들겠지요.’

, 덤벼들어? 버릇없이 나에게 .’

염려마시오. 그렇게 되면 내가 쏘아죽이겠습니다.’

그래, 그렇구만. 그래도 자네도 실수를 한다면 .’

그럴 리가 없습니다, 백작.’

아니야,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어.’

백작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 건 모험인데, 온 파리에 소문이 퍼져나갈 큰 모험인데 . 그러니 우선 한 잔 해야 되겠는 걸. 천막에 가서 우리 한 잔 하고 다시 오세.‘

천막에서는 그날 밤 사자사냥의 전야제가 요란스럽게 벌어졌다. 백작부인이 헌터에게 손수 술을 권했다. 술이 얼큰해지자 백작이 헌터의 어깨를 쳤다.

캡틴, 지금 막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자넨 직업포수지?’

그렇지요,’

틀림없지. 그렇다면 내가 부탁하는대로 해줘.’

캡틴, 자네는 내일부터 혼자 사냥터에 가서 사자나 코끼리를 잡아주게. 난 여기서 술이나 마시고 있을터이니. 그리고 자네가 잡아온 짐승들을 가지고 파리에 가면돼.

백작부인이 손뼉을 쳤다.

여보, 역시 당신은 천재야. 그런 훌륭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했어.’

헌터도 그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이의가 없었다. 서툰 사냥꾼과 동행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그 이튿날부터 백작은 사냥터에 나가지 않았다. 호텔처럼 호화로운 캠프에서 잡아온 짐승고기로 요리를 해서 술을 마셨다. 헌터도 편했다. 혼자 밀림을 돌아다니다가 한두 마리 짐승을 잡아 캠프에 갖다주었다. 짐승을 잡아 캠프에 가져오면 의례히 백작부인은 멋있는 사냥복을 입고 총을 들고 짐승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런 저런 포즈로 수십 장 사진을 찍으면서도 백작부인은

정말 멋있게 찍어졌을까? 총을 너무 들어올린 것 같은데, 바보처럼 웃지 않았나?’

걱정을 했다. 그런 때면 헌터가 대답했다.

마담, 훌륭합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헌터를 좋아한 마담은 가끔 밀림을 산책했다. 어느 날 그들이 밀림에서 넓은 초원으로 나오고 있었을 때 초원에는 얼룩말들이 있었다. 헌터는 얼룩말무리를 보고 크게 당황했다. 얼룩말 한 쌍이 교미를 하고 있었다. 귀부인에게 쑥스러운 광경이라 헌터가 등을 돌려 다시 밀림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백작부인이 움직이지 않고 얼룩말의 교미를 보고 있었다.이상한 일이지만 도시생활을 하는 백인들이 아프리카 밀림에 오면 일상이 급격하게 변해서인지 머리가 돌아버리는 일이 가끔 일어났다. 특히 여자들이 더 심했다. 성적性的방종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백작부인도 그랬다. 나이 40이 넘은 점잖은 부인이었으나 그 날은 눈에 이상한 빛을 띠고 정신없이 얼룩말을 보고 있었다.

캡틴, 저 놈이 저렇게 커요?’

백작부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점점 더 흥분되어갔다. 얼룩말의 동작이 빨라지자 백작부인이 고함을 쳤다.

캡틴, 캡틴, 저것봐요 저거 .’

헌터는 아예 외면을 해버렸는데 그 태도가 부인을 더욱 도발시켰다. 부인이 갑자기 웃옷을 홀랑벗어 던져버리고 헌터에게 달려들었다.

미스터 헌터, 난 쓸쓸해요. 난 외로와요. 나는 저 얼룩말 보다 더 불행한 여자예요.’

난처했다. 그래서 총을 들어 얼룩말에게 발포했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다시 두 발을 쏘았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다. 얼룩말이 도망가도록 발밑을 쏘았다. 얼룩말들이 기겁을 하고 도망치자 부인도 뜨거운 열이 식어 도전행위를 중지했다.

마담 죄송합니다. 아무리 짐승이라 할지라도 저 놈들이 고귀한 분의 면전에서 더러운 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쫓아버렸습니다. 사과드립니다,’

그 말에 부인이 이성을 되찾았다.

캡틴 당신은 좋아, 위트가 있어 좋아요. 물론 오늘 일은 백작에게 비밀로 해주겠지요?’

물론이죠, 마담.’

그렇지만 캡틴, 얼룩말들에게 미안한 일을 했어.’

그건 그랬으나 술주정꾼 백작에게 미안한 일을 안 한 것만은 다행이었다.

 

헌터가 도이치남작부부를 사냥터에 안내한 일이 있었다. 남작은 미모의 젊은 부인을 대동하였는데 병적인 의처증이 있었다. 그래서 도이치 육군소령출신을 고용하여 늘 부인을 감시했다. 풍문으로는 부인이 젊은 청년과 교제를 하는 걸 눈치채고는 싫어하는 부인을 강제로 아프리카로 대리고 왔다. 남작은 사냥에 취미가 없어 천막에서 늘 잠만잤는데 부인이 사냥에 재미를 붙여 헌터를 대동하고 밀림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만 남작이 헌터를 의심하기 시작하여 소령에게 감시를 명령했다. 부인도 헌터도 소령을 싫어했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감시하는 것도 싫었지만 사냥을 방해했다. 모처럼 몰아놓는 짐승을 소리를 내거나 기침을 하거나 총구 앞을 막아 사격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인이 마지못해 좀 떨어져 있으라고 해도 남작의 명령에 따른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대꾸했다. 사냥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부인이 남작에게 항의를 했다.

여보, 제발 저 바보소령을 좀 치워주세요. 내일은 사자사냥을 할 예정인데 저 바보가 따라오면 위험하답니다. 그렇지요, 헌터?’

헌터도 거짓말을 했다.

, 그렇습니다. 사자가 숨어있는 곳이 좁은 계곡인데 그 계곡은 두 사람 이상 걸어가기 힘든 곳입니다.’

남작이 대답하기도 전에 소령이 헌터를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헌터군, 위험하든말든 따라가겠소. 도이치육군소령을 모독하지 마시오.’

그 이튿날 새벽, 세 사람은 사자계곡으로 출발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자는 없었고 대신 커다란 산돼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부인이 그 산돼지를 잡겠다고 해서 헌터는 산돼지를 부인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훌쳐냈다. 그런데 별안간 부인이 펄펄 뛰며 고한을 질렀다.

헌터, 빨리 와, 빨리, 큰일 났어!’

헌터는 사자가 나온줄 알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돌진했다. 헌터는 숲을 해치고 달려가다가 그만 기겁을 하고 총을 떨어뜨렸다. 남작부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알몸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순간, 헌터는 부인이 미친줄 알았으나 곧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파했다. 부인은 죽을 힘을 다 하여 자기 몸에 달라붙은 개미를 털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개미가 아니다. 사냥개미였다. 몸이 2Cm나 되고 펀치처럼 강력한 턱이 있었다. 놈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자나 호랑이도 습격하여 살을 뜯어먹었다. 피부가 부드러운 사람고기를 특히 좋아했다. 헌터도 습격을 받아 몸을 홀라당 벗고 칼로 놈들의 머리를 밀어버렸는데 그놈들은 대가리가 잘려서도 살점을 물고 있었다. 헌터는 부인의 알몸을 꽉 껴안았다. 칼로 부인의 몸에 붙어있는 개미를 칼로 저며냈다.

부인, 부인! 어디 계세요? 계시는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남작에게 보고하겠소.’

부인이 헌터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손짓을 한 뒤 옷을 입었다.

헌터, 헌터! 당신도 보고하겠소. 숲속에서 뭘 하고 있소?’

소령이 씨근덕거리며 달려왔다.

여기서 두 분이 뭘 하고 계셨소?’

부인이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산돼지를 놓쳐 화가나서 이렇게 있는거요.’

소령은 그 말을 믿지 않은 듯 부인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헌터는 가슴을 조였다. 부인이 옷을 입기에 급한 나머지 팬티를 미쳐 입지 못 하고 돌돌 뭉쳐 손에 쥐고 등뒤에 감추고 있었다. 만약 소령이 그걸 발견하면 어떻게 될까?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 때 신의 비호가 일어났다. 소령이 비명을 지르면서 길길이 뛰었다. 개미였다. 소령은 비명을 지르면서 옷을 벗었다. 알몸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미스터 헌터, 좀 살려주시오!’

헌터가 빙그레 웃었다.

소령, 이게 무슨 짓이요. 고귀한 부인 앞에서 그 꼴이 뭐요! 도위치 육군 소령의 체면을 지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남작에게 보고하겠소.’

도이치 육군 소령은 체면이 없었다. 그는 발가벗은 체 강으로 달려갔다. 그 일 이후 소령은 헌터를 웬수로 여겼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때로는 결투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헌터는 좀 불안해졌다. 결투를 하겠다는 사람에게 등을 보이고 사냥을 하는 것이 위험스러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헌터와 소령이 대결을 하게 되었다.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방금 지나간 듯 한 코끼리 발자국을 발견하여 부인과 헌터가 뛰어갔다. 다리에 부상을 입어 약간 절름발이 소령이 뒤쳐졌다. 소령과 거리가 멀어져 헌터가 약간 주춤하는 사이 별안간 총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도망쳐오는 부인과 부딪혔다. 부인은 총도 버리고 달려와서는 헌터의 목을 껴안았다. 그 때 헌터는 바로 눈 앞에 큰 뱀 같은 코끼리 코가 덮쳐드는 것을 보았다. 헌터가 부인을 안은 체 옆으로 뒹굴었다. 달려오던 코끼리는 관성으로 옆을 지나쳤다. 7, 8걸음 지나쳤다가 되돌아섰다. 그리고 돌진했다. 헌터도 부인을 밀쳐내고 총을 겨냥하고 있었다. 누운자세로 총을 발사했다. 코끼리는 앞다리를 꿇고 쓰러졌다. 헌터와 부인이 쓰러져 있는 코앞이었다.

헌터, 당신이 이겼어! 이겼어!’

이성을 잃어버린 듯 부인은 헌터를 껴안고 키스를 했다. 부인의 키스는 강렬했고 길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 소령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하, 드디어 잡았군. 부정의 증거를 잡았어!’

이 놈 헌터! 증거를 잡았으니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테야. 도이치 육군소령은 부정을 묵과하지 못 해!’

소령이 헌터를 향해 총구를 겨냥했다. 화가나서가 아니라 그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

소령, 미쳤어? 총을 거둬!’

헌터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소령이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할 수 업이 헌터가 먼저 발사했다. 총탄은 소령의 총에 맞아 그 충격으로 총이 튀어나갔다. 소령이 놀라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여 멍하니 서있었다.

기습은 비겁해! 난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하겠다는 건데 .’

좋아, 그럼 결투를 하지!’

헌터가 쌀쌀하게 말했다. 남작부인의 총을 던져주며 말했다.

그 총을 갖고 저쪽 나무 밑으로 가시오. 서로 총을 쏘기로 합시다.’

소령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헌터의 총솜씨를 상기했다. 잡으려는 짐승의 어느 부분 어느 점까지를 겨냥하여 정확하게 맞추는 무서운 솜씨였다. 결투를 해서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도이치 육군소령이 결투를 신청해놓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 소령 싸웁시다. 나는 아직까지 사람을 죽여본 일은 없지만 이젠 할 수 없소.’

소령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무슨 말인지 혼자 중얼거리며 총을 들었다. 그리고 한두 발 걸었다. 그러다가 멈췄다. 돌아다봤다. 애원의 표정이 역력했으나 헌터는 냉혹했다. 맹수를 향한 차디찬 표정이었다.

(아차, 이 사나이는 정말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소령이 부인쪽을 봤다. 부인의 표정에는 경멸과 연민이 교차되고 있었다.

마담, 저는 말하자면 .’

소령이 중얼거리며 부인의 동정을 사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말이 막혔다.

마담, 난 그저 남작께서 너무 엄하게 지시를 하셨기 때문에 임무가 좀 지나쳤습니다.’

부인이 비꼬듯 대꾸했다.

그래요. 내가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으니까 그대로 보고하세요. 만약 당신이 죽지 않는다면 .’

죽는다는 말에 소령이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마담, 나는 부인의 부정을 목격한 일이 없습니다. 부인이 깨끗한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까는 그만 제 정신이 좀 돌아서 . 아시다싶이 더위가 이렇게 심하면 머리도 도는 법이지요.’

그럼, 남작에게 그렇게 보고할 것입니까?’

아니요, 오늘 일은 일체 보고 안 합니다. 그 건 내 자신의 창피이니까. 도이치 육군소령의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만약 제가 살아남는다면 .’

헌터도 그제야 노기가 풀렸다.

소령! 만약 소령이 결투신청을 취소한다면 나도 이의가 없소. 이런 곳에서 결투를 한다는 것은 야만적인 짓이요.’

소령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미스터 헌터! 난 결투신청을 취소하겠소!’

도이치 육군소령은 남작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으며 헌터는 무사히 나이로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헌터는 귀족들의 사냥안내를 기피했다.

 

헌터가 나이로비에 돌아오자 큰 사건이 터져 있었다. 미모의 부인을 데리고온 영국의 부호富豪가 사냥터에서 변사變死를 했다. 그들을 안내했던 백인 사냥꾼은 밀렵자 포획으로 유명한 포수였는데 그가 부인만 데리고 나이로비에 돌아와서 남편이 노이로제에 걸려 권총자살을 했다고 보고했다. 나이로비 경찰은 그 보고에 의심을 품었다. 헌터도 의심을 했다. 사실 애초에 그 부부는 헌터에게 안내를 의뢰했으나 헌터가 그 부인을 보고 거절을 했었던 것이다. 그 부인은 너무 젊고 예뻤으며 뭔가 남편에게 불만족스러운 눈치가 보였다. 나이로비 경찰은 내사를 착수, 헌터에게 현장안내를 부탁했다. 출발 3일 후 부호가 천막을 쳤던 곳을 발견했다. 백인안내인은 천막 부근에 시체를 매장했다고 보고했으나 없었다. 경찰들이 긴장했다. 그러나 증거를 잡아야 했다. 헌터는 천막을 중심으로 발자국을 추적했다. 발자국만으로 추적이 어려웠으나 담배꽁초나 통조림깡통들이 발견되었다. 늙은 부호는 술만 마셨고 10여 명의 포터들도 사냥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추측되었다. 천막에는 40여 개의 술병들이 나뒹글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냥은 부인과 백인 안내인이 했다고 결론지었다. 포터들이 증언했다.

그렇습니다. 죽은 노신사는 술만 마셨고, 부인은 백인안내인과 같이 돌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토인 한두 사람을 데리고 사냥했으나 나중에는 담 들이서만 사냥을 나갔습니다.’

노신사가 죽은 날은?’

그 날은 안내인과 토인 두 사람이 먼저 사냥터에 갔다가 돌아온 뒤 오후 3시 경에 세 분이 사냥을 나갔습니다.’

헌터는 세 사람이 사냥을 갔다는 방향으로 추적을 했다. 엽총탄피가 발견되었다. 구경이 넓은 직업포수의 총이었다. 헌터가 경찰과 포터들을 모두 불러모아 반경 20m 안을 철저히 수색했다. 2시간의 수색 끝에 노부호의 안경이 발견되었다. 도수가 높은 안경이라 안경을 잃었다면 물체를 구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얼마 전에 패인 땅을 팠더니 노부호의 시체가 나왔다. 이마에 총상이 있었다. 자살했다던 권총이 아니라 구경이 넓은 사냥용총이었다. 더구나 뒤에서 쏜 총상이었다. 남편에게 불만이었던 부인이 안내인과 정을 통하고 남편을 밀림으로 유인하여 죽인 것이다. 결론은 그렇게 지어졌으나 범인들은 잡지 못 했다. 경찰이 호텔에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그 후 헌터는 또 괴상한 귀족을 안내했다. 유럽의 작은 나라 왕족이었다. 40대의 왕족은 비서와 의사를 데리고 다녔는데 의사의 처방에 의해 왕족은 하루에 열두 번씩 약을 먹었다. 의사는 자기 처벙을 따르면 정력감퇴를 막고 무병장수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양복 포켓 가득히 약병이나 환약을 가지고 다녔다. 한 무리의 물소가 발견되자 왕족이 발사했다. 물소들이 가시덤불 속으로 도피하였는데 왕족은 자기 총탄이 물소에게 맞았다고 주장했다. 비서와 의사도 틀림없이 맞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헌터는 맞지 않았다고 했다. 맞았을 때 픽! 하고 탄환이 살속을 파고들어가는 소리가 없었다.

그럼 내기를 하지. 탄환이 맞았다면 헌터에게 줄 보수를 주지 않고, 맞았다면 두 배를 주겠어.’

좋습니다, 각하! 그렇지만 물소들이 멀리 도망을 가버려서 확인할 방법이 없어 유감입니다.’

그 때 비서와 의사가 발자국을 추적하면 된다고 참견했다. 그리고 스스로 추적을 했다. 그러나 10여 미터도 못 가서 추적을 멈췄다. 뜻밖에 물소가 아니라 코뿔소가 나타났던 것이다. 가시덤불 속에서 나타난 코뿔소가 의사와 비서에게 덤벼들었다. 코뿔소는 총소리가 나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정탐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조용히 있었더라면 코뿔소도 그냥 지나가버렸을텐데 겁쟁이 의사가 코뿔소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그만 히스테리에 걸린 여자처럼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비명소리에 놀라 서있던 비서쪽으로 달아났다. 그렇게 하면 코뿔소가 자기를 그만 두고 비서에게 달려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비서가 대경실색했다. 그는 위험을 감지하자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면서

가까이 오지 마! 저리 꺼져!’

라고 의사에게 고함을 쳤다. 그러나 의사는 비서의 꽁무니에 붙었다. 그런데 코뿔소는 비서를 도외시하고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의사를 따라다녔다. 의사가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고함소리를 듣고 헌터가 총을 들었다. 그러나 곧 총을 내렸다. 코뿔소와 의사의 간격이 불과 1m 남짓이라 발사를 할 수가 없었고, 코뿔소가 의사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뿔소는 불과 1m 정도 간격으로 의사를 쫓으면서 뿔로 의사의 엉덩이를 슬쩍슬쩍 찌르고 있었다. 코뿔소가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면 그 날카로운 뿔로 사람을 걷어올려 공중으로 띄웠다가 당에 떨어진 사람을 발로 짓뭉개버린다. 그런데 코뿔소는 장난을 했다. 의사가 뛰면 자기도 뛰고, 의사가 쉬면 자기도 멈췄다. 의사가 천천히 뛰면 빨리 뛰라고 엉덩이를 뿔로 툭! ! 쳤다. 드디어 의사가 기진맥진하여 주저앉아버렸다. 그러자 코뿔소는 재미없으니 어서 일어나라는 듯 옆에서 기다렸다. 그래도 의사가 정신을 차리지 못 하자 코뿔소는 어슬렁어슬렁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헌터는 사격을 멈추고 코뿔소와 의사의 술래잡기를 구경했다. 의사가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헌터에게 돌아왔다.

다친 데는 없소?’

그놈의 코뿔소, 쏘아 죽이려다가 그만 살려주었소, 의사는 살생을 싫어하니까.’

의사도 의사지만 왕족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물소를 추격하자고 우겼다. 혼쭐이난 의사와 비서가 건강에 해롭다고 반대했으나 왕족은 끝내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물소들은 멀리 도망가지 않았다. 물소들이 보이지 않았으나 헌터는 퀴퀴한 냄새로 그드리 덤불속에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좋소, 캡틴. 당신이 반대편으로 돌아가 물소를 이쪽으로 몰아주시오.’

각하! 물소는 위험한 맹수입니다. 그놈은 사자나 호랑이보다도 .’

염려말아요. 우리 가문은 선조 대대로 무용으로 알려진 가문이요. 그리고 나는 총을 당신만큼이나 잘 쏘아요. 그렇지, 비서?’

비서가 모기 우는소리로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 각하!’

할 수 없었다. 헌터는 숲을 크게 우회하여 물소들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러나 물소를 왕족이 있는 곳으로 훌칠 생각은 없었다. 그 건 너무 위험했다. 총을 쏘아 큰 놈 한 마리를 잡고 나머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훌쳐버릴 작전이었다. 물소들은 열서너 마리였다. 헌터가 사격준비를 끝냈을 때 두목이 헌터를 발견했다. 헌터가 자리를 이동했기 때문에 바람을 타고 사람냄새를 맡았다. 두목이 대뜸 돌진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물소의 사회에서는 두목과 몇 마리만 전투에 참가하고 나머지는 피신을 하는데 오늘은 열서너 마리의 물소떼가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다른 물소들은 헌터를 발견하지 못 했으나 두목이 달려가는 걸 보고 같이 달린 것이다. 총탄은 두 발인데 물소는 30여 개의 뿔을 들이밀며 달려들었다. 헌터가 선수를 쳐서 발포했다. 되든 안 되든 재장탄을 해서 선두의 네 마리를 쓰러뜨릴 심산이었다. 첫 탄과 다음 탄에 선두의 두 놈이 꼬꾸라졌으나 물소들은 계속 달려왔다. 헌터는 뒷걸음질 치면서 재장탄을 했다. 재장탄을 마치자 물소들이 2, 3미터 앞에까지 육박하고 있었다. 헌터는 자기 정면에서 달려드는 두 녀석에게 납덩어리를 보냈다. 그리고 세 번째 장탄을 하면서 전진했다. 두 번째 총탄을 맞은 두 마리가 쓰러지면서 공간이 트였다. 나란히 달려오던 물소들은 쓰러진 물소와 충돌을 피하려고 간격을 넓혔던 것이다. 헌터는 그 공간에 들어섰다. 그 순간 뜨거운 열기와 부연 먼지가 몸에 덮쳤고 돌풍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헌터는 몸을 동그랗게 오므려 엎드렸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물소들이 헌터의 옆을 통과한 것이다.

(살았구나!)

헌터는 한숨을 쉬었으나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헌터를 지나쳤던 물소들이 되돌아서고 있었다.

(다시 오는구나!)

헌터는 위기 속에서 침착함과 기민성을 잃지 않는 사냥꾼이었다. 내 마리의 동료를 잃고 진열을 가다듬던 물소들이 동요하였다. 맨 앞에 있던 놈이 헌터의 시선과 총을 보더니 별안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뿔사!)

당황했다. 남쪽에는 왕족이 대기하고 있었다.

물소가 거기로 간다!’

고함을 치고는 달려갔다. 그러나 물소와 사람의 경주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총소리가 들렸다. 단 한 방.

(, 한 방만 쏘았을까?)

(두 발 째를 솔 여유가 없었을까?)

헌터가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람도 물소도 없었다.

(모두 다 죽었을까?)

헌터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고한을 쳤다.

각하! 각하!’

아무소리가 없어서 물소 발자국을 추적하려는 찰라 어디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서, 비서녀석 어디 있나? 날 내려주지 못 해!’

, 각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내려들릴테니 .’

그들은 모두 나무 위에 있었다. 왕족은 헌터가 물소를 몰러나간 뒤 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나무 위에 있다가 물소들이 몰려오면 나무 위에서 사격을 하려고 했다.

 

24. 수렵狩獵관리인

 

헌터가 마흔아홉살이 되었을 때 나이로비지구 마킨즈지방 행정관으로 추천되었다. 마킨즈는 마궈니지방에서 남쪽 80Km 지점이었는데 영국정부가 수렵보호지로 지정했다. 헌터는 독립생활을 하는 아이들을 두고 부인 힐라여사와 막내 딸과 아들 그리고 무른베와 그의 세 마누라들과 철도관사에 입주했다. 마킨즈는 화성암지대로 자동차로 하루가 걸리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헌터의 집에서 그 광대한 삼림이 보였고 밤이면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침해가 뜨면 헌터는 보호자를 순찰했다. 삼림에는 길이 없었으나 헌터가 자동차로 길을 냈다. 먼저 자동차로 순찰을 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도보로 순찰했다. 물론 충실한 조수 무른베가 따라다녔는데, 이상이란 독수리가 모여든다거나 얼룩말이 혼자 돌아다닌 것을 말한다. 독수리가 모여드는 것은 죽은 짐승이 있다는 뜻이고, 얼룩말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병에 걸렸다는 걸 의미했다. 무서운 전염병이 퍼질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헌터는 얼룩말을 사살하여 피를 뽑아 나이로비의 병원에 보냈다.

어느 날 헌터는 숲속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비실거리면서 걸어오는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코끼리가 지나가도록 나무 뒤에 숨었는데 코끼리는 계속 헌터에게로 다가왔다. 그래서 코끼리를 위협하여 훌쳐버릴 생각으로 공포를 한 방 쏘았다. 그러나 코끼리는 계속 걸어왔고 아마 병이 든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헌터가 총을 들어올렸는데 쏠 필요가 없었다. 코끼리는 우두커니 서 있다가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한참 몸부림치더니 숨져버렸다. 헌터는 코끼리의 몸을 조사했다. 코끼리의 배에 화살이 하나 꽂혀있었다. 화살은 그 두꺼운 코끼리의 가죽을 뚫고 20Cm 쯤 깊이 들어갔다. 무서운 활솜씨였다. 화살 끝에 독이 발라져있었다.

부와나, 그 건 와간바족화살입니다. 그리고 저렇게 코끼리를 죽일 수 있는 부족은 와간바 뿐입니다.’

무른베가 말했다. 와간바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우수한 수렵족이었다. 그들은 무서운 활을 갖고있었으며 그 화살은 침략족인 마사이족들이 갖고있는 물소가죽으로 만든 방패를 뚫고 방패 뒤의 사람을 죽였다. 그 화살은 나무 위의 표범을 뚫고 나무에 박혀 표범도 화살을 맞으면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다고 했다. 와간바들이 활살에 바르는 독약도 강력했다. 독약은 피그미족이 잘 만들지만 와간바족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무른베, 이 코끼리를 죽인 와간바를 잡아야 해. 이 놈들을 놔두면 짐승들이 멸종하겠어.’

무른베가 아무 말 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한참 뒤 말했다.

그건 어렵습니다. 와간바는 이 밀림을 손바닥 보 듯 잘 알고 있고, 몸놀림이 재빠르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잡으려다가 도리어 우리가 잡힐 염려가 있고요.’

헌터는 이튿날부터 토인조수를 데리고 밀림을 수색했다. 무른베가 말한대로였다. 와간바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들의 소리도 발자국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밀림을 계속 돌아다니는 것은 분명했다. 코끼리, 코뿔소 때로는 사자들을 죽인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소리도 흔적도 없이 밀림을 돌아다니면서 밀렵을 계속하고 있었다. 헌터는 화가 났다. 마치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며칠 후 헌터는 커다란 성성이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성성이는 껍질이 벗겨져있었으며 아직 몸이 따뜻했다. 와간바가 가까이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헌터가 무른베에게 수색을 명령했다. 그러나 무른베는 거부했다. 무른베가 헌터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짐승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머리를 갖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죽이는 것 보다 그들이 우리를 죽일 확률이 더 큽니다. 그들은 정지! 손 들어! 라는 경고를 하지 않습니다. 대뜸 활을 쏘아 죽이지요.’

헌터가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단독으로라도 수색을 하겠다고 나섰다. 토인조수와 무른베가 하는 수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헌터가 100m 즘 걸어갔을 때 흭! 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화살이 헌터의 귀를 스칠 듯 지나갔다. 헌터가 재빠르게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나는 수렵관리인이다. 대항하면 총을 쏘겠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헌터가 고함을 쳤으나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용한 밀림에는 살기가 떠돌고 있었다. 무른베의 경고대로였다. 와간바는 짐승과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다. 헌터는 나무 뒤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와간바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먼저 움직이는 쪽이 상대의 표적이 될 것이다. 밀림에는 숨막히는 정적이 계속되었다.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아까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서 소리가 났다. 헌터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포했다. 화살이 날아왔다. 헌터가 발포를 한 뒤 몸을 수그리지 않았다면 헌터의 가슴에 꽂힐 화살이었다. 이번에 날아온 화살은 아까와는 다른 방향이었다. 와간바가 어느 새 장소를 이동하였다. 분명 와간바는 헌터가 숨어있는 곳을 알고 있고, 헌터는 와간바가 있는 곳을 모르고 있었으며 정세가 불리했다. 그러나 더 이상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으며 떠돌고 있었던 살기도 사라졌다. 와간바 밀렵자들이 어느 새 사라져버린 것이다. 헌터는 추적을 단념했다. 그러나 헌터와 와간바의 대결은 며칠 후에 또 벌어졌다. 우연한 일이였다. 헌터가 숲속에서 자그마한 잠복소를 발견했다. 땅을 파서 사람 서너 명이 들어갈 구멍을 만들고 위에 대나무를 걸쳐서 지붕을 만들었는데 헌터는 그속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가까이 갔다. 발소리를 들은 듯 잠복소에서 네 명의 사내들이 뛰어나왔다. 그들은 이미 화살을 당기고 있었다. 총과 화살이 거의 동시에 발사되는 순간이었다. 그 때 무른베가 헌터와 밀렵자들 사이로 뛰어들며 고함을 쳤다.

염려말라! 이 백인은 코끼리 밀렵자다. 너희들과 같은 밀렵꾼이니 안심하라!’

그 기민한 행동이 헌터의 목숨을 살렸다. 헌터가 총구를 내리니 그들도 활을 내렸다. 헌터는 와간바의 말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냥이 잘 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와간바의 말을 할 줄 아는 백인을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표범 한 마리와 물소 한 마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헌터가 그들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들은 담배를 받고 경계심을 풀었다.

백인양반, 조심해야 돼. 최근에 고약한 수렵관리관이 와서 돌아다니니까. 그놈을 총을 잘 쏴. 아주 잘 쏴. 이것 봐.’

그들의 두목 쯤 되는 노인이 모자를 벗어 보여주었다. 성성이가죽으로 만든 모자에 총구멍이 났다.

며칠 전에 그놈과 싸웠는데 내가 그놈의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한 술책으로 이 모자를 벗어 숲속에 던졌지요. 그놈의 총에 맞은 자국이요. 무서운 놈이었소.’

헌터가 웃었다. 노인의 술책에 넘어간 것이 스스로 우스웠다. 헌터가 두목노인과 사냥얘기를 했는데 이내 그 노인이 매우 숙련된 사냥꾼임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동물들의 습성을 헌터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와간바의 노인은 환갑이 가까운 나이였으나 몸이 근육질이었고 눈이 번쩍였다. 노인은 몸에 무수한 상처가 있었는데 사자, 표범, 물소, 코뿔소 등 모든 동물들이 한 번씩은 자기 몸에 상처를 냈노라고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몸에 상처를 낸 놈들은 한 놈도 살아나지 못 했어.’

헌터는 노인의 말을 믿었다. 며칠 전에 헌터 자신을 희롱했던 솜씨로 봐서 노인에게 이길 짐승은 없을 것 같았다. 노인도 헌터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그는 헌터에게 영양을 한 마리 잡아줄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헌터가 노인을 따라갔다. 그리고 놀랐다. 노인과 그 부하들은 표범처럼 몸이 가벼웠다. 그들은 바람같이 밀림을 달렸다. 그들이 넓은 공터를 지나갔는데 코뿔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저 미련한 놈을 잡아주리다.’

헌터가 코뿔소는 원치 않는다고 했다.

좋소. 그럼 위협만 하지요.’

그들이 독을 묻힌 화살 대신 보통화살을 꺼내들었다. 헌터가 만류했다.

그럼, 훌쳐버립시다.’

노인은 별로 힘들지 않게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코뿔소의 뿔에 명중했으며 코뿔소는 그 충격으로 잠시 멍 하니 서있더니 잠시 후 피거품을 뿜으면서 숲속으로 도망쳤다. 헌터도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무서운 밀렵자들이었다. 그들은 활과 칼, 그리고 불을 일으키는 나무조각만 가지고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솜씨로 봐서 맹수에게 죽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노인이 헌터에게 사냥방법을 물었다. 헌터는 백인의 사냥법을 말했다. 노인은 헌터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긴장했다. 헌터도 눈치를 챘다.

왜 그래, 노인친구?’

헌터를 빤히 보고있던 노인이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보통 사냥꾼이 아니야. 동물을 그렇게 잘 아는 사냥꾼은 별로 없어. 그리고 당신은 밀렵자도 아니야. 밀렵자는 그런 사냥을 하지 않아. 밀렵자는 동물을 마구 잡아죽이고 팔아먹는 사람인데, 당신은 수렵관리인이야. 전에 나와 싸웠던 바로 그 사람!’

헌터가 사실을 고백했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가 됐어. 나는 당신을 잡지 않을거요..

헌터는 노인에게 자기 임무를 설명해주고 코끼리와 코뿔소를 죽이지 말라고 부탁했다. 노인이 웃었다.

알았소, 코끼리와 코뿔소는 당신 것이요. 다른 짐승은 내 것이요.’

정부는 모든 수렵을 관리하기 때문에 노인의 주장은 틀린 말이었다. 그러나 헌터는 노인의 주장을 정면반대하지 않고 다른 짐승도 가족의 식량을 위해 몇 마리씩 잡는 것은 반대하지 않으나 팔려고 잡는 것은 안 된다고 노인을 설득했다. 그리고 두 사나이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와간바의 노인은 약속을 지켰다. 헌터와 노인이 다시 만나 것은 몇 달 후였다. 헌터는 무른베와 함께 백인밀렵자를 수색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한 조인 밀렵자들은 뿔을 얻기 위해 코뿔소 열세 마리를 죽였다. 내버려두면 그들은 그들의 륙색이 가득 찰 때까지 밀렵을 할 것이다. 전방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뛰어갔는데 코뿔소가 죽어 있었고 뿔은 없었다. 헌터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밀렵자들을 수색할 생각으로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큰 바위를 넘는데 화살이 날아와 헌터의 발밑에 박혔다. 와간바노인었다. 노인은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기어왔다. 백인밀렵자들 중에는 탈옥수가 있었고 그들은 헌터의 추적을 눈치채고 높은 곳에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로 올라가면 밀렵자들의 저격을 받게 되므로 멀리 돌아서 뒤로 접근하라고 충고했다. 돌아서 가보니 밀렵자들이 나무 뒤에 숨어서 총을 겨누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총을 버려라!’

헌터는 유효사거리까지 접근하여 고함을 쳤다. 등 뒤에서 기습을 당한 밀렵자들은 당황했다. 젊은 두 놈은 체념하고 총을 버렸으나 탈옥범은 뒤돌아서면서 총을 겨냥했다. 순간 헌터가 발포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으나 차마 사람을 쏠 수 없어 총신을 겨냥했다. 탄환이 총신에 맞고 탈옥범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버렸다. 중년의 탈옥범이 손을 들었다.

신사 여러분, 이렇게 내 구역에 오신 손님을 거칠게 대접해서 미안하오. 나는 밀림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생각은 없소. 여러분들이 신사적으로 대해주신다면 .’

수렵관리인의 차가운 인사였다. 밀렵자들은 바위 뒤에서 나온 사람이 단 둘이란 것을 보자 어리둥절했다.

(두 명 정도라면 .)

눈신호가 오갔다.

왜 이래요. 우리는 관광온 사람인데.’

시치미를 땠다.

당신네들은 코뿔소를 마구 죽였소.’

우린 코뿔소를 죽이지 않았소. 증거가 있소?’

그 말은 재판소에서 하고 수갑을 받으시오.’

수갑? 무슨 권리로 우리를 구속하겠다는 거요. 증거를 대시오.’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며 밀렵자들이 반항을 할 기세였다.

그 때 와간바노인과 부하 서너 명이 나타났다. 노인은 백인밀렵자들이 코뿔소를 죽이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활을 들어 언제든지 쏠 자세를 했다. 수렵관리인과 와간바가 한 패인 걸 알자 밀렵자들은 기가 죽어 순순히 수갑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밀렵자들이 죽인 코뿔소시체를 보며 헌터가 노인에게 말했다.

저 시체를 그냥 둘 수 없으니 당신들이 처리해주시오.’

헌터와 약속에 따라 오래토록 큰 짐승고기 맛을 보지 못 했던 노인에게 선심을 썼다. 와간바노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헌터가 체포한 밀렵자들은 법정에서 징역형을 받고 탈옥범은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백인밀렵자들 중에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악질이 있었다. 치타를 죽인 박스라는 포수였다. 감찰포수였으나 수렵금지된 치타사냥을 했다. 치타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었으나 온순하고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박스는 치타를 사냥하여 껍질을 비싼값에 팔다가 헌터에게 잡혔다.

치타가 습격하여 정당방위였다.’

고 주장하여 무죄를 받았다. 헌터는 계속 박스를 추적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박스가 밀림에 들어왔다는 정보를 얻었다. 박스가 와간바마을에 와서 몰이꾼을 모집했다는 정보였다. 헌터는 와간바마을을 방문하여 노인을 만났고 박스가 채용한 몰이꾼을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렸다. 며칠 후 박스가 치타 두 마리를 잡았다고 몰이꾼들이 알려주었다. 헌터가 출동하여 치타껍질을 차에 싣고있던 박스를 만났다.

미스터 박스, 이번엔 유죄를 받아야겠소.’

꽃무늬처럼 아름다운 치타껍질을 만지면서 헌터가 말했다.

천만에, 이놈의 치타는 나만 보면 덤벼든단 말이요. 나 하고 웬수 진 일도 없는데. 그래서 부득히 쐈소.’

박스는 이번에도 변호사를 내세워 정당방위라고 우겼다. 헌터가 몰이꾼을 증인으로 증언했으나

토인 같은 미개인은 증언가치가 없다.’

고 반박했다. 헌터는 치타의 몸에서 뽑은 총탄을 제시했고, 과학연구소의 감정서를 제출했다. 치타가 덤벼들어 정당방위라는 거짓말도 13m 정도의 원거리사격이었다는 증거도 제시했다. 이번에는 변호사의 웅변도 통하지 않았다. 박스는 막대한 벌금을 물었으나 실형을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치타사냥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헌터의 관할지역이 아니었는데 그 게 불행이었다. 헌터의 관할지역에서는 동물이 보호받고 있었으므로 사람을 습격하지 않았으나 다른 지역은 사정이 달랐다. 박스는 와치리라는 지역에 잠입했다. 와치리는 바위가 많고 물도 없어 동물들이 살지 않았다. 박스는 수렵보호지역이라는 말만 듣고 동물들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몇 시간을 돌아다녔으나 동물은 한 마리도 없었고 보이는 것은 뱀 뿐이었다.

, 박스. 치타는 없어. 돌아가자.’

안 돼. 이곳은 수렵보호지란 말야. 틀림없이 있어.’

그 날 오후 커다란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거야 이거. 틀림없이 치타발자국이야.’

그들이 치타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은 표범이었다. 박스일행이 300미터나 따라갔을 때 발자국이 사라졌다.

박스, 이상한데. 발자국이 사라졌어.’

?’

박스가 불안하게 주위를 돌아보고 있을 때 주변 나무 위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박스가 그 소리를 듣고 그쪽을 향했을 때는 이미 일행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무 위에서 밀렵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표범이 일행을 덮쳐 앞발로 얼굴을 할키고 목줄을 물었다. 목의 동맥이 끊겨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런데 하도 순식간의 일이라 박스는 멍! 하고 서있기만 했다. 온순한 치타를 사냥했던 그는 표범의 이런 공격을 상상하지도 못 했다. 정신을 잃고 있었던 박스는 표범이 목줄을 놓고 자기를 향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발포를 했다. 산탄총이었기에 총탄이 표범에게 맞았다. 표범은 마치 시계의 태엽이 풀리는 듯 앙칼진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길길히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뛰어오르는 그대로 박스에게 덮쳤다. 2탄을 쏠 여유가 없어 표범과 같이 뒹굴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표범의 목을 쥐고 졸랐다. 표범은 앞발로 박스의 얼굴을 마구 할켰으나 중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 했다. 목줄이 눌려 힘이 빠져 죽었다. 일행은 목줄이 끊기고 동맥이 들어나고 얼굴은 형태도 없었다. 박스는 일행의 시체를 업었으나 몇 발자국 걷다가 쓰러졌다. 그 자신도 출혈이 심해 힘이 빠졌고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박스는 방향을 알지 못 해 그냥 일직선으로 걸었으나 걸어도 걸어3도 밀림이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고함쳤으나 그 밀림에서 그를 살려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스는 기진맥진하여 나무 밑에 쓰러졌다. 박스일행의 실종소식은 그 이튿날 헌터에게 보고되었다. 헌터는 무른베와 함께 수색에 나섰다. 와치삼림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우선 가장 높은 지대에 올라가 삼림을 살폈다. 무른베가 헌터의 등을 치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독수리떼들이었다.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부와나, 사고가 났지요?’

그래, 그런 것 같아. 빨리 가보자.’

현지에 도착하자 헌터는 몸서리치는 광경을 목격했다. 10m나 되는 금사()가 다뱅이를 틀면서 뭔가를 삼키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뱀의 아가리에 사람의 다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사람의 상체는 이미 뱀의 몸속에 들어거버렸고. 더 기괴한 일은 뱀이 사람을 삼키고 있는 곳에서 불과 5, 6m 떨어진 곳에 표범 한 마리가 죽어 있었고, 표범 옆에는 온통 피범벅이 된 사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무른베가 뱀에게 총을 쏘았다. 총탄을 맞고도 뱀은 사람을 뱉어내지 않고 도망치려고 했다. 헌터와 무른베가 교대로 뱀에게 난사를 했다. 칼로 뱀의 배를 갈라 간신히 사람을 끄집어냈다.

부와나, 죽었어요. 이미 틀렸어요.’

자고있는 사람은 박스였다. 그는 요란한 총소리에도 여전히 코를 골고 있었다. 헌터가 박스를 흔들어 깨웠다. 첫마디는 물을 달라고 했다.

치타를 몇 마리나 잡았지?’

박스는 고개를 흔들고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울다가 곧 통곡했다. 박스는 밀렵을 하지 않았다. 아예 총을 들지 않았다. 헌터는 수렵관리인 임무를 매우 유능하게 수행했고 여러번 표창을 받았다.

 

헌터가 수렵관리인이 된 지 1년만에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 헌터의 영내에서 짐승들이 너무 많이 번식을 하여 피해가 많다는 진정서가 들어왔다. 과잉보호라는 말이었다. 헌터도 그런 사실을 시인했다. 과잉번식을 한 맹수들은 보호지의 경계선을 몰랐다. 경계선 밖으로 나가 토인의 논밭을 짓밟고, 가축 피해, 인명피해까지 생겼다. 헌터는 경계반을 3조로 편성하여 순찰을 강화했고 경계선 밖으로 나온 맹수들을 사살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 맹수피해 진정서는 사라졌으나 이번에는 작은 짐승의 피해가 일어났다. 하이에나와 성성이였다. 사자나 코끼리가 번화가의 깡패라면 하이에나와 성성이는 뒷골목 악당이었다. 하이에나는 밀림의 청소부로 불리우는 것처럼 썩은 고기를 먹었으나 산 짐승도 잡아먹었다. 하이에나의 피해가 격심하다는 마을에 도착한 그날 밤에 헌터는 하이에나의 준동을 목격했다. 헌터가 천막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회중전등을 들고 나와보니 전등불빛에 도저히 믿지 못 할 광경이 비췄다. 커다란 황소가 등에 하이에나를 태우고 달렸다. 황소는 공포로 눈이 뒤집어졌으며 등에 탄 하이에나는 황소를 물어뜯고 있었다. 네 다리가 못질을 한 것처럼 황소의 배에 박혀있고 여나문 마리의 하이에나가 황소를 쫓고 있었다. 헌터는 황소등에 탈 수 있는 동물은 표범이나 사자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눈앞의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고 당황했다. 그리고 화가났다. 큰 동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애송이 깡패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황소에게 화가났지만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는 하이에나에게 증오심이 일어났다. 헌터는 황소를 따라갔다. 100m 쯤에 조그마한 초원이 있었다. 거기에서 황소의 우엉! 우엉! 하는 울음소리가 났다. 소리나는 곳에 전등을 비췄더니 황소가 넘어져 있었고 열 마리가 넘는 하이에나들이 숨도 끊어지지 않은 황소를 뜯어먹고 있었다. 아가리를 크게 벌려 고기를 한 입 물고는 대가리를 흔들어 뜯었다. 하이에나 힘이 센 줄은 알고 있었으나 제 몸뚱이만한 고기덩이를 뜯어내는 걸 보고는 헌터도 놀랐다. 고기를 뭉텅뭉텅 잘라내서 거의 씹지도 않고 삼키던 하이에나들이 잔치판에 뛰어든 헌터에게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전투태세를 갖춘 놈들도 있었다.

(이 버릇없는 것들!)

헌터가 덩달아 두 발을 쏘아 전투태세를 갖춘 놈들을 쏘았고 앞으로 전진하며 재장탄을 했다. 간사한 놈들이라 후퇴를 하면 달려들 위험이 있었다. 하이에나들이 헌터의 기세에 눌렸다. 단 한 사람이지만 사자와 같이 용감한 적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래서 다음 총탄으로 또 두 마리가 쓰러지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이에나의 산개전술이다.

(나리, 그것은 우리가 잡은 것이지만 나리께서 먼저 잡수시지요. 그리고 저희들에게도 좀 남겨주십시오.)

총소리를 듣고 무른베와 마을사람들이 달려왔다. 다음 날 마을사람들로부터 하이에나의 극악무도한 행패를 들었다. 하이에나는 소 여섯 마리, 돼지 네 마리, 100여 마리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두 명이 희생되었다는 말이었다. 네 살 된 어린이와 여든 두 살의 노인이었다.

할머니는 자고있었다. 너무 더워서 집 밖에 멍석을 펴놓고 자고있었는데 별안간 그놈들이 덮쳤다. 열서너 마리나 되는 놈들이 부근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할머니를 물고갔어요,’

몇 분 후에 마을사람들이 쫓아갔을 때는 할머니의 머리칼과 굵은 뼈만 남아있었다. 하이에나가 사람을 잡아먹게 된 데는 토인들의 잘못도 있었다. 토인들은 온갖 쓰레기를 밀림에 버렸다. 밀림에 버린 쓰레기는 독수리, 개미, 하이에나들이 깨끗이 청소를 했다. 그런데 그 쓰레기에는 사람의 시체도 있었다. 사람이 병들어 죽으면 그렇게 장사를 치뤘다.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하이에나가 사람고기맛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살인의 원인이 된 것이다. 헌터는 그곳에 적어도 200 마리 이상 하이에나가 있다고 말했다. 먼저 손쉬운 방법으로 병든 돼지를 한 마리 잡아 하루 종일 햇볕에 두었다가 썩은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사격의 방해물이 없는 들판에 던져두고 무른베와 함께 부근에 잠복했다. 한 시간도 못 되어 열서너 마리의 하이에나가 모여들어 돼지고기를 뜯었다. 연사連射를 했다. 7연발의 총탄을 다 쏘고 재장탄을 했는데 하이에나들이 다 도망쳐버렸다. 일곱 마리의 시체를 남겨두고. 이 방법으로 30 마리를 죽였는데 돼지고기를 던져두어도 하이에나가 눈치를 채고 오지 않았다. 다음에는 독살방법을 썼다. 독살은 좋아하지 않았으나 하이에나에게는 주저하지 않았다. 마침 노인이 한 사람 죽었다. 하이에나에게 물려죽은 할머니의 남편이었다. 친척들은 할아버지도 하이에나를 죽이는 일이라면 자기 시체를 사용해도 마누라의 복수를 위해 허락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튿날 현장에 가니 열두 마리의 하이에나가 죽었다. 토인들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으나 헌터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무른베, 여기를 봐. 여기 온 하이에나는 다 죽었는데 단 한 마리는 살아서 돌아갔어. 이 발자국을 봐.’

(어째서 이 한 마리는 살아서 돌아갔을까?)

무른베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 했다.

무른베, 이 발자국을 따라가보자.’

까짓 한 마리를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이에나의 생태를 연구해보고 싶었다.

부와나, 이 놈은 사람고기를 한 보따리 물고 가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군. 그런데 그 녀석은 놈이 아니라 년인 것 같아.’

한참 가다가 무른베가 말했다.

이 년도 독이 오른 것 같아요. 발자국이 비틀거리고 있군요.’

그 때에야 헌터는 수수께끼를 풀었다. 하이에나 중에는 새끼를 가진 암컷이 한 마리 있었는데 암컷은 최소한 자기 배를 채우고는 새끼들을 위해서 사람의 팔을 뜯어물고 새끼가 기다리고 있는 굴로 돌아간 것이다. 큰 고목뿌리 밑에 하이에나의 굴이 있었다. 잡초가 무성해서 그런 것에 하이에나의 글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할 곳이었다. 헌터가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구멍에 접근했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전등을 비춰보니 어미 하이에나와 내 마리의 새끼들이 죽어 있었다. 옆에는 사람의 팔뼈가 뒹굴고. 독살방법으로는 오십 여 마리를 잡았다. 독살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헌터는 토인들을 시켜 수십 개의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에는 썩은 고기를 미끼로 두고 하이에나가 썩은 고기를 물면 우리가 자동으로 닫혔다. 첫날에 스무 마리가 잡혔고 다음 날에도 십여 마리씩 잡혔다. 모두 100여 마리를 잡았다. 이 방법도 하이에나가 눈치를 채서 차차 수확이 줄었으나 그 후부터는 하이에나가 잡히지 않았다. 하이에나는 멀리 도망을 간 것 같았다. 토인들은 대만족이었다. 하이에나가 없어져 안심하고 살 수 있었고, 하이에나의 고기도 한 집에 두 마리씩 배급되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하이에나의 고기는 천하진미라고 했다. 그러나 헌터는 고기맛을 볼 용기는 없었다. 헌터는 그 마을에서 한 달 가량 머문 뒤 다른 마을로 출동했다.

 

이번에는 성성이와 대결했다. 성성이는 사람과 같은 영장류에 속하는 동물이며 그만큼 영리했다. 성성이는 식물성이며 나무열매, 나뭇잎, 감자, 고구마 때로는 곡물도 먹었다. 그래서 위험이 없는 동물이며 원숭이가 좀 커진 동물 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실 성성이는 위험한 동물이며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무서운 동물이다. 헌터가 찾은 보아마을에서는 성성이 때문에 마을이 몰락, 아사자餓死者가 나올 정도였다. 그들은 옥수수밭을 습격하고 감자밭을 짓밟았으며 때로는 가축도 죽였다. 헌터가 성성이가 짓밟은 감자밭에 가봤는데 참혹했다. 거의 삼십여 마리나 되는 성성이들이 대낮에 습격을 했는데 성성이 한 마리가 5Kg 정도 먹고, 2Kg 정도 가져가고, 사방 10m 정도의 밭을 짓밟아버렸다. 또 그들은 용감하고 영리했다. 그들이 습격을 할 때 그 중 몇 마리는 부근의 나무에서 망을 본다. 사람들이 몰려오면 경고소리를 내서 두목이 앞장서는데 사람들의 수가 적으면 웍! ! 하며 오히려 위협을 한다. 달려온 사람이 여자, 어린이, 노인 같으면 아예 상대하지도 않고. 이럴 때 성성이는 맹수다. 깡패집단으로 보면 된다. 성성이는 표범 못지않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졌다. 보야마을의 개 일곱 마리가 성성이에게 희생당했다. 서른 마리나 되는 성성이가 쳐들어왔는데 개들은 성성이를 얕보고 덤벼들었다. 개들이 몰려오자 성성이두목이 앞장선 개에게 덮쳤다. 대뜸 목줄을 물어 날카로운 송곳니로 동맥을 끊어버렸다. 목줄이 끊어진 개의 양다리를 잡더니 무서운 힘으로 찢어버렸다. 그 무서운 광경을 본 개들이 도망치려고 했으나 성성이들은 개들을 포위하여 두목이 했던 것처럼 개들을 처치했다. 그래서 보야마을의 개들은 전멸했고, 돼지 두 마리와 닭 열서너 마리가 희생됐다. 옥수수밭에 방사한 돼지는 성성이가 찢어죽였고 닭들도 털이 뽑혀 죽었다. 그러나 성성이는 돼지와 닭은 먹지 않았다. 성성이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사람들이 달아났거나 싸움을 피했기 때문이다. 어떤 토인이 성성이들이 여자를 포위하여 여자가 하반신에 걸친 헝겊을 찢어버리고 여자를 안으려고 했다고 주장했으나 그 여자는 자기가 포위되었으나 비명을 지르자 성성이들이 도망갔다고 변명했다.

 

성성이들과 사람들의 싸움은 그 이튿날 벌어졌다. 성성이들이 옥수수밭을 습격했다는 말을 듣고 헌터와 무른베가 마을사람 10여 명을 데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헌터일행이 옥수수밭 가까이 가자 보초가 킥! ! 경고를 했다. 폭풍우를 맞은 것처럼 파도치던 옥수수밭이 한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두목이 달려나왔다. 사람만큼 키가 큰 놈이었는데 그 놈은 첫눈에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했다. 대적을 하기에 사람의 수가 너무 많고 토인들이 활을 가지고 있었다. 두목이 도피신호를 하자 모두 옥수수대 밑을 기어 도망갔다. 헌터가 발포했다. 높은 언덕 위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두목이 쓰러졌다. 두목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으나 또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 했다. 헌터는 전장戰場의 사령관을 떠올렸다. 용감하고 현명한 사령관이었다. 두목이 죽자 혼란이 일어났다. 우왕좌왕,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토인들이 활을 쏘았으나 옥수수대 때문에 효과가 없었다. 적 전사 여섯 마리 아군의 피해는 경상 한 사람이었다. 놀라 달아나던 성성이가 토인을 뚜어넘으면서 어깨를 할켰다.

부와나,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성성이의 시체를 확인한 무른베가 물었다.

뭐가?’

내가 여덟 발을 쏘았고 네 마리를 잡았다고 자신하는데 부와나가 그만큼 쏘았는데 명중률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헌터가 쓴웃음을 지었다.

25. 사자獅子와 소녀

 

수렵안내인은 꽤 취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서 가장 고급바Bar였으며 나는 아까부터 취한 체 하면서 안내인에게 연거푸 술을 권했다. 미리 조사해두었던 그의 경력을 인용하면서 그의 환심을 샀다. 그는 감격했다.

이건 정말 영광인데요. 선생님 같은 유명한 수렵가가 저 같은 안내인을 그렇게 창찬해주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다면 뭣이든 해드리겠습니다.’

바로 그 말을 나는 사흘 동안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색은 않고 가벼운 말투로 슬쩍 물었다.

사실 나는 <사자의 딸>이라는 소녀가 살고있는 데를 알고싶은데 .’

아주 좋은 기회를 잡아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했지만 그 말이 나오자 안내인의 낯 빛깔이 확! 달라졌다. 붉으스레 취했던 낯빛이 창백해졌다. 입 언저리의 웃음이 얼어붙어 일그러졌다. 술잔을 든 양손도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아차! 역시 뭣인가 있구나.)

나는 아프리카 수렵계 그것도 극히 한정된 전문수렵가들 사이에서 귓속말로 오가던 풍문을 확인하려고 나이로비에서 무려 1주일 간 돌아다녔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이름난 어느 수렵안내인을 술과 돈으로 매수한 결과 그 일이라면 A. Kanebski - 러시아인 늙은 수렵안내인 - 바로 지금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가 잘 알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래서 노름판에서 사내를 만나 사흘 동안 구슬려 절대로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만든 것인데 . 바의 조명은 희미했고 냉방시설이 잘 되어있었으나 사내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뚜렷했고 이마에 땀이 솟고 있었다. 그는 뭣인가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알고있는 것 같았고 그 비밀이 바로 <사자의 딸>이라는 소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나에 대한 의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노름꾼인 그는 노름판에서 돈과 시계까지 털려 울쌍이 되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영국신사가 아무런 담보도 없이 돈을 꾸어주었고 코치까지 해줘 잃었던 돈의 두 배를 따게 해줬던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 영국신사는 노름버릇 때문에 취소되었던 수렵안내허가증을 찾아주었고 이틀 동안 고급바에서 술도 사주었다. 그런데 그 은인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있다가 넌지시 말했다.

, 꼭 지켜야 할 비밀 같으면 말 안 해도 좋소.’

이 말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그는 들고있던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내게 바짝 다가앉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갑자기 목이 쉬어 목소리가 갈렸다.

킬리민자로 남쪽 C지구 국립공원 금렵구지요. 안내는 못 해드립니다. 내 신변이 위태로와요. 아니, 이미 위태로운 상태지만 .’

그는 떨고있었다. 나 자신도 공포를 느꼈다.

고맙소.’

더 이상 공포를 주지 않으려고 일어서려는데 그는 내 소매자락을 쥐고 귓속말로 소근댔다.

거기는 당신은 물론 어떤 수렵가도 들어가지 못 하는 특수지역이니, 몇 년 전 어거지로 거기 들어갔던 관광객 서너 사람은 행방불명 되었소. 아시겠소?

맹수 때문이요?’

안내인의 입이 야릇하게 삐뚫어졌다.

위험은 사자뿐만이 아니죠. 그곳은 모든 것이 위험해요. 동물, 식물, 광물 그리고 사람도. 모두 위험하지요.’

사람도?’

좌우간 거기는 가지마시오. 알았습니까?’

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왔으나 쉽게 잠들지 못 했다. 풍문風聞은 아프리카 어디에서 백인소녀가 사자와 같이 살면서 다른 짐승을 습격하고 때로는 사람도 습격한다는 말이었는데 풍문이 사실이라니 .도무지 믿지 못 할 얘기였으나 가네프스키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다. <사자의 딸>이라는 소문은 소년소녀 소설처럼 낭만적이 얘기가 아니라 기괴奇怪하고 음산陰散했다. 위스키의 힘으로 불러들인 잠속에서도 상체는 사자고 하체는 소녀인 괴물이 춤을 추고 있었다. 희대稀代의 사건을 마음속에만 품고 있을 수 없었다.

(오냐, 현지로 가자.)

나는 한 번 결심하면 죽어도 해야 하는 성미다. 거기에 들어가는 허가가 안 나올 것이라지만 나는 그 허가를 얻을 자신이 있었다. 나이로비의 수렵관리관 로엘과 친한 사이였다. 이때껏 내가 부탁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비서실에서 대기한 서너 명의 선객先客을 제쳐놓고 먼저 만나주었다.

켓썰씨,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카피요, 난쟁이 하마요. 백색뱀은 어떻소?’

아니요. 관광허가서입니다. 킬리만자로 남쪽 C지구.’

사교성이 풍부한 관리관이 확답을 피했다. 커피를 권한 후 비서에게 금렵구역의 허가방침을 가져오라고 하여 보여주었다. 남쪽 C지구는 붉은 글씨로 특명지구라고 기재되었다. 사자와 맹수들이 자연상태로 살고있어서 수렵이 금지된 곳이었다.

그렇지만 관리관, 나는 총에 대해서는 .’

알고말고요. 당신의 총솜씨는 프로포수 이상이고 사자소굴에 던져놓아도 사자에게 잡혀먹힐 분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러나 그곳에 관광객을 보낼 수 있는 허가서는 사실상 내가 발급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내 명의名義로 되어 있지만 .’

나는 그 말투가 좀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파이프에 담배를 천천히 밀어넣고 있었다.

(그럼 넌 로보트야?)

눈치가 빠른 관리관이 좀 당황한 것 같았다. 문제가 된 지역의 관리관은 프랑스인 존 브리트라고 했다. 대담무쌍大膽無雙하고 정확한 속사速射로 이름난 사냥꾼이었으며 나도 그의 명성은 들었다. 그는 맹수를 근거리에 당겨놓고 첫탄으로 쓰러뜨린 후 두 번째 탄환으로 숨통을 끊어버린다는 소문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아주 위험한 사냥방식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사냥기법을 연구해보려고 한 일도 있었다. 나이로비의 중앙수렵관이 그를 남쪽 C지구에 임명한 것도 그의 사냥실력과 무관하지 않다. 브리트는 수렵관직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흠집이 있다면 성격이 너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것이다. 그는 한 번 결정하고 선언하면 절대로 번복하지 않았다. 그가 안 된다고 한 것 중에 C지구에 관광객이나 수렵가를 들이지 말라는 조건이 있었는데 중앙수렵관 로엘이 만사에는 예외가 있다고 하면서 브리트의 의견을 묵살하고 서너 명의 관광객을 C지구에 보냈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그 후 로엘은 브리트의 자필서명 동의서가 없으면 C지구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해명이었다. 해명이 아니라 창피를 무릅쓴 고백이었다.

그곳에 갔던 미국인 관광객들이 모두 행방불명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

관리관이 얼굴을 붉혔다.

사실이 아닙니다. 너무 과장되었어요. 맨처음 그곳에 갔던 미국인 학생은 고용한 포터들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 도주했기 때문에 되돌아왔습니다. 두 번째로 그곳에 들어간 미국의 여행잡지기자 두 사람은 숲속에서 마사이족을 만나 겁을 먹고 도망쳐나왔고 세 번째는 사자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습니다.’

총솜씨가 훌륭했으나 사자들이 캠프를 습격해서 총을 쏠 겨를 없이 바른 팔을 물려 절단했다고 합니다. 그를 안내했던 안내인도 경상을 입었는데 약간 정신이상이 되었고요.’

나는 그 안내인이 바로 러시아인 가네프스키임을 직감했다. 친구인 로엘씨를 더 괴롭히기 싫어 돌아섰다. 로엘씨는 킬리만자로지구 관리인에게 나의 여행허가 여부를 정식으로 문의했으나 예상대로 <No!>였다. 로엘씨가 나의 사냥경력과 능력을 상세히 알리고 특별고려를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고집불통의 현지관리인 황소 브리트가 상관의 부탁을 한 마디로 거절했다. 무안을 당한 로엘씨는 브리트의 콧대가 높은 것은 성격이지만 영국의 귀족이고 아프리카에서 꽤 힘을 쓰는 처가가 배경이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자 불현 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브리트의 부인 이름이 뭐더라?’

아마, 시빌일겁니다. 키가 크고 .’

(시빌.)

나는 웃었다. 잘만하면 허가서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프랑스 사내란 원래 여자에게 약한 놈들이니까.

아프리카에 건너오기 전에, 그러니까 두 달 전이지만 파리에서 중학동창생 한 친구와 며칠 같이 지냈는데 그 친구의 동거인 리즈 달보아부인으로부터 시빌부인의 얘기를 들은 것이다. 리즈부인과 시빌부인은 여고동창생이고 결혼식에서는 서로 들러리를 서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는 아메리카 화장품회사의 프랑스 대리점을 한 리즈부인하고 극진하게 지냈다. 오래토록 아프리카에서 산 부인은 아프리카 얘기를 시작하면 밤을 세웠다.

나는 리즈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생생한 아프리카 현지소식을 담은 편지였는데 편지 끝에 킬리만자로 C지구에 들어갈 허가장이 나오도록 현지 관리관부인인 시빌부인에게 보낼 소개장을 부탁했다. 곧 답장이 왔으며 소개장을 시빌부인에게 보냈다. 다시 며칠 뒤 로엘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C지구에 들어와도 좋다는 서류가 왔습니다. 조건은 자위용 무기 외에는 휴대하지 말 것, 현지 관리관의 지시를 따를 것, 한 명 이상의 포터는 안 된다는 것 등입니다.’

지프 운전사 겸, 몸종 겸, 보호관 보고에게 C지구로 갈 준비를 명령했다. 장총은 버리고 체코제 권총을 포켓에 넣었다. 사냥용 대형권총이기 때문에 맹수 서너 마리 쯤은 처치할 수 있었다.

이튿날, 19303월에 나이로비를 출발했다. 보고에게 자동차길이 그려진 정밀지도를 주었으니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자는 일 뿐, 비몽사몽非夢似夢의 몽롱朦朧한 의식속에서 상체는 사자고 하체는 여자인 괴물이 어른거렸다.

 

26. 첫 대면

 

토고에게 운전을 맡긴 지프가 사흘 후 킬리만자로에 도착했다. 그날 밤 늦게 남쪽 C지구에 들어가 지정된 방갈로에 묵었다. 아스팔트길, 자갈길, 모래길 그리고 험한 산길을 연 사흘 동안 달렸기에 몸이 막대기처럼 뻣뻣했다. 방갈로에 들어서자 말자 대나무침대에 골아떨어졌다. 그건 잠이라고 하기 보다는 혼수상태라고 하는 것이 알맞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보드라운 붓으로 얼굴에 간지럼을 태는 기분에 눈을 떴다. 원숭이였다. 갓난 아기 보다 작은 놈이 머리맡에 앉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장난감처럼 귀여운 모습이었고 윤기나는 긴 털이 온 몸에 덮여있었다. 얼굴은 도미노가면 같았고 반짝이는 두 눈이 가면 속에서 반짝거렸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자 원숭이는 곧장 창문을 넘어 아침안개가 자욱한 바깥으로 사라졌다. 내 방갈로는 짙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정면은 넓은 초원이었다.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두 번째의 방문객이 나타났다. 송아지만한 영양이 천천히 그리고 수줍은 몸짓으로 계단을 올라왔다. 새끼 영양은 곧장 내게 다가와 코로 내 손등을 비벼댔다. 나는 영양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는데 그의 선량한 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영양은 답례로 내 손등을 핥고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 사라졌다. 상상처럼 음침하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 평화롭고 조용했다. 아침 안개가 걷히자 지평선에 킬리만자로의 위용威容이 펼쳐졌다. 만년설萬年雪에 덮힌 거봉巨峰이 눈앞에 전개됐다. 나는 방갈로를 나와 초원을 걸었다. 언덕을 넘자 대평원이 나타났다. 초록색 양탄자를 펼친 대초원에 수만 수십만 마리의 동물들이 있었다.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영양, 얼룩말, 기린, 코뿔소, 코끼리들이었다. 나무 뒤에 숨어서 동물을 관찰하다가 좀 더 가까이 가려고 했을 때 또렸한 영어가 들렸다.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면 안 됩니다.’

돌아보니 2 - 3m 떨어진 나무그늘에 가냘픈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열두서너 살 되어보이는 소년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칼이 이마를 가리고 토인처럼 검었다. 커다란 눈은 푸른색이었고 가냘픈 목덜미는 백인이었다. 소년은 나의 존재 따위는 무시하고 동물들을 보고있었다.

여기서부터 출입금지구역이냐?’

소년이 머리를 끄덕였다.

틀림없지?’

물론이죠. 나 이상 금지구역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 금렵구의 관리관도?’

내 아버지? 아버지도 나만큼 몰라요.’

그러면, 너만 허락하면 금렵구에 들어갈 수도 있겠구나.’

안 됩니다.’

내가 이대로 들어가면 넌 아버지에게 말해서 쫓아내겠지?’

난 고자질은 하지 않아요.’

그럼 왜? 내가 동물들과 싸워 다칠까봐?’

나는 아저씨가 총을 잘 쏘는 사냥꾼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허리에 찬 권총도 보통 총이 아니란 것도 알고요.’

나는 동물을 함부로 죽이는 사냥꾼이 아냐. 난 동물들과 친해지고 싶은 거야.’

동물들은 아저씨를 환영하지 않아요. 동물들에게는 지금이 가장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아요.’

소년의 말은 단호했으며 나는 더 이상 금렵구에 들어가겠다고 요구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내가 실망하는 표정을 알고 동정하는 말로 달랬다.

미스터 켓셀, 실망하지 말아요. 기회를 봐서 내가 안내할테니 .’

나는 놀랐다.

, 어떻게 내 이름을 ?’

이름뿐만 아니지요. 난 아저씨가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아요. 니코라스와 신뻬린이 보고해주었어요.’

(니코라스, 신뻬린?)

원숭이와 영양입니다. 아까 인사를 했다면서요? 둘 다 내 친구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내 이름까지?’

소년이 웃었다. 여성적인 웃음이었다.

이름은 보고에게서 들었습니다. 아저씨 운전사.’

보고가? 보고는 주인 얘기는 안 할텐데 .’

바보! 보고는 영어로는 얘기를 안 하지요. 토인말로는 잘 해요.’

토인말을 하니?’

보고는 기구유족인데 난 기구유말도 하고, 와간바말도, 수와히리말도 하고, 모든 토인말을 할 줄 알아요. 그리고 동물말도 .’

동물을 잘 아느냐?’

모두 친구지요. 보세요, 저기 늪가에 있는 물소는 얼룩얼룩한 반점이 있지요?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반 년이나 되었는데 낫지 않은 고질병痼疾病입니다. 성미가 불 같아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걱정되요.’

성질이 불 같은 물소는 기분이 나쁘면 코끼리에게도 덤벼든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불 같은 물소가 몇 달 전에 피부병이 번져서 성질이 나 강가의 나무에 몸을 부비면서 뿔로 받고 발로 차고 미쳐날뛰고 있었는데 굥교롭게도 큰 사자가 어글렁어슬렁 다가왔다. 사자는 배가 불러 별 생각없이 강가를 산책한 것이었으므로 물소들도 경의敬意를 표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는데, 그 미친 물소는 곁눈질로 사자를 힐끗 쳐다보고도 무시했다. 사자가 다가섰는데도 물소는 피하지 않았다. 둘의 거리는 20여 미터. 마침내 사자가 대노大怒했다. 긴 갈기가 크게 흔들리고 꼬리를 쭉 뻗고 돌진했다. 사자가 공중에 도약跳躍하는 걸 보고 심술쟁이 물소가 당황하여 몸을 돌려 머리를 숙여 사자에게 맞섰다. 어처구니 없는 만용蠻勇이었다. 하긴 몸무게나 힘으로는 물소도 사자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싸움의 기술이다. 속도다. 사자는 매일 싸움으로 동물을 잡아 먹이로 삼는 프로선수고 물소는 풀을 뜯어먹고 사는 아마튜어 초식동물 아닌가? 바람을 차고 날아온 사자가 뿔을 내밀고 있는 물소의 머리를 앞발로 힘껏 내리쳤다. 500Kg이나 되는 물소가 그 일격으로 나가떨어졌는데 천만다행千萬多幸이었던 것은 떨어진 곳이 물이었다. 물소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물속으로 줄행랑을 놓았는데 그 동작이 몇 초만 늦었으면 물소는 목줄이 끊어질 뻔 했다.

그 후 저 놈은 풀이 죽어 얌전해졌지요. 보세요. 옆에 있는 젊은 놈이 까불어도 가만히 보고만 있잖아요.’

소년의 얘기를 듣고있는 사이에 해가 올랐다.

그런데 저 동물 중에는 사자나 표범 따위가 보이지 않는데 어찌된 일이냐?’

소년은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다.

맹수들은 딴 곳에 있어요. 비밀장소에 . 나중에 안내할께요.’

언제 쯤 .’

소년은 해가 올라온 것을 보고 놀라더니 내 물음에 대답없이 가버렸다. ! 몸을 돌려 관목숲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방갈로에 돌아오니 원숭이가 베란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니코라스.’

이름을 부르니 원숭이가 킥킥거리며 내 어깨로 올라왔다. 내가 내민 손바닥에 앉았다. 운전사 보고가 왔다.

부와나, 관리관부인께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글씨로 <빨리 뵈웠으면 한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관리사무소까지는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60평 정도의 관사는 가시덤불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맹수로부터 보호막이다. 키가 큰 금발의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안경은 벗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일찍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바깥은 너무 덥습니다.’

응접실로 안내했다.

용서하세요. 이런 만지蠻地에서 살다보니 예의를 잃어버렸답니다.’

부인은 소개를 한 리즈 달보아부인의 얘기를 꺼냈다. 좀 당황스러웠다. 프랑스 파리 얘기를 들으러 온 게 아닌데 .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을 때 자동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노크없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사람이라고 했지만 괴물 같았다. 절름발이 흑인은 한쪽 눈이 찌그러졌으며 몸에는 상처 투성이였고 허리도 굽었다. 추악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허리의 권총에 손이 갔는데 부인이 제지했다. 부인은 그 흑인이 남편의 조수이며 키호로라는 와간바족 토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여기서 30여 년 간 살고 있으며 남편과 함께 2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의 몸의 상처는 모두 맹수들과 싸움의 흔적痕迹입니다. 이젠 너무 고된 일은 못 하고 딸을 돌봐주고 있습니다.’

(?)

내 의아한 표장을 알아차린 부인이 해명했다.

우리 부부 사이에 딸이 있습니다. 13세의 파트리샤입니다. ! 주인이 옵니다.’

어서 오시오!’

난 존 부리트입니다. 관리관이지요,’

거친 말투였으나 불쾌감을 주는 태도는 아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으며 손에 코뿔소가죽으로 만든 긴 채찍을 쥐고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체구도 컸으나 행동은 민첩했다. 그는 나에게 위스키를 하겠느냐고 묻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위스키를 두 잔 들고왔다.

사실은 오늘 새벽 모시러 가려고 했는데 금렵구에 수상한 통니들이 침입했다는 정보를 받고 현지에 갔다오는 길입니다.’

밀렵자들인가요?’

아니요. 오해였습니다. 마사이족이었습니다.’

마사이족이었다는 그 말투에는 마사이족은 한몫 봐준다는 뜻이 포함되는 것 같았는데 시빌부인이 참견을 했다.

마사이는 동물을 죽여도 밀렵자로 간주하지 않나요?’

마사이에 대한 비꼬임과 혐오감이 묻어 있었다.

아니 뭐,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부리트가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마사이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호전적인 수렵족이다. 아프리카에는 수렵족, 농업족, 유목족, 전투족들이 있는데 마사이는 수렵족이며 전투족이다.

당신은 다른 부족이 금렵구에 들어오면 총을 쏘아 축출하지만 마사이게는 관대하군요. 여기 동물을 가장 많이 죽이는대도.’

시빌부인의 추궁이 날카로왔다. 손님이 있는데도 부인은 남편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여보, 오늘은 큰 피해가 없었소,’

그래요? 피해가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보세요!’

시빌부인이 히스테리컬하게 커틴을 걷고 들판의 하늘을 가리켰다. 독수리떼들이 원을 그리면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대형동물의 시체가 있다는 증거였다. 브리트가 당황했다.

별거 아니요. 병든 영양이나 한 마리 잡은 거겠지. 당신도 아다싶이 마사이는 육식부족이요. 식량을 하기 위한 사냥은 봐줘야지.’

부리트는 나를 보면서 보충설명을 했다.

못된 밀렵자들은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코끼리상아, 코뿔소뿔을 팔기 위해 밀렵을 합니다. 사자의 껍질을 벗기고.’

이상한 부부였다. 말을 마친 부리트가 부인 곁으로 다가가더니 양팔로 우악스럽게 끌어안고 부인의 안경을 벗긴 뒤 창백한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부인은 반항을 하려고 했으나 힘에 눌려 안겼고 억센 포옹에 반항을 체념하고 남편의 두터운 품에 찰싹붙었다.

여보, 파트리샤를 부릅시다. 손님에게 인사드리게.’

켓셀씨, 용서하세요. 저 사람은 거친 이 곳 생활에 아직 적응을 못 해서 .’

부인이 딸 파트리샤와 함께 들어왔다. 파트리샤는 목에 진주레이스를 걸고 긴 원피스를 끌고 있었다. 우아한 의상과 단정한 몸가짐이었다.

(예쁜 소녀다!)

라고 한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럴 수가?)

파트리샤는 내가 아침에 본 야생소년과 똑 닮았다. 가냘픈 목덜미, 푸른 눈과 짧은 머리카락은 아침에 만났던 소녀가 분명했다.

안녕하십니까? 파트리샤입니다.’

아는 척 하려다가 소녀의 예의바르고 냉정한 인사에 점잖게 인사를 받았다.

미스 파트리샤. 엄마 닮아 예쁜데 .’

시빌부인이 미소지었다. 어머니다운 자애깊은 미소였다.

, 고맙습니다. 나는 저 아이를 밀림의 숙녀로 키울 생각입니다. 그렇지 파트리샤!’

, 고맙습니다. 엄마.’

이 얌전한 소녀가 밀림을 뛰어다니는 야생소년이라니. 나는 이 가족의 병적인 분위기가 숨막힐 것 같아 작별했다.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는데 큰 나무그늘에서 부리트가 막아섰다. 나는 2m거 넘는 키였는데 그는 나 보다 30Cm는 더 컸다.

켓셀씨, 하나만 묻겠는데 당신 차를 운전하는 친구는 토인들이 자는 방에서 자지 않고 차에서 자는 이유가 뭐요?’

항의쪼였다.

아니죠. 보고는 나와 오랫동안 여행을 했는데 도시의 호텔에서는 보고를 받아주지 않아 차에서 자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현지 토인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험한 인상이 좀 풀렸다.

오늘 새벽 당신은 금렵구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따님이 얘기했어요?’

? 아까 나는 응접실에서 딸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애는 그런 고자질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금렵구에 간 걸 알지요? 난 거기가 금렵구인줄 몰랐습니다. 금렵구인줄 알았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못되었나요?’

내가 화를 내자 브리트가 웃었다.

 

27. 황소 브리트

 

켓셀씨, 오해마시오. 난 당신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아까 새벽에 당신이 파트리샤와 금렵구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처에게 했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처는 딸이 밀림을 돌아다니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알면 또 히스테리를 일으킬 것입니다.’

.’

내가 알고싶은 것은 왜 당신이 그것을 비밀로 해주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따님을 만난 일은 우리 끼리 비밀입니다.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이 대답이 그를 만족시켰다.

켓셀씨, 당신은 시빌의 동무인 리즈 달보아부인과 친하다고 하는데 .’

정확하게 말하면 리즈부인의 비공식 남편인 화가의 친구지요. 나는 당신과 같이 사냥꾼이며 도시의 귀부인과는 사귀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묻겠는데, 리즈부인과 사귄다고 했으면 당신은 그 채찍으로 나를 칠 작정이었지요?’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브리트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대부분 사냥얘기였지만 얘기가 끝이 없었다. 얘기에 열중하다보니 금렵구에 들어왔다.

괜찮아요. 나와 함께라면 금렵구는 없습니다.’

그가 휘파람을 불었다. 키호로가 나타났다. 브리트는 키호로가 들고온 두 자루의 총에서 한 자루를 받아들었다. 구경이 넓고 긴 총이었으나 브리트의 커다란 손에는 마치 장난감 같았다.

아까 처에게 지적을 당했는데 요즘 마사이가 너무 설쳐 좀 단속을 해야겠습니다.’

총을 쥐고 밀림에 들어서자 브리트는 사람이 달라졌다. 그의 움직임은 동물과 같았다. 나무 뒤에 착 달라붙어 주위를 살피다가 바람 같이 전진했고 숲속에 납작 엎드리기도 했다. 밀림에서 일어나는 소리나 냄새도 놓지지 않았고 자신의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는 약 2시간 동안 밀림속을 걸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밀생하고 자그마한 늪이 있는 곳에 이르자 우리는 큰 바위 위에 엎드렸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원숭이도 떠들지 않고 새울음소리도 끊겼다. 5 - 6분 후 30 - 40미터 앞 나무 사이에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밀림의 무뢰한이며 앞길을 막는 것은 걸레처럼 찢어버리는 밀림의 깡패 물소들이었다. 눈이 충혈되어 살기를 띠고있고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추격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물소들이 가까이 다가왔으나 브리트는 물소에게는 흥미가 없이 물소들의 등 너머 숲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랜 사냥 경험으로 나도 숲속에 요기妖氣가 있음을 느꼈다. 사자나 표범 같으면 요기는 한군데 몰려있는 법인데 지금의 요기는 숲 전체에 퍼져있었다. 물소들도 포위되었다고 알아차린 것 같았다. 리더가 주위를 살피더니 머리를 돌려 다른 놈을 봤다. 리더가 자신을 잃은 것이다. 앞으로 갈까? 뒤로 돌아갈까? 돌진을 할까? 리더가 머리를 숙이고 흔들었다. 돌진의 버릇이다. 그 때 숲에서 창이 하나 솟아올랐다. 공격신호다. 4 5명의 토인들이 나타났다. 온몸에 얼룩덜룩한 칠을 한 토인들이 창을 날렸다. 그 중 두 개의 창이 리더의 어깨와 배를 찔렀다. 400Kg이 넘는 거대한 물소가 타격으로 비실거리더니 털썩 쓰러졌다. 숲속의 토인들이 모두 몰려나와 물소에게 덤벼들었다. 물소가 토인들의 칼로 무참하게 도륙屠戮될 위기에 브리트가 공포를 한 방 쏘고 물소와 토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총구가 토인들을 향했다. 토인들은 휘두른 창을 던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토인들의 등 뒤에서 총소리가 났다. 토인들의 등 뒤에 키호로가 나타났다. 토인들의 창이 밑으로 내려졌다. 그 바람에 물소들이 도망쳤다. 그러나 부상을 입은 물소는 필사적으로 일어나더니 반격을 시도했다. 물소는 엉뚱하게 브리트에게 덤볐다. 내가 권총을 빼들고 발사한 것과 동시에 브리트가 돌아서면서 발사했다. 물소에게 맞은 것이 확실한데 물소는 돌진했다. 그러나 브리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물소가 돌진한 것은 뛰어오던 탄성彈性이라는 걸 알았다. 과연 물소는 브리트의 발밑에 쓰러졌다. 브리트는 물소가 더 다가왔으면 황소처럼 물소와 육박전을 벌일 태세였다. 토인들 중에서 두목인 듯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몹시 흥분하여 브리트에게 따졌다. 입에 거품을 물고 창을 휘둘었다. 브리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뱃속에서 올라오는 노여움을 폭발시켰다.

아니코!’

나쁜놈이라는 토어土語였다. 길길이 날뛰던 두목이 놀란 듯 풀이 죽었다. 브리트는 분을 참지 못 하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토인들은 브리트와 영양 한 마리를 잡기로 언약을 했는데 약속을 어겼다. 토인들은 변명을 하자가 나중에는 사과를 하고 끝내는 애원을 했다. 토인들은 영양을 한 마리 잡았으나 내일 벌어질 추장생일잔치에 모자라 물소를 서너 마리 잡으려고 했노라고 애원했다. 브리트는 애원에 약했다. 죽은 물소를 추장잔치에 쓰라고 토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시빌이 내가 마사이에게는 약하다고 했는데 사실입니다. 이들은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

우리는 마사이의 간청으로 초대받았다. 마을에는 영양 한 마리가 운반되어 있었는데 물소가 운반되자 환성이 터졌다. 내일 축제를 기다리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춤을 추었다. 모든 마을사람들이 인사를 했고 악수를 했으며 아이들이 브리트의 어깨에 매달렸다. 아이들은 포도송이처럼 매달려 옷과 구두를 잡아당겼으며 브리트는 막느라고 애를 썼다. 그 때 나는 그 아이들 사이에 아는 얼굴을 하나 발견했다. <금렵구에 들어가지 말라>고 나에게 경고했던 소년 - 아니 얌전한 소녀 파트리샤였다. 놀라운 변신이었다. 남자옷을 입은 토인아이들과 똑같았다. 파트리샤는 아버지에게 달라붙은 아이들을 때어내고 어깨 위로 기어올라가 아버지의 다갈색 머리칼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야만인처럼 거친 동작이었으나 강력한 애정이 넘쳤다. 파트리샤가 흥분하여 고함을 지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나무에서 내려오듯 미끄러져 내려와 아이들 속으로 숨어버렸다.

저 숙녀는 좀 부끄러운가 봅니다.’

우리는 마을을 한바퀴 돌아본 후 방갈로로 돌아왔다. 위스키를 마시며 얘기가 시작되었다.

브리트의 부친은 아프리카에 근무하는 영국의 고급관리였다. 브리트는 아프리카에서 낳고 자랐으며 열 살 때 이미 엽총으로 사냥을 했다. 열다섯 살 때는 이미 프로급 포수로 인정을 받았는데 부모는 사냥꾼이 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부모는 그를 영국에 보내 학교에 넣으려고 했는데 그는 총 한 자루를 가지고 밀림으로 도망쳤다. 토인들은 그를 환영했다. 토인들과 어울려 살았던 그는 짐승의 습성을 잘 알았으므로 프로포수가 되었다. 황소 브리트의 소문은 온 아프리카에 퍼졌다. 그는 상아를 얻기 위해 200여 마리의 코끼리를 죽였고 토인마을에 팔기 위해 물소 300여 마리를 사냥했다. 사자와 표범도 100여 마리를 쏘았다. 그래서 돈을 벌었고 시빌부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부인의 간청으로 관리가 되었으며 동물보호관이 되었다.

나는 동물을 잘 압니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습성도 알지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 보다 더 동물을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지 알겠소?’

파트리샤!’

내가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렇소. 나는 사냥을 하기 위해 동물의 습성을 연구했지만 그 애는 달라요. 그 아이는 동물의 친구지요,’

파트리샤는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동물에게 말도 할 수 있다. 그 아이는 엄마의 눈을 피해 동물들과 놀았는데 엄마는 그것 때문에 반 미친상태요. 그 아이를 파리의 숙녀로 기르려고 하는데 맘대로 들판을 뛰어다니며 동물들과 어울리니 용납이 되겠소. 그래서 절름발이 키호로를 붙여두고 감시를 합니다. 오늘 새벽 당신이 금렵구에 있었다는 걸 키호로가 보고했소. 키호로는 총을 지니고 파트리샤를 미행尾行하는데 감시가 아니라 보호지요. 내가 그역할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상당히 취했으므로 브리트가 돌아간 뒤 침대에 누었는데 운전수 보고가 들어왔다. 이런 경우 보고는 그냥 나가기로 되었는데 보고가 나가지 않았다. 램프에 비친 그의 얼굴에 공포가 어려있었다.

뭐야? 보고. 얘기해봐!’

부와나, 그 계집애. 파트리샤에 대한 얘기인데요.’

알았어. 너는 그 아이에게 내 얘기를 지꺼렸다지? 앞으로는 입을 다물어!’

아닙니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그 아이에 대한 괴상한 소문입니다.’

소문? 무슨 소문인데.’

무서운 소문입니다. 이 부근 토인들은 다 알고 있지요. 그들은 파트리샤를 좋아하고 있지만 무서워해요.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해요.’

?’

보고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관리인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뭣이 어째!’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누구란 소문이야?’

사자, 라이온이 그 애의 아버지랍니다.’

사자?’

머리가 멍해졌다.

그 아이는 사자와 같이 살고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다른 동물을 사냥한답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이로비의 그 소문이 정말이었단 말인가?)

임마! 그런 엉터리 같은 얘기가 어디 있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요. 그 애는 동물에게 마술을 걸줄 알아요. 오늘 새벽에 봤던 그 원숭이는 그 애 말을 알아듣고 심부름을 해요. 컵에 물을 따라가지고 오는 것을 내 눈으로 봤어요. 그리고 그 애가 커다란 숫사자하고 같이 다니는 것은 본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그 애가 사자 등에 타고 가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공포의 기색을 보이기 싫어 보고를 내쫓았다.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날 밤 나는 또 상체는 사자고 하체는 소녀인 괴물의 꿈을 꾸었다. 이튿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악몽과 보고의 바보같은 얘기를 털어버렸다. 적어도 털어버리려고 애썼다. 그래서 아무 목적도 없이 보고를 데리고 나섰다. 벌판을 지나 금렵구라고 써붙인 게시판을 무시하고 밀림속으로 들어갔다. 혹시 파트리샤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밀림은 울창했다. 밑에는 60Cm 정도의 잡초가 무성하고 위는 150m가 넘는 거목들이 하늘을 가렸다. 그 밀림을 얼마나 걸었을까? 아무 말 없이 따라오던 보고가 말했다.

부와나, 돌아갑시다. 위험해요.’

위험한 일이었다. 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이런 밀림을 돌아다니는 것은 정말이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뒤돌아섰다. 그 때 나무들 사이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사람 그림자가 움직였다.

누구야? 이리 나와!’

허리의 권총을 빼들고 고함을 쳤다. 토인 두 사람이 나왔다. 권총 따위야 안중에도 없는 듯 천천히 걸어왔다. 첫눈에 마사이인줄 알았다. 아프리카에는 엔부족, 간바족, 기구유족 등 여러 종족이 있었으나 마사이는 독특하다. 두 사람의 걸음걸이는 춤추듯 가벼웠고 임금님처럼 자존심이 넘쳤다. 머리를 치켜들고, 어깨에는 붉은 천을 걸치고, 키 보다 긴 창을 들었다. 가늘었으나 날카로웠고 그들은 그 창을 30m 안에서는 어김없이 적중시켰다. 마사이는 옛 이집트인의 후손이다. 그들은 다른 종족들의 유목과 농경을 경멸하고 오로지 수렵을 천직으로 살았다. 배가 고파도 구걸은 하지 않고 약탈을 했다. 나타난 마사이는 늙은이와 젊은이였는데 둘 다 모라네(전사戰士). 마사이들 중에서 사냥과 전투를 하는 무사武士며 귀족이다. 젊은 병사兵士가 공을 세우면 모라네가 되는데 모라네는 무기를 연마鍊磨하고 몸치장에만 전념한다. 모라네는 머리칼로 식별한다. 동 아프리카의 종족은 남녀 구분 없이 대부분 머리를 박박 깎는데 다만 모라네만은 그 곱슬머리를 깎지 않으며 긴 머리를 땋아 소 기름으로 붙인다. 그리고 그 위에 붉은 색 진흙을 두껍게 발라 굳히는데 마치 투구처럼 된다.

보고에게 통역을 하라고 명령했다. 보고는 낯빛이 창백해지고 떨고 있었다.

부와나, 이 사람은 마사이입니다. 나는 기구유고요.’

아프리카의 모든 종족들은 마사이를 겁냈으며 특히 농경을 하는 기구유는 마사이라는 말만 들어도 어린이가 울음을 멈춘다. 기구유는 수백 년 간 마사이들에게 식량을 야탈당하고 집이 불살라졌으며 여자들이 잡혀갔다. 보고를 타일렀다.

겁내지 마라. 내가 있지 않은가. 내 권총은 7연발이야.’

보고가 나를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권총은 믿는다.

구아헤리(인사).’

보고가 인사를 했다. 붉은 천을 두른 마사이가 서양양복을 입은 보고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훑어봤다.

구아헤리.’

내가 권총을 집어넣고 인사했다.

마사이노인은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가 인사를 했다.

(보통 놈은 아니다.)

구아헤리.’

모라네들은 창을 내려 땅에 꽂고 몸을 기댔다. 보고를 통해 내가 관리인의 친구라고 말했다. 내가 이름을 물었다.

나는 오륜가, 젊은 친구는 올갈이다.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하오?’

나는 동물을 구경하러 왔지. 너희들은 뭘 하나?’

가족등의 캠프를 칠 장소를 찾고있어. 우리가 이 밀림의 주인이야. 관리인도 그건 알고있어.’

그런 건 나와 관계없었으나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들의 창에 피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피 묻은 창을 보고있다는 걸 눈치 챈 노인이 웃었다.

도중에 표범을 만났어. 허벅다리에 창을 맞은 표범이 입으로 창을 빼고 도망갔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작별을 하자 보고는 안도安堵의 한숨을 쉬었다.

 

29. 사자獅子

 

오후 늦게 시빌부인으로부터 정중한 만찬회 초청을 받았다. 히스테리 상태의 부인을 만나기 꺼렸으나 파트리샤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초처에 갔다. 시빌부인은 가슴이 깊게 패인 비단야회복夜會服을 입었다. 고독에 시달린 시빌부인의 욕구가 이상異常상태로 분출噴出된 것 같았다. 만찬회는 영국의 상류가정 만찬회처럼 주전자, 설탕그릇, 우유그릇, 포크, 나이프 등이 모두 은제銀製였다. 브리트도 하얀 다기시드(예복禮服)를 입고 머릿기름을 발랐다.

이렇게 훌륭한 자리를 .’

시빌부인은 나의 인사에 만족한 듯 자리를 권했다. 격식대로 하얀 의복을 입은 하인들이 시중을 들었다. 식탁의자가 네 개였는데 하나가 비어 있었다. 시빌부인은 빈 의자를 보면서 초조한 듯 남편의 얼굴을 날카롭게 쏘아보고 있었다.

여보, 보면 알지 않소. 바깥은 아직 밝지 않소.’

곧 어두워질 것 같은데요.’

부인이 쌀쌀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손님인 나를 의식해서 억지로 웃음을 지며 말했다.

과자 드십시오. 영국에서 가져온 과자입니다.’

나는 그 비싼 과자 보다도 물소고기를 먹었다. 어색한 만찬이었다. 셋 다 화제를 잃고 묵묵히 식사만 했다. 시빌부인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 듯 말했다.

난 오늘 마사이를 두 명 만났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사이로부터 보고를 받았지요,’

브리트가 말을 받았는데 부인의 히스테리가 폭발했다.

그만두어요. 그만 둬!.’

난 그들을 잘 알아요. 벌거숭이고 눈이 미친 것처럼 뒤집어진 친구들이지요. 그런 야만인들과 살아야 하니 미칠 것 같아요. 여긴 지옥이야.’

브리트가 일어섰다. 시빌부인이 발작을 멈추었다. 부인이 남편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요, 여보. 파트리샤가 아직도 오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났습니다. 불평을 해서 미안합니다.’

브리트가 얌전히 앉았다. 분위기는 조용해졌으나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여보, 손님에게 우리들이 처음 만났을 때 얘기를 해드려요.’

그렇지, 그걸 얘기하지.’

브리트가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호소하는 듯한, 한탄하는 듯한 동물의 울음이 울렸다. 거리는 30m 이내였다. 나는 그 울음소리를 알았다. 뱃속에서 뿜어내는 사자의 포효였다.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을 때 시빌부인은 공포가 떠올랐고 브리트는 안도감이 떠올랐다.

여보, 날이 어두워졌는데 빨리 나가서 파트리샤를 찾아와요, 제발!’

, 그러지. 내가 나가보지.’

브리트가 문으로 가다가 되돌아섰다. 문이 열리고 파트리샤가 들어섰다. 하양 칼라, 커프스가 달린 하늘색 옷을 입고 하얀 스타킹에 에나멜구두를 신었다. 머리에는 하얀 리본을 묶었다. 파트리샤는 빈틈없는 숙녀의 예의로 나에게 눈인사를 하고 부모에게는 키스를 한 다음 의자에 사뿐히 앉았다.

, 이제 우리 예쁜 숙녀가 오셨으니 재미나게 놉시다.’

브리트가 웃었다. 시빌부인은 반은 웃고 반은 우는 표정으로 파트리샤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킹이 늦었습니다. 킹은 늦었으면서도 기어히 나를 집에 대려다주겠다고 우겼지요. 킹의 소리를 들었지요?’

물론이지. 킹의 소리를 듣고 나는 안심했어.’

브리트가 딸의 말을 가볍게 받았는데 그 게 또 부인을 미치게 했다.

, 킹이 어쨌다고?’

미스터 켓셀, 킹이 누군지 아십니까? 보이프렌드도 아니고, 하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사자랍니다. 진짜 맹수말입니다.’

시빌부인이 울음을 터뜨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올 것이 왔다. 소문이 정말이었구나. 몸이 떨렸다. 소녀가 냉정하게 말했다.

아빠, 엄마에게 가봐요. 지금 엄마는 아빠가 필요합니다. 엄마를 위로해줄 사람은 아빠뿐이니까요.’

단호한 명령이었다. 브리트는 그 말에 따랐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는 게 무서워 집에서 나왔다. 방갈로에 돌아오니 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고는 나의 지시를 받아 주변 토인마을을 돌아다니며 파트리샤와 사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첫 번째 정보, 양치기는 재작년 무리에서 떨어진 양을 찾으러 양의 발자국을 따라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한참 가다보니 양의 발자국이 증발되었다.

?’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양의 발자국이 없어진 곳에서 다른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쟁반만한 큰 발자국, 사자발자국이었다. 핏자국도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양치기는 10m 쯤 되는 바위에 커다란 사자가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걸 봤다. 양치기는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 하고 멍 하니 서있었다. 그런데 노려보고 있던 사자가 눈을 껌벅거리다가 어슬렁거리며 사라졌다. 양치기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사자야, 사자. 사자가 양을 죽였어!’

마을에는 소동이 벌어졌다. 마을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져서 다음 날 토벌대가 출동하기로 했는데 출동을 하지 못 했다. 파트리샤가 나타나 토인들이 좋아하는 양주를 세 병이나 가져와서 마을 장로들에게 선물했다. 큼직한 양도 한 마리 주면서 사자사냥을 중지하라고 했다. <그 사자는 이미 금렵구 안으로 도망갔으니 사냥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미 장로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므로 중지할 수 없다>고 했더니 파트리샤가 차디차게 웃으면서

금렵구에 들어가서 사자사냥을 하면 아버지가 절대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니 할테면 해보라.’고 했다. 그 협박에 토인들이 졌다.

두 번째 얘기는 더 이상했다. 사자는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으나 밀렵토인이 밀림에서 그 사자를 보았다. 그 사자는 다른 사자 보다 몸집이 더 크고 갈기가 훌륭했기 때문에 잘 못 본 건 아니다라고 했다. 밀렵자들은 여덟 명이었으며 모두 와간바족 사냥 명수들이었다. 와간바는 마사이 다음으로 용맹한 부족이고 활솜씨는 따라올 부족이 없었다. 마사이의 창과 와간바의 활은 대둥하게 평가되었다. 와간바의 화살촉에는 맹독이 발라져서 코끼리가 맞아도 백 보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엄청난 크기의 사자발자국을 보고도 겁을 먹지 않았다. 사자는 금렵구 동쪽 바위산으로 갔다. 그들이 바위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두목이 놀란 표정으로 발자국을 가리켰다. 발자국을 본 동료들도 크게 놀랐다.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자발자국 옆에 사람발자국이 있었으며 사자와 사람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핏자국도 없고 그렇다고 싸운 흔적도 없이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가는 게 아닌가? 토인들이 그 사태를 이해하려고 떠들었으나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 발자국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의 발자국으로 결론이 났다. 악마의 발자국은 사람의 발자국 보다 작았으며 백인처럼 신을 신었다. 추적을 해야 하느냐 중단해야 하느냐 격론이 벌어졌는데 리더가 추적을 지시했다. 추적을 시작하려고 출발하려는데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돌아다보니 정말 악마가 있었다. 한쪽 눈이 없고 절름발이고 온몸이 상처투성이 흑인이었다. 총구가 리더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으며 여차하면 발포할 기세였다. 와간바는 그 악마를 알고 있었다. 키호로 - 지금은 그들 곁을 떠났지만 한 때 용감무쌍勇敢無雙한 그들의 두목이었다. 두목이 인사했다.

형님, 오랜만이요. 설마 우리를 쏠 생각은 아니지요?’

내 명령을 듣지 않으면 .’

키호로가 쌀쌀하게 말했다. 키호로의 냉정한 표정을 보고 와간바는 얼어붙었다.

키호로, 그런 게 아니고. 우리가 지금 이상한 것을 발견해서 .’

듣기 싫어, 여기는 금렵구야!’

난 금렵구에 들어온 사람은 모조리 사살射殺할 권리를 갖고있어. 내가 바로 발포를 하지 않는 것은 너희들이 모두 옛 친구이기 때문이야.’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어 사냥대는 사자와 사람발자국의 의문을 풀지 못 하고 돌아왔다. 돌아서는 둥 뒤에서 사자의 포효가 드렸다. 휘파람소리도 들렸으나 무슨 일이지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얘기는 더 무서운 얘기였다. 이 곳의 수렵관이며 관광안내인 가네프시키가 미국인 두 사람을 데리고 와 와간바 두 명이 조수 일을 했다. 이틀 후 미국인은 켐프를 금렵구 경계로 이전했다. 그날 밤 미국인은 경비원에게 통조림과 양주를 대접했다. 경비원이 아침에 눈을 뜨자 해장술을 권해 경비원은 대낮부터 골아떨어졌다. 경비원이 골아떨어지자 미국인은 의미심장意味深長하게 웃더니 총을 들고 나섰다. 불법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 토인들은 상당한 보수를 받고 따라나섰다. 얼마 안 가서 사자발자국을 발견했다. 금방 지나간 발자국이었다. 미국인들은 총에 장탄을 하고 토인들은 창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그들이 추적하는 사자의 발자국을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사자발자국을 발견했다. 엄청나게 큰 발자국이었다. 토인은 큰 발자국을 알고있었다. 토인이 <이 사자는 무서운 사자니 추적을 포기하자>고 경고했으나 백인은 웃었다. 백인은 큰 사자는 우연히 목표사자를 가로질러 갔으므로 염려없다고 우겼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큰 사자가 목표사자를 우회하는 발자국이 나타났다. 미국인들이 좀 당황했다. 큰 사자가 목표사자가 도망치는 걸 보호하려고 추적자를 위협하는 것 같았다. 백인은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포효가 울렸다. 참지 못해 폭발하는 무서운 노호怒虎였다. 되돌아가라는 경고였다.

저 녀석이 우리에게 도전을 하고 있어. 미국 서부사나이는 도전을 받으면 물러서지 않지.’

토인들이 이것은 사자의 술책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반대했으나 백인은 막무가내였다.

?’

아무 일도 없었다. 사자도 노호도 없었다.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노호가 터졌다. 어느새 사자가 등 뒤로 돌아온 것이다. 사자의 트릭을 알고 미국인들은 기겁을 했으나 가네프스키는 대담했다. 사자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사자는 없었다. 사자에게 조롱당한 가네프스키가 자기는 그 자리에 머물고 미국인들에게 반대편으로 가라고 했다. 사자는 발견될 수 밖에 없었다. 양쪽에서 협공이었다. 그러나 사자는 없었다. 가네프스키가 주변을 살폈다. 3 - 4백미터 아래 개울이 흐르고 양쪽에 숲이 무성했다. 사자가 좋아하는 서식지棲息地. 가네프스키와 미국인들이 일렬횡대一列橫隊로 숲에 들어섰다. 토인들이 뒤따라오면서 돌맹이를 숲에 던졌다. 사자는 숨어있다가도 돌맹이가 옆에 떨어지면 참지 못 하고 튀어나오는 법인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여기도 없는 것일까?)

백인들이 실망과 안도감을 느꼈는데 그 때 비극이 일어났다. 사자가 그들의 등 뒤에서 덮쳐든 것이다. 돌맹이세례를 받고도 사람들이 바로 옆을 지나가도 가만히 엎드려있다가 사람들이 지나가자 뒤에서 덮친 것이다. 사자는 앞발로 총을 든 미국인의 팔을 후려쳤고 돌아서는 가네프스키의 총도 후려쳤다. 그리고 놀라 멍! 하니 서있는 미국인에게 덮쳤다. 경악한 미국인이 엉겹결에 엎드렸는데 사자는 미국인의 몸을 타넘고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가네프스키가 허둥지둥 일어나 총을 찾아들었으나 사자는 이미 사격권을 벗어나 달리고 있었다. 사자에게 습격을 당한 미국인의 상처는 뼈가 들어났다.

그 놈의 사자, 정말 신들린 놈이었나?’

가네프스키가 중얼거렸다.

네번째 얘기는 더 황당했다. 와간바 토인들이 몰래 장치한 덫을 보려고 밀림에 들어갔다. 그들은 맹수의 습격도 습격이려니와 관리인이 두려워 몰래 행동했다. 큰 나무, 바위, 숲 등을 이용하여 몸을 숨기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밀림을 순회하다가 묘한 물체를 발견했다. 알록달록한 긴 것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뱀인줄 알았으나 표범의 꼬리였다. 표범은 앞을 응시하느라고 뒤에 사람들이 있는 걸 알지 못 했다.

(뭘 노리는 걸까?)

표범의 앞 4 - 50미터 바위그늘에 사람이 있었다. 소녀인지 소년인지 분간이 안 가는 백인이었다.

(!)

토인들이 깜짝 놀라는 사이 표범이 도약했다. 단거리에서 표범을 능가할 동물은 없다. 표범의 달리기는 달리는 게 아니라 날아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표범이 아이에게 막 덮치는 순간, 큰 동물이 표범에게 덮쳤다. 갈기를 세운 사자였다. 사자가 공중에 뜬 자세로 표범에게 앞발치기 일격을 했는데 표범이 야구방방이에 타격을 당한 야구공처럼 뱅그르르 굴러떨어졌다. 일어나자 말자 도망쳤다. 사자는 표범을 쫓지 않았다. 그까짓 표범 보다 더 맛좋은 먹을거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토인들은 판단했다. 표범의 습격을 피한 아이는 사자의 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바위 아래서 일어난 아이는 사자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강아지에게 하듯 손을 내밀면서 사자에게 다가갔다.

(미친 아이인가?)

토인들은 머리끝이 쭈뼛했다. 사자가 백인 아이의 주변을 천천히 돌더니 아이에게 다가섰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자와 아이는 나란히 바위 뒤로 사라져버렸다.

이 얘기를 전달한 보고가 목격자들이 두 손을 하늘에 올리고 <자기들의 얘기는 거짓이 없다고 맹세했다>고 말했다. 나도 그 얘기가 사실, 적어도 근거가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았다. 토인들이 본 사자는 킹이고 아이가 파트리샤라는 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30. 목격目擊

 

늦잠을 잤다. 나를 깨운 것은 원숭이 니콜라스가 아니고 운전사 보고였다.

식사 준비가 됐습니다.’

벌서 아침밥인가?’

아니요, 점심밥입니다. 지금은 정오가 지났지요.’

모래를 씹는 기분으로 식사를 마쳤는데 현관에서 맑은 소녀의 말이 들렸다. 들어가도 되느냐고 보고에게 묻는 소리였다.

파트리샤는 가죽점퍼를 입고있었으나 어머니와 같이 있었을 때의 예의가 베어있었다. 원숭이 니코라스는 어깨에 그리고 영양 신베린이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선생님의 체류기간이 오늘로 끝이나 연기조치가 되어있으니 원하는대로 머물러도 좋다고 말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녁식사에 초대했고요.’

고맙소. 두 분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오. 나는 좀 더 체류할 예정입니다.’

사무적인 얘기를 끝내고 말했다.

파트리샤, 넌 어떻게 생각해. 내가 더 머므르겠다는 거,’

왜 출발을 연기했지요?’

킹 때문이지. 나는 너와 친구 킹을 만나보고싶어. 우린 친구지? 친구의 친구는 친구고.’

그렇지만, 킹의 의사를 물어봐야 합니다.’

파트리샤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보고에게 위스키를 한 잔 가져오라고 하면서 파트리샤에게 뭘 좀 마시라고 했다.

보고, 레모네이드가 있을까 몰라?’

보고는 파트리샤가 오자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다가 파트리샤가 말을 걸자 펄쩍 뛰었다. 더듬더듬

아가씨, 그건 없지만 소다수가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소다수도 좋아. 설탕을 많이 타고 레몬을 넣어주면 . 그래주면 내가 레모네이드를 만들지요.’

파트리샤는 칵테일을 정성들여 만들었다.

오늘도 금렵구에 갔나?’

아니요. 오전에는 어머니 곁에서 공부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불쌍해요. 내가 공부를 하면 아주 기뻐하지만 . 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파트리샤는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수재秀才지요. 학교 다닐 때는 늘 우등생이었고. 역사, 지리, 수학 등 뭣이든 다 잘 해요. 나도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잘 해요. 이건 비밀이지만, 전에 제 아버지가 나를 나이로비에 보내 억지로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나는 거기서 다른 아이들 보다 더 공부를 잘 했지만 밀림에 오고싶어 못 한 체 했어요. 시험지에 아무 것도 기입하지 않았으니까 낙제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쫓겨나 되돌아왔습니다.’

우리들은 같이 웃었다. 소녀의 깜찍한 발상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음이 파트리샤의 감정에 영향을 주었다.

아까, 킹을 만나보고싶다고 했지요? 보고에게 자동차 출발준비를 시키세요. 빨리빨리!’

파트리샤는 니코라스를 어깨에서 내려 신베린의 등에 태우고 신베린의 엉덩이를 가볍게 치면서 지시했다.

둘 다 돌아가, 집으로 가!’

신베린이 니코라스를 등에 태우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나 혼자 같으면 걸어가는데 아저씨는 걷지 못할테니 .’

파트리샤가 휘파람을 불며 차에 올랐다. 보고는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엉거추춤 서 있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가씨?’

내가 기구유말로 말했다. 보고가 또 펄쩍 뛰었다. 공포로 일그러져 고함을 쳤다.

안 됩니다. 안 돼! 나는 그 밀림에 절대로 들어가기 싫어요!’

임마, 잔소리 말아! 넌 가자는대로 가면 돼!’

고함을 질러 보고를 제압했는데 그 때 또 말썽이 일어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절름발이 키호로가 한 손으로 차를 잡고있었다. 키호로는 관리인 브리트로부터 파트리샤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언제 어디서나 파트리샤를 따라다녔으므로 차에 동승同乘하려고 한 것이다.

파트리샤, 우리 키호로도 데리고 가자. 차를 타고싶은 거야.’

가장 불만은 보고였다. 주인의 엄한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기는 했으나 밀림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운 일인데 곁에 괴상한 와간바족 한 놈이 앉아있는 것은 더 무서웠다. 와간바족은 마사이 외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부족이다. 전쟁을 좋아하고 약탈을 일삼는 부족이다. 그러나 키호로는 얌전한 기구유 따위야 별 관심이 없었지만 비밀리에 아가씨를 보호해야 하는데 정체를 들어내 아가씨를 보호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백인 켓셀도 불안했다. 그래서 울쌍이었다.

저 꼴 좀 보세요. 우리속의 원숭이들 같지요?’

파트리샤가 키호로와 보고의 벌레 씹은 것 같은 표정을 보며 깔깔거렸다. 동정이 갔다.

키호로는 왜 저렇게 상처투성이야?’

모두 금렵구에서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곳을 금렵구로 지정했을 때 동물들에게 통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마음대로 금렵구를 지정했으나 동물들은 그걸 몰랐어요. 그래서 자기들을 보호하려는 키호로에게 덤벼들었어요.’

키호로, 너 얘기 좀 해봐!’

키호로의 목소리는 마치 뱃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부와나, 다리의 상처는 물소에게 물린 것이고, 허리뼈가 아스러진 건 라이노(코뿔소)가 밀어부쳐서 생겼습니다. 브리트나리가 총을 쏘지 않았다면 나는 .’

얼굴의 상처는 표범의 짓인 것 같은데 .’

, 내가 잘못 쏘았지요. 가슴팍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그 악착같은 놈이 덤벼들었습니다. 그 놈은 발톱으로 나를 할키고 나는 칼로 그 놈을 찌르고, 결국 그 놈은 죽고 나는 살았습니다.’

파트리샤가 만세!를 불렀다.

키호로는 정말 용감해요. 그렇지요, 아저씨?’

그래, 그러나 네 아버지는 더 용감해!’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파트리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건 달라요. 아버지는 용감한 게 아니라 잔인했어요. 아버지뿐만 아니라 최신제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는 백인들은 모두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토인들은 먹고살기 위해 동물과 싸우지만 백인들은 단순히 재미로 동물들을 죽이지요. 난 백인사냥꾼들은 모두 싫어요!’

파트리샤는 마구 고함을 지르다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듣고 있는 나를 보더니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물론 아저씨는 예외고 우리 아빠도 예외입니다. 아버지는 이제 동물을 보호하고 있으니까. 예전에는 좀 잔인한 일을 했지만 지금은 동물을 사랑합니다. 아저씨도 그렇지요?’

물론!’

우리 킹도?’

그럼.’

파트리샤가 바위 앞에서 차를 정지시켰다. 뒤를 따라오라고 한 뒤 숲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통과하지 못 할 가시덤불로 들어갔다. 나는 가시에 옷이 찢어지며 따라갔다. 뒤를 따라오던 키호로는 사라졌다. 앞서가던 파트리샤가 멈추며 속삭였다.

아저씨 권총을 버려요. 내가 얘기를 할 때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말아요. 내 말을 꼭 지켜야 합니다!’

파트리샤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권총을 버리고 기다렸다. 적도赤道 아프리카에서 가장 더운 시기에 깊은 숲속에 홀로 서있었다.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불덩어리처럼 타고 있었고 사방은 불붙는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잠시만에 땀을 비 오듯 흘렸고 현기증이 일어나고 경련이 일어났다. 그 때 기쁨에 넘치는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수많은 은방울이 한꺼번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소리에 응답하듯 울린 또 하나의 소리는 나를 경악과 공포속에 몰아넣었다. 그건 웃음소리였다. 분명히 웃음소리였으나 사람의 피를 말리는 무서운 소리였다. 사실 그건 웃음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소리였는데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성량이 풍부한 소리와 소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함께 울렸다. 웃음의 합창이 끝났을 때 파트리샤가 나를 불렀다. 나는 미끄러지고 비슬거리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잔디가 자란 공터가 나타났고 가지와 잎이 방사형으로 퍼져 마치 우산을 펴놓은 것처럼 그늘을 만드는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 그늘 아래 파트리샤가 앉아있었고 파트리샤 옆에는 커다란 사자가 누워있었다. 털이 반짝이고 갈기가 아름다웠다. 파트리샤는 사자에게 등을 기대고 있었으며 사자의 목털을 만지작거렸다. 킹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왕의 기품이 보였다. 사자가 나를 봤다. 드르르! 목을 굴리고 꼬리를 쳤다. 눈에 누런 빛이 일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공포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불현 듯 어떤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미친 소녀와 사자. 파트리샤가 억양없이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더 기다려요.’

파트리샤가 쥐고 있던 사자의 목털을 힘껏 잡아당겼다. 다른 손으로는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용해! . 저 사람은 우리의 친구야. 친구라니까, 친구!’

사자가 목털을 당기는 힘에 끌리듯 누웠다.

아저씨, 한 발 앞으로 나와요.’

나는 한 발 전진했다. 사자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눈은 여전히 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또 한 발.’

조심스럽게 또 한 발 전진했다. 파트리샤가 시키는대로 한 발 또 한 발 전진했다. 거리가 5m가 되었는데도 사자는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깜박이지도 않고 노려보는 노란 눈빛에 나는 몸이 마비되는 걸 느꼈다. 다만 기계적으로 파트리샤의 명령을 쫓을 뿐이었다. 그 순간에는 파트리샤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유일하게 사는 길이었다. 설사 미친 소녀라 하더라도 나는 계속 전진했다. 이젠 손을 내밀면 사자가 닿는 거리까지 왔다. 사자가 시선을 돌리더니 슬그머니 일어서려고 했다.

앉아! , 앉으라니까!’

파트리샤가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 소리에는 굉장한 자신과 위엄이 서렸다. 사자도 그 소리에 눌려 머리를 흔들면서 주저앉더니 아예 누워버렸다.

, 여기에 손을 얹어요.’

파트리샤의 말대로 나는 손을 사자의 머리에 얹었다.

쓰다듬어요.’

나는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대체 무슨 짓인가?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다니? 허허! 웃었다. 긴장이 풀렸다.

킹은, 처음에는 아저씨를 두려워했으나 이젠 수줍어하고 있어요. 아까 일어나려고 했던 것은 수줍어서 피하려고 했던 것이야요.’

사자는 수줍어하지도 않고 머리를 나에게 밀어붙이면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이제 다 알았다는 듯 크게 하품을 하고는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이젠 됐어요. 아저씨도 친구가 됐어요.’

파트리샤도 긴장이 풀린 듯 웃었다.

무서웠어요?’

지금도 무서워.’

나는 통쾌하게 웃었다. 내 웃음소리가 너무 높았던지 사자가 나를 나무라 듯 쳐다보았다. 파트리샤가 또 목털을 잡아당겼다. 사자는 안심한 듯 앞발을 쭉 뻗고 눈을 감았다.

됐어요. 킹이 아저씨를 알았어요. 냄새도 음성도 모든 것을 알았어요. 뭣 보다도 아저씨가 자기를 해치지 않는 친구라는 것을 .’

나도 안심하고 킹 옆에 앉았다. 사자는 눈을 떠 나를 빤히 보면서 점검했다. 나의 얼굴, , 손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나는 무섭지 않았다. 나는 사자의 눈에 뜬 친애감親愛感을 보았다. 킹의 눈속에는 호기심과 더불어 강자가 약자에게 보이는 관대함이 있었다.

(이 사람아, 이제는 겁낼 것 없네.)

파트리샤는 자신의 연출에 크게 만족했다. 킹의 배에 기대 양 다리를 쭉 뻗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원시의 숲과 사자 그리고 인간. 킹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목털을 가볍게 당겼다. 킹은 나를 보며 입을 반 쯤 벌렸다. 굵고 날카로운 하얀 이빨이 들어났다.

봐요. 킹이 아저씨를 보고 웃고있어요.’

나는 파트리샤의 말을 믿었다. 사자는 정말로 웃고 있었다.

난 아저씨를 킹에게 소개하기 위해 택일擇日을 했어요. 오늘은 킹이 한가로운 날이고 또 맛있는 먹이를 포식해서 기분이 좋아요.’

그 소리에 나는 내 처지를 떠올렸다.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포식동물 옆에 앉아있다. 이 짐승의 포효에 모든 동물들이 벌벌! 떠는데.

파트리샤, 파트리샤는 어떻게 킹의 친구가 되었어?’

파트리샤가 한동안 침묵했다. 말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다고 판단했다.

듣고싶어요? 그럼 얘기를 해주겠지만 비밀입니다. 어머니는 이 비밀이 밖에 새어나가 나이로비나 파리, 런던에 퍼지면 아마 자살할 것입니다. 유력한 명문 출신의 자기 딸이 사자와 같이 어울린다는 소문 말입니다.’

절대로 비밀은 지키겠다.’

키호로가 킹을 나에게 대려다주었을 때 킹은 젓먹이였지요. 굶주림과 병 때문에 겨우 숨만 붙어있었어요.’

파트리샤는 어머니가 성장한 아이의 과거를 회상하듯 자상한 눈으로 킹을 보면서 말했다. 키호로는 아버지의 조수였는데 관리소에서 머지않은 곳에서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태어난지 이틀 정도의 새끼가 구슬프게 울고있었다.

어째서 사자새끼가 거기 있었을까?’

두 가지의 경우지요. 사자의 어미가 금렵구로 나갔다가 총에 맞아 죽었을 경우, 어미가 새끼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버렸을 경우였다. 아마 후자의 경우가 맞을 거예요. 처음에는 큰 쥐만 했다. 뼈와 가죽뿐 몸에는 털 하나도 없었다. 너무나 가엾어서 시빌부인이 먼저 살려보자고 제의했다. 그 제안이 나중에 치명적인 상황으로 발전하는 건 몰랐다. 당시 열 살이었던 파트리샤는 어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자새끼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의 용인 아래. 파트리샤는 형제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기에 외롭게 자란 소녀는 사자새끼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우유를 먹였더니 의외로 힘차게 우유병의 고무젓꼭지를 빨았다. 살아날 가능성이 보였다. 어머니의 조언대로 규칙적으로 우유를 먹이고 간식으로 오토밀도 먹였다. 사자새끼를 품에 안고 잤다. 사자새끼는 파트리샤의 품을 파고들었다. 사흘 후에는 피부에 기름끼가 돌고 보드라운 털도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온몸에 털이 났다. 어디를 가거니 파트리샤를 졸졸 따라다녔고 손을 핥았다. 파트리샤의 열한 번째 생일에 키호로도 지켜보는 앞에서 파트리샤는 열한 개의 촛불을 껐고 사자새끼도 한 개의 촛불을 껐다. 사자새끼를 킹이라고 명명했고 뽀뽀를 했다. 사자새끼는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한 달만에 고양이만 했고 두 달에는 개만큼 컸다. 그리고 넉 달째에는 파트리샤가 등에 타도 끄떡없이 돌아다녔다. 파트리샤는 킹과 붙어살았다. 달리기도 하고 응접실에서 뒹굴었다. 이 때부터 시빌부인의 표정에 우려의 빛이 보였다. 시빌부인이 파트리샤에게 말했다.

파트리샤, 내일부터는 킹을 바깥에서 재워라!’

엄마, 킹은 아직 새끼인데 .’

아냐, 이젠 다 큰 사자야.’

킹이 바깥에서 자게되었어도 파트리샤와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시빌부인은 점점 우울해졌다. 다 큰 사자와 껴안고 뒹구는 꼴이 보기 싫었고 불안했다. 6개월이 되자 시빌부인의 불안은 공포로 변했다. 킹이 어른사자가 된 것이다. 킹은 당당한 숫사자였다. 야생사자 보다도 몸집이 월등하게 크고 힘도 셌다. 그러나 파트리샤에게는 어린사자처럼 졸졸 따라다니고 파트리샤의 눈치를 봤고 파트리샤의 명령에는 절대복종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어린시절과는 달리 파트리샤에게 상처를 입힐 염려가 있어 밀거니 때릴 때는 각별히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시빌부인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 시빌부인에게 킹은 다른 사자와 똑같이 보였고 위험했다. 야만인野蠻人처럼 사자와 어울린다는 일 자체가 모욕이었다. 그래서 딸에게 킹하고 어울리는 걸 금지시켰다. 파트리샤는 엄마의 명령에 복종했다. 파트리샤는 킹과 놀지 않았다. 적어도 시빌부인이 볼 수 있는 낮에는. 어느 날 시빌부인은 밤 2시께 잠이 깨어 마당으로 산책을 나갔다. 달밤이었으므로 사자우리에 사자가 아닌 그림자를 보고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사자가 가축을 잡아온 것으로 여겨 키호로를 깨워 가축을 구조했는데 사자우리에서 나온 것은 가축이 아니라 파트리샤였으므로 부인은 기절했다. 이튿날부터 시빌부인은 남편 브리트에게 덤벼들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에 브리트도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 숲에 사는 사자는 숲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시빌부인의 주장이 관철되었다. 킹을 트럭에 태워 밀림에 방면하는 날 파트리샤는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킹이 그냥 있지 않았다. 밀림 깊숙이 방면된 킹이 집 부근을 돌아다니면서 밤새 슬프게 울었다. 낮에는 사라졌다가 밤이 되면 되돌아왔다. 시빌부인은 사자소리가 들릴 때마다 히스테리가 폭발했는데 일주일이 지나자 사자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제 되었어. 우리집에 평화가 왔어.)

시빌부인이 기뻐했으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파트리샤가 자기 몰래 밀림에 들어가 사자와 밀회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뭇 맹수들이 우굴거리는 밀림으로? 사태가 더 악화되었다. 시빌부인이 파트리샤에게 진상을 추궁을 했으나 소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시빌부인이 지쳤다. 그래서 상대가 남편으로 바뀌었다. 브리트는 표면적으로는 모른 체 하였으나 딸 편이었다. 브리트는 딸도 킹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이를 깨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극성스러운 부인의 히스테리에 이기지 못 해 딸을 나이로비의 학교에 보내는데 동의했다. 파트리샤는 어머니의 처사에 침묵으로 대항했다. 나이로비로 떠나던 날 파트리샤는 프랑스식 우아한 치장을 하였으나 엄마에게는 물론 아빠에게도 작별의 키스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로비 기숙사에 들어간 뒤에도 침묵은 계속되었다. 물론 공부도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흥미를 보인 것은 동물학이었는데 동물학도 시험 때는 다른 학과와 마찬가지로 한 문제도 쓰지 않아 영점이었다. 학교에서 더 이상 받아드릴 수가 없어 권고퇴학을 시켰다. 파트리샤는 킬리만자로에 돌아왔는데 돌아온 날 벌써 킹을 만났다. 킹은 1년만에 파트리샤를 만나자 미친 듯이 날뛰며 기뻐했다. 마치 강아지처럼 따라붙었다.

친구를 다시 찾았어요. 매일 킹과 만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알고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지 못 해요.’

그래도 사자가 혹시 굶주린다거나 화가났을 때는 위험하지 않을까?’

나의 반문이 파트리샤를 화나게 만들었다.

아저씨, 보세요!’

소녀는 갑자기 공중에 뛰어올라 사자의 등에 떨어졌다. 그리고 두르르 굴러내렸는데 사자가 얼핏 앞발로 소녀의 몸을 잡았다. 소녀가 다시 재빨리 일어나더니 양 주먹으로 힘껏 사자의 배를 후려쳤다. 그리고 사자의 등에 오라타고 갈기를 잡아흔들었다.

, 덤벼라! 이 녀석, 덤벼!’

사자가 아픈 듯 머리를 흔들더니 옆으로 누워 소녀가 덤벼들지 못 하게 앞발을 쑥 내밀었다. 그리고 큰 입을 쫙 벌렸다.

(이크, 큰일 났구나!)

난 기겁을 했다.

(키호로, 키호로. 어디있어 키호로. 총을 쏘아!)

속으로 외쳤는데 딱 벌어진 사자의 입에서 굵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웃음이었다. 파트리샤는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소녀는 계속 공격했다. 이번에는 사자도 응수를 했다. 거대한 두 앞발을 내밀어 소녀가 접근하는 것을 교묘하게 막았다. 발톱을 감춘 부드러운 앞발은 소녀의 몸을 슬금슬금 밀어내면서 자기 몸을 방어했다. 소녀는 사자의 방어에 더욱 약이 올랐다. 그래서 머리를 숙이고 돌진했다. 사자는 앞발로 소녀의 머리를 잡을 수 없어 돌격을 허용했다. 한 덩어리가 된 사자와 소녀는 난타전을 벌였다. 소녀의 일반적인 승리였다. 이 놀이가 끝나자 소녀는 사자의 배에 기대 누웠다.

아저씨, 이제 킹과 접견은 끝났어요. 이후에는 킹을 겁낼 필요가 없어요. 이만 돌아가세요.’

소녀는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가르켜준 다음 사자의 등에 타고 사라져버렸다.

 

31. 마사이족

 

파트리샤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줄을 지어 행진하는 마사이족을 만났다. 마사이는 수렵족이므로 빈번하게 주거지를 옮겼다. 한 장소에서 사냥을 하고 살다가 사냥감이 없어지면 가제도구家製道具를 이고 이사를 했다. 집은 나무와 풀로 만들었고 가제도구라야 냄비 몇 개였으므로 그들은 수시로 이사를 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난에 시달린 표정이나 비굴한 표정은 전혀 없었고 남녀노소 모두가 자존심으로 충만한 모습이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려는 이들처럼 마음이 풍부한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으리라. 차의 속도를 늦추고 그들 옆을 지나가면서 <구와헤리(안녕)>라고 인사를 했다. 노인과 아이들은 정답게 인사를 받았다. 차는 행렬을 앞질러 약 5Km 정도 나갔다. 그 때 앞 숲에서 번쩍이는 창을 봤고 마사이가 서너 명 숲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보고가 설명했다. 그들은 선발대이며 정찰을 하고, 야영장소를 찾고, 그 날 먹을 양식을 사냥한다. 모라네(전사戰士)라고 부르는 그들은 옛날 같으면 다른 부족을 약탈하였는데 지금은 사냥만 한다. 차를 정지했다. 그리고 단신 선발대가 움직이는 숲으로 갔다. 모라네는 그물을 던지는 방식으로 동물이 있을만한 숲을 포위한다. 차츰 포위망을 압축시켜 조여들면 포위된 동물들이 탈출을 기도企圖하는데 그 때 모라네들이 던지는 창에 잡혔다. 그 날의 사냥은 포위망이 20m 이내로 압축되었으나 키가 큰 잡초와 바위 그리고 나무들이 있어 사냥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모란은 내가 접근하는 것을 봤으나 지휘자노인 - 언젠가 숲에서 인시를 했던 올가루가 눈짓으로 제지하자 모두 모른 체 하고 몰이에 열중했다. 올가루는 오랜 경험으로 내가 별로 환영할 사람은 아니나 적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라네가 포위한 숲에서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심상찮은 요기妖氣가 떠돌았다. 사냥꾼만은 그 요기를 느낄 수 있다. 맹수猛獸의 냄새, 맹수의 숨소리 그리고 깊은 침묵이 요기의 본질이다. 사람의 코는 냄새를 맡는데 빈약한 감각기관으로 퇴회했다. 그러나 대형 맹수가 가까이 있을 때는 희미하게나마 맹수 특유의 시큰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맹수의 숨소리도 고막에 전달된다. 깊은 침묵이란 맹수가 있으면 새, 원숭이 등 소동물들이 모두 달아나버리기 때문에 생긴다. 나는 그 때 그 요기를 느꼈다. 숲 한가운데 자그마한 바위 부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란들의 시선도 거기에 집중되었다. 모란들이 모두 일어섰다. 완전히 포위했으므로 숨을 필요가 없었다. 포위망이 압축되고 리더가 긴 창을 던졌다. 휘루르! 소리를 내며 날아간 창은 숲 가운데 떨어졌다. 일부러 위협을 하기 위해 만든 창이었다. 창이 떨어지자 부근의 숲이 파도처럼 울렁거리며 움직임이 있었다. 표범이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다. 나는 순간 아찔했다. 표범을 사냥하기에 모라네의 수가 너무 적었다. 저녁거리를 사냥하려다가 맹수를 만났다. 그러나 모라네는 표범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은 리더의 신호를 따라 <이어이! 이어이!> 기성奇聲을 지르며 포위망을 압축했다. 그 때 숲에서도 크윽! 하는 표범의 포효가 터졌고 표범이 뛰어올랐고 모라네의 창들이 날았다. 그러나 표범은 잽싸게 바위틈에 숨었으며 창들은 바위 위에 불꽃을 내며 떨어졌다. 표범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무공처럼 탄력있게 바위틈에서 튀어나와 모라네의 정면 즉 내가 서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동시에 모라네가 표범에게 덤벼들었다. 모라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칼을 휘두르며 돌진하는 표범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미 공중을 날던 표범이 모라네에게 덮쳤다. 모라네는 왼팔을 굽혀 내밀면서 오른 손에 쥔 칼을 표범을 향해 내리쳤다. 표범의 앞발이 모라네의 왼팔을 할킨 것과 모라네의 칼이 표범의 어께를 친 것이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모라네와 표범이 동시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는데 일어서는 동작은 표범이 빨랐다. 늦게 일어나 싸움의 자세를 잡지 못 한 모라네에게 표범이 덤볐다. 찰라, 내가 권총을 발사했다. 불과 6 - 7m였으므로 권총탄환이 표범의 가슴을 뚫었다. 표범이 다시 쓰러졌고 뛰어든 모라네들에게 난도질을 당했다. 리던 올가루노인이 고함을 쳐 난도질을 제지시켰다. 나는 얼핏 그 용감한 모라네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모라네는 진흙과 기름이 두껍게 발라진 헝겊이 둘둘 말려있었기 때문에 상처가 깊지 않았다. 모라네는 올가루노인과 같이 있었던 오륜가였다. 오륜가는 분노에 찬 얼굴로 나에게 덤벼들려고 했으나 올가루노인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주춤했다. 그리고 차디찬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는 내가 총을 쏘아 표범을 쓰러뜨린 것이 불만이었다.

(? 남의 사냥을 방해했느냐?)는 태도였다. 그러나 영리한 올가루노인은 나의 총질이 오륜가를 살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짓으로 죽은 표범을 반으로 나누어 갖고 가든지 껍질을 가져가라고 제안했다. 나는 그의 손짓 몸짓을 겨우 알아차리고 다 가지라고 하고 돌아섰다. 방갈로에 돌아와 피곤하여 꿈도 꾸지 않고 잤다.

이튿날, 요란스러운 소녀의 웃음소리에 잠이 깼다.

! ! !’

소녀는 손으로 권총 모양을 하며 고함쳤다.

아저씨는 권총의 명수라고 해요. 마사이는 장총을 쏘는 것은 봤으나 권총 쏘는 것은 처음 봤으며 권총이 연달아 발사되는 것을 보고 놀랐답니다. 아버지는 죽은 표범의 몸을 조사하고 세 발의 총탄이 모두 표범의 심장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어요. 아저씨 권총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했어요.’

내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파트리샤, 너는 내가 표범을 죽였는데도 비난하지 않니?’

그건 정당방위입니다. 그리고 나는 표범이 싫어요.’

파트리샤, 오늘은 나에게 구경시켜줄 게 없느냐?’

파트리샤의 큰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움직이더니 자신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마사이로부터 초청이 왔어요. 마사이마을에 갑시다. 그들은 오늘 새 정착지로 이사를 했어요.’

마사이마을로 차를 몰았다. 키호로가 어느 새 나타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금렵구 내 나무들이 없는 벌판에 올가루노인이 새 정착지를 만들고 있었다. 마사이는 초원에 마을을 조성했고 부근에 마실 물을 확보했다. 우리들의 뒤를 보고와 키호로가 따라왔는데 마음이 심란하다고 얼굴에 씌어있었다. 보고는 마사이와 접촉을 꺼렸고 기구유는 수백 년 동안 마사이의 침략을 받았다.

아저씨, 보고는 겁을 먹고있지만 키호로는 와간바며 와간바는 마사이에게 대항한 부족입니다. 마사이는 창을 잘 쓰고 와간바는 활을 잘 쏩니다. 아프리카에서 마사이에 대항하는 부족은 와간바 뿐입니다. 키호로는 마사이에 겁을 먹지 않습니다. 단지 싫을 뿐입니다.’

마사이마을에 들어서자 환영을 받았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의 백인에게만 인사를 했다. 보고는 인사 따위는 관심 없고 언제나 내 등 뒤에 섰다. 키호로는 마사이를 외면했다. 마을은 맹수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가시덤불에 둘러싸이고 지붕을 만들 소똥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코를 싸쥐었으나 파트리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사이는 영리합니다. 소똥으로 집을 만드니까요.’

서너 명의 사내들이 나뭇가지로 집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가시덤불로 아치형 지붕을 만들었다. 올가루노인의 지휘에 따라 남녀 모두가 달려들어 소똥을 지붕 위에 발랐다. 찐득찐득한 소똥은 강한 햇볕에 금방 말랐다. 소똥을 다시 한 번 더 지붕에 발랐다.

‘2 - 3일 지나면 소똥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집니다. 냄새도 없어지고.’

모라네의 생활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모라네들이 소 우리에 있었다. 모두 젊고 건강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가려뽑은 용감한 젊은이들이며 용사고 귀족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미혼未婚입니다. 마사이의 여자는 열두서너 살 되면 시집을 가지만 몇몇은 시집을 가지 않습니다. 그녀들은 장차 모라네들과 결혼할 특수층입니다. 가장 예쁘고 부지런한 귀부인들인데 모라네의 수양修養이 끝나기를 기다려 결혼을 합니다.’

수양?’

일종의 수도修道생활입니다. 잠자리, 먹는 것에서부터 엄격한 규율에 따라야 합니다. 옛날에는 창과 칼로 사자를 한 마리 죽이기 전에는 수양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완화되어 사냥에서 훌륭한 공적을 세우면 수양이 끝나지요.’

모라네는 우리들이 접근해도 모른 척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거나 당황해서는 안 되는 규율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소에게 접근해서 창끝으로 소의 목덜미에 작은 상처를 내고 피를 빨아먹었다.

그들은 아침에는 소피를 마시고 저녁에 우유를 마시는 것 외에 수양기간 동안에는 어떤 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건강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졌으며 온몸이 근육질이었다. 특히 오륜가의 몸은 훌륭했다. 오륜가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가슴을 펴고 유유히 지나갔다.

그는 이 마을의 영웅입니다. 그는 이미 몇 번의 공적을 세웠으나 사자를 한 마리 죽이기 전에는 수양을 계속하겠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가장 용감하나 가장 위험한 사내입니다.’

마사이마을 구경을 끝내자 다시 차를 몰았다. 파트리샤는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차가 파트리샤의 명령에 의해 한참 달려가더니 언젠가 가보았던 바위산 앞에 정지했다. 높은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니 서쪽에 강이 있었고 그 부근에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몰려있었다. 코끼리, 얼룩말, 영양, 기린 등등.

지금은 식사가 끝나고 물을 마시는 시간입니다.’

동물들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파트리샤가 키호로에게 지시했다. 키호로가 들판으로 걸어가더니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저쪽 숲에서 커다란 사자가 뛰어나와 전속력으로 키호로에게 덮쳐들었다. 킹이라는 걸 알았으나 무서운 속도에 겁을 먹었다. 사자는 키호로 바로 앞에서 멈췄고 키호로는 사자의 커다란 머리를 양손으로 껴안았다.

킹은 키호로가 생명의 은인恩人이라는 걸 알고있어요.’

키호로가 킹을 데리고 왔다. 킹은 흥흥거리고 내 주변을 돌면서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들고 쳐다보며 아는 체 했다.

킹이 사냥을 해야 합니다.’

사냥해야 할 때?’

그럼요. 킹도 먹어야 살아갈 것 아닙니까? 우리는 킹의 사냥을 도와줍니다.’

어떻게 킹의 사냥을 돕는다는 것인지 랑 수 없었으나 키호로가 숲 저 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짐작했다. 키호로는 서 아프리카의 유명한 몰이꾼이었다. 파트리샤는 킹의 갈기를 잡고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약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서너 마리의 들소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키호로는 표범처럼 빠르게 달리며 들소를 우리가 숨어있는 곳으로 몰아넣었다. 20m 쯤 거리가 좁혀지자 파트리샤가 킹을 놓아주었다. 휘파람을 불며 킹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킹은 대포알처럼 돌진했다. 킹은 들소들 중에서 가장 큰 놈을 노렸다. 들소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사자를 보자 방향을 바꿔 달아났다. 코에서 거품을 내뿜으며 발굽으로 힘차게 땅을 찼으나 사자가 들소 보다 빨랐다. 사자의 발굽은 딱딱한 들소의 발굽에 비해 고무처럼 탄력이 있었으며 공처럼 공중에 튀어올라 도약했다. 사자가 들소와 간격이 좁혀지자 무서운 힘으로 들소의 등에 뛰어올랐다. 들소가 휘청거렸으나 넘어지지 않고 달렸다. 사자의 발톱이 들소의 가죽을 뚫고 박혔으므로 들소는 떨어지지 않았다. 달리는 중에 사자는 자기 무게로 들소에게 중압重壓을 가하면서 들소의 목덜미를 물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는 목덜미를 깊이 물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들소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킹은 쓰러진 들소의 목줄 - 동맥動脈과 식도를 물어뜯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끝났어요.’

파트리샤의 차가운 말투였다. 킹이 들소를 추격하자 소녀는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추격을 보고 있었다. 야생의 살육자와 같은 눈빛이었다. 킹이 들소의 목덜미를 물었을 때는 잔인한 미소가 떠돌았다. 나는 옆에 있는 소녀가 무서워졌다.

파트리샤, 난 저런 구경을 싫어. 저런 구경을 사절謝絶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구경을 보고싶다.’

왜요?’

차가웠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쳤다. 순진한 소녀의 눈동자였다.

파트리샤, 넌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했지?’

.’

그래서 킹도 사랑하는 거지. 그러나 킹에게 잡혀먹힌 저 들소는 어떻게 생각하나?’

.’

저 들소도 동물이고 살아갈 권리가 있어. 동물을 사랑하는 우리는 들소도 보호해야 하고. 그러나 넌 들소를 킹에게 몰아줬다.’

아저씨, 그건 자연입니다. 킹도 다른 맹수처럼 들소사냥을 할 권리가 있고 저 들소는 그 대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32. 질투嫉妬

 

방갈로에 돌아와 뜨거운 목욕물에 오래토록 몸을 담궜다. 그 대 브리트가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쇠똥냄새가 몸에 스몄을 것입니다.’

그의 굵은 목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우리가 베란다에 나가 위스키를 마시고 있을 때 10여 명의 토인들이 경비원과 같이 왔고 키호로도 달려왔다. 키호로가 토인들을 대변代辯하듯 뭔가 호소했는데 몹시 흥분했다. 그들은 와간바 대표들인데 마사이가 그들의 소를 훔쳐갔다고 떠들었다. 키호로도 와간바였기 때문에 그들의 편을 들고. 브리트가 현지에 가서 조사를 하기로 했다. 브리트, , 키호로 그리고 대표 3명이 랜드로버를 타고 마사이마을로 달렸다. 브리트는 잡초와 바위 투성이, 요철凹凸이 심한 그 험한 길에서도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는데 믿을만한 운전솜씨였다. 마사이들의 쇠똥집은 거의 말라 냄새가 심하지는 않았다. 가장 큰 쇠똥집에 부락장 올가루노인이 있었다. 올가루노인은 이사를 하고 일을 하다가 넘어져 옛날 사자와 싸워 다친 가슴이 벌어져 벌겋게 피가 베어나왔다.

우리들이 소속불명의 소들을 끌고온 것은 인정하나 그 소가 누구의 것이며 몇 마리인지는 모르니 소들이 있는 목초지까지 같이 가자.’

목초지에는 그 정체불명의 소가 두 마리 있었고 부근의 나무그늘에 모라네 세 명이 쉬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말썽장이 오륜가였다. 그들은 일행을 보고도 모른 체 했다. 오만불손傲慢不遜한 태도였다. 올가루노인이 오륜가를 보고 말했다.

저 소는 네가 끌고온 것이지?’

오륜가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아니다!)

라는 뜻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브리트가 화를 냈다.

소 두 마리를 끌고오지 않았다고? 마사이 중에서 거짓말 한 놈은 처음인데 .’

우리들이 끌고온 소는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야.’

오륜가가 경멸하는 듯한 투로 대답했다.

와간바들이 고함을 지르며 욕을 했다. 모라네는 대꾸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하늘만 쳐다보았다. 와간바 따위 하고는 말도 하지 않겠다는,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였다. 브리트가 와간바의 소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와간바들이 기뻐하며 소를 몰고 돌아가려고 했을 때 갑자기 오륜가가 창을 던졌다. 너무 순간적으로 민첩한 행동이었으므로 제지할 시간도 없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창이 소의 심장을 찔러 소가 쓰러져 죽었다. 위기에서 브리트가 냉정하게 움직였다. 브리트가 와간바와 마사이 사이에 들어가 고함을 쳤다.

키호로! 그 총 내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내가 발사한 권총은 오륜가의 다음 동작을 제지시켰다. 오륜가는 첫 번째 창을 던진 후 두 번째 창을 뽑아 던지려다가 뿅! 하고 자기 발밑에 퉁기는 권총탄환에 놀라 멈칫했다. 오륜가의 심장을 노렸던 키호로도 총구를 내렸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가 사라졌다. 창을 내린 오륜가는 다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브리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올가루노인이 나섰다. 올가루노인은 <와간바놈들에게 사과를 할 수 없으나 백인손님들에게는 정중하게 사과한다>고 말한 다음 <보호관이 와간바에게 죽은 소값을 변상해주면 마사이가 보호관에게 보상하겠다>고 덧붙였다. 보상금을 주더라도 직접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브리트는 올가루노인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됐소. 이의없지요? 노인은 그 상처를 빨리 치료하시오.’

랜드로버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서 파트리샤를 만났다. 우리가 돌아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 아저씨에게 금렵구밀림을 구경시켜드려요. 아버지의 영토 구석구석까지.’

밀림을 대부분 구경했기 때문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잘못이었다. 내 생각이 잘못이라고 느꼈을 때 나는 매우 즐거웠다. 나의 착가은 먼저 랜드로버에 대한 인식이었다. 대형 지프 정도로 여겼던 랜드로버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있었으며 차체車體가 강판鋼板이었다. 두 번째는 브리트의 운전솜씨였다. 차가 출발하자 파트리샤가 아버지의 옆에 딱 붙어있었는데, 차는 길이 없는 밀림으로 돌진했고, 키 보다 큰 잡초를 통과하고, 뒷다리로 일어서는 말처럼 높은 지대를 오르고, 작은 개울을 뛰어넘었다. 아찔한 산정에 올랐다가 계곡으로 내려왔고 넓은 들판을 달렸다. 들판에는 많은 짐승들이 있었는데 랜드로버는 뛰어오르고 빙빙돌며 짐승들을 덮쳤다. 기겁을 한 짐승들은 달아나다가 서로 부딪혀 쓰러지고 넘어졌다.

! 저 얼룩말은 빨라요. 영양을 보세요. 얼마나 높이 뛰는가.’

파트리샤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브리트는 다른 인간들이 동물을 놀라게 하면 화를 내지만 자기 자신은 마음대로 횡포橫暴를 부렸다. 보호해주는 권리일까? 야성野性의 발로發露일까? 어느 정도 즐기자 브리트와 파트리샤가 서로 눈짓을 했다. 브리트가 파트리샤에게 뭔가를 속삭이자 파트리샤의 눈에 웃음기가 가득찼다.

좋아요! 아버지, 좋아요. 그리로 갑시다!’

차가 더 넓은 초원으로 나왔다. 세 마리의 코뿔소가 있는 10m 쯤에서 차는 속도를 줄였다. 주위를 빙빙 돌았다. 코뿔소는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머리를 들고 차를 따라 돌았다.

저 놈들은 난폭해서 코끼리에게도 덤벼듭니다. 아버지, 코뿔소와 코끼리가 싸운 얘기를 해드리세요.’

몇 년 전, 브리트와 시빌부인이 높은 바위에서 망원경으로 금렵구를 살피다가 코뿔소와 코끼리가 정면대결을 하는 걸 봤다. 코뿔소는 지독한 근시였고 코끼리도 그다지 눈이 밝지 않았는데 밀림에서는 둘 다 절대로 길을 양보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부랑浮浪코끼리 - 무리에서 쫓겨나 혼자 살아가는 코끼리로써 무엇이든 보면 짓밟는 무서운 놈이었는데 길을 터주지 않자 성미 급한 코뿔소가 머리를 흔들며 위협을 하더니 슬금슬금 코끼리에게 다가갔다. 코끼리가 코를 쳐들어 코뿔소의 어깨를 쳤다. 그 타격으로 코뿔소가 서너 발 물러섰다. 브리트는 그것으로 싸움이 끝난줄 알고 망원경을 내렸는데 <둘이 싸운다!>고 시빌부인이 소리쳤다. 코뿔소가 돌격을 했다. 그러나 코끼리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긴 코로 무모한 도전자를 응징膺懲했다. 타격이 커서 코뿔소는 무릎을 꿇었으며 후퇴했다.

(이젠 끝났겠지?)

예상은 틀렸다. 코뿔소가 다시 돌진을 했다. 또 코끼리의 코에 맞았으나 또다시 돌진했다. 코끼리가 코를 코뿔소의 가슴에 대고 돌진을 막으려고 했으나 코뿔소가 코끼리의 배를 들이받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코끼리가 두서너 발 후퇴했는데 배가 찢어져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코끼리가 아픔과 노여움에 떨며 고함을 지르더니 코로 코뿔소의 앞다리를 감아 잡아당기자 코뿔소가 넘어졌다. 코끼리는 증오에 미친 듯 코뿔소를 짓밟았다. 밟고 또 밟아 코뿔소의 내장이 쏟아졌다. 코뿔소는 응징을 받았으나 코끼리도 중태였다. 그대로 놔두면 분노 때문에 온 밀림을 쑥대밭으로 만들 위험이 있었다. 브리트가 달려가 사살했다. 얘기를 할 동안 천천히 코뿔소 주위를 맴돌덤 랜드로버가 코뿔소를 향해 돌진했다. 코뿔소도 흥분했다. 돌진하는 랜드로버에게 정면에서 돌진했다. 랜드로버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코뿔소를 피했다. 마치 스페인의 투우사처럼. 얼마나 가까이 접근했던지 나는 코뿔소의 입김과 냄새를 맡았다. 이에 다른 두 마리가 돌진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세 마리가 돌진했다. 랜드로버는 울퉁불퉁한 지면에서 두 바퀴로 뛰어오르고 뱅뱅 돌며 코뿔소와 숨자꼭질을 했다. 만약 랜드로버가 고장이 나거나 코뿔소와 충돌이라도 하면 우리는 모두 죽는 몸이었는데 브리트는 웃으면서 죽음의 놀이를 즐겼다. 코뿔소가 랜드로버 보다 먼저 지쳤다. 배를 씰룩거리며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입에서 허연 거품이 쏟아졌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고 그래도 그 날카로운 뿔만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브리트는 차를 초원으로 몰았다. 영양, 얼룩말, 타조들이 수백 마리 뛰놀고 있었다.

아빠, 스톱!’

파트리샤가 천천히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동물들은 파트리샤를 보면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영양은 파트리샤 주위를 빙빙 돌면서 반기는 것 같았다. 파트리샤는 영양의 머리를 쓰다듬고 풀을 뜯어 얼룩말에게 주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동물들은 쉴 새 없이 파트리샤 주위에 몰려왔다. 얼마 후에 파트리샤는 수십 마리의 동물들에게 둘려싸였다. 마치 싸인공세를 받는 인기여배우 같았다.

아빠, 저 꼬리 끝이 잘린 얼룩말은 병에 걸렸어요. 그리고 저 영양은 아기를 가졌고.’

알았어. 키호로에게 약을 주지.’

우리는 다시 넓고 넓은 초원을 달렸다.

아빠, 어디로 가지?’

얼마 쯤 달렸을 때 브리트가 딸의 어깨를 치며 전방을 가리켰다. 밀림 속에 까만 점이 보였다. 그 점이 움직이고 점점 커졌다.

킹이다, 아빠. 킹이야!’

킹이 틀림없어.’

킹이 왜 이 곳에?’

킹은 어젯밤에 바위산에서 여기로 이사를 했어. 경비원에게 보고를 받았지.’

사자는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고 날았다.

아빠, 킹에게 좀 운동을 시킵시다.’

브리트가 차를 돌리면서 킹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했다. 차가 처음에는 천천히 가다가 차츰 속력을 높혔다. 차가 전속력이 되자 킹도 전속력으로 달렸다. 무서운 속도였다. 차와 사자의 경주는 3분간이나 지속되었는데 사자의 입에 거품이 허옇게 나오자 차의 속력을 줄였다. 사자는 뒷다리로 벌떡 일어서 브리트의 어깨에 앞다리를 걸쳤다. 코를 브리트의 얼굴에 비볐다. 사자의 붉은 털과 브리트의 머리칼이 뒤엉켰다.

마치 두 마리 사자 같아요.’

어느 쪽이 강한지 싸움을 해볼까?’

덤벼라!’

브리트가 사자에게 명령했다. 사자는 브리트의 자세를 보더니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간파했다. 하늘을 보며 한 번 울부짖었다, 가소롭다는 듯. 브리트가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사자가 뒷발로 일어서 앞발로 브리트의 어깨를 짚어 넘어뜨리려고 했다. 브리트는 사자의 허리를 껴안고 몸을 틀어 넘기려고 했다. 사람과 사자의 씨름이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다. 사자에게는 장난이었다. 또 사람의 약점을 알고 있어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사자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브리트가 속임수를 써서 허리를 잡고있던 손으로 사자의 뒷다리 하나를 힘껏 잡아챘다. 사자가 나가떨어졌다. 어처구니 없다는 듯 하늘을 보며 입을 벌렸다. 그 꼴을 보고 사람들도 웃었다. 그러나 키호로는 웃지 않았다. 저쪽 밀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브리트는 키호로의 그런 태도에 주목했다.

(뭘까?)

파트리샤는 눈치를 채지 못 하고 이번에는 내 차례라는 듯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키호로가 파트리샤의 팔을 잡았고 동시에 무서운 포효가 들렸다. 노기에 찬 위협이었다. 두 마리의 암사자였다. 노여움에 머리를 흔들면서 이빨을 들어냈다. 암컷 뒤에 서너 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암사자는 킹의 마누라들인 것 같았다. 남편이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질투에 불타있었다. 나는 파트리샤를 보았다. 소녀는 어떤 사태인지 알아차렸다. 파트리샤의 얼굴이 가면假面처럼 얼어붙었다. 킹도 사태를 안 것 같았다. 그는 암사자를 보다가 소녀에게 눈을 돌렸다. 킹은 입장이 곤란한 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파트리샤의 눈치를 살피면서 천천히 암사자들에게로 걸어갔다. 파트리샤는 입술을 깨물고 보고 있었다. 브리트가 딸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말했다.

허어, 그 녀석. 초청장도 보내지 않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았어.’

브리트의 조크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차가 아까 암사자들이 나왔던 밀림 부근을 달리고 있을 때 파트리샤가 고함을 쳤다.

차 세워주세요!’

브리트가 딸의 말을 못 들은 체 했는데 파트리샤가 신경질을 냈다.

차를 세워달라고 하지 않아요. 세우지 않으면 뛰어내리겠어요.’

파트리샤는 거의 발작상태였다. 파트리샤가 차에서 내리며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나를 보더니 생각을 바꾼 듯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따라와도 괜찮아요. 아저씨는 .’

브리트가 나에게 따라가라고 눈짓을 했다. 파트리샤와 나는 밀리속으로 들어갔다. 물론 키호로도 미행을 할 것이다.

 

보세요. 저기 숲이 있지요? 저기는 사자들의 영토입니다. 아저씨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나를 큰 나무 밑에 남겨두고 파트리샤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에 들어간 파트리샤가 손을 나팔처럼 입에 대고 휘파람을 불었다. 두 개의 짤막한 울부짖음이 대답했다. 증오가 터져나오는 노호怒號였다. 목털을 곤두세운 암사자 두 마리가 숲에서 튀어나와 아가리를 벌리고 파트리샤에게 덤벼들었다. 그 때 더 크고 더 무서운 노호가 터졌다. 킹은 두서너 번의 도약으로 암사자와 파트리샤 사이에 뛰어들었다. 우우우! 하며 암사자들에게 경고했다. 암사자들이 앙칼진 소리를 내며 킹을 밀치고 파트리샤에게 덤벼들 기세였다. 킹이 대노大怒했다. 앞발의 발톱을 세워 암사자를 목덜미를 쳤다. 목덜미에서 피가 흘렀으며 암컷은 아픔과 분노로 앙칼지게 울며 물러섰다. 또 한 마리 암컷은 겁을 먹고 숲으로 사라졌다. 싸움을 보고있던 파트리샤가 휘파람을 불었다. 킹이 빠르게 파트리샤에게 왔다. 소녀가 사자를 쓰다듬었다. 킹이 누웠다. 소녀는 사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소녀는 암사자들이 있는 숲을 적의에 찬 눈으로 보고있었다. 으르렁거리던 암사자들이 단념한 듯 숲이 조용해졌다. 팔자 탓이라고 체념했을까? 암사자들과 파트리샤의 싸움에서 파트리샤가 승리했다. 소녀는 만족스러운 듯 킹의 앞다리를 베고 누어 잠이 들어버렸다. 나느 소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자리를 떴는데 금속성소리에 멈추었다. 창끝이었다. 불과 3 - 5m 떨어진 나무 뒤에 누군가 숨어서 사자와 파트리샤를 보고있었다.

 

33. 오륜가

 

마사이 용사 오륜가였다. 검은 대리석조각彫刻처럼 움직이지 않고 잠자는 파트리샤를 보고있었다. 그는 자기를 보고있는 나에게는 전혀 무관심이었다. 내가 일부러 라이터에 불을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으나 보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무렵 파트리샤가 일어났다. 소녀는 만족스러운 듯 킹을 돌려보내고 말했다.

돌아갑시다.’

4시간 이상 걸었다. 나는 몸도 정신도 피로했으나 파트리샤는 휘파람을 불었다.

아저씨, 봤지요? 킹의 충성심을

소녀의 말을 듣는둥마는둥 나는 오륜가에 골몰했다. 왜 거기에 있었을까? 사자를 잡으려고 따라왔을까?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걸까? 오륜가에게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잠이 들기 전까지 오륜가를 생각했다. 킬리만자로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파리에서 중요한 일로 친구를 만날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출발을 연기했다. 동물관리관 브리트, 그의 처 시빌부인, 딸 파트리샤와 소녀의 친구 킹. 이들과 별도지만 올가루노인, 오륜가 등 그들의 관계에 뭣인가 결말이 날 것 같았으며 그 결말을 보고싶었다. 이튿날 나는 좀 늦잠을 잤는데 신베린이 베란다에 있다가 다가왔다. 신베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베란다 구석에 앉자있는 파트리샤를 보았다. 신선한 우유를 나에게 권했다.

파트리샤, 난 어젯밤 잠을 못 잤어. 넌 몰랐지만 오륜가가 너와 킹이 함께 있는 걸 보았어.’

알아요. 오륜가는 우리 뒤를 따라왔어요. 지금도 저 숲에 있어요.’

뭐라?’

아저씨, 우리 가서 그를 만나볼까요?’

파트리샤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숲으로 갔다. 과연 오륜가가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여전히 가면 같은 모습이었다. 파트리샤가 토인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오륜가도 빠른 어조語調로 대꾸했다.

이 사람은 내가 그 사자의 딸이나 아니면 마술쟁이냐를 알고싶다는 겁니다.’

뭐라고 했니?’

수수께끼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 사람은 .’

파트리샤가 허리를 비틀며 웃었다.

저 사람은 내게 청혼을 했어요.’

나는 어이가 없어 눈이 동그래졌다.

넌 아직 열세 살인데 .’

마사이들은 열 살이 넘으면 결혼을 해요.’

그건 그렇고, 넌 뭐라고 대답했지?’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이 자기와 결혼하면 보호해주고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나에게는 친구인 킹이 있으니 보호받을 필요가 없고 외롭지도 않다고 했지요.’

그 때 오륜가가 또 뭐라 고함을 질렀다. 사자 킹하고 담판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파트리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악의없는 웃음이었으나 한편 조롱하는 웃음 같기도 했다. 파트리샤는 오륜가에게 킹을 만나고싶으면 숲으로 가되 창이나 무기를 소지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심술궂게 덧붙였다.

당신은 맨손으로 사자와 만날 용기가 있느냐?’

오륜가의 눈에 분노가 일어났다. 마사이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오륜가는 <만나겠다>고 짤막하게 말하고 돌아갔다.

(이렇게 되면 오륜가와 킹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몇 시간 뒤 오륜가가 킹을 만나러왔다. 나와 파트리샤는 킹하고 놀고 있었다. 킹하고 친구가 되어 갈기를 만자며 놀고 있었는데 오륜가가 나타나 걸어왔다. 사자가 으으렁거렸다. 경계와 혐오가 눈에 나타났다.

조용히 해, 조용히!’

오륜가는 7 - 8m 떨어진 나무에 기대 킹을 보고있었다. 파트리샤가 킹을 데리고 오륜가에게 접근했다. 사자는 마사이에게 본능적인 적의敵意를 가지고 있었다. 오륜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경멸하는 눈초리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무에 기댄 몸이 가늘게 떨렸다. 파트리샤가 놀리 듯 사자와 같이 접근했다가 물러서고 또 접근했다. 사자는 가까이 가면 아가리를 벌리고 위협을 했다. 네 번을 반복하자 오륜가가 화를 냈다.

나는 놀림감이 아니다. 그 따위 사자는 겁나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지만 다음에는 창을 갖고 와 대결하겠다.’

고함을 쳤다. 오륜가가 돌아간 뒤에도 사자는 분노에 떨었다. 파트리샤가 앞발에 누워 머리를 가슴에 비벼대니까 그제서야 안정된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 날 오후 늦게 시빌부인이 방갈로에 찾아왔다. 신경쇠약증세는 없었고 솔직하고 침착했다. 시빌부인은 내가 내민 술잔을 받으며 천천히 얘기를 했다.

인간은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리고싶은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그렇습니다.’

내가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되어드리겠습니다.’

시빌부인이 웃었다.

아시다싶이 우리 가족은 킹을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내가 도시문화만 동경憧憬하는 들뜬 여자고 아프리카나 동물세계는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증오하는 히스테리증 여자로 말합니다. 그리고 파트리샤는 내가 킹을 미워하고 그 사자와 같이 살고있는 딸까지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늘 사자와 같이 있는 것만을 낙으로 삼고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론 부친까지 <사자와 가까이 하지 말라>고 주의를 하면 부모가 합심해서 사자와 자기 사이를 갈라놓으려한다고 화를 냅니다.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고 해명을 하면 내가 남편에게 화를 냅니다. 딸을 야만인野蠻人으로 만들 작정이냐고. 부인은 흥분하지 않으려고 양손으로 깍지를 꼈다. 우리 셋은 늘 싸움만 합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요. 서로 상대편이 마음이 상하면 후회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도 해결책을 몰랐다.

내 생각으로는 파트리샤가 여기를 떠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인데 . 시빌부인이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았다.

파트리샤가 당신을 신뢰합니다. 그 아이에게 충고해줄 수 없나요?’

시빌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부인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갔다. 부인이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파트리샤가 왔다. 흥분했다. 소녀는 킹이 제 마누라와 자식을 버려두고 자기와 놀았다고 말하면서 킹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 얘기했다. 마음대로 말하게 두었다가 슬그머니 얘기를 꺼냈다.

파트리샤 난 곧 여기서 떠나. 알고있지?’

파트리샤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알아요. 그 게 인생이란거죠.’

그런데 난 너와 헤어지기가 싫어. 나와 같이 파리에 가볼 생각은 없나?’

얼마 동안?’

거기서 새로운 친구와 사귈 때까지.’

그 순간 소녀가 돌처럼 굳어졌다.

엄마하고 똑같은 얘기야! 당신은 누구 편이지요?’

언제나 네 편.’

소녀는 나를 쏘아보았다.

난 절대로 이 곳을 떠나지 않아요. 절대로!’

그 때 보고가 뛰어들었다. 마사이의 장로 올가루노인이 죽었다는 얘기였다. 마사이는 후계자로 현명한 인품人品의 와이나라나를 결정하고 장례식과 축하연을 같이 연다는 정보였다. 손님으로 브리트 부부와 딸 파트리샤 그리고 나도 초대를 했다. 즉시 브리트를 만나 같이 가도 되겠는가 물었다.

물론 가야지요. 초대에 가는 건 예의입니다. 연회가 정오에 시작될 것이니 같이 갑시다.’

요즘 건강이 좀 회복되어서 산책 겸 가기로 했습니다.’

가면서 브리트가 설명했다. 올가루노인은 추장다운 귀족이었으며 귀족다운 죽음이었습니다. 사자발톱에 할킨 상처가 덫이났으나 죽기 직전까지도 마을일을 했습니다. 몇 년 전 올가루노인이 사자사냥을 했을 대 브리트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모라네가 사자를 몰아넣고 사자의 퇴로를 막았다. 사자는 퇴로가 막힌 것을 보자 정면으로 튀어나와 모라네에게 덤볐다. 창이 날아가 사자의 어깨에 꽂혔으나 사자는 정면의 모라네에게 덤벼들어 앞발로 방패를 쳤다. 물소가죽으로 만든 방패가 걸레처럼 찢기자 사자는 모라네의 팔을 물었다. 그리고 넘어진 모라네의 배에 올라타고 목줄을 더듬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두목이었던 올가루노인이 사자와 모라네 사이에 끼어들어 방패로 사자의 몸을 막았다. 사자가 선 자세가 되자 모라네들이 덤벼들어 칼로 난도질을 했다.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사자는 1분 후에 죽었다. 가죽도 쓸모가 없었다. 브리트가 부상당한 모라네를 치료했는데 올가루노인의 상처가 가장 컸고 피를 많이 흘려 살기 어려웠으나 강인强忍한 그는 살아났다. 마사이마을 부근에서 파트리샤가 차를 세웠다.

아저씨, 좀 있다가 마을에 가요. 지금 가봐야 지루한 인사를 늘어놓고 연회는 아직 멀었어요,’

바로 말하자면 마사이는 내게 귀찮은 질문을 할거라 피했어요. 오륜가가 나와 사자가 같이 있는 걸 봤으니까 필경 마을사람들에게 소문을 퍼뜨렸을 겁니다. 굉장히 과장을 해서 .’

약 한 시간 후에 마을에서 북소리, 노래소리, 손뼉치는 소리가 들렸다.

시작됐어요. 갑시다.’

파트리샤는 북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파트리샤가 마을에 들어서자 북소리와 노래가 딱 멈췄다. 수많은 시선들이 파트리샤에게 집중되었다. 여자들은 공포가 어렸고, 남자들은 존경의 표정이었다. 주연이 시작되었다. 여자들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손목에는 은팔찌를 찼다. 남자는 벌거숭이였다. 원형의 잔치판 가운데 모라네들이 사자의 갈기를 머리에 쓰고, 창을 들고 칼을 차고 방패를 들고 춤을 추었다. 몸을 흔들고 하늘로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스텐딩점프인데 높이가 1m 가까이 되었다. 북소리가 빨라지자 광기가 폭발했다. 미친 듯이 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춤이 아니라 히스테리환자 같은 경련이었다. 노래라기보다는 짐승의 괴성怪聲이었다. 껑충껑충 뛰는 높이도 엄청났다. 모라네의 지휘자는 오륜가였다. 브리트와 시빌부인은 추장 옆의 표범가죽에 앉았다.

파트리샤에게 여기를 떠나라 권고했나요?’

. 그러나 .’

시빌부인이 얼핏 검은 안경을 썼다.

마사이의 춤이 고조高調에 달했다. 땅을 굴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고, 손발을 더 심하게 떨고, 동체胴體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마치 집단열병熱病을 앓는 사람들 같았으며 열병은 주위의 마사이들에게도 전염됐다. 구경꾼들이 남녀 구별없이 일어나 고함을 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돌연 한 무리의 소녀들 - 열서너 살 정도의 소녀들이 튀어나와 모라네들처럼 몸을 비틀고 괴상한 고함을 지르면서 춤을 추었다. 열병은 파트리샤에게도 전염된 듯 소녀는 입술이 떨고 신음소리를 냈다. 시빌부인의 히스테리가 발작되었다.

난 더 이상 참지 못 하겠어요. 너무 불유쾌해요. 저 계집아이들 좀 보세요. 불결해요.’

시빌, 참아요. 그런 소리는 실례야. 우린 초대받은 손님이 아닌가?’

못 참겠어요. 난 가겠어.’

이 때 파트리샤가 소리쳤다.

부탁입니다. 좀 조용히 하세요. 춤은 지금부터 클라이맥스인데 .’

여보, 파트리샤 좀 보세요.’

브리트는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여보. 여보. 내 말이 안 들려요?’

마침 그 때 오륜가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브리트에게 호소를 했다. 브리트는 마사이말을 잘 몰라 새 추장 와이나라나가 완벽하게 영어로 통역했다. 파트리샤를 자기 처로 삼겠다는 말이었다. 시빌부인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발이 와들와들 떨렸다. 브리트가 시빌부인의 어깨에 선을 얹고 달랬다.

염려말아요. 이건 모욕이 아니라 젊은이는 자기들의 풍습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 뿐이니 .’

브리트가 오륜가에게

오륜가는 아직 모라네이니 결혼할 자격이 없어. 파트리샤도 아직 결혼할 나이가 아니야. 결혼문제는 양쪽 모두 자격을 얻었을 때 고려해본다.’

남편의 침착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시빌부인이 발작을 일으켰다.

파트리샤, 일어나! 그 꼴이 뭐냐? 야만인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안 돼. 일어나!’

파트리샤가 어머니 표정을 보더니 얌전히 일어났다. 오륜가는 일어선 파트리샤를 불타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더니 갑자기 머리에 쓴 사자의 갈기를 벗어던지고 창을 치켜들면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다시 춤을 푸기 시작했다.

여보, 우리 여기를 떠납시다. 발작을 일으킬 것 같아요.’

시빌부인이 애원하듯 말했다.

, 이제 일어날 때지.’

차 속에서 시빌부인이 물었다.

그 젊은 모라네가 마지막에 고함친 말은 뭐라고 한 거야?’

어머니, 난 그 소리를 잘 듣지 못 했어요.’

파트리샤가 거짓말을 했는데 오륜가가 친 고함은 <이제 곧 사자하고 싸움을 하여 승리한 다음 결혼자격을 얻어 너를 데리러 간다>라는 말이었다. 오륜가가 킹과 싸움을 작정한 것 같아 불안했다. 마사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사이의 모라네는 겁이란 걸 몰랐고 한 번 한다 하면 반드시 하는 사내들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킹이 살고있는 바위산으로 갔다. 랜드로버를 천천히 몰면서 주위를 돌았다. 운전사 보고가 이상한 표정으로 봤으나 명령대로 하라는 내 핀찬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점심도 거기서 먹었다. 불을 피워 빵과 야채스프를 먹고 있을 때 파트리샤가 나타났다.

오늘 아침에는 착한 아이가 되었어요. 엄마 시중도 들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엄마도 기분이 좋아졌고,’

그 건 잘 한 일인데 .’

그런데, 아저씨는 왜 여기에 .’

집에 있기 답답하고, 킹하고 만나고싶고 .’

엄마는 또 파리에 가라고했어요. 파리의 놀이터와 극장 얘기를 해주었는데. 나는 여기가 제일 행복해요. 하늘과 나무들을 보세요.’

그 때 들판에 점이 나타났다. 킹은 우리를 못 보고 들판을 돌아다녔다. 소녀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결국 킹이 우리를 발견했다. 킹은 기쁨에 넘치는 포효를 한 다음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파트리샤 곁에 벌렁 누웠다. 앞발을 내밀었다. 파트리샤 보고 품에 안기라는 뜻이다. 파트리샤가 불안한 표정으로 킹의 요구를 묵살하고 들판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킹이 슬그머니 소녀의 허리를 쳤다. 장난을 하고싶은 것이다. 소녀는 귿은 표정으로 킹의 앞발을 뿌리쳤다. 그게 장난인줄 알고 킹이 다시 앞발로 소녀를 건드렸으나 소녀가 화를 냈다. 킹을 밀어내고 주먹으로 때렸다.

(웬일이지?)

킹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러서더니 코를 소녀의 뺨에 부볐다. 소녀는 코를 주먹으로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놀란 킹이 머리를 흔들더니 뒤돌아섰다.

안 돼! 지금 가면 안 돼!’

소녀가 사자의 갈기를 잡고 끌어왔다.

파트리샤, 누가 오느냐?’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초원을 가리켰다. 잡목림에 사자갈기를 쓰고 방패와 창을 든 오륜가가 나타났다. 그는 킹과 대결하여 죽이고 파트리샤를 아내로 맞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려고 왔다. 파트리샤와 킹이 일어섰다. 킹은 예전부터 파트리샤의 행동이나 표정을 읽고 소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다가오는 마사이를 적으로 판단했다. 나는 그 비극적인 싸움을 말리려고 킹과 오륜가의 사이에 들어갔다. 오륜가가 나에게 경고했다. 방해하지 말라는 고함이었다. 파트리샤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비켜주세요. 아저씨가 비키지 않으면 아저씨를 찌르겠다고 했어요.’

투지로 가득찬 오륜가를 제지할 수 없었다. 권총으로 쏘아죽이는 것 외에는 . 오륜가가 5 - 6m까지 다가왔다. 킹이 적의를 느끼고 나지막히 그러나 피가 얼어붙는 소리로 목을 굴렸다.

조용히, , 조용해!’

파트리샤가 오륜가에게 말을 하려는 순간 오륜가가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창을 든 손을 쳐들었다. 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았다. 킹의 어깨에서 피가 분출했다. 파트리샤가 비명을 지르며 꽉 잡고있었던 킹의 목덜미를 놓았다.

! 덤벼, 덤벼!’

킹이 공중을 날아 육중한 몸으로 오륜가를 덥쳤다. 오륜가는 방패로 몸을 가리고 어느새 칼을 빼들었다.

죽여! 죽여. 그 놈을 죽여버려!.’

오륜가가 쥐고 있는 방패는 물소껍질로 만들었으나 킹의 앞발치기에 걸려 걸레가 되어버렸다. 나는 다음에 일어날 비극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아버렸다. 킹의 노호怒號와 자동차 브레이크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브리트의 랜드로버가 10m 쯤 떨어진 곳에 급정차했다. 브리트가 키호로에게 명령했다.

킹을 쏘아라!’

키호로가 머리를 흔들었다. 킹과 한덩어리가 되어 싸움을 하고 있어서 쏠 수 없었을까? 차마 킹을 쏠 수 없었을까? 그 순간에 싸움은 결말이 나고 있었다. 사람과 함께 살아온 킹은 오륜가의 칼을 교묘하게 피할줄 알았다. 킹은 앞발로 창을 든 오륜가의 팔을 누르고 또 한 발로는 가슴팍을 눌렀다. 오륜가는 머리와 어깨에 일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나 그래도 마지막 기력을 다 해 자유로운 한 손으로 사자의 목을 받쳐들어 사자가 목줄을 물지 못 하도록 막았다. 승패는 이미 결정났다. 그 때 브리트가 고함을 치며 키호로의 총을 빼앗아 들었다. 총을 든 브리트는 1초의 몇 분의 1 정도 망서렸다. 그러나 그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킹이 오륜가의 손을 뿌리치고 목을 물려는 찰라 총을 발사했다. 황소 브리트의 총은 정확하게 사자의 심장을 뚫었다. 그 충격으로 킹이 벌렁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노여움이 아닌 놀라움의 소리를 질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놀라움이었다.

(브리트가 나를 쏘다니!)

그러나 그 소리가 아직 사라지기 전에 2탄이 발사되었다. 유명한, 브리트의 속사였다. 갑자기 초원이 침묵에 싸였다. 파트리샤는 화석化石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이럴줄 알았어!’

브리트가 바보처럼 중얼거렸다.

파트리샤, 파트리샤!’

소녀는 킹만 보고있었다. 사자는 옆으로 누워 커다랗게 눈을 뜨고있었다.

, !’

소녀는 사자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 머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소녀는 사자의 머리를 치며 울부짖었다. 브리트가 소녀의 어깨를 잡았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아버지가 킹을 죽였어요. 아버지가. 킹이 그렇게 아버지를 따르고 사랑했는데 아버지가 킹을 쏘았어요.’

파트리샤, 그러나 .’

듣기 싫어요! 아버지는 친구를 죽였어요. 친구와 함께 딸도 죽였어요.’

그 때 보다 못 해 내가 참견을 했다.

파트리샤, 그런 말을 하면 .’

파트리샤, 너도 괴롭지만 아버지도 괴로운줄 모르겠니? 죽은 킹만 보지 말고 아버지도 봐. 아버지도 .’

브리트는 눈을 감고있었으나 그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소녀는 그래도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브리트가 다가서자 달아나 키호로에게 안겼다.

키호로, 넌 총을 쏘지 않았어. 넌 킹의 친구야. 넌 착한 사람이야.’

늙은 키호로는 상처투성이 얼굴에 무한한 연민憐憫을 담아 소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 때 오륜가가 신음을 했다. 죽은줄 알았는데 숨이 붙어있었다. 상처를 살폈는데 절망적이었다. 사자의 일격은 그의 두개골을 분쇄했고 어깨의 상처도 치명상이었다.

그 사람 죽었어요?’

파트리샤가 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대로 순진하고 용감했어요. 그러나 .’

이상한 논리였다. 사자에게 도전을 하여 비극의 원인을 만든 오륜가에게는 원한이 없고 킹을 쏜 아버지만 미워했다.

모든 일이 끝났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비극이 일어나면 모여드는 독수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브리트가 독수리에게 화가났다. 연사를 퍼부었다. 파트리샤는 킹의 갈기를 쥐고 울고있었다. 소녀는 모성애母性愛, 우정友情, 질투嫉妬를 오직 킹을 통해 느꼈고 지금은 죽음의 의식까지도 사자를 통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파트리샤, 이게 죽음이다.’

아저씨 나를 데리고 가주세요. 이젠 아버지 얼굴 보는 게 싫어요. 그리고 이 초원, 나무들도 싫어요.’

오냐, 네 말대로 하마. 어디로 갈까?’

나이로비에 가겠어요. 전에 있던 학교 기숙사에.’

그날밤, 나와 파트리샤, 보고는 나이로비로 향하는 랜드로버를 탔다. 파트리샤는 부모에게 <굿 바이!>,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브리트와 시빌부인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딸과 작별했다.

넌 부모님께 너무 했어!’

괜찮아요. 어머니는 이렇게 된 걸 은근히 좋아하고 아버지는 위스키를 마시면 잊어버려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 위로하면서 슬픔을 잊을거예요.’

넌 어떻게 할건데?’

파트리샤가 캄캄한 킬리만자로 평원을 응시했다. 멍한 시선이 가끔 긴장한 것은 사자 킹의 환상을 본 것일까?

 

34. 살인귀殺人鬼

 

인디아 중앙의 북부 네팔국경지대에 구마온이라는 산악지대가 있다. 구마온은 네팔국내의 험준한 산악지대와 연결되는 산이었으나 그 자체로써는 그다지 높지 않은 구릉丘陵과 분지盆地였다. 인디아는 워낙 인구가 많앗기 때문에 겨울에는 영하의 추위, 여름에는 불타는 듯한 더위지대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2만여 명의 주민들이 수백 명 또는 수십 명씩 마을을 이루고 오사와 사냥을 했다. 들소, 사슴, 영양 그리고 코뿔소와 코끼리도 출몰했으며 날짐승들도 많았다. 구마온의 주민들은 대체로 평온하게 살았는데 단 하나 호랑이가 문제였다. 뱅갈범으로 알려진 호랑이는 밤낮 없이 돌아다녔고 그들이 없는 사이에는 표범이 설쳤다. 범은 용맹한 들소를 잡았고 코끼리에게도 달려들었으며 사람도 덮쳤다. 사람도 함정을 파고 덫을 놓았으며 총과 칼로 대적했으나 늘 사람이 불리했다. 한 달에 몇십 명이 희생되었고 날이 어두워지면 밖을 나가지 못 했다. 그런데 1923년 경부터는 싸움의 양상이 달라졌다. 북쪽 네팔로부터 사람만 잡아먹는 살인범이 들어와 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랑이는 우연히 마주 친 사람을 해쳤는데 네팔범은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을 물고갔다. 12월 중순 께 장정 넷이 마을 밖 감자밭과 옥수수밭을 지키기 위해 움막에서 경비를 섰다. 그들은 밭을 짓밟는 들소와 멧돼지를 쫓아냈고 마을에 들어가려는 맹수를 감시했다. 열대지방이라고는 해도 북부 인디아는 추웠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움막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어제 잡은 멧돼지의 뒷다리를 구웠다. 구수한 냄새가 삼림에 퍼져 죽음을 불러오리란 것은 꿈에도 몰랐다. 새벽 1시께, 멧돼지고기에 술을 한두 잔씩 걸친 그들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러나 40세 스바스언더는 책임자였으므로 잠을 참았다. 쏟아지는 잠을 밀어내느라 몇 번이나 머리를 흔들며 애를 쓰는데 무슨 소리를 들었다. 아주 보드라운 물체가 가랑잎을 밟는 소리 같았다. 미식! 미식!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 바로 움막 바깥인 것 같은데 .)

그 순간 얼룩덜룩한 물체가 시야를 가렸다. 꿈에서 나온 도깨비 같은 것이 움막에 들어섰다. 언더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으나 다음 순간 얼굴에 불덩이 같은 충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용감한 언더가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다리로 일어설 힘은 없었고 기어가는 자세가 되었다. 그런데 어무 것도 없었다. 주위를 돌아봤다. 젊은이들이 여전히 코를 곯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없어졌다. 눈을 부비고 다시 봤으나 분명히 한 사람이 사라졌고 시커먼 피가 홍건하게 고여있었다. 자기 얼굴에서도 피가 쏟아졌다. 언더는 엉금엉금 움막 밖으로 기어나왔다. 달빛이 밝아 푸른 삼림 저쪽에 천천히 움직이는 호랑이가 보였다. 호랑이가 물고가는 사람의 팔다리가 질질 끌렸다. 언더가 고함을 쳤다. 비명悲鳴소리에 잠자던 젊은이들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 저 놈의 호랑이가, 저 놈 잡아라!’

모두 고한을 질렀으나 막상 호랑이를 쫓는 사람은 없었다. 고함소리에 호랑이가 물고있던 사람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호랑이의 파란빛이 나는 눈빛에 사람들은 요기妖氣에 홀린 듯 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고함을 쳤으나 목구멍이 막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1분 쯤 돌아다보고 있던 호랑이가 내려놓았던 사람을 물고 조용히 삼림으로 사라졌다. 마을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호랑이에게 물려죽는 일은 여기서는 흔했으나 이번 일은 좀 달랐다. 첫째, 호랑이가 호랑이를 감시하기 위한 움막을 습격했다. 무기武器를 가진 젊은이들이 네 명이나 있었는데 습격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문제의 범은 움막에 들어서자 잠을 자지 않고있었던 언더에게 일격을 해서 턱뼈가 부서지고 이빨 세 개가 부러졌고 잠자던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 소리 한 마디도 내지 못하게 죽인 것이다. 곧장 도망간 것도 아니고 남은 세 사람을 위협하며 유유히 사라졌다. 마을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발자국을 밟아 추적을 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고물古物총 한 자루와 창, 칼로는 호랑이를 추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치안을 맡은 영국관리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관리는 또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머리를 흔들고 곧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며칠이 지나도 대책은 없고 또 살인이 일어났다. 이웃마을 양치기기 백주 대낮에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단 열세 마리의 양은 무사하고 사람만 죽었다. 사람의 시체는 습격당한 곳에서 3 - 400m 떨어진 바위밑에서 발견되었는데 머리와 뼈만 남아있었다. 목에서 댕그렁 짤린 머리에는 상처가 없었으며 다만 멀거니 뜬 눈만이 그가 당한 무서운 일을 증명했다. 이번에도 호랑이는 사람의 목줄을 끊어 죽였다. 또 진정을 받은 관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양 열세 마리를 놔두고 사람만 잡아먹은 것이 심상찮았다. 그 호랑이는 양고기 보다 사람고기를 더 좋아하는 놈일까? 관리가 가까운 곳에서 사냥을 하던 영국포수들에게 연락했다. 퇴역장교, 아마튜어포수라는 두 명의 영국인과 그들이 고용한 여섯 명의 인디아인들이 마을에 도착한 것은 3일 후였는데 그들이 도착한 날 또 원주민이 희생되었다. 살인범이 처음 나타났던 곳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삼림에서 나무꾼이 희생되었다. 이번에도 대낮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고 천막부터 쳤다. 물소 네 마리에 실어온 짐은 산더미였으며 술, 통조림, 안주, 침대, 의자와 서양장기판도 있었다. 하루 종일 걸려 천막을 쳤는데 마을이 하나 새로 생겼다. 원주민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신총을 보고는 영국인을 존경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 이제 현장에 가볼까.’

그들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상처없는 머리와 굵은 뼈만 남아있었다.

아침은 다 먹었는데 .’

처참한 광경이었다. 추적이 시작되었다. 인디아인 트러커(발자국 추적꾼)은 발자국을 하나하나 세밀히 확인하면서 추적했으므로 서너 시간이 걸려 불과 5 - 60m 쯤 나갔다. 그리고 머리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어떻게 된 거야?’

틀렸습니다. 발자국이 없어졌어요.’

호랑이가 계곡의 건너편으로 갔는데 건너편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트러커들이 얼굴을 마주봤다. 영리한 호랑이가 발자국을 감추려고 물길을 따라 내려가버린 것이다. 영국인포수들이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추적을 포기했다. 천막촌으로 돌아와 술잔치판을 벌였다.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사격연습을 한다고 공포를 마구 쏘더니 골아떨어졌다. 원주민은 마을이 하나 생겼고 총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나서 다소 안심했다. 그런데 그날 밤 천막촌에서 사태가 일어났다, 12시 경에. 영국인 퇴역장교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아 옆 천막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갔다. 밤공기가 차 한기가 스며들었다.

, 추워!’

중얼거리면서 옆 천막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때 불과 7 - 8m 거리의 인디아인천막그늘에서 하얀 물체가 움직였다. 물소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여 다시 보다가 그만 숨이 딱 멎어버렸다. 물소만큼 큰 호랑이가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푸른 눈빛에 주눅이 들어 영국인은 소리도 지르지 못 했다.

누구야? 거기 있는 친구는.’

천막에서 자고있었던 포수가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면 큰일날뻔 했다. 고함소리가 나자 호랑이가 일순 도약을 하며 달려들 듯 하다가 몸을 돌려 도망갔다. 천막에서 나온 포수는 막대기처럼 멍하니 서있는 동료를 보고 놀랐다.

왜 이래, ?’

그제야 정신이 든 퇴역장교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호랑이야, 호랑이. 호랑이가 나왔어!’

한밤중에 천막촌에서 일대소란이 일어났다. 천막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천막 주위를 조사했다. 호랑이가 천막 주위를 돌아다녔다. 군대용 천막이라 문을 내려서 화를 면했다. 공포속에서 밤을 세웠는데 날이 밝자 이웃마을에서 사람이 왔다. 호랑이가 집안에 들어와 잠자던 여자를 물고갔다.

그 놈은 마을 안을 돌아다니다가 문단속을 소홀히 한 과부집을 덥쳤습니다. 과부를 물고 마을 앞까지 가서 머리만 남겨놓고 다 먹었습니다. 발자국이 뚜렷하니 추적하면 잡을 수 있습니다.’

영국인포수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우리는 호랑이를 사냥하려고 왔지 잡혀먹으려고 온 게 아니야.’

영국인포수들은 천막을 걷어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호랑이사냥을 부탁한 영국관리를 찾아가 화풀이를 했다. 관리에게는 선객先客이 한 사람 와있었으나 화가 난 그들은 고함을 쳤다.

여보쇼, 우리 보고 죽으라고 거기를 주선했소? 그 호랑이는 사람만 잡아먹는 살인귀요.’

관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님에게 말했다.

대령님, 호랑이니까 사람에게 덤벼들 수도 있겠지요?’

그게 아니고 그 놈을 일부러 사람만 습격해서 잡아먹는 살인귀란 말이요.’

퇴역장교가 그 범에게 습격당한 일을 얘기했다. 식민지에 파견된 말단末端관리는 퇴역대령과 귀족포수의 공박攻駁을 받고 난처해졌다. 아무말없이 듣고 있던 백인손님이 말했다.

그 호랑이는 이곳 호랑이가 아니고 네팔에서 건너온 놈입니다. 국경을 넘어올 때 입국수속을 밟지 않아 여기 관리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조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퇴역장교의 미간眉間 굵은 주름이 패였다.

그 곳에 수많은 호랑이가 돌아다닌다는데 어떻게 그 호랑이인줄 아시죠?’

그 호랑이 이름은 <네팔의 살인귀>입니다. 다른 호랑이 보다 월등越等하게 크고 털이 하얀색입니다. 보통 호랑이처럼 노란 바탕에 검은 무늬가 아니라 하얀 호랑이입니다. 시베리아 호랑이로 착각할 정도로.’

퇴역장교는 달빛 아래서 본 그 호랑이를 상기想起했다. 시무룩해졌다. 달빛 아래서 본 그 호랑이는 분명 하얀색이었다. 얼마 후에 관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대령님 인사하시지요. 이 분은 유명한 짐 코베트씨입니다. 네팔에서 그 호랑이를 쫓아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미스터 코베트라고요? 이 건 실례했는데 .’

예비역대령과 아마튜어포수는 깜짝 놀랐다. 코베트는 반코트처럼 큼직한 골덴지상의上衣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긴 총을 지니고 있었다. 중키에 깡마른체구였고 부드러운 갈색눈에 30대 중반. 코베트가 파이프를 태우면서 살인 호랑이에 대한 얘기를 물었다. 두 사람의 아마튜어포수들은 상세한 설명을 하고 물었다.

우리 얘기가 흥미가 있습니까?“

코베트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다.

나는 네팔에서 반 년 동안이나 그 놈을 추적하여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 그 놈이 죽을 때까지 따라갈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고요? 그 놈은 네팔에서 사람을 아마도 100명 이상을 잡아먹었을 것입니다. 내가 직접 확인한 것만 12명입니다. 한 달 전 그 놈은 네팔국경의 산막山幕에서 양친과 아들 세 사람을 죽였소. 마치 자기말을 자가가 듣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끊어서 얘기하는 코베트의 눈에는 증오가 어려있었다. 부드러운 갈색눈도 냉혹冷酷하게 빛을 뿜었다.

나는 그 놈의 사형집행자요. 그 놈은 이제 나의 존재와 냄새를 알고있으며 내가 가까이 가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한편 구마온에서는 또 다시 희생자가 났다. 새벽에 물을 기르러 냇가에 나갔던 여인이 머리와 한쪽다리만 남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네팔의 살인범이 밤새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새벽에야 기회를 포착하였으나 곧 날이 밝아졌으므로 한쪽다리는 남겼다. 1주일에 3명의 희생자가 생긴 마을에서는 울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족친지의 죽음보다도 자기에게 언제 어디서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여인을 매장埋葬한 마을사람들이 살인범을 막을 의논을 했다. 함정陷穽을 파자는 의견이 나오고 담장을 높이자는 말도 있었으나 예방책은 될 수 없었다. 살인범은 함정을 판 사람 보다도 더 정확하게 함정을 식별識別했으며 아무리 높은 울타리도 가볍게 타넘었다. 절망적이었다. 그 때 예고없이 백인포수와 토인조수를 데리고 나타났다. 골덴상의를 걸친 그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천막도 식량도 없었다. 총 두 자루가 전부였다. 백인포수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호랑이를 보았느냐고 했다. 주민들은 그를 떠돌이포수로 짐작하고 무시했다. 그러나 코베트는 개의치 않고 여인이 죽은 현장을 찾아가 면밀하게 조사했다. 발자국을 자로 재고 털을 확대경으로 관찰했다.

나리, 그 놈이 틀림없는데요.’

총잡이 인디아인이 말했다. 2m 가까운 키에 단단한 몸집의 40대 사내였다.

, 그 놈이야.’

코베트도 머리를 끄덕였다. 코베트는 마을에서 구마온지리에 밝은 원주민 세 사람을 뽑았다. 구마온은 가라아가산맥을 타고있어 험준하지는 않았으나 기복起伏이 심했고 계곡이 많았으며 바위와 나무들도 밀생密生했다. 호랑이가 활동하기에 좋은 지형이며 사냥하기에는 불리한 지형이다. 호랑이는 변화가 많은 지형을 이용하여 바위나 나무 뒤에 숨기 좋았고 추적하는 포수는 앞길의 바위, 나무나 숲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또한 호랑이는 몸이 고무처럼 탄력이 있어서 나무나 바위 사이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나 포수는 거추장스러워 행동이 부자유하다. 구래서 코베트는 하루 종일 지형연구만 했다. 원주민들은 호랑이를 잡을 생각은 않고 지도만 들여다보고 있는 백인포수를 무시했는데 이튿날 이웃마을의 장로 보덴이 도착하면서 태도가 돌변했다. 보덴은 환갑이 지났으며 구마온일대에서 존경받는 장로였다. 보덴이 마을에 온 것도 놀랄 일이었으나 코베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걸 보고 또 놀랐다. 보덴이 마을사람들에게, 그들이 떠돌이포수라고 경멸하는 포수가 자기 친구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포수라고 소개했다. 보덴이 마을사람들에게 4년 전 코베트가 호랑이 네 마리를 잡았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코베트가 한 달 동안에 호랑이 네 마리를 잡아 그 후 마을에는 호랑이 피해가 사라졌다고 했다. 마을사람들이 <코베트 만세!>를 불렀다. 코베트가 쓴 웃을을 지으며 말했다. 사냥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싸움에서는 상대를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약하면 이기기 쉽지만 강하면 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잡으려고 하는 범은 보통 호랑이가 아닙니다. 보통 호랑이 백 마리를 잡는 것 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웃 네팔에서 백 명 가까이 사람을 잡아먹은 살인마이며 사람을 많이 잡아먹었기 때문에 사람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강하면 도망을 치고 약하면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잡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네팔의 호랑이에게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밤에는 문단속을 잘 해야 합니다. 마을사람들이 경고를 받아들여 잘 이행했기 때문인지 나흘 동안이나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호랑이는 나흘을 굶지는 못 한다. 마을에서 약 40Km 떨어진 계곡마을에서 참사慘事가 일어났다. 계곡마을은 나무를 베어 도시로 운반하는 일을 하였는데 호랑이가 나무꾼을 습격했다. 급보를 받고 코베트가 현장으로 달려갔다. 60여 명의 나무꾼들이 계곡에 엉성한 판자집을 짓고 두세 명씩 짝을 지어 나무를 베었다. 나무들이 밀식하여 성장에 방해가 되므로 간벌間伐을 했다. 동료들과 나무를 베던 나무꾼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갔는데 뒤따라간 동료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는 물을 마시던 자세였고 허벅다리 하나가 없어졌다. 살인범이 물을 마시던 사람을 뒤에서 덮쳐 목줄을 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하다가 사람이 오는 걸 보고 도망쳤다. 동료가 시체를 업고 마을로 돌아왔는데 마을로 오는 내내 누군가 미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팔의 살인범은 먹다남은 먹이를 뻬앗겼기 때문에 먹이를 되찾으려고 사람들의 뒤를 미행尾行하다가 마을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엉성하게 얽어놓은 집에 사람들이 기거하는 걸 보았다. 무진장無盡藏의 사냥터를 발견한 것이다. 호랑이가 그날 밤 마을을 습격했다. 나무꾼들은 6 - 7명씩 한 집에서 기거했는데 호랑이가 나오면 여럿이 때려잡을 수 있다고 장담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호랑이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총 없이는 잡을 수 없는 맹수다. 호랑이는 그날 밤 소리없이 마을에 들어와 소리없이 사라졌다. 잠결에 목줄을 물려 끽! 소리도 못 내고 끌려간 나무꾼 한 사람을 물고. 코배트가 조사해보니 나무꾼들이 바람막이로 쌓아놓은 높이 2m의 벽을 넘어와 70Kg의 사람을 물고 그 벽을 타고넘었다.

(그럴 수가?)

아무도 믿지 않았으나 코베트는 안다. 그 놈은 사람을 입에 문 채 앞발로 담을 딛고 뒷발로 일어서 앞발을 쭉 뻗어 갈구리 같은 앞발 발톱을 담벼락 끝 통나무에 박아놓고 앞발을 잡아당기는 힘과 뒷발로 땅을 차는 힘을 동시에 이용하여 담을 타넘는다. 꼬리는 S자로 땅에 붙여 스프링처럼 탄력을 주는 용수철역할을 한다. 나무꾼들은 당장 호랑이를 추격하여 도끼로 찍어죽이자고 날뛰었다. 노인들은 하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결론은 산에 남아 튼튼히 방비를 하기로 했다. 코베트가 나무꾼들에게, 다섯 명 이상이 모여서 일을 할 것. 밤에는 문단속을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다. 느리고 힘이 없어 잡기 쉬운 먹이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마을을 떠날 이유가 없다. 먹이가 고갈될 때까지 정착할 것이다. 마을에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총잡이 인디아인과 지세地勢를 조사했다. 호랑이가 이 마을에 들어올 때 어느 진입로를 선택할 것인가를 알아봤다. 호랑이는 고양이과 동물이기 때문에 은신술隱身術에 능하며 자기 몸을 숨길 수 있는 은폐물隱蔽物이 많은 루트로 침입한다. 호랑이가 은폐물이 많은 마을 북쪽 비탈길을 선택하리라 예상했다. 서쪽 비탈길에도 은폐물이 많았지만 서쪽은 한 번 이용했으므로 북쪽길을 택하리라고 예상했다. 고양이과 동물의 특성이다. 코배트는 마을 복쪽 어귀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땅을 파서 그 위에 통나무를 걸치고 풀로 덮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살인마를 추적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추적을 눈치채면 물로 들어가 발자국을 지워버리고 멀리 도망을 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먹이를 미끼로 기다리기로 했다. 미끼가 사람이어서 좀 꺼림칙했지만. 첫날밤에는 예상대로 오지 않았다. 연거푸 이틀동안 두 사람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배가 차있었다. 다음날 나무꾼들에게 모두 조용히 일찍 자라고 부탁한 뒤 움막에 잠복했다. 달도 없는 밤이라 믿는 것은 눈이 아니라 귀였다. 그리고 코였다. 사람의 코는 둔하다. 호랑이는 사방 20m 주변은 어떠한 냄새라도 식별할 수 있으며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는 50m 까지도 냄새를 놓치지 않는다. 교미기交尾期의 암내는 몇 백미터에서도 알아챈다. 그러나 사람의 코는 고작 10m가 한계며 그것도 노련老鍊한 사냥꾼만이 가능하다. 사냥꾼은 본능이 살아있다. 코베트도 그랬다. 겨울에는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코베트에게 유리하고 호랑이게 불리하다. 새벽 서너 시께였다. 코베트는 냄새를 맡았다. 맡은 게 아니라 느꼈다. 육식동물 특히 호랑이에게서 나는 심한 노린내였다. 옆에서 자고있는 총잡이에게 신호를 하고 총을 들어올렸다. 영국제 2연발 라이플은 절대로 고장이 없는 애용물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총잡이도 같은 총을 갖고 있다가 코베트가 2연발을 다 쏘면 얼핏 총을 건네주었지만 오늘은 총 대신 전지를 가지고 있었다. 호랑이의 발짝소리가 느껴졌다. 고무처럼 부드러운 발자국이었으나 그래도 중량 때문에 미식미시식 하는 소리가 났다. 점점 가까워졌다.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허약한 동물인가를 알고있기 때문이며 그런 범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풀려 행동이 대담하다. 그날밤의 호랑이도 사람들이 집단으로 살고있는 마을에 침입하면서도 구보驅步로 달려오고있었다. 코베트는 오른손으로 총을 잡고 왼손으로는 총잡이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호랑이의 접근방향과 위치에 맞추어 전지를 비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배트는 뛰는 심장을 억제하며 호랑이가 바짝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20여 미터 앞에 있는 큰 고목古木 사이에 두 개의 파란 빛이 스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떠올랐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강하고 밝은 빛이다. 그러나 그 빛은 사격의 조준점이 되지 못 한다. 어둠과 빛의

광화학적光化學的 작용 때문에 그 빛으로 거리나 위치를 측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전지가 필요하다. 거리가 10 - 15m가 되었을 때 코베트가 잡은 손목을 이용하여 총잡이에게 전지를 비춰야 할 방향을 정해주고 바른손을 방아쇠에 걸었다.

하나, , !’

캄캄한 어둠을 전지빛이 뚫었다. 그 찰라의 순간, 호랑이가 빛 속에 없었다. 전지빛이 좌우로 흔들렸을 때 왼쪽에 호랑이가 보였다. 놀라움과 노여움이 겹친 표정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 기회를 코베트가 놓칠 리 없었다. 심야의 고요함 속에 굉음이 울려퍼졌다. 코베트는 그 굉음 속에서 피식! 하고 총탄이 호랑이를 뚫고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포수만의 감각이다.

불 꺼!’

코베트는 부상한 호랑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있었으며 전지불빛은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코베트는 호랑이가 치명상致命傷은 아니지만 중상을 입었다고 판단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희무끄레 날이 밝아오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코베트가 잠복소에서 나와

가까이 오지 말라!’

라고 소리쳤다. 예상대로 핏자국이 있었는데 방울방울 떨어진 게 아니고 분수처럼 쏟아진 핏자국이었다. 호랑이는 삼림으로 들어갔다. 코베트가 웃었다. 네팔의 살인범을 추적지 석 달만에 처음 보는 미소였다.

서둘 것 없어. 천천히 따라가면 돼.’

중상을 입은 범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으나 몇 십미터에 한 번씩은 휴식을 했다. 휴식한 장소에는 피가 흥건히 고였다. 마을 뒤산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 이렇게 피를 흘리고도 악착같이 도망치는데 .’

코베트 보다 몇 발 앞서 추적하던 총잡아가 산마루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리, 이것 좀 보세요.’

그곳에는 또 한 마리의 호랑이 발자국이 있었다. 부상한 호랑이 주위를 맴돌았다. 겨울은 호랑이의 교미기이기 때문에 암수가 어울려다녔다. 그러나 그 암컷은 인정머리가 없었다. 부상한 숫컷을 탐색하고는 왔던 길로 돌아가버렸다. 산정에서 내려가는 길은 올라갈 때 보다 더 어렵다. 부상당한 호랑이는 몇 번이나 구르면서 계곡으로 내려갔다. 피를 많이 흘려 갈증이 심했던 것이다. 산 밑에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그런데 핏자국도 발자국도 없어졌다. 총잡이가 어리둥절해서 코베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이 부근에 있어. 물줄기를 타고 위로 올라가 물가에 있는 바위 위에 숨어있을거야.’

코베트는 바위를 노려보았다. 코베트가 총잡이에게 따라오라고 눈짓을 하고 바위 뒤편으로 돌아갔다. 바위에서 으르럭! 하는 위협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돌진해오는 노란 물체를 봤다. 코베트는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로 호랑이를 기다렸다. 맹수의 집념으로 중상을 입은 호랑이가 남은 힘을 다 해서 전력 질주했다. 뒷다리가 땅을 차면서 공중에 뛰어오르고 몸을 활처럼 웅크렸다가 앞다리를 쭉 뻗어 한일()자로 쭉 펴진 몸체를 공중에서 끌어당겼다. 탄력성과 신축성이 아름다웠다. 딱 한 발 총성이 울렸다. 이마에 탄환을 받은 호랑이는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잡았다, 잡았어!’

인디아인 총잡이가 괴상한 환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러나 아직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 하고 2m 쯤 떨어져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살인귀, 악마, 지옥, 잡놈 등등. 총잡이와 달리 코베트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호랑이 옆에 선 채 말이 없었다.

이봐, 좋아할 거 없어. 잘 봐, 네팔의 살인귀가 아냐!’

금방 숨을 거둔 호랑이는 갈기가 있었다. 호랑이는 갈기가 없다. 그러나 숫컷에게는 사자만큼은 아니지만 갈기가 있다. 네팔의 살인귀는 암컷이었다. 그리고 네팔의 살인귀는 하얀털인데 죽은 호랑이는 샛노란 털이었다.

나리, 그렇다면 살인귀는 어데로 ?’

아까, 이 놈 옆에 나타났다 사라진 놈이 살인귀야.’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쓰러져있는 호랑이를 보고 환성을 올렸다. 발로 마구 찼다. 아까운 털이 망가지는데도 코베트는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3개월 동안 1300Km를 추적한 범은 또 달아나버렸다. 살인귀는 애인의 몸에 박힌 총탄을 알아채고 매정하게 달아나버렸다. 총탄이 무엇인지를 알고 추적자를 알아본 것이다. 한 번 달아나면 몇 백 리를 달아나는 범이었다. 네팔에서도 화전火田마을에서 일곱 명을 잡아먹고 정착했다가 추적자가 오는 것을 눈치채고 즉시 잠적潛跡을 했다. 죽인 여자의 시체를 고스란히 남겨놓고. 그날 밤 나무꾼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코베트는 감자와 옥수수로 빚은 독한 술을 마구 마셨다. 거의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이튿날, 나무꾼들이 만든 판자집마루에서 잠이 든 코베트는 무거운 머리를 흔들면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여기서 괴히 멀지 않은 마을에서 희생자가 났다. 산에서 단식수업을 하던 스님을 덮쳐 머리와 염주念珠만 남겼다. 유명한 노승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부처님의 가호를 받는 스님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35. 생리기生理期의 범

 

네팔의 살인범이 구마온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였다. 사람을 잘 아는 그 범은 화약냄새나 총소리를 들으면 집은 먹이도 버리고 도망을 쳤는데 이번에는 총을 맞아 죽은 범을 보고도 도망을 치지 않았다.

(웬일일까?)

코베트는 두 가지 가설假說을 세웠다. 생식기生殖期라 암컷이 숫컷을 기다린다. 범의 교미기는 겨울이다. 개성이 강해 집단생활을 거부하지만 교미기에는 이성異姓을 그리워하며 서로 짝을 찾는다. 네팔의 살인귀도 암펌이다. 두 번째는 네팔의 살인범이 인신을 했거나 이미 새끼를 낳아 구마온에서 기르고 있지 않나 하는 예측이었다. 어떤 경우거나 네팔의 암펌에게는 전과 다른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늦은 오후였으나 코베트는 수도승이 죽었다는 암자庵子로 떠났다. 지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길은 예상보다 험준險峻했다. 길이 가파른 산중턱으로 기어올랐다. 거기에다 해가 떨어지자 시베리아의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간이천막은 펼 수도 없었다.

전지를 켜라! 동굴이라도 찾아!’

어디선가 먼 데서 범의 포효가 들렸다. 곧 몇 백미터 앞에서 응답하는 포효咆哮가 터졌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캄캄한 어둠속에서 듣는 포효에는 몸이 오싹해지는 요기妖氣가 느껴졌다. 범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리, 이건 위험한데요. 그렇잖아도 사람만 잡아먹는 범인데 .’

임마, 범보다 바람이 더 무서워! 이건 폭풍이야. 추위에 얼어죽기 전에 바람에 날려갈지도 몰라. 범은 겁내지마! 그 범은 사람은 겁내지 낳지만 총은 무서워해!’

이윽고 동굴을 발견했다. 꽤 넓었는데 범의 굴 같았다. 동물들의 뼈가 있었고 호랑이털도 있었다. 가랑잎과 나무에 불이 붙자 살아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럴 때 위스키는 영약靈藥이었다. 그러나 점점 가까이서 들리던 범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위험신호였다. 범이 사람을 발견했다는 의미다. 두 자루의 총을 모두 장전해서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 풀어놓았다. 모닥불에 나무를 더 넣었다. 범이 불을 싫어하지만 네팔의 범은 예사로 불을 타넘고 사람을 습격했다. 총잡이를 자게하고 코베트는 등을 벽에 대고 비스듬히 누었다. 몇 시간 뒤 총잡이와 교대를 했다. 얼마나 되었을까? 일어나라는 총잡이의 말에 눈을 떴다.

나리, 밖에는 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으며 온 산이 하얗게 변했다. 마른 고기와 건빵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코베트가 미소짓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 발자국이 남아 추적하기 쉽다. 식사를 마친 코베트가 파이프를 태우며 동굴 주위를 살폈다. 큼직한 발자국이 있었다. 네팔의 범이 어젯밤에 동굴에 와서 습격의 기회를 엿보다가 포기하고 돌아간 것이다.

나리, 이 발자국을 추적할까요?’

안 돼. 눈이 내리고 있으니 발자국은 지워져. 그치는 걸 기다리자.’

그 날 오후 수도승 마을에 도착하여 주변의 모든 마을에 전갈傳喝을 띄웠다. <호랑이가 나타나면 즉시 연락하라!> 눈은 오후에 그쳤으나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리한 그가 눈에 발자국이 남는다는 걸 알고 있을까? 네팔 호랑이응 사람만을 습격하는 식인호食人虎이고 3 - 4일 굶으면 싫어도 사람사냥을 할 것이다. 더구나 식인호랑이는 임신 중이거나 새끼를 낳았으므로 굶주림을 오래 견디지 못 할 것 아닌가? 예상대로 이튿날 메시시마을에 나타났다. 그리고 전례前例없는 실수를 했다. 그는 물소를 몰고가는 노인을 습격했는데 덮치기 전에 사람에게 발각되었다. 옛날에 사냥을 해본 경험이 있는 노인은 고함을 지르면서 물소의 고삐를 쥐고 물소 뒤로 피했다. 그러자 물소는 호랑이가 자기를 습격하는줄 알고 머리를 숙이고 전투제세를 취했다. 호랑이는 기습기회를 잃고 멈칫거렸다. 호랑이가 물소 주위를 빙빙 돌았는데 물소도 머리를 숙여 뿔로 받겠다는 투로 호랑이와 같은 방향으로 돌면서 대항했다. 네팔의 식인범은 사람을 공격하는데는 익숙했으나 물소를 골격하는 것은 서툴렀다. 의외로 강경한 물소의 반항에 당황했고 계속 고함을 질러대는 노인 때문에 당황했다. 그는 마음대로 공격을 할 수 없게 되자 신경질적으로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했으나 막상 덤벼들지는 못 했다. 노인의 고함소리를 듣고 마을에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호랑이는 결국 공격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코베트는 곧 현장으로 달려가 호랑이를 격퇴시킨 용감한 노인을 만났다. 그 놈이 네팔 호랑이라는 걸 확인했다.

나리, 그 놈은 틀림없이 나리가 찾는 놈입니다. 몸집도 크고, 털이 희고 그리고 그놈은 물소가 아니라 나를 노렸습니다. 그러나 그 놈은 물소에 눌려 덤벼들지 못 했지요,’

코베트가 더 자세한 상황을 물었을 때

아니요. 그 놈은 몸이 뚱뚱했습니다. 특히 아랫배가 둥그렇게 쳐져있었습니다.’

뭐요! 아랫배가? 혹시 새끼를 밴 것 같지 않았어요?’

새끼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랫배가 거의 땅에 닿을 정도로 쳐졌어요.’

수수께끼가 풀렸다. 네팔의 호랑이응 구마온에서 임신을 했다. 아마도 전에 죽은 숫컷이 남편이었고 과부가 된 암범은 만삭滿朔이 된 몸으로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수놈이 있으면 수놈이 먹이를 제공하겠지만 수놈이 죽었기 때문에 무거운 몸으로 사냥을 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기회가 왔다. 적은 몸이 무겁고 굶주리고 있으며 눈이 내려 발자국이 남지 않은가? 구마온의 살인범은 무거운 몸으로 확실한 발자국을 남겼다. 초조한 듯 일직선으로 산 중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답지 않은 무모한 행동이었다. 코베트도 거의 달리다싶이 따라갔다. 호랑이는 산중턱을 넘어 계속 남쪽으로 달렸다.

(남쪽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코베트가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경악했다. 남쪽 1Km 지점에 마을이 있었다. 인구가 300여 명이나 되는 꽤 큰 마을이었는데 네팔의 살인마는 대낮에 그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굶주림에 이성을 잃은 것일까?)

아무튼 사태가 급했다. 발자국 추적을 포기하고 나침판羅針板을 들고 뛰었다. 산악지대에서 자란 인디아인도 가쁜 숨을 내쉬는데 코베트는 피로한 것 같지 않았다. 산을 넘어서니 약 400여 미터 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호랑이 발자국은 여전히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마을의 지형을 살폈다. 마을은 약간 경사지에 있었는데 주위에 바위나 나무가 없었다. 서편 우물가에만 서너 그루 고목이 서 있을 뿐 호랑이가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마을이 조용한 것으로 봐서 아직 습격을 일어나지 않았고 호랑이는 우물가 나무 뒤에 숨어 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코베트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은폐물隱蔽物을 이용하여 우물로 달려갔다. 거리는 약 100m, 눈 위에 엎드렸다. 우물가에는 쓰러진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뒤에 얼룩이 보였다.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코베트에게 엉덩이를 보인 채 우물을 보고 있었다. 서너 명의 여인들이 무엇인가 씼고 있었는데 다행히 여인들이 몰려있어서 호랑이는 여인들이 흩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 신경이 여인들에게 몰려있어서 뒤에서 다가오는 코베트를 눈치채지 못 했다. 거리는 30m, 충분한 사격거리였으나 계속 접근했다. 세 여인이 광주리를 이고 떠나고 한 사람만 남았다. 호랑이에게 찬스였다. 꼬리가 치켜섰다. 한 번, 두 번, 세 번. 호랑이는 공격을 할 때 꼬리를 세 번 치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삼세 번 하는 것처럼. 상체가 일어섰다. 서서히 몸이 부풀어올랐다. 호랑이가 몸울 숨겼을 때와 공격할 때 몸의 부피는 세 배가 된다. 공격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 때 그의 뒤에서 코베트가 걸어오고 있었다. 호랑이가 뒷발로 따을 차려다가 등 뒤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를 맡았다. 네팔의 살인긔가 몸을 돌렸다. 코베트가 서있었다. 100여 명의 사람을 잡아먹은 호랑이에게는 의외의 광경이었다. 사람이란 목줄 한 번만 뜯기면 깩 소리도 못 하고 자기 모습만 봐도 얼어붙는 비겁한 동물인줄 알았는데 지금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확고부동確固不動한 자신을 갖고 덤벼드는 무서운 적수敵手였다. 당황했다. 겁을 먹는 동시에 화가났다. 그에게는 잠복할 장소도 도망칠 길도 없었다. 거리는 불과 20m, 호랑이가 땅을 차고 도약跳躍했다. 20m는 서너 발의 도약으로 닿을 거리였다.

나리, 쏘세요, 쏘아!’

총잡이가 고함을 질렀으나 코베트는 호랑이가 공중에 도약하여 몸을 일직선으로 쫙 펴는 때를 기다려 꿩의 날치기 기법으로 호랑이의 이마 30Cm 앞을 겨냥하여 쏘았다. 날아가는 속도를 감안하여 발사한 것이다. 호랑이가 앞발을 꿇고 뒹굴었다. 펄쩍펄쩍! 공중으로 2m나 뛰어올랐다. 2탄이 발사됐다. 공중에서 2탄을 맞은 호랑이는 땅에 떨어져 축 늘어져버렸다. 만삭이 된 배를 만져보니 새끼들이 꼬물거렸다. 사냥꾼에게는 지켜야 할 도리와 관례가 있다. 새끼를 갖고있는 짐승은 죽이지 않는다. 네팔의 살인범만은 예외다. 그 범은 아마도 세계 최고의 살인기록를 보유하였을 거다. 공식적으로 확인 된 것만도 100여 명의 사람을 잡아먹었다. 비공식적으로는 300여 명이 넘을 거라는 추신이다. 년 평균 3일에 한 명씩 희생되었으니 3년 동안에 300명이라는 추산이 된다. 또 다른 동물은 마다하고 사람만 잡아먹는 살육자였다. 코베트는 범이 아니라 살인마를 거의 반 년 동안 추적해서 사살했다. 그것도 임신했었기에 잡았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걸렸을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 예측이 힘들다. 새끼를 키우기 위한 모성본능 때문에 위험지구를 떠나지 않았다가 죽었다. 범은 8, 400Kg이 넘었다. 무척 영리한 놈이었다. 사람만 잡아먹었다. 동물 중에서 가장 공격하기 쉬운 상대였다. 힘도 약하고 발도 느렸다. 여러사람이 있으면 공격하지 않았고 기습을 해서 1, 2초 안에 목줄을 끊어 물고갔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계곡으로 들어갔다. 코베트가 네팔에서 이 놈을 잡기 위해 몰이꾼 40명을 동원하여 산을 하나 포위한 적이 있었다. 교활狡猾한 살인범은 통나무다리 아래 숨어 몰이꾼들이 지나가자 다른 데로 도망쳤다. 다른 범 같으면 사람들이 몰려오면 공격을 하거나 도망을 치는데 이 녀석은 결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지만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쉽고 사람이 호랑이를 사냥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내가 그 범을 쫓았으나 번번이 실패한 반 년 동안 그 녀석은 30여 명의 사람사냥을 했고 실패한 것은 불과 서너 번이었으니까요.’

코베트가 인디아총독總督에게 포상褒賞을 받으면서 한 말이었다.

 

36. 표범과 사투死鬪

 

살인범이 죽은 뒤 구마온은 평화로웠다. 주민들은 마음놓고 산과 들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맹수들이 우굴거리는 거대한 카라아가산맥의 줄기를 이은 구마온지구의 평화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곳은 네팔의 범이 지배했던 영토고 지배자가 사라지면 다른 지배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구마온주민들이 잠시 동안 - 약 석 달 동안 누렸던 평화는 옛 지도자와 새 지도자의 교체시기의 공백기空白期에 불과했다. 마을 사람들이 <새 침입자가 나타났다>고 수군거렸다. 맹수 측에서 보면 사람들이 침입자였으며 스스로 밥을 제공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새 침입자는 전의 폭군暴君에 비하면 초라했다. 호랑이는 무게가 400Kg이나 나갔고 포효를 하면 온 천지가 떨었는데 새 침입자는 고작 60Kg, 사람무게 정도고 포효라야 시계태엽이 풀리는 마찰음 같았다. 표독慓毒스럽고 앙칼진 소리였다. 구마온주민들은 처음에는 표범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까짓 표범 쯤이야 맨손으로도 때려잡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나 동물학자나 포수는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서운 맹수라고 한다. 표범이 다른 맹수들과 특징은 우선 투지다. 표범은 부딪친 동물에게는 크거나 작거니 인간이거나 동물이거나 무조건 덤벼든다. 자기보다 다섯 배나 큰 물소, 코뿔소, 코끼리도 예외가 없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두 번째는 그 잔인성殘忍性이다. 호랑이나 사자는 배가 부르면 다른 짐승을 공격하지 않았고 잡은 짐승도 먹을 만큼만 먹고는 남겨둔다. 네팔의 살인귀도 잠자는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뚱뚱한 한 사람만 골라 물어가고 다른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표범은 선천적인 살육본능을 타고나 우선 죽일 수 있을만큼 모두 죽여놓고 운반수단은 다음에 생각한다. 호랑이의 피해자는 한 번에 한 사람이었으나 표범의 피해자는 그곳에 있던 전부다. 세 번째는 표범의 마술魔術같은 은신술隱身術이다. 호랑이, 사자같은 고양이과 동물은 모두 은신에 능했으나 표범이 으뜸이다. 몸이 작아 유리하고 나무에 올라갈 수가 있어 은신범위가 넓다. 표범이 나무에 은신하면 나무에 있는 새를 잡으려고 돌아다니는 포수도 발견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표범의 공격은 민첩하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면서 벌써 목줄을 물어뜯는 짐승이다. 구마온주민들은 이러한 표범의 잔혹한 특징을 모르고 체구가 작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참극慘劇이 연달아 일어났다. 첫 희생은 돼지다. 마을 어귀에 있는 돼지우리가 온통 피비다가 된 걸 발견했다. 다섯 마리의 돼지들이 모두 죽어 있었고 가장 큰 놈 한 마리가 없어졌고 새끼돼지는 머리와 뼈만 남아있었다. 침입자는 마을 뒷산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살육을 했다. 그 자리에서 새끼를 뜯어먹고 큰 놈 한 마리를 물고갔다. 마을 사람들은 참상을 보고 아연실색啞然失色해서 마을회의를 열었다. 발자국으로 봐서는 호랑이 보다 작았고 살쾡이 보다는 컸다. 표범이라고 결론이 났고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다. 젊은이들 7 - 8명이 활과 창을 들고 표범을 푸적했다. 표범은 물고간 돼지를 400m 쯤 떨어진 산에서 뜯어먹고 반 쯤 남겨놓았다. 다름 짐승들이 먹지 못 하게 가랑잎과 흙으로 교묘하게 덮어놓았다. 하루 종일 추적을 했으나 표범이 이 산 저 산을 빙빙 돌고 있어서 표범 의 그림자도 없었다. 결국 날이 저물어 되돌아오고 있었는데 돼지의 시체가 없어졌다. 사람들이 추적을 하는 동안에 표범이 되돌아와 물고간 것이다. 사람들이 표범의 놀림감이 되었으므로 기가막혔는데 돼지가 없어져 사람들이 혀를 차고 돌아서자 표범의 위협소리가 났다. 이를 갈 듯 하는 킥킥소리였다. 캄캄한 밤에 무서운 살기를 띤 위협에 사람들의 발이 얼어붙었다. 오도가도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 불을 피우고 밤을 세웠다. 표범을 잡으러 갔다가 오히려 잡혀먹힐 처지가 되어 오들오들 떨었다. 표범은 이런 인간을 비웃듯 밤새 야영장을 돌아다니다가 새벽에 사라졌다. 사흘 후 표범이 다시 나타났는데 이 번 희생자는 사람이었다. 아직 해질녁이었는데 열 살 남자아이를 물고갔다.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가 희생되었다. 표범은 잡초 위에 납작 엎드려있다가 덮쳤는데 마을사람들은 비명도 듣지 못 했다. 간악한 맹수는 아이가 2m 앞까지 접근하자 단숨에 목줄을 물어 끊어버렸다. 마을 뒤 산림에 아이의 머리칼, 신발, 뼈가 남아있었다. 다시 추적대를 조직했다. 이웃에서 고물총 한 자루를 빌려 추적했으나 허사虛事였다. 표범은 몸이 가볍기 때문에 발자국이 남지 않았고 때로는 사라졌는데 나무로 올라가 발자국을 없애버린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고작 부모를 위로했는데 이웃마을에서 곡성哭聲이 났다. 빨래하던 여인들 중 두 명이 살해되었다. 여섯 사람이 빨래를 했는데 네 명은 하류에서 두 명은 29m 쯤 떨어진 상류에서 빨래를 했다. 상류에서 찢어지는 비명을 들었을 때 표범은 한 여인을 밑에 깔고 목줄을 물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호랑이는 힘이 세기 때문에 단번에 목줄을 물어뜯어버리지만 표범은 힘이 약해서 목줄을 물고 출혈과다가 되어 숨질 때까지 누르고 있다. 첫 번째 여인의 숨이 끊어지자 공포에 막대기처럼 서있는 두 번째 여인에게 덤벼들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여인이 하류쪽 동료들에게 가려고 했으나 이미 표범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인이 두 팔을 흔들며 반항을 하자 표범이 여인의 얼굴을 할켰다. 두 번째에는 총알같이 여인에게 부딪혀 여인을 쓰러뜨렸다. 쓰러진 여인에게 걸터앉은 표범은 핥고 치고 물고 온갖 잔악한 짓을 했다. 급보를 받고 남자들이 달려갔을 때 한 여인은 발목과 머리칼만 남은 시체였고 다른 여인은 행방불명이었다. 구마온에서 연달아 희생자가 나오자 여러 마을 장로들이 연석회의를 했다. 그들로써는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영국관리를 통해 코베트를 지정하여 초청했다. 코베트는 사냥을 취미로나 돈벌이로 하지 않고 맨 이터(Man Eater, 식인 맹수)만 노리는 밀림의 보호자였다. 코베트는 한 달만에 다시 구마온을 찾았는데 한 달 사이에 돼지 세 마리, 개 두 마리의 개 그리고 사람 네 명이 희생되었다. 표범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황금사냥터라도 발견한 양 닥치는대로 죽였다. 마을 주위에 가시덤불을 쌓아올렸으나 표범은 2m가 넘은 담벽도 마음대로 타고 넘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암포범이 가세했는데 마을사람들의 공포심은 더 커졌다. 코베트는 예고없이 인디아인 조수를 데리고 왔는데 이번에는 라이플이 아닌 산탄총을 가지고 왔다. 새 종류를 날려잡는 총이었다. 코끼리, 호랑이, 물소들에게는 소용이 없으나 날렵하고 민첩한 그리고 껍질이 얇은 표범사냥에는 적절한 무기였다. 맹수사냥 전문가들이 코베트가 산탄총을 사용하는 걸 보고 위험을 경고했으나 코베트는 웃었다. 코베트는 사냥꾼일 뿐만 아니라 동물학자였으며 동물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 박학다식博學多識했다. 코베트가 마을 장로들을 모아놓고 피해를 막을 방법을 전달했다. 밤에는 문단속을 잘 하고 밖으로 나오지 말 것, 낮에는 무기를 갖고 5명 이상 집단행동을 할 것, 마을에 개를 많이 사육할 것, 표범이 나타나면 즉시 보고할 것 등이었다. 표범이 마을을 습격한 장소와 날짜를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흘에 한 번 나타나고, 한 번 습격한 마을은 연달아 다시 습격하지 않고, 전 습격지와 후 습격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로써 코베트는 표범이 습격할 날짜와 마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코베트가 마을에 온 후 사흘 동안 표범은 굶주렸다. 개가 짖고 경계가 삼엄했기 때문에 마을 접근이 어려웠다. 코베트는 낮에 산림을 돌아다니면서 또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표범이 코끼리와 싸운 것이다. 코끼리가 새끼와 같이 있었는데 새끼를 노렸다. 표범은 어쩌자고 코끼리에게 덤볐을까? 표범과 코끼리의 싸움은 황소와 고양이로 비교하면 된다. 고양이가 황소에게 덤벼든 것이다. 코끼리 새끼가 엄머코끼리에게 떨어진 틈을 노렸으나 새끼도 10개월이 넘었기 때문에 코를 흔들어서 대항을 했고 곧 새끼의 울부짖는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코끼리가 달려왔기 때문에 도망갔다. 표범은 코끼리를 잡아먹으려고? 영토를 지키려고? 아니면 살육본능 때문에? 마지막 답변에 무게가 실렸다. 발자국으로 봐서 표범은 이 부근에 잠복하고 오늘밤에는 마을에 들어올 것 같았다. 마을주민들을 동원하여 마을 주변의 잡초와 나무를 잘랐다. 마을 주변에 20m 정도의 공터가 생겼고 표범은 그 공터를 통과하지 않고는 마을에 들어올 수가 없다. 마을주민 네 사람을 주변에 배치하여 밤샘을 시켰다. 그러나 표범이 오지 않았다. 이튿날은 일부러 마을 주변에 가축을 풀어놓고 밤에는 마을 한복판에 모아놓았다. 마을 주변 사방이 산이기 때문에 표범은 광장에 모아놓은 가축을 보았을 것이다. 12시께, 잠복한 감시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쪽 공터에 뭣이 보인다고 했다. 코베트가 서쪽 잠복소인 마구간에 가자 감시인이 흥분하여 금방 표범이 마을로 들어갔다고 알려주었다. 표범은 빈 집인 방앗간에 숨었을 것이라고 했다. 마을 광장에 매놓은 염소에게로 갔다. 염소는 매우 불안한 태도였다. 염소는 줄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표범의 접근을 감지했다. 통나무 뒤어 숨어있는 코베트가 바람의 방향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바람이 불규칙적으로 불었다. 표범의 예민한 코는 사람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호랑이나 다른 맹수 같았으면 벌써 달아났을 것인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표범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숨막히는 긴장이 7 - 8분 계속되었으나 방앗간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도망했을까?)

코베트가 긴장이 좀 풀렸을 때 방앗간 뒤에서 그림자가 나타났다. 조용하게 미끄러지 듯 땅에 딱 붙은 그림자는 천천히 기었다. 파란빛이 두 개 번쩍였다. 도깨비불처럼 요사妖邪스런 빛이었다. 1m 쯤 기어나온 표범은 주변을 살폈다. 표범의 표적이된 염소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주위에 이상이 없다고 확신하자 표범이 염소에게 덮쳤다. 그 때 강한 바람이 코베트쪽에서 표범쪽으로 불었다. 일순一瞬, 표범이 염소공격을 중지하고 방향을 틀어 도망을 하려고 몸을 돌렸다. 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더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총은 이미 표범에게 조준되어 있었다.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 소리와 함께 표범이 공처럼 굴렀다. 공처럼 퉁기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총잡이에게 전지를 가져오라고 해서 살폈는데 핏자국으로 봐서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부상입은 표범을 밤에 추적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날이 밝자 코베트는 발자국과 핏자국을 추적했다. 표범은 앞발 하나를 쓰지 못 하고 세 발로 달아나고 있었다. 맹수 중에서도 추적이 가장 어렵고 위험한 것이 표범이다. 간악할 뿐만 아니라 은신술이 뛰어나 돌맹이나 풀 한 포기에도 몸을 숨기고 나무 위에도 숨는다.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으로 위장을 하면 새를 잡는 포수도 속아넘어간다. 그래서 코베트가 앞장을 서고 총잡이는 뒤에 따라갔으며 적어도 2m 전방까지 발자국을 확인해야 움직였다. 큰 산을 넘고 바위투성이 산으로 들어갔다. 표범이 타고넘은 바위에는 빨간 피가 떨어졌다. 앞서가던 코베트가 총잡이에게 손짓을 했다. 일직선으로 달아나던 표범이 왼쪽으로 돌고 있었다. 왼쪽 10여 미터 전방에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뒤편에 맹수사냥꾼만이 느끼는 요기가 있었다. 바위 밑을 지나가는 게 위험했다. 진로를 바꾸어 바른쪽으로 올라갔다. 바위가 아래에 보였다. 바위 뒤를 살펴보려는 순간 표독스러운 소리가 나고 알록달록한 것이 스쳤다. 방아쇠를 당길 틈이 없었다. 표범이 산 아래로 도망쳤다. 그러나 표범은 언제까지 도망을 치는 맹수가 아니다. 성미가 급해 오래지 않아 반격을 할 것이다. 계곡에서 물을 마신 표범은 잠시 휴식을 하고는 동쪽 저습지低濕地 삼림으로 들어갔다. 추적자를 골탕먹이려는 심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발밑뿐만 아니라 나무 위도 살펴야 한다. 이런 조건이라 추적은 10시간에 4Km 정도를 나아갔다. 해가 지자 망으로 돌아왔다. 발이 세 개 뿐인 표범을 추적하지 못한 실망감으로 울울했다. 마을 사람들도 실망한 표정이었다. 다음 날 새벽에 나섰는데 표범의 발자국이 하나 더 불어났다. 발자국이 좀 작은 암컷이었다. 부상한 표범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잠을 잤고 암컷이 간호를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추적자를 의식하여 일직선으러 달아났는데 다행한 건 습지라 발자국이 또렸했다. 그 날 정오께 물가에 물소가 죽어있었다. 아직 어린 물소였는데 동체胴體는 없어지고 머리와 하반신이 남았다. 발자국으로 봐서 표범이 대뜸 물소의 등 위에 올라타 물소의 목덜미를 물어뜯었고 물소는 많은 피를 흘려서 죽었다. 표범은 미국 서부 카우보이보다도 훨씬 더 말타기 명수名手. 호랑이는 물소의 등에 올라타면 400Kg이나 되는 무게로 눌러 넘어뜨리지만 몸이 가벼운 표범은 발톱을 물소의 몸에 박고 몸을 밀착시킨다. 물소가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도 가시덤불에 찔리는 것은 물소다. 표범에게 공격을 받은 물소가 표범을 질식窒息시키려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잠수潛水를 했는데 그러나 물소도 수중에서는 호흡을 못 하기 때문에 1 - 2분 뒤 떠올랐는데 표범은 물소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화가 나 물소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코베트는 추적을 중지하고 점심을 먹었다. 표범이 먹고 남긴 물소고기로 푸짐한 불고기파티를 벌였다.

나리, 그 놈들이 애써 잡은 고기를 빼앗겨 약이 오르겠지요?’

(약이 올라?)

(약이 올라서 되돌아올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

부근에 난 표범의 발자국은 신선新鮮했다. 남은 물소고기를 가랑잎으로 덮거나 흙으로 은폐하지도 않았다. 추적을 눈치채고 황급히 도망친 것이다. 표범은 배를 채우지 못 했고 물소고기에 미련이 있을 것이다. 추적자를 따돌린 다음에 돌아올 계산을 했을 것이다.

(좋아!)

코베트는 보마(잠복소)를 팠다. 깊이 1m, 넓이 1m 정도로 땅을 파서 위에 나뭇가지를 얽어매고 풀과 나뭇잎을 덮었다. 일부러 발자국을 남기며 그 자리를 떠 크게 삼림을 한바퀴 돌아 되돌아와 보마에 숨었다. 인디아인 총잡이 카만은 명령에 충실했으나 코베트의 이런 작전에는 반대했다. 반대의 이유는 산탄총이었다. 산탄총의 유효사거리는 50m로 되어있으나 실은 20m였다. 따라서 잠복소에서 20m 이내에 있는 표범과 대결을 해야 하는데 위험한 모험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밤이고 표범은 두 마리였다. 두 번째는 표범이 오지 않을 것이다. 총을 맞은 표범이 어리석을 짓을 할 리 없다는 것이다. 코베트는 카만의 의견을 무시했다. 표범은 원래 두려움을 모르는 악착齷齪같은 놈이기 때문에 잡은 먹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코베트의 확신이 자신을 잃었다. 밤새 가다려도 표범이 나타나지 않았다.

나리, 단념하고 나갑시다.’

날이 희무끄레 밝아오는 걸 보고 카만이 속삭였다. 코베트도 쓰디쓴 표정으로 일어섰다. 카만이 먼저 나가고 코베트가 뒤따라나갔다. 찬 바람에 정신이 오싹했는데 카만이 별안간 고함을 쳤다.

표범이다, 표범!’

어디서 나타났는지 카만과 표범이 껴안고 뒹굴었다. 카만은 2m가 넘는 거구巨軀였으며 힘이 장사壯士였다. 그는 표범이 나무 뒤에서 나와 덥쳐들었을 때 왼팔을 굽혀 내밀면서 자기 목을 보호했다. 표범이 앞발로 카만을 후려쳤으나 카만도 오른팔을 쭉 뻗어 표범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래서 표범은 입을 벌렸으나 카만의 목줄을 물지 못 했고 카만과 표범이 엉켜 넘어진 것이다. 표범이 달려드는 힘에 넘어졌으나 표범의 목을 비틀면서 넘어졌기 때문에 목줄을 물리지 않았다. 이런 경우 총알이 퍼져나가는 산탄총으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그래서 허리의 칼을 뽑으려다가 아차! 하고 멈추었다. 표범이 두 마리라는 걸 깜박했다. 얼핏 멈칫거리는 동안 또 한 마리의 표범이 정면에서 덤벼들었다. 코베트는 날아가는 꿩이나 오리를 쏘는 자세로 발포했다. 표범이 땅에 곤두박질하고 다시 일어서자 제 2탄을 발사했다.

(저 놈은 죽었다.)

순간적으로 판단한 코베트가 카만에게 달려갔다. 표범이 카만을 밑에 깔고앉아서 목을 밀어내는 손을 뿌리치려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 새끼가!’

코베트가 총대로 표범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표범이 옆으로 뒹굴었다. 표범과 카만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카만, 칼 받아!’

칼을 넘겨주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카만이 코베트의 말을 알아들었다. 칼을 받은 카만이 표범의 심장에 칼을 깊숙이 박았다. 그 난타전에서 코베트가 산탄총의 총구를 표범의 아랫배에 쿡 찔러넣으면서 발사했다. 사냥생활 15년에 총을 그런 식으로 쏘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급소는 아니었지만 표범의 힘이 약해졌다. 발의 움직임에도 힘이 없었다. 카만이 칼로 표범을 난자亂刺했다.

그만 그만, 표범에서 떨어져! 일어나란 말야!’

카만이 일어섰고 코베트는 표범의 머리에 한 방을 먹여 숨통을 거두었다. 불과 2분이 채 되지 않은 싸움이었으나 쌍방 간 처참한 사투死鬪였다. 카만은 왼팔, 가슴 그리고 얼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특히 팔의 상처는 길고 깊었다. 코베트가 카만의 상처에 위스키를 퍼부었다. 푭머의 손발톱에는 무서운 독균이 있기 때문에 소독을 한 것이다. 붕대로 팔 상부를 묶어 피를 멎게 한 다음 표범을 살폈다. 처음 사살한 게 구마온의 살인표범이고 카만과 결투를 한 게 암컷이었다.

나리, 두 놈 다 가죽은 버렸는데요.’

가죽? 그래, 저 건 걸레감도 안 돼.’

카만은 중상을 입고도 웃었다.

카만, 자네 의견이 옳았어. 내가 너무 모험을 했어.’

아닙니다. 결국 나리 판단이 정확했지요. 표범이 돌아왔으니까.’

표범의 집념은 대단했다. 잡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돌아왔으나 사람이 잠복한 걸 눈치챘다. 그래서 숲에 숨어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람은 표범을 기다리고 표범은 사람을 기다렸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유명한 사냥꾼 헌터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는 표범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단 격투가 벌어지면 표범은 약하다. 사자나 호랑이는 일격으로 사람을 쓰러뜨려 뇌진탕腦震蕩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나 몸무게가 사람과 비슷한 표범은 그런 힘이 없었다. 맨손이었던 카만도 1분 간은 표범과 맞잡고 싸울 수가 있었다. 표범과 사람이 맨손으로 싸운다면 표범을 이길 수 없겠지만 칼을 가지고 싸운다면 승부는 반반이라고 카만이 말했다. 그것을 증명한 셈이다.

 

37. 주가의 범

 

19294, 코베트가 다시 구마온을 방문했다. 동부 구마온의 주가지대였다. 살임범이 나타나 이미 3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진정이 들어왔다. 가라아가산맥과 이어져있는 곳이라 뭇짐승들이 모여들었다. 둘소, 물소, 영양 등 초식동물이 모여들어 그들만의 낙원을 이루면 범, 표범들이 냄새를 맡는다. 맹수들이 나타나면 초식동물의 지옥이 되고 맹수들의 낙원이 된다. 삼림은 초식동물의 비명으로 가득차고 맹수들의 포효가 울린다. 이런 상태가 3 - 4개월 지속되면 초식동물은 몰살沒殺되거나 도망가버린다. 그러면 맹수들이 굶주리고 지옥이 된다. 그 다음에 사람들의 수난受難이 시작된다. 사람이 밤에는 눈이 안 보이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고 밤에 습격한다. 점점 대담해져서 백주대낮에도 유유히 마을에 들어와 사람을 잡아간다. 그러면 구마온은 이제 사람의 지옥이 된다. 코베트의 역할은 그 때부터다. 동부 구마온지역의 주가는 산들이 험악했고 숲과 나무가 울창鬱蒼했다. 코베트는 인디아인 총잡이 카만과 동행했다. 차에서 내린지 사흘만에 포레스트 방갈로에 도착했는데 여독旅毒을 풀 여유도 없이 방문객이 있었다. 범에게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찾아왔다. 손자는 단 하나뿐인 핏줄이었는데 동료同僚 두 명과 같이 나무를 하러가는데 주가의 살인마가 습격했다. 주가의 살인마는 대담하게 세 명의 젊은이에게 덤벼들었다. 도끼와 톱을 가지고 있었으나 범에게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범은 첫 도약跳躍으로 한 사람을 쓰러뜨렸고 다음 동작으로 또 한 사람에게 중상重傷을 입혔다. 남은 사람이 부상한 동료와 같이 도망을 했는데 약 반 시간 후 마을사람들이 도착했을 때는 뼈만 남아있었다. 노파老婆는 울면서 원수怨讐를 갚아달라고 하며 소 세 마리를 주겠다고 했다. 물소 세 마리는 노파의 전 재산이기 때문에 사양辭讓했다. 범만은 꼭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노파가 돌아간 후 인근隣近 마을주민들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들의 호소呼訴는 더 처참悽慘했다. 최근 석 달 동안에만 23명이 희생되었다고 했다. 며칠 전에 죽은 젊은 여자는 열 서너 사람이 보는 앞에서 습격을 당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뜯어먹었다. 주가의 범은 옷을 벗길줄 알았다. 여자를 알몸으로 만들어놓고 먹었다. 도착한지 이튿날 주가의 범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고 현지에 갔는데 마을은 서너 집에 외양간이 하나 있었다. 주변의 보리밭에서 세 사람의 농부들이 봄보리 수확을 하고 있었는데 범이 나왔다. 세 농부가 고함을 쳤는데 별로 개의介意치 않은 듯 서서히 돌아다니다가 사라졌다. 코베트가 범의 대처방법을 설명하고 있을 때 포효가 들렸다. 포효를 들은 마을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코베트는 포효소리가 들린 숲으로 갔다. 범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광대한 삼림에 수백 년 된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차고 숲은 무성한 나무들에 의해 낮에도 어두웠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으며 한없이 조용했다. 코베트는 이런 숲을 좋아했다. 마치 산책을 나온 것처럼 숲을 돌아다녔다.

나리, 여기에 .’

범의 배설물排泄物이 있었다. 범의 똥에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육식동물 특유의 썩는 냄새다. 또 털이나 뼈가 섞여있다. 보통 짐승들은 똥을 함부로 누지 않는다. 똥으로 인해 위치가 알려지기 때문에 똥을 누고도 흙을 덮어 감추는데 백수百獸의 왕은 거리낌없이 배설한다. 호랑이 사냥꾼은 호랑이의 약점을 이용한다. 코베트는 호랑이의 똥을 조사하여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첫째, 범이 두 마리였다. 발자국으로 부부夫婦가 아니라 부자지간父子之間이라고 봤다. 새끼는 거의 성장한 놈이었으며 애비가 똥을 누면 따라서 똥을 누고, 애비가 나무에 몸을 비비면 새끼도 따라 비볐다. 두 번째는 애비범이 병들었다. 똥이 소화불량상태였다. 위장병을 앓고 있거나 이빨이 좋지 못 한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이 놈들은 자기들에게는 강적强敵이 없다고 하는 오만불손傲慢不遜한 놈들이었다. 전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몸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조시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마을주민이 헐레벌떡 달려와 금방 범이 나타났다고 알렸다. 나무를 하다가 범과 물소가 싸우는 걸 보고 달려온 것이다. 범이 열 마리 쯤 되는 물소떼와 싸우는데 물소들이 단결하여 대항한다는 정보였다. 현장이 조용했다. 범과 물소의 싸움이 끝나버린 것이라고 판단했다. 주변이 피바다가 되었는데 물소가 용감하게 대항한 듯 주변의 풀은 짓밟혔고 나무들도 쓰러졌다. 범과 대결에서 물소들은 원형진圓形陣을 친다. 둥그렇게 엉덩이를 맞대고 머리를 상대에게 들어 뿔로 받는다. 범이 주위를 빙빙 돌면 물소도 같이 따라돈다. 물소들의 원형진이 물소의 작전이라면 범의 작전은 물소의 원형진을 깨뜨려 물소들이 흩어지게 하는 교란攪亂작전이다. 범은 물소의 원형진을 주위를 천천히 돌다가 점점 빨라지고 나중에는 팽이처럼 빨리 돈다. 그러나 물소들은 원형진을 풀지 않는다. 그러면 범은 껑충껑충 뛰면서 물소를 위협한다. 금방이라도 덤벼들려는 시늉을 한다. 권투선수가 쨉을 날리 듯 가볍게 앞발치기를 한다. 대개 리더를 공략攻掠하는데 물소들이 동요動搖하여 도망을 치면 싸움이 끝난다. 범이 흩어진 물소 중 한 마리를 선택하여 공격하는데 1 : 1의 싸움에서 물소는 승산이 없다. 2m 정도는 가볍게 뛰어오르고 범의 앞발치기는 물소의 목을 부러뜨릴 수 있다. 물소가 죽은 흔적痕迹과 끌려간 자취가 있었다. 범은 400Kg이 넘는 물소를 가볍게 끌고갔다. 100m 쯤에서 다른 범이 합류했다. 코베트는 거기서 추적을 멈추고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범이 가는 방향을 가늠하여 멀리 돌아갔다. 범이 가는 방향을 앞질렀다. 그리고 다시 반대방향으로 내려왔다. 코베트의 작전이 맞았다. 50m 전방에 범들이 보였다. 한 마리가 갈비를 물고 머리를 흔들어 뜯어냈다. 온통 피투성이 악귀惡鬼 같았다. 또 한 마리는 이미 포식飽食을 하고 비스듬히 누워 얼굴을 핥고 있었다. 거리는 약 50m, 좀 먼 거리였으나 더 접근할 수가 없었다. 코베트와 범들이 있는 곳에는 바위나 나무 한 그루 없는 공터였다. 그 때 갈비를 뜯고 있던 범이 고개를 들더니 주위를 살폈다. 사람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어떤 놈이 주가의 살인범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대개 범은 어미나 두목이 먼저 식사를 하기 때문에 누워있는 놈을 조준해서 심장에 발사했다. 누워있던 놈은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놀라 의아스러운 듯 눈을 뜨고 일어서더니 앞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총탄을 맞은 범이 고함을 치거나 뛰어오르는 것은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는 증거다. 범은 총탄을 받고 슬그머니 누웠다. 또 한 마리의 범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가버렸으나 코베트는 만족했다.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환호성을 질렀다. 춤을 췄다. 가까이 가서 죽은 범을 본 코베트의 낯빛이 창백해지고 입술을 깨물었다. 한 눈에, 죽은 범이 살인귀가 아니라 새끼라는 걸 알아채렸다. 새끼라고는 하지만 1년 반 정도 자라 다 큰 범이었다. 몸무게도 300Kg이 넘었다. 주가의 범이 사람고기로 키운 범이었다. 영리한 주가의 살인귀는 멀리멀리 도망을 칠 것이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범은 1주일이 지났어도 본 사람이 없었고 소식도 끊겼다. 코베트가 떠나려고 하자 구마온주민들이 성대한 환송잔치를 열었다. 코베트가 떠난지 한 달 뒤, 19304월에 구마온에 주가의 살인귀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돌아온 살인귀는 행동변화가 있었다. 사람 무서운줄 모르고 덮어놓고 덤벼들던 놈이 이제 자기 몸을 숨겨 행동하는 암살자가 되었다. 주가의 살인귀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귀신이 되었다. 구마온에 돌아와 처음 침입한 님서마을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었으며 늙은 마을 청소부가 첫 희생자였다. 그 노인이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집 처마 밑에 있는 큰 개를 보았다. 개 같은 그림자는 <소리없이 노인에게 날아왔다>고 목격자目擊者가 말했다. 목격자는 노인의 뒤를 따라가던 손자였는데 <검은 그림자가 공중을 날아서 할아버지에게 덤벼들었으며, 할아버지를 한 주먹으로 넘어뜨린 후 할아버지를 물고 다시 날아가버렸다>고 증언했다. 날아가는 호랑이는 없었으나 주가의 범은 그만큼 동작이 빨랐다. 주가의 범의 살인솜씨는 다음 사건 때는 더 놀라웠다. 그는 사람도 물을 마시는 동물이며 물을 마시거나 긷기 위해 마을 앞 강에 자주 드나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과 마을 사이에 잠복했다가 습격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강가에서만 다섯 사람이 희생되었다. 코베트가 급히 구마온에 온 날에도 희생자가 생겼다. 마을사람들은 범의 습격에 대비하려고 7- 8명씩 떼를 지어 물을 긷고있었는데 언제인지도 모르게 한 사람이 없어졌다. 날이 어두워지고는 있었으나 10여 미터 정도의 주변을 볼 수는 있었는데 호랑이를 보지 못 했다. 맨나중에 오던 여자가 없어진 걸 알고 일대를 찾았으나 허사虛事였다. 그래서 온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횃불을 들고 찾았는데 핏자국을 발견햇고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범은 개울로 들어가버렸다. 물이 허리까지 차는 개울이라 수색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새벽 코베트는 현장을 조사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주가의 범은 일행과 10요 미터 떨어져 있는 여자를 단 일격으로 죽이고 그 시체를 물고 30여 미터 떨어진 개울로 들어가 물길을 10여 미터 거슬러 올라가 통나무다리 밑에 숨어있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오갔으면서도 다리 밑에 범이 숨어있다는 걸 몰랐다. 주가의 범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 유유히 빠져나갔다. 여지의 시체는 거기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한 줌의 머리카락과 몇 개의 뼈가 전부였다. 코베트가 범을 추적했다. 범은 사람고기로 만복滿腹한 범은 그 자리에서 푹 쉬고 숲으로 들어갔다. 전과 달리 발자국을 없애려고 개울에 들어가고 가시덤불 속으로 갔으므로 추적은 매우 어려웠다. 하루 종일 추적했으나 범을 발견하지 못 했다.

나리, 돌아갑시다. 어두워졌어요.’

되돌아가자고? 안 돼!’

야영? 이 삼림에서 단 둘이 잔다는 말입니까?’

지금까지 범의 행동을 보면 범이 일직선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삼림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범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야영을 하다니! 달도 없는 밤에 범의 습격을 받으면 죽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코베트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카만에게 빙긋 웃었다.

이 사람아, 나도 호랑이 밥이 되긴 싫어!’

그럼 마을로 되돌아갑시다.’

여기서 마을 까지는 10Km. 가는 길에 호랑이 밥이 될게 확실해.’

그런 어쩌지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여기서 죽는 게 낫지. 하하하하!’

 

38. 아편밀매자의 도망

야영준비를 했다. 고릴라의 집을 지을 작정이었다. 고릴라는 삼림에서 즉석 잠자리를 마련하는데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공중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잠자다가 호랑이나 사자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범이 습격을 못 하는 5m 이상 높이에 나란히 평행되게 뻗은 나뭇가지를 찾아 나뭇가지를 잘라 가로지르고 넝쿨로 얽어 그 위에 나뭇잎을 깔아 침대를 만든다. 그리고 하늘의 별을 보며 잠이 들었다. 윗층에서는 카만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리, 일어나세요. 나리.’

일어나자 해가 머리에 있었다. 추위에 떨다가 햇볕이 들자 밤새 설친 탓에 늦잠을 잤다. 나무 밑에 모닥불을 피우고 뜨거운 커피와 건빵이 차려져있었다.

너무 늦었는데 .’

나리, 우리도 고단했지만 범도 잠을 설쳤을 거고 거동擧動도 늦을 겁니다.’

그렇다, 이번 추적은 범과 사람의 인내심의 경쟁이었다. 범은 코베트의 잠자리 부근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나무에 올라가는 재주는 없었다. 인디아는 5월인데도 더웠다.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운 환경이 지치게 했다. 범도 이런 환경을 견디기 어려워 계곡으로 갔다. 계곡에서 몸을 담궜는데 범도 목욕을 했는지 털이 많이 남아있었다. 범은 목욕을 하고 단잠을 잔 것 같았는데 사람은 잠을 잘 여유가 없었다. 야행성인 범은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했으나 사람은 밤에 자고 낮에 활동해야 했으므로 추적자들의 고생은 갈수록 심해졌다. 도망자는 추적자를 괴롭히려는 듯 일부러 로프로도 타기 어려운 바위산을 넘고 걷기 어려운 습지를 통과했다. 그 날 오후 5시께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선 코베트가 긴장했다. 언덕 밑은 가시덤불이었다. 뱀도 빠져나가기 어렵게 가시와 넝쿨이 얽혀있었다. 뒤따라오던 카만도 아연실색啞然失色했으나 체념한 듯 앞으로 나섰다. 코베트를 위해서 가시덤불에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

잠깐만, 카만. 움직이지 말아!’

코베트가 가시덤불 너머의 숲을 보고있었다. 일반인에게는 사라진 사냥꾼의 제 6이었다. 코베트는 그 숲속에 주가의 살인범이 있다고 가정假定해봤다. 그리고 카만과 자기가 덤불을 뚫고 들어간다고 가상假想했다. 덤불을 통과하자면 기어서 가야한다. 한 손의 칼로 덤불을 쳐내면서 기어가야 하는데 그 때 범이 덮치면 어떻게 될까? 코베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코베트가 다시 숲속을 살폈다. 숲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잡목이 서너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에 까마귀들이 앉아있었다. 까마귀들은 숲속의 한 지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안함과 호기심이 섞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숲이 너무 조용했다. 토끼나 다람쥐들이 있다면 풀이 움직이는 법인데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코베트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까마귀들이 보고있는 지점을 향해 발사했다. 카만은 주인이 그런 바보짓을 하는 걸 이때껏 본 적이 없었다. 아무 목표물도 없는데 발사를 하는 어리석음도 문제거니와 범을 추적하면서 함부로 총성을 낸다는 것은 상식 밖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릴 사이도 없이 총은 연거푸 두 발이나 발사되었다. 다음 순간 숲의 풀이 좌우로 쫙 갈라지며 그 가운데 배가 물 위를 달리듯 선이 하나 나타났다. 선입관先入觀이었는지 그 선 위에 노란 색체가 스치는 것을 봤는데 카만이 범이라고 말했다. 숲을 조사해보니 역시 범이었다. 털이 떨어져 있었고 털에서는 화약냄새가 났다. 총탄이 털을 스친 것 같았다.

나리.’

카만이 우울한 표정을 말했다.

이제 그 놈은 죽어라고 달아날텐데 추적을 계속하나요?’

물론, 우린 그 놈을 따라가야돼. 열흘이 걸려도 한 달이 걸리드라도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해야 해!’

코베트가 나지막하나 단호한 어조語調 명령했다.

우리가 그 놈을 따라가는 동안에는 인명人命피해는 없을 거야. 우리 추적이 그 놈을 잡지 못할망정 인명피해는 막고있어.’

그건 그렇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목숨이 위태롭겠지만 .’

카만의 반항은 이유가 있었다. 하루에 몇 백리를 달리는 범을 사람이 추적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또한 삼림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는 추적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위험한가? 그리고 카만이 등에 진 배낭의 건빵은 고작 4일분인데 . 코베트는 그런 악조건을 알고있으면서도 추적을 계속했다. 원래 추적은 추적자 보다 도망자가 더 불리한 법이다. 쫓기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를 야기惹起하기 때문에 신경이 병적病的이 된다. 이 심리는 인간에게 적용되지만 동물에게도 적용된다. 한국사람들은 사슴을 사로잡는데 꽹과리를 치면서 줄기차게 사슴을 몇 날 며칠 몰아붙이면 사슴은 신경쇠약상태로 마비되어 우두커니 서있다가 잡힌다. 범에게도 이런 작전은 통할 것이다. 불안과 공포로 신경을 망쳐놓을 셈이다. 범을 추적하는데 위험은 감수甘受해야 한다. 범이 아니더라도 맹수들이 우굴거리는 산과 밀림은 위험하고 특히 인디아는 독사毒蛇가 위험하다. 그러나 그들은 범을 뒤따라가기 때문에 범이 지나간 길에는 다름 맹수들이 나타날 위험이 적고 도사는 조용하게 걸어가 자극刺戟만 주지 않으면 덤벼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리. 우리는 굶어죽을 염려가 있어요.’

카만, 지금은 4월 말이야. 삼림에는 먹을만한 식량이 얼마든지 있어. 보드라운 나뭇잎, 산딸기, 버섯도 먹을 수 있지 않나? 총도 마음놓고 쏠 수 있어. 도망치는 범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해서도 가끔 총을 발사해야 할테니 식량 염려는 없어.’

코베트는 범의 신경보다도 카만의 신경을 더 염려했다. 그래서 일부러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천천히 추적했다. 그 날 오후 들돼지가 목욕을 하는 걸 발견했다. 들돼지는 물 반 흙 반의 흙탕물에서 뒹굴고 있었다. 기생충을 없애기 위해 흙탕물에서 뒹굴다가 햇볕에 몸을 말려 기생충을 제거한다. 인이다이 들돼지고기는 맛있었고 특히 코베트가 좋아했다. 코베트가 연속 두 발을 쏘아 들돼지를 쓰러뜨렸다. 대식가大食家인 카만은 들돼지 뒷다리 하나를 통째 뜯었다. 식사가 끝나고 들돼지고기포를 만들었다. 고기를 얇게 빚어 바위에 널어놓고 바위 밑에 불을 피워 살짝 굽는다. 굽는다기 보다는 물기를 제거해서 바위에 널어놓으면 고기는 한두 시간 후에는 비스켓처럼 말랐고 서너 시간의 노력 끝에 40Kg 남짓 고기포를 얻었다. 고기포는 영양가가 좋고 맛이 있었으며 걸어가면서 먹을 수 있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했다. 또 포도 비슷한 과일은 채 익지 않았으나 먹을만 했고 산딸기도 많았다. 향기롭고 보드라운 나무순도 뜯었다. 계곡에서 물고기도 잡았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흙탕물 속에 고기들이 파닥거렸으므로 맨손으로 잡았다. 건빵과 들돼지육포肉脯, 산포도, 산딸기와 물고기스프에 카만은 대만족이었다. 허나 도망자는 초조한 것 같았다. 추적자들 때문에 잠도 편히 잘 수 없었고 먹이도 잡을 수 없었다. 범은 추적자를 따돌릴 셈으로 북쪽으로 달렸다. 동물의 본능으로 정확하게 북행을 했고 산악이 험준險峻한 네팔로 향하고 있었다. 총을 쏘면서 따라오는 추적자를 위협하려고 산봉우리에서 포효를 했다. <꼭 따라올 것이냐? 그냥두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럴 때마다 코베트가 총을 발사해 응수應酬했다. 사정거리 밖이었으나 범은 총소리가 나면 몸서리를 치면서 달아났다. 범과 포수의 추격전은 연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네팔국경인데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온통 바위뿐이었다.

나리, 오늘 밤에는 나무 위 호텔에서 잘 수 없겠는데요.’

어둡기 전에 동굴을 물색物色했다. 겨우 발견한 동굴은 두 사람이 몸을 부비며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만큼 작았다. 코베트가 하필 그런 동굴을 선택한 것은 동굴 뒤편이 절벽이고 앞은 공터였기 때문이다. 등 뒤는 절벽이기 때문에 범의 공격을 피할 수 있고 앞은 공터라 범이 공격해도 발사할 기회가 있다. 또한 달밤이었기 때문에 공터를 지나 습격하는 범을 쏠 수 있다. 범은 처음에는 추적자를 피하려고 도망을 갔으나 2 - 3일 전부터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추적자를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천천히 도망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때로는 바위나 숲에 잠복한 흔적도 있었다. 범의 야습을 막기 위해 치밀하게 빗자루로 발자국을 지우고 밤에도 불을 피우지 않았다. 불로 범을 막을 수도 없고 주가의 범은 불을 알고 있어 겁을 내지 않았다. 교대로 자기로 하고 12시에 깨워달라고 하고 초저녁에 먼저 잠이 들었는데 카만은 주인이 너무 고단한 것 같아 깨우지 않고 혼자 밤샘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도 피곤했다. 12시가 넘자 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총을 든 손이 무릎에 떨어지고 머리는 가슴에 늘어졌다. 코베트가 눈을 뜬 것은 새벽 찬 바람 때문이었다. 엎드려 자고있었기 때문에 왼쪽 팔꿈치로 일어나려는 순간, 코베트는 앉은 자세로 잠이 든 카만의 어깨 넘어에 커다란 불이 두 개 켜져있는 걸 발견했다. 어둠에 떠도는 도깨비불 같았다. 코베트는 숨이 멎는 걸 느꼈다. 대담한 포수였지만 전신이 마비되었다. 불과 거리는 불과 5m, 카만과 거리는 4m였다. 주가의 살인귀는 코베트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자기를 죽이려고 끈질기게 추적한 원수를 증오에 찬 눈으로 보고있었다. 그러나 그 시선에는 증오와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자기를 잡아죽이겠다고 하는 추적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이고 도망자가 추적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코베트는 범의 시선을 바로 받았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범의 눈을 쏘아봤다. 완전히 무방비상태의 그는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범은 덤벼들지 못 했다. 범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 했다. 그러나 코베트는 바른손을 한 치 한 치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장탄이 되고 안전장치까지 풀린 총이 있었다. 만약 그의 손이 총 끝에 닿을 수만 있다면 범과 승산勝算은 반반이 될 수 있었다. 범이 뛰어드는 순간과 총을 잡아당기면서 발사하는 찰라가 거의 동시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총이 없었다.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총이 손끝에 닿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선을 바꾸어 총의 소재를 확인 할 수 없다. 그런 행동은 범의 공격을 유발한다. 코베트는 손을 뻗치는 걸 포기하고 옆으로 더듬었다. 왼쪽으로 한 치, 다음에는 바른쪽으로 두 치. 그 어려운 순간에 코베트는 무서운 일을 당했다. 자고있던 카만이 움직였다. 무릎이 움직였다. 움직이면 범을 자극한다. 총이 움직이면 결정적 파국破局이 된다. 다행히 카만의 움직임을 느꼈으면서도 범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범은 자고있는 카만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코베트가 상대였다. 카만은 무릎을 좀 펴서 편안하게 하고싶었으므로 다시 잠들었다. 그 때 코베트는 손에 차가운 감촉을 느꼈다. 얼음보다도 차갑고 무쭐한 감촉이었다.

(됐다, 됐어. 이제 승산은 반반. 총을 당겨서 조준만 할 수 있다면 내게 승산이 있다.)

총신을 당길 수가 없다. 움직이는 순간 범이 덤벼들면 승산 반반의 싸움을 해야 한다. 코베트는 모험을 피했으며 총을 더 당겼다. 총이 가까워지면 발사가 빨라 더 승산이 있게 된다. 주가의 범은 덤벼들지 않았다. 몸은 금방이라도 도약할 태세였으나 습격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코베트는 총을 완벽하게 당겨놓았다. 이제 오른손에 쥔 총을 왼손에 던져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그 때 자동차의 헤트라이트처럼 빛나던 불이 갑자기 꺼졌다.

(!)

코베트의 손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였다. 귀가 먹을 것 같은 소리와 몸이 들썩이는 반동이 일어났다. 첫탄 발사와 동시에 일어서 밖으로 나왔다. 바위 뒤로 돌아가는 그림자를 보고 제 2탄을 발사했다.

카만, 총을 줘! 총을.’

코베트는 바위 위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

(어디로 갔나?)

나리, 돌아오세요. 위험합니다. 빨리 돌아오세요!’

위험할 것 없다. 싸움은 이미 무승부無勝負로 끝났으니 .

앗하하하 .’

처음에는 입속에서, 다음에는 소리내고 그리고 온몸으로 웃었다. 무승부였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패배에서 기적적으로 얻은 성과였다.

카만, 지옥은 어떤 곳이었지?’

?’

이 사람, 자네는 지옥地獄 문턱까지 갔었어.’

코베트가 카만이 자고 있을 때 일어났던 무서운 얘기를 하자 카만은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 놈은 왜 나를 살려주었는가요?’

잠자는 적을 습격하는 건 기사도騎士道에 어긋나는 치사恥事한 짓이니까. 핫하하하!’

날이 밝아지자 조사해보니 핏자국이 있었다. 중상은 아니지만 주가의 범은 두 번째로 총을 맞았다.

나리, 피가 뚝뚝 떨어진 걸 보니 배나 다리에 맞았지요?’

, 뒷다리야. 피가 털을 타고내려와 발자국과 함께 찍혀있어.’

두 번 역습을 했으므로 역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추적했다. 동부 구마온에서 북부 구마온을 거쳐 네팔과 인디아 국경까지 범을 추적했다.

카만, 힘을 내! 우리도 고생이지만 그 놈은 더 고생이지. 그 놈은 이틀 전에 말라빠진 똥을 누고는 아직 똥도 누지 못 했어. 3일째 굶고있는 거야.’

그 날 오후 늦게 네팔국경을 넘었는데 난데없이 총격을 받았다. 요란한 총성과 같이 몇 발 앞 바위에 총탄이 튕겼다. 얼핏 몸을 숨겼는데 또 한 발이 날아왔다.

누구야! 그만두지 않으면 응사應射한다!’

잔소리 말고 항복하라! 우리는 너희를 포위했다. 우리는 인디아 국경경비원이다!’

인디아 경비원은 선량한 포수에게 총을 쏘는 살인자인가?’

수렵가증명서가 있소?’

인디아총독이 발행한 증명서가 있지. 허가번혼 6.’

한참 동안 잠잠했다.

코베트씨요?’

그렇소.’

경비원들이 다가왔다. 그 중 한 사람은 영국인이었다.

미안합니다. 부근에 2인조 아편밀매자阿偏密賣者가 돌아다니고 있어 수색 중입니다.’

아편밀매자들은 네팔에서 아편을 구입하여 인디아를 통해 영국으로 반입搬入한다는 얘기였으며 사람만 보면 함부로 발사를 했다. 1Km 쯤 추적을 했을 때 카만이 놀란 표정으로 땅을 보고있었다. 코베트도 카만이 가리키는 지점을 보고 긴장했다. 범이 사람을 발견하고 따라갔다.

나리, 아편밀매자들 같아요.’

구두발꿈치가 떨어지고, 앞바닥이 갈라졌으며, 굶주려서 나무열매, 나무순 등 아무거나 먹었다. 비참한 도망자들이었는데 다른 도망자가 도망자를 쫓았다.

카만, 이건 재미없는데. 범이 사람을 보면서 미행하고 있어.’

그들은 범의 미행을 눈치채지 못 했다.

카만, 이건 위험해. 나쁜놈들이지만 범의 밥이 되게 놔둘 순 없어.’

주가의 살인귀는 영리했다. 함부로 습격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남자들이고 무장武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습격의 기회는 어둠이었다. 사람이란 어둠에 약했다. 날이 어두워져갔다.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나리, 포기합시다.’

.’

나리, 염려하지 마세요. 밀매자들도 무기를 가지고 있잖아요. 승부는 반반입니다.’

코베트는 승부를 9 : 1로 봤다. 기적이 없는 한 범이 승리한다. 그 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웠다. 범의 주의력을 이쪽으로 끌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불가에서 고기국과 커피를 끓여먹고 잠들었다. 나무 위에 만든 침대에서. 새벽 1시께 코베트가 놀라 일어나 카만에게 소리쳤다.

소리가 났어.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어.’

카만은 듣지 못 했다고 주장을 했고 다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래도 코베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코베트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추적을 했다. 범은 큰 바위 그늘에서 오래 엎드려 있다가 산마루로 올라가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에는 큰 바위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바위 사이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도망자들이 추적자들에게 소재를 알려주는 불을 끄지 않았을 리 없다. 무엇인가 사거가 생겼다고 직감했다. 단숨에 달려갔다. 그리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한 걸음 늦게 도착한 카만도 뒷걸음질쳤다.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곳이 온통 피바다였다. 중년 사내의 시체가 잇었는데 목줄이 끊기고 가슴 일부가 갈비뼈와 함께 뜯겨 없어졌다. 또 한 사내는 없어졌는데 끌려간 흔적이 있었고 대형 총 한 자루가 댕그마니 남아있었다.

바보 같은 놈들!’

코베트가 혀를 찼다. 그들은 경비원에게 발각될 것이 두려워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바위틈에 들어가 밤을 세울 작정이었는데 자살행위였다. 범은 그 바위틈에 들어가 한 사내의 목줄을 끊어버리고 다른 사내는 죽여 물고갔다. 기습을 받은 사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비명悲鳴을 지르는 일이 고작이었다. 코베트가 잠결에 들은 그 비명이었다.

 

39. 최후의 대결

 

코베튼는 그 바위틈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숨진 사내 옆에 갈비와 살점덩어리가 옷과 뒤엉켜 있었다. 범이 입에 넣었다가 뱉아낸 것이다. 웃옷 호주머니인데 불룩했다. 주먹만한 덩어리 세 개가 나왔다. 냄새로 아편임을 알았다. 범은 사람을 먹다가 아편을 삼켰는데 다시 토해냈다. 그대로 삼켰다면 치사량致死量이었다. 훗날 아편을 인디아정부에 넘기고 보상금으로 범 세 마리 값을 받았다. 코베트와 카만은 바위에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고 묘비墓碑를 세웠다. 얼마 안 가서 다른 사내가 발견되었다. 머리와 뼈 그리고 옷의 일부만 남았다. 사람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통탄痛嘆하며 봄에 대한 증오심도 깊어졌다.

(오냐, 이 놈 두고보자!)

범은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코베트는 그 날 저녁 마을을 하나 발견했다. 범이 마을 부근을 지나갔다. 마을사람들은 무서운 주가의 범이 마을 부근에 있다는 말을 듣고 너전긍긍戰戰兢兢했다. 마을사람들은 문을 닫아걸고 방안에서 숨을 죽였으나 코베트와 카만은 범을 추적한지 1주일만에 발을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이튿날 코베트가 뜨거운 감자와 야채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 때 나뭇꾼 세 사람이 와서 황소만큼 큰 호랑이가 마을 뒤산 바위 밑에서 자고 있다고 했다. 코베트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 주가의 범은 착각을 일으켰다. 전날 죽인 아편밀매자를 코베트로 오인誤認한 것이다. 무서운 것이 없어진 범은 마을 주변에 머물면서 먹이를 잡을 생각이었다. 뒷산에 범은 없었다. 계곡으로 내려갔다.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걸어갔으므로 꼬리가 축 늘어져 땅에 끌린 흔적이 뚜렷했다. 코베트가 한참 발자국을 조사하더니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카만도 긴장했다. 바위산은 조용했다. 세소리도 없었다. 코베트가 산마루길을 타고 내려가다가 멈추었다.

카만, 저 걸 봐. 쏙독새 알이야.’

코베트는 새알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는 사냥꾼인 동시에 동물학자였으며 특히 새알을 많이 수집했다.

카만, 잠시 기다려.’

쏙독새는 숲에 사는 중형中形 새인데 알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알을 채집하려고 했는데 그 게 목숨을 구할줄이야. 쏙독새알은 언덕 4m 정도 아래에 있었는데 거의 수직절벽이라 내려가는 게 어려웠다.

카만, 자네는 그 길을 따라 계곡으로 가. 나는 절벽을 타고내려갈테니까.’

조심스럽게 절벽을 타고내려가 계란크기의 알 세 개를 품속에 넣고 총을 든 체 나무뿌리와 잡초를 잡고 조심조심 미끄러져 내려갔다. 얼마 쯤 내려가니 바위가 있었고 바위를 타고넘으면 계곡이었다. 바위 모서리를 잡고 몸을 솟구쳐 바위 너머로 뛰어넘었다. 그런데 거기에 선객先客이 있었다. 주가의 살인귀가 엎드려있었다. 황소 보다 더 큰 주가의 범이, 아침햇살에 황금색으로 변한 몸에 검은 줄무늬가 꿈틀거리며 강철 같은 수염이 난 범이 갑자기 자기 등 뒤에서 나타난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바위로 둘러싸인 요새要塞에 엎드려있다가 추적자들을 덮치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등 뒤에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 코베트도 놀랐지만 범도 놀랐다. 범의 얼굴에 처음에는 놀란 표정이, 다음에는 당황한 표정이 그리고 어색한 미소가 떠오른 것 같았다. 바로 코앞 3m 거리에 마주보고 있는 범은 마치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을 맞은 강아지의 표정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하긴 그들은 초대면初對面이 아니었다. 며칠 전 동굴에서 밤중에 눈씨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돌연한 상봉相逢은 범에게 충격적이었으나 코베트는 결정적인 충격이었다. 마치 악몽惡夢 같았다. 방법이 없었다. 범의 눈동자에 그려진 당황함에 일말一抹의 희망을 걸었다. 코베트는 갑자기 뛰어내렸기 때문에 왼손을 벌리고 있었는데 한 치 한 치 자신도 모를 정도로 총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걸 범이 눈치챌까봐 가끔 다시 왼쪽으로 움직여서 범을 속였다. 심장도 움직임을 멈췄다. 뛰어내린지 4 - 5초가 되었는데 범은 미동微動도 하지 않고 역시 미동도 하지 않은 코베트를 보고만 있었다. 움직임이 없으면 범은 공격하지 않는다. 총구가 코베트의 배꼽 앞에 와 총구가 범의 심장을 겨눴을 때 범이 의혹을 품은 듯 했다.

(그 게 뭐야? 뭐 하는 짓이지?)

범이 총구를 봤다. 순간 격노激怒가 폭발했다. 코베트는 오른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거리는 3m, 조준을 할 필요도 없었다. 폭발음에 주가의 범은 눈을 감았다 떴다. 격노의 표정이 슬픈 표정으로 바뀌었다. 총탄이 없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 다음 순간 범은 대가리를 떨어뜨리고 양발 사이에 묻었다. 총탄이 정확하게 범의 심장을 관통貫通한 것이다.

이겼다. 이겼어!’

코베트가 고함을 질렀으나 실은 입만 벌렸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스르르 쓰러져버렸다.

나리, 어디 계셔요? 대답하세요.’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난 것 같은 카만의 말이 아득하게 들렸다. 코베트는 자기 어깨를 흔드는 카만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카만, 물 좀 줘.’

정신이 들자 범을 보았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몇 십 명을 잡아먹은 살인귀에 대한 코베트의 증오심도 사라졌다.

카만, 쏙독새 알이 깨졌어!’

 

40. 괴물악어怪物鰐魚

 

악어鰐魚는 생김새가 징그럽다. 진화進化를 하지 않고 추악醜惡한 원시동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보기에 징그러울 뿐만 아니라 그 행동도 잔인무도殘忍無道하다. 악어가 다른 동물 -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는 걸 보면 등이 오싹해진다. 악어는 먹이가 된 동물을 죽여서 먹는 게 아니라 입속에서 퍼득거리는 걸 즐기 듯 산 체 씹어먹는다. 예리한 이빨로 물고기를 산 체로 씹어먹는 악어의 모습은 악귀惡鬼처럼 잔인殘忍하다. 또 먹이에 제한이 없다. 주로 물고기를 먹지만 땅위에 있는 동물도 사양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는 홍수로 물에 떠내려오는 영양, 원숭이, 뱀들은 악어가 즐겨 먹는 별식別食이고 강이나 늪에 물을 마시러 오는 야생동물들도 악어가 노리는 밥이다. 코베트는 아프리카 나이르지방의 나이르강 지류支流에서 악어가 커다란 물소를 잡아먹는 광경을 목격目擊한 적이 있었다. 목욕을 하고 있었던 물소는 물이 붉은빛깔의 탁류濁流였기 때문에 악어가 접근하는 걸 몰랐다. 기껏 무릎 정도의 물이었는데 갑자기 물소가 날뛰며 비명을 질렀다. 물소가 뛸 때마다 몸이 강속으로 점점 끌려들어갔다. 악어가 물소의 앞발을 물고 강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400Kg이 넘는 물소는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다음으로 힘 센 동물이었는데 물속에서 줄다리기에는 맥을 추지 못 했다. 악어는 버티는 물소를 강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으로 끌고갔다. 악어의 본거지였다. 코베트는 악어의 본거지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망원경으로 봤는데 그 물소 도살屠殺 광경에 몸서리를 쳤다. 열서너 마리의 악어들이 몰려들어 머리, 다리, 엉덩이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물어뜯었는데 불과 몇 분만에 물소의 형체形體가 없어졌다. 악어는 물소의 살을 깊이 물어 뼈까지 잘라냈기 때문에 몇 분 후에는 강물이 벌겋게 물들고 물소는 사라졌다. 그런데 악어가 좋아하는 먹이에는 사람도 포한된다. 긴 입으로 사람을 물면 사람은 두 동강이 난다. 또한 사람은 물을 좋아하나 물에 약하기 때문에 힘들지 않고 잡을 수 있다. 나이르강 연변沿邊의 어느 마을에서는 한 달 동안 14명의 사람들이 악어에게 잡혀먹혔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지 못 하고 긴 장대에 물동이를 달아 물을 길렀다. 코베트의 친구 암스트롱이 악어를 쏘아 집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접근하자 악어들이 모두 물속으로 달아났는데 가장 큰 녀석은 동작이 느려 사살되었다. 배가 불룩해서 알을 가졌는가 보려고 배를 갈랐더니 뱃속에서 어린아이가 나왔다. 나이르강 악어는 길이가 5m 아주 큰 놈은 6m를 넘는 놈도 있다. 몸의 지름이 2m가 넘는다. 그러나 나이르강 악어보다도 큰 악어가 있다. 바다악어다. 동남아시에서 북오스트렐리아까지 분포分布된 악어다. 강과 바다가 합류된 지점에서 풍부한 물고기를 먹은 악어들은 8 - 10m나 된다. 나이르악어는 아무리 커도 배를 공격하는 일이 없지만 바다악어는 두세 마리씩 떼를 지어 돌아다니다 배를 스쳐 지나가면서 꼬리를 뱃전을 친다. 사람이 맞으면 치명상致命傷이 되고 배는 전복顚覆된다.

1936, 뉴기니아에서 바다악어 때문에 희생자가 속출續出했다. 섬의 연안일대 맹그로브숲에 악어가 서식棲息했으며 어선漁船을 습격했다. 애초에는 어부漁夫들이 실수를 했다. 투망投網을 하는 어부 세 사람이 산호초珊瑚礁에서 투망을 했는데 의외로 악어가 걸렸다. 거대한 악어였기에 그물은 그 대가리만 씌웠는데 그만 악어가 대노大怒했다. 대가리에 씌워진 그물을 빠져나오려고 힘껏 꼬리질을 했다. 무서운 힘으로 친 꼬리질이 뱃전에 맞아 통나무배가 전복되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간신히 헤엄쳐 인근 섬으로 올라가 살았으나 두 사람은 희생되었다. 살아남은 어부는 두 사람의 친구가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면서 악어 입속으로 사라지는 몸서리치는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고기맛을 알게 된 악어는 사람만 보면 습격했다. 얼마나 죽었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연간 수백 명이 죽었으리라 짐작된다. 사람도 방관하지 않았다. 모터가 달린 철선鐵船을 타고 사냥에 나섰으나 효과가 없었다. 사람을 보면 물속으로 도망쳤고 탄환은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 했다. 대부분의 사냥꾼들이 악어사냥을 포기했으나 몇몇은 악어사냥용 총을 영국의 엑스프레스 총포회사에 주문제작을 의뢰했다. 어느 날 코베트는 총포회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주문제작한 총의 시사회試射會.

미스터 헌터, 우리가 만든 총을 시험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총신銃身이 긴 라이플이었으며 납총탄이 아니라 강철총탄이었다. 날카로운 소리응 내며 날아간 총탄은 100m 거리에 세운 두꺼운 판자표적을 뚫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코베트는 뉴기니아에 도착했다. 원주민原住民들의 말로 에엘이라는 강은 맹그로브가 울창鬱蒼한 습지濕地. 맹그로브는 만조滿潮시에는 바다속에 잡기고 바닷물이 빠지면 나타나는 바다밀림이다. 붉은밀림이라고 부르는데 수십Km 연이어 자라는 맹글로브는 장관壯觀이다. 때마침 홍수로 물이 불어 도도히 흐르는 강물 위에 펼쳐진 맹그로브숲은 장대壯大했다. 맹그로브는 소금물인 바다의 개펄에 사는 식물이었고 엄청난 생명력을 과시하며 자란 맹그로브숲은 바다생물의 보고寶庫였다. 바다는 넓었고 망원경으로 관찰했으나 바다악어는 없었다. 원주민은 바다악어를 악마로 불렀으며 악마를 잡으러온 코베트를 미친 사람을 보듯 이상하게 보았다. 총포회사가 예약한 호텔은 목욕탕도 없는 하급이었지만 아프리카란 원래 그런 곳이다. 안내인은 원주민과 영국 혼혈인混血人인데 40대 깡마른 체구體軀에 더듬더듬 영어를 했다.

술 마실줄 아나?’

, 나리. 술을 좋아합니다.’

코베트는 마이코라는 안내인과 술을 마시며 악어얘기를 들었다. 악어는 만조滿潮시에는 바다의 산호초珊瑚礁에서 낮잠을 자고 간조干潮에 맹그로브숲을 돌아다닌다. 바다악어의 사냥방법은 썰물로 물이 빠질 때를 기다려 일렬로 늘어서서 마치 그물을 친 것처럼 물고기가 빠져나지 못 하게 하여 잡아먹는다. 물이 빠지면 미쳐 달아나지 못 한 고기들이 뻘밭에서 퍼덕거리는데 바다악어는 맘놓고 포식을 한다. 거대한 상어가 잡힐 때도 있다. 물에서 악어와 상어의 싸움에는 재빠른 상어가 유리하지만 개펄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 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풍부한 뉴기니아바다에서 사는 악어는 영양상태거 좋아 체구가 컸다.

이튿날 마코이의 안내를 받아 철선鐵船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간조지만 바다로 흐르는 강에 배를 띄웠다. 망원경을 갯벌을 살폈다. 갯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조개류, 문어류, 작은 고기들이 남아있었다. 코베트는 개펄의 세계에 무한한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끊임없이 관찰을 하고있었는데 맹그로브숲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개펄이 울렁거렸다.

악어입니다. 악어가 큰 고기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망원경도 없는 마코이가 설명했다. 거리는 약 150m, 사격을 할 수 있는 거리였으나 흙투성이를 겨누어 쏠 수는 없다.

나리!’

뭐야?’

악어 같아요.’

마코이가 7 - 8m 앞을 보았다. 개펄을 뚫고 흐르는 강물은 수심水深 2m 정도였으나 흙탕물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흙탕물에 요기妖氣가 떠돌았다.

나리, 위험해요!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코베트에게는 사냥꾼으로써 자존심이 있었고 집념이 있었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좀 더 전진해봐!’

마코이는 불안한 눈으로 코베트를 봤으나 단호한 어조에 한숨을 쉬면서 철선을 물줄기 가운데를 피해 언덕에 붙여 운전했다. 철선이 2 - 3m 전진했을 때 흙탕물에 파문波紋이 일어나는 걸 보았다. 물속의 큰 물체가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고있었다.

나리!’

마코이가 절박切迫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 때 물표면의 파문이 갑자기 커지고 물에 떠내려가던 나뭇가지와 수초水草가 정지하는 걸 봤다.

!’

마코이의 고함과 동시에 나뭇가지 사이에 두 개의 빨간 구슬 같은 것이 떠올랐다. 악어의 눈이었다. 물 위에 돌출된 눈은 코베트를 빤히 노려보았다. 코베트는 거의 반사적反射的으로 겨누어 발사했다. 그러나 한 동작 늦었다. 악어의 눈은 코베트의 손동작動作 보다 더 빠르게 물속으로 사라졌다. 악어가 맞지 않은 것 같았는데 다음에 무서운 결과가 나타났다. 총이 발사된 순간 악어의 반신半身이 물 위에 솟아올랐다. 고대소설의 괴물이 철선을 통째로 삼킬 듯 아가리를 쫘악! 벌리며 물 위로 튀어올랐다. 코베트는 그 엄청난 상황에 발사할 기회를 놓쳤다. 악어가 튀어오르는 바람에 철선이 심하게 동요動搖하며 기울어졌다. 발사보다도 철선의 중심을 잡으려고 뱃전을 잡았다. 그 때 무서운 충격이 왔다. 상반신이 물 위로 치솟은 악어가 공중에서 뒤벼넘기를 하며 꼬리로 철선을 쳤다. 꼬리가 뱃전을 스치며 수면을 쳤는데 비말飛沫이 퍼지며 수면이 깊이 갈라졌다. 철선이 마치 어뢰에 맞은 듯 기울어지고 길이 3m나 되는 배가 나뭇잎처럼 출렁거렸다. 사실 그 때 마코이가 자기 몸을 던져 철선의 중심을 잡지 않았더라면 철선은 전복顚覆되었을 것이다. 철선이 전복되어 두 사람이 물에 빠졌다면 .

나리, 괜찮으세요?’

코베트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온 몸에 진땀이 흘렀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이었다.

악어놈에게 참패를 당했어.’

아니예요. 악어도 부상을 입었어요. 나리는 못 보았지만 물색이 붉어진 걸 보았어요. 그 놈이 발악發惡을 한 건 우리를 공격하기라기보다는 아픔 때문에 발버둥친 겁니다.’

코베트가 홧김에 술을 마시고 있을 떼 이웃마을에서 전갈傳喝이 왔다. 아침에 악어잡이를 나갔던 백인이 행방불명됐으니 조사를 해달라고 했다. 행방불명된 백인은 악어가죽상인이었다. 그가 유숙留宿하고 있는 방에는 악어가죽에 석 장 있었는데 손질이 잘 되었다. 전문가였다. 그 백인은 악어가죽을 사려고 왔으나 악어가죽이 없어 직접 잡겠다고 나섰다. 악어잡이 전문 원주민과 오전 11시께 바다로 나갔는데 원주민의 악어잡이 방법을 사용했다. 악어낚시였다. 길이 8m나 되는 악어를 끌어올릴 확률보다 바다로 끌려들어갈 확률이 더 높았다. 악어는 미끼를 통째로 삼켜버리는데 그 때부터는 사람이 죽든가 악어가 죽든가 서로 사생결단死生決斷이 된다. 일대의 바다는 수심이 3m 정도였는데 줄다리기에는 악어를 당하지 못 한다. 악어에게 끌려다니다가 산호초에 부딪치면 통나무 배 따위야 박살搏殺난다. 맹그로브에 갈려도 배가 뒤집어진다. 그렇다고 줄을 늦추어주면 악어가 날카로운 이빨로 줄을 끊는데 그 반동으로도 배는 전복된다. 코베트는 모터가 달린 철선을 빌려 만조가 된 바다로 나갔다.

악어들은 맹그로브숲에 살고 있습니다.’

마코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철선을 몰았다. 맹그로브는 끝만 물 위에 보였으나 물 밑에는 가지와 뿌리가 엉켜있어 자칫 철선도 오도가도 못 하는 일도 일어난다. 한 시간 반 동안 맹그로브숲을 뒤져 통나무배를 발견했는데 뒤집혀있었다. 주변에 낚시줄이 있어 잡아당겨보니 날카롭게 끊겨있었다. 친척들이 없어 코베트가 사망신고를 했다. 두 달 동안 희생자가 열 명이 넘었다.

이대로 두면 큰일납니다. 악어는 수십 마리씩 새끼를 낳습니다.’

코베트는 그 날 밤 악어잡이를 전업專業으로 하는 주민을 찾아갔다. 다음날 공동으로 악어잡이 나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이튿날 6척의 배와 철선이 바다로 나갔다. 악어잡이들이 손가락만한 낚시에 문어, 방어를 산 체로 끼어 낚시줄을 풀었다.

지난 번 장마에 포식을 해서 미끼에 생각이 없는 걸까?’

누군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나무배 하나가 요동을 쳤다. 뱃전이 밑으로 끌리는가 싶더니 3 - 4m나 배가 끌려갔다. 낚시줄 끝 30여 미터 전방에 물이 소용돌이 쳤다. 굉장히 큰 놈인 듯 서너 사람이 노를 저어봤자 배가 끌려갔다. 산호초로 끌려가면 배가 전복되고 악어가 우굴거리는 데라 목숨이 위험하다. 악어잡이들이 절망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낚시줄을 끊어야 했다. 그 때 코베트가 타고온 철선이 쏜살같이 악어에게 돌진했다. 위잉! 하고 달려오는 철선을 보고 악어가 발악發惡을 했다. 낚시줄을 끊으려고 수면 위로 도약했다. 코베트는 그 기회를 기다렸다. 악어의 하얀 배가 스치는 걸 보며 발사했다. 악어는 물속으로 들어가버렸으나 물이 벌겋게 물들었다. 1 - 2분 후 악어가 물 위로 떠올랐다. 거대한 몸이 허연 배를 하늘로 뒤집혔다. 그래서 코베트는 새로운 악어사냥방법을 발견했다. 낚시와 총이 반반씩 혼합된 기묘奇妙한 발상發想이었다. 악어는 몸의 대부분이 물속에 잠겨있고 대가리의 일부와 눈만 떠있으므로 총으로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 몸을 쏴도 두꺼운 갑옷 같은 껍질에 총탄이 튀어버렸다. 그래서 눈을 겨냥해야 하는데 매우 어려운 사냥이었다. 그 날 코베트는 낚시 총 방식으로 악어 세 마리를 잡았다. 코베트의 도움으로 악어를 손쉽게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서 악어잡이꾼들이 몰려왔다. 이틀에 한 번씩 악어사냥을 나갔다. 고역이었고 피로가 쌓였다. 악어들도 미끼에 걸려들지 않았고 강 상류나 먼 바다로 가버렸다. 오랜만에 휴식을 하고 가벼운 사냥을 했다. 그러나 휴식을 오래가지 않았다. 홍수가 났다. 강이 범람氾濫했다. 악어들아 몰려들었다. 홍수에 떠내려오는 짐승을 먹기 위해 악어들이 강 하류로 몰려왔다. 탁류濁流에 밀려 고기들이 떠내려오고 토끼, , 영양, 원숭이, 들돼지 그리고 가축들도 떠내려왔다. 강물이 바닷물과 마주치는 곳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겼는데 그 소용돌이에 떠내려온 모든 것들이 빨려들었다. 악어들은 소용돌이 주변에 몰려 아귀餓鬼처럼 짐승들을 사냥했다. 코베트가 망원경을 목격한 것만 20여 마리였다. 악어를 몰살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코베트는 악어사냥용 뗏목을 만들었다. 철선이라도 배는 나갈 수 없었다. 비싼 품싻을 걸고 결사대決死隊를 모집했다. 목숨 아까운줄 모르는 세 명의 사내들이 지원했다. 땟목은 급류急流를 탔다. 길이 5m나 되는 뗏목이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쏜살같이 내려가다가 물체에 부딪치면 뱅그르르 돌았고 사내들이 넘어지고 뒹굴었다. 긴 장대로 조종하는 사내들의 노력으로 바다로 나갔고 소용돌이에 돌입突入했다. 강 건너에서 보고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무서운 흡인력吸引力으로 뗏목의 앞부분이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갔던 것이다.

저것 봐, 저렇다니까!’

모두 소리쳤으나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갔던 뗏목이 떠올랐다. 앞부분이 빨려들어갔으나 뒷부분의 부력浮力으로 솟아오른 것이다. 사내들은 써커스의 곡예사曲藝士처럼 뗏목에 엎드려 있었다. 소용돌이에서 뗏목은 빨려들었다 솟아나왔다를 반복反復했다. 그러나 코베트는 뗏목이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됐어, 정신 차려!’

폭포수처럼 물을 뒤집어 쓴 사내들이 10m 앞의 악어떼를 봤다. 악어들은 뗏목의 사람들을 노리고 돌진해왔다.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위험한 모험이었다. 뗏목에 바짝 엎드려 팔과 다리를 고정시키고 양 다리와 팔꿈치로 중심을 잡았다. 첫탄은 딱 벌린 악어의 아가리속으로 들어갔다. 파도를 해치고 다가오던 악어가 떠내려갔다. 10여 미터 떠내려간 악어는 하얀 배를 하늘로 하고 뒤집어졌다. 옆에 있던 사내가 막대를 휘두르며 고함을 쳤다. 막대로 뗏목에 올라온 악어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뗏목의 앞부분이 물속에 잠겼을 때 바로 코앞에 악어의 대가리가 보였다. ! 하면서 총탄이 악어의 두 눈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악어는 하반신下半身이 뗏목 위로 들리면서 거꾸로 떨어졌다. 선두에 섰던 두 마리가 죽자 악어들이 주춤했다. 전면全面공격을 피했으나 악어들은 뗏목에 스치듯 접근하여 뗏목을 옆으로 훑듯 꼬리질을 했다. 꼬리에 맞으면 바다로 추락할 뿐 아니라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그래서 사내들은 접근해오는 악어들을 막대기로 밀어냈다. 그 사이에 코베트는 제 3탄을 발사하였고, 4탄은 총구가 악어의 대가리에 닿은 상태로 발사했다. 그 놈은 유난히 큰 놈이었으며 뗏목 밑으로 들어가 발악을 했다. 그 발악으로 사내 하나가 바다에 빠졌다. 다행히 동료가 얼핏 던져준 막대기를 잡았으나 물결이 워낙 심했고 뗏목이 좌우로 흔들려 선뜻 올라오지 못 했다. 사내는 한 손으로 막대를 잡고 물에 잠겼다 떴다 하며 살려달라고 고함을 쳤는데 악어들이 그것을 봤다. 악어들은 코베트의 총질에 놀라 일단 물러섰다가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코베트는 <염려 말라!>고 고함을 치며 일렬횡대로 다가오는 악어들에게 속사速射를 했다. 2연발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장탄裝彈을 하며 총구에서 불이 나도록 연사連射를 했다. 악어들이 눈만 내놓고 오기 때문에 겨냥이 어려웠고 뗏목이 파도에 흔들려 몸의 중심을 잡기도 어려웠다. 악어는 모두 여섯 마리였는데 20m 거리까지 오는 동안에 4마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나머지 두 마리가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악어가 물에 빠진 사내의 2m 앞까지 접근했다. 코베트는 막 장탄을 끝내고 사내 앞에서 아가리를 벌린 악어의 입 안을 보고 연달아 두 발을 쏘았다. 그러나 마지막 한 마리가 사내에게 덮쳐들었다. 물에 빠진 사내가 상반신을 뗏목에 올려놓고 다리를 끌어올리려던 때였다. 악어는 사내의 다리를 노리고 뛰어올랐다. 코베트에게는 다시 장탄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뗏목에서 벌떡 일어서며 총대로 악어의 대가리를 힘껏 후려쳤다. 바위를 때리는 충격이었고 코베트는 나가떨어졌다. 그 때를 틈타 사내는 동료에 의해 끌어올렸고 상처는 없었다. 악어는 코베트의 일격으로 몸이 뒤틀려 뗏목의 귀퉁이를 물어뜯었다. 코베트가 얼핏 장탄을 했다. 맛있는 먹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악어가 뗏목 주위를 맴돌고 있었는데 코베트의 연사로 하연 배를 내놓고 뒤집어졌다.

만세! 만세!’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바다에는 악어시체가 점점이 떠있었다. 모두 아홉 마리였다. 몸길이가 9m나 되는 놈도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니까 해변에는 수백 명의 원주민들이 몰려들어 개선장군凱旋將軍처럼 환영했다. 소문울 듣고달려온 악어상인에게 제일 큰 놈만 제외하고 팔아 용감한 사냥대들에게 보너스를 주었다. 가장 큰 악어는 박물관博物館에 기증寄贈했다.

 

41. 차보의 사자獅子

 

1922년 아프리카 우간다에 철도가 부설敷設되었다. 나이로비에서 출발한 철도는 킬리만자로의 고봉高峰이 보이는 차보에까지 진행되었는데 중단되었다. 차보에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발원發源한 강이 있고 몇 만 년 흐르는 동안 거대한 계곡溪谷을 형성했다. 철도는 그 계곡을 넘어설 가교架橋를 설치해야 했다. 철도회사는 수천 명의 인디아인과 현지주민을 동원하여 철도를 가설했으나 지독한 난공사였다. 위에서 쏟아지는 물이 너무 강했으며 모처럼 만들어놓은 기초공사가 비가 오면 급류에 휩쓸려버렸다. 그러나 공사가 중단된 것은 냇물이 아니었다. 교량가설을 위해 동원된 인부들이 사자의 습격을 받아 희생자犧牲者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차보는 케냐에서 맹수가 가장 많은 지대이며 특히 사자가 많았다. 공사장이나 인부 야영캠프가 더할나위없는 공격목표였다. 공사 메인캠프는 강 하류의 마을에 설치되었는데 하루에 두세 건의 희생자보고가 들어왔다. 공사보고와 사자보고가 거의 맞먹는 셈이었다. 그래서 철도회사는 사자를 사살하고 인부의 안전취업을 보장할 포수를 초청하기로 했다. 초청된 영국인포수 M. Paterson이 도착한 것은 두 달 뒤였다. 오는 날이 장날이란 속담俗談처럼 패터슨이 도착한 날 사건이 벌어졌다. 패터슨은 메인캠프 부근에 천막을 치고 있었는데 도착한 다음 날부터 출동을 했다. 그는 새벽에 좀 추워서 눈을 떴다. 아직 텐트 안은 어두웠으나 문이 열려있었다. 초저녁, 날씨가 더울 때 잠들었기 때문에 텐트문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그는 혀를 차며 일어서려고 했는데 텐트입구에 커다란 물체가 나타났다. 사자의 대가리였다. 주위가 아직 어둡고 텐트 입구만 하얗게 밝았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사자의 대가리는 마치 액자額字속의 그림처럼 선명鮮明하였다. 긴 갈기에 둘러싸인 사자의 대가리는 끔찍할 정도로 컸고 그 눈은 미친사람의 눈처럼 살기殺氣가 가득했다. 사자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누워있는 사내의 목을 덥썩 물었다. 아가리가 컸기 때문에 목뿐만 아니라 사내의 머리까지 입속에 들어갔으며 비명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나더니 사라졌다. 사내는 애원哀願하듯 양손으로 사자의 목덜미를 안았다. 그리고 가볍운 구보驅步로 사라졌다. 패터슨이 현장을 조사했다. 텐트에는 목의 동맥動脈이 끊어질 튄 피가 천정天井에까지 튀었고 쟁반만한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즉시 발자국을 추적했다. 50m 지점에 주위 1m 정도의 풀밭이 붉게 물들고 굵은 뼈가 발견되었다. 발자국은 공사장에서 인부들의 발자국과 섞여 없어져버렸다. 그날 밤 패터슨은 천막촌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나무 위에서 사자를 감시했다. 모기의 공격을 받으며 하룻밤 꼬박 감시했으나 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달이 너무 밝은 탓으로 알고 점점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1Km 쯤 떨어진 천막촌이었다. 굵고 우렁찬 사자의 포효는 백수百獸의 왕으써의 위엄威嚴이며 절대자로의 복종을 의미했다. 사자의 포효가 끝나고 사람들의 고함이 들렸다. 만물의 영장靈長답지 않은 비명悲鳴이었다. 패터슨은 사고를 직감하고 나무에서 내려와 달렸다. 사람들이 손짓 발짓으로 사고를 알려주고 사자가 도망친 곳을 가리켰다. 잡초가 우거진 숲이었는데 패터슨이 뛰어들자 우르르! 하는 사자의 위협소리가 났다. <들어오면 죽는다>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패터슨은 전진했다. 경고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다가 벼락치는 것 같은 노호怒號가 터졌다. 그리고는 침묵했다. 패터슨은 잠간 멈춰서 전방을 살폈다. 패터슨은 침묵에서 아기의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물을 .’

사람의 신음소리였다. 달려갔다. 사자는 없었다. 그 큰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사람이 누어있었다. 패터슨은 사내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걸 한 눈에 알았다.

사자 , 악마 .’

사내가 중얼거렸다. 동료들이 몰려왔다. 사내는 동료들의 품에서 숨이 멎었다. 사자는 패터슨이 대기한 나무를 피해서 캠프 하류에서 올라왔다. 사자는 천막 뒤에 잠복하고 있다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고 나온 두 명의 취사당번을 습격했다.

나와 마투이는 눈을 비비면서 바께츠를 들고 나왔어요. 나는 셔츠의 단추를 잠그느라 3 - 4m 뒤에 쳐졌는데 천막 뒤에서 튀어나온 사자는 한 번 도약으로 5m 이상을 뛰어 마투이를 덮쳤습니다. 사자가 마투이의 가슴을 후려쳤는데 그 일격으로 마투이는 공중으로 2 - 3m나 날아가 바로 내 앞에 떨어졌습니다. 사자는 나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급한 나머지 바께츠를 던졌는데 사자 머리에 맞았고 그 사이에 천막을 도피했습니다.’

동료를 깨워 밖으로 나오자 마투이를 물고가던 사자가 마투이를 내려놓고 사람들을 보고 크게 포효를 하더니 마투이를 물고 사라졌다. 다음 날, 패터슨은 산양 한 마리를 잡아 광장廣場에 묶어놓고 사자를 유인했는데 사자는 비웃듯 가장 먼 곳에 있는 천막을 침입하였다. 다행히 열 명의 인부들이 자지 않고 있어 희생은 피했다. 사자가 천막에 접근하다가 빈 석유통을 건드려 요란한 소리가 나서 인부들이 고함을 쳤다. 사자는 고함을 듣고도 1 - 2분 동안 서 있다가 다른 천막에서도 고함소리가 나자 사라졌다. 그러나 사자의 침입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14명의 인부들이 자고있는 큰 천막을 발톱으로 찢고 칩입하여 인부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물고가지는 못 했다. 그러나 사자는 날이 갈수록 영리해지고 대담해졌다. 불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여러 사람도 무시했다. 또 뚱뚱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아 몸집이 큰 사람들이 전전긍긍戰戰兢兢했다. 패터슨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많은 텐트가 10Km 이상 퍼져있어서 패터슨 혼자만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사자는 본능적으로 패터슨이 어떤 사람인지 총이 무엇인지를 알고 패터슨만 피했다. 사자의 서식지인 가시덤불을 돌아다녀봤으나 허사였다. 패터슨이 공사 현장 주둔 의사醫師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고 잤는데 밤 12시께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거 누구.’

아무 응답이 없자 의사가 밖으로 나가려는 걸 말렸다.

손님은 가만 계셔요. 식인사자가 돌아다닙니다.’

한 손에 램프 또 한 손에는 총을 들고 나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위스키를 몇 잔 더 들고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깼다.

뭐야? !’

패터슨과 의사가 밖으로 나가자 인부들이 유령幽靈을 보는 것처럼 멍 하니 서 있었다.

선생님, 무사하셨군요. 우리는 선생님이 .’

그들이 방바닥을 가리켰다. 패터슨이 놀랐다. 텐트 주위에 사자의 발자국이 있었고 입구에도 있었다. 인부들은 두 사람이 사자에 물려 죽은 줄 알았다. 그러나 사자는 입구에서 패터슨을 알아보고 도망쳤다.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으나 총으로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송아지를 잡아 시체를 끌고다니다가 버려두었다. 송아지 몸에는 독약을 발랐다. 이튿날 현장에 가보니 엉뚱하게 하이에나가 몇 마리 죽어있었다. 사자발자국도 있었으나 사자는 독약을 알아차리고 인근 천막에서 인부를 물고 사라졌다. 이렇게 되자 인부들 사이에서는 그 사자가 사자가 아니라 악마惡魔라고 소문이 돌았다. 사자는 사람을 - 그것도 뚱뚱한 사람을 미워하는 악마고 피할 수 없다고 체념滯念했다. 인부들은 사자에 대한 경계를 풀어버렸다. <그는 사자가 아니고 악마니까 피하려고 해도 소용 없다>라고 하면서 사자에게 먹히는 게 운명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철도회사가 메인캠프를 후방으로 이동해버렸으므로 사태는 더 악화惡化되었다. 메인켐프에는 백인들이 무장武裝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가버린 후에는 사자에게 대항할 사람이 없어졌다. 패터슨은 캠프 이동을 반대했으나 회사는 패터슨을 도울 포수를 물색物色해주겠다고 했다. 철도회시가 약속한 화이트헤드는 조수와 함께 오겠다고 전보電報가 왔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가 없었다. 그는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차보역에 도착하여 패터슨이 있는 캠프로 출발했으나 도중에서 사자의 습격을 받았다. 차를 타고 왔는데 계곡에서는 걸어야 했다. 계곡 양쪽에 숲이 우거지고 큰 바위들이 산재하여 걷기가 어려웠으나 화이트와 흑인 조수助手는 대낮이므로 안심했다. 화이트가 큰 바위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햇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졌다. 머리를 들었더니 거대한 사자가 바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화이트와 눈이 마주치자 우르르르! 하며 위협했다. 화이트가 기겁을 하고 총을 들었으나 사자가 바위에서 뛰어내리며 앞발로 총신을 쳐 탄환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고 화이트는 도망쳤다. 충격으로 손이 마비되어 허리의 권총을 뽑을 수도 없었다. 화이트가 도망쳐버렸으므로 바위틈에는 사자와 빈 총을 쥔 흑인조수만 남았다.

나리, 살려주시오! 날 살려줘!’

흑인조수의 처절한 고함이 들렸다. 화이트는 가까스로 권총을 뽑았으나 쏘지도 도망가지도 못 하고 멍! 하니 서 있었다. 그 사이 사자는 흑인의 목줄을 끊어 물고갔다. 바위에서 보았던 사자의 모습이 그를 바보로 만들었다. 차보역 역장은 그날 밤 화이트가 혼자 돌아온 걸 보고 놀랐다.

화이트헤드씨, 웬일이요?’

 

,’

조수는?’

화이트는 정신병자처럼 웃었다.

여기 있소.’

그가 가리킨 건 등에 맨 배낭이었다. 역장이 배낭을 열었다. 흑인조수가 있었다. 눈자위에 구멍이 난 해골骸骨과 몇 개의 뼈들이었다. 역장의 연락으로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즉시 입원해서 정신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포수를 보내준다는 회사의 약속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서 패터슨은 캠프 주위에 가시덤불로 담을 쌓았다. 2m 이상의 답을 만들라고 지시했으나 사자의 습격을 막지 못 했다. 사자는 그런 정도의 담은 사람을 물고도 쉽게 넘었다. 더구나 사자의 수가 여나무 마리로 불어났기 때문에 회사는 공사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산재한 천막을 모아 집단캠프로 만들었다. 보초步哨도 섰다. 침입을 못 한 사자는 굶주렸고 기회를 엿보며 으르렁거렸다. 패터슨에게 기회였다. 사자들이 돌아다니는 산으로 갔다. 동거하는 의사 로스박사가 자살행위라고 말렸으나 패터슨의 의지는 단호했다. 발자국 추적도 필요 없었다. 도처到處에 발자국이 흩어져 있었고 으르렁거리는 위협으로도 사자를 추적할 수 있었다. 패터슨은 으르렁거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사자들은 밥인 사람이 제발로 걸어들어오고 있어 놀랐다. 40m, 30m, 다시 20m. 그 이상은 자살행위다. 단 한 발로 사자의 이마, 심장 또는 어깨와 목 사이의 신경을 뚫어놓지 못 하면 포수가 죽는다. 과장이지만 총탄을 맞은 사자가 100m를 달린다고 한다. 사자의 앞발치기 위력은 대단하다. 엄청난 힘과 빠르게 달리는 가속加速으로 황소도 일격으로 목줄이 부러지는데 사람 따위야 . 패터슨이 장승처럼 서 있었으나 아무 움직임이 없다. (도망갔을까?) 사자는 도망갈 맹수가 아니다. 포수가 더 접근해오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사람이 접근을 중지하자 성미 급한 사자가 튀어나왔다. 단 번의 도약으로 공중에서 날아왔다. 슈웃! 하는 소리와 함께 2m나 공중에서 날았고, 땅에 발을 딛고는 탄력彈力을 얻어 고무공처럼 튀어올라 이번에는 더 힘차게 날았다. 사자가 두 번 도약하는 걸 보고 패터슨이 발사했다. 한 줌 사자의 갈기가 흩어지며 땅에 털썩 떨어졌다. 그리고 펄쩍펄쩍 뛰었으나 신경이 마비되어 엉뚱한 곳으로 뛰었다. 패터슨이 여유를 가지고 침착하게 2탄을 쏘았다. 머리를 겨냥했다. 패터슨이 쏜 총소리가 캠프에 메아리치자 인부들이 달려나왔다. 의사도 말라리아환자에게 주사를 놓다말고 뛰어나와 고함을 쳤다.

패터슨! 패터슨! 괜찮아?’

패터슨! 패터슨!’

모두 소리를 합쳐 고함을 쳤다.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올라와요, 올라와! 여러분께 선물이 있습니다.’

(선물?)

모두 우르르 몰려갔다. 거대한 선물이었다. 전장全長 3m 가까운 거구가 패터슨의 발밑에 누워있었다. 인부들은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그러나 패터슨은 시무룩했다. 로즈박사의 귀에 대고 말했다.

박사님, 유감스럽게도 저 놈은 차보의 살인사자가 아닙니다. 살인사자라면 총을 들고있는 나에게 덤벼들지 않습니다. 저 놈은 신참자新參者입니다.’

하여튼 패터슨이 여기 온 후 첫 수확이었다. 그 후 2 - 3일 동안은 잠잠했다. 그래서 공사를 다시 시작하고 천막촌도 다시 흩어졌다. 교각橋脚공사를 하는 현장반은 자재資材나 기계를 지키기 위해 현장에 천막을 치고 7 - 8명의 인부들이 감시를 했다. 두 패로 나누어 철야徹夜근무를 했다. 천막 주위에 가시덤불을 쌓고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웠다. 술과 음식을 먹으며 떠들었다. 그런데 사자가 가시덤불이 허술한 곳에 구멍을 뚫고 침입했다. 불빛이 밝았기 때문에 인부들이 침입한 사자를 발견하고 고함을 지르며 도끼, 몽둥이, 칼을 들고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불이 붙은 나무를 사자에게 던졌다. 사자는 인간들의 허세虛勢를 간파했다. 그러나 사자가 덤벼들자 인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천막에 숨고 물에 뛰어들었다. 사자는 가장 뚱뚱하고 느린 현장감독을 덮쳤다. 사자는 일격으로 까무러친 현장감독을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자는 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또 한 마리의 사자와 함께 30m 쯤 떨어진 숲에서 현장감독을 먹어치웠다. 관리인 두 명이 숲속에 권총을 난사亂射했으나 사자는 들은 체도 않고 태연히 식사를 끝냈다. 패터슨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뼈만 몇 개 남았고 발자국을 조사한 결과 차보의 사자였다. 공사가 재개된 후 희생자가 속출했다. 사자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쉽게 사람을 잡아 인근에서 먹어치웠다. 사람들은 이웃천막에서 비명이 나도 꼼짝 못 했으며 사자가 사람을 먹는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듣고도 속수무책이었다. 사자는 두세 마리씩 떼를 지어와서 두 마리가 망을 보고 한 마리가 사람을 물어갔는데 이제는 세 마리가 오면 세 마리가 다 한 사람씩 물어갔다. 인부가 대변을 누러 천막 밖으로 나왔는데 사자와 마주쳤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다가 줄에 걸려 넘어졌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사자는 다른 천막에서 사람을 물고나온 사자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패터슨도 가만 있지 않았고 또 한 마리의 사자를 잡았다. 패터슨은 사자를 추적하면서 사자의 독특한 냄새를 알았다. 보통사람들은 퇴화되어버린 제 6이다. 동물들에게만 있는 6감이 전문사냥꾼에게는 되살아난다. 그런데 얘기벗이었던 로즈박사가 잠드는 걸 보고 자기도 침대에 들어가려다가 그 냄새를 맡았다. 아주 가까이에서 나는 강한 냄새였다. 코베트가 재빨리 총을 들어 안전핀을 뽑았는데 이 때 천막 한쪽이 불룩해졌다. 밖에서 누르는 듯 천막이 팽팽해지고 거기서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누구야!’

패터슨이 한 손에 총 한 손에 전지를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천막그늘에서 그림자가 밖으로 도망쳤다. 전지를 비췄다. 예상대로 사자였다. 연속 두 발을 발사했다. ! 탄환이 사자의 몸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털썩 넘어지는 소리도 났다.

뭐야? 뭐야!’

로즈박사가 고함을 치며 나왔기에 전지로 앞을 비추라고 말했다. 사자가 있었다. 치명상을 입고 간신히 버티고있었으며 눈은 허공虛空을 보고있었다. 천천히 장탄을 해서 제 3탄으로 숨통을 끊어버렸다.

 

42. 마지막 대결對決

 

포수의 텐트를 덮치려는 무모無謀한 사자가 차보의 식인사자는 아니었고 이제 두 살 정도의 어린놈이었다. 한편 철도회사는 그런 공포恐怖속에서도 공사를 강행하였다. 회사가 경비관 퍼커를 파견派遣했다. 예비역 육군 소령인 퍼커는 인디아인병사 두 명을 데리고 도착했으나 현지상황을 알고는 천막 밖으로 나가자 않았다. 그는 통나무로 우리를 만들고 그 속에 염소를 가뒀다. 사자가 염소를 먹으려고 들어가면 자동으로 문이 닫혔다. 사흘이 지나도 효과가 없어 우리방법을 폐기廢棄하려고 했는데 그날 밤 우리속에서 사자가 포효했다.

, , 총을 내놔!’

그는 경비병이 가진 총을 빼앗아 우리를 보고 쏘았다. 첫발은 불발되었고 두 번째는 발사되었다. 그리고 재장탄을 하고 연사를 했다.

아무 소리도 없지?’

, 경비관나리!’

전지를 비춰라! 사격준비를 하고.’

전지불에 보이는 우리가 비었다. 염소새끼만 사자의 발톱과 총틴세례를 받아 죽고 사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첫탄이 우리를 부숴버려서 그 사이로 빠져나갔다. 통나무 한 개가 총탄에 부러졌으므로 사람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구멍을 어떻게 300Kg이 넘는 사자가 빠져나갔는지는 수수께끼다. 면밀히 조사한 결과 빠져나간 사자는 차보의 사자가 아니라 최근에 숲에 들어온 암사자였다. 암사자는 차보의 사자를 따라다니면서 사람사냥을 배웠고 때로는 차보의 사자 보다 더 교활狡猾하고 잔인殘忍했다. 차보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사자다. 며칠 후 원주민原住民이 사자가 당나귀를 물어갔다고 호소했다. 밤새 사람을 습격할 기회를 노렸으나 실패하자 당나귀를 끌고간 것이다. 패터슨은 당나귀가 끌려간 자국을 따라갔는데 숲에서 오도독! 오도독! 사자가 당나귀를 뜯어먹는 소리가 났다. 더 가까이 접근했더니 당나귀시체가 있는데 암사자는 없었다. 당나귀는 내장內臟과 갈비 일부만 없어지고 텅째로 남았다. 그대로 버려두기 아까운 먹일 것이다, 사자에게는. 패터슨은 인근의 나무에 마천(잠복소)을 만들었다. 자기 발자국을 흙으로 덮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마천을 지었다. 4m 높이에 단단하게 지었다. 사자가 4m까지 뛰어오를 것 같지는 않았지만 부딛쳐도 부러지지 않게 튼튼하게 지었다. 어둠이 짙어졌다. 눈 보다 귀를 활용했고 코를 믿었다. 사냥을 하다보면 코의 기능이 되살아나 패터슨의 코는 바람의 방향만 맞으면 10m 내외의 동물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코가 냄새를 감지感知한 게 11시께였다. 모기에게 시달리면서도 스르르 잠이 왔는데 바람을 타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신경탓일까?)

냄새는 일단 사라졌다가 다시 났다. 바람의 방향이 불규칙했다. 그렇다면 사자도 사람의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과연, 사자는 당나귀쪽으로 가다가 멈췄다. 잠시 조용히 섰다가 곧 으르르! 목을 굴렸다. 사람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무 위라고 하더라도 밤에 사자와 대결은 위험했다. 사자가 천천히 나무 주위를 돌았다. 그는 당나귀고기를 포기한 대신 사람고기를 선택한 것 같았다. 패터슨은 사자의 발걸음소리로 위치를 추측하며 총구를 사자가 도는 방향에 맞추어 돌았다. 사자의 발걸음은 고무처럼 부드러워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으나 400Kg이 넘는 육중한 무게 때문에 땅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마천은 3m였다. 그래도 불안했다.

(설마, 여기까지 뛰어오를 수는 .)

그 때 짧은 포효와 함께 마천이 흔들렸다. 하마터면 마천바닥이 사자의 알격을 받을 뻔 했다.

(오냐, 또 뛰어봐라!)

다시 사자의 발자국소리를 셌다.

(하나, 둘 셋! 하나, , !)

발걸음이 멈췄다.

(이 때다!)

짧은 포효와 함께 사자가 뛰어올랐다. 동시에 패터슨의 총구에서도 붉은 섬광閃光이 일어나고 총소리가 밀림을 흔들었다. 백수의 왕 사자의 포효에 응답하는 만물의 영장 사람의 노호怒號였다. 사자는 미친 듯 나무를 발로 치고 물어뜯었다. 그 소리를 조준照準하여 한 발 더 발사했다. 노호가 약해지고 점점 사라졌다. 사자가 도망하는 것이다. 승부勝負가 끝났다고 판단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때 산 밑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등불과 전지를 들고 달려왔다.

패터슨 어떻게 됐어?’

담뱃불이 명멸明滅하는 걸 보고 안심한 로즈박사가 물었다.

사자는 죽지 않으면 중상重傷이예요. 수색搜索은 날이 밝은 내일 합시다.’

그 날 밤에 주연酒宴이 벌어졌다. 인디아인 인부들은 사자가 먹다 남긴 당나귀고기를 구워먹었고 백인들은 우리에서 죽은 산양고기를 구웠다. 이튿날 패터슨과 로즈박사 일행이 핏자국을 추적했는데 치명상致命傷을 입은 사자는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 암사자였고 키가 2미터 50센티의 거물이었다. 패터슨이 어둠속에서 쏜 탄환이 하나는 가슴에 또 하나는 머리에 명중했다. 차보의 사자는 하나 둘씩 죽어갔다. 암벽岩壁공사의 발파發破작업 때 돌에 맞아 죽은 놈도 있었다. 인부를 노리고 숲속에 숨어있다가 다이나이트 폭발로 튀어나온 파편破片에 맞아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사자는 점점 줄어들었으나 오직 한 마리 차보의 식인사자는 집요하게 사람사냥을 계속했으나 걸려들지 않았다. 식인사자는 패터슨과는 싸우지 않기로 한 듯 패터슨이 나타나면 도망가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공사검사관은 초저녁에 누군가 천막으로 들어온 것 같아 <지금은 목욕 중이니 나가라!>고 했다. 술 취한 인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말 다행한 일은 그가 목욕 중이었기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 못 한 일이다. 그를 방문한 게 식인사자였다. 패터슨은 이 말을 듣고 식인사자가 실패한 곳은 다시 온다는 습성習性을 알고 염소 한 마리를 철도용레일에 묶어두고 기다렸다. 별도 없는 밤에 어린염소는 사자가 덮쳐도 소리 한 번 내지 못 했고 식인사자는 레일까지 통째로 물어가 염소를 먹었다. 내장 일부를 먹다가 패터슨이 추적하는 걸 알고 사라졌다. 그러나 패터슨은 함께 추적하던 인디아인 인부들에게 물러서라고 경고했다. 인부들이 겁을 먹고 무질서하게 도망쳤다. 그런 먹이를 사자가 놓칠 리 없다. 과연, 50m 쯤 도망쳤을 때 인부를 추격하는 사자를 발견했다. 50m나 되고 사자가 달리고있었기 때문에 맞을 확률이 적었으나 사자의 뒷모습을 보고 연사連射를 했다. 달리던 사자가 멈칫하더니 가시덤불 속으로 도망했다. 가시덤불에서 대결은 자살행위다. 추적을 멈췄다. 2 - 3일 간은 캠프가 평화로웠다. 감독관이 <사자가 없어졌다.>고 전보를 쳤다. 전보를 친 날 사자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서부액션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면서 . 차보계곡에 다리를 놓는 인부들은 교각橋脚에 사용할 돌을 상류에서 궤도軌道차를 이용하여 날랐다. 급경사를 이용하여 궤도차에 돌을 싣고 운반했는데 인부 세 사람이 차에 타고 있었다. 궤도차는 동력이 없었으나 급경사이기 때문에 무서운 속도로 달렸는데 그 때 숲속에서 사자가 뛰어나와 궤도차를 따라왔다. 사자는 더 무서운 속도였다. 사자가 가까워지자 인부들이 비명을 질렀다. 당황했다. 차가 그대로 달렸으면 50m 아래의 공사장까지 무사히 도착했을텐데 겁에 질린 인부 하나가 차에서 뛰어내렸다. 바로 사자가 노린 작전이었다. 사자가 동물을 잡을 때 쓰는 격파擊破작전에 걸려들었다. 동물들이 뭉쳐있으면 사냥에 실패한다. 또 저항을 받는다. 힘이 없는 동물도 죽음에는 맹렬하게 반항하므로 맹수라도 함부로 덤비지 못 한다.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죽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자는 분리작전을 쓴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도 위협을 해서 쥐의 신경을 마비시킨다. 인부는 두려움에 신경이 마비되어 차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 차에서 뛰어내린 인부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또 인부들이 겁에 질렸다. 궤도차에 총을 가진 백인이 타 감시를 하자 사자의 공격은 사라졌다. 그러나 사자는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인부들을 공격하였다. 그래서 3일 간 공사중지를 요청했다. 사자의 공격주기週期3일이었다. 현장감독 와라씨는 본부의 허가를 받자 않고 공사를 중지시켰고 인부들은 모두 메인캠프에 집결했다.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경호를 했다. 사자는 사냥을 할 수 없어 굶주렸다. 대변에 들쥐털이 있었다. 패터슨이 빙그레 웃었다. 염소를 메인캠프 인근의 숲에 묶어놓았다. 염소는 하루 종일 슬프게 울었으나 낮에는 사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7 - 8m 떨어진 곳에 보마(잠복소潛伏所)를 만들었다. 날이 어두어지자 원주민조수를 데리고 잠복했다. 연 사흘을 굶주린 사자가 염소를 두고보지 않을 것이다. 사자는 예상보다 빨리 나타났다. 아직 어둠이 내리기 전이었다. 먼저 냄새가 났다. 전방 20m 지점의 숲이 바람도 없는데 움직였다. 사자가 염소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용의주도用意周到한 사자는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배가 고픈데도 참고있었다. 패터슨도 발사를 하고싶은 마은을 참고있었다. 사자와 사람의 인내심 경쟁이었다. 누가 더 인내심이 강한가? 거리가 15m로 단축되었다. 사자의 전신全身이 들어났다. 어둠속이지만 다갈색의 몸과 두 눈이 보였다. 패터슨이 발포했다. 같은 조준으로 연사를 했다.

(맞았다. 심장이거나 가슴팍이다!)

무서운 포효를 하고 사자가 숲으로 도망쳤다. 패터슨은 보마에서 밤을 샜다. 날이 밝아지자 보마에서 나왔다. 예상대로 중상이었다. 500m 쯤 추적을 했을 때 걸음을 멈췄다. 전방 30m에 잡초레 들러싸인 바위가 있었는데 수상했다. 부상한 사자가 숨기에 적합했고 주변에 살기殺氣 감돌았다. 패터슨은 끈질기게 기다렸다. 시간은 포수에게 유리하다. 과연 더 참지 못한 사자의 신음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터져나왔다. 패터슨은 중상의 몸으로 마지막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사자도 끈질겼다. 3 - 4분이 지나도 기척棄擲이 없었다.

도망친 게 이닐까요?’

조수 마히나가 초조한 듯 말했다. 패터슨도 자 듣지 못 할 정도의 속삭임이었는데 그 말이 사자를 자극했다. 사자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패터슨이 예상한 곳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에서 나왔다. 사자는 숨어있었던 게 아니라 살살 기어서 패터슨의 바로 옆에서 튀어나왔다. 패터슨은 재빠르게 한 발 물러서면서 몸을 돌렸는데 공교롭게 마히나와 부딪혔다. 마히나는 사자가 도망친줄 알고 바짝 뒤에까지 와있었다. 그리고 더욱 나쁜 것은 패터슨이 비틀거리면서 몸의 균형을 잡고 사자를 겨냥하여 발포하려는 순간 마히나가 패터슨과 충돌한 몸을 비키려고 하면서 그가 지녔던 총자루가 패터슨의 손을 때렸다. 총탄이 엉뚱한 데로 날아갔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1초에 20m를 달리는 사자에게 근거리에서 첫탄을 실수했다면 사자가 포수를 사냥한다. 그러나 천만다행千萬多幸은 사자가 중상을 입었다. 그래서 속도가 좀 느렸고 패터슨이 2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2탄은 사자의 심장에 맞았는데 쓰러졌던 사자가 다시 일어났다.

, 총을 줘!’

.’

대답이 없었다. 돌아보니 마히나는 도망을 쳐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있었다. 대담한 패터슨도 절망적이었다. 나무 밑으로 달려가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마히나 총을 던져!’

마히나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총을 던졌다. 패터슨은 총을 받자마자 서너 발 앞의 사자에게 발포했다. 패터슨이 나무 밑으로 달려오는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사자가 중상을 입어 동작이 느렸기 때문이었다. 사자가 총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패터슨은 걸레처럼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다. 패터슨이 발사한 3탄은 사자의 심장을 관통貫通했다. 불과 3 - 4m 거리에서 실수가 있을 리 없다. 사자는 일어나지 못 했다. 총을 내리고 가까이 갔다. 그런데 사자가 벌떡 일어섰다. 패터슨이 얼핏 옆으로 피했다. 순간에도 사자가 앞발로 가슴을 쳤다. 빈사瀕死의 일격이었으나 패터슨이 비틀거렸다. 그리고 다시 달려드는 사자의 이마에 총구를 대고 발사했다. 사자의 피와 뇌수腦髓가 패터슨의 얼굴이 튀었다. 사자는 천천히 앞발을 꿇고 쓰러지면서 증오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극도의 긴장과 충격 때문에 쓰러졌다. 나무 위에서 내려온 마히나가 사자와 패터슨이 둘 다 죽을줄 알고 괴성을 지르면서 도망갔다. 몇 분 후 캠프에서 수십 명의 인부들이 달려왔을 때 패터슨은 파이프를 태우고있었다.

아니?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데 .’

차보의 살인귀는 몸이 3m가 넘었다. 연륜年輪10년이 넘어 교활狡猾했다. 사자들이 모두 없어졌다. 패터슨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차보에서 사자들이 사람을 공격한 원인은 철도공사로 사자의 먹이였던 초식동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자들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굶어죽지 않으려면 방법은 사람을 먹는 것이었다. 철도회사는 인부들이 죽으면 숲에 던져버렸는데 굶주린 사자들이 사람고기 맛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동물 보다 잡기 쉽고 지천至賤으로 널려있었다. 차보의 살인귀가 잡아먹은 사람은 줄잡아 30여 명이 넘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사자들이 먹은 수와 같다. 패터슨은 차보의 살인귀를 표본標本으로 만들어 시카고 월드박물관에 기증했고 그 표본은 지금도 전시되어있다.

 

43. 아마존의 표범

 

18774, 남미 브라질의 해양海洋도시 베렌에 미국인 생물학자 A. Brown박사, 사학자史學者며 인류학자 C. Keren박사 그리고 신문기자이며 유명한 사냥꾼 미스터 A. Jorgy가 왔다. 일행은 전문분야에서 아마존강을 연구하려고 도착했다. 브라운박사는 반백半白의 중년中年으로 오래전부터 아마존과 그 유역流域의 동물에 흥미를 가졌으며 이번에 학교재단財團의 후원을 받았다. 케렌박사는 브라운박사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대학동기同期인데 방랑벽放浪癖이 있어 강단에 서는 시간 보다 여행하는 시간이 더 많은 위인爲人이고, 30대의 신문기자 죠지는 기자 보다 총솜씨를 인정받아 박사들 보호역으로 선발됐다. 케렌은 아마존의 탁류濁流가 대서양으로 흘러나오는 하구河口인데 그 엄청난 광경에 세 사람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죠지는 휘파람을 불었고 케렌박사는 어깨를 으쓱거렸으며 브라운박사는 엄숙한 표정이었다. 아마존강의 하구는 말이 강이지 바다 보다 더 넓었다. 아마존은 세계 최장最長의 강이다. 유역면적은 705Km2, 연장길이가 7062Km. 남미대륙 서쪽의 안데스산맥에서 발원發源하여 적도赤道를 따라 동쪽으로 흐르며 케렌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브라운박사님이시죠?’

일행의 등 뒤에서 인사를 했다. 흑백 혼혈인混血人이었는데 190Cm의 죠지 보다 한 뼘 쯤 더 컸다.

, 센티여요. 여러분의 안내자입니다.’

센티는 미국에서 부친 보트를 벌써 하구에 띄워놓고 있었다. 브라운박사가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투자해서 제작한 강철보트였고 강력한 엔진이 부착되어 있었다. 아마존의 급류에도 견딜 수 있고 배 안에는 작은 연구실도 있었고 간이簡易침대도 있었다. 죠지가 부친 짐이 산더미 같았다. 그래서 앉을 자리가 불편했다.

짐이 너무 많은데 .’

아니야, 배가 너무 작은 거야.’

그러나 배의 성능性能은 만족할만 했다. 시동을 거니 배는 거센 물결을 박차고 힘차게 전진했다. 배를 조종하던 브라운박사가 키를 서쪽으로 고정시켜놓고 밖으로 나왔다. 센티에게 여행 스케듈과 목적을 설명했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물속과 연안지대와 하늘의 생물을 연구하고 필요하면 조지가 도울 것이다. 케렌박사는 원주민을 보면 하루 이틀 머물면서 그들의 생활풍습을 연구할 것이다. 8시간을 달린 후 어두워지자 배를 정박碇泊하고 연안에 내리려고 했는데 센티가 단호하게 막았다. 저습低濕지대인 강 연안에는 독사毒蛇가 우글거려서 밤에는 위험했다. 배가 정박한 일대에는 스르구구라는 맹독성猛毒性 독사가 많은데 그 뱀은 빛을 좋아하여 빛만 보면 몰려들어 흥분한다고 했다. 이미 배에서 나온 불빛으로 뱀이 모여들었을 것이라면서 전지를 휘두르다가 한 곳에 정지했는데 불빛 속에 기다란 물체가 뛰어올랐다. 길이 2m 정도의 뱀이 춤추듯 꿈틀거렸다.

저 게 스르구구지요. 독사 중에서 가장 큰 놈입니다.’

배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 하고 새우잠을 잤다. 조지가 일어나 나가니

굿모닝 죠지, 강 풍경이 달라졌는데 .’

박사가 파이프를 태우고 있었다. 바다 같았던 강이 폭7 - 800m 로 좁아지고 물색이 연한 다갈색으로 바뀌었으며 흐름도 잔잔했다. 센티가 구전口傳 되어온 전설을 얘기했다. 옛날 이 강가에는 여자들만의 나라가 있었다. 매년 태양이 어두워지는 시기가 되면 강 건너에서 남자들이 습격했다. 전쟁에서 남자들이 승리하면 젊고 예쁜 여자들은 데리고 갔고, 여자들이 이기면 포로捕虜들 중에서 힘세고 건강한 남자들을 포로로 삼았다. 포로가 된 남자들은 임신적령기가 된 여자들에게 임신을 시켰다. 남자들은 우유와 날고기로 우대를 받다가 3개월이 되면 사형死刑했다. 남자들이 처형되는 날 여자들은 울었으나 정치를 맡은 늙은 여자들은 냉정했다. 언제인가, 포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을 때 여인들의 나라가 다른 남자들에게 침공을 받았다. 그래서 포로남자들이 적을 퇴치했다. 그러나 포로생활 3개월이 지나자 처형을 명령했다. 여자들이 탄원歎願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아마존은 여자들의 눈물로 생겼다. 아마존의 색깔이 붉은 건 여자들의 피눈물이다. 배는 상류로 올라갔다. 아마존에는 제방堤防, 다리, 강변도로가 없었다. 아마존에는 다리를 놓을 수 없었다. 장마가 지면 수로가 바뀌었다. 배가 상류로 가니 여러 갈래의 지류支流가 나타났다. 그 지류는 브라질을 중심으로 페루, 볼리비아, 베네주엘라, 콜럼비아, 기아나, 스리남 들 남미대륙의 모든 국가로 흘렀다. 브라운박사의 첫 기항지寄港地는 아마존 북쪽 기냐고지高地에 사는 샤반리족이다. 샤반리족은 브라질 중앙고원을 중심으로 아마존유역에 흩어져사는 부족이며 브라질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종족種族이었다. 수렵과 어획으로 생활하고 3 - 4년을 주기週期로 이동한다. 센티는 샤반리에서도 가장 미개未開한 종족들이 사는 지류支流로 안내했다. 상류로 올라감에 따라 하천폭이 좁아지고 깊이가 낮아졌다. 배가 정지했다. 상류에서 배가 내려왔다. 통나무 세 개를 나무줄기로 엮은 뗏목에 벌거벗은 사내 둘이 타고있었다. 허리에 줄을 묶었을 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고 늙은이는 몸에 얼룩덜룩 칠을 했다. 그들은 점잖게 센티의 인사를 받았다. 미리 미국인의 방문을 통보한 것 같았다. 센티가 선물로 가져간 소금 한 부대를 주었는데 입이 크게 벌어졌고 곧 샤반리마을로 안내되었다. 마침 식사 중이었다. 수십 명이 둘러앉아 사냥한 비야드(사슴)를 요리했다. 요리장料理長이 칼로 사슴의 배를 갈랐고 두 여인이 피가 흘러내리지 못 하게 양쪽에서 쳐들었다. 부락장이 먼저 피를 마셨고 주민들이 모두 피를 마셨다. 다음에는 내장을 날걸로 먹었다. , 허파, 콩팥, , 내장을 칼로 잘라 먹었다. 냄비같은 요리기구가 없었으므로 불에 빙빙 돌려구웠다. 바베큐요리다. 기름을 내면서 구운 바비큐요리는 별미였다. 일행의 숙소는 사방 3m의 원추형圓錐形집이었다. 대나무를 세워 엮고 나뭇잎으로 덮었으며 바닥에는 마른 풀을 깔았다. 생활도구가 없었다. 금속제는 물론 토기土器도 없었다. 배 위에서 웅크리고 자다가 오랜만에 팔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어서 늦게까지 잤는데 아이들의 떠드는소리에 일어났다. 아침 5시께였는데 부지런한 주민들은 모두 일어나 마을마당에서 일을 했다. 아침식사 준비, 사냥준비를 하고있었다. 아이들은 강에 있었다. 강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침일을 하지 않은 남녀노소 모든 주민들이 목욕을 하고있었다.

죠지, 저 걸 보게나.’

아침햇살이 퍼진 모래사장에서 서너 명의 여자들이 모여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자들이 누워있는 여자들의 머리칼 등 털을 헤집으면서 무엇인가 입에 넣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를 잡고 있어. 잡은 이는 사탕처럼 먹고.’

센티가 해명했다.

이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람은 그 이를 먹습니다. 사람쪽에서 보면 별로 손해가 없지요,;

피라니아입니다.’

목욕을 하는 주위에 대나무로 방책防柵이 둘러처져 있었다.

피라니아?’

피라니아는 무서운 식육어食肉魚. 떼로 몰려다니며 닥치는대로 잡아먹는데 400Kg이 넘는 물소 한 마리를 먹어치우는데 단 10분이다. 30분 후에는 뼈도 없다. 샤반리는 아침을 먹고 악어사냥을 나섰다. 지휘자는 환갑을 넘은 노인이고 사냥대는 40여 명이었다. 돌로 만든 괭이와 대나무창이 사냥도구였다. 그들이 정지한 곳은 물줄기가 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한쪽은 물이 흐르고 있고 다른쪽은 얼마전까지는 물이 흘렀으나 물줄기를 제방堤防으로 막아 지금은 말랐다. 그들은 두 패로 나눴는데 창을 든 사람은 물이 흐르는 강에, 괭이를 든 사람은 물이 흐르지 않은 강으로 나뉘었다. 괭이를 든 사냥대가 강에 쌓아놓은 제방을 무너뜨렸다. 물은 말랐던 개울로 쏟아졌다. 강물줄기를 바꾼 것이다. 물이 다른쪽으로 흐르므로 기왕에 흐르던 강은 수량水量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폭이 50m이고 깊이가 4 - 5m였던 강은 불과 몇 십 분 만에 강폭 10여 미터, 깊이 1 - 2m로 낮아졌다. 하류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사냥대가 물속으로 들어가 사람다리와 창으로 그물을 만들었다. 목 쉰 소리로 노래를 하면서 양 다리 사이에 창을 꽂았다 뺐다 반복했다. 약 한 시간 후에는 흙탕물만 남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흙탕물속에 퍼덕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주민들이 환성을 질렀다. 주민들은 일렬횡대로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사냥대도 대열을 갖추고 내려왔다. 물고기를 아래 위에서 포위한 것이다. 아래쪽과 위쪽이 가까워짐에 따라 갖힌 물고기들이 발악을 했고 노래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사냥대가 창에 찔려나온 물고기를 모래사장에 던졌다. 1m나 되는 메기다. 잇달아 물고기가 잡혔다. 사냥대가 접근하여 손을 잡으니 삼각편대三角編隊가 되었다. 삼각편대 안의 물고기를 모래사장으로 몰았다. 그 때 쯤 사냥대는 광란狂亂의 춤을 추고있었는데 악어가 기어나왔다.

악어다!’

브라운박사의 말처럼 루넷다스로 부르는 1m짜리 소형악어다. 세 마리가 줄줄이 따라올라왔다. 사냥대가 뒤따라와 악어를 괭이와 창으로 공격했다. 조지가 사람과 악어의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을 때 물가에 쓰러져있는 주민을 안고왔다. 무릎을 악어에게 물려 뼈가 하얗게 들어난 중상이었다. 사냥대의 리더가 부상자를 치료했다. 나무줄기로 허벅다리를 동여맨 건 지혈을 의한 적절한 치료였는데 바위이끼를 물에 버므려 상처에 바른 것은 수긍이 가지 않았다.

파상풍破傷風이 문제인데 .’

케렌박사가 염려했다.

저 이끼는 태양볕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소독이 되어있어. 진흙도 굳으면 잡균雜菌의 침입을 막고 기브스역할을 할거고. 토인土人들의 단방약單方藥은 나름대로 과학적이야.’

토인들이 물고기사냥이 끝나고 강은 제 2의 사냥터가 되었다. 울부라는 독수리를 비롯하여 육식肉食새들이 저공비행低空飛行을 했다. 센티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새들의 무대舞臺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사냥이 끝나면 육상동물들이 달려듭니다. 오늘 밤에는 표범, 늑대, 산고양이, 족제비 그리고 뱀들이 모여들고, 내일 아침쯤에나 새들의 차지가 됩니다.’

아마존유역에서는 자연, 사람과 동물들이 삼각관계를 유지했다. 그 날 밤, 브라운박사와 센티는 강변에 보마를 만들었다. 달밤이므로 시야가 좋았다. 물이 빠진 개펄에서는 여전히 물고기들이 퍼덕거렸다. 맨 먼저 나타난 건 족제비의 일종인 간간바라였다. 독사를 잡아먹는 간간바라는 독에 면역력免疫力이 있었다. 스컹크처럼 냄새도 고약했다. 물속에 뛰어들어 커다란 메기를 물고나왔다. 다음 출연자出演者는 은사銀絲표범, 나타난줄도 모르게 나왔다. 죠지가 겨냥을 했으나 바짝 엎드려 기어가는 표범을 조준이 안 되었다. 은사표범은 화사華奢한 털을 더럽히기 싫어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가를 빙빙 돌다가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바위로 올라갔다. 죠지가 발사했다. 발에 맞은 듯 표범은 표독스러운 소리를 내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실패했네요.’

맞았어. 내일 추적해서 잡지.’

이튿날, 부상한 표범 추적대追跡隊가 조직되었다. 십여 명이었는데 대칼, 몽둥이, 대창과 가느다란 대통을 들었다.

대통은 독 묻힌 화살을 넣고 입으로 부는, 일종의 공기총空氣銃이지요.’

대통화살은 길이 3Cm의 침인데 강력한 독을 발랐고 2m거리의 앵무새도 떨어뜨린다. 추적대가 핏자국을 따라 신속하게 추적했다. 얼마 안 가 토인들의 흥분한 고함과 표범의 앙칼진 울음이 들렸다. 표범은 10m나 되는 나무를 타고 나무들을 옮겨가면서 도망쳤다. 추적대는 창을 던지고 대통화살을 날렸으나 거리가 멀고 나뭇가지들이 엉켜 효과가 없었으나 그래도 대통화살이 한 개 표범의 엉덩이에 꽂혀 독이 퍼지고 있어 표범은 앙칼스런 고함을 질렀다. 표범이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자 추적대가 작전을 바꿨다. 칼을 물고 나무로 올라갔다. 맨손으로 결투決鬪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10m 나무 위에서. 추적대가 나무를 포위하자 표범이 발악發惡을 했다. 표범이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했으나 추적대는 결투의지를 보였다. 사람과 표범이 나무 위에서 격투激鬪를 하면 어떻게 될까? 조지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총을 발사했다. 그 때 표범은 날아오는 창을 쳐내고 있었는데 총을 맞아 동그랗게 몸을 움츠리며 낙하落下했다. 추적대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칼로 표범의 배를 갈라 앞다투어 피를 마셨다. 표범은 아마존유역에서는 가장 빠르고 용맹한 맹수이기 때문에 피를 마시면 표범처럼 용맹해진다고 믿었다. 브라운박사는 그 표범을 샤반디마을에 선물하고 떠났다.

 

44. 페시포드

브라운박사 일행은 아마존의 지류支流인 리오네그르강을 천천히 올라갔다. 바쁘게 갈 이유도 없었거니와 천천히 가면서 아마존에 서식하는 동물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브라운박사는 아마존에 서식한다는 페시보드를 보고싶었다. 강변의 숲에는 아라나라(잉꼬), 파파가이오(앵무새)가 떼를 지어 날며 시끄럽게 울었다. 매의 일종인 길길이라는 식육조食肉鳥도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도마뱀의 구슬픈 소리, 개원숭이도 윙윙! 하고 짖었다. 야생천국野生天國. 그러나 네그르강은 조용했다. 센티가 설명했다. 페시보드는 돌고래와 비슷한 수중생물인데 아름다움은 비할 바가 없었다. 토인들은 페시포드를 <사랑의 마물魔物>이라고 불렀다. 전설傳說이 있었다. 옛날 아마존유역에 사랑하는 부부夫婦가 살았다. 남편은 용감한 사냥꾼이고 부인은 이름난 미인美人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사냥에서 좀 일찍 돌아왔는데, 부인이 침실寢室에서 황급遑急하게 튀어나왔다. 몹시 당황唐慌한 모습이었다. 의심스러웠으나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실은 강으로 낸 커다란 창문이 있었는데 침대에 물기가 약간 있는 걸 제외하고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후 부인의 태도가 변했다. 점점 아름다워졌으나 약간 피로해보였고 남편과 잠자리를 피했다.

(이상한데 .)

이웃 아낙네가 충고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 침실에서 이상한 신음呻吟소리가 난다고 했다. 남편은 진상眞相을 규명糾明하기 위해 사냥을 가는 것처럼 꾸미고 인근 숲에 숨어있다가 이내 돌아왔다. 이웃 아낙네의 말과 같았다. 침실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고통苦痛과 환희歡喜가 뒤섞인 신음이었다. 남편은 배신背信의 분노憤怒에 미쳐버렸다. 몽둥이를 들고 침실에 뛰어들었다. 침실에 들어선 남편이 본 것은 의외의 광경이었다. 부인이 페시포드를 안고있었다. 머리칼을 풀어헤친 부인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편을 보지도 못 했다. 남편이 몽둥이로 페시포드를 후려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부인이 애원哀願했으나 남편은 페시포드를 마구 때렸다. 페시포드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다. 부인이 통곡痛哭했다. 부인의 고백告白에 의하면, 페시포드가 매일 침실 옆에 와서 부부의 사랑놀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흥분하여 부인의 침실로 뛰어들었다. 부인은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그만 사랑을 맺었다. 페시포드가 죽은 후 며칠 동안 울던 부인이 자살했다. 강에 뛰어들었다. 그 후 아마존에는 페시포드와 껴안고 사랑놀음을 하는 페시포드가 목격되었다. 브라운박사가 페시포드의 생리生理구조는 사람괴 비슷하나 사람과 연애가 가능할 것인가는 연구과제라고 말했다. 낭만파 케렌박사가 페시포드와 연애를 해보고싶다는 말에 무두 웃었다. 리오 네그드강에는 페시포드가 자주 출몰出沒했으나 자가레아스라는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악어가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한다고 했다. 일행은 얼마 안 가서 몸길이가 6m나 되는 고아스라는 악어를 보았는데 네 마리가 모래톱에 누어있었다. 원주민들은 악어를 미워했는데 악어는 잡지 않았다. 우선 위험했고, 고약한 냄새가 심해서 고기를 먹지도 못 하고 가죽도 질이 나빠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악어는 날로 번창繁昌했다. 브라운박사가 악어들에게 배를 접근시켰다. 배가 50여 미터 접근하자 악어들은 귀찮다는 듯 강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리오네그드 강변에는 마위족이 살고있었다. 마위는 줄을 한 줄 허리에 두르고 손바닥만한 헝겊으로 주요부위를 가렸는데 그 건 형식적이었다. 허리를 굽히거나 앉으면 헝겊가리개로는 노출露出을 막지 못 했으므로 가리개는 형식적이었다. 마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빨리 백인과 접촉한 부족이었는데 백인의 충고로 옷을 입었다. 백인선교사宣敎師 가 옷을 주고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마위는 멸종滅種할뻔 했다. 그들은 옷을 빨아 입을줄 몰랐다. 옷이 까맣게 때가 묻어 공기 유통流通을 막아 피부병이 생기고 속병까지 번져 많은 마위가 죽었다. 페시포드를 보고싶다는 말에 페시포드는 달밤에 나오고 오늘은 달밤이므로 페시포드가 나와 사람을 유혹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마을에는 페시포드 보다 잘 생긴 남녀들이 많다고도 했다. 마침 마을에 결혼식이있었다. 신랑의 친구들이 창과 칼을 들고 그들이 얼마나 용감한 청년들인가를 처가가족에게 보여주는 전쟁춤을 추었다.

, 가자. 어서 가자! 싸움이다, 싸움! 오늘 밤 머리 위는 빛이 없는 암흑暗黑이다. 모두들 창과 칼과 방패를 갖고 달려가자, 뛰어가자! 표범보다 빠르게 벼락보다 우렁차게! 바람같이 비밀리秘密裏에 홍수처럼 덮쳐라!’

얼굴에 붉은 칠을 한 신부는 수줍고 신랑은 어색하였는데 친구들이 더 요란스러웠다. 일행이 돌아오는 길에는 청춘남녀가 아베크를 즐기는 것을 보았다. 바위틈이나 나무 아래서 부등켜 안고있는 남녀도 있었다. 그들은 결혼 전에도 연애를 하고 성관계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소개를 하고, 영화감상이나 식사를 하고, 선물을 한다든지 하는 절차가 없습니다. 손을 잡고, 안고, 더듬고, 키스하는 단계도 없습니다. 서로 벌거숭이라 남자가 성욕性慾이 발동하면 여자는 곧 알아챕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면 숲이나 바위틈을 찾아갑니다. 성행위를 하는 걸 봐도 피해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브라운박사 일행도 그런 예의를 지키면서 배로 돌아왔다. 일행과 동행한 마위장로가 안내를 맡아 배는 조용히 강물을 따라내려갔다. 달밤의 풍경은 그림 같았다. 한참을 내려가 배의 불을 껐다.

연애하기 딱 좋은 밤이구만.’

그 때 쉿! 하고 센티가 입을 가렸다. 강물에 동그란 파문波紋이 일어났다. 파문이 점점 커지면서 대가리가 나오고 상반신上半身이 나왔다. 잿빛이 섞인 연분홍軟粉紅색 피부였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음탕淫蕩하게 보였다. 남자를 겪고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30대 여인 같았다. 돌고래를 닮았으나 눈이 크고 잠이 오는 듯한 그 눈매에는 유혹의 빛이 농염濃艶했다. 페시포드가 배를 보았으나 도망가지 않고 천천히 배 주위를 돌았다. 그 때 하류에서 또 한 마리 페시포드가 나타나 두 마리가 어울렸다. 서로 몸을 감고 돌며 떨어졌다가 몸을 붙였다. 보란 듯 뛰어올라 공중에서 키스를 했다. <사랑의 마물魔物>이란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요염한 행동이었다. 브라운박사가 페시포드의 유영遊泳을 관찰하더니 설명했다.

지금이 그들의 생식기生殖期인 것 같아. 밤에는 수면水面이 조용하니까 숫컷이 전파電波를 보내 암컷을 불러내고 암컷은 숫컷을 찾아온거야.’

브라운박사의 지시로 배가 정박했고, 40리를 걸어온 피로 때문에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 4시께 <일어나라!>는 브라운박사의 고함에 잠이 깼다.

죠지, 저 걸 보게나!’

환하게 밝은 강에서 처참悽慘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시시대의 괴물같은 뱀이 페시포드를 덮쳤다. 몸길이가 15m나 되는 뱀인데 브라운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스크류라는 뱀으로써 세계 최대의 뱀이다. 아마존 최대의 뱀이며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먹는, 물소도 먹는 뱀이었다. 조지가 총을 가지고나왔으나 브라운박사가 말렸다. 물뱀과 페시포드의 싸움을 좀 더 관찰하자는 얘기였다. 스크류가 몸을 뻣뻣하게 들고 공격하자 페시포드가 물속으로 잠적潛跡했는데 물뱀은 수직垂直으로 몸을 꺾어 따라들어갔고 물뱀에게 몸이 감긴 페시포드가 물 위로 몸을 솟구쳤다. 무거운 물뱀에게 몸을 감긴 체 수면 위로 1m나 뛰어오른 페시포드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얕은 물속에서 의도적으로 바위에 몸을 부딛쳐 몸을 감은 뱀을 떼어버리려고 상처를 준 것 같았다. 거대한 물뱀은 바위에 부딪힌 충격으로 페시포드를 감았던 깍지를 풀었다. 그 사이에 페시포드는 하류로 달아났으나 스큐르는 포기하지 않고 쫓았다. 수면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스크류는 페시포드 보다 훨씬 빨랐다. 스크류가 다시 페시포드를 덮쳤는데 당황한 나머지 페시포드가 땅 위로 뛰어나왔다. 스크류는 페시포드를 두 겹으로 감고있었다. 그리고 페시포드를 힘껏 조였다. 그렇게 뱀에게 조이면 들소나 코뿔소도 꼼짝 못 한다. 페시포드는 더 이상 반항할 힘도 없어 입을 벌리고 가쁜 숨을 쉬었다. 보다 못 한 죠지가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듯 대가리를 쳐들고 있는 뱀을 겨냥 발사했다. 총탄이 머리에 맞았으나 뱀은 조지를 행해 돌진했다. 기다란 뱀을 맞추기란 어려웠으나 그 뱀은 몸 둘레가 사람의 허리만큼 굵었으며 다음 총탄이 뱀의 배에 맞았다. 조지는 권총을 빼들어 연달아 네 발을 쏘았다. 길이 15m나 되는 뱀도 몸이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도망갔다. 치명상을 입은 듯 강물에 떠내려갔다. 그 사이 페시포드가 소생蘇生했다. 브라운박사가 페시포드를 강물로 밀어보냈다.

사랑의 마물도 싸움에는 형편없군.’

브라운박사가 깔깔거렸다. 페시포드를 구해주고 하류의 마을을 찾기 위해 500미터 쯤 내려가다가 일행은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스크류 - 페시포드를 공격했던 물뱀을 보았다. 물뱀은 기다란 뼈만 남아있었다. 몸통이 사람 허리만큼 굵고 15m나 된 뱀은 뼈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피라니아 - 아마존의 포식어가 빈사瀕死상태의 물뱀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것이다. 피라니아는 떼를 지어다니며 잡히는 것은 가차없이 먹어치운다. 물소건 코끼리건 피라니아에 걸리면 아무리 큰 동물도 30분 안에 사라진다. 피라니아의 이빨은 면도날 보다 더 날카롭다. 토인들은 피라니아의 이빨을 면도칼로 대용代用한다. 피라니아는 냄새에 민감敏感했고 특히 피냄새에는 예민銳敏했다. 센티가 아마존에서 가장 잔인한 게 피라니어라고 단언斷言했다. 센티가 물소를 추적한 적이 있었다. 창으로 물소의 허벅다리를 찔렀으나 물소가 뒷발로 사람을 차버리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물소사냥대가 통나무배를 타고 물소를 추격했는데 물소가 움직이지 않았다. 물소가 눈을 뜬 채 죽어있었다. 사냥대가 접근하여 물소의 뿔에 줄을 맸다. 그리고 물소를 뭍으로 끌어냈는데 땅 위에 올라온 물소는 껍데기뿐이었다. 머리와 가죽만 남겨놓고 살은 피라니아의 밥이 되었던 것이다. 탐욕스러운 피라니아는 물소가 땅 위에 끌려나왔을 때까지도 물소의 갈비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토인들은 그 무서운 피라니아를 잡는다. 대나무 끝에 돼지고기를 매달아서 미리 만들어놓은 울타리로 유인한다. 피에 굶주린 피라니아는 무턱대고 돼지고기를 따라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 토인은 잡은 피라니아를 구워먹는데 맛이 일품逸品이라고 한다.

뱀이 죽었는데 페시포드는 안전할까?’

죠지의 말에 센티가 머리를 끄덕였다.

물 위를 헤엄치는 뱀은 피라니아의 좋은 먹이지만 물속을 헤엄치는 페시포드는 피라이아의 밥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요. 잠수함처럼 물속을 빨리 달리기 때문에 피라니아가 습격할 수가 없어요.’

센티의 말이 옳았다. 일행을 태운 배가 하류에 갔을 때 페시포드가 나와 인사를 했다. 반 쯤 감은 눈은 감사의 정과 유혹의 느낌을 주면서 인사를 했다.

(저 하고 조용한 곳에서 쉬었다 가시지 않겠어요, 여러분!)

피라니아는 70여 종이 있고 3Cm에서 큰 놈은 25Cm나 된다. 눈이 항상 빨갛게 충혈充血되고 날카로운 이빨은 나무젓가락을 자른다. 브라운박사의 연구과제에 피라니아도 있어 죠지는 가끔 피라니아를 낚았다. 피라니아를 낚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죠지는 아마존의 지류인 마디라강에서 피라니아낚시를 했다. 마디라강은 잿빛이었으며 조용히 흘렀다. 죽음의 강이었다. 피라니아가 살기 알맞은 강이었다. 배가 강 한가운데 정박했다.

피라니아가 있을까?’

브라운박사가 말없이 닭의 뒷다리를 물속에 던졌다. 던지는 순간 물이 보골보골 끓어올랐다. 거품이었다. 그리고 1 - 2분 후에 뼈만 남은 닭다리가 올라왔다. 케렌박사는 휘파람을 불었고 조지는 몸이 떨렸다. 죠지가 닭다리를 줄에 묶어 던졌다. 던지자 말자 강한 힘으로 끌려갔다. 놀란 죠지가 줄을 잡아당겼다. 닭다리를 문 피라니아가 딸려나왔다. 30Cm나 되는 놈이었고 끌려나와서도 닭다리를 놓지 않고 퍼덕거렸다. 장난처럼 케렌박사가 연필을 피라니아의 입에 갖다대었다. 연필이 두 동강났다. 샤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강물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신앙이지만 또 하나 이유는 전염병을 막으려는 이유였다. 전염병이 창궐猖獗할 때는 피라니아가 이상발육異常發育을 하여 40 - 50Cm가 된다. 그래서 여기는 악어도 접근을 못 했다. 피라니아에게 걸리면 그 두꺼운 껍질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피라니아가 있는 곳에는 생물이 살지 않는다. 그러면 피라니아는 자기들 끼리 잡아먹는다. 피라니아의 번식을 조절하는 섭리攝理. 피라니아는 브라운박사의 연구용 핀셋도 갉아먹으려고 덤볐다. 물고기가 없어지면 피라니아는 뭘 먹고 살까? 피라니아가 아마존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일까? 토인들은 부인否認했다. 브라운박사 일행이 아마존의 지류인 지파라나강 유역의 파리틴틴부족을 방문했다. 파리틴틴부족은 대가족제도였으며 가장을 중심으로 100여 명씩이 동거했다. 브라운박사는 그 마을에서 가장 전통이 있는 장로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강에 나가서 목욕을 할까 말까 의논을 했다. 파리틴틴은 물을 좋아하는 부족이었으며 많은 마을사람들이 목욕을 하고있었으며 강 상류에서는 청년들이 고기를 잡았다. 브라운박사를 초청한 추장酋長이 지휘를 했는데 맑은 물을 들여다보면서 창으로 잡았다. 그러나 마구 창을 던져 실패하자 추장이 충고하고는 솔선수범率先垂範 직접 창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 창을 던졌다. 환갑還甲이 넘었으나 젊은이 못지않은 근육질이었다. 1m가 넘는 물고기를 잡았고 박수갈채拍手喝采를 받았다. 죠지가 옷을 벗고 강에 들어서는데 바로 앞에 있던 어린이가 별안간 처절悽絶한 비명悲鳴을 질렀다. 어린이는 추장의 손자였는데 손자의 비명을 들은 추장이 창백蒼白해졌다. 그는 창을 던져버리고 물속에 넘어진 손자를 안았다. 그리고 손자가 배에서 피를 흘리고있는 걸 보고 <간제로!>라고 고함을 쳤다. 간제로라는 고함은 물속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감전感電이 된 듯한 작용을 했다. 목욕을 하던 사람들이 황급히 물에서 나왔다. <간제로>야말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었다. 흉악무도凶惡無道한 피라니어 보다도 더 무서운 고기였다. 몸길이 7Cm, 직경直徑 1Cm의 보잘것없는 미꾸라지였으나 그 이빨이 송곳이나 면도칼 보다 더 날카로왔다. 그 미꾸라지는 거의 투명透明한 색깔이었으므로 물속에 있을 때는 식별識別하기 어려웠다. 보이지도 않는 그 고기는 사람고기를 가장 좋아했으며 사람만 보면 돌진突進해서 그 날카로운 이빨로 순식간瞬息間에 사람의 몸에 구멍을 뚫고 내장內臟에 침입한다. 목공소木工所의 전기電氣송곳 보다 더 강하고 빠른 작업이다. 일단 사람몸에 들어가면 피를 빨아먹고 1Cm의 몸이 3Cm로 불어난다. 추장이 손자를 안았을 때 대여섯 마리의 간제로가 몸을 뚫고 들어갔다. 추장은 칼로 간제로를 베어내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간제로가 순식간에 내장에 침입해버렸다.

빨리빨리! 더 깊이!’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있었으나 추장은 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비장悲壯한 신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브라운박사가 어린이의 몸을 조사했으나 역시 슬픈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어린이의 내장에는 이미 대여섯 마리의 간제로가 내장을 파괴해버렸다. 어린이는 출혈과다로 의식이 없었다. 그 어린이는 7세였으며 노추장의 단 하나인 직계直系손자였다. 용감한 전사戰士였던 아이의 아버지는 작년에 표범과 싸우다 죽었고 어머니는 병에 걸려 죽었다. 계속 울며 손자를 안고 마을에 돌아왔으나 높은 열에 시달리던 손자는 새벽에 숨졌다. 이튿날 추장은 손자를 안고 강으로 나갔다. 어제 사고가났던 곳에서 500m 쯤 떨어진 곳인데 간제로의 소굴巢窟이었다. 추장이 손자의 시체를 던졌다.

손자야, 이제 네 부모 곁으로 가라!’

시체에서 잔잔한 파동波動이 일어나더니 시체가 헤엄을 쳤다. 시체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의 간제로가 시체를 덮쳤기 때문에 시체가 움직였다. 추장은 오래토록 강가에 앉아

하늘이여! 왜 당신은 저 어린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갔느냐?’

고 울고있었다.

아마존에서 가장 무서운 놈이 어떤 놈인지 이젠 분명해졌군!’

브라운박사가 중얼거렸다. 아마존의 탁류濁流에는 간제로 외에 무서운 동물이 있다. 브라운박사의 철선이 브라질의 중앙공원 맛트그롯소 밀림지대에 흐르는 로렌소강을 올라가고 있을 때 강물에서 수초水草를 뜯고있던 소가 갑자기 발광發狂을 했다. 눈알이 뒤집혀 거품을 물고 펄쩍펄쩍 뛰었다. 소는 비교적 흐름이 완만緩慢한 곳에 이었으므로 악어도 뱀도 없었다. 간제로나 피라니어라고 판단하고 철선을 그 쪽으로 몰았다. 철선이 다가가는 1 - 2분 동안에 소는 물속에 넘어졌다. 넘어진 소 주변에 수백 마리의 고기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미 부근의 물빛이 붉게 물들었다. 피라니어도 간제로도 아니었다. 몸길이 10Cm의 생김새는 모래무지와 비슷했다. 센티가 페니슈카솔이라고 했다. 페니슈카솔은 소만 전문적으로 노리는 식육어였으며 원주민들은 강에서 그 고기가 발견되면 마을을 옮겼다. 페니슈카솔은 소의 습성習性을 알고 이용한다. 소는 수초를 좋아하는데 수초를 먹을 때 앞발로 수초를 긁어모아 먹는다. 페니슈카솔은 소가 앞발로 수초를 긁어모을 때 수초에 붙어있다가 소의 혀를 공격한다. 그 고기의 주둥이는 동그란 빨판이므로 혀에 달라붙으면 떼어내지 못한다. 빨판은 흡판吸板역할을 하여 피를 빨아먹고 살을 깎아먹기 때문에 소는 넘어지고만다. 소가 넘어지면 주변의 고기떼가 모여들어 단 10여 분 안에 소는 뼈만 남는다. 브라운박사 일행도 소가 페니슈카솔에게 공격당하여 비참하게 죽는 걸 목격했다. 소가 넘어지고 3 - 4분 후에 마을사람들이 달려와 소를 물에서 끄집어냈을 때 소는 이미 절명絶命했고 고기도 태반이 없어졌다. 아마존에서 사람의 대적大敵은 간제로고 소의 대적은 페니슈카솔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이나 소가 물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위험은 없다. 그 후 브라운박사 일행은 아무리 더워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갈색茶褐色의 몰속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발도 담그지 않았다. 그러나 일행은 땅에서는 걸어야 했는데 아마존강 유역의 땅 위도 위험천만危險千萬했다. 우선 뱀이다. 브라질의 뱀은 아프리카의 뱀보다 더 위험하다. 일행은 발목까지 올라오는 장화長靴를 신고 발목에서 무릎까지 두꺼운 헝겊으로 감쌌는데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일행이 중앙공원의 어떤 마을을 찾아갔을 때 비가 온 뒤라 구두에 진흙이 잔뜩 묻었다. 도착 후 일행은 추장이 마련해준 멍석에 앉아 흙투성이가 된 구두를 벗어 진흙을 닦아내려고 했을 때 케렌박사의 구두를 본 추장이 별안간 고함을 지르며 일어섰다. 그 고함소리에 센티가 따라 일어서며 경고했다.

케렌박사님, 꼼짝 말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물러서시오!’

센티가 이어 말했다.

미스터 죠지, 권총 발사준비를 하시오. 케렌박사는 천천히 일어서시오, 아주 천천히!’

케렌박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사람아, 날 전염병환자 취급하나? 나한테 왜 이래!’

박사님 놀라지 마시오. 박사님은 지금 무서운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독사가 박사님의 왼쪽 구두에 흙과 함께 붙어있습니다. 놀라지 마시고 조용히 서계십시오. 처리를 할테니 .’

센티가 추장이 가져온 바께츠의 물을 케렌박사의 구두에 퍼부었다. 진흙이 씼겨나간 구두에 길이 20Cm 정도의 뱀이 구두를 꽉! 물고있었다. 갈색 진흙과 같은 색깔의 뱀이고 굵기는 손가락 보다 가늘었다.

!’

케렌박사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박사님, 가만히 계십시오.’

죠지가 권총을 발사했다. 첫탄은 실패했으나 두 번째 탄환으로 뱀을 두 동강냈다. 그러나 주둥이가 구두를 물고 떨어지지 않았다. 추장이 칼로 대가리를 쳐서 떨어뜨렸다. 구두를 벗었는데 가족에 두 개의 이빨자국이 있었으나 양말에는 없었다.

아이고, 살았네.’

피부에는 상처가 없었으나 발이 시퍼렇게 부었다. 구두가죽을 뚫고 들어간 이빨의 독이 양말에 누렇게 묻어있었다.

이 독이 직접 피부에 들어가면 3분 이내에 끝장이 나지. 중추신경中樞神經이 마비되어 숨이 멎는거야.’

알콜로 소독을 해주며 하는 브라운박사의 말에 케렌박사가 몸을 떨었다.

이 뱀의 이름은 심바고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독을 갖고 있어. 이 뱀에게 물려죽은 동물은 브라질의 무더위에서도 3일 간이나 썩지 않아.’

아마존의 뱀은 종류가 200여 종이며 그 중 독사는 20여 종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독성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 독에는 신경계통을 파괴하는 신경독과 혈관에 내출혈을 일으키는 혈액독의 두 종류가 있는데 둘 다 위험하다. 가장 흔한 뱀은 자라라이가라 독사이며 아마존 강가에 숲이 있으면 이 뱀이 있다. 이 뱀에 물려 빨리 치료하면 목숨은 구할 수 있으나 가스가벨에 물리면 가능성이 없다. 가스가벨은 몸길이가 1. 5m 정도인데 대가리가 삼각형이고 몸에 사각형 반점이 있고 몸통이 갈색인데 독성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방울뱀처럼 소리를 낸다. 더 유명한 뱀은 코브라 고라루가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자살에 이용한 뱀이며 몸길이는 1m 전후고 붉고 푸르고 노란색깔의 동그라미무늬다. 아마존에서 가장 아름다운 뱀은 사르르다. 길이 50Cm, 독사답지 않게 연분홍색이며 애틋한 전설傳說이 있다.

옛날, 남매男妹가 살았다. 오빠와 여동생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으며 마을의 처녀총각이 모두 그들을 사모思慕했다. 특히 옆집의 총각이 여동생을 사모하여 몇 번이나 청혼하였으나 그 얘기는 오빠에게 하라고 미루면서 번번이 거절당했다. 오빠에게 얘기했는데 아직 어리다고 거절했다. 청년은 고민苦悶고민하다가 상사병相思病에 걸렸다. 병에 걸려 누워있던 청년은 결심을 하고 어느 날 밤 처녀의 집에 침입했다. 그런데 침실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다. 남녀 상열相悅의 신음이었다. 질투에 눈이 먼 청년이 방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처녀가 오빠와 사랑을 나누고있었다. 남매의 불륜을 목격한 청년이 사르르를 잡아다 방안에 넣었다. 청년은 독사가 오빠를 물어죽이기를 바랬는데 독사가 여동생의 치부恥部로 들어가 물어죽였다. 그 때부터 독사가 연분홍색으로 변했으며 여자만 노렸다. 브라운박사 일행에는 다행히 여자가 없어 그 독사의 습격을 받지 않았지만 조지는 날아오는 뱀의 습격을 받았다. 일행은 뱀의 숩굑을 막기 위해 목이 긴 편상화編上靴를 신고있었는데 설마 뱀이 하늘에서 날아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지가 케렌박사와 함께 강가의 숲을 산책했다. 뱀을 조심하려고 발밑을 살피며 걷다가 어쩌다 머리를 드는 순간 1m 전방의 나뭇가지가 부러져 떨어지는 걸 봤다. 떨어진 나뭇가지가 자기를 향해 덮치는 것 같았다. 순간, 들고있던 총으로 나뭇가지를 쳤다. ! 소리를 내며 떨어질줄 알았던 나뭇가지가 찰싹! 총신에 붙었다. 조지는 깜짝 놀라 순간 총을 던져버렸는데 그 순간동작이 조지의 목숨을 살렸다. 총을 던지지 않았다면 꼬리로 총신銃身을 감은 뱀이 조지의 머리를 물었을 것이다. 브라운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총신을 감은 뱀은 40Cm의 작은 뱀으로 벤티인데 나뭇가지에 붙어있으면 구분이 어렵다. 벤티는 나뭇가지에 붙어있다가 밑으로 지나가는 동물에게 덮친다. 대부분의 뱀은 자신을 보호하거나 방어防禦하기 위해 독을 사용하는데 벤티는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다. 주로 야생조류를 노리나 때로는 토끼 등 작은 동물도 공격한다. 뱀은 아마존강유역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요물妖物이지만 원주민 특히 총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동물은 표범이다. 표범은 아마존에서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양군도南洋群島, 인디아 등 여러 곳에서 위함한 동물로 취급하고 있으나 아마존에는 사자, 호랑이, 코끼리들 대형동물이 없기 때문에 표범이 숲의 왕으로 군림君臨한다. 일정한 거주지없이 돌아다니면 만나는 동물에게는 무조건 덤벼든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살생을 위한 살육을 한다. 브라운박사는 아마존의 지류 싱크강유역에 사는 가야비족의 요청에 의해 표범사냥을 했다. 가야비는 유목을 하는 부족이었는데 돼지와 양을 노리고 표범들이 날뛰고있었다. 가야비는 표범을 잡으려고 인근의 수렵부족 마비부족과 협상을 했다. 표범 한 마리에 양 세 마리였다. 마비는 표범과 양이 생기는 사냥을 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석 달만에 겨우 세 마리를 죽였는데 마비사냥꾼 두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은 다쳤다. 표범은 마비사냥대가 포위를 하면 나무와 나무를 건너뛰어 나무를 타고 탈출했다. 그래서 가야비는 마비와 똑같은 제안을 했는데 브라운박사가 수락受諾했다. 박사 일행이 마을에 도착한 날 표범이 또 양 한 마리를 물고갔다. 표범은 잔인무도殘忍無道하며 어미양 한 마리를 물고가면서 새끼 세 마리를 모두 죽였다. 조지는 센티의 안내를 받아 표범을 추적했다. 북쪽 바위산으로 갔다. 뜨거운 바위를 싫어하는데 아마 바위산 넘어 강으로 나가려는 것 같았다. 바위산 가까이 가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핏자국으로 봐서 근처에 숨었으리라 짐작했다.

센티, 조심해!’

아마도 30m 이내일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맞은편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비였다. 가야비로부터 표범사냥을 의뢰받았으나 신통치 못 했는데 백인들이 자기들의 사냥감을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다. 창을 들고 구경을 하고있었는데 그들이 와서 표범이 달아날 길이 막혔다. 포범을 강으로 몰 작정이었는데 길이 막혔으므로 표범은 백인들을 죽이고 탈출하는 방법뿐이었다. 사방이 막힌 표범이 발악을 했다. 표독스러운 고함을 치면서 탈출구를 찾았다. 죠지가 높은 바위에서 아래를 감시하였는데 센티는 아래로 내려갔다. 표범이 바위 사이를 바람처럼 내달았다. 센티가 표범을 발견했을 때는 3 - 4m까지 육박했다. 센티가 발사했으나 총탄이 바위에 맞아 튀었다. 이어 쏜 죠지의 총탄이 표범의 앞발을 뚫었다. 30m 거리였으나 조지의 총솜씨는 정확했다. 표범은 총격으로 몸이 흔들렸으나 뛰는 탄력으로 센티에게 달려들었다. 센티는 2m가 넘는 거인이었고 대담했다. 총신으로 표범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입을 딱 벌려 센티의 어깨를 물려던 표범이 센티의 발밑에 나뒹굴었다. 표범이 일어나 땅을 차고 덤볐으나 앞발에 상처를 입었으므로 상처를 입히지 못 했다. 센티가 한 번 더 총신으로 후려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총구를 표범의 머리에 대고 발사했다.

괜찮아, 센티!’

좀 다쳤지만 염려할 건 없어.’

표범은 어린놈이었다. 3살 정도 몸무게는 60Kg, 겨우 큰 개만했다. 센티는 100Kg이 넘었으니 육탄전肉彈戰을 해도 지지 않았다. 구경을 하고있던 마비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센티가 표범과 육탄전을 벌이는 것에 감탄했다. 표범과 육탄전을 해서 이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칼로 잡기만 해도 마을의 영웅이었다. 센티는 마비의 영웅이 되었다. 그들은 싫어하는 센티를 마을로 모시고 갔다.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영웅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여 대접했다. 고기, 과일, 술을 내오고 마을 최고의 미인을 선물했다. 가슴이 웬만한 젓소보다 큰 여인이었는데 여인은 밤새 센티를 잠재우지 않고 괴롭혔다.

 

45. 여난女難

 

케렌박사는 아마존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라마라마족에 대한 조사를 했다. 라마족은 원시상태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인류학적 연구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멸종상태라 찾기가 어려웠다. 센티는 아마존지류 루즈벨트강유역에 라마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행을 안내했다. 센티는 유능한 안내자였는데 그만 길을 잃은 곳 같았다. 장마 때문에 강의 흐름이 바뀌어 위치가 달라져버려서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버렸다. 뜨거운 햇볕 아래 하루 종일 걸었던 브라운박사와 케렌박사는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앞서가던 센티가 길에 엎드려 무엇인가 조사하더니 낯빛이 창백해졌다.

박사님, 큰일났습니다. 발자국으로봐서 우리가 보카네그라족 영토를 침입한 것 같습니다.’

? 보카네그라족이라고!’

케렌박사가 펄쩍 뛰었다. 보카네그라족은 용맹하고 사나웠다. 옛날에는 식인食人도 했다. 뿐만 아니라 케렌박사가 만나려고 하는 라마라마족과는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怨讐. 케렌박사는 아직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인사란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네 마을을 방문하려고 하니 받아주시오. 우리의 용무는 친교를 맺으려는 것 뿐이며 가진 건 총 세 자루입니다.> 라고 미리 마을대표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인사를 하지 않고 마을영토에 들어서면 침략자로 간주하여 공격을 받는다. 더구나 원수 간인 라마족을 방문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컸다. 박사일행이 라마족을 찾고있다는 소문이 아마존일대에 퍼졌으므로 보카네그라도 이미 알고있을 터다. 센티는 판단이 빨랐다. 보카네그라의 영토에서 벗어나려고 달렸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았다. 멀리서 둥둥둥! 북소리가 나더니 이어 여기저기에서 호응하는 북소리가 울렸다.

, 빨리 빨리!’

죠지가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으나 센티가 말렸다. 총을 발사해서 보카네그라족은 한 명이라도 죽이거나 부상을 시키면 백인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한다고 경고했다. 그래도 만약을 염려하여 권총에도 장탄을 했다. 북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날도 어두워졌다. 앞서 달리던 두 박사가 기진맥진氣盡脈盡하여 쓰러졌다. 북소리로 봐서 50m 이내였다. 그리고 사방에서 포위된 것 같았다. 요란하던 북소리가 딱 끊겼다.

재미없는 걸!’

센티가 중얼거렸다. 서쪽에 벼랑이 있는 위는 바위산이었다. 거기서는 북소리가 없었으므로 절벽으로 오르기로 했다. 브라운박사가 먼저 오르고 케렌박사가 뒤를 따랐다. 경사가 심했으므로 죠지가 박사들의 엉덩이를 떠받치면서 올라갔다. 그 때 바로 가까이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목 쉰 소리로 목에서 억지로 짜내는 듯한 목소리, 보카네그라족이었다. 조지가 반사적으로 총구를 소리나는 쪽으로 돌렸다.

안 돼! 쏘면 안 돼!’

바로 옆에 있던 센티가 총산銃身을 쳤다. 그러자 총을 꽉! 쥐고있었던 죠지가 몸의 중심을 잃고 절벽에서 떨어졌다. 센티는 당황했다. 토어土語로 고함을 질렀다.

네그라 용사들! 그 사람을 해치우면 안 돼! 우린 그저 길을 잃고 여기에 왔을 뿐 당신네들에게 해를 끼치진 않아!’

몇 초 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급해진 센티가 다시 고함을 쳤다.

용맹한 네그라의 전사戰士는 선량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들었어. 정말이야?’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그럼, 우리도 거기로 내려가겠다. 좋으냐?’

좋다. 모두 우리 마을로 가자.’

죠지는 추락하여 무릎에 부상을 입었으나 센티의 도움으로 마을까지 갔다. 이튿날 새벽, 움막에서 잠을 깬 일행은 네그라가 신선한 과일과 구은 염소고기를 가져온 걸 보고 안심했다. 큰일날 오해였다. 네그라는 영토를 침범한 백인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백인들과 물물교환物物交換을 하려고 따라온 것이다. 그들은 소금이 필요했다. 원래 소금이 없어 가끔 거래를 하기 위해 찾아온 백인상인에게 수정水晶을 주고 소금을 받았는데 최근 한 달 여 백인상인이 오지 않아 소금이 떨어졌으므로 소금 부족에 시달렸다. 다행히 브라운박사 일행은 다량의 소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금을 나누어주고 라마족이 있는 곳을 물었다. 소금선물에 감격한 추장은 즉시 마을 장로회의를 열어 중대한 결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네그라가 포로捕虜로 잡아둔 라마의 여인을 백인에게 주겠다고 했다. 추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그 여인은 벌써 열흘 동안이나 네그라마을에서 살았으며 네그라 젊은 용사들의 피를 받아 지금 쯤 옥동자玉童子를 두셋 지니고 있는 몸이지만 그 여자를 줄테니 여자의 안내를 받아 라마족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기가막힌 일이었으나 농담이 아니었다. 네그라는 대가족제도여서 근친결혼近親結婚이 많았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벌거벗은 알몸으로 남녀가 한 방에서 뒹굴었으므로 사촌 사이는 물론이고 오누이 사이에도 관계를 맺는 일이 흔했다. 근친관계는 백치白痴와 불구不具의 출산出産이 많았다. 그래서 이웃부족의 여자를 납치해서 근친결혼의 폐습弊習을 막으려고 했다. 라마여자에게는 우유와 고기 그리고 신선한 과일이 제공되고 매일 밤 젊은 전사들과 동침을 했다. 네그라로써는 귀중한 여자였으나 고마운 백인에게 선물하기로 결정했다. 굉장한 미인이라는 라마여자는 시커먼 얼굴은 고사하고 마치 젓소처럼 늘어진 유방乳房, 굵은 허리, 상어껍질처럼 거친 피부가 기기막혔는데 여자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케렌박사를 엿보고 있었다. 라마족을 연구하려고 케렌박사가 몇 가지 질문을 했기 때문에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백인들은 여자의 안내로 네그라마을을 떠났는데 죠지는 부상치료를 하기 위해 남았다. 네그라는 음식을 제공하고 나뭇잎약을 주었으며 추장의 딸이 다리를 주물렀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추장의 딸이 들어오면 체취體臭와 배설물排泄物냄새가 진동했다. 딸은 한참 다리를 주무르다 갔으므로 <! 이젠 살았다.>하고 안심했는데 한 밤중에 또 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온 듯 조심조심 들어왔다. 딸은 다시 죠지의 무릎을 한 시간이 넘도록 주물렀다. 아예 눈을 감았다가 떠 보니 딸의 시선이 야릇했다. 그래서 죠지는

차워, 차워!’

라고 목이 마른 듯 물을 달라고 했다. 딸이 물을 가지러나가자 <이 때다!> 죠지는 문을 닫고 밥상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나무뿌리를 받쳐놓고 걸터앉았다. 잠시 후 돌아온 딸이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열리지 않자

차워! 차워!’

라고 속삭였는데 죠지는 나무밥상에 걸터앉아 힘을 주며 한사코 열어주지 않았다. 딸은 단념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와서 어젯밤 일은 모른 듯 청소를 했다. 그리고 다리를 주무려는데 추장이 들어왔다. 추장은 죠지의 몸을 관찰했으며 특히 아랫도리를 유심히 봤다. 그리고 딸의 몸을 보더니 머리를 흔들고 턱으로 딸을 내보냈다. 딸이 울쌍을 지으며 나갔다.

(옳지, 추장이 바람난 딸에게 야단을 쳐서 내보냈군.)

사실은 정반대였다.

(못난 년. 남자를 제대로 다루지 못 했어. 모처럼 좋은 씨를 받을 기회를 놓쳐버렸어. 여자자격이 없어!)

추장이 나가고나서 곧 추장의 딸 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가 들어왔다. 추장은 자기 딸이 나이가 많아서 죠지에게 퇴짜를 맞은 것으로 착각錯覺했다. 젊은 여자는 추장의 딸이 보인 몸을 주물러서 흥분하게 하는 전법戰法과 달리 자신있는 자기 몸을 과시誇示하는 전법을 사용했다. 커다란 유방과 엉덩이를 내밀면서 여러 가지 포즈를 보였다. 스트립쇼보다도 더 요염妖艶했다. 죠지가 쓴웃음을 지으며 총을 닦았다. 여자는 좀체 단념하지 않고 무려 세 시간이나 유혹을 계속하다가 나중에는 지쳤다. 그 때 또 추장이 들어왔다. 추장은 죠지와 여자의 몸을 살피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두 번째 여자도 실패한 걸 알자 추장이 여자를 데리고나갔다.

(이젠 단념하겠지?)

추장이 마을 여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상의相議했다.

그 백인은 2m가 넘는 용사인데 이 기회에 그의 씨를 받아야 한다. 지금 두 명이 바보처럼 실패했는데 어떻게 하겠나?’

유혹에 실패한 여자들은 이미 벌을 받았다. 규칙에 의하면 사형死刑을 시킬 수도 있었으나 감형減刑하여 곤장棍杖 30대를 맞았다. 근친결혼近親結婚으로 백치白痴나 불구아不具兒가 나와 종족멸종의 위기에 있는 네그라로써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타 부족의 여자를 납치拉致하거나 전쟁을 통해 잡아오거나 유혹을 해서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 여자의 절대과제였다. 그런 일을 하지 못 하는 여자는 여자 취급을 받지 못 했다.

중년장사中年壯士 포딧이 숲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가보니 친구 엘파이가 여자와 뒤엉켜있었다. 포딧은 웃으면서 친구를 격려했다. 그런데 엘파이가 일을 끝내고 일어서자 깜짝놀랐다. 상대가 자기 아내였다. 그래서 포딧의 호소로 장로長老회의가 열렸다. 장로회의는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관장管掌하는 절대적인 기관이었으며 그 날은 재판을 했다. 피고被告를 선정選定했는데 포딧부부, 엘파이 그리고 오입장이 엘파이의 부인婦人이었다. 백인사회에서는 남편의 불륜상대 엘파이의 부인은 원고原告일텐데 피고로 출석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우선 간통姦通을 한 엘파이와 포딧의 아내가 재판장의 물음에 진술陳述을 했다. 그들은 간통사실을 당당히 시인하고 이미 1년 전부터 관계를 했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포딧은 자기는 6년 전에 양 여섯 마리를 주고 아내를 사들였는데 오입장이 엘파이는 친구인데도 자기에게 양 한 마리도 주지 않고 자기 아내를 빼앗아갔다고 항변했다. 포딧의 아내는 간통을 한 것은 사실이나 남편과도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해왔으니 남편은 손해가 없다고 엘파이를 옹호擁護했다. 재판은 세 시간이나 걸렸다. 판단이 결정되었는데 기상천외奇想天外였다. 두 남자와 관계를 해서 분규紛糾를 일으킨 포딧의 아내는 무죄를 선고宣告했다.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그만큼 매력魅力이 있다는 증거며 여자로써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포딧의 아내는 건강한 아이를 두 명 생산하여 잘 키우고 있으므로 그만큼 마을에 공적功績을 세웠다고 칭찬까지 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두고 분쟁을 일으킨 두 남자는 <결투決鬪로 승패를 가려라!>고 판결했다. 결투에 이긴 사람이 여자를 가져라는 것이다. 그것은 양 여섯 마리를 주고 여자를 사온 남편에게는 억울한 판결이었지만 자기 아내를 남에게 빼앗길 정도로 매력없는 사내였기에 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고 했다. 그걸로 재판이 끝난 게 아니었다.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엘파이의 아내는 사형死刑선고가 내려졌다. 여자로써 매력이 없어 다른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겼다는 이유였다. 엘파이의 아내는 서른이 넘었는데 자식이 없었다. 임신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엘파이의 아내가 울면서 항변했으나 사형선고는 번복飜覆되지 않았다. 사형집행관 세 사람이 엘파이의 아내를 숲으로 데리고 갔다. 집행관은 칼로 여자의 목을 후려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여자는 죽지 않았다. 집행관이 칼등으로 쳤기 때문에 여자가 잠시 기절했을 뿐 여자는 죽지 않았다. 엘파이의 아내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이웃마을로 갔다. 이웃마을에서는 대 환영이었다. 씨를 받는 여자로 우대優待받았다. 한편 결투선고를 받은 두 남자도 결투장으로 연행連行되었다.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창을 가지고 대치對峙했다. 싸움을 하기 전에 힘을 과시誇示하는 춤을 추었다. 공중에 뛰어오르며 창을 휘둘렀고 수십 미터를 단숨에 달리면서 창을 날렸다. 이런 시위示威가 무려 두 시간이나 계속되다가 결투가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창을 겨누고 10m, 9m, 4m. 창이 부딛쳐 불꽃이 튀었다. 그 순간 심판審判장로가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 결투중지를 지시하고 잠시 휴식을 한 뒤 다시 하라고 명령했다. 휴식을 하는 동안에 두 사람의 친척들이 모여 화해교섭和解交涉을 했다. <포딧은 아내를 친구 엘파이에게 양보한다. , 엘파이는 포딧이 다른 아내를 사들이는 비용費用으로 양여섯 마리를 제공한다.> 백인사회 관점에서 보면 엉터리재판이었고 집행이었지만 묘미妙味가 있었다. 이런 사회였으므로 추장은 여자들과 협의 끝에 죠지의 씨를 받는 묘안妙案을 발견했다. 마을의 점장이딸을 보냈다. 점장이는 만능萬能이었다. 10대 소녀였는데 소녀는 온몸에 붉은 칠을 하고 우유를 한 바가지 들고왔다. 소녀가 점장이딸이란 걸 모르는 죠지는 우유를 마셨다. 우유에는 점장이가 조제調劑한 약이 들어있었다. 독사의 생피와 이름 모를 약초즙으로 만들었는데 우유를 마신 후 조지는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몸이 활활 달아오르고 의식이 몽롱朦朧해졌다. 고열에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소녀는 죠지가 잠든 사이에 죠지를 자극시키는 뭔가를 했다. 한 밤 중에 눈을 떴을 때는 악마도 소녀 곁에 있었다. 이마에 뿔이 있고 머리칼을 흩트린 여자가 무서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가 악마에게 뭐라고 하자 악마는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이튿날 죠지는 잠에서 깨었는데 기분이 상쾌하고 열도 사라지고 피로도 가시고 통증도 없었다. 밤새 곁에 있었던 소녀가 웃었다.

굿 모닝!’

그 때 추장과 노파老婆가 들어왔다. 추장은 조지의 몸을 관찰했다. 노파가 죠지의 엄지손가락을 가리켰다. 죠지의 손가락이 붕대로 감겼다. 추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노파는 소녀의 손가락과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소녀의 손가락에도 붕대가 감겨져있었고 아랫도리에는 하연 반점斑點이 묻어있었다. 그걸 보고 추장은 크게 기뻐했다. 추장이 깔깔거리며 웃고는 노파를 치하致賀했다. 노파와 소녀도 웃었다. 죠지는 아무 것도 몰랐으나 웃었다. 노파가 밤에 본 악마와 닮은 것 같았다.

(이마에 뿔은 없지만 얼굴이 악마와 닮았는데, 악마가 노파로 둔갑遁甲한 것일까, 노파가 악마를 닮은 것일까?)

노파는 점장이인 소녀의 어머니였고 밤에 나타난 악마였다. 점장이의 정장正裝은 머리에 화려한 새털관을 쓰고, 이마에 물소뿔을 붙이고, 얼굴에 알록달록한 칠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악마를 물리치는 더 강한 악마의 분장粉牆이었다. 노파는 조지를 유혹하려다 실패한 딸을 위헤 트릭을 사용했다. 죠지의 손가락에서 피를 내서 딸의 손가락의 피와 섞어 결혼을 시켰다. 네그라의 풍속風俗이었다. 노파는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흥분시켜 정액精液을 받아 딸의 아랫도리에 발랐다. 추장은 돼지의 정액을 보고 일이 성사되었다고 웃었는데 죠지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 웃었던 것이다. 그 날 마을에서는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마을사람들에게 귀중한 소금을 나눠준 고만운 백인과 점장이노파의 딸의 성혼成婚을 축하하는 축하연이었다. 물론 조지는 잔치가 왜 열렸는지 자세히는 모르고 그저 자기의 완쾌完快를 축하해주는 것으로 알았다. 잔치판에서는 신랑도 기분이 좋았지만 신부도 미소짓고 있었다. 소녀는 죠지 옆에 붙어 온갖 시중을 들었다. 다른 여자들에게 보라는 듯 음식을 먹여주고 죠지의 손을 잡기도 했다. 잔치판에는 조지를 유혹하려다 실패한 추장의 딸도 있었는데 질투어린 시선으로 소녀를 노려보았다. 성대한 잔치판에서는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귀한 소금이 한 쟁반 나왔다. 잔치판이 한창일 때 라마족을 방문한 박사일행이 돌아왔다. 성대한 잔치판을 보고 놀랐고 상좌上座에 앉아 젊은 아가씨를 끼고있는 죠지의 모습에 더 놀랐다.

웬일이야, 미스터 죠지?’

센티의 물음에 죠지는 웃기만 했다. 센티가 추장에게 물었다.

축하해주시오. 당신네의 젊은이와 우리 아가씨가 어젯밤에 결혼했소. 우린 이제 서로 사돈査頓이요.’

기겁을 한 센티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추장이 일어난 모든 일을 상세하 설명했다. 이 번에는 죠지가 놀랐다.

. 결혼?’

죠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센티로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듣고 비로소 모든 걸 깨달았다.

엉터리 사기詐欺!’

죠지가 그간 겪은 일을 해명했다. 죠지의 얘기를 듣고 케렌박사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근엄謹嚴한 브라운박사도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추장은 죠지를 마을에 잡아둘 요량입니다. 죠지가 오늘부터 점장이노파의 사위가 되었으니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물론 죠지는 네그라마을에 남지 않았다. 백인들은 1년 후에 죠지를 마을에 돌려주기로 서약誓約하고 겨우 죠지를 빼내 그 날 밤에 마을을 떠났다.

 

46. 모가지

 

아마존강 유역에 에쿠아도르라는 나라가 있다. 안데스산맥이 나라의 중앙에 있고 적도赤道 바로 아래 국가다. 수도首都 키드에서 북쪽으로 70Km, 해발 海拔 2480m의 산간분지盆地 후가라는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는 적도선을 표시하는 00000초라고 새겨진 표지판이 있다. 이것이 에쿠아도르의 명물名物인데 또 하나의 명물은 안데스산맥의 아마존 원류原流에 살고있는 히바로족이다. 히바로는 사람의 모가지를 건조하여 보관하는 풍속이 있으며 모가지 한두 개는 필수이며 전통있는 가정에는 수십 여 개의 모가지를 한국의 굴비처럼 걸어놓는다. 케렌박사가 그 히바로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브라운박사도 동참했다. 철선이 아마존강의 지류인 파스다사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다갈색 강물의 수면水面은 조용했으나 속물결은 강한 듯 철선이 힘겹게 강을 거슬렀다. 히바로는 수렵족이기 때문에 짐승의 이동에 따라 옮겨다녔다. 그래서 연 이틀 동안 돌아다녔으나 히바로를 만나지 못 했다. 벌써 여섯 번째의 수색搜索이었다. 일행이 철선을 정박하고 모래사장을 걸어 밀림으로 들어갔다. 히바로는 모가지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권위權威가 있었으므로 사람을 함부로 습격했다. <정지!>, <누구냐?>, <손들어!> 따위의 경고도 없었다. 앞서가던 센티가 정지신호를 하며 발자국을 조사했다.

히바로입니다.’

히바로는 은사(표범)를 추적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을 함부로 베는 히바로를 따라가는 것은 모험이었으나 케렌박사가 앞장섰다. 밀림은 울창했다. 태양빛이 가려져 대낮인데도 음침陰沈했고 습기가 많았다. 여기저기 초록색 뱀들이 기어다니고 브라운박사가 독사가 아니라고 했다. 밀림을 약 1Km 갔을 때 또 다른 히바로가 나타나 합세를 했고 한참 같이 가다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표범을 포위하려는 작전입니다.’

얼마 안 가서 센티의 말대로 표범과 결전자국이 있었다. 표범의 앞을 막아선 히바로가 창을 던졌고 표범이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반대편으로 도망을 쳤는데 거기서 다른 히바로가 창을 던져 또 부상을 당했다. 표범이 나무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집중적인 화살공격을 받고 죽었다.

히바로는 창을 잘 쓰지만 활도 잘 쏩니다. 화살에 독이 발라져 맞으면 세 시간을 버티지 못 합니다.’

히바로가 나무 위에서 감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언제 어디서 독화살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했다. 그러나 케렌박사가 막무가네였다. 발자국을 추적했는데 언덕 넘어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잠깐만!’

앞서가는 케렌박사를 센티가 제지했다. 아무래도 포위된 것 같다는 말이었다.

이 이상 들어가는 건 위험합니다.’

센티가 일행을 정지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히바로의 용사들과 만나고싶으니 나오라!’

는 말이었다.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는 소금을 가지고왔으니 와서 받아가라!’

고 고함쳤다. 소금이란 말이 떨어지자 즉각 반응이 왔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여기저기서 휘파람소리가 났다. 히바로가 나타났다. 그들은 상투를 했다. 머리칼을 돌돌 뭉쳐 말아올리고 황토와 진흙과 진득거리는 수액樹液을 발라 말렸다. 또 히바로는 나무줄기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소금이 부족하면 생활이 곤란한데 소금을 공급하는 백인들은 히바로를 꺼렸다. 이동移動이 잦아서 찾기 힘들고 목을 베는 부족이라 싫어했다. 히바로는 현재 소금이 떨어져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난데없이 백인이 나타나 소금을 주겠다고 해서 그 백인을 마을에 초청하기로 했다. 다른 부족을 침략해서 목을 베는 부족이라 자신들도 침략을 받을 위험이 많아 경계가 삼엄森嚴했다. 백인일행이 2Km를 가는데 무려 7번의 검문檢問을 했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검문이 엄중嚴重했다. 마지막 관문關門에서는 두 시간을 기다렸다. 추장이 직접 검문을 했다. 40대의 추장의 눈빛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왔다. 추장이 말없이 일행을 보고있는 주변에는 10여 명의 히바로가 창과 칼로 무장을 하고 일행을 에워싸고 있었다. 추장의 명령 한 마디면 일행은 몰살沒殺당할 것이었다. 센티가 더듬더듬 내방來訪인사를 했으나 추장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때 케렌박사가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개피 꺼내서 추장에게 줬다. 추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담배를 받아 한 모금 빨고는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위기危機를 모면謀免한 일행을 마을로 안내했다. 히바로의 말은 사람의 말이라기 보다는 새우는소리 같았다. 800개의 단어單語였고 숫자는 10이 넘으면 <많다>로 대신했다. 히바로는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였으며, 대나무로 엮은 집에 남녀의 방이 구분되어 아이들도 일정한 연령이 되면 여자방에 들어가지 못 했다. 여자방에는 오직 가장家長만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머리칼이 자라 상투를 틀면 성인이 되었다. 13세 정도인데 상투를 틀면 결혼을 했다. 결혼은 남자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성립되며 여자는 가부可否 선택권이 없었다. 남자가 딸을 가진 집에 가서 딸을 달라고 하면 장인丈人은 사위감에게 질문과 시험을 한다. 사위는 처가가족을 모두 먹여살리는 의무가 있다. 장인은 사위의 창 던지는 솜씨, 새 잡는 솜씨를 시험한다. 만족하면 데이트를 허락한다. 데이트 장소로는 숲이나 강가였다. 사랑의 밀어蜜語나 기술은 필요 없다. 남자는 활로 나무 위의 원숭이를 활로 쏘아잡고 물속에서 자라를 잡는다. 아가씨는 알록달록한 짙은 화장을 하고 남자가 잡은 물고기를 맛있게 요리하고 손수 빚은 술을 대접한다.

브라운박사 일행은 마을에서 가장 부자인 추장에게 초대를 받았다. 케렌박사가 소금 한 되를 선물했다. 하얀 소금을 보고 추장이 감격했다. 그만한 소금은 염소 30마리 값이었다. 히바로는 이유없이 선물을 받지 않는다. 선물만큼 반드시 보답을 했다. 추장이 장로회의를 열고 답례품을 가지고왔다. 상자를 열어본 케렌박사가 창백해졌다. 상자속에 사람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기묘奇妙한 머리였다. 분명 성인成人의 얼굴인데 주먹만한 크기였다. 머리는 축소되었으나 색깔, 표정, 눈동자가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브라운박사는 가끔 동물표본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정교精巧한 표본은 만들지 못 했다. 기가막힌 예술품이었다.

이 건 누구의 머리냐?’

이웃마을 추장머리다.’

언제 만든 것이냐?’

‘10년 전이다.’

전쟁에서 잡은 거냐?’

아니다. 포로捕虜로 잡아와 특별하게 만들었다.’

특별?’

보통 모가지는 목을 자른 후에 가공加工하지만 이것은 살아있을 때부터 가공을 해서 만든 특제품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가공하다니 끔찍한 일이었다.

이러누 모가지는 어떤 방법으로 만드느냐?’

그 건 비법秘法이라 말 할 수 없으나 대략 말하면 .’

자른 머리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 칼을 뒤통수에 넣어 얼굴껍질을 벗긴다. 껍질을 차가운 물속에 넣어 보관하고, 머리에서 두개골을 빼낸다. 나머지 살과 눈, , 입은 끓는 물에 넣어 지방脂肪을 제거하고 다시 원래대로 조형造型해서 그늘에 말린다. 그 후 히바로가 발명한 독특한 약을 발라 단단하게 한다. 약은 특수한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즙에 처녀의 월경月經을 섞어 조제하는데 검푸른색이다. 약을 바른 뒤에 뼈가 없는 머리에 껍질을 입히는데 이 때도 특수한 약이 사용된다. 뜨거운 모래와 진흙이 가미되어 모가지는 살아있을 때 그 모습으로 재 탄생誕生된다. 추장은 더 이상 비법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브라운박사도 더 이상 공개는 원치 않았으나 자기가 만든 동물박제剝製와 히바로의 모가지를 비교하고는 탄식歎息했다.

추장은 이런 모가지를 백인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나?’

우리에게 물건을 파는 백인 중 모가지를 원하는 사람이 있어 가끔 선물했다. 특제품은 주지 않았다.’

케렌박사는 몇 년 전에 런던의 골동품骨董品상점에서 이런 모가지를 본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 구입한 것이다.

이런 고귀한 선물을 받았으니 이에 걸맞은 소금을 더 주겠다.’

소근 몇 되를 더 선물하고 물었다.

이런 모가지는 어디에 저장하느냐? 그 저장소를 볼 수 없나?’

보통 모가지는 각 가정에 있으나 특제품은 바위 밑 창고에 보관하고 있으므로 안내하겠다.’

바위는 강가에 있었으며 10여 미터 아래 저장고貯藏庫가 있었다. 저장고는 좀 어두웠으나 통풍이 잘 되고 대나무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눈 앞에 100여 개의 모가지가 줄에 매달려 있었다. 추장이 어떤 모가지의 사연事緣을 설명했다. 저 젊은이는 용감무쌍한 마오이족의 전사였으며 그는 히바로의 용사 아디켄켄의 칼에 맞아죽었다. 용사는 켄켄과 무려 한 시간이나 맞서 싸우다 다리에 중상을 입고 넘어져 웃으면서 켄켄의 칼에 목이 잘렸다. 그러고보니 그 모가지는 정말로 웃고있었다.

이 늙은이는 .’

추장은 자기 설명에 도취되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동행한 마을장로가 짤막하게 경고를 하자 추장이 깜짝 놀라 물러섰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동굴 맨 안쪽 벽에 나무줄기 커틴이 걸려있었는데 케렌박사가 무심코 커틴을 들추고 안을 들여다봤던 것이다. 백인들의 모가지였다. 두 사람의 남자와 한 여자의 모가지였다. 추장이 얼핏 커틴을 내렸고 케렌박사도 못 본 척했다. 그 날 밤 추장은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백인들은 조금 전에 본 모가지가 떠올라 입맛을 잃었다. 케렌박사와 브라운박사는 위스키를 마구 마셨다. 잔치가 무르익자 여흥이 벌어졌다. 젊은전사가 나와 약 20여 미터 전방의 짚으로 만든 인형에 창을 던졌다. 첫 번째는 다리에, 두 번째는 배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창이 가슴에 명중命中했다. 놀라운 솜씨였다. 활은 창 보다 더 정확했다. 길이 1m 정도의 화살이 한 개는 배에 두 개가 머리에 꽂혔다. 브라운박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죠지를 불렀다.

자넨 사격대회에서 언제나 우승을 했지?’

때로는 2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네 총으로 저 ud을 맞출 수 있나?’

죠지가 웃었다.

그럼 한 번 해봐. 백인의 목을 자른 녀석들에게 백인의 총솜씨를 보여줘!’

센티는 반대했으나 단호한 브라운박사의 표정을 보고 추장에게 말했다.

우리도 여흥에 참여해도 좋으냐?’

죠지가 총을 들고나서자 마을사람들은 호기심과 경멸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죠지가 손바닥만한 나뭇잎을 뜯어 인형의 심장부에 붙였다. 연발라이플을 겨누어 발사했다. 그리고 센티가 건네준 라이플로 또 두 발. 눈 깜짝할 사이에 네 발이 심장에 명중했다. 용감무쌍한 히바로도 죠지의 총솜씨에 놀라 침묵했다. 죠지가 인형의 뱃속에 화약뭉치를 넣었다. 그리고 다시 발사했다. 무서운 굉음轟音이 나고 인형이 화염火焰에 휩싸였다. 인형이 불타는 걸 보고 히바로는 기겁을 했다. 3 - 4분의 침묵 후 추장이 백인들의 여흥이니 염려말라고 히바로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추장이 겁을 먹었다. 밤에 몰래 케렌박사를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세 개의 상자를 주었다. 백인의 모가지였다. 센티를 불러 통역을 부탁하고 물었다.

이 백인들은 어떻게 죽었나?’

나는 모른다. 조상祖上들이 한 일이다.’

언제 죽었나?’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죽였다. 10년이 더 된다.’

그들은 10까지만 셀 수 있었으므로 100년이 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추장은 그 백인들이 허가도 없이 자기 영토에 침입했으며 총으로 토인 4명을 죽였다고 했다. 그래서 용감한 자기의 작은할아버지가 지휘하는 결사대가 밤에 창과 활로 죽였다고 주장했다. 케렌박사와 브라운박사는 <이후부터는 백인은 물론 토인도 죽이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밤새 추장과 술을 마셨다. 히바로를 떠난 케렌박사가 죽은 백인의 신원身元을 확인했다. 그들은 케나다의 탐험가였다. 44년 전에 아마존유역을 탐험하다가 실종으로 기록되었다. 미스터 짐 아그릴톰과 그의 아내 아서 그리고 처남 맨슨이었다. 당시 실종보고를 받은 캐나다정부가 수색대를 파견했으나 두 달 동안 헛수고를 했다. 수색대는 히바로족 접경에서 텐트와 화살을 발견했는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브라운박사가 캐나다정부를 통해 모가지상자를 유족遺族에게 전달했는데 브라질까지 달려온 아들이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 그대로라고 증언했다. 훗날 브라운박사가 히바로에게 배운 비법으로 박제를 만들었으나 실패했다. 히바로는 식인종이 아니었다.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모가지를 박제했다. 케렌박사의 다음 과제는 식인종이었다.

뭐야! 식이종을 만나겠다고?’

브라운박사가 강력히 반대했으나 케렌박사의 집요執拗한 설득에 못 이겨 이틀 후 식인종을 찾아 떠났다.

 

47. 식인종食人種

 

남아메리카 주민들 중에서 가장 흉폭한 종족種族은 라우니족과 카친카족이다. 카친카족은 사람고기를 먹는다. 그래서 백인들에게 박해迫害를 받았고 토인들에게서도 소외疏外당했다. 그들은 브라질 중앙지대 고원高原을 흐르는 싱구강 상류에서 사는데 인근에는 다른 부족이 살지 않으며 그들과 교역交易을 하는 부족도 드물다.

이 건 자살행위입니다. 케렌박사는 카친카가 어떤 종족인가를 모릅니다.’

센티가 안절부절하며 항의하고는 카친카가 부르는 노래를 설명했다. 술을 잘 마시고 아갈디엔디라는 옥수수로 만든 술에 취하면 노래를 부른다.

<죽여라, 죽여! 모조리 죽여라. 달이 없는 밤은 우리들의 세상이다.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 달려라 달려. , 인간마을에 왔다. 저것 보라, 년놈들이 있다. 있고말고. 달이 없는 밤은 우리들의 세상이다. 스며들어라. 마을을 소리없이 덮쳐라. 에젠 습격이다, 돌격하여라! 죽여라, 죽여. 사내놈들은 모조리 죽여라. 뼈를 가르고 목을 치고 눈을 도려내라. 그러나 곚비은 죽이지 말라. 그건 살려서 아이를 낳게 해라. 아이를 낳지 못 하는 곚비은 때려죽여라. , 습격은 끝났다. 이젠 먹어라. 젊은 사내놈의 고기는 맛있네. 젊은 계집년의 고기는 연하네. 피를 마시고 뇌를 먹으면 약이 된다. 장이나 내장도 맛이 있다네. 표범이나 악어고기 보다는 훨씬 맛있어. 달이 없는 밤은 우리들의 세상> 대체로 원줌니은 농경인, 유목인, 수렵인으로 분류되는데 카친카는 수렵인에 해당되는 종족이나 그들의 수렵대상은 표범이나 사슴 외에 인간이 포함되어있다. 인간사냥은 위험하다. 함부로 덤볐다가는 오히려 죽는다. 그래서 카친카는 특수한 재능을 길렀다. 소년 때 밤에도 볼 수 있는 훈련을 받는다. 달 없는 캄캄한 밤에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다가 수건을 풀어버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웬만한 물체를 볼 수 있다. 훈련을 받으면 어둠속에서 바늘을 찾아낸다. 땅에 엎드려 귀를 대고 수십미터 밖에서 오는 발자국소리를 듣고, 코로 바람의 방향을 맞추면 수십미터 떨어진 동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카킨카는 이런 능력을 사람사냥에 이용한다. 카친카에게 공격을 받아 마을사람 30여 명이 몰살당한 이웃 카이아족이 말했다. <우리 마을은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덮쳐올 때에야 습격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보초를 세웠으나 아무도 그들의 접근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형체도 안 보이고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카이아족을 습격한 카친카는 악독했다. ! ! 소리를 질렀는데 공포심을 심기 위한 위협이었다. 그들은 뛰어나온 카이아들 중에서 무기를 든 사람만 죽였다. 그리고 젊은 남자, 노인을 차례로 죽였다. 무기는 창이었다. 정확하게 심장을 노렸다. 기습을 당한 카이아는 남자 10여 명이 죽었고 카친카는 부상 한 명이었다. 젊은여자 10여 명을 제외하고 아이들도 모두 죽였다. 카이아마을은 온통 피바다였는데 카친카는 잔치를 벌였다. 마을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카이아의 시체를 입으로 처리했다. 여자를 겁탈하기도 했다. 카이아의 살아남은 노인에 의해 백인들이 카친카를 응징했는데 카친카는 총을 든 백인에게 맞서다 창이 닿기도 전에 총에 맞아 10여 명이 몰살당했다. 그 후 카친카는 다른 부족을 침략하는 걸 삼갔으나 그 본성本性은 여전하다고 센티가 경고했다. <카친카가 백인들에게 몰살당했던 건 백주白晝에 맞섰던 때문이고 밤이었으면 사정이 달랐으리라>고 센티는 덧붙였다. 그 충고에 케렌박사도 좀 불안했으나 배는 이미 싱구강 상류를 지나고 있었다. 센티의 경고에 따라 배를 강 가운데 정박시키고 엔진을 걸어두었다. 불침번을 세우고 밤을 세웠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 싱구강의 세류細流를 따라 갔다. 강 양안兩岸에 드넓은 모래사장이 펄쳐졌는데 모래가 움푹 패인 곳이 있었다. 악어새끼가 부화孵化한 흔적이었다.

그럼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도 있겠구만. 몇 개 구할 수 있을까?’

악어어미가 지키고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커다란 바위를 감고돌았는데 바위를 돌자 10여미터 앞에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나체裸體였으며 창을 들고 있었다. 카친카였다. 갑자기 만난 브라운박사도 놀랐지만 그들도 놀랐다. 그들이 좌우로 나뉘어 공격을 하려는 순간 센티가 고함쳤다.

덤비지 말라, 우리는 적이 아니다!.’

고한소리 보다도 그들은 센티가 쥐고있는 총을 보고 행동을 멈췄다. 죠지가 쥐고있는 총에도 신경이 쓰였다. 10여 미터 거리에서 대치代置했다.

안심하라, 우리는 너희를 공격할 생각이 없다. 우리 친구가 되자!’

카친카의 적의敵意가 좀 풀린 듯 했으나 센티와 죠지의 총을 견제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웃으며 총구를 내렸다. 카친카도 창을 내렸다. 브라운박사가 소금을 주며 카친카의 손에 들려있는 악어알을 가리켰다. 물물교환에 성공했다. 센티가 말했다.

우리는 저쪽 강으로 배를 타고 왔는데 배에는 소금이 많다. 우리는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 언제든지 놀러오너라. 소금을 줄테니 .’

배로 돌아가는 길에 죠지가 산양을 쏘아 산양바비큐가 벌어졌다. 오후에 카친카추장이 부하들 7 - 8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산더미 같은 악어알과 악어껍질을 가지고왔다. 브라운박사는 좀 당황했으나 소금과 교환했다. 거래를 마치고 배로 초청하여 산양고기와 술을 대접했다. 독한 위스키에 눈이 휘둥그레졌으나 그래도 대여섯 잔을 마셨다. 그들의 기분이 좋은 걸 보고 케렌박사가 제안을 했다.

이런 좁은 배 안에서 살자니 답답하고 편치 않다. 당신들이 살고있는 넓은 집에서 술을 마시고싶다.’

추장이 참모들과 상의相議를 했다.

마을에 가서 의논을 할테니 사람들을 보내면 따라오라.’

케렌박사의 숙원宿願이 이루어졌다. 마을에 들어선 인상은 무서운 식인종이 아니라 의외로 평화롭고 자유로웠다. 남녀가 각자 할 일을 하면 자유롭게 놀이를 하고 아베크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자는 사냥도구나 무기를 손질하고 여자는 노인이나 아기를 돌보고 식사준비를 했다. 식사는 마을의 중앙에 공동냉장고가 있는데 커다란 항아리를 묻고 주위에 물이 흘렀다. 오후 4시 경 사냥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잡은 사슴, 토끼, 물고기를 항아리에 던져놓고 목욕을 하러 가고 여자들도 감자와 콩을 던져넣는다. 항아리에는 저녁과 아침에 먹을 음식이 저장되는데 마을의 조리사調理師들이 항아리 속 재료로 식사를 준비한다. 요리가 의외로 다채多彩로왔다. 굽고, 삶고, 국을 끓이고 여러 가지 조미료調味料도 넣었다. 다행히 브라운박사가 도착한 날은 항아리 속에 사람고기는 없었다. 삶은 감자를 으깬 빵, 구은 토끼다리, 삶은 새알이 점심메뉴였고 옥수수술도 있었다. 옥수수술은 달큼하여 케렌박사와 죠지는 한 통씩을 마셨는데 주조酒造방법을 듣고는 기겁을 했다. 옥수수를 삶은 다음 여자들이 입에 넣고 씹어 죽처럼 만들어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 발효醱酵시킨다. 카친카는 옥수수술을 남녀불문 마음껏 마셨으나 추태醜態를 부린 사람은 없었다. 생활이 자유롭지만 그들은 오동질서를 잘 지켰다. 식사를 할 때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식사를 했는데, 사슴고기를 먹고싶지만 고기의 양이 많은가, 마을어른들이 먹을만큼 남았는가, 여자들에게도 남겨줄 수 있는가를 짐작하여 적당하게 가져갔다. 일단 유사시에는 만녀 구별없이 철통같이 단결하고, 여자는 전쟁에서 이기면 부상자를 치료하고, 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피신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크면 복수를 한다. 그러나 추장은 케렌박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우리는 이제 사람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람고기를 먹으면 백인들로부터 천벌天罰을 받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했다. 자의적이 아니라 타의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추장은 자기도 사람고기를 먹은지 오래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비밀리에 사람고기를 먹고있다는 암시暗示이기도 했다. 불과 두 달 전, 추장이 서너 명의 전사를 거느리고 순찰을 했는데 마을에서 먼 숲에서 냄새가 났다. 4 - 5명의 마을사람들이 시원한 그늘에서 잔치판을 벌이고있었다. 옆에 은사(표범) 시체가 있었다. 그러나 토기土器에서 끓고있는 고기는 은사 같지 않았다. 잔치판에서는 옥수수술을 마시며 고기를 뜯고있었는데 갑자기 들어닥친 추장을 보고 당황한 기색氣色이 역력했다.

고기? 무슨 고기.’

사내들이 웃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먹는 고기라고 했다. 물어보나 마나 <마나(사람고기)>였다. 사내들이 시무룩한 추장에게 해명했다. 사내들은 그 날의 수렵담당이었으며 은사를 발견하였는데 은사가 이웃마을에서 열서너 살 된 아이를 물고오고있었다. 사내들이 은사를 공격하여 잡고보니 절명한 아이가 있었는데 버리고오기에는 너무 아까왔다. 그렇다고 아이의 시체를 마을에 가지고오면 시끄러운 문제가 일어날 일이었기에 즉석요리로 처리하기로 의논하고 사람고기 잔치판을 벌였다. 은사고기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였으나 은사는 손도 대지 않고 사람고기를 먹었다. 추장은 배탈이 났다면서 먼저 돌아왔는데 사람고기를 먹지 못 해서 후회스러운 말투였다. 카찬카에 의하면 사람고기는 어떤 고기보다도 더 맛있다는 것이다. 염분鹽分이 많아 좀 짜지만 그 게 매력魅力이다. 소금 부족으로 시달리는 그들에게 짜다는 것은 맛있다는 것과 같다. 사람고기는 부드럽고 연해서 병자病者, 노인과 아이들이 좋아하며 구워도 삶아도 좋다고 한다. 케렌박사가 그들의 식인종 기원起源을 조사했다. 기근饑饉과 종족유지를 위한 약탈掠奪전쟁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공격한 마을의 여자를 약탈하고 남자들을 모두 죽였으므로, 식량이 부족한 그들은 사람고기를 먹게되었다. 브라운박사 일행은 사람고기를 먹는 무시무시한 카친카에서 사흘을 지내고 무사히 배로 돌아왔다.

 

48. 합동사냥

 

아마존강유역에 사는 부족들 가운데서 가장 용감한 부족은 카친카, 히바로, 라우니, 완비사부족이다. 모두 수렵족인데 사람의 목을 베고 사람고기를 먹는 습성이 있으며 주업主業은 수렵과 전투다. 카친카는 사람고기를 먹고, 히바로는 사람고기를 먹지 않았으나 목을 베서 보존했고, 라우니는 목을 베고 고기도 먹었고, 라우니는 고기도 먹고 목도 베었고, 완비사는 고기를 먹지 않고 보존하지도 않았으나 취미로 목을 벴는데 무용武勇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이웃부족들이 두려워해서 이사를 가버리자 그들의 영토가 넓어졌는데 라우니족과 완비사족의 영토가 접경接境이 되었다. 그래서 매일 피비린내나는 전투가 계속되었다. 1년 동안 1000여명이 죽었다. 종족이 멸종단계가 되자 양 마을의 장로들이 화해를 했다. 영토의 접경지대에 중립지대를 만들어 중립지대에는 양 부족들이 들어가지 않기로 합의했다. 전투가 종결되었다. 평화가 지속되었는데 그들의 식량이 되는 짐승들이 모두 중립지대로 피신을 해버렸다. 그래서 짐승을 쫓던 사냥꾼들이 중립지대를 침범하는 일이 있었고 서로 같은 처지에서 만나 싸움이 벌어졌다. 양쪽 장로들이 다시 협상을 했다. 중립지대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들어가지 않되 1년에 한 번 합동사냥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실행이 어려웠기 때문에 합동사냥에 브라질정부가 감독관을 파견派遣했다. 브라운박사 일행을 안내하는 센티도 감독관이었다. 브라운박사는 합동사냥에서 잡히는 동물에 관심이 있었고 케렌박사는 라우니족과 완비사족에게 관심이 있었다. 센티는 합동사냥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활과 창을 가지고 있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양쪽 사냥대가 중립지대를 양쪽에서 몰아가는데 가까워지면 사냥대가 맞닿아 포위를 했다. 두 박사의 고집을 꺾지 못 한 센티가 참가를 허락하고 감독관으로써 두 마을을 시찰했다. 마을이 평화로운가? 혹 전투준비를 하지는 않은가? 사냥준비가 되어있는가? 합동사냥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알고있는가? 라우니는 아마존의 지류 아라과이아강 상류에 살았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으므로 배가 도착하자 백인감독관 2명과 마을장로가 영접했다. 분위기가 음침陰沈했고 마을의 집은 일시적인 집이 아니라 공격을 대비하여 견고堅固하게 지었다. 마을 뒤편은 강이었고 앞은 탁 트인 벌판이었다. 벌판에는 마을을 보호하는 원호圓弧모양의 방위선이 있어 보마(잠복소)가 설치되었고 감시자가 상주하며 마을의 입구에는 높은 감시탑이 있었다. 이 마을은 위치로 보아 적의 기습을 받지 않게 되었고 전투가 일어나면 승리하거나 전멸하는 구조였다. 뒤편이 강이기 때문에 달아날 수가 없었다. 마을에는 살기가 떠돌고 남자는 모두 무장을 하였으며 집집마다 목이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사람들은 말이 없고 인사도 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외면했다. 점쟁이나 마술사도 없었는데 토인부족에서 단 하나였고. 아주 현실적인 부족이었다. 추장이나 장로회의 독재도 허용하지 않고 <우가>라는 7 - 8명의 실력자회의에서 과반수의 결정으로 모든 의사가 결정되었다. 백인감독관 이엘이 겪은 일을 얘기했다. 이 마을에는 노인들이 많았고 그들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을 사사건건事事件件 비방誹謗하고 우가에 대해서도 노인들을 노인대접하지 않는다고 비판적이었다. 우가회의에서 노인문제가 거론되었다. 그 결과는 노인들을 때려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곧 대상자 선정이 되어 대상자 노인들이 회의장에 끌려나왔다. 우가회의를 주관主管하는 실력자들의 부모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냉정했다. 조사결과 10여 명이 유죄선고를 받았다. 밀림 깊이 노인들을 끌고간 처형대는 몽둥이로 노인들은 때려죽였다. 그 때까지도 위엄을 과시하며 체면을 지키던 노인들이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으나 무자비하게 얼굴도 알아보지 못 할 정도로 몽둥이질을 했다. 케렌박사는 라우니족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부족이라고 정의定意를 내렸다. 라우니는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 병자,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여자를 그런 방법으로 처형處刑했다. 마을에는 노인이 없었다. 그래서 50이 넘은 노인들은 노동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듯 열심히 일을 했으나 표정이 우울했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한 쌍의 부부가 결혼을 하고 2 - 3년이 지나도 임신하지 못 하면 우가회의에서 신체검사를 한다. 조사관은 부부의 성행위를 직접 관찰하기도 한다. 3자를 투입하기도 한다. 이상이 있으면 여자는 사형死刑이고 남자는 지위地位를 박탈剝奪한다. 이상을 발견하지 못 하면 부부는 다른 상대와 1년 동안 시험동거試驗同居를 한다. 여자의 경우 임신을 못 하면 죽음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임신에 매달린다. 남자가 시원찮으면 비밀리에 다른 남자를 유혹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신만 하면 산다. 브라운박사 일행이 도착했을 때도 사고가 생겼다. 밤중에 여자들의 습격을 당했다. 백인이 성에 강하다고 믿었으므로 도착한 날 밤 죠지는 잠을 자다가 깼다. 젊은여자가 몸을 덮치고있었다. 죠지가 기겁을 하고 반항했으나 결투는 2 - 3분이나 계속됐다. 겨우 물리치고 센티에게 갔는데 센티에게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달려들어 곤경을 치루고 있다가 죠지의 도움으로 봉변逢變에서 벗어났다. 백인들이 한사코 토인여자들을 물리친 것은 불결한 성생활을 하는 여자들에게 치명적인 성병性病이 있었다. 그 마을에도 5 - 6명의 여자들은 성병이 있었다. 벌거벗고 다니기 때문에 외과적外科的인 관찰을 할 수 있었다. 매독梅毒종류의 병이다. 하루 바삐 떠나야했다. 그리고 완비사족마을을 방문했다. 완비사는 용맹성을 과시하기 위해 목을 베었으나 사람고기는 먹지 않았다. 완비사는 마을을 자주 이동했다. 전투도 기동력機動力을 기본으로 하는 유격전遊擊戰이었다. 무기는 창 보다 활이었다. 멀리서 적을 쏘다가 세불리하면 달아났다. 도착한 날 밤 성대한 잔치가 열렸다. 다른 마을 포로捕虜도 참석했다. 포로가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우대를 받았다. 개방적인 생활로 완비사는 번영繁榮했다. 라우니가 쇠퇴하는 반면 완비사는 날로 강성해졌다. 중립지대에서 짐승을 쫓다가 부딪히는 경우에도 충동적인 라우니가 쳐들어가 협정위반으로 망신을 당했다. 중립지대에는 사슴, 영양, 개미먹이와 표범도 있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정착定着부족인 라우니는 염장鹽藏저장을 하고 떠돌이부족인 완비사는 고기포를 만들었다. 기름을 발라 햇볕에 말린 고기포는 구수했다. 브라운박사가 물었다.

이 노란 고기는 무슨 고기요? 가장 맛이 좋은데 .’

개미먹이입니다.’

이것도 맛있는데 .’

뱀입니다.’

박사의 손에서 고기포가 떨어졌고 박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튿날 합동사냥이 시작되었다. 라오니 280여 명, 완비사는 400여 명이 참여했다. 라우니는 동쪽에서 완비사는 서쪽에서 몰이를 했다. 양쪽에서 몰아오면서 북쪽에서만 소리를 질렀다. 북을 치고 함성을 질렀다. 북쪽이 맞닿으면 삼각형 포위망에 동물들이 갖힌다. 감독관들이 북쪽에 있었다. 맨 먼저 맞닿는 곳이라 충돌의 위험이 있었다. 2시간만에 양쪽이 합류했다. 몇 백 년을 두고 싸움을 했던 부족들은 거리가 10여 미터로 접근하자 서로 노려보며 정지했다. 라우니족 젊은이가 앞으로 나서더니 고함을 쳤다. 센티가 통역通譯을 했다.

<나는 라오니 부추장의 장남이야. 우리 아버지는 너희들의 목을 두 개나 베었고, 할아버지는 여섯 개나 베었으며, 너희들 계집 네 명을 빼앗아왔다. 나는 창도 잘 던지고 육탄전肉彈戰도 잘 한다. 겁이 나지 않으면 나 하고 맞설 놈이 나와야 한다.>

이 말이 끝나자 완비사족의 젊은이가 나섰다.

<라오니는 원래 거짓말을 잘 한다. 나는 너희들의 한 놈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 놈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더라. 그리고 포로로 잡은 너희들의 계집들은 너희들이 힘이 없어 남자구실을 못 하는데 완비사는 힘이 강해 좋다더라.>

그 대답에 라우니가 화가났다. 차마 가록을 못 할 욕설을 내뱉으며 완비사 진영陣營으로 돌진했다. 완비사도 달려나갔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危機였다. 센티가 발포했다. 공포空砲였으나 그 위력威力은 절대적이었다. 양쪽이 정지했다. 센티가 그들 사이에 우뚝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두 전사는 침묵했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센티가 명령했다.

서로 접근하라!’

우물쭈물하던 사냥대가 백인을 사이에 두고 포위망包圍網을 완성했다. 중립지대에 있던 동물들은 삼각포위망으로 포위되고 터진 한 쪽은 강으로 차단遮斷되었다. 합동사냥대는 기성奇聲을 지르며 포위망을 압축했다. 포위망은 조용했다. 짐승이 한 마리도 없는 것 같았는데 라우니가 창을 던졌다. 5 - 6m 앞에서 도망치던 토끼에 맞았다. 첫 수확에 라우니가 환성을 질렀다. 잡힌 토끼는 후방後方의 지원대가 망태에 넣었다. 두 번째 수확은 길이가 7 - 8m나 되는 뱀이었는데 완비사가 잡았다. 지원대는 칼로 토막을 내서 망태에 담았다. 포위망이 50m로 좁아졌다. 그 때 완비사쪽에서 고함소리가 일어났다.

표범이 나타난 것 같아요.’

표범은 포위망이 압축되자 달아날 곳이 강뿐이란 걸 알고 발악을 했다. 표범을 잡으려고 하다가 포위망이 붕괴崩壞되어 모처럼 가둔 짐승들이 달아나거나 부상을 입을 염려도 있었다. 표범은 세 마리였다. 돌파구突破口를 찾으려고 표독스럽고 앙칼진 포효를 질렀다. 포위망이 30m로 압축되고 10여미터만 더 전진하면 표범은 강가 모래사장으로 내몰릴 판이었다. 수많은 동물들이 모래사장에 몰려 우왕좌왕右往左往했다. 개미핥기, 사슴, 토끼, 산양, 다람쥐도 있었다. 북쪽사냥대는 표범과 사투死鬪가 벌어졌다. 표범은 2m나 뛰어올라 사냥대를 타넘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10여 개의 창이 날아갔다. 그리고 땅에 쓰러진 표범에게 창이 집중되었다. 그 틈에 표범 두 마리가 도망치려고 했는데 라우니 젊은이가 칼을 쥐고 표범에게 달려들었다. 표범이 앞발로 젊은이의 가슴을 후려치고 젊은이의 배에 올라타고 목줄을 노리는 순간 죠지가 발포했다. 첫탄을 가슴에 맞은 표범이 몸을 움츠리자 2탄이 발사되었고 이어 센티가 또 한 발 쏘았다. 남은 한 마리의 표범은 라우니 네 명과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피차 모두 피투성이였다. 처참한 싸움이었다. 젊은이 한 사람이 표범의 뒷발을 잡고 늘어졌으며 표범은 앞발로 창과 칼을 막으면서 나머지 뒷다리로 라우니의 얼굴을 찼다. 라우니는 피투성이였으나 표범을 놓지 않았다. 엄청난 부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나무도 잡초도 없는 모래사장에는 표범 한 마리, 개미핥기 두 마리, 사슴 다섯 마리, 들소 한 마리, 들돼지 두 마리, 산양 일곱 마리 등 30여 마리가 우왕좌왕하였고 사냥대는 침착했다. 그들은 빙빙 돌면서 포위망을 2중으로 만들고 곧 3중으로 만들었다. 포위망을 더 압축하여 창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첫 번째 희생은 표범이었다. 수십 개의 창이 집중되었다. 개미핥기는 몽둥이세레를 받았다. 포위망의 짐승은 단 한 마리 다람쥐도 빠져나가지 못 했다. 물소가 저항을 하다가 강물로 뛰어들었으나 배를 타고 대기한 사냥대에게 잡혔다. 감독관이 수확물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라우니가 불평을 했으나 감독관이 엄숙하게 제지시켰다. 라우니는 불공평하다고 항의한 게 아니라 완비사 같은 천민賤民부족과 똑같이 나눈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투정을 부렸다. 부족들이 수확물을 가지고 돌아간 뒤 백인일행은 그 자리에 캠프를 치고 브라운박사는 파이프를 태우고 케렌박사는 위스키를 마셨다. 해가 지자 더위가 사라지고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긴장과 피로가 풀렸다. 센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들돼지였다. 먼저 활활 타는 모닥불에 통째로 던졌다. 그리고 그슬린 털을 칼로 깎았다. 내장을 빼내고 불에 달군 돌맹이를 뱃속에 집어넣고 다시 재만 남은 불속에 넣었다.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였다. 연분홍색깔의 피가 남아있는 고기는 암소고기 보다 더 맛있고 더 향기로왔다. 맛있는 들돼지구이와 몇 잔의 위스키, 맑은 공기 그리고 시원한 강바람 - 아마존은 낙원樂園이었다. 그날 밤 두 개의 캠프에서는 새벽까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캠프 양쪽 라우니족과 완비사족의 마을에서도 북소리가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49. 스야족

 

브라운박사 일행이 강에 정박한 배에 돌아오니 손님이 와있었다. 일행은 3명이고 스야족이라고 소개했다. 스야족은 브라질에서 가장 수난受難을 많이 당한 부족이었다. 농경과 목축을 하는 부족인데 백인들이 아마존에 들어오면서 수난이 시작되었다. 백인은 밀림을 황폐화시키고 동물을 무차별 살육했다. 원주민도 박해迫害했다. 처음에는 힘으로 맞섰으나 활, , 칼로는 총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스야족은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쫓겨다녔다. 농경을 하는 부족으로써 치명적이었다. 도망을 쳐서 2 - 3년 간 농경지를 개간하면 또 백인들이 몰려와 쫓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의 스야족은 바위투성이 땅에 감자를 심어 연명을 했고 인구는 3000여명에서 300여명으로 줄었다. 케렌박사는 스야족의 애사哀史를 알고있었으므로 스야족을 따뜻하게 맞았다. 스야족의 대표는 마을에 나오는 악마를 퇴치해달라는 것이었다.

악마, 어떻게 생긴 악마냐?’

모른다, 본 일이 없다.’

그 악마가 무슨 짓을 했나?’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잡아간다.’

어디로?’

모른다. 죽은 흔적도 없고, 뼈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

마을 점쟁이에게 물어봤는데 점쟁이가 시키는대로 해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점쟁이가 그 악마는 백인을 무서워한다고 했으며 백인에게 부탁해서 악마를 쫓아내라고 했다.’

아주 똑똑한 점쟁이였다. 난제難題를 백인에게 전가轉嫁했고 그 건 합리적이었다. 스야족은 풍요豊饒한 살림터를 빼앗기고 황량荒凉한 곳에 터를 잡았다. 한눈에도 가나함이 믇어났다. 매마른 땅에서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약간의 가축으로 연명했다. 두 박사들이 도착 즉시 조사를 했다.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브라운박사가 이틀 전에 사라진 처녀의 부친을 만났다. 처녀가 약혼자를 만나러 간 후 실종되었다. 약혼자는 처음에 답변을 거부하다가 박사의 유도심문誘導審問에 걸려 실토實吐했다. 미남인 그 젊은이는 처녀에게 마을 뒷산 숲에서 기다리라고 약속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 했다. 청년을 짝사랑하는 여자가 데이트약속 눈치를 채고 방해를 했다. 청년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청년은 두 시간이나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으나 처녀는 없었다. 처녀가 화가나서 돌아간 것으로 알았다가 실종된 걸 알고 당황했다. 브리운박사는 그 청년을 데리고 약속장소에 갔다. 현장은 숲속이었으나 두 사람이 누우면 딱 알맞은 공터였고 밀회密會장소로 적지適地였다. 청년의 말대로 청년의 발자국은 오고 간 왕복往復자국이 남아있었으나 처녀의 발자국은 돌아온 발자국이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짐승 발자국도 없었다. 케렌박사에게 자문諮問을 했으나 머리를 흔들었다. 브라운박사는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심사숙고深思熟考하고는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아무리 원시적인 아마존밀림이었지만 인류학박사가 귀신이 잡아갔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풀 한 포기씩을 들추며 조사를 했는데 처녀의 목걸이장식이 발견되었다. 또 삶은 감자와 옥수수가 발견되었다. 유일한 증거였다. 물에 불려 현미경을 관찰한 결과 사람의 위에서 토해낸 음식으로 판명되었다. 약간의 피도 섞여있었다. 그 때 캠프 밖에서 센티가 말했다.

박사님, 놀라지 마시고 가만히 계십시오. 뱀이 들어갔습니다. 놀라서 움직이거나 고함을 지르면 위험합니다.’

센티가 권총을 빼들고 조용히 들어와서 캠프구석 깡통 사이에서 머리를 내밀고있는 독사를 발견했다. 독사는 간단히 사살되었으나 총소리에 놀라 케렌박사가 뛰어왔다. 이 일대는 저습지라 뱀이 많으며 뱀 중에는 불빛을 좋아하는 놈들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 때 브라운박사가 말참견을 했다.

저습지라고? 그렇다면 큰 뱀도 있겠구만.’

그럼요. 큰 놈들이 많지요. 길이 10m 이상 되는 것들도 있어요.’

길이가 10m 이상이 되는 놈이라 . 그 놈은 사람도 잡아먹나?’

동물학을 전공하는 브라운박사로써는 의외의 의문이었다.

사람요?’

센티가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박사님, 그러면 그 처녀는 뱀이 ?’

, 가능성이 농후濃厚하지. 뱀이 아니고는 처녀를 감쪽같이, 흔적도 없이 납치해갈 수 있는 괴물怪物은 없어.’

모두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걸 알았다. 뱀이 처녀를 통째로 삼키고 달아났으니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처녀는 약혼자를 기다리다가 갑작스러운 뱀의 공격을 받았어. 처녀가 사람 살려라고 소리를 쳤으나 밀회장소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은밀한 장소라 아무도 듣지 못 했고, 뱀은 처녀를 돌돌감아 뼈를 으스러뜨린 후 통째로 삼키고는 유유히 사라졌어. 감자와 옥수수는 처녀의 위에서 나온거야, 피도.’

이제 남은 건 처녀를 삼킨 뱀을 찾는 일인데 죠지와 센티가 맡아줘. 참고로 그 뱀은 일주일에 한 번씩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는 놈이니 내일이나 모레는 나타나겠군.’

백인들이 이상한 걸 만들었다. 사각형의 우리를 네 개 만들었다. 문이 없는 개집 같았다. 우리를 만든 다음 돼지를 네 마리 빌려달라고 하더니 우리 속에 넣고 해가 진 뒤 마을 인근의 숲속에 설치하고는 밤에는 주민들이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외출금지를 했다. 스야족은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백인들이란 원래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혹 이상한 일이 일어나나 밤 새 잠을 설쳤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다. 백인들은 초저녁부터 불을 끄고 잤고. 그러나 백인들은 새벽에 일어나 브라운박사를 필두匹頭로 우리를 놓았던 곳으로 갔다. 1번 우리에서는 돼지가 배가 고프다고 꿀꿀거렸다. 2, 3. 브라운박사의 얼굴에 살망의 빛이 역력했다.

(악마란 놈이 나타나지 않았나?)

마지막 우리가 없어졌다. 돼지도 우리도 없었다.

(?)

브라운박사가 답을 풀었다. 우리가 끌려간 흔적이 있었다. 뱀은 우리속의 뱀을 발견하고 우리속에 들어가 돼지를 삼켰다. 돼지를 통째로 삼킨 뱀은 몸이 늘어나 우리에서 나오지 못 했다. 여기까지는 백인들이 예측을 했으나 그 이후는 몰랐다. 우리에 갇힌 뱀이 얌전하게 기다려줄 걸 기대했으나 뱀은 필사적으로 도피를 했다. 우리를 통째로 끌고가려다가 실패하자 꾀를 내 우리속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자 우리도 굴렀다. 일행은 우리가 굴러간 자국을 따라갔는데 또 한 번 놀랐다. 뱀은 사람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영리한 동물이었다. 우리가 강물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백인들은 당황했다. 강 하류로 내려갔다. 예상한대로였다. 300m 쯤 떨어진 강물에 우리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기괴奇怪한 광경이었다. 돼지를 통째로 삼켜 배가 불룩한 뱀이 우리속에서 꿈틀거렸는데 뱀은 피투성이였고 떠내려가는 우리 주변에 서너 마리의 악어가 따라가며 뱀의 몸을 찢었다. 그러나 악어도 우리속에는 주둥이를 들여밀 수 없었으므로 초조하게 날뛰었다. 죠지와 센티가 배를 구하여 우리를 끄집어냈다. 우리가 끌려나오다가 바위에 부딪혀 우리 일부가 파괴되었는데 그 틈으로 악어가 아가리를 넣어 뱀의 몸을 찢어버렸다. 찢어진 뱀의 몸속에 돼지가 들어났다. 센티가 악어 대가리에 발사하여 악어를 쫓아버리고 우리를 끄집어냈다. 우리를 모래사장에 끄집어내자 뱀이 기어나왔다. 그리고 도망가려고 했으나 몸이 찢기고 돼지가 들어있어서 꿈틀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이 거, 아침밥은 다 먹었구만.’

케렌박사가 중얼거렸으나 브라운박사는 뱀을 사살射殺하려는 죠지를 말리고 계속 관찰했다.

스큐르라는 물뱀이야. 세상에서 가장 큰 뱀이지. 이 놈 같으면 돼지가 아니라 황소도 통째로 삼킬 수 있어.’

그 때 하류가 떠들썩하더니 스야족이 몰려왔다. 강가에 벌어진 기괴한 광경에 놀랐다. 브라운박사가 뱀의 몸을 갈랐다. 돼지는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나왔다. 목걸이와 칼이 나왔다. 추장이 조사하더니 실종자의 유물遺物이라고 했다. 반지와 목걸이도 나왔다. 스야족이 백인들에게 감사의 축제를 벌였다. 가난한 부족이라 뱀과 뱀의 뱃속에서 나온 돼지가 축제음식이었다. 백인들이 좀 곤란해졌다. 센티와 죠지가 인근 삼림에서 새 두 마리와 토끼를 쏘아 요리를 했다. 스야족은 백인들의 핍박을 받아 쫓겨다니는 부족이었는데 작은 도움을 받고 온갖 정성을 다 해 대접하려고 했다. 추장은 비장의 술을 대접했고 장로는 애첩愛妾을 보냈다. 물론 사양했으나 애첩이 케렌박사에게 재미나는 풍습현장을 보여주었다. 애첩이 마을구석에 있는 출산용 판자집으로 안내했는데 판자집에서 남자의 통곡痛哭이 들려왔다. 멍석에는 누워있는 여자와 남자가 있었는데 여자는 출산 중이었고 남자는 통곡을 하고있었다. 남자는 출산 중인 여자의 손을 쥐고 멍석에서 뒹굴며 통곡을 했다. 출산의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출산이 끝나면 며칠 동안 판자집에서 기거하다가 불태워버린다. 스야족은 활, , 칼도 없다. 적의 침공을 받으면 36줄행랑이다. 그래서 스야족은 평화외교와 정보외교를 벌인다. 밭에서 얻은 곡물을 선물하고, 이웃이 쳐들어올 것인가를 여러 가지 정보를 통해 판단한다. 백인일행이 스야족을 떠나려고 할 때 스야족 서너 명이 복통을 일으켰다.

(전염병?)

스야족은 벌벌 떨었다. 원시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전염병은 치명적이었다. 마을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브라운박사가 진찰을 했는데 전염병은 아니었고 집단식중독증세였다.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먹은 건 물뿐이었다. 물을 길러온 여자들이 강에 많은 물고기들이 죽었다고 증언했다. 브라운박사가 조사한 결과 물고기는 독살되었다. 강 상류에 사는 트라스족이 가끔 독을 뿌려 물고기를 잡는다고 말했다. 독을 뿌려 물고기를 잡는 것은 물고기 씨를 말리는 일이고 그것 보다 하류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케렌박사가 트라스족은 지능이 발달한 부족이고 침략성이 강한 부족이라면서 이 기회에 마을을 방문하여 경고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센티가 트라스족 장로를 안다고 해서 이튿날 트라스족을 방문했다.

 

<세기世紀의 사냥군 1> 1- 49화 끝












'사냥꾼이야기-1 사자獅子와 소녀 외 49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냥군이야기 - 1  (0)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