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만의 명상록 - Ⅴ
이천만의 명상록(Ⅴ) 목차 121편 - (150편 계속)
140. 화중지어畵中之魚/
121. 북새(놀, 노을) - 할아버지의 일기예보/ 122. 생이지지生而知之/
123. 맑은 물 고기/ 124. 기성자紀省子의 목계木鷄/ 125. 면벽面壁 달마대사
達磨大師/ 126. 부목負木(머슴) 혜능慧能/ 127. 석공石工/ 128. 서산대사西山大師와 구정선사九鼎禪師의 인욕忍辱/ 129. 소동파蘇東坡의 오도송悟道頌/ 130. 대뇌大腦와 신경회로神經回路/ 131. 찰라刹那와 겁劫/ 132. 인체人體의 물리화학적物理化學的 분석分析/ 133. 꽃과 노래와 사랑/ 134. 백락천白樂天의 선문답禪問答/ 135. 조현지법調絃之法/ 136. 푸라크리티의 사랑/ 137. 마술 피리/ 138. 지도자 - 태상 하지유지 太上 下知有之/ 139. 수구초심首丘初心/
(이천만의 명상록 - 140) 화중지어畵中之魚
바닷가에서 자란 탓인지 생선을 좋아한다. 젊은시절 갯것을 좋아하다보니 옴팍집 장대 위에 말려놓은 간재미를 주워먹고 유사장티프스에 걸려 요단강을 건널뻔한 적도 있었고, 10 여 년 전에는 직장암수술을 받았는데, 배를 열어본 의사가 직장암뿐만 아니라 담낭이 쪼그라져서 떼어냈다고 했다. 젊은시절 쪽대로 집은 보래새끼나 준척붕어를 비늘도 벗기지 않고 통째로 먹은 업보다. 완도 약산도에 놀러가서는 가두리에 배를 대고 깔따구를 원시인처럼 대가리까지 뜯어먹었더니 생전에 생선을 저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보지 못 했다고, 뱃사람들도 저렇게 먹지 않는다고 어부들 눈이 동그래졌다.
요즘에는 생선을 양식해서 값이 싸졌다고 해도 시장에서는 아이쇼핑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도미는 10 여 만 원을 줘야 먹을만 하고, 칼치는 수입산이라도 손바닥만 하면 5만 여 원, 이러니 시장 가기가 무섭고 가더라도 입맛만 다시고 되돌아서기 일쑤다. 그런데 시장에서 10만 원 하는 도미가 생산지에서는 3,000원 정도. 하다못해 꼴뚜기도 여나문 마리를 놓고 2만 원을 호가한다. 치킨도 생산자는 2,000원에 내지만 치킨이 되면 30,000원이다. 생산자는 똥값으로 생산비를 못 건지고, 소비자는 금값으로 손도 대기 어렵다. 중간상인들의 농간이다. 그래서 농수축산물 직거래장터를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는데 시민들은 반응이 없다. 생선 마니아가 나 뿐인가? 나는 도미회를 먹고 싶다.
(이천만의 명상록 - 139)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으면서는 머리를 태어난 굴로 두른다.’
오랜만에 선산 발치에 앉아 득량만 잿빛 물결 펼쳐진 어린시절의 바다를 보노라니 구렁섬과 용둥이목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부친은 가끔 바다에 나가 짱뚱이 낚시를 했다. 5미터나 되는 긴 장대에 낚시바늘을 드리운 홀치기다. 짱뚱이란 녀석은 민감해서 그림자가 어른거리기만 해도 폴짝 구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멀리서 낚시대를 드리워서 훌쳐서 잡는다. 말려서 구워먹으면 천하일미다. 부친 묘 앞에 앉아 득량만을 내려다 보노라니 부친과 바다와 낚시가 떠올랐다. 부친은 대학 때 여순반란이 일어났는데 혼자 교회를 지키다가 반란군이 교회를 불태우려는 걸 막았는데 경찰은 부역이라고 잡아다가 몽둥이질을 했다. 통나무에 세워놓고 때렸다. 그리고 혼절하자 지서 앞 개울에 버렸는데 밥을 해 나르던 할머니가 추슬러서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 정신분열증으로 살았다.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고 반주를 하였으나 동네 사람들은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어린시절 미친놈의 자식 트라우마는 80여 세가 된 지금도 남아있다. 철없어서는 부친이 얼른 죽어버렸으면 기원하며 살았다. 그리고 부친은 10여 년 전 돌아가셨고 묘소는 선산 발치 남해를 바라보는 양지쪽에 모셨다. 따스한 봄볕이 묘소의 잔디에 바다비늘처럼 반짝인다. 부친이 여름성경학교 교장을 맡아 아이들에게 가르칠 동요악보를 우리 형제들에게 맡겼다. 할머니 옷감 뜨는 잣대를 가지고 창호지에 오선을 긋고, 음표는 고구마를 깎아 먹을 묻혀 찍었다. 달이 뜨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수제비팥죽을 먹고, 부친은 옥퉁소를 연주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은 그 때 배웠다. 문간채지붕에 달덩이만한 박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집안에 널려있었던 백합이 온 집안에 향기를 채우고 마을 십리 밖으로 번져나갔다. 모깃불이 사그러질 무렵에 낮에 소 뜯기며 잡아 뀀지에 매달아놓았던 땅개비와 메뚜기를 구워먹었다. 그런데 여순반란사건이 우리 집을 망쳐버렸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돌아가시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부친의 트라우마로 살았던 세월에도 막상 부친의 하관 때는 서름이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이천만의 명상록 - 138) 지도자 - 태상 하지유지 太上 下知有之
뛰어난 자가 지도자로 있으면 무리들은 그가 존재함을 알 따름입니다, 그 보다 못 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은 그를 친근히 여기고 그를 기립니다(기차其次 친지예지親之譽之), 그 보다 못 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이 그를 두려워합니다(기차 其次 외지畏之), 그 보다 못 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이 그를 업신여깁니다(기차 其次 모지侮之). (노자老子의 지도자상像,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
(이천만의 명상록 - 137) 마술피리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피리소리에 이끌려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 피리를 불며 세상을 떠도는 멋쟁이를 노래한 가수가 있다.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의 그림도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은 피리의 마술이다. 사교육비가 고소득자는 월 80만 원이고 저소득자는 월 20만 원을 지출한다고 발표했다. 초등학생의 월 과외비평균이 29만 원이라고 했는데 시민단체는 왜곡 축소라고 한다. 유아과외비가 제외되었고, 더 많은 부수적인 과외비를 누락했다고 한다. 내 중학생 손자는 영수 두 과목에 월 80만 원이다. 과목당 40만 원이니 서너 과목을 하는 아이들은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둘째 초등학생도 영수에 50만 원이다. 두 아이 사교육비가 월 130만 원이다. 부대비용을 제외한 액수다. 강남에서는 과목당 100 - 200만 원이 예사고, 족집게로 불리우는 사교육비는 월 1,000만 원을 넘나든다. 아이들의 공부에 엄마의 정보력과 조부모의 재력이 필수라지만 손자의 학원비로 할애비의 용돈이 거덜 날 지경이다. 그런데 사교육의 부작용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새 학기 들어 학원교육 절대자론들인 가족들 하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사교육 무용론자인 나와 학원교육 절대론자인 가족들과의 갈등이었다. 결론이야 늘 가족들의 사교육 열성에 두 손을 들었고, 결국 손자들의 학원 등하교 운전수발만 내 몫이다. 논리적으로는, 학원교육은 학교교육 성적부진 보충학습이어야 성과가 있을텐데 학원교육은 학교교육을 뛰어넘어 대학입시 선수학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학교교육에서 뒤쳐진 아이는 학원에서는 더 뒤쳐진다. 부모들은 이 걸 모르고 그저 막연히 학원에만 보내면 아이가 성적이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 학원교육이 아이 성적부진에 효과를 보려면 개별학습을 해야 하는데 학원은 학교 보다 더 일제학습이다. 부진을 돌볼 여건도 여유도 없다. 이러한 실정인데도 부모들은 학원의 수준 높은 문제집을 보면서 우리 아이가 이런 걸 다 배우나? 부모로써는 엄두도 못 낼 난해한 문제집을 푸는 걸로 우리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 있다. 그러니 학원이 성적부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부작용만 더해져 처진 아이는 더 좌절하고 공부에 환멸만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 선수학습을 해온 아이와 교과서가 오리무중인 두 부류의 학생들은 둘 다 졸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모는 검증없이 학원교육이라는 환상 그 자체에 몰입한다. 또 학원은 성적별로 학급을 편성해서 대입 엘리트교육을 실시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성적이 부진한 아이들은 학원에서는 더 부진아로 몰린다. 부모들은 그저 이웃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데 내 아이만 안 보내면 안 된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교육적이냐 아니냐는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그저 학원에 보내는 걸로 자위한다.
연례행사 같은 학원문제로 다투면서, 광주시내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략 14,000여 명인데 그 대부분이 학원에 다닌다. 한두 과목을 필두로 심하면 5 - 6과목을 밤 11시까지 일로매진한다. 그러나 속칭 SKY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광주에서는 불과 50여 명 안팎이다. 나머지 13,550여 명은 학원교육의 들러리다 라고 설파했으나 무위였다. 이런 와중에서 중학생 손자의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벌써 50여 년 전이지만 나도 중등학교 6년, 대학 2년 도합 8년 간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 시절에는 콘사이스와 모 영어참고서를 들고 다니며 외우는 것이 공부패턴이었다. 그 덕분에 교육대학에서는 원서번역으로 학점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교육대학을 나와 교단에서는 꼬맹이들과 어울려 지냈는데 어디에서 영어를 활용할 수 있었겠는가? 평생 배운 영어는 미얀마여행에서 담배 한 값 사려고 바디 랭귀지까지 동원하여, 동료들을 웃긴 것이 영어활용의 유일한 기회였다. 더불어 수학의 Sin, cosin를 배웠지만 응용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지금 중등학교에서는 미분적분을 가르친다. 교과서가 너무 어려워서 성적이 쳐지니 부모가 안달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교육의 문제는 수능이다.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이수를 평가하는 것인데 이 게 상대평가화 되어서 대학입시 보다 더 치열하다. 수능은 대학과정을 이수할 수학능력을 갖추었느냐 하는데 머물러야 하고, 그래서 절대평가로 기준을 통과하면 된다. 구지 수능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도 고려해야 한다. 고등학교 학력을 측정하고 싶다면 고등학교에 맡기면 되는데 국가행사처럼 야단법석을 부릴 필요가 없다. 대학입시가 교육을 넘어 사회문제화 된지 근 십 수여 년 우리는 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대학입시에 아이들만 희생당하고 있다. 교육당국자나 교육학자들은 얽힌 매듭을 풀기는커녕 더 복잡하게 얼기설기 만들어놓고 있다. 알렉산더의 고르디우스 매듭을 반면교사해야 한다. 우스개지만, 초등학생에게 남북통일방법을 묻자 아이가 서슴없이 지도에서 38선을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통일이라고 만세를 불렀다. 셋째는 대학교육에서 지식인은 길러냈는가 모르지만 지성인을 육성하지는 못 했다. 학원교육 갈등으로 박사학위를 얻은 아들과 대화를 했는데 교육에 무지했다. 그 아들도 아이들을 낳고 기를 텐데 교육에 무지하기 때문에 학원교육에 깨춤을 출 수 밖에 없다. 장삼이사의 학원교육 패러다임이다. 특히 가정교육에 중요한 아동심리학에는 기초지식도 없었다. 대학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미래의 부모가 되어 자식을 교육할텐데 교육학이나 심리학에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 문외한에 가깝다면 그 가정교육이 뭐가 되겠는가? 대학에서 교육학과 심리학을 전공 정규과목에 포함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제도의 이원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인문과 실업으로 특성 분류를 하여 인문지망은 인문대학으로 실업지망은 고졸로 직장에 진출하거나 전문대학을 지망하면 오늘과 같은 입시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낙수로 하나 더 덧붙이면 독서의 중요성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시스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 인격이요 지성이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것인데 우리는 직업(인)을 만들고 있다. 인격형성은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고등정신기능 - 지성인은 창의력, 이해력, 분석력,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독서로만 가능하다. 대학에서 필독도서를 선정하여 전문과정에 포함하는 편제가 필요하다. 하버드가 필독도서를 선정 보급하고 수영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하는 방법과 같다. 박사학위 아들과 대학교수들과 모임의 대화에서도 전문지식은 모르겠으나 지성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천만의 명상록 - 122) 생이지지生而知之
B,C. 496년, 공자孔子는 제자弟子인 자로, 자공, 안회 등과 함께 천하 유력游歷의 길에 올랐다. 이것이 유명한 주유천하周遊天下다. 제齊, 송宋, 위衛, 진陳, 채蔡, 조曹 등에 대한 이 유력에서도 역시 각국의 제후諸侯들이 서로 공벌攻伐하기에만 급급汲汲하여 그의 이상理想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시기猜忌를 받는 등 뜻을 펼 만한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공자는 여행 중 여러 차례 고난苦難과 박해迫害를 당했다. 송나라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겪었고, 광匡에서는 양호養虎(도둑)로 오인誤認되어 닷새 동안 잡혀 있기도 했다. 진·채 국경國境에서는 7일간이나 양식이 떨어져 고생하였다. 이렇게 공자는 13년 동안이나 자기의 도덕道德정치를 채택採擇할 임금을 찾았으나 끝내 만날 수 없었다. 진채陳蔡 국경의 곤경에 처했을 때, 공자는 뽕잎을 따는 두 여인을 보고 농弄을 걸었다.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예뻤고, 서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곰보처럼 얽었다. 공자가 농弄을 하기를
‘동지박 東枝璞 서지박西枝縛’(동쪽 가지는 구슬 박이고, 서쪽 가지는 얽을 - 곰보 박이라) 서쪽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더니 이렇게 대꾸한다. ‘건순노치 칠일절양지상 이백어면 천하명문지상’
乾脣露齒 七日絶糧之相 耳白於面 天下名文之相 (입술이 바짝 마르고 이빨이 톡 튀어나온 게 7일간 굶은 상相인데, 귀가 얼굴색보다 흰 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 만 하겠군.) 무안無顔을 당한 공자가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건순노치乾脣露齒 칠일절량지상七日絶糧之相' - 이 말(예언豫言)을 따라 채나라 국경에서 포졸捕卒에게 잡힌다. 제자들이 공자임을 설명했으나 공자의 얼굴을 모르는 포졸이 당신이 노魯나라 성현聖賢 공자라면 보통사람과 다른 비범非凡함이 있을 터, 구멍이 9개 뚤린 구슬들을 명주실로 한 번에 꿰어보라고 한다. 공자가 명주실을 잡고 구슬을 꿰는데 연 나흘을 끙끙댔지만 실패의 연속이라, 할 수 없이 자신을 '건순노치 칠일절양지상'이라 했던 여인에게 제자를 보낸다. 제자가 뽕나무밭에 가보니 여인은 간데없고 짚신만이 거꾸로 뽕나무에 걸려있었던 바, 소식을 접한 공자가 무릎을 탁치며 제자에게 이르되 ‘계혜촌(繫鞋村, 짚신마을)을 찾아가 보아라’라고 한다. 제자가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계혜촌에서 그 여인을 찾아 구슬꿰는 가르침을 청하자 여인은 말없이 양피지羊皮紙에 글자를 적어준다. '밀의사蜜蟻絲' 글귀를 받은 공자가 탄복歎服하며 꿀과 실과 개미 한 마리를 잡아오게 하여, 개미 뒷다리에 명주실을 묶어놓고 구슬구멍에 꿀을 발라 뒀더니 하룻밤 새 개미가 구슬을 다 꿰어 놓았는지라, 그날은 공자가 밥 한 끼 못 먹고 굶은 지 바로 칠 일 째 되는 날이었더라. 옥문獄門을 나서는 공자가 혼자 말을 중얼거린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인 것을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참 지식에 통달되도다.) 자신의 오만방자傲慢放恣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친 공자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진다. 왜? 구멍이 다섯도 일곱도 아닌, 아홉 개 뚫린 구슬을 나에게 주었을까?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이치理致를 깨달았다. '인생이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냄새를 감지感知하고, 입으로는 정갈하게 먹고 진실되게 말하며, 앞 뒤 두 구멍으로는 배설排泄하는데 막힘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무리 없이 삶을 이어가는 기본이요, 하늘의 도리道理다' 그것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게 나이 70을 지칭하는 말로 종심從心(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이다. 자(공자) 왈曰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三十而立(삼십이립, 서른에 뚜렷한 지향점이 섰으며), 四十而不惑(사십이불혹, 마흔에 유혹되지 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쉬흔에 천명天命 - 하늘의 뜻을 깨달았고,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 예순에는 어떤 말도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하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노라. 70은 고희古稀라는 다른 지칭指稱도 있다. 예수와 석가釋迦에 비견比肩되는 참으로 위대한 깨달음이요 성인聖人의 경지다. 제목의 생이지지는 태어나면서 알았다는 뜻, 천재才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21) 북새(놀, 노을) - 할아버지의 일기예보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는데 창문을 열면 눈앞에 무등산자락 장원봉壯元峰이 엉거주춤한 꼴로 앉아 있다. 일어나는 시각時刻이 해 뜨는 시각이라 눈을 뜨자 말자 뜨는 해를 마주한다. 여름철에 산마루에서 뜨던 해가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산등성이로 내려왔다. 대강 요량料量해보니 여름철에 비해 60도度 쯤 내려왔다. 지구의 공전公轉 때문인가? 어린시절 할아버지는 천방산의 뜨는 해를 보며 오늘 날씨를 예측豫測했다. 지는 해가 구렁섬 머리 위로 낙조落照를 그리면 내일 날씨를 짐작했다. 그렇게 해가 뜨고 지는 걸 보고 날씨를 농사에 이용했다. 도시사람들이야 날씨에 별 관심 없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농사꾼 피를 이어받아 뜨는 해와 구름의 형태를 보고 할아버지처럼 날씨를 짐작은 한다. 오후에는 실내자전거타기를 하는데 베란다가 서향西向이라 매번 해 지는 낙조를 볼 수 있다. 광주시내 아파트군群 멀리 어등산을 비롯한 낮은 산등성이가 길게 지평선地平線을 이루며 가즈런히 누워 있고, 그 위로 홍시처럼 빨간 해가 머리를 흔들며 진다. 하늘이 온통 물감을 흩뿌린 듯 찬란하다. 그 노을이 내일의 날씨를 알려준다. 북새(노을)가 뜨면 흐리거나 비가 온다. 자연이 자연의 순리順理를 따라 살라고 알려준다. 우주宇宙에 가장 접근한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유고遺稿에서 자연현상이 너무 변화가 많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인데 어찌 하나님 혼자서 주관主管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에둘러서 신神의 존재를 부인否認한 것이다. 김수환추기경도 돌아가시기 직전‘신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는 신도信徒들에게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켰다. 나는 애초 - 고등학교 2학 때 신과의 대화에 실패하고‘사람이 신을 만들었다, 신이 사람을 만든 게 아니다.’라고 단정하고 모태母胎신앙을 버린 탕자蕩子로 살았다. 높은 산, 큰 강, 바위, 해와 별, 천둥 번개 등 자연과 자연현상 특히 인간으로써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을 원시인原始人들이 신으로 만들었다. 특히 기독교처럼, 하나님 - 전지전능全知全能 하다지만 유일신唯一神이 어떻게 우주의 다양한 현상을 일일이 다 주관할 수 있겠는가? 인구만 해도 30억이다. 기독교가 주창하는 천당은 예수 이후 2천 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다. 인간의 인내의 한계는 고작 사흘 정도다. 그런데 2천 년을 기다렸다. 그러고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기독교는 사랑을 외치면서 천당을 낙원樂園으로 설정說定해놓고, 천당天堂과 구원救援이 아니라 전쟁과 분쟁만 유발한다. 천박淺薄한 생각이지만 종교는 300여 명이 탑승搭乘한 칼Kal기 추락墜落을 설명하지 못 한다. 기독교의 유일신 논리로는 30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을 수장水葬당한 세월호의 죽음을 납득시키지 못 한다. 대중大衆강의로 유명한 ㅈ목사는 신의 인간사人間事 주관은 인간의 선택이라고 역설力說했다. 인간사가 신의 주관이지만 결국은 여러 선택지選擇肢에서 인간의 선택이 인간의 운명運命을 결정한다는 논리다. 세월호에 안 탔으면 죽지 않았다는 논리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 것 처럼 운명도 믿지 않는다. 종교는 지금도 중동中東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종교전쟁을 설명하지 못 한다.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천당과 휴거携擧, rapture를 외쳤고, 불교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논리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환생還生과 윤회輪廻을 설파說破했지만 2천 년이 지나도 미륵불彌勒佛이나 구세주救世主는 나타나지 않고 세상은 더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어간다. 그리스 로마신화神話에서는 불火의 신, 천둥을 관장하는 신, 전쟁의 신 심지어는 술의 신도 있어 여러 신들이 분담을 하여 인간세계를 주관한다. 이 게 더 합리적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도 조왕신竈王神, 삼시랑, 칠성신七星神 등등 수많은 신이 인간사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관장管掌한다. 우주질서의 만물을 하나님이 혼자 주관하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차라리 불교처럼 깨달음을 얻으면 모두 부처가 된다든지. 신앙심이 없는 할아버지처럼 아침에 해 오르는 천방산과 저녁에 해 지는 구렁섬의 북새(놀, 노을)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여 농사를 짓는 게, 아들을 합격시켜달라고 마애불磨崖佛에 기원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이천만의 명상록 - 123) 맑은 물 고기
60세가 넘으면 덤이라고 셈했다. 60세 안에 하고 싶은 일을 마치겠다는 의도였는데 수명이 늘다보니 셈이 틀어져버렸다. 다리 힘 있을 때 집을 팔아서라도 세계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인디아, 중남미의 쿠바와 남미대륙, 러시아, 북 유럽과 스페인 등을 포기했다. 70을 넘어서면서 나이 셈하는 걸 잊어버렸다. 포기했다. 나이가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다리 힘이 풀렸을 때의 국내여행계획이 슬며시 들고 일어나 마음 맞는 이들 하고 맛여행을 하자고 했다. 맛멋여행이라고 했다가 멋은 다리 힘 때문에 뺐다. 다리 힘이 쇠퇴하자 입맛도 약아지고, 창창했던 말발도 시들어져버렸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꼭 그것이 상책上策이었을까?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다고 했는데 - 산천어는 1급수級水에서만 서식棲息하고 붕어나 잉어는 3급수 흙탕물에서만 산다.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걸 부정하고,‘꺾일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대’처럼 살려고 했다. 그런데 교장 정년퇴임을 하고 놀다가 쉬다가 하면서 가끔 지나간 세월을 반추反芻하면 삶의 진위에 대한 확신이 안 선다. 조선朝鮮 태종 이방원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하면서 고려 충신忠臣 포은圃隱 정몽주에게 하여가何如歌로 지조志操를 물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
라고 그러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응답을 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단심가로 응답한 포은 정몽주는 선죽교善竹橋에서 이방원의 철퇴鐵槌를 맞고 죽었다. 지금도 선죽교에는 포은圃隱의 절죽絶竹이 자란다. 그러나 의리義理가 법 먹여주는 세상은 갔다. 흙탕물에서 고기가 더 잘 자란다. 교육개혁을 하겠다고 만년晩年에 교육감에 출마했다. 전교조의 지원을 희망했다. 교단敎壇에서 나는 전교조 보다 더 전교조다운 교장으로 알려졌었다. 충북 예천 교장 자살사건 때 살인자로 몰린 전교조를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 한 편으로 기사회생起死回生시켰다. 마치 당唐나라‘황소黃巢의 난亂’을 황소격문黃巢檄文으로 패퇴敗退시킨 신라新羅의 최치원崔致遠처럼. 전교조는, 전교조의 이념과 가장 가까운 후보를 지원하겠다던 전교조는 끝내 지원을 포기해버렸다. 초등교장이라고 자질부족이라고 지원을 철회했다고 생각한다. 전교조는 앞선 교육감선거에서 지회장을 후보자로 내어 2000표를 얻어 2등을 했었다. 전교조후보는 중등계 평교사 출신 도道교육위원이었다. 평교사를 추천했던 그들이 추천을 포기했다. 말은 전교조와 가장 교육적철학이 맞는 후보를 지원하겠다고 해놓고는, 열 번이나 추천후보 선정 지회장회의를 여는 척해놓고는 끝내 추천후보가 없어 개인별투표로 지지 철회를 했다. 명함名銜이 없어서라고 판단한다. 그 때에야 교육장이 될 수 있었던 세 번의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일을 후회했다. 흙탕물에 들어가면, 교육청에 들어가면, 교육장을 하면 3급수 고기가 된다는 생각이 잘 못 되었음을 절실하게 체험했으나 후회막급後悔莫及. 그러고 보니 섬찟했던 기억들, 교장회의가 열리면 약 5백 여 명의 교장들이 도교육청 대강당에 모이는데, 도교육청 인사들은 말 할 것도 없고 한결같이 검은 양복에 검정구두 차림이다. 심지어는 자동차까지도 거의 모두 검정색이다. 왜 관료들이 검정색을 선호하는지 몰랐다. 그 회의에서 유독 나 혼자만 베이지색 캐주얼 차림이었는데,‘저 건 우리 족속族屬이 아니다, 쫓아내라’고 할 수도 있다는 환상幻想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생리적으로 기득권이 싫어서, 기득권에 들어갔다가 물이 들까봐서, 대부분의 개혁적인 사람들이 기득권 맛을 보면 기득권으로 변질된다는 걸 목격했기에 교육장자리를 탐탁잖게 여겨 거부했는데, 교육감선거에서 명함이 큰 구실을 하리라는 걸 뒤늦게야 후회했다. 개혁의지가 훼손될까봐 기존 기득권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외골수생각이 전교조 지원후보를 망쳤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명함名銜이 얇아서 전교조의 선택에서 탈락脫落된 것이다. 정치는 3류流가 한다는 말이 명언名言이고, 아무리 개혁적인 단체라도 철학과 소신은 늘 변한다. 단체를 믿으면 낭패狼狽다.
(이천만의 명상록 - 124) 기성자紀省子의 木鷄목계
기성자는 투계鬪鷄의 사육사였다. 닭싸움을 좋아하는 임금이 닭을 한 마리 주면서 천하에 제일가는 투계로 훈련시켜달라고 했다. 10여 일이 지나자 임금이 기성자에게
‘어떤가, 닭이 투계용으로 훈련이 되었는가?’
‘예, 치고 물어뜯고 쫓고 싸우는 흔련은 다 되었으나 늘 눈에 살기殺氣가 등등하여 자꾸 싸울 상대를 찾고 있습니다. 며칠 더 훈련이 필요합니다.’
10여 일이 지나자 다시 임금이 재촉했다.
‘예, 이제 눈에 살기는 사라지고 싸울 상대를 찾아 헤매지는 않지만 다른 닭들에게 신경을 늦추지 않고 있으며, 닭만 보면 금방 투지鬪志를 보입니다. 더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 10일이 지나서 임금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역시 안 되겠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10여 일이 지나서 임금이 묻자 이번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되었습니다. 모든 닭들이 울어대도 전혀 개의치 않고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흡사 목계와 같으니 덕德을 온전히 갖추었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다른 닭들은 대드는 일이 없고 보기만 해도 슬슬 도망을 칩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25) 면벽面壁 달마대사達磨大師
‘달마(대사)가 서쪽으로 온 까닭은' 이란 영화가 있다. 면벽 9년의 참선參禪으로 유명한 달마대사가 어느 날 제자 네 사람을 불러 앉혀놓고 그 동안에 깨친 바를 말해보라고 했다. 도부道副가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데 무슨 문자文字가 필요하느냐고 말하지만 도道를 깨치는데 한 방편方便으로 문자를 사용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달마는
‘너는 나의 살갗을 얻었을 뿐이다.’
총지摠持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난존자阿難尊者가 염원念願하던 서방불국토西方佛國土를 이룩하도록 원력願力을 세워나가겠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을 뿐이다.’
다시 도육道育이
‘사람의 육신肉身이나 우주宇宙 만유萬有를 이루는 사대오온四大五蘊(지地, 목木, 풍風, 화火.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본래 공허空虛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불변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너는 내 뼈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는 입을 꽉 다물고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니 그냥 제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에게 공손히 3배拜를 올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앉아서 침묵沈黙을 지킬 뿐이었다. 달마가 이 광경을 보고
‘너는 나의 진수眞髓를 얻었느니라. 너는 나를 이어 선종禪宗의 제 2조祖가 되어라.’하며 도통道統을 물려주었습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26) 부목負木(머슴) 혜능慧能
불교佛敎는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으로 나눠지는데, 선종의 5조祖 홍인대사弘忍大師는 뛰어난 두 제자가 있었다. 신수神秀는 경전經典에 통달通達했고, 다른 한 사람 혜능은 절에서 방아 찧고, 장작 패는 부목(머슴)이었습니다. 그러나 혜능은 참선參禪을 하여 불심佛心이 매우 깊었습니다. 홍인대사가 나이 들어 은밀히 후계자後繼者를 찾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자기가 터득한 진리를 글로 써 홍인대사에게 올렸습니다. 신수는
‘내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내 마음은 거울입니다. 수시로 털고 닦아서 먼지가 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수시근불식隨時勤拂拭 막사야진의莫使惹塵矣).
그러나 혜능은 이렇게 썼습니다.
‘보리수란 없습니다. 거울 또한 없습니다. 본시 아무 것도 없거늘, 어디서 먼지가 일겠나이까(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 本來無一物 하처야진의何處惹塵矣). 홍인대사는 보리수도 거울도 없다는 부목 혜능에게 교권敎權을 물려주어 혜능이 선종 6대조가 되었습니다. 선종은 1대조代祖 달마達磨대사로부터 혜가慧可대사, 승찬僧璨대사, 도신道信대사, 홍인대사 그리고 혜능대사로 도맥道脈이 이어졌습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27) 세 사람의 석공石工
세 사람의 석공이 돌을 다듬고 있었는데, 세 사람의 표정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분노憤怒와 고통苦痛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무표정하게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다른 한 사람만 환하게 웃는 얼굴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 표정들이 하도 신기해서 지나가던 사람이 결음을 멈추고 물었습니다.
‘노형老兄께서는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일을 하고 계십니까?’
‘여보세요, 남이야 사주팔자四柱八字가 더러워서 돌쟁이가 되어 이 고달픈 일을 하고 있거나 말거나 왜, 남의 일에 간섭이요. 어서 가시오, 맞아죽고싶지 않으면 …’하고 망치로 때릴 듯이 대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자리를 피하며 다음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노형은 이 고된 일을 하며 아무 표정도 없이 묵묵히 하십니까? 고되지 않나요?’
‘예, 저는 배운 것도 없고, 돌 깨는 석공이 저의 천직天職입니다. 좀 고달프기는 하지만 열심히 돌을 다듬어 여기서 밥이 나오고, 옷이 나오고, 집도 나오고 온갖 것들이 다 나옵니다. 크게 넉넉하지는 못해도 그런대로 우리 가족이 먹고 삽니다. 그러니 나는 석공을 천직으로 삼고 열심히 돌을 깨고 다듬습니다.’
마지막으로 웃으며 일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하하하 …, 여보세요. 당신께서는 내가 천賤한 돌쟁이로 보이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이래 뵈도 석공이 아니고 예술가藝術家입니다. 저기 서 있는 돌부처를 보십시오. 탑塔도 보십시오. 또 저기 저 마리아상像을 보십시오. 모두 내가 깬 돌로 만든 것입니다. 당신이나 나나 앞으로 3, 40년 살면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죽고나면 당신은 이 지상地上에 무엇이 남습니까. 나는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예술작품 창작하고, 돈 나와서 먹고 살고, 이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128) 서산대사西山大師와 구정선사九鼎禪師의 인욕忍辱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금강산金剛山 유점사에 있을 때 김서방이라는 부목負木이 있었습니다. 부목은 땔감을 해오고, 물을 긷고, 밥 하고 빨래 등 잔심부름을 하는 절의 머슴입니다.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김서방은 늘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게으르거나 괴롭다는 표정도 없이 늘 밝게 평온한 표정으로 거스름없이 한결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누가 무엇을 시켜도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싫다 궂다 말 없이 묵묵히 자기 일만 했으므로 마치 감정이 없는 바보 같았습니다. 절간의 사람들이 김서방을 좀 모자란 바보천치天痴로 보았으나 서산대사의 눈에는 김서방이 인욕忍辱이라는 큰 덕德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불가佛家에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라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이 있습니다. 이 육도六道는 하나하나가 다같이 달관達觀의 세계, 행복의 세계, 피안彼岸의 세계로 나아가는 다리입니다. 어느 날 서산대사가 김서방을 불렀습니다.
‘내일 우리 절에 큰 법회法會가 있으니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점심공양供養을 할 수 있도록 가장 큰 가마솥을 저쪽 뜨락에 걸어놓고 나에게 와서 알려라.’
‘예, 큰스님 분부대로 곧장 하겠습니다.’
김서방은 금방 달려나가 가마솥을 걸어놓고 서산대사에게 알렸습니다. 서산대사가 와서 보고 꾸짖었습니다.
‘잘못 됐어, 다시 해!’
김서방은 가마솥의 수평水平이 잘못 되었나 해서 가마솥을 뜯어내고 다시 걸었습니다. 그리고 서산대사에게 와서 아뢰었습니다. 서산대사가 와서 보고는 잘못 되었다며 다시 걸어라고 화를 냈습니다.
‘잘못 됐어, 다시 해봐!’
‘예, 다시 고치겠습니다.’
김서방은 아궁이가 너무 커서 잘못 되었나 생각하며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가마솥을 뜯어냈습니다. 고쳐놓고 대사에게 아뢰었더니 대사가 와보고는 또 다시 역정을 내며 다시 걸어라고 분부分付했습니다. 이렇게 무려 아홉 번을 되풀이 했습니다. 아홉 번째 솥을 고쳐걸면서도 김서방이 싫은 기색氣色 하나 없이 가마솥을 헐어내고 다시 고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서산대사의 근엄謹嚴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구정선사九鼎禪師께서는 그 자리에 좌정坐定해주십시오.’
김서방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뒤를 돌아다보니 서산대사가 그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김서방이 털썩 주저앉자 서산대사가 김서방 앞에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큰절을 3배拜 올린 다음 말했습니다.
‘그대는 오늘 아홉 번 솥을 뜯어 고쳐 구정선사가 되었습니다. 까닭없이 아홉 번이나 솥을 고쳤는데도 얼굴빛 하나 변치 않고 여전히 미소지은 얼굴로 솥을 고쳐놓았습니다. 그 인내심 - 그 인욕으로 당신은 구정선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내일부터 구정선사께서 유점사를 맡아주시고 소승小僧은 묘향산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29) 소동파蘇東坡의 오도송悟道頌
천하天下의 문장가文章家요 유불선儒佛仙에 통달通達한 소동파가 약관弱冠의 나이에 황주군수黃州郡守를 역임歷任했습니다. 그 당시 소동파는 자만自慢에 넘쳐 오만傲慢하기 그지없고 가히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습니다. 이런 소동파가 어느 날 옥천사玉遷寺의 승호선사勝皓禪師를 찾아갔습니다. 승호선사가 요란한 행차行次의 소동파를 맞으며
‘빈도貧道는 승호라 하옵니다. 대관大官께서는 누구시옵니까?’
‘나는 칭秤이요.’
‘아니? 우리나라에는 칭이란 성씨姓氏가 없는 줄 아옵니다.’
‘나는 천하의 선지식善知識의 무게를 달아보는 저울이라는 뜻이외다.’
승호선사가 어이가 없어 잠깐 머뭇거리다가
‘악!’
하고 일갈一喝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대관께서 저울이시라면 방금 제가 외친 그 악! 소리가 몇 근斤이나 되는지 알아주십시오.’
여태 살아오면서 대화對話와 토론討論에서 말문이 막혀본 경험이 없는 소동파도 이 물음에는 대답할 재간才幹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소동파가 예禮를 갖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승호선사님, 오늘 선지식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願컨대 저에게 설법說法을 내려주십시오.’
‘대관께서는 어찌하여 유정설법有情說法만 들으려 하고 무정無情설법은 왜 듣지 않습니까? 돌아가시면 무정설법을 듣도록 하십시오.’
소동파가 말을 타고 산을 내려오면서 혼잣말로‘무정설법? 무정설법?’하고 중얼거렸으나 무정설법이 무엇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무정설법, 무정설법이라 …’. 이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 산길을 돌아 내려오다가 무심코 머리를 들어 사방을 살펴보니 해는 이미 서산머리에 기울고 하늘에 하얀 달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천하의 문장가 소동파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일몰서해日沒西海 월출동령月出東嶺(서해로 해 지니 동산에 달 오른다’)이란 싯귀가 튀어나왔습니다. 또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고는 문득‘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 ’이로구나 하며 탄성歎聲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또한 석양夕陽에 새들이 나뭇가지에 깃드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는 보다 큰 가지에 의지하고, 큰 가지는 더 큰 가지에 의지하고 있으며, 또 큰 가지는 나무둥치에 의지해 있고, 나무둥치는 뿌리를 내린 흙에, 흙은 산에, 산은 대지大地에, 대지는 지구地球에, 지구는 우주宇宙에 의지해 있다는 것이 머릿속에 스쳤습니다. 소동파는 깨친 듯‘차유고此有故 피유彼有, 차기고此起故 피기彼起’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고, 저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니까 이런 형상이 일어나고 … 이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상관相關관계와 연기緣起라는 인연법因緣法으로 얽혀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소동파는 오도송悟道頌을 읊었습니다.
溪聲便是長廣舌(계성편시장광설)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대설법大說法이요
山色豈非淸淨身(산색개비청정신) 山色은 법신불法身佛 아닌가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 이와 같이 깨달은 8만4천 게송偈頌을
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 후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설說하리요
자연 속에 숨어있는 무정설법을 깨우친 것입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30) 대뇌大腦와 신경회로神經回路
미국 알라바마Alabama공대工大의 인체공학人體工學 연구팀(Karl. U. Smith 교수)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정보知識情報를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비율이 4 - 5세歲를 표준으로 눈 83%, 귀 11%, 코 3. 5%, 손발(촉감觸感) 1, 4%, 혀 1. 1%라고 합니다. 그러니 직접 사물事物을 본다는 것이 학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짐작이 됩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이 입증立證된 셈입니다. 또한 연구팀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頭腦 속에는 140억億 - 150억 개의 뇌세포腦細胞가 있다고 합니다. 한 개의 세포에는 외부의 자극刺戟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상돌기樹狀突起의 세포체細胞體에서 결정된 메시지를 다른 세포로 보내는 축색軸索돌기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 수상돌기와 축색돌기가 많이 생겨나서 신경회로 형성이 많을수록 머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보통 인간의 한 개의 세포에는 약 1만 개의 돌기가 생겨나서 1만 개의 회로를 만든다고 합니다. 한 개의 신경회로가 컴퓨터의 1RAM에 해당되니까 140억 뇌세포 X 1만 개의 신경회로는 1400조兆 RAM이 됩니다. 1400조 RAM의 컴퓨터가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은 신문지 6억億 페이지에 담기는 정보량과 같다고 하니 인간의 두뇌는 얼마나 위대한 컴퓨터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 두뇌를 보통사람들은 약 5%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장死藏되어버렸습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정보며 과학기술은 인간 두뇌의 5% 활용으로 생산된 것입니다. 그러니 10%만 더 활용할 수 있다면 4차원次元세계에서 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31) 찰라刹那와 겁劫
여러분, 여러분은 지구地球가 언제 생겨났는지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까?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생겼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인간수명은 지구와는 견줄 수도 없는, 요즘 말하는 초미세超微細한 티끌, 찰라라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의 존재입니다. 지구는 30억 년 전에 돌연변이突然變異가 일어나 이 지상地上에서 처음으로 생명체生命體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20억 년 전에 제 2차 돌연변이가 일어나 지구상에 비로소 인간이 생겼습니다. 인간발생의 진화적 이해입니다. 창조론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흙으로 빚어 하나님의 모습을 본떠 만들고 코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생겼습니다. 진화론과 묘한 대치代置입니다. 천도교天道敎에서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며 인내천人乃天사상을 주장합니다. 진화론에서 지구가 생겨난 것이 45억 년 전인데 하물며 우주宇宙는 어떻겠습니까? 우주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理論이 있습니다만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을 바탕으로 한 진화우주론, 영국의 물리학자 호일 등이 주장하는 정상定常우주론 그리고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창조론創造論이 있습니다. 창조론은 유신론과 무신론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추론推論에서 우주창조론에서 배제排除됩니다. 유사이래有史以來 우주에 가장 접근했다는 천재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우주를, 자연현상을 한 사람의 신이 관리하기에는 너무 많다’고 유언遺言한 것, 영면永眠 직전‘신神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자기 가슴을 가리킨 김수환 추기경의 말로 창조론을 대신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고 하늘나라에서 우주를 주관主管한다고 하는데, 지구, 태양계太陽系 그리고 수억 개의 태양계 그 어느 태양계에 하나님이 계실까요? 천국은 지구태양계 밖의 어떤 태양계에 위치하는지 아니면 어떤 태양계도 아니고 우주의 어떤 곳에 있는지? 이런 비판에 비하면 천둥번개, 나무, 바위, 산을 신으로 섬긴 원시인들의 종교가 더 현실성이 있습니다. 또 온다 온다 곧 온다던 하면서 2000년이 넘도록 오지 않은 구세주救世主와 미륵불彌勒佛은 아직도 감감소식입니다. 더불어 세상은 종교갈등과 전쟁으로 천국天國이나 극락極樂을 표방標榜하는 종교적 기원祈願은 영원히 기원일 뿐입니다. 초인간적인 자연현상을 신으로 창조했을 뿐입니다. 이는 또한 신을 찾아 방황했던 소년시절 - 신과의 소통을 갈구渴求했던 시절의 결론과도 같습니다.
진화우주론은 아득한 옛날 밀도密度가 무한대無限大로 압축된壓縮된, 극단적極端的으로 압축되어 달걀만한 중성자中性子의 원시原始물질이 어느 날 대폭발(Big Bang)을 일으켜 팽창膨脹을 시작하여 그 팽창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미국 켈리포니아California의 팔로마Palloma천문대天文臺에 있는 세계 최대의 구경口徑 200인치Inchi(5M)의 반사망원경反射望遠鏡과 전파電波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찰하여 고속高速전자계산기로 팽창膨脹의 속도와 팽창된 가장자리에서의 역산逆算 결과 우주의 탄생은 약 150억 년 쯤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겨난 우주의 공간은 약 400억 광년光年의 너비라 하니 인간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1초秒에 30만Km를 달리는 빛이 400억 년을 달려야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 닿을 수 있습니다. 가히 무한대無限大의 개념입니다. 이 무한대를 좀 더 설명하면 지구에서 달까지는 1광초光秒고, 태양까지는 1광분光分이며, 우리 태양계 끝까지는 약 8광시간光時間이라고 합니다. 지구가 궤도軌道를 한 번 공전空轉하는데는 365일이 걸리는데 명왕성冥王星이 태양을 한 번 도는 데는 91,990일이 걸립니다. 명왕성의 1년은 지구의 252년입니다. 쌍둥이 아이 한 명은 지구에서 살고, 또 한 아이가 명왕성에 가서 10년 동안 살다가 지구로 돌아오면 지구는 2,52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이 세월을 불가佛家에서는 겁劫이라고 합니다. 한 겁은‘천지개벽天地開闢이 일어나서 다음 천지개벽이 일어날 때까지의 시간’입니다. 불가의 겁은 반석겁磐石劫 또는 겨자겁芥子劫이라고 하는데, 반석겁은 사방 40리 큰 바위가 있는데 100년에 한 번 하늘에서 선녀仙女가 내려와 놀다가는데 그 선녀의 치맛자락에 스쳐 바위가 다 달아 없어지는 시간입니다. 겨자겁은 사방 40리의 큰 창고에 겨자씨알이 가득 들어있는데 100년에 한 번씩 선녀가 내려와서 그 겨자씨를 한 개씩 하늘로 옮긴다고 합니다. 그 겨자씨가 다 옮겨진 시간이 겨자겁입니다. 겁은 인간세계의 4억 8천만 년입니다. 인간의 수명壽命은 생리적生理的으로 120세이지만 고작해야 100세가 한계입니다. 무병장수無病長壽로 살다간다고 해도 찰나요 수유須臾입니다.
(이천만의 명상록 - 132) 인체人體의 물리화학적 분석分析
우리 몸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수소水素 63%, 산소酸素 25. 5%, 탄소炭素 9. 5%, 질소窒素 1. 4%, 칼슘 0. 3%, 인燐 0. 22% 등 92개의 천연원소天然元素로 되어 있습니다. 103개의 물질의 원소元素 중 92개가 천연원소고 나머지는 인공人工원소입니다. 인간의 몸은 60조兆 개의 세포細胞와 약 90,000m의 혈관血管, 27m₃폐포肺胞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체중體重 63Kg의 사람의 몸을 상품화商品化한다면 7개의 비누와 2,200개의 성냥 알갱이, 1개의 못, 1봉지의 설사약 마그네슘, 약 2말斗의 물이 나옵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약 3만 원 어치입니다. 인간의 몸을 생화학적生化學的으로 환산換算해보면, 헤모글로빈 28,000원, 트립신 32만 원, 인슐린 43만 원, 빌라루빈 10만 원, DNA 700만 원, 콜라겐 13만 원, 활성活性 브리디킨 2000만 원, 난卵세포 자극刺戟 호르몬 840만 원 등 3천 6백 4십만 8천원입니다. 정말 인생은 남가일몽南柯一夢 초로草露입니다. 신라新羅의 진흥왕眞興王은 화랑도花郞徒를 일으켜서 국력을 배양하여 가야伽倻를 정벌하여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런 그가 만년晩年에 왕위王位를 헌 신짝처럼 버리고 법운法雲이란 불명佛名으로 산사山寺를 찾아가 스님이 되었습니다. 진흥왕의 사도왕비思道王妃도 여승女僧이 되어 영흥사永興寺로 들어갔습니다.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元曉는 중생衆生의 죽음 앞에서
莫生兮其死也苦(막생혜기사야고) 나지 말지어다 그 죽음이 괴롭도다
莫死兮其生也苦(막사혜기생야고) 죽지 말지어다 그 태생이 괴롭도다
송운대사宋雲大師는 만년晩年에
太華山前多少塚(태화산전다소총) 태화산 앞 저 작은 무덤들
落陽城裡古今人(낙양성리고금인) 해 저무는 고을에 사람 살았으니
可憐不學長生術(가련불학장생술) 가련하다 오래 사는 법 못 배워
沓沓空城松下塵(답답공성송하진) 소나무 밑 한 줌 먼지여
미국 시인詩人 롱펠로우의 시詩
Tell me not in mournful numbers 슬픈 곡조曲調로 내게 말하지 말라
Life is but an empty dream 인생은 다만 텅 빈 꿈이라고
대청제국大淸帝國에서 국토를 가장 많이 확대한 태종太宗은 순치황제順治皇帝로 불리웠습니다. 만주족滿洲族으로 군사를 일으켜 18년의 원정遠征에서 중국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만주滿洲, 베트남 까지 정복하여 세계 최대의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순치황제가 어느 날 문득 깨우친 바 황제의 자리를 버리고 남몰래 출가出家를 했습니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의 금산사金山寺를 찾아가 신분身分을 감추고 부목負木(머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이름을 들어내지 않고 일생을 마쳤습니다. 순치황제는 출가사出家詞에서
我本西方一衲子(아본서방일납자)
나 본래 서방(서쪽, 정토淨土, 인디아) 걸식乞食 수도修道 납자衲子(스님)
緣何流落帝王家(연하유락제왕가)
어찌하여 만승천자萬乘天子(임금)로 타락墮落하였는고
성경聖經 구약舊約 전도서傳導書 1장章에는‘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였고, 반야심경般若心經 270자 가운데 무無 자字가 21번 되풀이 되고, 공空 자가 7번 나옵니다. 또 열반경涅槃經에는
生而一片浮雲起(생이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생겨나고
死而一片浮雲滅(사이일편부운멸)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구름이란 본래 없었으니
生死去來亦如是(생사거래역여시) 삶과 죽음 또한 구름과 뭐 다르랴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33) 꽃과 노래와 사랑
‘이 교장,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
‘꽃을 많이 심으십시오.’
선배先輩가 교장부임赴任을 하면서 물었는데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선배도 느닷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교장은 교육자 보다 경영인經營人이다. 그래서 교장 초임初任 때‘꽃과 음악과 사랑’이라는 구호口號를 마음에 새겼다. 첫 출근, 교장부임을 하려고 좀 일찍 출근하였더니 시간이 빨라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강당講堂 뒤에는 벌겋게 녹슨 컨테이너가 두 개, 창 틈새로 들여다보니 헌 책상과 메트리스가 썩어가고 있었다. 운동장을 빼놓고 모두 폐가廢家나 쓰레기장 같았다. 오래 전에 폐기廢棄된 재래식화장실에는 변기통便器桶이 열린 채 헌 잡동사니가 가득 쌓여있고, 천정天井에까지 폐기된 스티로폼, 창문틀들을 얼기설기 매달아놓았다. 고물古物 수집蒐集창고인 셈이다. 여수산단麗水産團이 조성되면서 건립된 학교라 30여 년 역사를 지닌 학교인데 폐교廢校 같았다. 부임인사를 하자 말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대청소를 시작했다. 컨테이너와 화장실의 폐기물은 내용물을 치워주는 조건으로 고물업자古物業者에게 맡겼다. 트럭 8대 분량의 쓰레기가 쏟아져나왔다. 고물업자가 예상 외로 쓰레기가 많다고 엄살을 부렸다. 청소를 마치고는 지리산 야생화공단野生花工團에 주문을 하여 한국야생화를 심었다. 일손 때문에 자모회姉母會를 동원動員했다. 꽃을 심느라고 어머니들이 사흘 동안 자원봉사自願奉仕를 했다. 의외로 호미를 들고 꽃을 심는 어머니들이 즐거워했다. 이런 학교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현관 앞에 서있는 두 그루의 적송赤松(金剛松)은 분재盆栽 같아서 보물급寶物級이었다. ㄹ그룹에서 5천만 원에 구입하겠다고 상담商談을 벌였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등교시간과 점심시간에는 감상곡感想曲을 틀었다. 교내청소를 끝내고는 물길을 찾아나섰다. 유서由緖깊은 마을이라 학교 뒷산이 진달래 군락群落 전국 제일의 영취산靈鷲山이고 산자락 밑에는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순신장군이 승병僧兵과 수군水軍을 양성하던 호국사찰護國寺刹인데 전국 두 번째 괘불掛佛이 있다. 흥국사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개울 위에는 돌로 지은 아치형 홍교虹橋가 있다. 그 홍교 물길을 학교 운동장으로 끌어들일 수 없을까 궁리窮理를 했다. 연못을 만들려는 속셈이다. 제대로 말하면 연못이 아니라 둠벙이다. 둠벙이 될만한 땅을 포크레인으로 덥석 한 입 물어내면 웅덩이가 생긴다. 자연적인 웅덩이가 둠벙이다. 시골에는 논 귀퉁이에 가뭄에 물을 대는 둠벙이 있었다. 추수를 할 때 쯤 도개새(논에서 물 빼는 도랑)를 치면 뱃살이 누런 미꾸라지가 줄을 지어 둠벙으로 몰려들었다. 추수를 마치고 동네 머슴들이 둠벙을 퍼서 소죽통에 가득 실어오면 그 날은 머슴들의 추어탕 잔칫날이었다. 둠벙 두 개를 파서 돌다리로 연결했다. 운동장 둘레에 물길을 파서 둠벙과 연결하여 물이 흐르게 두면 수생水生식물과 곤충들이 저절로 날아든다. 물거미가 찾아오고 잠자리가 날아들었다. 개구리도 와서 개굴개굴 울었다. 물방개와 다슬기, 피라미들은 아이들이 잡아다 넣었을 것이다. 유난히 둠벙을 드나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물었다. 고기를 잡아다 넣어도 되냐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둠벙식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부들과 창포는 이웃 학교에서 얻어다 심었다.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물옥잠도 심었다. 체육시간을 마치고 아이들이 손발도 씻고, 여름철에는 땀도 닦는다. 징검다리에서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는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보노라면 가슴이 다 환하게 열린다. 교문 옆에는 접시꽃밭을 만들었는데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가족사진도 찍는다. 초여름에는 운동장 둘레에 심은 꽃무릇相思花이 지천으로 널려 할머니들이 손자를 데리고 꽃구경 나들이를 온다. 꽃구경을 온 어머니들이 인삼에 꿀을 타서 꿀차를 가져와 선생님을 대접하기도 한다. 등교시간에 들려오는 음악이 설거지 하는 어머니들의 감상곡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위해 꽃을 심고 음악을 틀었는데 어머니들이 더 기뻐했다. 인성人性교육을 꽃과 음악과 둠벙으로 한 셈이다. 그 해 가을 아름다운 학교상에 응모하여 전국 대상大賞을 받았다.
(이천만의 명상록 - 134) 백락천白樂天의 선문답禪問答
당唐나라의 백락천은 학자, 시인詩人이고 정치가였습니다. 그가 젊은시절 항주지사杭州知事 벼슬에 있을 때, 근교近郊 산사山寺에 있는 조소鳥巢(아호雅號) 도림선사道林禪師를 찾아갔습니다. 불경佛經을 널리 섭렵涉獵한 백락천은 자만심自慢心이 대단해서 도림선사를 설파說破하여 꺾어버릴 심산心算이었으므로 부하部下들을 거느리고 위세당당威勢堂堂하게 사찰寺刹 문 앞에 당도當到했습니다. 도림선사는 평소처럼 문간에 선 높은 나무꼭대기에 앉아서 좌선坐禪을 하고 있었습니다. 백락천이 부지중不知中에
‘아! 위험하다 위험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랬더니 선사가 도리혀 백락천을 보면서
‘아! 위험하다. 위험해.’라고 대꾸를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선문답禪問答 같은 몇 마디 말들이 오고갔습니다.
‘나는 머리를 하늘에 두고 발은 이렇게 땅을 밟고 있는데 무엇이 위험하단 말이요?’
‘심화心火는 상교相交하고 식識은 허망虛妄해서 정정靜定할줄 모르니 어찌 위험하지 않다 말씀이요?’
백락천은 자기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내심內心 과연 보통 승려僧侶가 아니구나! 감탄하면서 화제話題를 딴 데로 돌렸습니다.
‘무엇이 불법佛法의 진수眞髓입니까?’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나쁜 짓은 하지 말고 선한 일만 하는 것이외다.)’
백락천이 껄껄 웃으며
‘그거야 삼척동자三尺童子(아이)도 아는 일이 아닙니까?’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지만 80 노인老人도 행行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도림선사의 엄숙한 이 말 한 마디에 백락천은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조실祖室로 안내한 도림선사가 백락천의 찻잔에 차를 따루는데 찻잔의 찻물이 넘쳐흘러 방바닥이 흥건히 젖는데도 도림선사는 모르는 척 계속 차를 찻잔에 따르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 해 백락천이 차를 따르는 선사의 손을 부여잡고
‘선사, 왜 이러십니까? 찻물이 넘쳐 방석方席을 적시고, 책도 젖고, 발도 망칠 지경입니다.’
‘칙사勅使께서는 어찌하여 물이 넘쳐서 방석이며, 책이며, 방房을 망亡치는 것은 알면서도 인품人品을 망치는 것은 모르십니까?’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35) 조현지법調絃之法
조선조朝鮮祖 중종中宗 때의 조광조趙光祖는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성리학자性理學者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의 도학道學정치는 높은 이상실현理想實現을 추구追求했습니다. 그의 벼슬은 37세에 정이품正二品인 대사헌大司憲(감사원장)에 올랐으나 38세에 기묘사화己卯士禍에 몰려, 전남 화순 능주로 귀양歸養을 왔다가 위리안치(가시울타리)되었다가 사약賜藥을 받고 죽었습니다.
‘其變有漸기변유점 其進有階기진유계’. 정암靜庵 조광조 보다 200년 후생後生인 율곡栗谷(이이李珥)이 조광조의 인품人品, 경륜經綸, 정치적이상理想을 기리며 한 말입니다.‘개혁改革은 점진적漸進的으로 해야 하고, 개혁을 하는 데는 단계段階가 있다.’서두序頭의 조현지법은 거문고줄을 조이는 법이라는 뜻인데, 갑자기 너무 세게 조이면 거문고줄이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136) 푸라크리티의 사랑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제자弟子인 아난은 용모容貌가 빼어나고 몸매가 훤칠한 미남美男이었습니다. 아난이 탁발托鉢을 나가면 마을 처녀들이 아난을 보려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난이 마을에 오자 마등가종摩鄧伽種이라는 천민賤民(인디아 카스트제도 노예계급 수드라) 무당巫堂의 딸 푸라크리티도 아난의 모습을 보려고 아난이 탁발하고 다니는 길목의 우물가에서 기다렸습니다. 석양夕陽 무렵에야 아난이 탁발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물가에 왔습니다. 과연 듣던대로 천하天下의 미남이었습니다. 푸라크리티는 한 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아난이 푸라크리티를 향해 다가와서는 감로수甘露水(물)를 한 잔 달라고 했습니다. 감개무량感慨無量한 푸라크리티가 정신없이 물을 떠서 바쳤습니다. 물을 바치며 가까이서 본 그의 모습은 황홀했습니다. 아난존자尊者가 물을 달게 마시고 고맙다고 합장合掌을 하고는 뒤돌아섰지만 푸라크리티는 아난존자를 가까이서 보고 물까지 바쳤던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눈을 뜨면 아난존자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눈을 감아도 아난존자가 보였습니다. 푸라크리티는 아난존자를 가슴에 새겨두고 연민憐憫 때문에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고 그만 자리에 누었습니다. 무당의 신분身分으로 석존釋尊의 제자를 흠모欽慕한다는 것만으로도 죄업罪業이라며 달래고 어르던 어머니가 석존을 찾아갔습니다.
‘부처님, 우리 딸을 살려주십시오. 푸리크리티가 아난존자를 흠모하여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푸리크리티를 데려오십시오. 뜻을 이루게 하여 살려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푸리크리티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석존을 찾았습니다. 석존께서는 푸리크리티를 반갑게 맞이하며, 아난을 불러 서로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석존은 푸리키리티에게 물었습니다.
‘왜, 아난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느냐?’
‘용모容貌가 빼어난 미남美男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난을 다시 한 번 잘 살펴 보거라. 어디가 그렇게 잘 생겼느냐?’
‘예, 아난의 눈이 마치 샛별처럼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또 어디가 네 마음에 드느냐?’
‘예, 우뚝 솟은 코가 잘 생겼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디가 마음에 드느냐?’
‘예, 환한 이마가 잘 생겼습니다.’
‘또 어디가 잘 생겼느냐?’
‘예, 입이 귀엽게 생겼습니다.’
‘그 다음은 어디냐?’
‘예, 하얀 목덜미, 균형均衡잡힌 몸매, 의젓한 걸음걸이, 상냥한 목소리 …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푸라크리티야 …’석존은 푸라크리티를 불러놓고
'네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하는 아난의 눈 에는 눈물이 들어있다. 코 속에는 콧물이 들어있다, 입에는 침과 가래가 들어있다, 이마에는 피와 골이 들어있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난의 몸속에는 똥과 고름과 피 그리고 온갖 더러운 것들이 들어있다.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난의 육체가 30여 년이 지나면 늙고 병들어 썩고 문들어져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네가 진실로 아난을 사랑하려면 아난의 정신, 아난의 마음, 아난의 신앙信仰을 사랑하라.'
석존의 몇 마디 말에 푸라크리티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 했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삭발削髮하고 비구니比丘尼가 되어 신앙에 귀의歸依하라.’
푸라크리티는 사련邪戀을 끊고 마음을 신앙으로 승화昇華시켰습니다.
(소목素木의 횡설수설橫說竪說에서 윤색潤索함)
(이천만의 명상록 - 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