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만의 명상록 - 4

이천만의 명상록 (4)

북새 2018. 10. 24. 20:37




이천만의 명상록 -


이천만의 명상록 ()  목차 : 91편 - 120편


91. 의 초상肖像과 등신불等身佛/ 92.  폐계廢鷄정권의 교육학적접근/

93.  '한자漢字 병기倂記 환영'에 대한 반론/ 94. 선거의 법칙 - 3전3패기敗記/

95.  군대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96. 노추老醜97. 반팽이모임/ 98.  잡탕雜湯언어/  99. 아이디어, 기차汽車여행/ 100.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自殺/

101.  체벌體罰폭력/ 102. 태극기 게양揭揚/ 103. 장손長孫의 입학/ 104. 하나님의 촌수寸數/ 105. 쟁이대회(김삿갓)/ 106. 바둑 부목판浮木盤/ 107. 저녁노을과 유서遺書108. 4대강大江 운하運河의 꿈/ 109. 평등사회 - 영토, 종교 그리고 성과 결혼제도/ 110. 예방법 입법立法/ 111. 여성성 남성성(치마와 팬티)/ 112. 노인老人건강/ 113. 전라도 사투리(방언方言)/ 114. 재판裁判 개판 - 국민감사청 청원/ 115. 마법魔法의  - 홍어와 두리안/ 116. 동거혼同居婚117. 맛멋여행/ 118. 똥과 대변大便/ 119. 식도락食道樂 - 고향의 맛/ 120.  수능修能



(이천만의 명상록 - 91)      의 초상肖像과 등신불等身佛

1100년께 제작된 중국불상을 네델란드 드렌츠박물관이 컴퓨터단층촬영한 결과 등신불이 들어났다. 사진에서 사람의 갈비뼈가 확연하게 보인다. 대학시절 김동리의 등신불(부모를 극락極樂으로 인도引導하기 위해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자기 몸에 몇 날 며칠 기름을 부어 부처형상形象이 되는 사람)을 읽고 애처로운 사연과 등신불로 승화昇華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감명感銘이 되살아난다.

국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더니 인성검사를 하겠다고 한다. 아마도 인성검사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심리검사나 IQ검사 또는 EQ검사처럼 항목을 개발해서 인성을 측정하겠다고 한다. 인성검사를 경찰에서 사용하는 거짓말 탐지기 쯤으로 생각하는 발상發想이다.

절에서는 금박金箔을 입힌 거대한 불상佛像 앞에서 합장合掌을 한다. 108 도 한다. 성철스님은 생전에 면회를 요청하는 대중들에게 3000배를 요구하기도 했다. 개신교에서는 십자가나 십자가에 예수의 최후의 모습을 새겨놓고 기도를 한다. 텁수룩하게 수염이 난 예수의 형상을 색유리로 유리창에 새긴 교회도 많다. 천주교회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聖母나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성모상이 있다. 예수나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의 상을 포함해서 우상偶像을 섬기지말라고 했다. 도교道敎는 배불뚝이 신선상神仙像이 있고, 관운장關雲長을 형상화한 신상神像도 있다. 우리나라 무속신앙은 (北斗북두)칠성신七星神으로부터 허연 수염을 날리며 신성스럽게 그린 신상神像들을 모시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저 등신불처럼 신 본연의 모습일까?

한 때 교육계에 MBO-System 열풍熱風이 불었다. 교육을 수치화數値化하여 교육성과를 측정하는데 사용했다. 예를들면 교육시책에애국심 고양高揚이란 항목을 만들고, 구체적 사업으로 무궁화 심기, 애국가 4절까지 부르기, 태극기 그리기 등을 책정策定해서, 무궁화 심기, 전교생 300, 3그루 식재, 300% 달성, 태극기 그리기, 전교생 300, 2회 실시, 200% 달성, 이런 식이었다. 교육부에서는 이 수치통계를 근거로 전국의 학교가 100%에서 500%까지 애국심이 고양되었다고 상을 주고 잔치판을 벌였다.

교회에 게시된 예수의 초상화가 예수 본인의 모습일까? 성당聖堂의 성모의 모습은 맞는가? 후세後世에서 나무로 깎아 절에 안치安置된 부처님의 모습은 생전 석가모니불의 현신現身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신도信徒들은 허상虛像에 대고 절을 하고 기도를 드린 셈이다. 등신불의 모습이 더 실효가 있다.

신을 그린 초상화肖像畵처럼, 인성人性을 측정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한다는 논리는 기계적이다. 감정感情을 기계로 측정하려는 모순矛盾이다. 인성교육을 주창主唱하면서 인성교과서를 개발하고, 교사들에게 인성과정을 이수履修케 한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무지無知의 소치다. 기계적으로 아주 단편적인 인성을 측정할 수 있을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측정결과로 인성을 파악한다는 것은, 대학입시나 회사시험에 반영한다는 것은 인간이 저지르는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어리석음이다, 마치 나무조각상에 참배參拜하거나 점집의 신선도神仙圖에 절을 하는 것처럼 우상숭배偶像崇拜. 그래서 필자筆者는 국회의장과 시도교육감들께가훈家訓 복원復元 인성교육보고서를 보냈다. 인성교육은 머리(지식)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감성)으로 되는 것이라고 설파하면서, 바르게살기운동처럼 관주도운동으로 전개하지말 것, 일본이 명치유신明治維新 100년 동안 정직, 청결, 친절을 국민성개조운동으로 성공한 것처럼 100년을 계획하고 할 것,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시행하되 가정에서 부모들이 동참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인성은 심리검사로 측정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행동과 모범교육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92)     폐계廢鷄정권의 교육학적접근

박근혜가우리가 남이가?’라는 복집모임 경상도 7인회의 농간弄奸에 의해 정치에 입문하여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되고 방송토론을 할 때 이미 싹수가 노랗다는 걸 알아봤다. 평생 교단에서 정치에는 무관無關했으나 애초에 유신維新의 딸이라는 선입관先入觀도 있었다. 인성교육에서는 태어나고 자란 환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카터칼사건 때 병상病床에서 했다는대전은 요?’라는 짧은 말은 절제節制라고 오판誤判했다. 노무현대통령의 개헌발언 때, 나쁜 대통령이라고 한 말도 신뢰와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대통령후보 방송토론에서 유체이탈화법遺體離脫話法으로 얼버무리고, 상대후보에게 대답 한 마디 못 하는 걸 보고는 한탄恨歎했으나, 저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후보라니 내가 다 부끄러웠으나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오늘 이 꼴 이 모양이 되니 국가의 명운命運인가?

교육현장에서 많은 아이들과 만난다. 40여 년 교단敎壇에 서면 관상觀相을 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문제아問題兒, 부적응아不適應兒, 부진아不進兒들도 많이 겪었다. 대부분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아가 된다. 문제아의 배경에는 반드시 문제의 부모가 있다는 A. S. Niel의 교육이론이다. 그리고 어린시절에 받은 스트레스는 성장하면서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난다고 한다. 고무줄 탄력성이론이다. 실증적實證的으로 교육현장에서 체험했다. 그 반항反抗은 스트레스와 정비례正比例한다. 고무줄의 비유다. 스트레스가 크면, 늘어난 고무줄의 강도强度만큼 반항도 크다. 박근혜는 부모 갈등葛藤가정에서 유신維新정치를 보고 자랐고, 부모를 총탄銃彈에 잃었고, 외톨이가 되었고, 배신背信을 겪었다. 그래서 신뢰와 원칙이니 배신이니를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유체이탈화법으로 말했다. 거기에 최태민의 영세교가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여이 없는 사람이라거나우주의 기운을 접목하게 된다. 갑작스런 부모의 사망으로 스스로 고립된다. 영세교의 최태민가족 외에는 모두 배신자다. 3차 광화문 100만집회에서 중년 아주머니가박근혜는 하야下野나 퇴진이 아니라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과 판단력이 없는 공주公主로써 혈혈단신孑孑單身이 되었고, 하나같이 조아리고 아부阿附하는 박정희 유신독재시절의 사람들을 겪었는데 자신을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 의지할 곳은 오직 자기를 감싸주고 돌보아주는피 보다 진한 물에게 자신을 통째로 맡겨버렸다. 자기를 통제할 수도 관리할 능력도 없는 머리 빈 공주가 국가경영을,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재산도 대통령 이후의 노후老後도 통째로 맡겨버린 결과가 최순실일가一家의 국기문란國基紊亂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93) '한자漢字 병기倂記 환영'에 대한 반론

몇 년 전 중국여행에서,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이 맞지 않아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는데 연변에서 공중변소를 찾아나섰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공중변소를 찾아라는 가이드 말만 듣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제법 한자漢字께나 한다고 자처自處했던 터라 메모지에 화장실化粧室이라 썼는데 보는 중국인 마다 사래질이다. 그래서 변소便所라고도 쓰고, ‘칙간側間그리고 해우소解憂所라고까지 써봤으나 모두 고개를 저었다. 중국이 문맹률文盲率이 많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중절모깨나 쓴 중국인을 붙들고 메모를 보였으나 허사였다. 칸막이도 없이 판자板子쪽에 걸터앉아 이웃과 나란히 엉덩이를 들어내놓고 사용하는 민망憫惘한 칙간이 바로 엎드리면 닿을 데 있었는데 하마터면 낭패狼狽를 당할 뻔 했다. 다른 경험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광고간판을 읽어가다가 생전에 보도듣도 못한 글자를 발견하고는 혼자 끙끙거렸는데 알고보니 윗 상() 자와 아래 하() 를 위아래로 붙여놓은 괴상한 글자는 카드(Card)였다. 상황이 이런데 한자병용倂用 사대주의자들은 중국과 소통을 하기 위해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억지논리를 편다.

한자병용을 주장하는 논리를 요약하면 첫째, 우리글의 80%가 한자어이므로 한자를 써야 뜻이 통하며 한자를 모르면 이해력의 문맹이 된다. 한자어를 병용해야 한글의 표현력이 풍부해진다. 세종대왕의 어문정책도 훈민정음에서 보는 것처럼 한자병용이다. 학부모나 교사들도 7, 80%가 한자병용을 주장한다, 둘째, 비약적飛躍的인 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과 세계경제 3위의 일본이 한자를 사용하므로 한자권에 속한 우리도 한자를 써야 소통이 되고 발전도 이룩할 수 있다.

중국은 한자를 버리고 간체자簡體字를 만들어 사용한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중국학자 임어당은 생전에 한자가 망하든지 중국이 망하든지라고 한자를 개탄慨嘆했다. 중국인들의 문맹률은 95%를 넘어 지구촌 최하위다. 한자는 평생을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한다. 아무리 배우고 익혀도 간식자簡識字(배우면서 잊고), 반식자半識字(배우고나서 잊고)를 거치고나면 다시 문맹이 되어버리는 문자가 한자다. 한자 주창자主唱者들은 한자가 본래 우리글이었다고 한다. 맞다. 한자는 원래 고조선의 문자였다. 한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혁덕 신지가 사냥감 새를 쫓다가 모래에 찍힌 새발자국모양을 보고, 모든 사물이 자취를 남긴다는 원리를 깨닫고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만들었다. 이는 중국 고대유물에서도 증명되었고, 일본의 고대 구리거울에도 증거가 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로 한자는 중국문자가 되었고, 한글이 우리글이 되었다. 또한 동양 3국의 한자는 중국은 간체자, 일본은 약자略字 그리고 우리는 정자正字. 소통과 거리가 멀다.

UNUNESCO라는 기구가 있다. 유엔의 교육, 과학, 문화분야를 담당하는 국제기구다. 그곳에서 1990년을 문맹퇴치의 원년元年으로 정하고 2000년까지 글 못 읽는 까막눈을 없앤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다. 세계적으로 문맹퇴치에 공로가 큰 단체나 사람에게 세계문맹퇴치상을 주기로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상의 이름이 세종대왕상이었다. 그리고 시상날짜도 109일 한글날이었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문자가 있는데 왜 우리 한글을 문맹퇴치의 상징으로 선택했을까?

일제日帝는 식민지정책을 펴면서 문화말살정책을 전개했고, 우리나라의 지명地名을 모두 한자화했다. 마을 이름에 의도적으로 부락部落이라는 호칭呼稱을 달았다. 부락은 일본에서 백정白丁들 천한 부류部類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그 부락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화순의 너릿재 밑에 이십 곡라는 마을이 있다. 일제가 개명을 하면서 숨어있는 골짜기, 숨은 (은곡隱谷) 스무(이십)로 잘못 알아 이십곡리가 되어버렸다.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며, 황국신민皇國臣民이라 호도糊塗하며 일어日語 사용을 상용화常用化 했다. 심지어는 창씨개명創氏改名

을 강요했다. 왜 창씨개명을 강압하고 일어사용을 강요했을까? 한글에는 민

족정체성民族正體性이라는 민족혼民族魂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말글이 80%나 한자화 된 데는 지식인들의 잘못이 크다. 경찰 검찰의 조서나 판사들의 판결문 그리고 의사들의 진단서는 그들만의 문서다. 일반인들은 접근을 할 수 없다. 얼마 전에 무등산정상이 개방되어 주상절리대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주상절리대라고 이름 지어놓고는 친절하게 바위기둥이라고 해설을 했다. 하기야 강강술래를 기어코 강강순라(强羌巡邏)’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강한 오랑캐가 바다를 건너 쳐들어옴라고 한자화하는 사람들이 이 땅의 지식인들이다. 이래놓고 이해력이 쳐지니 입시생들에게 기초한자를 가르친다고 서울대학교가 법석을 떨었다. 공무원들도 한자 사대주의 부류에서 빠지지 않는다. 공문서를 보면 어려운 한자를 억지로 사용하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붙임을 구지 첨부로 써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한글은 반절半切(반나절만에 익히는 글자)이라 백성들이 쉽게 의식을 깨우치면 통치하기가 어렵다는 훈민정음 창제시대 최만리와 같은 사대주의적 통치 논리다. 프랑스는 프랑스어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외래어를 거르기 위해 푸른 소나무회라는 프랑스어정화기구가 있다. 중국도 코카콜라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중국 사대주의 한자, 일제시대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본어, 해방 후 팽배한 영어가 뒤범벅이 되어 한글은 이제 토씨만 남았다. 영어는 닭의 울음소리를 ‘Cocua Dudle Du(코커아 두들 두)'라고 읽고 쓴다. 닭 울음소리 같은가? 일본인들에게 영어를 읽어 보라면 잇토 이스 낫토(It is not)‘라고 읽는다. 한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따라올 문자가 없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찌아찌아부족이 한글을 국어로 수입했다. 찌아찌아족의 언어에는 된소리가 많아 다른 언어로는 표기가 불가능하다.

21세기에 들어 컴퓨터가 일상화되자 중국은 난리가 났다. 한자가 컴퓨터 자판화에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어도 그렇다. 그런데 한글은 마치 천 년 전에 세종대왕이 컴퓨터시대를 예견한 것처럼 여합부절이다. 컴퓨터자판의 원리와 한글 자모음의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문자의 역할은 기록이다. 문화유산의 전수傳授. 한글이 한자화가 되어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독창적이고 빼어난 한글을 두고 한글을 한자화 한 우리들의 잘못이다. 그렇다고 최남선처럼 비행기날틀이라고 하자는 건 아니다. 쉽고 좋은 한글을 구지 한자화한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래놓고 모국어에 한자어가 많으니 한자를 가르치자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한글을 더 다듬어서 세계적인 문화유산 한글을 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는 하지 않고 한자를 섞어 쓰자는 논리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영국의 고전이 라틴어므로 라틴어를 병용하자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우리 민족문화유산에서 한글만큼 빼어난 문화유산은 없다.

덧붙여 사투리(방언方言, 지방어)의 부활도 제창한다. 우리나라는 사투리가 언어 소통에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중국은 나라가 커서 지방언어가 마치 외국어처럼 말들이 다르지만 우리는 소통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국어표준화정책으로 사투리를 모두 잃어버렸다. 마치 미신을 타파한다면서 마을 상징 솟대나 천하대장군을 불쏘시개로 해버린 우매함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표준어는 말맛이 나지 않은 죽은 말이다. 감칠맛이 없다. 정감도 없다. 이에 극명한 전라도 사투리가 거시기 머시기. 사투리를 써야 마음이 열리고 정감이 살아난다. ‘다일랍딩겨(다 이를 말 있느냐)’

(광남일보 시론時論, 2014. 10/ 29일 자 김창진교수의 의견에 대한 반론反論)



(이천만의 명상록 - 94)    선거의 법칙 - 3전3패기敗記

낙선落選은 패가망신敗家亡身, 그게 선거의 법칙이다. 단 한 번만 실패해도 패가망신이 선거의 속성俗性이다. 선거에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허울좋은 호도糊塗. 실패는 좌절이고 절망이고 패망이며 파탄일 뿐이다. 칠전팔기七顚八起란 말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910기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한 사람들은 나락奈落으로 떨어져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그렇다면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희망을 줄 수는 있는가? 아니다, 그럴싸한 호도일 뿐이다. 천 명 중에 하나가 성공했다고 이 말이 공인公認될 수는 없다. 내가 치른 선거 중 다른 선거들은 워밍업Warming Up수준이었으므로 크게 영향받은 바 없었다. 연습 게임Game으로 치부해도 된다. 그러나 교육감선거는 인생을 건 승부였다. 선거비용만으로도 말년의 인생을 좌우하는 선거다. 주변의 친지親知들도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택도 없는 도전挑戰이라는 선입관 때문이다. 실상은 나도 그 선입관들을 다소 인정한 상황에서의 도전이었다. 구지 변명이라면,‘콜럼부스의 달걀쯤이라고 빗댈 수는 있을런지. 그러나 비록 실패했더라도 도전해보지도 않고 실패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 보다는 낫지 않을까?

맨처음 도전했던 대학원 학생회장선거에서는 세력에 밀렸다. 애초부터 택도 없는 선거였다. 행정학과는 60여명이며 사회교육과는 7명이었고, 행정학과 후보자는 도교육청 장학사 선배고, 나는 평교사였는데, 이리보나 저리보나 몸무게에서나 키에도 밀렸다. 선후배 간 경쟁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승리를 낙관한 행정학과 후보자참모 선배들이 부회장을 약속했으나 거부하고 순절殉節했다. 행정학과는 세를 과시하며 동료들이 선거운동을 했으나 학생수에 밀리고 벼슬에서도 밀린 내게는 우리 학과동료들조차도 탐탁치않게 여기고, 교육대학선후배 간 선거를 흘끔거리며 사퇴를 종용할 정도였으니 패배를 알면서 도전한 선거였다.

두 번째는 직접 내가 나선 선거가 아니라 지역국회의원선거 비밀참모였다. 유능한 분인데 두 번이나 고배苦杯를 마셨다. 이름 때문이었다. 호남에서는 딴나라당이 무조건 배척받는 시대였고, 설사 열세劣勢였더라도슨상님께서 한 번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선거판세가 뒤짚였다. 후보자의 동생과 가까운 사이였는데, 세 번째 도전했을 때 우연히 술자리에서 호언장담豪言壯談을 한 게 비밀참모 역할을 하게 된 동기였다. 동생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가 만나자고 해서 나름대로 서너 가지 선거전략을 제안했다.

비밀선거운동본부를 만들어 전화기를 대여섯 대 들여놓고 매일 여론조사를 했다. 무지막지하게 막고 품는 시대에 여론조사 결과를 그래프로 만들어 체크Check하고 취약脆弱지구에 선거운동원들을 집중 투여했다. 후보자도 취약지구를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조직적으로 여론조사에 의한 선거운동을 한 사례는, 30여 년 전 일이니까 선거사상 처음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전략으로 선거공보와 벽보를 쇄신刷新했다. 이 또한 획기적인 사례로 선거벽보와 공보에 후보자의 웃는 사진을 채택하였다. 그때까지는 모두 근엄謹嚴한 표정의 증명사진을 사용했는데, 특히 판사判事 출신의 후보자는 너무 근엄하다는 세평世評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재래시장의 점퍼 차림 유세 사진과 어린이를 안고 활짝 웃는 사진으로 선거공보와 벽보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은밀한 전략은 돈으로 표를 사는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돈으로 표를 사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선거구 중에서 벌교지역은 보성군 전체 유권자의 1/ 33,000명이었고, 벌교는 전통적인 야당세여서 공략이 무척 어려웠다. 전체적으로는 보합세保合勢인데 벌교의 야당세 때문에 패배했다. 절반만 건진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벌교는 아예 돈으로 표를 사기로 했다. 유권자 1,500명의 포섭자명단을 만들었다. 상대후보는 김대중선생을 아버지로 모시는 재선再選의원이었다. 포섭자명단에 상대후보의 먼 친척이 끼어있어 논란이 되어 난처한 상황이 겪기도 하였으나, 선거 이틀 전 밤 벌교의 한 여관방에서 돈봉투작업을 했다. 그런데 액수가 문제였다. 나는 한 표 매수에 5만원을 요구했는데 겨우 2만원이 배정되었다. 5만원이면 마음이 돌아설 수 있는 임계점臨界点이었으나 2만원은 껌값이었다. 2만원으로 마음을 사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졌다고 포기하고 봉투작업에서 빠져나와 광주로 올라와버렸다. 기왕 시작한 일이니 하기는 하라고 했으나 실패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취약지구였던 곳에는 중앙당에서 충분한, 쓰고도 남을만큼의 선거자금이 공급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낙선을 예상하고 돈을 챙기려 한다고 짐작했다. 이전 선거에서도 남은 선거자금을 챙겼다는 말들이 있었다. 그래도 공권력公權力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후보의 돈봉투를 막았다. 선거 이틀 전부터 상대후보의 동태動態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특히 야간에 상대편 선거운동원들의 마을 출입을 통제했다. 공권력과 청년당원들이 부정선거감시단 명목으로 마을 입구를 지켰다. 나중에 들으니 상대후보측에서는 철통같은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택시를 이용하여 운동원을 불러내서 은밀하게 돈봉투를 뿌렸고, 매수금액도 우리로써도 상상을 초월한 10만원 단위였다. 300여표 차로 낙선했다. 역대선거 중 최소 표차였다. 낙선 뒤 후보자가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왔으나 만나지 않았다. 패전지장敗戰之將 유규무언有口無言.

마지막 승부는 전남도교육감선거였다. 애초에 부부夫婦교사로써 광주 전입을 하지 않고 전남에 남았던 이유가 승진이었다. 광주는 지역교육장이 동부와 서부교육청 단 두 명이었고, 전남은 시군교육장이 24명이었다. 목표는 시군교육장이었다. 그러나 교육생애 내내 교육개혁과 비판을 주창하여 온 나를 임명제 교육장으로 발탁할 교육감은 없었다. 또 하나 결정적인 생각은 행정직에 들어가면 행정직패턴이 되어버린다는 단순한 논리 때문에 행정직을 기피했다. 그 시절 행정직에 입문入門하는 길은 도장학사의 새끼장학사가 되어 행정직에 입문할 수 있었는데 이런 도착倒錯된 생각 때문에 도장학사의 새끼장학사 추천도 거부했다. 사람에게는 일생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 기회는 중학교시절 한 방에서 공부했던 고향의 사촌형이 별 두 개를 달고 광주 31사단장으로 부임해서 우리 가족을 사단장관사로 초청한 일이 있었다. 교육감과 동문同門이고 골프코치라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는데 콧등으로 흘려버렸다. 교사로써 교육감의 발탁으로 교육청에 들어간다는 일 자체가 거북스러웠다. 한참 도도滔滔했던 기개氣槪에서 비위脾胃에도 맞지 않았다.

두 번째는 교육장을 지내고, 교육감 출마를 했다가 낙선을 한 선배가, 지난 번 선거 때 현 교육감과 연대를 해서 막강한 막후세력이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몇몇 교육장을 추천한 사례가 있었고, 교육장을 시켜주겠다고 했으나 거부했으며

마지막으로는 교육감 도전 때 현직 교육감이 내 출마를 막으려고 도장학사를 두세 번 보내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고 회유하는 걸 거절했다. 출마자에게 명함名銜이 매우 중요하다는 선거판 속성에 무지했던 게 또 하나의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면 후회막급後悔莫及, 선거세상은 정책과 능력 보다는 명함이 기초자산이란 걸 간과看過했다. 샌님기질氣質이다. 교육행정에 비판적이었지만 일단 교육장을 역임歷任하고 교육감에 도전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으리라고, 그 명함으로 전교조의 공식후보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막상 교육감선거에 뜻을 두었으나 확실한 기반基盤인 지지支持세력이 없었다. 그래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협조를 요청했다. 마침 전교조는 이 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고 전교조와 정책이 합치合致되는 후보를 공식지지하겠다고 선언을 했기에 출마를 결정하기 전에 전교조 수뇌부首腦部와 만났다. 전교조에서는 공식후원자로 지원을 받고, 나는 소외된 교장들을 포섭하는 선거전략을 세웠다. 이전 선거에서 전교조는, 지부장이었던 교사 출신 후보자를 내서, 현 교육감에 이어 선거인단 8,000여명에서 2,200여표를 얻어 당당하게 2위를 했었다. 선거인단이 보수성향의 학교운영위원인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약진躍進이었다. 1위와 단 200여표 차였다. 1차투표에서 낙선한 나머지 후보군과 연합이 성사되었다면, 연합을 해서 승리를 챙긴 당선 교육감처럼 낙승樂勝했을 것이다. 예상전략대로 순조롭게 선거전략을 펴고 있었는데 전교조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났다. 전교조는 대대로 중등이 주도主導를 했고 중등이 주류主流였다. 초등은 조합원 수에서 약세였고, 이번에 초등이 전교조지부장을 맡은 것도 초등의 약세를 보완시키려는 중등의 배려에서였지만, 초등출신 지부장은 전교조를 장악하지 못했다. 전교조가 공식지지후보를 미룬 것이다. 선거기간 동안 전교조는 시군지회장회의를 10여 회 열었다. 그러나 끝내 공식지지후보를 지명指名하지 않았다. 자체후보를 내지 못하고 전교조정책과 가장 연대連帶가 가능한, 가장 개혁적인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말을 믿은 게 순진한 생각이었고, 초등출신 지부장의 전교조 지지약속도 장악력이 없는 지부장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상대후보 참모가 찾아와 은밀하게, 이미 전교조 수뇌부와 현 교육감 간에 모종某種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므로 선거를 포기하라고 종용慫慂도 했다. 현 교육감 동문同門 도장학관이 동문인 전교조지부장을 포섭했다는 이야기였다. 돈으로 매수했다고도 했다. 설마, 마타도어라고 생각했다. 설마 전교조가 나를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현 교육감과 타협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또 전교조가 지지를 해주지 않으면 약세라서 발붙일 곳도 없겠지만, 약세나마 나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전교조지지를 못받는다고, 낙선이 뻔하다고 중반에 그만둘 수 없었다.‘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치라는 말이 있다.

전남교육계에서 나는전교조 보다 더 전교조다운 교육자로 지칭되었다. 별명이 돈키호테였다. 거기에다 출마를 포기케 하려고 감사원특별조사국이 3개월에 걸친 기획감사를 했으나 감사원이없었던 일로 하자고 항복을 했고, 충북예천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 - 기간제교사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을 때, 전교조가 살인마殺人魔로 몰려 캑! 소리도 내지 못하고 웅크리고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岐路에 섰을 때 사실을 규명糾明하며 한겨레신문에 내가 쓴 글 한 편으로 전교조를 기사회생起死回生시킨 일도 있었다. 대신 전국교장단회에서는 쫓겨났다. 진보성향의 종합지월간月刊 에서는 나를 표지인물(20036)로 선정했고, KBSMBC에서는‘100분토론의 초청인사가 되었으며, 서울의느티나무 카페에서 한 교원승진토론회에 초청되어1,000만원으로 교육장을 살 수 있다면 초등학생도 줄을 선다는 인터뷰가 방영되어 세간世間의 물의物議를 빚기도 했다. 국민일보가 벌인부정척결剔抉 원년元年 캠페인에 교육계대표인사로 자성自省의 글을 썼다가 전남도교육청의 고발로 언론중재위에 제소되는 고난도 겪었다. 유신시대, 교육 월간지교육자료에 교육을 비판한凹凸교실 - 어두운 교실을 연재하다가 청와대, 감사원, 경찰청, 검찰청, 기무사 그리고 교육청의 내사內査를 받고 사표辭表를 종용慫慂받았으며, 보성군교장회가 주도하여 교단에서 몰아내려고 하였으며,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의 시련을 겪었다. 유신시대에는 소리소문 없이 죽은 사람이 많았다. 그 서슬퍼런 유신독재시대에 겁도 없이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10만의 회원을 가진 전교조보다도 더 개혁적인 일을 했다. 그런데도 10여 회의 시군지회장회의를 거듭하던 전교조지부는 끝내 공식후보를 내지 않기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후문後聞으로는, 비공식적이지만 현 교육감과 모종의 협상을 하고 현 교육감 지지로 돌아섰다고 했다. 겉으로는공식지원 후보 없음과 전교조 학교운영위원들의 자유투표가 결의되었다고 하나 투표결과를 분석해보면 전교조의 현 교육감지지가 표로 나타난다. 전교조의 현 교육감지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낸 두 도장학관은 이후 모두 교육장이 되었다. 명분名分, 좋게 말하면깜이 안 된다는 것이라고들 했다. 내가 초등출신이요, 검증이 되지 않은 교장출신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명함名銜이 없어서다. 이전 선거에서 전교조가 참여했을 때 그들은 평교사출신 전교조지부장을 출사出仕시켰던 것과는 괴리乖離. 지금도 시도교육감은 대부분 초등교육에 생소한 대학교수들이 꿰어차고 있다. 명함名銜이다. 그래서 가끔 선거를 회억回憶하면 세 번의 교육장 기회를 내 발로 차버린 일이 후회되기도 하다. 하여튼 교육감선거에서는 8,000표 중 500여 표라는 정말 초라한 성적으로 낙선했다. 1위후보가 현 교육감이라는 대세를 예상하고 나머지후보들이 2위후보를 서로 지원하자했던, 그래서 필승하자던 약속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현 교육감이 과반수 득표를 해서 2차투표도 없었다. 그래서 전교조의 선거인단수를 감안하면 전교조가 현 교육감과의 야합野合이 추정된다.

정년퇴임하면서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칩거蟄居했다. 산방山房이나 선방禪房에 다니며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 유언遺言, 시신屍身은 대학병원에 연구용으로 기증寄贈하고, 장기臟器도 기증하며, 평소에 즐겨 입었던 옷 입혀 종이박스에 넣어 화장火葬하여 선선先山에 뿌려주라고 썼다.



(이천만의 명상록 - 95)   군대 -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도 있다. 사또 뜨고 나팔이란 말도 동의어同義語. 왜 우리는 G20이니 선진국이니 하면서도 뇌수막염 장병將兵에게 타이레놀(진통제)을 처방해서 죽게 하는가? 같은 부대에서 작년에는 통증을 호소하며 민간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한 장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만이 아니다. 올 봄 우리를 암울하게 했던 AI와 구제역口蹄疫을 보라. 천안함은 또 어땠는가? 일이 터지고나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느니 원인을 규명한다느니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떤다.

동물은 같은 잘 못을 반복한다. 그래서 농가에서 가족처럼 소중한 소도 일하러 들에 나가면 입마개를 씌운다. 쟁기질하면서 널름널름 곡식을 베어 뜯지 못하게 하려는 방책方策이다. 대책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소를 관리하는 것만도 못한 방책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사업을 시행한다. 아무리 정치가 사회분야 등급지수에서 꼴찌라지만 너무 한심스럽다. , 정치에서는 원아웃제를 실시하지 못하는가? , 공무원들에게는 예방이라는 게 없는가? 꼭 당하고 나서야 대책을 세운다고 설레발을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올 여름에는 태풍이 또 몇 개나 올지 모르겠으나, 기상청은 헛발질로 일관할 게 뻔하고,, 정부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또 수해복구水害復舊를 한다며 몇 백억의 추가예산을 세울 것이다.

교육에서 시행착오試行錯誤라는 교육용어가 있다.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경구警句. 아니다, 교육에서는 시행착오를 경계한다. 소를 길들이기가 아닌, 인간교육에서는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부정부패에 관하여 원아웃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떼같은 장병이 목숨을 잃고나서야 국방의학원이 뭔가를 논의한다고국의원들이 나팔을 분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군대에 보냈다가 졸지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고사하고 제 3자로써 분통이 치민다.



(이천만의 명상록 - 96)     노추老醜

어린시절 우리 집 앞 골목을 돌아나가면 치자샘거리가 있었는데 채왈귀신과 달걀귀신이 살아서 밤에는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낮에도 치자거리를 지날라치면 등골이 오싹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해질녁 먼 산 그림자 속 소나무 밑에 서 있는 희미한 사람 모양의 그림자를 보았다. 할머니는 귀신일 거라고 했다. 해거름에 우리 집 대문 위 호두나무 위를 가로질러 퍼런 불꼬리를 끌며 날아가는 혼불도 보았다. 할머니는 뒷간에서 내 놀라는 외침을 듣고 꼬리가 길더냐 짧더냐 라고 물었다. 길면 남자가 죽었고 짧으면 여자 혼불이라고 했다. 도깨비불이나 혼불은 공동묘지 근처에 가면 흔했다. 안개 낀 산마루에서는 방아찧는소리가 났다. 밤이면 학교 2층에서도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는데 겁 없는 총각선생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귀신을 잡으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그 많던 귀신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귀신을 TV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것 쯤으로 안다. 의례 귀신의 모습은 머리칼을 산발散髮하고 입에 벌건 피가 흐르는 모습이다. 우리 집 앞으로 무등산옛길이 뚫렸다. 무등산이 내 것인 양 자랑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걷기도 한다. 그런데 등산을 하면서 늘 같은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무등산옛길에는 유난히 노인들이 많은데 노인들의 얼굴 표정이 십중팔구十中八九 똑같다. 노인들의 얼굴에는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살아오면서 겪었을 만고풍상萬古風霜이 새겨져 있다. 젊은시절 백양사 천진암에서 만난 동굴 속에서 생식生食만 하고 참선參禪을 한다는 노승老僧80 노인답지 않게 동안童顔이었다. 그런데 등산길에서나 시내에서나 마주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는 편안함이 없다. 동안은 고사하고 지나온 세월이 얼굴에 그려놓은 덕지덕지 낀 검버섯이 뒤덮은 초라한 몰골만 보인다. 온화한 모습이 하나도 없다. 죽음을 앞에 두고 먼 길을 떠나려는 편안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초조焦燥하고 굴절屈折되고 어렵게 지나온 세월만 여러 줄 가득찬 몰골, 쫓기 듯 불안한 표정, 뭔가 부족해서 더 채우려는 욕심이 들어난 눈. 허연 머리칼을 쪽지고 은비녀를 꽂은,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할머니의 모습이 없다. 단아端雅한 부덕婦德의 상징, 할머니는 조선여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등산길 정자亭子에 걸려있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한 평생이 거기에 있다. 주름지고 쳐진 얼굴에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눈빛과 축 처진 볼. 어떻게 살아왔길레 이런 모습으로 남았을까? 너무 늦었을까? 여기에서 탈피脫皮해보려고, 아침에 일어나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고 얼굴 문지르기도 한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상태에서 오직 빛을 떠올리며 명상瞑想도 한다. 동안은 못되더라도 늙어가면서 추해지기 싫어서다. 옛 선인先人들은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헌데 80이 되어서도 방황이 심하다. 지는 꽃은 추하다. 추하게 귀신의 몰골을 하고 죽고싶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죽어가면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얼굴 매무새나마 죽는 날까지 좀 단정하게 만들어 보려고 하기는 하는데 너무 늦었나 모르겠다. 옛 선사禪師들은, 낼 갈란다.’하고 선문禪門에 들었다는데 …….



(이천만의 명상록 - 97)      반팽이모임

낙도벽지落島僻地 신안 섬에서 근무할 때 퇴근하면 습관처럼 술집을 다녔는데, 술 먹고 화투치는 일이 정례화되어 자연스럽게 반팽이모임이 생겼다. 반팽이는 전라도 사투리로 온팽이 즉 온전한 사람 대비對比의 속어俗語. 좀 모자란 사람이란 뜻인데 무지막지한 교장의 학교경영 횡포에 반기反旗를 든 교사들의 비밀결사秘密結社였다. 좀 치졸稚拙하다 하겠지만 우리는 화투성적을 기록하여 년말이면 성적우수를 가려 트로피를 수여하고 축하했다. 올해 한글날을 맞은 심정이 이와 흡사하다.

국사교과서는 유신維新독재를 산업화로 미화美化하려는 유신의 딸에 의해서 왜곡歪曲되고 있다. 유신독재 미화의 작업에 이승만 자유당정권의 독재를 정부수립이니 국가건립이니 하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로 앞세운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국민을 바보로 보는 음모陰謀. 이와 더불어 추진하는 정책이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용漢字倂用정책이다. 한글은 UNESCO 인류문화유산에 등록된 유일한 문자다. 지구상에 한글만큼 우수한 표현력을 지닌 문자가 없다. 그래서 문자가 없는 민족들이 국제어 영어를 제치고 한글을 국어로 채택한다. 50여 년 전 Reading이라는 영어책으로 영어를 배웠을 때 우리는 영어의 닭 울음소리를‘Cocea Dudle doo’라고 배웠다.‘꼬끼오 꼬꼬와 비교해보라. 한글은 컴퓨터시대를 예견豫見이라고 한 듯 컴퓨터화 된 문자다. 중국은 컴퓨터시대를 맞아 한자의 컴퓨터화에 애를 먹고 있다. 한자를 간체자簡體字로 바꿨지만 상용常用한자만 8만여 자를 컴퓨터화 하기가 불가능하다.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은 간체자, 일본은 약자略字 그리고 대한은 정자正字를 쓰기 때문에 상호 소환召還이 불가능하여 동양 3국의 문자소통은 거짓말이다. 우리말의 80%가 한자어라는 말은 옳다. 우리가 한글을 없애고 한자를 선호했기 때문이다.‘강강술래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로 바꿔놓고 한자를 배우지 않아서 어휘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자칭 지식인들 때문이다. 한글반포頒布 때 최만리가 한글을 반포하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한글을 쉽게 배워 의식을 깨우쳐 다스리기가 힘들어진다고 상소上疏를 했다. 또 종주국宗主國 중국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고 한글반포를 막으려고 했다. 한자병용론자들이 주장하는 어휘력은, 한글세대인 우리 청소년들의 실력이 세계에서 3위다. 한자병용은 한자학원과 한자교재 출판사들의 장사속에 놀아난 일부 정치가들과 국수國粹주의로 포장된 정책가들의 무지無知.

국사교과서 국정화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용론은 유신독재를 미화하려는 유신의 딸 박근혜대통령과 친일파 후손들의 트라우마의 발로發露. 반기문 UN총장이 느닺없이 찬양한새마을운동 찬가讚歌도 같은 맥락脈絡의 국민을 바보로 아는 정치적 속셈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98)    잡탕雜湯언어

세계는 지금 이야기 전쟁 중’. 맞다. 지구촌은, 모두 입만 열면 평화를 외치면서도 인간의 가장 야만적인 생태의 하나인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어디에선가는 폭탄테러나 전쟁으로 인명人命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위의 기사記事는 전쟁기사가 아니라 문화기사다. 문화기사에 왜 이런전쟁이란 용어가 사용되는 것일까?

위의 기사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처음 10년 동안에 창출해낸 수익이 300조 원인데 우리 반도체산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230조 원이었다고 스토리텔링의 문화사업 콘텐츠화를 독려하는 지역地域신문기사 내용이다. 오늘 아침 서울지와 광주지에서 얼핏 찾아낸 군대용어들은 - 기사내용은 일일이 들어내지 못하고 타이틀에서만 간추린 것인데, 대충 정치면에서 승부수勝負手, 계백장군, 파부침주破釜沈舟, 스포츠면에서 장타지존長打至尊, 도전挑戰, 미중美中 친선농구의 난투극亂鬪劇, 대구육상 기사의 난공불락難攻不落, 양강구도兩强構圖, 내부內部의 적, 용병傭兵, 문화면에서 콘텐츠 강국, 박정희가전쟁의 끝 등이 보인다. 대개 군대용어는 톤이 강하다. 침략과 방어防禦, 살상殺傷이라는 극한極限상황을 설정하여야 하는 군대제도가 군대용어를 전투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군대가 헌법정신의 신성한 의무였기 때문에 국민개병皆兵제도 아래서 군대를 마친 청년들이 사회에 정착하면서 군대기질을 전파한 것이 군대용어가 사회화된 요인이다. 그 여파로 요즘에는 언론에서도 톤이 강한 군대용어를 즐겨 쓴다. 우리는 전쟁을 경계하면서 아이들이 장난감총을 가지고 노는 것까지도 경계하면서 말이다.

법정스님은무소유無所有아름다움 - 낯 모르는 누이들에게라는 글에서, 어느 날 들른 빵집에서 엿들은 우리 누이들의 거친 말, 대화를 듣고 한탄하며 경계警戒한다. 빵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전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주고받는 나이 어린 여고생들의 욕지거리를 섞은 거친 말을 자탄自嘆한다. 요즘, 특히 학생들의 입에서 내뱉는 말은 비어卑語 ᅟᅩᆨ어俗語가 많고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난무亂舞한다. 욕을 섞어 써야 말발이 선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군대의식이다. 언어의 속성에서 경음화硬音化라는 부분이 있는데 전달의 의미를 돋구려고 하는 현상이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지고 각박刻薄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삶이 어려워지면 곱게 할 말도 욕설이 되어 나온다. 욕설은 상승上昇작용이 있어 차츰차츰 강하게 진화進化하는 경향이 있다.‘이 새끼야!’X새끼야!’로 강해지고 더 강해지면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진화한다.

이를 언론, 특히 신문이 받아들여 전파력을 확장한다. 신문용어의 언어정화는 언어사회화의 지름길이다. 우리는 모국어母國語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부실不實하다. 도이치나 프랑스는 아름다운 자국어自國語를 지키는 장치가 여러 가지로 마련되어 있고, 이웃 중국에서는 모든 외래어外來語를 자국어로 번안飜案해서 사용한다. 그런데 거꾸로 대한의 학자들은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한글은 도외시度外視하고 한자어로 조어造語를 한다. 연구논문과 법률문장이 대표적이다. 한글은, 우리의 모음母音은 유식한 지성知性의 한자어에 찌들어 있다. 기술技術용어들은 일제식민지 60여 년이 지났는데도 일본어판이다. 의료기록은 환자가 넘볼 수 없는 꼬부랑글씨 투성이다. 요즘에는 국제화를 앞세워 영어가 모국어를 몰아내고 주인자리를 넘보고 있다. 거기에다 욕설과 경음화 그리고 인터넷언어가 춤을 추니 이러다가 한글이 온갖 잡탕雜湯언어의 토씨로만 남지 않을까 안타깝다.



(이천만의 명상록 - 99)    아이디어, 기차汽車여행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봐.’ 뭔가 좀 골똘히 생각할 게 있거나 생각이 꽉 막혀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 우리는 침잠沈潛을 떠올린다. 스님들은 수행과정에서 명상瞑想을 한다.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서 몇 시간이고 화두話頭를 잡고 몰입沒入한다. 달마조사達磨祖師는 면벽面壁, 벽을 마주보고 참선參禪을 한 게 9년이다. 며칠 전, 어떤 스님의 인터뷰에서 24시간 명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찬탄讚嘆을 했다. 운동삼아 하는 내 명상은 고작 2, 3분을 넘기지 못한다. 제법 명상에 들겠다고 앉아서 단전丹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펴면 평상시에는 없었던 잡념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평상시에는 모르겠는데 명상자세를 하기만 하면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으로 화살처럼 지나간다. 불가佛家에서는 입문入門하는 과정에서 맨 처음 하는 것이 속세俗世의 인연因緣을 끊는 일이라는데 머릿속을 좀 비우려고들면 웬 집념執念이 그리 많은지. 찰라察奈를 스쳐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좀 깊이 생각할 일이 있어 무등산옛길을 걸었다. 습관처럼 터벅터벅 걷다가 나무도 좀 쳐다보고, 새소리도 듣고 때로는 불경不敬스럽게도 물끄러미 스쳐가는 사람들의 뒷태를 감상感賞도 한다. 그것도 심심하면 길에 널린 돌을 주워서 서낭당 돌무더기를 만든다. 이 아니라 옛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소원所願을 빌거나 안녕安寧을 기원祈願했던 서낭당이다. 오늘도 하릴없이 만들어놓은 서낭당에 한두 개 돌을 던지면서 걷다가 문득 어떤 과제課題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서너 달 동안 끙끙대던 난제難題였다. 느닷없이 스쳐가는 한 아이디어의 꼬타리를 잡았다. 순간, ! 이것이었나 하며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잔잔한 환희歡喜가 벅차올랐다. 가슴이 뭉클했다. 몇달 동안 밤이나 낮이나 끙끙대던 고통이 한 순간에 시원하게 뚫렸다. 그러면서 명상과 아이디어의 관계를 생각했다. 동적動的인 상황에서 아이디어가 활성화活性化가 된다.

왜 그럴까? 깨우치는 과정에서는 미동微動도 않고 침잠沈潛하는 일인데 왜, 움직이는데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더 잘 될까?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은 헛소리란 말인가? 그러고보니 작가나 예술가들이 여행을 즐긴다는 생각도 떠올랐다. 걷거나 차, 특히 기차를 타고 달리는 차 안에서 창의력이 더욱 발전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머리칼을 쥐어뜯는 건 바보라는 말이다. 모름지기 아이디어가 궁해지면 여행을 떠나라.



(이천만의 명상록 - 100)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自殺

교단의 갈등葛藤현상이 첨예화尖銳化되고 있다.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싸움이고 경영자와 교사의 투쟁이다. 우리는 사회변화가 때로는 돌연변이식突然變異式의 개혁이나 혁명으로 역사적변화를 추구하였음을 알고 있다. 점진적 변화든 획기적 발전이든 계기契機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면 어느 초등교장의 자살로 촉발促發된 우리 교육계의 갈등과 그 해법解法은 무엇인가?

<개요槪要>. 먼저 교장 자살의 개요를 - 언론의 보도報道와 독자적 수준의 이해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작은 시골 학교(교무보조나 행정실 등 차 심부름할 사람이 없음)에서 교장이 기간제교사(교장의 제자弟子)를 차 심부름을 시켰는데 교사가 반발을 했다. 그래서 교장은 보복성 수업참관(본인과 전교조 교사들의 판단)을 했고 기간제교사는 부담負擔을 못 이겨 퇴직을 했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해당학교의 전교조교사들이 부당함에 맞섰고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이 일에 개입하여 교장에게 부당함을 사과할 것과 기간제교사의 복직을 요구했다. 이 일이 인터넷에 오르고 찬반논쟁이 가열되었으며 예천군 교장단회의가 열렸고 회의 후 이틀만에 교장은 몇 장의 메모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유족遺族은 직접관련된 사람들을 고소(메모를 근거로)를 했고, 이를 기화機化로 전국교장단은 전교조를 매도罵倒하고 나섰으며 몇몇 학부모단체는 전교조의 부당한 간섭을 성토聲討하였고 급기야 해당 학교의 학부모들이 (교장을 죽음으로 몰고간)해당교사들의 수업을 받지 않겠다며 학생의 등교거부를 하고 있다. 검찰에서도 수사를 하여 협박 사실(A4 용지 4장의 메모)이 밝혀지면 해당자를 사법처리하겠다고 했다.

<시비론是非論>. 어떤 일에나 시비는 있다. 또 시비가, 특히 사회 문제가 된 일들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따져야 한다. 사외적事外的 문제지만 우리는 시비곡직을 분명하게 가리지 못한 역사적 원죄原罪(반민특위反民特委)로 사회정의를 세우지 못해 교육에서 아무리 지식적으로 가르쳐도 한 발만 사회에 나가면 교육이 무위無爲가 되는 참담慘憺한 현실을 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사소些少한 것부터 잔가지를 치고 넘어가자. 기간제교사가 교장의 제자라는 말이나 주쟁의主爭議에서 벗어난 가십적인 일들은 도외시度外視할 필요가 있다. 동정적同情的결론을 내려야할 사안事案이 아닌데 그쪽으로 몰다보면 본질本質이 호도糊塗될 수가 있다. 같은 맥락脈絡에서 전교조의 역사적 투쟁과정을 이 일에 대입代入하는 것도 호도다. 눈물을 흘리고 생계生計를 건 투쟁을 하였음은 알고 있고 교육개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공적功績으로 인정하며, 오늘도 교육현장에서 개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음도 간과看過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지치기는 객관적 시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렇다면 이 일의 시비는 무엇인가? 첫째는 교장의 잘못이다. 설사 교사가 자발적으로 차 심부름을 자원했다고 하더라도 교장이 교사적품위品位를 고려했다면 오히려 말려야 한다. 교단에는 교사의 교사로써 품위가 있다. 교장이 손수 차를 끓여 대접하고, 교감이 차를 나르는 건 품위의 손상損傷이며 ()교사가 차를 날라야 차맛이 더 좋을 것인가? 원론적으로 안 된다. 교장의 커피와 교사의 커피 대접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절대로 다시는 이런 행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전교조의 대응對應이다. 전교조는 교사가 약자弱者의 입장에서 늘 손해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체제體制의 권력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 그 현실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현장을 개선하려고 했으나 체제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오히려 거꾸로 정의로움을 발현하려는 전교조가 피해를 입었다. 최루탄이 날아오는데 맨손으로 데모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준법準法투쟁을 했는데 해직解職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사안 역시 힘없는 교사가 전제적인 교장의 권력 앞에 무력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 또한 원칙적으로 옳다. 사회적약자로써 부당한 권력 앞에 항거하지 못하고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제도적상황을 감안勘案한다면 전교조의 개입은 명분名分있는 행위이며 정당하다. 셋째, 교장단의 전교조 반성 촉구促求와 전교육부총리의 투쟁선언과 학부모의 수업 거부문제 그리고 몇몇 학부모 단체들의 전교조 파괴(이 사건을 빌미로 삼아)의 집단적인 행동은 상식 밖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비민주적행태며 반사회적反社會的행동이다. 한 마디로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은 교육계의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갈등을 부채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독립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쟁취한 주권적 시민의식과 민주적교육 기반基盤을 다시 개발독재적시대 상황으로 회귀回歸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몇몇 시민단체의 대처對處도 상식 밖이다. 우리는 정년단축이라는 정책의 실패를 벌써 망각하고 있다. 교육계 내부의 문제는 교육계에서 대화와 타협과 논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지켜보라. 황희정승적 양시론兩是論이나 양비론兩非論은 없다. 명백하고 투명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합의를 도출導出해야 한다. 때려잡기식 매도罵倒나 여럿이 합세하여 함몰陷沒시키는 집단적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사라져야 한다.

<결론>. 교장의 자살은 애석哀惜하고 참담慘憺하다.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불행한 과오過誤를 시정是正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 우리는 행복과 성적을 외치며 죽어간 중학생 그리고 새처럼 자유롭게를 부르짖으며 죽은 초등학생을 보면서도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사회적 쟁론화爭論化를 하지 못했다. 이 일을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한 계기로 만들자.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교육 대단합을 이루자. 서로 네 탓을 하며 극한적투쟁으로 교육계를 황폐화荒廢化시키지말고 위기危機를 호기好機로 전환시킬 수 있는 민족적저력底力을 발휘할 기회다. 찬반탁贊反託으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悲劇을 초래招來한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된다. 붕당朋黨 토론문화의 전통을 바로 세우자. 우리 배달겨레는 이렇게 만 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1)    체벌體罰폭력

교장이 담임을 학생들 앞에서 체벌한 황당한 사건이 알려졌다. 여선생의 엉덩이를 때렸다니, 이 건 체벌이 아니라 폭행이겠지. 교직생활 20여 년에 접어들었을 때, 우연히월간月刊 교육자료의 부록으로 딸려온 A. S. Neill‘Summer Hill School(자유학교)’을 읽었다. 이어 상전정지霜田靜志가 쓴꾸짖지 않는 교육도 읽었다. 충격이었다. 교대시절 J. J. RousseauEmil을 읽고 느낀 감동보다도 더 큰 충격이었다. 왜냐면, 에밀은 학생신분이라 감성적 독후감으로만 남았지만 자유학교는 현장경험으로 실증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학교체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진보교육감으로 불리는 교육감들이 당선되면서 학생인권과 체벌에 대한 화두話頭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허나 보수권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다. 우리는 아직도 학교에서나 가정의 체벌을사랑의 매라거나 훈육이라고 당연시하는 경향이다. 서울에서는 교육감이 연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에 대한 연수회 도중에 일부 교장들이 퇴장하는 일도 있었다. 정작 회초리가 필요하다면 매를 맞아야 하는 사람은 이들 교장들이다.

Summer Hill을 읽고 난 뒤 교실에서 매를 꺾었다. 상비품常備品이었던 매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꺾어버렸다. 대나무뿌리로 만든 매도 곧잘 부러지기 때문에 우리교실의 매는 특별히 맞춘 탱자나무매였다. 그리고 선언을 했다.‘오늘 이후 선생님에게 한 번이라도 매를 맞거나 꾸지람을 들은 학생들은 학기말 반성회에서 고발을 해라!’ 자기최면自己催眠인 셈이다.

매를 버리고 맞은 첫 번째 변화는 평안과 화평和平이었다. 마음이 편했다. 매일 일과처럼, 숙제를 안 해왔다고 손바닥을 때리고, 공부시간에 해찰을 한다며 종아리를 치고, 동무와 다퉜다고 엉덩이를 두드렸던 날카로운 감정이 부드럽고 깨끗하게 맑아졌다. 먼저 자신에게 평화와 안정이 왔다. 두 번째 변화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전에 느끼지 못한 기쁨이었다. 교사가 권위적이었을 때 아이들은 교사에게 잘 보이려고 또는 인정을 받으려고 했는데 매를 버리자 아이들이 달라졌다. 스스럼없이 기대오고 나중에는 저희들끼리만 하는 이런저런 속엣말도 소곤거렸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을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학년말에 매와 꾸지람에 대한 품평을 했다.‘한 사람도 없어요!’ 모두,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밝게 웃었다. 그 이후 동료들에게 매를 버릴 것을 권유하고, 더러는 교실에서 매를 발견하면 치우고 꺾었다. 더러 불쾌하게 생각하는 동료들에게는 경험담을 내세워 설득을 했다.

체벌은 인격적인 문제 외에 더 심각한 교육적문제가 있다. NeillSummer Hill에서 이렇게 말한다,‘체벌이나 억압은, 그 체벌의 양과 체벌의 기간에 비례한다’. 고무줄 탄력성이론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만큼 폭발력이 강하고 치유治癒기간도 오래 간다는 말이다. 교장의 뺨을 때리고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다. Neill은 허락했다. 아이는 한나절 내내 교장의 뺨을 때렸다. 점심을 먹고나서 다시 계속하자니까 아이가 그만하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때려도 때려도 반응이 없어 재미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뺨이 빨갛게 부어오르도록 수백 대 맞은 교장은 체벌 보상자補償者였다. 다른 아이는 톱을 달라고 했다. 교정校庭의 나무들을 자르고싶다고 했다. 아이는 수십 년 생 나무를 서너 그루 자르더니 스스로 포기했다. 억압에 대한 반발이었는데, 나무를 잘라도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아 싫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 내부에 잠재한 억압과 폭력에 대한 감정을 씻어내고 자율학습에 불이 붙자, 2년을 배워도 어려운 라틴어를 6개월 만에 완파했다. 강제로 주입시키는 교육과 자발적으로 하는 학습효과에 대한 차이였다. Summer Hill에서는 영국 전국에서 버려진 또는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데려다가 우등생으로 만들었다. Neill의 결론은, 체벌이나 억압은 반발을 감정이나 성격형성으로 잠재시키는데 그 탄력적 강도强度는 체벌의 양과 억압의 강도에 정비례正比例한다. 그리고 체벌과 억압은, 어떤 형태로든 언제든 반드시 나타난다. 어른이 되어서든 늙어서든, 흉악범으로 나타기도 하고, 파괴행위로 보상받기도 하며, 일탈逸脫행동으로 발산發散하기도 한다.

학생, 교사, 학부모들을 교육현장에서 만나고 함께 생활하면서 Neill의 가설假說이 진리임을 체험으로 알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체벌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논리를 무지無知의 소치라고 말할 수 있다. 체벌은 어떤 변명에도 폭력일 뿐이다. 체벌을 하다보면 습관성중독中毒이 된다. 사랑의 회초리는 없다. 정년퇴직을 하고 손자들을 돌보면서 아들 며느리에게 체벌을 금지하고 꾸짖음도 유념하라고 깨우친다. 꾸짖어야 할 때도 말을 바꿔하지마라보다는이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라거나,‘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때?’라고 생각을 변화시키라고 권유한다.‘사랑의 회초리로 행동변화가 이뤄졌다는 생각은 자기합리화다. 내면적성찰省察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 행동변화는 가식假飾이다. 일시적인 눈가림이고 모면謀免행동이다. 사랑으로 기른 아이는 자라서 사랑을 실천한다. 사랑은 마음을 사로잡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2)     태극기 게양揭揚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우리 아파트의 충실한 애국자 경비원아저씨가 오늘은 제헌절이므로 각 가정에서는 태극기를 게양하라고 방송을 했다. 오늘 아침 뿐만이 아니라 어제 밤부터 태극기 게양을 권장하는 방송을 했다. 국경일에는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정부조례나 어디에 입법화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한명숙 전 총리가 어느 행사장에서 태극기를 밟았다고 해서 물의物議가 일어나고 고소고발이 거론된 일이 있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므로 자칫 실수를 했다가는 챙피를 당한다. 이명박대통령이 운동선수를 격려하기 위해 운동장을 찾았다가 거꾸로 들린 태극기로 해프닝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誘致한 유치단이 든 태극기가 또 문제가 되었었다.

그런데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접근한다면 매국노賣國奴나 빨갱이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60년대 구호口號정치를 했다. 특히 국가안보에서 출중했다. 관공서건물 벽은 하얗게 칠을 해서 대문짝만한 구호들이 난무했다. 반공反共구호는, 지금 거론한다면 끔찍할 정도로 문구文句가 도발적挑發的이었다.‘때려 죽이자! 김일성는 구호는 건전한 편이다. 그 후예後裔답게 지금도 우리는 구호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거리에는 간판뿐만 아니라 구호들로 뒤덮여져 있다. 관공서가 앞장선다. 학교 현관이나 관공서현관에는 각종 구호가 걸려 있다. 기관장이 바뀌면 구호가 바뀌는데 그 예산만 수 억이 드는 사례도 있다. 지자체장을 선거로 뽑는 상황이 되면서 지자체장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홍보하는 방법으로 건물 앞면을 뒤덮는 홍보성 게시물을 치장하는 건 애교다.

이제 국위선양國威宣揚이나 애국심고양高揚 따위를 내걸고 경축일마다 태극기 게양을 권장하는 방송은 없어졌으면 한다. 태극기게양을 의무화한 정부조례도 개정했으면 한다. 태극기게양이 애국심을 고양한다는 얄팍한 60년대식 논리는 박물관으로 가라.



(이천만의 명상록 - 103)    장손長孫의 입학

큰 손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뒤집기도 못 한 아이를 우유 먹이며 내 손으로 키우고 돌본 아이라 감회感懷가 새롭다. 대한에서 교육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아이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염려와 우려도 이 날만은 날아가버리고 맘이 들떴다. 이름표를 달고 강당에 모인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두 병아리처럼 귀엽다. 그 중에서도 손자만 눈에 확 뜨인다.

서울음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한 폭행과 티켓 강매强賣 그리고 명품名品 선물로 사회적 물의物議가 크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 교수는 별 죄의식이 없다. 발설發說한 제자들을 회유懷柔하는 걸 보면서 우리 교육의 실상을 보는 듯 안타깝다.

지금도 그렇지만, 체벌體罰은 사회적문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 특히 선생님들은 체벌이 교육적이라고 강변强辯한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어린(미성숙未成熟) 또는 어리석은(유치幼稚) 학생은 매를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다. 말인즉사랑의 회초리논리다. 서당書堂(구식)교육에서 회초리는 교육의 수단의 하나였다. 아이를 서당에 맡기면서 아버지는 회초리 다발도 같이 들였다. 인권적측면을 떠나서 정말로 매가 교육적효과가 있는가? 아니다. 일시적 통제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오히려 그 저변低邊에서는 반작용反作用이 체벌의 강도만큼 잠재潛在한다. A. S. NielSummer Hill(자유학교)에서, 꾸짖지 않는 교육에서 말하는 교육관이다. 공연티켓을 강매하는 일은 오랜 관행慣行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티켓을 팔아야 하는 고충苦衷을 교수는 모른다. 명품 선물도 그렇다. 초등학교에서는 촌지寸志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진 선물문화 -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기 부끄럽지만, 이것 또한 폐단弊端이 크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관례慣例가 아니라 강요당하는 부조리不條理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럿이 돈을 거둬서 하는 것을 제제制裁하고 개인적으로 하라는 교수의 권유는 고리대금업자高利貸金業者와 같은 횡포橫暴.

학교에서는 교문校門을 잘 열지 않는다. 대형차大型車나 트럭이 들어올 때나 연다. 교문의 주인은 대형차다. 학생들은 어깨를 부딪칠 정도의 쪽문으로 다녀야 한다. 현관玄關의 좋은 문도 학생들은 출입금지出入禁止. 교사들 전용專用이다. 학생들은 반대편 쪽문이나 복도문이다. 교실에서도 앞문은 교사 전용이고 학생들은 뒷문 출입이다. 쉬는시간이면 한꺼번에 몰리는 교실 사정도 고려치 않고 앞문은 교사 혼자만 사용한다. 오늘날까지 학교와 교사의 권위가 이렇다. 권위를 물리적으로 확보하려는 전근대적 발상發想이 학교에 남아있는 한 교수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4)   하나님의 촌수寸數

지구촌에는 5부족部族(한단고기桓檀古記)이 있다. 얼굴색에서는 희고(백白, 유럽), 검고(흑黑, 아프리카), 노랗고(황黃, 아시아), 검붉고(적赤, 동東아시아) 그리고 자주색(남藍, 아랍) 얼굴이다. 30억 지구인들은 각기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3000개의 언어로 자기들끼리만 말한다. 성경에서는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들의 오만傲慢함을 벌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가끔 몇 억만 년 전에 대륙에서 갈라져나왔다는 중국과 대한 그리고 일본의 언어가 생판 다른 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일본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함경도 말은 알아듣기 어렵고, 이게 제주도로 가면 가히 외국어 수준이 된다. 육지에서도 산 하나를 사이에 둔 전라도와 경상도 말이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울만큼 다르다는 걸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얼굴색깔은 대륙별로는 차이가 있지만 중국, 일본과는 별 차이가 없고 동남아나 심지어는 아프리카까지 얼굴이 우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유독 세계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다. 촌수寸數. 지구촌 어느 민족이든 촌수는 가린다. 3, 43촌 하는 촌수는 세계 공통이다. 그런데 이 촌수가 먹히지 않은 곳이 한 군데 있다. 세계 모든 대륙을 점령한 기독교의 촌수다. 기독교에서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다 하나님 아버지. 부자父子 간에 교회에 앉아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다. 조손祖孫 간에도 하나님 아버지는 다름이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부자 간에도 조손 간에도 모두 1촌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5)     쟁이대회

날강도 찜쪄서 안주삼고, 화냥년 경수硬水(월경月經)받아 술 빚어 먹고, 피똥 싸고 죽을 남원사또 변학도와 사돈査頓해서 천하天下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 볼 놈’. 광주민학회民學會18돌을 기념하여 벌인욕을 살립시다난장판亂場板, 쟁이대회에서 으뜸상을 받은 작품. 욕은 강할수록 가치가 높아씨벌놈씨팔놈이 된다.‘새끼도 진화進化하여개새끼가 되면 효과가 더 높다. 대회에서는육시戮屍, 모가지를 빼서 똥장군마개로 박을 놈아!’등등이 선보였으나 별 탐탁치 않다. 감칠맛이 없다. 욕은 육두문자肉頭文字라고 점잖게 말해서는 싱겁다. 쌍소리가 되어야 맛이 난다. 그런데 그 쌍소리를 들으면 오장五臟을 지르지만 밉지 않다. 더 가파른 욕설辱說로 대꾸를 하지 못 하면 진다. 말로 싸움을 하다보면 그야말로 욕쟁이대회가 벌어진다. 민학회도 그 걸 노렸는데 싱겁게 끝나버려서 아쉽다. 왜 천하 욕쟁이들을 불러들이지 못 했을까? 아니다, 욕쟁이들이 사라져버렸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욕설이 사라졌다. 표준어정책을 펴면서 욕은 사투리와 함께 종적縱的을 감춰버렸다. 개화改化시대 미신迷信이라면서 장승을 파괴하고 무당巫堂을 없애버린 것과 맥락脈絡이 같다. 경상도에서는문디(문둥이, 나병환자癩病患者)’가 최고의 욕이라고 하는데, 전라도의 욕설은 끝도 간디 없다. 전라도 말이 최고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사태 때 청소원 아주머니의염뱅(염병染病, 티푸스)들 하네!’는 전국적으로 회자膾炙되었다. 시의적절時宜適切하고 통쾌한 한 마디였다. 해학적諧謔的이다. 은행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여직원女職員이 손님에게 뭔가를 설명하면서빼도 박도 못 한다라고 했다. 개화파改化派 김옥균이 실각失脚을 하고 일본으로 망명亡命을 하여 일본인 친지親知 집에 기숙寄宿을 했는데, 안주인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주인이 출타出他했다가 돌아왔는데 두 사람이 주인 돌아온줄도 모르고 한참 열熱을 올리고 있었다. 기가막힌 주인이 일본도를 빼들고 단칼에 죽이려고 했다. 그 때 김옥균이끝내거든 죽여라라고 했다.‘빼도 박도 못 한다는 이런 상황에서 유래由來했다. 무심코 쓴 여직원의 말을 듣고 피식 웃고 말았다가 은행을 나서면서 쪽지에 외설猥褻이라고 써서 건네주고 나왔다. 김삿갓(김병연)이 하룻밤 묵어가려고 했는데 푸대접을 한 시골 서당書堂 훈장訓長에게 읊은 시詩


서당내조지書堂乃早知 (서당은 내 좇이요) 일찍이 서당에 와서보니

방중개존물房中皆尊物 (방에는 개 좇물 뿐) 방에는 귀한 분들이 있구나

생도제미십生徒 諸未十 (생도는 지 에미 씹이고) 학생은 열 명도 안 되는데

선생래불알先生來不謁 (선생은 내 불알이라) 선생은 내다보지도 않네


라고 점잖게 읊어 희롱戱弄했다. 요즘에는조카 크레파스 18’‘이런 날씨 봐라등의 고차원적高次元的 욕설도 유행流行인 듯. 비슷한 '쩍벌녀'나 '들이댄다'는 말도 흔히 사용한다. 욕설을, 거친 육두문자만 아니라면 해학, 유모어 수준으로 사용하면 말에 감칠맛이 돌고 윤택潤澤해진다.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단 말이 있다.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쌀밥만 찾지 말고 보리밥도 별미別味이 듯 우리말에 욕설도 좀 섞고, 사투리도 재현再現하여 맛깔스럽게 살았으면 .


(이천만의 명상록 - 106)    바둑 부목판浮木盤

바둑애호가들은 바둑판에 욕심을 가진다. 그런데 나는 중년中年에 바둑 좋하는 동료들에 끼어 행자판杏子盤을 소장所藏하고 있다. 바둑은 못 두고 구경만 하는 내게 동료들은 '입만 초단'이라고 핀찬을 쏘았다. 9급級 입문入門도 못 하는 주제에 훈수訓手를 두니 언짢았을 것이다. 그러나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했는데 모욕적이지 않은가? '말로 초단'이라고 했으면 용서가 된다. 다리를 깎아 박은 게 아니라 다리까지 깍아내린 통판通版이다. 높이 약 30Cm. 다리를 깎아 박았다면 넉넉히 두 개를 만들 수 있다. 세상에서는 비자판榧子盤이나 행자판을 최고로 친다. 흔히 많은 것은 괴목槐木(피나무)판이다. 통판을 만들려면 두 아름드리는 되어야 통판이 나온다. 당시만 해도 거목巨木 벌채伐採를 심하게 단속하지 않았던 때라, 겁도 없이 동네 당산堂山나무격인 수십 년 생은행나무를 몰래 베어 통판 네 개를 만들어 네 사람이 나눠 가졌다. 금이 가지 않게 한다고 오줌통에 담갔다가 음건陰乾하기를 3, 혼자 들기도 어려운 무게를 짊어지고 대처大處의 전문가에게 맡겨 완성했다. 가보家寶로 물릴 생각이다. 헌데 바둑을 좋아하는 아이가 없으니 행자판이 임자를 만나려면 몇 대째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바둑이 체스와 같이 세계적인 기호嗜好가 되었으나 예전에 바둑은 일본의 국기國技였다. 부목판은 일본의 바둑명가名家 본인방本人坊의 가보였는데 본인방의 승계자承繼者 슈에이가 망명객亡命客 김옥균에게나는 더 이상 가문家門과 가보를 지킬 수 없으니, 김옥균 그대가 조선으로 돌아가면 이약사의 후인後人에게 전해달라고 한 전설의 명판名板이다. 이약사는 조선통신사로써 이 부목판에보이는 힘은 보이지 않는 힘만 못 하고, 보이지 않는 힘은 고요함만 못 하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묘함은 고요함에서 나온다라 새겼다. 김옥균이 암살당한 뒤 부목판이 조훈현에게 전달되었다는데, 조훈현기념관이 전남 영암에 있으니 소장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아직도 전설인지 기념관 소장품목해설에서는 기미幾微가 없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하고, 전설의 고향에서는 북두칠성을 주관하는 신선이 바둑을 둔다. 사방四方 19줄과 흑백黑白 2가지의 돌로 그리는 변화가 천변만화千變萬化이니 마치 우주宇宙 운행運行의 원리原理와 같다. 도대체 우주는 빅뱅이론에 의하면 끝없이 팽창膨脹하고 있다는데, 3차원次元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으로써는 가이없이 오늘도 팽창하고 있다는 그 이론에 상상력想像力이 멈춘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7)    저녁노을과 유서遺書

인생 60 고래희古來希라고 했는데 수명壽命이 늘어 90대 언저리까지 살고 있다. 귀밑머리가 희긋희끗해저더니 언제 70대 중반中盤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60대까지는 그래도 나이를 셈하며 살았는데 70세는 나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우리집이 무등산자락 제일 높은 곳에 있고 서향西向이라 아침에는 해가 눈앞에서 뜨고, 저녁에는 멀리 선을 그은 듯 산줄기가 가지런히 늘어선 서쪽의 지는 해를 본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눈앞 장군봉 위로 해가 뜨는 일출, 저녁에는 멀리 지평선처럼 가지런히 그려진 낮은 산줄기로 해가 지는 낙조落照가 장관壯觀이다. 초년初年에 한참 신과 대화를 열망하며 방황했던 시절에 고향의 천방산에 올라 보았던 일출의 장관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일출이 빛은 있다. 그러나 지는 해의 낙조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찬란燦爛하다. 꼭 찬란한 것만은 아니다. 낙조의 빛은 애조哀調를 띠고 있다. 그래도 혼자 보기 아까와 카메라를 들기도 한다. 변화무쌍變化無雙 천변만화千變萬化. 햇빛과 하늘 그리고 구름이 그리는 그림은 필설筆舌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것이 지는 해가 그리는 하루 여정旅程의 마지막 그림일지니 필설 자체가 무용無用. 대동강 경관景觀에 취, 산산山山 점점点点 하다가 한 수를 짓지 못하고 울어버렸다는 고사故事가 맞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뜨는 해는 단순한데 비해 지는 해에는 생각이 깊다. 2013년에 유언遺言을 썼다. 이미 2010년에 시신기증屍身寄贈을 했다.

사고사事故死의 경우 국립장기이식관리國立臟器移植管理센터(2010년 가입, 02-2276-0027)에 연락하여 장기臟器와 뼈를 기증寄贈하고, 자연사自然死의 경우에는 시신屍身을 조선대학교병원(2013년 가입, 062-230-6287)에 의학醫學연구용으로 기증하라. 두 경우 다 병원 연명延命장치로 연명하지 마라. 죽음은 형제자매에게만 알리고 평소에 즐겨 입었던 한복韓服 입혀 종이관에 안치安置하고 화장火葬하여, 고흥 구름다리雲橋 선영묘역先塋墓域에 뿌려다오.’

퇴직退職하면서 인연因緣을 끊겠다고 모임을 모두 거두었고, 산방山房과 선방禪房을 들락거렸다. 가슴만 더 비어간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8)    4대강大江 운하運河의 꿈

애초에는 운하運河를 만들 작정이었다. 네델란드나 중국 양자강을 본뜨려고 했을 것이다. 유신박통維新朴統이 고속도로로 산업화를 이루자 청계천으로 재미를 본 쥐박이가 대한大韓 대운하를 꿈꿨다. 대운하로 물류유통을 원활하게 하여 제 2산업화를 이룩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심野心이었다. 홍수洪水도 조절하여 연레적年例的으로 겪는 수해水害로부터 벗어나고, 가뭄도 해결하며, 관광觀光도 활성화되는 등 일석오조一石五鳥의 사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홍수나 가뭄은 강 하류下流의 보에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상류上流의 문제였는데 주객主客이 뒤바뀐 걸 간과看過했다. 물류物流 또한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깔린, 작은 나라에서는 부담스러웠고, 관광도 구지 배를 타야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물이 썩고,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물새가 떠나고, 수달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죽은 강이 되었다. 사업을 벌일 때만 해도, 일찍이 개발을 했던 유럽국가들은 댐을 허물고 보를 철거하며 생태계를 되살리고 있었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 - 발전과 도전挑戰이라는 표어標語를 앞세워 진행한 인류의 발전은 지구 온난화溫暖化라는 재앙災殃을 불러왔다. 남북극 빙산氷山이 녹고, 남태평양의 투발루는 물에 잠기고, 필립핀에서는 태풍颱風이 마을을 휩쓸어 마을 초토화焦土化 되고, 수천 명이 건물 잔해殘骸 속에서 무덤이 되었다. 유해遺骸 발굴을 포기하고 그냥 마을무덤으로 둔다고 한다. 해일海溢과 토네이도가 기세氣勢를 떨친다. 지구의 역사를 보면, 지속적으로 빙하기가 온다. 온난화가 수증기로 햇볕을 가리고, 결국은 빙하기가 시작되고 지구는 꽁꽁 얼어붙는다. 그 주기週期3600만 년? 그렇다면 걱정도 팔자인가? 까마득한 3600만 년 후를 걱정하다니. 그야말로 노파심老婆心이다. 학자들이 빙하기가 와도 아마존은 남는다고 했는데 글쎄 믿을 수 있는 말인지? 4대강은 보를 열어 되살리고 있지만 자연파괴의 댓가는 혹독酷毒하다. 그래도 그 덕에 우리나라는 아열대성 기후대가 되고 있다. 사과와 귤이 강원도까지 북상北上했다. 국민생선 명태는 캄차카로 올라가버리고, 제주도에서는 아열대성어류魚類가 헤엄을 친다. 파파야나 망고를 남도南道에서 재배하고, 가로수를 야자수로 바꾼다. 열대화되면 과일과 물고기가 지천至賤이어서 먹을 것 걱정 없고, 사시四時사철 단벌옷으로 가릴 데만 가리고, 해먹을 치고 살 수 있으니 의식주 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노세노세판이 온다.


(이천만의 명상록 - 109) 평등사회 - 영토, 종교 그리고 성性과 결혼제도

질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어 야단이다. 중국에서는 실적이 부진한 외판사원들에게 오물汚物을 먹이는 동영상動映像SNS에 유포流布되어 화제話題. 공산주의共産主義나 사회주의社會主義에서는 평등을 주창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崩壞되면서 공산주의는 실패한 이론으로 끝나버렸는데 북한의 협동농장과 이스라엘의 키부츠가 명맥命脈을 유지하고, 유럽은 사회자본주의로 평등사회로 번창繁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몇 십 년 간 노동자들이 굴뚝이나 타워크레인에서 몇 년씩 버티며 농성弄聲을 한다. 그러다가 촛불혁명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항쟁의 역사다. 고려시대천민賤民 만적의 난으로부터 수많은 민란民亂 - 동학東學농민혁명운동, 3.1운동, 4. 19, 5. 18, 그리고 촛불혁명, 평등사회에 대한 몸부림이다. 평등사회의 세계적인 이슈는 세 가지다. 영토, 종교 그리고 결혼제도(성性)다. 산과 강에 울타리를 치고 땅따먹기놀이를 하면서 영토領土전쟁을 일으키고, 서로 많이 팔아먹자고 미국과 중국은 무역貿易전쟁을 한다. 기독교는 유일신교리唯一神敎理로 타종교를 터부Taboo한다. 종교전쟁이다. 불교佛敎는 세상만물世上萬物이 모두 부처며, 그리스나 로마신화도 수많은 신들이 인간과 공존한다. 지구촌의 민족과 부족들의 고유신앙은 모르면 몰라도 수 만 수 십만의 신을 믿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토속신앙土俗信仰은 삼시랑으로부터 조앙신 등 수많은 신들이 있는데 기독교만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하며 다른 종교를 이단시異端視하여 전쟁과 갈등을 야기惹起한다. 종교패권覇權이다. 세상질서의 혼란에는 영토, 종교 그리고 성과 결혼제도가 문제다. 미국대통령 트럼프는 보따리를 이고 진 온두라스 이민행렬移民行列에 겁을 먹어 국경에 철조망을 치고 중무장重武裝한 군대를 동원한다. 국경을 느슨하게 하고, 미국이나 인디아의 주정부, 중국의 성을 단위單位로 국가단위를 축소하며, 국경을 없애야 한다. 종교 또한 거대화를 없애고 불교처럼 개인예배형식을 도입하고, 결혼제도는 일부일처一夫一妻제도를 완화緩和하여,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아랍), 다부일처제多夫一妻制(유목민), 동성애, 동거同居 등 자유롭게 살도록 사회가 제어制御하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사회적갈등을 야기惹起시키는 선거제도를 없애고 기관과 정부, 회사의 직제職制를 공동관리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예를들면, 각부各部 장관長官 중에서 필요에 따라 대통령을 번갈아가며 맡는 제도다. 장관도 필요에 따라 구성원의 추대推戴로 맡는다. 외교문제가 발생하면 외무부장관이 대통령업무를 수행하고, 재정문제에서는 재정부장관이 대통령역할을 하는 제도(Daum Blog 이천만의 시, 이천만의 교학대한사의 사회체제개혁 자서전自敍傳 참조). 정부 뿐만 아니라 기관, 회사들도 모두 구성원들의 추대推戴로 대표자를 뽑는 추대선거제도를 도입한다. 거대화巨大化의 패권覇權과 미시적微視的 발전의 사회화를 경계警戒해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0)     예방법 입법立法

우리 아파트에 싸이코페스(허언망상증虛言妄想症 = 조현병 + 사기꾼 + 분노조절장애憤怒調節障碍)가 산다. 분쟁忿爭을 일삼고, 관리소장에게 부정이 있다면서 고소자료로 삼겠다고 서류를 달라고 닥달을 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분쟁을 유발해서 싸움이 되면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입에 담지도 못 할 쌍스런 욕설은 다반사茶飯事, 주민총회에서 깡패처럼 깽판을 부려 무려 넉 달 동안 아파트운영이 마비되기도 했다. 자칭自稱정의正義의 사도使徒. 엘리베이터를 교체交替했는데 엘리베이터 박스가 가짜라며 염산鹽酸을 사다가 박스벽며壁面에 뿌려 박스가 시커멓게 그슬려버렸다. 하다못해서 경찰지구대를 방문하여 제지를 좀 시켜달라고 고발을 했다. 싸이코페스가 염산을 소지하고 있어 불안하니 사전예방조치를 해달라고 했다.‘집에 부억칼을 가지고 있다고 칼을 회수回收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경찰의 대답이 이랬다. 그리고 고소를 하라고 했다. 경찰은 사전조치事前措置를 할 권한이 없고, 자칫 역고소를 당할 수 있다고 회피回避했다. 올해도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통보가 왔다. 의료행위는 예방조처가 법률위반이 아닌데 경찰은 못 한다. 사람이 죽어야 그 때서야 나서서 원인을 규명糾明하고, 재발再發방지를 약속한다, 그 재발방지도 말 뿐이지만. 경찰의 예방행위가 범법이라면 법을 좀 고쳐서라도 입법이 되어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경찰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일로 재판을 해보니 경찰, 검찰, 판사의 사법권 일탈逸脫이 임계점臨界点을 넘었다. 사법부는 국민신뢰도에서 최하위권이다. 그래서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당사자들의 반발을 이기지 못 해서 유야무야有耶無耶. 공무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나 안일무사安逸無事도 일상화되었다. 제대로 된 검증檢證없이 사업을 벌였다가 국고國庫낭비가 막심해도 책임지지 않는다. 예방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 2월에 감기가 들어 약을 먹고 낫고 또 걸리고를 반복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X - Ray를 찍어보고는 별 것 아니라고 했는데, 혹시 모르니 CT촬영을 권유勸諭했다. 판독判讀결과병원균 미상未詳의 폐렴肺炎이었다. 법성法性전염병이라 보건소에 신고해야 하고 즉시 입원해야 한다고 해서 울며겨자먹기로 그 자리에서 병실에 입원했다. 매일 두 번씩 가래를 받아서 검사를 했는데 폐렴균이 없었다. 전문병리학검사실로 보냈다. 두 달이 걸린다고 했다. 2주 입원을 하고, 검사결과를 기다린다는 조건으로 퇴원했다. 두 달 뒤 검사결과는 오진誤診, 허탈했다. 그 독한 약을 2개월이나 먹으면서 고생한 일이 너무 억울했다. 입원비도, 국고國庫지만 300여 만 원이 나왔다. 건강보험의 막대한 낭비다. 그래서 보건소와 건강보험에 제소提訴를 했으나, 의사들에게 오진을 제소하면 의료행위가 위축萎縮된다고 웃어버렸다. 공무원들도 무작정 사업을 벌이고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는데 나중에 잘 못 되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법기관은 독립기관이라 면죄부免罪符가 있다. 이 게 뭔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국가제도가 필요한가? 이래서야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無政府主義者)가 되고싶다. 예방법을 입법화해서 일탈이나 권력의 횡포를 막고 국민의 인권과 생존권을 지킴으로써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특히 보호받지 못 하는 서민庶民을 위한국민감사부 창설을 국민청원했는데 별무別無 반응이라서 폐기廢棄되어버렸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1)     여성성 남성성 (치마와 팬티)

호랑이는 겨울 교미交尾철이 되면 서너 마리 수컷 호랑이들이 약 300Km 반경半徑의 자기 영역권領域權에서 암컷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어 치열熾烈하게 싸움을 벌여 최강자最强者가 암컷을 차지한다. 식물도 우성優性因子를 받아들이기 위해 열성劣性인자에게는 씨방을 닫아버린다. 어릴 때 어른들이 농담삼아 한 말을 귀동냥을 했는데, 남자는 짚 한 뭇 들 힘만 있으면 아이를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여자는 갱년기更年期가 오면 문을 닫아 걸어버린다. 남자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데 남자는 다르다. 90이 되어도 성욕性慾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이지만 70 먹은 늙은이가 손녀 딸 같은 초등학생을 성폭행性暴行 하는 사건이 세간世間의 화제話題가 되기도 한다. 여자들은 이를 두고 철딱서니가 없다고 혀를 찬다. 그래서 70 먹은 할머니가 초등학생을 성폭행 하는 일은 없다. 성 인식 자체가 확연하게 다르다. 이 걸 해결하지 않는 한, 성 문제는 인류의 항상성恒常性과제다. 공원公園의 박카스 할머니는 단순히 생계유지生計維持를 위한 돈 때문에나는 만 원이면 되는데 라고 할아버지를 꼬신다. 남성성은 자기 씨를 많이 퍼뜨리기를 열망熱望한다. 그래서 호랑이들의 싸움에는 병신病身이 되거나 죽는 놈도 있다. 남성은 아무나 누구나 어디서나를 구분하지 않는다. 시간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70이든 90이든 왕성旺盛하다. 반대로 여성은 문을 닫아버리면 끝이다. 여성의 성은 생물학적으로 오직 임신姙娠에 있다. 남성의 성도 생물학적 접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남성은 사정射精만 하면 오르가즘을 느끼지만 특히 우리나라 여성은 성교性交의 오르가즘이 60%. 구조적으로 생리적으로 여성의 섹스는 오르가즘에 있지 않다는 증좌證左. 우수優秀한 종자種子를 퍼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아무나 누구나도 아니다. 시와 때도 철저하게 가린다. 누구도 아무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선별選別하여 선택選擇한다. 우수한 남성을 선망先望한다. 그래도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지구를 지탱하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여성성을 오해하고 자기 같은 줄 알고 무작정 들이대다가 실패한다. 여성성을 잘 알면 실패가 없다.‘여난女難의 상은 대학시절 고향 가는 기차 안에서 맞은편에 앉은 노인장老人丈이 혼잣말처럼 그랬다. 그러나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살다보니 70중반中盤의 지금도 꿈에 여자가 보이면 근신勤愼을 해야 한다. 조심을 해도 소용없다. 결국 언짢은 일이 일어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웃어버리면 그 날은 파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 약이다. 물에 들어가거나 물고기를 보면 틀림없이 비가 오는 상황과 같다. 우리사회에서 청년들과 노인들의 성은, 특히 남성들의 성은 해소解消할 길이 꽉 막혀 있다. 서양에서는 춤추고 노래하며 술을 먹고 대화하는 카페나 술집이 널려 있다. 성적性的기회가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는 우리에게는 성적기회가 막혀 있다. 노래방, 카페 같은 데를 술도 좀 팔게 하고, 선남선녀善男善女의 만남의 장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 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神殿에

어쩌면 신神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隱密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興亡의 비밀秘密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後孫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族譜를 확인하고

후계자後繼者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慘酷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虛無한 동굴洞窟?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 - 임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大理石기둥의 그 은밀隱密한 신전神殿

남자들은 황홀恍惚한 밀교密敎의 광신도狂信徒들 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參拜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豊饒한 갯벌의 궁전宮殿

그, 남성의 금지구역禁止區域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千 번番의 경배敬拜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 그런 곤욕困辱이 무슨 소용所用이랴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母川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 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聖地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殉敎를 꿈군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想像해보라

참배객參拜客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門은 얼마나 적막寂寞한가?


그 깊고도 오묘奧妙한 문을 여는

신비神秘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이천만의 명상록 - 112)      노인老人건강

일흔이 넘으니 오만간데가 다 아프다. 어릴 때 방언方言으로아홉구멍이 다 뻔하신가요?’라는 우스개 인사人事가 있었다. 아홉구멍이란 눈 2, 2, 2, , 생식기生殖器, 항문肛門을 말한다. 아홉구멍이 건강하면 건강하다는 인사법이다. 그런데 70중반中盤이 되고 보니 아홉구멍이 모두 괜찮지 않아서 탈이다. 뿐만 아니라 겉과 안이 다 편便치 않다. 열심히 다니던 등산도 무릎 때문에 포기했다. 젊은시절에는 병을 이기려고만 했는데 70 늙은이가 되니 아내처럼 같이 더불어 살자고 하게 되었다. 강철로 만든 기계도 오래 쓰다보면 고장이 나는데 하물며 사람 몸이랴. 결국 오만군데가 다 아픈 병을 기생첩妓生妾 삼기로 했다. 그런 가운데 노년건강을 위해 찾은 운동이 당구撞球. 고스톱GoStop은 재미있으나 쪼그리고 앉아서 치는 것이 부담負擔이다. 허리와 무릎이 안 좋은 내게는 천적天敵이다. 당구는 소시小時쩍에 약간 배웠는데 초보수준이다. 퇴직하고 모든 인연을 끊고 선방禪房과 산방山房을 들락거리며 뭔가 좀 얻어보려고 했는데 속세俗世의 인연을 끊어버리기가 쉽지 않아 다시 무등산자락의 아파트에 들어앉았다. 그리고 인연을 트기 위해 다시 몇몇 벗들을 모아 당구를 시작했다. 당구는 전천후全天候 실내운동이고, 가벼운 걷기가 되고, 각도角度계산과 스핀 그리고 천변만화千變萬化 등 머리회전回轉의 치매癡呆예방 그리고 게임 후 맛집과 대화對話로 이어지는 과정이 참 좋다. 노인건강의 비결秘訣은 첫째 다리운동이다. 걷기가 좋다. 죽음의 외형적外形的과정은 뛰다 걷다 앉다 눕다 간다. 그래서 노인건강의 첫째 과제는 걷기다. 그러나 바깥나들이는 날씨와 연관이 있어서 제한적이다. 그래서 선택한 운동이 저넌후全天候 실내운동 당구다. 노인건강의 또 하나 필수적요소는 감기예방이다. 우리나라 자연적 수명壽命은 대강 90세다. 생리적수명은 120세다. 대개 노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감기다. 감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감기후유증으로 인한 폐렴 등 합병증合倂症이 무섭다. 그래서 온냉수욕溫冷水浴을 권한다. 생활패턴이 향상되어 샤워가 일상화되었다. 샤워 시 따스운 물과 찬 물로 번갈아가며 온냉수욕을 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젊었을 때 섬 생활을 했는데 목욕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냉수마찰冷水摩擦이었다. 바께츠에 찬 물을 길어다 수건을 적셔 방에서 냉수마찰을 했다. 그런데 섬을 벗어나서도 살아보니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이 깨득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감기를 모르고 산다. 보건소의 무료 예방접종을 무시하고도 무사하다.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우리 할아버지는 3년 중풍中風으로 돌아가셨는데, 세속世俗의 벽에 똥칠한다는 차마 보이고싶지 않은 죽음이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3년 중풍수발을 어머니가 했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가두어놓은 방문 앞에도 가지 않았다. 나도 귀향歸鄕하면 슬쩍 문만 열어보고는 말았다. 어린시절 3무녀독남無女獨男 집안의 장손長孫으로 얼마나 귀여움받고 자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크나큰 불효였지만 그 때는 그랬다. 자주 뵙는 것도 아니었는데 오물汚物도 좀 치우고 목욕도 해드렸으면 이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주자朱子 10의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그 건강한 죽음을 위해서,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할 수 없었으나 자칫 험한 꼴을 보일지도 모르는 죽음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70이 넘은 내 인생과제의 하나다, 그래서 명상瞑想도 하고, 선방禪房 산방山房도 들락거리고, 단전호흡丹田呼吸도 한다. 도력道力높은 스님들은 좌선坐禪을 한 채나 오늘 갈란다하고 죽음을 예언한다. 단전호흡의 호흡단절법이다. 예언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한 죽음, 잠자 듯 스러지는 죽음을 선망羨望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3)    전라도 사투리(방언方言)

다일랍딩겨(다 이를 말이 있겠는가)’라고 말하면 알아먹을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전라도 사람이 아니면 무슨 말인지 뚱 할 게 뻔하다.‘아짐찮이(고맙다)’는 어떤가? '군터먹는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군터먹는다는,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처럼 맛있는 것을 좀 남겼다가 나중에 먹는다는 말이다. 거기다거시기 머시기에 이르면 이 건 당최 외국어다. 경상도 문둥이는 이해 가능한데 제주도의혼저 옵서예는 오리무중五里霧中,‘오름이라는 기생화산寄生火山도 최근에야 알았다. 참 이상하다. 산이나 강 하나를 두고 이렇게 언어가 다르다니. 하늘 높이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과 맞먹으려는 인류를 징계懲戒하려고 언어불통을 하였다는데 참말일까? 애초에는 말을 통일시키면 민족 간에 나라 간에 소통疏通이 되어 갈등葛藤이나 전쟁이 완화緩和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어통일도 패권覇權이나 독재獨裁로 귀결歸結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하여튼 지구촌에 수 l0만 개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한일 간에 독도문제가 거론되면 독도라는 지명을 두고 시비是非가 벌어진다. 전라도, 특히 남도南道 고흥지방에서는이라고 했다. 나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독이란 말을 쓰는 것이 챙피해서 돌이라고 애써 고쳤다. 고향에서는 돌은 독이다. 독도獨島는 원래 돌섬 석도石島였는데 한자어로 차음借音해서 석도石島. 일본이 독자적으로 죽도竹島, 독도獨島로 사용한다. 전남 화순의숨은 곡, 숨어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한자화 한답시고이십곡리二十谷里라고 고친 넌센스와 같다.‘숨은스무, 이십으로 오독誤讀한 것이다. 지금도 전라도에서는이라고 부른다.‘할아버지하네.‘아주머니아짐이다. 한글을 반절半切이라고 하고 쌍글이라고 했던 사대주의事大主義 후유증後遺症이다. 거기에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간교奸巧하게 자행恣行된 일본화 문화말살抹殺정책의 발로發露. 거기에다 요즘에는 영어가 대세大勢. 특히 언론 방송이 심하다. 언론의 표제表題나 방송자막字幕은 축어縮語를 사용한다는 특성상 대부분 한자어고, 광고廣告는 영어투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인가? 유치원생부터 영어교육이 기승氣勝을 부리고 있다. 얼마 뒤에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으앙! 하고 우는 게 아니라 웰 컴 마마Well Come Mama라고 할지도 모른다. 법조문法條文유세차 ,‘강강술래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잔단서는 꼬부랑글이라 환자들은 볼 엄두를 내지 못 한다.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병명病名은 무엇인지, 어떻게 치료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다 학자연學者然하는 지식인들은 한자 조어造語 천재天才들이다. 공무원들은 어떤가? 길가의 보도步道를 넓히고는노견路肩, 길 어깨라 이름 짓는다. 기술용어技術用語나 전문專門용어는 일어日語나 영어다. 그래서 UNESCO 문화유산에 등록된 한글은 토씨만 남을 판이다. 국정농단弄端 폐계廢鷄사건 때 농단의 주역主役이 법정法廷에 끌려들어가면서 지껄이는 말을 듣고 청소부 아줌마가엠뱅하네라고 해서 회자膾炙가 되었다. 전라도 사투리다. 더 발전하면엠뱅 지랄하네. 엠뱅은 염병染病 장티푸스고, 지랄()은 천질天疾이다. 전라도는 우리말의 보물창고다. 음식 - 특히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 발효식품醱酵食品은 세계적이지만 더불어 말도 엄청나게 진화하였다. 언어천국이다.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독도돌섬이다. 우리 고향에서이다.‘이고,‘할아버지하네라고 불렀다. 지금은 사라져가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마을은구름다리’였. 일제가운교雲橋로 고쳤다. 주변에는 쇠섬(우도牛島), 숯개(탄포炭浦), 자문더리(잠긴다리, 침교沈橋), 배다리(주교舟橋)들이 있었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노인들은 우리말 이름이 더 익숙해서 우리말로 불렀다. 나이 먹어서일까?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언어에는 귀머거리가 되고, 방송이나 신문에서 지껄이는 언어들에게서는 소외감을 느낀다. 최현배님처럼비행기날틀이라고 하지는 못 하더라도 감칠맛 나고 정감 풍부한성(형兄)이나구름다리(운교雲橋)는 찾고싶다. 평생 입맛의 어머니 손맛 묵은 김치, 할머니가 마루방 쌀독에서 꺼내주었던 겨울 홍시처럼.


(이천만의 명상록 - 114)    재판裁判 개판 - 국민감사청 청원

억울한 송사訟事가 있으면 북을 울려라. 조선시대 태종은 대궐문大闕門 안에 큰 북을 매달았다. 평생 교단에 섰던 사람이라 경찰서문턱도 모르고, 검찰이나 재판정에 서 본 일이 없었는데 그만 아파트 일에 끼어들었다가 쌍방雙方 20여 건에 이르는 고소고발로 곤혹困惑을 치루고 있다. 세간世間에서는 경찰 검찰은 견찰犬察, 떡찰로 부르고, 판사도 떡판, 향판鄕判, 전관예우前官禮遇 등 사법 비하卑下가 듣기에도 민망憫惘하고 참담慘憺할 지경이다. 사법부의 국민신뢰도는 20여 개 기관 중 최하위인 17위 정도. 경찰조사는 컴퓨터를 놓고 마주 앉은 경찰의 심문審問태도에 주눅이 들고, 검찰청에서는 전자電子장치가 된 자동문 앞에서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고소인이거나 피고인이거나 간에 경찰서에 드나드는 것이 치욕恥辱이라는 생각은 한결같 든.‘법정이 결코 정의롭지만은 않다.’평생 교단에서 옳고 그름을 확연하게 분별하였던 사람이 판사의 태도에 분개憤慨하여 법원상담실을 찾았더니 법원에서 30여 년을 근무했다는 상담사가 한 말인데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몇 번 법정法廷을 들락거리며 정의롭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진위眞僞를 떠나서 경찰은 어떤 연유에선지 사건을 은폐隱蔽, 조작하고, 검찰은 수사재지휘권으로 조작을 서슴치 않고, 판사는 독립기관이라는 구실로 아무 거리낌없이 판결을 자의적恣意的으로 재단裁斷을 한다는 것에 참담慘憺했다. 그래서 항고해봤자 번복飜覆은 가물에 콩 나기다. 동일체의식同一體意識으로 뭉개버린다. 상고법원을 계획할 정도로 일에 묻혀있는 대법원은 법리심리만 하면서도 비명을 지른다. 웬만한 사건이 아니라면 사실심리는 엄두를 내지 못 한다. 3심제도가 헛깨비다. 법정은 정의正義의 여신女神 디케Dike가 저울을 들고 있는 그림 앞에 판사判事가 법복法服을 걸치고 근엄謹嚴하게 높은 법대法臺 위에서 재판정을 내려다보며 신성神性한 판결을 내린다. 법대 아래 사람들은 피의자건 방청객이건 자세를 단정히 하라고 법정정리法廷廷吏가 주의를 준다. 다리를 꼬고 앉아서도 안 되고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도 안 된다. 뽀시락거리는 소리까지도 제지 당한다. 자칫 법정모독죄冒瀆罪로 몰아 감치監置나 퇴장이다. 그렇게 스스로 신성한 법정이 정치적인 이유로 사형死刑을 선고해서 선량善良한 국민을 사형대死刑臺로 보내고, 혹은 돈 많은 회장을 비호庇護하기 위해 하루 1원의 황제노역형皇帝勞役刑을 판결한다. 애꿎은 서민만 법정의 봉이다. 돈만 있으면 옛말에도 호랑이수염도 뽑아 올 수 있다고 했다. 용서 못 할 악랄惡辣한 범죄犯罪를 저질렀던 조폭組暴들도 죽어가면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외쳤다. 또 하나 근본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 있다. , 구지 판사는 5년 형을 선고宣告하고, 변호사가 붙으면 5년 형이 2년 형으로 감형減刑되어 집행유예執行猶豫로 풀려날 수 있을까? 보석保釋은 또 뭔가? 미리 형을 깎아주기 위해 검사가 거품을 채워 5년형을 구형求刑하고, 판사가 3년형을 선고宣告하면, 변호사가 메주알 고주알 변론을 해서 2년으로 감형을 받아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그렇다면, 검사와 판사는 이를 미리 눈치채고 형량을 높였다가 슬며시 양보하는 형식을 빌어, 변호사의 체면體面을 고려해서 집행유예執行猶豫로 낙착落着이 되는 건가?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도깨비도 있다. 어차피 판사도 퇴직하면 변호사로 살아갈테니까 서로 짜고치는 고스톱GoStop인 셈인가? 서민庶民들은 선임비選任費가 없어 변호의 근처에도 가지 못 한다. 그래서 서민을 대변한답시고 국선國選변호사제도를 도입했는데 내가 겪은 국선은 법정에서 재판장의 물음에 예, , 예 대답 세 번으로 재판을 마쳤다. 출석 자체가 낭비다. 사법농단司法弄斷이 어찌 대법원뿐이랴. 사법농단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적 치외법권지대治外法權地帶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법정을 드나들면서 또 하나 눈 여겨 본 것이 있다. 유독 드나드는 사람들이 몰골이 모두 한결같이 꾀제제한 서민들이란 것이다. 하기야 돈 많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변호사를 사는데 남사스럽게 법정을 드나들 리가 없지. 이들은 사법기관의 횡포에 맞설 빽도 돈도 없다. 이를 어찌 해야 할까? 경찰조서는 수사검찰이 지휘권指揮權으로 조작造作하고, 공판公判검사는 이를 인용引用하여 구형求刑을 하고, 재판장은 이를 근거로 정의사회를 모토Moto로 범죄행위를 처단處斷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법권의 신뢰도는 최하위다. 더불어, 항고심은 원심原審의 답습踏襲이며, 대법의의 상고上告는 법리심리法理審理라는 명분名分으로 사실事實심리를 하지 않는다. 아파트분쟁으로 몇 건의 재판을 했는데, 평생 교단에서 옳고 그름을 가르쳤던 사람으로써 경찰검찰의 수사농단弄斷, 결코 정의롭지만 않다는 판사의 자의적 판결, 그 사법권의 횡포橫暴에 기가 막혔다. 그러나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법정은 일사분란一事紛亂한 동일체同一體이므로 항고하고 상고해봤자다. 결코 정의롭지만 않다는 법정을 실감했다. 오죽했으면 다시 교단에 선다면 법정을 믿지 마라 라고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했을까. 촛불정부가 들어서자 사법개혁을 하겠다고 안안팍으로 야단이다. 그러나 셀프Self개혁은 개 지붕 쳐다보기고, 밖에서의 개혁도 지지부진遲遲不進이다. 사법개혁은 연목구어緣木求魚. 왜냐면, 우리나라의 사법일탈逸脫은 구조적 체제적이기 때문이다. 싹 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아닌 한 개혁은 헛나발이다. 세계적으로 공인共認된 우리나라 부정부패비리는 사법기관의 일탈에서 비롯되고, 그래서 국민감사청 창설을 국민청원國民請願했으나 무심無心한 시민들의 호응呼應이 없어 폐기廢棄되어버렸다. 사법기관과 권력기관의 환골탈태換骨奪胎 없이 우리나라의 선진국先進國은 무위無爲. 민주주의도 평등사상도 다 개나발이다.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恒産恒心), 일찌기 맹자孟子가 갈파喝破한 말을 되새긴다.

 

<국민청원 주제> : 국민감사청 창설


1. 국민감사청 창설 이유

사법부의 일탈이 고착화固着化 되어 임계점臨界點을 넘었으나 구조적으로 사법개혁은 불가능하다. 사법기관을 믿지 못 한다. 법원 30여 년 근무 상담사는 법정이 반드시 정의롭지만은 않다고 자조自嘲했다. 본인도 다시 교단敎壇에 선다면 법정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겠다. 평생 경찰서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아파트분쟁 20여 건의 고소고발을 당하여 사법기관의 농단을 겪고 절실한 심정으로 한 제안提案이다. 사법부의 법정농단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부패공화국으로 만들었다. 특히 서민의 권익權益은 사법권으로 보호받지 못 하고 유린蹂躪당하고 있다. 또한 법적투쟁에는, 길게는 10여 년도 넘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소송 당사자가 죽어버린 다음에 판결이 내린다. 약식사건은 3개월 안에 판결이 되어야 한다.  

2. 국민감사청 창설 목표

. 대한민국의 선진국화 - 핀란드, 네델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같은 민주 자유 평등 복지국가 추구追求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중학교 내 두 손자가 살기좋은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지향

3. 국민감사청 창설 방법

. (중앙기구 없는) 지자체별 독립기구, 변호사 회계사 등 법률전문가와 시민으로 구성된 순수 민간단체

. (준)사법기관 : 감사監査, 수사搜査, 처벌권處罰權, 서민신문고 역할, 서민의 대리인代理人(변호사) 역할, 현행 약식略式재판 기능, 중요사건은 사법기관 이양移讓

. 국민감사청 창설로 감사원, 정부기관단체와 사회단체의 자체감사기구 축소, 경찰, 검찰(경찰 병합 고려), 법원 등 사법기관 역할과 조직 축소 폐지 등 자율적 조정, 고용 확대, 예산 절감


(이천만의 명상록 - 115)   마법魔法의 맛 - 홍어와 두리안 

겨울철 얼린 홍시를 먹어봤는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홍시를 싫어한다. 홍시 맛을 모른다. 얼린 홍시 보다 더 맛난 홍시는, 마루방 쌀독에 갈무리한 겨울 홍시다. 우리집에는 감나무가 널려 있었다. 집안에만 고목枯木이 여나무 그루, 앞산 선산자락에는 감나무과수원이 있었다. 할머니가 제사에 쓰려고 저장한 홍시를 가끔 꺼내주었다. 군청감이라고, 군청郡廳에서 감나무묘목苗木을 배부해서 심은 파시다. 쌀독에서 홍시가 되면 껍질이 반지처럼 얇아 바람만 닿아도 터질 것 같고, 입으로 쪽 빨면 물처럼 빨려들어온다. 찬 기운이 더해져서 더 달다. 혹 서리 맞은 까치감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 그 단맛은 설탕과 다르다. 꿀맛과도 다르다, 당연히 초코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뭐라 형언形言할 수 없는 오묘奧妙한 단맛이다. 마치 우리 야생화와 열대화 비교 수준이다. 우리 꽃은 작고 초라해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정감情感이 있다. 향기도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하다. 열대화나 서양꽃들은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색상色相이 다르다. 서양꽃이나 열대화가 원색적原色的이라면 우리나라 꽃은 3차색이다. 향기도 달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독하다. 야생화는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고, 향기도 나는 듯 아닌 듯 은은하게 코끝에 닿는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 부임赴任하면 맨 먼저 우리 꽃 야생화화단을 가꾸었고, 우리나라 야생화만 심었다. 연못이 아닌 둠벙도 만들었다. 물줄기를 잡아 포크레인으로 한 입 뜨고 그냥 놔두면 자연이 스스로 둠벙을 만든다. 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고, 잠자리가 이사온다. 씨멘트는 물론이고 돌담도 쌓지 않은, 자연스레 만들어진 둠벙, 시간이 가면 스스로 둠벙이 된다. 이와같이 입맛도 어린시절의 입맛이다.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진 김치맛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김치맛이 집집마다 다른 이유다. 할머니는 겨울철이면 식혜를 담궈서 큰방 봉창封窓 밑에 두었다. 눈을 뜨면 잠옷 바람으로 눈을 비비고 식혜부터 찾았다. 도가니에 얼음이 살짝 깔려 얼린 식혜 맛을 누가 알랴? 목줄을 타고 내려가는 냉기冷氣에 얼린 단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향집 감나무에 농약을 치지 못 하게 하고, 가을철이면 군청감을 두세 박스씩 따다가 베란다에서 홍시로 익혀 하루 두세 개씩 먹는다. 먹고도 남으면 냉동실에 얼려 여름철에 아이스크림 대신 먹는다. 식혜는 대가 끊어져 가끔 사다 먹는데 옛맛을 잃었다. 할머니는 유난히 횟감을 좋아하였다. 유둔장날이면 어머니에게 쌀 됫박을 이어서 안산머리에 해가 뜨기도 전에 장판으로 내몰았다. 특히 여름철에 날이 더우면 생선이 쉬 변하기 때문에 해가 오르기 전에 생선이 도착해야 했으므로 어머니는 오직 싱싱한 생선을 사러 5일장 나들이를 했다. 원래 고향 구름다리(운교雲橋)가 남해 보성만寶城灣 바닷가여서 굴, 꼬막, 반지락을 먹고 자랐지만 횟감만은 유둔장에서 조달調達했다. 그 횟감을 밥상머리에서 얻어먹고 자란 탓에 나도 회 마니아Mania. 근무했던 남해안 순천, 여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바다생선 맛고장이고, 젓갈 등 발효醱酵식품의 원조元祖. 양념게장이나 간장게장은 생각만으로도 침이 넘어간다. 서대회나 구은 군풍생이 맛도 일품逸品이다. 광어, 민어 그리고 도미 같은 고급어종高級魚種은 내 입맛에는 없다. 홍어삼합三合(삭힌 홍어 + 묵은 김치 + 삶은 비계 돼지고기)이 내 입맛의 주류主流. 남도南道 해안海岸 맛고장에서 근무한 나는 입맛에 관한 한 축복받은 사람이다. 동남아시아의 최고 과일은 두리안이라고 한다. 헌데 맛을 알지 못 한 사람들은 두리안의 썩은 냄새에 지레 질려 먹을 엄두를 내지 못 한다. 그러나 한 번 입맛을 붙인 사람들에게 두리안은 천도天桃복숭아 같은 천상天上의 맛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공수空輸해서 먹었을 정도니 한 번 맛을 보면 끊지 못 하나보다. 아마 전라도사람들의 홍어 예찬禮讚과 같은 범류凡類인 것 같다. 홍어는 삭힌다. 옛날에는 두엄 속에 묻었다. 두엄자리가 어떤 곳인가? 그 속에 홍어를 넣은 항아리를 묻어두었다가 한 열흘만에 파낸다. 홍어가 푹 삭어서 내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잘 삭힌 홍어를 한 점 베어물면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져버린다. 이런 음식이라 맛을 모르는 사람은 기겁을 한다. 두리안도 유럽의 호텔 등지에서는 반입搬入불가품이라지만, 만약 홍어를 비행기에 싣는다면 그 냄새로 비행기가 요동搖動을 치거나 비상착륙을 해야 할거다. 그러나 한 번 입맛을 들이면 결코 잊지 못한다. 마력魔力이 있다. 마법魔法의 맛이다.  늙어가니 입맛이 까다로와진다. 입맛이 없다. 먹지 못 하면 죽는데 갈수록 입맛이 까타롭다. 그래서 음식을 주관主管하는 아내에 대한 관점觀點이 바뀌었다. 교육용어에 각인刻印이라는 말이 있다. 오리는 알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오리알을 닭 둥지에 넣는다. 닭은 오리알인지 달걀인지 분간을 못 하고 달걀 보다 며칠 더 품어 알을 깬다. 알에서 깬 오리새끼는 닭이 제 어미인줄 알고 졸졸 따라다닌다. 눈 뜨고 처음 본 게 제 어미다. 여자를 보는 내 눈은 20대에서는 얼굴, 30대에는 자식, 40대는 동행同行이라고 혼자 설정設定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요리料理가 최고의 가치로 대두되었다. 60대 이후 현모양처賢母良妻는 요리料理 잘 하는 여자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6)    동거혼同居婚

결혼은 해도 후회後悔하고 안 해도 후회할 것이다. 도이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했는지 또는 아내의 잔소리 후 물벼락을 맞으면서, 천둥이 치드니 소나기가 오는군이란, 악처惡妻로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말했는지 아리송하다. 그러나 말은 맞다. 시집가면 시댁媤宅 귀신鬼神이 되어라는 옛말이 되었다. 유교적儒敎的 명훈明訓이 뼈에 스민 우리나라마저 이혼율이 10%대에 가까우니 격세지감隔世之感. 우리집에서도 막내가 막무가네다. 나이 40이 넘었는데 좋은 혼처婚處를 내밀어도 고개를 흔든다. 이유를 모르겠다. 결혼 안 하려면 좋다, 그러나 결혼 할 바에야 빨리 하는 게 옳다고 몇 년 동안 설득하다가 이제 포기했다 (니 인생 니 맘대로 해라). 내 결혼은, 좀 거창巨創한 표현을 빌면 정략적政略的이었다. 집안이 한창 망해가는 판에 이 것 저 것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우선 거지꼴로 나앉아야 할 형편을 추슬러야 했다. 잔밥에 싸인 10남매의 동생들과 연로年老하신 할머니가 거리로 나앉을 판에 형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동네부자였던 논밭과 5개의 산판山坂을 헐값에 넘겼다. 죽으려는 팔자였는지 연 이태 가뭄이 들어 소출所出이 나지 않고, 년 이자 50%인 장리長利빚은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늘었다. 장리빚은 올해 쌀 60가마니 빚이 내년에는 90가마니로 늘어난다. 2 - 3년 묵히면 가산家産 전체가 넘어가는 무서운 빚이다. 법대法大를 포기하고 1년을 묵어 교육대학을 지망한 것도 다 망해가는 가세家勢 때문이었는데 외벌이로는 가세를 지탱하기 역부족力不足이었다. 그래서 부부夫婦교사를 선택했고, 마침 동료同僚 9명의 처녀處女들 중에서 아내와 결혼했다. 연애戀愛도 아니고 중매中媒도 아닌 자수성가自手成家였다. 여자는 다 똑같다는 건방진 생각이었다. 그래서 아홉 명의 처녀선생님들 중에서 점을 찍어 구애求愛를 했다. 연애 암흑暗黑시대라 족벌처가族閥妻家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식장도 내가 정하고, 결혼일도 정해서, 청첩장請牒狀우리 결혼했습니다라는 알림장으로 대신했다. 어려운 성사成事를 겪었기에 종교기관에서 식을 올리고 싶었는데 읍내 천주교회당은 신부神父가 출장가서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말에 포기했고, 마을교회는 신자信者가 아니라고 장로長老들이 거부했다. 결혼주례 퇴짜를 맞고 천주교회 정문正門을 나서는데 그 해 첫눈이 내렸다. 읍내 사진관을 빌렸다. 혼수婚需도 없었다. 입던 옷 입고 구두 한 짝도 새로 사지 않았다. 평생 넥타이를 매지 않았는데 주례主禮를 부탁드린 교장선생님이 오늘은 매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같이 온 사모님께 부탁하여 생전 처음 넥타이를 맸다. 넥타이는 목을 조여오는, 마치 소코뚜레 같아서 평생 기피忌避했다. 그렇게 한 결혼인데, 초년初年에는 빚 갚느라고 여유가 없다가 한 10여 년, 빚도 갚고 살만해지자 아내의 결점缺點을 참지 못 했다. 시댁媤宅 비하卑下가 치명적致命的이었다. 남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이웃 남편과의 비교 그리고 시댁 비하다. 시댁을 거지집안으로 취급하고, 여순반란麗順叛亂 후 군경軍警의 혹독酷毒한 고문拷問으로 정신분열증을 앓던 부친을 미친 사람으로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무시하고, 애시당초 시댁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 세월, 나이 70 중반임에도 살아갈수록 성격차性格差가 누적累積되어 지금은 동거수준으로 살고 있다. 결혼 후회가 아니라 아내와 결혼을 후회한다. 배꼽을 물어뜯고 싶지만 후회막급後悔莫及, 조강지처糟糠之妻 불하당不下堂이 이 시대에도 건재健在하는가? 아니다, 내게만 해당된다. 성격은, 더구나 혼기婚期를 앞둔 처녀의 성격은 도색塗色되어 있다. 거짓말탐지기探知機가 있었던 때도 아니고, 정신과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서로 주고받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일인지 모른다. 또 조선시대처럼 양가兩家 사이에 중매中媒장이를 두어 가문家門을 살피고 행실行實을 가늠하면 모르겠다. 되돌이켜 보면, 중매中媒결혼 만큼 현명한 결혼제도가 없다. 즈그들끼리 만나 연애결혼을 하는 것은 위험을 수반隨伴한다. 눈에 씌운 콩깍지가 떨어지면 밀월蜜月도 끝난다. 프랑스에서는 동거同居가 일반적이다. 싸르트르와 보봐리처럼 계약契約결혼도 추천한다. 결혼해서 살다가 성적차性的差, 성적차性的差로 이혼하는 것 보다야 백 번 낫다. 서양처럼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식 카페 말고 서양의 카페, 주점처럼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 노래방이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또 다른 문제는 오늘 우리나라의 선남선녀善男善女50%가 결혼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데 있다. 정부에서는 출산장려금을 주고, 아파트도 준다고 하지만 결혼하면 밥하고, 빨래하고, 맞벌이를 감수하며 남편 치다꺼리 - 거기에다 덜컥 임신姙娠이라도 하면 망가지는 몸매와 달라지는 생활패턴은 남자인 내가 상상해도 너무 끔찍하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7)      맛멋여행

여행을 꿈꾸었다. 우리시대에는 집 한 채 갖는 것이 일생의 과제였는데도 나는 평생여행을 계획했다. 애써 마련한 집을 팔아서라도 여행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부부교사들로 여행모임을 만들어 유럽, 동남아, 미국 등지를 돌아다녔다. 지구촌 200개 나라는 다 못 가보더라도 6대주는 섭렵하고 싶었다. 지구에 태어났으니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한 번 봐야한다는 생각이었다. 2 - 3년에 한 번씩 여행비를 적금해서 계획대로 여행이 잘 추진되다가 중남미와 남미여행에서 펑크가 났다. 회원 한 명의 어머니가 편찮아서 나라를 멀리 뜰 수 없어 그만 파토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마간산走馬看山이지만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렐리아 바람은 쐤다. 아프리카, 중남미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인디아는 포기상태다. 젊어서는 외국, 그리고 나이들면 우리나라를 여행하겠다던 원대한 꿈이 사라졌는데 미련을 버리지 못 해 또 다시 맛여행이라는 부제副題를 붙여 소생蘇生했다. 전남 목포에서는 세발낙지를 먹고 유달산에 오르고, 강릉 경포에 가면 한치물회를 먹고 동해일출이나 노을을 감상한다는 계획이다. 고등학교 고문古文교과에서 동명일기東溟日記(조선朝鮮 후기後期 의유당意幽堂이 지은 순 한글로 된 기행수필紀行隨筆)의 일출日出을 교재敎材로만 별 감흥感興없이 읽었다가, 과의 대화對話를 기원祈願하며 방황하던 때 고향 최고봉最高峰 천방산에서 본 일출日出은 천지창조天地創造 바로 그것이었다. 일출은 바다를 배경으로 보아야 한다. 노을도 그렇다. 하늘과 바다가 맞물린 수평선水平線의 낙조落照는 처연悽然하다. 시시각각時時刻刻 변화무쌍變化無雙한 노을의 구름과 하늘은 천변만화千變萬化 -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인생을 그리는 그림이다. 여행은, 설문說問조사에서 연인戀人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인류가 소망하는 최고의 휴식休息이다. 기차나 버스를 타면 아이디어가 생성된다. 아마 윤동輪動하는 상황이 두뇌회전頭腦回轉을 촉진促進하는 것이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여행은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디어의 보고寶庫, 노년老年에는 치매癡呆 예방효과도 있다. 거기에 향토鄕土의 맛을 곁들이면 금상첨화錦上添花. 그래서 운전을 하기에는 좀 걱정스럽지만 슬슬 차를 데리고 맛과 멋을 찾아 떠날 요량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7)        똥과 대변大便

똥이라고 하면 웬지 천하다. 입에 올리기 싫다. 대변이라고 해야 점잖다. 직장암直腸癌수술을 하고나서 똥의 귀중함을 알았다. 냄새가 고약하고 거론조차 꺼렸던 것이 건강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사극史劇에서 어의御醫가 임금의 똥을 살피고 더러는 맛을 본다고 하여 기겁을 하였는데 요즘에는 용변用便을 하고는 반드시 똥의 색깔을 의학적 건강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섭생攝生을 잘 하면 통통한 황금색黃金色이다. 음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시커먼 색깔은 적신호赤信號로 본다. 그런데 왜 똥이라고 하면 천하게 들리고 대변이라고 하면 유식有識하게 들릴까? 순수한 우리말이 천하게 낮아지고 한자어가 귀족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다. 우리말이 본래 천한 말이 아니었을텐데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글 창제 당시 사대부 양반들은 한자어를 사용하였고 일반 백성 - 상놈들에게만 한글 사용을 권장했기 때문에 한글이 천한 글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이()은 천하게 인식되고 치아齒牙가 대세大勢. 국민(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표준말을 알고는 우리말이 촌스럽게 느껴져서 사투리(방언方言)를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반드시 한글표준어정책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감語感의 차이일까? 아니다, 어감이야 순수 우리말이 몇 배나 정감있고 친근하다. 남도南道 고향이름은 운교雲橋보다는 구름다리가 더 좋다. ‘보다 이 더 정감있다. 그런데 눈입코병원病院이 아니라 이비인후과병원耳鼻咽喉科病院이다. 후자後者가 더 있어 보인다. ‘똥구멍병원이라고 간판을 달면 환자들이 탐탁해할까? ‘항문외과肛門外科라고 해야 품위品位가 있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는 궁중宮中언어가 따로 있었다. 임금얼굴은 용안龍顔, 식사는 수라였다. 음식 먹는 건, 잡수시오가 젓수시오다. 언어는 소통이 중요하지만 국민성의 표현이다. 표준어는 말맛이 없다. 기계적이다. 경상도에서는 문디(문둥이, 나병환자癩病患者)라고 욕을 해도 농담이나 익살 정도로 치부하고 거부감이 없다. 경상도사람의 정감情感이다. 그러나 전라도에서는 나병이 천형天刑의 병이기 때문에 문둥이라고 하면 바로 주먹싸움으로 번진다. 표준말정책을 펴면서 사투리를 방언方言이라고 폄훼貶毁하여 사라져버렸는데 다시 살려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갈라놓은 지역적 분열分列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여튼, 젊은시절에는 구지 애쓸 것 없고, 어의御醫가 없어 임금처럼 맛까지야 어렵지만 나이들면서는 건강의 척도尺度, 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기적, 긁고 힘차게, 황금색이면 건강은 만사형통萬事亨通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사소些少하게 생각하는 감기가 위험하다. 감기는 무섭지 않지만 폐렴肺炎 등 합병증合倂症이 무섭다. 그래서 온냉수욕溫冷水浴을 권한다. 샤워할 때마다 온수와 냉수로 번갈아 샤워를 하면 감기를 모르고 살 수 있다. 섬 생활을 하면서 목욕이 어려워 냉수마찰冷水摩擦을 한 것이 버릇이 되어 평생 온냉수욕을 했고 평생 감기를 모르고 살고 있다. 노인들에게 무료로 하는 예방접종도 맞아본 일이 없다. 온냉수욕이 면역력免疫力을 키웠다. 온냉수욕은 온수 냉수를 번갈아 하되 냉수는 심장心腸을 피해야 한다. 손끝 발끝에서 시작하여 몸의 중심부로 옮겨간다. 두 번째로 실내자전거타기 - 허벅지근육을 키워야 면역력이 증가되어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허벅지근육은 우리 몸의 면역력의 80% 정도를 담당한다. 실내자전거운동을 할 때는 반드시 일어서서 타야 한다. 똥의 관찰이 예방적 의료행위라면 온냉수욕과 실내자전거타기는 건강수명의 첩경捷徑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119)     식도락食道樂 - 고향의 맛

고향 구름다리(운교雲橋)는 남해안 보성만 바닷가다. 썰물이 되면 갯벌이 들어나고 온갖 바다생물들이 살아난다. 어른들은 물때를 맞춰 바다로 나가 굴, 꼬막, 반지락을 잡았다. 바다갯벌도 개인소유가 있고 마을공동밭이 있었는데 공동밭은 굴밭이고 밀물썰물의 격차가 가장 긴 날을 잡아 공동채취採取 - (갯밭)를 텄다. 개를 튼 날에는 어른들이 모두 쪼시개(굴 까는 도구)를 들고 바다에 나가 하루 종일 굴을 깠는데, 그 절반은 마을에 내놓았다. 해거름이 되어 여자들이 바다에서 돌아오면 동각 청지기 신센()이 동네 어치(동네 몫)을 커다란 나무통에 받았다. 막걸리를 준비해서 기다리던 어른들이 굴회를 쳐서 막걸리를 마셨다. 아이들은 근접도 못 하게 했으나 굴이 먹고싶은 아이들은 싸리대를 굴통에 푹 찔러 꽂아 걸린 굴꼬챙이를 들고 튀었다. 굴을 다 먹고는 다시 어른들의 호통은 아랑곳 않고 또 굴꼬챙이를 꽂아 굴을 훔쳐 먹었다. 도둑질한 음식은 더 맛있다. 시장에서 참꼬막은 한 접시 여나무 개를 놓고 만 원이다. 어린시절 입맛이라 간절하지만 살 엄두를 내지 못 한다. 불과 30여 년 전 교직敎職 때만 해도 친목배구親睦排球파티 때 고흥高興꼬막 주산지主産地 선정마을에서 참꼬막을 두세 푸대(한 말들이 자루)를 얻어다가 큰 가마에 삶아 산처럼 통째로 부어놓고 밤 새 막걸리를 마셨는데 이젠 옛말이 되었다. 추어탕은 가을 추수가 끝났을 때 논의 둠벙에서 미꾸라지를 퍼올려 끓였다. 우리집 상머슴이 주도하고 마을 머슴들이 합세하여 둠벙 푸는 날을 고대하였다가 우리 논 둠벙을 펐다. 푸는 게 아니라 그냥 퍼올리면 뱃살이 누런 미꾸라지가 나무통에 가득 잡혔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둠벙 전체가 미꾸라지였다. 벼 베기 전 벼논에 물을 빼려고 도개새를 쳐놓으면 물길을 따라 둠벙으로 모여들었던 미꾸라지다. 미꾸라지를 해감하고 쇠죽솥에 삶아 절구로 갈아 시레기를 넣고 끓인 매운 추어탕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모르겠다, 배 곺았던 시절이라 유난히 추억하는지. 우리 바다에서는 꽃게(농게)와 찔기미(칠게)가 흔했다. 빗자루로 쓸어담을 정도, 꽃게는 간장게장을 담궈 먹었는데 엄지발 하나면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찔기미는 간장게장도 담궜지만 살아있는 게를 찧어 풋고추를 갈아넣어 만든 즉석 게장맛을 잊지 못 한다. 풋풋한 맛이 일품이다. 짱뚱이 후리낚시를 하는 아버지를 따라 구렁섬 부근에 가면 장태고동, 각시고동이 지천이었으나 그 시절에는 별로 탐탁찮게 여겨 줍지도 않았다. 단 짱뚱이는 긴 장대 끝에 달아 말려서 방맹이로 탕탕 두들겨 구우면 천하별미天下別味, 어른들 술판에 끼어앉아 얻어먹었다. 쓴맛이 나는 비틀이고동은 발에 채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 입맛은 어린시절의 입맛이고, 광어, 민어, 도미나 우럭과는 거리가 멀다. 고향집 앞 바다에서는 그런 고급고기들이 나지 않았다. 그래 식도락이라 해봤자 고작 굴이나 꼬막, 반지락들이다. 그 게 그리워서 입맛을 다시며 생선시장을 드나들지만, 참꼬막은 열 개나 놓고 만 원, 자루 째 부어놓고 먹었던 시절 생각이 나서 하찮아 손을 대지 못 한다. 굴도 아이 손바닥만한 한 되박에 2만 원이다. 어찌 물가가 올랐는지 아이쇼핑 수준이라 매우 안타깝다.


(이천만의 명상록 - 120)      수능修能

구는 무한히 작은 부피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때 부피 요소는 그것의 부피와 밀도를 곱한 값을 질량으로 갖는 질점으로 볼 수 있다. 그 구와 동일한 질량을 갖는 질점이 그 구의 중심 O에서 P를 당기는 만유인력과 같다.’

책 권이나 읽었고 글줄께나 쓴다고 자부自負하는 내가 두 번 세 번 읽었으나 오리무중五里霧中, 무엇을 묻는지 어떻게 하라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국어과교사들이 자기들도 풀 수 없다고 분노憤怒한다. 수학능력시험은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평가하여 대학수학능력을 체크하려는 의도다. 대학입시가 하도 극성이라 부작용이 사회문제가 되자 개선해보겠다고 학자學者, 교육자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구안具案을 했다. 그러나 해마다 오답誤答, 난이도難易度들 부작용이 나타나 개선하고 또 개선해서, 출제자들을 밀실密室에 가둬놓고 치룬 시험이 올해는 문제지만 16의 스피드퀴즈로 전락轉落했다. 벨을 눌러 승부를 결정짓는 장학퀴즈 수준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입시교육이다. 60만 고3高三生들이 모두 대학입시에 운명을 건다. 부모들도 운명을 건다. 사회 전체가 대학입시에 몰입沒入되어 있다. 마치 마술魔術피리에 홀려 강으로 끌려들어가는 동화童話 같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입시교육을 한다. 그런데 이 교육강국敎育强國에서 노벨상은 나오지 않는다. 수능은 교육력낭비에서 발생하였다. 대학입시에 전력全力을 경주傾注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사회적비용을 줄이려고 수능을 계획했는데, 학원교육의 사교육비를 줄이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학원은 늘고 사교육비는 팽창膨脹되었다. 과목당科目當 1,000만 원짜리 과외課外도 생겼다. 학생종합성적부니 정시正試니 수시隨試 등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입시제도가 생겼다. 우리나라는 대학입시에 의한, 대학입시를 위한 대학입시의 나라다. 심지어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태교胎敎 영어교육을 시작한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는가? 명실공히 교육강국인데, 은 교육강국이고 실은 노벨상이 없다. 유태인과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우리처럼 요란스럽지 않은 교육강국들이다.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잘 산다. 그들은 우리처럼 수능을 치루지만 교육력 체크에 그치고, 진로를 탐색하는 자료로 사용한다. 대학입시는 대학자율에 맡긴다. 학생부學生簿로 선발하든, 논문論文을 쓰든 대학의 특성에 맞는 아이들을 선발한다. 특정대학을 가고싶으면 특정대학의 입시요강入試要綱을 따르면 된다. 이런 교육제도를 본받으면 되는데 쓰잘데기 없이 미국이나 일본교육의 획일적인 무한경쟁無限競爭 시스템을 본받아 아이들을 계산기計算器로 만들고, 계속 실패를 하면서도 계속 실패의 길을 고집固執하고 있다. 실패가 고착화固着化 되어버려서 이제는 바꿀 수가 없다.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해야 하는데 제도나 체제를 바꿀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시험에 나고 시험에 죽는다. 학교교육은 보조수단이고 학원이 필수다. 학교교육이라고 해봐야 학원교육과 별 다른 게 없지만 우리 부모들은 학교교육을 팽개치고 학원교육을 믿는다. 믿는 게 아니라 남이 보내니까 불안해서 나도 보낸다. 학원교육이 효과가 없다고 교육전문가들이 통계치統計値를 들고 하소연을 해도 막무가네다. 학원 안 보내면 우리 아이만 처지리라는 불안 때문이다. 올해 수능시험생이 60만이다. 서울대 입학생은 3,000명이므로 1/ 200이다. 광주 전남에서 서울대 진학은 해마다 고작 30여 명 내외內外. 3 6만여 명에서 30여 명만 서울대에 붙는데 6만 명이 다 불나비처럼 학원으로 과외로 문제집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과목당 1,000만 원짜리 과외를 하는 서울 강남이 명문대를 휩쓸어버린다. 족집게과외 덕이다. 강남 아이들 나머지 자리 몇 자리를 놓고 전국의 학생이 학부모가 서로 시새워 학원에 보내고, 과외課外하고, 부처님에게 기원祈願하고, 영험靈驗한 기도원祈禱院에서 밤 세워 빈다. 엿을 붙이고 찰떡을 먹인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는 노벨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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