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만의명상록 <3>
(이천만의 명상록 (3) 목차 : 61편 - 90편
61. 감기와 실내자전거타기/ 62. 거미줄, 자연친화적 방충망/
63.고구려역사 탐방/ 64. 재판 개판/ 65. 군대언어/ 66. 귀신모습/
67. 바리떼/ 68. 학생인권조례/ 69. 할마마마의 수렴청정垂簾聽政/
70.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71. 축제공화국/ 72. 북한 도깨비/
73. 국호國號/ 74. 한강의 기적/ 75. 국가개조론/ 76. 경로당/
77. 녹비鹿皮에 가로 왈曰, 법法/ 78. 문서文書사회 탁상행정卓上行政/
78. 서울시의 한자교육/ 79. 임을 위한 행진곡/ 80. 전교조설립에 관한 교육부의 공문公文/ 81. 쳐 죽일 놈과 때려죽일 놈/ 82. 아무도 진실은 말하지 않는다/
83. 슬프다, 한글이여!/ 84. 직지심경直指心經과 여자골프/ 85. 할머니 유기遺棄 시신屍身/ 86. 단장, 원숭이 어미/ 87. 한반도韓半島/ 88. 삼 시 두 끼/ 89. 빼도 박도 못한다/ 90. 방송언론의 언어
(이천만의 명상록 - 61) 감기와 실내자전거타기
겨울은 감기와 싸우는 계절이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추위 때문에 웅크러드는 겨울이 수난의 계절이다. 이래저래 노인들은 처진세대다. 우리나라 전쟁세대 노인들은 아들딸 가르치느라고 진꼴이 다 빠져서 황혼이 오는 줄도 몰랐다가 귀밑머리가 허예지자 핵가족화된 자녀에게서 분리되어버렸고 산업화된 사회에서도 노후 부모공양은 사회제도적으로 내팽개쳐저버렸다. 새끼들 먹이고 가르치는데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는데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여유도 없었거니와 그럴 개재도 아니었다. 오직 먹고 사는 데와 아이들 치다꺼리에 일생을 바치고 보니 오쟁이 진 부부만 달랑 남았다. 산업화라는 도시화가 문제다. 도시에서 출세한 자녀가 있어도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았던 노 부모는 죽어도 아파트에서는 못 산다. 한 발 나서면 푸른 논밭이 펼쳐지고 눈만 뜨면 새소리가 들리는 시골생활이 몸에 밴 노인네들이 어떻게 도시 아파트 새장 같은 네모 굴에서 하루나마 견딜 수 있겠는가? 사냥꾼들은 짐승을 잡기 위해 상자덫을 만들 때 절대로 네모로 만들지 않는다. 산짐승들이 네모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는 모두 다 네모로 이루어져 있다. 길도 집도 방도 다 네모다. 또 총천연색 풍경에서 어울려 살다가 갑자기 회색빛 그늘로 들어가는 게 시골노인들에게는 너무 이질적이어서 생리에 맞지 않는다. 대선大選에서 노인복지가 화두話頭가 되었다고는 하나 정책의 본질이 틀렸다. 감기 얘기를 하려다가 그만 전후前後세대 불쌍한 우리네 노인들의 안타까움에 어만 데로 나갔다.
노인들에게 감기는, 특히 겨울철 감기는 천적天敵이다. 노인들의 사망률이 겨울철과 환절기에 높다. 감기 자체는 별 병이 아니지만 후유증이 크다. 감기로 몸이 쇠약해지면 시낭고낭 앓다가 합병증이 생겨 죽음에 이른다. 감기는 약이 없다. 최선의 처방이 온냉수욕이다. 몸을 씻을 때 온냉수를 번갈아 하면 여생餘生 감기를 모르고 살 수 있다. 단, 온냉수욕은 손끝 발끝에서부터 시작하고 심장은 절대 금지다. 노인에게 두 번 째로 중요한 건강부위는 무릎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 뛰다가 → 걷다가 → 앉고 → 누우면 죽는다. 주저앉기 전에 무릎을 튼튼히 해야 한다. 가벼운 걷기, 등산 그리고 실내자전거타기는 종아리와 대퇴근의 근력을 강화하여 무릎을 보강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화투는 재미는 있으나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놀이라서 허리와 특히 중요한 무릎이 망가진다. 아울러 당구撞球는 노인네들에게 권장하는 좋은 오락성운동이다. 당구는 전천후全天候고, 가볍게 걷기며, 오락성이 있어 재미있고, 두뇌게임이기 때문에 치매癡呆에도 도움이 된다.
(이천만의 명상록 - 62) 거미줄, 자연친화적 방충망
토요 대청소를 하는데 아내가 빗자루를 들고 설치더니 거미줄이 많다며 창틀 모서리를 훑는다. 하나라도 남을까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샅샅히 뒤져 남김없이 없애버린다. 손자들은 거미에 관심이 많다. 거미줄만 있으면 들여다 보며 거미를 찾는다. 나도 어린시절에 거미줄을 신비하게 본적이 있다. 아침 이슬이 대롱대롱 달린 거미줄에 풀잎을 살짝 스치면 거미줄 귀퉁이에 숨어 있던 거미가 ‘누가 날 찾지?’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왔다. 실은 거미줄이 거미의 통신망이다. 거미줄이 흔들리면 거미는 먹이가 걸렸다고 느낀다. 먹이가 걸리면 불이나케 달려와서 먹이를 거미줄로 갈무리한다. 거미줄의 세로줄은 끈끈하고 가로줄은 끈끈이가 없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아이들은 거미를 찾다가 거미가 기어나오기라도 하면 손뼉을 치고 야단스럽게 환영한다.
우리 주위의 곤충들에는 익충益蟲과 해충害蟲이 있다. 거미는 대표적인 익충이다. 거미는 일본뇌염이나 학질 같은 무서운 병을 옮기는 모기를 잡아먹는다. 아무리 방역을 하고 모기장을 치고 모기약을 뿌려도 모기를 완벽하게 예방하지 못한다. 12층 우리 아파트에도 모기가 있다. 12층까지는 모기가 근접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 여름에 덥다고 문을 열어놓고 자다보면 애앵! 하고 덤벼든다. 그 녀석 한 마리 때문에 잠을 설친다. 아내는 더 신경질적이어서 모기소리만 나면 불을 켜고 기어코 잡아버리고서야 잠을 잔다. 나도 모기에게 퍽 신경질적이다. 모기소리가 나면 기어코 찾아 잡거나 모기약이라도 뿌려야 안심이 된다. 그런데 그 놈의 모기약이란 거, 모기 한 마리 때문에 코가 맹맹할 정도로 약을 살포한다. 어린시절 시골에서야 모기가 물면 따끔한 반응 때문에 자동적으로 손바닥이 올라가 때려잡았고, 고작 길 가장자리에 무성한 띠풀이나 쑥을 캐다가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았지만 도회지에서야 모기약이 최상이다. 그런데 그 모기약이란 것이 어찌나 독한지 밀폐된 방에다 뿌리면 머리가 다 띵! 하다. 그렇다고 모기약을 핑긴 다음에 문을 열어놓고 잘 수도 없다.
거미는 모기의 천적天敵이다. 아파트거나 단독주택이거나 사무실이라 할지라도 구태어 거미줄을 퇴출시킬 필요가 없다. 방충망을 붙이는 것 보다야 훨씬 경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해충 방제防除시설이다. 거미는 아무데나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원칙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친 곳은 거미로써는 최선의 사냥터다. 모기로써는 가장 불편한 진실인 셈이다. 인간은 문명화되면서 감각이 퇴화해버렸지만 곤충이나 동물들은 신비할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집 댕갱이가 60리 길을 달려 새끼를 찾아가는 것, 새나 벌이 먹은 복숭아가 제일 맛있다는 것, 까치가 집 짓는 위치를 보고 여름철 장마를 예상할 수 있다는 일 등등. 동물의 세계는 신비하다. 이 작은 거미줄이 일본뇌염을 예방하고 학질 등 무서운 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구태어 거미줄을 걷어내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그 독한 모기약을 뿌리지 않아도 된다.
(이천만의 명상록 - 63) 고구려역사 탐방
고구려탐방 목표는 백두산천지天池였다. 민족성산聖山 백두산을 다녀와야겠다고 대련행 비행기에 오른 건 몇 십 년 만의 폭염이라는 8월 초. 백두산 발치 통화에 닿은 건 여행 3일 째. 변화무쌍變化無雙한 백두산천지 날씨를 감안해서 가이드가 새벽 3시 모닝콜을 했을 때, 며칠간 그 넓은 땅을 돌아다니느라고, 버스투어 강행군을 해서 뜨이지 않은 눈을 비비고 버스에 올랐다. 아니나다를까 백두산 발치라는 환승버스 정류장을 오르는데서부터 날씨가 수상해졌다. 그리고 변화무쌍이라는 백두산날씨는 환승버스에서 내리자 비바람과 안개로 우리를 맞았다. 산 아래서는 그렇게 쾌청했던 날씨가 금방 짙은 안갯발이 퍼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비바람을 피할 콧구멍만한 대피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초만원超滿員, 더구나 중국인들의 유난히 톤이 높은 목소리에 대피소는 가히 돗대기시장 같았다. 비바람이 약간 수그러들자 출발했다. 1400여 개가 넘는다는 계단을 세며 차가운 비바람에 우비雨備를 여미고 웅크리면서도 천지를 보겠다고 계단을 올랐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내려가는데도 우리 팀은 불굴의 전사처럼 올랐다. 그러나 하늘은 끝내 천지의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이빨이 덜덜 떨리고 오슬오슬 한기가 스미는 추위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안갯발만 가득한 정상에서 추위에 떨며 잠시 머물렀다가 일생일대一生一大의 기대를 접고 비 맞은 장닭 꼴이 되어 하산했다.
백두산천지로 향하는 길, 대련에서 통화까지 가는 동안 본 것은 옥수수밭 뿐이다. 옥수수밭의 대평원 말고도 마을이나 집에 손바닥만한 땅만 있으면 옥수수를 심었다. 가이드 말로는 술을 빚는다고 했다. 옥수수는 최고급 와인의 재료다. 그래서 중국에는 수 천 가지 배갈이 있나보다. 옥수수밭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중국이 자긍심으로 가꿨다는 단동시는 화려했다. 서울 명동 보다 더 휘황찬란輝煌燦爛했다. 그런데 그 휘황찬란의 안과 밖은 가면假面 같았다. 도시는 화려한 네온싸인으로 뒤덮이고 벤츠나 BMW가 흔하게 굴러다니는데 지나쳐온 시골의 풍경은 너무나 처참했다. 옷차림은 거지꼴에 가까웠고 붉은 스레트를 덮은 집은 한결같이 네모모양의 돼지우리를 연상시켰다. 우리나라의 돼지우리는 중국 시골집에 비하면 호텔 수준이다. 국도변의 공중변소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워 용변을 포기했다. 웃통을 벗어 재치고 축 늘어진 배꼽을 들어내놓고 거리를 활보하는 건 예사고 서너 사람만 모였다하면 마치 불난 집 같이 소리를 내지르는 통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백두산 가는 길에 단동을 가로질렀다. 단동은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중국이 나눠진 곳이라 철조망이 늘어져 있었다. 6. 25 때 끊어진 압록강철교도 보았다. 압록강에서 관광보트를 타고 북한과 중국 경계를 조망眺望했다. 조선朝鮮 태조太祖 이성계가 회군回軍을 한 위화도를 거쳐 강을 거슬러 오르는데 군데군데 북한초소哨所들이 성냥갑처럼 늘어서 있었다. 압록강철교를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검버섯이 핀 듯한 시멘트건물 몇 채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북한과 2, 30층 건물에 조명照明이 화려한 단동이 마주보고 있는 건 서글픈 풍경이었다. 함께 관광보트를 탄 일행들이 북한사람들이 보이면 손을 흔들고, 염소나 소를 보고도 신기해했지만 마음속이 마냥 편치 않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은 한인현(한인은 고조선의 한인시대 유적遺蹟이다. 한인은 의역意譯하여 하느님. 고조선은 한인시대, 한웅시대, 선군(단군)시대로 나눠짐, Daum Blog 이천만의 교학대한사 참조)의 5녀산성(5녀산성은 중국이 신화神話로 각색脚色하여 붙인 명칭이고,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졸본성)에서 있었다. 5녀산성은 주몽의 고구려 발상지다. 금와왕의 동부여에서 왕자 대소의 핍박을 예상한 주몽이 어머니 유화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친구 오이, 마리, 협보와 유랑流浪을 하다가 정착한 곳이 졸본성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랐더니 주몽의 묘지墓地 유적이 있었다. 유적 옆 장난감 같은 무대에서 중국음악을 연주하더니 주몽의 군대열병식軍隊閱兵式을 연출했다. 중국말로 하는 대사臺詞를 새겨듣는다면 열불이 날거라고 가이드가 통역을 거부했다. 졸본성은 중국 영토가 되었고, 중국은 동국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역사왜곡歪曲을 자행하면서, 중국말로 주몽의 열병식을 관광객에게 홍보하고 있었다. 즙안集安의 국내성의 유적은 뜯겨져서 흔적만 남았고, 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는 유리로 가둬놓았고, 도굴盜掘된 무덤은 아픈 상처 그대로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더 기가막힌 일은 고구려탐방 마지막 유적지인 호산산성(고구려 박작성)에 있었다. 중국은 만리장성을 동쪽의 허베이(호북성)성 산하이관(산해관)에서 시작하여 서쪽 간쑤성 자위관으로 규정했다가 동북공정을 한다고 설치면서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을 중국의 변방국가로 편입하더니만 느닷없이 만리장성의 동쪽 경계를 호산산성까지 늘렸다. 옛 고구려 박작성 유적은 흙과 돌로 쌓은 고구려식 성곽이었는데 중국은 그 유적을 다 허물고 만리장성식 구운 벽돌로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의 만리장성 8,800Km를 두 배로 늘려 212,000Km로 발표했다. 만리장성이 고무줄장성이 된 연유도 고구려와 대진국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하려는 의도다. 고조선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려는 간계奸計다. 중국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창건된 나라마다 모두 30년을 지탱하지 못했다. 한, 당, 청, 명이 다 그렇다. 반면에 고구려와 고려 그리고 조선은 500년 역사를 전승한 나라다. 중국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역사관대로라면 중앙정권이 30년이 멀다하고 바뀌었을 때 지방정권이 500년을 전승한 역사적논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역사적 사실이 그런데도 중국은 허장성세虛張聲勢에 빠져 고무줄장성은 앞으로도 더 늘어나 러시아의 울라디보스톡까지도 편입하려고 할른지 모른다. 중국은 허울좋은 동북공정이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고조선의 역사와 강역疆域을 모두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고 한다. 변경의 나라들의 역사를 모두 중국에 편입시키려고 한다. 패권주의覇權主義를 바탕으로 56개 민족으로 형성된 다多민족국가의 붕괴를 방어하려고 한다. 유적은 우리가 잃어버린 그들의 강역 안에 있고 역사자료조차도 중국사료에 의존하고 있으니 허탈하다. 고조선 한웅시대의 자오지한웅(치우천왕, 월드컵 때 도깨비 캐릭터)도 중국역사로 이미 편입했고, 고조선의 한낱 짐승을 기르는 벼슬아치에 불과했던 헌원을 중국의 역사적시조로 각색해놓고 있다.
한단고기에서 고조선의 영토는 유럽 동남부에서 바이칼호수를 포함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남부까지 동서2만리(10,000Km) 남북 5만리(25,000Km)다. 인종人種도 황黃인(아시아계), 백白인(유럽계), 흑黑인(아프리카계), 적赤인(중앙아시아계), 람藍인(중동계) 5부족部族이다. 중국 수상首相 주은래는 중국과 대한의 역사 갈등상황에 대해서 대한이 (고조선과 고구려)영토를 잃고 겪는 비극悲劇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그 대한의 자손들은 대한민국 국호를‘대한’에서‘한국’으로 축소縮小시키면서 COREA를 KOREA로 변질變質시켰다. 삼국사기에서는 중국 사대주의로 대한역사를 축소 ․ 폄하貶下하고,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는 이병도의 실증주의實證主義 역사학파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사주使嗾를 받아 조선사라는 역사서를 만들어 대한역사를 왜곡하고, 오늘날까지 이병도학파가 대한역사를 주도主導하면서 대한사를 왜곡, 축소, 폄하하고 있다.
(참조 Daum Blog 이천만의 교학대한사)
(이천만의 명상록 - 64) 재판 개판
국선변호사는 정식재판에 세 번 참석했는데, 판사의‘할 말 없습니까’라는 물음에 세 번 다‘예’라고 대답한 것이 고작이었다.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무조건 선수금이 300만원이다. 유무죄有無罪야 어떻든 벌금이 200만원인데 배 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변호사선임을 포기했더니 고맙게도 법원에서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었다. 그런데, 국선변호사란 것이 변호사도 선임할 수 없는 서민들의 권익보장을 위해 국가가 무료로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었으니 민주주의국가의 명분은 다 했다라는 자화자찬自畵自讚일 뿐 피고인에게는 오히려 자기변호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불리한 제도가 되고 있다.
애초에 변호사 선임 자체가 반反법적이다.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면 형량이 줄어들거나 사형死刑도 무기無期가 된다. 그래서‘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회자膾炙되었다. 법적정의라면, 신성한 역할의 판사가 선고한 형량은 절대적인데도 변호사가 개입하면 형량이 감형된다는 것은 법적정의의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판사는 적당하게 형량을 늘려 선고하고 변호사가 밥 먹고 살게 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해주는 셈 아닌가. 이게 법전法典에 적혀있는 법적정의인가? 그래서 돈 많은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나와 병보석이 되고, 포토라인에 서서 묵묵부답黙黙不答의 정치인들은 거물巨物변호사를 사서 죽을죄를 지었어도 집행유예를 받는다.‘도가니’에서 장애우들이 수화手話로 울부짖는 이유다. 세기世紀의 집단살인자들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자조적自嘲的으로 내뱉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연유다.
아파트운영의 부정비리를 척결剔抉하면서 회장의 부정비리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문건이 명예훼손이라고 고소를 당했다(아파트운영은 주민들의 무관심을 이용한 부정비리의 복마전伏魔殿이다. 아파트 전문임원꾼 조차 생겨나고 있다. 그래도 관할부처는 아파트운영은 자율체제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런데‘공익성公益性문건은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대법원판례를 제시해도 경찰과 검찰은 화해를 강요하다가 거부하자 증거제일주의의 경찰과 검찰이 유도誘導심문과 추정으로 조서調書를 꾸며 명예훼손으로 몰아갔고, 검찰도 화해를 주선하더니 거부하자 명예훼손으로 만들어 기소起訴했다. 상대의 로비라고 판단하고 있다. 변호사사무실에는 사무장이라는 중개인이 있다. 이들은 법원직원과 밀착되어 소송건을 물어온다. 변호사와 소송 당사자들을 연계시켜주고 거간비를 받는 일종의‘삐끼’다. 이들이 서로 유착癒着되면서 변호사는 돈을 벌고, 사무장들은 알게 모르게 판결에도 영향력을 행사行使한다. 사무장은 그림자로 존재하지만 힘이 꽤 쎄다. 그래도 판사만은 제대로 가려주겠거니 했는데 웬걸 판사도 화해를 거론하다가 안 되자 벌금형을 판결했다. 그래놓고 항소심에서는 판결문에다가‘개전改悛의 정情’이 없어 기각한다고 썼다. 무엇을 반성하란 것인가? 반성할 사람은 높은 재판정에 앉아서 피고를 내려다보며 까만 법복께나 차려 입고 엄숙한 말투로 선고를 한 판사가 아닌가? 왜,‘부러진 화살’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는지 판사들만 고개를 외로 틀고 묵묵부답黙黙不答이다. 부러진 화살에서‘이번 재판은 어땠습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피고 김교수는‘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코웃음을 친다. 명예훼손은 상고上告를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후後, 상고 역시 기각되었음)
(이천만의 명상록 - 65) 군대언어
7 · 28 재선거방송에서 어느 지역 후보가 서로 엇비슷한 판세였는데 어려움을 느낀 지도부가 모두 나서서‘지원사격’을 하여 가까스로 이겼다고 했다.‘사격’은 군사용어다. 군대는 군사용어를 사용한다. 대개 군대어는 어투가 강하다. 작전, 전략 등의 평범한 어휘에서부터 전멸, 폭격 등등 매우 강한 어휘가 많다.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부러 강한 어휘를 만들어 쓴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군대를 신성한 국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남자들은 모두 군대를 마쳐야 하고, 이들이 제대를 하고 나와서 사회에 퍼뜨린 군대어들이 곧장 우월적인 사회언어로 재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에서 군대어는, 특히 집단생활이나 단체생활, 남자들의 세계에서 군대어는 주도력主導力이 강하다. 강력한 톤의 어감語感으로 설득력을 과시한다. 그래서 군대어는 생명력도 강하다. 군대어가 일상어로 침투한 우리의 사회언어는 어투語套가 거칠어지고 톤이 강하고 전투적이다. 평범한 일상을 얘기하면서도 섬뜩할만큼 강한 어휘를 동원한다.
이 군대용어들이 우리말에서 점령군처럼 판도版圖를 넓혀가는데 언론이 앞장서서 이를 추종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계경제 10위권 나라답게 생활환경이 나날이 나아져간다. 좋은 차를 사고, 맛있는 음식을 추구하고, 더 자극적인 행위를 요구한다. 거기에 언어도 한 몫을 한다. 더 강도 높은 언어가 사회를 풍미風靡하는 것이다. 군대어는 사회의 이런 추세에 편승하여 생명력을 과시한다. 같은 말이라도, 군대어는 톤이 강하고 경음화硬音化되고 비속어卑俗語도 많다. 이러한 군대어가 여과濾過장치 없이 확대재생산되는 현실에서 언론이 이를 부추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군대를 마친 남자들이 사회에 전파하는 군대어, 언론이 무개념으로 인용하는 군대어가 사회에서 남발濫發할 때 사회의 언어혼란을 부추기고, 사회성을 갉아먹는 나쁜 언어들이 우리 의식을 지배할 수도 있다. 언어의 의식지배는 우리가 겪어서도 알고 언어학적으로도 검증되어 있다. 일제시대의 일본어상용常用정책이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수업에서도 잘 나타난다. 언론은 사회에 편승해서 군대어를 퍼뜨릴 일이 아니라 한 발 돌아서서 국어순화운동을 펴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언어를 지켜나가야 한다. 따라서 해방 60년에도 견고하게 뿌리를 뻗고있는 일본어, 세계화라면서 유치원생들에게까지도 강요하는 영어, 한자문화권이라고 강변하는 한자어도 걸러내고, 순수하고 이름다운 토박이말을 찾아내서 활용하는 언론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러다가 세계적으로 빼어난 문자로 인정받는 우리 한글과 아름답고 정감있는 우리말이 토씨만 남게될까봐 걱정이다. 이참에 표준말정책에 천대賤待받아 사라져가는 는 사투리의 복원復元도 함께, 다일랍딩겨(다 이를 말이 또 있느냐는 전라도 사투리).
(이천만의 명상록 - 66) 귀신모습
어린시절, 우리 집 앞 골목을 돌아나가면 치자샘거리가 있었는데 채왈귀신과 달걀귀신이 살아서 밤에는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낮에도 치자거리를 지날라치면 등골이 오싹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해질녁 먼 산 그림자 속에 서 있는 희미한 물체를 보았다. 할머니는 귀신일 거라고 했다. 해거름에 우리 집 대문 위 호두나무 위를 가로질러 퍼런 불꼬리를 끌며 날아가는 혼불도 보았다. 할머니는 뒷간에서 내 놀라는 외침을 듣고 꼬리가 길더냐 짧더냐 라고 물었다. 길면 남자가 죽었고 짧으면 여자 혼불이라고 했다. 도깨비불이나 혼불은 공동묘지 근처에 가면 흔했다. 안개 낀 산마루에서는 방아 찧는 소리가 났다. 밤이면 학교 2층에서도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는데 겁없는 총각선생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귀신을 잡으려고 한 적도 있다. 그런데 현대화 되는 과정에서 그 많던 귀신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요즘 아이들은 귀신을 TV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것 쯤으로 안다. 의례 귀신의 모습은 머리칼을 산발하고 입에 벌건 피가 흐르는 모습이다.
우리 집 앞으로 무등산옛길이 뚫렸다. 무등산이 내 것인 양 자랑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걷기도 한다. 그런데 등산을 하면서 늘 같은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무등산옛길에는 유난히 노인들이 많은데 노인들의 얼굴 표정이다. 노인들의 얼굴에는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살아오면서 겪었을 만고풍상萬古風霜이 새겨져 있다. 젊은시절 백양사 천진암에서 만난, 동굴속에서 생식生食만 하고 참선參禪을 하는 노승老僧은 80 노인답지 않게 동안童顔이었다. 그런데 등산길에서나 시내에서나 마주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는 동안이 없다. 동안은 고사하고 지나온 세월이 얼굴에 그려놓은, 덕지덕지 더깨 낀 검버섯이 뒤덮은 초라한 몰골만 보인다. 온화한 모습이 하나도 없다. 죽음을 앞에 두고 먼 길을 떠나려는 편안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초조하고 굴절屈折되고 어렵게 지나온 세월만 여러 줄 가득찬 몰골, 쫓기 듯 불안한 표정, 뭔가 부족해서 더 채우려는 욕심이 들어난 눈. 허연 머리칼을 쪽지고 은비녀를 꽂은 하얀 모시적삼의 할머니의 모습이 없다. 단아한 부덕婦德의 상징, 할머니는 조선여인의 마지막 모습이다. 등산길 정자亭子에 걸려있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한 평생이 거기에 있다. 주름지고 처진 얼굴에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눈빛과 축 처진 볼. 어떻게 살아왔길레 이런 모습으로 남았을까? 너무 늦었을까? 여기에서 탈피해보려고 아침에 일어나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고 얼굴 문지르기도 한다. 무념무상無念無想 상태에서 오직 빛을 떠올리며 명상瞑想도 한다. 동안은 못되더라도 늙어가면서 추해지기 싫어서다. 옛 선인先人들은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헌데 80이 되어서도 방황이 심하다. 지는 꽃은 추醜하다. 술 취한 귀신, 추하게 귀신의 몰골을 하고 죽고싶지 않다. 주변 사람들에게 죽어가면서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얼굴 매무새나마 죽는 날까지 좀 단정하게 만들어 보려고 하기는 하는데 너무 늦었나 모르겠다. 옛 선사禪師들은‘나, 낼 갈란다.’ 하고 선문禪門에 들었다는데 …….
(이천만의 명상록 - 67) 바리떼
스님들은 만행萬行을 떠나면서 바랑 안에 바리때 하나만 지니고 간다. 바리때는 매우 간편하게 마련된 밥그릇이다. 나무로 그릇을 깎아 한 칫수 크기대로 만들어 대여섯 개가 한 개로 겹쳐지니 지니고 다니기에 아주 편리하다. 놋쇠나 사기그릇이 귀하던 시절에 양반들이나 돈 많은 부유층은 놋쇠나 사기 또는 자기瓷器그릇을 사용했지만 서민들은 목기木器에 밥을 먹었다. 숟가락 젓가락부터 밥그릇 국그릇까지 밥상 전체가 모두 나무였다. 우연하게, 한 30여년 전 식사를 하고나서 잇새에 뭐가 끼어 이쑤시개를 찾다가 손에 집히는 게 송곳이었다. 그런데 송곳을 이 사이에 대는 순간 이가 시린 느낌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부러 송곳으로 잇새를 쑤셔봤다. 아릿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왔다. 이가 시리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그 뒤, 애초에 잇새를 잘 쑤시지 않는 편이었지만 혹간或間 필요하다더라도 쇠붙이는 이에 가까이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출발한 것이 목기다. 바리때다. 요즘에는 플라스틱이 대세大勢여서 모든 생활용품과 집기가 플라스틱으로 대체代替되었다. 그런데 플라스틱은 환경호르몬을 배재할 수 없어 위험하다. 암癌이 창궐猖獗한 요인要因의 하나라고 본다. 식기食器로 사용하는 놋쇠, 사기砂器와 플라스틱은 특히 음식에 간여干與되는 한 적절치 않다. 우리는 국민음식이라는 김치를 식칼로 잘라 먹는데, 모든 음식에 쇠가 닿으면 음식맛이 시어지거나 사라진다. 김치는 손으로 찢어먹어야 제맛이 난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부잣집이라고 하더라도 음식을 놋쇠그릇에 담지 않고 토기 즉 항아리에 보관했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생각에서 오래전부터 바리때와 나무숟가락 또는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한다. 바리때가 없어 꼭 필요하다면 국그릇은 토기土器가 좋다. 하다못해 사기그릇이더라도 차선책次善策은 되지만 쇠그릇은 음식맛을 변질시킨다. 더구나 즉석 음식을 먹는 우리는 뜨거운 국물을 놋쇠그릇에 담아 놋쇠숟가락으로 먹기 때문에 입이나 혀를 데기 십상이다. 뜨거우니까 후후! 불어서 약간 식힌 다음에 맛을 느낄 틈도 없이 후루룩 마셔야 한다. 열熱 보전력保全力도 놋쇠 보다는 목기가 더 오래간다. 놋쇠는 뜨거워지기도 쉽고 식는 속도도 빠르다. 그러나 목기는 은근하게 덮혀지고 천천히 식는다. 보관이나 사용에서 깨뜨리거나 이가 빠질 염려도 없다. 김장철이라서 김치 맛나게 먹는 방법을 소개했다. 그나저나 올해는 배추가 또 금값이라니 서민들이 김치조차 맘놓고 먹지 못하겠다고 한숨이다. 재래시장에서도 돈 만 원으로는 멸치쪼가리조차 쳐다보지 못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68) 학생인권조례條例
서울시교육감이 법원판결로 풀려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학생인권조례 공포다. 교육부가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해서 일선학교의 혼란이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교육부의 눈치나 보고있는 일선학교들의 자해自害행위다. 학교는 교육부권력의 눈에서 벗어나 교육감의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 아울러 교육부가 지자체의 자치권 자율권을 존중한다면 지자체의 교육정책을 교육부가 제동을 걸고나서는 모습은 전근대적 권력의 통치관례를 부활하려는 졸렬한 행태다. 서울시교육감으로 당선되고나서 맨 처음 한 일도 사회와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무상급식이었다.
지금은 학생인권이 교육적이슈가 되고 있지만 몇 년 전, 한 때 인성교육이 교육계를 풍미風靡한 시절이 있었다. 지식위주의 교육적병폐病廢가 새삼스럽게 인성교육을 부추겼는데, 당시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교육시책으로 구현하려고 벼라별 시책施策이 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밥상머리교육도 기발奇拔한 교육시책의 하나였다. 대가족시대 밥상머리에서 유언무언有言無言으로 가르치는 가정교육이 인성교육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학교(교사)는 지식의 전수자傳授者다. 교사가 학생의 인성교육을 책임져야 할 의무나 책임이 없다. 물론 교과서의 지식을 가르치면서 전개되는 예절교육이나 질서윤리교육은 인성교육이다. 또 특이하지만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는 도덕과목이 따로 개설되어 있어서 전담교사가 인성교육을 담당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르치는 인성교육이란 지식적 한계가 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치는 도덕교육은 시험점수식 4지선다형支選多型교육이다. 질서교육도 교실에서는 주입식注入式으로 가르친다. 그래서 시험지에 출제되는 4지선다형 질서교육의 정답은‘버스를 타려면 차례로 줄을 서야 합니다’다. 틀린 학생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적 질서교육과 사회에서 부딪치는 행동적 질서교육에 괴리乖離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학생은 교실에서 배운 지식적 질서교육은 팽개치고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북새통 버스로 등교를 하려는데 줄을 서고 있다가는 지각을 하고만다. 그래서 도덕성 함양涵養은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윤리규범교육은 행동적 실천교육이 되어야 한다. 가정과 사회가 교육의 장場이다.
학교폭력이나 왕따 그리고 일진회 등등 학생인권과 인성교육문제가 심각하다. 심각한 학교폭력을 보면서 학교가 배움의 장이 아니라 조직폭력을 배우는 곳이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은, 한 쪽에서는 대학입시로 상징되는 교육의 강압성에 찌들고, 다른 반쪽에서는 공부를 외면한 학교폭력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학교나 교사 그리고 경찰도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학교폭력이 구조적이기 때문에 경찰력이나 교육력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실은 공부하는 학생과 공부 안 하는 학생으로 양분이 되어 있다. 이 아이들을 같이 수용해서 가르치는데서 갈등과 혼란이 야기惹起된다. 그리고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생긴다. 이러한 교육적구조를 방치한 체 교육계에서조차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의 원인이라고 강변强辯을 한다.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면 학교가 폭력집단화할 것이라고 지레 야단이다. 교육의 원리조차 모르는 무지한 논리다. 오늘, 우리 학교에서는 공부 안 하는 학생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도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할 방안이 없는 것이다. 교육제도가 문제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아이들의 적성適性과 재능才能을 구분하여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어 이원화二元化하면 공부 안 하는 학생을 없앨 수 있다. 왕따와 폭력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온 대한민국이 골머리를 앓고있는 대학입시문제도 해결된다. 근원을 개선하지 않고 가지를 쳐봐야 도루묵이다. 논의 터진 물꼬는 근원을 막아야지 터진 둑을 막아봐야 말짱 헛수고다.
인성교육이 대두되어 밥상머리교육이 각광을 받고 있을 때 우리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의 핵심과제를 생명존중교육에 두고 학생들이 동식물을 기르는 시책을 시행했다. 애완愛玩동물이나 화분花盆 또는 가정의 화단을 가꾸기를 통해 생명존중교육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인성교육을 구현具顯하려는 취지였다. 인성교육은 교과서지식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행동으로 육성되기 때문에,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보고 배우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69) 할마마마의 수렴청정垂簾聽政
청조말淸朝末 서태후의 환생설화還生說話도 아니고, 조선시대 태후마마의 이야기도 아니다. 부끄럽지만 우리 아파트의 얘기다. 작년에는 전북에서 아파트엘리베이터 교체리베이트 10억사건이 터져 이슈가 되더니 이번에는 아파트관리업체와 아파트회장단의 결탁結託 부정문제가 불거졌다. 신문에 보도된 뒤 전국경찰에 제보된 아파트부정비리만 300여 건이라고 한다. 아파트비리제보 때문에 경찰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하니, 역시 나름대로는 대한민국 아파트 대부분이 부정비리의 무법천지라고 예상한다. 우리나라 주거住居의 53%를 차지하는 아파트, 그 관리가 법法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어 민생차원에서 개선대책이 요청된다.
우리 아파트는 70대 할머니들 대여섯이 몇 대 째, 회장을 비롯한 임원을 자의적으로 추천해서 임명하고 있다. 정기총회 전 할머니들이, 역시 자기들이 장악한 경로당(노인회원이 30여명인데 대부분 이름만 올려놓고 참여하지 않아 대여섯 명 할머니들이 상주常住하며 화투로 화투消日하고, 공짜 점심 먹고, 난방煖房하고, 에어컨 틀고, 운영비로 떡도 맞춰다 먹고, 때로는 홍어회도 시켜다 먹으면서)에 모여서 이번에는 누구를 회장으로 밀고, 여차여차하여 부회장 추천하고, 감사는 아무개를 시키자고 합의를 한다. 그러고는 20여 년 째 대물림으로 축적된 패거리를 동원해서 회의장을 장악한 뒤 만장일치滿場一致로 임원을 선출해버린다. 앞 임원진들이 다음 임원진을 내정內定하는 대물림 관례慣例를 할머니들이 독점하여 주민총회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70대 할머니들이 설치는 이유는, 이 할머니들도 임원을 했었고, 그 남편들도 임원이었고, 할머니가 회장을 할 때 할아버지는 감사를 맡은 족벌族閥사례도 있었고, 역대 임원들이 아파트관리비를 쌈지돈 쓰듯 하였기에 부정비리를 서로 감싸주기 위함이고,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의 무관심을 악용하는 것이다. 특히 주동이 된 할머니들이 회장, 부회장 임원을 장악했던 시절에는 남자들 보다 더 엄청난 부정을 저질렀다. 이 할머니들에게 아파트관리규약은, 홍어회 시켜다 먹고 화투치며 쪼글쪼글한 엉덩이로 깔아뭉개는 방석쪼가리 쯤, 법(관리규약)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70대 할머니들의 무법천지無法天地 요지경瑤池鏡인 셈이다. 그래서 임원임명이나 이사회 구성은 물론이고, 자잘한 사업도 할머니들이 승인해줘야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서 사업만 벌였다 하면 예산부풀리기는 필요조건이며, 2중계상計上, 가짜 영수증, 거짓 정비보수整備補修, 사망한 소장 유령幽靈 위로금 소급遡及지급 등은 약과藥果고, 할머니들이 임원을 독점했을 때 시행한 아파트 도색塗色공사는 산출원가算出原價의 두 배, 기其천만 원을 부풀렸다. 비리백화점이 따로 없다. 이렇게 20여 년을 유지했으나 아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낸 관리비가 줄줄 새고, 쌈지돈이 되고, 착복着服을 하고 있다고 증거를 조사해서 알려도‘그냥 내비둬’다. 투표율 10%가 정치에 식상食傷한 국민들의 의식이라고 해석하는데 아파트관리의 무관심은 정치의 수준을 넘어섰다. 무관심도 이 정도면 죄악이다.
우리 아파트 부정비리를 파헤치고, 고소고발도 하고, 관리개선을 줄기차게 추진하면서 행자부와 국민권익위에도 건의를 했다. 민생차원에서 아파트관리규정을 개정하여 부정비리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핵심은‘주민소환제召還制와 외부外部감사제’다. 그러나 광주시청 담당관은‘아파트운영은 자율적이라서 …’ 규제規制할 근거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파트협회에도 이런 고소고발문서가 산처럼 쌓여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파트협회는 조사도 고발고소도 못하고 손을 놓고 있다. 더구나 협회는 아파트관리비를 회비로 받아 운영하는 터수라 부정비리에 적극적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아파트운영자율을 외치며 방관할 게 아니라 자체조사(외부감사)를 벌여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책을 시행해야 한다. 포장마차 떡복이나 사먹고 노점상 할머니에게 마후라나 둘러주는 게 서민정책이 아니다. 국민생활주거의 절반이 넘는 아파트관리를 투명透明하게 할 수 있도록 실태를 파악하여 관리규정을 정비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서민정책이고 민생民生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70)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도 있다. 사또 뜨고 나팔이란 말도 동의어同義語다. 왜 우리는 G20이니 선진국이니 하면서도 뇌수막염 장병에게 타이레놀을 처방해서 죽게 하는가? 같은 부대에서 작년에는 통증을 호소하며 민간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한 장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뻥부만이 아니다. 올 봄 우리를 암울하게 했던 AI와 구제역口蹄疫을 보라. 천안함은 또 어땠는가? 일이 터지고나야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느니 원인을 규명한다느니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떤다.
동물은 같은 잘 못을 반복한다. 그래서 농가農家에서 가족처럼 소중한 소도 일하러 들에 나가면 입마개를 씌운다. 쟁기질하면서 널름널름 곡식을 베어 뜯지 못하게 하려는 방책이다. 대책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소를 관리하는 것만도 못한 방책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사업을 시행한다. 아무리 정치가 사회분야 등급지수에서 꼴찌라지만 너무 한심스럽다. 왜, 정치에서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하지 못하는가? 왜, 공무원들에게는 예방이라는 게 없는가? 꼭 당하고 나서야 대책을 세운다고 설레발을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올 여름에는 태풍이 또 몇 개나 올지 모르겠으나, 기상청은 헛발질로 일관할 게 뻔하고, 정부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또 수해복구를 한다며 몇 백억의 추가예산을 세울 것이다.
교육에서 시행착오試行錯誤라는 교육용어가 있다.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경구警句다. 아니다, 교육에서는 시행착오를 경계한다. 소를 길들이기가 아닌, 인간교육에서는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부정부패에 관하여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때같은 장병將兵이 목숨을 잃고나서야 국방위원회인가 뭔가를 논의한다고 국회의원들이 나팔을 분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군대에 보냈다가 졸지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고사하고, 제 3자로써 분통이 치민다.
(이천만의 명상록 - 71) 축제공화국
대한민국은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일어난 축제 붐에 따라 지자체가 시세워 축제를 만들어낸 덕택에 200여 개 지자체에서 2000여 개 축제가 열린다. 미상불未嘗不,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서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그리고 예의 무천舞天 등 우리 축제를‘흰 옷을 즐겨 입고 가무歌舞를 좋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팔관회와 연등회 같은 불교축제들도 융성했던 기록이 있다. 이렇게 축제를 좋아했던 민족을 일본제국주의가 민족성말살을 주도하면서 폄하하였다.‘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랫말을 인용하여 한민족은‘일은 팽개치고 맨 날 놀기만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로써 교화敎化해야 할 야만적野蠻的인 민족으로 몰아세웠다. 그래선지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 후 6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느닷없이 축제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돋아났다. 바야흐로 축제민국이 되었다.
아프리카 원시림原始林의 살라스족은 365일이 축제다. 어제는 추장 둘째 마누라의 생일이었고, 오늘은 사냥대장의 생일이다. 그래서 인구 200여 명의 부락에서 매일 잔치가 끊일 날이 없다. 숫자를 다섯 밖에 모르는 그들에게 기억된 생일은 없다. 하기야 한 발만 숲으로 나가면 과일이나 새와 짐승들이 천지에 널려 있고, 강에는 물고기가 지천至賤이며, 옷도 필요 없는 발가숭이로 살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들까지 손닿을 곳에 있으니 술 먹고 노래하는 것 외에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축제 내일도 축제, 1년 365일이 축제다.
대한민국의 축제도 우후죽순 같다. 그런데 우후죽순이 문제가 아니라 축제의 내용에 알맹이가 없다. 서양의 사육제謝肉祭, 브라질의 삼바축제 그리고 일본의 마츠리는 세계적인 축제다. 주민보다 관람객이 더 많다. 전통이 근간根幹을 이루고 주민들이 주인공이다. 먹고 마시고 뛰고 춤춘다. 주민들이 놀고 관람객들은 구경한다. 그런데 우리 축제는 어떤가? 우리나라 축제는 주인공이 없다. 그러다보니 나비축제, 인삼축제, 산천어축제와 전어축제들이 난무亂舞한다. 주인공이 나비와 인삼과 산천어들이다. 보고 먹고 마시는 관람객이 주인공이다. 축제가 아니라 장터다. 족보族譜도 없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정작 주인공인 주민들은 모자 하나 얻어 쓰고, 안내완장腕章을 차고 관람안내를 하거나 쓰레기처리 등 뒤치닷꺼리를 하는 게 고작이다. 재주넘는 곰이나 재주부리는 원숭이다. 그러고는 축제가 끝나면 지자체들은 직접수입이 얼마며 홍보효과가 얼마라는 수치數値를 홍보하며 성공한 축제라고 나팔을 분다. 그나마 어느 지자체에서 성공한 축제 덕분에 지방세를 감면減免했다거나 수익을 몇 푼이라도 주민들에게 나눠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전통을 추적追跡하여 축제의 근본을 세우고, 상품 선전이나 관람객이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공동체共同體주민들이 흥겹고 신나는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72) 북한 도깨비
'북한에 대한 말을 줄여라' 리처드 루거 전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 얼마 전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자유당시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북한 사람들이 모두 이마에 뿔이 돋은 악마나 도깨비인줄 알았다. 면사무소 횟가루를 칠한 벽에 도깨비 형상을 그려놓고‘찢어 죽이자 김일성, 때려잡자 공산당’이라고 온 벽면에 되벽을 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악마나 귀신으로 가르쳤다.
대변인의 성추행사건으로 대통령의 첫 미국 나들이는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버렸으나 대통령이 말한‘한반도(한반도라는 약호略號는 자기 비하卑下, 대한으로 써야함) 신뢰 프로세스’는 유효한가보다. 성공적이라고 홍보하려던‘입’은 조폭처럼 잠수潛水를 타고‘더러운 손’만 남아 국민들까지 국제적 망신을 샀다. 그래도 묻혀가는‘성공적 방문’이 안타까와서인지 신뢰프로세스가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데 그 신뢰라는 건 상호 간의 믿음과 존중을 기본으로 하지 않던가?
북한의 정치국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박대통령은 6월 말에 중국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데 북한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므로 뭔가 음모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을 비워버렸다. 애초에 시진핑과 최용해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는지, 어느 수준의 방문인지도 모르면서 언론은 최용해의 중국방문을 폄하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시진핑이 최용해를 만나 친서親書를 전달했다. 그러자 언론은 다시 최용해가 10시간을 기다려 시진핑에게 친서를 전달했다고 사족蛇足을 달았다.
예전에도 북한에 관해서 언론은 매사에 부정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려고 애를 썼는데도 언론은 천문학적 미션이 있었느니, 그 원조물자가 인민들에게 가지 않고 군대로 가느니, 심지어는 비밀 커넥션으로 준 돈을 국방위원장이 고급양주洋酒를 사거나 스포츠카를 사는데 낭비했다느니, 북한 핵개발에 쓰였다고 무당巫堂이 점을 치 듯 푸닥거리를 했다. 김일성주석이 서거했을 때는 쿠테타 음모론이 터져나왔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죽었을 때는 독살설이 팽배했다. 예상치 못했던 김정은의 등장에서는 김정운이라고 이름조차도 오기를 해가며 북한정권이 붕괴되리라는 기대를 나팔불었다. 북한에 관한 기사는 모두가 부정적이고, 폄하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까부순다. 북한에 관해 호의적이고 밝은 기사를 본 적이 없다.
(이천만의 명상록 - 73) 국호國號
대한민국 국호는‘대한민국’이며, 줄임말도‘한국’이 아니라‘대한’이다. 더구나‘한반도’는 국호의 자기비하自己卑下다. 영어표기도 Korea가 아니라
Corea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기 이름조차 비하하여 개명을 원하겠나? 일제 식민지시대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겪어 이름을 빼앗기더니 이제는 자기 스스로 이름을 비하하는 참담한 상황이 되었다. 일제는 창씨개명 뿐 아니라 국호까지 비하 개칭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제가 개명한 국호를 아무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 언론방송에서나 지도자들도‘한반도’라는 명칭을 분별없이 사용한다.
‘한국’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면서 대한민국 국호의 줄임말이 한국이라고 생각한다.‘대한민국’에서‘한국’만 따왔으므로 어문상語文上 줄임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뜻 생각하면 한국은‘한(한은 순수한 우리말)민족의 나라’라는 말로써 타당성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호의 줄임말은‘한국’이 아니다. 더구나‘한반도’라는 호칭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비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본열도다. 그래도 일본은 대일본제국이다. 영국도 섬나라다. 그런데 대영제국으로 부른다. 청나라는 대청, 명나라는 대명으로 불렀다. 중국이 폄하하는 발해는 대진국이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나 한국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 국호는 개인의 이름처럼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데 틀리게 사용한다면 국민 자존심을 스스로 깍아내리는 자기비하다. 일제식민지시대를 겪어 위축萎縮된 국민적 자기비하다. 이름을 틀리게 부른다면, 비하한다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아무 의식없이 국호를 한국 또는 한반도라고 부르며 스스로 비하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호의 줄임말은‘한국’이 아니라‘대한’이다. 언뜻 생각하면 한국은‘한민족의 나라’라는 뜻이고, 대한민국을 두 자로 줄이면 한국이 되므로 맞다고 판단한다. 그러나‘대한제국’, 애국가의‘대한사람 대한으로’,‘대한민국 만세!’처럼 대한민국의 국호는‘대한(대 + 한, 순수한 우리말)’이다. 더구나‘한반도’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폄하하기 위해, 자기네 나라 일본열도列島의 섬나라 열등劣等의식에서 우리나라를‘반 쯤 섬인 나라, 한반도’라고 폄하했으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殘滓요 자기비하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국제적 영어표기 Korea를 Corea로 바꿔야 한다. Corea(고려)는 고려시대부터 국제적으로 사용한 국명표기이며 널리 알려진 국제적 표기인데 일제식민지화 되면서 영어표기상‘J’apan 보다‘C’orea가 앞에 표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Korea로 바꿔버린, 이 역시 청산해야 할 일제잔재다. 정부에서 기안하고 언론방송에서 사회적 캠페인으로 전개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74) 국민청원 : 국민감사청 창설
1. 왜, 국민감사청을 창설해야 하는가
근래 대법원의 일탈이 들어나고 있는 바 법적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법기관과 권력기관의 횡포가 자심하여 돈(유전무죄 무전유죄)과 빽이 없는 서민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 한다. 재판은 사회정의를 담보하지 못 하고 변호사의 밥이며, 3심제도는 유명무실이고, 그래서 정의가 실종되고 사회가 혼탁해진다. 사법기관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 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부패지수 지구촌 220개 국가 중 170위의 부패공화국이 되어 있다. 이를 개혁, 척결하지 못 하면 인권 복지국가로써의 나라의 미래가 없다. 본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이 이런 나라에서 살지 않기를 바라며‘국민감사부 창설’을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지구촌이 인정한 부패공화국이다. 부패지수는 세계 220여 개 국가 중에서 170위 정도다. 구멍가게에서 대기업까지, 공무원부터 종교계까지 초등학생의 학습준비물부터 대학연구비까지, 어디 한군데 안 썩은 데가 없다. 국비는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정부공사는 시장의 에누리처럼 떡고물이라는 리베이트천국이다. 그래서 멀쩡한 지방청사를 허물고, 보도블럭을 파헤치고, 하청 하청으로 부실공사가 되어 아파트가 쓰러지고, 다리가 내려앉고, 멀쩡한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다. 국제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부정부패를 척결하면 년 5%의 성장이 될 수 있다고 보고서를 냈다. 이는 법치의 실종에 근원이 있다. 사법기관을 비롯한 권력기관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있다. 망하는 길로 가는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국민감사청이 필요하다. 애국선열들도 이런 나라 만들자고 목숨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내 귀여운 손자들을 이런 나라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북유럽처럼 복지국가 인간다운 인권국가에서 살 수 있게 하고 싶다.
아파트운영권분쟁으로 쌍방 20여 건의 고소고발이 있어 경찰의 조사를 받고, 검찰의 수사를 받고, 법정에도 섰는데 사법기관은 가히 복마전이었다. 수사를 왜곡 조작하고, 괘씸죄를 적용하고, 삼척동자도 판별할만 한 사건을 법조문을 인용해가며 사법기관답게 왜곡하고 호도했다. 답답해서 상담을 했던 광주법원 상담사가‘법원에서 30여 년 근무했는데 법정이 반드시 정의롭지 않다’고 했다. 법정싸움 3년 여 지금은 사법기관을 믿지 않는다. 다시 교단에 선다면‘법을 믿지 말아라’라고 가르칠 것이다. 3심제도는 형식적이었다. 원심의 오류를 인용하는 복지부동이었다. 대법의 상고는 법률심리라는 편법으로 오류 시정은커녕 일반인이 알기도 어려운 법조문을 나열하며 원심판결을 합리화했다. 사법기관의 신뢰도는 사회인식조사에서 20여 개 직업군 중 최하위인 19위다. 사법기관의 일탈로 사회정의가 바로 서지 못 한다. 부패공화국이 사법기관의 일탈과 무소불위의 권력행사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사법기관은 구조적으로 개혁이나 혁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신문고처럼, 서민의 대변자로써의 국민감사청이 필요하다. 재판은 변호사의 밥이고, 국선변호사는 변호사 최저생계 보장책이고, 법정 또한 무소불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온상이었다. 법관은 범죄행위를 저질러도 노후가 보장되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마치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 등 법률적으로 200개 특권을 자기들 스스로 보장해놓은 것처럼. 생명을 다룬다는 미명으로 힘 센 의사들이 의료사고를 처벌할 수 없게 법적으로 막아놓은 것처럼 우리나라는 돈 있고 힘 센 사람들의 나라다.
법정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다 보니 법정을 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허술한 서민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사람들이 유전무죄의 법정에서 얼마나 법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변호사 수임비가 없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소연 할 데 없는 무력감으로 좌절하고 한탄하며 살아갈 것이다. 사법기관의 국민신뢰도는 최하위다. 말로는 법을 들먹이며, 정의사회 구현을 앞세우며 벌이고 있는 사법기관이 유전무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증명이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아 사회 정의가 사라지고 불법이 판치는 사회가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조차 부패공화국으로 지칭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조선시대 신문고 보다 못 법 앞에서 우리 서민은 기댈 곳이 없다.
사법개혁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기무사처럼 해체하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해체와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행을 할 수 있는 국민감사청이 필요하다. 국민감사청이 신설되면 사법부는 기능이 자연히 축소조정될 것이다.
그래서 서민을 대변하는 국민감사청 창설이 필요하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나라가 망하기 전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북유럽 같은 인권사회, 복지국가를 지향하기 위해서 국민감사청 창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2. 국민감사청은 어떻게 만들고 무슨 역할을 하는가?
. 대한민국의 선진국화 - 핀란드, 네델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같은 민주 자유 평등 복지국가 추구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중학교 내 두 손자가 살기좋은 나라에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게
. 사법개혁과 권력기관혁신은 구조적으로 불가능, 공수처 같은 서민을 위한 민간기구 절실
(1) (중앙기구 없는) 지자체별 독립기구, 변호사 회계사 등 법률전문가와 시민으로 구성된 순수 민간단체
(2) (준)사법기관 : 서민신문고 역할, 서민의 대리인(변호사) 역할, 현행약
식재판 기능, 중요사건은 사법기관 이양
(3) 국민감사청 창설로 감사원, 기관단체 자체감사기구, 관련 사회단체, 정부지원단체, 경찰, 검찰(경찰 병합 고려), 법원 등 사법기관 역할과 조직 축소 폐지 등 조정 가능, 시민고용 확대 예산 절감
(이천만의 명상록 - 74) 한강의 기적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한국교육을 언명言明한 것이 대여섯 번 된다. 오바마는 기회 있을 때 마다 한국을 배우라고 했다. 그런데 핀란드 교육정책가들은 대한민국교육을 실사實査하고 돌아가서는 오바마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비교육적 현실을 고발했다.
지구촌이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불과 50년 전에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같은 지구촌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였다. 더구나 동족상잔의 6. 25 남북전쟁으로 전국이 초토화焦土化 되었는데 불과 30여 년만에 지구촌 200여 개 국가 중 10위권 OECD국가의 일원이 되었다. 세계가 경이적驚異的인 눈으로 보는 이유다. 불과 근대화 30여 년만에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나라는 지구촌에는 없다.
이를‘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한강의 기적을 교육에 두고 있다. 밥을 굶어가면서도 학교에 보내는 부모, 우골탑牛骨塔의 신화神話를 창조한 대학진학률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육, 특히 어머니들의 교육의지에 찬탄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낸 교육이 한국을 오늘의 선진국으로 만들었다는 평가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에서는 대학입시가 사회를 압도壓度하고 있다. 공부는 출세出世다. 그래서 한국의 학생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아니 태교胎敎 때부터 오직 서울의 한 대학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로 교육감에 당선된 진보교육감들이 서울대학 폐지 주장을 했다. 전국의 국립대학을 모두 서울대학으로 만들고 서울의 서울대학은 대학원대학으로 재편再編한다는 발상發想이다. 왜? 서울대학이, 5천만 국민이, 태교때부터 올려다보는 서울대학이 지난 반세기 동안 한 일이 무엇인가? 공고鞏固한 학연學緣을 바탕으로 관官피아, 법法피아, 의醫피아세상을 만들었을 뿐이다. 오직 고시考試에 패스하여 공무원, 법조인, 의료계 그리고 정치계에 진출하여 개인의 안위安危를 위해 잘 사는 삶을 영위營爲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만든 보고서에서는 교육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바탕이라고 적고 있다.
대학진학율 80%(도이치 36%, 미국 64%)가 만들어낸 OECD 10위의 한국은 옳은 평가인가? 도이치의 36% 대학진학율을 눈여겨보라. 도이치는 고등학교 때 적성適性검사로 인문과 실업을 나눠 교육한다. 인문(3) : 실업(7)을 나눠 실업위주교육을 한다. 그래서 도이치에는 학력과 봉급의 갈등이 없다. 탁상卓上행정 문서文書사회도 없다.
한국 발전 50년사에는 공돌이 공순이가 있었다. 수출입국輸出立國은 내세우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신발공장에서 12시간 이상을 노동한 공순이 공돌이가 한국 발전의 초석礎石이었다. 비둘기집 반 평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공동변소가 모자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수도시설이 없어 세수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꾀재재한 모습의 우리 누이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신발과 가발假髮을 수출하여 우리나라는 발전도상국發展途上國이 되었고, 이제 선진국을 넘나볼 수 있게 발전하였다. 도이치 간호사들이 기피하는 병원에서 어엿하게 대학물을 먹은 파독派獨간호사들이 한 일은 피똥걸레를 빨고 환자를 의학적으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수발하는, 도이치 자국 간호사들이 기피하는, 요즘 말로 하면 3D업종 기피직을 마다 않고 분골쇄신粉骨碎身한 우리들의 누이들이 있었다. 버젓하게 대학을 나온 우리 광부鑛夫들도 도이치 광부들이 기피하는 말단 막장에서 일하거나, 도이치 광부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일만 도맡아서 했다. 그 눈물은 박정희대통령이 도이치를 방문하였을 때 통곡으로 터졌다. 대통령 부부와 간호사, 광부들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 참담한 현실이 우리나라를 한강의 기적으로 만들었다. 교육의 힘이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피땀을 흘린 사람들이 주역主役이다. 대학물을 먹은 인텔리가 아니라 공순이들이 이 나라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주역이다. 책상에서 펜대께나 놀리는 공무원들, 학교에서 일 주일에 서너 시간만 서양학문을 베껴다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학자교수들은 자기들 덕택이라고 호도糊塗한다. 용병傭兵으로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목숨값이 우리 경제의 초석礎石이었다. 독립군의 피와 일제 36년 간 압제壓制를 견디고 그러고도 허리를 굽혀서 일본에서 빌어온 차관借款이 포항제철을 만들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이 문서나 만들고 사무실에서 냉난방시설을 불평하고 있을 때 간신히 초등학교를 마친 이들은 몸으로 때워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세월호참사의 원인 종합적이다. 구원파救援派다 관官피아다 말들이 많다. 그러나 근본은 인문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원인이다. 공무원사회의 탁상행정 문서사회의 결과다. 관공서를 보라. 당선되면 멀쩡한 청사廳舍를 허물고 호화로운 청사부터 짓는다. 냉난방 잘 해놓고 수많은 공무원들이 컴퓨터자판字板 앞에 앉아 있다. 하루 종일 자판만 두드린다. 일선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는 복지福祉공무원들도 복지현황을 책상머리에서 서류로만 다룬다. 장애자가 몇 명인지는 알아도 어디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는 모른다. 교육을, 인문교육을 한강의 기적으로 보는 시각은 오류誤謬요 허구虛構요 호도糊塗다. 지금이라도 인문과 실업의 평형平衡을 세워야 한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고등학교 2학년 쯤에 적성검사를 해서 인문(3)과 실업(7)으로 나누어 교육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사회문제 대학입시와 사私교육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인문 위주의 사회는 곧 사상누각砂上樓閣으로 침몰하고 만다.
(이천만의 명상록 - 75) 국가 개조론
세월호참사 이후 박근혜정권은 국가 개조를 타개책打開策으로 들고나왔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維新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한다. 국가 개조다. 그래서 일본은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이면서도 세계 2위국가를 유지했다. 국민성개조도 아울러 병행되었는데 친절, 청결 그리고 정직이다. 이 세 가지 국민성은 일본국민의 상징으로 세계가 인정한다.
신안 섬학교에서 근무할 때 강당을 짓기 위해 일제시대 때 지은 강당을 헐어내는데 주춧돌이 문제가 되었다. 힘 센 장정壯丁들이 오함마로 시멘트로 만든 주춧돌을 부수려고 하였으나 끝내 부수지 못하고 상토上土를 해서 강당을 짓는 것을 보았다. 친절과 청결은 일본여행 때 몸으로 체험했다.
국가개조의 기본을 교육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세월호참사의 원인을 교육에서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 안전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교사선발에서도 인성과 자질을 제도적으로 명목화名目化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성교육이 교육이슈화 했던 일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세월호참사 같은 사회적이슈가 되어 인성교육을 들먹인 것은 내 40년 교직생활에서도 세 번 있었고 이 번이 네 번째다. 인성교육은 인격교육인데 인격은 책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인성교육에서 교과서는 인성의 지적기본을 터득하는 일로 끝이다. 인성교육은 가정교육이 기반이고 사회교육으로 체젤화體質化된다. 밥상머리교육이라든가 가훈家訓이 동원되고, 애완동물 기르기나 꽃나무 재배가 실질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가 솔선수범率先垂範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체험으로 길들여져야 한다. 일본가정의 제일가훈은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다.
공자孔子님은‘형식이 실질에 우선한다’고 하여 제도制度를 부각浮刻하였다. 제도적 형식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돈과 대학입시로 축약縮約되는 교육계의 현실적 문제가 원인이다. 오늘 한국교육처럼‘나 살고 남 죽이자’는 입시교육으로 인성교육은 도루아미타불이다. 내 어린시절 농본農本주의시대에서는 부富와 가난의 잣대가 동네부자였다. 동네 제일 부자는 논이 50마지기고 우리 집은 30마지기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삼성전자와 나의 수입을 비교한다. 은행장과 내 월급을 비교한다. 그리고 대법관의 변호사수입이 월 3억이고, 건설회사 회장의 봉사노역 일급日給이 5억 원이라고 한다. 중학생들에게 1억 원을 준다면 감옥에 갈 수 있겠느냐 라고 물었더니 60%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구멍가게 주인도 탈세를 하지 않는다면 바보취급을 당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바다에 나가 그물을 쳐도 오늘 먹을 만큼만 잡는다. 내일은 내일 걱정하면 된다. 수렵狩獵도 들돼지 한 마리를 잡는 날이면 온 마을이 축제가 된다. 벌이 꿀을 모으는 것은 욕심의 축적蓄積이 아니다. 태어날 유충幼蟲들의 먹이다. 사회조직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처럼 작은 공동체조직으로 만들고, 행정조직을 상하上下 서열序列조직에서 수평水平 공동체共同體조직화 해야 한다.
교육은 한국의 고질적인 사회문제다. 교육이 인문계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그리고 교육의 목표가 특정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아니 태교胎敎에서부터 특정대학을 향하고 있다. 교육이 한강의 기적奇蹟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허구虛構다. 우리교육은 비효율적 낭비였다. 고급 룸펜을 양산量産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보릿고개에서 해방시킨 것은 교육이 아니라 못 배운 공순이 공돌이들이었다.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무지렁이 농민들이었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도시로 나간 공순이들이 공단工團의 쪽방에서 몸으로 때워 산업화를 이룩했다. 그렇게 이룩한 사회적인 부富를 오늘은 기업가들이 독차지하여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간극間隙을 형성하였다. 북유럽의 사회적자본주의가 답答인데 우리는 극단적 기술적자본주의로 사회 불안을 점층漸層시키고 있다. 이를 타개하려면 인문교육을 줄이고 실업교육을 늘려야 한다. 기능인의 연봉을 획기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질과 특기를 검증하여 인문과 실업으로 진로를 정하여 교육한다. 비율은 인문 3이나 4 그리고 실업 7이나 6 정도다. 지나치게 인문이 기승氣勝하여 모두 대학을 가야 하고, 모든 문門이 인문계로 열려있다. 세월호참사의 근본원인에 탁상행정 문서사회가 있다. 정부청사에는 하루 종일 컴퓨터자판으로 문서를 만드는 공무원들로 가득 차 있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공무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인문과 실업의 조화를 이루면 사회개조는 물론이고 대학입시의 고질적 사회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천만의 명상록 - 76) 경로당
휠체어를 타고 헌 박스를 모으는 할머니를 보았다. 충격이었다. 리어커에 휴지를 싣고 다니는 노인들은 가끔 보았는데 휠체어 할머니는 충격이었다. 휠체어 짐칸에 빈 박스 여나무 개가 뉘어져 있었다. 우리 아파트 옆 산동네에 빈 집에는 할머니와 중년 남자 두 사람 등 세 사람이 동거同居를 한다. 그들도 휴지수집으로 살아간다. 손자를 마중하러 학교에 가다보면 교통수신호기手信號旗를 들고 횡단보도에 서서 수기신호를 하는 노인들이 있다. 꾸부정한 모습이 아무래도 80이 넘어보였다. 앉아있기도 힘들 연세年歲인데….
이 노인세대에는 국민보험이 없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아니었으므로 연금보험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새끼들 먹이고 가르치느라고 손발톱이 다 닳고 허리가 휘어도 자신의 노후준비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의 세대世代다. 어려워지면 농사짓던 논밭뙈기나 황소를 팔아 자식들의 학비를 댔다. 우골탑牛骨塔전설이다. 그렇게 가르친 자식들은 다 도회都會로 나가서 장가시집가고, 손자들 낳고 잘 산다. 명절이면 고깃근이나 뜨고 과일꾸러미를 들고 일 년에 한두 번 찾아온다. 그래도 헌 슬레이트집일망정 벌어먹을 땅이 손바닥만하게라도 남아있는 노인들은 행복한 편이다. 며칠 전 대학생칼럼에서 공원할머니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가 계단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박카스 한 병을 건네고는‘나는 만 원이면 되는데…’라고 한다는 기사였다. G20국가의 어두운 그림자다.
산동네 폐가廢家 휴지할머니 바로 옆 우리 아파트에는 경로당이 있다. 가입회원은 50여명인데 할머니 대여섯 사람만 모여 날마다 화투로 소일消日한다. 패거리가 된 대여섯 할머니 외 새로운 회원은 가봤자 왕따를 당한다. 기득권이다. 정부보조금으로 냉난방하고, 구청區廳에서 제공하는 공짜점심도 먹고, 떡이나 홍어회 등등 별식別食도 시켜먹고, 날마다 화투치며 그러고도 예산이 남아 자기들 끼리 아무도 모르게 여행도 한다. 시골 어머님은 눈만 뜨면 마을회관에서 노인들과 어울려 논다. 연세가 90인데 농사도 없고 할 일도 변변찮고, 자식들이 모시려고 해도 아파트생활은 죽어도 싫다고 하고 동네 할머니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낙樂이다. 시골 경로당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아파트경로당은 먹고 살만한 노인들이 간식꺼리다. 대개 아파트경로당이 다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번 관할구청이나 해당 정부기관에 건의를 했으나, 경로당은 자체운영이고 정부보조금은 전체 운영비의 2, 30% 수준이어서 경로당운영 간섭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복지직원이 모자라 제대로 관리현황조차 파악할 수 없다고 오히려 하소연을 했다.
박근혜정부는 노인복지공약을 파기破棄했다. 예산이 문제다. 그런데 아파트경로당은 부자노인들의 놀자판이고, 그 옆 산동네 노인들은 오늘도 리어카로 휴지를 수집해서 연명延命을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77) 녹비鹿皮에 가로 왈曰, 법法
법은‘디케 여신상女神像’처럼 정의와 공정을 목표하는가?
원전설계도면 68만장을 유출한 연구원의 영장은 기각하고, 9천장을 빼낸 직원은 구속했다는 기사다. 영장기각에 대해 담당판사는 어쩌고 저쩌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나불거렸지만 우리들 중생衆生 입장에서 보면 눈 감고 아웅하는 일일 뿐.
팔자八字가 사나워서라고 자조自嘲하지만, 정년퇴임을 하고 손자 돌보며 놀고 있는데 할머니들이 아파트회장으로 추대를 한다고 해서 아파트 입주민총회에 얼굴을 들이민 것을 연유로 아파트운영 부정비리를 알게 되었고, 부정부패사례를 자체감사하여 주민들에게 알렸더니, 궁지窮地에 몰린 임원들이 결백潔白을 주장하답시고 임원들 15명 연명連名으로 개인적인 명예훼손의 문건을 아파트에 뿌렸다. 그래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는데, 대응對應하겠다고 임원들이 자체감사문건을 명예훼손으로 몰아 맞고소를 했다. 내 행위는‘공익성公益性’이었고 임원들이 한 행위는‘명백한 개인적인 명예훼손’이었는데 경찰과 검찰은 쌍방雙方명예훼손으로 몰아갔다. 그러고는 조사 때마다 경찰, 검찰 심지어는 원심재판장과 항소심재판장까지 화해를 종용했다. 끝까지 거절했더니 임원 15명 중 5명은 (어떤 명분인지) 기소유예起訴猶豫, 그리고 회장 부회장들 10명은 30만원씩 벌금형이 선고宣告되었는데 내게는 3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임원들은 내가 자기들의 10배가 넘는 벌금형을 받았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했다. 백 번 양보해서, 설사 쌍방 유죄가 성립된다하더라도 형평성에서 기가 막혔다.
임원진들 중에는 사위가 현직변호사, 남편이 변호사사무실 사무장, 전직 경찰이 있어서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게임이 안 될테니 화해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풍문風聞이 돌았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화해를 시도했으나 내가 화해를 완강하게 반대하자 로비를 통해 쌍방명예훼손으로 몰아버렸다. 나는 그 때까지도 초등학생처럼 사회정의구현을 외치는 법을 믿었다.
법전法典이 세상만사世上萬事를 다 규정할 수는 없고, 사건들마다 모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법관이 재량권裁量權을 행사行使할 수 있다고 치자. 그래서 법정은 신성神聖이고 법관은 신의 영역을 담당하는 걸로 되어 있는데, 자칫 법은 적용에 따라‘녹비鹿皮에 가로 왈曰’이 된다. 비슷한 내용의 범죄행위에 관하여 어떤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고 다른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 것이 법이다. 광주에서 재판을 받으면 2년형을 선고받고 대구에서는 5년형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여기에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받는) 변호사가 끼면 10년형이 3년이 되기도 하고, 3년형이 무죄 혹은 집행유예나 보석保釋이 된다. 이래서 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속성屬性에 애초부터 근거하고 있다. 1988년 집단살인범 지강원의‘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유명한 법언法諺이 되었다.‘부러진 화살’과‘도가니재판’은 사회뿐만 아니라 법조계에도 경종警鐘을 울린 사건이었다. 근자近者에 조봉암 사형死刑판결의 60년만의 번복飜覆이 있었다. 그리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도 30년 만에 무죄판결이 났다. 그러고도 법정은 전혀 변함없이 신성을 외치고 정의사회구현의 선두先頭에 서 있다고 나발만 열심히 불어재낀다.
법원건물마다 상징적으로 새겨져있는 디케는 그리스의 정의의 여신인데 왼쪽 손에는 법전法典을 오른쪽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부러진 화살사건’이 회자膾炙되었을 때 어떤 네티즌이‘디케의 법전’을‘떡’을 들고 있다고 표현하여 고소苦笑를 금禁치 못하게 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다 법판法板은 어떤가? 법이 정의롭고 공정하다면 변호사가 먹고 살 길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판사는 변호사가 먹고 살 길을 터주기 위해 형량을 적당히 올려 판결을 하고 변호사는 그 틈을 타고 곰 재주를 부린다. 그나마 서민들에게 변호사는 그림의 떡이다(국선변호사는 요식要式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 우유값이 없어서 우유 한 병을 훔친 엄마는 실형實刑을 살고, 회사돈 1,000억을 횡령한 회장님은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하여 집행유예나 병보석病保釋으로 풀려난다. 그렇다면 법정이 신성하네 법관이 신의 영역을 다룬다는 것은 말짱 헛소리다, 합법적인 사기詐欺일 뿐. 그래도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이천만의 명상록 - 78) 문서文書사회 탁상행정卓上行政
문서사회 탁상행정은 세월호참사의 근원적인 원인이다. 안전安全 매뉴얼은 수천 개다. 그러나 실행은 없었다. 책상에 앉아서 문서로 만들어놓고 결재도장을 찍어놓았을 뿐이다. 선장船長과 선원들이 도망치기 전에‘갑판대피甲板待避’한 마디만 했으면 그 많은 400명 아이들이 다 살았을 것이다. 해경海警이 도착해서, 세월호가 침몰할 위험 때문에 들어가 구조할 수가 없었다면 조타실이나 확성기로 역시‘갑판 대피’한 마디만 외쳤으면 우리 생때같은 아이들 400여 명이 다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안전매뉴얼은 문서로 작성되어 캐비닛 안에 있었다.
학교현장에서 선생님들이 하는 일은 수업, 생활지도 그리고 공문서수발受發 인데 선생님들은 수업을 침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공문서수발을 들고 있다. 초등교장으로 근무하던 때‘교사 공문서수발 근절根絶’을 주제主題로 연구학교를 수행遂行했다. 초등학교의 교사의 사무분장事務分掌은 30여 가지에서 50여 가지다. 단위학교의 교사수에 따라 적게 또는 많게 분류한다. 그리고 학기 초가 되면 담임과 함께 사무분장도 배정한다. 도시의 대규모학교에서는 슬리퍼계係나 차茶심부름계 같은 접대부서도 있지만 농촌의 소규모학교에서는 교사 한 명이 5, 6개의 사무분장을 배정받는다. 6학급 학생수 50여 명의 소규모학교의 기초조사에서, 공문서수발은 교사 한 명 당 평균 하루 2건 접수, 이틀에 1건 보고로 나타났다. 공문서 한 건 보고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2시간이었다. 거기에다가 교육행사가 주 1회였다. 행사추진 기간은 평균 1주일이었다. 이래놓으니 교사가 염불보다는 잿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문이 늦어지면 사유서事由書나 시말서始末書를 쓴다. 말이 사유서나 시말서지 이는 징계懲戒다. 그러나 수업을 빼먹었다고 시말서를 쓰는 일은 없다. 학년 말‘공문서 근절’연구보고회는 무산霧散되었다. 교육청에서 연구보고회 주제를‘공문서 감축減縮’으로 변경하여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끝내 고집을 하자 보고회 자체가 무산되어버렸다. 지금도 국회철이 되면‘12시까지 시간 엄수 보고’공문들이 쉴 새 없이 내려온다. 대부분의 보고공문은 매년 비슷하다. 컴퓨터가 몇 대냐? 칠판이 몇 개냐 하는 식이다. 이와같은 내용, 형식의 보고를 해마다 되풀이 한다. 도교육청이나 군교육청 컴퓨터에 학교자료현황이 수록이 되어 있는데도, 군도郡道교육청에서 구입해주었으므로 배포현황이 있는데도 같은 내용과 형식의 보고를 해마다 요구한다. 말로는 공문서 감소대책을 외치지만 해마다 공문은 늘어난다. 교육부나 도교육청의 윗자리에 있는 분들은 할 일이 없다. 에어컨 시원한 사무실에서 이미 보고된 공문서를 뒤적이며 서류로 실적을 음미吟味하고, 행정고시를 패스한 그 기억력 좋은 머리로 실적이 될만한 정책을 수시로 개발한다. 예를들면 이렇다. 학년 초 도교육청에서 교육시책에 ‘애국심 고양高揚’을 한 항목으로 설정해놓고 몇 가지 세부시책을 하달한다. 군교육청에서는 몇 가지 시책이 더 첨가添加되어 학교에 시달示達된다. 학교에서는 또 몇 가지 시책施策을 보태서 학교경영계획을 작성한다. 그래서 학교시책은 50개에서 100개가 되는데‘애국심 고양 시책’은‘애국가 4절까지 부르기’‘태극기 그리기’‘무궁화 심기’‘반공 포스터 그리기’‘위문편지 쓰기’들이다. 보고서 실적實績은, 애국가 부르기 전교생 400명 100%, 태극기 그리기 4 - 6학년 200명 100%, 무궁화 심기 전교생 400명 600그루 150% 그래서 애국심 고양시책 150% 달성, 이런 식이다. 이런 걸 보고하느라고 수업시간 학생들은 자습을 한다. 도교육청에서는 이 결과를 보고받고 만족하며, 교육부로 150% 목표 달성을 보고한다. 교육부는 애국심 고양시책 항목이 150%가 달성되어 애국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고 만족한다. MBO(Management by Objectives, 목표관리기법, 대비되는 PERT System 인간관리기법) System이다.
관공서에 가보라. 증원增員이 불가피하다고 해마다 증원한 수많은 공무원들이 모두 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字板을 두들기고 있다. 무슨 공문은 그렇게 많으며 무슨 보고가 그리 급한지,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엄살을 부리며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력이 부족하여 복지사각지대가 방치되고 있다고 올해도 복지공무원 5,000명을 늘린다고 한다. 문서로 기획하고, 문서로 실행하고, 문서로 성과를 재단裁斷하는 문서사회 탁상행정에서 증원해봤자 컴퓨터문서만 늘어날 뿐이다. 공무원은 서류로 말하고 서류로 성과를 내느라고 청사廳舍는 수백 억을 들여 호화롭게 신축하고, 쾌적한 청사에서 공무원들은 하루 종일 지압 슬리퍼를 신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공무원은 없다.
(이천만의 명상록 - 78) 서울시의 한자교육
한일중韓日中 원로元老회의에서 상용常用한자 180자를 선정해서 한자문화권文化圈 나라들의 소통疏通을 돕겠다고 한다. 한중일 세 나라는 한자문화권이므로 한자를 부활시켜 소통을 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소통의 원리는 글로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때 맞춰서 서울시교육청이 상용한자를 1,800자 쯤 초등학교 정규과목에 부활하겠다고 한다. 한글의 70%가 한자어니 어휘력語彙力 확충擴充과 이해력을 증진增進하기 위해서는 한자병행竝行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중일 세 나라의 한자는 중국은 간체자簡體字, 일본은 약자체略字體 그리고 대한은 정자체正字體다. 이렇게 한자라고 해도 제각기 다른 길로 가고 있는데 상용한자를 가르쳐서 소통이 된다는 말은 어거지다. 그런데도 한자교육병행론자들은 또 이렇게 억지 주장을 편다.
우리 말글의 7, 80%가 한자어인데 한글교육만 받은 세대가 낱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학업성취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의 문맥文脈을 이해하지 못해 학습효과가 현저顯著하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한자를 병용하면 어휘력이 풍부해져서 말글살이가 더 윤택潤澤해질 것이라고도 한다. 심지어는 천자문千字文이나 사자소학四字小學 그리고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우면 인성人性교육이 되고 사회정화淨化 효과가 있다는 논리도 편다. 그렇다면 한자가 모국어인 중국에는 사회병리病理현상이나 사회악이 없다는 말인가? 한중일 원로회가 소통을 위해 상용한자를 추천하면서도 세 나라의 한자가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겨우 180자를 선정했으나 그나마도 실행에서는 난관難關에 봉착逢着되어 있다. 중국은 문맹율文盲率을 줄이겠다고 수천 년 이어온 한자를 포기하고 간체자를 개발했는데 다시 정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일본은 약자체를 사용했는데 정자체와 병행하여 사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통일한자를 선포宣布는 했지만 실행단계에서는 활성화는 미지수未知數다.
한단고기에 보면, 한자는 고조선시대 한웅천왕이 신지혁덕에게 문자창제文字創製를 명命하여, 혁덕이 모래사장에 찍힌 새와 짐승발자국을 보고 상형문자象形文字 한자를 창안創案했다.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는 원리다. 그래서 한자도 우리 글자라는 말은 맞다. 이후 고조선시대에 이미 한글의 모태母胎가 되는 참글도 창안했다. 조선시대에는 한글을 (재)창제했고, 60년대에 한글화정책을 펴서 지금의 한글세대를 만들었다. 한글세대에서는 한글로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신문잡지는 모두 한글로 만들어도 어려움이 없다. 헌데 한자병용교육을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 언어의 7, 80%를 차지하는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학생들이 어휘력이 약화되고 이해력이 낮아 학력이 떨어진다고 개탄慨嘆한다. 그러면서 교과서의 어휘를 더 어려운 한자어로 개발하고 있다. 그들이 쓴 연구논문은 급조急造하거나 신조新造한 한자어 투성이다.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 한글시대에,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한자를 줄이고 한자어를 한글화 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연구논문을 더 극성스럽게 한자화 하면서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학력성취력이 낮으니 한자를, 중국도 버린 한자를 교과서에 넣어 가르치자고 한다. 한자교육이 비효율적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편법便法으로 한자문화권 소통을 위해 한자 180자를 정식교과에 편성編成해서 가르치자고 한다.
‘중국이 망하든지 한자가 망하든지…’라는 말은 중국의 학자요 작가였던 임어당이 한자 때문에 문맹률을 낮추지 못해 중국은 저低개발국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면서 개탄한 말이다. 그래서 중국은 한자를 버리고 간체자를 만들었다. 일본어는 원래 한자의 획劃을 차용借用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일본어의 근본이 한자여서 한자를 빼고 일본어를 말 할 수 없다. 몇 년 전 방문한 중국은 간판들이 모두 간체자를 사용하여 필자筆者의 한자실력으로는 도무지 읽기 어려웠다. 한자로 위 상上자와 아래 하下자를 위아래로 맞붙여 놓은 요상한 글자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우리의‘카드’라는 표시였다.
한글로 된 서적書籍의 이해도가 떨어져 학습성취가 낮다는 말은, 한글화정책 이후에도 한결같이 한자를 추종追從해온 우리 학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하기야 한글 반포頒布시대에 최만리 같은 사대주의자들은, 한글을 반포하면 백성들의 의식意識이 깨어나 통치統治가 어렵게 되고, 종주국宗主國 중국이 노여워 할 것이라면서 한글반포를 반대했다. 학자연學者然하는 우리 지식인들도 요즘 발견된‘증도가자證道歌字’를‘청동초두靑銅鐎斗’며‘청동수반靑銅水盤’으로 이름 붙여 구지 한자어로 재발견한다. 그러고는 무지無知한 대중大衆들이 알아먹게 한다고‘청동주전자와 청동대야’라고 번역飜譯하여 부기附記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다. 우리 말‘강강술래’를‘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로 만드는 사람들이 학자들이다. 고고학이나 역사학으로 들어가면 한자어 선호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를 하면 연구논문으로써 가치가 없다. 판사의 판결문, 의사의 진단서와 처방전 그리고 공문서들도 형태만 한글이지 모두 한자어나 외래어들이다. 공무원들도 한자어를 써야 품위品位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며‘새길’을 만들고는 ‘신작로’라고 이름 붙이고, 새길의‘가장자리 길’을‘노견路肩’으로 이름 붙인다. 억지로 만들 바에는‘어깨길’이라고 해도 되는 일이다. 일반대중들은 가르치고 보살펴야 할 대상이니 일단 한자어로 어렵게 이름지어놓고 친절하게 교화敎化하는 것이다.
우리의 고전古典이 한자어로 되어 있으므로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말은 억지주장이다. 고전은 필요에 의해 연구한 학자들이 번역하여 한글로 펴내면 일반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 영어권의 고전이 라틴어로 되어 있으므로 영국이나 미국이 영어에 라틴어를 1,800자 쯤 넣어야 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한글은 세계적인 언어다. UN이 찬탄讚嘆한 지구촌언어 중 문맹률 제로(0%)언어다. UNESCO 문맹퇴치운동 공로상 이름이‘세종대왕상’이며, 시상일施賞日도 10월 9일 한글날이다. 세계공용어라는 영어도 문맹률이 50% 정도다. 한자는 문맹률 90% 언어다. 지구촌 모든 언어들이 문맹률 30% 이하 언어도 없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族은 언어에 쌍받침이 많아 세계 어떤 글자로도 표현이 어렵다. 그래서 한글을 자국어自國語로 도입導入했다. 영어는 닭 울음소리를‘코커아 두들 두’라고 표현한다. 닭의 울음소리를 닮았는가? 미국 닭은 그렇게 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인들은‘It is not’을‘이또 이스 낫또’라고 읽는다. 한글의 글자구조는 마치 컴퓨터시대를 예견하고 창제한 것 같다는 평판評判을 듣는다. 컴퓨터의 원리가 0과 1의 두 숫자로 된 것처럼 2차원의 자모子母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오염汚染은 심각하다. 이러다가는 한글이 토씨만 남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글은 일제시대 가장 치욕적으로 말살抹殺되었다. 전국의 모든 지명地名의 한자화, 창씨개명創氏改名, 일본어상용常用정책으로 일제는 한글을 죽임으로써 대한인의 혼魂을 죽이고 정체성正體性을 말살抹殺시키려고 했다. 거기에다 글로벌화를 외치고 영어교육이 유행하면서 이제 우리 한글은 한자에 찌들리고 영어에 치이고 있다. 만신창이滿身瘡痍다. 아울러 우리는 국어표준어정책으로 사투리(토속어土俗語, 민속어民俗魚)와 순수한 우리말을 다 거세去勢시켜버렸다. 마치 기독교신앙의 전파傳播를 빌미로 장승과 서낭당을 없애버린 어리석음처럼 우리말에 감칠맛이 사라져버렸다. 전라도에서는‘거시기’라는 말이 흔히 쓰인다.‘거시기가 거시기고 거시기다’라고 해도 이웃들은 다 알아먹고 웃는다.‘다일랍딩겨(고맙다는 긍정肯定)’나‘아짐찮이(선물膳物에 대한 고마움)’도 이제는 사라진 언어다. 필자筆者의 어린시절 고향은‘구름다리’인데 일제日帝가‘운교雲橋’로 고쳐버렸다. 할아버지대代에서는 예사롭게 쓰였는데 이제는 사라졌다. 주변의‘숯개탄포炭浦’,‘배다리 주교舟橋’,‘잠근(잠긴)다리 침교沈橋’,‘쇠섬 우도牛島’도 사라져버렸다. 이웃 화순고을의‘스무실(숨은, 밖에서는 안 보이는 골짜기)’은 일제가 지명 한자화를 할 때‘이십곡리二十谷里’가 되었는데‘스무’를 번안飜案할 때‘이십’으로 착각하여 생긴 웃지 못할 이름이다. 감칠맛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 다 사라지고 있다. 설령 한자를 안 쓰더라도 한글이 한자어화해서 한글은 토씨만 남고 그 한자어문맥文脈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한자를 배우고 만들어내면 결국 우리말과 글은 사라지고 한자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처럼‘한자가 망하든지 대한이 망하든지…’라고 푸념을 늘어놓지 말라는 법 있는가? 지구촌이 글로벌화 되거나 지구촌은 하나라는 말은 세계 모두가 언어나 말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독특한 문화를 서로 발전시키며 조화로운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얘기다. 문화가 획일화된다면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군국주의 보다 더 무서운 독재가 되고 결국 망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한글정책은 발전적으로 이어져야 하고 사투리도 살아나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79) 임을 위한 행진곡
기가 막힌다.‘임을 위한 행진곡’을 5 . 18기념식에서 합창合唱으로 할까 제창齊唱으로 부를 것인가가 국가보훈처의 고민이란다. 우스운 일이다. 애초에는 이 노래를 기념식에서 못 부르게 막았고, 막을 명분名分도 없고 반발이 거세자 공식적인 기념곡을 제정한다는 편법便法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치졸稚拙하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얼핏하면 OECD를 들먹이면서도 이런 수준이라니 안타깝다.
보훈처가 이 노래를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 노래를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고 보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歪曲하고 폄하貶下하려는 의도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들을 좌파적左派的으로 보는 시각일 것이다. 또 최고지도자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빨갱이들의 반란叛亂’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이 노래가 군사정권에 대한 반항을 상징한다고 보는 사람들 - 그러니까 어떻게든 군사정권의 독재 폭압暴壓을 정당화하고, 5 ․ 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려는 세력들과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하려는 보훈처와의 잠재의식적潛在意識的 동조다. 명분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적인 노래가 아니니, 그리고 5 ․ 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으므로 정식으로 기념곡을 제정하여 합법적으로 부르는 것이 기념비적으로 더 합리적이라고 논리를 편다. 그래서 남 보기좋게 기념곡 제정예산도 편성했다. 치졸한, 그리고 예전에 누군가에게 많이들 써먹었던 속이 뻔히 보이는 치졸한 수법이다. 썩 마뜩찮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임을 위한 행진곡’어디에서도 반反정부적이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폭동을 선동하는 가사歌詞는 없고 오히려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당한 영령英靈을 위한 애잔한 노래라고 거드는 척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 30여 년 간 민중들이 민주화과정에서 희생한 영령들에게 헌사獻詞로 바쳐왔다. 그 걸 부르느냐 마느냐 또는 합창으로 하느냐 제창으로 한다거나 하는 졸렬한 모양새를 보훈처는 더 이상 보이지 말라. 필자筆者는 이런 논란 자체가 챙피하고 부끄럽다. 학교행사에서도 애국가는 행사 전반부前半部에 들어 있고, 행사기념곡과 교가 등은 행사 마무리에서 부른다. 보훈처는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희생한 고귀한 영혼을 요설饒舌로 더는 욕辱보이지 말라.
(이천만의 명상록 - 80) 전교조설립에 관한 교육부의 공문公文
25년 전 전교조를‘눈엣가시’로 여겨 어떻게든 설립을 막으려던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했다. 제목은‘전교조 식별법’이다. 촌지寸志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만드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학부모상담相談을 자주하는 교사,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인기 많은 교사, 인성교육이나 공동체교육을 외치는 교사,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교사, 자기 자리 청소를 스스로 하는 교사였다. 하나 더 보탠다면 교포校抛교사다. 교장 교감 승진을 포기하는 교사다. 승진은 교육계 부조리의 백화점이다. 그래서 전교조교사들은 아예 승진을 생각지도 않는다.
2014 지방선거에서 17개 교육청의 13자리 교육감을 진보교육감이 차지했다. 이 땅의 보수꼴통들은 분憤하고 원통寃痛해서 땅을 친다. 그러면서 진보교육감이 당선 된 이유로, 진보進步는 단일화單一化했고 보수保守는 흩어졌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호도糊塗한다.‘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대통령의 유시諭示인데 그것 하나만은 마음에 새겼나 보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유권자들 특히 학부모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보수꼴통들의 자기합리화合理化다. 실례로, 여론조사에 의하면 보수정권이 만든 자사고, 특목고 그리고 자율고는 지지율이 30%대로 모두 실패했다고 판정한다. 그 대신 진보교육감이 세운 혁신학교는 지지율이 70%다.
사실이 이런대도 보수꼴통들은 교육감직선제를 폐지하겠다고 설친다. 도지사道知事 런닝메이트나 임명제로 환원還元하자고 한다. 직선제선거로 13개교육청이 진보를 선택해서 보수가 설 땅을 잃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선제로라면 이 다음에도 보수교육감을 당선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교육감직선제直選制는 임명제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정치권이 밀고 들어오고, 돈다발이 오가는 건 다반사茶飯事였다. 우수마발牛溲馬勃이야 따질 것도 없고 권력이나 금력金力이 교육행정을 좌지우지左之右之했다. 이 폐단弊端을 없애려고 직선제를 도입했는데 걸음마도 하기 전에 다시 임명부조리로 되돌리자고 한다. 보수꼴통들의 행태는 권력을 위해서는 체면도 양심도 헌 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그들의 이력履歷이요 관행慣行이다. 그러면서 세월호참사가 일어나자 교육감선거에 책임을 전가轉嫁하면서 인성교육을 하자고 교육과정을 만들고 인성교과를 도입하자고 설레발을 친다. 인성교육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의 행태다. 인성교육은 교과서나 교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본적인 지식은 교과로 전수傳授되지만 정작 인성교육의 최대가치 실행은 지식전수가 아니다. 교과서로 질서와 규칙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버스는 줄을 서서 차례로 탄다는 문항問項의 시험에서는 다 백점 만점을 맞는다. 그러나 한 발 출퇴근시간에서는 줄은 고사하고 먼저 타려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의 어른들 틈에 끼어 교과서의 줄서기는 도루아미타불이 된다.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는 지각하기 일쑤다. 인성교육은 교과서로 되는 게 아니라 모범행동과 실천에 있다. 지식은 교과서로 배우되 실행은 가정과 사회에서 배워야 한다. 아무리 가르쳐봐야 한 발짝만 나서면 도루아미타불이니 교육이 실천으로 연계連繫될 리 없다.
일본은 명치유신 명치유신維新시대 200년 간에 국민성을 개조하였다고 자랑하는데, 지구촌에서 친절, 청결과 정직한 나라로 인정한다. 년 전前 일본여행에서 실제로 보았다. 그 국민성 개조의 밑변에는 일본인의 가정교육이 있다.‘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는 일본 가정의 필수가훈必須家訓이다. 가정에서 철저하게 익힌다. 이것이 오늘 일본의 국민성개조를 만든 원동력原動力이다. 우리나라에도 밥상머리교육이니 가훈이니 등 가정교육이 있었다. 그런데 핵核가족화 되면서 가정교육이 실종失踪되었고, 사회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었으므로 아무리 학교에서 인성교육, 질서교육과 기본교육을 외쳐봤자 허공虛空에 대고 외치는 메아리일 뿐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81) 쳐 죽일 놈과 때려죽일 놈
욕설이지만 우리 어른들이 흔히 쓰던 말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불쑥 내뱉던 말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에서 이 말의 대상은 공무원이다. 방송언론에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난무亂舞한다. 원인이 어떻고, 선장船長의 행태가 이렇고, 대책위는 중구난방衆口難防이고, 구조활동은 수수방관袖手傍觀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입 다린 사람은 다 질타叱咤한다. 인재人災라고 한다. 1년을 멀다하고 터진 대형참사는 모두 인재였다. 인재타령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이 번의 인재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마리나리조트, 해병대캠프, 유치원 어린이 사건에 이어 인인인인인재人人人人人災 쯤 되는 건가? 이 인재의 대상은 공무원이다.
구조적인 문제다. 공직사회가 부정부패, 비리非理, 부조리不條理로 신경마비神經痲痺 상태다. 제 낯에 침 뱉기지만 대한민국을‘개’한민국이라고도 부른다. 부패공화국이라고도 부른다. 속속들이 썩어있다. 안 썩은 곳이 없다. 부정부패에 면역免疫이 되어 중학생들에게‘1억이 생긴다면 감옥에 들어가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60%다. 구멍가게도 탈세脫稅를 안 하면 바보다. 정직하게 살면 바보로 취급한다. 우리나라 제일의 재산가는 10조兆의 돈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보통사람은 돈의 액면가額面價가 천만 원 정도에서 멈춘다. 만 원을 쓰려면 몇 번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내 이웃에는 10조,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다. 모두 거기만 쳐다본다. 그래서 공무원들도 모두 위만 쳐다본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만든 사태가 세월호참사다. 쳐 죽일 놈과 때려죽일 놈은 방만放漫한 경영을 눈 감아준, 촌지寸志 좀 받아먹고, 상납上納받고, 접대받고, 낙하산落下傘인사와 전관예우前官禮遇를 한 공무원이다. 문서사회 탁상행정을 일삼은 공무원들이다. 정부기구機構나 청사廳舍를 보라. 호화롭게 지은 청사에서 냉난방을 해놓고, 지압指壓스리퍼를 질질 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기들 말로는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자판字板만 두드린다. 회의실에 모여서 회의하고, 책상에 앉아 문서로 기획하고, 문서로 결재하고, 문서로 성과를 잰다. 현장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발에는 스리퍼요 손에는 컴퓨터자판 뿐이다. 그래서 유난히 배불뚝이가 행세를 한다. 이들이 수학여행 길에서 무참히 죽은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의 간접살인자들이다. 고형화固形化된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공무원직제를 국장, 과장 계장의 계급제階級制를 폐지하고, 그룹이나 팀제로 만들어 상하체제上下體制가 아니라 평등공동체제로 구조적개혁을 해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82) 아무도 진실은 말하지 않는다
검찰총장 혼외婚外아들 문제가 일파만파一波萬波다. 언론과 방송에서는 연일連日 진실게임을 벌이며 유전자감식遺傳子鑑識을 촉구促求한다. 전례前例와 달리 대통령은 검찰총장의 사표수리辭表修理를 미뤘다. 진실게임이 끝나는 걸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검찰총장의 진실규명이 하何세월이 될 것이라는 법무부의 권유에 따라 사표수리 연기 사나흘만에 전격적電擊的으로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총장은 이임사離任辭에서도 가족까지 거론하며 결백潔白을 주장했다.
왜 사표 수리를 연기했는가? 확인사살確認射殺을 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는 거의 확실한 결정적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왜 총장을 밀어내려고 했는가? 대선大選 댓글 기소起訴 때문이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기필코 막으려고 했던 대선 댓글이 직접적이고 쟁점爭點이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대통령은 대선댓글에 덕德을 본 게 없다고 미리 선線을 그었다. 청와대는 덕을 보았든 안 보았든 대선댓글이 법정法廷에 가면 대통령의 선거 합법성이 훼손毁損된다고 판단하고는 대선댓글사건이 법정싸움이 되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걸 원치 않았다. 물론 대선댓글만으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부정선거 시도試圖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 그래서 괘씸죄에 걸린 총장을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밀어내려고 했는데 총장이 버티자 개인의 사적私的인 비리非理를 들고나와 혼외자婚外子, 파렴치범破廉恥犯으로 몰아버렸다. 그래서 민주당은 혼외자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더니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검찰총장의 도덕성에 관심이 없다는 민주당은 도대체 축첩蓄妾을 인정해야 하느냐고 몰아세운다. 쟁점을 비켜가도 한참 벗어나버렸다. 대선댓글문제가 오로지 혼외자문제로 변신變身해서, 정치적인 사안事案이 가십으로 변신해서 바야흐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언론과 방송도 국정원의 대선댓글과 부정선거는 팽개쳐버리고 오직 혼외자에 총력總力을 집중한다. 국민들도 대선 댓글이라는 골치아픈 부정선거문제 보다도 혼외자라는 가십에 더 열광熱狂한다. 쟁점이 전도顚倒되었다. 주객관점이 바뀌었다. 성동격서聲東激西 - 서쪽을 공략하려면서 동쪽에서 요란하게 떠든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戰法. 어디서 늘 보던 수법手法 아닌가?
검찰총장 혼외婚外아들 문제가 일파만파一波萬波다. 언론과 방송에서는 연일連日 진실게임을 벌이며 유전자감식遺傳子鑑識을 촉구促求한다. 전례前例와 달리 대통령은 검찰총장의 사표수리辭表修理를 미뤘다. 진실게임이 끝나는 걸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검찰총장의 진실규명이 하何세월이 될 것이라는 법무부의 권유에 따라 사표수리 연기 사나흘만에 전격적電擊的으로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총장은 이임사離任辭에서도 가족까지 거론하며 결백潔白을 주장했다.
왜 사표 수리를 연기했는가? 확인사살確認射殺을 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는 거의 확실한 결정적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왜 총장을 밀어내려고 했는가? 대선大選 댓글 기소起訴 때문이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기필코 막으려고 했던 대선 댓글이 직접적이고 쟁점爭點이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대통령은 대선댓글에 덕德을 본 게 없다고 미리 선線을 그었다. 청와대는 덕을 보았든 안 보았든 대선댓글이 법정法廷에 가면 대통령의 선거 합법성이 훼손毁損된다고 판단하고는 대선댓글사건이 법정싸움이 되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걸 원치 않았다. 물론 대선댓글만으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부정선거 시도試圖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 그래서 괘씸죄에 걸린 총장을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밀어내려고 했는데 총장이 버티자 개인의 사적私的인 비리非理를 들고나와 혼외자婚外子, 파렴치범破廉恥犯으로 몰아버렸다. 그래서 민주당은 혼외자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더니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검찰총장의 도덕성에 관심이 없다는 민주당은 도대체 축첩蓄妾을 인정해야 하느냐고 몰아세운다. 쟁점을 비켜가도 한참 벗어나버렸다. 대선댓글문제가 오로지 혼외자문제로 변신變身해서, 정치적인 사안事案이 가십으로 변신해서 바야흐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언론과 방송도 국정원의 대선댓글과 부정선거는 팽개쳐버리고 오직 혼외자에 총력總力을 집중한다. 국민들도 대선 댓글이라는 골치아픈 부정선거문제 보다도 혼외자라는 가십에 더 열광熱狂한다. 쟁점이 전도顚倒되었다. 주객관점이 바뀌었다. 성동격서聲東激西 - 서쪽을 공략하려면서 동쪽에서 요란하게 떠든다,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戰法. 어디서 늘 보던 수법手法 아닌가?
(이천만의 명상록 - 83) 슬프다, 한글이여!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국권을 빼앗긴 장지연선생의 울부짓음은 일제日帝시대 문자였다.“북미회담‘의’조속 개최 합의”트럼프의 북미회담특사 폼페이오에 대한 오늘 아침 신문의 제목인데 토씨만 한글이다. 방송은 영자英字 자막字幕 일변도一邊倒. 세계 최고의 문자로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글이 이제 토씨만 살아남았다. 공문서한글화 이후 살아났는가 했는데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는데 그쳤다. 공무원들은 큰돈을 들여 멋진 다리를 만들어놓고‘제 3한강교’라고 이름 짓는다. 넓힌 보행로는‘노견路肩’이다. 한글 이름으로 바꾼다면서‘길어깨’라고도 했으나 어설퍼서 안 쓰인다. 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언어로 채택했다. 부족언어의 특성상 쌍받침이 많은데 다른 언어로는 표기表記하기가 어려워 한글을 선택했다. 지구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약 6000개 정도인데, 영어는‘꼬끼오’라고 우는 닭울음소리를‘코커아 두들 두(Kokea Dudle Du)’라고 쓴다. 일본어는‘이토 이스 낫토(It is not)’라고 발음한다.‘세상의 많은 소리를 제소리에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다’미국인 헐버트Hulbert가 한글연구에 빠져서 한 말이다. 전남 화순에는‘이십곡리二十谷里’라는 동네가 있다. 일제시대 마을이름을 한자화하면서‘숨은 골짜기’를‘스무(이십) 골짜기’로 오해, 개명하여 지금까지도 사용한다. 우리 동네이름은‘구름다리’였다.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이 예사로 구름다리라고 했는데 구름다리는 사라지고‘운교雲橋’로 고착固着되어버렸다. 주변의 숯개(탄포炭浦), 잠은더리(잠긴다리, 침교沈橋), 배다리(주교舟橋), 쇠섬(우도牛島)들도 다 사라졌다. 한글표준화 정책이 한글말살정책이 되었다. 정겹고 감칠맛 나는 사투리는 비속어卑俗語로 치부되어 사라졌다.‘다일랍딩겨(다 이를 필요가 있느냐?)’‘거시기머시기(대상을 확실하게 하지 않을 때)’‘아짐찮이(고맙게도)’도 사라졌다. 마치 천하대장군을 미신이라고 때려부순 것처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때 수구세력들은 한글반포 불가론을 주장했다. 종주국 중국이 싫어한다, 백성들이 글을 깨우치면 다스리기 힘들어진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학자들은 국보급 유물을 발굴하면‘청화백자당초문병靑華白磁唐草紋甁’이라고 이름을 짓고 기꺼워한다. 심지어는‘강강술래(감감술래)’를‘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강한 적이 바다를 건너 쳐들어옴’으로 억지로 한자화하기도 한다. 방송언론에서는 영어가 대세大勢다. 아파트이름, 국산 차車 이름, 과자이름, 회사이름들은 다 영어식이고 애완동물도 영어로 이름 짓는다. 동사무소는“주민‘센터’”로 바뀌었다. 젊은이들은 한글을 합성하거나 배배꼬아 사용한다. 귀차니스트나 꼰대다. 의사들의 진료기록은 꼬부랑글씨고, 법원의 재판기록은‘오등(吾等, 우리)은 자(茲)에 아(我) 조선(朝鮮)’식 일제용어다. 기술자용어는 일본어가 대세고, 서양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영어 등 외래어들이 뒤섞여 일반인들은‘괴(고양이) 꼬막 보기’다. 요즘 한중일韓中日 3개국 원로학자元老學者란 사람들이 모여, 동양3국의 언어소통을 위해 한자 800자를 가려뽑아 공용어公用語로 하자고 논의를 했다. 중국 학자요 문학가 임어당의‘중국이 망하든지 한자가 망하든지’라는 말처럼 문맹률文盲率 때문에 간체자簡體字를 개발해서 한자를 버렸고, 일본은 한자를 약자화略字化 해서 가나문자를 만들었으므로 한자에서 벗어날 수 없고, 대한은 정자체正字體를 사용하는데 어떻게 무슨 수로 공용어를 만들 수 있을지? 거기에다 국방의무 국민개병화皆兵化로 사회에 군사용어가 횡행橫行하고, 언론이 군사용어를 사용하여 사회를 군대병영화兵營化시키면서 언어가 거칠어지고 폭력화되고 있다. 선거전략은 작전作戰이고, 상대진영陣營은 초토화焦土化다. 중국은 한자 때문에 문맹률文盲率이 높아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면서 약자화 하면서도 코카콜라COCA - COLA는 가구가락佳口佳樂이다. 프랑스는‘푸른 소나무회’가 있어 외래어外來語를 걸러낸다. 우리도 국어순화운동을 펼친 적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긴가민가다. 필자筆者의 본문本文도 한자어 투성이다. 이 글을 읽을 후배들을 위해 한자토를 달았다. 필자는 한자세대다. 올해도 한글날이면 한글을 되새기며 행사를 열고, 한글을 기리자고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떨 것이지만 하루행사로 그치고 한글은 토씨만으로 연명延命하며, 머잖아 박물관에 박제剝製된 체로 전시될 것이다.
(이천만의 명상록 - 84) 직지심경直指心經과 여자골프
도이치 제약회사에서 우리 공중화장실의 오줌을 받아간 적이 있었다. 당뇨병치료에 사용하는 인슐린개발이었다. 은행나무잎을 수입하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原産地고, 수입하기도 쉽고, 비용도 저렴低廉한데 왜 우리나라 은행나무잎을 수입했을까? 인삼人蔘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생自生, 재배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인삼이 유명하다. 예부터 고려인삼은 명망名望이 최고였다. 김치가 발효醱酵식품으로 세계적인 각광脚光을 받자 일본이‘기무치’로 개발해서 세계시장을 석권席捲하려는 야심野心을 가지고는, 배추를 수입할 것이 아니라 아예 씨앗을 가져다가 일본 땅에 심었다. 기후조건과 토양土壤이 우리나라와 비숫한 땅에 심었는데 김치를 담궜으나 감칠맛이 나지 않아 실패했다. 흔히 김치는 어머니손맛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경기지방에서는 액젓으로 담고, 전라도에서는 6젓(6월 새우젓)이라고 부르는 새우나 생선젓갈을 쓴다. 중국도 우리나라 배가 욕심나서 묘목苗木을 가져다가 심었는데 배맛이 엉망이라 실패했다. 금수강산錦繡江山, 천혜天惠의 땅이다. 천혜의 땅에서 천혜의 산물産物이 난다. 여자골프가 세계를 제폐制覇한지 오래다. 양궁洋弓은 추종불허追從不許. 대한낭자娘子들의 독주獨走에 골프와 양궁이 시합룰Rull을 바꿨으나 무위無爲. 양궁의 세계재패는 손끝감각에 있다고 보는 데 이는 우리 어머니들의 바느질과 고누놀이, 젓가락질, 김매기 등 전통생활에서 찾는다. 우리나라가 세계기능대회를 재패한다.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을 창제했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직지심경直指心經을 발간했다. 한자漢字도 고조선 한웅천왕시대 한웅천왕이 신지 혁덕에게 문자를 만들라고 했으므로 혁덕이 모래밭에 난 새와 짐승 발자국을 보고, 만물萬物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에 창안創案하여 상형문자象形文字 한자를 만들었다. 이후 상형문자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참글’이라는 한글을 만들었다고 한단고기桓檀古記(Daum Blog 이천만의 시, 이천만의 교학대한사 참조)는 전傳한다. 한글의 원형인 참글이 기록된 구리거울도 있다. 고려시대 직지심경은 도이치가 자랑했던 구텐부르크 성경활자 보다도 200년이나 앞선다. 팔만대장경을 만든 나라다. 따라서 사람도 천혜자연의 산물이고 천혜의 자연환경이 지배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태어난 대한인은 지구촌 최고의 우수한 민족이다. 천부적天賦的인 민족이다. 천손天孫이다. 그런데 백제시대 왕인박사가 전달한 문명으로 개명開明한 일본은 벌써 23여 개의 노벨상을 받았는데 우리는 왜 노벨상이 없는가? 교육이 공산품工産品 찍어내기처럼 획일성을 강요하고, 대학입시가 선다형답안選多型答案을 요구하고, 직장을 시험봐서 입사하는, 평생 시험공부에, 선다형시험에 그 역설적逆說的 정답正答이 있다.
(이천만의 명상록 - 85) 70대 할머니 유기遺棄 시신屍身
할머니 유기遺棄 시신屍身이 성폭력사건이었다는 수사발표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아직도 성性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성문제는 인간의 2대 본능 즉 식욕과 성욕의 발로다. 원천적인 본능에서 궁극적으로는 식욕이 가장 절대적인 본능이겠지만 집착에서는 식욕보다 더 충동적인 본능이 성욕이다. 성욕은 생존 본능이다. 우주적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성욕이 없었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원리가 성욕이다. 인간은 인류를 지구상에서 존재하게 하기 위해 성욕이라는 동기動機를 부여했다. 어린시절 소나 돼지를 갓붙이는 광경을 눈을 가려가며 몰래 보고 낯을 붉힌 일이 있었다. 닭은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도 서슴없이 교미交尾를 했다. 제일 낯이 부끄러운 광경은 개의 교미였다. 개는 교미를 시작하면 근 반나절을 암수가 꽁무니를 붙이고 쩔쩔 매고, 우리는 그 꼴사나운 교미에서 암수를 떼어놓으려고 막대기로 두드려 팼다. 그런데 이 동물들의 교미에는 공통된 사실이 있다. 암내다. 교미시기가 다가오면 암컷의 성기性器가 발갛게 부풀어 오르고 수컷 주위를 맴돈다. 평소에는 수컷이 다가오면 꼬리를 내려 성기를 감싸서 수컷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데 교미시기에는 오히려 암컷이 암내를 풍기며 수컷을 유혹한다. 동물들은 1년에 한두 번 교미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치면 생식본능이 사라져버리므로 암내를 풍기며 수컷을 적극적으로 유혹한다. 호랑이는 단독생활을 하지만 교미시기인 겨울철에는 인근 5백리 산에서 수컷들이 모두 모여 암컷 한두 마리를 놓고 경쟁싸움을 한다. 승리한 호랑이가 암컷을 모두 차지한다. 우성優性의 원리다. 코끼리는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에 두목인 늙은 암컷이 암내를 내는 암컷들을 힘으로 통제하고 엄격하게 교미를 하는 수컷을 선발해서 교미를 통제한다.
그런데 문제의 인간은 이러한 동물적 통제가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결혼제도다. 특히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결혼제도다. 그런데 간통姦通과 불륜不倫이 그치지 않는다. 공창公娼제도나 룸쌀롱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기생妓生이 있었고 축첩蓄妾제도가 허용되어 있었다. 지구상에는 지금도 일부다처一夫多妻나 다부일처제多夫一妻制도 있다. 사자나 코끼리 등 집단생활을 하는 무리들은 아랍국가나 에스키모, 또는 유목민遊牧民처럼 일부일처나 일처다부제를 운용한다. 그러나 그 어떤 제도로도 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남자와 여자의 성이 다르다는데 기인한다. 남자, 수컷은 자기 씨를 많이 퍼트리는데 주력한다. 동물사회처럼 경쟁하는 제도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오직 자기 씨를 퍼뜨리는데 주력한다. 남성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성욕을 발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거기에 비해 여자는 우수優秀한 씨만 받아들이려 한다. 시기도 월경月經처럼 제한적이다. 식물도 열성인자劣性因子를 가진 씨앗은 씨방을 닫아서 거부한다. 이런 남성 여성의 성적 차이점 때문에 성폭력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남성성은 무조건 자기 씨를 많이 퍼뜨리려고 하고, 여성성은 우수한 종자만 받아들이려 한다. 성이 생식본능만이 아닌 쾌락본능의 세상에서도 남자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기회만 있으면 섹스를 하려고 하고, 여자는 철저하게 가려서 섹스를 한다. 이 동물성원리를 알아야 초등학생으로부터 시작되는 청소년의 성문제와 노인의 성문제를 사회적으로 풀 수 있다.
(이천만의 명상록 - 86) 단장斷腸, 원숭이 어미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측 최고위급인사들이 느닷없이 나타났다. 남측정부는 당황했을 거다. 폐막식에 임박해서야 사전협의없이 일방적통보를, 시간을 주지 않고 해버렸으니 거절할 수도 없고 협의할 시간도 없었으니 울며겨자먹기로 승낙할 수밖에. 남측에서는 북측의 예상 외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대통령예방이 이루어질 것이냐 마냐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친서親書가 있느냐 없느냐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었다. 대통령이 드레스덴선언宣言으로, 광복절축사祝辭로 대화를 모색했으나 북측은 반발했다. 일방적인 발표로 반목反目만 불러왔는데 남측에서는 뭐 한층 더 발전적인 방향이니 뭐니 혼자만 깨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불쑥 북측 고위급인사들이 들어닥치자 당황할 수 밖에. 밉고 싫지만 어쩔 수 없어서 울며겨자먹기로 받아 들였다. 남측은 아무래도 말로만 통일 통일하며 전혀 통일 의지가 없는 듯하다.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을‘퍼주기’로 폄하貶下하면서 정책다운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 북측의 반발만 불러오는 정책을 혼자서 내놓고 북측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호도糊塗한다. 혼자 부는 나팔소리만 요란하다. 그러면서 삐라는 계속되고, 남한은 자유가 물결처럼 퍼진 사회라서 삐라를 막을 수 없다고 발뺌을 한다. 그러나 눈이 있는 남한의 국민들은 정부가 하려고만 하면 삐라를 제지할 수 있다는 걸 모두 다 안다. 보수언론은 북측의 부정적인면만 보도한다. 패널들도 모두 북측을 동내북처럼 두드려팬다. 한 번도 북측의 장점長點을 보도한 걸 본적이 없다. 아직도 빨갱이 도깨비 수준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수령首領 충성忠誠 등을 외쳤다면서 비난하고,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아오지탄광에 유배流配되었다고 호도한다. 이러면서 말로는 북측이 대화를 거절하고 조건을 붙여서 면담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둘러씌운다.
이번 추석에도 이산離散가족들은 판문점 망향각에서 망향제를 지냈다. 북쪽을 향해서 기약없는 눈물만 흘렸다. 단장斷腸의 고사(출전은 세설신어世說新語 출토편黜免篇)의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진 사유事由를 아는가? 우리 위정자爲政者들은 말이다. 뭐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가? 부모와 헤어진 자식이 60년 만에 만나는데 무슨 이유가 그렇게나 많은가?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말은 잘 한다. 오히려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말이다. 차라리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無政府主義者)가 더 낫다. 우리 정치를 보면 아나키스트가 되고 싶다.
(이천만의 명상록 - 87) 한반도韓半島
문재인대통령이 가야사伽倻史 재조명再照明을 언급言及했다. 가야사는 우리 역사에서 잊혀진, 700여 년의 역사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과대포장誇大包裝하느라고 가야사는 지워버렸고, 그래서 일본제국은 가야사를 왜倭(일본)의 대한진출의 역사로 호도糊塗해버렸다. 일본의 대한사왜곡歪曲은 식민지시대 우리나라를 합병을 합리화하려고 조선사를 편찬하면서 위만조선으로부터 한사군, 광개토대왕비문 등 악랄하고 집요해서 아직도 우리는 우리역사를 식민지사로 공부하고 있다. 거기다가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사대주의事大主義역사관과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신화적神話的역사관에 의존하고 있고, 근대에 들어서는 이병도학파의 일제어용학설(자세한 내용은 Daum Blog의 이천만의 교학대한사 참조)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대한민국’을 일제 50여 년이 지난 오늘도‘한반도韓半島’라고 자칭自稱한다. 반도가 무엇인가? 절반의 섬나라다. 일본은 몇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기 때문에 일본열도列島다. 그래서 식민지시대 섬나라 트라우마를 보상받기 위해 우리나라를 한반도로 폄하시켰다. 중국은 중화中華로 세계의 중심나라로 부르며, 대大청, 대명이라고 부르고, 영국은 섬나라인데도 대영제국이고, 일본은 섬나라이면서도 대일본제국이다. 땅덩이가 커서 대진大震(중국 폄하 발해)이라고 한 게 아니다. 애국가에서는‘대한사람 대한으로’라고 부르고, 고종은‘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고 했다. 만세삼창萬歲三唱을 할 때도‘대한민국만세!’라고 하지‘한국만세!나 한반도만세!’라고 하지 않는다. 언뜻 들으면‘한국’이 대한민국의 약호略號로 들린다. 그러나‘한국’은 대한민국의 약호가 될 수 없고 약호는‘대한’이다. 일제日帝청산이 친일파재산 환수에 한정된 게 아니다. 산꼭대기 쇠못을 뽑는다고 일제청산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대한사람들이,‘큰, 한’민족이 사는 나라다. 큰 활을 잘 쏘는‘동이족東夷族’이다. 그래서 한국이 아니라 대한이다. 더구나‘한반도’라고 자칭해서야 나라꼴이 뭐가 되겠는가? 나라조차 남북이 갈라지고, 남쪽은 동서로 갈리워져서 티격태격 싸우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 쪼그라질대로 작아진 나라에서 한반도라고 자기 조국을 스스로 폄하貶下해서야 어떻게 자긍심自矜心을 키울 수 있겠는가. 국정개혁 문화역사 적폐청산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이천만의 명상록 - 88) 삼 시 두 끼
보릿고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삼년고개나 남북상잔相殘의 미아리고개 보다 더 애처롭다. 보릿고개는 둔퉈놓았던 겨울나기 식량이 바닥나는 초여름, 먹을 게 없어서 풀죽이나 나물밥을 먹다가, 보리가 누르스름해지면 설익은 풋보리를 쪄서 말려 깡보리밥으로 요기를 했던 시절의 애환이 서려있다. 깡보리밥은 숟가락으로 뜨면 숟가락 안에서 다글다글 구르고, 입 안에 넣으면 입천정이 자그러워서 싫었으며 잘 씹히지도 않았다. 우리가 삼 시 세 끼를 먹는 관습은 조선시대 후기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 재래종 보다 서너 배 더 수확할 수 있는 통일벼가 나오고서야 보릿고개가 없어졌다. 통일벼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왔던 수천 년 간난艱難의 역사가 사라지고,‘새벽종이 울렸네 …’격양가擊壤歌가 울려퍼졌다. 그런데 불과 20여 년 뒤에는 통일벼가 천덕꾸러기로 전락顚落한다. 가축사료飼料나 과자를 만들고 술을 빚는 쌀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파트 뒤편 지산유원지는 보리밥집들이 유명하다. 일부러 까칠한 보리밥을 찾는 호사豪奢다. 비만肥滿이 흡연吸煙 보다 몇 배의 사회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호주 해변에서 본 중년남녀는 드럼통 같은 몸에 거북이 등껍질 같은 피부로 혐오감이 들었다.
우리도 초등학생의 20% 정도가 비만이다. 아직 서양의 40 - 50%에는 못 미치지만 근접할 날이 머지않다. 건강프로그램의 의사들은 비만이 영양상태의 불균형에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못 먹어서가 아니라 잘 먹어서 탈이다. 배가 고프지 않는데, 몸이 필요하다고 달라지도 않은데 사람들은 자꾸 먹는다. 미각味覺, 식도락食道樂이 아니더라도 요즘 젊은 세대는 혀로 먹는다. 우리 세대는 배로 먹었다. 요즘에는 육체노동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하루 대여섯 끼를 먹어댄다. 몸이 놀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몸은 영양분이 필요하면 스스로 보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여러분들은 꼬르륵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몸이 달라고 하지 않은데도, 혀의 요구대로 자꾸 들어오니까 몸이 주체를 못하고 영양분이 몸속에 쌓여 노폐물老廢物이 된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삼 시 두 끼를 먹으면 특별히 돈 들여서 다이어트 할 필요도 없고 가계家計비용이 눅는다. 줄어든 식사 한 끼로 영양과다와 음식노폐물로 발생하는 몸 안의 질병을 예방 수 있고,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된다. 사회는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 문화사회인데 우리의 식사문화는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다. 그 한 끼 절약으로, 1만 원으로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 29명도 살릴 수 있다.
(이천만의 명상록 - 89) 빼도 박도 못한다
며칠 전, 은행창구 여직원이 고객에게‘빼도 박도 못한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적금 해약을 얘기하다가 불쑥 나온 말이었는데 방송에서도 사용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빼도 박도 못한다는 말은 성性행위를 풍자諷刺한 비어卑語인데 말뜻을 모르니 그냥 내뱉는다. 차마 말로 충고하기 민망해서 쪽지에 빼도 박도 못한다는 말의 뜻을 적어 내밀고 은행을 나왔다. 속설에 의하면 개화파 김옥균이 혁명에 3일천하로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해서 지인의 집에서 기숙寄宿할 때, 지인의 아내를 범犯하는데 마침 출타중이던 지인이 들어와 격노激怒하여 일본도日本刀로 죽이려 하자‘끝내거든 죽여라’라고 하여 생긴 말이라고도 한다.‘전략戰略’은 군사용어다. 삼국지시대 손자병법孫子兵法이나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정치판에서 흔히 쓰였다. 전략전술, 저격수, 냉전이라는 군대용어들이 경제계나 교육계 어디에서나 흔하게 쓴다. 경음화硬音化현상이다. 사회에서도 순한 말로는 설득력이 뒤진다고 여겨서 어감이 강한 말로 대치代置시킨다. 특히 육두문자肉頭文字가 그렇다. 그런데 이 경음화현상은 중독성이 있어 점점 더 강한 말을 찾게 된다. 경음화된 언어를 사용하면 설득력은 더 있을지 몰라도 언어가 삭막해진다. 더불어 인성人性도 거칠어진다. 대개 강한 언어는 음지陰地에서 살아가는 깡패들이나 군대에서 사용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군대용어들은 국민개병제를 국민의 의무로 규정한 헌법의 부산물副産物이다. 군사정권의 군사문화의 소산所産이기도 하다.
학교에서‘얼차려!’가 유행했는데 교직에 있었던 나는 어리둥절했다. 군대를 안 갔기 때문이다. 얼차려란 말을 처음 알았을 때는 좀 얼떨떨했다. 얼차려가‘정신 차려!’의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얼차려는 학교체벌體罰문화를 대변했다. 교련敎鍊이 교과였을 때, 현역군인이 교련교사로 학교에 주둔했다. 얼차려, 원산폭격이 일반화되었다. 일제시대의 군대가 만들어낸 단체기합과 어울려 번창繁昌했다. 둘을 맞세워놓고 상대의 뺨 때리기, 걸상 들고, 분필 물고 벌서기들이 다 일제시대 일제군사문화의 단면單面이다. 이후에는 유명한‘까라면 까라!’라가 유행했다. 거친 가시가 있는 밤송이를 남자의 성기로 문질러서 까라는 말이다.‘하면 된다’는 새마을운동 취지와 함께 아마 지금도 어떤 현장에서는 유효할 거다. 유선방송의 앵커가 방송 끝에 거수경례를 한다.‘시사탕탕’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탕탕은 총소리의 의역意譯이다. 히틀러시대도 아니고 무인武人시대나 유신독재시대도 아닌데 방송이 전제專制시대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재현하고 있다.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그리고 현 시대의 문화적 가늠자다. 신문방송이 언어문화를 호도糊塗한다. 군대용어를 사용하고 언어를 경음화하여 전파한다. 경음화의 끝은 언어의 종말이다. 언어로 멸망한다는 뜻이다. 언어의 경음화 더 강하게는 인성의 파멸이다. 성경의 바벨탑의 교훈이 있다. 언어는 민족의 얼이다. 우리말이 표준어정책으로 사투리를 잃어버린 것은 정말로 애석하다. 중국 같이 큰 나라에서는, 미국 같이 여러 민족들이 혼집한 사회에서는 표준어정책이 유효하다. 광동어를 북경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미국에 사는 멕시코인들은 자기 말을 지니고 살아간다. 중국인들도 자기들 끼리는 모국어母國語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56개 민족이 56개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같은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다소 불편을 느끼더라도 사투리가 살아있어야 한다. 사투리는 살아있는 언어고 삶의 정감이 있다. 감칠맛이 있다. 얼만 전에 국회에서 인성교육을 법제화했다. 인성교육에는 사투리도 한 몫을 한다. 사투리는 모성母性언어다. 전라도에서 사용하는‘거시기와 뭐시기’는 의미가 애매曖昧한 말처럼 들리지만 전라도의 이웃들은 거시기 뭐시기를 해도 다 알아먹는다. 더불어‘한국’을‘대한’으로 바꿔야 한다.‘한민족’,‘대한 사람’의‘대한’이다.‘한반도’를 사용하는 것은 자기 모욕이며,‘KOREA’도 ‘COREA’로 바꿔야 한다. 일제식민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본연本然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다. 인성교육 차원에서도 신문 방송이 언어정화에 앞장서고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 90) 방송언론의 언어言語
4월 보궐선거유세遊說 가 한창이다. 불과 네 곳의 보궐선거인데 양당兩黨대표는 물론이고 지도부가 총 출동해서 야단법석野檀法席이다. 언론에서는 전쟁, 전략戰略, ㅗ지탈환高地奪還, 핵폭탄이라는 어휘들이 난무亂舞한다. 우리사회는 군대언어가 사회언어를 주도主導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사건에는 반드시 군사軍事용어를 사용한다. 얼차려나 원산폭격爆擊도 체벌만이 아니라 용어 자체가 주는 어감語感이 잔혹殘酷하다. 티비는 오늘도‘썰전(설전 舌戰)’이나‘탕탕’을 표제表題로 시사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피디가 군대처럼 거수경례擧手敬禮를 하는 방송도 있다. 군대軍隊용어는 어감이 강하다. 언론이 군대용어를 사용하면 사회가 피폐疲弊로와진다.
언론은 쇼킹한 사건에 집중한다. 부정적인 사건이어야 장사가 된다. 자살한 사업가가 비자금 100억을 150여 명의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賂物로 사용했다고 난리가 아니다. 회사는 물론 가정 그리고 하이패스기록까지 뒤지고 있다. 부정적이고 안티적인 사건들이어야 사회의 주목注目을 받는다. 그래서 티비만 켜면 부정, 부조리와 패륜悖倫, 범죄들이 가득하고, 신문도 부패, 무질서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정의롭고 평화롭거나 아름다운 기사는 쪽지 신세다.
어휘語彙들도 날로 경음화硬音化되어가고 그래야 말발이 선다. 강도점증强度漸增의 법칙이다. 손만 잡는다고 했다가, 어깨를 주무르고 끝내는 키스로 발전하는 연애기법技法과 닮았다. 애초의 거짓말은 그 거짓말을 변호하기 위해 더 강도 높은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총리總理가 거짓말로 물러났다. 미국대통령 닉슨도 부정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에 물러났다. 강한 말씨는 쌍받침을 사용한다. 새끼가 쌔끼가 되고 쌔애끼로, 쌍놈의 쌔애끼로 발전한다. 폭탄으로는 강도强度가 약해서 핵폭탄으로 발전한다. 이러면서 언론은 선도자先導者라고 자처自處하며 사회정화를 외친다.
학자들도 학자연然하는 버릇이 강하다. 한 점 청자靑瓷를 놓고 청자 상감 연국모란문 과형 주자靑磁象嵌蓮菊牡丹文瓜形注子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대부분의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사람들을 깨우치는 차원에서 친절하게‘청자 돋을새김 연꽃 국화 모란꽃무늬 참외모양 주전자’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애초에 한글로 이름을 붙였더라면 유치원아이들도 알아먹을텐데, 그럴만한 학문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 경찰조서, 검찰기소문과 판사의 판결문 또한 일반인에게는‘괴 꼬막 보기’다. 판결문을 원고나 피고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의사들의 꼬부랑글씨 진단서나 처방전은 환자들에게는 당달봉사다. 기술용어는 모두 외래어나 외국어고, 공무원들도 지식인연하며 붙임을 첨부添附, 여러 번은 누차累差로 만들어 쓴다. 외국학문께나 번역하여 가르치는 수준의 학자들은 교재敎材를 한자투성이로 만들어놓고는, 새내기 학생들의 한자실력이 부족해서 교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신입新入 초기에 특별강좌를 열어 한자교육을 한다. 교수는 한자교육에 단기속성短期速成 비결秘訣이라도 있는 것일까? 1주일 만에 한자漢字를 주입注入시킬 초능력超能力이라도 있는 것 같다. 또 이 땅의 학자라는 사람들은, 이순신장군이 왜적들을 속이기 위해 유래했다는‘강강술래’를 구지‘강강순라强羌巡邏나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로 고쳐놓고서야 직성直省이 풀린다.
평화통일이 국시國是다. 국민 누구라도 다 평화통일을 외친다. 그런데 언론의 북한기사記事는 한결같이 영양실조營養失調로 피골皮骨이 앙상한, 3대독재三代獨裁로 주민탄압과 무자비한 숙청肅淸 등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는 눈 씻고 찾아도 없다. 그러면서 평화통일하자고 한다. 선린우호善隣友好의 대화對話를 하자고 능청을 떤다. 긍정적이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기사로는 장사가 안 된다고 하드라도 부정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로 도배塗褙를 하는 언론은 보도태도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언론이 정의사회의 선도자先導者라면 긍정적인 기사, 미담美談으로 보도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천만의 명상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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