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만의 자서전- 지구촌평등평화론

이천만의 자서전-사회체제개혁보고서

북새 2018. 9. 11. 10:33



이천만李天滿의 자서전自敍傳-- 사회체제System개혁보고서                      


이천만李天滿의 자서전自敍傳
-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


<책 소개>

 자서전自敍傳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는 <Eros사랑과 결혼제도>, <신과 종교>, <국가와 영토>, <발전과 성장 그 무한대의 욕망> 그리고 사회체제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성찰省察을 기반으로 한 사회자본주의, 민주 자유 평등사회 실현에 대한 자전적自傳的 비판批判과 대안代案이다. 프랑스의 명예혁명, 영국의 산업혁명과 일본의 명치유신 보다 더 혁신적인 21세기 미래지향의 사회체제의 시대적변화가 필요하다.
 내용은
 신과 종교/ 사랑, 가족, 가정 그리고 결혼제도/ 교육과 문화예술/ 과학문명/ 사회와 국가의 조직과 체제System의 변화와 개혁이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사숙록私淑錄 양화편陽化編에서
 ‘형식形式이 실질實質에 우선優先한다’고 했다. 사회체제를 개혁해야, 삶의 방식을 바꿔야 지구 멸망의 나락奈落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다.


  금강산에서 학생들과(왼쪽 필자)       * 추후 보완


     <약력>

 이천만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수중흥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하였고, 한국화, 한국화, 민화교육을 연구하였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 어린이민학당활동을 했다. 장편동화 반디전설, 교육칼럼 훈사정음, 연구논문 한국민화교육연구 등 저서가 있다.


      <머리말>
간재間在 - 존재存在와 부재不在 사이, 신神과 짐승 사이, 옷을 입은 동물, 사회적동물이라는 인간이 영위營爲하는 오늘 이 지구촌의 생태와 인간의 삶은


국가와 영토 그리고 종교와 이념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써  갈등, 분쟁과 전쟁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Israel이스라엘과 Hamas하마스는 두 달 간의 전쟁으로 2,2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되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우리 속담을 반추反芻해보라. 모든 생물은 살기 위해 태어난다. 사는 것이 생물의 제 1의意다.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사람의 가치는 없다. 삶의 2대 본능이라는 식욕食慾과 성욕性慾도 삶 아래 가치다. 이 전쟁의 와중渦中에서 UN유엔난민難民학교가 포탄 공격을 받아 어린이들도 희생되었다. 이라크에서는 Suni수니파와 Sia시아파의 패권전쟁이 한창이다. 종교전쟁이다. 대한大韓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으로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냉전이 계속되고 이산가족離散家族이라는 혈연血緣 -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고 있다. Russia러시아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KAL칼기機를 격추해서 무고한 승객 400여명이 폭사暴死했다. 기아飢餓에서 허덕이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밥 한 그릇도 생산하지 못하는 사상이념전쟁이다. Siria시리아는 IS(Isram State)와 내전內戰으로 참혹한 살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기자를 공개적으로 참수형을 집행하면서 전 세계에 TV중개를 한다. 700여 명의 반대파 종족을 생매장했다고도 보도했다. 연방제가 해체되어버린 소련은 우크라이나와 영토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의 직접 희생자들 뿐만 아니라 영공領空을 날던 Egypt이집트 민간항공기를 격추해서 300여명이 산화散華했다. China중국과 Japan일본은 다오위다오(센카쿠)를 두고 일촉즉발一觸卽發이다. 일본은 러시아와 Kuril Islands쿠릴열도, 대한과는 독도 영유권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제(2014. 9. 23) 저녁 뉴스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로켓포로 공격하여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스라엘 청년 3명을 납치 살해한 보복이다. 오늘(2014. 9. 24) 아침에는 미국의 공군기들이 Tomahawk Missile토마호크 미사일까지 동원해서 IS(Isram State)의 근거지 락까를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국가영토전쟁이다. 영토 야욕과 대륙 진출에 대한 태생적 DNA를 가진 일본인은 대동아 공존이라는 논리로 호도하며 일으킨 2차 세계대전 패전국가가 피해국가로 둔갑遁甲을 했다. 그리고 야스쿠니신사神社에 전범戰犯의 위패位牌를 합사合祀해놓고 국가영웅으로 추앙한다. 동맹同盟하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Italy이탈리아(Mussolnini무솔리니), Deutsch, German도이치(Adolf Hitler히틀러)와는 딴판이다. 무솔리니는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패전국이 되어버려 피해가 크지 않았고, 도이치는 전쟁이 끝난지 6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전범戰犯을 단죄斷罪하고 총리가 희생자비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그런데 일본은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군사력 세계 2위의 자위대를 군대로 개편하려고 평화헌법 개정을 모의謀議하고 있다.
십자군전쟁은 Acape사랑을 교리로 내세운 기독교의 종교전쟁이고, 영토전쟁은 Alexander알렉산더, Napoleon Bonaparte나폴레옹, Genghis Khan成吉思汗징키스칸 그리고 히틀러와 세계 2차대전이 대표적이다. 알렉산더와 나폴레옹, 징키스칸은 역사의 영웅이다. 지구촌이 초토화焦土化되고 그 시대 인구 수준으로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같은 영토전쟁을 했는데 히틀러는 Auschwitz아우츠비츠 600만 살육으로 세계사에서 만고역적萬古逆賊이다. 징키스칸의 군대가 지나간 자리는 풀 한 포기들 생명있는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영웅이다. 집단적 희생이 가장 큰 게 전쟁이다. 중세 Europe유럽을 휩쓴 Cholera콜레라나 Yersinia Pestis페스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더구나 갓 피어난 젊은이들이 희생된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반면 애국이니 조국이니 종교니 이념을 내세우며 노회老獪한 위정자爲政者들은 갓 피어난 젊은이들을 전장戰場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희생되면 쇠붙이로 된 영웅 메달을 관棺속에 넣어주며 영웅이라고 민심民心을 호도糊塗한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약탈을 자행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키고, 엄청난 국력을 전장에 쏟아붓고는 자기들 끼리 축배祝杯를 든다. Chandelier샹드리에가 휘황찬란한 대리석 연회장에서 Siger시거를 태우고 Wine와인을 들면서 건배乾杯를 한다, ‘전승戰勝 축하! 만세!’


영국의 처칠 수상首相이 야당 노동당 당수黨首 애틀리와 의회에서 철도국유화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둘은 화장실에서 만났는데 - 쉬는 시간이면 늘 화장실은 만원滿員이었고, 처칠이 애틀리 옆 칸이 비었는데도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다른 빈 칸에서 볼일을 보았다. 괘씸하게 생각한 애틀리가 처칠에게 소인배小人輩라고 되뇌이며 회심回心의 미소를 띠고 의회에서 당한 면박面駁을 되갚아주려고 비꼬았다.
“수상각하, 내 옆 자리에서는 소변보기조차 싫다는 거요?”
 그러자, 툭툭! 털고 Zipper지퍼를 올리며 처칠 왈曰
“당신은 큰 것만 보면 늘 국유화하자고 하니…”


거대화의 추구가 지구촌을 망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Soviet Union소련연방은 15개 공화국으로 해체되었다. 무한 경쟁을 벌이던 United States of America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영토 확장(거대화)과 우주 경쟁(미세화)도 누그러졌다. 그런데 다시 EU(Europe Union)로 연합(다양화)한 유럽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시작하고 있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India인도는 패권 대열에 들어서지 못한다. 중앙집권이 자리를 잡지 못한 지방분권 때문이다. 인도는 주州정부를 중앙정부가 통제하지 못하여 주정부가 독립된 체제다. 미국의 주州, 중국의 성省과 일본의 현縣을 독립된 지방정부로 개편하면 거대화 패권이 없어진다. 거대국가의 영토를 정치적으로 잘게 쪼개 패권의, 영토전쟁을 야욕의 근원을 없앤다. 작은 국가다. 국경선을 지우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느슨한 국경, 유연한 영토관을 펼친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어서 물리적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영토의 갈등, 분쟁과 전쟁은 그치지 않는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경제적 패권주의는 갈등과 분쟁과 전쟁의 살육殺戮, Africa아프리카와 South America남미에서 어린이 노예를 착취하는 공정무역公正貿易으로 대변代辯되는 Super Rich수퍼 리치와 기아飢餓, 그리고 빈부貧富 격차隔差의 자본주의 체제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를 실현했으나 평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평등사상과 사회자본주의 정립定立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의 계층을 타파하겠다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는데 계층은 더 세분화 되었다. 조직구조를 수직구조 - 사다리식 계단에서 수평구조 - 타원형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Team팀제制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대통령부터 면사무소 주사에 이르는 계층 분화를 평등하게 고쳐야 한다. 회장부터 계약직사원에 이르는 계단을 없애야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E.T를 찾겠다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보내는 한편에서는 수백만이 굶어죽어가는 현실, 인공위성 한 대 값이면 굶어죽어가는 그 사람들을 다 구제救濟할 수 있다. Seine세느강변에 Eiffel에펠탑을 세우고는 환호하더니 Saudi사우디 Jeddah제다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탑을 세우겠다고 1007m 짜리 Kingdom Tower킹덤타워를 짓고 있다. 거대화, 미세화 그리고 다양화가 추구하는 세상 모습, 이게 사회적동물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지향인가? 성장, 변화, 개발, 도전과 정복이라는 서양식 사회체제가 인류를 갈등과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 자연과 동화同化는 우리 한韓민족의 삶의 방식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물질적으로는 향상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로와져버렸다. 인간의 삶의 방식은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동화同化여야 한다. 그게 지구의 본 모습이다. 인간도 지구의 한 생명체이므로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유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다른 생명체는 생명 유지 정도의 삶을 영위하는데 인간은 생명 유지의 탐욕을 넘어 무한대의 탐욕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면 결국 인간도 파괴된다. 성경 바벨탑의 교훈을 상기想起해야 한다.


거대도시는 거대생산과 거대소비를 유발했다. 집중화된 거대도시에서 발생한 오염원이 대기권의 오존층에 구멍을 뚫어 지구생태계를 파괴한다. 집중적인 석유자원 의존은 온난화를 가속시켜 남북극의 만년설萬年雪 빙산氷山을 녹여내리고 있다. 같은 양의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더라도 분산되면 자연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는다. 거대도시와 시골생활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시골에서는 쓰레기들이 자연 정화나 자연 재생된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물에 잠겨가고 있어서 국가가 이주移住를 시작했다. 온난화가 지속되면 대기권이 수증기로 덮여 햇볕과 햇빛이 차단되고, 식물이 죽고 동물도 죽는다. 결국 지구가 꽁꽁 얼어붙어 빙하기가 도래到來하여 인류도 멸망한다. 행성行星 충돌이나 태양 소멸消滅 그리고 우주질서 변화에 의한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지구 멸망 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인위적 지구멸망 요인이 더 가시적可視的이다. 오존층 파괴와 자외선량 증가로 식물 생식生殖 매개체 벌 나비의 감소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촉발된 빙하기, 인간이 유발한 인위적 지구 멸망의 시나리오는 현재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바벨탑의 교훈을 망각하고 서로 시세워 500층, 600층 건물을 짓고 있다. Neyork뉴요크의 쌍둥이 Bilding빌딩은 Alkaeda알카에다의 비행기 자살공격으로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무너져내렸다. 부나비처럼 자멸自滅의 불꽃을 쫓고 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배우는 교과가 60여 과목이다. 교육학은 50여 분야로 진화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화원이나 수퍼마켓 장사를 할 학생도 미적분을 배우고 있다. 영어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20여 년을 배운다. 모국어교육 기간은 12년이다. 살아가면서 영어권 사람과 접촉할 사람은 많지 않다. 원시시대에서는 수렵狩獵과 채취採取로 살았다. 지난 광주 Biennale비엔날레의 주제는 ‘멈춤’과 ‘느림’이었다. 느린 거북이는 500년을 산다. 코끼리와 소는 초식草食동물이지만 동물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 그런데 인간에게 육식肉食을 제공하기 위해 지구의 허파 Africa아프리카 밀림이 파괴되고 있다. Mongol몽골의 300여 개 호수들은 사막화되어버렸다. 인간은 삶을 위해 주어진 자연환경을 개발과 이용이라는 편익으로 파괴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지구 빙하기를 예방하려면 깨어야 한다.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체 하는 Eliet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청년시절부터 머리맡에 두었지만 지금까지도 읽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Picasso의 Guernica게르니카 앞에서도 절망적이다. Pop Art팝 아트 ‘행복한 눈물’ 앞에서도 아리송하다. Bethoven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을 들으면서 영웅을 떠올리지 못해서 스스로에게도 미안하다. 영어를 20여 년 간 배운 사람이 태국여행에서 담배 한 갑을 사려고 손짓 발짓을 했다. 직장생활 40여 년 간 영어를 한 번도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단에서도 삼각함수나 피타고라스정리를 응용한 적도 없다. 의사들은 자기들만의 영어로 처방전을 쓰고, 판사는 일반인이 알아먹을 수 없는 판결문을 내놓는다. 시는 고사하고 소설은 읽기 난해하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시나 소설을 해설한 평론은 더 난해하다. 나는 이런 문화 앞에 서면 당달봉사다. Lev Nikolayevich Tolstoy톨스토이의 바보 Ivan이반은 하룻길 땅을 얻으려고 종일 달리다가 지쳐서 죽었다. 결국 한 평坪의 땅에 묻혔다.
 공중을 나는 새는 먹이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산짐승들은 그 날 그 날의 먹이를 구할 뿐 비축備蓄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다. 지구 멸망의 비극悲劇이 여기서 시작된다. 거대화, 미세화와 다양화가 지구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


 사회적동물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지구촌 갈등과 분쟁과 전쟁의 요인要因은
. 사랑Acape과 자비慈悲를 교리敎理로 하는 <신과 종교>
. 끊임없는 권력 지향의 패권覇權을 꿈꾸는 <국가와 영토領土>
그리고 밥 한 술도 생산하지 못하는
. <사상과 이념>이라는 공상空想, 허상虛像
. 인간이 신神이 되어야 그칠 <발전과 성장이라는 무한대無限大의 욕망>이다.


 이 자서전自敍傳은 사회체제System 개혁을 위한 보고서로써
. <사랑과 결혼, 가족과 가정>
. <신과 종교>
. <국가와 영토>
. <발전과 성장 그 무한대의 욕망> 그리고 사회체제 - 민주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성찰省察을 기반으로 민주자유주의와 사회자본주의 특히 평등사상에 대한 자전적自傳的 비판批判과 대안代案이다. 사회체제System의 변혁이 필요하다. 프랑스혁명, 산업혁명과 명치유신 보다 더 혁신적인 사회체제의 시대적변화가 필요하다.


 내용은
 신과 종교/ 사랑과 가족과 가정 그리고 결혼제도/ 교육과 문화예술/ 과학문명/ 사회와 국가의 조직과 체제System의 변화, 개혁이다.


<사회체제개혁 보고서 총목차>


Ⅰ. 열린 사랑과 결혼(Eros성性과 사랑, 결혼, 가족과 가정 : 1/ 6)
Ⅱ. 다양한 신과 종교(다신교多神敎와 유일신교리唯一神敎理 : 2/ 6)
Ⅲ. 단순한 교육과정과 대중화 학문과 예술
     (교육, 학문, 문화 예술, 과학 문명 : 3, 4/ 6)
Ⅳ. 유연한 국가와 영토, 타원형 사회구조(사회조직, 국가관 영토관 5, 6/ 6)



    李天滿의 自敍傳
    -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1/ 6,  종교)


Ⅰ. 열린 사랑과 결혼(Eros성性과 사랑t, 결혼, 가족과 가정)


<목차>


1. 눈 뜰 무렵
2. 여난女難의 상相
3. 새벽 송가頌歌
4. 사랑의 대위법對位法
5. 바람둥이
6. 신神의 Claim클레임


    1. 눈 뜰 무렵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대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한 지도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牧者가 될 것이니….’  ‘우리는 바빌론의 점성술사입니다. 하늘의 별을 관찰하던 중 커다란 별이 나타나서 다니엘 선지자가 말하던 메시아의 탄생을 가리키는 별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어 한 걸음에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것입니다.’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寶盃盒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禮物로 드리니라.’
                                                 (신약성경의 예수 탄생)

 Chrismas Eve크리스마스 이브 한 달 전부터 저녁을 먹고 처녀 반사班師님댁에 모여 예수 탄생 연극 연습을 했다. 연극 Member맴버 속에 그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 동네 맨 끝자락 바다가 보이는 진등에서 살았다. 불유구不踰距孔子의 70세 나이, 지금도 그 아이의 환영幻影은, 세상에서 제일 고운 투명透明한 양귀비꽃 색깔처럼 투영投影된다. 농촌 아이들에게는 낯선 하얀 얼굴에 지금 떠올려도 왼쪽 볼에 있는 팥알만한 까만 점은 흑진주처럼 영롱玲瓏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침나절에 열리는 교회의 어린이 예배에서 소녀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냥 멀리서 스치는 정도였으나 Chrismas Eve크리스마스 이브가 가까워지면 예수 탄생 연극을 하기 위해 모인 반사님댁에서 날마다 만났다.
 예수의 탄생 연극에서 나는 동방박사東方博士고 그녀는 성모聖母 마리아였다. 대사臺詞는 오래전부터 외었으므로 막힘이 없었으나 연기演技가 반사님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는지 연습은 근 한 달 간 밤마다 계속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사나흘 앞으로 다가오면 의상衣裳을 만들었다. 보자기에 금은박종이를 오려서 별이나 꽃 모양을 만들어 붙여 동방박사가 입는 외투外套를 만들고, 금종이로 왕관을 만들어 썼다. 밤이 이슥해서 연극연습이 끝나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교회마당에서 진돌이나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다. 달은 이미 하늘 가운데 있었으나 우리는 달 기우는 줄도 모르고 놀이에 마음이 팔려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우리와 같이 어울리지 않고 미리 마중나와 있었던 가족에게 이끌려 호롱불 그림자를 끌며 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직 사춘기思春期에 접어들지 못한 여나무 살 소년에게는 소녀들이 원피스를 어깨끈이 없이도 너끈히 입을 수 있다는 걸 상상할 리 없었다. 그래서 눈은 얼굴이나 옷차림에서 맴돌았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하게 다가갈 기회가 생겼다. 성적成績은 보통 수준이었는데 수학 방정식이 유난히 애를 씌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쉽디 쉬운 ‘x + 3 = 5’를 풀지 못해서 보충수업을 받았다. ‘x + 3 = 5, x = 5 - 3, x = 2’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항移項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항이 되면 부호符號가 바뀐다는 원리原理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조건 부호를 바꿔 계산하면 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그 부호가 바뀌는 원리를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원리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x값을 구하려면 이항을 해야 하고, 이항을 하면 부호가 바뀐다는 기계적인 설명 뿐이었는데 나는 그 걸 이해하지 못했다(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우등생이었으나 수학은 외워서 성적을 얻었다). 그래서 보충수업을 받았다. 연배年輩였던 급우級友가 개인교사였다. 소녀의 외삼촌外三寸이었다. 그래서 하교下校시간이 소녀와 같아졌다. 하교 10릿 길을 그네와 함께 걸었다. 우리 집 가는 길은, 면내面內에서 제일 높은 천방산을 타고 넘으면 한 시간 남짓이었으나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로는 두 시간도 넘게 걸렸다. 그네와 동행하기 위해서 먼 신작로를 선택했다. 마음 표현은 고사하고 말 한 마디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설레는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 도시로 유학을 한 뒤 그 소녀도 뒤 따라 유학을 왔다고 들었으나 만날 기회가 없었다. 소녀의 아버지가 면서기를 그만두자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듣고 있었고, 그래서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야간夜間에는 대학교 전화교환을 한다는데 행동거지가 좋지 않다는 풍문風聞이 들렸다. 마음이 편치 않아 자취집을 수소문搜所聞해서 찾아가서 만났는데 아무래도 풍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녀의 자취집 대문 밖에서 만나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애꿎은 풀뿌리만 발로 차다가 돌아와버렸다.
 그녀 보다 더 일찍 아스라한 감정에 눈 뜬 이성異性은 외사촌外四寸 흔자다. 농번기휴가農繁期休暇나 여름방학 등 쉬는 때 는 의례껏 외가外家에 갔는데 대가족大家族의 외가의 많은 사촌들 중 흔자는 잔나비띠 동갑同甲내기였다. 흔자는 금색 단추가 달린 중학교 교복과 빵모자帽子를 부러워했다. 외가도 우리 집만큼은 살았으나 외숙外叔은 흔자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여자애는 중학교 진학이 어려운 시대였다. 우리는 섬에 자생自生한 동백꽃을 줍기도 하고 외가 주변의 작은 섬들을 돌아다니며 바윗돌을 들쳐 꽃게를 잡았다. 바닷물이 써면 섬에서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뽕할머니전설의 모세이스라엘 선지자先知者길이 들어나 모래밭길이 열렸다. 각시고둥도 많았다. 흔자가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은 아마 한두 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흔자가 사는 섬처럼 놀이터가 마땅치 않아 대접사待接事가 마땅치 않았다. 흔자는 도시의 유학생활이 길어지자 잊어버렸다. 유치한 감정의 느낌이었을 뿐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그냥 느낌 그것이었다. 말은 많이 했으나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 뒤에 만난 여학생은 이웃마을의 처녀였는데 도시의 성경학교에 다녔다. 이성으로써 가슴이 설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대입代入시킬 수 있는 최초의 여성이다. 크고 넓은 하얀 칼라와 허리라인이 꽉 조인 교복校服에 터질 듯 부풀어오른 가슴이 눈에 뜨이는 시절이었다. 방학 때 귀향하면 오빠를 따라 우리 동네 교회에 왔다. 우리 아버지가 지휘하고 반주伴奏하는 성가대聖歌隊를 함께 했다. 아버지의 찬송가 4부部 연주는 황홀했다. 교회가 끝나면 그녀가 Organ오르간연습을 핑계로 교회에 남았다.
 ‘여기, DoReMiFaSolLaSiDo도레미파 솔라시도.’
 ‘DoReMiFaSolLaSiDo도시라솔파미레도.’
 풍금 타는 걸 배우고싶다고 해서 DoReMiFa도레미파부터 짚었다.
 ‘이 천지 간 만물들아 ….’
 예배 폐회閉會노래가 풍금치기 제일 쉬워서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가르쳤다. 음표도 악보도 볼 줄 몰라 쉬운 것부터 시작했는데 그녀는 점심도 거른 채 열심히 연습했다. 때로는 내가  찬송가를 연주하면 그녀는 풍금 모서리에 서서 찬송가를 불렀다. 풍금연주가 약간 익숙해질 무렵 여름방학이 끝나고 서로 학교로 돌아가면서 편지를 쓰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성경학교는 사감기숙사舍監寄宿舍였다. 우리는 둘 다 그 걸 간과看過했다. 편지는 곧바로 사감舍監 손에 들어가고 무기정학無期停學 징계懲戒를 받았다. 그녀는 오빠에게 덜미를 잡혀 낙향落鄕한 뒤 외출금지가 되었다. 교회 예배는 참석했으나 오빠가 동행했고 오빠의 감시監視 때문에 잠시도 짬을 내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절박감으로 그녀의 동생뻘인 동네 아이를 시켜 몰래몰래 쪽지를 전달했다. 우리 동네와 그녀의 마을 중간지점 박쟁이고개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약속한 시간의 귀향버스를 놓쳐버렸고 그녀는 밤늦게까지 기다려다 돌아갔다는 소식만 전해왔다. 그러고는 끝이었다. 오빠가 다시 성경학교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으나 소식을 전할 길이 없었다. 마음을 전한 건 편지 단 한 통 뿐이었는데 좋아한다는 표현조차도 개발나발이었을 것이다.
 눈 뜰 무렵의 사랑은 여기서 끝난 듯 하였는데 뜻하지 않은 ‘여난女難의 상相’, 대학 2학년 고향 가는 기차에서 마주 앉은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예언豫言처럼 들려준 말이다.


     2. 여난女難의 상相

 교육대학 2학년, 시골에서 광주에 유학留學을 했던 때 귀향열차에서였다.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독서에 미쳐있었던 때라 좌석에 앉자말자 독서삼매경讀書三昧景, 책읽기에 몰두했다가 잠시 차창車窓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앞자리의 수염 허연 할아버지가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았다. 민망해서 시선을 피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는 ‘여난女難의 상相’이라고 딱 한 마디 했다. 그 때는 여난의 상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여난의 상을 체득體得하였고 그제서야 깨득했다. 일흔을 넘어선 지금도 여자 꿈을 꾸면 다음 날 하루 종일 근신勤愼을 한다. 여자 꿈 무서운 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웠던 여자가 나타나거나, 더구나 웃어버리면 큰일이 난다. 미남美男은 아니다. 호남豪男이라면 거부하지 않겠다. 그러나 바람둥이들이 대부분 미남이 아니라는 사실은 좀 황당할지 모른다. 바람둥이라는 수근거림은 억울하지만 귀향열차의 수염 허연 할아버지의 예언을 대체로 수긍한다.
 고희古稀, 내 나이 쯤 되면 옛말 하나도 그르지 않다. 가슴 설레던 명절도 묵어버려서 무덤덤하고 맛을 찾아 탐익貪溺했던 음식조차 소태맛이다. 기쁜 일도 좋은 것도 감정에 자극이 없다. 선명鮮明했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무채색無彩色으로 바래버렸다. 요즘에는 새벽잠조차 없어져 일찍 눈을 뜨면 상념만 무성하다. 일장춘몽一場春夢,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옛일들을 회상하다가 혼자 피식 웃으며 이제 남은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셈해보노라면 지난날의 기억들마저 안타까워진다. 그런데 이 망한忙閑 중 5감感을 다 잃고서 남은 게 하나 있는데 그 게 눈썰미다. 시력視力조차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할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눈썰미 하나는 여전하다, 아니 더 밝아졌다. 여난의 상이라고 했던 얼굴마저 눈꺼풀은 처지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굵게 패였고, 목덜미는 나이테처럼 겹주름이 섰는데도 눈만 또록또록하게 더 밝아졌다니 아직 물성物性쪽은 나이 셈이 안 되나보다. 그래서 거울보기가 차마 두렵다. 이마의 굵은 주름, 목에 패인 나이테 그리고 눈 밑에 생긴 다크써클은 인생의 훈장치고는 보기에는 숭하다.
 우리 할머니는 미수米壽 - 여든 여덟에 돌아가셨다. 허연 머리 쪽지우시고, 손수 나은 모시베옷 입고 마루에 앉아 등근부채를 들고 계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년 365일 그 추운 겨울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샘골 정자샘 첫물 - 정화수井華水를 길어 장독대 작수발에 차려놓고, 찬물로 목욕제계沐浴齋戒하시고, 해가 안산마루에 오를 때까지 수천 번 수만 번 두 손을 비비고 허리 굽혀 절하는 할머니의 비나리는 내게 경외敬畏의 대상對象이다. 할머니를 여의고 ‘마지막 조선朝鮮의 여인상女人像을 잃었노라고 자탄自嘆했었다. 할머니의 소망所望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는 무엇을 위해 그 얼음같이 찬물을 뒤집어 쓰고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원祈願한 것은 무엇일까? 여자로써 여성적 본능이었을까?
 여성은 마치 양파 같았다. 한 꺼풀 벗기고나면 또 껍질로 싸여있고 그 걸 벗겨 이제는 속살이겠지 하노라면 또 껍질이 나온다. 벗겨도 벗겨도 벗길수록 허연 속살로 감춰져있는 양파다. 매콤하고 달콤한, 끝내는 속살은 없고 껍질로 끝나버리는 양파 같았다. 여성성은 내 이성과 지성 그리고 감성의 뫼비우스無限의 띠 위에 있었다. 인생 고래희古來稀가 된 지금도 여자는 불가사의不可思議다. 하기야 불가사의가 어찌 여성뿐이랴, 세상만사世上萬事 다 미로인 것을 …. 여성성을 생각하면 불가佛家의 깨달음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3. 새벽송가頌歌

  모태母胎신앙에서 믿음에 대한 성찰省察은 없다. 마치 요즘 세월호참사로 들어나는 구원파의 맹신도盲信徒 같은 믿음이다. 모든 종교에는 맹신적 속성屬性이 있다. 그러지 않고 비판적이거나 회의懷疑를 품으면 신神이 싫어한다.
  이성理性에 눈 뜨기 전, 일요일 교회에 가는 일은 일과였다. 일요일의 예배는 의식이었다. 할머니는 일요일 아침에는 학교에 갈 때 보다 더 정성들여 머리를 감기고 새 옷을 입혔다. 빨간 5원짜리 새 지폐를 연보돈으로 들려 교회에 보냈다. 1원짜리 연보돈을 내는 아이들조차 거의 없었다. 장난삼아 빈 주먹을 잠자리채獻金 주머니에 넣고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 오늘 1원 쌔비했다훔쳤다.”
  교회마당 계단을 내려오면서 옥동이가 자랑하는 투로 말했다. 옥동이는 나와 동갑인 마을 청지기 아들이었는데 가끔 연보돈을 넣는 척 하면서 오히려 훔쳐냈다. 헌금을 하는 시간에는 모두 눈을 감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으나 잠자리채를 돌리는 곽집사님은 옥동이가 가끔 헌금을 훔쳐내는 걸 알고 있을까?
 Chrismas Eve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예수님의 탄생, 그러니까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동방박사 세 사람이 경배敬拜를 드리는 연극을 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은 그들을 인도해주는 별을 따라 말구유를 찾아왔다. 황금과 유황 그리고 몰약을 선물했다. 황금은 금덩이로 알았고, 유황은 불을 켜는 성냥으로 이해했는데 왜 선물에 끼는지 모르겠고, 몰약은 그 자체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보자기로 둘러친 야릇한 외투를 입고, 온 동네 사람들이 - 생전 교회 문턱을 밟지 않은 마을 어른들까지도 다 모여드는 Chrismas Eve크리스마스 이브는 마음을 들뜨게 하는 날이었다.
 해년마다 되풀이 되는 연극이었지만 배역配役에 뽑힌 아이들은 신이났다. 그래서 Chrismas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약 한 달 동안 교회 옆 선생님댁에 모여 연습을 했다. 달이 밝으면 밤 연습을 끝내고 교회마당에서 새끼를 말아 만든 공으로 축구를 하거나 진도리를 하며 밤 깊은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가 호롱불을 앞세워 데리러온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돌아갔다.
  Chrismas크리스마스 날 새벽, 별만 총총한 별밤에 새벽송頌을 했다. 집집마다, 동네를 돌며 한 집도 빼지 않고, 교회 다니지 않은 집에도 사립문 밖에서
 ‘기쁘다 구주救主 오셨네, 만백성萬百姓 맞으랴 …’
 찬송가讚頌歌를 불렀다. 새벽송가대가 우리 집 대문 밖에서 새벽Song송을 하고, 마련한 떡국을 대접받는 동안 그제서야 눈을 비비고 찬송가를 들고 따라나섰다. 호박시루떡을 얻어먹기도 하고, 사탕 선물도 받았다.
  새벽이면 성경 석 장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아침밥을 얻어 먹었다. 성경 석 장을 읽지 않으면 아침밥을 굶었다. 독실篤實한 아버지의 신앙 소신所信이었다. 그 덕에 초등학교 때 구약성경 한 번, 신약은 세 번 정도 읽었다. 여름방학의 성경학교에서는 요한복음은 줄줄 외워서 양피지 성경을 상賞으로 받았다.
  우리 동네 교회 상량上樑에는 소화召和 13년이라는 일본제국시대 연호가 쓰여진 상량문이 있다. 근동近洞에는 교회가 없었다. Noiel노이엘이라는 선교사가 Jeep찝차를 타고 오고, 노랑내 나는 황금색 Chrismas Card크리스마스 카드를 선물로 주었다. 구호물품을 경매하는 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다. Rasion Bax레이션을 박스 째 받고 서양된장인 치즈도 맛을 봤으나 아무도 먹지 못했다. 서양숭늉 코피도 맛을 봤으나 써서 쌍을 찡그리며 뱉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예외였다. 동네 사람들이 버린 치즈나 커피가 통째로 아버지 몫이었다. 앞섭부분의 털이 닳아 빠졌지만 수달피가죽 외투는 부잣집이었던 우리 할머니가 샀다. 원체 무겁기도 했지만 노랑냄새 때문에 모두가 기피忌避했으나 아버지는 보물처럼 아꼈다. 무겁기는 했으나 무척 따뜻했다. 겨우내 한 철 아버지는 수달피외투로 추위를 감쌌다. 양西洋냄새에 머리가 아팠으나 미상불未嘗不 한 겨울에도 잠시 입고 있으면 땀이 났다.


   4. 사랑의 대위법對位法

 경제적으로나 성적性的으로 가장 원만한 결혼 싸이클은, 경제적 또는 성적으로 안정된 남자 40대와 여자 20대가 만나고, 20년 후 남자의 유산遺産을 물려받거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원숙圓熟한 여자 40대가 다시 남자 20대와 만나는 것이다. 이 순환循環Cercle써클이 경제적으로나 성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가장 안정된 남녀의 규합閨閤이다. Charles Spencer Chaplin찰리 채플린(喜劇俳優), Pablo Picasso파블로 피카소(畵家), Pablo Carlos Salvador Casals파블로 카잘스(cello첼로 演奏家)의 공통점은 노익장老益壯인데 모두 나이 차差가 많은 젊은 여성과 만년晩年의 결혼이었다. 남녀의 연령 차가 결혼이나 남녀의 결합에 적용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린 남자가 나이 더 많은 Gold Miss와 결합하는 것은 요즘에는 부러움을 사는 일이 되고 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 이 말이 안 들어간 주례사는 없다. 대략 20대 후반에서 결혼하여 80세 어름까지 산다면 60여년을 함께 산다. 각각 다른 객체客體인 남녀가 - 특히 단순한 동물 보다는 좀 이성적理性的이고 감성적인 사람이, 아무리 남녀성이라는 성性 상징적인 결합이라고 하더라도 50여년 간을 한결같이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연애시절은 눈까풀에 콩깍지가 씌웠던 시절이니 그렇다치고, 같이 살다보면, 방귀를 뀌고도 태연하거나 축 처진 아랫배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내놓는 등 사랑의 긴장도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60여년 간을 한결같이 ‘여보, 사랑해!’라며 수시로 뽀뽀를 하거나 ‘여보 당신’을 입에 달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보건사회연맹이 조사한 설문에서 41%가 ‘자녀가 있어도 이혼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국민 46%는 ‘결혼 안 해도 동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 청소년 설문조사에서 여학생들의 45%만 결혼해야 한다라고 응답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는 전설이 되어가고, 웬수놈의 새끼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혼하지 못하는 세태世態는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결혼은 이를 사회적으로 강요한다. 많은 부부들이 살다보니 ‘서로 웬수’라고 한다. 여성은 다음 세상에서는 현 남편과 만나지 않겠다는 비율이 거의 99%다. 이혼의 가장 많은 이유는 성격차性格差였다. 그러나 그 내면內面에는 성격차가 아니라 성적차性的差라는 게 정설定說이다.
 66세 India인디아의 한 사내는 39명의 부인과 9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며느리는 14명이고, 손자만 33명이다. 4층 집에 방이 100개다. 할렘의 술탄이 부럽다고 해야 할 가장家長이다.  아프리카와 아랍은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고, 알라스카와 티베트 그리고 몽골과 중국 소수민족에는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다.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민족은 지구 종족種族의 불과 5%다.
 사자獅子는 Praud프라우드라는 집단생활을 하는데 숫사자 한 마리와 암사자 서너 마리 그리고 그들이 낳은 새끼들이 집단을 이룬다. 숫사자는 맨날 그늘에 누워 졸거나 하품만 하다가 암컷들이 사냥해온 먹이를 맨 먼저 먹는다. 그리고 암사자에게 수태受胎를 시키는 게 숫사자들의 임무任務다. 단, 영역을 침범받을 때는 숫사자가 책임을 진다. 새끼들 중에서 숫컷은 대강 2년이 되어 성년成年이 될 즈음 무리에서 쫓겨난다. 그래서 Praud프라우드를 이루지 못한 숫사자들은 숫사자들 끼리 모여 집단을 이루고 산다. 사시탐탐獅視耽耽 프라우드를 엿보며 Praud프라우드를 거느린 숫사자에게 도전挑戰한다. 대개 숫컷의 직계直系다. Praud프라우드의 숫사자가 늙어 힘이 없을 때 떠돌이 숫사자의 도전을 받는다. 도전에서 지면 Praud프라우드를 쫓겨나 떠돌이가 된다. 짐승 중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은 코끼리나 사자, 호랑이들이 아니라 외톨이다. 외톨이는 상대가 누구든 무조건 덤벼든다. 코끼리는 암컷이 두목이다. 늙은 암컷이 2, 30마리의 무리를 통솔統率한다. 나이 먹은 암컷은 지혜롭기 때문에  초원草原을 찾아 먹이 안내를 하고, 물을 찾고, 심지어는 교미交尾를 배정하는 일도 암컷 두목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막연히 일부일처제가 민주주의처럼 보편화된 제도라고 믿고 따른다. 그러나 Africa아프리카에는 Amajones아마조네스가 있고, Arap아랍에는 가장이 서너 명의 아내를 두는 건 부富의 상징이다. 몽골에는 일처다부제도가 있다. 유목민의 특성상 대가족제도인데 한 번 양들을 몰고 나가면 서너 달씩 집을 비우기 때문에 형제 중 한 사람이 남아 가족을 책임진다. 그래서 여자 한 명이 서너 명 형제들의 공동 아내가 된다. 지금도 Allasca알라스카 Eskimo에스키모는 손님에게 아내를 접대한다. 한 종족의 소수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지혜였는지 모른다. ‘친정親庭과 칙간便所은 멀수록 좋다’는 우리 속담대로 근친近親결혼은 열성인자劣性因子로 장애아나 저능아低能兒가 태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라는 사실을 조선시대에는 몰랐다.
 프랑스인들은 결혼 보다는 동거同居를 선택한다. 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을 하는 것 보다 동거가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5년 간 연애를 하고 결혼했다가 일 주일만에 파혼破婚을 한다.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일수록 결혼 보다는 동거율이 높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혼율은 낮다. 이혼율은 러시아가 70%, 미국이 51%, Sweden스웨덴이 48%다. ‘이혼의 천국’으로 알려진 Norwey노르웨이가 44%, 영국 42%, Canada캐나다 38%, Franse프랑스 33%, 독일이 30%다. 이들 나라들은 근래 동거율이 매우 높아졌는데 동거율을 계산하지 않은 수치數値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혼율은 8% 내외였다. 90년대 초반은 약 15%였고, 90년대 후반에 20%를 넘어섰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이혼율이 30%를 넘어섰다. 그러다가 2011년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47%로 갑자기 높아졌다. 결혼한 사람의 약 절반 정도가 이혼을 한다. OECD국가 중 2위다. 특히 황혼黃昏이혼이 갑자기 많아졌다. 우리나라 여성의 95% 이상이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영생永生한다고 서약誓約을 하지만 50평생을 살다보니 갖가지 이유로 웬수가 따로 없다. 이 웬수의 대부분은 아이들이나 객관적인 여건 때문에 ‘마지 못해서 살 뿐’이다. 그래서 황혼 이혼율도 높다. 26%다. 세계 1위다. 동성애도 합법화되었다. 프랑스식 동거나 방임放任의 자유교제 그리고 다양한 양태樣態의 열린결혼제도가 새로운 가족제도다. 열린결혼제도는, 우선 간통姦通과 불륜不倫이라는 치사恥事한 병폐病弊에서도 벗어나는 길이다.


     5. 바람둥이

 귀향열차歸鄕列車에서 우연히 마주앉은 수염 허연 할아버지가 ‘여난女難의 상相’이라고 했다. 대학 2학년 때라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귓가로 흘렸다. 할아버지의 말을 되새기게 된 것은 불혹不惑이 넘어서다.
 카사노바는 엽기적獵奇的인 바람둥이다. 일생 동안 120여명의 여성을 상대로 엽기행각을 벌였다. 한 India인디아인이 40여명의 부인을 두고 100여명의 자식과 손자들과 한 집에서 대가족이 생활하고 있다. 아랍의 대 부호富豪는 할렘에 100여명의 여자를 두고 있다고도 한다. 아랍에서는 여자가 부富의 척도尺度다.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인도인과 아랍인은 논외論外다. 바람둥이는 많이 가졌다는 것이 척도가 아니다. 카사노바는 그의 자서전에서 여자를 유혹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카사노바는 미인美人만을 탐구하지 않았다. 여성 유혹의 비밀은 보석도 선물 공세도 아니고 칭찬이었다. 또 여자에 대한 또 하나의 처세관處世觀은 ‘추녀醜女라고 쉽게 침대에 눕지 않는다’라는 여성관女性觀이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암컷이 숫컷을 선택한다. 야생동물 암컷들이 가지고 있는 꼬리는 폼내라고 달고 다니는 게 아니다. 발정기發情期가 되어 암내를 풍기면서도 아무리 숫컷이 달려들어봤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암컷은 꼬리를 딱 엉덩이에 붙여 숫컷이 범접犯接을 하지 못하게 한다. 암컷 꼬리의 역할이다. 호랑이처럼 숫컷이 강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도 암컷이 꼬리를 엉덩이에 붙이고 있는 한 교미交尾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겨울철 산중에서는 숫호랑들의 싸움이 치열하다. 대략 숫호랑이 한 마리의 영역이 400Km²므로 서너 마리의 숫컷은 반경 1,000Km² 내외에서 몰려든다. 암컷은 숫컷들의 싸움을 구경만하다가 최후의 승자勝者에게 몸을 허락한다. 교미가 끝나면 미련없이 헤어진다. 새끼를 낳고 키우는 일은 암컷의 몫이다.
 식물도 암꽃의 씨방은 꽃가루를 선별해서 받아들인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꽃가루에게만 씨방의 문을 연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의 염소새끼라는 팝송가수歌手들이 서울에 왔을 때 우리 딸들이 수업을 빼먹고 몰려들어 광란狂亂을 벌이다가 한 명이 깔려 죽는 불상사不祥事가 일어났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폴 앵커 같은 가수의 공연에는 대부분 여성팬들의 광란狂亂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연예인의 인기는 중국팬이나 일본인들에게 거의 광신적狂信的이다. 바야흐로 한류韓流다. 한류도 프로이트 눈으로 보면 성적 광란이다. 연예인 말고도 유명한 정치인이나 대중적 인기가 있는 남성의 강연이나 공연장에는 여성청중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다. 우수한 종자를 선호하는 동물적 발산發散이다. 미남美男에게 끌려서 몰려오기도 하고, 가창력이 좋아서 끌려오기도 한다. 우수한 학자기 때문에 유혹되기도 하고, 뛰어난 운동기능 때문에 끌리기도 한다. 운동선수들이 미인을 얻는 일은 흔하다. 모르는 사람들은 허벅지근육 때문이라고도 하고, 돈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우성본능優性本能이다. 숫컷은 자기 씨를 많이 퍼뜨리려고 한다. 암컷은 우수한 종자를 수태受胎하려고 한다. 자연의 순리다. 일부일처一夫一妻制 혼인제도 때문에 바람둥이란 말이 생겨났지만 바람둥이는 자연적인 산물이다. 남성의 본능 밑변에는 늘 기회만 있으면 씨를 퍼뜨리려는 욕망이 잠재해 있다.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 여성들의 속셈은 우수한 종자를 잉태하여 인류의 영원한 번창을 염원하려는 숨은 음모陰謀가 내밀內密하게 숨겨져 있다. 불륜이라는 법적 사회적장치 때문에 억제하고 감추고 산다. 일부일처제도 결혼 아래서 근래 간통姦通을 없애려는 법률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 때문이다. 꼬리를 열고 닫는 것은 암컷의 자기결정권이다. 그 걸 위해 호랑이는 치열하게 싸우고 새는 벌레를 선물한다. 본능을 사회제도화 하여 억제시키려는 법과 본능을 자연스럽게 구현하려는 본성本性 사이의 갈등이 결혼과 불륜不倫으로 상호 상반相反되게 나타난다. 이를 인위적으로 억제시키려는 것이 반反 자연적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원시시대原始時代 모계사회母系社會의 동거同居가 확산擴散되고 있다.


  6. 신神의 Claim클레임

 Doble Claim더블 클레임이라는 영화에서, 여자는 남편과 보트놀이를 갔다가 남편이 행방불명되자 살인자로 몰려 수감收監된다. 수감 중에, 여자는 남편이 의도적으로 자기를 살인자로 엮었음을 알아채고, 자기 여동생과 바람을 피운 일도 알게 된다. 수감될 때 여자는 그런 간계奸計를 모르고 아이를 여동생에게 맡겼는데, 수감 1년 쯤 되자 여동생과 아이가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었고, 이를 추적하다가 남편과 여동생의 음모陰謀를 알게 되었다. 행방불명되기 전 의도적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한 남편은 자신이 아내에게 피살된 걸로 속여 아내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거액의 보험금을 타서 여동생과 아이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다른 도시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여자는 탄원歎願을 하고 법적 수속도 하려고 하지만 법은 여자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탈옥을 한다. 그리고 남편을 찾아 복수하는데, 권총으로 남편을 쏘아 죽이면서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내가 쏴 죽여도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Doble Claim이다.
그녀는 노처녀였는데 ‘노처녀는 잠재적 가정 파괴범’이라고 했을 때는 그냥 웃었다. 대충 혼인 적령기를 놓쳤거니 여겼다. 그런데 알고보니 몸이 문제였다. 배냇병신 수준은 아니지만 몸이 부실했다. 심한 치질, 부실한 치아, 약한 기관지 그리고 조카와 나들이를 한 백화점의 점원 아가씨가 그녀를 가리키며 조카에게 할머니냐고 물었을 적에는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겉늙은 얼굴 탓이다. 그런 몸으로 결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국립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었으므로 남자들이 선망하는 결혼대상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부실한 몸이 문제였다. 원망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원망의 대상이 막연했다.
그녀가 50이 될 무렵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 은퇴隱退하고 선산先山의 묘지墓地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아버지는 자신의 두 발을 묶은 채 선산 자신의 가묘假墓 앞에서 자살했다. 장례를 모시고 그녀는 섧게 울었다. 평소에 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부모가 자신을 불량아로 낳기를 원했으랴만 자신의 처지가 자신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천형天刑이었으므로 막연하나마 원망을 부모에게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유독 아버지에게 생리生理상의 책임을 떠넘겼으리라. 7남매에서 오직 자신만 불량아라는 상황을 받아드릴 수 없어 일생을 한탄과 원망과 고뇌 속에서 혼자 살았던 그녀는 원망의 대상마저 잃어버렸다.
 그녀가 밤에 잠잘 때에도 거실居室의 불을 밝혀놓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내가 나들이를 가고 혼자 집을 지키다가 그 걸 알았다. 텅 빈 집안에서도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떤 날은 느닷없이 소름이 끼치는 무서움증이 드는 날이 있었다. 귀신을 믿지도 않고 아파트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불을 켜는 그녀의 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50년을 한결같이 혼자 살았다. 직장에서 돌아와도 혼자였다. 동료들과 어울린 나들이에서 돌아와도 혼자였다. 그나마 결혼 적령기가 지나자 친구들은 하나 둘씩 가정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빠서 끊는다!’ 결혼생활이 꿀 같지는 않다고 했지만, 가족과 살림과 아이들 틈새의 친구들은 처녀 때 재잘거리던 통화조차도 이어지지 않았다.
 Africa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사자나 코끼리 또는 하마나 물소가 아니다. 떠돌이다. 무리에서 쫓겨난 떠돌이는 움직이는 것만 보면 무작정 돌진한다. 무리에서 소외된 고독이 동물을 미치게 한다. 2,000여 세대의 아파트군群, 직장과 가정 그 군중 속의 소외 그리고 고독, 그 외로움과 상실감喪失感이 얼마였을까?
기차로 통근했던 시절 땅거미가 내리는 어스름 산그늘 밑 마을에 불빛이 하나 둘씩 살아나는 걸 보노라면 어린시절 고향의 정경이 회상되었다. 여창旅窓의 실루엣에 겹쳐서 희미하게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추억, 해 지는 줄 모르고 동무들과 놀이에 정신이 팔렸다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리는 어머니가 부르는 환청幻聽,
‘천만아! 어서 와! 저녁밥 먹자’.
그녀는 그녀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잃었다. 불을 켜지조차 못했다. 그녀가 신神을 믿었다면 부모 보다는 신에게 원망을 돌렸으리라.
 ‘하느님, 왜 나를 이렇게 낳으셨나요?’
그녀에게 가장 한恨스러운 일은 남들처럼 결혼을 하지 못하고,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아이들을 낳아 길러보지 못한 일이다.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기르는 일은 여자의 본성本性이다. 그것이 단절斷切된 여자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아이를 여럿 낳아 기른 여자도 자궁子宮을 잃거나 유방을 잃으면 견디기 어렵다고 하지 않은가. 끊임없이,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마음을 바꿔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라고 했지만 다 헛소리였다, 팔짜八字 좋은 사람의 신세타령 쯤. 무엇엔가 몰두하면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 그리고 천연물감 제작을 권유하기도 했다.
살아가다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다. 멀쩡했던 사람이 느닷없이 병신이 되기도 한다. 이해 가능하다. 그런데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신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의 클레임, 어떤 말로도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다.


이천만李天滿의 自敍傳
-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2/ 6) : 종교


   Ⅱ. 다양한 신과 종교
                (다신교多神敎와 유일신교리唯一神敎理)


<책 소개>

종교는 다신교多神敎로 재편再編한다. 우리 할머니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당골래를 불러 굿도 하고, 점占도 치고, 작수발에 정화수井華水를 올려놓고 삼시랑에게 비나리 축수祝手를 했다. 추수秋收를 끝내면 곡식자루를 상머슴에게 지워 팔영산 능가사에서 불공佛供을 드렸다. 예수를 믿는 미국인들이 일본의 신사神社를 참배參拜한다고 믿질 게 뭐가 있는가? 어느 구름에 비 올 줄 아는가. 신에 따라 기구祈求의 사안事案에 따라 영험靈驗이 다를지도 모르니 많은 신에게 빌수록 기도발이 설 것이다. 우리 토속신앙에는 사안에 따라 기도하는 대상신對象神이 달랐다. 아들을 점지點指해달라고 삼시랑한테 빌고, 집안의 평화안녕을 위해서는 부엌에 모신 조왕신竈王神에게 빌었다. 토속土俗신앙을 보라. 얼마나 많은 신들이 공존하는지.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수많은 신들이 인간들과 공존한다. 결혼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나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종교만 영험靈驗하다고 하며 유일唯一神을 주장한다. 다른 종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분쟁과 전쟁의 요인이다. 불교는 토속신앙과 공존한다. 절마다 삼신각三神閣이 있다. 절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릴 때 삼신각에 가서 경배敬拜 한 번 한다고 동티가 날 일은 아니다. Greese그리스의 Jeus제우스에게도 빌고, Egypt이집트 Ezis이지스에게도 무릎을 꿇고, 신사神社에 참배도 하면 종교 분쟁은 사라진다. 종교의 거대화 집단화도 패권화다.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것처럼 개인종교화 해야 한다. Arab아랍권圈의 Isram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패권화되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전쟁의 요인이 되고 있다. 개인신앙의 불교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금강산에서 학생들과(왼쪽 필자)


<약력>

이천만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수중흥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하였고, 한국화, 한국화, 민화교육을 연구하였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 어린이민학당활동을 했다. 장편동화 반디전설, 교육칼럼 훈사정음, 연구논문 한국민화교육연구 등 저서가 있다.


<목차>

6. 비나리
7.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8. 천지 창조天地創造
9. 서낭당
10. 도깨비불
11. 함평천지咸平天地 귀신鬼神 낯바닥
12. 육복六福
13. 유언遺言 (2014년 1월)
14. 꿈과 예언豫言
15. 천당과 지옥
16. 사랑과 전쟁
17. 천당과 지옥
18. 인내천人乃天
19. 이 세상 소풍
20. 죽음의 미학美學  
21. 탕자蕩子의 방황彷徨


      6. 비나리

 미수米壽, 88세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우리시대의 마지막 여인상女人像을 잃었다며 눈물지었다. 조선시대의 여인상말이다. 여름철이면 손수 난마름한 세細모시옷을 젓수시고 둥근부채를 흔들며 마루에 앉아계시던 모습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점심때는 장손長孫인 날 불러 텃밭 명목화木花밭에서 무잎을 여나무 장 솎아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동네 샘에서 냉수冷水도 한 주전자, 무잎쌈을 무척 즐겼다.
 명(목화)밭의 무잎은 뒷면 잎줄기에 1, 2Cm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다. 워낙 거칠어서 피부가 쓸리면 피가 맺힐 정도다. 어린시절에는 할머니가 그 거친 무잎을 왜 그리 맛있게 드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잎 맛을 알고 좋아하게 된 것은 지천명知天命, 40세가 훌쩍 넘어서다.
 집 안에서 밥과 빨래 그리고 가족들 치다꺼리 외에는 한 발도 대문 밖을 나간 적이 없는 어머니도 유둔 5일 장날에는 안산案山, 마을 진산鎭山에 해가 뜨기도 전에 서너 되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득달같이 장으로 달려갔다. 할머니가 생선회를 좋아했기 때문에 생물生物 생선을 할머니께 대령待令하려면 해 뜨기 전에 갔다가 해 오르기 전에 돌아와야 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달려오면서도 어머니는 신문지에 달라붙은 엿가락을 빠뜨리지는 않았다. 하여튼 할머니의 유별난 식성食性 덕분에 나는 생선회에 입맛을 들였다. 입맛은 어렸을 때 입맛이 평생을 간다. 어줍잖지만 내 식도락食道樂이나 미식美食 기질氣質은 할머니의 입맛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마을에는 교회가 무척 일찍 들어섰다. 교회 상량上樑에 소화召和일본 왕 역사연호 13년이라고 쓰여 있다. 인근隣近 면동面洞에는 교회가 없어 멀리 대여섯 시간씩 걸어 신자信者들이 우리 마을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우리 마을은 일찍 개화改化했고 자식교육에도 일찍 눈을 떴다. 코 큰 서양인 선교사宣敎師들이 지프차를 타고 드나들었다. 특히 Chrimas크리스마스에 받았던 Chrimas Card크리스마스카드는 신비로왔다. 황금색 종鐘이 그려진 Card카드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은청색 사슴마차를 탄 그림이나, 빨간 호랑가시나무 열매가 숨은 그림찾기처럼 숨어있었는데 펼치면 양냄새서양西洋 노린내가 났다.
 할아버지가 텃밭에 딸린 부지敷地를 교회 건축에 희사喜捨했기 때문에 교회는 우리 뒷마당 울타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뒷마당은 교회부지를 희사하고도 100평 남짓한 모란과 작약꽃밭이 교회와 맞닿아 있었다. 모란과 작약꽃밭 언저리는 백합꽃밭이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할머니는 이슬이 대롱대롱 맺힌 싱싱한  백합 몇 송이를 가위로 잘라주었는데 교회 강단 꽃병에 백합꽃을 꽂는 일은 내가 맡았다. 우리 집 마당을 빙 두른 돌담언덕에도 백합이 지천至賤으로 널려있었다. 언덕 어디를 파도 마늘쪽 같은 백합 구근球根이 나왔다. 묵은 구근에서는 꽃대가 아홉 개나 나오는 것도 보았다. 우리 집은 꽃과 과일나무가 많았다. 모란과 작약은 밭에 심어서 한약초韓藥草로 사용했고, 백합은 천지바카리고, 장독대의 덩굴장미, 봉숭아, 꽈리, 맨드라미, 설토화, 접시꽃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사철 피었다. 감나무는 우리 집의 대표적인 과일나무인데 군청감 군청에서 묘목을 나눠주었다는 이름 고목枯木이 앞마당 빙 둘러 네 그루 그리고 뒤뜰에는 월애감나무씨가 없는 감가 네 그루 있었는데 초여름 꽃이 피면 감똥감꽃이 허옇게 마당에 널렸다. 문간채 곁의 살구나무, 가죽나무, 호두나무, 석류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사랑채 울타리에는 자두나무가 자라고 뒤꼍에는 돌배나무와 아람드리 팽나무가 있었다. 집 뒤 시누대대밭에는 쥐똥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파랗던 열매가 붉어지고 익으면 까맣게 변하는게 신비로왔다. 앞마당 언덕에는 모과나무 다섯 그루와 청배나무가 있었다. 모과나무는 할아버지가 성주成柱를 하면서 문간채 기둥으로 사용했다. 나무를 다듬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양새 그대로 기둥을 세웠다. 모과나무 모양이 그대로 살아서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워 보는 사람들이 감탄했다. 소문을 듣고 멀리서 일부러 구경을 오는 유지有志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만 할아버지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지셨던 해 문간채가 온통 태풍에 쓰러져버렸다. 하여튼 우리 집의 택호宅號는 점암양반이었는데 다른 이름은 과수원집 또는 꽃집이었다. 광주유학光州留學 밤차 귀향 때 버스에서 내리면 집에서 1Km나 떨어진 신작로新作路에서도 백합향이 마중하듯 코끝에 스쳤다.
 할머니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교회에서 부흥회復興會가 열리는 때만 장로長老님들의 권유에 마지못해 교회에 나가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장죽長竹 곰방대에 담배를 태워 목사님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러나 한결같은 목사님의 권유에도 할머니는 교회를 외면했다. 빳빳한 새 지폐 연보돈을 들려 손자들이 교회에 가는 걸 기꺼워하면서도 필시 당신은 교회를 외면했다.
 그런 할머니의 종교는 비나리였다. 뒷마당 장독대에 상上머슴 노동손이 할머니의 주문대로 고르고 고른 작수발삼발이가 하늘로 된 나뭇가지을 세우고 붉은 황토를 깔았다. 일 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샘골 치자샘에서 첫물을 길어 작수발에 정화수井華水를 올려놓은 뒤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했다. 한겨울 새벽 얼굴에 찬 물방울이 튀어 눈을 뜬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촛고지 등잔불 곁에서 긴 머리타래를 풀어 얼레빗질빗날이 성긴 빗질, 촘촘한 참빗질을 하고 있었다. 찬 물방울은 할머니의 쪽진 머리칼에서 이슬비가 내리는 것처럼 내 얼굴로 튀었다. 한밤중처럼 깜깜한 꼭두새벽이었다. 할머니는 아침 햇살이 안산마루를 비칠 때까지 작수발 앞에서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허리를 굽혔다. 수백 수천 번 비나리가 계속되었다. 할머니의 비나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뜻하지 않은 위기危機를 벗어날 때마다 할머니의 비나리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음덕陰德이다. 전남교육감에 출마했던 해 음해陰害로 감사원특별조사반의 석 달 감사를 받고 ‘털어봐도 먼지를 발견하지 못한’ 그들이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을 때와 유사장티브스로 다 죽어갈 때 나를 간호하던 어머니의 꿈에서, 어머니가 마당에 내놓고 태우려던 내 옷가지를 빼앗은 것도 할머니였다. 정년퇴임停年退任을 하자말자 발견된 암癌 3기期에서 완치판정을 받은 것도 할머니의 비나리 음덕이라고 생각한다.


   7.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술과 벗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
 술을 좋아했을 때는 벗들이 많았다. 주구장천酒口長川. 할머니는 친구들이 많으면 주머니가 가볍다고 했다. 정년퇴임 후 술이 반주飯酒로 바뀌자 벗들도 사라졌다.

 ............................. (전략)
 ‘길을 외줄기 남도南道 3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
 .................................... (생략)
  (술, 하면 떠오르는 시詩다.)

 ..................... (전략)
 ‘생애生涯의 한 곳을 응시凝視하며
  잔盞에 따룬 한 잔의 소주를 응시하며
  눈 내리는 겨울밤을
  술을 마신다.’
............................ (생략)
  (술을 마시며 쓴 시詩다.)

 고깐庫間 항아리에서 막걸리 익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 이들은 안다. 우리 집 고깐도 새콤달콤한 막걸리향이 사철 내내 가시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대단한 호주가好酒家였다. 그 할아버지가 장손長孫 이름을 ‘천만’이라고 지었다. 가끔 우리 집 사랑방에서 묵고 가는 족보族譜 기록하는 분에게 부탁하여 지은 것인데 하필 성姓이 이가李哥라 ‘이천만李天滿’이 되었다.
 ‘왜 천만이라고 지었냐고?’
 ‘천만 뜻밖이었지, 늬 애비를 열여덟에 장가보냈는데 담박에 아들을 낳을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 그래서 천만이라   고 지었다.’
 생전生前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치자 도시의 중학교로 유학留學해서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했는데 지나치는 사람마다 흘끔거리며 안 웃는 사람이 없었다. 하필 그 즈음 우리나라 인구가 또 2천만이었다. 아버지는 3대 독자獨子였다. 집안은 할아버지의 자수성가自手成家 덕분에 동네 부자富者 소리를 듣게 되었으나 손孫이 귀貴한 게 할아버지의 한恨이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10남매男妹를 낳아 길렀다.
 증조부曾祖父는 선비였는데 흰 콩과 검은 콩을 서안書案에 늘어놓고 주역周易을 했다고 아버지에게서 들었다. 증조부는 가끔 성城 안 출입을 하였는데 동내에 증조부의 말잡이 박가朴哥네가 살고 있있다. 증조모댁은 무인武人 집안이었으므로 모탁母託을 해서 할아버지는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하였다. 눈썹이 강철처럼 뻗쳐나왔고 수염을 한 자 넘게 길렀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길고 빳빳한 수염을 만졌던 생각이 난다. 힘도 장사壯士였다. 집안에 상머슴 둘이 있었는데 황소 두 파리마리를 양 손으로 잡아 끄는 힘은 머슴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나들이만 하면 취해서 돌아오셨는데 집 앞 사장거리 쯤 오시면 습관처럼 장손자 이름을 온 동네방네가 찌렁찌렁 들릴만큼 호기豪氣있게 불렀다. 옆구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게 기댈 힘이 있었으랴만 기어코 내 부축을 받고서야 걸음을 옮겼다.
 할아버지는 집 앞 텃밭에 사탕수수를 심었다. 곡식이 귀하던 시절이라 사탕수수는 밭두렁에 몇 포기씩 심을 때인데 할아버지는 텃밭 절반 100여 평坪에 사탕수수를 심었다. 사탕수수가 단맛이 들기 전이 오르기도 전부터 우리 형제들은 수수밭에 들어 앉아 입이 부르틀 정도로 사탕수수를 베어 먹었다. 어느 여름철에 손자들이 국화빵을 샘내는 걸 보고는 장날 머슴을 데리고 가서는 아예 빵틀을 사왔다. 그러고는 해마다 밀 수확을 늘려서 마음껏 부침개를 해먹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무더운 여름에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대나무  평상平床에 둘러 앉아 팥칼국수를 먹었다.
 유둔 5일장날이면 할아버지는 나를 앞세우고 장 나들이에 나섰다. 해가 중천에 오르는 것에 조바심이 났으나 해가 안산마루에 느지막히 걸려서야 할머니가 다려준 두루마기를 걸치고 뒷방 천정에 매달아놓은 갓집을 풀어서 갓을 쓰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이 더 더뎠다. 유둔장에서 우리 집 오는 길에는 주막이 장터 말고도 비석거리, 개매 그리고 숯개 등 세 군데 있었다. 그 주막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렸다.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주막집 평상에 앉아 주전버리를 얻어먹으면서 무한정 기다렸다. 대개 숯개 뚱개할멈주막에 이르기 전에 달이 떴다. 뚱개할멈은 할머니가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린시절에는 몰랐으나 지금 유추類推해보니 아마 뚱개할멈과 할아버지의 관계를 할머니가 질투했던 것 같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뚱개할멈주막이 내려다 보이는 사두실고개까지만 마중을 나왔다. 그 때는 입버릇처럼  손자가 걱정이 되어서라고 잔소리를 했다.
 우리마을 교회 상량上樑에는 소화 13년이라는 일본연호가 씌여있다. 근동에는 교회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 거의 다 교회에 나왔는데 할아버지는 교회를 무시했다. 그렇다고 할머니처럼 팔영산 능가사에 다니거나 굿판을 벌이는 것도 아니었다. 장로님들의 성화에 못이겨 부흥회復興會에는 장죽長竹을 들고 교회 맨 앞줄에 앉아 생색生色은 냈다. 그래도 교회부지敎會敷地를 희사한 것은 할아버지다. 내 호주豪酒와 호탕豪宕한 성격은 할아버지 내림이다.


    8. 천지 창조天地創造

 팔팔했던 청년기였으니까 객기客氣였을 것이다. ‘신神과 여자’가 화두話頭가 된 적이 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사람이 교회를 버리고 탕자蕩子가 된 것은 ‘신神과의 소통疏通’ 때문이었다. 유학留學으로 동문수학同門修學하던 동생을 창졸지간에 잃고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죽음이 신의 영역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회의懷疑가 일어났다. 이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중풍中風으로 3년을 누워계셨는데 차마 헤아리기 조차 민망스러운 상태에서 돌아가셨다. 그래서 ‘도대체 신은 정말 있는거냐?’고 되짚었다. 모태신앙母胎信仰으로 몸에 배인 신과 머리가 커지면서 배운 교과서에서의 신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역사교과서에 나오는 신은 사람이 만들었다. 신이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바다, 하늘에 신들이 있었다. 영험스러운 나무, 큰 바위, 산신령山神靈 그리고 심지어는 호랑이나 곰도 신격화神格化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創世記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역사교과서에서는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종교 창시자創始者들은 한결같이 처녀의 몸에서 탄생한다. 아버지가 없다. 불륜不倫의 소생所生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Jeses예수는 동정녀童貞女 Maria마리아에게서 성령聖靈으로 태어나고 목수木手 Josep요셉의 아들이었다. 약혼녀가 아이를 배자 Josep요셉은 의심하며 고민했다. 그런데 꿈에 천사가 계시啓示를 했다, Maria마리아가 출산한 Jeses예수는 신의 아들이라고 Josep요셉의 입을 막았다. 인간 세상에서라면 이 말을 고지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불교圓佛敎의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은 어머니가 냇물에서 빨래를 하다가 떠내려오는 오이를 주워먹고 잉태孕胎했다. 오이라는 상징성이 의미하는 바가 대견하다. 두 사례事例 다 탄생을 상징화하고 신격화했다. 토속신앙이나 사이비종교들도 교조敎祖를 신격화한다. 신격화가 좀 더 유치幼稚할 뿐 내용들은 엇비슷하다.
 신과 인간 규정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절대자絶對者로써의 신의 역사役事였다. 왜 신은 정의正義와 선善을 추구하면서 악인惡人들의 세상을 만들었을까? 벌을 받아야 할 악인들이 득세를 하는가? 만약 신이 세상을 주관한다면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다 죽어 지옥에 가야 하지 않겠는가? 벌罰을 받아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종교가 주관하는 세상에서조차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선을 행하는 착한 사람들이 핍박逼迫을 받는다. 말쟁이들은 착한 사람을 신이 사랑하므로 천당으로 데려간다고 한다. 고해苦海의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고통받게 버려두지 않고 죽음도 없고 고통도 없는 영생永生의 천당天堂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데려간다고 한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언俗言이 있다. 아무리 어렵게 사는 사람도 지금 곧바로 천당에 가자면 선뜻 나설 이가 없을 것이다. 끝없는 의문을 풀고자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내내 교회 마루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신과 대화를 시작했다. 소통은 되지 않고 몸만 꽁꽁 얼어붙었다. 몇 시간씩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다리 감각이 마비되어버렸다. 교회를 나서면 곧장 천방산에 올랐다. 천방산은 마을 뒷산인데 면내面內에서 가장 높다. 칠흑같은 새벽은 한밤중 보다 더 까맣고 한겨울 보다 더 추웠다. 바람소리가 요귀妖鬼들이 설치는 소리 같았다. 산정山頂에 올라 남해를 향해 해가 뜰 때까지 앉아 있었다. 수평선에서 동이 트는 광경은 경이로왔다. 천지창조의 역사가 재현再現되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에 한 줄기 하얀 빛이 수면水面 위로 뻗치더니 바다를 갈랐다. 잔잔하던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고 빛은 오색 구름으로 변화했다. 오색빛이 뒤엉키고 돌아가면서 혼돈混沌이 시작되었는가 하면 곧 바다와 하늘이 엉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빛이 방사선放射線으로 뻗쳐 하늘에 퍼져나가는가 하면 곧 소용돌이 구름으로 변해서 용트림을 했다. 장관壯觀이었다. 황홀했다. 두려움에 가슴이 떨렸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몇 분 동안, 곧 하늘과 바다가 분리分離되고 그 사이에서 붉은 빛이 하늘로 뻗쳐올라오더니 금방 둥글고 커다란 해가 흔들거리며 둥실 떠올랐다. 붉은 해가 뜨자 하늘은 평온해지고 바다는 반짝거리는 은빛 파도가 되었다. 보고있는 사이에 해는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섰다. 바다에는 다시 파도가 일렁였다. 천지창조였다.


     9. 서낭당

 무등산옛길, 원효사에서 단풍나무길을 따라 늦재를 타고 오르다가 바람재에서 땀을 들이고, 덕산골 계곡을 내려오면 증심사길머리 증심교가 나온다. 길이 가파르지도 않고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물길도 좋고 상쾌해서 10여 년째 단골 등산로다. 이렇게 오르내리다가 한 5년 전부터  흩어진 돌맹이 - 옛 집터였을 유허遺墟의 돌을 모아 탑을 쌓았다. 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서툰 솜씨로 돌무더기를 만들었다. 옛 서낭당城隍堂이다.
  애초에는 지산유원지遊園地 들머리 무등산옛길 입구에 있는 1번 안내판에 돌맹이를 쌓았다. 옛 집터였으리라 짐작되는 빈터에 흩어져 있는 돌맹이를 모아 서낭당을 만들었다. 무등산옛길 1번 길 언저리가 바로 우리 아파트라 광주산성으로 올라 (광주산성)동문지東門址를 지나 청풍쉼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1번 안내판 서낭당을 다 쌓고는 동문지 부근에 허물어진 담장돌로 두 번째 탑을 쌓았다. 옛 담장터는 광주가 무진고을이었을 적 인근 담양, 장성에서 무진성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주막酒幕이었으리라. 무진장에서 장돌뱅이 흥정을 하고 가파른 잣고개를 올라 숨을 고르고 땀을 드리우며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 걸쭉하게 걸치고 오르내렸을 나그네길이다. 무진 주변 시골, 담양이나 장성 또는 화순에서 땔감이나 곡식 또는 집짐승을 팔고 사는 길이다. 이 길을 ‘소금장수 길’이라고도 하는데 서남부 해안에서 소금을 받아 져나르던 소금장수가 추위에 지쳐 죽자 주민들이 추렴을 해서 무덤을 지어주었다. 무덤 옆에는 ‘북바위’를 두었는데 고향집의 상징이었을까 네모 주춧돌 모양이다. 오다가다 북바위를 돌맹이로 두드리면서 절을 하면 나들이길의 우환憂患을 막을 수 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1번 탑이 두리뭉술한 서낭당 모습이라면 두 번째 탑은 제법 탑답게 한 길 쯤 위로 쌓아 올렸다. 이렇게 한두 군데 꾸물거리다가 증심사 덕산골로 이어졌다. 덕산골은 본래 무당巫堂골이었다. 정비하기 전에는 십여 채의 무당집이 들어서 있어서 북소리 장구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수천 명의 나그네들이 소원을 빌었을 서낭당의 자취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한 3년 쯤 손을 보았더니 꽤 인상印象 깊게 보였는지 지나는 등산객들이 서낭당 위에 작은 탑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새로 두 개의 탑을 더 쌓다가 시비是非가 붙었다. ‘쓰레기나 줍는 주제’의 무등산국립공원 관리직원과 다툰 빌미다.
 나름 어렵게 탑을 짓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가보면 누군가 탑을 헐어버려서 몹시 속이 상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탑을 헐어버리는 사람과 마주쳤다. 뜻밖에도 제복制服을 입고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든 공원관리 직원이었다.
 “여보쇼, 왜 탑을 허무는거요?”
 속이 상했던 터라 첫말부터 가시가 돋았다.
 “등산객들이 싫어해서요. 민원民怨도 들어옵니다. 그러고 위   험하기도 하고.”
 “뭐가 위험하다는 거요?”
 톤이 높아지자 직원은 목소리가 작아졌다.
 “뱀이나 지네가 있어서요.”
 뱀이나 지네의 생태生態도 모르는 소리다. 뱀은 성격이 정갈해서 양지陽地 바른 건조乾燥한 굴속에서 살고, 지네는 낙엽 속이나 돌 밑 등 약간 습濕하고 눅눅한 곳을 좋아한다. 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곳에서는 잠시도 묵거나 머물지도 않는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무지랭이인데 설득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뱀이나 지네는 돌탑 안에서는 살지 않는다고 했더니 ‘보기 싫잖냐?’고 했다. 탑이 보기 싫다는 것은 종교적 신념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이 들어나버렸다.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나 원리주의자들은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해서 일반인들의 반감反感을 산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십계명十誡命의 제 1계명 때문이다. 이 계명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배척排斥한다. 학교에 세운 단군상檀君像의 목을 톱으로 잘라버린 것도 이 원리주의자들의 소행所行이다. 중세中世에는 이슬람을 말살시키려고 십자군 원정遠征을 일으켜서 수백 만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주민原住民을 잡아다가 노예奴隸로 부려먹고 짐승처럼 사고 팔았다.
  종교전쟁은 Acape사랑을 교리敎理로 하는 기독교가 벌였던  이교도異敎徒 학살虐殺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승과 솟대 그리고 토속문화재를 미신迷信으로 간주看做하여 파괴해버렸으며 토착土着종교를 말살抹殺해버렸다. 불교가 절에 산신당山神堂을 설치한 것과 대조적이다. 불교도 부처님이 태어날 때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손바닥에 글을 들고 태어났다고 한다. 자비慈悲를 앞세우는 부처님도 예수교 신자信者들을 경원敬遠한다. 인류를 악惡에서 구원하겠다는 종교가  서로 죽고 죽이며 싸운다.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가치를 표방標榜하는 두 종교는 만나기만 하면 상대를 증오하고 적대시敵對視한다. 오늘 지구촌에서는 자기 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다른 종교를 말살시키려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Iraq이라크에서는 Sia시아파와 Suni수니파 간의 전쟁이 치열熾熱하다.


10. 도깨비불

  어린시절, 샘골 옹달샘터 치잣거리에는 채왈遮日귀신이 살았다. 해가 지면 아이들은 치잣거리에는 얼씬도 못했다. 어른들도 밤이면 지나다니는 걸 꺼렸다. 청년등靑年 平葬墓에는 달걀귀신이 있었다. 길 가는 사람 앞에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나 좀 봐라!’ 하면서 얼굴을 쓱! 문지르면 코, 입 그리고 눈이 없어지고 달걀얼굴이 되어 사람을 까무라치게해서 잡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해질녘에는 아이들이 혼자 청년등을 지나는 것은 금기禁忌였다. 혼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여름 해질녘 우리 집 마루에서 보았다. 해거름에 땅거미가 서슬서슬 내리는데 느닷없이 대루다리미만한 주황색불이 파란 꼬리를 끌며 마당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를 쳤다.
 “할머니, 불이 날아가요!”
 할머니가 뒷간화장실에서 나오며 대답했다.
 “뉘 집 혼불일까?”
  혼불이 나간 집에는 사람이 죽어나간다고 했다. 틀림없이 며칠 안으로 곡哭소리가 날거라고 쩝쩝! 혀를 찼다. 혼불이 떨어진 자리는 명당明堂이라고도 했다. 혼불은 우리 선산先山과 신씨申氏네 선산先山 어름에서 흐믈흐믈 사라졌다. 그리고 그 해 여름 해거름 속에 흐릿한 사람 비슷한 형상形象이 혼불이 떨어진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야야, 나와봐라. 청년등에 도깨비불 질렀다!”
  여름날 초저녁께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불러내서 나가보니 청년등에 푸르스름한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청년등에는 장가도 들지 못한 청년이 죽어 평장을 했다고 했다. 몽달귀신이다. 밤에는 엄두도 못내고 낮에도 청년등을 지나려면 등골에 오싹한 찬 기운이 들었다.
  맞은 편 안산案山 골짜기에는 상여喪輿집이 있었다. 하얗고 빨간 그리고 노란 종이꽃으로 치장한 꽃가마를 모셔놓은 상여집이었다. 아이들은 동네 주변의 온 산을 제 집 삼아 돌아다녔지만 결코 상여집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면내面內에서 가장 놓은 마을 뒷산 천방산을 넘어 산길 십리를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이었다. 한 발 앞 선 동무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갯발이 짙은 날이었다. 천방산 등성이를 막 넘어 달리는데 덩덩! 난데없는 북소리가 들렸다. 움칫거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두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북소리는 산등성이 남쪽 송씨宋氏네 쌍묘雙墓에서 나는 것 같았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가지도 오지도 못한 체 떨며 서 있었는데 골목대장 철웅이가 가보자고 했다. 두려움 보다 호기심이 더 컸을까? 대장을 앞세우고 우리는 두세 발짝 뒤에서 엉덩이를 빼고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묘지墓地에 바짝 다가서니 북소리가 뚝! 그쳤다. 주변을 둘러봐도 키 작은 소나무들이 빙 둘러섰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살금살금 묘지를 벗어났다. 열 발자국이나 물러섰을까, 다시 북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꽁무니를 빼는 우리를 제껴놓고 대장이 혼자 갔다. 대장이 다가서니 또 북소리가 딱! 멈췄다. 대장이 서너 번 오다가다를 반복하다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자 아이들이 모두 와아! 함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쳤다. 북소리는 장년壯年이 되어 한 번 더 들었다. 곰재熊峙학교에서 근무 때, 총각선생들이 여나무 명 밤마다 숙직실에 모여 놀았다. 삼봉화투를 치거나 바둑을 두었다. 대개 놀이판이 새벽까지 이어졌는데 밤중에 화장실에 다녀오던 동료가 2층 교실에서 북소리가 난다며 새파랗게 질려서 뛰어들었다. 엉뎅이를 뺀 친구도 있었으나 동료들이 나섰다. 2층 북소리 나는 교실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북소리가 뚝! 그쳤다. 계단을 내려오면 북소리가 다시 들렸다. 몇 번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중구난방衆口難防 원인 규명糾明을 못하고 그만두었다.
  교사 초임初任을 모교母校로 발령받아 천방산을 걸어 넘어 출퇴근을 하던 중 초여름 모내기철이었다. 산길에는 인가人家는 없고 천방산을 비롯하여 낮은 산등성이를 서너 개 넘어야 하는 가파른 길이었다. 낮이 긴 때라 퇴근을 하고 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천방산을 넘었다. 출근길과 달리 조금 더 지름길인, 동네 저수지를 지나 옥녀봉玉女峰을 넘기로 하고 집을 나서는데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 저녁이었다. 때 맞춰 빗방울이 들쳤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옥녀봉을 올랐다. 옥녀봉 정상頂上에 오르면 집과 학교가 딱 중간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옥녀봉에 올라 마악 내리막길에 들어섰는데 멀리 내가 지나야 할 앞길에 쟁반만한 불덩어리가 보였다. 학교와 정상의 중간지점 공동묘지 부근이었다. 불덩어리가 움찔움찔 움직였다. 하필 내가 지나야 할 길 위였다. 순간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돌아서지 못했다. 돌아서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래서 죽으나 사나 맞부딪히기로 작정하고 불덩어리를 마주 보며 내달렸다. 가까이 가니 불덩어리는 길 아래 공동묘지에서 마치 곧 덮치려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어떻게 뛰었는지 모른다. 불덩어리를 곁눈질 하며 뛰었는데 숙직실에 들어서니 옷은 땀을 쥐어 짤 정도였고, 뺨에는 감각이 없었다. 동숙同宿하는 급사給仕 아이가 놀라서 무슨 일이가 까닭을 물었으나 입이 떼어지지 않아 반半벙어리행세를 했다.
 그 2년 후, 낯선 원지遠地로 전근轉勤을 했는데 하숙下宿할 집이 마땅찮아서 과수원집에 방을 얻어놓고 밥은 주막酒幕에서 먹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을과 동떨어진 과수원에 들어서면 늘 무서움증이 들었다. 과수원집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고 살았는데, 어느 날 자정子正 쯤 연탄불을 갈려고 부엌에 나갔는데 손에 든 촛불이 싸늘한 바람이 휙! 스치며 꺼져버렸다. 등골이 오싹해서 연탄을 어떻게 갈았는지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그 뒤부터는 집주인네가 출타出他하고 혼자 밤을 세우는 날에는 잠자리가 편치 않고 깊은 잠이 들지 않았다. 밤에는 연탄을 갈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뒷 돌담이 와그르르! 와그르르! 무너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가늠으로 돌담이 다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말자 돌담에 나가보고는 깜짝 놀랐다. 돌 한 개도 떨어지지 않고 멀쩡했던 것이다. 무너진 돌담을 주인이 새벽같이 수리修理했을 리는 없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어젯밤 돌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냐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얘기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가끔 그런다고 예삿일처럼 말했다. 집터가 옛날 도살장屠殺場터라서 터가 세다고 덧붙였다. 어린시절 어른들과 바닷가에 바람을 쐬려 나가 제방堤防에서 놀다가 달이 뜨면 온 바다에 파란 인광燐光이 일어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바닷물에 떠다니는 인燐이 달빛을 받아 파란빛을 낸다고 해서 그렇게 이해했으므로 다음부터는 인불을 보아도 많이 무섭지는 않았다.
 인간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해되지 않은 현상이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現象들은 신격화神格化 되었는데 그렇다면 신神의 존재는 보이지 않은 것뿐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대로 세상만물世上萬物에 다 불성佛性이 있고 또는 아무 데도 없는 게 아닐까?


11. 함평천지咸平天地 귀신鬼神 낯바닥

 “쑥대머리 귀신 형용形容 ……”
 함평가咸平歌의 첫 대목, 오늘도 옛날에도 귀신은 머리칼을 산발散髮하였던 모양이다. 쑥대머리가 산발이다. 어린시절에는 밤에 뒷간화장실 가는 일이 지레 겁났다. 그 시절 뒷간은 안채와 멀리 떨어진 대문간에 있었는데 어른이 망을 보아주지 않으면 옷에 실례失禮를 할지언정 혼자 뒷간 가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달걀귀신이나 몽달귀신들이 밤에는 집 주변에서 설치기 때문이었다. 혼자 밤길을 걷는 사람 앞에 갑자기 나타나 ‘나 좀 봐라!’ 하면서 얼굴을 쓱! 문지르면 눈, 코, 입이 없어져 얼굴이 달걀모양이 된다는 달걀귀신과 샘골 치자나무거리에서 밤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채왈遮日을 덮어 씌워 감쪽같이 잡아간다는 채왈귀신들이 흔했다. 혼재混在된 신과 귀신에 대한 성찰省察은 ‘눈 뜰 무렵’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한 밤중 같은 새벽, 얼음바닥처럼 찬 교회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대화對話를 시도試圖했다. 몇 시간 동안 소통疏通에 실패하고 일어서려면 몸이 꽁꽁 얼어붙어 다리가 마비痲痺되어버렸다. 근 한 달 동안 하나님과 대화, 그러니까 요즘 말로는 소통이 되지 않아 모태신앙母胎信仰을 버린 뒤 탕자蕩子로 살았다. 그런데 인생 고희古稀가 낼 모레라서인지 요즘들어 부쩍 죽은귀신과 죽음에 맘이 좀 쓰인다. 공자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마음 먹은대로 행동해도 규범規範에 어긋나지 않았다라 했다지만 범인凡人 우리에게는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런데도 자꾸 ‘귀신이 씌운 것처럼’ 마음이 쏠린다.
 우리 집 옆으로 무등산옛길이 생겼다. 혼자 쉬엄쉬엄 오르내리면서 한 5년 주변의 돌들을 모아 하릴없는 사람처럼 서낭당을 만들었다. 고대어古代語로는 서낭당城隍堂이고 유식한 말로는 ‘서낭당을 모티브로 한 마운틴폴리’다. 세 개를 완성했다. 완성이라는 말이 좀 마뜩찮다. 왜냐하면, 서낭당이란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 오가는 길손들이 돌맹이를 하나씩 올려놓고 저마다 소원所願을 빌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여튼 그 어설픈 서낭당을 만든다며 힘깨나 쏟았다. 대부분 옛 유허지遺墟祉의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모았는데 덕분에 Golf Elbo골프엘보까지 생겼다. 서낭당은 무등산옛길이 시작되는 1번 안내표지판에 한 개, 무진고성古城터를 지나 청풍쉼터로 가다보면 동문지東門祉 조금 못미처서 세 개 그리고 전망대展望臺를 지나 장원봉壯元峰 오르는 길목에도 만들었다. 서낭당 주변에는 상사화相思花를 심었다. 상사화는 겨우내 잎이 월동越冬을 하고 6월 쯤 되면 잎이 사라진다. 8월 초 꽃대가 나온다. 꽃이 지면 9월 쯤 또 잎이 나온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서 상사화다.
 서낭당을 만들었던 5년 동안 많은 등산객들을 만났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부딪친 노인들의 몰골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두 얼굴의 주름살 아래로 응축凝縮되어서 한 장의 잿빛 석판화石板畵 같다. 그런데 그 잿빛 석판화에서 한 군데 채색彩色이 된 부분, 유난히 눈빛만 형형炯炯한 노인들을 발굴發掘한 것은 놀랍다. 도전挑戰하는 듯한, 경계警戒하는 듯한, 뭔가 아직도 충족充足되지 않은 듯 삶에 대한 갈망渴望이 그려진 저 얼굴그림표정은 무엇을 뜻하는가?
 40대 초반初盤 겨울 한 철을 백양사白羊寺 천진암天眞庵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무릎까지 쌓인 눈이 녹을 무렵, 정초正初 에 암자庵子 살림을 맡은 불광화보살佛光花菩薩이 떡국을 끓였는데 학바위토굴土窟에서 수도修道 정진正眞을 하는 선승禪僧을 만났다. 솔잎가루와 생쌀가루만 먹고 장좌불와長坐不臥 정진을 하는 예순이 넘은 스님의 얼굴은 투명하고 뽀얀 빛이 일어 마치 다섯 살 어린아이 같았다. 그리고 마주하는 눈빛은 맑은 호수湖水 같았다.
 귀신을 본적이 없다. 믿지도 않는다. 무식한 말로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이라고 궤변詭辯도 늘어놓는다. 신이 들으면 무고죄誣告罪에 해당할텐데 서낭당을 쌓고 죽음을 셈하면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에둘러 부친다. 서낭당을 손질하다가 산을 내려오던 어느 날 문득 산길에서 마주친 노인네의 몰골을 보고 ‘노인네들의, 죽음을 향해 가는 노인네들의 그 몰골이 바로 귀신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신의 모습이 처용가면處容假面이나 도깨비 형상形象처럼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안타깝게 늙어가는 노인의 몰골이 바로 귀신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깨달음이다. TV에서 연출하는 산발散髮에 하얀 분칠한 얼굴 그리고 입술에 피를 흘리는 모습이 아니라 늙어가는 노인의 얼굴이 귀신의 모습이라는 깨달음이다. 뜻은 다르지만, 옛말에 ‘죽은 귀신만도 못하다’느니, ‘잘 먹은 귀신은 화색和色도 좋다’고 했다. 잘 먹기만 해도 앞에서 말한 노인 몰골의 석판화石板畵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영양 부족으로 몰골이 추醜해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사람들이 만들었다면 귀신도 사람들의 모조품模造品이다. 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가 귀신들린 사람 속의 귀신을 불러내서 돼지떼에게 들씌워버린 걸 알고 있다. 성경에는 마귀魔鬼도 등장登場한다. 초등학교 때 마당 하늘을 가로질러가는 혼불을 보았고, 안개발이 자욱한 날 등교길에 천방산 정상頂上의 쌍묘雙墓에서 울려퍼지는 방아찧는 소리도 들었다. 공동묘지에서 바가지만한 푸르스름한 불이 움찔거리는 것도 봤다. 도깨비전설과 처용신화神話를 읽었고, Olympus올림푸스산 꼭대기에 사는 신들의 세계 - 그리스 로마신화도 읽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누구나 깨달으면 다 부처가 된다고 하고,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은 사람이 곧 신이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서 인간을 창조했다. 요즘에 발견된 Sumer수메르, 현재 Iran이란, Iraq이라크 지방, 고조선 12연방국 점토판粘土板 기록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자기들의 모습대로 사람을 대량大量으로 만들어 노동력에 이용한다.
 또,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지는 것 중 하나가 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참 자고 새벽녘인가 하고 보면 열두 시時다. 한 시고 네 시고 대중이 없다. 잠이 없으니 집안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몰골과 하는 짓이 영락없는 귀신이다.


12. 육복六福

 하나님과 소통에 실패한 뒤 탕자가 되어서는 ‘깨달으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소박素朴한 종교관이 더 편했다. 그래도 스님이 되겠다거나 불교신자信者는 아니다. 나그네처럼 절을 찾고 선방禪房에 들기도 한다. 인내천人乃天이란 천도교의 종교관도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티베트인들은 내세來世를 염원하며 현세現世를 산다. 그래서 현세의 고통을 내세의 행복으로 치환置換한다. 내일을 모르고 오늘 하루를 사는 아프리카 밀림 속 원시인들처럼 행복하다. 원시인들에게는 내일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먹을거리도 오늘만 한정限定한다. 오늘 먹을거리만 수렵狩獵하거나 채집採集한다. 욕심이 없으니 갈등도 없다. 또 그들은 공동생활을 한다. 같이 구해서 같이 나눠 먹는다. 적으면 적은대로 서로 나눠먹는다. 내일을 위해 축적蓄積하지 않는다. 비축備蓄하지 않고 물려주지 않으니 경쟁競爭이 없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하고 병약病弱하여 수명壽命이 짧지만 지구촌에서 가장 행복하다. 북 Europe유럽 선진국들 - Denmark덴마크, Finrader핀란드 그리고 Sweden스웨덴 국민들의 종교율은 25% - 30% 내외內外다. 종교를 거부拒否하진 않아도 내세보다는 현실을 더 추구하며 인간답게 산다. 국민 90%가 국교國敎를 가진 미국이나 우리나라 국민들 보다 더 보람있게 산다. 현재의 삶을 즐기며 여유롭게 이웃을 배려하고 돕는다. 지구촌 최대의 강국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그 나라들이 천당天堂이요 극락極樂이다. 그들은 천당을 믿지 않아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종교인들 보다 더 적다고 한다.
 철이 들고는 60이 넘으면 덤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면 젊었을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죽음이 머리맡 베갯머리에 앉아있어 두렵고 안타깝다. 죽음도 안타깝지만 죽음의 과정過程이 더 불안하다. 할아버지는 중풍中風으로 3년을 신고辛苦하다 가셨고, 장모는 5년 동안 의식을 놓은 상태로 병病 수발受發을 받았다. 설국雪國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Gas가스 자살自殺을 선택했다. 고등동물高等動物이라는 인간이 동물처럼 자연사自然死도 못하고 선승禪僧처럼 좌선坐禪한 체 죽지는 못해도, 태어남을 자기 의지로 못했다면 죽음은 자기 선택으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호흡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나도 흉내를 내보려고 몇 년 전부터 선승들처럼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연습하지만 글쎄, 자신이 없다. 고통스러워하며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괴로운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며 최후를 맞고 싶지 않다. 인간으로써 마지막 자존심이다.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고, 선방禪房과 산방山房을 들락거리는 뜻은, 서낭당을 쌓은 이유와 택도 없는 화두話頭 - 신과 소통을 시도試圖한 이유는 얼마 남지 않았을 자투리 삶 동안이라도 귀신 형용을 벗어나고, 죽는 순간 평안하고 온화한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냥 한 떨기 풀꽃처럼, 숲의 야생동물처럼 잠자듯 스러지길 염원念願한다.


13. 유언遺言 (2014년 1월)

사고사事故死의 경우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2010년 가입加入, 02-2276-0027)에 연락하여 장기臟器를, 시신屍身은 조선대학교병원에 의학醫學연구용으로, 자연사自然死의 경우에는 시신을 조선대학교(2013년 가입, 062-230-6287)에 의학연구용으로 기증寄贈하라.

* 사고사든 자연사든 병원 연명延命장치로 연명하지 마라.

시신屍身 기증 후, 수의壽衣는 평소에 즐겨 입었던 옷 입혀, 종이관에 안치安置하여 화장火葬하며, 형제자매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말고, 장례의식葬禮儀式도 하지말고 내 태어났던 곳 선영先塋 묘역墓域에 뿌려다오.
아라한이와 아나율이 훌륭하게 자라기를 그리고 가족들이 평안平安하고 화목和睦하게 살기를 소망所望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 한 잔을 들고 뒷 베란다에서 바로 지척咫尺의 무등산자락을 조망眺望한다. 우리 Apartment아파트는 무등산자락에 있어 광주시내에서 우리 집 보다 높은 집은 없다. ‘광주시가 물난리가 나도 우리 아파트는 끄떡없다’고 농담弄談을 한다. 장군봉將軍峰을 바라보며 맑은 날이면 해 뜨는 위치를 가늠도 하고 오늘 날씨도 점쳐본다. 산등성이서 해가 뜨는 위치는 사계절 다르다. 그 각도角度가 넓다는 걸 근래에 알았다. 장군봉 정상에 안개가 많으면 ‘오늘은 날이 맑겠구나’ 짐작하며 일정日程도 더듬는다. 가끔은, ‘저 파란 녹음의 싱싱한 여름 빛을 이제 여나무 해나 볼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서글픈 생각이 스친다. 아, 언제 내가 이렇듯 나이를 먹어버렸나? 정말 초로草露인생이 실감난다.
 10여 년 전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전남교육감에 출마하였다가 낙마落馬하고, 이어 느닺없이 직장암直腸癌 수술을 하고는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애초에는 Apartment아파트 옆 구와산狗臥山을 다녔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운동구시설을 이용하고, 주변에 상사화와 원추리를 심었다.
 몇 년 구와산을 다니다가 등산로를 무등산줄기 장원봉壯元峰으로 바꿨다. 장원봉은 본격적인 등산을 하기 전 젊었을 때 몇 번 다녀봤던 산이다. 무등산 옛길 초입初入에서 1번안내판 을 거쳐 전망대展望臺로, 운동구시설장을 거쳐 장원봉으로 오르다가, 퇴직 뒤에는 힘이 부쳐 중간 길 장원정壯元亭으로 바꾸었다. 그러다가 심심풀이로 주변의 흩어진 돌을 주워 탑을 쌓았다. 돌들은 옛 집터 유허遺墟다.
 산수동무등Park파크 맞은편 무등산옛길 초입初入을 따라 올라가면 ‘무등산옛길 1번 안내판’에 제 1탑이 있다. 탑이 완성되면 주변에 상사화를 심었다. 상사화는 전임지前任地 - 진달래 군락群落으로 유명한 영취산 그리고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병사兵士를 훈련했던 유서遺緖깊은 흥국사에서 나눠왔다. 흥국사에는 전국에서 제일 큰 괘불掛佛이 있고, 앞으로는 흥국천이 흐르며 보물로 지정된 무지개다리가 있다. 이 흥국천에서 학교 운동장으로 물길을 끌여들어 운동장을 빙 둘러 개울을 만들고 둠벙연못을 몇 개 파려고 궁리를 한 적도 있다.
 전망대에서 장원봉길 오르는 데 2탑이 있다. 무등산옛길 1번 길을 걸어 청풍쉼터로 가면 광주산성山城이 나오고, 더 가면 소금장수무덤이 나오는데 무덤 북바위 주변에 상사화를 심었다.
 소금장수무덤을 지나 옛 옹달샘 주변, 동문지東門祉 못미처서  3탑, 4탑, 5탑이 있다. 3탑은 주변의 돌을 모아서 만들었고, 4탑과 5탑은 유허遺墟의 흩어진 담장 돌들을 주워 쌓았다. 아마 광주로 통하는 길목의 주막의 유허라 상상한다. 축대築臺의 큰 돌들을 높이 쌓느라고 팔꿈치 인대靭帶가 상해서 골프엘보를 앓고 있다. 광주성 동문지를 지나 청풍쉼터와 중간 지점에 작은 탑이 하나 더 있다. 6탑이다. 지난 가을에 청풍쉼터 김삿갓김병연 시비詩碑 앞에 상사화를 400포기 남짓 심었다.


 송송백백암암회松松柏柏巖巖廻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가 바위와 바위를 돌아
 수수산산처처기水水山山處處奇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절경이라
 (김삿갓이 화순 이서 적벽赤壁에서 지은 시, 문자文字의 희롱戱弄과 사회 풍자諷刺가 기발    奇拔하고 천재적天才的임)
 

 내년 봄에 접시꽃도 심을 예정이다.
 바람재에서 덕산골로 내려가는 길에, 바람재에서 약 100여m 지점에 옛 서낭당이 있다. 주변에는 주막酒幕으로 짐작되는 집터들이 산재散在해 있다. 서낭당은 당산나무 주변에 있는데 수 백 혹은 수 천 년의 자취다. 수 백 또는 수 천 명의 나그네들의 흔적痕迹이다. 더러는 장사로 또는 나들이길로 다니면서 소원을 빌었던 조상祖上들의 자취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허물어지고 퇴락頹落한 유적遺跡을 보수補修했다.
 덕산골의 7탑, 8탑, 9탑, 10탑은 보수한 탑이다. 11탑, 12탑, 13탑은 내가 쌓았다. 주변에 상사화를 심었다. 10미터 쯤 내려오면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쌓았다는 항아리 모양의 전탑塼塔 14탑, 15탑, 16탑이 있다. 역시 오랜 세월 퇴락頹落하여 허물어진 것을 보수했다. 그리고 바람재 내리막길과 탑들 중간 중간에 등산로를 따라 작은 탑들을 쌓았다. 시나브로 더 쌓아볼 생각은 있으나 어떨지 ….
 옛 덕산계곡의 무당골에서 제일 큰 버드나무가 있고 너럭바위가 널린 계곡에 산천어山川魚가 산다. 약 100여 마리 쯤 된다. 등산 때마다 달걀 먹이를 주었더니 다람쥐도 보이고 까치도 온다.
 등산길 내내 휘파람을 분다. 100여 곡을 지정하여 연습한다. 5년 쯤 되자 소리가 좀 트였다. 애초에는 France프랑스 사람들의 중산층자격資格 자격지심自激之心에서 비롯했는데 대금大笒, 소금小芩, 피리, 하아모니카 등 여러 가지 악기들을 궁리하였는데 이태리여행에서 산 오카리나를 한 2, 3년 연습하다가 포기하고는 휘파람으로 결정했다. 따로 번거롭게 악기가 필요 없고, 입만 있으면 되니 편리하다. 휘파람노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지방방송국에 휘파람가요제歌謠祭를 제안提案했다. 휘파람노래를 위주로 상품화, 악기화 되지 않은 자생自生악기연주 경연競演이다.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자생自生악기 연주회가 되기를 소망所望한다. 음악 생활화에 도움이 되고 국민정서순화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제안했다.


14. 꿈과 예언豫言

 Nostradamus노스트라다무스는 16세기 프랑스 의사醫師로써 제세기諸世紀라는 예언서를 남겼다. Hitrer히틀러의 출현出現과 세계 제 2차대전  발발勃發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 조선시대 토정 이지함은 토정비결土亭秘訣이라는 예언서를 남겼다. 요즘 젊은이들까지도 새해에 찾는 예언서다. 성경聖經의 예언서는 성聖 Jhon요한의 계시록啓示錄이다. 일상사日常事가 숫자주민등록증, Card카드번호 등로 대치代置되고, 지진地震과 해일海溢 그리고 화산이 폭발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땅끝까지 기독교신앙이 전파되는 날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언하고 있다.
 한 겨울, 산에 빨갛게 진달래꽃이 만발滿發했다. ‘한 겨울에 진달래는 무슨 …’. 눈을 뜨고나서도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이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출근했다. 4교시 끝날 때 쯤 요란한 Siren싸이렌소리를 울리며 군용軍用트럭들이 존재산으로 달렸다. 존재산에 남해안 방어防禦 미사일기지가 있었으므로 군용Truck트럭을 보는 일은 흔했다. 훈련기訓鍊機가 존재산 등성이에 추락墜落했다는 건 점심시간에 들었다. 추락한 비행기에는 두 명의 조종사가 타고 있었는데 비행기는 형체形體도 없고 큰 웅덩이가 패였으며, 조종사들의 시신屍身은 갈기갈기 찢겨져 붉은 살점이 주변 나뭇가지에 널려 있었다는 처참悽慘한 목격담目擊談을 들었다. 문득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겨울 산에 핀 빨간 진달래꽃밭 ….
  오래 전, 학교에서는 토요일이 ‘자유학습의 날’이었다. 체험학습을 했다. 전 날 꿈에 단청丹靑을 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출근했는데 동학년협의회에서 장소를 읍내 명륜당明倫堂으로 골랐다. 그 때까지도 무심코 따라만 갔는데, 대문을 들어서니 선명한 단청, 또 꿈이 생각났다. 40대에 이런 꿈이 많아졌다. 그래서 기억나는 꿈을 기록하고 그 날 일어난 일들을 붉은 글씨로 병기倂記했다. 그래서 제법 해몽가解夢家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얼추 맞았다. 복채卜債는 안 받았지만 꿈을 상의해오는 교사들이 신기하다며 놀랐다.
 가을철 어느 날, 꿈에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에 제수祭需 고리짝을 인 세 명의 유족遺族을 보았는데 오토바이 출근길에서 똑같은 양상樣相이 펼쳐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데 버스가 멈추더니 상복 여인들이 내렸다.
  병역 미필未畢로 느닷없이 교직에서 해직解職되었을 때는 척추脊椎가 부러지는 꿈을 꾸었다. 약 한 달 전 선배先輩가 돋보기를 든 관상쟁이를 교실로 데리고 왔다. 코웃음을 쳤더니  심심풀이 삼아 보라고 했다. 손바닥을 이리저리 살피던 관상觀相쟁이가 얼마지 않아 교직을 그만 둘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코웃음을 쳤으나 정확히 한 달 뒤에 병역미필兵役未畢로 교직에서 쫓겨났다.
  꿈을 기록하다보니 대강 해몽解夢이 되었다. 여자가 꿈에 보이면 그 날은 파이다. 가까웠던 여자일수록 큰 사건이 터지고, 만약 가까웠던 여자가 웃기라도 하는 날은 정말 수습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 가까웠던 여자가 보이고 웃어버렸다면 하루 종일 안절부절했다. 그렇게 조심을 해도 기어코 예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
  많이 꾼 꿈은 날아다니는 꿈, 불이 나는 꿈이었는데 불이 활활 타는 꿈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중간에 불이 꺼져버렸다. 파란 강물이나 물고기꿈을 꾸면 반드시 비가 왔다. 그것도 물고기가 크면 비의 양이 많았다. 요즘에는 신발을 잃어버린 꿈을 자주 꾸는데 의미를 알 수 없다.
  MBC 동요가사 응모에 두 아들을 생각하면서 ‘아가야, 너는 어디서 왔니?’를 응모했다. 응모 뒤 응모한 사실 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꿈을 꾸었다. 금화金貨 두 개를 받았는데 한 개가 그만 절반 쯤 녹아버리는 꿈이었다. 꿈을 꾸고 며칠  뒤에 당선통지를 받고 시상식에 갔더니 2등이었고 상금은 20만원인데 세금을 6만원 공제하고 14만원을 탔다. 프로이드는 꿈이 잠재력潛在力의 재현再現이라는데 예언적인 꿈은 정체正體가 무엇일까? 육감六感이라는 4차원次元의 세계, 과학이 풀지 못하는 초자연적 현상의 발현發顯이 아닐지….


15. 천당과 지옥

  Tibet티베트인들은 현세現世보다도 더 내세에 집착한다. 아무리 현세가 어려워도 죽어 갈 내세를 생각하며 어려움을 참고 산다. 그래서 행복지수指數가 높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가장 못사는 방글라데시다. 다 같이 못사는 공산주의국가들도 행복지수가 높다. 북한인민들은 김일성체제에 열광熱狂한다. 어버이수령首領 김일성은 가히 신神이다. 남한에서 보면 거지처럼 살면서도 광적狂的으로 어버이수령님을 추종追從한다. 인간의 절대자 추종 속성을 이용한 통치술統治術이다. 금강산관광을 다니는 길에는 관광버스만 다녔다. 북한에는 자동차가 없다. 금강산에서 머무는 3일 동안 낡은 트럭 한 대만 보았다. 그리고 자전거 석 대, 대부분의 인민人民들은 등짐을 지고 걸어다녔다. 우리의 60년대 필림을 되돌리는 것 같았다. 집은, 관광지 주변인데도 네모 두부 같은 3, 4층의 연립주택이었다. 말로는 연립주택인데 시멘트로 조립組立한 오두막 같았다. 금강산을 오르는 길목에 남녀 두 사람의 안내인들이 있었는데 입성은 거무틱틱한 방한복이고 신발은 타이어로 만든 우리 50년대 신발이었다. 벌벌 떨고 서있으면서 춥지 않냐고 물었더니 ‘춥지 않습네다.’라고 대답했다. 미상불未嘗不 행복지수는 남한 보다 높다. 우물 안의 개구리여설까?
  조趙교장은 교장과 목사牧師를 겸업兼業하고 있다. 그림솜씨는 Amateur아마튜어를 벗고, Piano피아노연주는 수준급이다. 교장을 하면서 일 년 중 두 번 - 새 해 첫날과 해넘이 마지막 날에는  사비私費를 들여 세운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 그런 그 분이 모친상母親喪을 치루고
  “어머님은 자네가 알다싶이, 아무런 연고緣故도 없는 시골에 사비私費를     들여 교회를 세우고 말년末年까지도 교회봉사를 하면서 살았네. 그런데     임종臨終 때 얼마나 신고辛苦를 겪었는지, 괴로워하면서 몸부림치는 모습    은 차마 볼 수 조차 없었네. 평화롭기 그지없는 천당에 가시는데 왜 그렇    게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셨을까?”
  장례葬禮를 모시고 삼우제三虞祭를 지내는 날 다시 교장선생님을 찾았는데 교장선생님은 술잔을 놓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 유치원 놀이터 모래장.


 벌쭉이대장과 다운이가 자동차놀이를 하고 있다. 다운이는 종이상자 집을 짓고, 다리를 놓고, 나무를 심고 있다. 대장은  네거리길을 만들고, 터널을 파고, 길에서 자동차들을 운전하고 있다. 대장이 앵! 하면서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아버렸다. 가로수가 넘어지고 길이 무너졌다.
 “거 봐, 과속하지 말랬잖아!”
 “금방 고칠 수 있는 걸 뭐 …”
 “진짜 사고였담 어쩔 뻔 했어?”
 다운이가 가로수를 세우고 무너진 길을 다독거렸다.
 “얘, 정말 천당은 있는 거니?”
 ‘얜, 참. 엉뚱하게도 …’
 다운이는 벌쭉이대장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무시해버렸다기 보다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요 전 날, 목사님이 그러셨잖아. 천당은 정말 좋은 곳이라고. 사철 꽃이 피    고, 새들이 울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찬 곳이랬지?”
 들은 말이 있었으므로 다운이는 고개만 끄덕거려주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해낼 뿐이었다.
 “살아서 천당 갈 순 없을까?”
 “죽어서 가는 천당이 그렇게 좋다면 왜 어른들은 빨리빨리 죽으려고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왜 산 천당을 만들지 않고 죽은 천당을 만들었을까?”
 “넌 정말 믿니?”
 다운이가 도통 말대꾸를 하지 않자 대장은 제가 묻고 제가 대답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물음에 다운이는 고개를 끄덕여 믿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장편동화 ‘벌쭉이대장’에서 발췌拔萃)


 기독교가 사랑을 교리敎理로 삼는 것이나 불교가 자비慈悲를 내세워 신자信者들에게 믿음과 인간 평화를 선도善導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천당이나 극락을 예언하며 현실을 호도糊塗하지 말아야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16. 사랑과 전쟁

2016년 착공하는 Berlin베를린의 ‘Hause of one하우스 오브 원’ 조감도鳥瞰圖. 한 지붕 안에 교회 · Synagogē시나고그 · Mosk모스크가 들어선다. 화해와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 독일 Berlin베를린이 종교 간 화합을 위한 실험을 한다. 개신교 · 유대교 · Isram이슬람교가 한 지붕 아래 기도祈禱의 공간을 마련하는 ‘하우스 오브 원The House of one’ Project(프로젝트)다. 종교의 벽壁을 허무는 ‘하나의 집’ 속에는 개신교의 교회, 유대교의 Synagogē시나고그, Isram이슬람교의 Mosk모스크가 함께 자리 잡을 예정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종교시설은 동베를린 지역 Petryfraze페트리플라츠에 세워진다. 혁신적인 ‘종교 실험’은 세 종교의 지도자가 손을 잡으면서 가능해졌다. Germany도이치 복음교회의 Gregore Hornberg그레고르 혼버그 목사, 베를린 유대인 Community커뮤니티의 Tobia Ben Corin토비아 벤-코린 Rabbi랍비, Turkey터키인들이 중심인 Suni수니파 조직의 Cadir Sanci Imam카디르 산치 이맘이다.


 세월호참사사태가 대한사회를 감각感覺조차 마비痲痺시키고 있다. 유가족遺家族과 관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이 패닉현상에 빠져 있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300여명의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끔찍한 희생犧牲을 당했다. 선장船長은, 아이들에게 위험하니 선실船室에 있으라고 계속 방송을 하고는 자기들만 탈출했다. 침몰 소식을 듣고 도착한 해양경찰은 구조할 여건이 충분한대도 몸을 사리고 구조를 방기放棄했다. 그래서 300여명의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믿고 침몰하는 선체船體 안에 갇혀있다가 희생당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분노조차 잦아들고 있다. 무력감無力感과 허탈감이다. 나중에 보니 해경과 관련업체의 유착癒着, 정치인들과 관련공무원들의 유대紐帶 그리고 맨 위에는 사이비교주似而非敎主 구원파救援派가 독사毒蛇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국민들이 세월호참사에서 유가족遺家族과 같은 슬픔을 느끼고 단장斷腸의 애간장을 태운 것은 예전의 참사들과는 다른 현상 때문이다. 이전에도 많은 집단참사사건이 있었다. 와우아파트 붕괴崩壞,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유치원생 화재火災, 정말 대 사건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방화放火 그리고 최근의 마우나리조트 붕괴 대학생 참사들이 있었으나 국민들은 세월호참사와는 다른 양상樣相을 보였다. 희생자들의 수數로 보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희생자가 500여명이었으니 훨씬 크다. 그런데도 세월호참사사건이 특별하게 대두擡頭된 건 무엇 때문일까? 원인이라면 모두 인재人災라는 공통점은 있다. 꽃다운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 때문일까? 사이비종교단체 구원파가 몸통이라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일까? 한국기독교연맹 부회장의 말처럼 가난한 아이들의 무리한 제주도여행 때문이었을까? 수학여행이라는 일제日帝 식민지교육 답습踏襲의 회한悔恨 때문일까? 자본주의사회의 돈 때문이다. ‘쩐의 전쟁’이 원인이다. 기업企業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까지도 쩐의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반대급부反對給付다. 이번 세월호참사사건의 원흉元兇은 쩐이다. 쩐의 전쟁이 아이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 모처럼 어렵게 떠난 수학여행 아이들 300여명을 희생시켰다. 아이들의 희생의 직접적인 원인은 청해진해운의 돈벌이다. 다음은 그 돈벌이를 도운 관계기관의 비호庇護다. 이른바 해피아바다 마피아다. 세 번째는 구원파라는 종교단체 교주의 돈에 대한 무한대적無限大的인 물욕物慾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추악醜惡한 모습이다. 공산주의를 이겼다는 자본주의의 가면假面이다.
 구원파를 믿고 단 한 번만 죄罪를 사면赦免받으면 다음부터는 어떤 죄를 짓더라도 영원히 죄를 사면받는다고 신도信徒들을 유혹했다. 그리고 신도들의 돈으로 자기 가족의 왕국王國을 건설해서 제왕帝王처럼 호사롭게 살며 온갖 사치奢侈를 누렸다. 여인들을 거느린 것도 아랍의 할렘은 저리 가라다. 전국 각지의 땅을 사들여 협동농장을 만들었다. 신도들의 재산 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착취搾取했다. 교주와 그 가족만의 왕국 천년성千年城을 건설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사이비종교의 교주들이 자신들의 왕국을 만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한大韓에서 일어나 세계적으로 번창繁昌한 통일교統一敎도 있다. 기독교와 불교에는 수많은 종파宗派들이 있다. 정교正敎나 사이비의 상관관계相關關係에서는 종교적이념에 근접近接의 문제 뿐  종교는 대부분 선악善惡의 중간지대 속성屬性을 지니고 있다. 이번 세월호참사 TV대담對談에서 한 패널이 ‘구원파교주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다’라고 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두려워서 이런 사기詐欺행위를 하지 못한다는 역설逆說이었다. 성경에서 신의 아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 신의 아들이 죄를 지은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다?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교회에서는 대속代贖을 했는지 몰라도 속세俗世에서는 죄를 지으면 죄지은 당사자當事者가 감옥에 간다. 형刑을 마쳐야만 벌罰로 죄를 사赦한다. 그러면서 최후로 양심에 호소한다. 양심이란 성악설性惡說과 성선설性善說의 근본인데 정말 있는 것일까? 양심이 있다고 가정假定하고, 선심善心과 악심惡心은 인간에게는 두 가지가 다함께 존재한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은 인간을 지나치게 높게 규정規定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하늘나라가 아니고 지상地上의 세상 순리順理에서도 죄를 짓되 벌을 받으면 죄가 소멸消滅되는 것인가? 양심적으로 뉘우치면 끝나는 것인가? 그렇다면 살인죄에서 살인 당한 피해자는 무엇인가? 심지어 중세中世 교회에서는 면죄부免罪符를 팔았다. 죄악罪惡을 저지른 사람이 돈을 내면 돈의 과다過多에 따라서 완전히 사면赦免하거나 더러는 반 쯤 사면하는 면죄부를 주었다. 카돌릭에서는 지금도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한다. 고해성사로 죄를 사면한다. 기독교에서는 기도로 참회懺悔한다. 고해성사나 기도로 죄가 사면되는 것인가? 불교에서도 부처님 앞에서 49재齋를 올리며, 불경佛經을 외우고 목탁木鐸을 치며, 3천배拜를 하면서 자기 구원救援을 기원祈願한다. 내세來世사상에 깊이 침잠沈潛한 티베트인들은 오체투지五體投肢 성지聖地 순례巡禮를 통해 자신을 정화淨化코자 한다. 마니차불경 두루말이를 손으로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고 믿는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사흘만에 부활復活했다. 1999년이나 2012년 휴거하늘 들림, 살아서 승천昇天를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오늘도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대부분은 이념과 종교 그리고 영토전쟁이다. 자비와 사랑을 앞세우고 전쟁을 벌여 수많은 무고無故한 사람들이 학살虐殺당하고 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17. 천당과 지옥

 “천당天堂은 어디에 있습니까?”
 김수환추기경의 선종善終 직전直前에 임종臨終을 지키던 한 신도信徒가 물었다. 추기경은 가만히 손을 들어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티베트인들은 정말 가난하게 산다. 옷은 너덜너덜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노숙자露宿者도 거들떠보지 않을만큼 남루襤褸하기 그지없고, 먹는 음식도 조악粗惡하다 못해 우리가 보기에는 동물사료飼料 수준이다. 사는 집도 원시시대의 초막草幕을 벗어나지 못한다. 티베트가 고원高原이라 땅은 척박瘠薄하기 이를 데 없다. 죽으면 관습慣習에 따라 조장鳥葬, 시체를 토막내서 새들의 먹이로 제공함, 마지막 보시布施로 여김을 한다. 티베트인들은 현세現世 보다 내세來世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현세에서는 헐벗고 굶주려도 부처를 믿고 착하게 살면 죽어서 행복하게 살 내세가 있다. 아예 그들의 사전辭典에는 성공이나 출세出世 같은 언어가 없다. 그리고 권력 같은 건 안중眼中에도 없다. 그 거지 발싸개 같은 삶을 그들은 행복하게 누린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있다.
 방글라데시는 지구촌地球村 행복지수指數 1위位다. 빈국貧國으로도 1위다. 굶주려서 해마다 수천 명씩 죽는다. 누더기를 걸치고,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고, 맨발에 더럽기 그지없다. 빈민貧民村도 그런 빈민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행복하다. 지금은 어렵게 살더라도 죽어서 행복하게 살 하늘나라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천당과 지옥을 얘기하고,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을 말한다.
 Dante단테는 신곡神曲 제 1장 지옥편에서 제 1지옥 - 이곳은 Christ그리스도가 오기 전의 무신론자無神論者, 이교도異敎徒들이 벌을 받는 곳인데, 여기의 Adam아담, Eve하와, Noa노아, Moses모세, Abraham아브라함, Dabid다윗왕 등은 특사特赦를 받은 사람들이다. 또 Homeros호메로스, Hecktor헥토르, Socrades소크라테스, Platon플라톤, Aristoteles아리스토텔레스, Hipocrates히포크라테스 등이 그 1지옥에 있었다. 제 2지옥부터가 진짜 지옥인데 애욕愛慾의 죄, 제 3지옥은 미식가美食家와 폭식가暴食家의 지옥, 제 4지옥은 재산을 모은 자와 낭비한 자의 지옥, 제 5지옥은 분노, 제 6지옥은 독신죄瀆神罪, 제 7지옥은 폭력, 제 8지옥은 사기죄詐欺罪며 마지막으로 제 9지옥에는 반역叛逆, 폭정暴政, 배반背反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있다. 제 2장 연옥편煉獄編은 영적靈的 구원救援의 희망이 있는 영혼들이 있고, 제 3장 천국편은  제 1
천天 월천月天, 제 2천 수성천水星天, 제 3천 금성천金星天, 제 4천 태양천太陽天, 제 5천 화성천火星天, 제 6천 목성천木星天, 제 7천 토성천土星天, 제 8천 항성천恒星天, 제 9천 원동천元東天, 제 10천 지고천至高天으로 분류分類한다.
 불교의 지옥의 모습은 끔찍하다 못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殺伐하다. 불교에서는 지옥을 담당하는 신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이다. 죄 지은 영혼을 불가마속으로 집어넣는 역할을 맡고 있다. 좋은 일을 한 영혼은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맞이해 준다. 불교 은하계銀河界의 극락은 평화롭고 유쾌한 곳이다. 먼저 극락에는 식욕食慾이 없다. 극락에는 성욕性慾도 없다. 아무 욕심도 없다.
 기독교에서는 아직 한 사람의 영혼도 지옥으로 간 적은 없다. 그 이유는 Jesus예수님이 재림再臨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죄의 심판審判을 받기 때문 이다. 그 동안은 연옥煉獄에서 영혼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뉘우침으로 계속 기도祈禱와 수련修練을 하고 있다.
 지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영혼이 있다면, 어찌 되었건 죄 지은 영혼에 대한 처벌방법은 있어야 할테니까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할 장소가 필요할 것이다. 지옥은 극락極樂에 대조對照되는 말로서 염라대왕이 다스리며 죄인에게 고통을 주는 곳을 가리킨다. Christ그리스도교에서는 세상에서 대죄大罪를 지은 자가 죽으면 그 영혼이 마귀魔鬼와 함께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서 천국과 대비對比되는 상태狀態나 장소를 말한다.


18. 인내천人乃天

 Jesus예수는 인간의 죄를 혼자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예수 생존시대 지구촌에는 대략 20억 명이 살았다고치고 평균 한 사람이 10가지씩만 죄를 짓고 살았다고 해도 예수는 200억 가지의 죄를 뒤집어 쓴 편이다. 그런데 예수가 죽은 뒤 인간은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사면赦免받았는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죄를 사면받았다면 지구촌에는 천국이 왔을텐데 아무래도 이 지구촌은 예수 이후에 더 사악邪惡해진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경의 대속죄代贖罪는 무슨 의미일까? 근본적으로 타인他人이 내 죄를 대속代贖할 수는 있는 것일까? 또 그것이 영적靈的이더라도 합리적인가? 이런, 당신은 지금 전지전능全知全能의 신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신의 영역을 인간의 잣대로 재는 것은 불경不敬하고 무모無謀하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천도교天道敎는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을 표방標榜했다. 기독교가 예수를 내세워 하나님을 유일신唯一神으로 믿는 것처럼 천도교는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고 했다. 사람 = 하느님이다. 하기야 성경의 천지창조天地創造에서도 하나님은 흙을 주물러서 ‘하나님의 형상形象대로 사람’을 만들었다. 성경도 사람 = 하나님이다. 인내천이란 얘기다. 불교는 또 어떤가? 불교는 부처론을 편다. 세상 만물이 부처다. 또 누구든 깨달으면 다 부처가 된다. 사람(세상 만물萬物) = 부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나 유일신 즉 ‘나 외에 다른 신을 믿지말라’는 독선獨善이 아니라 최선最善이라는 뜻이다. 지고선至高善이다. 그런데 이를 잘못 받아들인 기독교도들은 타 종교를 미신迷信이나 사악邪惡한 것으로 배척排斥한다. 오직 하나님만 유일한 신이다. 다른 종교는 마귀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족種族과 수많은 나라들이 있다. 종족과 나라만큼 종교도 다양하다. 나름대로 저 마다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름 난 종교들은 원시적原始的이라는 명분으로 타 종교를 핍박한다. 배타적排他的이라는 뜻을 내세워 종교전쟁을 합리화시킨 건 종교를 사악邪惡하게 이용한 종파宗派의 실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라크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에 종교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백인白人들은 참 이해 못할 종족이야. 먹지도 않을 사람들을 왜 죽이는지    몰라.”
 Africa아프리카 식민지 초창기에 토인土人들이 했다는 우스개다. 종교가 집단화하면 이런 유혹에 빠져 자비나 사랑을 주창主唱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적賊으로 간주看做하고 죽이며 전쟁을 합리화한다. 종교가 다르다고 죽이는 것이 사랑인가? 예수는 사랑을 외치며 ‘오른 뺨을 때리면 완 쪽 뺨도 내밀어주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의 후손後孫들은 왼뺨은 고사하고 예수를 신봉信奉하겠다며 살상殺傷을 한다. 종교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면 국가의 폐해弊害를 닮는다. 종교가 권력이 된다. 종교가 인류에게 필요하다면, 불자佛子가 절에 다니는 것처럼 개인종교나 가족종교로 변화해야 한다. 아울러 조계종曹溪宗, 태고종太古宗이나 천태종天台宗 등 종파宗派로 분리分離되는 것은 옳지만 종파로 뭉치는 것은 배제排除해야 한다. 구지 깨달음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지구상의 존재가 다 부처다.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은 없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부처다.


19. 이 세상 소풍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귀천歸天’이다. 바보같이가 아니라 바로 바보로 살고 간 - 시인은 유신시대 동 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동 베를린에 친구가 몇 명 있었다는 허물로,  정보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아 평생 정신병을 앓았다. 천상병시인詩人의 시 마지막 구절이 애잔하고 아름답다. 나도 시인처럼 저렇게 사라질 수 있을까? 명상瞑想은 애초에는 투병치료鬪病治療 때문에 시작했다. 정신적치료의 일환一環으로 의사들이 명상치료를 권유勸諭했다. 30대 초반 명상을 연습하기는 했었다. 겨울 한 달 동안 백양사 천진암에서 지내기도 하고, 구례 천은사를 찾기도 했다. 명상 이전에도 또 이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태어나는 일은 내 맘대로 못했으나 죽는 일만은 내 맘대로 하고싶다.’ 나는 죽음을 세 번 봤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 육친肉親의 죽음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처절悽絶하게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3년 간 중풍中風을 앓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3년 동안 할아버지의 병病 수발受發을 했다. 도시都市 유학留學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귀향 때 할아버지의 투병鬪病 상황을 목격目擊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의식불명意識不明 상태에서 짐승처럼 신음呻吟하며 앓는 소리는 차마 들을 수도 없었다. 그것이 두렵다. 적어도 할아버지처럼 죽지 않기를 소망所望한다. 할머니는 느닷없는 장腸 폐색閉塞으로 돌아가셨다. 미수米壽, 80세 연세年歲였는데 복통腹痛이 있어서 부랴부랴 읍내 병원으로 모시고 갔더니 장이 꼬였다 한다. 의사의 말로는 수술 안 하면 1주일, 수술을 하면 몇 달은 사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노환老患이라 생명 연장은 어렵다고 했다. 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문제였다. 목숨과 연계된 일이라 결정하기 어려웠다. 서울에 있는 동생들과도 의논했으나 아무도 선뜻 말을 못했다. 결론은 나에게 맡겨졌다. 수술을 안 하면 곧 장腸이 썩는다고 했다. 수술을 했다. 88세 여윈 몸이 어떻게 개복開腹수술을 견딜 수 있으랴. Ringer링게르로 연명延命하다가 한 달여만에 돌아가셨다. 장례 내내 수술을 한 게 잘 한 일인가 스스로 자책自責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각에 눈물 지운다. 3대독자 장손長孫이라고 끔찍이도 보살펴주셨는데 나는 돌아가시기 직전에나마 변변한 효도 한 번 못 한 게 너무 가슴 아프다. 손자들을 돌보면서도 늘 두 분이 생각난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지만,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 보다 더 했을텐데라며 탄식歎息할 때도 많다.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주자朱子 10 회悔다.
 오복五福 다음의 육복六福을 기원祈願한다. 그런데 죽음을 자의적恣意的으로 선택할 수 없으니 어쩌랴. ‘설국雪國’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상을 받은 4년 뒤 가스자살自殺을 했다. 처음에는 노벨상까지 받은 사람이 왜? 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자살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은 자식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만한 여유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설사 어려운 처지가 되면 자살하려고 미리 약물藥物을 사 간수해두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의식적으로 약물을 복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고, 또 그 약을 먹어야 할 시기가 언제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통道通한 스님들은, ‘나 내일 갈란다’라고 미리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기도 하던데 나 같은 범인凡人은 곁눈질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물처럼 자연사自然死할 수는 없을 것인가? 야생野生동물들은 죽음이 임박臨迫하면 기력氣力이 소진消盡되기 전에 스스로 죽을 곳을 찾아 스러지듯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래서 야생동물들은 시체屍體를 보기 어렵다. 미개未開한 동물들이 평안한 죽음을 하는데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사람만 이다지도 죽음이 어렵고 추醜한가?
 스님의 흉내를 내려고 가부좌跏趺坐를 연습한다. 정좌正坐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편한 자세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부처님처럼 양 손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지긋이 눈을 감는다. 선禪 수행修行에서 하는 것처럼 엄격한 자세로 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래서 누워서도 앉아서도 내 편한 자세로 맘대로 명상을 한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말자 가볍게 혈맥血脈을 문질러 기운을 돋구고는 이부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는다. 습관처럼, 아니 서당書堂에서 학동學童들이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외우는 것처럼 몸을 좌우左右로 흔들며 머릿속으로, 때로는 입으로 소리나게 하나, 둘을 외면서 명상을 한다. 정수리에 집중하여  ‘빛’을 찾는다. 밝고 환한 빛이 몸속으로 들어오기를 기원한다. 눈을 감고 있으면 혼돈混沌이 보인다. 오늘은 파도波濤 같은 검은 물결이 눈앞에 가득히 펼쳐진다. 어제는 뾰쪽뾰쪽한 산의 형상이 보였다. 어떤 때는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루도 똑같은 형상形狀은 보이지 않는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되뇌이지만 헛수고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한심閒心한 것은 잡념雜念이다. 후백제 왕 궁예가 말한 ‘마구니’다. 잠깐 마음이 허트러진 사이, 그 찰나에 잡념이 틈입闖入한다. 속으로 아차! 하지만 이미 늦었다. 찰나刹那에 스치고 지나간 잡념은 막을 길이 없다. 번갯불 보다 더 빠르다. 나름대로 벌칙罰則을 정해놓고 다스리려고도 해봤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읽은 선승禪僧의 문답問答은 이런 나를 매우 당황스럽게 한다. 선승은 ‘이제는 24시간 동안 명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찰나, 1초의 몇 백 분의 1 시간에 스며드는 잡념으로 낭패狼狽를 하는, 내가 보기에 24시간 선승 쯤 되면 도사道士거나 부처의 경지境地다. 조용한 자연사自然死를 터득하려고 명상을 선택했는데 가능성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가족들이나 친지親知들이 보는 앞에서 몸부림치며 임종하는, 가족들까지도 고통스럽게, 그렇게 죽고싶지 않다.


20. 죽음의 미학美學

 오랜 벗의 아버지가 자살自殺을 했다. 87세 연세年歲로 시골에서 부부夫婦가 단촐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선산先山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머리맡에는 약병藥甁이 놓여 있었고 두 발목은 예사 죽음처럼 끈으로 염殮해져 있었다. 돌아가시기 한 20여년 전부터 선산을 가꾸었다. 고인故人은 20여년 동안 날마다 선산 가꾸는 게 일과였다. 웬만한 공원公園 보다 더 잘 가꾸어져 있었다. 돈만 생기면 나무를 심거나 돌을 들여놓는데 다 썼다. 연못도 하나 파놓고 고기를 기르고 여름철이면 선산 일을 하고는 신선神仙목욕탕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고인의 가묘假墓를 만들어놓고 아담하게 다듬었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타서는 모두 선산에 투자했다. 욕심나는 바위가 보이면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기계를 동원해서 선산으로 옮겼다. 하도 선산 가꾸기에 집착한지라 자식들이 짜증을 낼 정도였다. 그러던 부친이 갑자기 자살을 하자 그 가족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특히 내 벗은 더 고통스러워했다. 다른 형제자매들 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근至近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내 불효가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다.’ 벗은 자책自責하며 무척 괴로워했다. 곁에서 보는 내가 더 안타까웠다.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고인故人은 아이들 일곱을 낳아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중년中年에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있어 형제간에 갈등葛藤이 좀 있었지만 이것이 자살의 동기動機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주제넘게도 나는 인생 60이 지나면 덤이라고 했다. 그리고 뭘 할 수 없는 나이라서 살아있어봤자 무위無爲라고 했다. 다 산 나이이므로 기약旣約이나 약속도 하지말자고 다짐했다. 버리며, 하나씩 지우며 살려고 한다. 지금은 60도 훨씬 지나 7순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아직 뭔가 꼼지락거리기는 하면서 산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니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음이 문제다. ‘설국雪國’으로 Nobel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상을 받은 얼마 뒤 자살했다. 항간巷間에서는, 노벨상의 중압감重壓感 - 설국을 능가凌駕할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없으므로 자살을 선택한 게 아닌가라고들 했다. 아니면 이제 다 이루었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헌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꼭 그렇지만은 않고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야생동물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스스로 알아채고 홀로 조용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잠자듯이 영면永眠한다. 별로 고통스럽지도 않은 것 같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죽음의 장소를 찾아간다. 그래서 상아象牙사냥꾼들이 코끼리무덤을 찾으려고 코끼리를 추적追跡하였으나 실패했다.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의 대표적인 것은 탄생과 죽음이다. 내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내 의지로 죽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승高僧들은 미리 죽음을 알고 열반涅槃에 든다. 때로는 좌선坐禪을 한 채 열반한다. 그러나 내가 본 죽음은 매우 처절했다. 차마 보기조차 어려운 고통이었다. 예수조차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아버지, 가능하면 이 쓴 잔을 물리쳐주소서’라며 고통스러워했다. 왜 천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인데 독실篤實한 신자들조차 죽음에 이르면 한결같이 고통스럽게 죽을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께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죽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렸다.
 어떻게 하면 잠자는 것처럼 편히 갈 수 있을까? 이것이 칠순七旬을 맞은 내 화두話頭다. 의식을 잃은 체 가족들의 수발受發을 받으며 죽어가고싶지 않다. 그래서 명상도 하고, 금강경金剛經도 외우고, 복식호흡을 하며 인연생명을 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단 며칠이라도 의식을 잃고 주변을 안타깝게 사는 건 자존심의 문제다. 차라리 의식이 남아있을 때 - 내 의지로, 죽음이 머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아름답지 않을까, 인간답지 않을까?


21. 탕자蕩子의 방황彷徨

 모태母胎신앙이라고 곧잘 말하지만 어머니는 교회에 나갈 짬이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부엌에서 밥 짓고 빨래하는 기억뿐이다. 아버지가 교회에 열성적이었기 때문에 따박따박 걸을 때부터 아버지 품에 안겨 교회에서 살았을 것이다. 평상시에 아버지는 교회 반사班師였고, 성인成人예배에서는 오르간 반주자伴奏者 겸兼 성가대聖歌隊 지휘자였다. 여름아동성경학교가 열리면 교장校長을 맡았다. 성경학교에서는 해마다 새로운 어린이성가聖歌를 가르쳤는데 그 괘도악보掛圖樂譜도 아버지가 만들었다. 한지韓紙에 붓으로 그린 악보였다. 어떻게 한지에 악보를 그릴 생각을 했을까? 그 시절 흔히 쓰이던 종이는 질이 나쁜 백로지白鷺紙, 백로처럼 하얀 종이, 更紙였다. 그러나 백로지는 질이 안 좋아 넘기다보면 곧 찢어졌다. 한지는 질겨서 오래 쓸 수 있었다.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가 시작되면 뒤란 감나무그늘 아래 평상平床을 펴고 한지악보를 그렸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들에게 악보 제작을 맡겨버렸다. 비법秘法도 전수傳授했다. 기발奇拔하고 획기적劃期的인 방법이었다. 오선五線은 붓에 잣대를 대고 긋고, 모든 음표音標는 고구마에 칼로 새겨서 사용했기 때문에 음표의 모양이 일정하고, 여러 장의 악보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성경학교에서는 학교를 마칠 즈음 성경 암송暗誦 경연競演이 있었는데 1등상은,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만 가지고 있는 가죽케이스 신구약新舊約 합본合本 성경이었기에 우리는 은근히 경쟁이 심했다. 나도 그 가죽케이스를 타기 위해 요한복음을 통째로 외웠다. 크리스마스에는 예수탄생극을 했다. 그렇게 생활의 일부였던 교회를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만두었다. 회의懷疑였다. 신神은, 형체形體뿐만이 아니라 말도 없었다. 겨울 한복판에서 새벽기도를 했다. 한밤중 보다 더 캄캄하고 추운 새벽에 교회에 나가서 차디찬 마루바닥에 꿇어 엎드려 간구懇求했다. ‘제 물음에 답해주십시오’ 간절히 간구해도 응답이 없었을 때 역사책에서는 원시신앙을 배웠다. 산, 바위 그리고 거목巨木들이 신앙이 대상이었다. 심지어는 호랑이나 곰도 신앙이었다. 나약懦弱한 인간이 자신들의 역량役糧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천재지변天災地變도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갈구함에도 말이 없는 예수가 신이 아니라 원시시대 신앙처럼 불가해不可解한 대상이 신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신을 버리고 탕자가 되어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그 이후 신은 내게 본질이 아니라 목적이었다. 신을 인간이 만들고 천당과 지옥도 인간이 설계設計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도 인간이었다. 황야荒野에서 3년을 방황하다가 깨달았다. 부처님도 가비라성주의 왕자였다. 역시 3년 간 방황하다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닫고 스스로 부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동胎動한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적에 당신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기독교의 진실이 있다. 하나님과 사람은 하나다. 사람이 곧 하나님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독교를 믿으면서 하나님을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창조주創造主로 표현하고 인간은 그 하나님의 속성屬性으로 간주看做한다. 일찍이 수운선생이 외쳤던 인내천이다.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님’이라는 불교가 마음에 와닿는다. 그렇다고 깨닫기 위해 80년 남짓한 내 인생을 구도求道로 지새울 생각은 없다. 그냥,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처럼 살다가 죽으려고 한다. 풀과 나무도 바위나 물도 그리고 개도 닭도, 신도 부처님도 아닌 사람말이다.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것이다. 무에 그게 그렇게 어려워 고해苦海니 가시밭길이니 하는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게 그리 어렵단 말인가? 그렇다, 사람답게 사는 일과 사람답게 죽는 일은 끔찍하게 어려워 보인다. 아파트관리비를 임원들이 다 돌라묵는다고 재판裁判에 엮여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고, 들어서기조차 두려운 검찰청에도 불려갔다. 그래서 억울하게 벌금도 물고, 나쁜 놈들과 멱살잡이를 하며 싸우다가 쌍방상해죄에도 걸렸다. 그러다가 좀 정신이 들면 꽃씨 몇 알을 주문해다가 아파트화단에 꽃도 심고, 이 건 아닌데 하고 더 철이 나면 명상도 하고 선방禪房과 산방山房에 출입도 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단전호흡丹田呼吸도 한다. 이런 것들은 오직 ‘잠자 듯 가기 위한’ 마지막 소망이다. 이 소망을 이루기 위한 가장 근접한 것이 선가仙家의 명상과 단전호흡이다.



李天滿自敍傳

-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3/ 6) : 교육

 

 

. 단순한 교육과정(교육, 학문)

 

 

<책 소개>

 

원시시대에는 수렵狩獵과 채취採取로 살았다. 짐승 사냥과 물고기 잡는 법 그리고 열매를 따는 방법을 알면 살아갈 수 있었다.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체 하는 Eliet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청년시절부터 머리맡에 두었지만 지금까지도 읽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PicassoGuernica게르니카 앞에서도 절망적이다. Pop Art팝 아트 행복한 눈물앞에서도 아리송하다. Bethoven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을 들으면서 영웅을 떠올리지 못해서 스스로에게도 미안하다. 영어를 20여 년 간 배운 사람이 태국여행에서 담배 한 갑을 사려고 손짓 발짓을 했다. 직장생활 40여 년 간 영어를 한 번도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단에서도 삼각함수나 피타고라스정리를 응용한 적도 없다.

민주주의네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는 밥 한 숟갈도 생산하지 못한다. 침을 튀기며 논쟁論爭을 해봤자 입만 아프다. 교육학敎育學50개 분야分野. 초등학생이 배우는 교과가 60개다. 졸업하면 시장통에서 생선장사를 할 사람도 미적분微積分과 삼각함수三角函數를 배워야 한다. 머리카락은 1/ 1,000로 나누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아프리카의 기아飢餓를 해결하고 여유가 있으면 명왕성에 인공위성을 보내라. 거대화巨大化 미세화微細化는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파멸破滅로 가는 길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냥과 수렵狩獵 그리고 채취採取로 살았다.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를 몰라도 무등산은 오를 수 있고, 청자연화모란이형문병靑瓷蓮花耳形牧丹紋甁을 몰라도 뚝배기 막걸리사발로 취한다. 배꼽 위의 형이상학形而上學이나 배꼽 밑의 형이하학形而下學도 안다. 뭘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면서 성장이요 발전이라고 하는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이제 다 왔다라고 할 것인가? Babel바벨탑의 교훈을 잊지말자. 지난 해 광주Biennale비엔날레의 형상어形象語<멈춤, 그리고 느림>이었다. 느린 거북이는 천 년을 산다.

 

 

<약력>

 

이천만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수중흥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하였고, 한국화, 한국화, 민화교육을 연구하였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 어린이민학당활동을 했다. 장편동화 반디전설, 교육칼럼 훈사정음, 연구논문 한국민화교육연구 등 저서가 있다.

 

 

<목차>

 

 

22. 가는 청춘靑春 오는 백발白髮

23. 협동농장協同農場

24. 바벨탑Nanometer

25. 민주자본주의

26. 황무지荒蕪地와 피카소

27. 열 살 손자의 수수께끼

28. 문제아 뒤에는

29. 내리사랑

30. Tabula Rasa

31. 3 : 7사회

32. 피아

 

 

22. 가는 청춘靑春 오는 백발白髮

 

가는 청춘 잡지 말고 오는 백발 막지마라는 옛말 그른 데 없다. 인생의 황혼은 찬란하게 지는 석양夕陽이 아니라 쓸쓸하고 서글픈 석양일 뿐이다. 7, 80년을 사용한 몸은 사방군데 망가지고 정신까지 희미해지니 필연이라고는 하지만 심정이 착잡하다. 오는 황혼을 살갑게 마지하기란 참 어렵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지어 사는 게 꼭 인간만은 아니다. 사자는 Praud프라우드라는 집단생활을 한다. 숫컷 한 마리에 암컷 너댓 마리 그리고 그 숫컷과 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서너 마리의 새끼 공동체다. 식물도 군락群落을 이루어 사는 게 많다. 식물이나 꽃은 군락을 이루면 더 보기 좋고 아름답다. 장사가 독점獨占을 하면 떼돈을 벌 것 같지만 동종同種 음식점거리에서 장사가 더 잘 된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이승만대통령은 외쳤다. 미상불未嘗不 사람은 모여 사는 게 태생胎生인 셈이다. 헌데 모이다 보니 문제가 많다. 특히 거대巨大도시에서는 사회적인 난제難題가 많다.

서울은 세계 네 번째의 거대도시다. 인구가 1,200만이다. 남한 전체 인구의 1/ 5이며, 붙어있는 경기도까지 합치면 넓이나 인구는 유래 없는 세계 제 1의 도시고, 인구도 2,500만으로 남한인구의 절반이 수도권首都圈에 산다. 기우杞憂겠지만 만약 포탄砲彈이라도 한 서너 발 서울시내에 떨어진다면 서울이 어떻게 될까? 아수라장阿修羅場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을 것이다.

거대도시는 인구가 밀집密集해 있기 때문에

첫째, 길과 교통交通

거대도시의 길과 교통은 인간이 편하고 좋게 살자고 만든 것인데 이 건 뭐 전장戰場터나 다름 없다. 찻길은 최대한 넓게 만들었지만 엄청난 교통량으로 막히고, 빵빵거리고, 서로 먼저 가려고 끼어들고, 오도가도 못하고 선 자리에서 줄기차게 내뿜는 매연, 모처럼 차를 몰고 시내를 가려고 하면 짜증부터 먼저 난다. 찻길에 밀려서 좁게 만든 인도人道에서는 또 사람끼리의 전쟁이다. 잠깐 눈을 팔면 어깨가 부딪히고 발이 밟힌다. 이런 도시를 만들어놓고 사람들은 개탄慨歎한다. 발전과 성장이 곧 지옥地獄이구나. 그렇게 못마땅하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사람들은 거대도시를 뜨려고 하지 않는다. 못 뜬다. 귀소歸巢 본능인가 아니면 거소居所 본능인가? 교통사고 또는 범죄도 상대적으로 많다. 편리하자고 좋자고 더불어 살자고 만들어진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차에 부대끼며, 매연에 찌들리며, 쓰레기에 치어 산다. 빈부貧富 격차에 한숨을 토하며 산다. 도시에서는 빈부 격차가 눈에 띠게 들어난다. 농촌에서는 빈부 차가 심하지도 않지만 들어나지도 않는다.

둘째,

좁은 땅에 사람이 많아 주거지住居地는 동이났다. 그래서 녹지대綠地帶니 개발 제한구역이니 해서 묶어 보지만 10년을 못넘기고 해제解除한다. 집 지을 땅이 부족해서 아파트가 등장했는데 시멘트건물의 우중충한 잿빛과 비둘기집 같은 격리구조隔離構造가 얽혀 사회적동물이라는 인간의 모둠살이는 실종失踪되고 부정적인 현상만 도드라진다. 앞집에 혼자 사는 사람이 죽어 3개월 간 방치放置되어도 모르고 지낸다. 농본農本사회에서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아는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먼 친척 보다 이웃사촌四寸이 낫다는 속담도 사라져버렸다. 도시에는 이웃사촌이 없다. 모두가 상대방相對方일 뿐이다. 도시생활은 비교와 경쟁競爭이다. 성장과 발전의 다른 이름이다. 친지親知도 벗도 없다. 인간성이 매말라버렸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가설假設도 사라져버렸다. 대신 경쟁과 탐욕貪慾과 부정不正과 비리非理가 도시의 화려함을 자양분滋養分으로 독버섯처럼 자란다.

셋째, 하수下水와 쓰레기

1950년대만 해도 우리 냇물과 강물은 그냥 떠서 마셨다. 산골물은 산 짐승이나 새도 먹었고 사람들도 마음놓고 먹었다. 거대도시도 아닌 인구 120만여 명의 광주광역시에서 환경미화원의 파업罷業이 일어났다. 거리는 쓰레기로 넘쳤다. 악취惡臭와 파리 등 벌레가 들끓고 여름철인데도 사람들은 문을 닫아걸고 살았다. 쓰레기처리장 건설 부지敷地문제로 도시와 인근 시골마을의 분쟁忿爭이 잣다. 님비현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거대도시에서 발생하는 하수로 인해 인근 강물은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3급수가 흐른다. 도시가 이렇게 거대화 하지 않았을 때, 중학교시절 광주를 관통貫通하며 흐르는 광주천에서는 아이들이 헤엄을 치며 물놀이를 했다. 밤이면 아낙네들도 목간沐間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피라미도 살지 못하는 죽은 강이 되었다. 바벨탑을 꿈꾸었던 인류의 후손들이 벌인 욕심 때문이다. 자연이 죽으면 자연계 생물들이 죽고 결국 자연에 기대어 사는 인간도 사멸死滅한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면서 왜 이런 천고千古의 진리를 모를까? 이미 많은 동식물이 멸종했고 멸종되고 있다.

넷째로 더 위험한 거대도시의 발상은 인간성 상실喪失이다. 사회악의 발상지다. 도시는 인간성 상실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비둘기집으로 표현되는 아파트의 단절斷切 속성은 옆집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모른다. 옆집에 강도가 들어와 도움을 청해도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들린다고 해도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웃은 사촌이었다. 먼 친척보다도 이웃이 사촌 보다 더 가까운 공동체였다. 그러나 아파트 살림이 되면서 이웃이 사라졌다. 이웃의 관계가 없어져버렸다. 이웃이 없는 사회는 홀로섬 사회다. 공동의식이 없다. 아파트사회에서는 이웃은 경쟁 상대고 내가 깔아뭉개고 넘어서야할 적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이웃을 적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공동체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욕구를 최대화 하는 기형아畸形兒를 생산했다. 모든 사회악들이 도시화에서 일어난다. 역설적逆說的으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공동체사회를 달성했냐 하면 그들도 실패했다. 인간의 속성屬性을 간과看過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을 따랐기 때문에 실패하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인간의 속성을 간과해서 실패했다. 자본주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계층階層을 생성生成했다. 자본계급을 만들었다. 공산주의는 발전이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표방標榜했으나 다 같이 가난하게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북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체제적 성공사례다. 공동체사회다. 거대도시를 해체하고 작은 마을로 전환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키브츠, 북한의 협동농장 그리고 우리의 행복마을이나 혁신도시 같은 작은 공동체로 전환이 해답이다.

 

 

23. 협동농장協同農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자도 사회적 동물인데 그들은 Praud프라우드라는 가족 집단을 만들어 공동생활을 한다. 호랑이는 개별적인 동물이다. 혼자 400Km² 내외의 영역을 수시로 순시하며 활동한다. 겨울철 짝짓기 때만 암수가 만나 생활하지만 새끼는 암컷이 키운다. 사자의 Praud는 숫사자 한 마리에 암컷이 서너 마리 그리고 새끼들이다. 숫사자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막아 가족을 지키는 일을 하면서 종족 보존을 책임진다. 암컷들이 사냥해온 먹이를 제일 먼저 먹는 특권을 누리면서 나무그늘에서 빈둥거리며 놀거나 잠만 잔다. 사자 숫컷은 암컷을 임신시키는 일과 자기 프라우드를 지키는 일만 한다. 개미나 벌이 훌륭한 집단생활을 하지만 철저하게 분담하여 공동생활을 할 뿐 인간사회 같지 않다. 일벌은 꿀을 모으고, 숫벌은 군대 역할을 한다. 여왕벌은 산란産卵에만 집중한다. 계급사회와는 영 거리가 멀다.

농경시대 인간의 공동생활은 가족 단위의 소규모였다. 대가족이라야 100여명 내외가 살았다. 부족部族의 구성이다. 그런데 산업시대가 되면서 거대도시들이 생겨났다. 거대도시는 대량생산을 추구하면서 거대인구집단을 형성했다. 많은 인구를 수용할 주거住居가 필요했다. 평면적인 단층집으로는 수용收用의 넓이에 한계가 있어 위로 치닫는 아파트가 늘어났다. 도시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구조가 형성되어 발전했는데 그에 따른 수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끊임없이 불어나는 인구 때문에 상하수도, 도로와 교통, 쓰레기, 학교를 짓고 또 지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도시의 특성들이 나타났다. 경쟁, 소외, 범죄 등 인간성 말살도 심화深化되었다. 잘 살아보자고 모여든 공간에 인간들이 불어나자 인간의 삶의 질서가 붕괴崩壞되어 부조리로 가득 찼다.

농경시대에서는 적당한 농토를 가지고 식구들의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면 되었는데 도시화하면서 부를 축적蓄積하고, 이웃들과 비교하면서 경쟁하고, 상위층 중산층 서민과 빈민들의 구분이 뚜렷해졌다. 거기다가 성장과 발전이 무한대無限大로 지속되면서 소비消費도 극대화되었다. 석유석탄자원이 고갈枯渴되어 가스로 대치代置되고 있지만 가스가 고갈되는 것도 머지않다. 태양열이나 바람, 지열地熱 그리고 바다의 파도를 이용하여 자연생태의 파력발전波力發電을 한다지만 자원 고갈은 임계점臨界點에 와있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워지는 산림山林 파괴도 심각하다. 임산물林産物과 식량 조달調達을 위해 삼림森林이 파괴되고 삼림이 파괴된 열대우림은 황무지가 되어 사막화한다.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다보니 지구의 온난화溫暖化도 심각하다. 해마다 남북극이 녹아내린다. 얼음이 녹는 속도는 지표地表가 상승할 정도다. 대기층이 지열로 더워져 있는데 얼음이 녹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면 지구는 수증기로 덥히고 대기권이 수중기로 덥히면 햇빛과 햇볕이 차단되어 다시 제 2의 빙하기氷河期가 온다. 지구는 유성流星 충돌이나 지진地震 등 재해災害 때문만이 아니라 빙하기로 멸망할 공산公算이 더 크다. 이를 방어防禦할 기제機制는 인구의 분산分散과 공해公害의 절제節制. 도시를 해체解體하고 농어산촌으로 인구를 소규모화 분산시키면 적어도 당분간 지구 멸망은 피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인공위성을 타고 다른 별로 이사를 가는 것은 허상虛想일 뿐이다.

물질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는 정신적으로도 멸망의 임계점臨界點에 와있다. 발전과 변화라는 세기世紀의 명제命題 아래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競走에 몰입沒入하는 한 인간의 정신은 파탄되고, 마치 사슴이나 쥐들처럼 스스로 레밍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십자군원정이나 세계 제 1, 2차대전 그리고 중세中世에 창궐猖獗했던 페스트가 이를 증명한다. 거대 도시를 해체하고 행정구역을 소규모해야 한다. 그리고 소규모 도시를 특성화하여 개발하고 농촌에 작은 공동체마을을 육성해서 기본적으로 음식먹거리, 의료醫療 시설, 교육시설과 문화공간을 갖춘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

 

 

24. Babel바벨탑Nanometer

 

Nanometer나노미터는 빛의 파장波長의 단위單位를 나타내는 말이며, 1나노미터는 1미터의 십억분의 일이고, 기호記號nm.

 

 

구약舊約 창세기에 바벨탑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먹고살만해지자 오만傲慢해져서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했다. 신에게 도전挑戰 또는 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지구촌에는 이집트의 피라미트무덤를 비롯해서 지구라트제단祭壇들이 수도 없이 많이 산재散在하여 있으나 성경의 이야기는 상징적으로 본다. 신이 자기들을 추앙推仰하여 제사를 지내는 건축물을 싫어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늘에 닿는 탑이란 상징적으로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본 것이다. 신과 대등對等하다고 맞대놓고 신과 맞먹으려고 했다. 감히 신의 세계를 넘보다니, 신이 괘씸한 인간에게 벌을 내렸다. 바벨탑에 동원된 인간들의 언어를 종족별로 분류해버렸다. (UNESCO는 세계의 언어를 약 6,000개에서 7,000으로 보고 있다.) 그러자 인간들은 의사소통意思疏通이 안 되어 곧 분열分裂이 일어났고 서로 싸우다가 바벨탑 건설은 무산霧散되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협동으로 탑을 건설할 수가 없었다. 언어의 불통은 분열과 불화不和를 유발誘發했다.

196910, 닐 암스트롱 등 우주조종사 3명을 태운 아폴로우주선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유사有史 이래 계수나무와 옥토끼전설玉免傳說을 믿고 살아온 지구인들에게 달 여행은 충격이었다. 최초의 지구 밖 우주 나들이에 지구인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달의 신화가 벌거벗겨진 것에 대한 탄식과 두려움도 일어났다. 옥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는 항아姮娥신화가 무참히 깨져버렸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은 치열熾烈했다. 그리고 반 세기, 우리나라도 우주항해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나라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는 세계에서 11번째 우주로켓 성공 나라가 되었다. 하늘에는 수백 개의 인공위성人工衛星이 떠다닌다. 우리나라 위성도 서너 개가 하늘에 떠있다. 가상적국假想敵國에서 일어나는 군사행동을 손금 보 듯 본다. 1,000Km 우주 상공에서 지상의 30Cm 크기의 물체도 식별識別한다. 가히 우주전쟁이다. 미국의 파이오니어 우주선은 명왕성을 향해 가고 있다. 우주전쟁은 지구권地球圈이 아니라 은하계銀河系를 향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사람의 머리카락을 나노미터1100만분의1수준에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포항공대POSTECH 포항 가속기加速機연구소 윤화식 박사팀은 포항 방사광放射光가속기의 X선 위상차 현미경기술을 이용, 머리카락지름 약 10의 단면斷面을 자르지 않고서도 내부를 80분해능分解能, 해상도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서 명왕성을 탐사하고, 머리카락을 10만 나노미터로 절단切斷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의학과 물리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였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과학문명이 인류를 행복하게 했는가? 뉴욕과 파리를 한 시간대에 주파走破하는데 성공한 콩코드여객기는 지금 중단 상태다. 제작비용에 비해 음속音速을 돌파突破하는 소음騷音이 엄청난 파장波長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명왕성冥王星에 쏘아 올린 인공위성은 보통사람들에게는 환상이다. 이게 발전일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일까? 은하계나 은하계를 벗어난 또 다른 어떤 별에 인류 같은 생물이 존재할fms지 모른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계가 있고, 그 은하계에는 지구와 조건이 같은 별들도 있을 것이니 또 다른 인류와 같은 생명체가 있으리란 예상은 옳다. 그러나 그 생명체와 소통을 갖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과학자들의 끝없는 욕망일 뿐이다. 그 미래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천문학적 예산과 인간의 노력을 현실에 투입投入해야 한다. 부질없이 쓸데 없는 일에 욕망과 이상理想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현실적 존재다. 지금 잘 살아야 한다.

에디슨이 연구한 질량 불변의 법칙이나 부처님이 설파說破한 삶의 원리는 같다. 물이 기화氣化하여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모여 비가 되어 땅에 내린다. 땅에 내린 비는 동식물의 자양분滋養分이 되고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식물은 물을 자양분으로 씨앗을 틔워 자라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씨앗을 맺어 또 다시 다음 한살이를 이어간다. 이 게 영생永生이고 부활復活이다. 그런데 사란들은 종교의 마법魔法에 홀려 휴거를 믿고 전재산을 헌납獻納하고 거지처럼 살면서도 내세를 소망한다. 그런 상황에서 목사는 교회를 거대한 신전神殿으로 만들고, 스님은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맹신도盲信徒들은 그런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종교가 사람의 목숨을 버릴만큼 가치가 있는가? 종교는 쓰잘대기없이 천당이니 지옥, 극락과 연옥을 호도糊塗하며 인간을 기만欺瞞하고 있다. ‘천당 가려면 예수를 믿어라.’ ‘극락 가려면 절에 시주施主해라.’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호기심이나 호승심糊勝心을 만족시키기 위한 오락娛樂거리다. 괜히 달에 간다고, 달을 개발하겠다고, 우주에서 또 다른 인간을 찾겠다는 바벨탑의 꿈을 버려라. 내일이나 내세는 놔두고 살아있는 동안 사람들이 화평和平하게 살 수 있는 방안을 추구하야 한다.

 

 

25. 민주자본주의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기업가들이 추구하는 욕망과 같다. 990억을 모으면 1000억을 채우고싶다. 그래서 기업가들을 폄하貶下하는 말에 ‘99원을 가진 사람이 1원을 가진 사람의 1원을 빼앗아 100을 채우려하는 게 기업가다라고 정의定意한다. 집 사면 종하인 사고싶고 종 사면 말사고싶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은 망한다. 스마트폰을 개발하는데 그치면 다른 회사가 LTE를 개발하여 스마트폰시장을 독점해버린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기업은 발전이라는 족쇄足鎖에서 멈출 수가 없다. 시지프신화는 무거운 돌을 산 정상頂上으로 굴러 올린다. 그러나 돌을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글러 떨어져버린다. 그래서 다시 돌을 정상으로 밀어올린다. 이를 평생 반복하며 살아가야 하는 천형天刑이다. 기업과 과학의 발전이 이를 닮아간다. 인간이 우주를 탐색하는 일은 발전과 호기심이다. 지구가 멸망하면 대피하기 위해서 우주 개발을 하는 것은 아직은 환상幻想이다. 우주에는 수많은 은하계가 있고 우주는 지금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지구은하계에 인간이 존재한다면 다른 - 지구와 비슷한 여건與件의 별에도 인간 같은 생물체가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假設에서 인간은 호기심이 발동해서 우주 연구를 한다. ET를 찾는다. 우주 개발은 현재로써는 선진국의 첩보위성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상 30Cm의 작은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는 게 현대 과학의 개가凱歌. 지상地上 10Km의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지상 30Cm의 물체를 식별하는 일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현재는 적국敵國 감시에 필요하다. 국제분쟁이 없어져도 상대국을 감시할 필요가 있을까?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서 인공위성을 하늘로 올려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가상假想적국 감시라면 너무 허탈하지 않은가? 과학이 의료 발전을 도와 인간의 수명壽命120세를 향하고 있다는 건 고무적鼓舞的이다. 그러나 이 수명 연장의 후유증後遺症은 다른 반작용反作用을 일으킨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려고 항생제抗生劑를 개발했더니 수퍼바이러스가 생겨났다. 항생제가 듣지 않은 돌연변이突然變異들이 생겨난다. 이미 개발된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은 병균들이 생겨난다. 병균들도 진화하는 것이다. 식량을 양산量産하기 위해서 농약을 개발했더니 수확량은 배가倍加되었으나 병충해도 더 분화分化되고 강해졌다. 그래서 더 강력한 살충제殺蟲劑를 개발해야 한다. 도시 집중 현상도 이와 같다. 모여 살아야 하는 사회 구조 상 도시가 거대해졌다. 거대도시는 도로, 하수, 쓰레기와 전기 등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악순환惡循環이다. 개인적이거나 작은 규모의 주거住居라면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은 분뇨糞尿를 거름으로 사용하는 일은 사라졌다. 그래서 거대도시는 분뇨 처리에 엄청난 예산을 들인다. 만약 작은 규모의 공동체라면 분뇨 처리는 자연 처리로 돈도 들지 않고 재활용하는 비료肥料가 된다. 거대도시에서는 분뇨를 정화淨化해서 강으로 흘려보내느라고 엄청난 비용을 들인다. 그러나 그 정화된 물은 농업용수로도 사용하기 어려운 물이 되어 자연생태계를 훼손한다.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자연스럽게 정화되고 재활용이 될 분뇨가 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거대화巨大化의 부작용이고 악순환惡循環이다. 식량도 자급자족 형태로는 크게 문제 될 일이 없다. 손바닥만한 땅에서, 텃밭에서 거둔 식량으로 한 가족이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도시가 형성되면 대량의 식량이 필요하다. 그래서 식량 생산도 집단화하고 대량화한다.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撒布하고 수확도 기계화한다. 대량 생산은 대량 수송체계輸送體系가 필요하고, 대량 보급이 필요해서 더 많은 유통단계流通段階가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흉년凶年이 들면 곡물穀物 파동波動이 일어난다. 개인적이고 작은 규모의 공동체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보통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일률적인 교육과정을 행사한다. 역시 보통 국민을 양산한다. 그러자니 별무소용別無所用인 교육과정을 너나없이 일반적으로 적용한다. 졸업하고나면 시장市場에서 생선장사를 할 아이에게도 영어와 미적분微積分을 가르친다. 목수일을 할 아이도 몇 개의 방과후학습은 필수다. 보통국민의 지적知的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원시시대에는 수렵狩獵하는 법과 채취하는 몇 가지 방법을 익히면 살 수 있었다. 미국 유학留學을 다녀와서 청소미화원을 한다. 다섯 가지 외국어를 하는 아파트 경비원도 있다. 국회의원회관에는 국회의원 보다 더 많은 사무원들이 근무한다. 실상 국회의원들도 현장現場에 있지 않다. 정부기관에는 공무원들로 만원滿員이다. 하나같이 모두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를 양산量産하다. 그들은 문서로 계획하고 문서로 평가하며 문서로 결론낸다. 현장에서 발로 뛰고 손으로 만들고 몸으로 부대끼며 일을 하는 사람들 보다 문서를 주무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기획하고 계획하고 문서로 말하다보니 자꾸 문서가 양산된다. 사무원事務員이 더 필요해진다. 그래서 청사廳舍를 늘려야 한다. 탁상행정卓上行政은 더 심화深化되고 문서사회文書社會만 자꾸 거대해진다. 행동하는 사람은 반비례反比例로 적어진다. 학교가 대량생산하는 미래인간의 모습은 ET 닮은 사람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ET.

 

 

26. 황무지荒蕪地Picasso(피카소)

 

 

젊은시절, Eliot(엘리어트)의 황무지와 Rilke(릴케)의 시, Pascal(파스칼)Pensees(팡세) 그리고 Samuel Beckett(사무엘 베케트)'Godot(고도)를 기다리며' 등 시와 소설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 이해하여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남들이 다 유명한 글이라는데 나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좌절감이 있었다. Chopin(쇼팽)이나 Beethoven(베토벤)에도 심취했다. 어려운 살림에 비싼 축음기를 사서 밤마다 Clasic(클래식)을 들었다. ‘유행가는 귀를 즐겁게 하고, 클래식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교수님의 한 마디 말씀 때문이었다. 음악과교수님은 한 달에 한 번 전교생을 강당에 몰아넣고 Clasic(클래식)을 감상시켰다. 출석점수 때문에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울며겨자먹기로 음악감상시간이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독서삼매경三昧境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 좌절挫折된 미래 기대의 절망에 빠져 학교 도서관 장서藏書나 독파讀破해버리겠다고 무엇에게인가 복수復讐하는 심정으로 독서를 선택했다. 교육대학 진학을 자책自責하면서 반항反抗 같은 것이었다. 독서는 어린시절 새벽 눈 뜨면 성경 석3 을 의무적으로 읽었던 때부터 비롯했다. 아버지는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아침밥을 굶겼다. 그래서 신약新約은 세 번, 구약舊約은 한 번 정도 읽었다. 구약은 창세기創世記부터 질렸다.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구는 누구를 낳고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창세기는 읽는 처음부터 맥이 풀려서 두 번 세 번 읽을 염이 나지 않았다. 그 이후 아버지 몰래 아버지 서재書齋의 책이란 책은 죄다 읽었다. 서가書架를 가득 채운 일본어서적이나 증조할아버지의 한문 유적遺跡은 손도 대지 못했으나 책이 가까와졌다. 초등학교 때 존 번얀의 천로역정, 이광수의 돌베개를 읽었다. 독서에 취미가 붙자 10릿길 5일장인 유둔장날 책 좌판坐板 할아버지와 약속을 하고 달이 묵은 학원등 잡지를 공급받았다. 교육대학은 법대를 진학하지 못한 좌절감의 대채代替 수단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독서를 했다. 심지어는 등하교길에서도 책을 읽었다. 그 많은 독서를 하면서도 끝내 읽지 못하고 내팽개친 어린왕자와 팡세 그리고 황무지와 마우쿠스 아렐리우스의 명상록瞑想錄들은 장출혈出血로 한 달 간 병원 입원 때 읽었다. 쓴 약처럼 읽었으나 그래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그 이후에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집이 나오면 습관적으로 구입했으나 읽다가 팽개쳤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新世界는 매일 몇 번이고 계속 들었다. 베토벤도 듣고 모차르트도 열심히 감상했다. 그래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공자孔子 불유거不踰矩의 요즘에도 이상문학상李箱文學賞을 받은 작품이라든지, 신춘문예 당선작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해와 혼망昏忘의 광장廣場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평론評論에서라면 이는 절정絶頂에 다다른다. 이런 예치藝痴는 피카소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예書藝에서 추사체秋史體가 어떻고 왕희지王羲之가 뭐라는데 추사의 80세 전후 글씨를 시중市中에서는 치졸稚拙이라 해서 매우 절찬絶讚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 경지를 모른다. 백바白磁나 청자靑磁를 보고도 전문가專門家들이 극찬極讚하는 의미를 터득하지 못한다. 청맹과니다. 학자學者들은 요즘 발견된 증도가자證道歌字청동초두靑銅鐎斗청동수반靑銅水盤으로 이름 붙여 구지 한자어로 재조명照明한다. 그러고는 (무지한)대중大衆들을 이해시키겠다고 청동주전자와 청동대야라고 번역하여 덧붙이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다. 우리 말 강강술래감감 순라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로 만드는 사람들이 학자들이다.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는 지리地理학자들의 텃세다. 이러고서는 무지한 대중을 깨우치는 것이 유식한 학자들의 본분이라고 외친다. 검사檢事의 고소장과 판사判事의 판결문, 의사醫師의 진단서診斷書는 국민窮民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 게 문화의 발전이고 문명의 성장이다. 학자들이나 전문가는 차원次元이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빈부貧富의 차이만이 아니라 의식意識의 차이는 더 심각하다. 피카소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인과 그저 땅이나 파먹는 농부의 삶은 천당과 지옥처럼 간극間隙이 크다. 상감국화모란문정병象嵌菊花牧丹紋凈甁은 한자漢字를 모르는 전후세대戰後世代에게는 (고양이) 꼬막 보기. 설사 한자를 좀 안다고 해도 이 게 청자 이름인지 알기에는 한참 걸린다. 더구나 청자는 파란색이고 백자는 하얀색이라는 편견偏見을 가진 나는 청자 백자조차도 구분하기 어렵다.

 

 

27. 열 살 손자의 수수께끼

 

 

하교下校하는 차 안에서 초등학교 3학년 손자 한이가 물었다. 느닺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구의 중심축인 중핵中核?’ 아니면 좀 철학적이지만 나 자신?’

대학입시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난제難題 중의 난제다. 국민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다른 아이들이 가니까 학원에 보내야 하고, 다른 아이들 모두가 바라니까 서울대를 지향한다. 우리는 유치원부터, 아니 태교胎敎 때부터 오직 한 곳을 향해 달려간다. 서울대학교다.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에 붙으면 옛날 과거科擧시험 합격과 비슷한 풍경이 벌어진다.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시정市庭을 유가遊街하지는 않아도 면사무소 앞에 프랑카드가 붙는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의 학력學力은 서울대에 몇 명이 들어갔는가가 기준잣대다. 입시학원이 넘쳐나고, 기숙학원이나 기숙학교가 생기고, 고액과외가 판을 치며, 족집게가외도 등장한다. 10억 연봉을 받는 학원강사도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60개 교과를 가르치고 증학교에서는 미적분微積分을 가르친다. 4학년짜리 손자의 가방은 내가 들어도 무겁다. 가방 무게로 척추脊椎곡만현상이 일어나 학생건강에 경종警鐘이 일고 있다. 영어과외는 유치원부터 필수가 되었다. 오직 남편의 봉급만으로는 과외학습을 시킬 수가 없어서 아줌마들이 식당 서빙을 한다. 심지어는 노래방 도우미도 불사不辭한다. 기러기아빠가 생긴 건 80년대적 전설이다. 그러고 서울대를 나오면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로 일약 특급행정관이 된다. 그 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어디에 있는가? 서울대를 나와 하는 일이 대부분 판검사와 행정공무원이다. 역대 장관의 60%가 서울대 출신이다. 그런 대한민국은 한민국이 되었다. 부정부패 하나만으로도 한민국이다. 대한민국에는 스스로 비하하여 한반도라 말하는 것처럼 중산층 이하라고 스스로 말하는 국민들이 80%가 넘는다. 중산층이 사라져버렸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만 산다. 특권층과 서민庶民만 산다. 월급 10억원과 80만원짜리 기간제가 함께 산다. 거지와 부자, 이것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위정자들만의 만찬장晩餐場이다.

전제前提에서 말했던 손자 한이의 수수께끼 정답은 . ‘이 세상중심즉 가운데는 란 뜻의 넌센스 퀴즈다.

 

 

28. 문제아問題兒 뒤에는

 

 

문제아 뒤에는 반드시 문제의 부모가 있다.’ A. S. NielSumer Hill자유학교에서 갈파喝破한 이론이다. ‘문제아들은 스트레스를 받은만큼 문제를 발산發散한다도 같은 논리論理. 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성적도착性的倒錯으로 설명한다. Niel은 이 문제아이론을 바탕으로 Sumer Hil을 설립하고 실제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아이들은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하지 말아라’ ‘안 된다’ ‘벌을 서라의 관념 속에서 생활한다. Niel은 고무줄이론을 적용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기간이나 강도强度만큼 반발 강도가 높다는 이론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긍정적인 말 보다는 부정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다. 부정적인 교육환경은 발전적인 성장 보다는 먼저 반발심反撥心을 일으킨다. 잘못했다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 잘못이야라고 지적指摘을 하면 고분고분 따르는 아이들은 없다. 거꾸로 바로 반발심만 일으킨다.

NielSumer Hill을 설립하여 학교나 가정에서 교육을 포기한 문제아들만 수용收用했다. 어떤 아이는 맘대로 해도 좋다는 말에, 전기톱을 가지고 몇 십년 된 나무들을 잘랐다. 그러기를 사흘만에 그만 두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도 말리지 않아서 흥미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또 한 아이는 교장의 뺨을 때리고 싶다고 해서 Niel은 뺨을 대주었다. 한나절을 때리고 점심을 먹고 또 맞았다. 다음 날도 오전 내내 맞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하라고 했더니 그만두겠다고 했다. 때려도 맞아도 반항이 없어 재미가 없다고 했다. 또 한 학생은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놀러만 다녔다. 며칠을 자전거에 매달렸던 아이도 일주일 째에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공부에 매달렸다. 지적知的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자 모범학생들이 2년에 마스터하는 라틴어를 6개월만에 끝내버렸다.

전남 여수, 진달래로 유명한 영취산 아래 중흥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다. 중흥초등학교는 여수산업단지 안에 있어 공장공해가 심각했다. 여름철에도 창문을 닫아놓고 공부를 했다. 문을 열면 매캐하고 메스꺼운 냄새가 진동했다. 시정회의市政會議에 참석해서 안전대책을 건의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운동장 둘레에 빙 둘러 꽃을 심었고 둠벙자연 연못을 팠다. 교내 관사官舍 앞 빈 터를 포크레인으로 둬 번 떠서 웅덩이 두 개를 만들었다. 웅덩이 사이에 관사로 들어가는 길을 남겨두고 땅속으로 수도관을 연결해서 물이 순환하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는 그냥 자연에 맡겼다. 카만 놔두었어도 풀씨가 날아와 싹이 트고 물풀이 저절로 생겨났다. 잠자리는 물론이고 풀벌레들이 날아오고 개구리가 모여들었다. 날마다 둠벙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에 4학년 남학생 아이가 둠벙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아다 넣고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을 빼먹고 둠벙을 기웃거린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께 물었더니 문제아라고 했다. 담임선생으로써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아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실업자 술고래고 엄마는 가출家出했고, 아이가 밥을 해서 아버지를 봉양하는 처지라 했다.

3학년 여학생은 점심시간만 되면 담임선생님과 영양사가 애를 먹었다. 밥을 서너 번씩 달라고 떼를 쓴다. 짠해서 달라는대로 주고나면 밤에 할머니가 고생을 한다. 너무 많이 먹고는 배가 남산만 하게 부풀어올라 아프다고 뒹굴었다. 그래서 밤마다 아이를 업고 보건소를 들락거렸다. 할머니가 제발 밥을 더 주지말라고 통사정을 했다. 아이는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 할머니집으로 왔는데 부모가 이혼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부족한 건 밥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이었는데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밥으로 채우려고 했다.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교육은 인성교육이라고 응답했다. 아이들의 인성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맡기면 성적成績은 물론 인성교육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모든 교육적성과를 학교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학교는 인성교육은 고사하고 성적교육도 학원교육에 밀리고 있다. 그리고 인성교육은 부모가 바라는 것처럼 학교에서 되는 게 아니라 가정교육이고 사회교육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성교육의 가정교육적 기능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육기능도 잃어버린지 오래다. 어린시절의 환경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事例.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어린시절에 받은 스트레스는 언젠가 반드시 표출表出된다는 Neil의 말.

 

 

29. 내리사랑

 

 

아내자랑이 8불출不出이라면 손주사랑도 불출인가?

할아버지, 반장이 얼마나 힘든줄 알아?”

뭐가 그렇게 힘드는데.”

급식시간에 맨 나중에 밥을 먹어야 하고, 교실에서 떠드는 아이들 이름도 적고, 당번지도도 해!”

3학년 녀석이 꽤 강한 톤으로 주절주절 반박反駁한다. 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 건 꽤 오래되었는데 대책이 없다. 3학년에 들어 방과후활동을 좀 더 시켜보려고 스케듈 조정을 해놓고 영어부로 가는 길에 내 손에 잡힌 손을 빼며 또 너무 힘들어서 싫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교육계에서 정년퇴임한 사람인데도 갈피를 찾지 못한다. 작년 2학년 때 손자가 가장 친한 친구가 1학기 반장에 뽑혔다고 부러움 섞인 말을 하길레 2학년 2학기 때 반장 출마를 권유했더니 최고득표, 재적 28명 중 27표를 얻어 반장이 되었다고 기고만장氣高萬丈하지 않았던가. 담임이 막무가네로 거절하는 걸 2학년 전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돌렸다. 유치원의 모의模擬 대통령선거에서도 최고득표로 당선되었던 아이다. 그래서 3학년 때는 자신있게 1학기반장 출마를 권유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짜증스러운 거부다. ‘평양감사도 제 싫다면 .’ 반장을 권유하는 건 비단 명성名聲이나 감투욕심만은 아니다. 녀석이 어찌나 소극적성향인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애를 먹여서 적극성을 좀 키워주려고 한 것인데 되려 핀찬만 들었다. 유치원에서 1학년 입학 때는 근 한 달 동안 학교 적응을 못했다. 교실문까지 데려다 놓아도 공부시간 내내 울고만 있다는 담임의 전화를 받고는 속이 상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역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눈치다. 묻지도 않았는데 2학년 같은 반에서 1학년 남자동급생이 세 명 뿐이라고도 했다. 꼭 지 할애비 소싯적을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온다. 암튼 숫기 없는 건 유전遺傳이다. 지 애비도 그랬다, 일요일에 교회 문 앞까지 데려다 줘도 결국 교회를 그만두었으니까.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한다. 맹목적이라고도 한다. 내리사랑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맹목적인 사랑에서는 벗어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할매는 너무 아이 역성을 든다고 하지만 어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인 것을. 수업이 끝나면 수영장에 데리고 가고, 틈만나면 공원이나 유원지遊園地. 장손長孫 이름을 아라한이라고 옛 역사책 한단고기桓檀古記의 왕명王名을 참고삼아 지었는데 나중에 보니 불가佛家에서는 부처님 다음 서열序列의 현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손을 잡고 걷노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는 매양 귀엽다고 쓰다듬었다. 1학년에 입학을 하고 얼마 안돼서는 6학년 여학생들이 손자교실로 몰려드는 통에 수업에 지장이 있다고 담임선생님이 하소연을 할 지경이었다. 거짓말 좀 보태면 전교생에 널리 유명인이었다. 학년말시험에서는 4개 과목 올백을 맞아 선생님도 놀랐다. 3학년이 되니 매일 7시간씩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일이 짠하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이 그런 걸. 올해부터는 즐겨 찾는 무등산옛길에도 동반同伴할 작정이다. 강건剛健하게 키우고싶어서다. 바람재에서 새와 다람쥐 먹이도 주고, 산허리에서는 돌탑도 같이 쌓고 그리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피라미소(연못)에서는 물고기와도 어울려 놀 참이다. ‘너무 유별난가?’ 스스로 되짚어 보기도 한다. 둘째 율이에게는 상대적으로 관심도 애정도 좀 덜해서 좀 미안타. 뽁뽁 기어다닐 때부터 우윳병꼭지를 빨리고 팔에 안아 잠을 재워 키워서 그런가? 아들을 키울 때는 몰랐던 재미다.

 

 

30. Tabula Rasa

 

 

아파트 베란다에 구시를 들여놨다. 옛 시골의 소나 돼지 먹이통인데 버려진 것을 시골에서 주어와 물을 채우고 금붕어를 키운다. 녀석들은 내 발자국소리를 안다. 그림자가 비치면 가장자리로 몰려들어 주둥이를 뽀글거리며 앙징을 떤다. 먹이를 달라는 어리광이다. 그런데 요상한 일이 생겼다. 애초에 사왔을 때 붉은 색 네 마리와 검정색 두 마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검정 금붕어가 붉은색으로 변색變色을 해버렸다. 이 무슨 조화造化인가? 마치 중국 탈춤 변검變瞼을 보는 듯 하다. 며칠을 두고 보고 또 보았으나 변색의 원인을 알 수 없다. TV에서 보면 바닷속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변색을 하던데 그와 같은 마술魔術일까.

평생 교육을 해오면서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누구든 어떤 아이든 의도意圖한대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영국의 경험주의철학자 John Locke는 저서 교육에 관한 의견Some Toughts on Education’에서 백지설tabula rasa를 주장하면서 인간의 본성本性은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아동의 경험과 환경, 조기早期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이들은 하얀 백지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문학가로 화가로 음악가로 자유자제로 만들 수 있다는 가설假設이 교육학의 백지설이다. 에디슨도 천재天才99%의 노력과 1% 영감靈感이라고 갈파喝破하지 않았는가. 99%의 노력에 1%의 천재성이 보태진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사람들은 천재성을 과신過信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천재라고 다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재성은 있더라도 1%일 뿐이다.

세계적인 성취成就를 이룬 사람들의 뒤안에는 피땀나는 훈련이 있다. 뒷바라지가 있다. 세계적인 피겨스케팅선수 김연아는 아무도 주목注目하지 않았을 때 집을 팔아 뒷바라지를 한 부모가 있다. 굴지屈指의 골프선수 최경주는 케디에서 출발했고, 박세리는 밤중에 공동묘지에서 담력膽力을 키운 아버지가 있었다. 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도 어린시절 혹독酷毒한 수업의 결과다. 거기에 숨은 천재성이 작용하는지는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고, 사람은 만들어진다.’ 교사시절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거푸 9년 간 내리 맡았다. 시골에서는 남 다 기피忌避하는 1학년을 오기傲氣로 계속 맡았다. 그 시절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은 한글 문자해득文字解得이 현안懸案과제였다. 지금은 아이들이 입학하기 전에 한글이나 셈하기 심지어는 영어까지 선수학습先修學習이 되어 입학하지만 지난 6, 70년대에는 학급인원 100% 문자해득이 1학년 담임의 지상至上과제였다. 벼라별,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쏟아부어도 결국 학년말이면 서너 명씩 2학년으로 까막눈 아이들을 진급進級을 시켜야 했다. 오기가 생겼다. 한글 반포頒布 때 한글은 반절半切이라고 했다잖은가. 일생을 붙들어야 하는 한문漢文이 아니라 영리한 사람은 반나절만에 배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조선시대에서도 그랬을지언정 이렇게 밝은 시대에서 1년을 가르치고도 까막눈으로 진급을 시켜야 하는 건 교사로써 지존심의 문제였다. 그러나 문자완전해득을 목표로 한 1학년 내리 9년을 하고는 결국 백기白旗를 들었다. 교육적으로 무지無知했던 결과였다. 교육심리학心理學을 배운 사람으로써 개인차個人差도 몰랐고, 아동발달兒童發達도 망각忘却한 처사處事였다. 교육환경을 무시無視했던, 무조건 부어넣는식의 무지無智였다. 개인차를 인정했다.

사양회화 전공專攻의 김환기화백畵伯은 평생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50중반中盤 화가로써 장벽障壁에 부딪히자 서양화의 본 고장 유럽으로 날아갔다. 한계를 허물려는 예술적 노력이었다. 그리고 한탄했다. ‘서양 아이들은 장벽 없이 쑥쑥 성장하는데,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따라가다가 어느 선에서부터는 꽉 막혀 성장할 수가 없더라는 한탄이었다. 서양 아이들은 되는데 한국인은 안 되더라고 백발白髮이 되어 회고回顧했다. 정점頂点에 서면 어떤 한계는 있을지 모른다. 겪어보지 않아서 천재성이나 예술성의 한계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은 만들어진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검정 금붕어가 왜 느닷없이 빨간 금붕어로 변색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꽃을 가꾸어보면 빨강백합 뿌리에서는 붉은 백합이 핀다. 노랑백합 뿌리에서 파랑장미가 피지 않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판 난다.

 

 

31. 3 : 7사회

 

 

학원교육과 학교교육 그러니까 공교육과 사교육의 갈등葛藤이 심하다. 대학입시가 만들어놓은 고질적痼疾的 병폐病弊. 초등교장으로 근무하던 때 교사 공문서 수발受發 근절根絶을 주제主題로 연구학교를 운영했다. 수업의 제 1 저해요인沮害要因으로 교사의 공문서 수발이 가장 심각했기 때문에 가까스로 주제를 설정해서 연구학교로 선정되었다. 교사의 문서수발의 폐해가 교육사회에서는 일반화된 내용이었으나 실제로 기초조사를 해보니 심각했다. 초등학교의 교사의 사무분장事務分掌은 대략 30 - 50개다. 단위학교의 교사 수에 따라 사무를 분류分類한다. 그리고 학기 초가 되면 학급담임과 함께 사무분장도 배정配定한다. 도시의 대규모학교에서는 슬리퍼계나 차 심부름계 같은 접대부서接待部署도 있지만 농촌의 소규모학교에서는 교사 한 명이 대강 5, 6개의 사무분장을 배정받는다. 기초조사를 해보니 공문서수발은 교사 한 명 당 평균 하루 2건 접수, 이틀에 1건 보고로 나타났다. 공문서 한 건 보고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2시간이었다. 거기에다가 교육행사가 주 1회였다. 행사추진 기간은 기획하고, 추진하고, 행사를 벌이는데 평균 1주일이었다. 이래놓으니 교사가 염불 보다는 잿밥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문이 늦어지면 사유서나 시말서를 쓴다. 그러나 수업을 빼먹었다고 시말서를 쓰라는 일은 없다. ‘공문서 근절 연구보고회는 무산霧散되었다. 교육청에서는 연구보고회 주제를 공문서 근절根絶에서 감축減縮으로 변경하여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끝내 고집을 하자 보고회 자체가 무산되어버렸다.

지금도 국회國會철이 되면 ‘12시까지 시간 엄수 보고공문들이 쉴 새 없이 내려온다. 대부분의 보고공문은 해마다 똑같다. 같은 내용, 형식의 보고를 해마다 되풀이 한다. 도교육청이나 시군교육청에 해마다 보고한 통계자료가 컴퓨터에 수록이 되어 있는데도 같은 내용과 형식의 보고를 학교에 요구한다. 또 입으로는 공문서 감소대책을 외치지만 해마다 공문은 늘어난다. 교육부나 도교육청의 윗자리에 있는 분들은 할 일이 없다. 에어컨 시원한 사무실에서 이미 보고된 공문서를 뒤적이며 서류로 실적實績을 음미吟味하고, 행정고시行政考試를 패스한 그 기억력 좋은 머리로 실적이 될만한 정책을 수시로 개발한다. 예를들면 이렇다. 학년 초 교육부에서 교육시책에 애국심 고양高揚을 한 항목項目으로 설정設定해놓고 몇 가지 세부시책細部施策을 하달下達한다. 도시군교육청에서는 몇 가지 시책이 더 첨가되어 학교에 시달示達된다. 학교에서는 또 몇 가지 시책을 보태서 학교경영계획을 작성한다. 학교시책은 50개에서 100개가 되는데 국가시책 <애국심 고양>애국가 부르기’ ‘태극기 그리기’ ‘무궁화 심기’ ‘반공 포스터 그리기’ ‘위문편지 쓰기들이다. 보고서 실적은, 애국가 부르기 1 - 6학년 400100%, 태극기 그리기 4 - 6학년 200100%, 무궁화 심기 1 - 6학년 400600그루 150% 이런 식이다. 이런 걸 보고하느라고 수업시간 학생들은 자습을 한다. 도시군교육청에서는 이 결과를 보고받고 만족하며 교육부로 150% 목표 달성을 보고한다. 교육부는 애국심 고양 교육시책 항목이 150%가 달성되어 애국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고 만족한다.

관공서에 가보라. 증원增員이 불가피하다고 해마다 증원한 수많은 공무원들이 모두 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字板을 두들기고 있다. 무슨 공문은 그렇게 많으며 무슨 보고가 그리 급한지,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엄살을 부리며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력이 부족하여 복지福祉 사각지대死角地帶가 방치放置되고 있다고 올해도 복지공무원 5,000명을 늘린다고 한다. 컴퓨터로 입안立案하고, 문서로 실행하고, 문서로 성과를 재단裁斷하는 문서사회에서 증원해봤자 컴퓨터문서만 늘어날 뿐이다. 공무원은 서류로 말하고 서류로 인정하느라고 청사廳舍는 날로 커지고 하루 종일 지압指壓슬리퍼를 신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청사는 쾌적快適해야 하기 때문에 냉난방冷煖房시설이 완벽해야 하고 호화로와진다. 공무원들의 찰색察色은 허여멀겋다. 농민들은 검둥이 저리 가라인데 허여멀건 몰골로 오늘 점심메뉴는 뭘로 할까를 고민한다. 배불뚝이들이 많다. 미국군대는 배가 나온 군인은 장군이 될 수 없는데 우리나라는 배가 나올수록 더 고관高官답다고 우럴어본다.

공자孔子는 형식이 실질에 우선優先한다고 했다. 제도制度가 생활을 선도先導한다는 뜻이다. 교육제도부터 개혁하자.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검사하여 인문人文(3)과 실업實業(7)으로 나누어 교육적 낭비浪費를 막고 그 지긋지긋한 대학입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종이문서를 먹고 사는 게 아니다. 논에서 가꾼 땀쌀을 먹고 산다. 교육제도를 바꾸면 고질적인 대학입시 병폐도 하루아침에 개선된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 위해 노래방에 나가는 주부主婦도 사라진다. ‘가꾸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불가佛家에서는 울력이란 생활규칙이 있다.

 

 

32. 피아

 

 

세월호참사慘事 이후 관피아가 대두擡頭되었다. 세월호 이전에도 금피아 원피아가 가끔 회자膾炙된 적은 있었으나 바람결에 스쳐가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민심民心이 되게 화가 났다. 세월호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침몰하고 구조에서 헛점이 들어나면서 참사慘死의 한 축에 해피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는 광범위하고 만신창이滿身瘡痍. 구멍가게에서부터 대기업까지, 말단공무원에서 고위직까지, 심지어는 종교계까지 어디 한 군데 안 썩은 곳이 없다. 예전에 못 살 때는 동네 누구네와 우리 집을 비교했는데 요즘에는 누구든지 다 삼성전자회장과 나를 비교하고, 빌 게이츠와 우리를 비교한다. 상대적 박탈감이 부정비리의 원인이다. 그래서 돈 되는 것이라면 불 붙은 숯도 집어 먹을 상태다. 중학생들에게 ‘1억원이 생긴다면 감옥을 가겠는가?’라고 설문을 했더니 85%가 감옥도 불사不辭하겠다고 응답했다. 돈이 있는 곳은 다 썩었다.

공무원들은 말로는 국민의 종복從僕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호적등본 한 통을 끊으려고 해도 아리랑담배 한 갑을 슬쩍 내밀어야 통했다. 아니면 신문 쳐들고, 볼 일 다 보고, 더러는 동료들과 노닥거릴 것 다 노닥거린 다음에 마지못해, 동본 떼는 작업이 뭐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해주었다. 요즘에는 겉으로는 친절하고 세련洗練되어보이지만 겉으로는 그래도 아직도 공무원은 서민庶民들 위에 군림君臨한다. 특히 허가許可나 인증認證을 받으려면 까다롭기 그지 없다.

1년에 한두 번 쯤 도교육청 주최 교장회의가 열린다. 전남의 초중등학교 교장 700여명이 대강당에 모인다. 사회에서는 별로 대접받는 직위가 아니지만 학교에서는 각자가 거의 왕 노릇하는 사람들이므로 그 위세는 대단하다. 그리고 특히 그 복장服裝이 유별나다. 하나같이 까만 양복에 흰 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검정 구두 차림, 타고 온 자동차까지도 까만 차 일색一色이다. 나는 양복을 싫어해서 언제나 캐주얼이거나 개량한복改良韓服을 즐겨 입었는데, 교장회의만은 한복을 입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까만 제복 차림 속에 잿빛 캐주얼을 걸치고 앉아있는 필자筆者는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동물의 왕국에서 영역 다툼을 하는 사자와 늑대처럼 저 놈은 우리 족속族屬이 아니니 내치자’. 곧 이런 군중群衆의 함성喊聲이 환청幻聽처럼 짓눌렀다. 공무원들의 위세威勢는 겉으로 나타나는 까만 양복만이 아니다. 철밥통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공무원들은 임명제 상관上官을 우습게 안다. ? 장관은 아무리 잘 나봐야 1년을 못 넘긴다. 1년짜리 장관 앞에서 일생을 한 솥밥 먹을 동료들을 배신背信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국장이나 과장 앞에서는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도 장관은 열외列外. 장관과 국장의 의견이 다르면 과장을 대타代打로 내세워 공공연히 반발한다. 그런 장관도 없겠지만,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과장을 질책하면 국장은 과장에게 장관이 물러날 때까지만 아랫부서나 타부서로 잠깐 피신시킨다. ‘잠시만 참게, 곧 승진昇進시켜서 불러올릴테니’. 장관이 물러나면 과장은 승진해서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이런 제도 속에서는 대통령도 영이 서지 않는다. 오직 상관이 있을 뿐이다. 이들이 퇴직을 하면 관련 기관단체로 영입迎入되어 돈이 되는 사업을 주물럭거린다. 옛 부하들과의 찰떡 유착癒着이다. 그 부하들도 다음에 똑같은 전철前轍을 밟을테니 그 유대紐帶는 공고鞏固하다. 그래서 업체들은 기를 쓰고 전관前官을 모셔와야 한다. 관피아가 원조元祖는 사법司法기관이다. 대형大型로펌이다. 대통령이 관피아를 척결剔抉하겠다고 의욕을 보이는데 글쎄, 그 공고한 60여년의 철밥통이 깨질까? 700여명의 교장들만 한결같이 까만 양복을 입는 건 아니다. 교장회의에 참석한 도교육청 간부들도 모두 다 까만 양복쟁이들이다. 정부직제를 예로들면, 대통령 - 장관 - 국장 - 과장 - 계장 - 주임 - 주사일반행정직 공무원 : 1급 차관 - 2급 이사관 - 3급 부이사관 - 4급 서기관 - 5급 사무관 - 6급 주사 - 7급 주사보 - 8급 서기 - 9급 서기보로, 교장 - 교감 - 부장 - 교사 내려오는 수직垂直직제를 수평적水平的인 팀제단위 기관에 부서部署를 분류하고 부서에서는 사안事案에 따라 한시적限時的으로 부원部員들이 팀장을 선출先出로 개선하는 사회체제 개혁이 요구된다.

 

 

李天滿自敍傳

-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4/ 6) : 과학문명

 

 

. 대중화 학문과 예술(문화예술, 과학문명)

 

 

<책 소개>

 

원시시대에는 수렵狩獵과 채취採取로 살았다. 짐승 사냥과 물고기 잡는 법 그리고 열매를 따는 방법을 알면 살아갈 수 있었다.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아는 체 하는 Eliet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청년시절부터 머리맡에 두었지만 지금까지도 읽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PicassoGuernica게르니카 앞에서도 절망적이다. Pop Art팝 아트 행복한 눈물앞에서도 아리송하다. Bethoven베토벤의 영웅교향곡을 들으면서 영웅을 떠올리지 못해서 스스로에게도 미안하다. 영어를 20여 년 간 배운 사람이 태국여행에서 담배 한 갑을 사려고 손짓 발짓을 했다. 직장생활 40여 년 간 영어를 한 번도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단에서도 삼각함수나 피타고라스정리를 응용한 적도 없다.

민주주의네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는 밥 한 숟갈도 생산하지 못한다. 침을 튀기며 논쟁論爭을 해봤자 입만 아프다. 교육학敎育學50개 분야分野. 초등학생이 배우는 교과가 60개다. 졸업하면 시장통에서 생선장사를 할 사람도 미적분微積分과 삼각함수三角函數를 배워야 한다. 머리카락은 1/ 1,000로 나누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아프리카의 기아飢餓를 해결하고 여유가 있으면 명왕성에 인공위성을 보내라. 거대화巨大化 미세화微細化는 성장과 발전이 아니라 파멸破滅로 가는 길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냥과 수렵狩獵 그리고 채취採取로 살았다.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를 몰라도 무등산은 오를 수 있고, 청자연화모란이형문병靑瓷蓮花耳形牧丹紋甁을 몰라도 뚝배기 막걸리사발로 취한다. 배꼽 위의 형이상학形而上學이나 배꼽 밑의 형이하학形而下學도 안다. 뭘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면서 성장이요 발전이라고 하는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이제 다 왔다라고 할 것인가? Babel바벨탑의 교훈을 잊지말자. 지난 해 광주Biennale비엔날레의 형상어形象語<멈춤, 그리고 느림>이었다. 느린 거북이는 천 년을 산다.

 

 

<약력>

 

이천만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수중흥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하였고, 한국화, 한국화, 민화교육을 연구하였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 어린이민학당활동을 했다. 장편동화 반디전설, 교육칼럼 훈사정음, 연구논문 한국민화교육연구 등 저서가 있다.

 

 

<목차>

 

33. 고려인삼高麗人蔘

34. 물성物性과 영성靈性

35. 철학자의 그림자

36. 벌거벗은 임금님

37. 당달봉사

38. 땅따먹기게임

39. 빨리빨리

40. Babel바벨

41. 행복지수指數

42. 귀신 형용形容

43. 성공과 실패

44. 지구 멸망의 날

45. Nano나노와 Mass매스

46. 꽃밭과 둠벙

 

 

33. 고려인삼高麗人蔘

 

미국의 정치, 경제와 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猶太人은 인구 대비 5% 내외內外. 3억 미국인구에서 고작 600여만 명이다. 미국  Ivy Reague아이비리그의 대학교수의 20%가 유태계고 미국 100대 부호富豪 20%가 유태계다. 5%가 미국의 학계, 경제계와 정치계를 주름잡고 있다. 지구촌을 장악掌握하고 있다. 유태인이 다양多樣한 분야에서 뛰어난 두각頭角을 나타내는 것은 두뇌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유태인의 독특한 교육방법 때문이라고 말한다. 질문質問과 토론討論의 교육방법이다. Talmud탈무드다. Nobel노벨상수상자 중 15%가 유태인이고, 미국의 이름난 대학교수의 20%가 유태인이다. Einstein(아인슈타인, 물리학자), Freud(프로이드, 심리학자), Thomaman(토마스만, 소설가), Bernstein(번스타인, 지휘자), Steeven Stilberg(스티븐 스틸버그, 영화감독), Rothschild(로스차일드, 은행가), Morgan(모건, 은행가), Kissinger(키신저, 정치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고려인삼은 진시황秦始皇이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을 파견派遣하여 찾으려고 했던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영약靈藥이다. 인삼은 미국, 캐나다와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과 아시아 여러나라에서도 생산된다. 그러나 고래古來로 고려인삼을 최고의 품질로 쳤다. 지난 날, Germany도이치의 Hoechst훽스트 제약회사에서 우리의 소변을 받아간 일이 있었다. 또 은행잎을 수출한 일도 있다. 은행은 중국이 원산지고 더 많다. 그런데 왜 우리 은행잎과 소변을 수입했을까? 일본의 기무치업계에서 우리의 배추씨를 수입해다가 기후가 비슷한 땅에서 가꾸었다. 일본산배추로는 세계적 기무치사업을 할 수가 없다는 한계 때문이었다. 실패했다. 중국은 우리의 나주배를 재배하려고 묘목苗木을 수입하여 역시 기후조건이 비슷한 곳에서 재배를 했으나 실패했다. 기후조건을 충족시키는 자연에서 재배를 하였으나 완벽할 수가 없었다. 기후대氣候帶만 비숫하다고 작물 생육生育조건이 충족되는 건 아니다.

금속활자金屬活字는 우리의 직지심체요결直指心體要訣이 세계 최초다.

Germany도이치의 Gutenberg구텐베르크활자보다 100여년 앞섰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을 만들었다. UNESCO에서 벌인 지구촌 문맹퇴치운동 공로상 이름이 세종대왕상이며 시상일도 한글날이다. 유태인이 탈무드 즉 인위적人爲的교육으로 세계적 인재人材를 육성했다면 우리는 천부적天賦的인 재능을 타고난 민족이다. 교육제도가 천부적인 재능을 발현發顯 시키지 못하고 함몰陷沒시키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적성검사適性檢査를 하여 인문(3)과 실업(7)으로 나누어 교육하면 생산하는 역동적사회를 구축할 수 있고, 대학입시라는 교육 고질적 병폐가 단숨에 해결된다. White Coller화이트칼러사회에서 Blue Coller불루칼러사회로 전환된다. Nobel(노벨)상도 나온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빼어난 자연환경에서 탄생한 고려인삼이 세계최고 듯 한민족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

 

 

34.물성物性과 영성靈性

 

청년시절 책께나 읽은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T. S. Eliot(엘리엍)의 황무지를 구해서 마음 먹고 읽으려고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너무 난해해서 무슨 시가 이러냐며 던져버리기를 서너 번, 나중에야 은유隱喩와 비유比喩와 서양 고전古典의 인용引用이 많아서라는 걸 알았다. 서양식 은유와 비유를 알려면 서양문화에 깊이 통찰해야 한다. 더구나 인용은 라틴어 원적原籍에 통달通達하지 않고는 이해 불가다. 그런데 무슨 수로 내가 그 걸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천공穿孔으로 한 달 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득 생각이 나서 Eliot엘리어트의 황무지와 Marcus Aurelius마우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그리고 Pacal파스칼의 Pensees팡세를 가져오라고 해서 약을 먹듯이 답파踏破했다. 그러나 오리무중五里霧中은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문학청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는 내게 Nobel노벨문학상을 받은 ‘Godot고도를 기다리며백 년 동안의 고독도 읽히지 않은, 읽지 못할 소설이었다. 요즘에는 신춘문예에서도 시, 소설, 평론 그리고 심지어는 동화童話에서도 이런 현상을 겪는다. 나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문학의 길을 가는 동료들에게 조차 낯이 부끄러워서 물어 보지도 못한다. 나만 당달봉사일까? 귀동냥을 한 말로는, 요즘 문학가들은 프로이드적인 잠재의식으로 내면內面 즉 잠재의식 같은 4차원의 세계를 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의식세계에서 사는데 그들은 무의식을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노는 물이 다르다. 의식을 계단으로 치면 나는 50계단의 가장 밑자리에 있는데 제일 높은 계층의 50계단이 보일 리 없다. 우럴어보아도 가물가물할 뿐이다.

문학에서만 그러냐 하면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교대시절 음악과교수는 한 달에 한두 번씩 클레식 감상을 강요했다. 말씀은 가요歌謠가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라면 클레식은 마음을 감동케 하는 음악이라고 하면서 전교생을 강당에 몰아넣고 ‘Schubert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 ‘Bethoven베토벤의 영웅들을 틀어재꼈으나 소리에 트이지 않은 내 귀에는 소 귀에 경읽기였다. 그래서 음악감상시간이면 미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탐독耽讀했다. 가끔 강당 앞자리를 훔쳐보면 음악교수는 Soper소퍼에 몸을 비스듬히 누이고 음악 삼매경三昧)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Clasic클레식에 도전挑戰하기로 하고 월급 몇 달 치를 모아 축음기와 LP몇 장을 구입해서 매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또 틀었다. 6개월 틀고나니 클레식도 아름답다라는 느낌이 왔다.

초등학교 교사는 국어, 수학부터 미술, 음악까지 전과목을 혼자 가르친다. 그래서 만능萬能교사라야 한다. 곤혹스러운 교과는 예체능이다. 특히 미술에서는 아이들의 그림을 수, 등으로 5단계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게 골치께나 썩힌다. 미술에 문외한門外漢인 교사가 그림을, 특히 어린이의 그림을 평가하자니 죽을 맛이다. 물론 교육대학에서 받은 몇 가지 유형별 평가기준은 터득하고 있으나 그 수준이 초보자만도 못한 안목眼目으로 어찌 평가가 가능하겠는가? 아이가 하늘에 뜬 해를 까맣게 색칠했다. 교사는 까만 해가 어디 있느냐고 빵점을 주었다. 그러나 우연히 그 아이가 부모가 없는 고아孤兒여서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다는 말을 듣고 후회했다. 그 아이에게 하늘은 붉은 해가 아닌 까만 해가 뜨는 하늘이었던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난 뒤에는 더욱 기가 죽어서 미술평가는 대개 다 백점을 줬다. 그런데 이 현상은 미술품 감상感賞에서도 나타났다. Spein스페인 화가畵家 Salvador Dali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은 대강 공감共感이 가는데 Picaso피카소에 이르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Gogh고흐의 그림에는 광기狂氣가 베어있어 터부가 있는 나에게는 Gogh고흐의 그림만 보면 어지럽다. 거기에다 항간巷間에 세인世人의 관심을 끌었던 Roy Lichtenstein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같은 그림은 마치 Elliet엘리어트의 시처럼 어렵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인들과 내 계단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눈은 당달봉사고, 귀는 청맹과니며 머리에는 된장만 가득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가 이해 못하는 작품들이 작은 감동만이라도 있다면 나도 약간은 접근할 수 있었지 않을까? 이게 내 반론反論이다. ‘어린왕자Saint-Exupery생텍쥐베리처럼 말이다. 머리 속에서는 주머니의 격차보다도 빈부의 간극間隙이 너무 심하다.

 

 

35. 철학자의 그림자

 

Alexander알렉산더가 Grees그리스를 점령하고 유명한 나무통철학자 Diogenes디오게네스를 찾아갔다.

“Diogenes디오게네스여, 나는 알렉산더다. 당신이 소원하는 것을 말하라. 다 들어주겠다.”

마침 나무통에 비스듬히 누워 햇볕을 쬐고 있던 Diogenes디오게네스가 대답했다.

왕이시여 소원은, 당신이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한 발짝만 물러나주시 오.”

햇볕이 필요한 철학자에게 권력이나 부는 불필요한 사치奢侈. 부질없는 욕망이다. 노숙露宿을 하는 거지에게 철학이며 이성理性이 무슨 소용인가? 농부農夫는 피타고라스 정리定理를 대입代入하여 농사를 짓지 않는다. 과수원하는 원예인園藝人에도 만유인력萬有引力을 따져서 과일을 수확하거나 가꾸지 않는다.

미국은 몇 조달러를 들여 우주탐사를 한다. 지구와 비슷한 행성行星을 찾아 생물을 확인하려는 호기심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를 규명糾明하려고 할렘가의 빈민貧民들이나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여 굶어죽는 Africa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안중眼中에 없다. 우주선 한 대를 우주로 날려보내는 예산이면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다 구제救濟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와 정의를 실현한다는 구실口實Vietnam베트남전쟁을 일으켜 밀림密林을 파괴하고, Vietcong베트콩과 농민들을 구분할 수 없어서라는 논리로 양민良民을 학살한다. Afcan아프칸에서는 한 마을을 오폭誤爆하여 전주민이 무참히 폭살爆殺당했다.

필자는 책께나 읽었고, 문학을 한답시고 시, 동시, 수필, 쏘듬 Essay테마에세이, 동화도 썼다. 그런데 평론을 들추면 도무지 이해 불가不可의 장벽障壁이 가로막는다. 현대소설도 마찬가지로 이해난理解難이다. 음악과 미술에서도 이런 상황은 똑같다. 의식이며 잠재의식의 표현이며가 도무지 난망難望이다. 청자모란문이병靑磁牧丹紋耳甁 앞에서는 당달봉사다. 그런데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어떨까?

광주Biennale비엔날레가 시작되었을 때 무지렁이 취급받는 걸 면해보려고 관람을 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피카소 그림 보다 더 난해難解했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밖에 나와 멍하니 서있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 동안에도 버스들이 쉼 없이 몰려들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몰려들었다. 촌 사람들을 모독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분들에게도 비엔날레는 괴고양이 꼬막 보기일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도 단체 관람으로 몰려왔다. 주최측에서 은근히 관람을 독려하고 무료로 입장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눈을 비비고 관람장에 들어섰다. 도대체 이 게 문화문명인가?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Galiber걸리버의 대인국大人國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초라해졌다. 이 게 발전이요 성장인가?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의 위에 있다. 일반적인 수준의 대중들은 학자들이 하는 말이 마치 외국어 같다. 들어봤자 알아먹지 못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자기들 끼리 세미나를 연다. 오불관언吾不關焉, 믿거나 말거나. 자기들 끼리만 전공專攻의 세계를 즐긴다. 대중들에게는 학문이나 예술이 역시 괴 꼬막 보기다. 판사判事들은 판사들대로 자기들의 언어로 말하고 자기들만의 문자를 사용한다. 의사들의 처방전이나 진단서도 그렇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미적분微積分이나 하다못해 피타고라스정리定理도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물며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를 배웠다고치더라도 어디다 쓰랴? BigBang빅뱅론이니 400광년光年이니 40억년이니 하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고구마 한 개를 맛있게 구워먹는 방법이 더 절실하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조리調理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다. 적사에 구워먹는 게 더 맛있는가 Fripan후라이팬에 볶아 먹는 게 더 좋은가가 인간에게 필요하다. 고춧가루를 섞을 것인가 된장에 비빌 것인가가 인간적인 관심사關心事. 아무리 Picaso피카소를 들여다보아도 망상妄想 , 오히려 비참悲慘해지기 일쑤다.

 

 

36. 벌거벗은 임금님

 

무능無能하고 사치奢侈스러운 옷만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다. 어느 날 임금님 앞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으로 세계 제일의 옷을 만들 줄 안다고 주장하는 두 재단사사기꾼가 나타났다. 임금님은 그들에게 많은 돈을 주며 그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오라고 명령한다. 그랬더니 재단사가 자기들이 만드는 옷은 현명賢明한 사람에게만 보이고 바보에게 안 보이는 옷이라고 장막帳幕을 쳐두었다.

하루라도 빨리 훌륭한 옷을 보고싶으니 얼른 만들어 대령 하라!”

임금님은 자기는 현명한 왕이니 상관할 거 없다고 말하고 재단裁斷을 독촉했다.

옷 만드는 일이 늦어지자 임금님은 재단사들을 의심하여 신하를 보내 옷의 완성도를 보고하라고 했는데, 신하들이 재단사가 옷을 만드는 공장에 가봤으나 옷은 보이지 않고 옷을 짓는 시늉을 하는 재단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신하는 옷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가 바보로 보이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옷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거짓말로 보고를 했고, 이후 파견派遣한 다른 신하들도 똑같은 이유로 옷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재단사가 드디어 옷이 완성되었다며 옷을 가져온다. 재단사가 두 손으로 받쳐들고온 옷이 안 보이기는 임금님도 마찬가지, 그러나 바보 취급을 두려워하는 임금님은 보이지도 않은 옷을 침이 마르게 칭찬한다. 그리고 임금님은 재단사들이 입혀주는대로 옷을 입는다.

임금님께 참 잘 맞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더 훌륭한 왕이 되셨습니다.”

재단사들이 칭찬하자 곁에 있던 대신大臣들도 한결같이 칭찬한다. 임금님은 정말로 옷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백성들에게 자랑하고싶어한다. 황금마차를 마차를 타고 대신들을 거느린 임금님은 활개를 펴고 당당하게 거리로 나섰다.

야 저것 봐, 임금님 옷은 정말 아름답군.”

어른들은 너나없이 발가벗은 임금님을 칭찬했다. 함께 임금님을 보려고 몰려나왔던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저 게 뭐야?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거리의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서야 시민들도 다 입을 가리며 쿡! ! 웃었다.

Samuel Beckett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Nobel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놓칠 새라 부랴부랴 읍내에 나가 사서 밤을 세우며 읽었으나 도무지 내 독해력으로는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었다. 결국 독파讀破하지 못하고 팽개쳤다. Marces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도 팽개쳤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Eliet엘리어트의 황무지’, Pascal파스칼의 팡세는 읽으려다 팽개치고 또 집어들었다가 내버렸다. 요즘에는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이나 시도 건성으로 읽는다. 평론에서는 더 당혹스럽다. 평자評者들의 해설을 읽어도 공감共感이 형성되지 않는다. 우선 평자들이 사용하는 낱말들이 낯설다. 펼쳐가는 논리도 전혀 이햐할 수가 없다. 역시 괴 꼬막 보기. 대학 때 억지로 강당에 전교생을 몰아넣고 Classic클래식을 감상시킨 교수님은 가요歌謠가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이라면 Classic클래식은 정신을 감흥感興시키는 음악이라고 했는데, 교사시절 본격적으로 Classic클래식을 이해하기 위해 Schubert미완성 교향곡을 석 달 간을 들었으나 별무 효과였다. Bethoven베토벤의 영웅, ‘섬마을 선생님처럼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광주비엔날레에서나 엘리어트 그리고 피카소의 세계에서 나는 원시인原始人이었다.

 

 

37. 당달봉사

 

이 달 초, 도이치 도르트문트의 오스트발 미술관에서 큰 소동이 났다. 110만 달러약 12억원짜리 도이치의 현대미술작가 마르틴 키펜베르거의 설치작품設置作品 천장天障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When it starts dripping from the Ceiling’열성적熱誠的인 청소부가 훼손毁損한 것. 이 작품은 나무판으로 세워진 탑형塔型 구조물 밑바닥에 고무판으로 된 물받이접시가 놓여 있는 형태다. 문제는 작가가 접시바닥을 갈색 Paint페인트로 칠해 놓았던 것. 빗방울이 떨어져 변색된 인상을 주고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라붙은 물때자국을 예술이라고 생각했으나, 청소부는 이를 지워버려야 할 얼룩이라고 생각했다고 France프랑스의 Le Monde르몽드는 전한다. 청소부는 솔을 사용하여 바닥접시의 페인트를 박박 닦아내 새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 작품은 개인 수집가에게서 빌려온 작품으로 현재 보험사측이 피해액을 산정算定 중이다. , 시력視力의 한계다. Nonsense넌센스라고 하기에는 서글픈 현실이다. 내 시력도 근시近視와 난시亂視가 겹쳐서 하늘의 달이 대여섯 개로 보인다. 내 눈으로 달은 타원형橢圓形이다. 이런 눈으로 그 작품을 보았다면 역시 나도 박박 문지르는 편에 섰을 것이다. 이에 따라 몇 해 전에 프랑스여행 루브르에서 만난 모나리자가 왜 명화名畵인지 도무지 감동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Biennalle비엔날레가 열린다. 첫 해의 구호口號멈춤이었는데 그럴 듯한 호기심에서 관람을 했다. 다섯 살짜리 손자와 동행하여 돌아보았는데 손자는 전혀 관심이 없어 지루한 표정이었다. 나 역시 내 눈높이에 맞은 작품다운 작품이 없는지라 어색하게 뱅뱅 몇 바퀴 돌아다니기만 했다. 멈춤이란 의미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 입장료가 아까와서 억지로라도 보는 척 했는지도 모른다. 지루한 감상을 벗어나서 돌아오는데 단체관람객들이 버스로 줄을 이었다. 유치원생으로부터 시골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단체로 들이닥쳤다.

눈만 당달봉사인 것이 아니라 머리도 따라가지 못한다. 젊은시절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들고 읽으려다가 몇 번을 팽개친 적이 있었다. 끝내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여 때가 왔노라고 쓴 약 먹 듯 병실에서 독파를 하겠다고 벼르고 별러서 읽어냈는데 몇 번을 읽었어도, 싯구 안에 표현된 고전古典의 인용引用 때문이라는, 그래서 그 인용된 고전을 알지 않고는 이해가 어렵다는 친절한 주석註釋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황무지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Pascal파스칼의 Pansses팡세가 그렇고, ‘사무엘 베케트의 백 년 동안의 고독또한 글자를 읽었을 뿐이다.

Opera오페라나 무용발표회를 가보지 못했다. ‘나비부인이 어쩌고 백조의 호수가 아름답다지만 내게는 역시 당달봉사격이다. 심지어는 세계적인 가수歌手의 오페라 명곡名曲을 듣고도 감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바이얼린 연주도 그렇고 카라얀 같은 명지휘자의 지휘에 이르면 바보가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인지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인지 아니면 벌거벗은 임금님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Nude누드화를 보면, 성경의 음란淫亂한 생각만해도 죄악罪惡이라는 말씀이 두려운데도 여자를 보면서는 상상력을 동원한다. ‘Puzzini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인데 신중현의 미인美人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는 제법 따라서 흥얼거린다.

 

 

38. 땅따먹기 게임

 

원시시대 전쟁에서는 돌창과 돌칼을 사용했다. 돌을 바위에 쳐서 깨뜨려 날카로운 날을 사용했다. 살상용이었지만 대부분 상처를 내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제 2차대전 때 미국은 핵폭탄을 사용했다. 일본의 나카사키와 히로시마 공격에 사용된 Pat Man팻맨(뚱뚱이), Churchill처칠 별명別名Little Boy리틀보이(말라깽이), Roosevelt루즈벨트 별명는 50만 명의 사람들이 폭탄이 폭발한 30초만에 죽었다. 원폭의 후유증도 수백만이다. 원자력은 석탄Energy에너지를 대체할 친환경에너지다. 그러나 Chernobyl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 보 듯 원자력은 위험천만한 에너지다. 미국과 Russia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핵폭탄을 만들어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주권 수호를 외치며 핵을 보유하기를 원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이 대표적이다.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미국을 위시한 주변 강대국들에게 주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핵폭탄이 터지면 지구가 사라진다. 지구 전체가 폭침할만한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핵폭탄을 줄이자고 회담을 한다.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그리고 거기에 북한이 끼여있다. 단순한 사고방식이지만 미국이나 러시아는 수백 개의 핵폭탄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은 가지지말라고 한다. 나는 가져도 되고 너는 안 된다? 패권覇權 논리다. 설득력도 없다. 핵폭탄을 없애려면 먼저 내가 솔선수범率先垂範하고 다른 나라를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 지도자들의 명분은 거창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다. 내 욕망을 위해서라는 지도자는 없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국민들을 전장터로 몰아보내 전사한다. 쇠붙이로 만든 훈장도 달아주고 국립묘지에 안장安葬해놓고 추모追慕한다고 영웅 칭호를 내린다. 유사 이래 이렇게 죽은 영혼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태어날 때 인위적으로 죽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 가미카제神風는 새파란 젊은이들에게 어주御酒 한 잔을 하사下賜하여 자살특공대로 만들었다. 하기야 중국의 삼국지에서도 백만대군은 심심찮다. 제갈량은 화공火攻과 동남풍東南風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적벽대전에서 수장水葬시켰다. 삼국지에서만도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전장戰場에서 병졸들은 파리 목숨만도 못한 소모품이다.

삼국지三國志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이나 세계 제 2차대전은 모두 영토전쟁이다.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그리고 징기스칸도 영토 확장 때문에 영웅이 되었다. 일본제국주의의 대륙 진출 욕망도 영토며,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분쟁, 중국과 대한의 독도 분쟁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섬 분쟁들이 다 영토 분쟁이다. 땅따먹기다.

호랑이의 영역은 대략 300K. 호랑이는 매일 자기 영역을 순회巡廻한다. 예리한 눈으로 날카롭게 자기 영역을 순시巡視하면서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의 미세微細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은 들킨다.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은 본능이고 생존이다. 그런데 인간이 하려는 영토 확장은 욕망이다. 무한대의 욕망이 전쟁을 일으킨다. Alexsander알렉산더, Napoleon나폴레옹, 징키스칸은 역사에서 영웅이다. 그런데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얻은 땅은 1세기世紀도 되기 전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인간의 무한대적 욕망과 전쟁에 가려진 슬픈 영혼들만 남았다. 세계사에서 전쟁으로 죽은 영혼은 중세 유럽인구의 1/ 3을 병사케한 Collela콜레라나 홍역 등 질병사와 자연사 보다 더 많다.

전쟁의 요인에서 또 하나는 종교전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에서는 Suni수니파와 Sia시아파의 전쟁이 한창이다. Roma로마 교황은 월드컵 결승전기간만이라도 전쟁을 멈추자고 호소했다. 십자군전쟁은 유럽의 기독교가 이슬람의 Mahomat마호메트교를 말살시키려는 전쟁이었다. 얻은 것 없이 수백만의 인명이 서글픈 영혼이 되었다. 전쟁을 위한 전쟁, Scadinabia스칸디나비아반도의 Remington레밍턴 쥐와 Siberia시베리아의 Elke엘크 사슴무리들은 개체個體가 포화상태飽和狀態가 되면 집단자살을 선택하여 스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전쟁도 포화상태의 인구 조절의 인위적 자연적 현상일까? 기독교는 Acape人類愛를 교리로 삼고있다. 조건없는 사랑이다. 그런데 이단異端인 이슬람교를 말살시키겠다면서 십자군전쟁을 일으켜서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이 게 사랑인가? 자기 종교가 옳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은 미신迷信이라면서 사람들이 밀집한 도시에 로켓포탄을 퍼붓는다. 학교정원에 세운, 어린 아이들이 늘 보는 단군상檀君像의 목을 밤에 몰래 톱으로 잘라버린다. 토착종교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조선시대부터 유전遺傳되었던 당골래는 사라져버렸다. 심지어는 솟대와 천하대장군도 뿌리가 뽑혀버렸다. 어린시절 우리 교회 장로長老님은 뱀을 원수로 여겼다. 뱀이 사탄魔鬼이라고 보이는대로 죽이던 시절이었다. 성경의 창세기 선악과善惡果를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한 Happening헤프닝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자原理主義者들의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말라십계명十誡命 1의 폐해弊害는 종교전쟁의 불씨다. 수많은 인명人命과 문명 파괴의 동인動因이다. 부처님도 자비慈悲를 인류 구원救援의 교리敎理로 삼았지만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때문에 다른 종교와 공존共存에 실패했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다. 그래서 더불어 어울려 사는 것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자기 종교 외에 다른 종교는 배척排斥한다. 인간사고思考의 다양성과 가치 개인화를 주창主唱하는 학자들도 정작 소통疏通은 외면外面한다. 그래서 지구촌의 전쟁은 끝일 날이 없다.

 

 

39. 빨리빨리

 

갖다오냐!”

교사시절 당번 아이를 옆 교실에 심부름 시켜놓고 문밖을 막 나서려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생각없이 지껄이던 말이다. 장난삼아 재미로 했다. 선배들 뽄을 받아서 그랬는지, 속설俗說대로 조급한 대한인의 국민성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작 심부름을 가는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밖을 나서기도 전에 그런 말을 듣고 심부름을 가는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떤 역사학자들은 대한인의 조급성을 1,000여 번이나 당한 침략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던 걸로 해석했다. 동남쪽에서는 왜구倭寇가 끊임없이 쳐들어와 노략질을 했고, 서북방에서는 북방민족들이 강토疆土를 수시로 유린蹂躪했으므로 힘이 없는 백성들은 적이 나타나면 36줄행랑 밖에 살 길이 없었다. 아침밥을 먹다가도 아이들 손을 잡고 계곡溪谷으로 내빼고,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산속으로 피해야 했다. DNA가 빨리빨리문화를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이 빨리빨리가 한강의 기적奇蹟을 이뤄냈다고도 한다. 짱꼴라의 만만디와 구분되는 국민성이다. 그 학설이 옳다면 대한인의 점심식사가 평균 10여분인 게 사회생태학적으로 증명된다. 브라질의 점심식사는 씨에스타낮잠와 함께 2시간이고 프랑스인들도 식사시간은 한 시간을 넘는다. 지난 해 광주비엔날레 구호가 느림이었다. 느리게 걷는 거북이는 200년 장수長壽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칭송稱頌했다. 양반兩班에 국한되지만 찬물을 마시고도 이빨을 쑤시는 겸손謙遜을 부렸으며,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 자존심을 지녔다.

나는 자동차의 핸들을 잡으면 의례껏 이런 다짐을 왼다, ‘서둘지 말자, 양보하자, 사고는 무조건 내 책임이다’. 그렇다고 사고가 나서까지 양보한다는 말은 아니다.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내에서도 남들처럼 앞차를 조마조마하게 따라붙지 않는다. 남 보다 많은 간격을 띄고 주행하기 때문에 얼핏하면 다른 차가 끼어든다. 그래도 운전수칙守則을 되뇌이며 불편한 마음을 달랜다. 그런데 우리 운전자들은 너무 운전행태가 나쁘다. 이렇게 마음을 다짐하고 운전대를 잡았다가도 짜증스러울 때가 많다. 슬쩍 끼어들고는 또 곧바로 다시 본래 차선으로 바꾸었는가 싶더니 다시 끼어드는 얌체족들 때문이다. 전조등을 켜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도 윙카를 켜는 운전자도 거의 없다. 갈림길에서 직진 차가 지나가기를 대기하고 있는데 윙카를 켜지 않고 샛길로 빠지는가 하면, 앞에 겹겹이 차가 밀렸는데도 뒤에서 빨리 가자고 빵빵거리는 것쯤은 애교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자동차문화를 마차시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동차로 들어선 것때문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마차시대가 없어서 거리문화에 생소生疎하다. ‘양보라는 말은 자동차운전면허 교재敎材에나 있는 박제어剝製語. 비상등을 켜고 싸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응급구호차도 비켜주지 않는다. 비켜주는 차들을 피해 응급차가 가는 뒤를 따라붙는 얌체족도 있다고 소방대원은 말한다. 걸어가는 사람 보다 자동차를 탄 사람이 더 바쁘다. 좀 느리게 간다고 빵빵거리는 뒷차 운전자에게는 혼잣말이지만 그렇게 바쁘면 비행기를 타시라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이상하기는 하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괜히 더 바빠진다. 멀리서 진행신호등이 바뀌면 빨리 지나가려고 안달이 되고, 십자로十字路에서는 상대 운전자를 배려할 수 있는데도 모른체한다.

태국의 수도 방콕은 우리나라 서울 보다 세 배 정도 넓이에 자동차수는 두 배 쯤 된다고 한다. 러시아워기 아닌데도 시내는 자동차들이 얼키고 설켜서 아수라장이었다. 친절한 교통순경 아저씨가 가이드의 팁 몇 푼에 팔려서 교통신호를 포기하고 우리 관광차를 에스코트 한 덕분에 그래도 쉽게 빠져 나왔지만 그 난장판 같은 교통지옥 속에서 신기한 것은 아무도 화를 내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Australia오스트렐리아에서는 작은 골목길 같은 신호등 옆에서 뒤따르는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는 차마다 내 앞에서 멈춰서 대기를 했다. 찻길신호는 파랑색이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도 아니었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나와 동료들이 길을 건너고서야 차가 움직였다.

좁은 땅덩이에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으로 늘어난 차 덕분에 우리 교통은 중병을 앓는다. 좁은 골목길에도 양쪽으로 2중주차가 되어 마주 오는 차들이 비켜가지 못한다. 4차선 도로는 아예 양쪽 한 차선들이 주차장으로 점거되어서 2차선 도로 기능 밖에 하지 못한다. 비합리적 운전문화 때문에 사회적 손실도 막대할 것이다. 가끔 서울에 들리면 택시를 타는데 러시아워가 아닌데도 서울 거리는 북새통이었다. 서울에서는 못 살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어쩌다 동방예의지국이 이 모양 이 꼴로 전락顚落했는지, 자동차가 웬수다.

 

 

40. Babel바벨탑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오다가 Sinal시날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 의논하였다.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내자.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의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자 .’

Yahweh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어놓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지구의 멸망설에는 여러 가지 가설假說들이 있다. 공룡은 약 6,500만년 전에 멸망했는데 소행성小行星 충돌설로 설명한다.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그 먼지가 지구를 온통 덮는 현상이 일어났고, 햇볕과 햇빛이 차단된 지구는 냉각기冷却期가 시작되었다.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이자 식물과 동물들이 죽고 모든 것이 소멸되었다. 빙하기氷河期.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아직 인정하지 않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그리고 고고학자考古學者들의 발굴에 의해 빙하기가 지구에서 몇 번이나 일어났던 징조들이 증명되고 있다. 최근에 발견되어 해석한 약 50,000매의 Sumer수메르의 점토판粘土板에서는 쐐기문자象形文字로 기록된 역사를 해석하였는데 3,600년에 한 번씩 지구촌의 역사가 새로 시작되었다는 걸 기록하고 있다. 인류 4대문명을 황허 황허강문명, Mesopotamia메소포타미아 Tigris티그리스강 Uprates유프라테스강문명, Indus인더스 인더스강문명과 Egypt이집트 Nail나일강문명이라고 배웠던 우리 세대는 문명의 발상지부터 수정해야 한다. 황허문명보다 1,000이 앞선 훙산紅山문명이 발굴되었고, 메소포타미아문명보다 3,000년이 앞선 수메르문명이 발굴되었다. 그런데 지구인들이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부르는 몇몇 유적들이 전문명시대의 유적遺蹟이라고 판단된다. 수메르는 쐐기문자를 비롯하여 비행기와 Roket로케트와 우주복, 잠수함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노동력을 높이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다는 역사기록이 있다. Peru페루 남부사막지방의 거대한 곤충그림도 아직 과학적으로나 역사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과제다. 대개 외계인外界人이 또는 이전以前 문명인이 그렸다는 추측이다. 이전 냉각기 이전의 문명인들이 그렸다는 가설假說이다.

지금 지구에는 냉각기가 오고 있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남북극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 Tubalu투발루는 남태평양 중앙에 있는 섬인데 해발고도가 3m 정도로 낮고 평평한 지형인데 지난 20여년 간 투발루의 섬 2개가 바닷물에 잠겨버렸다. 지구온난화현상의 결과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들도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만년설萬年雪로 뒤덮여 있던 북극에 서유럽으로부터 Iseland아이스란드를 거쳐 태평양에 이르는 항로가 개설되고, 얼음 밑에 있는 동토凍土가 들어나자 동토에 묻힌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각국이 각축角逐을 벌이고 있다. 또한 2050년이 되면 투발루는 대부분 물에 잠길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래서 투발루는 이주移住를 진행하고 있다. Moldive몰디브는 아시아 남부 인도양 중북부의 몰디브제도諸島로 구성된 나라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신혼여행지로 각광脚光받고 있다. 몰디브는 해발고도가 평균 2.5m 안팎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50년 이내 몰디브가 수몰되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09년 몰디브에서는 Mosid모시드 대통령과 각료 10여 명이 사상 최초로 해저海底각료회의를 진행하였다. 이들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전 세계에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서 해저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어쩌면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회의이지만, 몰디브 수몰위기는 지구인의 목숨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게 해준다.

핵발전소는 매우 친자연적인 에너지다. 그러나 러시아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건은 엄청난 재을 초래했다. 직접적인 피해 사망자는 30여명이었다. 200여명이 심각한 방사능 감염병에 걸렸고, 유출된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全域으로 퍼져나갔다. 공장 주변의 32Km 내 토양과 지하수원이 오염되었고, 주민 14만여 명이 피신했다. 또한 수천 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20113,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도호쿠지방 태평양해역 지진으로, 진도震度 9의 강력한 지진과 지진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 1 원자력발전소가 방사능 누출사고를 일으켰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일본 정부가 피난 지시를 내린 주민 수는 8만 명이고, 그 중 약 5만여 명은 앞으로 4년 동안 계속 집에 돌아가기도 힘들다. 그리고 현재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10km는 아예 사람들이 접근도 못 하게 막고 있다. 후쿠시마의 땅, 공기, 식물과 동물들까지 모두 방사능에 오염되어 원전 사고가 난 주변 후쿠시마지역은 완전히 황폐화되어버렸다.

미국은 우리 돈으로 약 2조원씩을 들여 우주선을 우주로 보낸다. 우주선 한 대 값 2조원이면 굶어죽어가는 아프리카 빈민 2,000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예산이다. 인간을 달에 보내고, 화성을 탐사하고, 멀리 은하계를 넘어서까지 우주선을 보내 우주의 실체實體를 모색하려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문명발전과 인류성장이라는 덫이다. Babel바벨탑이다. 끊임없는 발전과 성장을 추구하면서 지구는 황폐화되고 인류는 파멸로 가고 있다. 우리가 규명糾明한 역사자료는 4대문명으로부터 인류의 발원發源을 시작하지만, 인류의 문명 이전에도 몇 번인가 성장과 소멸과정을 거쳤다는 증거들이 있다. 문명의 발전과 성장이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바벨탑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인류는 구원을 받는다. 신의 섭리에서 벗어나야 인간의 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신은 인간을 질투하고 있다. 인간으로 돌아가자.

 

 

41. 행복지수指數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 Bangladesy방글라데시가 있다. Tibet티베트나 Nepal네팔 사람들도 행복하다. 하루 먹고 살기가 어려운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심스럽다. 씻지도 않은 얼굴은 검고 때가 끼어 볼상사납다. 몰골은 거지나 다름없다. 주택은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가축우리다. 가축과 함께 산다. 먹는 것은 피죽皮粥이다. 척박瘠薄한 산림山林에서 야생野生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채취한 곡식과 천렵川獵으로 잡은 물고기, 수렵狩獵으로 사냥한 하루치 음식으로 연명한다. 문화 문명은 없다. 원시시대다. 그런데 근심 걱정이 없다. 행복은 물질적기준과 정신적기준이 조화되어 충족된다. 그런데 의식주가 풍족하지도 않고 문화문명과 괴리乖離되어 있는 그들은 행복하다.

온갖 문화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치奢侈를 누리고 살아가는 NewYork뉴요크 시민이나 서울 시민들은 행복하지 않다. 운동장 방불케하는 100평 아파트에 온갖 가전家電제품을 다 사용한다. Swiche Botern스위치보턴으로 Certin커틴을 여닫고, 자동 냉난방이 되고, Robot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한다. 하도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먹어서 다이어트를 한다고 일부러 거친, 보릿고개시대의 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자가용을 가지고 놀토를 가족과 함께 나들이 한다. 놀토에는 전국 산야山野가 선남선녀善男善女들로 몸서리를 칠 정도다. 공휴일이 겹치면 인천국제공항이 미어터진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문화문명의 성장과 발전이 인간의 행복과는 괴리가 있는 건 아닐까?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고 연구하며 성장과 발전을 희구하고 노력했다. 엄청난 댓가를 치루며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평화를 찾는다고 전쟁을 벌여 수많은 희생을 하면서도 그 게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우주선 쏘아 올리면서 행복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종교를 배척하고 훼손하며 우리 종교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자처自處한다. 종교전쟁을 벌여 엄청난 목숨을 희생시키면서 타 종교를 역사에서 지우려고 획책한다. 내 종교 이외의 믿음은 사탄이라고 외치며 다른 종교를 말살시켰다. 굶어죽어가고 있는 이웃을 외면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우주선을 쏘아보냈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 우주의 다른 별로 이사라도 가겠다는 환상일까? 지구가 멸망한다면 지구인을 통째로 살기 좋은 다른 별로 이주할 수는 있는 것일까? 설사 다른 별로 이주가 가능하다고 해도 일반인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선택받은 극소수의 특권층들만 이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영세상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세금을 낸다. 그 세금으로 권력자들이 우주선을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린다. 은하계 넘어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구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황폐화된 뒤에 그 다른 별로 인류가 이주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허무맹랑한 가설을 세우고 막대한 예산을 경쟁적으로 투자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단 돈 300원이 없어 굶어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오늘도 죽어가는데 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우주선 개발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붇고 있다.

 

 

42. 도시화都市化

 

8살짜리 아이가 죽었는데, 애초에는 언니에게 맞아 죽은 걸로 되었다. 나중에 언니가 보호시설에서 진실을 말했다. 계모가 때려서 죽었는데 자신에게 덮어씌웠다고 했다. 계모에게는 과실치사로 20, 아버지에게는 방관했다는 이유로 8년형이 기소되었다. 아이의 몸에는 늘 상흔이 많았다. 선생님이 이를 알고 관계자에게 고발했으나 증거가 있느냐?’ ‘보았느냐?’고 다그쳤으므로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관계자가 고발을 접수하고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증거나 확증이었을까?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관계기관에 고발하는 것 그리고 고발이 무위無爲가 되자 자포포기하는 일 뿐이었을까? 경찰에서는 입건을 하고도 가정사라는 한 마디에 석방을 했다. 아이들 기르다보면 가정에서 때리고 꾸짖는 훈육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부모의 말에 경찰은 속아넘어갔다. 그러나 결국 그 아이는 복부를 심하게 맞아 장파열로 죽었다. 경찰은 이 아이의 죽음에 대한 부실한 대응에서 회피할 수 있을까? 주변의 이웃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다. 탐문 결과 주변에서 이 폭력과 학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38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도시화, Apartment아파트화가 되면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박제剝製되어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아이들을 방관 방치하고 있다. 거리에서 지나치다가 못된 짓을 하는 아이를 보면 예전에는 엄중하게 꾸짖고 제지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외면을 시작했다. 못본 체 하는 게 상수上手, 만약 시비是非에 말려들었다가는 원치 않는 불상사不祥事에 얽힌다. 또 요즘의 아이들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못된 짖을 하다가도 어른들이 꾸짖으면 수긍首肯했다. 잘못했다고 머리를 꾸벅 숙이고 못된 짖을 후회하고 반성했다. 그러나 요즘 애들을 꾸짖었다가는 어른들이 봉변을 당한다. 일이 커져서 부모들과 대면對面을 해도 당신 자식이나 잘 가르쳐라!’고 핀찬만 받는다. 그래서 수수방관袖手傍觀한다. 이런 결과들이 아이의 죽음과 연관성이 있다.

아파트에서 죽은 시신屍身을 한 달 만에 발견했다. 썩는 냄새가 밖으로 세어나와서야 문을 따고 들어가 확인했다. 시체는 미라가 되어 있었다. 아파트 주거문화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사회 형태다.

우리 아파트 옆으로 무등산옛길이 트여 즐겨 무등산 자락을 오른다. 헌데, 다니다보면 대부분 노인들인데 그들의 눈빛이 섬뜩하다. 한결같이 날카롭다. 불만이 가득한 몰골, 눈빛만 형형한 그 모습에서 나는 귀신의 형용形容을 본다. 어린시절에는 귀신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달걀귀신, 채왈遮日귀신과 몽달귀신과 같이 살았던 어린시절 그리고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處容이나 도깨비를 알게 된 시절을 지내고서 이제사 등산길에서 귀신의 모습을 현실로 본다. 불만 가득한 얼굴, 한이 서린 눈빛과 깊은 주름에 덥힌 얼굴, 바로 그것이 귀신형용이다. 공자님의 70대 종심소욕불유거從心所慾不踰矩는 그저 말 뿐인 이상理想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태양은 질 때도 아름답다. 그런데 서로 부대끼며 어울려 살아보자고 모여든 도시는 삭막하고 살벌하다. 도시는 사람을 귀신으로 둔갑遁甲시켰다. 그래서 놀토와 일요일이 겹치는 주말週末에는 도시가 텅텅 빈다. 그 많던 차들도 뜸하다. 그러나 주말이 끝나면 도시인들은 고뚜레 꿰인 소처럼 도시로 돌아온다.

 

 

43. 성공과 실패

 

현수막懸垂幕과 간판과 광고의 나라. 대한민국에 첨가할 이름이 있다면 홍보弘報, 자체발광發光의 나라가 하나 더 보태진다. 거리의 상점에는 크나 작으나 간판이 있다. 기관단체의 건물에는 예외없이 구호가 있다. ‘찢어죽이자 김일성 타도打倒하자 북한 괴뢰傀儡’. 초등학교시절 콘크리트 건물 면사무소 하얀 외벽外壁에 대문짝만한 빨간 글씨로 되벽되어 있던 구호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서류로 행정을 하고, 구호로 민생을 돌본다. 건물에는 크고 작은 간판이 한두 개씩 걸려있고, 가로수나 전신주에는 수많은 홍보 Plan Card프랭카드가 널려 있다. 거기에 ‘xxx 서울대 입학 축하라는 프랭카드도 있다. ‘xxx 행정고시 합격 축하프랭카드도 있다. 유럽에는 아예 이런 거리 홍보물은 없다. 동남아에서도 우리나라만 독특한 문화다. 효과가 있는가? 단연코 없다. 게시揭示한 주체主體의 자기 만족이나 위안慰安일 뿐. 학교, 특히 초등학교는 3월이면 학교 전체가 경쟁적으로 환경정리環境整理를 한다. 자기 교실을 꾸미고 환칠하는 것으로부터 새 학년을 시작한다. 학교는 시상施賞을 내걸고 독려督勵한다. 그런데 약 한 달에 걸쳐 예산과 재능 모든 역량을 투입하여 꾸민 환경정리는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환경조사를 한 적이 있다. 환경정리를 끝내고 한 달 후 쯤, 어느 날 예고없이 아이들을 설문說問했다. ‘교실 안에 개시된 환경물을 기억나는대로 써봐라’. 수십 가지 환경물들이 게시된 교실을 한 달 내내 생활했으면서도 아이들은 두세 가지 이상을 써내지 못했고, 내용은 아예 캄캄했다. 그래서 경찰서 현관에 걸린 안전한 시민 행복한 시민현수막懸垂幕은 경찰의 자기自己 도착倒錯일 뿐인데도 안 걸면 어딘가가 허전하다.

김연아는 어느 날 느닷없이 Sindellera신데렐라가 되었다. 김연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에게 아사다 마오는 전혀 낯선 이국인異國人었다. ‘하늘은 왜 이 공근나라 大都督 周瑜을 세상에 내고 공명제갈량을 다시 내었습니까?’ 주유가 죽으면서 하늘에 외친 이 외침은 아사다 마오가 하늘을 우럴어 한탄할 대사臺詞. 김연아가 혜성彗星 같이 나타나기 전에 세계 피겨 스케이팅은 아사다마오의 무대舞臺였다. 김연아는 피겨 선수권점수 최고점수를 갱신해서 세계 여자 피겨역사를 새로 썼다. 김연아는 성공자고 아사다 마오는 실패자다.

농사꾼 할아버지는 가을 추수를 맞춤하면 가계家計를 정리했다. 머슴 새경으로부터 가계부를 썼다. 이를 바탕으로 겨울 내내 내년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농사가 잘 되었다거나 농산물이 신통치 않다는 반성은 있어도 성공과 실패는 없었다. 굶지 않고 먹을 식량이 확보되었으므로 행복했다. 사랑채의 곳간에는 오곡五穀이 가득찬 볏가리들이 줄줄이 쌓여있고, 대청大廳에는 쌀과 보리를 가득 채운 항아리가 즐비했다. 곳간에 쌓아두지 못한 곡식은 마당 한켠에 멍석으로 둘러친 서너 아름이나 되는 낟가리에 저장했다. 그리고 유둔장이나 과역장 나들이를 하면서 겨울을 넉넉하게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쉴 수 있었다.

서울대에 입학하면 문중門中의 경사慶事가 된다. 대학에 낙방하면 재수再修 삼수를 하면서 가족들 앞에 얼굴도 들지 못한다. 고시考試에 합격하면 시골 영재英才가 되어 조선시대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시정市井을 도는 행차行次 보다 더 두터운 대접을 받는다. 가문家門의 영광이다. 가문의 영광은 물론이고 군수郡守가 찾아와 잔치마당을 축하를 한다. 개천의 용은 성공의 표상表象이다. 대학도 못나오고 아무리 성실하게 일생을 살았어도 공장에서 기계를 만지거나 구멍가게를 하면 인생의 낙오자落伍者가 된다. 대통령은 인생의 성공자고 면서기는 실패자다. 회장은 성공자고 농민이나 어부는 실패자다. 교장은 성공자고 교포교장 포기 교사는 실패자다. 현대사회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척도尺度를 돈과 지위로 잰다. 6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성공자고 30평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실패자로 규정한다.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벤츠나 클라이슬러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우럴으고 소형 프라이드를 타고다니는 사람은 실패자로 분류된다. 문명의 발전이 왜곡歪曲한 삶이다.

 

 

44. 지구 멸망의 날

 

Babilon바빌론의 Babel바벨탑은 인류를 파멸시켰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본다며 하늘을 넘보는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오만傲慢함을 벌주기 위해 언어의 장벽을 만들었다. 인간들은 언어가 달라지자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그래서 바벨탑 건설은 와해瓦解되었다. 그렇다면 바벨탑 이전에는 인류가 공통언어를 사용했다는 결론인데 이는 아무래도 비유比喩일 것이다. 발전과 성장을 위해 달에 우주인을 보내고 끝없는 욕망으로 우주탐험을 하는 오늘은 신으로부터 어떤 제재制裁를 받을 것인가?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고 화성火星을 탐사하는 것은 인류의 호기심이다. 그것을 인간은 발전과 성장이라고 부른다. 세밀화細密化와 함께 대형화大型化도 인류 발전의 상징이다. 라이트 형제의 1인승 비행기가 300석 규모가 되었다. 콩코드는 500여명의 탑승객을 싣고 Paris파리와 Newyork뉴욕을 1시간만에 나른다. KAL기는 300여명의 탑승객을 싣고 폭파되어 탑승객 전원을 태평양에 수장水葬시켰다. 2014년 봄 인천에서 제주도로 항해한 세월호에는 340여명의 고등학교 2학년들이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는데 진도해역의 맹골바다에서 침몰되어 꽃다운 나이의 어린 학생 300여명이 희생되었다. 말레시아에서 중국 북경으로 가던 여객기는 300여명의 탑승객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대형화가 부르는 대형 참사다. 세계 제 2차대전 때 미국은 원자폭탄 두 개로 일본을 폭격했다. 원폭 피해로 사망한 희생자는 나카사키 14만 명과 히로시마 7만 명이다. 간접피해는 500만 명이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가 폭격당했기 때문에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대형화의 참사다. 거대도시를 좋아하는 대형화가 부른 참사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나더라도 대형도시가 아니라면 인간의 피해는 자연재해 수준이다. 지진이나 해일海溢의 피해라 하더라도 주변의 몇 가구 몇 명이다. 그리고 가축이라든지 농경지 피해가 전부일 것이다. 함께 많이 모여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폐해는 재해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든 것들이 다 재해가 되어버린다. 대형화는 먹고 사는 것부터 의식주 전체가 재해로 변한다.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만큼 식량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거대 유통기구가 공급을 맡는다. 물류유통이 한 순간 멈추면 물류대란物流大亂이 일어나고 도시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된다. 사재기가 기승氣勝을 부리고, 약탈掠奪이 일어나며 도시는 전쟁터 보다 더 참혹한 폐허가 된다. 잘 먹고 평안히 사는 데서도 먹고 남은 쓰레기 또한 엄청난 양이라서 수거와 폐기에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하다. 이 또한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도시는 마비된다. 작은 공동체라면 이런 일은 없다. 자연 재활용이 되어 인력도 폐기 처리 예산도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다.

지구 멸망에는 소행성 충돌로 인한 냉각기가 온다는 것이 과학적 가설로써 설득력이 있다. 소행성은 우주에 수없이 많고 3,000년 전의 소행성 충돌 같은 현상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소행성이 충돌하여 먼지 폭풍이 지구를 덮으면 햇빛과 햇볕이 차단된 지구는 생물이 모두 죽는다. 그리고 표면이 얼어붙는다. 빙하기다. 결국 인간도 살 수 없다. 인류의 멸망이다. 역사가들은 아직 인정하지 않지만 고대 기록들에서 밝혀지고 있는 걸 보면 지구는 몇 번이나 냉각기 같은 소멸과 생성을 반복했던 것 같다. 인류의 기원紀元이라고 배웠던 4대문명권의 인류역사는 단 한 번의 지구 변동을 설명할 뿐이다. 지구는 여러 번의 생성과 소멸을 겪었다. 오늘이라도 우주를 도는 소행성 중 하나가 지구와 충돌할지 모른다. 더불어 또 다른 지구 소멸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소행성이 아니라 온난화溫暖化.

성경의 Jhon요한계시록啓示錄지진과 화산 폭발 그리고 해일이 창궐猖獗하고, 숫자주민등록증, 카드가 사람을 대신하고, 기독교가 지구촌 오지奧地까지 퍼진 때를 인류 멸망의 때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예언서가 아니라 역사적 상황을 기록한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 유사有史 이전의 구전口傳 역사다. 우리나라의 정감록이나 Nostradamus노스트라무스의 대예언서도 같은 맥락脈絡이다. 대부분의 예언서들이 지구 멸망의 날을 예언하고 있다. 요인要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소행성의 충돌, 충돌로 인한 먼지구름 발생 - 햇빛과 햇볕 차단, 지구 냉각기 - 동식물 멸종, 인류 멸망. 두 번째는 지구온난화, 뜨거워지는 지구, 2100년 지구온도 3도 상승上昇 수증기水蒸氣 발생- 햇빛과 햇볕 차단遮斷, 지구 냉각冷却 - 동식물 멸종, 인류 멸망의 가설假設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지구 파멸의 과정을 예상하면서도 예방할 수 없다는데 있다. 소행성 충돌을 인위적으로 막아보려는 논리는 있으나 실행은 불가능하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지구인들이 하나로 뭉치지 않는 한 어려운데 지구인을 하나로 뭉치기엔 지구인들은 역부족力不足이다. 바벨탑 신화처럼 스스로 통제하기가 어려워 알면서도 자멸自滅하는 것이다. 자멸은 구제방법이 없다. 신도 구제 불가능이다.

 

 

45. NanoMass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한지는 오래되었다. 미국의 Apollo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면서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는다는 항아姮娥전설은 폐기廢棄되어버렸다. 둘리라는 양을 복제複製하더니 이제는 아예 인간을 복제할 수도 있는 상황에 와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육체노동을 시키며 소모품처럼 부려먹다가 수명이 다 하면 폐기하고, 더러는 전쟁에 총알받이로 보낼 수도 있다. 여러 명의 내가 있다. 한 나는 가정에서 아이들 돌보고, 또 한 나는 직장에서 일하며, 또 한 나는 휴가지에서 레저를 즐긴다. 내가 동시에 서울 충무로에서 쇼핑을 하며 영국 런던 브리지에서 경관을 구경할 수도 있다. 공상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체이탈遺體離脫 같은 현상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하여튼 과학은 사람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기는 못 만들지만 복제는 가능하다.

넓고 큰 - 3차원의 사고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우주도 과학의 문제지만 머리카락을 몇 천분의 일로 쪼개기도 하고 과학은 기상천외奇想天外의 발상을 한다. 그리고 문명의 발전이라고 한다. 인간 승리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모기 한 마리도 만들 수는 없는 게 과학이다.

창조론에 이어 진화론이 등장한지 벌써 100여 년, 창조론과 진화론은 평행선이다. 그래서 인간의 과학은 머리카락을 천 분의 일로 쪼개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섬세한 과학의 능력을 찬탄하고 자축한다. 우리시대에서는 원자, 분자 뿐이었는데 지금은 양자와 나노입자 그리고 쿼크인가 뭔가 하는 것들도 발견되었다며 과학이 깜짝 놀랄만한 시대의 업적을 이루었다고 호들갑을 떤다. 인공위성을 쏴올려서 우주를 정복하고 복제양 둘리를 만들어내고 머리카락을 1/ 1,000로 발겨내는 인간들은 위대하다. 가히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과 동격이 되어가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다니는 것은 효율적이다. 자동차를 타기 시작하면서 서 발만 나가도 차를 타고다닌다. 운전을 하다보면 정말 서너 발도 걷기가 싫다. 이 시대에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어진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교육학은 교육심리학 등 50여개의 학문으로 분화했다. 교육심리학과 심리교육학을 구분하지 못한다. 더 작게 작게 쪼개는 일이 발전이라면서 마지막에는 인간이 세포성인간으로 전도顚倒되는 건 아닐까? ET말고 아메바 말이다. 세포성 인간은 아메바 같은 단세포다. 쪼개고 나누다가 인간이 단세포성으로 변화된다면, 21세기 문명이 진화시대 원상原狀으로 돌아가는 격이다. 그리고 인간은 신이 된다. 인간이 신격화神格化되어서 나쁠 것은 없다. 성경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흙을 빚어 아담을 만들고 혼을 불어넣었다. 실제로 복원된 수메르역사 기록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사람을 만들어 노동력에 사용한다.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이라고 하여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말한다. 부처도 깨달으면 다 부처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고, 세상 만물이 다 부처라는 신념도 있다. 그리스로마시대에 신들은 인간과 어울려 살았다. 더러는 혼인도 하고 서로 미워하여 죽이기도 했다. 단군신화에서도 한웅천왕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성경의 삼위일체三位一體사상은 하나님이 본래는 하나인데 성령과 성부와 성자로 나뉘어 역사役事한다고 한다. 하나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하나다. 우리 고대사古代史의 신교新敎사상은 삼신사상이다. 흔히 삼시랑이라고 말하는 토착신앙이 여기서 유래했다. 우리민족 고유의, 인류 최고最古의 천부경天符經에 천일天一, 지일地一 그리고 태일太一은 인일人一인 바 천지인천지인天地人 중에서 사람이 제일이라 하여 태일이라함사상이다. 하나로 뭉치면 하나님한울님, 하느님이요 역사役事하면 천지인天地人 셋이다. 인간은 얼마만큼 더 높게 쌓아올리며 얼마만큼 더 가늘게 쪼개는데 시간을 보낼 것인가?

 

 

46. 꽃밭과 둠벙

 

버스는 줄을 지어 차례로 탑니다.’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래서 일제고사에 이 문제가 출제되면 모두 백점이다. 그런데 한 발 교문 밖으로 나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등하교시간에는 초등학생도 한 발이라도 빨리 타려고 어른들 틈에 끼어 바둥거린다. 현장에서는 빵점이다. 머리가슴와 행동이 따로따로 논다는 게 인성교육의 문제다. 세월호참사와 윤일병 폭력사건이 사회문제가 되자 또 인성교육의 물꼬가 터졌다. 인성교과를 만들어서 체계적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고, 인성교육 성취도를 학생부에 기록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는 일제시대 만든, 일본에는 없는 도덕교과가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가정교육의 실종을 거론한다. 밥상머리교육이니 심지어는 한자교육이나 사자소학四字小學(한자)교육이 인성교육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인성교육은 지식교육이다. ‘버스는 줄을 지어 탑니다라고 교사가 교과서를 읽으면 아이들이 복창復唱을 한다. 학교의 인성교육은 머리로 배운다. 학교는 지식교육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성교육은 체험과 실천의 교육이다. 그 실천의 장은 가정과 사회다. 물론 학교에서도 교사는 사표師表가 되어 인성교육의 모범이 된다. 그러나 학교에는 줄을 서서 탈 버스가 없어 교사가 시범이나 모범을 행동으로 보일 수도 없다. 그래서 인성교육의 주체는 가정과 사회다. 부모와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범이 되어야 하는 교육이다. 앞에서 든 사례처럼 아무리 학교에서 지식을 가르쳐봐야 가정과 사회가 비뚤어져 있으면 학교의 인성교육은 헛나발이다.

핵가족화하고 부부 맞벌이가 되면서 아이들은 유아원이나 유치원으로 내몰렸다. 아이들에게 가정은 잠자는 장소다. 부모에게도 가정은 침대다. 가정과 사회가 인성교육의 장역할을 잃었기 때문에 학교가 인성교육의 덤터기를 떠맡았으나 학교는 지식교육의 범주範疇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인성교육의 사회적 Issue이슈화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30여년 전 인성교육이 사회의 화두話頭가 되었을 때 학교마다 인성교육시책을 궁리했다. 서예書藝교육, 예절교실, 밥상머리교육, 사자소학四字小學교육들이 거론될 때 우리학교는 애완동물 기르기와 쪽화단(자투리화단, 화분 가꾸기) 만들기 그리고 가훈을 인성교육시책으로 보급했다. 동식물 기르기는 인성교육이 생명존중교육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는데서 인성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당이 있는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상의하여 쪽화단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은 정서순화에 도움이 된다. 학교에는 나무들은 많은데 꽃이 없다. 사철 관리하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전국의 아름다운학교 가꾸기에서 2년 연속 최고상을 받았다. 아름다운 학교상은 외부환경에 중점을 두었지만 내부 교육내용도 종합평가를 한다. 학교에 부임하면 맨 먼저 청소부터 시작했다. 전국 최고 진달래꽃밭, 영취산 기슭 중흥초등학교에서도 청소부터 시작했다. 벌겋게 녹슨 컨테이너 박스 두 개에 버린 책걸상부터 사무용 집기들이 썩어가는 걸, 컨테이너를 공짜로 주면서 비용을 들여 치웠다. 폐쇄된 재래식 화장실도 쓰레기 창고였다. 4톤 트럭 7대분을 치웠다. 선생님들 조차도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나올줄 몰랐다고 놀랐다. 시멘트언덕을 걷어내고 잔디를 입히고는 한국야생화를 심었다. 야생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색감이 마음에 닿는다. 23차색상이다. 외래종의 원색 색상처럼 화려하지 않고 작지만 향기가 은은하다. 그리고 한 번 심고 가꿔주면 매년 꽃을 피운다. 다음에는 운동장을 빙 둘러 꼬랑도랑을 팠다. 포크레인을 불러 꼬랑을 덥썩 한 입씩 물어내면 둠벙이 된다. 사흘도 되지 않아,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손님들이 찾아왔다. 꽃대가 고동색 아이스케이크처럼 생긴 부들이 맨 먼저 싹을 틔웠다. 초록 물방울처럼 물 위에 동동 뜨는 개구리밥이 둑 그늘에 자리를 잡고, 보랏빛 꽃을 피우는 부레옥잠도 몇 포기 들여놨다. 야생풀꽃들이 자리를 잡자 잠자리와 메뚜기, 풀무치들 풀벌레들이 날아들었다. 물방개 부부도 이사를 왔다. 아이들이 신나서 버들치, 피라미와 산천어들을 잡아넣었다. 어느 날인가 나가보니 소금쟁이가 그 긴 다리를 부레옥잠에 걸치고서 졸고 있었다. 징검다리도 놓았다. 봄철 벚나무에 꽃이 피면 꽃그늘 드리운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담그고, 체육을 하고나면 땀을 들일 곳이다. 벚꽃잎이 물에 떠내랴가는 광경도 그려본다. 겨울철에는 토끼털 귀마개를 한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얼음을 지치리라. 어린시절의 정서환경은 아이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시절의 입맛이 평생을 좌우하듯 어린시절의 생활환경은 아이들의 일생을 좌우한다. 특히 정서환경은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 시책 가훈은 귀감龜鑑이다. 명문가名門家에는 편액으로 된 오랜 전통의 가훈이 있다. 밥상머리교육처럼 가훈은 집안의 내면적 전통을 전승傳承함은 물론 자손들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특히 요즘처럼 가정이 해체된 사회에서는 가훈을 가정교육의 귀감으로 되살려야 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인권 표어는 사람 위에 돈 있고 돈 밑에 사람 있다로 변질되었다. 자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돈이 인간생활의 모둔 걸 지배한다. 성공은 곧 돈을 많이 버는 일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인생은 실패다. 인간은 편리하게 살기 위해 돈을 만들고는 돈이 상전上典 노릇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쩐의 사회에서 인성교육을 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2014년 우리나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억원을 준다면 감옥을 불사不辭한다는 응답이 57%였다. 아이들은 서울대라는 가상의 목표 대학입시에 매몰되어 올백을 추구하고 친구를 잠재적 적으로 간주한다. 부모는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면서 아이들의 과외비를 댄다. 가정은 핵가족 그리고 맞벌이부부로 침대 역할, 사회는 거대도시 아파트로 인한 공동화 상황에서 교과서를 개발하거나 인성교과를 신설해서 인성교육을 한다는 발상은 인성교육의 본질을 모르는 소치다.

논에 방천이 났다. 이를 막아보겠다고 가래를 들고 나온 선비가 방천이 난 뚝을 찾아다니며 새는 물을 막는데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터지고, 위를 막으면 아래가 샌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꼴을 보다 못해 이웃 논에서 일을 하던 농부가 물었다.

이봐요 선비님, 책에서는 물꼬를 어떻게 막으라고 했습디까?”

그야, 근원을 막으라 했지요.”

매마른 사회 거칠어진 인성의 물꼬는 어디를 트고 어디를 막아야 할까? 성장과 발전을 추구한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동물의 가치를 찾는 일은 인간성을 일깨워 찾는 일이다.


李天滿自敍傳

- 사회체제System개혁 보고서(5/ 6) : 국가영토

 

 

. 유연한 국가와 영토

 

 

<책 소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성취했으나 평등을 이루지 못했다. 사회자본주의와 민주평등사상을 제안한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경제적 패권주의는 갈등과 분쟁과 전쟁의 살육殺戮, Africa아프리카와 South America남미에서 어린이 노예를 착취하는 공정무역公正貿易으로 대변代辯되는 Super Rich수퍼 리치와 기아飢餓, 그리고 빈부貧富 격차隔差의 자본주의 체제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를 실현했으나 평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평등사상과 사회자본주의 정립定立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의 계층을 타파하겠다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는데 계층은 더 세분화 되었다. 조직구조를 수직구조 - 사다리식 계단에서 수평구조 - 타원형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Team팀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대통령부터 면사무소 주사에 이르는 계층 분화를 평등하게 고쳐야 한다. 회장부터 계약직에 이르는 계단을 없애야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E.T를 찾겠다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보내는 한편에서는 수백만이 굶어죽어가는 현실, 인공위성 한 대 값이면 굶어죽어가는 그 사람들을 다 구제救濟할 수 있다. Seine세느강변에 Eiffel에펠탑을 세우고는 환호하더니 Saudi사우디 Jeddah제다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탑을 세우겠다고 1007m 짜리 Kingdom Tower킹덤타워를 짓고 있다. 거대화, 미세화 그리고 다양화가 추구하는 세상 모습, 이게 사회적동물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지향인가? 성장, 변화, 개발, 도전과 정복이라는 서양식 사회체제가 인류를 갈등과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 자연과 동화同化는 우리 한민족의 삶의 방식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물질적으로는 향상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로와져버렸다. 인간의 삶의 방식은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동화同化여야 한다. 그게 지구의 본 모습이다. 인간도 지구의 한 생명체이므로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유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다른 생명체는 생명 유지 정도의 삶을 영위하는데 인간은 생명 유지의 탐욕을 넘어 무한대의 탐욕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면 결국 인간도 파괴된다. 성경 바벨탑의 교훈을 상기想起해야 한다.

 

 

<약력>

 

이천만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수중흥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하였고, 한국화, 한국화, 민화교육을 연구하였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 어린이민학당활동을 했다. 장편동화 반디전설, 교육칼럼 훈사정음, 연구논문 한국민화교육연구 등 저서가 있다.

 

 

<목차>

 

 

46. 오는 백발白髮

47. 사자獅子Praud프라우드

48. Global글로벌화의 함정陷穽

49. 행복마을

50. 순천자順天者

51. 독방

52. 작은 공동체국가

53. 문서文書사회 탁상卓上행정

54. 격일제隔日制 운행

55. 놀토

56. 개판

57. 지우개

58. 들방구리의 생쥐

59. 땅뺏기놀이

60. 왜 사냐건

61. 큰 것만 보면

 

 

46. 오는 백발白髮

 

가는 청춘 잡지 말고 오는 백발 막지마라는 옛말 하나도 그름이 없다. 인생의 황혼은 찬란하게 지는 태양이 아니라 쓸쓸한 석양夕陽일 뿐이다. 일생 사용한 몸은 사방군데 망가지고 정신까지 희미해지니 필연이라고는 하지만 심정이 착잡하다. 오는 황혼을 살갑게 맞이하기란 참 어렵다.

귀신은 오랫동안, 깊이 연구한 건 아니지만 관심사였다. 신을 추구하다보니 귀신도 끼어들었다. 성경에서도 마귀魔鬼는 있다. 예수가 마귀를 돼지떼에게 몰아부쳐 미친 돼지들이 다 물에 빠져 죽는 광경이 성경에 나와 있다. 황야에서 고행할 때는 배 고픈 예수에게 마귀가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도 했다. 부처님도 고행 중 나찰에게 시험을 받았다. 불경에도 마구니가 있다.

어린시절 혼불을 목격했고, 도깨비불이나 공동묘지에서 불 타는 인불도 눈으로 봤다. 안개 자욱한 산 정상 쌍묘雙墓에서 나는 방아 찧는 소리는 친구들과 함께 들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귀신을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그런데 신과 소통을 염원하다가 응답이 없는 신을 버렸고, 탕자蕩子가 되어 40년을 살다가 70이 되어서야 귀신의 실체를 보았다.

몇 해 전에 집 옆으로 난 무등산옛길을 다니다가 노인들의 얼굴에서 귀신을 느꼈다. 등산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들인데 그들의 몰골이 귀신같았다. 한결같이 주름투성이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눈빛을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함평가咸平歌에서 쑥대머리 귀신 낯바닥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막상 등산길 노인네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공자孔子70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는데 70을 넘어서니 몸이 안 아픈데 없이 아프다. 원래 난시亂視와 근시近視가 겹쳐서 달이 서너 개로 보였지만 이제는 눈이 가물가물해서 TV자막字幕조차 흐릿하고, 이빨은 찬 것만 들어가면 시큰거린다. 어깨도 심상찮고, 밤중에 깨면 느닷없이 심장이 벌떡거려서 이러다 아무도 모르게 죽는 게 아닌가 겁이 더럭 날 때가 있다. 무릎이 아파서 걷기도 힘들어져 즐겨 걷던 무등산옛길도 나서기가 탐탁잖다. 생전 이름조차 생소한 통풍痛風에 시달리고, 좀 오래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허리가 펴지지 않아 아이구, 허리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한심한 것은 입맛을 잃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엉뚱하게 입맛을 잃은 불똥은 아내에게 튀었다. 여자 복이 없다고 한탄도 한다, 대개 혼잣말이지만. 아내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음식 잘 하는 아내가 최고다. 처음 이런 현상을 느끼고는 죽는 전조前兆가 아닌가 더럭 겁이났다. 그런데 더 지나다보니 그것들은 오히려 약과藥果. 잠이 없어져버렸다. 새벽인가 하고 일어나면 밤 11시고, 날이 샜나 하고 시계를 보면 새벽 한 시다. 주름투성이 몰골에 만신창이滿身瘡痍 몸을 어기적거리며 밤중인지 새벽인지도 모르고 집안을 서성거리니 이게 귀신이 아니고 뭔가. 처용處容탈을 썼다고 귀신이 아니다. 도깨비가 귀신이 아니다. 늙어가는 노인의 몰골이 귀신이란 걸 70이 되어서야 알았다. 공자孔子는 칠십이종심소욕七十而從心所欲하되 불유구不踰矩라 했다는데 나는 귀신이 되어가고 있다.

 

 

47. 사자獅子Praud프라우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지어 사는 게 꼭 인간만은 아니다. 사자는 프라우드라는 집단생활을 한다. 숫컷 한 마리에 암컷 너댓 마리 그리고 그 숫컷과 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서너 마리의 새끼무리다. 식물도 군락群落을 이루어 사는 게 많다. 식물이나 꽃은 군락을 이루면 더 보기 좋고 아름답다. 장사는 혼자만 독점獨占을 하면 떼돈을 벌 것 같지만 동종同種 음식점거리에서 장사가 더 잘 된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국부國父라고 일컫어지는 이승만대통령은 공산당과 싸우며 외쳤다. 미상불未嘗不 사람은 모여 사는 게 원리인 셈이다. 헌데 모이다 보니 문제가 많다. 특히 거대도시에서는 사회적인 난제難題가 많다.

서울은 세계 네 번째의 거대巨大도시다. 인구가 1,200만이다. 남한 전체 인구의 1/ 5이며, 경기도까지 합치면, 크기는 세계 제 1의 도시고 인구도 2,500만으로 남한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 거대도시는 인구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첫째, 길 문제

거대도시다보니 인도人道 보다는 차도車道10 - 20배 정도 넓다. 차를 위해 사는지 사람을 위한 도시인지 가늠하기 난감하다. 고작 고샅만한 인도는 사람에 치여 서로 어깨를 마주치며 다닌다. 최대한 넓게 만든 차도는 차량들이 뒤엉켜 때로는 걷는 것 보다 더 느리다. 교통사고 또는 범죄의 대부분이 거대도시에서 일어난다. 편리하자고, 좋자고, 더불어 살자고 만들어진 대도시에서 인명人命이 제일 많이 유린蹂躪되는 상황이다. 밀집되어 살기 때문에 전염병에 취약脆弱하고, 환경의 열악성 때문에 질병에 노출되는 위험도 크다. 21세기들어 대한사람의 수명은 많이 늘어났지만 무서운 병도 많이 생겼다. 2014년 현재 대한사람의 기대수명은 85세고 건강수명은 75세다. 특히 암은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인데, 의학계에서도 왈가왈부曰可曰否가 많지만 아무래도 도시생활과 관련이 크다고 본다. 석유 부산물副産物로 가득찬 시장市場과 자동차 배기가스 그리고 석유 부산물제품으로 도배한 환경이 주범主犯일 것이다. 스모그가 원인일 것이다. 의사가 치료를 포기한 중병환자가 물 맑고 공기좋은 산속에 들어가서 자연식 먹고 기적奇蹟처럼 낫는 사례가 흔하다.

둘째 집, 좁은 땅에 사람은 많고 주거지는 동이났다. 그래서 아파트가 등장했는데 시멘트건물의 우중충한 잿빛과 비둘기집 같은 격리隔離구조가 얽혀 사회적동물이라는 인간의 모둠살이는 실종되고 고립孤立이라는 부정적인 현상만 남았다. 앞집에 혼자 사는 사람이 죽어 3개월 간 방치되어도 모르고 지낸다. 농본農本사회에서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아는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 먼 친척 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속담도 사라졌다. 도시는 이웃사촌이 없다. 인성人性이 매말라버렸다. 사람이 거리에 쓰러져 뒹굴어도 못 본 체 지나친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성경에만 박제剝製되었다. 사회적동물이라는 가설假設도 변질變質되어버렸다. 사회적동물은 공동체를 말하는데, 많이 모여 살기는 하는데 모두 따로따로다. 대신 경쟁과 탐욕과 사회악社會惡들이 설친다.

셋째, 하수下水와 쓰레기

거대도시도 아닌 인구 120만여 명의 광주광역시에서 환경미화원의 파업이 일어났다. 3일 동안 거리는 쓰레기로 넘쳤다. 악취와 파리 등 벌레가 들끓고 여름철인데도 사람들은 문을 닫아걸고 살았다. 쓰레기처리장 건설부지敷地 문제로 도시와 인근 시골마을의 분쟁이 잣다. 님비현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거대도시에서 발생하는 하수로 인해 인근 강물은 농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3급수의 시커먼 썩은 물이 흐른다. 도시가 이렇게 거대화하지 않았을 때, 중학교시절 광주를 남북으로 관통貫通하며 흐르는 광주천에서는 아이들이 헤엄을 치며 물고기를 잡았다. 밤이면 아낙네들도 목간沐間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피라미도 살지 못하는 죽은 강이 되었다. 바벨탑을 꿈꾸었던 인류의 후손後孫들이 벌인 욕심 때문이다. 자연이 오염汚染되면 자연계 생물들이 죽고 결국 자연에 기대어 사는 인간도 사라진다. 이미 많은 동식물이 멸종했고 멸종되고 있다.

넷째, 사회악이다. 이웃끼리의 단절, 소통 부재가 경쟁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상의 모든 사회악의 발상지가 되어 있다. 시골의 작은 공동체마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회악이 도시의 거대화에서 발생한다.

 

 

48. Global글로벌화의 함정陷穽

 

수상首相! 왜 당신, 변기통에 바짝 붙어 소변을 보는 거요?”

의회에서 철도 국유화國有化를 놓고 야당대표와 한창 논쟁 중이던 처칠 영국수상이 잠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들렀다. 뒤따라온 야당당수野黨黨首가 옆 칸에 들어서며 농담쪼로 말을 걸자 처칠수상이 맞받아쳤다.

거야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담비니까.”

큰 걸 좋아하는 것은 사람뿐인 것 같다. 바벨탑을 하늘에 닿게 쌓으려고 했던 바빌론사람들이나,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페루사막의 거대한 형상들을 그린 사람들이 다 큰 걸 좋아했다. 이집트의 피라미트는 또 어떤가? 300톤이 넘는 돌들도 있다니까 그 엄청난 규모에 혀를 내두른다. 현대과학이나 건축기술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게 있다. 신은 사람들이 하늘 높이, 신의 영역에 접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회적동물이다

사자도 사회적 동물인데 그들은 ‘Praud프라우드라는 가족 집단을 만들어 공동생활을 한다. 호랑이는 개별적인 동물이다. 겨울철 짝짓기 때만 암수가 만나 생활하지만 교미가 끝나면 숫컷은 미련없이 암컷을 떠나고 새끼는 암컷이 키운다. 사자의 프라우드는 숫사자 한 마리에 암컷이 서너 마리 그리고 새끼들이다. 숫사자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막아 가족을 지키는 일을 하면서 종족 보존을 책임진다. 암컷들이 사냥해온 먹이를 제일 먼저 먹는 특권을 누리면서 나무그늘에서 빈둥거리며 놀거나 잠만 잔다. 그러나 외적外敵의 침입은 혼자서 목숨을 걸고 지킨다.

개미나 벌이 훌륭한 집단생활을 하지만 철저하게 분담하여 공동생활을 할 뿐 인간사회 같지 않다. 선천적先天的으로 여왕벌은 새끼를 낳고, 일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며, 숫벌은 여왕벌과 교미交尾를 하여 종족을 번성시킨다. 여왕벌은 줄곧 새끼만 낳는다. 각각 임무가 명확하다. 겨울이면 철새 도래지渡來地에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들어 펼치는 군무群舞는 황홀하다. 허나 이는 집단생활은 될지언정 공동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농경農耕시대 인간의 공동생활은 가족 단위의 소규모였다. 대가족이라야 100여명 내외內外가 살았다. 가족, 친척의 부족마을이다. 그런데 산업시대가 되면서 거대도시들이 생겨났다. 혈연血緣이 아닌 이질적異質的인 집단이다. 거대도시는 대량생산을 추구하면서 거대인구집단을 형성했다. 주거가 필요했다. 좁은 땅에 인구가 늘어나니 아파트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건설되었다.

도시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구조가 형성되어 발전했는데 그에 따른 수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사람이 많으므로 상하수도, 도로와 교통, 쓰레기, 교육들이 복잡해졌다. 그런 가운데 도시의 나쁜 특성들이 나타났다. 경쟁, 소외, 범죄와 인간성 말살도 시작되었다.

농경시대에서는 적당한 농토를 가지고 식구들의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면 되었는데 도시화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세세손손世世孫孫 대물림하려는 가업家業이 번창繁昌했다. 이웃들과 비교하면서 경쟁했다. 경쟁이 시작되자 불법 편법便法이 기승氣勝을 부렸다. 경찰이 바빠지고 법원은 소송인訴訟人들로 가득찼다. 인디아의 카스트제도 처럼 상위층, 중산층, 서민庶民과 빈민貧民들의 구분이 뚜렸해졌다. 거기다가 성장과 발전이 한계를 모르고 달리는 것만큼 소비에서도 계층階層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석유자원이 고갈枯渴되고 가스로 대치代置되고 있지만 가스가 고갈되는 것도 머지않다. 태양열이나 바람, 지열地熱 그리고 파력波力을 이용한다지만 자원 고갈은 임계점臨界點에 와있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워지는 산림 파괴도 심각하다. 임산물과 식량 조달을 위해 산림이 파괴되고 산림이 파괴된 열대우림은 황무지가 되어 사막화한다.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다보니 지구의 온난화도 심각하다. 해마다 남북극이 녹아내린다. 얼음이 녹는 속도는 남북극 지표地表가 거의 다 들어났다. 대기층이 지열로 더워져 있는데 얼음이 녹고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 지구는 수증기로 덥히고 대기권이 수중기로 덥히면 햇빛과 햇볕이 차단되어 다시 빙하기가 온다. 지구는 유성流星 충돌이나 지진 등 재해 때문만이 아니라 빙하기로 멸망할 공산公算이 더 크다. 이를 방어防禦할 기재機材는 인구의 분산과 공해公害의 절감節減이다. 도시를 해체하고 농어산촌으로 인구를 소규모화 분산시키면 남북극 빙산이 녹아가고 아프리카 밀림이 파괴되는 건 억제할 수 있다. 인구를 분산시키면 대량 소비가 억제된다.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더라도 분산되어 빙산이 녹는 일이 없다. 거대도시를 분산시키면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 또는 대량의 임산자원을 개발한다고 삼림을 파괴하는 일은 없다. 적어도 당분간 인위적인 온난화의 지구 멸망은 피할 수 있다.

물질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는 정신적으로도 멸망의 임계점에 와있다. 발전과 변화라는 세기世紀의 명제命題를 설정하고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에 몰입하는 한 인간의 정신은 파탄되고, 마치 사슴이나 들쥐처럼 스스로 레밍현상을 보일 수도 있다. 십자군원정이나 세계 제 1, 2차대전 그리고 콜레라와 페스트가 이를 증명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왜 더 조바심이 날까? 걸음보다도 한참 빠른데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걷는 사람 보다 더 조급躁急하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자동차를 타는 사람보다 더 바쁘다.

 

 

49. 행복마을

 

혁신도시는 지방분권과 서울의 거대도시화에 대한 자구책이다. 자치단체는 유입인구를 유인하기 위하여 행복마을을 만들었다. 여나문 가구들이 넉넉하게 들어서서 텃밭을 가꾸며 산다. 때로는 공동체로 역할도 한다. 공동경작을 통해 식품을 조달하고 가끔 공동체 가족들의 놀자판을 연다. 많은 것을 비축備蓄하지 않는다. 의식주의 최소한을 목표한다. 그래서 경쟁도 욕심도 갈등도 없다. 텃밭에서 생산 된 것으로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분쟁도 없다.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어도 식구들이 먹는 채소가 충분하다. 이웃과 나눠먹어도 남는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도 없다. 상하수도 문제가 있나 쓰레기가 문제가 되나. 자기들이 가꾸고 자기들의 입에 들어가므로 농약 걱정도 없다. 지금은 노후 은퇴자들이 선호하는데 궁극적으로는 행복마을이 인간생활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예술인의 마을도 있고 출판도시도 있다.

Whil Chair휠체어를 타고 빈 상자를 줍는 할머니를 보았다. 우리 아파트 이웃 산마을에는 빈 집에 할머니와 두 남자가 동거한다. 혈연血緣이 아닌 듯 한데 서로 의지하며 휴지를 주워 연명延命한다. 학교 부근 건널목에서는 꼬부랑 할머니들이 신호기를 들고 교통정리를 한다. 하루 5천원도 못되는 돈을 벌려고 세찬 겨울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허리를 웅크리고 있다.

시골에 사는 우리 어머니는 다르다. 올해 아흔인데 허리는 로 꼬부라졌으나 눈만 뜨면 마을회관의 경로당으로 출근한다. 경로당 지원비로 냉난방도 하고, 공동취사로 점심을 먹고 하루 종일 모여 논다. 텃밭의 채소농사나 집안의 가축은 잠시 잠깐씩 거든다. 조금 늑장을 부리면 경로당 친구들에게서 바로 연락이 온다, 밥 다 식는다고 어서 와 밥 먹으라고. 반찬은 각자 집에서 가지고 가서 나눠먹는다. 화투도 치고 길쌈도 한다. 대화對話야 소통이고 뭐고 더 말이 필요 없다. 도시 노인들 보다 더 가진 것도 없다. 더 가난하다. 그래도 도시 노인들 보다 더 행복하다. 도시와 시골의 차이다. 돈 들 일이 별로 없다. 기껏 명절에 찾아오는 손자들에게 주는 용돈이 용처用處의 전부다. 외롭지도 각박刻薄하지도 않다. 더 많은 생활비를 가지고도 도시에서는 비참悲慘하게 사는데 시골에서는 양반 부럽지 않다. 시골생활의 마술魔術이다. 시골에서는 누가 몇 백만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관심이 없다. 쓸 데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노인들은, 젊은시절 농토農土와 가산家産을 팔아 도시로 나와 온갖 막노동을 하며 새끼들 가르치고 시집장가 보내고 부부만 남았다. 자식들은 자기들 먹고 사느라고 부모를 돌볼 여유가 없다. 도시에 홀로 남은 노인은 도시환경에 찌들려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왜 자살을 하려고 했느냐고 물으면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시골을 선택했으면 막다른 자살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못 사는 쿠바나 북한 주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 보건이 무료고 다같이 못 살기 때문에 소외감이 없어 그들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몰골을 하고도 이를 들어내놓고 편하게 웃는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웃긴다고 한다. 마치 거렁뱅이가 불 난 집을 보며 우리는 불 날 염려가 없어 안심이라는 말과 상통相通한다. 그래도 그게 행복이다.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하는 것 보다 행복하다. 많이 가진 틈에서 절절한 가난을 벽에 붙이고 사는 반지하半地下 월셋방생활 보다는 공동취사로 따순 밥 먹고 경로당에서 쩜 당 백 원짜리 화투花鬪치는 게 더 행복하다. 1인당 몇 십만원짜리 고급식당에서 몇 백만원짜리 양주洋酒 먹고 거창하게 트림을 하고 나와봐야 화장실 한 번 가기는 마찬가지다. 포도씨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스레트집이지만 몇 십억씩 하는 아파트생활 보다 더 사는 게 걱정이 덜하다. 이태리 대리석 변기便器에 앉아 똥을 눈다고 황금색 변을 싸는 것도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변이 황금색이다. 그래서 몸도 더 건강하고 마음도 더 건강하다. 대장大腸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작은 공동체생활을 이루면 마음은 바람이고 대변大便은 황금색이 된다. 참고로 우리 몸의 위장胃腸은 소화消化를 하는 기관이고 정말로 영양분을 피로 공급하는 장기臟器는 대장大腸 소장小腸인데 면역력의 70 - 80%를 담당한다. 대장이 건강해야 건강하게 산다.

 

 

50. 순천자順天者

 

어린시절 시골에서는 자동차를 타는 건 엄두를 못내고 보는 것만도 새로웠다. 신작로新作路라고 했다. 고샅길 밖에 몰랐던 우리들에게 넓고 곧게 뻗은 직선 신작로는 낯선 경외敬畏의 대상對象이었다. 하나님 버금가는 대상이었다. 큰 맘 먹어야 신작로에 놀러갔다. 어른들은 초봄 논밭일을 시작하기 전 울력을 했다. 면사무소직원이 나와서 우리 마을이 맡을 신작로 분량分量을 통째로 1Km 쯤 분배하면 구장區長이 집집마다 울력할 길을 10에서 20m 가량 나눴다. 울력은 자동차가 다녀서 패인 길을 보수하는 것인데 굵은 자갈을 깔았다. 마을 앞 박쟁이고개길은 경사傾斜가 심한 직선도로였는데 목탄차들은 단번에 올라채지 못했다. 열이면 열 다 가쁜 숨을 털털털 몰아쉬다가 뒤로 빠꾸back를 했다. 조수助手가 내려와 큰 돌을 뒷바퀴에 괴고서야 차가 멈췄다. 그 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조수가 부르지도 안 했는데 우리는 의례 우리가 할 일이라는 듯 차 꽁무니에 달라붙어 자동차를 밀었다. 젓 먹던 힘까지 쏟아내고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될 즈음 자동차가 푹푹거리며 살아났다. 그리고 비틀비틀 지그재그로 오르면서 내뿜는 가스냄새는 숨이 막힐 정도로 매콤했으나 우리는 그런 냄새가 역겹지 않았다. 오히려 그 가스냄새가 신기해서 일부러 들여마시는 아이들도 있었다. 간신히 고개마루에 다다르면 운전수가 내려와 고맙다고 눈깔사탕을 줬다. 그리고 인사치레로라도 차를 탈 일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다.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우리는 차를 타고 외출할 일은 없어서 운전수의 선심善心은 늘 공나발이었다.

중학생 때 광주로 유학留學을 하면서 정기定期여객을 탔다. 정기여객이 하루 너댓 번 집 앞 신작로를 다녔는데 박쟁이고개를 넘자면 콜록콜록 재채기를 수없이 내뿜어야 한숨을 돌렸다. 열두 굽이가 깍아지른 절벽으로 된 섯거리재를 넘다가 차의 시동始動이 꺼져서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눈치 빠른 조수가 후진後進하여 절벽絶壁에서 추락墜落하게 된 찰라 큰 바위덩어리를 뒷바퀴에 괴었으니 망정이지 그 순간을 놓쳤더라면 50m 절벽 아래로 차가 추락했을 것이니 박살이 났을 것이다. 엄청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 너릿재를 넘다가 자동차 바퀴가 빠져 싣고 오던 쌀자루를 차에 두고 30릿길을 걸어 귀가歸家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다섯 대다. , 아내, 장남과 며느리 그리고 작은 아들이 모두 자가용을 운행한다. 무덤에 계신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신다면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도로 환생還生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가용이 일반화되면서 반대급부反對給付도 그 편리한 만큼 댓가를 치러야 한다.

어린시절, 논에 나락이 여물 즈음 똬리를 쳤다. 허리띠처럼 짚으로 엮어 만든 똬리를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반대 방향, 태극太極 모양으로 휙! 구부리면 딱총소리가 나서 나락밭에 내려앉아 아직 여물지 않은 뜨물 나락을 까먹던 참새가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 발동기에서 나오는 폐유廢油로 멸구를 방제防除했다. 폐유를 한 방울씩 떨어뜨려 벼멸구를 죽였다. 멸구 외에는 논의 병충해가 없었다. 약을 뿌리지 않아도 폐농廢農을 할만큼 병충해가 극성스럽지 않았다. 폐유도 없어서 못 뿌린 농가는 멸구가 좀 먹게 놔두었다가 그냥 추수秋收했다.

목화木花를 수확하여 마당 멍석에 널어놓으면 목화송이에서 빨간 벌레들이 기어나왔다.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닭들이 좋아라고 달려들어 쪼아 먹기도 하였으나 닭은 두 발로 헤비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대개는 손으로 잡아 닭에게 던져주었다. 소나무에 기생하는 송충이는 나무가지로 젓가락을 만들어 잡았다. 배추나 무도 파란 벌레를 손으로 몇 번 잡아주면 그뿐이었다. 그 파란 벌레가 배추흰나비 유충幼蟲이란 걸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DDTBHC라는 허연 가루약이 나왔는데 채소에는 만병통치萬病通治라고 배춧잎이 허옇게 될 때까지 마구 뿌렸다. 머릿이를 잡는다며 머리칼에 허옇게 뿌리기도 했다. 지금 세상에서는 아찔한 기억이다. 그런데 지금은 농약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한다. 우리 학교 담장언덕에 감나무가 대여섯 그루 있었다. 제법 감똥꽃이 피었고 조랑조랑 열매가 달렸는데 약을 치지 않고 놔두었더니 성한 감 한 개도 남지 않았다. 온갖 농작물은 농약 투성이다. 농민들도 영악해서 자신들이 먹는 농산물을 따로 재배를 한다. 지금은 친환경농법이 유행하고 벌레 먹은 유기농채소만 골라 먹는 사람들도 늘었다.

, 우리 어린시절, 그러니까 4, 50년대에는 모르던 병이었다. 기껏 홍역紅疫이나 고뿔감기 정도를 앓았다. 요즘에는 무슨 병이 그렇게나 많은지 몸 전체가 종합병원처럼 생각된다. 병균들도 영악해져서 약을 쓰면 더 강한 병균으로 스스로 진화進化를 한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풀루가 변형종 바이러스다. 변형종은 백신도 없다. 어린시절에는 듣도 보도 못한 병들이 창궐猖獗하고 있다.

어린시절 초겨울이면 타조 비슷한 새들이 집 앞 밭에 수십 수백 마리가 내려왔다. 우리는 갱생이라고 불렀는데 정식 학명學名은 고니다. 덩치가 송아지만 해서 아이들이 돌맹이를 던져도 꿈쩍도 안 했다. 돌맹이를 주워 던지면 멀리 가지도 않고 서너 발 날다가 내려앉고는 해서 쫓는 사람들이 먼저 지쳤다. 보리를 뿌리 체 뽑아 먹기 때문에 골치였다. 집집마다 닭 오리 등 가축家畜을 길렀지만 그래도 AI라는 병은 듣지 못했다.

질병도 진화한다. 카만 앉아서 죽진 않는다. 인간이 신약新藥을 개발하면 그에 따라 병균도 나름대로 대처對處를 하여 진화를 한다. 벌레가 생겨서 농약을 뿌리면 벌레에게 내구성耐久性이 생겨 농약에 강한 벌레로 둔갑遁甲을 한다. 그래서 더 독한 농약을 개발하면 벌레도 따라서 강인强忍해진다. 인류의 발전이 만든 악순환惡循環이다. 이제라도 원시쩍으로 돌아가면 질병들에게 당하는 수모受侮를 줄일 수 있다. 사람이 자주 앓는 가장 기초적인 질병인 감기는 21c까지도 약이 없다. 백신도 없다. 신종新種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인간은 허둥지둥 백신을 개발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백신 개발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백신을 개발해봤자 다시 다른 신종新種으로 진화해버린다. 인류와 질병의 숨바꼭질이다. 어린시절에는 이렇게 질병이 많지 않았다. 의료기술이 취약脆弱해서 발견을 못한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질병이 많지 않고 독하지도 않았다. 의학의 발달이 질병의 진화를 부추겼다. 이를 극복하려면 몸의 면역력免疫力을 강화해야 하는데 도시생활은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역리逆理. 면역력을 강화强化하려면 시골로 되돌아가 살아야 한다. 순리順理대로 살아야 한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가르침이다. 옛 소규모단위 마을 공동체로 돌아가면 이런 병폐病廢들이 사라진다. 5천만 명의 절반이 서울지역에 모여살기 때문에 교통, 먹거리, 상하수도 등등 어려운 현상들이 생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똑같은 5천만 명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면 거대화 문제에서 일어나는 모든 병폐를 막을 수 있다. 지구 온난화溫暖化도 막을 수 있다. 고조선古朝鮮시대 환인천왕桓因天王의 역대歷代3,301년인데 일곱 분 천왕이 다스렸다. 그렇다면 계산해보라, 한 천왕이 500년을 다스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500세를 살았다는 이야기다. 성경의 Abraham아브라함은 100세에 Isack이삭을 낳았는데 부인 Sara사라가 90세 때였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다.

 

 

51. 독방獨房

 

감옥에서 가장 엄격한 형벌은 체벌體罰이나 노동勞動이 아니라 독방獨房이다. 수형자受刑者들은 오히려 밖에서 태양빛을 쬐며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노동을 선호選好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독방 1주일은 감방 1년과 같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동물은 사자나 호랑이가 아니다. 무리에서 쫓겨난 외톨이다. 집단에서 왕따당한 코끼리는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떠돌이가 되어 좌충우돌左衝右突 움직이는 것만 보면 공격한다. 늑대나 하이에나도 외톨이가 되면 사자나 코끼리에게도 덤빈다. 이유도 없이 보이는 것에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조건 덤빈다.

지구촌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인디아다. 유럽 선진국의 입장에서 인디아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나라다. 맨발에 누더기 같은 사리 한 장을 몸에 둘둘 말고, 까맣게 탄 얼굴로, 마치 Cobra코브라처럼 똬리를 틀고 보리수나무 그늘에서 하루 종일 명상瞑想을 한다. India인디아의 Kast카스트제도는 Braman브라만, Ksatrea크샤트리아, Bay놈바이샤, Sudra수드라 그리고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디언은 이 신분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태생적胎生的이기 때문이다. 브라만으로 태어나면 대대손손代代孫孫 브라만으로 산다. 한 번 수드라는 영원히 수드라다. 뉴델리나 봄베이는 화려하지만 한 발 도시를 벗어나면 불가촉천민들이 도시의 쓰레기나 오물汚物을 처리하며 살아간다. 오물 썩는 냄새와 파리, 모기 등 벌레들과 함께 산다. 산림 개발로 삶터를 빼앗긴 사자들이 출몰하여 사람을 물어가고, 흔한 코프라가 사람을 물어죽이는 일도 년 간 만 명 정도다. 산림에서 갑자기 킹코브라를 만나면 사람은 물리기도 전에 기절한다. 기괴한 모습과 가짜 눈을 제외하고도 벌떡 일으켜 세우는 몸체만 2m. 몸체말고도 3m 정도의 기는 꼬리가 더 있다. 그래서 킹코브라는 물소도 잡아먹는다. 기껏 10m 안팍의 뱀이 400Kg이 넘는 물소를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을까? 그러나 킹코브라에게 걸리면 물소는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먹힌다. King Cobra킹코브라가 엄청난 독을 가졌지만 킹코브라에게 물려도 물소는 끗떡도 없다. 물소의 단단한 가죽 때문에 독이빨이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우선 긴 몸으로 물소를 칭칭 감아 질식을 시켜 죽이고 엄청난 힘으로 물소의 몸을 조여서 꽈배기처럼 길게 만들어 삼켜버린다. 삼키는데만 몇 날 며칠이 걸린다. 물소를 먹은 킹코브라는 1년 동안 먹지 않아도 된다. 밀림을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2m나 되는 도깨비가 눈앞에 벌떡 일어섰다고 상상해보라. 인디언은 코브라에 죽는 걸 불가항력不可抗力이라고 체념滯念한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생명에 대한 인식도 가볍다.

호랑이의 영역은 300Km² 정도인데 산림 개발로 산림에서 쫓겨난 호랑이가 마을을 침범한다. 해마다 만 명 이상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다. 그런데 인디언의 의식은 사자나 코프라에 희생된 걸 크게 안타까와하지 않는다. 인구가 많고 넘치니 인명의 희생을 간과看過한다. 인구밀도는 인간을 타락墮落시킨다. 밀도가 높은 거대도시는 정글의 법칙만 횡행橫行한다. 한 발 밖으로 나서면 교통지옥, 언제 덮칠지 모르는 자동차들을 피해 다니느라 생존경쟁生存競爭이 벌어진다.

레밍이라는 쥐는 몇 년에 한 번씩 집단자살을 한다. 종족이 불어나 밀도가 높아지면 스스로 무리를 지어 강으로 달려가 자살을 한다. 시베리아의 순록무리도 같은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갈 세상이란 말을 수없이 들었다. 특히 구름다리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하면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수시로 깨우친 금언金言을 가슴에 새겼다. 광주 계림동에서 살던 중학생 때, 갑자기 터진 설사로 무작정 길 옆 쪽문을 열고 들어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이라야 거친 나무둥치를 몇 개 가로질러 걸쳐놓고 비닐 장막으로 둘러친 간이簡易 변소였다. 참을 수 없어 바지에 용변을 할 참이라 앞뒤를 잴 여유가 없었다. 느닷없이 모르는 학생이 들어와 용변을 하는 걸 곱게 봐줄 도시민은 없다. 변소 푸는데도 돈을 들여야 했던 시절이다. 변소에서 나오면서야 눈을 흘기면서 기다리는 아주머니께 꾸벅 절을 하면서 미안합니다, 설사가 나서라고 변명했지만 뒤통수가 부끄러웠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길 가에 움막 같은 공중변소公衆便所를 지어놓고 가급적이면 우리 변소를 이용해달라고 애교를 부리던 때였다. 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화장실인심이 다른가? 거대도시는 인간의 모든 부조리가 집적集積된 곳이다. 의식주衣食住 뿐만 아니라 성공과 실패가 확연하고 빈부차貧富差가 확실하게 들어난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불법을 개의介意치 않는다. 돈이 최고의 가치價値. 광주는 전국에서 아파트 점유율이 제일 높다. 무려 70%. 회색 비둘기집의 음침한 빛깔만의 도시 색상色相, 외부요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Apartment아파트의 내부에는 이웃의 단절斷切과 고립孤立 그리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심지어는 가족과 소통疏通도 단절시킨다. 도시는 주거형태, 교통交通 그리고 의식주 모든 것들이 생산과 소비의 각축角逐이다. 가장 일차적인 먹고 사는 것 자체가 경쟁이요 욕망이다. 그래서 도시는 삶을 피폐疲弊롭게 한다. 범죄의 온상溫床이 된다. CC-TV를 아무리 늘려봐야 범죄를 방어防禦할 수 없다. 도시 생태가 범죄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마치 Sisyphus시지프스의 슬픈 신화다. 인간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돈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돈은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돈이 인간의 충실한 하인下人이 되어야 하는데 돈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도시만큼 법질서가 필요한 곳은 없다. 시골이야 법 없어도 산다. 많이 모여 삶으로써 부정적인 것들이 횡행하고 법, 특히 형법은 도시를 위해서만 필요하다. 도시의 파출소와 시골의 지서에는 같은 제복과 모표를 단 경찰들이 근무를 하지만 눈빛부터 다르다. 도시 경찰의 눈에는 파출소를 기웃거리는 시민들이 준범법자로 보인다. 그런데 시골 지서의 경찰의 눈에는 마을 사람들이 삼촌이나 이웃사촌 아저씨로 보인다. 시골은 머리에 든 것도 비슷하고 가진 것도 비슷하다. 먹거리도 같다. 만약 도시인이 시골로 낙향落鄕하여 티를 내다가는 사흘도 못견디고 스스로 물러난다. 옛날 시골에서는 웃음소리가 담을 넘지 못하게 집안을 단속했고, 굴비나 너비아이 굽는 냄새가 울타리를 넘지 못하도록 엄하게 제지했다. 쌀 한 톨도 나눠먹는다는 게 시골인심이다. 시골은 법이 필요 없다. 도시를 해체하고 작은 공동체마을로 돌아가자. 요즘에는 많은 퇴직자들이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집을 짓고 자연을 즐기며 산다. 의사가 포기한 만성질환慢性疾患과 불치不治의 병도 스스로 낫는다. 시한부時限附 판정을 받은 암환자들이 기적같은 자연치유를 겪는 곳도 시골이다.

 

 

52. 작은 공동체국가

 

천안함사태 때 국뻥부는 철새를 향해 포격을 하고, 북한 장거리사정포가 연평도를 포격하자 들쥐를 향해 포격을 했다. 부랴부랴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 연평도로 날아가 잠자다가 죽은 병사 50여명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보상금도 10억을 넘었고 공원을 만들어 추모비追慕碑도 세웠다. Russia러시아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려고 하자 급조急造Seminar세미나를 하겠다고 러시아로 날아가 조사단의 입을 막았다. 한국군과 미국군의 첨단장비를 놔두고 가장 원시적인 쌍끌이어선을 동원해서 1번 어뢰의 Engine엔진을 건져내는 개가凱歌도 올렸다.

국가는 영토를 보전保全하고 국민의 생존을 수호하기 위해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 죽이고, 영웅이라는 허울좋은 너울을 씌워 호도糊塗한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누가 젊은 나이에 전장에서 죽고싶겠는가? 많이 살아 명이 얼마 남지도 않은 위정자僞政者들은 전장戰場의 후방後方에 물러앉아서 젊은이들보고 어서어서 전장에 나가 죽음으로 애국하라고 등을 떼민다. 쇠로 만든 훈장勳章을 달아주면서 영웅이라고 호도糊塗한다. 생떼같은 젊은이들이 갓 피어나는 나이에 내 가족의 안위安危를 지키고 조국을 수호한다는 미명美名 아래 희생을 감수甘受한다. 나는 그런 나라에서는 아나키스트無政府主義者가 되고싶다.

너댓 명, 퇴직하여 노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가끔 점심을 먹는 모임이 있다. 퇴직하면서 모든 모임을 끊어버렸는데 이 동창모임에서 초대를 하여 점심 한 끼를 얻어먹은 값으로 드나들고 있다. 퇴직하고서는 수도修道하는 스님처럼 다 끊고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가 모처럼의 파계破戒. 점심을 먹고 차를 나누며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며칠 전에는 베트남 파병派兵이 주제였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5. 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경험담을 이야기 하다가 박정희, 전두환의 얘기가 나오고 베트남전이 입살에 올랐다. 대령大領으로 전역轉役한 친구가 월남 참전參戰 실화實話를 얘기했다. 처참한 살육을 보고 들은대로 말했다. 대령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결론지었다. 베트남 파병派兵은 역사적인 오류誤謬. 화가畵家 친구는 베트남전쟁은 베트남인들의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친 친구는 경제부흥을 얘기했다. 베트남 참전은 미국의 참전 요청을 거스리지 못한 용병傭兵이었는데 정부는 희생의 댓가로 얻은 달러가 우리나라 부흥의 밑천이었다고 호도糊塗한다. 마치 이승만독재獨裁에서 민주국가로 이양移讓되는 시기의 혼란을 틈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簒奪하고는 구국救國의 쿠테타라는 논리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奇蹟으로 보릿고개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경제 발전의 기틀을 세웠으니 국가중흥을 이룩했다는 논리다. 용병의 목숨 값으로 경제가 얼마나 윤택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5천여 명의 생때같은 젊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죽은 희생자와 수천 명의 고엽제枯葉劑 피해자들이 후유증後遺症이 남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후유증은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한 역사적 오류다.

세계 제 2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와 도이치의 히틀러나치와 파시스트 뭇소리니가 애국을 외치면서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희생시켰다. 왜 그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야만 하는가? 자유, 평등의 호사豪奢로운 기치旗幟에 젊은이들이 목숨을 희생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국가는 전쟁에 내몰아 죽은 영혼을 영웅으로 추대推戴하여 기린다. 국군묘지에 안장安葬하고 참배參拜도 한다. 물론 참배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아 죽게 한, 자기들은 뒤에 물러서서 전쟁을 입으로만 독려督勵했던 정치가들이다. 쇠로 만든 훈장勳章을 죽은 목에 걸어주며 영웅이라고 한다. 일본의 야스꾸니 신사神社가 대표적인 상징이다. 미국의 웰링턴 국립묘지나 우리의 동작동 국립묘지도 있다. 그러나 그 원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애국에 젊음을 바쳤노라며 영광스러워할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이산가족離散家族이 있다. 이 이산가족 상봉相逢을 두고 남북한 정치가 줄다리기를 한다. 이산상봉은 끊어졌다 이어지고 또 정치적 상황에 따라 끊어진다. 남북분단 60여년이 되었으므로 이제 이산가족의 연령대는 8, 90대다. 이산가족은 지금 5만여 명이 남아있는데 가까스로,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열린 5년만의 상봉이 불과 백여 명이었다. 죽기 전에 부모형제의 얼굴 한 번 보자는데 참 어렵다. ‘단장斷腸의 고사故事에서 새끼를 빼앗긴 원숭이가 슬퍼하다가 갑자기 죽었는데 죽은 어미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게 국가라면, 정치라면 국가 같은 건 없는 것이 더 낫다. 차라리 아나키스트無政府主義者가 되고싶다.

십자군원정十字軍遠征을 한 것도 국가주의다. 세계 제 1, 2차대전을 일으켜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한 것도 파시스트정부다. 인디아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무고無故한 사람을 죽인 것은 영국이라는 왕정王政국가였다. Napolleon나포레옹은 유럽을 통일제국으로 만들겠다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남북한은, 분단은 안 된다며 통일국가를 제창提唱하며 6. 25 동족 상전의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이 죽었고 온 나라가 폐허廢墟가 되었다. 옳은가? 홀로코스트에서 나치에게 무고하게 죽은 600만의 잔학상殘虐相, 수십만 명의 시민들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구덩이를 파서 생매장生埋葬한 남경학살南京虐殺을 자행恣行한 일본제국주의도 국가다. 전쟁이 일어나면 애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인다. 전쟁터에서 병졸兵卒은 소모품消耗品이다. 다 쏘고나면 다시 채우는 총알이고 총알받이다. 극단적인 사례가 가미가제神風. 일본제국주의는 세계 제 2차대전을 대동아전쟁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아시아 공존共存을 외치며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에게 천왕폐하의 어주御酒 한 잔씩을 하사下賜한 뒤 미국군함에 자살공격을 명령했다. 비행기는 편도偏道 연료만 주었다. 영광스럽게 국가와 천왕폐하를 위하여 순사殉死를 강요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천왕이 하사한 어주 한 잔을 마시고 덴노헤이까天王陛下萬歲를 외치며 미국 함정에 비행기 채 폭사暴死했다. 군국주의자들은 자기들은 소파에 편안히 앉아서 애국과 평화를 앵무새처럼 외치며 젊은이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낸다. 평화와 정의를 외치며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살상殺傷을 합리화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영웅이 되라고 사주使嗾한다. 사람을 죽이면서 자유를 외치고 소이탄燒夷彈을 퍼부어 마을을 폐허를 만들고 무고한 사람을 화염방사기火焰放射器로 불태워 죽이면서 평화라고 말한다. 한 조각 땅덩어리 영토를 위해 싸우고, 종교가 다르다고 죽인다. 이념이 맞지 않다고 쳐들어가며, 정말 어처구니 없는 빌미, 황태자의 저격狙擊으로도 수백만 명이 죽는 세계 제 1차대전이 일어났다.

중국의 삼국지는 불후不朽의 명작名作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읽다보면 장군將軍들은 물론 병사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소모품이다. 조조와 손권의 적벽싸움에서는 조조의 백만 대군이 수장水葬되었다. 알렉산더는 이교도異敎徒들의 땅을 점령하여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세우려고 이슬람을 폐허로 만들었다. 나폴레옹의 전쟁, 세계 1, 2차대전 그리고 징키스칸의 세계 통일의 야망野望은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죽어갔는가? 징키스칸은 점령지의 인간은 물론 가축과 집까지 약탈掠奪하고 초토화焦土化시켰다. 징키스칸의 군대가 지나간 뒤에는 풀 한 포기조차 없었다는 잔인殘忍한 기록이 있다.

'느슨한 국가'이 필요하다. 호랑이의 영역은 대강 300Km². 곰의 영역은 100Km² 정도인데 호랑이의 영역 안에 있다. 둘 다 엄청난 힘, 서로 그 힘을 알기 때문에 부딪히는 걸 피하며 공존한다. 또 호랑이는 육식肉食이지만 곰은 잡식雜食이라 먹이가 겹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에서 먹이는 제 1의 생존권이다. 그런데 인간은 먹이가 해결되었는데도 전쟁을 벌인다. 지구상에서 전쟁은 하루도 그치지 않는다.

 

2006Cotdibuar코트디부아르가 역사상 최초로 World Cup월드컵 본선 Tiket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날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천재天才 Drogbar드로그바가 방송국 Camera카메라 앞에 무릎을 끓었다.

"제발, 일 주일만이라도 무기武器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그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5년 간의 내전內戰으로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난민難民이 무려 70만 명이었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의 말을 받아들려 정부군政府軍과 반군叛軍의 지도자들이 정말로 한 달 동안 전쟁을 멈추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드디어 정부군과 반군이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5년 동안 계속되던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끝났다. 한 명의 축구선수가 전쟁을 멈추게 한 것이다.

20147,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때 Roma로마교황敎皇도 이와같은 제안을 했으나 Iraq이라크 내전內戰, Israel이스라엘과 Palestin팔레스타인전쟁 그리고 Ukraina우크라이나 내전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도 News뉴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Gaza가자지구 폭격으로 1,000명이 희생되었다고 전한다.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UN유엔학교를 폭격해서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이들 땅따먹기처럼 구획區劃을 긋지말고 인접한 나라 인접隣接한 민족들이 자유롭게 국경國境을 드나들 수 있도록 국경을 열고 서로 왕래하며, 인종人種은 섞이고, 종교는 상호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유연柔軟한 국가관이 필요하다. 흑인과 백인이 섞여 살고, 이슬람과 불교가 공존하고, 일부일처제와 할렘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지구촌연방제를 표방標榜하는 세계관이 필요하다.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국이 부상扶桑하여 지구촌의 패권覇權은 미국과 중국이 각축角逐을 벌이고 있다. 큰 영토領土를 가진 나라들이다. 큰 영토가 문제다. 미국은 연방聯邦을 해체하고 주정부를 독립된 정부로 만든다. 중국은 성정도의 정치체제로 분리해서 작은 국가들로 나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은 Israel이스라엘의 Kibbtz키브츠協同農場나 북한의 협동농장 그리고 대한민국의 행복마을 같은 작은 공동체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협동체를 만든다. 전쟁의 원인은 크게 영토와 종교 그리고 사상이념이다. 거대巨大 패권覇權국가를 잘게 쪼개 공동체마을 같은 국가체제로 개선한다. 국가개념과 영토개념을 바꾸면 일단 전쟁의 제 1 요인要因이 사라진다. 개념적인 국가 제 1 조건은 평화다.

 

 

53. 문서文書사회 탁상卓上행정

 

‘(교사의)학교공문公文 수발受發(학교의)교육행사 근절根絶을 주제主題로 학교행정연구를 실행한 적이 있었다. 교장 초임 첫해였다. 전교생 50여명, 교사 6,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학급씩 6학급의 초미니학교였다. 교사 60명의 규모가 큰 학교나 교사 6명의 미니학교나 공문公文의 접수 보고량은 다 똑같다. 그러니 작은 규모의 학교 교사들은 공문수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공문을 내용에 따라 교무계, 연구계, 체육계, 과학계 등 사안별事案別로 분류하는데 약 3, 40여 개의 계로 분류한다. 대규모 학교에서는 60명이 30개 계의 공문을 인원수로 나누니까 한 계가 한 명씩도 돌아가지 않아 공식公式 계가 아닌 슬리퍼계나 차심부름계도 있으나, 미니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대여섯 개의 임무를 맡아야 한다. 공문근절 연구학교 때 실사實査해보니 교사 한 명이 날마다 평균 공문 두 건을 접수하고 이틀에 한 건씩 보고했으며, 학교행사는 1주일에 한 건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장이 교사들에게 수업에 충실하라고 말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라고 독려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다. 한 시간 수업을 빼먹어도 괜찮지만 공문 한 건을 기일 안에 보고하지 않으면 시말서始末書를 써야 하니 교사는 수업 보다 공문수발이 우선이다. 더구나 국회철이 되면 교사들도 눈코 뜰 새가 없다. 10시까지 보고, 오후 2시까지 보고로 시한時限이 제한된 공문이 수시로 하달下達되기 때문이다. 끝내 이 공문서 근절 학교연구주제는 발표하지 못했다. 보고 날짜를 잡고 보고서를 만들어 인쇄까지 해놓았는데, 교육장이 교사의 공문서 수발 감소減少라고 주제를 수정修正을 제의했고, 교장은 교사의 공문서 근절을 양보할 수 없다고 이견異見이 팽팽하여 보고회는 무산霧散되었다. 그러나 이미 인쇄된 보고서를 사장死藏시킬 수 없어 연구보고회 참석대상인 도내道內 각 학교와 연관기관에 배포했다. 공문서 수발이 학교교육의 암적 존재라는 걸 알고는 있다. 그리고 해마다 공문서를 줄이겠다고 앵무새처럼 외치면서도 막상 공문은 줄지 않고 늘어간다. ? 교육사회가 발전하고 있어서 발전 추세趨勢에 따라 공문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대통령선거철이 되면 작은 정부를 표방하여 표를 끌어모으면서도 나라는 나날이 공룡恐龍정부가 되어간다. 이를 발전과 성장이라고 한다. 공룡정부는 온통 문서사회다.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하니까 그에 따라 더 많은 문서들이 발생하고 문서를 처리하기 위해 공무원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한정된 인원으로는 보고문서를 감당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원을 늘리면 한결 짐이 덜어질거라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이다. 어느새 늘린 직원만큼 공문서가 또 늘어난다. 정부의 맨 하급기기구인 주민센터의 일과日課 모습을 보라. 출근하자마자 컴퓨터에 붙어 앉아 컴퓨터자판을 두드린다. 하루 종일 컴퓨터자판과 씨름을 하다가 퇴근한다. 웬 문서가 그리 많은가? 공무원들의 일과는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난다.

학교경영에서 한 때 MBO Management By Objective, 목표에 의한 관리 System이 유행했다. 목표관리제도다. 학교경영계획은 교육부 도교육청 군교육청에서 하달하는 과제課題와 학교 나름대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계획을 수백 건 관리목표별로 나열羅列해놓고 성과成果를 체크한다. 예를들면 <애국심 고양高揚>이라는 정책에서는 태극기 그리기, 무궁화 심기, 애국가 3절까지 외어 부르기, 반공 포스터 그리기, 반공웅변대회 등을 계획하여 연중年中 시행施行하고 보고한다. 실적實績은 태극기 그리기대회 1회 전교생 537100%, 무궁화 심기 전교생 개인당 5그루 500%, 이런 식이다. 결론적으로 애국심 350% 고양. 이렇게 해서 학교경영은 목표 300%를 달성達成한다. 문서상으로서다. 그러면 군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의 통계치를 수합하여 도교육청으로 보고하고, 도교육청에서는 도전체 통계를 실적으로 교육부에 보고한다. 어마어마한 실적이 문서상으로 보고된다. 교육부에서는 애국심고양 정책이 전국적으로 300%가 달성되어 만족한다. 일선 현장에서 발로 뛰고 만나서 애로隘路사항이나 건의建議사항의 해결책을 논의하는 현장행정은 없다. 실적을 위해서 정책을 개발하고 문서로 실적을 합산해내니 발로 뛰는 아래 보다는 위가 커진다. 머리가 비대하고 팔다리가 허약한 ET모델이다. Computer컴퓨터는, 적어도 공무원사회에서는 문서 양산量産 도구道具. 머리 좋은 양반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은 무슨 문건을 만들어 지시를 하고 보고를 받을까 하는 것이 상급기관의 창의創意행정이다. 규제規制를 어떻게 더 만들어 위상位相을 강화할까 하고 안락의자安樂椅子를 빙빙 돌리며 문서를 양산量産한다. 그래야 자기들의 위상位相이 확립되고 권위權威가 생긴다. 마치 청사廳舍 현관玄關 Telas테라스에 Prangcard프랑카드를 걸어놓고 자기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정부는 공문서를 줄이겠다고 해년마다 안간힘을 쓰지만 공무원사회는 공문서를 늘리는데 주력主力하고 있다. 그래야 실적이 많아지고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라미트형 사회를 Phyramid피라미트형으로 Remodeling리모델링해야 한다. 공무원들을 현장에서 발로 뛰게 하면 자연스럽게 문서사회 탁상행정은 사라진다. 농민들은 논밭에서 얼굴이 검게 그을려 마치 인종人種이 다른 사람 같다. 발로 뛰고 손으로 만져야 허여멀건 얼굴에 배불뚝이 면장面長님도 건강해진다.

 

 

54. 자동차 격일제隔日制 운행

 

의사들은 암이 창궐猖獗한 원인을, 위암은 맵고 짠 음식 - 특히 반찬飯饌과 육식肉食, 대장암과 간암은 알콜, 폐암은 담배 등 먹을거리를 주범主犯으로 꼽는다. 그래서 대책도 대부분 음식 조절調節이다. 육식 - 특히 붉은 고기 섭취를 줄이고 등 푸른 생선이나 파란 야채 그리고 황록색 과일을 권장한다. 소와 말은 초식성草食性이고 사자와 호랑이는 육식성肉食性이다. 인간은 잡식성雜食性이다. 사람은 소나 말처럼 힘이 세지도 못하고 사자와 호랑이처럼 빨리 달리지도 못해서 잡식성이 되었을 것이다. 주로 물고기나 조개를 천렵川獵하고, 나무열매를 채취하고, 먹을 수 있는 푸성귀를 수집하는 게 인간의 식성食性이었다. 날아다니는 새나 뛰어다니는 짐승은 사냥이 어려워 많이 먹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사육飼育이다. 짐승 사육법을 알아내서 육식성이 되었다. 육식성이 되자 생태환경이 바뀌어 부작용이 나타났다. 활력은 매우 좋아졌으나 질병이 많아졌다. 광우병狂牛病이나 암이다. 암은 천연두天然痘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성 질병과 다르다. 전염성 질병은 외부에서 오는데 암은 내부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몸이 숙주宿住인 것이다.

암의 원인 중에서도 특히 매연煤煙이 심각하다. 석유石油가 인류 생활조건을 풍요롭게 하였으나 석유와 석유 부산물副産物로 인해 피해도 크다. 특히 매연은 암 유발의 첫 번째 원인이다. 대도시는 교통수단이 석유 매체媒體. 연료燃料도 가스나 석유다. 인간과 자동차가 어울려 아파트에서 산다. 비둘기집 같은 아파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굴거리며 수도, 전기, 자동차, 플라스틱과 패트병 등 석유제품을 상용常用한다. 서 발 외출도 자동차고,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이다. 이 모든 것이 석유와 석유제품이다. 상점에 넘쳐나는 모든 물건도, 하다못해 밥그릇도 건축시설까지도 다 석유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이 살다보면 일차적인 의식주의 생활용품은 피할 수가 없다. 서 발만 움직여도 타야 하는 자동차가 많아도 분산되면 매연이 희석稀釋되는데 도시는 매연이 집중되니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해危害한다. 생산生産도 분산分散되면 파생派生되는 비생산적 요인들이 분산되어 해를 미치지 않는데 집중되니 해독害毒이 크다. 예전의 자동차 문은 열쇠로 따고 잠궜다. 그런데 지금은 텃치키다. 아파트 현관문의 전자電子키가 고장이 나서 손수 키를 돌려 열고 잠그려니 불편하다. 문명이란 이런 것이다. 발전의 뒤에는 이렇게 사람 길들이기 또는 게으르기 속성屬性이 숨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漢陽 천 릿 길을 다녀오는데 괴나리봇짐을 메고 한 달 걸려 산 넘고 물 건너 걷고 또 걸어다녔다. 아주 어린시절 5일장길은 의례 고샅길 같은, 한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기도 어려운 꼬부랑길이었다. 한참 뒤에 반듯하고 넓은 신작로新作路가 생겼다. 신작로가 생겨나고 가뭄에 콩 나 듯 한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촌놈들은 감히 버스를 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선 버스값을 낼만한 여유가 없었다. 5일장 유둔장은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을 잡고 따라갔는데 할아버지의 외출은 꽤나 까다로왔다. 장날은 유난히 세수할 때부터 매무새가 달랐다. 수염을 다듬고 쇤 눈썹도 가위질을 했다. 갓집에서 갓을 꺼내 먼지를 털고, 할머니가 숯불대루로 다린 두루마기를 걸치고, 어머니가 물걸레로 닦은 갓신을 신고 토방을 내려서는데만 가히 두세 시간이 소요所要되었다. 해가 안산案山 중턱에 내려섰을 때에야 문간을 나서서 시오릿길을 걸어 유둔장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별이 뜨는 초저녁에 귀가歸家하는 게 할아버지의 장 나들이였다. 할아버지는 호주가好酒家였기 때문에 참새 방앗간처럼 시오릿길 장나들이에서 만나는 주막酒幕을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주막은 장터의 뺑보집에서부터 돌비석거리, 망주갈랫길, 숯개炭浦할매 목놋집까지 한 군데도 빼지 않고 들렸다. 그래서 초승달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쯤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할아버지와 동행한 손자가 걱정이 된 할머니와 어머니가 동구洞口 밖까지 마중나와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할아버지를 어린 내가 부축한 모습에 혀를 찼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신세대新世代의 자동차 열쇠의 다음 세대는 전자키로 완성되었나 했더니 요즘에는 터치키다. 적응은 무섭다. 전자키가 고장나서 며칠동안 열쇠로 문을 따고 잠그다가 문 따고 잠그는 거 짜증난다고 수리修理를 재촉한다.

France프랑스 총리실과 환경보건당국이 파리와 그 위성衛星도시에 당부當付했다. Paris파리에 들어오는 자동차는 자동차 파리 진입세를 물어라. 파리 시민들도 격일제 운행을 해라. 그리고 개인건강생활을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이른 아침에는 야외활동을 하지 마라, 늦은 오후에도 바깥 출입을 삼가라, 65세 이상이라면 집에서 머무르는 게 낫다, 격렬한 운동도 피하라, 운전도 자제自制하라, 나무장작을 연료燃料로 쓰는 난로煖爐는 피우지마라, 디젤 자동차는 운전하지 않는 게 좋겠다, 고속도로에서는 감속減速해달라, 미세微細먼지 안전기준치는 80/이다. 파리의 당일當日 공기질지수指數AQI185였다. 매연과 미세먼지로 악명惡名 높은 베이징은 155. 중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들이 매연에 뿌옇게 싸여있다. 그래서 대중교통 무료無料 운행이 정책과제가 되고 있다. 아이들 키우고 공부시키는 젊은시절에는 도시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이들 키우는 게 끝나면 시골로 들어가자. 행복마을이나 예술촌藝術村 그리고 이스라엘의 키브츠나 북한의 협동농장 같은 체제의 집단 거주지를 개발해서 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 도시를 해체하고 작은 공동체마을을 만들어서 협동농장을 조성하여 채소와 과일을 가꾸어 같이 나누어 먹고 맑은 공기 마시며 깨끗한 물 마시는 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다. 20145OECD 2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민행복지수에서 우리나라는 행복도 64%19위였다.

 

 

55. 놀토

 

선비들은 밤낮으로 공자孔子 맹자孟子 왈만 했으므로 따로 레저랄 것이 따로 없었다. 술 생각이 나면 두루마기자락에 엽전 몇 잎을 넣고 주막이나 기생집을 갸웃거리는 게 레져였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천하天下 유람遊覽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요즘처럼 가족여행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남자가 그러니 여자는 한 발자국도 집을 나서지 못했다. 불공佛供 핑계를 대고 절에 나들이 하는 것도 양반집 부인네나 가능했다. 상놈의 레저라면, 평생 소나 말처럼 일만하는 상놈들은 기껏 명절에나 쉬었다. 사내들은 쉴 새 없이 일만 하다가 잠시 농한기가 되면 짬을 내서 강에 나가 물고기 천렵川獵을 하고 아낙네들은 봄에 꽃이 피면 화전花煎놀이를 열었다. 어렸을 때 주워들은 말로는 서양에서는 일 주일 일하고 주급週給을 받아 일요일 하루를 여행한다고 들었다. 서양 사람들은 일 년 열 달을 일하고 남은 두 달 동안 여행을 한다고 들었다.

5일제가 되면서 우리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 모두들 차를 가지고 있고 놀토와 일요일에 들로 산으로 나가니 들과 산이 몸살을 앓을 정도다. 토일요일이면 도시는 텅텅 빈다. 예전에는 토일요일에 자동차길이 막혔는데 반대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난 축제도 이런 분위기로 넘친다. 그래서 자동차는 SUV차가 인기人氣. 축제라고 생긴 곳에는 인파人波가 몰려들어 실상 관광이 아니라 사람 구경을 다니는 셈이다. 모처럼 여름 피서나 할까 하고 요즘 성행하는 휴양림 팬션을 예약하려고 했더니 이미 동이나버린지 오래였다. 축제 구경한답시고 자동차를 몰고 갔는데 축제장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축제도 많다. 가을 단풍구경은 더 어렵다. 장성 백양사 애기단풍을 구경하려면 10Km 떨어진 정읍역에서부터 차가 막힌다. 예전 가을철 풍속도風俗圖가 있었다. 농사일에 폭 삭은 농촌 아낙들의 단체여행이다. 모처럼 나들이에 마음이 풀어져 몸마저 가누지 못한 민망한 모습이 예전 농사꾼 여펜네들의 가을여행이었다. 여름철이 되면 해수욕장은 사람들로 만원滿員이다. 작고 크고 유명하고 아니고를 가릴 것 없이 해수욕장은 인파로 넘친다. 도시에서 탈출이다. 시골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다. 잿빛 시멘트빌딩과 단절斷切 그리고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道路와 상존하는 사고事故의 불안감 그리고 개미 쳇바퀴 돌 듯 하는 똑 같은 일상日常에서의 탈출이다. 요즘에는 많은 은퇴자隱退者들이 퇴직금을 싸들고 고향을 찾는다. 작은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살려고 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만은 아니더라도 자연으로의 회귀回歸. 영산강 상류에서 태어난 연어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알라스카를 돌아 성어成魚가 되어 모천母川 영산강으로 회귀回歸한다. 산란産卵을 하고 일생을 마감磨勘한다.

농촌의 스케듈은 도시와 다르다.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쉰다. 무한한 공간이 다 내 것이다. 바람과 눈, 비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달과 별들도 다 내 것이다. 몇 분 몇 초를 다투는 시계를 볼 필요도 없다. 해와 달을 보면서 산다. 모두가 달리 듯 뛰는 도시와 다르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먹고 싶으면 먹고 쉬고 싶으면 쉰다. 가장 느리게 걷는 거북이는 천 년을 산다. 돈이 많아도 소용이 없다. 그저 하루 일용할 양식만 있으면 된다. 축적蓄積이 별 필요가 없으니 욕심도 없다. 나누게 된다. 쌀 한 톨을 나누고 콩 한 알도 나눈다. 돈 들여 산 게 아니고 손수 가꿔 수확한 곡식이라 이웃과 나눠야 더 보람이 있다. 엊저녁에 사소些少한 부부싸움을 했는데 이른 아침이면 벌써 동네방네 다 소문이 돈다. 이웃들이 속닥거리는 귀엣말도 금방 퍼져나간다. 상황 상 젊었을 때는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아 어쩔 수 없다더라도 퇴임을 즈음하면 시골로 회귀하여 사는 게 좋다. 무벙장수無病長壽의 피안彼岸이 거기에 있다.

 

 

56. 개판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피고 김교수가 항소심을 마치고 나오는데 기자들이 이 번 재판은 어땠습니까?’라고 묻자 이 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대답한다. 법과 정의를 실현한다고 외치며 인간이 만든 신의 영역, 법정法庭의 행태다. 독재獨裁 보다 무서운 권력의 폭거暴擧. 정치에서 독재는 인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법관法官의 횡포는 살인殺人 보다 무섭다. 자유당정권 아래서 조봉암선생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다가 간첩죄를 둘러썼는데, 사형死刑을 받은지 50여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청학련사건도 30여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이 부조리를 저지른 정치적인 사건들을 열거列擧하자면 지면紙面이 모자랄 것이다. 하물며 가려지고 묻힌 일반사건 - 억울한 법의 비정적批正的인 사건들은 셈할 수조차 없을 것이고, 아니다. 오늘도 저 신성神聖한 법정이란 곳에서 요상한 법복法服을 걸친 신의 대리인들은 신성불가침의 법대法臺 위에서 불의를 비일비재非一非再 자행恣行하고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명언名言은 살인집단의 입에서 나왔다. 사회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수용하고 수긍했다. 엊그제는 황제노역이 세상의 물의物議를 일으켰다. 한아무개라는 기업인이 1,000억 벌금으로 기소起訴당했다가 항소抗訴500억으로 깎이고, 그마저 집행유예執行猶豫로 되었다가 강제노역으로 전환轉換되었는데, 노역勞役 일당日當이 하루 5억원이었다. 얼마나 쳐먹었으면 이런 판결을 했겠는가? 전혀 국민을 아랑곳하지 않은 법관들의 오만傲慢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일반인의 하루 노역임금은 많아야 10만원 정도다. 결국 향판鄕判’ ‘향피鄕避라는 말이 되살아나고 그 판결을 담당했던 법원지원장은 옷을 벗었다. 그것도 재판의 피고인 한아무개사장이 세운 아파트 입주문제로 불명예 퇴진을 했다. 재판 전후에 거래한 아파트가 한아무개 피고인이 지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대법원이 감찰에 나섰는데 감찰을 하기 전에 사표를 썼다. 옷을 벗으면 더 돈을 잘 번다.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어서 후배들이 소송사건을 몰아주기 때문에 2 - 3년 안에 3가 먹을 수 있는 돈을 번다고 한다. 또 전관예우도 대물림을 한다. 현직에서 부정비리를 저지른 법관은 변호사자격을 박탈해야 하는데 전관예우까지 믿을만한 돈줄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법관은 부정비리로 옷을 벗어도 들어내놓고 웃는다. 대통령과 법관 개혁 토론회에서도 오만방자한 새끼 법관들의 맞장을 뜨려는 태도에 대통령이 이제 막가자는 말이지요?’라고 할 정도다.

검찰, 판사와 경찰들 우리나라 최고 권력집단에게 , , 찰이니 하는 건 다반사茶飯事, 애인愛人 변호사에게 벤츠를 선물로 받은 벤츠검사가 세간世間의 물의物議를 일으켰다. 기소起訴당한 검사는 벤츠 선물은 애정행위로써 뇌물賂物과 연관이 없고, 임신姙娠 중이라는 법원의 호의好意로 집행유예가 되었다. 또 일요일에 피의자被疑者를 검찰청으로 불러들여 성행위性行爲를 한 검사도 있었고, 연예인 애인을 위해 병원장에게 협박을 해서 돈을 받아낸 검사도 요즘 있었던 일이다.

아파트 부정비리 문제로 아파트가 떠들썩해졌는데 잠자고 있었던 의기義氣가 발동發動했다. 알고보니 아파트운영은 부정비리백화점이었다. 주민들이 아파트운영에 무관심하고 정부에서는 아파트대표자회를 자율단체로 규정하여 불간섭원칙 이기 때문에 아파트운영은 그야말로 요지경瑤池鏡이었다. 원체 무법지대無法地帶라 세상의 부정비리는 다 여기서 재탕이 되고 있었다. 별별 짓을 저지르며 돌라먹고 잘라먹었다. 하여튼 먹을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되고 있었다. 계획적으로 연차年次사업을 계획하여 주민들에게 예산을 날파하여, 올해는 옥상屋上 방수防水공사, 내년에는 페인트 도색塗色공사 그리고 내후년에는 엘리베이터 전면全面 교체交替 등 역대歷代 회장들이 돌아가며 계획적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있었다. 회장과 임원도 대물림으로 올해는 내가 하고 내년에는 네가 하는 식이다. 돌아가며 바꿔가며 임원진任員陣을 석권席捲하고는 운영비가 쌈짓돈이었다. 사업은 크나 작으나를 가리지 않고 이중二重 계상計上이나 부풀리기로 예산을 도둑질하고, 병사病死한 관리소장의 위로금을 준다고 하고는 돌라먹기도 했다. 구내에 가로등을 시설하면서 25,000원짜리를 50,000원으로 부풀려 차액差額을 빼먹었다. 아파트 도색공사는 두 배로 부풀렸다. 고치는 시늉만 하고 방화시설비를 돌라먹고, 엘리베이터 제어판制御瓣은 누군가 쓰다버린 제품을 구해다놓고 고쳤다고 했다. 이 부정비리의 근본원인은 무관심無關心이다. 주민들이 아파트운영에 전혀 개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몇몇 임원들이 맘대로 부정비리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데 또 이해 못할 일은, 부정비리가 만연되어 있다고 알려도 주민들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뉘집 개가 짓느냐는 태도에 더 떡심이 풀려 부정비리를 해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돈이니까, 내 돈은 그 속에 극히 일부니까 돌라먹든 빼먹든 관심이 없다. 오히려 좀 돌라먹으면 어때 라는 핀찬이 돌아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재판을 담당한 판사 나으리도 그런 투였다. 그냥 고소告訴를 취하取下하고 화해和解하라고 설득했다. 이 싸움의 와중渦中에서 주민비상대책위원회와 임원진의 쌍방雙方 명예훼손名譽毁損문제가 발생했다. 임원진과 주민대표 쌍방이 고소를 했다. 주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자체 감사를 해서 부정비리를 밝혀냈으므로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해결하려는 문건이 명예 훼손으로 걸렸다. 임원진들은 이 문건을 빌미로 확정되지 않은 부정을 공표公表했다고 고소를 제기提起했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이 가관可觀이다. 비상대책위원회 세 사람에게는 150만원씩 벌금을 판결했고, 임원진은 15명 가운데 서명署名5명은 이유없이 기각棄却을 하고, 회장을 비롯한 나머지 임원들에게 30만원의 최하위 벌금판결을 했다. 비대위는 항소抗訴했다. 비대위는 부정을 적발摘發하여 입주민들에게 고지告知한 문건이므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였는데 대법원은 상소上訴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상당한 명예훼손이 된다하더라도 공익성公益性이면 무죄라는 판례가 있었다. 자기들의 판례 조차도 무시한 판결이었다. 또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형평성衡平性에서 문제가 있었다. 임원진은 15명이 연서連署로 비대위를 개인적으로 모독冒瀆하고 비방誹謗하여 명예훼손을 했는데 왜 아무 까닭없이 연명서명한 5명은 제외하고 10명만 기소했는가? 또 거기까지 이해한다고 해도 왜 비대위는 공식문건인데도 형량이 150만원이며, 임원은 개인적인 명예훼손인데도 30만원 최하위 벌금형인가? 법은 힘 없는 서민에게는 철벽鐵壁이었다. 짐작한 이유는 로비다. 임원진 중에 전직前職 경찰관이 있었고, 임원진의 사위가 변호사고, 임원진의 남편이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었고, 기소유예를 한 임원 중 한 명은 광주에서는 빡쎈 학연學緣 출신이었다. 예상치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벌금 150만원을 줄이거나 물지 않겠다고 변호사를 선임選任할 수도 없었다. 변호사 선임은 초기비용이 건당 300만원이다. 150만원짜리 송사訟事300만원을 들일 수 없지 않은가? 국선國選변호사는 재판에 세 번 나와서 고개만 끄덕이다가 우리 하고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퇴장해버렸다. 말 한 마디 없었다. 변호를 부탁하려고 점심 대접을 하겠다고 했으나 회피回避했다. 재판 내내 공익성문건을 주장했고, 벌금의 형평성을 주장했으나 대법원에서도 형량은 변하지 않았다. 재판 중에 경찰, 검찰 그리고 판사까지 줄곧 화해를 요구했다. 왜 그들이 그렇게 줄기차게 화해를 종용慫慂했을까? 고소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고소인 임원들의 로비 때문이었는데 화해가 관철되지 않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횡포橫暴를 부린 것이다. 생전 처음 들어가본 법정法庭은 빽과 돈이 없는 서민에게는 절망切望과 원망怨望이었다. ‘도가니부러진 화살을 보았고, ‘유전무죄를 공감共感하고 있었으나 상실감喪失感이 컸다. 그리고 법관法官의 횡포를 실감實感했다. 삼척동자三尺童子가 봐도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있는 사건을 검사와 판사가 그것도 대법원판사까지도 유죄판결을 한데 대해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회자膾炙된 사건이 아닌 작은 사건까지도 이렇다면 우리나라 법관들의 횡포가 어떨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나라에 사법司法정의는 없다. 시쳇말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깩 소리도 못하고 벌벌 기면서, 기득권자들 틈사귀에서 억울하게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 나라는 민주와 평등은 개나발이다. 인권은 입에 걸린 자조自嘲일 뿐이다. 이런 국가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차라리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가 되고 싶다. 국가와 권력의 횡포, 기득권자의 군림君臨은 동물들의 나라, 동물의 왕국 보다 더 추하다. 적어도 동물의 나라에는 나름대로의 질서는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義人 열 명이 없어서 화산火山재에 묻혔다. 오늘 우리 사회는 최후의 보루堡壘라 할 법과 종교까지 타락墮落하여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타락하였고 의인義人은 없다. 재판을 법관法官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로마시대에는 무능한 정치가를 도자기陶瓷器 파편破片에 시민들이 이름을 적은 투표로 국외로 추방해서 일정기간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우리도 법의 정의와 형평성이 문제가 되자 서양의 배심원제도를 본받아 국민國民 참여參與재판이 시행되고 있다. 법관이 유명무실有名無實하다는 반증反證이 도편陶片제도로 나타나고 있다. 행정부에는 유관有關기관이 필요하고, 사법부에는 국민참여재판이 필요하고, 입법부는 입법부를 견제牽制할 시민단체 역할이 증대增大되고 있다. 옥상옥屋上屋들이 생겨난다. 이럴진데 정부가 무슨 필요람.

 

 

57. 지우개

 

농담弄談 같지만 실화實話. 초등학교 5학년 수업연구 공개수업에서, 우리나라 지도地圖를 보여주며 어떻게 하면 남북통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한 학생이 일어나더니 칠판에 그려진 지도에서 휴전선休戰線을 칠판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워버렸다. 그러고는 이러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수업을 참관하고 있던 선생님들이 웃다말고 중챙이(어안이 벙벙해서 멍 한 상태)가 되었다.

한국의 사회신뢰도信賴度30, 미국은 35, 유럽은 70이다. 국내에서 제일 높은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 임원의 연봉年俸100, 월급으로 월 10억이다. 반면反面에 기간제나 시간제 강사들의 월급은 최저 생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70만원 안팍이다. 월급 1,000,000,000 : 700,000, 이 동그라미 숫자를 비교하기란 눈이 어지러워서 불가능하다. 왜 이렇게 월급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학력學力? 한국의 대학 진학율은 64%OECD 국가 중 제일 높다. 영국 47, 프랑스와 미국이 43, 도이치가 28이다. 반대로 취업률은 75%로 꼴찌다. 네델란드가 92, 멕시코 78, 칠레가 76이다. 한강의 기적奇績을 이룬 한국은 상대적 박탈감剝脫感이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높다. 빈부貧富의 격차隔差가 심하다. 범람氾濫하는 자동차의 홍수 속에서, 유원지에 몰린 인파 속에서도, 같이 어울려 놀면서도 옆을 흘기고 위를 쳐다본다. 우리가 비판하고 홀대忽待하는 북한은 절대적으로 못 살지만 상대적으로는 행복하다. 다같이 못 살아서 비교 대상이 없다. 다같이 잘못 사는 것이 좋은 일이냐는 가치기준의 문제다. 나무통철학자 디오게네스와 마케토니아 왕 알렉산더의 경우다. 요즘에는 북한도 생존경쟁이 시작되었다. 자본주의가 스며들어 돈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만 졸업을 하고 맨손으로 서울로 간 고향친구가 있었다. 농사만 짓고 사는 친구가 서울에서 버텨날 길은 없었다. 물지게를 지고 분뇨糞尿통을 메고 다녔다. 얼기설기 엮은 천막집에 살면서 가까스로 장만한 서울살이, 그 때는 서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망우리 주변에 밭을 한 뙈기 사고, 주변 야산野山을 일궜다. 거기에다 돈 받고 퍼주는 공짜 거름을 퍼부었다. 분뇨를 먹은 배추가 파랗게 자랐다. 해마다 밭을 늘렸다. 손바닥에 멍이 들고 군살이 붙는 건 이미 시골에서 졸업한 일이라 어렵지도 않았다. 돈만 생기면 채소밭을 늘렸다. 40여년이 지난 어느 해 설날, 깨복쟁이 동무가 비까번쩍 자가용을 몰고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동창 녀석의 채마밭이 아파트로 개발되어서다. 그래서 친구는 사장님이 되었다. 아직은 몸에서 분뇨냄새가 나는 듯 했으나 돈의 위력은 엄청났다.

도시에서는 가끔 아파트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다. 우리 동네옆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걸 막으려는 기득권층旣得權層 5, 60평형 아파트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진다. 우리 마을 부근에 쓰레기장을 지으면 안 된다거나 핵발전소 건설을 보이콧하거나 공동묘지나 장의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님비현상과는 문제가 다르다.

소아과小兒科병원을 자주 들락거린다. 손주 두 녀석을 돌보면서 일어난 일상日常이다. 병치레 좀 안 하고 클 수는 없나, 툭 하면 감기, 계절이 바뀌면 녀석들의 병치레에서 계절감을 느낄 정도다. 소아과병원은 고급아파트 블록과 서민庶民아파트 블록 사이에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서민 아이들만 온다. 부자 아이들은 어디 다른 데로 가나보다. 서민들은 아이들의 생김새나 옷 매무새를 보면 짐작이 간다. 손주가 다니는 학교 옆 바로 1Km 정도 떨어진 곳

에 초등학교가 하나 더 있는데 거기는 해마다 학생수가 줄고 있다. 살기는 서민 동네에서 살면서 학교는 다른 데로 보낸다. 부자 아이들이라고 감기에 안 걸리고 아프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내가 다니는 소아과병원에서는 부자 아이들을 볼 수가 없다.

영국 윈스턴 처칠의 수상首相의 일화逸話. 처칠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마침 정적政敵인 야당당수野黨黨首 맨스필드의원이 들어왔다. 맨스필드의원과는 철도 국유화사업으로 심각하게 갈등을 일으켜 격론激論이 오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화장실에 들어서 바지의 지퍼를 내리며 맨스필드의원이 처칠 수상에게 말을 건냈다.

왜 그렇게 변기便器에 바짝 붙어 쉬야를 하십니까?”

쉬야를 끝내고 털털 털면서 처칠이 대꾸했다.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 하자고 하니 .”

큰 것 선호選好사상은 심각하다. 자동차, 아파트, 서울대. 모두들 위만 쳐다본다. 미국, 중국 등 땅덩어리가 큰 나라들이 패권覇權국가다. 전쟁의 많은 요인要因이 영토분쟁에서 비롯된다. 큰 나라는 영토를 더 늘리려고 하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의 패권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일본은 일본열도列島의 섬나라인데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북방北方 쿠릴열도 영토분쟁, 남쪽으로는 중국과 다오위다오 영토분쟁 그리고 대한과는 독도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또 대한은 일본과 독도 분쟁 말고도 중국과 제주도 남쪽의 이어도 분쟁을 벌인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필립핀,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바다 영토 전쟁 중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몰라도 지형적地形的으로 살피면 중국의 억지다. 인접隣接국가는 남중국해를 들러싼 형국形局인데 중국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고 요상하게 표주박 모양의 국경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인디아와도 국경 분쟁 중이다. 3,000Km나 되는 국경선國境線이 문제다.

영토분쟁을 해소하려면, 전쟁을 종식終熄시키려면 느슨한 영토개념槪念이 필요하다. 유연柔軟한 국가개념이다. 원시시대처럼, 국경선을 개방하여 인접국가 간 국민들이 서로 왕래하며 국가 개념을, 국경선을 지워버리고 살면 평화와 안녕安寧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58. 들방구리의 생쥐

 

부처님의 解脫해탈은 因緣인연을 끊는 것이 기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法語로 세간世間에 회자膾炙되었던 성철스님은 출가出稼한 딸이 세 번이나 만나려고 하였으나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누구든지 자신을 만나려면 먼저 3천배를 하고 오라고 해서도 화제話題였다. 인연 끊기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어렵다. 초연超然한 척 하려고 해서 아니지만 퇴직을 하고 모든 모임을 끊었다. 강의 부탁이나 심지어는 결혼주례까지도 사절謝絶했다. 요즘에는 아들이 산에서 구해다준 황화춘란黃花春蘭을 베란다에 두고 신주神主단지 위하 듯 돌보고, 백합축제로 유명한 태안에서 백합 구근을 주문해서 종류별로 심고, 청매화 백매화도 두 그루씩 있다. 퇴계退溪선생은 돌아시기 전 매화화분에 물을 주어라라고 유언遺言을 했다. 5년째 기르는 금붕어는 돌구시에 물맷돌을 연결해서 모터폭포수를 만들어 기른다. 그런데 올해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검정색 금붕어가 자라면서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아파트 정원에 상사화와 접시꽃 그리고 양귀비도 심었다. 양귀비는 장흥군청에서 씨앗을 구해 심었는데 단연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다. 같은 붉은 색이라도 꽃잎의 색감色感이 투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은 봄철 연두빛 새싹을 역광逆光이 비치는 색감이라고 말한 사진작가의 말에 동감同感이다. 상사화는 예전 근무지에서 두 박스를 가져 심었는데 번식이 잘 되어서 등산하는 무등산 옛길 1구간 - 산수동 수지사 입구에서 청풍쉼터까지 그리고 원효사에서 바람재를 거쳐 덕산골 서낭당 주변, 증심교 부근에 까지 심었다. 접시꽃은 등산길에 심었다가 실패했다. 접시꽃은 인가人家 근처에서만 자라는지 산에서는 자라지 않았다. 등산길에서 탑을 쌓는 일은 벌써 5년이 넘었다. 무등산옛길이 옛 선조先祖들의 나들이길이었으므로 길 짬짬에 쇠락衰落한 집터가 있어 돌이 널려 있다. 그 걸 한두 개씩 모아 쌓아 올린 탑이 벌써 20여 기. 바람재에서 증심사로 내려가는 덕산골계곡은 예부터 무당골이었는데 증심사지구 정화사업을 하면서 무당들은 흩어지고 흔적만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벽산골 내리막길 중간에 서낭당城隍堂 유적遺跡이 두 개 있다. 수백 년이나 수천 년 된 유적인데 돌들이 흩어지고 널려있는 걸 몇 달에 걸쳐 복원復元하였다. 제 멋대로지만 광주 도심都心의 광주폴리를 본따서 서낭당을 주제로 한 폴리라고 혼자 이름지었다. 그런데 이 탑을 허무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 맞닥드렸는데 무등산 국립공원사무소에서 고용雇傭한 등산길 청소부였다. 설득說得이 안 되어서 좀 고성高聲이 오갔다. 기독교 원리주의 신념만 꽉 막힌 무지無知한 인사人士로 짐작된다. 탑 속에 뱀이나 지네가 기생寄生해서 위험하다거나 등산객들이 싫어한다고 항변抗辯하는둥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가 끝내는 보기 싫다고 얼떨결에 실토實吐했다. 탑이나 서낭당이 보기 싫다면 불교적인 것이 싫다는 말이다.

계곡谿谷을 다 내려와 작은 소소용돌이 물에는 산천어가 산다. 삶은 달걀 두세 개씩을 던져주면 삽시간에 100여 마리가 넘는 녀석들이 은빛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몰려든다. 무등산의 4, 초봄의 여린 새싹, 여름의 녹음방초綠陰芳草, 가을 단풍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은 늦은 가을, 포근한 겨울 날씨 혹은 이른 봄에 들어나는 설선雪線이다. 상고대霜高帶. 붓으로 그은 듯 확연하게 들어난 설선은 자연의 조화造化라고 하기에는 너무 신비神秘하다. 겨울 무등산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 운 좋게 등산을 한 사람들은 그 경관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에는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배낭을 챙긴다. 소일消日하다가는 무등산을 찾고 더러는 동백꽃 선운사 산방山房이나 애기단풍 백양사 천진암 선방禪房을 기웃거리며 얼마 남지 않았을 날을 들방구리에 생쥐 드나들 듯 한다.

 

 

59. 땅뺏기놀이

 

사람은 서울로 망아지는 제주로.’

어린시절에 한 놀이 중에 땅뺏기놀이가 있다. 사금파리조각을 주워 숫돌에다 동그랗게 갈아서 동전만하게 땅 뺏기 도구道具를 만들었다. 땅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놓고 서로 반대편에 자기 집을 마련한 뒤, 가위바위보를 해서 순서를 정한다. 사금파리를 장지長指로 퉁겨서 상대방 쪽으로 땅을 점령占領해 들어간다. 어린시절 시골에서는 땅이 살림살이의 기준이었다. , , 산 그리고 우리 마을 같은 바닷가 마을에서는 갯땅(- 석화밭, 바지락밭과 꼬막밭)도 있었다. 부자富者의 기준은 논밭이 몇 마지기냐였다. 우리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가다가 옆 사람과 농사農事 얘기가 나와서 밀을 8가마니씩 수확한다고 했더니 엄청난 부잣집마님이라고 놀라더란 얘기도 있다. 왜냐면, 보리도 갈아먹을 밭이 부족한데 밀을 경작耕作하는 것은 일종의 豪奢호사였기 때문이다. 논밭이 몇 마지기냐는 마을 부자를 이르는 말이고 그 집 땅을 밟지 않고는 그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고 하는 정도라면 고을 부자다. 왜 땅에 대한 집착이 그토록 강할까? 호랑이는 영역이 300Km² 내외內外. 매일 산등성이를 타고 다니며 자기 영역을 순찰巡察한다. 다람쥐 한 마리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다.

어른들의 땅따먹기에서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을 땅을 정복했던 왕은 몽골 징키스칸(, , 간은 왕의 呼稱, 신라시대 마립간도 왕의 호칭)이다. 마케토니아 왕 알렉산더가 2위고,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3위다. 그런데 이쯤은 당달봉사의 넋두리다. 우리는 학교에서 세계 3대문명을 중국의 황하문명, 인더스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이라고 달달 외웠다. 그런데 이 서양 사람이 쓴 세계사는 틀렸다. 중국에서는 황하문명 이전의 요하문명이 발굴되고 있다. 홍산문명도 발굴되었다. 홍산문명은 일명 흑옥黑玉문명이라고도 한다. 흑옥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황화문명 보다 약 1,000년씩 앞선 문명이다. 이라크에서는 로케트를 타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그림과 잠수함 설계도가 그려져 있는 수메르문명과 바벨탑을 만든 바빌로니아문명이 새로이 조명照明받고 있다. 고조선역사를 기록한 한단고기桓檀古記에서 고조선의 강역疆域은 동서東西 25,000, 남북南北 20,000리였다. 지금의 도량형度量衡으로는 동서 약 15,000Km, 남북 약 10,000Km. 유럽남서부로부터 중동아시아를 거쳐 러시아 남부와 중국동북부 그리고 시베리아 남부까지다. 인종人種도 황, , , , 남색인종 5부인部人이었다. 중국이 국가적 시조始祖로 모시는 황제헌원이 고조선 한웅천왕의 짐승을 기르는 벼슬아치였는데 죄를 얻고 쫓겨나 세운 것이 역사중국의 기원紀元이다. 유럽의 헝거리는 훈Hun의 후예後裔인데 원류源流는 고조선의 몽골지방에서 동쪽으로 이주移住한 흉노족匈奴族이고, 터키는 투르크 즉 돌궐突厥의 후예다. 터키 사람이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6. 25전쟁에 참여해서가 아니다. 오랜 기원 전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라크 유적遺跡에서 출토된 점토판粘土板 50,000여 매에 수메르문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기록에 의하면 검은 머리의 수메르인들은 멀리 동쪽에서 왔다고 말한다. ‘한단고기에서도 수밀이국이 고조선의 12제후국諸侯國 중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의 땅따먹기놀이에서 이기는 편은 상대편의 땅을 다 차지해버리고 끝내는 한 뼘 남짓한 상대의 고정固定집까지 정복한다. 그러면 승자勝者가 발로 쓱쓱 문질러 국경선을 다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면적이 가장 큰 나라는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와 오스트렐리아다. 영토분쟁은 전쟁의 화약고火藥庫. 영국과 파키스탄은 포클렌드를 두고 싸웠고, 중국과 러시아는 국경선을 두고 대치代置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은 다오위다오를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神經戰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와 일본은 북방北方섬을 두고 오랜 숙원宿怨관계며, 일본은 우리나라와 독도를 두고 싸운다. 이 분쟁들이 언제 전쟁으로 폭발할지 모른다. 영토개념을 느슨하게 풀어서 국경國境을 개방開放하는 느슨한 영토개념이나 유연한 국가개념을 만들어 주변국 국민들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산물을 교환하고, 혼인婚姻도 하며, 민족이나 종교가 달라도 다른 신도 참배參拜하고 복을 빈다면 여러 신들이 도울 것이니 그 아니 좋지 않은가? 기구祈求에 하는 바에 따라 신의 구원救援이 다르다면 알라에게는 자녀복을 빌고 하나님에게는 장수무병長壽無病을 비는데 경험한 바 영험靈驗에 따라 선택적으로 빌어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바벨탐으로 달라진 언어는 제 1 외국어로 세계 공통어인 영어를 하나 사용하고 모국어를 사용하면 된다. 2 외국어를 지정해서 권역별로 사용하는 것도 효율적일 것이다. 교육학에서만 50개의 학문이 분류되었는데 이것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머리칼을 1/ 1,000로 쪼개는 것 보다 외국어 두 개 쯤 배우는 게 더 간단할 것이다. 이렇게 국경을 헐어 이웃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전쟁 같은 참혹慘酷한 인류사의 비애悲哀는 예방할 수 있다. 철새나 짐승은 국경이 없다.

 

 

60. 왜 사냐 건

 

왜 사냐 건 웃지요.’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인詩人 김상용의 절구絶句. (철학은)달관達觀이요 (마음은)여유고 (장소는)시골이다. 도시에서는 이런 감흥感興이 나오지 않는다.

요즘 지방자치단체에서 행복마을을 개발하여 분양分讓하고 있다. 예술인의 마을도 있고, 감성感性마을도 있다. 집성촌集姓村처럼 어떤 하나의 이슈로 엮어진 마을공동체다. 행복K을은 퇴직자退職者들이 선호選好한다. 돈 벌어 아이들 가르치고 활동해야 할 한창 때 도시를 탈출한다는 건 어렵다. 시골경로당처럼 노후老後라도 여유롭게 지내기 위해서 은퇴隱退하고라도 시골에서 어울려 사는 게 행복한 삶의 첫걸음이다. 더 적극적이라면 이스라엘의 키브츠나 북한의 공동체 그리고 러시아의 협동농장도 되새겨볼만하다. 시골경로당만으로는 좀 어설프고 부족하다. 어울려서 점심 먹고 화투 치는 것으로 노후가 안정되지 않는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다. 높은 지위에 성공했다고 그 성공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해도 행복은 보장되지 않는다. 행복을 찾아 먼 세상을 두루 해매였던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자기 집 앞마당에 있었다. 워즈워스의 무지개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넜지만 결국 무지개는 자기 마을 앞 연못에 있었다. ‘천당은 어디에 있습니까?’ 운명殞命 직전 김수환추기경은 천당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철학이나 수도修道를 하는 사람들은 절이나 책을 찾지만 절 안이나 책 속에 찾고자 하는 행복은 없다.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을 표방標榜한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 불교는 깨달으면 다 부처다라고 갈파喝破한다. 세상만물世上萬物이 다 불성佛性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사람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B. C 5,000년 전에 기록된 수메르 점토판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흙으로 사람을 만든다. 구약성서의 창조론과 같다.

일찍이 선인先人들은 사람의 생애를 초로草露’ ‘부운浮雲이라고 했다. 사람의 한 살이가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하늘의 뜬구름과 흡사恰似하다는 진리眞理.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고도 했다. 한바탕 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인先人들이 살아보고나서 다 그렇게 말하는데도 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살아야 하는가? 원시시대에는 사냥과 수렵狩獵 그리고 채집採集으로 살았다. 100평 아파트도 없었고, 비행기로 서울에서 10시간을 다투어 파리로 날아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현대는 모두가 다 바쁘다. 학생은 대학입시 때문에 바쁘고, 주부主婦는 맞벌이라 바쁘다. 할머니는 손자 보느라 바쁘고 아주머니는 가계家計를 보태기 위해서 바쁘다. 그래서 덩달아 노숙자露宿者도 바쁘다. 모두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컴퓨터자판과 하루 종일 씨름을 하는 공무원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고 엄살을 부린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제일 바쁘고, 자동차를 몰고 가는 사람도 바쁘다. 퀵서비스 하는 사람만 바쁜 게 아니다.

나는 차를 천천히 몬다. 뒤에서 빵빵거리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앞 차와 거리를 두고 운행한다. 더러는 뒷차가 빵빵거리지만 개의介意치 않는다. ‘그렇게 바쁘면 비행기를 타거나 자동차에 날개를 달 일이지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다보니 수시隨時로 끼어들기를 겪는 건 다반사茶飯事고 더러는 황당한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사고는 내 실수다라는 생각으로 일관一貫되게 조심한다. 그렇다고 막상 사고가 난다면 온통 내가 뒤집어쓸 생각은 없다. 1차선도 타지 않는다. 1차선을 타지 않으면 적어도 사고가 날 확률을 줄이고 사고가 나더라도 정면충돌은 피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진화進化는 놀랍다.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기능은 전화, 문자메시지와 메모, 사진 촬영뿐이다. 사진 촬영도 등산하면서 야생화野生花를 찍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열어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기능이 수백 가지다. 그러면서도 더 발전해야 팔린다고 개선改善을 거듭한다. 이러다가는 스마트폰이 자기 주인님을 천당天堂으로 인도引導할지도 모른다.

 

 

61. 큰 것만 보면

 

축소縮小 지향指向 일본은 소니회사가 디지털 라디오를 개발하여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누렸던 일본인의 기술 발전을 대변代辯한다. 라디오 원산지原産地 미국도 카세트라디오로 세계시장을 석권席捲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작게 더 작게로 라디오시장을 일거一擧에 빼앗았다. 과학의 Nano기술이 어디까지일지 한계가 없다. Mini Robot를 개발하여 혈관血管에 넣어 질병 치료에 사용하고, 사람의 손끝감각만으로는 어려운 미세微細수술을 한다. 알약에다 Mini Robot를 첨가添加하여 병원체病原體만 공격하는 의학기술도 시행하고 있다. 머리카락을 1/ 1,000로 쪼갠다. 시계時計는 백만 년에 1오차誤差를 자랑한다.

영국의 처칠수상首相이 철도를 국유화하자는 야당과 철도국유화에 대한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회의가 길어져 잠깐 쉬고 속개續開하는 짬에 처칠수상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데 야당 당수黨首가 들어왔다. 야당당수가 국유화논쟁에서 펼쳤던 감정을 들어내며 망신을 주려고 처칠수상에게 수상! 당신은 왜 변기에 바짝 붙어 용변을 하오?’ 분명한 비난非難이었다. 너 혹 보여줄게 없는 게 아니냐는 야유揶揄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처칠수상이 용변을 끝내고 털털 털며 왈 당신들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해서.’

큰 것 선호選好, 부자富者들의 가히 아파트는 운동장이다. 안방에서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실내카트를 이용해야 할 정도다. 안방마님이 여보, 안 자유?’라고 바깥양반을 불렀는데, 서재書齋에서 안방까지 이동하는데 한나절이 걸렸기 때문에 날이 샜다는 농담도 있다. 지방청사廳舍도 호화롭기 그지없다. 맨허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380m 102층으로 세계 최고였다. 초등학교시절에 빌딩 꼭대기가 바람에 흔들린다는 말을 듣고는 경악驚愕했다. 그런데 지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아이들 장난감이 되었다. 이제 지으려고 하지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무바라크 알카비르는 1001m, 킹덤타워는 1,600m, 나킬타워는 1,490m, 2,400m의 시티타워 등이 곧 스카이시티 빌딩의 아성牙城에 도전하게 된다. 하늘로 솟아오른 2,400m의 빌딩이 상상이 되는가? 바빌론의 바벨탑은 고작 40여 미터였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았다. 하느님의 권위權威에 인간이 도전한다고 노여워서 인종 간에 언어를 분리시켜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바벨탑 건축을 막아버렸다. 그 덕택에 인류는 하루도 그치지 않는 전쟁에 휩싸여 있다. 땅덩어리가 큰 거대국가는 패권覇權을 지향指向한다. 냉전冷戰시대 미국과 소련은 민주공산 양대진영의 패권국가였다. 소련이 분할分割되고는 중국이 부상浮上했다. 인간의 욕심은 부나비처럼 한계를 모른다. 징키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와 도죠히데끼 그리고 아틸라 등이 사례事例.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조조, 유비 그리고 손권도 끊임없는 영토전쟁으로 일생을 마감磨勘한다. 그리고 그들은 영웅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들이 영웅이라고 불리워진 이면裏面에는 이름없이 희생된 수천만의 병사兵士들이 있다. 징키스칸이 절세絶世의 영웅이라면 그를 따라 전쟁에 참전하여 죽은 병사들은 무엇인가? 그들이 청야작전淸野作戰이라 불리우는 점령지에서의 학살과 약탈의 희생자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름 없는 병사는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전장戰場에서 칼을 들고 미친 듯이 점령지의 사람들을 몰살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자신도 장렬壯烈하게 전사戰死한 다음 전쟁영웅 칭호를 받고 인생을 마감했다면, 그 병사兵士는 왜 태어났을까? 전장戰場의 소모품消耗品으로 고작 스무 해를 살다가려고 태어난 것일까?


. 타원형 사회구조

 

 

<책 소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성취했으나 평등을 이루지 못했다. 사회자본주의와 민주평등사상을 제안한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경제적 패권주의는 갈등과 분쟁과 전쟁의 살육殺戮, Africa아프리카와 South America남미에서 어린이 노예를 착취하는 공정무역公正貿易으로 대변代辯되는 Super Rich수퍼 리치와 기아飢餓, 그리고 빈부貧富 격차隔差의 자본주의 체제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를 실현했으나 평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평등사상과 사회자본주의 정립定立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놈의 계층을 타파하겠다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는데 계층은 더 세분화 되었다. 조직구조를 수직구조 - 사다리식 계단에서 수평구조 - 타원형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Team팀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대통령부터 면사무소 주사에 이르는 계층 분화를 평등하게 고쳐야 한다. 회장부터 계약직에 이르는 계단을 없애야 한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E.T를 찾겠다고 우주로 인공위성을 보내는 한편에서는 수백만이 굶어죽어가는 현실, 인공위성 한 대 값이면 굶어죽어가는 그 사람들을 다 구제救濟할 수 있다. Seine세느강변에 Eiffel에펠탑을 세우고는 환호하더니 Saudi사우디 Jeddah제다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탑을 세우겠다고 1007m 짜리 Kingdom Tower킹덤타워를 짓고 있다. 거대화, 미세화 그리고 다양화가 추구하는 세상 모습, 이게 사회적동물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지향인가? 성장, 변화, 개발, 도전과 정복이라는 서양식 사회체제가 인류를 갈등과 멸망으로 이끌고 있다. 자연과 동화同化는 우리 한민족의 삶의 방식이다. 조선시대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물질적으로는 향상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피폐로와져버렸다. 인간의 삶의 방식은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동화同化여야 한다. 그게 지구의 본 모습이다. 인간도 지구의 한 생명체이므로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유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다른 생명체는 생명 유지 정도의 삶을 영위하는데 인간은 생명 유지의 탐욕을 넘어 무한대의 탐욕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면 결국 인간도 파괴된다. 성경 바벨탑의 교훈을 상기想起해야 한다.

 

 

<약력>

 

이천만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교육대학,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수중흥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하였고, 한국화, 한국화, 민화교육을 연구하였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 어린이민학당활동을 했다. 장편동화 반디전설, 교육칼럼 훈사정음, 연구논문 한국민화교육연구 등 저서가 있다.

 

 

<목차>

 

 

62. 맹골 해역海域

63. 문서사회 탁상행정

64. 40: 20

65. 유세차維歲次 감소고우敢昭告于

66.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67. 썩을대로 썩었다

68. 허수아비 놀음

69. 내리사랑

70. 타원형橢圓形 조직組織

71. 독수리와 하이에나

72. 뙈기와 신종新種Pulu풀루

73. 사회자본주의

74. 교포

75. 술과 벗은 오래 묵을수록

76. 댕갱이

77. 천지天地바카리 나리꽃白合

78. 감사원 특별조사국 - 없었던 일

79. O My News오마이뉴스 Interview인터뷰

. 나는 부끄러운 교육자

.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

. 내가 가는 곳마다 바람이 일더라

. 아버지, 아버지는 그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 돈키호테 교장의 정년停年, 그리고 양심의 주홍朱紅글씨

. 문화일보 Clean Korea크린 코리아 원년元年 고해성사告解聖事

. 내 억울함 교육부 · 교육청도 외면外面, 장학록도 원본原本과 달라

 

 

62. 맹골해역海域

 

공자孔子형식이 실질實質에 우선優先한다고 논어論語 사숙록私淑錄 양화편陽化編에서 말했다. 제도制度System의 이야기다.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 있고, 차관과 국장 그리고 계장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체제는 견고한 System으로 이루어져 있다. 회장, 사장, 부장, 계장으로 이루어진 회사의 구조는 질서정연秩序整然하다. 특히 조직체계가 투철透徹한 군대에서는 사단장, 연대장, 중대장, 소대장의 명령에 의해 죽고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 잘 짜여진 그물처럼 촘촘하다. 조직체계대로라면 개미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갈 틈이 없다. 그런데 조직 중의 조직이라고 할 군대조직은 북한 병사가 지뢰밭을 지나고 철조망을 넘어 아군我軍 초소哨所의 문을 두드리는 Knock귀순歸順사건이 일어났다. 조직이 경화硬化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조직 자체의 결함缺陷이다.

교사에서 교장이 되려면 Pyramid승진계단을 타야 한다. 평균 20년 정도 경력이 되어야 중간단계인 교감 꿈을 꿀 수 있다. 20년 경력의 교사로써 100 : 1 정도의 Pyramid. 그 승진과정에 3년 동안의 근무평정 (근평勤評)이 있다. 객관적인 기준은 있으나 형식이고, 교단에서는 그 3년 동안 교장에게 벌벌 기는 것은 통례通例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속칭俗稱 군대軍隊말로 까라면 까는’ Yes Man은 물론이고 집사執事 노릇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근평철이 되면 웃지 못 할 생Show도 벌어진다. 돈뭉치가 오가는 건 관행慣行인데, 두 경쟁자 중에서 한 사람이 촌지寸志를 상납上納했고 뒤늦게 이를 간파看破한 상대편이 액수額數를 올려 상납을 하면 바로 근평이 움직인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교장은 다방茶房에서 뜨거운 Coppee 세례洗禮를 받았다. 식칼을 든 교사가 교장을 쫓아다니는 연극演劇도 있었다. 연구점수는 표절剽竊 정도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산 연구보고서로, 표창表彰점수는 뇌물賂物로 산 장관長官 표창으로 취득하기 때문에 여기서 교사로써의 자존심이나 사도師道는 없다. 교직사회의 윤리의식도 직원 간의 동료 간의 유대紐帶와 직장의 질서가 모두 깨져버린다. 승진에 관한 한 교직사회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이다. 승진제도와 System이 사회적 윤리의식은 물론 개인적인 인간성까지 파괴시켜버린다. 그리고 그런 절차로 획득한 교장자격증은 독선적獨善的이고 무지無知한 학교경영으로 대물림한다.

사회체제를 Team체제나 Group제도로 바꿔야 한다. 학교를 예로들면, 과목별 교과Team을 주축으로 집단이 만들어지고, 이 소단위單位 집단에서 모든 일을 협의체協議體 협의제協議制로 운영한다. 필요하면 상황에 따라 대표를 선정할 수도 있다. 교장 교감이 필요하면 선정된 대표들 중에서 한시적으로 교장 교감을 선정하여 활동하고 역할이 끝나면 평교사로 돌아온다. 정부조직도 조직도組織圖만 만들어놓고 조직원들이 대표를 선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중앙정부, , 시군, 읍면동, 리의 조직체계를 줄여 서너 단계로 단순화하고 조직운영의 장은 필요에 따라 조직원들이 선정한다. 예를들면 도조직을 없애고 중앙정부 아래 시군市郡 그리고 읍면邑面을 없애고 마을단위(부락部落이라는 명칭名稱은 일제日帝)시 일본의 백정白丁이나 천민賤民 거주지居住地 명칭을 의도적으로 붙인 마을이름)로 바로 내려간다. 그렇다면 관리체제가 사라지고 군림君臨하는 나리도 없어진다. 따라서 문서文書사회 탁상卓上행정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세월호참사 때처럼 정부부처들이 따로따로 10개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각각 따로따로 노는 일도 없어진다. 위난危難의 일을 당하여 중구난방衆口難防 만화방창萬花方暢하는 일도 사라진다. 승진昇進으로 파생派生되는 온갖 비리와 부정 그리고 이들이 유발誘發하는 사회악이 사라진다. 정부와 기관 그리고 군대나 경찰 등 사회적기관들의 직위와 직급을 없애고 Team체제나 Group제도로 만들면 사회적 부정비리나 제도적 관행慣行이 사라진다. 승진 경쟁이나 부정비리도 없어진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양반 상놈, 관공서의 국장, 과장, 계장과 주사의 계급이 타파打破되어 진정한 평등사회가 이룩된다. 직위와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공무원들을 일선一線 현장으로 몰아내면 탁상행정 문서사회가 사라진다. 농민들은 흙에 씨를 뿌려 땀 흘려 가꾸고 추수秋收한다. 어부들은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우면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는다. 공무원들은 탁상에 앉아 컴퓨터로 생산하고 서류書類로 거두고있다. 공무원도 농민처럼 발로 뛰고 손으로 일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공무원이 필요치 않다. 조직, System이란 것 - 상명하복上命下服System이란 것은 조선시대 계급階級 같은 것이고 계층階層을 조성造成하여 또 또다른 계급사회를 만든다. 양반과 상놈은 없어졌으나 장관과 계장이 생겼다. 장군과 쫄병이 생겨났다. 이 조직이라는 체제, 제도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들여다보면 얼마나 허술하고, 방만放漫하고, 무력無力한 지는 인천 제주 간 페리 세월호가 물살이 센 진도 맹골해역海域에서 침몰하여 수장水葬300여명 단원고등학교 학생 참사에서 확연하게 들어났다. 문서로 시작하고 문서로 끝내는 문서사회 탁상행정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다. 조직은 직위와 계급으로 된 또 하나의 편견偏見일 뿐 허상虛想이다.

 

 

63. 문서사회 탁상행정

 

행정에서는 행동하는 양심대신 탁상과 문서를 선택했다. 신축건물과 컴퓨터를 선택했다. 멀쩡한 건물을 허물고 호화로운 신축건물 청사를 짓는 게 주민선거로 당선된 지자체장들의 경쟁이 되었다. 대출이자를 먹고사는 은행건물은 5성급星級Hotel도 저리가라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평판評判을 듣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어쩌다 운수運數가 사나워 아파트운영 부정비리문제로 법정法庭에 섰다. 생전 파출소派出所 문턱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터라 어색하고 민망스럽다. 경찰서란 아무리 친절이니 시민의 지팡이니 해쌌지만 제복制服만 봐도 주눅이 든다. 의사醫師가 아무리 친절해도 의사만 보면 아이들은 울음부터 터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병원이나 은행은 말 할 것도 없고, 구청 창구공무원들은 싹싹해졌는데 아직도 사법기관司法機關 공무원들은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다가 서류를 제출하고 나왔는데 진땀이 다 난다. 나오다 뒤돌아보니 10여 층 네모 건물이 내리누르는 것처럼 위압적威壓的이다. 목에 힘주고 회전의자回轉椅子에서 신문께나 보면서도 촌지寸志를 찔러주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기다리던 민원民願 관습慣習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검찰청과 법원은 예외例外였던가보다.

초등학교는 늘어나는 공문서수발로 신음하고 있는지 오래다. 해매다 새해가 되면 공문서 감소減少정책을 외치지만 되려 공문은 더 늘고 있다. 공문서수발 때문에 수업이 희생되는 일은 관행慣行이다. 더구나 긴급緊急보고라는 것이 하달下達되면 학생들은 자습自習을 해야 하고 교사는 공문서작성에 매달린다. 기한期限을 어기면 학교장이 문책問責을 당하기 때문에 수업 희생을 학교장이 묵과黙過한다. 그래서 교장이나 교사나 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滯念한다. 공부시간에 교무실에서 공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교사를 봐도 교장은 못 본 척 해야 한다.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인데, 현장에 있을 때 공문서수발과 학생수업 침해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지자 그 실상을 규명糾明한답시고 공문서 수발受發 근절根絶 연구학교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실태조사를 해보니 평균적으로, 교사가 하루에 2건의 공문을 접수하고, 이틀에 1건을 보고한다. 보고공문 1건을 작성하는 시간은 평균 2시간, 그래서 6교시 수업을 다 마치고서는 공문 작성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더구나 공문이 학교행사에 관한 것이면 공문을 접수해서 기안起案하고 실행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기까지 1주일이 걸렸다. 공문서수발은 원래 행정실의 몫이지만 제도적으로나 공문서의 내용으로 행정실이 수발하기에는 어려운 여건이다. 연구결론은 세 가지 처방處方으로 결론지었다. 첫째는 공문서를 Dater Base하는 방안이었다. 특히 시설자료에 관한 공문은 교육청 Dater Base로 파악把握이 가능한데도 작년에 보고한 내용을 올해도 또 보고하라는 공문이 온다. 기껏 교육청 자기들이 공급供給한 자료資料 목록目錄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으면 황당荒唐하다. ? 자기들이 사줬으니까 당연히 자기들 컴퓨터에 수록收錄이 되어 있을 것 아난가? 상급청上級(에서 사서 보냈으니 상급기관 자료목록에 등재謄載되었으면 그만일 걸 재확인을 요구한다.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공문들이 보고공문의 1/ 3 쯤 된다. 그래서 좀 감정적이지만, 윗분들이 책상에 앉아 밥값을 하느라고 공문을 양산量産해낸다고도 보았다. 두 번째 방안은 교감과 교무전담요원校務專擔要員 그리고 행정실이 공문서수발을 전담專擔한다. 세 번째, 학교행사공문은 교장의 자율성自律性을 발휘해서 선택적으로 수행修行하는 방안方案이다. 학교행사도 직계直系 방계傍系를 통해 수없이 온다. 그런데 교사의 공문서수발 근절 학교연구보고회를 열지 못했다. 교육장과 연구주제 갈등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는 교사의 공문서 수발 근절根絶을 주제로 했는데 교육장은 공문서 감소減少를 요구해서 결국 타협이 되지 않아 연구보고회 이틀을 남겨놓고 연구발표회가 무산霧散되어버렸다. 지금은 컴퓨터가 보급되어서 실상 종이문서형태로 하달되는 공문서는 없어졌지만 전자우편으로 하달되는 공문은 갈수록 늘어난다. 그래서 학교 같은 말단末端에서는 공문서를 수발하느라고 본업本業을 팽개쳐야 하고, 주민센터나 구청에서는 하루 종일 책상에서 문서만 다루느라고 해가 저문다. 왜 이런 문서사회 탁상공무원들이 늘어나는가? 자연 이공계理工系 지원志願이 씨가 말라가고 인문계만 공룡恐龍이 되어가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 공자孔子형식形式이 실질實質에 우선優先한다고 갈파喝破했다. 그래서 유교의 후예後裔들이 책상물림행정에 익숙한 건가? 그러나 공자의 말은 제도적 개혁에 대한 명감銘鑑이다. 지금 우리나라 행정처럼 컴퓨터로 문서나 다루는 거대한 종이공룡 공무원사회를 개혁하지 않으면 탁상행정은 벗어날 길이 없다. 탁상행정의 오류誤謬는 교사들의 수업 부실不實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천 억을 들여 적자赤子 공항空港을 세우고, 반듯한 옛 청사廳舍를 허물고 새 청사를 짓는 우민정책愚民政策을 멈출 길도 없다. 오늘도 거리에는 청소부와 (차출差出되지 않았을 때지만)경찰뿐이다. 행정공무원들은 공룡화된 최신 청사에 앉아 목하目下 컴퓨터문서의 탁상행정과 열심히 씨름 중이다.

 

 

64. 40: 20

 

Arap아랍은 일부다처一夫多妻고 많은 처첩妻妾을 거느리는 것은 부의 상징이다. Harlem의 근원지根源地가 아랍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많게는 1,000마리 양을 주고 아내를 산다. 아내와 아내가 낳는 아이들이 노동력의 보충이므로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알라스카의 에스키모와 티베트 그리고 몽골과 중국은 소수민족에는 일처다부一妻多夫제도가 있다. 특히 유목민遊牧民인 몽골에서는 같은 형제가 한 아내를 두고 산다. 형제들이 양을 몰고 목초지牧草地를 찾아 떠나면 몇 달씩 집을 비우게 되고 형제 중 하나가 남아 집을 지킨다.

사자獅子는 프라우드라는 집단생활을 하는데 숫사자 한 마리와 암사자 서너 마리 그리고 그들이 낳은 새끼들이 집단을 이룬다. 숫사자는 맨날 그늘에 누워 졸거나 하품만 하다가 암컷들이 사냥해온 먹이를 맨 먼저 먹는다. 배 부르게 먹고 늘어지게 잠을 자고는 한껏 게으름을 부리다가 해질녁이 되면 암사자를 덮친다. 단지 영역을 침범받을 때도 숫사자가 목숨을 걸고 나선다. 야생野生의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짐승은, 사자나 호랑이 또는 코끼리가 아니라 무리에서 쫓겨난 떠돌이다. 무리에서 쫓겨난 짐승은 눈이 벌겋게 충혈充血되어 움직이는 것만 보면 무조건 달려든다. 그래서 사냥꾼들이 제일 경계警戒하는 동물이 떠돌이다. 코끼리는 암컷이 두목이다. 늙은 암컷이 2, 30마리의 무리를 통솔統率한다. 나이 먹은 암컷은 지혜롭기 때문에 두목은 모두 늙은 암컷이다. 초원草原을 찾아 먹이 안내를 하고, 물을 찾고 심지어는 교미交尾를 지정하는 일도 암컷 두목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친정과 칙간(化粧室)은 멀수록 좋다는 우리 속담俗談대로 근친近親결혼은, 열성인자劣性因子로 장애아障碍兒나 저능아低能兒가 태어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자구책自救策이다. 프랑스인들은 결혼 보다는 동거同居를 선호選好한다. 결혼을 해서 살다가 이혼을 하는 것 보다 동거가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일수록 결혼 보다는 동거율이 높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혼율은 낮다. 이혼율은 미국이 51%, 스웨덴이 48%. ‘이혼의 천국으로 알려진 노르웨이가 44%, 영국 42%, 캐나다 38%, 프랑스 33%, 독일이 30%. 이들 나라들은 근래 동거율이 매우 높아졌는데 동거율을 계산하지 않은 수치數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혼율은 8% 내외內外였다. 90년대 초반初盤은 약 15%였고, 90년대 후반에 20%를 넘어섰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에는 이혼율이 30%를 넘어섰다. 그러다가 2011년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47%로 갑자기 높아졌다. 결혼한 사람의 약 절반 정도가 이혼을 한다. 특히 황혼黃昏이혼이 갑자기 많아졌다. 이 자료는 일부일처제의 비합리성을 증명한다. 우리나라 여성의 90% 이상이 다시 태어나면 현남편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거품을 문다. 이 또한 일부일처제의 취약성脆弱性을 갈파喝破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영생永生한다고 서약誓約을 하지만 40평생을 살다보니 갖가지 이유로 웬수가 따로 없다. 파뿌리가 주례사主禮辭를 장식裝飾할 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신랑 신부와 하객賀客들도 다 안다.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들이나 객관적인 여건 때문에 마지 못해서 살 뿐이다. 성적性的 자기결정권 때문에 머지 않아 간통죄姦通罪도 법전法典에서 사라질 것이다. 동성애同性愛도 합법화 되는 추세趨勢. 동거나 자유 교제가 결혼 풍습도風習圖. 결혼 적령기適齡期 여성들의 46%가 결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Gold Miss가 늘면서 연하남年下男 결혼도 는다. 몇 년 전까지는 남녀의 이상적理想的 결합結合 연령年齡이 서너 살 차였다. 40남자와 20대 여자가 만나 살다가, 남자가 60대가 되면 40대가 된 여자가 다시 20대 남자와 만나는 Patern패턴이 이상적理想的인 결합이다.

 

 

65. 유세차維歲次 감소고우敢昭告于

 

공자孔子형식形式이 실질實質에 우선優先한다고 했다. 형식의 중요함을 갈파喝破한 말이다. 공자님의 말씀을 너무나 엄격嚴格하게 지키느라고 우리 관혼상제冠婚喪祭는 매우 어렵고 불편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유세차維歲次 0000전주이씨全州李氏 18세손世孫 감소고우敢昭告于하는 제문祭文은 괴(고양이) 꼬막 보기. 유교형식을 따르느라 문투文套며 격식格式이 고리타분하고 엄격해서 젊은이들에게는 외면당한다. 그런데 유세차는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세대世代 단절斷切이요 괴리乖離. 제사祭祀 절차를 고집하는 세대와 알아먹지도 못한 주문呪文을 외는 할아버지 세대는 불통不通이다. , 지금이 어느 땐가? 우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시대가 아닌가?

형식이란, 사회에서는 조직을 말한다. 이를테면 학교의 행정조직을 따라 올라가보면 대통령(선출직) - 교육부장관(임명직) - 시도市道교육청교육감(선출직) - 구군區郡교육장(임명직) - 학교장(이하 승진, 임명직) - 교감 - 부장교사 - 교사의 구조다. 이 조직이 경직화硬直化되었을 때 비효율非效率이 극대화極大化된다. 조선시대의 양반兩班 상놈常民 계급과 같은 구조의 새 계급제도다. 이 계급은 조선시대 양반 보다 더 구조적이다. 게급 타파打破를 외치고 사회구조 개혁을 외치면서 더 고형적固形的인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행정조직을 보자. 대통령(선출직) - 장관(임명직) - 차관(이하 승진임명직) - 국장(이하 임명직) - 과장 - 계장 - 주사의 구조다. 임명직에서는 임명에 따른 부조리가 발생한다. 승진직에서는 치열熾熱한 내부內部 경합競合이 벌어지고 여기에서 여러 가지 조직의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염불 보다 잿밥이다. 관료官僚의식이 태어나고 관료주의가 횡행橫行한다. 양철밥통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번 세월호참사에서 보는 것처럼 관료와 업계의 유착癒着이 구조적으로 발생하여 그 부조리가 사회를 지배한다. 그리고 수학여행 길 고등학생 300여 명이 희생당하는 참사로 이어진다. 이 참사과정에서 공무원들이나 해운사海運社 청해진은 위난구조를 방기放棄했다. 공무원들은 위난危難 방제防除메뉴얼을 책상서랍에 넣어두고 방관傍觀하고 있었고, 승객乘客을 위험으로부터 구조해야할 선장船長과 선원船員들은 자기 목숨 구하려고 승객은 배 안에 있으라고 방송을 하면서 자기들이 먼저 탈출해버렸다. 최소한 자기들이 대피待避하면서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대피하라는 한 마디 방송만 했더라면 이 참사는 없었다. 대피한 마디 방송을 안 했을까?

수직적 조직체계를 수평적 공동체로 개혁해야 한다. 평등사회를 위해서다. 학교를 예로들면, 모든 교원을 교사로 일원화一元化하고 필요할 때만 교사들 중에서 Leader를 뽑아 활용하는 평등구조로 개혁한다. 국어교사회, 수학교사회가 모여 필요하면 유한적有限的으로 사안事案에 따라 Leader를 선출選出한다. 교장 교감이 필요하면 교과모임 Leader들이 모여 역시 유한적 Leader를 선출한다. 시군교육청도 마찬가지로 행정직과 학무직으로 양분兩分하여 평직원平職員 Group으로 활동하고 필요하면 Group Leader가 교육장이 되어 유한적으로 활동한다. 군청이나 도청도 기획계, 산업계, 교통계의 소Group들이 모여 공동체 운영을 하고 필요하면 한시적 Leader를 선출한다. 그리고 행정단위를 축소하고 소규모로 구성한다. 중앙정부 - (시도청) - 시군구청 - (읍면동) - (통반)에서 시도청과 읍면동, 통반은 없앤다. 중앙정부 - 시군구청 - 작은공동체(행복마을, 예술인마을 등)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로 한다. 행정구조 단계를 줄이고 마지막 단위單位를 작은 공동체로 만든다. 중앙정부는 자연히 축소되고, 시군구청은 몇 개씩을 묶어 중간규모로 만든다.

 

 

66.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행복은 Paterink파르테링크의 파랑새처럼 날아들어오지도 않고, Wordwoth워즈워드의 무지개처럼 내 앞마당에서 뜨지도 않는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여러 가지 행복 즉 학문, 종교, 돈 등등 행복은 행운幸運이나 로또복권 또는 도둑처럼 몰래 오지 않는다.

파랑새를 찾으러 세상을 헤매다가 돌아와보니 자기 집 뜰에 파랑새가 있었다. 무지개를 잡으려고 산을 넘고 또 넘었으나 무지개는 늘 닿을만하면 더 멀리 가고 잡히는 것 같아도 한 발 멀리 있었다.

나이 예순에 접어든 집사람이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한다. 결혼하자마자 시댁媤宅 빚 갚느라고 신혼新婚과 청춘을 다 보냈고, 포도씨 빚에서 헤어나고는 광주에 집 한 채 사보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그러고보니 젊은시절이 다 가고 귀밑에 흰 머리칼만 늘어버렸다. 새끼들 키워 장가들여놓고도 김치 담가주랴 밑반찬 챙겨주랴 뒷바라지에 쉴 짬이 없다. 그나마 장남長男은 취직한다고 석사碩士학위까지 받은 졸업장을 팽개치고 또 대학원에 편입해서 공부를 했는데 취직이 무산霧散되었고,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운다고 유학을 해서 기천만원을 들였더니 그 일도 땡쳐버리고 백수白手 신세다. 기대를 모았던 둘째는 서울로 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10여년을 바둥거린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남들 다 한 명예퇴직은 엄두도 못내고 내년이 정년停年인데 주름살이 가둑한 몰골로 출근을 하는데 요즘에는 통 재미가 없다고 푸념이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의 80 부친이 자살을 했다. 갑작스런 죽음을 놓고 말이 많았다. 공원公園처럼 가꾸었던 선산先山에서 의문의 죽음을 했는데 며칠 뒤에 유서遺書가 발견되었다. ‘나는 실패했다.’ ‘행복한 날이 없었다.’ 잘난 사람들은 행복은 자기 나름이라고들 한다. 행복은 남이나 돈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밖에서 찾지말고 안에서 찾으라고 한다.

내 행복은 시장市場에 가서 낙지 한두(요즘은 금값이라 먹을만큼 많이 사지 못함) 마리 사다가 다리는 손주들에게 주고 머리를 통째로 삶아 담근 송순주松荀酒 한 잔에 먹는 재미 그리고 집 앞 장원봉을 오르며 휘파람 부는 재미와 서낭당 두세 개를 짓고 등산객들이 하나 둘 탑을 높이는 걸 보는 재미, 서낭당 둘레에 접시꽃과 꽃무릇을 심고 가꾸는 재미다. 원셋(怨讐)놈의 잠이 사라져서 새벽에 눈 뜨이면 예전에 읽었던 동화책 세 번 네 번 읽는 재미, 아파트화단에 꽃무릇, 접시꽃, 개양귀비꽃밭을 만들어놓고 물 주고 가꾸는 재미다. 늦게야 눈을 뜬 우리 고대사를 찾아 새로운 사실史實을 알고는 혼자 기뻐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러다 배 고프면 서툰 요리솜씨로 먹고싶은 요리를 해서 먹는 재미 이 게 내 행복이다. 또 하나 더 있다. 내리사랑, 손자 키우는 재미가 이런 것이었던가? 아들 키우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다. 그리고 늦은 효를 깨우치기도 한다. 워드워즈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를 실감實感한다.

 

 

67. 썩을대로 썩었다

 

부패공화국腐敗共和國, 구멍가게부터 대기업大企業까지, 공무원은 말 할 것도 없고 정의사회 구현具現을 위한 최후의 보루堡壘라 할 사법부司法府와 종교宗敎까지 썩지 않은 데가 없다.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義人 열 명이 없어서 화산재火山災에 덮여 멸망한다.

지성知性과 신성神性의 대결對決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최고 지성인 대학교수가 석궁石弓을 들고 나섰겠나. ‘부러진 화살영화는 개봉 2주만에 200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도가니 열풍보다 더 열광적이다. 판사는 신의 영역인 선과 악을 다루기 때문에 신성영역을 관장管掌한다. 사법부 스스로도 신성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어깨에 내걸고 검은 망또의 판사복을 걸치고 있다.

석궁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경찰과 검찰은 수사권조정 문제로 다투었다. 서로 사회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정당한 법적 권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수사권을 가져야 정당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다고 외쳤다. 그런 상황에서 도가니가 터지고, 석궁테러 영화가 개봉되었고 관객이 몰렸는데, 대법원은 점잖게 한 마디 했다. ‘부러진 화살은 법적진실을 왜곡歪曲했다.’ 참말로 법적 진실을 왜곡한 사람은 누구일까? 국민을 무지랭이로 아나? 높은 법대法臺 위에 앉아 법정法廷을 내려다 보고 호령號令을 하다보니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 요상한 모습의, 서양 흉내나 내는 법복法服부터 벗기고 법대를 낮추어야겠다.

법과 재판은 신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과 악을 가리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신성神性을 앞세운다. 그래서 높은 재판장석 위에, 옛 사제司祭처럼 검은 법복法服을 걸치고 앉아 아래 피고석被告席을 내려다보며 판결判決한다. 그런데 우리는 판사들의 그 신성과 법복으로 가리워진 가면假面 뒤의 수많은 왜곡된 판결을 알고 있다. 조봉암 간첩사건은 60여 년이 지난 뒤에야 허물이 벗겨졌다. 판사가 사형死刑을 판결하여 사형당했는데 60년 후 다시 판사가 신원伸寃을 회복시켰다. Irony(아이러니)를 대법원은 뭐라고 할 것인가? 이미 죽어 해골骸骨이 된 조봉암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어디 그것뿐이랴. 정치적 또는 사회적 약자弱者들에게 들씌워진 용수龍鬚는 이 땅의 정의正義를 수호守護한다는 사법부에 의해 자행恣行된 의도적意圖的인 만행蠻行이었다. 그러고도 사법부는 부끄러운줄 모르고 아직도 자기네들을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自處한다. 국민들의 불신不信은 애써 모른 체 한다. 최근 여론조사輿論調査의 사법부 불신은 80%였다. 사법부 존립存立 가치를 위협하는 위험수위다. 아니 이미 사법부는 죽었다. 국민들은 정의와 양심을 추구한다든가 정의사회와 공정사회를 지향指向한다는 사법부의 나팔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정의의 수호자 사법부는 자기도취陶醉요 자기부정否定이요 자기혐오嫌惡. 신성神聖은 자기들만의 깨춤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떼강도들이 외친 이 시대의 명언名言이다. 그런데 오늘도 사법부는 자기도취에 빠져 마치 마약痲藥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아파트운영 부정비리로 주민과 임원진들이 분쟁紛爭에 휘말렸다. 부정비리를 고발한 문건文件들로 쌍방 명예훼손고소가 되었는데 조사하는 경찰과 검찰은, 부정비리를 척결剔抉하고 아파트운영을 쇄신刷新하려는 본질本質을 팽개치고 지엽적枝葉的, 그러니까 문건을 누가 만들었느냐, 서명署名한 주민들이 문건에 얼마나 관여關與했는가 하는 문제들만 조사했다. 명백한 범죄행위가 들어난 아파트 임원들의 범법행위는 놔두고, 부정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주민들을 불법단체 결성結成이니, 명예훼손이니 하며 주모자主謀者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사가 끝날 때쯤이면 은근히 협박성 언질言質을 하며 화해和解나 고소告訴 취하取下를 종용慫慂했다. 주민들은 정당한 일을 하다가 당한 고소라서 경찰과 검찰을 믿었고, 정황情況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임원진은 Lobby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명백한 개인적인 명예훼손 문건의 임원진任員陣에게는 30만원씩의 벌금을 구형求刑하고, 공익성公益性 문건을 배포配布한 주민 대표들에게는 그 열 배인 300만원의 벌금을 구형求刑했다. 또한 명백한 불법적인 회장직무 강점强占에 대한 회장직무 가처분假處分도 관리규약에 회장이 불법을 저지를 경우 사퇴조항이 명시明示되어 있는데도 재판관은 불신임不信任을 해라, 주민투표로 해임절차를 밟으라고 딴지를 걸면서 고소취하를 종용했다. 그러다가 주민편에서 이의서異意書를 제출하자 재심再審을 한다고 시간을 끌다가 마지 못해서 가처분을 판결했다. 주민들이 임원진의 부정비리를 척결하고 아파트운영을 쇄신하려고 하며, 임원진은 이를 편법불법으로 저지沮止하려고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가 봐도 알 수 있는데 경찰, 검찰, 판사가 모두 힘을 합쳐 불법을 자행한 임원진을 돕고 있다. 불법을 돕고 있다. 기가 막혔다. 역시 사회에서 회자膾炙되는 견찰犬察(경찰), 떡검(검찰), 개판(판사)을 확인한 셈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 정의는 고사하고 법이 있는가? 라는 허탈감虛脫感이 앞섰다. 그래도 대법원은 믿었는데 상고上告한 대법원에서는 기각棄却을 해버렸다. 대법원의 판례判例도 있었다. ‘다소 명예 훼손의 여지가 있더라도 공익성은 무죄다’. 법은 법전法典에만 존재하는가? 그래서 민중民衆들은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에 갈채喝采를 보낸다. 아니, 교수는 석궁石弓을 들었지만 나는 석궁이 아니라 더한 것도 들고싶었다. 사법부는 필요악必要惡이다.

오늘도 수많은 부러진 화살을 그려내고 있는 사법부의 마방진판魔方陣板을 혁신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사법개혁이 중수부 폐지나 수사권 조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소불위無所不爲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회수回收해야 한다. 저 무지막지無知莫知한 판사들에게 신성불가침을 더 맡겨둘 수 없다. 오늘날에는 자기들만의 말뿐인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영역에 사법부를 감시監視하고 감사監査하여 잘못을 저지르면 바로 책임을 묻는 국민國民감시단監視團 또는 사법부가 유무죄有無罪와 형량刑量에 직접 간여干與하지 못하게 하고 법률적 해석만하는 사무직事務職으로 두고 국민(國民)배심원제陪審員制 등 사법부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68. 허수아비 놀음

 

허수아비에게 속을 참새는 없다. 오히려 영악한 참세들은 허수아비 어깨에서 장난을 친다. 총을 쏘고, 팔랑개비를 설치하고, 솔리개 울음소리로 겁을 주지만 소용없다. 그래서 벼논 전체에 그물망을 들씌우기도 한다.

아파트 부정비리를 척결해보겠다고 설치다가 쌍방명예훼손 곳에 걸려들었다. 경찰, 검찰 그리고 판사까지 화해와 고소 취하를 설득했지만 너무 억울해서 취하를 거절했다. 그랬더니 부정비리를 저지른 임원진들에게는 벌금 30만원씩을 판결하고 부정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주민대표들에게는 1심에서 300만원을 판결했다가 2심 항소심에서는 벌금 150만원씩을 판결했다. 그 와중에서 변호사가 문제였는데 임원진은 임원진 중에 사위가 변호사가 있어 빽이 든든했으나 주민대표는 난감했다. 변호사 비용은 착수금着手金300만원이었다. 150만원 승소勝訴하자고 300만원짜리 변호사를 선임할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자동적으로 국선변호사가 배정되었다. 국선國選변호사가 쌍방 명예훼손 정식재판에 세 번 참석했는데, 판사의 할 말 없습니까라는 물음에 세 번 다 라고 대답한 것이 고작이었다. 국선변호사제도는 변호사도 선임選任할 수 없는 서민庶民들의 권익權益 보장을 위해 국가가 변호사비를 대납代納하는 제도인데 있으나마나한 제도다. 외려 국가가 세금으로 지불하는 변호사비만 아깝다. 차라리 국선변호사가 없었다면 피고로써 최선을 다 했을텐데 변호사를 믿고 도움이 될거라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래도 항소심에서는 벌금이 150만원으로 경감輕減되었다. 아마 피고인들 스스로 형평성문제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던 결과였을 것이다.

애초에 변호사 선임 자체가 반법적이다.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면 형량刑量이 줄어들거나 유능한 변호사를 돈 많이 주고 선임하면 사형死刑도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회자膾炙되었다. 법적정의라면, 신성한 역할의 판사가 선고한 형량은 절대적인데도 변호사가 개입하면 형량이 감형된다는 것은 법적정의의 Irony(아이러니). 그렇다면 판사는 적당하게 형량을 늘려 선고宣告하고 변호사가 밥 먹고 살게 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해주는 셈 아닌가. 이게 법전法典에 적혀있는 법적정의인가? 그래서 돈 많은 회장은 Wheel Chair(휠체어)를 타고나와 병보석病保釋이 되고, Photo Line(포토라인)에 서서 묵묵부답黙黙不答의 정치인들은 거물巨物 변호사를 사서 죽을 죄를 지었어도 집행유예執行猶豫를 받는다. ‘도가니에서 장애우障碍友들이 수화手話로 울부짖는 이유다. 세기世紀의 집단살인자들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자조적自嘲的으로 내뱉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연유緣由.

아파트운영의 부정비리를 척결하면서 회장의 부정비리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문건이 명예훼손이라고 고소를 당했다.

 

아파트운영은 주민들의 무관심을 이용한 부정비리의 복마전伏魔殿이다. 아파트 전문임원꾼 조차 생겨나고 있다. 그래도 관할管轄 부처部處는 아파트운영은 자율自律 체제體制라며 손사래를 친다.

 

공익성公益性문건은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대법원판례를 제시해도, 경찰과 검찰은 화해和解를 종용慫慂하다가 거부하자 증거제일주의의 경찰과 검찰이 유도誘導 심문審問과 추정推定으로 조서調書를 꾸며 명예훼손으로 몰아갔고, 검찰도 화해를 주선하더니 거부하자 명예훼손으로 만들어 기소起訴를 했다. 상대의 Lobby로비라고 판단하고 있다. 변호사사무실에는 사무장事務長이라는 중개인仲介人이 있다. 이들은 법원직원과 밀착되어 소송건을 물어온다. 말이 사무장이지 변호사와 소송 당사자들을 연계連繫시켜주고 거간비居間費를 받는 일종의 삐끼. 이들이 서로 유착癒着되면서 변호사는 돈을 벌고 사무장들은 알게 모르게 판결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무장은 그림자로 존재하지만 힘이 꽤 쎄다. 그래도 판사만은 제대로 가려주겠거니 했는데 웬걸 판사도 화해를 거론하다가 안 되자 벌금형을 판결했다. 그래놓고 항소심에서는 판결문에다가 개전改悛의 정이 없어 기각棄却한다고 썼다. 무엇을 반성하란 것인가. 반성할 사람은 부정비리를 저지른 임원진과 높은 재판정에 앉아서 피고를 내려다보며 까만 법복깨나 차려 입고 엄숙한 말투로 선고宣告를 한 판사가 아닌가? , ‘부러진 화살이 천만千萬 관객觀客을 동원했는지 알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다 아니다 라고 하는데 판사들만 고개를 외로 틀고 묵묵부답黙黙不答이다. 부러진 화살에서 이번 재판은 어땠습니까?’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피고 김교수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고 코웃음을 친다. 명예훼손은 상고上告를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3개월 후 대법원도 기각棄却했다. 그래서 억울한 벌금을 물어야 했다.)

 

 

69. 내리사랑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부모님께 불효하면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한다. 주자십회朱子十悔의 첫 번째 경구警句.

손자 둘을 거들면서 내리사랑이란 말을 실감했다. 그러나 후회막급後悔莫及, 억지지만 내리사랑이란 말에 자위自慰한다. 장남長男 규가 퍽 어렸을 때, 한 밤 중에 열로 펄펄 끓어 택시를 불러 읍내 병원 응급실로 간 적이 있다. 택시비가 너무 비싸 얼른 택시를 부르기 어려운 때였다. 그 한 달 전에는 밤에 할머니가 위독危篤하시다는 전화를 받고도 다음 날 날이 새서야 고향 행 버스를 탔다.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주자朱子 10의 첫머리 말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오래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되뇌이지만, 또 출천지효出天之孝라도 효도는 끝이 없다는 말로 자위自慰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다 못한 효도를 아이들에게 하는 게 순리順理가 아닌가 합리화한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이 효도라는 논리다. 효도의 가치관이 평가절하平價切下된 세태世態의 논리다.

그런데, 손자를 거두워보니 이 게 장난이 아니다. 큰손자는 요람搖籃에 누웠을 때 우유를 먹이면서부터 거들었다. 뒤채고, 기고, 걷고, 달리는 과정을 기적奇蹟처럼 생각하며 키웠다. 누워서 꼼지락거리던 녀석이 어느 날 제 힘으로 뒤집어 엎어졌을 때 마치 기적을 보는 듯 감격했다. 옹알이가 말로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 걸 이웃들에게 자랑하며 기적이라고 했다. 혼자만 그 기적을 보는 것처럼 기꺼워했다. 구불출九不出이었을까?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 손자가 유치원을 거쳐서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토일요일에는 지 애비에미가 돌보는데 토일요일에도 안 보면 서운할만큼 정이 깊다. 그 녀석을 위해서라면 아까운 것이 없다. 하자는 대로 다 해준다고 제 애비 에미가 안달을 할 지경이다. 아들을 키울 때는 몰랐던 일이다. 아들을 길렀던 때와는 도무지 딴판이다. 내리사랑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한 세대를 건너뛰기 사랑이니 징검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내리사랑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랑에 빠져있다.

 

 

70. 타원형橢圓形 수평구조水平構造

 

세월호참사로 대한민국은 하룻밤 사이에 애도조문哀悼弔問사회가 되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나라로 한껏 어깨에 힘을 주고, 새마을운동모형으로 지구촌을 구제救濟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한류韓流로 지구촌문화를 선도先導하고 있다고 목에 힘을 주던 나라가 눈물을 떨구며 한탄恨歎과 분노忿怒에 휩싸여 있다. 외국 언론들은 참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조롱嘲弄한다. 북한조차도 남한은 인권人權을 말 할 자격이 없다고 희롱戱弄한다. ‘한강의 기적으로 유래없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뛰어오른 나라가 결국 그 꼴이었던가?

국가 개조改造를 외친다. 일약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서려던 순간 대한민국은 졸부猝富로 전락顚落했다. 경제적 부는 축적蓄積했으나 정신적으로는 후진국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세월호참사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그 걸, 화장기化粧氣 없는 민낯으로 지구촌 만천하에 들어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조롱한다. 세월호참사를 계기로 국가개혁을 해야 한다고 외친다. 어디서 언젠가 많이 듣던 소리다.

대한민국의 대형참사를 보자.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崩壞 사망자 33명은 시멘트를 적게 쓰려고 배합비율配合比率을 속여서 일어났다. 1993년 구포 열차 전복顚覆 78,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墜落 66, 서해 훼리호는 과적過積으로 침몰沈沒 292, 1994년 성수대교 붕괴는 멀쩡한 다리 한가운데가 뚝 부러져 내려앉아 32, 충주호 유람선 화재火災 29, 1995년 대구 도시가스 폭발 101, 삼풍백화점 붕괴는 설계 변경으로 502명 사망자가 있었는데 건물 안에서 건물의 안전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었던 임원任員들은 건물이 붕괴되기 30분 전에 자기들만 대피待避, 1997년 괌 KAL기 추락 229, 1999년 화성 Sea Land(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로 23명의 유치원생들이 희생되었는데 인솔교사들은 자기들 끼리 모여 술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2002년 김해 Air China(에어 차이나) 추락 127, 2003년 대구 지하철화재는 기관사가 열쇠를 가지고 혼자 도망쳐서 열차列車 객실客室에 갇힌 승객들은 꼼짝딸삭도 못하고 192명 희생犧牲, 대연각화재 268, 이리역 폭발爆發은 관리자가 술 먹고 자다가 켜놓은 촛불이 넘어져서 기차에 실은 화약火藥 수 백 톤이 폭발하여 99, 엊그제 20142월에 Marina Resort(마리나 리조트) 붕괴로 입학 축하 Meeting(미팅)을 하던 대학생 10명이 죽었는데 체육관지붕이 눈의 무게로 폭싹 내려앉았다. 대형참사 때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더라도 다시는다시는하더니 얼마나 지났다고 Marina Resort(마리나 리조트)참사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수학여행 고등학생 300여 명이 희생되는 대형참사가 일어나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한창 참사 원인에 대한 수사搜査가 한창이다. 내용은 밝히면 밝힐수록 한심하고 가관可觀이다. 그런데 이 참사들의 배경이 한결같이 인재人災. 천제지변天災地變이라면, 아니다 천재지변이라 해도 왕조王朝시대 왕은 삼베옷을 입고 거적을 깔고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했다. 인재는 체제다. 한일합방韓日合邦을 보라. 지도자연指導者然 한 벼슬아치들이 일본의 힘에 굴복하여 백성들의 뜻과 다르게 일본 예속隸屬을 결정해버렸다. 작위爵位와 땅을 하사下賜받고 나라를 팔아먹어버렸다. 백성을 노예奴隸로 팔아먹어버렸다. 이것이 관료조직의 극단적인 폐해다.

공자는 형식이 실질에 우선한다고 했다. 형식은 조직組織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효율성만큼 조직의 폐해가 크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효율성도 조직의 폐쇄성으로 고착固着이 되어버렸다. 더 아쉬운 것은 왕조시대의 수직적 조직체계를 수평적 조직체계로 개혁한다면서 계급을 더 늘린 일이다. 여기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이 야기惹起된다. 특히 계급사회에서 승진을 위해 일탈逸脫하는 문제는 사회 존재를 위협한다. 수평적구조가 요청되는 요인要因이다. Team()제도나 Group(그룹)제도가 조직사회 개혁의 Model(모델)이다. 단계마다 Team()을 형성해서 필요할 때 사안事案에 따라 한시적限時的으로 Team()들이 Reader(리더)를 선출한다. 모두 평직원이다. 평등사회의 기반은 모두가 다 사회원이고 Reader(리더). 공동책임이다. Pramid(피라미드)직제職制에서 수평水平 타원형橢圓形직제職制로 개혁해야 한다. 수직조직에서는 가장 아래층 조직에 100명의 평사원이 있고, 평사원 중 10명이 계장係長이 되고, 10명의 계장은 5명의 과장課長으로 승진하고, 5명의 과장은 3명의 국장局長이 되고, 3명의 국장 중에 1명의 최고경영자最高經營者가 승진한다. 이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 Pramid(피라미드)조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데 동료는 적이다. 상사上司는 하나님이다. 뇌물賂物이 횡행橫行하고 부조리不條理가 판친다.

수평구조는 타원형橢圓形이다. 원탁圓卓에 다 같이 둘러앉아 평등하게 일하고 평등하게 근무한다. Reader(리더)가 필요하면 사안事案에 따라 적임자適任者를 선출해서 한시적限時的으로 활동한다. 작은 공동체다. 계장도 없고 국장도 없다. 다 같이 주인主人이다. 모두 다 평사원이면서 또 다 같은 최고경영자다.

 

 

71. 독수리와 hyena하이에나

 

독수리는 하늘의 왕이다. 하이에나는 간악奸惡한 짐승으로 소문 나있다. 그런데 둘 다 공통점이 있다. 밀림密林의 청소부淸掃夫. 사자나 다른 동물이 버린 찌꺼기를 깨끗이 먹어치우가 때문이다. 심지어는 뼈도 남기지 않는다.

인간으로서는 막을 수 없다. 더구나 승진이나 성공 그리고 경쟁사회에서 불공정은 필연必然이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어떤 사람은 출발선에서부터 뛰는가 하면 다른 이는 50m 앞에서 출발하고 또 100m 앞에서 시작하는 주자走者도 있다. 아예 결승선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20144월 세월호참사 직후直後 세계일보(세계일보가 최근 재단법인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가 조사한 설문說問에 의하면 대한민국 청년 10명 중 9- 90%대한민국은 불공정不公正사회라고 응답應答했다. 노인층으로 갈수록 빈도頻度가 낮았지만 50대는 77%, 60대는 53%였다.

이러한 결론의 뒤에는 돈이 있다. 극도의 자본주의 폐해弊害. 사람이 필요에 의해 - 더 합리적으로 살기 위해 돈을 만들었는데 끝내 돈이 사람을 지배해버렸다. 이제 자본주의사회는 돈이 주인을 하인下人 부리 듯 한다. 마치 국민이 뽑은 정치가가 국민을 하인 취급하는 것이다. 국민의 종복從僕이라고 말하는 관료들이 국민 위에 군림君臨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오죽하면 중학생 설문에서 90%의 아이들이 1억을 준다면 감옥도 불사不辭한다는 답변이 나왔을까.

그래서 자본의의 폐해를 극복하겠다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대두되었는데, 사회주의 종주국宗主國 쏘비에트연방聯邦은 망해버렸다. 중국과 쿠바 그리고 북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몇몇 나라들이 공산중의의 명맥命脈만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북 유럽 몇 나라들은 지구촌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번창繁昌한다. 그 특징은 평등주의다.

대한민국을 한민국으로 부른다. ‘동물의 왕국으로 부른다. 앞선 대통령은 별명이 쥐박이였고, 뒤를 이은 대통령은 닭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대통령들에게 동물 별명을 붙인 적이 없다. 그러나 동물들의 사회에는 인간들이 저지르는 폐악廢惡은 없다. 자기들만의 영역을 지키며, 먹을만큼만 사냥하고 남은 먹이는 다른 종족에게 양보도 한다. 그래서 하이에나와 독수리를 초원草原의 청소부淸掃夫라고 한다. 사자가 먹고 남은 먹이를 깨끗이 먹어치워 부패를 예방하여 질병이 퍼지는 것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72. 뙈기와 신종新種Pullu풀루

 

어린시절 나락밭()의 참새를 쫓는 일은 우리 형제들의 몫이었다. 머슴이 만들어준 뙈기(딱다기)를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다가 반대방향으로 꺾으면 태극太極 문양紋樣처럼 원을 그리면서 딱! 소리가 총소리처럼 울렸다. 나락밭에서 한창 벼를 쪼아먹던 참새들이 뙈기소리에 놀라 후루룩 날아오른다. 그러나 참새들이 놀라는 것은 잠시 잠깐이다. 참새들도 약아서 이쪽 논귀퉁이에서 쫓으면 저쪽 논귀퉁이로 옮겨앉았을 뿐이다. 아이들의 한계를 눈치챈 참새는 아이들을 조롱하듯 푸르륵 날아오르기는 해도 결코 나락밭을 떠나지 않았다. 저희들 배가 차야 비로소 떠났다. 참새 지키기는 벼가 머리를 숙이기 직전 뜨물이 들 때부터 노랗게 고개를 숙일 때까지 아이들의 힘겨운 씨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낱알이 영글어서 축 쳐진 벼모가지에 두 발로 매달려 퍼득거리며 나락을 배불리 훔쳐먹던 그 참새들도 사라져버렸다. 대학시절, 거리에 들어서면 구수한 냄새로 유혹하던 충장로 옆 즐비했던 참새구이, 참새탕집도 세월따라 사라졌다.

벼가 꽃을 피울 때 쯤 멸구가 생겼다. 구장區長네 발동기 폐유廢油를 얻어 벼포기에 뿌리면 성냥톨만한 메뚜기처럼 생긴 멸구가 논물에 둥둥 떴다. 멸구 외에 다른 병은 혹 무논에서 벼 밑둥이 썩는 거 외에는 없었다. 배추나 무는 벌레가 성하면 몇 번 잡아주면 끝이었다. 감나무에 약을 치는 법이 없었다. 배는 종이봉지로 싸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나무에는 여나무 번 약을 치지 않으면 수확을 못한다. 채소는 농약으로 지탱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유기농이라는 벌레 먹은 채소가 인기人氣.

어린시절 고열高熱 때문에 고생을 했다. 눈을 감으면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하얀 구슬 같은 게 머리속에서 빙빙 돌았다. 병원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약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그 뿐 별 처방處方을 하지 않고도 며칠 끙끙 앓다가 일어났다. 왜 이렇게 질병이 많아졌는가? 질병의 진화進化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개발하면 병은 그 약을 뛰어넘는 진화를 한다. 신종풀루나 에이즈 그리고 조류AI 같은 질병이다. 인간의 몸에는 자체自體 저항력抵抗力이나 면역력免疫力이 있는데 질병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항생제抗生劑를 사용해서 질병을 다스렸기 때문에, 항생제를 이기려는 질병은 진화하고 인간의 몸은 면역력이 약화弱化되었다. 그래서 그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고 결국 인간은 질병을 이기지 못한다. Irony(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은 원시를 희구希求한다.

작은 상처에도 목숨 잃는 시대 올 수도 .......’ WHO지구적조사區的調査에서 결핵結核이나 폐렴肺炎의 치료 실패를 거론했다. 결핵은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사라진 법정전염병法定傳染病인데 근래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소些少, 사라졌던 질병으로 인해 21세기 재앙災殃을 초래招來할 것이라고 경고警告한다. 다제내성균(여러 항생제가 동시에 듣지 않는 균)이다. WHO는 비교적 흔한 감염균感染菌 7을 분석分析했다. 설사泄瀉 원인균原因菌 대장균大腸菌Salmonella살모넬라균, Sigella시겔라균, 각종 염증厭症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 폐렴간균과 폐렴연세상구균, 성병性病 임균淋菌이다. 다제내성결핵균이 발견된 국가는 92개국이다. 임질淋疾11개국이다. 다제내성균의 발현發顯이 가장 높은 나라는 동유럽과 러시아다. 다음은 아랍과 아시아가 심하고 일반적 수준이지만 북남미 등 전 세계가 범주範疇에 포함되어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무서울 정도로 병균들이 항생제 내성耐性이 강해지는 걸 목격하고 있다고 한다. 성경의 바벨탑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다. 지구는 번영繁榮하다가 절정絶頂에 달하면 냉각기冷却期로 멸망하고 다시 시작했다. 공룡恐龍만 멸종滅種된 게 아니라 지구 전체가 파멸破滅하고 다시 시작했다. 수메르 점토판粘土板이나 세계 4대문명 이전以前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거대화 세밀화가 바벨탑이다. 성장과 발전이 현대의 바벨탑이다. 발전과 성장을 멈추고 작은 공동체 그리고 원시原始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책救援策이다.

 

 

73. 사회자본주의

 

공산주의국가 쏘련연방은 해체解體되었다. 푸틴이 제왕적帝王的 공산주의국가를 재현再現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화 되어가고 있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논리이래 시장市場경제가 활발하다. 북한 인민민주주의공화국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市場과 사유私有재산을 인정하는 추세趨勢. 쿠바는 사회주의국가다. 온난溫暖한 기후로 의식주衣食住 걱정이 없다. 잠은 Hammock해먹에서 자고 먹거리는 숲이나 바다에서 채집採集 또는 수렵狩獵으로 해결한다. 온대성기후라서 옷도 반바지와 셔츠 하나로 충분하다. 그래서 욕심부리지 않는다. 구태어 모으거나 쌓아올릴 재산이 필요 없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경쟁에 찌들리고 발전에 필생必生을 다 매달리는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가 무색無色하다. 국제적지표로 환산換算하면 저개발국低開發國이라지만 교육과 의료醫療가 무료無料니 뭐가 부족하겠는가. 얼마나 더 쌓아야, 얼마나 더 커져야, 얼마나 더 세분화해야 성공이고 발전일까? 이 없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無限大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형편으로 치면 Cuba쿠바는 천국이다.

자본주의사회는 성공과 발전을 기전紀傳으로 삼았다. 인간의 무한대 욕망을 기반基盤으로 했다. 그래서 무한한 발전과 성공을 추구한다. 사회발전에 제어制御장치가 없다. Break(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한다. Tower of Babel(바벨탑)이다. 자본주의는 더 크고 더 편便하고 더 오래 살고 더 많이 쌓아올리는데 진력盡力한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말은 하면서도, 머리 한 켠에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질주疾走를 멈출 수가 없다. 자동차는 수백 가지 Model모델이 해마다 바뀐다. 어제가 옛날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느니 손으로 운전하지 않은 자동차도 이미 출시出市되었다. Apartment house아파트는 Touch터치 하나로 외출 중에도 가전제품을 작동시킨다. 더운물 찬물이 따로따로 나오는 수도꼭지는 이미 낡은 방식이다. 재건축법이 완화緩和되었다. 우리 집 아파트는 더운물 찬물이 따로 나오는데 30여년을 사용하다보니 수도꼭지에서 방울방울 물이 새서 고쳐보려고 철물점鐵物店에 갔더니 아저씨가 또라이 취급을 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달라지는 세상을 모르는 원시인原始人 취급을 했다. 부품部品이 단절斷絶된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의료수술방법은 발전이 시간단위라고 하지 않든가. 세상은 머리가, 우리 같은 쉰세대世代는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몸은 낡아서 그렇다지만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99를 가진 자는 100을 채우려고 1을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는다. 결코 나눠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Pie파이가 커지면 나눈다고 한다. Pie는 지구 전체다. 아니 우주宇宙일지도 모른다. 이게 자본주의 속성屬性이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는 인간의 속성을 간파看破했기 때문에 지구촌을 지배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弊害를 보완하는데서 출발했다. 옛 소련의 협동농장, 북한의 집단농장, 이스라엘의 키부츠다. 그런데 대부분 실패다. 실패의 원인을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은데 있다고 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계산하지 않은 실수다. 그래서 생산성이 떨어진다. 꾀를 부리고 Sabotage사보타주를 한다. 소련은 해체되었다. 중국과 북한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시장경제를 섞어놓았다. 과도기過渡期. 그러나 자본주의를 접목接木하는 공산주의는 실패할 것이다. Eroup유럽의 이른바 선진국들은 성공했다. 자본주의에 사회주의를 연계連繫했다. 세금으로 부의 축적蓄積을 견제牽制하고, 실업자는 부자들이 낸 세금을 실업수당을 제공하여 재기再起를 돕는다. 평등사회를 추구한 성공사례다. 사회자본주의다. 자본을 사회화해서 성공적이다. 공동체사회의 성공이다.

 

 

74. 교포

 

교장 교감 승진을 포기한 교사를 교단敎壇에서 부르는 말이다. 전교조교사들은 승진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 부조리不條理와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대학은, 집안이 풍비박산風痱博山이 되어 절박한 선택이었다. 고시考試공부를 해서 법관法官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 시절에는 공부께나 한다는 아이들은 다 그런 꿈을 꾸었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다. 1960년도는 마을에서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소문나면 대개 고시공부와 법관으로 점찍어놓고 쳐다봤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느닷없이 집안이 통째로 망해버렸다. 할아버지가 중풍中風으로 쓰러지자 감농監農할 사람이 없는 집안은 일거에 풍비박산이었다. 아버지는, 대학을 다니다가 여순반란順麗叛亂이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교회에 야학夜學을 개설하였는데 그게 화근禍根이었다. 우리 면을 중심으로 대서면, 동강면, 과역면 그리고 멀리서는 포두면이나 운대면 등 60리 밖에서도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동네에 방을 얻어 자취自炊를 하지도 못하는 청년들은 30릿길을 걸어와 서너 시간 공부를 하고 밤중에 걸어서 돌아갔는데 집에 닿을 즈음에는 닭이 홰를 친다고 했다. 매일 그 먼 길을 걸어다녔다.

우리 집 사랑舍廊에서 하숙下宿을 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그런데 여순반란이 번지자 야학은 폐쇄되었고 청년들은 돌아가버렸다. 공산당共産黨은 교인敎人만 보면 죽인다고 소문이 나서 모두 숨어버렸다. 혼자 교회를 지키던 아버지는 수복收復 뒤 경찰들에게 잡혀가 고문拷問을 당했다. 반란군들이 교회에 들이닥쳐 총칼로 위협하여 교회 강단講壇에 있었던 성경과 찬송가를 내다준 것이 반란군 협조자로 낙인烙印 찍혀버렸다. 통나무 위에 세워놓고 몽둥이질로 고문을 했는데 일 주일 째, 실신失身을 하자 죽었다고 지서支署 앞 개울에 내다버렸다. 아버지의 점심을 나르던 할머니가 소달구지로 실어다가 살렸는데 결국 폐인廢人이 되었다. 그래서 가장家長 할아버지가 중풍中風으로 눕자 감농監農할 사람이 없어져버렸다. 동네 부자는 되었던 재산이 서너 해만에 사라져버렸다.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재산이 풍비박산되어버렸다. 그래도 농사를 잘 지었으면 빚을 갚아나갈 수 잇었는데 하필이면 이태 동안 흉년이 겹쳤다. 장리長利빚은 고리채高利債인데 해마다 이자利子5. 쌀 한 가마니를 빚지면 다음 해에는 한 가마니 반이 된다. 2, 3년만 묵혀도 원리금元利金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데 이태 흉년凶年이라 재산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를 쉬고 교육대학을 지망했다. 교육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안 했다. 도서관의 3,000여 권 도서圖書2년 동안에 모두 독파讀破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니 교사 발령發令을 받았어도 사명감使命感이나 소명의식召命意識 같은 건 관심 밖이었다. 쌀 다섯 가마니값 15,000원이 초봉初俸이었다. 대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어려웠는데 남은 빚이 또 이자로 불어났다. 잔밥에 싸인 동생 아홉은 학교를 다녀야 했고, 앓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으나 우리 가족은 대식구였다. , 생계와 동생들의 학비가 버거웠다. 오직 집안을 간난艱難에서 구하기 위해 부부夫婦교사를 선택했다. 그래도 내 형편에 시집오겠다는 여교사들이 줄을 지었는데, 건방진 생각으로 여자는 다 똑같지 않겠느냐 지레짐작하고 선택한 것이 평생 후회가 되고 있으나 그 때는 따지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었다. 맞벌이 결혼 후 10여년 빚이 대강 정리되었고 조금씩 저축도 할 무렵 도서島嶼지방으로 피난避難을 했다. 피난이 아니라 도피逃避였다. 정신적인 갈등이었다. 그 시대 학교 현장은 무법無法지대나 다름없었다. 교장의 일탈逸脫과 독선獨善이 마치 교사를 무지랭이 다루 듯 하는 시절이었다. 열악劣惡한 학교운영에 제동制動을 걸고 투쟁을 했다. 그러니 맨날 교장과 충돌이었다. 불의와 부정을 못 보는 새내기선생의 만용蠻勇이었다. 모태母胎신앙과 아버지의 공권력公權力에 의한 폐인廢人 그리고 가정의 몰락沒落을 겪은 한이었을까. ‘월간月刊 교육자료에 연재한 요철凹凸교실 - 어두운 학교가 전국적인 Issue이슈가 되었다. 유신維新시대 교육을 비판하여 청와대, 교육부, 감사원, 경찰청, 검찰청이 내사內査를 했다. 연재 중단中斷을 요구하고 사표辭表를 강요받았으나 버텼다. 그리고 뭍에 가족을 놔두고 도서벽지島嶼僻地를 향했다. 도서벽지는 절해고도絶海孤島 같았다. 술과 낚시로 세월을 보내는데 교사들은 모두 승진昇進에 필요한 도서벽지점수를 얻으려고 치열熾烈했다. 두세 시간씩 배를 타고 출근, 자취自炊를 해가며, 일 주일에 한 번씩 뭍으로 나가는 그 고생을 감수甘受하고 있었다. 승진이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승진규정規定은 경력經歷점수, 근무평정勤務評定점수, 연구硏究점수와 장애아障碍兒 등 특수特殊학급 담임擔任, 나환자癩患者 가정 아이 담임 등 부가점附加點이었다. 경력점수는 세월만 가면 되는데 20년이 넘으면 승진대열에 낄 자격이 주어지나 30년이 훨씬 넘어야 달려들까말까다. 근무평정 80점 만점滿點 3년 세 번 - 교장이 평가, 연구점수 - 연구학교 경력과 개인연구, 표차은 장관 표차 이상인데 거개가 촌지寸志로 해결했다. 부가점은 특수학급이나 나환자 가정 학생 담임 등등. 일단 도서벽지에 들어왔으므로 도서벽지점수는 세월만 가면 자동적으로 누적累積되어 한 5년 근무하면 되고, 연구점수는, 요즘 국회청문회에서 밝혀지는 논문 표절剽竊로 대부분 해결하고 있었다. 연구보고서 장사가 있어서 타시군에서 좋은 등급等級을 맞은 연구보고서를 공공연히 팔았다. 나는 구태어 표절할 필요가 없었다. 섬으로 들어오기 전 뭍에서 한 연구학교 근무경력과 그 노하우면 충분했다. 그리고 남들처럼 다른 사람이 써먹은 논문을 배껴서 등급점수를 얻는 것은 연구께나 했다는 사람으로써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보고서는 일단 주제主題가 좋아야 하는데 내 Idia(아이디어)는 추종불허追從不許였다. 주제를 한글 연구로 잡았다. 한글을 창제創製했을 때 훈민정음 서문序文, 한글을 쉽게 깨칠 수 있어 항간巷間에서는 반절半切이라고 했다는데 1학년을 맡아 가르쳐보니 1년 내내 씨름을 해도 문자미해득 학생이 남았다. 한글을 깨쳐주기 위한 오기傲氣로 다른 교사들이 맡기를 꺼리는 1학년 문자해득 9년이 Idia(아이디어)가 되었다. 한국화韓國畵교육과 한국민화韓國民畵교육도 좋은 주제꺼리였다.

서양미술로 가르치던 때 획기적인 연구주제였다. 한국인의 정서情緖는 한국화로 표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뭍에서 한 10여년 동안 교사들을 주축으로 문화공보부의 지원支援과 금호재단의 지원을 받아 어린이전통문화교실을 한 경험이 있었다. 성공적이었다. 남들처럼 베끼지 않은 자부심도 남달랐다. 덕분에 無有好醜(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아름다움, 일본 민속학자民俗學者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한국민화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하여튼 승진은 남들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연구점수가 가장 문제인데 그게 연구력이 충분한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들의 연구를 거들었다. 연구는 주제가 핵심核心인데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어려워하는 동료들에게는 연구 얼개를 엮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연구점수와 도서벽지점수가 차니 섬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애초 입도入島와는 달리 승진에 불이 붙은 것이다. 뭍으로 나오면서 근무평정을 얻을 수 있는 학교를 희망했다. 뭍에서는 근무하기 꺼려하는, 벽지점수도 없는 어중간한 오지奧地학교다. 그런 데서는 근무평정 경쟁이 없다. 그래서 치열熾烈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근무평정 3년 만점滿點을 얻는 과정過程의 학교의 풍경화風景畵는 치열熾熱이 아니라 서글프다. 시쳇말로 3년 동안 교장의 집사執事가 되어야 한다.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길을 모시기도 하고 때로는 교장의 대소사大小事도 챙겨야 한다. 그러고도 학년말이 되면 어김없이 촌지寸志봉투는 준비한다. 그 게 3년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근무평정 3년을 교장의 xxx도 핥는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지학교를 지망하여 무난히 근무평정을 획득했다. 아무리 무난해도 해마다 학년말이 되면 교장 교감에게 촌지는 연례행사年例行事.

이러한 승진제도 안에서는 정신 똑바로 박힌 교사는 승진대열에 낄 엄두도 못낸다. 그래서 전교조교사들은 아예 승진대열 근처에 가기를 포기한다. 이른바 교포(교장 포기 교사). 조직사회의, 특히 공무원사회의 승진이 대동소이大同小異. 기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Owner(오너)의 눈 밖에 난 직원을 승진시킬 회사는 없다. 이렇게 편법便法으로 승진한 윗사람들이 승진해서는 어떻게 할까? 승진은 직장의 꽃이다. 그런데 승진제도가 직장의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회식會食도 하고 선후배를 따져 형님 아우로 부르기도 하지만 막상 승진 문제에서는 모두가 적이다. 조직체제를 수직적 피라미드형에서 수평적 타원형으로 바꿔야 한다. 사원 계장 과장 국장 사장 회장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없애고, 특성별로 또는 업무별로 조직한 집단을 조직하고 모두가 사원으로 근무한다. 필요할 때만 Reader(리더)를 사원들이 선출한다. 사안별로 가장 잘 Read(리드)할 사람을 선정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업무가 끝나면 다시 평사원平社員으로 복귀한다. 같은 방법으로 사장이나 회장도 선출한다. Pramid(피라미드)수직垂直구조에서 타원형橢圓形 수평水平구조로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75. 술과 벗은 오래 묵을수록

 

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시인詩人나그네. 불유구不踰距(孔子 70)의 나이가 되어 지금은 밥상머리의 반주飯酒가 고작이지만 젊었던 시절에는 호주가好酒家로 자처自處했다.

웬 날파리가 이러지?’

갑자기 날파리(초파리)가 극성極盛이라고 아내가 투덜대더니, 장마철이라 그런가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는 그냥 모른 척 한다. 아내의 코에는 이 향기香氣가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니까 구태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필요는 없다. 술이라면 머리를 흔드는 사람이라 사서 입씨름 만들 이유가 없으며 잔소리도 그렇고.

초파리는 부뚜막에 많았다. 어머니가 목이 긴 하얀 분청사기粉靑沙器에 막걸리를 넣고 솔잎으로 주둥이에 마개를 닫았는데 막걸리가 식초로 발효醱酵되어 익기 시작하면 냄새가 진동振動한다. 그때 쯤 촛국을 걸러보면 무수한 은색 벌레들이 꿈틀거렸다. 징그러웠으나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그 게 초벌레라고 했다. 그게 살아있어야 식초가 잘 익는다고 했다. 촛국을 살피다가 초벌레가 꿈틀거리지 않아 죽어있으면 맛을 보고는 폐기廢棄했다. 초벌레가 죽어 초가 시어져버렸다고 버렸다. 그 초파리가 익힌 발효식초는 새콤달콤하달까, 미묘微妙한 감칠맛이 났다. 그 초벌레의 어미가 바로 초파리다.

요즘 바짝 초파리가 많아진 것은 날씨 탓이 아니라 내가 베란다에 담궈놓은 송과주松果酒(솔방울술) 때문이다. 담궈놓은지 3개월 쯤 지나니까 도가니의 술이 익기 시작한 것이다. 초파리란 녀석도 나처럼 호주가好酒家인지 모른다. 미상불未嘗不, 술 익는 향기는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금목서金木犀 향만큼 향기롭다. 적어도 호주가인 내게는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에 나서면 술향으로 특히 코가 벌름거린다. 송과주는 향이 진하다. 태깔도 일품이다. 그래서 송과주는 일부러 유리컵에 따룬다. 사기컵이나 옹기에 따루면 빛깔이 탁하다. 유리컵에 송과주를 8정도 따뤄 마시기 전에 한 번 음미해보면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호박색琥珀色 투명透明한 붉은 빛과 말로 형언形言할 수 없는 향기는 바로 불로장생不老長生 신선주神仙酒라 할만하다. 반주 한 잔에 신선이 된 느낌이다.

사냥꾼의 이야기뱀할아버지가 나오는데 가을 독사毒蛇에게 물린 포수砲手를 뱀할아버지가 살려낸다. 그리고 회복回復과정에서 소나무술를 처방處方한다. 소나무술은 50년생이 넘는 소나무 밑에 구덩이를 파서 소나무뿌리를 소주독에 넣고 봉했다가 반 년 쯤 뒤에 파낸다. 그 때 쯤 소나무는 기를 모두 술독에 빼앗겨서 말라죽는다. 뱀할아버지는 뱀장사를 하지만 소나무술은 팔지 않는다. 한 되에 10- 그 때 돈으로 쌀 세 가마 값에도 팔지 않고 혼자서만 마신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선승禪僧 같은 동안童顔을 유지維持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호주가였는데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술 담그는 걸 좋아해서 여러 가지 과일주를 담궜는데 우리 집 술이 익을 때 쯤 어떻게 그 냄새를 맡고는 술친구들이 와서 하룻밤 새에 술독을 털어버렸다. 그런데 퇴임退任을 하고나서 반주가 습관이 되었다. 사람의 인연을 정년停年퇴임과 같이 끊어버렸기 때문에 술이 친구를 대신했는지 모른다. 사람과 인연을 끊은 건 뭐 특별한 계기契機가 있는 건 아니고 이제 세상 소풍 끝날 때가 되었으니 인생을 정리하려는 뜻으로 그 많던 계모임이나 동창회同窓會 등등 공식 비공식 모임을 모두 끊었고 아울러 친구들도 끊고 은둔隱遁했다. 물성物性()을 지우려는 노력이다. 삶의 더깨를 벗어버리고 홀가분히 떠나려는 사람의 자성自省이다.

술과 벗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선인先人들은 그랬다. 생전生前의 할머니는 친구가 많으면 주머니가 가볍다라고 늘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그 때는 주머니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친구들에게 끌려들었는지 친구들이 내게 몰려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늘 내 주위에는 친구들로 법석였다. 동창회, 직장職場모임, 문학文學친구, 당구撞球친구, 연구Cercle써클과 사회교육운동 친구들 중에서 특히 술친구들이 많았다.

백아파금伯牙破琴 - (가야금伽倻琴 소리를)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 종자기鐘子期가 죽자 백아伯牙는 가야금줄을 끊었다. 지음知音의 친구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산불어습득소寒山不語拾得笑 - 한산과 습득은 국청사國淸寺 불목하니(담살이)였다가 도통道通을 한 스님인데 얼굴 표정만 보고도 서로 뜻이 통했다고 한다(중국여행 때 국청사에 들렸었는데 한산과 습득의 목상木像을 보았다).

이외에도

간담상조肝膽相照(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간과 쓸개는 상보相補한다),

송무백열松茂栢悅(친구가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소나무가 무성茂盛하니 잣나무가 춤을 춘다),

관포지교管鮑之交(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友情),

문경지교刎頸之交(목숨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지란지교芝蘭之交(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교분交分, 벗과 높고 맑은 사귐),

상견역무사相見亦無事 불래홀역군不來忽憶君(만나보면 그저 그렇고 아니오면 홀연히 생각나는 그대)은 조선시대 유학자儒學者 송귀봉宋龜峯과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친교親交,

미인하처재美人何處在 망지천일방望之天一方(그리운 그대 어디 뫼 있느뇨 하늘 끝 한 자락만 바라보네)은 서산대사西山大師俗家의 벗 양사언梁士諺을 그리며 읊은 시.

고희古稀를 맞은 지금 나는 속세俗世의 인연因緣을 다 벗어버리겠다고 주변을 정리하면서 사람의 인연은 다 끊고 선방禪房과 산방山房을 들락거린다. 저녁노을처럼 찬란燦爛하게 타는 마무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잠자는 것 같이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아직, 친구들 - 사람의 인연은 다 끊었는데도 베란다의 술항아리만은 버리지 못했다.

 

 

 

 

생애生涯의 한 곳을 응시하며

잔에 따룬 한 잔의 소주를 응시하며

눈 내리는 겨울밤을

술을 마신다

목구멍에 차오르는 의식을 느끼며

앙금처럼 번져가는 슬픔을 보며

웃고싶다

아무도 웃지 않는 밤에

소주 한 잔을 마실 사람도 없는 밤에

혼자 잔에 술을 따루며

독한 술에 떨려오는 내장內臟을 길들이려고

나그네길을 나서고싶다

아무라도 붙잡고 볼을 비비고

가슴을 비벼대고

살을 섞고

단 한 마디 말이라도 나누고싶다 (拙作)

 

 

그런데 내개는 벗이 하나도 없다. 송순주 한 잔 더불어 마실 벗이 없다.

 

 

76. 댕갱이

 

얼마 전 신문에서 토종개 동강이를 복원復元했다는 기사記事를 읽었다. 동강이를 해설하면서 친절하게 한자로 東江라고도 토를 달았다. 우리 말 우리 글을 없애려고 했던 일제日帝 잔재殘滓. 일제는 우리 말글을 모두 한자화漢字化했다. 창씨개명創氏改名 뿐만 아니라 국어상용정책을 펴서 왜국어倭國語를 쓰게 강요하고, 마을 이름도 다 고쳤는데, 우리 고향 구름다리운교雲橋가 되었다. 주변의 숯개는 탄포炭浦, 자문더리(잠긴 다리)는 침교沈橋 그리고 배다리는 주교舟橋로 고쳐버렸다. 이렇게 억지로 개명하다보니 숨은 골(은곡隱谷, 숨은 골짜기)스무 골로 오인誤認하여 전남 화순에는 이십곡리가 탄생하는 Nonsense넌센스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 왜국에서 천민賤民 거주지를 뜻하는 부락部落이라는 명칭을 전국의 모든 마을에 붙여서 은근히 천민 취급도 했다. 동강이도 그 사례事例 중 하나다.

동강이는 우리 고향에서는 댕갱이라고 부른다. 꼬리가 잘려나간 듯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목이 댕겅 잘렸다의 그 댕강이다. 그래도 그 짤막한 꼬리를 흔드는 건 가관可觀이다. 중년中年, 시골에 살 때 댕갱이를 길렀다. 5일 장에서 주먹만한 새끼를 사왔는데 이 녀석은 말썽꾸러기라 바로 이튿날 사고事故를 쳤다. 날씨가 추워서 부엌에다 가리나무잎(시골에서 땔감으로 사용하는 마른 소나무잎)으로 집을 만들어 재웠는데 아침에 부엌에 나가보니 사라져버렸다. 사방군데를 찾았으나 없었다. 그런데 아내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다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궁이 속이었다. 별별 짓을 다 해보았으나 꺼내지 못했다. 종래는 먹을 것으로 유도誘導해도 실패, 아마 고래(온돌방의 불이 들어가는 길) 안까지 들어가버려서 나오려면 몸을 돌려야 하는데 고래가 좁아서 몸을 돌리지 못한 것 같았다. 뒷걸음질을 하면 될텐데 개가 그 걸 깨득할 리 없다. 할 수 없이 출근도 미루고 인부人夫를 사서 구들을 뜯어내려고 장판을 걷었는데 부엌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댕갱이가 나온 것이다.

녀석은 우리 두 아들과 매우 사이좋게 놀았다. 아이들은 댕갱이가 없으면 못 살 정도로 좋아했다. 아내는 매 장날마다 댕갱이를 위해서 생선이나 고기를 사고 보리쌀을 구해서 큰 가마솥에 몇 시간 고았다. 냄새까지 구수한 밥을 먹고 댕갱이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랐다. 너무 잘 먹여서 속살이 올라 임신姙娠을 못할 수도 있다고 걱정을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댕갱이가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개집에서 낳지 않고 뒷담에 연료용燃料用으로 쌓아둔 솔가지다발 속에 굴을 뚫고 새끼를 낳았다. 출산出産 즈음에 기생충寄生蟲을 죽인답시고 개집에다가 파리약을 뿌린 게 화근禍根이었다. 개가 냄새에 민감敏感하다는 걸 깜빡 잊었다. 카만 개코는 늘 번질번질한 액체液體에 젖어있다. 그 게 냄새를 맡는 중추中樞. 그래서 새끼의 낑낑대는 소리는 들려도 몇 마리를 낳았는지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굴 깊이가 3m 쯤 되었으나 포도씨 개 한 마리가 들락거릴 정도라 굴속이 보이지도 않았다. 제일, 두 아이들이 새끼가 보고싶어 성화였다. 새끼를 낳은 후로 아내의 댕갱이 건사乾飼는 아이들 보다 더 각별恪別했다. 그래서 그런지 댕갱이는 새끼를 잘 키웠다. 새끼들이 걸음마를 하자 굴속에서 기어나왔다. 워낙 토실토실하고 귀여워서 이웃들이 시새워 가져갔다. 관사官舍에 같이 사는 청부네 집에도 한 마리 주었는데 댕갱이는 맨날 그 녀석하고 노는 게 일이었다. 아내는 시골학교에 근무하면서 관사에서 살고 나는 읍내학교로 자전거 출퇴근을 했는데, 동료들과 어울려 밤 이슥해서 달빛도 없는 밤길에 귀가歸家를 하는 참에 문득 눈 앞에 뭔가 검은 것이 어른거린다 싶으면 댕갱이었다. 1Km 쯤 먼 길에서도 주인의 거취去取를 알아채고 마중을 나왔다. 마중하는 위치도 매번 같았다. 집에서 1Km 쯤 떨어진 길이었다. 달도 없는 밤에, 더러는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데도 어김없이 마중을 나왔다. 어떻게 주인이 오는 걸 알고 마중을 나올 수 있었을까? 그러나 더 신비神秘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오지奧地로 전근轉勤을 가게 되어 트럭에 이삿짐을 쌓고 댕갱이는 트럭 가운데 개집에 묶은 채 60리 산길을 지나 산촌山村 벽지僻地로 이사移徙를 했다. 그런데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댕갱이가 늘 축 늘어져 있었다. 몰골도 쇠약해졌다. 병이 났나싶어 걱정을 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 말로는 우리가 출근만 하면 어디론가 나갔다가 퇴근 바로 전에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쇠줄로 목을 묶었으나 쇠줄을 끊고 사라져버렸다. 그러고는 나타나지 않은 날도 늘었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댕갱이가 애초에 살던 옛집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택시를 대절貸切해서 싣고 왔으나 댕갱이를 쇠줄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새끼였다. 이사 오기 전에 이웃집에 분양分讓해준 새끼가 빌미였다. 그 새끼를 보려고 60리 산길을 날마다 오간 것이다. 이사 적에 개집은 트럭 한가운데 입구를 비닐푸대로 못질을 해서 60리 산길을 왔으니 밖을 내다볼 수도 길을 익힐 수도 없었을텐데, 이웃집 아주머니의 말은, 우리가 출근만 하면 곧바로 논밭을 가로지르고 산을 올라 직선直線거리로 달려간다고 했다. 두고 온 새끼에 대한 어미의 심경心境은 이해하겠으나 60릿길을 똑바로 달리는 그 신비한 영감靈感 같은 귀향길의 지향指向은 지금까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77. 천지天地바카리 나리꽃白合

 

성경이나 찬송가에서 백합꽃을 알기 전에 우리 집에는 백합꽃이 천지바카리(엄청나게 많음)였다. 참나리나 나리라고 불렀다. 산에 피는 개나리와 구별한 이름이다. 우리 집의 나리꽃과 성경의 백합꽃이 같은 꽃이란 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무척 감동이었다. 마치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집에는 마당을 빙 둘러 배나무, 감나무 그리고 석류나무들이 우거진 낮으막한 석축石築으로 된 언덕이 있었는데 그 언덕이 온통 백합꽃밭이었다. 초여름 백합꽃이 필 무렵이면 온 동네는 물론이고 1Km 밖 신작로新作路에까지 향기가 번졌다. 도시都市 유학留學을 하던 때, 동네 입구入口에서 버스를 내리면 백합꽃 향기가 먼저 코에 스몄다. 백합꽃은 원래 향이 진하다. 가까이서 코에 대고 맡으면 곧바로 재채기가 나올 정도다. 약간 떨어져서 맡아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백합꽃은 구근球根이 묵을수록 꽃대가 실하다. 아주 묵은 꽃대에서는 한 대에 아홉 송이까지 꽃이 피는 걸 보았다.

올해도 태안 백합단지에 백합꽃을 주문했다. 작년에 실패했기 때문에 실한 구근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작년에는 5월 중순에 꽃망울을 터뜨렸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터라 꽃망울 트는 것이 좀 더디다. 6월 중순中旬인데 이제 막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약간 먼저 올라온 망울들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라 속 빛깔이 내비친다. 붉은 꽃은 붉그레, 주황색은 주황빛깔 그리고 노랑색 꽃은 속이 노랗다. 어린시절 우리 집의 백합꽃은 하얀색 한 가지 뿐이었는데 태안 백합단지에서는 하연 색을 비롯하여 붉은 색, 노랑 색, 주황 색, 분홍 색 그리고 무지개 색 등등 색깔이 여러 가지다. 호스로 물을 뿌려주었더니 물방울이 마치 이슬을 머금은 듯 하다. 잘 피어오른 백합을 보면서 눈시울이 젖어온다.

일요일 아침이면, 할머니는 이슬이 채 가시지 않은 백합꽃을 가위로 잘라 주었다. 가장 싱싱한 꽃을 골랐다. 활짝 핀 꽃도 머금은 꽃망울도 아닌 방긋한 꽃을 골랐다. 사람으로 치면 방년芳年 열아홉 정도다. 선잠에서 깬 눈을 비비며 백합꽃을 교회 강단 꽃병에 꽂는 것은 내 몫이었다. 백합꽃 뿐만 아니라 우리 집은 꽃과 과일나무가 많았다. 언덕으로는 배나무, 감나무, 무화과나무가 있고, 문간채 주변에는 호두나무, 가죽나무, 살구나무가 있었다. 울타리에는 석류나무와 자두나무가 있고, 뒤란에는 거목巨木인 팽나무와 돌배나무 그리고 모과나무, 사과나무도 있었다. 뒷터 시누대밭의 파랗다가 붉어지고 익으면 까매진 쥐똥나무 열매를 먹기도 했다. 꽃으로는 뒷 텃밭에 한 백여 평씩 모란과 작약밭이 있었고, 장독대 주변에는 넝쿨장미, 봉숭아, 맨드라미, 꽈리가 자라고, 언덕에는 백합꽃이 지천 그리고 설토화나 상사화들 꽃이 천지바카리였다. 모란이나 작약이 피기 시작하면 달 구경을 핑계로 동네 처녀들이 모여들었다. 어른들 몰래 아직 밑이 들지 않은 햇고구마를 도둑처럼 캐다가 고구마파티를 벌였다. 속이 덜 찬 고구마는 밤맛이었다. 이른 아침, 모란철이 되어 뒷밭에 나가면 모란이 온 밭 가득히 피어있는 광경은 - 진홍색 꽃잎 속에 노란 꽃술을 품고 있는 화사華奢한 모습은 황홀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고 요염妖艶했다.

교장이 되어서는 학교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대한야생화野生花를 운동장 주변에 심고, 둠벙을 파고 미꾸리, 붕어 등등 물고기도 넣었다. 둠벙은 포크레인을 빌어다 몇 웅큼 삽질을 해놓고 그냥 버린 듯 놔두었더니 풀이 자라고 개구리가 모여들었다. 어디선지 수생곤충들이 날아오고 잠자리도 모여들었다. 우리 둠벙들도 그렇게 논 가장자리에 숨어 있었다. 둠벙의 추억은, 크기가 한 자 쯤 되는 왕잠자리를 잡으려고 했던 기억과 가을 추수를 끝내고 마을 머슴들이 다 모여 미꾸라지 추렴을 했던 일이다. 수확철이 끝나고 좀 한가해지면 마을 머슴들이 다 모였다. 우리 논 둠벙을 푸기 위해서다. 그러기에 둠벙은 머슴들이 관리했다. 둠벙 속에는 1년 동안 아무도 손대지 못한 미꾸라지들이 있었다. 아랫배가 노란 살진 미꾸라지를 나무통 두 개씩 퍼올렸다. 잡을 필요도 없엇다. 그냥 통을 들이밀면 물 반 미꾸라지들이 통속으로 기어들었다. 그 걸 해감하고 물맷돌에 갈아 추어탕을 끓였다. 매운 고추와 시레기를 듬뿍 넣고 반나절을 고았다. ! 그 맛이란. 나는 그 추어탕맛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그 맛을 찾을 수 없다. 더러 소문이 좋다 해서 추어탕 잘 한다는 가게를 찾지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정년퇴직을 해서는 아파트 화단을 가꾼다. 상사화, 접시꽃 그리고 멀리서 개양귀비씨를 얻어다 가을에 씨를 뿌리고 비닐터널을 만들었다. 개양귀비는 백두산 천지天池에 가다가 산 밑 개울가에서 처음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자랑한다. 꽃의 색깔이 투명해서 다른 꽃들과 구별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라는 - 초봄 연두빛 새싹에 역광逆光이 비치는 것처럼 개양귀비는 빨강, 노랑, 분홍, 하양 그리고 주황빛 색깔이 투명하다. 집안에는 버려진 돌구시(돌을 쪼아서 만든 소나 돼지 먹이통)를 들여다 놓고 금붕어를 키운다. 금붕어 녀석들은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입을 삐쭉거리며 먹이를 달라고 모여든다. 백합도 주문해서 가꾼다. 그런데 아파트가 서향西向이라서 꽃이 아무래도 햇빛을 덜 받아 성하지 못한 것 같아 안쓰럽다. 그래도 해마다 꽃을 주문注文한다. 꽃을 좋아하는 교장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었는데, 학교를 온통 꽃밭으로 만든 교장선생님은, 채송화꽃이 퇴화退化되었다고 채송화씨 세 알을 일본에 주문한 걸 보았다. 학교에는 사철 꽃이 만발해야 한다. 둠벙이 있어 수생水生동식물을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 아름다운학교상을 두 번 받았다.

 

 

78. 감사원 특별조사국 - 없었던 일

 

직제職制에 없다. 전화를 하려면 감사원 안 교환交換을 거쳐야 한다. 노출露出이 되면 안 되는 조직이어선지 매우 까다롭다.

전남교육감에 출마를 하고나서 감사원 특별조사국의 감사監査를 받았다. 부장部長과 부원, 두 사람이 곡성까지 내려와서 이틀 동안 교육청 대 회의실에서 감사를 했다. 대기待機 명령이 떨어졌으므로 그들이 부를 때까지 하릴없이 기다렸다. 이틀째, 감사내용을 읽어보고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정년停年이 얼마남지 않았으므로 관대寬大하게 봐줄테니 날인捺印만 하라고 했다. 왜 느닷없이 감사관이 들이닥쳤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거부拒否했다. 지은 죄가 없었으므로 당당하게 거부했다. 완강하게 버티자, 관리과 직원이 하소연을 했다. 일단 감사를 나왔는데 아무 것도 없이 빈 손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웬만하면 날인을 하라고 종용慫慂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회유懷柔도 실패하자 그들은 경리장부 3년 치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가끔 전화로 괴롭혔다. 교장 초임初任 학교는 초Mini(미니)학교다. 학생수 50여 명, 교사 6명에 6학급. 폐쇄閉鎖 일보一步 이었다. 그래도 연륜年輪은 깊어 70여 년 역사를 가졌다. 그런 학교는 사업예산도 동결凍結이 된다. 그런데 딱 두 가지 사업이 있었다. 하나는 낡은 전선電線에서 누전漏電이 되어 불이 난 적이 있었는데 교육청에서는 폐쇄閉鎖 예정 학교라 지원支援을 못 한다고 했다. 복도複道 천정天庭으로 펼쳐진 전선은 마치 거미줄 같았다. 70년의 역사가 그 곳에도 있었다. 완전히 뜯어내고 교체交替했다. 교장이 사비私費로 전선을 교체하고 나중에 경리에서 조금씩 환불換拂받았는데 그 걸 교장이 착복着服했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고민苦悶타가 전업사電業社에 들렀는데 고민을 듣더니 사장社長이 말했다.

교장선생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요즘 전선에는 제조製造 년도가 찍혀있 습니다.”

구세주救世主를 만난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전임前任 교장이 미뤄둔 사업이었는데, 일부러 안 한 사업이었다. 학교에서는 신청도 하지 않은 예산을 지역地域 도의원道議員이 억지로 예산을 배정配定하고는 자기가 선정選定한 업자業者에게 시설을 하게 하는 꼼수사업이었다. 업자가 찾아와서 도의원을 앞세워 배정된 예산의 1/ 3로 시설을 하자고 했다. 거절했다. 도의원의 전화도 거부했다. 사업을 포기하고 반납하겠다고 했다. 교육청 사람이 와서 그냥 맡겨버리라고 했으나 예산 반납을 고집했다. 도의원이 손을 떼자 면장面長의 도움을 받아 예산의 세 배나 되는 사업을 했는데 그 걸 파헤치려고 했다. 감사반이 업자를 불러다 추궁追窮을 했는데, 업자 왈

그 교장선생님요? 공사 중에 막걸리 사 들고 와서 손수 따라주며 공사 잘 해주라고 부탁하는 분입니다. 사업 평생 그런 교장 첨 봤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행정실장의 비리非理가 포착捕捉되었는데 마침 교육감 출마 포기를 종용해도 듣지 않자 덮어씌워서 한 그물에 잡겠다고 현교육감측에서 획책劃策한 음모陰謀였다. 특별조사반은 석 달을 감사하고는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 감사원 특별조사반이 석 달을 감사하고도 없었던 일로 마무리한 사례事例는 아마 전무후무前無後無할 것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은 공무원도 있다는 선례先例.

전교조 보다 더 전교조다운 교장이라는 세평世評을 들었다. 서울 느티나무Holl홀에서 열린 승진 부정비리 토론회에서는 교육장 하는데 돈이 얼마나 거래되느냐는 질문에 한 토론자가 1,000만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다.

“1,000만원 주고 교육장 할 것 같으면 초등학생도 줄을 선다.”

oo일보日報 부정否定 원년元年 Campein캠페인에서 교육계대표로써

학교촌지는 교장이 맘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없어진다. 교사가 받은 촌지를 교장이 나눠먹으니까 학교촌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고 하여 교장회校長會로부터 축출逐出을 당했다. 교육청에서는 전남교육계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고발告發을 했다. 그리고 징계懲戒절차를 밟겠다고 직원들이 나를 소환召喚하기 위해 아파트 문간에서 밤샘을 했다. 소환공문을 보내고 거부하기를 일곱 번 했다. 결국 oo일보사장과 타협하고 끝이 났다고 들었다.

예천 기간제期間制교사와 교장 자살사건 때는, ‘죽음에 가려진 진실ooo신문에 기고寄稿했다. 전국적인 파장波長이 일어났다.

교장선생님, 왜 그런 글을 써가지고 . 저 좀 살려주십시오. 우리 직원들 이 교장선생님의 글을 커다랗게 복사해서 교무실 칠판에 붙여놓고 저런 교장선생님도 있는데 당신은 왜 그 따구냐고 질책을 하는 통에 나 죽겠습 니다. 나 좀 살려주세요.”

서울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하소연이다.

명백한 전교조 죽이기였다. 기간제교사는 교장의 제자였는데 교감이 기간제교사에게 아침에 출근하면 교장선생님에게 Coffee커피를 접대接待하라고 했다. 기간제교사가 거절했다. 실상 아침시간은 교사에게 매우 바쁜 시간이다.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아침시간은 매우 중요하다.Coffee 접대를 거절하자 이제까지는 핟지 않았던 수업 참관, 수업안 제출과 교실 검열檢閱이 시작되었다. 참다 못한 기간제교사가 사표를 썼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선생님들이 전교조지부에 고발을 했다. 교장은 잘못을 뉘우치고 약속했다. 이틀 뒤에 상호 각서를 주고 받자고 했다. 교장은 기간제교사를 복직시키고 핍박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전교조지부는 이 일을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교감이 이 상황을 교육청에 귀띰했고 교육청은 다음 날 긴급 교장회의를 열었다. 회의록에는 학생 안전지도라고 기록했다. 교장회의 다음 날 교장은 어머니 묘소에서 목 매달아 자살했다. 보수언론과 교장회 그리고 교육청은 전교조를 살인마殺人魔라고 몰아부쳤다. 학부모들이 가세加勢했다. 전국적인 Issue이슈로 비화飛火했다. 전교조는 끽! 소리도 못했다. 입을 열면 열수록 더 죽을 수도 있었다. 그 걸 내 칼럼 한 편이 반전시켰다. 협박脅迫도 받았다. 교장회에서 축출逐出되었다.

교사 햇병아리시절, 월간月刊 교육자료에 요철凹凸교실 - 어두운 교실을 연재連載했다. 교육부조리를 고발한 글이었다. 5회 장학獎學에서 문제가 되었다. 교육부, 검찰청, 경찰청, 청와대와 감사원이 들고나섰다. 유신維新시대였다. 사람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던 시대였다. 교육장이 장학사를 대동하고 학교를 찾았다. 그리고 연재 내용을 해명하라고 했다. 나중에는 협박도 하고 회유도 했다. 연재를 중단하라고 했다. 거절했더니 군내郡內 교장회校長會가 나를 교단敎壇에서 축출逐出시켜야 한다고 들고나섰다. 때가 유신維新시대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실종失踪되는 상황이었으므로 조상祖上님들의 음덕陰德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79. O My News오마이뉴스 Interview인터뷰

<나는 부끄러운 교육자> (2003, 오마이뉴스 기자 조호진)

매화梅花가 지더니 산수유가 피고 그 새를 못 참은 벚꽃과 개나리그 무수한 봄꽃들이 헤게모니도 없이 릴레이를 하며 유순하게 피었다가 진다. 그렇게 꽃들과 봄 햇살의 위로를 받으며 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통털어 7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평화로운 작은 시골학교다.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학교 관계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누굴까? 교무부장일까? 어림잡아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 학교 교장인 이천만(61) 선생이다. 짐작이 빗나간 것은 기자의 잘못이 아니다. 통상적인 교장의 근엄함과 권위를 찾을 수 없는 자유스러운 복장과 소탈한 모습 그리고, 아담한 교장집무실은 판단 착오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사를 나누던 도중 우편물이 배달됐다. 우편물 틈새에서 엽서 한 장이 나왔다. 엽서를 살피던 이 교장이 헛웃음을 친다. 뭐냐고 했더니 엽서를 건네준다. 엽서의 내용. 꼬부랑 글씨체다. 자신을 들어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할아버지의 옛 글씨체, 떨리는 필체로 쓴 것 같다빨강 볼펜 글씨, 보낸 사람 '전교조' 받는 사람 '겸면초등학교장 이천만'으로 되어 있다. (추적하면, 우체국 소인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이 교장은 고개를 흔들어 막아버렸다.)

<어느 교장의 자살 앞에 너나 자살해라. ×같은 소리 저 혼자 똑똑하고 야문 체, 세상에 너보다 못한 놈들이 누가 있더냐. 짠허다 자슥아!>

말하자면 협박성 우편엽서인 셈이다. 광기狂氣의 시대가 익명匿名을 가장해 보낸 협박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엽서마저도 편안하게 받아넘기는 이 교장, 그는 대체 어떤 교직자인가? 정년을 이태 남겨 둔 그는 시인이었다.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동시 · 동화작가로 시집 '바다를 가슴으로 뜨는 별'과 장편동화 '도깨비 우화(소년동아일보)'를 펴낸 작가였다. 교직생활 38년째인 그는 '무등전통문화교육연구교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교육수상록인 '훈사정음訓師正音''학교운동회 민속놀이 축제론' 등의 논문을 펴냈다. 이천만 교장은 최근 전교조 전남지회 홈페이지에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원문은 아래 별도 참조)이란 글을 게재했다가 익명의 협박편지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유신시절 당시, 교육 월간지에 교육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글을 연재했다가 안기부와 청와대로부터 내사를 받기도 했고 교육청과 교장단으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는 서 교장 자살사건을 통해 과거 공안정국시절의 파시즘적 광기가 되살아난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KBS '100인 토론'에 초청됐던 그는

옳고 그름이 명확한 사안을 논쟁거리로 몰아가는 분위기

정당한 주장조차 매도되는 매카시즘적인 분위기

보수집단(교총, 교장단, 보수교육단체, 수구언론, 정치권 등)이 똘똘 뭉쳐 전교조를 매도, 축출, 와해시키려는 분위기에서의 토론참여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 불참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15일 전남 곡성군 겸면초등학교를 찾아가 나눈 이천만 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서 교장 자살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같은 교장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이 번 사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이다. 교사든 기간제 교사든 혹은 강요였든지 자발적으로 했든지 간에 어떻게 교사에게 차 시중을 들게 할 수 있는가. 교직은 품위를 소중히 여기는 직업이다. 교장은 교사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차 시중을 하겠다고 해도 말렸어야 했다. 윗사람에게 차 한 잔 타 드리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바라보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보수적 권위적인 교육풍토가 빚은 비극이다. 서 교장 자살사건에는 객관적 사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 이런 경우 진실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보수세력들은 사실보도를 왜곡하고 왜곡된 보도를 통해 진실을 감추고, 사회 여론을 호도할 뿐이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그 상황을 만든 감춰진 진실이다.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교직자라면 서 교장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 보수언론의 '마녀사냥' 식 보도태도가 문제를 왜곡시키고 확산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진실의 실체는 외면한 체 전교조 죽이기에 혈안이 됐다는 지적인데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어떻게 보는가?

: 암흑과 무지의 시대였던 중세에 정략적이고 종교적으로 악용됐던 '마녀사냥'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21세기의 보편적 시각으로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이해할 수 없듯이 전교조를 겨냥한 보수언론의 무차별적 매도 또한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 홍세화씨는 한겨레칼럼을 통해 '전교조 죽이기' 시도는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이 개혁바람에 불통이 튈 것을 우려해 표출된 위기의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건은 이미 교육계를 벗어났다. 마치 누군가의 조종에 의한 것처럼 광풍이 불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주문도 정치적으로 악용됐고, 전교조 대량해직에 대해 정치적 불만을 터트린 대학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 계란 세례를 제자가 스승을 폭행했다고 호도했다. 이 번 사건 또한 보수 · 수구세력이 본질을 외면한 체 지엽적인 문제로 감정을 유발시키며 정략적으로 악용하며 정국전환을 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학교에 '접대계'가 존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교육청이나 외부의 높은 사람들이 방문하면 여교사들이 수업 도중에 차 대접을 하기 위해 빠져 나온다는 것인데 그러한 경우가 있는가?

: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에는 '슬리퍼계''접대계'가 있었다. '접대계'는 여교사로 구성된다. 차 시중을 들고 싶은 여교사는 없다. 다만 관례화가 돼 싫어도 내색하지 못한 체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교육체제에서 약자인 여교사가 차 시중을 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교육청은 진 교사가 차 시중 문제를 제기했지만 교장과 교감만을 만나 의견을 들었을 뿐 당사자인 진 교사의 의견은 외면했다고 한다. 가령 교육청이 진 교사의 의견을 청취했다면 문제 해결이 쉬웠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갈등을 풀기보다 꼬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다. 교육당국의 문제 해결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교육청은 처음부터 진 교사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고 외면한 것이다. 교육청 체제는 한 마디로 수구 · 보수적이다. 이들은 명령과 통제로 학교 현장을 움직여왔다. 이들이 학교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교사의 입장을 대변해줄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 교육청이 통제와 제재를 통해 학교(교장)를 일사불란하게 한 줄로 세워 지배하기 때문에 교장들은 적당히 순응하거나 동조할 뿐 민주적이라거나 자율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권위적통치를 극복할 의지가 없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이 자율적인 학교 운영 운운하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교장단을 포함한 교육당국과 전교조와의 갈등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갈등을 좁히고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전교조는 옳았고 나는 부끄러웠다"

 

갈등의 가장 큰 책임은 교장단에 있다. 전교조를 적으로 보는 교장들의 시각이 문제다. 교육계의 원로이고 선배라면 후배 교사들을 다독거리고 포옹해야 한다. 교육의 근본은 사랑이다. 아이들이 잘못을 했다고 무조건 때리고 내치는 게 교육인가? 선배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포용해야 한다. 교장들은 전교조에 의해 그 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한데 그것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상태로 찾아가는 것일 뿐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적이 아니라 교육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대화 상대다. 전교조를 인정하고 포용해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데 교장들은 전교조를 내치려고만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대화상대가 안 된다고 거부하는데 과연 그들이 생떼나 쓰는 사람들인가. 무모하고, 무지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전교조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합법화됐고 교육의 책임 주체로 인정받은 조직이다.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죽음이 잇달아 발생해왔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물론이고 언론과 교육당국은 이를 구지 외면해왔다. 죽음의 교육을 생명의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바람이 염원처럼 크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여중생이 자살했을 때 교장단과 우리 사회는 어떤 대책을 강구했는가? 초등학생이 '새처럼 날고 싶다'며 자살했을 때는 또한 어떻게 대처했는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던 세력들이 한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 불순한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진정으로 교육과 생명을 존중했다면 그 아이들이 희생될 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언론과 교육계는 구호처럼 생명존중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육체제 개선 없이는 생명존중교육은 불가능하다.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는 교육을 펼칠 의지가 있다면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제아를 정상아로 회복시킨 영국의 '썸머힐(일명 자유학교)'처럼 교육철학이 담긴 교육을 시도하면 생명존중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 교장의 독선적 학교 운영이 갈등의 불씨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있다. 학교민주화를 위해서는 교장 민주화가 급선무라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법 제 81조에는 '교장은 교무를 통찰하고, 소속 직원을 감독하면서, 학생을 교육한다'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고 돼있다. 교장들은 학교경영의 책임과 권위를 절대권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권위나 권한은 학교 공동체의 몫이지 교장 개인의 것이 돼선 안 된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교장·교감이 기간제교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교장은 학교 운영을 대리하는 역할이다. 권한 행사 또한 교장 마음대로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행해야 한다. 학교민주화는 학교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아직도 교육현장에는 일제와 독재가 남긴 파시스트적인 잔재가 남아 있다. 독단과 독선에 익숙한 교장들은 자기의 결정이 법이고 선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이것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교사들과 함께 논의하며 학교를 운영한 결과 학교 구성원 모두다 행복해하고 있다.

- 서 교장 자살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문제 해결방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쌍방향 토론과 대화보다 주입식교육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시대에는 토론문화가 활발했다. 당시의 정치문화는 곧 토론문화였다. 토론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일제 강점에 의해 왜곡되고 단절된 탓이다. 일제는 역사적 토론문화를 붕당정치 폐해로 왜곡했다. 국민들 저변 속에는 토의문화가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순한 세력이 토론문화를 오도하고, 호도하고, 차단하면서 본질과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게 문제다. 오류된 결론이 내려진 배후에는 늘 언론의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 전교조는 교육의 중요한 책임 주체로 성장했다. 그런 만큼 책임 있는 요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전교조가 개선해야될 점과 추구해야 할 방향이 있다면 말해달라?

: 교장을 비롯한 교육관료들은 전교조는 과격하다, 정치적이다, 급진적이다, 심지어는 버릇이 없다고 지탄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해직 당하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부당한 권력과 싸우며 바른 길을 걸어온 교사들이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동참하지 못했다. 권력과 맨몸이 부딪힐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최류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를 때는 돌을 던지며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밖에 없다. 권력과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단편적인 것을 문제삼는데, 정의는커녕 자신의 욕심과 안위만을 챙겨온 사람들이 과연 전교조 교사들을 폄하하고 질책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침묵한 죄를 반성해야 한다. 나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한없는 부끄러움을 갖는다. 나중에 자식들이, 전교조 교사들이 해직되고 투옥될 때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너희들을 먹여 살리고, 부모를 공양하고, 형제 돌보는 데 급급했다'는 말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교장단에서는 내가 전교조를 두둔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양심대로 살지 못한 부끄러운 교육자로서 끝까지 침묵을 지키다 물러날 수는 없다. 교장단이 돌팔매질을 해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옳았고 우리들은 부끄럽고 비겁한 교육자였다.

- 공교육정상화와 학교민주화의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학부모라는 지적이 있다. 올바른 교육발전을 위해 학부모와 학교관련 단체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학부모의 주장이 강해질 때 학교와 교육은 파행을 겪는다. 보성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빨리 등교시켜야 한다. (왜곡된)학부모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노동자가 지하철을 볼모로 삼아 파업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학부모와 주변 단체는 이 문제에 개입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지켜봐야 한다. 진정 교육자를 존중한다면 교육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 전국적인 교육사회문제가 된

이천만 교장이 전교조 전남지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

  오마이뉴스 조호진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

 

 교단의 갈등 현상이 첨예화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고 경영자와 교사의 투쟁이다. 우리는 사회 변화가 때로는 돌연변이 식의 개혁이나 혁명으로 역사적 변화를 추구하였음을 알고 있다. 점진적 변화든 획기적 발전이든 계기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면 어느 초등교장의 자살로 촉발된 우리 교육계의 갈등과 그 해법은 무엇인가?

 

 

<개요>

 먼저 교장 자살의 개요를 - 언론의 보도와 독자적 수준의 이해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작은 시골 학교(교무보조나 행정실 등 차 심부름할 사람이 없음)에서 교장이 기간제 교사(교장의 제자)를 차 심부름을 시켰는데 교사가 반발을 했다. 그래서 교장은 보복성 수업 참관(본인과 전교조 교사들의 판단)을 했고 기간제 교사는 부담에 못 이겨 퇴직을 했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해당 학교의 전교조 교사들이 부당함에 맞섰고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이 일에 개입하여 교장에게 부당함을 사과할 것과 기간제 교사의 복직을 요구했다.

 이 일이 인터넷에 오르고 찬반 논쟁이 가열되자 교장은 몇 장의 메모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유족은 직접 관련된 사람들을 고소(메모를 근거로)를 했고, 이를 기화로 전국 교장단은 전교조를 매도하고 나섰으며 몇몇 학부모 단체는 전교조의 부당한 간섭을 성토하였고 급기야 해당 학교의 학부모들이 (교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해당 교사들의 수업을 받지 않겠다며 학생의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 검찰에서도 수사를 하여 협박 사실(A4 용지 4장의 메모)이 밝혀지면 해당자를 사법 처리하겠다고 했다.

 

<시비론是非論>

  어떤 일에나 시비는 있다. 또 시비가, 특히 사회 문제가 된 일들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따져야 한다. 사외적事外的 문제지만 우리는 시비곡직을 분명하게 가리지 못한 역사적 원죄(반민특위)로 사회 정의를 세우지 못해 교육에서 아무리 지식적으로 가르쳐도 한 발만 사회에 나가면 교육이 무위無爲가 되는 참담한 현실을 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사소한 것부터 잔가지를 치고 넘어가자. 기간제 교사가 교장의 제자라는 말이나 주 쟁의에서 벗어난 가십 적인 일들은 도외시할 필요가 있다. 동정적 결론을 내려야할 사안이 아닌데 그쪽으로 몰다보면 본질이 호도糊塗될 수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전교조의 역사적 투쟁과정을 이 일에 대입하는 것도 호도다. 눈물을 흘리고 생계를 건 투쟁을 하였음은 알고 있고 교육 개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며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개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음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지치기는 객관적 시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렇다면 이 일의 시비는 무엇인가?

 첫째는 교장의 잘못이다. 설사 교사가 자발적으로 차 심부름을 자원했다고 하더라도 교장이 교사적 품위를 고려했다면 오히려 말려야 한다. 교단에는 교사의 교사로서 품위가 있다. 교장이 손수 차를 끓여 대접하고 교감이 차를 나르는 건 품위의 손상이며 ()교사가 차를 날라야 차 맛이 더 좋을 것인가? 원론적으로 안 된다. 교장의 커피와 교사의 커피 대접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절대로 다시는 이런 행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전교조의 대응이다. 전교조는 교사가 약자의 입장에서 늘 손해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체제의 권력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 그 현실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현장을 개선하려고 했으나 체제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오히려 거꾸로 정의로움을 발현하려는 전교조가 피해를 입었다.

 최루탄이 날아오는데 맨손으로 데모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준법 투쟁을 했는데 해직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사안 역시 힘없는 교사가 전제적인 교장의 권력 앞에 무력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 또한 원칙적으로 옳다. 사회적 약자로써 부당한 권력 앞에 항거하지 못하고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제도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전교조의 개입은 명분 있는 행위이며 정당하다.

 셋째, 교장단의 전교조 반성 촉구와 전 교육부총리의 투쟁 선언과 학부모의 수업 거부 문제 그리고 몇몇 학부모 단체들의 전교조 파괴(이 사건을 빌미로 삼아)의 집단적인 행동은 상식 밖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비민주적 행태며 반사회적 행동이다. 한 마디로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은 교육계의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갈등을 부채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독립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쟁취한 주권적 시민의식과 민주적 교육 기반을 다시 개발 독재적 시대 상황으로 회귀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몇몇 시민단체의 대처도 상식 밖이다. 우리는 정년 단축이라는 정책의 실패를 벌써 망각하고 있다. 교육계 내부의 문제는 교육계에서 대화와 타협과 논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지켜 보라. 황희 정승적 양시론이나 양비론은 없다. 명백하고 투명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때려잡기 식 매도나 여럿이 합세하여 함몰시키는 집단적 이기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결론>

 교장의 자살은 애석하고 참담하다.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불행한 과오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 우리는 행복과 성적을 외치며 죽어간 중학생 그리고 '새처럼 자유롭게'를 부르짖으며 죽은 초등학생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사회적 쟁론화를 하지 못했다.

 이 일을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한 계기로 만들자.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교육 대 단합을 이루자. 서로 네 탓을 하며 극한적 투쟁으로 교육계를 황폐화시키지 말고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민족적 저력을 발휘할 기회다. 반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붕당 토론문화의 전통을 바로 세우자. 우리 배달겨레는 이렇게 만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참고자료>

 일명 '차 심부름사건'이라고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된 이 사건의 개요는

 충남 예산의 한 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가 근무했다. 교장의 제자로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교감이 여교사에게, 교장실 차 심부름을 요청했다. 여교사는 차 심부름을 거절했는데, 그 때부터 무언의 압력이 시작된다. 수업안 작성, 임의의 수업 참관 등등. (학교에서는 차 시중문제로  교사지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새내기교사 지도행위라고 했지만 차후에 들어난 결과, 교무가 작성한 교사지도일지는 하룻밤에 급조되었다. 차 사건 이전에는 수업참관 등 교사지도가 없었던 것이다.) 교사는 견디다 못해 사표를 쓰면서 교내의 동료들에게 하소연 했다. 동료 교사 중 전교조 교사가 전교조지회에 이를 알리고 구원을 요청했다. 전교조지회에서 학교를 방문하여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교장에게 교사에게 사과와 복직을 요구했다. 몇 차례의 면담 끝에, 교장은 잘못을 시인하고 복직시킬 것을, 이틀 뒤에 각서로 서로 담보하자고 합의했다. 전교조도 이 일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합의 내용이 교감을 통하여 교육청에 전달되었고, 보수적인 교장들은 교장에게 '전교조에 굴복하면 교장의 체면과 위상이 전락한다'는 식의 압력을 행사했다. 전교조와 교장이 화해각서를 나누자던 이틀 전 교육청에서 긴급 교장회의가 열렸다. 교장회의일지에는 안건을 '학생생활지도'라고 기록했다. (전국적인 이슈가 된 차 심부름사건 화해각서를 이틀 앞두고 열린 교장회의 안건이 학생생활지도였다고 기록되었다면서 전혀 차 심부름사건은 거론하지 않았다는 교장단측의 해명은 소가 웃을 일) 교장회의에 참석했던 교장은 교장회의 다음 날, 전교조와 합의각서를 교환하자고 약속했던 하루 전 날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나무에 목을 메고 자살했다.

 이후, 교육청이나 보수단체와 언론들이 전교조를 살인마로 몰아부쳤다. 아예 이 기회에 전교조를 말살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전교조는 살인마로 몰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말 한 마디도 할 수 었었다. 교장이 자살했다는 것만으로, 전교조가 관련되었다는 것만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학부모들은 학교 앞에 '전교조 살인마' 현수막을 내걸고, 전교조 교사들을 학교에서 축출하라면서 학생 등교 거부를 했다. 당사자인 여교사도 살인마가 되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본인은, 이 한심스러운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진실이 호도되고, 정의가 핍박받는 현실을 좌시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교육현장의 고질적이고 권위적인 횡포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교육행정과 보수단체, 언론의 만행을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우리는 교육자가 아닌가? 가면을 쓴, 이 파렴치한 위장을 벗기고 정당하고 의로운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힘 없이 늘 교육현장에서 핍박받는 교사들에 대한 울분이 터져나왔다. 기만적인 보수단체, 보수언론 그리고 교육행정에 대한 분노였다. 특히 교장회의에 참석하고도 끝내 말 한 마디 없이, 전교조 살인마에 동조한 20여명의 군내 교장들에 대한 이성적 교육자적 분노도 컸다진실을 왜곡하여 민심을 호도하는 세력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래서 작성한 글이 위의 <본문>이다.

 

 

화보畵報(생략), 5 . 11 전국교장(전교조 죽이기)결의대회를 반대한

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 이천만 교장의 내력來歷

* 월간 <>, 20006월호, 표지인물 선정과 내용 화보의 글

 

 

<내가 가는 곳마다 바람이 일더라>

 

나는 교장이다. 정년을 이태 남겼으니 학교 세상 소풍도 거의 끝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시인의 말과는 다르게 나의 교단 40년의 끝자락은 혼란스럽다.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장 자살사건은 생뚱스럽게 전교조 죽이기로 변질되었고 이를 기화로 전국의 교장들은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새 날이 밝아오는데 이 땅의 교장들은 닭의 목을 비틀고 있다. 대학 초년, 도서관의 3천권 장서를 독파하리라는 계획을 음모처럼 꾸몄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나 역시, 아직도 이력이 나지 않았지만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나처럼 평교사 시절에 교장의 행정력을 비판하고 학교의 부조리를 지탄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뭔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요 근래 인터넷 매체를 비롯해 몇 군데 일간지에 보성초등학교장 자살 사건과 추모대회를 빙자한 전국 교장단 집회에 관련한 글을 기고했다. 이번 사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이고 사건에 대한 법적인 시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순교자네 살인마네 하면서 사회를 호도하는 교장단에게 학교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역시나 나에게 돌아온 건 협박성 전화와 전교조 교장이라는 딱지다. 정년이 이마에 차서야 철이 들었다고 할까, 내 깐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뭘 좀 한다는 게 이 모양이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나에게 새로울 게 없다.

나는 장학평가에서도 성과급에서도 만년 꼴찌다. 동료들이나 장학사들은 나를 또라이 교장'이라고 소근댄다고 한다. 교육청은 아예 나를 내어논 교장취급한다. 아마도 이 일은 유신시절 월간 교육자료요철凹凸교실이라는 연재를 통해 교육 비판을 하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안기부(국정원)의 내사, 군 교육청의 회유와 협박.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그늘만 골라 딛고 다녔던 교사협의회 시절, 나는 라만차의 돈키호테였었던가? 아무래도 좋다.

'꽃과 음악과 사랑이 가득한 학교'가 나의 학교 경영관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선생님이 즐거워야 교육이 바로 선다'라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고 등교하자말자 나부터 교무실에 들려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선생님들과 차를 마시며 잡담도 하고 가끔은 진지한 얘기들도 주고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학교 소문을 들은 교장이나 장학사들은 온정주의 학교경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성주의 학교경영은 어떤 모습인가? 연간 2천여 건의 공문 수발, 연중 70여 회의 교육행사 그리고 10교과에 주당 30시간이 넘는 수업시간, 고질적인 촌지 관행. 또 있다. 일제시대의 잔재인 반장, 주번제도, 애국조회(동방요배) 등등. 일제 청산은 학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거다. 학교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건 무엇보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틀어쥐고 있는 학교장의 무소불위의 독선적 학교 경영.

나의 온정주의 학교경영은 이런 것들을 바꾸는 것이었다. 작은 일이랄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 현관이나 교장실에는 학교현황판이 없다. 나는 그 자리에 그림을 걸었다. 브리핑 문화, 전시행정의 가식과 허례를 없애려는 것이다. 더불어 예산도 절감하고 학기초 그 바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일석삼조가 아닌가. 정기적인 직원회의니 아침조회, 기획회의 같은 모임도 없다. 필요할 때만 모인다. 선생님들이 출근하여 차를 들지 않고 바로 교실로 들어가면 반드시 교장실로 불러 (문안)인사를 강요(?)한다. 잡무 부담에서 선생님을 잡무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교사 공문서 근절 연구학교'를 자원하여 공문서 디렉토리화를 주창했으나 교육청()과 의견 충돌로 발표회를 열지도 못하고 말았다. 시멘트를 걷어내고 잔디 언덕과 돌 계단을 지었고 자연친화적 정원을 꾸며서 30종 천여 그루의 한국야생화를 심었다. 공휴일과 방학에 선생님들의 일직 근무 폐지, 탄력 근무시간제, 관례화한 명절 떡값의 상납도 눈물을 머금고 없앴다. 헌데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교육청과는 영영 척이지고말았다. 그래서 나는 왕따 교장이다. 돌아보면 내가 가는 곳마다 바람이 일었다. 교단의 풍운아인 셈이다. 아직도 학교는 일제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협박성 전화쯤이야 너털웃음으로 얼버무려버리고 그래도 내 길을 간다. 교사 시절에는 교장 교감이 걸려서 아무 것도 못했고 교감 되면 뭣 좀 할랴나 했더니 교장과 교사들꺼정 걸림돌이드니 교장 되니까 위와 옆 눈치 보느라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랬다. '내 맘대로 하게 카만 좀 놔둬버려라.' 교장 부임한지 6개월쯤 되었었나, 여 선생님들이 교장실 옆을 지나면서 한 말을 무심결에 들었다. '요새 같으면 학교 오기가 참 재밌어야.'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진짜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요즘에는 출근길에 학교를 한바퀴 뱅 도는 게 내 일과의 시작이다. 제작년에 심은 꽃사과나무 가지 위로 낮게 드리운 음악을 들으며 함초롬이 웃고 있는 할미꽃, 원추리, 비비추, 범부채와 부처꽃들과 만남을 그 즐거움을 그 누가 알랴. 선생님들이 즐거워야 학교에 생기가 돌고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다. 여기서 담양 땅이 멀지 않다. 송강을 비롯한 걸출한 유림들이 유유자적 가사문학을 꽃피운 곳이다. 독서권 문자향.

교대시절 나는 독서광이었다. 광주교대 장서 3천여권을 독파하기로 작정을 했으니까. 헤르만 헤세를 끼고 다녔다. 단팟죽 내기 정구로 세월을 보내다 오르간 F학점을 세 번 내리 받고도 가까스로 졸업은 했다. 졸업을 못하리라(아홉이나 되는 동생들 생계가 막막해서 졸업을 못하면 절대로 안 되는 절대절명의 시기)는 조바심에 새벽잠을 설치며 겨울방학 내내 풍금실에서 악보와 씨름을 하다 형설의 교대졸업장을 받아들고 고향행 남행열차를 탄 지 40여년 풍상을 겪었다. 돌이켜 보면 모진 세월. 나이 사십 중반에 도진 배냇병 같은 갈증을 이기지 못해 신안 섬생활을 자청했다가 승진에 눈을 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승진점수에 맛을 들여 편법을 자행하며 일 년에 두세 편의 연구논문도 쓰고 로비도 해서 장관상도 탔다. 부정과 부조리를 저지르지 않고 이 땅에서 교장을 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교원이, 설사 동료라할지라도 교직사회에서 표창을 받거나 상을 타면 웃는다. 아니다, 요즘에는 웃지도 않는다. 내가 전교조 교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교장 자살 사건에 입을 연 것은 젊은 선생님들이 강제 퇴직을 당하고 거리로 내몰릴 때 등 따숩고 배 불렀던 황량한 시절을 다시는 스스로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고 그 원죄를 속죄하며 참회하고 남은 기간이나마 교장답게 아니 인간임을 스스로 유지하려는 자위행위일 것이다. 더구나 명약관화한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잘못을 저지르는 걸 좌시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번 교장단의 결의대회가 무엇을 결의하였는지 나는 잘 모르겠으나 그야말로 분연히 일어선 교육계 원로들이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지켜보겠다. 일제시대 독립군 사냥꾼과 부역한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고 잘 사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프랑스는 독일군에게 물 한 바가지 떠다준 여인도 단죄를 했다. 교단이 환하게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Crean Korea크린코리아> 03. 12. 30

 <Mani Pulite마니풀리테(깨끗한 손)

교원사회 정화淨化에 대한 제안提案>

                          이천만(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 교장)

 

 '직권 내신' 교육장의 이 한 마디에 꼼짝없이 순천부영초등학교로 부임을 했다. 한참 '촌지기록부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때의 일이다. 겁도 없이, 촌지는 도시의 얘기고 시골에서는 오히려 교사가 아이들에게 촌지를 주고 있는 상황이며, 또 촌지는 없애려고 맘만 먹는다면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고 흰소리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하루 아침에 촌지를 근절하는 방법은 간단 하다. 학부모가 주는 촌지를 교사가 받고, 교사의 촌지 부스러기를 교장이 얻어먹기 때문에 촌지 근절이 안 된다. 교장이 받지만 안는다면 촌지는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 이래놨으니 순천 시내 교장단이 들고일어날 수밖에. 교장단은 숙고를 거듭 했으나 뾰쪽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결국 교육장에게 내 좌천을 건의했는데 교육장은 알았다면서 '그 사람, 5십이 넘은 사람이 아직 철이 덜 나서'라고 해놓고는 전남에서도 가장 큰 80학급 직원 120명의 학교로 덜컥 반강제 내신을 해버렸다. 교감 초임으로 시골 4학급 복식학교에서 근무한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진퇴양난, 순천부영은 순천 시내뿐만 아니라 전남도 내 1번지 학교였다. 순천부영 학부모회장은 1년에 개인 돈 2천만원을 쓴다고 공공연한 소문이 나돌았으므로 내 처지가 꼴사납게 된 건 운명의 장난으로 치부하고 맘을 추스렸다. 부임 첫 해 추석, 역시 소문대로 상상을 초월했다면 선생의 간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놀릴라. 그 다음부터 나는 간헐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이 대놓고 '촌놈티낸다'고들 했다. 웃으며 촌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평소에도 나는 후배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촌지에 관한 한 깨끗하다.' 선숙이 때문이었다. 시골 작은 읍의 변두리 학교 4학년 때 만난 선숙이는 지체가 뒤틀리는 병을 앓고 있었다. 루게릭병처럼 손발과 얼굴이 틀어져서 생김새만으로는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뇌가 남달리 명석해서 학년 1등이었다. 담임을 맡아 사나흘쯤 선숙이 엄마가 찾아왔다. 늘 동생이 부축하고 엄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날은 교실로 불쑥 찾아와 몇 마디 말씀 끝에 봉투를 내밀었다. 그 시절만 해도 봉투를 생각없이 받아 챙기던 시절이라 몇 번 사양한 끝에 집어넣고 헤어졌는데 그 날 따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선숙이 엄마가 학교 현관에서 선숙이를 인계받는 걸 기다려 봉투를 반납했다. 선숙이 엄마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지금까지 늘 그래 왔는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봉투를 다시 챙긴 다음 퇴근 후 읍내 책방에서 동화책을 사서 되돌려주었다. 그 후부터 선숙이 엄마는 우리 교실에서 살다싶이 했다. 거액을 들여 커틴을 달고, 책장의 망가진 책을 풀로 붙이고, 쓸고 닦고 마치 교실을 방안 가꾸듯 했다. 교직 10여년 되던 해였는데 그제서야 나는 촌지를 잘 관리하는 나름대로 비법을 터득했고 교직의 참맛을 알았다. 순천부영에서 두 번째 맞은 명절 설날을 앞두고 학년부장 설득에 실패한 나는 학년 휴게실로 학년회의를 소집하여 나에게만은 촌지로 인간 관계를 흩트리지말자고 호소했다. 결과는 개인봉투가 학년봉투로 바꿔지는 효과였다. 그 것이 사도와 행동의 한계였다.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좋아, 단 술값 시비는 없기다.' 년말 우리 학교 풍경화 한 도막. 우리 학교 교무는 작년에 승진 서열 점수가 0.002 모자라 낙방을 했다. 승진에서 근무평정은 절대절명이라 승진대상자는 근무평정을 찾아 철새처럼 학교를 옮겨다닌다. 교감으로부터 교육장에 이르기까지 교육계의 승진과 연계된 돈봉투는 기백에서 수억 단위까지 한계를 넘고있는데 눈감고 아웅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 수 있을지.

 

 

*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고해성사 <03. 12. 26>

아버지, 아버지는 그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천만(전남곡성겸면초등학교 교장)

 

젊은 교사들이 교육 민주화를 외치다 거리로 내몰리고,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작당을 하여 여교사의 머리채를 끌어내렸으며, 교실에서 내쫓긴 선생님과 아이들이 열쇠 채운 교문을 사이에 두고 울부짖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교육민주화가 이루어진 날, 그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묻는다면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엊그제 기획회의에서 윤 부장이 '교장 선생님 방학이 너무 길어요.'라고 했다. 우리 학교는 방학이면 선생님들은 통째로 쉬고 교장은 날마다 출근하며 교감과 부장은 넷이서 윤번제로 출근한다. 그래서 출근 기간이 많으니 선처를 해달라는 건의사항인 셈이다. 어줍잖게도 나는 그 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렸다. 부장이라고 누리는 것이라야 눈꼽만 한데 일언지하에 누리는 만큼 책임지라니 어안이 벙벙했을 게다.

거슬러 올라가 벌써 20여년 전 교사협의회시대, 나는 젊고 피 끓는 열혈 청년교사였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상아탑을 갓 들어온 햇병아리 대학생들처럼 이 집 저 집으로 몰래 숨어다니며 국가 전복이라도 하는 양 모의를 하고 토론과 토의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잖아 그 탄압과 핍박 속에서 교사협의회는 교직원노동조합으로 탈바꿈했다. 불법노조를 결성하려는 젊은 교사들의 의지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고 우리는 다시 참교육의 기치 아래서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질곡 앞에 섰다. 아무도 선뜻 동행을 말하지 않았으나 비장한 각오들이 팽배했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 모두의 옥쇄였다. 최종 결정은 해임과 감옥살이의 협박이 목을 조여오던 어느 날 밤 동료 여선생님의 아파트였는데 아무도 누구도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싸우더라도 먹으면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 굶고서야 무슨 힘으로 공권력과 대치할 수 있겠느냐?' 그 제안 덕택으로 '형님은 교감 승진이 오늘 낼이니 남았다가 우리도 돌보고 승진한 다음에 현장에서 우리의 뜻을 펼치시라.'는 회유에 그만 남고말았다. 그 때는 몰랐는데 그 일은 원죄가 되어 교육생애 한 평생 가슴에 못이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이 어설픈 선배를 잊지 않아 엊그제 열린 전남 전교조지부 송년회에 초대를 받아 갔더니 전남 전교조의 1년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독립투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전교조의 활동상과 백야 김좌진 장군이 겹치고 유관순 누이의 영상도 겹쳤다. 이또오히로부미를 사살한 윤봉길 의사가 보였다. 그리고 국가와 나라를 구하겠다며 산화한 젊은이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러나 한 발 밖에서는 반민특위의 고함소리뿐. 해방 5십년이 되어 이제야 역사를 조명하겠다고 친일 인사를 거론하는 국민이 받아야 하는 당연한 순리가 우리 모두의 목을 옥죄이고 있다. 이 역시 원죄다.

 이제 정년 1년 반 남짓,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교단에 현안은 많다. 수능과 대학입시의 학벌사회. 그리고 강남 집 값과 자립고 특목고 또 고교 평준화와 시장 경제 논리. 공교육과 사교육. 교장 선출 보직제와 학교 자치. 교육부의 행정체제. 교육과정과 공문 그리고 학교행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교사.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싶다.'는 외침조차 공허하다. 스승은 없다고 한다. 비정한 세상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석 달을 함께 산 중학생을 발견하고 호들갑스러운 애도를 하고 있다. 이 가파른 세상에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21세기 우리에게 유효한가?

이용석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야학을 가르치고 그리고 일용직의 부단한 대우를 개선하다 못해 분신을 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유서에서 '언제까지 이 나라에서 분신 자살이 이어져야 하나.'라고 했다. 6. 25 동족상잔의 비극은 예견되었으며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며 자살한 고등학생과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싶다.'던 초등학생의 신화는 열반송처럼 가슴을 후빈다. 교육계도 구조 조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 마피아라는 교육 관료 체제를 그냥 두고 교육 개혁은 없다. 같은 맥락에서 '학교는 교장의 수준이다.'라는 말도 도태되어야 한다. 우리의 지능지수는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높단다. 공교육과 사교육, 수능과 대학 입시, 고교 평준화와 자립고 특목고, 교장 선출보직제와 학교 자치, 근평과 성과급 등 교육계의 산적한 문제들은 천직이라는, 백년대계라는, 스승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고전으로 풀자.

 

 

*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고해성사 (03. 12. 29)

 <돈키호테 교장의 정년, 그리고 양심의 주홍글씨>

                이천만 (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 교장)

 

 성철스님은 열반송涅槃頌에서 '사부대중에게 한 거짓말을 용서하라'고 했다. 고명한 종정 스님께서 입적하면서 하신 말씀이니 우리 범인들이야 감히 범접이나 하랴만 참여정부가 기적처럼 일어서면서 심상찮은 기운이 서기롭게 엉키더니 대한민국은 지금 새해 2004년의 벽두劈頭에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몸부림을 하고 있다. 토인비가 '문화동진설'을 설파한 이후 프랑스영국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국운 융성의 대열에 오늘 우리가 서 있다는 운명적인 우주 현상이 마냥 미혹迷惑은 아니리라. 그래서 나는 우리가 정쟁과 사회적 이해 타산을 헤아리는 동안에 이 천혜적 우주 섭리가 속절없이 중국으로 건너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의 한국적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

 부끄럽게도, 지난 여름 나는 '1천만원 가지고 교육장을 산다면 초등학생부터 줄을 설 것이다'라고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실현연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EBS와 인터뷰를 했다. 충남교육감의 선거 담합이 사회 문제가 되어 교육장 임명권이 담보되었고 신문지상에 알려진 교육장 매관액이 2천만원이었다기에 '삼척동자, 아니 소가 웃는다'며 한 말이다. 교육자는 귀감龜鑑을 양심으로 교단에 선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본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먼저 교사가 자기 종아리를 치는 행위를 제자들에게 보일 때다. 치맛바람과 촌지기록부는 애교일 뿐이다. 촌지기록부 사건이 언론에 터졌을 때 '촌지는 도시 선생님의 문제고 농어촌 선생님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촌지를 주고 있으며, 이를 하루 아침에 뿌리 뽑을 수 있는 방안은 학부모가 준 촌지를 교사가 받고, 교사가 준 촌지를 교장이 받는 연결 고리를 끊으면 된다. 교장이 교사의 촌지를 안 받는다면 촌지 관행은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고 지역 신문에 기고를 했다가 교장단으로부터 호되게 경을 친 적이 있었다. 세무사인 도마가 사람이 되는 일을 물었을 때 예수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대 우리 사회가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려면 교육도 거듭나야 하는데 교육의 변화와 개혁은 사제師弟가 함께하는 학교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많은 교육 난제들에 앞서 교육이 교육으로써 본분을 세우려면 교사의 위상을 찾아야 하고 이 일의 근본에는 교장이 있다. 아시다싶이 우리 나라의 교장은 학교의 절대 권력을 독점하고 있고 교장은 우리 교육 체제에서 학교의 위상이므로 교장이 변하지 않으면 학교가 변화할 수 없고 교장의 위상이 변화하지 못하면 교육은 개혁될 수 없다. 그러나 교장은 교장 자격을 얻으면서 태생적인 원죄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변화와 개혁을 기대하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 교원 승진에서 기백만원의 촌지는 관행이고 승진을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는 말도 전설이 아니다. 연구점수는 연구물을 알선책으로부터 사들여서 베껴내 취득하고, 근무평정은 교장의 주구走狗 노릇으로 해결해야 한다. 교장 승진은 교육장의 조정점수에 목이 조여 있으므로 교감은 '장학사의 밥'이라는 은어隱語가 유행하는 것처럼 교감 몇 년 동안 설설 기다가 역시 역량껏 해결하고, 표창 역시 재량껏 해결하여 교장 자격을 얻는다. 교육 현장의 교원 승진 체제가 이럴진데 누가 교장을 존경하며 누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구조적 부조리를 지닌 승진체제와 행정체제를 개선하지 않고 교육개혁은 없다. 일찍이 공자님은 '형식이 실질에 우선한다'는 명감銘鑑을 남기지 않았던가.

 

 

*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원년元年 고해성사 후문後文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Campein캠페인은, 전국 교육계를 대표하는 고해성사라는 요청을 받고 며칠 간 망서렸다. 문화일보에서는 2000년대의 초입에 클린 코리아 운동을 전개하여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는 이 나라의 부정부패를 구조적으로 쇄신코자 했다. (어느 외국기자는 우리나라의 부패상을, '그래도 굴러가는 나라'라는 말로 표현했다.) 각계각층이 선언적 참회를 하는 일이었는데 교육계의 참회의 글이 내게 배정된 것이다. 마음의 부담이 컸다. 사실대로 고해를 하기에는, 촌지 정도는 약과요 애교인 교육계의 부패구조를 고지곧대로 고해성사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 충격의 파장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교육현장이 이 고해성사로 인하여 받을, 쑥대밭이 될 이후 상황을 예상한 것이다. 나 개인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나는 희생되더라도 교육계가 문제였다. 오랜 망서림 끝에 나는 고해성사를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위 본문의 고해성사가 시작되었다. 곧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교직 초반, 햇병아리 교사로 그 무서웠던 유신시대에 교육계의 권위주의와 부정부패를 고발한 '요철凹凸교실 - 어두운 교실''월간 교육자료'에 연재(30회 기획, 5회 째 중단)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요철교실 때는 안기부, 감사원, 교육부, 청와대, 경찰, 검찰이 개입되었다고 나중에 알았다. 같은 시기에, 연재가 아니고 단 1회 비판적인 글을 카돌릭 어린이 월간지에 쓴 경상도 모 선생님은 그들의 집요한 강요에 사표를 썼다면서 협박했다. (그 교장선생님과 그 일로 교유가 있었는데 나중에 서울의 사립학교에 복직하였다가 거제 쪽 유명한 사립학교 교장을 맡았다.) 하기야 그 시절에는 사람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사라지는 시대였으니까.

 한 달 간 교육장이 장학사를 대동하고 학교를 찾아와 협박, 회유를 했으나 나는 사표를 쓰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교육장의 회유가 먹혀들지 않자 군내 교장단이 나섰다. 우리 군에서 근무하는 선생이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우리 군 교육()의 수치라는 거였다. 나는 교장단과도 정식으로 맞섰다. 교장단 임원들에게 내가 정말 거짓말을 했고 군 교육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누가 옳은지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숨어서 비난이나 하면서 군 교육의 명예 운운 하지말고 교장회의를 소집해서 토론을 벌이자고 역 제안을 했다. 내가 거짓말 유포하였는지교육행정과 교장 당신들의 행태가 교육의 명예 운운 할만큼 옳은지를 공개리에 토론하자고 했다. 끝내 그들은 교육자료 편집장과 몇몇 기자에게 문책을 하고 끝이 났다. (교육자료는 초등교육 대표 월간지로써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구독하는데 교장단이 교육자료사에, 연재를 중단하지 않으면 본군에서는 구독 거부를 하겠다고 교육자료사를 협박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태는 집요했다. 어떻게든 옭아매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행정력이 가장 좋아하는 감사가 동원되었다. 세상에는 공무원을 두고 '털어서 먼지 않나는 사람 있나?'라고 한다도교육청도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감사반 파견'. 출두를 구두로 요청했으나 거절하자 감사반을 파견했다. 감사반(도교육청 감사과 계장, 감사과 직원, 도장학사, 군장학사)이 학교로 찾아와 취조를 하려고 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만 돌아가기를 요청했다. 그런데도 감사계장이 작성해온 서류를 들이밀며 조사를 강행하려고 했다가, 내 호통에 코를 싸쥐고 물러갔다다음 날 곧장 행정공문으로 출두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정상적인 사유를 들어 출두명령을 거부했다. 이후 이틀 건너 한 번씩 5번의 출두명령을 거부하자 그들은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그래놓고, 도장학관을 뒷문으로 보내 개별적으로는 교육청 면담을 제의해왔다. 나는 그 제안도 거절했다.

 이 상황에서, 마침 강원도에서 '촌지기록부'가 공개되어 촌지문제가 교육사회문제가 되자 KBS '100분 토론'이 게스트로 참여해줄 것을 제의해왔다. 제의를 받고는 울분에 참석하겠다고 응락했다가 취소했다.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 출연하면 가감없이 사실을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이렇게 근 한 달 동안 어렵고 힘든 시련과 싸우느라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대로 피폐로와져갔다. 집전화는 아예 전화코드를 뽑아놓고 살았다. 모든 접촉을 피했다. 불면의 나날이었다. 문화일보와 도교육감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고 뒤에 들었다. 그러나 그 게 끝이 아니었다.

 그 후 1년여 뒤감사원 특별조사반의 감사를 받았다. 반장과 직원 두 사람이 와서 사흘 동안 교육청회의실에서 감사를 했다. 행정실장의 비리를 파헤쳐서, 행정실장을 협박하여 나를 옭아맬 심산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1년 전에 폐교가 된, 6학급 50여명의 학생, 농촌소규모 학교를 감사원이 감사할 수 있었겠는가? 감사원특별조사반이 그렇게 할 일 없는 곳이던가그들은 감사 이틀째, 잘못을 시인하면 정년이 얼마남지 않았으므로 관대히 처리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자기들이 감사한 문건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나는 시인할 수 없다고 싸인을 거부했다. 그러자 감사반장은 (폐교)학교의 경리문서 3년치를 들고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 석 달 동안 수시로 괴롭혔다. 나는 그들이 제시한 사소한 경리문제를 사실 확인으로 증명하느라고 동분서주했다. 석 달 뒤 그들은 '없었던 일'로 감사를 마무리 했다. 그러나 나는 없었던 일로 마무리 할 수는 없었다. 사표를 주머니에 넣고 서울로 올라가 기자회견을 하려고 하였다. 마침 도교육감에 출마의사를 지닌 내게 친지들이 더욱 권유했다. 그러나 심사숙고 끝에 그 일은 선거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선거에 패배하고 모든 일을, 나도 '없었던 일'로 마무리했다.

 

 

* 피해 당사자 진교사 인터뷰 내용

 '내 억울함 교육부· 교육청도 외면, 장학록도 원본과 달라'

  - 진하경교사 인터뷰

 <(2002328) ○○ 저녁에 전화 옴. 329일 만나서 서로의 서약서를 교환하자. 전교조 사무실에서. 보성교장 제 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제의>

충남 예산 보성초 서모 교장이 자살하기 7일 전인 328일자로 자신의 수첩에 남긴 글귀다. 이 쪽지를 적은 서 교장은 세상을 떴고, 이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 진 모(27)씨는 고향인 예산을 뜰 수밖에 없었다. 서 교장 자살 후 조선과 중앙, 동아일보는 일제히 진 교사와 그를 도운 전교조를 몰아붙였다. 급기야 보성초 정문 울타리엔 "간접 살인마 진○○…"이란 현수막이 붙었다. 차 접대 강요 사실을 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린 일과 '서면 사과' 요구가 살인 교사행위로 간주된 때문이다. "억울하고 겁도 나요. 더는 잃을 게 없는 몸인데도 말이라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지난 15일 오후 6<오마이뉴스>는 진씨가 거주하고 있는 충남 천안 소재 15평짜리 아파트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진 교사는 고개를 떨궜다. 서 교장 유족과 일부 학부모 등으로부터 '살인마' 소리를 듣고 있는 진씨는 자그마한 키에 교복만 입으면 고등학생처럼 보일 정도로 앳된 모습이었다. "제가 가르치는 3학년 아이들한테 아침마다 찻잔 들고 교장실 드나드는 것 보이기 싫었어요." "칠판에 글씨 쓰다가 뒤돌아 보면 교감 선생님 계시고, 아이들한테 설명하다가 또 보니까 교장선생님 계시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320일 현장조사 나온 장학사님께 할말을 다 준비했는데 저는 만나지도 않고 가셔서 정말 섭섭했어요." "인터넷에 올라온 '교장 박살', '여교사는 교장 노리개' 등 제 실명이 아닌 것은 제가 올린 게 아닙니다." "장학록이요? 내용을 봤는데 사실과 다른 내용이 태반이고, 날짜와 내용이 뒤죽박죽 입니다." "320일 사직서 제출할 때 사직 이유를 '심리적 스트레스'라고 써서 냈어요. 그런데도 교감 선생님이 사직 이유를 몰랐다니요?" 하루 전인 14일 예산교육청에 사직서를 낸 진씨는 이날 4시간여에 걸쳐 그 동안 참았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의 말 가운데는 기존 몇몇 언론의 보도내용, 또 보성초등 홍모 교감의 주장을 뒤집는 내용도 더러 포함돼 있었다.

다음은 진 교사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기존 보도 뒤집는 진 교사의 반박

- 4일 서 교장님 자살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이 머리가 멍했다. 우선 '이 학교에 오지 말아야 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겁도 났다. 자살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조문을 가려고 했는데 유가족이 흥분해 있다는 얘길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 '간접 살인마 진○○'이란 현수막이 보성초에 붙은 걸 보았나? : 얘기를 들었다. 차 접대 강요에 대해 기간제 교사로서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319일부터 2, 3일 동안에 교육부 홈페이지와 예산군청 홈페이지, 그리고 전교조 충남지부 홈페이지에 사실을 알리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너무 분해서 글을 올렸다. 교장선생님 죽음에 마음이 찢어지고 아프지만 내가 살인마란 얘길 듣는 건 정말 억울하다. 진씨는 눈 주위를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간접 살인마란 말은 억울하다"

- 지금 '차 접대 강요가 전혀 없었다'는 게 보성초 홍 교감님의 얘기다. : 며칠 전 텔레비전에 나온 교감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오히려 내가 차를 대접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근무하기 전인 2월 얘기고 내가 말하는 건 3월 얘기다. 몸이 떨렸다. 어떻게 저렇게 사실과 다르게 말할 수 있는지 기가 막혔다.

- 그럼 '교장선생님께 날마다 차를 대접하라'는 말씀을 분명히 교감께서 했다는 소린가. 언제 어떻게 그런 말을 했는가. : 인터넷에 올린 그대로다. 37일 수업이 끝났을 때니까 (오후) 3시쯤이었을 거다. 교감선생님이 일지 쓰는 법을 한참 가르쳐주시다가 '교장선생님께 잘 보여야 해. 아침에 교장선생님한테 차 좀 갖다드려'하고 말씀했다. 나는 처음이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하고 공손하게 답했다. 이 말씀을 듣고 찻잔을 닦았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부모같은 직장 상사한테 '차 한 잔 대접 못하냐'는 말도 들린다. : 아까 말했듯이 나는 2월에 교감선생님과 행정실장님한테도 차를 타 드렸다.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매일은 어렵지만 업무에 익숙해지면 가끔 차 대접도 해야겠다는 마음도 먹었었다. 하지만 윽박질러서 억지로 차 접대를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니 참기 어려웠다. 학교는 엄연히 가정이 아닌 직장이고 가정에서도 부모가 차 안 타온다고 윽박지르고 내쫓진 않는다. 교재 공부, 일기 검사, 아이들 특성 분석, 교과 준비 등으로 집에까지 매일 학습자료 들고 다닐 정도로 시간도 없었다. 아이들한테 내가 매일 아침 일찍 차를 끓여 교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정말 보이기 싫었다. 사실 매일 차 타드리면서 교장선생님께 잘 보이면 기간제 채용도 또 되고 이쁨 받는 걸 난들 왜 모르겠나. 하지만 좋은 선생님이 돼 인정받고 싶었고, 가능한 애들한테 모든 신경을 쓰고 싶었다. "차 안 타온다고 윽박지르고 내쫓는 부모도 있나"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다음 날 8, 토요일인데 아침에 출근하고 나서 교감님께 '학생들이 아직 어려 아침에 아침자습도 시켜야 하는데 매일같이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감께서는 역정을 내시면서 '진 선생, 직장생활도 안해 봤어? 850분에 와서 차 드리면 되잖아. 손님 접대도 진 선생이 해야 돼'라고 하셨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2층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을 땐 어떡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인터폰으로 부르겠다'고 하셨다. 이날 점심 때는 교장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차 접대 건으로 문제 많은 걸 어떻게 알고 차 안 탄다고 했느냐, 누가 충동질했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3월초 보성초에서 만든 '2003학년도 학급담임 및 사무분장표'엔 진모 교사의 '업무내용'란에 "접대"라는 말이 적혀 있다. 홍교감은 이 자료를 교무회의에서 이 학교 전체 교사에게 나눠준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2000년 시도교육청에 내린 지침에서 '교사의 차 접대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권고한 바 있다.

- 이른바 임상 장학에 대해 말을 나눠보자. 홍 교감님은 초등 경험이 없는 기간제 교사라서 교장선생님과 함께 자주 교실을 방문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접대에 대해 말씀드린 8일만 해도 세 번에 걸쳐 교장선생님이 교실로 오셨다. 1교시엔 수업시간표 바꾸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고, 4교시 재량시간에도 오셨다. 수업이 끝났을 때는 교장실로 직접 부르셔서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말하라고 몇 번씩 다그치셨다. 접대하려면 어디까지 할 것인지, (나를) 옆에서 충동질한 사람은 누구인지.

현재 주제별 통합학습을 강조하는 7차 교육과정의 취지에 따라 대부분의 초등교사들은 시간표를 자주 바꾸며, 교육당국은 이를 권장해왔다. "하루에 세 번 정도씩 번갈아 들어왔다"

- 이 일이 있은 다음 주인 10일부터 그만두기까지 일주일간도 자주 들어오셨나? 아이들 앞에서 야단도 쳤다고 인터넷에 적었는데. : 교감, 교장선생님이 하루에도 세 차례 정도씩 번갈아 가며 들어오셨다. 칠판에 글씨 쓰다가 뒤돌아보면 교감 선생님 계시고, 아이들한테 설명하다가 또 보니까 교장선생님 계시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이들 앞에서 시간표 바꾸고 청소지도 안한다'고 야단칠 때는 부끄러워서 도망치고 싶었다.

- 서 교장선생님이 작성했다는 장학록은 봤나. : 봤다. 우선 장학록에 나와 있는 35일에는 아무도 교실에 들어 오신 분이 없다. 38일 장학록에는 동화책 읽는 시간에 판서 지도와 단원명 기록 등을 하도록 지도했다고 하는데 독서하는 시간에 판서지도를 했을 리가 있나. 이날은 교장선생님이 '절대 시간표 바꾸지마'하고 그냥 나가셨다. 한마디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고 그나마 날짜와 내용이 뒤죽박죽이다.

- 학부모들이 진 교사와 함께 전교조 조합원인 정모, 최모 교사를 지목하고 있는데, 이들과는 왜 가깝게 지냈나? : 최선생님은 우리 반 옆 반 담임을 맡으셨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지도방법을 여쭤봤는데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정 선생님은 지난해 우리 반 아이들 11명을 가르치신 분이다. 학기초에 나한테 오셔서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한다'고 당부까지 하셨던 분이다. 아이들도 정 선생님을 무척 그리워했다. 나도 저렇게 아이들한테 사랑받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전교조 정모 교사는 지난해 우리 반 담임, 최모 교사는 옆 반 담임 "

- 서 교장님과 홍 교감님은 진 교사가 왜 320일에 사직서를 냈는지 모른다고 했는데. : 사직이유서에 '심리적 스트레스'라고 써서 드렸다. 하지만 왜 괴로워하는지 묻지도 않고 '일신상의 이유로' 바꿔 쓰라고 했다. '이왕 시작했는데 좀더 해보지 그래' 한 게 전부였다. 그것도 월급 반납하라는 메모를 건네면서...

- 사직서를 낼 때 이미 인터넷에 글을 올린 상태였고, 예산교육청 장학사까지 이 학교에 현장조사를 나왔는데 진 교사는 알고 있었나. : 알고 있었다. 장학사님이 우리 학교에 조사 나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얘기할 줄 알고 머릿속에 할말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나를 만나지 않았다. '교장, 교감 선생님 말만 듣고 가셨다'는 말을 나중에야 들었다. 그 뒤에도 또 다른 장학사를 만났는데 다른 학교 기간제 교사를 소개해 준다고만 했을 뿐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물어 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내 얘기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고 했다는 것을 뒤늦게 들었다.

예산교육청은 진씨가 교육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지 하루만인 20일 이모 장학사를 보성초로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어 24일 예산교육청은 조사 결과 '무혐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 교육인적자원부나 교육청, 교총으로부터 사실 확인을 위한 전화가 걸려 온 적도 없나. : 없다. 어디에서도 단 한 번도 내가 겪은 일을 물어 오는 사람이 없었다.

- 그럼 인터넷에 글을 올린 다음 교육청에서는 진교사를 만나지 않았는데, 전교조 충남지부만 이야기를 들어줬나. : 사실이 그렇다. 나처럼 차 접대로 괴롭힘을 당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더 이상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으로나마 하소연을 했는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라. 그러던 중 전교조를 만났다. 교권침해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 선생님들이 내 얘기를 듣고 보성초를 방문해서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 말씀도 들었다.

- 전교조 충남지부 대응방식이 조금 거칠지 않았냐는 지적이 있다. 서면사과 문제도 그렇고. :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26일과 28일 전교조, , 교장선생님, 장학사님이 만나 해결방안을 대화로 찾았다. 서면사과도 교장선생님이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군 교육청도, 도교육청도, 교육인적자원부도 내 얘기 듣지 않았다"

- 사과를 서면으로 하라는 것은 좀 심한 느낌이 든다. : 아니다. 서면사과는 힘없는 내가 원했던 것이다. 더구나 327일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인터넷에 '차 접대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글을 올렸다. 이미 복직결정이 난 후인데도. 나로선 문서라도 갖고 있어야 좀 마음에 안정이 될 것 같았다. 말이 서면사과지 서약서 수준이다. 나도 교장선생님께 다른 목적으로 서약서를 이용하거나 보성초 문제를 확대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기로 했다. 이렇게 약속한 날이 지난 달 28일 아침이다. 후에 교장선생님과 내가 서약서를 교환하기로 했다.

- 결국 서약서는 서로 교환하지 않았는데. : 다 얘기가 됐는데 교장선생님은 약속과 달리 서약서를 써 주지 않으셨다. 41일 다시 학교에 나갔지만 아무 말도 없으셨다. 나중에 교감선생님이 교장선생님한테 '서면사과 못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

서 교장은 자살 전 남긴 수첩에 '29일 서약서를 교환하자. 보성교장 제 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제의'라고 직접 적어놓은 바 있다. "내가 그렇게 과격해 보이나"

- 이제 진 교사 개인 얘기를 좀 해보자. 왜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교장 박살'이란 아이디를 썼는가. : '교장박살', '여교사는 교장의 노리개'와 같은 아이디는 내가 쓴 게 아니다. 내가 올린 글은 순전히 실명으로만 썼다. 실명이 아닌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있는 글을 퍼다 나른 것 같다.

- IP(인터넷 주소) 추적하면 금방 나온다. 진짜 실명으로만 글을 올렸나. : 나는 떳떳했고 사실만 적었기 때문에 실명으로만 글을 올렸다. 더구나 '교장박살'이라니, 내가 이런 말을 쓸 정도로 과격하게 보이는가. IP 추적해 확인해 보면 오히려 좋겠다.

- 왜 다른 학교로 가지 않고 보성초로 다시 복직했는가. : 애들이 너무 좋았다. 주변 선생님들도 너무 좋았다. 제기된 문제만 빼면 보성초를 그만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교육청에서 다른 학교를 권했지만 너무 먼 거리여서 다닐 수가 없었다.

- 진 교사를 비판하는 글 중엔 '학원임금 미지급'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제소할 정도로 영악하다는 표현도 있다. : 4년 동안 그 학원에서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그만 두고 나오려니 퇴직금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한두 달 봉급이면 몰라도 퇴직금은 600만원 정도 됐으니 나에겐 큰 돈이었다. 일한 것에 대해 정당하게 달라고 했지만 응해 주지 않아서 법에다 호소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 그 동안 기자들을 피해왔다. 왜 그랬나. :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신문은 언론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자기들 시나리오에 맞추어 말을 빼고 넣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전교조 선생님들 말 가운데 반감을 살만한 내용만 뽑아서 실어놓은 작문을 보면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살 곳도 없고 일할 곳도 없다"

- 결국 14일 사직서를 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 처음엔 진실이 왜곡되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를 그만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병가를 냈다. 하지만 병가신청 기간도 지나고 학교에 돌아갈 처지도 못됐다. 차라리 사직서를 내고 밖에서 얘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살 곳도 없고 취직할 곳도 없다.

충남교육청은 진씨가 사직서를 낸 14일 국회 교육위원회 보고에서 "진교사를 해임하겠다"고 밝혔다. 사직서 결정과 해임 방침 발표가 서로 조율도 되지 않았는데 같은 날 나온 것이다.

진씨는 보성초 아이들 모두 순진해서 좋았고 학부모도 참 친절했는데...’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진씨는 왜 교장선생님이 자살까지 하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하지만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아이들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 당시 생각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진씨는 이 학교 근무를 끝으로 교단에 서기가 어려울 것 같다. ‘임용고시 봐서 정식 교사도 되고...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뛰놀고 싶었다는 그의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는 것일까.

 

<사회체제개혁 보고서 大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