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교육자-오마이뉴스인터뷰

"진실이 가려진 죽음, 누군가 악용, 우리는 부끄럽고 비겁한 교육자

북새 2018. 3. 21. 12:21



* 이천만의 Blog - '이천만의 시' Blog를 열람하려면 우측의 카테고리를 클릭하고, 또 카테고리 하단의 '사회체제개혁 자선전'을 쿨릭해도 열람 가능함




"진실이 가려진 죽음, 누군가 악용

 우리는 부끄럽고 비겁한 교육자"


[쟁점 인터뷰]

전남 곡성군 겸면초등학교 '이천만' 교장

 

 

* 오마이뉴스 인터뷰 기사

*  교육사회적 쟁점을 불러 일으킨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 원문

*  월간 <말>지 표지인물 선정과 원문

*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원문


▲ "나는 부끄러운 교육자 ..."

ⓒ2003 오마이뉴스 조호진


매화가 지더니 산수유가 피고 그 새를 못 참은 벚꽃과 개나리… 그 무수한 봄꽃들이 헤게모니도 없이 릴레이를 하며 유순하게 피었다가 진다.

그렇게 꽃들과 봄 햇살의 위로를 받으며 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통털어 7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평화로운 작은 시골학교다.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학교 관계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누굴까? 교무부장일까? 어림잡아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 학교 교장인 이천만(61) 선생이다. 짐작이 빗나간 것은 기자의 잘못이 아니다.

통상적인 교장의 근엄함과 권위를 찾을 수 없는 자유스러운 복장과 소탈한 모습 그리고, 아담한 교장집무실은 판단 착오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사를 나누던 도중 우편물이 배달됐다. 우편물 틈새에서 엽서 한 장이 나왔다. 엽서를 살피던 이 교장이 헛웃음을 친다. 뭐냐고 했더니 엽서를 거네준다. 엽서의 내용. 꼬부랑 글씨체다. 자신을 들어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할아버지의 옛 글씨체, 떨리는 필체로 쓴 것 같다. 빨강 볼펜 글씨, 보낸 사람 '전교조' 받는 사람 '겸면초등학교장 이천만'으로 되어 있다. (추적하면, 우체국 소인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이 교장은 고개를 흔들어 막아버렸다.)

<어느 교장의 자살 앞에 너나 자살해라. ×같은 소리 저 혼자 똑똑하고 야문 체 세상에 너보다 못한 놈들이 누가 있더냐. 짠허다 자슥아!>

말하자면 협박성 우편엽서인 셈이다. 광기의 시대가 익명을 가장해 보낸 협박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엽서마저도 편안하게 받아넘기는 이 교장. 그는 대체 어떤 교직자인가?

정년을 이태 남겨 둔 그는 시인이었다.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동시·동화작가로 동시집 '바다를 가슴으로 뜨는 별'과 장편동화 '도깨비 우화(소년동아일보)'를 펴낸 작가였다.

교직생활 38년째인 그는 '무등전통문화교육연구교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교육 수상록인 '훈사정음(訓師正音)'과 '학교운동회 민속놀이 축제론' 등의 논문을 펴냈다.

이천만 교장은 최근 전교조 전남지회 홈페이지에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원문은 아래 별도 참조)이란 글을 게재했다가 익명의 협박편지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유신시절 당시, 한 교육 월간지에 교육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글을 연재했다가 안기부와 청와대로부터 내사를 받기도 했고 교육청과 교장단으로부터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그는 서 교장 자살사건을 통해 과거 공안정국시절의 파시즘적 광기가 되살아난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KBS 100인 토론에 초청됐던 그는 △옳고 그름이 명확한 사안을 논쟁거리로 몰아가는 분위기 △정당한 주장조차 매도되는 매카시즘적인 분위기 △보수집단(교총, 교장단, 보수교육단체, 수구언론, 정치권 등)이 똘똘 뭉쳐 전교조를 매도, 축출, 와해시키려는 분위기에서의 토론참여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 불참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15일 전남 곡성군 겸면초등학교를 찾아가 나눈 이천만 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서 교장 자살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같은 교장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번 사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이다. 교사든 기간제 교사든 혹은 강요였든지 자발적으로 했든지 간에 어떻게 교사에게 차 시중을 들게 할 수 있는가. 교직은 품위를 소중히 여기는 직업이다. 교장은 교사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으로 차 시중을 하겠다고 해도 말렸어야 했다. 윗사람에게 차 한 잔 타 드리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바라보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보수적 권위적인 교육풍토가 빚은 비극이다.

서 교장 자살사건에는 객관적 사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 이런 경우 진실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보수세력들은 사실보도를 왜곡하고 왜곡된 보도를 통해 진실을 감추고, 사회 여론을 호도할 뿐이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그 상황을 만든 감춰진 진실이다.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교직자라면 서 교장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 보수언론의 '마녀사냥' 식 보도태도가 문제를 왜곡시키고 확산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진실의 실체는 외면한 체 전교조 죽이기에 혈안이 됐다는 지적인데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어떻게 보는가?

 
암흑과 무지의 시대였던 중세에 정략적이고 종교적으로 악용됐던 '마녀사냥'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21세기의 보편적 시각으로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이해할 수 없듯이 전교조를 겨냥한 보수언론의 무차별적 매도 또한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 홍세화씨는 한겨레칼럼을 통해 '전교조 죽이기' 시도는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이 개혁바람에 불통이 튈 것을 우려해 표출된 위기의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건은 이미 교육계를 벗어났다. 마치 누군가의 조종에 의한 것처럼 광풍이 불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주문도 정치적으로 악용됐고, 전교조 대량해직에 대해 정치적 불만을 터트린 대학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 계란 세례를 제자가 스승을 폭행했다고 호도했다. 이 번 사건 또한 보수·수구세력이 본질을 외면한 체 지엽적인 문제로 감정을 유발시키며 정략적으로 악용하며 정국전환을 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학교에 '접대계'가 존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교육청이나 외부의 높은 사람들이 방문하면 여교사들이 수업 도중에 차 대접을 하기 위해 빠져 나온다는 것인데 그러한 경우가 있는가?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에는 '슬리퍼계'나 '접대계'가 있었다. '접대계'는 여교사로 구성된다. 차 시중을 들고 싶은 여교사는 없다. 다만 관례화가 돼 싫어도 내색하지 못한 체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교육체제에서 약자인 여교사가 차 시중을 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교육청은 진 교사가 차 시중 문제를 제기했지만 교장과 교감만을 만나 의견을 들었을 뿐 당사자인 진 교사의 의견은 외면했다고 한다. 가령 교육청이 진 교사의 의견을 청취했다면 문제 해결이 쉬웠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갈등을 풀기보다 꼬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다. 교육당국의 문제 해결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청은 처음부터 진 교사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고 외면한 것이다. 교육청 체제는 한 마디로 수구·보수적이다. 이들은 명령과 통제로 학교 현장을 움직여왔다. 이들이 학교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교사의 입장을 대변해줄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 교육청이 통제와 제재를 통해 학교(교장)를 일사불란하게 한 줄로 세워 지배하기 때문에 교장들은 적당히 순응하거나 동조할 뿐 민주적이라거나 자율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권위적통치를 극복할 의지가 없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이 자율적인 학교 운영 운운하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교장단을 포함한 교육당국과 전교조와의 갈등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갈등을 좁히고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 "전교조는 옳았고 나는 부끄러웠다"

갈등의 가장 큰 책임은 교장단에 있다. 전교조를 적으로 보는 교장들의 시각이 문제다. 교육계의 원로이고 선배라면 후배 교사들을 다독거리고 포옹해야 한다. 교육의 근본은 사랑이다. 아이들이 잘못을 했다고 무조건 때리고 내치는 게 교육인가? 선배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포용해야 한다. 교장들은 전교조에 의해 그 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한데 그것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상태로 찾아가는 것일 뿐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적이 아니라 교육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대화 상대다. 전교조를 인정하고 포용해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데 교장들은 전교조를 내치려고만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대화상대가 안 된다고 거부하는데 과연 그들이 생떼나 쓰는 사람들인가. 무모하고, 무지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전교조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합법화됐고 교육의 책임 주체로 인정받은 조직이다.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죽음이 잇달아 발생해왔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물론이고 언론과 교육당국은 이를 구지 외면해왔다. 죽음의 교육을 생명의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바람이 염원처럼 크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여중생이 자살했을 때 교장단과 우리 사회는 어떤 대책을 강구했는가? 초등학생이 '새처럼 날고 싶다'며 자살했을 때는 또한 어떻게 대처했는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던 세력들이 한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 불순한 의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진정으로 교육과 생명을 존중했다면 그 아이들이 희생될 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언론과 교육계는 구호처럼 생명존중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육체제 개선 없이는 생명존중교육은 불가능하다.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는 교육을 펼칠 의지가 있다면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제아를 정상아로 회복시킨 영국의 '썸머힐(일명 자유학교)'처럼 교육철학이 담긴 교육을 시도하면 생명존중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 교장의 독선적 학교 운영이 갈등의 불씨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있다. 학교민주화를 위해서는 교장 민주화가 급선무라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법 제 81조에는 '교장은 교무를 통찰하고, 소속 직원을 감독하면서, 학생을 교육한다'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고 돼있다. 교장들은 학교경영의 책임과 권위를 절대권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권위나 권한은 학교 공동체의 몫이지 교장 개인의 것이 돼선 안 된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교장·교감이 기간제 교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교장은 학교 운영을 대리하는 역할이다. 권한 행사 또한 교장 마음대로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행해야 한다. 학교민주화는 학교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아직도 교육현장에는 일제와 독재가 남긴 파시스트적인 잔재가 남아 있다. 독단과 독선에 익숙한 교장들은 자기의 결정이 법이고 선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이것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교사들과 함께 논의하며 학교를 운영한 결과 학교 구성원 모두다 행복해하고 있다.




- 서 교장 자살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문제 해결방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쌍방향 토론과 대화보다 주입식교육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시대에는 토론문화가 활발했다. 당시의 정치문화는 곧 토론문화였다. 토론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일제 강점에 의해 왜곡되고 단절된 탓이다. 일제는 역사적 토론문화를 붕당정치 폐해로 왜곡했다. 국민들 저변 속에는 토의문화가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순한 세력이 토론문화를 오도하고, 호도하고, 차단하면서 본질과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게 문제다. 오류된 결론이 내려진 배후에는 늘 언론의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 전교조는 교육의 중요한 책임 주체로 성장했다. 그런 만큼 책임 있는 요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전교조가 개선해야될 점과 추구해야 할 방향이 있다면 말해달라?

 
교장을 비롯한 교육관료들은 전교조는 과격하다, 정치적이다, 급진적이다, 심지어는 버릇이 없다고 지탄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해직 당하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부당한 권력과 싸우며 바른 길을 걸어온 교사들이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동참하지 못했다.

권력과 맨몸이 부딪힐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최류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를 때는 돌을 던지며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밖에 없다. 권력과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단편적인 것을 문제삼는데, 정의는커녕 자신의 욕심과 안위만을 챙겨온 사람들이 과연 전교조 교사들을 폄하하고 질책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침묵한 죄를 반성해야 한다. 나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한없는 부끄러움을 갖는다.

나중에 자식들이, 전교조 교사들이 해직되고 투옥될 때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너희들을 먹여 살리고, 부모를 공양하고, 형제 돌보는 데 급급했다'는 말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교장단에서는 내가 전교조를 두둔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양심대로 살지 못한 부끄러운 교육자로서 끝까지 침묵을 지키다 물러날 수는 없다. 교장단이 돌팔매질을 해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옳았고 우리들은 부끄럽고 비겁한 교육자였다.

- 공교육 정상화와 학교 민주화의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학부모라는 지적이 있다. 올바른 교육발전을 위해 학부모와 학교관련 단체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학부모의 주장이 강해질 때 학교와 교육은 파행을 겪는다. 보성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빨리 등교시켜야 한다. (왜곡된)학부모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노동자가 지하철을 볼모로 삼아 파업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학부모와 주변 단체는 이 문제에 개입하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지켜봐야 한다. 진정 교육자를 존중한다면 교육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 전국적인 교육사회문제가 된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

[이천만 교장이 전교조 전남지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

 

▲ 곡성 겸면초등학교 전경 - 소나무와 하늘이 푸르다

ⓒ오마이뉴스 조호진

 

 교단의 갈등 현상이 첨예화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고 경영자와 교사의 투쟁이다. 우리는 사회 변화가 때로는 돌연변이 식의 개혁이나 혁명으로 역사적 변화를 추구하였음을 알고 있다. 점진적 변화든 획기적 발전이든 계기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다면 어느 초등교장의 자살로 촉발된 우리 교육계의 갈등과 그 해법은 무엇인가?

 

<개요>

 먼저 교장 자살의 개요를 - 언론의 보도와 독자적 수준의 이해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작은 시골 학교(교무보조나 행정실 등 차 심부름할 사람이 없음)에서 교장이 기간제 교사(교장의 제자)를 차 심부름을 시켰는데 교사가 반발을 했다. 그래서 교장은 보복성 수업 참관(본인과 전교조 교사들의 판단)을 했고 기간제 교사는 부담에 못 이겨 퇴직을 했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해당 학교의 전교조 교사들이 부당함에 맞섰고 전교조는 조직적으로 이 일에 개입하여 교장에게 부당함을 사과할 것과 기간제 교사의 복직을 요구했다.

 이 일이 인터넷에 오르고 찬반 논쟁이 가열되자 교장은 몇 장의 메모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유족은 직접 관련된 사람들을 고소(메모를 근거로)를 했고, 이를 기화로 전국 교장단은 전교조를 매도하고 나섰으며 몇몇 학부모 단체는 전교조의 부당한 간섭을 성토하였고 급기야 해당 학교의 학부모들이 (교장을 죽음으로 몰고 간)해당 교사들의 수업을 받지 않겠다며 학생의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 검찰에서도 수사를 하여 협박 사실(A4 용지 4장의 메모)이 밝혀지면 해당자를 사법 처리하겠다고 했다.

 

<시비론是非論>

  어떤 일에나 시비는 있다. 또 시비가, 특히 사회 문제가 된 일들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따져야 한다. 사외적(事外的) 문제지만 우리는 시비곡직을 분명하게 가리지 못한 역사적 원죄(반민특위)로 사회 정의를 세우지 못해 교육에서 아무리 지식적으로 가르쳐도 한 발만 사회에 나가면 교육이 무위(無爲)가 되는 참담한 현실을 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사소한 것부터 잔가지를 치고 넘어가자. 기간제 교사가 교장의 제자라는 말이나 주 쟁의에서 벗어난 가십 적인 일들은 도외시할 필요가 있다. 동정적 결론을 내려야할 사안이 아닌데 그쪽으로 몰다보면 본질이 호도(糊塗)될 수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전교조의 역사적 투쟁과정을 이 일에 대입하는 것도 호도다. 눈물을 흘리고 생계를 건 투쟁을 하였음은 알고 있고 교육 개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며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개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음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지치기는 객관적 시각으로 이 일을 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렇다면 이 일의 시비는 무엇인가?

 

 첫째는 교장의 잘못이다. 설사 교사가 자발적으로 차 심부름을 자원했다고 하더라도 교장이 교사적 품위를 고려했다면 오히려 말려야 한다. 교단에는 교사의 교사로서 품위가 있다. 교장이 손수 차를 끓여 대접하고 교감이 차를 나르는 건 품위의 손상이며 (여)교사가 차를 날라야 차 맛이 더 좋을 것인가? 원론적으로 안 된다. 교장의 커피와 교사의 커피 대접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절대로 다시는 이런 행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전교조의 대응이다. 전교조는 교사가 약자의 입장에서 늘 손해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체제의 권력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피해 그 현실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현장을 개선하려고 했으나 체제는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오히려 거꾸로 정의로움을 발현하려는 전교조가 피해를 입었다.

최루탄이 날아오는데 맨손으로 데모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준법 투쟁을 했는데 해직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사안 역시 힘없는 교사가 전제적인 교장의 권력 앞에 무력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 또한 원칙적으로 옳다. 사회적 약자로써 부당한 권력 앞에 항거하지 못하고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제도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전교조의 개입은 명분 있는 행위이며 정당하다.

 

 셋째, 교장단의 전교조 반성 촉구와 전 교육부총리의 투쟁 선언과 학부모의 수업 거부 문제 그리고 몇몇 학부모 단체들의 전교조 파괴(이 사건을 빌미로 삼아)의 집단적인 행동은 상식 밖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비민주적 행태며 반사회적 행동이다. 한 마디로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은 교육계의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갈등을 부채질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독립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쟁취한 주권적 시민의식과 민주적 교육 기반을 다시 개발 독재적 시대 상황으로 회귀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몇몇 시민단체의 대처도 상식 밖이다. 우리는 정년 단축이라는 정책의 실패를 벌써 망각하고 있다. 교육계 내부의 문제는 교육계에서 대화와 타협과 논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지켜 보라. 황희 정승적 양시론이나 양비론은 없다. 명백하고 투명하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때려잡기 식 매도나 여럿이 합세하여 함몰시키는 집단적 이기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결론>

 교장의 자살은 애석하고 참담하다.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불행한 과오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 우리는 행복과 성적을 외치며 죽어간 중학생 그리고 '새처럼 자유롭게'를 부르짖으며 죽은 초등학생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사회적 쟁론화를 하지 못했다.

 이 일을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한 계기로 만들자.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교육 대 단합을 이루자. 서로 네 탓을 하며 극한적 투쟁으로 교육계를 황폐화시키지 말고 위기를 호기로 전환시킬 수 있는 민족적 저력을 발휘할 기회다. 찬․반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붕당 토론문화의 전통을 바로 세우자. 우리 배달겨레는 이렇게 만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화보│ 5 . 11 전국교장결의대회를 반대한

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 이천만 교장의 내력來歷

* 월간 <말>, 2000년 6월호, 표지인물 선정과 내용 화보의 글

 

“내가 가는 곳마다 바람이 일더라”

 

나는 교장이다. 정년을 이태 남겼으니 학교 세상 ‘소풍’도 거의 끝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시인의 말과는 다르게 나의 교단 40년의 끝자락은 혼란스럽다.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장 자살사건은 생뚱스럽게 ‘전교조 죽이기’로 변질되었고 이를 기화로 전국의 교장들은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새 날이 밝아오는데 이 땅의 교장들은 닭의 목을 비틀고 있다. 대학 초년, 도서관의 3천권 장서를 독파하리라는 계획을 음모처럼 꾸몄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나 역시, 아직도 이력이 나지 않았지만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나처럼 평교사 시절에 교장의 행정력을 비판하고 학교의 부조리를 지탄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뭔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요 근래 인터넷 매체를 비롯해 몇 군데 일간지에 보성초등학교장 자살 사건과 추모대회를 빙자한 전국 교장단 집회에 관련한 글을 기고했다. 이번 사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이고 사건에 대한 법적인 시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순교자네 살인마네 하면서 사회를 호도하는 교장단에게 학교로 돌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역시나 나에게 돌아온 건 협박성 전화와 ‘전교조 교장’이라는 딱지다. 정년이 이마에 차서야 철이 들었다고 할까, 내 깐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뭘 좀 한다는 게 이 모양이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나에게 새로울 게 없다.

나는 장학평가에서도 성과급에서도 만년 꼴찌다. 동료들이나 장학사들은 나를 ‘또라이 교장'이라고 소근댄다고 한다. 교육청은 아예 나를 ‘내어논 교장’ 취급한다. 아마도 이 일은 유신시절 『월간 교육자료』에 ‘요철(凹凸)교실’이라는 연재를 통해 교육 비판을 하면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안기부(국정원)의 내사, 군 교육청의 회유와 협박.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그늘만 골라 딛고 다녔던 교사협의회 시절, 나는 라만차의 돈키호테였었던가? 아무래도 좋다.

'꽃과 음악과 사랑이 가득한 학교'가 나의 학교 경영관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선생님이 즐거워야 교육이 바로 선다'라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고 등교하자말자 나부터 교무실에 들려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선생님들과 차를 마시며 잡담도 하고 가끔은 진지한 얘기들도 주고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학교 소문을 들은 교장이나 장학사들은 온정주의 학교경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성주의 학교경영은 어떤 모습인가? 연간 2천여 건의 공문 수발, 연중 70여 회의 교육행사 그리고 10교과에 주당 30시간이 넘는 수업시간, 고질적인 촌지 관행. 또 있다. 일제시대의 잔재인 반장, 주번제도, 애국조회(동방요배) 등등. 일제 청산은 학교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거다. 학교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건 무엇보다 인사권과 예산권을 틀어쥐고 있는 학교장의 무소불위의 독선적 학교 경영.

나의 ‘온정주의 학교경영’은 이런 것들을 바꾸는 것이었다. 작은 일이랄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 현관이나 교장실에는 학교현황판이 없다. 나는 그 자리에 그림을 걸었다. 브리핑 문화, 전시행정의 가식과 허례를 없애려는 것이다. 더불어 예산도 절감하고 학기초 그 바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일석삼조가 아닌가. 정기적인 직원회의니 아침조회, 기획회의 같은 모임도 없다. 필요할 때만 모인다. 선생님들이 출근하여 차를 들지 않고 바로 교실로 들어가면 반드시 교장실로 불러 (문안)인사를 강요(?)한다. 잡무 부담에서 선생님을 잡무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교사 공문서 근절 연구학교'를 자원하여 공문서 디렉토리화를 주창했으나 교육청(장)과 의견 충돌로 발표회를 열지도 못하고 말았다. 시멘트를 걷어내고 잔디 언덕과 돌 계단을 지었고 자연친화적 정원을 꾸며서 30종 천여 그루의 한국야생화를 심었다. 공휴일과 방학에 선생님들의 일직 근무 폐지, 탄력 근무시간제, 관례화한 명절 떡값의 상납도 눈물을 머금고 없앴다. 헌데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 교육청과는 영영 척이지고말았다. 그래서 나는 ‘왕따 교장’이다. 돌아보면 내가 가는 곳마다 바람이 일었다. 교단의 풍운아인 셈이다. 아직도 학교는 일제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협박성 전화쯤이야 너털웃음으로 얼버무려버리고 그래도 내 길을 간다. 교사 시절에는 교장 교감이 걸려서 아무 것도 못했고 교감 되면 뭣 좀 할랴나 했더니 교장과 교사들꺼정 걸림돌이드니 교장 되니까 위와 옆 눈치 보느라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랬다. '내 맘대로 하게 카만 좀 놔둬버려라.' 교장 부임한지 6개월쯤 되었었나, 여 선생님들이 교장실 옆을 지나면서 한 말을 무심결에 들었다. '요새 같으면 학교 오기가 참 재밌어야.'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진짜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요즘에는 출근길에 학교를 한바퀴 뱅 도는 게 내 일과의 시작이다. 제작년에 심은 꽃사과나무 가지 위로 낮게 드리운 음악을 들으며 함초롬이 웃고 있는 할미꽃, 원추리, 비비추, 범부채와 부처꽃들과 만남을 그 즐거움을 그 누가 알랴. 선생님들이 즐거워야 학교에 생기가 돌고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다. 여기서 담양 땅이 멀지 않다. 송강을 비롯한 걸출한 유림들이 유유자적 가사문학을 꽃피운 곳이다. 독서권 문자향.

교대시절 나는 독서광이었다. 광주교대 장서 3천여권을 독파하기로 작정을 했으니까. 헤르만 헤세를 끼고 다녔다. 단팟죽 내기 정구로 세월을 보내다 오르간 F학점을 세 번 내리 받고도 가까스로 졸업은 했다. 졸업을 못하리라(아홉이나 되는 동생들 생계가 막막해서 졸업을 못하면 절대로 안 되는 절대절명의 시기)는 조바심에 새벽잠을 설치며 겨울방학 내내 풍금실에서 악보와 씨름을 하다 형설의 교대졸업장을 받아들고 고향행 남행열차를 탄 지 40여년 풍상을 겪었다. 돌이켜 보면 모진 세월. 나이 사십 중반에 도진 배냇병 같은 갈증을 이기지 못해 신안 섬생활을 자청했다가 승진에 눈을 떴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승진점수에 맛을 들여 편법을 자행하며 일 년에 두세 편의 연구논문도 쓰고 로비도 해서 장관상도 탔다. 부정과 부조리를 저지르지 않고 이 땅에서 교장을 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교원이, 설사 동료라할지라도 교직사회에서 표창을 받거나 상을 타면 웃는다. 아니다, 요즘에는 웃지도 않는다. 내가 전교조 교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 교장 자살 사건에 입을 연 것은 젊은 선생님들이 강제 퇴직을 당하고 거리로 내몰릴 때 등 따숩고 배 불렀던 황량한 시절을 다시는 스스로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고 그 원죄를 속죄하며 참회하고 남은 기간이나마 교장답게 아니 인간임을 스스로 유지하려는 자위행위일 것이다. 더구나 명약관화한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잘못을 저지르는 걸 좌시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이 번 교장단의 결의대회가 무엇을 결의하였는지 나는 잘 모르겠으나 그야말로 분연히 일어선 교육계 원로들이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지켜보겠다. 일제시대 독립군 사냥꾼과 부역한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고 잘 사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프랑스는 독일군에게 물 한 바가지 떠다준 여인도 단죄를 했다. 교단이 환하게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문화일보 크린코리아> 03. 12. 30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교원사회 정화에 대한 제안

                                       이천만(전남곡성겸면초등학교 교장)

 

 '직권 내신.' 교육장의 이 한 마디에 꼼짝없이 순천부영초등학교로 부임을 했다. 한참 '촌지기록부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때의 일이다. 겁도 없이, 촌지는 도시의 얘기고 시골에서는 오히려 교사가 아이들에게 촌지를 주고 있는 상황이며, 또 촌지는 없애려고 맘만 먹는다면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고 흰소리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하루 아침에 촌지를 근절하는 방법은 간단 하다. 학부모가 주는 촌지를 교사가 받고, 교사의 촌지 부스러기를 교장이 얻어먹기 때문에 촌지 근절이 안 된다. 교장이 받지만 안는다면 촌지는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 이래놨으니 순천 시내 교장단이 들고일어날 수밖에. 교장단은 숙고를 거듭 했으나 뾰쪽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결국 교육장에게 내 좌천을 건의했는데 교육장은 알았다면서 '그 사람, 5십이 넘은 사람이 아직 철이 덜 나서'라고 해놓고는 전남에서도 가장 큰 80학급 직원 120명의 학교로 덜컥 반강제 내신을 해버렸다. 교감 초임으로 시골 4학급 복식학교에서 근무한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진퇴양난, 순천부영은 순천 시내뿐만 아니라 전남도 내 1번지 학교였다. 순천부영 학부모회장은 1년에 개인 돈 2천만원을 쓴다고 공공연한 소문이 나돌았으므로 내 처지가 꼴사납게 된 건 운명의 장난으로 치부하고 맘을 추스렸다. 부임 첫 해 추석, 역시 소문대로 상상을 초월했다면 선생의 간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놀릴라. 그 다음부터 나는 간헐적인 설득에 들어갔다. 선생님들이나 학부모들이 대놓고 '촌놈티낸다'고들 했다. 웃으며 촌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평소에도 나는 후배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촌지에 관한 한 깨끗하다.' 선숙이 때문이었다. 시골 작은 읍의 변두리 학교 4학년 때 만난 선숙이는 지체가 뒤틀리는 병을 앓고 있었다. 루게릭병처럼 손발과 얼굴이 틀어져서 생김새만으로는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뇌가 남달리 명석해서 학년 1등이었다. 담임을 맡아 사나흘쯤 선숙이 엄마가 찾아왔다. 늘 동생이 부축하고 엄마 등에 업혀 등하교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날은 교실로 불쑥 찾아와 몇 마디 말씀 끝에 봉투를 내밀었다. 그 시절만 해도 봉투를 생각없이 받아 챙기던 시절이라 몇 번 사양한 끝에 집어넣고 헤어졌는데 그 날 따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선숙이 엄마가 학교 현관에서 선숙이를 인계받는 걸 기다려 봉투를 반납했다. 선숙이 엄마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지금까지 늘 그래 왔는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봉투를 다시 챙긴 다음 퇴근 후 읍내 책방에서 동화책을 사서 되돌려주었다. 그 후부터 선숙이 엄마는 우리 교실에서 살다싶이 했다. 거액을 들여 커틴을 달고, 책장의 망가진 책을 풀로 붙이고, 쓸고 닦고 마치 교실을 방안 가꾸듯 했다. 교직 10여년 되던 해였는데 그제서야 나는 촌지를 잘 관리하는 나름대로 비법을 터득했고 교직의 참맛을 알았다. 순천부영에서 두 번째 맞은 명절 설날을 앞두고 학년부장 설득에 실패한 나는 학년 휴게실로 학년회의를 소집하여 나에게만은 촌지로 인간 관계를 흩트리지말자고 호소했다. 결과는 개인봉투가 학년봉투로 바꿔지는 효과였다. 그 것이 사도와 행동의 한계였다.

 '술이나 한 잔 하십시다.' '좋아, 단 술값 시비는 없기다.' 년말 우리 학교 풍경화 한 도막. 우리 학교 교무는 작년에 승진 서열 점수가 0.002 모자라 낙방을 했다. 승진에서 근무평정은 절대절명이라 승진대상자는 근무평정을 찾아 철새처럼 학교를 옮겨다닌다. 교감으로부터 교육장에 이르기까지 교육계의 승진과 연계된 돈봉투는 기백에서 수억 단위까지 한계를 넘고있는데 눈감고 아웅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 수 있을지.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고해성사> 03. 12. 26

 

아버지, 아버지는 그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천만(전남곡성겸면초등학교 교장)

 

젊은 교사들이 교육 민주화를 외치다 거리로 내몰리고,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작당을 하여 여교사의 머리채를 끌어내렸으며, 교실에서 내쫓긴 선생님과 아이들이 열쇠 채운 교문을 사이에 두고 울부짖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교육민주화가 이루어진 날, 그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묻는다면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엊그제 기획회의에서 윤 부장이 '교장 선생님 방학이 너무 길어요.'라고 했다. 우리 학교는 방학이면 선생님들은 통째로 쉬고 교장은 날마다 출근하며 교감과 부장은 넷이서 윤번제로 출근한다. 그래서 출근 기간이 많으니 선처를 해달라는 건의사항인 셈이다. 어줍잖게도 나는 그 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렸다. 부장이라고 누리는 것이라야 눈꼽만 한데 일언지하에 누리는 만큼 책임지라니 어안이 벙벙했을 게다.

거슬러 올라가 벌써 20여년 전 교사협의회시대, 나는 젊고 피 끓는 열혈 청년교사였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상아탑을 갓 들어온 햇병아리 대학생들처럼 이 집 저 집으로 몰래 숨어다니며 국가 전복이라도 하는 양 모의를 하고 토론과 토의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잖아 그 탄압과 핍박 속에서 교사협의회는 교직원노동조합으로 탈바꿈했다. 불법노조를 결성하려는 젊은 교사들의 의지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고 우리는 다시 참교육의 기치 아래서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질곡 앞에 섰다. 아무도 선뜻 동행을 말하지 않았으나 비장한 각오들이 팽배했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 모두의 옥쇄였다. 최종 결정은 해임과 감옥살이의 협박이 목을 조여오던 어느 날 밤 동료 여선생님의 아파트였는데 아무도 누구도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싸우더라도 먹으면서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 굶고서야 무슨 힘으로 공권력과 대치할 수 있겠느냐?' 그 제안 덕택으로 '형님은 교감 승진이 오늘 낼이니 남았다가 우리도 돌보고 승진한 다음에 현장에서 우리의 뜻을 펼치시라.'는 회유에 그만 남고말았다. 그 때는 몰랐는데 그 일은 원죄가 되어 교육생애 한 평생 가슴에 못이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이 어설픈 선배를 잊지 않아 엊그제 열린 전남 전교조지부 송년회에 초대를 받아 갔더니 전남 전교조의 1년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독립투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전교조의 활동상과 백야 김좌진 장군이 겹치고 유관순 누이의 영상도 겹쳤다. 이또오히로부미를 사살한 윤봉길 의사가 보였다. 그리고 국가와 나라를 구하겠다며 산화한 젊은이들이 오버랩되었다. 그러나 한 발 밖에서는 반민특위의 고함소리뿐. 해방 5십년이 되어 이제야 역사를 조명하겠다고 친일 인사를 거론하는 국민이 받아야 하는 당연한 순리가 우리 모두의 목을 옥죄이고 있다. 이 역시 원죄다.

 이제 정년 1년 반 남짓,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교단에 현안은 많다. 수능과 대학입시의 학벌사회. 그리고 강남 집 값과 자립고 특목고 또 고교 평준화와 시장 경제 논리. 공교육과 사교육. 교장 선출 보직제와 학교 자치. 교육부의 행정체제. 교육과정과 공문 그리고 학교행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교사.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와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싶다.'는 외침조차 공허하다. 스승은 없다고 한다. 비정한 세상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석 달을 함께 산 중학생을 발견하고 호들갑스러운 애도를 하고 있다. 이 가파른 세상에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21세기 우리에게 유효한가?

이용석은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야학을 가르치고 그리고 일용직의 부단한 대우를 개선하다 못해 분신을 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유서에서 '언제까지 이 나라에서 분신 자살이 이어져야 하나.'라고 했다. 6. 25 동족상잔의 비극은 예견되었으며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라며 자살한 고등학생과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싶다.'던 초등학생의 신화는 열반송처럼 가슴을 후빈다. 교육계도 구조 조정을 거쳐야 한다. 교육 마피아라는 교육 관료 체제를 그냥 두고 교육 개혁은 없다. 같은 맥락에서 '학교는 교장의 수준이다.'라는 말도 도태되어야 한다. 우리의 지능지수는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 째로 높단다. 공교육과 사교육, 수능과 대학 입시, 고교 평준화와 자립고 특목고, 교장 선출보직제와 학교 자치, 근평과 성과급 등 교육계의 산적한 문제들은 천직이라는, 백년대계라는, 스승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고전으로 풀자.

 



<문화일보 크린 코리아 고해성사> 03. 12. 29

 

돈키호테 교장의 정년, 그리고 양심의 주홍글씨

                                이천만(전남곡성겸면초등학교 교장)

 

 성철 스님은 열반송涅槃頌에서 '사부대중에게 한 거짓말을 용서하라'고 했다. 고명한 종정 스님께서 입적하면서 하신 말씀이니 우리 범인들이야 감히 범접이나 하랴만 참여정부가 기적처럼 일어서면서 심상찮은 기운이 서기롭게 엉키더니 대한민국은 지금 새해 2004년의 벽두劈頭에 환골탈태換骨奪胎의 몸부림을 하고 있다. 토인비가 '문화동진설'을 설파한 이후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국운 융성의 대열에 오늘 우리가 서 있다는 운명적인 우주 현상이 마냥 미혹迷惑은 아니리라. 그래서 나는 우리가 정쟁과 사회적 이해 타산을 헤아리는 동안에 이 천혜적 우주 섭리氣가 속절없이 중국으로 건너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의 한국적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

 부끄럽게도, 지난 여름 나는 '2천만원 가지고 교육장을 산다면 초등학생부터 줄을 설 것이다'라고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실현연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EBS와 인터뷰를 했다. 충남교육감의 선거 담합이 사회 문제가 되어 교육장 임명권이 담보되었고 신문지상에 알려진 교육장 매관액이 2천만원이었다기에 '삼척동자, 아니 소가 웃는다'며 한 말이다. 교육자는 귀감龜鑑을 양심으로 교단에 선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본本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먼저 교사가 자기 종아리를 치는 행위를 제자들에게 보일 때다. 치맛바람과 촌지기록부는 애교일 뿐이다. 촌지기록부 사건이 언론에 터졌을 때 '촌지는 도시 선생님의 문제고 농어촌 선생님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촌지를 주고 있으며, 이를 하루 아침에 뿌리 뽑을 수 있는 방안은 학부모가 준 촌지를 교사가 받고, 교사가 준 촌지를 교장이 받는 연결 고리를 끊으면 된다. 교장이 교사의 촌지를 안 받는다면 촌지 관행은 하루 아침에 근절할 수 있다'고 지역 신문에 기고를 했다가 교장단으로부터 호되게 경을 친 적이 있었다. 세무사인 도마가 사람이 되는 일을 물었을 때 예수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대 우리 사회가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려면 교육도 거듭나야 하는데 교육의 변화와 개혁은 사제師弟가 함께하는 학교에서 출발해야 한다. 수많은 교육 난제들에 앞서 교육이 교육으로써 본분을 세우려면 교사의 위상을 찾아야 하고 이 일의 근본에는 교장이 있다. 아시다싶이 우리 나라의 교장은 학교의 절대 권력을 독점하고 있고 교장은 우리 교육 체제에서 학교의 위상이므로 교장이 변하지 않으면 학교가 변화할 수 없고 교장의 위상이 변화하지 못하면 교육은 개혁될 수 없다. 그러나 교장은 교장 자격을 얻으면서 태생적인 원죄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변화와 개혁을 기대하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 교원 승진에서 기백만원의 촌지는 관행이고 승진을 위해 적금을 들고 있다는 말도 전설이 아니다. 연구점수는 연구물을 알선책으로부터 사들여서 베껴내 취득하고, 근무평정은 교장의 주구走狗 노릇으로 해결해야 한다. 교장 승진은 교육장의 조정점수에 목이 조여 있으므로 교감은 '장학사의 밥'이라는 은어隱語가 유행하는 것처럼 교감 몇 년 동안 설설 기다가 역시 역량껏 해결하고, 표창 역시 재량껏 해결하여 교장 자격을 얻는다. 교육 현장의 교원 승진 체제가 이럴진데 누가 교장을 존경하며 누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구조적 부조리를 지닌 승진체제와 행정체제를 개선하지 않고 교육개혁은 없다. 일찍이 공자님은 '형식이 실질에 우선한다'는 명감銘鑑을 남기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