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벌쭉이대장
(월간 교육자료 연재)
1. 크리스마스이브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대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
벌쭉이대장, 오늘도 여기서 꽉 막혔다. 벌써 몇 번째인가. 열 번도 넘게 틀린다. 목사님도 손을 들었나 보다. 연극반의 아이들도 모두 뾰루퉁하다.
'피이, 진작에 빼버렸어야 하는 건데.'
'돌대가리, 바보.'
목사님도 세 번이라고 못을 박아 약속을 했었다.
“대장, 세 번이다. 또 까먹었단 …….”
“목사님, 잘 해볼께요.”
이렇게 약속해 놓고도 이미 세 번은 커녕 열 번도 넘게 틀렸다. 대장은 대사를 까먹고는 어김없이 제 귓볼을 잡아당긴다. 그리고 목사님을 빤히 쳐다보면서 벌쭉 웃는다.
“너에게서 …….”
벌쭉이대장은 다음 대사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대장은 또 제 귓불을 한 번 잡아당기곤 이 번엔 아이들을 향해서 벌쭉 웃는다.
“너에게서 …….”
기다리다 지친 목사님이 그만! 할 뻔했다. 그 때였다.
'그래, 너에게서.'
누군가 소곤거리듯 대장의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대장은 그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따라 외웠다.
“너에게서, 한 지도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아이들의 소곤거림이 딱 멈춰버렸다. 대장의 콧등에 작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목자가 될 것이다. 좋아, 아주 썩 잘 해냈다.”
목사님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대장 곁으로 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만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세 사람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는 장면이었다. 또 무엇이 우스운지 은그릇 부딪히는 것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넘쳐흘렀다.
달이 늦게 뜨려나 달빛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교회는 윤곽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까만 바탕에 노란 물감으로 그린 듯 창문 네 개가 공중에 세워져 있었다. 또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높이 드리운 어둠의 휘장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더 멀리는 낮은 산, 구릉이 소 등처럼 눕고 그 발치에도 작은 불빛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마을이었다. 그 위로 머리를 들면 아주 먼 하늘 끝에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의 하늘이 동그랗게 얹혀져 있었다.
반짝 ! 어둠 한쪽이 열렸다. 그리고 말소리가 먼저 쏟아져 나왔다. 반딧불 같은 불빛과 발소리들이 어우러졌다.
“잘 가아.”
“잘 자아.”
“안녕.”
“안녕히.”
반딧불처럼 한 덩어리로 모여들었던 작은 불빛들이 동그랗게 동그랗게 나누어지기 시작한다. 어느 불빛 속에선지 노래 소리가 빠른 속도로 번져났다. 고운 노랫소리가 펴져나가면서 어둠의 까만 열매를 가득 달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흔들었다. 반짝이는 까만 어둠이 한 움큼씩 떨어졌다. 까만 광택이 나는 어둠의 알맹이들은 소리도 없이 떨어져 아이들이 발치에 내려앉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발끝에는 더욱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뭐야?'
누군가 다운이 곁을 스치고 지나가며 손바닥에 바스락거리는 걸 쥐어주었다.
'누구?'
'벌쭉이대장?'
그렇다 벌쭉이대장 짓이다. 까먹은 대사를 귀뜸해주었던 댓가로 사탕 두 알을 손바닥에 쥐어주고는 감쪽같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 다운이도 모른 척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
유치원 놀이터 모래장.
대장과 다운이가 자동차놀이를 하고 있다. 다운이는 종이상자 마을을 세우고, 다리를 놓고, 나무를 심고 있다. 대장은 신작로를 내고, 굴을 파고. 네거리쯤에 자동차들을 세우고 있다. 대장이 앵! 하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아버렸다. 가로수가 넘어지고 길이 무너졌다.
“거 봐, 과속하지 말랬잖아!”
“금방 고칠 수 있는 걸 뭐 .........”
“진짜 사고였담 어쩔뻔 했어?”
다운이가 가로수를 세우고 무너진 길을 다독거렸다.
“얘, 정말 천당은 있는 거니?”
'얜, 참. 엉뚱하게도 ..........'
다운이는 벌쭉이대장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무시해버렸다기 보다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요 전 날 목사님이 그러셨잖아. 천당은 정말 좋은 곳이라고. 언제나 꽃이 피고 새들이 울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찬 곳이랬지?”
들은 말이 있었으므로 다운이는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해낼 뿐이었다.
“살아서 천당 갈 순 없을까?”
“죽어서 가는 천당이 그렇게 좋아하면 왜 어른들은 빨리빨리 죽으려고 하 지 않을까? 하나님은 왜 산 천당을 만들지 않고 죽은 천당을 만들었을까?”
“넌 정말 믿니?”
다운이가 도통 말대꾸를 하지 않자 대장은 제가 묻고 제가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마지막 물음에 다운이는 고개를 끄덕여 믿고 있다는 표시를 했다.
벌쭉이대장이란 건 별명이다. 선생님께 매 맞을 때 외에는 늘 벌쭉벌쭉 잘 웃기 때문에 붙인 별명이다. 대장은 웬만한 꾸중 정도에는 눈 깜짝도 않는다. 대장은 입이 유난히 크다. 귀밑까지 죽 찢어진 입이 웃을 때면 얼굴 전체가 입으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매를 들면 대장은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표정부터 금방 흐려진다. 찡그린 표정도 문제지만 곧잘 웃다가도 죽어도 매는 싫다는 표정에는 선생님도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대장은 훼방꾼이다. 여학생들이 노는 걸 방해하길 좋아한다. 자기 패거리들을 몰고 다니며 훼방을 놓는다. 다운이네 고무줄놀이에 살금살금 접근해 와서는 고무줄을 채가지고 달아난다. 여학생들은 고무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양 끝을 붙들고 있다. 몇 발짝 달아나던 대장은 늘어질대로 늘어진 고무줄을 퉁겨버린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고무줄을 쥐고 있던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른다. 고무줄을 맞은 아이는 손등에 붉은 줄이 선다. 다리나 무릎 근처에 고무줄이 닿으면 지렁이 같은 자국이 난다. 두꺼운 옷 위로 고무줄을 맞았대도 아프긴 매한가지다. 만약 그게 아프다고 고무줄을 놓아버리면 고무줄을 버리게 된다. 대장네들이 고무줄을 토막토막 끊어 못쓰게 만들고 말기 때문이다.
또 대장네의 고약한 버릇이 있다. 여학생 치마 아이스께끼다. 시치밀 뚝 떼고 곁을 지나가는 척 하다가 갑자기 덤벼들어 치마를 홀라당 뒤집어 머리에 씌운다. 빨강색이나 노랑색 팬티가 보고 싶은 것일까? 유치원에서 치마 까뒤집기를 가장 많이 당한 아이는 유진이다. 하여튼 알몸을 내보인 유진이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땅에 주저앉아 나 몰라라 하며 운다. 아니 우는 시늉을 한다. 겁이 난 대장패거리는 팬티를 자세히 볼 여유도 없이 도망친다. 유진이는 금방 치마를 톡톡 털고 일어나 눈을 흘긴다. 대장패들이 달아난 쪽을 향해 입술을 내밀고
“거지같은 녀석들!”
“못된 강아지!”
이렇게 미운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미 대장패는 자취를 감춘 다음이다.
벌쭉이대장은 우리들보다 한 살 위다. 우리는 대개 여섯 살인데 대장은 일곱 살이다. 유치원 송선생님은 벌쭉이대장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작년 유치원 입학식 날이었을 거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
정신연령이 어리다는 것이다. 정신연령이 뭐지? 하여튼 우리보다 한 살 더 먹은 것이 확실한데도 어리다는 말에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시며 맞장구를 쳤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신연령이란 어려지는 것인지. 글쎄, 콧물을 흘리는 것과 정신연령이 관계가 있다면 그 말은 맞다. 대장은 지금까지고 콧물 단속을 못한다. 간식시간에 엄마들이 대장의 콧물을 보고는 질겁한다.
“아, 여섯 살 박이도 흘리질 않는데 넌 일곱 살이나 먹고도.”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하면 그 유명한 입이 죽 찢어지며 벌쭉! 웃고 만다.
또 하나 대장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글씨 쓰는 일이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대장은 글씨 쓰는 일에 도무지 발전이 없다. 네모 공책 칸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이건 도무지 글씨가 누웠다 섰다 한다. 이 말 선생님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숫자 놀이에서도 대장은 볼만하다. 도대체 ‘2와 5’ 또는 ‘6과 9’를 구별하지 못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구 해 볼 사람?”
숫자놀이시간이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전에 손을 든 사람은 대장이었다. 대장은 손드는 것은 일등이다. 물론 제일 빠른 아이한테 지명이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대장의 마음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일등이라고 자신만만해 있는 대장을 제쳐두기라고 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볼만하다. 먼저 고개가 푹 수그러든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얼굴은 금방 실망의 빛으로 우그러든다. 조금 전에 자신 있게 손들었던 그 표정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몸 전체가 실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생님이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한다. 선생님은 대장의 표정을 눈여겨보신다.
이번에는 지명해 줘야지.
“누구 해 볼 사람?”
번개처럼 빠르다. 그 우거지상을 하고 움츠러들었던 대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표정을 활짝 펴면서 손을 든다. 이번에는 아예 엉덩이를 들고 벌떡 일어서 있다. 이번에도 또 일등이다. 지명을 받은 대장은 앞서 일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른다. 의기양양하게 칠판 앞에 나가서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자신만만.
“5자.”
대장은 바구니에서 숫자를 찾아 칠판에 세운 융판에 붙인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맞았습니까?”
아이들이 와아! 웃는다. 손뼉소리가 없다. 맞았으면 아이들은 웃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손뼉소리가 요란 할 텐데 손뼉소리는 없고 웃음소리만 요란하다. 대장은 틀렸다는 걸 안다. 그러나 고치려고 하질 않는다. 고칠 수가 없는 것이다. 제 손으로 귓불을 잡아당긴다. 겸연쩍다는 버릇이다. 그리고 벌쭉 웃고는 자기 자리로 들어와버린다.
'아니, 저건 ‘2’자 아냐!'
이제야 알았다. 자리에 들어와서야 틀렸다는 걸 알았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았을 거다. 대장은 다르다. 교실 분위기도 달라져 있다. 대장이 틀렸기 때문에 아이들은 예! 예! 사방에서 야단이다.
'나는 알아요.'
'문제없어요. 난 틀리지 않아요.'
절 시켜주세요.
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장이 다시 일어나서 칠판 앞으로 나가고 있다.
'저런!'
선생님이 대장이 나오는 걸 제지시킬 기회를 잃고 대장이 하는대로 보고만 있다. 망설일 거 무어냐. 대장은 융판의 ‘2’부터 떼어내고 ‘5’를 찾아 따악! 소리가 나게 때려 붙인다. 손을 들고 있었던 아이들은 미처 손을 내릴 겨를도 없다. 손을 든 채로 아이들이 웃는다.
“와아!”
“와아!”
아니, 이건. 또 틀렸나?
선생님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대장을 보고 융판을 본다. 대장은 엉거주춤 이다. 손뼉소리가 또 없기 때문이다.
'저런!'
선생님이 이유를 알았다.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다. 대장만 모른다.
“아함, 세워라 바르게!”
선생님이 웃으며 기회를 준다. 대장은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또 웃는다. 대장이 붙인 ‘5’자가 바르게 서지 못하고 아직도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장 서편 학습원에서 마른 풀밭을 손질하고 계시던 교장선생님이 유치원교실을 보며 허리를 편다.
'웬 웃음소리?'
그래서 그런지 유치원교실 창에는 빛이 어려 있는 것 같다. 교장선생님은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지른 다음 다시 유치원교실을 살핀다. 분명히 빛이다. 밝고 환한 빛이 어려 있다.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럴 리 있나? 알 수 없는 일인 걸.'
마침 봇재 등성이 위로 기운차게 솟아오른 해님이 유치원교실 가까이 머물고 있었다.
“너, 좀 남아!”
김이 팍! 샜다. 하필 나람.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여러분, 안녕히.”
마지막 ‘안녕히'는 교실 밖에서 할 참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대장은 밖으로 튀어나가는 일에 천재다. 역시 일등이다. 그런데 오늘은 마지막에 순간에 묶여버렸다.
“왜, 뭐 잊은 거라도 있니?”
'저렇게 뭘 몰라.'
그러나 설명하고 있을 틈이 없다.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아냐, 선생님이 모르실 리가 없지. 능청이야, 심술 아니면. 어른들은 다 그래. 우리 엄마도 아는데 선생님이 모르실 리가 있어?
“엄마!”
“뭐?”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아.”
끝말 ‘다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아’ 해놓고 엄만 모른 척 하지만 대장은 엉거주춤 서 있다. 모른 척 하던 엄마가 얼풋 웃는다.
일단 안심.
“옜다!”
당첨, 단번에 합격이다.
대장이 현관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나머진 공책값이다.”
등 뒤에 엄마의 말꼬리가 걸렸다.
'그러면 그렇지.'
주춤했다가 마을 앞길을 몸으로 끌어당기 듯 다시 달린다.
'어떻게 알았을까?'
대장은 어제 국어공책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은 걸 알았다. 그러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 용돈은 200원이다. 그런데 300원을 주셨다. 그래서 당첨! 이라고 벌쭉 웃었다가 또 김샜다. 엄마가 허투루 100원을 더 줄 사람인가.
“왜 오줌 마렵니?”
'아뇨!'
대장은 힘차게 고개를 내젓는다. 한 시가 바쁘다. 아이들은 지금 새 점방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이 애는 천생 정서불안일까?'
선생님은 안절부절하는 대장의 행동을 대학교에서 배운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대장의 입장은 다르다.
“아까 숫자놀이시간에 말이다.”
'늘어진 소리로 길게 뺄 시간이 없는데.'
'아무래도 이 아이는 좀 교육심리학적으로 보아야겠어. 문제성이 있다니깐. 그 건 그렇고.'
“어떻게 금방 고칠 수가 있었니? 틀렸다는 걸 금방 알아냈다면 애초에 틀 리지 않을 수도 있잖아.”
'에그, 그런 걸 다 물으시려고. 아, 그거야 뻔하잖아요.'
'잘 아시면서. 이상도 하지. 어른들은 다 아는 것도 물고늘어지고 또 묻고 한단 말씀야. 습관인 게지.'
“먼데서 보니까 더 잘 보였어요.”
'아니? 저, 저, 저 녀석이 …… .'
끝말이 입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대장은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제지하려던 손을 힘없이 내렸다.
'그런데 거 뭐더라? 뭐, 먼데서 보니까 더 잘 보였다고? 거 참 …….'
'현미경으로 보듯 하지 말란 뜻이겠지. 그렇긴 해. 아이들을 세포 관찰하듯 해서야.'
「어린이 미술관」
교실 뒷면의 아이들 작품을 붙여놓은 작품관이다.
대장의 그림.
그림솜씨도 행동과 꼭 닮았다. 색깔은 무척 밝고 힘찬데 짜임새가 없다. 숲속에 나무들이 있고, 나무숲에 새들이 사는 건 당연하다. 헌데 녀석은 물고기까지 그려놓았다. 웬 물고기냐니까 물고기가 숲에 살면 엄마 새가 아기 새에게 잡아 먹여주기 쉽지 않겠냐는 대답이었다. 엉뚱한 녀석. 그래도 장차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고 물었더니 두 손으로 터억 턱을 받치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만 수줍은 듯 나를 가리켰겠다.
“임마, 봉근이는 대장되겠다던데? 철민이는 의사하고 싶댔고.”
그래도냐?는 물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는가 보다.
운동장에 서서히 해거림이 지고 있었다. 교문 밖에 선 플라타너스 마른 나무 그림자가 교정으로 성큼 들어서있다. 선생님은 창 너머로 대장이 지나간 자취를 보고 있었다. 녀석의 자취는 너무도 선명했다. 오는 2월이면 녀석들과도 헤어진다. 그러나 녀석의 자취는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질 것만 같았다.
2. 입학식 날
학교란 곳이 별 볼일 없는 곳이란 사실을 벌쭉이대장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못마땅한 것이 ‘차렷’이라는 것이었다. 이 차렷이란 건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깨가 떡 벌이지고 키가 장태산만큼 큰 체육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렷 자세란, 먼저 허리를 곧게 펴고, 두 발은 모은 다음 두 손을 바지 옆 줄에 놓되, 주먹은 달걀을 쥐는 것처럼 가볍게 쥐고, 턱은 좀 끌어당겨야 하며, 두 눈은 자기 눈높이에 목표물을 정하고, 눈동자마저도 움직이지 않 는다.”
“만약 벌이 날아와 여러분의 콧등을 쏘았다더라도 여러분은 움직여선 안 된다. 알았나!”
“옛!”
우리는 일제히 목청이 터져라고 대답한다. 대답소리가 작으면 또
‘알았나! 예!’
를 다시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다르다.
'로봇이라면 몰라도 …….'
대장은 그 차렷 자세로는 단 1분도 견디지 못했다. 금방 좀이 쑤셔서 손끝과 발끝이 저려온다. 우리 선생님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안경 쓴 선생님은 마침 옆 선생님과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자알 됐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근질근질해지고 있어 사건이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 다가와있음을 알리고 있다. 대장의 눈빛이 반들거리기 시작한다. 머리속이 잘 돌아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선생님은 계속 말씀 중.
'옳지 저 녀석!'
목표는 철민이다.
'건방지게 제가 뭔데 의사가 되고 싶다댔지? 혼 좀 나봐라.'
저 녀석은 도대체 나무로 만든 인형인가 로봇인가? 차렷 한 마디에 하루 온종일 꼼짝 안할 녀석이다. 지금도 아주 얌전하게 뒷짐을 지고 훈화를 계속하는 교장선생님을 뚫어져라고 바라보고 있다.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보는 척 하고 있을 것이다.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척 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는 대개 이런 내용이어서 아무리 철민이 제 녀석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해도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루루루 웅얼웅얼. 우리 학교 의 저러러러 도로로로 말 입니다. 여리리리 …….”
이런 걸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표정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선생님들 조차도 한 분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없었으나 유독 교감선생님만 열중쉬어를 하고 그려놓은 듯 서 있을 뿐이다.
이 때다!
대장이 고양이처럼 숨을 죽이고 철민이 뒤로 다가가는데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몰론 아무도 모른다는 건 선생님을 두고 한 말이다. 아이들이야 진즉부터 대장의 발자국 하나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대장의 행동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망울들이 점점 크게 열려지면 아이들의 마음에도 불이 붙는다. 그 불은 어느 순간에 활짝 타올라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기쁨이 얼굴에는 말할 것도 없고 손끝 발끝까지 엔돌핀(즐겁고 밝게 살아가는 생활의 여유에서 생기는 우리 몸의 유익한 활력소)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요 걸 어딜 ……?'
마치 고양이가 몰래 쥐에게 다가가 쥐가 이제 완전히 고양이 제 영역권에서 도망갈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될 때 갖는 여유다. 긴장된 순간이다. 그 때였다.
“하나 같이 여러러러…….”
조용하고 사근사근하게 들리던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폭탄소리같이 꽝! 하고 터진 것은. 제일 먼저 대장이 깜짝 놀랐다. 그 때 마침 대장은 철민의 어딜 주물러줄까 하고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온 신경이 대장과 철민이에게로 집중되고 있던 아이들도 놀랐고,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던 선생님들도 놀랐다. 벌쭉이대장의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었다. 허리를 엉거주춤 펴고 오른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우리고 있던 폼 그대로 굳어버린 조각품 같았다. 우리 선생님도 크고 까만 안경테 너머로 잠깐 아이들을 훑어보고는, 차렷 자세로 나무토막 흉내를 내고 있는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바로 또 소곤거리는 이야기로 되돌아갔다.
“와르르르 우러러러 부루루루 사라라라…….”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도 다시 대장과 철민이에게로 돌아왔다. 대장은 다시 눈을 반짝거리며 철민이의 몸을 샅샅이 훑어 내리고 있다.
'어디로 정할까?'
저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같은 다리? 아냐, 갸우뚱 구령대를 향하고 있는 머리? 바지춤을 훌라당 벗겨내리면 가장 좋을 텐데 철민이는 안 된다. 석규 녀석처럼 허리띠를 매고 다니지 않거나 봉근이 녀석처럼 멜빵을 안한 아이들에게나 통하는 장난이다. 결국 발뒤꿈치로 결정했다. 주저없이 대장의 왼쪽발이 철민이의 왼쪽발 뒤꿈치를 팍!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걸어올려부쳤다. (대장의 왼발잡이다.) 그리고는 번개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웅얼웅얼 거리던 마이크 소리가 뚝! 그쳤다. 갑자기 넓은 운동장이 숨이 멎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것은 철민이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대장은 보았다. 대장만 본 것이 아니라 주위의 학생들은 다 보았다. 철민이가 오른쪽으로 뱅그르 돌아가다가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모두 다 보았다. 마치 영화의 슬로우모션 같았다. 숨을 죽이고 보고 있던 아이들의 긴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흥분과 긴장감을 담뿍 맛본 아이들 속에서 한숨소리 같은 환성이 터져나왔다. 그 환성을 깨고 철민의 울음소리가 막을 열었다. 철민이의 울음소리는 좀 유별나다. 목청이 크기도 하지만 우는 소리도 우리와 좀 다르다. 철민이는 한껏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힌 다음 으엉! 으엉! 하고 운다. 갑자기 터진 으엉! 소리는 마이크소리보다 더 컸다. 그래서 운동장이 조용해졌다. 철민이의 울음소리로 인하여 마이크소리가 뚝 그쳤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안경선생님(우리 선생님)이 먼저 달려왔다. 철민이는 계속 으엉! 으엉! 운다. 다른 선생님도 모여들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우리 신입생(1학년) 주위에 반원형으로 둥그렇게 둘러서 있던 엄마들이 고개를 빼고 기웃거린다. 한참 웅얼웅얼 훈화를 하시던 교장선생님도 마이크를 끊고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경선생님은 정말 난처한 모습이다. 작년에 우리 유치원을 맡았던 송선생님이야 까짓 것 팥죽 먹기일텐데. 안경선생님은 뭘 모른다. 유치원 송선생님은 유치원 아이들 하나하나 어떻게 달래야 할 줄 빠삭하게 알고 있다. 석규는 엄포를 놓아야하고, 봉근이는 살살 추켜세워야 한다. 안경선생님은 진땀을 빼지만 철민이는 막무가내다.
'어디 아픈가?'
하기야 운동장 땅바닥에 질펀히 앉아서 우는 녀석이니 아프다고 짐작할 수 밖에 없겠지? 어린애들이란 오줌만 급해도 울며 떼를 쓰는 법이니까. 안경선생님은 제법 아이 달래는 걸 아는 체 어르지만 틀렸다. 달래도 엄포를 놓아도 안 되자 안경선생님은 철민이를 줄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고분고분 끌려갈 철민인가? 천만의 말씀.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했는지 교장선생님은 다시 마이크로 되돌아갔다. 안경선생님은 유치원 송선생님을 따라가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수라라라 그러러러 나르르르 마고고고…….”
교장선생님은 다시 마이크 앞에서 폼을 잡고 훈화를 계속하신다.
'아차. 엄만?'
벌쭉이대장 쪽이 팔려 있다가 그제야 등 뒤 엄마들 틈에 엄마가 계신다는 걸 생각해냈다. 가만히 곁눈질로 엄마를 찾았더니 대장이 엄마를 곁눈질할지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가 세모꼴 눈으로 주먹을 불끈 쥔다. 이건 적신호다. 몹시 언짢은 기분일 때 엄마의 행동이다. 그러나 설마 오늘이 벌쭉이대장의 초등학교 입학식인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안심은 된다. 그러나 조심해야겠다.
“고로로로 노루루루…….”
도대체 무슨 말일까? 고릴라들의 말은 아닐테고 모두 열심히 듣고 있긴 한데. 대장은 오늘이 입학식 날만 아니라면 당장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가고 싶다. 엄마의 세모꼴 눈만 보지 않았어도 그렇게 했을른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선생님, 우리 할아버지도 그 전에 교장이었는데 말야. 우리 할아버진 옛날 얘기 잘 한다아. 지금 할아버지 선생님도 예날 얘기하는 거야? 난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 우루루루 거러러러가 뭐야?'
이렇게 툭 터놓고 앙탈을 부렸을 거다. 또 하나 우스운 것은 열심히 듣고 있는 엄마들이나 아이들의 모습이다. 대장 생각에는 대장의 귀와 엄마들의 귀가 다르다면 몰라도. 아니다, 엄마들은 어른들이니까 엄마들은 모르겠고 대장의 귀와 아이들의 귀가가 다르다면 몰라도 대장이 못 알아먹는 우러러러 구루루를 다른 아이들은 열심히 듣고 있는 척 하고 있는 일 말이다. 얌전해야 상을 탄다고 했다. 그래서 대장은 도저히 상복이 없는가 보다. 상도 복이 있어야 탄다는데. 그러나 저러나 큰일났다. 저 할아버지 선생님의 이야기를 차렷 자세로 듣는 척 살아야 할 6년을 생각을 하면 기가 팍 죽는다.
입학식 날인데 새로 받은 건 책뿐이었다. 유치원 때는 거의 매일 간식이 있었는데 입학식이 다 끝나고 대장은 그 점을 엄마에게 내비쳤으나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까 철민이 사건으로 그런 모양이다. 철민이가 울음을 그친지가 언젠데. 어른들은 뭐든지 오랜 간다. 우리들과는 딴판이다. 우리야 종아리를 맞고도 금방 잊어버릴 수가 있다. 심지어는 어떤 때는 금방 한 일도 잊어서 꾸중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렇지가 않다. 언제 네가 이랬지 않느냐, 바로 엊그제 저랬지 않느냐, 일주일 전에 사준 크레파스가 어째 이 모양이냐는 둥 하나같이 기억의 천재들이다. 하여튼 오늘은 과자나 빵을 얻어먹기엔 틀린 것 같다, 철민이놈 때문에. 나중에 더 복수해줄 거다.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새점방 앞을 지날 때는 무척 괴로웠다. 그래서 숫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눈을 감고 보니 웬 걸 눈을 뜨고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보이지 않는가. 오히려 보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보인다. 눈 뜨고 볼 때보다 진짜 더 잘 보이는 눈 감고 보기는 차마 못할 일 같아서 차라리 눈을 떠버렸다. 동무들은 모두들 자기 엄마 손을 끌며 끌리며 샘나는 물건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막힌 광경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대장은 다시는 새점방 앞을 지나가지 않기로 작정했으나 결국 하루도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다.
우리 교실은 3층 중간쯤에 있었다. 3층이라면 여러분들은 도시의 건물 같은 빌딩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우리 학교의 3층이란 그 건물이 어디 부근 있느냐 하는데 따라 매겨진 교실 번호 비슷한 것이다. 즉 예를들면 1호관, 2호관, 3호관 하는 것들 말이다. 맨 처음 소개할 건물은 백악관이다. 여기를 우리들은 1층이라고 부른다. 하얀 시멘트 현대식 건물이라 우리 학교에서는 제일 좋은 교실이다. 여기에는 교무실과 교장실이 있다. 백악관과 나란히 붙은 강당은 우리 학교가 처음 생겼을 때 지은 건물로 나무판자로 지은 건물이다. 아마 60년 쯤 된 할아버지 건물인데, 이상하게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같이 있으면 참 정겹게 보이는 데 이 두 집은 흡사 왕자와 거지가 함께 어울린 것 같아 도저히 곱게 보아줄 수가 없다. 그래도 안경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학교 소개를 하면서 이런 교실에서 공부하게 된 것을 우리 나라에 감사하라고 했다, 글쎄 …….
2층은 운동장에서 보면 왼쪽 슬레트 지붕 건물이다. 아마 30년 쯤 되었을 것이다. 3층은 백악관 뒤에 가려져 잘 안 보인다. 깨끗한 브로크 건물이다. 이건 10년 전 쯤 지은 건물인데 대장네 교실이 바로 이 3층 오른편 복도에 있다. 그 외에 시설물로는 강당 옆구리에 붙여 지은 과학실, 그 밑으로 계단을 여나무 개 내려가면 작년에 우리가 공부했었던 유치원교실이 있다. 그 외에 선생님의 학교 소개로 유치원 때는 생각 없이 보고만 지나쳤었던 것들의 이름과 사용법을 모두 설명 들었다. 음악실, 미술실, 민속관, 강당과 체육실도 보았다. 과학전시관이란 델 빼고는 별 흥미가 없었다. 더구나 할아버지선생님의 방이나 선생님들의 방에 들어갔을 땐 좀 으스스했다. 우리 할아버지에게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학교를 모두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변소를 보았다. 참으로 형편없는 곳이 변소였다. 변소 냄새, 썩는 냄새와 지린내. 아이들이 모두 코를 싸쥐고 얼굴을 찡그렸다. 대장이 왜 화장실이라고 하지 않고 변소라고 고집하는가 하면 도저히 화장실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변소였으니까. 한 50년은 넘어 된 건물 같았다. 하여튼 우리 학교 건물은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학교 건물의 모양이 모두 갖춰져 있는 학교 건물 표본실 같았다. 이것도 공부가 된다면, 우리 선생님들께서는 일부러 이렇게 학습자료로써 건물 양식을 골고루 갖추었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어른들이야 오직 관심은 우리의 공부뿐일테니까. 그러나 대장에게 끝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화장실도 교실 건물 발달 관찰에 도움이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냄새나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청소조차 되지 않아서 화장실은 마치 유원지의 공중변소처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건물이었다.
“어때, 학교생활?”
“학교생활요?”
“그래, 학교생활. 공부하는 게 어떠냐는 뜻이다.”
“학교생활이 아니라 공부란 말씀이시지요? 뭐, 별로예요?”
“별로라고?”
할아버지는 내 대답에 속이 좀 상하신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럴 때 속없이
'할아버지, 왜 언짢으세요?'
했다가는 된통 맞는다. 하여튼 할아버지는 자신의 발문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야 했다.
'쉬는 시간은 어때?'
'동무들과 잘 어울리니?'
이렇게 물으셨다면 대장의 얼굴 표정부터 달라졌을 것이다. 왜? 공부시간과 쉬는 시간은 적어도 대장네들에게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난다. 예를들어 공부시간이 우리의 모든 것들이 죽어있는 시간이라면 쉬는시간만은 우리들이 펄펄 살아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공부시간이란 도무지 인기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쉬는시간 기다리는 재미로 학교에 나오고, 그 재미로 마지못해 공부를 하는 척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또 우리가 가끔 불평을 말하는 일은 공부시간과 쉬는시간의 시간 배정 문제다. 왜 공부시간은 40분이어야 하고 쉬는시간을 고작 10분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제 좀 말할 만한 나이, 즉 4학년 쯤 되면 선생님들께 한번 건의를 해야겠다. 그렇다 치고 어른들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잘못된 일이 있다면 이 시간 배정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가끔 이 문제로 토론을 벌였을 때 지지도를 보면 아이들의 대부분은 대장의 의견에 대 찬성이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이런 면에서부터 우리들은 멍에를 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막상 쉬는 시간의 여유가 우리들에게 있다고 치자. 그 귀중한 10분마저도 대장과 그 패거리들에겐 사실상 사용하거나 처분하기엔 매우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수업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운동장은 도저히 대장패거리들에겐 손바닥만한 넓이도 할애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운동장 가운데 부분인 축구 골대에서는 6학년들이 축구를 한다. 배구장에서는 5학년 형들이, 그리고 테니스장에는 4학년들이, 이런 서열로 운동장을 나누다보면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 차지는 고작 변소 주위의 공터가 할당되고 만다. 이런 정도의 너비에선 할 수 있는 놀이가 없다. 그래서 대장은 패거리들은 모아 머리를 짜낸다. 그 계획의 하나가 다운이네 여학생들의 땅을 공격하는 일이다. 대개 다운이네는 교실과 정원 사이 통로서 고무줄놀이를 즐겼다.
“야, 가자.”
“괜찮을까?”
“덜 떨어진 녀석들. 그렇게 두려우면 구경이나 하시지.”
대장은 용감한 몇 사람의 행동대원만 선발해서 살금살금 다운이네들에게 접근한다. 다운이네들은 대장의 이런 속셈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체 해버린다. 며칠 전 대장을 다운이네들을 울렸다가 안경선생님께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다운이네 놀이를 훼방하지 않기로 맹세를 했었기 때문에 접근해오는 남학생들을 속으로는 경계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무시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다운이네들의 겉 표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쪽으로 진행되었고 언제나 똑같은 상황으로 끝이 났다.
한가운데 대장 그리고 양쪽으로 대장 네 패거리들이 나란히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있다. 벌써 10분도 넘게 벌을 서고 있었는데 벌 서는 일보다 더욱 곤란한 일은 다운이네들의 행동이었다. 대장 패거리들이 안경선생님께 불리워 나가자 다운이네들은 거 참 잘되었다는 고소한 표정이었다.
'훼방이나 놓고 까불더니 고소하게 되었지 뭐야. 혼좀 나봐라.'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 척하면서 가끔씩 대장의 벌 서는 모습을 흘금흘금 곁눈질하고 있었다. 대장은 벌 서는 것보다 다운이네들이 흘금거리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두고 봐라. 요것들을 그냥!'
3. 쪽지편지
「시간 끝나면 도서관 복도로 집합」
이것이 발단이었다. 머리가 커졌으면 좀 더 행동도 민첩하게 해야 하는 건데 봉근이 녀석이 덜컥! 들켜버렸다. 6학년에 올라와서도 늘 그 모양이다.
“삼각형의 넓이 내는 공식은 …….”
따발총처럼 터져 나오는 안경선생님의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정열이 딱 멈췄다, 쪽지편지를 띄어놓고 전달되어가는 방향을 쫓던 벌쭉이대장은 그만 두 눈을 감아버렸다.
안경선생님은 봉근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시더니 곧장 손바닥을 펴서 녀석의 눈 앞에 내밀었다.
'내놔!'
무언의 강요다.
봉근이는 안경 밑으로 빛나는 선생님의 눈을 보고는 기가 팍! 죽었다. 도저히 피할 길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벌쭉이 대장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대장은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의 눈길도 대장에게로 다가왔다. 바보, 두 번째 실수다. 멍청한 녀석에게 쪽지편지가 전달되었을 때 이미 운명은 결판이 났다. 이제 날 잡아 잡슈하고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다.
안경선생님이 우릴 일망차진 하는 방법은 독특하다. 조금도 빈 틈이 없다.
“녀석들을 나는 잘 알지. 1학년 때 이미 녀석들은 내 손아귀 속에 있었어.”
안경선생님의 그물망을 빠져 나갈 아이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한 줄에 꿰인 고기처럼 끌려가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우리의 낡은 사고방식을 발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왜 쪽지편지 같은 낡은 수법 말고 좀더 과학적인 방법 같은 것 말이다. 하기야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선생님의 눈을 피하려 했었겠다.
“대장! 네 짓이지?”
이럴 때는 무조건
'예 ,접니다.'
라고 실토하는 것이 현명하다. 만약에 일이 어쩌고저쩌고 변명하려다 선생님의 폭발성 성격을 건드리기만 하면 그때는 동정참작의 가망까지도 없어질 뿐이다.
“뭐야?”
“실은 …….”
실은 수잿등보의 수문 아래 짤팍한 물에서 팔뚝만한 메기를 보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물길이 섬진강 상류여서 고기가 흔한 건 사실이지만 팔뚝만 하다면 회가 동하지 않을 장사가 없다. 더구나 요즘 가뭄 때문에 소문이 확실하다면 메기는 이미 손에 넣은 거나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수잿등보 근처의 멍석만한 바위들로 뒤덮여 있는데 그 너럭바위 밑에 굴이라도 있어 바위 속으로 파고든다면 몰라도 메기는 바로 죽은 목숨이다.
“메길 잡아? 그래 잡아 뭘 할래?”
'뭘 하긴. 당장 구워먹거나, 팔기만 해도 큰 돈이 될 걸.'
당연히 대답은 이렇다. 그러나 그 건 보통 때 얘기다. 지금은 좀 다르다.
“선생님 드리려고 …….”
'자아식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모기만한 목소리가
'우리가 구워먹지요.'
라고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안경 속의 눈이 빛나며
“지금 갈 테냐?”
다정한, 목소리까지 은근해진다.
“필요한 건 없니?”
“양동이와 세숫대야가 필요합니다.”
“좋아. 빌려주지.”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만하기도 쉽지 않다. 구워먹는다거나 판다고 어쩌고 했더라면 물론 이렇게 풀리지 못했을 거니까. 메기가 불쌍하다. 잡히는 길로 안경선생님은 요리 집으로 직행하실 꺼뻔하니까.
그나저나 쪽지편지가 문제인데. 하기야 편지 자체보다는 좀 멍한 데가 있는 봉근이 녀석의 유전적 내림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제 키도 자랄 만큼 자랐다. 그 외에 자랄 것들은 모두 실속 있게 자란 터 아닌가. 하기야 다운이네들처럼 자랄 게 꼭 짚어 없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머리 회전을 시켜야겠다. 전향적인 자세가 절실하다. 오후 한 나절이 도로아미타불 아닌가. 안경선생님도 그렇지. 땀 흘려 일한 댓가를 얼마나 강조했던가. 그런데도 선생님은 결정적인 시기에는 모른 척 하실 뿐이다.
머리가 어지럽다.
팔뚝만한 메기가 머리 속에서 아른거린다. 속절없이 빼앗기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다 쪽지편지와 메리를 맞바꾸는 편인데 이것도 계산상으로 보면 매우 불공평한 것이다. 어른들 쪽의 계산으로 보면 이건 아무 부담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들의 계산방법이 대장네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들도 분명하다.
대장 네 계산법은 이렇다. 예를 들어 공책 한 권과 과자 몇 개를 맞바꿀 때도 있다. 이런 일을 시시콜콜히 따지자면 계산이 안 된다. 그러나 대장은 이런 계산법으로 지금까지 거래가 잘 이루어졌었다.
그런 어른들은 어떤가. 무게를 저울로 달아보고도 의심스러워 속내까지 다 헤쳐본 다음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다가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어른들은 왜 모든 일을 시시콜콜히 따지고 잣대로 재곤 하는 것일까? 어른들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가령 시계를 예로 들어보자. 시계바늘은 예외 없이 모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시각을 가리킨다. 그러나 설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시각을 못가리킬 이유가 없다. 시계바늘은 아무 쪽에서 돌거나 시각을 가리키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또 안경선생님의 유명한 훈화가 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에디슨의 어린시절이야기이다. 에디슨은 1+1=1이라고 했다. 처음엔 우리도 어리둥절 문제의 핵심을 몰라서 무슨 뚱딴지같은 설교냐고 무시할 뻔 했다. 1+1=2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1학년도 아는 게 아닌가? 그러나 해설을 듣고 보니 납득이 간다. 오히려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한 우리는 머리를 툭툭 때리며 부끄러워했다. 물방울 한 개와 물방울 한 개가 보태지면 물방울은 한 개 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문제가 있다. 물방울 덧셈으로 우리가 만약1+1=1이나 1+2=1이라고 답을 쓴다면 답안지에는 이유야 어쨌거나 무조건 가세표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시험지를 풀 때와 생활은 서로 별개로 생각은 생각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해야 한다는 일이 문제였다. 이런 일은 다른 문제에서도 발생되었다.
ㆍ거짓말하는 것은 나쁘다(○)
ㆍ화단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ㆍ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시험문제를 풀 때면 우리는 이렇게 답을 쓴다. 그러나 거짓말을 꼭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에서는 더욱 문제 있었다. 아무리 생활시간표를 짜놓고 일과표대로 공부하고 놀기를 애써 지키려 고해도 번번이 규칙이 깨지는 것이 오히려 많았다.
그래서 대장이 생각해낸 것이 50점 맞기 시험이다. 대장의 실력으론 100점을 맞는다는 것은 애초에 생각도 못할 일이다. 그것이 글쎄 그렇게 다치더라도 100점은 싫다. 맨날 100점뿐인 시험을 답답해서 어떻게 맞느냐 이거다. 대장 생각에 적어도 점수 따기라면 100점에 못을 박아 놓지 말고 더 올라갈 수 있어야한다. 이렇게 말이다. 100점 다음엔 101점, 102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올라갈 수만 있다면 100점을 맞으려고 노력해봄직도 하다. 그러나 100점 이상이 없는 시험을 무엇이 좋다고 기를 쓰며 그 어려운 공부를 해가면 해내야 하는지 대장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일로 엄마는 속이 상하신 모양이다.
“니 멋대로 해라!”
이렇게 막말로 다그쳐버렸으니 말이다.
경위는 이렇다. 아침에 가방을 챙기는데 엄마는 퍽 걱정스러운 듯 대장에게 물었다.
“너 오늘 시험 본다며?”
“예, 그런데요.”
“아, 시험을 본다는 녀석이 그래 책이라곤 한 자도 쳐다보지도 않았데?”
“염려마세요. 평소 실력으로 보면 되잖아요.”
“아함, 그러세요. 그 평소 실력이란 게 좀 좋게?”
“50점 맞긴데, 뭘.”
“뭐야! 50점?”
“예, 그래요. 50점.”
“넌 정말 좀 어떻게 되지 않았니?”
“뭐가? 엄마의 아들, 염려 없어요.”
“그렇담, 그 50점이란 게 뭐니?”
“제 시험 목표.”
“넌, 참 우스운 애야,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러니?”
“엄마 닮았죠. 모두들 엄말 쏙 빼닮았다고들 하잖아요?”
“내 원 참 기가 막혀서.”
엄마는 속이 상하신 모양이다. 가습이 답답하시댄다. 엄마의 점수는 100점이고 우등생에 관심이 크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대장의 편이 더 많아. 아빠는 좀 완전한 대장 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완전히 대장 편이다. 할아버지는 대장의 50점 이야기를 기특하시며 옳은 말이라고 편을 들어주셨다.
“거 뭐 50점이니 뭐니 하는 거 꼭 그르다곤 할 수 없으나 .......”
아빠의 이 미지근한 태도에 비하면
'고 녀석 뉠 닮아, 기특한 녀석이야. 애비나 에미, 너희들 그 애 따라가려면 한참 걸리겠다야.'
이렇게 대꾸도 못하도록 못을 질러버려서 엄마는 적어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우등생이니 100점이니 말씀을 꺼내지도 못한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교장선생님이 아닌가. 전직 교장선생님이 대장 편인데 감히 누가 대장의 50점 이야기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대학까지 나온 엄마라지만 한평생 아이들을 가르치신 할아버지가 옳다는 데 감히 공부가 어쩌고저쩌고 학력이 저쩌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
“세상 엄마들 누구보고 물어봐라. 어떤 엄마 아들 공부 잘 하는 걸 원치 않을 부모 있을지.”
“그렇다면, 엄마의 뜻과 제 뜻이 완전히 같네요.”
“무슨 뜻이 그러냐?”
“그렇지 않구요.”
“늬가 언제 100점 이야길 한 번이라도 해봤니? 맨날 엄만 알 수도 없는 50점이 어쩌고만 했었지.”
“그야 엄마가 제 말을 이해 못하시니까 그렇지. 엄마, 제 50점과 엄마의 100점은 같은 거예요.”
“아, 이 녀석아. 어찌 50점과 100점이 같아. 이 에밀 바보로 만들 셈이냐?”
“엄만 정말 모르세요?”
“그렇다. 엄마도 무식한 사람은 아니다. 배울 만큼 배운 엄마 아니냐? 그러나 니 이야기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구나.”
“엄마쩍 학교는 뭘 거꾸로만 가르친 게 아닐까?”
“그건 늬 할아버님께 여쭈어보렴.”
엄마는 샐쭉 토라진 얼굴로 마침 할아버지께 간접적으로 분풀이를 하신다. 그걸 대장은 알고 있다.
“참. 묘하단 말씀야.”
“묘해? 해도 해 싸니까 별 못할 소리가 없구나.”
“그렇잖아요? 엄말 가르친 선생님은 나이를 많이 드셨어도 제 말뜻을 알고 계시는데 더 놓은 공불 한 엄마는 조금도 이해를 못하시는 눈치니. 차암 답답한 일 아녜요?”
“이 녀석 엄말 이제 놀릴 셈이냐?”
“엄말 놀리려는 게 아녀요. 사실이 그러잖아요.”
정말 대장은 진심이다. 허투로 해본소리가 아니다. 그런데 엄마는 농담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이 녀석아, 50점이면 50점이지 어째 50점과 100점이 같다는 거냐?”
“거기 거기가 문제예요. 그 대목에서 엄만 스톱이 되었군요.”
“요 녀석 보자보자 하니까 엄마에게 못할 말이…….”
군밤이 날아오기 전에 대장은 벌써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듯 나와서 대장은 더 심각해졌다.
'왜 엄마는 50점과 100점의 점수 차이에만 생각이 갇혀 있을까?'
'왜 어른들은 점수를 100점으로 만들어놓고 거기에 묶여 있을까?'
'한 번 100점을 받았다고 하자. 100점에 막힌 나 같은 아이들이 꽉 막힌 벽 때문에 고민하는 걸 이해가 안 되는 걸까? 그런 정말일까?'
'내 또래의 아이들도 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른들이 맞으라는 100점 밖에 더 생각을 못하는 걸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어른들 말씀이니까 무조건 따르는 것을 아닐까?'
'왜 어른들은 내 생각처럼 점수를 100점에서 101점, 102점, 150점으로 늘려가려는 생각을 못하는 걸까?'
'안경 선생님도 엄마처럼 같은 생각만하고 계실까?'
마을 앞에 가로놓인 참새미등을 오라서자 직행버스가 학교 뜸을 들어서는 게 보였다. 허리에 빨간 띠를 두른 직행버스는 언제 보아도 기운차게 보인다.
'좀 늦었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맘때면 아이들로 길이 가득 찰 시간인데. 새 점방 앞에도 아이들이 없다. 아무래도 좀 지각 인 듯 싶다. 교문을 들어서자 정말 겁이 났다. 운동장에도 아이들이 없었다. 꼬맹이들이 수돗가에서 컵을 씻고 있었다.
“시험 시작했니?”
“아니.”
가뿐 숨이 멎는 것 같다.
“대장, 늦었구나.”
바쁘게 교실로 들어서는데 안경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모두 이미 몇 번씩 되풀이하여 공부했었던 수련장에 매달려 있었다.
“녀석아 점수가 등산을 해?”
“그럼 선생님도 반대세요?”
“반대도 자시고 할 거나 있니? 점수란 건 100점이 최고인거야. 엉뚱한 녀석 같으니라고, 뭐 101점, 102점 올라가는 시험을 보자구?”
“정말 모르세요?”
“넌 무슨 아이가, 골치께나 썩일 녀석 같으니라구. 뭐, 50점이 네 목표?”
“녜.”
하아, 이건. 안경선생님 마치 수수께끼 푸는 것처럼 어려워졌나보다. 선생님의 표정을 보니 정말 골치가 쑤신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싶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다, 아니야. 어이구 골치 …….”
선생님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몇 가지 더 여쭐게 …….”
“아냐, 아냐. 이젠 됐어. 다음에 하자. 지금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
그 이튿날 대장의 사발통문(쪽지편지)이 돌았다.
「수잿등으로 모여라」
“정말 그런 게 있다고 믿니, 넌?”
“나는 대장의 이야기에 찬성이다.”
“우스운 얘기다. 나는 지금껏 시험점수에서 101점이 있다는 소린 들은 적이 없어.”
“그래 맞다. 101점이란 점수는 아마 없을 거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대장의 이야기에는 분명히 옳지 못한 데가 있어.”
“대장 생각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 꼭 지금 있다고 한 건 아니잖니? 대장, 그렇지?”
“안경선생님도 모르신다고 했다잖아.”
“시험이란 건 원래 점수 따기 아닐까? 그렇다면 많이 딸수록 좋을 거란 생각은 맞는데.”
“늬네들 101점이란 말 들어봤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수잿등 너머 모래사장에 대장 네 패거리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한 마디씩 의견을 말했다. 두 번 세 번 발표를 독점하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뭄이 계속되어선지 냇물이 많이 줄어 아무리 깊은 곳이라도 바닥이 환히 보였다. 그러나 용소(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지닌 수잿등에서 제일 깊은 곳)만은 아직도 시퍼런 물길이 깊이깊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저 깊은 물 속에 이무기가 살고 있었단다. 잉어가 천년이 되면 이무기가 된단다. 이무기가 천년이 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데 천년 중 마지막 해 백일 동안은 싱싱한 생명을 먹어야 한단다. 하루데 하나씩 백날동안 싱싱한 생명을 먹은 이무기는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단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이무기가 승천하는 걸 보셨다고 했다. 아득한 젊은 날이라고 하셨다. 맑은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람이 흩날리기 시작했더란다. 이상한 바람이었지. 바람 끝이 일정하게 한 방향으로 불어오는 게 아니라 돌풍처럼 바람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는 거야. 사람들은 요사스런 기운이 주위에 가득 찬 걸 느끼게 되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는 거야. 한참 이런 기분에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용소 부근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하얀 물기둥이 치솟았다는 거야. 물기둥은 빙빙 돌면서 점점 하늘로 뻗어 올라갔지. 하늘에서는 우박에 쏟아지고 번개가 번쩍이고 마치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지. 사람들이 얼이 빠져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물기둥은 하늘 높이 치솟아 드디어 하늘에 닿았다. 그러자 오색무지개가 떴다. 그리고 하늘은 순식간에 맑아졌다. 언제 천둥과 우박이 있었으냐 싶을 정도였더란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만 꺼내시면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그 꿈을 꾸고 싶어 하시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다시 보고 싶으세요?”
“아함, 좀 두렵고 떨렸던 기억이지만, 평생 그런 일은 다시없을 거야.”
벌쭉이 대장 토론이 끝난 아이들을 몰고 용소 앞 너럭바위 위로 올라갔다.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 시퍼런 풀길인데도 아이들을 너럭바위째 쓸어갈 것 같은 기분이 싸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빨려들 것 같은 야릇한 힘을 대장은 용소에서 느끼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용소가 대장의 마음을 자꾸 끌어들이는 것 같이 으스스한 기분이 몸 전체에 감돌았다. 용소가 이이들을 빨아들일 것 같아 보고 있기가 두려웠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지 못한 신비한 경험이었다.
4. 멋장이, 우리 선생님
“반찬주세요.”
“맛있는 반찬요.”
“싱거운 것은 싫어요. 매운 것도 싫어요, 맛있는 걸로 주세요.”
안경선생님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이 시간만큼은 피할 수가 없다. 더구나 잠시라도 머뭇거리다는 이 말들이 노랫가락으로 변한다.
“반찬 주세요. 반찬 주세요.”
“맛있는 걸로, 맛좋은 걸요.”
대장 네반의 종례시간 모습이 이렇다.
“바쁘다. 바뻐!”
때로는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려고 시도하는 때도 있었지만 안경선생님의 이러한 계략이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벌쭉이 대장패들이 말하는 반찬은 바로 「이야기 시간」을 말한다. 녀석들은 「공부」를 밥이라 해놓고 「이야기」를 반찬으로 이름 지었다. 어떤 경우, 이야기 시간이 생략되는 경우(아직 한 번도 생략해 본 적은 없었다.) 녀석들은 오늘은 굶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선생님의 입장에서 도대체 견디지 못할 일이다. 이야기도 하루 이들이라면 모르지만 한 3개월에 하고나니 이제는 정말 이야기 밑천이 달랑거린다. 그러나 녀석들에게는 선생님의 이야기 밑천이야 생각할 바가 아니다. 단지 그 일은 선생님의 문제일 뿐이다. 녀석들에겐 들을 권리만 있고 선생님에겐 해줄 의무가 있다는 식이다. 녀석들에게 들은 「귀」만 있으면 되고 선생님은 들려줄 「입」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리는 걸로 알고 있다.
새 학년을 맞이하였을 때 안경선생님은 벌쭉이 대장네반을 맡았다. 1학년 때 맡았던 녀석들을 다시 6학년에서 만났다는 건 상당히 감동적이다. 아이들과 첫 대면에서 토로했던 안경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빌미가 되어 녀석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물론 선생님의 잘못이었다. 코흘리개들이 제법 자라서 듬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벌써 선생님의 감정을 흔들어 놓았고, 녀석들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 눈물샘을 움직일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선생님의 이 머리 속은 책과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이야기 주머니인 셈이지, 그리고 이야기 주머니를 여는 자물쇠는 가슴에 채워져 있다. 너희들은 언제 어느 때나 선생님의 가슴에 채워진 자물쇠를 열 수 있다. 단 자물쇠를 여는 열쇠는 너희들이 가지고 있다. 어떻게 생긴 열쇠 득 무엇으로 여는가 하는 문제는 오직 너희들에게 달려있다.”
눈물이 홍건이 베인 모습으로 이렇게 감동적인 일장 연설을 했는데 맨 먼저 벌쭉이 대장이 벌떡 일어섰다. 1학년 때 버릇이 튀어나온 것이다.
“뭐냐? 대장.”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줄 수는 없습니까?
“대장,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대장은 예의 그 버릇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귓불을 제 손으로 잡아당기고는 벌쭉 웃었다. 그러나 결국 안경선생님은 그 훈화조 한마디로 1년 동안 아이들에게 꽉 묶인 셈이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이 또래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재미있고 재미없고 하는 것들을 구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안경선생님의 이야기는 감칠맛이 있어서 아이들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안경선생님이 노린 것도 이것이었지만 가끔 저러다가 아이들의 호흡이 멈처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야기 분위기가 짙었다. 선생님은 이 분위기를 좋아하셨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
이렇게 서두가 나오기 시작하면 교실은 이내 태고시대의 정적 같은 고요함으로 착 앉는다. 바람 한 끝 바늘 한 개로도 유리처럼 투명한 분위기는 금이 날 것 같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선생님은 아이들을 끌여들였다 놓아주었다, 때로는 들어올렸다가 밀어내놓기도 한다. 금방 슬픈 대목으로 가슴을 싸늘하게 식혔다가 다시 반전을 시켜 즐겁고 명랑한 분위기로 뒤바꾸어버린다. 선생님은 이 시간만은 마술사다. 최면술을 거는 마술사처럼 아이들을 마음속에서 울리고 웃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바심을 한다. 안경선생님은 아이들의 이 마음도 잘 안다. 이미 계산된 것이다. 녀석들 정도는 마음대로 몰고 다닐 수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끌어당겼다 놓아주었다 정도는 자유자재다.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이 끌리고 저리 밀리면 녀석들의 마음을 통째로 묶어버린다. 벌쭉이 대장의 고집불통인 성격도, 잘 토라지는 유진의 외곬인 마음도, 고아나 다름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선희의 슬픈 그늘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안경선생님은 이 분위기가 좋다. 선생님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야기 절정에 들어서면 녀석들은 캬! 하며 한숨소리 같은 마음의 깊은 내부를 드러낸다. 녀석들의 마음을 한 줌으로 묶어 끌고다니다가 단 한 마디로, 면도날처럼 날 선 칼로 자르 듯 이야기를 끊어버린다.
“다음 이 시간에 계속!”
처음에 녀석들은 데모를 하다시피 들고 일어섰다.
“조금만 더 ........”
“선생님 안돼요!”
“더 해주세요!”
항의가 빗발쳤지만 절대로 이어주질 않았다. 미리 계산된 안경선생님의 작전을 아이들이 알 리가 없다. 할 수 없이 아이들은 분출되는 욕구를 캬! 로 발산해내고는 다음 시간을 기다리기로 단념해야 한다.
단 선생님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는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선생님을 운동장으로 끌어내는 방법이다.
“오늘 체육시간은 …….”
선생님은 실내 채육을 선언하고 싶어서 가만히 운을 뗀다. 그러나
“축구요!”
합창처럼 한 목소리가 되어 아이들의 요구가 터져 나오고 만다.
이렇게 되면 선생님의 의도는 이미 무산된 거나 다름없다. 여기서 선생님의 의도는 이미 무산된 거나 다름없다. 여기서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위는 대강 정해져 있다.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야구나 텃치볼로 경기의 종목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심판은 사절!”
안경선생님이 선언할 수 있는 유일한 거부권은 또 이것이다.
“심판은 제가 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 대장은 형편을 봐서 슬며시 떠밀어보려고 틈을 엿보았지만 선생님은 이미 벌쭉이 대장의 머리꼭지에서 냉큼 빠져나가고 만다.
선생님이 소속된 편은 내심으로는 퍽 좋아하겠지만 겉으로는 그게 아니다. 아니다. 모를 일이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상대편을 봐주는 것 같지도 않다. 어떤 때는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극성이며 심판에게 항의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자기네 편에 소속되면 아이들은 좋아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선생님을 끌어내는 방법이 있다. 노래 부르기다. 운동경기가 벌쭉이 대장들의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노래 부르기는 얼핏 보아 선생님 혼자 들기는 일 같았다.
우리가 막 6학년으로 진급되어 올라왔을 때 선생님은 음악책에도 없는 노래 몇 곡을 나눠주셨다. 그리고는 가르쳐주시려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거나 틈이 나면 선생님은 혼자 풍금을 타시며 노래를 불렀다. 그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들이 「가을의 그림」「등대지기」「기다리는 마음」「얼굴」「화전놀이」「선구자」등 노래였다.
혼자 부르면서 우리들에겐 따라 부르라거나 배워보라는 말씀이 일채 없었다. 그 일이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또 금방 한 달이 되었다. 벌쭉이 대장네반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선생님이 치시는 노랫가락을 제법 흥얼거리는 것이다. 그제야 안경선생님은 아이들을 노래로 끌어들였다.
“이 노래 배워보겠니?”
“예!”
아이들은 두 말 없이 노래로 빠져든다. 이미 귀에 박히고 몸에 베인 노래라 마음속에 감흥이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맨 처음 배운 노래가「화전놀이」였다. 선생님은 봄철에 부르기 좋은 노래라시면 아이들에게 악보공부와 가사공부를 시켰다.
「진달래 꽃피는 봄이 오면은
나는야 언니 따라 화전놀이 가안다
지인달래 꽃전을 함께 지진다.
달님처럼 동그란 진달래 꽃전은
송화가루 냄새보다 더 구수하고
나는야 어니하고 같이 먹으면
뻐꾸기도 다 알라고 울며 조른다.」
이 노래는 배운 다음 봄 소풍에서 몇 번이고 불렀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선생님은 리코더를 가르쳤다. 이 노래들은 리코더를 부르게 한 것이다. 아이들은 시새워 리코더를 불러댔다. 처음엔 시끄럽다고 정원으로 쫓겨 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학교 뒷산으로 피난하기도 하면서 리코더 연습을 했다. 리코더도 석 달 쯤 지나자 연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쫓겨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기막힌 가락입니다.”
“언제 이렇게 부르게 되었니?”
“어떻게 하면 이런 수준에 오르게 됩니까?”
선생님들은 선생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라운 일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노래 부르기와 리코더 연주는 적어도 벌쭉이 대장 네 반에서만은 이야기 시간과 함께 하루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과시간으로 확정되어 버렸다.
「얼굴」과「선구자」를 배운 후 우리는 「가을의 그림」을 배웠다. 이 노래를 돌림노래로 부르노라면 부르는 우리도 감동하고 만다. 물론 선생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를 하시는데 분위기를 보면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벌쭉이 대장 혼자만 느끼는 문제는 아니었다.
「물감을 꺼내노오코(제 2파트 반복)
가을을 그립니이다.(제 2파트 반복)
(제창) 새하얀 종이 위에 가을을 그립니이다.
티 없이 맑은 별은 은빛으로 그릴까요 저 하늘 저 빛깔은 무슨 파랑 칠할까요」
이 노래는 가을 소풍을 위해서 배웠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리코더로 2중주를 하였는데 벌쭉이 대장 네들은 노래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란 사실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것도 이 노래를 배우면서였다.
이런 순서로 겨울의 노래「등대지기」「기다리는 마음」도 배웠다. 그리고 벌쭉이 대장네반은 그 해 교내 시범수업을 음악(리코더 연주)으로 펼쳐서 전교에 소문이 났다. 이제 벌쭉이 대장네반 어린이들은 어떤 어려운 노래든지 악보만 쥐어주면 단 10분 만에 리코더 연주로부터 시작해서 계명으로 부르기까지 전 과정을 아이들끼리 끝내버린다. 이것을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콩치고 팥치고 다 한다.'
그런데 모를 일이 하나 있었다. 안경선생님의 표정이다. 얼굴에 나타난 그늘 같은 것 벌쭉이 대장은 그것을 선생님의 본래 모습이라고 했다. 다운이는 여자다웁게 평가를 내렸다. 가정을 떠나서 하숙생활을 하시는 선생님의 사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는 외로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봉근이는 선생님이 속병을 앓지나 않은가라는 무식한 발언을 해서 아이들에게 핀잔만 들었다. 철민이는 단순한 그때그때의 기본 문제일거라고 했다.
누구의 말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쭉이 대장네반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음을 확인한 셈이다. 그 정체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여러 가지로 궁리를 거듭했다. 틀림없는 사실은 사실인데 누구나 그렇게 느끼는 선생님의 속마음을 아무도 끄집지는 않는다. 실오라기 같은 끄트머리만 잡힌 데도 우리는 그걸 추척 할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은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늘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단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만 얼굴표정에 그늘이 진다. 다운이 생각이 옳을는지도 몰르겠다. 또 다운이는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가 배운 노래들이 모두 가사나 곡조가 슬픈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벌쭉이 대장이 구체적으로 근거를 대라고 했다. 다운이는 서슴치 않고 근거라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다.
맨 처음 배운 「화전놀이」를 보라. 노래가사에는 별로 슬프달만한 특징은 없다. 그러나 노래 가락은 단조 가락으로 매우 애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건가?”
“그렇다면 다운이 너 한 번 불러봐. 우리가 듣고 판단할 수 있게.”
다운이는 노래 부르는 것만은 거절을 했다. 그러나 모두들 생각은 일치되고 있었다. 슬픈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한결같이 모두 애조 띤 노래들만 모인 셈이 되었다. 자연히 아이들의 관심은 슬픈 가락의 노래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의 무엇인가 슬픈 사연을 지니고 계실 거라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우리는 안경선생님의 신상명세서를 뽑아보았다.
① 연령 : 35세 (만34세)
② 성별 : 남자(아주 남자답다. 봉근이의 주장)
③ 키 : 170cm 내외 (확실치 않음)
④ 몸무게 : 65kg (벌쭉이 대장이 자기 아버지 몸무게로 비교 판정)
⑤ 얼굴형 : 상당한 미남형 (다운이의 의견이 지배적임)
⑥ 가족사항 : 사모님은 역시 국민학교 선생님이고 미인임 (이건 틀림없이 보았다는 유진이 말), 그리고 아들만 둘
⑦ 특기 : 시인 (특히 동시를 잘 씀. 엄마들이 알고 있었음)
⑧ 운동 : 유도 2단 (선생님의 실토. 그 외 운동에는 별로 취미 없음)
⑨ 술 : 소주 3병 정도의 실력 (음식점집 딸 지현이가 말하는 근거).(믿을 만함)
⑩ 담배 : 하루 반 갑 정도 (선생님의 실토. 그러나 끊으려고 노력)
⑪ 18번 : 기다리는 마음 (지난 소풍 때 선생님의 실토)
이상이 아이들이 알아낸 안경선생님의 신상명세서의 전부였다. 이런 정도의 신상명세서를 가지고 선생님의 애조 띤 가락을 추적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다운이는 끝까지 안개처럼 잡히지 않는 그것을 새로운 사실을 밝혀서라도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 일은 성공적이었는데 대개 이렇게 밝혀졌다.
다운이는 언젠가 벌쭉이대장이 구슬치기를 하는 걸 구경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알려진 사실로만 본다면 대장의 구슬치기 솜씨는 굉장한 실력인 모양이다. 대장의 구슬주머니는 늘 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은 대장의 귀신같은 「튀기기」솜씨 때문이란 것도 널리 퍼진 소문이었다. 대장의 적수는 적어도 우리 학교 안에는 없다. 아무도 대장에게 맞붙으려는 아이들이 없는 것이다. 다운이가 본 건 대장과 중학생들의 구슬치기 현장이었다. 대장의 구슬치기는 거의 백발백중이라 한다. 두 걸음 정도의 반경 안에서는 거의 실수가 없다. 그래서 감히 아는 아이들은 덤비지 못하는데 그 날은 마침 중학생들이 도전해왔다. 중학생들과의 게임에서도 대장은 능란한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귀신같은 대장의 솜씨를 겪고 나서는 중학생들도 대장의 실력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 하였다. 마침 그런 상황에서 대장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꼭 쏘아 잡아야 할 상대편의 구슬이 두 발 남직한 거리에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구슬은 주먹만한 돌 뒤에 숨어 있었다. 처음에 대장은 피하려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생각이 바뀌었는지 상대편의 구슬을 확인했다. 구슬은 돌부리 밑에 숨어 있어서 대장의 구슬 위치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대장은 구슬의 위치를 확인하고 제자리에서 엄지손톱 끝에 구슬을 옮겨놓더니 튀길 자세를 잡았다. 잠시 호흡을 멈추는가 했더니 손톱 끝의 구슬이 소리도 없이 날았다. 그러나 그 순간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들은 유리와 유리가 맞부딪히는 투명한 마찰음을 듣고 모두 얼이 빠진 것 같았다. 그 때 그 순간을 다운이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빛이 한 줄기 포물선을 그리면 날아갔다. 그리고 유리와 유리가 부딪히는 선명한 음색을 들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다운이는 대장에게 그 때 일을 설명하라고 졸랐다.
“그냥 느낌 같은 거였어. 구슬을 튀기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분 같은 게 있는데 뭐라고 설명할 순 없을 것 같아.”
대장의 대답에서 만족할만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으나 다운이는 느낌만으로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확신이란 거였다. 믿음, 보이지 않은 돌 뒤에 있더라도 맞혀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다른 아이들은 엄두도 못낼 일을 해내게 된 유일한 설명이었다.
'빛과 선명한 음색'
다운이는 그것을 안경선생님에게서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선생님의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로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다운이는 제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5. 어린이 공화국
세째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외 되자 대장의 집합신호가 떨어졌다. 화장실에 갈 틈도 없었다. 오늘 오후 학교 뒷산 다박솔이 많은 산등성이에 토끼 덫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사전답사가 필요한데 몇 명의 인원이 청소를 빼먹어야 한다. 그래서 청소당번을 재조정하려는 계획이섰다. 거기에다가 화장실 청소를 맡은 봉근이는 할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봉근이의 외출을 도우려는 모임도 곁들여 있었다. 봉근이가 집엘 다녀오지 않으면 동생과 할머니가 굶어야 했다. 봉근이는 할머니와 동생 하나 이렇게 세 식구가 살았는데 덜컥 할머니가 자리에 눕고 만 것이다.
대장은 대강 형편을 설명하고 누구는 어디를, 다른 사람은 무엇을 하며 척척 책임을 맡겼다. 화장실 청소는 철민이에게로 떨어졌다.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맹추야, 선생님이 허락하시겠니? 또 허락하실 마음이 있더라도 학교규칙이 어디 점심시간에 교문 밖엘 나가게 돼 있어?”
“그래도 …….”
“잔소리 말아!”
대장은 이렇게 윽박지르듯 철민이에게 화장실 청소를 떠맡겼다 하기야 봉근이 얘기만 이라면 선생님께 말씀드려도 칭찬받은 이야기지만 산토끼 덫 놓자고 청소를 까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철민이도 밟아보자는 뜻이었는데 미처 토끼 덫까지 생각 못한 것이다. 철민이의 우려한 바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대게 선생님은 청소시간에 순시를 하지 않았다. 안경선생님의 생각은 다른 선생님과 좀 달랐다.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잘못된 점을 어떻게든 꼬집어 내려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는데 안경선생님은 그 반대다. 대개 아이들이 하는 일을 방관하는 자세였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방관으로 보였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대신 책임을 철저하게 다뤘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것도 아이들 스스로 느껴서 반성하는데 그치는 것이었다. 청소구역 배당이 그 좋은 예다.
예를 들어 화장실청소 한 칸이 봉근이에게 돌아갔다면 선생님을 봉근이가 청소를 하든 말든 못본척 하시는 거다. 하루고 이틀이고 1주일이고 아무 말씀 하시지 않는다. 아이들 편에서 자기 스스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임의식을 느낄 때까지 많은 시간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선생님의 독특한 지도 방법이었다. 대개 아이들은 처음 얼씨구나 좋다고 선생님 눈만 피해 놀아버렸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누가 아무 말도 없었는데도 스스로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선생님은 청소시간이면 여학생들의 교실청소를 아이들과 같이 거들거나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사말고 화장실엘 들렀다. 뭐 감독이나 순시랄 것 없이 용무 때문에 들리신게 확실하다. 그랬더라도 철민이의 비를 든 모습이 선생님 눈에 띄지만 않았어도 무사히 넘어갈 일이었다.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겠지만 선생님이 간단한 용무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가려던 찰라 철민이가 비를 들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냥 무심코 지나치려던 선생님이 문득 멈췄다.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태연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 철민이를 보고계시는 것이었다.
“철민이 너 …….”
“화장실 청솝니다.”
철민이는 그 순간을 넘겨보려고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그것도 당당하다는 투로 당당하게 말했다. 그것이 빌미였다. 철민이의 과장된 행동이 선생님의 번쩍이는 그물망에 걸린 것이다.
“언제부터지?”
“오늘부텁니다.”
거짓말을 하다보면 금방 꼬투리가 들어나는 것이 지당한 법.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선생님의 기억력이 쇠퇴되어가는 연세더라도 오늘한 일을 잊었겠는가. 그러나 당돌하게 말해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만 깜박 속아 넘어갈 뻔 했다.
“오늘부터?”
선생님은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그제야 철민이가 안절부절 했다. 청소당번을 배당하는 일을 대개 정해져 있었다. 매월 1일 선생님이 좌석을 바꿔주면서 청소당번까지 교체하였다.
'오늘? 오늘이 며칠인가?'
요즘 나이 먹어가면서 선생님의 기억력은 믿을만한 게 못 되었다. 선생님은 이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청소당번을 또 바꿨나?'
날짜로 봐서도 그렇고 기억에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철민이의 거짓말을 간파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아이들의 계략이나 저희들끼리의 음모를 발견해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내부를 잘 들여다보고 있노라고 큰 소리 치지만 이이들은 아이들대로 선생님의 시야 밖에서 못할 일이 없었다. 그걸 제일 잘 간파하는 것도 안경선생님이다. 다른 선생님들은 결과가 확연히 나타났을 때나 아이들의 행동을 파악할 수 있었다.그러나 안경선생님은 아이들 생각을 앞질러 가고 있었음으로 그런 면에서는 아이들에겐 두려운 선생님으로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17일입니다.”
철민이도 이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있음을 알았다.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선생님은 철민이를 다그쳤다.
“무슨 일이냐?”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말하지 않을 작정이냐?”
철민이는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은 세 번을 그렇게 다그치고는 그냥 교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대장이 있다면 이럴 때 좋은 방법이 튀어나와 철민이의 난처한 입장을 구해줄 수도 있었을 테네 대장은 지금 학교 뒷산 잔솔밭에서 열심히 산토끼 길을 추적하느라 정신없을 것이었다. 모면할 길이 없었다. 철민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교무실로 갔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선생님 곁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제발 선생님이 알아주시길.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해해주시길. 만약 이해 못하신다면 용서라도 ...........'
철민이는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묵묵히 선생님 곁에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녀석, 쉽게 말하진 않을 건 뻔해. 그러나 무엇인가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걸 알아내야겠어!'
선생님은 묵묵히 담배를 피우셨다.
'배신자가 될 수는 없어!'
철민이의 어깨가 점점 내려않았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어물쩡 넘길 일은 아냐. 엉뚱한 짓을 곧잘 하는 녀석들이라 안심할 수가 있나.'
선생님과 철민이의 생각은 애초에 출발에서부터 서로 달랐기 때문에 서로 이해 못하는 폭이 너무 컸다.
대장이 들어오자 철민이가 한 실수는 곧 바로 보고되었다. 대장은 보고를 듣고 상황이 어렵게 되었음을 알았다. 말 못할 고통을 짊어지고 있을 철민이의 모습이 우선 떠올랐다.
아이들의 의견은 구구했다.
봉근이는 저 때문에 생긴 일이니 제가 나서겠다고 한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였다.
석규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자고 했다. 안경선생님의 평소 행동을 봐서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석규의 의견에는 대장의 마음이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대장의 심정이었다. 대장 자신이 음모가 모두 드러나 선생님께 속을 보인다는 일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운이는 그냥 두고 보면, 기다리다보면 어떻게 해결이 저절로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가 기대를 걸고 있었다. 즉 전생님께서 우리들의 계획된 음모 정도는 이미 간파하고 계실 것이니 자연스럽게 용서가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믿고 수수방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철민이는 지금 고통스러운 희생물이 되어 떨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는 사이에 5교시가 시작되고 말았다.
교실은 다른 때보다 훨씬 조용했다. 이것 또한 이상 분위기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있다. 대장이 안절부절 하는 걸 선생님은 간파하고 있었다.
하는 수가 없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기왕 결심한 바에야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대장은 선생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풀죽은 모습이란 마치 용수를 쓴 죄수 같았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네 녀석 아니고는 .......'
“무슨 일인데.”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슨 잘못인데 .........”
대장은 철민이가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된 동기부터 자세한 전말을 모두 실토했다. 봉근이 할머니의 병환과 동생의 점심문제를 특히 강조했다. 봉근이가 집에 가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하는 할머니와 이제 다섯 살 박이 동생이 점심을 굶어야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해명했다. 선생님의 표정을 가끔씩 살피며 좋은 방향으로 일이 풀릴지 아닐지를 점치려고 했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대목에서 선생님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약간 안심이 되었다. 봉근이는 지금 빨래며 밥이며 집안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씀드렸다. 이 추위에서 냇물에 가서 빨래를 해야 하는 봉근이의 처지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두 번째 징후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안경을 벗어 닦으신 것이다. 안경에 수증기가 어려 있다는 무언의 행동인데 이것도 좋은 징조였다.
“그래서 철민이를 시켜 봉근이 화장실 청소를 대신하게 했단 말이지?”
“예.”
구원의 기미가 역력했다.
“그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전에 선생님께 말씀드릴 순 없었니?”
“미처 그 생각을 …….”
'대장 녀석 또 감추는 게 ......'
선생님은 대장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더 이상은 묵비권이다!'
대장은 더 이상 실토할 마음이 없었다. 그 선에서 마무리되길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요 녀석, 선생님을 뭘로 아는 거야. 그러나 더 다그쳐봤자 별로 실토할 기미도 없고 오늘은 이만 다그쳐주지.'
더 다그쳐봐야 시간 낭비란 계산이 섰던 것이다.
'토끼 얘기가 발설되었다가는 먼젓번의 메기처럼 선생님의 불로소득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한데 큰일 날 뻔했다.'
이것으로 매듭이 다 풀린 건 아니었다. 선생님은 대장과 철민이를 같이 용서한다고 아이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더구나 대장의 행동을 칭찬하고 철민이의 희생정신도 높은 값을 쳐주었다. 모두가 본받아야할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철민이의 근본적인 매듭은 영영 풀릴 길이 없었다. 그 근본적인 매듭이란 선생님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이런 상황이 되기 전에 이렇게 일이 풀렸더라면 가슴 아픈 상처는 없었을 텐데, 일의 마무리야 더 할 수 없이 기분 좋게 끝났지만 가슴 한 귀퉁이에 선생님에 대한 작은 불신의 불씨가 남아있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헌법을 위시해서 우리나라에는 많고 많은 법률들이 있다.
학교에도 마찬가지다.
교훈이 있다. 그 밖에 생활수칙이란 것도 있다. 이 생활수칙이란 괴물이 대장을 괴롭힌다. 수칙이란 건 덩치조차 커서 꼭 무슨 고릴라 같다. 무려 77개 항목으로 된 이 수칙을 다 지킬 수 있다면 아마 우등생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도 지키지 못할 걸!'
대장은 이렇게 거의 포기상태다.
1학년 갓 입학 했을 때 대장을 괴롭히던 것 중의 가장 첫손가락을 꼽을만한 것이 「차려!」라는 것이었는데, 이 수칙이란 것은 6년 동안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칠칠이법」
우리들 사이에서 수칙은 칠칠한 녀석이나 꼬박꼬박 지키는 77항목의 헌법이라고 해서 「칠칠이법」으로 불리운다.
수칙이란 걸 내용을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지켜야 할 일들이 자로 재듯 기록되어있다. 대장이 이걸 싫어하는 건 거의 지킬 수 없다는 절망감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이 수칙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수칙을 지켜야 하는지 수칙이 사람을 지켜야 하는지 애매하게 되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칠칠이법」
〈등교하기 전〉
● 아침 일찍 일어난다. (기상시간 기록하게 되어 있음)
● 이부자리는 손수 개고 방 안 청소를 한다. (가정 역할활동 기록하게 되어 있음)
● 간단한 체조를 한다. (허리운동, 등배운동 등 몇 가지 내용 소개됨)
● 세수를 한다. (세수 요령 기록됨)
● 밥을 먹는다. (반찬을 골고루 먹는다. 밥은 30번 씹어 먹는다 등 설명)
● 식사예절을 지킨다. (식사예절 내용 생략)
● 이닦기 (3,3,3법 설명)
●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등교한다. (인사내용 생략)
● 학용품은 미리미리 사둔다. (필수 학용품 내용 첨부)
● 왼쪽 길로 몇 사람씩 모여서 등교한다.
● 웃어른이나 동무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한다. (인사내용 생략)
이것이 우리가 등교하기 전, 그러니깐 눈을 비비고 일어나 학교 교무 앞까지에서 지켜야 할 수칙이다. 다음 영역은 등교해서, 아침자습, 공부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당번활동, 1인1역할 활동, 온종일 학습, 하교해서 해야 할 일들이 그야말로 세밀하게 분석되어 눈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다. 무려 77개 항목으로, 이것을 국어책 앞표지 뒷면에 붙여 놓고 매일 반성을 하게 되어 있다. 대장은 깨알처럼 쓰인 그 글씨만 봐도 머리가 아파진다. 이걸 날마다.
● 잘 지킴(○)
● 보통 (△)
● 못 지킴 (×)
으로 자기반성을 해야 하는데 이 시간이 되면 숫째 짜증부터 나기 시작한다. 안경선생님도 이 수칙에만은 취미가 없으신 모양이다. 인쇄된 수칙을 가지고 어셔서 설명할 때부터 탐탁찮은 표정을 지으셨다. 들리는 바로는 교감선생님의 이 발상을 저지하려고 하신 모양이었다. 상당히 격렬한 발언으로 교감선생님의 수칙 계획을 무산시키려고 하였으나 아군이 한 명도 없었다는 거다. 일단 교감선생님이 내놓은 이런 계획들은 명령적 하당이지 직원회에서 토론을 한다는 건 홍보역학이랄까 요식행위일 뿐이었다. 이런 걸 만들었으니 내용도 잘 주지시켜 아이들이 달 지킴으로서 「착한 어린이」가 되도록 하라는 식이었다. 아무도 선생님들이 동조를 해주지 않으니 혼자서야 무슨 싸움이 되겠는가. 고군분에서는 무수한 상처를 남기고 퇴각했을 뿐이었다.
'착한 어린이 좋아하시네.'
'저 걸 다 지킨다면 그게 어디 어린이인가 하느님이지.'
이렇게 마음속으로 혼자 비꼬기가 고작이었다.
또 있다. 급훈도 있다. 청소시간이면 앵무새처럼 외워야 하는 청소훈도 있다. 매주 새로 주어지는 월훈으로부터 주훈과 노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재장은 이런 일에 거의 무관심이다. 무관심이란 표현보다는 무신경이래야 옳다. 50점짜리 공부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무신경이 대장이 6년 동안 상 한 번 타지 못한 원인이다. 이런 사실을 안경선생님은 잘 알고 있다. 선생님 생각으로는 이번에야 말로 퍽 좋은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청소사건은 대장을 선행아로 추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어쩌면 교감 선에서 비토될 수도 있었다. 교감은 지난 번 직원회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므로 안경선생님의 제안 같은 것을 무조건 비토를 놓으려고 할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게든 붙이면 된다. 선생실적이 모호하다거나 선행내용이 귀감이 괼만한 일로서는 좀 부족하다면 그뿐이다. 더구나 대장이 추천이 되면 교감은 대장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으려 할 것이다. 생활수칙 같은 거 재장의 자기평가로도 거의가 ×표 투성이었으니까.
선생님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런 아이를 선행아로 추천하신단말요? 선생님은 생활수칙 제정을 반대하시더니 이제 실행까지를 방해하시려는 게 아닙니까?”
“그것과는 무관합니다.”
“무관하다고 하시지만 생활수칙은 우리학교 어린이들의 모법생활규범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학교가 어린이들에게 바람직한 생활 방향을 제시하는 귀중한 행동자료란 말입니다. 그런데 잘 지키는 아이들에게 격려는 못할망정 ×표 투성이를 선행아로 추천한다면 자가당착이 아닙니까? 적어도 그 학생의 추천은 곤란합니다.”
안경선생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대장, 너 구슬 있지?”
“예, 많이 있습니다.”
“ 좋아, 이리 가져와.”
대장이 구슬을 한 옹큼 자져오자 선생님은 두 개만 집어 들고 교실 앞뜰로 대장을 데리고 나갔다.
“너, 솜씨 좀 보자.”
“햐, 선생님이 하시게요?”
“그렇다. 왕년의 솜씨를 보여주마.”
'상대가 안 될 텐데요.'
대장이 벌쭉 웃었다.
'넌 결국 상 탈 운도 없는 녀석이야. 결국 상 한 번 타게 해주지 못한 건 이 선생님에게도 책임이 많지. 대장, 미안하다.'
선생님께서 손톱 위에 구슬을 올려놓고 눈을 지그시 감은채로 목표물을 향해 구슬을 튀겼다. 대장은 선생님의 손에서 날아가는 구슬을 한 줄기 빛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지그시 눈을 감고 계셨다.
6. 신비의 세계로
문제는 회식이의 관찰일지에서 발단이 되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등교 첫 날 대장네반 아이들은 방학과제물을 가지고 등교했다. 비닐주머니를 든 아이들도 있었고 다운이처럼 보자기에 묶어온 아이들도 있었다.
대장은 엄마의 성화 때문에 과제물을 골고루 골고루 했다. 탐구생활(하루에 한 쪽씩), 일기(매일), 만들기 2점, 그리기 5점, 글짓기와 독후감 각 3편, 예습과 복습 공책 1권, 기타 수집물과 채집물 약간이었다. 석규는 탐구생활마저도 다하지 못했고, 아예 필수과제인 일기쓰기도 하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다.
'누가 1등에 뽑힐 것인가?'
등교 첫날 아이들의 관심은 여기에 집중되었다.
모두 수준과 실력이 엇비슷했기 때문에 은근히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다만 회식이만 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회식이는 필수과제인 탐구생활과 일기쓰기 외에는 과제가 한 가지도 없었다. 다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은 달랑 「관찰일지」라는 공책 1권을 들고 온 것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회식이가 이런 과젤ㄹ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이 과제물이 선생님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대장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너는 죽었다.”
“고 따위 것을 과제라고 달랑거리며 들고 왔니?”
대장의견에 동조하는 아이들이 덩달아 겁을 주었다. 회식이는 울쌍이었다. 그러나 다운이는 의견이 좀 달랐다.
“누가 이런 걸 계획했니? 나도 진작 좀 알았더라면 좀 좋았을 걸. 나도 이런 재미있는 과제를 했을 텐데.”
하며 부러워했고 오는 겨울방학에는 회식이처럼 과제를 해보겠다고 드러내놓고 동조하였다. 그러나 다운이 의견에 찬동하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철민이만 고개를 끄덕여서 그렇겠다라는 뜻을 표시했다.
의외의 일은 과제물 검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의 상식을 뒤엎고 회식이의 과제물이 1등을 한 것이다. 그림을 잘 그리는 다운이가 한 스케치가 입상권 내에서 벗어나버렸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시일기를 썼었던 철민이의 일기장도 보기 좋게 밀려나버렸다. 더 억울한 건 셔츠상자 두 개에 가득 조갑지를 모아 온 선희나, 고장의 돌이란 게목으로 암석 표본을 제출한 석규도 떨어졌다.
회식이가 1등으로 뽑힌 일을 아이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아주 간단하게 회식이의 관찰일지를 1등으로 뽑아버렸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다. 몇 명의 후보를 놓고 몇 번이고 검토하고 또 다시 보고 하였는데 이번 과제물 심사에서는 너무 쉽고 간단하게 1등이 결정된 것이다.
그날 오후 뽑힌 작품들이 과학전시관에 진열되었다. 회식이의 관찰 일지에는 금종이로 된 금딱지가 붙어 아이들에게 공개되었으나 아무도 눈여겨보는 아이들은 없었다.
“퍽 궁금해 했겠다. 왜 회식이의 관찰일기가 1등으로 뽑혔는지 선생님은 설명하지 않겠다. 너희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까 내용을 살펴보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선생님은 단 한 마디 이렇게 말씀하셨을 뿐이다.
관찰일기는 방학과제에 필수적으로 들어있는 과제는 아니었다. 과제물 시상에 대한 별도의 직원회의가 열렸을 때 선생님은 과제물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모든 선생님들에게 납득시키려고 하셨다고 한다.
“규정에 없는 일은 그 뜻이 아무리 좋아도 시행할 수가 없습니다.
교감선생님이 제일 먼저 이의를 제기했다. 교감선생님은 아직까지도 생활수칙 반대의견을 토로했었던 안경선생님의 행위를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쉬운 과제라면 학급에서 별도로 표창하면 될 거 아닙니까?”
“어떤 특정한 작품이나 아이 때문에 교내 시상규정을 다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번엔 그대로 넘어가고 다음부터는 그런 항목을 넣읍시다.”
“선생님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시상규정을 바꾸지 않은 한 기회균등이란 측면에서도 불공평하며 교육목표에 위배되는 거 아닙니까?”
선생님들의 의견은 각양각색이었는데 회식이에게 불리한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과제물이 과제물다운 과제들의 표본이 아니겠는가?”
안경선생님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저지를 얻으려 하소연도 해보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으나 선생님들의 동토를 얻어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교감선생님의 제동에 역겨운 한계를 느끼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교감선생님의 억지에 동조한 선생님들을 탓해보았자 마음만 더욱 괴로워졌다. 종합된 의견은 이랬다. 목적과 취지는 좋다. 그러나 일반덕인 교육상식에 어긋난다. 마지막으로 교무주임이 시상규정을 읽었다. 교감선생님이 자기 의도대로 희의를 끝내기 위해서 교무주임을 내세웠던 것이다.
“탐구생활, 일기, 독후감, 그림 몇 점, 만들기 몇 점, 의무적 …….”
이러한 기준에 일치되는 과제물 중에서 점수를 매겨 등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찰일기」
1988년 7월 25일, 월요일, 맑음
방학을 하고 나서 하루를 쉬었습니다. 오늘부터 엄마 말씀대로 「많이 놀고 조금씩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우리 엄마는 전에는 그렇지도 않았는데 요새 갑자기 좀 변했습니다. 아니 많이 변했는지도 모르죠. 전에야 두말없이「조금 놀고 많이 공부해야」하는 쪽이었으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왜 이렇게 달라졌느냐고요? 물론 안경선생님 덕택입니다. 우리 학급 엄마들은 방학 사흘 전에 선생님에게 초대를 받았습니다.
학급 어머니회의가 열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엄마들은 학교에 나오는 걸 몹시 거북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나오라 하는 일은 대개 뻔하기 때문입니다. 돈입니다. 학급비품을 사거나 시험비대를 거두거나 하여튼 학교에서 회의소집이란 엄마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달랐습니다. 회의가 역리는 시기도 새 학기 시작할 즈음에 소집을 해야 하는데도 한 학기를 마칠 때니까 거꾸로 된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
대장은 회의가 끝나고 엄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쭤보았다.
“좋은 말씀만 하시더구나.”
“그게 뭔데?”
“너희들 공부에 대한 거.”
“뻔하구만.”
“아냐, 너희 선생님은 좀 유별난 분인 것 같더라.”
대장은 그 말을 대번에 수긍했다. 저이들을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터이었으니까.
“엄만 돈 내라는 회읜 줄 알고 좀 못마땅했겠지?”
“그 말이 맞다. 선생님께는 미안하게 됐다.”
선생님은 엄마들을 모아놓고 방학동안 해야 할 공부와 생활 모두를 자상하게 설명하셨다 한다. 이제껏 선생님과 같이 생활하다가 가정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못미더워서 엄마들에게 공부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람직한 방학생활이 되도록 아이들을 돌보아주시라는 부탁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많이 놀리고 조금씩 공부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점적으로 말씀하신 것 가운데 회식이의 관찰일기 같은 공부감이 강조되었다.
“엄마는 네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복을 타고 난거야.”
엄마는 단번에 선생님에게 반한 모양이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엄마의 다른 모습이었다.
1988년 7월 26일, 화요일, 맑음
아침부터 날씨가 무덥습니다. 오늘도 더위가 푹푹 삶을 것 같습니다.
과제 계획을 마쳤습니다. 엄마에게 관찰계획 말씀드리고 조언을 부탁드렸더니 표와 그래프를 곁들리거나 그림을 그녀 넣는 것도 생각해보라 하시면서
“네 계획대로 꾸준히만 하렴.”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회식이가 관찰 공부를 한 내용이다.
1988년 8월 22일, 토요일, 맑음
<달의 변화 관찰>
오늘은 음력으로 7월 15일입니다. 달이 늦게 떴습니다. 밥 9시쯤에 봇재 위로 달이 성큼 올라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한 달 동안 달의 모습을 관찰해왔기 때문에 보름달의 관찰은 두 번째입니다. 달의 움직임과 모양 변화는 음력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아주 정확합니다. 「달의 운동과 주기」라는 책을 보았는데 달의 움직임은 계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바다의 밀물과 썰물 관계는 달의 움직임이 아니고는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달력은 대개 태양력인데 태양력은 해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음력은 많이 사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본래의 태음태양력이라고 했고 농경사회나 어업사회였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가장 적합한 달력이란 것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지금도 음력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회식이의 일기에서 달의 관찰내용을 종합해보면 달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회식이는 새삼스럽게 자연의 신비를 발견한 것 같았다.
'밤하늘의 아름다움이란!'
'회식이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빌려오면 ......'
관찰하면 할수록 무한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회식이는 「신비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배운 달의 변화를 실제로 확인해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관찰하는 동안에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저녁을 먹고 평상에 들어 누워서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맨 처음 받는 감동은 하늘에 저렇게 많은 별들이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움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막연한 생각이 구체화된 것이다.
크고 작은 별들, 파란 불, 주황색, 노랑색으로 반짝이는 그 수많은 등불, 은하수, 달무리의 아름다움, 몇 시간이고 별들을 보노라면 몸이 하늘로 둥둥 떠오르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로 별들이 가까이 몸이 떠 있는 것처럼 별이 바로 눈앞에 보이기도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믿기 어려웠으나 회식이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이렇게 한달이 계속되는 동안 회식이는 별들과 말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정말 가능하다면 우주로 올라가 별들과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마 그래서 우주비행사나 과학자들이 목숨을 건 모험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대장도 생각해 보았다.
밤하늘에는 꿈이 있다고 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비행기가 지나가고, 구름이 흐르고, 더구나 석양노을에 물든 하늘에서 별이 하나 둘 살아날 때는 그 아름다움은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신비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좀 허황된 이야기로도 들렸다. 별과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나 별들 가까이 가서 눈앞에서 별을 보았다거나 하는 일들은 회식이의 상상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단정을 지으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정말 좋은 일이란 자연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지니는 일이라고 하셨다.
회식이가 나누었다는 별들과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나무나 새들, 그리고 많은 곤충들, 꽃, 심지어는 돌이나 무생물들, 냇가에 가면 물고기들과 대화를 하고. 산에 가면 숲과의 대화, 우리는 지금 이런 일을 잃어가고 있는데 회식이의 관찰은 이런 면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럼, 선생님은 꽃이나 새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벌쭉이대장이었다.
선생임은 한참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가 대장의 갑작스런 질문으로 분위이기가 깨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으나 대답만은 이렇게 하셨다.
“선생님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나이를 먹는 것과 관계가 깊지.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지식이나 학문처럼 좋은 걸 많이 쌓아가기도 하지만 더 좋은 순수한 마음을 모두 잃어버렸지 때문이야. 그러나 너희들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거야. 그 산 증인이 있지 않은가. 회식이 말이다. 너희들은 하려고만 한다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도 할 수 없는 걸 우리가 할 수 있다니?'
“회식이가 관찰한 별과 달에서 너희들은 어른들이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회식이의 관찰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 일기 중의 어느 날 회식이는 잔뜩 흐린 날이 있었다고 했잖았느냐? 이미 별들과 대화를 나누기랑 어려웠을 테니까. 그러나 회식이는 그 방법을 발견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아무리 보고 있어도 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눈을 감고 보면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대개 모든 사물을 눈을 끄고 보려고만 한다. 더구나 자세히 본답시고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이다. 물론 현미경적 관찰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말 자연과 만나려면 눈을 감고 보는 법도 배워야 한다. 회식이의 가장 값진 발견이 이것에 있다. 자연과 대화를 통해서 눈을 감고 보는 방법을 발견해낸 일이다. 선생님도 깜짝 놀란 훌륭한 발견이다.”
'눈을 감고 보면 더 잘 보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과 대화 어쩌고 하는 것은 그래도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었는데 「눈 감고 보기」에서는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대장의 이 곤혹스러운 표정이 선생님의 눈에 뜨였다.
'녀석, 오리무중이로군.'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을 띄워주려고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명상자세」를 갖도록 지시했다.
명상자세란, 우리 학급이 매일 아침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공부(선생님의 말씀인데 도무지 지금까지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의 하나였다. 내용은 이렇다.
“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허리를 곧게 펴고 두 주먹을 무릎에 놓는다. 양 발 끝을 모으고 앞을 똑바로 보며 두 눈을 뜰락말락하게 감는다. 입을 다물고 호흡을 조용히 하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명상자세다. 자, 이제 '눈감고 보기'를 보여주마. 명상자세가 되었지? 이제 텅 빈 머리 속에 자기 집의 모습을 떠올려라. 잘 안되면 마을 입구나 골목길부터 시작해도 좋다. 안방, 마루, 건넌방, 장독대, 부엌, 광 할 수 있는 대로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떠올려라. 그런 다음 아빠나 엄마가 평소에 집안에서 활동하시는 모습도 생각하고 지금쯤 동생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도 생각해봐라. 어때? 집이 훤하게 보이지 않느냐?'
선생님은 아이들의 표정을 보고 눈 감고 보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낱낱이 확인할 수 있었다.
대장은 보았다. 눈 감고 집의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아빠와 엄마가 일을 하고 계시는 모습도 보여다. 동생 윤희가 바둑이와 장난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눈 감고 보기란 바로 이런 것이었건가?
대장은 또 벌쭉 웃고 있었다.
7. 꼴찌 응원단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철민이가 전학을 가버렸다. 갑자기 아빠가 발령이 나서 전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대장은 철민이의 전학을 착잡한 기분으로 맞았다. 이런 기분은 표현하기 곤란하고 좀 어색한 것인데 전에는 이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시원섭섭하다’
대장은 철민이의 전학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대장의 기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한다고 해도 개운치 않은 무엇인가가 남아는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꼭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어색했다. 이렇게 표현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
철민이는 대장과 우선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반대되는 성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철민이는 대장의 걸림돌이었다. 대장의 기분은 철민이로 인해 언짢은 일이 더러 있었다. 간접적인 피해라고 할까.
“철민이를 좀 봐라!”
“철민이 본 좀 받아라!”
엄마는 대장을 훈계할 일이 있을 때는 의례껏 철민이를 내세웠다. 엄마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집에서는 엄마들이 철민이의 귀감을 요청했다. 타이를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서나 철민이 얘기가 나온다. 이것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경선생님은 터놓고 ‘철민이 본을 받아라던지, 철민이 행동을 따르라’고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나 간접적인 피해는 마을에서 보다 더컸다.
철민이는 우리 학교의 마스코트였다. 학생들의 귀감이었다. 모범 어린이였고 표본적인 어린이 상이었다. 1학년 때부터 내리 우등상을 독차지한 건 물론이고 선행상, 모범어린이상, 심지어는 개근상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철민이가 대장네패들 앞에서 우쭐거리거나 잰척 한 일은 없었다. 물론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상을 받으러 나가는 철민이의 모습은 우리에게 주눅을 들게 했지만 억지로 으스댄 적은 없었다. 선의의 피해의식이었을까. 하여튼 철민이는 우리에게 특히 대장에게는 긍정적 친구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뭐 영원한 맞수라거나 대결의식은 없었다. 공부 외의 다른 일로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장의 철민이에 대한 감정은 좀 엉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대장 혼자 생각이고 철민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지 도 모른다. 철민이에 대한 증오? 아니 증오라기에는 너무 과장된 표현이고 미움? 그렇다 미움 정도여야 한다. 이 미움은 철민이에게서 비롯된 것이지만 철민이 자신의 책임이랄 수 없는 좀 미묘한 문제였다. 그러나 대장의 가슴 속에 철민이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숨어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또 하나 대장이 철민이를 싫어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다운이 문제다. 다운이는 철민이네와 같이 관사에서 산다. 관사 동네는 학교 뒤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모두 다섯 집이다. 같은 관사에서 사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철민이와 다운이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만은 물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철민이야 말로 어른들이 좋아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서 어디서나 환영을 받는다.
학교만 끝나면 철민이와 다운이는 늘 함께 있다. 관사촌이 마을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어울려 놀 아이들이 없을 뿐 아니라 마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놀러간다는 일도 퍽 어렵다. 매일 같은 집에서 같이 살다시피 한 두 아이들이 가깝게 사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눈만 비비고 나면 한 식구나 다름없이 어울려 지내기 때문이다. 숙제를 같이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밥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잘 때도 있다. 한 식구나 다름없는 처지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런 사이가 가깝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대장에게 이런 게 매우 못마땅한 일의 하나다. 대장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두 말 없이 철민이와 다운이를 갈라놓았겠지만 제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권 밖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대장은 은근히 다운이를 돌보아주고 있었다. 때로는 그것이 드러나 버려서 서로 민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되도록 모든 일을 다운이편에 서서 다운이가 유리하도록 해주었다.
예를 들면 아이들과 서로 어울려 놀이를 하게 되었을 때 어물쩡 아이들이 눈치 채지 않게 다운이를 자기편으로 끌어넣는 것 같은 일들이다. 물론 다운이도 그걸 바라고 있다. 놀이에서야 대장을 당할 사람이 없으므로 누구나 대장편이 되길 원한다. 다운이도 그 중의 하나다 만약 대장이 미처 손을 쓰지 못해 곤란할 때가 생기면 다운이는 스스로 대장네편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런 걸 보아서 대장은 다운이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의 경우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 그런 때 다운이의 눈에 철민이 따위는 도무지 안중에도 없다. 다운이 제가 어디에 속해 있는 거가 문제가 아니라 대장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런 일에서 대장은 다운이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다운이가 제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아 대장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대번에 다운이는 토라지거나 경기 전체를 거부해 버렸다. 그래서 아이들은 의례껏 다운이가 대장 네 편이라는 사실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그래도 대장 마음에서 끊임없이 다운이와 철민이의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경계심이랄까 또는 질투심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계심을 자극하는 쇼킹한 사건이 있었다.
상당히 오래 전 일인데 대장이 마침 숙제의 내용을 잊어버려서 철민이네집으로 확인하러 간 적이 있었다. 철민이는 다운이와 함께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숙제를 하다가 대장을 맞았는데 그 꼴이란. 철민이는 내복 차림이었었다. 내복 차림의 철민이가 이불 속에서 나오는 걸 본 순간 대장은 당황했다. 어색하고 곤란해서 얼굴이 다 붉어졌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철이 덜 들어서였을 거라고 나중에야 차분히 분석할 수 있었지만 그 때의 심정은 매우 착잡하기만 한 것이었다.
이 일이 있는 다음 대장의 철민이 미움에는 더 거센 불이 붙었다. 물론 미움이라 해봐야 놀이 같은 것에서 대장이 줄 수 있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 정도였고 또 그 미움이 항상 일어서 있는 건 아니다. 어쩌다 마음이 맞부딪히거나 감정이 건드려지면 이런 심정이 날카롭게 일어섰고 그 때마다 철민이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철민이의 전학을 눈앞에 맞고 보니 착잡한 기분이었다. 시원섭섭이라고 표현했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하여튼 묘한 기분으로 대장은 철민이를 보냈다. 철민이도 무척 떠나기 싫은 눈치였다. 아주 철부지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철부지만은 아닌 면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철민이는 대장의 속내를 다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대장의 속셈을 알고도 모르는 척 했을 가능성도 있다. 경위야 어떻든 철민이의 전학이 대장에게 고민 한 가지를 해결해주는 계기는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죄 받을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철민이가 전학을 간 다음 다운이의 표정은 우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운이는 곧 아이들과 어울려 우울함을 쉽게 극복해나가는 것 같이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더구나 가을 운동회 계획은 다운이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운동회 계획이 우리 모두를 흥분시킨 것은 운동회 그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겠지만 우리에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에게 운동회는 국민학교 생활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상급학교 체육회란 도저히 운동회 기분을 낼 수 없는 행사 아니던가. 운동회라는 말만 들어도 흥분했을 우리에게 마지막 운동회라는 극적인 기분까지 곁들어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모두 흥분했다. 물론 우리만 흥분한 게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선생님들도 그랬다. 아이들처럼 환성을 지르고 깡충깡충 뛰지는 않았지만 안경선생님의 표정에서도 가벼운 흥분기를 느낀 정도는 되었다. 대장은 곧 엄마에게 운동회계획을 알렸다.
“좀 좋겠구나, 또 놀 일이 생겨서.”
엄마의 대답은 이렇게 시큰둥한 것이었다.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대장은 엄마 속을 잘 안다. 설마 아이들과 선생님마저 흥분한 운동회 계획이 엄마를 그렇게 냉담하게 만들었을 리가 없다. 속으로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겉으로 냉담한 척했을 것이 분명하다.
곧 아이들은 모두 운동회 기분으로 빠져 들었다. 청백으로 편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서 행진 연습, 체조 연습, 무용과 덤브링 그리고 마스게임들이 요란스럽게 펼쳐졌다. 더구나 오후만 되면 스피커에선 음악이 쾅쾅 울려나오고 그 넓은 운동장이 비좁아 자리 쟁탈전도 벌어진다. 운동장 가운데에서 고학년 여학생들의 무용이 한창일 때 운동장 밖 트랙에선 1학년이 달리기를 하는가 하면, 손바닥만한 배구 코트에서는 3학년의 단체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호루라기소리, 고함소리, 스피커의 음악, 아이들의 응원으로 가득 들어찬 운동장에는 책상 하나 들이밀 여유도 공간도 없었다. 운동회는 학교를 살아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죽은 학교라곤 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렇게 활기차고 싱싱한 학교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장의 느낌만으로 이런 소릴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대장은 자기가 꾸준히 자라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떤 계기로 불쑥불쑥 자란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대장의 눈에 학교는 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점심시간 외에 운동장은 텅텅 비기 일쑤다. 아이들이 나와 놀 틈이 없는 것이다.
수업시간 이야길 전에도 하였지만 공부 40분, 쉬는 시간 10분, 이런 시간 배당에서 쉬는 시간이란 화장실 출입이 고작이다. 놀고 싶어도 놀 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장은 늘 비어 있었다. 거대한 학교 건물에서 대장이 느끼는 기분도 역시 같은 것이었다. 국민학교 또래의 아이들이란 얼마나 싱싱하고 활기찬 것인가? 아이들이란 말만 들어도 그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일단 그 싱싱한 아이들이 학교 교문에 들어만 서면 생기를 잃고 만다. 마치 잘 길들여 놓은 애완동물처럼 아이들은 양같이 순해지고 만다. 모를 일이다. 대장의 생각으로는 학교라는 곳이 아이들의 기를 죽이는 공장 같은 것으로 생각되는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운동회 계획이 발표되고부터는 학교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펄펄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장네반 경기는 모두 세 개였다. 맨손 달리기와 장애물 달리기, 그리고 단체경기인 인공위성 발사. 운동장 사용이 엄격히 통제되기 시작했다. 운동회 일 주일을 앞두고는 오전부터 연습으로 돌진하는 반이나 종목도 많아졌다. 그래서 운동장을 쪼개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까지 쪼개서 쓰려는 것이다. 운동회를 사흘 앞두고 장애물 경기 연습을 했다. 대개 트랙경기는 서툰 저학년들에게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기 때문에 고학년들은 고작 한두 번의 연습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어떤 실수가 있을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연습은 필요한 것이다. 대장 네 장애물 경기는 운동장 트랙을 한 바퀴 돌면서 장애물을 통과하는 경기였다. 처음 장애물은 허들이다. 허들은 뛰어 넘어야 한다. 다음 장애물이 사다리뀌기였다. 사다리의 작은 구멍을 빠져나가야한다. 마지막 장애물은 그물 밑을 동과하는 가장 어려운 코스였다. 그물이란 새끼로 그물처럼 엮은 네모진 멍석 같은 것인데 이 걸 네 귀에서 힘센 어른들이 땅바닥에 착 붙여 누르고 있다. 아이들은 땅에 밀착된 그물을 들어올리고 빠져나가야 한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경기였다. 그냥 달리기만 하면 대장은 따 놓은 당상이었으나 장애물 경기에서만은 좀 달랐다. 그러나 결코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는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운동서만은 대장을 넘볼 아이들은 없다. 처음 예행연습을 하는 날인데 대장은 몸이 풀리질 않았다. 영 찌뿌듯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 이런 날은 마음조차 우울해져버린다. 그래서 장애물경기를 일단 포기했다. 허들까지는 그런대로 달려 넘었으나 사다리뀌기부터는 포기하다시피 하여버렸다. 대장이 시들해지자 곁에서 달리던 아이들이 앞서기 시작했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첫째가 봉근이였다. 대장은 4등으로 쳐졌다. 지금 대장의 4등 자리는 언제나 성호 차지였었다. 정상적인 달리기였더라면 대장, 봉근이,석규, 성호 순서여야 옳았다. 성호가 입상권에 든다는 것 큰 이변이 없는 한 어려운 일이다. 또 감히3등 자리를 넘볼 수도 없었다. 대장은 단순히 제 기분 때문에 달리기를 포기한거였는 데 성호는 그게 아니었다. 일이 묘한 방향으로 진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성호가 직접 대장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다운이를 통해 대장은 장애물경기 후문을 들었다.
“대장, 너 어디 아프니?”
“아아니, 왜?”
“아프잖으면 …….”
다운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은 정말 대장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운이가 본래 예쁘기도 생겼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매력은 얼굴의 매력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대장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표정이 다운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짓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대장은 낯이 붉어짐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열이 있나보구나. 너, 정말 괜찮아?”
“열 없대두.”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이 다운이가 대장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이럴 땐 또 대장은 난처하다. 빤히 쳐다보는 다운이의 크고 검은 눈망울을 마주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장애물 경기에서 졌다며?”
“아하, 그거. 그건 그냥 달리고 싶지 않아서였어.”
“그래서 몸이 아픈 가고 묻는 거야.”
“그건 몸이 아픈 것관 상관이 없어. 그냥 기분이 내키지 않았을 뿐야.”
“성호는 그렇잖은가봐.”
“성호? 뭘?”
“성혼 맨날 4등이었잖아.”
“그래서?”
“맨날 4등만 하다가 3등을 한 기분 넌 모를 거야.”
'그런 것도 있는 건가?'
“알만해.”
“그 일로 성호는 기가 펄펄 살았어.”
“단순히 그 일로?”
“그렇다니까 그러네.”
“기 좀 살리라지 뭐.”
금방 다운이는 앵토라진 표정으로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이 표정 또한 대장이 좋아하는 다운이의 모습이었다. 단순히 토라진 모습만이더라도 그 귀여운 표정은 누구에게나 환심을 살만 하였는데 하물며 대장 자기를 위한 일에 그 표정을 지었을 때 기분이란 말로 형언키 어려운 일이다.
“성호 녀석, 좀 우스운 애로구나.”
“그렇잖아. 네가 성호 처지가 되었다면 너도 그랬을 거야.”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할만해.”
다운이는 대장이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맨날 1등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꼴지만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늘 상을 타는 사람하고 모처럼 입상권에 든 사람하고는 기쁨이나 자랑도 정도가 차이 나는 것일 테니까. 3등과4등 차이란 단순한 차이는 아니지 않는가? 3등은 어디에서나 입상권이다. 1등,2등은 아니더라도 3등도 자랑스러운 상을 타는 등위이다. 그러나 이 4등이란 3등 4등의 등위에서 보면 하찮은 차이가 분명 하지만 입상권과 밖이라는 차이에서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간발의 차이인 3등은 영광스러운 시상대에 오를 수 있으나 정말 작은 차이인 4등은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영광과 명예는 이렇게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에서 성호의 기분을 이해할만 하다.
“너, 운동회 날에도 양보할 건 아니잖아."
“글쎄,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문제가 좀 심각하다."
“성호가 맨손 달리기에서 상을 탄다는 생각에는 스스로 어림없는 일이라고 포기했을 테지만 장애물 경기는 다르다고 판단하고 있어.”
“…….”
“장애물 경기는 달리기 그 자체만으로 안 된다는 거지.”
“…….”
“뽐내고 있는 거야. 넌 무시당하고 있어. 장애물 경기는 잘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에 따라 재치로 풀어나가야 한다면서.”
“맞는 말이다.”
“너 정말 포기할 생각이니?”
“글쎄, 좀 생각해볼 문제다.”
“성호가 저리 뽐내는데도? 아이, 약 올라.”
대장은 벌쭉 웃고 있다.
“남은 약 올라 죽겠는데.”
다운이는 정말 화난 표정이다. 그 점이 대장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것이다. 대장은 다운이의 조바심에는 아랑곳없이 엉뚱한 제의를 했다.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무슨 약속?”
“그냥 약속.”
“그냥 약속이란 게 뭐야.”
“그래도 뭔가 말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
“말로 할 수 없는 거.”
“뭐 그런 게 다 있대?”
“그래도 있는 걸.”
“난 모르겠다.”
“몰라도 그냥 약속만 하면 되는 거야.”
다운이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는 눈치다.
“그런건 싫다. 난.”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은 싫지 않다는 쪽임을 환히 나타내고 있다. 대장이 다운이 앞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금방 다운이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망설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장이 잽싸게 다운이의 새끼손가락을 잡고 제 손가락을 걸었다.
“난 몰라. 억지로 손가락을 거는 법도 있는 거니? 이건 약속이 아냐. 강제로 한 약속은 무효야.”
다운이는 이렇게 쏘아붙이고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을 감싸 쥐고 달아나버렸다. 대장은 다운이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벌쭉벌쭉 웃고 있었다.
8. 가을 소풍
“땅벌이다. 엎드려!”
제일 먼저 외친 것은 대장이었다. 그 외침을 듣고도 아이들은 놀라고 겁나서 우왕좌왕 하였는데 그런 아이들은 예외 없이 벌에 쏘였다.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또 피할 수 있었다. 봉근이, 석규, 성호, 회식이 이런 아이들은 벌집을 건드려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이라 좀체 쏘일 리 없다. 애꿎은 여학생들과 어쩔 줄 몰라 달아나거나 엉거주춤 섰다가 벌이 몸에 붙자 털어버리려고 손을 댄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벌침을 맞았다.
벌은 자기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쏘지 않는다. 콧등에 벌이 앉았다 해도 죽은 것처럼 숨만 죽이고 있으면 된다. 벌은 침이 하나뿐이고 그건 일생에 한 번 자기를 방어하는 수단이지만 그 단 한 번의 공격은 벌에게는 죽음을 뜻한다. 침을 쏘고 나면 벌은 죽기 때문이다. 아무리 벌 같은 곤충일망정 생명과 맞바꾸는 일을 함부로야 하겠는가. 그 습성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결코 벌에 쏘이지 않는다.
벌떼의 공격으로 가을 소풍은 끝장이 났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끝난 뒤라서 선생님들은 그냥 하산하기로 결정했는가 보다. 30여 명이 벌에 쏘인 상황에서는 하산할 수밖에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평이 컸다. 벌에 쏘인 정도야 아이들은 가끔 겪는 일이고 그것은 그리 큰일이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걸 겁나는 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어른들이란 면도칼로 연필을 깍아대는 것조차 지레 막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만 좀 놀다 가면 안 됩니까?”
“안 돼!”
'될 법이나 한 소린가.'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가을 산은 마침 반짝이는 햇빛을 받아 빛나기 시작하고 바람조차 살갗에 닿는 감촉이 무척 부드럽다. 들국화들이 다투어 피고 단풍물이 들기 시작한 활엽수들이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
“밤 새 한 잠도 자지 않는 거요?”
“언제 잠 잘 새가 있나요. 빨리빨리 색동옷으로 갈아입어야 쫓기지 않지요. 들국화랑 저렇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저 아랫마을도 보세요. 감도 익기 시작했잖아요. 벼는 또 어떻고요. 우리가 늑장을 부리면 겨울님이랑 눈님, 얼음님들이 매섭게 화를 낼 거예요.”
산에서 제일 부지런한 개옻나무와 개옻나무를 타고 올라가다가 주춤거리고 있는 밥칡넝굴이 소곤거리고 있다.
“그렇긴 한데 서리님이 오시지 않아서 난 아직 물감을 사지 못했어요.”
“지난번 서리님이 외치고 지나가신 걸 듣지 못했나 보군요.”
“예. 늦잠을 자서 그만.”
“또 곧 오실 테지만, 우리가 좀 나눠 줘도 좋은데.”
“아뇨. 우린 늦더라도 서리님한테 색깔을 골라야 해요. 개옻님은 화려한 걸 좋아시지만.”
“밥칡님은 너무 칙칙한 색깔만 고르시는 것 샅던데. 이번엔 우리가 좀 도와드릴 수도 있는데요.”
“우리 집 애기 아빠가 워낙 수수한 색깔을 좋아해서 생전 색동옷 한 벌 못해 입어요. 호호호.”
밥칡넝굴은 개옻나무의 화려한 색상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한 집에 어울려 살면서도 이렇게 가풍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개옻나무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고 비웃음으로 들려서 금세 뾰루퉁해졌다.
“우린 야한 색깔만 좋아한다는 말씀같이 들리는만요.”
“저런, 오해하셨군요. 설마, 서로 의지하고 사는 처지에 .........”
밥칡넝굴은 개옻나무를 건드리지 않으려 비위를 맞추었다. 지금도 개옻나무에 얹혀사는 주제에 개옻나무의 비위를 건드렸다간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밥칡넝굴은 거칠어진 손으로 화려한 고리 깃을 잡았다.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 주인이 너무 고지식하단 말을, 고깝게 생각진 마세요.”
“개옻나무는 진홍색과 진황색 저고리 앞섶을 여미며 금방 노여움이 풀려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저 아이들이 왜 저러죠?”
“글쎄요.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해마다 저 녀석들 기다리는 재미도 상당한 즐거움이었는데.”
“얼마나 귀여워요. 더구나 녀석들이 아줌마 칭찬을 얼마나 했기에.”
“칭찬 듣는다고 대술까만.”
“개옻나무는 금세 우쭐해지고 있었다.”
“세상에 칭찬 싫어할 사람도 있나요?”
“그래도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보다야 우리처럼 속을 확 들어 내놓는 게 얼마나 편한데요.”
“그 개옻나무님의 겉을 보면 모두를 속이 불붙는 줄 알겠어요.”
“그런데 이상도 하지. 저 아이들 우릴 보면 정말 아릅답다면서도 도무지 가까이 오려하질 않으니.”
“그야, 너무 예쁘면 그런 거 아녀요?”
“우리가 저희들 해칠 나무인줄 아나본데. 그게 정말 서운해요.”
“모르고 한 짓인데요 뭘.”
개옻나무와 밥칡넝굴이 하산할 준비를 하는 대장네 소풍을 이상스럽게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아줌마, 아줌마!”
땅벌 한 마리가 날아오며 숨 가쁘게 소리쳤다.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우리가 쫓아버렸어. 어찌나 시끄럽고 감푸게 놀아서 온 산이 망가질 것 같아.”
“뭐, 너희들이 쫓았다구?”
“그래요. 저 아이들이 놀다간 곳에는 늘 상처투성이예요.”
“하긴 그런 건 안다만. 그래도 …….”
개옻나무는 한껏 뽐내려던 일이 물거품이 된 것이 무척 안타까웠다. 예쁘게 차려 입고 이 산중에 앉아 있어 봐야 산중 거문고 신세다. 기껏해야 재잘거리는 솔새들이나 벌들 조무래기들한테 자랑해봐야 촉새들뿐이다. 개옻나무는 하산하는 아이들을 보며 무겁게 한숨을 지었다. 아이들도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선생님들은 골이 난 듯 표정이 굳어 한 마디도 말을 붙여 볼 길이 없다.
대장은 하늘을 보았다. 해는 아직 머리 위에 꼿꼿이 서 있다. 한눈도 깜박이지 않고 있다. 지금은 도저히 집에 돌아갈 시간이 아닌 것이다. 산을 내려와서 첫 동네 장동에서 빠져야겠다. 장동 아이들이 모였을 때 대장들도 나갔다. 핑계는 회식이네 집에서 놀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회식이냐고 물었다. 회식이는 녹음처럼 그렇다고 반복했다. 아이들의 긴 행렬이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대장네패들은 산으로 치달았다.
실망이 컸던 개옻나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이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속삭이는 걸 엿듣고 있었다. 바람은 이집 저집, 이런 소식 저런 말을 나눠주고 있었다.
뉘 집 바둑이는 새끼를 몇 마리 낳았느니, 아랫마을 저수지에서 거위와 오리들이 영토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져 아직 해결이 안 된 이야기부터 앞산 다박솔 밑 굴속에 산토끼 ,새 부부가 어제부터 신접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까지 다 하고 다녔다.
가만히 산 속에 앉아서도 마을 일을 불을 보듯 알 수 있는 건 바람 덕택이었다. 개옻나무는 반쯤 졸면서 바람이 살랑살랑 대문을 기웃거리며 이야길 하는 걸 듣고 있었다. 밥칡넝굴도 눈을 감고 살포시 잠이 들었다.
바로 그 때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아! 하는 함성이었다. 개옻나무는 콩콩거리며 발뿌리 끝 땅이 아주 희미하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깡충 깡충 뛰면서 다시 산으로 치닫고 있었다. 개옻나무가 밥칡넝굴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웬일이유?"
"저 것 좀 보라니까."
밥칡넝굴은 달콤한 낮잠에서 부시시 일어나 개옻나무가 손가락질하는 곳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녀석들이 다시 올 줄은 ........"
개옻나무는 감격해서 눈시울이 다 붉어졌다. 그리고 발뿌리 밑을 톡톡 털어내고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색동저고리 앞섶을 햇빛으로 반짝반짝 닦아냈다.
한편으로 밥칡넝굴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소리를 죽여서 산 속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밥칡넝굴의 손발이 닿는 근처 지역에는 곧 비상이 걸렸다.
먼저 냇가의 가재들이 돌 틈으로 숨었다. 산새들은 높은 가지로 올라가서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내려뜨고, 싸리나무와 정금나무들은 색동옷을 입혀 나들이 보낸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머루랑 다래들도 엄마 치마폭 뒤에 모두 숨었다. 모두 숨을 죽였다. 오직 개옻나무만 멀리서보아도 타는 듯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장네패들은 맨 먼저 개울로 달려들었다. 닥치는 대로 돌멩이를 들췄다.
"야, 이놈들 봐라. 모두 숨었어!"
"이상타, 한 마리도 없는데 .........."
"누가 우리 먼저 더텄을까?"
"가망 턱도 없는 소리. 한창 농사철에 누가 가잴 잡으러 여기까지 온대?"
"그럼, 왜 한 마리도 보이잖지?"
"계속 들춰내 봐. 놈들 숨어봤자지."
가재들은 밥칡넝굴의 전갈로 미리 돌틈 사이나 굴속으로 몸을 감췄다. 멀리서 나들이를 온 축들은 모래 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모래 속에 몸을 감추고 있을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히고 몸이 근질거렸다. 곧 재채기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본래 성질이 매우 급해 한 자리에 오래 붙어 있지 못하는 성미들은 위급해진 상황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최초의 한 마리가 킁! 하고 기침을 했다. 촐랭이였다. 촐랭이가 두 눈을 깜박거리며 모래 속에서 튀어나오자 곧 여기저기서 가재들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몰려나와 버렸다.
"여깃다아!"
탄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비명과 아우성이 뒤섞였다. 아비규환의 수라장이었다.
"저렇다니까. 참을성이라곤 ........."
밥칡넝굴은 손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차마 눈뜨곤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야! 이 놈 봐라!"
대장은 작은 새끼 가재 한 마리가 돌틈이랄 것도 없는 빤히 보이는 곳으로 발발기며 숨으려는 것을 보며 가재들에게 말을 걸었다. 호주머니에 불룩하게 가재를 잡아넣고 뛰어나가지 못하도록 호주머니 입을 한 손으로 누르고서 말이다.
"아이, 답답해!"
참지 못하고 최초에 튀어나간 촐랭이 녀석이 또 안달하기 시작했다.
"좀 얌전히 있어. 너 때문에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된 줄도 몰라!"
"남의 신세까지 망치고 들었어."
"여기저기서 질책이 날아왔다.
"나도 고자질하고 싶진 않았어."
"그건 우리도 알아. 그러나 결과를 봐. 비참하게 되지 않았니?"
"꼭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촐랭이가 소리도 못내고 눈물을 삼켰다. 그러나 아무도 동정하는 기색은 없었다. 특히 오(o)형 기질을 지녀서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촐랭이 방정을 떨었던 게 이렇게까지 큰 난리가 될 줄 몰랐다. 혼자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고 눈 흘김을 당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촐랭이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호주머니의 가장 깊은 곳으로 굴러들어가 흠씬 눈물을 흘렸다.
'녀석들 종일 물 속에서만 뒤잽이를 할텐가?'
개옻나무가 옷소매에 날아와 앉은 먼지 한 낱까지도 모두 털어내고 매무새를 고치기를 몇 번째,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냇가에서 고개를 들었다. 대장은 먼저 해를 봤다. 해는 두 뼘 쯤 하늘에서 내려가다가 갸웃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장이 앞장서서 개옻나무를 향해 곧장 달려왔다. 단숨에 개옻나무까지 달려온 아이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 중 석규가 개옻나무 잎에 손을 내밀었다.
"손대지마!"
대장이었다. 개옻나무는 깜짝 놀랐다.
"옻나무야."
"괜찮아. 개옻나무야."
"알아? 혹 참옻인지. 참옻였단 봐라. 당장 옻 올라 눈도 뜨지 못할 걸."
"괜찮아, 분명 개옻이야."
석규가 잎 하날 따서 대장 얼굴에 문지르는 시늉을 하자 대장은 기겁을 했다. 개옻나무는 대장의 이 말이 몹시 서운했다. 그래서 또 토라져 돌아 앉아버렸다.
"산열매들이 하나도 없잖아."
"숨었을 테지. 있을 거야. 작년에도 많았는걸."
개옻나무는 이 때다 싶어 손을 뻗쳐 밥칡넝굴을 흔들었다. 아이들에게 아부라도 해서 인정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밥칡넝굴이 깜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때 타박솥 밑에 숨을 죽이고 숨어있던 바람 아줌마가 들켰다고 생각하고 쏜살같이 도망을쳤다.
그러자 밥칡넝굴에 가려져 있던 머루 한 송이가 그만 들켜버렸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머루 줄기는 아이들 손에 잡혀서 열매 모두를 내놓고 말았다. 머루가 들키고는 다래랑, 산딸기까지도 더 몸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열매를 따서 배를 채웠다. 입가에 붉은 물이 들기 시작했다. 잘 익은 머루 알이 터져서 불에도 튀었다. 옷섶에도 붉은 물이 들었다. 배가 찬 아이들은 이번에 호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잘 익은 걸로만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러노라고 가재 주머니는 잊어버렸다. "얘, 도망쳐!"
문 앞에 앞발을 걸치고 뒤집기로 밖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소근거리는 놈이 있었다. 모두 우루루 문 앞으로 몰려갔다. 다행히 대장은 잘 익은 열매를 고르노라고 정신을 온통 머루나무 줄기에 빼앗기고 있어서 눈치를 채지 못했다. 서너 놈이 한꺼번에 뒤집기를 했다. 톡! 톡톡! 낙엽 깔린 땅에 곤두박질치는 소리가 주머니 속에까지 들렸다.
"아프잖을까?"
"쟤는!"
촐랭이와 마지막 남은 가재도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바둥거렸다. 바로 앞에서 바둥거리며 발로 주머니 벽을 톡톡 찍어 집게발을 주머니 턱에 걸치려고 안간힘을 쓰던 녀석이 핀잔이었다.
"죽는 것 보단 나아."
그렇겠다. 녀석들이 살려둘지 의문이다. 잘 해야 교실의 수족관으로 끌려가 고생고생 하다가 죽을 것이고 그렇잖으면 오늘 해질녘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물을 떠난 지 10분도 못됐는데 이렇게 힘이 쏙 빠져버렸는데 아무리해도 호주머니 벽을 기어오를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 올라가다가는 나뒹굴고 또 나가떨어지기만 했다. 정신조차 아득해졌다.
"난 틀렸어."
"그런 소리 말아. 앞서 나간 동무들은 벌써 마을에 닿았을 거야."
촐랭이와 단둘이 남은 녀석이 촐랭이를 격려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녀석도 숨이 가파오는지 털석 주저앉았다. 그때 대장이 눈치를 챘는지 호주머니를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런!"
호주머니 속을 들여다보던 대장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모두들 도망쳤어!"
다음 순간 실망의 빛이 사라지자 벌쭉 웃고 있었다. 가재 두 마리를 들여다보다가 대장은 또 벌쭉 웃었다. 까짓 것 두 마리 포기를 할 것 같았다. 곁의 동무들을 주어버리고 싶었으나 동무들은 모두 산열매에 정신이 팔려 아무도 주위엔 없었다.
"녀석들, 운이 좋았다. 너희들 ............"
대장이 촐랭이와 동무의 집게발을 들어 낙엽 위에 놓아주었다. 촐랭이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서 선뜻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동무가 슬금슬금 기면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저 녀석 언제 변할지 몰라.'
촐랭이도 화닥닥 정신을 차렸다. 부리나케 기어서 맹감넝쿨 밑으로 숨었다.
아이들이 산을 온통 뒤지고 있을 때 개옻나무와 밥칡넝굴은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아줌마가 다 가르쳐준 거나 다름없잖아요."
"왜 그게 나쁜 일인가요? 어차피 산열매랑 당신들도 그렇죠. 보듬고만 있으면 대순가. 아이들이 먹어서 나쁠 게 있나?"
"저걸 보세요. 아이들이란 설익은 것까지도 모두 훑어서 못쓰게 하잖남."
"그거야 아이들 잘못이니 나 때문인가요. 내가 그렇게 시켰나요?"
"아주머니가 가만있었으면 이들은 모르고 지나쳤을 거예요. 그런데 그 잘난 색동저고리 자랑 좀 하려다가 온 산동네가 수라장이 된 걸 모르세요?"
"남의 집 곁살이를 하는 주제에 참견은 무슨 참견!"
약이 오르니까 못할 말이 없어졌다. 생전 곁방살이로 다툰 적은 없었다. 그 말에 밥칡넝굴은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곁방살이를 하더라도 개옻나무처럼 허영심이 많은 집에 방을 얻은 게제 잘못이라 여겼다. 하고 많은 나무들 중에 개옻나무를 택하게 된 건 깔끔하고 정갈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개옻나무도 본래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참옻나무는 독한 옻독을 가슴에 뿜고 있다가 기분 나쁘면 아무에게나 슬쩍 침을 뱉어 버렸다. 참옻나무 침에는 독이 섞여 있어서 침에 맞은 사람들은 고생을 했다. 더러는 죽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개옻나무는 허영심만 잔뜩 들어서 뽐내기만 했지 남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집도 절도 없어서 고생을 하며 남의 집 곁살이를 하는 밥칡넝굴이 미워서 한 말은 결코 아니었다. 너무 나서는 것이 싫어서 툭 쏘아준다는 것이 그만 심했나보다. 밥칡넝굴은 입을 꼭다물고 분탕질치는 아이들 쪽만 보고 있었다.
9. 마지막 우정
‘선희가 팔려갔다.’
이런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대장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설마 팔려가기야 했을라구. 어른들이 하는 일이니 뭐 크게 잘못이 없으리라고 낙관하였다. 또 이런 일은 대장 네들의 관심사와는 무관한 일이었기에 기분 나쁜 소문이 학교 안에 쫙 퍼졌을 때까지도 대장은 대부분의 아이들처럼 관심밖에 서 있었다.
처음에 선희가 며칠 아무 말 없이 결석을 하자 이웃으로 제일 가까운 혜은이를 불러냈었다. 혜은이도 잘 모른다고 하자 선생님은 더 아이들에게 얻어낼 정보가 없다고 판단하시는 것 같았다. 대장은 선생님이 선희네 집엘 가보실 것 같다고 판단하였다. 선희는 오늘까지 무려 나흘이나 아무 말 없이 결석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선생님이 방관하실 리 없었다. 단 하루의 결석도 꼬치꼬치 이유를 캐묻고 확인하고 하는 분이라 대장의 판단은 틀림없을 일이었다.
선생님의 가정 방문은 아이들 사이에선 제법 큰 뉴스였다. 물론 대장처럼 뉴스를 미리 알아내는 것은 선망의대상이 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 동안 무수한 소문이 돌았다. 믿기지 않은 소문도 있었다. 심지어는 선희는 몇 백만 원엔가 팔렸는데 심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약으로 쓰려고 사갔다고 아이들은 두려움에 눈을 빛내기도 했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선희 아빠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 선희와 남동생 남매들 두고 무슨 까닭에선지 돌아가신 것이다. 어른들이야 선희 아빠가 왜 자살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를 알고 있겠지만 아이들은 들은 바가 없었다. 잘난 봉근이는 어디선가 무슨 말을 주워듣고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댔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선희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젊은 나이로 다부지게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시부모의 구박이 문제였다.
"내 아들이 너 때문에 죽었다."
"여자 팔자가 사나와 생떼같은 아들을 잃었다"
"팔자 사나운 여자가 사람을 잡아먹었다."
주로 이런 구박이었다. 처음에는 이제 막 살림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젊은 아들을 읽고 난 슬픔 때문이겠거니 하고 선희 엄마는 꾹 참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구박이 심했다. 나가라고 직접 대놓고 구박도 했다. 동네 부끄럽게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했다. 처음 한두 달에는 술을 먹은 핑계로 구박을 폈으나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서고 동네에서고 술집에서고 두 양주가 한결같이 며느리를 몰아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선희 엄마는 시부모의 구박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두 남매가 불쌍해서 참아야 했다. 어린 두 것들을 두고 어디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구박도 선희 엄마의 두 남매를 위한 사랑에는 조금도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희 엄마가 두 양주의 구박에 조금도 물리지 않자 이제 두 양주는 식량조차 내주지 않고 끼니를 걸르게 하는가 하면 돈이라고는 한 푼도 만질 수 없게 고립시키는 방법을 썼다. 심지어는 옷가지는 물론 방에 군불 지피는 것조차도 막아버렸다. 그리고 두 남매를 조부모가 감싸고 내 놓질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안 동네 사람들이 선희 엄마를 동정해서 밥을 주고 재워 주기도 하였으나 하루 이틀이지 이건 정말 못 견딜 일이었다.
"늙은이들이 노망을 했다."
"노망을 해도 유분수지."
사람들은 이렇게 선희 엄마를 동정했으나 선희 엄마를 돕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동네에서는 마을 회의를 부쳐 두 늙은이를 징계하려고 했다. 이런 기미를 안 선희 엄마가 어느 날 밤마을 사람들 앞으로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마을을 떠나버렸다.
'남편을 죽게 한 여자로서 시부모까지 여러분들에게 미움을 받게 하고 싶지 않다. 두 남매 어린 것들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이지만 내가 있음으로 해서 시부모님의 고통을 받는다면 내가 희생하는 편이 옳으리라 생각된다. 두 남매는 시부모님의 핏줄이고 또 장손의 자손이니 이 에미보다 그 분들이 더 소중히 할 것이라 믿는다. 부디 곁에서들 이해하고 도와 달라. 우리 시부모님도 본래 저런 성정이 아니었다. 생떼 같은 아들을 잃고야 누가 올바른 정신 지닐 수 있겠는가. 마을 어르신네들이 이해하여 주시길 바란다.'
대개 이런 내용이었는데 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선희 엄마는 밤에 마을을 떠나버렸다. 선희 남매는 엄마가 저희 두 남매를 놓고 떠난 것을 알자 날마다 울었다. 아무도 무엇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다. 늙은이는 두 양주가 돈으로 과자로 꼬여보려고도 했고 달래고, 더러는 호통을 치기도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몇 달이 계속되었다. 두 늙은이는 시간이 가면 어린 두 남매가 엄마를 잊어가려니 했는데 이건 정반대였다. 날이 갈수록 두 남매는 더욱 서럽게 엄마를 찾는 것이었다. 결국 늙은이 두 양주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친손주가 아니라 원수라고 드러 내놓고 말하게끔 되어버렸다. 밉다고 식사를 제 때에 하게 하지도 않고 용돈을 말할 것도 없으며 학용품도 사주지 않아 선생님이 애를 먹었다.
안경선생님이 선희의 이 형편을 알고는 거의 선희를 맡다시피 했다. 학용품은 물론 용돈까지를 댔다. 이러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선희엄마가 선생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동안의 보살핌을 고마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한 대여섯 달 정도면 제 형편이 풀립니다. 방도 하나 얻고 해서 아이들을 데려갈까 합니다. 어린 것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저것들 보고 파서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럴 때면 시부모님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해버린 제 자신을 꾸짖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저 두 남매를 데리고 같이 사는 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흐느끼며 말을 맺지 못하는 선희엄마를 위로해야 했다. 그리고 데려갈 동안 선생님이 잘 돌보겠노라는 약속을 했다. 선희엄마는 슬픔이 복받쳐서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갔었다. 그런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선희가 팔려가다니. 선생님이 알아본 바로는 선희는 고모되는 분이 도회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그 분의 소개로 선희는 수양딸로 입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선생님더러 당신이 크게 간섭할 바가 못 된다는 투로 말했다. 선생님은 선희엄마에게 알리고 의논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선희의 할아버지의 입에서는,
"그 년은 화냥년이다. 젊어서 서방이 죽자 서방 없인 못살겠으니까 도망을 친 것이다. 그런 못된 년한테 뭘 알리고 자시고 할 것이나 있느냐!"
선생님은 두 늙은이를 설득해서 어떻게든 선희를 찾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선희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선희 엄마를 욕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선희까지도 제 에밀 닮아서 어쩌느니, 못됐느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선희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늙은이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고서 끈질긴 회유를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선희엄마가 알면 어쩔 일인가? 선생님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선희엄마의 마음고생이나 좀 덜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선뜻 선희는 선생님이 잘 돌보 테니 안심하시라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이게 뭔가.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선희가 팔려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단지 선희 고모가 몇 번인가 다녀간 것으로 보아 선희 고모가 개입되어 있으리란 건 확실하다. 더구나 선희 고모가 들락거린지 며칠 후에 선희가 없어졌고 선희가 없어지기 전날 밤에 마을에서 자가용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의 추리로는 선희는 도회지의 아이 없는 집에 수양딸로 입양되었다는 이야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물론 그 할아버지가 돈을 받고 팔아먹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선희 고모에 꾀임에 넘어간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선생님은 최후로 할아버지께 말했다.
"공부는 시켜야할 것 아닙니까? 어린 것을 초등학교 공부는 마저 마쳐야, 어디로 가든 이제 얼마 남지 않는 초등학교 종업장이나 타게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냉담했다. 그것은 제 팔자 나름이고 또 데려간 그 쪽 사람들이 어련히 보살펴 줄 것 인가고 딱 잡아떼었다.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육이 의무교육이며 그것을 강제로 받지 못하게 한 어른들도 법에 저축된다고 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제 자식을 제가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법도 있느냐?"
고 할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버려서 선생님은 설득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은 있었다. 선희를 데려간 사람들이 선희를 수양딸로 생각한다면 반드시 학교에 전학을 시켰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선희가 전입한 학교에서 전학 서류를 부탁해오는 법이니까 최종적으로 거기다가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약 선희를 나쁜 사람들이 '사갔다면' 그러한 기대도 쓸데없는 일이며 선희는 어떤 고생을 할지 모른다.
꼭 일 주일을 그러한 불안함 속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전학의뢰는 오지 않았다. 예상대로 나쁜 쪽이라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선희를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선희를 사간 사람들은 또 다른 곳에 되팔아 넘길 염려가 있었으므로 빠르면 빠를수록 해결 가능성은 컸다. 일 주일이 넘고 열흘을 기다려도 전학의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선희엄마에게 알렸다. 부랴부랴 선희엄마가 쫓아왔다. 불쌍한 선희를 좀 찾아 달라고 선희엄마는 선생님께 매달렸다. 선생님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으나 해결할 길은 하나뿐. 결국 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선희를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되었지만 선희엄마가 가진 유일한 희망을 좌절시키기에는 선희엄마의 사람이 너무 비관적이었다. 두 아이들 데려다가 키워보려는 희망으로 막일이나 다름없는 공장 일을 밤낮을 쉬지 않고 하고 있지 않는가.
선희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사리분별이 곤란한 늙은이들이다. 설득과 이해를 시키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 이렇게 판단이 내리자 선생님은 최후의 방법을 썼다. 선희엄마에게 그 동안의 사정을 모두 말씀드리고 선희 조부모를 고발하라는 것이다. 분명히 선희를 좋지 않은 곳에 팔아넘긴 게 확실시되니 고발을 해서 팔아넘긴 곳을 알아내야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으로서는 그 길 밖에 해결할 길이 없었다. 선희엄마는 시부모를 고발하라는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들의 친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나중에 그 애들이 자라면 이런 사정은 모르고 에밀 나쁘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고발해야 한다면 그 분들이 원래 나빴지만 저도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쩔 일인가? 속수무책. 선생님은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화를 낼 수도 더 설득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일을 벌쭉이대장이 안 건 선희가 팔려가고 나서 열흘이 넘은 후였다. 선희엄마가 선생님을 찾아오고 울고불고 하는 사정이 생기자 아이들의 관심이 거기로 쏠리게 되었다. 애초에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고 무관심하게 생각했었는데 선생님의 표정에서나 선희 엄마의 표정에서 대장은 심상찮은 사건의 내막을 읽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소문도 매우 좋지 않은 것들 뿐이었다.
"식모로 팔려갔다."
"외딴 섬에 일꾼으로 팔려갔다."
"키워서 각시 삼는대더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심지어는 약으로 쓰려고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 사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선희 고모가 중개 역할을 한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대장은 선희 고모가 어디 사는 지만 알면 선희는 도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부탁했다. 아빠도 그 소문을 대강 듣고 있었으므로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주셨다. 대장의 작은아버지는 경찰서에 근무하는 상당히 높은 분이었으므로 곧바로 선희 고모의 주소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선희 고모의 주소를 얻어내서 선생님께 드렸더니 선생님은 정말 뛸 듯이 기뻐 하셨다. 그리고 그날 중으로 선희엄마와 함께 선희 고모네를 찾아 나섰다. 이내 선희는 찾았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이제 6학년이 며칠 남지 않았으므로 6학년만 마치면 선희는 엄마가 사는 곳으로 가서 중학교를 다니며 함께 살게 될 것이라 한다.
선희 사건이 터지고 해결이 되고나서 졸업식을 일 주일 앞두고 곤란한 사건이 또 하나 일어났다. 졸업식에서 답사를 읽게 되어 있는 성호가 그만 감기로 덜컥! 들어누운 사건이었다. 성호는 우리 학교 웅변선수였다. 군내대회에서 1등을 먹어오기도 했으니까 굉장한 녀석이다. 이 웅변 실력 덕분에 졸업식에서 답사를 맡았었는데 그만 앓아 누워버렸으니 사건치고는 큰 사건이었다. 더구나 졸업식은 이제 일 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성호는 감기로 심한 기침과 함께 목이 콱 잠겨서 말도 못한다고 했다. 설사 나아서 졸업식장에는 나온다더라도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다 잠긴 목이 일 주일 동안에 풀어질지도 의문이었다. 선생님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는데 다행히 성호가 답사를 아이들 편에 되돌려왔다. 도저히 몸이 얼른 나을 것 같지도 않고 낫는다고 해도 자긴 목이 쉬이 풀릴 것 같지 않다는 편지와 함께 답사가 돌아왔다. 그런데 또 묘한 일은 그 편지 끝에 성호는 희망사항이라 써놓고
「가능하면 선생님, 벌쭉이대장에게 제 대신 답사를 읽게 해주십시오.」
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이유가 뭘까?'
선생님은 성호가 벌쭉이대장을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난 가을 운동회에서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하나 있었는데 그 열쇠가 이것이 아닌가 직감적으로 느꼈다.
대장의 달리기 솜씨는 천부적 재능이랄 정도로 좋았다. 달리기 뿐만 아니라 운동 전체가 대장의 특기였지만 특히 달리기는 대장의 독점 경기였다. 약간 가냘프지만 떡 벌어진 어깨, 호리호리한 허리, 길쭉길쭉한 팔다리가 대장의 달리기 재능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운동 재능을 타고났다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대장이 장애물경기에서 그만 4등을 하고만 사건이었다. 사건 중의 사건인 셈이다. 선생님은 처음엔 대장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고 물었다. 대장은 그냥 벌쭉 웃기만 했었다. 장애물경기였더라도 대장의 4등이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은 의외성의 사건이었다. 그 앞에 실시된 맨손달리기에서는 도저히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차이로 당당히 우승을 하지 않았었던가.
'음모다!.'
선생님은 여기까지는 간파를 했으나 그 음모를 파헤칠 생각은 없었다. 아이들끼리의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평소의 입장을 그대로 지킨 것이다. 그러나 가슴 속에 무엇인가가 맺힌 채로 남아 있었는데 오늘 성호의 결석계를 읽고는 그 매듭이 풀릴 것 같았다. 안경선생님은 분명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음모라고 하기에는 너무 살벌한 말이었으나 하여튼 대장의 속 넓은 마을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른 다 되었군.'
선생님은 이렇게까지 머리가 큰 아이들이 매우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그 음모에 살며시 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음모.'
이 아름다운 음모에 아주 중요한 역할 하나가 선생님에게 맡겨져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저희들은 음모를 간파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성호의 한 마디로 지난 가을 운동회 수수께끼를 풀고 아름다운 우정이 만들어가는 음모의 고리 하나하나를 더 빛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 답사 읽기가 자연스럽게 대장에게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물론이고 대장 자신도 알 수 없게 감쪽같이 답사를 읽게 할 수는 없을까? 녀석들은 아주 쉽게 음모를 계획하고 끝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지키고 있는데 마지막 배턴을 쥔 선생님은 도저히 이 「아름다운 음모」를 쉽게 끝맺음을 할 수가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10. 촛불 파티
「사은회」
사은회는 강당에서 열렸다. 재학생들은 모두 돌아갔고 졸업생과 선생님 그리고 어머니들이 만났다. 교실 두 칸을 튼 강당이 가득 찰 정도로 넓게 연회석이 준비되어 있었다. 강당 전면에는 선생님들의 좌석이 가로로 두 줄. 거기에 세로로 길게 여섯 줄의 좌석이 강당 끝까지 선생님들 좌석과 T자로 연결되어 졸업생들이 앉았다. 어머니들의 좌석은 졸업생들의 좌석 밖으로 말굽형처럼 에워싸듯 배정되어 있었다.
연회석 위에는 하얀 백로지를 깔고 그 위에 과일과 떡, 과자, 부치미와 도너츠들이 수북수북 차려있다. 아이들은 이 맛나는 음식을 앞에 놓고도 참느라고 목구멍에서 딸꾹질이 날 지경이었다.
어른들의 형식적인 행사투는 여전해서 교장선생님의 인사, 엄마들 대표의 답사, 그리고 사은회를 갖게 된 경위에 대해서 안경선생님의 설명, 마지막으로 다운이의 개식사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인사는 길기도 할뿐더러 여전히 우루루루 고러러러 사라라라 투의 훈화조였으므로 모두 근엄하게 듣고 있는 것 같았으나 실은 속으로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은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들으면서 아득한 옛날 신입생 시절이 생각났다.
'엊그제 같았는데. 그 차렷! 자세는 얼마나 싫었던고. 교장선생님의 훈화에 진절머리를 치던 시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 같았다.'
다운이의 개식사가 끝나자 모두들 양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마침 저녁놀이 떨어질 시간이어서 촛불로 장식된 강당이 환하게 타오르는 듯 보였다.
본래 사은회를 계획한 건 대장과 다운이네들 아이들이었다. 안경선생님만 초대하려고 과자 약간으로 간단한 계획은 세웠었다. 담임선생님과 헤어지기 섭섭해서 세운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중단되었다. 몇 푼씩의 돈을 걷다보니까 엄마들이 알게 된 것이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사은회 계획에서 옛날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 때 만해도 사은회가 연례행사처럼 의례껏 치러지던 시절이었다. 사은회의 그 분위기를 되찾아낸 엄마들이 사은회를 맡았다. 옛날 방식 그대로 준비를 했다. 옛날 방식이란 이렇다. 돈을 걷거나 쌀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마을별로 음식을 할당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웃밭물에는 닭 열 마리와 고기 몇 근, 참새미에서는 떡과 과일, 남문터에서는 과자와 음료수 이렇게 분담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시간이 끝나고부터 시루떡 광주리나 과일, 과자 고리짝들을 엄마들은 이고, 들고 학교로 모여들었다.
“요새, 세상은 좋아졌을지 몰라도 우리 어린 시절보다 꿈이 없는 것 같아.”
“지금 세상을 그 때와 비교할 수가 있나.”
“우리는 10리도 넘는 산길을 걸어다녔지. 마지막 날 사은회 때는 밤중에 그 산길을 걸었는데, 무섭기도 하고 잠에 취해서 엄마 치마꼬리에 딸려 오면서도 무척 고생했지.”
아이들의 사은회를 준비하면서 엄마들은 자신들의 추억을 연회석위에 음식물들과 함께 차려놓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부터 회상과 추억이 스며든 사은회장은 먼 옛날의 엄마들의 추억과 졸업생들의 6년 동안의 회상이 뒤엉켜 동그랗게 후광을 내며 타오르는 촛불과 함께 서서히 열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실은 엄마들이란 대개 같은 학교 졸업생이 아니면서도 아야길 하다보면 내용이 엇비슷해져서 같은 학교를 나온 듯 착각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엄마의 졸업식장, 엄마는 졸업생석의 중간 쯤에 앉아 있었다. 그 때만해도 엄마의 키는 아이들의 중간 크기였다. 지금의 이 훌쩍 큰 키는 고등학교 시절에 자란 키였다.
“졸업생 입장!”
구령이 떨어지자 졸업생들이 입장하였는데 재학생들과 내빈 학부모들이 졸업생이 모두 자리에 앉을 때까지 치는 손뼉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다른 절차도 많았겠지만 맨 처음 엄마를 울게 한 것이 담임선생님의 마지막 출석 점호였다.
“지금부터 담임선생님께서 졸업생들을 마지막으로 이름 불러 출석 점호를 하겠습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큰 소리로 대답해 주세요 .”
미리 예측을 하고 사회자가 큰 소리로 대답해 달라고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처음부터 기대는 무너졌다. 우선 출석 점호를 하시는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에 문제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보통 때처럼 기세 좋게 호명을 못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사회자가 여러 번 주의를 환기시켰으나 가까스로 마지막 점호가 끝났다. 졸업생 모두가 한 가지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6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언행을 조심해라, 인사를 잘 해라, 공부를 잘 해라,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아마 하느님으로 만드실 작정이셨나보다. 이 때부터 아이들은 갈아 앉혔던 감정을 또 퍼 올리기 시작했다. 약간 소곤거리기도 하고, 눈길을 마주쳐 생긋 웃기도 했다. 장난기가 심한 녀석들은 서로 꼬집고 앞사람 등판을 톡톡 치기도 했다.
그 다음은 유지, 기관장들의 축사 차례. 평소에 기관 출입을 담 쌓고 살던 유지들도 오늘만은 1년에 단 한 번 출입 채비를 했다. 이발을 새로한 건 물론이고 농지기 양복으로 치장을 하고 자기의 연설 차례를 점잖게 기다리고들 있었다.
“에 - 또, 형설의 공이라 함은 옛 중국 고사에서 비롯된 …….”
“마 -. 부모님의 은혜란 하늘같은 것이거니와 여어러분을 가르쳐 주신 스승의 은혜 또한 …….”
이런 식의 연설을 남이야 듣거나 말거나 자기 흥에 겨워서 느릿느릿 늘어놓았다. 졸업생들의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흐트러져서 앞에선 선생님들의 눈 맞춤으로 조용히 분위기를 다스리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면장, 지서장, 조합장, 육성회장, 영감님들의 모임인 무슨 유도회장도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이 지방 국회의원 대리인도 한 마디 해야 한다. 이렇게 되고 나면 졸업식장은 소곤거림인지 연설장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가 되어간다. 이제는 드러 내놓고 장난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연설 도중에 굵고 짧은 구령으로 분위기를 잡으려 한다.
“졸업생, 바르게!”
그래봐야 단 일 분도 버티지 못한다. 아직도 기관장, 유지들의 축사가 느릿느릿 계속되고 있다. 이 고비를 넘고야 졸업식장은 다시 숙연해지기 시작한다.
‘재학생 송사!’
여기가 졸업식장의 분위기를 다시 일신시키는 분수령이다.
“떠나는 언니들에게.”
가끔, 사람이 만나서 헤어지는 것이 인륜이요 천륜이라는 회자정리의 말투가 들어가 있기는 해도 송사는 구절구절의 졸업생들의 가슴을 뒤 흔들어 놓는다.
“꽃다발을 한 아름 안겨드리오니 언니들이여 부디부디 잘 가소서. 행복하소서.”
여기에 이르게 되면 간헐적으로 울음소리가 터지고 마음이 약한 여선생님들은 밖으로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졸업식의 크라이막스는 역시 「답사」에 있다.
‘졸업생 답사!’
여기에 이르면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모두 오직 한 가지 감정으로 완전히 하나로 묶인다. 모두 눈물을 흘리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같다.
“선생님, 저희들은 떠나갑니다. 부디 몸 건강하셔서 …….”
“아우들아 우리 언니들은 이제 6년 동안 정들었던 모교를 떠난다. 우리가 못다한 …….”
여기서부터는 마음 약한 여학생들이 먼저 엉엉! 터놓고 울기 시작하고 곧이어 졸업식장은 울음바다가 된다. 답사를 읽는 아이는 눈물과 슬픔 때문에 말을 더듬는다. 아이들은 마이크에서 울려 나오는 몇 마디의 울음 섞인 말소리에는 반응이 없고 오직 흐느끼는 듯 울먹이는 것에만 온 마음을 집중시키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들이 달래려고 등을 두드리고 다녔지만 아이들은 무릎에 묻은 채 일어나지도 않는다. 사회자는 다음 순서를 진행하지 못하고 안절부절이다.
촛대에 선 촛불이 한참 밝게 타들어가고 있다. 벌써 노래판이 시작 된지 오래였다. 내일의 졸업식은 이 사은회와 무관하다. 내일은 울더라도 실컷 먹고 마시는 것과 신나게 노는 것만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관심사다.
대장네 차례가 됐다.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누군가 신호에 의해 노래가 시작되었다. 「화전놀이」외 다섯 곡 노래가 흐르자 우리 선생님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다음은 엄마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가락이 촛불의 동그란 불꽃을 타고 흘렀다. 한껏 애조를 띤 디이(D)단조 가락이 강당 안에 가득 차 올랐다. 한결같이 애조를 띤 가락들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모든 것이 정지 되어버렸다. 이번에는 안경선생님이 나와서 지휘를 하시고 아이들이 리코더를 꺼내들었다. 「가을의 그림」의 멋진 이중주가 흘러나왔다. 노랫가락보다 훨씬 맑고 청아한 가락이 창문을 타고 넘어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늦게야 달이 오르는지 동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총총한 별들 사이로 부연 달무리가 야금야금 별빛을 먹어 들어가고 있었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는 씨름을 하는 것처럼 자리바꿈을 하며 빙빙 돌고 은하수도 하늘 깊숙이 숨어버렸다. 겨울 늦추위 때문인지 하늘은 투명하도록 차갑고 맑았다.
까만 어두움이 학교 사방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 까만 어두움 가운데로 칼날 같은 불빛이 한 줄기 지나갔다. 아이들의 노랫가락이나 모두의 웃음소리 또는 박수소리에 흔들리는 촛불의 반짝이는 잔광이었다. 그 잔광이 어둠을 뚫고 지나가고나면 주위의 어두움은 더욱 새까맣게 몸을 숨겼다.
또르르르 웃음소리에 묻혀서 반짝이는 이슬방울 같은 것이 한 움큼씩 정원으로 굴러나왔다. 더러는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흐벅지게 매달려서 반짝거리기도 했다. 그것들은 까만 어둠 속에서는 까맣고, 밝은 불빛 아래서는 밝게 보였다. 이 이슬방울 같은 것을 맨 처음 발견한 것은 정원과 운동장 주병의 향나무 속에서 잠들었던 박새무리였다. 반짝거리는 강한 불빛에 놀라 깨어 일어난 박새 한 마리가 모두를 깨웠다.
“이게 뭐야?”
“지금껏 보지 못했던 구슬인데 ........”
영롱한 빛을 내뿜는 구슬의 아름다움에 반한 최초의 박새가 모두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얘들아, 얘들아. 모두 일어나 봐!”
“뭐야, 벌써 아침인가?”
“아냐, 아직은 깜깜한 밤중이잖아!”
“비 쏟아진다는 비상연락이라도?”
“그게 아니고.”
“그럼 뭐지?”
“여길 좀 보래두. 여길 봐!”
“아니?”
“으응!”
선잠이 깬 박새들의 눈이 휘둥그래져버렸다.
“저건 뭐야?”
모든 시선이 영롱한 방울에서의 최초의 박새에게도 번갈아 모아졌다 흩어졌다 하고 있었다.
“나도 몰라!”
“넌 쭉, 지금까지 보고 있지 않았니?”
할머니박새가 의심쩍은 눈으로 대들었다.
“저도 금방 깼는걸요. 꿈을 꾸다가 눈에 뭔가 아른거렸어요. 그래서 저도 선잠이 깬거죠.”
박새들은 자기들이 깃을 폈던 향나무 가는 가지와 잎 끝에 수없이 맺힌 작은 구슬 같은 방울방울을 보며 신비한 기분에 휩싸이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박새 한 마리가 오색빛 감도는 그 방울 하나를 부리로 콕! 찍었다. 방울은 찬란한 빛을 내며 흩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방울이 흠씬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방울들이 잔디 위로 모래 위로 굴렀다. 구르면서 빛을 강하게 내뿜는 방울의 신비한 빛이 무지개처럼 나뭇가지에 뻗쳐 나갔다. 마치 고운 물감을 등인 베짜치가 나뭇가지에 걸린 것처럼 고운 빛깔이 여기저기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내 평생을 살았어도 이게 좋은 징조일까 액운이 들 징조일까?”
할머니박새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옛날부터의 기억을 모조리 더듬어 보았으나 이걸 해결할만한 경험은 드러나지 않았다. 지혜를 모두 짜내도 지식을 동원했어도 이것이 무엇인지 박새들 대가족에게 좋을 일인지 나쁠 일인지 도저히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분을 뵈어야겠어.'
할머니박새는 벚나무 구멍에 둥지를 튼 왕관새(딱다구리를 새들은 모두 왕관새라 불렀다. 딱따구리는 머리에 붉은 왕관 모양의 벼슬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신분이 고귀한 분이라며 새들의 사회에서는 믿음과 존경심이 대단했다.)에게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왕관새의 둥지는 굉장히 오래 묵은 벚나무 고목의 중간쯤의 자귀로 찍어낸 듯한 구멍 속에 있었다.
벚나무는 몹시 늙어 둥치 큰 몸은 이미 반신불수가 되어 말라져버렸고, 겨우 가지 하나가 물을 퍼 올려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봄이 되면 불편한 몸을 지탱하면서도 기어코 꽃 등 몇 개는 달았다. 거동조차 하기 어려운 몸으로 지하의 깊은 곳에 있는 샘물을 퍼 올려 꽃등을 켜는 일은 무척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으나 벚나무는 그 일에 마지막 실날같은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 차제에 왕관새가 벚나무를 찾아왔었다. 왕관새 부부는 이미 잉태한 알 때문에 몹시 초조했다. 해산이 오늘 내일로 임박해져 있었다. 그 딱한 사정을 벚나무는 말 안 해도 단번에 알아내었다.
“그 몸을 해가지고 여행이라니?”
“예전에 살던 곳이 벌채 허가로, 모두 숲이 베어져 버려서 살만한 곳을 찾다보니.”
“허튼 수작 할 겨를이 없겠군. 어서 둥지를 마련해야지.”
늙은 벚나무는 이미 말라버린 가지 하나를 왕관새 부부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해서 왕관새는 벚나무에 의지하고 몇 년째 살고 있었다.
금방 왕관새 소문이 널리 퍼져서 왕관새는 그 고귀한 신분만으로 존재산 부근의 숲에 사는 모든 새들의 정신적인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숲을 통치한다는 말이 더 옳다. 그러나 들어내 놓고 왕 노릇을 하는 건 아니고 새들이 왕관새를 옹위해서 그 고귀한 신분에 걸맞게 대우를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역시 왕관새는 신분에 걸맞게 아는 것도 많았다. 텃새들이야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 바람결에나 스치듯 듣는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왕관새는 불을 보듯이 알고 있었다.
“기쁨과 슬픔의 결정체.”
할머니박새의 방문을 받고 왕관새는 서슴없이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기쁨과 슬픔의 결정체?'
할머니박새는 왕관새의 이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산촌에서 출입 한 번 못하고 땅이나 파먹고 사는 박새에게 왕관새의 이 말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챗머리를 흔들자 왕관새는 왕관을 나뭇잎에 부벼 곧 추세워 놓고는 말했다.
“벌쭉이대장네는 유치원 1년, 국민학교 6년을 이 학교를 다녔단 말씀야. 그 긴 7년의 공부를 사람들은 '형설의 공'이라 하지.”
할머니박새는 또 형설의 공에서 막혔다. 그러나 시시콜콜한 이런 말들까지 되묻고 설명을 해달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체 넘겨버렸다.
“이 형설의 공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기쁨이지. 대장네 자신들에게도, 엄마 아빠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모두가 기쁨인거야. 또 상급학교에 진학한다는 기쁨까지 겹쳐서 이 기쁨은 말할 수도 없이 큰 기쁨이 되었지.”
할머니박새는 모르는 일은 그냥 고개를 끄덕여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반면 슬픔도 있어. 6년 아니 7년 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이 학교와 교실들을 떠난다는 사실은 매우 서글픈 거지. 사실은 우리 새들도 아이들의 그 서글픔 속에 하나의 슬픔의 인자가 되어 있어.”
“우리도 말입니까?”
“저 애들이 우릴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 아시고나 하신 말씀이신가요?”
“알고 있어. 그러나 자네들 박새들은 저 애들의 진심을 모르고 있었어.”
'쳇, 진심이라고? 그건 또 무슨?'
박새는 지식이 짧아서 또 여기서 막혔다. 그래도 고개만은 끄덕거렸다.
“오늘 저 강당의 사은회는 이렇게 기쁨과 슬픔이 함께 어울어진 자리야. 얼핏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예를 들면 너무 반가우면 눈물이 나온다는 말로 이해하라고 했다. 하여튼 그것이 이렇게 신비한 구슬 같은 이슬방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풀잎이 그 가냘픈 팔로 밤새 물을 퍼 올려 이슬방울을 만드는 것처럼, 그리고 물기둥과 빛기둥을 세우고 아름다운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것처럼.
“아이 졸려. 선잠을 깨었더니.”
왕관새의 붉은 왕관이 밑으로 쳐지고 있었다. 할머니박새는 향나무 숲으로 돌아와서 들은 대로 말했다. 속으로는 왕관새의 유식함에 감탄했으나 겉으로는 드러내지는 않고 그대로 반복했다.
「기쁨과 슬픔의 결정체」
역시 박새 무리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박새 무리 속에는 이 숲 밖을 여행한 녀석조차 한 명도 없었다. 할머니박새는 짧은 지식을 이용해서 이렇게 말했다. 구름과 이슬과 안개 같은 것들을 끌어다 설명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자 이번에는
“하늘의 별은 무엇으로 되어 있나?”
라고 물었다.
박새들의 대답은 가지각색이었다. 공기와 수증기가 뭉쳤다느니, 먼지가 쌓였다느니, 심지어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뭉쳐서라느니 등등. 할머니박새는 바로 그 대답을 바랬다. 무엇이거나 뭉치고 합치면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것을 저 반짝이는 이슬방울 같은 구슬, 즉 기쁨과 슬픔의 결정체로 비유했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사이에 봇재등에 밝고 환한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봇물이라거나 거대한 힘으로 내뿜는 활화산의 용암 같기도 했다. 그 힘은 대단해서 온 세상의 모든 힘 있는 것들을 합쳐도 그 힘을 당해낼성싶지 않았다.
최초의 하얀 빛 한 줄기가 하늘로 힘차게 솟아오르더니 이내 그 빛은 수만 갈래로 퍼졌다. 그리고 구름이 모여들어 놀을 만들었다. 붉고 휘황찬 놀이었다. 놀과 빛이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태고적에 세상이 생겨날 때 그 광경을 연상하게 했다.
놀과 빛이 어우러진 최초의 상황은 하얀 한 줄기 강렬한 빛이 하늘 복판을 째고 나온 생성이란 문제였다. 그러나 곧 그것은 놀라 어우러져 혼돈을 만들었다. 천지창조의 태초의 상황이 재현되었다. 놀과 빛은 뒤엉켜서 어둠과 빛이 회오리바람처럼 한바탕 소용돌이를 쳤다. 잠시 후에 혼돈은 평정되었다. 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놀이 하늘 저편으로 물러서고 있었다. 놀은 빛에 녹아내리 듯 스러져갔다. 그리고 온 하늘이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사은회는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야 막을 내렸다. 박새들이 천지창조의 대역사를 놀란 가슴으로 목격하고 있는 사이 이별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촛불도 꺼지고 모든 것이 끝났다. 아이들이 먼저 나왔다.
“대장, 이게 뭐야?”
한 발 앞서 나온 다운이가 발밑에 구르는 방울을 보았다. 방울은 빛나는 아침햇빛을 받아 영롱한 구슬 같았다. 다운이가 그걸 잡으려고 했다. 방울은 손끝이 닿기도 전에 팍! 맑은 소리를 내고 터져서 오색 가루처럼 부서져 날려버렸다.
“기쁨과 슬픔의 결정체.”
“기쁨과 슬픔의 결정체.”
할머니박새가 아이들에게 몇 번이고 외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