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도깨비 우화
(소년동아일보 연재)
* 작수발 위의 삼시랑
‘어째서 잠이 깼을까?’
뱀꼬리가, 그 차가운 몸뚱이가 얼굴을 타고 넘는듯한 한기에 벌쭉이대장은 눈을 떴다. 어둠에 눈이 익어가자 대장은 희부연 네모꼴 아침에 방 안으로 야금야금 먹어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사방이 깜깜해서 유독 허연 창문만 또렷하게 떠 오르고 있었다. 그 허연 창문을 배경으로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할머니는 치렁치렁한 쪽머리를 빗으로 빗고 계셨는데 빗질에서 작은 서리 알갱이 같은 물방울이 퉁겨나오고 있었다. 사악! 빗질을 할 때마다 차디찬 서릿살이 얼굴로 쏟아졌다.
‘아이쿠, 차가와’
대장은 이불자락 속으로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지금은 하얀 겨울의 세상 이었다. 함박눈이 계속 사흘동안 내려서 지붕도 장독대도 두꺼운 눈 집을 이고 있었다. 추위도 한결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 끝이 문고리에 짝짝 달라붙는 그런 매서운 추위였다.
‘이 꼭두새벽에 웬일일까?’
할머니는 몇번이고 빗질을 해서 머리를 곱게 쪽지었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칼이 불빝에 반사되어 기름먹인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대장은 할머니가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할머니가 가만히 문을 밀고 나갔다. 할머니는 마치 바람처럼 움직였다. 다른 때에도 그랬다. 일어서거나 앉거나 할머니의 움직임은 바람 같았다.
뒤란의 장독대에서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장독대에 세워둔 작수발 앞에 허리를 굽히고 계셨다. 작수발 주위에 한 뼘 정도의 땅에는 붉은 황토를 깔았다. 작수발은 젖먹이 손가락처럼 작은 가지 세 개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 작수발 가지 위에 하얀 사기 종지가 얹혀져 있었다. 사기 종지에는 할머니가 머리를 감았던 옹달샘물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첫 샘물.
할머니는 깜깜한 새벽에 치자나무 늘어선 골짜기까지 눈길을 걸어 옹달샘물을 입으로 호호 불어 길어놓고, 머리를 감은 다음 정화수를 가지고 오신다. 눈길이 미끄러워도 발 끝에 마음을 쓸 여유가 없다. 오직 손에 받쳐든 정화수가 한 방울도 쏟어지지 않게 거기에만 마음이 집중되어 있다. 정화수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오시는 할머니를 보았다면 그 걸음걸이 매무새를 각시 걸음 같다 했을 것이다.
아무도 눈을 뜨지 않은 새벽길을 다녀오신 할머니는 머리를 정성들여 빗고는 곧장 장독대로 나가서 작수발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허리를 굽혔다. 두 손을 합장하고는 손바닥을 비볐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시며 두 손을 쉴 새 없이 비볐다.
‘삼시랑님, 우리 집 자손이 번성하게 하소서.’
* 할머니의 믿음
“옛다, 연보돈.”
할머니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지전을 꺼내신다. 이미 어제 골라두었던 종이돈은 새것처럼 깨끗했다. 일부러 가장 새 돈을 골라 우리들의 손에 들려 교회로 보내신다. 지금의 교회 헌금을 그때는 연보돈이라고 했다. 파란색 지폐를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뛰었다. 그 지폐로 설탕덩어리가 군데군데 붙어 있는 눈깔 사탕을 살 수 있다면. 마귀가 슬그머니 내 잠자는 욕구를 일깨워 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마귀의 유혹에 져본 일은 없었다.
‘목사님에게 물어 볼거야.’
라는 할머니의 엄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소심했던 것이다. 꺼꾸리 같은 아이들은 잠자리채(연보주머니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가 돌아오면 빈주먹을 쑥 넣었다가 펴기를 곧잘 했다. 물론 그 연보돈은 눈깔사탕이나 바둑껌, 비가들로 바뀌어서 우리들에게 몇 배의 이자가 가산된 다음 골고루 나누어지기도 했다.
그 날 아침 처음으로 할머니의 축수를 몰래 훔쳐본 뒤로 나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마귀가 할머니를 지배하고 있다고 단정지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이미 십계명이니 교리문답이니 하는 걸 줄줄 외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할머니의 행동은 죄악감으로 비쳐졌다. 할머니는 안산 마루에 햇발이 비칠 때까지 축수를 되풀이하고 계셨다. 수천 번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였고 손바닥은 닳아 없어질 정도였으리라. 잠이 깬 나는 그날 새벽 내내 삼시랑네 삼시랑네 하는 할머니의 낮은 목소리를 듣느라고 다시는 잠들 수가 없었다.
안산 마루에 햇발이 서면 할머니는 집안 식구들을 모두 깨웠다. 그리고 교회의 큰 종이 댕댕 울릴 때쯤 어김없이 찬송가와 성경을 들고 대문은 나섰다. 나는 딱 한 번 어른들의 예배보는 모습을 보았는데 할머니는 참으로 의젓하게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아주 열심히 듣고 계셨다.
할머니를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작수발을 없애는 길이 가장 선결문제였다. 나는 몇 번이나 작수발 제거 계획을 세웠으나 그 때마다 거사 바로 직전에 포기해야 했다. 야무지게 마음을 먹고 장독대로 다가가 보지만 번번이 나는 뒷걸음치고 말았다. 작수발과 정화수는 내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할머니의 영역이었다. 신의 영토였던 것이다.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할머니를 구해내려는 노력은 집안 식구 모두의 속셈이었다. 교회 성가대의 반주와 성가대 지휘를 맡은 독실한 믿음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감히 작수발을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노하신 할머님의 모습을 보았고 그 이후에는 아무도 정화수와 작수발, 아니 장독대 근처에는 얼씬거릴 수가 없었다.
* 굿
우리 집에서는 가끔씩 굿을 했다. 할머니는 집안에 우환이 있다 싶으면 먼저 점장이를 찾아갔다. 점장이를 찾아간 후에는 어김없이 굿을 했다. 이것도 제발 식구들에게는 질색이었다. 점장이가 집안에 들락거리는 것조차도 식구들에게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호령 한 마디로 굿 준비를 명령했다. 할머니의 명령에 거역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하면서도 집안 식구들은 모두 부끄러웠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로서 차마 할 일이 못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내가 부끄러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른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잘 못 되려고였는지는 알지 못하나 그 날 따라 갑자기 목사님이 들이닥쳤다. 목사님은 가끔 의례적으로 심방을 하셨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의례적인 심방이 아니라 말하지만 이제 벌어질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할머니, 경사라도 있습니까. 집안에?”
목사님은 앉자마자 할머니에게 도전했다. 그러나 참 얄밉게도 할머니는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목사님의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으나 할머니는 더욱 온화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목사님은 아실 일이 아닙니다.”
가정일이니 목사님께서는 간여하시지 말라 그 말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이 한 마디 말로 물러설 것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께서도 그걸 눈치채셨는지 더욱 낯빛을 부드럽게 하면서 뭐라고 대꾸하려는 목사님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아가, 차 들여라.”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귀가 큰방에 쏠려 있었다. 손놀림은 여전했지만 온 신경이 그쪽에 가 있었다. 그러나 그만 이야기가 뚝 끊겼다. 다시는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이다. 차를 가지고 들어갔던 어머니께로 모두 우르르 모였지만 소득이 없었다.
“어째?”
“싸울 태세는 아니던가?”
어머니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럼, 뭐야?”
“저 조용한 방 안에 아무 일도 없다는 거야?”
어머니께서도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싸우시는 게 아니었다. 목사님은 깊이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묵묵히 그걸 보고 있다가 두 눈을 감아버렸다고 한다.
‘할머니 가슴속에는 신이 몇이나 살고 있을까?’
헤아릴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나도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 북치는 할아버지
“야아, 너는 ......?”
“녜, 아! 그 북치는할아버지.”
“벌쭉이대장.”
“벌쭉이대장이라? 흠, 아, 허허허! 멋진 이름을 가졌구나.”
벌쭉이대장이 멋쩍어서 벌쭉 웃었더니 할아버지는 단박에 대장의 별명을 알아내버렸다.
“널 한 번 만나고 싶었지.”
“할어버진, 어떻게 아셨어요?”
‘뭘 말이냐’라고 표정을 지으시던 할아버지는 대장의 물음을 또 금방 알아챘다. 할아버지와는 말을 나누기가 여간 편한게 아니었다.
“네 얼굴이 그렇게 씌어 있었어.”
“언제 절 보셨는데요.”
“그날 보았지. 네가 어둠속에서 날 찾고 있을 때 .......”
그랬었구나. 아무도 보지 못했는줄 알았는데. 대장은 무 캐 먹다 들킨 사람처럼 머쓱해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도 누군가는 항상 우리를 보고 있단다.”
“그래서 전 아무도 몰래 일을 꾸밀때는 주위부터 살피는 걸요.”
“아냐.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너, 눈의 시력은 한계가 있는 걸 알지? 그래서 사람들은 망원경을 만들어 낸거야. 그러나 나는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는걸 늦게야 알았단다.”
“거, 뭔데요?”
“너, 산 저 너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겠니?”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밋밋하게 뻗어오른 먼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대장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나는 .........”
할아버지는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는 이름난 학자였다. 할아버지는 하루 일과는 별을 보는 일로 시작해서 별에서 눈을 떼는 것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미친사람 취급을 했다. 자나깨나 별, 별뿐 도대체 다른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끼니를 제대로 찾아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수염과 머리칼이 몹시 자라서 털복숭이가 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생활, 그것이 멋대로였다. 더구나 말도 없어지고 나들이도 좀처럼 하지 않았다.
“짐작할 수 있겠니?”
“네. 숲속에 사는 고릴라 같지 않았을까요?”
“고릴라? 그렇겠지.”
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런데 어째서 무당의 북치기로 변신했느냐는 것이 의문이었다.
“그 날도 나는 별을 관찰하고 있었다. 금성 부근에 이상한 징조가 일어나고 있었어. 몇 달 동안 금성을 관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그런데 한밤중 쯤 굉장히 빛나는 물체를 발견한 거야. 지구를 향해서 소리 없이 날아오는 빛을. 그게 바로 UFO였단다.”
UFO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관찰을 몇 년동안 했다. 그래서 그 결과를 학계에 보고 했더니 과학자들은 날 미친 사람 취급 했단다. 쫓겨난거나 다름 없었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가 쓸데없이 일을 해서 과학 발전에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과학단체에서 제명되었다. 할아버지는 과학이 자연현상을 증명하는 가장 위대한 방법이 아니라 거꾸로 가장 모자란 일임을 깨달았다.
* 길
외길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나는 세상의 길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거야. 그게 실수였다. 도회지의 넓은 길을 보아라. 사통팔달이란 말 너 알겠니? 어디로 가든 목적지에 닿는건 문제 없어. 다른 점이 있다면 빤히 뚫린 큰 길로 간다면 빨리 닿을수 있다는 거겠지. 그러나 돌아서 가면 시간은 늦을지 몰라도 큰 길로 간 사람이 볼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단다.
'눈 감고 보고.'
여기에 대해서 북치는할아버지는 실제로 증명을 했다. 눈을 뜨고 보는 것보다 더 잘 보인다는 것 말이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인다?)
대장이 의문을 느낀 건 당연했으나 그 의문은 단번에 깨져 버렸다.
"자, 눈을 뜨고 보아라. 네 눈안에 보이는 걸. 다 보았겠지? 이번엔 눈을 감고 금방 보았던 것을 다시 보아라. 어때? 건물안에 있는 물건들과 눈으로 보이지 않던 사무실의 모습들이 환하게 드러나지 않니? 눈을 뜨고 보면 시력의 한계만큼 생각에도 한계가 생긴단다. 저 산봉우리가 보이지?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산봉우리 안의 세계가 모두야. 그러나 눈을 감고 보면 산봉우리 너머 다른세상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지.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대장의 표정이 난처해졌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눈치를 채고 말을 바꿨다. 지금 여기선 너희 집이 보이지 않지? 그러면 눈을 감아 봐. 그리고 너희집을 눈 앞에 떠올려봐라. 어머니가 집안에서 하시는 일이 떠오르지? 사람에게는 이렇게 두 개의 눈이 있단다. 너도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다른 하나의 눈을 떠야 한다. 나도 늦게야 이 눈을 다시 발견한거야. 그래서 망원경을 팽개쳐 버린거란다. 망원경으론 볼 수 없는 더 먼 곳을 보기 위해서지. 아무리 성능이 좋은 망원경이라 하더라도 고작 태양계 주위를 간신히 볼 수 있을 뿐이란다. 그러나 눈을 감아 보렴. 태양계들을 볼 수 있단다. 길도 그렇지. 여기서, 가령 서울을 간다고 하자. 기차, 비행기, 자동차, 배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방법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길이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일은 서울 가는 길이 꼭 한가지밖에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일과 같았다. 작은 일에 쫓겨서 더 큰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결과란다. 그러나 넌 지금이 할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지? 하필 무당의 북치기가 되었으냐고.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에도 길이 있었기 때문이야. 이를테면 내가 별을 관찰한 목적은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는데 무당의 북치기에도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있었단 얘기지. 너도 자라면서 길을 보게 될거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가거라. 그러나 한 길 뿐이라고 고집하지는 말아야 한다."
대장은 북치는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는 있었으나 가물가물 생각이 꼭 잡혀지지 않아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 최초의 축복
북치는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퍽 어려웠다. 대장은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더 자라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너는 축복받은 아이다 라고 하신 말씀도 물론 그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였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날, 일제고사를 치른 다음날 우리는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렸었다. 선생님께서 복도를 걸어오시는 찰쌀찰싹하는 슬리퍼 소리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실상 우리라고는 했지만 그 우리들 중에서 대장같은 아이들은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일제고사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은 성적이 90점 가까이 되는 수제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이번의 시험에서는 누가 1등이냐 하는 일에 모든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그외의 아이들은 그저 학급 평균 아래 성적만 아니면 되었다. 학급 평균보다 아래인 아이들은 안경선생님이 혼자 정한 규정대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장의 성적은 80점 근방이어서 중간 정도였다. 어쩌다가 10등안에 드는 수도 있었지만 그건 가끔 어찌된 때의 일이어서
“어찌 된 일이냐?” 고 넘어가는 게 고작이었다. 더구나 평균 95점 이상 주는 ‘금상’이나 90점이상 주는 ‘은상’ 그리고 85점이 되어야 탈 수 있는 ‘동상’도 대장 정도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한 번은 대장이 불쑥
“선생님, 85점과 84점의 차이는 얼맙니까?”
이렇게 물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야 1점이지 뭐겠니.”
이렇게 대답해 놓고 안경 선생님은 곧 대장의 물음에 물음표를 찍었다.
‘뭐야, 녁석이 1점차를 몰라서는 아니겠고?’
“대장, 너!”
이렇게 서두를 끄집어놓고 다음에는 완전한 설교였다. 설사 84. 9가되어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규정이 그러니까 그대로 따라야 한다. 84점 99가 된들 어떻게 해볼 수가 없고, 84. 999가 되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대장도 긴장되어 있었다. 시험을 치른 날 오후에 벌써 말이 돌았다.
“이 번 시험엔 대장이 1등이라더라.”
“대장이? 그럴 리가 있나.”
“확실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래.”
“유비통신이겠지.”
아이들은 반신반의했다.
아무도 곧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장 자신도 그렇게 잘라버렸다. 그러나 요한한 슬리퍼 소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의 눈이 맨 먼저 대장에게 닿았다. 대장은 그때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 대장의 탄생
“1등 평균 98점.”
안경선생님은 이렇게 뜸을 들였다. 싱글벙글 웃으며 아이들을 살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 웃으면서도 가슴이 콩콩 뛴다.
‘누굴까?’
아이들은 모두
‘내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안경선생님은 짖궂게도 아이들의 약을 올리고 있다. 모두들 선생님 입만 쳐다본다.
“1등은 대장!”
“와아!”
그러나 함성 소리에도 좀 이상한 기운이 깔려 있다. 환영, 찬탄, 격려 이런 뜻이 섞여있는건 전과 다름없다. 전과 다른 건 너무 의외라는 의구심이다. 벌쭉이대장이 1등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까지 대장이 1등은 고사하고 10등 안에 든 적도 별로 없었으므로 아이들이 놀란 건 당연하다. 물론 내색은 안했지만 선생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할 말로 남의 시험지를 보고 썼대로 1등은 말이 안된다. 1등짜리 아이를 베낀 아이가 2등이나 3등은 될 수 있어도 보고 쓰거나 베낀 아이가 1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번 되짚어 생각한 끝에 대장의 1등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개운치는 않다.
'벌쭉이대장.'
본명 박훈주. 동무들은 대장이라 부른다. 집에서는 그냥 훈이라고도 한다.
'벌쭉이대장.'
요새 안경선생님의 머리속에는 대장으로 꽉 차 있다. 일제고사 성적표를 받은 날로부터 대장이 선생님을 온통 독차지해버렸다.
“애, 널 왜 모두들 벌쭉이대장이라 부르지?”
대장은 대답 대신 벌쭉! 웃었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대장의 웃는 모습은 정말 볼만하다. 나이 또래 치고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입이 벌쭉 웃을 때는 귀밑까지 쭉 찢어진다.
‘아함, 그래서 벌쭉이대장이랬군.’
안경선생님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장을 막 맡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은 학년 초의 일이었다.
그나저나 안경선생님의 생각은 깊어남 간다. 녀석을 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도 도무지 녀석의 행동을 종잡을 수가 없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도깨비 같은 녀석.’
어째 하필 도깨비란 낱말이 선생님의 머리속에 떠올랐을까.
선생님은 어린시절에 도깨비란 말을 많이 듣고 자랐었다. 지금 아이들이 로봇이니, 컴퓨터니 하는 말을 생활용어로 사용하는 것처럼 도깨비, 도깨비 감투, 도깨비 방망이들이 가슴속에 살아 있었다. 헌 빗자루가 도깨비가 된다는 일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었고.
'벌쭉이대장.'
'도깨비 같은 녀석.'
* 도깨비 실화
‘도깨비 같은 녀석!’
벌쭉이대장을 그렇게 불러놓고 안경선생님은 퍽 만족스러웠다.
안경선생님이 자란 마을은 시골이었는데 마을 앞 한 1km쯤 나가면 남해가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도깨비불이 흔해 빠져서 구름다리 마을 사람들 치고 도깨비불 못 본 사람은 없었다. 아니 도깨비와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경선생님이 맨 처음 도깨비불을 본 것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여름 초저녁 이었는데 쇠깔(소먹이풀)을 한 짐 잔뜩 지고와 외양간에 부린 머슴이 일러 주었다.
“웃밭몰 청년 등에 도깨비불 크게 질렀더라.”
그 말을 듣고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졸랐다. 혼자는 무서워서 엄두도 못내고 할아버지 손을 끌고 마을 사장나무를 지나 동각 옆을 돌았다. 과연, 도깨비불이었다. 모닥불처럼 타오르는 새파란 불빛. 여름철 해질녁 땅거미가 좌악 깔린 들판에 파란 불꽃이 모닥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할아버지 허리 뒤에 숨어 타오르는 불을 보았다. 요사스런 기운이 들판에 번져 나갔다. 금방 파란 불꽃이 자신을 덮칠 것 같았다. 무서워서 턱이 덜덜 떨렸다. 할아버지께서도 저렇게 큰 도깨비불은 처음 본다시며
“잘 마른 솔가지 두 단 태우는 정도였어.”
가끔 되뇌이셨다.
두 번째 경험은 몇 년 후 선생님이 중학생 때였다. 놀러 온 외삼촌들과 마을 앞 바닷가 제방에 놀러갔을 때 선생은 바다에 퍼렇게 떠 다니는 인광을 보았다.
“삼촌, 저 게 뭐지?”
“도깨비불이야. 왜, 무섭니?”
“아니!”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선생님은 삼촌의 어깨를 바짝끼고 앉았다. 작은 파도에 실린 인광은 마치 바닷고기들의 눈빛 같기도 하고, 싱싱한 바닷고기들의 비늘이 달빛에 반사되어 튀어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인광은 어린 시절 모닥불처럼 타오르던 도깨비불과는 사뭇 달랐다. 남실거리는 파도를 탄 인광들은 좌악 흩어지는가 하면 곧 커다랗게 뭉쳐서 움질움질 움직이다가는 또 쫘악 흩어졌다.
세 번째 도깨비불을 본 것은 안경선생님이 선생님 발령을 받은 시골에서였다. 선생님은 모교로 첫 부임을 해서 산길로 4km를 걸어 통근했다. 어느 토요일 숙직을 하려고 초저녁 산길을 걷다가 공동묘지에 켜진 도깨비불을 보았다. 함지박만한 파란 불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갑자기 위로 한 길쯤 치솟았다, 솟구쳤다가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 구르는 것처럼 좌우로 궁글었는데 그 때 10년은 감수했노라고 늘 말씀하셨다. 안경선생님은 도깨비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이들이 모르는 어린 시절의 그 세계로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 신비한 경험
일제고사 성적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은 비단 안경선생님만이 아니었다. 대장네 집 안에서도 무슨 큰 일이 벌어진 것처럼 요란스러웠다. 학교에서는 동무들과 선생님들이 만날때마다 그 일로 말을 걸어왔고 끝내는 마을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된 것은 벌쭉이 대장 자신도 그 일을 궁금하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98점이라.’
하마터면 전교 1등이 될뻔한 사건이었다. 6학년 수재가 98. 5를 얻어서 전교 1등을 차지했기에 망정이지. 전교 1등이 되었다면? 아찔하다. 생전 1등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가 당연한 일이다. 대장이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넌 축복받은 아이야.’
‘그 할아버지.’
‘날개가 흰 비둘기.’
‘굿판.’
대장의 안테나에 걸린것들은 최종적으로 이런 것들이었다. UFO를 연구하다가 무당의 북치기가 되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세상에 UFO라면 아직 우리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인데 하필이면 미신과 손을 잡다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UFO와 무당. 아무래도 벌쭉이대장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인성 싶었다.
‘할아버지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없을까? 어디로 가야 만나지?’
대장은 부쩍 고민이 많아져서 그것도 문제였다. 집안에서는 어른들이 대장이 요즘 이상해졌다고 주의깊게 살피고 있었는데 대장도 그 기미를 대강 눈치채고는 있었다.
“대장, 너 요즘 어떻게 된 거야?”
“대장, 너 좀 이렇게 된 거 아냐?”
노골적으로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저 녀석, 1등을 하더니만 행동이 좀 수상해.’
안경선생님께서도 벌죽이 대장의 심리 변화를 추적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누가 뭐래도 이 문제만은 풀어야 해.’
대장은 스스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할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작심을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만났던 곳으로 자신도 모르게 접어들었다.
‘아니?’
할아버지였다. 도끼비에게 홀린 것 같았다.
“할아버지.‘
“왜, 놀랐니?”
“마치 절 기다리신 것 같잖아요.”
“기다렸지.”
“어떻게 제가 올 걸 알고 .......‘
“네가 그렇게 말했지 않니?”
“마음속으로는 그랬었지만 ......”
“다, 속내를 아는 수가 있지. 그래 뭐가 그렇게 궁금한거지?”
“모두 다요?”
“녀석, 한 가지씩 차근차근 말 하렴.”
* 신비한 경험
“내가 했던말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
할아버지께서는 평평한 돌을 찾아 걸터앉았다. 빙긋이 대장을 쳐다보시며 웃으셨다.
“녜.”
“그렇다면 내가 설명 안 해도 알고 있겠구나?”
대장은 고개를 도리질 했다.
“아녜요. 아무래도 알 수 없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지 이해할 수 없어요.”
이리 와봐 하는 것처럼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셨으므로 대장은 할아버지 곁에 앉았다.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할아버지가 대장의 손 위에 손을 얹으셨다.
“넌 축복을 받은거야.”
“축복이 뭔데요.”
“축복이 뭐냐고? 그래, 차차 알게 되겠지.”
대장에게 할아버지의 말씀은 궁금증을 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걸 할아버지는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에요. 제가 어떻게 갑자기 하루 아치에 1등을 할 수 있었겠어요.”
“시험볼 때 아무 일도 없었니?”
“시험볼 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하려고 할 때 대장은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어요. 그래요. 누군가 머리 속에서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랬을 게다.”
“전 그냥 답이 술술 나와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는데요.”
“다른 때 하곤 다르다 했잖니?”
“그러니까 1등을 했죠. 다른 때는 턱도 없어요. 전 꼴등은 아니지만 맨날 가운데 쯤에서 뱅뱅 돌았거든요.”
“좀 더 생각해 봐라. 그것이 무엇이었었는지.”
“문제를 읽고 나면 .... 아 이게, 답이구나! 하고 쉽게 술술 짚이는 거 아시죠?”
“누워서 콩떡먹기라 이 거군.”
“맞아요, 그 말씀이.”
“예사 콩떡이 아니구나. 또 뭐 기억나는 거 없니?”
“환한 것 같았어요.”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말이렸다.”
“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또. 더 생각해 봐.”
“하얀 빛?”
“옳지. 점점 가까워진다.”
“하얀 빛과 날개.”
“그래, 바로 그 거다.”
“그래요. 하얀 빛과 날개가 보여요.”
“더 자세히 보거라.”
“아주 힘센 빛이에요. 눈이 부셔요.”
“빛 속에서 뭔가 날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차차 알게 되겠지.”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나요? 한 번 경험 해보고 싶지 않나요?
* 도깨비 씌운 아이들(1)
한참 약이 올랐을 때 안경선생님은 안경을 끌어 내리는 버릇이 있다. 그렇잖아도 내리걸린 안경이 콧등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다.
‘요노옴!’
안경선생님의 두 눈이 안경테 위에서 반짝인다. 대상은 바로 동균이다. 선생님과 동균이의 눈이 마주친다. 동균이가 움칠 놀란다. 책상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동균이 손이 책상 위로 슬그머니 올라온다. 그리고 눈을 내리 깔고 어깨를 움츠린다. 분위기로 사건을 알아챈 아이들의 눈이 한 곳으로 모아져 있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선생님이 기어이 동균이 앞으로 간다. 손바닥을 펴서 동균이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내놔!’
동균이의 상이 곧 죽을 상이다. 실내는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다.
“내노래두!”
이럴 땐 재빨리 내놓는게 상책이다. 한 두 번 당해본 일인가. 동균이는 ‘아휴’ 이제 살았다 싶었던지 얼른 책상 속으로 손을 뻗어 선생님 코 앞에 주먹을 들이민다.
“에그!”
아이들이 먼저 자지러진다. 물론 놀란건 선생님이 먼저지만 적어도 나타난 외침은 그렇다. 선생님은 손을 내밀었다고 번개 같이 움츠리며 두어 걸음 뒷걸음질친다. 아이들의 탄성과 함께 교실 바닥에 툭! 떨어진 건 뱀이었다. 녹색 윤기가 도는 화사 한 마리가 부르르 교실바닥을 기어간다. 적어도 선생님과 아이들 눈에는 그렇게 비쳐졌다.
“뱀! 진짜 뱀 아닌데?”
‘뭐야!’
‘저렇게 스물스물 기어도 가는데 뱀이 아니라고?“
“점방에서 산 백원짜리 장난감이에요.”
아직까지도 뒤로 제켜졌었던 선생님의 손이 슬그머니 앞으로 돌아온다.
“보세요. 이게 진짜 뱀인가요?”
누가 절 보고 지금 해명하랬나? 순진하게 해명하는 민호 녀석조차 밉게 보인다.
“알았다. 네 자리로 돌아가 임마!”
‘꽥!’ 지른 소릿발에 아이들이 움칫 움츠려든다. 배꼽을 잡고, 허리를 움켜 쥐고, 곁의 짝궁과 얼싸안다시피, 더러는 교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금시 약속이나 한 듯이 뚝! 그쳤다. 안경 선생님의 신경질적인 ‘쾍!’ 소리가 그만큼 위력이 있었던 거다. 아이들은 이걸 2차 대전 당시 일본 나카사키에 떨어졌다던 핵폭탄 3개와 맞먹는 위력이라고 오래 전에 명명해 두고 있었다.
“아이고, 이 망나니 자슥아!”
안도의 한숨인지 비극적인 통곡 일보전의 걱정인지 분간이 안 되는 말씀으로 끝이 났다. 그 뒤로도 동균이는 비닐주머니에 게를 잡아 넣어 오는가 하면 자벌레를 기른다며 책상 속에 넣어두었다가 안경선생님께 호되게 당했다. 그리고 꿀 밤 몇 대씩과 함께 벌레박사란 별명을 얻었다.
* 도깨비 씌운 아이들(2)
아무리 곱게 봐주더라도 민호는 문제아다. 안경선생님의 걱정은 벌쭉이대장이나 동균이에게서 끝난 것이 아니다. 속내를 앓는다면 분명코 민호가 단연 1위. 매일 민호로 인한 말썽거리가 끊임없이 생겨난다.
오늘의 사건도 발단은 모두 민호에게로 귀결된다. 둘째 시간이 끝나고 한 껀, 껀수를 올린 민호 녀석 다시 셋째 시간 별 한 개를 더 붙이고, 점심 시간에 다시 한 개 더.
첫 번째 사건.
둘째 시간 공부 내용이 좀 길어져서 안경선생님은 쉴틈없이 바로 셋째 시간으로 넘어갈 양으로
“화장실에만 다녀와!”
이렇게 한참을 기다려 수업을 시작하려고 교실을 둘러보던 선생님은 민호와 석룡이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장, 가서 아이들 들어오래라!”
반장 형록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갔다가 운동장에도 변소에도 아이들이 없다고 보고해 왔다. 다시 선생님이 정탐꾼을 풀어 본 결과 두 아이들이 교장실에서 벌을 쓰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끝내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무도 민호와 석룡이가 벌 쓴 이유를 알지 못했다.
두 번째 시간.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가 시작되어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특사가 왔다. 쪽지에 이른 즉 ‘민호를 좀 보내주십시오. 조사할 것이 있습니다.’ 안경선생님은 영문도 모르고 민호를 특사편에 딸려 보냈다. 점잖은 4학년 심 선생님이 정중하게 말씀하신 일이라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다. 사건이 처리된 다음 본인의 입을 통해서 알아낸 일은 민호와 그 패거리들이 저지른 치마 뒤집기 사건 때문이었다. 민호와 패거리들이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었던 4학년 여학생들의 치마를 홀라당 까 뒤업어 머리에 씌어놓고 팬티를 구경했었던 일이었다. 그 때 쯤 팬티 패션 쇼라는 노래가 교내에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컸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사건.
‘따봉 사건.’
“선생님, 으흥, 앵!”
다운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또, 뭐야? 왜 그래?”
“아이들이 막 ........”
“아이들이 어쨌길래?”
다운이는 더 대답을 하지 않았고, 결국 민호를 다그쳤더니, 이 녀석이 대답이 여학생들의 엉덩이나 가슴 부분을 찰싹 때리며 따봉! 했다는 것이다.
“따봉이 무슨 뜻이냐?”
안경 선생님은 아이들의 의도를 분석하려고 하였다.
“되게 좋다는 뜻이에요.”
선생님의 머리 속에 한층 더 엉클어져버렸다.
* 도깨비 씌운 아이들(3)
“누가 젤 힘이 쎄냐?”
민호는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우리반에서 누가 젤 힘이 좋냐니까?”
벌쭉이대장도 벌쭉 웃었다. 귀밑까지 째지는 그 입이 한번 벌어졌다가 닫히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분.
안경선생님이 이렇게 묻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가끔 두 아이가 맞부딪칠 때가 있었는데 아직 판가름이 나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이 불씨를 사전에 꺼버리지 않으면 둘 다 상처를 받을 염려가 있었다. 또 만약 두 아이가 대결을 해서 하나가 이기고 져도 상처가 크기 때문에 서로 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갑자기 벌쭉이대장의 기가 오르고 있다면 석룡이는 내리막길이었다.
본래 석룡이는 할머니 어머니와 단 세 식구였는데 며칠전에 석룡이 어머니가 시집을 가버렸다. 석룡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석룡이 키우는 재미로 혼자 살겠다던 사람이 훌쩍 떠나버린 것이다. 석룡이는 그 일 때문에 며칠 학교를 빼먹었고, 할머니 손에 끌려 학교에 나와서 엉엉 울었다. 아이들도 모두 눈물을 찔금 거렸다. 유진이의 말에 의하면 선생님도 울었다는 것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이 우시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데도 유진이는 막무가내였다. 안경선생님이 안경을 벗어 닦는 것은 선생님의 눈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여튼 이런 환경이었으므로 두 아이의 대결이 얼마되지 않아 일전을 벌이리라는 것은 예상되고도 남았다. 그러기 전에, 두 아이가 상처를 받기 전에 선생님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토요일 오후에 자치기 시합」
선생님이 퇴근하시면서 칠판에 방을 붙였다. 다음날 아침 등교를 한 아이들은 선생님의 의견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은 대장과 석룡이가 한 편씩을 맡아 시합을 하기로 결론이 났다. 선생님은 출근하기 전에 아이들의 의견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 했다.
“상품을 걸어 놓고 합시다아!”
“매주 토요일마다 하게 해주세요!”
“진 편에게는 변소 청소를 시킵시다!”
“아냐, 진 편은 일 주일 동안 가방을 들어다 주어야해!”
“숙제 대신 해주기 어떨까?”
이 대목에서 안경 선생님에게 덜미를 잡혔다.
“예끼 놈들. 숙제도 대신 하기가 있는 거냐?”
(그래. 요녀석들 가끔 서로 숙제 내기를 했는지도 모르지.)
* 도깨비 씌운 아이들(4)
“그런데 말이다. 자치기가 뭐냐?”
“야구 같은 것이겠지 뭐.”
“혹 고무줄놀이 같은 건 아닐까?”
“아닐거야. 우리가 뭐.”
“여학생들이 아니다 이거겠지?”
“하여튼 두고 보자. 보면 알테니까.”
대체로 아이들의 의견은 이런 쪽이었다.
안경선생님의 오후는 예상외로 바빴다. 자치기 도구를 만드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놀이의 규정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하고 공정한 심판을 위해서 득점 기준도 결정해야 했다. 또 아이들이 좋아할지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으며,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흥미있게 진행하기 위한 계획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어린시절에는 자치기놀이가 유일한 공동놀이였다. 대개의 놀이가 거의 대부분 개인놀이였으나 자치기만은 편을 갈라 놀이를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하나 둘씩 동각마당에 모이면 편을 나누고 기다렸다가 자치기를 했다.
우선 두 개의 길고 짧은 막대가 필요하다. 굵기는 자유로우나 대강 아기 팔뚝 만한 것부터 연필 굵기만한 것까지 놀이 모임의 연령에 따라 막대의 굵기는 다르다. 하나는 약 15cm정도의 원을 그려놓고 작은 막대를 원안에 때려 야구공처럼 멀리 날려보내는 것이고, 또 살짝 구덩이를 파서 작은 막대를 구덩이에 걸친다음 긴 막대로 멀리 날려보내는 방법도 있었다. 작은 막대가 날아가는 것을 수비하는 편이 공중에 잡으면 타자는 아웃. 못잡으면 막대가 떨어진 곳에서 원 안에 놓인 긴 막대를 맞히었는데 맞히면 또 아웃 못맞히면 타자가 긴막대와 짧은 막대를 들고 짧은 막대를 날려보낸다. 이 때는 날아가는 짧은 막대가 매우 위험하다. 강한 타력에 의해 날아가므로 신체 부위에 맞으면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스릴과 순발력 등 운동 신경이 요구되고 격렬한 운동으로 청소년들에게 매우 권장할만한 운동 경기이다. 쳐서 날린 짧은 막대를 잡지 못했을 경우 떨어진 막대를 수비가 주워서 타자의 원을 향해 던진다 던져 긴 거리를 원과의 예측으로 몇 자라고 부르는데 공격편에서 이의가 있으면 실제로 긴 막대로 재어 수비 부르는 자수 미달이면 아웃되고 남으면 계속한다. 득점은 그 자수를 합산해서 100자. 200자들로 다양한 승부를 한다. 경기 인원은 최저 2명, 많으면 편당 10여명씩도 더 넘게 경기인원을 늘릴 수도 있다.
“야구, 너희들 좋아하지?”
아이들이 모두 함성처럼 대답했다.
“좋아, 자치기 놀이는 야구 보다 더 재미있는 경기라는 걸 가으쳐 주마.”
안경 선생님의 의지는 대단한 것 같았으나 아이들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후 토요일은 날씨가 맑고 밝았다. 밝은 햇볕 아래서 끊이지 않고 함성과 고함이 들려왔다.
* 시간찾기
안경선생님 우리를 너무 자유롭게 기르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아이들 버릇이 자칫 염려 된다.”
부모들의 생각이었다.
“학교에는 학교 질서가 있고, 공부와 놀이에도 질서와 규칙이 있는 법이요.”
선생님들은 이렇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주 곤경에 빠졌다. 사실 우리는 우리들의 환경에 비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은 너희들 자신들의 시간을 계산해 보도록.”
‘뭔가, 또 일이 벌어지고 있군.’
아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나 선생님의 깊은 마음은 적어도 표정으로는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짜여진 시간을 잡아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자투리 시간이 턱도 없이 모자라서 이것 저것 보태봤으나 하루 24시간을 아귀 맞추기가 무척 난감했다.
‘우리가 너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대장은 자투리 시간을 쫓다 말고 잠깐 한 눈을 팔았다.
“얘, 이것 좀 봐.”
유진이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공책을 내밀었다. 유진이의 하루는 25시간이었다.
「유진이의 하루」
아침 7시에 일어남. 청소와 세수 그리고 아침 공부, 아침 밥 1시간 20분. 등교 10분, 아침 자습부터 공부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데까지 6시간 30분, 집에 돌아가는 시간 30분(군것질과 상점에서 보내는 시간 포함). 피아노 학원 2시간. 오가는 시간 40분. 과제 1시간 30분. 일기쓰기 30분. 잠자는 시간 9시간. 합계 25시간.
“어디가 잘못 되었을까?”
“없었던 일을 더 쓴 거 아니니?”
“그런 건 없어.”
“그래도 하루가 25시간이 될 수 있어?”
유진이는 울상이었다. 가만히 보자니까 계산을 확인하느라고 전자계산기를 빌려다가 또닥또닥 맞추더니
“하루가 24시간이란 거 틀린 말 아냐?”
“무슨 바보같은 .......”
“사람에 따라 하루는 24시간도 되고 25시간도 되는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그러나 별일이었다. 하루가 24시간이 넘은 아이들이 4명이나 더 있었다. 대개는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지 못해 모자랐으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25시간이 넘은 아이도 있었다.
“모자란 사람은 기어코 찾아내고 남은 아이들은 이유를 생각해 봐.”
선생님은 엄명을 내리셨다. 대장은 자투리 시간을 생각해 내려고 끙끙거렸으나 아무래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겨지고 말았다.
* 유혹
“?”
“ ......... ”
벌쭉이대장이 유치원 때는 이렇게 말이 통했다. 적어도 엄마하고는 가령 대장이 가방을 챙겨 어깨에 메고 나서 인사를 하기 전에 이렇게 손을 벌리면 엄마는 그냥 알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동전 서너개를 주셨으니까.
“다 큰 녀석이, 아직도 너 유치원생인줄 알아?”
언제였던가. 아마 3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여태 그랬던 것처럼 어리광스럽게 손을 벌렸다가 느닷없이 꾸중을 듣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 뒤로 대장은 용돈타 쓰기가 쑥스러워진 것이다. 그러나 몸이 커갈수록 군것질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쪼끄맸을 때는 밥통도 따라서 작을테니까. 글세, 그러나 이런 이유는 적어도 어른들 특히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만약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엄마 몰래)이 아니었더라면 잘은 모르겠지만 대장은 나쁜짓을 저질렀을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엄마와 다른지. 그래, 할아버지는 버젓이 학교도 다닐만큼 다녔고 선생님을 수십년씩이나 하셨는데도 엄마와는 늘 의견이 다르다. 엄마는 대학까지 나오셨다해도 아이들의 마음을 모른다. 적어도 아이들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대학까지 나온 엄마가 형편없다.
“아버님도 참 ...........”
할아버지가 대장 역성을 들 때마다 엄마는 말을 못한다. 그러시면서도 할아버지 눈만 피하면 닥달하고 볶아댄다. 마치 할아버지에게 복수라도 하는 것 같다.
참말로 그 상점들만 없었어도 대장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가방을 들춰메고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대장의 눈, 코, 입 심지어는 뱃속까지도 오직 한곳으로 집중된다. 상점이다. 아닌게 아니라 상점 앞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바글바글 거린다고 해야 옳다. 더러는 대장처럼 땡전 한푼도 없으면서 기웃거리거나 동무들의 물건사는 일에 부조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한두 푼씩을 지니고 있었다.
용돈이 떨어졌을 때 상점을 지나쳐 온다는 건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대장은 아예 상점을 피해 멀리 개울둑으로 지나다녔다. 그것도 며칠. 안 보려고 눈을 감으면 더 또렷하게 떠오르고, 돌아가려고 해도 발걸음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때로는 왜 내가 상점주인 아들이 아니었는가를 원망하기도 했다. 매일 풀이 죽어 어깨가 처진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제일 눈치 빠른 할아버지가 그 고민에서 헤어나게 해 주셨다.
‘두고봐라. 커서 돈을 벌면 맨 먼저 할아버지 선물부터 살테야.“
* 정신연령
정신연령이라는 건 코흘리개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대장이 어렸을 때 대장은 유난히도 코를 잘 흘렸다.
“아직, 정신연령이 어려서.”
“수말스러운데오 있는데.”
대장의 용돈은 정신연령과 관계가 깊다. 유치원 때도 그랬지만 대장은 2자와 5자, 6자와 9자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때도 선생님과 엄마의 말씀을 자세히 새겨 보면 정신연령 때문이라고 했다.
“정신연령?”
할아버지, 정신연령이란게 뭐죠 라고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누가 네게 그걸 묻든?”
“군것질 돈을 달래니까 엄마가 그렇게 야단치셨어요, 정신연령이 낮은가 보다고.”
“하기야, 넌 몸이 훨씬 앞서 자랐으니까 그말을 듣게도 됐다.”
“그게 뭔데요?”
“철이 없다는 뜻이다. 속이 없다는 말이었겠지.”
그래도 대장은 할아버지 앞에서만은 제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용돈 분배의 법칙을 틀렸다는 점을 지적했다. 몸이 커질수록 먹는 것도 많아야 한다. 그러니까 동생에겐 군것질 용돈을 주고 자기에게 안 주는 일은 잘못되었다는 말이었다.
“흠, 흠.”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끔 끄덕이며 듣고 계셨다.
“그리고 .............”
대장은 할아버지의 동조에 사기가 살았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용돈을 한 달에 얼마씩 타서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나는 뭐야. 창피하게 필요할 때마다 손을 벌려야 하는데 이것도 내 나이쯤 되면 좀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 달라. 결론은 이렇게 맺었다. 이제 몸이 얼마나 커졌는가. 그런데 지금까지도 정신연령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아무리 접어 생각해도 불만이 많았다.
“용돈은 말이다. 관리할 능력이 있어야 타게 된다.”
한 달 용돈이라고 대강 얼마쯤 주었다고 하자. 예를 들면 하루에 필요한 용돈이 얼마, 또 학용품 등을 계산해서 5천원을 준다. 그렇다면 그 돈을 계획성있게 써야지 돈이 좀 생겼다고 며칠만에 다 낭비하고는 또 손을 벌리게 된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바로 네 애미가 말한 정신연령이라는 거다. 정신연령이라는 게 그런 것이었구나. 뭐 별 거라도 된 줄 알았더니. 그런 것 쯤이야 오늘이라도 당장 실천 할 수 있다고 대장은 할아버지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정말, 문제 없겠니?”
“네, 염려마시고 엄마께 말씀드려 주세요.”
대장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 소풍
"비가 올 것 같다."
"실망이 클텐데."
"하필 소풍날인데 날씨가 웬 변덕이지."
"그러게 말이다. 본래 큰 일에는 꼭 걱정이 따르는 법이니까."
대장이 소풍 가방을 꼭꼭 챙겨놓고 안 오는 잠을 억지로 눈을 붙이고 있을 때였다.
‘뭐! 날씨가?’
눈까풀 끝에 대롱거리던 잠이 금방 달아나버렸다. 할아버지와 엄마가 걱정을 하시는걸 보면 아무래도 심상찮은 모양이다. 재수는 없지. 왜 하필 이런 때 비를 내리는 걸까. 이럴 때는 비가 온다고 하지 않고 내린다고 한다. 원망 섞인 푸념을 늘어 놓을 대상이 있어야 하니까.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면 정말 낭패다. 맑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하필 내일이람. 날짜를 잡은 선생님들게 원망스런 생각이 든다. 까짓것 올테면 오라지. 하늘을 한 번 볼까 했으나 또 오두방정을 떨면 안 올 비도 올 거라고 꾸중을 들을 게 뻔해서 참고 있으려니 좀이 좀 쑤시는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안심 못할 일이다. 봄 운동회 때도, 그래 그래. 작년 소풍 때도 비가 왔었다. 점심 도시락을 펴놓고 막 자리를 잡았을 때 금방 하늘이 시컴해지더니 굵은 빗발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니들과 선생님들도 얄궂은 날씨는 원망했었다. 할 수 없이 교실 소풍을 했었지.
아이들은 우리 학교 행사 때마다 비가 오는 건 우리학교를 지으려고 터를 다듬을 때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인부들이 구렁이를 죽여버려서 큰 행사를 할 때마다 비가 온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우리 학교 터가 본래 공동묘지여서 지금도 땅 속에는 해골이 많이 있다는 거였다. 비가 오는 건 귀신의 훼방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의견으로는 대개 소풍을 가는 날이 목요일이거나 금요일이라거나 주말이 되어 비 올 날에 맞춰 날을 받는 때문이란 의견도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소문들이 퍼져 있었으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신뢰받는 소문은 구렁이설과 공동묘지설이었다. 그래서 어떤 날을 받더라도 비가 오고야만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의견은 그럴 듯했다. 학교행사 치고 맑은 날이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비가 오는 것이 아니고 내린다는 말은 믿을 만한 소문이었다.
“방법은 있어.”
그게 뭐냐니까 석룡이는 고사를 지내는 일로써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비가 없어서 가문이 들었을 때도 어른들은 봉화대에서 고사를 지낸 것과 마찬가지 이치로 비가 올 때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장도 가뭄에 동네 사람들이 봉화산 꼭대기에서 고사를 지낸 걸 본적이 있었다.
* 귀신
다행히 소풍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날씨가 끄물거렸으나 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크게 덕을 본 셈이다.
“그래도, 날씨가 흐렸지 않아.”
구렁이설을 들고 나온 민호가 물러서지 않았다. 천년 묵은 구렁이나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천년이 되면 용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민호는 구렁이가 조화를 부리는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신은 없다고 했잖아. 선생님께서도.”
“선생님이 뭘 알아.”
이김질이 드세어지자 민호는 막말도 했다. 언젠가 귀신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생님께서는 녀석들아, 이 과학시대에 귀신은 뭐가 귀신이야 라고 픽! 웃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며 알쏭달쏭하게 끝맺음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의견이 분분해진 것이다.
아버지가 목사님인 계화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도 악마라는 귀신이야기가 있어. 사탄이라고 하는 사탄은 우리가 옳지 못한 일을 하게 한 대나봐.”
“사람이 죽으며 몸은 사라지지만 혼령은 남는대.”
현상이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장례 때 어른들에게서 귀동냥한 말을 보탰다.
“모두 거짓말이야. 그렇담 왜 아직 귀신을 본 사람이 없어. 지금 같은 세상에 귀신을 잡아 표본병에 가둬놓고 연구할 수도 있잖아.”
반장 형록이가 귀신 쪽으로 끌려가는 의견을 잘라냈다.
“정말 귀신이 있다면 지금쯤 과학자들이 정체를 밝혀내고 말았을 거야.‘
형록이가 다시 주장했다. 그러나 그 의견에는 다운이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과학 잡지에서 본 내용인데 세상에는 지금까지 발달한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많다. 특히 잡지에서 읽은 영매술이라는 건 신비로왔다. 귀신을 불러내 사진으로 찍어냈다는 것이다.
“정말 사진을 봤어?”
“그렇다니까. 잡지에 실려 있었어.”
“어떻게 생겼든?”
“도깨비 같아?”
아이들이 우르르 다운이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찍혀있었다. 까만 어둠속에 하얀 윤곽이.”
아이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영매술이란 건 무당이나 점쟁이가 혼령을 불러내는 것과 같아.”
“예수님도 사람몸에 든 귀신을 쫒아 돼지떼로 몰아버렸단 이야기가 성경에 있어. 분명히.”
“불경에도 귀신은 있던데.‘
아이들의 의문이 곧 선생님께로 건너갔지만 선생님은 아무래도 결론을 내리기가 난처한 모양이었다.
* 이무기 전설
귀신에 대한 결론을 내리진 못했으나 안경선생님은 어린시절에 들었던 이야기를 해서 아이들은 오싹! 무서움증이 들었다.
귀신에는 달걀귀신이 있다. 밤에 겁없이 나돌아 다니는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
“나 좀 봐라!”
이렇게 겁을 먹여 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쓱! 문지르면 얼굴의 눈, 코, 입들이 없어지고 달걀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차일귀신인데 이 녀석은 산골짜기나 냇가 숲 속에 어둠처럼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마음 졸이며 지나가는 찰나 휙! 보자기 같은 차일을 투망치듯 덮어 씌어버린다. 몽달귀신은 처녀나 총각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어서 된 귀신인데 총각귀신은 꼭 처녀에게, 처녀귀신은 총각에게만 붙는다. 몽달귀신이 붙으면 대개 상사병이라는 병에 걸린다. 다행히 점을 치고 굿을 해서 귀신을 쫓아버리면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몽달귀신이 사는 곳은 으슥한 골목이나 처녀 총각을 묻은 묘 근처이다.
“묘한 건 이것들을 우리가 믿고 있다는 그 문제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어 곤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 문제를 인간의 정신문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즉 믿으면 있고 안 믿으면 없다는 그런 말이 된다.”
자신 없는 말씀에 스스로 퍽 곤란하신 것 같다. 그래선지 한 마디 더 얘길 하셨는데 이무기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어린시절 고향 마을 뒤에는 높은 산이 있었다. 사시사철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천방산과 옥녀봉, 그 골짜기에 옹달샘이 있었다. 옹달샘 치고는 깊어서 아이들은 함부로 가까이 하지 못했는데 그 샘 속에 귀달린 장어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 날 그 샘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퍼지더니 하늘로 뻗쳐 올라갔다. 구름 같기도 하고 안갯발 같기도 한 기운이 온 마을에 퍼졌다. 소용돌이쳐 오르던 기운이 하늘 끝에 닿자 번개와 뇌성이 울렸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그 말인성 싶었다. 어른들은 두려움에 꼼짝도 못했는데 개구쟁이 아이들 몇 명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나중에 어른들 말을 들을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옹달샘의 장어는 천년 먹은 이무기였다. 이무기가 천년이 되면 용이 되어 승천하는데 꼭 산 생명을 먹어야 한다. 정말로 며칠 뒤 선생님은 둥그스름한 혼불을 목격했고, 그 사흘 뒤 개구쟁이 대장 노릇을 했던 시돌이가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 용이 승천하는걸 숨어서 본 댓가였다고 말이 돌았다.
* 혼불
“정말인가요?”
“뭐가 말이냐?”
“선생님이 보셨다는 그 혼불!”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거짓말하겠니?”
“어떻게 생겼어요?”
선생님은 백묵으로 칠판에 그림을 그리셨다. 머리 부분은 작은 쟁반만하고 꼬리 부분에는 로케트처럼 불꽃이 퍼져 나온 모습이었다. 마치 올챙이처럼 머리와 꼬리만 형상이었다.
“푸르스름한 불꽃이었다. 별똥별이 흐르듯 가볍게 날았지.”
어스름한 해질녘 저녁밥을 먹을까 말까한 임시에 혼불이 소리없이 앞산 그리매 속으로 날아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저 것 좀 ......”
뒷간에서 나오던 할머니를 숨차게 부르며 선생님은 무서움에 몸이 떨렸다.
“혼불이다.”
할머니는 허리를 펴시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들으니 할머니는 혼불을 종종 보셨던가 보다.”
선생님은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 본 그 혼불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선생님네 마을은 귀신마을인가봐.”
벌쭉이대장이 벌쭉 웃으며 말했다.
“귀신, 도깨비불, 혼불 천지잖아.”
아무 대꾸가 없자 대장이 또 덧붙엿다.
“혼불이 나가면 사흘 안에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너무도 틀림없이 맞아서 더욱 두려웠다.
혼불이 나가자 할머니는
‘이번엔 또 누가 갈 건가’
라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시며 윗동네 앓아 누운 재평이 영감을 걱정하셨다. 그러잖아도 몸져 누운 영감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돌이가 숨졌다. 그것도 옹달샘 줄기에서 발원된 저수지에 빠져서.
“안 봐야 할 걸 본 거야.”
아이들이 겁없이 지나치게 영특해서 탈이 붙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엄명이 떨어졌다. 안산 상여집 부근과 옹달샘, 그리고 저수지 부근에는 얼씬도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때 한참 새집이나 새알 그리고 새새끼에 미쳐서 날이면 날마다 산을 쏘다녔다. 녹색 비비새알은 안산 오리나무 숲에 많았고, 갈색 멧새알은 안산 상여집 뒤 잔솔 밭에서 찾아냈다. 비둘기알은 천방에서 꺼내고, 도라지나 야생 딱주를 캐려고 옥녀봉골짜기를 뒤졌다.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도 지천으로 널려 있었지. 순식간에 서너 꿰미를 잡았었다.“
그러나 그 후로 한동안은 아이들의 나들이가 뜸했었다. 안개가 자욱한 천방산 정상 쌍묘에서 곧잘 방아찧는 소리가 들렸어도 이제 아이들은 확인한답시고 소리를 따라가는 무모한 짓을 못하게 되었다.
* 땅벌
“땅벌 잡으로 가자.”
민호의 제의에 벌쭉이 대장이 솔깃해졌다.
“어딘데?”
“봐둔 데가 있어. 갈래 안 갈래?”
망설일 것이 없었다. 결행은 이튿날 오후로 하고 아이들은 몇 명만 데리고 가기로 합의되었다. 다운이랑 여학생에게는 절대 비밀로 했다. 그러나 다운이는 눈치채고 있었다.
‘무슨일을 벌이고 있는게 분명해.’
여학생들을 잘 따돌린줄로 착가하고 있는 민호와 대장네 패거리들이 뱅골재 (뱀골재 : 뱀이 많이 사는 골짜기)에 다다른 시간은 오후 4시경. 다운이네 여학생패들이 골짜기 못미쳐 숲속에 숨은 것이 4시반.
민호의 지시는 간결하고 명쾌했다.
“잘 마른 삭정이는 너.”
“너는 생솔가지.”
민호는 어른들이 겨울에 벌집을 터는 걸 본적이 있어서 순서대로 지시하고 있었다. 먼저, 벌들이 꼼짝 못하게 생솔가지로 연기를 피웠다. 푸지직 푸지직 생솔타는 매캐한 연기가 아이들의 얼굴로 덮쳐들었다. 아읻르은 코를 싸 쥐었다. 그래도 꼼짝없이 엎드려야 했다. 고개를 들면 민호나 대장의 엄명을 담은 부라린 두 눈이 아이들을 위협했다.
일부러 구멍을 막아 놓았다. 벌이 꼭 한 마리씩만 나올 수 있는 조그만 구멍을 터놓고는. 그 구멍으로 연기에 취한 땅벌 한 마리가 기어나왔다. 연기를 쐰 벌은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았다. 마치 술 취한 사람 같았다. 또 한 마리.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연기에 마취된 벌은 구멍을 기어나오자마자 대장과 민호의 떡매에 맞아 나가 떨어졌다. 한번 나오기 시작한 땅벌은 줄을 이었다. 구멍의 옆구리를 타고 나오는 놈들은 대장의 발에 밟혔다. 정신없이 떡매를 휘두르다 보니 불길이 꺼지고 있었다. 민호가 와락 악을 썼다.
“불 꺼지면 다 죽는다.”
겁에 질린 석룡이가 솔가지를 불씨에 대고 불었다. 그 사이에도 벌은 계속 나왔다. 대장과 민호는 떡매로 내려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벌은 이제 한두 마리가 아니라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었다.
“막아! 구멍을 막아!”
아이들이 두 서넛 더 달려들었으니 이미 늦어 중과 부적이었다. 벌써 벌이 쫓아 오는 걸 보고 몇 명 아이가 달려 도망가고 있었다. 결국 모두 뛰었다 떡매고 장비고 팽개치고 뛰었다. 뒤꼭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뛰면서 힐끔 돌아본 대장은 그만 엎어질 뻔했다. 달리면서 옷가지를 벗어 팽개쳤다. 텀벙! 저수지에 잠겨서야 마음이 놓였다. 숨을 쉬려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대장은 깜짝 놀랐다. 물위에 벌이 공중회전을 하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
그 벌떼에 쫓겨 달아다던 아이들은 모두 얼굴이 퉁퉁 부었다. 부은 얼굴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 2,3일씩 결석을 했다. 숲 속에 숨어들었던 다운이네도 한두 방씩 벌에 쏘였다. 대장만 무사했는데 선생님은 아이들의 결석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 도깨비의 모습
청소시간이 끝나 점심을 먹으러 교실로 들어서며 벌쭉이대장이 석룡이에게 물었다.
“도깨비는 어떻게 생겼을까?”
“것도 모르니? 몸엔 시커멓게 털이 나 있고, 이마엔 뿔이 달렸어.”
“것쯤 나도 알아. 입이 귀밑까지 째지고, 이빨은 송곳처럼 날카롭다 이거지?”
“그래, 뭐가 틀렸니?”
“그럼 꼬리는 있는 거냐 없는 거냐?”
“꼬리? 꼬리에 대해선 들어 본 일이 없는 걸.”
“거봐, 모르잖아.”
대장이 욱박질렀는데도 석룡이는 모른 체 했다.
“다리가 하난 건 틀림없겠지?”
“맞아. 분명 그래.”
“가만 있어봐. 다리가 하나라면 어떻게 씨름을 하지?”
“거야 뭐......”
“이번에도 도깨비 다리는 하나라도 되어 있어.“
“그럴거야.”
거, 뭣이냐 하면, 도깨비는 몽당 빗자루나 오래 묵은 살림살이들 중에서 사람의 손 때가 묻은 물건에 사람의 피가 묻어서 생긴다고 했다. 석룡이가 그렇게 설명했으나 아이들은 그정도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어서 별로 새겨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할아버지 말씀인데 도깨비와 밤 새 씨름을 했던 사람이 도깨비를 이겨, 놈을 잡아서 꽁꽁 묶었대. 큰 나무등치에 자기 허리띠를 풀어 옴쭉딸싹 못하게 묶어 놓았다가 날이 새서 가보니 피 묻은 몽땅 빗자루가 묶어 있었대 민호가 한 얘기는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래 거 신통하구만.’
도깨비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길에서만 나타나는데 꼭 싸움을 걸어온대나. 그것도 왼발 씨름만.
유진이의 아는 체한 이야기에 아이들은 또 몸이 오싹함을 느꼈다.
“너희들도 밤엔 함부로 다니지 마라.”
아이들은 모두 두려움이 번져 있었다.
“만약 씨름에 지면 어쩐대?”
“죽지. 그야 놈이 가만둘리 있니?”
다운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사람을 죽인대?”
“혼을 빼가나봐.”
대장은 또 혼불을 생각했다. 파란 빛을 내던 그 불빛을. 아이들의 가슴에도 모두 혼불이 살아났다.
“난 가야겠다. 더 어둡기 전에.”
대장이 먼저 일어섰다. 아이들도 모두 일어섰다. 아닌게 아니라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까만 어둠이 안산 밑으로 스멀스멀 기어들고 있었다.
* 도깨비 양성소
대장은 빗자루나 쓰레받기를 들고 민호는 유리창닦기와 쟁반으로 무장했다. 신나게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하던 아침 자습을 멈추고 ‘우와! 우와!’ 응원을 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아이들은 까맣고 동그란 안경 속에 불꽃이 이는 걸 보았을 뿐이다.
“마치, 도깨비 소굴이로구나.”
아직은 선생님이 입장할 시간이 아니었는데 그날 아침은 뭐가 좀 잘못된 것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진우더러 망을 보게 했는데 오늘은 염려가 없다고 판단하고 보초를 세우지 않은 것도 큰 실수였다.
일은 벌어졌다. 선생님은 안경을 치켜 쓰시더니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되돌아 가버렸다.
‘일 났군’
아이들은 모두 그런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기들은 얌전하게 있었는데 두 사람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고 툴툴거렸3다.
‘자아식들. 언제는 재미있어라 보고는 이제 고개를 싹! 돌린다? 두고보자!’
이런 일을 수습하는 건 언제나 민호였다. 벌쭉이대장은 쓸모가 없다. 벌쭉벌쭉 웃기나 잘 했지 선생님의 노여움을 푸는데는 젬병이었다.
“어떡할까?”
“어떡하긴. 방법은 하나야. 싹싹 비는 거.”
민호는 두 손으로 비는 시늉을 했다.
“빌어서 해결될까?”
“빌어서 해결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니.”
“무조건 빈다고 해결이 돼?”
“뾰족한 방법이 없잖아.”
“죽었습니다 하고 있으면 돼.”
아닌게 아니라 대장과 민호는 죽을상이었다. 안경 선생님은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두 녀석이 각시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는 걸 못본 체했다. 두녀석이 곁에 와 섰다.
“왜, 볼 일이 있는 거냐?”
대장이 입을 떼려는 걸 민호가 살짝 옆구리를 찔렀다. 대장이 움찔 놀라는 것까지도 선생님은 보고 있었다.
“잘못했습니다.”
“뭘?”
“아주 신나게 놀고나서 웬?”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 녀석들 벌써, 아니 거의 이틀이 멀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고 했겠다. 이번엔 톡톡히 혼줄을 내야지.
“안 돼! 남자답게 약속을 지켜야지.”
“저도 모르게 그만 ......”
대장이 모기만한 소리로 한 마디 거들었다. 선생님은 더 아이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그렇다. 너희들만한땐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다.
* 도깨비감투
변변히 머리 형상이 없는데 감투는 무슨. 정말로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감투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도깨비는 감투를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문이 좋은 집안이었던가 보다. 옛날에 감투를 얻을 수 있다면 슈퍼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낮에는 도깨비가 보이지 않은 이유를 그 감투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알 수 없다. 도깨비란 녀석들 눈을 반작거리며 그 감투를 쓰고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곁에 있는지
‘히히! 용용 죽겠지?’하며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좀 수상쩍다. 어제 대장이 집에 돌아가다 괜히 발부리가 돌에 걸려 넘어진 것도 녀석들이 땅 속의 돌을 갑자기 밀어올린 장난이 아닐까. 며칠 전 석룡이가 느닷없이 날아온 땡감에 맞아 이마에 혹이 났었는데 석룡이는 대장이나 민호의 짓이 분명하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이것도 혹시 녀석들의 장난질이 아닐까 몰라. 또 그저께는 괜히 배가 살살 아팠다. 뭐 특별히 잘못 먹은 음식도 없고 배가 아플 이유가 없었는데 까실까실 배앓이가 몇 시간이나 계속 된 이유도 도깨비 장난에다 맞추어 놓고보니 그럴 듯 하다. 모르지. 내가 잘 먹은 부침개 속에 숨어 뱃속으로 들어갔는지도.
“그럴 땐 처방을 하면 되는거야.”
할머니 말씀마나따나 얼른 도깨비가 싫어하는 걸 생각해내면 될텐데. 서양 귀신 드라큐라는 십자가와 마늘을 싫어한다는데 도깨비가 무서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만 알아 낸다면 도깨비 녀석을 붙잡아 감투를 앗아낼 수 있는데. 감투 뿐만아니라 도깨비 방망이도 달라고 할 수 있겠지.
‘뭘까? 도깨비가 두려워 하는 것.“
혹부리 영감님을 찾아가 볼까? 혹부리 영감님은 도깨비를 만났다지 않은가. 그래서 보기 싫은 혹을 팔았지. 도깨비 두목 녀석 그걸 노래 주머니로 알고 사정서정했겠다. 혹부리 영감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어쨌든 방도가 서는 건데. 어디 가야 만날 수 있을지.
‘큰 맘 먹고 상여집에서 한 번 기다려 봐?“
‘아이쿠! 생각만해도 몸이 오싹하다. 혹시 민호나 석룡이들이 같이 가 준다면 몰라도 혼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생각이다. 포기하자니 감투나 방망이 그리고 금돈이 눈에 선하다.
‘녀석, 좀 내 눈 앞에 썩 나타나지 않나?’
아니야. 내 생각을 죄다 알아내고는 지금도 내 곁에 어딘엔가에서 히히!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장은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 청소시간
벌쭉이대장과 민호, 그리고 석룡이는 도깨비감투에 점점 빠져들었다.
“감투만 있다면 나는 냄시 가는 변소 청소를 제일 먼저 안 할거야.”
“나는 우선 상점에 가서 내가 갖고 싶었던 걸 몽땅 가질테야.”
“꿈도 크다.”
대장의 말을 민호가 받았다.
“난 실컷 먹겠다.”
“그 다음에는?”
“글쎄, 어른들 수염이나 뽑아줄까?”
못된 놈, 생각하는게 고작 그거야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셋 모두 신바람이 났다.
“돈 나와라 뚝딱!”
“금 나와라 뚝딱!”
상점 갈 필요도 없겠구만. 방망이 하나면 만사 해결이야. 가장 신나는 사람은 대장이었다.
“주번 선생님 오신다아!”
보초가 세워 두었던 동균이가 날쌔게 곁을 지나갔다. 세 아이들은 금방 그 기세와는 딴판으로 곧장 맡은 구역을 줄행랑을 쳤다.
“대장, 어때, 청소할만 하니?”
“아닙니다. 도저히 냄새 때문에 ............”
“참는 것도 공부다. 참고 견디면 더욱 훌륭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변소청소에는 훌륭한 성과라면 무었일까.’
대장은 궁금했다. 즉시 선생님께 여쭤 보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었는데 아무래도 미심쩍다. 훌륭한 성과라는 것이 변소 청소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도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그 훌륭한 성과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대장은 청소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대개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청소구역을 맡아서 해주었고, 대장은 그 보답으로 자기 패거리에 끼워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축구나 야구를 할 때, 또는 고기를 잡으로 가거나 예전의 땅벌 습격 같은 일에 끼워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 훌륭한 성과가 녀석들에게 돌아간다?’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거리다.
“오늘은 누가 할래?”
이렇게 서두를 빼놓기만 하면 아이들은 서로 맡겠다고 야단이었기 때문에 대장은 눈치만 보면 되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이놈의 변소청소 당번이 되었을 때는 골치였다. 아무도 자진해서 나서 주질 않는 것이다. 거꾸로 대장이 사정사정해도 아이들은 모두 꽁무니를 뺐다. 그래서 대장은 단가를 높였다. 뭐, 한달 동안이라거나 연거푸 다섯 번을 끼워 준다는 식으로, 그래도 지원자가 없을 때면 할 수 없이 스스로 했다. 하기야 하는 시늉만 한 정도였지만.
‘변소라는 곳은 고약한 곳이야.’
대장의 생각으로는 사람을 만들 때 적어도 그 부분만은 참 잘못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나 같으면, 만약 날더라 만들라고 했다면 적어도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거야.’
* 놀이시간
“자, 쉬는 시간이다.”
안경선생님은 담배를 꺼내신다. 그러나 아이들이게는 천만의 말씀이다. 야!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만도 시간이 남질 않는다. 늘 그렇지만 쉬는 시간벨이 울리면 아이들은 선생님의 그만! 소리를 기다리느라고 별것이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호기롭게 달려나간 셈치고는 쉬는 시간은 어이 없다. 매번 둘리면서도 아이들은 시간마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못 말려!’
대장은 이런 현상을 벌써 터득했다. 그래 가능하면 쉬는 시간밖에 나가질 않는다. 그냥 교실에 앉아 버린다. 물론 몸이 쑤시고 안달이 나서 가만 앉아 있지 못하지만 요즘은 좀 수양이 쌓였다.
“대장, 웬일이냐?”
벌쭉 웃었다. 선생님은 복도에서 교실로 고개를 들이 밀어 교실 풍경을 보고는 퍽 의아해 했다.
‘웬 얌전이지?’
‘얌전이 아닙니다. 명색이 쉴 시간이지 어디 그게 시간입니까. 그냥 말로만 내는 생색이지.’
설사 그렇더라도 다른 아이면 몰라도 대장으로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 선생님은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이유는 무슨’
대장은 선생님의 눈빛을 안다. 가슴이 콩콩거린다. 저런 눈빛에 대장이 이겨 본 적이 없다. 만약 대장의 속내를 선생님이 아신다면 또 복잡하게 될 것이다.
어제 점심 시간에 대장과 석룡이 민호 세 사람이 작당을 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 벚나무 아래 모여 음로를 꾸민 것이다. 민호가 발단이었다.
“유진이 팬티 무슨 색깔인지 아니, 너?”
대장은 그 질문을 받고 어리둥절 했다. 애초에는 민호의 말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싱거운 넘. 여자 팬티를 뭣땜에.’
“모르지 너?”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민호의 말투에 오기가 생겼다.
“거야, 보면 알지. 뭐 그까짓게 대수냐? 넌 알고 있는 툰데.”
“물론, 이 나으리야 알지. 너, 용기가 있어?”
“짜아식, 날 놀려!”
이래 놓고 대장은 유진이네가 고무줄 놀이를 하는 건너편 플라타너스 그늘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유진이네는 대장이 접근해 오는 걸 보고 긴장을 하고 있었다. 놀이는 그치지 않았으나 경계하는 빛이 뚜렷했다. 대장은 그냥 지나치는 것처럼 접근하다가 고무줄을 머리위에 얹고 두손을 들고 있는 유진이의 치마를 홀라당 뒤집었다. 주번 선생님 앞으로 끌려간 건 그후 1분도 못되어서고 주번 선생님은 엄벌을 내렸다.
“1주일 간 교실 밖으로 나오지 말 것.”
* 애국조회
“우러러러 고로로로 사라지냐?”
여러분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월요일 아침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리는 애국조회 시간에 우리 교장 선생님의 애국 훈화 내용이 이렇답니다.
“기리리리라 바르르 안요로로.”
우리는 판에 박은 듯한 그리고 좀 말씨가 어눌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입학해서부터 아니죠, 유치원때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개 들어왔습니다. 하시는 교장 선생님도 끈질기게 하셨지만 듣는 우리도 무던합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벌죽이 대장과 선생님입니다. 애국 훈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선생님들의 호령 소리가 운동장에 가득합니다.
“3학년 1반 여기봐요. 여기!”
"거기 거 누구지? 똑바로 섯!“
“거 후미, 줄이 틀렸잖아!”
“입을 다물어라. 앞 사람 뒤통수를 봐!”
“세 번째 너, 좀 좌측으로!”
“누구냐? 깔깔거리는 녀석!”
그래도 애국조회 시간은 엄숙하게 시작되지만 그 엄숙함은 채 5분도 되지 않아 무너져 버립니다. 그래도 국기에 대한 경계, 애국가 제창까지는 비교적 순조롭습니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에서 감푼 아이들 몇이 옆 동무를 찔벅거리거나 앞 사람의 머리에 알밤을 넣는 것으로 분위기 깨기가 시작됩니다. 그걸 미리 예측하고 가끔 선생님이 감시할 때 걸리는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때부터는 시발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애국 훈화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전교생 차렷! 경롓!” 하고 나면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운동장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대장의 분석으로는 그 영향이 선생님들로부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신빙성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여튼 ‘뽀시락장난’이라고 이름이 붙은 이 은밀한 장난은 먼저, 제일 먼저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느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장의 경험에 의하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선생님들은 옆 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덩달아 아이들도 옆, 앞 심하면 이웃반 줄까지 슬쩍 침범을 해서는 쿡쿡 옆구리를 치거나 킥킥거리며 싸우고 다투고 난장판이 됩니다. 단지 충성을 맹세한교감 선생님이나 부동자세가 되고 교장 선생님의 애국훈화를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교감 선생님은 훈화내용을 듣는 일보다는 선생님들의 잡담과 아이들을 방치한 행위 그리고 이들의 행동에 신경을 쓰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애국조회만 아니라면 단번에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입니다만 지금은 교장 선생님의 훈화 시간이라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미리리리 나라라라라 구러러러.”
이렇게 그래도 끈질기게 이러지던 애국훈화가 뚝! 끊어졌습니다. 대장은 석룡이가 앞으로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을 하는 걸 보았습니다. 정신이 한 곳에 팔린 석룡이 녀석 발을 걸려고 성큼 다가서다가 대장이 움칫 놀랐습니다. 갑자기 주위기 조용해진 것입니다. 아뿔싸, 우러러러 교장 선생님과 눈빛이 딱! 마주쳤습니다. 열심히 잡담을 하던 선생님도 그제야 분위기를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괜히 요노옴! 한 번 해보는 것입니다.
* 함정
“마지막으로 오늘 과제는......”
판에 박은듯한 종례시간의 과정이다. 수업 끝. 과제 적기, 당번지도 그리고 차조심 물조심. 오늘도 내일도 변할 리 없는 안경선생님의 종례 내용이다. 그러나 기분 좋은 날은 이랴기한 자리가 덧붙거나 노래 한곡을 부르기도 했다.
오늘은 이하 생략이었다.
‘요놈들 보자.’
선생님의 음모를 벌쭉이대장네 패거리들이 알 리가 없었다.
오늘 과제는 뜻밖에도 간단했다. 너무 적어서 아이들은 연필을 놓지 않고 기다렸으나,
“이상, 반장!” 하고 불러서 아이들이 오히려 좀 멍했다.
‘종이배 만들기’
정말 그것 뿐입니까? 아이들이 여기 저기서 환호 직전의 확인을 하느라고 법석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두 말할 것 없다는 표시로 대꾸도 하지 않아버렸다.
그것도 낚시 방법의 하나였다. 완벽한 음모가 아이들에게, 특히 눈치 빠른 민호나 석룡이에게 들키지 않게 하려면 용의주도하게 계획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일이면 선생님의 계획은 청천백일 아래 녀석들에게 근하하게 한 방 먹일 만한 만반의 준비가 된 것이다. 아무래도 이렇게 해서라도 증거를 잡지 않으면 녀석들은 미꾸라지 같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버릴 것이다.
“증거는 있습니까?”
“증거는 없다. 그러나 확신이 있다.”
이래 봐야 녀석들의 비웃음을 살 뿐이다. 선생님은 설마 했었지만 결국 설마가 현실로 나타났고, 지금 이 버릇을 잡지 못하면 곤란하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대상은 민호와 석룡이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자기들의 과제를 특히 만들거나 그리기처럼 증거를 밝히기가 어려운 과제를 다른 아이들에게 떠넘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씨를 쓰거나 표기가 나는 일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족치면 결국은 밝혀지고 말 일이지만 과정이 염려되어서 그 방법을 피했다.
아이들이 제가 했습니다라고 쉽게 불 것 같지가 않았다. 아이들은 실상 선생님보다는 민호와 석룡이를 더 두려워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생리는 절대로 선생님의 힘으로는 속수무책이었다. 만약 고자질했다고 한다면 그 아이는 사회에서 외톨이가 된다. 차라리 폭력을 쓴다면 선생님이 막을 수도 있지만 민호의 말 한 마디로 매장이 되어 버릴 일을 아이들은 결사코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비행기.
내일 과제검사는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할 것이다. 물론 민호나 석룡이는 최고의 솜씨로 만들어진 비행기를 제출할 것이고, 짬을 주지 않고 다시 꼭 같은 것을 만들어내라고 한 선생님의 말씀에 항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선생님은 민호가 빙긋 웃고 있는 뜻을 미쳐 알지 못하고 있었다.
* 일기
‘아침밥 먹고 등교해서 학교 공부하고, 공부마치고 돌아와서는 숙제하고, 숙제 하고는 놀고, 논 다음 똥싸고, 저녁밥 먹고, 일기 쓰고 잤습니다.’
며칠 동안 벌쭉이대장의 일기가 이렇게 나가는걸 안경선생님은 모른 척 했었다. 그 첫째 이유는 아이들의 일기를 보았다는 비밀 약속에 어긋날뿐더러 둘째는 아이들의 일기를 시야비야 할 수 없다는 원칙적인 선생님의 지도 방법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일기를 매일 쓰게 강요하는데까지는 이해를 했다. 대신 내용을 읽는 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선생님이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실대로 모든 일을 낱낱이 적을 수 없게 되고 할 수 없이 거짓말을 쓰게 된다는 거였다.
“선생님도 동감이다. 너희들에게 일기를 강요하다시피 하는건 좋은 사람 옳은 사람 만들려는 일인데 거짓말을 쓰게 해서야 되겠는가.”
“약속하시는 거죠?”
“물론이다. 매일 쓰는지 안 쓰는지 확인하겠다.”
“생활 지돈느 어쩌고?”
당장 교감선생님이 이의를 제기한다.
일기는 스스로의 반성, 즉 자성의 일이지 깨우침이 남의 지도로부터 오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감 선생님은 아이들은 미분화된 어린이다. 고로 일기 보래의 목적에 충실한 것도 옳지만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꼭 읽을 필요가 잆다.
“일기는 대개 사람의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로 잡는 도구여야 한다.”고 우기는 거였다.
그렇다면, 만약 아이들이 이 일기로 생활 태도를 개선하려는 선생님의 의도를 알고 있다면 아이들은 잘못 된 일이나 행동은 쓰지 않거나 미화시켜 버립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개 이런 토론은 끝이 없기 때문이었다. 거짓말을 쓰기 시작한다면 오히려 일기 쓰기는 쓰지 않는 일만 못하게 될 것이다. 선생님이 읽는다는 사실을 알면 아이들을 잘 보이려고 거짓말을 쓰게 된다. 그렇다면 안하고도 착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꾸미게 된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거짓말을 읽고 칭찬을 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었을 때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안경선생님은 일기를 읽더라도 내용을 안본 척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생님, 정말 보시지 않는 거죠?”
“약속하지 않았니?”
“그래도 어떻게 믿어요. 안 보시는 척 보셔도 우린 알 수 없잖아요.”
“예, 보시지 않는다는 걸 확인해야 겠어요. 어제 제가 무슨 말을 썼죠? 비밀인데요.”
“모른다. 안 보았는데 뭘 알겠니?”
* 돈
“왜 그런 짓을 했니?”
석룡이는 도무지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에 석룡이가 구멍가게 할아버지네 돈상자에 손댔다는 걸 믿지 않았다. 그러나 손 댔다는데까지는 시인을 했으므로 안경선생님은 금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었다.
“어디, 꼭 필요한데 쓰려고 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잖아.”
그래도 석룡이는 막무가네였다.
“말할 수 없단 말이지?”
“예.”
“그래도 이유가 있을 게 아니야?”
“없습니다.”
“말이 안 되잖아.”
“괜히 .......”
“무조건 괜히냐? 뭔가 선생님이 이해할만한 이유를 대봐.”
오늘 선생님은 좀 흥분하신 것 같다. 다른 때 같지 않다. 유리창 너머에서 선생님의 고함과 석룡이의 모기 소리 같은 대답을 듣고 있는 대장과 민호는 간이 오르라 붙었다. 저리다가는 한 대 쥐어벅힐 것 같기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말해 버리면 좋을텐데.’
“뭘 하려고 그랬을까? 뭘 사고 싶은 것이 있었나보지.”
‘얘기하기 싫거든 가거라.’
아직도 선생님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다. 놓여나긴 했으나 운동장을 걸어나오는 발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교문 뒤에서 기다리던 대장과 민호도 역시 어깨가 처질 수밖에.
“왜 그랬니?”
그래도 대장이 용감하게 물었다.
“말했잖아. 너희들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정말 이유가 그것뿐야?”
“그렇다니까.”
“선생님이 그 말을 믿어주실 것 같아?”
“안 믿어줘도 할 수 없어. 너희들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니?”
“정말이야. 그냥 무심코 손을 댄 것 뿐야. 별로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어. 그냥 손이 그리고 갔다 그뿐이야.”
“내가 선생님이라도 그건 못 믿어.”
“그래도 그뿐인걸 어떡해.”
“잘 생각해봐. 이유가 되어야 선생님께서 용서하든 죽이든 할 거 아냐.”
‘그냥 손이 갔다?’
나중에 그 말을 듣고 난 안경선생님은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왜 진작 그걸 못 생각 했을까?’
다음 날 선생님은 석룡이게게 말했다.
“다음에는 돈이 걸어서, 설사 네 손에 뛰어들더라도 네게 아니면 놓아주거라.”
선생님께서 웃으셨다. 석룡이도 멋쩍게 웃었다.
* 하나님은 왜 ?
공부시간이면 안경선생님을 당황하게, 더러는 곤란하게 만드는 벌레박사 동균이는 오늘도 손을 번쩍 들었다.
‘뭐냐?“
심기가 좋지 않으신가 보다. 하기야 동균이는 시도때도 없이 엉뚱한 질문을 불쑥불쑥 내지르기 때문에 여간 난처한 게 아니었다.
“선생님요.”
“그, 요는 빼라잖았니.”
“그런데요. 왜 하나님은 세상을 온통 초록색깔로 만들었나요?”
헛헛헛. 선생님은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초록색이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만부득이지 이래가지고서야. 그러나 달리 도리가 없다. 벌레박사의 의문은 끝이 없으니 대강 잘라 의문을 풀어 주어야 한다. 한데 오늘은 생각이 꽉! 막혀버렸다. 도무지 적절한 대다비 떠오르지 않는다. 선생님께서 잠시 망설이시자 벌레 박사가
“녹색을 좋아해설까요?”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그럴테지 뭐. 너도 미술시간에는 네가 좋아하는 색깔을 많이 쓰잖아.”
짝궁 지선이가 말꼬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모슬 질렀다.
“그렇지만은 않은 걸. 녹색을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물가믈 쓰시다가 녹색 물감만 너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냥 세상을 향해 좍! 부어버린 걸거야.‘
희성이가 제법 사리에 맞게 아는 체를 했다. 둘의 의견이 서로 그럴 듯 한데 두 의견이 정반대 내용이었다.
‘싫은 색깔이 남아서 세상을 향해 쏟아버렸다?’
‘녹색을 좋아해서?’
세상이 녹색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 자연 현상을 날카롭게 본 동균이의 관찰력은 놀랍다. 관찰력이 아니라 사고력이라야 맞다. 어른들이라면 심미안이라 해도 좋을 빼어난 탐구력이다.
“세상에는 온갖 색깔이 모두 다 있다. 박사 말대로 녹색이 많긴 하지만. 너희들도 자세히 관찰해 보렴. 하찮은 풀입, 들꽃들이 얼마나 예쁜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될거야.”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색깔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은 신비함이다. 그러나 그걸 요 꼬맹이들에게 어떻게 설령한다. 보여주는 수밖에. 다음 날 선생님을 따라나선 아이들은 학교 울타리에서 벗어난 일만으로도 마치 조롱 속에서 풀려난 새 같았다.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달라지게 하는 것일까?’
완전히 딴판이었다. 얼굴에 생기가 도는 모습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치 온실의 꽃과 야생의 들풀차이 같았다. 선생님 자신도 생각한 것보다 들꽃이 여러 가지이며 색깔도 많다는 것을 새로 발견했다.
* 이야기시간
“옛날 옛적에 ...........”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단다. 그래도 막무가내. 이야기를 밥 먹듯이 해야 되겠니? 소용이 없다. 이야기에 인이 박혀 버린 아이들은 종례 시간이면 분위기가 아주 딴판이 된다. 쥐죽은 듯하는 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진 낱말잉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 분위기를 좋아하신다. 이 아이들의 모습을 더할 수 없는 사랑의 눈으로 감싼다. 하루 한 때 단 10분간이더라도 강한 인력이 선생니뫄 아이들 사이에 작용한다는 일이 무척 보람되고 즐거운 것이다. 매일 종일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서로 마음이 교감되는 시간은 이 시간 뿐이다. 그래도 참으로 귀찮고 어떤때는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려고 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묶인 꼴이 되었다.
“내, 이 선생님의 머리 속에는 이야기 보따리가 가득 차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고 동곳을 뺐던 것인데 아이들은 그만 이야기에 빠져 버렸다.
「부자가 된 돌이」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고전을 모두 들려주고, 이제는 밑천이 달랑거려서 외국 동화를 들어섰다. 그러나 아무래도 선생님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우리 고전이나 전설을 이야기할 때처럼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이다.
다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간은 노래 시간이다. 선생님이 맨 먼저 가르쳐준 노래가「화전놀이」. 석 달 동안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소음」상태를 간신히 면했다. 처음에는 온 학교에서 항의가 잇따랐다. 우리반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많다는 항의 였다.
“진달래 꽃피는 보미 오면은 나아는야 언니하고 화전놀이 간다아.”
이 노래는 석 달이 계속 되었다. 다음에는 과수원길, 가을의 그림, 등대지기들, 옆반 아이들도 귀동냥으로만으로도 흥얼거렸다ㅑ. 거기에다가 삑삑거리는 리코더 소리. 더구나 신나게 박자를 맞추는 막대기 장단. 무려 석 달이니 짜증이 난대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석 달을 넘고서부터 변화가 왔다.
“그노래 제목이 뭐죠?”
“괜찮던데, 목소리들이.”
이렇게 가다가는 급기야는
“선생님 그 노래 악보 좀.”
“우리 반에 좀 적선할 수 없소?”
이렇게 바뀌었다. 한달쯤 더 지나자
“굉장하던데, 역시 아이들은 놀라와. 무서운 잠재력을 지녔단말야.”
“경연대회에 출연해 보실 생각인가요?”
“여느 합창단이래도 손색이 없을거요.”
이러다가 끝내는 학예회를 벌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안경선생니믄 퍽 분주하신 몸이 되었다. 대장과 민호들도 덩달아 뛰고 다운이랑 여학생들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연, 교실내 은비 같은 빛이 반짝거렸다.
* 학예회
누가 혹부리영감을 맡을 것인가와 욕심쟁이 영감 역할의 분담에서부터 말썽이 생겼다. 욕심쟁이 영감 역할은 희망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착한 혹부리영감 역할은 열명도 더 넘게 손을 들고 나면서도 악역은 안 하려고 모두 기피했다.
‘뭘 모르는구먼.’
안경선생님은 이렇게 답답해 했으나 아이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무리 개성있는 역할이 연극의 주인공이라고 설득을 했어도 아이들의 시선을 모두 선행 쪽으로 몰려 있었다.
‘세상 탓일거야. 대장 너는 어때?’
선생님의 시선이 제게 꽂히는 걸 알고 녀석은 철민이 어깨 뒤로 몸을 숨겼다.
‘석룡이?’
선생님의 시선이 따라오자 석룡이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외면을 하면서 피해 버렸다.
유진이, 고은이, 동균이들 모두 한결 같았다. 벌써이 악역의 분담 진통이 사흘째였다. 처음에는 점잖게 해결하려고 달래고 설득을 시도했었는데 녀석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선생님의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오늘은 결판을 내야 하는데.’
안경선생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대장을 찾았다. 시선이 또 자기를 딸아오는 눈치를 알아챈 대장이 얼핏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렸다. 선생님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술책이었다. 불리해진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잖니? 남은 건 너 뿐이다. 어때? 나 좀 구해다오.’
반강제로 이렇게 떠다밀것이 확실하다. 이럴 때
‘전 절대로 못해요. 죽었으면 죽었지 할 수 없어요. 딴 애들 시키세요.’
이렇게 애면글면할 수도 없고.
‘다 마다는데 그럼 어쩔 셈이이야. 도대체 학예회를 할거야 말거야.’
막바지로 몰아오면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맡아 둬? 하는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생각하면 아찔해져서 고개를 도리질하게 되고 만다. 한때 실수로 많은 날들을 험담을 듣고 살 수 없지 않은가.
‘너, 대장, 너뿐야. 못하겠다면 연극이고 학예회고 관둬! 때려치우자고.’
선생님의 눈빛이 이랬다. 대장은 그 눈빛을 읽어내고는 또 감저의 회오리 바람에 휩싸여 버렸다.
“학예회요? 학예회가 뭔데?”
교감은 설명을 듣기도 전에 눈에 쌍심지를 켰다.
‘당신하는 일은 ......’
‘이번만은 안 돼! 결재하지 않는다고 못할까.’
‘엿장수 맘대로?’
‘엿장수 좋아하네.’
교감선생님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나 라이터를 찰칵거리기만 할 뿐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장은 끝내 악역을 맡고야 말았다.
* 따봉
사건의 발단은 민호였다. 끝까지 민호는 수긍하지 않았지만 뭐라고 해도 민호는 빠져나갈 건덕지가 없었다. 중간놀이 시간이 막 시작되고 나서 아이들이 교실밖으로 채 다 나가기도 전에 고은이가 울고 들어왔다. 한숨 돌리고 휴식에 들어가는 안경선생님의 신경이 곤두 서 버렸다.
“누구야, 울린 건?”
고함 소리에 예상 밖이었던지 고은이조차 울음을 뚝! 그쳐버렸다.
“민호예요. 민호가 ...........”
고은이 대신 대답을 해준 유진이까지도 선생님의 신경질 대상이 되어버렸다.
“넌, 나서지 말고 좀 가만있어. 좀.”
일 분도 채 못되어서 민호가 잡혀왔다. 동균이처럼 엄살은 없었으나 어깨를 늘어 뜨리고 눈을 내리깐 모습은 마치 주눅이 든 강아지처럼 발걸음조차 몹시 무겁다.
‘무슨 짓을 한거야?’
민호는 선생님의 표정을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쨌기에 고은이가 저러니?”
“따봉 했대요.”
동균이가 또 나섰다.
“동균이 너, 넌 잠자코 있어, 좀. 민호에게 물은 거야.”
동균이는 겸연쩍은지 손가락 끝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며 물러섰다.
‘뭐? 따봉?’
“따봉이 뭐냐?”
묵묵히 고개를 숙인 민호,
“따봉이 뭐냐니까?”
약간의 말씀의 강도가 높아진 선생님. 그러나 아직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있는 민호.
“따봉이 뭐냐고 묻지 않나?”
이젠 이마의 핏줄이 꿈틀했다. 민호도 위기감을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더듬거렸다.
“고은이들이, 놀고 있는, 곳에 가서 훼방을 놓았다가.”
“아니에요. 선생님.”
유진이가 또 달랑 받았다.
“전 좀, 입 다물고 있지 못해!”
선생님이 손가락 한 개를 입술에 댔다. 유진이는 고개를 숙이고 버릇대로 혀로 날름거렸다.
“그래서!”
“여학생들이, 모두 도망을 치길래, 따라가 잡았어요.”
“그래서 울었단말이야!”
“그리고”
“계속해봐, 어서.”
“엉뎅이에 손이 닿았어요.”
"그래서 따봉! 했단말이지?“
“예.”
“그건 어디서 배운 짓이야?”
방과 후에 고은이가 남아서 일러바친 바로는 요즘 부쩍 남학생들 행동이 거칠어졌다 한다. 엉덩이와 가슴 부위를 만지면서 ‘따봉!’ 하는건 예사고, ‘오-예!’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 호킹박사의 우주
동균이는 알고 싶은 것이 많다. 묻고 싶은 것이 한도 끝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의문투성이다. 동균이 머리 속에는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물음표로 가득 차 있다.
“선생님, 아이는 주서온대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안경선생님은 난처해져서 대답을 망설였다. 궁여지책으로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세히 물어봐. 잘 가르쳐 주실거야.‘
이랬더니 항의를 했다.
“엄마는 선생님께 물어보라 하시고 선생님께 여쭤보면 엄마에게 미루고 이러시기예요?”
이럴 때 안경선생님은 어쩔줄을 모른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어이없게 웃다가 표정을 찡그리신다. 안절부절. 의자에 앉았다가 서성거리다가 괜히 책을 펼치기도 하고 칠판을 톡톡 치시기도 한다. 그래서 동균이는 속이 없다. 느닷없이.
“지렁이는 눈이 있대요?”
‘지렁이 눈?’
선생님의 머리 속이 빙빙 돈다
심지어는 이런 것까지 묻는다.
“고은이랑 여자들은 왜 꼬치가 없나요?”
"사마귀는 정말로 사마귀를 잡아먹어요?"
"사람도 물 속에서 쪼금은 숨을 쉴 수 있는 건 맞아요?"
"붕어가 피라미를 잡아먹는건 사실인가요?"
"새들도 말을 한 대요?"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공부 시간에 동균이의 말꼬리가 느이기 시작하면 선생님은 손을 이마에 얹게 된다.
"낮에도 하늘에 별이 있다던데 왜 안 보이죠?"
"달이 빙빙 돈다던데 확실해요?"
"별나라 여행을 하고 싶은 데......"
"귀신이 정말 있나요? 선생님, 보셨어요?"
"하나님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데 홈런도 칠 수 있을까 몰라."
"하늘로 하늘로 한없이 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동균이의 의문을 다 풀어줄 수가 없다. 질문의 내용에서부터 지식의 한계를 느낀다. 얼마 전에 호킹 박사가 한 부경계 우주론이라는 유명한 연설의 관심있게 듣긴 했다. 그러나 호킹 박사의 가설은 선생님의 머리 속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호킹 박사가 말한 무경계 우주론이나 허수의 시간 그리고 블랙홀과 아기 우주 등의 내용들은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의 지식 저 건너편에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우주는 어떻게 생겨졌을까?’
그래도 선생님은 동균이로 인해서 소년 시절에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다시 되살아 난 것이 무척 기뻤다.
* 발전성 일제고사
“낼 모레 시험 본다며 그렇게 빈둥거리기냐?”
“염려마세요.”
“아, 그래도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엄마가 드디어 또 포문을 열었다.
‘알았어요, 알아. 지금 들어갈께요.’
보통 때처럼 이렇게 순순히 공부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넘어갈 일이었는데 그만 실수를 해버렸다.
“까짓 시험 50점도 못맞을까봐?”
아차 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대장은 보았다. 엄마의 눈꼬리가 샐쪽해지는걸. 그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표정이 바뀌고 드디어 마지막 증상인 선명하고 파란 목의 핏줄. 이런 바보같이, 대장은 되도록 자연스럽게 제 손으로 제 머리에 알밤을 톡! 먹이고 나서 가만히 빠져나가려고 일어 섰다.
“잠깐!”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너 금방 뭐랬니?”
“뭘요?”
능청을 떨어보자.
“뭐, 50점 시험?”
피할수 없을 때는 정면 돌파가 가장 효과적이다.
“예, 일제고사 시험 말이에요.”
“50점 맞기 시험을 봐?”
“아, 예.”
엄마가 드디어 또 포문을 열었다.
“그럼, 만점이 50점인게로구나.”
다 알면서 확인한다.
‘아뇨, 100점 만점이에요.“
엄마는 기초 조사가 끝나자 대장을 가까이 불렀다.
“설명해 봐!”
“간단해요. 학교에서 보는 시험은 모두 100점 시험이라 더 발전이 없어요.”
“네 50점 맞기는 발전이 있고?”
“그렇죠, 당연하잖아요. 이달에 50점을 맞아 놓으면 새 달에는 60점을 맞고 다음 달에는 70점을 맞아서 달마다 올라갈 수 있잖아요.”
“너, 그게 누구한테 들었니?”
“들은게 아니고 제 생각이에요. 어때요 제 머리가?”
“기가막히구나. 그 머리하나.”
이미 엄마의 손이 뻗쳐올 줄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귓볼을 잡으려다가 실패하자 덜미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대장은 한 발 빨랐다. 대장은 앉은 자리에서 껑충 뛰어오르면서 몸을 세우자 곧장 마루로 튀었다.
“게, 못 서!”
“또 때리려구.”
엄마가 마루로 달려나오는 소리가 너무 컸었는지 모른다.
“웬 소란이냐?”
할아버지가 드르륵 문을 밀며 바깥을 내다보셨다. 엄마는 멈칫 다음 동작을 죽였고 대장은 그 때쯤 이미 마당을 달리고 있었다.
* 4등상
“그래 제법 잘 한거야.”
달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지난 가을 운동회 때 대장은 심판부에 배경을 받았었다. 결승선에서 테이프를 잡고 있다가 숨을 헐떡이면 비호같이 뛰어드는 아이들에게 판정을 해 주었다. 그런데 1학년 달리기 판정에 문제가 생겼다. 6인 1조. 당연히 3명은 등외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 등외 세 명의 아이들이 도무지 등외 판정을 인정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있는 거냐?”
심판부 선생님이 달려오셨다. 가끔 판정 시비가 일어나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이지만 참으로 엇비슷하게 달려들어서 자칫 오판을 할 염려도 있었다. 설사 오판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앞섰다고 우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와는 다르다. 대장의 설명을 듣고 선생님은 대뜸 한 마디로 잘라버렸다.
“들여보내!”
꼬맹이들도 선생님의 말씀이라 훌쩍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대장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4등까지만이라도 상을 주면 어떨까?’
그렇다면 남은 두명은 더욱 기가 죽을지도 모른다. 대장은 다음 운동회 때부터는 4등까지 상을 주자고 주장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난 안경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대장의 건의를 받은 선생님은 의뢰로 심각하게 생각했다. 또 선생님의 그 상상력이 발동된 것이다. 3등과 4등은 간발의 차이다. 물론 1등과 2등, 2등과 3등도 예외일 수 없다. 비단 달리기에서 뿐만아니라 학교에서 등수로 매기는 모든 문제에서 등위 간의 차이는 구분하기 힘들정도로 아주 작다. 그만그만한 아이들의 활동에 꼭 등위기 필요한 것일까. 도대체 상을 주어서 격려한 것 만큼 부작용도 클텐데. 40명의 재적에서 상 타는 아이들은 고작 한 두 명일 것이다. 격려받은 아이는 한 두 명이고, 좌절감을 맛보는 아이들은 38,9명이라면 무엇이 더 교육적이겠는가. 그렇다면 상을 주는 일 그 자체가 잘못인가? 만약 학교에서 상을 없앤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 도깨비와 개암
“옛날, 아주 먼 옛날 ...........”
할아버지는 대장을 팔베개로 뉘어놓고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나무꾼이 살았었다. 나무꾼은 날마다 나무를 한 짐씩 지고 나가 장에 내다 팔았지. 그걸로 세식구가 살아간거야.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나무를 하러 산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발 밑에 뭔가 데구르르 굴렀어.
톡! 데구르르.
'이게 뭐야?'
줍고 보니 개암이었어. 개암이 뭐냥구? 산 열매야. 딱딱한 껍질을 부수면 고소한 알맹이가 나오지. 호두 먹어 봤어? 너.
나무꾼은 개암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지.
'이건 어머님 드려야지.'
“손가락에 얼음이나 박혀 봐라.”
“손가락에도 얼음이 박히나요?”
“그으럼. 조심해서 해.”
대장은 지금까지도 엄마의 젖꼭지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득 할아버지 가슴께로 곧잘 손이 올라갑니다.
'나무꾼은 어떻게 됐지요?'
할아버지는 대장의 요구를 단박 알아챕니다. 눈만 보면 금방 알아내십니다.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고 다락에 숨어 있었겠지. 다락방에서 옹이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며 벌벌 떨었지. 도깨비들은 참말 무섭게 생겼단다. 입이 귀밑까지 길게 찢어지고, 이빨은 멧돼지 송곳니 처럼 모두 앞으로 튀어나오고, 귀가 당나귀처럼 길고 큰게 있는가 하면, 머리 모양도 세모, 네모, 공모양 등 모두 제각각이었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놈이 있는가 하면, 눈이 세 개 달린 녀석도 있었다. 난쟁이 처럼 작은 도깨비, 천장이 닿을 만큼 키가 큰 도깨비도 있었다. 별의별 모양의 도깨비들이 모두 모여서 도깨비 전시회를 하는 것 같았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긴 세모꼴 혀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얼굴빛이 숯처럼 검은 점이란다. 도깨비들도 추위를 타는지 방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우더니 불 가에 둘러 앉아서 표주박을 돌려가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겠다. 표주박이 몇바퀴 돌더니 이내 도깨비들은 취해버렸지. 불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지 않았겠니."
“자아, 더 크게 잔치상을 벌이자아.”
키가 작고 똥똥한 도깨비가 두목 같았다. 절굿공 같이 생긴 방망이를 가지고 방바닥을 쿵! 쿵! 찧자! 이게 뭔가? 떡 벌어지게 한 상 잘 차려진 음식상이 나타났단다. 도깨비들은 음식상에 빙 둘러 앉아 또 떠들며 먹기 시작했고 그 맛있는 음식 냄새 때문에 무서움도 잊고 자기도 모르게 개암에 손을 가져갔단다.
개암을 입에 넣고 톡! 깨물었지.
“뭐야? 모슨 소리지?”
귀 밝은 도깨비가 제 귀를 잡아쥐고 주위를 환기시켰더란다.
“누가 있다. 찾아 봐!”
“낡은 집이라, 너무 떠들어서 천장 무너지는 소리 아닐까? 혹시.”
“그래도 찾아 보자구.”
큰일났다 싶어 영리한 나무꾼은 개암 한 개를 더 깨뜨렸단다. 의외로 개암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겠다.
“와아, 집이 무너진다!”
“집이 무너진다. 빨리 달아나자!”
도깨비들은 혼비백산 도망을 쳤고, 음식상도, 도깨비 방망이도, 들고 왔던 보물도 고스란히 두고 모두 천장이 무너질까 보아 도망쳐 버렸단다.
“자니?”
또 대답이 없었습니다.
대장은 할아버지의 냄새가 좋습니다. 노인 냄새라고도 하지만 땀 냄새거나 담배 냄새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밤에도 눈이 무척 많이 내리고 있나봅니다.
넘어진 도깨비가 분한 듯 이를 갈며 내빼버렸다. 고모부의 이마에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다음 날 고모부는 도깨비와 씨름을 했었던 강가 모래밭에 가 보았다. 모래판에는 장사씨름을 했었던 흔적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 생각의 낚시질
우리 학교는 글쓰기 연구학교입니다. 안경선생님 말씀을 빈다면 글쓰기는 연구를 할 필요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된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은 첫째, 많이 읽고 둘째, 많이 쓰고 셋째, 많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외에 특별히 글을 잘쓰게 하는 좋은 방법은 없답니다.
“선생님은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100권이요!”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1000권!”
대장이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또 고개를 도리질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진이가 대뜸
“만 권!”
했습니다.
“만 권?”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도 엉뚱한 대답을 했으므로 그걸 확인시켜 주시려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책을 읽는 연령층을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60세까지로 잡아 약 50년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1주일에 2권이상은 무리라고 합니다. 일생을 꾸준히 1주일에 2권씩 독서를 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했습니다. 50년×50주×2권은 5000권이 됩니다. 꾸준히 일생 동안 1주일에 2권씩 독서를 하면 일생 동안 5000권을 읽을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하물며, 선생님은 이제 나이 마흔이다. 어떻게 만 권을 읽었겠니? 어림잡아 한 삼사천권은 읽었을 게다.”
“햐, 굉장하네요. 그 많은 책이 다 머리속으로 들어가나요?”
동균이는 책을 통째로 머리속에 쌓는줄 아나 봅니다. 머리속에는 기억의 창고라는 빈곳간이 있는데 이 창고는 이상하게도 쌓으면 쌓을수록 넓어진단다. 안쌓으면 스스로 좁아지고 쌓으면 늘어나는 요술창고지. 선생님의 창고에는 선생님이 읽었던 많은 책들이 쌓여있지. 거기다가 책을 읽고 느꼈던 것들과 감동을 받았던 내용까지 뒤섞여 있다. 선생님은 그 보물창고에서 필요할때마다 기억들을 꺼내 쓴단다. 마치 너희들 부모님들이 1년 농사를 지어 온갖 곡식을 창고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것처럼 선생님도 가득찬 창고를 이용하는 거란다. 그러나 텅빈 창고를 가진 사람은 꺼내 슬게 없지. 지금 책을 많이 읽어 저장해 놓으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꺼내 쓸게 많지만 게을리 한 사람은 빈 창고라서 꺼내 쓸 것이 없게 된다. 창고를 가득 채워라. 그리고 다음에 크거든 생각의 낚시 바늘을 던져 빛나는 기억들을 낚아 올려라. 선생님의 눈은 또 꿈꾸는 듯 창가 먼 하늘로 향했습니다.
* 우는 하르방
<장좌리 기받이 별신제>
제일 큰 깃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깃발들이 운동장에 넘칩지다. 기받이 별신제는 남도문화예술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민속놀이입니다. 그래서 전국대회에 나가야 합니다. 매일 한 차례씩 운동장에서 연습을 합니다. 민호는 그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별신제에는 거의 마을 전체가 참여합니다. 물론 민호도 홍사초롱을 들고 어른들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민호가 이 별신제를 좋아하는 것은 우선 공부하기 보다 즐겁고 굿판에 어울리다보면 마음이 울렁거리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하도 신물나게 연습을 해서 이제는 무덤덤합니다. 관청의 높은 분들이 오실때는 다르지만 아주 재미없나 봅니다. 그러나 민호와 그 또래 아이들 여남은명은 굿판이 시작되었다 하면 설치고 돌아다닙니다. 선생님도 민호를 못마땅하게 보는 축입니다.
"하기 싫은 공부 안해서 좋겠다, 너."
그랬으니까요. 그리고 굿 연습을 할 때마다 민호가 허락을 얻으려 하면 시큰둥했습니다. 마지못해서 놓아주는 것처럼. 그래도 할 수 없었지요. 민호네들 아이들도 별신제에서는 한 몫 거들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날짜가 지나자 아이들은 흥분했습니다. 소풍 때보다도 운동회보다도 더 흥분했습니다. 왜냐하면 굿판이 제주도에서 열리게 되었으므로 생전 못타본 비행기며 페리호를 타 볼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아주 관심이 없는건 아닌 듯 합니다. 딱 한 번이지만 운동장에서 깡충거리며 뛰어다니다가 얼핏 교실을 보았는데 거기 창가에 선생님이 서 계셨습니다.
“민호야, 너희들 언제 가니?”
또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딱 한번이었지만.
“민호, 오늘 결석했니?”
“제주도에 갔어요.”
‘그랬었군! 오늘이었던가.’
선생님은 그런가보다고 그냥 넘겼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빈 자리를 보고는 아직 안 돌아왔군 하고 넘겼습니다. 며칠 후 민호가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이 민호 주위에 몰려 들었습니다. 민호는 신이 났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신기한 제주도 풍경이 민호의 입담으로 어우러지고 아이들은 넋을 잃었습니다. 선생님도 오늘은 ‘제자리에!’라든가 ‘조용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책상에서 일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가끔 몰려 있는 아이들을 살피기도 하는 걸 아이들은 모릅니다.
종례시간. 인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도 민호가 주춤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 거.”
선생님 손가락만한 돌하르방 한 개가 민호의 손에서 선생님 가슴으로 전달되었습니다.
* 컴퓨터 도깨비
․이름 : 도깨비
․나이 : 생후 1개월
․성별 : 중성
․생활 근거지 : 디스켓
․취미 : 장난
나는 컴퓨터 디스켓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톨이는 아닙니다. 친구 없다고는 했지만 나는 숫자나 문자들 속에서 삽니다. 숫자나 문자들은 낱낱이 제 구실을 하면서도 또 대개는 서로 묶여서 뭔가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면 내 이름을 보십시오. 도. 깨. 비, 도는 음악에서 다 장조의 기본음입니다. 깨는 뭐더라, 그렇지요. 기름을 짜는 깨라는 식물 여러분도 잘 아시지요? 비는 무엇에다가 비유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이렇게 낱낱이 낱자들이 모여서 ‘도깨비’ 라는 낱말을 만듭니다. 음악도 기름도 빗방울도 아닌 새로운 낱말이 됩니다. 재미있는 일이지요. 내가 내 소개의 가족관계에 주인이라고 쓴 것은 주인이 나를 만들어 냈다는 뜻인데 실은 표현이 좀 어색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처럼 엄마 아빠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기계라 그 말이지요, 물론 기계도 사랑으로 태어 나겠지요. 지극한 사랑 속에서 만들어지니까요.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답니다. 하여튼 나를 만들어 낸 사람은 이제 열다섯살밖에 안 된 중학생이랍니다. 중학생이 내 보호자가 된 셈이지요. 그래도 그 학생은 끔찍이도 절 사랑한답니다. <도, 깨, 비> 낱자로 저를 만들어내려고 무척 고생을 했으니까요. <도, 깨, 비.> 이 세 글자를 뜯어맞추는 것이야 뭐가 어렵습니까만 그 학생은 그 글자 속에 내 살아 움직이는 생명 같은 것을 불어 넣으려고 했습니다. 생명은 아닙니다. 활력소라 할까요? 내 생명은 인간의 생명과는 아주 딴 아이니까요. 예를 들면 기계가 전기의 힘으로 돌아가면서 생산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지요. 나는 주인(이제부터 주인이라 부르겠습니다)에게서 그런 생명을 받았습니다. 디스켓속에 얌전히 잠자고 있다가도 컴퓨터에 연결만 되면 세상이 좁다고 뛰어다닙니다. 내가 못가는 곳은 없습니다. 컴퓨터 속 그 기계 속에 내가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나는 주인의 상상력의 한계 안에서 활동합니다. 그래서 거칠 것이 없습니다. 주인이 우주를 생각하면 내 몸은 이미 우주에 가 있습니다. 주인이 바다 밑을 상상만 해도 나는 바다 밑을 돌아다니게 되고 주인이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어려운 과학문제에 몰두하게 되면 나는 그 문제 속으로 뛰어들어가 주인을 돕습니다. 나는 심부름꾼이나 노에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내가 주인을 하인처럼 부려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사과와 나눗셈
벌쭉이대장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가 아니고 꽤 많은데 그걸 가만히 묶어 보면 결국은 한 가지 문제입니다.
‘천당은 정말 있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일까?’
‘금방 다투고 또 웃고 하는 사람들의 성격은 도대체가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런 사소한 문제들인데 대장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의문들을 묶어놓고 보면 결국은 한 가지 문제로 묶여집니다.
대장은 생각합니다. 시장에 가면 푸짐하게 과일들이 샇여 있습니다. 군침이 넘어갑니다. 그러면 대장 생각으로는 주저없이 먹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걸 한 알 집어먹으려 할 때 바로 사람들은 도둑이라고 벌을 씌웁니다.
생각해 봅시다. 감이 있었습니다. 대장이 감이 먹고싶습니다. 한 개 집어 먹었습니다. 어른들이 큰일난 것처럼 대장을 다룹니다. 도둑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래 그 감은 어디 있었던 것입니까. 그 상점 주인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감나무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감나무에도 주인이 있잖니?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압니다. 본래에도 주인이 있었을까요? 세상이 처음 태어났을 때 그 때에도 감나무, 사과나무, 논과 밭, 땅들에게 주인이 있었을까요? 사람들이 서로 자기의 마음크리만큼씩 나눠 가진게 불씨였습니다. 애초에는 아무도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았는데 그만 사람들은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이 건 내 거다.”
“요 건 내 거야.”
먼 옛날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모든 것이 남았습니다. 인구가 적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즈음 인구가 퍽 늘어서 모자랍니다. 그래서 흙과 바위로 된 땅을 두고 서로 욕심을 부립니다.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흙을 두고, 돌덩이를 두고 사고 팔고들 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기들의 마음의 넓이 만큼밖에 살 수 없나 보지요. 욕심은 어떻습니까? 마음의 넓이가 좀 큰 사람은 그래도 욕심이 적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꾀죄죄한 사람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온세계를 다 가질 듯 손으로 움켜쥐려고 합니다. 지구라도 통째로 준다면 냉큼 집어먹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짓입니다.
이상한 건 본래 있었던대로 두지 않고 어른들은 자꾸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들면서 발전해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묶이는 건 아닌지. 대장은 생각합니다. 어려운 나눗셈 그러니까 몇 백 몇 천나누기를 하지 않아도 사과 한 개를 둘이나 셋으로 나눠 먹기란 식은 죽 먹기 아닙니까.
* 원시인 돌이
돌이는 신석기시대 아이입니다. 여러분들도 배워서 아시겠지만 돌이는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리고 옷이라고는 사타구니를 가린 가죽 한 장 뿐입니다. 손에는 돌도끼를 들고 어깨에는 사슴을 힘줄로 만든 활을 메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오해할까봐 말씀드리는데 돌이가 전쟁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돌이가 이런 차림으로 나서는 것은 오늘 저녁에 먹을 양식을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굴 앞에서 잠시 하늘을 쳐다봅니다. 해가 서산 마루 두뼘쯤에 머물고 있습니다. 돌이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짐승을 쫓기에 알맞은 시간입니다. 이제 돌이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사슴을 쫓을 것인가 토끼나 꿩을 잡을 것인가는 돌이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지금쯤 짐승들은 한곳에 모여 있을 것입니다. 풀을 먹는 동물들, 육식을 하는 동물들, 날짐승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돌이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른들과 함께 곰을 잡으러 떠났습니다. 돌이도 그 사냥대에 참가하려고 앙탈을 부렸으나 부질없는 짓입니다. 열다섯살이 되기전에는 마을 사냥대에 결코 끼일 수가 없습니다. 설사 돌이처럼 사슴이나 노루 토끼들을 꽤 많이 잡은 실적을 가지고 있어도 어른들에게는 솜씨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하기야 맹수를 잡는일은 작은 동물을 잡는 일과는 아주 딴판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사냥대에는 언제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힘좋고 날쌘 젊은이들이지만 맹수 사냥은 늘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마을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열다섯살이되면 성년식을 맞고 성년식을 마치면 사냥대에 끼이게 됩니다. 돌이는 올해 열네살. 성년식을 1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돌이의 사냥터는 물가나 늪가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강에는 어른들 팔뚝만큼한 물고기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그 물가에 모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는 물고기를 잡지 않습니다. 물고기를 잡는건 여자들입니다. 돌도끼와 돌창을 들고 사냥대의 맨 앞장을 서서 곰이나 멧돼지를 맞아 용감하게 싸우는 것입니다. 돌이네 마을 어른들은 비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맹수가 강하다고 해도 결코 물러서거나 달아나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곰이나 멧돼지들이 만만하게 잡힐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용감한 지휘자가 이끄는 사냥대는 더욱 두려움을 모릅니다. 용사중의 용사, 사냥대의 대장은 용사중의 용사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풀숲 속에서 작은 기침소리가 들립니다. 사슴입니다. 키 큰 풀잎사이로 고동색 뿔이 아른거립니다. 거리는 50미터쯤. 돌이는 뿔과 뿔사이를 겨냥하고 돌도끼를 빙빙 돌리다가 힘껏 던졌습니다.
* 사명대사의 도술
사명대사는 도술을 부렸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날 때니까 지금부터 500년 전 쯤. 금강산 유점사.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과 장년 스님이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네가 다녀와야겠다.”
“왜국(일본)엘 말입니까?”
“너 밖에 갈 사람이 없어.‘
“조정 대신들이 할 일입니다.”
“인재가 없어!"
사명대사는 스승 서산대사의 명을 받들어 왜국으로 갔습니다. 임금님의 사신으로 가는길이었으므로 행차가 요란합니다. 그러나 행렬에는 모두 스님들뿐.
뱃길이 험했습니다. 실컷 뱃길에 시달리고 나서 왜국에 닿았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대사. 기다린지 오랩니다.”
왜국의 대신이 정중하게 맞았습니다.
“정중하게 모셔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왜왕의 엄한 분부가 있어서 사명대사를 맞은 왝구 벼슬아치들은 정성이 지극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왜왕은 조선을 치러 나갔던 가등청정이나 소서행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습니다. 조선에 다녀온 장수들이 한결같이 한 말은 사명대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명대사가 불같이 노해서 곁에 있는 병을 잡더니 병목에 붓으로 일자를 죽 그었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허공을 내리차자 병목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물러서지 않자 대사는 절 문 앞에 서있는 사천왕의 목에 붓을 긋게 했습니다. 그리고 500보다 떨어진 곳에서 손칼로 사천왕의 못을 쳤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물러서지 않자 대사는 격노해서 우리들 모두 목에 먹줄을 그었습니다. 내리치고나면 우리들 목이 잘려나갈 판입니다.
"그래, 무릎을 꿇었단 말이냐?"
왜왕은 믿지 않았습니다.
대사는 왜왕이 보낸 가마를 타고 왜왕의 궁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길 양 옆에 죽 병풍을 늘여놓았습니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솜씨가 어땠습니까?”
왜왕이 짐짓 시험했습니다. 대사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대단하지요. 한 번 외어 볼까요?”
“예? 무슨 터무니 없는 말씀을 ..........”
대사는 눈을 감고 지나쳐온 길에 둘러 쳐졌던 병풍의 글귀를 순서대로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외기 시작했습니다. 구리방에 넣은 밤 새 불을 지펴서 죽이려고 했으나 대사는 하루 낮 하룻밤을 버티고 고드름을 수염에 주렁주렁 달고 나왔습니다.
"어이, 추어. 에취. 감기들기 십상이다. 왜놈들의 땅이라. 네 놈들의 짐승만도 못한 심보와 딱 한 가지구나. 이놈들!“
대사의 호통에 왜왕이 무릎을 끊었습니다.
* 생각의 건너편
유리 겔러가 서울에 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가 마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마술도 불가사의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에를 들면 데이비드 커퍼필드는 뉴욕 항구에 있는 자유여신상을 감쪽같이 없애다가 15분만에 다시 되돌려 놓았으며, 최근에는 두께가 4미터나 되는 만리장성을 유유히 통과했습니다.
그건 마술의 신비한 힘입니다. 그러나 유리겔러는 마술사가 아닙니다. 그는 텔레비전에 출현해서 그의 초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리겔러가 눈 앞에 놓인 숟가락을 몇 초 동안 응시하자 쇠로 만들어진 숟가락이 천천히 휘기 시작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이들의 실험용 숟가락도 같이 휘기 시작했던 일입니다. 이 사건은 전국 각지에서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선생님, 유리 겔러는 도깨비입니까? 귀신입니까?”
‘좀, 생각 좀 해보자.’
안경선생님은 곤혹스럽습니다.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쏘아 사람이 달에 가는 세상입니다. 물론 그런 정도의 과학이 자연현상의 극히 적은 한 부분을 규명 한것이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이 큽니다. 선생님의 갈등은 과학과 자연 현상이 겹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어색한 변명이 되겠지만 ..........”
과학은 자연 현상의 가장 작은 부분도 우리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단다. 너희들은 과학이 이 세상 모든 것을 모조리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건 잘못이다.
너희들이 잘 알고 있는 에디슨이란 사람 아주 훌륭한 발명가이다. 전등, 전화, 측음기 등 일생 동안 1000여가지가 넘는 발명을 한 공로로 발명왕이 되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그가 발명한 것들은 사실 예부터 있었던 거야. 그걸 에디슨이 조립한 것에 불과한거야. 더 자세히 말하자면 시계를 갈릴레이가 발명했는데 그건 부분품 하나 하나를 짜 맞추어서 시계라는 시간의 측정 기구를 만들어 낸데 불과한 거지. 시간을 만들어낸 건 아니다. 시간은 이 세상이 생성 되면서부터 있었어. 아니 그 이전인지도 몰라. 에디슨이 발명했다는 전기도 그렇지. 전기라는 것도 옛날부터 있었어. 천둥과 벼락을 봤지? 그 게 전기야. 그걸 사람들이 사용하기 좋게 변형이랄까 개조랄까. 그런 정도가 발명이고 발견이고 과학인 거다. 사람은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이건 그럴수도 있다는 가설일 뿐이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 가설을 믿지 않는단다.
요즘 과학자들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느니, 사람의 영혼을 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다고도 하고, 식물에서 「기」라는 생명력을 사진 찍기도 하는데 모르겠다. 사람의 정신세계를 사진 찍을 수 있는 건지.
* 초능력의 세게
“선생님, 최면술 할 수 있나요?”
“할 수 있지.‘
“해보세요.”
'좋다. 대장 너 눈 감아라. 그리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대장은 눈을 감았다.
“자, 시작한다. 몸의 힘으 풀고, 손과 발의 힘을 모두 푼다.”
나는 힘이 없다. 힘이 모두 빠져 나간다.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 나갔다. 이제 잠이 온다. 졸린다. 포근한 엄마품에서 처럼 깊이 잠이 든다. 눈까풀이 무겁다. 잠이 든다. 몸이 마치 솜방석에서 누워있는 것 같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자, 이제 잠이 들었다.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나는 잠들었다. 조용하고 평안하게 잠들었다. 애초에 아이들은 장난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대장이 점점 최면술에 끌려 들어가자 호기심으로 보았다. 정말 최면술에 걸려 대장이 잠들자 아이들이 놀랐다. 두려움도 있었다. 선생님이 빙그레 웃었다.
“자 대장 그만 자고 일어나!”
선생님의 손가락 마디 닥! 소리와 함께 대장이 눈을 떴다. 그리고 정말 잠에서 깨어 일어난 사람처럼 주위를 살폈다.
“녀석. 잘 잤니? 낮잠은 무슨 낮잠야.”
“정말, 내가 잠들었었니?”
아이들이 ‘와하하하’웃어 제꼈습니다. 대장은 멋쩍게 머리칼을 박박 문질렀습니다.
소련의 열다섯살난 한 소년은 태어날 때부터 초능력 투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소년은 보려고만 하면 마치 엑스레이를 비춰 사람의 몸속을 볼 수 있듯이 저 벽 넘어 집안 형편을 모두 볼 수가 있었다. 벽돌벽이든 강철판으로 만든 벽이든 콘트리트벽이든 소년의 투시안 앞에서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재미 있겠네요.”
“그럴까?”
“남의 비밀을 훔쳐 볼 수 있잖아요.”
“글쎄다.”
석룡이는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그밖에도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다. 우리 주변의 관상, 사주, 점장이, 무당들도 너희들이 배운 것 처럼 미신은 아니란다.
“점을 쳐보면.”
“아이, 무서.”
무서워한다는 자세가 잘못된 일이다. 선생님은 고은이를 달래주었습니다. 죽은 혼령이 나타나서 생전에 살았을 때처럼 말을 한다. 목소리가 꼭 같다. 생전의 일을 낱낱이 말한다.
“선생님은 이런 일들을 너희들에게 이해되도록 설명해줄 능력이 없다. 하여튼 세상에는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있단다.”
* 보람이와 강아지
보람이는 아버지와 함께 큰아버지댁에 갔습니다.
“자. 보람이가 큰아버지댁에 가서 한 행동을 잘 살펴 보아라.”
“선생님, 보람이가 뭐예요?”
“강아지 아닌가베.”
장난꾸러기 동균이의 익살스런 대답이었다. 익살이었지만 그 말 가운데 안경 선생님의 가슴을 흔드는 것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을 덮게 하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고 계신 듯 묵묵히 서 계셨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기다리느라고 교실이 잠시 침묵에 싸였다.
‘바둑아, 바둑아. 이리와.’
선생님은 어린시절 배웠던 국어 교과서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둑이는 개 이름인데 우리말이었다. 그러나 교과서의 아이들 이름은 모두 철수, 순이, 영수, 영이 등 한자 이름이었다. 친구들 중에 거꿀이란 이름이 있었는데 그 아이도 학교에 입학하면서 ‘도휘’가 되어버렸다.
‘구름다리’
무지개를 연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선생님의 고향마을 이름이었다. 이것도 ‘운교’가 되었다. 선생님 고향마을 주변에는 숯개 ‘탄포’, 쇠섬 ‘우도’, 자문(잠긴)다리 ‘침교’, 배다리 ’주교‘ 등 우리말 이름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것들도 모두 한자로 바뀌어져버렸다. 사대주의 사상? 그럴 수도 있겠다. 몇 천년을 종주국으로 알아왔던 중국. 그리고 한자 문화권의 예속.
‘진서와 언문’
한자는 양반이 배우는 참글이고, 한글은 상놈이나 배워야 하는 개글이라고 드어내놓고 말해 온 조상들 때문에.
‘장껨시.’
‘가위, 바위, 보’로 아직도 정착되지 못한 일본말. 40여년의 식민지 문화유산.
요즘에는
‘따봉’ 또는 ‘오, 예!’가 유행한다.
선생님의 머리 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워진다. 아이들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자 문화권. 일제 식민지 시대. 미국의 영향. 이런 식으로 연결을 지어놓고 또 생각이 깊다. 한글이 좋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거의 모두가 한자요 영어 투성이인 우리 언어나 문자 변화를 아이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내세워 입증해줄 것도 없다. 참으로 부끄러워서 입을 열수가 없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 신, 그리고 학용품인 공책, 연필, 가방, 심지어는 작은 지우개까지도 영어 뿐이다.
“선생님, 보람이가 참말로 강아지 이름입니까?”
순진한 고은이가 선생님의 의식을 깨웠다.
* 학급회의 (1)
“제 5회 학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의장인 철민이가 사회봉을 두드렸다.
“제 5회 학급회의 의제는 우리들이 가장 관심이 쏠려있는 시험 즉 일제 고사에 대하여 토론을 해보려고 합니다.”
“반대의견 있습니다.‘
“형록이 회원 말씀하십시오.”
“회장의 제안 중에 시험을 일제고사라고 했는데 시험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일제고사에 국한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정 동의가 들어왔습니다. 제청 있으면 의견 발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내리 세시간 동안이나 격론을 벌였다. 더러는 결의를 했고 어떤 의견은 표결에 부치기도 했다. 회의 결과가 회의록에 정리되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와 시험이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
현상 : 시험은 공부한 결과를 나타낸 것으므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고은 : 공부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것이고 시험은 우리가 혼자서 쳐야 하는 것이므로 공부가 아니다.
대장 : 산수 시험을 보다가 실수로 더하기를 빼기로 계산해서 틀려 버린 문제가 있었는데 그 시험에서 80점을 받았다. 다음에 또 한다면 틀리지 않겠다. 그런데 나는 80점으로 기록되어 버렸고 고칠수도 없다. 다시 한다면 틀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의장 : 그렇다면 시험이 공부와 관계 없다는 의견이군요. 동의합니까? (대장의 동의)
토론을 벌인 결과 시험은 공부가 아니라는 의견이 25대 3으로 의결되었다.
① 어른들은 너무 시험에 치우져 있다. 선생님 부모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말씀드리자. (희성)
② 놀 시간이 없다. 아침 자습, 학교 공부, 과제 그리고 학원으로 계속되는 하루가 지겹다. 그리고 쉬는 시간 조차 화장실 다녀오기 바쁘다. (석룡)
③ 시험이 너무 많다. 시간중의 형성평가. 월말평가, 단월말평가, 기말평가, 기초학 력평가, 실기평가, 또 무슨 무슨 평가 때문에 숨 쉴 틈도 없다. (상일)
④ 아침 자습, 학과 공부 시간, 과제물 중에서 어떤 것이 정말 진짜 공부인지 모르 겠다. (문길)
⑤ 쉬는 시간 10분을 더 늘려야 한다. 10분 정도로는 화장실 다녀 오기도 바쁘다. (민수)
⑥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형래)
⑦ 원시인들은 사냥 한 과목만 배우고도 먹고 살았다. 국어, 산수로부터 시작해서 10과목은 너무 많다. 조금 공부하고 많이 놀아야 한다. (지영)
* 학급회의 (2)
시험과 공부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나서 1주일뒤에 열린 학급 회의록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주제> 남녀 차별에 대하여
의장 : 먼저, 의제를 제의한 유진이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유진 : 남학생들은 우리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대장과 석룡이는 우리들에게 행패를 부렸습니다.
대장 : 어떤 행패를 부렸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일동 : (웃음)
의장 : 행패의 내용은 여러분들이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치마 뒤집 기나 고무줄 놀이 방해 등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남녀 차별에 대 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석룡 : 저는 남녀 차별이 아니라 남녀 구별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다운 :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충수 : 차이가 많지요. 우선 생김새가 다릅니다. 우린 여자들이 없는 것도 가지고 있고, 여자들 보다 힘도 셉니다.
일동 : (웃음)
지영 : 옳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반 남학생들이 모두 나보다 힘이 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장 : 우리가 집에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역할을 보면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까 석룡이나 충수가 말한 것 처럼 신체적으로 역할이 다르게 태어났습니다.
정아 : 저는 의견이 다릅니다. 지금 세상에서 여자 할 일과 남자 할 일이 따로 정 해져 있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동균 : 그러면 여자도 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까?
일동 : (웃음)
의장 : 회의 내용과 관계 없는 발언은 삼가주십시오.
상철 : 맞습니다. 동균이의 말처럼 여자가 아버지가 될 수도 없고 더욱 남자가 어 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희준 : 여자도 군대 갑니까?
일동 : (웃음)
의장 : 공격적인 발언은 하지 맙시다. 우리는 지금 남녀 차별에 대해 의논 하고 있 습니다.
선생님 : 여러분의 의견은 모두 좋습니다. 근본적으로 남녀 차별은 없습니다. 그러 나 남녀가 신체적으로 다른 것처럼 하는 일이 다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린이 여러분은 남녀 성에 관계없이 활동하는 것이 좋겠습니 다.
* 선생님 이야기 (1)
“우리 반에서 누가 가장 잘 생겼는가?”
“다운이요!”
모두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이의가 없는 모양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니까 그냥 예쁘니까 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예쁜 건 여자라는 관념이 이미 생긴 모양입니다.
“텔레비전 탤런트는 누가 이쁘든?”
대답이 마치 폭포 같았습니다. 30명이 한꺼번에 대답했기 때문에 확실한 하나의 이름으로 돋보이지는 않았으나 안경선생님은 그 중에서 몇 개의 낯익은 이름을 새겨 들을 수 있었습니다.
“텔런트 ○○○의 어디가 이쁘든?”
눈이 크고 쌍커풀이다. (고은)
얼굴이 동글동글해서 이쁘다. (석룡)
키가 크고 날씬하다. (철민)
웃는 모습이 귀엽고 예쁜 보조개가 웃을 때 나타난다. (지영)
손톰에 빨간 매니큐어를 발랐다. (민영)
그냥 모두 다 맘에 든다. (대장)
“다운이 하고 비교하면 어때?”
“에 ..........”
“턱도 없어요.”
“약간 닮았어요.”
“다운이가 어른이 되면 꼭 같을 거예요.”
“아니요, 안될 걸.”
다운이 윤곽이 탤런트 ○○○와 비슷한 모양입니다.
자, 다음에는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놓은 사람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보아라. 꼭 한 사람만 골라야 한다.
① 백설공주 ② 심청이 ③ 콩쥐 ④ 성냥팔이 소녀
결과는 콩쥐 4명, 성냥팔이 소녀 5명, 나머지 20명이 백설공주를 선택했습니다.
“왜, 좋은가?”
아이들에게는 읽혀진 책들이 강한 인상을 주는 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래 기어게 간직되는 것도 확실합니다.
“천사와 선녀는 누가 더 예쁠까?”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천사요.”
“왜 천사가 더 이쁘다고 생각하지?”
“그 건.”
아무도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그렇게 심어진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사람한테 닭이나 비둘기처럼 날개가 달렸다면 정말로 예쁘게 보일까?”
“..........”
“바로 너희들이 날개를 달고 있다고 상상해봐라.”
“징그럽겠네요.”
동균이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상을 찡그렸습니다. 그에 비하면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하늘을 난다. 얼마나 사람답고 자연스러운가.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가에 스치듯 지나가는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없었습니다.
* 선생님의 이야기 (2)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무엇일까?”
“송편이요.”
“아이스크림이요.”
“비스켓입니다.”
“불고기예요.”
“떡이요. 찹쌀 콩떡.”
“치킨입니다.”
보리개떡이라고 익살을 부린건 대장이었다.
“보리개떡을, 너 보기나 했니?”
대장은 얼굴이 빨개진채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외에도 핫도그니, 마요네즈, 토마토케찹 같은 것들이 들먹여졌습니다. 군고구마, 찐 감자들도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발표된 의견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줄여놓고 나니 남는건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맛없는 음식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니까 켄터키 치킨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시는건 뭡니까?”
“홍시다.”
“와아!”
홍시란다. 홍시. 아이들이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두번째는요?”
“두번째는 엿이다. 녹아서 신문지에 달라붙은 엿을 침을 발라 신문지 조각을 발라내며 먹는 맛 기가 막히지.”
‘너희들은 몰라, 이녀석들아.’
“세번째는요?”
“식혜다. 잣을 몇 알 띄워 놓은 얼음물같이 차가운 식혜.”
헤헤. 가늠이 가는 아이들이 입맛을 다셨습니다.
“핫도그가 그렇게 맛있니? 햄버거랑?”
“예!”
아무래도 좀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입맛이 바뀌어버린 모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린시절은 지금 같지 못했습니다. 과자라야 설탕 굵은 가루가 붙은 사탕과 비거라 불리었던 우유과자 그리고 바둑껌이라고 했던 네모 모양의 껌. 껌은 단물이 빠지면 심한 고무 냄새가 나고 질겨서 생고무를 씹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것들도 어쩌도 운이 좋아야 얻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앞 상점의 유리병 안에 있는 그것들을 쳐다 보기만 했을뿐 실제로 사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제일 흔한건 엿. 5일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는건 밀가루로 부친 국화빵이나 신문지에 돌돌 말린 엿을 기다리는 재미였습니다. 어머니는 10리도 넘는 유둔장엘 가시면 언제나 점심때 무렵에는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꼭 알맞은 시간에 어머니 마중을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너희들만 했을 때였다.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아서 더욱 그리워지는지?’
* 선생님 이야기 (3)
<착한 어린이 뽑기>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선생님 생각 같으면 거절해 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난처할 때면 선생님은 안경을 벗어닦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 번째 안경을 닦고 계십니다. 그래도 반에서 한명을 추천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 일을 맡겨 놓고 보고마 계셨습니다. 곤란하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모두들 말문이 트이질 않아 사회를 보는 철민이가 애를 먹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거들었습니다.
“착한 어린이라면 공부를 잘하고 얌전하고 학교 생활 규칙을 잘 지키고 그런 모범생은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을 일이다만 선생님 생각으로는 그런 동무들은 없을 것이다. 친구를 도왔다든지 다른 선행을 했거나 예를 들면 청소나 맡은 일을 잘한 동무, 약속을 잘 지킨 동무, 남 모르게 친구들을 돕는 동무가 있으면 서로 눈치만 보지 말고 추천하도록 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런 아이가 있다면 그게 어디 어린이랄 수 있을까보냐 하느님이지. 아이들은 끊임없이 잘못하고 어른들은 끊임없이 바로 잡으려 하고 이것이 교육인데. 행정기관에서는 모범생이나 이름을 붙여놓고 애어른을 기대합니다. 설사 애어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디 어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괴물이지. 어른도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르는데 항차 어린이가 어른스럽다면 아무래도 괴물이거나 천년 묵은 여우의 화신일 것이 환합니다. 천년 묵은 여우는 둔갑술을 쓴다니까 사람을 잡아먹고도 선녀인 척 사람을 속일테니까요.
시간만 흐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조바심을 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작은 일이더라도 어린이들이 착한 일을 꾸준히 해 왔다는 건 아무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니까.
“종이에 써서 적어내면 어떨까요?”
“좋다. 없는 일을 억지로 쓰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자기를 써도 좋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써도 좋다.”
결국 석룡이가 선발되었는데 무난할 것 같았습니다. 석룡이는 할머니와 단 두 식구가 살면서 요즘에는 할머니조차 편찮으셔서 밥은 물론 빨래까지도 하고 있었으니까.
작은 일들로는 꽤 많은 아이들이 좋은 일들을 하고 있어서 선생님은 미처 읽지 못한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 본 것처럼 흐뭇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생각으로는 반 아이들 모두에게 착한 어린이의 영예를 안겨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아이들을 너무 심하게 경쟁시키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어떤 상이든 상으로 인한 효과보다는 상을 타지 못한 더 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선생님은 쳐다보기조차 힘들어 하셨으니까요.
* 선생님의 이야기 (4)
“다음 체육시간은 자치기놀이다.”
“와아! 그런데 자치기놀이가 뭔데요?”
“한국야구!”
“한국야구?”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며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길이 50센티미터쯤 되는 막대 한 개 그리고 20센티미터쯤 되는 막대 한 개를 가지고 시범을 먼저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빙 둘러서서 구경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자치기 놀이가 꽤 재미있을 줄 알았더니 신통치가 않아섭니다. 야구처럼 글러브나 배트나 공도 없는 싱거운 놀이였습니다.
‘시시한 놀이야.’
모두들 이렇게 단정 지은 것 같았습니다.
‘재미 없어요. 야구 시합이나 하게 해주세요.’
표정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 자형 치기. - 자형 치기, 돌려서 치기, 튀겨치기.
처음에는 시합이 잘 풀리지 않더니 차차 재미가 붙었습니다. 점수가 나고 경쟁이 되자 아이들은 놀이에 폭 빠져들었습니다.
+ 자형 치기는 새끼막대를 어미 막대에 + 자처럼 대고 치는 것입니다. 새끼자가 윙! 프로펠러처럼 날아옵니다. 석룡이가 수비를 하다가 날아오는 막대를 피하기 위해 그만 납작! 엎드렸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깔보았다고 생각했는지 석룡이의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석룡이는 날아오는 막대를 피하지 않고 잡으려고 했습니다.
- 자형 치기는 조금 더 어렵습니다. 새끼자와 어미자를 나란히 하고 치기 때문에 실패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잘 맞으며 훨씬 멀리 날아갔습니다.
돌려서 치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새끼막대를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돌려 놓고 치는 기술이 무척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돌려치기에 금방 익숙해진 아이는 대장, 석룡이, 철민이 정도입니다. 그래도 맞았다하면 훨씬 멀리 튀겨 나갔습니다.
새끼 막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면 아이들은 목을 움츠렸습니다. 그러나 몇 번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 다음에는 날아가는 막대를 공중에서 잡는데도 꽤 익숙해져서 멋지게 잡아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튀겨서 치기는 새끼 막대를 땅위에 놓고 어미 막대로 새끼 막대의 한 쪽 끝을 때려 공중에 높이 띄워놓고, 그 빙글빙글 도는 막대를 치는 어려운, 가장 어려운 관문입니다. 어쩌다 맞으면 굉장한 속도로 멀리 날아갔지만 성공한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치기 놀이는 두 사람이, 세 사람도, 놀이 하는 사람의 수효가 얼마가 되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세사람이 할 때 공격자를 제외한 두 사람읁 공동으로 수비를 합니다. 편을 갈라서 할 수도 있습니다. 벌써 체육시간 끝종이 울린지 오래입니다. 아이들은 놀이에 몰두하고 있어서 종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입니다.
* 7대 불가사의
<7대 불가사의>
선생님께서 크게 칠판에 쓰셨습니다.
① 이집트의 피라밋
② 비빌론의 공중정원
③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④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신전
⑤ 마우솔루스 능묘
⑥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
⑦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우리 시대 의문의 최고 상징입니다. 안경선생님께서 왜 이 문제를 칠판에 제시하였는지 금방 짐작이 갔습니다. 지금까지도 세상은 의문투성입니다. 동균이가 세상 모든일에 의문을 갖는 것처럼 안경선생님에게도 세상은 외문투성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들은 믿을 만한 것인가?’
미국의 플로이다주 남동해에 버뮤다 삼각지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 실종된 비행기, 배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비행기와 배는 어디로 갔을까요?
잉카문명의 유적지인 마추피추 돌성은 그 시대의 기술과 도구로 깍기엔 도저히 불가능한 돌과 돌틈 사이에 면도날이 들어가지 않도록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안데스 고원지대에 있는 평원에 횟가루로 알 수 없는 선이 몇 킬로미터씩 이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가 비행기가 발명되어 하늘에서 보고서야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거대한 새 모양이었습니다. 기하학적으로 그려진 새 모양은 마치 현대의 과학자들이 설계하고 있는 우주정거장 모습입니다. 수로가 있습니다. 산 하나를 관통해서 물을 끌어갔는데 지금의 발달된 레이져광선으로 뚫어도 그렇게 정교하게 산을 뚫어 수로를 내기는 힘들 것 같답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지금 세계 각국에서 유 에프 오를 보았다는 사람이 수천명입니다. 유 에프 오의 모양도 가지 가지이지만 우주 생명체도 각각 다릅니다. 이와같은 생물이 있는가 하면 은백색 우주복을 입은 사람 같은 모양도 있습니다. 문어같이 생긴 생명체도 있었고, 키가 1m 남짓한 난쟁이를 보았다고 하는가 하면 2mRK 넘는 우주인을 만났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부정하지 못하지만 긍정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은 사실적 증명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모두 증명으로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과학 만능의 생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선생님은 자신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판단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으로 양파껍질을 보는 눈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의문을 하나도 시원하게 풀어주지 못한 일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 도깨비 경연대회
제 1회 세게 도깨비 경연대회가 한국의 계룡산에서 열린다는 소문이 날개달린 듯 돌았습니다. 바람처럼 내닫는 풍문만으로도 세계 각국 도깨비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비쩍 마른 가슴을지닌 도깨비들이었지만 도깨비 경연대회를 개최하는데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낯빛이 검붉고 코가 덩실해서 제 나라에서만은 두터운 존경을 받는 도깨비가 바람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발뒤꿈치를 따르듯 기모노를 입고 칼을 어깨에 엇비스듬하게 걸친 도깨비가 게다를 끌며 들이 닥쳤습니다.
“모두들 모였고. 왜, 아직 도착을 아니했다고? 뭬가 이렇게 구므뜨므니까.”
“소식을 전달한지 반 식경도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좌정하시지요.”
“저기, 장대같이 큰 도깨비 친구는 어디서 왔으므니까?”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에도 속속 도깨비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계룡산 둘레에 음산한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갓뎀, 유 파이트 갱?”
곱슬곱슬한 머리칼이 머리 속으로 파고들어서 자주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팔짝! 팔짝! 화를 내는 녀석은 분명 미국 시카고에서 온 도깨비가 분명합니다. 키가 크고 코도 덩실했으나 실크 모자의 코가 유난히 높은 도깨비는 지팡이까지 손에 걸고 있는걸 보면 영국 런던 태생이고요. 터번을 머리에 감은 도깨비, 순록의 가죽으로 만든 고가 높은 털모자를 쓴 도깨비는 베뚜껑이 접시처럼 오목한 모자에다가 어깨에 단추를 단 녀석은 걸음걸이가 잠잖았습니다. 비록 외발이었지만 팔짝거리지는 않았습니다. 한 식경이 지나자 각국 도깨비 지도자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은 과학이라는 괴물을 퇴치하는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앞장서서 꿈을 잃고 방황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돕고자 합니다. 도깨비 여러분들의 고견을 기대합니다."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개탄하고 성토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절실하고 급박하다고 생각되어 의제로 채택된 한국의 상황은 대개 이렇게 해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먼저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과 어린이들을 단절시키자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생각이 어린이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도록 통신망을 끊어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싹을 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깨비들의 생사가 달린 모험이었으므로 먼저 한 어린이를 실험하기로 했습니다. 벌쭉이대장이 실험대상으로 지목되었습니다.
*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머리가 깨지는 듯 아팠습니다. 쇠망치로 머리를 강타당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뭔가 이물질이 머리속에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벌쭉이대장은 머리 속으로 파고 들어오려는 빛줄기 같은 것을 밀어내고 있었고, 빛줄기는 끈질기게 머리 속을 파고 들었습니다. 굉장한 싸움입니다. 생각을 가다듬어 집중시켜서는 그 힘으로 침입자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빛줄기는 여간 끈질기고 강한 것이 아니어서 힘이 점점 빠졌습니다.
‘너에겐 도움이 필요해.’
‘내 힘으로 살아 가겠어.’
‘철없는 소리. 은혜를 갚겠다는데.’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은 듯한 속삭임입니다.
‘비둘기를 살려준 적이 있었지?’
유혹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임자를 그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대장은 그 일이 있는 뒤로 변화를 실감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자신이 없는 일에도 부딪히기만 하면 솟는 용기. 만용같은 힘이 자기도 모르게 솟아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내가 어떻게 좀 된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던 일들의 의문이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입니다.
'할아버지. 북치는할아버지를 만나야겠어.'
이 녀석을 내몰든 살리든 복치는할아버지를 만나서 말씀을 듣고나서 결정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내일은 공원 옆 길게 널린 가로수길로 북치는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나니 머리속이 좀 개운해졌습니다.
'이 녀석이 물러갔나?'
‘아니, 난 네 곁에 기어이 남겠어.’
‘싫대두!’
‘싫어도 하는수 없지.’
‘쉽지 않을 텐데. 난 널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상관이 있지. 세상 모든 어린이를 위해 상관있는 일이야.’
‘세상 모든 어린이가 어쨌다는 거야?’
‘너두 잘 알잖아. 어린이들이 지금 꿈을 잃고 죽어가고 있어. 아마 이렇게 간다면 오래잖아 이 지구촌도 자멸하고 말 걸.’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릴하지?’
‘네 동무들을 봐. 모두들 어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영악해진 걸. 넌 어떻게 생각해?’
‘그 건 네 말이 옳다치고. 네가 어떻게 지구촌을 구제한다는 거야?’
‘쉽지. 우리에겐 식은죽 먹기야.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만 하면 세상은 다시 좋아질거야.’
‘꿈과 희망을, 내가?’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어. 너도 경험했잖아.’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찰나 머리 속이 화끈거리더니 녀석의 말소리가 금방 가슴에서 소곤거리는 듯 들려오더니 메아리처럼 사라져갔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