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평화 사회체제개혁 자서전/장편동화 <반디전설>

장편동화 <반디전설>

북새 2009. 10. 21. 09:45

장편동화    반딧불이 전설

 

 

 

 

 

* 창작동화 <반딧불이 전설> 줄거리

 

 

오늘날에는 전설이 사라졌다. 예전,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도깨비는 흔했고 시골에는 귀신도 있었다. 나도 여름 날 초저녁에 할머니와 함께 앞 산을 가로지르는 주황색 동그란 머리에 파란 꼬리가 달린 혼불을 보았고, 청년등에서 요사스럽게 타오르던 도깨비불도 목격했다. 샘골 치자나무거리는 해거름만 되면 채왈(차일의 사투리)귀신이 나온대서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청년등에는 서낭당이 있었으며 샛골에는 울긋불긋 치장한 상여집도 있었다. 도깨비 방아찧는소리는 신기할 것도 없는, 가끔 들리는 생활의 한 자락이었다. (초등학교시절 안개가 자욱한 날, 날마다 넘어다녔던 천방산 정상의 묏등(묘)에서 둥! 둥! 땅을 울리는 방아찧는 소리에 우리 동무들은 겁도없이 묏등을 찾았다. 묏등 근처에 다다르면 소리가 없어지고 물러서면 다시 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겪었다. 청년, 교사시절에는 숙직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놀다가 학교 2층에서 들리는 방아찧는 소리를 확인하러 전지를 가지고 동료들이 함께 불 꺼진 건물을 들락거린 일이 있다.) 등잔불 밑에서 어머니와 길례누나는 구멍 난 양말을 깁고, 할머니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서운 이야기 때문에 눈만 이불깃 위로 내민 나는 오줌이 마려워도 아랫도리를 붙잡고 참았다.

과학문명의 혜택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는 아주 여유가 있다. 내가 자가용을 손수 몰고 다니는 일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셨다면 얼마나 놀라실까? 목탄차가 붕붕거리며 박쟁이고개를 오르지 못해 사람들이 밀어올렸던 그 때 그 시절에 자가용이라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이 물질의 풍요가 삶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겨울에도 싼 값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마술처럼 이뤄지며 마치 동화의 나라처럼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데 행복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돌린다. 풍요한 물질문명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충족되지 않은 무엇을 잃고 있다. 전설도 그 하나다. 그래서 나는 전설을 잃어버린 이 시대 우리 아이들에게 전설을 들려주고 싶었다. 동화라는 동심의 이야기를 통해 꿈과 희망을 찾아주고 싶었다.

 

한푼이할아버지는 시청 담장 밑에 자리를 깔고 구걸로 먹고 사는 비렁뱅이다. 작은 도시의 시장님은 출근할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적선을 하는 걸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은 마지막 시정자문회의를 열어 황학산 온천수 개발에 대한 최종 마무리를 한다. 그러나 온천수 개발을 하려는 털보사장과 이를 막으려는 환경단체 사람들의 찬반론은 쉽게 결정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막상, 회의를 열고 보니 안건은 예상대로 백중세여서 시장님에게 결정권이 맡겨졌고, 개발이냐 보존이냐 라는 갈등상태에서 시장님도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머리를 식힐 겸 도시의 작은공원을 찾아간다. 가는 도중에 고아원에 들리는데 고아원의 아름이수녀님은 느닷없이 방문한 시장님을 기쁘게 맞았으나 시장님은 정신이 딴 데 있는 것처럼 건성으로 몇 마디 얘기를 하고는 곧장 작은공원을 찾는다. 이 도시에는 공원이 두 개다. 작은공원은 아주 오래된 낡은 공원인데 큰 새 공원이 생긴 뒤로 작은공원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공원에 들어서서 먼저 와 있던 한푼이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의견 차이로 다툰다. 늘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할아버지와 시장님은 의견이 맞지 않았다. 시장님은 폐허가 된 작은공원을 죽은 공원이라 하는데 대해 한푼이할아버지는 이제야 살맛나는 세상을 꾸려간다고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시장님의 눈이 트이지 않았다고 은근히 나무란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작은공원은 푸나무(풀과 나무의 준말)들과 곤충들의 천국이었다. 이러한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기억은 오랜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생이바위는 오랫동안 이 도시를 지켜온 전설이었다. 남생이바위에서 시작한 드들강이 도시를 북쪽에서 서쪽으로 감싸고 드들강은 서쪽 끝 절벽의 등룡폭포와 만나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등룡폭포 밑 용소에는 천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싱싱한 생명을 먹어야 용이 되어 승천하는데 승천 못한 이무기가 생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무기를 달래기 위해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착한 농부의 딸은 이무기에게 잡혀 먹힐 위기에 있었던 남생이 두 마리를 구해주었으나 그 일로 이무기의 미움을 산다. 그래서 이무기의 조화로 그 해의 처녀 제물이 되었고 은혜를 입은 남생이는 처녀의 목숨을 구하고 희생당한다. 처녀는 남생이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황학산 수원지에 남생이사당을 짓고 봄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냈고, 그 이후 이 도시는 홍수와 가뭄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온천수를 개발하게 되면 남생이바위가 폭파되는 수난을 겪으리라고 한푼이할아버지는 걱정한다. 시장님과 할아버지가 드들강의 맑은 물을 보며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들강에서는 겹눈이라는 피라미가 태어난다. 다른 피라미는 모두 홑눈인데 유독 겹눈을 가진 이 피라미는 가물치 씨라거나 왕잠자리 씨라는 누명을 쓰고 가족들에게서 쫓겨나 혼자 창포숲에서 살게 된다. 몸집이 유난히 크고 힘이 센 겹눈이는 어느 날 반딧불이알이 부화되는 걸 목격하게 되고 마지막 부화된 못생긴 털복숭이 아기반디를 만나게 된다.

검은 털복숭이 아기반디는 겹눈이를 피하듯 창포줄기를 타고 올라가 채송화 꽃밭으로 날아 들어간다. 노랑꽃 아가씨채송화 꽃잎 속에 자리를 잡은 반디는 노랑 커틴을 드리운 향기 좋은 방에서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곧 아가씨채송화는 꽃망울을 터뜨리게 되고 눈을 뜨자말자 아가씨채송화는 밝게 빛나는 해님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밤이 되어서 해님이 사라져버리자 아가씨채송화는 그만 크게 실망하며 눈물을 흘린다. 엄마채송화가 여러 가지 말로 달래고 위로했지만 아가씨채송화는 절망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반디는 아가씨채송화에게 들켜 쫓겨난다. 쫓겨난 아기반디는 풀숲을 여기 저기 헤매다가 폐허가 된 작은공원의 헐려진 동상 받침대 벌어진 틈 사이로 기어들어간다. 그리고 피곤해서 곧 잠이 들어버린다. 아기반디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이에 시정자문회의에서는 온천수를 개발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시장님은 돈이 많이 필요하다. 도시 살림을 잘 하기 위해서 돈이 드는데 돈이 없어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온천수 개발에 동의했다. 그러나 개발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제일 먼저 피해를 당한 것은 드들강 수원지에 살던 가재와 물고기들, 숲과 나무에 깃들었던 텃새들과 곤충들이었다. 불도우저와 포크레인이 밀어부치고 물어뜯고 깍아낸 자국은 살점이 뜯겨나간 것처럼 벌겋게 상처가 났다. 강물은 흙탕물이 되고 물고기들은 미쳐 피할 사이 없이 모두 죽었다. 이런 와중에 한푼이할아버지가 나타나 깡통에 죽어가는 벌레를 주워 모은다. 공사가 어지간히 진척된 때 남생이바위가 걸림돌이 되자 털보사장은 남생이바위를 폭파하기로 마음먹고 자문위원을 동원한다. 벌레를 줍던 할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그 날 밤 공사장 자제창고에 불이나 공사장 건물이 모두 불타버린다. 용의자로 할아버지가 체포되고 할아버지는 방화 사실을 시인한다. 시장님은 뜻밖에도 할아버지가 방화범이란 사실을 알고는 머리를 싸맨다.

 

그러나 더 무서운 일은 드들강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황학산 골짜기에서 흘러 들어온 황토물이 중보에까지 밀려들자 물고기들이 모두 아랫보의 부들숲으로 몰려들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물고기들이 무수히 죽었는데 아이들이 이 사실을 시장님께 일러바치고 시장님은 수문을 닫아 아랫보를 보호하게 하고는 바로 공사현장으로 가서 공사를 중단시키려 한다.

 

한편 부들숲의 피라미들은 흙탕물 속에서 살 길을 궁리하지만 대안이 없다. 결국 살 길은 겹눈이의 도움뿐이라는데 결론이 모아지고 협상대표로 겹눈이 아버지 해눈이를 보낸다.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겹눈이는 해눈이의 구조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을 하고, 피라미 원로들이 모두 함께 찾아가 잘못을 빌고 애원하지만 겹눈이는 회유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수단으로 겹눈이 어머니 달눈이가 나서게 되고, 달눈이를 맞은 겹눈이는 다시 한 번 매몰차게 거절하지만 끝내 모정을 뿌리치지 못하고 부들숲에 나타나 피라미들이 대피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킨다. 훈련내용은 용소의 이무기를 피할 수 있는 징검뛰기와 등룡폭포를 타고 오르는 비월훈련이다. 드디어 결행의 날, 겹눈이는 피라미 대집단을 이끌고 용소를 향해 출발한다. 용소 입구에 다다르면 이무기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각오로 대열을 이끌던 겹눈이는 아버지 해눈이의 희생을 목격한다. 해눈이가 이무기의 시선을 흐트러뜨리면서 피라미들은 무사히 용소를 뛰어넘어 등룡폭포를 뛰어오르게 된다.

 

피라미들이 죽을 각오로 등룡폭포를 넘고 있을 때 아기반디는 도시의 하늘을 날고 있다가 이를 목격한다. 하늘을 날던 반디는 달님을 만나게 되고 달님에게서 자기도 모를 이끌림과 꿈틀거리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반디에게 주어진 천성적인 사명감, 그러나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의문 때문에 반디는 고민을 하던 중 소리개의 비상을 본다. 소리개처럼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강한 욕구에 끌려 반디는 하늘을 날아 달님에게로 다가가려는 시도를 한다. 며칠째 하늘을 날던 반디는 드디어 달님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공사로 폭파 위기에 있었던 남생이바위를 살리려던 한푼이할아버지는 황학산 개발공사 자재창고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잡혀간 할아버지는 시장님의 보석금으로 풀려난다. 아름이수녀님이 시장님을 찾아와 살림이 어려워 문을 닫게 된 고아원이 할아버지의 저금통장으로 회생하게 되었음을 울면서 말하자 시장님은 자신이 앞장서서 할아버지를 구해낸다.

 

원래 시장님과 한푼이할아버지는 목마 친구였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할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 전쟁이 끝나고도 열대지방에 남았다. 할아버지가 다시 고향을 찾은 건 6 . 25전쟁이 끝난 한참 뒤여서 가족은 모두 흩어지고 마을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시장님은 이런 형편의 할아버지를 동기간처럼 도우려 했으나 할아버지는 거절하고 비렁뱅이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아름이수녀님의 고아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년 내내 모은 돈을 희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생이바위를 보호하려고 감옥살이를 각오하자 할아버지는 또 다른 한 개의 저금통장을 수녀님에게 전달하고 공사 자재창고에 불을 지른다. 수녀님이 받은 통장에는 할아버지가 일생동안 모은 목돈이 들어 있었다.

수녀님의 눈물어린 호소로 할아버지가 풀려나자 제일 반가와 한 건 아기반디였다. 그러나 비상연습을 해서 달님에게 다가가려는 반디의 행동이 무모하다고 할아버지는 꾸짖는다.

반디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도시는 황폐화의 길을 걷는다. 도시 사람들은 정감과 꿈을 잃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이 된다. 모든 일을 과학적이고 사실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도시 사람들은 서양 문물에 빠져들어 자신들의 영혼마저 잃게 된다. 도시인들이 갈등과 타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시장님은 구원의 방법을 찾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이렇게 황폐화 되어가는 도시와 도시인들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걱정도 태산 같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계속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반디의 비상연습은 계속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반디는 달님이 점점 야위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할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달님이 야위어가는 일은 자연법칙이고 다시 살아난다고 말했으나 반디에게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디는 달님이 죽는다며 크게 슬퍼한다. 할아버지는 삶의 윤회의 법칙을 들어 반디를 설득하려 하지만 반디는 이해하지 못하고 슬픔 때문에 더욱 달님에게 다가가려고 무리하게 비상을 한다.

결국 달님이 스러지고 반디는 비탄에 젖어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불씨 한 톨을 달님에게서 나눠받는 꿈을 꾸고 놀라서 잠을 깬다. 울며 잠든 반디를 위로하던 할아버지가 반디 꼬리에 노랑빛이 일어나는 걸 발견한다. 뜻밖의 기적 같은 현상에 놀란 할아버지가 반디에게 네 꼬리에 불이 붙었다고 외치자 절망에 빠져 있던 반디는 반신반의하며 제 꼬리를 본다. 정말! 반디의 꼬리에는 노랑빛이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신비한 기적의 빛을 얻은 반디는 달님이 없는 그믐밤 하늘을 날아오른다.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며 원무를 춘다. 그 날 밤 도시와 도시인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었던 시민들이 이 광경에 이끌려 작은공원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동상같은 한푼이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둥글게 돌아가는 불빛이 마치 부처님의 후광처럼 빛나는 반디의 원무를 본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남생이바위 전설에 따른 또 하나의 전설이 탄생한다.

 

 

(줄거리 끝)

 

 

                - 차례 -

 

 

 

 

 

1. 한푼이할아버지와 잊혀진 작은공원 ………… 1

 

2. 남생이바위 전설 ……………………………… 8

 

3. 노란 꽃등 속의 까만 털복숭이벌레 ………… 10

 

4. 해님을 사랑한 채송화 ………………………… 15

 

5. 그림 같은 작은 도시의 꿈 ………………… 22

 

6. 부들숲의 피라미들에게 닥친 고난 ………… 30

 

7. 울면서 돌아온 겹눈이 ………………………… 36

 

8. 반디의 달님 사랑 …………………………… 43

 

9. 법과 저금통장 ………………………………… 50

 

10. 마음을 잃어버린 도시 사람들 …………… 57

 

11. 동그랗게 빛나는 후광 ……………………… 61

 

 

1. 한푼이할아버지와 잊혀진 작은공원

 

 

“한 푼 줍쇼.”

“한푼이영감, 거 날씨 되게 맑지요?”

시장님은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습죠. 하늘이 쨍! 쇳소리가 날 것 같은데요.”

한푼이할아버지는 시장님이 던져주는 동전을 챙기며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고개도 들기 전에 시장님은 벌써 시청 현관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시장님의 동전은 도무지 들쭉날쭉 가늠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500원짜리 동전을 주는 날은 기분이 되게 좋은 날입니다.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현관을 들어서자 수위아저씨가 달려나와 맞았습니다.

“밤 새 별 일 없었겠지?”

“그러믄요. 헌데 한푼이영감이 또 귀찮게스리 ….”

“아냐, 아냐. 관둬요.”

시장님이 휘휘 손을 저어 말렸습니다. 그래도 못마땅했는지 수위아저씨는 시청 정문 옆 담장에 바짝 붙어 자리를 편 한푼이할아버지를 한참동안이나 아니꼬운 듯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한푼이할아버지가 부자라는 사실은 이 도시에 사는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몇 달 전에 할아버지가 자리를 깔고 구걸하는 장면 사진과 함께 할아버지의 기사가 이 지방 신문에 크게 났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에 어울리지 않게 저금통장을 두 개씩이나 가진 부자였습니다. 그래도 궂은 날 맑은 날 가리지 않고 언제나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거리에서 동냥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시장님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자를 모자걸이에 걸고는 곧장 창가로 가서 차일을 걷어 올렸습니다. 도시는 아침 햇살을 받아 활기찬 하루를 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출근길을 재촉하며 바쁘게 걷고 장사치들은 가게 앞에 물을 뿌렸습니다. 차들은 나란히 질서있게 달리고 있고 교차로에서는 자원봉사대어머니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랑모자를 쓴 어머니들이 차를 멈추게 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도시의 활기찬 하루가 어머니들의 자상한 도움으로 시작되는 일에 시장님은 만족하였습니다. 동쪽에서 북쪽까지 도시의 거리를 주욱 살펴본 사장님은 크게 기지개를 켜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시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요.”

시장님의 하루는 손님을 맞는 일로 시작되었습니다. 손님은 두 사람이었는데 시장님도 낯익은 지하수개발공사 털보사장과 공사감독이었습니다.

“온천수를 뚫기만 하면 ….”

털보사장이 서류에 그려진 도면을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하려고 하였습니다. 벌써 며칠째 같은 설명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님은 털보사장의 말을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오늘 공청회에서 잘 될 거예요.”

“그러믄요 시장님, 황학산 온천수가 콸콸! 쏟아지기만 하면 우리 도시는 부자가 되는 겁니다. 물이 아니라 돈이 쏟아지는 셈이죠. 시장님도 우리도 시민들도 모두 부자가 되는 거예요.” 부자가 된다면 시장님은 할 일이 많습니다. 도시 살림이 넉넉치못해서 미뤄두었던 사업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공원을 한 군데 더 늘리고.’

‘길도 넓히고.’

‘꽃도 많이 심어야지.’

‘아냐, 아냐. 가난한 이웃들을 먼저 돕고. 그 게 첫째야.’

털보사장 일행이 물러간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시장님의 생각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돈이 남는다면 음악회를 열 수 있는 공연장을 지어야지.’

시장님은 오스트렐리아 시드니 바닷가에 있는 조개 모양의 오페라하우스가 늘 부러웠습니다.

“시장님, 자문위원님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벌써 열 시가 넘었습니다. 오늘 시정자문위원회의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회의실 정면에는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황학산 온천수 개발과 도시 발전」

 

 

자문위원들이 배심원으로 앉아 있는 양쪽에 시민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져 토론을 벌이게 됩니다.

찬성하는 시민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산 호랑이 콧수염도 뽑아올 수 있다.’

‘시의 재정이 튼튼해지면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를 꾸밀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아무 일 도 못한다. 토론과 회의만으로 도시는 발전하지 못한다. 결국 모든 결론은 재정이다. 돈이 있 어야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시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온천수개발로 부자 가 되면 우리가 미뤄두었던 사업, 중단된 사업들도 모두 할 수 있다. 환경문제는 마치 찬 물 마시고 이 쑤시는 겪이다. 비단옷 입고 밤길 걷는 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는가?’

그러나 환경보전단체에서는 온천수개발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환경오염문제가 심각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자연환경 파괴는 생태계를 파괴하고 풀과 나무가 죽으면 새와 물고기가 죽게 되고 동물 식물이 죽으면 결국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좀 어렵게 살더라고 자연환경을 가꾸며 사는 일이 현명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몇 푼의 돈으로 우리의 미래를 살 수는 없다.’

이렇게 구호를 외치며 물러서질 않았습니다. 두 의견이 모두 그럴듯하여 팽팽하게 맞섰으므로 시장님도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쨌든 결론을 내려야합니다. 양쪽에서 또 같은 말이 반복되는 지루한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고함이 터지고 책상을 치기도 하였습니다만 시장님의 지루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주위가 조용했습니다. 회의실에 가득 찼던 사람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어! 이런 어떻게 된 셈야?’

시장님이 깜박깜박 잠이 든 사이에 회의가 모두 끝났나 봅니다.

 

 

‘이런 괘씸한, 고이헌!'

시장님은 제풀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말소리가 퉁명스러워졌습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지?”

“아니! 시장님, 거기서 쭉 듣고 보시지 않았습니까?”

직원이 능청을 떨었습니다.

“그래도 결정된 사항은 서류로 말하는 거야!”

‘고이헌 놈들’이라고 호통을 치려다가 부하 직원들에게 속 보일까하여 참노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시장님은 매우 못마땅하여 훌쩍 시청을 나와버렸습니다. 현관을 나서는데 한푼이할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따라나섰습니다.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는 할아버지와 골난 표정으로 부지런히 앞만 보고 걷는 시장님의 발걸음이 맞을 리 없었는데 두 사람은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좀 더 빠르게 걸어 보조를 맞추고 있거나 한 쪽이 느리광을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장님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따라 나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시장님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 시장님을 아는 척 하는 시민들이 인사를 하며 지나갑니다.

“날씨가 좋군요. 시장님.”

“글쎄요. 안녕하세요?”

시장님은 대꾸는 아무리 좋게 새겨듣는다고 해도 건성이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생면부지(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사람)의 시민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시장님에게 잡히는 날에는 아무리 바쁜 사람도 어쩔 수 없습니다. 첫인사부터 길게 늘어놓는 것은 물론이고, 요즘 물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둥, 상수도 하수도에는 이상이 없는가,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즉시 신고해주라는 말까지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댁의 강아지 종류가 무엇이며 예방주사는 정기적으로 맞히는가 하는데 이르면 시민들이 꽁무니를 빼게 됩니다. 젊은이들만 보면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이르고, 감기만 들었다고 해도 십전대보탕(한약의 처방으로 몸이 허약해졌을 때 먹음)을 먹어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시민들의 건강이 곧 도시의 건강이라고 생각하는 시장님은 이런 일까지도 시장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갓난애를 안은 부인을 만날라치면 시장님의 경험에 의한 장황한(길고 실속이 없는) 육아법 설명을 들어야 합니다. 유치원어린이들이나 초등학교어린이들은 시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상대입니다. 오늘 학교에서 배운 것은 무엇이냐? 교장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었느냐? 이렇게 나가다가 때로는 선생님이 때리거나 꾸짖지는 않았는가 하는 일로 발전하게도 됩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돌보았으므로 때로는 아이들이 시장실로 찾아와 학교 일을 일러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럴라치면 시장님은 불같이 화를 내며 정말로 아이들 앞에서 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교장선생님 바꿔 주십시오. 아, 예. 나 시장인데. 왜 우리 막둥이를 때렸습니까? 제가 곧 장 학교로 갈까요 아니면 막둥이에게 사과하시겠습니까? 아, 예. 사과하시겠다고요? 알았습 니다. 막둥이에게는 내가 대신 사과 말씀 전해주지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에험!”

시장님은 이 도시에서는 어른이었으므로 누구에게나 어떤 사람에게나 탕탕! 말을 놓았습니다. 호통을 치며 꾸짖어도 아무도 꼼짝 못했습니다. 그 건 아이들까지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시장님이 전화번호를 엉터리로 돌렸다는 사실만은 아이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장님은 영 딴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나치는 시민들이 가끔 뒤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시장님은 마치 골이 난 사람처럼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반대로 한푼이할아버지는 아래로만 눈을 깔았습니다. 이윽고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건물이 나타났습니다.

 

 

사랑의 집

이 고아원은 얼굴 없는 분의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아원 입구에서 시장님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같이 들어갈테야?’

하고 묻는 것입니다. 한푼이할아버지도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곧 고아원 옆으로 난 샛길로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며 들어서버렸습니다. 시장님은 할아버지가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는 사실을 처음 본 양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시장님은 애용하는 ㅜ자형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보고는 할아버지의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번갈아 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아원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자 시장님이 지팡이로 고아원 현관을 툭툭 두드렸습니다. 골난 표정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곧 나갑니다.”

안에서 맑은 목소리가 대꾸하며 곧 문이 열렸습니다. 아름이수녀님이 함빡 웃으며 시장님을 맞았습니다. 시장님은 수녀님의 목소리와 웃음이 까만 수녀복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불쑥 물었습니다.

“고아원 살림이 어렵지요?”

고아원 살림살이가 어려운 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방문한 시장님의 말씀하신 뜻을 수녀님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장님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말이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내가 좀 도와야 하는 건데. 시청 살림도 어려움이 많아서 ….”

수녀님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아픈 애들은 없나요?”

“모두 건강합니다.”

“종합병원 사람들이, 이 시장을 우습게 보는 모양이야. 요즘 바빠서 그러는데 틈을 내서 가기 만 해 봐라 혼쭐을 내겠어요. 고아원 아이들만은 무상치료를 받을 수 있게 신청해 놓은 지 가 언제냔 말야.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야. 호통이 떨어져야 정신들을 차릴 모양이야, 그렇지 요?”

시장님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으므로 수녀님은 그게 좀 우스웠으나 웃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시장님이 시계를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아주 중요한 바쁜 일을 잊어먹은 듯 황급히 자리를 떴습니다. 허둥지둥 하는 모습으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고아원을 나서서 길모퉁이까지

는 바쁘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보이지 않는 골목에 다다르자 그만 발걸음이 축 늘어졌

습니다. 느릿느릿 걷다가 네거리가 나오자 한참 망설였습니다만 결국은 드들강 강변도로를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곧 작은공원이 나타났습니다. 한푼이할아버지는 여전히 헐린 동상의 받침대 위에 턱을 괴고 있었습니다. 시장님은 받침대 밑에 앉았습니다.

작은공원은 이 도시 사람들의 하나뿐인 놀이터였습니다. 공원이래야 부잣집 마당만 해서 몇 그루의 나무와 손바닥만한 운동장 그리고 소꿉장난 터 같이 만들어진 화단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꽃밭 한켠에 이 도시가 낳은 위대한 단 한 사람뿐인 시인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고향의 사투리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시로 고장의 정감을 빚어낸 시인’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시인’

‘동심을 일깨우는 순박한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해내는 기쁨을 주는 시인’

 

 

동상의 시인은 이런 찬사를 받았습니다. 시인은 동심의 시를 남겨서 훌륭한 분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넓은 새 공원이 완성되자 시인의 동상도 옮겨가버렸습니다. 허물어진 동상의 받침대만 남아있었습니다. 시민들의 발길도 끊어지고 이제는 아무도 작은공원을 찾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가꾸지 않았기 때문에 잡초들만 무성하고 나무들도 제멋대로 자랐습니다. 제 세상을 만난 나무들은 서로 키대기를 하듯 하늘을 향해 쑥쑥 뻗고, 풀들은 제멋대로 자라며 서로 한 뼘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려고 무성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시민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이제 작은공원은 쓸모없는 폐허가 되었다고 혀를 찼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제멋대로 자란 듯싶지만 그 나뭇가지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공원을 잘 가꾸던 때는 생각할 수 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새들은 어쩌다 작은공원을 지나치는 일은 있었어도 높은 나무 위에 잠깐 머무를 뿐 가까이 오려 하지 않던 새들이 높고 낮은 가지를 구별하지 않고 둥지를 튼 것입니다. 박새 무리가 제일 먼저 작은공원을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개똥지바귀, 참새, 뻐꾸기, 꾀꼬리와 5색딱다구리 까지도 모여들었습니다. 딱다구리는 본래는 이 근방에서 살지 않은 새였습니다. 딱다구리의 고향은 깊은 산 속 울창한 삼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숲을 개간한다며 마구 나무를 베어내자 고향을 잃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작은공원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만삭(알을 낳을 때가 다 된 몸)이 된 몸으로 이 숲에 날아들었습니다.

“아니, 그 몸을 해 가지고!”

가장 기겁자망(겁내고 놀람)을 한 것은 늙은 할머니벚나무였습니다.

“고향 숲은 헐리고 갈 데도 마땅찮아서 ….”

“한심하군, 한심해!”

할머니벚나무는 혀를 끌끌 차며 곧 내일이라도 몸을 풀 것 같은 딱다구리 부부에게 죽은 가지 밑둥의 둥지를 선뜻 내주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람쥐부부가 살았어. 아들 딸 놓고(낳고) 알뜰하게 살더니만 티격태격 부부 싸움 사흘 만에 헤어졌지. 하도 속상해서 묵혀놓았던 방이야.”

급하게 둥지를 마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딱다구리를 맞이하기 전, 다람쥐부부가 갈라서는 걸 본 할머니벚나무는 늘 푸념을 했습니다.

“빨리 죽어야 할텐데.”

“너무 오래 살았어. 오래 살다 보니 못 볼 꼴들을 보게 된 거야.”

할머니벚나무가 슬퍼하는 또 하나는 작은공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애써 치장을 해도 보아줄 사람이 없어 안타까운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 늙어서 물을 퍼 올리는 일까지도 무척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봄이 되면 기어코 꽃등 몇 개는 달았습니다.

 

‘할머니벚나무는 새 색씨라네요.

꽃등 들고 기다리는 신부 같다야.'

 

환한 꽃등 불빛에 끌려 박새무리들이 날아와 조잘대기라도 하는 날에는 할머니벚나무가 염치없이 낯을 붉혔습니다. 딱다구리에게 둥지를 내준 다음 할머니벚나무는 시도때도없이 딱다구리둥지를 기웃거렸습니다.

“알자리는 이 쪽이 좋을텐데 …”

“장농은 볕이 들어야 하니까 저 쪽으로 놓고 ….”

“장독대는 반드시 남향으로 놓는 법이야.”

딱다구리 부부는 시시콜콜 간섭하는 할머니벚나무의 참견을 싫은 내색 안하고 다 들어주었습니다. 무사히 알자리를 틀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작은공원에는 새들은 말할 것도 없고 푸나무(풀과 나무)들도 제 세상이었습니다. 덩굴칡, 댕강넝쿨, 나팔꽃들이 덩굴손을 쭉쭉 뻗어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나무들도 극성스런 덩굴손에게는 못당하겠는지 그만 체념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덩굴손들은 나뭇가지 한 편을 완전히 제 집으로 삼아버렸습니다. 나무들이 가지를 내주자 담쟁이넝쿨은 슬슬 나무둥치로 손을 뻗어갔습니다. 그래도 나무들은 모른 체 먼 데 하늘만 보고 있었습니다.

덩굴식물을 타고 뿌리 쪽으로 내려가 보면 땅 위의 세상은 더욱 볼만합니다. 돌더미 밑에는 귀뚜라미가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깨가 쏟아집니다. 지하실에는 지렁이부부가 세들어 살고 있고 그 옆집에는 하늘강아지가 살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두더지는 지하도건설공사를 맡아 땅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개미들도 지하도시 건설에 한창입니다.

‘애벌레는 여기서 기르고.'

‘여기는 곡식창고로 써야지.'

한 발 땅 위로 올라가면 메뚜기, 베짱이, 방아개비, 사마귀, 풀무치들이 제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 말뚝 친 곳까지가 우리 땅이야!'

사마귀가 톱날 달린 앞다리로 위세를 부립니다.

그리고 땅 위 2, 3층 위에서는 거미들이 꽁무니실로 오각형 무늬집을 그려놓고 먹이노래를 부릅니다.

 

 

‘먹이야 오너라

훨훨 날아오너라

많이많이 오너라

먹이야 걸려라.'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이렇게 부산한 움직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은 작은공원을 죽은 공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물론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작은공원은 이제야 비로소 활기를 되찾고 있었으니까요. 단지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몇 년 새에 아주 버렸군, 쩝쩝!”

시장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푼이할아버지가 대꾸했습니다.

‘살맛나는 세상이라구?'

시장님은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시장님의 눈에도 작은 동물들의 세계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덩굴식물들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 흉칙하게 퍼져 있는 모습과 잡초가 우거져 밭 디딜 틈조차 없는 꽃밭이 보일 뿐입니다.

“눈이 뜨여야 보이지.”

‘뭐라고? 날더러 눈을 뜨라고?'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시장님은 눈을 깜박거려보았습니다.

‘영감탱이가 미쳤군.'

‘이젠 아주 돌았어.'

‘헛것이 보이는 건가?'

시장님은 또 눈을 비볐습니다. 몸은 비록 늙었어도 아직 눈 하나는 쓸만해 하는 시위 같았습니다.

“그런 눈으로는 아무리 비비고 껌벅거려봤자 헛수골 걸.”

할아버지가 받침대 위에서 내려와 시장님 곁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돌아도 단단히 돌았어.'

‘사람이 두 눈 말고 또 무슨 눈이 있다는 거야. 괴물이라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는 말은 들 었지만.'

시장님은 할아버지의 말에 짐짓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냥 대꾸를 하기가 민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시장님이 고개를 돌려버린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꼬리를 바꿨습니다.

“드들강 물이 예전 같지 않지요?”

“강이야 얼마나 변했겠나. 우리가 늙은거지.”

“우리가 어렸을 때 보다는 물이 많이 줄었어요. 폭도 좀 좁아진 것 같고 ….”

“글쎄, 그 건 우리가 커버린 때문이지 강이 작아진 건 아닐 거야, 아마 ….”

시장님과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쯤이었을까? 한푼이할아버지의 머리에 아주 먼 옛날 드들강에서 뛰고 물장구치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주마등(달리는 말을 타고 보는 듯한 모습)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2. 남생이바위 전설

 

 

 

‘그 땐 강물이 그리도 깊었지.'

지금에서니까 허벅다리에도 못 미칠 깊이지만 그때는 한 길도 넘는 시퍼런 강물이었습니다. 더구나 용소의 물깊이는 가늠할 수도 없어서 부근에 서 있기만 해도 오싹오싹 찬 기운이 돌고 소용돌이에 빨려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용소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1000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무기는 승천하여 용이 되려고 빨간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날마다 싱싱한 생명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용소 근처에는 생명가진 것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무기가 앙탈을 부려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가뭄과 홍수 그리고 폭풍우들의 조화는 이무기의 짓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무기의 행패를 막기 위해 처녀 제물을 바쳤습니다. 해마다 시월 상달 보름에 처녀 한 사람이 이무기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 그 해에는 여늬때보다 가뭄이 심했습니다. 착한 홀아비 농부가 귀여운 외동딸과 더불어 한 자락의 밭과 한 섬지기 논을 부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농부는 딸을 데리고 논에 나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애야, 웬 울음소리지?”

“호로새가 우나 봐요.”

‘호로롱 호로롱.'

생전 처음 들어본 울음소리였습니다. 호기심에 끌려 딸이 울음소리 나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울음소리는 용소 부근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용소 가까이 다가가자 울음소리가 뚝! 그쳐버렸습니다.

‘괴이한 일이고.'

딸이 그만 돌아서서 한 발자국 발을 내딛는데 또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호로롱 호로롱 호로로롱.'

아무리 둘러봐도 주위에는 새 같은 날짐승은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딸은 다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또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아무래도 울음소리가 물가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딸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용소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용소에도 새는 없었습니다. 남생이(모양이 거북이처럼 생긴 민물에 사는 갑각류. 거북이와 다른 점은 등에 육각무늬가 없음) 두 마리가 용소 안에서 뭍으로 기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생이가 울었나?'

딸은 남생이가 불쌍해서 이무기 두려운 줄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구해가지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 싱싱한 생명을 쫓다가 놓쳐버린 이무기가 용소 깊은 물속에서 노여움에 타는 눈빛으로 딸을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딸은 몰랐습니다.

남생이는 농부와 딸을 잘 따랐습니다. 먹이도 잘 먹고 함께 자고 같이 놀았습니다. 남생이가 제법 솥뚜껑 만하게 자란 가을이 깊어가는 때 마을에서는 이무기 제물에 대한 마을회의가 열렸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딸이 있는 집 어른들이 둘러앉아 제비를 뽑게 되었습니다. 이 때 원한에 찬 이무기가 조화를 부렸습니다. 그래서 착한 농부의 딸이 제물로 뽑히고 말았습니다. 제사 전 날 밤 농부의 꿈에 아리따운 동자 둘이 나타났습니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는 남생이화신(남생이가 변해서 된 모습)입니다. 살려주신 은혜에 보답하려 합니다.”

“너희들이 무엇을 어찌 한단 말이냐?”

“오늘이 시월 상달 열나흗 날. 우리를 용소에 놓아주십시오. 이무기를 처치해서 따님의 목숨을 구해드리겠습니다.”

“너희들 힘으로 이무기를 당할성 싶으냐?”

“해내든 못하든 따님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늦기 전에 어서 우리를 놓아주십시

오.”

착한 농부도 망설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남생이를 용소에 놓아주었습

니다. 그러나 남생이를 놓아준 지 하루가 지나도록 용소에서는 아무런 징조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불쌍한 남생이 두 마리만 죽였군.'

보름달이 오르자 예쁘게 단장을 시킨 농부의 딸을 용소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몸서리치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물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용소가 천지개벽(하늘과 땅이 뒤집어짐)을 하듯 소용돌이 쳤습니다. 주변이 물보라로 어둠에 싸이고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뇌성벽력(번개가 치고 우레 소리가 남)이 울렸습니다. 땅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물보라가 칠 때마다 사람들은 피비린내 나는 핏물을 뒤집어쓰고 모두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용소의 소용돌이는 한 식경(두 시간 정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울부짖던 용소의 소용돌이가 갑자기 멈췄습니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혼비백산(얼이 빠지고 혼이 나감)한 사람들은 제물로 바친 처녀의 주검이 파도에 밀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착한농부는 사색(죽은 얼굴빛)이 되어 통곡하며 딸의 시체를 안았습니다. 정신을 잃고 딸의 주검을 안고 있는 농부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딸의 몸에서 따스한 체온을 느낀 것입니다. 딸은 살아있었습니다. 가늘게 맥박이 뛰고 있었습니다. 딸은 살아났습니다. 그 날 새벽 비몽사몽(꿈인 것도 같고 꿈이 아닌 것도 같은 현상) 간에 농부는 또 동자들을 만났습니다.

“아저씨, 아가씨의 은혜를 갚으려고 목숨을 던져 싸웠으나 몹쓸 이무기를 이기지 못했습니 다.”

“딸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만도 어찌 다 헤아리랴.”

“이무기를 없애지 못했으니 행패가 더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죽어서라도 이무기의 못된 조화를 막으려 하니 황학산 수원지에 우리를 위해 사당을 지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동자들이 사라지고 농부는 비몽사몽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이 생시처럼 역력했습니다. 농부는 황학산 골짜기로 한 달음에 달렸습니다.

‘아니? 이 게!'

황학산 수원지에는 마치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인 남생이 두 마리가 바위가 되어 있었습니다. 농부와 딸은 남생이바위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남생이동자들이 부탁한대로 작은 사당을 짓고 봄, 가을 두 차례 제사를 모셨습니다. 제사를 모신 뒤로 마을은 가뭄 걱정은 물론이고 이무기의 조화로 인한 피해를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사도 끓기고 사당도 헐렸습니다. 그러나 남생이 전설만은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와 도시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온천을 개발하려면 남생이바위가 거덜이 나겠지요?”

한푼이할아버지가 운을 떼었습니다.

“그 게 그렇지 아마 ….”

시장님이 말꼬리를 흐렸습니다.

“사당터도 허물어야 할 거고 ….”

“그야 여부가 없는 게 아닌가.”

시장님은 또 골난 표정이 되었습니다.

“털보사장의 말로는 온천수만 개발한다면 가뭄이나 물 걱정은 오히려 나아질 거라고 하는 데 ….”

“생활 형편이 달라진다고 부자가 되는 건 아니겠지요?”

할아버지가 뜸을 들이다 기어코 한 마디 했습니다. 시장님은 할아버지의 한 마디에 충격을 받은 듯 그만 슬그머니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드들강 물은 예나 지금이나 맑고 깨끗했습니다. 강바닥이 환하게 들여다보였습니다.

‘마음을 팔아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말이 시장님의 머리속에서 맴을 돌았습니다.

바람이 스르르 물결 위로 미끌어지 듯 일어나자 물무늬가 반짝거립니다. 석양빛을 받은 강물이 마치 작은 물고기들이 은비늘을 반짝이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은빛 고기떼는 강가의 부들숲으로 밀려가서는 거품이 되었습니다.

 

3. 노란 꽃등 속의 까만 털복숭이벌레

 

 

보랏빛 꽃술을 피운 창포꽃 아래 물속에서 겹눈이가 거품방울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레미파 솔라시도.’

‘도시라 솔파미레도.’

겹눈이는 피라미입니다. 다른 피라미들이 모두 홑눈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유독 겹눈이만 겹눈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도미솔도 솔미도.’

‘도파라도 라파도.’

이웃들은 겹눈이가 태어나자 모두 보통 일이 아니라고 소곤거렸습니다.

“어머, 저 애 좀 봐!”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이게 흉조(나쁜 일)야 길조(좋은 일)야?”

“부들숲에 이변(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거야. 대대로 여기서 살아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 야.”

“세상에 이런 괴변(괴상한 사건)이 있담.”

“우리들 중에 누가 저런 눈망울을 본 적이 있어?”

겹눈이 아빠 해눈이까지도 겹눈이를 제 자식이 아니라고 눈을 돌려버렸습니다. 그러나 엄마 달눈이만은 끝까지 겹눈이를 감싸고돌았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변괴(나쁜 일)가 일어날 조짐이야!”

“여기서 몇 대를 살았지만 저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어. 흉조(좋지 않은 일)가 분명해!”

피라미들은 노골적으로 겹눈이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저 눈을 보면 ….”

아낙(여자)들이 모이면 겹눈이의 몸집으로 보나 눈망울로 보아 왕잠자리씨가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편에서는 중보 밑 바위굴에 산다는 가물치가 애비일른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난 저런 자식을 낳은 적이 없어!”

사방의 극성스러운 소문만도 아니었지만, 해눈이가 단호하게 선언했습니다.

“병신도 자식이고 못나도 내 자식이예요!”

달눈이가 비난을 무릅쓰고 감싸려고 했지만 마을회의에서도 겹눈이를 마을에서 쫓아내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왕잠자리씨를 받았데.’

‘가물치 새끼라던데.’

동무들마저도 놀렸습니다.

결국 겹눈이는 부들숲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겹눈이만 보면 입으로

쪼아대고 몸으로 밀어냈습니다. 지느러미로 때리는가 하면 떼로 몰려와서 못살게 괴롭혔습니다.

엄마 달눈이가 몸으로 감싸고 애원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엄마 달눈이는 어떻게든 겹눈이를 구해보려고 비늘이 벗겨지고 지느러미가 찢기는 고통을 참았습니다만 결국 겹눈이는 부들숲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엄마야, 엄마!”

“아가, 겹눈아!”

쫓겨나던 날 겹눈이는 엄마 곁을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습니다. 엄마 달눈이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대들었으나 피라미 떼가 우악스럽게도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놓아버렸습니다.

“엄마야, 엄마!”

쫓겨 밀려나면서 엄마를 애절하게 부르는 겹눈이의 울음소리가 달눈이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쫓겨난 겹눈이는 물굽이 아래 창포숲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엄마 품이 그리워서 울고, 외톨이 혼자 외로워서 울고, 밤이면 어둠이 무서워서도 울었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가자 혼자 사는 생활에 나날이 익숙해져 이제는 울지 않고 잠들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겹눈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물구슬을 만들어 물 밖으로 쏘는 놀이입니다. 동그란 입 안에 물을 가득 머금었다가 수면에 입을 쫑긋! 내밀고 꼬리지느러미로 물결을 치면서 퐁! 퐁! 물구슬을 하늘로 쏘아 올립니다. 물구슬은 비누방울처럼 5색 무지개로 떠서 수면 위로 흩어지고 물방울이 뿌려진 수면은 온통 색종이가루가 날리는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싫증이 나면 창포잎 물 속 그림자를 요리조리 혼자 피해 다니며 병정놀이도 합니다. 창포잎을 창칼처럼 세워놓고 옆지느러러미와 꼬리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면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창칼이 움직입니다. 그것을 겹눈이는 칼싸움이라고 합니다. 물총쏘기, 숨바꼭질로 하루 종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피곤하면 창포줄기에 매달려 낮잠을 자기도 하고 물밑 모래밭에 등을 대고 누워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잔잔한 날 맑은 물이 흐르는 드들강의 하늘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흐르는 물자락 밑에 누워서 하늘을 본 적이 있나요?’

물결은 파란 깁(베, 헝겊, 옷감)처럼 하늘거리고 투명한 물결 사이로 은구슬 금구슬이 흩어집니다. 그 사이에 옥색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물방울들은 햇빛을 받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빛으로 빛나고 하늘은 온통 꽃밭이 됩니다. 부드럽게 흐르는 물결이 겹눈이의 옆줄을 간지릅니다. 몸이 둥실! 뜨면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물결이 흔들리고 겹눈이는 요람에 누인 듯 아늑한 기분이 됩니다. 물밑에 누워서 보는 하늘은 이 세상 어떤 꽃밭 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빨주노초파남보.’

‘빨주노초파남보.’

 

겹눈이는 끊임없이 떠내려오는 물구슬을 세다가 잊고 또 세다가 잊고 다시 세기 시작합니다. 물구슬 무지개에 싫증이 나면 꼬리지느러미로 힘차게 물결을 가릅니다. 몸은 순식간에 수면 위로 튀어오르고 겹눈이는 새처럼 옆지느러미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러나 피라미들에게 이런 일은 금기(해서는 안 되는 일)로 되어 있습니다. 대개 피라미들은 하루 두 차례씩 하늘오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해 뜰 무렵과 해질녘입니다. 이 때의 피라미들의 하늘오름은 본능이기 때문에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오랜 습관이 희생을 불러왔습니다. 물총새, 박새, 개똥지빠귀, 제비들은 피라미들의 하늘오름 습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가, 해 뜰 때나 해질녁이 되면 물 위를 낮게 날고 있다가 피라미들이 튀어 오르자마자 덥석 물고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런 희생을 알면서도 피라미의 하늘오름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겹눈이는 다른 또래 피라미들 보다 몸이 두세 배 쯤 더 컸습니다. 다른 피라미들이 왕잠자리 씨라 그렇다거나 가물치 피가 섞여서 그렇다고 했지만 먹이가 좋은 창포숲에서 영양분 좋은 먹이를 마음껏 먹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다른 물고기들이 창포숲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겹눈이 혼자 창포숲을 독차지하고 마음껏 영양가 높은 먹이를 먹었으므로 겹눈이는 또래들보다 두세 배 더 큰 몸집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몸집이 컸으므로 힘도 남달랐습니다. 물속의 난폭자 참게, 메기, 가물치들도 감히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습니다.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큰 몸집에서 뿜어나오는 꼬리짓을 한 방 먹으면 그만 코를 싸쥐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겹눈이는 별로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만은 매우 위험했으므로 아주 조심스러웠습니다. 가끔 해오라기의 빨간 장화신은 발가락이 성큼성큼 물 밑을 휘저을 때면 두려움을 모르는 겹눈이었지만 소름이 끼쳤습니다.

‘푸르륵! 푸르륵!’

피라미들의 하늘오름을 기다리며 물 위를 낮게 날고 있는 새들의 날개짓 소리도 공포감을 주었습니다. 피라미들이 어른들에게 받은 교육의 대부분은 하늘오름 때 새들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겹눈이는 그 기능도 뛰어났습니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겹눈이의 징검뛰기는 적어도 이 드들강에서는 추종불허(도저히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뛰어남)였습니다. 물 밑에서 몸을 활처럼 잔뜩 웅크렸다가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며 물결을 박차고 뛰어오릅니다. 하늘오름의 높이가 다른 피라미들의 서너 배에 가까웠습니다. 튀어오른 힘과 속도를 유지하며 다시 물속으로 잠수하여 물속에서는 물결을 탑니다. 피라미들의 물결타기는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오르는 힘입니다. 물결의 힘을 물살을 가르듯 몸의 양쪽으로 갈라지게 해놓고 물살의 속도를 이용하여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결의 속도에 가속이 붙어 두 번째의 하늘오름은 더 높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 가속으로 세 번째 도약은 더 높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하늘오름을 연속적으로 하는 것을 징검뛰기라고 부릅니다. 겹눈이를 별종(별난 종류)이라고 비웃는 동무들도 이 징검뛰기 실력만은 찬탄과 부러움이었습니다.

‘굉장한 하늘오름이야.’

‘징검뛰기만은 당할 자가 없어.’

그래도 시기하는 축들은

‘징검뛰기를 좀 잘 하기로서니 무얼 해. 별종인 걸.’

이렇게 비꼬았습니다.

한바탕 징검뛰기를 하고난 뒤였으므로 몹시 시장해서 창포숲을 뒤지다가 겹눈이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꽃등이야!’

창포 물속줄기와 마디에 노랑꽃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꽃등은 빛났습니다. 파란 물빛과 초록 창포줄기에 노란 색깔이 어울려서 노랑빛이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겹눈이는 노랑꽃등이 두려운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는 새로운 흥미를 느꼈습니다. 창포마디에 붙어있는 꽃등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꽃등은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부풀었습니다. 작은 쌀알만 하던 꽃등이 콩알만하게 자라더니 사흘이 지나자 유리구슬만큼 커졌습니다. 꽃등이 점점 커지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속에 무엇

이 들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더 컸습니다.

‘먹는 걸까?’

맛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꽃등 주위에 가까이 갈 때면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먹어 볼까?’

처음 보는 것은 함부로 가까이 하지 않고 먹지도 않는다는 것은 피라미들의 불문율(문서로 되어 있지는 않으나 지켜야할 일)이었습니다. 고소한 향기에 끌려 몇 번이나 가까이 다가갔으나 겹눈이는 먹고싶은 생각을 잘 견뎌냈습니다. 마치 잘 익은 과일나무를 지키는 원정(정원지기)처럼 꽃등 주위를 빙빙 돌면서 꽃등을 지켰습니다. 며칠째 물총놀이, 물구슬놀이, 그 좋아하는 징검뛰기까지도 잊어버리고 오직 꽃등 주위를 돌면서 꽃등을 지켜보았습니다. 1주일 쯤 되었을까, 보고있는 사이에 꽃등이 새끼조개처럼 입을 벌렸습니다. 부풀어 갈라진 입 속에서 까만 털복숭이벌레가 엉금엉금 기어나왔습니다. 겹눈이는 놀란 눈으로 꽃등을 보며, 차마 그 아름답던 꽃등속에 저런 까만 곤충이 살고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나 둘씩 터지던 꽃등이 순식간에 까만 털복숭이들을 쏟아냈습니다. 털복숭이들은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곧바로 창포꽃대를 타고 물 위로 기어올라가버렸습니다.

‘희한한 일도 다 있지.’

하릴없이, 물살에 흐르는 빈 꽃등을 보다가 겹눈이는 예전의 버릇대로 창포숲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도 놀라서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나봅니다. 창포숲을 뒤지던 겹눈이가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몇 발 물러섰습니다. 놀랍게도 아직 터지지 않은 꽃등 한 개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꽃등은 곧 부풀어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겹눈이는 마지막 꽃등을 지켜보려고 아예 창포줄기에 눌러앉았습니다. 잠시 뒤 하늘 맑은 정오께 드디어 꽃등이 열렸습니다. 역시 한 마리의 털복숭이가 엉금엉금 기어나왔습니다. 털복숭이는 겹눈이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곧장 창포꽃대를 타고 올라가려고 하였습니다.

“잠깐!”

겹눈이가 꼬리지느러미로 물살을 팍! 치면서 털복숭이를 불렀습니다.

“꽃등 속에서 나온 너희들은 누구니?”

“그런 걸 묻는 너는 누군데?”

털복숭이는 약간 떨고 있었습니다. 꼬리지느러미짓이 털복숭이를 불안하게 한 것 같았습니다. 겹눈이는 털복숭이를 안심시키려고 옆지느러미를 나풀거리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난 창포숲의 왕자 겹눈이야.”

“왕자?”

왕자라고 뽐낸 자신이 겸연쩍어서 겹눈이는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하였습니다.

“난 이 창포숲에서 혼자 살아. 너희들을 1주일 동안이나 지켜보았지.”

부드러운 분위기에 털복숭이는 다소 안심한 것 같았습니다.

“그럼 네가 우리 엄마니?”

대뜸 이렇게 나왔습니다.

“엄마? 얘는 ….”

겹눈이는 지지리도 못난 털복숭이가 서슴없이 엄마라고 부르자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웃음소리에 무안했던지 털복숭이는 엉금엉금 창포꽃대를 타고 물 위로 올라가버렸습니다. 겹눈이는 털복숭이가 물 위로 사라져버리고 노랑꽃등 껍질마저 물살에 떠내려갈 때까지 배꼽을 쥐고 웃었습니다.

“하! 하! 하! 하! 엄마라고! 날 더러 엄마라고?”

노랑꽃등 속에서 태어난 털복숭이는 아기반디였습니다. 창포꽃대를 타고 올라가 노랑색 창포꽃잎까지 기어간 아기반디는 한참 햇볕에 몸을 말렸습니다. 날개에 물기가 가시자 푸르릉! 푸르릉! 날개짓을 몇 번 시작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시도한 몇 번의 날개짓으로 힘을 얻은 아기반디가 창포꽃잎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간신히 곤두박질을 모면하고 아기반디는 길섶의 자운영꽃대에 내려앉았습니다.

‘부르르 부르르!’

이번에는 더욱 힘찬 날개짓을 반복했습니다. 날개짓에 자신이 생기자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날아올라 작은공원에까지 단숨에 날아갔습니다.

“아유, 숨 차!”

아기반디는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채송화 꽃밭에 내려앉았습니다. 붉고 노란 채송화꽃잎이 별처럼 널려있는 꽃밭이 가장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4. 해님을 사랑한 채송화

 

 

작은공원에 채송화꽃밭이 생긴 까닭은 이렇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서릿발도 숨을 죽일 때 쯤 작은공원에 새들이 찾아왔습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새들은 그 초승달 같은 부리로 햇살을 쪼아 햇씨를 심었습니다.

‘여기는 빨강꽃.’

‘나는 노랑꽃.’

다투어 심은 햇씨가 싹이 터 별 모양이 꽃이 피었습니다. 노랑, 빨강 또 빨강 그리고 연분홍.작은공원의 하늘은 낮기만 합니다. 마치 해바라기 꽃대만큼만 자라고는 멈춰버린 듯 하늘이 어깨 너머로 팔랑거렸습니다. 하늘은 파란 보자기를 펄쳐놓은 듯 키 닿을만한 높이에서 팔랑거렸습니다. 이 낮은 하늘에도 별들은 살고 있었습니다. 작은공원의 꽃밭에 초승달부리를 가진 새들이 별 모양의 발자국을 남긴 뒤부터 별들은 낮 동안에는 이 꽃밭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낮이면 별을 보지 못하는 우리도 별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언제였는지 확실한 날짜를 기억할 수 는 없었지만 자운영꽃대에서 날아온 털복숭이가 이 꽃밭에서 가장 노란 채송화아가씨 꽃방으로 기어들어 온 것이 벌써 며칠 전의 일입니다. 난데없이 털복숭이 아기반디가 기어들어온 며칠 뒤부터 노랑꽃 아가씨채송화는 가려움을 느꼈습니다.

“엄마,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아요.”

‘이제 사랑에 눈이 뜨이나보군.’

“아이 답답해!”

아가씨채송화가 풍선처럼 부푼 가슴을 안고 안절부절 합니다. 빨강꽃 엄마채송화는 빙그레 웃으며

“이제 곧 눈이 뜨이면 딴 세상을 보게 될 거야.”

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딴 세상이 뭔데? 어떻게 생겼지?”

“말로 설명하기 어렵구나.”

엄마채송화는 태양과 구름과 산과 나무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것들과 온갖 살아있는 것들을 모두 가르쳐주고 싶었으나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처했습니다. 너무 많아서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 가려워!”

‘곧 눈이 뜨이겠군.’

엄마채송화는 노랗게 부푼 가슴을 안고 보채는 아가씨채송화를 빙그레 웃으며 보고만 있었습니다.

마침 봇재등 너머로 아침 북새가 퍼져나왔습니다. 곧 북새와 혼돈(세상이 질서를 찾기 전 어둠이 뒤엉켜진 하늘의 소용돌이)이 엉켜 소용돌이가 일어났습니다. 천지개벽을 하듯 하늘이 곧추서고 우렁찬 합창소리가 들려오는 듯 장엄한 광경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새와 혼돈이 지배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반짝! 흰 빛이 나타나는가 하는 사이에 밝음이 어둠을 밀어내버렸습니다. 금방 혼돈은 사라지고 태초의 천지창조(처음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처럼 밝음이 눈부신 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찬란한 빛줄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아이, 눈 부셔!’

드디어 아가씨채송화의 꽃망울도 하늘빛처럼 열렸습니다. 꽃봉오리가 열렸습니다. 아가씨채송화가 눈을 뜬 것입니다. 아가씨채송화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바로 보지 못하고 눈만 비비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쏘인 강한 빛살에 눈을 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아가씨채송화는 꽃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야, 아름다운 세상!’

아가씨채송화가 손뼉을 짝짝! 쳤습니다. 그리고 곧장 엄마채송화에게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저 건 뭐야?”

“해님이란다.”

“파란 보자기를 씌운 듯 동글게 보이는 저 높은 지붕은?”

“그 건 하늘.”

“저기 멀리 숟가락처럼 생긴 곧게 서 있는 초록 옷 입은 것들은 뭔데?”

“나무들이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나풀거리는 건?”

“나비떼.”

“하늘에 둥둥 떠가는 하얀 솜뭉치는? 그리고 저 건 또, 이 건?”

“구름과 ….”

이렇게 시작된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질문이 많을 때는 한꺼번에 여나무 개까지 연속으로 쏟아졌으므로 엄마채송화가 당황하여 넋을 잃어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개울에서 반짝이는 은빛 투명한 것은 무엇이며, 멀리서 멍멍! 꼬꼬댁거리는 것들은 무엇이고, 꽃창까지 진동이 느껴지는 댕그랑거리는 종소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든 것들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알고싶어 하였습니다.

아가씨채송화의 의문은 한도 끝도 없었습니다. 처음 본 세상의 모르는 것들이 아가씨채송화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가씨채송화는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살펴보느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따위는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분망(바빠서 숨돌릴 시간도 없음)한 상황에서도 아가씨채송화는 끈질기게 자신을 주시하는 눈길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정면으로 쳐다보지는 못했으나 그 눈길은 처음부터 자신의 얼굴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눈길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그 힘은 힘차고 강렬했으며 환하고 밝았습니다. 대담하고 정열적이었습니다. 아무리 감추려고해도 이글거리는 눈빛에 가슴이 콩콩! 뛰는 것만은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해님이었습니다.

“야아, 빛나는 해님!”

아가씨채송화는 단번에 해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담박에 해님의 포로가 된 셈입니다. 해님의 모습에 반해서 부끄러움도 잊고 온통 마음을 해님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해님께로 향하자 몸도 해님을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가씨채송화는 해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철이 없는 건가 속이 빈 건가?’

엄마채송화가 아가씨채송화의 지나친 행동을 나무랐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해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있어.”

“아니예요. 엄마, 보세요. 해님이 저만 보고 있잖아요?”

“해님은 천지만물 모두에게 고루고루 빛을 내리고 있어, 이것아!”

아가씨채송화는 이제 엄마 말조차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주 보는 해님의 눈빛이 자기에게만 쏠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가씨채송화는 제 혼자 생각 밖에 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해님도 날 사랑하고 있어.’

‘하루 종일 나만 보고 있잖아. 그 게 증거야.’

엄마채송화의 충고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해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해님도 자기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라면 스스로 알게 되겠지.’

‘아직은 철이 없어서 그런 게야.’

‘눈이 덜 틔었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소리지.’

엄마채송화는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게 되면 스스로 알게 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밤이 되자 아가씨채송화는 보기 딱할 정도로 실망에 빠졌습니다. 자기만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던 해님이 아가씨채송화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해님은 날 진정 사랑한 게 아니었어.”

“아니다. 널 좋아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이 에미가 보증하마.”

“거짓말. 안녕! 한 마디 말도 없이 가버린 걸 보면 해님의 사랑은 거짓이었어. 순 변덕쟁이.”

엄마채송화가 설명으로 설득시키기에는 아가씨채송화의 실망이 너무 크고 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세상이치라는 거야. 자연법칙.”

“세상이치가 뭔데?”

엄마채송화는 또 이쯤에서 말문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할지 퍽 난처한 지경이었습니다.

“아까 낮에 본 것들은, 내가 눈으로 본 것들은 말야. 세상에서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란다. 세 상에는 네가 본 것들 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거든. 더구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고 ….”

아가씨채송화는 엄마의 말이 도대체 종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까 낮에 보았던 그 많은 것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의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는 말은 얼른 믿기에는 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뭐든지 복잡하게만 만드는 취미를 가졌어.’

엄마채송화는 아가씨채송화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감을 알아챘습니다.

“한 잠 자고 나봐. 마음이 좀 가라않을 거야.”

“엄마 같으면 잠이 오겠어요?”

대꾸가 퉁명스러워졌습니다.

 

 

 

 

“그럼 밤을 밝힐 셈이냐?”

열병을 앓아도 단단히 앓고 있었습니다. 아가씨채송화가 생각하는 건 오직 해님의 사랑뿐이었습니다. 풀이 죽어 어깨가 축 쳐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기력조차 모두 잃은 것 같았습니다. 아가씨채송화는 꽃창을 탕! 소리가 나게 닫아걸더니 곧 숨을 죽인 울음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엄마채송화는 참으로 난감한 기분이었습니다.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지식이 풍부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언변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뿐이었습니다. 아가씨채송화의 흐느낌이 점점 드세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엄마채송화의 가슴도 서서히 젖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같이 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엄마채송화는 새록새록 돋아오르는 슬픔을 누르 듯 조용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먼 옛날처럼 생각이 되는 어린시절 눈도 뜨기 전에 엄마가 들려주시던 노랫가락이었습니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멍멍 개야 짖지 말고

꼬꼬 닭도 울지 마라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자장자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가락이었습니다. 맑은 느낌의 노래였습니다. 목소리가 고와서 노래는 마치 이슬방울처럼 굴렀습니다. 사방이 조용해졌습니다. 주위의 다른 채송화들도 노랫가락에 취해 소곤거리는 소리까지도 멈췄습니다. 채송화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풀도 나뭇가지에 깃을 접은 새들도 모두 엄마채송화의 노래소리를 들었습니다. 숨소리조차 죽인 작은공원 모두가 노랫가락의 여운 속에서 스르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훌쩍거리며 흐느끼던 아가씨채송화도 눈물 닦을 생각도 못하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반짝이는 눈물방울이 꽃창에서 대롱거리고 있었습니다.

박새들은 수수한 모양새와는 달리 멋 부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깃털 하나하나를 세워서 반질반질하게 닦는가 하면 꼬리깃을 몇 번씩 폈다 접었다 퍽 요란스럽습니다. 발가락까지 털고 닦는 걸 보고 참새들이 이렇게 놀려댑니다.

“나무양판이 쇠양판 될까?”

그래도, 이 비아냥거림도 박새들에게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잘 잤니?”

“좋은 꿈꾸었어?”

“안녕! 안녕!”

새벽같이 일어나서 꼼꼼하게 분장을 끝내고 이리저리 설치는 바람에 작은공원이 부시시 눈을 뜹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기 때문에 선잠에서 일어난 축들은 하품을 하다말고 다시 꾸벅꾸벅 졸기도 합니다. 이 소란 가운데서 가장 신경이 둔한 건 채송화였습니다. 채송화의 늦잠은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채송화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님이 꽃창을 두드릴 때까지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아가씨채송화가 하도 설쳐대는 박새들의 수다에 얼풋 잠을 깼습니다. 그러나 일어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젯밤에 울면서 잠이 들었기 때문에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렴.”

엄마채송화가 재촉했습니다.

“싫어! 난 이제 창 같은 건 열지 않아!”

완강한 몸짓 때문에 눈물방울 한 개가 또르르르! 볼을 타고 굴러 내렸습니다.

“해님이 널 찾는 걸.”

“정말?”

그 말 한 마디에 아가씨채송화가 벌떡 일어나 꽃창을 확 열어재쳤습니다. 그 바람에 대롱대롱 맺혔던 눈물방울들이 또르르! 또르르! 한꺼번에 굴렀습니다.

“아아, 햇님!”

너무 감격해서 목소리마져 떨렸습니다. 해님은 언제 내가 널 울렸더냐고 시치미를 뚝 떼고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저렇게도 좋담.’

엄마채송화는 아가씨채송화가 아무래도 너무 지나치게 해님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누구든지 철없는 시절에는 그런 경험 한두 번 겪는 열병 같은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거렸습니다. 마음이 놓이는 건 아니었으나 크게 걱정할 일도 못된다고 스스로 가슴을 다독거렸습니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도 좀 너무 심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만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채송화는 오직 해님만 바라보며 가슴을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엄마채송화는 걱정스러운 생각에 잠겨있다가 얼풋 졸았나봅니다. 날카로운 외침에 그만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넌, 뭐야?”

“이런, 거지 같이!”

“엄마, 이 걸 좀 봐!”

아가씨채송화가 팔짝팔짝 뛰면서 날카롭게 소리쳤습니다.

“뭔데 그 호들갑을 떠니?”

“엄마! 난 몰라.”

“뭐야, 어째서 그래?”

“이 걸 좀 보라니까. 야, 거지같은 … 어서 썩 꺼지지 못해!”

‘아니? 저런!’

아가씨채송화의 꽃창 문턱에서 보기에도 징그러운 까만 털복숭이벌레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기어나왔습니다. 까만 털복숭이 아기반디는 미쳐 잠이 덜 깬 듯 두 눈을 비비며 뜨광한(못마땅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자운영 꽃밭에서 곧장 노랑꽃 아가씨채송화로 날아든 털복숭이 아기반디는 도무지 제가 저지른 잘못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날아본 날개짓 때문에 고되기도 했고 처음 본 세상 모습에도 익숙하지 않아서 스스로도 당황하고 있던 참입니다. 다행히 아름다운 꽃밭에 자리를 잡아 기분 전환이 좀 되는가 하였더니 이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구나 한 밤 푹 잠들었던 채송화 향기는 노란 꽃등 속에 안겨있었던 애

고 있던 참입니다. 다행히 아름다운 꽃밭에 자리를 잡아 기분 전환이 좀 되는가 하였더니 이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더구나 한 밤 푹 잠들었던 채송화 향기는 노란 꽃등 속에 안겨있었던 애벌레시절의 기억 그대로여서 얼마나 포근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치 아기반디가 무슨 큰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이 야단입니다.

“세상에 무슨 변괴람!”

“깜찍한 것 같으니라구. 이제 막 눈을 뜬 주제에! 쯧쯧.”

채송화 동네가 수런거렸습니다. 더러는 아가씨채송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꼼짝없이 도둑 취급을 받게 되었군.’

아기반디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푸르릉! 날개를 털었습니다. 날개짓에서 노란 꽃가루가 눈송이처럼 날렸습니다. 그 서슬에 온몸에 향기가 퍼졌습니다. 기분만은 마치 노란 꽃등 속에 안겨있는 때와 꼭 같았습니다.

“그만들 해 둬!”

울고불고 소곤소곤 수근수근. 채송화 꽃밭이 어수선해지자 보라꽃 할머니채송화가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너도 이제 그만 좀 짜고!”

“거기들도 좀 조용히 못해!”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것은 못된 취미야. 동정은 못할망정 얼씨구나 잘 됐다구나 흉들을 봐?”

할머니채송화의 호통 한 마디에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가씨채송화는 아직도 징징 울고 있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만, 뚝! 그 징징 짜는 버릇 그치지 못하겠니?”

할머니채송화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세상에 어쩌면 ….”

엄마채송화의 혼잣말 같은 푸념이 시작되었습니다.

아가씨채송화는 해님 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해님에게 무어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난처한 것입니다. 오직 해님을 향한 사랑 하나로 해님만 바라보며 해님 또한 자기 밖에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해님 볼 면목이 없어.’

‘아냐, 이제 해님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야.’

“아가, 해님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속이 좁지 않아. 우리 모두를 골고루 사랑한다고 하지

않든?”

“싫어요. 해님이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건 거짓말이예요. 사랑은 오직 하나뿐인 거예요. 해님 은 분명히 날 좋아했어요.”

“아직도 못 믿겠거든 눈물을 거두고 해님을 봐!”

“싫어요, 싫어! 난 몰라.”

아기반디가 푸르릉거리며 날아가버린 뒤로도 한나절 동안 아가씨채송화는 앙탈을 부렸습니다. 해님을 쳐다보기만 했어도 금방 알련만 도무지 얼굴조차 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엄마채송화는 끝까지 달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음을 돌리려고 이야기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우리 채송화는 별들의 화신(형체, 몸이 변함)이란다. 넌 잘 모르겠지만 해님이 잠자는 시간에는 하늘에서 별들이 깨어난단다. 너도 한 번 유심히 하늘을 보아라. 하늘에는 우리 채송화꽃들만큼 많은 별들이 살고 있다. 노랑, 빨강, 파랑 크고 작은 많은 별들이 해님이 없는 밤하늘을 지키고 있단다. 별들에게도 각각 이름이 있지. 견우성, 직녀성, 남십자성들. 별들에게도 꿈이 있단다. 별들이 깜박거리는 것은 꿈을 꾸는 거지. 견우와 직녀가 7월 칠석 때 오작교에서 만나는 사랑은 별들의 대표적인 꿈이지. 그래서 땅에 사는 사람들도 가슴에 별을 하나씩 심어놓고 별들처럼 꿈을 갖고 싶어하지.’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사람들은 별들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지. 밤하늘의 별들은 이 세상 낮은 곳에 사는 것들의 희망이요 소망이란다. 그 별들이 낮에는 보이지 않지 않니? 사람들은 해님의 빛에 가려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낮하늘의 별들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낮 동안 별들이 모두 우리 채송화꽃밭에 내려와 채송화의 넋이 되기 때문이야.’

엄마채송화의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간 아가씨채송화는 자신이 별의 화신이라는 대목에서 스스로 감탄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꿈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누구에게서 받은 사랑이 아니라 네가 누 구에겐가 주는 사랑이란다.”

아가씨채송화의 귀가 조금씩 열렸습니다. 해님 사랑으로만 가득 찼었던 가슴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털복숭이 아기반디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있겠지.”

그래도 그래도, 아가씨채송화는 세상의 못나고 추하고 시시한 것들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만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 번 눈이 뜨이면.’

‘차차 알게 되겠지.’

엄마채송화는 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무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아기반디 생각을 하면 한편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기반디는 날아오르면서 이렇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시는 염치없는 짓은 결코 하지 않겠어.’

아기반디는 조롱과 멸시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수모가 너무 깊이 가슴에 맺혔습니다.

‘좀 쉬었다 가겠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나뭇잎에 앉으려고 하면 나뭇잎이 몸을 팔랑거리며 싫은 내색을 했습니다.

‘좀 쉬었다 갈게요.’

풀잎들도 몸을 좌우로 흔들어 거절을 했습니다. 쉴 곳이 마땅찮았습니다. 세상인심이 이리 야박할 줄 예전엔 몰랐습니다.

‘내 모습이 그토록 징그러울까?’

‘한결같이 날 싫어하는 걸 보면.’

아기반디는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까만 털복숭이벌레.’

지지리도 못생겼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찢기는 듯한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났습니다. 차라리 노란 꽃등 속에 그대로나 있었다면 이런 수모는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간담.’

쉴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마땅한 곳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좀 쉬었다 갈께요?’

동상 받침대는 묵묵부답(아무 대꾸가 없음)이었습니다.

‘잠깐만, 숨만 좀 돌렸다 갈게요.’

염치없는 짓인 줄 알고 있지만 인사 차리고 예절 차리고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날기에 지쳐서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휴, 다행이다.’

아무 말이 없는 것을 허락으로 새겨들은 아기반디는 한 잠 자고 갈만한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저 몸 뉠 공간만 있다면 어디라도 좋았습니다. 동상 받침대의 윗 판과 아랫 판 사이에 가는 틈이 보였습니다. 아기반디는 얼른 그 공간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좀 어둡고 침침해서 그다지 기분은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만은 편했습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났습니다. 향기롭고 화려한 노랑꽃 아가씨채송화의 꽃방에 비기면 아주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이 방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반디는 자신이 처지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어둡고 눅눅한 방에 웅크리고 앉아 줄줄! 눈물을 흘리던 아기반디는 새록새록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기반디는 노란 커텐이 드리워진 노랑꽃 아가씨채송화 꽃방의 꿈을 꾸는 듯 행복한 웃음조차 띠고 있었습니다. 향긋한 향기가 나풀나풀 코끝을스쳤습니다.

 

5. 그림 같은 작은 도시의 꿈

 

 

아기반디가 꿈을 꾸는 동안 도시의 자문회의에서는 도시의 발전과 복지를 위해서 황학산 온천수를 개발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돈이 많아져서 좋기는 하였지만 시장님의 또 다른 고민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온천수가 개발되면 돈을 많이 희사하겠습니다.’

‘음악당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돈이 있으면 얼마나 많을 일을 할 수 있을지 시장님은 머리로 셈을 하여 보았습니다. 음악당도 짓고 거리에 꽃도 많이 심을 수가 있습니다. 꼭 지하수 개발의 털보사장 제안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에게 혜택이 된다면 할 수 밖에 없다고 시장님은 결론을 지었습니다.

‘양 손의 떡을 한꺼번에 다 먹을 수는 없지.’

 

 

 

털보사장이 제시한‘황학산 온천 관광휴양단지 개발계획’은 시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더라도 욕심낼만한 계획이었습니다. 호텔, 놀이시설, 공연장, 오락장뿐만 아니라 더 욕심나는 일은 야외 목욕탕입니다. 별꽃 모양인 5각형으로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목욕탕이 붉고 흰 대리석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고아원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온천사업이 잘 되면 정기적으로 성금을 내지요.’

‘시장님 하실 일이 좀 많습니까?’

‘그렇다. 우선 잘 살고 봐야 한다.’

‘환경파괴니 환경오염 따위는 사치스러운 것들이다.’

‘돈만 있으면 파괴된 곳은 고치고 오염된 곳은 깨끗이 할 수도 있잖은가?’

‘자고로 돈에 침 뱉는 사람 없지.’

시장님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오직 도시를 그림처럼 멋지게 가꾸고 싶은 욕심입니다.

본래 시장님을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밥 생기면 밥 먹고 죽 얻으면 죽 먹는다.’

시장님은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만사를 이렇게 생각했으므로 시장님은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인다고들 말했습니다. 나이에 비해 훨씬 젊게 보인다는 말이 시장님은 듣기 좋았습니다.

‘시장님은 마치 어린애 같아.’

‘어린애라 ….’

어린애처럼 순진하다는 말입니다. 언제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젊게 보이나?’

‘마음을 비웠는 게지.’

시민들은 시장님은 두고 나름대로 평판을 주고받았습니다. 시장님이 시민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시민들도 시장님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시장님을 두고 소곤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조용하던 황학산 골짜기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온천수 개발사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개발로 인한 피해를 가장 먼저 입은 것들은 황학산 골짜기에 살고 있었던 작은 동물들이었습니다. 불도우저, 포크레인, 덤프트럭들이 길을 닦느라고 골짜기를 파헤치고, 부수고, 메우고, 땅을 다지느라고 야단법석이 시작되었습니다. 흙먼

지가 자욱하게 하늘을 뒤덮고 기계소리가 산을 울렸습니다. 펑! 펑! 다이너마이트 폭파음이 산을 흔듭니다. 포크레인은 산자락을 덥썩덥썩 물어뜯었습니다. 불도우저는 바위 건 나무 건 개울이건 무적의 왕자처럼 휘젓고 다닙니다. 무성한 풀과 나무가 순식간에 뽑혀나갔습니다. 수천년 자리를 잡고 의젓하게 앉아 있던 바위들이 깨지고 터지고 굴렀습니다. 개울은 흔적도 없이 매워지고 산자락은 포크레인의 우악스런 턱으로 살점이 뜯기어나간 공룡처럼 벌건 속살을 들어내놓고 있습니다. 드들강 수원이 황토흙으로 벌겋게 흙탕물이 되었습니다. 개울에 흙탕물이 섞이자 제일 먼저 돌 틈에서 살던 가재들이 수난을 겪었습니다. 흙탕물을 피한다고 산으로 기어올라가다가 죽기도 하고 뻘건 황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둥거리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다슬기들은 바위 등을 타고 일단 피하기는 했으나 결국은 목이 말라 죽었습니다. 피라미들은 갑자기 밀어닥친 황토물을 피하지 못하고 벌건 물을 뒤집어썼습니다. 예고 없이 당한 곤경이라 미쳐 대비할 틈이 없어서 많은 생물들이 죽어갔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올 때는 하늘이 먼저 알려옵니다. 가뭄이 있을 거라는 것은 아주 작은 곤충들도 미리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천재지변(하늘이 내리는 어려운 자연의 피해)은 이들에게는 예고된 연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번 일은 우두커니 앉아서 당했습니다. 산새들은 난리가 났다고 불난 것처럼 떠들기만 했지 실속이 없었습니다. 산과 개울에 살고 있던 온갖 것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고 우왕좌왕(어디로 갈 줄을 모르고 돌아다님) 정신들이 나가버렸습니다. 황학산 골짜기에서는 적어도 작은 동물들에게만은 무서운 일이 벌어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서운 현상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엄마야!’

‘아빠!’

‘배불뚝아, 어디 있니?’

‘으흐흐흑, 할아버지!’

곤충들의 세상에서는 북새통이 되었으나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공사판 책임자인 털보사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일에는 시장님도 매한가지였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한 어른들이야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생각 너머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푼이할아버지가 난장판이 된 공사장을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영감탱이 뭘 하지?”

“글쎄요, 뭘 줍나본데.”

“금덩어리라도 나오냐?”

“금덩어리라구요? 흥, 돌멩이라면 몰라도.”

털보사장과 공사감독이 사무실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할아버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불도우저가 뒤집어 놓은 황토흙을 헤집기도 하고 허리를 굽혀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저 걸 봐. 뭘 줍고 있잖아.”

“알아볼까요?”

공사감독이 황토 묻은 장화를 터덜터덜 끌며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영감, 뭘 하는 거요?”

대꾸가 없었습니다.

“금덩어리라도 나왔소?”

그래도 대꾸가 없자 공사감독이 할아버지 앞에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아니? 영감, 벌레를 줍잖소!”

공사감독이 할아버지의 깡통을 기웃거리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의외에도 시큰둥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렇소.”

“벌레를 뭘 하게? 뭐, 몸보신?”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습니다. 공사감독은 할아버지의 웃음을‘그렇습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나 봅니다.

“이런 걸 먹는단 말요?”

 

 

 

 

“좋을 대로 ….”

생각하란 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묻는 말에는 건성이었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벌레만 보이면 들고 있는 깡통에다 주워 담았습니다. 할아버지의 깡통에는 지렁이, 하늘강아지, 달팽이, 무당벌레들이 고물고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잘린 여치가 있는가 하면 몸통을 다친 귀뚜라미, 더듬이가 잘려나간 개미들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걸 다 먹나?”

할아버지는 대꾸하기도 싫다는 듯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새로 흙이 뒤집어지고 있는 언덕배기로 걸어가버렸습니다. 공사감독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털보사장에게 보고했습니다.

“벌레를 줍던데요.”

“벌레를? 뭣에 쓰려고?”

“건 모르죠. 몸 보신할거냐니까 피식 웃던데요.”

“잡동사니 벌레가 몸보신된다는 소린 또 처음 듣는 소리네.”

“놔둘까요 쫓아버릴까요?”

“음, 그냥 둬. 뭐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

털보사장도 할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별, 요상한 사람도 다 보겠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체 파헤쳐진 황토더미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큰일은 다음 날 일어났습니다. 공사를 진행하다가 남생이바위가 애물단지가 되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털보사장이 시정자문회의를 열었습니다. 자문위원의 도움을 받아 탈없이 남생이바위를 폭파해버리려고 회의를 열었습니다. 공사판에 도착한 자문위원이 할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털보사장에게 물었습니다.

“저 영감 뭘 하는 거요?”

“벌레를 줍는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

“영감이 며칠 전부터 공사판에 나오길레 뭘 하나 했더니. 글쎄, 벌레를 주워 모으고 있다지 않습니까. 잡동사니 벌레도 몸 보신이 좀 될까요?”

엉뚱하게 헛짚은 털보사장의 설명을 자문위원이 듣고는 대꾸했습니다.

“지렁이를 먹는다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만 ….”

“좋지요 좋아. 역시 지렁이요리는 효험이 있던데요.”

“잡숴보셨구만요. 자문위원님께서는 ….”

털보사장이 너털웃음을 웃는 자문위원에게 애교있게 말했습니다.

“암, 먹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알겠소. 사장도 한 번 잡숴보시구려.”

“암, 기회가 있으면 저도 한 축 끼워주십시오. 술값은 톡톡히 낼테니까요.”

“그래요? 술값만 낸다면 여부가 있나.”

모두들 와그르르 웃었습니다. 시장님만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턱없이 상상력이 모자라지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건 그렇고. 이제 본론은 ….”

자문위원들이 남생이바위 폭파에 관한 일을 제기 했습니다. 남생이바위가 있는 곳이 설계도에 의하면 호텔이 들어설 자리였습니다. 바위 무게가 웬만하면 들어 옮길 생각도 해봤겠지만 워낙 커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털보사장은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하여 폭파시킬 방법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공청회 땐 왜 그 이야길 하질 않았소?”

시장님이 이의를 달았습니다.

“까짓 바위 하나쯤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잘 생각했어요.”

자문위원이 털보사장에게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폭파시켜버려!”

“설계도에 호텔 설 자리로 그려져 있습니다. 법적으로라도 하자(흠)는 없는 일이예요.”

털보사장이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시장님은 쉽게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습니다.

“남생이바위 문제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잖아요. 법적 운운 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시장님께서야 법대로 처리하면 그 뿐 아닙니까?”

“법 법하지 말아요. 세상에 법이 최고야?”

시장님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해졌습니다.

“아, 법치국가에서는 법이 우선 아닙니까?”

자문위원이 털보사장 편을 들었습니다.

“그렇고말고요. 법대로만 일하면 책임도 벗고 ….”

“책임 문제가 아니라니까. 남생이바위가 책임이 어떻고 법이 어쩌고 할 문제요? 그 바위는 이 고장 사람들의 지주예요. 정신적인 기둥이란 말입니다.”

“우리도 폭파하는 것이 좋아서는 아닙니다. 그 걸 폭파하지 않고는 공사를 할 수 없는 형편이 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그래도 시장님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묘안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양보하지요. 폭파는 최후 수단입니다. 우리가 남생이바 위가 어떤 바위라는 걸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

묘안을 대라는 데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자문위원들이 결정한 일입니다. 공청회도 거쳤으니 이제사 공사를 못하게 막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며칠 더 생각해 봅시다.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

시장님이 또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밖에서 사무실 안을 기웃거리던 한푼이할아버지가 이 말을 들었습니다.

‘남생이바위를 폭파해? 어림도 없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할아버지는 곧 바로 아예 남생이사당터로 거처를 옮겨버렸습니다. 남생이바위에서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한 시도 바위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라도 처리해!”

공사감독의 보고를 듣고 털보사장이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어떻게 얻은 공사며 그 동안 들인 밑천이 얼만데 남의 망하는 꼴 보려는가 하면서 펄펄! 뛰었습니다.

“그 놈의 영감탱이 뉘 망하는 꼴 보려고 그래?”

“뉘 죽는 양 보고싶나말야.”

사실 자문위원들은 법대로 하면 염려없다고 했지만 시장님을 설득하는데 지칠대로 지쳐서 울화가 날대로 난 털보사장의 울화통이 터진 것입니다.

“밀어버려! 귀찮은 것들은 깡그리 밀어치워!”

공사감독이 덩달아 껑충거리며 명령을 내리자 불도우저가 큰 입을 벌리고 한 달음에 내달아 사당터부터 깔아뭉개기 시작하였습니다. 100년도 넘은 사당터가 눈 깜작할 사이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벌레를 줍는데 정신이 팔려있던 할아버지는 말 한 마디 해보지 못하고 사당터가 사라지는 꼴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새에도 불도우저는 한 입에 삼켜버린 사당터의 잔해들을 단숨에 쓸어다 개굴창(개울)에 밀어부쳤습니다.

“내일 당장 남생인가 뭔가도 깨버려! 다이나마이트 묻을 준비 철저히 하고!”

공사감독은 오히려 한푼이할아버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시 먼 데 하늘을 보고 섰던 할아버지는 다시 땅을 헤쳐가며 벌레를 주워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밤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어둠을 골라 디디며 공사장 임시사무소 창고로 숨어들어 갔습니다. 숨소리조차 없이 고양이처럼 어둠 속을 걷던 그림자가 무엇엔가 놀란 듯 더 짙은 어둠 속에 몸을 움추렸습니다. 반짝! 어둠 속에서 네모반듯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경비원 사무실 문이 열리고 두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경비원이 걸어나왔습니다.

“밤이 너무 조용한데.”

“조용해서 나쁠 게 있나?”

“가만, 좀 이상한 분위기 아냐?”

두 사람은 투덜거리며 마당 가장자리 언덕 끝에 서서 바지춤을 내렸습니다.

곧 요란한 물줄기가 흘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대화가 끊겼습니다. 잠시 뒤 바지춤을 추스리던 그림자가 말했습니다.

“순시를 해야지 않겠어?”

“순시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

“만약에 ….”

“염려도 팔자지.”

“하고 싶으면 순시는 임자가 하게. 난 졸음이 쏟아지는 걸.”

가벼운 실랑이가 오가더니 두 사람이 되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뜸을 들인 뒤에 어둠 속의 그림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어둠 속에서 그림자만 가만가만 창고 쪽으로 스며들 듯 기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반짝! 불똥이 튀더니 곧 주위가 밝아지고 불꽃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퍼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불이야! 불야!”

임시사무소 사방에서 불빛이 살아났습니다. 인부들이 허둥지둥 달려나왔으나 까만 어둠을 뚫고 혀를 날름거리던 불길은 순식간에 공사장 자재창고를 삼켜버렸습니다. 마른 목재와 불에 타기 쉬운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어서 사람들은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불구경을 하고만 셈이었습니다.

“뭣들 하는 짓이야!”

“어떤 놈이 불을 놨어!”

연락을 받고 달려온 털보사장이 펄쩍펄쩍! 땅을 굴렀습니다.

“망했다. 망했어! 이제 폭삭 망한 거야!”

 

 

털보사장은 펄펄! 뛰었습니다.

“아무래도?”

“어쨌단말야?”

공사감독이 헐려져버린 남생이사당터에 천막을 치고 눌러 않은 한푼이할아버지를 지목했습니다.

"영감탱이가 수상합니다.”

“뭐야! 그 영감? 당장 잡아와!”

털보사장의 노여움은 대단했습니다. 억센 장정들이 할아버지를 번쩍 들어 안아다가 털보 사장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여니 때와 다름없이 태연하게 깡통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까짓 게 다 뭐야!”

털보사장이 깡통 걷어찼습니다. 깡통이 구르고 속에 담겨있던 곤충들이 사방에 흩어졌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썰미가 곧추섰습니다.

“영감이 불을 놨지?”

묵묵부답(아무 말이 없음).

“영감 한 짓이 어떤 일인줄이나 알어?”

꼼짝도 않던 할아버지가 털보사장을 정면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요따위 영감탱이는 ….”

공사감독이 할아버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보다못한 경찰이 공사감독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영감님이 불을 지른 게 사실입니까?”

“그렇소!”

할아버지가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아니, 저 영감이!”

털보사장이 식식거리며 달려들었습니다.

“아서요, 아서.”

경찰이 식식거리는 털보사장을 다시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영감님이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고나 계십니까?”

“알고말고요.”

할아버지는 태연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무서운 일을 저지르셨습니까? 하여튼 경찰서로 가시지요.”

경찰이 할아버지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습니다.

“경찰서? 경찰서까지 갈 것도 없어. 저런 비렁뱅이 영감은 칵! 죽어야 해. 쥐뿔이나 보상을 받 을 거야 뭘 할 거야.”

“그래도 법대로 해야지요,”

“법은 무슨 놈의 법. 우리가 혼구멍을 낼테니 우리게 넘기시오!”

“안됩니다. 사실 확인을 해서 영감님이 범인이라면 법대로 처리합시다.”

기어코 행패를 부리려는 공사감독을 경찰이 끝까지 말렸습니다.

“아이쿠 미쳐. 내가 미친다니까!”

 

 

 

털보사장은 제 분에 못이겨 가슴을 쾅쾅!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시장님이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영감이 불을 놨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일단 경찰서로 연행하겠습니다.”

“가당찮은 말씀. 불을 지르고 자기라서 내 했소 하는 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단 말야?”

“자백을 한 이상 조사는 해야 합니다.”

시장님이 할아버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쇠고랑을 찬 할아버지를 보더니 대뜸 고함을 쳤습니다.

“이것 풀어!”

경찰이 머뭇거리며 털보사장을 보았습니다.

“쇠고랑 풀지 않을테야? 조사도 받지 않은 사람을 범인 취급하는 건 죄가 안 될 줄 알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시장님의 호통소리가 커지자 마지못해 경찰이 쇠고랑을 풀었습니다.

“정말이야? 영감이 자백을 했어?”

한푼이할아버지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정말 불을 질렀단말야?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시장님의 물음은 간곡했으나 할아버지는 다시는 어느 누구의 물음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큰 실수야. 영감이 왜 그런 짓을 해.”

시장님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당장 감옥에 넣어야 해요. 남의 신세를 망쳐도 유분수지.”

“영창도 싸요 싸. 그냥 이걸로 해결해야 하는 건데.”

공사감독이 또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자네들은 좀 조용히 하게!”

시장님이 흥분한 공사감독을 꾸짖었습니다.

“데려가게나. 그러나 명심하게. 거칠게 다루어서는 절대로 안 돼. 서장에게는 따로 연락하겠 네.”

시장님은 신신당부를 하고도 못미더워서 경찰서장을 팔았습니다. 경찰은 볼이 부어가지고 시큰둥하게 듣고 있더니 할아버지를 앞세우고 공사장을 내려가버렸습니다.

“영감이 불을 놓았다면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뭐 집히는 건 없나?”

“미친 영감에게 이유가 있겠어요.”

공사감독을 어르고 달래보았으나 감독은 침만 퇘퇘! 뱉으며 꼬리를 감추었습니다.

“가만있는 사람이 불을 질렀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뭔가 자네들이 영감님에게 행 패를 부렸지?”

심증이 갔으나 공사감독은 시치미를 뚝 떼고 눈을 돌려버렸습니다. 수상한 낌새만 눈치챘을 뿐 결국은 끄트머리를 잡지 못하고 시장님은 산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영감은 온천 개발이 몹시 못마땅한 눈치였어. 그것 때문에? 아냐, 그런 일로 그런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 없잖아. 그렇게 무모한 일을 생각없이 저지를 사람이 아니잖냔 말야? 그렇다면 무엇이지? 저 녀석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한데. 고이헌, 고얀 녀석들 같으니라 구. 그나저나 저 영감 어떻게 한다? 70줄에 않은 영감을 영창에 넣을 수는 없지. 벌금형이면 되는데. 그렇지, 벌금형으로 어떻게 되겠지.’

 

 

그러나 저러나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지 한심스러웠습니다. 시장님이 도시를 위해 애쓰

는 일과는 딴판으로 도시는 자꾸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밀려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놈의 세상이 왜 이리 돌아가는지. 시장님은 머리가 다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온통 구정물 투성이야. 흙탕물 투성이라니까. 골치 아파. 정말 골치 아파!’

집에 돌아온 시장님은 머리를 싸매고 누워버렸습니다.

 

 

 

6. 부들숲의 피라미들에게 닥친 고난

 

 

온통 흙탕물투성이 세상이 또 있었습니다. 드들강은 황학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황토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빛깔이 바뀌어갔습니다. 그 일 때문에 가장 피해가 큰 건 물고기들이었습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대피! 대피!’

윗보에 살던 버들붕어와 갈피리, 붕어들이 제일 먼저 중보로 도망쳐왔습니다.

“부들숲도 이젠 망했어.”

“이러고서야 어디 온전한 곳이 한 군데라도 있겠어?”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죽었군. 영락없이 죽었어.”

버들붕어들이 모여 궁리를 폈습니다.

“도리가 없어.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단말야. 등룡폭포를 넘기 전에는 ….”

“넘보는데도 분수가 있지. 그 천 길 낭떠러지를 어떻게? 우리가 새처럼 날개를 달았으면 몰라 도 ….”

갈피리들도 생각에 생각을 해보지만 결론이 없습니다.

“그래도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냐말야.”

“옴도 뛰도 못하게 되었어. 꼼짝없이 앉아서 죽을 판이니. 원 세상에, 이런 낭패가 있나!”

“설령 우리가 천 길 등룡폭포를 날아 넘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폭포 길목의 용소를 어떻게 지 나가겠나. 천 년 묵은 이무기 녀석이 잘 가시지요 하며 고이 보내줄까?”

“어림없는 소리. 천 년의 한을 품은 이무기 녀석 싱싱한 생명을 못 먹어서 안달인데 가당찮은 상상이야.”

“통행세를 톡톡히 치워야할 걸. 처녀 제물을 바치든지.”

붕어들은 제법 어른스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공론들 작작해. 살고 죽는 문제가 걸려있는데 벼라별 흰소릴 다 듣겠네. 그 잘난 주둥아리들 좀 다물지 못해!”

가물치가 소란스러운 소동을 갈아 앉히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천 년 동안이나 죽은 듯 엎드려있었던 이무기가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소문야.”

“남생이바위가 버티고 있는데도?”

“온천인가 뭔가를 개발한다면서 폭파한다나?”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모여 살고 있었던 피라미들도 모두 부들숲으로 몰렸습니다. 아직도 무리를 피해 사는 겹눈이만 창포숲에 남아 있었습니다. 부들숲이 밀려든 피라미 무리로 꽉 차서 피라미들은 창포숲 근처에까지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겹눈이의 마음 같아서야 피라미들이 창포숲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고 싶었으나 야박하게 굴지는 못했습니다. 더구나 갑자기 무리가 늘어난 피라미들은 부들숲에서 나는 먹이만으로는 배를 채울 수가 없어 창포숲을 기웃거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먹이가 풍부한 창포숲에 욕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도 겹눈이가 눈감아준 건 창포숲 언저리(주변) 뿐이었습니다. 창포숲은 완강하게 막아섰습니다. 창포숲 속에는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가끔 배를 곯은 피라미들이 창포숲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럴 때면 겹눈이의 강한 경고가 떨어졌습니다. 겹눈이의 경고는 꼬리짓입니다. 이 파장이 밀려가 피라미들의 옆줄에 닿으면 피라미들은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강한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자극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난 친구가 필요 없어!’

‘도움도 위로도 필요 없어!’

‘난 혼자야, 오직 혼자!’

어렵게는 살았지만 그래도 혼자 지냈기 때문에 이제는 익숙해졌던 외로움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외로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증오심과 복수심이 눈을 떴습니다. 다시 눈을 뜬 증오심으로 몸이 오그라들 것만 같았습니다. 겹눈이는 몸을 활처럼 굽혔다가 힘껏 펴면서 온 힘으로 물결을 쳤습니다. 몸놀림이 어찌나 격렬했던지 물결이 소용돌이쳤습니다.

‘겹눈이다. 겹눈이가 또 화가 났어!’

‘겹눈이 신경을 건드리지말아!’

‘우리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야.’

피라미들은 스스로 조심했습니다. 적어도 중보 전체를 주름잡고 있는 겹눈이가 하려고만 했었다면 피라미들은 결코 수난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졌어.”

“배고파요."

“창포숲엔 먹이가 무진장이라던데.”

“겹눈이 제가 뭔데 창포숲을 독차지하남.”

철없는 어린 피라미들이 불평을 했습니다. 피라미들은 옛 일을 잊어버리고 불평을 늘어놓은 것입니다. 피라미들에게 사흘 전 일은 옛날입니다. 잊음이 헐해서 기억이라는 낱말조차 피라미들 세계에서는 없었습니다. 피라미들의 기억력은 불과 3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철없는 피라미들이 자꾸 창포숲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그것이 겹눈이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한꺼번에 몰려가면 ….”

수가 많으니 겹눈이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란 허세도 부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유치한 녀석들.’

겹눈이는 피라미 정도야 100마리가 몰려들어도 끄떡도 않을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겹눈이의 힘은 보래새끼(잉어새끼, 약 15Cm 안팎)보다 더 강했습니다.

이런 말을 귀담아 듣고는 해눈이가 제일 괴로워했습니다.

‘내 생각이 잘못이었어.’

‘판단력이 부족했던 거야.’

‘훌륭한 애를 쫓아내고 말았으니.’

‘천벌받을 일이야.’

‘무슨 낯으로 애비 행세를 하나.’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겹눈이는 가족이나 친구를 모르고 자랐기 때문에 사랑이란 낱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큰 몸집만큼 성격이 난폭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벌써 이틀째 피라미들은 회의를 열었습니다. 밀려들어오는 황토물을 피해 살길을 찾아보려고 의논을 했으나 아무 대책도 서지 않았습니다. 부들숲을 떠나 드들강의 하구로 피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의 하류까지는 밀려간다 하더라도 바다 속으로까지 말려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황토물은 끝내 바다에까지 이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드들강에는 지류(큰 강으로 흘러들어오는 작은 개울)가 없었습니다. 설사 바다 어귀를 목표로 하고 가더라도 걱정은 태산 같았습니다. 중보를 넘어 곧장 물굽이를 지나다 보면 용소를 건너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무기는 이러한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무기가 사는 용소를 건넌다는 일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100여 년 동안 싱싱한 생명을 먹어보지 못한 이무기의 집념은 대단할 것이 확실합니다. 생명다운 생명을 먹지 못했으므로 이무기는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피라미들이란 얼마나 마음이 약한지. 약간 살랑거리는 바람결에도 놀라는 피라미들입니다. 그런 피라미들이 생명 먹이에 굶주린 새빨간 눈빛을 피한다는 것은 결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무기의 꼬리짓은 고사하고 눈빛만 보고도 두려움에 질려서 기절할 것이 뻔합니다. 여린 마음에 용소 근처에 가면 오금이 저려붙을 게 뻔한 사실입니다.

‘해눈이를 불러오너라!’

일이 다급해지자 해눈이에게 부탁하는 것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아무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겹눈이에게 도움을 구하는 방법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건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앓고 있던 해눈이가 불려왔습니다.

“자네가 수고 좀 해 주게. 겹눈이 말일세. 혈육이니 애비 말이야 거절하진 못하겠지.”

해눈이는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우리들의 간곡한 부탁이라고 한 번 설득해 주게. 우리 일족의 생사가 그 애에게 달렸네.”

피라미 무리의 어른들이 마지막 얻은 결론은 피라미 일족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일을 겹눈이에게 일임하자는 결정이었습니다. 모든 피라미들의 시선이 해눈이 자기에게 매달려 있는 걸 알고는 차마 더 이상 거절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말씀 대접으로 다녀는 오겼습니다만 ….”

창포숲으로 떠나는 해눈이도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피라미들도 맥없는 표정이었습니다.

겹눈이는 피라미들의 의사가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피라미들의 대화는 지느러미짓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옆줄에 닿는 감각만으로도 의

사 전달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해눈이가 창포숲으로 오고 있는 사실도 이렇게 해서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염치 좋은 낯짝들!’

겹눈이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부아를 삭이느라고 뽀글뽀글 거품을 뿜었습니다. 창포숲으로

숨어 피해버릴까 하고도 생각해 봤습니다. 좀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죄 지었나? 내가 숨게.’

겹눈이는 마음을 바꿔먹고 창포줄기에 기대어 거품을 내뿜고 있는데 지느러미 움직이는 파장이 커지더니 불쑥! 아버지 해눈이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겹눈이지? 나다. 애비야.”

“아버지?”

겹눈이가 부아를 누르며 말했습니다.

그 바람에 또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피어났습니다.

“그래, 나야. 날 알아보겠니?”

해눈이가 간곡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되돌아온 건 퉁명스런 대답이었습니다.

“난 부모가 없어!”

말을 마친 겹눈이가 꼬리를 동그랗게 말았다가 펴면서 해눈이의 정면에 나타났습니다. 겹눈이의 눈에서 파란 불빛이 타고 있었습니다.

“애야, 내 잘못이 크다. 용서해다오!”

“듣고싶잖아요. 그 따위 변명!”

겹눈이의 말투가 거세졌습니다. 너무 단호해서 더 말을 붙여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해눈이는 더 이상 애원도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자 겹눈이가 또 노여움을 드러냈습니다. 지느러미로 애꿎은 물결을 탕! 탕! 쳤습니다. 해눈이는 겹눈이의 펄펄! 튀는 행동을 보면서 속절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겹눈이는 맥없이 돌아서는 해눈이의 뒷통수에 대고 더 거센 물결을 팡! 팡! 쳐보냈습니다. 강한 꼬리짓을 계속 해댔습니다. 한참 온 힘을 모아서 물결을 쏘아 보내고나니 속이 다 시원한 것 같았습니다. 해눈이의 풀죽은 모습이 통쾌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대놓고 면전에서 퍼부은 자신의 말투정에도 만족하였습니다. 아버지든 누구든 힘으로 눌러버리고 싶었습니다. 옛날 자기를 무리에서 쫓아낼 때의 패기와 힘은 어디로 갔는지. 축 처진 두 어깨, 이제 쪼그라질대로 쪼그라져 말라버린 몸. 그런 아버지 해눈이의 모습만으로도 겹눈이의 분이 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옛날 당당하고 위세좋던 기백은 어디 가고 허줄하고 초라한 행색이 되고 말았는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넌, 내 자식이 아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습니다. 쫓겨난 날 이웃 동무들이 자신에게 부렸던 행패를 생각만 해도 모멸감으로 몸이 떨렸습니다. 한 점 동정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이 자기들의 처지가 어려워지자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통쾌하였습니다. 서러워서 울고 외로워서 가슴을 보듬고 정이 그리워서 몸부림쳤던 지난 날. 겹눈이는 불행했던 어린시절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날 그들이 자신을 죽음과 공포의 땅이었던 창포숲으로 인정사정없이 쫓아내었던 것처럼 이제는 처지가 거꾸로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기를 핍박하고 모멸감을 주었던 그들이 당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겹눈이는 자신의 몸 하나 쯤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까짓 용소쯤이야 징검뛰기 단 한 번이면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무기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무기 쯤 따돌리는 건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등룡폭포가 남들에게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벽이겠지만 겹눈이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장애물이었습니다. 물결이 세차다지만 문제가 될 수 없었고 물길이 폭포수라 하더라도 조금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폭포수를 거꾸로 타고 오르는 비월(밑에서 위로 물길을 타고 폭포를 넘어감)도 가벼운 연습경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어려움을 겪고나면 좋은 일이 생김). 고진감래(괴로움 다음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음)는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말입니다. 인생은 새옹지마(좋은 일 궂은 일이 번갈아 다가옴)라더니 생각만 해도 고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겹눈이는 이런 상상을 하며 해눈이가 돌아가면서 지어놓은 뒷 물결을 한 번 더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꼬리지느러미의 물결 파장으로 피라미들은 해눈이의 설득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겹눈이의 분노가 얼마나 큰가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가 봅시다!”

비늘돋은 피라미들이 앞장을 섰습니다. 이마에 비늘이, 반짝이는 금빛비늘이 있다는 건 피라미 사회에서는 고귀한 신분으로 행세할 수 있는 증명입니다. 금빛비늘을 지닌 피라미들이 희귀하기도 했지만 어지간히 지혜와 공덕을 쌓지 않고는 금빛비늘이 돋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금빛비늘 돋은 피라미들을 선두로 원로 피라미들이 모두 나섰습니다. 다른 때 이런 행렬이 있었다면 부들숲은 매우 소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행렬은 기껏 1년에 한두 번이었고 부들축제 때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철없는 어린 피라미들조차도 숨을 죽였습니다.

겹눈이는 물결의 파장으로 많은 피라미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로 오는 것조차도 옆줄에 닿는 감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황하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해버리는 게 상책?’

‘아냐, 비겁하게 피할 순 없어!’

겹눈이는 당당하게 맞서기로 결심하고 돌아섰습니다.

“우리를 살려주게.”

“우릴 구해주게.”

“제발 우리를 가엾게 여겨주게.”

무릎을 꿇다시피 피라미 원로들이 빌었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네. 자네만이 우릴 위험에서 구할 수 있네.”

“설사 구할 수 있다더라도 ….”

겹눈이는 감정을 억제하느라고 숨을 멈췄습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살려주리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우린 한 몸을 지니고 태어난 한 가족일세.”

하하하! 하고 겹눈이가 헛웃음을 쳤습니다. 속이 빈 웃음이었습니다.

“한 몸으로 태어났다니요. 말씀은 고맙습니다.”

“우리가 자네에게 저지른 과오는 뭐라 변명하지 않겠네.”

“한 핏줄을 지닌 어린 자식을 버린 부모도 부모며 한 무리에 속한 어린 싹을 잘라버린 가족도 한 가족일까요?”

“그 일에 대해서는 면목이 없네.”

“그런 말로 제가 위안이 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건 커다란 실수입니다.”

 

 

“우릴, 우리의 무지했던 지난 날을 용서하게.”

겹눈이가 몸을 떨며 치솟아오르는 격분을 억제하느라고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공기방울이 뽀글뽀글 피어올랐습니다.

“나는 혼자 살았기 때문에 용서와 이해라는 낱말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세상 외톨이가 되어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살아온 제가 그런 사치스런 말들을 듣기나 했겠습니까?”

“알고 있네. 그러나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네.”

“그 건 제가 드리고싶은 말씀입니다. 제게도 누굴 돕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끝내 겹눈이가 돌아서버렸습니다. 겹눈이가 완강한 거부 의사를 꼬리짓으로 나타냈습니다. 몸을 활처럼 휘어서는 거세게 물결을 팡! 팡! 두드렸습니다. 피라미들은 깊은 좌절감으로 지느러미를 접은 채 창포숲을 돌아섰습니다.

그 날 밤 한밤중에 부들숲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겹눈이의 엄마 달눈이였습니다. 부들숲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달눈이는 조용히 흐르는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창포숲으로 갔습니다. 창포숲도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달눈이가 창포꽃대 물 속 줄기를 입으로 두어 번 쪼았습니다.

‘똑! 똑!’

숲이 아주 조용했으므로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소리는 분명하게 울렸습니다.

잠든 겹눈이를 깨우려고 보낸 신호였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겹눈이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 애가 깊은 잠에 들었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겹눈이처럼 민감한 아이가 그 정도의 신호에 깨어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달눈이가 접근해오는 작은 물결의 움직임까지도 이미 알고 짐작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창포숲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달눈이는 꼭 겹눈이를 만나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창포 줄기를 입으로 쪼았습니다.

‘똑! 똑!’

역시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달눈이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겹눈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보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바로 그 때,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불쑥 나타난 커다란 그림자는 달눈이와 그 주변을 새카맣게 뒤덮어버렸습니다.

“얘야. 너 겹눈이지? 널 만나려고 왔다. 몹쓸 에미였다만 만나주겠지?”

겹눈이는 달눈이 위에 떠서 지느러미를 나풀거렸지만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달눈이는 마치 거품덩어리가 덮어 누르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우릴 좀 구해다오. 모두들 너만이 우리를, 우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도 너만

이 우리를 흙탕물에서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단다.”

“에미는 널 보내고 한 시도 널 잊지 못하고 살았다. 가슴에 한이 서렸지. 네 생각만 하 면 ….”

기어코 달눈이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참동안 설움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살아온 네 삶이야 더 말해서 무얼 하겠니? 이 에미 가슴에도 못이 박

혀 있단다. 널 보내고 하룬들, 에미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이 말만은 이해하여 주었으면 좋겠다.”

 

 

“애비 해눈이나 여러 원로 어르신들께 네가 말했다는 이야기도 죄다 들었다. 그러나 우리 피 라미 일족이 모두 가만히 앉아서 죽게 되었는데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듯 앉아 있을 수가 없 었다.”

흐느낌 때문에 말이 토막토막 끊겼습니다.

“에미는 네게 이런 부탁을 할 자격이 없다. 염치없는 짓인 줄 안다. 이유야 어떻든 자식을 내 친 에미가 무슨 낯짝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겠니. 그래도 오지 않을 수가 없었구나.“

달눈이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이 또 토막토막 끊겼습니다.

“자, 이제 네 얼굴도 보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 나, 간다. 부디 몸조심해야 한다. 흙탕물이 덥쳐오고 있다니 각별히 몸조심해야 한다.”

달눈이는 말을 마치자 곧 창포숲을 떠났습니다. 천천히 멀어져가는 엄마 달눈이의 몸짓을 옆줄로 가늠하면서 겹눈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엄마 달눈이의 흐느낌이 귓가에서 맴돌다 가슴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고 있었습니다.

 

 

 

7. 울면서 돌아온 겹눈이

 

 

다음 날 새벽 겹눈이가 부들숲에 나타났습니다. 피라미들은 겹눈이 마음이 변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소곤거렸습니다. 하여튼 겹눈이가 스스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부들숲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부들숲에 나타난 겹눈이는 맨 먼저 엄마 달눈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다정하게 엄마의 몸에 자신의 몸을 문질렀습니다. 달눈이는 겹눈이가 보내는 옆줄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고맙다, 내 새끼.’

달눈이는 몸을 활처럼 휘어 겹눈이를 감싸고는 자꾸 겹눈이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 다정하게 감싸 안았다가 귀엽게 입으로 쪼기도 하였습니다.

겹눈이가 돌아온 소식은 부들숲에 금방 퍼졌습니다.

“네가 와주다니!”

금빛비늘 돋친 피라미들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돕겠습니다.”

“고마운 일이다. 정말 고마워!”

“고맙다. 겹눈아!”

“겹눈아,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

“생애 최고의 날!”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피라미들도 있었습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꿈벅거리는 피라미

들도 있었습니다. 어린 피라미들은 영문도 모른 체 겹눈이를 처음 본 사실만으로도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겹눈이의 마음이 되돌아서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기뻐 춤추는 피라미들과 즐거움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가슴을 감싸쥐고 있는 눈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달눈이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죄책감과 후회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해눈이였습니다.

그 날부터 부들숲에는 비상나팔이 울리고 다시 규칙적인 집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겹눈이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죽고 사는 일이 눈앞에 닥치고 있었기 때문에 피라미들의 각오는 여늬 때와 달랐습니다. 남달리 지도력이 뛰어난 겹눈이의 솔선수범이 피라미사회를 놀랍게 바꾸어버렸습니다. 앞으로 사흘. 흙탕물이 부들숲까지 밀려오는데 기간이 사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사흘 안에 피라미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최대한 기능을 닦아야 합니다. 용소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징검뛰기와 등룡폭포를 단숨에 박차고 오를 수 있는 비월훈련(폭포에서 내려쏟는 물결을 타고 날아올라 절벽을 넘어가는 것)을 끝내야 합니다. 불평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평생동안 이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다고 자랑스러워하는 피라미도 있었습니다. 훈련의 진도가 겹눈이의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목숨을 건 모험을 눈앞에 둔 피라미들의 훈련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쉬는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줄였습니다. 스스로 반복연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가르치는 일도 배우는 일도 힘들거나 고되지 않았습니다.

징검뛰기는 용소를 날아 넘기 위한 연습이었습니다. 용소의 너비가 대략 10여 미터. 단숨에 날듯이 넘으려면 두세 번의 도약으로 날아야 합니다. 꼬리치기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 그 탄력으로 다시 튀어올라 날으듯 넘어야 이무기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물속으로 자맥질을 해서 용소를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이무기의 상상력을 징검뛰기로 뛰어넘어야 합니다. 적어도 징검뛰기로 용소를 뛰어넘는다는 발상을 한 겹눈이의 생각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생각이었습니다. 천 년의 지혜를 쌓은 이무기라 하더라도 겹눈이의 이 상상력을 뛰어넘는 생각에는 두 손을 들게 될 것입니다. 이무기의 계산대로라면 부들숲의 피라미들은 한 입에 이무기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뛰어봤자 벼룩.’

이무기는 요즘 새롭게 살맛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빨간 세모꼴 눈을 반짝거리며 어서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이무기는 피라미들이 곧 용소 근처에 몰리리라는 사실을 오래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천 년을 살아온 지혜로 터득한 일입니다. 언제였던가, 백여 년 전 남생이 두 마리를 먹어본 뒤로 이무기는 싱싱한 생명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그 때 먹었던 남생이 두 마리 때문에 말 못한 곤경을 겪었습니다. 느닷없는 남생이바위가 나타나 사시사철 물줄기가 풍부해지자 드들강의 물고기들은 가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물이 많고 물굽이마다 먹이가 좋아서 그러잖아도 무서운 용소 근처는 얼씬거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무기에게는 첫 번째 비극이었습니다. 남생이를 먹은 일이 이런 화근을 불러올지 미처 가늠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이무기는 남생이 두 마리를 먹은 뒤에는 생명다운 생명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산 생명을 먹지 못하면 용오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싱싱한 생명을 먹여야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몸이 가벼워져야 용오름으로 하늘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용이 되는 것입니다. 용소에 머문지 올해로 천 년. 올해만은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마지막 천 년이 되는 올해가 최후의 기회라는 일이 이무기의 두 번째 불행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용소에서 천 년을 기다렸던 이무기에게 마지막 좋은 기회가 절로 굴러들어온 것입니다.

‘인내 끝에 성공.’

천 년을 벼르고 벼른 좋은 기회. 이번의 단 한 번의 기회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피라미 녀석들 떼로 몰려오겠지.’

‘설마, 그냥 앉아 죽으려고?’

‘황토물을 뒤집어쓰고도 살 수는 없을 거고.’

이무기는 혼자 즐겁습니다. 입만 떠억! 벌리고 있으면 저절로 피라미떼가 입속으로 굴러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주 팔딱팔딱 뛰는 싱싱한 생명들이 날 잡아 잡슈 하고 입 속으로 기어들어올 것입니다. 이무기는 눈을 껌벅거리며 어서 빨리 오지 않고 뭘 하나 하며 중보 쪽을 바라봅니다.

‘이제 나도 용이다!’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보람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백 년 동안 굶주림에 떨며 그래도 용이 되어 승천해보겠다는 의지와 신념 하나로 버틴 보람이 이제야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용소는 대대로 용을 탄생시킨 유서깊은 연못이었습니다. 바로 앞선 이무기나 그 전의 이무기도 아무 탈 없이 용이 되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등룡폭포 용소는 이름난 곳이 되었습니다. 이무기라면 누구든 등룡폭포 용소를 탐냈습니다. 부러워했습니다. 물이 깊은데다가 등룡폭포의 높이가 높고 폭포물이 가뭄이나 홍수를 타지 않았습니다. 등룡폭포의 폭이 넓어서 물고기들이 비월을 하기 좋은 곳이라는 것도 이무기에게는 하늘이 베푼 은혜였습니다. 물고기들이란 머리가 빈 것인지 아니면 돌아버린 것인지 용소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비월을 하기 위해서 등룡폭포로 모여들었습니다. 등룡폭포에서 비월은 모험이었습니다. 용소의 이무기뿐만 아니라 비월 자체도 큰 모험이었는데 이런 걸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한 짓이라고 치부해야 할지. 물고기들이야 멍청하든 용감하든 이무기에게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무기의 관심은 오직 싱싱한 생명을 먹고서 몸을 가볍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보의 피라미들만은 아주 약은 녀석들이었습니다. 부들숲을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각오가 되었다면 몰라도. 이번에만은 운명을 피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이무기는 판단했습니다.

‘약은 녀석들.’

‘피라미 주제에.’

이무기는 터져나오는 비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용이 된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가슴설레는 일입니다. 먹을만큼 싱싱한 생명을 먹고나면 이무기의 몸이 가벼워집니다. 몸이 둥둥 뜨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 정도면 몸이 뜰 수 있겠구나 하고 판단이 되면 이무기는 용소에 소용돌이를 일으킵니다. 용소 한가운데를 축으로 가장자리에서부터 이무기가 빙빙! 돌기 시작하면 용소의 물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천천히 중심축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돌아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무기의 회전이 빨라지게 됩디다. 한 바퀴 도는데 10분이 걸렸던 회전이 5분, 3분, 1분, 30초 … 10초가 됩니다. 그러다가 단 1, 2초 만에 한 바퀴를 돌게되면 용소는 끓기 시작합니다. 물결의 회전속도에 의해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용소 주변을 덮습니다. 한 바퀴 도는데 1초가 채 걸리지 않는 번개같은 속도에 이르게 되면 용소에서는 구름이 피어나고 물보라는 무지개를 만들며 용소 끓는소리가 사방 십 리를 뒤덮습니다.

드디어 초속을 넘어 빛의 속도. 이무기의 회전에 가속이 붙어 이제 이무기조차도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의식이 없어집니다. 몸의 무게나 몸의 모습도 없어져버립니다. 이 때 이무기의 몸은 마치 빛과 같습니다. 이무기는 거세게 회전하는 끓는 물결 속에 한 가닥 빛이 되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에서는 무게나 부피감이 전혀 없습니다. 빛이 되는 것입니다. 하얀 한 줄기 빛으로 변한 이무기는 무서운 속도로 용소를 돌면서 소용돌이의 중심축을 향해서 빠르게 접근합니다. 무섭게 돌아가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중심축은 태풍의 눈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심축에 닿으려면 회전속도보다 한 층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싱싱한 생명의 힘입니다. 바깥 부분의 소용돌이와 정반대 현상인 중심축은 미동(아주 작은 움직임)도 없습니다. 빛으로 변한 이무기는 중심축에 들어서야 합니다.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의 힘을 뚫고 한 치씩 한 치씩 접근을 해서 드디어 중심축에 닿으면, 이무기가 중심축에 들어서면 소용돌이는 뇌성벽력과 함께 천지개벽을 하는 것처럼 땅과 하늘을 뒤흔듭니다. 번개가 일어나고 구름이 피어오르고 하늘이 쪼개질 것 같은 우레소리가 진동을 합니다. 하늘에서 땅 위로 번개가 번쩍거리고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며 태풍처럼 바람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습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바로 용소의 소용돌이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용소에서 물과 바람과 함께 뒤엉켜 소용돌이치던 구름이 뭉치기 시작합니다. 회오리바람처럼 구름은 곧장 하늘로 뻗쳐오릅니다. 이 구름에 싸여 이무기가 하늘로 승천합니다. 드디어 용이 되는 것입니다. 구름기둥이 하늘까지 닿아 용오름을 할 때 번쩍이는 번갯불에 어쩌다가 반짝! 용의 모습이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극히 적은 일부분이지만 잠깐 번개 불빛에 몸이 들어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설이 생겼습니다. 꼬리 부분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머리에 달린 뿔을 보았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용의 모습 전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 나돌아다니는 용의 그림은 보았다는 사람들의 말을 토대로 짜맞추어놓은 용의 형상입니다.

 

 

‘구렁이 천 년에 이무기’

‘잉어 천 년에 이무기’

‘거북이 천 년에 이무기’

‘이무기 천 년에 용’

 

 

이런 노래가 전해지고 있는 걸 보면 용은 한 동물만이 되는 화신이 아니라 용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동물이 있다고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노랫말로 보면 구렁이(뱀의 일종)와 거북이, 잉어들이 이무기가 되는 동물입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의 증언에 의하면 수명이 긴 것들이 모두 이무기가 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천 년 묵은 쏘가리나 곤들메기 같은 물고기들도 이무기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곳곳에 용용자가 붙은 지명이 많습니다. 그런 곳은 모두 용과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폭포 밑에는 의례껏 용추라는 이름이 지어져 있습니다. 용포, 용추골, 용정, 용담, 구룡폭포들이 모두 용의 전설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장의 마을 이름 대부분이 용자 돌림이 된 곳도 있습니다.

3국시대 신라가 당나라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습니다. 30만 당군을 이끌고 온 당나라 장수는 소정방이었습니다. 나당 연합군으로 계백장군의 황산벌싸움에서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은 백마강에 용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용을 낚겠다. 미끼를 준비하라!”

 

 

“장군님, 미끼는 무엇으로 할까요?”

“흰 말을 쓰겠다.”

소정방은 흰 말 한 마리를 통째로 낚시에 꿰어 백마강에 던졌습니다. 붉은 피가 백마강을 적시

자마자 낚시줄이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소정방은 바위에 무릎을 꿇고 낚시줄을 당겼습니다. 그래서 용을 낚아올렸습니다.

백제의 옛 서울 부여. 부소산과 낙화암. 낙화암에서 왼쪽으로 비켜선 바위 비탈에 고란사가 있

습니다. 고란사에서 몇 발자국 내려딛으면 백마강 물자락 앞에 서게 됩니다. 뭍에서 한 마장 거리에 조룡대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바위가 소정방이 용을 낚아올린 바위라고 합니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이 바위에는 두 개의 움푹 패인 자국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흔적을 소정방이 용을 낚으면서 남긴 흔적이라고들 합니다. 용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무릎에 패인 흔적이라고 합니다. 이 전설은 백제 멸망을 슬퍼한 백제인들이 나당 연합군에게 짓밟힌 백제의 멸망을 비유로 지어낸 전설인지도 모릅니다. 용은 임금님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무기는 이런 상상 속에 살면서 눈에 빨간 불을 켜고 피라미떼가 몰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피라미들은 겹눈이의 용의주도한 가르침에 따라 징검뛰기를 끝내고 비월훈련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용소를 뛰어넘은 다음 곧장 등룡폭포를 거슬러오른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높이 30여 미터 폭 20여 미터의 등룡폭포는 물길 세기도 이름난 폭포입니다. 비월에 탁월한 기능을 지닌 가물치나 잉어들도 감히 도전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 등룡폭포를 피라미들이 뛰어넘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무모한 계획.’

‘터무니없이 황당무계한(실행이 어려운) ….’

피라미들은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진 않았으나 겹눈이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있다고 속으로 비난을 하는 치들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비월은 징검뛰기와 달라서 강한 꼬리지느러미를 갖지 못한 피라미들에게는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비월을 하려면 꼬리지느러미를 폭포수 안 바위벽이나 세차게 쏟아지는 물살에다가 찰싹 붙이는 재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피라미들의 꼬리지느러미는 붕어나 잉어처럼 넓지 못합니다. 부챗살처럼 펼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피라미들은 대체로 군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겹눈이의 지시에만 따르고 있었습니다.

비월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살을 탈줄 알아야 합니다. 통째로 내리붓 듯 쏟아지는 강한 물줄기에 몸을 찰싹 붙이고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떨어지는 물길을 몸 밖으로 밀어내야 합니다. 말이 물길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지만 퍼붓듯 쏟아지는 물길의 중간에 멈춰선다는 일은 보통 힘과 재주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고 거기에다가 떨어지는 물살을 몸 밖으로 밀어내면서 버틴다는 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그 말은 허공에 멈춰서 있어야 한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더구나 위에서 내리쏟는 강한 물길을 몸 밖으로 밀어내면서 공중에 멈춰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래 천성적으로 피라미는 물살을 거슬러오를 수 있는 힘만은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중보 정도의 높이나 물길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만 등룡폭포에서 비월은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비월이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연못의 미꾸라지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이치와 같습니다. 미꾸라지는 빗줄기를 타고 수십 미터씩 하늘로 오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라미들에게는 미꾸라지 같은 힘이 없었습니다. 이 힘을 기르기 위해서 물줄기를 타며 몸의 균형을 지탱하는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찬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허공에 머무르는 일은 물고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피라미들도 이 정도의 재능은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었습니다.

‘살고싶지 않다면.’

낙오된 피라미들에게는 이 말은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었습니다.

다음에는 꼬리지느러미로 물길을 차는 훈련이었습니다. 꼬리지느러미를 부챗살처럼 펴서 벽에

몸을 지탱하고 있다가 몸을 활처럼 휘어 벽을 박차고 올라 그 탄력으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폭포를 오를 때 물길을 차고 날아오르기 위한 기초훈련이었습니다. 이것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였습니다. 달이 없어도 별빛을 등불삼아 밤에도 쉬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 내!”

중보에서는 겹눈이의 목 쉰 고함소리가 밤 새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행의 시간이 왔습니다.

“내일 석양에 출발한다!”

원로회의에서 겹눈이의 건의를 받아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황토물이 밀려오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이 속도라면 내일 석양쯤에 부들숲이 황토물에 휩싸일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자네 판단은 어떤가?”

원로들이 겹눈이에게 피라미 가족들의 비월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절반을 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겹눈이의 대답에 원로들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시간이 급박했으므로 원로들은 부들 숲 전체에 비상대피령을 내렸습니다.

 

 

첫째, 아무 것도 몸에 지니지 못한다.

둘째, 행진대열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셋째, 풀잎을 한 개씩 입에 물고 행진한다.

 

 

해질녘에 피라미들은 부들숲을 떠났습니다. 경고가 엄했으나 흐느끼는 피라미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피라미들은 자꾸 뒤를 돌아다보다가 대열에서 빼버리겠다는 으름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황토물이 드디어 윗보를 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매캐한 황토냄새를 피라미들은 옆줄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두에는 겹눈이가 섰습니다. 대형은 삼각형이었는데 밖에는 힘센 장정들이 둘러싸고 늙은 피라미들과 여자 피라미와 새끼 피라미들을 가운데에 배치했습니다. 겹눈이는 대열을 이끄느라고 한 눈 팔 새가 없었습니다. 단 한 번 대열이 창포숲을 지나칠 때 어린시절 고통스럽게 살았던 창포숲에 설핏 눈길이 머물렀을 뿐입니다.

‘조용히!’

지느러미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흐르는 물길에 몸을 맡기고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 갔습니다. 가능하다면 용소 근방에 갈 때까지는 이무기가 피라미떼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램은 피라미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이무기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무기는 물결의 파장만으로 피라미떼가 대 이동을 하고 있다는 일을 애초에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었던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닥치고 있는 것을 알고는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입에!’

이무기는 침을 삼켰습니다. 빨간 세모꼴 눈알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이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어림잡고 있는 것은 겹눈이 뿐이었습니다.

‘이무기가 우리 이동을 모를 리 없어.’

‘물결 감각뿐만 아니라 천 년을 살아온 지혜가 있잖아?’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용소 입구에 대열이 당도하여 징검뛰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겹눈이가 자신의 몸을 이무기 앞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십중팔구(열에서 여덟이나 아홉까지)는 살아남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한 몸의 희생으로 피라미가족이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피라미떼보다는 엄마 달눈이가 자기의 희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겹눈이의 이런 비장한 결심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겹눈이의 결심을 눈치 챈 피라미가 있었습니다. 용소 근처에 가까워지자 겹눈이의 안색이 창백해졌습니다. 애써 나타내지 않으려고 해도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겹눈이가 마악 징검뛰기신호를 내리려는 찰나 갑자기 대열이 어수선해지더니 피라미 한 마리가 쏜살같이 용소를 향해 돌진하였습니다.

“앗, 아버지!”

“해눈이다. 해눈이가 용소에 뛰어들었다!”

삽시간에 대열이 흩어질 조짐이 보였습니다.

“전 대원 전진!”

겹눈이의 목소리가 용소를 흔들었습니다.

겹눈이는 흐트러진 대열을 다시 질서정연한 3각편대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3각형 대열의 바깥에 선 장정들이 금방 대열을 정리했습니다. 대열이 정리되자말자 겹눈이의 징검뛰기신호가 떨어졌습니다. 일시에 피라미들은 용소를 날았습니다. 피라미떼의 몸놀림이 어찌나 유연한지 피라미떼의 징검뛰기는 마치 은빛 보자기가 용소 위에 좌악!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무기도 물 밑에서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무기는 갑자기 제 앞으로 돌진해오는 피라미를 덥석 삼키려고 그 큰 입을 크악! 벌리고 고개를 쑥 내미는 순간에 은빛 보자기가 머리 위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 건?’

이무기가 움칫! 하는 순간에 해눈이는 이무기의 이빨에서 한 치 쯤 벗어났습니다. 다시 이무기가 해눈이에게 머리를 돌렸을 때 해눈이는 용소 동쪽의 바위틈에 향해 날아가 듯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무기는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은빛 보자기는 팔랑거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용소를 벗어나버렸습니다. 이무기는 지금 자기가 당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알아챘습니다. 그렇잖아도 빨간 세모꼴 눈이 새빨갛게 변했습니다. 눈동자에 빨간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분노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무기가 몸을 떠는 느낌이 마치 물속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무기는 곧장 몸을 뒤채이며 꼬리로 용소를 내리쳤습니다. 그 꼬리짓에 용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용소 동쪽 바위틈으로 달리던 해눈이가 이무기의 꼬리치기 물결을 정면으로 맞았습니다. 바위틈을 향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거대한 파도에 실린 몸이 자기 의도대로 움직여지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눈이는 물살에 떠밀려 이무기 앞으로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무기의 증오와 복수심에 오금이 저리고 치가 떨렸습니다. 해눈이는 체념하고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겹눈이는 이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아버지 해눈이를 구할 틈이 없었습니다. 곧 이어 비월을 지시했습니다.

‘탁! 탁! 탁탁!’

‘팟! 팟! 팟팟!’

피라미들의 비월 또한 그림 같았습니다. 그 날 밤 등룡폭포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수많은 은빛 화살이 폭포를 거슬러 별동별처럼 흐르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한두 개, 서너 개, 더러는 한꺼번에 여남은 개의 은빛이 화살처럼 빨리 그러나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등룡폭포를 타고넘는 황홀한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피라미의 비월을 본 적이 있나요? 날씨가 잔뜩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 개울의 여울이나 보(물 막음 뚝)를 찾아가보세요. 피라미들이 물을 차고 튀어오르는 징검뛰기와 비월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겹눈이는 비월에서 낙오된 피라미들과 함께 남기로 하였습니다. 아버지 해눈이가 아직 살아만 있다면 목숨을 던져서라고 구해낼 작정이었습니다.

‘아버지, 살아만 계십시오.’

‘아버지 아들 겹눈이가 갑니다.’

겹눈이에게 이무기의 꼬리짓 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거센 파도라 하더라도 겹눈이는 자신있게 해쳐나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겹눈이는 비월에 실패한 피라미들과 함께 용소 밑 작은 물웅덩이에 남았습니다.

 

 

 

8. 반디의 달님 사랑

 

 

등룡폭포에서 은빛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폭포수 위로 날고 있을 즈음 아기반디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작은공원의 헐려버린 동상 받침대 이음새 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던 아기반디는 부드럽고 포근한 빛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코 끝에 알싸한 꽃향기가 퍼지는 것 같은 기분에 눈이 뜨였습니다. 그러나 아기반디는 의식을 되찾자말자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노랑꽃 아가씨채송화의 꽃방에서 자고 있는 줄 착각했던 아기반디는 자기가 곰팡이 냄새나는 동상 받침대의 이음새 틈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만 깜박했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반디는 눈을 비비며 크게 실망하면서도 자기를 감싸고 있었던 부드러운 느낌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아, 달님!’

달님이었습니다. 하늘 한 복판에서 피라미들의 비월을 감탄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달님이 부드럽고 환한 빛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반디는 달님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무엇인가 자기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강한 욕구가 꼬물거리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았습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힘이 반디를 서서히 이끌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어디론가 끌어가는 그것을 아기반디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곰곰이 되새겨 보았습니다.

 

 

‘무엇일까?’

손에 잡히지도 않고 확실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 같은 것, 해결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할아버지에게 묻고 의논하고 했었는데 좋은 의논 상대였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 벌써 며칠째. 생각이 짧은 반디는 한푼이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어렴풋이 느끼기는 하면서도 반디는 그것이 무엇인지모르고 있어서 부쩍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가려운 것 같기도 했습니다. 몸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가슴속에 설레임이 일어나 흥분상태가 계속되기도 했습니다. 꿈이 많아지고 공상이 늘어났습니다. 외로움도 더 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던 혼자라는 외로움과는 좀 달랐습니다. 그것은 슬픔이나 눈물과는 성격이 다른 외로움이었습니다. 마음이 들떠서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서 이야기 상대가 없었으므로 아기반디는 혼자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고만 있었습니다.

‘이 게 무슨 징조일까?’

생전 이런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지만 반디는 자신의 몸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왜 안 오실까?’

반디는 이런 생각을 하며 몸의 여기저기를 움직여 굳어있는 관절을 마디마디 풀었습니다. 굴속 같은 침침한 방을 기어나와 빈 동상 받침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받침대에 떠억 버티고 앉아서 마치 할아버지가 했었던 것처럼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내려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디는 푸르릉! 날개를 털고는 작은공원의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낮은 하늘에 떠서도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생각 때문에 동그라미가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공원의 하늘을 몇 바퀴 돌고는 약간 고도를 높였습니다. 올라갈수록 도시의 불빛은 별빛처럼 반짝거렸습니다. 공원의 높은 하늘을 두 바퀴 째 돌다가 아기반디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은빛 화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등룡폭포를 넘어가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뭘까? 굉장한데!’

반디는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을 모두 동원했으나 등룡폭포를 밑에서 위로 날아넘는 빛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별똥별?’

‘그럴 리가 없지. 별똥별은 거꾸로 날지는 않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은빛 화살들은 꼬리를 물고 등룡폭포 위에서 날고 있었습니다. 한두 개가 함께 나는가 하면 한꺼번에 대여섯 개의 빛이 화살처럼 폭포 위를 날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빛화살!’

‘별똥별!’

생각이 가까워지는 것 같은 데도 확실히 떠오르지 않는 무엇 때문에 반디는 안달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윤곽이 드러날 듯 드러날 듯하면서도 안개 끼인 것처럼 머리속이 흐렸습니다.

‘뭘까?’

‘저 게 무엇일까?’

 

 

반디는 가슴속에 품은 의문을 되풀이하여 되씹 듯 작은공원의 하늘을 빙빙! 돌았습니다. 아기반디가 낮은 하늘을 날고 있는 동안에도 은빛 화살은 끊임없이 폭포 위를 날았습니다.

‘아무래도 알 수 없는 걸.’

반디는 또 할아버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쓸모가 있다.’

‘저 같은 털복숭이벌레도요?’

‘털복숭이 건 민둥이 건, 아름답거나 미운 모든 것들. 심지어는 더럽고 시답지 않다고 외면당 하는 것들까지도 모두 제 몫의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야.’

‘저 같은 못난이가 무슨 일을?’

‘그렇지 않다. 세상 모든 것은 모든 제 몫의 임무를 가지고 태어난 거야.’

반디의 귓가에 할아버지의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딜 가신 것일까?’

‘내게는 무슨 사명이 주어졌을까?’

며칠 전과는 달리 반디는 자신의 못생긴 모습에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이 바뀌자 좌절감이나 모멸감은 사라졌습니다. 다른 세상이 보였습니다. 노랑꽃 아가씨채송화에게서 받았던 수모와 좌절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반디가 생각을 바꾸자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천국처럼 보이지만 어두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되면 세상 은 바로 지옥이지.’

할아버지는 이것이 생각의 차이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아기반디의 생각은 흩어졌습니다. 그런저런 생각에 잠겨 좀 더 높이 날아올랐더니 도시의 불빛이 더 찬란하게 보였습니다. 도시는 은하수처럼 길게 누워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빛?’

도시의 반짝이는 빛에서 반디의 가슴에 빛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빛! 달님의 포근한 빛, 은빛 화살, 도시의 불빛과 별똥별들이 주욱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상작용도 연상작용으로 끝나버렸습니다. 반디는 마지막으로 도시의 하늘을 크게 한 바퀴 돌고는 작은 공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또 동상 받침대에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결국은 황학산 마루에 해님의 굵고 환한 빛이 퍼져나오는 걸 보면서도 생각에 잠긴 반디는 일어설 줄 몰랐습니다.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황학산 마루 위로 고개를 내민 해님이 반디를 보았습니다.

“넌 좀 맹랑한 애로구나.”

해님의 첫 마디가 이랬습니다.

“능청스럽게 턱을 다 괴고. 뭘 하는 거니? 너 같은 꼬맹이가.”

“좀 생각할 게 있어서요.”

“얘, 털복숭이 너 같은 애도 생각이 있는 거니?”

‘아무리 미물이라도 ….’

반디는 곧 이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으나 해님이 이해할 것 같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해님처럼 맨 날 높은 데서 낮은 곳만 내려다보고 사는 이들은 자존심이 대단해서 설득하기가 어려우리라는 걸 반디는 알고 있었습니다.

“난 말야. 이 빛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지.”

 

 

해님은 제풀에 깔깔 웃고는 또 머리를 흔들며 성큼 하늘 복판으로 올라가버렸습니다.

‘뭘까? 무엇일까?’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풀리지 않은 의문 때문에 반디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으련만 할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은 것이 벌써 며칠째 되었습니다.

반구(둥근 공을 절반 잘라놓은 형태)처럼 동그란 하늘 높이 소리개 한 마리가 날고 있었습니다. 소리개가 날개를 활짝 펴고 상승기류를 타는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상승하거나 하강할 때 날개의 각도를 비스듬히 눕혀 기류를 타는 모습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황홀하다고 해야 옳습니다. 소리개가 아주 높이 날아올라 해님 가까이 다가서면 소리개는 한 점 빛이 되었습니다. 까만 점이 빛나는 하얀 빛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반디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소리개가 나는 모습을 보면서 소리개와 자신을 혼동한 것입니다. 저 해님 가까이 하얀 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날개를 퍼덕거리며 나는 것들이 하찮게 보였습니다. 갑자기 딴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반디는 무모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굳어지자 동상 받침대 굴로 기어 들어가 한 잠 달게 잤습니다.

일어나니 밤이었습니다. 마침 달님이 어깨춤을 추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황학산 기슭에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푸르릉! 푸르릉! 날개짓을 해보았습니다. 날개털은 반짝거리고 날개에는 힘이 실려 있었습니다. 단숨에 하늘로 뛰어올랐습니다. 생각한 것보다도 하늘은 훨씬 더 어두웠고 장애가 많았습니다. 갑자기 강한 바람에 밀려 아기반디는 몇 10미터나 곤두박질치기도 했습니다. 느닷없는 기류에 휩싸여 가고싶은 곳과 정반대 방향으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바람자락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으로 날려갈 때 아기반디는 방향을 바로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바람 앞에 아기반디는 한 점 티끌과 같았습니다. 기류 위의 반디는 태평양 파도 위의 한 조각 나룻배와 같은 처지였습니다. 더구나 상승기류는 반디가 보았던 것처럼 부드럽지도 않았고 규칙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유연한 소리개의 날개짓만 보고 그 걸 흉내내려고 하였다는 자체가 큰 오산이었습니다. 간신히 상승기류의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역시 부드럽지도 규칙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상승기류의 흐름은 마치 성난 파도 같았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늘 수조차도 없었습니다. 반디가 상승기류를 타는 것이 아니라 상승기류가 아기 반디를 마음대로 싣고 다녔습니다. 멀미가 나고 어지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반디는 간신히 붙잡은 상승기류에서 내려와버렸습니다. 소리개가 하늘을 유영하는 모습을 구경하였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생각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차이가 많지.’

할아버지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더냐, 비상 연습은?’

‘두렵고 무서운 경험이었어요.’

‘목표를 이루려는 뜻을 지녔으면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반디는 또 턱을 괴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환청(실제의 소리가 아닌 상상의 세계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고난을 겪고 하는 비상연습은 가치가 있을까?’

‘뜻을, 너무 뜻에 집착하다가는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뜻을 많이 부여할수록 의지가 줄 게 마련.’

‘이것이, 비상이 내 할 일일까?’

‘의지가 있다면. 신념과 의지가 있으면 그 뿐.’

깜짝 놀랐습니다. 환영(상상으로 본 모습)과 한 이야기를 아기반디는 할아버지와 실제로 했다고 착각하고는 주위를 살폈습니다. 할아버지는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아기반디는 그 날 하루 종일 소리개의 비상을 보면서 또 하늘을 나는 공상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가물거리며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하늘의 기류는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여러 겹의 베짯치(처음 짜놓은 형태의 베 원단)들을 겹쳐놓은 것처럼 여러 갈래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밤이면 난기류가 많아서 기류들이 서로 꼬여 종잡을 수 없이 흘렀습니다. 꼬인 기류들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일도 흔했습니다. 높은 하늘에서는 하늬바람이 불고 있는데 중간하늘에서는 마파람이 흐르고 그 밑의 더 낮은 하늘에서는 높새바람이 설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하늘에서라도 이렇게 바람의 갈래가 많았으므로 기류를 탈 때는 이 바람 끝을 잘 타야 합니다. 특히 상승기류를 탈 때 이 바람에서 저 바람으로 옳겨가야 할 경우 조심하지 않으면 치명적이었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일은 약과입니다. 기류에서 옳겨가다가 손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대로 곤두박질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류를 익숙하게 타기만 하면 힘 덜 들이고 마음껏 하늘을 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날짐승들은 기류를 타는 비법을 얻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물론 아기반디 같은 곤충이 기류를 타려는 일은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소리개는 낮은 하늘에서부터 나래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날개를 45도 정도 비스듬히 기울여 상승기류를 탑니다. 소리개가 상승기류를 타는 모습은 숙달되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멋지게 보였습니다. 소리개는 하늘을 나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비상에 뛰어났습니다. 비상뿐만이 아니라 기류의 끝에서 기류의 끝으로 슬쩍 이어가는 솜씨는 정말로 천하제일이었습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세련된 몸짓이었습니다. 탁월한 재주였습니다. 반디는 또 소리개가 난기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유심히 살폈습니다. 난기류에서 소리개는 꼬리날개를 사용하였습니다. 꼬리깃을 부챗살처럼 펴서 난기류의 여러 갈래 바람을 막고는 슬쩍 상승기류 속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혀!’

‘신기야, 신기에 가까워!’

반디는 소리개의 숙련된 비상에 감탄하였습니다. 높은 하늘에서 소리개는 까만 점이 되었는데 그 점이 해를 등지고 서자 하얀 빛으로 변했습니다. 소리개는 그것을 알고 있는지 두세 번 더 반짝거리는 흰 빛으로 변했습니다.

‘소리개의 비상도 사명감 때문일까?’

‘나처럼 소리개도 고민을 하는 걸까?’

할아버지는 세상 모든 것들이 제각기 제 몫의 사명을 타고났다고 했습니다. 며칠 째 계속되는 이런 물음을 안고 아기반디는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번의 비상으로 몸이 천 근 같이 무거웠습니다. 아기반디는 몸을 눕히자말자 곧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꿈속에서는 별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노랑별, 빨강별, 파란빛을 내는 별들이 서로 자기 빛이 더 좋다고 뽐내고 자랑하는 꿈이었습니다.

 

 

‘노랑빛이 으뜸이야!’

‘파랑빛은 보석보다 더 아름다워!’

‘뭐니 해도 빛이라면 빨강이지!’

반디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서로 빛을 주려는 별들에 싸여서 무슨 빛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다가 별들이 갑자기 채송화로 변했습니다. 노랑꽃 아가씨채송화의 아니꼬운 듯한 눈빛이 보였습니다. 그 눈빛에서 도망치려고 애를 쓰다가 반디는 눈이 뜨였습니다. 밤이었습니다. 같은 꿈을 이틀째 꾸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의 변화도 그렇지만 이렇게 이상한 징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기반디에게는 풀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제였습니다.

푸르릉! 하늘을 날았습니다. 제법 숙달된 몸짓이었습니다. 한참 오르다 보니 멀리 황학산 자락에 걸려 있는 달님이 보였습니다.

‘달님도 늦잠을 자나?’

반디는 달님을 향해 나래짓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요즘에는 달님이 좀 이상해졌습니다. 달님이 자꾸 야위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얼굴빛이 전보다 창백한 것 같습니다. 몹쓸 병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야위어가는 달님이 걱정되었습니다. 오늘은 눈에 확실히 띌 정도로 수척해지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달님은 태연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반디가 더 안달이었습니다.

상승기류를 탄 반디는 대충 눈가늠으로 자기가 하늘 중간 쯤 날아올랐을 거라고 짐작하였습니다. 기류에 몸을 맡기고 눈을 아래로 돌렸습니다. 작은공원은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빛은 멀리서도 뚜렸합니다. 도시의 불빛이 보입니다. 도시의 불빛은 마치 한 움큼 빛싸라기를 모아놓은 것처럼 반짝거립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희무끄레한 띠처럼 떠오르는 것이 드들강입니다. 등룡폭포의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황학산 기슭에도 한두 개 불빛이 반짝거립니다. 공사판 불빛입니다.

땅에 정신이 팔렸다가 다시 하늘에 눈을 돌렸습니다. 금새 좌악!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거렸습니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어, 오리온과 거문고, 작은곰자리. 아, 저 건 북극성.’

아기반디가 알고 있는 별자리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보는 별은 땅에서 올려다보는 것과 다릅니다. 훨씬 선명하고 밝습니다. 휘황찬란하다고 할까요? 보석처럼 반짝이는 고운 색깔은 이 세상의 빛이 아닌 것처럼 신비합니다.

‘저 건 백조.’

‘저기 저 건 전갈자리.’

한참 볕을 세고 있는데 불쑥 달님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달님은 거의 반쪽이 되어 있었습니다.

“많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별로 아픈 데 없는데. 왜?”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원래 그래.”

“원래? 엊그제만 해도 토실토실 했잖아요?”

“글쎄, 그게 아니야.”

참고 견디는 것이 달님의 마음가짐인지도 모릅니다. 들어내놓고 살지 않으려는 겸손함인지도 모릅니다. 반디 자기보다 달님 본인이 더 태연하다는 건 이해하기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넌 첨 별난 애로구나.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지?”

“상승기류를 탔어요.”

“기류를 다 탈줄 아니? 너 만한 꼬맹이가, 기특한 일이다. 정말 기특해!”

“마음먹기에 달렸다던데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

“할아버지요. 한푼이할아버지.”

“그 비렁뱅이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달님도 아셔요? 우리 할아버지를 ….”

“세상에서 내가 모르는 건 없다.”

“할아버지가 요 며칠 째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달님의 할아버지 얘기에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보셨나요?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멀리 가셨나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무엇부터 먼저 대답해 주랴.”

달님은 아기반디의 숨가쁜 질문을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좀 차근차근 물어라. 할아버지는 잘 계시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어디 계세요? 무얼 하시느라 돌아오지 않죠?”

“그 건 … 곧 돌아오실테니까 그 때 물어보렴.”

달님은 시원찮게 말꼬리를 감추었습니다.

달님은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냉정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겉으로 보는 달님이 지닌 부드럽고 온화한 빛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해님은 자만심과 자부심이 너무 밖으로 들어나서 따뜻한 마음씨에 비해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달님은 빛은 부드러웠으나 마음이 너무 냉정한 것 같았습니다. 해님에게는 뜨거운 정열과 큰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많이 베풀고 골고루 나누어주는 넉넉한 가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만큼 욕심이 대단해서 빛과 볕 이외 다른 것은 일체 베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밝은 빛으로 감추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통째로 들어내놓기 좋아하는 달님은 좀체 가슴을 들어내놓지는 않았습니다. 감정이 풍부한 대신 냉정한 이성 때문에 한 점도 가슴속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해님에 비해 차분하고 침착하여 지혜롭게 살아갔으나 차고 날카로왔습니다. 빛은 있었으나 볕이 없었습니다. 한결같이 자신을 태워 모든 생물들에게 골고루 공덕을 베푸는 해님의 모습이 열정을 지닌 아버지의 사랑이라면 달님은 감싸고 품어안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오늘 반디는 달님의 어깨가 넘어다 보이는 곳까지 날았습니다. 달님은 웃고 있었지만 야윈 모습 때문에 반디의 눈에는 눈물조차 글썽거렸습니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돌아와서는 또 달님의 꿈을 꾸었습니다.

9. 법과 저금통장

 

 

한푼이할아버지가 늘 자리를 펴고 앉아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아름이수녀님은 시청 계단을 오르면서 한 번 더 그 자리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수녀님은 곧장 시장실로 들어섰습니다.

“웬일이십니까? 수녀님.”

“시장님 좀 뵈려고요.”

“고아원에 곤란한 일이?”

“아닙니다. 고아원 문제가 아닙니다.”

“고아원 문제가 아니라면 ….”

시장님은 수녀님에게 의자를 권했습니다. 수녀님이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가슴이 흥분

되어 가라앉히려는 것 같았습니다. 시장님이 킁킁! 기침을 했습니다. 조바심이 난 것입니다.

“한푼이할아버지 말입니다.”

“한푼이영감?”

시장님은 의외라는 듯 얼굴에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감옥에 가시게 되었다죠?”

“그래요.”

시장님은 느긋하게 대답했습니다.

“공사장 자재창고에 불을 놓았어요. 이유는 끝내 입을 다물었지만 불 지른 걸 자백했어요.”

“몇 년이나 감옥에 가게 될까요?”

“한 이삼 년. 털보사장과 공사감독이 화가 많이 났어요. 그 사람들이 너무 화를 내서 는 ….”

“혹, 벌금형 정도는 안 될까요?”

“벌금형은 우리도 거론해봤지. 벌금형을 때리고 집행유예(교도소에 보내지 않고 형기를 마침) 를 받게 하려고 했는데 ….”

수녀님의 애원하는 눈빛이 시장님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장님은 수녀님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어서 눈을 밖으로 돌리며 말했습니다.

“벌금형은 돈을 내야 합니다. 그 영감 돈이 많다고 소문만 자자했지. 똥구멍이 빨개.”

시장님은 얼른 수녀님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수녀님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아차! 실수.’

‘점잖은 수녀님 앞에서 이게 무슨 망발이람.’

계면쩍어서 머리를 긁으며 시장님이 말을 바꿨습니다.

“영감은 빈털털이었어요.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한 푼도 돈이 없었어. 벌금을 내지 못하면 집 행유예는 곤란하지요. 신문기자들이란, 못 믿을 사람들인 줄 알았지만 그 사람들 엉터리였 어.”

괜히 화살이 신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시장님이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아냐. 우리가 모두 조사해봤어. 한 푼도 없었어. 땡 전 한 푼도 저금통장조차도 없었어요.”

수녀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시장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수녀님은 감정을 억제하려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이수녀님이 운영하는 고아원은 처음부터 정부나 사회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수녀님 개인이 고아원을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헌 건물을 빌어쓰는 일은 가까스로 얻어냈지만 고아원 운영비를 타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날로 늘어가는 아이들 때문에 운영하기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고아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자 지방신문에 몇 줄 기사가 실렸습니다. 고아원기사가 신문에 실렸던 날 석양 무렵 거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고아원을 찾아 왔습니다. 한푼이할아버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별 말 없이 통장 한 개를 수녀님 앞에 내놓고 돌아갔습니다. 놀라운 일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수녀님은 할아버지가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리며 걷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두었습니다.

놀랍게도 통장에는 상상을 넘는 많은 돈이 예금되어 있었습니다. 이 통장으로 고아원 살림은 어려움이 풀렸습니다. 그 때부터 할아버지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통장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언제나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 고아원을 찾아와서 통장 한 개를 놓고 별 말도 없이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시장님, 그 통장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돈이 예금되어 있었습니다. 1년 365일 예금을 하 였다는 말입니다.”

시장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고계셨습니까?”

“아뇨. 그러나 알만은 합니다.”

“어떻게?”

“나만 알지요.”

시장님과 한푼이할아버지는 한 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다고 합니다. 나이는 시장님이 할아버지 보다 너댓 살 위였습니다. 어린시절에 깨복쟁이(발가벗고 자란, 어린시절의 허물없는)친구 사이였고 커서는 좋은 선후배였는데 청년이 되었을 때 세계 제 2차대전이 일어났습니다. 학도병으로 끌려간 두 사람은 운 좋게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시장님은 전쟁 뒤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살아있었다는 풍문이 돌았으나, 같이 종군한 사람들의 말을 빌면 종전이 되자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으나 할아버지는 열대 섬나라에 남기를 희망했다는 것입니다. 소식이 끊어지고 생사를 모른 체 20여 년. 어느 날 불쑥, 할아버지는 심하게 절뚝거리는 왼쪽 다리를 끌며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고향 마을은 작은 도시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변한 것은 할아버지 가족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남쪽 섬나라에서 사는 동안 고향 마을은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을 겪었는데 전쟁 통에 할아버지의 가족은 한 사람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장님은 딱한 처지의 할아버지를 가족처럼 돌보고 취직도 시키고 장가도 들여 살아보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할아버지는 비렁뱅이의 길을 택했습니다. 아무리 말리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으므로 끝내는 시장님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왜 비렁뱅이의 길을 선택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왜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일생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 푼 줍쇼.”

“한 푼 적선합쇼.”

할아버지는 그 날부터 이 도시에서 동냥을 구걸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수녀님, 그 영감의 사생활에 대해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수녀님에게 처 음입니다.”

수녀님이 눈에 뜨이지 않을 만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일이었습니다.”

섣달 그믐께에만 정기적으로 찾아오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고아원에 나타났습니다. 당황한 수

녀님 앞에 할아버지는 통장 두 개를 내놓았습니다.

“이제 당분간 들리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이 한 마디 말을 하고는 돌아나가버렸습니다. 놀란 수녀님이 통장을 펴보았더니 한 개는 하루도 빠짐없이 예금된 통장이었고 다른 한 개는 목돈이었다 합니다.

“목돈은 일생동안 조금씩 저축한 돈인 것 같았습니다.”

수녀님이 그 통장 두 개를 시장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이 돈을 보석금으로 할아버지를 집행유예시켜주십시오.”

“대신 살 수만 있다면 … 시장님, 제가 할아버지 대신 감옥엘 가겠습니다.”

수녀님 볼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시장님은 또 킁킁! 콧방귀 소리를 내며 눈길을 피했습니다.

“알았습니다. 통장은 모두 가져가십시오.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시장님이 호기있게 말했습니다.

 

 

     사랑의 집

     이 고아원은 얼굴 없는 분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고아원 뜰에 세워진 팻말이 새삼스럽게 시장님의 머리에 스쳤습니다. 수녀님이 돌아가자 시장님은 창가로 가서 차일을 걷고 도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은 맑고 도시는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거리를 걷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활기에 넘쳤고 차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경쾌한 음악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시장님은 비서를 불러 보석금을 지불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비서는 무슨 돈으로 보석금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몰라 두 손을 비비고 그냥 서 있었습니다. 한참만에야 비서가 아직 물러가지 않은 걸 발견한 시장님이 호통을 쳤습니다.

“자네 뭘 꾸물거리고 있나!”

“네. 저 ….”

“사람이, 젊은 사람이 저렇게 굼떠서야 원. 뭘 해 먹고살지?”

“보석금은 얼마나 ….”

“보석금 갖다주고 영감 풀어주라고 해!”

“보석금은?”

“보석금? 내가 깜빡했군.”

 

 

시장님은 주머니에서 수표책을 꺼냈습니다. 수표책을 펼쳐놓고 금액을 적어넣으려던 시장님이 다시 허리를 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는 눈치더니 다시 수표책을 폈습니다.

“뭘 잊으셨습니까?”

보다 못해 비서가 참견을 했습니다.

“자넨 알 바 아냐!”

시장님이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윽고 수표책을 다시 펼쳐서는 이름을 써서 조심스럽게 접더니

다시 한 번 펴보고는 다시 접어 비서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비서는 그 수표가 엄청난 액수일거라고 지레짐작을 했습니다. 재빨리 시장실을 나온 비서는 가만히 수표를 펼쳤습니다. 수표를 들여다보는 비서의 눈망울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멍! 하니 놀란 비서는 뜀박질하는 아이들 한 무리가 자기 몸을 부딪칠 듯 스치며 시장실로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장님, 큰 일 났습니다!”

아이들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시장님에게 매달렸습니다.

“뭐가 큰일이냐. 큰일은 이미 내가 겪었다.”

아이들은 시장님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했습니다.

“벌써 알고계셨나요?”

“음, 알고말고. 3백만 원이 어디 작은 돈이냐?”

“3백만 원요?”

“음, 아냐 아냐. 너흰 모른 일이다.”

시장님은 아이들에게 속을 들여다보인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이 걸 보세요.”

“물고기 아니냐?”

“드들강 물고기예요.”

“쪽대질(쪽대라는 그물을 사용하는 고기잡이 방법 중 하나)을 했니? 쪽대질은 법으로 금지하 고 있다잖아!”

시장님의 호통소리가 쩡쩡! 울렸습니다.

“아니예요. 건졌다니까요?”

“건져? 어디서?”

“윗보예요.”

“물고기들이 죽었더란 말이냐?”

“예, 무지무지 많이 죽었어요. 물도 시뻘겋게 변했구요.”

“수문을 막아야 해요. 중보 수문을 막으라고 지시하세요!”

시장님이 부랴부랴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수리조합을 불러 밑도 끝도 없이 중보 수문을 빨리 내리라고 숨가뿐 소리로 명령했습니다.

“됐다! 나랑 같이 가 보자.”

시장님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급하게 시청을 뛰어나왔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오리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몇은 앞서 내닫고 있고 다른 몇이 시장님을 끌고 밀고 있었습니다.

‘웬일로 저렇게 바쁘시담.’

‘어디 불이라도 났나?’

 

 

 

오리걸음으로 뒤뚱거리는 시장님을 보며 시민들이 소곤거렸습니다. 시장님은 뒤뚱거리며 달리느라고 숨이 멎을 것 같았으나 주저앉을 새도 없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드들강은 시뻘겋게 황토물로 혼탁해져버렸습니다. 죽은 물고기들이 허옇게 배를 뒤집고 물 위로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부들숲에도 창포숲에도 죽은 물고기들이 허옇게 떠 있

었습니다. 메기, 잉어, 가물치를 비롯하여 장어, 미꾸라지는 물론이고 버들붕어, 각시붕어들도

모두 둥둥 물결에 밀려다녔습니다. 자세히 보았다면 드들강의 물고기가 씨가 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각시붕어뿐만 아니라 실낱같은 눈쟁이까지도 모두 죽었으니까요. 다행히 수문이 닫혀서 중보 밑으로 황토물이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시장님은 어안이 벙벙

한지 시뻘건 황토물과 허옇게 떠다니는 물고기들만 넋을 빼앗긴 듯 보고 있었습니다. 망연자실(무슨 일에 정신을 빼앗겨 아무 것도 모름)한 표정으로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던 시장님이 갑자기 끙! 하고 신음을 하더니 곧장 황학산으로 접어드는 강둑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덩달아 시장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시장님은 달리면서 계속 고함을 질렀습니다.

“헉헉! 중지. 헉! 중지, 중지!”

아이들이 시장님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르며 고함으로 복창했습니다.

“중지! 중지! 중지! 중지!”

마침 공사감독이 털보사장을 만나려고 사무실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남생이바위에 폭약장치를 끝냈다는 보고를 하러 오는 중이었습니다. 사무실 문을 밀치려던 공사감독이 멀리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나는 쪽을 내려다보니 시장님이 아이들과 함께 뛰고 있었습니다.

‘참, 시장님도. 아이들은 끔찍히도 좋아하시지.’

공사감독은 시장님이 아이들과 어울려 공사현장을 시찰하러 오는 걸로 판단하였습니다. 시장님도 공사감독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시장님을 따라 아이들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것을 본 공사감독이 답례로 마주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헉 중지!가 뭐지?’

‘무슨, 요새 유행하는 노래 가사 같긴 한데 ….’

공사감독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자네 문을 들어서다말고 뭘 하나!”

털보사장이 고함을 쳤습니다.

“아, 네. 시장님이 오고 계십니다. 아이들과 함께 ….”

“뭐! 시장님께서?”

“예, 저기요. 아이들이 이제 시장님의 등을 밀고 있는데요.”

털보사장은 이마를 찡그렸습니다. 시장님은 공사현장의 두통거리였기 때문입니다. 나타날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았습니다. 잘 한다는 칭찬이 없는 대신 올 때마다 꾸중을 한 보따리씩 풀어놓았으므로 공사장 인부들까지도 시장님이 공사장에 오는 일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털보사장은 뭔가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급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금 당장 폭파해! 어서 빨리! 시장님 오기 전에 발파 스위치를 눌러버려!”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급하고 빠른 말투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공사감독을 털보사장이 거칠게 밀어냈습니다.

“빨리 가라니까! 스위치를 눌러! 폭파 스위치를 당장!”

그제서야 공사감독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공사감독이 허둥지둥 사무실 문을 박차고

 

 

튀어나왔습니다. 쾅! 소리도 크게 문을 밀고나온 공사감독은 그만 쿵! 주저앉을 뻔 했습니다. 문 앞에 선 시장님과 박치기를 할 뻔했기 때문입니다.

“중지! 중지!”

시장님은 밑도 끝도 없이 중지! 라고만 말했습니다. 공사감독은 시장님의 중지! 를 남생이바

위 폭파 중지로 알아먹었습니다. 그래서 엉거주춤하고 서 있었습니다.

‘콩떡 같이 한 말을 찰떡 같이 알아먹는다.’

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생겨난 말이었습니다.

“사장!”

사무실에 들이닥친 시장님의 흥분한 모습에 털보사장이 기가 질렸습니다.

“웬일이십니까? 시, 시장님.”

“드들강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어요. 사장은 알고 있나?”

뭔가 불길한 예감으로 큰일이 터진 줄 알았던 털보사장은 가슴을 내리쓸었습니다.

“물고기 말입니까? 하하, 시장님도. 그까짓 물고기 몇 마리 죽었기로서니 웬 호들갑이 그리 많습니까?”

털보사장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게 아니고. 드들강이 온통 흙탕물 투성이라니까.”

“산을 깍고 내를 매웠으니 흙탕물이 일어날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니지!”

시장님의 말소리가 단호했습니다.

“물고기가 죽으면, 뭐드라. 결국 도시가 죽고 도시가 없어지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소?”

시장님의 이야기는 조리가 없었습니다.

“물고기가 죽는다고 도시가 죽다니요. 그게 무슨 이론입니까?”

시장님은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평소에 환경보전단체들이 한 말을 귓등으로 흘렸기 때문입니다. 시장님은 난처했습니다.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아이 하나가 시장님의 귀를 잡아당겨 소곤거렸습니다. 귓속말을 듣고 있는 시장님의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환경보전단체들이 말했는데 … 강물의 오염은 물고기를 죽이고, 새들을 죽이고, 육식동물을 죽이고, 결국 사람을 죽인데요.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파괴되면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평 범한 진리야.”

시장님은 당당했습니다. 말을 마치자 귓속말을 한 아이를 찾아 눈맞춤을 했습니다. 아이가 밝게 웃으며 왼쪽 눈을 찡긋하며 남들은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사를 하자면 그런 희생 쯤 각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장이 언제 드들강이 시뻘겋게 될 거라고 보고한 적이 있나?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물고기 씨가 마를 거라고 정직하게 보고했나말야!”

“맞습니다. 보고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공사설계에 물고기까지 그려넣을 순 없잖습니까?”

털보사장은 이판사판(어차피 죽게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밀어부치고 있었습니다. 시장님의 평소 말투가 튀어나왔습니다.

“고얀 사람! 자넨 뉘게 그렇게 배웠나? 어른들에게 그렇게 촐랑촐랑 말대꾸하는 버릇은, 그 버 르장머리가 뭔가? ”

 

- 55 -

 

 

한 마디도 지지 않겠다는 듯 항변을 하던 털보사장의 입술이 그만 꽉 붙어버렸습니다.

“하여튼, 그렇게 된다면 되는 줄 알아야지!”

시장님은 내려오면서도 고얀! 고이헌! 하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작은공원을 지나쳐 오는데 한푼이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받침대 위에 가부좌(불교에서 하는 명상 방법. 양 발을 양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하는 명상)를 틀고 앉아 있었습니다. 시장님은 일부러 작은공원을 피해서 돌아 걸었습니다.

시청에 돌아오니 또 방문객들이 진을 치고 시장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낯익은 환경보전단체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장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물고기가 죽으면 결국 사람도 죽게 된다는 논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보시오!”

뜻밖의 관심에 환경보전단체 사람들이 흥분했습니다. 관심은커녕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기 일쑤였었는데 오늘은 시장님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환경보전단체 사람들이 신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렇군 그래. 그렇게 설득해야 하는 건데. 난 알았으니 여러분들이 털보사장을 좀 설득 해 주시오. 도대체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결국 당신과 당신 가족도 죽게된다 이렇게 말 이요. 설마 제 목숨까지야 돈에 팔겠나?”

환경보전단체 사람들이 의기양양하게 돌아갔습니다. 시장님은 주저하지 않고 온천수 공사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물고기가 죽으면 결국 사람도 죽는다」

 

이런 제목의 공고문이 도시의 게시판마다 붙었습니다. 임시반상회가 열렸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현명한 결정을 내린 시장님 편이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

 

 

이렇게 시작된 글에는 이런 말도 들어 있었습니다.

 

 

「남생이바위는 이 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 시민들의 전설이었습니다. 정신의 고향이었습니다. 남생이바위가 우리 드들강을 지키고 있는 한 우리는 물 걱정이나 가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생이바위는 우리 시민들의 정신적 고향입니다. 부자 도시를 만들어 보겠다는 우리 생각이 잘못이었습니다. 부자는 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습니다.」

 

 

“아시같이(처음처럼,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시오!”

시장님은 부하 직원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드들강의 황토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보 아래 강물에는 황토물이 더 이상 흘러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웅덩이에 피해 있는, 비월을 실패한 겹눈이와 동료들도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생이바위가 폭파 위기를 넘기고 온천수 개발은 막았으나 드들강이 벌건 황토물로 뒤덮이

고 물고기들이 씨가 마른 뒤로 이 도시 사람들은 요술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변해갔습니다.

 

 

 

 

 

10. 마음을 잃어버린 도시 사람들

 

 

한푼이할아버지가 유치장에서 풀려나오자말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들숲을 둘러보는 일이었습니다. 그 많던 피라미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씨가 마른 것 같았습니다. 창포숲에는 몸집이 다른 녀석들의 서너 배는 됨직한 피라미가 있었는데, 피라미들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온 걸 반디가 알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풀려난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굴속에서 나오다 보니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반디가 반가와서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오냐, 반디로구나!”

“그 새 어디 갔다 오셨어요? 얼마나 기다렸다고 ….”

“고맙구나. 이 할애비를 다 기다리는 너 같은 애도 있고.”

“그럼요, 그럼요.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 달님께 물어보세요.”

“물어보잖아도 다 안다. 지극한 네 정성 ….”

“아신다면 왜 이리 늦으셨어요? 무엇 때문에 ….”

“음, 멀리 좀 다녀올 일이 있었다. 헌데 넌 그동안 무얼 하고 지냈니?”

“비상훈련(날아다니는 연습).”

“나는 걸 연습했단 말이냐?”

“예. 지금은 무척 높이 날 수 있어요. 중간하늘 넘어까지도요.”

“그렇게나 높이? 너무 높이 날았구나. 위험하진 않았니?”

“생각하기보다는, 무척 어려웠어요. 죽을뻔한 고비를 넘은 것도 여러 번이었고요.”

“봐라, 분수를 지켜야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누군가 절 하늘로 끌어올리는 것 같아요. 무엇인가 제게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자연히,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너무 조바심내지 말아라.”

“비상연습이 못마땅하세요?”

“쓸데없는 일에 다칠까 두려워서 그렇다. 높이 날다보면 위험이 많지 않겠니?”

“지금 제 수준으로는 중간하늘 너머까지도 문제없거든요.”

반디의 말투는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기류도 무섭지만 새들도 너희들은 노리는 무서운 적이란다.”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워하는 것은 반디가 새들 쯤이야 하는 태도입니다. 새들보다 더 무서운 적은 반디의 자만심으로 가득 찬 태도였습니다.

하늘에는 새들의 하늘이 있었습니다. 참새, 박새, 까치들이 가장 아래하늘을 날았습니다. 하늘의 중간 길은 제비나 기러기, 청둥오리들과 같은 철새들이 이동하는 길이었습니다. 맨 위의 하늘은 소리개의 하늘이었습니다.

 

 

 

“뭘 하러 그 높은 데까지, 일부러 위험을 불러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는 행동이다.”

‘뭘 하러?’

반디 자신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걸 모르겠어요.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맹랑하군.’

“무작정 날아올랐단 말이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

할아버지도 잘라 부러지게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시작된 비상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 위험한 일을 격려하기도 곤란한 입장이었습니다. 반디 자신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인가 끌려서 할 수 없이 하고 있다고 한 말을 할아버지는 대강 알아듣기는 알아들었습니다.

“제 의지로도 다스리기 불가능한 힘이 절 이끌고 있다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의지력이 부족한 탓이다. 신념이 뚜렷하지 못하면, 일생을 망치는 일도 더러는 보았지.”

“제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반디는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안타까왔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할아버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믿으려 들지 않는 반디의 완강한 생각 때문에 거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끝내 혀를 끌끌 차더니 언제나 그렇듯 턱을 괴고 눈을 지긋이 감아버렸습니다. 반디의 안타까운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도 자상하게 이해해주시던 할아버지가 오늘처럼, 이번 일처럼 완강하게 반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막연한 느낌뿐이었으므로 괴롭기만 했습니다.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자신을 어디론지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6하원칙에 의해 논리적으로 어떤 일이든지 누가, 무엇을, 어디서, 왜, 언제, 어떻게 라는 형식의 틀에 맞추어내야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들과 사실 그리고 진리만 허용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도시에 학교가 세워지고 수학과 과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게 되면서부터는 모든 것은 원리와 원칙을 찾았고 법칙화되었습니다. 애매모호(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되는)한 일들은 없수임을 당했습니다. 집을 짓는 일도 다리를 가설하는 일도 수학과 과학이면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과학입국(과학을 발전시켜 나라를 잘 살게 함)」

 

 

학교에는 커다랗게 구호가 나붙었습니다. 과학경연대회와 수학경시대회들 행사가 성행하였습니다. 컴퓨터경진대회에는 도시의 학생들 1/3이 모여들었다고 떠들썩하였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배우기 위하여서는 서양학문을 배워야 했으므로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모든 것들이 서양화되어 갔습니다. 새로 세워지는 건물은 태반이 양옥이었습니다. 일부러 한옥을 헐고 이태리식과 프랑스식 건물로 바꿨습니다. 양복을 입은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저고리와 치마 대신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었습니다. 바지저고리라는 말은 무식한 사람이라는 듯으로 쓰였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자랐고 버터, 피자, 마요네즈 등의 음식만 먹고도 무섭게들 자랐습니다. 근년에 키가 5 센티미터 더 늘었다고 놀라면서 식생활을 서양식으로 개선하여 이룬 성과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상품 이름을 지을 때는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초등학생이 사용하는 학용품들도 모두 영어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심지어는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에게도 서양 이름을 붙여

‘메리!’

‘존!’

하고 불렀습니다. 비합리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없어졌습니다. 맨 먼저 서낭당이 헐리고 신목(신으로 모셔졌던 나무, 마을의 당산나무)을 베어냈습니다. 동네 어귀를 지키고 있었던 천하대장군은 도끼로 패서 불쏘시개가 되었습니다. 점쟁이와 무당은 미신 타파에 몰려 쫓겨났습니다. 삼시랑과 미륵님도 사라졌습니다. 불교까지도 천대를 받아 부처님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천도교도 유교도 뒤로 물러나 앉아야 했습니다.

‘비과학적인 것을 몰아냅시다!’

‘미신을 타파합시다!’

제사지내는 일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주를 모시는 일을 우습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시조가락을 읊거나 타령조를 내리뽑으면 시골뜨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동네 아이들에게 야구가 최고 놀이로 자리를 잡아가자 윷놀이나 자치기, 고누놀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학교에서는 한국화 대신 서양화를 가르쳤고 국악 대신 8음계 노래를 주로 배웠습니다. 궁,

상, 각, 치, 우 5음계는 사라져버린 지 오랩니다. 덩더꿍 얼쑤! 하는 몸짓도 스키핑스텝이나 홉핑스텝으로 바뀌었습니다.

‘훌륭해. 우리 민족의 슬기는 세계 최고야!’

‘21세기를 주도하기 위해!’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 이 도시가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도록 본을 보여야 한다고 시민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도시를 가꾸는데 가장 무서운 적이 나타났습니다. 연쇄 방화 사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집이 불타고 가게가 불탔습니다. 동쪽에서 차가 불탔는가 하면 다음 날에는 서쪽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너무 단조롭지 않아요!’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서!’

‘심심하지 않습니까?’

방화범을 잡고 보니 스무 살 안팎의 애띤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웁시다!’

도시의 지식인들이 둘러앉았습니다. 특별이 명성이 높은 사회학자, 심리학자들이 초청되어 왔습니다. 의사, 종교인, 교육자들이 모였습니다.

 

 

「동공화 현상」

 

 

머리는 꽉 차 있는데 가슴이 너무 비어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를 지어야 합니다!’

‘유명한 음악단을 초청합시다!’

 

 

‘세계적인 발레단도 불러옵시다!’

드들강변을 다듬어 체육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가수를 불러와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몇날 며칠을 한다는 연극단도 불러들였습니다.

‘이젠 만족들 했겠지.’

그러나 그 때뿐이었습니다. 음악회를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은 기분이 좋다고 어울려 술을 먹고는 싸웠습니다. 연극 구경을 하고 나온 부부는 연극에 대한 감상과 느낌이 다르다고 이혼을 해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외국 가수 초청공연에서는 열광하는 관중들이 서로 밀고 닥치다가 사람이 밟혀죽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또 명예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시민 명예의 날을 선포한다」

 

 

시민들은 모두 명예로운 시민들로 만들어버리게 되면 적어도 싸움질만은 없어지겠지. 모든 관공서, 기업체들이‘시민 명예의 날’을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시민의 명예를 위반한 행위는 처벌을 한다」

 

 

시민들은 명예를 지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처벌이 두려웠던지 싸움질이 줄어들었습니다.

‘성공이다!’

기뻐하기는 너무 일렀습니다. 시민 명예의 날이 끝나자말자 도시는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싸움질로 변했습니다. 자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남의 명예 같은 것은 아예 짓밟아버렸습니다. 아무도 시민의 명예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꿈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민들의 가슴에 꿈을 심어 줍시다」

 

 

‘꿈을?’

도시의 가계들은 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상품에는 ‘품’자 대신 ‘꿈’자를 표시했습니다. 꿈 인형, 꿈을 꾸는 침대, 꿈을 찍는 사진관, 꿈이 살아 숨 쉬는 생선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는 교도소까지도‘감옥에 갇힌 꿈’‘꿈이 있는 쇠창살’ 이런 식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온 도시에 꿈이 넘쳤습니다. 시민들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꿈을 찾느라고 싸울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똥이 시장님에게 떨어졌습니다.

‘내 꿈을 찾아주세요!’

‘조각난 꿈의 반 쪽을 보상하세요!’

‘잃어버린 꿈을 찾습니다!’

개를 키우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는 사람이 찾아와 도둑맞은 개를 찾아달라고 생떼를 썼습니다. 경찰서에서도 비명이 터져나왔습니다. 도둑맞은 꿈과 잃어버린 꿈을 찾아달라는 민원이 한꺼번에 밀어닥쳤습니다. 꿈을 찾으러 떠난다며 가족을 버리고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꿈을 쫓는 사람도 생기고 꿈을 줍는 직업도 새로 생겼습니다. 공원은 꿈을 꾸려는 사람들로 늘 만원이

었습니다.

 

 

 

 

 

「꿈 계획을 취소한다」

 

 

모든 시민들이 꿈을 찾기 위해 일손을 놓았으므로 시장님은 다시 공고문을 내 걸었습니다.

 

 

 

11. 동그랗게 빛나는 후광(훌륭한 사람들의 머리 주위에서

    빛나는 동그란 빛)

 

 

“무엇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이냐?”

“제 처지와 비슷한데요.”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텐데 …. 비상으로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건 오해 다.”

“제 힘이 미치는 곳이 아니잖아요.”

“아무렴.”

한푼이할아버지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입을 꾹 다물어버렸습니다. 그 날 밤에도 반디는 비상연습을 했습니다. 이상기류나 난기류를 만나도 제법 요령좋게 타고 넘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가더라도 어지러움증도 없어졌습니다. 오직 달님과 만나는 일에만 정신이 쏠려있었습니다. 반디가 제법 솜씨좋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할아버지는 걱정 반 감탄 반으로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반디의 비상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바라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하려는 의지를 할아버지는 기꺼워하는 편이었습니다. 단, 그 일이 생명을 내놓고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인가 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힘이나 재능은 낭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비상연습은 어땠니?”

“며칠 째 달님의 어깨 부분에서 나가질 못하고 있어요. 그 부근에서는 기류의 흐름도 없는 데 ….”

“더 이상 가까이 가려 하지 마라. 인력 때문이니까.”

“할아버지 말씀이 옳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나 달님 가까이 가야 한다는 느낌은 더욱 강해 져가는 것 같아요.”

“글쎄다. 달님은 견문이 넓어서 모르는 일이 없을 거라고 짐작은 된다. 태고적부터 살아온 경 험과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안목이 있을테니까.”

“제 몫의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시민들의 잃어버린 꿈도 ….”

“달님이 해결할 수 있을른지 ….”

“시민들은 희망을 잃고 방황하고 있지 않나요?”

“좋은 기회를 얻은 거야.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거란다.”

“그래도 모두들 희망을 잃고 있는데 ….”

“곧 되찾게 되겠지. 너도 네 몫의 일을 하게 되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

 

 

“제가 시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만 있다면 ….”

반디는 꿈을 꾸듯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여전히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달님은 얼굴이 반

쪽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달님이 죽으면 어쩌죠?”

“죽기는 ….”

할아버지는 반디에게 윤전법칙(세상 모든 일은 돌고 돈다는 일)을 설명하느라고 진땀을 뺐습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고작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법.”

“봄이 뭔데요?”

“봄은 봄이지.”

할아버지는 반디가 여름 한 철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만 깜박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더

쉬운 예를 든다는 것이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 것들은 결국 죽고 죽은 것은 다시 태어난단다.”

“죽은 것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나요?”

‘말로써 이해해야 되는 건데.’

이렇게 따지고들면 생각이 막히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면, 꽃을 보아라. 꽃은 씨를 맺고 시들어 죽는다. 그러나 씨는 남지 않겠니? 그 씨가 이 듬 해 봄에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래도 그 씨는 그 꽃이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다만 ….”

할아버지가 또 이 대목에서 막혔습니다. 다행하게도 반디가 분위기를 바꾸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달님의 병과 관계가 있나요?”

“달님은 병든 게 아니라니까?”

“많이 야위었잖아요.”

“꽃이 피는 이치와 같은 거야.”

“달님도 꽃이 되려고 야위는 걸까요? 그리고 씨를 남기고?”

아무래도 반디를 설득하기에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다시 건강을 되찾을 거야.”

“그랬으면 … 할아버지 말씀을 믿고 싶지만. 저 걸 보세요. 야위고 창백한 모습이 할아버지 눈 에는 보이지도 않나봐.”

반디가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다시 태아난다는 뜻이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을 어떻게 믿어요. 죽은 것들은 썩는다고 하던데 ….”

“어디서 들었니? 너 그 말.”

“할머니벚나무와 5색딱다구리가 죽음에 대하여 토론하는 걸 엿들었어요.”

“5색딱다구리는 안 체 하지만 아직 철부지야. 그런 애들 말을 믿지 마라. 머리가 없는 애들 이야. 눈에 보이는 것 밖에 보지 못하는 홑눈박이들.”

할아버지의 홑눈박이라는 말에서 반디는 창포숲의 눈 큰 애를 떠올렸습니다.

“할아버지, 창포숲의 왕자도 죽었을까요?”

 

 

“창포숲의 왕자? 오, 겹눈이 말이로구나. 죽지 않았을 게다. 녀석은 유난히 의지가 강했으니 까.”

할아버지는 반디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겹눈이 얘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습니다.

“용소를 넘었을 게다.”

반디가 짝! 손뼉을 쳤습니다. 언젠가 해질녘에 보았던 폭포수 위의 은빛 화살이 생각난 것입니다.

“은빛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폭포수 위로 수도 없이 많이 넘어가는 걸 보았어요.”

“그 게 겹눈이란 말이냐?”

“겹눈이 아니었담 누구겠어요.”

‘어림없는 소리.’

할아버지의 계산으로는 정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은어들이나 산천어들이었겠지.”

“아니예요. 아주 작은 것들의 비월이었어요. 아주 작은 것들이라면 부들숲의 피라미들 외에 다른 것들이 또 있겠어요?”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구나. 이 나이까지 살았다만 피라미들이 폭포를 넘었다는 말은 들은 적 도 본 적도 없다.”

반디는 유난히 커다란 겹눈을 굴리며 놀란 모습으로 알에서 깨어난 자기를 쳐다보던 겹눈이가 생각났습니다. 부들숲의 왕자라고 말하던 당당한 모습도 생각났습니다. 엄마냐고 물었을 때 어색하고 난처한 표정도 그리고 끝내는 깔깔거리고 웃던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그 무서운 용소를 어떻게 넘었을까요? 이무기가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

“글쎄, 거기서부터 생각이 이어지질 않는구나.”

“그러나 돌아올 거야. 반드시 돌아올 거다.”

할아버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습니다. 반디는 할아버지 말씀에 다소 위안을 받아 그날 밤에는 편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밤 달님은 야윌대로 야윈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디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달님 주변을 날았습니다. 곧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로 울먹거렸습니다.

“날 위해 슬퍼하지 말아요. 반디님!”

달님이 오히려 반디를 위로하려고 하였습니다. 달님은 금새라도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달님에게 조금이라고 더 가까이 가는 것이 반디가 달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디의 비상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야윈 달님을 두고 내려온다는 것은 달님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얼른 되돌아 설 수가 없었습니다.

“어서 가세요. 내게 빛이 남아있을 동안 ….”

달님이 거듭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반디는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달님을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서요 어서, 시간이 없어요!”

달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날카롭게 베었습니다. 반디는 비참한 심정으로 돌아섰습니다. 하늘이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굵은 빗방울을 머금은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달님은 마지막 빛을 반디에게 비춰주려고 몰려오는 검은 구름을 온 몸으로 간신히 막아냈습니다. 반디는 기진맥진해서 하강기류 한 가닥을 가까스로 움켜잡았습니다.

‘아, 아. 이제는 더 못 날겠어!’

‘이젠 너무 지쳤어!’

정신조차 가물가물해졌습니다. 가물가물한 눈에 별빛 줄기 같은 빛 한 가닥이 보였습니다. 가늘고 환한 빛이었습니다. 보고 있는 사이에 빛은 더욱 밝아지면서 반디를 감싸 듯 다가왔습니다.

‘이 걸 받아!’

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환한 불씨 한 개를 보내고 달님은 스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달님! 달님! 달님!’

반디가 애처롭게 울부짖었습니다.

“달님은 다시 태어날 거다.”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반디를 할아버지가 위로했습니다.

“죽어버린 달님이요?”

“모든 것은 윤전한다고 하지 않던 ….“

“아니예요. 달님은 영영 돌아오지 않아요. 달님은 죽어버렸어요.”

“달님은 영원히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단다. 죽은 게 아니라 거듭나기 위한 윤전일뿐야.”

“세상에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모두 죽겠죠? 그러나 달님을 잃어버린 댓가는 우리가 받게 될 거예요.”

“넌 아직 어려서 윤회의 법칙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그러나 이것만은 믿어도 좋다. 살아있

는 것은 언젠가 생명을 잃게 되지만 반드시 생명의 씨앗을 남겨서 다시 태어나게 되지. 윤회 하는 거야.”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으세요? 할아버지는 그걸 믿고 계세요?”

“그렇다. 껍데기인 육신이 아니라 생명의 넋, 혼을 믿고 있단다. 영혼을 ….”

“죽어서 없어져버린 껍데기를 다시 살아나게 할 수가 없잖아요?”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잖아. 예를 들면 풀무치 영혼이 개구리로 태어날 수도 있고, 소 리개의 넋이 제비의 육신 즉 제비의 껍데기를 쓰고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단다.”

“옷을 갈아입은 것과 같군요.”

“그래, 뱀이 허물을 벗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란다.”

“그래도 사라진다거나 죽는 것은 슬픈 일이예요.”

이리저리 생각해보던 반디가 제법 의젓하게 말했습니다. 그 날 밤 반디는 달님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야윌대로 야윈 달님이 끝내는 성냥불꽃처럼 작아지더니 구름에 가리워지듯 사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안 돼! 안 돼요!’

반디는 달님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안타깝고 슬퍼서 펑! 펑! 눈물을 쏟으며 사라진 달님을 다시 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사라졌었던 달님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듯 잠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서글픈 미소를 띠우며 반디를 향해 작별의 인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냥불 같은 몸마저도 지탱하기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가지마세요. 달님!’

‘달님, 가면 안돼요!’

반디는 눈물에 범벅이 되어 달님을 붙잡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디의 간절한 소망도 소용없이 달님은 기어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반디는 달님이 사라져버린 서녘 하늘을 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반짝! 또 빛이 일어났습니다. 별처럼도 보이고 불씨 같기고 한 반짝이는 불빛은 아주 멀리서 천천히 반디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별똥별?’

‘달님이 스러져서 별똥별이 되었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별똥별 같은 불씨는 점점 다가왔습니다. 애초엔 너무 작아서 불티처럼 보이던 불씨가 점점 커졌습니다. 순식간에 커졌습니다. 금방 탁구공만 하던 것이 또 배구공만 하게 그리고 끝내는 달님처럼 부풀어서 순식간에 반디를 덮쳤습니다.

“엇, 뜨거!”

지레 겁을 먹은 반디가 깜짝! 놀라 외쳤습니다. 꿈이었습니다. 뜨겁지도 않은 불씨에 놀라 펄쩍! 뛰면서 눈을 떴습니다.

“나쁜 꿈을 꾼 게로구나.”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꿈에서 본 것처럼 하늘에도 달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달님이 죽는 꿈이었어요.”

아직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은 채 반디가 말했습니다.

“죽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니?”

“하늘에도 없지 않아요. 난 똑똑히 보았어요. 달님이 사라지는 걸 ….”

반디가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습니다.

‘아냐, 아니야.’

할아버지는 고개를 강하게 양 옆으로 흔들었습니다. 고개를 흔들던 할아버지의 눈에 노란 불씨가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눈을 비볐습니다.

‘잘못 보았나?’

잘못 볼 리가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한 번 눈을 비볐습니다. 불씨였습니다. 노란 불씨였습니다. 노란 불씨가 반디 꼬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 건, 불씨잖아!’

할아버지는 얼른 말문이 열리지 않아 처음에는 손만 내저었습니다.

‘얘, 얘야!’

반디의 꼬리를 가리키며 손만 휘저었습니다. 한참 더듬거리던 할아버지가 아직도 놀란 얼굴로 말했습니다. 말소리가 떨렸습니다.

“얘, 얘야! 네 꼬리에 불이 붙었다!”

“예! 꼬리에 불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반디가 제 꼬리를 쳐들었습니다. 끝부분에 노란 물감을 칠한 것

처럼 불씨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는 사이에 불씨가 번지고 색깔도 선명해졌습니다. 반디는 억제할 수 없는 감동으로 날개를 부르르 떨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반디 얼굴과

 

 

반디 꼬리의 불빛을 번갈아 보고 있었습니다.

“야아! 내가 불을 켜게 되다니.”

“내가 불씨를 얻게 되다니!”

“할아버지, 기적이예요 기적!”

반디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폴짝폴짝 뛰다가 날개를 비비기도 하고 꼬리를 쳐들고 뺑글뺑글 돌기도 했습니다.

“어디 보자꾸나, 날아보렴.”

반디는 흥분과 감동에 쌓인 채로 푸르릉! 푸르릉! 날개를 두어 번 털고는 훌쩍!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반디는 한푼이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그 날 밤은 그믐밤이었으므로 하늘이 칠흑같이 캄캄해서 노란 불을 켠 반디의 원무(동글게 돌며 추는 춤)가 아주 선명하게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저게 뭘까?’

그 날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던 도시 사람들은 작은공원의 낮은 하늘에서 동그랗게 빛나는 노란 불빛을 보았습니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던 사람들이 노란 불빛에 이끌려 작은공원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보았습니다. 동상 받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희무끄레한 모습의 한푼이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노랑빛 후광을 보았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