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야기 - 14
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14권> 160화 - 162화 (계속)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기記, 김왕석 역譯
이천만李天滿 윤색潤索
<목차>
160. 개마고원의 표범(18)/ 161. 유배수流配囚(18)/
162. 돌아온 마다기(포수捕手)(23)
160. 개마고원의 표범(18)
함경도 신흥에서 북쪽으로 70리(28Km) 쯤 가면 원풍이 나온다. 원풍 남쪽에는 사람들이 살고 북쪽에는 짐승들이 산다는 말처럼 그 북쪽부터는 험준한 개마고원의 산들이 첩첩히 겹쳐 멀리 암록강까지 뻗어있다. 원풍에는 5일장이 선다. 그런 산기슭 시골에 장이 서는 이유는 산에서 잡은 짐승껍질, 말리고기, 약재나 임산물林産物, 약초 등과 함흥 신흥을 거쳐 들어오는 소금, 농산물, 해산물이 교역交易되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이 집정執政을 하는 1878년 봄에 그 5일장에 장사꾼들이 모여들지 않아 장이 텅! 비게 되었다. 한 무리의 표범들이 장으로 가는 길을 막고 사람과 당나귀를 사냥했기 때문이다.
맨 처음 표범의 습격을 받은 장사꾼들은 시흥에서 오징어와 명태를 싣고오던 장사꾼들이었다. 그들은 전날 시흥에 있는 주막에서 표범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고 열서너 명이 모여 여섯 마리의 당나귀에 물건을 싣고 출발했다. 주막에서 창과 칼을 가진 사냥꾼 두 사람을 붙여주었다. 그만하면 불범(표범)이 아니라 줄범(호랑이)이라도 감히 덤벼들지 못 할 것이라고 믿었다. 장사꾼과 사냥꾼은 일부러 큰 소리를 주고받으며 당당하게 신작로를 걸어갔다. 술을 몇 잔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장사꾼도 있었다. 신작로 주변에는 인가가 없고 행인도 없다.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와 말소리만 들릴 뿐 주변은 조용하다. 20리(8Km) 쯤 걸어갔을 때 신작로는 언덕길이 되었고 길 양편에는 울창한 산림이다. 당나귀들이 갑자기 멈춰섰다. 귀가 뻣뻣하게 서고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표범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표범이 일부러 오줌을 누어 독한 냄새를 뿌려 당나귀들에게 겁을 줬다. 먹이감이 될 짐승들이 무리지어 있을 때 표범이 즐겨쓰는 사냥법이다. 무리를 흩드려뜨려놓고 무리에서 벗어난 놈을 잡아먹는 전법戰法이다. 당나귀가 멈춰서자 장사꾼들이 화를 냈다.
‘이런 병신 같은 놈들. 자, 빨리 가지 못 해!’
장사꾼이 당나귀의 고삐를 끌어당기고 있을 때 신작로 옆 숲속에서 표범이 한 마리 나타났고 그 뒤를 따라 또 한 마리의 표범이 나타났다. 검은 표범이다. 표범이 으르렁거렸다. 금방 덤벼들 것 같았다. 당나귀들이 비명을 질렀다. 앞발을 들어올려 땅을 차며 몸을 돌렸다. 공포에 질린 당나귀는 눈깔이 뒤집어지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당나귀들이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도 비명을 질렀다. 당나귀가 날뛰자 등에 실은 짐들이 떨어졌으며 도망을 가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놈도 있었다. 표범 한 마리는 도망가는 당나귀의 뒤를 쫓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람들에게 덤벼들었다. 무늬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검은표범이다.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져 도망갔으나 젊은 사냥꾼 한 사람이 창으로 표범을 찔렀다. 사냥꾼도 도망을 쳤는데 그 젊은이는 용감하게 표범과 맞섰다. 그러나 검은표범은 너무 빨랐다. 그놈은 젊은이의 창을 피하면서 앞발로 젊은이를 후려쳤다. 젊은이가 창을 떨어뜨리고 몸의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자 검은표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의 키 보다 더 높이 도약하면서 앞발로 젊은이의 얼굴을 후려쳤다. 갈고리 같은 발톱이 젊은이의 얼굴을 찢어 젊은이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표범은 쓰러진 젊은이를 더 공격하지 않고 당나귀를 공격하는 표범에게 합세했다.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떨어진 당나귀는 내버려두고 다른 당나귀를 공격했다. 한 마리가 당나귀의 목줄을 물고 늘어지면서 목을 비틀어 쓰러뜨렸다. 표범은 당나귀의 몸에 올라타고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당나귀는 이내 숨이 막혀 질식사窒息死했다. 표범에게 얼굴을 할킨 젊은이는 비틀거리며 기어서 마을에까지 갔으나 이틀 후에 죽었다. 표범의 발톱에는 무서운 세균이 번식하고 있어 감염되면 죽었다. 급보를 받은 주막주인은 인근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현장은 피바다가 되어있었고 표범들은 없었다. 표범은 죽인 당나귀를 끌고 산림 안으로 들어갔는데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은 당나귀는 내버려두었다. 사람들의 모습은 더 비참했다. 도망가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진 사람이 있고, 바지에 오줌똥을 싼 사람도 있었다.
다음날, 신흥관아는 호벌대원 여덟 명을 현장에 보내 표범을 잡도록 조치했다. 호벌대는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 관아에 설치된 기구인데 사실은 그 구실을 못 한다. 그때도 호벌대가 인근 마을사람 서른 명을 동원하여 표범을 잡으려고 했으나 공연히 소란만 피웠을 뿐이었다.
빈손으로 관아에 돌아온 호벌대장은 표범이 약사빠른 짐승이기 때문에 대호大虎보다도 잡기가 어렵다고 했다. 호벌대는 인근 야산을 포위했으나 눈치를 챈 표범이 당나귀를 먹어치우고 도망가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표범은 당나귀를 반 쯤 뜯어먹고 밤중에 다시 돌아와 나머지를 먹어치우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호벌대장은 표범을 멀리 내쳤으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공연한 헛말이다. 표범은 나흘 후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두 마리가 원풍 북쪽의 산길에 나타났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네 명의 장사꾼과 세 명의 사냥꾼들이 짐승껍질을 메고 원풍장으로 가다가 멀리서 까치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경계를 했다. 까치는 육식동물이 사냥을 하러나가는 기미를 보면 몰려드는 버릇이 있는데 과연 그곳에 표범들이 숨어있었다. 표범은 큰 나무 뒤에 숨어있었으나 긴 꼬리끝이 들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화를 면했다. 그 소문이 퍼져 원풍장은 또 텅! 비어버렸다. 장사꾼들이 신흥의 관아로 몰려갔다. 수령이 한양에 갔으므로 늙은 아전이 사무를 대행하고 있었는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전은 긴 담뱃대를 물고 큰소리를 쳤다. 서북쪽의 풍산에 사람을 보내 그곳의 포수를 불러오겠다고 했다. 포수들의 임금은 장사꾼들 더러 내라고 했다. 적지 않은 돈이나 장사꾼들이 내기로 했다.
풍산에는 유명한 조막손영감이 있다. 화승포를 다루다가 실수로 왼쪽손가락 세 개가 없어졌으므로 조막손으로 불리웠으나 그래도 영감은 맷돼지를 수백 마리나 잡았고, 곰을 다섯 마리 잡았으며 표범 네 마리도 잡았다. 조막손영감은 열서너 마리의 사냥개를 길렀다. 유명한 풍산개의 피가 섞인 개들이다. 풍산개는 용감하고, 두 마리면 맷돼지를 잡고, 세 마리면 곰을 잡는다. 다섯 마리가 있으면 범사냥도 한다. 조막손영감은 콧대가 높아 여간한 청이 들어와도 출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흥의 아전은 풍산관아 아전에게 은화 300냥을 보냈고, 풍산관아 아전은 그 중 100냥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를 조막손영감에게 줬다.
조막손영감이 다음날 하오에 원풍에 도착했다. 창꾼 두 사람을 데리고왔는데 영감의 조카들이며 영감 옆에 붙어 보호하면서 화승포를 쏠 수 있도록 ㅜ돠왔다. 영감은 사냥개 다섯 마리를 데리고왔는데 순종 풍산개 보다 덩치가 크다. 그 개들에게는 이리의 피가 섞여있다고들 한다. 번디 개가 모이면 시끄러운 법이다. 소리높여 짖기도 하고, 으르렁거리기도 했으나 이리의 피가 섰인 때문인지 그 개들은 짖지 않는다. 그 개들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짖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다. 자기들 끼리 사기를 높이고 사냥깜에게 겁을 주려고 할 때, 주인에게 자기들의 소재를 알릴 때 외에는 지지지 않는다. 모두 험상스러운 쌍판이었으며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영감을 마중한 사람들이 좋은 숙소를 마련했으나 영감은 거절했다. 늘 산중을 떠돌아다니는 그는 집안이 답답하다고 한다. 영감은 살기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 옆에 이리껍질을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이리껍질은 보온성이 강하고 습기를 막아준다. 사람들이 불가에 잠자리르르ㅜ만들자 개둘이 그 주변을 돌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감시를 했다. 주인을 보호하려는 개들의 본능이다. 개들에게는 목줄을 걸지 않았다. 소문대로 더없이 믿음직스러운 사냥꾼들이고 개들이다.
사냥꾼과 개들은 다음날 새벽에 떠났다. 개들은 전날 표범이 나타난 산림에 도착하자 주변을 빙빙 돌면서 냄새를 맡았다. 개들은 상대가 표범이라는 걸 알아챘다. 무서운 상대기 때문에 긴장했으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다. 개들이 소리높이 짖으며 뛰어나갔다. 천천히 따라오는 주인을 내버려두고 마구 뛰어간다. 주인과의 거리가 몇 Km나 되는데도 뛰어가기만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개를 불러들이지 않는다. 그건 개들의 정도正道가 아니다. 개들은 항상 주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람들과 교신交信을 해야 한다. 자기들이 어디쯤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사냥감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 하게 잡아두고, 혹은 사냥감과 싸우는 중에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상황을 주인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러나 그 사냥개들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 개들도 개지만 주인도 그 주인이다. 개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조막손영감은 개들을 믿는다. 사람들의 보호나 도움없이도 표범을 잡을 것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공연한 간섭이다. 영감이 데리고온 풍산개는 체력과 힘에 있어 표범에 뒤지지 않는다. 표범의 몸무게는 70Kg 정도인데 개들은 55Kg이다. 개들은 개마고원의 첩첩산중에서 태어나고 살았으며 맹수를 잡는 훈련을 받았다. 야생생활을 했으며 야수 못지않게 용감하고 민첩하다. 표범을 여러 마리 잡은 경력도 있다. 지난 겨울에도 세 마리의 개들이 표범과 싸웠다. 그 표범은 산기슭마을에서 사람을 죽인 놈이었는데 마을사람들로써는 그놈을 잡을 수 없었다. 늦가을이었기 때문에 표범이 알록달록 단풍진 숲에 숨으면 어떤 사냥꾼도 찾아낼 수 없다. 포수들이 사냥에 나가려고 하지 않자 희생자 유족들이 영감에게 호소했는데 영감은 당장 세 마리의 개들을 데리고 표범사냥에 나섰다. 표범이 아무리 은신술의 명수라고 해도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개들의 코는 속일 수 없다. 개들이 표범을 찾아 덤벼들었고 표범은 도망쳤다. 세 마리가 덤볐기 때문에 표범은 대항 할 수가 없다. 산림 안으로 도망쳤으나 개들이 추격했다. 표범은 개들보다 빠르나 냄새를 맡고 쫓는 집요한 개들의 추격에 지쳤다. 개들이 포위를 하고 덤벼들자 당황한 표범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게 잘못이다. 상대가 이리나 범 같으면 그 전략은 효력이 있었으나 사냥개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사냥개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나무 주위를 빙빙 돌면서 소리높여 짖었다. 천천히 따러오던 영감이 도착했다. 나무 위에서 꼼짝 못 한 표범을 잡는 것은 쉽다. 표범은 화승포에 맞아 떨어져 죽었다. 급해지면 나무 위로 올라가는 버릇은 표범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개들은 이전에도 표범을 나무 위로 몰아놓고 영감이 쉽게 잡게 한 일이 있었다. 개들은 직접 표범과 육탄전肉彈戰을 벌여 물어 죽이기도 한다. 그때는 봄이었는데 산림이 온통 절벅거렸다. 네 마리의 개들이 일부러 표범을 진흙탕으로 몰아넣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탕이라 표범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 하고 지쳤다. 네 마리의 개들이 사방에서 덤벼들어 물어죽였다. 그러나 값비싼 껍질은 걸레가 되어버렸다.
물론 표범이 개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개들도 상처를 입었다. 표범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개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개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조막손영감의 개들은 온몸에 상처가 훈장勳章처럼 새겨졌다. 그러나 표범에게는 범이나 곰처럼 일격으로 개들을 때려죽일 힘이 없다. 범이나 곰은 앞발로 개들을 후려쳐 목뼈를 부러뜨리기도 하고 대가리를 때려서 뇌진탕을 일으켜 즉사시키기도 했으나 표범에게는 그런 결정타가 없다. 표범은 발톱이나 이빨로 개를 찢어죽이기도 했으나 그 공격은 치명타가 되지 못 한다. 개들은 한꺼번에 공격했으므로 치명상을 입힐 수가 없다. 개들은 표범이 동료를 공격하면 동료개가 표범을 물어뜯어 공격을 저지했다. 그래서 표범과 싸우는 영감의 개들은 상처는 입었으나 죽지는 않는다. 그래서 영감은 개마고원에서도 개들이 제멋대로 표범을 추격하는 걸 내버려둔다. 쫓긴 표범이 나무 위로 올라가든지 도망가다가 지쳐 개들에게 물려죽을 것으로 안다. 표범은 순발력이 뛰어났으나 지구력이 부족하다. 반면 개들에게는 끈질긴 지구력이 있어 추격이 장기화되면 개들에게 승산勝算이 있다. 표범이 험준한 바위산으로 올라갔다. 표범과 개가 바위산에서 싸우면 표범이 유리하다. 표범의 몸은 고무처럼 부드러웠기 때문에 바위틈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고 강한 도약력跳躍力으로 웬만한 바위는 타고넘었다. 바위 위에서 개들을 덮쳐누를 수도 있다. 표범이 그런 입체전立體戰을 벌이면 개들이 위험하다. 그런데 산으로 도망친 표범이 두 마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세 마리로 불어났다. 그건 드문 일이다. 표범은 본디 혼자서 돌아다니는 동물이다.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 표범이 다른 표범과 어울리는 경우는 암수가 만나 교미를 하는 경우와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다니는 경우가 고작이다. 그런데 그 표범들은 암수가 아니다. 암수가 함께 다녀도 고작 4, 5일 정도인데 그 표범들은 오래토록 함께 다니면서 사냥도 함께 한다. 그렇다면 어미와 새끼인가? 그렇지 않다. 발자국크기로 봐서 세 마리의 발자국이 거의 같다.
아무튼 표범은 세 마리로 불어났으며 그건 개들에게는 위험스러운 일이다. 표범 세 마리가 개들에게 한꺼번에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개들을 불러들일까요?’
불안해진 창꾼이 영감을 일깨웠으나 영감이 잘라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내버려둬!’
영감은 짐승을 잘 안다. 개나 이리는 무리동물이었으나 표범은 그렇지 않다. 혼자 다니고 혼자 행동한다. 표범이 무리를 지었다고 해도 무리싸움에는 미숙할 것이다. 개나 이리처럼 조직적으로 협력하여 무리로써 적을 공격할 능력이 부족할거라는 말이다. 더구나 표범은 세 마리지만 개는 다섯 마리 아닌가. 표범과 개는 개마고원의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다. 좋지 않다. 개들은 그 험한 산중에사 싸움을 해본 일이 없다. 그날 하오 개짖는소리가 들렸다. 뭔가 좀 이상하다. 그건 적을 쫓으면서 위협하는 소리가 아니다.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받으면서 저항을 하는 소리다. 개들이 당황하고 있다. 사냥꾼들이 빨라 가려고 했으나 산의 경사가 워낙 급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냥꾼들이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개들의 짖는 소리가 멈췄다. 침묵인데 불길한 침묵이다. 사냥꾼이 산을 넘어섰을 때 산중복에 개들이 보였다. 한 마리는 쓰러져있고, 다른 한 마리는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다른 개들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개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다. 한 마리는 목줄이 끊기고 다른 한 마리도 비명을 지르면서 기어다닌다.
(이게 웬일인가?)
영감은 개들을 버려두고 추격을 했다. 아래쪽 계곡에 개 세 마리가 있다. 개들은 한 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다. 표범은 보이지 않는다. 표범은 멀리 도망을 쳤고 개들은 추격을 못 하고 있다. 개들이 투지를 잃었다. 개들이 투지를 잃으면 사냥개로는 끝이다. 한 번 겁을 먹은 개는 다시는 그 적과 싸우지 못 한다. 영영 사냥을 할 수 없는 폐견이다. 영감이 사냥을 포기했다. 개들 없이 사냥을 할 수 없다. 화승포만으로는 표범과 싸울 수 없다. 조막손영감은 마을로 돌아갔다.
원풍의 5일장은 계속 서지 못 했다. 장뿐만 아니라 원풍주변 마을사람들도 불안해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원풍장에서 임산물을 팔고 생필품이나 농산물, 해산물을 구입한 개마고원 일대에 사는 산골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졌고 그런 물건을 거래했던 남쪽의 신흥과 함흥의 장사꾼들도 장사를 하지 못 했다. 몇 마리의 표범들 때문에 함경도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그래서 함흥감사가 나섰다. 함흥감사는 조정朝廷에 사람을 보내 어용엽사를 보내달라고 탄원을 했다. 조정에는 열서너 명의 조정엽사들이 직속되어있어 왕실에서 필요한 녹용, 웅담 등 약재를 공급하고, 외국귀빈들의 사냥 안내를 하는 한편 인축을 해치는 범, 표범, 곰, 늑대를 잡는 일도 했다. 그들은 강원도를 위시한 전국의 포수들 중에서 선발된 포수들이며 외국제 신형총을 가지고 있다. 어용포수들 중에는 사냥안내를 해준 외국귀빈들로부터 선물로 총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김기원포수도 그들 중 한사람이다. 김포수의 총은 유계두총有鷄頭銃이다. 닭대가리처럼 생긴 격침擊針이 총신 안에 장치된 발화뇌관發火雷管을 때려 총탄을 발사하는 최신형 총이다. 방아쇠만 당기면 발사가 되는 총이다. 김포수는 강원도포수집안에서 태어나 화승포와 화약을 다루는 법을 익힌 포수다. 7, 8년 전에 입수한 그 총의 사용법을 연마하여 외국포수들이 놀라워할 정도가 되었으며 이미 그 총으로 강원도와 황해도에서 범과 표범을 다섯 마리나 잡았다. 그는 범과 표범을 잘 알고있으며 며칠동안 범의 발자국을 추적하여 잡기도 한다. 함흥감사는 김포수가 한성에서 원풍까지 오는 도중에 안내하도록 지시하고 역마까지 마련했으나 김포수는 그런 편의를 사양했다. 본디 포수란 산길을 가는 법이다. 산중에는 나무꾼길이나 짐승길이 있으며 김포수는 그런 길로 원풍에 도착했다. 혼자였으며 달랑 총 한 자루만 들고있었다. 중키에 깡마른 몸매였으며 어깨가 약간 굽었다. 늘 짐승의 발자국을 내려다보며 추적을 했으므로 허리가 굽었다. 짐승껍질로 만든 두건頭巾을 쓰고 짐승껍질 겉옷을 입고 있었다. 김포수는 원풍의 주막에 머물면서 표범들에게 당한 장사꾼들과 지방포수들을 만나 상세한 얘기를 들었다. 포수는 사냥을 하기 전에 잡으려는 짐승과 그 짐승이 살고있는 산의 지세를 알아야 한다. 그 표범은 예사 표범이 아니다. 그리고 그놈이 살고있는 산도 예사 산이 아니다.
원풍에 나타난 표범들은 개마고원이라는 산악山岳지대에서 사는 표범이다. 표범은 본디 나무들이 많고 숲이 우거진 곳에 사는 짐승인데 그 표범들은 높은 바위산에서 살고있으며 다른 표범들과 달랐다. 그들은 험준한 바위산을 잘 탔고 그 지세를 잘 이용했다. 거기에 숨어있다가 외적이 들어오면 용감하게 싸운다. 바위틈을 빠져나가기도 하고, 바위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한다. 조막손영감의 개들이 당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개들은 그런 표범을 추격할 수가 없다. 표범처럼 몸이 부드럽지 못 한 개들에게는 바위틈을 빠져나가거나, 바위 위로 뛰어오르거나, 높은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재주가 없다. 개들은 바위틈에서 갑자기 몸을 돌려 기습하는 표범을 막지 못 했고, 머리 위에서 덮치는 표범에게 반격도 할 수 없었다. 개들은 무모하게 덤비면서 짖기만 하다가 당했다. 그 표범들에게는 몸 색깔이 검은 흑표가 두 마리나 있다. 그건 그곳 표범들의 혈통이 같다는 걸 말한다. 모두 같은 어미나 아비의 새끼거나 형제라는 뜻이다. 표범은 어미 밑에서 자라다가 성정하면 독립하여 생활을 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 성정한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새끼들이 독립을 해도 각자의 영역이 아주 가까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혈연血緣이기 때문에 심한 영토싸움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협동하여 사냥을 하거나 공동으로 외적과 싸운다. 무리를 지어 사냥도 하고 외적을 물리치기도 한다. 조막손영감은 표범이 무리싸움을 하지 않거나 미숙할 거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 개마고원의 표범은 이리나 개들 못지 않게 무리사냥이나 무리싸움을 했다. 조막손영감의 개들이 당한 또 하나의 이유다. 바위산으로 유인된 다섯 마리의 개들은 모두 함께 집중적으로 특정한 표범을 공격했으나 세 마리의 표범은 의도적으로 흩어졌다. 집중공격을 당한 표범이 도망가고 다른 표범은 개들의 뒤나 옆에서 덤벼들었다. 그래서 개들은 당황하여 위나 옆에서 달려드는 표범과 싸워야 한다. 개들의 조직력이 무너지고 난투亂鬪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 민첩한 몸놀림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표범이 유리하다. 표범들이 사람이나 당나귀를 덮친 경우도 그랬다. 모두 한꺼번에 당나귀나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한 마리는 당나귀를 공격하고, 다른 놈은 사람을 공격했다. 그래서 겁에 질린 당나귀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다가 당했다.
개마고원의 표범들은 사실상 무리생활을 하고있었다.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 종족을 유지하기 위한 진화進化다. 조선의 맹수사냥꾼들은 종래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범사냥을 한다. 가장 흔하고 효과가 있는 방법은 여러사람들을 동원하여 표범이 숨어있는 산을 통째로 포위하는 방법이다. 수십 명 때로는 백 명이 넘는 몰이꾼들이 산을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 표범을 한 곳에 몰아넣고 화승포를 쏘거나 활을 쏘거나 창으로 찔러잡는다. 그러나 주민들의 수가 적은 개마고원에서는 그런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없다. 설사 동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범에게는 효과가 있으나 범보다 감각이 예민하고 몸놀림이 민첩한 표범에게는 효과가 없다. 표범은 미리 포위 기미를 알아차리고 도망가거나 포위망을 벗어난다. 그 다음에 많이 쓰는 방법은 발자국추적이다. 유능한 사냥꾼들이 끈기있게 표범의 발자국을 추적하면 표범이 지치거나 신경쇠약이 되어 잡힌다. 하지만 그건 보통 표범이 그렇다는 얘기이고 개마고원의 표범은 달랐다. 험한 산악지대에서는 그런 추적이 어렵다. 도망가는 표범이 지치기 전에 추적하는 사냥꾼들이 먼저 지친다. 추적자들은 높이 2,000m가 된 산을 언제까지 탈 수는 없다. 세 번째 방법은 사냥개를 동원하여 표범을 추격하는 것인데 개마고원에서 그게 어렵다는 것은 이미 조막손영감의 경우에서 밝혀졌다. 표범사냥에는 함정을 파거나 덫을 놓는 방법이 있는데 눈과 코가 예민한 표범은 걸려들지 않는다. 그곳 표범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어용엽사 김포수는 다른 방법을 연구했다. 외국의 수렵가나 동물전문가들과 함께 돌아다녔던 김포수는 최신형 총만 가지고있는게 아니라 야생동물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표범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그곳 표범들의 생태와 특징을 조사했다. 그는 서너 명의 지방포수를 데리고 표범들이 돌아다니는 지역을 상세하게 조사했다. 그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이로 알고 덤빈다. 김포수는 우선 표범들의 사람사냥터가 된 곳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 하게 금지했다. 표범을 잡기 전에 사람부터 보호할 생각이다. 그런데 그 산길은 원풍장터 장사꾼들이 들어오는 길이다. 장사꾼이 들어오지 않아 장이 서지 못 하는 터에 금지령이 내렸으니 장사꾼들은 더 어렵게 되었다.
‘뭐라고? 한양에서 온 포수가 산길들을 막아버렸다고? 이런 고얀 작자를 봤나. 표범을 잡아라고 불렀는데 표범은 잡지 않고 사람부터 잡다니 ….’
수령을 대리한 아전이 대로했다. 전번에 표범사냥에 실패한 아전이다. 아전은 호벌대와 군졸 포졸을 데리고 김포수가 머무는 원풍주막에 갔다. 그는 그 고약한 포수에게 불호령을 내리려고 했으나 뭔가 좀 찜찜했다. 그 포수는 왕실직속의 어용엽사御用獵師다. 포수란 본디 신분이 천한 아랫것들이었으나 왕실직속이라면 다르다. 아전은 그래도 큰 기침을 하고 주막집 방에 들어섰다. 그는 윗자리에 앉아 담뱃대부터 물었다. 긴 담뱃대는 위세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그러나 한양포수를 하대下待할 수는 없다. 그 포수는 이상한 옷을 입고 자기를 보고도 인사를 하지도 않는다. 지방관리를 본체만체다. 그래서 아전은 데리고간 포졸에게 고함을 쳤다.
‘이봐라! 표범은 잡지 않고 뭘 하고있느냐고 물어보아라.’
어용엽사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도 포졸에게 고함을 쳤다.
‘이봐라! 네 놈의 주인에게 이걸 보려주거라. 그리고 썩 물러나라고 말하라!’
그건 지방관리들에게 보내는 호조판서의 지시문이다. 그 지시문을 가지고있는 어용엽사에게 예의를 갖추고 협조하라는 내용이다. 아전이 크게 당황했다. 벌떡 일어나더니 기침을 한 번 하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어용엽사의 지위가 그렇게 대단한지를 몰랐다.
김포수는 천천히 사냥준비를 했다. 개마고원의 표범들에게도 약점이 있다. 그들의 서식지 산중에는 맷돼지, 사슴, 노루 등 큰 먹이감이 없고 토끼나 들쥐도 별로 없다. 그 산중에서 사냥을 하면서 살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 산기슭 야산에서 사냥을 했다. 표범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쯤은 원정사냥을 해야 하고 사냥이 잘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만든 산길까지 내려왔다. 산골주민들이 원풍장으로 가는 그 산길이다. 김포수는 그 산길에서 표범을 잡기로 했다. 미끼로 유인하는 사냥이다. 미끼는 당나귀다. 표범이 좋아하는 먹이다. 길가 나무에 당나귀를 매어놓았다.
그 당나귀는 주인을 발로 차 허벅지뼈를 부러뜨린 놈이다. 당나귀는 더위와 추위에 강하고 끈기가 있는 유능한 가축이었으나 고집쟁이여서 말썽을 부리는 놈들이 있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주인의 뼈를 부러뜨리는 당나귀는 그냥 둘 수 없다. 김포수는 어차피 도살屠殺될 그 당나귀를 표범사냥의 미끼로 썼다. 당나귀 몸에 흰 횟가루를 칠했다. 밤중에 사용될 것이므로 어둠속에서도 모습이 보이도록 칠을 한 것이다. 하얀 당나귀는 7m 정도의 줄에 목이 걸려 나무에 매달렸기 때문에 그 줄 길이 안에서는 자유로 움직일 수 있다. 당나귀가 오줌과 똥을 싸면서 고함을 지르고 날뛰었다. 그 고함소리가 표범을 유인할 것이다. 김포수는 50m 쯤 떨어진 언덕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바람이 당나귀쪽으로부터 불어오기 때문에 사람냄새가 날 수는 없다. 표범을 잡는데는 또 다른 조건이 있다. 시기다. 그때는 큰 달이 걸린 만월滿月의 밤이다. 김포수는 사냥준비를 하면서 만월의 밤을 기다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달밤이었으며 달빛 아래 하얀 당나귀의 실루엣(영상影像)이 뚜렷이 들어났다. 비명을 지르던 당나귀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귀를 세워 길가 언덕을 보고 있다. 뭔가를 감지한 것이다. 주위는 조용한데 김포수도 느낌이 왔다. 표범이다. 표범이 당나귀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표범의 모습은 볼 수 없으나 당나귀가 가느다랗게 울고 있다.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다. 그러자 표범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나귀에게 겁을 주어 도망가게 할 작정이다. 당나귀가 있는 곳은 표범에게 위험지역이라는 걸 안다. 도망치게 위협해놓고 당나귀가 도망치면 잡을 생각이다. 공포에 질린 당나귀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지만 목에 줄이 걸려 도망치지 못 한다. 당나귀가 뒷발질을 한다.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그러나 주인의 허벅지뼈는 부러뜨렸으나 표범은 당나귀의 뒷발에 당할 놈이 아니다. 날뛰는 당나귀 옆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긴 꼬리가 있다.
당나귀도 그냥 당하기만 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쫓긴 쥐가 마지막 저항을 하는 것처럼 당나귀도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다. 김포수는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표범이 한 마리가 아니다. 한 마리가 당나귀의 목줄을 노리고, 다른 놈이 당나귀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두 마리의 공격을 받은 당나귀는 저항에 한계가 있다. 앞발을 들어올려 표범을 찍어 누르거나 뒷발로 차려던 당나귀는 결국 쓰러졌다. 표범이 쓰러진 당나귀의 몸에 올라타고 목줄을 물어뜯어 숨통을 끊으려고 한다. 하얀 당나귀를 누르고있는 표범이이 보였다. 김포수가 기다렸던 순간이다. 거리가 50여 미터나 되고 모습이 뚜렷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총은 과녁에 명중할 수 있다. 숙련된 총잡이다. 어둠속에서도 짐승들처럼 눈이 보인다. 김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엄청난 총성이 울려퍼졌다. 공중으로 뛰어올랐던 표범이 당나귀의 몸 위에 떨어졌다. 표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맞았다! 표범을 잡았다!’
지방포수가 환성을 질렀으나 김포수가 꾸짖었다. 표범은 두 마리다. 또 기다렸다. 표범들은 근연近緣관계다. 아마도 죽은 표범이 어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새끼는 어떤 행동을 할까? 일단 도망쳤으나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어떤 동물이건 모자간의 정은 끈끈하다. 새끼는 어미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더구나 현장에는 당나귀의 시체가 있다. 굶주린 새끼는 그걸 먹으려고 할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화약냄새와 피냄새가 사라지고 밤이 깊어간다. 그때 하얀 당나귀시체 옆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새끼표범이다. 김포수의 예상이 적중했다. 어미를 핥으면서 일으켜세우려고 한다. 온갖 노력에도 어미가 일어나지 않자 체념을 한 듯 새끼가 일어섰다. 기회다. 김포수가 다시 발포했다. 킥! 하는 새끼의 비명이 들렸다. 어미 옆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 했다. 김포수는 또 기다렸다. 한 마리가 더 있다.
김포수가 잠복소에서 밤새 기다렸으나 제 3의 표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표범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죽은 어미 주변에는 몸 색깔이 검은 표범 두 마리가 따라다녔다. 형제인 것 같은데 한 마리는 어미와 같이 죽었으나 다른 한 마리는 살아있다. 혈연관계인 개마고원의 표범들은 다른 곳의 표범과 달리 사실상 무리생활을 하고있으며 두 마리가 죽었다고 해도 무리생활을 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그 무리 모두를 소탕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표범들은 원풍 주변의 산길이나 마을에 나타나 인축을 해칠 염려가 있고 원풍 5일장도 서지 못 할 것이다. 김포수가 다음날 표범을 잡았던 야산을 돌아봤다. 예상대로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다. 그들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개마고원 남쪽 사람들의 불안을 없앨 수 있다. 지방포수 두 사람을 데리고 표범을 추적했다. 표범들은 험준한 개마고원 안으로 도망갔다. 북쪽 풍산군의 백산으로 뻗어있는 산맥이다. 백산은 높이 2,400m의 험산險山이다. 표범들은 그 험한 바위산을 타고있었는데 아래쪽에는 천지天池계곡이다. 그날 하오에 망원경에 표범이 보였다. 산정에서 추적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길고 고통스러운 추격이 될 것 같았고 위험하기도 하다. 사냥꾼들은 밤에 바위틈에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했다. 한밤중에 표범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꾼을 위협했다. 덤벼들 기회를 엿보고 있다. 사냥꾼들은 교대로 잠을 자면서 엄중한 경계를 했다. 김포수는 총을 손에 쥐고 잤다. 눈을 감고있었으나 코와 귀가 주변을 살폈으며 언제든지 총을 쏠 수 있는 자세다. 표범은 새벽녘에 사라졌으나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다. 신경전이다. 언제 피를 볼지 누구의 피가 튈지 모르는 피를 말리는 신경전이다.
다음날 표범을 쫓는 포수들이 백산에 도착했다. 백산은 바위산이며 사람들이 살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산짐승들도 살지 않는다. 그런데 김포수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늑대의 시체인데 죽은지 오래되어 먹이가 될 것 같지도 않다. 늑대는 뼈가 앙상했으며 아마도 굶어죽은 것 같은데 생명력이 끈질긴 늑대도 그곳에서는 살지 못 한 것 같다. 그런데 표범의 발자국이 세 마리다. 또 다른 한 마리의 표범이 늑대의 시체를 뜯다가 두 마리에게 먹이를 넘겨준 것 같다. 먹이다툼을 한 흔적은 없다. 이상한 일이다. 늑대를 먹고있었던 놈은 덩치가 큰 놈이었는데 왜 먹이를 순순히 넘겨주었을까? 큰 놈의 발자국을 조사한 김포수가 몇 개의 털을 발견했다. 검은 털이다. 검은 털의 표범은 드물다. 같은 지역에 검은표범이 세 마리가 있다는 것은 그놈들이 서로 혈연이라는 뜻이다. 큰 표범은 두 마리의 애비다. 애비기 때문에 먹이를 넘겨주었다. 잔잔한 감동이 일어났다. 자기가 굶주리면서도 먹이를 넘겨주는 건 애비와 자식간뿐이다. 그러나 그 표범은 잡아야 한다. 개마고원 남쪽 산골마을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표범이 죽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쪽을 추적해야 할까? 김포수는 새끼를 추적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예감이 있었다. 그날 하오 늦게 예감이 적중했다. 세 마리의 표범들이 다시 모였다. 애비가 먹이를 넘겨주고 떠났는데 새끼들이 뒤를 따랐다. 어미와 형제를 잃은 새끼들은 애비에게 의지하기로 한 것이다. 개마고원의 혹독한 자연조건에서 새끼들은 그들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애비는 새끼들을 쫓아내려고 했으나 새끼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자 쫓아내는 걸 포기했다. 포수들은 또 야영을 했다. 그날밤에는 표범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에 추적을 시작했는데 표범들이 방향을 바꿨다. 북쪽으로 도망가던 놈들이 갑자기 동쪽으로 도망가고있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동쪽에는 마천령산맥이 있다. 함경도를 동서로 가르면서 백두산으로 뻗은 산맥이다.
마천령산맥 동쪽에는 무산의 원시림原始林이 있다. 수해水海(슈하이)라고 불리는 광대한 삼림森林인데 그곳은 야생동물의 낙원樂園이다. 사슴, 노루 등 초식동물은 입맛에 맞는 먹이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범, 표범, 곰, 이리들은 육식동물을 사냥하여 기름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개마고원의 표범들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그들은 오래토록 바위산에서 무리를 지어 살았으나 고향을 버리려고 한다. 열악劣惡한 상태에서 가족들이 죽고 먹이도 사라졌으므로 더 버틸 수 없다. 최근에는 먹이를 찾아 사람들이 살고있는 남쪽지역으로 내려왔으나 원풍 5일장 주변에서 두 마리가 죽고 나머지는 쫓겨났다. 먹이를 찾으려면 무산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고향을 버려야 한다. 무산에는 먹이가 풍부하나 많은 육식동물이 모여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개마고원의 표범들은 모험을 감행했다. 포수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포수들이 마천령산맥을 넘어서자 범의 포효咆哮가 들렸다. 무서운 살기가 느껴지는 소리다. 그곳이 자기의 영토임을 선언하고 침입자들에게 경고를 한다. 범은 본디 표범을 싫어하며 보기만 하면 덤벼든다. 범에게 표범은 먹이를 다투는 적이다. 거기다가 표범도 범의 새끼를 죽이기 때문에 범은 자기 영토에 표범이 얼씬거리지 못 하게 한다. 개마고원의 표범들이 무산의 삼림으로 들어간 날 밤 분노한 맷돼지소리가 들렸다. 표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굶주린 표범이 맷돼지사냥을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일대의 맷돼지는 대륙大陸맷돼지인데 다른 지역의 맷돼지들보다 덩치가 한 둘레 크고 성질이 사납다. 큰 놈은 몸무게가 백 관貫(400Kg)이 넘는데 황소만 하다. 그런 놈에게는 범도 덤비지 않는다. 포수들이 다음날 아침에 현장에 갔다. 삼림이 온통 피바다고 나무들이 부러지고 바위가 뒤엎어졌다. 표범 한 마리가 죽어있다. 애비표범인데 아랫배가 찢겨 내장이 쏟아져나왔다. 돌진하는 맷돼지의 어금니에 걸린 것이다. 백관이나 되는 거물 맷돼지의 일격이다. 굶주린 표범이 무모한 사냥을 했다. 싸움터가 불리하다. 큰 바위들이 겹쳐있는 바위산이었다면 맷돼지는 돌진할 수 없고 표범은 바위를 오르내리며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마고원의 표범은 무산원시림의 지세地勢에 깜깜하고 대륙맷돼지가 어떤 동물인지도 몰랐다. 그 맷돼지는 떠돌이수컷인데 가장 위험한 놈이다. 표범이 그놈과 대결한 위치도 좋지 않다. 경사지인데 맷돼지가 위쪽에 있었다. 맷돼지사냥을 잘 하는 범이나 곰은 대륙맷돼지를 위에 두고는 싸우지 않는다. 맷돼지는 상체가 높고 하체가 낮은 구조인데 그런 몸구조 때문에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동작은 느리지만 위에서 밑으로 돌진할 때는 질풍疾風처럼 빠르다. 그래서 맷돼지사냥에 능숙한 범과 곰은 맷돼지 측면을 공격하며 아주 가까이 접근하여 맷돼지가 몸을 돌리거나 돌진할 수 있는 거리를 주지 않는다. 맷돼지의 입은 무서운 무기인 송곳니가 뻗어있다. 그래서 정면에서 싸우지 않는다. 송곳니에 걸리면 아무리 큰 범도 일격에 배가 찢어진다. 그래서 범은 맷돼지를 측면에서 공격하고 다리를 물어뜯어 몸의 중심을 잃게 만들어 쓰러뜨린다. 배가 고팠던 표범의 에비는 그걸 모르고 무모한 공격을 하다가 당했다. 돌진해오는 맷돼지의 공격을 피하려고 공중으로 뛰어올랐으나 그건 맷돼지에게 아랫배를 들어내는 결과가 되었다. 애비표범은 맷돼지의 일격으로 아랫배가 찢어져 내장이 쏟아져나왔다. 두 마리의 새끼는 도망을 쳤다. 포수들은 죽은 표범의 껍질을 벗기고 새끼를 추적했다. 그곳은 범의 영토였으므로 범에게 잡혀 죽을 염려가 있으나 그날은 무사했다. 표범은 오소리굴에 들어가 몸을 피했으나 굶주린 그놈들이 언제까지나 그곳에 숨어있을 수는 없다. 표범은 밤중에 굴에서 나와 먹이를 찾아돌아다녔는데 무서운 적을 만났다. 범이 아니고 동족인 표범이었는데 우수리표범이다. 두 마리의 표범은 우수리표범을 만나 접근을 하려고 했다. 동족이라고 판단하고 접근했으나 우수리표범은 단독생활을 하는 표범이고 우수리표범에게 다른 표범은 먹이를 다투는 적이다. 처음에는 우수리표범이 다가오는 표범을 피하려고 했는데 두 마리의 새끼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광대한 삼림에서 버려진 새끼들은 동족과 연대를 꾀했으나 단독생활을 하는 우수리표범은 집요하게 따라오는 표범들에게 분노했다. 염치없는 새끼표범을 징계했다. 새끼표범의 어깨가 손바닥만큼 껍질이 찢겨졌다. 더 이상 공격은 하지 않았으므로 새끼들은 도망쳤다.
두 마리의 새끼표범은 방향을 서쪽으로 바꿔 마천령산맥으로 되돌아갔다. 동족이 동족을 해치는 무서운 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때가 늦었다. 그들은 많은 피를 흘렸으며 그 피냄새가 다른 살육자들을 불렀다. 대여섯 마리의 이리들이 표범을 추격했다. 무산 원시림의 이리는 한국 중부나 남부에 사는 늑대와 다르다. 같은 개과의 짐승이지만 덩치가 한 둘레 크고 성질도 사납다. 그들은 열서너 마리가 무리를 지어 범이나 표범과 생존경쟁을 벌이며 살아간다. 잔인하고 집요했으며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 먹이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리들은 수가 늘어나자 표범을 포위했다. 부상을 입은 표범을 집중공격했다. 이리는 무리사냥의 명수이며 사방에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표범을 물어뜯었다. 표범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포수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뼈만 남았다. 이리들은 뼈까지 갉아먹고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동료가 뜯어먹히고 있는 사이에 도망쳤으나 포수들이 추격했다. 맷돼지에게 당한 표범은 껍질을 남겼으나 이리들에게 뜯어먹힌 표범은 껍질도 남지 못했다. 포수들이 1Km 쯤 떨어진 곳에서 새끼표범을 발견했다. 그놈은 나무 위에 있었는데 나무 밑에는 대여섯 마리의 이리들이 나무 위를 쳐다보며 빙빙 돌고 있다. 나무 위의 표범은 아직 어린놈이라 겁에 질려 집고양이처럼 가느다랗게 울고 있다. 이리들은 다잡은 먹이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인간의 손으로 죽여주는 것이 자비慈悲다. 김포수가 그놈을 사살射殺했다. 먹이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달려드는 이리 두 마리도 사살했다. 죽은 표범은 개마고원 흑표범의 마지막 핏줄이었다. 원풍의 5일장이 다시 열렸다.
161. 유배수流配囚
조선 정조가 즉위한 1776년 가을, 함경도 함경산맥 북쪽 산자락에 있는 잡초마을에 부령관아에서 열 명 쯤 되는 군교軍校와 군졸들이 들이닥쳤다. 잡초마을은 서른 채 쯤 되는 집들이 들어서있는 첩첩산중의 산골마을인데 그런 외딴마을에 그렇게 많은 관리들이 오는 일은 일찌기 없었다. 늙은 촌장을 위시한 마을사람들이 긴장했다. 관리들이 유배수를 데리고왔다. 군교는 유배수를 포박捕縛하지 않고 존대말을 쓰고있었다. 죄인이었지만 양반대우를 한다. 군교가 촌장과는 미리 연락을 해둔 것 같았으며 유배수를 마을어귀에 있는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인 초가草家인데 대문도 담장도 없다. 군졸들이 몇 포기의 탱자나무를 집 주위에 심었다. 위리안치圍離安置란 조선의 형벌이다.
‘이건 고을수령의 지시이니 잘 듣게나.’
군교가 촌장에게 말했다. 촌장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유배수가 도망치지 못 하게 감시하고, 얼어죽거나 굶어죽지 않도록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야 된다는 지시다. 유배가 풀릴 때까지 연금軟禁하라는 말인데 유배가 언제 풀릴지는 알 수 없다. 유배형은 사실상 종신형終身刑이다. 조선의 관제官制에서는 죄를 지은 양반을 감금하는 감옥이 많지 않고 그래서 먼 섬이나 산골로 보내 연금시켰다. 죄수들에게 침식을 제공하는 것은 예산과 부담이 많아 고을로 이관移管해버린 것이다. 지방 고을수령이 죄인을 인계받아 침식을 제공하고 안위를 보살피는데 그렇다고 지방수령에게 예산을 주는 것도 아니므로, 그로 인해 세금을 더 걷는 것도 아니므로 알아서 해야 한다. 골치 아픈 일이다. 또 상대는 양반들이다.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유배를 당한 양반들은 대부분 높은 관직에 있었고 거의 반란죄叛亂罪인데 반란죄는 정권세력이 바뀌면 무죄가 된다. 그렇게 되면 반란죄로 유배를 당한 양반이 풀려나고 거꾸로 반대편 양반들이 죄수가 된다. 만약 죄수를 거칠게 다루다가는 무사하지 못 한다. 그래서 지방수령들은 산골마을이나 외딴 섬의 마을촌장들에게 그 귀찮은 일을 넘겨버렸다.
유배수는 짚신을 신었으나 어딘가 양반의 품위가 보인다. 아직 30대인데 키가 크고 건장하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함경도관영에서 국경國境의 외적外敵을 물리쳐 공을 세운 무관武官이다.
‘나리, 드시지요.’
좁은 방이지만 깨끗하게 청결하고 바닥에는 새 멍석이 깔렸으며 방문도 새로 도배塗褙를 했다. 촌장이 담배쌈지, 담뱃대, 부싯돌, 재떨이를 내놓았다.
‘고맙구만 …. 이 집의 주인은 없소?’
‘젊은 포수가 혼자 살았는데 몇 년 전에 범사냥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동안 비어있었지요.’
방의 선반에 산도山刀가 한 자루 있다. 본디 유배수에게 칼, 창, 활 따위의 무기는 주지 못 하게 되어있었으나 죽은 포수의 물건이라 촌장이 그대로 두었다. 촌장이 물러가자 젊은 여인이 밥상을 들고왔다. 햇감자가 섞인 조밥이고 된장과 김치가 놓여있다. 김치는 제대로 양념이 안 되었으나 된장국에는 향긋한 산나물이 들어있다. 가난한 산골마을 여인의 따뜻한 솜씨다. 내외內外를 했으나 갓 스물 남짓한 앳된 얼굴이다.
그렇게 김인태의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양반이라고 해서 앉아서 아랫사람의 시중을 받는 게으른 위인爲人이 아니다. 그는 여인이 가지고온 요강이나 세숫대야를 받지 않았다. 그는 뒷마당에 거적으로 덮여있는 뒷간을 사용하고 집 가까운 곳의 우물에서 세수를 했다. 그날밤 늑대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을 앞 바위산에 늑대들이 살고있는 것 같다.
다음날, 김인태는 마을 앞 잡초밭에 갔는데 바위산에 대여섯 마리의 늑대들이 서성거렸다. 그놈들은 마을을 살피고 있다. 마을이 위험하다. 마을에는 개들도 없었다. 마을을 지키라고 개를 데려다놓으면 오히려 범, 표범, 늑대들의 밥이 되어버렸다. 마을에는 여인과 아이들이 있다. 남자들은 밭에 나가 일을 한다. 김인태는 마을 주변을 돌아다녔다. 긴 나무창을 들고있었기 때문에 슬금슬금 마을 앞까지 내려오던 늑대들이 도망갔다. 긴인태가 마을을 지켰다. 유배수는 위리안치된 집에서 한 발걸음도 나오지 못 하게 되어있었으나 촌장은 모른 체 했다. 지난해 남자들이 밭으로 나간 사이 늑대가 마을 안에 들어와 아이를 물고갔다. 김인태는 산에서 단단한 나뭇가지와 질긴 등줄기를 가져다가 활을 만들었다.
김인태는 무가에서 잘 아려진 명궁이며 손수 활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활은 강력한 장력張力의 강궁强弓이다. 장인匠人들이 만든 물소뿔이나 고래심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기능이 장인의 활 못지않다.
며칠 후 오두막에 간 촌장이 크게 놀랐다. 마당에 꿩 한 마리와 토끼 두 마리가 던져져있었다. 김인태가 마을 주변 야산에서 잡은 것이다. 유배수가 사냥을 했다는 소문이 나면 처벌을 받아야 하므로 누가 잡았는지 모르게 마당에 던져놓은 것이다. 김인태는 그 후 더 좋은 재료를 구해 활을 개량했고 잡아오는 토끼와 꿩이 많아졌다. 어떻게 잡았는지 오소리도 잡았다. 촌장의 밥상에 여러 가지 짐승고기가 올라왔다. 김인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마을에 있는 대장간을 수리하여 화살촉을 만들었다. 창날을 세모꼴로 만들고 미늘도 세웠다. 관통력이 강해지고 짐승의 몸에 꽂인 창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나리, 이 창과 화살로 맷돼지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김인태가 마을에 온지 열흘 째 되는 날 촌장이 옥수수로 빚은 술과 꿩요리를 갖고와 물었다. 김인태가 머리를 끄덕였다. 맷돼지는 마을농사에 큰 해수海獸다. 사람들이 애써 가꾼 옥수수밭과 감자밭을 덮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년농사를 망치면 굶어야 한다. 마을사람들이 맷돼지를 잡으려고 했으나 워낙 빨라 잡을 수 없었다. 포위를 해도 쉽게 포위망을 뚫었다. 마을사람들의 맷돼지사냥은 번번히 실패했다. 모처럼 포위를 해도 화살촉이 맷돼지의 두꺼운 지방층을 뚫지 못 했다. 창날로는 맷돼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 했다. 창이 꽂힌 채로 도망을 쳤는데 창날이 이내 빠져버렸다. 마을사람들은 밭에 돌담을 쌓아 벽을 만들고 밤새 지켰으나 맷돼지들이 돌진하면 담은 힘없이 무너져내렸고, 장정들이 횃불을 들고 추적을 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밭농사를 망치지 못 하게 잡아야 한다. 고기를 식량으로도 쓸 수 있다. 기름진 맷돼지고기는 가난한 산골사람들에게 양양가 높은 식량이다. 맷돼지 한 마리면 온 마을사람들이 며칠동안 잔치를 벌일 수 있다. 껍질도 잘 무두질하면 요긴하게 쓰인다.
다음날 마을사람들이 촌장집에 모여 맷돼지사냥을 결의했다. 추수가 거의 끝난 시기라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가 맷돼지가 서식하는 산을 포위하여 사냥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별로 자신은 없다. 번번히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일부가 김인태에게 도움을 청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안 될 말이다. 유배수는 집 밖을 나가지 못 한다. 관례로 유배수가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묵인된다. 그러나 유배수가 활, 창을 들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짐승사냥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유배수 본인은 물론 마을촌장이나 고을수령이 문책을 당한다. 그래도 촌장이 김인태에게 사냥을 지휘해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김인태가 거절했다. 맷돼지사냥을 하려면 그 마을을 벗어나 인근 마을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소문이 난다. 그런 일로 고을수령에게 누漏를 끼칠 수 없다. 마을사람들이 실망을 했으나 자기들끼리 사냥을 하기로 했다. 열여섯 명의 장정들이 활과 창을 들고 마을에서 머지않은 야산으로가 두목맷돼지를 포위했다. 그놈은 덩치가 80관(320Kg)이나 되는 늙은 숫컷인데 대낮에도 혼자서 돌아다녔다. 그놈은 그렇게 혼자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무리를 이끌고 밭을 덮쳤다. 그놈은 횃불을 들고 추격하는 장정을 들이받아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장정들은 산정에서 그놈을 발견하여 활꾼들이 목을 잡은 계곡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두목은 눈치를 챈 듯 산중복에서 멈춰섰다. 큰 바위 옆에 버티고 있었다. 덤빌테면 덤벼보라는 몸짓이다. 그래서 산정산의 활꾼과 계곡의 목에 있던 창군들이 위아래서 협공을 펼쳤다. 그래도 맷돼지는 버티다가 장정들이 30m까지 접근하자 산중복을 타고 도망갔다.
‘잡아라! 저 놈을 잡아!’
장정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추적을 했다. 그러나 날리는 창은 중간에서 떨어지고 화살은 닿기는 했으나 지방층을 뚫지 못 했다. 맷돼지는 몸에 박힌 화살을 털어버리고 서쪽 이웃마을로 도망쳤다. 사냥은 실패했다. 장정들이 크게 실망하여 사냥을 중단하려고 했을 때 맷돼지가 도망을 가고있는 방향에 사람이 나타났다.
김인태가 활을 거머쥐고 바위 위에 우뚝 서있었다.
‘나리, 나리가 저기 있어!’
맷돼지가 김인태를 발견하고 방향을 바꿨다. 그때 화살이 날아가 맷돼지의 옆구리에 꽂혔다. 화살이 깊숙이 꽂히자 맷돼지가 무릎을 꿇었다. 쓰러진 맷돼지가 일어나 비틀거리며 도망을 갔으나 두 번째의 화살이 날아가 맷돼지의 목덜미에 꽂혔다. 급소였으므로 맷돼지가 쓰러졌다. 치명상이다. 맷돼지가 벌렁 들어누운 체 네 다리를 들어올렸다.
‘잡았다! 나리가 맷돼지를 잡았어!’
장정들이 환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장정들이 창으로 맷돼지를 찔렀는데 이미 저항력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김인태가 없다. 김인태는 맷돼지를 쓰러뜨린 다음 곧 그 자리에서 떠났다. 유배수가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건 바람스럽지 않다. 그날밤 , 마을은 활기가 넘쳐났다. 장작불이 피워지고 맷돼지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기름진 맷돼지는 마을사람들의 일주일치 식량이다. 촌장이 옥수수술과 잘 구운 맷돼지고기를 가지고 김인테의 오두막에 갔는데 김인태는 그저 웃기만 했다.
‘맷돼지를 잡았구만 ….’
김인태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촌장의 말문을 막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쯤 뒤에 김인태는 또 맷돼지 두 마리를 잡았다. 그날은 보름날이었으며 옥수수밭에 나타난 맷돼지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밭 주변에 구덩이를 파놓고 숨어있었던 김인태가 화살을 날렸다. 그게 총이었다면 총소리에 놀라 맷돼지들이 도망을 가겠지만 화살은 소리없이 날아간다. 맷돼지는 동족이 쓰러져도 어리둥절하다가 화살을 맞았다. 한꺼번에 두 마리가 잡혔다.
마을이 달라지고 있었다. 맷돼지고기를 먹은 마을사람들이 활기가 생기고 부지런해졌다. 맷돼지가 물러나자 돌산을 개간했다. 마을사람들은 어쩌다가 김인태를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양반이라고 존대하는 게 아니라 친근감이다. 그래도 김인태는 마을사람들과 접촉을 피했다. 그가 만나는 사람은 가끔 들리는 촌장과 매일 밥상을 들여주는 여인이다.
그 여인은 함흥의 양반집 노비였다.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신분은 노비다. 조선의 신분제도에서 노비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애비가 누구든 노비가 된다. 그래서 양반이 자기 딸을 방면하여 어미의 고향인 산골마을로 보냈다.
여인은 촌장의 수양딸로 산골마을에서 살았는데 양반의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양반의 집은 위선僞善의 나라였으며 비록 노비의 신분에서는 벗어났으나 주위에서는 여전히 멸시의 눈들이 있었다. 여인은 산골에서 농부와 결혼했는데 몇 년 전 남편과 사별死別했다. 여인은 유배수 김인태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에게서는 양반의 가식假飾과 허세虛勢가 없다. 여인은 빨래도 해주고 며칠 전에는 소중히 간직했던 면포綿布로 햇솜이 들어있는 겨울옷을 지어주었다. 여인은 수줍음을 벗어버리고 고독하게 지내는 유배수의 말벗이 되었다. 전 날 산중에 들어간 이웃마을 나무꾼이 범의 습격을 받아 한 사람이 물려갔다고 여인이 전했다. 그래서인지 마을사람들이 빗장을 걸고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떨고있었다.
‘그 범이 이 집에 살았던 포수를 죽인 놈이더냐?’
‘녜, 그래요. 바로 그 늙은 범이라고 합니다.’
그 늙은 범은 그 일대에 넓은 영지를 가지고있으며 가끔 인근 야산에까지 나타났다. 마을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날밤 찾아온 촌장도 불안한 표정이다. 마을 장정들이 경비대를 조직하여 마을어귀에 불을 피우고 밤샘을 하고있으나 범은 여전히 인근 산림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고을관에에 진정을 할 일이지.’
이웃마을 촌장이 관아에 진정을 했으나 효과가 없다. 지방수령은 인축을 해친 야수를 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으나 몇 백 리나 떨어진 산골까지 보살펴줄 여력이 없다.
‘어디 함경도 산중에 범이 한두 마리더냐?’
관아에는 호벌대가 있어 대여섯 명의 사냥꾼들이 소속되어 있으나 그들은 며칠 전에 삼대곡에 나타나 사람을 물어죽인 표범을 잡으로나갔다는 말이다. 호벌대가 돌아오면 보내겠다고 했으나 언제 표범을 잡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함흥의 관아에 사람을 보내시오, 관아에는 많은 호벌대가 있으니까.’
호환이 빈번한 함흥의 관아에는 쉰 명이나 되는 범사냥꾼들이 배치되어 있다. 함흥감사는 그들로 범을 사냥하게 하고 범껍질을 벗겨 조정에 상납한다.
범, 표범들이 난무하는 함흥은 범, 표범을 토벌하는 일이 중요업무다. 그러나 함경감사는 식인호를 잡아달라는 부령마을의 진정에 말뿐인 대응을 했다. 곧 호벌대를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호벌대는 오지 않았다. 범은 여전히 포효하고 있다. 범의 포효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곳이 자기영토라는 선언과 이성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때의 포효는 영토선언이다. 자기 영지에 들어온 외적을 찢어죽이겠다는 협박이다. 그렇다면 그 늙은 범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 김인태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다음날밤, 마을어귀에 불을 피우고 경비를 하는 장정들은 범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주 가까웠다. 30m 쯤 떨어진 산림에서 범의 새파란 눈빛이 어른거렸다. 경비대 주변을 돌면서 위협을 했다. 경비대가 꽹가리를 치고 고함을 질러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밤에는 마을을 덮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 후 이웃마을을 덮쳤다. 새벽에 마을에 들어와 닭장을 부수고 닭 두 마리를 물고갔다. 겁에 질린 마을사람들이 피난을 갔다. 일이 그쯤 되자 인근마을 촌장들이 모였다. 더 이상 관아의 조치를 기다릴 수 없었다. 스스로 범을 잡기로 했다. 여덟 명의 사냥꾼을 선발하여 김인태의 마을에 집결했다. 용감한 사냥꾼들은 즉시 사냥을 하기로 했으나 두목이 만류했다. 반백半白인 그는 노련한 사냥꾼이다.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아. 이제 곧 첫눈이 내릴 것이니 그때 사냥을 해야 해.’
두목의 말대로 사흘 후에 첫눈이 내렸다. 하얀 눈이 내린 산림에는 범의 발자국이 찍혀있을 것이다. 발자국을 추적하면 범을 잡을 수 있다. 사냥꾼들이 마을을 나서자 마을어귀에서 김인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범을 잡는데 나도 끼워줄 수 없을까?’
촌장이 당황했다. 그에게는 유배수를 감시하며 그 목숨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나리, 그건 안 됩니다. 범사냥은 위험합니다.’
김인태가 엷게 웃었다.
‘걱정마시오. 나는 범띠요. 범은 범띠사람은 해치지 못 하오.’
김인태는 범사냥꾼을 따라갔다. 정오 쯤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첫눈이 내린 낙엽 위에 매화무늬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축 늘어뜨린 꼬리가 눈을 쓸고간다. 사냥꾼들이 긴장했다. 놈을 잡으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놈은 산림의 폭군이며 번개처럼 빠르다. 앞발로 후려치는 일격은 사람의 목뼈 쯤은 쉽게 부러뜨린다. 갈고리 같은 발톱은 사람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다.
‘서로 세 발 이상은 떨어지지 말아. 앞뿐만 아니라 뒤를 살펴!’
범은 천천히 야산을 넘어가 바위산으로 올라간다. 추적자들이 온다는 걸 알고 도망가는 것이다. 오후 늦게, 범이 바위산 정상에 우뚝서서 추적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늙은 만주범이다. 만주범은 거칠고 긴 털옷을 입고 성질이 아주 사납다. 5년 동안 그 일대를 지배한 왕범이다. 대여섯 명의 사람을 죽였는데 두 명의 포수도 죽였다. 범은 창과 활을 가진 포수들이 자기를 죽이려는 걸 알고 성급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범은 한참동안 사냥꾼들의 움직임을 살피더니 슬그머니 산을 넘어갔다. 사냥꾼들도 신중했다. 범의 발자국을 따라 산을 넘지 않았다. 범이 산 넘어 잠복하고 있다가 덮칠 염려가 있다. 범은 그런 전법을 잘 쓴다. 산정에서 물러가는 듯 하다가 바위나 나무 뒤에 숨어 사냥꾼들을 앞서 보내놓고 뒤에서 덮친다. 그런 범의 전법에 넘어가 많은 사냥꾼들이 죽었다. 사냥꾼들은 산의 정상을 넘지 않고 빙 돌아 넘어갔다. 범이 더 높은 바위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날이 곧 어두워질 것이므로 사냥꾼들은 산기슭 잡초밭에서 야영을 했다. 송진을 잘라 모닥불을 피웠다. 사냥꾼두목이 늑대껍질을 깔아 김인태의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첫눈이 내려서 날씨가 쌀쌀했으나 공기가 상쾌하다. 교대로 경비를 했는데 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새벽에 추적을 시작했는데 범이 빠르게 도망치고 있다. 추적을 뿌리칠 요량이다.
그 범은 잡아야 한다. 끝까지 추적허여 잡아 그놈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의 원혼冤魂을 달래주어야 한다. 범은 단숨에 몇 십 리를 달려 추적자들을 멀리 떼어놓았으나 사냥꾼들은 발자국을 보고 하루종일 추적을 했다. 사냥꾼들은 그 고된 추적에 동참한 양반을 염려했으나 김인태는 허약한 양반이 아니다. 사냥꾼들 못지않게 산을 잘 탔으며 지친 기색도 없다. 그날밤은 바위틈에서 야영을 했는데 한밤중에 포효가 들렸다. 어엉! 어엉! 하는 포효는 산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는 경고다.
‘내일은 토끼나 오소리 따위를 잡아야 하겠구만.’
된장이 발린 보리밥을 먹고있던 두목이 말했다. 도망가는 범을 잡으려면 며칠이 더 걸릴 것이고 기름진 음식이 필요하다. 다음날도 지루한 추적이 계속되었는데 정오께 토굴속에 숨어있는 오소리를 잡았다. 토굴 안에 숨어있는 오소리를 불을 피워 연기로 몰아냈는데 그 동안에 김인태는 활로 토끼를 잡았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토끼가 제풀에 놀라 도망을 쳤는데 김인태는 정확하게 화살을 날렸다. 서른 발이 넘는 거리인데도 화살은 빨려들 듯 토끼의 목덜미에 꽂혔다. 정말 놀라운 솜씨다. 토끼의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처리하는 뒤처리도 예사 솜씨가 아니다.
‘나리는 전에도 사냥을 했습니까?’
‘어용엽장에 왕실사람이나 고관을 안내하면서 더러 했지요.’
‘큰 짐승을 잡은 일도 있습니까?’
‘불범이나 곰을 잡았습니다.’
포수두목은 그 때부터 김인태와 의논을 하면서 사냥지휘를 했다. 그날밤에도 범이 포효했으나 전날밤과는 달리 신경질적이다. 끈질기게 추적하는 사냥꾼들에게 화를 냈다. 지치기도 하고 굶주린 것이다. 이제 범사냥이 고비에 닫고 있다. 범은 언제까지나 도망치는 짐승이 아니다. 자기 영지에서 벗어나 다른 범의 영지에 들어가면 영토싸움이 벌어진다. 추적 나흘째 되는 날 범이 돌아섰다. 큰 산을 돌더니 추적들의 뒤로 나갔다. 역추적을 했다. 추적자들도 돌아섰다. 목숨이 걸린 한 판 승부가 펼쳐진다.
늙은 만주범은 함경산맥 북쪽 끝에 있는 고성산에 머물고 있다. 북쪽으로 도망가지도 않고 남쪽으로 가지도 않는다. 고성산의 허리를 빙빙 돌고 있다. 고성산은 일대의 산중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인데 경사가 너무 급해 사냥꾼들이 추적하기 힘들었다. 범은 바위틈으로 빠져나갔으나 고양이종류의 특성으로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다.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이 찍혀있을 뿐이다.
‘조심해. 함부로 설치지 마라!’
노련한 포수두목이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여덟 명의 사냥꾼들은 아래 위로 한 줄이 되어 발자국을 추적했다. 맨 밑에는 창꾼 세 명이 가고 그 위에는 창꾼과 활꾼 세 사람이 밑에 있는 창꾼들 보다 열 발 쯤 앞서간다. 아래쪽의 추적자는 가까이에 찍힌 발자국을 볼 수 없었으나 위쪽의 추적자들은 더 멀리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래쪽의 추적자들이 위쪽 추적자들의 지시를 받았다. 아래쪽의 추적자는 맨 위에 있는 두목이 범의 발자국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릴 때까지는 전진하지 않았다. 도망가는 범이 바위틈에 숨어있다가 기습을 할 위험이 있다.
‘범이 도망가는 길을 막지 말라. 도망가게 내버려 두어야 해. 범과 열 발 이내의 거리에서는 싸우지 말라. 그 전에 몸을 피하라.’
범은 열 발의 거리쯤은 단 한 번의 도약跳躍으로 날아온다. 그러면 사냥꾼의 목뼈가 부러진다.
김인태는 다른 사냥꾼들 보다 더 높은 산날을 걸어갔다. 다른 사냥꾼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걸어가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그에게는 범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사냥꾼들의 움직임을 보고 범이 어디로 가고있는지 또는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짐작한다. 거리가 마흔 발이나 되었으나 그가 움켜쥔 강궁은 능히 범을 맞출 수 있다. 그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탐지하고 있으므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화살은 범의 몸 깊숙이 꽂힐 것이다. 김인태는 사격장에서 과녁만 쏘는 사수가 아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사냥터에서 수련을 한 활꾼이다. 그와 그 동안 함께 지낸 두목도 이젠 그를 알고 있다. 촌장은 두목에게 유배수 김인태를 부탁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다. 사냥꾼들과 범의 술래잡기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 술래잡기를 끝낸 것은 범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이나 쫓겨다닌 범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했다. 앞에 있는 바위들 사이에서 얼룩무늬가 소리없이 튀어나왔다. 범은 이제 도망가지 않았다. 범은 뒤에서 오는 창꾼에게 덤벼들지도 않았다. 범이 비스듬한 산날을 타고 뛰어간다. 범은 맨 위쪽 산날에서 혼자 걸어가는 김인태를 노렸다. 그 적을 때려눕히고 산날을 넘어 북쪽으로 탈출하려고 했다.
‘저 놈이 나리를 덮치고있어!’
사냥꾼들이 고함을 질렀다. 몇 개의 화살이 날아갔으나 모두 빗나갔다. 범이 바로 앞의 바위를 뛰어넘고 있을 때 김인테가 고함을 쳤다.
‘이 놈, 활을 받아라!’
바람을 타고 날아간 화살이 퍽! 하고 범의 앞가슴에 꽂혔다. 깊이 꽂힌 화살이 부들부들 떨었다. 범이 고함을 지르며 뒹굴었다. 범은 곧 일어났으나 어느새 김인태가 두 번째 화살을 범의 목덜미에 쏘았다. 김인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번째 화살을 날렸다. 범은 그래도 김인태에게 달려들었으나 몸의 중심을 잡지 못 해 비틀거렸다. 범이 바위에 부딪혀 쓰러졌다. 세 번째 화살을 쏠 필요가 없었는데 달려온 두목과 활꾼들이 화살을 날렸다. 대여섯 개의 화살이 범의 몸에 꽂혔다. 창을 쓸 필요도 없다. 범은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그로부터 사흘 후 김인태의 오두막에 부령군의 아전이 찾아왔다. 아전은 군수를 대신하여 김인태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군수는 김인태가 범을 잡은 경위를 듣고 크게 만족했다. 군수는 계속 질책을 하는 감사에게 식인범을 잡았다는 보고를 할 수 있었다. 아전은 군수가 보낸 술, 쌀, 면포를 전달한 다음 은밀하게 군수의 말을 전했다. 조정에서 또 파벌派閥싸움이 일어나 김인태를 유배시킨 고관의 세력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그 고관은 반대파의 복수를 막기 위해 이미 유배시킨 사람들에게 사약賜藥을 내리도록 음모를 꾸몄다.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유배지에 자객刺客을 보내 암살하기로 했다고 했다. 몸조심하라는 군수의 전언傳言이다. 아전은 별도로 준비한 군수의 선물을 놓고갔다. 칼이다. 호신용으로 쓰라는 뜻이다.
한국북쪽 끝 산골마을에 겨울이 닥쳐왔다. 강한 눈바람이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면서 몰아치고 산림의 나무들이 휘청거렸다. 유배수 김인태는 따뜻한 방 안에서 겨울의 소리를 듣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유배수의 마음속에 잠재한 생각이다. 섬이나 산중에 갇혀사는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받아들여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언젠가 유형流刑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실날같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김인태에게도 언제 한양에서 사약을 가지고 포졸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어디서 칼을 든 자객이 습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배생활 몇 달이 되자 김인태는 담담해졌다. 무력감과 체념이 그를 담담하게 만들었다.
김인태는 일반 세상과 격리된 산중생활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런 산중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 여인이 음식이 식지 않게 솜보에 소중하게 싸들고 찾아왔다. 전날 범사냥을 함께 했던 포수두목이 보낸 맷돼지고기요리다.
‘아버님이 이 방 옆에 부엌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건 위법이었으나 그쯤은 군수도 눈 감아 줄 것 같았다. 여인이 웃고 있다. 새 살림을 차리는 여인의 기쁨이 담겨있다. 김인태가 여인을 안아주었다. 여인은 가만히 있었으나 김인태는 자기 몸에 기대는 여인의 몸놀림을 느꼈다.
‘나리, 안 돼요. 지금은 안 돼요. 사람들이 올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옷고름을 풀려는 남자의 손을 밀어내고 일어서 밖으로 나가면서 자그맣게 속삭였다. 그날은 촌장의 생신이었는데 혹시 밤중에 밤참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밤에는 촌장과 두목이 찾아왔다. 촌장은 생일잔치에 김인태를 초청하지 못 했으나 자신이 술을 가지고왔다. 촌장은 다음부터 마을잔치에는 나리를 모시겠다고 했다. 전날 다녀간 아전으로부터 유배수가 마을 안에서 돌아다닌 것쯤 묵인하겠다는 암시를 받았다는 말이다. 두 사람은 밤 늦게 돌아갔다. 김인태는 여인이 오지 못 할 것이라고 실망했다. 그런데 한밤중에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김인태는 이불 밑에 숨겨둔 단검을 꺼내들었는데 발자국소리는 자객의 것이 아니었다. 여인은 옷을 입은 체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곧 돌아가야 합니다. 함께 자는 어머님 몰래 빠져나왔습니다.’
여인은 곧 돌아가야 한다면서 몸부림쳤다.
유배수 김인태가 온 후에 산골마을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곳은 짐승의 나라였으며 사람들은 짐승들의 힘에 눌려 살았다. 광대한 영지를 가진 범은 수시로 영토 안에 살고있는 사람을 해쳤고 늑대들도 밤이 되면 마을에 들어와 닭이나 토끼를 물고갔는데 때로는 아이들도 물고갔다. 맷돼지들은 사람들이 애써 가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표범이나 불곰도 사람을 해쳤다. 산골사람들은 짐승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팔자소관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김인태가 온 후로 달라졌다. 김인태는 늑대를 몰아냈고, 맷돼지를 사냥하여 도리어 식량으로 삼았다. 그곳의 지배자 범도 잡았다. 범을 잡은 산골마을 포수들은 해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일대의 여섯 마을에서 선발된 포수들이어서 범을 잡으면 자기마을로 돌아가기로 되어있었으나 마을촌장들이 그 조직을 그대로두고 활용하기로 했다. 여덟 명으로 조직된 사냥대는 김인태가 머물고있는 마을에 본거지를 두고 짐승들의 피해가 있으면 즉시 달려갔다. 그 사냥대는 옛날의 사냥대가 아니다. 그들의 뒤에는 김인태가 있었다. 김인태는 함흥에 있는 관영에서 범을 잡은 포상금이 나오자 촌장들과 상의하여 마을의 대장간을 크게 확장시켰다. 함흥장터에서 철의 원료를 대량 구입하여 대장간에서 도끼, 칼, 창, 화살촉과 짐승을 잡는데 사용하는 덫, 틀을 만들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의 겨울 농한기가 없어졌다. 대장간에서는 매일 망치소리가 요란하고 시퍼런 불꽃이 튀어나왔다.
김인태는 중앙관영에서 군용무기를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무쇠칼은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았으며, 그가 만든 창날에는 세 개의 홈이 파여져 멀리 정확하게 날아갔다. 또 그가 만든 화살촉은 날카로운 미늘이 서 있었기 때문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대장간에서는 농기구를 만들었다. 돌투성이 밭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괭이, 가래, 삽을 만들었다. 대장간에서 만든 철제품은 각 마을에 보내 사용했다. 큰 짐승길에는 튼튼하고 정교한 덫이 설치되어 많은 짐승을 잡았다. 덫에 표범이 걸리기도 했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이제 짐승과의 생존경쟁에서지지 않는다. 짐승의 나라가 사람의 나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해 말, 어귀마을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산골어귀에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집이 서른 채 쯤 되는 큰 마을이다. 그 마을에 소금장수가 찾아왔다. 보통 소금장수는 늦봄에 다녔으며 한겨울에 다니는 소금장수는 없다. 아무튼 산골사람들은 외부의 손님을 반겼으므로 소금장수를 받아들였다. 마을사람들은 짐승껍질, 약초 등과 소금을 바꾼 다음 소금장수를 촌장집에서 묵고가도록 배려했다. 소금장수가 촌장의 아들과 같이 잠을 잤는데 아들은 소금장수가 단검을 가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산길을 다니기 때문에 호신용으로 갖고다니는 것 같았으나 어쩐지 섬뜩했다. 다음날 아침에 아들의 말을 들은 촌장이 소금장수를 유심히 살폈다. 건장한 몸매이며 눈빛이 날카로웠다. 예사 인물이 아니다. 거기다가 소금장수는 유배수 김인태가 있는 마을을 물었다. 수상쩍다. 산골마을의 촌장들은 김인태를 보호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촌장은 김인태가 있는 마을에 사람을 보냈다. 소금장수는 그날 정오께 마을을 떠났는데 눈이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불었다. 촌장이 보낸 사람에게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 사냥대가 나섰다. 그들은 김인태에게는 말하지 않고 우선 마을의 경비를 단단히 하고 소금장수를 만나보기로 했다. 소금장수가 간다던 마을에 소금장수는 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소금장수는 차례대로 마을을 찾는 법인데 어느 마을에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폭풍이 불고 폭설이 내렸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사냥대는 소금장수가 날씨 때문에 돌아간 것으로 알고 수색을 중단했다. 며칠 후 폭설이 멈췄을 때 김인태가 머물고 있는 마을 앞산에 나무를 하러간 나무꾼이 소금과 약초가 들어있는 보따리를 발견했다. 인근을 수색했는데 동굴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소금장수가 얼어죽었다. 품속에서 시퍼런 단검이 나오고 많은 은화銀貨가 나왔다. 은화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니다. 소금장수가 가지고 다닐 수 없는 거액巨額이다. 지도도 가지고 있었다. 김인태가 머물고있는 마을의 지도다. 소금장수는 김인태를 노린 자객刺客이었다. 그는 많은 돈을 받고 김인태를 죽이려고 산골마을에 들어왔으나 무모한 짓이다. 자객은 강원도산골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자객은 산골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유배수 김인태를 보호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겨울이 지나가고 산골마을에 봄이 찾아왔다. 산골마을은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춘궁기春窮期에 들어 나뭇잎, 나무껍질로 연명延命을 했으나 올해는 그럴 염려가 없다. 맷돼지고기, 노루고기가 저장되어 있었으며 굶지 않고 봄을 넘길 수 있다.
한양 김인태의 본가에서 심름꾼이 왔다. 역적으로 몰린 김인태의 집안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목숨을 부지扶持했는데 요즘에는 정적政敵들의 박해迫害가 누그러졌다. 김인태가 속해있었던 파벌派閥이 점차 세력을 되찾고 있다고 했다. 머지않아 유배가 풀릴지도 모른다. 김인태의 처도 무사하다. 처가는 이름난 명문가인데 김인태가 역적으로 몰리자 재빨리 김인태의 집과 인연을 끊고 딸을 데리고가버렸다. 부모끼리 성사시킨 혼인이라 부부 간에 애정이 없었다. 김인태의 처는 남편이 역적으로 몰리자 미련없이 처가로 돌아가버렸다. 처는 친정의 보호덕택에 무사했다. 한편 고마운 일이다. 김인태를 찾아온 사촌동생이 김인태를 보고 놀랐다. 유배수 김인태는 남루襤褸한 옷차림과 초췌憔悴한 모습으로 좁은 방에 갇혀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김인태는 면포綿布로 지은 솜옷을 입고,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다. 집도 단칸방이 아니며 넓은 사랑방이 붙어있고 사랑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사랑방에서 가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녁상도 예상 외였다. 조밥이기는 하나 도토리묵과 향긋한 봄나물요리가 나오고 시레기국에는 맷돼지고기가 있다. 거기에다 술까지 곁들었다. 다음날, 사촌동생이 유배가 풀리면 모시러오겠다고 하면서 떠났다.
그날밤, 촌장의 양녀養女인 여인이 조용하게 잠자리에 들어왔다.
‘나리, 곧 유배가 풀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르지. 유배자에게 듣기 좋으라고 늘 그런 말들이 돌아다니지.’
‘유배가 풀리면 한양으로 돌아가시겠지요?’
‘그것도 모르지.’
여인은 더 이상 묻지 않았으나 불안하고 서글픈 표정이다. 김인태는 그 표정을 보고 생각했다.
(내 유배가 풀리는 게 기쁘지 않은 사람이 있구나.)
여인은 그날밤에는 아무말이 없었으나 돌아가면서 말했다.
‘한양에 가시면 다시는 여기 오시지않겠지요?’
여인의 말에 울음기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 무렵 한양의 중앙관아에서는 또 파벌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리들의 비행을 조사하는 사헌부에서 상부기관 형조刑曹로 탄핵서彈劾書를 올렸다. 함경도에 유배된 김인태가 불온한 짓을 하고있다는 내용이다. 유배수 김인태는 위리안치된 집에서 나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도당徒黨을 만들어 세력을 불리고 있다고 했다. 또 창, 칼, 활 등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도당을 훈련시킨다는 내용도 첨가되었다. 예삿일이 아니다. 김인태는 반역혐의를 받고 유배된 죄인인데 그를 가만 둘 수 없다. 형조는 그 탄핵서를 의금부에 보내 당장 김인태의 행장行狀을 조사할 것이며 사실이라면 김인태는 물론 함흥감사와 부령군수도 업무태만죄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탄핵을 한 사헌부는 좌의정파벌이며 우의정파벌을 탄핵했다.
탄핵서를 접수한 형조관리는 중립적인 사람이었으므로 탄핵을 바로 처분하지 않고 신중하게 의금부에 보냈다. 의금부는 우의정측에 가깝다. 사헌부가 편파적이라고 비난받았다. 의금부는 함흥감사와 부령군수를 소환召喚했다. 의금부는 탄핵조서를 형조에 넘기고 며칠 후 형조의 보고를 받은 조선왕 정조는 좌의정과 우의정을 불러 직접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의금부에서 올라온 조서를 읽은 정조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뜻밖이다. 임금이 웃고있었다.
‘그래, 이게 바로 그 범껍질이라는 말이요?’
정조가 옥좌에 깔고앉은 호피를 가리켰다.
‘그러하옵니다.’
형조가 대답했다. 좌의정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했다. 의금부조서는 김인태가 감금되어있는 집을 나가 돌아다닌 사실과 많은 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사실까지 모두 인정했다. 위법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러나 그 보고서에는 더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김인태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인축을 해친 식인범을잡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의금부조서는 김인태가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다닌 것도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은 인축을 해치는 맹수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이며 불온한 도당이 아니라고 밝혔다. 조서는 함흥감사와 부령군수는 그런 행동을 모르고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제안했다. 조서는 공정의 기하려는 듯 김인태의 행장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법을 어긴 행동이므로 엄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임금이 또 웃었다. 이번에는 박장대소拍掌大笑했다.
‘그래, 김인태가 어떻게 그 만주 대왕범 살임범을 잡았다는 말이요? 상세히 설명해보시오.’
‘김인태는 무가에서는 잘 알려진 명궁입니다. 능히 식인호를 잡을 수 있는 무인입니다.’
형조가 짧게 설명했는데 임금이 더 상세히 보고하라고 독촉했다. 형조는 김인태가 식인호를 잡은 경위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김인태가 거느린 사냥대가 해수를 잡았기 때문에 산간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소리가 들렸다. 정조는 파벌싸움을 싫어했으므로 당파를 두둔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함흥감사와 부령군수에게는 죄가 없다고 보여지니 불문에 붙이라고 했다. 김인태의 직접처분은 없었다.
‘경은 김인태가 국법을 어겼으니 엄벌에 처하라고 상신하고 있으나 짐은 해수를 잡아 산골백성을 도운 그를 처벌할 수 없소. 그는 범껍질을 짐에게 보내지 않았소.’
정조가 웃었다. 대신들도 웃었다. 어전회의御前會議는 그것으로 끝났다. 웃음이 나오는 부드러운 회의다. 임금은 김인태가 왜 유배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반역죄라지만 반역죄는 당파싸움에서 가장 남발濫發되는 죄라는 걸 잘 알고있었다. 김인태를 유베시킨 좌의정도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공연히 김인태의 얘기를 했다가는 일이 크게 벌어질 염려가 있다. 자기에게 유리할 게 없다. 임금이 김인태를 풀어주라는 말은 없었으나 형조는 김인태를 풀어주기로 했다. 좌의정도 반대하지 못 했다. 김인태의 유배를 풀어줄 관리들이 급히 함흥으로 내려갔다.
함흥부령의 산골마을에 내려간 임금의 칙사勅使는 의금부소속 정4품 관리인데 의금부소속관리가 칙사가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의정이 그를 칙사로 보낸 것은 김인태를 죽이려다가 죽은 자객의 정체를 밝혀서 허위보고로 김인태를 탄핵한 자가 누구인지를 조사하려는 의도가 숨겨져있었다. 우의정은 이 기회에 정적인 좌의정과 그 세력하에 있는 사헌부에 치명타를 가하기로 했다. 당쟁黨爭이 다시 시작되었고 정계政界가 다시 술렁거렸다. 칙사가 함흥관영에 도착하자 부령군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군수가 직접 칙사를 산골마을에 안내하겠다고 했다. 함흥관영에는 김인태의 사촌동생도 기다리고 있었다. 김인태를 한양의 집으로 데리고가기 위해서다. 폐가廢家가 되었던 김인태의 집은 수리되었고 친정에 가있었던 김인태의 처가 돌아와있었다. 세도가인 김인태의 처가는 김인태가 유배되자 사돈집안과 인연을 끊고 딸을 데려가버렸으나 유배가 풀리자 재빨리 딸을 시가媤家에 돌려보내고 김인태의 집을 수리했다. 며칠 후 산골마을에 도착한 칙사는 유배가 풀렸다는 칙령을 전달하고 김인태가 조정에 돌아오면 그의 벼슬이 마련되었을 것이라고, 몇 단계 승진할 수도 있다고 암시暗示했다. 칙사는 김인태가 한양에 돌아오면 그를 유배시키고 탄핵한 무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肅淸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김인태의 유배가 풀리자 마을에서 잔치판이 열렸다. 마을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마을들 사람까지 모여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동안 김인태와 같이 사냥을 한 사냥꾼들이 맷돼지 한 마리를 잡아 잔치판에 내놓았다. 김인태도 잔치판에 나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날밤, 잔치판이 끝나고 촌장이 양녀를 데리고 김인태를 찾아왔다. 여인은 눈물을 감추려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리, 한양에 가실 때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실 수는 없겠습니까? 안방마님이 돌아오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측실側室로 옆에 두실 수는 없겠습니까?’
김인태가 짧게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한양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나는 여기서 살것입니다.’
여인이 울음을 터뜨렸다. 김인태는 한양에 돌아가지 않았다. 파벌싸움으로 가식假飾과 음모陰謀에 뒤덮힌 양반사회가 싫다. 김인태는 단순하고 소박한 산골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기로 했다.
162. 돌아온 마다기(포수捕手)
1932년 9월, 일본 북해도 서북쪽 나요로지역의 목장주牧場主 마에다는 그 지역 마다기(포수) 가시라(두목) 곤베이를 불렀다. 마에다는 15만 평의 목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대 광대한 산림의 지주地主다. 마에다는 술상에 앉아 아무 말이 없었다. 마에다의 침묵은 그 앞에 조아린 곤베이에게 고통스런 압박감을 주었다. 곤베이가 침다 못 해 먼저 말을 꺼냈다.
‘단나(나리), 죄송합니다. 뭐라고 변명하지 못 하겠습니다.’
‘곤베이, 안 돼! 난 그런 해명 따위를 들으려고 자네를 부른 게 아니야. 그 미친 곰을 잡아야 할 게 아니냐?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놈을 잡아야만 내가 살 수 있어. 자네도 그렇고 ….’
그 곰은 벌써 3년 째 열여섯 마리의 소를 잡아먹거나 죽였고, 여섯 마리의 개를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목장의 일꾼을 죽였다. 그 곰은 목장 동북쪽에 있는 기다니산맥에 살고있었는데 수시로 목장 주변에 나타나 목장을 덮쳤다. 그 때문에 목장의 소들이 신경질이되어 제대로 우유를 내지 못 하고 번식繁殖도 되지 않았다. 그 소를 지키는 개들도 곰과 싸우려는 투지鬪志를 잃고 곰의 울음소리나 냄새를 맡으면 꼬리를 말고 목장 안으로 도망왔다. 마에다 자신도 신경쇠약이 되어 밤잠을 자지 못 한다. 그 곰을 그대로 두고는 목장을 폐쇄해야 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광대한 산림도 황무지가 된다. 마다기 가시라 곤베이는 더 비참한 심경이다. 그는 그 동안 열서너 명이나 되는 마다기들을 동원하여 곰을 쫓았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목장의 일꾼들과 인근 마을사람들까지 동원하여 그 일대 산림을 온통 포위했으나 그것도 헛일이다. 곰은 신출귀몰神出鬼沒했으며 오히려 마다기 두 사람이 희생되었다. 한 사람은 목뼈가 부러져 죽었고, 다른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다. 그동안 마에다로부터 은혜를 입었고 많은 돈을 받은 곤베이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마에다가 곤베이에게 술잔을 넘겨주며 넌지시 말했다.
‘곤베이, 긴지로가 구시로에 살고있다고 들었는데 ….’
곤베이가 바늘에 찔린 것처럼 놀랐다. 그가 대답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마에다가 다시 물었다.
‘그건 헛소문인가?’
‘헤이(예). 저도 긴지로가 구시로에 있는 야쿠자두목의 집에서 식객食客노릇을 하고있다고 듣고있습니다.’
구시로는 북해도 남쪽에 있는 큰 항구도시다.
‘그렇다면 말인데 …. 곤베이, 긴지로를 다시 불러오도록 하지. 그 미친 곰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긴지로뿐이 아닌가?’
마에다는 곤지로가 거부 못 하게 압박했다. 그 일대에서 도노사마(영주領主)라고 불려지는 마에다의 권위다. 곤베이의 낯이 일그러졌다.
‘하이!’
곤베이가 엎드렸다. 마다기 가시라 곤베이는 3년 전에 수하인 마다기 긴지로를 추방했다. 마다기들은 산골에서 사냥을 하면서 사는 밑바닥계층의 천민이었으나 그들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있고 의리가 있었다. 비록 하층계급이었으나 대대로 이어지는 마다기의 조직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추방은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추방을 당한 자가 사냥터에 얼씬 거리면 몰매를 맞고 등뒤에서 총탄을 맞기도 한다. 속세를 떠나 깊은 산골에서 사는 마다기의 전통과 관습에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도노사마라 불리는 마에다도 함부로 간여를 못 한다. 그래서 마에다는 곤경에 빠진 곤베이에게 압박을 해 긴지로를 불러들이도록 강요했다.
곤베이가 3년 전에 긴지로를 추방한데는 이유가 있다. 긴지로는 곰을 서른 마리나 잡은 곰사냥꾼이었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북해도에서 으뜸가는 곰사냥꾼이다. 긴지로는 몇 십미터 밖에서도 낙엽을 밟는 곰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곰의 냄새를 맡았다. 그의 총은 좌우 2연발의 쌍발총인데 긴지로는 한 방만 사용한다. 두 발째는 소용없다. 그러나 긴지로에게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혼자서만 사냥을 하고 여럿이 하는 무리사냥을 싫어한다. 함께 사냥을 하는 사냥꾼이 방해가 된다고 했다. 긴지로는 어쩔 수 없이 무리사냥을 할 때도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총을 가지고있는 포수는 마지바(목)을 잡고 몰이꾼들이 곰을 몰아오는 걸 끈기있게 기다려야 하는데 긴지로는 마지바를 이탈하여 혼자서 곰을 잡았다. 긴지로는 곰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도 총을 쏜다. 노리는 짐승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총을 쏘아서는 안 된다는 마다기의 철칙鐵則을 어겼다. 그래서 마다기들이 긴지로를 규탄하고, 가시라에게 그를 처벌하라고 요구했으나 곤베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긴지로가 규칙을 어긴 건 사실이지만 그는 그때마다 곰을 잡았다. 동료의 어깨 너머로 총을 쏘았는데 사람은 다치지 않고 곰만 잡았다. 곤베이는 긴지로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다른 이유로 추방을 당했다.
극히 제한된 사람들만 긴지로의 추방이유를 알고있었다. 곤베이에게는 외동딸이 있다. 예쁘고 똑똑한 아이인데 곤베이는 그 딸을 지극히 사랑한다. 곤베이는 그 딸이 산골에 사는 천한 마다기사회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도읍지에 보내 여학교를 졸업시켰다. 딸은 곤베이의 소망대로 어엿한 양가의 아들과 약혼하여 결혼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긴지로가 그 딸을 겁탈劫奪했다. 긴지로는 곤베이가 사냥을 나간 틈을 타 곤베이의 집에 들어갔다. 곤베이가 사냥에서 돌아와보니 곳간에서 딸의 비명이 들렸다. 달려가보니 긴지로가 딸을 겁탈하고있었다. 딸을 피를 흘리고있었다. 격분한 곤베이가 총으로 긴지로를 죽이려고 했으나 긴지로는 도망쳤다. 곤베이는 긴지로를 추방했는데 3년이 지난 후에 지주인 마에다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의 추방을 풀어주어야 한다. 마에다도 그간의 사정을 듣고있었으나 식인곰을 잡기 위해서는 긴지로가 꼭 필요하다. 긴지로가 아니면 그 곰을 잡을 수 없다는 게 마다기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마에다는 사람을 보내 구시로에 있는 긴지로를 데리고와 자기집에서 곤베이와 만나게 주선했다. 마디기의 가시라가 추방된 마다기의 추방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식儀式이 있다. 추방된 마다기는 마다기의 정장正裝을 하고 가시라에게 큰 절을 세 번 하고 술잔을 올려야 하고, 가시라는 그 술을 마시고 술잔을 마다기에게 돌려주게 되어있다. 그래야만 마다기의 추방이 풀린다. 곤베이는 마에다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긴지로가 올리는 술잔을 받았으나 술을 마신 다음 왼손으로 긴지로에게 술잔을 던졌다. 형식적으로 추방해재는 시켰으나 본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의사표시다. 그러나 어쨌든 긴지로의 추방은 해제되었고 긴지로는 다시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에다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던 긴지로의 총을 찾아주고 식인곰사냥을 시켰다. 충분한 보수와 비용도 지불했다.
‘나리, 듣자하니 그 곰은 예사 놈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놈을 잡기 위해 조수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에다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조수를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긴지로는 그 길로 그곳에서 서북쪽으로 50Km 쯤 떨어져있는 아이누마을에 갔다. 긴지로는 아이누의 곰사냥꾼들괴 친하다. 본디 아이누의 사냥꾼들은 곰사냥을 잘 한다. 긴지로는 아이누마을 추장과 친했으며 그로부터 곰을 잡는 비법을 전수받았다.
아이누추장과 마을사람들이 돌아온 마다기를 환영했다. 아이누는 북방계의 소수민족이며 불과 몇 만 명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이민족의 지배 밑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을 찾아온 외지사람을 반겼으며 특히 옛 친구인 긴지로를 열렬히 환영했다.
마이누마을에서는 그날밤 성대한 환영잔치를 열었다. 아이누는 예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부족이며 그 전통과 관습에는 기묘奇妙한 것들이 있다. 아이누에게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자기 마누라나 여동생들에게 손님의 밤시중을 시키는 관습이 있다. 친구들 사이에는 내 것 네 것을 가리지않는 법이었기에 나의 마누라는 친구의 마누라가 될 수 있다. 친한 사람들 끼리 피를 섞는다는 뜻도 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아이누나 에스키모 등 북방 소수민족에게 그런 풍습이 있는 것은 근친교배近親交配에서 오는 폐단을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인구수가 적은 그들은 부득히 근친결혼을 하고 그 결과 출산율이 떨어지고 기형아畸形兒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방인異邦人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소중하게 키웠는데 건강하다. 아이누추장은 그날밤 자기의 처를 긴지로의 침실에 들여보냈다. 그 동침은 의례적인 것이 아니다. 손님이 이불 안에 들어온 여인을 내치면 여인을 모독하는 일이며 여인의 남편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긴지로는 예의를 지켰다. 긴지로는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뚜렷하고 건장한 몸과 강한 정력의 소유자다. 여인은 만족했다. 여인이 흠뻑 땀을 흘렸다.
‘식인곰을 잡으러 왔다고?’
여인이 물었다.
‘그 곰은 잡을 수 없는 곰입니다.’
여인은 그 곰을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곰은 아이누마을에서 키운 곰이며 여인은 그 곰을 자식처럼 길렀다. 아이누는 곰을 사람과 조상이 같은 동물로 알고 있다. 아이누는 함부로 곰을 사냥하지 않는다. 곰이 먼저 사람이나 가축을 해쳤을 경우에만 부득이 사냥을 하는데 그때에도 사전에 굿판을 별여 산신과 곰의 영靈에게 양해를 얻는다. 일부 나쁜 곰이 먼저 싸움을 걸었기 때문에 부득이 사냥을 하야 한다는 해명이다. 아이누는 곰을 잡았을 때도 엄숙한 위령제慰靈祭를 거행했다. 곰의 두개골을 제단祭壇에 모셔놓고 재생再生을 비는 진혼제鎭魂祭다. 그러나 아이누는 일단 곰을 잡기로 결행하면 실수는 없다.
아이누는 어떤 부족들보다도 곰사냥을 잘 한다. 곰의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심하세요. 그 곰은 사람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사람의 습성을 잘 압니다. 사람의 강점과 약점도 일아요.’
여인이 그 곰의 비밀을 얘기했다. 비록 하룻밤이지만 다정하게 살을 맞대고 피를 나눈 사내에 대한 정이다.
아이누는 곰의 새끼를 죽이지 않는다. 어미를 잃은 새끼가 있으면 사로잡아 사육한다. 마을 전체가 소중하게 돌본다. 그러나 아이누는 몇 년만에 열리는 산신제山神祭에서 그렇게 사육한 곰의 새끼를 희생물로 바친다. 산신제에서 가장 소중한 희생물을 산신에게 바치게 되어있었으며 옛날에는 사람을 바쳤다. 그래야만 산신이 사람들의 정성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람 대신 곰을 바친다. 그 곰도 제물이 될 곰이다. 그 곰은 일대에서 가장 사나운 곰의 피를 이어받은 곰인데 어미곰을 죽인 다음 옆에 있었던 새끼를 사로잡아 사육했다. 잘 자란 새끼곰이 3년째 되던 해에 산신제가 열렸다. 산신제는 아이누가 가장 신성하게 지내는 제사였으므로 아이누는 사육한 곰을 희생물로 바치기로 했다. 그런데 전남밤에 곰이 도망을 쳐버렸다. 우리 안에 갇혀있던 곰은 앞발을 우리 밖으로 내밀어 자물쇠를 뜯고 도망쳤다. 곰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자물쇠의 구조를 알았다. 영리하고 힘도 셌다. 곰은 우리를 탈출하자 아예 멀리 도망을 쳤다. 마에다의 산림과 목장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소를 죽이고 사람까지 죽인 곰이 바로 그 곰이라는 추장마누라의 말이다. 추장마누라의 말은 틀림없다. 우선, 그 곰은 한겨울에도 돌아다녔다. 곰은 겨울에는 동굴이나 토굴 안에서 동면을 하게 되어있었는데 그 곰은 동면을 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폭풍과 폭설이 불어닥치고 있는 산림을 예사로 돌아다닌다. 사람에게 사육된 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육할 때도 인공적으로 겨울잠자리를 만들어 동면을 시켰으나 완전한 동면이 아니다. 동면을 하다가도 나와서 돌아다니고 동면을 아예 하지 않는 놈도 있다.
긴지로는 아이누마을에서 하루를 더 머문 다음 추장과 함께 떠났다. 많지 않은 보수報酬였는데 추장은 기꺼이 긴지로의 청을 받아주었다. 아이누추장은 참다운 사냥꾼이며 오랜 벗과 함께 산림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게 된 걸 기뻐했다. 그들은 그날 바위산을 넘었다. 거기서부터 마에다의 영지다. 울창한 신림도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도 있다. 아람들이 나무들이 가지를 뻗고 있다.
‘곤지기야!’
발자국이 있었다. 곤지기는 황금색이라는 말인데 곰의 이름이다. 일본사람들은 불곰을 하구마라고 하는데 하구마들 중에는 털이 황금색인 놈들이 있다. 긴지로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 산림에는 숯을 굽는 영감이 살고 있다. 몇 십 년이나 숯을 구웠는데 그 영감이 구은 숯은 두들기면 쇳소리가 나는 단단한 숯이다. 한 집에 한 포만 있으면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숯이다.
그곳 마다기들은 그 영감을 잘 알고 있다. 곰의 습격을 막아주기 위해 아예 영감의 움막집에서 기거를 하는 마다기도 있고 사냥을 하다가 들르는 마다기도 있다. 영감이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움막에는 언제나 소주병이 있는데 마다기들은 맷돼지고기나 토끼고기를 가지고 가서 안주삼아 영감과 소주를 마셨다. 긴지로도 그랬다. 영감은 특히 긴지로를 좋아한다.
한참 발자국을 추적하던 긴지로가 소리쳤다.
‘안 돼!’
곰의 발자국이 숯 굽는 영감의 오두막으로 가고 있다. 움막에는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숯을 굽는 움막에서 연기가 없다는 건 숯을 굽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늦가을 한찬 바쁠 때인데 왜 움막을 비웠을까? 긴지로와 추장이 뛰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움막집 주변이 피바다였다. 통나무로 짠 문이 부서지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영감의 시신이 있었다. 이틀 쯤 되었으며 반 쯤 뜯어먹었다. 영감은 움막에서 술을 마시고 자다가 당한 것 같다. 움막에는 일꾼과 마다기들이 함께 있었는데 곤지기는 그날밤 영감이 혼자 있다는 걸 알고 오두막을 덮쳤다.
긴지로는 영감의 시신을 들것에 싣고 숯마을로 갔다. 숯마을은 산림어귀에 있는데 세 채의 집에 죽은 숯영감의 가족과 일꾼이 산다. 네 명의 일꾼이 숯을 포장하여 운반하느라고 움막에 가지 못 한 사이에 사고가 일어났다. 다음날 급보를 받은 문상객問喪客들이 모여들었는데 목장주 마에다와 마다기들도 달려왔다.
‘숯꾼 영감의 움막에는 많은 마다기가 들락거렸고, 상주常住하는 마다기도 있다고 들었는데 왜 영감을 혼자 두었는가?’
마에다가 질책을 하자 마다기들이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곤베이를 위시한 마다기 열두 명이 모두 곰을 쫓고있다는 말이었다. 그들은 긴지로가 그 식인곰을 잡기 전에 자기들이 먼저 잡으려고 했다. 만약 긴지로가 먼저 잡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체면을 존중하는 마다기들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혈안이 되어 곰을 쫓았다. 곰사냥에 나선 마다기들은 첫날 목장 주변에서 곰의 발자국을 발견하여 추적을 시작했다. 곰이 빠르게 도망갔는데 그놈이 도망가는 곳은 뻔하다. 동북쪽의 기타미산맥이다. 기타미산맥은 높이 2,000m 가까운 산들이 이어져 있었으므로 곰이 거기에 들어가면 잡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곤베이의 지시로 사냥대는 두 패로 나눠져 한 패는 곰을 쫓고, 다른 패는 곰이 기타미산맥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야산정상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곰을 발견하면 앞뒤에서 협공하여 잡기로 했다. 그러나 곰도 그곳 산세를 잘 알고있었다. 곰은 마다기들이 대기하고있는 야산으로 올라 않고 그 밑의 계곡으로 내려갔다. 곰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타고 도망쳤다. 곰이 물속으로 들어가버려서 발자국추적이 어렵다. 추적은 지지부진했으며 날이 어두워졌다. 사냥꾼들이 야영을 한 다음 추적을 했으나 발자국을 잃어버렸다. 곰이 밤새 멀리 도망간 것 같다. 그날 정오께 추적을 하는 마다기들이 발자국을 찾고있을 때 머리 위에서 돌들이 떨어졌다. 산사태가 일어난 것 같아서 절벽 위쪽을 살펴보니 곰이 거기에 있다. 사냥꾼을 계곡으로 유인해놓고 바위를 굴러뜨리고 있다. 곰이 고함을 질렀다. 햇빛을 받은 곰은 황금색이다. 마디기들이 그렇게 큰 곰을 처음본다고 했다.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그 거대한 곰은 이 세상 동물이 아닌 것 같았다. 마다기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치고 있었으나 두목인 곤베이가 고함을 질렀다.
‘저 놈을 잡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놈을 잡아야 해!’
사냥꾼들이 절벽 위로 올라갔다. 절벽 위에서 떨어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마다기도 있었으나 곰 사냥을 계속했다. 반나절이나 걸려 올라간 절벽 위에 곰이 없다. 발자국도 없다. 고양이과 동물인 범이나 표범과 달리 곰은 은신술에 서툴다. 곰은 바위 뒤에 숨거나 나무그늘에 숨어 몸을 감추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먹이사슬의 정상에 있는 곰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는가? 그러나 아이누가 곤지기라고 부르는 그 곰은 달랐다. 그놈은 은신술에 능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계곡에 들어가 발자국을 없애버리는 술책術策도 부렸고, 지그재그로 걸어 추적을 따돌리는 짓도 한다. 마다기는 발자국을 놓쳤다.
‘그래서 그놈을 잡지 못 했다는 말이냐? 그놈이 되돌어와 숯영감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데도 ….’
지주 마에다가 쓸개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곤베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못 했다. 긴지로는 고인故人의 영전靈前에 큰절을 하며 맹세했다.
‘영감님, 내가 꼭 그놈을 잡아 복수를 해드릴테니 눈을 감아주십시오.’
그러자 곤베이와 마다기들이 긴지로를 노려봤다.
‘이 새끼, 네 놈이 건방지게. 곰을 잡겠다고?’
마다기들은 분함을 참지 못 하고 그중에는 살기를 띠는 마다기도 있다. 긴지로와 앙숙관계인 쪽귀다. 마다기들 사이에서는 쪽귀형님이라고 불리워지는 그는 긴지로가 마다기의 규약을 어기고 돌출행동을 한다면서 몇 번이나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마다기 단나(두목)의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추방된 놈이 아이누추장을 데리고 식인곰사냥에 끼어든 것은 용서받지 못 할 짓이라는 거다. 초상집에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돌았다. 마에다도 그 긴장감을 느꼈다.
‘됐어. 초상을 치르는 일은 나에게 맡겨두고 마다기는 모두 돌아가. 곰을 잡아야 할 거 아닌가?’
마디기는 모두 돌아갔고 긴지로도 그랬다.
긴지로와 추장은 영감이 죽은 움막집으로 되돌아가 거기서부터 발자국을 추적했다. 사흘이 지난 발자국이었으나 아이누추장은 추적을 할 수 있다. 곰은 천천히 남쪽으로 가고있었는데 그쪽에는 서너 개의 야산들이 있고, 그 끝에는 마에다목장이 있다. 곰이 소를 노리는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지자 김지로와 추장은 야영을 했다. 큰 바위 밑에 모닥불을 피우고 바위에 기대 비스듬히 누워있었으나 아주 잠든 건 아니다. 긴지로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풀을 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곰의 발자국소리가 아닌 것 같다.
‘누구야! 앞으로 나와!’
긴지로가 총을 들어올리며 고함을 쳤다. 대여섯 명의 마다기들이었다. 모두 총을 들고 있다.
‘오이(임마), 긴지로. 네놈은 우리의 사냥을 방해할 작정인가?’
쪽귀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먼저 곰을 쫓고있다고 주장했다. 마다기규약에는 먼저 짐승사냥을 하고있는 사냥꾼을 방해하면 안 되게 되어있다. 그런 짓을 하면 응징을 받는다. 그때의 상황은 어느쪽이 먼저 곰을 추적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긴지로는 쪽귀와 다투지 않기로 한다. 그쪽은 여섯 명, 이쪽은 두 명이다. 그런 산림속에서는 잘잘못을 밝혀줄 증인도 없다. 긴지로가 부드럽게 웃었다.
‘좋아, 너희들이 그렇게 하겠다면 그렇게 해. 우리는 내일 아침에 돌아가겠어. 며칠동안 잠을 못 잤으니 오늘밤에는 여기서 자야해.’
긴지로는 그 약속을 지켰으나 곰사냥을 포기한 건 아니다. 다만 쪽귀들의 곰싸움을 지켜보기로 했을뿐이다. 긴지로가 보기에 쪽귀들은 승산이 없다. 쪽귀는 성미가 급했으며 무모한 사냥을 하는 버릇이 있다. 사냥꾼들의 수를 믿고 곰을 몰아서 잡으려고 한다. 차분하게 곰의 움직임을 보고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긴지로가 보기에 곤지기는 무모한 몰이사냥에 걸려들 놈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사육된 곤지기는 사람을 너무 잘 안다. 마다기들이 가지고있는 총에도 문제가 있다. 그 총들은 너무 오래돼 고철古鐵같은 것이다. 세 발 쏘면 한 발이 불발이고 조준이 되지 않아 총탄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총신에 금이 간 총도 있다.
마다기는 자기들끼리의 작은 사회에서 용기와 사냥경험을 믿고 곰사냥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조부나 부친이 쓰던 총을 그대로 인수받아 쓴다. 긴지로는 그런 낡은 총이나 경험으로는 식인곰 곤지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누추장의 의견은 달랐다. 마다기들이 곰을 잡지 못 할뿐만 아니라 곰에게 당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곤지기는 먹이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사람들에게 쫓겨 반격만 하는 곰도 아니지.’
추장은 곤지기가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곤지기는 사람들이 자기어미를 죽이는 걸 봤다. 생후 3개월, 아직 어미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새끼곰은 많은 사람들이 어미를 포위하여 창과 칼로 무참하게 살해하는 현장에 있었다. 새끼곰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어미 옆에서 울고있었으나 결국 어미는 죽고 새끼는 사로잡혔다. 곤지기에게는 그때의 비참한 장면이 각인刻印되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도 변하지 않는다. 아이누추장은 곤지기가 복수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사냥은 사람에 의한 곰사냥인 동시에 곰에 의한 사람사냥이 될 것이다. 긴지로와 추장이 곰과 사람들의 싸움터가 될 잡목림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야산정상에 올라갔다. 날씨가 갑자기 변하고 있다. 북해도의 북단北端은 일본영토였으나 사실상 북극권에 속해있으며 11월이면 시베리아에서 폭풍이 불어닥친다. 무서운 폭풍이며 잡목림의 낙엽이 날아올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드리 거목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사냥꾼들에게 최악의 사냥터이고 곰에게는 가장 유리한 싸움터가 될 것이다. 긴지로와 추장은 바위틈에 피신처를 만들었다. 나무를 잘라 바위틈에 걸치고 잡풀로 짠 거적으로 지붕을 덮었다. 그렇게 바람을 막아놓고 불을 피웠다. 불가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날씨가 변했으니 곰사냥을 중단해야 하는데 마다기들은 무리한 사냥을 감행한다. 그들은 옆으로 한 줄이 되어 잡목림 안으로 들어갔다. 날려오른 낙엽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곰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들렸다. 마다기는 소리나는 곳을 보고 대충 총을 쏘았다.
여섯 명의 마다기가 5m 정도의 간격으로 나란히 전진하면서 일제히 총을 발사하면 그중의 몇 발은 곰에게 명중될 것이다. 마다기들은 그렇게 믿고 계속 전진하면서 총을 난사했으나 마다기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곤지기는 총을 알고 있다. 난사亂射는 자신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긴지로는 총소리를 듣고 사냥이 사람들에게 불리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긴지로의 예상대로 곰사냥이 사람사냥을 바뀌고 있었다. 곰이 사람들의 등뒤로 돌아가 덤벼들었다. 쪽귀가 등뒤의 곰을 발견했다. 낙엽이 난무하고 있어 곰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쪽귀는 어림짐작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총소리가 울리고 탄환이 날아왔다.
‘바가야로(바보자식)! 어디다 총을 쏘고있나!’
쪽귀가 고함을 질렀으나 바람소리 때문에 들릴 리 없다. 쪽귀가 총탄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는데 곰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마다기들이 비명을 들었다. 그러나 누가 어디서 지른 비명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우왕좌왕할뿐인데 곰의 사람사냥은 계속되었다. 또 곰의 고함이 들리고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마다기들이 풀밭에 쓰러져있는 쪽귀를 발견했다. 일으켜 안았는데 목이 덜렁거린다. 또 다른 비명은 젊은 마다기였는데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곰이 물어뜯은 것이다. 마다기들은 동료를 도울 수 없다. 곰이 날뛰고 있다. 총도 동료들이 맞을까봐 쏘지 못 한다. 그때 마다기들은 야산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총을 쏘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다. 그쪽으로 오라는 것 같았다. 곰도 그 불빛을 보았다. 곰이 도망을 쳤다. 마다기들이 쓰러진 동료를 업고 불빛을 보고 달려갔다. 바위틈에서 불이 활활 타고 있다. 긴지로가 있었다.
‘긴지로 아니키(형님), 살려주세요!’
마다기들이 애원했다. 쪽귀는 살 가망이 없다. 곰의 앞발치기에 걸려 목뼈가 부러졌다. 다른 마다기도 어깨뼈가 들어나는 열상裂傷이었다.
목뼈가 부러진 쪽귀는 어쩔 수 없으나 중상을 입은 젊은 마다기는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 마다기들은 두목 곤베이의 집으로 사상자를 운반했다. 곤베이가 부상당한 마다기를 꿰매고 있을 때 다른 마다기들이 달려왔다. 마다기의 관습에서는 사냥을 하다가 죽은 마다기는 두목의 집에 모여 초상을 치른다. 모여든 마다기들이 회의를 열었다. 회의석상에서 곤베이가 말했다.
‘긴지로 네 놈은 곰사냥에 참가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
긴지로는 죽은 쪽귀가 자기들이 먼저 곰을 추적하고 있었으니 자기들끼리만 사냥을 하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사냥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다고 했으나 다른 마다기들이 거짓말을 했다. 그런 주장을 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곤베이와 다른 마다기들이 그 거짓말을 믿고 긴지로를 규탄했다. 나중에 지주 마에다로부터 자신들이 긴지로의 사냥을 방해했다는 질책을 받을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새끼를 그냥 둘 수 없어!’
마다기들이 흥분했고, 그중에는 때려죽여야 한다고 날뛰는 자도 있었다. 두목 곤베이는 말리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긴지로 규탄에 앞장을 섰다. 곤베이가 안방에서 총을 들거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안방에는 곤베이의 딸이 있었다. 딸은 긴지로에 겁탈을 당한 후 그걸 비밀로 하고 약혼자와 결혼을 하여 사내아이까지 낳았으나 며칠 전에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왔다.
‘아버지, 긴지로를 죽이면 안 돼!’
딸이 곤베이를 말렸고 곤베이는 달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딸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넌 아이를 데리고 어서 남편에게 돌아가!’
곤베이가 고함을 질렀는데 딸이 물러서지 않았다.
‘안 돼! 난 돌아가지 않아요. 난 긴지로를 만날 것입니다.’
‘너를 겁탈한 놈을 왜 만나겠다는 거냐? 빨리 돌아가지 못 해!’
‘아닙니다. 긴지로는 나를 겁탈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랬다. 그게 사실이라는 것은 곤베이의 처가 알고 있다. 딸은 긴지로와 합의하여 정사情事를 했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곳간에서 딸이 비명을 질렀고 집에 돌아온 곤베이가 그 소리를 들은 건 사실이었으나 그 비명은 남자와 처음 정교情交를 하는 처녀가 으레 지르는 고통의 비명이었다. 첫경험의 고통이었지 결코 거부하는 소리가 아니다.
곤베이의 처는 딸이 겁탈당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있었기 때문에 딸과 함께 곤베이를 말렸다.
‘야카마시(시끄러워)!’
본노한 곤베이가 딸의 머리채를 잡았고 처를 발로 찼다. 그러자 딸이 고함을 질렀다. 딸은 죽기를 각오하고 있엇다.
‘난 돌아가지 않아요. 나는 저 아이의 아버지를 만나게 해줄 것입니다.’
‘뭐라, 저 아이의 아버지?’
그 말에 곤베이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현제의 남편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니라 긴지로의 아들이라는 말인가? 곤베이는 생각했다. 그 딸을 첩첩산중에 사는 천민 마다기의 사회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도읍지 양가에 시집보냈는데 그게 잘못이었던가? 역시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딸이 시집간 집안은 부유한 상인의 집안이고 겉보기에 평화롭고 편안하다. 그러나 딸은 그 집 안방에서 햇빛을 볼 수 없었고, 새소리나 짐승의 울음도 들을 수 없고, 싱싱한 나무나 풀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늘 어두컴컴한 안방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바느질을 하거나 차를 끓어야 한다. 그집은 잡화를 거래하는 장사인데 그들은 늘 다른 사람을 속여 돈을 버는 의논만 한다. 그들은 고객뿐만 아니라 다른 상인을 속이는 음모까지 꾸미기도 한다. 남편이라는 자는 병약해서 약만 마시고 있고, 사내구실도 못 한다. 딸은 모친에게 그런 얘기를 털어놓고 이혼하겠다고 했으나 곤베이는 그런 얘기를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딸의 인내와 슬픔이 폭발했다. 딸은 산골에서 긴지로와 함께 살겠다고 선언했다.
곤베이는 한참동안 멍 하니 서있다가 회의실로 돌아갔다. 아직도 많은 마다기들이 긴지로를 때려죽이겠다고 날뛰고 있었는데 상좌에 앉은 곤베이가 그들을 제지했다. 곤베이는 긴지로와 함께 사냥을 한 아이누추장을 불러들였다. 아이누추장은 곤베이의 물음에 단호하게 말했다. 긴지로가 다른 마다기들과 함께 사냥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쪽귀를 비롯한 다른 마다기들이 함께하는 사냥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그러자 곤베이가 쪽귀와 함께 사냥을 한 네 명의 마다기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마다기사회에서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 쯤은 알고있겠지?’
마다기사회에서 거짓말을 하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네 명의 마다기가 침묵했다. 그들은 결국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회의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츠야(밤샘 추도회)가 시작되었다. 츠야가 끝나면 납관을 하고 시신을 매장하는 관습이었으나 죽은 쪽귀의 경우는 정식으로 매장을 하지 않았다. 마다기의 관습에서 사냥을 하다가 짐승에게 죽은 마다기는 그 짐승을 잡아 고인의 원한이 풀릴때까지는 매장을 할 수 없다. 쪽귀는 눈을 부릅 뜬 체 죽었으며 복수를 하여 그의 눈을 감게 해주어야 한다.
츠야에는 곤베이의 처와 딸이 나와 조문객들에게 차와 음식을 대접했는데 긴지로에게 겁탈을 당했다는 딸이 그런 공식장소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문객을 접대했으나 긴지로를 보는 표정은 부드러웠다.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다음날 아침 곤베이는 식인곰사냥대를 조직했다. 가장 우수한 마다기 다섯 명을 선발했고, 지휘를 하는 소두목에는 긴지로가 지명되었다. 소두목은 중요한 자리이며 앞으로 두목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다. 곤베이는 긴지로를 자기의 후계자後繼者로 간주看做한 셈이다. 그날 정오께 사냥대가 출발항 때 많은 사람들이 환송을 했는데 그중에는 곤베이의 딸도 있었다. 딸은 세 살되는 아들을 안고있었는데 그 아들이 긴지로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고 웃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아이는 그런 짓을 했다. 역시 핏줄이라는 게 있나보다. 곤베이의 처가 사냥꾼들에게 밤새 만든 준비물을 주었다. 맷돼지고기와 버섯이 들어간 주먹밥, 양념을 바른 마른 산천어와 소주인데 만든 여인의 정성이 담겨잇다.
‘자, 그럼 모두들 떠나. 모두 마다기의 전통과 체면을 지켜! 내가 후원군을 데리고 뒤를 따라갈테니 위급한 일이 생기면 봉화烽火를 올려.’
그날은 폭풍이 그치고 눈이 엷게 쌓였다. 그 해 첫눈이다. 길조吉兆다. 사냥꾼들에게 눈은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다. 추적하는 짐승의 발자국이 눈 위에 찍히기 때문에 추적이 쉽다. 긴지로일행은 야산의 정상에 올라 주변을 살폈다. 살인곰의 발자국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아이누추장이 말했다.
‘놈은 이 부근에 있어.’
그 시기에는 곰이 겨울 잠자리를 찾아 동굴이나 토굴에 들어갔으나 식인곰 곤지기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사람들에 의해 사육된 곤지기는 겨울잠을 자지 않고 잔다고 해도 깊은 잠을 자지 않고 수시로 밖을 드나든다. 목장 주변에 까마귀들이 날아다녔다. 까마귀는 곰이 사냥한 찌꺼기를 얻어먹는다.
역시 추장의 예상이 옳다. 사냥대는 목장 주변에서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곰은 묵장의 철조망 울타리를 돌고있었는데 지그재그로 가다가 되돌아가기도 했다. 목장을 살피면서도 추적자를 의식하고 경계하고 있다. 곰은 시력은 좋지 않았으므로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식별하지 못 한다. 그 대신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다. 개보다 더 예민하다. 10Km 밖에서 나는 냄새도 감지한다. 그래서 곰은 지그재그로 가면서 사방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려고 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서 냄새의 강약이 있어 곰은 냄새를 풍기는 물체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움직인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식인곰 곤지기는 사람을 의식하고 냄새에 민감하기 때문에 추적을 피할 수 있다. 추적을 시작한지 한 시간만에 곰은 추적을 눈치챘다. 방향을 바꿔 빠른 걸음으로 산으로 올라간다. 그 야산에는 며칠 전에 불었던 강풍으로 나무들이 쓰러져 많은 열매들이 떨어져 있었으나 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곰은 도토리를 좋아하는데 먹지 않았다. 추적자를 따돌리려고 한다.
‘놈이 기타미산맥으로 가고있어.’
추장이 말했다. 곰은 산림에서 사는 동물이며 영토는 산림이다. 그런 곰이 나무들이 없는 험준한 바위산만 있는 기타미산맥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산맥에 있는 동굴에 숨거나 바위산에서 추적자들과 싸우겠다는 의도다.
‘곤지기는 사람을 잘 알아. 사람과 싸우는 법도 알아.’
곰이 사람을 잘 알고있으나 아이누추장이나 긴지로도 곰을 잘 알고 있다. 곰의 의도가 분명해진 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다. 사냥꾼들은 그날밤은 기타미산맥으로 들어가는 바위산 입구에서 야영을 했다. 초겨울밤 야기夜氣가 얼음처럼 차가왔으나 모닥불을 피우고 주위에 둘러앉았다. 화기火氣가 닿는 얼굴은 뜨겁고 등쪽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북해도의 마다기들에게 그건 즐거운 고통이다. 오장육부五臟六腑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세파世波의 온갖 고뇌苦惱와 잡념雜念을 씻어주는 것 같은 공기다. 불에 타는 송진냄새도 향기롭다.
마다기들이 야영을 할 때는 불침번을 선다. 언제 곰이 덮칠지 모른다. 소두목 긴지로가 불침번을 서는 마다기를 불러들였다.
‘그럴 필요 없어. 여기 와서 술이나 마셔.’
사냥을 할 때는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거도 마다가의 법도法道였으나 긴지로는 말린 산천어를 안주로 술잔을 돌렸다.
‘몇 잔 쯤 들고 푹 자는거야. 내일은 뛰어야 하니까.’
사냥은 즐기면서 해야 한다는 게 긴지로의 주장이다. 사실 그 야영장은 불침번을 설 필요가 없다. 보통 야영장은 풀밭에 설치하는데 긴지로는 꽤 급한 경사지를 선택했다. 뒤에는 높은 절벽이고 양쪽에는 큰 바위에 둘러싸였다. 경사지 정면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다. 성장한 불곰은 몸무게가 300Kg이나 되었으며 몸이 무거워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싫어한다. 어렸을 때는 나무를 잘 탔으나 성장하면 나무에도 오르지 못 한다. 그래서 긴지로가 선택한 그 야영장은 곰이 덮칠 염려가 없다. 그놈은 높은 절벽이나 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면서 야영장을 덮칠 재주도 없고, 경사지를 기어올라와 모닥불을 뚫고 사람을 덮칠 힘도 없다. 긴지로는 비스듬히 누워 잠을 잤으나 완전히 잠든 건 아니다. 노련老鍊한 사냥꾼은 잠을 자면서도 주위를 살핀다. 그러나 긴지로는 곰의 능력을 얕잡아보지는 않는다. 북해도의 불곰이 얼마나 무서운 맹수인지 잘 안다. 곰은 미련스럽다고 하는데 사실은 지능지수知能指數가 높다. 더구나 사람들에게 사육된 곤지기는 사람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3년 동안에 사람을 여덟 명을 죽였고 그중에는 곰을 전문으로 잡는 마다기들 세 명이 포함되어있다. 사냥꾼들에게 추적을 당하는 곤지기가 완만한 경사의 야산을 넘어가다가 갑자기 산 너머에서 되돌아서 사냥꾼을 덮쳤다. 추적하는 사냥꾼들은 곤지기를 볼 수 없었으나 곰은 그 예민한 후각으로 산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훤히 알고있었다. 곰은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는 동작이 느리지만 내려올 때는 번개처럼 빠르다. 급한 경사지를 내려올 때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미끄럼을 탄다. 그래서 사람들은 흙과 돌맹이를 날리면서 달려드는 곰을 볼 수도 없다.
다섯 명의 마다기들이 곰을 추적하고 있었으나 총을 쏠 틈이 없었다. 곰이 미끌어져 내려오면서 마다기 한 사람을 껴안고 목을 비틀어서 내던졌다. 계곡으로 도망갔다. 워낙 빨랐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쫓아갈 엄두도 내지 못 하고 멍 하니 보고만 있었다. 목이 비틀린 마다기는 목뼈가 부러졌다. 또 다른 마다기는 갓대밭에서 당했다. 무마사사(곰갓대)라고 불리는 갓대인데 웬만한 대나무처럼 강하다. 밀식한 갓대밭에는 낫으로 자르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 한다. 곰은 그런 갓대밭을 좋아하며 그 안으로 사냥꾼을 유인했다. 사냥꾼들은 갓대가 크기 때문에 앞을 볼 수 없었고 쉽게 뚫고 들어가지도 못 한다. 그러나 곰은 갓대쯤이야 밀어부쳐 부러뜨리고 짓밟았다. 곰을 추격한 세 명의 마다기는 모두 젊었고 무모하다. 갓대밭에 곰이 지나간 터널을 발견하고 30m 쯤 들어갔으나 터널이 막혀있었다. 곰도 보이지 않았다.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때가 늦었다. 등뒤에서 갓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가던 곰이 멀리 돌아 사냥꾼들의 뒤에서 덤벼들었다. 당황한 사냥꾼들이 소리나는 쪽으로 총을 난사亂射했으나 그런 총탄에 곰이 맞을 리 없다. 갓대의 줄기는 강하고 질겼으므로 총탄에 맞아도 총알이 옆으로 튕겨나갔다. 곰은 사람사냥을 했다. 마다기들이 가지고있는 총은 구식舊式 단발총單發銃이며 재장탄再裝彈을 할 틈도 없다. 한 사람은 곰에게 물려죽고, 또 한 사람은 중상을 입었다. 갓대줄기 옆에 납작 엎드려있었던 사람은 구사일생九死一生이다. 또 다른 희생자는 쪽귀였는데 그도 무모한 짓을 했다. 폭풍이 불어닥쳐 낙엽들이 날려올라가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은 잡목림으로 들어갔다가 곰의 역습逆襲을 받았다. 곤지기는 사람의 코가 별 소용이 없는 감각기관이라는 걸 알고 있다. 곰은 시력이 나쁘다. 바로 2m 앞에 사람이 있어도 분간하지 못 한다. 그래서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사냥을 하고 사람들과 싸웠으나 사람의 코는 진화과정에서 그런 기능을 잃었다. 사람은 주로 눈으로 싸우는데 그 눈을 속이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총도 쏠 수 없다. 예상했던대로 곤지기가 기타미산맥으로 올라간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사람사냥을 할 셈이다.
사람사냥에 능숙한 곰은 자기에게 유리한 지형을 차지했다. 높이 2,000m가 되는 바위산들이 연이은 기타미산맥으로 추적하는 사냥꾼들을 끌어들여 역습을 노리고 있다. 곰과 사람과의 또 다른 변수變數는 날씨다.
‘저 곰은 사나흘 이내에 잡아야 돼.’
긴지로가 지시했다. 그곳의 기후도 북쪽 대륙처럼 삼한사온三寒四溫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때는 사온의 날씨로 비교적 따뜻했으나 곧 무서운 폭풍이 다가올 것이며 폭설이 내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긴지로는 서둘렀다. 아이누추장은 야영을 함께 한 다음 일행과 떨어졌다. 별도로 움직여 긴지로를 도와주기로 했다. 발자국추적이 시작되었다. 긴지로의 발자국추적은 빠르다. 그는 여늬 추적자들처럼 발자국만 보고 따라가지 않는다. 희미해진 발자국만 보고 따라가다가는 빠르게 도망치는 곰을 따라잡을 수 없다. 며칠 후에 사람이나 소를 잡아먹은 현장에 도착하여 뒷북을 치게 된다. 긴지로는 직감에 의존한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냥꾼이다. 긴지로는 곰의 버릇을 잘 알고 있다. 곰은 급한 경사지나 큰 바위를 피하고 나무들이 빽빽한 삼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긴지로의 추적은 신속하면서도 정확하다. 어쩌면 곰의 냄새까지도 맡는지 모른다. 몇 십미터 앞의 마른 풀숲을 보고 곰이 그곳을 뚫고나간 걸 짐작한다. 사냥꾼들과 별도로 움직이는 아이누추장이 추적을 도와주었다. 추장은 멀리 높은 산날에서 도망가는 곰을 내려다보고 있다. 추적하는 사냥꾼들의 볼 수 없는 곰의 동태를 볼 수 있다. 곰이 사냥꾼을 따돌리고 사냥꾼들의 뒤로 돌아가거나, 산 너머에 숨어 기습을 하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을 긴지로에게 알려준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있으면 횃불의 연기를 이용하여 알려주었다. 긴지로도 그런 방법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곰이 몰리고 있다. 추적은 빠르고 정확하다. 그리고 집요執拗하다. 곰은 사냥꾼을 따돌릴 수가 없고 멀리 돌아 등뒤로 나갈 수도 없다. 산 너머에서 기다리다가 역습할 수도 없다. 하오부터 곰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곰은 겉보기에는 미련스럽고 끈기가 없는 짐승 같으나 사실은 성미가 급하다. 성미가 급한 것 같은 범이나 표범이 끈기가 있어 사냥꾼들과 지구전持久戰을 할 수 있으나 곰에게는 그런 참을성이 부족하다. 북해도의 곰은 적이 없는 산림의 왕인데 그런 곰이 언제까지나 도망다니지는 않는다. 그런 곰의 성질을 잘 알고있는 긴지로는 신경전을 벌였다. 긴지로는 일부러 산날을 타고있는 추장과 고함소리를 주고받았으며 때때로 공포탄을 쏘아 곰을 위협했다. 사람을 잘 아는 곤지기는 총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있으며 산에 메아리치는 총소리에 신경질이 되었다. 드디어 곰이 포효했다. 총소리에 대항하듯이 고함을 질렀다.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비틀며 토吐해내는 분노의 고함이다.
‘오냐, 이 놈! 이제 한 판 벌일 셈이구나.’
긴지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오 늦게 바위산정상에서 곰이 모습을 들어냈다.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나 추적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추적을 멈췄다. 긴지로는 수십 마리의 곰을 보았지만 그렇게 큰 곰은 처음이다. 아이누가 곤지기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았다. 석양을 등지고 서있는 곰은 황금색으로 번쩍였다. 신비스러웠다. 이 세상의 동물 같지 않다. 긴지로는 사냥을 중단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곰의 등뒤에서 떨어지는 해는 시력을 무력하게 만든다. 바위들이 뒹굴고있는 싸움터도 불리하다. 곰이 그 급한 경사를 타고 밀어붙이면 산사태가 일어나 사냥꾼들은 대처할 방법이 없다. 곰이 덮쳐들지 못 할 언덕 밑 경사지에서 야영을 했다. 모닥불을 세 군데 피웠다. 아무리 미친 곰이더라도 그 불을 뚫고 덤벼들 수는 없다. 산날에도 여기저기 불빛이 보였다. 아이누추장이 곰이 도망갈 길을 막으려고 피워놓은 모닥불이다. 사냥꾼들은 모닥불 옆에서 잠들었으나 곰은 밤새 고함을 지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긴지로는 그날밤에도 불침번을 세우지 않았는데 한밤중에 곰이 아주 가까운거리에서 으르렁거렸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았으나 곰은 덤벼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고 총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이다. 모닥불도 두렵다. 곰이 물러났다. 어디로 갔을까? 긴지로는 직감으로 느꼈다. 그러나 곰이 추적자를 죽이겠다는 집념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그때 아이누추장은 기타미산맥으로 들어가는 높은 바위산에서 야영을 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잠을 자고있었는데 새벽에 추위를 느끼고 눈을 떴다. 모닥불이 사그러들고 있었다. 눈앞에 뭔가 어른거렸다. 곰이다. 곰이 꺼져가는 모닥불을 타넘고 2, 3m 앞에 서있었다. 앞발로 내리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리다. 추장은 일어서면서 총대를 움켜잡았으나 쏠 틈이 없다. 추장이 고함을 질렀다.
‘곤지기, 네 놈이구나!’
식인곰 곤지기가 고함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곰이 자기를 키워준 추장을 알아봤다. 모닥불을 타넘었으나 바로 덮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 곤지기라는 이름을 듣고 멈칫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곰이 멈칫거리는 틈을 타 추장이 발포했다. 곰이 비틀거렸다. 어깨에 총탄을 맞았으나 반격을 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다. 긴지로가 새벽 총소리를 듣고 추장에게 달려갔다. 추장은 무사했으나 멍 하니 앉아있었다. 핏자국이 있었다.
‘놈은 나를 쉽게 죽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 총탄을 맞고 웍!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건 자기를 알주지 않는 옛 주인에 대한 원망의 소리였어.’
‘그래서 당신도 도망가는 곰을 쏘아죽이지 않았구만 ….’
추장의 총은 총신이 두 개 있는 연발총이었으므로 남아있는 한 발로 곰을 죽일 수 있다. 추장이 긴지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곰은 어깨에 총탄을 맞았으나 치명상은 아니다. 곰은 생명력이 질겼으며 그런 상처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피를 흘리고 있고 앞발 하나를 쓰지 못 하고 있다. 그런 몸으로는 험준한 산을 올라가지 못 한다.
다시 추적이 시작되었다. 삼한사온의 날씨가 악화되기 전에 곰을 잡아야 한다. 곰은 기타미산맥 원시림으로 들어갔다. 침엽수와 광엽수가 섞여있는 꽤 넓은 잡목림인데 어깨에 총상을 입은 곰은 절름거리면서도 빠르게 도망치고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므로 다시 야영을 해야 한다. 아이누추장이 활활 타는 모닥불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는 먼저 화신에게 산신을 모셔달라고 청했다. 화염속에 산신이 나타나자 추장은 겸허하게 아이누가 본디 살육을 싫어하여 곰과 공생을 하고있으나 이번 곰은 사람을 죽인 식인곰이므로 부득히 제거해야 한다고 고告했다. 곰을 잡으면 위령제慰靈祭를 올려 그의 환생還生을 빌겠다는 약속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음날 상오 추적대가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곰은 산림의 소나무에서 송진을 뜯어 어깨의 상처에 바른 것 같다. 지혈止血도 되고 감염感染도 막는 치료법이다. 산림에서 나온 곰은 황무지로 들어갔다. 대나무처럼 강인한 곰갓대들이 우거진 황무지인데 추적이 어렵다. 곰의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아이누추장도 산날을 포기했다. 산 위에서도 갓대밭을 걸어가는 곰을 볼 수가 없다. 곰이 지그재그로 도망하기 때문에 추적이 지지부진遲遲不進하다. 긴지로가 초조하다. 날씨도 이상해지고 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지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은 것도 불길하다. 태풍 전의 현상이다.
‘북쪽이야. 곰이 방향을 감추려고 동서로 왔다갔다 하지만 북쪽으로 가고있어.’
‘어떻게 그걸 알지?’
‘북쪽엔 곤지기의 고향이 있어.’
갓대의 황무지 북쪽 끝에 자그마한 강이 흐르고 산천어와 가재가 많다. 기티미산맥의 일각이 서쪽으로 뻗어나와 북쪽의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강 주변에는 곰이 좋아하는 산딸기와 머루가 많다. 곰은 거기에서 어미와 살다가 사냥꾼에게 어미는 죽고 자기는 사로잡혔다. 어미가 죽은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곰의 고향이다.
‘사람이나 곰이나 다 어려워지면 고향생각을 하는 법이지.’
그곳은 아이누의 고향이기도 하다. 타민족의 압박속에서 사는 아이누도 역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추장의 말이 옳았다. 사냥꾼들이 하오 늦게 갓대숲 북쪽에서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절름거리며 북쪽으로 가고있었다.
‘이대로 가면 내일 아침쯤에는 강이 나오고 초원이 나올거야.’
추장이 말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긴지로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폭풍이 불어닥치고 폭설이 내렸다. 동장군冬將軍이 쳐들어왔다.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거센 폭풍, 폭설이어서 갓대들이 부러지고 사냥대가 비틀거렸다. 동굴이나 토굴도 없다. 고함을 질러도 들리지 않는다. 사냥꾼들은 나무를 잘라 통나무 움막을 만들었다. 갓대를 엮어 지붕과 벽을 쳤으나 지붕이 몇 번이나 날아가버렸다. 풍신이 날뛰면 화신은 맥을 추지 못 한다. 불을 피우지 못 해 사냥군들이 쓰러졌다. 절망적이다. 그때 고함이 들렸다.
‘힘을 내! 이만한 일로 뭘 그래.’
마다기두목 곤베이다. 일꾼 네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사냥꾼들을 도와주기 위해 줄곧 따라왔다. 그들의 도움으로 움막집이 완성되고 안에서 불을 피웠다. 곤베이는 술, 식량, 약 그리고 사냥대가 입을 털옷을 가지고왔다. 모닥불에 밥을 짓고 맷돼지고기를 구웠다. 곤베이는 술잔을 돌리면서 말했다.
‘이것은 수기가 장만한 거야.’
수기는 곤베이의 딸이다. 양념이 잘 벤 맷돼지고기는 남편을 위한 아내의 정성이 담겨져있었다. 사냥대는 움막에서 이틀을 지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는 폭풍과 폭설이 좀 뜸해졌다. 바람은 불고있었으나 사냥대는 일어났다. 마다기들은 불굴의 사나이다.
‘우리도 고생했지만 곰도 고생했을거야. 놈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때야.’
긴지로가 총을 들고나섰다. 그날 하오에는 폭풍과 폭설이 그쳤다. 그리고 얼음이 번쩍이는 강이 보였다. 곤지기의 고향이다. 그러나 곰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얼어죽어 눈속에 파묻힌지도 모른다. 아이누추장이 담배를 한 대를 다 태우면서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다.
(혹시 … ?)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저기 저 산을 넘으면 아이누마을이 있어. 내가 사는 마을이지.’
(설마, 곰이 거기로 … ?)
‘마을어귀에 동굴이 있어. 곤지기가 겨울잠을 자라고 만들어준거야. 꽤 큰 동굴이고 지열이 따뜻하지. 곤지기는 그 동굴에서 겨울잠을 잤는데 완전히 자지는 않았어. 아주 추울 때는 동굴에 있다가 바깥 기온이 올라가면 밖으로 나와 놀았지. 그러다가 추워지면 또 들어가고. 놈에게는 장난기가 있어. 겨울이 지난 후에도 놈은 그 동굴에 들어가 놀았어.’
(그렇다면 혹시 … ?)
긴지로는 헛일일지 알면서도 동굴에 가보기로 했다. 산을 넘어서니까 발자국이 있었다. 절룩거리면서 마을로 가고 있다. 사냥대를 산정상에 대기시켜놓고 추장과 함께 발자국을 추적했다. 발자국이 동굴로 가고 있다. 발자국은 동굴 바로 앞에서 없어졌는데 동굴 안은 조용하다. 추장이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냄새를 맡았다. 노릿한 곰의 냄새가 났다.
‘있어. 곤지기가 동굴 안에 있어.’
긴지로와 추장이 동굴 앞에서 멈췄다. 긴지로는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추장이 고함을 쳤다.
‘곤지기 바깥으로 너와! 네 놈이 거기있는 걸 알고있어. 불을 질러 쫓아내기 전에 네 발로 걸어나와!’
한참 후에 곰이 으르롱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람을 쫓아버리려는 위협이었으나 사람은 물러나지 않았다. 곰이 다시 한 번 위협을 하더니 사람들이 물러나지 않을 걸 알고 뛰어나왔다. 긴지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곤지기가 긴지로의 총탄을 맞고 무릎을 꿇었다. 총탄이 심장에 박혔다. 곤지기는 대가리를 들어 추장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곤지기! 위령제를 지내줄테니까 좋은 곳으로 가. 다음 환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
아이누추장이 곤지기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다음날, 아이누마을 앞마당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마을사람들이 곤지기의 명복冥福을 빌었다. 마다기들이 곤지기의 시체를 들것에 싣고 곤베이의 집으로 갔다. 마다기의 관습에 따라 곰의 간 일부를 잘라 살해당한 쪽귀의 영전靈前에 바쳤다. 목장주 마에다도 와있었는데, 그는 좋은 날을 받아 긴지로와 곤베이의 딸 수기의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사냥꾼이야기 - 1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