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이야기 - 12
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12권> 153화 - 156화 (계속)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기記, 김왕석 역譯
이천만李天滿 윤색潤索
<목차>
153. 겨울 곰/ 154. 부시맨의 성지聖地/ 155. 목베기족族 완비사/
156. 무산茂山의 포수마을
153. 겨울 곰
함경도 무산 산골마을에는 예부터 겨울이 너무 일찍 오면 흉사凶事가 일어난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폭풍, 폭설이 휘몰아치고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이 일찍 오면 좋을 것이 별로 없겠지만 옛사람들은 무서운 참사慘事가 일어난다고 경계警戒했다.
1928년 10월 중순, 겨울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 예년 같았으면 아직 가을이고 추수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계절이었으나 어느날 밤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닥쳐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쌓일 틈도 없이 날려갔다. 다음날 아침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 11월 초에나 와야할 겨울이 보름이나 빨리 앞당겨 와버렸다.
두만강 지류支流 서두수 주변 산골마을 장로들이 걱정을 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표정이 어두웠다.
그 해 봄 아들을 장가보낸 황노인의 며느리가 들어누웠다. 고단한 산골마을 생활을 견디지 못 해 몸살이 난 것이라 생각했으나 며느리는 열흘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 하더니 보름째 되던 날 숨을 거두웠다. 진맥診脈을 한 촌장영감은 무슨 병인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다른 영감들은 짐작을 했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이 겨울이 너무 일직 오면 흉사가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밤 며느리의 시신屍身을 관에 넣고 잇을 때, 바깥에는 북풍이 몰아치고 있었고, 눈까지 날렸다. 바람소리에 나무들이 휘청거려 방안에서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은 정도다. 아침나절에 앞산으로 나무를 하러갔었던 애꾸눈 박서방이 잡목림에서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을 봤다고 했다.
‘범의 발자국이야?’
겁에 질려 도망쳐버렸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못 했으나 범발자국 같지 않다고 했다.
‘범의 발자국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박서방이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으나 독촉을 받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방정맞은 말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어쩔 수 없이 입 밖으노 내뱉고말았다.
‘곰의 발자국 같았어. 아주 큰 불곰의 발자국이야.’
방안이 조용해졌다. 모두 얼굴이 창백해졌다. 겨울에 곰이 있을 리 없다. 곰은 10월 중순까지는 모두 구멍으로 들어간다. 자연적인 바위동굴이나 스스로 판 땅굴, 큰 고목枯木의 밑둥에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그래야 가혹한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래서 10월 초, 늦어도 10월 중순까지는 구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곰은 두꺼운 지방층과 긴 털을 갖고있으나 추위에 약하다. 기온이 10도 이하로만 떨어지면 신경질이 되어 고함을 지른다. 곰은 밤, 도토리 등 견과류堅果類나 딸기, 머루, 나무뿌리도 먹고 멧돼지, 사슴, 노루, 토끼도 잡아먹고 물고기도 먹는다. 잡식성雜食性 대식가大食家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그런 먹이를 구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겨울추위도 견디지 못 한다. 춥고 배곺은 곰은 구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 구멍 안에서 꼼짝 않고 가사假死상태에 빠진다. 가을에 잔뜩 먹어 축적해둔 지방에서 영양을 조금씩 보급하면서 목숨을 유지한다. 꼼짝도 하지 않기 때문에 겨울잠을 자는 곰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진화進化과정에서 습득한 자연의 섭리攝理다.
그런데 겨울이 되었는데 곰이 구멍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흉사, 참사가 일어난다. 구멍을 찾지 못 한 곰이 눈바람이 부는 바깥에서 해매다가 얼어죽는다. 그런데 죽지 않는 겨울곰이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간다. 산골마을 장로들이 염려하는 흉사, 참사다.
그날 밤, 죽은 며느리의 납관納官이 끝났을 때 방문이 열리고 불청객不請客이 들어섰다. 시커먼 불곰이다. 눈이 벌겋게 충혈充血되고 아가리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거대한 몸집인데도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발바닥이 고무처럼 부드럽고 긴 털에 덮여있기 때문이다.
(뭘 해, 그 관官에 들어있는 것은 내꺼야. 내가 먹을거야.)
곰이 으르렁거렸다. 곰은 관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다. 곰은 눈이 작고 근시近視이며 귀도 작았고 그리 예민銳敏하지 못 하나 코는 예민하다. 곰은 늑대나 개보다도 더 예민한 후각嗅覺을 가지고 있으며 10리 밖에서도 먹이의 냄새를 감지感知한다. 곰이 시신屍身의 냄새를 맡았다. 초상初喪집에서 나오는 온기溫氣도 그놈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곰이 초상집을 발견했다. 곰이 앞발로 쾅! 관을 내리쳤다.
관뚜껑이 두 동강났고 곰은 그 한쪽을 뜯어냈다. 관속의 시신의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냈다. 방안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모두 도망을 갔는데 여인의 남편이 곰에게 덤벼들었다.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아랫마을에서 신부新婦를 데려왔던 그는 마누라의 시신이라도 지키겠다고 곳간에 있는 낫을 들고나와 곰의 대가리를 찍었다. 이마가 찢어진 곰이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앞발로 남편을 후려쳤고 그 일격으로 남편은 마당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는 목뼈가 부러져 죽은 마누리를 따라 저승으로 갔다. 곰의 어깨에 불거진 근육에서 나오는 완력腕力은 가공可恐할만한 힘이다. 곰의 완력에는 범도 당하지 못 한다. 곰이 관속에서 끄집어낸 여인을 마당으로 끌어내더니 앞산으로 끌고갔다. 바깥은 깜깜하고 불어닥치는 바람소리에 마을사람들의 고함도 들리지 않았다. 횃불을 들고나왔으나 어둠속에서 곰을 추격할 수 없다. 희생자만 더 생길뿐이다. 새벽이 되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눈까지 퍼부었다. 강풍에 날린 눈가루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이 촌장집 사랑방에 모였다. 아낙네들이 안고있는 아이들까지 50여 명이 모였는데 그때 그들은 또 실수를 했다. 노인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곰을 추격하기로 한 것이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용감했으나 그런 용기는 만용蠻勇이다. 그들이 살고있는 무산은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며, 마을사람들은 농사 보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며 살았다. 반면 짐승들도 옥수수, 조, 감자 등이 심어진 마을의 밭을 짓밟았고, 마을을 덮쳐 돼지, 양, 닭을 잡아먹었고, 사람들도 해쳤다. 산골에서는 사람들과 짐승들이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살았다. 그래서 마을의 집집마다 창과 활이 있다. 창이 없는 집은 도끼, 낫, 괭이 등을 들고 겨울곰사냥에 참가했다. 곰은 잡지 못 하더라도 불쌍한 여인의 시신이라도 찾아야 할 게 아닌가.
마을사람들이 정오께 여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사지四肢가 찢어지고 내장內臟이 쏟아져나왔으나 다른 부분은 남아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시신을 거적으로 말아 마을로 가져왔다. 마을에서 30리 쯤 떨어진 포수마을에 사람을 보내 곰사냥을 하기로 하고 부부의 초상부터 치르기로 했다. 마을사람들이 마당에 모닥불을 활활 피워놓고 경계를 하고있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
비단 곰뿐만이 아니라 모든 포식동물들은 먹이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특히 굶주리고 있었던 겨울곰은 먹이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하다. 굶어죽지 않기 위한 자연의 섭리攝理이기도 하다. 곰은 여인의 시신이 자기의 먹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잡은 먹이는 아니지만 자기가 발견하여 가지고 갔었던 먹이인데 마을사람들이 먹다남긴 자기먹이를 빼앗아갔다. 구멍을 찾지 못 해 추위에 떨고 먹이에 굶주린 곰은 신경질적이 되어 살육의 본능에 사로잡혔다. 곰은 마을사람들이 들것에 싣고간 시신의 냄새를 더듬었다. 그 냄새를 따라가니 마을이 나타났고 모닥불이 피워져있다. 많은 사람냄새가 난다. 정상적인 곰이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곰은 불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사람도 두려워한다. 그러나 겨울곰은 미친 곰이며 두려움이 없다. 곰이 모닥불을 짓밟으며 시신들이 있는 마루로 돌진했다. 창으로 앞가슴을 찌르려고 했으나 곰이 앞발로 청을 쳐내버렸다. 다른 사람이 도끼로 대가리를 찍으려고 했는데 곰이 먼저 앞발로 사람의 목을 후려쳤다. 마루 위로 뛰어오른 곰이 시신을 지키고있었던 촌장을 와락 잡아당겨 어깨를 물어뜯었다. 지옥과 같은 아수라장阿修羅場이다. 불에 탄 곰털의 노린내가 진동하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왔다. 곰을 죽이려던 사람들의 고함이 비명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도망쳤다. 곰은 나란히 누워있는 시신에서 여인의 시신만 끌고 사라졌다.
마을사람들이 기다리던 포수마을사람들은 다음날 아침에 도착했다. 두령頭領 강인수포수를 비롯한 여섯 사람이다. 화승포를 갖고있고 두령은 방아쇠를 당겨 납탄을 날리는 근대적인 총을 가지고 있다. 수해樹海라고 불리는 광대한 무산의 원시림에는 경찰이 들어가지 못 하므로 포수마을 사람들이 맹수에 의한 산골마을의 피해를 막아주었다.
마을에는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통곡과 비명이 들렸다. 피에 물든 마당에는 네 사람이 죽어있고 두 사람은 중상을 입고 신음했다.
‘이런 나쁜 놈!’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강두령이 신음했다. 강두령은 겨울곰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다. 이 겨울곰은 5, 6년만에 한 번 있는 액년厄年 - 겨울이 너무 일찍 오는 해에 나타나는 괴물怪物이다.
우선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겨울곰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강두령은 마을사람들은 긴급히 대피시켰다. 곰이 물고간 여인의 시신을 찾는 일도 초상을 치르는 일도 중요하지 않다. 겨울곰은 내버려두어도 죽는다. 구멍을 찾지 못 해 떠돌아다니다가 한 달을 넘기지 못 하고 얼어죽는다. 길어야 두 달이다. 문제는 그놈을 잡는 일이 아니라 희생자가 더 이상 나지 않아야 한다.
폭설과 폭풍이 불어닥치는 원시림에서 곰사냥은 할 수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곰을 찾아 원시림에 들어가지 않아도 곰이 스스로 마을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시신이 있는 마을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강두령은 들것을 만들어 부상자들을 싣고 마을을 떠났다. 동쪽으로 20리 쯤 떨어진 곳에 화전민마을이 있었으나 거기도 위험하다. 강두령은 화전민마을 사람도 모두 데리고 갔다. 포수마을 동쪽으로 갔다. 도중에 있는 마을에 사람을 보내 경고했다. 일행은 다음날 포수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는 일본인 경찰지서장이 순사와 산림계직원 등 여서서명을 대동하고 기다리고 잇었다. 그는 일본군 육군 중사 출신이며 군대정신에 투철했다. 지서장은 마을장정을 소집하여 몰이사냥을 하겠다고 설쳤다. 어리석은 짓이다. 몰이사냥으로는 겨울곰을 잡지 못 할뿐만 아니라 희생자가 날 염려가 있다.
최두령과 무산의 윤원술포수에게 사람을 보냈으니 곰사냥을 윤포수의 지휘로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서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포수가 곰을 두려워하다니 …. 살인곰이 돌아다니는데 왜 사냥을 늦추려는거야?’
‘그 겨울곰은 잡히지 않습니다. 그 곰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윤포수뿐입니다.’
‘윤포수가 도대체 누구기에 그런 소리를 하나?’
윤원술포수는 3,000섬을 하는 지주地主였으며 당대의 포수다. 무산사냥꾼의 대부代父다. 큰 사냥은 반드시 그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윤포수는 조선총독부 촉탁엽사囑託獵師이며 총독부는 그에게 의뢰하여 인축人畜을 해친 해수害獸를 잡았다.
경찰지서장 아오키는 윤포수를 기다리지 않고 곰사냥에 나섰다. 그까짓 곰 한 마리를 잡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느냐는 것이다. 눈과 바람이 여전했으나 아오키는 현지지형을 잘 안다는 군 산림계직원 사토의 안내로 현지에 갔다. 아오키의 부하 세 명 모두 다섯 명이다. 강제로 동원하려고 했던 마을장정들은 오지 않았으나 그들만으로 곰을 잡기에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발자국 추적도 할 필요가 없다. 곰이 산림 안에서 포효하고 있다. 추위에 떠는 겨울곰의 고함은 비명에 가까웠다. 일본인사냥대는 다음날 정오께 곰이 고함을 지르고있는 산림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오키는 눈 위에 찍혀있는 곰의 발자국을 보고 무산의 곰이 어떤 짐승인지 알았다. 아오키는 고향인 일본 아오모리의 산에서 곰을 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 곰은 덩치가 작은 반달곰이다. 반달곰은 고작 100Kg 쯤 되었으나 무산의 불곰은 300Kg이나 되는 맹수다.
눈과 바람이 계속 불고있었으므로 눈가루가 날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사냥대는 곰의 고함을 방향삼아 추적을 했다. 그러다가 고함소리가 딱! 그쳤다. 갑자기 산림이 조용해졌다. 뭔가 심상치 않다. 산림계직원이 주춤했으나 아오키가 독촉했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돼!’
산림 안쪽에서는 발자국도 없어졌다. 쌓여있었던 낙엽이 강풍에 날려가버려서 발자국이 사라져버렸다.
‘소장님, 곰이 숨었습니다.’
‘바보소리 하지마! 소만한 놈이 어디로 숨는단말야. 잘 찾아봐. 몰려다니지 말고 흩어져가면서 수색해!’
왼쪽에서 수색을 하던 순사가 발자국을 찾았다고 고함을 쳤는데 그 발자국을 본 아오키가 침묵했다. 발자국이 사냥대의 뒤쪽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사람들이 곰을 추적했으나 곰도 사람들의 뒤를 미행했다. 곰이 가까이 있는 것 같았으며 무서운 살기가 느껴졌다. 노리끼한 냄새도 났다.
‘이깡(안 되겠어),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불안해진 지서장이 체면을 버렸다. 그는 날이 어둡기 전에 마을로 돌아가 밤을 보내기로 했다. 다섯 명이 죽은 마을이다. 그런데 마을을 찾을 수가 없다. 지형을 잘 안다던 산림계직원이 당황했다. 보통 마을이 있으면 불빛이 있는데 텅 빈 마을에 불빛이 있을 리 없다.
산림계직원 사토가 손전등을 휘두르면서 지형을 살폈으나 그 광대한 원시림에서는 그런 불빛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사토는 덮어놓고 지형이 낮은 쪽으로 갔고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달렸으나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게 뭐야?’
곰이다. 곰이 사람들이 가고있는 앞길을 막아섰다. 눈이 빨갛게 번뜩인다. 아가리를 벌리고 혀가 날름거렸다. 그건 곰이 아니라 악마다. 겨울곰은 죽기 전에 악마가 되어 사람을 잡아간다고 했다.
‘곰이다, 곰!’
아오키가 고함을 지르려고 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총도 쏘지 못 했다. 총을 가지고있으면 곰이 자기를 먼저 해칠 것 같아 오히려 총을 놓아버렸다. 일본인 군인이나 경찰은 총을 천왕天王이 하사下賜한 것으로 신주神主모시듯 하는데 아오키는 그 총을 떨어뜨렸다. 찢어질듯한 비명이 났다. 맨 앞머리에 섰던 사토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오키는 도망쳤다. 쓰러진 사토를 버려두고 도망쳤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헤엄치듯 두 손을 흔들면서 도망치고 부하들도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다. 본래 대언장담大言壯談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비겁한 사람이 많은데 아오키도 그런 사람이다. 아오키일행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포수마을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예삿일이 아닌데 ….’
포수마을에 도착한 윤포수는 즉시 수색대를 조직했다. 곰사냥 보다 우선 사람을 살려야 한다. 윤포수가 여섯 명의 사냥꾼을 데리고 곰의 습격을 받은 마을에 도착했다.
‘불을 피워!’
윤포수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했다. 마을에 불을 피워 행방불명된 사람들에게 소재를 알려주고 모두 횃불을 들고 산림으로 들어갔다. 윤포수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에게 구조대가 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공포를 쏘았다. 그러자 저쪽 동북쪽에 있는 바위산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윤포수는 계속 공포를 쏘면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쪽에서도 계속 총소리가 들려왔다. 윤포수는 다음날 새벽에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발견했다.
아오키와 부하 두 명은 바위산에 있었다. 그들은 큰 바위 틈에 쪼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있었다. 얼굴은 핏기가 없으며 반죽음상태다. 그들의 처참한 모습은 대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칼을 차고 총을 메고 산간마을 사람을 지배했으나 단 한 마리의 곰에게 처참하게 당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어디 있나?’
아오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총, 내 총을 찾아주시오. 윤선생 제발 내 총을 좀 찾아주시오.’
아오키는 산림계직원 사토나 부하의 생사보다 잃어버린 총에 집착했다. 천왕폐하가 하사한 총이다.
우선 그들을 살려야 한다. 윤포수와 사냥꾼들이 손도끼로 소나무룰 척척 쳐내 바위틈에 걸쳐 눈과 바람을 막아놓고 관솔로 불을 일으켰다. 송진이 붙어있는 소나무옹이에 불이 붙자 시커먼 연기와 화염이 솟아올랐다.
‘아리가도(고맙네), 아리가도.’
아오키와 순사들이 모닥불로 덤벼들듯이 다가왔다. 윤포수는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그 따위 천왕폐하의 총은 찾아줄 생각이 없었으나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윤포수가 아오키일행의 발자국을 역추적했는데 그들은 이틀 동안 같은 장소를 헤매고 있었다. 하오 늦게 산림계직원 사토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는 곰의 앞발치기에 맞아 목뼈가 부려져죽었다. 인근에서 아오키의 총이 발견되었으나 총대가 부러졌다. 곰의 소행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순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는 오소리가 파놓은 구멍에 머리를 박고있었다. 구멍에 기어들어가려다가 얼어죽었다. 원시림에서 길을 잃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윤포수가 곰의 습격을 받은 마을에 사냥기지를 설치했다. 다행히 다른 마을에는 피해가 없다. 포수마을 강두령의 적절한 조치로 마을사람들이 대피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곰은 죽지 않았다. 그날밤 바람을 타고 곰의 포효가 들렸다.
‘저놈을 잡아야 해. 그래야 죽은 사람들이 눈을 감을 수 있어.’
사냥꾼들이 설치고 있었으나 윤포수가 말렸다. 폭풍과 폭설이 불어닥치고 있었으므로 성급한 모험을 삼가야 한다. 무리를 하면 희생자가 생긴다. 노련한 포수의 지혜다.
‘기다려! 구멍을 찾지 못 한 겨울곰은 어차피 죽게되어있어.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산신이 죽이게 돼.’
윤포수가 조용하게 타일렀다. 그렇다고 곰사냥을 포기한 건 아니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비단 겨울곰뿐만 아니라 곰이란 짐승은 먹이를 잡은 사냥터에 다시 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더구나 그곳에 먹이를 남겨두었을 때는 틀림없이 돌아온다. 곰의 포효가 점점 가까워졌다. 곰이 제발로 오고있다. 그런데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우우우! 하고 여운이 긴 울음이다. 이리들이다.
‘저건 용바위산에 사는 놈들인가?’
윤포수의 물음에 강두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금년 봄에 새끼를 낳은 무리입니다.’
‘모두 몇 마리나 되나?’
‘새끼들을 빼도 여덟 마리가 넘을 것입니다.’
그곳에 사는 이리는 한국 남쪽에 사는 늑대와 다르다. 산림이리라고 불리는 덩치가 개보다 큰놈들이다. 산림이리는 불곰의 천적이다. 그들은 같은 영지領地에 살면서 먹이다툼을 했는데 불곰이 유리하다. 이리들은 가족단위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수가 많지 않다. 새끼를 빼면 사냥을 할 수 있는 이리는 대여섯 마리인데 그런 정도로는 불곰과 싸울 수 없다. 그래서 불곰이 사냥터를 지배했고 이리는 찌꺼기를 얻어먹었다. 그러나 이리는 가끔 곰사냥을 했다. 곰이 겨울잠을 자고 굴에서 나왔을 때다. 그때의 곰은 몸무게가 반으로 줄고 힘이 없어 비실비실했다. 이리들이 곰사냥을 할 기회는 또 있다. 구멍을 찾지 못한 겨울곰이다. 이리들은 겨울곰이 어떤 곰인지 알고 있다. 추위에 떨며 방황하는 곰은 사냥하기가 쉽다.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면 곰이 스스로 주저앉는다. 굶주린 이리에게 몸무게가 300Kg이나 나가는 곰은 큰 먹이감이다. 한 식구가 보름 동안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식량이다. 그래서 이리들이 울고 있다. 합창을 하는데 동쪽에서도 호응하고 있다. 먹이가 너무 크고 강할 때 협력을 하자는 신호다. 곰도 낌새를 알아채고 화를 내고 있다.
눈과 바람은 다음날에도 계속되었다. 만주와 무산의 산골사람들은 하늘의 신이 10년에 한 번 쯤 미친다고 했는데 그럴 때는 겨울이 예년보다 빨리 왔다. 그럴 때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계절도 없이 폭설과 폭우가 열흘 동안이나 계속된다. 천신天神이 미치면 모든 것이 상규常規에서 벗어나 흉사凶事가 생긴다. 겨울 준비도 하기 전에 그런 날씨가 들이닥치면 사람들도 짐승들도 얼어죽게 되고 굶어죽게 된다. 그러나 그 곰은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죽을 때가 되었는데도 죽지 않았다. 곰의 포효가 동남쪽으로 이동하고있다. 그곳은 산세가 낮아지는 남향의 구릉丘陵지대이며 인가人家들이 있다. 구릉 사이에 땅을 가꾸는 화전민이다. 화전민이 위험하다. 미친곰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 미친곰이 얼어죽을 때를 기다릴 수 없다. 윤포수가 출동했다. 포수마을 강두령과 다섯 명의 포수들이 따라나섰으나 그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 할 것이다. 그들이 갖고있는 화승포는 궂은 날씨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화승포는 불이 붙은 심지를 총신銃身 안에 넣어 화약을 폭발하게 되어있는데 눈이나 비가 내리면 심지의 불이 꺼져버렸다. 강두령이 갖고있는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발포가 되었으나 그것도 총신 끝에서 화약과 탄환을 장전裝塡하게 되어 재장전이 어렵다. 믿을 것은 윤포수가 갖고있는 영국제 좌우연신의 라이플뿐이다. 당시 라이플은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포수도 사용할 수 없는 금단禁斷의 총이다. 그런 총이 독립군에게 들어가면 요인要人암살에 쓰일 염려가 있어 엄격하게 통제했다. 그러나 총독부는 촉탁엽사인 윤포수에게는 허가했다. 윤포수는 조선을 방문하는 외국귀빈貴賓들의 사냥안내를 맡아 귀빈들의 신변보호를 하기 때문이다.
‘모두 조심해!’
발자국추적의 명수名手 강두령이 손전등을 들고 맨 앞에서 곰의 발자국을 추적했고 그 바로 뒤에 윤포수가 따라갔다. 윤포수는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게 안전장치를 푼 총을 들고 있다. 포수마을 사냥꾼들은 화승포 대신 창을 들고있었고 손도끼를 들고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날씨에는 원시적인 무기가 화승포 보다도 유용하다.
‘나리, 여기를 보십시오.’
강두령이 고함을 질렀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평소의 말이라도 고함을 지르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 한다. 곰이 겨울잠을 잤던 바위굴이다.
그 바위굴은 지난해 어느 암콤이 겨울잠을 잤던 굴이다. 남향의 큰 바위 밑에 뚫려있는 명당明堂이다. 북쪽 바람을 막아주고 햇볕이 내리쬐는 매우 좋은 겨울잠자리다. 내부는 넓고 지열地熱도 있다. 이 겨울잠을 자기에 이상적인 명당에서 암콤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미친곰은 없다. 안에서 발자국이 발견되었으나 그런 명당을 포기하고 폭설과 폭풍이 몰아치는 바깥으로 나갔다. 무산의 사냥꾼들은 곰이 한 번 사용한 굴은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가 사용했든 남이 사용했든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한 굴은 외적外敵에게 발각되기 때문이다. 구멍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외적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 다른 의견은 곰이 겨울잠을 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잠자리도 포기했다고 한다. 곰이 잠을 자려면 가을에 영양분이 많은 먹이를 먹고 몸 안에 지방을 축적해야 하는데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잠자리라고 해도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다. 구멍 안에서 굶어죽는다.
‘나리, 이놈이 화전민마을로 가고있습니다.’
계곡을 넘어서니 불빛이 보였다. 화전민마을에 사람이 있다. 겨울곰이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피난을 하라고 경고했는데 피난할 마땅한 곳이 없어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윤포수는 발자국추적을 중단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주변에 서너 마리의 이리가 있었다. 미친곰을 미행하던 이리다. 그들도 끝까지 먹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윤포수일행이 화전민마을에 머물고있을 때 일본인 세 사람이 찾아왔다. 함경도 일본재향군인회 회원들인데 그들은 인근 산림 안에서 숯을 굽고있는 일본인의 소식이 끊어졌다고 했다. 그 늙은 수미야기(숯쟁이)는 그 해 여름에 그곳에 들어가 숯을 굽고있었으나 열흘 전부터 소식이 없다고 했다. 본디 일본인들은 숯을 많이 사용하는데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청진, 나진에 숯이 부족하고 숯의 질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재향군인회에서 당국과 교섭하여 늙은 수미야기에게 특권을 주어 원시림 안에서 숯을 굽게 했다. 수미야기는 조선인 두 사람을 데리고 질좋은 숯을 구워내고 있었는데 열흘 전부터 숯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쯤 겨울곰이야기가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무산에서 범이나 곰에게 산골사람들이 살해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건은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 사건은 달랐다. 곰 한 마리가 마을을 습격하여 네 사람을 죽였고 추격해오는 일본인 산림계직원과 순사까지 죽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향군인회는 수색에 나섰다. 수색결과 조선인 한 사람은 숯을 운반하여 마을에 머물고있었으나 일본인 수미야기와 다른 조선인이 아직도 숯가마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전날에는 곰의 포효가 들리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화전민마을 주변 산림을 돌아다니면서 고함을 지르던 놈이 조용해졌다. 윤포수는 일본인들을 데리고 숯가마로 달려갔다. 눈은 그쳤으나 바람은 여전하다. 숯가마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도착했는데 불빛이 없다.
‘오이, 야마다. 야마다. 거기 있느냐?’
일본인이 고함을 지르며 움막집으로 뛰어들어가려는 걸 윤포수가 말렸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 했지만 윤포수는 노린내 같은 육식짐승의 냄새를 맡았다. 비린내도 났다.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곰에서 나는 냄새다.
‘위험해! 모두 뒤로 물러나!’
윤포수가 고함을 치며 총을 들어올렸을 때 움막집 안에서 시커먼 물체가 대포알처럼 튀어나왔다. 워낙 빨라서 총을 쏠 틈도 없다. 일본인들이 어둠을 보고 덮어놓고 총을 발사했으나 어리석은 짓이다.
움막 안에 시신이 있었다. 일본인 수미야기 영감과 조선인 일꾼이다. 상황으로 봐서 곰이 이틀 전 밤중에 덮친 것 같았다. 겨울곰이 산림을 해매다가 불빛을 발견했다. 숯가마굴뚝에서 올라오는 불꽃은 폭풍과 폭설 속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불꽃이 올라오는 곳으로 가 움막을 발견했다. 움막에서는 놈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냄새가 났다. 수미야기염감은 그래도 호신용으로 갖고있던 총을 들어올렸으나 그걸 쏠 틈이 없었다. 곰은 두 사람을 한꺼번에 앞발로 치고 아가리로 물어뜯었다. 곰은 두 사람을 죽여놓고 옆에서 잠을 잤다. 시신을 갈기갈기 찢었으나 뜯어먹지 않았다. 놈은 오래토록 굶주리고 있었으나 먹이에 관심이 없었다. 놈은 다만 온기溫氣가 있는 움막이 마음에 들어 피바다가 된 그곳에서 잠을 잤다.
‘이런 나쁜놈!’
윤포수는 시신의 처리를 일본인들에게 맡겨놓고 총을 들고나섰다. 아직 깜깜한 밤이었으나 윤포수와 포수마을 사냥꾼들은 손전등과 햇불을 들고 발자국추적을 시작했다. 눈이 그치고 바람도 잔잔했기 때문에 눈 위에 곰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빨간 인주印朱처럼 피가 묻어있는 발자국이 하얀 눈 위에 뚜렷하게 찍혀있다.
‘됐어!’
겨울곰에게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윤포수는 곰사냥을 미뤄왔다. 폭풍과 폭설로 놈의 발자국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자국추적을 못 하는데 수색을 하는 건 자살행위다. 윤포수는 유족遺族들의 하소연에도 여인의 시체를 찾지 않았다. 시신을 찾는 일 보다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겨울곰은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발자국을 남기면 그놈은 도망가지 못 한다. 그놈이 발자국을 남기면 지옥地獄의 앞까지도 추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놈의 발자국 위에 다른 발자국이 있었다. 이리들이다. 이리들은 몇 날 며칠 동안 곰을 따라다닌다. 이리의 예민한 코는 곰이 무척 쇠약해졌다는 걸 간파했다. 곰의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걸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겨울곰은 얌전하게 잡히지 않는다. 비록 겨울잠을 잘 구멍을 찾지 못 해도 무산의 불곰은 시베리아범과 함께 무산 원시림 먹이사슬의 정점頂点에 있는 맹수며 그까짓 이리들에게 잡혀먹힐 짐승이 아니다. 이리들의 추적을 받은 곰은 싸움터가 불리한 산림에서 벗어나 바위산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함경산맥의 북쪽 일각一角이 산림 안으로 뻗어있는 곳이다. 이리들은 곰이 바위산으로 들어가지 못 하게 포위를 했다. 곰은 본디 바위산을 좋아했으며 평지에서 뛰는 것보다 경사지를 올라가는 게 더 빠르다. 바위산기슭에 이리의 시체가 뒹굴고 있다. 목뼈가 부러졌다. 곰도 피를 흘리고 있다. 엉덩이의 껍질과 살점이 손바닥만큼이나 떨어져나갔다. 윤포수는 바위산중턱에서 겨울곰을 발견했다. 큰 바위를 등지고 있었는데 처참한 모습이다. 눈에는 눈꼽이 붙었고 대가리에도 깊은 상처가 있다. 마누라의 시신을 지키던 남편이 낫으로 친 상처다. 곰의 하반신은 거의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벌겋게 들어났다. 이리들이 사방에서 덤벼들어 물어뜯고 있다. 겨울곰이 일어나 하늘을 보며 포효했다.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산신에 대한 원망이다. 이리들의 곰사냥은 고비에 달한 것 같았으나 식인곰의 처리를 이리들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그건 처음부터 곰과 인간의 싸움이었으며 이리들이 나설 판이 아니다. 그 곰은 인간이 죽여야 한다. 그래야먄 곰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영혼을 달랠 수 있다. 그 곰에게 살해된 사람들은 그래야만 눈을 감을 수 있다.
‘비켜!’
윤포수가 이리들을 쫓아버리고 곰에게 다가섰다. 곰은 마지막 힘으로 윤포수에게 덤벼들었다. 윤포수가 5m 거리에까지 다가섰다. 총이 불을 뿜었다. 굉음을 내면서 두 발의 총탄이 연속적으로 날아갔다. 한 발은 대가리에 한 발은 가슴팍을 뚫었다. 곰이 신음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곰의 시체는 그대로 포수마을로 옮겨지고 포수마을 사냥꾼들이 굿판을 벌였다. 포수마을 장로가 곰의 간을 발라내 죽은 사람들의 유족에게 보냈다. 무산의 산골마을 사람들은 그 생간을 씹어먹어야만 복수가 된다고 믿고 있다. 무산의 산골마을 장로들은 굿판에 산신령을 모시고다니는 그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빌었다. 1928년 겨울의 액厄은 그렇게 때웠다. 윤포수는 총독부로부터 받은 포상금을 굶주리는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154. 부시맨의 성지聖地
다닐교수는 네델란드 서커스단에서 일을 하고있는 그 부시맨을 납치하기로 했다. 영국 일류대학의 인류학교수이며 주위의 존경을 받고있는 대학교수가 납치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납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공범자들도 있다. 같은 대학에 근무하는 지질학교수 이글과 동물전공 페이든교수가 그 범죄에 가담했다. 그 서커스단은 프랑스 파리에서 흥행을 하고있었는데 단원團員이 서른 명이나 되는 꽤 큰 서커스단이며 흥행興行도 잘 되었다. 하긴 그 회사에 돈을 주고 합법적으로 부시맨을 빼내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어렵다. 네델란드인 지배인이 그 일을 승인할 리 없다. 본디 영국인과 네델란드인은 사이가 나빴다. 특히 보아인이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 거주 네델란드인들은 영국인을 원수로 대했다. 영국인과 네델란드인은 19세기말 아프리카의 지배권을 두고 피투성이 전쟁을 오래토록 했고, 그 결과 네델란드인들은 남부 아프리카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델란드인들은 영국인과 말도 하지 않았고, 영국인이 하는 일은 덮어놓고 반대했다.
다닐교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엿보고있다가 서커스단의 천막 주위를 청소하는 부시맨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조심해야 된다. 납치가 발각되면 프랑스경찰에 잡혀가 중형을 받게 되어있다.
‘나는 당신을 부시맨이라고 쉽게 알아봤어.’
다닐교수가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부시맨말로 중얼거렸다. 부시맨말은 침이 톡톡! 튀어나오는 특이한 발음이다. 혀가 반 쯤 잘린 사람이 억지로 내뱉는 소리 같았다. 인류학자로 남아프리카에서 공부를 했던 다닐교수는 부시맨의 말을 할 줄 알았다. 부시맨이 그 말을 듣더니 마치 감전感電이나 된 것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낯설은 이국땅에서 10년여만에 처음 듣는 모국어母國語다.
‘놀라지 마시오. 난 영국인이지만 부시맨의 친구입니다.’
부시맨의 얼굴이 주름투성이가 되었다. 그들이 웃으면 그런 표정이 된다. 부시맨의 눈이 반짝였다. 외국에서 그렇게 오래토록 고생을 했어도 그 부시맨은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있으며 순진함을 잃지 않았다.
‘나와 저기로 가서 이야기를 좀 하겠오? 담배도 한 대 태우고.’
‘물론이지.’
부시맨은 본디 친구를 좋아한다. 칼라하리사막에서 외롭게 사는 그들은 외부에서 온 친구를 좋아하고 그 친구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다닐교수는 그날밤 호텔에서 칼라하리사막에서 온 친구 부시맨을 극진히 대접하면서 말했다.
‘나와 나의 친구 두 사람은 곧 아프리카의 오코방고로 갈 계획이오. 그리고 그 서쪽에 있는 사막으로 들어가려고 하오.’
함께 가자고 권유를 할 필요도 없다. 부시맨 파피가 거기는 자기의 고향이니 제발 자기도 데리고가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교수들과 파피가 이틀 후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서커스단의 지배인이 우락부락한 단원 열서너 명을 데리고 덮쳐들었다. 이미 프랑스경찰에 고소를 했기 때문에 경찰관 세 명이 함께 왔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프랑스경찰의 경위가 다닐교수에게 질문을 했고 다닐교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부시맨 파피가 눈물을 흘리면서 다닐교수와 함께 칼라하리사막으로 가게해달라고 호소했다. 프랑스경찰관은 인정이 많았고 유쾌한 친구들이다. 그는 서커스단의 지배인에게 파피의 국적國籍이 어디냐고 물었다.
‘국적이 없다고요? 아니 당신들은 10년 동안이나 이 사람을 데리고 있었으면서도 네델란드국적도 취득해주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부시맨은 본디 국적이 없습니다. 국적도 없이 떠돌아다닙니다.’
프랑스경위는 국적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 불쌍한 부시맨을 한참동안 응시하더니 지배인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 사람은 네델란드국민이 아니니 당신은 이 사람을 데리고갈 권리가 없소. 여기는 프랑스니 나는 프랑스법에 따라 이 사람을 석방하겠소. 그가 이 영국신사를 따라가겠다면 그렇게 할 것이요. 프랑스는 자유의 나라고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입니다.’
지배인은 다닐교수와 타협을 했다. 사실 그 부시맨은 서커스단에서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부시맨은 난장이라는 희소稀少가치가 있으나 서커스단에는 그 보다 훨씬 체격이 작은 진짜 난쟁이 아프리카의 피그미가 두 사람이나 있었기 때문에 부시맨은 할 일이 별로 없어 청소를 했다. 그래서 지배인은 다닐교수로부터 영국돈 100파운드를 받고 부시맨을 다닐교수에게 넘겼다. 다닐교수는 속으로 웃었다. 정말 그 부시맨이 단 돈 100파운드의 가치 밖에 안 되는가? 천만에 …. 부시맨 파피는 100만 파운드가 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네델란드인 지배인이 몇 백 년 동안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다.
부시맨은 희귀종이었으며 특히 칼라하리사막 중앙부와 동북부 일대에 살았던 순수 부시맨은 대代가 끊어진 상황이다. 칼라하리사막 남부에 살고있는 부시맨들은 그래도 존속하고있었으나 백인침략자들에 의해 사막 북쪽으로 쫓겨난 부족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파피는 칼라하리사막 중앙북부에 살고있었던 부시맨이기 때문에 인류학적으로 희소가치가 높다. 희소가치뿐만이 아니다. 부시맨에게는 다른 인종에게는 없는 초능력이 있다. 광대한 사막에 살고있는 부시맨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한 달 동안 거뜬히 산다. 다른 인종 같으면 열흘이 되면 죽는데 부시맨은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한 달을 버틴다. 부시맨에게는 소쿠리엉덩이가 있다. 남녀 모두 엉덩이가 소쿠리처럼 볼록 튀어나와 그 안에 지방이 축적되어 부시맨은 한 달 쯤 먹지 않아도 엉덩이에 축적된 지방으로 영양을 공급받아 지탱을 한다. 사막에 사는 낙타의 등에 큰 혹이 있어 낙타는 그 혹 안에 축적된 지방으로 한 달 쯤 굶어도 살 수 있는데 부시맨의 소쿠리엉덩이는 낙타의 혹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부시맨은 먹을 수 있을 때 엄청난 양을 먹어 엉덩이에 영양을 축적했다. 또 부시맨은 독수리눈을 가지고 있다. 몇 백미터 밖에 있는 물체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초능력의 눈이다. 광대한 사막에서 사냥을 하는 부시맨은 눈이 진화되어있었으며 웬만한 망원경보다도 그 성능이 좋다. 부시맨은 주력走力이 빠르다. 광대한 사막에서 사냥감을 쫓는 부시맨은 야수野獸들처럼 빨랐을 뿐만 아니라 몇 십Km를 꾸준하게 달릴 수 있다. 중장거리선수다. 또 다른 특징도 있다. 그들은 정력精力이 왕성했으며 남자들의 성기性器는 항상 뻣뻣하게 발기勃起되어 있다. 서구西歐사람들은 발기부전勃起不全으로 고민했으나 부시맨에게 그런 고민은 없다. 언제 어느 때라도 성기를 사용할 수 있다. 남자들뿐만이 아니다. 부시맨의 여자들은 거의 반나체半裸體로 사는데 사람들은 여인의 성기를 볼 수 없다. 부시맨의 성기는 커다란 음순陰脣에 덮여 그 안을 볼 수 없다. 사막의 모래와 잡균雜菌의 침범을 막기 위해 진화된 음부陰部다. 그래서 부시맨은 언제나 부부 간 사이가 좋았으며 문명국의 부부처럼 부부싸움이 없다. 인류학자 다니엘교수는 부시맨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니엘교수와 공모하여 부시맨 파피를 납치했던 이글교수도 부시맨에게 큰 관심을 갖고있었다. 그는 지질학전공인데 특히 칼라하리사막 북동부의 지질地質에 관심이 많았다. 보츠와, 오카방고 습지濕地 서쪽에 있는 그 사막에는 예부터 신비스러운 오아시스가 있다고 알려져있는데 그게 어디에 있는지 어떤 오아시스인지 호기심이 많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은, 거기에는 작은 샘이 하나 있고 그 샘은 어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 샘을 알고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부시맨 장로들뿐이며 그 샘으로 북쪽 순수부시맨들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부시맨은 그 샘의 소재를 비밀에 부치고 있었으며 다른 부족에게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부족들이 그 샘을 찾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그 샘의 소재를 알고있는 부시맨도 대부분 죽었거나 다른 데로 쫓겨갔기 때문에 사막 한 가운데 있다는 그 샘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지질학자인 이글교수는 고대의 문헌文獻에 의해 수만 년 전에 그 일대에 넓은 강이 흐르고있었다는 걸 알아냈는데 그 강은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옛날 큰 강이 있었다면 지하에 수맥水脈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주 큰 수맥일 수도 있고 그 수맥을 찾아내면 사막을 옥토沃土로 바꿀 수도 있다. 이글교수는 부시맨 파피와 그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파피가 샘의 소재를 알고있을 것라고 기대했고 정확히 샘의 소재는 모르더라도 찾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부시맨의 성지? 알고있지. 나는 그곳에 가봤어. 아주 어릴 때였지만 마을추장님과 장로들을 따라 몇 번이나 그곳에 가서 물을 마셨어. 나는 성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어.’
막연한 이야기지만 파피는 가슴을 치면서 호언장담豪言壯談했다. 파피의 말은 전해지는 옛 이야기와 일치한다. 백인들의 침공으로 사막으로 쫓겨나 가족단위로 여기저기 살고있는 부시맨은 매년 한두 번 쯤 성지에 모인다. 샘이 있는 곳이다. 부시맨은 성지에서 사막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서로 우애와 협동을 다짐한다. 약초를 채집하기도 하고 야생짐승을 사냥하면서 며찰동안 머무른다. 그리고 채집과 사냥한 수확물을 갖고 뿔뿔히 흩어진다. 오래 머물고 있으면 다른 족속들이 알게되고 공격을 받는다. 이글교수는 어렸을 때 파피가 부시맨의 성지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물학을 전공하는 페이든교수도 납치사간의 공범자인데 그는 부시맨이 살았다는 사막과 그 주변의 반사막지대 그리고 동쪽에 있는 오카방고 늪지대에 관심이 있다. 특히 오카방고 늪지대에 서식하는 뭇 동물들과 그 생태를 조사연구하려고 했다. 그곳에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거의 모든 동물이 살고있는데 그들은 아프리카 동부나 중부에 초원 또는 밀림에 살고있는 동물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자연환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북쪽 나미비아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카방고강은 꽤 큰 강이었으나 우기와 건기에 따라 그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10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인데 이 때는 오카방고탁류가 유유히 흐르는 대하大河가 되어 강 주변이 광대한 늪지대로 변해 칼라하리사막 서부의 일부 사막까지도 습지나 초지가 되어 많은 동물들이 살았다. 그러나 5월부터 9월까지의 건기가 되면 본류의 수심이 얕아져 여기저기 수로가 막혀 늪이 되고 광대한 주변의 습지들은 반사막으로 변한다. 우기 때 습지나 초지였던 사막의 동쪽 끝은 다시 모래가 날리는 사막으로 변한다. 그래서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고 큰 변란이 일어난다. 많은 종류의 양양과 얼룩말, 기린, 물소들이 늪지대를 건너 동북쪽으로 탈출하고 사자, 표범이 그들을 쫓아가고 그 뒤를 들개들이 따라간다. 그러나 늪지대로 변한 오카방고 본류에는 하마나 악어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이 붉게 물들었다. 그곳의 악어는 사납기로 이름났으나 그 보다 더 사나운 것은 하마다. 수천 수만 마리나 되는 하마는 물속에 들어온 동물을 덮어놓고 공격하고 초식동물뿐만 아니라 사자, 표범도 토막냈다. 코끼리도 참살을 당했다.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우기 동안 초지로 변한 칼라하리사막 동북쪽에서 옥수수, 감자, 야채를 경작하거나 각종 영양을 사냥하던 원주민들이 건기가 되어 불모지不毛地로 변한 땅을 버리고 오카방고강을 건너가다가 악어나 하마에게 희생당했다. 한 달 동안 수백 명이 죽었다. 페이든교수는 그런 변란變亂을 조사하려고 다니엘교수를 따라가기로 했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탐험이다. 그 때는 11월, 우기가 끝나 건기가 시작되고있었다. 오카방고강 본류의 수심이 얕아져 거대한 늪지로 변하고 있었다. 큰 배는 들어갈 수 없다. 수로가 막힐뿐 아니라 수초에 걸려 발동기를 가동할 수 없다.
탐험대는 영국해군용 상륙고무보트를 구입했다. 여섯 명까지 탈 수 있는 튼튼한 고무보트였으며 꽤 강한 엔진이 부착되어있다. 그걸 타고 나미비아에서 남쪽 오카방고강으로 진입할 계획이다. 그 보트는 가벼웠기 때문에 수로가 막히면 들고다닐 수도 있고, 엔진에 수초가 걸리면 노를 저어갈 수도 있다. 원주민들이 이용하는 기다란 통나무배에 짐을 싣고 끌고갈 수도 있다. 고향에 가게된 부시맨 파피는 소쿠리엉덩이를 흔들면서 기뻐했다. 부시맨은 기쁠 때는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춘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총, 의약품, 모기장, 식량을 준비했고, 간이천막도 실었다. 이틀 후 보트가 나미비아에서 보츠와나로 들어가자 물 흐름이 점점 느려졌다. 강폭은 그대로 변하지 않았으나 수심이 얕아졌다. 그날밤 영국인관리가 쾌속정을 타고와 검문을 했다. 보츠와나는 영국의 보호령保護領이라 마약, 밀수품을 조사한다.
‘학자님들이라고요?’
관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이걸로 오카방고의 늪지대에 들어간다고요?’
‘그렇다는데 왜 말이 많은가.’
‘여러분은 오카방고의 늪지대가 어떤 곳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까? 거기에 악어와 하마가 우굴거린다는 걸 알고 있나요?’
관리는 악어의 아가리 안에 두 줄로 된 이빨이 있고, 그 이빨은 길이가 10Cm나 되며, 사람손목 굵기의 나무토막을 무 자르듯 쉽게 절단한다고 했다.
‘이 따위 고무보트 쯤은 걸레처럼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마의 몸무게가 2 - 3t이나 된다는 걸 알고있습니까? 그리고 그 하마들이 자기들의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들에게 덮어놓고 덤벼드는 미친놈들이라는 것도 알고있습니까?’
하마들이 덮쳐들면 파도가 일어나 웬만한 철선鐵船도 뒤집어진다. 고무보트 따위는 10m 밖에서도 뒤집어진다. 타고있는 사람은 두 동강이가 나고.
‘긴 말은 하지 않을테니 돌아가시오. 본관은 여러분의 시신도 찾아줄 수 없어요.’
학자들이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오카방고 늪지대에 들어가려는 게 아니고 그 어귀에 있는 원주민마을까지만 간다고 했다.
‘원주민마을에는 왜 가려는 것입니까?’
‘이 친구의 친척과 친구들이 거기에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교수는 영국관리로부터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일행의 목적지가 원주민마을이라고 둘러대긴 했으나 그 마을에는 사실상 부시맨들이 살고 있었다. 순수부시맨은 아니지만 부시맨 피가 섞인 강변부시맨이라고 불리는 혼혈원주민이다. 백인들에게 쫓긴 부시맨들이 그곳 토착원주민들에게 도망가 그들과 피를 섞어 살고 있다. 영국관리도 그걸 알고있기 때문에 안전을 보장하지 못 한다는 조건이었지만 통과를 허가했다. 탐험대일행이 그날밤 마을에 도착했다. 100명 쯤 되는 원주민들이 환영했다. 특히 부시맨 피가 섞인 강변부시맨은 대뜸 파피가 순수부시맨이라는 걸 알아보고 얼싸안고 엉덩이춤을 추었다.
‘오카방고 늪지대를 건너겠다고? 문제 없어. 우리가 도와줄테니까.’
오카방고 늘 어귀에 살고있는 그들은 누구보다도 늪을 잘 안다. 그들은 오카방고 늪의 짐승을 사냥하며 살았다. 하마, 악어와 싸워 네 명의 사냥꾼들이 죽었지만 서른 마리나 되는 하마와 그보다 더 많은 악어를 죽였다고 자랑했다. 탐험대는 마을에서 네 명의 안내인을 보충했는데 부시맨의 성지聖地를 보았다는 영감이 있었다.
커다란 통나무배를 빌렸다. 오카방고 늪지대는 광대했다. 폭이 20Km나 되는 진흙탕 바다다. 본류의 수심이 5m 내외고 강가는 1m다. 늪지대는 수초에 뒤덮힌 섬들이 있는데 망원경으로 보니 섬의 일부가 움직이고 있다. 하마들이다. 수백 마리 하마들의 영역이다. 그보다 더 많은 악어도 있다. 악어는 눈만 물 위에 내놓고 흙탕물 속에 숨어있다. 악어들이 잡아먹은 짐승들의 비린내가 진동했다. 시체 썩는 냄새로 코를 싸쥐었다. 늪을 건너는데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진흙탕에서는 고무보트가 움직이지 못 했다. 엔진이 헛돌다가 멈췄다. 노를 저을 수도 없다. 다행히 마을장정들이 보트와 배를 끌어주었으나 지지부진遲遲不進하여 반나절에 겨우 200m를 전진했다. 오카방고의 늪은 밤이 되자 지옥이 되었다.
모기떼가 덮쳐들었다. 그건 모기떼라기보다는 모기덩어리다. 오카방고의 늪지대는 모기들의 서식지이며 텀험대는 피투성이가 되어 온몸이 부어올랐다. 아예 모기와 거머리들에게 몸을 맡기고 고무보트를 끌고갔는데 안내를 하던 강변부시맨 영감이 멈춰섰다. 30m 전방에 빨간불빛이 명멸明滅하고 있었다. 수백 개나 되는 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악어들이야, 악어가 우리들을 노리고있어.’
그러나 악어가 사람사냥을 하기에는 수심이 너무 얕았다. 사람 무릎깊이의 물속에서는 갑옷을 입은 악어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으나 그래도 악어는 사람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악어들이 주위를 포위해버려서 돌아갈 수도 없다. 탐험대는 모기와 거머리에게 피를 빨리면서 지옥같은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그렇게 반가운 신의 시혜施惠인지 일지기 몰랐다. 아침햇살이 퍼지자 모기떼가 사라지고 붉은 불빛도 사라졌다. 몸에 붙어있던 거머리도 뚝뚝! 떨어졌다. 수심이 좀 깊어지자 고무보트의 모터가 돌았다. 통나무배를 탄 원주민들이 살아있는 돼지 한 마리를 멀리 던졌다. 악어들을 유인해놓고 악어의 영지에서 탈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악어들이 돼지 한 마리를 삼키는 시간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악어는 이빨로 돼지의 몸을 절단切斷시키는 힘은 없었으나 서로 돼지의 몸을 물고 스크류처럼 회전시켜 찢어 삼켰다. 순식간에 돼지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다시 몰려왔다.
‘죽여! 악어를 쏘아죽여!’
원주민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길이 3m 정도의 창을 가지고있는데 그 창의 길이 안으로 악어들이 들어오면 안 된다. 철편鐵鞭 같은 비늘에 덮여있는 악어의 꼬리치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탐험대가 총을 발사했다. 최신형 연발총이고 사격솜씨도 우수하다. 특히 다니엘교수와 페이든교수는 사격대회에서 우승을 다툴 정도의 실력이다. 악어의 급소는 두 눈 사이이고 총탄이 명중되면 바로 두개골을 파괴하게 된다.
악어는 어류魚類가 아니고 파충류다. 본디 땅위에서 살았기 때문에 허파로 숨을 쉰다. 따라서 오카방고의 악어도 눈과 대가리의 일부는 물위에 내놓고 헤엄을 치는데 그 눈이 과녁이 된다. 총탄이 굉음을 내면서 발사되자 악어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이내 하얀 배를 뒤집었다. 앞머리의 악어들이 그렇게 죽자 악어들이 물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러나 사람사냥을 포기하고 돌아간 게 아니다. 악어는 보기보다 영리한 동물이며 그들은 물속으로 잠수하여 조용하게 다가왔다. 강변부시맨이 수문水紋이 일어나는 물속을 손가락질했다. 교수들은 몰랐으나 그는 물속에 들어간 악어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수심이 1m 내외라서 강력한 총탄이 뚫고들어갈 수 있다. 또 서너 마리의 악어가 하얀 배를 뒤집으며 물 위로 떠올랐다. 원주민이 창으로 악어를 찔렀다. 숙련된 솜씨이며 악어는 통나무배 바로 옆에서 뒤집어졌다. 열 마리가 넘는 악어들이 시체가 떠오르자 악어들은 기묘奇妙한 짓을 했다. 악어들이 죽은 동료의 시체를 끌고갔다. 치료를 하거니 장례를 치르려는 게 아니다.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었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버릇이 있는 악어는 사람고기 대신 동족의 고기를 먹기로 한 것이다.
‘지금입니다. 나리. 빨리 갑시다.’
고무보트가 전속력을 내고 악어의 영지에서 탈출했다. 수심이 2m 쯤 되었는데 악어는 없다. 악어의 영지가 아니다. 악어영지와 하마영지의 중간지대다. 악어는 중간지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몸이 두 토막된다. 탐험대는 위험지대를 벗어났다. 그러나 오카방고를 건너려면 더 위험한 지대가 남아있다. 하마들의 영지다. 악명 높은 하마다. 미친 하마로 불리운다. 오카방고를 건너는 동물의 1/ 5 정도가 하마의 아가리에 물려 토막났다. 원주민들이 긴장했다. 배를 멈추고 하마의 동태를 살핀다.
탐험대가 건너가려는 강과 늪에는 수백 마리의 하마들이 우굴거렸는데 그들은 다섯 마리에서부터 서른 마리까지 무리를 짓고 있다. 강변부시맨은 그 무리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가장 위험한 무리는 새끼를 데리고있는 어미하마들이다.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 때문에 가까이 오는 동물들에게 무조건 덤벼든다. 신경과민神經過敏의 어미하마는 가장 위험하다. 암컷을 차지하려고 다투고있는 수컷에게도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있으며 극도의 흥분상태다. 특히 싸움에서 밀린 수컷은 아무에게나 분풀이를 한다. 다행히 싸우는 숫컷들은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식별이 가능하다. 하마두목이 있는 곳도 피해야 한다. 몸무게가 4t이나 되는 거대한 두목은 서너 마리의 친위대親衛隊를 거느리고 영지의 외각外廓지대를 돌아다니는데 얼핏 보기에는 점잖았으나 영지를 지키는 수문장守門將이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동물이 있으면 돌진한다. 두목과 친위대가 설치면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웬만한 배도 뒤집어진다. 어미의 보호에서 제외된 젊은 하마도 위험하다. 어미가 되었으나 천방지축天方地軸 날뛴다. 장난이었으나 하마의 장난은 다른 동물에게는 죽음이다. 새끼를 데리고있는 암컷, 암컷을 다투는 수컷, 영지를 지키는 수컷, 장난을 치는 젊은 놈들을 제외하면, 수면에 상반신을 들어내고 잠을 자거나 쉬고있는 하마들 사이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도 어렵다. 그들의 몸을 스치거나 시선이 마주치면 경계심을 일으켜 화를 당한다. 주변을 살피다가 그놈들과 눈이 마주칠 위험이 있다. 거기서부터는 통나무배가 앞장을 섰다. 고무보트는 엔진을 끄고 노를 저었다. 하마는 예민한 코가 있어 화약이나 사람냄새를 내면 안 된다. 통나무배와 고무보트가 우선 두목을 피했다.
하마두목이 가까이 있는 악어를 감시하는 틈에 보트는 그 옆을 빠져나왔다. 악어는 하마를 공격하지 못 했으나 가끔 새끼를 덮치는 일이 있으므로 두목은 나직하게 경고를 했다. 탐험대가 두목을 피해 빠져나왔으나 앞에 새끼를 데리고있는 어미가 있다. 어미는 이미 고무보트를 발견하고 주시하고 있었으나 탐험대는 어미를 못 본 척 했다. 먼 산을 보면서 가까이 접근을 하지 않아야 한다. 탐험대는 어미를 피해서 멀리 돌았는데 또 앞에 서너 마리의 하마무리가 있다. 낮잠을 자고있는 것 같아 보트가 스치듯 지나갔다. 손을 뻗치면 닿을 듯한 거리였으나 하마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그런데 멀리서 놀고있던 새끼하마들이 보트를 발견했다. 장난끼가 심한 놈들이다. 보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위험하다. 어린 것들이지만 보트 따위야 쉽게 뒤집는다. 강변부시맨이 손을 들었다. 쏘라는 신호다. 총을 발사했다. 보트는 전속력을 내며 달렸다. 하마영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총을 맞은 하마가 피를 흘리며 날뛰고 수심 마리의 하마가 달려들었다. 하마들이 분노했다. 분노한 하마가 포효했다. 뱃속에서 억지로 짜내는 고함소리다. 총에 맞은 동료의 몸을 타넘으면 돌진했다. 파도가 일어났다. 보트가 밀려갔다. 탐험대는 계속 총을 쏘았다. 열 마리가 넘는 하마가 죽었거니 치명상을 입었으나 계속 돌진했다. 수심이 얕아지고 엔진이 공회전했다.
‘뛰어내려!’
맨앞에서 돌진한 하마가 통나무배를 물었다. 통나무배가 반토막이 났다. 다행히 사람들은 무사했으나 실었던 장비를 건져낼 틈이 없었다. 고무보트를 끌고 진흙탕을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모기떼가 덤벼들었다.
탐험대는 지쳤고 피로했다. 그들은 몽롱해진 의식으로 오카방고의 늪지대가 달라졌다고 느겼다. 발목을 붙잡았던 진흙이 없어졌다. 일행은 거기서 쓰러졌다. 잠을 잔다기 보다는 의식을 잃었다. 일행은 다음날 아참 깨어나 주위를 보고 크게 놀랐다. 진흙바닥이 하룻밤 사이에 모래바닥으로 변했다. 꿈을 꾸고있거나 마술을 부린 것 같다. 그들은 사막에 누워있었다. 칼라하리사막이다. 오카방고의 늪지대가 사막으로 변했다. 부시맨 파피가 모래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고 있었다. 그는 고향땅에 닿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학자들이 주위를 살폈다. 그 지점에서 늪이 모래로 변했으나 모래바닥에 푸른 점들이 있고 아직 물기가 남아있다. 말라붙은 풀밭도 있다. 동물의 발자국도 있었다. 타조의 발자국이다. 저쪽 구릉 위에 마을이 있었다. 통나무집들이 서너 채 있었으나 인기척은 없다. 거기는 한 달 전까지 사람들이 살고있었고 동물들도 살았다. 우기雨期에는 풀이 자라고 나무도 자랐다. 그래서 많은 종류의 영양과 얼룩말, 물소, 기린, 코끼리들도 살고있었다. 그들을 노리는 사자나 표범 등 육식동물도 돌아다녔다. 수십 명의 원주민들도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농사도 짓고 사냥도 했다. 그러나 우기가 지나고 건기乾期가 오면 동물도 사람도 모두 오카방고 늪을 건너가버렸다. 건기에는 태양볕이 작열하는 불모不毛의 사막이 되었다. 학자들은 텅 빈 통나무집에서 회의를 열었다. 상황이 심각하다. 우선 식량이 문제다. 통나무배에 실었던 식량은 하마가 통나무배를 물어뜯어 모두 잃었다. 벌써 배가 곺았으나 먹을 게 하나도 없다.
‘괜찮아, 어떻게 될거야.’
부시맨 파피와 원주민들은 웃었다. 부시맨은 본디 낙천가樂天家다.
‘우리 부시맨은 옛날부터 사막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래.’
정말 그럴까? 탐험대들은 그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믿을 수밖에 없다. 먹을 것을 찾아보겠다고 부시맨이 사막으로 나갔다. 아무것도 살아있는 것이 없는 사막에 먹을 것이 있을 리 없었으나 부시맨은 조심스럽게 모래땅을 살피면서 걸어갔다. 그날 하오에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타조일이다. 열 서너 개나 되는 타조알이 모래속에 파묻혀있었다.
부시맨은 알을 소중하게 바구니에 담았으나 알 세 개는 남겨두었다. 그렇게 해야만 어미타조가 다시 그곳에 산란을 해 타조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 불모의 사막에서 다른 동물과 공생하는 부시맨의 따뜻한 마음이다. 부시맨이 송곳으로 타조알에 조그맣게 구멍을 뚫어 알맹이를 꺼낸 다음 껍질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타조알껍질은 물을 담는 그릇이다. 그들은 타조알껍질에 물을 담아가지고 다니거나, 물을 담아 사막의 모래밭 여기저기에 묻어둔다. 사막에서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마르면 파내서 마신다.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타조알은 푸짐한 식량이었다. 엄청나게 큰 알은 한 개가 한 사람 사흘분 식량이 되었다. 다음날에는 부시맨이 사람의 머리통만한 수박 여섯 개와 주먹만한 감자 한 바구니를 수집했다. 그들은 그것을 모래속 1m 밑에서 캤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의 모래속에 어떻게 그런 싱싱한 식물이 자라는 것일까? 그 식물들은 우기 때 물을 잔뜩 빨아들였다가 반 년 간이나 간직한다. 사막감자는 모세혈관처럼 뻗은 뿌리로 사막에 내리는 아침이슬을 빨아들여 성장한다. 사막에는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데 아침이슬은 그 온도차 때문에 생긴다. 부시맨들이 다음부터는 백인과 합동하여 사냥을 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사막 중심부에 들어가 부시맨의 성지를 찾아내려면 많은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막에 그런 사냥감이 있을지 의문이다. 우기에 들어와 살았던 동물은 건기가 되자 오카방고강을 건너가버렸는데 동물이 남아있을까? 예상대로 사막에는 동물이 없다. 맨발로 밟을 수도 없이 뜨거운 모래바닥에서 개미 한 마리 없다. 그러나 부시맨은 사막을 보고 있다. 그들의 눈은 독수리눈이며 지평선 너머까지 볼 수 있다. 한참 후 무얼 발견한 것 같다. 몸을 낮춰 숨기면서 조용히 걸어간다. 약 1Km 쯤 갔을 때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몸길이 50Cm의 도마뱀이다. 도마뱀은 빨랐으나 부시맨은 더 빨랐다. 부시맨에게 몰린 도마뱀이 사라졌는데 그들은 손가락으로 사막의 모래구멍을 가리켰다. 괭이로 구멍을 팠다.
부시맨들은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두 시간 동안이나 끈질기게 땅을 파들어갔다. 1m 이상이나 땅을 팠으나 도마뱀은 없다. 사막에서 사냥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막에서 도마뱀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깊은 땅굴을 파고 도망갔고 부시맨은 몸무게 고작 1Kg도 안 되는 도마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몇 시간 동안이나 땅을 파고 있다. 약 세 시간 후 2m나 되는 땅굴속에 숨어있는 도마뱀이 발견되었다. 부시맨이 긴 막대기로 머리를 톡톡! 치자 도마뱀이 막대기를 물었다. 부시맨은 그 도마뱀을 망태기 안이 집어넣었다. 부시맨과 원주민들이 학자들에게 잡은 도마뱀을 갖고 먼저 마을로 돌아가라고 했다. 자기들은 무엇인가 좀 더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학자들은 마을로 돌아왔으나 그날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학자들은 불안해졌다. 무엇을 조사한다는 것인가? 길을 잃은 건 아닌가? 학자들을 버리고 도망을 간 건 아닌가? 다음날 정오께 부시맨들이 돌아왔다. 모두 긴장했다. 타조무리를 발견했다는 거다. 타조는 사막의 상징적인 동물이다. 모든 동물은 건기가 되면 오카방고강을 건너가버리지만 타조는 남아있다. 거기가 그들의 고향이고 서식지棲息地다. 창조주는 일부 동물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하늘을 날게 만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타조에게 달아준 날개는 쓸모가 없다. 부시맨의 전설에 의하면 타조는 성미가 급하고 거칠었기 때문에 창조주의 미움을 샀다고 한다. 창조주는 쓸모없는 날개를 달아준 타조를 사막에 버렸다. 그러나 타조는 죽지 않았다. 불모의 사막에서 살아남았다. 타조는 길고 튼튼한 두 다리로 사막을 달려다닌다. 시속 80Km로 뛰었으며 어떤 네 다리 짐승도 타조를 따라가지 못 한다. 몸무게 130Kg이나 되는 거대한 새고 사막의 부시맨에게 타조와 알은 귀중한 사냥감이다.
‘모두 열 서너 마리나 되는 무리입니다. 추적하여 네 마리만 잡아도 성지를 발견할 때까지 식량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시속 80Km로 달리는 새를 무슨 수로 잡는다는 말인가? 부시맨의 활을 쏘려면 30m까지 접근해야 하는데 시야가 툭 터진 사막에서 가능할까?
그날밤 탐험대는 부시맨 원주민들과 의논을 했다. 타조사냥을 할 것인가? 부시맨성지를 조사할 것인가? 아무리 봐도 모두 중단해야 할 상황이다. 준비했던 장비를 오카방고 늪에서 하마의 공격으로 모두 잃어버렸다. 고무보트는 있으나 천막과 물통도 없다. 물통이 없으니 무엇으로 물을 확보할 것인가? 사막에서의 물은 바로 생명이다. 학자들은 침통했고 원주민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파피와 강변부시맨은 타조를 잡을 수 있고, 성지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사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막에 들어서면 먹을 물과 식량이 생긴다고 믿었다. 특히 파피는 탐험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 없어. 나는 성지를 찾을 수 있어. 그리고 사막에 살고있는 우리 부시맨도 찾을 수 있어. 그들이 우리를 성지로 데려갈거야.’
학자들은 파피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0여 년 동안이나 프랑스에서 떠돌아다닌 파피는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황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탐험대가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다음날 새벽에 파피는 일찍 일어나 출발준비를 했다. 혼자라도 갈 것 같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백인이 원주민 대여섯 명의 원주민을 데리고 나타났다. 백인은 나미비아와 보츠와나의 국경 강변에서 탐험대를 검문했던 영국세관관리고 원주민은 탐험대가 머물렀던 마을주민이다.
‘나는 당신들의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왔는데 아직 죽지는 않았구만.’
영국관리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듣기싫은 소리를 했으나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그들이 선물을 갖고왔다. 탐험대가 늪에서 잃어버린 물통과 천막이다.
‘어떻게 찾았냐고? 허허, 그거야 쉽지.’
오카방고의 늪지대는 이미 물이 말라 사막으로 변했다. 그래서 모래밭에 버려진 천막과 물통을 찾아냈다. 물소나 하마에게 물통과 천막은 소용없는 물건이므로 그들도 버려두고 물을 찾아 떠나버렸다.
‘뭐라? 돌아가지 않고 성지를 찾겠다고?’
영국관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칼라하리사막 동북부는 모래바다입니다. 동쪽 끝 오카방고 늪지대의 일부지역은 우기가 되면 식물이 자라고 동물도 살지만, 건기가 되면 불모의 사막으로 변합니다. 부시맨이 살고있다거나 성지가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부족에게 쫓겨 유랑생활을 하는 부시맨의 환상입니다.’
그는 무지한 부시맨은 몰라도 영국의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그런 환상을 갖고있다는 것이 한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지질학자인 이든은 다른 정보를 갖고있었다. 7 - 8년 전 그곳에 다이아몬드광맥을 조사했던 여섯 명의 광부들의 말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다 떨어져 의식불명상태로 사막에 쓰러졌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천막 앞에 물이 담긴 항아리와 사막수박, 타조의 알이 놓여있었다. 주변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찍혀있었다. 광부들은 그들이 부시맨이라고 했다. 부시맨은 물건만 두고 사라져버렸는데 모래 위에 화살표시가 있었다. 광부들은 화살표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 이틀만에 사막에서 탈출했다. 이든이 그 정보는 확실하다고 했다. 영국관리의 만류를 뿌리친 탐험대는 사막으로 들어갔다. 일 주일분의 물과 식량을 준비했다. 나흘 정도 조사하다가 부시맨을 찾지 못 하면 돌아올 계획이다. 파피는 좋아라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앞장섰다. 그러나 일행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멈췄다.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흐르고 노출된 피부가 벌겋게 탔다.
‘안 되겠어.’
계획을 바꿨다. 낮에는 자고 밤에 걷기로 했다. 그러나 부시맨들은 학자들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사막을 돌아다녔다. 사막수박을 캐오고 도매뱀, 전갈을 잡아왔다. 그러나 사막부시맨의 흔적은 없다. 사흘째, 지남철에 의하면 오카방고 늪에서 서쪽으로 3 - 400Km 쯤 들어가있었다.
그곳은 부시맨의 성지가 있다고 생각했던 곳이고, 영국광부들이 부시맨이 나왔다고 말했던 곳이다. 그러나 성지도 부시맨도 없다. 부시맨은 성지에는 맑은 물이 솟아흐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풀이 자라야 하는데, 오아시스는 풀이 자라는 곳인데 푸른 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텀험대는 지쳤다. 매일 물 한 컵과 두 조각의 마른고기로 견뎠으므로 대원들의 몸무게는 1/ 3이 줄었다. 그런데도 부시맨은 건재하다. 소쿠리엉덩이에 축적된 지방으로 영양이 공급되므로 끄떡없다. 다음날에도 성지찾기는 허사였다. 그날 밤, 파피와 강변부시맨이 하늘을 보고 있다. 별의 위치를 보고 성지를 찾아내려는 것인데 마치 기도를 올리는 것 같았다. 사막에 들어온지 나흘째 되는 날, 성지를 찾지 못 하면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물과 식량이 거의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하오에 부시맨이 모래바닥에 엎드려 조사를 했다.
‘발자국이야! 사람의 발자국!’
자그마한 발자국이다. 발자국을 따라 모래구릉으로 달려올라간 부시맨이 고함을 질렀다.
‘거기있는 친구 들어라! 우리는 너희를 발견했다. 우리는 부시맨이다. 우리는 핏줄에 당겨 너희를 발견했다.’
탐험대는 그때의 감동을 평생 잊지 못 했다. 모래구릉에서 네 사람의 부시맨이 춤을 추고있었다. 소크리엉덩이를 흔들면서 깡충깡충 뛰어오르기도 하고 모래밭에 벌러덩 들어눕기도 했다. 환희의 춤이다.
‘성지가 어디에 있냐고? 저기 저쪽 구릉 너머에 있어!’
성지에서 부시맨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때 나타난 부시맨은 모두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은 망태기에 넣은 타조알껍질 네 개를 모두 탐험대에게 주었다. 물이 담겨있다. 부시맨은 오늘은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내일 성지에 가자고 했다. 탐험대는 당장 뛰어가고 싶었지만 하룻밤 더 참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시맨이 없다. 두 사람의 사막부시맨은 밤늦게까지 파피들 강변부시맨과 고향이야기를 하다가 잠을 잤는데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파피가 야영장 주변을 살펴봤으나 그들은 흔적도 없었다. 파피가 통곡을 했다. 믿었던 동족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분함과 서러움에 못이겨 아이들처럼 발버둥을 치면서 울었다.
‘파피, 울지 마! 잘 생각해봐. 그들이 가버린 데는 이유가 있을거야. 부시맨은 이유없이 동족을 배신하지 않아.’
파피가 울음을 그치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 난 그 이유를 알겠어.’
부시맨은 성지가 외부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걸 금기시한다. 절대적인 비밀이다. 만약 외부사람 특히 백인들에게 성지가 알려지면 그들이 몰려와 개발을 할 것이다. 자기들의 영토를 만들어 부시맨은 쫓겨난다. 백인들에게 성지의 소재를 알려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도망을 갔다. 다니엘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그러나 다니엘교수는 아직 단념하지 않았다. 부시맨은 손님을 환대하는 종족이고 사막에서 만난 손님을 매정하게 버릴 사람들이 아니다. 7 - 8년 전의 영국광부들은 부시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니엘교수는 막연하지만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캠프를 옮기지 않고 기다렸다. 그날 하오에 그 보람이 있었다. 사라졌던 부시맨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추장과 장로들이 함께왔다.
‘어디 갔다왔냐고?’
두 사람 대신에 추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부시맨이 여러분을 모실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아니요? ’
추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추장과 장로들에게 동족 파피와 외부사람들을 데리고와도 되는지 허가를 얻으려고 했다. 부시맨회의가 열리고 그 회의에서 허가가 내려져야 외부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다.
부시맨회의에서는 먼 나라에서 고향을 찾아온 동포 파피와 함께 온 외국친구들을 성지에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외국친구들이 얼마나 파피를 사랑하고 외로웠던 동족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탐험대는 부시맨들의 안내로 그날 하오 성지에 도착했다. 칼라하리사막에 부시맨의 성지가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성지는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보통 사막의 오아시스는 푸른 호수가 있고 주변에 나무와 풀이 자라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낙원으로 일려졌으나 부시맨의 성지는 깊이 10여미터가 되는 자그마한 우물이 하나 있을 뿐이다. 주위에는 나무도 풀도 새도 없다. 우물은 맑고 차가왔다. 지질학자인 이글은 그곳에 지하수맥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글이 두레박의 길이를 쟀다. 20m나 된다. 옛 문헌에는 칼라하리사막의 지하에 나일강만한 강이 흐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부시맨들이 탐험대를 환영해주었다. 수백 명의 남녀노소가 환영의 춤을 추었다. 성지축제에는 젖먹이도 그 먼 사막을 건너왔다. 모두 소쿠리엉덩이에 몽고반점斑點이 있다. 아프리카에까지 진출한 몽고계 민족이다. 햇볕을 가리는 천막이 세워졌다. 기둥을 세우고 영양껍질로 지붕을 덮었다. 바닥에도 영양껍질을 깔았다. 통풍이 잘 되고 쾌적하다. 탐험대는 그들이 차린 잔칫상을 보고 놀랐다. 낙타고기, 양고기, 사막고구마, 사막수박이 있고 이끼종류의 야채도 있다. 특히 야채는 매우 귀한 음식인데 손님을 위해 특별히 채취했다고 한다. 도대체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야채를 채취했을까? 추장이 웃으면서 이든을 데리고갔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니 사막에 푸르스름한 줄이 있는데 그 줄이 바로 이끼다. 이끼가 자라는 곳에는 극히 소량의 습기가 있다. 깊은 지하에서 흐르는 수맥에서 수분이 올라온다. 추장은 낙타나 영양들이 그 푸른 선을 따라 돌아다니면서 살고있다고 말했다.
타조나 일부 영양들은 그 녹선綠線을 따라 이동하면서 이끼종류의 풀이나 땅속에 있는 식물줄기나 뿌리를 먹는다. 그 줄기나 뿌리는 건기가 되어도 죽지 않고 다음 우기까지 버틴다. 부시맨사냥꾼은 그런 타조무리를 발견하고 다음날 사냥에 나섰는데 탐험대의 학자들도 동참하기로 했다. 모두 30 명 쯤 된 사냥대는 세 그룹으로 나눴는데 추격대, 잠복대 그리고 마무리대다. 추격대가 타조를 쫓으면 사막구릉에 숨어있던 잠복대가 타조의 앞길을 막았고, 역시 숨어있던 마무리대가 타조를 포위한다. 타조는 추격대가 쫓아오면 마치 경주라도 하 듯 도망쳤는데 상대가 너무 느리다는 걸 알고 속력을 내지 않는다. 타조는 추격대가 30m 거리에 오자 비로소 속력을 냈다. 시속 80m를 달리는 타조가 속력을 내자 모래바람이 피어올랐다. 그때 구릉 뒤에 숨어있었던 잠복대가 타조의 앞길을 막아서서 고함을 질렀다. 타조가 방향을 바꿔 도망가려고 했는데 다른 그룹이 숨어있었다. 잠복대와 마무리대가 타조의 도주로를 차단하고 그 사이에 추격대가 합세하여 타조를 포위했다. 부시맨은 민첩하고 빨랐다. 그리고 끈질겼다. 그들은 민첩하고 치밀하게 몰이사냥을 했다. 그러자 타조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뚫고나갔다. 앞길을 막아섰으나 그 거대한 동물을 막아설 수는 없다. 포위망을 탈출하여 빠져나가는 타조에게 창이 날아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창은 목표를 정확하게 맞혔다. 두 마리의 타조가 쓰러졌다. 탐험대의 총에도 두 마리가 잡혔다. 부시맨은 필요한만큼만 잡는다. 타조 네 마리면 100여 명 쯤 되는 사람의 4 - 5일분 식량이 된다. 그날밤 성지에서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남녀노소가 춤을 추었다. 소쿠리엉덩이춤이다.
그날밤 잔치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반가운 경사慶事들이 일어났다. 잔치가 시작되었을 때 추장과 장로들이 잡아온 네 마리의 타조의 배를 갈랐는데 그들이 긴장했다. 장로가 칼로 타조의 배를 가르자 다른 장로들이 위나 장에 들어있는 걸 끄집어내더니 무엇인가 조사를 했다. 타조의 장에서 자그마한 돌들이 나왔다. 반쯤 소화된 돌이 섞여있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타조도 다른 새들처럼 모래와 돌을 먹는다. 돌과 모래가 위속에서 부딛쳐 마찰을 하면서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다. 그러나 칼라하리사막의 타조들이 먹는 돌은 특별한 것이다. 칼라하리사막에는 빤짝이는 돌이 있다.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돌이다. 타조는 그런 돌을 찾아먹었다. 다이아몬드다. 칼라하리사막 동쪽 일대는 다이아몬드 산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광산이 있다. 다이아몬드는 광산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사막에도 있다. 모래에 섞여있는 다이아몬드를 타조가 먹었다. 반짝이는 돌은 타조에게도 특별한 먹이다. 남아프리카정부는 사막타조를 잡으면 배를 가르지 못 하게 하고 신고하도록 해서 정부가 사들였다. 부시맨은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다. 장로가 배 안에서 콩알만한 돌을 발견했다. 다이아몬드다. 새파란 빛이 난다. 소 100마리 값이다. 잔치판의 부시맨들이 환성을 질렀다. 추장도 웃었다. 추장이 파피를 불렀다. 잔치판의 처녀도 한 사람 불렀다. 아주 건강하고 예쁜 처녀인데 추장의 조카딸이라고 소개했다.
‘이 처녀는 이제 과년過年하여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마땅한 신랑감이 없습니다. 똑똑하고 예쁘기 때문에 후보자들은 많이 오갔지만 본인이 다 싫다고 해서 문제입니다.’
추장이 파피와 처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155. 목베기족族 완비사
태평양 연안沿岸에 있는 에콰도르 고지高地는 안데스산맥의 북쪽에 있고 같은 산이지만 기후가 전혀 다르다. 안데스산맥은 한풍寒風이 몰아치는 한냉기후지만 에콰도르 고지는 열대성기후이며 동식물도 다르다. 에콰도르 고지의 산림에는 아마존유역에 사는 동물이 거의 다 살며 페카리(아프리카 야생 맷돼지)들이 떼를 지어 질주疾走한다. 맹수도 많고 북미北美의 퓨마와 남미南美의 재규어도 공존면서 서로 영역다툼을 한다. 원주민들도 성미가 거칠었으며 문명에 반항하며 원시적인 생활을 한다.
1928년, 여덟 명의 미국인학자들이 에콰도르 고지의 주민과 동물을 조사하기 위해 도착했다. 인류학자 루이스가 단장이고 지질학자, 생물학자, 고고학자들도 있었다. 인류학을 전공한 미셀부인도 참가했다. 안내와 경호는 스페인계 브라질인 리카르 가르토가 맡았다. 가르토는 남미정글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동물을 사로잡아 전 세계 동물원에 공급한다. 아마존유역에서는 이름난 사냥꾼이다. 가르토는 원주민사냥꾼 바르크영감과 세 명의 원주민사냥꾼을 데리고 왔다. 성격이 과격하다는 소문과 달리 가르토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는 강변의 넓은 백사장에 천막을 치고 주위에 여러 개의 모닥불을 피웠다. 목베기족의 야간기습을 대비하는 조치다. 천막을 친 다음날 원주민이 가라르토를 찾아왔다. 며칠 전 목베기족의 습격을 받은 와키키마을의 추장酋長이다. 추장은 조사대일행을 자기마을에 초청했다. 목베기족인 완비사족 사람사냥꾼들이 자기마을에 쳐들어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조사대는 초청을 받아들였다. 와키키마을은 에콰도르 고지의 기슭에 있었는데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데 조사대가 방문했을 때는 노인들 열서너 명만 남아있었다. 나머지는 완비사족이 죽이거나 납치해갔다는 것이다. 마을 여기저기에 핏자국들이 있었다. 뒷마당에는 열 서너 개의 묘들이 있었다. 완비사족이 죽인 마을장정들의 묘인데 묻힌 사람들은 머리가 없다고 한다. 완비사족이 목을 잘라갔다. 조사대는 충격을 받았다. 낯이 창백해졌고 일부는 조사를 중단하고 돌아가자고 했다.
조사단은 조사를 중단할 것인가 의논했으나 계속하자는 결론을 얻었다. 경호를 맡은 가르토가 완비사족이 목베기족이기는 하나 아직 백인의 목을 벤 적은 없다고 증언했다. 여류학자 미셀여사도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 마을에는 머물 수가 없어 일행은 이웃마을에 머물면서 조사활동을 펴기로 했다. 와키키마을 추장이 그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했다.
완비사 사람사냥꾼들이 한 밤중에 소리없이 마을에 들어왔다. 모두 스무 명 쯤 되었는데 창을 들고 허리에 칼을 찼다. 그들이 마을어귀에 들어왔을 때 와키키마을 경비대가 발견하고 북을 쳐서 경보警報를 울렸다. 경비대 스무 명이 창을 들고 침략자들과 싸웠다. 양측의 수는 같았으나 싸움이 되지 않았다. 한쪽은 침략을 습관적으로 하는 살인의 프로들이고 다른쪽은 싸움의 경험이 없는 농경민이다. 순식간에 와키키마을 장정 십여 명이 쓰러지고 여덟 명은 포로가 되었으며 나머지는 도망쳤다. 완비사족은 피에 굶주린 악귀惡鬼였다. 그들은 쓰러진 사람들의 목을 베었다. 숨이 끊어지지 않은 부상자도 목을 잘랐다. 목을 잘라 허리에 차고 환성을 질렀다. 목은 용사勇士의 전리품戰利品이었으므로 귀중한 유산遺産으로 대물림했다. 그러나 그들은 식인족은 아니었으므로 시신을 훼손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마을을 수색하여 성별 연령별로 가려냈다. 젊은 여자를 가려냈는데 열세 살에서 서른 대여섯까지의 여자 스무 명이 끌려나왔는데 그들은 성적性的기능이 있는 여자들이다. 인간사냥꾼들은 성적기능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유방과 성기性器를 상세히 조사하여 판단했으나 성적인 희롱이나 강간强姦은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열세 살 미만의 남녀아이를 가려냈다. 모두 열 서너 명 쯤 되었는데 아이들도 죽이지 않았다.
완비사족은 서른 명 쯤 되는 노인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 있는 물건들에도 관심이 없다. 마을에는 도끼, 칼, 냄비 등 원주민들에게는 귀중한 재산이 되는 물건들이나 식량도 있었으나 완비사족은 약탈掠奪은 하지 않았다. 포로가 된 남자들과 젊은 여자만 데리고 갔다. 허리에는 피가 줄줄 흐르는 남자들의 머리를 차고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돌아갔다.
‘그들을 처벌해주시오. 완비사족은 보름 전에도 산 너머 마을을 습격하여 수십 명의 사람을 죽이고 납치拉致해갔습니다.’
와키키마을 노인들이 조사대에 호소했다. 에콰도르정부에 호소해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에콰도르정부는 그런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주민들 사이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에콰도르는 1822년에 독립전쟁을 일으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나 그 후 내란이 계속되어 종족 간의 일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조사대는 목베기족 완비사가 한 잔인한 행위에 분격했으나 마을장로들의 호소를 들어줄 수 없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완비사족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세상이 21세기가 되었는데 아직도 목베기풍습을 가지고 있는 부족의 실체를 조사하고싶었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고있었으나, 일행을 안내하고 경비를 하는 가르토는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어떻게 완비사와 접촉을 하겠다는거요?’
가르토가 데리고 온 원주민 고용인雇傭人들 중에 완비사를 잘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주민들과 교역交易을 하는 칸투족 출신인데 이전에 완비사와 교역을 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완비사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부족이 아닙니다. 그들은 백인을 습격한 일이 없습니다.’
완비사족마을에는 그들이 다른 부족을 습격하여 얻은 수백 개나 되는 머리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 백인머리는 없다는 말이다. 조사대는 상의 끝에 그 위험한 일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가르트도 찬성했다.
조사대는 다음 날 그 지역으로 흐르는 강으로 갔다. 그리고 강변에 천막을 쳤다. 완비사와 교역을 한 원주민경비원이 완비사에게 줄 선물을 들고 혼자 인근에 있는 완비사마을에 들어갔다. 과연 그가 살아돌아올지 의문이다.
완비사마을에 들어간 원주민은 칸투족출신인데 칸투족은 자그마한 배를 타고 원주민마을을 돌아다니며 교역을 하는 부족이다. 그래서 그들은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원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칸투족출심의 원주민은 소금, 설탕 그리고 냄비와 칼을 선물로 가지고갔다. 원주민들에게는 무척 귀한 물건이다. 그런데 그는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에 출발했으니까 저녁때까지는 돌아올 시간이 충분한데도 오지 않았다.
‘역시 … ?’
완비사는 함부로 사람의 목을 베지 않는다고 했으나 목베기족은 목베기가 생업生業이다. 가르토가 야영장경비를 강화했다. 원주민경비원 두 명을 데리고 주변을 순찰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밤새도 울지 않고 밤짐승들의 움직임이 없다. 위험한 살육자가 있다는 증거다. 위험한 살육자는 사람인 것 같았다. 완비사족 염탐廉探꾼이 야영장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가르토가 손전등으로 그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서너 명 쯤 되는데 야영장에서 20m까지 접근하고 있었다. 불안하다. 완비사가 무옷을 할지 모른다. 조사대원들은 모두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날이 밝자 야영장주변을 조사했다. 모두 열서너 명의 염탐꾼들이 몇 개의 팀으로 나뉘ㅐ어서 야영장주변을 염탐했다. 그들은 용의주도用意周到하게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숨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 머리만 내놓기도 했다. 조사대원들은 혼자서 완비사마을에 들어간 원주민 걱정을 했다. 목이 잘려진 건 아닌가?
그런데 그날 정오께 그가 덜아왔다. 선물도 가지고왔다. 원숭이 두개골이다. 기분 나쁘고 섬뜩한 선물이었으나 완비사에게는 귀중한 보물이고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물건이다. 원숭이 두개골은 사람의 두개골과 똑같이 닮았는데 그래서 완비사가 사람의 두개골처럼 보물로 여긴다고 한다.
목베기족추장은 칸투족경비원을 환영하고 환영춤판도 벌였다. 추장은 백인을 마을에 초청하지는 않았으나 백인들이 자기들의 영토에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하는 건 허락했다.
추장이 백인들이 며칠동안 야영장에 머무르고 있으면 마을로 추청을 하겠다고 했다. 조사대를 좀 더 살펴보고나서 초청을 하겠다는 말이다. 조사대가 협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상대는 목베기족이다. 협상을 해놓고 습격할 위험도 있다. 완비사는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사람사냥꾼들이다.
가르토가 대비를 했다. 야영장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주변에 구덩이를 파서 경비원을 매복埋伏시켰다. 순찰도 했다. 그러나 완비사를 자극할 일은 삼갔다. 원주민이 싫어하는 총소리와 화약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대원들이 먹을 식량도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고, 덫을 놓아 토끼와 영양을 잡았다. 완비사는 계속 야영장을 감시했다. 염탐꾼들이 밤중에 소리없이 야영장주변을 돌아다녔다. 가끔 순찰대와 염탐꾼이 마주치는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서로 모르는 척 피했다. 목베기족 완비사만 없다면, 그 공포심만 없었다면 야영장은 야영하기 좋은 곳이다. 강에서 팔뚝만한 잉어와 메기가 낚시에 걸리고, 프랑스의 고급요리재료인 자카도 잡혔다. 덫에는 토끼와 영양들이 걸리고, 산림에서는 신선한 천연天然과일이나 버섯을 채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흘 뒤 새벽, 야영장 앞에 하얀 깃발이 꽂혔다. 하얀색은 평화의 상징이며 그 깃발은 완비사가 백인을 마을에 초청하겠다는 표식이다. 조사대는 칸투출신의 원주민의 안내로 완비사마을에 들어갔다. 마을은 꽤높은 바위산에 있었다. 바위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마을이 보이지 않았으나 마을에서는 아래쪽을 환히 볼 수 있다. 일행은 큰 바위들을 요리조리 돌아마을로 들어갔는데 도처에 감시의 눈이 있었다. 동굴이나 땅굴에 감시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천연의 요새要塞다. 완비사는 다른 마을을 습격했으나 그들이 습격당할 일은 없었다. 다른 부족은 그 요새에 쳐들어갈 수 없다.
완비사마을에서는 추장과 친위대親衛隊가 마중을 나왔다. 조사대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다른 부족과 달랐다. 그들은 키가 크고 용모가 단정하다. 다른 부족에게서 볼 수 있는 원주민 특유의 기형적畸形的인 게 없다.
조사대의 학자들은 완비사의 용모가 다른 부족들과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특히 아이들에게 주목했다. 남미부족의 아이들의 용모는 거의가 비슷비슷하다. 근친近親결혼제도의 영향을 받아 닮은꼴이다. 그 아이들 중에는 기형아畸形兒나 정신박약아精神薄弱兒들이 많은데 근친결혼의 폐해다. 그러나 완비사족 아이들의 용모는 기형아나 정신박약아들을 볼 수 없었다. 그 아이들 중에는 다른 부족의 얼굴이 있었고, 아랍계나 동양인 비슷한 얼굴도 있었다. 또 백인이나 흑인과 닮은 얼굴도 있다. 혼혈混血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그렇고 특히 여인들이 그랬다. 목베기족 완비사는 다른 부족을 습격하여 납치해온 여인들이 많다. 학자들은 열흘 전에 와키키마을을 습격하여 납치해간 여인들이 그 중에 있는지를 살폈으나 알 수가 없다. 분명 스무 명 쯤 와키키마을의 여인들이 완비사마을에 있을텐데 가려낼 수가 없다. 학자들은 그런 의도意圖를 겉으로 들어내지는 않고 숨기고 있었는데 원주민 고용인이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귀띰을 했다. 추장의 세 번 째 마누라를 잘 살펴보라고 했다. 그 여인은 젊고 예뻤으며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추장의 다른 여자들과 잘 어울리고 다른 여자들이 그 여자를 차별대우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 여인은 완비사에 동화同化되었다.
추장은 그날밤 일행을 마을의 공회당公會堂으로 안내했다.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데 공회당이라고 하기 보다는 두개골전시장이라고 불러야했다. 환하게 불이 켜진 내부 선반에 수백 개의 두개골이 전시되어 있었다. 최근에 채취한 와키키마을청년들의 두개골도 있었다. 두개골은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커다랗게 뚫어진 눈구멍이 인생의 허무함을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등골이 서늘한 귀기감鬼氣感이 감돌았으며 학자들은 침묵했다. 침묵했으나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두개골이여, 말하라! 왜 당신들은 죽었느냐? 그들이 당신들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두개골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학자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학자들이 두개골을 조사분석하면 죽은 사람들의 신원身元과 죽은 시기, 사인死因을 알 수 있고 그 근거로 더 상세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조사단은 그런 일을 다음으로 미뤘다. 우선 자신들의 안전이 문제다. 추장은 조사단이 마을 한구석에 천막을 치는 걸 허락했다. 추장은 조사대가 보낸 선물을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을 해달라고도 했다. 가르토가 식량이 필요하니 사냥터로 안내를 부탁했다. 잡은 짐승은 식량으로 하고 나머지는 마을의 잔치용으로 희사喜捨하겠다고 했다. 가르토는 생각이 있었다. 완비사는 적의敵意를 나타내지 않고 겉보기에는 친절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경계심이 있다. 백인방문객에 대한 불신이 있고 거기에 대한 경계심이다. 그들은 목베기족이다. 다른 부족의 목을 베는 그들은 발을 뻗고 잘 수 없다. 남의 목을 베면 자기들의 목도 위태롭다. 언제 어디서 복수를 당할지도 모른다. 경계심은 적의로 변하고 살의殺意가 될 수 있다. 완비사가 공회당으로 데리고 가 두개골을 보여준 것은 일종의 시위示威요 경고다. 너희들도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항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가르토는 그들에게 백인이 갖고있는 힘을 보여주기로 했다. 백인이 어떤 부족인가를 보여주어 그들의 반항심을 억누르려고 했다.
완비사사냥꾼들이 조사대를 페커리(아프리카 야생野生멧돼지) 서식지棲息地로 데리고 갔다. 가장 위험한 사냥터다. 맷돼지종류가 다 그렇듯 페커리도 매우 거친 짐승이며 수십 마리가 몰려다니며 자기들의 영지領地에 들어온 외적外敵을 공격한다. 페커리는 시속 60Km로 질주疾走하는 짐승이며, 길이 7 - 8Cm나 되는 송곳니가 있다. 그 송곳니에 스치기만 해도 재규어나 퓨마 등 맹수들의 내장內臟이 쏟아져나와 횡사橫死한다. 완비사는 일부러 조사대원들을 그 위험한 사냥터로 안내했다. 마침 수십 마리의 페커리가 사냥터에 몰려있었다. 페커리는 일행을 보자 아무런 경고도 없이 덮쳐들었다. 흙먼지를 날리며 돌진突進했다. 그럴 때 재규어나 퓨마는 인근에 있는 나무로 올라가 피신을 한다. 피신할만한 나무가 없으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데 페커리를 피하기 어렵다.
가르토의 입언저리에 주름이 잡혔다. 웃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르토는 모험을 하거나 살육殺戮을 할 때 그런 표정이 된다. 가르토는 미국제 윈체스터 자동연발총을 들고 혼자서 앞으로 나갔다. 그는 세계각지의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짐승들과 싸우는 사냥꾼이다. 그 따위 페커리에게 죽을 사냥꾼이 아니다.
페커리들이 30m 앞까지 돌진하는데도 가르토는 버티고 있다. 페커리가 20m 앞까지 육박肉縛해오자 가르토가 발사했다. 앞머리에서 달려오던 페커리두목이 뒹굴었다. 가르토의 연발총이 기관총처럼 연사連射되고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그 뒤를 따라오던 페커리들도 쓰러졌다. 앞장선 페커리가 쓰러지자 뒤를 따라오던 페커리들이 쓰러진 동료에 부딪혀 쓰러지자 페커리들은 급정지를 하고 옆으로 돌아갔다. 페커리가 도망을 갔다.
완비사사냥꾼들이 멍! 하니 서있었다. 일순간에 대여섯 마리나 되는 페커리가 죽는 것을 보고 그들은 자기들의 눈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사람의 목을 베는 야만족野蠻族에 대한 가르토의 분노가 폭발했다. 야만족 대신 페커리가 희생되었다. 가르토의 심리전은 효과가 있었다. 완비사의 태도가 달라졌다. 없신여기는 듯한 표정이 사라졌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고 번개처럼 불을 뿜는 마법魔法의 철붙이 이야기를 들은 마을사람들은 총 가까이에 오지 않았다. 창과 칼을 들고 마을에서 돌아다니던 전사戰士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 다음 일은 인류학자인 미셀부인이 맡았다. 미셀부인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는데 완비사의 말에도 스페인어가 섞여있다. 오랜 스페인통치시절에 어휘語彙들이 섞인 것이다. 미셀부인은 선무공작宣撫工作을 했다. 아이들이 대상인데 아이들은 미셀부인의 미소와 그녀가 주는 달콤한 과자들에 이끌려 천막을 찾아왔다. 눈치를 보면서 천막을 찾아온 아이들이 웃었고 여인들의 굳은 표정이 풀어졌다. 아이들이란 어느 사회에서도 천진난만天眞爛漫하고 목베기족도 그 예외는 아니다. 힘이 있는 장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조사대에 따르고 협력한 사람은 마을의 주술사呪術師였다. 주술사는 추장 다음으로 세력이 있는 사람인데 마을에 큰일이 벌어지면 추장은 주술사와 먼저 의논을 해서 점괘占卦를 얻었다. 주술사가 원하는 것은 조사대가 가지고있는 약藥이다. 주술사는 마을의 의사이므로 약이 필요하다. 특히 즉효卽效가 있는 모르핀계의 진통제와 아스피린계의 해열제가 필요하다.
그 마을의 주술사는 명의名醫로 알려졌으며 그 마을뿐만 아니라 멀리 나포강유역에 사는 완비사 다른 마을에서도 환자들이 왔다. 그는 반백半白의 영감이었는데 목베기족답지 않게 부드러운 표정이었으면 행동도 그랬다. 학자들이 보기에 그는 다른 원주민마을 주술사들과 달랐다. 그는 과학적인 지식을 갖고있으며 환자들을 다루는데 그 지식을 활용했다. 주술사영감의 지식은 학문적인 공부에서 얻은 게 아니라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것이지만 학자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들이 있었다. 주술사영감이 근친결혼에 대해 말했다. 근친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은 일찍 죽든가 기형아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실지로 예를 들었다. 그는 마을의 가계家系를 상세히 알고있었으며 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상세히 알고있었다. 같은 가계의 남녀들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의 1/ 3이 기형아라고 했다. 인류학자인 루이스박사와 미셀여사는 직접 그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보고 조사한 결과 주술사 사사르영감의 견해가 정확하다고 확인했다. 사사르영감의 견해와 그가 제시한 사례들은 그대로 학술지에 발표해도 될 것 같았다. 조사대의 학자들이 사사르영감을 도와주었다. 그의 집에 가서 치료를 도왔다. 열상裂傷을 입은 환자의 상처를 봉합縫合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뜨거운 물로 소독하는 방법도 가르쳤다. 약도 주었다. 사사르영감의 명성名聲은 더욱 높아졌다. 그곳에서 50Km나 떨어진 마을의 추장이 고열에 신음하는 아들을 들것에 싣고 왔다. 엉덩이가 화농化膿된 아이인데 두꺼운 엉덩이살의 화농이었기에 다른 주술사는 손도 대기 어려운 상처다. 그대로 두면 위험한 상태였는데 학자들의 도움을 받은 사사르영감이 소독한 칼로 과감하게 환부患部를 절개切開했다. 환부에서 누런 고름이 쏟아져나오자 보고있었던 사람들이 탄성歎聲을 질렀다. 사사르영감이 환부를 소독하고 봉합했다. 그 환자는 다음날부터 열이 떨어졌고 사흘 후에는 일어났다. 사사르영감이 추장에게 백인들은 신령님이 마을에 보내준 점괘가 나왔다고 하면서 대접을 잘 해야 된다고 했다. 그건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 후 목베기족들의 백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적대감과 경계심을 풀고 학자들의 조사활동에 자진해서 협력했다.
조사대는 사사르영감의 도움으로 두개골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신성한 곳이며 외부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추장은 조사대의 출입을 허락했다. 미셀부인이 어느날 늦게 사사르영감과 함께 공회당에 들어갔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으나 인기척이 있었다. 어느 두개골 앞에 꽃다발이 놓여있고 한 사람의 여인이 절을 하고있었다. 마을에서 꽤 힘이 있는 장로의 부인인데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저 두개골은 저 여인의 옛 남편입니다.’
사사르영감의 귀띰에 미셀부인이 충격을 받았다.
5년 전 목베기족 완비사는 어느 원주민마을을 습격하여 그 마을 경비대장인 사람의 목을 베고 그 사람의 처를 납치했는데 두개골은 바로 그 경비대장의 것이고 여인은 납치된 그의 처였다. 여인은 습격한 완비사전사의 셋째부인이 되었고 아이가 둘이 생겼다. 미셀부인은 그 가족을 알고 있다. 평화로운 가족이고 세 명의 부인들 사이도 원만했다. 미셀부인은 세 명의 처들이 낳은 네 명의 아이들을 봤는데 본처 첫째부인의 아이들은 모두 사산死産되었고, 둘째부인의 아이는 기형아고, 지능이 떨어졌다. 그러나 셋째부인의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귀여웠다. 모두 사내아이였는데 똑똑하다는 소문이었다.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다 자기 아이들처럼 그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똑똑한 아이들을 낳은 여인도 잘 대접했다. 그래서 전 남편의 두개골에 꽃을 바치는 것도 비공식적으로 묵인黙認했다. 그 여인이 미셀부인을 보고 일어섰다. 담담한 표정이었으며 미소까지 지었다. 미셀부인은 그 여인에게 연민憐憫을 느꼈다. 여인은 운명을 받아들여 현재의 남편을 사랑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 미셀부인의 조사로 그 마을에는 그런 여인들이 여덟 명이 살고있었고 선대先代에도 그런 할머니들이 네 명이 있었다.
완비사에게 납치된 다른 마을여인들은 외롭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그 할머니도 피랍被拉여인이다. 완비사는 왜 유독 여인들만 납치를 했을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완비사족은 멸종되었을 것이다. 완비사족은 다른 마을과 접촉을 하지 않았다. 다른 부족들은 목베기족인 완비사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고 같은 완비사족들까지도 접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근친결혼을 했다. 사촌, 이종 심지어는 남매들도 부부가 되었다. 그 결과 사산이 속출하고 기형아와 정신박약아들이 태어났다. 그래서 완비사는 다른 마을을 습격하여 여인들을 납치했다. 여인들을 납치해오려면 남자들과 싸워야 하고 그들은 목을 벴다. 목베기는 완비사의 무용武勇의 상징이며 그런 무용이 있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목을 베어온 전사는 영웅으로 대접하고 목베기를 장려했다. 그러나 목베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여인납치다. 목베기풍습은 타부족여인을 납치하여 신선한 피를 얻으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완비사는 멸종을 면했다. 우생학적優生學的으로 근친결혼은 남년 양측의 나쁜 유전자遺傳子만을 타고 태어나고 혼혈결혼에서는 우생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 조사대는 완비사마을에서 우생학적 현상을 보았다. 젊은이들은 건장健壯했고 잘 생긴 아이들이 많았다. 학자들이 조사를 하다가 한 무리의 남자노예를 보았다.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힘든 노동을 하고있었다. 농사일을 했다. 남자포로다. 그렇다고 쇠사슬을 채우거나 감금당하지 않았다. 노동력으로 활용했다. 열심히 일하는 포로는 차츰 대우가 좋아졌으며 완비사전사가 되기도 한다. 목을 베어오면 포로의 지위에서 풀려나 영웅이 된다.
미셀부인은 완비사에게 피랍된 여인들을 주로 조사했으나 인류학자인 루이스교수는 포로가 된 남자들을 조사했다. 여덟 명 쯤 되는 포로들은 노예생활을 하고있었으나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도망갈 수도 없다. 완비사전사들이 마을 주위에 배치되어 높은 나무 위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땅굴속에 숨어있기도 한다. 그들과 별도로 순찰대들이 수시로 마을 주변을 돌고있기 때문에 포로들이 도망가다가는 두개골전시실에 진열된 두개골로 추가될뿐 이다. 완비사전사가 하는 일은 전투준비이며 그들은 밤짐승처럼 밤눈이 밝고 민첩하다. 그들이 날리는 창은 20m 거리 안에서는 수박크기의 과녁에 명중된다. 포로들은 낮에는 완비사전사들에게 끌려가 힘든 노동을 했으나 밤에는 숙소에 돌아왔는데 루이스교수가 그들의 숙소에 가봤다. 그날밤은 밝은 달밤이었는데 포로수용소에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들이 있었다. 포로를 감시하는 완비사전사라고 생각했는데 마을 여인들이다. 여인 세 명이 소곤거리면서 포로숙소로 기어가고있었다. 여인 한 명이 킬킬거리면서 포로수용소로 들어가더니 포로 한 명을 데리고나왔다. 여인은 포로를 인근의 풀밭으로 데리고가서는 벌렁누웠다. 여인은 다리를 벌려 포로에게 독촉을 했다. 왜 꾸물거리느냐는 독촉이다. 포로가 여인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들의 정사情事는 격렬하고 빨랐다. 정사가 끝나자 여인이 남자에게 선물을 주었다. 계란이다. 계란은 그 마을에서 귀중품이다. 여인이 돌아가자 다른 여인이 숙소에 들어가 다른 남자포로를 데리고나왔다. 그들도 정사를 하고 계란을 주었다. 그 주변에서 구경을 하고있었던 여인도 같은 짓을 했다. 대담한 여인들이다. 그들은 모두 유부녀들인데 발각되면 어떻게 될까? 다음날 주술사에게 물었더니 발각되어도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남자와 여자의 정사가 왜 나쁘냐는 식이다. 정사를 하면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건 경사慶事다. 근친결혼으로 아이들이 줄어드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
완비사장로들은 자기의 딸이나 며느리가 많은 아이를 낳아주기를 바랐다. 특히 타부족의 신선한 피를 받아 건강한 아이를 원했다. 장로들은 추장의 허락을 받아 포로들을 아예 자기집으로 데려왔다. 일을 시킨다는 핑계였으나 기형아를 낳거나 출산을 못 하는 딸들에게 붙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 건강한 손자손녀를 얻을 수 있다. 어떤 포로는 밤에도 숙소에 돌아오지 않았다. 추장의 특별허락을 받으면 세력이 있는 집안의 딸과 동거할 수도 있다. 완비사의 남녀는 평소에는 앞가리개로 국부局部를 가렸다. 나무껍질을 두들겨 만든 헝겊으로 음부陰部를 가렸는데 햇빛으로부터 귀중한 음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햇빛이 없는 곳에서는 가리개를 떼어버렸다. 조사대의 학자들은 가리개를 없애버린 음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남녀 모두 음모陰毛가 없다. 깎은 게 아니라 뽑아버렸다. 또한 음부 주위에 하얀 칠漆을 했다. 그래서 하얀색 바탕에 음부가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완비사 남자들은 뻣뻣하게 발기된 음경陰莖을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여자들도 다리를 벌려 분비물分泌物로 번들거리는 음부를 남자들에게 보여준다. 완비사 남녀가 가리개를 벗어버리는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나는 당신을 원한다’는 의사표시다.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런 의사표시를 한다. 미셀부인은 뻣뻣한 남자들의 음경이 거북스러웠고, 남자학자들도 여자들의 음부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견디기 어려웠다. 루이스단장이 대원들에게 완비사여인의 도전挑戰에 절대 응하지 말 것을 강력히 지시했는데 머문지 1주일만에 사고가 생겼다. 고고학을 전공하는 젊은 대학원생 로이드가 사고를 쳤다. 루이스교수는 로이드가 자는 천막 안에서 계란껍질을 발견하고 추궁을 했는데 로이드는 처음에는 강력이 부인했으나 결국 실토했다. 한밤중에 완비사여인 세 사람이 습격하여 힘으로 강요했다는 말이다. 완비사여인들은 힘이 강했으며 로이드는 세 명의 여인들에게 눌려 꼼짝도 못 했다.
웃지 못 할 일이다. 남자의 성기능으로봐서 남자가 여자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려웠으나 전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자들이 힘으로 남자를 꼼짝 못 하게 해놓고 남자의 성욕을 자극시키면 남자의 자제력이 약해져 마음에 없는 성행위가 이루어진다. 아무튼 예삿일이 아니다. 루이스단장의 예상대로 다음날 완비사추장이 젊은 마을여인을 데리고왔다.
‘축하합니다. 나는 여러분들 중 한 분이 우리마을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신부는 열아홉 살 된 처녀이며 예쁘고 건강했다. 신부는 조금 수집어했으나 그래도 기쁜 듯 웃었다. 그 처녀는 마땅한 신랑감을 얻지 못 해 혼기婚期를 놓쳤는데 그녀의 언니들이 음모陰謀를 꾸며 피부가 흰 손님들 중에서 잘 생긴 젊은이를 골라 결혼을 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완비사풍습에는 여자가 먼저 신청을 해서 남자를 데리고온다.
그날밤, 정말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성대한 결혼잔치가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정식으로 성혼선언이 되고 신랑과 신부는 마을에서 마련해준 새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로이드가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로이드단장에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웃을 일이 아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미국인 학도學徒가 남미의 목베기족 아가씨와 결혼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결혼을 거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완비사가 분노할 것이고 분노한 완비사가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루이스단장이 사사르영감과 의논을 했다. 사사르영감은 음으로 양으로 학자들을 도와주었다. 루이스단장은 영감이 원하는 진통제를 대량大量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해결을 부탁했다.
사사르영감이 굿판을 벌였다. 영감은 굿판에 신령님을 모셔왔다. 그리고 신령님으로부터 그 결혼은 궁합宮合이 맞지 않으니 성혼을 시키면 안 된다는 신령님의 말씀을 받아냈다. 성혼을 시키면 마을에 불길한 흉사凶事가 일어난다고 예언했다. 신부측도 마을사람들도 전능하신 신령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마을의 풍습은 성혼이 되면 신랑이 신부에게 많은 예물禮物을 주게되어 있었으므로 루이스단장이 예물 대신 위로慰勞의 선물로 양羊 열 마리를 주었다. 로이드는 위기를 면했으나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로이드는 그 처녀와 사실상 첫날밤을 보냈으므로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 처녀가 잉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잉태했을지도 모르나 그렇다고 낙태를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뜻에 맡길 수밖에. 미셀부인이 조사해보니 그 마을에는 백인의 피가 섞여있다고 의심되는 아이가 있었다. 다섯 살 쯤 되는 사내아이였는데 피부가 흰색이고 덩치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크다. 마을사람들은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한다. 미셀부인의 조사에 의하면 그 아이가 잉태될 무렵 스페인 선교사들이 포교布敎활동을 했었다. 더 상세히 파고들자 완비사가 선교사 두 사람을 납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나흘 후에 석방되었으나 마을에 억류되었을 때 마을여인들과 접촉을 한 것 같았다. 미셀부인이 선교사를 만난 여인들을 조사했으나 여인들은 정교情交를 부인했다. 미셀부인은 조사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공연히 조사해서 아이의 아버지가 밝혀지면 일이 복잡해질 염려가 있다. 로이드의 경우도 그랬다. 잉태여부도 확실하지 않은데 미리 아이의 처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조사대는 그 일을 덮어두기로 했고 완비사도 더 이상 결혼을 요구하지 않았다. 조사대가 머무는 동안 완비사는 다른 마을을 공격하지 않았다. 평화로웠다.
그런데 조사대가 마을에 머문지 한 달 쯤 되었을 때, 마을이 갑자기 긴장되었다. 장로회의가 열리고 전사들이 무기를 들고 모였다. 마을에 살기가 가득하다.
‘고르긴족입니다. 고르긴족이 쳐들어왔어요.’
사사르영감이 말했다. 고르긴족은 에콰도르 고지高地의 서쪽 산림에서 살고있는 수렵족인데 5, 6년 전 완비사전사들이 그 마을을 한밤중에 기습하여 열 명이 넘는 젊은이들의 목을 베고, 여덟 명을 포로로 잡아왔으며, 열두 명의 여인들을 납치했다. 고르긴족은 용감한 수렵족이었으나 야간夜間전투에 능란能爛한 완비사 사람사냥꾼들에게 기습을 당했기 때문에 마을을 지킬 수 없었다. 그 전쟁에서 용감한 완비사전사가 네 명이 죽은 걸로 봐서 고르긴족은 예사 수렵족이 아니다. 고르긴족은 복수를 맹세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고르긴족은 최근에 강력해졌다. 세 개의 마을을 통합하여 인구가 300여 명이나 되었고, 100여 명의 전사들이 전투훈련을 했다. 숙적宿敵 완비사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에서다. 고르긴족의 전력은 완비사를 능가한다. 거의 두 배다. 고르긴족은 완비사를 기습하려고 했다가 마을주변을 지키던 완비사 감시병에게 발각되었다. 기습에 실패했으나 물러나지는 않았다. 완비사마을을 포위했다. 완비사가 도망치는 걸 막고 전멸시킬 작전이다. 완비사도 전력을 최대화했다.
마을에 머물고있는 조사대가 위험하다. 다행히 학자들을 경호하는 가르토가 고르긴족을 알고 있다. 10여 년 전 쯤 그 마을에 머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재규어를 생포한 일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물론 추장과 장로들과 친분이 있다. 가르토 혼자 마을을 포위한 고르긴족 진영陣營에 갔다. 그는 화해를 권유했으나 복수를 위해 10여 년 동안 이를 갈았던 추장이 화해에 응할 리 없다. 오히려 추장은 완비사마을에 있는 백인들에게 철수하라고 경고했다. 철수하지 않으면 창이나 화살에 맞아 죽는다고 했으며 자기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가르토도 강경했다. 화해가 안 되어 고르긴족이 완비사마을에 쳐들어오면 백인들은 자기방어를 하기 위해 총을 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르긴족추장은 가르토가 가지고있는 자동 5연발총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알고 있다. 고르긴족은 완비사를 전멸시켜 복수하겠다는 전쟁을 포기했다. 그 대신 완비사가 6년 전에 포로로 잡아간 고르긴족 장정壯丁들과 납치해간 여인들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뭐라고? 여인들과 포로들을 돌려주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야 ….’
예상했던대로 완비사추장이 고르긴족의 주장을 일축一蹴했다. 그쪽에서 쳐들어오지 않으면 이쪽에서 쳐들어가 몰살시키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가르토가 만약 그런 짓을 하면 자기는 고르긴족 편을 들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완비사도 가르토의 총솜씨를 알고 있다. 돌진해오는 페커리를 한꺼번에 다섯 마리나 쏘아죽인 총솜씨다.
가르토는 그렇게 양 진영의 선제공격을 막아놓고 양 진영을 오가며 타협을 추진했다. 고르긴과 완비사가 총력을 기울인 전쟁이 터지면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희생될지 모른다. 세 번이나 오가던 가르토에게 묘수妙手가 떠올랐다. 포로가 된 남자들과 납치한 여인들을 돌려주기로 하되 그들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돌아가기를 원하는 포로와 여인들만 돌아가는 것이다. 그 화해조건은 중대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기를 원할 것인가?
사흘 후 앞산기슭에 포로와 여인을 모아놓고 양측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로와 여인들이 자기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자유로운 선택을 보증하기 위해 가르토가 입회하기로 했다.
마을에 동요動搖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모여 수근거렸다. 포로들은 서로 의논을 하고, 여인들도 끼리끼리 모여 상의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 상의를 했다. 문제가 복잡하다. 여덟 명의 포로 중 한 명은 독사에 물려 죽었으나 일곱 명은 건재하다. 그들은 대부분 노예신분에서 풀려나 완비사족에게 동화同化되었다. 그 중 두 명은 전사가 되어 마을의 용사 대접을 받았다. 그들 중 네 명은 완비사여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과연 그들이 처와 아이들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여인들의 입장은 더 복잡하다. 열두 명의 여인 중 열 명이 살아있는데 그녀들은 모두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 남편과 사이도 좋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있었다. 포로의 마누라가 된 완비사여인들이 남편을 붙들고 돌아가지 말라고 호소하고 아이들도 아버지에게 매달려 울었다. 납치된 여인들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마을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일부 원주민들은 그따위 화해를 왜 승인했냐고 따지고 백인들에게도 항의했다. 그러나 한 번 성립한 화해를 깰 수는 없다. 남미 원주민들은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종족이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산기슭벌판에 양측대표 열 명이 자리를 잡고, 가르토와 학자들이 가운데 앉았다. 포로 일곱 명과 열 명의 여인들이 앉아있다. 다른 가족은 한 사람도 오지 못 하게 막았다. 양측 전사들이 30m 쯤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가족들은 거기에 있다. 가족들이 고함을 지르고 울었다.
정해진 장소에 도착한 포로들은 입회를 한 고르긴장로들에게 큰절을 했다. 그중에는 포로의 부친이나 삼촌들이 있다.
‘오, 너희들이 살아있었구나!’
장로들이 환성을 질렀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에게 달려가는 아버지도 있었으나 10m 이내의 접근은 금지되었다. 포로들이 어머니나 형제들의 안부를 물었다.
‘잘 있어. 모두 네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있어.’
‘마을 앞 산림에 아직도 파파야가 열렸습니까?’
‘그럼. 주렁주렁 열려있지. 망고도 열리고 지금은 산림이 온통 버섯밭이야.’
‘강에는 아직도 고기들이 많습니까?’
‘물론이지. 바다에서 온갖 고기들이 올라와 알을 낳고 있지. 네 아들이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단다.’
포로들이 흥분했다. 6년 동안 꿈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고향소식이다. 포로들이 번쩍! 두 손을 들어올렸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표시다. 일곱 명의 포로들이 모두 다 손을 들어올렸다. 그 동안 완비사에 동화되어 현지처를 얻은 포로도, 마을에서 영웅대접을 받는 포로도 다 돌아가겠다고 나섰다. 완비사장로들이 아연啞然해졌다. 그렇게 잘 대우를 했는데 돌아가겠다니 …. 완비사장로들이 만류를 했으나 소용없었다. 돌아가겠다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양 부족 간의 약속이고 약속을 깰 수는 없다. 포로들은 모두 고르긴족전사들에게 넘겨졌다. 오랜만에 해후邂逅한 그들은 모두 얼싸안고 춤을 추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으며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음은 납치된 여인들 차례다. 열 명의 여인들이 나왔는데 그들은 포로와 달랐다. 조용히 앉아있다. 표정이 어두웠고 망설이고 있다. 여인들 중에는 고르긴족장로의 딸이 있고 친척도 있었으나 그들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그저 울고만 있다. 장로들이 고향소식을 말해도 그냥 듣고만 있다. 여인들은 손을 들어올리지 않았다. 그러자 여인의 아버지로 보이는 고르긴족장로가 딸에게 왜 망설이는가 호통을 쳤다. 그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완비사전사와 함께 있던 남자아이가 엄마를 부르면서 달려왔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는 아이는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으나 울면서 기어오고 있었다.
여인이 달려갔다. 그러자 고르긴족장로가 그건 약속위반이라면서 아이를 돌려보내라고 고함을 질렀다. 다른 고르긴족장로들이 모두 일어나 여인을 잡으려고 뛰어나갔다. 입회를 한 미셀부인이 보다 못 해 고르긴족장로들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하긴 아이를 회담장에 들여보내는 건 협정위반이고 여인이 회담장에서 뛰어나간 것도 위반이다. 그러나 어미와 아이가 만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모자간의 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감정이며 누가 그걸 막겠는가? 그게 계기가 되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마을에 남겠다는 의사표시다. 그걸 본 다른 여인들이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웬일인가? 납치된 여인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을에 남겠다니 …. 고르긴족 여인들은 남편이 죽고 강제로 끌려왔는데 그 원수들과 함께 살겠다니 …. 그러나 협정은 지켜져야 하고 여인들은 완비사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여인들이 아이들을 껴안고 울고 아이가 없는 여인도 남편의 품에 안겼다.
포로와 여인들의 의사를 확인하는 그날의 행사는 사고없이 끝났는데 백인학자들은 충격이 컸다. 회의를 열었다. 포로들이 돌아가겠다고 한 결정은 당연하나 여인들이 남겠다고 한 결정에는 의문이 생겼다. 여인들의 의사결정에는 어떤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완비사족이 여인들이 돌아가겠다고하면 아이들을 핍박을 하겠다고 협박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만약 그렇다면 여인들의 의사표시는 무효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했으나 미셀부인이 반대했다. 자손이 귀한 완비사는 아이들을 귀하게 여겼으며 잘 키웠다.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가리지 않고 돌보았다. 그런 완비사가 아이를 볼모로 여자들을 협박할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여인이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어머니는 없지만 아버지는 있다. 그 아버지가 아이를 차별받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박사가 미셀부인의 주장에 동의했다.
조사대는 그 일을 미셀부인에게 맡겼다. 부인은 그 동안 마을여인들과 친해졌고 관련된 여인들도 알았다.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던 여인들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살았다.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과도 잠자리를 하고, 틈이 나면 모여 수다를 떨었다. 조사를 했으나 협박을 당한 근거는 없다.
‘왜 남기로 했냐고요? 그야, 아이들 때문이지요. 어린아이를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남편도 잘 해주고 마을사람들도 다 잘 해줘요. 이젠 모두 친구예요.’
그렇다면 고향에 남아있는 옛 남편이나 아이들은 어떻게 되느냐? 그 아이들도 어머니를 그리워할텐데 …. 여인들의 부모형제들이 돌아오라고 호소를 하지 않았는가. 여인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셀부인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미셀부인은 그 표정에서 대답을 짐작했다. 그건 과거의 일이 아닙니까? 과거는 잊고 현재를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 여인이란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포로가 된 남자들은 여인들에게 비하면 과거에 강한 집착이 있다. 그들은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나 형제, 아이들을 생각하고, 파파야가 열린 고향의 산림과 고기가 뛰노는 고향의 강과 추억을 그리워한다. 남자는 과거와 연결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회귀력回歸力이 강하다. 그것은 비단 완비사족뿐만이 아니다. 문명사회에서도 그렇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된 남자들은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도 옛 가족들에게로 돌아온다. 옛 부인과 아이들을 만나 다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인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여인들은 죽은줄 알았던 옛 남편이 돌아오면 당황한다. 그리고 고민을 하다가 현재의 남편을 선택한다.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다라는 고르긴족여인들의 말은 문명사회의 대변代辯이다.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완비사에게 납치된 여인들이 자기 부모나 남편을 버리고 현재의 남편을 선택한 것을 보고 경악했으나 여인들에게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여인들에게는 과거를 단절시킬 능력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여성특유의 생태적현상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현실순응적이다. 하나는 전 남편과 사이의 아이고 또 하나는 현 남편과 사이에 낳은 아이이며 지금 같이 살고있다면 여성은 지금 같이 살고있는 아이를 선택한다. 불륜도 그렇다. 남자는 불륜不倫에서 본처에게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지만 여자는 불륜이 청산되더라도 회귀가능성이 작다. 구조적 생리적인면에서도 여성은 취약하다. 인류학자인 루이스단장과 미셀부인의 결론이다.
156. 무산茂山의 포수마을
한국 동북쪽 끝에 세모꼴의 광대한 산림이 있다. 두만강이 가장 긴 위쪽은 북변北邊이고 왼쪽 서변西邊은 마천령산맥, 바른쪽 동변東邊은 함경산맥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무산산림이라고 불렀는데 북한사람들과 만주사람들은 무산의 수해樹海라고 부른다. 바다처럼 넓은 원시림이다. 한랭寒冷지역이며 침엽수針葉樹들이 울창하기 때문에 많은 짐승들이 산다. 만주나 한국에 살고있는 짐승들은 대부분 다 있다. 맷돼지, 사슴, 노루, 산양들이 살고 그들을 노리는 범, 표범, 불곰, 이리들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짐승들의 나라라고 부르며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땅이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 산림 변두리에 들어가 산간마을을 만들었다. 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손바닥만한 경사지傾斜地를 일구어 옥수수, 조, 감자를 심고 살았다. 또 다른 주민도 있다. 지주地主들에게 착취搾取를 당하고 관리들에게 수탈收奪을 당한 농민들이 죽지 못 해 그 산중에 들어와 살았다. 화전민火田民들이다. 수백 명에 불과했으나 또 다른 사람들도 산다. 목숨이 아까운줄 모르는 함경도 사냥꾼들이 산림 깊숙한 곳에 살고 있다.
조선 말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을 한지 2년 되던 해, 1865년 늦가을에 마천령산맥 동쪽에 있는 어느 야산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의금부군관義禁府軍官 박사원과 강원도포수 이경학이다. 박사원군관은 아직 30대의 소장무관小將武官이었으나 지방호족豪族들의 실태와 비행非行을 조사하는 유능한 조사관이었으며 활과 창을 잘 다루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경학포수는 범과 표범을 여섯 마리나 잡은 포수였으며 특별히 선발되어 박사원군관을 도왔다. 그들은 대원군의 밀명密命을 받았다. 함경도의 호족 장성대와 그 아들들의 동태를 조사하고 그들의 비행을 적발하라는 지시인데 관헌官憲들도 모르게 비밀리에 조사하라는 은밀한 지령指令이다. 지방관헌들에게 알리지도 말고 도움도 받지 말라는 엄명嚴命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함경도의 호족 장성대는 예사 사람이 아니다. 그의 집안은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는 양반대접을 받았으며 사병私兵을 거느릴 수 있는 특권을 갖고있었다. 그의 선대先代들은 한국 북쪽을 넘나드는 외적外敵들과 싸우면서 허다한 공적을 세웠다. 형식적으로는 관헌과 합동으로 외적토벌을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사실은 사병들이 국경수비國境守備의 임무를 맡았다. 그래서 조정朝廷은 비공식적이지만 장성대의 선대에게 종從3품品에 해당하는 벼슬을 내렸고 장상대는 그 벼슬을 이어받았다. 그 고장 수령首領은 물론이고 감찰사監察使도 부임赴任인사를 할 정도로 위세威勢가 대단했다.
의금부도 정성대일가의 동태를 함부로 조사할 수 없다. 북방경비를 맡은 그들의 비위脾胃를 거슬릴 수 없다. 대원군이 즉위하자 장성대일가의 고발이 들어왔다. 장성대아들이 무산에 포수마을이라는 사병私兵집단을 만들어 그 세력이 강대해지고 있다는 정보다. 그대로 둘 수 없다. 어지러운 세상이었으며 도처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었다. 또 다른 고발도 있었다. 포수마을에는 도망친 노비들이 많았고 마을이 범법자의 피신처가 되어있다는 고발이다. 범죄자들의 온상溫床이 되어 여러 가지 비행非行을 자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방관헌은 그런 일을 조사하거나 단속할 수 없다. 포수마을의 무산 산림은 사실상 치외법권지대治外法權地帶다. 관리들도 들어갈 수 없다. 폭풍과 폭설이 몰아치는 원시림에는 맹수들만 돌아다녔다. 그래서 의금부는 박사원에게 특명을 내렸고, 박사원은 강원도포수 이경학을 데리고 사냥꾼으로 가장假裝하여 무산의 원시림에 들어갔다. 그들이 바위틈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잠자리를 만들고 있을 때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의정부소속 염탐꾼 서영감과 임여인이 소리없이 나타났다. 오래토록 염탐을 해온 그들은 고양이처럼 발자국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은 소금장수 부부로 가장하여 산중의 마을을 돌아다녔다. 소금은 산중의 필수품이며 어떤 마을에서도 환영했다. 그들은 소금장수 일을 익히기 위해 보름 간 소금장수를 따라다니며 상술商術을 익혔다. 그들은 박사원의 수하手下이며 박사원은 그들을 신임한다. 둘 다 노비奴婢출신이었으나 의금부는 그들을 중인中人신분으로 올려주었다. 서영감은 단검短劍을 잘 다루고 임여인은 비수匕首를 잘 날렸다. 임여인은 아직 젊고 미모의 여인이었는데 10m 이내의 거리에서는 그녀의 비수는 사과만한 과녁에 어김없이 꽂혔다.
‘마을에서 뭘 좀 알아봤느냐?’
서영감과 임여인은 박사원과 별도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가끔 만나 정보를 교환했다.
‘며칠 전에 장비장군이 그 마을에 들렀다고 합니다.’
‘장비장군 … ?’
‘예, 무산의 산골마을에서는 포수마을두령을 그렇게 부릅니다.’
포수마을두령 장비장군은 호족 장성대영감의 셋째아들이다. 서자庶子출신이었으나 장성대영감은 적자嫡子인 두 아들과 함께 정실正室아들로 입적入籍시켰다. 장성대영감은 셋째아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는 함경도 사나이답게 뼈대가 굵고 키가 6척尺이나 되었으며, 무게 2관貫(10Kg)의 외발창으로 맷돼지를 일격一擊에 죽이고, 그의 강궁强弓은 50m 거리에서 대호大虎를 쓰러뜨렸다. 그는 또 언제나 앞머리에 서서 외적外敵들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장성대영감은 적자들과 차별없이 장비장군을 대우했으나 장비장군은 별로 부친을 따르지 않았다. 집안의 분위기가 역시 눈에 보이지 않게 서자를 차별했다. 그래서 장비장군은 함흥의 집에서 뛰쳐나가 무산의 산중으로 들어갔고 아버지의 부름에도 잘 응하지 않았다.
‘포수들이 산골에서 무엇을 하고 있더냐?’
박사원군관의 물음에 염탐꾼 서영감과 임여인이 대답했다. 그들이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앞마당에 네 마리의 맷돼지시체들이 뒹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는 백관(400Kg)이나 될 것 같은 대물이었다. 마을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와글거렸다. 인근의 마을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잔치판이 벌어졌다. 마당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맷돼지고기가 통째로 막대기에 꿰어 구어졌다. 모닥불 옆 멍석에는 장비장군을 중심으로 열서너 명 쯤 포수들이 술판을 벌였는데 그들은 모두 짐승껍질의 옷을 입고 털투성이다. 장비장군의 수염은 소문대로 삼국지의 장비의 수염 같았다. 산골마을 사람들이 그동안 수확한 수수, 옥수수를 가지고왔다.
‘포수들이 그 곡식을 수탈收奪했느냐?’
‘포수들이 그 곡식을 가지고갔으나 그 대신 맷돼지고기를 나눠주었습니다.’
‘고기와 곡식을 바꿨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어떻게 바꿨지? 곡식값을 제대로 쳐주는 것 같더냐?’
그 거래는 어느 여인이 도착한 다음에 시작되었다. 30대의 여인인데 양반의 옷차림이고 무서울 정도로 미색美色이다. 여인은 장비장군의 애첩愛妾이며 포수마을살림을 맡고 있다. 여인이 옷소매를 걷어부치더니 지시를 내렸다. 고기 몇 관에 수수 몇 말을 받으라는 지시고 수수의 질과 고기의 부위까지 따졌다. 도성都城의 장터에 비하면 곡식값은 후하게 치고 고기값은 싸다. 거의 공짜로 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수탈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무산의 포수마을 사냥꾼들이 산골마을을 덮쳐 곡식을 약탈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염탐꾼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포수들을 환영했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아주 후한 값으로 곡식과 고기를 바꿨다고 좋아했다. 가난한 그들에게 고기는 귀중한 영양분이다. 산골마을 사람들이 옥수수로 만든 술을 포수들에게 대접했으나 그건 강요가 아니다. 포수들이 맷돼지를 잡아준 사례다.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맷돼지는 무서운 해수害獸다. 그놈들은 하룻밤 사이에 논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맷돼지가 덮친 감자밭은 씨감자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산골마을 사람들은 포수마을에 사람을 보내 맷돼지를 잡아달라고 호소하고 포수들이 맷돼지를 소탕疏宕했다. 산골마을 사람들이 맷돼지를 계곡으로 몰아넣고 포수들은 계곡에 들어온 맷돼지를 창과 활로 잡았다. 새끼를 거느린 암컷을 놓아주고 모두 여덟 마리를 잡았다. 그래서 잔치판이 벌어지고 술대접을 한다. 포수들이 맷돼지 두 마리를 잔치판에 희사했기 때문에 인근마을 사람들까지 맷돼지고기를 포식飽食했다. 잔치판에는 장비장군과 여두목이 나왔다. 장비장군의 애첩을 사람들은 여두목이라고 불렀다.
‘저기 저 소금장수를 데리고 와!’
여두목이 지시했다. 소금장수로 변장한 염탐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여두목은 매서운 눈빛이었으나 말은 부드러웠다.
‘잔치판에 와서 구경만 하고 있을거요? 고기를 들고 술잔도 비우시오.’
여두목이 그들을 부른 것은 소금을 거래하기 위해서다. 소금이 천일염이라는 걸 확인하고 값을 물었다. 본디 소금값은 없다. 장소와 때에 따라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도성에서 한 말에 반 냥하는 값이 산중에서는 열 냥이 되기도 한다. 여두목은 염탐꾼이 부르는 값으로 소금을 두 말 샀다.
그런데 산골마을사람들의 잔치판이 끝날 무렵 화전민 세 명이 화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전날밤에 불곰이 화전민마을을 덮쳐 열 살 난 사내아이를 끌고갔다고 호소했다. 장정들이 곰을 추적했으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쫓겨왔다.
‘장군님, 불곰은 지난해에도 마을을 덮쳐 두 사람을 잡아먹었습니다. 그놈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불곰들은 늦가을이 되면 그런 짓을 했다. 화전민마을뿐만 아니라 산기슭마을까지 내려와 인축人畜을 해쳤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겨울잠을 잘 동굴이나 토굴에 들어가야만 했는데 그전에 기름진 먹이를 잔뜩 먹어두어야 동면을 할 수 있다.
‘장군님, 그 곰은 지난해 우리가 쫓던 쪽귀일 것입니다. 그 때 잡았어야 했는데 ….’
포수마을 사냥꾼들이 열흘 동안이나 추적을 했으나 잡지 못한 곰이다. 곰이 원시림 깊은 곳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사냥꾼들은 첫눈이 내리면 곰사냥을 포기한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동면할 동굴을 찾지 못 한 곰은 얼어죽는다. 떠돌이가 되어 눈바람속을 해매고다니다가 얼어죽게 된다. 그래서 첫눈이 내리면 곰사냥을 포기한다. 그 때도 그렇게 될 줄 알고 사냥을 포기했는데 잘못이었다. 곰들 중에는 동면을 하지 못 해도 얼어죽지 않고 살아가는 놈들이 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불사조不死鳥 같은 곰이 있다. 그런 곰들은 겨울 내내 마을 주위를 돌아다니며 살육을 했다. 겨울에는 모든 동물들이 숨어버리므로 먹이가 없어 인가 주변을 맴돌다가 인축을 해친다. 그래서 산골마을 사람들은 동면을 하지 않은 떠돌이곰이 발견되면 마을을 버리고 피난을 했다.
‘안 돼, 이번 겨울에는 그놈을 잡아야만 해!’
장비장군이 술잔을 내던지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곰사냥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소금장수 염탐꾼에게도 경고했다.
‘너희들도 빨리 산에서 내려가! 곰한테 찢겨죽기 싫으면 소금보따리 따위는 버리고 산을 내려가!’
서영감이 조용하게 대꾸했다.
‘장군님, 야수野獸들도 심마니와 소금장수는 잡아먹지 않습니다. 소금장수들 중에서 야수에게 잡혀먹힌 사람은 없습니다.’
장비장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영감과 임여인을 쳐다보았다.
(예사 사람이 아니군.)
심마니들 중에도 야수들이 울부짖는 산중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포수마을 사냥꾼들은 아직 날이 밝지도 않은 새벽에 마을을 떠났다. 전날밤 술에 취한 사람도 한 명 빠짐없이 나섰다. 군대보다 더 엄격한 단체생활을 한다. 소금장수들도 그날 하오에 마을을 떠나 박사원군관과 합류했다. 그들은 화전민마을을 조사하기로 했다. 화전민마을에는 노비들이 살고, 강도짓을 했거나 살인자들도 있다. 노비는 조선사회에서 엄격하게 관리했다. 도망친 노비는 사회제도를 어지럽힌다. 하물며 범죄자들이 숨어있다면 위험스러운 집단이다. 불온세력이 꿈틀거리는 터에 화전민마을을 그냥 둘 수 없다. 산간마을 사람들은 화전민들이 산 중복中伏에 살고있으며 산간마을에서 50리 쯤 떨어진 곳이라고 말했으나 그건 험한 산길이다. 일행은 하루종일 걸어 다음날 밤에 화전민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정에 도착했다.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동굴을 찾아 손도끼로 나뭇가지를 잘라 입구에 문을 만들고 잡풀을 엮어 거적을 드리웠다. 눈비는 막을 수 있다. 동굴 안에 모닥불을 피우면 웬만한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초저녁에 늑대들이 울부짖었다. 우우웅! 하고 구슬픈 울음소리가 나면 반대편 산정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린다. 또 다른 산정에서도 화답한다. 한밤중에 웍웍거리는 곰의 고함이 들렸다. 살인곰인데 추위에 신경질이 되어있다. 새벽무렵에는 서쪽 마천령 산줄기에서 범의 포효가 들렸다. 산날을 타고 영지를 순찰하던 범이 침입자에게 경고를 한다.
다음날 아침 소금장수 서영감과 임여인은 동굴에서 나와 맞은편 산중복에 있는 화전민마을에 갔다. 통나무기둥에 흙돌로 벽을 치고 잡초로 지붕을 덮은 토막집들이 대여섯 채 처마를 맞대고 붙어있다.
토막집에는 인기척이 들렸으나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소금장수가 왔다고 한참동안 고함을 지르자 노인과 아이들이 나왔다. 누더기에 짐승털을 걸쳤는데 모두 뼈가 앙상하다. 소금푸대를 풀어놓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왔다. 소금장수는 소금 외에 거울, 빚 등 잡동사니를 가지고 다녔으나 그런 건 이 마을에는 필요없는 물건이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소금장수를 보면서 입을 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면서 거래를 트려고 했으나 그들은 소금을 사려고 하나 돈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곡식과 바꾸자고 했더니 옥수수를 내놓았다. 여물지도 않은 옥수수다. 비참하다. 죽지 못 해 사는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10리 쯤 떨어진 마을에서는 마을에 들어서자 울음소리가 났다. 곰이 아이를 물고갔다고 하며 여인들이 울고있었다. 화전민마을에서는 가장 큰 마을인데 토막집이 스무 채 쯤 있고 50여 명이 살았다. 소금장수는 촌장집에 초대되었다.
‘사람들이 산에 들어오기 전에 어디서 살았냐고? 그건 알 수 없어. 그저 살 수가 없어 산중에 들어왔으니까. 농사일을 거들며 같이 사는 거지. 어디서 온 누구인지는 알 필요도 없어.’
노비나 범죄자들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구별해낼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범죄자가 있어도 잡아갈 관리가 없다. 무산에는 관아가 있고, 고을수령도 있지만 그건 그저 형식적이고 고을수령은 첩첩산중疊疊山中에 사는 화전민에게는 관심도 없다. 지난해에 화전민마을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외지에서 범죄자 두 명이 들어와 여인을 겁탈하고 여인의 남편을 죽였는데 그들은 잡혔다. 관아의 관리가 잡은 게 아니라 포수마을 장비장군이 피해자의 호소를 듣고 달려와 잡았다.
‘그들 범죄자가 어떻게 되었냐고?’
즉결처분卽決處分이다. 범인을 관아官衙에 넘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산림으로 끌고가 칼로 목을 쳤다. 산림의 법이다.
산간마을이나 화전민마을 노인들이 법이나 관아가 없는 원시림에는 예부터 전해진 자연의 법이 있다고 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死刑, 도둑은 수족절단형手足切斷刑, 강간, 간통은 아예 성기性器를 잘라버린다. 거짓말은 혀를 잘랐으나 너무 가혹하다고 매를 치고 전 재산을 몰수하여 피해자에게 돌려준다. 화전민마을 촌장은 장비장군이 산림의 법에 따라 범인들의 목을 쳤다고 했다. 심마니의 산삼山蔘을 훔친 포수는 손가락 두 개를 잘랐다. 장비장군은 포수들에게 엄격했으며 산삼을 훔친 포수는 손목을 자르려고 했으나 피해자가 용서를 했기 때문에 손가락을 잘랐다. 장비장군은 화전민마을 사람과 산간마을 사람들의 분쟁도 조정한다. 몇 년 전에 화전민들이 계곡의 물을 막아 화전으로 돌렸는데 산골마을에서 항의를 했다. 산골마을 사람들이 괭이와 삽을 들고 화전민마을에 쳐들어 왔다. 그때도 화전민마을 사람들의 호소를 듣고 장비장군이 달려왔다. 산골마을 사람들의 말대로 화전민마을 사람들은 성姓이 없는 천민賤民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그들을 죽이거나 추방시킬 수는 없다. 평민 천민을 따지는 것은 평지에서나 있는 일이고 무산의 산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평민, 양민, 천민 하지만 어떤 차이가 있는가? 모두가 양반사회에서 학대받는 사람들 아닌가. 장비장군은 계급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비도 차별하지 않는다. 도망친 노비라는 걸 알아도 모른 체 한다. 장비장군과 여두목은 산골마을의 분규紛糾를 조정했다. 화전민마을에서 물줄기를 막은 건 잘못이지만 화전을 경작耕作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물줄기를 막아도 산골마을에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 일에서 장비장군은 화전민마을의 편을 들었으나 화전민에게도 더 이상 화전을 만들지 못 하게 했다. 나무를 마구 잘라 불태우면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
무산 산림의 산골마을과 화전민마을을 내사內査했던 특별감사대는 포수마을을 감사하기로 했다. 책임자 박사원군관은 신중한 사람이며 은밀하게 내사를 했기 때문에 산사람들은 눈치를 채지 못 했다. 그때까지의 내사 결과로 포수마을은 무산 산림의 모든 마을의 중심이었으며, 포수마을 두령 장비장군은 사실상 그 광대한 산림을 다스리는 영주領主다. 그는 지방관아의 수령 보다 더 강력한 통치를 했으며 범죄인을 철저하게 다스렸다. 박사원군관은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멀리 포수마을을 내려다보는 바위산 정상에 은신처를 만들었다. 큰 바위들 틈을 흙과 돌로 막고 감시구멍을 뚫었다. 나뭇가지와 풀로 지붕을 덮고, 바위밑을 파 출입구를 만들었다. 소금장수 서영감과 임여인도 포수마을에 들어가지 못 하게 막았다. 아래쪽의 나무꾼마을에서는 열서너 명의 나무꾼들이 관아에서 필요한 목재를 자르고있었으나 불곰이 설쳐서 일을 중단했다. 포수마을은 산 중복일대에 50채가 넘는 집들이 있다. 아주 큰 집은 50칸이 넘을 것 같았다. 사랑채, 행랑채를 갖추고 있으며 넓은 마당도 있다. 두령 장비장군의 집이다. 마을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창이나 활을 가진 사람이 많다. 마을 어귀의 대장간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오르고 창이나 칼을 든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화승포火繩砲도 만든다는 소문이다. 정오께 열서너 명의 사람들이 마을 앞마당에 모여 마을에서 나갔다. 활과 창을 가진 사람이 반반 쯤 된다. 맨 나중의 사람은 화승포를 가지고 있다.
‘사냥하러 나가는 것 같아요.’
강원도포수 이경학이 말했다. 그들은 마을 동쪽의 산림으로 들어갔다.
‘불곰을 잡으려고 합니다.’
전날밤 그 산림에서 불곰이 울부짓고있었다. 겨울잠자리를 찾지 못 한 식인食人불곰이다. 화전민마을에서 어린아이를 물고간 놈이다.
박사원군관과 이경학포수가 산날을 타고 그쪽으로 갔다. 포수마을 사냥꾼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몸을 숙이고 바위틈을 따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멀리서 곰사냥을 구경했다. 포수마을의 힘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사냥꾼들이 곰을 포위했다. 강원도에서 곰사냥을 할 때는 주력主力이 되는 포수들이 적절한 곳에 목을 잡고 몰이꾼들이 곰을 그쪽으로 몰아넣었다. 이미 유리한 지세를 차지한 사냥꾼들이 집중적으로 곰을 공격하여 잡는다. 그런데 무산포수들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 곰의 발자국을 추적하지도 않고 몰이사냥도 하지 않는다. 강한 바람이 불어 낙엽이 날려올라갔으므로 발자국추적이 어렵기는 하나 그렇다고 열서너 명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산을 포위하여 곰을 잡는다는 것은 무모하다. 곰이 도망갈 길은 막았으나 너무 위험하다. 사냥꾼들은 약 20m의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는데 곰은 한 사람을 골라 공격할 수 있다. 몰이를 당하는 곰이 눈치를 채고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려면 포위한 사람들의 한쪽을 뚫어야 한다. 포위당한 곰은 포위한 사냥꾼 한두 사람을 죽여야 탈출할 수 있다. 그래서 포위사냥은 위험하다. 사냥에 참가한 포수 한 사람 한 사람이 곰과 1 : 1 대결을 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경학포수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곰이 큰 바위 뒤에 숨어있다가 아래서 올라오는 포수에게 덤벼들었다. 곰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올 때는 동작이 느리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때는 화살보다 빠르다. 곰이 경사지에서 내려갈 때는 몸무게를 이용하여 스키를 타는 것처럼 발바닥으로 밀고 내려간다. 마치 스키를 타는 요령과 같다. 급하면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썰매를 타는 것처럼 내려꽂히듯 질주疾走하여 적을 덮친다. 그게 무섭다. 곰이 그렇게 질주하면 산사태가 일어난다. 흙과 돌이 아래쪽으로 쏟아지면서 곰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저런 놈 보게.’
이경학포수가 바위틈에서 뛰쳐나와 사냥꾼에게 덮쳐드는 곰을 보고 놀랐다. 엄청난 놈이다. 강원도의 반달곰 따위는 어림도 없는 괴물이다. 반달곰은 고작 40관(160Kg)이었으나 그놈은 100관(400Kg)이 넘는 것 같다. 불곰이 돌진을 하자 두목이 고함을 쳤다. 두목이 곰의 목표가 된 사냥꾼에게 피하라고 소리쳤다.
곰의 공격을 받은 사냥꾼은 두목의 지시에 의해 물러났다. 그러나 등을 돌리고 도망간 것이 아니라 덤벼드는 곰을 보면서 뒷걸음질쳤다. 뒷걸음이었지만 달리는 것처럼 빨랐으며 눈이 뒤에 달린 것처럼 정확하게 물러섰다. 물러서는 사냥꾼의 좌우에 포진布陣한 사냥꾼들이 앞으로 치고나와 곰의 등 뒤에서 덤벼들었다. 창을 던졌다. 불과 7, 8m 거리다. 창이 곰의 목과 가슴에 박혔다. 곰이 가슴팍에 박힌 창을 잡아 부러뜨렸다. 곰은 잡아당기는 힘은 강하나 밀어붙이는 힘은 약해서 창을 뽑아내지 못 한다.
‘비켜!’
물러선 사냥꾼이 고함을 지르자 창을 던진 좌우의 창꾼이 물러섰다. 사냥꾼이 곰에게 돌진했다. 창이 곰의 가슴팍에 깊이 박혔다. 곰이 비틀거리면 도망치려고 했으나 등 뒤의 사냥꾼이 또 창으로 찔렀다. 집중공격을 받은 곰은 더 이상 버티지 못 했다. 으억! 소리를 치며 주저앉았다. 치명상致命傷이다. 곰이 다시 일어나지 못 한다. 강원도포수 이경학은 감탄했다. 강원도사냥꾼들은 활을 쏘아 곰의 공격력은 둔화鈍化시킨 다음에 창을 날렸는데 무산의 사냥꾼들은 활을 사용하지 않았다. 맹수들과 부딪혀 싸울 용기가 없는 사냥꾼들이 활을 쏜다고 비꼬았다. 그들은 활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화승포를 가지고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무산의 포수들은 직접 만든 세모꼴 외발창을 사용하는데 무게가 한 관(4Kg)이나 된다. 아무튼 불곰을 잡았으므로 화전민과 산간마을 사람들은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무산에는 범들이 살고 있다. 무산산림의 영주는 불곰이 아니라 동북호東北虎다. 한국 남쪽 태백산맥 일대의 산에는 조선범들이 살고, 동북부 끝 러시아와 국경지대에는 시베리아범이 살고있었으나 무산일대에는 동북호로 불리는 만주범들이 산다. 동북호는 광대한 영지를 가지고있으며 불곰은 그 영지 안에 자기들의 영지를 가지고 있다.
무산의 동북호는 100Km²나 되는 광대한 영지를 가지고있는데 불곰의 영지는 보통 20Km²를 넘지 않는다. 불곰은 범의 영지 안에 자기들의 영지를 가지고있으며 범들은 불곰의 영지를 일종의 자치지역으로 보고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범과 곰이 충돌하는데 그 때는 둘 중 하나가 죽는다. 그런데 범들이 설치고 있다. 범들의 생식기生殖期였으며 범들이 거칠어졌다. 신경이 날카로와진 범들은 자기들끼리만 싸우는 게 아니라 산림에서 움직이는 동물을 보면 덮어넣고 찢어죽인다. 그날밤에도 범들이 포효했다. 세 마리 쯤 되는 범들이 포효를 하고있었는데 산날을 타고 돌아다니며 영지를 순찰하면서 침입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범은 영지의 주인를 대왕범이다. 두 마리는 침엽수림 안에서 돌아다닌다. 한 마리는 대왕범을 경계하고, 또 한 마리는 짝을 찾아 돌아다닌다.
‘나무꾼들의 산막이 위험합니다.’
이경학포수가 걱정을 했다. 범들은 산막 주위를 돌아다녔다. 산막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고립되어있다. 그해 봄부터 열 명 쯤 되는 나무꾼들이 관아에서 쓰여질 건축용 목재를 잘라내고 있었다. 포수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나무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고 관아의 힘을 믿고 우쭐대는 나무꾼도 밉상이다. 함흥관영은 포수마을 두령 부친 장성대에게 그 나무들이 경복궁 재건에 쓰인다는 걸 알려주고 나무꾼을 도와주라고 통고했으나 장비장군은 못마땅했다. 오히려 쫓아버리지 않는 것으로 감사하라고 했다. 소금장수 서영감도 나무꾼들이 위험하다고 했다. 그 산막은 영주永住할 집이 아니므로 흙과 돌로 얽어놓았다. 그나마 반년이나 고립되었으므로 식량이 떨어지고 겨울옷이나 침구도 소홀했다. 그대로 버려둘 수는 없다. 박사원군관은 관리다. 그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군관 박사원은 의금부 소속 정5품의 관리다. 그는 무산의 산림에 있는 포수마을의 실태를 조사하라는 특명을 받았으나 단순한 임무가 아니다. 무법천지無法天地의 원시림을 평정하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박사원은 명문名門 무가武家 출신이며 그에게는 무가의 명예가 걸려있다. 그는 위험에 빠진 나무꾼과 목수들을 구하기로 했다.
‘나리, 그곳에는 미친 범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강원도포수 이경학이 말렸으나 박사원의 결심은 바뀌지 않는다. 이경학도 범과 표범을 여섯 마리나 잡은 포수였으므로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바위틈에 만든 잠복소潛伏所에서 나왔다. 산림은 조용하다. 모든 짐승들이 숨었으며 흔한 토끼나 꿩도 보이지 않는다. 심상치 않다. 정오께 앞머리에서 가던 이경학이 멈췄다.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땅을 손가락질했다. 범의 발자국이다. 엄청난 크기로 봐서 그곳을 지배하는 대왕범의 발자국이다. 찍힌지 오래되지 않았다. 일행은 몸을 숨기고 발자국소리를 죽이고 추적을 했다. 얼마 안 가서 이경학이 손을 들어올렸다. 범이다. 강원도포수들은 큰 범을 송아지만 하다고 했으나 그 범은 황소만 하다. 길고 거친 얼룩무늬 털을 입은 동북호다. 범은 산꼭대기의 바위 뒤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쪽에 신경을 쓴 탓으로 다가서는 사람들은 보지 못 했다. 범이 내려다보고있는 산 중복에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일곱 명 쯤 되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모두 지쳐있고 한 명은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 있다. 범은 그들을 노리고 있다. 숨어있다가 기습할 셈이다. 무산의 범은 사람이 많아도 주저하지 않고 덮친다. 수십 마리나 되는 적록赤鹿무리도 덮친다. 적록은 먹이고 사람도 먹이다. 올라오고있는 사람들은 입고있는 옷으로 보건데 사냥꾼은 아니고 나무꾼도 아니다. 화전민이나 산골주민도 아니다.
‘나리, 저들은 고을관아에서 나온 호벌대虎伐隊입니다.’
서영감의 말이 옳은 것 같다.
산 중복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키가 6척장신尺長身들이고 키 보다 더 큰 창을 들었다. 호벌대는 지방관아에서 호환虎患에 대비하여 만든 범사냥꾼이며 인축人畜을 해치는 범이 나타나면 즉시 출동한다. 특별히 선발하여 훈련시킨 장정壯丁들이다. 거친 사람들이며 불량자나 범죄인이 끼어있는데 관아는 눈감아준다. 호벌대는 목숨을 건 사람들이므로 아무나 지원하지 않았다. 호벌대는 괘 많은 범을 잡았으나 호환이 가장 빈번한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힘을 펴지 못 했다. 특히 무산지역이다. 산이 워낙 험하고 원시림이 광대한 무산지역에는 호벌대가 들어가지 못 하고 범사냥도 못 한다. 호벌대가 사냥을 할 때는 만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아예 범이 있는 산을 포위하고 꽹가리를 치고 고함을 지르면서 포위망을 압축한다. 그래놓고 범을 긴 창으로 찔러죽인다. 그게 호벌대의 사냥법인데 무산 같은 첩첩산중에는 몰이꾼이 없다. 그래서 겨우 열서너 명으로 몰이사냥을 하다가 몰이꾼과 호벌대가 죽었다.
그런데 호벌대가 왜 첩첩산중에 들어왔을까? 함흥에 있는 관영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경복궁 재건에 쓰일 목재가 들어오지 않았고 나무꾼과 목수들의 소식조차 끊어졌기 때문에 함흥감사가 수령에게 어찌된 일이지 알아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지방수령은 아전 한 사람과 호벌대 네 사람을 현지에 보냈고 그들은 산골마을에서 안내인 두 사람을 구해 나무꾼마을과 포수마을에 왔다. 그러나 아무리 수령의 엄명이라고 해도 그건 무모한 짓이다. 늦가을의 무산이 어떤 곳이라고 그런 짓을 하는가? 그들은 산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겨우 화전민마을에 도착했으나 마을이 비어있었다. 피난을 가버렸다. 호벌대는 비어있는 화전민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으나 이미 지쳤다. 일행을 지휘한 아전은 더 이상 걷지도 못 해 등에 업혔고 다른 사람들도 비틀거렸다.
군관 박사원이 활을 들어올렸다. 그는 무가에서는 이름난 명궁名弓이다. 거리는 약 40m. 좀 멀기는 해도 시위를 당겼다. 바람이 부는 방향과 강도强度를 충분히 감안한 사법射法이다. 범이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고 몸을 돌리는 순간, 화살이 날아갔다. 화살은 범의 목덜미 바로 밑 가슴에 꽂혔다. 범이 고함을 지르며 길길이 뛰어올랐다. 마른 풀밭에서 뒹굴다가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이경학도 활을 들어올렸으나 쏠 기회가 없었다. 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포수들은 상처입은 범은 반드시 반격을 하여 앙갚음을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범은 반격을 하지 않았다. 박사원이 바위 위로 뛰어올라가 산중복에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쳤다.
‘모두들 도망가지 말고 그대로 있어! 우리가 내려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말아!’
사실 그들은 범의 고함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도망치려고 했다. 아전을 등에 업고있는 장정은 아전을 팽개치고 뛰었고, 아전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바위 위에서 고함을 치는 박사원을 보고 멈췄다. 범도 무서웠지만 그 사냥꾼도 무서웠다. 박사원일행이 천천히 산중복으로 내려갔다. 범이 언제 어디서 덮쳐들어도 맞받이 칠 수 있게 활과 창을 꼬나 쥐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나무꾼들이냐? 포수마을 사냥꾼이냐?
풀밭에 쓰러져있던 아전이 그래도 관리행세를 한다고 박사원일행에 대고 물었다.
‘말 조심해! 이분은 의금부에서 나오신 군관님이시다.’
서영감이 고함을 지르자 아전이 엎드려 큰절을 했다.
‘나리, 날이 곧 어두워질 것입니다.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이경학의 말에 박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나무꾼들이 머물고있는 산막에 도착했다. 나무꾼들은 모두 누워있었다. 그들은 굶주리고 공포에 떨었다. 그들은 무산 원시림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꿩이나 토끼가 우굴거린다고 듣고 그것들을 잡아 식량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나무꾼이나 목수에게 잡힐 산짐승은 없다. 산골마을에서 공급하겠다던 식량도 끊어졌다. 산골마을 사람들도 굶주리고 있었고 맹수들이 설치는 원시림에 들어올 수도 없었다.
열 명의 나무꾼들 중 두 명이 죽었다. 한 사람은 보름 전 나무를 자르려고 원시림에 들어갔다가 불곰에게 잡혀먹혔고, 열흘 전에는 밤중에 산막에서 나와 용변을 하던 사람이 불범(표범)에게 끌려갔다. 그후에는 모두 공포에 질려 산막에서 나가지 못 했다. 굶주리면서도 토끼사냥도 못 하고 땔감도 구하지 못 해 추위에 떨었다. 그러나 반죽은 상태의 그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우선 사냥을 해서 먹여야 한다. 박사원의 지휘로 사냥꾼과 호벌대가 사냥을 했다. 노루 두 마리와 토끼 세 마리를 잡아 산막 안에 모닥불을 피우고 구웠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산막 안이 환해졌다. 고기 익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날 하오 범잡이에 나섰던 포수마을 사냥꾼들이 그 연기를 보았다.
‘어느 놈들이 저런 큰 불을 놓았느냐?’
범사냥을 지휘하던 장비장군이 고함을 쳤다.
‘나무꾼들인 것 같습니다. 되돌아간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장비장군이 부하를 시켜 알아보라고 하고 범사냥을 계속했다. 그들은 그날 아침 범의 발자국을 발견하여 추적을 하고 있었는데 범은 비틀거렸다. 핏자국도 발견되었다. 사냥꾼들은 그 범이 암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가 다른 수범에게 물렸다고 했으나 장비장군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범은 가끔 마른 풀밭에 누워 쉬었는데, 상처가 동족에게 물린 것이라면 핏자국이 넓게 퍼져야 하는데 핏자국은 점이었다. 화살에 맞은 상처다. 장비장군이 예상한 것처럼 범은 멀리 가지 못 했다. 범이 사냥꾼들을 발견하고 으르렁거리면서 일어났으나 덤벼들 힘이 없었다. 사냥꾼이 창을 날렸다. 장비장군이 범의 가슴팍에 꽂힌 화살을 뽑아 조사했다. 예사 화살이 아니다. 관아에서 군사용으로 만든 강철화살이다. 화살도 화살이지만 급소 깊숙이 명중시켜 범에게 치명상을 입힌 사수의 솜씨가 놀라웠다.
‘어느 놈이냐! 이 놈이….’
며칠 전에도 그 화살에 맞아죽은 적록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관아에서 나온 자가 인근에 돌아다닌다는 말이 된다. 무산의 원시림에는 보통 사냥꾼은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오더라도 포수마을에 들러 사냥허가를 얻어야 한다. 관아에서 나온 자라고 해도 원시림의 지배자인 장비장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림 안에서 불을 피워놓고 잇던 자들을 살펴보러갔던 장비장군의 부하가 돌아왔다.
‘뭐라? 20명 가까운 놈들이 모여있다 ….’
‘녜, 나무꾼도 있고, 호벌대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도 서너 명 있는데 그중에는 산골마을에서 만난 소금장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고약한 놈들이 있나.’
장비장군이 대로大怒했다. 그는 마을에 돌아가 비상경계령非常警戒領을 내렸다. 싸울 수 있는 장정들은 모두 무기를 가지고 마을 앞마당에 모였다. 모두 40명이나 되었으며 마을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50여 명이 넘는다. 그들은 산골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평지平地 양반놈들을 쫓아내자고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시퍼렇게 날이 선 창과 칼을 휘두르고 있었으며 마을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들 장정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가 흥분하여 평지의 양반놈들을 쫓아내야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평지 양반사회에서는 산골에 사는 포수들을 천민賤民으로 간주看做한다. 짐승들과 함께 짐승들처럼 사는 포수는 소나 돼지를 잡는 백정白丁과 다름없는 천민이라고 했다. 그들 양반들은 포수를 집안 하인처럼 마구 대하고 자기들 앞에 무릎을 꿇렸다. 평지 양반들이 차츰 산림까지 세력을 뻗어 산골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명목名目으로 과세課稅를 하고 노역勞役을 시켰다. 그래서 산기슭에 살던 산골사람들은 마을을 버리고 산중복에 올라와 화전민이 되었고, 그 일부는 포수마을에 들어왔다. 포수마을에는 극심한 신분차별 때문에 평지에서 살지 못 한 백정이나 역부 등 천민들도 들어왔다. 포수마을에는 신분차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떳떳하게 살았다. 노비들도 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친 노비는 포수마을에서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아무도 신분을 캐려고 하지 않는다. 포수마을 장정들이 평지 양반을 몰아내자고 고함을 지르고 있을 때 장비장군의 애첩인 여두목이 그들을 제지했다. 10여 년 전에 함흥에서 기방妓房을 경영했던 그 여인은 매우 영리하다. 여두목은 아침부터 어두워진 하늘을 보면서 평지사람들은 제발로 물러날 것이니 싸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럴 것 같았다. 겨울이 갑자기 닥쳐들고 있었다. 강한 바람이 불고있었다.
한국 북단北端의 무산의 원시림은 겨울이 되면 죽음의 나라로 변한다. 폭설이 천지를 뒤덮고 폭풍이 아람들이 나무를 쓰러뜨린다. 특히 북쪽에서 한파가 밀어닥치는 산중에서는 오직 무산의 포수들만 살 수 있는 동토凍土의 나라다. 포수마을 여두목이 예상했던대로 박사원일행은 위기에 빠졌다. 그들은 나무꾼이 지어놓은 산막으로 갔으나 산막을 덮은 마른풀로 엮은 지붕이 날아가버렸고 통나무로 짠 문도 부서졌다. 모닥불도 꺼졌다.
‘아이고 ….’
좁은 산막에서 몸을 붙이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빨리 산막에서 나가자고 아우성을 쳤으나 박사원이 호령을 했다.
‘이런 못 난 놈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일을 못 해. 사람 열 명이 모이면 산도 움직인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박사원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산림으로 들어갔다. 나무꾼들이 잘라놓은 나뭇가지를 쳐서 산막으로 끌고왔다. 톱과 도끼를 가진 목수들이 땔감을 장만했다. 관솔에 불이 붙자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불어닥치는 바람이 화염火焰을 높이고 퍼붓는 눈도 불을 끄지 못 한다.
‘됐어!’
불이 붙자 사람들은 생기生氣를 되찾았다. 주변의 나무를 잘라 지붕을 덮었다. 불기운으로 주변의 땅이 녹았으므로 그 진흙으로 산막을 수리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막이 담도 쳤다. 흙벽돌은 추위에 이내 얼어붙어 튼튼한 방풍벽이 되었다. 폭풍과 폭설은 밤 새 계속되었으나 사람들은 견딜 수 있었다. 죽은 앞에서 단결된 사람들의 힘은 크다. 다음날 하오까지 파괴된 산막이 보수되었고, 또 다른 집을 한 채 만들었다. 나무꾼과 목수들이 집을 만들고 수리하는 동안 이경학은 호벌대를 데리고 나가 적록 두 마리를 잡아왔다.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무리를 발견하여 잡았다. 황소만한 사슴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의 식량으로 충분하다.
군관 박사원의 강한 의지와 적절한 지휘로 일행은 위기를 넘겼다. 그들은 북쪽에서 갑자기 쳐들어온 동장군의 선봉대를 정면에서 맞받아쳤다. 꺼졌던 불을 되살렸다. 폭설과 폭풍이 날려버린 모닥불을 되살렸다. 박사원일행은 산막으로 들어가지 않고 진흙벽돌로 쌓아올린 흙돌집에서 버텼다. 흙벽돌집은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덮은 지붕으로 눈바람이 치고들어왔으나 활활 타는 모닥불의 열기가 추위를 막아주었다. 일행은 그 불로 사슴고기를 구워먹고 기름진 고기 덕분에 사람들의 기력氣力이 되살아났다. 등 따숩고 배 부르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얼어죽거나 굶어죽을 염려는 없다. 일행은 다음날에도 산림에 들어가 나뭇가지를 잘라 지붕을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등줄기나 넝쿨로 얽어묶었다. 땅굴을 파서 출입구도 만들고 편안하게 발을 뻗을 수 있는 잠자리도 마련했다.
그런데 그날 포수마을에서는 장로회의가 열렸는데 그때 밤나무숲에서 일어난 산불이 어떻게 되었는지 순찰하러간 장정들이 돌아왔다.
‘산불이 아니라는 말인가?’
‘산불이 아니라 나무꾼과 호벌대가 큰 모닥불을 놓았습니다.’
‘그 바람과 눈발속에서 불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장정들은 더 놀라운 보고를 했다. 불이 까진 자리에 마을이 하나 들어섰다는 말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큰 흙돌집이 생겼다고 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잔치를 벌렸습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놀라운 보고가 또 들어왔다. 적록을 잡으러갔던 사냥대가 빈손으로 돌아와 누군가 먼저 사슴을 잡아갔다고 보고했다. 붉은사슴은 적록赤鹿 또는 마록馬鹿이라고 부르는데 말처럼 큰 사슴이다. 그래서 그 사슴은 포수마을의 겨울양식이 되었다. 적록은 만주의 장백산맥에서 살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무산으로 넘어와 생식生殖을 하고 날이 풀어지면 만주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무산의 포수들은 적록을 무산에 머물게 하면서 두고두고 사냥을 한다.
포수마을 사냥꾼들은 무산에 들어온 적록이 새끼를 낳은 다음 이듬해 봄에 새끼를 데리고 만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 짐승들의 멸종을 막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산사람들의 지혜다. 그런데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이 적록이 넘어오는 길을 차단하고 죽였다면 자연의 섭리를 지키면서 사는 자기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적록이 무산으로 들어오지 못 하고 되돌아갈 염려가 있다. 영원히 무산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했느냐?’
장비장군이 고함을 쳤다.
‘그들은 열 명 쯤 되는 것 같습니다. 활과 창으로 적록을 사냥하여 두 마리를 잡아갔습니다.’
그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만하다. 현장에서 수거한 화살이 전날 범의 가슴에 박혔던 화살과 같은 것이고 긴 창은 호벌대의 창이 분명하다.
‘산림 안에서 함부로 불을 놓고 흙돌집을 지었다는 그놈들이야!’
그놈들이 잔치를 벌려 구워먹은 고기가 붉은사슴인 것도 분명하다.
‘이 나쁜 놈들!’
장비장군이 대로했다. 나쁜 놈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했다. 포수마을의 사냥꾼을 총동원하여 포위하면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 무산의 원시림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사람이 행방불명되어도 폭풍이나 폭설을 만나 죽거나 맹수들에게 잡혀먹였다고 간주된다. 설사 무산에 들어온 사람들이 관아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해도 산림에서 길을 잃고 해매다가 얼어죽었다고 보고하면 그만이다. 죽인 사람들의 시체는 내버려둬도 굶주린 늑대나 이리가 깨끗이 처리해준다. 뼈까지도 먹어버린다. 장비장군이 포수마을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마을이 긴장되고 살기가 팽배했다. 장비장군이 진두지휘를 하려고 하였는데 그의 애첩 여두목이 그를 말렸다. 여두목은 그동안 침입자들의 동태를 상세하게 조사했다.
‘안 돼! 그들을 죽이면 안 됩니다. 그들은 지방수령 따위가 보낸 염탐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함흥감영에서 보낸 자들인가?’
‘아니요, 더 높은 곳에서 보낸 암행조사관인 것 같아요. 어쩌면 조정朝廷에서 직접 보낸 자들일지도 모릅니다.’
여두목은 포수마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포수마을의 안살림을 도맡았으며 성미가 급해 가끔 실수를 하는 장비장군을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여두목은 함흥의 호족 장성대영감의 집안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여인이었으며 무산댁으로 불리면서 시부모의 귀염을 받고 있었다. 무산댁은 시댁에 산삼, 녹용, 모피를 가지고가서 정실부인에게도 문안을 드리기 때문에 정실부인도 박대薄待하지 못 했다. 무산댁은 그해 봄 장대감의 환갑잔치에 참석했는데 부친의 환갑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장비장군을 온 집안사람들이 규탄糾彈했다. 장대감도 대로하여 고함을 질렀으나 무산댁이 장비장군이 사냥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고 들러대어 시아버지의 노여움을 풀었다. 장대감도 겉으로는 화를 냈으나 내심으로는 그 아들을 좋아한다. 유약柔弱한 적자들에 비해 그 아들은 자기 피를 이어받은 무인武人이었기 때문이다. 장대감이 무산댁을 은밀히 불러 대원군이 집권했다는 걸 알려주고 대원군이 지방의 호족과 양반들을 좋지않게 생각하여 감시를 함으로 무산에 돌아가면 장비장군에게 몸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영리한 무산댁은 시아버지의 당부를 명심했다. 무산댁이 포수마을에 들어가면 여두목이 되었는데 그녀는 염탐꾼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장비장군을 말렸다. 직접 그 사건을 처리하려고 했다. 여두목은 우선 출동명령을 취소하고 장정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마을의 대장간에서 무기를 만드는 걸 중지시켰다. 또한 마을 뒤에 있는 화약방에서 화승포와 화약을 감췄다. 민간에서 화약을 다루는 건 대역죄大逆罪로 몰릴 위험이 있다. 마을에 있는 노비출신도 모두 피난을 시켰다. 포수마을은 산림 여기저기에 사냥집을 만들었는데 노비출신 사냥꾼들은 피신시켰다. 장비장군은 신분제도를 싫어했으며 노비출신도 차별하지 않았는데 관아에 그 일이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 노예제도는 조선 신분사회의 근간인데 포수마을에서 그 제도를 무시한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여두목은 완벽한 조치를 한 다음 흙돌집으로 박사원을 찾아갔다.
박사원일행은 흙벽돌집 주변에 나뭇가지를 쌓아올려 방책防柵을 만들었다. 그들 중에는 숙련된 염탐꾼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벌써 포수마을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지했다. 그래서 박사원은 나무창을 만들어 나무꾼과 호벌대를 훈련시켰다.
며칠동안 계속된 폭풍과 폭설이 좀 누그러질 무렵 뜻밖에 포수마을 여두목이 찾아왔다. 박사원은 크게 놀랐으나 만나보기로 했다. 여인은 마을장로 한 사람을 앞세우고 마을여인 두 사람을 거느리고 있었다.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호위護衛를 했다. 여인은 젊고 요염妖艶하다. 표범껍질로 만든 겉옷을 걸쳤으나 양가良家 아낙네의 옷차림이고 족두리를 썼다. 여인은 흙돌집 주변에 쳐놓은 방책을 보고, 장정들이 나무창을 들고 있는 걸 보고도 모른 체 하며 부드럽게 웃고있었다. 예사 여인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포수마을 촌장의 안사람입니다. 촌장이 사냥을 나갔기 때문에 그 대신 나리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여인은 선물을 내놓았다. 떡과 술, 두부와 도토리묵과 산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굴비와 북어가 있었다. 양반집에서나 부잣집에서 내놓는 소주를 곁들였다.
‘뭣들 하느냐? 어서, 나리께 술을 올리지 않고….’
여인이 얌전하게 인사를 한 다음 데리고온 여인들에게 술시중을 들게했다. 박사원이 술잔을 받았고 여인이 전한 포수마을 초청을 받아들였다. 포수마을에 직접 들어가 조사해보기로 했다. 박사원은 다음날 정오께 포수마을에서 보낸 장정들의 안내를 받아 포수마을에 들어갔다. 포수마을은 험준한 바위산의 중복에 있었다. 함경산맥의 지맥支脈이 무산 원시림 안으로 깊숙이 뻗은 곳이다. 포수마을은 모두 세 개인데 큰 바위들 틈에 지어졌기 때문에 산 밑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으나, 마을에서는 아래쪽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마을 전체가 천연天然의 요새要塞다. 여기저기 감시소가 배치되어 있었다. 지방 관영 정도의 병력으로는 쳐들어갈 수 없을 정도다. 마을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평화로웠다. 마을사람들은 산짐승의 껍질을 손질하고 있었는데 화전민마을이나 산간마을의 사람들과 달리 얼굴에 기름끼가 흘렀다. 짐승껍질 옷을 입어 추위를 타는 것 같지도 않다.
마을사람들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일부 마을사람 특히 젊은 장정들의 태도에 적대감이 배어나왔다. 그들은 가난한 산골사람들을 억누르는 관리나 양반을 좋아하지 않았다. 산골사람을 천민으로 하대下待하며 반말을 쓰고 하인처럼 대하는 양반들을 싫어했다. 그들은 평소에 그런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으나 박사원은 적의敵意를 느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박사원의 조사 여부에 의해 포수마을은 반역叛逆의 마을로 간주될 수도 있다. 포수마을 촌장은 반역도당徒黨의 수괴首魁로 처벌될 수도 있다. 국법國法은 역적逆賊에 대해서는 가혹苛酷하게 처벌한다. 촌장인 장비장군이 역적으로 몰릴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장비장군은 국법을 무시하고 죄인을 즉결처분하거나, 손목을 자르고, 재산을 몰수하는 등 왕노릇을 했다. 그는 국법이 정한 신분제도를 무시하고 노예나 범법자를 숨기고, 산골사람들을 징발徵發하여 노역勞役을 시켰다. 마을사람들도 자기들이 역적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제발로 마을에 걸어들어온 관아의 염탐꾼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후환後患을 없애기 위해 그들을 감쪽같이 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사원은 여두목의 안내를 받으며 촌장의 사랑방에서 장비장군과 대좌對坐했다. 장비장군은 양반의 의관衣冠을 갖추고 있었으며 박사원도 그를 양반으로 대접했다. 그의 부친 장성대는 10여 년 전 함흥관영과 힘을 합쳐 만주와 조선의 국경을 넘나들던 소수민족 침략자들을 물리친 공으로 종3품 대접을 받고있었으니 그 아들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소문대로 장바장군은 6척거구尺巨軀였으며 날카로운 눈매와 거친수염의 풍모風貌다. 그는 시무룩한 표정이고 별로 말이 없었으나 그가 자기를 마을로 유인하여 모살謀殺할 위인爲人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음흉陰凶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다. 박사원이 자기의 신분을 감추지 않고 들어냈다. 자기가 조선의 북방경비를 살피고 무산의 산림에 사는 백성이나 화전민, 포수마을의 실태를 조사하는 칙명勅命을 받고나왔다고 실토했다.
‘포수마을의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
장비장군의 눈빛이 반짝이고 방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성미가 불같은 사람이라 고함을 지르며 칼을 빼들지도 모른다.
장비장군의 주변에는 과격한 젊은이들이 있으며 그들에게는 일전불사一戰不辭의 기운이 있었다. 그들은 박사원과 장비장군이 대좌를 하고있는 사랑방 주변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때 여두목이 나섰다. 여두목은 술상을 차려오게 하고 손수 들고들어가 부드러운 웃음을 웃으며 두 사람에게 술을 권했다.
‘나리, 그렇게 하시지요. 별동別棟에 나리가 묵을 방을 마련했으니 천천히 유하시며 어려운 우리들의 실정을 살펴주십시오.’
여두목이 호피虎皮 한 장을 박사원에게 보여주었다.
‘이 건 나리께서 전날 활로 쏘아죽인 범인데 우리마을 정영감이 무두질을 했습니다. 정영감은 범껍질을 다루는 명인名人입니다. 정영감이 다룬 범껍질은 진상進上되어 나라님의 옥좌玉座에 깔려있다고 합니다.’
박사원이 웃으면서 장비장군에게 물었다.
‘그 범은 내가 쏜 화살에 맞기는 했으나 죽지 않고 도망갔는데 누가 그 범을 잡았소?’
장비장군도 웃었다.
‘내가 마지막 숨을 끊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 범은 죽었을 것입니다. 화살이 가슴 깊숙이 박혔지요.’
두 사람은 범사냥 얘기를 했고 서로 상대의 활솜씨를 찬양했다. 그들은 또한 술잔을 주고받으며 외적들과 싸운 얘기를 했다. 박사원은 10여 년 전에 함흥관영에서 근무하면서 장성대장군과 함께 국경을 침범한 외적을 토벌한 적이 있었다. 사랑방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장비장군의 호탕豪宕한 웃음소리를 들었고 박사원의 통쾌한 웃음소리도 들었다. 박사원은 포수마을에서 열흘 동안이나 머물렀다. 그는 장비장군과 함께 맷돼지사냥을 했다. 그 사냥에는 포수마을 사냥꾼들과 박사원일행이 모두 참가했다. 호벌대도 나무꾼들도 참가했기 때문에 모두 1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협동하여 큰 산 하나를 포위하여 여섯 마리의 맷돼지와 노루 네 마리를 잡았다. 사냥이 끝나자 잔치가 벌어졌는데 소문을 듣고 화전민과 산골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장비장군은 사람들을 잘 대접하고 돌아갈 때 짐승고기를 선물했다. 박사원은 첩첩산중에서 짐승들과 함께 사는 무산사람들의 단결과 우애를 봤다. 박사원은 포수마을에서 지낸 며칠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포수마을 사람들은 좀 거칠기는 하나 순진하다. 포수마을 사람들은 관가나 양반사회처럼 겉다르고 속 다른 거짓이 없다. 서로 헐뜯고 속이는 음모도 없다. 처벌을 받아야할 사람은 포수마을 사람이 아니라 관가와 양반사회다.
<사냥꾼이야기 - 1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