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군이야기 - 15 산림山林코끼리 외 2편 <사냥군이야기 끝>
세기世紀의 사냥꾼
<사냥꾼이야기 15권> 163화 - 165화 <끝>
홍학봉洪學奉, 박춘호朴春浩 기記, 김왕석 역譯, 이천만李天滿 윤색潤索
<목차>
163. 산림山林코끼리/ 164. 영장류靈長類동물/ 165. 시베리아 범
163. 산림山林코끼리
1931년 10월, 인디아 북동쪽 끝에 있는 오지奧地 아셈의 산림을 한 무리의 사람들과 코끼리들이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히말라야산맥 동남쪽 기슭이었으므로 지형이 꽤 험했으며 나무들이 울창鬱蒼하고 잡초가 무성茂盛하다. 인구과잉過剩의 인디아에서는 어떤 산중에도 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맹수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들이 영역다툼을 벌이고, 표범들이 그 틈새를 돌아다닌다. 특히 위험한 맹수는 코끼리다. 산림코끼리들이 수십 마리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성미가 거칠어 움직이는 물체만 보면 덮어놓고 덤벼들어 짓밟았다. 다른 데서는 살지 못 한 빈민들이 거기서라도 살아보겠다고 마을을 만들어놓으면 코끼리무리가 짓밟아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첩첩산중 오지에 볼 일도 없었거니와 짐승을 잡으려는 사냥꾼도 없다. 값비싼 범껍질을 얻으려고 목숨을 거는 맹수사냥꾼들도 그곳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산림에 들어온 사람들은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산림코끼리를 사로잡으려고 했다. 하필이면 그런 첩첩산중疊疊山中에 들어와 사납기로 이름난 산림코끼리를 사로잡으려고 하는가? 그들은 모두 다섯 명이다. 마푸트(코끼리 사역사使役士) 두령頭領 키게르영감과 그의 심복부하心腹部下 두삼 그리고 키게르영감의 손자 볼시였고, 또 한 사람은 지주이며 그들이 타고다니는 코끼리들의 주인인 삼센이 끼어있다. 키게르영감은 마푸트세계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거물 마푸트였으며 대규모의 야생코끼리 사로잡이를 지휘하는 인물이다. 인디아 각지에서는 수천 마리의 코끼리들이 벌목장에서 목재운반 노동을 하고있으며 각종 행사에도 동원된다. 범사냥이나 관광행사에도 둥원되는데 모두 야생코끼리를 사로잡아 훈련시킨 것들이다. 인디아에서는 이미 가축화된 어미가 낳은 새끼를 키워 사역에 동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코끼리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적어도 15년이 걸리기 때문에 15년 동안이나 사육하려고 하지 않는다. 10년 - 20년 된 어린코끼리를 사로잡아 훈련시키는 것이 빠르고 비용도 절감된다. 그래서 주州 정부나 지주들이 마푸트를 동원하여 야생코끼리를 사로잡았는데 키게르영감도 그 일을 했다. 키게르영감은 30년 동안에 200여 마리의 야생코끼리를 잡았으나 그 자신은 코끼리를 소유하지 못 한다. 인디아에서 코끼리는 큰 재산이며, 코끼리를 세 마리만 가지고있으면 잘 살 수 있는데 가난한 마푸트는 그런 재산을 가질 수 없다.
엄격한 신분사회 인디아에서 마프트는 하층계급이며 그들은 오직 승려, 귀족, 지주 밑에서 얼마 안 되는 보수를 받고 코끼리들과 함께 혹사당하고 있다. 그래서 마푸트두목 키게르는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젊은 지주 삼센에게 호소했다. 삼센은 지주집안의 장남인데 영국에서 유학하느라고 재산을 탕진했고 남은 재산은 코끼리 다섯 마리뿐이다. 그는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장가도 못 갔다. 가난한 그에게 딸을 주려는 지주는 없다. 삼센은 야생코끼리를 사로잡으려고 했으나 주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야생코끼리들이 서식하는 산림을 소유하거나 연고를 가진 대지주들이 반대를 했다. 주 정부가 허가를 내준다고 해도 삼센에게는 대규모의 야생코끼리사냥을 할 돈도 없다. 삼센은 오래전부터 알고지내는 마프트두목 키게르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아무도 야생코끼리를 사로잡을 엄두를 못 내는 인디아의 오지 아셈의 산림에서 산림코끼리를 사로잡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그런 오지에 가서 사나운 산림코끼리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키게르는 자기가 사역하고있는 삼센 소유의 코끼리를 동원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센은 그 영감을 잘 안다. 유능하고 성실한 마푸트다. 삼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야생코끼리를 잡으면 반반씩 나눠가진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받아들였다. 삼센도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도 그 사냥에 함께 가겠다는 조건이다. 지주가 마푸트와 함께 코끼리사냥을 한다는 건 유래가 없는 일이었으나 삼센은 범사냥을 한 젊은 사냥꾼이며 코끼리에 대해서도 잘 안다. 키게르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제 겨우 열다섯 살 밖에 안 되는 키게르영감의 손자 볼시를 참가시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났으나 그 아이 옆에 청둥이가 붙어있으면 안전할 것 같았다. 청둥이는 다섯 살때부터 키게르가 사육했으며 볼시와 함께 자랐다. 청둥이와 볼시의 관계는 특별하다. 지난해 미친 수코끼리가 볼시를 해치려고 덤벼들었을 때 청둥이는 필사적으로 미친 코끼리를 막았다. 미친 코끼리의 코에 맞아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볼시를 보호했다. 볼시가 다른 아이들과 놀고있을 때도 청둥이는 늘 볼시의 가까이에서 지켜주었다. 키게르영감은 애비없이 자란 그 손자를 사랑했으며 언제나 옆에 두고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또 야영을 했다. 아셈의 산림에 들어와 세 번째 야영이다. 아셈의 산림길은 듣던대로 험했다. 큰 나무들이 들어선 산림은 그대로 괜찮았으나 관목灌木과 잡초들이 엉켜있는 정글은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코끼리등에 타고 있다. 정글에는 길이란 게 없으나 코끼리가 지나가는 길이 길이 된다. 코끼리는 코로 앞을 막은 나뭇가지나 풀줄기를 쳐내고 가시덤불을 짓밟아 길을 내면서 간다. 가끔 범이 으르렁거렸으나 코끼리는 그런 경고 따위는 무시하면서 제 갈 길을 간다. 풀밭에 숨어있는 독사도 코끼리의 발이 만드는 땅울림을 감지하고 피한다. 야영을 할 때도 야영장을 지킨다. 코끼리는 선 자세로 잠을 잤으나 아주 자는 건 아니다. 코끼리가 지키는 야영장을 덮칠 맹수가 있을 리 없으나 코끼리는 경계를 풀지 않는다. 떠돌이코끼리가 문제다. 코끼리는 동족의식이 강해 코끼리끼리는 싸우지 않았으나 예외의 경우가 있다. 암컷을 노리는 수컷들의 싸움이다. 특히 떠돌이수컷이 위험하다. 코끼리는 모계사회母系社會이며 늙은 암컷이 무리를 거느린다. 수컷은 다 성장하면 무리에서 쫓겨나 수컷들끼리 무리를 짓거나 단독생활을 하였으나 늘 무리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무리 안의 암컷과 교미를 하려는 의도다. 그때도 대여섯 마리의 수컷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백 마리 쯤의 큰 무리가 산중 깊이 들어가고 있고 그 뒤를 사람을 태운 가축코끼리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떠돌이코끼리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마푸트두목 키게르는 두목코끼리를 믿는다. 키게르는 40년 동안이나 두목코끼리와 함께 살았으며 그 동안 두목의 도움으로 많은 야생코끼리를 잡았다. 노련한 두목은 야생코끼리를 유인하여 그물을 쳐놓은 곳으로 끌어들였다. 떠돌이코끼리는 눈치를 채고 두목에게 덤벼들었으나 노련한 두목은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부드럽게 달랜다. 그러면 떠돌이도 감히 두목과 싸우지 못 한다.
코끼리는 이상한 동물이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살았는데 무리생활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다. 코끼리사회에는 나이 많은 코끼리를 존경하고 우대優待하는 경로敬老정신이 있고, 연공서열年功序列도 있다. 코끼리수명壽命은 사람과 비슷한데 다른 점은 나이를 먹을수록 몸집이 커진다. 사람은 스무 살이 되면 성장이 멈추고 쉰 살이 되면 노쇠기老衰期에 들어가지만 코끼리는 노쇠기에 들어가도 계속 몸집이 불어난다. 따라서 늙은코끼리는 엄청난 체구가 되어 젊은 코끼리를 제압한다. 떠돌이수컷들이 가축코끼리를 감히 공격을 못 하는 이유도 그 육중한 몸집에 있다. 키게르가 데려간 코끼리는 모두 마흔 살이 넘었고 두목은 쉰 살이 넘었다. 두목은 몸무게가 5t이나 되었으며 힘도 그만큼 강하다. 주름살에 덮여있는 그 자그마한 눈에는 오랜 경험에서 얻은 예지叡智가 담겨있다. 마푸트들은 그날밤에도 미숫가루로 요기療飢를 했다. 끓인 물에 미숫가루와 한 줌의 차를 넣고 반죽을 한 것이 그들의 식사다. 그걸 먹고 나무뿌리를 질근질근 씹으며 며칠 동안도 걸어다닌다. 코끼리무리도 식사를 하면서 걸어갔다. 코끼리는 하루에 100Kg 이상 먹이를 먹는 대식가였으므로 먹으면서 걸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은 어디로 무엇을 하려고 가는 것일까?
‘대나무밭입니다. 저 산 너머에 있는 넓은 대나무밭이 그들의 목적지입니다.’
키게르가 말했다. 코끼리는 대나무숲을 좋아한다. 매일 죽순이 솟아오르고 신선한 줄기나 잎도 맛있다. 그러나 그 해에는 대나무에 꽃이 피고 대나무가 말라죽었다. 몇 년만에 있는 대나무 흉년이다. 하지만 북부의 오지 산림의 아셈에는 흉년에도 말라죽지 않은 대나무가 있다. 별종의 대나무인데 병균에 강하다. 코끼리무리를 이끄는 늙은암컷은 그 별종대나무숲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며 흉년이 들어 대나무들이 말라죽으면 무리를 이끌고 별종대나무밭으로 간다. 야생코끼리를 추적하는 키게르가 잡목림에서 몇 그루 의 싱싱한 대나무를 발견했다. 오는 길에서 본 대나무들은 다 말라죽었는데 그 대나무는 싱싱하다. 보통 대나무 보다는 키가 좀 작았으나 튼튼하다.
드믄드믄하던 대나무가 숲이 되었다. 대나무병은 거기서부터 차단되었고 건강한 대나무가 자란다. 동북쪽 산을 넘어가면 광활한 대나무숲이 있다. 그런데 일행이 산을 올라가고 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열서너 명 쯤의 사람들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당나귀들의 발자국도 있다. 이런 오지에 웬 사람들이 들어왔을까? 황급하게 도망치는 발자국이었으며 핏자국도 있다. 핏자국을 따라가보니 당나귀의 시체가 있었다. 세 마리가 죽었고 잘린 대나무가 쌓여있었다. 대나무를 잘라 당나귀에 싣고 운반하던 사람들이 야생코끼리의 습격을 받았다. 일행의 주변을 떠돌았던 떠돌이코끼리의 소행이다. 대나무를 가공加工하여 죽제품竹製品을 만드는 천민賤民들이다. 원료인 대나무가 말라죽어 멀리까지 와서 대나무를 구하려고 했는데 변을 당했다. 떠돌이들은 대나무를 빼앗으려고 한 건 아니다. 대나무는 먹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을 습격했을까? 심술이다. 무리에서 쫓겨난 놈들은 심술을 부린다. 코끼리들 중에는 미친놈도 있다. 인디아의 코끼리 숫컷이 성장하면 원인을 모른 정신병에 걸린다. 마스트라는 그 병에 걸리면 귀 옆에 있는 구멍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난폭해져서 마구 행패를 부린다. 떠돌이무리 중에는 마스트에 걸린 코끼리도 있다. 당나귀의 시체를 짓밟은 놈이 바로 그런 놈이다. 사람의 시신은 없었으나 들것을 들고 가는 것으로 보아 부상자가 있다. 전날에 있었던 일이었으므로 도와줄 수는 없으나 미친 코끼리는 그대로 둘 수 없다. 마스트에 걸리면 한 달 쯤 되면 자연치유가 되었으나 일생동안 치유가 되지 않는 놈도 있다. 지주 삼센이 총의 안잔장치를 풀었다. 미친 코끼리를 발견하면 사살할 생각이다. 일행은 다음날 아침 산을 넘었다. 대나무숲이 보였다. 산중복과 기슭에 사방 5Km²가 될 것 같은 대나무숲이 펼쳐져있었다.
히말라야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푸른 대나무숲이 파도를 치고 있다. 대나무냄새가 향기롭다.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다. 워낙 광대한 숲이라 그렇게 몸집이 큰 코끼리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가축코끼리들이 야생코끼리를 발견하고 천천히 접근했다. 야생코끼리들은 가축코끼리를 발견하고 긴장한다. 사람을 등에 태우고있는 코끼리는 처음 보았을 것이다. 노련한 가축코끼리두목은 야생코끼리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심이 없다는 듯 대나무줄기를 꺾어먹고 있다. 맛있는 죽순은 양보하겠다는 태도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야생코끼리들의 긴장이 풀렸다. 별로 위험한 동족이 아니다. 나이가 든 그 동족들은 점잖았고 우호적이다. 먹이다툼을 할 필요도 없이 죽순을 양보하지 않는가. 가축코끼리는 상견례相見禮만 하고 날이 어두워질 무렵 떠났다. 일행은 그날밤에는 불을 피우지 않았다. 좀 춥기는 했으나 코끼리 몸에 붙어 체온을 유지했다. 야생코끼리는 불을 무서워한다.
다음날 가축코끼리와 야생코끼리들이 다시 만났다. 우연히 만난 것처럼 접근했다. 이번에는 두목이 등에 태운 사람을 내려놓고 혼자 야생코끼리 여두목에게 접근했다. 둘 다 환갑還甲이 넘은 나이였으므로 할아버지코끼리와 할머니코끼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서로 코를 감아 가볍게 흔들었다. 두목끼리 그렇게 인사를 하는 걸 보고 야생코끼리들이 마음을 놓았다.
그날 정오께 가축코끼리와 야생코끼리가 다시 계곡에서 만났다. 맛있는 식사를 끝낸 코끼리들은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목욕은 코끼리들이 꼭 해야할 일과다. 몸을 식히고 떼를 떼어냈다. 기생충도 떼어냈다. 기생충은 코끼리들에게 가장 악질적인 적이다. 코끼리의 주름살에 파고들어가 피를 빨아먹는다. 주름살 속에 있어서 코로는 떼어낼 수가 없다. 목욕을 하고 진흙탕에 뒹굴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 해서 죽게 해야 한다. 야생코끼리들은 계곡 하류에서 동족들이 사람들과 함께 목욕하는 것을 보고 있다. 사람들이 마른 풀뭉치로 동족의 몸을 박박 긁어준다. 떼가 말끔히 씻겨나가고 기생충도 떨어져나간다. 주름살 안까지도 깨끗이 씻어낸다. 얼마나 시원할까? 목욕이 끝나자 야생코끼리두목은 가축코끼리두목과 함께 모래찜질을 했다.
가축두목은 그후부터 아예 낮에는 야생들과 지냈다. 마치 한 식구처럼 무리 안에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슬그머니 빠져나와 복귀復歸했다. 마푸트두목 키게르영감은 그동안에는 손자와 함께 어린 코끼리 청둥이의 등에 타고있었다. 청둥이를 훈련시켰다. 청둥이가 훈련을 잘 받고 손자도 마푸트들과 잘 어울렸다.
야생코끼리 사롭잡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특히 그런 오지에서 코끼리를 데려오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몇 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가축과 야생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를 얻어야 유인이 된다.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야생과 가까이 지내 적대심과 경계심을 없애야 사로잡을 수 있다. 나흘째 되는 날 비가 내렸다. 계절풍을 탄 폭우다. 인디아의 코끼리는 비를 싫어하지 않으나 폭우가 오래가면 좋지 않다. 체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야생두목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무리를 이끌었다. 대나무숲 북쪽에 히말라야산맥의 일각이 깊숙하게 뻗어나와 있는데 그 절벽 밑에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야생여두목이 무리를 절벽 밑으로 안내했다. 가축무리도 거기로 갔다. 사람들도 같이 갔다. 장소가 넓지 않았다. 그래서 가축과 야생이 몰려있다. 그러나 서로 배격하지 않았다. 야생코끼리뿐만 아니라 동물들은 자연의 재해를 입었을 때는 다른 종류에게도 관대하다. 초원에 불이나면 사자와 사슴이 어울려서 피난을 한다. 야생코끼리들도 10여미터 앞에 있는 가축을 못 본 체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좋은 기회다. 키게르영감은 두목뿐만 아니라 다른 가축코끼리 두 마리도 풀어놓았다. 사람을 내려놓은 가축코끼리는 자연스럽게 야생의 무리 안에 끼어들어갔다. 코끼리사회의 예법에 따라 인사를 하자 야생코끼리가 인사를 받았다. 가축코끼리 세 마리가 야생코끼리와 어울렸다.
하지만 애초에부터 무리한 생포계획이다. 신분제도가 엄격한 인디아에서 천민계급인 마푸트의 두목이 온갖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지막 몸부림에서 꾸며내는 계획이고, 남은 재산이 코끼리 다섯 마리인 몰락한 지주가 살아남기 위해 던진 마지막 카드다. 어떻게 100마리나 되는 야생코끼리를 사로잡겠다는 발상을 했을까? 코끼리 생포작전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는 게 관례다. 야생코끼리가 서식하는 부근에 수백 평이나 되는 넓은 우리를 만들어놓고 야생코끼리를 몰아넣었다. 코끼리 등에 탄 수십 명의 마푸트와 수백 명의 몰이꾼들이 코끼리서식지를 온통 포위하여 코끼리를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몰았다. 생포에는 몇 날 며칠이 걸리고 때로는 열흘 이상이 걸린다. 생포작전을 주관하는 주 정부나 지주들은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며 야생코끼리 생포작전을 수행한다. 그런데 단 다섯 사람과 달랑 다섯 마리의 코끼리로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믿는 것은 마푸트두목 키게르의 능력이다. 키게르는 20여 년 동안 야생코끼리를 잡았으며 경험과 지혜를 지니고 있다.
또 하나 믿을 수 있는 것은 키게르와 다섯 마리의 가축코끼리들 사이에 생긴 끈끈한 정과 유대紐帶다. 키게르는 20년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함께 늙었다. 키게르는 다른 마푸트들처럼 코끼리를 학대하거나 혹사시키지 않는다. 코끼리를 사랑했으며 그들이 병에 걸리면 밤을 세워 간호도 한다. 코끼리도 그걸 잘 알고있어서 주인에게 충성한다.
키게르가 나흘째 되는 날부터 아예 세 마리의 가축코끼리를 풀어놓아 야생코끼리들과 같이 살게하였다. 가축코끼리가 돌아오지 않을 염려도 있었으나 키게르는 가축코끼리를 믿는다. 가축과 야생이 어울렸다. 코끼리는 무리동물이다. 양 두목은 특히 친하게 지낸다. 할머니코끼리와 할아버지코끼리는노부부老夫婦들처럼 다정하게 보였다.
가축과 야생코끼리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으나 그 관계는 기묘奇妙하다. 가축코끼리는 분명 의도를 가지고 있다. 야생코끼리와 친해지고 그들을 유인하여 사람들에게 넘기겠다는 목적이다. 그들은 이미 가축화된 코끼리이며 사람들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야생코끼리는 이 음모陰謀를 모른다. 자기들에게 접근하는 동족이 자기들을 사람에게 넘기려는 음흉陰凶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른다. 가축코끼리들에게는 동족을 팔아넘기려는 것이 동족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달리 볼 수도 있다. 가축코끼리는 사람에게 예속隸屬된 가축생활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맛있는 먹이를 주고, 비바람이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편안한 잠자리가 있으며, 목욕도 시켜주고 기생충도 없애준다. 말을 듣지 않으면 매질을 하지만 그것 쯤 참아야 한다. 가축은 야생의 수명보다 훨씬 높다. 야생은 굶어죽기도 하고 재해를 입어 죽었지만 가축에게 그런 일은 없다. 코끼리에게‘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없다. 야생보다 더 편안하고 좋은 조건에서 살아가는데 동료를 팔아넘긴다는 죄의식은 없다. 동료를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다. 영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삼센은 코끼리들의 그런 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생포작전이 6, 7일이 되자 좀 지쳤다. 히말라야산맥 기슭의 낮과 밤의 기온 차는 20도나 되었다. 낮에는 더위에 허덕이고 밤에는 추위에 떨었다.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차가와지고 있었으며 모닥불을 피워도 으슬으슬 춥다. 그동안 맛있는 죽순을 먹고 살았던 코끼리들도 돌아갈 시기가 된 것 같다. 다섯 마리의 가축코끼리들 중 세 마리가 야생과 지내고있었으므로 사람의 시중을 든 코끼리는 두 마리뿐이고 그것도 한 마리는 마푸트들이 타고 있다. 삼센은 청둥이를 타고 키게르의 손자와 함께 천연과일 등을 채집했다. 불편하고 좀 위험스럽기도 하다.
삼센과 소년은 야생딸기 등을 채취했는데 청둥이는 소년에게서 5m 이상은 떨어지지 않았다. 코끼리는 길다란 코를 들어올려 냄새를 맡고 커다란 귀를 너풀거리며 주위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다. 시각은 좋지 않으나 후각과 청각은 예민했으며 50m 이내에서 나는 냄새나 소리는 놓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은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삼센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주위를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삼센은 30m 쯤 전방에 숨어있는 범을 발견하지 못 했다. 범도 코끼리처럼 대나무숲을 좋아했으며 대나무숲은 범의 사냥터다. 범의 줄무늬는 대나무의 그림자와 같았으며 범은 대나무숲에서 완벽하게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다. 삼센은 발견 못 했으나 청둥이의 눈빛이 반짝이고 코가 쭉 뻗어올라갔다. 너풀거리던 귀도 납작하게 붙었다. 코끼리가 적에게 덤벼들 때의 자세다. 삼센은 비로소 코끼리가 응시하는 전방 대나무숲에서 소리없이 빠져나가는 누런 색깔을 발견했다. 코끼리가 소년을 보호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범이 도망갔다. 삼센은 범을 쏘지 못 했으나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다음날 떠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대나무가 쓰러지면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큰 코끼리가 소년에게 덮쳐들었다. 미친 코끼리다. 미친 코끼리는 서너마리의 떠돌이 수컷들과 암컷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발작發作한 것 같았다. 코끼리는 대나무를 마구 짓밟으며 소년에게 덮쳤는데 청둥이가 앞을 막아섰다. 미친코끼리는 몸으로 청둥이를 들이받았고 청둥이는 무릎을 꿇었다. 청둥이가 다시 일어나 미친코끼리에게 덤벼들었으나 겨우 열다섯 밖에 안 된 어린 코끼리가 어른 코끼리의 적수敵手가 될 수 없다. 청둥이와 소년이 위험하다. 키게르는 코끼리를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대나무숲에서 총을 쏘지 말라고 했으나 어쩔 수 없다. 총구에서 시퍼런 화염이 뿜어나가고 굉음이 울려퍼졌다. 삼센의 영국제 라이플은 코끼리 등 대형짐승 사냥용 특제품이었으나 총탄이 대나무에 맞아 튕겨나갔다. 그러나 총신이 두 개 달린 쌍발총이었므로 뒤이어 발사된 총탄이 코끼리의 두개골을 뚫었다.
총소리를 듣고 키게르영감이 달려갔을 때 미친코끼리는 마지막 경련痙攣을 하고있었고 청둥이가 코를 올리고 개가凱歌를 불렀다. 손자도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마푸트들이 미친 코끼리를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피냄새가 나면 안 된다. 야생코끼리를 자극시키면 안 된다. 야생코끼리들은 총소리를 들었고, 화약냄새를 맡았으며, 피냄새도 맡았다. 불안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주변을 살폈으나 가축코끼리들이 진정을 시켰다.
이제 코끼리들이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10월이 되면 히말라야기슭은 밤이면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코끼리는 두꺼운 지방층을 가지고있으나 추위를 싫어한다. 야생코끼리를 생포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다. 돌아가려는 야생코끼리를 어떻게 유도誘導할 것인가?
키게르는 코끼리를 갠지스강 상류지역으로 유도할 계획이다. 코끼리 생포의 원칙이라면 대나무숲 주변에 울타리를 쳐놓고 몰아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막대한 돈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갠지스강 상류에 있는 삼각주三角洲에 코끼리를 몰아넣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건 거의 불가능한 모험이다. 거기까지 가려면 장장 200리를 가야한다. 과연 단 세 마리의 가축코끼리가 백 마리 가까운 야생코끼리를 거기까지 유인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갔다고 해도 어떻게 코끼리를 강 한가운데 있는 삼각주로 몰아넣겠는가? 코끼리는 헤엄을 칠 수 있으나 물속에 들어가는 걸 싫어한다. 그런 야생코끼리를 물에 들어가 헤엄을 쳐서 삼각주까지 몰아넣는다?
다음날부터 코끼리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예상했던대로 야생코끼리는 서남쪽으로 가고 있다. 여두목이 이끌고있었는데 여두목 옆에 가축코끼리가 붙어있다. 여두목은 늙은 수컷과 정이 들어 함께 가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 것인지 서로 의논을 하는 것 같았다. 대나무숲을 빠져나와 서남쪽방향의 야산산림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다. 산림코끼리는 야산에서 살기 때문이다. 고향인 셈이다.
코끼리가 대나무숲에서 나온지 이틀만에 고향인 산림에 도착했는데 거기는 북쪽 히말라야산맥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남쪽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섞여있다. 모닥불을 피우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다. 멀리 야산기슭에 마을이 보였는데 키게르를 도와줄 마푸트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산림에 건초乾草와 사탕수수를 놓아두었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먹이다. 가축두목이 야생코끼리를 먹이로 유도한다. 여두목은 잠시 주저했으나 그동안 친해진 영감을 믿고 따라갔다. 야생코끼리들은 맛있는 먹이를 배가 부르게 먹고 만족했다. 다음에는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해야 하는데 가축두목이 안내했다. 거기 사는 마푸트가 미리 찾아놓은 호수湖水다. 맑은 물이 있고 모래사장도 있다. 모래밭에 뒹굴어 기생충을 떼어낸 코끼리들은 인근의 산림에서 밤을 보냈다. 가축두목은 다음날에도 야생코끼리를 유도했다. 그가 유도하는 길에는 건초와 사탕수수가 있고 바나나도 있었다. 그리고 하오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호수와 모래사장이 나왔다. 야생코끼리들은 고향을 버리고 가축두목의 뒤를 따라간다. 무리 주위를 떠도는 떠돌이 수컷들도 따라왔는데 그들은 신경질이 되어있다. 젊은 암컷 한 마리가 발정發情을 했기 때문이다. 수컷들이 무리에 끼어들려고 했으나 여두목이 가로막았다. 가축두목도 가세하여 떠돌이를 쫓아냈다. 마치 자기가 무리의 두목인 것처럼 행세했다. 떠돌이들은 쫓겨나 여두목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여두목은 발정을 한 암컷을 지켜보고 있다. 발정이 고비에 달해 충분히 수컷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여두목은 암컷을 풀어주지 않는다. 암컷도 수컷들처럼 몸이 달았으나 여두목의 허락없이는 수컷에게 갈 수 없다.
가축두목은 여전히 야생코끼리를 유도하고 있다. 능청맞게 여두목의 몸을 어루만지며 키게르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야생코끼리를 이끌고간다. 키게르와 두목은 거의 완벽하게 연기演技를 하고 있었다. 야생코끼리들은 늙은 수컷을 따라가면 맛있는 먹이와 시원한 물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다음날이 고비였다. 10일 동안 몇 백Km를 걸어간 야생코끼리 생포작전의 마지막고비다. 코끼리는 그렇지 않았으나 사람들이 지쳤다. 살이 빠지고 수염투성이가 되었다. 몹씨 긴장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과연 백여 마리의 야생코끼리를 강 한가운데 있는 삼각주로 몰아넣을 수 있을까? 그건 여늬 코끼리사냥꾼도 해본적이 없는 모험이다.
넓은 초원이 나왔다. 드문드문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초원에 바나나가 쌓여있다. 그 인근에는 갠지스강이 흐른다. 바닥의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었으나 강폭이 2Km나 되고 깊이가 7, 8m 쯤 된다. 북쪽의 산악지대에서 쏟아지는 급류가 그곳에서 부딛쳐 삼각주를 만들었다. 면적이 2,000평(7,000m²) 쯤 되는 모래밭인데 가장자리에는 수초水草로 덮여있다. 삼각주에는 꽤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있었는데 그 그늘에 건초와 바나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가축코끼리가 강물로 들어갔다.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려는 것 같았기에 야생코끼리들이 따라갔다. 가축코끼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은 기분좋게 목욕을 하면서 야생코끼리들에게 장난을 쳤다. 정오가 되자 가축두목이 야생두목을 삼각주쪽으로 유도했다. 여두목이 주저했다. 코끼리는 물속에 있는 섬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나 가축두목이 집요하게 여두목을 유도했다. 몸으로 슬쩍슬쩍 밀어붙였다. 가축두목은 그렇게 해서 여두목을 삼각주로 밀어올렸으나 다른 코끼리들이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동안 친해진 가축코끼리들이 야생코끼리들을 개별적으로 유도했다. 야생은 가축을 믿었다. 설마 그렇게 다정하던 그들이 자기들을 해롭게 하겠는가. 가축코끼리가 새끼들을 섬으로 밀어올리자 어미들이 따라올라갔다. 그리고 발정한 암컷을 밀어올리자 젊은수컷들이 따라갔다. 떠돌이수컷들도 발정한 암컷을 따라 삼각주로 올라갔다. 철없는 수컷들이 바나나를 먹기 시작하자 다른 코끼리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아직 물속에 있었던 코끼리들이 삼각주로 올라갔다. 바나나는 참고있기가 어려운 먹이다. 강바람이 시원하고, 나무그늘이 있고, 맛있는 먹이가 얼마든지 있다. 뭔가 좀 석연찮은 것이 있었으나 여두목이 지켜줄 것이고 많은 동료들이 함께 있지 않은가.
삼각주에 갇힌 야생코끼리들은 불안속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나 날이 밝으면 거기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보니 상황이 돌변했다. 삼각주 주변을 열 척쯤의 뗏목들이 둘러싸고 있다. 뗏목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있었고 그 뗏목 사이에는 사람들을 태운 가축코끼리들이 있었다. 굵은 통나무로 지어진 뗏목을 뚫고나갈 수가 없다. 뗏목과 가축코끼리에 타고있는 사람들은 켈거타지역에 살고있는 마푸트들이 만든 조합원들이다. 조합장은 키게르영감이며 그들은 키게르영감의 지시에 의해 출동했다. 키게르영감은 지난해 봄에 그 조합을 조직했다. 가축코끼리들을 독점하고 있는 지주들의 온갖 방해와 압력을 무릅쓰고 조합이 결성되었고 300여 명의 마푸트들이 가입했다. 가혹한 인디아의 신분제도 밑에서 벗어나려는 마푸트의 몸부림이다. 마푸트는 그동안 수입의 1/ 3을 조합비로 내고 조합은 그 돈으로 사업을 했다. 마푸트들이 자기 코끼리를 갖기 위한 산림코끼리 생포사업이다. 마푸트는 큰 목선木船을 동원하여 삼각주의 야생코끼리들을 포위하려고 했으나 지주들의 방해로 목선을 빌릴 수 없었다. 그래서 통나무를 잘라 뗏목을 만들어 동원했다. 지주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코끼리들을 마푸트가 동원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법률상으로는 지주들이 코끼리의 소유자였으나 실제로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은 마푸트다. 마푸트는 지주들이 동원한 깡패들을 밀어붙이고 현장에 나갔다.
산림코끼리 생포작전이 시작되었다. 야생코끼리들도 그때쯤에는 자기들이 가축코끼리에게 속아 사람들의 덫에 걸렸다는 걸 알고 필사적으로 삼각주에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가축코끼리들이 탈출을 막았다. 가축코끼리들이 가면假面을 벗었다. 키게르영감이 마지막작전을 지휘했다. 야생코끼리들이 물속에 들어가 뗏목을 밀어붙이려고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헤엄을 칠줄은 알았으나 물속에서는 힘을 쓸 수가 없다. 깊이가 3 - 4m나 되는 물속에서 코끼리는 뗏목에 타고있는 사람들과 싸울 수가 없었다.
‘안 돼! 그런 짓을 하면 안 돼!’
키게르영감이 몽둥이로 코끼리를 때리려하는 마푸트를 말렸다. 폭력은 금물이다. 피를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키게르영감이 침착하게 지휘를 했다.
키게르영감은 삼각주에 갇혀있는 백여 마리나 되는 야생코끼리들을 모두 생포하려고 하지 않았다. 야생코끼리를 선별하여 잡으려고 했다. 사로잡아서 가축코끼리로 훈련시켜 사역할 수 있는 코끼리들만 잡아야 한다. 우선 나이가 마흔이 넘은 코끼리는 제외했다. 너무 늙은 코끼리는 사역할 수도 길들이기도 어렵다. 사역할 수 있는 기간도 짧다. 인디아에서 코끼리가 늙으면 산림으로 돌려보낸다. 어미 젓을 빨고있는 새끼코끼리와 그 어미도 제외했다. 코끼리는 열다섯이 되어야 훈련을 시켜 사역을 하는데 젖먹이를 잡으면 10년 이상 먹어야 하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 또 야생코끼리의 씨를 말리면 안 된다. 그렇게 선별하니 잡을 수 있는 코끼리는 쉰 마리 쯤 되었다. 나머지는 풀어준다. 키게르영감이 선별했다. 선별에서 제외된 코끼리에게는 물속길을 터주었다. 선별된 야생코끼리 옆에는 가축코끼리가 붙어있어 도망치지 못 하게 막았다. 맨 먼저 풀어준 코끼리는 발정한 암컷이다. 발정된 암컷이 뗏목 사이로 빠져나가자 떠돌이 수컷들이 따라갔다. 다음에는 젓먹이 새끼를 풀어주자 어미들이 따라갔다. 뗏목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는 선별된 코끼리는 마푸트들이 물속에서 코끼리의 앞발을 묶었다. 가축코끼리가 도망가지 못 하게 앞길을 막고 마푸트들이 물속에서 앞발을 묶었다. 줄을 연결하여 묶었으므로 코끼리들은 옴짝딸싹 못 한다. 위험한 일이었으나 육상陸上의 왕도 코끼리도 물속에서는 힘을 쓸 수 없었다.
생포작전 마무리에서 또 하나 이상한 상황이 일어났다. 야생들이 가축에게 속았다는 걸 알고 위험을 느껴 필사적으로 탈출을 하려고 하였는데 가축은 어떻게라도 탈출을 막으려고 해서 싸움이 붙었다. 그러나 그 싸움에는 한계가 있었다. 힘껏 싸우지 않고 성대에게 치명타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가장 강력한 무기인 코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코로 후려쳐서 코뿔소나 물소 같은 맹수에게 타격을 주는데 자기들끼리 싸울 때는 서로 짜고하는 레슬링처럼 상대에게 치명타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야생은 마음만 먹으면 가축을 때려죽일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마푸트들이 물속에 들어가 야생의 발을 묵은 줄을 가축에게 연결했다. 가축 한 마리에 야생 두 마리의 발을 묶었다. 가축에게 야생을 끌고 모래섬으로 올라가게 했다. 얼핏 보기에는 바보같은 짓이다. 두 마리의 야생이 힘을 합쳐 가축을 코로 후려치면 가축은 꼼짝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야생은 공격을 하지 않고 가축에게 끌려갔다. 두 마리가 한 마리에게 끌려갔다. 왜 그랬을까? 코끼리는 원래 평화적인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었으며 무리 안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코끼리는 평화주의자이며 동족끼리는 싸우지 않는다. 사자도 무리생활을 했으나 사자는 동족끼리도 피투성이싸움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러나 코끼리는 동족끼리 싸우지 않고 부득히 싸워야 할 경우에는 상대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그래서 야생은 가축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다. 비록 사람의 노예가 되어 자기들을 속였으나 동족은 동족이다. 코끼리 생포작전을 관찰하고 있었던 삼센이 그 광경을 보고 감동했다. 그런데 생포작전의 마무리에서, 사람은 그와 반대행동을 했다. 야생코끼리 생포가 마무리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지주들에게 고용된 깡패다. 수십 명의 깡패들이 몽둥이로 마푸트를 무차별 폭행했다.
신분사회 인디아의 지배계급 귀족과 지주는 천민 마푸트가 감히 코끼리사업을 하는 걸 두고보지 않았다.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다. 깡패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아 마푸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걸 본 키게르영감이 분노했다.
‘싸워! 모두 용기를 내. 깡패를 물리쳐!’
마푸트가 코끼리를 부릴 때 사용하는 막대기를 들고 깡패들을 반격했다. 막대기 끝에는 자그마한 갈고리가 붙어있기 때문에 무기가 된다. 마푸트뿐만이 아니다. 가축코끼리들이 깡패들에게 덤벼들어 깡패들이 탄 배를 뒤집어엎었다. 깡패들이 당황했다. 깡패들이 도망치려고 하자 깡패들 뒤에서 지휘를 하던 지주가 총을 들어올렸다. 그까짓 마푸트 한두 명을 죽였다고 감옥에 가지 않는다. 지주가 발포했다. 겁을 주려고 공포를 쏘았으나 이내 마푸트를 겨냥했다. 키게르가 과녁이다. 그러나 삼센이 먼저 발포했다. 총탄이 지주 발밑에 떨어졌는데 조준을 잘못 한 게 아니다. 그 지주는 삼센을 안다. 삼센이 사격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실도 알고 있다. 삼센은 가난했으나 지주이고 귀족이다. 그런 그가 총을 들고 같은 귀족계급인 자기와 총을 들고 맞설줄은 몰랐다. 지주가 총을 내리고 물러났다. 우선은 물러나고 나중에 살인미수죄로 고소할 작정이다. 지주가 물러서자 깡패들이 도망쳤다. 그 싸움에서 마푸트 두 사람과 깡패 네 사람이 다쳤으나 경상이다.
그 때 모두 마흔 여섯 마리의 야생코끼리가 사로잡혔는데 키게르영감은 생포작전에 참여한 마푸트 열네 명에게 한 마리씩 줬다. 소유권까지 완전하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마푸트들은 생전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코끼리를 갖게 되었다. 조합에 얼마간 돈을 내야 했으나 그건 나중에 벌어서 차차 갚으면 된다. 키게르는 약속대로 삼센에게 열다섯 마리를 넘겨주고 나머지는 조합공동재산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삼각주에 갇혀있었던 쉰 마리의 코끼리는 그날 하오 삼각주를 포위한 통나무뗏목이 물러나자 모두 강을 건너갔다. 강가 모래밭에서 다른 동료들을 기다렸으나 그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끌려가버렸다. 가축두목도 함께 있었다. 가축두목은 이미 할 일을 다 했으므로 더 이상 야생코끼리와 함께 있을 이유가 없었으나 그래도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키게르도 두목에게 돌아오라고 지시하지 않고 그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무리를 이끌고있는 여두목은 한참동안 사람들에게 끌려간 동족을 기다렸으나 상황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끌려간 코끼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남은 코끼리라도 살려야 한다. 여두목은 아직도 동족들이 끌려간 강 하류를 보고있는 코끼리들을 달래면서 북쪽의 산림으로 걸어갔다. 가축코끼리두목도 여두목을 따라갔다. 어찌된 것일까? 그동안 함께 지냈던 여두목과 정분이 난 걸까? 아니면 자유로운 야생생활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키게르는 두목을 불러들이지 않았다.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해.)
인디아에서는 늙어서 사역을 못 하게 된 코끼리는 야생으로 돌려보내 여생을 자유롭게 보내도록 배려한다. 그런데 산림에 들어서자 가축두목이 여두목의 코를 감아 흔들었고 여두목도 코를 감아 흔들었다. 작별인사다. 여두목을 산림까지 전송한 두목은 몸을 돌렸다. 키게르에게 돌아왔다. 늙은 두목은 함께 늙은 주인을 버리지 않았다. 코끼리는 정이 있는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삼센과 키게르가 캘거타로 돌아가자 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캘거타 주변의 귀족과 지주들이 모여 키게르를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들은 키게르를 인디아의 전통사회를 뒤집으려는 반란자로 몰았다. 열서너 명의 귀족과 지주들이 소작小作을 하는 농민들을 동원하여 마푸트를 규탄하고 위협했다. 귀족들은 마프트조합에 가입한 마푸트를 해임시키고 야생코끼리 생포작전에 참가한 마푸트를 쫓아내기로 했다. 사람은 잔인한 동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족을 해쳤다.
귀족과 지주들은 코끼리 생포작전에 참가한 마푸트만 탄압한 게 아니다. 그들은 귀족과 지주신분을 버리고 천민인 마푸트들과 함께 공동사업을 한 삼센도 처벌하기로 했다. 그들은 마푸트를 보호하기 위해 지주와 고용원들에게 총을 쏜 삼센을 살인미수로 경찰국에 고소하고 국유지산림에서 함부로 코끼리를 생포한 불법행위도 고소했다. 그를 구속시키고 귀족의 신분을 박탈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삼센은 귀족이고 영국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다. 삼센이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인디아총독부 경찰국장을 만났다. 경찰국장은 영국인이었으나 삼센과 대학동창이며 인디아신분제도의 폐단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 야생코끼리를 몇 마리나 사로잡았는가?’
‘모두 백 마리 쯤 되었는데 반은 놓아주었어.’
경찰국장이 술잔을 들며 웃었다. 그는 삼센과 마푸트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비록 인디아를 침략한 영국의 고위관리였으나 지식인이다. 일주일 후 경찰국장은 삼센에게 죄가 없다고 밝히고 불기소했다. 귀족과 지주들이 경찰국에 몰려가 항의를 했으나 경찰국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삼센은 사전에 허가를 받고 코끼리 생포사업을 벌였소. 총을 쏘았지만 깡패들을 동원하여 습격을 한 것은 지주들이였소. 총도 지주가 먼저 쏘았고. 삼센을 처벌하라고 하면 먼저 깡패들과 지주를 먼저 처벌하겠소.’
그동안 총독부는 귀족과 지주들에게 유화적宥和的이었으나 그때는 단호했다. 인디아는 승려, 귀족, 지주들이 지배하는 신분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고향에 돌아온 삼센은 자기의 영지 안에 코끼리 사육장을 만들었다. 가난한 지주가 가진 땅을 모두 내놓아 20만 평(6000만m²)이나 되는 광대한 코끼리 사육장을 만들었다. 사육장에는 코끼리가 좋아하는 대나무밭과 사탕수수밭도 있고, 바나나나무도 심었다. 코끼리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는 호수도 있다. 마푸트들이 기거하는 건물도 지었다. 지주들의 탄압을 받고있는 마푸트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삼센은 코끼리를 좋아하고 정이 들었다. 가축코끼리들은 사람들의 지시를 받고 묵묵히 일을 했다. 그 더위속에서 험준한 아셈의 산을 불평없이 걸어갔다. 그들은 사람이 야영을 할 때는 경호를 했는데 그건 지시나 훈련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삼센은 키게르의 손자를 태우고다닌 청둥이가 숲속에 숨어있었던 범을 쫓아버린 사건과 미친 코끼리에게 얻어맞아 쓰러지면서도 소년을 보호한 사건도 잊지 않았다. 코끼리사육장으로 돈을 벌자는 게 아니다. 지주들은 모두 비웃었다. 지주들은 삼센을 처벌하는데 실패했으나 대규모 사육장을 만드는 것을 보며 안심했다.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망할 것이라고 웃었다. 돈이 없는 그가 어떻게 그 많은 코끼리와 마푸트를 먹여살릴 수 있겠는가. 지주들은 마푸트조합에 가입한 마푸트 백여 명을 해고했고, 코끼리 생포에 참가한 마푸트를 죽이려고 깡패와 소작농민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돈도 없는 삼센이 어떻게 실직하거나 쫓겨난 마푸트들을 먹여살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지주들이 전혀 예상치 못 한 일이 일어났다. 마푸트들이 단결했다. 인디아사회의 밑바닥에서 살고있었던 마푸트들이 단결하여 지주들과 싸웠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푸트들은 삼센이 만들어준 코끼리 사육장에 들어가 깡패들이나 농민들이 쳐들어오지 못 하게 경비를 했다. 코끼리 사육장은 코끼리왕국이 되었다. 광대한 사육장이었으므로 코끼리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모두들 사이좋게 지냈다. 야생의 코끼리들도 가축화되어 마푸트가 시켜주는 목욕을 좋아했다. 지주들이 그 코끼리왕국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지주들에게 고용된 깡패들이 사육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코끼리들이 막았다. 코끼리들은 마치 안테나처럼 코를 흔들면서 침입자들의 냄새를 감지하고 코로 나팔을 불면서 덤벼들었다. 깡패들은 얼씬도 하지 못 했다. 자주들이 소작인들에게 마푸트를 쫓아내라고 선동했으나 농민들도 코끼리에게 밟혀죽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지주들의 강요로 하는 수 없이 출동은 했으나 같은 천민계급인 마푸트를 해칠 생각이 없었다. 곤경에 빠진 것은 오히려 지주였다. 그들은 반항하는 마푸트를 모두 해고했는데 마푸트가 없어지자 코끼리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코끼리가 일을 하지 못 하면 지주들은 수입이 없어진다. 그래서 지주들이 다른 지역에서 마푸트를 불러들이기로 했는데 다른 지역의 마푸트들은 오지 않았다. 마푸트의 단결력은 강했으며 그들은 자기네들끼리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코끼리를 사역하여 영업을 하는 목재회사나 관광회사들도 곤경에 빠졌다.
인디아의 목재회사들은 코끼리가 없으면 영업을 하지 못 한다. 산림에서 잘라낸 원목을 운반하는 일은 코끼리만이 할 수 있다. 관광회사들도 관광객을 안내하는 일을 코끼리가 해주지 않으면 영업을 못 한다. 관광코스의 산림에는 범이나 표범들이 돌아다녔다. 일부 관광객은 코끼리 등에 타고 범이나 표범사냥을 했다. 그래서 관광회사나 목재회사들이 다른 지역의 코끼리 소유주들과 하청계약을 맺었고 일부는 마푸트조합과 타협하여 코끼리를 동원했다. 그렇게 되자 캘거타지역에 사는 지주나 코끼리 소유주들은 어쩔 수 없이 코끼리를 방매放賣했다. 아무런 벌이도 못 하는 코끼리에게 막대한 사료를 먹이며 사육할 수가 없었다. 코끼리는 하루에 100Kg의 사료를 먹는다. 마푸트조합은 방매에 나오는 코끼리를 사들여 삼센의 코끼리 사육장으로 보냈다. 사육장의 코끼리가 백 마리로 늘어나고 그 코끼리들은 훈련된 야생 코끼리들과 함께 목재회사나 관광회사의 수요를 채워주었다. 캘거타지역의 지주들과 마푸트의 싸움은 마푸트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자 삼센은 또 다른 사업을 벌였다. 그는 사육장에 번식장을 만들었다. 암수 코끼리를 교배交配시켜 새끼를 사육하려고 했다. 인디아의 사육코끼리는 불임수술을 받고 교미도 하지 못 했다. 암컷이 임신을 하고 새끼를 기르면 최소한 15년은 돈을 벌지 못 하고 사료값만 들어간다. 코끼리 소유주에게 그것은 타산이 맞지 않는다. 야생을 사로잡아 훈련시키는 게 빠르다. 인디아의 사역코끼리는 그런 가혹한 대접을 받았는데 삼센은 불쌍한 코끼리들이게 자유로운 성생활을 시켜주기로 했다. 코끼리 사육장에서 교미도 하고 새끼를 낳고 새끼들은 번식장에서 사육했다. 인디아 코끼리를 사랑하게 된 삼센은 인디아 코끼리의 멸종을 막으려고 번식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업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 인디아총독부가 보조금을 주고 런던에 있는 세계동물애호협회에서도 지원을 해주었다. 키게르가 이끄는 마푸트조합에서도 코끼리 번식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코끼리 번식장 기공식 때 수백 명의 마푸트들이 참석했고 총독부위 고위관리와 동물애호보호협회 간부들이 참석했다. 영국인 동창 경찰국장도 축배를 들면서 브라보를 외쳤다.
164. 영장류靈長類동물
아프리카 탄자니아 탕가니카호 동쪽유역에는 여러 종류의 영장류가 살고 있다. 울창한 삼림이 있고 침팬지와 원숭이들이 산다. 꼬리가 없는 유인원과 꼬리가 긴 원숭이들이 함께 산다. 삼림의 북쪽에는 자그마한 바위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꼬리가 긴 원숭이종류 비비(바분)들의 잠자리터다. 수천 마리 비비들이 밤에는 거기에서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동남쪽에 있는 사바나에 내려와 풀뿌리를 캐어먹었는데 그때쯤에는 삼림에서 살고있는 침팬지도 와서 놀았다. 따라서 사바나는 비비와 침팬지가 함께 만나는 유일한 지역이다. 그곳에는 영장류동물만 사는게 아니라 사바나 남쪽에는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또 다른 유인원 인간들이 수백 명 쯤 마을을 만들어 산다. 사바나 동쪽에는 광대한 초원이 펼쳐져있는데 각종 영양들과 물소, 맷돼지들이 살고 사자와 표범이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바위산에서 내려와 사바나를 점령한 비비들이 초원의 서쪽까지 진출하여 영양들과 어울렸다. 비비는 사자와 표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938년 영국 왕실박물관 소속 동물학자 제임스교수는 그 사바나에서 영장류의 생태를 조사했다. 왕성한 학구력을 가진 그는 사바나 한가운데 통나무로 연구소를 짓고 서너 명의 조수들과 함께 비비, 침팬지, 원숭이들의 생태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대상에는 사바나 남쪽에 사는 또 다른 유인원 인간도 포함되었다. 제임스교수는 연구를 하는 그 자신과 조수들도 연구대상에서 빠뜨리지 않았다.
유인원이란 어떤 동물인가? 그들의 조상은 어떤 동물이며 그들은 어떻게 진화되었고 그들간의 관계는 어떤가? 제임스교수는 그 해답에서 유인원의 일종인 인간의 본성을 엿보려고 했다. 피상적인 관찰이나 공연한 공리空理나 사변思辨을 배격하고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본성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비비였다. 그곳의 비비는 개코비비라고 불리는데 이름대로 개처럼 긴 주둥이와 날카로운 견치犬齒를 갖고 있다. 비비 종류 중에서 덩치가 크고 몸무게가 60Kg이나 되는 수컷도 있다. 비비는 무리생활을 하는데 무리의 구성이나 사회활동이 인간과 닮은 유인원이다.
비비는 수컷 한 마리와 대여섯 마리의 암컷과 새끼들로 구성된 가족단위의 무리를 만들었는데, 그 가족단위 무리들이 다시 상위의 지역단위 무리를 형성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가족단위 무리들이 모여 큰 무리를 만들었는데 그런 무리들 중에 열서너 개의 가족단위 무리가 포함된 경우도 있다.
비비들에게는 또 다른 무리가 있다. 부족단위 무리라고 말 할 수 있는데 그 안에 지역단위 무리가 들어가있다. 그 부족단위 무리는 일정한 지역에서 사는 비비들을 총괄 지배하는 무리인데 어느 학자들은 그 무리를 군단群團이라고 불렀다. 지역단위 무리는 부대, 가족단위 무리는 소대다. 비비들은 복잡한 조직을 갖고있었으며 인간의 조직과 비슷하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비비들의 집단생활을 연구한다. 옛날 인간의 집단생활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제임스교수의 연구를 돕는 대학원생 미첼양이 흥분하여 연구실로 뛰어들어왔다. 미첼양은 망원경으로 비비가족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대단히 분개했다. 여섯 마리의 암컷들을 거느린 수컷이 암컷 한 마리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암컷을 살려줘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죽을 것입니다.’
제임스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동물학자는 관찰만 해야 한다. 비비들의 생활에 끼어들면 안 된다. 미첼은 똑똑한 학생이었으나 정의감이 너무 강해 종종 사고를 일으켰기 때문에 제임스교수가 그녀의 권총을 빼앗아버렸다. 암컷을 학대하는 수컷에게 총을 발사했기 때문이다. 비비 수컷은 질투심이 강하고 질투를 하면 암컷에게 잔인한 짓을 한다. 그때도 떠돌이 젊은 수컷 한 마리가 몰래 무리에 끼어들어와 암컷을 유혹하자 가장인 수컷이 미친 듯이 그놈에게 덤벼들어 반죽음을 만들었고 유혹을 받은 암컷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는 얘기다. 암컷은 부정한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유혹만 받았을뿐인데 왜 그 미친놈은 암컷까지 죽이려고 하는가라는 것이 미첼의 주장이다. 미첼의 권총을 빼앗아버린 것은 잘 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수컷은 죽었을 것이다. 제임스교수가 미첼에게 커피를 권하며 말했다.
‘질투심이 많고 잔인한 것은 그 수컷만이 아니야. 비비는 본디 그런 동물이야.’
비비는 일부다처一夫多妻의 사회이며 수컷 한 마리가 세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암컷을 거느렸는데 암컷의 생활은 처참하다. 비비들은 바위산에서 내려와 사바나에서 채식을 할 때 각 가족무리들이 1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데 서로 몸이 닿을 때도 있다. 비비들의 사회에서는 성장한 수컷은 가족무리에서 떨어져나와 떠돌이생활을 하는데 떠돌이들은 늘 가족무리의 주변에서 돌아다녔다. 따라서 채식을 할 때 다른 식구들의 수컷이나 떠돌이수컷이 가족무리의 암컷과 접촉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무리의 수컷은 자기 마누라가 다른 사내와 접촉하는 걸 철저하게 감시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하면 질투하여 부정한 짓을 하였거나 하려던 수컷이나 암컷을 응징한다. 비비는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굵고 강한 앞발을 가지고 있는데 질투하는 수컷은 그런 무기로 남녀를 공격한다. 그래서 채식장은 때로는 피바다가 되었고 비명소리가 났다. 분노한 수컷이 암컷의 목덜미를 물고 끌고다니면서 전신을 물어뜯는다. 인간과 비비들의 조상이 같고 비슷한 경로로 진화했다면 비비들의 그런 생활은 과거의 인간의 어두운면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인간들도 과거에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까? 인간의 본성이 그런 게 아닐까? 남성들에 의한 여성의 억압은 인간의 과거다. 그 잔재殘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면 일부 근대국가에서 여성들이 부르짖는 남녀평등운동도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 비비들은 암수의 체격차가 크다. 수컷은 암컷의 두 배가 된다. 인간은 그렇게 큰 차는 아니지만 남성이 약 1/ 3 정도 더 크다. 힘도 그렇다. 비비의 체격차가 암컷지배의 원인이라면 인간도 그런 게 아닐까? 미첼이 아무리 비비 수컷들의 잔인한 짓을 규탄하고 권총을 발사해도 수컷의 횡포는 개선될 것 같지 않다. 미첼이 런던에서 아무리 남녀평등을 부르짖고 시위를 해도 그 운동에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비비들은 자기들의 사회 안에서만 그런 잔인한 짓을 하는 게 아니다.
사바나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비비들은 오후에는 초원에 나가 영양들과 어울려 채식을 한다. 비비들은 매우 부드러운 표정이었기 때문에 영양들이 비비를 경원시 하지 않는다.
영양은 비비가 초식동물이고 평화주의자라고 믿고 함께 어울린다. 비비들과 함께 있으면 자기들을 해치려는 하이에나나 들개들이 접근하지 못 하고 표범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 했다. 비비군단의 힘이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비비는 영양의 보호자고 친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비에게는 두 얼굴이 있다. 비비는 초식동물이 아닌 잡식동물이다. 비비는 고기를 잘 먹는다. 특히 어린 영양새끼고기를 좋아한다. 비비들이 영양과 어울리는 광경을 관찰하던 제임스교수와 조수들은 비비들이 가끔 끔직한 짓을 하는 걸 봤다. 영장류인 비비는 영양보다 지능지수가 높다. 그들은 열서너 마리가 서로 짜고 영양새끼사냥을 한다. 먼저 서너 마리가 영양새끼를 유인한다. 함께 놀자는 몸짓을 하며 새끼를 유인해놓고 다른 비비들이 어미영양이 보지 못 하게 시야를 가린다. 어미영양이 다른 곳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면 재빠르게 사냥을 한다. 영양새끼가 비명을 지르지 못 하게 목을 움켜잡고 송곳니로 두개골을 뚫어버린다. 영양새끼는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 하고 즉사하고 피도 흐르지 않는다. 비비 한 마리가 새끼를 물고가면 다른 놈들 서너 마리가 따라가며 새끼가 보이지 않게 시야를 가린다. 다른 비비들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 잠시후 영양어미는 새끼가 없어진 걸 알지만 비비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새끼를 찾아다니다가 단념한다. 비비는 그렇게 음흉하다. 미첼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원생들도 비비를 미워한다. 비비들도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영장류동물은 학자들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학자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면 학자들이 접근해도 피하지도 않았다. 학자들이 바나나, 사탕수수를 주면서 친해지려고 하면 그들이 접근한다. 3, 4m 앞에까지 와서 장난도 쳤다. 그런데 비비는 다르다. 비비는 전생에 사람들과 원수를 진 것 같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해도 접근이 안 된다. 이빨을 들어내고 위협을 한다.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원주민들이 개간을 하여 옥수수를 심은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다.
원주민은 옥수수밭에 경비원을 배치했으나 소용없었다. 비비들은 군대처럼 잘 조직되었으며 신속하다.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고 옥수수밭에 침입하여 배부르고 먹고 입에 물고 손에 쥐고 도망간다. 원주민들에게도 반격을 하는데 수가 적은 원주민들이 피를 흘린다. 분격한 원주민들이 총출동하여 바위산을 습격하려고 했으나 제임스교수가 말렸다. 네 명의 대학원생들이 원주민편을 들어 싸움에 참가하려고 했는데 참가하지 못 하게 지시했다. 그런데 원주민과 비비들의 긴장이 고조된 때 큰 사건이 발생했다. 비비들과 표범들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학자들이 초원과 사바나에서 망원경으로 비비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표범이 나타났다. 아주 큰놈인데 그놈은 늘 비비를 사냥하려고 했다. 표범이 몰래 풀밭을 기어가고 있었으나 감시를 하고있었던 비비의 보초병이 발견했다. 비비는 사람처럼 후각은 둔하나 예민한 시각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표범은 감시망을 뚫고 들어가지 목 한다. 보초병이 킥! 하고 경고음을 내자 풀밭에서 쉬고있었던 비비들이 일제히 나무 위로 피신했다. 사바나에는 드문드문 나무가 있는데 그리 높지는 않다. 3, 4m의 높이였으므로 대피소가 되지 못 한다. 비비들뿐만 아니라 표범도 나무를 잘 탄다. 발각이 된 표범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몸을 들어내고 비비들에게 다가왔다. 관찰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긴장했다. 어떻게 될까? 표범은 사바나의 살육자다. 초원에서는 사자들에게 눌려 낮에는 사냥을 못 했으나 사바나에서는 사냥을 한다. 표범은 초식동물의 공포의 대상이다. 영양이나 맷돼지뿐만 아니라 원주민이나 연구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표범을 두려워한다. 며칠 점 원주민이 표범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 원주민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겨 나무 위에 걸려있었다. 나중에 먹으려고 걸어둔 것이다. 표범은 학자들이 거주하는 통나무집 인근을 돌아다녔다. 학생들이 총을 갖고 엄중히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사냥을 하지 못 했으나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표범은 비비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관목灌木 위에 피신하고있는 적당한 먹이감을 물색하면서 천천히 나무로 다가갔다. 그러나 쉽게 사냥당할 비비가 아니다. 대여섯 마리의 덩치가 큰 수컷들이 3m 정도의 나뭇가지에 앉아 표범의 행동을 내려다보고 있다. 가족단위무리의 가장들인데 그들은 서로 협력하며 경비를 한다. 가족무리의 가장인 동시에 지역무리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단결한다.
표범이 비비를 노려본다. 3m 정도의 높이는 힘껏 도약하면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표범은 비비들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 표범은 비비들이 앉아있는 나무밑을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조금만 더 가면 새끼를 거느린 암컷들이 있다. 비비는 그 새끼를 노렸다. 나무 위의 비비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들어내며 고함을 질렀으나 표범은 무시한다. 표범이 으르렁거린다. 대형 육식동물의 무서운 살기가 학생들에게까지 느껴졌다. 표범이 그대로 나무밑을 지나가는데 설마했던 일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설마 비비들이 먼저 표범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비비들의 몸무게는 고작 40Kg이고 표범은 80Kg이다. 더구나 표범은 살육을 전문으로 하는 육식동물이다. 표범은 단검短劍같은 이빨과 갈고리발톱을 가지고있으며 몸이 고무처럼 부드러워 민첩하다. 아프리카에서 사자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육식동물이다. 그런데 비비들이 표범을 공격한다. 세 마리의 비비들이 한꺼번에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면서 표범의 등에 탔다. 표범도 빨랐다. 등에 탄 비비들을 뿌리쳤다. 등에서 떨어진 놈을 앞발로 짓누르며 목을 물었다. 비비는 목이 찢어져 피를 뿌리며 죽었는데 그 사이에 다른 비비가 표범의 등에 올라타고 송곳니를 표범의 대가리에 찍어넣었다. 표범이 충격을 받고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으나 또 다른 비비가 뒷다리를 물고늘어졌다. 표범은 질질 끌려가며 도망가려고 했으나 비비 두 마리가 또 덤벼들었다. 표범이 피투성이가 되어 비명을 질렀으나 비비들은 악귀惡鬼로 변했다. 표범의 몸을 마구 찢었다. 표범이 핏덩이가 되었는데도 비비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이 몸서리를 쳤다. 표범은 잔인한 살육자지만 비비들은 더 잔인했다.
싸움이 끝나자 비비들은 쓰러진 동료들을 안아일으켰다. 전사한 동료를 흔들어 살리려고 했으나 소용없다. 목줄이 끊어져 혈관과 신경이 몽땅 끊어졌다. 비비들은 동료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려놓았다. 비비들이 슬픔에 잠겼다. 비비들은 비탄悲嘆에 잠겨 고개를 떨구고있다. 비비들은 묵념黙念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그 자세로 있었다. 그건 동료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장례식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인근에 있는 나뭇가지, 잡풀, 흙을 시신에 던졌다. 시신이 하이에나 등 육식동물에게 뜯어먹히는 걸 막기 위한 매장埋葬이다. 비비들은 장례식을 끝내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평소에 비비들을 미워했었던 학생들은 비비들의 다른 면을 발견했다. 두목비비는 아내와 새끼를 위해 표범에게 덤벼 살육자를 죽였다. 그 과정에서 한 마리가 죽고 두 마리도 상처를 입었다. 비비두목은 아내들에게 횡포만 부린 건 아니다. 그들은 목숨을 던져 가장의 책임을 완수했다.
학자들은 다음날부터 주요 관찰대상을 비비로부터 침팬지로 옮겼다.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비비와 비교하면서 침팬지의 생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크게 분류하면 침팬지와 비비는 모두 영장류에 속한다. 영장류동물은 뭇 동물 중에서 가장 진화된 고등동물이다. 그러나 세분하면 침팬지와 비비는 갈라진다. 침팬지는 꼬리가 없는 사람, 고릴라, 오랑우탄 등과 함께 유인원類人猿으로 구분되고, 비비는 꼬리가 긴 일반 원숭이종류로 남는다. 비비는 덩치가 크고 지상地上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긴꼬리원숭이들과는 별개의 원숭이였으나 그대로 동물분류상으로는 긴꼬리원숭이로 간주한다. 따라서 거칠게 말하자면 침팬지는 진화상으로 비비보다 앞서고 보다 인간과 가까운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침팬지의 DNA는 인간과 98. 4%가 같다. 지능지수도 비비들보다 높다. 그런데 그런 침팬지와 비비가 함께 살고있으며 사로 어울리고 있다.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기에 학자들의 관심은 거기에 집중되었다. 관찰장소를 사바나의 북쪽, 사바나와 초원의 경계지역에서 사바나의 남쪽, 사바나와 삼림의 경계지역으로 옮겼다. 침팬지와 비비가 어울려사는 지역이다.
제임스교수가 말했다.
‘인간은 삼림에서 수상樹上생활을 하다가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로 들어갔고, 다시 초원으로 진출했지. 만약 인간의 이런 진화과정이 영장류동물이 진화할 가장 옳고 바른 길이라고 가정假定한다면 비비는 오히려 침팬지보다 빠른 과정을 밟고있다고 말 할 수 있어. 비비는 이미 사바나에서 초원에까지 진출하고 있는데 침팬지는 아직도 삼림에서 수상생활을 하고있기 때문이지.’
제임스고수의 말대로 그곳 침팬지들은 아직도 삼림에서 살고 있다. 나무에서 내려와 삼림과 사바나의 경계지역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본거지는 여전히 삼림이다. 사바나에 나온 침팬지는 조심스러웠다. 사바나에는 표범이나 하이에나 등 포식자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침팬지는 그런 포식자들에 의한 위험을 감지하면 재빨리 삼림에 들어가 나무 위로 올라간다. 비비들은 사바나에 머물면서 포식자들과 맞서 싸웠으나 침팬지는 그런 위험한 싸움을 피했다. 일부 표범들이 그런 침팬지를 잡으려고 삼림에까지 들어갔으나 침팬지들은 정면으로 싸우지 않았다. 침팬지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여러 마리가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표범을 위협하여 쫓아냈으나 때로는 표범에게 잡혀먹히기도 한다. 철없는 침팬지의 새끼들이 어미의 보호지역에서 벗어나 놀다가 희생된다. 학생들은 표범이 나무에서 내려와 놀고있는 침팬지새끼를 덮치는 걸 봤다. 그때 침팬지두목이 그것을 발견했으나 그들은 새끼를 덮치는 표범과 싸우지 않았다. 그게 비비였다면 틀림없이 표범에게 덤벼들어 새끼를 보호했을 것인데 침팬지두목들은 그저 나무 위에서 나무막대기를 휘두르면서 표범을 위협했을 뿐 나무에서 내려와 표범과 정면대결을 하지 않았다. 땅 위에서 표범과 싸우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국 표범이 침팬지새끼를 물고갔고 침팬지두목들은 그걸 보고만 있었다. 무리의 단결력과 용맹성에서 비비가 침팬지보 더 앞서있는 것 같았다. 침팬지는 비비보다 덩치가 좀 컸으나 두 종류의 영장류동물들이 사바나에서 싸우면 비비들이 이길 것 같다. 단결력 용맹성에서 앞서고 지상에서는 비비가 빠르다. 높은 나무가 없는 사바나에서는 비비들이 유리하다. 표범도 찢어죽인 비비다. 그런데 비비는 사바나에서 침팬지를 만나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비비였으나 침팬지에게는 싸움을 걸지 않는다. 침팬지도 그랬다.
침팬지와 비비들이 만남을 처음 발견한 것은 미셀양이다. 여섯마리 가족의 비비들이 사바나 남쪽 관목숲에서 풀뿌리를 캐먹고있었는데 두목은 여전히 험상궂은 얼굴로 30m 쯤 떨어진 곳에서 돌아다니는 떠돌이수컷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놈들이 자기 마누라들에게 수작을 부리지는 않을까? 자기 마누라 중에서 바람을 피는 년이 있는 건 아니가? 그런데 반대쪽에서 한 무리의 침팬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침팬지는 비비들의 암컷을 보고 있다. 침팬지들에게 적의敵意는 없었으나 장난기가 있다. 침팬지수컷 한 마리가 호기심 섞인 눈으로 비비의 암컷을 보면서 묘한 몸짓을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수작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한 판 벌어질 것 같았다. 호전적인 비비두목이 가만있을 리 없다. 비비두목은 전날 표범과 싸운 사나운 폭군暴君이다. 비비두목이 침팬지와 자기 마누라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고 꼬리가 뻣뻣하게 서 있다.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미셀이 긴장했다. 곧 피가 뿌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비비두목은 몸짓으로 침팬지에게 위협을 했을 뿐 덤벼들지 않았다.
(이 싱거운 친구, 돌아가지 않으면 혼내줄테다.)
비비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는데 싱거운 친구는 능글맞은 몸짓으로 말했다.
(왜 이래, 이 친구야. 함께 놀자는데 ….)
그런데도 성미가 급하고 호전적인 비비두목은 덤벼들지 않았다. 웃는 낯에 침을 뱉지 못 하는 심정일까? 두목은 그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몸짓으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러자 멀리서 보고있던 침팬지와 비비들이 몰려왔다. 집단싸움이 벌어질 곳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장난을 한다. 어찌된 일인가? 핏줄인 것 같다. 그들은 먼 옛날의 조상이 같다. 그들은 막연하지만 그런 의식을 가지고있는 것 같다. 동족은 아니지만 자기들과 가까운 동물이라고 서로가 느낀다. 원주민들도 침팬지와 비비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울려 놀고 털다듬기도 한다. 털다듬기는 헝클어진 털을 다듬고, 기생충도 잡아주는 영장류동물의 사교술社交術이다. 우정友情표시이며 구애求愛행위다. 학생들은 털다듬기를 하던 침팬지수컷이 비비암컷의 등에 올라타는 것을 보았다.
영장류동물의 수컷이 암컷의 등에 올라타는 행위는 마운팅(등산登山)이라고 하는데 그건 교미의 전단계가 될 수 있다. 침팬지수컷이 그런 짓을 해도 비비암컷은 뿌리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싫지 않다는 태도다. 침팬지수컷의 장난이 심하면 비비수컷이 화를 냈다. 그런 짓을 하는 침팬지를 쫓아내려고 했다. 다른 수컷이 가세하여 여럿이 덤벼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집단싸움 같았으나 심각한 싸움이 아니다. 위협공격인데 침팬지는 긴 팔을 휘두르며 막았다. 침팬지는 긴 팔을 가지고있는데 팔은 무기武器다. 침팬지는 긴 막대기로 비비를 위협했다. 인간의 진화가 팔을 사용하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학설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침팬지는 그 단계에 들어가있다. 침팬지가 딱딱한 열매를 돌로 깨는 걸 봤다. 나뭇가지로 구멍 안에 숨어있는 흰개미를 낚아올리는 것도 봤다. 몽둥이로 표범과 싸우는 것도 봤다. 그곳의 침팬지들은 스무마리부터 서른마리까지의 암수와 새끼로 구성되었는데 그 무리 안에 가족들이 있으나 가족이 중심이 된 조직은 아니다. 그 삼림에는 그런 무리들이 열 개 쯤 있는데 무리들은 서로 영토싸움도 한다. 격렬해서 피를 흘리기도 하나 죽거나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는다. 대체로 침팬지는 평화롭다. 무리 안에 두목이 있고, 서열이 있으나 두목은 절대자가 아니다. 비비두목은 횡포를 부리는 독재자였으나 침팬치두목은 그런 짓을 하지 못 한다. 무리 안에서 독재를 규제하는 수컷들이 있다. 침팬지세계에서는 수컷들이 함부로 암컷을 누르지 못 했다. 비비는 암수의 체격차가 컸으나 침팬지는 약간 차이가 날뿐이다. 남녀동등은 아니어도 암컷들이 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미셀양은 침팬지사회가 인간사회보다도 여권女權이 신장되어있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미셀양은 침팬지가 평화주의자라고 찬양했는데 겉보기에 침팬지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찰이 지속되는 동안에 다른 면이 드러나고 있었다. 침팬지가 채식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지 않았다.
침팬지는 개미나 지렁이를 잘 먹을뿐만 아니라 토끼나 들쥐도 잡아먹었다. 학생들이 침팬지가 원숭이를 잡아먹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장류동물이 같은 영장류동물을 잡아먹다니 …. 침팬지의 원숭이사냥은 계획적이었다. 침팬지가 원숭이들이 놀고있는 나무를 멀리서 포위했다. 몰래 포위했으므로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했다. 슬금슬금 포위망을 좁혔는데 바로 옆에 있는 나무까지 접근했을 때에야 눈치를 채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침팬지두목이 신호를 하자 일제히 원숭이를 덮쳤다. 침팬지는 주로 새끼를 데리고있는 어미를 노렸다. 어미는 새끼를 지키려고 동작이 굼떴는데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어 어미와 새끼를 잡았다. 새끼를 안고 비명을 지르는 어미를 긴 팔로 움켜잡아 대가리에 송곳니를 찍어넣었다. 침팬지들이 피투성이가 된 원숭이를 찢어먹는 광경은 끔찍했다. 잔인한 짐승이다. 침팬지는 더 무서운 짓도 했다. 비비들과 함께 놀다가 비비새끼를 잡아먹었다. 비비들이 영양새끼를 잡아먹는 것처럼 몰래 번개처럼 낚아챘다. 비비는 자기들보다 지능지수가 낮은 영양을 속였으나 침팬지들에게 당했다. 침팬지는 비비보다 지능이 높다. 지능지수가 높다는 건 교활狡猾하다는 뜻도 된다. 영장류 중에서 사람 다음으로 지능지수가 높은 침팬지는 교활한 속임수로 다른 짐승을 잡아먹었다. 때로는 비비 납치拉致가 발각되기도 한다. 비비는 침팬지가 자기 새끼를 물고 높은 나뭇가지로 도망치는 걸 보고 고함을 지르면서 추격한다. 그러자 부드러운 표정으로 털다듬기를 하던 침팬지들이 비비를 추격한다. 가면을 벗어던지고 악귀로 돌변한다. 새끼를 살리려는 비비의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앞을 가로막는다. 지상에서라면 몰라도 나무 위에서는 침팬지들이 비비들보다 민첩하고 강하다. 싸움은 침팬지의 승리로 끝나고 비비들은 상처를 입고 물러난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침팬지와 비비들은 다시 어울렸다. 침팬치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비비를 달래고 비비는 적의를 보이지 않았다. 동족과 타투지 않기로 한 것 같다. 비비들은 자기들 보다 지능지수가 높은 침팬지에게 열등의식劣等意識이 있는지 모른다.
침팬지는 같은 영장류인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 아이를 납치하지도 않고 옥수수밭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가까이 접근해도 적의를 보이거나 덤벼들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들 보다 지능지수가 높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아첨阿諂을 떨기도 한다. 침팬지는 강한 자에게는 비굴하고 약한 자에게는 잔인하다. 침팬지의 본성이 그렇다면 유전자가 거의 같고 같은 진화과정을 거친 사람의 본성本性은 어떤 것일까? 인간의 본성이 선善이냐 악惡이냐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대답하려고 고고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연구를 한다. 중국에는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이 있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과거는 어둡다. 원시인간의 과거사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무자비하게 살육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인간은 무서운 살육자다. 동족상잔同族相殘도 서슴치않고 동족을 잡아먹었다는 흔적도 있다. 아프리카 밀림에는 식인족이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어떨까? 제임스교수는 조사대상지역을 삼림에서 원주민마을로 옮겼다. 인간과 침팬지들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영장류인 인간을 조사연구하겠다 의도다.
약 500여 명의 원주민들이 사바나와 삼림의 외곽外廓지대에서 서너 개의 마을을 이루고 살고있었다. 사냥과 채집을 하고 밭을 가꾸고, 돼지, 양, 닭을 기르면서 살고있었는데 그들은 거의 모든 동물을 사냥했으나 침팬지와 비비는 사냥하지 않는다. 그들은 원숭이도 잡아먹었으나 침팬지와 비비고기는 먹지 않는다.
‘왜, 침팬지와 비비는 먹지 않느냐고? 그들은 너무 사람과 닮았어. 그러니 기뿐이 나빠서 먹지 않아.’
그렇게 말했으나 침팬지와 비비가 자기들과 같은 조상을 가진 영장류라는 의식을 막연하게 갖고있는 것 같다. 특히 침팬지에 대해서는 그런 의식이 확고했다.
촌장은 침팬지를 8년 동안 기르고있었는데 침팬지가 성장함에 따라 정이 떨어진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교활해진다고 한다. 미셀양도 촌장의 말에 동의했다. 미셀양은 야생침팬치의 생태조사를 하기 전에 영국의 서커스단에서 침팬지를 부리는 조련사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 조련사는 침팬지가 서커스단의 어떤 동물보다도 지능지수가 높다고 하면서 조련을 받으면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릴 수 있다고 했다. 침팬지는 관객에게 인기가 있으며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 조련사는 침팬지가 재주를 부리는 시기는 생후 15년까지라고 했다. 침팬지의 수명은 약 40년인데 15년이 넘으면 조련사의 말을 듣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고 때로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해치기도 한다. 나이가 15년이 되면 지능이 너무 높아져 교활해진다. 잔인한 짓도 한다. 그 서커스단의 침팬지가 우리에 갇힌 사자나 범을 놀렸다. 무서운 놈들인 건 알고있으나 우리에 갇혀있으므로 덤벼들지 못 한다고 알고 놀렸다. 그래서 사자와 범이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서커스단이 시끄러웠다. 조련사는 침팬지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으나 침팬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늙은 침팬지는 조련사를 깔보고 복종을 하지 않았다. 점점 교활해지고 오만傲慢한 늙은 침팬지가 결국 벌을 받았다. 코끼리등에 올라타고 장난을 치다가 코끼리의 분통을 건드린 것이다. 코끼리 조련사는 끝에 갈고리가 붙어있는 막대기로 코끼리를 다루었는데 침팬지가 그걸 흉내내 코끼리등에 올라타고 그 갈고리 막대기로 코끼리의 귀를 찢었다. 코끼리는 지능지수가 낮은 동물이 아니다. 발은 묶여있었으나 코는 마음대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코끼리가 코로 침팬지의 몸을 감아 휘두르다가 콘크리트벽에 던져버렸다. 침팬지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 침팬지를 사육한 추장도 교활해진 침팬지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려고 했으나 미셀양이 말렸다. 미셀양과 촌장은 그 침팬지를 무리들이 살고있는 삼림에 추방하기로 했다. 미셀은 사람의 손에서 자란 침팬지가 야생으로 돌아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데 흥미가 있다.
촌장과 미셀양은 침팬지를 삼림 안쪽에 있는 야생침팬치 서식지로 추방하고 야생침팬치의 반응을 관찰했다. 야생침팬치들은 난데없이 불쑥 나타난 침팬지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놀란 표정이었으나 적의는 없었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신참자가 동족이라는 걸 알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침팬지는 무리동물이며 동족을 해칠 생각이 없다. 그런데 무리에 끼어든 그 수컷이 문제다. 그놈은 대담하게 무리의 암컷에게 접근했다. 그냥 접근하는 게 아니라 눈빛이 달랐다. 성적으로 성숙되었기 때문에 딴 마음이 있었다. 그놈은 대뜸 암컷의 등에 올라타려고 했다. 엉덩이가 빨갛게 부어오른 것으로 봐서 발정을 했으나 암컷이 거부했다. 나름대로 절차가 필요한데 그놈은 겁탈수준이다. 태도가 부드러워야 하고, 털다듬기나 애무를 해야하는데 그놈은 덮어놓고 덤벼들었다. 암컷이 겁에 질려 두목한테 도망쳤다. 수컷이 두목을 밀어부쳤다. 수컷두목과 늙은 수컷들이 몰려왔다. 수컷두목이 무례한 신참자에게 경고했으나 수컷은 경고를 무시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암컷을 추격했다. 드디어 야생침팬치들이 분노했다. 집중공격을 했다. 팔을 잡아당기고 물어뜯었다. 수컷이 피투성이가 되어 촌장에게 도망왔다. 촌장이 매정하게 뿌리쳤다. 수컷을 남겨두고 마을로 돌아가버렸다. 미셀양이 며칠 후 다시 가봤다. 수컷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있었다. 사람이 키운 침팬지는 사람의 비호庇護를 믿고 교만해져서 야생과 어울리지 못 했다.
촌장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했다. 키워준 사람을 배신한 결과로 벌을 받은 것이다. 정말일까? 미셀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최근에 침팬지를 패트(Pat)로 사육한다. 개는 수만 년 전에 사육했는데 침팬치는 수백 년도 되지 않는다. 그런 침팬지에게 복종과 충성을 요구할 수는 없다. 수만 년 동안 신뢰와 관계를 쌓은 개의 충성심과 신뢰는 오랜 관계에서 생긴 것이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침팬지는 사람의 노리개가 될 수 없다. 늙은 침팬지가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장류 조사대원들이 또 다른 영장류인 사람들의 행동도 조사했다. 그곳 원주민들은 침팬지를 해치지 않고 보호해준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최근 50년 동안 원주민들은 침팬지가 살고있는 삼림의 반 이상을 파괴했다. 나무를 잘라 밭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침팬지의 서식지를 빼앗았으며 서식지를 빼앗긴 침팬지는 멸종으로 몰리고 있다.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행동을 단속하고 있으나 원주민은 반발한다. 원주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백인들이 원주민의 땅을 강탈했다. 대포, 기관총으로 원주민을 살육하고 땅을 빼앗았다. 영장류 중에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동족을 살육한 동물은 인간뿐이다. 영장류조사를 한 학자들은 거기까지 조사가 되자 암담해졌다.
도이치의 동물원이 관객을 유도하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우리에 수용된 동물을 소개했다. 사자, 범, 표범, 코끼리 등 우리 앞에 위험경고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우리 앞에도 경고판이 붙었다. 그런데 그 우리 끝에 이런 안내판과 경고문이 붙었다.
‘이리 가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이 있으니 더 이상 가지 마시오.’
그 우리끝에는 사람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165. 시베리아 범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단장 사르토프가 격앙激昻되어 주먹으로 탁자를 쾅쾅! 쳤다. 그는 회의에 참석한 라조자연보호지역 산림관 마린스키를 손가락질하면서 계속 고함을 질렀다.
‘동무는 범들이 사람을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의견이오? 이곳에서 개발을 하고있는 우리들과 소수민족농민들이 범들의 밥이 되고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소? 그리고 그걸 계속 방치하겠다고 주장하는 거요? 우리 공산당의 중대한 사업이 망가져도 된다는 말이요?’
그 서업은 중대한 사업이다. 그건 극동시베리아 개발계획으로 실시되고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동북쪽 라조자연보호지역 바로 남쪽이 있는 방대한 산림과 불모지, 잡초지를 라이보리밭으로 개간하는 사업이며 수십 명의 지질학자와 농업전문가들이 현지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현지에 숙소를 지어 현지의 소수민족농민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동토凍土라고 불리우는 그곳에서도 속성 라이보리의 재배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극한지역이었으나 봄 여름이 있다. 5월에서 9월까지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고 8월과 9월에는 30도까지 올라간다. 봄 여름은 낮이 길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잘 지도하면 농민들은 그동안에 라이보리를 재배할 수 있다. 1925년 9월에는 시험재배가 잘 진행되어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범, 표범, 곰, 이리들이 개척지를 덮쳤다. 최근 1년 동안에 소수민족농민 30여 명이 그들에게 잡혀먹혔거나 심한 부상을 입었다. 대여섯 명의 슬라브족 연구원들과 일꾼들도 희생되었다. 며칠 전에는 슬라브족 일꾼이 숙소 앞에서 범에게 물려갔다. 개척지 주변 산림에서 범의 포효가 들리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와졌다. 농민들은 겁에 질려 밖에 나가지 못 하고 연구원들도 불안해서 일을 할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개발단장 사르토프는 라조자연보호지역 때문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라조 산림관이 범과 맹수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 맹수가 급격하게 불어나 개척지를 덮친다는 말이다.
‘범과 맹수를 죽이시오. 산림관이 못 하겠다면 지역사냥꾼들이 할 수 있게 허가하시오. 그것도 못 하겠다면 우리가 직접 괭이나 삽 대신 총을 들고 범사냥을 하겠소.’
그러나 산림관 마린스키는 굴하지 않았다. 키가 2m나 되고 짙은 구레나룻으로 덮힌 털보 산림관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반박했다. 한 발도 무러서지 않았다.
산림관 마린스키는 극동시베리아의 범들이 멸종위기에 몰려있다고 주장했다. 무지각한 인간들은 난개발을 하고 무자비한 사냥을 했다. 그 결과 50년 전만해도 천마리가 넘었던 범들이 겨우 200마리 정도만 살아있다는 말이다. 다행히 최근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권고를 받아들여 라조산림을 자연보호지구로 지정해 범의 보호에 나섰기 때문에 라조지구에서 범이 늘어나고 있는데 또 다시 범사냥을 하게 되면 멸종될 것이다.
‘범의 멸종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요? 범이나 표범, 곰, 이리들이 멸종되면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산림의 생태계가 파괴되면 인류의 생활에 악영향을 줍니다. 여러분은 범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 한다고 주장하지만 범이 멸종되면 맷돼지, 사슴, 노루들이 무섭게 번식하지요. 사람들이 경작한 밭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맷돼지 피해가 심하지 않은 이유는 생태계의 질서에 따라 범이 맷돼지의 수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단장이 또 탁자를 쾅! 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또 그런 소리요? 당신이 뭐라고 하든 우리는 농민들과 밭을 보호하기 위해 범이나 표범, 곰을 사냥하겠소. 이미 사냥꾼을 초청했소. 사냥을 방해하지 마시오!’
‘이 자리에서 분명히 경고하겠소. 만약 그들이 라조지구에 들어오면 사살될 것이오!’
‘과연 그렇게 될까? 사냥꾼들이 얌전하게 사살될까?’
개발단장의 협박은 공연한 말장난이 아니다. 개발단장이 초청한 사냥꾼들이 어떤 자들인지 뻔하다. 밀렵전과자이며 그들은 범뿐만 아니라 사람도 죽인다. 개척단장과 산림관의 험한 말다툼은 이틀 후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공산당 극동지역위원회에 전달되어 긴급회의가 열렸다. 위원회는 극동지역 개발사업의 중요성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토의가 개발단장쪽으로 기울어졌다.
‘범이 농민을 잡아먹고 개척단원들까지 죽였다면 그대로 둘 수 없지.’
사냥꾼들에게 범을 사냥하도록 허가하자는 해결안이 나왔고 그대로 의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공산당간부이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전문위원 카렌이 반대했다.
‘소수민족 농민들이 범에게 잡혀먹혔지만 그 장소는 라조지역 안이었습니다. 그곳 산림관은 오래전부터 그들에게 자연지구 밖에서 농사를 지으라고 권고했으나 그들은 권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카렌은 산림관 마린스키의 전처前妻다. 그녀 자신도 라조지구 산림관으로 일했으며 마린스키와 협력하여 밀렵꾼을 소탕했다. 위원들이 그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 개발계획이 중요하지만 자연보호사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위원회는 타협안을 마련하여 결의했다. 사냥꾼들에게 범사냥을 허가하지만 자연지구 안에서는 사냥금지다. 보호지구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범은 잡아도 좋다. 산림관에게도 보호지구 밖으로 나가는 범을 사살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결정은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 범사냥 허가를 받은 사냥꾼들 특히 밀렵전력이 있는 전과자들이 보호지구 밖에서만 사냥을 할까? 당시 시베리아 범껍질은 부르는 게 값이며 국제 모피상들이 시베리아호피를 구하려고 혈안이 되어 보호지구 안으로 들어올 게 뻔한데,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밀렵전과자들이 포기할 수 있을까? 몰래 밀렵을 했는데 이제 당당히 허가를 받았으므로 공식적으로 범사냥을 할 수 있는데 보호지구 밖에서만 사냥을 할까? 산림관이 이를 어떻게 단속할 수 있을까? 라조지구는 광대하며 한 번 순찰을 하는데 5, 6일이 걸린다. 보호지구와 개발지역 사이에 울타리를 쳐놓은 것도 아닌데 그 일대를 드나들면서 범을 잡는 사냥꾼들을 단속할 수 없다. 산림관이 범이 보호지구 밖으로 나가는 걸 말릴 수도 없다. 범들에게 금족령禁足令을 내릴 수 없지 않은가? 보호지구 안에서 수렵과 농사로 살아가는 소수민족을 보호지구 밖으로 내보내는 일도 어렵다. 그들은 몇백 년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온 토착민土着民이다. 그들은 범에게 잡혀먹히더라도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틴다.
공산당위원회의 지시가 전달되던 날 라조지구의 관리소에 손님이 찾아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큰 요리점을 경영하는 마담 레나다. 마담 레나는 블라디스토크 유지有志였으며, 무역상, 모피상을 잘 알고있고, 공산당간부들과도 친교親交가 있다. 마당발 마담 레나는 사냥꾼들과도 친한 사이고 특히 마린스키와 친하다. 마담 레나는 전에도 몇 번 관리소를 찾아왔는데 그날도 영국제 위스키병을 들고왔다.
‘어때, 내 제안을 생각해봤어?’
술잔이 몇 번 오가자 마담이 말했다. 위험스러운 산림관직을 던져버리고 자기와 카프카스에 가서 살자는 제안이다. 마린스키는 주저한다. 마담 레나는 매력있는 여인이고 카프카스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는 아름다운 휴양지였으나 폭설과 폭풍이 휘몰아치는 시베리아를 떠나기 싫다. 카프카스에 가면 수해樹海가 울렁이는 소리도 범의 포효도 듣지 못 할 것 아닌가.
마린스키가 산림관을 그만 두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자 마담 레나가 화를 냈다. 술기가 돌고 눈이 파랗게 반짝인다.
‘역시 카렌인가 뭔가 하는 그년에게 미련이 있군. 내 말 잘 들어. 그년의 말을 듣고 계속 범을 보호하면 당신은 죽어.’
개척단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곳 무역상과 모피상을 만나면서 범사냥꾼을 모집한다는 말이다. 사실 라조지구에서 범사냥을 못 하게 되자 무역상과 모피상은 상점문을 닫았다. 범, 표범, 담비, 여우모피 거래가 끊기고 웅담, 녹용의 거래가 끊어지자 무역상, 모피상, 약종상들뿐만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 시市 전체가 심각한 불경기에 빠졌다. 공산당 시 간부들도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그들은 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라조지구 산림관을 제거하려고 한다. 개척단의 사냥꾼모집에 수십 명의 밀렵자들이 몰렸다. 산림관 한 명 쯤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마담 레나는 공연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협박하는 건가?’
마린스키가 껄껄 웃으며 말하자 마담이 독기毒氣를 뿜어냈다. 질투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 번영회의 부위원장이야. 하려면 못 할 것이 없지. 개척단장은 범들에게 현상금을 내걸고 있지만 나도 돈을 내 그 현상금의 액수를 올릴 수 있어.’
마담은 그날밤 자기가 가지고온 위스키 두 병을 모두 마시고 다음날 돌아갔는데 독기는 가시지 않았다.
마린스키는 관리소 단속대원을 모두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 했다. 소수민족 농민과 개척단 일꾼을 습격한 것은 젊은 수펌인 것 같았다. 보호를 받은 암펌이 낳은 새끼들이 성장해 그런 짓을 한다. 암범은 1년 겨울에 한 번 수펌을 만나 교미를 해서 다음해 봄에 한 마리에서 다섯 마리까지 새끼를 출산한다. 어미범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다가 2년 후에는 모두 추방한다. 독립해서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 젊은 범들이 문제다. 어미힌테서 쫓겨나 삼림을 돌아다니며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대로 사냥을 하고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천방지축天方地軸이며, 어미로부터 사냥법을 배웠고 적들과 싸우는 법도 알고 있다. 두려움이 없다. 그 젊은놈들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죽이지 않고 보호지구에 가둬둘 수 있을까?
라조지구 관리소 뒷마당에는 10기基의 무덤이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밀렵자들이나 범, 표범, 곰들과 싸우다가 희생된 단속대원들의 무덤이다. 그들 중에는 밀렵자들을 총에 맞아 마린스키의 품에 안겨 죽은 대원도 있는데 그는 자기 가족을 돌봐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의 처는 어린 딸을 데리고 관리소에서 직원들에게 식사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범의 새끼를 돌봐주려고 범굴에 들어갔다가 어미범에게 물려죽은 대원도 있는데 그는 어미범을 죽이지 말라는 유언을 했다. 순찰 도중 길을 잃어 헤매다가 굶주린 산림이리들에게 찢겨죽은 대원도 있었다. 구조대가 달려갔을 때는 뼈만 남아있었다. 시신도 찾지 못한 대원도 네 명이다.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으나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한겨울 폭풍이 몰아치는 삼림에서 자칫 길을 잃으면 살아남지 못 한다. 단속대원들이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으나 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 한다. 그래도 그들은 시베리아산림이 좋아서 열심히 일한다. 관리소에는 20여 명의 단속방원이 있으며 그들은 4개 그룹으로 나뉘어 밤낮 삼림을 순찰하는데 광대한 삼림을 지키기에는 어림도 없는 숫자다. 그렇다고 증원을 할 수도 없다. 관리소의 예산도 부족하지만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산림관 마린스키는 주변 삼림에 사는 사냥꾼들 중에서 대원을 선발한다. 대부분이 몽골계 소수민족이고 슬라브족의 혼혈인도 있다. 멀리 코자크지역에서 데려온 사냥꾼도 있다. 단속반은 개를 데리고 순찰을 한다. 밀렵꾼이나 맹수를 찾아내려면 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세 마리에서 다섯 마리의 개들이 대원들 보다 앞서 가면서 수색을 한다. 따라서 많은 개들의 희생되었다. 훈련을 받았으니 밀렵꾼들의 총탄을 피할 수 없다. 맹수들의 공격을 막을 수도 없다. 마린스키는 각지에서 개를 구입한다. 맹수와 싸울 수 있는 용맹한 개다. 맹수들과 싸울 수 있게 덩치가 커야 한다. 몸무게가 80Kg인 티베트종, 만주사람들이 경비견을 사용하는 만주개, 이리사냥을 하는 보르조이, 시베리안허스키 등 대형개의 피가 섞여있는 사냥개들인데 만족스럽지는 않다. 추위에 떨고, 몸이 무거워 뛰지 못 하고, 겁이 많거나 엉뚱한 돌출행동을 하는 개들도 있다. 그런 중에 마린스키는 세 마리의 개를 발견했다.
라조삼림의 동북쪽 끝에 있는 그 지역에서 한 달 쯤 전에 흑곰이 주민 한 사람을 잡아먹었다. 겨울잠에 들어가기 전의 곰은 움직이는 것은 무조건 잡아먹는다. 그래서 잣을 채취하고 있었던 여인이 흑곰에게 끌려갔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관리소도 식인을 한 야수는 죽인다. 그대로 두면 다른 희생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린스키는 식인곰을 사냥하겠다는 주민의 신청을 받아들였으나 위험한 곰사냥을 주민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 단속대원 두 사람을 데리고 그 사냥터에 갔다. 개들이 짖고 있다. 우렁찬 소리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 사기士氣를 알 수 있다. 두려움에서나 경계를 하기 위해 짖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에 찬 씩씩한 짖음이다. 마린스키가 달려갔다. 세 마리의 개들이 불곰과 싸우고 있다. 창을 든 사냥꾼이 지켜보고 있었다. 사냥꾼은 고리드족이고 개는 고리드개다. 고리드는 몽골계 수렵족인데 곰사냥을 잘 한다. 고리드는 직접 사냥에 끼어들지 않고 개들에게 사냥을 맡겨놓는다. 유명한 고리드개의 사냥을 보고싶었다. 고리드개는 중형개다. 하얀색깔이고 꼬리가 뻣뻣하며 귀가 뾰쪽하다. 몸무게는 30Kg이 넘지 않을 것 같다. 흑곰은 오히려 개들을 사냥하려고 덤볐다. 그리드개는 흑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몸무게 300Kg이 넘는 그 사나운 적을 세 방면에서 포위하고 있다. 뒤와 양측만 포위한 것은 앞쪽에는 사냥꾼이 있기 때문이다. 고리드개들이 곰에게 바짝 붙었다. 곰이 한 발만 뛰면 붙잡을 수 있는 거리인데 곰은 고함만 지를 뿐 개들을 잡지 못 한다. 개들이 워낙 민첩하기 때문이다.
‘저럴 수가 ….’
세 마리의 개들은 함께 움직인다. 곰이 좌측 개에게 덤벼들면 그 개는 얼른 뒤로 물러나고 우측 개가 곰의 옆구리를 물어뜯는다. 동시에 뒤쪽의 개가 곰의 뒷다리를 물어뜯었다. 마치 싸우는 기계 같다. 마린스키는 그렇게 무리사냥을 잘 하는 개들은 처음이다. 곰의 껍질이 찢기고 살점이 뜯겨나가 피가 흐른다.
고리드개들은 자기들 끼리의 협동작전에 빈틈이 없었지만 사냥을 지휘하는 고리드도 기가 막히는 협동을 했다. 고리드사냥꾼은 키는 작았지만 다부진 체구였는데 곰의 정면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들에게 몰린 곰이 당황하여 사냥꾼에게 덤벼들었다. 고함을 지르면서 사냥꾼을 덮쳤다. 사냥꾼이 위험했으므로 마린스키가 총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발사할 필요가 없었다. 곰의 뒤쪽에서 공격하던 개가 뒷다리를 물고늘어졌다. 양측에서 공격하던 개들은 얼른 좌우로 흩어졌다. 뒤쪽의 개는 곰이 달려드는 속도를 지연시키고 양측의 개들은 사냥꾼에게 창을 날릴 기회를 주었다. 곰이 뒷다리를 물고늘어지는 개를 뿌리치려고 했는데 사냥꾼이 침착하게 창을 날렸다. 8m 쯤 되는 거리인데 창은 정확하게 곰의 가슴팍에 꽂혔다. 심장이 있는 급소다. 곰이 충격을 받아 무릎을 꿇었다. 곰이 저항력을 잃었다. 사냥꾼이 허리에 차고있었던 손도끼로 사냥을 마무리 했다. 도끼가 곰의 두개골을 찍었다. 속이 시원한 사냥이다. 마린스키는 곰을 사냥꾼에게 넘겨주었다. 보호지역 안에서는 사냥을 못 하게 되어있고 사냥을 해도 잡은 짐승은 관리소에서 몰수했으나 그 곰은 살인곰이었므로 사냥허가가 났다. 마린스키는 고리드사냥꾼을 따라 고리드마을에 갔다. 원목과 흙으로 지은 집들이 대여섯 채 있고, 서른 명 쯤의 고리드인들이 살고있었다. 마을 여기저기에 맷돼지와 사슴의 껍질을 말리고 있다. 고리드는 순수한 수렵족이며 절대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 산림관이 마을에 들어서자 촌장이 당황했으나 마린스키는 짐승껍질을 못 본 체 했다. 마린스키는 뒷마당의 고리드개에게 주목했다. 열서너 마리의 개들이 있었는데 모두 생김새가 비슷하다. 고리드개는 극동지역에서 이름난 사냥개다. 러시아인들도 알고 있으면서 고리드개를 라이카의 일종이라고 부른다. 라이카는 러시아종 사냥개인데 맹수사냥용이다. 라이카와 고리드개는 모습이 비슷한데 혈연관계가 있는 것 같다.
(됐어!)
마린스키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렇게 해야 되겠다.)
마린스키는 고리드인과 고리드개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범들이 보호지구에서 벗어나 개척을 하고있는 소수민족농민들을 습격하지 못 하도록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 같으면 범을 죽이지 않고 쫓아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리드개는 맹수와 싸우지만 맹수가 도망가지 못 하게 했을 뿐 직접 죽이지는 않는다. 맹수를 죽이는 것은 사냥꾼에게 맡겨두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냥꾼을 보호한다.
마린스키는 여섯 명의 고리드사냥꾼을 밀렵단속대원으로 채용했다. 그들과 함께 열 마리의 고리드개들도 데리고와 직접 훈련을 시켰다. 관리소에는 열 마리의 각종 개들이 있었으나 마린스키는 다른 개들은 순찰에 데리고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힘은 강하나 동작이 느리다. 개가 아무리 힘이 세도 맹수와 싸우는데는 한계가 있다. 힘으로 범과 맞붙으려다가는 희생될 뿐이다. 개가 범과 싸우려면 고리드개들처럼 단결을 해야 하고 민첩해야 한다. 관리소에 있는 볼조이, 만주개, 티베트개는 단결력이 부족하다. 대형개들은 관리소를 경비하는데 투입했다. 본디 그 개들은 사냥개가 아니라 경비견이다. 두 마리의 아이누개는 고리드개와 함께 쓰기로 했다. 아이누개는 고리드개와 잘 어울렸다. 고리드개는 극동에 사는 사냥개의 원종原種이라는 학설이 있다. 아이누개, 조선의 풍산개, 일본의 개들이 모습이 비슷하고 습성도 같다. 주인에게 충성하고 용감하다는 특성도 같다. 마린스키의 계획은 범들의 영토를 빼앗는 것이다. 범은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있으나 영토에는 경계가 있으며 그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경계선을 넘으면 다른 범들과 충돌하게 되고, 흑곰과 이리들과도 분쟁이 생겼다. 범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자기 영토가 아니라고 간주하고 침범하지 않았으며 마린스키의 관리소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이 기거하는 관리소 주변을 들락거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범들은 보호구 동북부 일대도 자기들의 영토로 알고 있다. 개척단의 지도로 소수민족의 농민들이 밭을 가꾸고있는 광대한 지역이다. 마린스키는 고리드인과 고리드개들과 협력하여 범들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경계선을 그어주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어미의 품에서 떠난 젊은범들이 천방지축 설치고다녔고 사람들까지도 덮쳤다. 경계선을 그어 사람들의 영토로 들어가지 못 하게 해야 하는데 무척 어려운 일이다. 광대한 삼림에 수백Km나 되는 경계선을 그어야 하는데 어떻게 표시할 것인가? 마린스키는 단속대원 두 사람, 고리드인 두 사람 그리고 네 마리의 고리드개와 아이누개들로 순찰대 네 개 반을 만들어 밤낮없이 경계선을 순찰했다. 개들은 큰 소리로 짖으면서 돌아다녔고 요소 요소에 똥 오줌을 누웠다. 사람들도 그랬다. 개와 사람의 냄새를 남겨 그곳이 사람의 영토라는 걸 범들에게 알려준다. 개들이 집을 떠나 길을 나서면 군데군데 멈춰서 오줌을 싸는 이치다. 개는 오줌으로 영역 표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을 냄새로 알아내기 위해 오줌을 누어 표시를 한다. 순찰대는 정기적으로 하루에 세 번 순찰을 하고 밤에도 한 번 순찰을 했다. 손전등과 횃불을 들고 깜깜한 삼림을 돌아다닌다. 젊은 범들도 순찰대에게는 덤벼들지 못 한다. 가끔 무모한 놈이 으르렁거리며 도전을 했으나 개들이 단결하여 반격을 하고 공포를 쏘아 물리쳤다. 순찰을 한 지 한 달 쯤부터 경계선을 넘는 범들이 줄어들었다. 경계선이 위험선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11월이 되자 기온이 떨어지고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나 순찰은 계속되었다. 고리드인과 고리드개는 추위에 강하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을 한다. 야영을 네 번 해야만 경계선을 한 번 돌 수 있다. 순찰을 한 대원들은 이틀 동안 관리소에 편안하게 쉰다. 그러던 어느날 순찰대가 수상한 발자국을 발견했다. 대여섯 명이 보호지구로 들어와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척단장이 모집한 서른 명 쯤의 범사냥꾼들이 개척예정지에 들어와 범과 표범사냥을 했으나 한 달 동안에 겨우 표범 한 마리를 잡았다. 범은 한 마리도 잡지 못 했다. 사냥군들은 범을 잡아야 보수와 현상금을 받을 수 있다. 범껍질도 팔 수 있다. 사냥꾼들이 범이 잡히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단속대원들이 경계선을 그어놓고 범들이 경계선을 넘지 못 하게 순찰을 했으므로 범은 보호지구를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범을 잡으려면 보호지구로 들어가야 한다. 여섯 명의 밀렵단이 보호지구로 들어갔다. 악명 높은 쪽귀가 끼어있다. 그는 범과 사람을 함께 잡는 살육자이며 소수민족마을을 약탈하고 서슴없이 겁탈도 한다. 쪽귀는 10여 년 전에 마린스키에게 붙들려 수감되었으나 최근에 탈옥을 했다.
마린스키는 이미 마담 레나로부터 쪽귀가 자기를 죽이려고 벼르고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순찰을 중지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예비총으로 미국제 5연발 라이플을 구입하여 자기 옆에 붙어다니는 조수 케논에게 가지고다니게 했다. 영국제 2연신 라이플을 다 쏘고나면 그 총을 넘겨받아 쏘려는 것이다. 케논은 러시아인과 원주민의 혼혈아였으나 아무리 위험해도 마린스키 곁을 떠나지 않는다.
밀렵자들의 발자국이 발견되자 고리드사냥꾼들이 개들의 목줄을 풀어주고 추적을 시키려고 했으나 마린스키가 말렸다. 고리드개는 짐승을 잡는 사냥개였으며 총을 가지고있는 사람을 잡는 사냥개가 아니다. 아무리 우수한 사냥개라도 총탄을 피할 수는 없다.
마린스키는 개들에게 입마개를 해주고 목줄을 잡고 발자국추적을 시작했다. 조용히 추적하여 기습을 할 작정이다. 얼마 가지 않아 밀렵자들이 야영을 했던 곳이 발견되었다. 술병이 뒹굴고 있다. 쪽귀는 타락한 사냥꾼이다. 그도 한 때는 극동의 사냥터에서 이름난 명 사냥꾼이었으나 많은 범을 잡아 돈을 벌게되자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의 술집에 드나들면서 타락하여 술을 끊지 못 했다.
마린스키 일행도 그곳에서 야영을 하고 추적을 계속했는데 다음날 정오에 짐승의 비명을 들었다. 오소리가 강철덫에 걸렸다. 쪽귀는 철공소에서 만든 덫을 여기저기 설치했다. 범을 잡기 위해 주문한 특별한 덫이며 범뿐만 아니라 사람을 잡을 위험도 있다. 본디 범사냥꾼이 덫을 사용하는 건 금기禁忌다. 사냥꾼은 덫을 비겁한 짓으로 간주하고 오직 총으로만 사냥을 하는데 쪽귀는 범사냥꾼의 긍지矜持마져도 버린 자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날밤 보호지구를 순찰하던 대원이 피습被襲을 당했다. 횃불을 들고 순찰을 돌던 대원이 총을 맞고, 고리드개 한 마리가 죽었다. 쪽귀의 소행이다. 쪽귀가 사람사냥을 시작했다. 순찰대가 범사냥을 방해한다고 판단하고 사람사냥부터 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총탄에 맞은 대원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고리드개는 관통상을 입고 즉사했다. 고리드사냥꾼이 눈물을 흘렸다. 마린스키가 분노했다. 이에는 이로 대항한다. 부하들에게 사람사냥을 하라고 명령했다. 개들에게는 입마개를 씌웠다. 밀렵단을 먼저 발견하여 사살하려는 것이다.
개들에게 입마개를 씌워 순찰을 해도 지장은 없다. 고리드개는 사람과 함께 사냥을 하려고 태어난 개다. 그들은 주인이 왜 입마개를 채우는지 알고 있다. 고리드개는 반드시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는다. 발자국과 다른 곳으로 사람을 끌고간다. 개는 눈으로 보고 발자국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아 추적을 하는데 개코는 사람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민감하다. 개는 지름길로 추적을 하고 밀렵자가 벌이는 간교奸巧를 간파看破한다. 개코는 사람의 눈보다 훨씬 정확하다. 밀렵자가 도망치다가 단속반의 뒤로 돌아 기습을 하려고 했으나 고리드개가 있어 그런 짓을 하지 못 한다. 그렇게 추적을 하다가 개들의 목줄을 풀어주었다. 고리드개는 왜 주인이 목줄을 풀어주는지도 안다. 목줄이 풀린 개들은 주인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멀리 떨어지면 적들의 반격을 받게되고 그러면 입마개가 채워진 입으로는 싸울 수 없다. 그래서 주인과 30m 이상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거리 같으면 반격을 받아도 주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영리한 개다. 마린스키는 고리드인과 고리드개의 협동작전에 만족했다. 순찰은 계속되었고 보호구 안에 들어온 밀렵자들은 범을 잡지 못 했다. 젊은 범들도 마린스키가 염려했던 것처럼 바보가 아니다. 어미에게 쫓겨난 범은 형제들과 짝을 지어 사냥을 하고 서너 마리가 어울려 돌아다녔다. 범은 혼자 사는 짐승이었으나 환경에 따라 무리생활도 한다. 젊은 범은 혼자서는 사냥을 하기 어려웠지만 협동을 하면 사냥이 쉽다는 걸 안다. 마린스키가 범들이 맷돼지를 잡은 흔적을 발견했다. 한 마리가 추격을 하고 다른 한 마리가 목을 잡고 숨어있다가 맷돼지를 덮쳤다.
(됐어, 이렇게 하는 거야.)
범은 어미젓에서 떨어질 때까지 반수 이상이 죽는다.
새끼범은 병에 걸려죽고, 사냥이 잘 되지 않아 죽는다. 표범이나 이리들에게 잡혀 죽기도 한다. 범은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경우도 있으나 살아남는 새끼는 겨우 한두 마리다. 그 새끼도 무사히 성장하지 못 한다. 범새끼가 어미에게서 떨어져 2년이 되고, 다음 1년을 독립해서 사는데, 완전히 독립하려면 3년 정도 걸린다. 그때까지 또 반수 이상이 죽는다. 먹이사냥을 못 해 굶어죽기도 하고, 무모한 사냥을 하다가 곰이나 맷돼지에게 당하기도 한다. 큰 범의 영토에 들어갔다가 죽고, 다른 범과 영토를 다투다가 죽기도 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젊은범을 죽인다. 범의 껍질을 벗기려고 사냥꾼들이 돌아다니는데 젊은범은 경험이 부족하여 사살되었고, 어떤 놈들은 사람 무서운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죽었다. 범이 멸종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보호지구 안에서는 젊은범들도 안전하게 산다. 단속대원들이 순찰을 하기 때문에 밀렵꾼들이 얼씬거리지 못 한다. 보호지구에서는 범뿐만 아니라 먹이가 되는 맷돼지, 사슴들이 보호되어 먹이도 충분하다. 범은 보호지구의 환경에 적응되고 있다. 보호지구에서는 번식력이 높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밀렵자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단속대원이 순찰을 시작한지 한 달만에 사고가 생겼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있는 낮인데 보호지구 서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마린스키와 단속대원이 달려갔다. 밀렵자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다른 밀렵자는 도망쳤다. 동료를 버린 무정한 놈들이었으나 단속대원이 추격하여 잡았다. 부상을 당한 밀렵꾼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범에게 물려 어깨뼈가 들어났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들은 쪽귀파가 아니다. 모두 탈영병脫營兵이었으며 극동 사할린섬에서 곰을 두 마리 잡은 경험이 있었다. 범사냥을 한 일이 없었으나 범이나 곰이 다르지 않다고 알고 범사냥에 나섰다. 보호지구 순찰대가 쪽귀파를 쫓는 틈을 타서 보호지구로 들어왔다. 범의 발자국을 추적하였는데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범이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은 끝이 막혀있고 높이 10여미터의 폭포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범은 도망갈 길이 없다.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폭포에서 범이 돌아섰다. 총을 겨냥했으나 쏠 틈이 없었다. 등뒤에서 다른 범이 소리없이 덮쳤기 때문이다. 전혀 예측 못 한 기습이다. 밀렵자들은 범은 언제나 혼자서 돌아다닌 짐승으로 알았는데 보호지구의 범은 그렇지 않았다. 두 마리가 50m 쯤 떨어져서 사냥을 하다가 사냥감이 발견되면 협공을 해서 잡는다. 등뒤에서 덮친 범은 소리없이 접근하여 6, 7m 거리에서 몸을 날려 사냥꾼의 어깨를 물었다. 다행히 범이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으므로 밀렵꾼은 죽지 않았다.
마린스키는 밀렵꾼을 관리소로 끌고가 감금시켰다. 부상자는 급히 봉합수술을 받아 목숨을 건졌다. 마린스키는 다음날 개척단장에게 통보하고 항의했다. 단장은 체면을 잃었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믿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공산당위원회 위원장은 마린스키가 보낸 보고서를 묵살黙殺하고 오히려 인민人民들의 결의문을 마린스키에게 보내왔다. 보호지구가 야생동물의 포획을 금지하기 때문에 인민들이 삶이 어렵게 되었으므로 포획금지를 해제하라는 결의였다. 결의문에는 수십 명의 유지들이 서명을 했는데 마담 레나의 이름도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직접 마린스키에게 명령을 내리지는 못 했다.
라조자연보호지구를 직접 감독할 권한은 블라디보스토크 공산당위원회가 아니라 하바로프스크 공산당위원회에 있다. 위원회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지부에 의견을 자문받아 관리소를 감독한다. 그래서 블라디보스토크 번영회는 진정단을 하바로프스크에 보내 라조자연보호지구를 폐쇄시켜달라는 진정을 하기로 했다. 진정단의 단장은 마담 레나다. 마당발인 마담 레나는 공산당위원회간부들과도 친교가 있고 모스크바에도 상당한 줄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만만찮은 적이 있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전문위원이고 공산당위원회 간부幹部 미스 카렌이 있었다. 미스 카렌은 전에 라조자연보호지구의 산림관을 했었던 경험이 있고, 마린스키의 전처前妻다. 근무처가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이혼을 했지만 아직도 만나고있다는 소문이다. 마린스키와 관계에서는 마담 레나도 마찬가지다. 마담 레나는 마린스키와 20여 년 동안 알고지낸 사이인데 요리점주인과 고객의 단순한 사이가 아니라는 소문이다.
(오냐, 이 년. 이번에는 네 년의 목을 잘라주겠어.)
마담 레나가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하여 이를 갈았다. 미스 카렌의 표정도 차가왔다. 그까짓 술집계집 따위는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두 여인 사이에 무자비한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 무렵 라조자연보호지구에서는 산림관 마린스키와 밀렵단두목 쪽귀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며칠 전 관리소에 총탄이 날아왔다. 서너 발의 총탄이 굵은 원목으로 짠 문을 뚫고 들어왔다. 강력한 라이플인데 그런 총을 가지고다니는 자는 쪽귀뿐이다. 총탄이 마린스키의 귀를 스쳐 벽에 박혔다.
(오냐, 네 놈을 잡으려고 돌아다니는 판에 제발로 걸어왔군.)
즉시 수색을 시작했다. 경비견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암살자들은 단검을 날려 경비견을 죽인 다음 관리소에 침입했다.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모두 세 명인데 한 명은 쪽귀다. 쪽귀는 범 대신 사람을 사냥하고 마린스키도 그랬다. 12월 초, 라조의 삼림이 불어닥치는 강풍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쌓였던 눈가루가 날려올라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마린스키는 대원 두 명을 데리고 수색을 하려고 했으나 고리드사냥꾼이 고리드개를 데리고 따라왔다.
‘나리, 섭섭합니다. 왜 나를 빼고 갑니까? 나도 같이 갑시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고리드사냥꾼 두목이 두목개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30여 년 동안 극동 시베리아 삼림에서 사냥을 한 노련한 사냥꾼이다. 마린스키가 쫓고있는 쪽귀는 라조삼림의 지형을 잘 알고 있다. 숲, 바위산, 계곡을 알고있고, 동굴이나 웅덩이도 안다. 잘못 추적하면 기습을 당한다. 그래서 적은 수로 은밀하게 추적을 하려고 했는데, 고리드사냥꾼 두목은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 따라오시오.’
두목은 개에게 입마개를 씌우고 목줄은 풀었다. 개는 조용하게 밀렵자들의 냄새를 더듬어간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냄새추적이 어려웠으나 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추적을 계속했다. 고리드개는 몇 백년 몇 천년 전부터 사람과 함께 사냥을 했다. 고리드개는 추적을 하는 자가 반드시 잡아야 하는 중요인물이라는 걸 안다. 밀렵자들의 냄새가 바라에 날려가기 전에 추적을 해야 한다. 그날 하오 전날밤 쪽귀가 머물렀던 동굴을 찾아냈다. 쪽귀는 도망친 뒤였으나 흔적이 남아있다. 거적으로 입구를 가리고 장작이나 숯으로 불을 피웠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모포, 손전등, 주방도구도 갖추고 있다. 술병이 뒹굴고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동굴에서 나간 쪽귀는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으나 고리드개가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간다. 쪽귀는 그걸 모른다. 개가 벙어리처럼 짖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새 추적을 했다. 정오께 보마(잠복소潛伏所)를 발견했다. 범을 잡기 위한 보마이며 거기에서 다른 밀렵자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마는 아주 잘 만들어진 움막이다. 자연적으로 패인 구덩이에 원목기둥을 세우고 나뭇가지와 잡초로 지붕을 덮었는데 바닥에는 낙엽을 두껍게 깔았다. 대여섯 명이 발을 뻗고 잘 수 있다. 밀렵자들은 부근에 열 개 정도 덫을 설치해놓고 대기했다. 쪽귀와 그들이 합류했는데 편안하게 쉴 수가 없었다. 밀렵단속반이 추격을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따라왔을까? 쪽귀는 마린스키에게 고리드개가 있다는 걸 모른다. 입마개를 한 개들이 냄새를 맡고 추격을 한다는 걸 모른다. 그들 자신이 마신 술과 담배냄새가 그 개를 안내해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바람이 더욱 거세졌고 폭설까지 쏟아졌으나 밀렵자들은 안온한 보마에서 쉬지 못 하고 도망을 쳐야한다. 밀렵자들은 그날밤 이리들이 살고있었던 토굴에서 밤을 보냈다. 허술한 토굴이라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없었고 불을 피울 수도 없다. 불을 피우면 발각된다. 쪽귀는 마지막 술병을 비웠다.
‘두목, 안 되겠어요. 돌아갑시다.’
다음날 새벽 추위에 떨고있는 부하들이 말했다. 쪽귀는 일단 범사냥을 포기하고 개척단본부로 돌아가기로 했다. 밀렵자들이 강풍과 폭설을 뚫고 보호지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앞서가던 부하가 멈췄다.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눈이 앞을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개 비슷한 짐승이 어른거렸다. 그러나 개가 그런 곳에 있을 리 없다.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 했다. 이리인 것 같았다. 밀렵자들은 계속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또 개 같은 짐승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냐, 저 건 이리가 아니야.’
밀렵자들은 비로소 그게 입마개를 한 개라는 걸 알았다. 입마개를 한 개가 어떤 개라는 건 뻔하다. 밀렵꾼이 총을 쏘자 개는 사라졌다.
‘우리는 밀렵단속반이다! 모두 총을 버리고 항복하라! 항복하지 않으면 사살한다!’
단속대원이 경고했다.
쪽귀는 단속반의 경고를 무시했다.
‘웃기지 마! 이 새끼들, 모두 죽여버려!’
밀렵자들이 쳐들어갔다. 그들은 탈영병이고 살인전과자이며 신형 연발총을 가지고 있다. 밀렵자들의 집중사격을 받아 단속대원이 밀렸다. 희생자가 생겼다.
‘죽여! 죽여! 모조리 죽여!’
기세가 오른 쪽귀가 날뛰었다. 그러나 밀렵자들은 뒤에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추적을 하고있었던 마린스키와 부하들이 발포했다. 단속대원이 맞지 않게 낮은자세로 총을 쏘았다. 유탄流彈은 단속대원의 머리 위로 날아간다. 밀렵꾼들은 등뒤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마린스키가 총신에 묶어놓은 손전등을 켰다. 손전등불빛에 눈을 부릅뜬 쪽귀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순간 총탄이 날아왔다. 밀렵자들이 항복을 외치며 뿔뿔이 도망쳤다. 더 이상 그들을 죽일 수 없다. 마린스키가 사격중지를 명령했고 그 사이 밀렵꾼들은 도망쳤다. 여섯 명의 밀렵꾼들 중에 네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모두 치명상이다. 쪽귀는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죽었다. 대원 두 사람은 경상을 입었다. 죽은자와 부상자를 관리소로 옮겼다. 관리소에는 응급치료 간호사가 있다.
다음날 하오,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치안유지대본부에 극동지역개발단 단장이 트럭을 타고 도착했다. 그는 라조자연자연보호구의 단속반이 개척단 소속 사냥꾼을 습격하여 네 명을 참살慘殺했다고 보고했다. 살아난 두 사람을 증인으로 데리고왔다. 두 명의 증인이 자신들이 개척지 안에서 범사냥을 하고있었는데 단속대원이 습격했다고 증언했다. 여섯 명의 사냥꾼을 포위하고 경고도 없이 무차별사살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네 명이 죽었다는 말이다. 치안대위원장이 분노했다. 자연보호구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지 사람을 죽이라고 만든 기구가 아니다. 관리소의 대원들이 사전허가를 받아 범사냥을 한 사냥꾼들에게 무차별사격을 하여 사살해도 되는가? 월권행위다. 더구나 사전 경고도 없이 발사했다면 살인행위다.
일리가 있다. 전문위원의 주장을 무시하고 결의를 할 수 없다. 공산당위원장은 아카데미위원이며 공산당원인 카렌의 의견을 들어 결의를 다음날로 미루고 치안위원장에게 마린스키를 만나 보고서의 내용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회의를 중단시킨 미스 카렌은 위원회장 복도에서 마담 레나를 만났다. 마담 레나가 카렌이 들으라고 중얼거렸다.
‘흥, 이혼을 했으면 깨끗하게 갈라설 일이지 뭘 구질구질하게 만나자고 요구하는 거지?’
미스 카렌도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산림관의 체포에 반대했다고? 그건 또 뭐야,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건가?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있으면서 또 다른 남자를 노리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큰 싸움이 벌어질 뻔 했다. 여인들은 싸움을 중단하고 마린스키를 조사하는 치안본부로 달려갔다.
치안본부에서는 산림관과 개척단장이 대치하고 있었다. 개척단장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나 마린스키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차분하게 조사관에게 진술을 했다. 마린스키가 부상을 입은 밀렵꾼을 증인으로 대동했다. 그 밀렵꾼은 탈영병인데 싸움이 벌어진 날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는데 밀렵꾼동료들이 버리고 도망쳤으나 관리소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조사관의 심문에 그 밀렵꾼의 대답은 개척단장이 데리고온 증인과 달랐다. 증언이 정반대다. 우선 싸움이 벌어진 장소가 보호지구 안이냐 밖이냐로 엇갈렸다. 또 경고도 없이 발포한 게 맞느냐는 증언도 달랐다. 거기에 대해 마린스키는 현장지도를 가지고 증언했다. 현장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핏자국과 발자국이 남아있다는 증언이다. 마린스키가 개척단의 증인은 탈영병이며 동료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있다고 증언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공산당 시위원회는 보고서를 보완하라고 지시했는데 보고서가 180도 달라졌다. 단속대원은 보호지구 안에서 밀렵꾼을 단속했고, 사전경고도 했다고 바뀌었다. 다음날 오전에 개최된 공산당 시위원회에는 달라진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그리고 카렌이 작성한 러시아 아카데미의 의견서도 제출되었다. 의견서는 50페이지나 되었으며 극동시베리아 야생동물의 생태가 생생하게 밝혀졌다.
러시아아카데미 전문위원 카렌은 20년 동안 라조자연보호지구와 그 주변 삼림을 조사했다. 그 일대에 사는 소수민족 - 수렵족과 농경족들의 생활과 그 일대 삼림에 살고있는 동물들의 관계도 상세히 조사연구했다. 라조보호구가 설치되기 전의 15년과 그 후 15년을 비교연구했다. 라조지구가 설치되기 전에 수렵인들과 농민들은 범, 표범, 곰, 이리 등 맹수의 습격을 받아 300여 명이 죽었다. 특히 범에 의해 100여 명의 희생되었고, 보호구가 설치된 후에도 30명 정도 죽었다. 소수민족 농경민들이 맹수들에게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일대의 농민들에게 피해를 입힌 동물은 범 등 육식동물뿐만이 아니다. 맷돼지, 붉은사슴, 노루, 토끼 등에 의해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농민들은 시베리아 삼림에 여름이 오면 열심히 농사일을 한다. 짧은 여름이었으나 낮이 길었으므로 그 동안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한다. 통토였으므로 수확은 많지 않았으나 그래도 농민들의 귀중한 식량이다. 그런데 그 때 쯤이면 맷돼지, 노루, 사슴, 토끼들도 열심히 먹이를 찾는다. 그 때 많이 먹어두지 않으면 겨울을 넘기지 못 한다. 따라서 그들 동물들은 농민들이 경작한 타이보리, 옥수수, 감자 등을 마구 먹어치웠다. 피땀 흘리면서 가꾼 밭이 하룻밤에 폐허가 된다. 농민들은 사냥을 하고 쫓아냈으나 워낙 수가 많아 효과가 없었다. 특히 맷돼지는 무서운 속도로 번식을 한다.그런데 보호지구가 설치된 후부터 맷돼지에 의한 농작물피해가 즐어들었다. 자연보호정책으로 보호한 범, 표범, 이리들 맹수들이 번식하여 맷돼지를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범과 표범이 삼림에 우굴거리는 맷돼지, 사슴, 토끼를 잡아먹었다. 이리는 맷돼지새끼를 잡아먹었다. 보호지구가 설치된지 10년이 되자 맷돼지들에 의한 농작물피해가 현저하게 줄었다. 미스 카렌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그런 현상이 통계로 비교분석되어 기록되어 있었다. 보고서의 결론은 보호지구가 존속되어야 하고, 범들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소수민족의 의견도 첨부되었다. 미스 카렌은 1900년 초부터 러시아사냥꾼들이 신형총을 구입하여 극동의 범 등 맹수를 마구 사냥했으며 그 결과 맹수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극동시베리아의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설명했다. 맹수들의 수효가 감소되자 맷돼지의 수가 불어나 소수민족은 밭을 망쳤다는 주장이다.
‘자연보호지구를 설치하고 시베리아범을 보호하겠다는 것은 파괴된 극동시베리아의 생태계를 원상태로 복구하겠다는 시책입니다.’
미스 카렌의 결론이다. 위원회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그러자 자연보호를 해체하자고 주장한 일부 위원들이 반박했다. 그렇다면 자연보호지구 해체를 주장하는 블라디보스토크 번영회 대표 마담 레나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담 레나가 회의에 참석했다. 마담 레나는 블라디보스토크시 공간당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위원회는 하바로프스크위원회를 압박한다는 오해를 받을 걸 우려하여 그 의견서를 정식으로 제출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걸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 의견서는 라조자연보호지구의 설치가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제를 망쳤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마담 레나도 라조자연보호지구가 사람들을 잡아먹는 범을 보호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거기에 대해 카렌이 반박反駁했다.
‘보호지구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제가 정체되었다는 의견에는 찬동할 수 없습니다. 침체가 된 것은 일부 요리점이나 모피밀수업자들뿐입니다.’
하바로프스크시 공산당위원장은 여인들의 설전舌戰을 중지시키고 결의문을 읽었다.
‘라조 자연보호지구 관리소의 밀렵단속은 정당하다. 본 위원회는 마린스키 산림관이 계속 업무를 수행할 것을 지시한다.’
그날밤, 마담 레나가 마린스키를 찾아갔다. 카렌과 저녁을 먹고있던 마린스키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술값을 아직 다 갚지 못 했는데 곧 갚도록 하겠소.’
‘글쎄, 그 술값을 갚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자연보호지구로 돌아가면 살인청부업자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 모스크바의 뒷골목에서 데리고온 살인자들인데 당신이 그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게 마린스키를 찾아 마담 레나가 하고싶은 말이다.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암살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다. 카렌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 마담 레나는 나쁜 여자가 아닌 것 같다. 두 여인은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았다.
개척단장도 더 이상 마린스키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도 카렌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라조자연보호지구와 주변 삼림의 개발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마린스키도 자연보호구의 일부를 풀어 보호지역 안에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있는 소수민족을 모두 이주시키기로 했다. 개발단의 협조를 얻어 농사를 짓게 할 계획이다. 절대 농사를 손에 대지 않는 고리드인들에게 괭이 쓰는 법을 가르칠 생각이다. <사냥꾼이야기 끝, 2020.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