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섬 아이들의 리코오더연주단

북새 2020. 8. 2. 12:05

신안 벽지 임자도에서 4학년을 맡았다. 지금은 튜립축제, 대광해수욕장, 승마교육장으로 유명하지만 그 때는 사방에 바다만 펼쳐진 문화문명의 오지 서해의 낙후된 섬. 섬 근무는 퇴근하면 오갈 데가 없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 광주로 탈출한다. 심심하면 아이들에게 낚시대를 가져오라고 해서 수문에 나란히 앉아 문저리 - 문저리는 할아버지가 없는 고기라고 무조어라고도 했는데 문저리를 잘라 미끼로 써도 덜컹덜컹 물었다. 30여 명의 아이들이 낚아올리면 금새 반 바께츠를 잡았다. 낚시질에 물리면 학교 뒷산을 쏘다니기도 했으나 하루 이틀이고, 하나 밖에 없는 다방에 죽치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것도 뉘가 났다.

장편동화를 쓰던 때라 정과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구연하면서 반응을 살폈는데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빨려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구연기술이 늘었던 것이다. 창작 장편동화반디전설’‘벌쭉이 대장’‘도깨비우화를 들려주고는 밑천이 달랑달랑해서혹부리영감등 전래동화와 민담으로 넘어갔다. 몇 달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아무리 바쁜 날 - 느닺없는 직원모임이 생겨도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동화구연을 챙겼다. 하교를 안 하겠다고 떼를 썼다. 공부는 밥이고 동화가 반찬이라고반찬주세요, 반찬주세요.’노래를 불렀다. 녀석들의 기발한 애교. 아편중독이 무섭다던데 마치 중독이 된 것 같았다. 수업시간에는 주의집중이 잘 안되는데 동화구연시간에는 교실바닥에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숨소리조차 죽이고 동화에 빨려들었다. 구연을 하면서 희비가 교차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는 모습에 끌려들어갔다.‘오늘은 이만!’하고 동화구연을 끝내면하아!’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일부러 구연이 끝날 때 쯤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아이들을 유혹했다. 덕분에 수업시간의 주의집중이 한결 좋아지고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와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가 밑천이 떨어질 즈음 리코오더연주를 생각해냈다. 구연과 리코오더를 번갈아 하면서 동화밑천을 마련하려는 생각이었다. 광주에 나오는 주말에 리코오더를 문방구에서 단체구입을 해서 나눠주고도레미파 부터 시작했다. 막대기로 교탁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고 아이들은 음계를 연습했는데 의외로 빠르게 습득했다. 1학년 교재로 들어가 학교종, 얼룩송아지로부터 한 달이 지나자 반달, 나팔꽃을 능숙하게 연주했다. 옆 반 교사가 막대기장단소리에 학습방해라고 짜증을 냈지만 아랑곳없이 매일 연주연습을 계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코오더의 삐삐거리던 탁음이 은은하고 맑은 부드러운 음정으로 바뀌었다. 악보를 보는 방법도 빨리 익혀서 놀랐다. 아이들은 제풀에 재미를 붙여 집에서도 연습을 하고 등하교길에서도 연습을 했다. 음계연습 후 한 달이 지나자 악보를 주면 음계를 적어 연습을 하더니 두 달째부터는 2부연주는 물론이고 3, 4부연주도 거뜬했다. 일취월장日就月將. 삐삐거리던 소음이 음악이 되었다. 옆 반 교사의 짜증이 감탄으로 바뀌었다. 그 해 5, 스승의 날 축하잔치에서 스승의 노래와 섬마을아기, 반달 등 연주를 했는데 선생님들이 놀랐다. 교감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쳤냐고, 좀 보여줄 수 없는가라고 해서 시범수업을 하기로 하고, 선생님들이 참관을 하면서 악보를 가져오라고 했다. 시범수업에서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가져온 악보를 불과 20여분 동안 가락과 리듬연습을 하고 4부연주를 했다. 단음곡을 주어도 아이들이 스스로 화성을 가늠해서 4부화음을 맞춘다. 선생님들은 어안이 벙벙해진 모습으로 시범수업을 참관했다. 불과 대여섯 달 연습으로, 특히 세 여학생의 트리오연주는 프로수준급이어서 신비하고 황홀한 경지에 이르렀다. 교육자이면서도 새삼스럽게 놀란 교육과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

정년퇴임을 하고 무등산등산을 시작하면서 오카리나연주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프랑스국민의 지성인수준은 우리집만의 가정요리, 외국어, 프로급의 운동 그리고 프로급의 악기연주다. 오카리나연주 실패는 어린이시절이 이미 지났다는 걸 간과한 결과다. 그래서 휘파람으로 바꿔 한 10여 년 심심풀이로 불었더니 이제는 대금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