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 : 4화 비단길Silk Road 귀향歸鄕길
1부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
4화 비단길Silk Road 귀향歸鄕길
고구려 무용총 남해각서(고조선 만주 고구려장군총 천부경 일반화
사냥도 상형문자 추정) (Ziggurat 제단祭壇 추정) 윷놀이말판
* Daum Blog 인용
# 한기桓紀 6959년(BC. 238년, 고조선의 선군왕검시대 제 47세 선군 고열가高列加 재위在位 58년 계해癸亥년) 봄, 100여 명의 말을 탄 기사들이 비단길Silk Road을 달리고 있었다.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에서 화백和白회의를 개최한다는 방문榜文이 전서구傳書鳩로 전달된 지 하루만이었다. 급박한 화백회의 소집령을 받은 번한, 막한의 왕들을 비롯하여 5가의 부족장들과 3한관경제 안의 모든 변경의 부족장들까지 고조선 진한의 수도 아사달을 향하여 달려왔다. 이 해 3월, 선군 고열가께서 유시諭示를 내렸었다.
해모수 고향 고리국 대흥안령 대백산 고주몽의 근거지 흑룡강(청색)
만주 흥안령 * Daum Blog 인용 홀본성, 졸본성, 5녀산성(중국)
◎ 한단고기桓檀古記(임승국)의 고열가천왕 유시諭示와 해모수 기록
* 47세 선군 고열가 재위 58년, 병인丙寅 원년元年, 한기桓記 6902년(BC. 295년) 기묘己卯 14년(BC. 282년) 선군왕검의 묘廟를 백악산白岳山에 세우고 유사有司에게 명命을 내려 4철 이에 제사지내게 하고 선제께서는 1년에 한 번 친히 제사를 지냈다.
* 기유己酉 44년(BC. 252년) 연燕나라가 사신을 보내 새 해 인사를 올려왔다.
* 계축癸丑 48년(BC. 248년) 10월 초하루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이 해 겨울 북막北漠(몽고지방)의 추장酋長 아리당부阿里當夫가 군사를 내어 연 나라를 징벌할 것을 청했으나 단제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이때부터 원망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
* 임술壬戌 57년(BC. 239년) 4월 8일 해모수解慕漱가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켰는데 그의 선조는 고리국藁離國(몽고지방, 바이칼호수의 브리야트Buryaty인은 지금도 스스로 코리족이라고 부르고 만주 동북부 삼림에는 수렵족 고리드족이 있음) 사람이었다.
* 계해癸亥 58년, 한기 6959년(BC. 238년) 선제檀帝(선군)께서는 어질고 순하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었으니 명령을 내려도 시행되지 않는 일이 많았고, 여러 장수들은 용맹만을 믿고 쉽사리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나라의 살림은 시행되지 않고, 백성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3월, 하늘에 제사지내던 날 저녁에 마침내 5가加(선군을 추대하는 권리를 가진 고조선의 큰 부족 - 마馬 우牛 양羊 저猪 구狗가)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옛 우리 선조 열성列聖(왕의 선조先祖)들께서는 나라를 여시고 대통大統을 이어가실 때에 는 그 덕德이 넓고 멀리까지 미쳤으며 오랜 세월 동안 잘 다스려졌거늘, 이제 왕도王道는 쇠미衰微하고 여러 왕들이 힘을 다투고 있도다. 짐은 덕 없고 겁 많아 능能히 다스리지 못하니 어진이를 불러서 무마시킬 방책도 없고 백성들도 흩어지니, 생각컨대 그대들 5가 는 어질고 좋은 사람을 찾아 추대하도록 하라.’
하시고 크게 옥문獄門을 열어 사형수 이하 모든 죄수들을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이튿날 마침내 왕위를 버리시고 입산수도入山修道하시어 신선神仙이 되시니 이에 5가가 나라 일을 함께 다스리기를 6년이나 계속하였다.
한인(안파견)천왕 거발한 한웅천왕 성모聖母 웅녀상
* 김산호 화백. Daum Blog 인용
* 3조선의 명칭과 유래(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 박기봉 역)는 사서史書에 3조선의 분립이 누락되었고, 3조선을 선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오류를 범했다. 3조선은 BC. 4세기 경이었으며 신한(도읍 아스라, 하얼빈), 말한(도읍, 아리티, 개평현蓋平縣 동북 안시安市 고허古墟), 불한(도읍, 펴라, 평양)의 분립이며 신한은 대왕大王이고 말불한은 부왕副王이다. 신한이 통치하는 지역은 신조선, 말한은 말조선, 불한이 통치하는 영역은 불조선이다. 신 ․ 말 ․ 불 3한은 이두문吏讀文으로 진辰, 마馬, 변卞한으로, 신 ․ 말 ․ 불 3조선은 이두문으로 진眞막莫번番조선으로 기록했다. 강역은 신조선이 봉천성奉天省의 서북과 동북(개원開原 이북以北 흥경興京 이동以東), 길림, 흑룡과 연해주 남단. 불조선은 요동반도(개원 이남以南 흥경 이서以西). 말조선은 압록강 이남이었다. 신조선은 해解씨며 대단군 왕검의 자손이고, 불조선은 기箕씨이며 기자의 자손이며, 말조선은 한韓씨로 선대를 알 수 없다.
* 조선의 멸망은 한기 0000년, BC. 200년 경 두만이 흉노의 선우單于(단우로 쓰고 선우로 읽음, 대추장大酋長)가 되어 첫째 아들인 모돈을 미워하고 작은 아들을 사랑하였는데 모돈이 인질로 가있던 월씨국月氏國을 탈출하여 부친을 살해하고 추장이 되었다. 이에 신조선의 왕이 모돈의 흉측함을 빌미로 공물을 요구한 바 모돈은 힘의 약함을 알고 말을 요구하면 애마를 보내고 여자를 요구하면 알씨閼氏(선우의 처첩妻妾, 아씨의 어원語源)를 보냈다. 신조선의 왕이 1000여리의 구탈甌脫(두 나라 사이의 중립지대)을 요구하자‘토지는 나라의 근본인데 어찌 달라고 하느냐!’하고는 사자使者를 죽이고 기병을 동원하여 신조선의 서쪽(동몽고)를 유린하였다. 이에 신조선이 퇴각하여 수 천리 땅을 버리고, 선비의 나머지 무리는 선비산(흥안령)으로 도주하니 이로부터 신조선이 쇠약하여 오랫동안 이웃 종족과 겨루지 못하였다.
* 이 보다 앞서 종실宗室의 대해모수는 몰래 수유須臾(기비箕丕)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천왕랑天王郞이라 칭稱했다. 수유후候 기비를 권勸하여 번조선番朝鮮 왕으로 삼고 나아가 상하上下의 운장雲障(중국의 하북성 또는 요녕성 해안 추정)을 지키게 하였다. 대저 북부여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니 고구려는 곧 해모수의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에 역시 고구려라 칭稱하는 바라.
# 머리에 하얀 터번을 두르고 얼굴은 검은 천으로 가린 채 질주하는 집단은 말들이 준마駿馬였지만 그들의 달리는 속도는 놀라웠다. 기사들이 지나간 길은 질풍노도疾風怒濤였다. 그들이 지나간 길은 한 식경이 지나도 뿌연 흙먼지로 뒤덮여 긴 흙먼지 띠처럼 보였다. 흙먼지 띠를 끌고 가던 기사들이 타클라마칸사막의 초입에서 멈췄다. 멀리 오아시스 도시의 네모지고 하얀 건물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기사가 손을 높이 들어 질주하는 말들을 세웠다. 선두를 중심으로 3각편대를 이루고 달리던 말들이 일시에 정지했다. 또 뿌연 흙먼지가 소용돌이쳤다. 잠시 뒤 흙먼지가 가라앉자 멈춰섰던 3각편대는 부여족, 돌궐족, 흉노족의 부족 모둠으로 나눠지고 각각의 기사집단은 한 마장씩 뜸을 들이며 도시에 들어섰다.
# 타클라마칸사막 초입의 오아시스 도시 우룸바치 객사. 부여족장 드라고미르 드라가노프Dragomir Draganov(불가리아인 시조), 돌궐족장 압둘라 메시드Abdulra Macid(터어키인 시조)와 흉노족장 꼬다이 졸탄 Koday Zoltan(헝거리인 시조)과 세습무당 도가이고오 후이Dogaiguo Hui(바이칼 호수 올혼Olkhon섬의 세습무당, 지구촌 민속신앙의 원조)가 부여족장의 방에 모여있다.
부여족장 : 강행군에 심신이 피로하겠으나 일정이 촉박하여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하니 이 해하여주기를 바랍니다.
돌궐족장 : 천왕 고열가께서 제위를 물리겠다는 유시를 하시고는 곧장 입산하셨다는데 까지 만 알고 있습니다.
흉노족장 : (부여족장을 향하여) 5가 족장들에게서 다른 연락은 없었습니까?
부여족장 : 천왕의 유시가 갑작스런 일이라서 본인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흉노족장 : 무작정 입성하였다가 정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고려해야 합니다.
부여족장 :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도성에 입성해서 분위 기를 파악한 다음에 우리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돌궐족장 : 천왕 궐위의 중차대한 일인데 정보가 없다면 우리의 안위조차도 보장할 수 없는 지경 아닙니까?
부여족장 : 도성에 가까워지면 정보들이 입수되리라 생각됩니다. 우선 인솔한 부족들을 잘 챙기십시오. 내일은 동 트기 전에 출발합니다. 말은 낙타로 교체될 것입니다.
흉노족장 : 갑작스럽게 출발했기 때문에 모두가 혼란스럽습니다. 인원과 짐을 정리해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여족장 : 낙타는 사막을 횡단하는 부대시설을 싣고 갈 걸 감안하여 충분하고 여유있게 확 보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물과 식량은, 운반 수단에 부담이 있어서 최소한 열흘 치만 준비했습니다.
돌궐족장 : 사막 횡단을 열흘이면 되리라고 보았는데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봄철로 접어드 는데 … 먼지 폭풍에 휘말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예상되는 모든 루트를 점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여족장 : 갑작스런 출발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물과 식량을 약간 늘린 것입니다. 사막이 변화무쌍하다고 하드라도 오랫동안 우리가 넘나들었던 길입니다. 이번에도 무사하리라 고 믿습니다.
세습무당 도가이고오 : 출발하던 날 아침에 독수리가 동쪽을 향해 날았습니다. 좋은 징조입 니다.
# 열흘 뒤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변경, 드라고미르를 비롯한 세 부족장들이 사막을 횡단했던 낙타를 말로 바꿔 타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길을 달린다. 사흘 뒤, 투르판Turpan에서 타타르Tatars족장과 부족들이 합세하여 기사집단은 더 늘어났다. 파미르고원Pamirs Plateau과 쿤룬Kunloon산맥을 거치면서 주변 부족들이 합세하여 수도 아사달이 보이는 구릉지대에서는 500여 명의 대집단이 되었다. 줄기찬 질주로 대원들의 복장은 흐트러지고 머리에 두른 터번에는 먼지가 쌓였다. 선두집단을 이끌었던 드라고미르가 구릉을 내려서서 구릉 밑을 흐르는 작은 강가에서 멈췄다. 비오 듯 땀에 젖은 말들이 물을 마시고 대원들은 잠시 쉬었다.
# 고조선 선군시대 수도 아사달. 화백회의가 열리고 있는 궁전의 대연회장. 사흘째 회의. 회의장 타원형 바닥의 길고 둥근 탁자에 3한의 왕을 비롯하여 5가의 부족장들과 대신들 그리고 1000여 명의 부족장들이 넓은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타원형 바닥으로부터 위로 10여 단의 계단에는 각종 부족복장의 부족들로 발 딛을 틈조차 없다. 토론의 의제는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첫째, 47세 단제 고열가천왕의 궐위로 비어있는 천왕을 선출하는 일과 둘째, 해모수의 침공에 대한 방비책이었다. 해모수는 고리국왕으로 웅심산에 웅거하였는데 작년 가을에 병사를 이끌고 궁성에 들어와 선제께 제위를 몰려줄 것을 협박하였다. 선제께서는 절차의 부당함을 들어 물리쳤으나 대신들이나 장수들이 대비책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대신들과 장수들 가운데는 은근히 해모수를 비호하는 자들도 있었다. 단제 고열가천왕은 천왕의 제위가 위태로움을 간파하고 스스로 옥좌에서 물러나 입산하여버렸으나 5가는 정쟁에 휩싸였다. 이 틈을 타 해모수가 수유후 기비를 충동질하여 합세한 뒤 군사를 이끌고 아사달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화백회의는 5가의 왕위 계승 정쟁으로 왕위 추대가 먼저냐 해모수와 수유후 기비의 연합 침략군 방어 군사 동원이 우선이냐 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이렇게 사흘을 허비하는 사이에 해모수의 군대가 아사달에 바짝 다가섰다. 해모수와 밀약한 수유후 기비의 군대도 사흘 안에 아사달에 도달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제서야 천왕 추대의 정쟁을 미루고 방어책을 논의했으나 이 또한 4분5열이었다. 먼저 장수들이 동요했다. 5가는 장수들의 준동을 제어하지 못했다. 해모수를 추대하자는 의견도 개진되었다. 중구난방 속에서 변경의 부족장들이 돌아가겠다고 선언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어 장수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회의장에는 대신 몇 명과 5가의 부족장들만 남았다. 그들마저 통합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흩어지자 다음 날 해모수가 무혈 입성을 했다. 해모수는 궁성을 평정하고 천왕랑이라 스스로 부르며 천왕 승계를 선언했으나 5가의 부족장들과 대신들은 숨어버렸고 변경의 족장들은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버렸다. 해모수는 수유후 기비를 번조선왕으로 삼고 상하 운장의 수비를 맡겼다.
# 부여족장 드라고미르를 비롯한 서북 변경 족장들이 아사달 외곽 드라고미르의 막사에 모여있다. 타타르족장 에르게이Erugai Argouh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타타르족장 : 해모수가 궁성을 접수하고 5가의 족장들과 대신들을 불렀으나 아무도 모인 사 람은 없다 합니다.
부여족장 : 해모수는 반역잡니다. 누가 선뜻 나서겠습니까? 천왕께서는 5000년 역사를 이어 온 고조선의 계승잡니다. 해모수는 변방을 지키는 한낱 부족장일 뿐입니다. 정통성이 없습니다.
타타르족장 : 족장님들의 견해를 들어봅시다.
흉노족장 : 속수무책입니다. 3한의 왕들과 5가의 족장들이나 대신들조차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변방의 족장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돌궐족장 : 막조선 왕과 번조선 왕은 벌써 돌아가버렸다는 보고입니다. 5가의 족장들과 대 신들도 모두 피해버렸습니다.
부여족장 : 믿을 수 없습니다. 5000년 왕업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타타르족장 : 해모수가 수유후 기비를 번조선 왕으로 임명했다든데 ….
돌궐족장 : 번조선 왕이 자기 영토를 장악을 하고 있는데 명목상 왕을 임명했다고 하더라도 부족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장악하려고 하면 한바탕 혈전이 불가피 하겠지요.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비의 군사로는 번조선의 병력을 상대하기 어렵습니 다. 그리고 또 막조선과 주변의 족장들까지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여족장 : 구심점을 잃은, 명분이 사라진 전쟁에 누가 진두지휘를 하겠습니까? 해모수는 강성한 군대로 도성을 장악했습니다.
흉노족장 : 우리도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여족장 : 수습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해모수에게 항복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 다. 우리 병력으로 해모수를 상대하는 것은 무모합니다. 번한 막한 두 왕이 힘을 합쳐 해모수에게 대항하거나 5가의 부족장들과 대신들이라도 해모수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왕들도, 5가도 제위를 놓고 다투는 처지에서 서로 견제했기 때문에 해모수가 그 틈을 노렸습니다. 일단 돌아갑시다.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다가는 무모한 희생을 당할 염려가 있습니다. 자, 내일 아침이면 늦습니다. 언제 해모수의 군대가 들이닥칠지 모릅니다. 되도록 빨리 도성을 뜹시다. 이렇게 된 이상 한 시도 도성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족장들이 흩어지 고 부여족장이 말에 오르려는 때 부장이 뛰어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더니 부여족장 다시 방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이어 천지화랑 복장으로 말을 탄 한 떼의 무사들이 당도하여 족장의 방으로 안내된다.)
무인왕자 : (허리를 굽혀 절하며) 소장 단제 고열가천왕의 세 째 왕자 무인입니다.
부여족장 : (일어서 맞으며) 떠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왕자께서 합류하시겠다면 기꺼이 승낙 하겠으나 길이 멀고 험난합니다.
무인왕자 : 시간이 촉박합니다. 거두어주십시오. 천왕폐하께서 유시하신 일입니다.
부여족장 : 상황을 이해합니다. 천왕폐하의 유지도 짐작합니다. 갑시다. (곁에 있는 부장을 돌아보며 짧게 명령한다.) 장군 소영은 왕자와 화랑을 편대 중앙에 모시고 옹위하라! 아무도 눈치채지 않게 은밀히 하라!
# 아사달. 아리수 건너편 언덕의 신전 앞 뜰, 말에서 내리는 해모수를 향해 일단의 군사들이 달려온다. 선발대다.
선발대 부장 : (군례를 하며) 장군님, 신전이 텅 비었습니다.
해모수 : (말에서 내리던 자세로 뒤돌아보며) 신전이 비었다니 무슨 말이냐?
선발대 부장 : 장군님의 분부대로 곧장 군사를 몰아 도착해보니 이미 신전은 비어있었습니 다.
해모수 : (잰 발걸음으로 신전에 들어서며) 아니 이럴 수가! 천부인이 없잖느냐? 샅샅히 찾 아라? 모두 샅샅히 뒤져 천부인을 찾아내라! (부장을 돌아보며) 여기 천지화랑을 관리 한 책임자가 누구였더냐?
부장 : 고열가천왕의 세 째 왕자 무인입니다. 아무래도 무인이 천부인을 가지고 달아난 듯 합니다. 병사로 뒤를 쫓아야 하지 않을까요?
해모수 :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안절부절하며) 병사를, 무인이 어디로 간 줄 알 고 병사를 보낸단 말이냐?
부장 : 무인이 달아났다면, 어젯밤 화백회장을 빠져나온 동북변경족장 아니면 막한이나 변 한의 왕과 합류했을 것입니다. 병사들을 서너 갈래로 동원해서 추적하겠습니다.
해모수 : (머리를 흔들며) 이미, 그들이 떠난 지 오래다. 아침에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아리 수를 넘었을 것이다.
부장 : 늦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솔한 사람이 많고 부대시설을 지니고 가고있기 때문에 더 딥니다.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먼 길을 왔는데 충분히 쉬지도 못했습니다. 말들 이 지쳐서 달리지 못합니다.
해모수 : 그렇다면 … 동북족장들과 막한왕, 변한왕을 세 갈래로 추적해서 반드시 왕자 무 인을 잡아야 한다. 그가 지니고 있는 신물은 반드시 찾아야한다. (또 다른 부장을 가리 키며) 궁성을 빠져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르니 궁성 안을 샅샅히 수색하라! 아니다. 궁성 은 빠져나가지만 못하게 각 방면의 문을 막고, 그러니까 성문을 철통같이 닫아걸어라! 아무도 내보내지 말라! 먼저 출입을 막아놓고 수색하라! (해모수, 망연자실茫然自失한 표정으로 말에 오른다.)
한인(안파견)천왕 거발한 한웅천왕 성모聖母 웅녀상
* 김산호 화백. Daum Blog 인용
◎ 한인천왕, 한웅천왕, 선군왕검, 선제 해모수의 선기옥형 연관聯關
주술적呪術的 통치統治 기록 (한단고기桓檀古記 3성기聖記 전全 상편上篇, 임승국)
고조선에서 천왕을 계승할 수 있는 사람들은 5가 부족이었으며 화백회의에서 추대하였다. 해모수가 고열가천왕을 강압으로 퇴위시키고 천왕의 자리에 스스로 올랐으나 5가와 대신들은 물론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해모수는 국정을 안돈하기 위해 수유후 기비를 번조선 왕으로 임명하고 상하 운장을 지키게 하여 국경을 방비하고 내정을 안정하려고 하였으나 5가를 비롯하여 고조선의 1000여 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해모수는 5가와 대신들 그리고 1000여 부족을 설득하려고 불러들이기도하고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모두 해모수의 반란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부름에 오지 않았다.
더구나 해모수에게 치명적인 결함은 고조선 창건 이래 유전되어오던 선기옥형이 사라져버린 일이다. 신전을 수호한 고열가천왕의 셋째 왕자며 천지화랑의 신크마리(우두머리) 무인武印이 고열가천왕의 은밀한 지시를 받고 선기옥형을 옮겼던 것이다. 해모수는 왕위에 있었던 기간 내내 관리와 군사를 동원하여 선기옥형이 은닉되었을만한 곳을 샅샅히 뒤졌으나 선기옥형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민심을 얻지도 못하고 선기옥형조차 가지지 못한 해모수는 아사달 궁성생활 1년 여만에 자신이 세운 난변 궁궐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해모수는 고조선을 이어받지 못하고 나라 이름을 북부여라고 정했으며 영토는 고조선의 1/100도 되지 못했다. 아사달을 중심으로 한 진한의 영토마저도 완전하게 통치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영 선기옥형을 찾지 못했으므로 왕권이 서지 못해 친위 장수들과 벼슬아치, 백성들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해모수와 그 이후 북부여 왕들도 천왕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했으며 5대를 내려오는 동안에도 역대 왕들은 선기옥형을 찾는 일을 왕가의 사업으로 추진했으나 끝내 선기옥형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고조선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지 못한 북부여는 오래가지 못했다. 1대 해모수(한기 6958년, BC. 239년)로부터 6대 고무서(한기 7138년, BC. 59년)까지 6대 180년을 이어갔을 뿐이었다.
# 한편, 천왕 추대의 화백회의에 참석하였다가 해모수의 반란에 휩싸여 밤중에 아사달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부여족장을 비롯한 고조선의 서북부족장들과 고조선의 고열가천왕의 세 째 왕자 무인 일행은 약속한 장소 아리수 언덕 신전 앞에서 만났으나 잠시 뜸을 들일 여유조차 허용되지 않고 칠흑 같은 밤길을 재촉하여 서쪽으로 달렸다. 세습무당 도가이고오로부터 무인 왕자가 신전을 탈출하면서 고조선의 신물인 선기옥형을 가지고 나왔다는 말을 들은 부여족장 드라고미르는 상황의 급박함을 알자 꽁무니에 불이 붙은 듯 일행을 재촉하였다. 추격군이 쫓아오는 건 시간 문제였다. 쉬지 않고 밤길을 내달렸다. 사막 한 켠이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녘, 타클라마칸사막의 동쪽 입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쿤룬산맥의 끝자락 얕으막한 산 정상에 도착했다. 주변을 살피던 부여족장 드라고미르 눈에 아주 멀리 가느다란 먼지 줄기가 보였다. 추격군이었다.
부장 소영 : 추격군입니다, 족장님!
부여족장 : 예상 보다 빠르구나. 여러 족장들에게 알려라! 타클라마칸사막을 횡단하지않고 남쪽으로 우회한다. 단, 타타르족장만 예정된 길로 행군한다. 타타르족장에게 추격군과 너댓 시간 간격을 유지하면서 달리도록 명령을 전해라.
부장 소영 : 무인왕자를 제게 맡겨주십시오. 별동대로 모시겠습니다.
부여족장 : 해모수가 쫓는 것은 무인왕자다. 우리가 아니라 무인왕자가 위험하다. 무인왕자 가 도피하는 것은 고열가 천왕폐하의 유훈이다. 부장 소영은 왕자님을 모시고 앞장서 라! 추격군을 따돌려야 한다. 신속하고 은밀하게 사막을 우회해서 돌아간다.
# 부여족장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추격군은 타클라마칸사막을 횡단하는 타타르족장의 행렬을 쫓아갔다. 그로부터 7일 뒤, 바이칼호수 리스트비양카에 도착한 부여족장 드라고미르 드라가노프Dragomir Draganov(불가리아인 시조)는 돌궐족장 압둘라 메시드Abdulra Macid(터어키인 시조)와 흉노족장 꼬다이 졸탄Koday Zoltan(헝거리인 시조)과 세습무당 도가이고오 후이(Dogaiguo Hui 바이칼호수 알혼Olkhon섬의 세습무당) 등 동쪽 변경의 여러 족장들과 회동했다. 그러나 고조선에 부흥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내리지 못한 체 헤어졌다. 추후 상황을 봐가면서 대처하기로 회동을 맺었다. 그러나 한 가지, 세습무당 도가이고오가 제안한 일은 다소 어렵게나마 가결되었다. 동행하였던 고열가천왕의 왕자 무인의 거취에 대한 의논이었다. 왕자 자신이 원하기도 했지만 세습무당 도가이고오의 의견이 강경했다. 부여족장을 비롯한 세력이 큰 두 부족의 돌궐족장과 흉노족장을 비롯한 여러 족장은 무인 왕자가 부여족의 사비성(현재 불가리아의 소피아)에 머무르는 것이 옳다고 하였으나 세습무당 도가이고오의 주장이 의외로 강력하였으므로 족장들은 일단 잠정적으로 올혼섬에 기거하는 것으로 잠정합의했다. 세습무당 도가이고오는 무인 왕자가 지니고 있는 선기옥형에 무게를 두었고 아사달에서도 천지화랑으로써 신전을 관리하였으므로 신전에 예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여족장 드라고미르를 비롯한 여러 족장들은 해모수에게 강탈당한 고조선의 부흥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므로 도가이고오의 속셈을 염려하고 있었다.
* Daum Blog 인용 바이칼호수 알혼섬 장승 원주민
◎ 바이칼Baikal호수 알혼Olkhon섬의 고조선 왕자
# 부여족장 드라고미르의 궁궐, 왕자 무인이 기거하는 방에 족장의 딸 소영이 들어선다.
무인왕자 : (의자를 권하며) 부장이 소영낭자라는 걸 알고는 매우 놀랐습니다.
소영 : 여자 무사가 남장을 하는 건 천지화랑의 관례가 아닙니까?
무인왕자 : 그렇긴 하오만 너무 뜻밖이라 ….
소영 : 놀라셨다면 송구스럽습니다. 적적하실 것이니 병사들이 흔련하는 연병장에 나들이 하지 않겠습니까?
무인왕자 : 그래요? 말 달리는 솜씨들이 대단하던데 한 번 구경할까요. (무인왕자 소영을 따라 나선다.)
# 부여족장 드라고미르의 궁실, 밖을 내다보며 심각한 생각에 빠져있는 족장. 창밖으로 딸 소영과 무인왕자가 산책을 하고 있다.
# 그 날 밤 딸 소영의 궁실, 족장이 딸 소영과 마주 앉아 있다. 족장은 표정이 굳어있고 딸 소영은 매우 흥분된 모습이다.
부여족장 : (의자에서 일어서서 멸 걸음 걷다가) 내 충고는 애비로서가 아니라 족장으로서 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부장 소영에게 하는 말이다.
소영 : 명령입니까?
부여족장 : 명령이라고 하기 보다는 … 충고다.
소영 : 충고로 듣겠습니다.
부여족장 : 무인왕자의 혼인 문제는 개인 일이 아니고 부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야, 고조선 의 문제고.
소영 : 왕자의 혼인에 종족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족장님의 말씀은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무 당의 딸은 되고 족장의 딸은 안 된다는 것에는 승복할 수가 없습니다.
부여족장 : 그 건 네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천왕가의 혼인은 대부분 정략적이다. 왕가를 이어가기 위한 자구책이지. 왕가의 속성을 모를 네가 아니지 않느냐?
소영 : 천왕가는 이미 망했습니다. 무인은 이름뿐인 왕자입니다.
부여족장 : 그래서 더욱, 천왕가의 재기를 위해 족장들이 내린 결론이다. 족장회의의 결론을 부여족장의 딸이 막아선대서야 말이 되느냐?
소영 : 아버지는 족장으로써 말씀을 하시지만, 천왕가의 부흥에 대한 여망을 저도 잘 알고 있으나 저는 지금 부장 소영이 아니라 딸 소영으로, 개인 소영으로 무인왕자와 결혼을 바라는 것입니다. 무인왕자도 저와 혼인할 것입니다.
부여족장 : 알고 있다, 왕자와 네 사이를 짐작하였기에 더욱 네 결정을 바꾸라고 말 하는 것이다. 잘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왕가의, 족장들의 결의에는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없다. 너도 알지 않느냐. 족장의 결의는, 예부터 내려오는 화백회의로써 만장일치고 번 복되지도 않는다는 걸.
소영 : 화백회의의 결의는 알지만 저는 족장으로써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왕자와 혼인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돌아서 방을 나간다.)
# 알혼섬의 세습무당 도가이고오는 아사달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복안을 은밀하게 그러나 구체적으로 진행시켜나갔다. 할아버지 때 선기옥형의 배향에 대한 한 차례 소용돌이가 있었다. 도가이고오가문이 선기옥형을 신전에 배향하고 싶었던 건절한 소망이 물거품으로 되어버린 사건이었다. 바이칼호수는 고조선의 발상지였다. 더불어 민속신앙의 발상지였다. 한인천왕이 하늘에서 가지고 내려온 천부인 세 개 중 하나인 선기옥형은 무당들의 몫이었다. 천왕이라고 해도 선기옥형을 정치적으로 배향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천왕들은 중요한 국사 때 신전에 모신 선기옥형을 통해 신탁을 받았다. 그 중개자가 무당이었다. 민속신앙의 발상지였던 알혼섬에서 선기옥형이 진한의 수도 아사달로 옮겨진 것은 천왕들의 3한관경제(고조선의 3한. 진한, 마한, 변한으로 분할 통치)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었다. 도가이고오는 지구촌 무당 - 민속신앙의 대부代父, 세습무당으로써 선기옥형이 알혼섬에 배향되기를 바랬다. 무당의 발원지인 자신의 제단에, 본래 있었던 자리에 선기옥형이 모셔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대先代 대대로 세습무당들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당들의 이 소망은 천왕들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뒷전으로 밀렸다. 소원을 이룰 가망도 없었다. 그런데 하늘의 뜻이었던지, 고조선이 해모수에게 찬탈된 것은 차치하고 선기옥형이 스스로 바이칼호수로 돌아오게 되었다. 주변의 족장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자기의 딸과 무인왕자의 혼인도 결의했다. 도가이고오는 자기 대에 와서 조상들의 염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에 대해 감복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왕자 무인이 지녔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선기옥형이 해모수의 찬탈로부터 선기옥형을 지키기 위한 위장술이었음을 알고는 도가이고오의 실망은 기쁨에 반하여 절망적이었다. 왕자 무인에게 선기옥형은 없었다. 해모수의 찬탈을 피하기 위해 왕자 무인이 지니고 탈출한 것으로 위장했다. 그 틈에 선기옥형은 신관과 신녀들에 의해 아사달 인근의 은밀한 장소에 은닉되었다. 도가이고오가 이 사실을 알고는 상심이 얼마나 컸던지 근 한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신전에서 칩거했다. 칩거 한 달 여 만에 신전에서 나온 도가이고오는 몰골이 수척해지고 눈에는 총기가 사라졌다. 사람이 변해버렸다. 그런 도가이고오는 초췌한 모습으로 칩거에서 나오자말자 제단을 건설을 시작했다. 지구라트Zigurat(제단으로 정상이 편평하여 제사를 지냄, 피라미트Pyramid는 능묘陵墓로써 정상이 뾰쪽함)였다. 단군시대의 제단과 같은 규모였다. 제단 주변을 정리하여 신성한 터전으로 닦아 웅상雄常(낙상雒常, 고조선에 자생하는 신비한 나무 추정, 마을의 당산堂山나무로 이어짐)을 심고 천지화(天指花, 무궁화)로 울타리를 둘러 소도蘇塗(천제天帝의 제사를 모셨던 성역聖域, 범죄인이 도피하여도 체포할 수 없었음)를 가꾸었다.
만주 집안 장군총 Sumer의 Ziggurat Egypt의 Pyramid 일본 Okinawa
(Ziggurat 추정) (제단祭壇) 수중 Pyramid
Mexico Maya 1945년 미국 수송기비행사 Mexico 태양의
Chichen - Itza 항공 촬영 만주 Pyramid들 신전神殿
중국 서북부 만주지방에 100개가 넘는 Pyramid 떼가 있는데 중국정부는 이 피라미트 군을 발굴하다가 한족漢族의 유적이 아니라는 내부적인 이유로 중단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집트 쿠프왕의 피라미트(145m) 보다 두 배 높은 300여m의 거대한 피라미트들 은 고조선의 Ziggurat(제단祭壇, 꼭대기가 평편함)거나 피라미트(무덤, 꼭대기가 뾰쪽함)로 추정한다. 이러한 유적이 만주를 비롯하여 이집트, 멕시코, 남미, 서북시베리아, 티베트, 동남유럽 등 지구촌 특히 각 대륙의 중심지에 산재함 * Daum Blog 인용
* 제단(祭壇, Zigurat) 자료
도성都城 아사달阿斯達에서 70리(35Km) 떨어진 완만한 구릉에 제단 터를 잡아 9한桓의 제후국 군사와 성 안 백성들을 동원하였는데 날마다 3만여 명씩 동원하여 연 인원은 1백 만 명이요 능묘陵墓 축성 기일은 석 달이 걸렸다. 거대한 돌을 다듬어 쌓은 제단의 기단基壇은 정방형正方形으로 각 방의 길이가 3000자尺(1Km)요 위로는 높이 또한 1000자(300m)로 일곱 단을 쌓아 올렸는데 흐린 날이면 그 꼭대기에 운무雲霧가 걸렸다. 첫째 단은 기단으로써 300자, 둘째 단 240자, 셋째 단 210자, 넷째 단 120자, 다섯째 단 90자, 여섯째 단 30자고 마지막 일곱째 단은 높이가 10자며 끝이 평편하고 안에 붉은 황토를 깔았다. 네 방면의 계단으로 오르내렸다. 그리고 북쪽을 향하여 제단을 놓았는데 능히 수 백인이 모여 제사를 지낼 정도였다. 제단 주변을 정리하여 신성한 터전으로 닦아 소도蘇塗를 만들었다.
# 제단이 완성되자 왕자 무인의 혼인을 서둘렀다. 나름대로 계산이 선 행동이었다. 오랫동안의 칩거의 결론으로 얻은 해답이었다. 선기옥형을 가져올 수 없다면 선기옥형이 올 수 있는 길을 닦는다는 생각이었다. 고조선은 망했다. 선기옥형은 방랑할 것이다. 선기옥형이 갈 수 있는 가장 접근된 곳은 알혼섬이다. 그 구심점을 만든다는 생각이었다. 선기옥형을 되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혼인을 통해 왕자 무인을 알혼섬에 가두는 것이 선기옥형을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왕자 무인은 고열가천왕의 왕통을 이어받은 천지화랑의 우두머리로써 소도의 관리자요 천지화랑의 우두머리, 신크마리였다. 고열가천왕이 앞날을 예측하는 능력으로 무인 왕자를 소도 관리자로 임명했다면 하늘의 뜻과도 부합되는 일이었다.
# 무인의 결혼식을 앞둔 석 달 전, 올혼섬 도가이고오의 사당. 도가이고오의 딸이 잠든 방 앞 뜰, 달도 없는 그믐밤에 소리없이 나타난 그림자들.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무리들은 고양이처럼 발소리도 없이 방문으로 접근한다. 공기조차도 흔들림이 없는 움직임이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무사들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다. 몸이 움직이면서 주변의 공기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써는 흉내내지 못할 일이다. 흉내가 아니라 짐작할 수도 없는 일이다. 천지화랑의 훈련기술을 익힌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걸음법이다. 맹수들이 먹이를 쫓을 때 사용하는 움직임이다. 짐승들은 코와 귀가 민감해서, 특히 밤에 활동하는 짐승들은 눈 보다 귀와 코에 의존한다. 발자국 소리와 냄새를 상대편에게 흘리지 않고 사냥 거리까지 접근하는 것은, 사람으로써는 불가능하나 맹수들은 탄력있는 발바닥과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여 사정거리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총이나 활, 창을 쓰지 않고는 짐승사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맹수사냥의 훈련법을 익힌 천지화랑은 맹수 보다 더 민첩하게 움직임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상대에게 접근할 수 있다. 자객들은 댓돌 밑에 납작 엎드렸다. 역시 이런 일련의 동작에도 바람 한 점 움직이지 않는다.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머리를 들어 방 안의 기척을 살피더니 댓돌로 올라선다. 그 때 쉬잇! 공기를 가르며 비수가 날아와 머리를 들고 방 안 기척을 살피던 자객의 가슴께를 파고든다. 자객은 비수 나는 소리로 이미 몸을 틀면서 허리를 굽혀 비수를 피하며 왼 손으로 비수를 맞받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수가 손바닥을 파고든다. 그러나 자객은 역시 흔들림없이 비수가 날아온 방향, 맞은편 지붕 위를 향해 표창을 날린다. 한 점 빛이 없는 밤, 비수와 표창이 날아가는 소리가 공기를 서로 대각선으로 가른다. 퍽! 표창이 목표물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지붕 위로 몸이 글러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금새 조용하다. 순간 횃불이 켜지고 주위가 소란스러워진다. 신전 경비화랑들이 들이닥친다. 자객들은 또 한 발 소리 없이 한 점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도가이고오 : (쪽문을 밀고 내당으로 들어서며) 무슨 소란이냐?
경비화랑 : 자객이 침범했습니다.
도가이고오 : (횃불에 얼굴을 들어내며) 뭐라! 자객이?
경비화랑 : 소리를 듣고 달려왔더니 서너 놈이 달아났습니다.
도가이고오 : 그래, 놓쳤단 말이냐?
경비화랑 : 쫓고 있습니다. 허나 워낙 재빠른 놈들이라 ….
도가이고오 : 그렇다면, 화랑들이였단 말이냐?
경비화랑 : 그런 것 같습니다. 아가씨를 노렸습니다.
도가이고오 : 그렇겠지. 혼삿날이 낼 모렌데 … 엄중하게 지켜라! 물 샐 틈 없이.
도가이고오가 돌아서 나오는데 뒷문에서 경비화랑 몇이 부상당한 사람을 부축하고 나온다.
도가이고오 : 뭐냐?
경비화랑 : 부여족장, 드라고미르 족장님이십니다.
도가이고오 : (횃불 가까이로 다가가며) 뭐라? 족장님?
부여족장 : (병사들에게 부축하여 들어오며) 뭐라 … 드릴 말씀이.
도가이고오 : 무슨 말씀을 …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를 보며) 아니 이 건 다치지 않았습니 까! (화랑을 돌아보며) 뭣들 하는가, 족장님을 빨리 내실로 모셔라!
# 신전의 내실 침상에 누워있는 부여족장 드라고미르와 세습무당 도가이고오. 표정들이 침통하다.
도가이고오 : 다행입니다. 요행하게도 표창이 급소를 비켰습니다.
부여족장 : (알고 있다는 듯) 그랬을 겁니다. 날 죽이려고 던지지 않았으니까.
도가이고오 : 족장님을 치료한 화랑의 말로는 상처가 깊지 않다고는 합니다만 ….
부여족장 :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 보다는 따님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도가이고오 : 딸을 노렸다는 걸 아시는 건지요?
부여족장 : (대답없이) 지붕 위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막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큰 일이 날 뻔 하잖았습니까.
도가이고오 : (무언의 말로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시름 놓았으니 치료 에나 마음 쓰시지요.
부여족장 : 고마우신 말씀입니다만 부끄럽습니다.
# 무당의 딸을 살해하려던 부여족장의 딸 소영의 음모는 이를 미리 알아챈 부여족장의 기지로 실패했다. 그리고 거사의 실패로 족장의 딸 소영은 궁궐을 떠나버렸고 부여족장은 군사와 백성을 풀어 딸을 찾으려고 온갖 애를 썼으나 딸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일설에는 깊은 산속에 은둔한 천지화랑들의 무리에 끼었으리란 추측이 세간에 떠돌았다. 부여족장과 무인왕자는 소영을 찾는데 석 달을 보내고나서는, 왕자 무인이 세습 무당의 딸과 혼례를 치룬 뒤 결국 딸을 찾는 일을 포기했다.
# 알혼섬, 왕자 무인의 결혼식장. 고유의 무당복장인 오고이복장 -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에 사람, 말, 새 모양의 장식을 줄렁줄렁 달고 종과 원형 장식물은 금속 패넌트 차림을 한 무당들이 바이칼호수를 중심으로 흩어져있던 여러 지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신전의 제단을 에워쌌다. 울긋불긋한 헝겊들이 매달린 솟대가 제단 중앙에 높이 걸리고 동유럽 사방에서 모여든 부족들이 수백 개의 차일을 치고 운집했다. 족장들도 예복을 입고 제단 앞줄에 앉았다. 신부는 신녀 수업을 한 도가이고오의 딸이었다.
혼인식을 거행한 며칠 뒤 왕자 무인은 도가이고오로부터 세습무당의 신대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그 뒤 한 달여 만에 도가이고오는 아무 말 없이 알혼섬에서 사라졌다. 풍문에 천부인인 선기옥형을 찾아나섰다는 말이 돌았으나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다. 입산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가 실종되던 날 이른 아침에 호수로 배를 저어나간 걸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확인 결과 헛소문이었다. 왕자 무인은 신대와 함께 도가이고오 후이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 백두산 북쪽 능선 장백폭포 부근 47세 선군 고열가 은거 동굴. 좌선하고 있는 고열가천왕 앞에 홀연히 일단의 신녀神女들이 나타난다.
고열가천왕 : 천부인天符印은 잘 모셨는가?
대신녀 : (신녀들이 모셔온 궤를 천왕 앞에 내려놓으며) 안전합니다.
고열가천왕 : 하늘의 뜻일지니 내게 맡기고 너희들은 돌아가라!
대신녀 : 어디로 가라십니까? 저희들이 천부인을 지키겠습니다.
고열가천왕 :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곧 이제 다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선기옥형을 받들이가 나타날 것이니, 그리 알라. 그대들은 산을 내려가 신전을 지키라.
대신녀 : 천왕폐하도 계시지 않고 천부인도 모시지 못한 빈 신전을 지키라 하십니까?
고열가천왕 : 새 시대가 열리는 날을 기다려라. 이 또한 하늘의 뜻일지니….
◎ 수메르Sumer와 한단고기의 수밀이국 그리고 천신天神 통치統治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에서 제카리아 시친Zecharia Citchin은 이렇게 말 한다
* 모든 역사가 Sumer에서 시작되었다거나, 인류 최초의 문명이 수메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그것이 최초의 것이라는 데 있지 않다. 수메르문명은 인류 최초의 것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이미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문명이기도 했다. 그들은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지구와 인간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신과 인간의 관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신들이 어디에서 언제 지구로 왔고, 왜 인간을 창조했으며, 어떻게 지구를 왕래하며 인간을 지배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내용들이 수메르의 점토판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남아있으며, 구약성경의 이야기들이나 각국의 신화들은 수메르의 이 고대 기록들을 나중에 각색하고 번안한 것들에 불과하다. 과연 그들이 알고 있던 창조의 비밀과 과학 기술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 태양계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행성 하나가 더 있다. 3600년을 주기로 공전하는 이 12번째의 행성, 마르둑Marduk이 바로 지구에 문명을 창조한 ‘신들의 고향’ 이다. 그들은 행성 간 우주여행을 할 수 있었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구에 왔으며, 노동력 조달을 위해 ‘인간을 창조’ 했다. 인간과 닮은, 인간처럼 울고 웃고 싸우기도 하는, 이 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또한 그들은 왜 지구를 떠났으며, 언제 다시 오는가? 그리고 그들이 하늘과 땅 사이의 유대를 위해 남겨둔 지상의 낙원, Eden은 과연 어디인가?
태양계 행성과 작은 행성들/ 천체 밀집 태양계 바깥 Kuiper Belt 위치와 규모, NASA * Daum Blog 인용
◎ 한단고기(임승국)는 수밀이국(Sumer)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한국본기 제 2권에서 삼성밀기는 말한다. 파나류산(한인의 한국시대의 도읍지, 하르빈 남쪽의 완달산) 밑에 한인씨의 나라가 있나니 천해(바이칼호수) 동쪽의 땅을 역시 파나류국(한인시대의 한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 5만리(2만5000Km), 동서 2만리(1만Km)이니라.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곧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캄차카), 일군국, 우루국(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직구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퉁구스, 시위국, 통고사국), 수밀이국이니 12국이다.
* 선군왕검시대, 15세 선군대음(후을달) 재위 51년, 신사 2년, 한기 5537년(BC. 1660년), 홍수가 크게 일어나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겨울 10월에 양운국과 수밀이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 선군왕검시대 27세 선군두밀 재위 28년, 갑신 원년, 한기 6200년(BC. 997년) 천해(바이칼호수)의 물이 넘쳐 아란산이 무너졌다. 이 해 수밀이국, 양운국, 구다천국 등이 모두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쳤다.
* 인류학계와 세계의 사학계가 주목하는 수메르문화의 뿌리에 해당하는 나라가 바로 수밀이국이다. 수메르민족이란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수메르말이라고 불리는 언어를 사용한 민족으로 세계 최고의 도시문명을 메소포타미아에서 꽃피운 민족이다. 여기에서 최고라는 말은 마지막의 결론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서양학이 주도한 결론일 뿐이다. 서양역사학은, 서양역사학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학자들도 한인천왕의 한국시대 12연방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 이는 문화의 창조 동서양 선후 다툼이 아니라 동서문화 주도권의 쟁점이다. 서양역사학자들은 구약성서를 기원으로 하는 인간의 창조론에 입각한 인류사를 정립하였는데 느닷없이 수메르문명이 발굴되고 해독되어 구약성서 이전의 기록이 밝혀지자 황당해 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서양을 기점으로 하는 수메르인을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갑자기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나타나’ 라는 식으로 기술한다. 서양역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수메르인이 수메르지역 원주민이 아니라고 한다면 당연히 누가, 언제, 어디서 이 땅에 이주하였는가? 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수메르인에 대한 정설은 ‘검은 머리칼의 교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이다. 이들은 누구일까?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지금까지는 언어학적, 인류학적으로 ‘아시아닉크계 민족설’ 이 유력하다. 역사적으로 인류사를 규명하려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데 인종과 언어다. 슈메르인은 검은 머리칼의 인종이었다. 수메르인의 언어는 교착어인데 서양학자들은 언어적 연관성 때문에 이를 우랄(유럽의 서쪽 끝 지역)-알타이어(아시아의 몽골지역)라고 규정하여 서양의 서쪽 끝과 아시아의 동쪽 끝을 묶어놓았다. 유럽에는 교착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고어, ‘터어키어’ 가 교착어다. 서양학자들에게는 수메르인들이 어디서 이동하여 왔는지 규명이 불가능하지만 자연 조건 때문에 문화의 동서 이동은 빠르고 남북 이동은 느리다는 고인돌유적(고인돌의 70%가 한국에 있음)에서 고대한국인의 유럽 동쪽 이동을 밝혀낼 수가 있다. 인류학과 언어학적으로 터어키인, 항가리인에 주목한다.
* 중국사서의 ‘진서 숙신열전’ 에 한인시대의 한국 12연방을 가리키는 말이 숙신(쥬신의 한자 차음)으로 표현되는데 숙신은 바로 조선이고 바이칼호수 접경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나라가 한국 12연방이었으며 그 막내 나라가 수밀이국(Sumer)이라고 기록하였다.
* 여와는 태호복희씨의 누나다. 그녀는 흙을 빚어 7일 만에 사람을 만들고 혼을 불어넣었다고 하였다. ‘여와’ 라는 이름마저 한국어 번역판성경의 ‘여호와’ 와 일치하고 수메르기록의 신들이 인간을 창조한 기록과도 일치한다.
수메르 기록에도 최고 여신인 Inanna(Lipit-Ishtar)가 있다.
* 대저 9한(한국시대 한인천왕이 다스리던 강역의 나라 또는 백성)의 족속은 나뉘어 5종이 되고 피부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구별을 짓게 되었다. 황부인黃部人은 피부가 노랗고 코는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머리털은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흑색이요, 백白부인은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赤부인은 피부가 녹슨 구리색이요 코는 낮아 뭉특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藍부인은 풍족이라고도 하며 또 야자나무 인종의 색깔이라고도 한다. 그 피부는 암갈색으로 모양은 오히려 황부인과 같다.(흑부인黑部人의 기록이 없음)
◎ Sumer의 역사(제카리아 시친의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 하나님이 대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 인간의 딸들을 아내로 삼은 신의 아들들이 있었다. 히브리어 원전에서는 그들을 네필림이라고 했고 이는 ‘던져진 자들’, ‘지구로 내려온 자들’ 이다.
* 구약성경에는 야훼(여호아)의 옥좌가 하늘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지구)을 보고 있다. 신약성경의 주기도문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말한다.
* 모든 고대인들은,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왔고 또 자기들 마음대로 하늘로 다시 올라갈 수도 있었던 신들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었다. 수메르를 비롯한 근동의 고대 유적지에서 엄청난 양의 천문학적 지식이 담긴 Sumer점토판들이 대량(5만5000매) 출토되었는데 이 문서들은 그런 신들의 존재와 그들의 고향인 특정한 행성(Marduk)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지구태양계의 12번째 행성, 혹은 Marduk라고 불렀다.
*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경쟁하던 두 거대한 제국, 남쪽의 바빌로니아와 북쪽의 아시리아는 Acade어를 공통으로 사용하였다. 아카드어는 히브리어, 아람어, 페니키아어, 가나안어와 비슷하지만 그 보다 훨씬 앞선 어떤 원전의 복사였다. 그렇다면 누가 설형(쐐기)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의 정확한 문법과 풍성한 단어를 발전시킨 것일까? 도대체 앞 선 원전을 쓴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바빌로니아인들과 아시리아인들은 왜 그 언어를 아카드어라고 불렀을까? 구약성경(창세기 10장)에서는 ‘그가 다스린 나라의 처음 중심지는 시날(수메르) 지방 안에 있는 바빌론과 에렉(우르크)과 악갓(아카드)과 갈레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카드라는 왕조가 있었을까? 1869년 프랑스 고전고고학회에서 J. Oppert는 아카드 이전의 언어와 민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고 학자들은 유적지에서 발굴된 점토판이 ‘아카드어 - 수메르어사전’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써 수메르어를 판독하게 되자 놀랄만한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 수메르어로 엔시는 ‘정의로운 지배자’ 인데 라가시에서 발굴된 기록들은 라가시왕조가 BC. 2900년경에 시작되어 650년을 이어갔으며 43명의 엔시들이 다스렸고 수메르의 지도자들은 ‘신의 허락을 받아야만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고 명백하게 기록하였다.
* 1956년 S. N. Kramer의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에서 바퀴, 고층건물, 음악과 악기, 야금술, 의학(서), 조각, 보석, 도시, 왕조, 법률, 사원, 기사도, 수학, 천문학, 달력, 학교, 양원제, 역사학자, 농업(서), 우주론, 격언, 문학 논쟁, 도서관 목록, 인간 영웅, 사회 개혁, 세계평화 노력, 욥, 노아, 인쇄술, 활자 사용, 원통형 인장윤전기, 60진법, 역청과 석유연료, 백내장 수술, 알코올, 죽은 신의 소생술, 투구(외투, 토가), 빵, 맥주, 포도주, 요쿠르트, 버터, 치즈 등 인류 최초의 발명 100가지 이상이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 수메르문명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잇는 어떤 고대문명 보다 더 발전적이고 포괄적인 문명이었다. 그리고 이 문명이야말로 현재의 우리 문명이 기원을 두고 있는 원전이다. 약 200만 년 전에 석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인간은 BC. 3800년 경에 수메르에서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메르문명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수메르인이 도대체 누구였으며,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왜 수메르문명이 생겨났는가? 라는 물음이다. 고대인류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수메르문명은 아주 갑작스럽고, 전혀 앞선 문명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하였다. H. Frankfort는 ‘놀랍다’, P. Ammiet는 ‘비범하다’, A. Parrot는 ‘아주 갑자기 나타난 불꽃’, L. Oppenheim은 ‘엄청나게 짧은 기간에’, J. Campbell은 ‘수메르의 좁은 진흙땅에서 정말로 갑자기 세계의 모든 고등문명을 구성하는 단초들이 일시에 시작되었다’ 라고 말한다.
* 제카리아 시친은 인류학의 발전과정을 살펴 왜, 수 백 년 동안 고통스럽도록 느리게 진행되던 인간의 진화가 BC. 1만1000년경 농업의 획기적인 발전, 7400년경 신석기문명, 3800년경 갑작스런 문명의 발전이라는 세 차례의 계기를 통해 가속도를 얻어 원시적인 사냥꾼, 채취자를 농사꾼, 토기제작자로 바꾸어놓고, 다시 도시건축가, 수학자, 천문학자, 상인, 음악가, 판사, 의사, 작가로 바꾸어놓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바벨탑 모형도 * Daum Blog 인용
* 구약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에서는 대홍수 이후 지구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수메르)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구약성경 창세기 11 : 2)>를 잡았다. 정착한 수메르사람들은 도시를 세우고, 탑(발사대, 지구라트)을 쌓았는데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사람들의 이름(쉠, 비행 물체)을 날리려고 하자 하느님은 인간들의 이 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통일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인간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인간들의 단합을 봉쇄하자고 자신의 동료들에게 제안한다. 언어의 혼란이 시작되자 바벨탑 건립은 무산되었다.
* 아라비아해에 착륙한(44만 5000년 전) 엔키가 이끄는 네필림은 태양계 12번째의 행성 마르둑에서 지구로 내려와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여 최초의 정착지 에리두(먼 곳에 지어진 집)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신들이 지구의 통치권을 나눠 가진 뒤 하급 신인 아눈나키들에게 노동을 시켜 자원을 확보했다. 하늘에는 300명을 두어 안(신들의 왕, 아눈나키들의 아버지)을 지키게 했고, 안의 명령을 따르게 했다. 또한 하늘에서 지구로 오는 길을 정하게 했다. 그리고 지구에는 600명을 살게 했다. 하늘과 땅의 아눈나키에게 지시를 내린 후 노역의 임무를 부여했다.
* 노역에 시달린 아눈나키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신들의 대법관 엔닐은 무기로 폭동을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누스코의 충고를 받아들여 폭동의 원인을 조사한다. 그리고 아눈나키들의 노역이 너무 가혹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신들은 원시적 노동자, 인간을 창조해서 아눈나키의 노역을 대신하게 한다. 따라서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우리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신의 창조물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에 네필림이 원인(호모 에렉투스)들에게 자신들의 형상과 모습을 덧붙여서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다파(아담)는 신이 만든 인간의 모델이다. 아담을 모델로 노동력을 대신할 복제품 인간을 만들어냈다.
*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에 의하면 ‘10기간 동안 그들은 일에 시달렸다. … 40기간 동안 그들은 일에 시달렸다’ 는 반복된 기록이 있다. 네필림의 1년(1샤르)은 3600년(12번째 행성 마르둑의 공전주기)이다. 그래서 40샤르는 14만 4000년이다. 아눈나키들은 엔키가 지구에 착륙한 뒤 14만 4000년 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린 것이다.
* 대홍수가 지나간 뒤 네필림은 지구의 신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회의를 한다. 회의의 결과 그들은 네 개의 지역을 만들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유역), 나일강 유역, 인더스강 유역과 나머지 하나 마지막 지역은 신성한 곳이었는데 순수한 땅으로 불리운 그 곳은 틸문Tilmun(미사일의 땅, 우주 공항)이었다. 틸문은 어디인가? 네필림Nefilim(히브리원전 성서, 하급 신, 인간의 딸을 아내로 삼은 신의 아들들, 던져진 자들, 지구로 내려온 자들)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3600년 뒤, 오늘(AD. 2008년)로부터 1400년 뒤 돌아와서 살려고 남겨놓은 에덴Eden동산은 어디인가? 구약성경에서는 상징적으로 에덴을 설정하여 지정학적으로는 이스라엘 동쪽을 지칭했다. 그러나 수메르문헌에서는 이라크 동북지역을 확연하게 지정한다. 네필림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지정한 에덴이 서양학자들이 말하는 메소포타지역의 동북부 이라크 동북부지역인가, 고대 대한의 발상지인 바이칼호수일까, 아니면 금수강산이라고 불리웠던, 지구촌의 동방 해 뜨는 지역 대한민국인가?